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17.다윗을 드러내심..전쟁은 하나님께 속한것!! 엘깁보르-아비르-트수르, 여호와 사바오트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그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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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7장  [347.허락하신새땅에] [350. 우리들이싸울것은] [352.십자가군병들아] [325. 예수가함께계시니] [278. 여러해동안주떠나] [214.나주의도움받고자]


..사울70세-요나단50세(믹마스전투 후28년 경과 시점), 다윗 20세 되기 직전??<강제소집이 아니라 나이 제한 있는 자원군 체제>..(기름부음 받음 = 15세)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여 사랑 기쁨의 주 그리스도로 살기 연습, 넘쳐 몸에 배이고 묻어나도록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자연스레, 하나이신 주님 친히 하심의 실행 , 매일 날마다 그러함 안에서, 맡기신 일처리에 주 인도따라 사랑과 기쁨으로 성실/정직-완벽/능숙함으로 처리-십자가 아래 머물러 주 임재따라 하나로 동행 ::: 오늘 새로운 날, 더 주 안에 하나-동행/더 닮아가는 -- 새로운 존재, 더 새로운 참생명 삶+새로운 기름부음, 더 새로운 사랑-기쁨의 순종


**골리앗이란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람의 자기생각 느낌에 스스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사방 대적의 우겨쌈-코너/절벽 끝에 몰린 성활, 감히 이겨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문제거리나 위기-위협-두려움 자아내는 (실체가 있든 없든) 대상이라 할 것인데 그로 인해 그것을 맞닥뜨린 사람은 때때로 (실제이든 아니든간에)온갖 저주-욕설 등 모독하는 말들로 인해 무가치감-무력감-눌림/억울감-분함으로 가득차게 되고 이는 곧 너무 거대한 스토레스 그 자체로서 기능적 부신부전증후군까지 유발하게 되어 만성적 우울장애와 자포자기-자살 충동에까지 ,도달하게 만들기도 한다 (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누구나 한번  맞닥뜨릴 수 밬에 없는 가장 큰 골리앗은 실상 죽음이다***)

**사울의 투구와 갑옷, 이러한 것들은 (골리앗처럼 느껴지는 문제들이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하는 세상적 공격 무기 및 방어-대비 태세 인데ㆍ) 세상이 요구하는 인맥-학력-네트워크-스펙, 경험, 제반 실력과 그 숙련도-탁월함 등이라 할 것이다 ... 그러나 Q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거듭남의 인침 그 자체인 [왕이요 제사장 선지자의 인증] 성령의 기름부음  받았고 (이것은 히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결코 그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실것을 약속하심인데 ... 인침 받은 그가 주남 붙드는-회개하고 주 이름 불러 기대하며 머물러 그분 뜻 따름- 생생한 산  믿음 발휘하는 한 끝까지 작동함 ) 여호와의 이름 그자체와, 그가 양을 구원해내기 위해 연마하게 하심따라 백발백중에 이르도록 연마한, 백발백중의 물매질((주님께 여쭘이 꼭 필요하다!!--누구나 주님 경외하는자라면 주님이 깨닫고 추구하여 탁월하게 만들어 주신다!!)), 주님 그분자신의 임재와 친히 일하사 그분 영광 나타내심 그 자체인, 그분의 도우심이면 충분했다, .....골리앗은 다윗의 연소함과 자기가 볼 때엔 무장이란 전혀 갖추지 못한 가벼운 옷차림만 보고 그와 함께 하시며 완전히 그분의 임재로 완전히 감싸고 계신 임마누엘 여호와는 보지  못한채, 방패 든 자도 물리치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고 있다...결국, 칼 든 보병과 백발백중  저격병, 또는 포병과의 싸움인 셈이었다:::: 영적으로 보면  돠윗은 하나님의 가치와 세계관따라,  말씀 성령의 하나되심으로 살아가셨던 JC의 전형으로서 JC 주님은 사망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사  믿는이마다 그의 믿음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로 살도록 하신 백전무패의 구원대장이시다


##사울의 영적상태 :: 블레셋은 화려하고 강력해 보이며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스타로되 그 마음속은 끊임없는 불안-두려움-낙망-우울-좌절, 그러나 그 본질상 거품이자 허망한 세상 사조(유행-풍조-사상-가치체계)의 저주/찬탈/기만/속임/거짓/허위/상대적 오남용 체계...--사울은, 분명히 거듭남(성령의 기름부음 받고 새로와짐과 주님 능력을 주관적으로 경험했음 = 곧 주님과 연결된바 그 연결을 주님은 결코 취소하지 않으셨음((기름부음이란 ,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됨의 표징임을 명심하라...온유-친절-겸손, 주님보다, 말씀보다 앞서지 말라, 늘 회개하며 십자가에 머무르라!! .... "말씀 순종하기를 거역하여--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성령을 소멸하지 말 것을 정말 당부하는 주님 말씀에 주의하라!!...자포자기함으로써 자기목숨 스스로 끊지만 않으면 주님은 택자를 결코 먼저 포기하지 않으심!!))......다만 [단독자로서 과감히 목숨 걸고!!] 주님 앞에 나아감이 있어야 했다...용감히 직대하기 위해 주님 앞에 엎드림- 주님께 무어라 드릴 말씀 하나도 없음을 진정 깊이 (울고 계신 주님께) 울며 회개하고 깨닫는 죄악마다 고백하며-자비를 구하며-전존재를 쏟는 목숨거는 교통이 필요함...비추시는 진리말씀 기준으로 그 자신이 취한바 오류를 분명히 깨달아야함, 오해/착각(버리셨다는!!)에서 그때 벗어나게 되리니!!...(직접 주께 나아가 독대하여 주님과 단독자로서, 주님의 유일무이한 사랑과 기쁨 대상 삼으심으로 인해 (무자격자임에도!!) 구속해주심 통해 그분의 소유요, 그분은 나의 개인적 소유와 누림으로 자신을 완전히 열어내어주사 누리게 하셨음을 믿고!!, 참된 믿음 발휘하여 용감히 한 걸음 내딛음으로써 깨달아 알고 머물며!!, 온통 진리의 길을 이탈하게 하고, 주님의 궁극적 뜻[과녁=구주 알고 TUQ과 하나됨으로써 이땅에 내려오게 되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되는 바, 이 땅에 이미 이루고 계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건축(질적-양적 측면에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합당한 성장성숙이룸) 위해 성령님과 함께 하나로 보냄받은 화목의 대사-왕적 제사장 됨]을 이제 믿음으로 취하고 성령께서 친히 새롭게 이끌어 주시도록 주도권을 내어드림이 필요함....반면에, 그 참생명 -사명과 소명-진리 길 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세상 가치-유행과 풍조, 사상와 그 모든 화려하나 허망한 거품들, 타락한 옛사람(육체)와 죄성/육신의 소욕 따라 참생명가치 지닌 인생을 무의미하게 소모시키도록 미혹케 하는 바 된 것마다...((주께 아뢰고 친히 이끌어주시도록 구함은 엄두도 못내도록!! 자포자기케 하고))...잠들고 마취-중독 상태에 자기를 그대로 방치하고 사탄마귀의 저주-조롱-비아냥-비웃음-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자기연민-우울공황공포-정신착란-궁극적 자살에 방치케 유도하고 있음에 대해 "결단코, 이제는 그렇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네가 깨닫게 해준바를 몸서리처지도록 경험했으니!!, 이젠 더 이상 속지않고!! 주께로 돌이켜서, 그 반대로 [devine destiny그대로] 주님과 하나된 영적 참 나기드로서 살련다"고 말하기를 배웠어야만 했었는데....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다

1.  (먼저 도발 침범)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아세가 동남쪽..유다내 블레셋 점령지)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베들레헴 서쪽 27km지점..엘라 골짜기 성읍)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블레셋진영은 소고(본진)-에베스담밈에 이르는 언덕에, 이스라엘은 엘라골짜기- 아세가 언덕 사면에 둔진...그 사이는 엘라골짜기가 직각으로 꺾여 놓여 있음..

2.  (군사력은 이스라엘 우위 상태)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3.4m)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수적 우세 자랑하며)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블레셋진영 골짜기 사면에 내려와 서 있는)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도전하는)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울의 진영에 나타난 다윗

12.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가 많아 늙은 사람으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

......[에브랏]◐에브랏(에브라다)...유다 지파 가계의 원 줄기를 보면 유다==>베레스-->헤스론[헤스론의 아들로 세째 갈렙(=글루배)이 있음-->갈렙의 아들은 훌((아론과 함께 아말렉 전쟁에서 모세를 보좌했음))-->그 아들은 우리-->그 아들은 브살렐]-->헤스론의 둘째 아들 람-->암미나답-->나손-->살마(살몬)-->보아스-->오벳-->이새

(대상 2:19, 킹흠정) 아수바가 죽은 뒤에 갈렙이 에브랏(=열매 맺음 =번성..어원은  에브라임)을 취하였더니 그녀가 그에게 훌을 낳았고....갈렙의 두 번째 아내로, .그녀는 훌의 어머니였고(대상2:19) 에브라다라 불리기도 하였다(대상4:4)

(대상 2:50, 킹흠정)  에브라다의 맏아들인 훌의 아들 갈렙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곧 기럇여아림의 아버지 소발과

(대상 4:4, 킹흠정) 또 그돌의 아버지 브누엘과 후사의 아버지 에셀인데 이들은 베들레헴의 아버지요, 에브라다의 맏아들인 훌의 아들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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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랏 즉 베들레헴이라는 지역은 지척에 있는 같은 지역으로 추정된다(창35:16, 19).....(창 35:16, 킹흠정)  그들이 벧엘을 떠나 이동하였는데 에브랏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라헬이 산통을 겪으며 산고가 매우 심하더라....(창 35:19,킹흠정)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묻혔고

==베들레헴 에브라다로도 일컬어진다(미 5:2)....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곳에서 태어 나실 것이 예언되어 있다....(미 5:2, 킹흠정)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

== 룻의 시아버지인 엘리멜렉은 다윗과 마찬가지로 베들레헴의 에브랏 사람이었다(룻1:2; 4:11; 삼상17:12).

(룻 1:2, 킹흠정)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며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더라. 이들은 베들레헴유다의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 거기에 계속해서 머물렀는데

(룻 4:11, 킹흠정) 성문 안에 있던 온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니 {주}께서 네 집에 들어간 여인((=모압여자 룻))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에브라다에서 훌륭하게 행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될지니라. ::: 라합(여리고 기생이었다)과 결혼한 살몬, 살몬의 세아들(장남 엘리멜렉--차남 무명씨--막내아들 보아스....룻(모압여인)과 결혼한 보아스, 그의 아들 오벳-->이새-->다윗))

(삼상 17:12, 킹흠정)  이제 다윗은 베들레헴유다의 그 에브랏 사람 곧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더라. 그에게 여덟 아들이 있었으며 그 사람은 사울 시대에 사람들 가운데 늙은 사람으로 통하였더라.------※베들레헴 참조...(삼상 17:12, 킹흠정)  이제 다윗은 베들레헴유다의 그 에브랏 사람 곧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더라

----헤스론의 아들 이름이 갈렙(글루배)인데...그렇다면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헤스론의 아들 갈렙과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적어도 최소 두 세대 정도의 간격이 있음]여분네의 아들 갈렙, 그 조상은 그나스, 그 위 조상은 엘리바스, 그 위 조상은 에서로서 에돔사람임!!....그러나!!, 출애굽 당시 (흠모해오던!!) 유다지파에 합류하여 그 후 주로 인해 살아감을 연습-실행함 통해 마침내는 유다지파 대표로서 에브라임의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탐꾼으로 파견될 정도로 유다지파내에서 두루 그 일편단심의 여호와 신앙과 층섬심이 인정받고 있었음....아마도 아말렉 전쟁에서 모세의 보조자로서 함께한 아론-훌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유다지파의 훌과 그 아버지 갈렙을 인상 깊게 보아 롤모델 삼고, 훌과 같은 아들 주시기를 바라면서((비록 딸을 얻고서..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딸 이름을 헤스론의 아들 갈렙이 낳은 딸 이름 그대로 악사라 지었을 정도였다...지혜롭게도 윗샘과 아랫샘의 두 샘물 근원을 아비에게 구하여 얻은, 아름다운 이름 남긴 딸, 그 악사는 초대 사사 옷니엘과 결혼했다!!)) 그 부친의 이름  갈렙을 그의 이름으로 삼아 개명하였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방인 여성 수로보니게 여인의 끈질긴 믿음 !!]]...다윗의 담대무쌍한!! 글자그대로 조금도 염려-의심 없이!! 주님 신뢰하여 나서는, 하나 된 믿음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를 만나는 현장을 성서(마 15:21-28, 막 7:24-30)를 매개로 극적으로 재현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수로보니게 여인과 제자들, 예수라는 일련의 계열을 통해 대화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소문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한 여인, 여인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다만 여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철저한 종교적 이방인이며 헬라인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무리로 달려온 이유는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 때문이었다.----뒤로멈춤앞으로.....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한다. 자기는 온데간데 없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여인은 아픈 딸을 살릴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비록 그것이 소문일지라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허둥대며 달려가 자신을 낮추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 여인에게서 느껴진다.
그러나 예수는 묵묵부답이다. 예전의 예수는 절박한 민중의 처지에 우선적으로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대처했다. 
그랬던 예수가 왜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까? 그 사이, 예수의 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제자들이었다.
제자들 :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은 제자들에게 귀찮은 존재였을까. 줄곧 따라다니는 것도 싫고, 여인이 아픈 딸을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소리가 제자들에게는 소음에 지나지 않은 모양이다. 
예수의 침묵과 제자들의 투정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제자들은 조금 전까지 예수가 바리새인, 서기관들과 정결법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하는 현장에 있었다. 
여인이 가나안 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결하지 않은, 상종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까닭일까. 제자들은 아직도 외형적이고 획일적인 정결의 기준이 체화되어 있는 습속과 문화의 영향을 벗지 못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제자들의 청을 흔쾌히 수락하는 듯,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 :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생뚱한 장면이 연출된다. 제자들은 ‘얼씨구’ 하며 추임새를 넣고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어 기뻐했을 것이다. 
이 대목은 예수가 ‘빼앗긴 자,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한 자’의 편에 서 있다는 일관성이 깨지는 사건이다. 
이에 더하여, 수로보니게 여인은 율법을 모르는 평범한 이방인을 흔히 일컫는 ‘개’로 취급받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말씀을 예수 사역의 일관성의 잣대로 재해석해야 한다.
예수는 항상 특권적 유대의식을 경계해 왔다. 변방의 소외된 민중과 우선적으로 함께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방의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집’이라고 말한 것도 예수의 행적과 관련해서 언표화된 사실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잃어버린 양’이라고 했을 때, 수로보니게 여인은 헬라인으로서 특권층이었기 때문에 ‘소외된 자, 가난한 자’를 우선시하는 예수의 원칙적 입장에 위배되지 않는다. 
‘개’라고 표현한 것도 직설적인 표현이기보다는 ‘유대/이방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대한 역설적, 비판적 반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말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결코 살갑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여전히 이방인으로 타자화되어 있고 차별과 냉대를 받고 있을 뿐이다. 예수에게 실망했을 법도 한데,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게 대꾸한다.
수로보니게 여인 :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인은 한 치도 물러남이 없다. 자신이 ‘개’라고 여겨져도 개의치 않는다. 어린 딸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지만, 여인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여인은 예수를 이미 신뢰하고 있기에 ‘기적, 징표의 부스러기’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일 게다. 예수의 말을 순차적으로 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또한 여인의 말 속에 강력한 희망을 감지할 수 있다. 여성 이방인인 자신도 주인의 밥상에 참예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수를 자신의 주로 이해하고 있는 여인의 이 발언은 예수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했을 것이다.
예수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태)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마가)
예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여인의 투쟁어린 간청으로 이뤄진 상호소통을 통해서 예수의 뜻이 점차로 바뀌어가고 끝내는 여인의 간청이 현실로 구현되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성실한 반응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구체화되고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이 둘의 대화는 딸이 살아나는 사건으로 집약된다.
딸의 치유사건을 통해 예수운동이 항상 소외된 자의 편에 있다는 원칙이 증명되었고, 이방인이 고침 받는 사건은 이방지역까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예수운동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 보다 분명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수로보니게 여인이 신앙의 귀감이 되는 이유는, 실존적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과 만나는 생의 경험을 가졌고 하나님의 뜻을 앞당기는 강렬한 소망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13.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14.  다윗은 막내라 장성한 세 사람은 사울을 따랐고

15.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사울의 호출 없을 때에는) 베들레헴에서 (아비의 뜻따라)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17.  [주님의 섭리하신 때가 이르렀음]○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19.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20.  [아비 말에 그대로 순종하여]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21.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22.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26.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27.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29.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30.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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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코람데오-솔라피데-솔리스크립투라-솔라크리스토스-솔리데오글로리아의전형!!..아멘-아멘-아멘))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다

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잊지말고 기억-명심하라.. 사사시대부터 사울왕 당시까지 블레셋이 점령했던 전 지역(팔레스타인)은 유다 지파의 영토로 주신 바 되었으나 [산 믿음 발휘함으로 추구할 바였지만, 자기연민에 빠져 있어 엉거주춤함으로써] 점령-정착하지는 못했었다..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다윗이 사울 앞에 서다

55.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이르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56.  왕이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57.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58.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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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7장

1.  Now the Philistines gathered their armies for battle; and they were gathered at Socoh which belongs to Judah, and they camped between Socoh and Azekah, in Ephes-dammim.

2.  And Saul and the men of Israel were gathered, and camped in the valley of Elah, and drew up in battle array to encounter the Philistines.

3.  And the Philistines stood on the mountain on one side while Israel stood on the mountain on the other side, with the valley between them.

4.  Then a champion came out from the armies of the Philistines named Goliath, from Gath, whose height was six cubits and a span.

5.  And [he had] a bronze helmet on his head, and he was clothed with scale-armor which weighed five thousand shekels of bronze.

6.  [He] also [had] bronze greaves on his legs and a bronze javelin [slung] between his shoulders.

7.  And the shaft of his spear was like a weaver's beam, and the head of his spear [weighed] six hundred shekels of iron; his shield-carrier also walked before him.

8.  And he stood and shouted to the ranks of Israel, and said to them, " Why do you come out to draw up in battle array? Am I not the Philistine and you servants of Saul? Choose a man for yourselves and let him come down to me.

9.  "If he is able to fight with me and kill me, then we will become your servants; but if I prevail against him and kill him, then you shall become our servants and serve us."

10.  Again the Philistine said, "I defy the ranks of Israel this day; give me a man that we may fight together."

11.  When Saul and all Israel heard these words of the Philistine, they were dismayed and greatly afraid.

12.  Now David was the son of the Ephrathite of Bethlehem in Judah, whose name was Jesse, and he had eight sons. And Jesse was old in the days of Saul, advanced [in years] among men.

13.  And the three older sons of Jesse had gone after Saul to the battle. And the names of his three sons who went to the battle were Eliab the first-born, and the second to him Abinadab, and the third Shammah.

14.  And David was the youngest. Now the three oldest followed Saul,

15.  but David went back and forth from Saul to tend his father's flock at Bethlehem.

16.  And the Philistine came forward morning and evening for forty days, and took his stand.

17.  Then Jesse said to David his son, "Take now for your brothers an ephah of this roasted grain and these ten loaves, and run to the camp to your brothers.

18.  "Bring also these ten cuts of cheese to the commander of [their] thousand, and look into the welfare of your brothers, and bring back news of them.

19.  "For Saul and they and all the men of Israel are in the valley of Elah, fighting with the Philistines."

20.  So David arose early in the morning and left the flock with a keeper and took [the supplies] and went as Jesse had commanded him. And he came to the circle of the camp while the army was going out in battle array shouting the war cry.

21.  And Israel and the Philistines drew up in battle array, army against army.

22.  Then David left his baggage in the care of the baggage keeper, and ran to the battle line and entered in order to greet his brothers.

23.  As he was talking with them, behold, the champion, the Philistine from Gath named Goliath, was coming up from the army of the Philistines, and he spoke these same words; and David heard [them].

24.  When all the men of Israel saw the man, they fled from him and were greatly afraid.

25.  And the men of Israel said, "Have you seen this man who is coming up? Surely he is coming up to defy Israel. And it will be that the king will enrich the man who kills him with great riches and will give him his daughter and make his father's house free in Israel."

26.  Then David spoke to the men who were standing by him, saying, "What will be done for the man who kills this Philistine, and takes away the reproach from Israel? For who is this uncircumcised Philistine, that he should taunt the armies of the living God?"

27.  And the people answered him in accord with this word, saying, "Thus it will be done for the man who kills him."

28.  Now Eliab his oldest brother heard when he spoke to the men; and Eliab's anger burned against David and he said, "Why have you come down? And with whom have you left those few sheep in the wilderness? I know your insolence and the wickedness of your heart; for you have come down in order to see the battle."

29.  But David said, "What have I done now? Was it not just a question?"

30.  Then he turned away from him to another and said the same thing; and the people answered the same thing as before.

31.  When the words which David spoke were heard, they told [them] to Saul, and he sent for him.

32.  And David said to Saul, "Let no man's heart fail on account of him; your servant will go and fight with this Philistine."

33.  Then Saul said to David, "You are not able to go against this Philistine to fight with him; for you are [but] a youth while he has been a warrior from his youth."

34.  But David said to Saul, "Your servant was tending his father's sheep. When a lion or a bear came and took a lamb from the flock,

35.  I went out after him and attacked him, and rescued [it] from his mouth; and when he rose up against me, I seized [him] by his beard and struck him and killed him.

36.  "Your servant has killed both the lion and the bear; and this uncircumcised Philistine will be like one of them, since he has taunted the armies of the living God."

37.  And David said, "The LORD who deliver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from the paw of the bear, He will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And Saul said to David, "Go, and may the LORD be with you."

38.  Then Saul clothed David with his garments and put a bronze helmet on his head, and he clothed him with armor.

39.  And David girded his sword over his armor and tried to walk, for he had not tested [them.] So David said to Saul, "I cannot go with these, for I have not tested [them]." And David took them off.

40.  And he took his stick in his hand and chose for himself five smooth stones from the brook, and put them in the shepherd's bag which he had, even in [his] pouch, and his sling was in his hand; and he approached the Philistine.

41.  Then the Philistine came on and approached David, with the shield-bearer in front of him.

42.  When the Philistine looked and saw David, he disdained him; for he was [but] a youth, and ruddy, with a handsome appearance.

43.  And the Philistine said to David, "Am I a dog, that you come to me with sticks?" And the Philistine cursed David by his gods.

44.  The Philistine also said to David, "Come to me, and I will give your flesh to the birds of the sky and the beasts of the field."

45.  Then David said to the Philistine, "You come to me with a sword, a spear, and a javelin, but I come to you in the name of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taunted.

46.  "This day the LORD will deliver you up into my hands, and I will strike you down and remove your head from you. And I will give the dead bodies of the army of the Philistines this day to the birds of the sky and the wild beasts of the earth, that all the earth may know that there is a God in Israel,

47.  and that all this assembly may know that the LORD does not deliver by sword or by spear;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nd He will give you into our hands. "

48.  Then it happened when the Philistine rose and came and drew near to meet David, that David ran quickly toward the battle line to meet the Philistine.

49.  And David put his hand into his bag and took from it a stone and slung [it], and struck the Philistine on his forehead. And the stone sank into his forehead, so that he fell on his face to the ground.

50.  Thus David prevailed over the Philistine with a sling and a stone, and he struck the Philistine and killed him; but there was no sword in David's hand.

51.  Then David ran and stood over the Philistine and took his sword and drew it out of its sheath and killed him, and cut off his head with it. When the Philistines saw that their champion was dead, they fled.

52.  And the men of Israel and Judah arose and shouted and pursued the Philistines as far as the valley, and to the gates of Ekron. And the slain Philistines lay along the way to Shaaraim, even to Gath and Ekron.

53.  And the sons of Israel returned from chasing the Philistines and plundered their camps.

54.  Then David took the Philistine's head and brought it to Jerusalem, but he put his weapons in his tent.

55.  Now when Saul saw David going out against the Philistine, he said to Abner the commander of the army, "Abner, whose son is this young man?" And Abner said, "By your life, O king, I do not know."

56.  And the king said, "You inquire whose son the youth is."

57.  So when David returned from killing the Philistine, Abner took him and brought him before Saul with the Philistine's head in his hand. 

58.  And Saul said to him, "Whose son are you, young man?" And David answered, "[I am] the son of your servant Jesse the Bethlehem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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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 (개요)

하나님은 다윗을 크게 영광스럽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왜냐하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장인 16장에서는 그가 기름 부음을 받은 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궁전에서 유명한 인물이 된 경위를 읽어 보았다. 

그런데 여기 17장에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싸움터에서도 어떻게 유명한 인물이 되게 하셨는가를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그가 한 위대한 인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뜻하시는 대로 왕좌에 오를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사울의 궁전에서의 다윗은 한갖 사울의 의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이스라엘의 용사가 되었다. 

거기서 다윗은 멋지게 싸웠고, 가드 사람 골리앗을 쓰러뜨렸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1. 골리앗의 늠름한 모습과 이스라엘 군사들에 대한 그의 담대한 도전(1-11).

2. 하나님의 섭리가 다윗을 전쟁터로 이끌고 갔을 때의 그의 초라한 모습(12-30).

3. 이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다윗이 나타내 보여 준 비교할 수 없는 용기(31-39).

4. 다윗이 골리앗에 대해 취했던 신앙적인 행동(40-47).

5. 돌 하나를 던짐으로 다윗이 얻은 영광스러운 승리와, 이로써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에 대해 얻은 승리(48-54).

6. 사울의 주목을 받은 다윗(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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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골리앗의 도전(삼상 17:1-11)

얼마 전에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늘씬하게 두들겨 맞았으며, 그때 만일 사울의 성급한 처사가 없었다면 그들은 재기 불능의 상태에까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그들이 또다시 머리를 쳐들고 이스라엘에 대해 도전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Ⅰ. 블레셋은 그들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었다(1절). 

그들은 이스라엘 땅을 습격하여 이미 그 영토의 일부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다에 속한” 한 곳에 진을 쳤기 때문이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하나님께 충실한 생활을 했다면 블레셋 군대들은 감히 이스라엘의 땅을 밟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 블레셋 사람들은 사무엘과 사울이 싸우고, 사무엘이 사울을 버리고 다시는 그를 도와주거나 충고를 해 주지 않게 되었으며, 또 사울은 점점 더 정신착란을 일으켜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자 지난번에 당했던 패배를 앙갚음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교회의 원수들은 교회를 공격할 만한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인가를 항상 살핀다. 

그리고 교회의 보호자들이 하나님의 성령과 선지자들을 노하게 하여 그들을 떠나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기회가 된다.

사울은 그의 군사들을 소집하고, 블레셋과 대면하여 진을 쳤다(2, 3절).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1. 지금은 악신이 사울을 떠나 있었다(16:23). 

다윗의 수금이 그의 병을 어느 정도 낫게 했고, 그리고 아마 전쟁의 경고와 또 전쟁의 발발이 그의 병을 중단시켜 준 것인지 모른다. 

몰두케 하는 일은 정신착란증을 위한 좋은 치료제다. 만일 우리의 마음에 집착해서 할 만한 일을 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스스로를 잡아먹는 위험한 처지에 빠질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푸사 그 심판을 잠시 늦추어 주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임금이 혼란한 지경에 있을 때에 심판을 내리신다면 이스라엘 전체에 혼란이 얼마나 더 극심할 것인지를 아시기 때문이다.

2. 지금 다윗은 궁전을 떠나서 베들레헴에 돌아가 있었다(15절). 

다윗은 기름 부음도 받았고 또 사울도 그를 자기의 병기를 드는 자로 삼았던 것인 만큼 다윗이 사울의 가신이 되어 그의 궁중에 그대로 남고 싶으면 얼마든지 남아 있을 수 있었지만, 사울의 병을 위해서는 더 이상 그가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게 되자,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돌아갔다. 

그처럼 출세한 젊은이가 부모에게 관심을 가지고 순종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는 출세를 시작한 마당에 다시 해야 하는 것도 좋다는 것을 알고 궁전의 화려한 환락을 버리고 목장 생활로 되돌아갔다. 

그는 참으로 영광과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며 또 동시에 그런 것들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Ⅱ. 블레셋은 그들의 용사인 골리앗을 내세워 이스라엘에 대해 싸움을 걸었다. 

블레셋은 골리앗을 내세우면 상실했던 그들의 평판과 통치권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그를 크게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스라엘 군사가 숫자나 그 힘에 있어서 블레셋 군사들보다 우세했던 것 같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곤란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싸움을 잠시 끌면서, 그런 용사를 내세워 단기 접전을 시켜 싸움을 승리로 이끌 속셈을 차렸을 것이다. 

이제 이 용사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자.

1. 그의 거대한 몸집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는 여호수아의 시대에 가드에 자리잡은 아낙 사람들의 자손이었으며(수 11:22), 골리앗은 그들 가운데서도 가장 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키는 여섯규빗 한 뼘이었다(4절). 

학문에 조예가 깊은 콤벌란드(Cumberland) 주교는 성서에 나오는 한 규빗은 21인치(반 야드와 3인치) 정도가 되며, 한 뼘은 밤 규빗이 된다고 했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해서 계산하면 골리앗은 그 키가 4야드 8인치, 11피트 4인치가 된다. 

만일 그가 그의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는 힘과 정신력만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굉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2. 그의 무장에 대해 알아보자. 

자연적인 그의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그 꾸밈새도 굉장히 무서울 정도였다. 그는 방비를 위한 무장을 썩 잘 갖추고 있었다(5, 6절).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물고기 비늘과 같은 놋쇠 조각을 붙인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은 보통 사람들의 손이 잘 미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놋쇠 구두를 신고 놋경갑을 치고 있었다. 그의 갑옷의 무게는 5,000세겔이라고 했다. 보통 한 세겔은 반 온스다. 그러므로 그 옷의 무게만 해도 보통 사람은 입고 다닐 수 없으리만큼 무거운 것이며, 거기에다 다른 부분들도 그만큼 따라서 무거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이 “무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옷이 5,000세겔의 “값”이 나간다고 번역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단지 그의 창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데(7절), 그의 공격용 무기 역시 보통과는 다르다. 그것은 마치 배틀채와 같다고 했다. 보통사람은 간신히 들 수 있는 것을 그는 마음대로 조작했다. 그의 모든 장비들 가운데서 그래도 제일 가벼운 방패는 다만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서, 그의 호위병이 그의 앞에서 들고 다녔다. 온 몸을 놋으로 감싼 그에게는 방패가 그다지 필요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 그의 도전하는 언사에 대해 알아보자. 

블레셋 사람들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골리앗을 대장으로 뽑아서 내세웠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의 군사들을 무시하고 마구 도전적인 언사를 퍼부었다(8-10절). 

그는 두 진영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 나와 섰다. 그의 팔처럼 그의 목소리로 우렁찼기 때문에 모두가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싸울 자, 한 사람을 내게로 보내라”고 그는 소리쳤다. 그는 주위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키가 크고 힘이 강하기 때문에 매우 우쭐했다. 그의 심장은 교만의 고기 덩어리에 불과했다(라고 홀 주교는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중에 자기와 같은 거인이 없다고 무시하며 자기와 짝할 만한 자가 있으면 내세워 보라고 큰소리쳤다.

(1)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향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온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꾸짖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였느냐? 너희가 어떻게 우리 강한 블레셋을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결판이 단번에 날 터인데, 무엇 때문에 두 군대가 서로 결전을 벌여야 하겠는가? 누구든 한 사람만 목숨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살려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2) 그는 그 싸움을 그가 제안하는 대로 두 사람의 결투로 결판을 내자고 했다. 

“만일 너희의 대장이 나를 죽이면 우리는 너희의 종이 되겠고, 내가 이기면 너희는 우리의 종이 되리라.” 이것은 한갖 허세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패트릭(Patrick) 주교는 말했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도 그 나라의 운명을 감히 한 사람에게 걸 나라가 없을 것이며, 이는 조금도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골리앗의 명백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골리앗이 죽임을 당했을 때, 블레셋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지 않은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에 대해 싸움을 걸면서, 대장의 한 사람인 그가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심복이 아니냐”고 한 것은 자신의 겸양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한갖 종으로밖에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갈대아판 성서에 의하면 그가 바로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인 사람이며, 하나님의 궤를 노획한 사람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은 그의 업적에 상당할 만한 직책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사울은 그의 업적에 의해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울에 대해 “그가 와서 나의 도전을 받게 하라”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4. 이스라엘을 휩쓴 두려움에 대해 알아보자. “사울과 이스라엘이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였다”(11절). 

만일 사울의 용기가 그의 기를 꺾어 놓는 것을 보았다면 백성들은 그처럼 겁에 질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도자가 겁장이이면서 그 추종자들이 담대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전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임했을 때는(11:6), 그가 암몬 사람 나하스의 도전에 대해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대항했던 것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신이 그를 떠나자”, 덩치가 크고 큰소리치는 한 블레셋 사람이 능히 그를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지금 요나단은 어디 있을까? 지난번 마지막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그 온 군대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웠었는데, 왜 이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아마 틀림없이 지난번 경우와 같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용감한 사람도, 훌륭한 사람도 모두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 

골리앗과 맞싸울 영광은 다윗을 위해 마련된 것이기에 요나단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의 바람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곳으로 불어 주신다. 

이때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왕이 사무엘과 불화하여 그 관계를 끊은 것을 애타게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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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진영에 온 다윗(삼상 17:12-30)

사십 일 동안 두 군사들은 유리한 자리에 자리잡고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하고 서로 나와서 싸우지는 않았다. 

그들은 서로 담판을 하며 유리한 강화조약을 맺고자 했거나 아니면 보충병들이 오기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지엽적인 소전투는 자주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그 용사가 나타나 계속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도전을 반복했다. 

이스라엘이 이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으므로 그의 마음은 점점 더 교만으로 가득해지고,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기는 더욱 소침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멸망의 때가 점차 무르익어 가게 이끄셨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다 인상적으로 하시기 위해 일을 꾸미고 계셨다.

그동안 다윗은 그의 아버지의 양들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40일이 지날 무렵에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이 감히 하려고 하지 못했던 모험을 시도하고 그리하여 그 싸움에 이겨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하시고자 그를 전쟁터로 이끌어 가셨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의 가족들의 현재의 형편을 볼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다(12절). 그는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공적인 봉사에서 면제되어 전쟁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에 나갔다. 그는 그의 나이 때문에 존경을 받았다. 그의 백발은 그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되었다.

다윗의 큰 형들 셋은 궁전에서의 다윗의 지위를 시기하여, 그들의 아버지에게 다윗을 집으로 불러들여 그 명성을 떨어뜨리게 하고 자기들은 전쟁터에 나가게 하여 명성을 얻고자 했다(13, 14절). 하지만 다윗은 왕을 위해서 행한 자기의 일을 자랑하지도 않았으며, 그 이상의 출세에 대해서도 어떤 야망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화려한 궁전의 생활을 떠나 단지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조용히 지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34절에서 증명되었듯이) “아버지의 양들을 지켜 주는” 수고를 위해서 돌아왔다.

그의 겸손은 나라의 대신이라는 귀한 명예를 받은 뒤의 겸손이기에 더욱 칭찬 받을 만하다. 그는 그처럼 겸손했기에 정복자가 될 수 있었다. “명예 앞에는 겸손이 있다.” 

그는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어 명상하고 기도하며 그리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Ⅱ. 그의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호기심을 만족시키며, 무엇인가 경험을 얻고자 하여 그곳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별로 쓸모없고, 천한 심부름으로 그를 보냈을 따름이다. 그런 일이라면 능히 사환을 시킬 수도 있었다. 

다윗은 형들을 위해서 떡 열 덩어리와 볶은 곡식을(17절), 그리고 형들의 천부장에게 선물로 줄 치즈 열 덩이를 가지고 형들에게 가야만 했다(18절). 

다윗은 그의 가족을 크게 빛낼 사람이 될 터인데 아직까지는 그들의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그는 짐을 싣고 갈 나귀가 없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등에 짊어지고 싸움터로 달려갔다. 

이새는 그가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을 숨기기 위해 부지런히 그를 그처럼 천한 일을 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새는 다윗이 분명히 다음 왕으로 등극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혹과 시기의 눈에서 그를 숨겨 두고자 했을 것이다.

다윗은 형들이 잘 있는지, 전쟁이 너무 오래 끌기 때문에 식량 보급이 형편이 없어서 배를 곯지나 않는지 알아보아야 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아버지가 그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보내고자 했다. 또 다윗은 형들의 증표를 받아 가야만 했다. 

말하자면 형들이 어떤 것을 저당잡힌 것이 있으면 그것을 보상해 주어야만 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동료들의 형편도 살피고 오라”는 말로 본다.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라는 것이다. 다윗도 요셉과 같이 전에 그 형들에 대한 좋지 못한 보고를 아버지께 했던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들의 태도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자 다윗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들이 그들을 멀리 떠나 있으며, 특히 유혹이 많은 곳에 가 있을 때의 그들의 경건한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 모습을 보라.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어떻게 몸가짐을 하고 있으며, 또 어떤 친구들과 사귀고 있는가를 늘 근심하고 있다. 

자녀들은 이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며, 부모의 뜻에 맞도록 처신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의 눈을 떠나 있을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눈 아래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Ⅲ. 다윗은 아버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부지런하고 조심성이 많은 다윗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20절). 그리고 양들을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서야 길을 떠났다. 그만큼 그는 적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일도 충분히 맡아서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배우기 전에 자기 스스로가 복종하는 법을 배웠다. 

하나님은 가장 알맞은 때에 그를 싸움터로 이끌어 오셨다. 그때가 바로 양쪽 군사가 서로 항오를 벌이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리고 지난 40일 중의 어떤 때보다도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때였다(21절). 양쪽이 모두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새는 그의 아들을 그처럼 위험한 시기에 전쟁터에 내보내는 일에 대해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하여 또 그의 마음에 드는 자의 출세를 위해서 그 시간과 그 환경을 마련해 놓으셨다.

1. 다윗은 매우 활발하고 생기가 넘쳐 흘렀다(22절). 

그는 조심스럽게 짐을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짐 지키는 자에게 맡겼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먼 길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군대로 달려갔으며” 형들에게 문안도 했다. 

“그처럼 자기 일에 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출세할 것이며, “왕 앞에 반드시 서게 될 것이다.”

2. 블레셋 사람은 대단히 담대했다(23절). 

양쪽 군사들은 서로 항오를 벌이고 대치하고 있었다. 그때 그 블레셋 사람이 대열 앞에 나와서 다시금 싸움을 돋우었다. 

아마 그는 자기의 영광과 승리를 열심히 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생각이었다. 사실 그때 그는 자기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었다.

3.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우 겁에 질렸고, 의기가 소침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40일간이나 함께 있으면서, 오만한 몸집과 위협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빈말뿐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골리앗의 엄포를 무섭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는데, 그가 가까이 오자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다”(24절). 

그들의 반석이 천만 뜻밖에도 흔들려서 “그들을 팔고, 그들을 내어주지 않는다면” 블레셋 사람 하나가 천 명의 이스라엘 사람을 쫓을 수 없으며, 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을 도망가게 할 수는 없었으리라.(신 32:30).

4. 사울은 골리앗을 치는 사람에게 줄 많은 상급을 걸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가장 키가 컸던 사울은 하나님과 가까이만 지내고 있었다면, 골리앗이 내건 도전에 마음놓고 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이 그를 떠났기 때문에 사울은 감히 도전에 응할 수도 없었고, 요나단을 나서게 할 수도 없었다. 

그 대신 누구든지 그에게 도전하는 자에게는 그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출세를 시켜 주겠다고 했다(25절).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그 위험한 모험에 성공한다면 원하는 만큼의 재물과 명예를 주고, 또 왕의 딸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그가 성공하든지 못하든지 “그 아비의 집이” 모든 세금과 왕가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하게 할 것이며, 귀한 지위와 귀족의 호칭을 받게 될 것이라”고 공포했다..

5. 다윗은 골리앗의 시건방진 도전에 대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큰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는 사람에게 어떤 보상이 수여되리라고 약속되었는가고 물었다. 

그것은 다윗이 그 보상과 명예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여기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가해진 치욕에 대해 그 자신이 얼마나 분격하고 있는지를 사울이 알 수 있도록 그에게 보고되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는 궁전에서의 일 때문에 사울과 이미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 자신이 직접 사울 왕에게 가서 그 자신이 하겠노라고 나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매사에 겸손하고 수줍어하기를 잘하는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의 자리에 서지 말라”(잠 25:6)는 잠언은 그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기 전에 다윗 자신의 생활 신조였다. 

그러나 다윗의 열심은 이 위대한 일에 그 자신이 종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다윗은 두 가지 면에서 의분을 느꼈다고 보여진다.

(1) 그 도전자는 할례받지 않은, 하나님을 모르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지 못한 백성이었다.

(2) 한편 그의 도전을 받은 백성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이며, 하나님께 몸을 바쳤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고용된 군사들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준 모욕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기에 다윗은 이를 참을 수 없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블레셋 사람을 죽인 자에게 줄 상급에 대해 대답을 해 주었건만(27절), 이를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30절). 

이것은 사울의 귀까지 그의 말이 들려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6. 그의 맏형 엘리압은 다윗을 꾸짖고 그를 낙심시키는 말을 했다. 

그는 다윗이 건방지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매우 화를 냈으며 그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다(28절).

(1) 이것은 엘리압의 시기 때문에 일어났다. 

엘리압은 제일 큰형이었고 다윗은 막내였다(대개 형들이 동생에 대해 그렇듯이) 엘리압은 언제나 다윗을 무시하고 어떤 일에나 그를 꾸짖기를 잘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랫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자들은 그 자신의 생활은 형편없으면서 아랫사람들을 깎아 내려야 자기가 올라가는 줄 안다. 

이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때가 올 것이다. 지금 엘리압은 자기도 감히 할 수 없는 말, 즉 그 블레셋 사람에 대해 대담한 말을 자기의 어린 동생이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화를 냈다. 그는 다윗이 이미 궁전에서 높은 명예를 얻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유명해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었는데) 이 전쟁터에서조차 또다시 다윗이 명예를 올린다면, 큰형으로서의 자기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런 것이 바로 질투의 본성인데) 엘리압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기보다는 골리앗이 이스라엘에 대해 이기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진노는 잔악하고 노여움도 포악한 것이지만, 질투 앞에서는 견디어 낼 사람이 없다.” 

더욱이 형제의 질투는 가장 악랄한 것이다. 야곱과 요셉이 그리고 다윗이 그것을 체험했다(잠 18:19 참조).

엘리압은 아주 거친 말씨로 다윗을 욕했다. 단지 공평치 못하고 친절치 못한 말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경우에는 은혜조차 잊어버린 말이었다. 

다윗은 요셉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위해서 그들을 찾아왔다. 

엘리압은 단지 다윗을 슬프게 하고 그래서 용기를 잃게 하며 그리고 다윗의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고상한 불을 꺼 버리기 위해서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다윗은 게으른 아이이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애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했다. 

엘리압은 사람들에게 다윗은 한갖 목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했으며, 또 은근히 그가 충실치 못한 목동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다윗은 그의 책임을 잘 맡겨 놓고 왔으나(20절), 엘리압은 “들에 있는 양들은 뉘게 맡겼느냐”고 욕하며 물었다.

다윗이 싸움터에 온 것은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한 것이며, 형들에게 친절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엘리압도 이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비난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온 것은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네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구경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엘리압은 다윗의 “교만과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라고 했다. 

그는 마치 다윗의 마음속에라도 들어갔던 자처럼 말했다.

다윗은 그의 겸손함과 정직함을 하나님께 호소하며(시 17:3; 131:1) 이번에는 그 두 가지에 대해 모두 확실한 증거를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친형 앞에서는 이런 심한 말을 피할 수가 없었다. 

교만하고 시기심이 많은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불합리함과 그리고 그 악독함을 보라. 그 질투는 끝없는 것이며, 그 비난은 정당한 것이 못되고, 그 표현은 부당하며, 그 악담은 지독하고 그리고 그 말씨는 매우 못마땅하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써, 우리는 그런 심령이 되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

(2) 그리고 또 엘리압의 그런 말은 다윗의 유순함과 참을성과 그리고 꾸준함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다윗은 그것을 잘 통과했다.

① 다윗은 매우 분통이 터질 만한 말을 놀라우리만큼 침착한 마음으로 참아냈다(29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욕을 먹을 만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어떤 것입니까? 아버지가 보내서 왔는데 전쟁터에 올 만한 이유가 없으리이까? 골리앗의 도전으로 이스라엘의 명예가 이처럼 손상을 받았는데, 내가 분해할 만한 이유가 없으리이까?” 

다윗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또 그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그러므로 형을 비난하지 않고 부드러운 대답으로 형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렸다. 

어떤 면에서는 다윗이 이처럼 자기의 감정을 정복했다는 것이 골리앗을 정복한 것보다 더 훌륭하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 

블레셋이 몰려온 그런 때에 다윗은 형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교회의 원수들의 위협이 크면 클수록 교회는 더욱 참아야 한다.

② 다윗은 확고부동한 결심을 가지고 계속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는 형들의 그릇된 생각 때문에 그 블레셋 사람과 맞서려고 했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위대한 공적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간혹 협조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방해를 받고 반대를 받았다고 하여도 별로 이상히 여길 필요가 없다. 

아무리 원수들의 위협과 그리고 또 친구들의 멸시와 의심을 정면으로 받는다고 해도 다만 묵묵히 자기가 하고자 했던 일을 계속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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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허락받은 다윗(삼상 17:31-39)

드디어 다윗은 사울의 부름을 받게 되었고(31절), 용감하게 그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노라고 맡고 나섰다(32절).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심하지 말 것이라”고 다윗은 말했다. 

다윗이 만일 “당신이 낙심하지 말 것이라”고 말했다면 왕의 용기에 대해 매우 체면을 손상시키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이 낙심하지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아침까지도 양을 치던 어린 목동이 이스라엘의 어떤 용사보다도 용기가 있었으며, 그들에게 용기를 넣어 줄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로 세상의 약하고 미련한 것을 통해서 그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시며 또 위대한 일을 행하신다. 

다윗은 다만 사울의 허락을 받아,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를 원했다. 그는 사울이 제안한 보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바라는 것은 그런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명예였기 때문이다. 

그는 또 사울의 관대함을 구한 것 같지도 않다. 다윗은 다음의 두 가지를 사울과 밝히기를 원했다.

Ⅰ. 다윗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사울의 동의를 얻고자 했다. 

사울은 이렇게 말했다. “오! 네가 참 훌륭한 생각을 했구나. 하지만 너는 그 블레셋 사람과 싸울 만한 상대가 못 되겠다. 그와 맞서 싸운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니, 보다 더 유용한 때를 위해 잠시 보관해 두는 것이 좋겠다. 너는 경솔하고 아직 지각이 덜 낫고, 그리고 무기를 다루는 데도 익숙하지 못한 소년이 아니냐? 그는 어려서부터 싸움을 익혀온(33절) 어른이요 군인인데, 네가 어떻게 감히 그런 사람을 이기겠다고 하느냐?” 

다윗은 그의 형이 가졌던 노여운 감정에 대해 부드러운 말로 대답했던 경우와 같이 사울에게도 믿음을 가지고 그의 두려움에 대답했다. 

그리고 사울을 만족시켜 줄 수 있도록 그가 블레셋 사람을 능히 정복할 수 있는 “희망적인 근거”를 말해 주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했으며 이를 중히 여기지도 않았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을 설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그의 마음속에는 간직하면서도 이 점에서 사울을 설득하기 시작하지는 않았다. 

다윗은 그의 경험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비록 그가 나이가 젊고 전쟁에 나가 본 일도 없지만, 지금까지 골리앗을 죽이는 일과 같은 일은 몇 번 경험했다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의 새끼 양들을 훔쳐 가는 사자나 곰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34-36절). 

그리고 이로 미루어 보아 이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은 한갖 굶주린 그런 짐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고, 자기는 그를 쉽사리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다윗은 사울에게 그가 결코 이제 나가고자 하는 그런 치열한 싸움 같은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1. 다윗은 그의 이야기를 할 때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했다. 

그의 형은 조금 전에 그가 목동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그를 깎아내리려고 했지만, 그는 자기가 아버지의 양들을 지켰던 사실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다 이야기했다. 

다윗은 오늘날 자기에게 있는 그런 활력은 모두 목동의 생활 경험에서 얻은 것임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보통 목동이 아니란 것을 알게 했다. 

그 직업이 어떤 것이든 간에 또 그것이 얼마나 천한 것이든 간에, 그 일에 있어서 제일 탁월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야 한다. 

다윗은 양들을 치면서도 그렇게 했다.

(1) 다윗은 자기의 양이 아니고, 아버지의 양이지만 그 양떼들을 아주 정성껏 잘 살펴 주었다. 

그는 자기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새끼 양 한 마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그대로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이러한 그의 성품이 백성들의 생명을 사랑하며, 그들의 피가 귀한 줄 아는 왕이 되게 했다(시 72:14). 

그리고 또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사 40:11),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게 했다. 

이처럼 다윗은 교인들의 영혼을 우는 사자의 밥으로 내어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들을 지켜 주는 훌륭한 목회자의 모범이기도 하다.

(2) 그는 자기 양떼를 지키기 위해 매우 용감했으며, 있는 용기를 다했다. 

다윗은 지금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어떤 다른 증거가 필요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의 종은 단지 새끼 양들을 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는 사자와 곰도 쳐죽였나이다.”

2. 다윗은 믿음이 충만한 사람과 같이 그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그들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을 시인했다(37절). 

그것은 다윗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자 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자와 곰은 단지 나와 양들의 원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쳐 물리친 것은 다만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블레셋 사람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명예를 위해 이제 그를 치겠나이다.”

(1) 우리의 경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의 용기와 그리고 우리의 의무를 용감하게 실행하는 것으로 증명하여야 한다. 

우리를 건져내 주신 분은 지금도 건져내 주실 것이요, 앞으로도 건져내 주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일반적인 섭리가 하등 짐승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을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우리는 감히 의지할 수 있다. 

바다 물결의 한계를 긋고, 사나운 짐승들의 포효를 꺾으시는 하나님은 악인의 진노를 막아 주신다. 

바울이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리라”는 것을 내가 믿는다(딤후 4:17, 18)라고 했을 때, 다윗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다윗은 여기서 삼손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한 마리의 사자를 죽인 것은 한 번의 싸움에서 많은 블레셋을 이길 수 있는 승리를 예고해 주는 행복한 전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다윗은 드디어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있는 허락을 사울로부터 받아냈다. 

그때 사울은 충심으로부터 나오는 축복을 기원했다. 사울은 자기가 몸소 나가 싸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꼭 싸워 이기기를 기도했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사울은 말했다. 

이 말이 보통 하듯이 형식적으로 했거나 습관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매우 훌륭한 기원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어떤 무엇이 있었다.

Ⅱ. 다윗은 또 사물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에게 입히려고 하는 갑옷(38절)을 입지 않아도 되는 점을 밝혀야만 했다. 

“사울은 자기 갑옷을 다윗에게 입혔다.” 

그러나 그것은 사울 자신이 입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키가 차이 나기 때문에 맞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울의 무기고에 있었던 갑옷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그가 지금 자기의 투구를 씌워 주고 자기 갑옷을 입혀 주는 사람에게 얼마 안 가서 자기의 왕관과 홍포를 넘겨 주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어떤 방법으로 적을 공격할는지 결정하지 못했던 다윗은 “칼을 차 보았다.” 그러나 아직 그는 그 칼을 사용할 기회가 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윗은 그 갑옷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갑옷이 그를 막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그것들을 벗고 가기를 원했다.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이런 복장은 입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거북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울의 갑옷이 매우 훌륭하고 또 튼튼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윗에게 맞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또 그것을 입는 법을 모르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배운 것도 없고 익숙치도 못하면서도 왕의 옷과 갑옷을 탐내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입고 있는 우리의 옷이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우리가 만일 그런 생각을 가진 일이 있었다면,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옷을 입기를 원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입고 가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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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과 마주선 다윗(삼상 17:40-47)

우리는 이제 이 유명한 전투의 중심부에 거의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준비와 서로 주고 받은 충고의 말을 볼 수 있다.

Ⅰ. 서로가 싸울 준비를 다 하였다. 

블레셋 사람은 지난 40일간 내내 그랬던 것처럼 이미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 사람은 갑옷을 입는 데 익숙했으므로 완전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는 다만 그가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 왔다는 기록만을 볼 수 있는데(41절), 그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신호가 전달되었던 것 같다. 

그는 마치 그의 투구와 갑옷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의 방패를 든 사람을 앞서 걸어오게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칼과 창으로만도 가득 차 있었다(45절).

그러나 다윗은 어떤 무기와 무장을 갖추고 있었나? 참으로 그는 목자의 차림새 그대로였다. 

그는 흉배도 붙이지 않았고, 갑옷도 입지 않았다. 그리고 칼이 아니라 막대기를, 그리고 활 대신에 물매를 가지고 있었으며, 화살통이 아니라 목자의 제구 주머니를 가졌고 화살 대신에 시내에서 골라잡은 매끄러운 다섯 개의 작은 돌을 가졌을 뿐이었다(40절). 

이것으로 볼 때 다윗은 확실히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블레셋 사람과 싸울 마음을 그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어떤 무기로 그와 싸워야 할 것도 그의 머리 속에 넣어 주셨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Ⅱ. 이제 그들이 마주 서고 나서 어떻게 했는가를 보자.

1. 골리앗은 매우 거드름을 피웠다.

(1) 그는 그의 상대를 매우 경멸했다(42절).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나오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상대가 매우 보잘것없는 외모를 가진 사람인 것을 알고 그를 몹시 업신여겼다. 

그는 다윗이 그와 같은 용사와는 도저히 짝이 될 수 없으며, 그런 자를 이긴다고 해서 조금도 영광스러운 일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골리앗은 다윗의 외모만을 보았다. 그는 도저히 힘을 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젊은이이며, “붉고 용모가 아름답기” 때문에, 싸움에 내보낼 것이 아니라 (당시에도 사교춤이 있었다면) 춤 추러나 같이 가기에 알맞는 이스라엘의 처녀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다윗의 차림새를 보고 대단히 분개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네가 네 양치는 개를 다루듯 나를 그 막대기로 쉽사리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2) 그는 자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우상의 나약한 복수를 기원하면서 그의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 

그는 불덩어리라도 나와서 다윗을 내리쳐서 그의 말이 사실임을 증거해 줄 듯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다윗을 죽일 듯한 힘을 그에게 퍼부었다(44절).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에게 주리라. 저들이 맛있게 먹으리라.” 

이처럼 어리석은 자들의 헛된 안심과 추측이 그 자신들을 멸망으로 이끈다.

2. 다윗은 매우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그의 말에는 조금도 자기 자랑이 들어 있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만을 내세웠다(45-47절).

(1) 그는 그의 권위를 하나님께로부터 이끌어왔다. 

“나는 하늘의 지시와 명령을 받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는 이 일을 위하사 나를 부르시고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이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시라. 원하시는 일을 모두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느니라. 그분은 또 특별한 은혜의 계약으로 맺은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그의 능력으로 저들을 보호하시며, 저들을 모욕한 너 같은 자를 처치하게 하신다.” 골리앗은 칼과 창을 의지하였고,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였다(시 20:7; 118:10, 11 참조).

(2) 다윗은 그의 성공을 하나님께 의탁했다(46절). 다윗은 마치 골리앗이 이미 땅에 쓰러진 것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는 신앙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네 시체뿐 아니라 블레셋 군대의 시체들로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에게 주리라.”

(3) 다윗은 찬송과 영광을 모두 하나님께 바쳤다. 

다윗은 골리앗과 같이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했고 , 이 일이 분명히 성공할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을 생각했다.

① 온 땅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다른 모든 신들은 헛된 거짓 신들임을 알게 되리라고 했다.

② 온 이스라엘 “무리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고 했다(47절). 그리고 하나님은 칼과 창이 없이도 그것들과 싸워 이기신다고 했다(시 46:9). (이때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라 하지 않고 “무리” 또는 교회라고 했다. 그것은 지금은 이스라엘 회중이 성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임금이신 여호와께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다윗은 나라의 원수와 싸우러 나가는 한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에 희생의 제물을 바치러 나가는 제사장과 같은 심정으로 이 싸움에 임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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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을 죽인 다윗(삼상 17:48-58)

Ⅰ. 두 용사 간에 접전이 있었다(48절). 

이 접전을 위해 블레셋 사람은 한 난쟁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흔히 거인들이 자기 허세를 부리듯, 위풍만을 내세우며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가 걸어나오는 모습의 표현에서 우리는 그러한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왔다.” 

그것은 마치 놋과 절로 덮어 씌운 큰 산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한편 다윗은 일을 꾸미기 시작하는 자가 아니라, 마무리짓는 자로서 즐거움을 가지고 날쌔게 뛰어나갔다. 그는 차림새가 가벼웠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을 향해 빨리 달려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 자멸의 길로 기쁘게 뛰어드는 젊은이를 측은한 마음과 연민의 정을 가지고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가 어떤 분을 믿고 있으며, 어떤 분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Ⅱ. 이 접전에서 골리앗이 쓰러졌다. 

그는 그다지 서둘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고, 잠시 후에는 그의 일격으로 상대자의 머리를 두 조각으로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리앗이 장엄하게 그런 준비를 하는 동안, 다윗은 아무런 허식이 없이 일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었다. 

다윗은 순식간에 돌 하나로 물매를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시켜 그를 땅에 쓰러뜨렸다(49절). 

골리앗은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물매질을 잘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사실을 잊어버렸든지 아니면 뻗대는 마음으로 그의 투구의 면갑을 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그 얼굴을 노출시켰었는데, 다윗의 기술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곳에 명중하게 했고, 그 굳은 이마를 뚫고 들어가게 하셨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란 이처럼 덧없고 불확실한 것이다. 

자기 자신은 튼튼하다고 생각하는 그때에도 그처럼 빨리 또 그처럼 쉽게 그리고 매우 하찮은 일을 통해서도 그 생명이 빠져 나가고 죽음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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