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16.다윗, 기름부음 받다.강청의기도.[숨겨진일]..다윗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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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6장  [442. '저 장미꽃 위에 이슬' ]


[[다윗 약력]]

베들레헴에서 출생 (이새의 8형제중 막내, 두 누이 BC1041 년경 삼하5:4

목동(하프연주와 작곡이 뛰어남 삼하16:11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음15세쯤 BC1026년경 삼상16:6~13

사울왕의 궁중 악사가 됨 삼상16:16~23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임20세쯤 BC1021년경 삼상17:41~54

요나단과 친구가 됨〃 삼상18:1~4

사울왕의 천부장이 됨〃 삼상18:13~16

사울와의 딸 미갈과 결혼〃 삼상18:17~29

사울와의 추적으로 도망다님20~26세쯤 BC1021~1016년쯤 삼상19:9~26:25

사울왕을 두번 살려줌 삼상24:4~22; 26:6~12.

아비가일, 아히노암과 결혼23세 BC1018년경 삼상25:40~43

그일라, 십황무지,가드 헤브론 등에 도피 1016~1011년경 삼상23:1~삼하2:1

헤브론에서 유다 왕이됨 30세 BC1011년경 삼하2:1~4

왕이 된 후 통일 왕국의 왕이 됨 35세 BC1006년경 삼하5:1~10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김 37세 BC1004년경 삼하6:1~23 1차, 2차 정복전쟁 삼하8:1~10:14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함 49세 BC992년경 삼하11:1~27

압살롬의 반란,피신 그리고 귀환 61세 BC980년경 삼하13~19장

인구조사 67세 BC974년경 삼하24:1~25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줌 왕상1:32~53

다윗이 죽어 장사됨 70세 BC971년경 왕상2:10,11


[[다윗의 형들과 누이들]]

이새에게 8형제(엘리압, 아미나답, 삼마(시므아), 느다넬, 랏대, 오셈, 다윗), 그리고 자매로 스루야, 아비가일)인데  첫째부터 일곱째 아들은 아버지의 농장에서 일했지만 막내아들은 작은 무리의 양떼를 치기 위해 때로는 험준한 산 속까지도 다니며 항상 물맷돌과 함께 기타처럼 생긴 작은 수금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소년은 돌멩이를 잔뜩 쌓아놓고 멀리 서 있는 나무를 향해 힘껏 돌팔매질을 하고 수금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외로움을 달랬다. 어린 양을 안고서 "나는 너의 목자란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로구나"라며 노래를 불렀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사자나 곰에게서 양들을 지키곤 했다. 고대 사회에서 양치기는 매우 힘들고 고되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직업이었다. 양들을 데리고 산과 언덕을 돌아다니느라 운동량이 격하게 많았고, 성경의 언급에 의하면 산과 들에 맛있는 양을 노리는 맹수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 고대의 양치기는 매우 건장하고 강인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다윗의 이미지는 작고 나약한 소년이 아니라 야생에서 단련된 강인하고 굳센 청년이었을 듯하다.

 성난 곰이 털북숭이 갈색 앞발을 치켜들고 소년에게 덤비자 돌팔매를 날렸다. 이같은 경험을 한 편의 시로 엮어 노래했다. 그 소년의 이름이 바로 '다윗'이다

----[요압-아비새-아사헬과 다윗, 다윗과 아마사는 숙질간임]--------

요압은 다윗의 이복 누이인 스루야의 맏아들이며 아비새와 아사헬의 형제이다.(삼하2:18, 대상2:16)

((다윗의 누이들---이복누이로서 스루야, 아비가일이 있었음)), 요압-아비새-아사헬은 모두 조카들, 아마사도 조카임....결국 요압/아비새와 아마사는 동복사촌간임 

((다윗의 이복누이 스루야)) : 세 아들들--  요압-아비새-아사헬 <==[다윗]]==>((다윗의 이복누이 아비가일)) : 예델(이스마엘족속)과의 사이에서 아마사 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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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최소 결혼을 두 번 이상 했다. 

그 근거는 사무엘하 17장 25절에서 볼 수 있는 서술과 구약에 있는 다윗에 대한 기록에서 덧붙여 나오고 있는 '스루야의 아들-요압, 아비새, 아사헬' 이라는 서술이다. ....

((이새에게 시집와서 다윗을 낳은)) 다윗 모친에 대한 기술은 전혀 없다...일찍 죽은 것은 아니었을까.. 

어찌 보면 지나친 비약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성인기의 다윗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았을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다윗에게는  두 누이들...친누이 아비갈, 이복누이 스루야가 있었다...((다윗의 네 조카들....스루야의 아들들로는 요압, 아비새, 아사헬, 아비갈의 아들로는 아마사가 태어났다)) 

문제는 그 스루야. '이새의 딸'이 아니라 '나하스의 딸' 로 서술되어있다. ---- 이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스루야는 이새의 피를 잇지 않았고, 이새는 나하스의 아내였던 유부녀를 데리고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요약하자면 그 유부녀는 이새의 아들들을 낳지 않았고 이새의 아내는 최소 둘 이상이며, 이후 스루야의 가계 인물들에 관한 서술로 보아 스루야를 위시한 영향력이 최소 다윗의 집안부터 크게는 많은 유다인에게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무엘의 명령을 거역하는 이새의 태도. 이스라엘 부족 연맹의 영도자가 한낱 깡촌의 지방 유지를 방문한 상황에서 사무엘의 권위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아들 다윗을 부르지 않은 이새의 태도를 보면 다윗을 크게 신경쓰지않은 느낌이다. 이를 토대로 보면 이새는 다윗이 자기 아들이라는 인식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다른 근거로는 골리앗을 상대할 무렵, 전쟁에 나간 세 형을 방문했을 때, 다윗의 의분을 듣고 엘리압이 다윗을 대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다. 다윗을 대하는 태도가 친형제라고 보기에 너무 강경하다는 점이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사무엘상 17:28)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거듭난 참 믿는이에게는 주님 두발 씻겨드리며 그 발에 입맞추는 이마다, 주님도 그의 발을 씻겨 주사 깨끗케 하시는 보혈-성령-말씀이 있기 때문이니!! ===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 가장 유명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말씀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만으로도 예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르침 때문에 예수님을 존경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의가 얼마나 높은 수준인가를 말해줍니다.

마태복음 5장 43,44절을 보십시오.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구약성경은 확실히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부인하십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매우 충격적이고 비범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더 중요한 것은 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지 왜 원수를 사랑해야만 하는지, 왜 원수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5장 45-47절을 보십시오.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원수를 사랑해야만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근거는 하나님의 성품이며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그들의 지위와 정체성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저자는 제자들이 원수를 사랑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성품에서 이유를 찾습니다. 

제자들의 아버지인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그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원수를 사랑하시며 보편적인 사랑을 가진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인 제자들은 하나님처럼 원수를 사랑해야만 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오히려 기도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냥 명목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인 제자들은 원수를 사랑해야만 하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제자들의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이 가르치는 제자도는 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의 행위를 할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이런 정체성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방인들이나 혹은 세리와 같은 자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세리도 할 수 있으며 제자들은 세리와 같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것은 이방인도 할 수 있다고 하며 제자들은 이방인과 다른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리나 이방인들이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하나님의 지으신 새로운 피조물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비범한 일을 해야만 하고 할 수 있고 운명적으로 반드시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놀랍고 비범하고 탁월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제자들에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을 보십시오.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은 ‘Be perfect.’(완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이기대문에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거룩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의로워야 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거룩해야 하고 사랑이 풍성해야 하고, 긍휼이 풍성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온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원수를 사랑해야 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용서해야 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목자로서의 생활을 하라 하심이고 목자의 도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첫번째 원수 마귀는 이미 거듭난 참 믿는이, 곧 주님의 참 제자된 우리 안에서 십자가로 주님에 의해 정복된 상태입니다....우리는 다 원수는 (어쩌면) 후패해 가는 내 겉사람에 깃들어 있는 육체, 곧 타락한 사람 = 보혈-성령-말씀 안에서 늘 깨어 있어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함(항기쉬기범감)으로써 전존재가 주님의 생명, 곧 생명의 성령 충만아에 잠겨 있도록 24시간 자연스레 주 안에 동행함으로써 경계하지 않으면 무심코 슬며시 올라와서 주제넘게 제소견에 옳은대로 자행자지하게 함으로써 정욕과 탐심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옛사람이요 옛자아, 사탄마귀 보다 더 사악하고 교활하며 실지로 거듭난 참 믿는자라 하여도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도록 만드는 내 안의 대적인 죄성 = 십자가로 이미 처리되었으나, 날마다 새로이 [오로지 성령따라 주와 함께 하나 안에 걸어감으로써] 죽음을 선포-적용하고 (주 앞에 서기까지) 십자가로 넘겨야 할바라는 것을 압니다..

둘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주와 하나 되어 그 가운데 걷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마땅히 사랑하는자, 사랑할자와 너희 원수요 박해자를 분별할 수 있지 않느냐 묻고, 이미 너희는 알고 있다고 전제하심으로써 말씀하고 계십니다...오늘 주 안에서 깨어 있는 믿는이로서 우리에게 원수는 가정 안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24시간 주 안에 머무는 우리가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허물에도 불구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제서야 땅끝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마도, 목자의 인식을 가지고 참되게 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원수는 양들이며 끊임없이 요구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양들을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이렇게 사랑스럽지 않은 양들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낚는 어부로서 사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이런 사랑으로 양들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목자에게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양들이고 다 원수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들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직원들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목자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은 목자생활을 하라는 말이며, 미워하는 자들, 핍박하는 자들을 양으로 삼고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은 말씀 듣는 바 그 대상이 사람낚는 어부로 부름받은 제자들에게((진정 주 안에서 거듭난 참 믿는이가 제자입니다!!)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산상수훈의 적용은 전부 목자로서의 참 생활 살기 원하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쉬운것은!! 오늘날 우리가 제자도를 깊이 모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됨을 (주님 원하시는 정도까지 여쭈며 머물러 친히 들음으로써, 곧 추구하여 경험함으로써 알아야 하는데!!) 주님 원하시는 그 정도까지 깊게는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바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들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낚는 어부라는 것을 (주님께 개인적으로 나아가 여쭈며 주님의 말씀 직접 들어야 합니다!!) 깊이 영접하지 않으면 이 말씀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깜짝 놀라게 되고 ‘이 말씀을 어떻게 순종할 수 있는가’ 하는 사변적인 이야기들로 흘러가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 모든 곳에서, 특히 복음서에서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인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은 목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고 목자의 사랑으로 양들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의롭다 하고 제자가 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아들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바울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들로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제자들의 모든 행위의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낚는 어부로 사는데 사람낚는 어부라는 정체성이 산상수훈의 이 말씀에도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아야 하고 살 수 있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훨씬 더 의로운 삶, 의로운 행위와 성품을 하는 삶을 살 것이라 기대했는데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의인이며 죄인’ 이런 이야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제자들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목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며 하나님의 아들의 행실을 합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보통 사람과 완전히 다른 사람, 다른 피조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동시에 목자들이요 목자의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강조하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제발, 잊어버리시는 정도까지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하늘 왕국에 속한자마다 소유자이기에!!, 곧 천국 소유자 답게!!..하늘로부터 보내심 받은 자의 삶 살기를 바랍니다...그러기에!!, 로마서는 주와 하나인 우리의 시선을 땅의 영역에서 하늘 영역으로 이끌어 가며 전개되고 있지만,,에베소서는 하늘영역에서 시작하여 땅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자는 ‘의인이며 죄인....복된 인생의 목표는 거룩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분명한 것은 주소는 맞지만, 거함/누림/살아감의 차원(= 거처의 층수)가 다릅니다!!] 실은 초신자들, 미숙한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수준이요 기초에 불과하며....우리는, 물론 그 바탕 위에 견고히 서 있으되, 주님 안으로 더 깊이 더 친밀히 주님과의 일치됨 안으로 나아감을 추구하는 자요, 그러한 자들이라야 참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에!!....완전히 참되게 졸업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의인, 그 정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아들의 참행실을 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예수님의 참제자들이기 때문에 제자의 행실을 하는 사람들이며,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요 목자들이기 때문에 목자의 행실을 하는 사람들임을 명심하라 하고 계심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의 창조해 가시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 우리 영안에 내주하여 계시는 예수님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정체성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목자로서 양들을 섬기는 사람들이요 목자의 심정으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삶을 살며,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하늘(= 하늘 왕국...아버지의 뜻이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졌음!!..이미 이루신 바 하늘 시온의 예루살렘 그대로 땅에서 이루고 계심)에 속한, 영(그영, TUQ)에 속한 사람 = 주 영, 그영, 영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내주하여 계신 그리스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복음 말씀 그대로 그분의 갈망따라] 사는자 ::: 거듭난 참 믿는이, 그 삶의 수단(in, with, by, of, through, from, to Him)-가치-의미-목적-보람은 오로지 사랑의 주님과 주님의 거처 확장 증대, 곧 장차[주님 경륜의 갈망 그대로!!]이 땅에 있는 주님 거처(= 교회 =비가시적인 그리스도의 몸...새하늘과 새 땅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올바 새 예루살렘으로 그대로 이어짐) 얻고자 하시는 그분의 경륜적 갈망 이룸에 동참함***

......[히12:22-24...*22...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22 But rather, you have come to Mount Zion, even to the city of the living God, the heavenly Jerusalem, and to countless multitudes of angels in festal gathering,  23 And to the church (assembly) of the Firstborn who are registered [as citizens] in heaven, and to the God Who is Judge of all, and to the spirits of the righteous (the redeemed in heaven) who have been made perfect, 24 And to Jesus, the Mediator (Go-between, Agent) of a new covenant, and to the sprinkled blood which speaks [of mercy], a better and nobler and more gracious message than the blood of Abel [which cried out for venge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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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7: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타밈)

[마5:48..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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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밈....(헬)텔레이오스 = 온전/완전/순전...완성한 complete, 완전한 perfect. ...faithful and true이신 분에 합하라!!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형용사 텔레이오스(Homer. 이래)는 텔로스(tevlo", 5056)에서 유래했으며,

(a)  희생 제물의 '온전한, 흠없는, 완전한, 충분한'(짧지 않은 인생), '최고의'(기능), 가르침에서 '완전한, 성숙한', '텔로스에 도달한', '완전에 필요한 아무 것도 결여하지 않는'.

(b)  '실현화하는', 이 의미에서 신의 속성으로서 '강력한, 효과가 있는'.

(c)  (동물에 대해) '충분히 자란, 완전히 성장한', (사람에 대해) '성인이 된, 성숙한',

(d)  '헌신적인, 헌신의'를 의미하며, '최고의' 신비, '최상의' 가르침, 계시에 대해 사용되었다.

2. 70인역본의 용법 

텔레이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샬렘(온전하다, 완전하다), 탐(완성한, 완전한, 건전한)의 어형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강조점은 완전한 것, 손상되지 않은 것에 있다. 

이 단어는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선 심령에 대해서와 (왕상 8:61; 왕상 11:4)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속박시키는 사람에 대해(창 6:9; 참조: 신 18:13) 사용된다. 

전체(totality )라는 사상은 또한 완전한 인구감소에 대한 언급에서와(렘 13:19) 완전한 제사가 텔레이아이로 칭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삿 20:26; 삿 21:4) 나타난다.

3. 신약성경의 용법 

텔레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공관복음(2회), 텔레이오스는 마 5:48에서 '도덕적 완전'이란 의미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19:21에서 '완전에 도달하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b)  바울서신(8회).

① 텔레이오스는 '성숙한, 성인이 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고전 2:6; 고전 14:20; 빌3:15.

엡 4:13에서 교회는 성장한 성인으로 비유한다.

골 1:28에서 텔레이오스는 사도의 교훈들의 목표로서의 성인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② 텔레이오스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의 의미로 2회 나온다(롬 12:2; 참조: 창6:9; 그리고 골 4:12).

③ 고전 13:10에서 "온전한 것"은 우리의 현세의 특징인 불완전한 모든 것이(9절) 극복되는 미래 세계를 의미한다.

(c)  야고보서(5회).

야고보서에서 텔레이오스는 역시 '온전한, 완전한'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사람은 참고 인내할 때 완전하다. 즉, 어떤 점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야고보는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약 2:8)의 뜻으로 사용한 자유의 율법을 온전하다고 본다(약 1:25). 왜냐하면 이것만이 사람을 실제로 자유케 하기 때문이다(참조: 요 8:31이하; 갈 5:13).

하나님의 은사들은 온전하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야고보에 의하면 말로 죄를 범하지 않는 자는 온전하며 실수가 없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d)  히브리서(2회).

① 히 5:14에서 텔레이오스는 '장성한, 성인이 된'을 의미한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② 히 9:11에서 텔레이오스는 '완전한' 장막을 묘사한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e)  요한의 기록(1회).

요일 4:18에서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는 이 사랑에 완전히 좌우되지 않는다.

「참고- 목표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완성되고 완전하게 된 것으로서의 텔레이오스의 의미는 목표의 완성과 실현으로서의 종말 개념과 관련된다. 온전함이 오직 종말에만 성취되는 만큼 텔레이오스도 가장 완전한 의미로 하나님과(예: 마 5:48) 그리스도(예:히 7:28)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각 개인의 발달에 대한 문맥에서 텔레이오스는 성숙에 이른 사람, 곧 성년에 달한 장성한 사람에게 적용된다(특히 바울서신에서). 신약성경은 신분에 의해 실현되는 윤리적 완전의 이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참조: G. Delling, TDNT Ⅷ 77). 그보다는 텔레이오스가 타밈과 샬렘이라는 구약성경의 개념들의 배경으로 고찰되고 사람의 활동에 적용될 때, 행동으로 분리되지 않는 온전함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의 후기 문서들, 특히 마태복음(예: 마 19:21)과 야고보서(예: 약1:4)가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러므로 텔레이오스가 사람과 윤리에 적용될 때 그 의미는 인간적 노력의 질적 종결점이 아니라 실제적인 현 생활에 나타나는 종말론적 완성의 때에 대한 예기이다. 신약성경에서 기독교인의 생활은 관념적으로 완전을 위한 투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사람에게 주어지고 약속된 완전으로 설계된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 선한 <칼로스-καλός> 인생, 사람이 보기에 선한<아가도스-άγαθός> 삶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는 거듭난 그의 영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참 생명 충만 공급하심 + 거듭난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참 인성으로 대치됨 인한, 타락이전의 아담보다 더 탁월한 [하나님의 지고지선에로의 회복] 입은 새 사람이라.......그 자각 안에 참생명-진리-길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거듭난 인생!!

[엡2: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아가도스)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5:29...선한(=아가도스..주님 뜻 이루시도록, 주께서 원하사 명하신 바 복음 전파 통해 .영생, 영원한 참 생명 [Q과 그분의 보내신자 그리스도를 참되게 앎-누림] 그로 인해 사는, Q 나라를 공급함의)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딤전6:12..믿음(=피스티스, faith.주로부터 받은바 그분의 전능한 믿음)의 선한(=칼로스...하나님이 손수 행하심)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에피람바노..주께 받은바 영생을 그대로 끝까지 붙잡다)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칼레오) 많은 증인(=마르튀스, 죽기까지+어서도 동일한 진리를말하는 증거자) 앞에서 선한(=칼로스...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심) 증거(=호모로기아..참된 진상-진실-진리의 실제 바로 그대로 정직-솔직하게 꾸밈-가감 전혀 없는 고백)를 증거하였도다] 

......<선함>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아가도스άγαθός>와 <칼로스καλός>...두 단어가 혼용하여 사용될 때가 많다.... <아가도스άγαθός>는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선>의 개념으로서, ((그리스도의 절대적 탁월성이 도덕적 인성 측면에서 드러나는바 그 누구에도 견줄 수 없는)) 선한-올바른-유익한의 뜻이요, <칼로스καλός>는 거룩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주님과 사람 앞에, 곧 관계적 의미에서, 주께 합당한 거룩함...이는 생명과 본성적 측면에서 거듭난 참 믿는이에게마다 허락하신 바 하나님의 거륵함, 곧 그의 영은 Q뜻에 완전히 일치된, 곧 성령과 완전한 하나의 충만으로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함 + 그의 혼은 그리스도의 참 인성으로완전히 대치됨으로써 살아감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참 명분 얻음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인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인 한 새 사람 이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그 아름다운 모습을 의미한다..... <아가도스άγαθός>가 사람이 보기에, 내주하시는 분, 그리스도 성품 빼어닮음의 충만-넘침- 배어남 인한 ((절대적으로 탁월하신 그리스도의, 비할바 없는))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선>을 의미한다면 (이로 인해 그 근원, 곧 절대적 지고지선 하나님의 칼로스를 떠올리게 됨) <칼로스καλός>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조금도 없는 완전하고도 기뻐하시며 흡족하심의 선한 모습을 의미한다....하나님-사람, 그리스도-사람, 그리스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의 아름다움은 <아가도스> + <칼로스>에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도 내면의 깊은 아름다움과 성품 인격이 흘러 넘침이 곧 <아가도스>라 할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모든 마음을 드리는 인생이 <칼로스>라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칼로스>의 삶, 그 착한 행실이 모든 사람에게 <아가도스>가 되어서 나타나는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이 흘러 넘치는 인생인 것....하나님을 깊이 만난 영혼은 <아가도스άγαθός>와 <칼로스καλός>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할 것이니, 곧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시요 신랑이시요 반쪽이 되심으로써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텔레마), 곧 선하고(=아가도스) 기뻐하시고(=유아레스토스) 온전하신(=텔레이오스) 뜻

##유아레스토스 = ((텔레마, 곧 히브리어 하페츠, 라촌 과 정확히 일치하는)) 기꺼운, 마음에 드는, 열납하시는 acceptable, 기쁘게 하는 pleasing.

유아레스토스는 항상 인간 행위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판단) 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이다. 롬 12:1이하에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도록 권면 받는다....롬 14:18에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칭찬을 받게 된다....골 3:20에서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권면 받는다. ....고후 5:9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리스도인은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끊임없이 시험해 보아야 한다(엡 5:10)....그러므로 히 13:21에서 보여주는 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텔레이오스 = 완성된 complete, 완전한 perfect. --히브리어 샬렘(온전하다, 완전하다), 탐/타밈(완성한, 완전한, 건전한)...완전한 것, 손상되지 않은 것에 있다.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선 심령에 대해서와 (왕상 8:61; 왕상 11:4)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려 속박시키는 사람에 대해(창 6:9; 참조: 신 18:13) 사용된다. 전체(totality )라는 사상은 또한 완전한 인구감소에 대한 언급에서와(렘 13:19) 완전한 제사가 텔레이아이로 칭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삿 20:26; 삿 21:4) 나타난다.

.... 마 5:48에서 '도덕적 완전'이란 의미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19:21에서 '완전에 도달하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성숙한, 성인이 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고전 2:6; 고전 14:20; 빌3:15. 엡 4:13에서 교회는 성장한 성인으로 비유한다....골 1:28에서 텔레이오스는 사도의 교훈들의 목표로서의 성인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텔레이오스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의 의미로 2회 나온다(롬 12:2; 참조: 창6:9; 그리고 골 4:12).... 고전 13:10에서 "온전한 것"은 우리의 현세의 특징인 불완전한 모든 것이(9절) 극복되는 미래 세계를 의미한다.

.....야고보서에서 텔레이오스는 역시 '온전한, 완전한'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사람은 참고 인내할 때 완전하다. 즉, 어떤 점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히 5:14에서 텔레이오스는 '장성한, 성인이 된'을 의미한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요일 4:18에서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자는 이 사랑에 완전히 좌우되지 않는다. 

「참고- 목표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완성되고 완전하게 된 것으로서의 텔레이오스의 의미는 목표의 완성과 실현으로서의 종말 개념과 관련된다. 온전함이 오직 종말에만 성취되는 만큼 텔레이오스도 가장 완전한 의미로 하나님과(예: 마 5:48) 그리스도(예:히 7:28)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각 개인의 발달에 대한 문맥에서 텔레이오스는 성숙에 이른 사람, 곧 성년에 달한 장성한 사람에게 적용된다(특히 바울서신에서). 신약성경은 신분에 의해 실현되는 윤리적 완전의 이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참조: G. Delling, TDNT Ⅷ 77). 그보다는 텔레이오스가 타밈과 샬렘이라는 구약성경의 개념들의 배경으로 고찰되고 사람의 활동에 적용될 때, 행동으로 분리되지 않는 온전함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의 후기 문서들, 특히 마태복음(예: 마 19:21)과 야고보서(예: 약1:4)가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러므로 텔레이오스가 사람과 윤리에 적용될 때 그 의미는 인간적 노력의 질적 종결점이 아니라 실제적인 현 생활에 나타나는 종말론적 완성의 때에 대한 예기이다. 신약성경에서 기독교인의 생활은 관념적으로 완전을 위한 투쟁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사람에게 주어지고 약속된 완전으로 설계된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적 갈망 이룸에 동참할 자, 곧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 참되게 이루는 자] 영적 다윗을 위해 마련해 두신!! 십자가 아래서 기꺼이 고통 당함의 공과를 온전히 마치도록 하기 위해 주님이 주권적으로 안배해 두신 훈련교관 사울을 영적 시야로 참되게 볼 수 있어야 하며, 묵묵히 십자가 아래에 머물러 있기를 배우며 합당하게 졸업해야 함을 잊지말고 기억하라))...빌3:10-21.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신약에 있어서 놀라운 비밀은 그분이 내 안에 동시에 내가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이요, 그러기에 비로소 십자가를 지도록 예비하신 주권적 주님 안으로 피함으로써!! 십자가를 감당하는 바,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은, [항상 십자가 아래에 묵묵히 자신을 두셨던 분]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능력뿐임을 명심하라...JC는 부활이시요, 부활능력이시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계시는 것임을 알아야 하리라...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분의 왕국을 위해 ((다윗이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도록)) 다윗을 예비해 두셨고 다른 한편으로 주님은 다윗을 시험하고 그를 시련 가운데 두심으로써 다윗을 온전케 하기 의해 사울을 예비하셨다... 그를 박해하는 자 훈련 교관인 사울에 대해 다윗은 주님 마음따라!!  결코 싸우거나 맞대응하거나 그 어떤 불평-비판-반대-정죄함 한마디 없이 도망다니기만 하면서 합당한 다루심을 받기 위해 단지 십자가 아래 머묾으로써 그 시련의 과정을 마침내 졸업하고 있었다...이것이 십자가 공과를 받아들임이다.... 이 때 주님은 또한 시의적절하게 돕는자로서 미갈과 요나단을 예비하여두셨음을 본다 ))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가 가진 바 믿음이란 오직 FAITHfUL AND TRUE이신 분, 성육신하여 이 땅에오셔서 임마누엘하심으로 TUQ의 하나 안에 들어오게 하여 하나 된 이들에게 공급하시는바 JC의 FAITH와 동일한 faIth이니...이로 인해 그분을 앙망-동행-주목-응시-누림-살아냄의 참 생명 삶 영위함의 주님 자신의 신앙이다..

거듭난 참 믿는이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앙망하며, 어느덧 상호 사랑의 기쁨 때문에 주와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바로 그 긍휼과 자비의, 고통 겨운 십자가에 함께 기꺼이 달리며, 그 자신을 십자가 아래에 겸손히 두는 자이니...이 때 그분이 이끄심따라 아버지와,TUQ와 하나, 그 안에 있음을 그의 영으로 아는자요, 유일무이한 머리-주인-주권자이신 분을 신뢰-복종하며, FAITHFUL AND TRUE 주님의 바로 그 믿음faith으로 사는 참 신앙인이라....그는 다투지도 들레지도(요란스레 떠들어대다)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도 다시 보며,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지고지선의 주님을...손 내밀어 잡아주고 도와 일으키시며 돌봐주며 필요를 나누며 공급해 주시는 분)) 절대신뢰-복종하며, 신앙과 신념을 결코 혼동하지 않고 (비록 확증적 진리를 추구하지만 주님의 열어주심을 기다리며) 광활한 하늘보다 더 크신 주님을 결코 제한하려 하지 않으며, 육체 갈망 이루려고, 곧 타락한 사람의 지레짐작이나 섣부름으로써 그분을 강제하려 하거나 결코 그분보다 앞서려 하지 않고 오하려 십자가 아래에 그의 옛사람을, 거듭난 그의 전존재조차도 십자가 아래에 둔다....오직 주님이 알게 하신 바!!  "주 안에 하나"..!!..in-him reality를 아는자라 할 수 있다.

.......십자가 아래 머무름 = 주님의 죽음과 장사지냄 부활 거쳐 (거듭난 나를 TUQ안에 그분 소유 삼아 두셨고 이와 동시에) 내 영에 하나되어 내주하여 계신 그리그도의 영(그영)의 주권적 인도-보호-양육-돌봄-공급-[JC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성숙케 함 위해] 이끄심따라 기꺼이 기쁘게 순종하여 하나로 행하기....이것은 환경-상황-형편-처지에 무관하게(그 어떤 형편-처지-상황-환경하에서라도...분명히 주권적 주님이 마련하신바, 환경-상황-형편-처지는 거듭난 믿는이를 겸손케 한다...그것을 오히려 기뻐하라..) 누릴 수 있는 주님 베푸시는 절대적 평강과 생명 교통/사귐이다!!...이것을 다윗은 배웠고 군급한 가운데서도 (주께서 보시기에 그토록 주님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람 만드시려, 모든 것 최선이 되도록 이미 마련하고 안배해 두신 분) 주님 절대 신뢰-앙망하여 힘과 능력이신 주님 인해 용기 백배 되고 용감히 담대히 행하고 있었다..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라아...로이..감찰하다, 오래동안 그 존재와 그 마음 중심 됨됨이를 꿰뚫어 보며 통찰-감찰하여 알아보다)[(NASB에서 보듯이!!, 원본에는 나를 위하여,for Myself가 있음] 하시는지라

.....주님은 정말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주님 자신을 부어주심인데!!....온통 그분 자신 주심인  (성령 기름) 부으셨던 바, 그 기름부음 받은 사울을, 그 영혼을!! 어떻게  "주님 스스로 포기하여" 버리실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신실하심을 포기하심 아닌가" 공박하려 할 지 모르나!! ....실은 그 결정은!! 영생자존-영원진실무망하신 창조주 여호와 그분 자신의 절대 신실하심의 (어쩔 수 없는 결정!!) 방증이었음을 분명히 깨닫고!! 명심해야 한다!!...사람은 토기장이이신 주님이 손수 빚으신 그릇이로되 계속 만들어져 가고 있으며 그 그릇의 됨됨이를 마침내 주님 뜻에 합당하도록 만들어져/이루어가는 것은 그 그릇의 협력과 순종 통해서 전적으로 이루어 가고 계심임을 기억하라!!

......(주님이 선택하여 그분의 십자가 대속으로 얻으시고 부활생명의 성령 부으신 바, 진정한 택자된 이, 오직 주바라기로서 주님 주목-앙망하고 교통함으로 그리스도를 사는 자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신다(그러실 수 없으시다--그분의 신실함 때문에!!)...그러나, 분명한 것은 택자라 해도 정말 조심하고 주의해야 하리니!!..영원유밀무이한 참 왕 "멜렉"이신 그분의 대리왕, 즉 "나기드"됨은 종됨, 곧 겸손-온유-순종의 제자리에 참되게 머물러 있기를((=이는 곧, 십자가  아래에 머무름이요, 유일무이한 진정한 왕이신 주님 발아래 엎드려, 그발 씻겨드리며 그발에 입맞춤 인해 매일 "나의 옛사람은 죽고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 내어주심 통해, 바로 그리스도로 살게 해 주시는 "참 경배"의 예배의 사람으로 살기를 기뻐하는자 됨이 중요하다!!...))  "나기드"로 살라고 선택하셨으나, 오히려 종 됨의 자리를 임의대로 이탈하여 스스로의 독자적 군주국을 세우려 했던 바!!,  미혹-현혹-유혹 + 오도됨으로써 오해와 착각 가운데 빠져 결국 자신을 사탄마귀에게 내어주고서(=자포자기함으로써 = 이는 이땅에 그를 보내신분을 저버림이다!!) 영적 자살을 선택하는 거역과 불순종의 영혼은 어쩔 수 없이 버리실 수 밖에 없으시다..그만큼 이땅에서의 순간순간+ 최종 선택이 중요하다)..그런 관점에서 감히 말하자면 그 시점에서 정답에 가까운 대답은 "아니, 결코 그러실 수 없다...그분은 당신의 영을 결코 소홀히 붓지 않으시며, 택자마다 그를 땅에서 데려가시는 때까지(끝까지....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결정적으로 욕보이는 반역적 행위인바!! 자살로 마감함은 결코 안된다!!) 주께 돌이킬 여지를 주고 기다리신다...그러나, 누가 과연 주님의 포기하지 않으심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그분이 기다리심의 심정을 알아드림으로써!! 참되게 사울로 하여금 주께 돌이키도록 돕는자가 되어 그를 도울 것인가가 문제이다!!..."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위해 간구하는 믿음에서 보듯이" 부스러기 믿음, 겨지씨만한 믿음으로라도 발휘하여 주님 이름을 부르게 도울 것인가...이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다윗의 아비 이새와 다윗의 형들에게 있어서 8번째 아들이자 막내(=말째....카탄....작은 = 어린 = 하찮은 = 중요치 않은 = 무가지한) 다윗은 아들이라거나 동생이라고도 부르고 싶어하지 않을만큼, 오히려 가족의 "부끄러운 혹"이나 "오점"처럼 여겨지는 존재였던 것 같다..... 양치기의 특성상 양들 틈에 자는 목동은 똥오줌냄새, 땀냄새 지독한 양을 돌보기 위해 그들 틈에 자면서 양의 상태를 살피고 보호하고 치료해 주고 살펴야 했기에 양 그 자체의 냄새로 뒤범벅 될 수 밖에 없어서 역겨운 존재로 여겼기에 무가지한자로 취급받았다....그러나 다윗의 중심을 꿰뚫어 살펴보시는 하나님은 섭리적 선재적 은혜를 부어주셨고, 그 은혜를 끝까지 더 깊고 충만한 정도까지 주님 마음에 흡족하기까지  "백성의 목자에게 부어주시는 주님 마음을 그대로!!"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투영-적용함으로써 예비-공급-인도-보호-양육-돌봄-치료-구원, 즉 희생적으로 싸워 구원해 냄에의 [참 목자로서의] 합당한 실행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를 보고 주님은 "이새의 아들에게서 내 마음에 합한자를 보노라"하고 계셨다....“내 마음에 합한 자” (A man after my own heart) = "내 마음과 닮은(맞는) 사람, 혹은 내 마음을 좇는(따르는) 사람"이라고 더윗의 아비 이새와 다윗의 형들에게 있어서 8번째 아들이자 막내(=말째....카탄....작은 = 어린 = 하찮은 = 중요치 않은 = 무가지한) 다윗은 아들이라거나 동생이라고도 부르고 싶어하지 않을만큼, 오히려 가족의 "부끄러운 혹"이나 "오점"처럼 여겨지는 존재였던 것 같다..... 양치기의 특성상 양들 틈에 자는 목동은 똥오줌냄새, 땀냄새 지독한 양을 돌보기 위해 그들 틈에 자면서 양의 상태를 살피고 보호하고 치료해 주고 살펴야 했기에 양 그 자체의 냄새로 뒤범벅 될 수 밖에 없어서 역겨운 존재로 여겼기에 무가지한자로 취급받았다....그러나 다윗의 중심을 꿰뚫어 살펴보시는 하나님은 섭리적 선재적 은혜를 부어주셨고, 그 은혜를 끝까지 더 깊고 충만한 정도까지 주님 마음에 흡족하기까지  "백성의 목자에게 부어주시는 주님 마음을 그대로!!"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투영-적용함으로써 예비-공급-인도-보호-양육-돌봄-치료-구원, 즉 희생적으로 싸워 구원해 냄에의 [참 목자로서의] 합당한 실행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를 보고 주님은 "이새의 아들에게서 내 마음에 합한자를 보노라"하고 계셨다....“내 마음에 합한 자” (A man after my own heart) = "내 마음과 닮은(맞는) 사람, 혹은 내 마음을 좇는(따르는) 사람"이니 "사무엘아, 너는 그에게 "나기드의" 기름을 부으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셨다..

[대상28:20..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성전 공사의 모든 일을 마치기까지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시27 ...*1.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10.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11.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12.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13.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14.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내 마음에 합한 자’는 영어로 ‘A man after my own heart’, ==

[히5:12-14...*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는 명분을 붙이기 좋아하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싶어 하는 선한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정하신 뜻을 안다면 대놓고 거스르지는 않을 거로 생각하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이것은 마치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면 자연히 나타나게 되는 결과나 자연의 법칙처럼 정해진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정해졌던 것은 아닙니다)을 헤아리는 영분별을 갖는 길은 성경을 깊이 탐구하고 말씀을 귀히 여기며 마음에 두고 믿으면 자연히 생기는 감각입니다. 

좋은 예로 예레미야는 유다 사람들에게 바벨론이 함락하러 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받아들이지 않으면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니 저항하지 말라는 매국노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원한 도시이고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기에 바벨론에게 넘어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지만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고 이왕이면 좋은 말 듣길 원하지 책망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의 말보다는 다른 선지자들의 말이 믿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상고했었다면 지금 현 상황에서 과연 누구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말씀으로 지금 상황을 바로 분별하려면 먼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그룹을 정직한 믿음 안에서 돌아볼 수 있어야 가능합니다. 

[고후13: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왜냐면, 성경엔 우리가 걸어갈 여러 신앙생활의 모양에 따라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 이미 다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미리 보는 역사라고 할 정도로 적어놓은 그대로 지금 현시대에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가진단을 제대로 못 하면 적혀있는 답인데도 오답을 붙잡고 헛된 안심을 하거나 괜한 불안에 떨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된 자가진단을 하려 해도 결국 성경을 읽어야 검진할 수 있으니, 결국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질문입니다.

만일 그 당시 유다가 영적으로 타락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자신들의 현주소를 말씀에 비추어 인식했더라면, 모세를 통해 미리 경고하신 신명기 말씀이 현실로 닥치고 있음을 깨달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미 수백 년 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한 채 계속 죄 가운데 머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신명기 28장 15-52절에 미리 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중엔 알지도 못하던 먼 나라가 들이닥쳐 포로로 잡아갈 것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신 28:36, 41....“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네게 있지 못할 것이며” ]

그렇게 시대를 분별하고 말씀을 분별할 수 있었더라면 예레미야가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걸 깨닫고 그의 조언대로 조용히 죄의 결과로 오는 정해진 벌칙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께서 왜 다윗에게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자’는 영어로 ‘A man after my own heart’, 직역하면, 내 마음과 닮은(맞는) 사람, 혹은 내 마음을 쫓는(따르는) 사람입니다.

오랫동안 저는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왜 다윗이 저항 한번 안 하고 서둘러 도망부터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용맹스럽고 충성스러웠으며 그 수로도 압살롬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됐을 텐데 싸워보지도 않고 수도를 버리고 망명까지 한 게 영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여러 번 읽는 가운데 깨달아졌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로 인해 범죄한 일로 나단이 전달했던 하나님의 책망을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뒀던 것입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삼후 12:10-11)  이 구절에서 밑줄 친 부분이 영어로는 ‘…I will raise up evil against thee out of thine own house, and I will take thy wives before thine eyes, and give them unto thy neighbour, and he shall lie with thy wives in the sight of this sun.’인데 ‘out of thine own house’ 즉, ‘내가 너의 집으로부터(네 집안에서) 너를 대적해 악을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사단과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일컫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이웃에게 네 아내들을 줄 터이니 ‘그’가 네 아내들과 온 이스라엘이 보는 가운데 백주에 동침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한국어 성경엔 이 부분을 ‘이웃들’, ‘그 사람들’ 복수로 번역해서 압살롬을 말한다는 게 바로 와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어 성경엔 ‘이웃’, ‘그’라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이라는 의미는 ‘너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사울이 반복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도 사무엘은 하나님이 네 ‘이웃(다윗)’에게 왕국을 넘겼다(삼상 15:28)고 말합니다.

다윗이 이런 경고를 받고 세월이 흐른 후에 압살롬이 반역을 준비하는 부분에서 사무엘 기자는 삼하 15장 7절에 희한한 단어를 넣어놓습니다. ‘And it came to pass after forty years, that Absalom said unto the king, I pray thee, let me go and pay my vow, which I have vowed unto the LORD, in Hebron.’ 바로 ‘40년이 지나게 된 후에 압살롬이 왕에게 말하기를..’이란 부분입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보면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에서 총 40년 통치했다고 분명히 나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킬 때 ‘40년이 지나게 된 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 이 단어가 눈에 들어왔을 때 이게 맞게 된 건가 싶어서 원어를 찾아보았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도 분명히 ‘40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번역본들은 40년 통치하고 죽은 다윗인데, 압살롬의 반역은 아무리 못해도 그 몇 년 전이 분명하니 이건 분명 에러다 싶었는지 ‘4년 후에’로 고쳐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가 들어가 있는 이유는 분명 어떤 기한 혹은 때가 찼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조명받았었습니다. 40은 성경에서 어떤 기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왕자로 40년, 미디안으로 망명한 채 40년, 또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불러낸 후 광야에서 40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40일간 시험받으셨고,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승천하십니다(40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그 구절의 ’40년’을 수식하는 앞부분의 ‘and it came to pass after’는 히브리어로 ‘웨이히 미퀘스’로 미퀘스는 다른 구절에서는 대부분 ‘과정’ 또는 ‘끝’으로 번역하고 웨이히는 ‘되었다’ 입니다. 즉, ’40년(과정이 되니)이 끝나니’라는 의미는 다윗의 왕권 40년이 아닌, 그의 인생 가운데 어떤 시작점에서부터 40년의 끝이 이르렀음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사람의 생각으로 말이 안 된다 싶어 바꿔놓았다는 게 아쉽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때가 차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이뤄지고 있음을 직감했고 말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온갖 수모와 치욕을 감수하며 떠나버렸고 압살롬은 나단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던 치욕적인 예언의 말씀을 성취합니다(이 부분에 대한 흥미로운 조명은 ‘이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이란 인물은 여러 면에서 제게 놀라움을 주는 인물이지만, 이런 면에서 더욱 도전됐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보여주셨던 압살롬과 같은 일이 제 삶에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얼마나 발버둥 치며 그 일을 막아보고 피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그때는 말씀을 몰라서 더 그러기도 했지만, 나중에 말씀을 통해 다윗의 이런 면들이 깨달아졌을 때, 괜히 다윗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말씀의 성취를 위해 어떤 치욕도 감수하는 다윗이기에 ‘내 마음에 합한 자(내 마음을 쫓는, 따르는 자)’라고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제 삶에 또 일어난다면, 그때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판단에 순응하여 말없이 나를 내어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울을 섬기게 된 다윗

.....[374.나의믿음약할때] [375.나는갈길모르니].[305.나같은죄인살리신].[255. 너희 죄 흉악하나].[278. 여러 해 동안 주 떠나][300 '내맘이낙심되며] [455. 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당신이지쳐서기도할수없고..하나님께로더가까이...사랑이구주를죽게했네...얼마나아프실까하나님마음은

.......[((세인들 모두에게 그대 자신이 개로 여겨지고 [심지어 구주께서 그렇게 말씀하며 대하실찌라도!!...아것은 믿음의 테스트이다!!] 비록 임종의 그 시점 끝까지 그렇게 취급 받고 있더라도!! 절대 자기연민에 빠져서 자포자기(=자살)하지말고 오직 구주만 구하라...오직 구주만 구하고 있는!! 수로보니게여인을 보고 그 믿음 발휘하기를 배우라...결코 주님은 (이땅에 할일 있어 보내신바) 그대를 포기할 수 없으시니, 영생의 자녀 삼으신바 된 그대도 죽기까지 절대 포기하지말라!!...막7:24-30)..마15:21-28...*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역경과 환난을 Q의 초청하심으로 받고 있음)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The Syrophoenician Woman) 21 After leaving there, Jesus withdrew to the district of [c]Tyre and Sidon. 22 And a [d]Canaanite woman from that district came out and began to cry out [urgently], saying, “Have mercy on me, O Lord, Son of David (Messiah); my daughter is cruelly possessed by a demon.” 23 But He did not say a word in answer to her. And His disciples came and asked Him [repeatedly], “Send her away, because she keeps shouting out after us.” 24 He answered, “I was commissioned by God and sent only to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25 But she came and began to kneel down before Him, saying, “Lord, help me!” 26 And He replied, “It is not good (appropriate, fair) to take the [e]children’s bread and throw it to the [f]pet dogs.” 27 She said, “Yes, Lord; but even the pet dogs eat the crumbs that fall from their [young] masters’ table.” 28 Then Jesus answered her, “Woman, your faith [your personal trust and confidence in My power] is great; it will be done for you as you wish.” And her daughter was healed from that moment.]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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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6장


1.  Now the LORD said to Samuel, "How long will you grieve over Saul, since I have rejected him from being king over Israel? Fill your horn with oil, and go; I will send you to Jesse the Bethlehemite, for I have selected a king for Myself among his sons."

2.  But Samuel said, "How can I go? When Saul hears [of it,] he will kill me." And the LORD said, "Take a heifer with you, and say, 'I have come to sacrifice to the LORD.'

3.  "And you shall invite Jesse to the sacrifice, and I will show you what you shall do; and you shall anoint for Me the one whom I designate to you."

4.  So Samuel did what the LORD said, and came to Bethlehem. And the elders of the city came trembling to meet him and said, "Do you come in peace?"

5.  And he said, "In peace; I have come to sacrifice to the LORD. Consecrate yourselves and come with me to the sacrifice." He also consecrated Jesse and his sons, and invited them to the sacrifice.

6.  Then it came about when they entered, that he looked at Eliab and thought, "Surely the Lord's anointed is before Him."

7.  But the LORD said to Samuel, "Do not look at his appearance or at the height of his stature, because I have rejected him; for God [sees] not as man sees, for man looks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8.  Then Jesse called Abinadab, and made him pass before Samuel. And he said, "Neither has the LORD chosen this one."

9.  Next Jesse made Shammah pass by. And he said, "Neither has the LORD chosen this one."

10.  Thus Jesse made seven of his sons pass before Samuel. But Samuel said to Jesse, "The LORD has not chosen these."

11.  And Samuel said to Jesse, "Are these all the children?" And he said, "There remains yet the youngest, and behold, he is tending the sheep." Then Samuel said to Jesse," Send and bring him; for we will not sit down until he comes here. "

12.  So he sent and brought him in. Now he was ruddy, with beautiful eyes and a handsome appearance. And the LORD said, "Arise, anoint him; for this is he."

13.  Then Samuel took the horn of oil and anointed him in the midst of his brothers; and the Spirit of the LORD came mightily upon David from that day forward. And Samuel arose and went to Ramah.

......

14.  Now the Spirit of the LORD departed from Saul, and an evil spirit from the LORD terrorized him.

15.  Saul's servants then said to him, "Behold now, an evil spirit from God is terrorizing you.

16.  "Let our lord now command your servants who are before you. Let them seek a man who is a skillful player on the harp; and it shall come about when the evil spirit from God is on you, that he shall play [the harp] with his hand, and you will be well."

17.  So Saul said to his servants, "Provide for me now a man who can play well, and bring [him] to me."

18.  Then one of the young men answered and said, "Behold, I have seen a son of Jesse the Bethlehemite who is a skillful musician, a mighty man of valor, a warrior, one prudent in speech, and a handsome man; and the LORD is with him."

19.  So Saul sent messengers to Jesse, and said, "Send me your son David who is with the flock."

20.  And Jesse took a donkey [loaded with] bread and a jug of wine and a young goat, and sent [them] to Saul by David his son.

21.  Then David came to Saul and attended him, and Saul loved him greatly; and he became his armor bearer.

22.  And Saul sent to Jesse, saying, "Let David now stand before me; for he has found favor in my sight."

23.  So it came about whenever the [evil] spirit from God came to Saul, David would take the harp and play [it] with his hand; and Saul would be refreshed and be well, and the evil spirit would depart from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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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6장 (개요)

본 16장에서부터 다윗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윗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명사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한편으로는 칼, 또 한편으로는 붓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누구보다도 이스라엘의 이익을 확고히 하는 데 힘쓴 바가 많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1. 사무엘은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하나에게 왕으로 삼는 기름을 부어 주라는 사명을 지시받았다(1-5).

2. 이새의 모든 큰 아들들이 그대로 지나가게 되고, 제일 막내동생인 다윗이 부름을 받아 기름 부음을 받았다(6-13).

3. 사울은 더욱 미치게 되고, 다윗이 노래를 가지고 사울의 병을 고쳐 주도록 부름을 받았다(14-23).

이처럼 위대한 인간의 삶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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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에 간 사무엘(삼상 16:1-5)

사무엘은 다시는 공식적인 일을 위해서는 백성들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라마에 있는 자기 집에 은퇴하고 있었다. 

19장 20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가 거느리고 있던 선지자의 생도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데만 전적으로 몰두하고 있었다. 

사무엘은 젊은 왕보다는 젊은 선지자들을 만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죽는 날까지 하나님은 여기서 볼 수 있는 다윗에 대한 기름 부음 외에는 달리 사무엘을 불러내어 국가에 관련된 공식적인 일에 종사시킨 일이 없으시다.

Ⅰ. 하나님은 사무엘이 사울의 버림받음에 대해 그처럼 오래 슬퍼하는 것을 꾸짖으셨다. 

하나님은 슬퍼한 것 자체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계속 슬퍼하는 것에 대해 꾸짖으셨다.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1절) 

사무엘은 그의 가족들이 제침을 당하고 그의 아들들이 면직을 당했을 때에도 그처럼 슬퍼했다는 기사를 우리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사울과 그의 후손들이 버림받은 일에 대해서는 다할 수 없는 슬픔을 표시했다. 

전자는 백성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며, 후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 때문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제 자신을 되찾고 계속 슬퍼만 하지 말아야 할 때가 되었다.

1.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으며, 그는 또한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사울에 대한 그의 감정을 잊어버려야 한다. 

사울을 멸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사무엘은 이로써 만족해야 한다. 이미 판결은 내려졌다. 그의 기도와 눈물이 그 판결을 돌이킬 수 없다(삼하 2:22).

2.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손해 보는 바는 없다. 사무엘은 그의 친구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에 빠져 있지 말고 공동의 복지를 마련해야만 했다.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아라. 내가 한 왕을 예선하였노라. 백성들이 스스로 한 왕을 세웠었다. 그러나 그가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하여 내가 한 왕을 예선하였는데, 저는 내 마음에 드는 자이다”(시 89:20; 행 13:22 참조). “사울이 버림을 받았어도, 이스라엘은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으리라. 나는 다른 목자를 그들을 위하여 마련해 놓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오는 너의 기쁨이 능히 버림받은 왕으로 말미암는 슬픔을 극복하리라.”

Ⅱ. 하나님은 사무엘을 베들레헴에 보내어 이새의 한 아들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다. 아마 사무엘은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에게는 병에 채워진 기름을 가지고 기름을 부었다(10:1). 그것은 보잘것없고 깨지기 쉬운 것이었다. 

다윗에게는 뿔에 담은 기름으로 기름을 부었다. 그것은 보다 풍성하고 든든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눅 1:69).

Ⅲ. 사무엘은 이 심부름을 가기가 두려워서 이를 거절했다(2절). 

그리하여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 수 있다.

1. 비록 사무엘이 한마디의 언급이 없어도, 사울은 버림받은 이후 더욱 악독해졌으며, 더욱 난폭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불신앙에 떨어졌으면 감히 사무엘을 죽이고자 할 수 있었을까?

2. 사무엘의 신앙이 기대했던 것만큼 강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사울의 격노를 그처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보내신 분이 그를 지켜 주시며, 그 일을 성취시키도록 하여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무엘의 입장에서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여 자기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노출시키지 않는 방법을 지시하여 주시기를 바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Ⅳ.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번제를 드린다고 하여 그의 계획을 숨기라고 명령하셨다. “내가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말하라”고 하셨다. 

사무엘은 그대로 했다. 그가 왕에게 기름 부으려고 왔을 때 제사를 드리러 왔다는 것은 조금도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하다(11:15). 

선지자로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제사를 드릴 수 있다. 

그가 비록 다른 목적이 또 있었지마는 이를 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그가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만 말했다고 해도, 실제로 제사를 드린 이상에는 진리의 법에 모순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로 하여금 제사를 드리는 것을 알게 하고,그를 제사에 초대하고 그의 가족들을 제사 뒤에 가지는 잔치에 초대하도록 시켰다(아마 이새는 그 성읍의 우두머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는 매 과정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실수하지 않고 가장 잘 해낼 수 있다.

Ⅴ.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베들레헴에 갔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행렬을 지어서 간 것도 아니고, 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제사에 쓸 암송아지를 끌고 가는 사환 한 사람만을 데리고 갔다. 

그렇지만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였다.” 그들은 사무엘이 그 고장의 불법과 죄악을 심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기 위해 오는 줄 알고 두려워했다. 죄는 두려움의 원인이 된다. 사실 죄가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자를 무서워하게 되고 또 그의 말씀을 두려워하게 된다. 아니면 그들은 그들에 대한 사울의 노여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사울이 사무엘에 대해 대단히 노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무엘을 환대하면 그것 때문에 사울이 그들에 대해 시비를 걸 것이라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당신은 평안한 가운데 오신 것입니까? 사울을 피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화평을 주러 오신 것입니까? 진노의 소식을 가지고 오신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지자들로부터 좋은 말씀 듣기를 애써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들의 기도를 듣기를 두려워해야 한다. 다윗의 자손이 유다의 임금으로 탄생하셨을 때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마 2:3).

사무엘은 언제나 집에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자기 집에서 멀리 떠나온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어떤 비상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가 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사무엘이 그들을 안심시키기까지는 크게 두려워했었다(5절). 사무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나는 평강을 위하여 왔노라. 나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지, 너희에게 줄 진노의 말씀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온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환영하여라. 그리고 내가 드리는 제사에 참여하기 위해 너희 자신을 성결케 하라. 그리고 그 제사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라.”

엄숙한 임명이 있기 전에 먼저 엄숙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와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자 할 때는, 우리 자신을 세상과 떨어지게 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에 합당하도록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한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의 사명은 세상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두렵고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화평을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인간들에게 충분히 확신시켜 주셨다. 그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오신 것이며, 그 제물은 자기 자신이었다. “당신은 나를 위해 당신의 몸을 내주셨나이다.” 우리는 예수의 제사를 통해 크게 도움받기 위해 자신들을 성결케 하자.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화평을 가지고 와야 한다. 종교적인 행사는 떠들썩하고 폭력적인 것이 되도록 준비되어서는 안 된다.

Ⅵ.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특별히 주목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비밀히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사무엘은 이새를 처음 보자,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그의 집에 숙소를 정했으리라고 보여진다. 사무엘은 다른 모든 장로들에게는 “자신을 성결케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기도와 가르침을 통해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케 하여 주었다.” 사무엘은 그전부터 그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29을 보면 이새의 가족들이 드린 가정적 제사를 볼 수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서) 이새의 가정은 매우 경건한 신앙의 가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무엘은 공적인 제사에 참여하기 위한 그들의 가족적인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아마 다윗을 택하여, 그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공적인 제사가 거행되기 전에 가졌던 이새의 가정 제사에서의 일이었다고 보여진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욥이 그 아들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던 것처럼” (욥 1:5), 아들들 하나하나를 위한 개인적인 제사를 드리게 하고, 그것을 구실삼아 그 아들들이 하나하나 그의 앞에 나오게 했던 것 같다. 한 가족에게 축복의 신호가 오면 그 가족들은 모두 스스로를 성결케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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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부음 받은 다윗(삼상 16:6-13)

하나님께서 만일 (1절에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이새의 아들들에게 그들 중에서 한 왕을 택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면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멋진 모양을 꾸몄을 것이며, 모두가 바로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Ⅰ. 발탁을 받기 위해 멋진 자세로 서 있었던 이새의 큰 아들들이 모두 그대로 통과되었다.

1. 맏아들 엘리압이 제일 먼저 혼자 사무엘에게 왔다. 

그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이새만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무엘은 그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6절). 비록 선지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지시를 떠나서 말을 하면, 나단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삼하 7:3), 다른 인간이나 마찬가지로 잘못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은근히 속삭여 주심으로써 선지자의 잘못을 시정하여 주셨다. 하나님은 “그 용모를 보지 말라”고 하셨다(7절).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미치지 못할 준수한 용모와 키를 가졌던 사울에게 극도로 실망한 사무엘이 여전히 그런 표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했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기쁘게 해 주고자 왕을 선택하셨을 때는 외모가 준수한 사람을 택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에 드는 자를 택하고자 하셨을 때는 외모를 보고 택하지 않으셨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하신다(사 11:3).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

(1) 이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을 아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시다. “인간은 눈으로 본다”(라고 이렇게 원문대로는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거기 나타난 쾌활함이나 명랑함을 보고 즐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고, 그의 생각과 의도를 보신다.

(2) 이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판단하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좋은 마음의 기질과 거룩함을 지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은”(벧전 3:4) 이러한 것들이지, 결코 겉으로 보이는 위엄이나 힘이나 신장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의 참다운 미는 그 마음에 있는 것이지 결코 그 풍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고,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들의 마음을 보고 판단하되, 풍체를 보고 판단하지 말자.

2. 엘리압이 밀려나자, 아비나답과 삼마의 뒤를 이어, 다른 이새의 아들들 네 명이 모두 사무엘 앞에 차례로 나타났지만, 이제 처음과는 달리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보다 주의깊게 관찰하는 사무엘에 의해 모두 거절을 당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그들 모두를 두고 말했다(8, 10). 

인간은 그들의 명예와 재산을 아들들에게 나누어 줄 때 그들의 나이와 출생 연도에 의해 처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라는 말씀이 있다. 만일 사무엘이나 이새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었더라면 이들 중에서 하나가 반드시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인간들이 볼 때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물론, 다소 유망하다고 보는 자들도 그대로 지나쳐 버림으로써 자신의 주권을 더욱 공고히 하신다.

Ⅱ. 드디어 다윗이 선택되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자였다. 그의 이름은 “사랑받은 사람”이란 뜻이다. 다윗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주어졌다.

1. 다윗은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다(11절). 

아버지의 집에서는 제사와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건마는 그는 들에 남겨지고 있었다. 

막내는 흔히 가정에서 제일 귀여움을 받는데, 이새의 집에서는 다른 아들들에게 밀려난 형편이었던 것 같았다. 

또 그들은 다윗이 가지고 있던 훌륭한 영적인 가치에 대해 그것을 분간하지도 그리고 바르게 평가하지도 못했다. 

많은 위대한 천재들이 냉대와 멸시 속에 파묻혀 있는 수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간혹 인간들이 경멸하는 자를 추켜 세워 주시며 “그 부족한 부분을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신다.” 

다윗의 자손을 인간들은 멸시했으며, 그는 “건축자가 버린 돌”이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이름들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모세가 이드로의 양무리를 칠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같이, 다윗도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기르도록”(시 78:71) 이끄심을 받았다. 

그것은 그가 겸손하고 근면했다는 표시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사, 그 위에 은혜 주시기를 즐겨하시는 것들이다. 

우리는 훌륭한 왕의 자질을 위한 준비로서 군인 생활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자의 생활을 보신다(목자 생활은 하나님께 대해 명상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활의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자 생활을 통해서는 그러한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

제사를 드리는 때였지만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제사에 먼저 참여하는 이에게 자비가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2. 사무엘은 다윗이 오기를 매우 간절히 기다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다른 모든 아들들이 택함 받지 않았다면 반드시 그가 바로 택함 받은 자이다”(아마 그때의 식사는 제사 시의 잔치가 아니라 보통의 식사 자리였을 것이다). 식탁에 자리까지도 마련되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그 식탁의 주인공으로 초대되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낮은 자들을 높이고자 하시면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3. 다윗이 왔을 때의 그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의 옷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의 옷은 그의 직무상 다른 모든 목자들과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보잘것없고 초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요셉처럼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다(창 41:14). 그렇지만 사울처럼 준수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마는 정직하게 보였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라고 했다(12절). 말하자면 그는 해맑은 안색과, 좋은 눈과 그리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목구비는 뛰어나고 보기에 매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애써 꾸민 것이 없고 오히려 직무상 햇볕과 바람 속에 자신을 드러내 놓고 지나게 하지만 자연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은 그의 성품까지도 상냥하게 만들었다. 아마 다윗이 사무엘 앞에 나타났을 때 사무엘이 그를 매우 정중하게 대해 주는 데 놀라서, 수줍음 때문에 얼굴에 홍조를 띤 것이 오히려 그를 더 멋진 사나이로 보이게 한 것인지 모른다.

4.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의 귀에다 대고(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9:15) “이가 바로 그가 기름을 부을 자라”라고 말씀해 주셨다(12절). 

사무엘은 그가 배우지 못했거나, 너무 젊거나 또는 그의 가족들에게서 무서워하거나 하는 점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기름뿔을 취하여 “그에게 부었다”(13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1) 사울이 죽으면 왕국을 그가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왕권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그에게 이양될 것이다.

(2) 왕국을 다스리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그에게 하늘의 은사와 은혜를 내려 주시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로 합당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 주시는 것이다.

다윗은 “그 형제 중에서(in the midst of)”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아직 자기가 왕이 되기 위해 지명받은 것인 줄 몰랐으며, 그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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