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다((대하17:1-9)) [24왕되신주].[540주의음성을 내가들으니].[582 어둔밤 마음에 잠겨]
1.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2.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4.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6.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7.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8.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9.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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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hronicles 17 Amplified Bible
==Jehoshaphat Succeeds Asa
1 Jehoshaphat his son then became king [of Judah] in Asa’s place, and strengthened his position over Israel.
2 He placed troops in all the fortified cities of Judah, and set garrisons in the land of Judah and in the cities of Ephraim which his father Asa had captured.
==His Good Reign
3 The Lord was with Jehoshaphat because he [a]followed the example of his father (ancestor) David. He did not seek [to follow] the Baals [the false gods],
4 but sought the God of his father, and walked in (obeyed) His commandments, and did not act as Israel did.
5 Therefore the Lord established the kingdom in his hand; and all Judah brought tribute to Jehoshaphat, and he had great wealth and honor.
6 His heart was encouraged and he took great pride in the ways of the Lord; moreover, he again removed the high places [of pagan worship] and the Asherim from Judah.
7 Then in the third year of his reign he sent his officials, Ben-hail, Obadiah, Zechariah, Nethanel, and Micaiah, to teach in the cities of Judah;
8 and with them were the Levites—Shemaiah, Nethaniah, Zebadiah, Asahel, Shemiramoth, Jehonathan, Adonijah, Tobijah, and Tobadonijah; and with them the priests Elishama and Jehoram.
9 They taught in Judah having the Book of the Law of the Lord with them; they went throughout all the cities of Judah and taught among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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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hronicles 17 New King James Version
==Jehoshaphat Reigns in Judah
1 Then Jehoshaphat his son reigned in his place, and strengthened himself against Israel.
2 And he placed troops in all the fortified cities of Judah, and set garrisons in the land of Judah and in the cities of Ephraim which Asa his father had taken.
3 Now the Lord was with Jehoshaphat, because he walked in the former ways of his father David; he did not seek the Baals,
4 but sought [a]the God of his father, and walked in His commandments and not according to the acts of Israel.
5 Therefore the Lord established the kingdom in his hand; and all Judah gave presents to Jehoshaphat, and he had riches and honor in abundance.
6 And his heart took delight in the ways of the Lord; moreover he removed the [b]high places and wooden images from Judah.
7 Also in the third year of his reign he sent his leaders, Ben-Hail, Obadiah, Zechariah, Nethanel, and Michaiah, to teach in the cities of Judah.
8 And with them he sent Levites: Shemaiah, Nethaniah, Zebadiah, Asahel, Shemiramoth, Jehonathan, Adonijah, Tobijah, and Tobadonijah—the Levites; and with them Elishama and Jehoram, the priests.
9 So they taught in Judah, and had the Book of the Law of the Lord with them; they went throughout all the cities of Judah and taught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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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제17장
1. Jehoshaphat his son succeeded him as king and strengthened himself against Israel.
2. He stationed troops in all the fortified cities of Judah and put garrisons in Judah and in the towns of Ephraim that his father Asa had captured.
3. The LORD was with Jehoshaphat because in his early years he walked in the ways his father David had followed. He did not consult the Baals
4. but sought the God of his father and followed his commands rather than the practices of Israel.
5. The LORD established the kingdom under his control; and all Judah brought gifts to Jehoshaphat, so that he had great wealth and honor.
6. His heart was devoted to the ways of the LORD; furthermore, he removed the high places and the Asherah poles from Judah.
7. In the third year of his reign he sent his officials Ben-Hail, Obadiah, Zechariah, Nethanel and Micaiah to teach in the towns of Judah.
8. With them were certain Levites -- Shemaiah, Nethaniah, Zebadiah, Asahel, Shemiramoth, Jehonathan, Adonijah, Tobijah and Tob-Adonijah -- and the priests Elishama and Jehoram.
9. They taught throughout Judah, taking with them the Book of the Law of the LORD; they went around to all the towns of Judah and taught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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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7장
1. Jehoshaphat his son then became king in his place, and made his position over Israel firm.
2. He placed troops in all the fortified cities of Judah, and set garrisons in the land of Judah, and in the cities of Ephraim which Asa his father had captured.
3. And the LORD was with Jehoshaphat because he followed the example of his father David's earlier days and did not seek the Baals,
4. but sought the God of his father, followed His commandments, and did not act as Israel did.
5. So the LORD established the kingdom in his control, and all Judah brought tribute to Jehoshaphat, and he had great riches and honor.
6. And he took great pride in the ways of the LORD and again removed the high places and the Asherim from Judah.
7. Then in the third year of his reign he sent his officials, Ben-hail, Obadiah, Zechariah, Nethanel, and Micaiah, to teach in the cities of Judah;
8. and with them the Levites, Shemaiah, Nethaniah, Zebadiah, Asahel, Shemiramoth, Jehonathan, Adonijah, Tobijah, and Tobadonijah, the Levites; and with them Elishama and Jehoram, the priests.
9. And they taught in Judah, [having] the book of the law of the LORD with them; and they went throughout all the cities of Judah and taught among th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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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의 즉위(대하 17:1-9)
이 문단에서 우리가 여호사밧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Ⅰ. 그가 얼마나 현군이었는가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스스로를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하였다”(1절).
활동적 호전적 군주였던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는지 3년이 되었고, 자기의 통치 초기에 보였던 아합의 왕성한 정력은 아사 왕의 쇠퇴한 종말과 마찬가지로 이제 몰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은 최근까지만 해도 유다 왕국의 기반을 뒤흔들면서 유다에게는 무서운 존재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등극 후 제일 먼저 착수해야만 될 일은 바로 그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치를 하며 이스라엘 왕의 비대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또 실제로 여호사밧은 이 일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유혈 사건이 없이도 잘 수행해냈다.
아합 왕은 이에 즉시 동맹국 유다에게 [결혼동맹 맺고 군사동맹 맺으며 해상무역사업을 함께 벌였음..대하18:절이하..1] 환심을 사려했다.
그래서 그 나타난 결과는 여호사밧왕 그 자체에게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방해나 손실을 끼치지는 않았던 것처럼 보였으나 적국보다 더 위험스러운 우방이 되고만 셈이었다.
여호사밧은 스스로를 강하게 하되, 이스라엘에 대하여 공격적으로 적대적 작전을 취하지 않고 단지 자기 세력을 유지 강화하고자 했다.
곧 그는 자기 나라의 일선 지방에 위치한 성읍들을 강화시키며 자기가 장악하고 있던 에브라임 지역에다 전보다 더 강력한 수비대를 투입했던 것이다(2절).
그는 부왕 아사처럼 수리아 왕과 동맹을 맺어서 국력을 강화시키지 않고, 오직 공명정대하고도 정규적 방법, 곧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런 방책을 강구함으로써 국력을 신장했다.
Ⅱ. 그는 얼마나 선한 인간이었던가! 여기서 말하는 그의 비범한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
열왕들의 성격 중에서 다윗의 인품은 열왕기상 15장 3, 11절과 열왕기 하 14장 13절, 16장 2절, 18장 3절에서처럼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처음의 길과 나중의 행적간에 다윗만큼 확연히 구별지어진 사람도 또 없다. 왜냐하면 그의 나중 길은 처음의 길보다 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야의 문제로 인하여 그토록 크게 실수하기까지는(오랜 후에 그의 명예에 있어서 한 오점으로 언급된다. 왕상 15:5) 그의 길들은 선량한 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그 타락에서 회생했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그는 여생 중에 우리야의 문제로 인해 상실한 위로와 영적인 힘을 다시 완전히 만회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여호사밧은 다윗이 하나님을 따랐던 것만 본따서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한계를 그어 놓고 자기를 본받으라 했다(고전 11:1).
“너희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듯이 나를 따르되...” 그 이상 달리지는 말라.
많은 선량한 사람에게는 그들이 처음 경험한 처음의 길이 최선의 길이며, 처음 사랑이 가장 강력했던 사랑이었음을 체험한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베껴 쓰려할 때는 주로 제일 좋은 것을 골라서 그것을 보고 베끼려 한다.
본문 중의 말은 달리 해독될 수도 있다. 즉 이런 뜻으로 된다. “그는 그 조상 다윗의 길, 즉 처음의 길 옛 길로 행하였더라.”
그는 최근에 부패된 왕정이 아니라 순결한 시대, 곧 그 왕가의 초기 시대를 모범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렘 6:16 참조).
70인역은 다윗이란 단어를 아예 생략해 버리고 있다. 따라서 본문은 아사 왕을 가리키게 된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처음 길로 행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말년에 있었던 실정은 본받지 않았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무리 선량한 자들을 따라가더라도 한걸음 한걸음마다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은 일이니, 우리가 그들을 따르다가 길을 잘못 들까 함이다.
2. 그는 “바알들에게 구하지 않고 자기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였다”(3, 4절).
그 당시 인근 열방들은 바알을 저들의 신으로 삼고 있었으니 이 민족에게는 한 바알이, 저 민족에게는 다른 바알이 있었으나 그는 그 모두를 다 미워했고, 그들과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했고, 그에게만 기도했고, 그에게만 물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구하는 데 있어서 기도하는 일과 묻는 일 두 가지 다를 포함시켰다.
3. 그는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행하였다.”
그는 참 하나님을 경배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규례에 따라 그를 경배했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다”(4절).
비록 이스라엘 왕이 그의 이웃인 동시 동맹군이었을지라도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길을 배우지 않았다.
그가 세속사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왕과 더불어 어떠한 거래라도 허용했지만, 종교에 관한 한 이스라엘 왕과 교제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에게 응하지도 않았다.
이런 점에서 그는 규율을 엄수했다.
4. “그는 여호와의 도를 전심으로 행하였다”(6절). 혹은 “그는 자기의 마음을 바쳤다.”
그는 자기 마음을 하나님의 일에 쏟았고, 거기에 자기 마음을 바쳤으니, 곧 그는 그 일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진지한 존경심을 품었던 것이다.
“오! 여호와여! 주께 나의 영혼을 바칩니다.” 그는 선한 일에 마음을 넓혔다(시 119:32).
그는 결코 자기가 하나님께 충분히 해 드릴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신앙에 활기 있고 관심이 깊었으며, “여호와를 섬기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 일을 기뻐했다.
그는 즉시 하나님의 일을 계속 수행하되, 마치 벧엘에서 하나님을 본 후 “일어나” 동방으로 행했던 야곱과 같이했다(창 29:1).
그는 대담하고 과단성 있게 하나님의 길을 좇았고, 용기를 가지고 계속했다. 그의 심령은, 그 의무의 길에 놓여 있는 난관들을 고려할 여지도 없이 전부 바쳐졌다.
그는 그 난관들을 쉽사리 극복했으니, 그는 “파종과 수확기”에 있을 “바람과 구름”을 겁내지 않았다(전 11:4). 우리도 그와 같은 정신을 본받자.
Ⅲ. 그는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었던가!
그는 선량한 인간이었을 뿐 아니라 선량한 왕이었다. 그 자신이 착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세대에 선행을 아주 많이 행한 자다.
그는 거짓 스승들과(만든 상들은 거짓 스승이라고 불린다. 합 2:18) “산당과 수풀들을” 제하여 버렸다(6절). 그것은 우상이 경배되는 장소를 의미한다.
오직 참 하나님께 봉헌된 것은 폐하지 않았다(대하 20:33). 그가 철폐한 것은 오직 우상 숭배였다.
그가 없애버린 우상 숭배의 수풀과 형상들보다 그 민족을 더 타락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1. 그는 진리의 스승들을 파송했다.
그는 자기 나라 안의 종교상을 조사해 보고 그 백성이 일반적으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저희가 악을 행한 줄을 알지 못했다.”
이전에 선정을 베풀던 때에조차 저들의 의무 이행을 가르치는 데에 거의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은 자기 일을 첫머리에서부터 잘 하기로 결심했다.
즉 저희를 이성있는 피조물로 대함으로써 맹목적인 개혁이 아니라 저들을 잘 교육시키는 길을 택했다. 그것만이 저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 이 훌륭한 사업을 방백들에 시켰다.
그는 자기 주위에 있는 자들을 파송했고, 그들을 지방으로 보내어 “유다의 성읍들에게 가르치게” 했다(7절).
그는 백성들이 악행했을 때는 사법권을 발송하여 그들을 교정시키라고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더 선하게 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칠 것과 백성으로 하여금 선악간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방백이나 유사들에게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백성들의 의무를 가르칠 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저희의 직분에 벗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곧 국법으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2) “레위인들이 방백들과 함께” 동맹했으며, “그들은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쳤다”(8, 9절).
레위인, 저희들은 직무상 백성들의 스승이었다(신 33:10). 가르치는 것은 저희들의 생업 중 하나였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 외에 해야 할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말에 청종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구실로 이 일에 태만했던 것 같다.
여호사밧은 말했다. “자! 너희는 방백들과 함께 가거라. 그리하면 그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이용하여 백성들이 너희들에게 나아와 너희들의 말을 청종하도록 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저희가 교훈을 잘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희 잘못으로 여기겠다.”
모세와 아론이 협력하여 가르치며, 또한 권세를 잡은 방백들과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선한 지식과 의무를 단결하여 가르쳤다.
그게 얼마나 선한 일이랴! 순회하는 유사들과 순회 설교자들은 함께 온 유다 성읍을 다니며 복된 빛을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갔다”.
① 이것은 저희 자신의 교육 지침을 위한 것이었다.
그로써 저희는 백성에게 줄 모든 교훈을 가져 갈 수 있어 “사람의 계명을 교육으로 가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② 이것은 백성의 확신을 돕고자 함이었다.
즉 레위인과 제사장의 말은 오직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뒷받침이 있다는 것을 백성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역자들도 사람들에게 가르치러 나아갈 때에 성경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Ⅳ. 그는 얼마나 복된 사람이었던가?
그는 자기 하나님의 은총에 아주 행복했다. 그 하나님은 그를 특별히 인정하시고 축복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3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의 조력자였다”(갈대아 주석은 그렇게 해석한다).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셨다”(5절).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시는 자들은 확고히 선다.
만약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아름다움이 우리 위에 임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손의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요”, 우리의 정직을 지켜 주실 것이다.
2. 그는 그 백성의 사랑에 아주 행복했다.
“온 유다가” 자기들에게 설교자들을 보내 준 그의 친절함에 대한 사례로서 “그에게 예물을 가져왔다”(5절)고 했다.
백성의 종교가 참되면 참될수록 더욱더 많은 양심적 충성이 생겨난다. 통치 목적에 부합하는 정부는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과 유다 왕국 백성의 사랑은 “그가 부귀와 영광을 풍족히” 누리게 해 주었다.
신앙과 경건은 우리의 외적 번영에 대해 가장 좋은 친구라는 사실을 믿는 자가 드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다.
그리고 그 뒤 잇따라 나오는 말을 관찰해 보자. “그가 전심을 다하여 여호와의 도를 행하였다.”
지극한 부귀와 영화는 대개의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도를 따르는 데는 장애물이 되거나 방해가 되는 자만과 방심과 호색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는 전혀 반대의 효과를 나타내었으니, 그의 풍족함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수레 바퀴에 윤활유가 되었으며, 이 세상 제물을 더 늘리면 늘릴수록 그는 더욱더 “여호와의 길에 마음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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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 Jehoshaphat. fp;v;/hy](3092, 예호샤파트)
1. 구약성경.
예호샤파트(명남)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여호사밧'으로 음역했다.
(a) 통치
① 여호사밧은 아사왕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여(왕상 15:24; 대상 3:10; 대하 17:1) 이십 오년을 통치하였다.
② 솔로몬 이래로 계속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종식되고 이스라엘왕과 평화했다(왕상 22:44).
-- 이스라엘과 동맹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그의 아들 여호람의 결혼으로 확고해졌다(왕하 8:18, 27; 대하 18:1).
③ 그가 이스라엘왕 아합을 방문했을 때, 이스라엘을 위해 길르앗 라못을 회복하려는 싸움에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 받았다(왕상 22:1-4; 대하 18:2-3).
--여호사밧은 싸우기 전에 먼저 여호와의 뜻을 알기를 원하였고(왕상 22:5; 대하 18:4), 아합과 함께 길르앗 라못을 공격했다(왕상 22:5; 대하 18:4; 왕상 22:29; 대하 18:28). 이 일로 인해 그는 선견자 예후에게 책망을 받았다(대하 19:1-3).
④ 여호사밧은 모압, 암몬, 마온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하려고 할 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였으며(대하 20:1-12), 하사시엘이 여호와의 구원을 예언했다(대하 20:14-17).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대하 20:27-30).
(b) 여호사밧의 개혁 사업으로는,
①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하였다(대하 17:6). ②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었다(왕상 22:46). ③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르쳤다(대하 17:7-9). ④ 민간에 순행하여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이키는 일을 하였다(대하 19:4). ⑤ 견고한 성들에 재판관을 세우고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워 정당한 재판을 하도록 했다(대하 19:5-7; 대하 19:8-10).
(c) 여호사밧의 군사력과 번영에 관해서는
① 에돔을 접수하고 대리 통치자를 임명하였다(왕상 22:47). ② 유다에 있는 견고한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대하 17:2), 아사왕이 탈취한 에브라임의 성읍들에도 수비대를 주둔시키었다(대하 17:2).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다(대하 17:14-19). ③ 부귀와 영화가 극하였다(대하 17:5; 대하 18:1). ④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대하 17:12), 다시스와 교역을 위해 선박을 만들었다(왕상 22:48; 대하 20:36).
(d) 여호사밧의 신앙 행위로는
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하고(왕상 22:4; 대하 17:6), ② 여호와를 두려워하고(대하 19:7), ③ 여호와를 경외하고(대하 19:9), ④ 위기의 때에 여호와께 간구하고(대하 20:3), ⑤ 구별하여 드린 성물을 성전에 바치었다(왕하 12:18).
(e) 여호사밧은 아들들에게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주고 장자에게는 왕위를 주고(대하 21:2-3) 죽었다(왕상 22:50; 대하 21:1).
2. 신약성경.
이오사파트는 신약성경에서 마 1:8에서 2회 나오며, 예수님의 족보에서 그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참조: The Zondervan Topical Bi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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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로 위장한 신천지의 미혹에 주의하라(막13:21~23)_
주제어---위장기독교,신천지,신천지증거장막성전,이만희,신천지의정체,비유풀이,짝풀이,요한계시록의실상,신탄,
대구와 청도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적인 발병으로 인해 나라가 뒤숭숭하다. 모두가 다 바이러스의 감염 때문에 밖에 출입하기도 어렵고 공공장소에 가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 대구기독교연합회에서는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2주동안 공예배를 드리지 않고 교회를 폐쇄하며 당분간 인터넷예배를 드리겠다고 했다.
대체 대구와 청도가 무슨 일로 코로나가 이렇게 창궐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에는 신천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대체 신천지는 어떤 단체이며, 교주에 해당하는 이만희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들이 그동안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는가?
1. 들어가며
지난 달부터 중국에서 발병한 우한폐렴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잠잠해지는 듯 했으나, 지난 18일(화) 31번 확진자(여성 61세)가 나온 이후, 무서운 속도로 폐렴확신자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우려가 더 깊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31번 확진자가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에 다니는 신도였는데, 그녀가 지난 9일(주일)과 16일(주일)에 신천지대구교회(다대오지파성전)에 출석하여 11,00여명의 신도와 함께 예배를 드렸기 때문인데, 이 신천지교회가 실은 기독교가 아니라 "이만희"를 교주로 하는 사기집단으로서, 기독교를 가장한 신흥종파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그는 위장과 거짓말을 통하여 사람을 속여왔고 폐쇄성으로 일관하여왔던 신천지인지라, 일반시민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그런데 며칠전에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신천지의 제2인자 겸 후계자라 여겨졌으며, 이만희교주의 내연의 처로서 세계평화여성그룹(IWPG)의 대표인 김남희 대표가 존존TV에 출연하여, 이만희의 실상에 대해 낱낱히 고발을 했던 것이다.
그녀에 의하면, "이만희는 구원자가 아니다. 그도 죽음을 두려워했고 사후를 준비했다"고 했으며, "신천지는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할 종교사기집단이다. 이만희는 한낱 평범한 사람이고, [그도]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양심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대체 이만희 교주가 활동하고 있는 신천지교회는 어떤 집단이길래 이 사회에 이렇게 해악을 끼치는 집단이 되었으며, 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던 김남희대표는 왜 이만희를 사회에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단사이비가 어떻게 생겨나 악을 끼치게 되는지 그리고 왜 성도들은 이단사이비의 미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대명천지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이 발생하는 것인가?
왜 오늘날과 같이 현대화된 사회속에서 거짓 그리스도과 거짓선지자들이 발흥하여 대범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사도바울은 그것이 바로 말세에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했다(딤전4:1). 미혹하는 영과 귀신들이 사람들을 미혹하여 이단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신천지와 같은 이단에 빠지는 것을 세뇌교육이라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무료로 성경공부시켜주고 신학교졸업자와 같은 대우를 해 준다니까 그냥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3. 이만희와 신천지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단체인가?
이만희는 1931년생(올해90세)으로, 경북 청도군 풍각면 현리 702번에서 아버지 이재문과 어머니 고상금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7년경부터 천부교 박태선을 추종하다가 거기서 갈라져나온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몸을 담았다. 다시 유재열이 고소사건으로 사람들이 흩어지자 잠깐 재창조교회의 백만봉을 따라다니다가, 1980년 3월 14일에 안양시에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세운다. 그는 그동안 자기가 듣고 배웠던 박태선의 천주교와 문선명의 원리강론같은 책을 보고 교묘히 짜집기를 하여 새로운 신흥종교를 탄생시킨 것이다. 1984년에는 200명 정도가 모였고, 그는 "신탄"이라는 책을 통하여, 1984년 3월 15일부터 1987년 9월 14일을 후3년반(42달, 1,260일)이라고 정의하고는, 그날이 되면 신천신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날이 되어도 신천신지가 도래하지 않자, 40명 정도만 남고 다 흩어지게 된다. 그런데도 그가 낙심치 않고 자기의 세력을 키워, 2020년 오늘 현재 총24만5천명의 신천지교인을 갖게 된다.
4. 이만희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는 어떤 사람인가? 12년동안 배우자로서 이만희와 결혼하여 살다가 그로부터 빠져나온 김남희 대표는 그를 "돈밖에 모르는 고도의 사깃꾼"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는 예수의 영을 빙자하여 자신이 구원자임을 사칭하고, 보혜사와 재림예수를 가장한 사깃꾼이었던 것이다. 그럼, 그는 어떻게 사람들을 속여 자칭 재림예수가 된 것인가? 그것은 3가지다.
그는 첫째, 성경해석의 사깃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성경을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성경을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유인하였는데, 그때 사람들을 미혹하는 방법은 "비유풀이"와 "짝풀이"이다(이것은 초급과정에서 가르친다).
한 마디로 성경은 다 비유로 되어 있어서 이만희 자신과 같이 대언자의 영이 임한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는데, 그것을 들어야 비로소 성경이 열려지게 되고 장차 도래할 천년왕국에서도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미혹한다. 예를 들어보자.
그는 마태복음 13장 3절이하에 나오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가지고 이렇게 미혹한다. 즉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말씀은 비유임으로 비유로서 해석해야 하는데,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며, 씨가 뿌려지는 "밭"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마13:3에 나오는 "씨"에도 짝이 있으니, 예레미야 31:27~28에 보면, 씨에는 사람의 씨도 있고 짐승이 씨도 있어서,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씨로 난 자들이며, 계시록이 성취될 때에 하나님의 씨로 난 자들만 추수하게 될 것이고, 약속의 목자가 와서 그 사람들을 인을 칠 것인데, 인치는 장소가 바로 신천지이며, 약속의 목자는 결국 이만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렘31:27~28의 말씀은 "씨에는 사람의 씨가 있고 짐승의 씨가 있고, 이중 짐승(사탄)의 씨를 받은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렘31:27~28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었던 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회복시킬 때에는 사람과 짐승이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만희는 이때 사람은 이만희를 씨를 받아야지, 거짓된 목자가 주는 짐승의 씨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계1:7의 말씀에 나오는 "예수께서 구름타고 오신다"는 말도 왜곡시킨다.
여기서 구름은 비유로서 진짜구름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구름은 보이지 않는 천사를 지칭하는 것이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영으로 보이지 않게 천사들처럼 오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고로, 예수께서 공중에 구름타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데에 온다는 것을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66권 전체를 읽어보아도, 구름이 천사라는 말은 없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구름이 등장하고 있으며, 천사는 하나님께서 부리려고 창조된 하나님의 영적인 심부름꾼이기 때문이다. 구름은 자연현상이지만 천사는 엄연히 영혼을 지닌 하나님의 종인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으니(마24:26~28), 예수께서 오실 때에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그때 공중에서 천사들을 보내 사람들을 추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구름과 천사들을 분리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그는 요한계시록의 사깃꾼이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다가 빠져나온 유재열의 증거장막성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요한계시록에 꿰맞추어서 그것이 곧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쓴 "요한계시록의 실상"이라는 책이다(이것은 중급과정에서 가르친다).
조직체계 즉 7명의 천사, 12지파, 24장로, 144,000명의 신도 개념들도 계시록에서 따왔고, 7년대환난은 자기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7년대환난을 풀어나간다.
그는 1984년 3월 14일부터 1987년 9월 14일까지가 후3년반이고 그 다음은 신천신지가 도래한다고 했다(물론 헛발질로 끝났다). 그리고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자기와 연관지어서 설명했다. 예를 들어, 계12장에 나오는 "해로 옷입은 여자"는 유재열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여자가 낳은 사내아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1년동안 자기를 도와주었던 홍종효씨와 자신은 "두 감람나무"이자 "두 증인"이라고 하였다. 더욱이 이만희 자신은 첫째인을 뗄 때에 튀어나온 백마를 탄 자라고 하였으며, 계19장에서도 천사들과 함께 백마를 타고 재림하시는 예수라고 했다.
그리고 계10장에서는 작은 책을 받아먹는 대언자라고 했으며, 계19장에 가서는 자신을 어린양의 신부라고 하고, 계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위한 편지에서는 자신을 "이긴 자"라고 표현했다.
그럼, 그는 사람들을 어떻게 자신만이 요한계시록을 해설할 수 있는 자라고 했는가? 그것은 자신이 환상 중에 어떤 사람을 만났고 그가 요한계시록을 해설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만희는 자기 스승들로부터 배웠던 여러가지 교리들을 짜집기식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특히 1980년부터 1987년에 일어난 사건을 7년대환난이라고 주장하는디,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삼게 된다.
셋째, 그는 자칭 재림예수의 사깃꾼이다. 이만희는 자기의 육체에 예수의 영이 내려왔다고 하면서,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은 곧 예수께서 영으로 말씀으로 자기에게 내려온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는 성령은 하나님의 영인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영이 내려왔으니 예수안에는 성부와 성령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자기의 육체 위에 내려왔으니 자기의 몸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보좌라고 한다.
또한 곧 있으면 신천신지가 도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천신지는 이땅에 육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천년왕국으로서, 이만희가 만희왕으로서 들어가며, 자신을 따르는 신도 144,000명은 제사장이 될 것이라면서, 144,000명은 누가 될른지 모르니 그 숫자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실적을 쌓으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이는 학업도 중단하고, 가정도 버리고, 인륜도 버린 채 신천지교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5. 신천지 이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말세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13:21). 그러므로 이단들의 발흥을 계속해서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이 모든 일을 미리 말한 채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하셨다(막13:23).
그럼, 그때에 예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은 말세가 되면 재림예수를 사칭하는 자들이나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라고 말해서 결코 그리 가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막13:21). 왜냐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보도록 오시는 것이지 몇몇 사람만 아는 그런 장소에, 그런 사람에게 오시지 않기 때문이다(막13:26~27).
즉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하늘로 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행1:11, 살전4:16~17).
다시 오실 예수님은 결코 사람의 육체를 입으실 필요가 없다. 다만 초림 때에는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사람의 육체를 입으셨다.
하지만 재림하실 예수께서 무엇이 아쉬운 것이 있어서 다시 육체를 입으신다는 말인가? 한낱 일개 피조물인 주제에 자신을 재림예수로 사칭하는 사악한 자에게 예수께서 오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의 육체를 다시 입고 오시지 않으시며, 몇몇 사람만 알게 오시지 않는다. 그것도 한국사람으로 말이다.
그리고 자기만이 예수의 영이 자기의 육체에 임한 자여서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그에게 묻고 싶다. "이만희씨, 당신에게만 예수의 영이 내려왔습니까?" "예수의 영인 성령(행17:6)은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오신다고 하셨는데, 당신만이 예수의 영을 가졌습니까?"
그의 주장은 엉터리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께서 무엇이 아쉬울 것이 없어서 일개 이만희 육체 속에 들어와 좌정하겠시겠는가?
천부교의 박태선과 통일교의 문선명과 증거장막성전의 유재열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을 짜집기하여 이 시대의 대언자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주장했던 거의 모든 교리들이 다 박태선의 주장과 왜 이리 일치하다는 말인가? 아래의 나오는 박태선의 책의 내용과 신천지 이만희의 교리를 비교해보라(https://dongtanms.kr/59002).
6. 나오며
이만희는 짜집기의 달인이요, 속이는 재주꾼이다. 그가 하는 비유풀이나 짝풀이는 이미 다른 이단선배들이 써왔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요, 성경해석(배도와 구원)의 방식도 거의 똑같이 배낀 것이며, 거기에다가 자기개인의 일대기(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있었던 일과 신천지교회를 세우는 이야기)를 요한계시록의 실상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만희의 일대기를 모른다면 요한계시록을 풀 수 없다는 뜻인가? 요한계시록은 이만희의 개인 일대기를 위해서 저술된 책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만인을 위해서 특히 예수님을 믿고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고난과 죽음에 직면한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 기록한 책이다. 어디 함부로 요한계시록을 자기 역사로 바꾸려고 시도한다는 말인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그렇게 조작되고 날조된 요한계시록의 해석과 성경해석을 두고 참 진리라고 따라가며, 어찌하든지 만희왕이 이끄는 신천신지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밤낮으로 신천지를 전파하는 이들이다.
어떤 이는 144,000명 안에 자기가 들어가기 위해 직장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학업도 포기하고 있다. 그러나 들어보라. 이만희의 처음 핵심멤버이자 그와 결혼했으며 그와 함께 12년간을 아내로 살았던 김남희대표가 말하지 아니한가! 그는 "돈밖에 모르는 고도의 사깃꾼"이라고 말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6Pec5iKK7YA).
더이상 이만희를 따라가지 말라. 오직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우리 주님만을 붙들기를 바란다. 구원자는 오직 주 예수님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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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신천지의 성경해석에 쉽게 빠져버릴까?(마13:34~36)_
주제어----신천지,코로나19바이러스,비유풀이와짝풀이,전도관박태선,새빛등대중앙교회김풍일,알레고리성경해석법,오리겐,씨뿌리는자의비유,알곡과가라지의비유,설명의유무,이긴자,보혜사성령,성경기록목적
왜 사람들은 신천지가 어느정도는 이단일 줄 알고 있었을텐데, 그만 거기에 빠져버리는 것인가?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신천지에 들어가 한 6개월쯤에서 1년정도 공부하면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버리는가?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하나의 성경해석 방법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용하는 성경해석 방법은 사실 초기교부 때부터 있었던 놀라운 성경해석법이었다. 그것으로 헬라철학자들마저 굴복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이단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 알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신천지에 빠진 자들은 속히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며, 우리 성도들은 그 위험성을 알고 잘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들어가며
지난해 12월 30일 중국우한에서 발행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올 해 2월 들어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31번 확진자의 발생 이후 대구와 경북에서 급속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오늘 코로나 감염확진자가 3,500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천지의 위험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31번 확진자가 지난 2월 둘째주일과 셋째주일에 대구 신천지 다대오지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 동선이 확인되었는데, 신천지는 사실 3주이상 결석하면 제명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144,000명만 살아서 영생할 수 있다는 신천지의 가르침에 따라 그 반열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 무리한 예배를 감행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딘가 모르게 수상하게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천지 신도의 감염이 이제는 대구와 경북을 넘서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루만 해도 5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더 큰 문제는 이 일로 말미암아 매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 기독교성도들에게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명의 확진자가 나오면 밀접접촉자까지 포함하여 함께 2주일간을 자가격리 및 차단조치를 해야 하는데, 교회는 여러 성도들이 운집하는고로 가장 위험한 감염루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 예배를 드리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있는 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주에도 전 성도들 중에서 약 57%가 인터넷예배를 드렸으며, 또한 약 38%는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쩌면 가라지 하나를 뽑으려다가 많은 곡식까지 뽑히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개신교(기독교)에서는 이번 사태를 천재일우의 기회로 알고, 신천지의 정체를 확실히 드러내어 그들의 위험성을 알리고, 성도들 중에는 어느 누구도 신천지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하고 알리는 특별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특별히 최근 들어와 신천지는 그 숫자가 매우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교회까지 신천지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는 담대함을 보이고 있다. 놀라운 따름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왜 사람들이 신천지에 왜 빠지는지 그리고 한 번 빠지면 왜 거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은지를 그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어떤 집단인가?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은 1987년 9월 14일에 창립된 유사 기독교 신흥종교집단을 가리킨다. 이 단체의 교주는 1931년생으로 올 해 나이 70세된 할아버지 이만희다. 그런데 그가 여러 이단교주들을 두루두루 다니다가 신천지를 창립하게 되는데, 그때는 54세였으니, 신천지가 생긴지도 무려 33년이 흘러간 것이다.
그런데 신천지의 기원과 뿌리를 잘 모르는 자는 오늘도 이만희가 이 말세에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재림예수의 영을 받은 "참된 종, 약속의 목자"라고 신봉하고 따르고 있다.
특히 2010년이후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신천지의 신도수는 올 해 들어 현재 24만5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신천지의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 어떻게 되었길래 이 집단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인륜을 저버리고, 가정도 내팽개치고, 학업도 중단한 채 맹신하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지난 한 주간동안 이만희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니,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것을 나누고자 한다. 그것은 신천지의 성경해석방법에 관한 것이다.
3. 신천지에서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누구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되었는가?
신천지에서는 성경을 공부할 때에 "비유풀이와 짝풀이"의 방법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그렇다면 이 방법은 신천지의 이만희가 만들어낸 성경공부방법일까? 전혀 아니다.
신천지의 뿌리와 역사를 공부해보면 알겠지만, 이만희는 자기가 이전에 몸담았던 사이비 이단의 교주로부터 배운 것을 아주 잘 짜깁기하여 마치 자신의 것인량 포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비유풀이와 짝풀이"라는 성경공부 방법도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원류를 찾아보면, 박태선의 전도관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것의 꽃을 피운 사람은 실로등대중앙교회의 김풍일씨다. 김풍일씨는 전도관 박태선의 제자다. 박태선이 사망하자 따로 나와서 만든 것이 실로등대중앙교회다.
그런데 김풍일씨가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살펴보면, 이만희씨와 얼마나 닮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만희씨가 김풍일씨로부터 그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박태선의 제자였던 김풍일씨는 "모든 성경은 다 비유로 기록되어 있어 감추어져 있기에 비유는 풀어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유아독존적으로) 주장하였으며,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단어와 문장은 다 짝이 있다. 그래서 신구약성경에서 그 짝을 찾아서 해석할 때에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천지 이만희도 김풍일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비유풀이와 짝풀이"가 사실은 오늘날의 신천지가 탄생하게 한 가장 중요한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4. 성경해석방법으로서 신천지에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어떤 성경해석방법인가?
성경을 해석할 때 신천지에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한다. 여기서 "비유풀이"라는 것은 성경은 비유로 기록된 것으로 그 의미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성경에 나온 말씀으로 짝을 찾아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신도에게 포섭당해 성경을 공부할 때 제일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 성경말씀은 다 비유라고 배운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예로 든다. 마13:34~35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것들을 무리에게 가르치실 때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78:2의 말씀에 따라 그것은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말씀은 감추어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13장에 나오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13:3~9)"를 예로 든다.
씨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길가와 돌짝밭과 가시떨기와 옥토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옥토에 떨어진 씨가 자라서 결실할 때에는 30배와 60배와 100배의 소출을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씨"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씨"에 대한 짝이 있다는 것이다. 사34:16에 여호와의 책에는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기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여호와의 말씀에 짝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짐승에 짝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눅8:11을 읽게 한다.
거기에 보면,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씨가 뿌려진 밭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나온다. 그러면서 이제는 슬며시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마13:24~30)로 들어간다.
거기에 보면, "좋은 씨"가 있고, "가라지"가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 말씀에 대한 짝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렘31:27의 말씀을 가져온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에 뿌릴 날이 올 것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좋은 씨"는 "사람의 씨"요, "가라지"는 "짐승의 씨"라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짝을 찾아보면,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사람의 아들)(37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라지"는 짐승의 씨인데, 짐승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또 짝을 찾아준다.
그래서 잠30:2~3과 사546:9~11의 말씀을 읽게 하면서, 여기서 "짐승"이란 벙어리 개(dog)로서 이스라엘의 파숫군 곧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수님 당시에도 두 종류의 씨가 뿌려졌다는 것이다. 하나는 예수님의 씨가 뿌려졌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므로, 예수께서 뿌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하지만 또 하나는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뿌린 씨앗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라지는 결국 거두어서 불에 살라버리듯, 오늘날 일반 교회의 목자들은 거짓목자들이어서 이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자는 결국 풀무불에 던져져 살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 큰일났다. 나는 이 사실도 모른 채 거짓목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왔는데, 여기서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통하여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큰 일 나겠는걸"하고 생각한다. 그러면 사냥군의 올무에 새가 걸린 것처럼 딱 걸려드는 것이다.
5. 원래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어떤 성경해석방법인가?
허나, 김풍일씨와 이만희씨가 사용하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양들의 좋은 먹이, 꼴로 보아서는 안된다. "누구든지 성경말씀을 짝으로 풀면 그 의미가 풀린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경해석방법을 익히 공부한 적이 없는 일반성도는 그만 신천지의 성경공부방법에 홀딱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방법이 헬라철학이 지배적이었던 초기교회 시대에 성경말씀으로 헬라철학자들을 누르고 그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데 사용했던 방법이었다는 점이다.
이름하여 "알레고리성경해석방법"이 그것이다.
이 방법은 초기교부였던 오리겐(A.D.185~254)이 꽃을 피웠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오리겐이라는 교부도 이 방법을 자신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방법은 아니었고, 그의 스승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215)에서 배운 것이다.
클레멘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성경말씀의 참된 의미는 비유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아무나 그것을 찾아낼 수 없다.", "그것은 고차적원인 사람들만이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 이상의 추가적인 영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성경 다른 부분의 단어와 문장을 가져와 도출해 낼 때에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잘 살펴보라. 영락없이 김풍일씨와 이만희씨가 하던 이야기 그대로가 아닌가? 그렇다고 김풍일씨가 오리겐을 연구하여 그 방법을 가져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국 토종 성경해석법에도 알레고리성경해석법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얼마나 획기적이었는지, 헬라철학자들마저 KO시켰다고 하니 대단한 방법이었던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제는 오리겐의 알레고리성경해석법에 대해서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오리겐과 같은 방법으로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해석하면 이렇다.
이 말씀의 스토리는 이렇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된다. 그런데 그 옆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본체 만체 지나가는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름과 포도주를 싸매주고 그를 주막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주막주인에게 그 사람을 돌보아주게 한다.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부비가 더 들면 다시 와서 계산하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알레고리해석법에 따라 짝을 찾아서 해석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은 "죄인"을 상징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품"을, 그 사람이 내려가던 "여리고"는 "세상"을, 그리고 "강도"는 "사탄"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스라엘종교지도자들"을, "기름과 포도주"는 "성령과 예수님의 피"를, "주막"은 "교회"를, "주막주인"은 "교회의 지도자들 곧 오늘날의 목회자들"을, 그리고 "데나리온 둘"은 "2천년"이라고 푸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죄인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가서 살다가 사탄마귀에게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데, 율법은 그를 살려낼 수 없으나, 어떤 사마리아인와 같은 예수께서 나타나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자기자신의 성령을 주고, 자신의 피를 통해서 살려낸 다음, 그를 돌볼 수 있는 교회에 보내어, 교회의 목회자에게 양육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이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으니, 2천년이 지나면 다시 성도들을 데리어 오신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럴싸한가? 그러니, 성경본문말씀을 알레고리해석법으로 해석하면, 하나의 에피소드에 이런 놀라운 영적인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면서 헬라철학자들도 머리를 숙이며 감탄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은 그러한 뜻이 결코 아니다.
이 말씀은 어떤 율법사가 영생을 얻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수님에게 묻자, 예수께서 도로 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누가 이웃인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이 비유를 든 것이다. 다시 말해 강도만나 죽게 된 자를 보게 되었을 때 그냥 지나쳐버리는 자가 이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는 자가 진정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런 자가 영생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 알레고리해석은 위에서 보여준 것처럼 영 딴판으로 나간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성경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들어보면 말도 그럴싸하다. 어쩌면 성경의 말씀과 꼭 맞아떨어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알레고리해석의 위험성이요 미혹이다.
6. 성경에서 "비유"말씀과 '알레고리 비유"말씀은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비유와 알레고리는 어떻게 다른가? 한 마디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비유"는 하나의 주제나 요점을 어떤 비교대상물을 이용하여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알레고리 비유는 그 비유에 나오는 모든 단어나 문장을 다른 성경말씀을 가져와 대입하여 그 의미를 도출해 풀어가는 성경해석법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실 알레고리 비유의 말씀은 그 말씀을 하고 있는 화자의 설명이 없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알레고리는 "수수께끼"라고도 말하고, "암호풀"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알레고리 비유의 예를 들어보자. 사사기 14장에 보면, 삼손이 결혼식날 축하하러온 들러리 친구들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 뜻을 알아맞추지 못한다. 아니, 그것을 누가 맞추겠는가? 하지만 삼손은 알고 있었다. 그가 전에 사자를 만났는데 그것을 염소새끼처럼 찢어 죽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다 보니 그 사자의 몸에 벌떼가 앉아 있었고 거기에 꿀이 있기에 그 꿀을 떠서 먹은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삼손의 수수께끼를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쓰시던 일반적] 비유는 다르다. 비유는 간단한 주제를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표출해낸다. 그러므로 굳이 화자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듣는 자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직관적으로]아는 것이 바로 비유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께서 알레고리 비유를 사용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비유도 사용하셨다. 특히 마13장에 나오는 천국비유에도 이 두 가지가 나온다. 그중에 첫번째와 두번째의 비유는 알레고리 비유였으며, 나머지 5개의 비유는 그냥 비유였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알레고리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려다가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설명해주지 않았으면, 씨뿌리는 농부의 비유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추수하는 농부의 비유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천국에 관한 비유였다. 예수께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그것에 빗대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것을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설명을 해주신 것이다. 그렇다. 어떤 것이 그냥 비유인지 아니면 알레고리 비유인지는 알려면, 그 비유에 어떤 설명이 들어가 있으면 알레고리 비유이며, 설명이 없으면 그냥 비유라고 알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천국비유 가운데 그냥 비유의 하나인 "밭에 감추인 보화(마13:44)"의 비유를 보자. 이것은 그대로 읽으면 무슨 뜻인지를 그냥 알게 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 자기의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그렇다. 천국은 이처럼 귀중하고 값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살 만큰 귀중하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다면, 신천지에서는 이 말씀을 어떤 식을 해석할까? 그들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일대일 해석방식으로 해석한다. 즉 각 낱말에 대한 성경구절을 다른 곳에서 가져와서 짝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나오는 "천국"이란 "신천지(새하늘과새땅) 증거장막성전"을 가리키고, "밭"은 그것의 소유자인 "이긴 자"를 가리키며, "감추인 보화"는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가리키고, "자기의 소유"는 "사람이 가진 돈과 재능과 인생'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고로,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자신이 가진 돈과 재능과 인생을 다 투자해서라도 감추인 만나요 흰 돌을 가진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으로 가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얼마나 그럴싸한가? 이것이야말로 바로 일대일 낱말맞추기를 통한 알레고리적 해석방법의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내보여주는 것이다.
7. 신천지의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고로 이제는 신천지식의 "비유풀이와 짝풀이"는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이들의 잘못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다.
첫째,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비유 말씀이라고 속이고 있다. 아니다. 예수님께서 마13:34~35에 나오는 "이 모든 말씀"은 예수께서 그날 바닷가에 나온 무리들에게 말씀하신 들려주신 그 말씀만을 가리키며, 그것은 다 비유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천국에 대한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관하여서는 대부분 비유로 말씀하셨다. 성경말씀은 신천지에게 가르치듯 다 비유가 아니다. 구약성경에는 실제 이야기도 있고, 역사도 있고, 족보도 있고, 시편과 같은 시와 노래도 있고, 잠언같은 교훈집도 있다. 신약에 들어와서는 예수님의 일대기도 있고, 편지들도 있으며, 예언도 있고 신앙고백도 있다. 성경에서 비유는 사실 얼마 안 되며, 그중에서도 알레고리 비유는 더욱 더 얼마 안 된다.
둘째, 모든 성경말씀은 비유풀이와 짝풀이(알레고리해석)로 풀어야 비로소 풀린다고 속이고 있다. 아니다. 거의 모든 성경말씀은 그냥 읽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기록하였다. 성경을 오직 비밀로만 기록했으면 아무도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를 것이며, 어떻게 속죄를 받는지를 몰라 구원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냥 읽으면 대부분 알게 되어있고, 굳이 알레고리 비유로 말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해설을 해 주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해설이 없는 알레고리 비유는 성경에 없는 것이다.
셋째, 모든 성경의 해석은 말세에 하나님이 보낸 약속의 목자 곧 이긴 자와 보혜사요 인치는 자인 이만희에게 찾아가서 비밀한 것을 들을 수 있고 그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속이고 있다. 결국 이만희가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그토록 애지중지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만이 이미 예수의 영이 보혜사로서 이만희에게 내려와 있다는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처음부터 절대 말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로 넉다운을 시켜놓고 조금씩 조금씩 세뇌를 시켜 결국 이만희가 재림예수요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의 말을 듣고 인침을 받아 144,000명에 포함되고 그래야 살아서 육체를 가지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다.
8. 나오며
이때까지 신천지와 같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킨 이단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이만희 그가 사용하고 있는 알레고리성경해석법은 헬라철학자들마저 넉다운을 시킬 수가 있었던 것과 유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반성도들이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만나게 되면 거의 마약맞은 사람처럼 되어버린다. 그러니 집도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공부도 버리고, 청춘도 버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처럼 기쁘고 즐겁고 감격스러운 경험을 해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으로만 쾌락을 주는 마약과 같다.
그러나 5년에서 10년이 지나면 실체를 알게 된다. 이만희는 온통 거짓말쟁이요, 돈만 아는 사깃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가정을 뛰쳐나왔으니 더이상 갈 곳도 없다. 그래도 이만희가 죽는지 아는 죽는지까지는 정녕 보아야겠다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니다. 어서 속히 거기에서 나오라. 지금이 그래야 하는 때다.
예수님께서도 말세에는 거짓그리스도들과 거짓선지들이 일어나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24:24).
사도바울도 말세에는 사람들이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갈 자도 있을 것이라고경고 했다(딤전4:1).
그래도 마약중독자 그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하겠는가? 아니다. 성경은 오직 한 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언하는 책이다(요5:39, 요20:31, 행4:12),
그리고 오순절에 오신 보혜사 성령께서도 오직 예수님만을 증언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요15:26).
결코 성경은 청도 태생의 늙은 자 이만희가 구원자임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것도 오직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더 이상 가면 다 가짜다. 그가 미혹하는 자요 사이비이단 교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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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 왜 필요한가?(고전15:42~49)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가 사용하는 성경해석방법은 사실 초기교부 오리겐이 썼던 알레고리성경해석법이었다.
이 해석방법은 실로 엄청났다. 헬라철학에 빠진 자들을 성경으로 돌아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한 사람치고 이단이나 사이비교주가 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성경해석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해석해야 바르게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그리고 사도들이 사용했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대체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구속사적 성경해석이다!!
1. 들어가며
작년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의 마음에서 성전(현장)예배를 중지하고 집과 자기처소에서 인터넷과 SNS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지난 주부터 2주동안 유튜브로 인터넷생방송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의 감염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상태이기에 아마 이번주가 고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 성도들은 아마 성전예배가 그리울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대량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구신천지 다대오지파 증거장막성전에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가 대구와 경북을 휩쓸었고 이제는 우리나라 전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외국에서는 벌써 우리나라사람에 대한 입국제한조치이나 입국거부이 현실화되어 벌써 100여개국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원인이 밀교적 포교형태와 밀착한 예배를 드리는 신천지가 그 원인이 되었음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신천지에 대한 모든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배후에는 "비유풀이"와 "짝풀이"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비유풀이와 짝풀이를 조사한 끝에 우리는 그것은 초기교부들이 사용했던 "알레고리성경해석"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레고리성경해석방법의 위험성을 지난주부터 한주동안 살펴보았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보아야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지 않는 올바른 성경해석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메시지를 통하여 성경을 읽는데 놀라운 시야가 성령으로부터 열리게 되기를 기원한다.
2. 성경을 해석하는 3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오늘날에 전세계 국가 중에서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성경을 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성경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신천지에서는 이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신천지에 사람들이 빠지는 것이다. 그럼, 성경은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바른 해석이 될 수 있는가?
성경해석에 관한 신학자들 가운데 최고가 있다면 아마도 그는 "오리겐(A.D.185~254)"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 3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그는 그것을 "몸적인 해석", "혼적인 해석", "영적인 해석"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몸적인 해석"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가리키며, "혼적인 해석"이란 문자나 문장에 담긴 윤리적이고도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주는 해석을 가리키며, 마지막으로 "영적인 해석"이란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의미를 찾아주는 해석을 가리킨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예수께서는 어느날 표적을 보이라는 유대인들에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것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이다. 46년동안 짓고 있었고 아직도 완성하지 못했던 헤롯의 성전을 어떻게 3일만에 일으켜 세우겠다고 하는 소린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여기에 나오는 "성전"은 예수님의 성전된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로 해석해주었다(요2:21).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는 반드시 어떤 해석을 해야지 해석을 하지 않으면 미친 사람취급받을 수 있는 말씀들이 있는 것이다.
이제는 창2:24의 말씀을 가지고 오리겐의 3가지의 해석방법으로 해석해보자. "이러므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이것을 "문자적인 의미"부터 해석해보자. 이 말씀은 남자가 자신의 부모를 떠나서 자신의 아내될 사람과 합하여 하나를 이루라"는 결혼명령으로 볼 수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결혼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말씀은 1차적으로 "몸적인 의미"(문자적인 의미)만으로도 톡톡히 그 역할을 해낸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결혼하려고하고,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 결혼하려고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2차적으로 "혼적인 의미"(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이며 교훈적인 의미)도 많이 들어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 의하면 남자가 결혼하려면 자신의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독립은 의지적 정서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독립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둘이 하나를 이루는 것이어야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결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결혼하면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들어있다. 그러므로 오리겐은 여기까지만 설교해도 많은 사람들이 감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리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3차적인 의미 곧 "영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창2:24에 대한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 말씀이 1차적으로는 아담과 하와의 결혼에 관한 말씀이지만, 2차적으로 부부간에 지켜야 할 윤리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고(엡5:22~25), 3차적으로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말씀이라고 했다(엡5:3~32).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예표라고 해석한 것이다.
3. 성경말씀에 대한 영적인 해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성경말씀에 대하여 영적인 해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에 관하여는 지금까지 크게 2가지 해석방법이 있다. 하나는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이요, 또 하나는 예표론적(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이 있다.
이중에서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은 그동안 이단이나 사이비교주들이 사용해온 방법이라는 것을 지난 몇 주동안 살펴보았다. 그런데 초기교부 오리겐은 이 둘 다를 사용하다가 그만 알레고리를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이단으로 낙인찍혀 사장되고 말았다. 오리겐이 기록한 책이 당시에 무려 6,000권 이상이 되었고, 성경주해도 성경66권 중에서 다만 몇 권을 제외하고는 다 주해했다고 하는데, 이단이 되는 바람에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알레고리적인 해석이 어떤 것이었길래 이 알레고리적 해석을 시도하는 자는 거의 다 이단이 되었거나 사이비교주가 된 것인가?
((가톨릭은 이 알레고리적 해석법을 주로 쓴다...교황권의 우위성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비유말씀을 성경을 해석하려는 자가 자신의 입맛대로 여기저기에 있는 성경구절을 끌어다가 해석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해석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때 듣는 사람은 "이 성경말씀에 이러한 심오한 뜻이 들어있었다니..."하면 감탄해마지 않는다. 그러한 해석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도하여 미혹케 함이다!!]]
그러니 이러한 알레고리적 해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자는 자신이 무엇인가 된 것처럼(그래서 이만희는 자신을 보혜사성령으로까지 말했다....사단이 그러하듯이 그러하다..교만오만아집자기기만) 착각하다가, (타당한 신학적 비평 검증 없이 유아독존적으로 )자신을 통해서만이 감추어진 비유가 해석될 수 있고 요한계시록이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사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럼, 창2:24의 말씀을 알레고리적으로 [신천지 방식으로]한 번 해석해보자.
이 말씀에 등장하는 "남자"는 마24:40에 의하면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는 고전4:15에 따르면 "영적인 스승"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아담이 하와를 보고 "이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으니, 하와는 자신의 내면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이라고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한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자기의 스승의 가르침에서 떠나 자신의 내면의 본질을 찾아줄 수 있는 가르침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씀이 된다. 곧 내가 누군지를 정확히 알려면, 기존교회에서 목사님이 던져주는 성경해석이나 받아먹으려 하지 말고 이제는 자기가 정말 누군지를 정확히 알게해주고 스스로 성경해석을 할 수 있는 데로 가서 그와 합해야 신일합일에 이를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누가 그것을 도와줄 것인가? 당연히 무료로 성경을 가르쳐주되 영적인 의미를 깨우쳐주는 무료성경신학원에 와서 공부하라고 한다. 거기에 가면 오직 신천지 교주 이만희의 성경해석을 따르게 되고 그를 이 시대의 보혜사, 이긴 자로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법은 매우 위험한 해석법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4. 왜 우리는 모형론적(예표론적)인 성경해석방법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하고도 올바른 성경해석방법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을 신학자들은 "모형론적(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모형론적 성경해석 방법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왜 그 방법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먼저,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이란 구약에 나오는 사건이나사람,사물, 제도 등이 다 그것들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이요 예표로 그림자라고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이나 인물들이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설명해주기 위해 모형이요 그림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가 영생을 얻게 된다는 비유로서 민21장에 나오는 하나의 사건을 비유로 가져다 쓰셨다. 그것은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요3:14)"의 말씀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하면서 힘들다고 원망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불뱀(독뱀)을 보내서 물어죽게 했다.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 장대 높이 놋뱀을 달아놓으라고 했다.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 것(해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에 그것을 보고 믿는 자도 있었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도 있었다. 믿는 자는 장막 밖으로 나와 놋뱀을 쳐다보았고 그러한 사람들을 정말 살아났다. 하지만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쳐다본다고 살아날 수 있겠느냐고 의문을 가진 자는 하나도 낫지 못했다. 이것은 예수께서 죄없는 육신의 모양(놋뱀)으로 오시어 십자가에 달리게 될 사건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즉 구약에 일어났던 사건이나 인물이나 제도 등은 다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설명해주는 예화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곧 "예표론적 성경해석방법"인 것이다.
한편,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을 떠올릴 때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가지 있다.
그것은 구약의 사건들은 실재하는 사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이 역사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구약성경이 모형이요,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대한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의 성막이나 제물이나 제사장은 이 땅에서는 모세 때에 최초로 나타난 것이기는 하지만, 모세도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증거장막을 본대로 지은 것이기에, 그것이 오히려 모형이라는 것이다(출25:8~9,40,26:30).
그러므로 성막(성전)이나 제사장 등은 이미 천국에 존재하고 있던 실체에 대한 그림자였던 것이다. 다만 모세시대에 그것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다면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요, 영생이요, 천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님의 몸에 대한 예표에 불과한 것이며, 아론과 같은 제사장은 영원한 하늘의 대제사장인 예수님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5.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은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가?
그러므로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을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유익한 점이 있을 것이다.
첫째, 성경의 중심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해주는 해설서이자 예화라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다.
둘째, 성도를 율법주의와 기복주의 신앙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구약의 율법말씀은 행위언약이기 때문에 이미 버려진 패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그러면 다 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 나머지, 구약의 말씀들은 관심갖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은연 중 가지고 있다. 특히 구약의 율법말씀은 순종하면 복이 되고 불순종하면 저주가 된다는 것에 민감하여 구약성경을 잘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몽학선생으로서 그 임기를 마쳤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해주는 몽학교사(초등교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일을 수행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더 풍성히 누리게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을 예표론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예표론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풍성하게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이 훨씬 더 흥미진지하고 재미가 있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예표론적인 성경해석을 사용하여 성경을 읽으면, 우리가 받아야 할 궁극적인 복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되며,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는 영적인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복을 복으로 여겨지 않고 하늘의 복을 찾아 꾸준히 순례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한 예표론적 해석에 눈이 뜨이지 않는다면 그는 성경을 볼 때에 문자적인 해석과 윤리적이고도 도덕적인 교훈적이 해석에만 늘 머물러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셋째, 성경의 어떤 부분은 문자적인 의미나 교훈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해석을 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알레고리적으로(자기개인만의 특별계시나 유아독존적 오만에 치우칠 수 있는!!) 해석하려는 위험한 시도로부터 지켜준다는 것이다.
6. 어떻게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과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을 구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과 모형론적 성경해석방법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 둘의 공통점은 사실 성경말씀의 표면적이고도 문자적인 뜻 속에 감추어있는 영적인 의미를 발견케 도와준다. 하지만 이 둘의 쓰임은 천양지차다.
왜냐하면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은 2가지 면에 있어서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과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은 전부다 구약에 이미 실재했던 사건이나 인물이나 제도 등을 그대로 가져와서 신약의 말씀을 해석하고 예수님이 누군지를 해석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레고리적 성경해석방법은 구약에 실재했던 사건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을 해석하려는 자가 자기의 입맛에 맞추어 만들어낸 픽션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짝풀이를 통하여 짜깁기를 해내어 자기만의 독특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해석이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과 뜻과 의도에 맞는다면 어느 정도 수용은 가능하지만,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처럼 이단의 사상이나 이단의 교주를 그리스도를 믿게하려는 목적으로 쓰이게 된다면 치명적인 독을 뿜는 해석방법이 되는 것이다.
둘째, 모형론적인 성경해석방법은 성경을 해석할 때 그 목적이 오직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드러내어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성경해석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좀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단사상전파 내지는 이단교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해괴망측한 성경해석법으로 전락할 수가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가 성경을 잘 풀어준다고 해서 그리고 갈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성경해석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주의깊게 살폈어야 했다.
이미 초기교부 오리겐 때부터 알레고리성경해석은 위험한 성경해석방법이라고 도마에 올라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시대에 그것을 도로 끄집어내어 성경해석법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성경해석방법을 따라 오직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실체이고 오히려 구약성경이 예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설명해주시려고 구약시대에 여러가지 사건을 일으켰고 경험하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여기서도 그리스도, 저기서도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바른 성경독법이요 올바른 성경해석법이다.
오직 한 분, 모든 것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누리도록 돕지 못하는 성경해석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임을 알라! 위험한 해석법으로 사람을 호리는 신천지를 분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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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탈락에 관한 히브리서의 세 번째 경고(히6:4~12)_
과연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가? 히브리서 6:4~6의 말씀을 가지고,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주장을 따라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때에는 성경을 따라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은 구원탈락에 대해 경고하는 있는 히브리서의 5가지 말씀들 중에 3번째로 나오는 성경말씀을 그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지난주 새벽기도회에 시간에 전했고, 오늘은 그 세번째 시간이다. 놀라운 진전이 있을 것이다.
1. 들어가며
최근 들어와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보다 조주빈 사건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성 착취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했던 바, 텔레그램의 n번방의 운영자가 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멈추게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지만 점차 그 활동반경이 커지자 자기도 그 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다. 자칫 잘못하다가 한 두 번쯤 신앙생활에 게을러지고 태만하다가 어느 날 교회출석을 못하게 되면 그는 다시는 스스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어떤 사람이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는지에 관한 히브리서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어떤 측에서는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에서 절대 탈락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듣고 있으면 어떤 주장이 옳은지 헷갈리기도 한다.
물론 안다. 사실 이 말씀은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는 본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떤 말씀이 논란이 있다고 모른 채 덮어둘 수만은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구원탈락에 관한 히브리서 6:4~6의 말씀을 가지고 성경적인 구원관을 나누고자 한다.
2. 히브리서는 누가 누구에게 어디에서 쓴 책인가?
히브리서는 어쩌면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논리적이고 신학적인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바울의 신학사상과 복음서의 내용에 대해 꿰뚫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며, 유대교의 율법과 제사문제에 대해서 해박한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고, 헬라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그리스도를 다른 무엇과 비교분석해내는데 탁월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으며, 히브리서의 헬라어원문을 보면 사도바울을 훨씬 뛰어넘는 것처럼 보여지는 탁월한 문장실력까지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까지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쩌면 오리겐의 주장처럼 하나님만이 아실른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그가 사도바울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실라, 누가, 아볼로, 바나나일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트라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들은 사도바울보다는 후대 사람인 것임에는 분명하다(히2:3). 그리고 적어도 A.D.70 성전 멸망이후 A.D.100년 이전에 로마나 로마근교에 있는 믿음의 성도들을 위해, 바울시대 이후의 어떤 사역자가 그곳을 떠나 있으면서 그곳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인 듯이 보인다(히13:19). 왜 이것에 대해 먼저 나누게 되는지는 조금 후에 알 수 있을 것이다.
3. 히브리서는 어떤 책인가?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어떤 책인가? 히브리서는 왜 쓴 것인가?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 중에서 구원에서 떨어져나가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히브리서 기자(아마도 당시 로마의 어떤 공동체의 지도자였을 것이다)가 그들로 하여금 하늘에 중보자로서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한 구원에서 떨어져나가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주의할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쓴 책이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서는 "하늘에 계셔서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주제이지만, 보조주제로서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4. 히브리서 6:4~6의 말씀은 정말 구원탈락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말씀인가?
히브리서 6:4~6의 말씀은 과연 구원탈락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말씀인가? 사실 히6:4~6의 말씀은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히브리서의 5대 경고의 말씀 중에 한 중간에 위치해 있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 히브리서에서는 배교의 위험성을 알리는 5가지 경고의 말씀이 나오는데(히2:1~4, 3:7~4:13, 5:11~6:12, 10:26~31, 12:1~29), 그중에서 세번째에 해당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아주 곤혹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으로서 구원은 안전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자들로서, 이들은 이 본문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이 본문은 얼핏 보아도 잘 믿고 있었던 자라도 그들 중에 타락한 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이 말씀을 달리 해석하려고 한다. 즉 이 말씀에 나오는 타락한 자는 "처음부터 안 믿었던 자", 단지 이름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으로서 결국 배교하게 될 자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타락한 자는(("구원에서 탈락한 자", "배교자"로 번역함이 엃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일 뿐 실제는 예수님을 안 믿는 자라고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주장은 옳은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과연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타락한 성도들" 곧 "배교자들"이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고 말씀이 해석해 주고 있는 곳으로 가보자.
5. 히브리서 6:4~6에 나오는 "타락한 성도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우리는 앞에서 이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편지는 이 책의 수신자에게 보낸 것이 분명하다. 히브리서의 기자가 그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수신자인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깨우쳐주고 그들에게 경계하고자는 목적을 가지고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6:4~6의 말씀도 역시 이 책을 읽어야 할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우리"라고 쓰고 있는 이 책의 저자와 이 책의 수신자로 알려진 "너희"에 대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우리"와 "너희"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브리서 기자는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히6:4~6의 말씀을 왜 쓴 것인가?
우리는 앞에서 히브리서가 구원탈락을 경계하기 위한 5가지 경고가 소주제로 들어가 있음을 배웠다.
특히 그 내용을 살펴보면, 히6:4~6에서 말씀하고 있는 "타락한 성도들"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제1차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자(히2:1~4).
첫번째 경고의 말씀에 보면 "너희"라는 대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만이 등장한다.
그런데 저자를 포함하고, 히브리서의 수신자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단호하게 외친다.
만약 우리가 이전에 들었던 것에 더욱 주의하지 않으면 구원에서 흘러 떠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이다(히1:2).
그 말은 구약시대에 성도들이 천사와 같은 중보자들의 손에 의해 주어진 율법을 제대로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서 공정한 보응을 받았는데, 하물며 마지막에 와서 아들을 통해 주신 복음을 듣고 얻었던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이다(히2:2~3). 이 말씀은 이미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복음을 들었 또한 복음 안에서 살고 있는 참된 신자인 것을 말해준다.
이제는 두번째 경고의 말씀을 살펴보자(히3:7~4:13).
우리는 히브리서의 두번째 경고의 말씀을 통해서 히브리서 수신자의 정체와 상태를 더 많이 알 수가 있다. 두번째 경고의 말씀 중에 히3:12~14의 말씀을 보면 이렇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고 있으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2-14)"
이 말씀에 따르면, "너희"는 다름 아닌 "형제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믿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죄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시작할 때에 들었던 말씀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동반자들이 될 수 없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자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기자는 "너희들 중에 혹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 자가 있으므로 주의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떨어져나갈 위험성을 가진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번째 경고의 말씀(히5:11~6:12)에 나오는 "너희"는 이미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받은 상태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번째 경고의 말씀 중에서 히6:9의 말씀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들] 곧 구원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노라(확신한 채 있다)(히6:9)"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우선 히브리서 기자(과거에 그들 공동체의 지도자였을 것이다)는 그들에게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너희")은 자기보다 더 좋은 것들 곧 구원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한 채 있다고 언급한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구원받을 수밖에 없는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상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히6장에 나오는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가진 대상이 "너희"를 포함한 "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공동체를 떠나 있기는 하나, "우리"나 "너희"나 다 말씀에 주의하지 않으면 모두가 구원으로부터 탈락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로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지닌 자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자들"이라거나 "가짜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또한 앞으로도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져나갈 위험성을 가진 성도들이 원래는 큰 은혜를 받았던 자들임을 오늘 본문은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히브리서 6:4~5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가 결국 회개하지 못하고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사람들이 누군지를 더 확실하게 말해준다.
그들은 과거에 5가지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첫째, 그들은 "한 번 빛을 받았던 자들"이다. 이 문장의 동사는 동사 분사 과거 수동태 문장이다. 과거에 이미 하나님의 의해서 빛비춤을 받게 되었던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럼, 여기서 "빛비춤"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자신이 얼마나 어둠에 속해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어, 참 빛이신 예수님께 돌어온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은 히브리서 10:32~33이 말해준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히10:32~33a)". 그렇다. 어떤 칼빈주의자들은 이들이 한 번만 빛을 받았기에 무엇을 알고 있었겠느냐면서 강변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내었을 뿐만 아니라, 비방과 환난가운데서 구경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런데 그것을 참고 견뎌내었다면, 이들은 분명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인 것이지, 이들을 허당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그들은 하늘의 은사(선물)을 맛본(체험했던) 자들이다. 하늘의 선물은 당연히 성령의 은사들일 것이다. 고로 이들은 방언의 은사, 치유의 은사, 능력의 은사 등을 체험했을 것이다.
셋째, 이들은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던 자들"이다. 원문에 의하면, 이들은 "이미 성령의 참여자들이 되었던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이들은 성령에 의해 예수님이 누군지를 깨달아 회개하고 믿어서 거듭나게 되었으며, 인침을 받았고, 또한 그들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다.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던 자들이었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을 두고 어찌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넷째, 이들은 "하나님의 선한 말씀(레마)를 맛본(체험한했던) 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마음에 부딪혀서 그 말씀의 깊고 오묘함을 체험했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체험했던 말씀은 단순히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말씀이 아니라 주관적인 말씀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말씀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부딪혀 반향을 일으켰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가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 이들은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다. 원문에 의하면, "장차 오려고 하는 시대의 능력을 체험했던 자들"이다. 즉 천국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체험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의 능력으로 귀신들을 이겼던 자들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나라보다 차원이 다른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고로, 우리는 이 5가지 조항들을 통하여, 이들은 이미 예수믿고 성령을 체험하고 말씀의 은혜까지 체험한 성도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6. 히브리서 6:6의 "타락했다"는 말의 뜻과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런데 위의 5가지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타락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피상적으로 "타락했다"라고 하면, 그가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으로 돌아가버렸고 허랑방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원뜻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파라핍토"라는 동사로서, "옆으로 떨어지다"는 단어가 결합되어 생긴 파생동사인데, 그 뜻은 "떨어져나가다. 잘못 행하다. 길을 잃고 헤매다. 넘어지다. 무너지다. 엎드려지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동사의 번역을 "타락한 자들"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떨어져나간 자들"이라고 번억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 이들이 원래 구원의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이겨낸 자들이요, 그들의 수고를 하나님께서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인데(히6:10), 어떤 이유로 인하여 따로 떨어져 나간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결코 다시 새롭게 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다시 회개하여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있으면서 동시에 공개적으로 수치를 드러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구원받은 자가 믿음에서 떨어져나가게 되면, 그는 다시는 못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요, 이는 곧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끝에 가서는 불살라지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히6:8). 곧 이들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7. 따로 "떨어져 나간 자들"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타락한 자들"이라는 말의 뜻을 아주 나쁜 것이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떨어져나간 자들"을 뜻한다.
이는 이들이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따로 "떨어져나간 자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땅의 산출에 관한 비유를 통해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히6:7~8).
땅이 땅위에 [현재] 자주 내리고 있는 비를 흡수한 후에 경작하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생산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겠지만, 만약 땅이 똑같이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했음데도 불구하고 가시와 엉컹퀴를 내고 있다면 그는 저주함으로 점점 가까이 가다가 결국에 마지막에는 불사름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 삶 속에서 맺고 있는 결과물들이 과연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자들"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떨어져 나가는 자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심판 때에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이 누군지를 알아볼 것이다"고 심판의 기준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마7:16,20).
왜냐하면 사람이 자주 내리는 은혜의 단비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열매들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계속해서 죄된 본성에 머물러 있는 자일 것이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 변화를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열매를 지금도 맺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이 선한 열매(채소)를 맺지 못하고 악한 열매들(가시와 엉겅퀴)을 맺고 있다면, 그는 지금 떨어져나가고 있는 자들에 속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 무슨 큰 죄를 저질러야만이 "타락한 자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자들"인 것이다.
만약 이들이 그런 상태에서 계속 방치된다면 이들은 저주함으로 점점 더 가까이 나어가다가 죽게 될 때에는 불사름이 되고 말 것이다.
8. 우리도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미 얻은 구원의 반열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할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종국에 가서 구원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오늘 본문의 앞뒤 문맥에 살펴보면, 다음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말씀의 초보적인 신앙에 머무르지 말고 계속해서 성숙하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히5:11~6:2).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구원이 완성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아니다. 이제 구원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자라가야 한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어떠한 훈계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달게 받고 이겨내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품은 달라져야 하고 언어도 달려져야 하고, 추구하는 목표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도 공부해야 하고, 기도도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함이 나의 안을 채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어떠한 환난과 유혹에도 인내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히6:11b~12). 어려운 일이 불어온다고 해서 그만 믿음을 포기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래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내가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늘 점검하면서 그것에 합당한 열매맺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이다(히6:7~8).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살피려면, 그는 자신게서 옛사람의 열매가 맺히고 있느냐 아니면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된 새 사람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는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음에 넘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선한 아름다운 열매를 맺힐 날이 오게 될 것이다.
9. 나오며
그렇다. 구원은 어느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경주와도 같은 것이다(고전9:24~27, 빌3:13~14, 딤후4:7~8).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는 이제 경주자가 된 것이다. 구원의 경주의 트랙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선수가 그 경주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면, 그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트랙에 들어서지도 않은 자(불신자)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도 구름깥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처럼 날마다 죄와 싸우고 회개하여 죄를 벗어던지고, 인내함으로 자기 앞에 있는 경주를 경주해야 한다고 독려한다(히12:1).
그러면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 그 목적지에 잘 도착하게 될 터인데, 예수님에게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우편이었다(히1:3,8:1,12:1).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쉬고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결코 트랙에 올라와서 경주하고 있는 우리들을 본체만체 할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오늘도 보혜사로서 일하신다(요일2:1~2). 특히 대제사장으로서 말이다(히3:1). 고로 그분이 승천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직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무슨 일을 하시는가?
첫번째는 우리가 회개할 때 그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다(히2:17, 요일1:9). 그리고
두번째는 우리가 요청할 때에 즉시 전능자로서 응답하여 우리의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신다. 모세가 여호수아의 승리를 위해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한 것처럼 말이다(출17장).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된 본성을 이기고, 악한 귀신들과의 싸우는 현장에 결코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분이 지금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라. 그리고 간구할 때 즉시 그분이 개입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오늘도 우리에게 지혜를 열어 우리에게 주시고 능력도 부어주시고 ,용기도 부어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것이 대제사장으로서 예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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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히7:11~17)
1. 들어가며
우리는 지금 인류역사의 끝자락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에 기록된 말세의 징조들로서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신종바이러스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바이러스는 전염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달 대구에 있는 신천지 다대오지파의 집회소에서 대거 확산됨에 따라 경북과 대구가 비상관리 체계에 들어갔으며, 교회도 여전히 비상사태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과 이탈리아 등 전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업무를 중단하고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중에서 에스겔이나 예레미야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치는 3대재앙이 나오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전염병"이다. 고로 우리는 인류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전염병 다음을 우리는 예상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믿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이 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만으로서도 미움을 받게 되고 핍박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 곧 올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난의 상황에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은 불안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미래에 단비를 제공해주는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에서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왜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직에 관해 언급하는가?
히브리서는 참으로 대단한 성경책이다. 이 책이 신약성경 가운데 그 저자가 누군지 모르는 단 하나의 책이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의 탁월함 때문이다. 특히 구약의 율법을 풀어내는 방식은 영락없이 사도바울의 그것을 닮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특히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말씀은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계시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직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아론을 가지고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표현해야 했는가? 대체 멜기세덱이 누구길래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의 정확한 예표는 아론이 아니라 멜기세덱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아론이 대제사장이기는 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아론은 실제 사람 제물를 가지고 제사드린 것이 아니라 황소와 염소의 피로서 제사를 드렸으며, 참 장막이 아니라 하늘의 모형인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그의 제사로서는 인류의 죄들이 속함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아론은 실제 공연에 서기 위해 구약시대에 예행연습(리허설)을 한 것이었지 실제 공연무대에는 서지 못했던 자였던 것이다.
둘째, 더욱이 그는 자신도 연약함에 쌓여 있어서 백성의 속죄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신의 죄를 위한 속죄제사를 먼저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백성을 위한 속죄염소를 드리기 전에 자기죄를 속죄하기 위하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쳐야 했던 것이다. 자기도 흠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마지막으로는 그도 죽음은 피해갈 수 없었으니 그는 자신의 죽음 때문에 대제사장직을 아들에게 아들은 또 그 아들에게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 그 직분을 감당하기는 했으나 영원히 그 직분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고로, 아론만으로는 예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직에 관하여 설명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대제사장직무의 수행은 아론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는
첫째, 황소와 염소의 피가 아니라 자신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피로서, 모형이 아니라 참 장막이신 자신의 육체 안에서 참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예수께서는 연약함이 쌓여 있지 않았기에 자기자신을 제물로 바치면 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죄된 본성을 가지지 않은 둘째아담으로서 동정녀의 몸에 잉태된 자요, 그분은 원래가 죄가 없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분이었기에 그분은 자신을 위한 속제제물를 제물로 드려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분은 리허설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본인이 실제 제물로 제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에는 부활하여 지금도 하늘에서 여전히 하늘에서 대제사장이 직무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아론의 대제사장직만으로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꺼낸 카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직이다.
3. 멜기세덱은 대체 누구이며, 그의 대제사장직은 아론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그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실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는 잠깐 출현했다가 그만 흔적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잠깐 나타나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기는 했지만 그가 감당했던 대제사장의 직무는 예수께서 지금 하늘에서 담당하시고 있는 직무와 거의 비슷하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는 구약성경에 딱 두 번 나온다. 창세기 14장에 딱 한 번 나오고, 시편110편에 한 번 더 나온다. 앞에서는 3구절에 등장하고, 뒤에서는 1구절에서만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멜기세덱은 놀라우리만치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왜 그런가?
우선 멜기세덱이 처음 등장했던 창14장의 말씀을 살펴보자(창14:18~20). 거기에 보면 그는 살렘왕이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마중나오되 떡과 포도주를 공궤하기 위해 마중 나온 자다. 또한 그는 아브라함을 만나 이렇게 축복하였다. "천지의 주재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이 붙히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14:19b~20). 그래서 창세기 저자인 모세는 그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창14:18b).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첫째, 그는 제사장이 아니라 왕이었던 존재였는데 그날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서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론은 왕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다고 말하면서, 그는 아론이 속해 있는 레위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에서 별다른 제사장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예수께서 유다지파에서 나온 분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레위지파와 유다지파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레위지파는 제사집례를 위해 세워진 지파요, 유다지파는 왕이 나왔던 지파이기 때문이다. 유다지파에서는 20명의 왕들이 나왔는데,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왕은 다윗왕이다. 결국 예수께서는 다윗왕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분으로 대제사장직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왕같은 제사장"의 모형으로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위해 그날 나온 것이 아니라, 주기 위해서 나왔다. 그것도 떡과 포도주를 주기 위해 나왔던 것이다. 그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세금받으러, 십일조를 받으러 나온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그날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자기를 위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고 자기를 축복해 주었기에 감사함으로 바친 것이었다. 여기서 "떡과 포도주"는 적들과 전쟁하면서 허기지고 배고픈 아브라함을 먹이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는 지금 하늘에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기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기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하고 계신 것이다.
셋째, 그날 멜기세덱은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이 대제사장의 직무였는데, 그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의 잘못한 점을 용서받을 수 있도록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그날 그간 수고한 것을 알고 그것을 치하면서 복주기 위해 나온 것이다. 고로 지금 하늘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책망하기 위해서 그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인가 복을 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멜기세덱이 하늘에 있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예표가 되는 것은 그도 예수님처럼 똑같이 시작도 끝도 없는 자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히7:2~3).
이 세상 사람치고 부모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시작도 끝도 없는 자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자다. 더욱의 그에 대한 명칭이 심상치 않다. 왜냐하면 그는 "살렘왕"이었기 때문이다. "살렘왕"이란 "평화(평강)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의 명칭은 영락없이, 아들이면서 아기로 이 땅에 오셨으나 기묘자인 보혜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였던 예수님에 대한 구약명칭으로서 "평강의 왕"이기 때문이다(사9:6).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멜기세덱이 장차 출현하게 될 메시야의 예표로 보내어진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또 다른 대제사장직에 관하여 멜기세덱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4. 예수께서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심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는 않았다. 다만 아론이 대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던 속죄제사를 통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속죄제사를 드릴 것인지에 관하여 미리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아론의 직무수행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일부였던 것이다. 사실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예수께서 아론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 될 것이라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반대로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심에 관한 예언이 구약성경에 나온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실 것이고 거기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것은 다윗왕이 쓴 시편에 나온다. 시편110:1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내 주(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시를 내가 네 원수들로 내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으 있으라 하셨도다"고 했으며, 또한 그 시편에서 한 번 더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로다.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110:4)"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앞의 말씀은 다윗이 본 환상을 쓴 것이고, 뒤의 말씀은 하나님의 맹세의 약속을 기록한 것이다. 실로 다윗은 예수님보다 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인데(다윗의 재위기간=B.C.1010~970), 그는 이미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을 것임을 미리 환상으로 내다보았으며, 또한 예수께서는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왕같은 제사장으로 오시되, 영원히 대제사장으로 있을 것임이 예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존재나 행동이나 말은 100%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의 직무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하늘에서 감당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의 직무는 멜기세덱의 경우를 닮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5. 대제사장으로서 아론은 어떤 직무를 수행했는가?
그렇다면, 이 땅에 처음 대제사장으로 세워졌던 아론은 어떤 직무를 감당했을까? 그런데 그와 그리고 그의 후손이 일평생 감당했던 일을 조사해보면,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딱 7가지 직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첫째, 대제사장은 백성의 속죄를 위한 대속죄일 제사를 집례했다는 것이다(레16:34, 히1:2).
둘째,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시99:6, 삼상7:9).
셋째, 그는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레10:11,신33:8,10, 스7:10~11).
넷째, 백성을 축복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민6:27, 레9:22).
다섯째,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레10:10, 겔44:23).
여섯째, 우림과 둠밈으로 재판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출28:30).
일곱째, 위기상황에서는 종교적인 리더십을 발취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삼상7:3, 스8:15).
그렇다면 대제사장의 직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속죄일제사 때에 일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대속죄일제사를 집례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대제사장이 그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피만 뿌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속죄의 피를 뿌리기 전에 먼저 향로를 들어가서 향을 살라 지성소를 가리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레16:12~13). 그리고 나서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의 피를 지성소의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렸고 이어서, 이스라엘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의 피를 똑같이 뿌렸던 것이다(레16:14~15).
고로 우리는 대제사장이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기도하는 일과 속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계5:8과 8:3~5의 말씀을 보면, 향을 사르는 것이 곧 중보기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론도 속죄제사만을 드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주된 임무가 속죄제사였지만 그 제사를 드리면서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지성소에서 향을 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지상의 사역도 찬찬히 살펴보면, 오직 속죄제사만을 위해 달려가신 것이 아니라, 늘 중보기도에 힘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새벽미명이 되면 한적한 곳에 늘 기도하셨다. 하루의 일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날 만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12제자들을 선택하실 때에는 밤이 새도록 기도하였다. 그리고 심지어 죽음을 앞둔 마지막의 상황에서도 그는 제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말하기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6. 예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승천후에 하늘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고 말씀한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모든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말한다(막16:19, 롬8:34, 골3:1). 히브리서 기자도 무려 3번씩이나 그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죄를 정결케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8:1)",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그것은 그곳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요일2:1, 딤전2:5).
그럼, 중보자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수행하시는가? 그것은 딱 2가지다.
첫째,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에게 성령을 보내어 거듭나게 하시고 생명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우리가 회개하고 고백할 때에 그 죄들을 용서해주시고 깨끗케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요일2:1~2,1:9).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도와주시는 이)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1)",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게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그렇다. 예수께서는 보좌 우편에서 하실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나 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 번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는 것도 아니다. 그럴려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2천년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했으니 우리의 모든 죄들 그러니까 과거에 지었던 죄와 현재에 짓고 있는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보통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과거에 지었던 죄와 현재의 죄까지는 회개하고 믿기 때문에 다 용서가 된다.
하지만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개할 때 용서된다.
눅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보라.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 전부터 그의 죄를 용서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회개하여 아버지께로 돌이킬 때 비로소 용서가 그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마치 민21장에서 모세가 장대 위에 놋뱀을 달아놓았을 때에, 놋뱀을 달아놓은 그 사실 자체가 불뱀(독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기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뒤 살기 위해 장막 밖으로 나와서 그 놋뱀을 쳐다볼 때에 살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놓은 사실 자체가 개개인의 독을 제거해주지 못하며, 개개인이 직접 나와서 놋뱀을 쳐다볼 때에 적용이 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그냥 구원이 완료되었으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과연 소아시아 일곱교회중 5교회에게 왜 계속해서 회개하라고 그렇게 명령하셨겠는가? 예수믿고도 회개하지 않는 죄 때문에 결국 본인이 죽는 날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계3:5).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보좌 우편에서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중보자가 되시어 아버지에게 간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우리를 돕기 위해 존재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소개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3~34)".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그렇다. 예수께서는 보좌 우편에서 아버지와 장기두시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같은 큰 나라의 왕과 전쟁할 때에 멜기세덱이 그것을 지켜 보면서 부족한 아브라함이 강한 그돌라오멜 왕을 이길 수 있도록 중보기도드린 것과 같은 이치다.
멜기세덱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아브라함에게 나오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라. 그는 아브라함이 그간 어떻게 행했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마치 르비딤에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고 보낼 때에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보이는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그를 보면서 두 손을 들고 기도했던 것과 같다(출17:8~16).
그러니 우리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영적 전쟁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이유도 별로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지만 그날 다 천국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마귀가 주인인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사실 영적 전쟁터다. 그리고 우리 힘만으로는 마귀를 대적할 수 없다. 중과부적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우리를 도와달라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고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주시는 것이지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자를 도와주시지 아니한다.
고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라. 그래야 중보자이신 예수께서도 그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실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대제사장으로 오시어 속죄제사만 드린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부활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셔서(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만) 중보의 일을 하고 계신다. 이는 그분이 여전히 하늘의 왕으로서, 왕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나 떡과 포도주로 공궤하고 그를 축복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그분이 결코 우리 위에 군림하기 위함이 아님을 알라. 그분은 지금도 우리가 회개하고 또한 믿을 때,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또한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움을 간청할 때 중보자로서 우리의 기도를 아버지께 전달하기 위해 그 자리에 계신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라.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우리도 히브리서기자가 말했던 것처럼,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히3;1)"하시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믿고 있고 그분께 간구하고 있는 한 우리는 전능자와 늘 항상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순절이후 믿는 이들의 영속에 내주하고 계신다. 멀리 부를 필요가 없다. "오 주여!"라고 부르는 즉시 그분은 우리의 지성소 곧 하늘의 지성소의 분점인 우리의 영 안에서 주님께서 중보자가 되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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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이 땅의 참 성막의 대제사장이셨다(히8:1~6)_
예수께서는 누구신가? 히브리서는 예표론적성경해석방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도 아니었다. 그리고 성전에서 죽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단지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서 버려진 채 죽임을 당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예수님은 나의 구주로 믿고 따르는가? 대체 그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히브리서만이 들려주는 놀라운 속죄제사의 비밀, 우리는 지금 거기에 가보려고 한다.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는 자들이다. 즉 예수께서 2천년전에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대속의 사건이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에 의하면, 속죄일제사는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집례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아뱌(요11:49)에 의해 성전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의 모형에 불과할 뿐, 진짜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속죄사역을 한 것으로는 안 되고 죽고 부활한 후에 승천하셔서 하늘의 성소에서 제사를 다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진술이 맞는 진술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골고다언덕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사건이 과연 인류를 위한 구속사건이었으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가 받게 되는 혜택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인류의 구원을 위해 대속죄일 제사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구약성경 레위기 16장을 보면,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가 나온다. 거기에는 속죄제사를 드려 죄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다. 첫째는 제사드리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곳은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장소 곧 성막(성전)이 있는 곳이라야 한다. 아무데서나 제사를 드린다고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는 제사에 사용될 속죄제물이 있어야 한다. 특히 죄인을 대신하여 죽을 흠없는 속죄제물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제사를 드려줄 제사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속죄일 제사에는 그냥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드린 속죄제사는 과연 대제사장이 인류를 구원할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이었을까? 그리고 오늘은 이 3가지 관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보도록 하자.
3. 예수님은 과연 성전(성막)에서 돌아가셨는가?
우선 예수께서 인류구원을 위한 속죄제물로 죽으시려면 "장소"가 합당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한 장소에서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구약성경에서 대속제물을 바치는 장소는 어디였는가? 그것은 성막이었다. 혹은 그것이 발전된 성전이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성막 혹은 성전에서 돌아가셨는가? 우선 확실한 것은 예수께서는 결코 성전 안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날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문 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무의미한 죽음이라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속죄제일 제사를 완성하기 위한 첫번째 단추부터 끼워보자. 예수께서는 과연 성막(혹은 성전)에서 돌아가신 것인가? 이부분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것은 히9:8의 말씀이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9:8).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장막"이 무엇이며, "성소"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첫 장막"이 무엇인지는 히9:1~2에 보면 나온다. 거기에서는 첫 장막을 "성소"라고 부르며, 그것 안에는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첫 장막은 첫째성막으로서 성소를 가리킨다. 그러면 둘째장막은 둘째성막으로서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히9:8의 말씀을 보면, "첫장막"과 "성소"와 충돌한다. 둘 다 똑같은 말인데, "첫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첫장막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했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히9:8에 나오는 "첫장막"과 "성소"가 각각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첫장막"을 지상에 있는 성전의 성소라고 가정해보자. 예수께서 죽으실 때에 과연 지상의 성소가 어찌되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러므로 "첫장막"이란 지상의 성소를 가리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성소에 들어가는 길"에 나오는 성소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선 헬라어원문을 보면, 이따 "성소"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성소들"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실마리가 풀리가 시작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성소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들이라고 풀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는 구약을 모형론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히9:11~12에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일의 좋은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후에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고로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행하신 후에 예수님의 영(부활체)는 하늘에 있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히9:8의 "첫장막"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히10:19~20에 나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들]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갈 장소는 다름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성소들(성소와 지성소들)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지상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둘째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첫장막(첫째성막=성소)은 예수님의 육체였던 것이요, 둘째장막(둘째성막=지성소)는 예수님의 영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첫째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일곱금촛대와 분향단과 떡상이 놓여있으며, 좌우에 싯딤나무로 지어진 판자들이 있고 앞쪽에는 지성소를 구분하는 둘째휘장이 있는 곳이 "첫째성막"으로서 "성소"인데, 지상의 성전의 성소는 모형이고, 이것의 실체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각도에서 성경을 보면 많은 부분이 열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요1:14에서 사도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증언하였다. 그런데 "거하시매"라는 단어를 보면, "스케노오"라는 헬러어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천막을 치다. 장막을 치다. 성막을 짓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육신을 입은 사건이 곧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치신 사건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물질적인 성막(모형) 말고 또 하나의 진짜 성막이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야말로 "움직이는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그런데 사도요한은 이 성전을 가리켜 "예수님의 성전된 자기 육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요2:21).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는 성전의 첫째방으로서 성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이 성전의 성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지상의 성전에 있는 둘째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마27:51), 그리고 한 가운데(눅23:45)가 찢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성전의 휘장은 모형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이 성전의 성소 곧 첫장막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히 예수님이야말로 걸어가는 성막(성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분의 몸은 첫째장막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분의 영은 둘째장막에 해당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곱금촛대에 불을 밝히고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고 떡상에 떡을 진설하는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몸안에서 행하는 사역이었고, 지성소의 법궤 위에 피를 뿌리는 것은 그분이 영 안에서 행하시는 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성막(성전)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같은 일들로 인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걸어다니는 성막(성전)이었기에 그분이 어디서 돌아가시든 그분은 속죄제사의 첫번째 조건인 속죄제사는 성막(성전)에서 드려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예수님의 베데스다 못가에서 돌아가시든, 벳바게 언덕에서 돌아가시든 상관없이 그분이 돌아가신 그 장소가 성막(성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왜 예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은 왜 예수께서는 여러 장소들이 많은데 굳이 "골고다언덕"에서 돌아가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 이유는 그것이 대속죄일 제사에서 죽임당할 속죄속죄제물에 대한 규례 때문이다(보다 더 정확히 말하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래 바랬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의 죄를 사하는 대속죄일 제사는 레위기 16장에 나온다. 거기에 보면, 대속죄일 제사 때에 온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속죄제는 2마리의 속죄양(숫양2마리)가 사용되었는데,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속죄양으로 드려졌고 또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속죄양으로 드려졌다. 여호와를 위한 속죄양을 잡아서 그 피를 지성소(둘째장막)의 법궤 위와 동편 앞에 뿌려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마리는 안수 후 산 채로 광야의 무인지경에 내다 버려야 했다. 그때 아사셀 양은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버림받아 죽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죽으신 것은 이 두 마리 속죄양으로 죽으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아사셀 양처럼 버림받아 골고다언덕(당시에는 성문밖에 위치해 있었다)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그 장소가 여호와를 위한 속죄양의 피가 떨어질 자리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1988년경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론 와이어트가 예루살렘을 여행하던 중 천사의 지시를 받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장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 법궤의 위치까지 알아낸다. 그곳은 골고다언덕의 바위 밑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날 지진이 일어났었는데, 그때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고여있다가 지진으로 벌어진 틈새를 따라 밑으로 스며들었으며, 지하 예레미야 동굴에 감추어둔 법궤 위와 동편에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를 위한 한 마리의 속죄양의 피가 지성소의 법궤 위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골고다언덕이야말로 성전(예수님의 몸)이 있는 장소였고, 지성소(법궤가 놓여 있음)가 놓여있는 장소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참고로 그 자리에 법궤가 있었던 이유는 남유다가 타락으로 인하여 멸망이 가깝자, 경건한 제사장들이 법궤를 당시 예레미야의 동굴로 옮겨놓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5. 예수님은 흠없는 속죄제물이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흠없는 속죄제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동정녀(처녀)마리아의 태를 빌려 태어나셨기에 죄된 본성을 갖지 않은 채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분이기 때문이요, 그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요 죄를 짓지도 아니하셨기 때문이다(고후5:21, 히4:15, 요일3: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예수님의 피를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피(벧전1:19)"라고 하였던 것이다.
6. 예수님은 진정 속죄제사를 드릴 자격을 갖춘 대제사장이었는가?
이제는 마지막 단계에 왔다. 예수님은 자체가 성막이셨고 흠없는 속죄제물이셨다. 그렇다면 그분은 속죄제사를 드릴 수 있는 대제사장이셨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자체가 1장부터 10장까지 예수님께서 속죄제사를 드릴 대제사장으로 합당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을 내서 차근차근 히브리서를 읽어보라. 1장에는 그분이 죄를 정결케하는 일을 하셨다고 나오고(1:3), 2장부터는 계속해서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대제사장으로서 합당하신 분인지를 증거하고 있는데, 그분은 천사보다 뛰어나고(1~2장), 모세보다 뛰어나며(3~4장), 아론보다 뛰어난 분(5~10장)이라고 증거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서, 영원무궁토록 대제사장의 신분을 갖고 계시다고 증거한다(7장). 예수께서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지를 앞으로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매일 새벽 유튜브로 방송하는 "아침묵상(홈페이지)"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7.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어떤 복을까?
그렇다면, 골고다언덕에서 인류를 위한 속죄제사를 믿는 자들은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가? 많다. 아주 많아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차다. 우선 예수께서는 요3장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3:15).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의 속죄제사로 인하여 죄들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고(히9:22,2:17,1:3), 우리들의 양심이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고 했으며(히9:14),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며 온전하게 한다고 하였다(히10:14). 그리고 그날 예수께서 열어놓은 새롭고 산 하늘 길을 따라 하늘(셋째하늘=천국)에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으며(히10:19~20), 결국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히9:25).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앉으셔서(히8:1), 중보자로서 일하시는 그분의 도우심을 받아(히2:18),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히4:16), 우리가 드린 기도가 응답되며(히7:25~26),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처인 하나님의 나라까지 상속받을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히3:14).
8. 나오며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드린 제사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속죄제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그분은 골고다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이 땅에 성막을 치신 것이다. 그분이 성육신하신 것이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 인류의 죄를 전가받은 후, 당신이 이 세상의 죄를 없이하시려고 죽으신 것이다. 하지만 그분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무려 350가지 이상의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셨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두 마리의 속죄양으로서 돌아가셨다. 그 표적이 바로 지상성전에 있던 둘째휘장이 찢어진 것이며, 예레미야동굴의 법궤 위에 피가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3일동안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무덤 속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 가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의 중보자로서 대제사장적인 직무를 감당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그분만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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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3장 ((21-23))
==성전이 무너뜨려질 것을 이르시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재난의 징조
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가장 큰 환난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인자가 오는 것을 보리라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배울 교훈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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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장 ((34-36))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비유를 설명하시다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겨자씨와 누룩 비유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비유로 말씀하신 까닭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시다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세 가지 비유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새것과 옛것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시다
53. ○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그 곳을 떠나서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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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5장((42-49))
==그리스도의 부활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죽은 사람의 부활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몸의 부활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히6장 ((4-12))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
히7장 ((11-17))
==멜기세덱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
히8장 ((1-6))
==새 언약의 대제사장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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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 나는 아직 무엇을 회개하지 않았을까(요16:8~9)_
요16장
==성령의 일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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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회개를 한다고 하지만 혹시 회개하지 않고 있는 죄는 없을까?"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때 이 말씀은 단비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은 회개에 있어서 중요한 뼈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회개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대충 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죄 중에서도 예수님을 잘 모르고 있는 죄도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회개하지 않고 있었는지 이 말씀으로 다시 점검해보자.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해야 한다(마4:17,막1:15). 그리고 사람이 저주에서 벗어나 형통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것도 역시 회개해야 한다(요일3:8,1:9).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회개를 해야 한다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해야 할 회개가 있는 것이고,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야 할 회개가 있는 것이다.
믿는 이들 중에 더러는 회개에 대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았는데, 무슨 회개해야 할 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개는 구원과 직결되는 문제요 회개는 내 삶의 형통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왜 회개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과연 내가 아직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그러한 죄를 회개해보자.
2. 사람이 회개해야 할 첫 번째 죄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고 하셨다(요16:7~8). 그리고 여기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셨다(요16:9). 대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그들"이란 대체 누구며, 왜 예수께서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고 말씀하셨는가?
성령께서 오실 때에 맨 처음 하시는 일은 죄를 책망하시는 일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를 책망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보면, 하나님께서 구원자로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왜 그분을 믿지 않았는지를 성령께서 책망하신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3. 제자들이 믿은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때 제자들이 믿은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 직후에는, 가룟유다를 제외한 11명의 제자들의 반응이 나온다. 그때 제자들은 분명 예수님을 믿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요16:30~31). 그렇다면, 제자들은 무엇을 대체 믿은 것인가?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믿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제자들이 믿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다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이 믿었던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요16:30). 그리고 예수께서도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나왔다는) 줄(것)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밖으로] 나와(나왔고) 세상에(안으로) [들어]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를 향하여) 가노라(요16:27~28)"고 하셨다.
예수께서 구원자로 오셨다고 하는데 왜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인가?
이제는 제자들 말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누군지를 알아보자. 즉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 함이요"에 등장하는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인칭대명사인 만큼 그들은 이미 앞에서 등장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올라가보면, 그들은 2~3절에 나온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만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행]할 것은 그들이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요16:2~3)"
그렇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고 있는 자들은 예수믿는 자들을 회당공동체에서 출교시킬 자들을 가리킨다. 곧 그들은 당시 "유대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안 있어서 예수믿는 자들을 살해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짓는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들인 것이다.
4. 예수께서 왜 아버지로부터 밖으로 나오셔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말이 그리도 중요한가?
그렇다. 그때 제자들이 믿었던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는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을 구주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때 믿었던 것은 예수께서 드린 대제사장적 기도에도 나온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들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 나는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레마의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았]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나왔다는) 줄(것)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보내셨다는) 줄(것)도 믿었사옵나이다(요17:7~8)". 그렇다. 제자들이 믿은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에 들어오셨으며, 아버지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내셔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제자들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예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로 오셨음을 알았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내용은 요한복음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도 회개해야 한다. 우리도 현재 잘못 알고 있는 그것을 성령께서도 책망하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누구신가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또 한 번의 유대인들과의 논쟁이 나오는데, 그때에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만일] 하나님이 너희의 아버지였으면 너희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저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8:42)"
결국 이 말은 예수께서 이 땅에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려 오셨는데, 예수께서 스스로 이미 아들로 존재하고 있다가 오신 것인가 아니라, 그때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셔서 오셨다는 것이다.
만약 이미 스스로 아들로 존재하고 있던 분이 오셨다면 아들이 성육신하신 것이겠지만, 그때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분이 오셨다면,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몇 번이고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안에서 밖으로](에크) 나오셔서 이 세상 안으로(에이스) 들어오셨으며, 스스로(자기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저분(하나님)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에 온 것이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당시 애써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보내심을 받아서 오셨으며, 그분은 이미 있던 분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 성육신 위해 정하신 바로 그때에!!]하나님으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그분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것을 알았다고 하셨다.
만약 이미 천국에서 활동하고 계시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면, 그것은 이미 구약시대에 있던 아들이 오신 것이 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온 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실 때에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으로부터 아들을 보내셨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그분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뜻하므로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과연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다고 믿고 있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이미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분들이 회의를 해서 성부가 성자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네가 인간을 구원하러 내려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니까, 아들이 "아버지, 어떻게 감히 아버지께서 내려가라고 할 수 있겠나이까? 소자가 내려가겠나이다"하고서 성자가 육신을 입고 내려왔다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무도 그렇게 믿지 않았다. 또한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책망하실 때에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신다 하셨다.
유대인들은 진즉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았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미 창세기 18~19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로 오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두 명의 천사들을 데리고 아브라함 앞에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러한 일은 처음 있는 일이자 마지막으로 있는 일이었다. 조금 후에 두 명의 천사는 소돔과 고모라성을 파괴하도록 보내셨다. 여호와와 두 명의 천사의 등장은 사실 창1:26~27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에 나오는 "우리"에 대한 실체다.
그런데 세 명의 사람으로 나타난 이들을 본 아브라함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러자 그것을 잡수시고 난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그래서 그 이듬해에 정말 아들을 낳았다. 그렇다면, 사래가 이삭을 낳았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들을 낳게 되어서 기뻐했던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다시 오셨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것일까?
예수께서는 그때 아브라함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이것은 2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첫째, 예수께서는 그때 아브라함에 나타나셨던 분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아들의 출생을 통해서 알고 기뻐 뛰놀았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라고 하셨던 그분)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것이 곧 성령의 첫 번째 회개사역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을 보라. 과연 아버지와 아들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일하셨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 요8:24,28,58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이라고 하는 자)(출3:14)"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밖으로 나오셔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지만, 그분은 아버지에게 종속된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그것을 공부하지도 않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성령께서 얼마나 탄식하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탄식하지 않게 하려면, 예수님은 스스로 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더 공부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5. 사람이 회개해야 할 두 번째 죄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제 사람이 회개해야 할 두 번째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십계명을 어긴 죄들을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죄와 자범죄들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과거에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 대부분은 이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았다고 어디선가 누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없다. 속죄가 영원하는 말은 있어도 우리의 죄가 영원히 속죄되었으니, 우리가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즉 "영원한 속죄"는 있어도 "영원히 속죄되었다"는 말은 없는 것이다(히9:12).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치르신 영원한 속죄를 자신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죄를, 고백하지도 않은 죄들조차 깡그리!!]영원히 속죄받은 것으로 착각한다(영원한 속죄의 속성을 시간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렸다). 아니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리스도 주예수님이 흘리는 속죄의 피는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인류의 죄를 속죄할 만한 충분한 효능을 갖추었다는 뜻인 것이지, 한 번 믿었다고 이제는 두 번 다시 속죄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날에 성도들 중에는 왜 예수님을 믿고도 온갖 질병과 가난과 사건사고에 시달리며, 자식들이 힘들어하고 자살해서 죽는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과거의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귀신들이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도 자기와 자기의 선조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용서된 줄로 알고 무심코 넘겨버린 것이다. 결코 아니다.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했던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죄값을 자손 3~4대까지 묻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영향을 후손이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출20:5). 그러므로 예수믿고도 저주가 떠나지 않고 가난이 대물림되고 각종 질병과 불치병에 시달리고 자살해서 죽고 자녀와 손자들이 하는 일마다 말아먹고 있다면 지금 즉시 엎드려 자기와 자기 자손들이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하기를 바란다.
첫째로는 조상을 신으로 섬겨 제사드린 죄를 회개하고, 둘째는 부처와 석가를 신으로 섬긴 죄를 회개하며, 셋째는 무당과 점쟁이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한 죄를 회개하고, 넷째는 미신과 잡신을 섬긴 죄를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구체적으로 회개기도제목은 "회개기도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저주의 늪에서 벗어나 형통의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6. 우리가 우상숭배죄의 죄를 보다 더 철저히 회개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상숭배의 죄를 과연 언제까지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한 두 번 회개했다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와 내 조상들이 섬겼던 우상숭배로 인하여 나와 내 자손들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이 다 떠나갈 때까지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죄가 좀 작고 철저히 회개했다고 하면 경험상 두 달 정도는 회개해야 하는 것 같고, 좀 더 많이 우상숭배를 했다면 1년에서 10년도 걸릴 수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에 대한 회개가 단지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고 또한 형통케 하는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면 귀신들의 세력이 약화되어서 나중에는 내 몸에서 떠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몸은 귀신의 집이라고 말씀하셨다(마12:43~45).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할 때 뱀에게 종신토록 흙(아파르)를 먹고 살라 하셨는데, 그 흙(아파르)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빚으셨기 때문이다(창2:7).
고로 우리가 우상숭배의 죄를 보다 더 철저히 회개할 이유는 우선은 우리 속에 기생하고 있는 귀신들을 다 내어쫓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쫓겨나가지 않고 우리 몸에 들어있으면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우리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어있어야 그 공간만큼 하나님께서도 축복하실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사람(거듭난 영혼)이 강건해지려면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은지 오래 되었으나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늘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하려면 귀신들이 떠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사도요한은 우리의 속사람의 상태를 아이들과 청년들과 아비들로서 비유한 바가 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2:12-13)"
여기에 등장하는 "자녀들(아이들)은 영적으로 속사람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청년들은 악한 자인 사탄마귀와 귀신들과 싸워서 이기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며, 어른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요일1:1에 보면, 그분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첫 걸음마는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할렐루야!
7. 나오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한 죄를 회개하지 않았는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며 아들이신데, 그분이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놀라운 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가? 그러면 그것을 알지 못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아니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 아들의 피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회개할 때 용서를 받게 되며, 한 분 하나님께서 나같이 못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의 신분으로 직접 오셔서 고난받으시고 피흘리셨음을 알고 진정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이라고 내놓을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보다 더 철저히 회개하고 자백해야 한다. 그래서 저주의 늪에서 속히 벗어나 형통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내 속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귀신들과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 우리 안에 들어온 귀신들을 내쫓아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에 꿈쩍하지 않던 자신의 믿음도 성장할 것이고, 인격도 성숙해지며, 영적으로 강건해져서 병도 이기게 되고, 귀신도 물리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를 알고 실천하는 자는 복이 될 것이고 들었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는 그저 그러한 삶이 지속될 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