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후8장 [379.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317 내주예수주신은혜]
@@[['구제헌금'을 공평함으로 나눈 초대교회]]020504.뉴스앤조이 @@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의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 8:14~15). 최근 예장 통합 측 교회가 미자립교회 지원의 평준화를 실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교회간 평균은 미자립교회들 간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반가운 소식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도움이 되는 신약의 교회들에게 주어진 평균케 함에 대한 원리를 살피려고 한다. ===예루살렘교회의 구제 활동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예루살렘교회 구제 활동'으로 알려진 유명한 헌금 본문이다. 헌금에 대한 총체적인 입장을 바울 사도가 정리했다. 본문의 배경은 예루살렘교회의 가난과 곤경을 돕기 위해서 바울 자신이 사역했던 교회를 권면하고 헌금을 모금했고, 이를 수집해서 전달했다. 이것을 특정하게 '구제 활동'으로 부르는 것은 그만큼 전체적인 교회들의 협조아래 진행된 일로 보는 관점에 의해서다. 예루살렘교회는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흉년도 원인이고 핍박도 원인이었다. 이미 바울 사도는 회심 후 안디옥교회에서 봉사할 때 예루살렘교회가 흉년으로 인한 큰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보고 구제의 헌금을 전달했던 장본인이다(행 11:27~30).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선교 사역을 확인하는 과정 중에 베드로 등 사도들과 더불어 논의를 한다. 그때 갈라디아서 2장 9절과 10절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유대인에게로 설정한다. 그러면서 양자의 무리들이 영역은 다르지만 함께 노력하기로 한 것이 바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 점이다. 바울 사도는 사도들의 부탁을 받기 이전부터 이를 힘써 행하노라고 답변을 함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의 간격을 구체적으로 뛰어넘는 복음의 역사성이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말해준다. 즉 사도들은 지역이나 인종의 벽을 넘어서 서로간의 구체적인 필요에 응답하는 교회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내용에 근거해서 바울 사도가 선교 사역을 하면서 잊지 않았던 가난한 자를 생각하고 힘써 행하는 일의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이었다. ===예루살렘교회 구제 활동의 구체적 방법 사도행전에서 바울 사도는 3차전도여행 중에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려고 노력했다(행 20:16). 바울은 여러 행선지에서 심지어는 성령의 감동이나 예언에 의해서 위험한 상황에 대한 고지로 말미암는 만류에도 불구하고(행 21:4,11) 예루살렘을 향한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나아간 이유를 사도행전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단지 사도행전의 관심은 땅 끝까지라고 하는, 로마에 이르는 과정으로 예루살렘을 소개한다. 그런데 실제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가는 실제적인 목적 중에 하나가 헌금을 전달하는 일임을 다른 서신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로마서 15장 25절에서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예루살렘에 가는 목적을 진술한다. 성도들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간다고 말이다. 마케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 마케도냐 지방에 속한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아가야 지방에 속한 교회들은 고린도교회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교회들로부터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을 거두어서 예루살렘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바울 사도 일행임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바울 사도는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 대한 걱정을 표시한다. 즉 유대에 있는 무리들과 예루살렘의 성도들이 이러한 이방 교회의 헌금을 받지 않을 것에 대한 우려다. 이것이 로마서 15장 31절에 나와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로마교회에 요청한다. 이방 교회와 유대인의 교회의 일치를 위한 방편으로써 헌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구제헌금의 세부 과정을 알 수 있는 본문이 몇 군데 있다. 마케도냐와 아가야 지역에서 거둔 헌금이라고 로마서 15장 26절에서 소개를 했는데, 실제로 이러한 헌금은 이들 지역만이 아니고 더 넓은 지역의 관심사였음을 바울 사도는 다른 본문에서 말한다. 그렇게 광범위한 지역의 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헌금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상황을 소개하는 본문을 살펴보자. ===갈라디아·고린도교회의 참여 고린도전서 16장 1절과 5절의 내용이다. 1절에 나오는 성도를 위하는 연보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로 3절 후반부에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은혜가 바로 헌금임은 분명하다. 이것은 나중에 고린도후서 8장을 볼때 더욱 자명해진다.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1절 하반절을 보면 갈리디아교회에 명한 것 같이 고린도교회도 하라고 한다. 여기서 이 구제헌금을 바울 사도는 명령으로 요청한다. 이것은 사도적인 명령이다. 예루살렘교회의 구제를 위한 헌금은 교회적인 명령으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갈라디아교회에게 이미 명령한 내용이다. 전 교회적인 협력과 참여를 바울 사도는 말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매주일 첫 날에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모아두었다가 바울 사도의 일행이 올 때 전달하라고 한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의 본문은 주일 논의의 핵심이 되는 본문으로 늘 거론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공적인 교회에게 구제헌금을 요청하는 본문인데 공적인 집회를 생략한 채로 헌금한다고 보지 않는다. 당시에 공적인 주일의 집회가 아니라면 왜 주일에 헌금을 떼는가? 주급제의 사회였는가? 절대 아니다. 따라서 공적인 집회라는 말이 없이 집에서 각자 떼는 것을 말하지만 그렇게 떼어 놓은 헌금을 모으는 일은 공적인 집회와 깊이 관련된다. 중요한 것은 갈라디아교회뿐 아니라 고린도교회가 매주 공적인 집회에서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했다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이방인의 교회를 세워가면서 자신의 사역에서 잊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역이었음을 갈라디아서 2장 10절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이익을 얻은 대로 저축하여 연보할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 돈을 다 모아서 고린도교회는 바울 사도에게 전달을 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행선지를 조정하면서 이러한 헌금을 걷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음을 고린도전서 16장 4절과 5절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하는 것은 "이익을 얻은 대로"라는 의미다.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과거에 도적이었던 사람에 대한 교훈을 적었다. 에베소서 4장 28절이다. 도적질하던 사람이 다시는 도적질하지 말고 제 손으로 수고해서 일하라는 말씀이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제8계명의 진정한 이해는, 내가 얻은 소득과 이익에는 가난한 사람의 몫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소득을 나의 것만으로 이해하는 자본주의 방식은 철저히 8계명에 위반한다. 물론 세금의 형태로 이러한 소득이 가난한 자의 것임을 확인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다. 그래서 성도들은 헌금 이전에 국가에 세금을 성실히 내야 한다. 내가 얻은 소득과 이익을 향해서 바울 사도는 명령으로 갈라디아교회처럼 매 주일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고린도교회도 헌금하라고 한다. 이러한 명령을 오늘의 교회가 들어야 한다. 목사 사례를 생각하면서 교회간의 편차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하지 말고, 바울 사도의 명령을 기억해야 한다. 매 주일 가난한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라. 나의 소득에 가난한 자의 몫이 있음을 알고 헌금해라. ===마케도냐교회의 예(고후 8:1~5) 바울 사도는 로마서 15장에서 마케도냐교회에서도 헌금을 모금했음을 밝혔는데 그렇다면 과연 마케도냐교회는 어떠한 방식으로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일에 협력했는가? 마케도냐교회는 유럽 교회의 시작이다. 오늘 부요한 유럽을 연상하기 쉬운데 실제의 마케도냐 상황은 굉장히 어려운 처지였다. 고린도후서 8장 1절과 5절에는 마케도냐교회가 바울 일행이 주도했던 예루살렘 구제 헌금 활동에 동참했던 방식을 소개한다. 이러한 참여를 은혜로 1절에서 소개한다. 은혜는 주님의 구속을 받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구제의 헌금을 드리는 것이라 표현한다. 마케도냐교회의 현실 상황은 실제로 예루살렘교회보다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절을 보면 환난의 많은 시련이 있고 극한 가난이 있던 교회가 바로 마케도냐교회였다. 그런데도 마케도냐 교회는 바울 사도의 명령과 정책을 따라서 헌금에 참여했다. 넘치는 기쁨으로 환란의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풍성한 연보로 극한 가난을 극복해냈다. 여기서 풍성한 연보가 얼마의 헌금임을 밝히지는 않는다.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시련과 가난가운데 동참한다. 그래서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풍성한 연보라고 바울 사도는 표현한다. 물론 적지 않은 액수였으리라 생각한다. 바울은 3절에서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을 전체로 드렸다고 말한다. 4절에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동등어다. 참여는, 교제라는 코이노니아를 말하고 섬기는 것은, 디아코니아 즉 집사라는 말의 어원이다. 복음의 은혜, 섬김, 교제는 모두 구제 헌금에서 함께 녹아나고 있다. 5절에 자신을 드린다는 표현은 예배적인 표현이라고 볼 때 예배를 통한 헌신은 5절 하반절에 구제헌금으로 표현되었음을 사도가 지적한다. 마케도냐의 경우는 오늘의 교회에 너무도 많은 점을 제시한다. 논의가 목사 사례인 만큼 그 문제에만 제한해서 적용하여 말한다면 불균형적인 오늘의 교회 현실을 당연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 ===바울의 구제헌금에 대한 고린도교회에 대한 권면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헌금을 다시 재촉하면서 구제 헌금에 당위성을 설명하는 글을 고린도후서 8~9장에서 적고 있다. 여기에 바로 교회들 간의 평균케 함의 원리가 축을 이룬다. 먼저 고린도교회의 형편을 보면 고린도전서 16장에서 헌금에 참여할 것을 명령 받았지만 아직도 실천하지 않는 교회임을 알 수 있다. 고린도교회의 많은 현안 때문인지 아직 미루고 있는 가운데 바울 사도는 구제헌금하는 일이 얼마나 교회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었는지를 성경적, 복음적으로 설명한다. 고린도후서 8장 10절을 보면 1년 전에 이미 행하기를 시작하고 원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중단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체계적으로 설득한다. 바울의 권면은 크게 세 부분이다. 첫째는 다른 교회의 예다. 마케도냐교회의 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에 대한 이해다. 즉 복음의 이해다. 그리고 셋째는 구약성경의 성취이자 뒷받침이다. 만나 사건의 적용으로서 평균함이다. ===마케도냐교회의 예 첫째, 바울이 고린도교회가 자신들의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성도를 돕는 구제 활동에 참여하도록 권하는 방식은 다른 교회의 예를 소개한 것이다. 여기에는 선한 경쟁심을 유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바울 사도가 교회를 이해하는 방식에 기초한 것이다. 즉 바울 사도는 교회를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했다(엡 1:23). 따라서 한 교회의 어려운 현실은 내 몸의 현실이라는 입장에서 마케도냐가 많은 환란과 극한 가난 중에도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교제하고 은혜의 섬김으로 참여했음을 강조한다. 고린도후서 8장 5절에서 주님께 헌신하는 예배는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근거하기에 자신의 물질을 한 지체인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사도들에게 드렸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도 진심으로 교회다움을 증명하라고 권한다(고후 8:8).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적용, 평균함 둘째,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을 언급한다. 마케도냐교회의 예를 들고 나서 바울은 좀더 본질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즉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구속사건을 구제헌금과 관련해서 설명한다. 9절 이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이것을 낮아짐 수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교회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러한 성육신의 복음을 다양한 현장에서 적용해 이해한다. 1. 빌립보교회에서 성육신의 이해: 겸손과 남을 높임 즉 빌립보교회에서 순두게와 유오디아와 같은 이들이 서로 높음을 자랑할 때 겸손을 교훈하여야 했다. 그때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복음을 낮아짐으로 표현했다. 하나님과 동등하지만 동등함으로 여기지 않고 종의 형체를 지셨다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서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바로 복음이며 교회다움임을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증거했다(빌 2:1~11). 2. 고린도교회에서 성육신의 이해: 누룩과 음행의 근절 이런 예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음행에 대한 문제에 접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음행한 자들을 용납하는 교회를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의 희생양으로 돌아가셨음을 강조했다. 그래서 유월절에 있어서는 누룩이 바로 음행임을 말하면서 누룩을 제거해야 하는 근거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논리를 추론해낸다(고전 5:1~8). 3. 구제헌금의 원리로서 성육신 교회 현장의 문제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에서 직간접의 적용상황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고유한 존재 방식이자 문제의 해결방식이다. 그렇다면 구제 헌금과 관련해서 바울 사도는 성육신의 사건을 어떻게 적용해서 설명했는가? 9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을 부요하신 자가 가난하게 되신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가난하게 되신 이유는 바로 가난한 우리를 부요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구원과 교회를 세우신 것을 기초하여서 예루살렘교회의 가진 경제적인 가난의 문제에 적용하면서 가난한 자들을 부요케 하시는 그리스도임을 설명한다. 그럼으로 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교회는 가난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도록 권한다. 가난한 성도들, 가난한 교회들, 가난한 이웃을 내버려 두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교회의 정당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내가 가난하더라도 마케도냐교회처럼 다른 이웃 교회의 가난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다움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부요케 한다는 말의 실체에 주의를 요한다. 바울은 이어서 13~14절까지 부요케 하심의 실제적인 의미를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평균함이다. 바울 사도는 구제 헌금을 마음에 있는 대로 하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것을 상기하는 어휘를 사용해서 헌금하는 자세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자원하는 마음의 실제적 표현이 억지의 헌금이 아닌 준비된 헌금이란 말로 제시한다(고후 9:5). 이는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서 말한 매주일 저축하여 헌금할 것을 말한 것과 동일하다. 실제로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라는 말의 뜻은 단순하게 (육적/겉)부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난의 반대라는 의미에서 (영적/내적)부요함이다. 즉 성도들이, 교회들이!! -성도 간에, 교회간에, 공급 근원이신 하나님!!, 성령의 부요케 하시는 바 그 참생명-조에- 흐름따라!!- 서로의 부족을 인식하고 자신의 것을 주께 먼저 드림으로 교회가 모은바를!! 서로의 가난함과 부족을 채워주어서 평균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하신 부요함의 실체이다. 고린도후서 8장 13~14절을 보면 구제헌금을 함으로 한쪽은 죽어라고 일하고 한쪽은 놀고 먹으라는 것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상호 나눔의 정신을 말한다. 부족한 자에게 교회에서 줌으로 나중에 자신의 부족에 대한 나눔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14절 하반절은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선언한다. 평균함, 공평함,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목적을 분명히 드러낸다. 요한복음 1장 14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고백한다. 분명히!!, 이러한 성육신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상태를 육적/현실적 가난의 문제에 적용하여 비춰볼 때, 육적/현실적 부자가 되는 것이나 부자를 만드는 것이 복음의 목표는 결코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어야 한다. ---부요케 하신다는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표현은 마케도냐교회가 극한 가난 중에 풍성한 연보를 했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극한 가난에서 드린 풍성한 연보, 다르게 말하면 참된 의미의 연보, 부요한 연보, 혹 부자의 연보란 은혜와 진리-곧 독생자 주 예수님의 영광 알고 누림-안에서, 곧 내적 부요함을 의미한다. 그럼 부요케 하신다는 표현이 절대적인 부를 말하는 의미인가? 정말 돈 잘 벌도록 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고 복음인가? -- 노파심에 한마디 하자면 성도들이 돈을 잘 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복음의 온전한 적용은 결코!! 아니다. 복음의 부요함, 풍성함의 진정하고도 참된 의미는 기꺼이, 감사함으로 나누는--육적/현실적 소유는 (아마도?!!) 적다고 실지로 느껴질지라도, (주 예수님의 기꺼이 다 내어주셨음, 곧 당신 자신의 모든 풍성을 나눠주심을 기억함으로써 감사로!!) 기꺼이 다른이들의 필요를 배려하여 나누는 풍성함, 곧 자원해서 덜어두고 기꺼이 나누는-- 평균함의 풍성함, 다른 사람의 필요/부족을 채워주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손을 채우는 풍성함이다. 육적/현세적 부자라 해도 그 실제적 나눔은 가난한, 아니 가난한 자보다도 더 빈약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한 부요함의 나눔은 그리스도 방식의 나눔을 말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창조주 하나님, 죽은자 살리시고 없는 것을 만들어 공급하시는 분, 이 땅에서 실제적 경륜을 역사 가운데 집행하고 계시는 분, 말씀으로 모든 필요를 넘치도록 만들어 공급하시는 분!!, 즉] 근본적 측면에서. 그리고 실제적 측면에서 부활승천 안에서 지금 오늘도] 부요하신 자로서 [이 땅에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가난한 우리를 [영과 육의, 모든 측면에서!!] 부요하게 만들기 위함인데, 그 내용인즉 서로 [어쩌면!!, 현실적/육적 부족함 가운데에 있을 그때조차도!!] 평균하게 하는 일에 대한 부요함을 말한다고 고린도후서 8장 13~14절에서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 바울은 어쩌면 마케도냐교회의 가난하지만 부요한 헌금의 예를 먼저 언급한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면밀히 살펴본다면!!, 오늘의 교회가 잘된다는 것을 절대적 액수의 부요, 혹은 부자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가르친다면 이것은 복음이 아니요, 오히려 누룩일 수도 있음을 명심하자.... 복음은 분명히 영육 관점, 양측면을 모두 통틀어서!! 서로의 부족을 완전하게 아시는 분, 그리스도의 손을 채움으로써 상호간에 서로 채워주는 일이 잘되고 부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정리하자면 바울이 성육신의 구속사건을 예루살렘교회의 가난과 부족을 채우는 일에 넉넉히 협조해야 하는, 즉 헌금해야 하는 이유로 적용했다.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신 이유가 바로 가난한 교회도 나와 같은 혜택을 나누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적용한다. 목사의 사례 논의에서 교회간의 차별에 대해서 주는 적실함을 교회들이 놓치지 않기를 당부한다. ===구약의 증거, 만나 사건의 인용 바울은 마케도냐의 풍성한 연보를 예를 들었고,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했다. 성육신의 복음이 바로 가난한 우리를 풍성케 부요케 하려고 함이었음을 기억하면서 서로의 부족을 채우는 평균하는 일에 풍성해야 한다고 초청했다. 이제 바울은 그의 설명을 현재의 교회의 예와 그리스도의 구속을 이어서 구약 성경으로 나아간다. 왜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헌금함으로 그들의 부족을 채워 서로 평균하게 해야 하는가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에 한정하지 않고 구약으로 나아간다. 다르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즉 가난하게 되신 성육신의 사건이 지닌 구약적 의미를 담보하려고 한다. ---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제기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평균함의 교훈을 가르치고 설교할 때 교인들은 이런 가르침을 공산주의자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성도들은 겉으로 내놓지는 않지만 실패한 경제체제인 공산주의 방식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의아해 한다(이러한 문제는 논의가 계속된다면 글을 써서 무엇이 다른 것인지를 밝혀보겠다). 바울 시대에 공산주의적인 개념이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소유 공동체의 존재 가능성은 많이 제기되는데 한 예가 쿰란 공동체이다) ...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제적인 가난의 문제에 적용하는 일에 신중하게 접근을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해지셔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는 일은 예수님의 독단적인 사회 개혁적 발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뜻임을 밝히는 의도가 바로 구약을 인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보냄을 받은 자이다. 즉 보낸 자의 뜻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하나님과 동등되지만 보내신 분과의 현격한 차별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예수님은 보내신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성취하는 분이다. 그래서 마지막 겟세마네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꺾고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으로 결정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이해에 충실하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해 지심을 통한 평균함이 바로 구약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일치한다는 증거를 보인다. 바로 고린도후서 8장 15절의 인용이 그것이다.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본문은 출애굽기 16장 18절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출애굽기 16장은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에 대한 본문이다. 만나 본문 가운데 6일간에 거둠과 나눔에 대한 결론의 본문을 바울 사도는 인용했다. 실제 출애굽기 16~18절 주변의 본문을 반복해서 설명한다면 이렇다. 만나가 아침에 오면 백성들이 거두러 나간다. 한 오멜의 만나로 한정되어 주어졌다. 여기에는 장막에 (머물러) 있는 연약하고 거두지 못하는 노인과 아이 그리고 장애자, 병자들이 포함된다. (날마다 공급하시기에, 자의적으로 남기는바 유여함은 없도록!!) 모두에게, 각자마다에게 (하루 먹을만큼?) 오멜로 재어 돌아가게 함이 그 목표다(출 16:16). 이러한 규정을 따라서 거두었을 때 조차도 불균형은 분명히! 존재한다. 출애굽기 16:17절이다. 그래서 (아마도 함께 모여 필요를따라, 정직하게 재어보고 나누어주는, 그 모임 단위는 최소단위가 10명??) 18절에서 오멜로 다시 재어보는 작업을 한다. 재분배의 과정이다. .. 물론 기적적인 오멜 항아리의 존재를 상정하지만 이것은 적절치 못하다. 항아리가 몇 개가 있어야 장정 60만 명의 군중의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겠는가? 그런 항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작은 규모의 족속 단위의 재분배라는 칼빈의 견해가 더 합당하다.) 한 오멜을 나누어서 결국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만나의 공평한 분배였다. 광야시대에 주어진 만나의 나눔이었다. 이런 만나의 공평한 나눔의 배경은 6일과 제7일 안식일의 창조 구조에 담겨 있다. 공평한 나눔과 안식의 내용이 바로 창조의 목적에 담겨 있다. 생명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가 주어진 것은 작은 창조 사건이다. 공평과 안식을 담은 만나의 정신이 신약시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 담겨 있다. 이제 이러한 만나에 담긴 공평과 안식 지향의 나눔을 바울 사도는 확인하고 고백한다. 여기에는 창조자의 의지가 담겨있고,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구속의 시대가 성취해야 할 의와 공도를 이루는 나라의 실체를 보여준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된 교회는 바로 이러한 공평과 평균함의 나눔을 담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이러한 하나님의 공평함의 도를 실현한 사건으로 보았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고백을 근거로 해서 교회에 권면한다. 교회 간에 평균함을 지향하도록 바울 사도는 헌금하는 일을 구약의 인용을 통해, 즉 만나의 공평한 나눔으로 제시했다. 누가 과연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의지를 거역할 것인가. ===교회 간의 평균함을 풍성하게 이루도록 오늘의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교회간의 차별을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야 할까? 아니 좀더 현재의 논의에 충실해서 불균형적인 목사 사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평균함을 지향하자. 헌금은 성도들이 평균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 원칙이요, 구속의 지향임을 고백하고 바친 고백물이다. 이것을 사용하고 결정하는 일에는 반드시 공평과 평균함을 지향하는 결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이는 교회 내의 지체 간에도 물론이거니와 교회 상호 간의 평균함에도 기여하는 결정이어야 한다. 예장 통합에서의 논의가 전 한국교회에 공평과 의의 아름다운 영향력으로 역사하기를 소원한다.
===풍성한 연보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형제사랑실천 추구)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형제사랑의 진실성은 <주님임재앞에서 가진 것을 내어 나눔-섬김>으로 입증됨]]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당신 영광의 모든 것 다 내어주사]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천지의 창조자, 운영자, 상천하지 온우주의 모든 존재-만물의 소유주...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며, <새로>만들어서라도 주는 자, 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나 여호와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먼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고 예수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신 YHWH, JC의 풍성부요충만하심을 공급받는 자로서 <성육신하사 극한 가난 맛보시고 고난죽음부활승천 통해> 그분의 가지신 영광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의 은혜-사랑을 따라 성도가 받은 바 된 것을 자원함과 기쁨으로 나누는 은혜에 동참케 하셨음) 10.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디도와 그의 동역자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 2 Corinthians 8 Amplified Bible ==Great Generosity 1 Now, brothers and sisters, we want to tell you about the grace of God which has been evident in the churches of Macedonia [awakening in them a longing to contribute]; 2 for during an ordeal of severe distress, their abundant joy and their deep poverty [together] overflowed in the wealth of their lavish generosity. 3 For I testify that according to their ability, and beyond their ability, they gave voluntarily, 4 begging us insistently for the privilege of participating in the service for [the support of] the saints [in Jerusalem]. 5 Not only [did they give materially] as we had hoped, but first they gave themselves to the Lord and to us [as His representatives] by the will of God [disregarding their personal interests and giving as much as they possibly could]. 6 So we urged Titus that, as he began it, he should also complete this gracious work among you as well. 7 But just as you excel in everything, [and lead the way] in faith, in speech, in knowledge, in genuine concern, and in your love for us, see that you excel in this gracious work [of giving] also. 8 I am not saying this as a command [to dictate to you], but to prove, by [pointing out] the enthusiasm of others, the sincerity of your love as well. 9 For you are recognizing [more clearly]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His astonishing kindness, His generosity, His gracious favor], that though He was rich, yet for your sake He became poor, so that by His poverty you might become rich (abundantly blessed). 10 I give you my opinion in this matter: this is to your advantage, who were the first to begin a year ago not only to take action [to help the believers in Jerusalem], but also [the first] to desire to do it. 11 So now finish this, so that your eagerness in desiring it may be equaled by your completion of it, according to your ability. 12 For if the eagerness [to give] is there, it is acceptable according to what one has, not according to what he does not have. 13 For it is not [intended] that others be relieved [of their responsibility] and that you be [a]burdened [unfairly], but [b]that there be equality [in sharing the burden]— 14 at this present time your surplus [over necessities] is going to supply their need, so that [at some other time] their surplus may be given to supply your need, that there may be equality; 15 as it is written [in Scripture], “He who gathered much did not have too much, and he who gathered little did not lack.” 16 But thanks be to God who puts the same genuine concern for you in the heart of Titus. 17 For Titus not only accepted our appeal, but was so very interested in you that he has gone to visit you of his own accord. 18 And we have sent along with him the [c]brother who is praised in the gospel [ministry] throughout all the churches; 19 and not only this, but he has also been appointed by the churches to travel with us in regard to this gracious offering which we are administering for the glory of the Lord Himself, and to show our eagerness [as believers to help one another]. 20 We are taking precaution so that no one will [find anything with which to] discredit us in our administration of this generous gift. 21 For we have regard for what is honorable [and above suspicion], not only in the sight of the Lord, but also in the sight of men. 22 We have sent with them our brother, whom we have often tested and found to be diligent in many things, but who is now even more diligent [than ever] because of his great confidence in you. 23 As for Titus, he is my partner and fellow worker in your service; and as for the [other two] brothers, they are [special] [d]messengers of the churches, a glory and credit to Christ. 24 Therefore, show these men, in the sight of the churches, the proof of your love and our reason for being proud of you. ==Footnotes 2 Corinthians 8:13 Lit afflicted. 2 Corinthians 8:13 Lit from equality. 2 Corinthians 8:18 The identity of this man is unknown—perhaps it was Luke. 2 Corinthians 8:23 Lit apostles, but not a reference to the original apostles. ========= 고린도후서 8장 (개요) 이 장과 다음 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의 특별한 일에 대하여 격려하고 지도한다. 즉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의 본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의 궁핍을 도와 줄 것을 권면한다(롬 15:26). 예루살렘에 있는 교인들은 전쟁과 기근과 박해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에 대하여 친절하고 온유한 태도를 가졌었다. 비록, 유대인들은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대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지 않았지만 [바울은] 이방인신자들에게 그들에게 대하여 [한 형제된 심정으로] 친절히 대하며 그들의 궁핍을 돕고 위로하기 위하여 헌금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권면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상세히 말하고 애정을 가지고 쓴다. Ⅰ. 이 8장에서 마게도냐인들의 사랑의 행위를 알리고 디도가 연보를 위하여 보내진다(1-6). Ⅱ. 설득력 있는 말로써 연보에 대하여 권면한다(7-15). Ⅲ. 이 사랑의 행위에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 권면한다(16-24). ======== 마게도냐 교회의 연보(고후 8:1-6) 다음을 관찰하자. Ⅰ. 바울은 마게도냐의 교회들, 즉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의 교회들의 좋은 본보기를 들어 고린도 교인들과 아가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선한 일에 참여하도록 권고한다. 1.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게도냐의 교인들의 너그러움을 말한다. 이것을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은 "교회들에 의하여 혹은 교회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확실히 하나님의 은혜나 은사라고 불리어지는 이들 교회들의 사랑의 선물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성도에 대한 그들의 자선은 하나님에게서 시작이 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느 때이든지 우리 안에서 우리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선한 일의 뿌리가 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며 은총이기 때문이다. 2. 바울은 마게도냐인들의 사랑의 행위를 추천하며 그것을 말한다. (1) 어려운 상태와 고난 중에 있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헌금하였다. "그들은 큰 환난과 극한 가난중에 있었다"(2절). 사도행전 18장 17절에 나타난 것같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마게도니야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나쁜 대우를 받았고, 이것이 그들을 극히 가난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환난중에서 크게 기뻐하였으므로 넘치는 연보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실 것을 믿고, 없는 중에서도 헌금하였다. (2) 그들은 많이 연보했다. 즉 "풍성한 연보"를 했다(2절). 마치 부자처럼 연보했다. 모든 일을 참작한다면 큰 연보였다. 그것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있었다(3절). 최대한 헌금하였다. 다음을 주목하자. 어찌보면 세상사람들은 "무분별하다"고 비난할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경건과 사랑의 일에 있어서 힘에 넘치도록 행하는 사람들의 경건한 열심을 하나님은 [기쁘게]받아 주신다. (3) 그들은 이 선한 일에 적극 참여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원하였다." 바울이 이 일을 권면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가절히 구하였다."(4절) 바울은 이 봉사에 대한 일에 선뜻 나서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다만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에 전념하기를 원하였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돈을 보관하여 있거나 분배에 공정이 없으면 원수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을까 염려하였던 것 같다. 다음을 주목하자. 목사들은 돈의 일에 대하여 세심한 주의를 하여 비난받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4) 그들의 연보는 경건에서 나왔다. 이것이 크게 추천할 만한 것이다. 그들은 이 선한 일을 바르게 행하였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쫓아 우리에게 주었도다"(5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헌금하였다.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선한 일을 하였다. 이것은 바울의 기대를 넘어 선 일이었다. 그와 같은 따뜻한 애정과 헌신과 숭엄함으로 이런 헌금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바울의 생각 이상이었다. 그들은 엄숙히 연합하여 일심으로 자신과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었다. 먼저도 하였고 이번도 하였다. 자신과 소유를 거룩하게 하나님께 바치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①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이것보다 더 좋은 헌금은 없다. ②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도록 바쳐야 한다. ③ 우리가 무엇을 바치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 하나님의 것을 바치는 것이다. ④ 우리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우리의 헌물이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는다. Ⅱ.바울은 디도가 가서 그들 중에서 헌금을 운반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6절). 디도는 그들에게 용납되며 그는 전에 그들의 친절한 영접을 받았다. 그들은 그에게 애정을 보였고 그는 그들을 사랑하였다. 이외에 디도는 이미 이 일을 시작하였고 또 완성하기를 원했다. 이 일에 적당한 인물이었다. 시작하고 끝내지 못하면 잘못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가 잘 하려고 하는 일에 좋은 수단을 사용함은 지혜이다. 가장 적당한 사람이 헌금을 요청하고 처분할 때에 사랑의 일이 성공하기 쉽다. --------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고후 8:7-15) 이 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사랑의 선한 사업을 수행하도록 격려한다. Ⅰ. 그들이 다른 은사와 은혜에 있어서 풍성하기 때문에 이 사랑의 은혜에 있어서도 뛰어나기를 바란다(7절). 위대한 설득과 신령한 기술을 바울은 사용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헌금을 격려할 때에 다른 은사를 상기시킨다.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에 사람들은 찬사를 기대한다. 다음을 관찰하자. 고린도 교인들이 풍부히 받은 은사가 무엇인가. 믿음이 첫째로 언급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뿌리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 믿음이 부유한 사람은 다른 은혜와 선한 일에도 풍부하다. 이것은 사랑에 의하여 역사되기 때문이다. 믿음에 말이 첨가된다. 이것은 훌륭한 한 은사이며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높인다. 많은 사람이 말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신령한 은사 특히 말의 은사에 뛰어났다. 말로써 풍부한 지식이 나오게 된다. 그들은 옛 것과 새로운 보물을 가지고 있고 이 보물을 말로써 많이 끌어내었다. 그들은 부지런한 은사를 받았다. 지식과 말을 가진 신자가 반드시 부지런하지는 않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실행자는 아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말과 지식 이외에 부지런하였다. 더우기 그들은 사역자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은사를 많이 가지고 목회자를 무시하는 많은 사람과는 같지 않았다. 이 모든 은혜에 사랑의 은혜가 넘치기를 간구했다. 많은 선함이 있는 곳에 더 좋은 선함이 있기를 기대했다. 이 일을 권위로써 그들에게 강요하기를 원치 않았다(8절). 명령이나 권위로써 바울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충고를 주노라"(10절) 바울은 다른 사람의 예로써 사랑의 증거를 말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임시적인 의무와 순수한 의무 사이에는 차별이 있다. 현재의 선한 의무가 다른 때에는 추천할 수가 없는 것이 있다. Ⅱ. 다른 논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취한다.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한 가장 좋은 권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강권하시는 사랑이다." 마게도냐의 교회들의 본보기를 고린도 교인들이 모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은 우리를 더 강권하신다. 바울은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9절).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하며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아버지와 같으신 분이다.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시고 또한 가난하게 되셨다. 그는 가난하게 탄생하시고 가난하게 사시고 가난하게 죽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있어서 부요하며 새로운 축복과 약속에 있어서 부요하며 영생의 소망에 있어서 부요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가난한 자에게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Ⅲ. 다른 논술은 좋은 목표와 선한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향에 대한 것이다. 1. 목표한 것을 수행하고 시작한 것을 마치는 것은 유익하다(10,11절). 그 이외에 좋은 목적과 시작이 무슨 뜻이 있겠는가? 좋은 목표는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꽃봉오리와 같다. 보기에 즐겁고 열매에 대한 소망을 준다. 그러나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 의의도 가치도 없다. 시작은 좋으나 그러나 인내가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고린도 교인들이 잘 시작하였으니 수행도 잘하도록 바울은 충고한다. 2. 진실한 노력이 동반될 때에 이것이 하나님께 열납된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대로 받으실 터이요"(12절) 사람이 좋은 일을 계획하고 능력에 따라서 노력하면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받으신다. 다음을 명심하자. 성경은 좋은 것을 계획하고 뜻만 고백하는 사람을 결코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최대한 수행하고 하나님의 섭리가 금하는 것은 그만 두는 것이 용납된다(삼하 7장). Ⅳ. 다른 권면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분배의 차별이다. 그리고 인간은 상호 의존한다는 것이다(13-15절). 논지는 다음과 같다. 섭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어떤 사람에게는 적게 주었다. "넉넉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에게 공급하여야 한다." 빈부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부활 때에 구제하여야 한다. 상호 공급하여 "평균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절대적인 평균이 아니다. 이것은 재산의 파괴를 가져오며 사랑의 행위가 없게 된다. 사랑의 행위와 같이 온당한 비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만나의 수집과 같다(출 16장). 필요 이상으로 거둔 자는 적게 거둔 자에게 나눠 주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서로 도와야하며 서로 의존한다는 것이 인간의 상황이다. 너무 많이 가진 사람도 남지 아니하며 너무 적게 가진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고 서로 보충해 주어야 한다. --------- 동무요 동역자인 사자(고후 8:16-24) 이 절에서 그들이 연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보내진 형제들을 추천한다. 사실은 신용장과 같다. 만일 그들이 "질문을 당하면"(23), 어떤 사람들이 의심하고 심문한다면 그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신임되어야 함을 말한다. Ⅰ. 바울은 디도를 추천한다. 1. 그들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복지를 증진하기 위하여 모든 일에 열심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써 표현된다(16절). 하나님께서 우리나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할 마음을 주셨다면 이것이 감사의 원인이 된다. 2. 이번 일에 적극적이다. 그는 이 직책을 기쁘게 수락하고 자원했다(17절).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연보를 모으는 일은 많은 사람이 감사할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부름을 받았을 때에 부끄러움없이 응해야 한다. Ⅱ. 바울은 다른 형제 한 사람을 추천한다. 디도와 함께 보내졌다. 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누가라고 생각되어진다. 그가 추천되는 것은 1.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18절). 그의 여러 사역에 잘 알려지고 그가 하는 일에 자기를 증거하였다. 2. 여러 교회에서 선출된 사람이다. 바울과 함께 사역을 하였다. 아마 바울의 동의로써 되어진 일일 것이다. 보내는 이유로써는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20절). 나쁜 사람들이 비난할 모든 경우를 피하도록 주의한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 기회를 주기를 싫어하였다. "사람 앞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을 나타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즉 모든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비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비난할 모든 경우를 배제해야 한다. 이유없이 남을 비난하는 것도 죄이다. 비난받을 이유도 없을 때에 남에게 비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무분별한 일이다. Ⅲ. 그는 다른 한 형제를 추천한다. 이 사람은 앞의 두 사람과 동행하며 아마 아볼로라고 생각되어진다. 그가 누구든지 "모든 일에 간절한 것을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이 일에 적합하였다. 더우기 그는 이 일을 원하였고 고린도 교인들의 신임을 받았다. 이전에 근면한 사람들이 선한 일에 열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Ⅳ. 바울은 이들 모두에 대한 일반적인 성격으로 결론을 맺는다(23절). 그들의 복지를 위한 "동역자이며" "교회의 사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이며" 그리스도의 도구이며 그리스도로부터 명예를 얻은 자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고용된 충성스러움 자들이다. 전체적으로 바울은 그들에게 후대하며 하나님과 고난을 당하는 형제에 대한 그들이 사랑을 증거하며 그들이 자랑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대한 좋은 평판이 우리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 === 고린도후서 제 8장 =====8:1 @마게도냐 교회들 - '마게도냐'는 현재의 그리이스 북쪽에 있는 발칸반도로서 서쪽으로는 아볼로냐로부터 동쪽으로는 빌립보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이곳은 B.C.148년 이후부터 로마의 영토였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가리킨다(행 17:10-15, Bruce). @은혜를...알게 하노니 - 바울이 마게도냐 교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고린도교인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이유는 그 말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극이 되어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을 모으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헌금에 관한 문제를 '은혜'(* , 카린)의 관점에서 접근해가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헌금을 기꺼이 그리고 분에 넘칠 정도로 한 것에 대해서(2-4절) 하나님깨 은혜를 받은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바레트(Barrett)가 말하는 대로 '은혜'는 관대함을 뜻한다고 볼 때, 죄인으로서 심판(審判)을 받아야 마땅하고 아무런 용서받을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한 인간으로서의 마게도냐 교인들이 아무런 조건없이 베풀어진 하나님의 관대함을 입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푸는 것은 공로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결국 마게도냐 교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 마게도냐 교회들이 당한 시련에 대해서는 빌 1:29, 30; 살전 1:6;2:14;3:3, 4; 살후 1:4-10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다만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환난과 같은 것을 마게도냐 교인들도 받았다고 언급될 뿐이다(살전 2:14). 마게도냐의 교인들이 당한 환난은 그들이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당한 것이었으며, 아마 유대인 적대자들에 의해 난동꾼들로 모함을 받았거나 유대인들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행 16:20;17:5, 13). 또한 마게도냐 교인들은 피식민지 백성으로 받는 시련도 있었다. 이 모든 시련 가운데서도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넘치는 기쁨속에 살았다고 바울은 전해준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 기쁨은 마게도냐 교인들 자체에서 나온다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관대함의 결과'라고 말한다(Schlatter). 아무튼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시련을 당할수록 오히려 넘치는 기쁨을 누렸는데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매우 성숙한 수준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마치 그들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바울의 모습(6:10)과도 같았다.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 당시에 마게도냐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금광이나 은광, 선박용 나무를 베는 권리 등의 수입원들을 모두 로마인들에게 빼앗겨 구조적인 가난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마게도냐는 전체적으로 농업, 광업, 목재 산업 등이 번성하였기 때문에 '극한 가난'의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Barrett).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마게도냐 교회들의 형편을 '극한 가난'으로 표현한 것은 경제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진 박해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본문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또한번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연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플로테토스'(* )는 '소박', '단순', '순수함'이라는 뜻으로 헌금의 기본적인 태도는 마음의 순수함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한편 본문은 '가난'이라는 상황이 남을 돕거나 하나님께 드리는데 인색함의 동기가 되서는 안됨을 말해준다.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마치 자신의 전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한 가난한 과부처럼 극한 가난속에서도 자기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으니 그것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모습이었다(6:10). =====8:3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 바울이 보기에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기대 이상으로 연보를 드렸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위가 요청이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원(自願)해서 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마게도냐의 교인들이 오히려 물질적 원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바울이 이들에게 재정적 협조를 요청하기를 주저했을 것이라고 본다(Lowery).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게도냐 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고 바울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원하여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참으로 놀랍도록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이런 이야기에 고린도의 교인들은 상당히 마음의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곤경에 처한 다른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구제하는 일이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특전'(공동 번역)이라고 보았고 그 특전을 나누어 달라고 바울에게 간청하였다. 여기서 곤경에 처한 성도들이라 함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키는데, 당시 유대 전역의 사람들은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 A.D. 41-54)가 통치하던 때에 있었던 심한 기근으로 대단히 궁핍한 생활을 했었다(행 11:27-30). 더구나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비천한 사람이었고 그런 만큼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친구들도 없었다.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유대인들로부터도 종교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친밀한 형제애(兄弟愛)로 굳게 뭉쳐 서로를 돕는 것이었다. 마게도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에 헌신적으로 나선 것은 그들도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한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아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8:5 @자신을 주께 드리고 - 마게도냐의 교인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행위들은 바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신앙적 행위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단지 동정적인 행위나 인간적인 사랑의 행위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마음에서 행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을 알았고 따라서 그들의 소유도 필요시에는 주님을 섬기는 일에 바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Bruce). @우리에게 주었도다 - 본절의 의미는 '우리에게도 헌신하였습니다'(공동번역)이다.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바울을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내신 사도로 존중하였고 따라서 그를 헌신적으로 잘 섬겼다. 그들은 사도에 대한 이런 마음이 곧 주님께 헌신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8: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성취케 하라 - 본절은 바울이 디도를 고린도에 보낸 목적이 '눈물의 편지'를 전달하는 것 외에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기 위한 헌금모금에 고린도 교인들도 참여케 하려는 목적도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고린도에서의 모금 사업이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디도를 재차 보내 헌금 모금을 성취케 하라고 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헌금을 내는 일에 기대에 못미쳤음을 본절이 또한 간접적으로 암시해준다. 여기서 '헌금 모금을 성공적으로 끝내라'는 말을 '은혜를 성취케 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고린도인들이 헌금 모금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의미일 수 있고, 또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즐거이 헌금을 내어줌으로써 주님께 헌신하고 나아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성취하는 것처럼 고린도의 교인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성취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한편 본절의 '이러므로'는 마게도냐 교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헌신이 바울로 하여금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 모금 사업을 완성하게 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고린도 교인들은 마게도냐 교회들이 외부적인 박해(迫害)와 내부적인 극한 가난의 상황에서도 능력 이상으로 헌신한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며 나아가 상대적으로 박해도 받지 않고 가난에 시달리지도 않는 자신들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요청받고 있다(Harris). =====8:7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었고(고전 12:9;13:2, 13), 말과 지식이 풍부했으며(고전 1:5), 바울에 대한 간절함과 사랑을 풍성히 가지고 있었다(7:7).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과 사도 앞에서는 바르게 서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형제된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었다. 여기서 이 사랑을 '은혜'(* , 카로티)로 표현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고자 함이다.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헌금을 제공하도록 요청한 것은 그들에게 어려운 짐지워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8:8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도로서의 권위가 있었고(10:8;13:10) 따라서 그의 성도들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결코 명령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행위를 이끌지 않고 다만 방향만을 지시하며 권유하거나 호소할 뿐이었다. 바울이 그렇게 한 이유는 (1)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행했던 행동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자발적인 사랑을 행하도록 촉진하고, (2) 또한 자원함으로 드려진 연보만이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 대한 내적 헌신이라는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은 구제헌금을 하였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외식 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눅 21:1-4).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증명코자 함이로라 - 본절의 정확한 의미는, 마게도냐 교인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에 견주어 고린도 교인들의 사랑이 과연 진실한 것인가를 증명해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신적 사랑은 다른 교인들의 신앙과 사랑의 표준이 되고 있다(Martin). =====8:9 @부요하신 자로서...가난하게 되심은 - 앞에서 구제 헌금의 동기를 마게도냐 교인들의 모범(模範)으로 유발시켰던 바울은(1-7절) 보다 더 차원 높은 연보의 동기 및 근본원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 즉 성육신하심(incarnation)과 만인을 위한 대속적 죽음을 들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희생의 최고 모범으로서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헌금을 해야만 하는 신학적 당위성의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빌 2:6)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선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어 머리 둘 곳조차 없을만큼 희생적인 고난의 삶을 사셨고(마 8:20; 눅 9:58)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으니 그것은 절대적 가난의 한 모습이었다.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 루터(Luther)는 본절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가난함을 찬양하였다. "그는 가난한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하늘에서 부요하게 하시며, 당신의 사랑하는 천사들과 같게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같은 은혜를 주신 것은 그 은혜를 받은 자도 그분이 하신 일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부요함을 포기하여 가난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해야만 했다. =====8: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 바울은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또 명령할 수 있을 만큼 당위성이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명령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 좋겠습니다'(공동번역)라는 말로 정중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보여주는 목회자로서의 모범인 바,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대의 명분이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명령이나 강요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오직 행하는 자 스스로의 온전한 결단에 의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유익함이라 - 이 말의 의미가, 고린도 교인들이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왕에 시작한 일인만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물론 두가지가 다 해당될 수도 있다. @너희가 일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 여기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적어도 1년 전에 구제 헌금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과, 그 일이 지지부진하여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헌금 사업을 이제는 속히 완성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헌금을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의사에 의한 것이었다. (2) 그들이 구제 헌금 사업을 시작한지가 1년이나 되었지만 그들의 헌금은 그들보다 늦게 시작하고 시련과 극한 가난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헌금을 한 마게도냐 교인들보다도 미흡했기 때문이다(3절). (3) 적어도 그것이 선한일이라면 빨리 끝을 맺는 것이 신앙적으로 유익하다. 그렇지 않고 중도에 그만둔다면 그것은 진실한 신앙이 아니며(8절) 앞으로도 승리하는 생활이 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4) 구제 헌금을 빨리 완성하여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속히 아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Harris). =====8:11 @행하기를 성취할지니...있는 대로 하라 - 고린도 교인들은 말과 지식이 풍부하고 마음의 열정도 넉넉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좀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함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바울은 결코 그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대로' 즉 '소유하고 있는 대로', '드릴 수 있는대로' 성의(誠意)만 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마게도냐 교인들에 비해 빈궁한 생활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은 마게도냐 교인들보다 많은 구제 헌금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8:12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 여기서 '받으실 터이요'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고린도교인들의 구제 헌금이 가시적으로는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것은 달리 말해서 고린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할 때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며 다만 하나님께 드린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본절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헌금을 받으실 때 드려진 것의 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이며 또한 드려진 헌금과 드리는 자의 소유의 관계에서 평가하신다는 것이다(막 12:41-44). 그러므로 많이 소유한 자가 많이 드리는 것과 적게 소유한 자가 조금밖에 드리지 못한 것 사이에는 어떠한 가치의 차이도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8:13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 본절은 고린도 교인들 중에서 구제 헌금에 대하여 말하기를 '남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바울이 자기들에게 짐을 지우고 있다'고 불평한 이들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Bruce). 그러나 바울은 있는 자의 재물을 거두어 그를 가난하게 하고 그에게서 거둔 재물로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중요한 것은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하게 살도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강제도 물리적 알력도 배제된다. 다만 넉넉한 자가 자원(自願)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에 응답하여 가난한 자에게 자기의 소유를 나누는 것인데, 이것이 기독교의 공동체 의식이다. 바울이 여기서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전개하는 논리는 상부 상조하는 공동체의 논리이며(14절) 이것은 로마서에서 사용한 논리와는 다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로부터 영적인 것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에 육적인 것에 관한 한 이방인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나누어 주는 것은 마땅하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롬 15:27). 한편 혹자는 본절에 "너희는,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 사치품을 제공하기 위해 너희를 가난하게 하려는 친유대인적 경향이 나에게 있다고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암시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Farrar). =====8:14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이 본절을 통해 예루살렘과 고린도의 상황이 뒤바뀔 것을 예견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당시의 경제상황이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있었으므로 그럴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만일 그런 뒤바뀐 상황이 도래한다면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기꺼이 자기들의 소유를 나누었을 것이다.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이미 평균하게 사는 방법을 실천했기 때문이다(행 2:44, 45). =====8:15 @기록한 것 같이 - 바울은 자신이 제시한 평균의 원리에 더 강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출 16:13-36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실 때 많이 거두어 들인 자나 적게 거두어 들인 자나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많이 거두어 들인 자의 남은 것은 썩어서 저축될 수 없었다는 점과 적게 거두어 들인 자는 모자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광야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경제의 원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즉 하나님께서는 과거 광야에서 직접 개입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되 남은 것의 축적(蓄積)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간의 경제적 평균을 이루게 하셨다. 이제 지금은 직접 개입하시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이 이런 원리를 지켜 서로 풍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즉 물질을 넉넉히 가진 사람은 그물질이 하나님께로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자기가 쓰고 남은 여분의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8: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본절은 "내가 여러분에게 기울이는 것과 같은 열성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공동번역)의 뜻이다. 바울이 신뢰하는 동역자 디도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그 같은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고린도에 가서 구제 헌금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을 찾던 바울에게는 여간 감사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바울은 본절에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디도의 열정을 상기시킴으로써(7:13-15), 고린도 교인들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해주기를 은연중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유익을 위함이지 헌금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10절). =====8:17 저가 권함을 받고...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 바울이 처음에 디도에게 고린도교인들의 구제 헌금을 성취케 하기 위해 이 일을 권한 것은 사실이다(6절). 그러나 디도는 권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깊은 열정 때문에(7:15) 자원하여 나섰다. 본문에 대해, 혹자는 디도가 종종 바울의 전도와는 독자적(獨自的)으로 일했다는 암시가 있다고 보지만(Harris) 이는 타당치 않다. =====8:18 @복음으로서...칭찬을 받는 자요 -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구제 헌금을 위해 디도 외에 두 사람을 더 보냈다(22절). 본문에 '복음으로서 칭찬을 받는 자'(공동번역에는 '복음을 전하는데 명성을 떨친 사람'으로 되어 있다)라고 소개된 이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학자들은 '누가'나 '디도의 형제'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없다.다만 우리는 이 사람이 바울의 신뢰를 받았고 여러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자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8:19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 본문은 방금 바울이 소개한 사람이 바울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들에 의해 선택되었으며 이 선택의 방법은 교회들에 의한 공식적 투표에 의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택함을 입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이로토네데이스'(* )는 '거수(擧手)로써 투표하여 선택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선택된 사람이 공신력있는 인물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혹자는 이 사람이 마게도냐의 교인들로부터 뽑힌 대표자일 것이라고 보는데(Barrett), 이렇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왜냐하면 이미 마게도냐 교인들의 구제모금은 끝이 난 상태였으므로 모금된 돈을 디도와 함께 운반하고 보호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8:20 @이것을 조심함은 - 바울이 구제금을 모금하고 관리하기 위한 실무자를 그의 측근인 디도 한 사람으로 국한하지 않고 두 명을 더 참여시킨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려깊은 행위였다. @거액의 연보로...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 '거액의 연보'에 해당한는 헬라어'하드로테티'(* )는 '살진', '큰', '부유한'의 뜻을 가진 '하드로스'(* )에서 파생된 말로 단지 '심정적(心情的) 많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액수의 헌금'이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훼방하지 못하게'가 뜻하는 바는 그 모금된 돈을 도둑질 당하거나 분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액의 연보가 바울과 관계되어 있음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의혹이나 인간적인 의심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훼방하지 못하게'로 번역된 헬라어 '메 모메세타이'(* -)가 문자적으로 '비난을 받지 않다'를 뜻하는데서 알 수 있다(be no accusations, JB). 당시 복음 전도자들이 대개 받았던 비난처럼 바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교활동을 한다는 비난을 예견한 만큼, 바울은 오직 주의 영광과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 일한 것이(4:12), 도리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켜 선교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Barrett). 그러나 바울의 이런 세심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악의에 찬 오해를 면할 수는 없었다(12:16-21). =====8:21 @주 앞에서만 아니라 - 사실상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서 깨끗하다 인정받는 것이다(고전 4:4). 그러므로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울이 이렇게 사람들의 의혹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 않은 평판이 나는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6:3;고전 9:12;10:32). 한편 본절은 바울이 70인역 잠 3:4을 인용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Barrett, Harris). =====8: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너희를 크게 믿은 고로 -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알려지지 않은 동반자가 소개되고 있다. 이 사람은 여러차례에 걸친 시험에서 증명될 만큼 열성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였으므로 이번 일에 동행하게 하였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 사람이 아볼로나 두기고일 수있다고 추측하나(Farrar, Robertson) 확실하지는 않다.한편 바울이 디도와 함께 보낸 두 사람에 대해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디도가 이 편지를 고린도 교회에서 읽을 때 그들을 소개하려고 했거나 아니면 두 사람의 대표자들이 마게도냐 교회들에 의해 선출된 자로서 이미 고린도에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Harris).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동역자요 - 고린도에서 보내진 디도 일행에 대한 신임장(信任狀)이 서술되고 있다. 디도는 다른 두 사람과 구별될 만큼 다소 특별한 존재였다. 여기서 '동무'라는 표현은 바울과 디도가 상당히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말해주며 '동역자'라는 표현은 디도가 복음 전파의 사역에 한 주체로서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말해준다.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 여기서 '여러 교회'는 19절에서 의 주석처럼 '마게도냐의 교회들'을 지칭하고, '사자들'(* , 아포스톨로이)은 '사신' 또는 '사절'을 뜻한다. 이 형제들은 바울이나 디도처럼 사역자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번의 구제금 사업을 위해 여러 교회들로부터 선택된 사람들로 사도에 준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구제금 모금 사업의 재정적인 면을 담당하는 지역교회들의 대리인들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이러한 구별이 바울이나 디도와, 여러 교회들에서 선택된 '사절'들 사이에 지위의 차별을 암시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전자나 후자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점에서 동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디도를 비롯하여 두 형제들은 바울이 인정하고 신임하는 자들이었으며, 다른 교회들로부터도 신임받는 사람들이었다. =====8:24 @여러 교회 앞에서...보이라 - 공동번역은 본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여 우리가 여러분을 자랑한 점이 사실이라는 것을 모든 교회에 드러내십시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이 보내는 사절단을 따뜻하게 환대(歡待)할 것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대는 자신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자랑한 것을 확증해주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바울의 요구는 고린도교인들이 참으로 성숙하고 훌륭한 성도임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환난 곤고 박해 적신 위협 칼...이 모든 것은 (부정적 측면..사단에서 온다는 측면)시험이자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인 성도의 지고지선 위해 허락하신다는 측면)시련이다!! = 은혜의 때로서 참생명 주 예수그리스도를 극도로 추구하여 얻게 한다!!+++++ [[환난, 곤고, 박해]]^^환난 : 녹록치 않고 대적하는 주변 세상 상황에 처한 심신의 존재적 어려움(근심-염려-걱정 : 가난, 질병 :: 거부고수두분 느끼며, 우울공황마비감에 빠져 들게 함) ^^곤고, 궁핍 : [형통 =투브<토브>]의 반대 상황...막막하여 돌파로가 안보임<험산준령 같은 환경> ::: 곤(좁은 공간안에 있는 나무 모양), 고(고통, 괴로움, 염려, 근심) 궁(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몸이 야윔), 핍(옳지않음 인해 생기는 모자람/부족), ^^핍박, 박해. :: 핍(복<형통, 구원>오는 길 차단됨), 박(빛 차단, 깜깜한 어두움에 처하여 있음), 해(집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말로 분란 일으켜 상호손상 입음 = 화목-평안-일치 상실을 유도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