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하1장 [322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90.주예수내가알기전] [289.주예수내맘에들어와계신후] ...시작됐네우리주님의능력이 ===사울이 죽은 소식을 다윗이 듣다 .....[영적 측면에서는!!, 그리고 때때로 세상살이에서도]((믿는자로서)) 속아넘어간, 속은자가 속인자(사기꾼)보다 더 문제가 많다!! = 건성으로 성경말씀 대하거나 우상화 해 버린 것에 지나지 않음......**평강이란 세상에 대해 죽은자로 여기는 믿음 안에서 비로소 누림..**큰 사단 사울은 Q께서 처리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작은 사단은 부지런히 분별하여 쳐 내는 능력 받아 처리해야 함 ......**다윗이 절절하게!! 깨닫는바, 사울은 그에게는 고난 거쳐 주님께 하나 됨 안에서 성장-성숙케 하는 정말 고맙고도 애처러운!! [기름부음 받은]훈련교관이었다.. 1. 사울이 죽은 후에(15개의 광야생활 지남 거쳐 내 안의 사울까지 죽어야, 성령으로 사는 부활 생명으로 거듭난 다윗이 오는것 :: 혹독하게 겪은바 상처마다 별-보석 되고 [모든 고난 감당케 하며] 타인 살리는 치료제-곧 축복 샘이 됨...삼하5장3절까지 지나야 함)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영적 죽음 거쳐야 부활 있음...세상에 대해 죽었고 Q에 대하여 산 자[= Q주신 사명으로 사는 사명자]마다 죽은 자[=세상에 대해 산 자]가 찔러대는 모든 도발 이김)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비유컨데, "돈 돈 돈..하던 자"가 고난 거치더니 불분명한 돈 생긴 것에 대해 그 출처를 묻고 있었다!!...주님 아는 자만이 묻는 법이다!! --"주 믿는자라고?, 그렇다면 네 간증을 들어보자!!"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개인적 간증 없었다)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그렇다면 그 사실에 대해 어떻게 보았고, 생각하고 행하니??)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생명경시 가치관따라 제멋대로 함부로 사는자)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결국 보상 받을 욕심(공명심)으로 시체에서 벗겨왔음을 스스로 실토한 셈 됨 의미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야훼신앙으로 개종하여 함께 거류 중인, 동화된 외국인="게르"일지라도 가나인 땅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았었음...군대에 자원하거나 용병 형태로 전쟁 참여는 가능하였을 것))이니이다 하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Q나라의 공의를따라 집행함)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거짓말하며 사기치는 것은 Q 나라에 합당치 않음]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Q 나라에는 공의!!(공과 사 분명히 구별하여 행함)가 중요하다..사울의 목자장 에돔인 도엑이 그가 놉 성소를 방문했을 때, 거기서 다윗을 보았고 아히멜렉이 골리앗의 칼을 건네주었다고 아히멜렉과 다윗을 함께 고발하였을때, 사울은 도엑을 시켜서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을 학살하였던 것과 대조됨(아마도 이 때 기브온 사람들도 함께 학살된 것으로 보임)....사울이 길보아산에서 죽을 때, 그의 주위에는 (그가 그토록 위하던) 베냐민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었지만, 인자와 공의로 다스려오던 다윗의 경우에는, 다윗이 맨발로 감람산 길 걸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 그의 주변에는 많은이들이 끝까지 함께 하고 있었다.. ......((기름부음 받는 자의 특징이자 마땅한 행보 = 원수라도 끝까지 사랑 + Q의 [일하시는] 때를 인내로 기다림!!....분열/폄훼하는 말을 그치도록 하고 그런자를 멀리함)) ===다윗이 슬픈 노래로[= 활의 노래] 사울과 요나단을 조상하다...[322] ***디윗에게 붙여주신, 사울과 요나단의 역할은 결국 주 안에서 ((Q의 다루심, 곧 15개의 광야길, 고난 통과케 함으로써 다윗의 영적 성장-성숙 도움, 곧 다윗의 구원의 온전함을 위해)) 하나로 행하였음을 이해할 수 있는가?? ::: [사울-요나단은 함께 죽는바] 사울은 핍박하는 역할-요나단은 사랑하는 역할로 나뉘었을뿐이었다...((.친구로서의 애정과 함께 동시에 [주 앞에서!!] 공사를 분명히 하여 공의를 결코 버리지 않은 요나단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더 고귀한!!] 극도로 고귀한 사랑이었다!!))...사울이란 어쩌면 소름끼치는,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더럽고 추악하게 느껴지는, 또는 차리라 내가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던 모든 부정적 경험들일 수 있음 ***그들에게 덕을 기리며 감사로 추모하는 다윗의 활노래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로 하여금 사울과 요나단에 대해 남아있었을 그 어떤 원한/분한의 감정조차 용서하고 떠나보냄으로써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 하기에도 적절했다고 보여짐 ......[둘 다 훈련교관이로되]핍박하는자 없다면 사랑하는자가 빛나지 않는다 = 사울로 인해 요나단이 빛나보임....믿지않는자에게 믿는이가 겪고 있는 관계적 훈련(상호 갈등) 상태를 결코 말하지 말라!!...그대가 정말 거듭난 믿는이라면 .불신세상에(블레셋에....이해 못하고 오히려 고소해 하면서 더 대적하게 될 것이기에)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울 역할 하는이를 헐뜯는 것은 결코 안된다....이것을 진실로 깨달은 다윗은 결코 사울을 미워할 수 없었다 --> 이후의 싸움은 다윗 그 자신과의 싸움이었을뿐이다. .....***그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이미 못박혔음-지옥까지 동행-부활승천 안에서 성령과 함께 사명자로서 보냄받았음 +, 매일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함, 곧 그분 발에 입맞춤 통해 죽음 거쳐 다시 새 생명 받아 사는 둘로스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 Q의 기름부으신 자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경우라도 죽이지 않고 오로지 ((사랑과 인내로!!...긍정하면서)) 껴안고 끝까지 가야함 + 이것을 진실로 참되게 깨닫고 용납함으로써 하나되어 주님께 붙어가야 함, 그리고 대적할 바 내 원수란 사울 안의 사단이요, 내 안에 남아있는 사단임을 명심하자 .....***이 활 노래는 기쁜 노래가 아니라 “슬픈 노래”이다(17절). 왜 슬픈 노래인가 하면 그 이유는 다윗의 제일 친한 친구 요나단과 그의 아버지인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여 “조가”를 지어 유다 사람들에게[나중에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가르치게 한 것이다(17-18절). 22절을 보자: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다윗은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다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있다. 곧, 요나단의 활이 원수의 피나 기름을 흘리고야 말았다는 뜻, 요나단과 사울은 전쟁을 치를 때마다 반드시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나라 관점을 통하여(은혜-선한 영향력) 망자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후세에 유익하도록 교훈과 모범의 애가를 부르도록 하고 계심을 명심하라 ....***오직 주 임재 앞에서 예배-찬양, 기도하며 주 발 씻겨드리며 입맞춤으로 죽고 다시 사는 나날의 새로운 감동-감격, 극도의 생명충만의 진복 경험!!...이것이 중요하다!!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18.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원수 사람-끝까지 인내함의]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알리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교회내 잡음을 외부에 퍼뜨리며 그들로 조소하며 더 조장하도록 하지말라!!)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길보아산을 꾸짖으며 두 사람을 편들며 위로하고 있음)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이스라엘의 보호자로 역할 충실히 해 준바 그들에게 감사하라)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 [NASB]제1장
1. Now it came about after the death of Saul, when David had returned from the slaughter of the Amalekites, that David remained two days in Ziklag. 2. And it happened on the third day, that behold, a man came out of the camp from Saul, with his clothes torn and dust on his head. And it came about when he came to David that he fell to the ground and prostrated himself. 3. Then David said to him, "From where do you come?" And he said to him, "I have escaped from the camp of Israel." 4. And David said to him, "How did things go? Please tell me." And he said, "The people have fled from the battle, and also many of the people have fallen and are dead; and Saul and Jonathan his son are dead also." 5. So David said to the young man who told him, "How do you know that Saul and his son Jonathan are dead?" 6. And the young man who told him said, "By chance I happened to be on Mount Gilboa, and behold, Saul was leaning on his spear. And behold, the chariots and the horsemen pursued him closely. 7. "And when he looked behind him, he saw me and called to me. And I said, 'Here I am.' 8. "And he said to me, 'Who are you?' And I answered him, 'I am an Amalekite.' 9. "Then he said to me, 'Please stand beside me and kill me; for agony has seized me because my life still lingers in me.' 10. "So I stood beside him and killed him, because I knew that he could not live after he had fallen. And I took the crown which [was] on his head and the bracelet which [was] on his arm, and I have brought them here to my lord." 11. Then David took hold of his clothes and tore them, and [so] also [ did] all the men who [were] with him. 12. And they mourned and wept and fasted until evening for Saul and his son Jonathan and for the people of the LORD and the house of Israel, because they had fallen by the sword. 13. And David said to the young man who told him, "Where are you from?" And he answered," I am the son of an alien, an Amalekite. " 14. Then David said to him, "How is it you were not afraid to stretch out your hand to destroy the Lord's anointed?" 15. And David called one of the young men and said, "Go, cut him down." So he struck him and he died. 16. And David said to him, "Your blood is on your head, for your mouth has testified against you, saying, 'I have killed the Lord's anointed.'" 17. Then David chanted with this lament over Saul and Jonathan his son, 18. and he told [them] to teach the sons of Judah [the song of] the bow; behold, it is written in the book of Jashar. 19. "Your beauty, O Israel, is slain on your high places! How have the mighty fallen! 20. "Tell [it] not in Gath, Proclaim it not in the streets of Ashkelon; Lest the daughters of the Philistines rejoice, Lest the daughters of the uncircumcised exult. 21. "O mountains of Gilboa, Let not dew or rain be on you, nor fields of offerings; For there the shield of the mighty was defiled, The shield of Saul, not anointed with oil. 22. "From the blood of the slain, from the fat of the mighty, The bow of Jonathan did not turn back, And the sword of Saul did not return empty. 23. "Saul and Jonathan, beloved and pleasant in their life, And in their death they were not parted; They were swifter than eagles, They were stronger than lions. 24. "O daughters of Israel, weep over Saul, Who clothed you luxuriously in scarlet, Who put ornaments of gold on your apparel. 25. "How have the mighty fallen in the midst of the battle! Jonathan is slain on your high places. 26. "I am distressed for you, my brother Jonathan; You have been very pleasant to me. Your love to me was more wonderful Than the love of women. 27. "How have the mighty fallen, And the weapons of war perished!" ===== 사무엘하(서론)---[사무엘이 죽고난 이후의 기록은...]즉, 사무엘하서의 기록자로서는 아마도 갓 선지자, 또는 나단 선지자가 이닌가 생각하고 있음 사무엘하는 다윗 왕의 통치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사무엘 상에서는 다윗이 왕으로 택함 받음과 사울이 죽을 때까지 다윗을 박해한 것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본서는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가 통치한 40년 간의 모든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에 70인역에는 이 책을 열왕기3서라고 부른다. 본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사울에 대한 다윗의 승리(1-4). 여부스와 블레셋 정복(5). 법궤 운반(6-7). 이스라엘 인접국 정복(8-10). 2. 다윗의 고통과 그 원인 밧세바와 우리아에 대한 범죄(11,12). 암논의 범죄와 그로 인한 고통(13). 압살롬의 반역(14-19)세바의 반역(20). 세바의 반역(20). 기브온 족속으로 인한 기조(21). 다윗의 구원과 찬송(22). 다윗의 명령과 그의 용사(23). 인구 조사로 인한 재앙(24). 다윗의 통치 역사 속에는 교훈을 주는 것이 많다. 다윗은 사무엘 하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묘사되고 하나님의 은혜도 많이 입는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통치의 역사에서 보다 시편을 통해서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 ...신약 성경의 제일 처음 시작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이다(마태복음1:1).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라 약속하셨고(창세기 22:18), 다윗을 통해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약속하셨다(사무엘하 7:12-13).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언약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예언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이 성취되기를 누구보다도 대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서두에 소개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임을 강력하게 선포한 것이다.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세 시기로 구분하고 있는 마태복음 1:17 말씀을 볼 때, 다윗은 마태복음 족보의 세 시기 가운데 제 1기를 마감하며, 제 2기를 시작하는 인물로 유일하게 두 번 계수되고 있다. 다윗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여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족보에 등장하는 열왕 중에 오직 다윗 한 사람에게만 ‘왕(王)’이라는 칭호가 붙어 있으며(마태복음 1:6)1), 족보의 구성이 다윗의 히브리어 철자가 상징하는 수를 합친 수 ‘14’대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2) 확실히 마태복음 1장 족보는 다윗이 그 중심인물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임을 예증(例證)하는 족보이다.3) 이렇게 마태복음 1장 족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다윗이 중심인물이 되고 있는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옛 것을 성취, 완성시킬 뿐 아니라 새 시대를 열어 구원사의 중심인물이 된다는 구속 경륜의 의미를 한층 더해 준다. ‘다윗의 몸에서 날 자식’이 성전을 건축할 것이며 하나님이 그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해 주시겠다는 다윗 언약에서, 한 아들을 통해 주시기로 한 영원하고 견고한 나라의 약속은(사무엘하 7:12-13, 16, 역대상 17:14, 시편 89:4, 132:11-12, 이사야 9:6-7), 다윗의 혈통적 후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누가복음 1:31-33, 69, 요한계시록 22:16).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중심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다윗의 생애에 대해 우리 크리스천들은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을까?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약 15세(주전 1025년)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사무엘상 16:13), 왕궁에 들어가 수금을 연주하며 사울이 악신에 들려 번뇌하는 것을 치료하는 일을 하였다(사무엘상 16:21-23). 그리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물맷돌로 죽인 후에, 여인들이 왕 사울을 환영할 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뛰놀며 창화(唱和)4)했던 일로 인하여 사울의 노여움을 사고 그에게 쫓기게 된다(사무엘상 18:7). 시기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은 우여곡절 끝에 사울의 뒤를 잇는 왕이 되었지만, 이러한 대강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도 정확히 몇 년이나 또 어떤 경로를 따라 도피를 했는지,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다윗이 그러한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성경은 다윗의 도피 생활에 관하여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사무엘상 19-31장), 다윗의 도피 생활이 시작된 때는 골리앗을 죽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주전 1020년경이었다. 이때부터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 주전 1010년까지 다윗의 도피 생활은 약 10년 간이나 지속되었다. 다윗은 약 15세의 나이에 기름부음을 받고, 5년 후인 20세부터 30세까지의 젊은 날들을 모두 광야와 굴과 타국과 산에서 전전하다가 기름부음을 받은 지 15년 만에 왕으로 즉위했던 것이다. 제 1기 _라마에서 헤렛 수풀까지의 행로 (대략 주전 1020-1018년, 사무엘상 19:18-22:23) 제 2기 _그일라에서 십 황무지까지의 행로 (대략 주전 1017-1015년, 사무엘상 23:1-26:25) 제 3기 _블레셋 땅 가드에서 시글락까지의 행로 (대략 주전 1014-1010년, 사무엘상 27:1-사무엘하 1:27) 다윗은 이러한 10년 간의 도피 생활을 통해 신정(神政) 국가의 왕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신앙과 순종을 배웠으며, 왕으로서 필요한 정치·군사적인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도 얻었다. 도망자의 신세로 인생 밑바닥의 어려움들을 체험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넓고 깊은 인격의 소유자로 성장하였다. 하나님은 다윗을 구속사적 경륜을 이루는 위대한 신앙의 지도자로 만들어 가셨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다윗의 도피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연상시킨다. 다윗이 당하는 모욕과 고통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받으실 모진 고통과 수욕을 예표하고 있는것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 잠을 잘 곳이 없어 굴 속이나 광야에서 지내기를 여러 번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관이 없어 말구유에 태어나신 후(누가복음 2:7), 배척당하시며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마태복음 8:20, 누가복음 9:58)고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하다. 또한 무수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여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한 다윗의 고백은(시편 22:1),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시는 주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자신이 당한 극도의 수치 상태를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편 22:18)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될 때 로마 군인들이 주님의 옷을 벗긴 후 네 깃에 나눠 갖고, 주님의 속옷을 얻으려고 제비를 뽑는 모습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요한복음 19:23-24). 실로 다윗의 고난 받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보여 주는 듯하다. 그러나 다윗이 고난의 도피 생활을 지나 마침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듯이, 예수님은 사망의 자리에서 부활하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높이 올리우셨다(마가복음 16:19, 사도행전2:31-33, 빌립보서 2:9). 이처럼 다윗은 유다 지파 출신의 왕으로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한다”는 예언을 성취시켰으며, 나아가 자신의 후손으로 메시아(실로)가 오신다는 예언을 견고케 한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왕’이었다(창세기 49:10, 사무엘하 7:12-13). === 사무엘하 1장 (개요) 본서의 역사와 연관된 사무엘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울은 자취를 감춘다. 사울은 무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부로 떨어졌다. 이제 우리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며 다윗의 업적을 알게 된다. 본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시글락에 있는 다윗에게 한 아말렉 사람이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알림(1-10). 2. 다윗이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슬퍼함(11, 12). 3. 사울을 죽인 청년을 죽임(13-16). 4. 사울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애가(17-27). -----------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삼하 1:1-10) Ⅰ. 다윗은 아말렉 군사의 손에서 그의 가족과 친구들을 구해 준 후에 그의 고향인 시글락에 유했다. “시글락에 이틀을 유하더니…(1절)” 다윗은 그곳에서 전리품을 그의 친구들에게 선물로 보냈다(삼상 30:26).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자기에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에게 모여온 사람들은 궁지에 몰려있거나 빚진 자들이었으나 시글락에서 그에게 모여온 사람들은 “용사”와 “싸움에 익숙한 자”와 “천부장”들이었다(대상 12:1, 8, 20).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므로 이 같은 사람들이 매일 계속 모여와서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다”(대상 12:22). 이 같은 혁명의 원동력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필연 하나님의 섭리였다. Ⅱ.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한 사람이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다윗이 사울의 진영에 정보원을 배치해서 교전에 대한 결과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좀 더 빨리 알게 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다윗은 왕위에 오를 것을 조급하게 기다리지도 않았고 오히려 모든 소식이 들려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들려오는 소식만을 들을 뿐이며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1. 사울의 진영에서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은 긴급하게 달려왔다. 그 사람은 전사한 사울 왕에 대해서는 슬픔을 표시하는 듯했고 왕권을 이어받을 다윗에게는 복종하는 자세였다. 그 사람은 찢어진 옷을 입고 다윗 앞에 엎드려서(2절) 왕 앞에 최초로 경의를 표하는 변덕을 부렸으나 그는 다윗의 판단에 의해 최초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은 다윗에게 이스라엘 진영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진영에서 탈출해 나왔다고 떠들어대면서 비열한 태도를 보였다. 2. 그는 다윗에게 전쟁에 대한 대략적인 보고를 한다. 백성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걱정을 하는 다윗은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는 다윗에게 이스라엘 군사가 패배당해서 많은 사람이 전사했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다고 말했다(4절). 그는 사울과 요나단의 이름만 밝혔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운명에 대해서만 알고 싶어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사울은 다윗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고 요나단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3. 전달자는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한다. 다윗은 다른 사람의 보고로 전쟁의 결과를 이미 들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리들이 그에게 왕래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확실하게 알고자 하는 것은 사울과 요나단에 대한 소식이었다. 다윗은 미리부터 앞질러서 예측하거나 확실성이 있기까지는 왕권을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한다. 다윗의 질문에 대해서 그는 대답할 말을 미리 준비했던 듯이 사울이 죽은 것을 자기의 눈으로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울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말해서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가 증거하는 말을 믿게 했다. 그는 요나단의 죽음이 다윗에게 얼마나 충격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요나단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다윗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만을 기뻐할 것이고 그 소식을 전해 준 것에 대한 상을 받을 줄 알고 사울의 죽음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의 말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추측할 수 있다. (1) 매우 특이하고 상세하다. 그는 사울이 있던 곳을 병사로서가 아니라 우연히 길가는 사람으로 지나가다가 사울이 자기의 창에 의지해서 죽으려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울의 수행원 중에 아무도 사울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고 사울 자신으로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울은 살 수 있는 힘도 없었고 죽을 수 있는 기력도 없었다. 그래서 사울은 이 사람을 불러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7절). 이 사람이 블레셋 사람만 아니라면 사울은 그의 “자비의 일격”(merciful sroke)을 받아서 죽음의 고통을 면하려 했다. 사울은 그 사람이 아말렉 사람(부하도 아니고 원수도 아님)임을 알고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고 간청한다(9절). 사울은 자기의 지위와 권위가 짓밟히고 생명이 살해당할 것으로 고심한다. 그러면 터무니없이 인생이나 명예를 즐길 사람이 누구일까?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소망이 없으나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너희를 피한다”(계 9:6). 사울은 자기의 영혼에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고통과 공포심으로 인해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9절)라고 불평했다. 만약 사울의 양심에 다윗을 죽이려고 던졌던 창과 자만심과 악의를 깨닫는다면 고통을 당하는 것이 놀라울 것이 못된다. 당시 사람들이 통용하는 말 중에 “사람이 죽을 때 두더지가 죽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한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과오를 용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죽음이 공포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신념을 좌절시킨 사람에게도 죽을 때에 공포가 엄습한다. 사울은 죽을 때에 그의 복장 때문에 빨리 죽지 못하는 것을 원망했을 것이다. 쇠붙이를 단 갑옷과 수를 놓고 장식품을 붙인 옷을 입었기 때문에 창으로 그의 몸을 깊숙이 찌르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몸이 뻣뻣하고 부어서 호흡에 장애를 느끼므로 불평과 원망을 했을 것이다. 사람이 복장으로 인해서 자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복장이 때로는 멍에가 되고 덫이 되기 때문이다. 청년은 내가 그 곁에 서서 죽였나이다(10절)하고 말할 때 다윗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 알고” 그렇게 했다는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사울의 생명은 전적으로 아말렉 청년의 손에 달려 있었으므로 블레셋 군사의 손에 넘겨서 한 번 더 찌르게 할 수도 있었다. (2)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의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고 하나님의 공의가 인정된다면 하나님께서 멸시하신 아말렉 사람들을 죽인 사울은 그에 대한 대가로 아말렉 사람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같은 추측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이 아말렉 청년이 우연히 사울이 죽기 직전에 있는 것을 목격하고 죽이지도 않았으면서 다윗에게 그와 같이 말한 것은 다윗을 위한 공로가 될 것이므로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줄 알고 했을 것이다. 자기의 원수가 죽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할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은 이같은 평범한 사람의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 젊은이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이 이야기는 마치 베드로가 사도행전 1장 18절의 가롯 유다에 대한 이야기를 마태복음 27장 5절의 내용과 연관시킨 것같이 사무엘상 마지막 장(31장)과 연관시켰을지도 모른다. 사무엘상 31장 4절에서 말하는 “칼”은 본장 6절의 “창” 을 뜻하는 것으로 “칼 위에 엎드러졌다”는 것은 “창”에 엎드러진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3) 아말렉 청년은 사울의 죽음이 확실하다는 증거로 그의 머리에 있던 왕관((아마도 화려한 금관은 아니로되, 띠처럼 생긴, 왕의 표식인 관))과 팔에 차고 있던 고리를 가지고 왔다. 뛰어난 전사인 사울이!! 화려한 금관을 쓰고 멋들어진 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갔으리라고 보기에는... 활을 쏘는 적군에게 왕임을 식별하기 좋게 하는 표식이 되게 했을 것이기에 합당치 않으리라..그리고 분명히 블레셌사람들은 그의 머리와 갑옷을 함께 신전마다(당시는 아스돗과 아스글론에 신전이 있었음이 확인되었음..언약궤는 아스글론 신전 거쳐 아스돗으로 옮겨졌고 벧세메스로 향하고 있었다) 돌려가며 전시했다고 씌여 있다. (아말렉사람 말이 어느정도 진실이 섞인..반쪽짜리 진실이라고 가정해본다면....실은 전세가 험악해짐에 따라 주위로 압박해 들어온 블레셋 궁수들의 화살에 맞아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는 부관에게 자기를 일격에 죽여달라 부탁했으나, 부관은 망설였고, 이윽고 사울은 스스로의 칼로 자결했고, 부관도 이어서 자결한 것을 엿보고 있다가... 아말렉인은 왕관 띠와 팔고리를 빼어 그의 품에 넣고, 일부러 흙을 뒤집어 쓰고, 자기옷을 찢고...다윗에게 달려와서 부복-보고함으로써...이 기회에 다윗에게 접근하여 사울을 직접 죽인 공신으로서 대접 받기를 원했으리라..) 사울의 이 같은 처사는 아말렉 사람의 손에 죽는 결과가 되었다. 사울은 자신이 가장 귀중히 여기던 보물을 분실하지 않게 하여 자신이 헌신하던 나라에 돌아오게 했다. 아말렉 청년은 사울이 죽었으므로 의심의 여지없이 이 보물의 참 주인이 될 다윗에게 바쳐서 궁전이나 전쟁터에서 가장 위대하게 된 그를 비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함으로써 추대하려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대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이 아말렉 청년은 도엑의 아들이라 한다(아말렉 사람들은 에돔의 후손임). 전설에 의하면 도엑은 사울의 마부였는데 칼로 자결하기 전에 사울에게서 왕관과 팔고리를 받아서 자기의 아들에게 주어서 아첨의 표시로 다윗에게 전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 이 사람이 도엑의 아들이라면 사울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너는 누구냐?”(8절)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오랫동안 왕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그 왕관을 아말렉 사람이 가지고 왔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과 의도를 비록 허술한 계획이긴 하지만 자신의 뜻만 이루려는 사람을 통해 진행하시는 것에 눈길을 돌리자. -------- 아말렉 사람을 죽임(삼하 1:11-16) Ⅰ. 다윗이 아말렉 사람이 전하는 소식을 수긍한다. 다윗은 아말렉 청년이 기대했던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과 그의 친구 요나단 뿐만 아니라 그의 원수 사울로 인해서 기쁨이 울분으로 변하여 “옷을 잡아 찢으며”(11절) “슬퍼하며 금식”했다(12절). 이 같은 다윗의 처사는 넘어진 사람을 모욕하지 말고 죽은 사람에게서 덕을 보았든지 해를 입었든지 존경하는 마음으로 무덤 앞에 임하라는 예의를 지키며 존경할 뿐만 아니라 선량하고 양심적인 사람으로 사울에게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용서하고 적개심을 품지 않는 것이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마음에 즐거워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아니하시느니라”(잠 24:17, 18). 그리고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잠 17:5)고 말하기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같은 다윗의 마음씨는 그가 기록한 시에서 원수가 멸망하여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복수심이나 비정상적인 열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사회 정의를 위한 성스러운 열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행한 것은 그의 성품이 부드러웠고 심지어 자기를 증오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이 사울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은 진심이었으며 가장을 하거나 체면상으로만 한 것이 아니었다. 다윗의 슬픔은 너무도 강열했기 때문에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까지 감동을 받았다. 다윗에게 복종하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슬픔의 표시로써 함께 있던 모든 사람도 옷을 찢고 저녁 때까지 금식했다. 이 금식은 종교 의식적인 금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이 전쟁의 패배로 인해서 생긴 틈을 메우기 위해서 기도했다. Ⅱ. 사울의 소식을 전 해준 사람에 대한 보상. 다윗은 이 청년을 발탁해서 쓰지 않고 오히려 왕을 죽인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그가 행한 동일한 죄과로 죽이라고 명령한다. 고통 중에 있는 사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한 청년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청년은 사울이 필연적으로 죽을 줄 알고 사울의 간청을 들어 주는 것이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알고 공연한 일을 했다. 청년의 항변(抗辯)은 아래와 같은 말로 무효가 되고 말았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 여호와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16절)고 하였으니 너는 죽어야 하느니라.”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 시점에서 다윗의 행위는 불의가 아니다. (1) 그 사람은 아말렉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가 하는 말에 잘못이 있을 수 있다. 다윗은 그에게 두 번째로 그가 어디 사람인가를 자백하게 했다(13절). 아말렉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은 마땅히 파멸당해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그의 전임자(사울)가 당연히 했어야 할 것을 했다. (2) 아말렉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그래서 모든 법의 일치에 의해서 죄를 정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자기의 말과 같이 했다면 “반역죄”로(14절) 당연히 죽어야 한다. 이 사람은 사울의 마부가 사울의 간청을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랑삼아 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을 기회가 있기만 하면 했을 것이다. 아말렉 사람은 사울에 대한 자기의 의견을 자랑하면서 자기로서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에게 손을 들어 치기를 몇 번이고 거절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가 다윗에게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그는 큰 죄인임에 틀림없고 조만간에 죄가 자신에게 임할 것을 증거할 것이다. 2. 다윗이 아말렉 사람에게 행한 일은 명철한 처사이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슬픔이 진실함을 공개하고 아말렉 사람이 사울에게 행한 것 같은 무고한 행위로 다윗의 마음을 끌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뜻을 좌절시켰고, 이 사람에게 사울의 가족이 했어야 할 보복을 했으며, 인간의 본의를 무시하고 사회 정의에만 열성을 보이고자 하는 사람을 백성들 앞에서 본을 보였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직접이든 간접이든 생명을 해하는 일에 조력하는 것은 살인행위라는 사실과 왕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특이한 방법으로 깨닫게 한다. ------- 사울과 요나단에 대한 다윗의 애가(삼하 1:17-27)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옷을 찢고 통곡하며 금식했다. 그리고 사울에 대해서 살인죄를 범한 사람에게 정당한 처벌을 내렸다. 다윗의 이같은 처사는 사울에게서 입은 은혜(초기에 사울에게서 입은 은혜:역자 주)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다윗은 검을 사용하는 데도 능했지만 감정도 풍부하여 사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시(詩)를 썼다. 다윗은 이 애가(哀歌)에서 사울이 당한 참화(慘禍)에 대한 자신의 슬픔과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묘사했다. 시로 묘사된 애가는 백성들에게 몇 가지 교훈을 준다. 1. 보다 깊은 감동과 사랑을 느끼게 한다. 시인(다윗)의 슬픔이 시를 읽는 사람이나 애가를 듣는 사람들과 공감을 갖게 한다. 2. 보다 오랫 동안 보존된다. 그리하여 기록된 애가는 널리 퍼질 뿐만 아니라 오랫 동안 기억에 남아서 대대로 전달된다. 그리고 역사를 읽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 시를 통해서 역사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Ⅰ. 다윗은 이 애가와 함께 명령을 내린다.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다윗의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18절). 1. 활은 전쟁에서 사용했다. 유다 족속 중에 활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활은 이보다 오래 전부터 창과 함께 무기로 사용되었다. 창 48:22).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 사용한 것으로 보아 활보다 비용이 작게 드는 물매를 사용했을 것이다. 다윗은 이 때 물매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나 활보다 명중률이 좋지 않음을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울이 블레셋 사람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기 때문이다. 삼상 31:3). 그래서 활 사용하는 것을 더 일반화시키고 훈련해서 이스라엘의 왕을 죽인 블레셋을 보복할 능력을 길러서 그들의 원수를 제압할 뜻을 세웠다. 전쟁으로 보복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머리가 명석한 유다 족속들은 필연코 잘 무장해야 했다. 다윗은 여기서 이스라엘 나라와 군대에 대해 자신의 권위를 보이고 사울의 과오에 대해서 수정할 결심을 한다. 그런데 시글락에 있는 다윗에게로 몰려온 사람들은 활로 무장하고 있었다(대상 12:2). 2. 어떤 사람은 활을 일종의 악기로 알고 그것으로 민요나 애가를 연주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서 이 노래를 지어 공적을 찬양하고 배우게 했다. “다윗이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노래라.”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가 지은 노래를 배우라고 한 것같이(신 31:19) 다윗도 자기의 노래를 배우라고 했다. 아마도 레위 족속에게 이 노래를 가르치라고 했을 것이다. 이 노래는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역사에 기록되었다. 야살의 책은 일종의 민족시집이었을 것이다(수 10:13). 그러므로 이 책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역사적인 시나 단편이었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노래일지라도 기록하여 보존하지 않으면 상실될 것이다. Ⅱ. 이 애가는 신성한 찬송도 아니고 제사 의식에 사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도 아니고 다만 인간적인 것이다. 그래서 시편에 들어있지 않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일반 시집인 야살의 책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 애가는 다윗에 대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한다. 1. 다윗은 네 가지 관점에서 영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1) 다윗은 그의 철천지 원수인 사울에게 매우 관대했다. 사울은 다윗의 장인이고 그의 왕이었으며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다. 그러므로 비록 사울에게 보복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선량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같이 한다. ① 다윗은 사울의 과오를 은폐시킨다. 그리고 비록 사울의 생애 중에 과오를 예방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 애가에 그의 과오를 나타낼 필요가 없다. 다윗은 우리에게 선행이란 모든 사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특히 세상을 떠난 사람이 범한 과오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좋은 것만 말하는 지혜를 배우자. 우리는 자신에게 해롭게 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기억에 남는 악한 생각은 악한 사람과 함께 장사지내 버리자(“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인간의 결점은 감추고 결함에는 너울을 씌우자. ② 다윗은 사울에 대해서 칭찬할 만한 것만 열거하여 칭송한다. 사실이 아닌 것은 칭송하지 않고 애국심이나 충성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한 칭송은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부당한 칭송은 오히려 비난이 된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칭송한다. 첫째,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21절) 존경해야 한다.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존경을 받고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있음을 뜻한다. 사울에게는 대제사장과 같이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레 21:12)고 말씀하신 기름이 부어졌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존경해야 한다. 왜냐하면 존경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기름으로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사울은 용사(19절)였기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 사울은 종종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무찌르고 승리하였고 “향하는 곳마다 이기었다”(삼상 14:47). 사울의 칼은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다”(22절). 사울은 그의 마지막 불명예와 실패로 인해서 그 이전의 성공과 공로가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비록 그의 태양이 구름 뒤로 졌다고 하지만 한 때 찬란하게 빛났었다. 셋째, 사울과 요나단이 뜻이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사울과 요나단은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더니……”(23절) 요나단은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고 사울도 요나단과 일치했다. 사울과 요나단이 함께 적을 추격할 때 그들보다 더 담대하고 용감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빨랐고 사자보다 강하였다”(23절).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전쟁터에서 강하고 용감했던 사울과 요나단이 궁전에서는 상냥하고 사랑스러워서 원수들에게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었고, 어떤 기질의 사람이라도 부러워할 희귀한 부드러움과 예리한 성품의 조화를 이루었었다. 이것은 사울과 요나단이 사랑과 조화로 대부분의 생애를 살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요나단은 충성스러운 아들이었고 사울은 인자한 아버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면서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고” 그들의 원수 블레셋 군대와 대항해서 싸우다가 함께 쓰러졌다. 넷째, 사울은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괴롭히던 나라를 무찌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더욱 빛나게 했다. 이 같은 왕이 있을 때에는 백성들도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사울은 특히 여인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24절). 이스라엘 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붉은 옷으로 화려하게“ 입을 수 있었다. (2) 다윗은 그의 절친한 친구 요나단을 칭송한다. 다윗은 요나단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사울과 대등한 찬사와 함께 요나단의 특성을 말한다. “오호라,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25절)라고 한 말을 19절과 비교하면 산(山)에서 죽은 것이 이스라엘의 영광임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요나단이 특별한 친구였음을 슬퍼한다. “내 형 요나단”(26절)이라고 말한 것은 요나단이 살아서 자기에게 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서도 아니고 자기가 왕위에 오르게 될 때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도 아니다 (다윗이 이 때문에 슬퍼한다면 이기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윗이 요나단으로 인해서 슬퍼하는 것은 요나단이 생전에 자기에게 베풀어 준 것에 감격해서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고 했다(26절). 그런데 이 아름다움이 끝나서 슬퍼한다. 다윗이 요나단의 사랑이 아름다웠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요나단은 다윗의 머리에 씌워질 왕관을 탈취하려 하지 않았고, 실상은 그의 적수(敵手)였음에도 극진히 사랑해 준 때문이다. 이 같은 사랑은 부부간의 사랑이나 정절을 능가하는 사랑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① 세상에서 참된 친구보다 더 기쁨을 주는 것이 없다. 우정은 어질고 좋으며, 친밀하게 사랑을 주고 받으며, 모든 참된 관심사에 도움이 된다. ② 참된 친구를 잃는 것보다 더 고통을 주는 것이 없다. 좋은 친구를 잃는 것은 자기 생명의 일부를 상실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허무하고 무상(無常)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것을 잃었을 때이다. 사람이 많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일수록 더욱 큰 슬픔을 안겨 준다. (3) 다윗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다윗은 “할례받지 못한 딸들” 과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정복할 것에 눈길을 돌리며 두려워한다(20절). 선량한 사람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비난에 매우 민감했다. (4) 다윗은 국가 안정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과 국가의 영광인 “용사가 엎드러졌다” 고 했다 (다윗은 이 말을 세 번 반복하며 슬퍼했다. 19, 25, 27절). 이로 인해서 백성들의 용기가 약화되었다. 국가적인 손실은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입힌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큰 손실을 회복시키는 도구로 쓰시기를 바라고 있다. 2. 다윗은 상상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경건한 사람이다. 다윗의 표현들은 탁월하고 공적을 귀중하게 생각했다. (1) 명예와 관련된 소문을 금지한 것은 현명하다. “이 일을 가도에도 고하지 말라”(20절). 다윗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이 블레셋 성읍에 전파되어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모욕할까 걱정하고 전에 블레셋에게 승리하여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삼상 18:7)하고 개선가를 부르던 일을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승리가 지금 역습을 당했기 때문이다. (2) 사울은 비극의 공연장인 길보아 산에 치욕을 남겼다. 다윗은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21절)하고 말한다. 이 말은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욥 3)하고 탄식한 욥의 말과 대등하다. 다윗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땅이 황무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슬픔의 울분을 길보아 땅에 하는 것이다. 다음 사항을 관찰하자. ① 땅이 비옥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다윗이 길보아 산을 향해 바라는 최악의 사태는 황무하게 되어 사람에게 무가치하게 되는 것이다.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은 비참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하고 저주하시니 그 무화가 나무가 말랐다. 그러나 길보아산은 이렇게 되지 않았다. 다윗은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황무하게 되기를 바랐다. 하늘이 “놋쇠”로 변하면 땅은 곧 무쇠로 변한다. ② 다윗이 “제물 낼 밭”이라고 하는 이 비옥한 땅이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 이 밭에서 나는 농작물들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 자랑이요 영광이다. 그러므로 그 농작물이 제물이 되지 못하는 것은 비참한 결과이다(요엘 1:9 참조). 농작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생명을 유지해서 영광 돌리는 것보다 못하다. 다윗은 왕의 피로 얼룩진 길보아 산에 우로(雨露)를 금하는 하늘의 형벌을 내리기를 바라고 있다. 사울은 이 애가에서 그의 시체를 장사한 야베스에서 보다 더 영광을 받는다(삼상 31:12, 13 참조). ==== ==호크마== 사무엘하 1장
1 사울의 죽은 후라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도륙하고 돌아와서 시글락에서 이틀을 유하더니 ㅇ사울의 죽은 후라 - 사무엘상 . 하를 연결해 주는 의미 있는 구절이다(Cahen, Wordsworth). 랑게(Lange)는 이 문구가 2장에 나온 용례처럼(2:1, 그 후에) 단순히 내용의 흐름을 바꾸어 주는 보편적 형식으로서 사무엘상. 하와 구분점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구약 역사서 중 상당수가 '...가 죽은 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음을 보아(수 1:1;삿 1:1;왕하 1:1) 이 문구를 사무엘상 .하를 구분하는 기준점으로 삼음은 적절하다. 더욱이 이 문구에 의해 내용면에서 폭군 사울 왕의 시대와 성군 다윗 왕의 시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을 보아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사무엘상. 하가 히브리 성경에서는 한권으로 되었을지라도 이 문구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은 매우 적절하며 또한 그 의미가 깊다. ㅇ다윗이...도륙하고 - 삼상 30:16-20의 사건을 가리킨다. 즉 앞서 다윗은 아기스와 함께 출전(出戰)하느라 잠시 시글락을 비워 둔 적이 있다. 그때 아말렉족이 시글락을 침입, 다윗의 백성을 약탈하였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다윗은 그 뒤를 추격, 아말렉 족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였던 것이다. ㅇ시글락 - 브엘세바 북서쪽 19.2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원래 시므온 지파에게 배당되었으나(수 19:5;대상 4:30) 사울 시대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다. 한편 가드의 아기스 왕은 다윗이 사울에게 뒤쫓기고 있을 때 시글락(Ziklag)을 다윗에게 주어 외부의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꾀하기도 했었다(삼상 27:6;대상 12:1,20). 즉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가드로 도망와 아기스 왕과 군사적 관계를 맺고 이 곳을 얻었던것이다. 덕분에 다윗은 지금까지 이곳을 그의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며 은거할수 있었다(삼상 27:8,9;30:26-30). 2 제 삼일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저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ㅇ제 삼 일에 - 다윗이 아말렉 족을 추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시글락으로 돌아온 지(삼상 30:16-20) 제 사흘째 되던 날을 가리킨다. ㅇ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 사울과 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레셋군을 맞이하여 교전(交戰)하던 격전지(삼상 31:1-7)에서부터 도망쳐 나온 것을 가리킨다. ㅇ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 이는 그 당시 근동 지방사람들이 자기의 극한 슬픔을 표시하던 한 방법이다(수 7:6;삼상 4:12).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에 사로잡혔을 때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던 한 표현법이다. 한편 그밖에도 고대 근동인들은 금식, 굵은 베옷을 입는것, 허리에 굵은 베를 띠는 것 따위에 의해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곤 하였다(창 37:34;삼상 31:13;왕상21:27;시 35:13). 그러나 본절에 나오는 이 사람의 행위는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위증(僞證)에 비추어볼 때(5-10절) 전적으로 거짓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ㅇ다윗에게...엎드려 절하매 - 이는 곧 다윗을 자신의 주(主)로 인정하는 경외와 복종의 자세이다. 즉 이는 이제 죽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차기(次期) 왕위에 오를 자가 곧 다윗임을 인정하는 행위에 다름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땅에 두 활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부복(俯伏)하는 행위는 당시 백성들이 자신의 군주나 지도자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던 자세이기 때문이다( 14:4;19:18;창 42:6;삼상 24:8;왕상 18:7;왕하2:15).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도 인간적으로 씁쓸한 감정을 떨칠 수 없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도 사울 휘하에서 충성을 다하던 자가 사울이 죽자(1절) 얼른 다윗에게로 도망쳐 와 이처럼 새로운 충성을 표하니 그의 약삭빠름과 간특(奸慝)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p.447). 3 다윗이 저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ㅇ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 이와 같은 보고를 올리고 있는 이 아말렉 사람은 아마도 이스라엘 군대에 고용된 용병(傭兵)이었을 것이다(8,13절). 그러기에 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고 사울마저 위기에 처하자(4-10절;삼상 31:1-6) 진영을 이탈, 잽싸게 도망쳐 나왔을 것이다. 4 다윗이 가로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너는 내게 고하라 저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서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중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ㅇ일이 어떻게 되었느뇨 - 아말렉 사람의 보고에 대하여 다윗이 좀더 구체적인 전황(戰況)을 묻고 있는 장면이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군이 어떠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기에 아말렉 용병이 다 도망쳐 나올 정도였는지 무척 궁금해한 것이다(Keil & Delitzsch). 한편 이 같은 다윗의 물음은 과거 아벡 전투의 결과에 대하여 엘리 제사장이 초조한 심정으로 묻던 질문과 꼭같다(삼상 4:16). 더군다나 이 두 경우 모두 1)이스라엘의 대전국(對戰國)이 블레셋이며 2)이스라엘군이 참패를 당한 점 3)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과거 아벡 전투 결과, 엘리에서 사무엘로 통치권의 전황이 이루어졌듯(삼상 4, 7장) 이제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결과, 사울에서 다윗에게로 통치권이 전환되게 된 사실(2:1-4)은 배후에서 역동적(dynamic)으로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즉 비록 인간의 역사는 실패로 끝나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가운데서 당신의 뜻과 계획을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성취시켜 나가고 계시는 것이다. ㅇ군사가...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 이미 삼상 31:1-7에서 자세히 언급된 상황이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대패(大敗)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사울에게 주셨던 예언(삼상 13:14;15:23,26,28;28:19)의 성취라는 의의를 지닌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5 다윗이 자기에게 고하는 소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ㅇ사울과...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하였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다윗의 심정이 역설적으로 드러나있는 반문이다. 즉 다윗은 아말렉 사람에게 "네가 직접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목격하기라도 했단 말이냐? 어찌 감히 네가 함부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고 하느냐?"는 의미로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다. 즉 그는 지금껏 자신을 박해하던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기는 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그 아들 요나단이 전사한데 대하여 충격과 당혹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6 그에게 고하는 소년이 가로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산에 올라보니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병거와 기병은 저를 촉급히 따르는데 ㅇ소년 - 이에 해당하는 '나아르'는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소년, 소녀, 청년, 처녀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용병(mercenary)으로 전투에 참여한 점으로 보아 여기서는 20세 전후의 청년을 가리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기에 공동번역 및 대부분의 영역본(KJV, NIV, RSV)들은 이를 '젊은이'(young man)로 번역하고 있다. ㅇ내가 우연히...올라 보니 - 아말렉 소년의 거짓말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 의하면 사울의 죽음을 목격한 자는 그의 '병기 든 자'로서 처음부터 사울과 함께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삼상 31:1-6). ㅇ길보아산 - 이스르엘 골짜기(the valley of Jezreel)에 위치한 해발 497m의 석회암 구릉이다. 삼상 31:1 주석 참조. ㅇ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 혹자(Clericus)는 이를 사울이 창을 사용, 자살을 시도하려 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의지하다'에 해당하는 '솨안'은 '기대다', '쉬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극도로 지친 사울이 땅에 꽂힌 자신의 창을 의지한 채 힘들게 겨우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봄이 낫다(Lange). 이는 당시 역경 중에 처해 있던 사울의 비참한 지경을 여실히 증거해 준다. ㅇ병거와 기병은 저를...따르는데 - 다시 한번 아말렉 소년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다. 왜냐하면 병거(chariots)는 평지에서나 사용 가능한 도구이지 산에서는 그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군이 블레셋군을 피해 길보아 산으로 도망친 이유도 저들이 병거를 타고서 추격해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삼상31:1). 그러자 그때 블레셋군은 병거나 기병대신 '활쏘는 자들'을 동원 이스라엘군을 추격했었다(삼상 31:3). 7 사울이 뒤로 돌이켜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ㅇ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 사울의 죽음과 관련된 아말렉 소년의 보고(6-10절)가 완전히 날조된 거짓 보고임을 드러내 주는 결정적 단서이다. 왜냐하면 할례받지 못한자들에 의해 죽임당할 것을 두려워했던 사울(삼상 31:4)이 스스로의 신분을 '아말렉사람'이라고 밝힌 소년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9절)은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9 또 내게 이르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ㅇ내가 고통에 들었나니 - 직역하면 '고통이 나를 붙잡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고통'에 해당하는 '솨바츠'는 간혹 경련, 어지러움증, 현기증 따위를 의미하기도 한다(De Wette, Hesenius, 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아 여기서는 뒤쫓아오는 적들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느낀데서 온 '공포'나 '두려움'을 가리키는 듯하다(Matthew Henry). 이처럼 심령의 평안을 잃어 버리고 죽음의 공포나 인간적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10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ㅇ엎드러진 후에는 - 여기서 '엎드러지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 '나팔'은 '쓰러지다'는 뜻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를 사울이 창에 엎드리어 자살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Matthew Henry).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이를 사울이 블레셋에게 '패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Lange,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ㅇ그 곁에 서서 죽이고 - 이처럼 아말렉 소년은 자신이 사울의 부탁을 받고서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상 31: 3, 4에는 사울이 블레셋군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자 절망하여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이같은 차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1) 성경은 성령의 영감(靈感)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러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라는 견해(Ewald). 2)사무엘상.하의 저자가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생긴 차이점이라는 견해(Wordsworth). 3)아말렉 소년이 다윗으로부터 상급을 받기 위해 사울이 자결한 사실을 숨긴 채 거짓 증거했기 때문에 생긴 차이점이라는 견해(Lange) 등이다. 이 중 첫번째 견해는 성경 영감설 자체를 부인하는 자유주의적 견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리고 두번째 견해는 사무엘상.하의 저자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동일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서로 달리 진술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번째 견해는 지금껏 우리가 살펴온 바와 일치한다. 즉 사울의 죽음에 관한 아말렉소년의 보고는 처음부터 거짓으로 일관된 위증(僞證)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도 세번째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Brown, Fausset, Jamieson, Rust,R.H.Pfeiffer). ㅇ면류관 - 원어 '네제르'는 일반적으로 '왕관'(crown)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선 사울이 이러한 왕관을 착용했을리는 만무하다. 아마 이는 사울의 투구에 둘러 쳐져 있던 좁다란 금띠로서 왕권을 상징하던 것인 듯하다. ㅇ팔에 있는 고리 - 사울이 팔에 차고 있던 고리는 고대 근동의 군지휘관들이 흔히 지니고 있던 장신구 중의 하나이다(민 31:50). 오늘날 발굴된 앗수르의 조각물들에도 보면 손목과 팔에 고리를 찬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Lavard, Wycliffe).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ㅇ자기 옷을...찢으매 - 2절 주석 참조. 12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ㅇ울며 금식하니라 - 금식 역시 극한 슬픔을 나타내던 한 방법이다. 2절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슬픔은 지극히 신앙적인 것이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왜냐하면 다윗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슬퍼했기 때문이다. 1)그의 동포들이 살육당했기 때문이다. 2)그 중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 요나단도 있었기 때문이다. 3)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서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 같은 이방인에게 짓밟혔기 때문이다. 4)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름부음 받은 왕 사울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과거 사울은 하나님의 성호(聖號)로 기름 부음 받은, 즉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받은 신정 국가의 왕이었다(삼상 10:17-24). 따라서 그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은 것은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1)[(주님은, 합력하는=순종하는) 사울을 통해 함께 그분의 신정왕국을 세우시려 하셨던 뜻을 접으신바.."(순종하지 않고 그 자신의 족다작 군주국을 추구하였기에) 내가 사울을 버렸거늘.."]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됨. 2)(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께 회개 고백함 없이 자살로 끝냄으로써) 사울과 그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권위가 떠남.... 이러한 까닭에 다윗은 사울에 대한 그의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즉 다윗은 사울 왕국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아 이방인들에게서 조차 능욕(凌辱)당한 사실을 못내 안타까와하며 슬퍼하였던 것이다. 13 다윗이 그 고한 소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ㅇ나는...아들이니이다 - 이와 관련 매튜 헨리(Natthew Henry)는 한 유대인 전설을 들려주고 있다. 그것은 곧 이 아말렉 소년이 사울의 마부였던 도엑(Doeg)의 아들이었다는 전설이다. 그에 따르면 사울은 자결하기 전에 자신의 면류관과 팔고리를 이 청년에게 건네 주면서 다윗에게 바치라고 명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일뿐 그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ㅇ외국인 - 이에 해당하는 원어 '게르'는 이스라엘에 임시로 체류하는 타국인(노크리 = 임시 체류 타국인 = 나그네/객)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정착, 야훼신앙 받아들여 그 사회에 동화(同和)된 이방인[=게르..갈렙이 대표적..오래 거류하여 함께 살되 여호와 신앙 받아들인, 동화된 이방인에게는 갈렙과는 달리 가나안 토지 소유권은 없었음(레위인도 없었음)]을 의미한다(출 22:21;23:9). 이들은 유대 후기에 완전한 시민들처럼 대우를 받았으며(겔47:22), 제 3의 십일조((매3년마다의 십일조는 용도를 따로 하여 레위인-객-고아-과부들에게 분배-공궤하도록 하셨음)를 분배받는 특권을 누렸다(신 14:29). 또한 이들은 여호와 종교로 개종할 경우 이스라엘인과 다름없이 율법에 대한 책임이 있었으며, 동시에 율법의 보호를 받았다(출 12:48,49; 레 16:29; 17:8,15; 18:26; 19:34; 24:22; 25:6; 신 1:16; 10:18; 16:11). 뿐만 아니라, 이들은 법소송에서 위대하신 영주, 곧 하나님께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레 24:22).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인과 같이 땅을 소유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분명 외국인이 갖는 불이익이었다. 때문에 아말렉 소년은 이러한 불리한 입지 조건으로 인해 다윗에게 아첨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Rust). 14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ㅇ저를 죽이라 - 이처럼 다윗이 아말렉 소년을 죽인 이유는 단순히 그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사울을 죽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1)그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받은 자를 죽인 것은 여호와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으며(삼상 24:11;31:4), 또한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는 자의 왕권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2)아말렉 소년은 이스라엘에 귀화(歸化)한 자로서 이스라엘의 법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절 주석 참조. 즉 그는 적어도 이스라엘 사회가 귀화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전심 전력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도 이스라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며 또한 그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사울을 살해하였으니 은혜를 악으로 갚은 셈이다. 따라서 다윗이 그를 처단한 것은 하나님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는 행위인 동시에, 여호와의 권위에 대적한 악을 제거한 공의로운 행위였다고 할 수있다. 즉 그는 이와 같이 공의로운 처단을 함으로써 은연중 신정 국가의 왕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16 다윗이 저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찌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ㅇ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영혼이 깃든 처소로까지 묘사되어 있다(창 9:4;레 3:17;17:11,14). 그러나 여기에서 피는 최고의 형벌, 또는 죄에 대한 책임 등 처벌을 의미한다. 그리고 머리는 개인의 인격과 육체, 생명 따위를 의미하는 대표 개념이다. 따라서 이 말은 '피를 흘린 그 책임이 바로 네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다. 즉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것이니"(창 9:6)라는 원리에 따라 다윗은 사울을 살해한 피의 대가를 아말렉 소년에게서 찾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1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ㅇ슬픈 노래 - 원어 '키나'는 '(장례 때에) 소리내어 울다'란 뜻의 '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이는 곧 죽은 자를 애도하는 노래를 가리키는 바 '애가', '비가' 또는 '조가'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 앞에서(3:33,34),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죽음 앞에서(대하 35:25) 지은 시들은 모두 이러한 '키나'이다. 18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ㅇ활 노래라 - 원문에는 노래라는 말이 없고 오직 '케쉐트', 즉 '활'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런데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애가'를 '활'이라고 명명한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사울이 죽게 된 이유중 하나가 블레셋인의 화살을 맞은 때문이다(삼상 31:3). 2)다윗을 위기에서 구해 준 것도 요나단의 활이었기 때문이다(삼상 20:17-42). 3)사울과 요나단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활쏘는자들로 유명했었기 때문이다(대상 8:40;12:2). 4)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윗의 노래 중에 '요나단의 활'이라는 말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22절). ㅇ야살의 책 - 여기서 '야살'은 '의로운 자'(righteous one)란 뜻이다. 그러므로 '야살의 책'은 '의로운 자의 책'으로 번역될 수 있다(Keil & Delitzsch, Lange). 이 책은 이곳외에 수 10:13에도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이 최소한 여호수아와 사무엘 이전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기원이나 그 정확한 내용도 알 수 없다. 다만 추측컨대 이는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나 큰 사건을 노래한 서사시를 수록했던 고대 문서였을 것이다(Glodschmidt, Keil). 19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ㅇ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 여기서 '산'은 '길보아 산'(mount Gilboa)을 가리킨다(삼상 31:1). 그런데 '너의 영광'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사울 및 요나단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의 용사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Ephrem).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영광'을 대표하는 사울과 요나단만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이 중 보다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견해는 후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절은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을 조상하여 지은 애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절내에서 '너의 영광'은 '두 용사'란 말과 서로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영광'에 해당하는 원어 '체비'는 '광채', '영광'이란 뜻 외에도 '가젤 영양'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수리아 역본(the Syriac Peshitta)은 이를 '가젤 영양'으로 번역하기 있기도 하다. 아마 이는 사울과 요나단의 민첩성 및 그 용모, 즉 가젤 영양과 같이 재빠르고 아름다운 용모를 염두에 둔 번역일 것이다(삼상 9:2; 10:23). ㅇ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 - 25, 27절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구절로 본 애가의 후렴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슬픔이 얼마나 극심한 것이었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20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찌어다 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할례 받지 못한 자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로다 ㅇ가드...아스글론 - 블레셋의 5대 성읍중 가장 대표적인 성읍들로서(삼상5:8,10;6:17) 그 땅 전체를 두 성읍으로 나타내는 시적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가드에 고하지 말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재난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뜻으로서 이는 훗날 하나의 격언이 되었다(미 1:10). 그런데 다윗이 이처럼 이스라엘의 비극을 원수에게 전하지 못하도록 금한 이유는 원수의 기쁨이 하나님의 백성의 슬픔을 배가 시키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p.290). ㅇ블레셋 사람의 딸들이 즐거워할까 - 여인들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용사들을 기쁨으로 맞이하며 춤과 노래로써 축하하는 것은 근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습(출 15:20;삼상 18:6)이다(Keil, 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다윗은 거민들과 수치와 슬픔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조시키는 가운데 더욱 애잔한 심정으로 애가를 읊고 있는 것이다. ㅇ할례 받지 못한자 - 특히 이 말은 블레셋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 되었는데(삼상14:6;17:26;31:4) '개 같은자'라는 의미를 지닌 경멸어이다(Pulpit Commentary). 아마도 이는 이스라엘의 선민(選民) 사상에서 기인된 것으로 오직 할례받은 자만이 하나님 안에서 존재 의의를 지닐 수 있다는 의식(意識)의 반영일 것이다(창 17:9-14). 21 길보아산들아 너희 위에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찌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바 됨이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ㅇ길보아 산들이...없을지어다 - 이는 자연에 대한 실제적 저주라기 보다는 길보아산도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함께 애도해야 한다는 시적 표현이다. ㅇ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 여기서 '제물'(트루마)은 거제를 의미한다(레 7:14, 32). 그런데 이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 떡'을 드리는 것이니(민 15:20) '제물 낼 밭'이란 곧 풍성한 첫 열매를 내는 비옥한 땅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그리고 본 절에서 다윗은 길보아 산이 메말라 박토가 되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함께 애도해 주기를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ㅇ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음 같이 됨이로다 - 옛날에는 적의 무기가 잘 미끄러져 빗나가도록 하기 위해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사 21:5)이 보토이었다(Lange, 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제 '사울의 방패가 기름칠도 않은 채 버려졌다'(공동 번역)는 것은 곧 사울은 전사하고 그의 방패는 피묻은 채 나뒹구는 비극적 상황을 의미한다(Keil & Delitzsch). 이와관련 랑게(Lange)는 논평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한 이스라엘의 현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다. 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ㅇ과거 사울과 요나단의 무용(武勇)을 회상하며 찬양하고 있는 구절이다. 개역 성경의 표현은 다소 그 뜻이 애매 모호한데 다음과 같이 공동 번역은 "요나단이 한번 활을 쏘면 사람들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고, 그 살에는 적군 용사들의 기름기가 묻고야 말았는데"라고 표현하여 그 뜻이 비교적 명쾌하다. ㅇ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 '화살은 피에 취하고 칼은 육체를 삼킨다'(신 32:42)는 것과 같은 시적(詩的) 표현이다. 즉 이는 과거 사울이 '천천'이나 되는 (삼상 18:7) 많은 적들을 살육하였음을 회상하고 있는 구절이다. 23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ㅇ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 - 이 말은 다윗의 친구 요나단 뿐만 아니라 초기에 유능한 지도자의 미덕을 보여 주어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사울(삼상 11:12,13)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처럼 다윗은 자기에게 악을 행한 정적(政敵) 사울의 단점은 숨기고 장점, 곧 존경할 만한 점들만을 이 애가에서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성격상 이 노래가 두 용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애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윗의 성품이 매우 관대한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장차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의 합당한 자격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의 고귀한 신앙 인격을 드러내 준다. ㅇ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 자식으로서 끝까지 아비를 버리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죽기까지 신하로서 충성을 다한 요나단의 효심과 충정을 기억케 해주는 구절이다. 즉 과거 요나단은 다윗과의 우정으로 인해 아비 사울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당하기까지 하였다(삼상 20:30-34). 그러나 요나단은 결코 그러한 사울을 배반치 아니하고 조국을 수호하다가 사울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삼상31:1-6). ㅇ독수리보다...사자보다 강하였도다 - 전쟁에 능하였던 위대한 용사나 영웅들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던 개념이다. 즉 독수리 같은 날쌤(욥 9:26; 잠 23:5; 함 1:8)과 사자와 같은 힘쌤, 용감함(신 33:22; 시 104:21; 호 13:8)은 고대의 용사들에게서 찾아 볼수 있던 특징이다(Lange, Keil & Delitzch Commentary). 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찌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ㅇ붉은 옷...금 노리개 - 아마 사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져온 전리품(戰利品)들일 것이다. 사울 생전에 이스라엘 여인들은 이러한 전리품을 하사받아 자신들을 치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는 사울의 통치 기간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안정과 번영을 시사해 준다. 25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ㅇ오호라 두 용사가...엎드러졌다 - 19절 주석 참조. 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ㅇ내 형 요나단 - 여기서 '형'에 해당하는 원어 '아흐'는 단순히 연령적으로 손위에 있는 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마치 친형제와도 같이 친근한 관계에 있는 자를 가리킬 때가 많다. 다윗이 요나단을 가리켜 '내 형'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도 바로 후자와 같은 의미에서이다. ㅇ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 NIV는 이를 '그대는 나에게 매우 친절했다'(you were very dear to me)로, RSV는 '그대는 나에게 심히 기쁨이 되었다'(very pleasant have you been to me)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생전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베풀어 주었던 은혜가 지극하였음을 의미한다. 사실 과거에 요나단은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도 개의치 않고 그를 자기 목숨처럼 위하며 사랑했었다(삼상 20 :12-17). ㅇ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 '기이하다'에 해당하는 '파라'는 '경이롭다', '불가사의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표현할때 사용되었다(출 15:11; 욥 5:9; 9:10; 시 17:7; 78:4; 139:14; 사 29:14; 슥 8:6).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것은 실제로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경이로울만치 자기 희생적이었으며 영원 불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ㅇ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말이다. 남녀의 결혼은 단순히 육체적 결합만이 아니라 영혼의 결합도 의미한다(창 2:24,25; 엡 5:22-33). 따라서 남녀의 영적 결합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도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은 이보다 승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저들의 마음이 통하고 그들사이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는 극찬의 말이 아닐 수 없다(삼상 18:1). 27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 ㅇ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 여기서 병기는 칼이나 창, 화살 또는 병거와 같은 실제적 병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이는 '싸우는 군인', 즉 사울과 요나단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블레셋과의 싸움에 스스로를 병기처럼 내던졌으나 불행히도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삼상 3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