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31
첨부파일 :

삼상31장

===사울과 요나단이 죽다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4.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이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고든 맥도날드**

7.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

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창21장33절, 삼상22장 참조]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

NASB]제31장

1.  Now the Philistines were fighting against Israel, and the men of Israel fled from before the Philistines and fell slain on Mount Gilboa.

2.  And the Philistines overtook Saul and his sons; and the Philistines killed Jonathan and Abinadab and Malchi-shua the sons of Saul.

3.  And the battle went heavily against Saul, and the archers hit him; and he was badly wounded by the archers.

4.  Then Saul said to his armor bearer, "Draw your sword and pierce me through with it, lest these uncircumcised come and pierce me through and make sport of me." But his armor bearer would not, for he was greatly afraid. So Saul took his sword and fell on it.

5.  And when his armor bearer saw that Saul was dead, he also fell on his sword and died with him.

6.  Thus Saul died with his three sons, his armor bearer, and all his men on that day together.

7.  And when the men of Israel who were on the other side of the valley, with those who were beyond the Jordan, saw that the men of Israel had fled and that Saul and his sons were dead, they abandoned the cities and fled; then the Philistines came and lived in them.

8.  And it came about on the next day when the Philistines came to strip the slain, that they found Saul and his three sons fallen on Mount Gilboa.

9.  And they cut off his head, and stripped off his weapons, and sent [ them] throughout the land of the Philistines, to carry the good news to the house of their idols and to the people.

10.  And they put his weapons in the temple of Ashtaroth, and they fastened his body to the wall of Beth-shan.

11.  Now when the inhabitants of Jabesh-gilead heard what the Philistines had done to Saul,

12.  all the valiant men rose and walked all night, and took the body of Saul and the bodies of his sons from the wall of Beth-shan, and they came to Jabesh, and burned them there.

13.  And they took their bones and buried them under the tamarisk tree at Jabesh, and fasted seven days.

 

==========

사무엘상 31장 (개요)
전 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아말렉을 매우 성공적으로 정복한 기사를 읽었다. 본 장에서는 사울이 정복을 당하고 포로가 되는 것 이상의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 두 가지 사건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게 하셨다. 다윗이 아말렉에 승리하던 바로 그날에, 아마,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쳐서 승리했을 것이다. 하나의 시대가 들어서면서 다른 하나는 물러서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와 하나님을 버린 자의 결말이 각각 어떻게 되는가를 볼 수 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울에 대하여 읽었을 때 그는 지옥으로부터 들려오는 비참한 운명의 소식을 듣고, 떨리는 손과 아픈 가슴을 안고 블레셋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하늘로부터 그런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미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사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보자.
1. 그의 군인들이 도망쳤다(1).
2. 그의 세 아들이 죽임을 당했다(2).
3. 그 자신이 부상을 당하고(3), 자기 칼로 자기를 찔렀다(4). 그의 병기 든 자도 죽고(5), 그의 모든 사람들도 죽었다(6).
4. 그의 나라가 블레셋에게 점령당했다(7). 그의 진영은 약탈을 당하고, 그의 시체는 아무데나 버림을 받았다(8). 그는 철저하게 멸망했다(9). 그의 시체는 구경거리가 되었고(10),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간신히 그의 시체를 거두어 왔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은 이와 같이 멸망한다.
----------
사울의 죽음(삼상 31:1-7)
보복의 날이 돌아왔다. 사울은 잘못 살려 준 아말렉 사람들의 피와 그리고 또 더욱 잘못 흘리게 한 제사장들의 피값을 치러야만 되었다. 그가 만일 다윗의 피를 흘리게 했었다면 그는 더욱더 그 값을 치러야만 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망할 때가 되었으며, 다윗이 예견한 대로, 전장에 들어가서 망할 날이 되었다(26:10). 와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보라.
Ⅰ. 사울은 그의 곁에 있던 그의 군사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1절). 블레셋 군사의 숫자가 많았는지, 또는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잘 지도를 받았는지, 또는 다른 이점들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기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공격을 감행한 것을 보면 그들이 보다 더 활기가 있었다고 보인다.그들은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싸웠으며, 이스라엘은 많이 도망치고 살육을 당했다. 그들의 주력 부대의 질서가 무너지고, 많은 군사들이 살육을 당했다. 아마 그들은 다윗을 추격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울을 따르며, 사울의 범죄를 도와주던 사람들은 그보다 앞서 멸망했으며 그의 재난에 동참했다.
Ⅱ. 사울은 그의 아들들이 그의 앞에서 죽는 것을 보았다. 승승장구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왕과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치열한 공격을 가했다. 그의 세 아들들은 그의 곁에 있었다. 아마 그의 세 아들은 매우 비참하게도 그의 눈 앞에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그들은 그의 가족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몸을 지켜 주는 호위병들이었기에 사울은 이제 자기가 죽을 차례가 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무서워 떨었을 것이다.
그의 죽은 아들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2절). 그런데 매우 슬프게도 거기에 요나단의 이름이 들어 있다. 그는 매우 지혜로웠으며, 용감했고, 또 선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 사울은 다윗의 원수였지만 그는 다윗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도 다른 아들들과 함께 죽었다. 아버지에 대한 의무가 그를 집에 머물게 하지 않았고, 싸움이 벌어졌을 때 뒤에 물러서 있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는, 그가 결코 그의 가족들의 죄악에 함께 물들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의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라고 말한 엘리바스의 관찰이(욥 4:7) 여기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요나단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요나단의 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1. 하나님은 이로써 사울이 죽는 순간까지 그의 괴로움을 더하여 주셨고, 그의 집에 내리시겠다고 하신 심판을 완전히 실천하셨다. 사울의 가족이 멸망해야 한다면, 요나단도 그의 가족의 일원인 만큼 그들과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2. 하나님은 이로써 왕관으로 가는 다윗의 길을 보다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열어 주셨다. 비록 요나단 자신은 기쁘게 자기에게 속했던 모든 칭호와 권리를 다윗에게 양도했겠지만(이 점에서 우리는 조금도 요나단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마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붙들고 사울의 집을 계속 존속시키고자 할 수 있으며, 또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윗의 길이 더디게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싸움에 나갈 만한 나이가 못 되어 집에 머물러 있다가 도망칠 수 있었던) 이스보셋도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물며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그들의 호의를 한 번도 잃지 않았던 요나단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친구들이 있었겠는가? 열국과 같이 왕을 가지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더욱이 요나단과 같은 사람에게 왕관이 이어질 때, 그 왕관이 정통의 가계를 따라 이어지기를 열심히 원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윗이 굉장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만일 요나단이 사람들을 설복하여 자기의 모든 권리를 다윗에게 넘겨주었다고 하여도, 그것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웠건마는, 요나단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는 말이 들려질 뻔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요나단의 죽음이 다윗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로 하여금 자신의 약함을 생각하게 하며, 그의 등극의 길을 용이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다윗에게 큰 이점을 가져다 주었다.
3. 하나님은 이로써 선과 악의 구별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 되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모든 일은 만인에게 똑같이 임한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보고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또는 영원한 상태를 판단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죽음은 “의로운 자나 악한 자에게 마찬가지로 임하기” 때문이다.
Ⅲ. 사울 자신도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부상을 입고, 그 자신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활 쏘는 자가 사울을 멈추었다(3절). 그리하여 그는 싸울 수도 그리고 뛰어 달아날 수도 없게 되었으며, 꼼짝없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붙잡히게 되었다. 이처럼 파멸이 점점 그에게 닥쳐오며 그로 하여금 자신의 죽음을 느껴가며 죽도록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는 아래와 같은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
1.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보다는 그의 부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를 원했다. 그것은 그들이 삼손을 학대한 것처럼 자기를 학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오 불쌍한 사람이로다. 그는 자기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았을 때, 자기의 영혼을,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맡길 것을 염려하지 않고(전 12:7), 자기의 육체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자 하는 염려만을 했다. 그는 그가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죽었다. 거만하고 질투가 많았으며, 그리고 자신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다 주었다. 사리를 올바르게 판단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떻게 죽는가 하는 문제는,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와 비교해 볼 때 아무것도 아니다.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않는, 마음이 번뇌한 자는”(욥 3:20, 21) 참으로 불쌍한 자이다. 더욱이 가룟 유다와 같이, 하나님의 자비를 완전히 잃어버림으로써, 그들 속에 있는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그들 앞에 있는 지옥으로 뛰어드는 자들은 더욱 불쌍한 자들이다.
2. 그러나 사울은 그러한 혜택을 입지 못하게 되자, 부끄러움을 면하고자 하여 자신을 죽이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을 더욱 가증한 죄로 빠지게 했고, 그의 이름 위에 “자살자―felo dese라는 영원한 치욕을 남겨 놓았다.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중상을 입은 요나단은 끝까지 그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명예롭게 죽었다. 그러나 사울은 어리석은 죽음을 죽었고, 비겁한 죽음을 죽었다. 그는 거만을 떠는 바보였으며, 비루한 비겁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에게 소망도 가지지 못하며, 인간으로서의 이성이나 이스라엘 사람으로서의 신앙도 가지지 못하며, 더욱이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군인으로서의 기백도 가지지 못한 자로서 죽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자.
그의 병기를 는 자는 그를 찌르지 않고, 그의 청을 거절했다. 그것은 참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종이라 해도 그 주인의 욕심이나 어떤 감정을 위한 노예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사울을 찌르지 아니한 이유는 “그가 심히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죽음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진해서 즉시 자기의 칼에 스스로 엎드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주인을 왕으로서 공경하기 때문에 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아니면 아마 자기의 손이 떨려서 감히 단칼에 그를 죽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를 더욱 괴롭게 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Ⅳ. 사울을 죽이기를 거절한 그의 병기 든 자는 그와 함께 죽기는 거절했지만,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죽었다(5절). 이것은 사울의 죽음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왜냐하면 사울의 자살은 자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그의 부하도 그의 나쁜 본을 따서 같은 죄를 범하게 했기 때문이며, “자기의 죄로 자기 혼자만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다 사람들은 그때의 사울의 무기를 든 자는 도엑이었으며, 그는 제사장들을 죽인 공훈으로 그런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의 악독이 자기 자신의 머리로 돌아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영영히 멸하실 것이라”고 예언한 바가 있다(시 52:5).
Ⅴ. 사울의 군대가 패주한 것을 보고 이스라엘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리하여 그 이웃에 있던 도성의 사람들(요단 건너편이라고 읽을 수 있는 도성 사람들)이 자기 도성을 버리고 도망하였으며, 블레셋 사람들이 한동안 그곳에 거했다(7절). 이처럼 사울은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 나라에 커다란 비극을 가져다 주었다. 만일 다윗이 그 땅을 회복하지 못했다면 그 땅은 그대로 할례받지 못한 자의 손에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사무엘을 거역하고, 얻어낸 왕이 어떤 왕인가 하는 것을 사울은 잘 증명하여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사울처럼 여전히 악을 행하였다. 그리하여 선지자가 그들에 대해 예언한 것과 같이 “그들과 그들의 왕이 다 멸망하였다”(12:15). 오랜 후에 이 일에 대해 행한 언급이 한 곳에 나타나 있다.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다시 말해서 “그는 살아도 죽어도 너희에게 재앙이 되었노라. 너희는 이제 다시는 왕을 기대할 수 없노라”(호 13:10).
---------
사울의 장(삼상 31:8-13)
성서는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영혼이 그들의 사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비밀에 속한 것은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성서는 다만 그들의 시체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게 크게 모욕을 당했다. 전쟁이 끝나고, 블레셋 사람들이 피로를 푼 후에, 죽은 자들을 벗기려 왔다가, 죽은 자들 속에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의 시체를 발견했다(8절). 사울의 병기 든 자는 아마 그의 주인의 명예를 위해 그를 본받아 자살을 함으로, 이로써 자기가 얼마나 사울을 사랑했는가를 보여 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에 의해 일을 처리했다면, 그는 그런 어리석은 식의 찬양은 중지하고, 살아남은 자로서 먼저 죽은 자에 대한 그의 도리를 다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밤 사이에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옮겨다가 정중하게 장사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사람은 (능히 지혜롭게 할 수 있었던 일을) 어리석고 잘못된 생각 때문에 어리석게 명예를 주고받았다.
아니 사울은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않았다면 거기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두려워서 자살을 한) 추적자들은 그 다음날에야 사울이 있는 곳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멸망시키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혼미하게 하고, “무서움으로 인하여 쇠잔하게 만드신다”(욥 18:5 이하, 사울이 왕으로 선출될 때도 그 키가 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돋보였는데, 이제 피묻은 땅 위에 쓰러져 있을 때도 그 키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용이하게 구분되었다). 사울의 시체를 발견한 블레셋 군사들은 이스라엘의 왕관을 쓰러뜨린 것을 크게 기뻐했고, 살아 있을 때는 무서워 떨던 사람에 대해 그 죽은 시체를 모욕함으로 자기들의 야만적인 복수심을 만족시켰다.
1. 그들은 사울의 머리를 베었다. 그들이 만일 골리앗의 목이 달아난 것을 복수하고자 했다면, 실제로 골리앗의 목을 벤 다윗의 목을, 그가 그들의 나라에 있었을 때 베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왕관을 쓰고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자기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을 욕보이며 또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도 머리 하나만큼은 더 큰 사울(은근히 그것을 자랑했던 사울)의 머리를 잘라 그 키를 작게 함으로 그를 모욕하고자 그렇게 했을 것이다.
2. 그들은 사울의 갑옷을 벗기었다(9절). 그리고 그것을 전승기념품으로서 그들의 여신 아스다롯의 신전에 두기 위해 보냈다(10절). 그리고 (여기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역대상 10장 10절에 보면 그들은 사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매달았다. 이처럼 그들은 그들의 승리가 참된 하나님에 의해 이룩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헛된 신의 헛된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그 명예를 그들의 신들에게 돌렸다. 이스라엘이 여러 번 그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그릇 섬겼던 아스다롯 우상이 이번에는 그들을 정복했다.
3. 블레셋 사람들은 온 나라에 급사를 보내어 온 백성이 그들의 신전에 게시된 그들의 승리(9절)를 쳐다보고 기뻐하며, 그들의 신에게 감사를 돌리게 했다. 다윗은 “이 일을 가드에도 고하지 말라”(삼하 1:20)고 하매 이 일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다.
4.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리고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의 성벽에 못 박았다(12절). 그 성읍은 길보아와 멀지 않으며, 요단강과 가까운 지경에 있다. 여기까지 시체가 끌려 왔으며, 사나운 새들의 밥이 되도록 쇠사슬에 묶여서 매달리게 되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모욕당하기가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왕의 시체를 그렇게 다루는 법은 없었다. 더욱이 모욕당하기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더욱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죄를 지으면서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깡그리 이를 잃어버린다.
다윗이 그들을 정복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때까지 그들의 거만이 어디까지 올라갔었는가를 보라. 이제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죽이자, 그들은 이스라엘 땅이 영원히 그들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그들은 그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완성하신 다음에는 다시 그들에게 대해서도 당신의 일도 완성하신다(사 10:6, 7 참조).
Ⅱ.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용감하게 그들의 시체를 구출했다. 벧산과 길르앗 야베스 사이에는 요단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요단강은 얕은 여울을 통해서는 능히 건널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성읍의 용감한 장사들은 대단한 모험을 감행했다. 그들은 밤에 요단강을 건너가 그 시체들을 가지고 돌아와서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 주었다(11, 13절).
1. 그들은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 땅의 명예를 위한 공동적인 관심에서부터 우러나와서 이 일을 행했다. 그들은 그들의 땅이 시체로 말미암아, 더욱이 왕의 시체로 말미암아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으며, 무할례자에 의해 그처럼 모욕당하는 것을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2. 또 사울에 대한 특별히 고마운 생각 때문에 이 일을 행했다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울이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그 땅을 암몬 사람들의 손에서부터 열심을 다해 그리고 신속히 구출해 준 일이 있기 때문이다(11장). 그들의 행동은 관대한 정신의 표현이며, 그처럼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가 매우 곤란할 때 그것을 돌려 주었다는 데서 모든 선한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보다 일찍이 그들의 용감한 장사들을 사울에게 보내 주었다면 블레셋과 싸우는 사울에게 큰 힘이 되었으며, 그를 매우 잘 도와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의 시대는 끝장이 나도록 되어 있었으며, 이것만이 그들이 사울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의 일이었다.
우리는 사울의 죽음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사무엘이 죽었을 때와 같이(25:1) 애곡했다는 기사를 읽을 수가 없다. 다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만이 사울의 죽음 앞에서 그에게 명예를 돌려 주었다.
(1) 그들은 향내가 나도록 시체를 위해 향을 살랐다고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다(12절).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라고 나온 아사의 장례식의 경우와 같이(대하 16:14), 흔히 죽은 친구와 더욱이 왕을 위해서 향을 사르는 습관이 있었다. 아니면 살이 곪아 썩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살을 불태웠다(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한다).
(2) 향을 다 사른 뒤에 그들은 그 시체를 (혹은 그 몸을 불살랐다고 하면 그 뼈와 재를) 어떤 나무 아래에 묻었다. 그 나무는 묘석 또는 기념비의 구실을 했다.
(3) 그들은 “칠 일을 금식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레 동안 매일 저녁까지 금식했다. 이처럼 그들은 사울의 죽음과 이스라엘의 현재의 어지러운 상태를 한탄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그들의 무너진 나라가 다시 세워지기를 금식하는 가운데 기도했을 것이다. 비록 “악인이 죽으면 환성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인간성은 우리로 하여금 시체 앞에서, 더욱이 왕의 시체에 대하여 상당한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이 책은 사무엘의 출생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제 사울의 장례로 끝맺게 되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사건을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이 제공하고자 하는 명예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명예를 취하여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
===호크마===
사무엘상 31장
1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ㅇ블레셋 사람들이 쫓아 미쳐서 - 여기서 '쫓아 미쳐서'(다바크)는 '연합하다', '붙다'란 의미로서(창 2:24;신 28:60), 곧 '바짝 달라붙다'  혹은 '바짝 추격하다'란 의미이다(삿 20:42;삼하 1:6). 따라서 이스라엘 군사들은 완전히 분산되고,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은 그들의 아무런 경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Klein). 또한 이때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도 각기 흩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ㅇ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한 사울의 세 아들의 이름은 역대상 10:2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여기의'아비나답'은 14:49의 '리스위'와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대상 8:33;9:39에 언급된 사울의 네 아들 중 네번 째의 '에스바알'은 사울 사후(死後) 아브넬에 의해 잠정적으로 사울의 후계자로서 옹립되었던 '이스보셋'이다<삼하 2:8>. 한편, 우리는 여기서 특별히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한(18:1)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요나단은 (1) 사울의 아들이었으나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었던 사울과는(18:29)대조적으로 참 사랑과 우정을 나눌 줄 아는 자였으며(18:1-4:20:17), (2) 매우 지혜롭고 용감한 군인이었고(14:6-14), (3) 훌륭한 신앙 인격을 갖춘 의인이었으며(19:1;20:30-42), (4) 왕위에 집착하지 않는 겸손의 인물이었다(18:4;23:17). 그러한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패역한 사울과 운명을 같이한 사실은 다음의교훈들을 준다. (1)부친의 사악한 죄 때문에 그 자손들이 고난을 당하게 된다(겔 18:2). (2) 의인의 소망과 생명은 이 세상에 국한되지 않고 오는 세상의 참되고 영원한 삶에 있다(잠 14:32). (3) 사악한 부친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한 효성이 아름답다.
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ㅇ사울이 패전하매 -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 전쟁이 사울에게 무겁게 되었다'란 뜻이다(왕상 12:10;대하 10:14;애 3:7). 이것은 결국 (1) 전황(戰況)이 지극히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2) 불리한 전화으로 인하여 극도로 낙심하게 되는 것 등을 말한다(Klein, Lange).
ㅇ활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 여기서 '따라 미치다'(마차)는 '발견하다', '만나다'란 의미이다(창 36:24;신 22:23). 즉 블레셋 군대의 궁수(弓手)가 이스라엘의 왕 사울을 찾아 발견하고는 맹렬히 추격했다는 뜻이다. 한편 '활쏘는 자'는 문자적으로 '활을 가진 자'란 뜻이다.
ㅇ중상한지라(야헬 메오드) -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즉 (1) '야헬'을 '고통하다' 혹은 '근심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훌'에서 온것으로 보고, '매우 떨었다'로 해석하는 견해(Keil, Smith, Klein, Lange,Wigram), (2) '야헬'을 '다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할랄'에서 온 것으로 보고,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매우 많이 다쳤다'로 해석하는 견해(Hertzberg, Davidson) 등이다. 그런데 본 단어 '야헬'은 신명기 2:25에서는 '근심하니라'로 번역되었으며, 또 그렇게 번역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위의 두 견해 중 (1)의 견해가 타당하다. 그러나 위의 견해 중 (2)의 것이 맞다고 보는 학자들은, 사울의 죽음을 다윗에게 알린 아말렉 소년의 증언 때문에 그같은 판단을 하는 듯하다. 즉 그 아말렉 소년은, 사울이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알고' 사울을 죽였다고 말했던 것이다(삼하 1:10). 그러나 그 아말렉 소년의 증언은 본장의 언급 및 대상10:1-6의 언급과는 전반적으로 상층되는 위증(僞證)임이 분명하다(삼하 1:1-10). 한편 여기와 병행 구절인 대상 10:3에서는 그 단어가 위의 (1)의 견해와 유사하게 '군급하여'로 번역되어 있다.
4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ㅇ31:4 할례 없는 자들 - 이 말은 할례의 징표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창 17:9-14)이라는 선민(選民) 사상에 근거한 말로, 곧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과 계약 관계하에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말이다(14:6;17:26,36).
ㅇ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 여기서 '모욕할까'(히트알렐루)는 '더럽게 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알랄'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더럽게 할까'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말은 사울을 죽인 후에 그 시체를 욕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남에게 가혹한 잔악 행위를 가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곧 블레셋이 이전에 삼손을 사로잡아 그를 욕보였던것처럼(삿 16:21-27), 블레셋 군대가 사울을 사로잡아 학대하고 욕보이는 행위를 가리킨다(삿 19:25). 그러므로 사울은 그들이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하는 것을 기피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ㅇ병기 든 자가 두려워하여 행치 아니하는지라 - 병기 든 자의 이같은 처신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즉 (1) 자신은 왕의 생명을 끝까지 보호하는 책임을 맡은 자로서, 기호를 봐서 어떻게 해서는지 그긴박한 상황(3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며, (2)사울에 대하여 다윗이 가졌던 생각처럼(24:6) 기름 부은 바된 왕에게 감히 칼을 댈 수 없다고 판단한 결과였을 것이다
ㅇ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 칼 끝을 위로 하여 칼을 세운 후 그 위에 자신의 몸을 덮친 행위를 말한다. 한편 생명에 대한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자살은 결코 흔치 않았으나, 여기 사울의 자살행위는 그의 비극적인 종말을 더욱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5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ㅇ31:5 병기 든 자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함께 죽으니라 - 병기 든 자의 이같은 행동은 (1) 자신이 모시던 상전의 뒤를 라다라야 한다는 소박한 충성심, (2) 자신의 주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자살토록 방치한 혐의로 인하여 비록 자신이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처형을 변치 못할 것이라는 염려(삼하 1:14, 15), (3) 사울의 생각처럼 '할례 없는 자'에 의해서는 죽음을 당하지 않겠다는 히브리적 종교심 등의 이유로 이뤄졌을 것이다. 후일 유대 전승은, 여기서 사울의 병기 든 자는 에돔 사람 도엑이며, 그가 자살한 칼은 놉  제사장들은 쳐죽인 바로 그 칼이라고 하나 (22:18), 그러한 전승의 신빙성은 없다(Smith)
6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ㅇ그의 모든 사람 - 역대상 10:6에서는 '그 온 집'으로 말한다. 그러나 여기의 '그의 모든 사람'은 이 어구 앞에 '역시' 혹은 '또한'이란 의미를 갖는 '감'이라는 접속사가 있다는 점에서, 본 어구 앞에 언급된 사울의 병기 든 자와는 다른 무리들 즉 사울의 모든 근위(近衛) 병사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여기의 '모든'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그 전투에서 사울의 군대가 완전 섬멸됐다고 볼 수는 없다. 아울러 길보아 전투에서 사울의 가문이 완전 멸절된 것 또한 아니다. 사울의 사촌이다 군대 장관인 '아브넬'(14:50)이 살아 남았고, 아마도 전투에 참여치 않았을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에스바알, 삼하 2:8;대상 8:33;9:39)도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사울 사후에도 왕가(王家)의 명맥을 잠시 유지해 갔다.
7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ㅇ골짜기 저편에 있는 아스라엘 사람 - 여기서 '골짜기'는 사울이 전사한 길보아 산의 북동쪽 기슭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이스르엘(Jezreel) 골짜기'(29:1)를 가리킨다. 그리고 '저편'(에베르)은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지파 등의 주민들이 사는 갈릴리 지역을 가리킨다. 당시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분명히 비전투 요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의 군대와 합류치 못한 까닭은, 바로 이같은 연합을 방지하기 위하여 블레셋의 군대가 이곳 사람들과 사울의 군대 사이인 '수넴'(28:4)에 진을 쳤기때문이었다(Aharoni).
ㅇ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 - 요단 서편에서 볼 때 '요단 건너편'은 '요단  동부 지역'(Transjordan) 전체를 가리킨다(Smith). 그러나 여기서는 전투 장소인 길보아 산의 맞은편 지역인 므낫세 반 지파의 거주 지역만을 가리킨다. 한편 길보아 산의 패배 소식은 이곳까지 급속히 퍼져나간 것 같고, 따라서 이들은 보다 안전한 지역으로 남하(南下)했던 것 같다.
ㅇ이스라엘 사람들 -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사울의 군사들로서, 이들은 주로 유다지파, 베냐민 지파, 에브라임 지파 등에 속한 백성들일 것이다.
ㅇ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 이는 길보아 전투의 패배와 사울의 죽음이 이스라엘 온 땅에 큰 공포의 분위기를 몰고왔음을 말해 준다.
ㅇ블레셋 사람들이 거기 거하니라 - 여기서 '거기'는 갈릴리 주변 지역을 가리킨다. 이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요단 강 동쪽 길르앗 땅에 있는 '마하나임'(Mahanaim)에서 왕위에 올랐던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삼하 2:8,9). 또한 다윗이 사울의 사망 직후 유다 지역에서 왕위에 오른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유다 지역도 당시 블레셋의 공략으로부터 점령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삼하 2:1-4).
8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ㅇ그 이튿날 -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한 그 다음날을 말한다.
ㅇ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 여기서 '벗기러'(파솨트)는 일반적 의미의 약탈 행위를 가리킨다(27:10;30:1;삿 9:33;대하 28:18). 그런데 이 단어는 주로 의복을 벗기는 행위를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된다(욥 22:6;미 2:8). 아마도 이것은 그 당시 옷이 모든 약탈물 중 가장 귀한 것이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수 7:24).
ㅇ사울과 그 세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 의복, 무기, 식량 등 전리품을 획득하러 왔다가, 시체들 중에서 발견된 이스라엘 왕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의 주검은 블레셋에게 있어 가장 가치있는 노획물이었을 것이다.
9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ㅇ사울의 머리를 베고 -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큰 승리를 증명키 위한 증거물로 삼기 위한 행동이었다(17:57). 이같은 행위는 고대의 전쟁에서는 일종의 관습이었다(Smith).
ㅇ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 이는 사울의 머리를 벤 중요한 목적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울이라는 인물은 자신들에게 너무도 뼈아픈 패배를 안겨준 장본인이라는 점에서(14:47;17:52;18:6), 엄청난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사울의 죽음은 그들에게 대단한 기쁨을 안겨줄만한 큰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당  에게 전파한다'는 것은, 사울의 '머리'와 '갑옷'을 자신들의 신에게 봉헌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10절;대상 10:10). 
이같이 적으로부터 빼앗은 대단히 중요한 전리품을 자신의 신에게 봉헌하는 행위는 (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언약궤를 다곤(Dagon)신당에 바친 경우<5:2>, (2)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여호와의 성소에 보관한 경우(17:54;21:8,9)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신당'(베트 아차베헴)은 문자적으로 '우상들의 집'이란 뜻이다. 그리고 '아차베헴'은 '새기다', '조각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아차브'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베트'는 형태는 단수이지만, 복수(複數)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Lange, 출 6:14). 결국 이것은, 블레셋 땅에는 많은 신당(神堂)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10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ㅇ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 이같은 블레셋 사람들의 행위는, 자신들의 신(神)에 대한 숭배와 봉헌의 성격을 띤다(9절;5:2). 즉 블레셋 족속은 자신의 신들이 자신들에게 금번 길보아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함으로써, 바로 이같은 봉헌 행위를 한 것이다. 한편 '아스다롯'(Ashtaroth)은 '아세라'(Asherah, 신 7:5), '아낫'(Anath) 등과 더불어 가나안 3개 여신 중 하나로서, 전쟁과 풍요의 여신(女神)이다(삿 2:13주석 참조). 그리고 '아스다롯'이란 복수(plural)형태인데, 성경 용례상 이 '아스다롯'이 복수로 사용되는 것은 이것이 항상 '바알'과 함께 여호와의 신적 저주의 대상으로 선포되어지는 문맥에서이다(7:3, 4;12:10;삿2:13;10:6). 반면에 '아스다롯'의 단수형은 '아스타르테'(Ashtarte)로서, 시돈의 여신인 '아스토레트'(개역 성경에는 '아스다롯'으로 표기되어 있다)와  동일시된다(Klein,왕상 11:5,33;왕하 23:13). 이 사실은 곧 블레셋 족속들이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에 깊이 동화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그리고 여기 '아스다롯의  집'은 '아스글론'에 있었던 고대의 유명한 신전(神殿)으로 추정된다(Herodotus).
ㅇ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 여기서 사울의 '시체'는 '그 머리를 다곤의 묘(廟)에 단지라'라는 역대상 10:10의 언급을 통해서 볼 때, 머리가 없는 몸뚱이 뿐의 시체였던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12절의 언급을 통해서 볼 때, 이때 사울의 세 아들들의 시체들도 함께 성벽에 못박혔음도 분명하다. 그럼에고 불구하고 여기서 본 저자가 오직 사울의 시체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은, 오직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않음으로 인해 죽어서까지 수치를 당하는 처참한 자리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Hertzberg, Keil). 
한편 '벧산'은 요단 골짜기 근처 즉 이스르엘 골짜기의 동쪽 끝부분으로, 요단 강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6.5km 지점, 그리고 갈릴리(긴네렛, 디베랴) 바다로부터 남쪽으로 약 19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당시 블레셋에 의해 점령된 성읍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성벽에 못박은 행위와, 이전에 골리앗이 다윗의 시체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줄 것이라고 그를  위엽했던 일(17:44)과는 어떤 상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고대 문헌에 따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은 블레셋 정복 후 블레셋의 에그론 관리들의 시체를 그 성읍 주위의 기둥 위에 매달아 놓기도 했었다고 한다(Pritchard). 바로 이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자신들에 의하여 패배된 적장(敵將)의 시체를 성벽에 못박는 등 모욕하고 또한 공개적으로 노출시키는 행위는 (1) 상대국 백성들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안겨주며 (2) 자신들의 승리를 공개적으로 확증하려는 당시의 전쟁 관습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비참한 사건은 개인 사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 행한 그의 끈질긴 반역 행위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세속적인 왕을 원했던 그 반역 행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수모요 치욕이라 할 수 있다 (8:4-8,19,20).  
11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ㅇ길르앗 야베스 거민 - '길르앗 야베스'(Gilead-Jabesh)는 갈릴리 바다 남쪽 약30km 지점에 위치한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이다(수 17:5,6). 이곳은 사울의 즉위 초기에 '암몬 사람'들로부터 침공을 받았었다(11:1). 그때 사울이 '베섹'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암몬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길르앗 야베스 거민을 구원했었다(11:8-11). 그러므로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과거 사울이 자신들에게 베풀어준 이 은혜를 기억한 것이다.
ㅇ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 -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에서 목을 벤 후, 목은 다곤의 신당에 매달고(대상 10:10), 나머지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아 사울의 시체를 심히 욕되게 한 일을 말한다.
12 모든 장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ㅇ모든 장사 - 여기서 '장사'(이쉬 하일)는 '남자'와 '유력'(有力)이 합성된 말로서, '기드온'(삿 6:12)과 '입다'(삿 11:1)등에게 적용되었다.
ㅇ일어나(쿰) - 이는 문자적 의미의 일어남을 의미치 않는다. 보다 함축적인 의미로서, 특별한 행위를 실천하기에 앞서 거기에 대한 강한 결단의 태도를 보여주는 관용적인 단어이다. 
한편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의 이같은 결단은, 과거에 자신들이 암몬 족속들로부터 침공당하여 극히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11:1-3), 사울의 군사적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암몬 족속의 위협으로부터 구원받았던 사실을 기억한 연고이다(11:11). 즉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사울에게 신의(信義)를 지키고 보은 (報恩)하기 위하여 블레셋 족속들에게 능욕당하고 있는 사울의 시체를 취하여 오기로 결단을 한 것이었다.
ㅇ밤새도록 가서 - '길르앗 야베스'에서 사울의 시체가 못박혀있던 '벧산'까지는 약 21km 정도의 거리이다. 그러나 요단 강 계곡 등 길르앗 야베스로부터 벧산까지의 험한 지형적 요인을 감안한다면, 그때 그 거리를 최소한 약 5시간 정도 이상 행군했을 것이다. 특별히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밤을 택하여 그같은 일을 결행한 까닭은, 말할 나위없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망을 뚫기 위함이었다(28:8).
ㅇ불사르고(사라프) - 왜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의 시체를 화장(火葬)하는 장사 방식을 택하였는지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즉 (1) 목이 잘리는 등 매우 손상된 시체였기 때문에, 매장(埋葬)과 같은 일반 장사법을 사용할 수 없어서 이같이 화장했다는 견해(Lange, Keil), (2) 매장과 같은 일반적인 장사법을 사용할 경우, 블레셋 사람들이 재침공하여 그 시체를 파내고 다시 모욕할까 염려하여 이같이 했다는 견해(Thenius, Smith, Philippson), (3) 죽은 지가 오래되어 시체가 심하게 부패되어서 이같이 했다는 견해(Hertzberg), (4) 모압 암몬 등 의 이방 국가와 인접하여 살던 까닭에, 그들의 영향을 받은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훌륭한 용사들을 화장하는 이교적 장사법에 따라 이같이  했다는 견해(Rainey), (5)'불사르고'(사라프)라는 단어를 '송진을 바르다'라는 의미로 이해하여, 길르앗 야베스거민들이 여부스 사람들의 장사 방식에 따라 사울의 시체를 방부 처리했다고 보는 견해(Driver) 등이 있다.그런데 이러한 견해들 중 (2)의 견해는, 사울의 매장지가 블레셋 사람들의 영향권 밖인 요단 동쪽이라는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 그리고 (4)의 견해는, 모압 암몬 등의 민족들은 화장(火葬)하는 방식의 장례에 별로 익숙치 않다는 점에서 또한 타당치 않다(Klein). 오히려 그 민족들은 적의 시체를 불살라서 뼈를 가루로 만드는 등의 형벌적 성격으로 시체를 불살랐다(암 2:1). 따라서 존경심의 발로로 화장(火葬)을 했던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5)의 견해는 시체를 불사름으로써 뼈가 남았다는 명백한 언급이 있다는 점에서 그 타당성이 적다. 그렇다면 (1)이나 (3)의견해를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의 사건을 병행적(竝行的)으로 다루고 있는 역대상 10장은 사울의 시체를 불사르는 내용은 언급치 않는다. 다만 뼈를 묻은 일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대상  10:12). 이는 산 사람 혹은 시체를 불사르는 행위를 악행에 대한 형벌의 관점에서 보는 모세 오경의 가르침에 따라서(레 20:14;21:9),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의 행위를 바르지 못한 것으로 이해하여 화장(火葬)은 생략하였기 때문인 듯하다(Klein). 혹은 화장(火葬)과 매장(埋葬) 사이의 조화에 어려움을 느껴 시체 처리에 대한 결과만을 언급했기 때문일 것이다(Keil).  
13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ㅇ에셀 나무 아래 장사하고 - 여기서 '에셀  나무'(the tamarisk tree, NIV)-대상10:12에는 '상수리 나무'(the oak tree, Living Bible)로 표기되어 있다. 히브리 원문은 위성류(渭城柳) 나무를 가리킨다(대개 20미터까지 자라며 뿌리는 20-30미터까지 뻗는 상록수..이파리에 소금기가 있어서 아침이슬이 맺히면 영롱하게 빛을 내며, 시원한 그늘을 제공)]-는 길르앗  야베스에 많았던 유명한 나무였다(Smith). 그런데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사울의 뼈를 그 나무 아래 장사한 까닭은, 그들은 사울이 그 나무 아래 앉기를 즐기는 등 생전에 그 나무를  특별히 좋아했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2:6). 한편 그곳에 묻혔던 사울의 유골은 후에 다윗에 의하여 발굴되어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 있는 자신의 아비 기스의 묘에 안장되었다(삼하 21:11-14).
ㅇ칠일을 금식하였더라 - 아론이나 모세가 죽었을 때,이스라엘 백성들은 30일씩 애곡을 했었다(민 20:29;신 34:8). 이같은 애곡은 고인(故人)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키 위함이었다.여기의 '금식'도 애곡의 일종으로서 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삼하 1:12). 
이처럼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은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으로부터 걷어다가 장사를 지내고 7일을 금식하였다. 즉 이들은 과거에 사울이 베풀어 준 은혜를 기억하고(11:1-11) 그 보답으로 이러한 선행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은혜를 받는 일도 필요하지만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일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은혜레 대한 감사 행위는 더욱 큰 은혜를 가져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성도들도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만을 맹목적으로 간구하지 말고, 이미 받은 은혜를 잘 간직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본서를 마무리짓는 사울의 비극적 죽음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한(8:5,20)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를 구속 역사의 섭리 속에 승화시키사, 당신의 뜻에 합당한 한 인물을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삼으셨으니(13:14;15:28;16:13), 그가 곧 다윗이었다.
===
[이스르엘계곡 남쪽 길보아산(벧산 위치)--북쪽 모레산 ::..므깃도로 연결(시리아와 애굽으로 연결되는, 대상과 군대 이동로) 기드온과 300용사에게는 승리를, 사울에게는 죽음을 안긴 곳]
길보아 산은 이스르엘 평야 서쪽에 있는 산으로 산맥을 이루고 있다. 길이는 32km, 가장 넓은 폭은 14km, 최고봉 높이는 해발 546m에 이른다.
요단 강 동쪽에서 벧산을 거쳐 이스르엘 계곡을 따라 므깃도에 연결되는 통로는 수리아에서 애굽을 왕래하는 주요 도로며, 대상 왕래와 군사 이동에 중요한 통로였다.
이 골짜기 통로를 경계로 남쪽으로 길보아 산과 북쪽으로 모레 산이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길보아 산 북서쪽 하롯 계곡에서 하롯 샘이 흘러나와 벧산을 거쳐 요단 강으로 흐른다.
기드온은 수많은 백성을 데리고 길보아 산기슭에 있는 하롯 샘(Harod Spring)으로 가서 진을 쳤다.
미디안 군사는 기드온 군사의 진을 마주 보고 하롯 샘 북쪽 모레 산(Moreh Hill) 앞 골짜기에 진을 쳤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모인 병사 수가 너무 많으니 용기 없는 자는 떠나게 하라고 하셨다. 처음에 모인 인원은 3만 2000명이었다. 돌아간 자가 2만 2000명, 남은 자가 1만 명이었는데 하롯 샘가에서 물을 먹도록 하여 개처럼 혀로 물을 핥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로 구별하였다. 적을 경계하며 물을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은 자 300명만을 선택하였다(삿7:1~8).
미디안 동맹군 13만 5000명은 골짜기에 누워 있어 그 수가 메뚜기만큼 많았으며, 약대(낙타)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며 자신 있게 외쳤다(삿7:14).
기드온의 전법은 특이했다. 300명을 100명씩 세 부대로 나누고 각각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게 하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준비했다. 그런 후 미디안 진영에 이르러서 기드온과 그를 좇는 군사 100명이 나팔을 불면 모두 진 사면에서 나팔을 불고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를 외치도록 명령하였다.
드디어 기드온 군사 100명이 밤 10시경에 미디안 진에 이르자 일시에 나팔을 불며 손에 든 항아리를 부수었다. 하나님이 준비시킨 횃불은 성령의 상징이요, 나팔은 복음의 나팔이며 항아리를 깨뜨림은 인간적 자아를 깨뜨림을 의미한다.
캄캄한 밤에 모두 잠든 진영에서 갑자기 나팔소리가 요란하고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며 횃불이 사면에서 왔다 갔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쳐대니 미디안 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적으로 오인하여 저희끼리 서로 칼부림하였다.
기드온 300명 용사는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요단 동편 숙곳(Succoth)에 이르렀다. 미디안 군사는 무려 12만 명이 죽고 남은 1만 5000명은 미디안의 두 왕과 함께 갈골(Karkor)에 숨어 있었다.
기드온이 기습 공격하여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군대를 진멸했다. 그리고 브누엘에 가서 망대를 헐고 두 왕을 죽였다(삿8:4~17). 길보아 산 전투에서 승리한 기드온 군사 300명은 소수 정예병으로 오늘날 이스라엘 군대의 표상이 되고 있다.
길보아 산에서 기드온은 승리했지만, 사울은 치욕적으로 패전했다.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자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을 쳤다(삼상28:4). 길보아 산에서 사울은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불안에 못 이겨 변장한 후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신접한 여인은 엔돌에 살고 있었다.
모레 산의 기슭인 수넴에 블레셋이 진을 치고 있는데도 모레 산 너머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엔돌을 찾아갔다. 사무엘이 죽은 후 사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은 초기에 신접한 자와 박수를 모두 쫓아냈다. 그러나 몸소 신접한 여인을 찾을 만큼 심령이 타락하고 불안하였다.
신접한 여인에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올리기를 원했을 때 홀연히 사무엘이 나타나서 왕위는 다윗에게 넘어가고 전쟁에 패하여 세 아들과 함께 죽으리라고 말하자 사울은 졸도하여 넘어지고 말았다(삼상28:19). 사무엘의 예언대로 길보아 전투에서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죽고 말았다. 또 사울은 크게 패하여 도망하다가 중상을 입었다.
그때에 자신의 병사에게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고 했으나 병사는 심히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러져 죽었다(삼상31:4). 자살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비참한 말로였다.
이전글 : 삼상30..주께 직접 여쭈어 듣고 바로 그대로 준행하기!!...긍휼히 여기는자 복이 있나니...성령충만한리더십
다음글 : 삼하1.길보아산 전투.[사람 분별하기를 배움]..활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