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상30장 [442.'저장미꽃위에이슬] [337.내모든시험무거운짐을] .....아버지당신의마음이있는곳에..보소서주님나의마음을..우리함께기도해..내이름으로일컫는내백성이..이곳에생명샘솟아나..하나님은우리의피난차가되시며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바, 각자마다 그의 영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주하여 살고 계심을 알고 믿는 주께 대해 절대적인 참 신앙인마다!! ] .....분명히 해 두어야 할 바는...가령...그대로 하여금 이리저리 하게 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노라고 누군가가 말하거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대 또한 직접 들어서 정말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 확실히 맞는지 아닌지를 반드시 확인해야만 한다는 것이요, [다른이를 통해 말씀하신 바 그 말씀내용이 정말 바로 그대로 말씀하셨는지, 그 사람이 내용을 잘못 전한 것은 아닌지 자기가 직접 다시 하나하나 여쭈어 보고 주님 음성 직접 듣고서 확인했다면...정녕 기뻐하고 또 기뻐해도 그대로 안심해도 된다...설령 그 내용이...하나님이 너 내일 죽을 것이라 하셨더라도,,..그 음성이 확실하고도 분명한 바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절대적으로 안심할지니..그것이 바로 완전한 구원을 예비해 두셨음이기때문이다!!" :: 다윗은 그 원칙 아래서 행하고 있었다..주께 여쭈었을 때 "추격하면 분명히 따라잡을것 + 도로 찾을것"이란 더 분명한 확답을 추가해 주셨기에!!..이제는 주님 전적으로 신뢰함 안에서 영광의 주님께 합당한 행보로 행하는 바..(= 진취적 믿음으로 행군 + 용납-용서, 긍휼/배려의 공동체적 보살핌, 주님 주신 마음따라 죽음 임박한 광야에 버려진자의 생명 구휼에 이르기까지..더 나아가 브솔시내에 남겨두었던 200명에게도 골고루 회복을 안겨다주고 있으며, 더해진 전리품을 아낌없이 주변 이웃들의 처지-형편따라 선사하고 있었으니...)그 하나하나마다 주께 여쭈며, 주 앞에서 행함이었다!!..
[고후3:1-18(16, 17, 18)...((새 언약의 일꾼들...[분명히 인식할지니..오직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의 몸인 교회만이 사탄적 세상을 이겨낸다!!...잠4:23을 명심하라...그대안의 영원한 생명샘 원천이신 부활생명이신 그리스도, 위에서 날마다 부어주시는 그분의 증거하시는 권능의 영으로 명하신 그대로 그분을 증거하며 전파함으로써 살라...세상은 사탄체계임을, 사탄마귀는 교묘히 세상의 교육체계-철학/문화예술종교분야-통치체계및 정경사문방 모든 영역에 그 자신의 더러움으로 오염시키고 어둠의 혼돈을 조장하여 짐승보다 못한 인간성의 극악함을 최상/최선이라 속여, 간교하게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 조종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뉴노멀이라 하며, 네인생은 네것이니 마음대로 하고싶은것 하며-잘놀고먹고빈둥대며그냥될대로내버려두고 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리면 "내세의 부활 심판이란 없으니"그게 제일 편한것 아닐까 꼬드기며, SNS와 미디어를 동원하여 (팬덤이라는 미명으로) 변덕스러운 군중심리를 교묘히 조장-조종하여 기존질서-가치 쳬게를 혼돈/혼란으로 빠뜨리고 있음을, 날카로운 영적 통찰로 문제 핵심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부패와 악영향 막고 빛이신 주님께로 나아가도록 이끌고 계심을 보라!!))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2.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13.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Christ’s Epistle)) *1 Do we begin again to commend ourselves? Or do we need, as some others, epistles of commendation to you or letters of commendation from you? *2 You are our epistle written in our hearts, known and read by all men; *3 clearly you are an epistle of Christ, ministered by us, written not with ink but by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flesh, that is, of the heart. ((The Spirit, Not the Letter)) *4 And we have such trust through Christ toward God. *5 Not that we are sufficient of ourselves to think of anything as being from ourselves, but our sufficiency is from God, *6 who also made us sufficient as ministers of the new covenant, not of the letter but of the [a]Spirit; for the letter kills, but the Spirit gives life. ((Glory of the New Covenant)) *7 But if the ministry of death, written and engraved on stones, was glorious,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face of Moses because of the glory of his countenance, which glory was passing away, *8 how will the ministry of the Spirit not be more glorious? *9 For if the ministry of condemnation had glory, the ministry of righteousness exceeds much more in glory. *10 For even what was made glorious had no glory in this respect, because of the glory that excels. *11 For if what is passing away was glorious, what remains is much more glorious. *12 Therefore, since we have such hope, we use great boldness of speech— *13 unlike Moses, who put a veil over his face so that the children of Israel could not look steadily at the end of what was passing away. *14 But their minds were blinded. For until this day the same veil remains unlifted in the reading of the Old Testament, because the veil is taken away in Christ. *15 But even to this day, when Moses is read, a veil lies on their heart. *16 Nevertheless when one turns to the Lord, the veil is taken away. *17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18 But we all, with unveiled face, beholding as in a mirror the glory of the Lord, are being transformed into the same image from glory to glory, just as [b]by the Spirit of the Lord.]
***오늘 그대가 참되게 믿는이라면!! 상식을 따라 행할바를 결정하지말고!!, 오히려 멈추어서서 주님 얼굴 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듣고 확인하여 나아감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마25:31-46.((오직 주님의 긍휼의 마음 실행은 사회적 약자를[이들을 세상에 속한 식자/부자들이 곁눈질하며 귀찮게 여기듯 ..."루저-흙수저"라고 봐서는 결코 안됨을 주께서 분명히 하셨음을 명심하라!!, 주께서 돌보고 책임지도록] 하나로 묶어주신 교회공동체의 동행자, 바로 끝까지 함께 가야할 바 주님이 붙여주신 반쪽된 동반자들이다...주님 자신이시다!!))..*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보라, ...다윗이 600명을 이끌고 회복 위한 전쟁 수행하려고 바삐..‘브솔 시냇가’에 이른다. 그중 200명이 피로와 낙심으로 더 이상 추격을 포기하고 ‘브솔’에 주저앉는다. 다윗은 400명만 이끌고 ‘브솔 시내’를 건너 아말렉을 추격한다. 도중에 만난 [기진맥진한 채 죽도록 방치된, 병든] 한 아말렉사람의 종, 애굽 출신 청소년을 [물과 음식을 나누어주고 정신들도록 돌보게 되는데...] 그를 구해준 댓가로 손쉽게 아말렉의 진영에 잠입해 대승을 거둔다. 많은 전리품과 생포되었던 부녀와 아이들을 아무런 희생없이 구하여 돌아왔다. 전쟁에 참여했던 400명은 브솔에 남은 자들에게 전리품의 분배를 거절하지만..., 다윗은 [분명히 상기시키는바!!] 이 전쟁이 영원유일무이한 도움이신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했음을 상기시키며 공평하게 나누었고, 저축해두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이웃들의 처지를 따라 골고루 선사해주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긍휼 + 나눔의 영성이다.. 함께 품어주시는 분의 넉넉함을 보라!! .....‘브솔’,그 뜻은 복된 소식 :: 도움-은혜로 인해 누리는 즐거움. 곧 우주공간에 영원유일무이하신 도움이신 분이 주신 은혜[그 어떤 자격도 없는 자로되... 받고 감사함 가운데, 공평하게 그 필요를 따라 분배하고 + 남는 것은 주변 이웃들에게 그 필요를 헤아려 아낌없이 나눔으로써 함께 참여하는 축제가 되게 함]....‘복음(Good News)’라는 뜻으로 (어쩌면!!) 신약의 ‘갈보리 언덕’이다. ‘브솔 시냇가’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가장 강력히 덧입었다. 브솔시내는 브엘세바와 대해를 연결함 당시 아말렉 거주지는 가데스바네아 북서쪽이었다. 여기서 그는 전쟁을 손으로 하지 않고 은총으로 하는 ‘승리의 법’을 터득했다. 이때 다윗은 하늘 장막을 덧입고 육신의 장막을 벗는 영적거장이 되었다. 그대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으려면 은총의 시냇가, ‘브솔’로 나와야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낙심하지 말고 갈보리 언덕으로 나가면 당신은 하나님의 회복과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와 실수와 잘못을 결코 책망하지 않고 가장 좋은 것으로 덧입혀 주신다. 이것이 갈보리를 경험한 부활신앙이다. [창14:13-24...*13.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17.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영원유일무이한 도움이신 분" 주님 주신 모든 얻은 것의 처음 것을 드림!!...나머지 9/10도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여 필요를 따라 나눔이 합당!!))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21.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22.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다윗이 아말렉을 치다.. ....[[주께 묻고 싶지 않아서!! 묻지 않고 자의적 판단으로 인해 나타난 고통들]]...화불단행(어려움-고난은 대개 함께 몰려온다)]..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주께, 주님만 의지하라]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뜻--굴국]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5.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아둘람굴에서 주 이름부름-독대-하나됨의 교통 - 새로운 차원에로의 돌파 경험 기억하였던바]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하자크..: 강하다, 견고하다, 강화하다 (힘의 근원으로서 -를 전적으로 의지하여, 분발하여) 용기내더/용감히 핼하다 = -능력 안에서 힘/용기 내다 = 용감히 행하다 ...하자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강(하게)하다, 견고하(게 하)다, 강화하다, 튼튼하게 하다'를 의미한다. (a) '강하다' be strong 혹은 '강하게 되다' become strong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 단어는 그렇게 번역될 수 있으나 가끔 여러 가지 문맥은 다양한 번역을 조장하거나 혹은 필요로 하고 있다. 매우 흔하게 이 단어는 '전쟁에서의 힘'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왕상 20:23). 전투에서 강하라(담대하라)는 권고는 단순히 굳건한 용기를 가지라는 권고일 수 있다(또한 삼하 10:12에서도 그렇게 번역되었음). 창 41:56의 '강한' 소문은 기근을 언급하는데서 '혹독한' severe(RSV; KJV와 ASV는 '격심한' sore)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혹독할" severe 수 있다(왕하 3:26). 문맥에서 '보다 강하다' to be stronger than는 것은 다윗의 말이 요압을 '재촉하였으며' prevailed(삼하 24:4), 다윗이 블레셋인(삼상 17:50)을, 요담이 암몬인들(대하 27:5)을 이긴 것 같이 '우세하다' prevail를 의미하고 있다. 바로의 마음에 대해 사용되었을 때 이 단어의 의미는 '강퍅하다' harden이다(출 7:13 이하). [바로의 마음의 강퍅함]에 대한 문제는 진부한 것으로서, 신학상의 문제이다. 동사 하자크는 그 기사에서 12회 사용되고 있는데(출 4-14장) 대부분 집행자이신 하나님과 함께 사용되고 있으나 4회는 수동적 혹은 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바로의 마음은 강퍅하여졌다"). --또한 동사 카베드는 5회 사용되는데 행위자로서 하나님과 행위자로서 바로와 함께 수동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동사 카사는 행위자로서의 하나님과 더불어 한번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와 상기한 단어들의 용법에서 분별할 수 있는 차이점은 없다. 바로가 처음부터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었다는(출 5장) 것은 명백하다. 이 단어는 아마도 그러한 것을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것 같으며 완고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강퍅하게 하심의 모든 것이 사법적인 것이라는 것을 표하며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더욱 기억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그러한 것은 역시 하나님의 계획에 있었다(출 9:16). 그러나 바로가 임의로 죄를 지었으며 따라서 두려운 범죄자였다는 것은 납득이 안가는 사실이다(참조: 행 4:25-28). R. L. H.] 결과로서 생기는 다른 의미는 '확신하다' be sure(신 12:23), '확고부동하다' be steadfast(수 23:6, RSV), '걸리다' catch hold(삼하 18:9,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 나무에; 이 단어의 사역적 의미는 히필형에서 일반적 용법이 되고 있다), '회복하다' recover(사 39:1, 히스기야가 병으로부터), '완강한' stout(하나님을 대항한 사람들의 말, 말 3:13)이다. '튼튼하게 하다' strengthen라는 의미에서 2회 사용되고 있다(대하 28:20, 사 28:22). (b) '강하게 하다' make strong, '튼튼하게 하다' strengthen이다. 가끔 전쟁 혹은 전투의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다. 때때로 이 동사의 목적어는 개인의 손 혹은 팔이다. '손을 강건하게 하다'라는 것은 '돕다' to aid(스 1:6) 혹은 더욱 흔하게 '격려하다' to encourage(삼상 23:16)를 의미하고 있다. 격려받는 사람이 이 동사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삼하 11:25, 사 41:7). '강건하게 하다'는 단순히 '돕다' help로 번역될 수 있다(대하 29:34). '수선하다' repair라는 의미에서 16회 사용되고 있다(왕하 12:5 이하). 이 동사의 목적어가 마음일 때(10회) 이 동사는 '강퍅케 하다' harden로 번역되고 있다(출 4:21 이하). 이 단어는 못과 더불어 '단단히 하다'(박다) fasten(혹은 '지지하다' support)라는 의미에서 2회 사용되고 있다(사 41:7, 렘 10:4). (c) 종종(63회) '붙들다' take hold, 즉 '붙잡다' grasp, '꽉쥐다' seize를 의미하고 있다. 이 단어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언급하여 '수리하다' repair라는 의미로 느헤미야서에서 34회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용법들이 다양하게 있는데 다음과 같다: 즉 '우세하다' prevail(단 11:7), '지원하다' support(레 23:35), '받다' receive(대하 4:5), '보유하다' retain(삿 7:8), '강요하다' constrain 혹은 '강권하다'(왕하 4:8), '굳게하다' confirm(단 11:1), '강건하게 하다' strengthen(삼하 11:25), '조력하다' aid, 예: '손을 강건하게 하다' strengthen the hand(겔 16:49), '합세하다' join(느 10:29), '지탱하다' hold(느 5:16). (d) 재귀적 용법이다: 예: '자신을 강건하게 하다' strengthen oneself, '자신을 격려하다' encourage oneself.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5:1) ......알곡들 사이사이에 보이는 바, 육에 속한 가라지들의 섞여 자람 허용에 대한 주님의 의도를 분명히 주께 여쭈어 보고 그대도 "주님의 긍휼로" 품고 오래 참아 기다려주며, 버티고 견뎌내며 끝까지 기다리고 주님의 "긍휼히 여김" 배우는 계기로 삼으라....실지로 주님은 빈정대는 이들에게.."하나님은..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고 하셨음도 기억하라...[마13: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롬12: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신약의 믿는이) 그대 안에 친히 사시는 참 소금이자 참 빛이신 주님의 맛과 빛을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그 어떤 수건으로도 자의적으로 가리려 하지 말고, 오히려 산 믿음과 사랑-소망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적셔져서 그 얼굴이 그분의 광채로 빛났던 모세는 그 당시에는 형제 자매들에게 그 영광의 빛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백성들로 하여금 신격화 할 가능성 때문에 수건으로 가렸다고 보지만..) 신약시대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들 안에 친히 살아 행하고 일하시는 참 소금이자 참 빛 주님을 일상의 삶 가운데 당당하게 드러내도 좋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셨다!!....맛을 나타내며, 빛을 발함으로써 근원적 참 자유의 주님을 [그분이 원하시는 그대로!!] 세상에 풀어드리도록 하라!!...[오직, 그대는 이 세대를 본받지말고(모든 문화-예술-철학-종교를 포함한, 유행-풍조-사조를 진리 말씀 안에서 분별해보고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마다 대적하여 폐기해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신격이나 위격을 말함이 아니라 본성과 생명에 있어서 그분의 거룩함, -곧 참Q이자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성의진선, 이에 더불어 그분의 참인성으로 대치됨에 이르도록-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받아야 하며, 거듭난 그대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열납하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림, 곧 (그리스도께서 오늘 그대 안에 사시기에 그분이 하시고자 하심 그대로!!) 말씀의 참 뜻 살펴 그대로 행함이 자연스러워지도록 연습-실행-준행함이 중요하다. .....오늘날 SNS와 미디어 중독에 사로잡힌 "고독한 군중, 나름대로 팬덤 이뤄 행동하는 그들의 ((상처 투성이요 원망-분한-낙망에 가득한) 심리 상태는 "변덕스런 격동된 감정의 회오리 그 자체"이니..이간질과 선동에 극히 취약하며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때에 JC를 그토록 열성적으로 환영했던 그 무리가 바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고 있었던 그 무리였다!]] 폭력과 분노에 쉽게 포로가 되곤 한다...(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며 살펴본다면) 당시 다윗과 동행했던 시글락 그 자리에!! 피흘린 흔적도 시체도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요, 다음 단계의 대책을 세울 수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감정적 격분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극단적 박탈감 야기한 리더, 불행 야기한 주범이자 근원이라 느껴지는.. 다윗을 희생양으로 삼아 쳐 죽여 없이해버리자"하고 있었고...그러나, 다윗은 전혀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있었다!!.[모든 사람들은 다 등돌리고 말지만...어느 누구도 끝까지 함께 가지 못하지만!! 오로지 그를 안아주시고 함께 울어주시는 분, 주 앞에선 참 고독자요 단독자 됨이 그토록 중요함을 뼈저리게 인식함으로써!!]그제서야 제 정신 차린 다윗은 가슴 치며 회개-애통하며 (주를 바라봄으로써) 주께 여쭘을 재개하고 있다!!...참생명 그리스도를 사는 진정한 리더는 바로 그렇게 군중 속에서 주님을 꿋꿋이 살아내는 사람이다.. 그는 참 생명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그 길을 고요히 여쭘으로서 알고 그대로 행한다!!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다른이들에게도 그리 말할지니..내게는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에!!, 그분을 신뢰하는바 이리 행하노라!!.]]....신약시대를 사는 믿는이마다, 그 안에 주께서 친히 사시는 것이니..다른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들었다면 그대는 직접 주께서 내게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직접 듣고자 하라!! ...지적 동의가 아니라 생명 방식으로 듣고 행함을 연습하라!!..마땅히 직접 주께 묻고 듣고 (자신이 들은바)그 말씀 따라 살아야 함을 잊지말라....주께서 일상속에서조차도!! 날마다 매순간마다 주시는 말씀을 직접 듣고 행함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주님은 그분의 평강과 확신의 말씀으로 격려하심을 덧입혀주시기 때문에 더 복됨을 체득케 된다..!! 9.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그들의 그로기 상태임을 인정해주고, 사정을 헤아려주고 있다!!)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떠나지도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으시고 침묵으로 오래 참고 견뎌 버텨주사 동행하며 친히 이끄시는 주님의 용납하심 = 긍휼히 여김 감사하고 있기에 주님이면 충분함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11.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12.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사명자가 오직 전심으로 행할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실행함, 곧 한 영혼 구원이 가장 중요함을 일깨우시는 그대로 주님의 마음에 있는 긍휼을 몸소 실행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마음에 있는, 성령충만한 참 리더십이란 아버지 마음...모름지기 vision(스케일..분명한 목표 향한 전력투구의 진취성) + compassion(디테일...작은자의 생명-영혼 돌봄의 긍휼/다정다감)...200명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한 어린아이를 배려하여 돌보는 마음이나 동일한 긍휼임.. 1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14. 우리가 그렛(=그레데)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그가 탈취한 지역이라고) 거짓으로 거명했던 바로 그곳이었다...[거듭난 그리스도인마다 언행을 조심하여 주 임재 앞에서 신중하게 주께서 입에 넣어주시는 바 그것을 말하기를 배우라] 15.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16.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17.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18.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19.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20.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 21.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24.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에 필요한 적합한 재정 = 일용할 만큼의 만나로 표상되었던바) 한 데나리온씩 골고루 주신] 포도원 품꾼 비유를 명심하라..(나머지 더 필요한 부분들은 얼마든지 주님 자신이 손수 공급함 되신다!!)...이 지구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그리스도의 몸에만 적용 가능한 지고지상의 분배방식임!! .....(포도원에 들어와 일하도록 허락받은 품꾼에게 이미 주어져 있었던 [약속된!! 품삯외에] 일함으로 인해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누림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봐야하리라....포도원 품꾼은 [그의 선택여부에 따라!!] 포도원과 포도원 주인을 보너스로 누릴 수 있었음을 잊지말라) .......신뢰와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친히 공급해 주고 계심을 확신하는 바, 하나님 나라의 재정(헌금) 사용 원칙은 [누가 벌고 공급하고 쓰느냐를 문제삼지 않고] 오로지 주님이 열어 주시는 마음따라 그 사용처를 보고 듣게 해주시는 바 필요한 정도에 따라 주님 주시는 평강안에서 지혜를따라 그 씀씀이를 결정함이 그 원칙이 됨... 가정 안에서 신뢰와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안계신 가정, 신뢰와 사랑의 하나님이 안계신 사회적 기업이란((편법이다!!))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바 분배와 사용에 있어서 결코 만족이 없고 오히려 분배문제로 갈등 충만한 법이다. 25.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6.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27. 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 28. 아로엘에 있는 자와 십못에 있는 자와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와 29. 라갈에 있는 자와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겐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30. 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 31.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하나님의 마음 따라, 동시에 ((시글락에 있는 처지였지만!!..아끼지 않고)) 사람들의 방식도 고려하여 어려운 주위 이웃들에게 (의리와 정리를 따라) 나누고 베풀고 있었다...헌금 좀 줄어들더라도 넉넉하게 베풀기를 연습하자!!...기도도 (연약한 이웃에게로 도움의 손 뻗어 공급하고 나눔의 실천이 되게 하라.. -------- [NASB]제30장
1. Then it happened when David and his men came to Ziklag on the third day, that the Amalekites had made a raid on the Negev and on Ziklag, and had overthrown Ziklag and burned it with fire; 2. and they took captive the women [and all] who were in it, both small and great, without killing anyone, and carried [them] off and went their way. 3. And when David and his men came to the city, behold, it was burned with fire, and their wives and their sons and their daughters had been taken captive. 4. Then David and the people who were with him lifted their voices and wept until there was no strength in them to weep. 5. Now David's two wives had been taken captive, Ahinoam the Jezreelitess and Abigail the widow of Nabal the Carmelite. 6. Moreover David was greatly distressed because the people spoke of stoning him, for all the people were embittered, each one because of his sons and his daughters. But David strengthened himself in the LORD his God. 7. Then David said to Abiathar the priest, the son of Ahimelech, "Please bring me the ephod." So Abiathar brought the ephod to David. 8. And David inquired of the LORD, saying, "Shall I pursue this band? Shall I overtake them?" And He said to him, "Pursue, for you shall surely overtake them, and you shall surely rescue [all]." 9. So David went, he and the six hundred men who were with him, and came to the brook Besor, [where] those left behind remained. 10. But David pursued, he and four hundred men, for two hundred who were too exhausted to cross the brook Besor, remained [behind.] 11. Now they found an Egyptian in the field and brought him to David, and gave him bread and he ate, and they provided him water to drink. 12. And they gave him a piece of fig cake and two clusters of raisins, and he ate; then his spirit revived. For he had not eaten bread or drunk water for three days and three nights. 13. And David said to him, "To whom do you belong? And where are you from?" And he said, "I am a young man of Egypt, a servant of an Amalekite; and my master left me behind when I fell sick three days ago. 14. "We made a raid on the Negev of the Cherethites, and on that which belongs to Judah, and on the Negev of Caleb, and we burned Ziklag with fire." 15. Then David said to him, "Will you bring me down to this band?" And he said, "Swear to me by God that you will not kill me or deliver me into the hands of my master, and I will bring you down to this band." 16. And when he had brought him down, behold, they were spread over all the land, eating and drinking and dancing because of all the great spoil that they had taken from the land of the Philistines and from the land of Judah. 17. And David slaughtered them from the twilight until the evening of the next day; and not a man of them escaped, except four hundred young men who rode on camels and fled. 18. So David recovered all that the Amalekites had taken, and rescued his two wives. 19. But nothing of theirs was missing, whether small or great, sons or daughters, spoil or anything that they had taken for themselves; David brought [it] all back. 20. So David had captured all the sheep and the cattle [which the people] drove ahead of the [other] livestock, and they said, "This is David's spoil." 21. When David came to the two hundred men who were too exhausted to follow David, who had also been left at the brook Besor, and they went out to meet David and to meet the people who were with him, then David approached the people and greeted them. 22. Then all the wicked and worthless men among those who went with David answered and said, "Because they did not go with us, we will not give them any of the spoil that we have recovered, except to every man his wife and his children, that they may lead [them] away and depart." 23. Then David said, "You must not do so, my brothers, with what the LORD has given us, who has kept us and delivered into our hand the band that came against us. 24. "And who will listen to you in this matter? For as his share is who goes down to the battle, so shall his share be who stays by the baggage; they shall share alike." 25. And so it has been from that day forward, that he made it a statute and an ordinance for Israel to this day. 26. Now when David came to Ziklag, he sent [some] of the spoil to the elders of Judah, to his friends, saying, "Behold, a gift for you from the spoil of the enemies of the LORD: 27. to those who were in Bethel, and to those who were in Ramoth of the Negev, and to those who were in Jattir, 28. and to those who were in Aroer, and to those who were in Siphmoth, and to those who were in Eshtemoa, 29. and to those who were in Racal, and to those who were in the cities of the Jerahmeelites, and to those who were in the cities of the Kenites, 30. and to those who were in Hormah, and to those who were in Bor-ashan, and to those who were in Athach, 31. and to those who were in Hebron, and to all the places where David himself and his men were accustomed to go. " ======= 사무엘상 30장 (개요) 블레셋 군대에서 떨어져 나온 다윗은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사울로부터 쫓기던 것을 생각하고 엄중 중립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성읍인 시글락으로 조용히 물러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그대로 싸울 태세를 갖추게 하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기사들을 볼 수 있다. 1. 다윗은 시글락이 비참한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성이 아말렉 사람들에 의해 노략을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커다란 비탄 속에 빠졌다(1-6). 2. 그는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나섰다. 그는 하나님께 신탁을 구하고, 추격을 허락받았다(7, 8). 원수들을 추격했다(9, 10). 다윗은 패잔병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했다(11-15). 약탈자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궤멸시켰다(16, 17). 그리고 그들이 노략해 간 것들을 모두 되찾았다(18-20). 3. 그는 되찾은 것들을 나누어 주었다(21-31). --------- 노략당한 시글락(삼상 30:1-6) Ⅰ. 다윗이 없는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습격하여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시글락을 기습하여 약탈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부녀자와 아이들을 붙잡아 갔다(1, 2절). 이로써 그들은 최근에 다윗이 그들과 그들의 나라를 침노했던 사건에 대한(27:8) 보복을 하고자 시도 했다고 보인다. 원수가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것들을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험하게 대해 준 사람은 그 사람으로부터 똑 같이 험한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아말렉 사람들을 살려 준 사울의 동정심이 이런 잔인한 결과를 초래했다. 사울이 마땅히 자기의 본분을 지켜서 그들을 철저하게 멸망시켰더라면, 이런 재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싸우는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던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집에 남아서 자기의 일을 돌보는 것이 좋았을 것을 공연히 그랬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외출을 할 때에는, 우리가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족들을 평안히 보호하여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의무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3. 놀랍게도 하나님은 아말렉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붙잡아 가게 만들어 주셨다. 다윗이 그들을 습격했을 때는 모든 남녀를 다 쳐서 죽였다(27:9). 그런데 그들이 이 성읍에 대해서 왜 똑같은 식으로 보복을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를 제지하신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어거하실 수 있으며, 아무리 강포한 자에게 대해서도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개선식에 그들을 끌고 나가기 위해서 그랬든지, 혹은 그들을 팔아 버리거나 노예로 삼기 위해서 그랬든지 알 수는 없으나, 다윗의 집이 무너지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그들에게 작용되었다는 것만은 사실임을 알아야 한다. Ⅱ.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들의 집이 훼파되었으며, 그들의 처자식들이 사로잡혀 간 것을 보고 크게 당황하고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으로부터, 시글락으로 사흘길을 행진하여 돌아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몹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쉬게 될 것과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그들의 눈 앞에 어둡고 침침한 그림자가 전개된 것을 보자(3절), 그들은 모두가 용사들임에도 불구하고, “울 기력이 없도록” 모두 크게 소리를 내어 울었다(다윗도 예외는 아니었다. 4절). 여기에 다윗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의 이름이 나오고 또 그들이 붙잡혀 갔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윗의 마음이 심히 침통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무리 대담하고 용감한 사람이라도 친척이나 친구의 재난을 보고 슬퍼하는 것은 조금도 비방거리가 되지 못한다. 1. 이 재난은 그들이 그 자리에 없었을 때에 일어났다. 옛날부터 아말렉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언제나 불시에 공격하곤 했다. 2. 그들은 집에 돌아오면서 그 모양을 첫눈에 목격했다. 우리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 어떤 불길한 소식이 우리를 기다릴는지 예측할 수 없다. 외출하는 것은 즐거운 일일는지 모르나 돌아올 때는 근심이 앞선다. 그러므로 “너는 내일 일을 자랑치 말며”, 오늘 저녁 일마저도 자랑치 말라. 왜냐하면 “하루 동안이나” 혹은 하루 한나절 동안에라도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잠 27:1). 우리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기에 나오는 다윗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의 “장막이 무사한 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려야 한다. Ⅲ. 백성들이 다윗에 대하여 소란을 피우며 불평을 토로했다(6절). 슬픔에 빠진 그의 백성들이 다윗을 돌로 치고자 하므로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다.” 1. 왜 그들이 다윗을 돌로 치고자 했는가 하면, 그들이 현재 당한 이 재난은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을 건드려 놓았으며, 그리고 또 아무런 방비책도 세워 놓지 않고 시글락을 비워 놓은 그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가 재난을 당하면 우리에게 재난을 가져다 준 계기를 만든 것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분노를 터뜨리기가 쉽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그 고난을 묵묵히 참고 지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간파하기가 쉽고, 하나님의 작용하심을 보지 못하기가 쉽다. 2. 그리고 또 그들은 다윗을 따르면 어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그들의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들이 모두 왕자가 될 줄로 기대했었는데 이제 그들은 스스로가 거지꼴이 되었다고 보고, 그러한 실망이 그들을 난폭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서 그들이 크게 의지했던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들로 만들었다. 난폭한 감정은 어떤 어리석은 일이라도 못하게 하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쓰라린 시련이었으며, 피할 수 없이 당해야 하는 시련이었다. 사울은 그를 자기의 나라에서 쫓아냈고,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자기들의 진영에서 추방했고, 아말렉 사람들은 그의 성읍을 노략질하고 그의 아내들을 붙잡아 갔는데, 이제 또 매우 원통하게도, 그가 신임했으며, 그가 보호해 주었고, 그가 먹을 것을 대 주었던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 그를 동정해서 그로 하여금 다시금 생기를 얻어 일어날 수 있게 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걷어 차며”, 돌로 치려고 위협하고 있다. 위대한 신앙은 그런 가혹한 시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윗이 왕좌에 오르기 직전에 극도의 곤란에 처하게 해 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때에 그의 출세의 문을 열어 주는 최후의 일격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크게 발전하려고 하는 직전이 가장 어려운 때이기 쉽다. Ⅳ. 이러한 재난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경건하게 의지했다. 다윗은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그의 사람들은 붙잡혀 간 사람들 때문에 애가 탔다. “백성들의 마음은 매우 쓰라렸다”라고 글자 그대로의 뜻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 자신들의 불평과 초조함이 그들의 재난과 비탄 위에 “쓴 쑥과 쓸개”를 더하여 주었으며, 그리고 그 슬픔을 갑절로 만들어 주었다. 1. 그러나 다윗은 그 사람들 중의 누구보다도 슬퍼할 까닭이 더 많았지만 이를 잘 참고 견디었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감정을 마음대로 발산했지만, 그는 체면을 지켰다. 그리고 그들은 낙심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 아래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지고 침착할 수 있다. 2. 또 다윗은 “그를 돌로 치자”고 하는 그들의 위협적인 말에 대해 어떤 언급이 있음직한데,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윗은 그들의 모욕적인 언사에 대해 보복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또 그들의 말에 위협당하지도 않았다. 그는 현재 그가 당한 재난이 잘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 그의 의로우심과 선하심, 하나님께서 흔히 쓰시는, 낮추었다가 높이시는 방법,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 그리고 그를 안전하게 왕좌에 오르게 해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을 굳게 믿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 다윗은 현재의 재난이 잘 해결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굳건히 버티게 할 수 있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사람들은 어려운 때에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모든 선한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그들의 주님으로 믿는 가운데 스스로를 굳세게 하여야 함은 그들의 의무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그들 자신들에게 크게 도움을 가져다 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빛을 흑암 가운데서 이끌어 내시며, 재난 가운데서 평화를, 그리고 악에서부터 선을 이끌어 내사, 그를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롬 8:28) 모든 자에게 이를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다윗은 실제로 “내가 두려워할 때에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노라”라고 말한 그대로 살았으며, 거기서 크신 위로를 받았다. 그는 그의 지혜가 부족했을 때도 믿음은 부족하지 않았다. ---------- 노략당한 것들을 되찾은 다윗(삼상 30:7-20) “의인은 재난에서 구원을 받고, 악한 자가 그 대신 넘어지며,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잠 24:16)고 솔로몬은 보았다. 이것이 바로 다윗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는 많은 재난을 겪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재난에서 그를 언제나 구해 주셨다.” 그리고 더욱이 여기에 나오는 사건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를 구해 주셨다. Ⅰ. 다윗은 그의 의무에 관해서는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리이까”라고 물었으며, 사건 자체에 관해서는 “가면 그들에게 미치겠나이까”라고 두 가지로 여호와께 물었다(8절). 다윗이 공인으로서 그의 모든 문제를 물어볼 수 있는 대제사장과 판결 흉배를 가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민 27:21) 그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었다. 다윗이 아비아달과 에봇을 시글락에 남겨 놓았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윗이 돌아와서 물어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가 그때 그것들을 숨겨 주시지 않았다면, 아말렉 사람들이 그것들을 끌고 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이 제사장과 함께 에봇을 가지고 블레셋 진영으로 갔었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다윗이 아기스를 따라 싸움에 나가는 것이 좋은가 어떤가를, 그것들을 통해 여호와께 물어보지 않는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 있다. 아마 그는 무할례자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의 신앙을 나타내기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제 그때의 잘못을 일깨워 주기 위해 이번의 재난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에봇을 가져오라고 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재난 때문에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오며, 우리의 잊어버렸던 의무를 생각할 수 있게 되며, 더욱이 그것 때문에 여호와께 물을 수 있게 되었다면(대상 15:13 참조)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다윗은 아말렉을 치는 이번 싸움이 의로운 싸움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해 오는 싸움을 하고 싶은 충동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는 싸우러 가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런 물음을 통해서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존성과 복종을 시인했다. 우리도 이처럼 우리의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묻는다면, 하나님은 여기서 다윗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의 응답을 주시며,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신 것같이 우리에게도 같은 식으로 응답해 주신다. Ⅱ. 다윗은 자기도 몸소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했으며, 자기들에게 있는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했다(9, 10절). 다윗의 인내와 믿음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리고 쉽사리 그리고 또 어떻게 그렇게 효과적으로 군사들 사이에 있던 반항심을 진압시켰는가 보라. 그들이 다윗을 “돌로 치자”(6절)고 말했을 때, 만일 다윗이 그들을 목매달며, 그 분쟁의 주모자들의 목을 속히 치라고 명령했다면, 그것이 비록 정당한 일이기는 했겠지만, 그것은 이처럼 위기를 당한 때에 그에게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동안 아말렉 사람들은 그들의 노획물을 말끔히 처치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귀머거리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의 분함을 덮어 두고, 오직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음으로” 백성들 사이에 있던 소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처럼 그들을 부드럽게 대해 주었으므로, 조금 전까지 그에게 마구 대항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따라 나서기로 모두 마음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정부라도 유화정책처럼 안전한 정책이 또 있을 수 없다. 그의 모든 사람들이 다윗을 따라 아말렉 사람들을 추격하기를 원했으며, 다윗은 또 그 사람들이 모두 필요했다. 그러나 다윗은 추격해 가던 도중에 그들 가운데 삼분의 일은 떨어뜨려 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6백 명 가운데 2백 명은 오랫동안의 행진 때문에 몹시 지쳐 있었다. 그리고 너무 큰 슬픔 때문에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그 이편에 머물게 되었다. 1. 이것은 그처럼 많은 그의 부하들이 그를 실망시켰는데도 여전히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전진할 것인가 하고 그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어긋나고 실패하고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계속 기쁨으로 나간다면, 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2. 이것은 또 다윗이 그의 사람들을 매우 부드럽게 대해 주었다는 좋은 실례를 보여 주었다. 그는 사건 자체가 매우 다급한 것이기는 했으나 결코 그들의 능력 이상의 것을 강권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다윗의 자손도 영적인 싸움에 있어서 그를 따르는 자들의 됨됨이가 모두 한결같이 강하거나 또 활기가 넘쳐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약할 때에도 주께서 친절을 베풀어 주신다. 아니, 주께서 힘이 되어 주신다(고후 12:9, 10). Ⅲ.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의 대적들의 움직임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 주며, 그들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하나 보내 주셨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한 애굽 소년이 다윗에게 크게 도움을 주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1. 그 소년의 주인이 얼마나 그를 무자비하게 대했는가 보라. 그의 주인은 그 소년을 부려 먹을 대로 다 부려 먹고 이제 그 소년이 병들자, 그것도 너무 일에 시달려 과로로 인해 병이 난 것으로 보이는 데도, 그 전쟁터에서 그대로 죽도록 무정하게 내버려 두고 갔다. 그들은 그때 그렇게 서둘러서 가야 할 이유도 없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수레에라도 태워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스스로 목숨을 부지해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식량이라도 남겨 놓고 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 주인의 마음은 이스라엘의 마음이 아니라, 아말렉 사람의 마음이었다. 따라서 그의 종을 짐승보다 더 못하게 다룰 수 있었다. 악인의 자비는 아무리 부드럽다고 하나 매우 잔인하다. 이 주인은 이제 저에게 이스라엘의 포로로 해서 많은 종들이 생겼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애굽 소년이 어떻게 되든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신은 “먹고 마시는”(16절) 동안 그 소년은 길바닥에서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지나치게 가혹한 대우를 받은 이 불쌍한 종으로 하여금 그의 주인과 함께 온 아말렉의 군대를 진멸시키는 데 도움이 되게 해 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학대받는 종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기 때문이다. 2. 그 소년에 대한 다윗의 동정심을 보라. 다윗은 그 소년이 시글락을 침노한 자들 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떡과 물”만이 아니라(11절), “무화과와 건포도”까지 주면서(12절) 관대하게 그를 살려 주었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간이 매우 촉박하며, 그들 자신들을 위한 식량도 넉넉지 못하지만,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으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잠 4:11, 12).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동정심을 베풀지 않는 자들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지기에 합당치 못한 자들이다. 이 애굽 소년을 살려 준 것은 매우 잘한 처사였다. 왜냐하면 그 애굽 소년은 아무 보잘것없는 소년으로 보였지만, 실은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그 소년을 도와주었을 때 미처 몰랐던 사실이지만 나중에 그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지 그를 해치거나 친절 베풀기를 금하지 않아야 하는데 조만간에 우리가 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 사람으로부터 해를 받을 수도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3. 그 불쌍한 소년이 제정신을 차렸을 때 다윗이 그 소년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는가를 보라. 그 소년은 그와 함께했던 무리들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해 주었다. (1) 그들이 어떤 짓을 했는가를 말해 주었다(14절). “우리가 침노하고 그리고 이것저것을 했나이다”라고 말했다. 다윗이 아기스에게 그가 침노한 것으로 꾸며대고 말한(27:10) 지방들이 실제로 침노를 당하고 폐허가 되었다. 그때의 거짓말이 오늘에 와서 사실이 되었다. (2)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말했다(15절). 이것은 다윗이 그의 목숨을 살려 주며, 또 자기에게 더욱 가혹하게 대할지도 모르는 그 주인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주면, 다윗에게 알려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 소년은 더욱 자기의 목숨이 안전하기를 원해서 다윗에게 이를 맹세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애굽이나 아말렉의 신들의 이름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를” 원했다. Ⅳ. 다윗은 그 소년의 인도를 받아 아말렉 사람들이 마음놓고 승리를 자축하는 곳을 쳐들어가서 항상 그가 기도했던 그대로 “원수들의 머리 위에 그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1. 약탈자들을 베어 버렸다. 아말렉 사람들은 약탈품이 굉장히 많고, 또 이제는 위험한 지경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크게 즐기고 있었다(16절). 그들은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깡그리 잊고, 또 전리품들을 어떻게 보관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온 땅에 평만하며” 아주 방심한 태도로 “먹고 마시며 춤추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우상 신 앞에서 그들의 성공을 축하하며 신들을 송축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꼴을 하고 있는 그들을 다윗은 기습하여 정복하고,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쉽사리 그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죄인들이 “안전하다”고 외치며, “악한 날이 멀리 사라졌다”고 말하는 그때가 가장 멸망에 가까운 때이다. 우리가 육욕에 빠지고 거기에 탐닉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원수의 공격을 가장 받기가 쉽다. “먹고 마시고 춤추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로 쉽사리 치달은 경우가 많다. 그들이 이처럼 방비를 소홀히 하고, 무기를 들지 않고 있으며,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 다윗은 일시에 그들을 살육했으며, 다만 4백 명만이 도망갈 수 있었다(17절). 이처럼 악인들의 승리는 잠시 잠깐이요, 그들에 대한 진노는 벨사살의 경우와 같이 그들이 한참 연락하는 중에 그들에게 임한다. 2. 노략당했던 것들을 모두 되찾았다. 하나도 잃은 것이 없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1) 그들은 그들의 것들을 모두 회수했다(18, 19절). “다윗이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다.” 다윗에게는 다른 어느 것들보다 그 두 아내를 구한 것이 기쁜 일이기에 특별히 이 사실이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아말렉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탈취한 것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잘 간수하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위해서 그것들을 간수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정말 주인들을 위해서 간수해 준 결과가 되었다. 그러므로 거기에 빠진 것이 없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상으로 우리를 잘 대해 주신다. 이 점에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다윗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아브라함의 경우는 창 14:16에 나와 있고 다윗의 경우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즉 예수님도 “강한 자에게서 먹을 것을 취하셨고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신 바가 계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2) 그 외에도 그들은 아말렉 사람들의 것들까지도 탈취했다(20절). 그것들은 “양떼와 소떼”였다. 그것들은 전쟁법에 의해 블레셋이나 그 밖의 사람들에게서 취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마 다윗은 적군의 땅까지 공격해 들어가서 거기서부터 자기를 위해 양떼나 소떼를 끌고 왔을 것이다. 이 짐승의 떼는 개선군의 선봉대 속에 포함시켰으며, “이는 다윗의 탈취물이요, 그에게 감사할지로다”라고 외치며 끌고 왔다. 얼마 전까지도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좋아하며 그를 소리높여 찬양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 때문에 자기들이 잃었던 것 이상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해관계에 깊이 얽혀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인심이다. ------ 되찾은 것들을 고루 분배함(삼상 30:21-30) 여기에는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되찾아온 전리품을 분배한 것에 관한 기록이 있다. 아말렉 사람들이 유다와 그리고 블레셋 땅에서부터 많은 전리품을 이끌고 갔을 때는 육욕에 빠지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데 이를 사용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전리품을 다른 식으로 처분했다.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소유하게 되든지 이것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정의감과 자비심이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것들을 주셨든지 우리는 이것들을 가지고 선을 행해야 하며, 결코 우리의 욕심에 이끌려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다윗은 아래와 같이 그 전리품을 분배했다. Ⅰ. 다윗은 소유물 곁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도 바르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들은 비록 이 일에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21절), 정복자들을 만나 이 일이 성공했음을 축하하기 위해 마중나왔다.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가 직접 그 일에 가담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지 않았을 경우에라도 좋은 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함께 기뻐해야 한다. 다윗은 그들의 인사를 매우 친절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약함을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염려를 표시했다. 다윗은 그들에게 문안했다. 그런데 그 말은(글자 그대로의 뜻을 보면) “다윗이 그들에게 평안하냐고 물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어떻게 지냈는가 물은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그들이 약하고 건강치 못한 것을 보고 떠났기 때문이다. 또는 그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그들이 뒤에 처졌다고 해서 손해볼 것이 없으니 만큼 기뻐하라는 말이다. 다윗은 아마 그들의 안색에서 그들이 이것 때문에 무척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1. 어떤 사람들은 되찾은 전리품을 분배하는 데 그들이 한 몫 끼는 것을 반대했다. 다윗의 병사들 가운데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말했던 그 사람들이 역시 이번에도 그들의 형제들의 것을 횡령하고자 원했을 것이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악한 자와 비류들”이라고 했다(22절). 훌륭한 사람들 밑에 악한 사람들이 따르고 있고, 또 그 훌륭한 사람들이 그들을 좋은 사람들로 만들지 못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다윗이 그의 군사들을 가르쳐 주었으며,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을 것이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에는 악한 자와 비류들이 있으며, 죽음의 공포도 맛보았을 터인데도 여전히 악한 자와 비류들이 남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소유물 곁에 남아 있던 2백 명에게는 다만 그들의 처자식들만 돌려 주고 소유물을 일체 돌려 주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아래와 같은 사람들임을 나타내는데, 가히 “악한 자”라고 일컬어질 만하다. (1) 그들은 매우 욕심이 과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저들의 몫을 주지 않으면 자기들에게 돌아올 몫이 많아지리라는 것을 생각했다. 조금 전에 그들은 다른 반을 찾기 위해 자기들의 나머지 반을 기쁘게 내놓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그들의 것들을 전부 찾았는데 형제들의 것까지 차지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그들의 궁했을 때의 형편을 쉬 잊어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것 이상의 것들을 찾으려고 애쓴다. (2) 그들은 형제들에게 너무 잔인하게 대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처자식은 돌려주되 그들의 재산을 돌려주지 말자는 것은, 그들에게 입은 주되 먹을 양식은 주지 말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만한 것들이 없다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무슨 기쁨이 되겠는가? 이렇게 되기를 그들이 원했을까? 형제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것으로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굶주리는데 이에 상관하지 않고 자기들만 배불리 먹는 사람들은 비류들이다. 2. 다윗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다윗은 전투에 참가한 자들이나, 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나 다 똑같이 전리품을 나누도록 명령했다(23, 24절). (1)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렇게 일을 처리했다. 우리가 차지한 전리품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청지기와 같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그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이 세상 물질들을 잘못 사용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지으신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은혜의 선물인 그것들을 가지고 사탄을 섬기며 인간의 욕심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우리의 형제들에게 악을 행치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우리도 서로 자비를 베풀도록 만들어 주신다. (2) 다윗은 그들을 정당하게 대해 주었다. 그들이 뒤에 처진 것은 사실이다. ①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갈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따라갈 수 있는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불운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것 때문에 책망받아서는 안 된다. ② 이번에는 그들이 뒤에 처졌지만 전번에는 여러 번 전투에 참가하여 그 남은 형제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그들의 의무를 다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전공을 생각해서 오늘의 기쁨에 동참시켜 주어야 한다. ③ 그리고 그들은 이번에도 좋은 일을 했다. 그들은 그들의 남은 소유물 곁에서 그것들을 지켰다. 그것들은 또 다른 원수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지켜야 했던 것이다. 모든 직책이 모두 명예로운 직책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보잘것없는 일에 종사할지언정 그것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수고하는 직책이라면 그런 사람들도 전체의 이익에 동참하여야 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몸의 각 부분이 모두 소용이 있으며 따라서 모두가 골고루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첫째, 이처럼 다윗은 악한 자와 비류들에 대해 정정당당한 이유를 들어 그들의 생각을 억눌렀지만 거기에는 시종 온화함을 잃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정당당한 이유에서 오는 힘은 동정심이 곁들일 때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들을 “나의 형제들”이라고 불렀다(23절). 통치자들은 가끔 거만을 떨다가 그들의 권위를 상실할 때가 많다. 그러나 공손하고 겸양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둘째, 이처럼 다윗은 (그의 통치의 첫 해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똑같게 하는 법을 왕국의 율례와 전쟁의 규례로 삼아 그 후 계속 시행하게 했다(25절). 아브라함이 소돔의 노략물들을 되 찾았을 때, 그는 그것들을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되찾아 줄 때 우리는 그들의 소유권을 무시하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에게서 빼앗은 전리품들을 군인과 회중들에게 다같이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셨다(민 31:27). 여기에 나오는 경우는 약간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한 몸의 지체라는 같은 원칙에 의해 시행되었다. 제자들은 처음에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우리도 “서로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딤전 6:18).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시 68:12). Ⅱ. 다윗은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관대하고 친절했다. 다윗이 모든 사람에게 그들의 것에다 덤까지 붙여서 나누어 주었건만 아직도 여분이 상당히 남아 있었다. 그것들은 대장인 다윗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것은 아마 아말렉의 장막에서 탈취한 금은과 패물이었을 것이다(삿 8:24, 26). 다윗은 이것들이 그의 병사들을 교만하게 하고 나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그의 친구들인 “유다 장로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그 선물들을 보낸 여러 지역의 이름들이 나열되었다. 그 지명들은 유다 지파의 안이거나 또는 가까운 곳이었다. 그 가운데서 제일 먼저 열거한 지명은 “베델”이었다. 그 지명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아마 이 지명이 제일 처음에 열거된 것은 그 이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지명은 그런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있던 성읍이 아니라, 하나님의 궤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 이라고 일컬어진 곳일지 모른다. 그곳에 다윗은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보냈다. “헤브론”이 제일 마지막에 열거되었다(31절). 아마 그곳에는 나머지 상당한 몫을 보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은 그곳을 자기의 본거지로 삼을 만한 고장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삼하 2:1). 우리는 다윗이 선물들을 보낸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1. 그의 관대함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부요하게 하고자 원하지 않고, 자기 나라를 위해 봉사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요하게 해 주셨고, 그가 섬기던 그 나라를 그가 다스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우아한 심령은 관대한 심령이다. “뿌릴 때가 있으면 거둘 때도 있다.” 2. 감사하고 보답하는 그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그와 그의 사람들의 왕래하던 모든 곳에”(30절) 선물을 보냈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며, 그에게 숨을 곳을 제공해 주었고, 양식을 대 준 모든 곳에 선물을 보냈다. 명예와 마찬가지로 정직한 마음도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보답하게 하며, 우리의 능력껏 그들을 찾아보게 한다. 3. 그의 신앙심을 볼 수 있다. 그는 그가 보내는 선물을 “축복”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선물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선물과 함께 따른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주었다. 그는 그 선물이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이라고 하였다(그는 그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이라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때문에 승리하게 된 것을 기뻐하며, 그에게 감사하게 했다. 4. 그의 정책을 볼 수 있다. 그는 이제 머지 않아 행할 자기의 대관식에 그들이 참석하도록 하기 위해 그것들을 보냈다. “선물은 그 선물을 주는 사람이 들어설 자리를 만들어 준다.” 그도 왕으로서의 관용과 박애심이 풍부한 사람임을 보여 주었다. 도량이 넓은 사람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보다 더 돋보인다. 다윗은 십 사람이나 그일라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받은 모욕에 대해서 결코 경계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 ===호크마=== 사무엘상 30장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 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ㅇ다윗...시글락에 이를 때. -이것은 다윗과 그의 일행이 블레셋 방백들의 거부로 인하여 (29:3-5)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참여치 않고, 블레셋 군대를 떠나 다시 자신들의 본거지인 '시글락'에 돌아온 사실을 가리킨다(27:6). ㅇ제 삼일에 - 여기 '삼일'은 다윗 일행이 블레셋 군대로부터 떠난(29:11) 제 3일을 가리킨다(Keil). 이 기간 동안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아벡'으로부터 '시글락'까지 약 75km를 행군 했음이 분명하다(29:1). ㅇ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 아말렉 족속들의 이같은 행위는 (1) 이전에 다윗이 자신들에게 행한 침노 행위(27:8, 9)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지니며(Fay, Keil), (2) 또한 생존을 위한 약탈물 확보(Smith) 등이 그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침범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곳을 지키던 다윗이 북쪽 '아벡'으로 이동함으로써, 그곳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여기서 '남방'은 유다의 남부 지역을 통칭하는 '네게브'(Negeb)를 가리킨다(27:10). 그런데 원래부터 이곳은 항상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받던 지역이었다(14:48). 그리고 '침노하였는데'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파솨트'는 '홑뜨리다', '벗기다'란 의미로서, 이는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침략 행위라기 보다는 갑자가 급습하여 필요한 노획물을 약탈해 가는 노략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27:8) 2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ㅇ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 - 다윗 일행의 가족들인(27:3) 이들은 여자들인 관계로 다윗과 함께 전투에 참여치 않고 시글락에 계속 남아 있었다. 한편, 3절은 이 여자들 외에도 자녀들까지 아말렉 사람에게 모두 잡혀갔음을 말하고 있다. ㅇ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끌고...갔더라 - 아말렉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