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1장
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3.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13.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14.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15.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16.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
17.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18. 악인은 의인의 속전이 되고 사악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되느니라
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20.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21.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2. 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
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25.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26.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27.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28.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29. 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
30.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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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Life and Conduct
1 The king’s heart is like channels of water in the hand of the Lord; He turns it whichever way He wishes.
2 Every man’s way is right in his own eyes, But the Lord weighs and examines the hearts [of people and their motives].
3 To do righteousness and justice Is more acceptable to the Lord than sacrifice [for wrongs repeatedly committed].
4 Haughty and arrogant eyes and a proud heart, The lamp of the wicked [their self-centered pride], is sin [in the eyes of God].
5 The plans of the diligent lead surely to abundance and advantage, But everyone who acts in haste comes surely to poverty.
6 Acquiring treasures by a lying tongue Is a fleeting vapor, the seeking and pursuit of death.
7 The violence of the wicked will [return to them and] drag them away [like fish caught in a net], Because they refuse to act with justice.
8 The way of the guilty is [exceedingly] crooked, But as for the pure, his conduct is upright.
9 It is better to live in a corner of the housetop [on the flat roof, exposed to the weather] Than in a house shared with a quarrelsome (contentious) woman.
10 The soul of the wicked desires evil [like an addictive substance]; His neighbor finds no compassion in his eyes.
11 When the scoffer is punished, the naive [observes the lesson and] becomes wise; But when the wise and teachable person is instructed, he receives knowledge.
12 The righteous one keeps an eye on the house of the wicked— How the wicked are cast down to ruin.
13 Whoever shuts his ears at the cry of the poor Will cry out himself and not be answered.
14 A gift in secret subdues anger, And a bribe [hidden] in the pocket, strong wrath.
15 When justice is done, it is a joy to the righteous (the upright, the one in right standing with God), But to the evildoers it is disaster.
16 A man who wanders from the way of understanding (godly wisdom) Will remain in the assembly of the dead.
17 He who loves [only selfish] pleasure will become a poor man; He who loves and is devoted to [a]wine and [olive] oil will not become rich.
18 The wicked become a ransom for the righteous, And the treacherous in the place of the upright [for they fall into their own traps].
19 It is better to dwell in a desert land Than with a contentious and troublesome woman.
20 There is precious treasure and oil in the house of the wise [who prepare for the future], But a short-sighted and foolish man swallows it up and wastes it.
21 He who earnestly seeks righteousness and loyalty Finds life, righteousness, and honor.
22 A wise man scales the city [walls] of the mighty And brings down the stronghold in which they trust.
23 He who guards his mouth and his tongue Guards himself from troubles.
24 “Proud,” “Haughty,” “Scoffer,” are his names Who acts with overbearing and insolent pride.
25 The desire of the lazy kills him, For his hands refuse to labor;
26 He craves all the day long [and does no work], But the righteous [willingly] gives and does not withhold [what he has].
27 The sacrifice of the wicked is detestable and offensive [to the Lord]. How much more [unacceptable and insulting can it be] when he brings it with evil intention?
28 A false witness will perish, But a man who listens to the truth will speak forever and go unchallenged.
29 A wicked man puts on a bold face, But as for the upright, he considers, directs, and establishes his way [with the confidence of integrity].
30 There is no [human] wisdom or understanding Or counsel [that can prevail] against the Lord.
31 The horse is prepared for the day of battle, But deliverance and victory belong to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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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에 의해 다스려지는 왕의 마음(잠 21:1)
Ⅰ. 20장 24절에서 언급했던 인간의 걸음뿐만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심령에 강력한 작용을 가함으로써 열심히 골몰하고 있는 듯이 보이던 일로부터 그들을 180。전환시킬 수 있고, 또 농부가 수로와 도랑을 파서 자기가 원하는 지면으로 물을 흐르게 하듯 하나님은 그들이 극히 싫어하는 듯이 보이던 일에 열중하도록 하실 수가 있다. 농부는 물의 성분을 바꾼 것도 아니요 거기다 어떤 힘을 가한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섭리도 인간의 원초적 자유의지를 강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로를 자기 자신의 목적에 합당하도록 지시하시는 것이다.
Ⅱ. 권세와 비상대권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마음조차 평민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손에 있다. 우리는 "왕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하물며 그것이 우리에게 조종을 받겠는가! 그들은 arcana imperii-즉 "국가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국왕의 대권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크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 안중에 두고 계실 뿐만 아니라 자기 수중에도 넣고 계신다. 왕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실 것이며, 즉 극히 지엄무쌍한 자들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셨다"(계 17:17; 고전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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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감찰(잠 21:2)
Ⅰ. 우리는 누구나가 자신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편파적으로 하기 쉬우며 우리 성품에는 그릇된 점이 전혀 없기라도 한양 너무 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의 길이"(우리 성서:"행위가"), 심지어 곁길까지도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느라" 심령이 교만한 자는 더러운 일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꾸미거나 전혀 얼토당토 않은 일을 옮게 보이도록 하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으니 이는 다 양심을 입막음하기 위한 것이다.
Ⅱ. 우리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진리대로 행해진다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든지간에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시며 마음을 따라 인간을 판단하시고 마음의 원리나 의도를 좇아서 그 행위를 판단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런 판단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에 대해 극히 심사숙고해서 하는 것만큼 정확하다. 아니, 그 이상으로 정확하다. 그는 우리 마음을 틀리지 않는 저울로 달아보시는 것이다(잠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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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쁘게 하는 선행(잠 21:3)
Ⅰ. 말씀에서 암시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정의를 행하지 않아도 괜찮고 불의를 저질러도 면제가 된다는 망상에 스스로 속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행위를 "정직한 것처럼 보이게"만든다(2절). 즉 "우리는 금식하였나이다"(사 58:3). "내가 화목제를 드렸노라"(잠 7:14).
Ⅱ. 선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장 화려하고 값비싼 헌물을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선언되고 있다. 제사는 신성한 규례에서 나온 것으로, 믿음과 회개의 마음으로 드릴 때는 하나님께 열납되었으나 그렇지 못할 때는 열납되지 아니하였다(사 1:11 이하). 그러나 그러한 때에조차 제사보다 도덕의 의무가 우선하였으니(삼상 15:22), 이것은 제물의 우수성은 본유적이 아니며 그에 대한 의무도 영속적이 아님을 암시한다(막 6:6-8).
신앙의 내용은 대부분 하나님께 대한 의무의 원리에서 공평과 의를 행하고 세상 것을 하찮게 여기며,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있다. 하나님께는 이것이 온갖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많은 기쁨이 되는 것이다(마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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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특징과 죄(잠 21:4)
우리는 이 말씀이 다음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Ⅰ. 악인의 특색.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이나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거만하고 냉소적인 자세를 취하며, 이런저런 흉계를 꾸미고 음모를 계획하여 갖가지 술책을 안출하는 자는 참으로 악한 사람이다. "악인의 등불은 죄니라." 죄는 "악인의 교만"이요, "야심"이며, "영화와 기쁨"이며, "사업"이다.
Ⅱ. 악인의 불행.
한껏 부푼 그의 기대감과 고답적인 의도와 극히 교묘한 안출과 계획이 다 그에게는 죄가 된다. 그는 그런 것으로 죄를 짓게 되어서 자신에게 고통을 예비하게 된다. 모든 악인의 즐거움인 동시에 본업이 되는 것은 죄밖에 없다고 패트릭 감독은 해석한다. 악인은 자기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온갖 짓을 다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전혀 유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형통한 것(혹은 "쟁기질 하는 것")은 죄이며," 그들의 제사조차 죄라고 해도 놀랍지 않은 것이다(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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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자와 조급한 자(잠 21:5)
Ⅰ. 부자가 되는 길.
우리가 세상에서 풍족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부지런히 일해야 하며 수고와 고생에 위축되지 말고 그 일을 열심히 경영해야 한다. 일에 따르는 모든 이점과 기회를 다 활용하며 최선을 다하여 우리 일을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에 조급해서는 아니 되며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재촉해서도 아니 되고, 착실하면서도 유연하게 일하는 태도를 지속해야 한다. 이를 소위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은가. 부지런함 외에도 계획이 있어야 한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그가 부지런한 손만큼이나 필요하다. 예측하는 이른 일하는 것만큼 효력이 있다. 너는 이와 같이 근면과 지혜를 다 구비한 자를 보았느냐? 그런 자는 먹고 살기에 족할 만큼 소유하게 될 것이다.
Ⅱ. 가난하게 되는 길.
성급한 자들은 자기 일에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하여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으려 한다. 그는 정당하게든 불의하게든 이익에만 혈안이 되고 부당한 행위나 지혜스럽지 못한 계획으로 부자가 되보겠다고 조급해 하는데, 이런 사람은 빈궁에 이르는 첩경에 서있는 자이다. 돈을 벌어 출세해 보려고 한 생각과 계획이 오히려 그들 스스로를 파멸시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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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한 재물을 모으는 자(잠 21:6)
본문은 부정한 행위, 즉 거래인을 억압을 하거나 속여넘기고, 거짓 증거나 사기 계약을 해가지고 부자가 되어 보겠다고 하는 자들과 이득이 있을 것같을 때는 서슴치 않고 거짓말을 예사로이 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들은 아마 이런 부정 수단으로 재물을 쌓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Ⅰ. 그러나 그들은 기대하던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그것은 그들에게 실망이 될 것이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심령의 헛수고일 것이다. 그들은 그 재물로부터 위안을 얻지도 못하고 그것을 신뢰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끊임없이 불안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양심과 세인의 비난 때문에 여기 저기로 "불려다니게"될 것이다. 그런 자들은 쉴세없이 분주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Ⅱ. 그들은 기대치도 않던 멸망을 당면하게 될 것이다. 그런 불법적인 행위로 재산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실로 자신의 죽음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은 재물로 인해 중인의 시기와 악인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축재의 수단인 거짓된 혀로 인해 자신을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저주에 내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진노와 저주를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여 그들을 지옥에 쳐넣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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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강포(잠 21:7)
Ⅰ. 불의(不義)의 속성.
거짓말로 돈을 버는 것(6절)은 노골적 강도 행위나 다름이 없다. 속이는 것은 곧 절도 행위이다. 즉 너희는 매매 행위에서 네 말을 불신하는 길밖에 달리 자위책을 갖지 못한 자에게 거짓말로 사취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그의 호주머니를 소매치기하는 것이 낫다. 그가 믿든 말든 그의 선택은 자유였었노라고 말한다고 해서 너의 강도죄가 면죄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한 두 사람이 아닌 모든 자에게 갚아야 할 부채인 까닭이다.
Ⅱ. 불의의 원인.
사람들은 "공의 행하기를 싫어하느니라." 그들은 자기가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지불하려 하지 않고 보류해 둔다. 그래서 태만(omission)은 범죄(commission)의 길을 열어 놓게 되는 것이니, 그들은 급기야 강도 죄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정의를 행하려고 아니하는 자들은 악행을 택하게 되고 말 것이다.
Ⅲ. 불의의 결과.
그것은 죄인 자신의 머리 위로 돌아올 것이다.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공포로 몰아 넣을"것이다(혹자는 이렇게 해독한다). 그들의 양심은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찰 것이며 자기를 짜르고, "자기를 톱질하여 토막내고" 말 것이다(이렇게 해독하는 이도 있다). 그것은 자기를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히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6절에서 "그들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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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길과 곧은 길(잠 21:8)
본문은 사람에 따라 그 길도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Ⅰ. 악인에게는 악한 길이 따른다.
만약 그 사람이 "죄를 크게 범한 자"라면(혹은 "패역한 자") 그 길도 "심히 구부러지느니라"("이상하다"는 뜻도 지님). 그리고 이것이 바로 거개의 사람들이 걷는 길이며, 그러한 것이 인류의 일반적인 타락인 것이다. "저들이 다 치우쳤으며"(시 14:2, 3) 모든 육체가 다 저희 길을 왜곡하였다. 완악한 자, 곧 사특한 자는 그 모든 행동이 재주와 속임수로 이루어져 그의 길은 이상한 길이며 명예와 정직의 모든 규칙과는 상반된 길이다. 그 길은 이상한 길이어서 네가 그를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언제 그를 찾을지도 알 수 없다. 그 길은 모든 선한 것에서 괴리되어 있고 사람을 하나님과 그의 은총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이상한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시며, 따라서 모든 정직한 자들도 뚝 떨어져서 바라보는 길이다.
Ⅱ. 깨끗한 자들은 그 "행사"(우리 성서:"길")로 결백한 자임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그 길은 "곧고" 정당하며 규칙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열납되고 사람들로부터는 시인을 얻는다. 타락한 가운데 있는 인류의 길은 패역하고 이상한 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타락의 상태로부터 회복된 깨끗한 자들에게 대해서는 여기서나 저기서나 매한가지 길뿐이며, 옛 세상의 노아처럼(창 7:1) 그들의 "행사는 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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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는 여인의 해(잠 21:9)
Ⅰ. 어느 때고 할 것 없이 악을 쓰며 잔소리를 하는 여인을 아내로 데리고 사는 남자의 고역은 얼마나 큰가! 때로는 부정기적으로 격정이 폭발하여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을 힐책하는가 하며, 공연히 신경질을 부리고 자녀나 하인들에게 화를 벌컥 내는데 이 어느 것이나 그 남편에게는 성가신 일이다. 만일 그 사람의 집이 크고 광활하고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집 때문에 얻을 안락은 그런 아내로 인해 오히려 씁쓸해질 것이다. 그 집은 "사교의 집"(단어의 뜻은 그러하다)으로서 그는 자기 집에서 사교를 할 수 있고 자기 친구들을 접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내의 그런 점은 그와 그의 집을 비사교적으로 만들며 참된 친구들과 교환(交驩)에 부적당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그런 아내를 택한 자기의 선택을 부끄러이 여기게 되고 자기의 가정 처리 때문에 낮을 들지도 못하게 된다. 또 그것은 그의 교우 관계에 혼란을 가져 온다.
Ⅱ. 많은 자들이 그런 고역 하에서 마지 못해 행하는 것은 어떤 행동인가? 그는 자기 권위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는 극히 비이성적인 격정에 논박한다는 것이 아무 소용없이 일임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이 여인의 성깔은 다룰 수가 없는 것이어서 그렇게 하면 더 길길이 날뛰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지혜와 은혜 때문에 욕설에는 욕설로 맞서 응수하지도 못하며 부부간의 정리 때문에 어떤 혹독한 수단을 사용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지불 한 모퉁이"(우리 성서:"움막")로 물러나와서 홀로 앉아 그 소란을 듣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거기서 편안하게 된다면 이것이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책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을 훌쩍 떠나 기분 전환한답시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는 것보다 백배나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지 아니하며 아담처럼 아내의 죄를 자신의 죄에 대한 구실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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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원하는 악인의 마음(잠 21:10)
여기서는 매우 사악한 자의 특징을 살펴 보자.
Ⅰ. 그는 화를 일으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그의 "마음이" 바로 남의 "재앙을 원하느니라" 그는 재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재앙을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그 일에 손수 가담하는 쾌감도 맛보게 되기를 소원한다. 사악하게 되는 것의 뿌리는 영혼에 있다. 인간들이 악을 행하고 싶어하는 바램이 바로 죄를 잉태하고 죄를 낳는 욕망인 것이다.
Ⅱ.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 악인은 강한 혐오감을 갖는다.
그의 친구가 되며 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는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며," 아무리 어려운 궁지에 처해 있는 자라도 그에게서 눈꼽만치의 친절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악을 추구하고 있을 때에도 그 마음이 너무나 악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기 길에 걸치는 자면 누구고 할 것 없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바로 옆에 사는 이웃도 낯선 자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을 것이며 원수와 마찬가지로 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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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한 자와 지혜로운 자(잠 21:11)
이 말씀은 앞에서도(19:25) 나왔으며, 우둔한 자가 지혜롭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Ⅰ. 악이 고황에까지 들어가 있어 교정할 도리가 없는 자들에게 과하는 형벌로써.
냉소자에게 법을 엄하게 집행하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까지도 그로 인해 경성하게 되고 놀라게 될 것이며, 죄의 폐단에 대해서 전보다 저 잘 식별하게 되고 그 일로 말미암아 경각심을 높이게 되며 주의를 하게 될 것이다.
Ⅱ. 지혜롭고 가르침 받기를 즐겨하는 자들에게 주는 훈계로써 말씀의 선포(설교)로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그는(지혜로운자 자신뿐만 아니라 곁에 서 있는 우매자까지도) 지식이 더 하리라." 딴 사람을 위해 의도된 좋은 교훈을 우리가 취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등 잘못이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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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고난(잠 21:12)
의로운 자는 악인의 집을 헤아려서 악인의 망할 것을 아느니라
Ⅰ. 이 말씀은 선한 자들이 사리를 올바로 깨닫게 되면 행악자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는 이유를 명백히 나타내 주고 있다. "악인의 집"이 이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있는 것을 보게 되면 착한 사람들도 부러운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지혜롭게 그것을 "감찰하고"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이 저희 악을 인하여 환난에 던지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저희 거소에 저주가 임하여 멀지 않아 반드시 파멸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는 그런 악인들에게 위축감을 느끼거나 부러워하기 보다 오히려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동정할 만한 이유가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Ⅱ. 어떤 자는 이 말씀에 딴 의미를 부여한다. "의로우신자(법의 집행과 공안의 유지를 위임받은 판사나 치안 책임자)가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느니라." 무기나 장물이 있을까 하여 그 집을 수색하고 그의 가족에 대해 꾸준히 사찰하며 그의 주변 인물들을 백방으로 조사하는데, 이는 치안 판사가 자기 직권으로 "악인을 저희 악을 인하여 멀리 던져서" 저희의 행악이 더 이상 계속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즉 독수리나 불결한 새들이 은닉하는 둥지를 쳐 없애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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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인정한 자의 운명(잠 21:13)
여기서 우리는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에 대한 묘사와 그런 자의 운명을 볼 수 있다.
Ⅰ. 자비심이 없는 자에 대한 묘사. 그는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느니라." 이 부르짖는 소리는 궁핍과 불행에 대한 그들의 절규이며(그는 이를 알은 체하지도 않겠다고 결심한다) 요청과 탄원의 외침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들의 호소를 듣는 일조차 하지 않으려 하며 그들을 문전에서 내쫓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한다. 그가 만약 그들의 외침을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는 경우에는 그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하며 그들의 호소에 마음이 동하거나 그들의 끈덕진 애원에 넘어가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도와 줄 마음을 막는데"(요일 3:17), 이는 자기 귀를 막는 것과 대등한 짓이다(행 7:57).
Ⅱ. 그런 자의 운명.
그 자신도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그가 부르짖을 것이나 "들을 자가 없으리라." 사람들은 그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남에게 응수한 그대로 갚아 줄 것이다. 하나님도 그의 소리를 듣지 않으실 터이다. 왜냐하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며"(약 2:13), 땅에서 떡부스러기도 주기를 거절했던 자는 지옥에서 한 방울의 물도 거절당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는 자들의 기도는 하나님께서는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하실 것이다. 불쌍한 자들의 울부짖음을 우리가 듣지 않는다면 그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어 우리에게 해가 될 것이다(출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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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선물과 뇌물(잠 21:14)
Ⅰ. 선물이 흔히 가지는 위력. "노"(怒)보다 더 격렬한 것은 없다. 오, "맹렬한 분"의 힘이여! 그러나 슬기롭게 전달한 멋진 선물은 도저히 달랠 길이 없는 것같이 보이던 화를 가라앉혀 주며 극히 예리하고 격정적인 분개심도 무력하게 한다. 탐욕은 으뜸가는 죄로서 흔히 딴 욕망들을 지배한다. Pecunioe obediunt omnia-즉 돈은 만물을 지배한다. 따라서 야곱은 에서를 진정시켰으며 아비가 일은 다윗을 위무(慰撫)하 수 있었다.
Ⅱ. 흔히 뇌물을 주고 받는 데 사용하는 책략. "선물"은 "은밀"해야 하며 "뇌물"은 "품 속"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받는자는 자기가 뇌물을 탐하는 자로 간주되고 수희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자기를 화나게 했던 자에게 낯으로 대하기가 거북하기도 할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이 은밀하게 행해진다면 만사가 순조로운 것이다. 누구든지 선물을 건넬 때는 너무 공공연해서는 안 되며 자기가 보내는 선사품을 자랑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공의를 굽게 하기 위한 뇌물일 경우에는 너무나 불명예스런 추문을 낳기 때문에 뇌물받기를 좋아하는 자들도 그 뇌물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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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즐거움과 악인의 패망(잠 21:15)
Ⅰ. 선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나라 정부에 의해 정의가 확립되고 바른 것이 들어서며 불의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는 일과, 자기 능력과 영역에 따라 직접 정의를 행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며 만족이 된다. 그들은 정의를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즐거움으로 행한다. 치욕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덕을 사랑하므로 의롭게 행하는 것이다.
Ⅱ. 악인에게는 악과 불경건을 금하는 법이 실시되는 것을 보는 일은 두려움이 된다. "공의를 행하는"것은 그들에게는 멸망이 된다. 그리고 자기 신망을 유지하기 위해서나 형벌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그런 일을 행한다는 것은 악인에게 매우 성가신 일이 된다. 또는 본질 말씀을 우리식대로 해석한다면 경건한 신앙의 행사에는 참 즐거움이 있으나 모든 악한 길의 종국에는 틀림 없는 멸망이 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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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배회와 파멸(잠 21:16)
Ⅰ. 배회하는 죄인
그는 "명철의 길을 떠나느니라" 일단 그 선한 길을 떠나게 되면 그의 방황은 끝이 없다. 신앙의 길은 "명철의 길"이다. 따라서 참으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진정한 지성인이 아니다. 이 "길에서 떠나는 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울타리를 부수고 나와서 세상과 육의 행위를 좇는 자이다. 그러다가 그들은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Ⅱ. 자기 안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파멸 속에 있는 죄인인 그는 "거인들의(사망의:우리 성경) 회중에 거하리라"(quiescet-즉 그는 쉴 것이다. 그러나 in pace-즉 평화 속에서 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거인들은 옛 세계의 죄인들로서 홍수로 멸망을 당한 자들을 가리킨다. 죄인들에 대한 저주는 바로 이 멸망에 비유되며, 마찬가지로 죄인의 분깃이 불과 유황불에 있다고 말할 때는 소동의 멸망에 비유된다.
아니면 그는 "저주받은 자의 회중"에 거하리라. 이들은 둘째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이다. 저주 받은 죄인의 회중은 무수하여 다발로 묶여서 불의에 시달림을 받고 있다. 의인의 회중에서 추방당한 자들은 이런 회중에서 거할 것이며, 영원히 거할 것이다. 천국에 이르는 길을 버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는 필연코 지옥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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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욕과 사치에 빠진 자(잠 21:17)
여기에는 육욕에 빠진 사치스런 생활에 반대하는 이론이 전개되어 있는데, 그 논리는 그러한 생활이 인간의 현세적 이익에 파멸을 가져다 준다는 점으로부터 유도된 것이다.
Ⅰ. 쾌락주의자에 대한 묘사. 그는 "연락(宴樂)을 좋아하느니라." 하느님은 건전하고 절제있게 사용한 범위 안에서 감각적 즐거움을 허락하신다. "술"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정신에 활력을 넣어 주는 데에 그리고 "기름"은 "얼굴을 빛나게 하고" 용모를 아름답게 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을 사랑하여 거기에 마음을 두고 열심히 탐내는 자는 바로 쾌락주의자이다. 그는 온갖 관능의 즐거움을 맛보려고 애쓰는 나머지 쾌감의 절정에 이르러서야 끝장을 내려고 하며 쾌락의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참지 못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최선의 즐거움으로 즐기며, 그로 이해 그의 입은 영적 즐거움에 대한 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딤후 3:4).
Ⅱ. 쾌락주의자가 이 세상에서 받는 형벌.
"그는 가난하게 되리라." 관능주의적 욕망은 많은 비용이 들어야 충족될 수있다. 한때 고량진미와 갖가지 별식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던 자들이 필수품도 없어 쩔쩔 매며 남의 직선으로 살아가는 예는 드물지 않다. 즉 많은 멋쟁이들이 걸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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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에 대한 심판과 처벌(잠 21:18)
Ⅰ. 이것은 인간의 정의가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한 사회의 말썽꾸러기인 "악인들은" 국가 전체에 대한 심판을 방지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처벌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고난을 당하게 되어 의인들까지도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간이 도에 맞아 죽었을 때 그는 "의로운" 이스라엘 진영의 "대속"이 되었던 것이며, 교수형에 처한 사을의 일곱 아들은 "의로운" 다윗 왕국을 위해 "대속"물이 되었던 것이다.
Ⅱ. 이는 또 하나님의 섭리가 보통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알려준다.
"의인은 환란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11:8)." 그러므로 악인은 마치 의인의 대속이 되는 듯이 보인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포기하시기 보다는 차라리 많은 악한 사람들이 끊어져 버리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와 바꾸리라(사 43: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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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투는 여인의 해(잠 21:19)
Ⅰ.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면 모든 인척의 위안을 쓰라리게 하고 망치게 된다. 즉 화를 잘 내고 투정 잘하는 아내는 자기 남편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내는 모름지기 남편에게 위안이 되고 알맞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화평과 사랑 속에서 거하지 못하는 자들은 평화와 행복 안에서 거할 수 없다. 한 몸이 되더라도 영이 하나로 되지 못하는 결합에서는 아무런 기쁨도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Ⅱ. 나쁜 친구를 갖느니 차라리 친구가 없는게 낫다. 네 언약의 아내는 너의 반려자이다. 그런데도 그 아내가 괴팍하고 짜증밖에 모르는 여인이라면 그녀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 고적한 "광야에서" 풍상을 맞으며 "사는 것이 나으리라." 사람은 말썽 많은 친척과 이웃들 가운데서 보다는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과 자신을 더 잘 음미할 수 있은 것이다(9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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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있는 자의 소유(잠 21:20)
Ⅰ. 지혜있는 자들은 자기 소유를 늘리고 풍족한 생활을 할 것이다.
그들의 지혜는 수입에 따라 균형된 지출을 하도록 하고 나중을 위해 저축하도록 하라고 가르쳐 줄 것이다. 그래서 그 집에는 "귀한 보배가 있고"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원하는 만큼 있다. 편리한 것은 모두 잘 저장되어 있고 알맞게 비축되어 있으며, 특히 가나안의 주요 산물 중 하나인 "기름"도 잘 준비되어 있다(신 8:8). 이것은 "지혜로운 자의 집," 또는 오두막사리에 있다. 현대식의 근사한 저택을 가지고도 형편없이 해 놓고 사는 것보다 구식의 집을 지니면서도 잘 설비해두고 사는게 더 낫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의 노력을 축복해 주신다. 따라서 그 집은 채워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Ⅱ.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정욕을 위해 다 탕진해 버려서 저축은 하나도 남지 않게 돼버린다. 가진 것을 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벌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자들은 형편없는 경영자일 수밖에 없다. 어리석은 자녀들은 지혜로운 부모가 저축한 것을 낭비한다. 탕자와 같이 "한 죄인이 많은 선을 망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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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자가 얻는 생명과 영광(잠 21:21)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Ⅰ. 경건한 신앙을 우리의 본분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의와 인자를 따르는"것이다. 손쉬운 실행에 만족하지 않고, 못미치게 될까 염려하여 앞으로 약진해 나가는 자들처럼 최대의 주의력과 수고를 기울여서 우리의 임무를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공정하게 행동하는 동시에 자비를 사랑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에 매진하고 인내해야 한다. 비록 완전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목적으로 하고 추구해가는 한 그것은 우리에게 위안이 될 것이다.
Ⅱ. 이렇게 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의를 따라 구하는 자는 의를 얻느니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행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이며 그들은 선행의 즐거움과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타인에게 정직히 대하도록 유의하는 자는 타인들로 부터도 공정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며, 친절히 대해질 것이다. 유대인들은 "의를 따라 구하였으나" 이를 얻지 못하였는데, 이는 저희가 잘못 찾았던 까닭이다(롬 9:31).
그러나 "구하라! 그리하면 구하게 되리라." 뿐만 아니라 생명과 영광"까지 얻게 될 것이니 그것은 곧 "의의 면류관인" 영원한 생명과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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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의 거대한 힘(잠 21:22)
Ⅰ. 권세를 쥐고 있는 자는 자기 권세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기 쉽다.
"용사의 성은 스스로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 성의 견고함은 "그 성을 의뢰하는 것"이다. 그 성은 자기의 견고함을 얼마나 자만하며 신뢰하는지 위험 따위는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
Ⅱ.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는 아주 겸손하여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왕왕 자기 지혜로써 훌륭한 수훈을 세우며, 자기 힘을 무척 신뢰하는 자들을 꺾기까지 한다. 선한 행실은 강대한 군사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잘 궁리된 전략은 "용사의 성에" 효과적으로 "올라가서" 그 성이 그토록 "견고히 의뢰하던 것을 파할"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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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혀를 지키는 자(잠 21:23)
Ⅰ. 우리의 영혼을 곤경으로부터 수고하고 함정이나 궁지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게 하며 고통으로 불안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지키는 것은 우리의 큰 관심사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유와 즐거움을 보존할 수 있게 되며, 우리 영혼은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Ⅱ. 자기 영혼을 지키고자 하는 자는 자기 입술의 문에 보초을 세워 두어야 하며, 금단의 열매가 들어가거나 도적질한 물이 넘어가지 않도록, 어떤 것도 과도히 먹거나 마시지 않도록 절제로서 "입을 지켜야"한다. 그는 또한 자기 입술의 문으로 금지된 말이나 타락한 박언이 유출되지 않도록 그 "혀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우리 말을 끊임없이 경계함으로써 혀를 제어하지 못하는 자들이 빠져드는 많은 화를 미리 방지하게 될 것이다.
네 마음을 지켜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 혀가 범죄치 않도록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네 혀를 지키며 그것이 네 마음의 환란을 당치않도록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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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자(잠 21:24)
스스로 높이고 거만한 것의 폐해를 살펴 보자.
Ⅰ. 교만으로 인해 사람은 범죄하게 된다. 교만은 사람으로 하여금 혈기에 넘치게 하며, "교만한 분노"의 불을 일으킨다. 그들은 성내는 것이 본업인 것처럼 계속 분노를 그치지 않으며, 격정과 거친 말을 교환으로 응수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인간의 심령과 사회를 불사르는 대개의 분노는 "교만한 분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극히 작은 무시도 참지 못하며 조금만 거슬리거나 반박을 받아도 곧 기분이 언짢아지며 격해진다. 또 사람들은 화가 나게 되면 냉소적으로 변모되어 모욕적 인사를 마구 내뱉고 자기 윗 사람에게도 무례하게 되며 주위 사람들을 향해서도 오만불손하게 대한다. 이런 모든 일은 오직 "교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Ⅱ. 교만으로 인해 사람은 치욕을 당하게 된다. 교만한 자들은 그로 인해 악명을 얻는다. 모든 사람이 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망령된 자"라고 부르며 아무도 그들과 관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 명성과 자기 일의 신용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다면 현재 하는 것처럼 그렇게 교만과 혈기에 빠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명예와 신용은 교만 때문에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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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자와 근면한 자(잠 21:25-26)
Ⅰ. 게으른 자의 불행. 그들은 정직한 직업에서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하느니라." 그들은 그 직업으로써 정직하게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 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일할 기회도 제공되어 있으므로, 손을 내밀고 마음을 쏟기만 하면 될텐데 그들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 잘하는 것이라고 선의로 생각한다(26:16). "영혼아! 평안히 쉬어라."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바로 자신의 원수가 된다. 무엇보다도 게으름 때문에 굶주리고 필요한 것을 사용하지 못하며, 동시에 욕망의 시달림을 받게 된다. 손으로 일하기는 싫어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끊임없이 부와 쾌락과 명예를 탐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수고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획득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들의 욕망은 참을성이 없고 만족을 모른다. 그들은 하루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며," "다고 타고"하며 부르짖는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자기에게 무엇인가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더구나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일이야 생각할 수도 없다. 이제 이런 "정욕이 그를 죽이게" 된다. 즉 그 욕망들은 부단히 그를 괴롭히고 다구쳐서 죽을 지경으로 만든다. 아마 그들로 하여금 욕정의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위험한 길을 걷도록 하여 그 명을 재촉하며 요절하게 만들 것이다. 육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이를 정당하게 벌어들이기 위해 수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가 강도로 변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허다하다. 영혼의 일에는 게으르면서도 영혼에게 행복이 되는 것들을 갈망하는 자들은 그 "정욕이 자기를 죽인다"고 할 수 있다. 신령한 축복의 가치를 깨닫고 있으면서도 그 축복을 획득하는 데 필요한 수고를 마다 한다는 것은 그들의 저주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며, 그들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것이다.
Ⅱ. 정직하고 근면한 자의 명예. 의롭고 부지런한 자는 자기 소원을 충족하게 된다. 그들은 그 만족을 즐기게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남에게 선을 베푸는 만족도 얻게 된다. 게으른 자는 언제나 받기를 갈망하고 입을 벌리고 있으나 "의인"은 늘 충만하여 어떻게하면 줄 수 있을까 궁리한다. 그리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는"것이다.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시제하며" 후하게 주고 나무라지 않는다. 그들은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분깃을 나누어 주고," 결코 모자라게 될까봐서 아끼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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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증한 악인의 재물(잠 21:27)
제사는 신의 규례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으며 회개와 개심이 뒤따랐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 제사로 인해 큰 영광을 받으셨으며 또 이를 아주 기뻐하셨다. 그러나 어떤 제사들은 하나님께 열납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가증한 것이" 되기도 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언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제사가 요구되지 않으며, 제사보다 더 나은 일이 있다는 것과 제사를 보류해 두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때는 제사와 헌납을 중지해야 한다. 그 제물은 "가증한 것이"되었다.
Ⅰ. 악인이 재물을 가져 왔을 때.
그들은 제사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좇아 가기 죄를 뉘우치지 아니하고, 자기 정욕을 억누르지 않으며 생활 태도를 수정하지 않는 자였다. 가인도 자기의 재물은 가져왔던 것이다. 악인조차 외면적으로는 경건한 예배 행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기의 짐승과 입술과 무릎을 자유로이 드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마음을 드리고자 하지는 않는다. 바리새인들은 자선을 하고 구제의 금품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모든 악인은 하나님께 "가증한 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증한 이상 그 행위 또한 가증한 것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재물을 열심히 가져오더라도"(어떤 자는 본절의 하복부를 그렇게 해독하기도 한다)마찬가지다. 즉 비록 그들의 헌물이 하나님 앞에 끊이지 않더라도(시 50:8) 하나님께는 가증한 것이 된다.
Ⅱ. "악한 뜻"으로 드릴 때는 더욱 "가증한 것"이 된다. 그들의 제사가 저희의 악함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이를 악용하기 위해 드릴 때에는 가증하지 않을 수 없다. 압살롬의 맹세가 그랬고, 이세벨의 금식과 바리새인의 긴 기도가 그러했다. 탐욕이나 유해한 어떤 계획의 달성을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독실한 신앙을 과시하거나, 어떤 악을 의도하고 있으면서도 경건을 가장할 때는 특히 가증한 행위가 된다(사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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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증인과 양심적인 증인(잠 21:28)
Ⅰ. "거짓 증인" 운명.
한쪽에 대한 호의와 다른 쪽에 대한 악의 때문에 거짓 증거를 하거나, 허위인 줄 알면서도 구술을 선서하거나, 최소한 사실 여부를 잘 알지 못하면서 증언하는 자는 그 일이 드러나게 되면 자기 명성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사람은 다급하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 증언을 하는 자는 신중한 생각 끝에 그나마도 엄숙히 증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외람된 죄이며 신망의 상실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그 사실이 발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망할 것이다. 자기가 거짓 선서를 하면서 게 입으로 기원한 저주의 복수가 바로 자신을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Ⅱ. 양심적인 자에게 대한 칭찬. "듣는 자는 항상 같은 말을 하느니라"(우리 성서:"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모든 자에게 이웃에 대한 진실을 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즉 순종하는)자는 자기가 들은 것만 증언하고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밖에는 증언하지 않으므로 그가 "하는 말은 항상 같다"(즉 자기 자신과 일치한다). 그는 언제나 같은 이야기만 하며, 또한 in finem-즉 끝까지 말한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신용하여 끝까지 다 들을 것이다. 그는 승리할 때까지 말한다. 따라서 양심적인 자는 송사에 이기지만 거짓 증인은 패소할 것이다. 그는 영원토록 말을 할 것이다. 진실된 것은 영원히 참된 것이다. "진실된 입술은 영영히 굳게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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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뻔뻔스러움과 의인의 신중함(잠 21:29)
Ⅰ. 악인의 주제넘음과 뻔뻔스러움. 그는 "그 얼굴을 굳게 하며," 즉 얼굴을 붉히지 않도록 하려고 놋쇠처럼 굳게 하며 극히 흉칙한 죄를 범할 때 동요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철면피가 된다. 그는 법률의 엄중함과 양심의 견제가 무시하며 말씀의 견책과 섭리의 책망을 도외시한다. 이러한 악인은 자기 길대로 행할 것이며 아무것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다(사 57:17).
Ⅱ. 선량한 자의 근신과 신중함. "정직한 자"는 "내가 무엇을 해볼까? 무엇을 목적으로 삼을까? 마음 먹기만 하면 내가 얻을 텐데"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의무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신중한 것일까? 훈계를 위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자기의 행동을 무리하게 진행시키지 않고 안전하고도 확실한 규칙에 의거하여 "자기 행위를 삼가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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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여호와의 승리(잠 21:30-31)
인류 중에서 두뇌로 기획을 하고 군략을 세우는 데 종사하는 자들은 저희의 모든 계획과 사업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다음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Ⅰ.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일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반대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고 그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그의 의향에 배치되는 행동을 해서도 아니 된다.
자기들 편에 "지혜"와 "명철"과 "모략," 그리고 최선의 정략과 모삿군이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만약 그 일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이라면 오래 갈 수가 없다. 하늘에 계신 자는 자기와 자기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려는 인간의 계획을 비웃으시고 그들이 어찌하던 간에 자기의 목적을 수행해 나가실 것이다(시 2:1-6). 따라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은 자기자신을 위해 수치와 파멸을 예비하고 있는 자들이다. "어린 양"은 자기와 "싸우는 자"가 누구든지간에 틀림 없이 "저희를 이기실 터이다(계 17:14).
Ⅱ. 하나님이 없이는 성공도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들은 오로지 그에게 의지하면서 행동해야 한다. 아무리 명분이 훌륭하고, 또 후원하는 자가 아무리 강하고 지혜롭고 충실하며, 그 일을 수행하여 목적을 이루는 데 쓰일 방편이 제아무리 그럴 듯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와 더불어 행동해야만 된다.
수단은 정말 필요하며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싸울 날을 위해서는 "마병"과과 보병까지도 "예비해야 하느니라." 또 이들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일도 해야 한다. 솔로몬 시대에는 과다한 마병의 사용이 금지된 이스라엘의 왕들조차 전쟁에서 마병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결국 "안전"(혹은 이김)과 구원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여호와께서는 군대 없이는 이기실 수 있으나 군대는 하나님 없이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성공을 위해서 구하고 신뢰해야만 할 분이시다. 따라서 성공을 얻으면 그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싸울날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우리 친구로 삼는 일과 그의 은총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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