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상24장 [393.오신실하신주] [336.환난과핍박중에도] [412 '내영혼의그윽히깊은 데서']
.....[[권위의 부재는 망국적이다]]....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바, 쫒겨다니고 있었던 다윗은 "권위(기름부음 받은 리더십이든지, 투표를 통해서 공인받고 세워진 대리권위든지)를 끝까지 세워줌, 그러나 불의를 바르게 지적함"이 그토록 중요함을 주님이 깨닫게 하신바 그대로 자각하여 실행하고 있었다.....불의한 권위는 하나님이 직접 다루신다!! ......학생인권조례의 문제는 (비록 교육자들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품성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동안 많은 실수를 저지르긴 했다 해도!!... [그 무엇보다도 나라 발전과 문화창달의 영속성 의해] 반드시 확보되고 존중되어야할 바 교육 현장의 참된 훈도와 학업/학문 전수 성취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절대 대다수의 스승-교수-교사의 권위 보장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싸잡아서 권위주의자들로 매도하여 (올바른 훈도까지 아예 무시해 버린다거나), 대다수인 다른 학생들에게 학습권 침해의 피해를 끼칠 수 있음이 명백하다 하더라도 ((인권 침해 당했다면서 주장하는 한)) 그 학생이 자기 기분에 따라 쏟아내는 폭력적 언동과 무례함을 권위로 통제할 수 없게 만들고 마는 극악무도함과 공공질서 체계 무시의, (그 결과 교육자의 보람이란 비가시적인 자긍심을 박탈해버렸기에!!) 한 나라의 교육체계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리게 됨) 망국적 가치 전도를 전반에 깔고 있기 때문......십자군전쟁에 있어서의 치명적이고도 심각한 오류는 잘못된 전제 -- 사탄에 의해 미혹 받고 타락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100% 죄인이며, 아무리 성화된 그리스도 교도라 해도 여전히 죄-악-어둠의 영적 곁길로 빗나갈 수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데 있었음....."~을 죽여 멸절하자"하며 들고 일어났던바, 그들 자신이 또 하나의 다른 종류의 악이 되고 말았다!! ----@@성경의 권위 무시 + 성경대로 사는 이들을 무시하는이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명료한 담대함-진리에 대한 굳센 열정 , 반동성애 행동/움직임/모임에 동조 참여하지 않는이들에 대한 속상함 + 미움? + ---그런데!!, 점차로... 어둠을 느낌/인식함 :: (주님의 일깨우시는 바 내적 음성 ---욘4, 계2:1-7) 참 수고하는구나...그런데, 네가 다 옳으냐??... 진리를 지켜냄도 중요하지만 [(좌우를 분별하지못하는) 악인들까지 포함한!!] 그 모든 영혼을 아낌, 그리고 그 영혼에 대한 사랑-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 "사랑(은혜)와 진리" 그 균형을 결코 잃어선 안된다!!..깨우쳐 주심 :: 친히 갚아주실 Q의 때를 기다리라-신뢰하라@@ @@사랑과 진리 안에 머무르라, 그대는 주님의 반쪽이니!!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강이 이끄심 안에서만 담대히 순종하며 행동하라 --- 그 어떤 경우라도, 추호라도 어떤 불편함/거리낌 있는 상태에서는 섣부르게 말하거나 행동하려 하지 말고 그대로 멈추어 서서 머물러 주님 앙망하며, 말씀하실 바 주님을 들으라@@
딤후2장 [331.영광을받으신만유의주여] [407.구주와함께나죽었으니]....은혜아니면살아갈수가없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복음진리, 하나님말씀, 곧 기독교의 교리와 교훈 위탁 :: 경기자, 농부....선두주자의 수고 :: 길이 참음 그 결과는 왕노릇 함)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은혜<카리스χάρις>와 기쁨<카라χαρά>의 영적 상관 관계 [롬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16: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빌4:4-9...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희락>의 헬라어는 <카라χαρά>...기뻐하다 즐거워하다 평안하다 행복하다 평안하다의 의미... 순간적인 기쁨이 아닌 내면에서 계속 흘러 나오는 기쁨을 의미.... <은혜>를 의미하는 <카리스χάρις>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넘칠 때 마음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감정이 <카라 χαρά>,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면서 가졌던 그 <기쁨>... <에덴 동산>은 감격의 기쁨이 가득한 곳이었다...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 ---<카라χαρά>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서 그 진리로 충만한 내면의 상태를 뜻한다...하나님의 생명 말씀에 대한 감격이 커서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즐거움을 의미 ......보라!!, 카라[기쁨, 희락]의 근원은 카리스[(말씀-기도-찬양!!..위로부터 부어주시며, 영에서 솟구쳐 넘치는 부활생명)주 JC의 임재 누림 = 넘치는 은혜...임마누엘...내 안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영원 부활생명 그리스도요 사공 초월하여 천지에 충만하신 권능의 주님, 여호와 하나님의 언제 어디서나 하나 되사 함께 하심 = 코아흐(뒤나미스)+오즈/마흐세(보혜사..파라클레토스)]요, 카리스를 경험할 때 유카리스테오[감사...누림-맛봄-넘침-공급-나눔]의 환호를 발하며 이 진정하고 참된 기쁨을 표현하게 되며, 그 기쁨은 바로 하나로 내주하시는 그분께서 친히 일하며 이끄심[=은사, 카리스마]인 것이니... .....근원적 의미의, 주체못할, 영속적으로 솟구치는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 바 참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아가면서 참되게 경험하여 믿고 살고 누리며 알아감의 친밀 그 자체가 은혜요 그 은혜를 누릴 때 내면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바로 참 희락(기쁨과 즐거움)이다 .....그리스도, 곧 성령-물(말씀)-피(참사람=성육신-대속-정결-부활생명) 하나님의 말씀은 [환경-상황-처지-형편, 시공울 초월하여] <카라χαρά>로 충만한데, <기쁨>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말씀(다바르, 로고스)을 사모하며, 말씀에 전존재를 열어드림으로써 말씀을 [아멘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을, 그분의 다함 없는 풍성-부요-충만을 맛보아 알며, 주님이면 다함 없고 늘 넘치는 만족-그분이면 충분함을 알게 되리니, 그분의 선하심-인자하심-거룩하심-의로우심-미쁘고 참되심을 경험하고 마음에 , 전존재에 그대로 새겨지도록 머물도록 하라, 그 맛보아 알게 됨의 노래와 춤, 고백적 표현이 은혜요, 은혜<카리스χάρις>가 풍성하게 흘러 넘침이 바로 감사<유카리스테오ευχαριστεω>....은혜와 감사가 풍성할 때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 표현 기쁨 <카라χαρά>인 것이다.... 은혜와 감사 그리고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흘러 넘칠 때 그리스도 그분께 속한, 아니 그분 자신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분이 부탁하신 그분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은사<χάρισμα>=선물로 나타남을 알게 되는 것이다....오늘도 사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서 부어 주실 그 기쁨을
.....갱신과 개혁은 나 자신에게서 제일 먼저 시작되어야 함을 명심하라....실지 삶 속에서 그대를 사사건건 고통스럽게 하며 고난 겪게 하는 원수같은 사람을 끝내버리거나 혼내줄 수 있는 상황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대에게 진짜 직접 그렇게 하라/그리해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적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한 유혹/미혹인지 분별할 수 있는가--> 사람들의 소원이나 권위자나 공중이 바라는바를 행동 명분 삼거나, 나의 소원하는바가 아니라 정말!! [천만인이 나를 둘러 강요한다 해도 거기에 마음 둠 없이!!] 하나님 말씀 듣고 그분 뜻따라 정확하게 살기를 원하는가??)) ...뭔가 마음에 거리낌이 있거나, 불편한 마음이 드는 때라면!!, (상황이 좋다/열려져 있다 해도, NO, 그럴 수는 없다 = 내게 Q의 평강이 없다!! 이건 사탄의 유혹이다-라고 말하고 돌아서라 -- 상황 통한 시험이다!! ...하려다 말았다면, 주께 주 이름 부르며 주 임재 앞에 전존재를 던져드림으로써 회개함이 옳다!!)
--누가 내 형제며 이웃인가 = 먼저 주님 이름 부르며 기도하라..."그대의 구휼,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대 앞에 있는" 그 사람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누구를 보고 계시며 무슨 말씀으로 말하게 하고 계시는가.....주께서 말씀하시게 하라 ***JC는 Q이 알게 해 주신바 Q이 권위를 주신 권위자 빌라도에게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었다..
===다윗이 사울을 살려 주다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다윗 주변인들은 오히려 사사기 시대 사람들의 패러다임으로 살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말이다!!...주님은 [타락한] 사람 마음대로!! 결코 그렇게 무심코 스스로 행해서는 절대 안됨을 분명히 말씀하셨음을 명심하라!!...오직 절대적 기준은 매순간 코람데오= 생생한 참 생명, 주 임재 앞에서!! 오직 주님따라!! 영생하시는 하나님 말씀과 성품따라야 함이니..곧 주님 마음과 생각, 심정에 일치함이 선택기준이라야 하기에, 주님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주 이름 불러 여쭈어 결정하며, 그 어떤 거리낌도 그대 양심에는 생기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평강따름!!]이 옳다...누구라도 주 앞에서는 100% 죄인인바, 각사람이 범하는 그 죄에 대해 처리하실분은 주님이시지 그대가 아니기때문이요, 그대가 겪는 고난에 동참하고 계시는 주님이 최선의 보상으로서 이미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사람을 미워하지말라--사람은 조종당하는것뿐이니, (JC께서 그리하셨듯이!!) 오직 불쌍히 여기라!! 진정한 원수의 실체는 사탄마귀임을 알아야한다!!))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주 임재 앞에서 행하는 참 믿음이란]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성품 안에서 앙망하며 듣는바 그분의 지시따름이다!! 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그대는 JC의"악한자를 대적하지말라" 하신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깨닫고 명심하여 새기고있는가? 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 NASB]제24장 1. Now it came about when Saul returned from pursuing the Philistines, he was told, saying, "Behold, David is in the wilderness of Engedi." 2. Then Saul took three thousand chosen men from all Israel, and went to seek David and his men in front of the Rocks of the Wild Goats. 3. And he came to the sheepfolds on the way, where there [was] a cave; and Saul went in to relieve himself. Now David and his men were sitting in the inner recesses of the cave. 4. And the men of David said to him, "Behold, [this is] the day of which the LORD said to you, 'Behold; I am about to give your enemy into your hand, and you shall do to him as it seems good to you.'" Then David arose and cut off the edge of Saul's robe secretly. 5. And it came about afterward that David's conscience bothered him because he had cut off the edge of Saul's [robe]. 6. So he said to his men, "Far be it from me because of the LORD that I should do this thing to my lord, the Lord's anointed, to stretch out my hand against him, since he is the Lord's anointed." 7. And David persuaded his men with [these] words and did not allow them to rise up against Saul. And Saul arose, left the cave, and went on [his] way. 8. Now afterward David arose and went out of the cave and called after Saul, saying, "My lord the king!" And when Saul looked behind him, David bowed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prostrated himself. 9. And David said to Saul, "Why do you listen to the words of men, saying, 'Behold, David seeks to harm you'? 10. "Behold, this day your eyes have seen that the LORD had given you today into my hand in the cave, and some said to kill you, but [my eye] had pity on you; and I said, 'I will not stretch out my hand against my lord, for he is the Lord's anointed.' 11. "Now, my father, see! Indeed, see the edge of your robe in my hand! For in that I cut off the edge of your robe and did not kill you, know and perceive that there is no evil or rebellion in my hands, and I have not sinned against you, though you are lying in wait for my life to take it. 12. "May the LORD judge between you and me, and may the LORD avenge me on you; but my hand shall not be against you. 13. "As the proverb of the ancients says, 'Out of the wicked comes forth wickedness'; but my hand shall not be against you. 14. "After whom has the king of Israel come out? Whom are you pursuing? A dead dog, a single flea? 15. "The LORD therefore be judge and decide between you and me; and may He see and plead my cause, and deliver me from your hand." 16. Now it came about when David had finished speaking these words to Saul, that Saul said, "Is this your voice, my son David?" Then Saul lifted up his voice and wept. 17. And he said to David, "You are more righteous than I; for you have dealt well with me, while I have dealt wickedly with you. 18. "And you have declared today that you have done good to me, that the LORD delivered me into your hand and [yet] you did not kill me. 19. "For if a man finds his enemy, will he let him go away safely? May the LORD therefore reward you with good in return for what you have done to me this day. 20. "And now, behold, I know that you shall surely be king, and that the kingdom of Israel shall be established in your hand. 21. "So now swear to me by the LORD that you will not cut off my descendants after me, and that you will not destroy my name from my father's household." 22. And David swore to Saul. And Saul went to his home, but David and his men went up to the stronghold. ========== 사무엘상 24장 (개요) 지금까지 사울은 다윗을 없애기 위해 그를 찾으려고 애썼지만, 부끄럽게도 다윗을 만날 수가 없었다. 본 장에서는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지만, 다윗이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가 사울의 생명을 살려 준 것은 그로부터 자기 자신의 목숨을 살려 준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이다. 1. 사울이 악착같이 다윗의 생명을 취하려고 따라나섰다(1, 2). 2. (매우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관대하게 사울의 목숨을 살려 주고, 다만 그의 겉옷 자락만을 베었다(3-8). 3. 다윗은 사울에게 그에게 나쁜 감정을 품지 말도록 가슴저리게 호소하며 그 까닭을 밝혀 주었다(9-15) 4. 이것이 잠시 동안은 사울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16-22). ------- 다윗이 굴속에서 사울을 살려줌(삼상 24:1-8) Ⅰ. 사울은 다시금 다윗을 추격하기 시작했다(1, 2절). 블레셋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돌아오자마자, 사울은 다시금 다윗을 찾아 그를 해치고자 나섰으며,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기 위하여 내가 구원을 얻었노라”(렘 7:10)라고 말하는 자처럼 다윗을 해하려고 결심했다. 블레셋 사람들의 빈번한 침공은 다윗을 다시 불러들여서 다시금 군대의 지휘자로 삼아야 할 필요성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을 것 같은데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다윗을 찾아 없애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말을 듣자,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3천 명을 거느리고 “들염소 바위”로 다윗을 잡으려고 갔다. 다윗이 그런 곳에 있다면 구태여 애써 찾아서 없애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를 해칠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다윗이 그런 곳에 갇혀 있다고 하여도 사울에게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다윗이 살아 있는 한 사울은 안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의 섭리는 사울로 하여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숨어 있는 바로 그 굴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3절). 유대 나라에는 큰 바위나 산 허리에 커다란 굴들이 많이 있다. 어떤 것들은 자연 그대로의 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양들에게 뜨거운 태양 빛을 가려 주기 위해 인공적으로 넓힌 것도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떼를 오정에 쉬게 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아 1:7). 그리고 이런 굴들을 일컬어 양의 우리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굴 중의 하나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 그의 사람들 전부, 즉 6백 명 전부가 한 굴속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절친한 친구 몇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나머지는 이와 비슷한 곳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사울은 이 굴 옆으로 지나가다가 혼자 그 속으로 들어갔다. 다윗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다윗은 야심만만한 사람인지라 들염소처럼 높은 바위 위에 기어올라가는 곳에서 찾을 수 있지, 양처럼 굴속에 있으리라고는 사울이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발을 가리기 위하여” 그 굴속으로 들어갔다. 즉 그는 잠시 낮잠을 자기 위해 들어갔다. 굴속은 시원하고 조용한 곳이기 때문에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아마 사울은 대부분의 군사들을 그대로 전진하게 하고, 다만 몇 사람들만 굴 입구에서 자기를 기다리게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발을 가린다는 말을 용변을 본다는 말로 이해하며, 따라서 용변을 보기 위해 사울이 굴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자의 해석이 더 타당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Ⅲ. 다윗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재촉했다(4절). 다윗의 사람들은 그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때가 왔다고 말했으며, 그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 주시던 바로 그때가 되었다고 했다. 이제 고난의 때가 끝나고 높이 들려 올려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사울의 목숨은 전적으로 다윗의 자비심 여하에 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다윗이 사울에게 자비를 베풀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당신 소견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시오”라고 그의 사람들이 말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릇 이해하기 쉽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를 사울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신다고 확신을 넣어 주셨다. 그런데 그의 사람들은 이것이 곧 사울을 없애라는 허락이라고 해석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릇 이해하기가 또 쉽다. 지금 다윗에게는 사울을 죽일 힘이 있기에 그를 죽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다윗의 사람들은 결론을 내렸다. Ⅳ.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베었다.” 그러나 즉시 다윗은 이런 일을 행한 것을 뉘우쳤다. 그것이 조금도 사울을 직접 해한 것은 아니며, 또 그에게 충분히 사울을 죽일 힘도 가지고 있었으나(11절), 그의 왕으로서의 권위를 손상시켜 준 것이기에 다윗은 이런 일을 원치 않았고, “그의 마음이 찔림을 받았다” (5절). 적게 보이는 죄에 대해서도 우리의 마음이 찔림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양심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증거이며, 이로써 보다 더 큰 죄를 방비할 수 있다. Ⅴ. 다윗은 그 자신과 그의 부하들에게 사울을 해하지 못하도록 설득했다. 1. 그는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타일렀다.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다.” 죄란 우리가 깜짝 놀라야 할 것이며, 다만 인간의 결심만이 아니라 거룩한 의분을 가지고 그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그때에도 사울을 그의 원수라거나 또는 그의 출세를 가로막는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다(그렇게 생각했었다면 그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즉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지명하셨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사람)로 생각했으며, 그가 충성을 다해야 하는 그의 주인으로 여전히 생각했다. 사환들과 신하들은 아무리 어려운 대우를 받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책임과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다윗에게서 배워야 한다(벧전 2:18). 2.다윗은 그의 사람들을 타일렀다. “다윗이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7절). 그는 자기 자신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악을 행치 않도록 했다. 이처럼 다윗은 자기의 선을 악으로 갚은 사람에게, 그 악을 선으로 갚아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로 그에게서 자기를 핍박한 자를 구원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모형과 그리고 “모든 악을 선으로 정복하여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을 찾아 볼 수 있다. Ⅵ. 다윗은 사울을 뒤따라 굴에서 나왔으며,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이용하지 않았지만, 사울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사울의 생각과 같은 그런 사람이 아님을 밝혀 줌으로 그의 증오심을 없애고자 하는 기회로 지혜롭게 이용했다. 1. 다윗은 자기의 모습을 드러냄으로 그가 사울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윗은 그가 무슨 말을 할지라도, 사울이 그를 보는 한 곧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울의 질투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생생한 증거와 함께 보여주면 사울이 능히 진실을 깨달아 알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 다윗의 행동은 사울을 매우 공경하는 태도였다. “다윗은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그는 마땅히 존경할 자를 존경하는 태도였다. 우리느 그에게서 우리도 마땅히 우리보다 높은 분들에게는, 그들이 비록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고 하여도, 그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그들을 공경하여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 다윗이 사울을 충간함(삼상 24:9-15) 여기에는 사울을 향해 호소한 다윗의 부드럽고도 감동적인 호소가 있다. 이 호소에서 다윗은 사울로 하여금 그가 다윗을 핍박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임을 깨닫게 하여 주며, 따라서 다시금 마음을 돌이킬 것을 호소했다. Ⅰ. 다윗은 사울을 “아버지” 라고 불렀다(11절). 사울이 왕으로서 그 나라의 국부였기 때문 만이 아니라, 특별히 자기의 장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아버지로부터는 연민과 호의를 받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왕으로서 자기의 선한 신하가 멸망 당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이 멸망 하기를 바라는 것같이 부자연한 노릇이다. Ⅱ. 다윗은 사울의 악한 참모들에게 자기의 분노를 터뜨렸다.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니이까?” 라고 다윗은 말했다(9절). 이 말은 왕관을 쓴 분은 존경해서 하는 말이다. 만일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곧 그들에게 자문하는 자들이 잘못했다는 말이다. 사울이 그를 핍박한 것은 전적으로 사울 자신의 질투와 악의에서 나온 것임을 믿을 수밖에 없는 여러가지 근거를 다윗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다른 사람들이 사울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했으며, 다윗이 그의 원수이며 그를 해하고자 한다는 것을 믿게 만들었다고 공손히 추측했다. 믿는 형제들을 크게 모함하는 사탄은 그의 하수인들을 아니 보낸 곳이 없도록 다 보내 놓았는데 특별히 그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왕궁에서의 그들의 활동은 대단하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함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가이사의 대적이며 왕과 방백들을 해하고자 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Ⅲ. 다윗은 자신의 무죄함과 그리고 사울을 전혀 해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읍니다(11절). 나에게는 책망받을 만한 죄가 없고, 어떤 허물이 있다는 기억도 없읍니다. 내 마음에 창문이 있다면, 나의 주장이 진실하다는 것을 당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하나님께는 죄를 범했을지라도) 왕에게는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그러나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이다.” 아마 베냐민 사람 구시(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곧 사울이라고 생각한다)의 일과 관련하여 노래한 시편 7편은 이 때에 지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했다(3-5절). “내 손에 죄악이 있거든,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밞게 하소서.” 그리고 난외의 관호 속에 있는 주를 보면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뒷받침해 줄 만한 것이 있는데, 이렇게 다윗은 덧붙여 말을 했다. “오직 나는 무고히 대적된 자를 구원했도다.” Ⅳ.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대하여 품고 있는 적의는 거짓된 추측 위에 근거한 것임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보여 주었다.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해하려고 한다고 비난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서 다윗은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11절)라고 말했다. “이것이 확실한 증거이옵니다. 내게 대한 비난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은 당신의 옷 자락이 아니라, 당신의 머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당신의 옷자락을 쉽게 벨 수 있었 듯이 당신의 머리도 쉽게 벨 수 있었습니다.” 1. 다윗은 자기의 증거가 확실하다는 것을 더욱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가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시었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여호와께서 왕을 오늘날 내 손에 붙이셨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왕의 목을 치라고 나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모든 사람이 말하더이다.” 사울은 다윗을 칠 수 있는 약간의 유리한 입장에 놓였을 때에도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 (23:7)라고 외치고는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하기로 결심했던 일이 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2. 다윗은 또 그의 참모들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울을 죽일 기회를 이용하라고 간했다는 말을 했다. “혹이 나를 간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사람들의 말에 따른 것을 대해 비난했다. 그리고 “만일 내가 그들의 말을 따랐다면 당신은 지금 살아 계시지 못할 것입니다.” 3. 다윗은 그가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은 하나의 원칙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울의 수행원들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복수를 당할까 두려워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두려워서 이를 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주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 나는 그를 지켜야 하며, 나의 충성과 신의를 다해야 할 분이라. 나는 그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손대지 않겠노라라고 말하였나이다.” 다윗은 커다란 분격 속에서도 자기의 본성을 잘 지켜서 자기의 왕에게 반기를 들지 않도록 자신을 잘 타이를 수 있었다. Ⅴ. 다윗은 결코 자기 손으로 사울에게 보복을 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굳은 결심을 밝혀 주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실 것입니다. 즉 나를 왕의 손에서 건져 주시리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2절).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다(13절).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읍니다.” 옛 사람들의 지혜는 잠언을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이미 우리 선조들로부터 그러한 교훈을 전통으로 전달 받았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그러한 교훈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한 교훈 가운데 다윗 시대에 널리 알려졌던 속담의 하나가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는 것이었다. 1. 그 뜻은 즉 인간의 부정이 결국은 그 사람을 멸망시킨다라고 어떤 사람들은 이해한다. 완강한 사람은 결국 제 칼로 자기 목을 친다는 것이다. 또 그런 사람에게는 밧줄만 주면, 제 스스로 목을 매어 단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다윗이 말한 바 “내 손으로 그를 해하지 않겠다” 는 생각은 그럴 듯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취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2. 악인은 악행을 자행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그 인간의 성품과 기질에 따르게 마련이다. 이것 역시 전후 문맥과 관련이 잘된다. 만일 다윗이 말하는 그대로, 악인이었다면 그는 악행을 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악행을 행하지 않았다. 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악인이 비록 우리를 해치고자 할지라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가시 덤불속에 앉았으면 가시에 당연히 찔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보복해서는 안 된다. 욕설에는 결코 욕설로 대해서는 안 된다. 비록 “악이 악인에게서 나온다” 고 하여도, 우리에게서는 그들을 보복한다는 뜻에서라도 결코 악이 나와서는 안 된다. 개는 양을 보고 짖을 지라도, 양은 개를 보고 짖지 않는다(사 32:6-8 참조). Ⅵ. 다윗은 사울에게 자기를 해치고자 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며, 또한 무익한 일임을 알려 주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와 같이 보잘것 없는 인간을 쫓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고 했다(14절).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쫓기 위해” 이처럼 많은 군사를 데리고 왔는가? 죽은 개와 벼룩(히브리어에서는 한 마리의 벼룩)을 쫓기 위한 것이 아닌가? 위대한 왕이 싸울 만한 상대가 되지 못하며, 그의 신하이며, 천한 목동 출신이며, 현재는 한갖 유랑민이며 더욱이 어떤 대항을 할 수도 없고 하고자 하지도 않는 그런 자와 겨루는 것은 너무나 자기를 비열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그의 명예가 되지 못하며, 자기를 경멸하는 행동이다. 만일 사울이 자기 자신의 평판을 생각한다면(다윗이 그의 대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대적은 경시하고, 그에게서 어떤 위험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여야 했을 것이다. 다윗은 자기의 부족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일컬어 죽은 개라고 하지는 않았다. 므비보셋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삼하 9:8). 사울에게 약간의 관대한 마음이 어느 한 구석에라도 있었다면 다윗의 이런 겸손한 말은 그의 마음에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는 먹이를 쓰러뜨리는 것만으로 만족해 한다” (Satis est prostr asse leoni). 죽은 개를 짓밟았다고 해서 그것이 사울에게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비록 벼룩이 잘 찾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이를 찾아 내었고, 또 잡기 어려운 것을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 무슨 커다란 기쁨이 되겠는가? 더욱이 왕이 (어떤 사람이 보는 바와 같이) 벼룩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해도 그것은 큰 상이 될 수 없다. “독수리는 파리를 보고 달려들지 않는다” (Aquila non captat muscas).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 대해 벼룩 한 마리 정도로 생각하면 되리라고 보았다. Ⅶ. 다윗은 하나님께 이미 한 번 그리고 또다시 바른 판단을 내려 주시기를 호소했다(12, 15절). “여호와께서 왕과 나 사이에 판결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죄한 가운데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피할 만한 곳이며, 위로의 원천이 되신다.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리 잘못 판단하여도, 마지막 때의 크신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바르게 판단하여 주신다. 그리하여 다윗은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맡기고, 안연히 거하며,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사 모든 것을 판단하여 주실 때를 기다렸다. ---------- 다윗의 말에 마음이 풀린 사울(삼상 24:16-22) Ⅰ. 다윗의 말을 듣고 사울이 후회하는 빛으로 대답했다. 사울이 다윗을 매우 난폭하게 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그의 신하들을 제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사울은 미묘한 사건에 충격을 받았으며, 더욱이 자기가 전적으로 다윗의 자비 때문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도 만일 사울의 마음에 어떤 감동을 받지 못했다면 그의 가슴은 돌보다도 더 굳은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1. 사울은 눈물을 흘렸다. 그가 허위로 눈물을 흘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현재의 심정을 솔직이 표현했다. 사울은 다윗의 친절에 압도당한 사람과 같이 말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그리고 자기의 어리석음과 배은망덕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킨 사람처럼, “소리를 높여 울었다”(16절).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진실로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울며 애통한다. 그리고 죄를 여전히 사랑하며, 동맹을 계속한다. 2. 사울은 솔직하게 다윗의 무죄와 자기의 범죄함을 인정했다(17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사울은 고백했다. 하나님은 “그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리라”(시 37:6)고 하셨는데 이제 그것이 이루어지게 하셨다. 선한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이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안전을 도모하여도 좋다. 사울의 정당한 고백은 (비록 원수의 판단이기는 하지만) 다윗이 무죄하다는 것을 밝히는 데는 충분했다. 그러나 사울 자신이 진실로 회개했다는 것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했다. “그는 의롭고 나는 악하도다”라고 사울은 말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울은 결국 “너는 나보다 더 의롭다”고 말하고자 했다. 악인의 고백은 보통 이보다 더 좋은 고백을 할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만큼 선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말하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보다 좋고 보다 더 의롭다고 말한다. 사울은 여기서 자기가 다윗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인했다(18절). “네가 나를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이 우리를 해하려 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오해였다는 것이 밝혀지면 이때의 사울처럼 과감하게 이를 철회해야 한다. 3. 사울은 다윗이 자기를 선하게 대해 준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선으로 보응하여 주실 것을 기원했다. 다윗이 자기를 당연히 죽일 수 있는 여건하에서도 자기를 살려 준 것은 원수지간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놀라운 자비에서 나온 행동임을 시인했다. 아무도 감히 그렇게 행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 사울은 자기에게 그런 큰 은혜에 보답할 능력도 없거니와, 또 주고 싶은 생각도 자기에게는 없으므로, 그 보답을 하나님께 돌렸다고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7절)라고 기원했다. 불쌍한 거지는 자기에게 동냥을 주는 사람을 위해 다만 기도하는 것뿐이다. 여기의 사울도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4. 사울은 다윗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했다(20절).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안다.” 사울은 전에 사무엘이, 다윗에게 임한 보다 훌륭한 성령과 비교해서 자기에게 말한 약속에 의해 이 사실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실 그 때문에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그의 죄와 어리석음이 더 가중되었다. 사울도 다윗이 자기를 두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에게 내가 손을 댈 수 없다”고 한 말을, 그대로 하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원수인 자기를 살려 준 왕자다운 정신을 접하고서야 이를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그는 이 사실을 시인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온전한 제정신에서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했다. 조만간에 사탄의 회에 속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알고 또 이를 고백하고 그들의 발 앞에 절하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시다(계 3:9). 다윗이 틀림없이 왕위에 오르리라는 것을 사울이 시인했다고 하는 사실은 다윗에게 크신 위로를 주었고, 또 그의 신앙과 희망을 굳게 하여 주었을 것이다. 5. 사울은 다윗에게, 그가 현재 자기의 육체에 대해 보여 준다. 그런 친절을 앞으로도 계속 자기의 후손과 자기의 이름에 대해 나타내 주기를 맹세하도록 요구했다(21절). 다윗은 맹세를 하지 않고서도 사울을 멸망시키지 않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사울은 그런 점을 주장하지 않았다(만일 정의와 명예가 그를 속박하지 않는다면, 맹세도 그를 속박하지 못한다). 사울은 다윗을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윗을 맹세만 시키면 그의 안전이 확실하리라고 생각했다. 사울은 불순종을 통해 그의 영혼을 파멸로 이끌어 갔다. 그렇지만 회개함으로 그런 멸망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이름이 멸절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후손들이 끊어지지 않기를 열심히 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울에게 맹세했다(22절). 사울은 다만 복수심에서뿐 아니라, 후환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에서도 사울의 가문을 완전 멸족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런 피 흘리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시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맹세는 그 후에 성실하게 이행되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잘 보살펴 주었고, 이스보셋을 죽인 자들을 배반자라고 하여 처단했다. 사울의 후손 일곱을 목을 매단 것은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주기 위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행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다윗이 위의 맹세를 깨뜨리는 처사가 아니었다. Ⅱ. 다윗과 사울은 서로 화목한 가운데 헤어졌다. 1. 사울은, 현재로서는 다윗을 핍박하기를 단념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해 적의를 품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잘못을 깨닫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회심은 하지 않은 채, 그 마음속에 쓰라림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윗을 보았을 때 계획했던 대로 다윗을 죽이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핍박자들이 완전히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을 때에라도, 그들의 손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붙잡아 매신다. 2. 다윗은 여전히 자기의 안전을 도모했다. 다윗은 아직 사울을 지나치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갔다.” 금방 화해한 원수에게 자비를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예수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치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이셨다(요 2:24). 다윗과 같은 사람은 비둘기처럼 순전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뱀과 같이 지혜로워야” 한다. ====== ===호크마=== 사무엘상 24장 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ㅇ사울이...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울에게는 다윗에 관한 정보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본서 저자는 이때의 밀고자를 구체적으로 언급치 않지만, (1) 사울이 다윗을 체포하는 데 필요한 병력 규모를 결정함에 있어 주저치 않았으며 (2) 사울이 다윗의 은신처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2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밀고자는 아마도 그곳 지리에 밝은 '십'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23:19; 26:1). ㅇ엔게디(Engedi) - '염소의 샘'(Spring of the goat)이란 뜻으로, 사해(死海)의 서부 중앙에 위치해 있는 요새지요, 석회석 고원 지대이며, 또 온천수가 있는 오아시스지역이다. 후일 솔로몬은 사랑하는 자를 '엔게디 포도원의 고벧화 송이'에 비유하기도 했다(아 1:14). 한편 오늘날의 이곳 지명은 '아인 이디'(Ain-jidy)인데, 현재도 숨을 수 있는 많은 동굴들이 도처에 있다고 한다. 23:29 주석 참조. 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쌔 ㅇ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 여기의 '택한 사람'(이쉬 바후르)은 문자적으로는 '남자 청년'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전국에서 선발된 자들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최고 정예병들이라고 할 수 있다(9:2;13:2; 신 32:25; 사 9:17; 겔 30:17). ㅇ삼천을 거느리고 - '삼천'은 사울이 일찍이 수많은 블레셋 족속들을 무찌를때 동원했던 수효와 동일한 병력 규모이다(13:2). 사울은 이 규모의 병력으로 다윗과 그의 추종자 육백 명(23:13)을 일거에 제거시키려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처럼 사울이 다윗의 군대에 비해 5배나 많은 정예 병력을 동원하여 엔게디 황무지까지 다윗을 추적한 것은 다윗의 무리를 섬멸하려고 단단히 각오했던 사울의 의지(意志)를 잘 나타내 준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비밀스런 보호 아래 있었던 다윗에게는 그와 같이 많고 강한 사울의 군대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시 3:6). ㅇ들염소 바위 - 이곳은 사해(死海)로 내려가는 벼랑의 한 지점으로, 그 가파름 때문에 들염소나 산양만이 생존하기에 적당한 곳이었으므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 같다(Robinson). 뿐만 아니라 당시 이 지역에는 충분한 풀과, 샘에서 넘쳐 흐르는 신선한 물로 인하여 들염소가 많이 야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Danin). 오늘날에도 여행자들은 이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많은 산양과 산염소를 발견한다고 한다(Thompson). 또한 이곳에는 은신하기 좋은 동굴이 많다고 한다(Fay). 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ㅇ길가 양의 우리 - 이것은 그 지역의 좋은 자연 조건을 이용한 양(羊)의 사육처를 가리킨다. 오늘날에도 많이 존재하는 이 '양의 우리'는 대부분 동굴 앞에 돌로 나즈막히 둥글게 쌓아서 만들어졌으며, 그 지붕은 야생 짐승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가시나무로 되어 있다고 한다(Thompson). ㅇ굴이 있는지라 - 그 당시 '굴'은 일반적으로 양을 돌보는 동안 목자들의 주거 장소로 이용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굴'은 날씨가 추울 때는 동물들의 거처로도 이용되었다. ㅇ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 여기서 '가리우다'(사카크)는 '덮다', '둘러싸다'란 뜻이다. 그런데 '발을 가리운다'는 말은 '용변을 보다'란 말의 완곡한 표현이다(Keil, Thenius). 히브리인들이 대변 보는 것을 이같이 표현한 까닭은 대변을 보려고 쪼그리고 앉을 때 옷자락에 의해 자신의 발이 덮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혹자들(Michaelis, Ewald, the Peshitta)의 주장처럼, '잠을 자다'란 뜻으로 볼 수 없다. 한편 사울이 바로 이같은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들어간 그 굴 안쪽에는 다윗의 일행들이 숨어 있었다. ㅇ다윗과...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 엔게디 요새(23:29) 지역에는 많은 동굴들이 있었다. 다윗과 그의 일행은 그 중 은신하기에 좋고 큰 어느 동굴 속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해 그 굴 속으로 찾아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였다. 아무튼 사울은 자기가 들어간 바로 그 굴에 숨어있던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발견치 못했다. 그 까닭은 (1) 동굴의 내부는 지척을 분간 못할 만큼 매우 캄캄했으며, (2) 다윗과 그 일행은 캄캄한 그 굴의 깊숙한 곳에 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동굴 입구는 볕이 드는 관계로 식별 가능하지만, 동굴 내부는 볕이 차단되기때문에 캄캄했다. 따라서 동굴 내부의 다윗 일행은 사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지만, 사울은 전혀 동굴 내부의 사정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4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ㅇ여호와께서...이르시기를 - 사울에 대한 다윗의 궁극적 승리를 예언하는 본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은 갓과 같은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다윗에게 주어졌던 말씀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때 다윗의 추종자들은 다윗에게 주어졌던 그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사울이 호위병도 없이 하필이면 다윗과 그의 일행이 숨어있던 그 동굴로 들어온 것은, 사울의 인생을 거기서 비극적으로 끝나버리도록 조성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으로 인식하고 다윗의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사실 그때 다윗이 사울만 제거해 버리면, 당시의 정황상(18:7) 민심(民心)은 다윗에게로 급속도로 기울어질 것이었고, 따라서 다윗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왕권(王權)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남다른 신앙과 인품 및 우정이 있었다. ㅇ다윗이...사울의 겉옷자락을...베니라 - 다윗은 동굴에 들어온 지 오래여서 동굴의 어두움에 이미 적응이 되었으나, 사울은 그렇지 못하여 자신에게 가까이 근접해 온 다윗의 위와 같은 행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행동을 도왔을 것이 틀림없다(26:12). 한편 다윗이 이때 사울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을 벤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1) 원수에 대한 복수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만 하실 일임을 확신했으며(12절), (2)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를 남김으로써, 자신이 사울을 해하려고 한다는 사울의 의심과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다(11절). 그러나 혹자는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벤 이 행동을 (1) 사울로부터 왕권을 빼앗으려는 강력한 욕심의 표현(Klein, Payne; 15:27, 28; 왕상 11:29-31), (2) 또는 찢어진 옷자락으로 인하여 사울이 조롱의 대상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Payne)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들은 본 문맥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는 바 다윗의 신앙과 성품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편, 여기서 '겉옷'(메일)은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도포식 통옷으로서(2:19), 사울은 아마 용변을 보기 위하여 이 겉옷을 벗어 옆에 두었을 것이다. 혹 입고 있었더라도 그 옷은 땅에 길게 축 늘어져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다윗이 사울의 그 겉옷자락을 베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Fay). 더군다나 사울은 그때 긴장을 푼, 전혀 무방비의 상태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다윗의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5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ㅇ후에...다윗의 마음이 찔려 - 다윗은 사울을 죽이자는 부하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고 단지 사울의 겉옷자락만 살짝 베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 자체가 혹시라도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는 자의 인격을 조롱한 행위로 비쳐지지는 않았는지 괴로워 한 것이다. 더 나아가 아무튼 그 일은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자에 대한 결례(缺禮)인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에, 다윗은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도피 시절 당신의 다윗의 민감한 신앙 양심을 느끼게 해준다. 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ㅇ본절에는 다윗이 사울을 해하지 아니한 결정적 이유가 시사되고 있다. ㅇ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 - 다윗의 이 말은 사울이 하나님에 의하여 신정(神政) 왕국의 왕으로서 임명된 자, 즉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다윗은 사울을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엄연히 여호와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10:1), 선민 통치의 대권을 위임받은자로 인정했기 때문에 사울을 해치지 않았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을 결코 원수로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충성을 다해 섬겨야 할 주인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처럼 다윗이 사울을 해하지 않은 것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신앙적 열심 곧 여호와 경외 사상에 금거한다는 점에서(C.J. Goslinga),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일과 관련하여 다윗을 정치 술수에 능한 인물 혹은 관대한 무사도(武士道) 정신을 가진 인물(Hertzberg)이라는 등 인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ㅇ다윗이...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 여기서 '금하다'(솨사)란 말은 '째다', '찢다', '끊다', '자르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단어는 강조형으로 사용되어, 엄히 책망하면서(Davidson) 상대방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차단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과 부하들의 사사로운 감정을 극복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근거하여 행동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같은 자의 앞날을 보장하신다. 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ㅇ다윗...외쳐 가로되 - 사울을 향한 다윗의 이 외침은 실로 진리와 신앙에 입각한 절규로서, 사울에 대한 다윗의 양심 선언이다(F.R. Fay). ㅇ내 주 왕이여 - 사울을 향한 다윗의 이 호칭은 깊은 존경과 전적 복종의 뜻이 담겨 있는 호칭으로서, 다윗은 자신이 여전히 사울의 충성스런 신하임을 강조하고 있다. ㅇ땅에 엎드려 절하고 - 당시 다윗은 그 용맹과 지략등으로 인해 주변 이방 국가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온유했고, 충실한 종처럼 겸손했다. 실로 이러한 겸손과 예의는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하는 외적 증거가 된다. 진정 겸손한 자세로 진실을 말할 때 성도는 가장 성도답다. 9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ㅇ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 - 본서의 내용을 볼 때,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증오심을 갖게 된 것은 다윗의 명망에 대해 시기와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울 자신의 잘못된 성격 때문이었지, 특별히 어떤 사람의 충돌질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마치 사울이 다른 사람의 이간질에 의하여 자신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된 양 말하고 있는 것은, (1) 실제로 사울의 증오심을 부추긴 구시라는 베냐민 사람이 없지 않아 있었으며(시 7편), (2) 완곡한 표현으로 사울의 완악한 마음을 유화시켜 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11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찌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ㅇ여기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주어졌었으며, 또한 사울을 죽이라는 적극적인 권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사울에 대한 자신의 결백을 강력히 주장한다. 즉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벨때(4절) 이미 생각했던 대로, 사울을 향하여 (1) 자신의 결백한 행위와 (2) 전혀 사울왕을 해칠 의사가 없는 자신의 마음을 간절히 호소했다. 이러한 다윗의 호소는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시 7편에도 잘 나타나 있다(F.R. Fay). ㅇ나의 아버지여 - 다윗은 비단 사울이 이스라엘의 국부(國父)이자 자기의 장인(丈人)이요, 나이상 연장자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부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기름 부음받은 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 및 사랑의 표시로서 사울을 이처럼 부른 것이다(Keil, Fay). ㅇ보소서...옷자락을 보소서 - 다윗은 이때 자신의 말을 입증하는 증거물로서, 사울의 베어진 겉옷자락(4절)을 제시한다. 실로 다윗의 손에 들려있는 사울의 겉옷자락은 사울의 의심이나 주위의 모든 중상 모략을 일소(一掃)하는 증거물로서, 곧 다윗이 사울을 해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생생한 시각적 증거물이다(F.R.Fay).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ㅇ여호와께서는...보복하시려니와 내손으로는...않겠나이다 - '원수 갚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롬 12:21; 히 10:30; 신 32:35)는 사상은 다윗의 철학이요, 신앙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을 '보수하시는 하나님'(시 94:1)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이 자신에게 극악한 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 그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위임한다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앙하는 행위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심히 원하시는 일이다. ㅇ판단하사(솨파트) - 공의적(公義的) 심판을 전제로 하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정적 재판 행위를 가리킨다(시 7:8; 96:13; 겔 18:30). 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ㅇ옛 속담 - 여기서 '속담'(마솰)은 '잠언', '격언'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의 '옛 속담'은 모세 오경 및 히브리인의 세계관에 근거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당시까지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던 금언(金言)이었을 것이다. ㅇ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 이 속담은 악한 마음의 소유자만이 악을 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잠 13:16; 마 7:16-20; 12:35; 눅 6:43; 약 3:11, 12). 바꾸어 말하면 '그 사람이 어떤 자인지는 그의 행위를 보아 알 수 있다'는 뜻인데, 따라서 이 속담은 '열매로 그 나무를 알수 있다'(마 7:20)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 속담을 언급함으로써, 만일 자신에게 왕이 되고픈 야욕이나 사울을 해할 악의가 있었다면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사울을 죽였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다만 겉옷자락만 벤 것은 자신에게는 그러한 야욕이나 악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Stoebe). ㅇ내 손이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 앞에서의 속담을 언급함으로써 자신이 악인(惡人)이 아님을 증명한 다윗은, 이제 반대로 자신은 선인(善人)이기 때문에 그 선한 성품에따라 자신은 절대로 사울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ㅇ이스라엘 왕이...개나 벼룩을 - 여기서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영광스럽고 위엄있는 호칭이다. 반면 '죽은 개나 벼룩'은 가장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상징한다. 아울러 전혀 해(害)를 끼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를 상징한다(Fay,Smith, Keil).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라는 칭호는 사울에게, 그리고 '죽은 개나 벼룩'은 자신에게 대조적으로 적용시킴으로써, 사울에 대한 자신의 현저한 상대적 열등성을 강조한다. 다윗이 이같이 한 까닭은, 사울로 하여금 다윗 자신에 대하여 어떠한 적의(適意)나 질투, 그리고 경계심 따위 등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때문이었다(삼하 9:8; 16:9; 왕하 8:13). 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ㅇ재판장이 되어...판결하사 - 여기서 '재판장'에 해당하는 '다얀'의 기본 동사 '둔'은 '재판하다', '심판하다'란 의미로서(욥 19:29), 뒤에 나오는 '판결하사'란 말과 거의 비슷한 뜻이다. 그런데 이 '판결하사'는 12절의 '판단하사'와 동일한 단어이다. 결국 이 모든 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참 재판장으로 인정하고 전적 의뢰하는 다윗의 신앙을 잘 보여 주는 말이다. ㅇ살펴 신원하시고 - '살펴'(라아)는 세심히 관찰하는 행위를 가리킨다(23:22). 그리고 '신원하시고'(리브)는 원래 '잔소리하다', '변론하다'란 뜻이나, 이 문맥에서는 특정한 일의 깊은 내막까지를 꼼꼼이 헤아리는 행위를 가리킨다(사 1:17; 호 2:2). ㅇ건지시기를(솨파트) - 이말은 앞에 나오는 '판결하사'와 동일한 단어인데, 특별히 이 문맥에서는 '공정히 판결하사 자신의 무죄함을 입증하여 매임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란 의미이다(시 35:1; 43:1; 119:154).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ㅇ내 아들 다윗아...소리를 높여 울며 - 진실에 근거한 다윗의 간절한 호소(8-15절)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즉 다윗은 '내 주 왕'(8절).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10절), '나의 아버지'(11절) 등의 표현으로써, 최대의 충성과 존경과 사랑을 나타내면서 사울의 양심에 호소한 결과, 사울의 무디고 강퍅한 마음의 심금까지도 울릴 수 있었다. 따라서 결국 사울은 다윗을 '내 아들 다윗아'라고 부르면서 대성 통곡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울의 이같은 반응은 그가 진실하게 회개했음을 의미치 않는다(26:1, 2). 단지 사울은 감정에 강하게 좌우되는 자신의 균형 잡히지 못한 성격에 따라 다윗의 설득력 있는 호소에 감동되고 말았을 뿐이다. 한편 '내 아들 다윗아'는, 11절에서 다윗이 사울을 '나의 아버지여'라고 한 것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라 볼 수 있다. 아무튼 사울의 이같은 표현은, 사울이 이전에 다윗을 '죽어야 할 자'(원문대로 한다면 '죽음의 아들')라고 한 것에 비하면 실로 놀라운 호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20:31). 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ㅇ학대하되 - 문자적인 의미는 '악으로 보답하되'(have rewarded - evil, KJV)란 뜻이다. ㅇ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 하나님께 기대되던 (15절) 판결이 사울에 의하여 먼저 이같이 행해지고 있다. 실로 증오심과 질투로 불타오르던 사울의 마음이 다윗의 진실하고도 겸손한 호소와 변호로 말미암아 녹아 내렸을 때, 사울은 사태를 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마음은 일시적인 감동에 근거한 사과(謝過)에 불과할 뿐 진정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는 회개(悔改)는 아니었다. 이것은 얼마 후 사울이 또다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추적한 사실로 보아 명백하다(26장). 이처럼 한 순간의 감정이나 감동으로 행해지는 사과는 진정한 회개에 이를 수 없고, 따라서 진실성이 결여된 것일 수 밖에 없다. 한편 '의롭도다'(차디크)는 법정적 용어로 서, 법적 판단에 따른 무죄(無罪)의 선언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말이다(창 7:1; 신4:8; 잠 18:5; 렘 12:1). 또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 곧 윤리. 도덕적으로 선한 자에 대해서 주로 많이 사용된다(창 18:23; 삼하 4:11; 시 1:1; 겔18:26). 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ㅇ본절은 다윗이 사울을 선대(善待)한 내용으로서(17절), 곧 사울이 다윗을 자신보다 더 의롭다고 말한 근거이다. ㅇ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 여기서 '붙이셨으나'(시그라니)는 '닫다', '가두다'란 의미가 있는 '사가르'의 강조형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뜻에 의하여 당신의 원수를 택한 백성(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뜻하는 동사 '나탄'과는 전혀 다르다(23:4).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가졌던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나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반면(4절), 사울 자신은 '사가르'라는 단어를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이것은,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과 다윗의 갈등과 다툼을 성전(聖戰)의 차원에서 보는 반면, 사울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지 않고 개인적 차원의 정적(政敵) 관계로 국한 시키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그러나 아무튼 사울의 이러한 깨달음과 고백은 이전에 사울이 호언한 바(23:7),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신의 손에 붙이셨다고 하던 때와는 뚜렷이 대조된다(F.R. Fay). 19 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ㅇ원수를...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 이말은 사울 자신에 대한 다윗의 '선대'(17절)를 높이 칭찬하는 반문(反問)이다. 즉 통례상, 사람이 평소 극히 미워하던 원수를 해할 절호의 순간을 만나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해하는 것이 상례인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으니 그것이 곧 자신을 선대(善待)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란 뜻이다. 20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ㅇ나는...알고...아노니 - 본절에서 언급된 사울의 이같은 확신은 이미 요나단에 의하여 다윗에게 정확하게 알려졌었다<23:17>. 즉 사울은 (1) 하나님의 신이 자신에게서 떠났던 사실(16:14), (2) 하나님께서 전쟁터에서 다윗을 형통케 하신다는 사실(18:5), (3) 다윗이 온 백성들로부터 칭송받고 있다는 사실(18:6, 7), (4) 심지어 다윗이 자신의 가족들로부터도 호감을 사고 있다는 사실(18:1, 20) 등으로 인하여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에 오르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ㅇ아노니(야다) - 이는 일말의 의심없이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울의 뇌를 온통 뒤덮고 있던 시기와 증오, 의심과 적개심의 먹구름이 다윗의 진실한 호소로 인해 다 거두어진 이 순간 만큼은 사울도 모든 사실을 바로 인식할 수 있었고, 또 그 마음의 진실을 거짓없이 다 말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러한 깨달음과 진실이 참된 회개에 이르지 못했고, 또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21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ㅇ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 이것은 왕조(王朝)가 바뀔 경우 후환(後患)을 없애기 위해 구(舊)왕조의 후손들을 멸절시켰던 고대의 풍습과 연관시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20:14, 15 주석 참조) ㅇ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 - 이것은 앞에 나오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에 연이어진 동의적(同意的) 대구법(對句法)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 말은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고대 중근동에서는 (1) '이름'을 곧 그 사람의 '인격'으로 간주했으며, (2) 또한 후손들은 조상에게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됐다는 점(히 7:5)등에서 볼 때, 사울의 '후손'이 멸절되는 것은 곧 사울이 멸절되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ㅇ다윗...요새로 올라가니라 - 다윗의 이같은 행동은 (1) 자신에 대한 사울의 일시적 호의(好意)를 근본적 변화로 볼 수 없었으며, (2) 다윗을 경쟁 관계로 생각하는 사울이 내심 그의 입경(入京)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요새' (함메추다)는 '그 요새'(the stronghold)란 뜻으로서, 말할 나위없이 유다 광야에 속한 '엔게디 황무지'(엔게디 요새, 23:29; 24:1)를 가리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