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9장
**[하나님이...복을 주시며!!][..말씀하여 이르시되!!].[창5:24상..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주님 자신, 곧 생명의 주님은 바로 지고지선의 진복 그 자체임!!...복(Bliss)을 빌다/주다(Bless) --blood/bleed..<십자가에서 친히 피흘려 죽으심의 대가로 부활승천 안에서 변형되사 성령으로 자신을 부어주시거고 내주하시며 (무한 복락 근원, 생명 근원이신) 생명의 주님 자신을 분배해 주심으로써 <참되게 JC 믿는 이라면 그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주님을 누릴 수 있게 예비하셨음 ... 이 충만 하나님 자신, 곧 그분 생명의 분배-상호거함-상호기업/소유됨-상호누림을 가능케 하는 것이 HAHAH...
**내영혼아 너는 깨어 주님만 바라라-전심으로 주님만을 갈망하라-너는 그분 약속 말씀 생생하게 친히 들었노니, (자신을 주시며-찾은 바 될 것이며-존재의 모든 문마다 만져주사 열림 인해 주님 임재 발견케 하시며-사랑 충만한 누림, 그 하나됨의 충족 이루시겠다 하셨으니)...내 영혼아 깨어 일어나라- 전존재 기울여 주님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주님 만남에 네 모든 것 달렸음을 날마다 스스로에게 일깨우라. 결코 포기말라, 목숨 걸고 주님 찾으라...
[계19:11-16...*11.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The Coming of Christ the Conqueror))..*11 And I saw heaven opened, and behold, a white horse, and He who was riding it is called Faithful and True (trustworthy, loyal, incorruptible, steady), and in righteousness He judges and wages war [on the rebellious nations]. *12 His eyes are a flame of fire, and on His head are many royal crowns; and He has a name inscribed [on Him] which no one knows or understands except Himself. *13 He is dressed in a robe dipped in [f]blood, and His name is called The Word of God. *14 And the armies of heaven, dressed in fine linen, [dazzling] white and clean, followed Him on white horses. *15 From His mouth comes a sharp sword (His word) with which He may strike down the nations, and He will [g]rule them with a rod of iron; and He will tread the wine press of the fierce wrath of God, the Almighty [in judgment of the rebellious world]. *16 And on His robe and on His thigh He has a name inscribed,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다
1.[304.그크신하나님의사랑]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생명열매 맺음> 번성하여<영적후사 배가> 땅에 충만하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먹거리로]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동물 고기 섭취 허용, 그런데 제한 조건 있음<(먹는 이, 전존재의 건강 배려 하심..긍휼-자비 감사!!)..고기를 먹기전에, 결코 아무생각없이 서두르지 말라...<역지사지>반드시 먼저 그 동물의 피를 (흘려) 제거함으로써 죽음의 고통(!!) 줄여주라!!(또한, 핏물조차 잘 씻어내라)...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자신이, 주 앞에서, 십자가죽음 적용함으로써) 먼저 <겸손히, 자원함으로> 죽어야 다른이 살리는 생명의 공급자로 쓰여질 수 있음을 곰곰히 생각해 보라> .
5. [살인 금지 명령 재 강조..통치자는 (주께서 맡기신) 마땅한 그 직분 신실과 진실함으로 다하여야 함에 주의할지니!!]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개인적 악함따라 고의적으로!!)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이 세상에 보내심의 목적 이루라 하심] 하셨더라...창1:26-28에서 말씀하신 바[정복/이김-다스림..범사에]까지도!! 마침내 완전히 이루실 것<주님은 신실하시다!!...믿는 이마다 연습-실행하라, 오직 주 안에서 하나된 믿음으로>, <(남녀)사람의 생육/번성-땅에 충만-땅을 정복-모든 생물 다스림의 축복 선포 말씀 중에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 다스림<참되게 이김의 정복과 참되게 다스림>에는 반드시 <성령의 주되심에 따라오는> 내적 거룩함의 충만이 필수적인 바, 그리스도의 신성 그대로 닮아가는 자들, 곧 JC의 성육신-십자가 대속의 죽음-부활-승천-성령으로 변형되시고 믿는이의 영에 오셔서 내주하심을 믿는 자들을 통해 이루실 것!!
8. [393.오신실하신주]○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화살<죽임> 없는 활 모양..긍휼+오래참으심!!..사람마다 기억하고 감사하며 돌이켜야 함)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노아와 그 아들들.......<다함없는 영원무궁불변,무한 풍성부요-전지전능 하나님, 그분은 예비/준비하사 공급하시는 여호와 이레, 네 부모이시니> 주님은 또한 너의 근원적 부모이심을 깨닫고, 주님 바라라-친밀한 교통 안에 <경외함으로> 겸손히 동행하며 그분을 닮아가라, 너를 낳고 기른 부모, 하나님 알게 해 준 부모를 합당하게 깊이 사랑-공경하며 네 부모로 인해 주께 감사하라!!
18.[539.너예수께조용히나가...너 낳은 (영적) 부모, 네 부모를 공경하라]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younger, youngest' : 작은/어린/어리숙한/사리 밝지 못한/제멋대로인/자기기만으로 행하는, 하찮은-중요치 않은-무가치한'= 합당치 못한, 카탄(@f;q; , 6996) 또는 카톤(@foq;, 형용사)'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야벳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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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nant of the Rainbow.9.
1 And God blessed Noah and his sons an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2 The fear and the terror of you shall be [instinctive] in every animal of the land and in every bird of the air; and together with everything that moves on the ground, and with all the fish of the sea; they are given into your hand.
3 Every moving thing that lives shall be food for you; I give you everything, as I gave you the green plants and vegetables.
4 But you shall not eat meat along with its life, that is, its blood.
5 For your lifeblood I will most certainly require an accounting; from every animal [that kills a person] I will require it. And from man, from every man’s brother [that is, anyone who murders] I will require the life of man.
6 “Whoever sheds man’s blood [unlawfully], By man (judicial government) shall his blood be shed, For in the image of God He made man.
7 “As for you, be fruitful and multiply; Populate the earth abundantly and multiply in it.”
8 Then God spoke to Noah and to his sons with him, saying,
9 “Now behold, I am establishing My covenant (binding agreement, solemn promise) with you and with your descendants after you
10 and with every living creature that is with you—the birds, the livestock, and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along with you, of everything that comes out of the ark—every living creature of the earth.
11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with you: Never again shall all flesh be cut off by the water of a flood, nor shall there ever again be a flood to destroy and ruin the earth.”
12 And God said, “This is the token (visible symbol, memorial) of the [solemn] covenant which I am making between Me and you and every living creature that is with you, for all future generations;
13 I set My rainbow in the clouds, and it shall be a sign of a covenant between Me and the earth.
14 It shall come about, when I bring clouds over the earth, that the rainbow shall be seen in the clouds,
15 and I will [compassionately] remember My covenant, which is between Me and you and every living creature of all flesh; and never again will the water become a flood to destroy all flesh.
16 When the rainbow is in the clouds and I look at it, I will [solemnly] remember the everlasting covenant between God and every living creature of all flesh that is on the earth.”
17 And God said to Noah, “This [rainbow] is the sign of the covenant (solemn pledge, binding agreement) which I have established between Me and all living things on the earth.”
18 The sons of Noah who came out of the ark were Shem and Ham and Japheth. Ham would become the father of Canaan.
19 These are the three sons of Noah, and from these [men] the whole earth was populated and scattered with inhabitants.
20 And Noah began to farm and cultivate the ground and he planted a vineyard.
21 He drank some of the wine and became drunk, and he was uncovered and lay exposed inside his tent.
22 Ham, the father of Canaan, saw [by accident] the nakedness of his father, and [to his father’s shame] told his two brothers outside.
23 So Shem and Japheth took a robe and put it on both their shoulders, and walked backwards and covered the nakedness of their father; their faces were turned away so that they did not see their father’s nakedness.
24 When Noah awoke from his wine [induced stupor], he knew what his younger son [Ham] had done to him.
25 So he said, “Cursed be Canaan [the son of Ham]; [a]A servant of servants He shall be to his brothers.”
26 He also said, “Blessed be the Lord, The God of [b]Shem; And let Canaan be his servant.
27 “May God enlarge [the land of] Japheth, And [c]let [d]him dwell in the tents of Shem; And let Canaan be his servant.”
28 Noah lived three hundred and fifty years after the flood. 29 So all the days of Noah were nine hundred and fifty years, and he died.
===Footnotes
Genesis 9:25 The words of Noah are prophetic. God later found the disobedience of the Canaanites to be repulsive and replaced them with the descendants of Shem.
Genesis 9:26 The Jewish people are the descendants of Shem. Through Shem’s lineage came the Messiah and salvation.
Genesis 9:27 Note that “let” in this verse represents a command, as in “Let there be light” (1:3).
Genesis 9:27 The antecedent of the word “him” could be Japheth, but it could also be “God,” thus making Him (the Messiah) dwell in the tents of Shem indicating the incarnation in the Semitic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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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개요)
이제 세상과 교회는 둘 다 다시금 한 가정, 곧 노아의 가정으로 축소된다. 본 장은 그 가정의 일에 관한 기사다.
우리 모두가 이 가정의 후손인고로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겠다.
1.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정하신 섭리의 언약(1-11). 이 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① 이 땅 위에 충만케 하시며(1, 7)
② 사나운 짐승들의 가해로부터 안전케 하시며, 이 짐승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게 하시고(2)
③ 생명 보존을 위해 고기를 먹도록 허락할 것이나, 그 피는 먹지 말라 하시고(3, 4)
④ 세상이 다시는 물에 잠기지 않으리라고 하셨다(8-11).
(2) 하나님은 그들 서로의 생명과 자신들의 생명을 잘 보살피라고 명령하셨다(5, 6).
2. 언약의 증거 무지개(12-17).
3. 노아와 그 아들에 관한 독특한 이야기. 여기서 후일에 대한 몇 가지 예언이 나온다.
(1) 노아의 죄와 그 수치(20, 21).
(2) 함의 몰염치와 불효(22).
(3) 셈과 야벳의 효성과 겸손(23).
(4) 가나안의 저주와 셈과 야벳의 축복(24-27).
4. 노아의 향수(享壽)와 죽음(2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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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준 축복(창 9:1-7)
우리가 앞 장의 끝에서는 새 세상의 씨앗이 될 인류의 남은 자들에 관한 기사, 곧 하나님께서 그 심중에 이르신 지극히 인자한 일들을 읽어 보았다.
이제 여기에서는 “그들에게” 이르신 그 인자한 일들을 살피게 된다.
총괄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다”(1절).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 대한 호의와 은총을 약속하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가 자기의 심중에 이르신 바로부터 비롯된다.
하나님의 인애하신 모든 약속은 그의 사랑의 뜻과 자신의 계획으로부터 나온다.
에베소서 1장 11절과 3장 11절, 그리고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노라”고 했다.
우리는 노아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신령과진정으로!]감사를 드린” 것(8:20)을 읽은 바 있다.
이제 여기서는 하나님께서는 성실하게 그를 찬양하는(즉 좋게 말하는) 자들에게 은혜로운 복을 내려 주신다(즉 좋은 것을 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자신이 받은 바 은혜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이 그 은혜를 확증하고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대헌장”(Magna Charta)을 <이제, 새로이> 주시니, 이전의 헌장은 벌을 받아 빼앗겼기 때문에, 이제 새로이 건설되고 실현될 새로운 자연왕국의 “위대한 헌장”이 주어진 것이다.
Ⅰ. 이 헌장은 인간들에게 친절하고 은혜로운 것을 허락한다.
1. 광대한 땅의 허락과, 사람이 크게 증가하며 그 땅을 소유하고 향유하리라는 약속이 있다.
최초의 축복이 여기에 갱신되어 나타났다.
즉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절) 했으며, 이것이 또다시 반복되어 있으니(7절), 이는 곧 인간 종족이 새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 이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그들 앞에 두시고, “땅이 있을 동안에는” 그것은 그들의 소유이며 후사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세상을 소유하고 거주지로 삼게 하기 위해 인간의 자녀들에게 이 세상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시 115:16).
비록 낙원이 아니라 오히려 광야이긴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라 하겠다. 지옥이 아닌 것이 다행이니 하나님께 감사할지어다.
(2)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이 땅 위에서 번성케 하시고, 영속케 하시는 복을 주신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모든 땅 위에는 다소간의 인간들이 거주케 하신다. 한 세대가 지나가도 세상이 존속하는 한 또 다른 세대가 뒤를 잇는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영원의 대양으로 인도될 때까지 인종의 흐름은 끊임없이 계승되고, 그것을 세월의 흐름과 병행되게 하셨다.
비록 아직까지는 사망이 권세를 부리고 여호와는 여전히 심판자로서 알려진다 해도, 그 당시와 같은 인종의 멸망은 두 번 다시 이 땅에 없게 하시며, 오히려 인종을 충만케 하셨다(행 17:24-26).
2. 하등한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능을 허락하심(2절)은 그가 다음 일을 허락하심이다.
(1) 인간 이외의 피조물에게 칭호를 붙일 권리다.
너희들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니”(2절).
(2) 이 피조물들을 지배할 권리다.
이것 없이는 그 같은 호칭의 권리도 보람이 없다.
즉 “땅의 모든 짐승이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라”고 했으니, 이는 이전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것이다.(1:28),
그러나, 단 한 가지 차이점은 때묻지 않고 깨끗한 자는 사랑으로 다스리고 타락한 자는 두려움으로 다스린다는 사실뿐이다.
이제 이 같은 허락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으로 남아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도 그 혜택을 입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① 우리에게 여러 모로 유용한 동물들은 길들여서 우리의 필요에 따라 부리거나 식물로 사용할 수 있다.
말과 소는 참을성 있게 고삐와 멍에를 달게 받고 있으며, 양은 털 깎는 사람과 도살자 앞에서는 벙어리와 같으니, 이는 그들에게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②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들은 속박을 당하게 하여, 비록 사람이 때때로 그중 어떤 동물에 의해 피해를 입는다고는 하더라도, 그들이 서로 합하여 인간을 대적하게 하지는 못하게 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용해 홍수로 하셨던 것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의 중한 심판의 하나이다(겔 14:21).
이 같은 두려움과 무서움이 아니고는 무엇이 이리들로 하여금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사자가 우리의 길거리에 들어오지 못하게 광야에 감금하고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그들 동물들 가운데 얼마쯤은 사람들에게 길들여졌다(약 3:7).
3. 생존과 생계의 허락이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3절).
지금까지도 인간은 땅에서 나는 소산인 열매와 채소와 뿌리 및 모든 종류의 곡식과 젖만을 먹도록 제한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사실상 처음에는 그랬었다(1:29). 그러나 아마도 홍수가 땅의 효력을 대부분 쓸어버렸기 때문에 그 소산물은 보다 부족되고 자양분이 별로 없게 되어, 하나님께서는 이제 허락의 범위를 넓혀 인간이 육식(肉食)을 하도록 허용하셨다.
이것은 아마 하나님께서 지시하기까지는 인간 자신이 결코 생각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양은 이리와 같이 피를 먹을 욕망은 결코 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이 채소를 먹듯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육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이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배우자.
(1) 하나님께서는 선한 주인이어서, 우리가 그를 섬기면서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시니, 이는 필요뿐 아니라 우리의 기쁨을 위해서다.
(2)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버릴 것이 없다는 점이다(딤전 4:4).
그 후 어떤 고기는 식물로서 매우 적절했으나 의식법에 따라 금지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므로, 복음 아래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Ⅱ. 이 헌장의 계율과 조건은 적지 않게 친절하고 은혜로우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호의의 실례들이다.
유대 학자들은 흔히 노아나 노아의 아들들의 일곱 가지 계율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민족이 꼭 지켜야 하는 것이므로, 기록해 두는 편이 좋으리라고 말한다.
그 첫째는 우상 숭배 금지다. 둘째는 불경스런 말을 삼가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살인하지 말라. 넷째는 근친상간과 모든 부정한 것의 금지다. 다섯째는 도둑질과 약탈을 말라. 여섯째는 정의로 다스리라. 일곱째는 살아 있는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것은 할례의 의무가 없는 개종자들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유대인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에 부여된 모든 계율은 인간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것들이다.
1. 인간은 자신의 건강을 침해하고 해치는 식물을 먹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4절).
“너희는 고기를 (맹수들이 먹듯이) 그 생명 되는 피째(즉 생고기) 먹지 말 것이니라.”
고기를 먹는 자유를 허용함에 있어서 이 같은 제한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으니, 이는 그것으로써 자신의 몸을 살찌게 하는 대신 자신을 멸망케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보이고자 하셨을 것이다.
(1) 인간이 비록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라고는 해도 창조주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그 율법의 구속 아래 있다고 하는 것이다.
(2) 인간이 식물을 취하는 데 있어서 탐욕을 부린다거나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그것이 요리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울의 군병들과 같아서도 안 되며(삼상 14:32), 또한 “고기를 탐하는 자”와 같아서도 안 된다(잠 23:20).
(3) 그들은 하등 동물들에 대해서 야만적이거나 잔인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인임에는 틀림없으나 폭군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들을 죽일 수는 있되 자신의 쾌락을 위해 괴롭혀서는 안 되며, 아직 살아 있을 때에 산 동물을 그대로 찢거나 먹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4) 제사법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의 죄를 속하게” 한 피는(레 17:11) 희생 제물의 생명이 죄인의 생명을 대신하여 받아들인 바 되었다는 뜻이다.
피라는 것은 예사로운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제단이나 땅 위에서 “여호와께(만) 부어드려야” 한다(삼하 23:16).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위대하고도 진실한 [유일무이한, 영원효력 있는]제사를 드렸으니, [희생제사 드림 명시]그 율법의 의무는 이유를 상실하게 되었다.
2. 인간은 자기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도 안 된다. 즉 “내가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라”(5절).
우리의 생명이란 내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의 뜻에 따라 생명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가 만일 어느 모로나 [스스로 자행자지함으로써,,,예컨대 자살 시도!!]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3.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그의 생명을 내가 찾으리라” 했으니, 짐승이 사람의 생명을 해친다는 것도 용납될 수 없다.
비록 하나님께서 얼마 전에 생명을 그같이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인자하심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 인간을 살해하는 짐승에게는 죽음으로 갚는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도 확인되는 것이니(출 21:28),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그것이 지켜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살인 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우리들은 그보다 더 그것을 증오해야 하며, 살인자를 벌할 뿐 아니라 살인을 제압해야겠다(욥 5:23 참조).
4. 고의적인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 이것은 형벌의 공포로써 속박하기로 정해진 죄다.
(1)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했으니, 하나님께서 살인자를 벌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피살자의 죄를 살인자에게 갚아 주리라”(대하 24:22).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생명을 앗아간 자에게서 그 사람의 생명을 찾으실 때에는, 살인자가 피살자의 생명을 돌려줄 수 없으므로 그 대신에 자기 자신의 생명을 드려야 한다. 그것만이 상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건 없건 간에, 하나님은 분명히 피를 찾으신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겠다.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에는 숨겨져 있던 살인을 찾아내셔서 부당하게 공인되고 정당화되었던 살인을 벌하실 것이니, 이 일은 인간의 손으로는 할 수 없는 큰 일이다.
(2) 통치자는 살인자를 벌해야 한다(6절).
갑자기 화가 나서든 미리 계획해서 했든, 사람의 피를 흘리면(미리 계획한 원한과 마찬가지로 성급하게 노여워하는 것은 마음의 살인이기 때문이다. 마 5:21)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라” 했다. 이는 통치자나 또는 누구든 피를 갚는 자로 지명되었거나 허락된 자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 있음으로써 악의를 품거나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공포가 되어, 무구한 자들에게는 보호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공연히 칼을 가진” 것이 아니다(롬 13:4).
홍수 이전의 가인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하나님은 친히 자기의 손으로 살인을 다스려 벌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심판을, 처음에는 한 가정의 가장에게 맡기셨고 다음에는 한 나라의 우두머리에게 맡기셨으니, 그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임무에 신실해야 한다.
고의적인 살인은 언제나 죽음으로 벌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묵인하는 것은 왕을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실”(왕하 24:3, 4) 죄다.
따라서 왕은 자기 백성들이 그런 죄를 지으면 용서해서는 안 된다. 이 율법에는 한 가지 이유가 부가되어 있다.
즉 이는 처음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했다.
인간이란 그 조물주에게는 귀중한 피조물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광을 주셨으니, 우리도 인간에게 모욕을 돌리지 않도록 하자.
그 같은 하나님의 형상의 자취는 불의하게 사람을 죽여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고 그에게 치욕을 돌리는 그런 타락한 인간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짐승을 죽이는 일은 허락하셨으나, 그들의 노예를 죽이는 것은 금하셨다.
이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 아니라 그의 형상이요, 훨씬 더 고귀하고 뛰어난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약 3:9).
모든 인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에 속한 것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그 외에도 하나님의 능력의 형상을 지니고 있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왕이나 성도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자는 이중적 죄를 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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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에게 준 언약 (1)(창 9:8-11)
Ⅰ. 여기에는 이 새 세상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의 범위가 총괄적으로 나타나 있다(9, 10절).
1. 은혜롭게도 하나님은 언약이라는 방법으로 인간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신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친절하신 은총을 크게 드러내 보이시고, 인간의 의무와 순종을 합당하고도 유익한 봉사임을 알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용기를 주신다.
2. “내가, 보라, 나의……”라고 하셨으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모든 언약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높은 데 계시면서도 인간에 대해서 이처럼 귀히 여기심을 보라”고 하는 찬양을 발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보라, 내가 성실하게 지켜서 이룩케 하는 언약을 세우느니라”라고 하심으로써 언약의 효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확고하게 하신다.
3. 하나님의 언약은 하늘의 기둥이나 또는 땅의 기초보다도 훨씬 튼튼하게 세워진 것이어서 취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언약은 서약자들과 또한 그 자손들과 더불어 믿어지는 것이니, 약속은 그들과 그 자녀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5. 하나님과의 언약에 관련되어 그 은혜를 입게 될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그 언약에 합의하거나 동의를 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언약은 “모든 생물, 곧 이 땅의 모든 짐승”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Ⅱ. 이 언약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했으니, 또 다른 범람으로 이 세상이 침몰되지 않도록 보호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이다.
한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셨으나 여전히 세상은 추악하고 하나님을 분노케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이 사악함을 예견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코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하셨다. 이는 그가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다스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상이 범람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 세상 자체의 개혁 때문이 아니라 그 모두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옛사람이 멸망당한 것이 정의의 기념비라면, 이 세상이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것은 자비의 기념비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고 하신 그 맹세로 말미암은 것이다(사 54:9).
하나님의 약속은 바다와 구름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명령한 자리를 지키게 하시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여기까지만 오게 하신다”(욥 38:10, 11).
하루에 두 번씩 몇 시간 동안 조수가 밀듯이 바다가 수일간이나 밀려든다면, 세상은 그 얼마나 황폐해질 것인가!
우리가 흔히 만나는 그런 소나기가 계속해서 오래 퍼붓는다면, 구름이란 그 얼마나 파괴적인 것이 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닷물을 흐르게 하시고 비를 퍼부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되면 어떤 일을 행하는지 보여 주신다.
그러나 이 두 가지로 세상이 범람치 않게 보호해 주심으로써, 하나님은 긍휼과 진리로써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보여 주신다.
약속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과 그 이행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진실을 찬양하라. 그러나 이 약속은 다음과 같은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
1. 하나님께서 인류를 황폐케 하는 다른 심판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화살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셨지만, 하나님의 화살통에는 또 다른 화살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2.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느 특정 지역이나 나라를 바다나 강의 범람으로 멸하실지도 모른다.
3. 또 최후의 날에 불로써 세상을 멸하시리라는 약속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다. 옛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한 죄가 이 세상을 불에 살라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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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에게 준 언약 (2)(창 9:12-17)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협약 시에 날인을 하는데, 이는 상호간의 만족을 위해서 그 계약을 보다 귀중한 것으로 삼고 그 약속의 이행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않음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의 언약에 인치심으로써 보증하셨다(히 6:17).
이는 우리가 그 위에 터전을 확고히 세우게 하려 하심이다(딤후 2:19).
이 같은 자연의 계약의 인은 극히 자연적이다. 곧 “무지개”였다. 이것은 물론 그 이전에도 제2의(자연의) 이유가 공동 작용했을 때 구름 속에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뜻으로 언약의 인으로 세우시기까지는 결코 언약의 표가 아니었다. 이 언약의 표(인)에 관해 살펴보자.
Ⅰ. 이 표는 그 언약을 비준하는 것으로 삼아, 그 약속의 진실성을 반복해 보증한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다”(13절),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리라”(14절) 했으니, 이는 그것을 보는 눈이 마음을 감동케 하여 그 믿음을 확고하게 한다는 뜻이다.
또 그것이 “언약의 증거”가 될 것이라 했으며(12, 13절), “내가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지 아니하리라”(15절)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마치 비망록이라도 필요하신 듯이, “내가 그것을 보고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고 하신다(16절).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소망을 붙들고 있는 우리에게는 확실하고도 굳은 위로가 있다는 것이 줄줄이 나타나 있다.
Ⅱ. 무지개는 구름이 비를 막 내리려 할 때 나타나며, 또 비가 그친 후 구름이 걷힐 때 나타난다.
비가 온 땅을 뒤덮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땅이 뒤덮이지 않으리라는 이런 약속의 표를 보여 주신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때맞는 용기를 주심으로써 우리의 두려움을 물리쳐 주신다.
Ⅲ. 구름이 짙으면 짙을수록 무지개는 구름 속에서 더욱 밝아진다. 따라서 고난이 심할수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위로도 훨씬 더 큰 법이다(고후 1:5).
Ⅳ. 무지개라는 것은 하늘 한쪽이 맑을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은 진노한 가운데서도 긍휼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름이 마치 무지개로 둘러싸이는 것같이 되어 하늘 가득히 퍼지지 않게 했다.
무지개는 채색된 비거나 혹은 금빛으로 물든 구름의 가장자리이기 때문이다.
Ⅴ. 무지개는 태양 광선의 반사다. 이는 그 계약의 표가 지니고 있는 영광과 의미가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유래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역시 “무지개가 그 보좌에 둘려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계 4:3),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계 10:1).
이것은 그의 권세뿐만 아니라 그가 중보자이심을 암시하는 것이다.
Ⅵ. 무지개는 그 속에 불타는 듯한 빛깔이 있다.
이것은 비록 하나님이 세상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끝나는 날에는 이 세상이 불로 소멸되리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Ⅶ. 활(무지개의 모양)은 공포를 나타낸다. 이 활(무지개)은 핍박자들을 대적하기 위해 예비했던 활과 같이(시 7:12, 13) 활줄이나 화살은 없다. 활만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무지개는 하나의 활이지만, 이 땅을 향하고 있는 활이 아니라 위를 향하고 있는 활이다.
언약의 표인 이 활은 위안을 주기 위함이지 두려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Ⅷ. 하나님이 무지개를 보고 언약을 기억하신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같이 하여 믿음과 감사함으로써 그 언약을 언제나 마음에 간직해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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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 죄(창 9:18-23)
Ⅰ. 노아의 가족과 직업.
노아의 아들들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 한다(18, 19절).
이로써 홍수 이후에는 노아가 자녀들을 낳지 않았으며, 온 세상이 이 세 아들에서 유래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사 60:22), 시작은 작았던 자들이 그 최후는 매우 크게 되게 하실 수 있음을 명심하자.
그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능력과 효력이다.
노아는 “농부”였으며 <농부>란 히브리어로는 “땅의 사람”인데, 이는 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흙을 지키고 소유하는 자였음을 뜻한다.
우리 모두가 본래는 땅의 사람들로서 그 땅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서 살며 그것을 도모한다. 많은 자들이 그런 죄를 짓고 세상에 속한 것들에 빠져 있다.
노아는 직업상 땅의 열매를 경영하게 되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였다” 했으니, 이는 그가 방주를 나온 얼마 후에 그의 옛 직업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이것은 당초에 방주를 짓는 일로 인해서 제쳐놓아야 했던 일이었으며, 홍수 후에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마른 땅에 집을 짓기 위해서 또 제쳐놓았던 일일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는 그가 목수로서 일해 왔지만, 이제 다시금 농부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바는, 비록 노아가 위대하고도 선하며 늙고 부유한 사람이었으며 하늘로부터 크게 은총을 입고 땅에서 크게 명예를 차지한 사람이었지만, 나태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농부라는 직업을 하찮은 것으로 결코(!!) 생각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로 우리로 하여금 잠시 동안 천직을 떠나게 하시지만, 그 때가 지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과 근면으로 다시금 그 일에 열중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또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천직을 통해서 신실하게 “하나님과 함께 거하여야” 됨을 기억하자(고전 7:24).
Ⅱ. 노아의 죄와 수치.
“그는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그 포도를 거둬들였을 때, 아마 자기 가정에서 즐거운 잔칫날을 정해 아들들과 한자리에서 포도나무가 늘어난 것과 아울러 그 가정이 늘어난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잔치에 앞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사를 올렸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만일 이것을 생략했다면, 하나님께서 노아를 내버려두신 것은 당연했으리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지 않는 자는 짐승으로 끝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란다.
아마 그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잔치를 벌였을 것이며, “나로 먹게 하여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 23: 3, 4)고 이른 이삭과 같이, 그의 아들들을 축복했으리라.
이 잔치에서 그는 “포도주를 마셨으니”, 포도나무를 심은 자가 어찌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고전 9:7) .....그러나 그는 “취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정도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이 마셔 버렸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그 이전이나 이후에는 결코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찌하여 그가 이 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자.
그것은 그의 죄치고는 큰 죄였으며, 그런 큰 구원이 있은 얼마 후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더욱 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하셨듯이(대하 32:31) 그를 그의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 두셔서 이 같은 실수를 기록에 남게 하셨다.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다.
1. 아담의 타락 이후 아무리 순전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기록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흠과 잘못이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자”(6:9)라고 일컬었으나, 그것은 그의 성실을 뜻하는 것이지 죄 없는 완전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2. 조심성이 있고 심지가 굳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유혹 가운데서도 자신의 정결을 지켜 나가던 자도, 유혹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때로 방심하고 부주의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잊음으로써> 불시에 죄악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전에는 주위 사람들이 취했을 때에도 술 취하지 않았던 노아가 이제는 주위 사람들은 취하지 않았는데도 홀로 취해 있는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3.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피조물을 사용할 때는 매우 조심성 있게 하여 지나치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눅 21:34).
노아의 실수의 결과는 수치가 되었다. 노아가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다.” 이는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고 그러했듯이 벌거벗어서 수치가 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숨을 곳이라도 찾았으나, 노아는 지각과 이성이 너무 결여되어 있어서 덮을 것마저 찾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노아가 생각조차 못했던 바 <이중성 가진!!> 포도나무의 열매였다.
여기에서 술 취하는 죄에 대한 중대한 해독을 살펴보자.
(1) 그것은 인간을 폭로시킨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그에게 일임했던 비밀을 쉽사리 드러내게 되고 누설하고 만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술 취한 문지기는 문을 열어 놓고 지킨다.
(2) 그것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경멸의 대상이 되게 하며 인간을 폭로시킬 뿐 아니라 수치스럽게 만든다.
술취했을 때, 사람은 흔히 술이 깨고 나서 생각하면 낯을 붉힐 일들을 말하거나 행동한다(합 2:15, 16).
Ⅲ. 함의 몰염치와 불효가 있다.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두 형제에게 고했다”(22절). 그것을 우연히 본의 아니게 보았다고 하면 범죄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 그러나 에돔 사람들이 “그 형제의 날(재앙의 날)에 방관”했듯이(옵 12), 그는 그것을 보고 기뻐했고 모욕했다.
함은 아마 때때로 술 취했고, 그럴 때마다 그의 선한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을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이제 그는 자기 아버지가 술로 정신을 잃은 것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때때로 남의 잘못을 보고 기뻐하기 일쑤라는 점을 주목하자.
그러나 사랑은 부정을 기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죄를 후회하는 참된 회개자는 다른 사람들의 죄도 기뻐하지 않는다.
2. 건방지고 조롱하는 태도로 “그가 밖으로 나가서(문자적으로는 “길거리에서”이다) 두 형제에게 고했다.”
즉 아버지가 타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것은 매우 큰 과오이다.
(1) 죄를<남이 범한> 조롱거리로 삼는 일은 <그로 인해 자기 돌아봄-진실로 회개함 없이>큰 과오이다(잠 14:9), <그런데, 그것을 망각하고 더 나아가 >오히려 통탄해야 할 일을 허풍 떨고 선전하는 일은 더 큰 과오이다(고전 5:2).
(2) 또 <게다가!!> 남의 잘못, 더욱이 마땅히 존경해야 할 자기 부모의 과오를 공표한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노아는 선한 사람이었고, 함에게는 착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같은 행동은 아버지의 인자함에 대해 너무나 야비하고 불성실한 보복이었다.
함은 여기서 “가나안의 아비”라고 불리고 있다.
이것은 그 자신이 (자기 자녀들의) 아버지인 자는 자기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을 더욱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Ⅳ. 가엾은 아버지의 수치를 덮어 주는 셈과 야벳의 효성스러운 돌봄(23절).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덮을 것을 마련했다.
이것은 남의 죄와 수치에 대한 사랑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것을 공표하는 자들과 함께 공모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것을 가려 주는 조심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될 때와 마찬가지로 남에게도 친절히 대해 주어야 한다.((분명히 주님의 너그러움-친절함의 태도를 따라 보살펴 주되, 그의 궁극적 유익을 위하라.. <주 앞의 단독자 됨 자각하고> 스스로 깨닫도록, 주 앞에서 뉘우치도록 하되 부드러이 대하라))
1. 모든 사람의 잘못을 덮어 주는 사랑의 겉옷이 있다(벧전 4:8).
2. 부모와 다른 어른들의 잘못을 덮어 주는 존경의 옷이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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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예언(창 9:24-27)
Ⅰ. 노아가 “술이 깨었다”.
수면이 그를 고쳐 주었으며, 이제 철저히 치료되어서 그 후로는 결코 그 같은 죄에 빠지지 않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노아처럼 잠자던 자는 또한 노아처럼 깨어나야 한다. 깨었을 때 “내가 다시 술을 찾겠다”(잠 23:35)고 말하는 술꾼과 같아서는 결코 안 된다.
Ⅱ. 예언의 영이 노아에게 임하여, 야곱이 죽을 때와 같이 이제 아들들을 불러 장차 당할 일을 말해 주었다(49:1).
1. 그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선언하는데(25절),
그 저주에서 함 자신도 (하나님의 복사판 됨 추구함으로써 자녀의 본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저주를 받게 된다. 이는 함의 아들 가나안이 다른 아들들보다 죄가 더했기 때문이거나, 또는 이 아들의 후예들이 후에 그들의 땅에서 송두리째 뿌리뽑혀서 이스라엘을 위한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모세는 여기서 가나안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즉 비록 가나안 사람들이 강대한 백성들이기는 해도 예부터 저주받은 백성이었으며, 멸망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저주는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리라”는 것이었다(이는 가장 비천한 종을 뜻하는 말이다).
날 때는 자기와 동등한 자들이 정복으로 그의 주인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분명히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로써 모든 가나안 사람을 칼로 베든지 사역을 시키게 되었으니(수 9:23; 삿 1:28, 30, 33, 35), 저주한 지 800년 후에 이루어졌다.
(1)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조상의 죄를 그 자녀들에게 돌리시기도 한다.
특히 자녀들이 그 조상의 사악한 기질을 이어받고 그들의 사악한 습관을 모방하며, 저주의 유전을 막아 버릴 아무런 방도를 취하지 않을 때 그렇다.
(2) 남들을 욕보이는 자에게는 의당 치욕이 돌아온다.
특히 그것도 자기 부모를 모욕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자가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육친을 조롱하는 불효한 자식은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품꾼으로”(눅 15:9), 아니, 오히려 그 형제들간에도 “종들의 종으로” 삼아야 한다.
(3) 비록 하나님의 저주가 서서히 작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필경에는 이루어진다.
가나안 사람들은 노예가 될 저주를 받았으나, 그래도 매우 오랫동안 지배력을 휘둘렀다.
한 가정이나 어느 개인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 있다 해도, 가나안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그 죄악의 한도가 찰 때까지 오래도록 이 세상에서 융성할 수도 있다.
아직 멸망의 시기는 도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멸망의 인치심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잠 23:17).
2. 노아는 셈과 야벳 위에 축복을 내린다.
(1) 셈을 축복했다.
아니, 오히려 셈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최대의 영예와 행복을 그에게 부여하고 있다(26절).
다음을 살펴보자.
① 노아는 여호와를 “셈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세 갑절이나 복이 있다(시 144:15)는 사실이다. 온갖 축복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신 축복이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리라”(히 11:16).
이로써 자기 아버지에 대한 셈의 효성은 충분히 보답받고 여호와께서 친히 “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영광을 주시니,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드리는 우리의 모든 봉사와 수고에도 충분한 응보라고 하겠다.
② 노아는 셈이 행한 그 선행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셈을 축복하고 칭찬하는 대신에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잘한 모든 일에 대한 그 영광은 겸손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하도록 친히 역사하고 계심을 명심해야겠다.
우리는 사람들의 선행을 볼 때 그들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께” 돌려야 한다(마 5:16).
이와 같이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내신 하나님을 찬송할 때, 사실상 그녀를 축복했던 것이다(삼상 25:32, 33).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에게 쓰이는 것은 영광이요, 은혜다.
③ 셈과 그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관계가 하나님이 셈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게 될 것을 노아는 미리 내다보고 예언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26절).
④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셈의 후손을 통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계속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유대인들이 유래되었으며, 이들은 대단히 오랫동안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신앙 고백을 한 유일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⑤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성에 있어서는 셈의 계보를 이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는 그를 통해서 오셨기 때문이다.
⑥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이라고 했다.
가나안은 특별히 그의 종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선함을 보시는 것만큼 이 세상에서 많은 영예와 능력을 그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그는 야벳을 축복하고 그를 통해서 “이방의 여러 작은 섬들”을 축복하여(KJV, 창 10:5), 이 섬에는 그의 자손이 살게 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27절).
① 어떤 이는 이 모든 것을 야벳에 속하는 것으로 삼고,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첫째, 그의 외형적인 융성을 뜻한다고 봄..
그 자손의 수가 엄청나게 많게 되고 승리를 거듭하여,확장>, 더 나아가<오직 은혜의 예비하심따라> 셈의 장막의 <셈과 함께 동거하는> 주인이 되리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셈 족속 중에도 가장 뛰어난 유대 백성들이 헬라인에게와 그 후 로마인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백성이 됨으로써<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헬라인이나 로마인은 야벳의 자손이라고 한다.
외형적인 번성이 반드시 진정한 교회의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며, 셈의 장막이 언제나 정복자의 장막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둘째, 그것은 이방인들의 개심과 그들을 교회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일을 뜻한다고 봄..
그렇다면 그 구절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야벳을 권고하사(그 어휘가 뜻하는 바는 진실로 이것이리라.), 그같이 타이름을 받아 그가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되리라”
다시 말해서 복음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서로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신앙으로 개종한 후에, 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엡 2:14, 15).
그리고 대체로 이방인들로 구성된 그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인으로서의 특권에 있어서는 유대인들을 계승하리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먼저 그들 자신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그 장막을 던져 버리자, 이방인들이 그들의 장막에 거하게 되리라는 것이다(롬 11:11).
스스로 교회를 떠나 버린 자들을 다시금 교회 안으로 이끌어 들이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원을 이루게 하시는 것은 [진정한!!]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거듭 말하거니와, 인간들이 교회 안으로 인도되는 것은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고로써 되는 일이다(시 110:3).
...그들은 사람의 연줄로 이끌리고 이성(理性)으로 권고를 받아 신앙에 이르게 된다.
② 또 어떤 이는 셈이 직접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야벳과 셈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고 한다(26절).
첫째로, 야벳은 이 땅 위의 축복을 받는다.
즉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그 자손을 창대케 하고 그의 영토를 넓히게 하신다.
야벳의 자손들은 온 유럽과 아시아의 대부분, 그리고 (아마도) 아메리카까지도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의 모든 확장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해안을 확장하고 마음을 넓혀 주시는 이는 바로 그 분이시다. 거듭 말하거니와, 야벳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지 않는 많은 자들이 광대한 장막에 거한다.
둘째로, 셈은 하늘 위의 축복을 받는다.
“그가(곧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리라”. 이는 다시 말해서, “그로부터 그리스도가 오시며, 그 자손을 통해 교회가 계속되리라”는 뜻이다.
장자 상속권은 함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셈과 야벳에게만 나뉘어졌다. 그들은 다같이 권리를 분할했으나, 가나안은 그들 둘의 종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야벳에게는 두 몫이 주어지게 되어, 하나님은 그를 창대케 하신다.
그러나 사제직은 셈에게 주어지니, 이는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신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금은 보화를 그 장막 안에 지니고 있기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의 장막에 거하신다면 그 위에 더한 행복이 결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큰 궁전에 거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모시고 그와 함께 장막에 거하는 편이 훨씬 더 좋은 일이다.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성도(聖都)에는 이방인들의 여러 섬보다도 훨씬 더한 만족이 있다.
셋째로, “가나안은 그들의 종이 되리라”고 했으니, 그들은 서로 가나안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지닌다는 것이다.
야벳이 셈과 연합할 때, 가나안은 그들 앞에 굴복한다. 낯선 자라도 친구가 되면 적들은 그들의 종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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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죽음(창 9:28-29)
Ⅰ. 하나님께서 노아를 장수하게 하셨다.
그는 아담보다는 20년 더 살았고, 므두셀라보다는 19년 적게 산 950년 동안이나 살았다.
이 같은 장수는 그의 뛰어난 믿음에 대한 보다 큰 보답이고, 이 세상에 대해서는 큰 축복이었다.
이 같은 은혜로, 그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이 세상에 대한 의의 전도자로서의 일을 계속했을 것이다(벧후 2:5).
그러나 그가 전파한 자들은 모두 그의 자녀들뿐이었다.
Ⅱ.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에 기한을 두셨다.
아마 그는 자기로부터 계통을 이은 많은 후손들이 자기 앞에서 죽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으리만큼 오래 살기는 했어도, 역시 그도 죽었다.
노아는 그의 생전에 믿음으로 인해 후사가 된 두 세계를 목격했다. 그러나 그 두 세계보다 더 좋은 세계를 보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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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홍수 직후의 일들
===1-17절, 하나님의 복 주심과 언약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나님께서는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도 복 주시며 동일한 말씀을 하셨었다(창 1:28).
복(福)은 좋은 것을 가리킨다. 본문은 자녀 출산을 복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이 많은 자녀를 출산하여 수적으로 많아지고 온 땅에 충만하기를 원하셨다. 다산(多産)은 큰 복이다.
[2-3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살아 움직이는 것]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푸른]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사람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다(창 1:26, 28). 사람이 그 동안 이 임무를 잘 수행했는지 모르나, 이제 다시 그 임무가 강조된다.
사람은 다른 생물과 본질이 다르다. 피조물들 중 사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른 생물들을 섬겨서는 안 되며 그것들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역사상 사람들은 무지하게 피조물을 조물주처럼 숭배했고 썩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들의 형상들로 바꾸었다(롬 1:23).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본래의 음식은 채소와 나무 열매이었다(창 1:29).
그러나 홍수 심판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물고기와 새와 땅의 짐승과 기는 것 등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음식으로 허락하셨다.
이제 육식(肉食)은 사람에게 정당한 음식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명령이라기보다 허용이었다.
아마 홍수 후 사람들의 기력은 급격히 약해진 것 같다. 사람의 수명은 1,000살에서 100살로 급격히 감소되었다.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용하신 것은 아마 이런 이유, 즉 사람의 기력의 쇠약해짐과 더 많은 영양분의 필요 때문이었을 것이다.
[4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식을 허용하셨지만, 한가지 단서가 있었다. 그것은 고기를 살아 있는 채로, 즉 피가 있는 채로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런 단서를 두신 까닭은, 아마 산 생명체를 그대로 먹는 것이 잔인한 행동이며 피가 생명이라는 것을 교훈하시기 위함인 것 같다.
특히 피와 생명은 신비하게 연관되어 있다. 피는 곧 생명이다(레17:11). 짐승의 생명도 피에 있고 사람의 생명도 피에 있다.
몸무게가 60kg인 사람의 몸에는 약 5리터의 피가 있고 그것은 약 46초 내지 1분마다 심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온 몸을 한바퀴 돈 후에 심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피가 없으면 사람은 죽는다. 피는 곧 생명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지만 피는 먹지 말라는 것은 후에 모세의 율법에 명문화되었다(레 17:10-11).
그러므로 고기를 먹는 자는 그것의 피를 다 뺀 후에 먹어야 했다. 그러나 구약의 이 법은 신약 아래서 폐지되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법은 의식법에 속한다. 구약의 의식법들은 신약 아래서 폐지되었다. 골로새서 2:16-17,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5절]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사람의 생명의 피를 찾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짐승이 잘못하여 사람을 죽였을 경우 그 짐승은 죽임을 당해야 한다. 출애굽기 21:28,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을 것이요 그 고기는 먹지 말 것이며.” 또 형제가 그 형제를 죽였을 경우 그는 사형으로 그 죗값을 받아야 한다.
[6절]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남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
그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마땅히 자신이 피를 흘려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즉 살인죄는 사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짐승으로부터 보호하시려는 의도에서 주신 법이다.
이것은 개인적 보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정당한 재판에 의한 사형 집행을 뜻한다.
살인자를 사형으로 응징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짐승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살인은 사람에게 죄를 짓는 악일 뿐 아니라, 그를 자기 형상대로 만드신 하나님께 죄를 짓는 큰 악이며, 따라서 그 악은 사형으로 응징되어야 한다.
물론, 율법에는 고의적이지 않고 부지중에, 실수로 저지른 살인의 경우 그 살인자가 죽음을 모면할 수 있게 했다.
그런 자는 이스라엘 땅에 도피성들 중 하나로 피신하여 들어가 살 수 있었다(민 35:15). 사형 제도는 오늘날에도 필요하고 정당한 법이라고 본다.
사형은 극악한 죄에 대한 공의의 징벌과 그와 유사한 범죄의 예방을 위해 또 사회의 정의와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는 주의 말씀(마 5:39)은 개인적 보복을 금하신 것이며 재판 제도와 사형을 부정하신 것은 아니라고 본다.
[7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1절의 내용을 반복하시며 강조하셨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수정하시거나 취소하신 적이 없다.
과거에 인구 증가와 자원 문제를 고려하여 산아 제한을 주장한 것이나 오늘날 여러 가지 경제적 여건을 구실 삼아 임신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인간적 생각일 뿐이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 자녀를 많이 출산하는 다산(多産)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뜻이며 복이며, 사람의 의무이며 선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건강이나 경제 여건이 아주 어렵지 않다면 또 특별한 사명의 걸음이 아니라면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을 복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시편 127:3-5,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箭筒)[화살 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물론, 낳은 자녀를 경건하고 도덕적이게 바르게 키우고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중요한 의무이며 책임이다.
세상 공부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며 또 필수적인 일도 아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경건하고 도덕적이게 키우는 일이다.
바른 인격이 되지 못하고 세상 지식만 갖춘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며 세상의 구원과 평안을 위해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8-10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언약을 세우셨다.
8-17절의 본문에 ‘내가 . . . 세우리니’ 혹은 ‘내가 . . . 세운’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11, 12, 17절).
또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내 언약’이라고 표현하신다(9, 15절).
언약의 대상은 노아와 그 아들들과 그들의 후손과 또 그들과 함께한 모든 생물들, 즉 새들과 가축들과 땅의 짐승들, 즉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과 자연계 전체이었다.
언약(베리스 )은 하나님의 섭리 방식이었다. 그는 에덴 동산에서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었다(창 2:16-17).
또 그는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며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창 6:18). 또 그는 후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며 그 표로 할례를 명하셨다(창 17:7).
또 그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고(출 24:7; 34:27-28) 그 표로 안식일을 주셨다(겔 20:12).
이것이 구약 시대를 대표하는 옛 언약 곧 구약이다.
또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과 새 언약 곧 신약을 세우셨다(눅 22:20). 새 언약의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이며 세례는 그 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 자신을 낮추시며 스스로를 제한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겸손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 사회의 계약과 달랐다. 인간 사회의 계약은 서로간의 동의 아래 이루어지는 쌍방적 약속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 약속이다. 그것은 일종의 명령, 즉 약속 있는 명령이었다.
[11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한 자들에게 세우신 언약의 내용은 다시는 홍수로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 즉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15절에서도 그는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약속이었다.
자동차 사고를 경험한 자가 자동차 운전을 두려워하고 꺼려하듯이, 홍수 심판 후에 사람들과 새들과 짐승들은 비가 많이 오면 혹시 다시 홍수로 인한 멸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통해 그들에게 이러한 두려움을 제거하시고 평안과 위로를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모든 사람들과 생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호의와 은혜이었다.
물론, 세계적 홍수 심판은 다시 없을 것이나, 부분적, 지역적 홍수는 있을 것이며, 소돔과 고모라 성의 유황불비 심판이나 가나안 땅의 완전한 진멸 같은 지역적 심판도 있을 것이다. 또 마지막 날 세상에는 불 심판도 있을 것이다(벧후 3:6-7). 그러나 오랫동안 평안이 지속될 것이다.
본문 12, 16절에서, 이 언약은 “영세(永世)까지”(레도로스 올람 ) 세우는 언약이며 “영원한” 언약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이미 창세기 8:21-22에서 암시되었었다: “. . .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12-17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표]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증거 혹은 증표로 무지개를 주셨다. ‘무지개’라는 원어(케쉐스 )는 ‘활(bow)’이라는 뜻이다.
무지개(rainbow)는 물방울로 만들어진 활 모양이다. 무지개는 언약의 표로 주어졌다. ‘증거’라는 원어(오스 )는 ‘표(sign), 증표(pledge)’라는 뜻이다.
17절도 무지개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증표임을 말한다. 증표는 하나님의 언약의 확실함과 견고함을 나타낸다.
무지개는 비가 온 후 아직 공중에 물방울이 많이 있을 때 햇빛이 물방울에 굴절되어 일곱 가지 색깔을 내는 신비로운 모양이다.
비가 개었어도 사람들이나 새들과 짐승들이 홍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만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공중에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주실 것이다.
줄과 화살이 없는 활 모양의 그 무지개는 사람에게 공포를 주는 활이 아니고 위로를 주는 활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보실 때 그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며(15, 16절)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실 것이다.
무지개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제거하고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복이다.
1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7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결혼과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뜻이며 복이며 또한 사람의 의무요 선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고의로 그 뜻을 저버리고 거스르고 있다.
우리는 결혼과 자녀 출산이 짐스러운 일이 아니고 귀하고 복된 일임을 깨닫고 사모하며 감사히 받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락하셨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본래의 음식은 채소와 과일이었다. 그러나 홍수 심판 후, 아마도 사람의 기력이 쇠하여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육식을 허락하셨다. 살아 움직이는 것을 먹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살생은 죄가 아니다. 채소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자손들에게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그 표로 무지개를 주셨다.
이것은 홍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위로이었다. 그러나 비록 홍수 심판은 없지만, 하나님의 마지막 불 심판이 남아 있다(벧후 3:7).
불의한 자들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 회개치 않는 모든 죄인은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명령대로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18-29절, 노아의 실수와 저주와 축복
[18-19절]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인류는 노아의 세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지식이다.
인류는 아담의 자손이며 또한 노아의 자손이다. 인류는 한 아버지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한 가족같이 여기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노아의 세 아들을 말할 때 “셈과 함과 야벳”의 순서로 말한다(창 5:32; 6:10; 7:13; 9:18; 10:1; 대상 1:4). 그러나 출생 순서는 야벳, 셈, 함의 순서인 것 같다(Poole). 왜냐하면 (1) 창세기 9:24는 함을 “그 막내 아들”(NASB, NIV)이라고 부르고(히브리어에서 형용사에 관사를 붙이면 최상급, 즉 ‘가장 작은 아들’이라는 뜻), (2) 창세기 10:21은 원문에서 “[셈은] 형 야벳의 동생”이라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고(KJV) (MT 액센트에 맞음), (3) 창세기 11:10(“셈은 1백세 곧 홍수 후 2년에”)은 노아가 500세 때 셈이 아직 출생하지 않았음을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셈과 함과 야벳”은 중요성의 순서일 것이다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고 표현된다. 22절에도 함을 ‘가나안의 아비 함’이라고 말한다.
또, 25절은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 그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 되리라는 노아의 말과, 26절과 27절은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되리라는 말을 기록한다.
창세기 10:15-20은 함이 구스, 미스라임, 붓, 가나안 등 네 아들을 낳았고 또 가나안은 북쪽 시돈에서부터 남쪽 가사까지 흩어져 살았던 가나안 자손들의 아버지라고 좀더 자세하게 증거한다.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가 함을 ‘가나안의 아비’라고 반복해 표현하고 또 가나안에 대한 예언을 반복해 기록한 것은 장차 그들이 들어가 얻을 가나안 땅의 원주민이 누구의 자손이며 그들이 왜 저주를 받아 진멸(殄滅)되어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은 왜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후에 그 땅의 거주민들이 매우 우상숭배적이었고 음란했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웠다(레 18:3, 25; 신 7:1-5).
창세기에는 가나안 땅에 대한 언급이 32번이나 나온다. <20) 히브리어 사전(BDB)에 의하면, 구약에 사람 이름이나 땅을 가리키는 ‘가나안’이라는 말( )이 90회 나온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려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고(창 11:3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나(창 12:5), 그때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했고(창 12:6)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에게 그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을 뿐이었다(창 12:7).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다(창 13:12; 16:3). 후에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고(창 31:18; 33:18; 35:6; 37:1) 마침내 가나안 땅에 묻혔다(창 50:5, 13).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었다.
[20-21절]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포도원을 만들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노아는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는 포도원을 만들었다.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원어는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노아는 포도 수확을 했고 포도주를 만들었고 포도주를 마시고 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있었다. 그것은 노아의 부끄러운 실수이었다.
성경은 술에 대해 많이 교훈한다. 성경에서 술은 주로 포도주이다.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음료수로 여겨지기도 한다.(신 14:26; 시 104:15),
그러나 술취함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큰 죄로 분명하게 정죄되어 있다(고전 6:10; 갈 5:21).
술취함은 사람으로 올바른 정신과 판단력을 잃고 실수하게 하고 범죄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엡 5:18),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 했다(잠 23:31).
또 교회의 감독이 되려는 자들은 절제하며 근신해야 하는데, 이것은 술 취하지 말아야 함을 내포하는 자격 요건이며 또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해야 했다(딤전 3:2, 8).
노아의 실수는 인간의 본성의 부패성과 연약을 잘 드러낸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완전했지만(창 6:9) 엄격한 의미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노아에게도 인간의 연약성이 있었다. 노아도 실수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은 없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또 어느 정도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 뿐이다.
경건한 노아의 술취함과 실수는 우리 모두에게 금주(禁酒)의 교훈을 준다. 술은 실수와 범죄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 오늘날의 술은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취하게 만들기 때문에, 또 술은 건강을 해치고 경제적 낭비도 적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인의 완전 금주(禁酒)와 완전 금연(禁煙)의 좋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 좋다.
[22-23절]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 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하체’라는 원어(에르와 )는 ‘벌거벗음 혹은 음부(陰部)’라는 뜻이다(BDB). 함의 잘못은 이중적이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실수와 부족을 또 다른 사람에게 알린 것이었고, 둘째는 아버지에 대한 공경심이 없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부족과 실수가 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부족을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다.
레위기 19: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잠언 11:13,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잠언 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특히, 부모의 실수와 부족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셨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라면 부모의 실수와 부족을 덮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보고 그것을 덮지 않고 다른 형제들에게 말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공경심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달랐다. 그들은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가렸고 얼굴을 돌이켜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공경심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자식으로서 올바른 태도이었다.
[24-27절]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학카탄 )[막내](NASB, NIV)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노아는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25절)고 말했고 또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26절) “가나안은 그의[아마 ‘셈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7절)고 말했다.
‘종들의 종’이라는 표현은 가장 낮은 종이라는 표현이다. 모세는 노아가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되리라고 저주하였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셈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을 암시한다. 함의 아들 가나안에 대한 노아의 저주는 함에 대한 저주보다 더 큰 저주이었다.
부모와 자녀는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출 20:5).
복된 부모의 자녀는 복되지만, 저주 받는 부모의 자녀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부모가 범죄하면 그 자녀들에게 화가 미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도 조심해야 한다.
노아의 저주는 가나안 족속들의 멸망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물론 실제적으로도 가나안 족속들은 심히 음란하고 우상숭배적이었다(레 18:24-25;신 7:1-2).
저주는 의인들에게 임하지 않고 악인들에게 임한다. 노아의 저주는 예언적이었으나, 또한 공의롭게 성취되었다.
한편, 노아는 셈을 축복하였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은 복된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며 하나님께서만 인간에게 복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셈과 함께하시니 셈은 복을 받은 자이다.
과연 셈족은 참 종교의 전파자가 될 것이다. 참 종교는 셈족에서 발견될 것이다. 참 경건은 셈족을 통해 전달된 유산이다. 하나님의 복은 셈족을 통해 이어져 왔다.
이스라엘 민족은 셈족이었고 그 족속을 통해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롬 9:5).
노아는 야벳도 축복하였다. 그에게는 창대케 되는 복이 선언되었다. 이것은 특히 문화적, 경제적 번창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야벳 족속은 서구 문명을 건립한 자들이다. 그들은 과연 번창하는 복을 받았다.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말은 야벳 족속이 셈의 종교적 복에 참여할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방인 구원에 대한 예언이다.
야벳의 자손들인 유럽인들은 셈의 자손인 유대인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
그들은 셈의 장막, 곧 셈의 자손인 유대인들에 의해 시작된 교회에 들어왔다.
[28-29절] 홍수 후에 노아가 350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950세에 죽었더라.
노아는 아담 후 천년경에 출생하여 이천년경에 죽었다. 그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획을 그었다.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는 노아와 128년간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세상의 초기 역사가 아브라함에게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인류는 아담의 자손이며 노아의 자손이다.
그들은 홍수 심판 후 남은 자들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슬러 올라가면 다 한 조상의 자손이며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불쌍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
노아는 술취함으로 실수하였고 그것은 그의 생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았다. 술취함은 방탕한 일이며 실수와 범죄의 원인이며 또 천국 길을 가로막는 큰 죄악이다. 술 취한 자들은 천국을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 우리는 완전금주와 완전금연의 경건한 기독교 전통을 귀히 여기며 술과 담배를 멀리하자.
셋째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
함은 아버지 노아의 실수를 덮고 감추려 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알렸다. 그것이 함의 부족이고 그가 저주를 받은 이유이었다. 우리는 이웃의 부족과 실수를 볼 때 그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 하지 말고 그것을 가급적 덮어두어야 하고 특히 부모님의 부족과 실수에 대해 그러해야 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2).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잠 11:13).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넷째로, 노아의 저주와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함의 자손들, 특히 가나안 족속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되어 완전히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반면에, 셈은 종교적으로 복을 받았다. 셈족에서 인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야벳은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번창하였고 셈의 종교적 복을 나누어가지게 되었다.
부모가 하나님 앞에서 한 축복과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셈의 복을 얻었다. 우리는 이 구원의 복을 감사하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자녀들도 이 복을 누리도록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며 본을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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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궤 :: <네이버 사전>..* 공궤 [供饋] 이바지하다 (供) 먹이다(饋) [명사] 윗사람에게 음식을 드림
.[성경사전] 공궤(供饋)-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음식을 나눔) ..[영] Table, Feed 음식을 주는 일.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로서 [주린 자에게 식물을나눠 주는]을을 가르쳤다(사 58:7,겔 18:7).
예수께서는 그 최종 설교에 있어서, 말일에 누구나 그 이웃에 대한 사랑, 그 베품과 나눔의 유무를 표준으로 심판될 것을 말씀하셨다(마 25:31-46).
이웃에 대한 사랑은 신앙에서 나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공궤]로 역되어 있는 히브리어는 [pilpel.]인데 (창 47:12,삼하 19:32,33,왕상 17:9), [봉양하다](창45:11,룻4:15)로도 번역되어 있는 말이다.
그리스어 명사 [트라페자 travpeza (trapeza)](행 6:2)는, [상](床)으로 많이 번역되어 있는 말이고(마 15:27,21:12기타), 동사 [트레포- trevfw(trepho)]는 [기르다](마 6:26,눅 12:24), [양육하다](계 12:6,14)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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