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2장 ..[183.빈들에마른풀같이][478.주날개밑내가편안히쉬네] [309. 목마른 내 영혼].[368.주예수여은혜를내려주사]...[433.귀하신주여 날 붙드사]..
...(영생의) 주여, 허락하여 주신 오늘, 매순간 보혈로 정결케 하신바, CJ 의지하는 마음을 주소서, 부어주시는 은혜따라, 주님 뜻 이루소서, 주만 바라보며 앙망-의지하도록 내 맘 붙드소서!! 오직 성령충만 안에서 (깨어 있어..하나님과 사람 앞에..신실함과 참됨으로) 진실하게 하시고, 내 마음에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 움직이심따라 말할 때, 오직 넘치는 영광의 주님만 나타나옵소서, 오늘 하루하루 순간을 주가 주신 힘으로 승리하기 원하네(임마누엘!!) 주여 나를 진실하게 하소서
===룻이 보아스를 만나다 1. 나오미(하나님의 모든 선하심, 노암)의 남편 엘리멜렉(하나님은 나의 왕)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그 안에 능력이 있다)더라 ....유력자= (하일 깁보르 = 힘strength-능력efficiency-강력army/power-재산wealth and riches -a mighty man of wealth = a man of standing, > a man of great wealth...오늘날, 진정하고도 참된한 유력자는 참생명의 유력자, 곧 거듭남 안에서 참 믿는이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유력자임을 진실로 깨닫고 있어야 한다!!...우리안에 거하시는 주 JC야 말로 진정 그러하시다)) .....보아스 Boaz...보아즈(명남)는 '민첩, 재빠름'을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은 '보아스'로 음역한다. (a) 보아스는 유력한 베들레헴 사람이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룻 2:1)...(b) 여호와 신앙으로 사는 보아스는 여호와 경외하는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친족이며, 룻의 두번째 남편이다(룻 4:10-룻 4:13).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한 부유한 농부였다. 그는 성경에서 모압 여인이며 전에 엘리멜렉의 아들 말론의 아내였던 룻에 대한 대우 때문에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나오미는 극심한 기근 때(사사 시대 동안)에 그녀의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갔었다. 모압에 있는 동안 두 아들이 모압 여인들과 결혼하였으나 이 후 두 아들과 남편이 모두 죽었다. 나오미는 그녀의 며느리들에게 그들 자신의 백성에게로 돌아가도록 권고하였으나 룻은 돌아가기를 거절하고 시모 나오미를 끝까지 붙좇았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 룻은 그녀와 동행하였다. 그 두 사람은 가을 추수 때에 도착하였으므로 룻은 이스라엘의 관습을 따라 이삭을 주으러 나갔으며... 그녀의 행운은 그녀가 추수 기간 동안 머물도록 지시받은 보아스의 밭에서 시작되었다...나오미는 그녀의 며느리에게 죽은 남자의 이름과 기업을 지키기 위해 고엘(goel) 또는 기업 무를 자에 대해 규정한 '수혼법(아들이 없는 미망인이 남편의 형제나 친족과 결혼하는 법)'에 관한 관습을 가르쳤다. 그 의례는 여인이 고엘의 발치에 누움으로 시작된다. 그 호소는 순위가 두 번째로 밝혀진 보아스에게 행해졌다. 다음 날 아침 그는 그러한 문제들이 결정되는 성문에서 그 문제가 처리되도록 조처하였다. 그 우선순위 가진 연장자는 모압 여인과 결혼함으로 인해 "그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거절하였다. 그래서 보아스는 엘리멜렉과 그의 아들들에게 속한 모든 소유를 사고 룻과 결혼하였다....보아스는 경건과 자비의 모범으로, 룻은 미덕과 헌신의 모범으로 제시된다. 10세대 동안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룻은 나오미를 따름으로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과 관습을 받아들였다. 보아스는 사실상 엘리멜렉의 친족이었으므로 나오미와 결혼할 책임이 있었지만, 말론에게까지도 책임이 확대됨을 알고 그의 과부와 결혼하였다. 이 이야기의 행복한 결과는 이들 부부가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모압에서 준비된 피난처를 찾았던 다윗의 증조부모가 되었다는 것이다.(참조: J. J. Edwards). (c) 보아스는 삼마의 아들이며, 이새의 아버지이며, 다윗의 증조부이다(대상 2:11, 12; 룻 4:17; 룻 4:21). 보아스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 예수님의 조상으로 나타난다. ①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② 눅 3:32,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J. Edwards).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우측)과 보아스(좌측)입니다. .....‘야긴’의 뜻은 ‘저가 세우리라’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신다는 뜻이며, 영구한 안정, 정립(定立)의 뜻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안정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것은 솔로몬 성전의 안정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서 신약시대의 교회운동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반석 위에 자기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영원한 승리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그것은 영원한 주님의 십자가 기둥으로 세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마침내 그 교회는 영원한 천상교회, 즉 하늘나라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보아스’의 뜻은 ‘그 안에 능력이 있다’로,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말입니다(시 18:1-2,32).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능력, 말씀의 권세를 받아야 죄악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힘이시요 힘의 근원이십니다. 창조의 힘, 통치의 힘, 구원의 힘, 심판의 힘이 되시는 것입니다
2. 모압 여인 룻(일편단심, 일심의, 충성스럽고 신실한, 마음 알아주는, 친밀한 우정의 평생 친구)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그늘막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 마음 정한바)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내가 그녀를 그리 대하노니, 너그러이 친절하게 대하고 존귀히 여겨)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 [KJV]제2장 1. And Naomi had a kinsman of her husband's, a mighty man of wealth, of the family of Elimelech; and his name was Boaz. 2. And Ruth the Moabitess said unto Naomi, Let me now go to the field, and glean ears of corn after him in whose sight I shall find grace. And she said unto her, Go, my daughter. 3. And she went, and came, and gleaned in the field after the reapers: and her hap was to light on a part of the field belonging unto Boaz, who was of the kindred of Elimelech. 4. And, behold, Boaz came from Bethlehem, and said unto the reapers, The LORD be with you. And they answered him, The LORD bless thee. 5. Then said Boaz unto his servant that was set over the reapers, Whose damsel is this? 6. And the servant that was set over the reapers answered and said, It is the Moabitish damsel that came back with Naomi out of the country of Moab: 7. And she said, I pray you, let me glean and gather after the reapers among the sheaves: so she came, and hath continued even from the morning until now, that she tarried a little in the house. 8. Then said Boaz unto Ruth, Hearest thou not, my daughter? Go not to glean in another field, neither go from hence, but abide here fast by my maidens: 9. Let thine eyes be on the field that they do reap, and go thou after them: have I not charged the young men that they shall not touch thee? and when thou art athirst, go unto the vessels, and drink of that which the young men have drawn. 10. Then she fell on her face, and bowed herself to the ground, and said unto him, Why have I found grace in thine eyes, that thou shouldest take knowledge of me, seeing I am a stranger? 11. And Boaz answered and said unto her, It hath fully been showed me, all that thou hast done unto thy mother in law since the death of thine husband: and how thou hast left thy father and thy mother, and the land of thy nativity, and art come unto a people which thou knewest not heretofore. 12. The LORD recompense thy work, and a full reward be given thee of the LORD God of Israel, under whose wings thou art come to trust. 13. Then she said, Let me find favor in thy sight, my lord; for that thou hast comforted me, and for that thou hast spoken friendly unto thine handmaid, though I be not like unto one of thine handmaidens. 14. And Boaz said unto her, At mealtime come thou hither, and eat of the bread, and dip thy morsel in the vinegar. And she sat beside the reapers: and he reached her parched corn, and she did eat, and was sufficed, and left. 15. And when she was risen up to glean, Boaz commanded his young men, saying, Let her glean even among the sheaves, and reproach her not: 16. And let fall also some of the handfuls of purpose for her, and leave them, that she may glean them, and rebuke her not. 17. So she gleaned in the field until even, and beat out that she had gleaned: and it was about an ephah of barley. 18. And she took it up, and went into the city: and her mother in law saw what she had gleaned: and she brought forth, and gave to her that she had reserved after she was sufficed. 19. And her mother in law said unto her, Where hast thou gleaned to day? and where wroughtest thou? blessed be he that did take knowledge of thee. And she showed her mother in law with whom she had wrought, and said, The man's name with whom I wrought to day is Boaz. 20. And Naomi said unto her daughter in law, Blessed be he of the LORD, who hath not left off his kindness to the living and to the dead. And Naomi said unto her, The man is near of kin unto us, one of our next kinsmen. 21. And Ruth the Moabitess said, He said unto me also, Thou shalt keep fast by my young men, until they have ended all my harvest. 22. And Naomi said unto Ruth her daughter in law, It is good, my daughter, that thou go out with his maidens, that they meet thee not in any other field. 23. So she kept fast by the maidens of Boaz to glean unto the end of barley harvest and of wheat harvest; and dwelt with her mother in law. ----- Ruth 2...Amplified Bible ===Ruth Gleans in Boaz’ Field 1 Now Naomi had a relative of her husband, a man of great wealth and influence, from the family of Elimelech, whose name was Boaz. 2 And Ruth the Moabitess said to Naomi, “Please let me go to the field and [a]glean among the ears of grain after one [of the reapers] in whose sight I may find favor.” Naomi said to her, “Go, my daughter.” 3 So Ruth went and picked up the leftover grain in a field after the reapers; and she happened to stop at the plot of land belonging to Boaz, who was of the family of Elimelech. 4 It was then that Boaz came back from Bethlehem and said to the reapers, “The Lord be with you!” And they answered him, “The Lord bless you!” 5 Then Boaz said to his servant who was in charge of the reapers, “Whose young woman is this?” 6 The servant in charge of the reapers answered, “She is the young Moabite woman who came back with Naomi from the country of Moab. 7 And she said, ‘Please let me glean and gather after the reapers among the [b]sheaves.’ So she came and has continued [gathering grain] from early morning until now, except when she sat [resting] for a little while in the [field] house.” 8 Then Boaz said to Ruth, “Listen carefully, my daughter. Do not go to glean in another field or leave this one, but stay here close by my maids. 9 Watch which field they reap, and follow behind them. I have commanded the servants not to touch you. And when you are thirsty, go to the [water] jars and drink from what the servants draw.” 10 Then she kneeled face downward, bowing to the ground, and said to him, “Why have I found favor in your eyes that you should notice me, when I am a foreigner?” 11 Boaz answered her, “I have been made fully aware of everything that you have done for your mother-in-law since the death of your husband, and how you have left your father and mother and the land of your birth, and have come to a people that you did not know before. 12 May the Lord repay you for your kindness, and may your reward be full from the Lord, the God of Israel, under whose wings you have come to take refuge.” 13 Then she said, “Let me find favor in your sight, my lord, for you have comforted me and have spoken kindly to your maidservant, though I am not as one of your maidservants.” 14 At mealtime Boaz said to her, “Come over here and eat some bread and dip your bread in the vinegar.” So she sat beside the reapers; and he served her roasted grain, and she ate until she was satisfied and she had some left [for Naomi]. 15 When she got up to glean, Boaz ordered his servants, “Let her glean even among the sheaves, and do not insult her. 16 Also you shall purposely pull out for her some stalks [of grain] from the sheaves and leave them so that she may collect them, and do not rebuke her.” 17 So she gleaned in the field until evening. Then she beat out what she had gleaned, and it was about an [c]ephah of barley. 18 She picked it up and went into the city, and her mother-in-law saw what she had gleaned. Ruth also took out and gave to Naomi what she had saved after she [had eaten and] was satisfied. 19 Her mother-in-law said to her, “Where did you glean today? Where did you work? Blessed be the man who took notice of you.” So she told her mother-in-law with whom she had worked and said, “The name of the man with whom I worked today is Boaz.” 20 Naomi said to her daughter-in-law, “May he be blessed of the Lord who has not ceased His kindness to the living and to the dead.” Again Naomi said to her, “The man is one of our closest relatives, one who has the right to [d]redeem us.” 21 Then Ruth the Moabitess said, “He also said to me, ‘Stay close to my servants until they have harvested my entire crop.’” 22 Naomi said to Ruth, “It is good, my daughter, for you to go out [to work] with his maids, so that others do not assault you in another field.” 23 So she stayed close to the maids of Boaz, gleaning until the end of the barley and wheat harvests. And she lived with her mother-in-law. ===Footnotes Ruth 2:2 Gleaning was a right granted to the poor and to strangers by God—a kind of divinely-appointed welfare system. Farmers were instructed not to glean their fields or vineyards, that is, not to collect the excess stalks of grain or grapes left over by reapers, and not to have the extremities of their fields reaped (Lev 19:9, 10). Ruth 2:7 I.e. bundles of stalks bound together for transport to the threshing floor where the grain would be separated. Ruth 2:17 This was about one bushel, enough food for several days. Ruth 2:20 According to OT law (Lev 25:25), if an Israelite became so impoverished that he sold his property, his closest relative was to buy it back, so that the land would remain within the family. Such a person was called a redeemer. Another law stated that if a married man died childless, his brother was obligated to marry his widow and raise a son in the deceased brother’s name, so that the name would be carried on in Israel (Deut 25:5-10; cf Gen 38:8-10). Being aware of these laws and their applications by the scholars of that time, Naomi conceived of a plan (see ch 3:1-4) that might bring Ruth and Boaz together by having Boaz serve as a redeemer both to purchase a field that Naomi owned, and to fulfill the obligation of Deut 25:5 ff by marrying Ruth. ======= ========= 룻기 2장 (개요) 성경 중에서 이 부분처럼, 보잘것없는 인물과 하찮은 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곳은 또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혈통과 그 조상들을 알리기 위한 준비였다. 룻은 그리스도에게 시집 가는 이방 교회의 신부들을 상징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사 54:1). 이 사실 때문에 룻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여기 나오는 많은 구절은 교훈적이고 매우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1. 곡식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의 겸손과 근면, 그리고 그녀를 보아스의 밭으로 이끌어 간 하나님의 섭리(1-3). 2. 여러 가지 모습으로 룻에게 커다란 호의를 보낸 보아스(4-16). 3. 시어머니에게 돌아온 룻(18-23). --------- 보아스의 밭으로 간 룻(룻 2:1-3) 나오미는 이제 그녀의 옛 친구들이 살고 있는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Ⅰ. 그녀의 부유한 친족 중에 보아스라는 유력한 자(1절)가 있었다. 시리아역은 이 구절을 “율법에 있어서의 유력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만일 보아스가 재물과 성경에 있어 다같이 유력한 자라면, 그것은 가장 귀하고 훌륭한 결합이었다. 그런 자야말로 참으로 유력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아스는 광야에 있을 때 유다 지파의 한 방백이었던 나손의 손자였고, 여리고의 기생 라합에게서 나온 살몬의(아마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보아스, 곧 그 안에 힘이 있다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 몰락되어 비천해진 엘리멜렉의 가문에 속한 자였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보아스는 위대하고 부유한 사람이었으나 그는 가난한 친족들을 갖고 있었다. 모든 나뭇가지가 다 꼭대기 가지가 될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자기의 비천해 보잘것없는 친족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되며, 이들에게 거만하거나 경멸을 품거나 이들을 부당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2. 나오미는 가난하고 비천한 과부이긴 했지만 부유한 친족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뽐내지도 않았고, 그에게 부담을 끼치지도 않았으며, 고통을 당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그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자기들은 가난하나 부유한 친척을 가진 자들은, 서로 다르게 하시는 것이(우리는 그것을 묵인해야 한다) 현명하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친족을 가진 것을 뽐내는 것은 커다란 죄이며, 그들을 의지하는 것은 크게 어리석은 일이다. Ⅱ. 나오미에게는 룻이라는 가엾은 며느리가 있었다. 1. 룻의 형편은 매우 비천하고 가난했다. 그것이 유대교인으로 개종한 이 젊은 여자의 믿음과 지조에 큰 시련을 주었다. 베들레헴 사람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나오미와 그 며느리를 좋은 집으로 초대했다면 좋았을 것이다(그것은 나이 많은 과부 나오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이 새로운 개종자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안의 진미를 맛보기는커녕 이들은 필요한 식량을 얻기 위해 보이는 대로 이삭 같은 것들을 주워야 했으며, 이것마저 없다면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의 가난한 자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유의하자(약 2:5). 그러나 비록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다 하더라도 그들은 계속 가난하기가 일쑤다. 2. 이런 형편에 처했으면서도 룻의 성품은 매우 착했다(2절).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여기서는 궁핍해 살아갈 수가 없으니 나로 하여금 모압 땅에 다시 돌아가게 하옵소서. 여기에는 식량이 없으나 나의 아버지의 집에는 식량이 풍족히 있나이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룻은 “나온 바 본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히 11:15).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이 바로 돌아가기에 알맞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녀의 하나님이었으며 비록 하나님이 룻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녀는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고, 결코 그 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요청이란 단지 “나도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하옵소서” 하는 것뿐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라난 자라도 나중에는 어떤 곤경에 처하게 될는지 또 식량을 얻기 위해 어떤 천한 일을 하게 될는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애 4:5). 이렇게 우울한 상황에 처할 때에는 룻을 생각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은 본을 보였다. (1) 겸손의 본. 하나님이 그녀를 빈곤하게 했을 때, 룻은 “구걸하면서 이삭 줍는 것이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비천한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녀의 운명에 순응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를 굽히고 구걸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을 택한다. 그러나 룻은 그렇지 않았다. 룻은 자기가 비천하게 자라나지 않았다는 말을 시어머니에게는 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천하게 키워지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는 초라한 형편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나오미의 훈계 때문이 아니라, 룻 자신의 마음이 그랬기 때문이다. 젊은이에게 있어서 겸손은 가장 찬란한 장신구이며, 가장 좋은 전조라 할 수 있다. 룻을 영예롭게 한 것은 바로 이 겸손이었다. 이삭을 주우러 가려던 그녀가 얼마나 겸손한 말을 하고 있는지 주시해 보자.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은 “내가 가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그러나 아무도 내 자유를 막지 못할 것이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누군가 내게 이삭 주울 자유를 허락해 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내가 나아가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빚을 독촉하듯이 남에게 친절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겸손하게 요구해야 한다. 또 극히 작은 친절이라도 그것을 호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간청하는 것이 좋다. (2) 근면의 본. 그래서 그녀는 나오미에게 “내가 이 마을의 처녀들을 만나러 가게 해 주옵소서. 아니면 들에 나가 맑은 공기를 즐겁게 마시게 해 주옵소서. 나는 온종일 찌푸린 얼굴로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을 수 없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룻이 원하는 것은 오락이 아니라 일이었다. “나로 가서 이삭을 줍게 하옵소서.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겠나이다”라는 것이었다. 룻은 정숙한 여자라 놀고먹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고하는 것을 즐겼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젊은이는 늙기 전에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해야”(전 9:10) 한다. 부지런한 성품은 이 세상뿐만 아니라 저 세상을 위해서도 좋은 징조가 된다. 잠자는 것이나 오락이나 빈둥거리는 것을 삼가고 오직 일을 사랑하라. 이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비록 천한 직업일지라도 정직하게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일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죄악은 우리가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은 어떤 것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3)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본. 비록 나오미는 그녀의 시어머니였지만, 이제 그녀의 남편은 죽었으므로 아내의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따라서 시어머니에 대한 의무도 또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룻은 충성스럽게 나오미를 보살폈다. 룻은 나오미에게 알리지 않거나 허락받지 않고 외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은이는 그의 부모와 어른에게 존경심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마땅히 그들에게 표해야 할 공경이다. 룻은 “어머니, 만일 어머니가 나와 함께 간다면 나도 이삭 주우러 가겠나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어머니는 집에서 쉬시옵소서. 제가 가서 일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젊은이는 일해야 한다(Juniore ad labores). 젊은이는 나이 든 사람들의 충고를 들어야 하며, 그들을 부려먹어서는 안 된다. (4)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본. 이것은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는 룻의 말에 나타나 있다. 룻은 어디에 가야 할지 또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울 사람을 보내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선한 생각을 늘 갖도록 노력해야 하며, 우리가 올바로 한 그것은 우리를 도우리라는 것을 항상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룻에게도 도움을 주셨다. 그래서 안내자나 동행인 없이 룻이 홀로 이삭 주우러 나갔을 때 “우연히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3절). 그녀에게 이것은 우연한 일 같았다. 그녀는 이 밭이 누구의 것인지 몰랐고, 다른 사람들보다 유별난 목적을 갖고 그 곳에 간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기에 우연히라는 단어를 넣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가 그녀의 발걸음을 이 밭으로 인도해 주셨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까지 지혜롭게 명령하신다. 전혀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의 선함을 나타내는 데 이바지한다. 우리에게는 우연인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섭리가 계획해 일어나게 하신 작은 일로부터 많은 중대한 일이 발생한다. ======= 이삭을 줍는 룻(룻 2:4-16) 이제 보아스 자신이 마차를 타고 와서 그의 하인과 이 초라한 이방인에게 품위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Ⅰ. 익은 곡식을 추수하기 위해 고용된 보아스의 하인들에게 보아스가 찾아왔다. 추수할 때는 분주한 시기로 많은 일손들이 필요하다.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유력자 보아스에게는 할 일이 많았고, 따라서 많은 하인이 필요했으며 그들의 생활을 돌봐야 했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전 5:11). 보아스는 여기서 훌륭한 주인의 한 본을 보인다. 1. 보아스에게는 곡식을 베는 일꾼들을 거느린 한 사환이 있었다(6절). 큰 집안에서는 하인들을 감독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그는 하인들의 일과 식량을 분배해 주어야 한다. 교역자들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사환과 같은 종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슬기롭고도 충성스러워야 하며, 여기 나오는 사환처럼 주님께 모든 일들을 고해야 한다(6절). 2. 그러나 보아스는 직접 곡식을 베는 일꾼들에게 왔다. 얼마나 일이 진전되었는지를 살피려고 온 것이다. 만일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다시 명령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자신에게도 유익한 일이었다(자기의 일을 전적으로 남에게 맡기는 자들은 일을 절반도 제대로 못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꾼들에게 격려가 되는 일이었다. 그 종들은 주인이 찾아와 자기들을 돌보는 것을 보게 될 때, 더욱 흥겹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생활을 하는 주인들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인들의 노고와 이들에게 짊어지워진 짐과 고통을 생각해 주어야 한다. 3. 보아스와 그의 추수꾼들은 친절하고 경건한 인사를 나누었다. (1) 보아스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인사했으며, 그들은 보아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4절) 하고 답례했다. ① 이들은 서로를 존경해 주었다. 보아스는 이들을 좋은 하인으로 생각했으며, 이들은 보아스를 훌륭한 주인으로 섬겼다. 보아스가 그들에게 왔을 때, 그는 단지 그들의 잘못이나 들추어내고 자기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그들을 꾸짖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셔서, 너희들을 번성케 하고 너희에게 건강과 힘이 깃들고 여호와께서 너희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말을 듣고서, 이들은 주인의 눈을 피하는 못된 종들이 하듯이 그 주인에게 저주의 욕설을 하지 않고 정중한 경의를 표했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복 주시어, 우리들의 노동이 당신의 번성에 도움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주인과 하인들 사이에 좋은 유대가 이루어지면 그 집안의 일들은 모두 잘 될 것이다. ② 이들은 합심해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줌으로써 그들의 친절을 나타냈다. 이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정중히 대했다. 뿐만 아니라 서로 동정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사 베풀어 주시는 그 모든 축복─이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값있게 소망한 가장 귀한 것이다─을 감사했다. (2)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선의를 친구들에게 말해 주는 정중한 인사. ② 이처럼 짧은 기도 속에서도,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기원하는 경건한 간구. 이것이 하나의 형식에만 그쳐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출 20:7)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이 진지하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자비와 은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추수꾼들에게 이런 축복을 기원하는 것은 평상적인 관습이었던 것 같다(시 129:7, 8). 4. 보아스는 추수꾼들 가운데서 한 낯선 여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사환으로부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에게 건드리지 말고(9절) 꾸짖지도 말라(15절)는 지시를 내렸다. 주인은 종들을 괴롭히지 않아야 될 뿐 아니라 종들이 또 다른 종들이나 남을 해치지 않도록 살피고 돌보아야 한다. 보아스는 그의 종들이 그녀에게 친절히 대하도록 명했으며,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도록 했다. 주인이 곡식을 허비하는 종을 꾸짖고 제재하는 것이 타당하나, 보아스는 오히려 그런 제재를 풀고 그들이 자비를 베풀 것을 신중하게 명령했다. Ⅱ. 보아스는 사환이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듣고 룻에게 매우 친절히 대했으며, 그녀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마음을 움직여 이런 일을 행하도록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곡식 베는 자들 가까이에 왔을 때, 그들 사이에 이 낯선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고, 사환으로부터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들었다. 여기에 그녀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1. 사환은 보아스에게 그녀의 훌륭한 태도를 들려주었고,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기를 부탁했다(6, 7절). (1) 타국인인 룻은 하나님의 율법에 적힌 “추수기에 이삭을” 주울 수 있는 자(레 19:9, 10) 중의 하나였다. 룻은 모압 여자였다. (2) 룻은 보아스의 집안과 관련이 있었다. 즉 그녀는 나오미와 함께 왔는데, 나오미는 보아스의 친족 엘리멜렉의 아내였다. (3) 룻은 모압 땅을 떠나 이스라엘 땅에서 살려고 왔으므로 개종자였다. (4) 룻은 매우 정숙한 여자였다. 허락을 받고 나서야 이삭을 주웠다. (5) 룻은 아침부터 이제껏 줄곧 이삭을 주울 정도로 부지런했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는 당연히 위로를 받아야 한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낮에 룻은 집이나 들판에 세워 둔 조그마한 오두막집에 들어가 잠시 머물렀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기도를 드리려 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짧은 휴식 이외에는 곧 일하러 돌아와 비록 전에 해 보지 않던 일이었지만 온종일 열심히 이삭을 주웠다. 종들을 감독하는 사람은 그의 주인에게 올바르게 상세히 보고해야 하며, 그가 잘못 보고해 어떤 종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 사환으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은 보아스는 그녀에게 매우 친절히 대했다. (1) 그는 그녀에게 일꾼들이 베는 밭을 따라 이삭을 줍고, 다른 집의 밭에 가도 별 유익이 없으니 그의 밭에서 계속 있을 것을 지시했다.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8절). 소년들보다는 소녀들이 그녀에게는 더 적합한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 그는 종들이 그녀에게 친절과 존경으로 대해 줄 것을 명했는데, 물론 주인의 친절을 본 그의 종들은 그녀에게 그렇게 행했을 것이다. 룻이 타국인이었으므로 말이나 의복, 태도 등이 아마 그들과는 달랐을 것이다. (3) 보아스는 그의 종들에게 베풀었던 대우를 그녀에게도 기꺼이 해 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종들이 길어 온 물을 마시게 했는데 아마도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저 유명한 우물(이것은 다윗도 동경하던 우물이다. 삼하 23:15)에서 길어 온 음료수를 말하는 것 같다(9절). 그리고 “식사할 때에는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라”(14절) 하며 그녀를 맛있는 음식에도 초대했다. 맛을 돋우기 위해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과 함께 풍미를 돋울 수 있도록, 즉 필수적인 것으로뿐만 아니라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우리에게 음식을 주신 것이다. 보아스는 룻을 격려하기 위해, 또 그의 종들이 그의 명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 곡식을 베는 자들이 식사를 할 때에 직접 자기도 참석해 “볶은 곡식을 그녀에게 주어” 먹도록 했다.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미는 것”(잠 31:20)과 가난한 자를 위해 일하는 것은 지위 높은 자의 불명예가 되지 않는다. 보아스는 그의 종들에게 인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먹고 낯선 사람까지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식량을 주었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처럼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다”(잠 11:24). (4) 보아스는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들은 바 있는 룻의 시어머니를 룻이 극진히 모시는 것을 알고 그녀를 칭찬했다.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11절). 행실이 바른 자는 칭찬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아스가 룻을 특별히 칭찬한 것은 그녀가 자기 나라를 떠나와 유대의 신앙으로 귀의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시리아역은 다음과 같이 풀이해 놓고 있다. “네가 와서 개종을 하고 알지 못하던 백성들과 함께 사는도다.” 참된 신앙을 갖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자들은 갑절의 영예를 받기에 합당하다. (5) 보아스는 룻을 위해 기도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노라”(12절). 타국인이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강한 애착을 품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룻에게 주님의 은총이 임하시어, 보아스로부터 보응을 받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날개 밑에 거해 그 은총 안에서 확신과 만족을 얻는 자들은 그것에 대한 충분한 상급을 분명히 받으리라. 이런 표현법을 빌려서 유대인들은 개종자들을 “주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모이는 자들”이라고 일컫고 있다. (6) 보아스는 룻이 이삭을 줍는 것을 격려했으며 그 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난한 친족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은 그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돕고 격려하는 것이다. 보아스는 룻이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고 그 곳에서는 룻 이외에 아무도 줍지 못하게 하라고 그의 종들에게 명령했으며, 줍도록 한 양보다 더 많이 주웠다고 그녀를 의심하거나 도둑이라고 불러 책망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15절). 이 모든 것들을 볼 때 보아스는 타국 사람을 이해해 주는 관대한 마음을 지닌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룻은 그의 호의를 매우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였으며, 보아스와 마찬가지로 그 곳에서 매우 예의 바르게 행했다. 그러나 이제 곡식을 줍는 밭에서 그녀가 여주인이 되었다는 생각은 잠시라도 결코 갖지 않았다. (1) 룻은 이 나라의 관습대로 보아스에게 큰 경의와 존경을 표했다.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10절). 훌륭한 예의범절은 믿음을 더욱 빛나게 하며, 우리는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한다(롬 13:7). (2) 룻은 자기가 보아스의 총애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노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나는 이방 여인으로(10절),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옵니다(13절). 그리하여 변변히 입지도 못하였고 가르침을 잘 받지 못하였으며 그리 단정하지도 또 손재간이 있지도 못하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게 평가해야 하며, 우리들에게 부족한 점이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3) 룻은 보아스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비록 그것이 보아스에게 힘든 일이 아니었고, 단지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는 것뿐이었지만 룻은 그것을 찬미하고 우러렀다.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나이까?”(10절) (4) 룻은 그의 호의가 지속될 것을 요청했다.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13절). 그리고 룻은 보아스가 그녀에게 한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위대한 사람이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못한 사람들을 친절히 보살피고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모른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때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5) 보아스가 룻에게 곡식 베는 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도록 했을 때, 룻은 먹을 만큼만 먹은 후 일하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14, 15절). 룻은 궁핍을 가장하기 위해 지나치게 먹지도 않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척하기 위해 억지로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았다. 절제는 근면의 좋은 친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원활히 하기 위해 알맞게 먹고 마셔야 하며, 부적당하게 먹어 우리의 건강을 해쳐서는 안 된다. ======= 시어머니에게 보고한 룻(룻 2:17-23) Ⅰ. 이제 룻은 하루의 일을 끝냈다(17절). 1. 룻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저녁때까지 열심히 이삭을 주웠기 때문이다. 적당한 시기에 거두어들여야 하므로 우리는 열심히 일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룻은 오랫동안 앉아 쉬거나 저녁이 되기 전에 집으로 가 버리지 않았다. “때가 아직 낮이매 우리를 보내신 자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요 9:4). 룻은 보아스의 친절을 결코 그릇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록 보아스가 그의 종들에게 명해 그녀를 위해 한줌씩 떨어뜨려 주도록 했지만 그녀는 계속 흩어져 있는 이삭들을 주웠다. 2. 룻은 주워 모은 것들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했고, 그것들을 그녀 자신이 타작해 집으로 쉽게 날랐으며, 곧 그것으로 식사를 마련했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며” 이득을 취할 수가 없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 12:27). 룻은 이삭을 하나씩 하나씩 주웠으나 그것을 다 모았을 때는 한 에바로 약 20되 정도가 되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 모든 노력, 곡식 줍는 일에도 이득이 따른다는 것은 근면한 자에게 격려가 된다. 그러나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 14:23). 룻은 할 수 있는 만큼 알맞게 이삭을 주워서 자기가 직접 성으로 날랐다. 아마 보아스의 한 하인에게 부탁했더라도 기꺼이 날라 주었을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룻은 그녀가 주운 이삭들을 가지고 성읍으로 돌아왔을 때 자기가 한 일이 힘들거나 천박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오히려 열심히 일해 얻은 것을 기뻐하며 그것을 잘 간수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자(요이 8). Ⅱ. 룻은 그녀의 시어머니를 존경했으므로 일이 끝난 후 보아스의 종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였다. 이것을 보고 나오미는 룻이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1. 룻은 보아스가 그녀에게 베풀어 준 훌륭한 식사에서 남긴 것으로 시어머니를 대접했다. 즉 룻은 그녀가 배불리 먹은 후 남은 것을(14절) 나오미에게 주었다(18절). 룻은 이보다 더 귀중한 어떤 것이 있었더라도 기꺼이 시어머니와 나누어 가졌을 것이다. 이렇게 밖에서 근면한 룻은 집에서는 효성이 지극했다. 이처럼 자식들은 그들의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딤전 5:4), 이것이 그들이 행해야 할 제5계명이다(마 15:6). 2. 룻은 나오미에게 그 날 있었던 일과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은총을 내리셔서 그녀를 어떻게 즐겁게 해 주셨는지를 이야기했다. 의인이 주운 이삭은 많은 악인들의 수확보다 더 나은 것이기 때문이다. (1) 나오미는 룻에게 오늘 어디에서 일했는지를 물었다.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부모는 자녀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그들이 어떤 친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녀들의 방종을 막고 그들 자신이나 부모에게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형제를 지키는 자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자식들을 지켜야 하는 자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다윗 왕의 한 아들 아도니야가 유례없던 한 악한 자식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모는 그들의 자녀를 잘 살피되, 그들을 무섭게 하거나 위축당하게 하여 집을 싫어하고 거짓말을 하게끔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들이 잘 했을 때는 칭찬해 주고 그렇지 못했을 때에는 부드럽게 주의를 주어 고치도록 해야 한다. 하루의 일을 끝내고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오늘 어디서 내가 주웠는가? 내가 내 지식과 은혜를 얼마나 올바르게 활용했는가? 내가 행하고 얻은 것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 (2) 룻은 보아스가 그녀에게 베푼 친절을 나오미에게 상세히 알려 주었다(19절). 그리고 추수기 동안 계속 그의 종들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 준 보아스의 호의를 희망에 차서 들려주었다(21절).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들이 그들을 돌보아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부모들에게 꾸지람 듣는 것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선행을 행하도록” 하라. 룻은 보아스의 친절과 그에 대한 감사함을 나오미에게 이야기했으나, 보아스가 룻을 칭찬한 일은 말하지 않았다(11절). 겸손한 마음은 자기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게 한다. (3) 이제 나오미가 한 말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나오미는 그녀의 며느리에게 은혜를 베푼 자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드렸다(19절).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고, 즉시 기도의 화살을 던졌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를 알았을 때 나오미는 다음과 같이 축복했다.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20절). 가난한 자는 그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한 자들을 위해 보답할 수 없을 때 기도로 보답해야 한다. 곤경에 처한 자는 그들에게 활기를 불어 준 자들을 축복하자(욥 29:13; 31:20). 불쌍한 자가 그를 억압하는 자에게 외치는 울음을 들은 사람은(출 22:27) 이 불쌍한 자가 은인을 위해 기도하는 소리도 들을 것이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전에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에게 친절을 베푼 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이전에 베푼 호의를 잊은 것같이 보이는 자들에게도 변함없이 친절히 행한다면, 죽어 매장된 것같이 보이던 일까지도 기억나게 될 것이다. ②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가 그들의 가족과 친족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도다.” 나오미는 오랫동안 모압 지방에 있었으므로 하나님이 그 분의 섭리로 그녀에게 생각나게 할 때까지, 이스라엘 땅에 그녀의 친족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이 젊은 개종자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었지만 나오미는 룻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겸손한 나오미와는 달리, 비록 자기들은 망했을지라도 훌륭한 친족을 가진 것을 뽐내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임하시어 룻에게 목적하신 일을 행하신 것을 관찰해 보라. 룻이 그녀에게 친절했던 사람이 보아스라는 것을 말했을 때에야 나오미는 비로소 보아스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다.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는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로다.” 계속 나오미는 말했다. “그는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이므로, 저당한 우리의 재산을 찾아줄 권리가 있으니 우리가 그의 친절을 좀더 기대할 수 있도다. 그는 모든 베들레헴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도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어떤 일을 갑자기 생각나게 하시어, 그것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가 되게 하신다. ③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의 밭에서 계속 일할 것을 명했다(22절).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네가 다른 밭에 가 일하는 것은 곧 그의 친절을 경멸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거룩한 구주도 우리의 대속자(기업을 무를 자)이시다. 그 분은 우리를 대신해 값을 치를 권한이 있는 분이다. 우리가 그 분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그 분과 그 분이 소유한 밭, 그리고 그 분의 집을 좀더 가까이하자. 그 분의 소유가 아닌 곳이나 밭에는 가지 말고 우리를 격려해 주고자 하는 그 분을 따르자. 주께서 우리를 너그러이 대해 주시지 않았느냐? 다른 사람 밭에 들어가지 말고 피조물 속에서 결코 우리의 행복이나 만족을 찾으려 하지 않도록 하자. 상인들도 그의 가게에 책을 사러온 사람이 다른 책방으로 가는 것을 언짢게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소홀히 여기면, 그 은혜를 잃게 된다. 나오미가 룻에게 말없이 책망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룻은 보아스가 그녀에게 그의 소년들과 가까이 있으라고 했다는 것을 말했다(21절). 이에 대해 나오미는 이렇게 말했다(22절). “아니니라.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는 것이 좋으니라. 소녀들이 너에게는 그 젊은 남자들보다는 더 적합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니라.” 그러나 소녀들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룻은 그 젊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보아스의 주요한 일꾼들이요, 그가 이들에게 그녀를 잘 대해 줄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룻이 소년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그녀에게 적합한 소녀들과도 사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룻은 충성스럽게 나오미의 지시대로 행했으며, 보리 추수뿐만 아니라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계속 이삭을 주워 겨울 동안까지라도 먹을 수 있을 양식을 모았다(잠 6:6-8). 룻은 또한 소녀들과 가까이 있었고 그들과 점차로 사귀었으며, 아마 이것은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23절). 룻은 정숙한 여자였으므로 항상 저녁 적당한 시기에 일을 끝내고 돌아왔다. 그것은 즐거운 밤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다음 날 또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추수기가 끝났을 때는 패트릭 주교의 해석처럼, 룻은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서 항상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디나는 모압 처녀들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그녀의 허영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을 행했다. 룻은 양식을 구하러 나가는 일 외에는 언제나 집에 있어 어머니를 도왔다. 우리는 이런 그녀의 겸손과 근면이 어떻게 축복받았는지를 뒤에 알게 될 것이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 앞에는 명예가 있느니라(잠 22:29). ===호크마 =====2:1 친족 - 여기서 이 말은 원문상 흔히 '케티브(모음 부호를 붙이기 이전의 원문 그대로의 자음) 독법'(讀法)을 따라 '메우다'(* )로 읽는데, 그 뜻은 '잘 알고 있는(자)', '가까운(자)'라는 의미를 지닌다(시 55:13;88:8,18). 여기서는 특별히 기업 무를 의무를 가진 '혈족 관계'(kinship)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확실치는 않지만 유대전승에 의하면,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조카라 한다(Keil, Cassel). 유력한 자 - 이 말은 히브리어로 '이쉬 깁보르 하일'(* )인데, '깁보르'는 주로 '용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수 1:14;10:2;삼상 2:4). 그리고 '하일'은 '재산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며(신 33:11), '재물'을 의미하기도 한다(사 8:4). 뿐만 아니라 '현숙하거나 능력있는 사람'에게도 사용되었다(3:11). 따라서 본절에서 보아스(Boaz)를 유력한 자라고 칭한 것은 재물이 많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그 지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영역본들은 각각 '유력한 자산가'(a mighty man of wealth, KJV),'명망있는 유지'(a man of standing, NIV)등으로 번역했다. 보아즈(* ,Boaz) - 히브리 어근상 그 이름의 뜻이 분명치 않다. 따라서 (1)혹자는 '벤 아즈'(*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힘센(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assel). (2)혹자는 '바아즈'(* )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며, 그 뜻은 곧 '민첩한(활동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il). (3)그리고 혹자는 이 말의 어근을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의 '부안티'(bhuvanti)에서 찾아, 그 뜻을 '복된(자)'로 보기도 한다(Raabe). =====2:2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 동서 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추수기가 되면 가난한자들은 추수를 한 밭에 나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특별히 히브리 사회에서 모세 율법은 이러한 자들을 위해 밭이나 포도원, 그리고 감람원에서 추수하는자들로 하여금 밭의 가장 자리에 있는 농작물의 일부를 남겨놓도록 규정하고 있다(레19:9,10;23:22;신 24:19). 룻은 이러한 율법의 혜택과 관습을 좇아 자신과 시어머니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밭으로 나갔다. 뉘게 은혜를 입으면...이삭을 줍겠나이다 - 모세 율법은 분명 가난한 자의 생계를 보장키 위해 추수 후에 그 떨어진 이삭을 줍는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규정하고 있다(레 19:9,10;23:22;신 24:19). 그러나 백성들은 그 규정을 무시했다. 즉 여호수아사후(死後)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되자,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견대로 사리 사욕을 취하는 사사 시대의 타락상을 연출했다. 따라서 당시 가난한 자들은 율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밭주인의 냉대와 멸시를 받기 일쑤였고 심지어 이삭 줍는 일을 금지당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모압 여인 룻(Ruth)으로서는 모압에 대한 이스라엘의 좋지 못한 감정을 고려할 때, 결코 이삭 줍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룻의 이 말은 이방인으로서의 당할지도 모를 온갖 어려움과 냉대를 감수하고, 또한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하루종일 허기를 참아가며 일해야 할 육체적인 고통을 기꺼히 감수하고 '내가 누군가의 눈에서 호의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in whose eyes I shall find favor) 그를 좇아 열심히 이삭을 줍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 속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지극한 효성이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이로써 룻은 신실한 신앙을 소유한 여인일 뿐 아니라(1:16,17),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현숙한 여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여인으로 부각된다. =====2:3 베는 자를 따라...이삭을 줍는데 - 후대의 유대 랍비들은 '이삭 줍기'에 대해 나름대로의 규정을 정했다. 그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즉 '만일 추수하는 자가 보리나 밀등을 벨 때 한 줄기나 두 줄기를 놓쳐버리면 그것은 이삭 줍는 자의 몫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줄기 이상 베지 않았다면 그것은 주인에게 다시금 돌려져야 했다'(Pulpit Commentary). 우연히...이르렀더라 -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보아스의 밭으로 갔을 때, 그녀는 당시 그 밭의 주인에 대해서나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코 이것은 룻의 입장에서는 우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그녀를 위해 미리 준비하신 기회였다(Gillis Gerleman). 따라서 본서의 저자가 본절에서이 말을 한 것은 앞으로 발생되는 일이 인간의 계획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2:4 본절은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간에 인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이 나누었던 인사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이웃의 안부를 물을 때(삼하 8:10;11:7;왕하 4:26) 혹은 사람을 만났을 때(왕하 5:21)나 헤어질 때(삼상1:17) '샬롬'이라는 인사말을 나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평강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가 축약된 인사로서, 히브리인들에게는 가장 보편적인 인사법이다. 그리고 이같은 인사말과 더불어 그들은 서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창27:26;출 18:7;삼상 20:41). (2)존경과 충성을 표시하는 인사로서 땅에 엎드려 절하는 방식(창 50:18;삼하 9:6;14:4;왕하 4:37;대하 20:18)과 무릎을 꿇어 절하는 방식(창42:6)이 있었다. 그런데 본절의 인사법은 이러한 관습적인 것과 퍽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즉 보아스는 자기 일꾼들에게 매우 자상하게 인사했으며, 일꾼들도 그에게 매우 친밀한 말로 화답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아스의 평소 신앙 인격을 잘 증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2:5 사환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아르'(* )는 '젊은 사람', '심부름꾼', '시종'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아르'는 '노예'나 '종'을 의미하는 '에베드'(* )와는 매우 다르다. 즉, '나아르'는 대체로 독립된 가정을 가지며, '에베드', 즉 '종'들을 관장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도 사용된다(삼하 9:9,10). 본절에서 사용된 '나아르'도 추수하는 일꾼들을 관장하는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6절), 단순한 종이나 사환이아니라 보아스의 가사를 책임맡은 감독관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이는 뉘 소녀냐 - 사실 룻은 그동안 유력한 엘리멜렉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유복하게 생활해 왔기 때문에, 여느 이삭 줍는 가난한 여인네와는 다른 고상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룻은 훌륭한 신앙과 고매한 덕성을 지닌 현숙한 여인으로서 그 단정한 몸가짐으로 다소곳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금방 보아스의 눈에 띄인 것 같다. =====2:6 이는...모압 소녀인데 - 주인의 질문에 즉각 응하여 룻을 소개하는 사환의 대답을 볼 때, 그리고 룻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보아스가 한 말(11절)을 볼 때 당시 베들레헴 성내에서는 룻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것 같다. 더욱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룻은 여호와를 향한 신앙과 시모(媤母)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다. =====2:7 잠시 집에서 쉰 외에 - 커버데일(Coverdale) 역에서는 본절을 '잠간 동안 집에 가곤 했던 것 외에'라고 하여 '집'이란 말이 성읍에 있는 나오미의 주택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본문에 사용된 '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아트'(* )는'집'이란 뜻 말고도 '임시적인 오두막', '장막', '움막'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룻이 점심 식사를 밭에서 한 것으로 보아(14절), 그녀가 쉰 곳은 성읍에 있는 집이 아니라 더위를 피하기 위해 임시로 지은 장막이나 오두막이었을 것이다(JamesMorison).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그녀가 어디에서 쉬었느냐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룻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2:8 내 딸아 들으라 - 이 한 마디 말 가운데서 우리는 보아스의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그는 룻을 단순히 값싼 동정심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룻이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매우 친밀한 말로 이야기를 건넸던 것이다. 한편 '내 딸아'(* , 빗티)라고 부르는 관습은 비단 자기 딸 뿐 아니라, 지체 높은 어른이 젊은 여인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나 충고를 할 때도 흔히 사용된다. 여기서...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 '나의 소녀들'이란 추수하는 자들의 바로 뒤를 따르면서 그 베어 놓은 줄기를 단으로 묶는 여인네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아마도 보아스는 어떤 특정한 위치를 룻에게 지정해 주면서 그 권리를 인정해 준 것 같은데, 바로 단 묶는 여인들 틈에서 마음껏 이삭을 줍도록 했던 것 같다. =====2:9 소년들의 길어 온 것 -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물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 지방에서는 우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 발전되었다. 따라서 들로 일을 하러 갈때에는 성읍 우물에서 하루 종일 마실 물을 길어가야 했다. 그런데 들에 일을 하러 나오는 룻의 입장에서 볼 때 하루 종일 마실 물을 가져오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렇다고 소년들이 성읍까지 가서 애써 길어온 물을 마신다는 것은 이삭 줍는자의 처지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소년들이 힘들게 길어 온 물을 마실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이때 소년들이 물을 길어 왔던 우물을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 마시기를 원했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삼하 23:14,15)과 동일시 하기도 한다(A.C.Hervey, Dean Stanley) =====2:10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 전신을 땅에 엎드려 절하는 행동은 원래 하나님 앞에서(수 7:6;삿 13:20), 혹은 왕 앞에서(삼하 14:4,22) 취하던 자세였다. 그러나 단순히 아주 깊은 겸손을 표시하기 위해 그러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여기서 룻은 외모만을보고 판단하지 않는 보아스의 사려 깊은 인격에 대해 심심한 존경의 뜻을 표함과 아울러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여 깊은 겸손을 표했던 것이다.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 전통적으로 히브리인들은 이방인들을 천하게 여겼다. 이같은 관습은 율법의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시켰던데서 연유되었다(신 7:3). 그러나 본질적으로 율법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간의 결혼을 금지시킨 것은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라, 종교적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즉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기 때문에'(왕상 11:1,2) 금지된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이 정신을 오해하여 나중에는 자기 동족인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 당한 후 앗수르인과 혼혈되자 그들(사마리아 사람들)과도 상종하지 않게 되엇다. 아무튼 여기서 룻도 아마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서, 자신이 히브리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이방 여인이라는 사실을 말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2:11 본절에 나타난 바, 우리는 존경받는 유력한 인물 보아스의 대답을 통해 룻의 두 가지 뛰어난 품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이란 말을 통해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시모(媤母)를 극진히 받들어 섬기는 룻의 '효성'(孝誠)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란 말을 통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향한 순수하고도 충직한 룻의 '신앙'(信仰)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룻이 복을 받아 머지않아 보아스(Boaz)의 아내가 되고, 후일 성군 다윗(David)의 증조모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 때문이었지만, 나아가 룻의 고결한 품성도 그 요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12 여호와께서...보응하시기를 원하며 - 일찍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일가 친척, 본토를 버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곧 "나는...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는 말을 연상케하는 보아스의 축복이다. 실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온 이 이방 여인에게 보아스의 이 말은 큰 위로의 말이 되었을 것이다(1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이 명칭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언약을 맺은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여기서 보아스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고, 율법을 통해 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시다(출 6:2;19:3;20:1-26).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 이 표현은 출 19:4과 신 32:11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즉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행위가 마치 어미 독수리가 그 넓고 강한 날개로 새끼를 안전하게 인도하고 보호해 주는 것과 같은 행위로 묘사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보아스가 룻에게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룻이 언약의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음으로써, 그녀가 자비로우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로 인도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시 91:4). 보아스의 이 말은 앞에서 룻이 자신을 가리켜 '이방 여인'으로 말한 것(10절)에 대한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2:13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 - 룻은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란 말과 같이 자신에게는 최대의 비하와 겸손으로써, 그리고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란 말같이 보아스에게는 최고의 존경과 감사로써 자신이 받은 큰 위로와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즉 모압 땅을 떠나온 이래로, 이처럼 따뜻한 인정을느껴본 적이 없었던 룻은 그 무엇보다도 이방 여인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맞이해 주는보아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어떤 호의 보다도 더욱 큰 힘과 위로 및 기쁨이 되었을 것이다. =====2:14 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메츠'(* )는 포도주에서 난 '초'(민 6:3)를 의미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빵과 함께 식사할 때 양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근동 지방에서는 갈증을 푸는 음료로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Goslinga). 볶은 곡식 - 이것은 아직 덜 여문 밀을 모닥불 등에 살짝 볶은 것으로(레 2:14), 아직도 근동 지방에서는 빵에 곁들여 사용되거나 빵대신 주식으로 애용되기도 한다. =====2:15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 여기서 '곡식 단 사이'(between the sheaves)란 말은 분명 곡식 단들을 세워 놓은 바깥과는 구별되는 말로서, 곧 곡식 줄기를 한웅큼씩 모아들인 소녀들이 크게 단(sheaf)으로 묶는 지점일 것이다(J.Morison). 따라서 그곳은 그 묶는 과정에서 자연히 곡식 이삭들이 주변에 많이 널려지는 곳이었다. 따라서 만일 여기서 룻이 이삭을 줍는다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충분한 양을 쉽게 모아들일 수 있었다. =====2:16 뽑아 버려서 - 이 말을 좀더 정확히 옮기면 '떼어 내어서'가 된다. 즉 단을 묶을때 그 단에서 흘린 것처럼 떼어 내어 룻으로 하여금 그 곡식을 줍게 하라는 의미이다.특히 보아스의 이 말 속에는 룻이 곡식을 주울 때,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깃들어 있다. 아무튼 일하는 소년들에게 내린 보아스의 이 지시는 분명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이나 긍휼의 정도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분명 보아스는 이방 여인 룻의 효성과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고, 그로 인해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p.480). =====2:17 그 주운 것을 떠니 - 아마도 룻은 그 주운 보리 이삭을 편편한 바닥이나 또는 멍석위에 올려 놓은 후 적당한 막대기나 돌로서 두들겨 떨었을 것이다. 한 에바 - '에바'(Ephah)는 구약 시대 부피의 단위로서 대략 23리터 즉 약 12되 정도의 분량이다. 이처럼 룻이 하루 동안 23리터 정도의 이삭을 주웠다는 것은 보아스가 그녀에게 보여 준 호의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즉 보아스는 룻에게 점심 식사를 줄 때, 그녀가 먹고 남을 만큼 풍족히 제공했을뿐 아니라(14절), 곡식 단을 묶을때 조금씩 흘리도록 함으로써 그녀가 풍성히 거둘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16절). 그러므로 룻은 이러한 보아스의 호의 때문에 넘치는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2:18 보이고...드리매 - 이 한 구절 속에 시모에 대한 룻의 효성이 함축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즉 룻은 자신을 보내놓고 걱정하시는 시모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하루동안 한 일을 죄다 보여 드렸을 뿐 아니라, 또한 대접받은 음식을 자기만 배불리 먹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14절) 집에 홀로 있는 시모를 생각하여 정성껏 남겨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룻의 행동은 끝까지 시모를 공경하며 따르겠다고 약속한 것(1:16,17)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것이라 볼 수 있다. =====2:19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 연속되는 나오미의 질문 속에서 나오미의 궁금증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나오미의 생각에 여인이 하루 동안 보리이삭을 한 에바 정도 줍는다는 것도 예사 일이 아닐뿐더러, 준비해 가지 않은 점심을 먹고 남겨 가져온다는 것도 누구의 호의를 입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젊은 과부인 룻의 신변이 염려되어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분명 오늘 룻에게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그 일의 자초 지종을 듣고 또한 알기 원했던 것이다. 이에 룻은 시모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기 위해 그날 일어났던 일의 자초 지종을 예의 그 자상함으로 이야기 했을 것이다. =====2:20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 여기서 '생존한 자'란 나오미와 룻을 가리키며, '사망한 자'란 모압 땅에서 죽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말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한 가지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즉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 '그가' 곧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1)혹자는 본절의 주어 '그'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Keil, Goslinga). 이러한 주장은 사람이 '사망한 자'에게까지 은혜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라는 추론에 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중 NIV와 Living Bible에서도 본 구절의 주어를 구체적으로 '하나님'으로 밝히고 있다. (2)그러나 혹자는 본절의 주어를 문장 그 자체에서 보여주는 대로 '보아스'로 주장한다(Matthew Henry, A.C.Hervey). 이 주장을 따라 본절을 해석해 보면, 나오미는 보아스가 그녀의 남편과 아들들이 살아있을 때에도 자신의 가정에 호의를 베풀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지금 살아 있는 자신들에게 베풀고 있는 보아스의 호의를 그때의 상황과 연결시켜 말했다는 의미가 된다. 결론적으로 무엇보다 여기서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好意)를 베풀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오미가 보아스의 호의를 칭송하면서 그 호의를 강조하고자 이 말을 사용했다고 볼 때, 본절의 주어는 '보아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기업을 무를 자 - 이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엘'(* )은 '되찾다', '무르다', '구속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는 하나님께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며, 그리고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났다. 따라서 고엘(Goel)이 된 자는 '고엘의 의무'를 감당해야 했는데, 그것은 곧 (1)가난한 혈족의 땅을 도로 사주어야 했고(레 25:25,26), (2)부당한 피해를 당한 친족을 위해 복수할 책임을 져야 했으며(민 35:12,19,21), (3)그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대(代)를 이어주어야 함은 물론, 심지어 그 친족의 죄값을 대신 받기까지 했다(민 5:8). 그리고 '고엘의 자격'으로서는 (1)혈연적 관계에 있을 것(신 25:5-7), (2)자원해야 할 것(3:13),(3)그리고 고엘로서의 능력을 구비할 것 등을 들 수 있다(레 25:25 주석 참조).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베들레헴성에서 유력한 자(2:1)이며, 친족에게 호의를 베풀 줄 아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로서 가장 합당하였다<레 25:8-55 강해, 근족의 의무> =====2:21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 보아스의 큰 호의에 룻 또한 감격하여 시모 나오미에게 보아스가 자신에게 베푼 호의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세히 말해준다.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 여기서는 보리 추수만을 의미하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밀 추수 때까지를 의미한다(23절).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나 - 여기서 '소년들'(* , 네아림)은 비록 남성형으로 표기되었지만 엄밀히 '소녀들'과 구분하고자 그리 사용된 것은 아니다. 다만 룻으로 하여금 벼 베는 소년들 뒤를 따라가며 단을 묶는 소녀들 틈에서 추수기가 다 끝날 때까지 부담없이 이삭을 주우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8,22,23절). =====2:22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 나오미의 이 말 속에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이 될 자격이 있다는 확신이 내포되어 있다. 즉 앞절에서(21절) 룻이 보아스의 말(8절)을 나오미에게 전해 줄 때,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친족의 고엘이 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고, 따라서 룻에게 다른 사람의 밭으로가서 보아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을 삼가하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룻이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려다 자칫 거칠게 다루어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2:23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 팔레스틴 지방에서 보리는 밀보다 먼저 익어서 대개 태양력으로 4월 중순경에 거둬들인다. 그리고 약 2주일 후에밀 추수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내내 룻의 겸손하고 근면한 품행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것이고, 보아스는 이러한 룻의 행동을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보아스와 룻의 관계가 점차로 무르익어 가서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Morison, Cassel).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 이 짧은 한 마디의 말은 곧 시모(媤母)에 대한 룻의 변함없는 효성을 암시해 준다. 즉 18절에서 보여지듯, 그 근면하고 순결한 성품으로 하루 일을 마친 다음 그날의 좋은 것들로 시모를 봉양하고, 아울러 시모에게 하루의 일과를 자상하게 이야기하는 등 물심 양면으로 시모를 편하게 받들어 모시는 룻의 한결같은 모습이 이 짧은 한 구절 속에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 ===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 룻2:1-3.(스데반 황)==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친히 인도하십니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베들레헴 땅의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믿음의 공동체가 너무나 그리운 나머지 약속의 땅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사실 자신의 모든 것을 주 앞에 내려놓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만 의지하며 나아가겠다는 철저한 순종의 의사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녀가 믿는 주 여호와 하나님을 호흡이 마치는 그 날까지 믿고 따르겠다는 룻의 고백을 듣고 룻을 데리고 함께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두 여인을 철저히 보살피기 시작하십니다. 주의 보살핌은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시기까지 주관하는 섭리로 나타납니다. 즉, 그들이 약속의 땅 베들레헴에 도착하니, 놀랍게도 그 때는 초실절이었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 1:22). 초실절이 예표하는 바는 우리가 잘 알듯이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월절이 지난 후 초실절에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 가운데 나오미의 비참은 부활의 아침과 연결됩니다. 이는 나오미의 마라와 같은 자기 연민이 이제 곧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부활의 소망으로 이어지면서 믿음의 확신과 함께 영원한 나오미가 될 것을 전조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주의 뜻에 따르고자 할 때 하나님의 호의적인 섭리가 펼쳐집니다. 이때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인간의 계획을 훨씬 초월하는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진행됩니다. 두 과부가 베들레헴에 도착한 때가 “보리 추수 시작할 때”가 아니었다면 룻기의 기록은 대단히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사실 룻기 전체는 “보리 추수 시작할 때”라는 배경 가운데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두 과부의 이사 시기를 섭리 가운데 인도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두 과부가 도착하게 됨으로 인하여 “보리 추수”와 관련해서 사건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제 본문 1절을 보니 새로운 인물이 한 사람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보아스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라”(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는 유력한 자였습니다. 여기서 유력하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이쉬 깁보르 하일)인데 깁보르는 일반적으로 용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일은 돈이 많고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보면, 용사, 부자, 그리고 영적으로 믿음이 강한 경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단어를 모세의 언약을 배경으로 하여 이해한다면 보아스가 유력한 자였다라는 의미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재물에 있어서 매우 안정되어 컸고, 또한 사사 시대의 잦은 전쟁에서 매우 뛰어난 용사의 역할을 하였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두 과부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시기적으로는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그들을 베들레헴 에브랏으로 이주케 하신 것으로 나타났고 또한 베들레헴 에브랏에서는 유력한 자 보아스를 준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역사와 모든 각 개인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과 섭리는 얼마나 신비하고 기묘한지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조금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인간이 고작 사용하는 단어는 ‘우연’입니다. ‘우연’이라는 말은 ‘나는 어떤 일들에 대한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대해 전혀 모르겠다(즉, 주님이 하신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룻이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우연히’라는 말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알려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우연히’와 비슷한 용어로 4절에서는 ‘마침’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 즉, 룻이 그 밭에 이르렀더라도 마침 보아스가 그곳에 없었다면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 보아스의 밭에 우연히 이른 그 때에 마침 보아스도 그곳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섭리 중에 하나는 만남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이 땅에 실현하는데 쓰임 받게 될 사람들의 만남은 창세 전부터 주의 마음 속에 있던 작정이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이 우연입니다. 그런데 그 우연을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섭리는 주의 백성의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마치 각 신자들이 한 분 하나님과 교재하는 것 같은데 사실 한 분 하나님은 수백수천만의 신자들과 교재하시면서 모든 만남과 환경과 때와 시기를 주장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 신비하여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진행하는 섭리는 그 어느 것 하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가 한 부부의 만남에 대해 확률을 가지고 인류 역사 가운데 계산해 보니 불가능이라는 답변 밖에 나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확률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라고 알려주며 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제 5장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알려줍니다. [1 만물의 위대한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와 능력과 의와 선함과 자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 그분의 무오한 예지 및 그분 자신의 뜻의 자유롭고 불변하는 경륜에 따라 그분의 지극한 지혜와 거룩한 섭리로 가장 큰 것으로부터 가장 작은 것까지 모든 피조물들과 움직임과 사건들을 붙드시고 인도하시고 처리하시고 통치하신다. 2. 모든 일들은 제 1 원인 되시는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에 따라 변함없이 그리고 틀림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동일한 섭리에 의해 하나님은 제 2 원인들의 속성에 따라 그 일들이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도록 정하신다. 3. 하나님은 그분의 일반적 섭리를 위해 여러 수단들을 사용하신다. 하지만 그분은 그가 원하시는 때에는 그 수단들 없이 그것들을 초월하여, 그리고 그것들을 역행하여 자유롭게 역사하신다. 4.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하신 선하심이 그의 섭리에 너무나 자명하게 나타난다. … 7. 하나님의 섭리가 일반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가장 특별한 방식의 섭리를 따라 그분의 교회를 돌보시며, 모든 일들이 교회에 유익이 되도록 처리하신다.] 하나님은 룻과 보아스가 만날 수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룻을 택하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또한 그녀를 모든 이방인을 대표로 하는 인물로 삼아 주의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도 전달될 것을 구약 시대에 미리 알려주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모압 여인 룻을 통해 다윗을 낳게 하시고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편 보아스는 룻을 만나기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 따로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품적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의해 온전하게 성장하였고, 모세의 언약에 따라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강하고 힘센 유력한 자였지만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자상함을 온전하게 갖추었습니다. 그는 성품이 온전하였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써 주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장 4절과 12절을 보면, 우리는 보아스의 생각을 주관하는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룻 2:4). “보아스가 룻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룻 2:11-12).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주장하셔서 룻과 보아스가 만나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이제 곧 그 둘은 서로 만나게 될 것이며 주의 섭리와 역사에 의해 서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사건이든 큰 사건이든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는 훈련을 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를 위해 역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움직이고 온 우주를 흔들어서라도 주의 뜻을 행하려는 자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돕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뜻에 무관하게 사는 자들을 향해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의 섭리는 그에게 허무와 슬픔과 비참과 멸망을 가져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역사를 믿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기도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기 바랍니다. 인생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만남은 말과 고백과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룻이 만일 나오미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이생과 내세에서 영원토록 찬란하게 기억되는 이러한 성경의 인물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가장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이방 여인이 말론이라는 병약한 유대인을 만나게 된 그 만남은 사람들이 볼 때는 남편을 일찍 잃은 과부로서 비참의 극치일지 모르나, 사실 가장 비참하고 슬퍼 보이는 그 만남 때문에 룻은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나아가 말론 및 나오미를 통해 그 이방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 듣고 믿음으로 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쓰임 받은 어떤 성도와의 만남은 얼마나 위대하며 얼마나 소중합니까? 저는 모태신자이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한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삼위일체와 복음에 대해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를 만나서 웨스트민스터 교리를 맛보고 또한 로마서를 함께 공부하게 되면서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복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 인생에게 삶의 방향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만남이 있다면 그 친구와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서로 다른 고향, 서로 다른 대학 등, 뭐든 달랐는데 대학 졸업 후 같은 연구소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연구소에서 제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고향이 전주인지라 인천에서 자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성경을 묵상하는 친구였기에 제게 로마서를 공부하자고 제의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성경에 빠지게 되었고,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신학을 하게 되고 이렇게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과 삶을 통해 복음으로 인도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가장 귀합니다. 또한 복음이 정확하게 제대로 선포되는 바른 교회와의 만남은 얼마나 소중합니까? 사람이 구원 받으려면 온전한 복음을 듣고 회심하고 거듭나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거룩함인데, 거룩에 이르려면 이 역시 온전한 복음을 듣고 믿음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는 사실 신자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지금 이 땅에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하나님의 영광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세상 사람만도 못한 부패한 신자들은 그렇게도 많은 것입니까? 그 이유는 복음의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바르게 배우지 못해서 그러합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다니며 기도하면 게으르게 놀고 먹어도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배웠으니 어찌 거룩함을 향한 도전과 소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른 교회를 만나 그 교회에서 성장하는 자들은 복음 안에서 한없이 깊어가며 그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