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1장 [299. 하나님 사랑은] [384.나의갈길다가도록]...구주와의 결혼 안으로 들어섬괴 그분 누림이 바로 공식적 세례의식과 성찬식임을 명심하라.. ...((주 말씀 안에 거함으로써 주로부터 사랑하기를[아가파오...마음/뜻-성품-힘 다해 영생 주심의 아가파오] 참되게 배우며 공급받는바)) 나오미와 룻은 서로 사랑하고 위하기를 보노라면 다윗과 요나단의 진실한 상호 사랑(필레오),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하신 말씀을 떠 올리게 한다. 나오미는 영적 어미, 제자이자 전도자 안에 사시는 Q, 룻은 영안이 열리게 하심따라 영적 진실을 감지하는 눈 가진 구원영생의 말씀 추구자로서 주님 제자인 전도자를 떠나지 않고, 구하고-찾고-두드림 통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결혼)하고 누림의 은혜 안으로 들어섬 통해 영생 누림 얻은자.
....참사람이자 참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그분이 십자가 대속으로 이루신 바 믿고 붙들며 그분과 하나됨 사는 이마다 주님은 그의 안에 성령으로 오셔서 내주하심 통해 마침내 전존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치된 거듭난 영혼의 완전한 거룩함, 곧 생명-사랑-경건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까지 성장 성숙을 날마다 매순간마다 새롭게 만들어가고 계신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다음세대로 하나님 경외함을 참되게 깨달아 알고 그로 인해 살도록 신앙의 전수가 그토록 중요하다!!...여호와가 영원 무궁히 유일무이한 참 왕이시나...<전심전력 다해 그분 알고 하나됨의 교통 안에 살아감으로 부종하며 따름으로써> 영존하시는 영원한 왕, 생생하게 살아계시며 친히 사랑으로 함께 하시며 이끌어 돌보며 먹이시며 교통하시는 임마누엘, 경외하올 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대주재 유일무이한 영원하신 참 왕으로 높여 인정하지 않음 인해]]....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갈망...오직 주님이 얻기를 원하시는 참 사람....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처인 유일무이한 그리스도 교회, 그분 영광의 반사-반영이자 영광을 살아내며 공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분의 단체적 아내-신부, 신격이나 위격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본성에서 거듭남으로써 (옛것은 완전히 소멸되어 자취조차 다 사라지고) 진정한 하나님-사람 = 그리스도-사람 = 곧, 그리스도의 사람....이를 위하여 옛사람은 날마다 무시로 죽고 오직 그의 안에 내주하여 오셔서 사시는 부활 생명 능력 말씀의 영이신 날마다 매순간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로만 충만케 됨의 신진대사적 변화 이루며, 신격이나 위격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본성에서 머리요 남편이신 그리스도로 살며 그분을 살아내며 말씀하시는 그분으로 말하며 그분과 하나로서 오직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사는 바로 그 사람 얻음에 있음을 명심할지니!!.....(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아는, 악쓰며 절망의 몸부림 치는 사탄은...그래도 삼킬자를 찾아.. 항상 위조-모조품으로 미혹-현혹할 바).....유한한 세상과 타락한 사람이 보기에 상대적인 승패, 선악, 단지 그분을 위한다 하며 아양떨며 비위맞춤식으로 기쁘고 즐겁게 해드림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결코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삶을 통해, 그 분 안에 하나 됨(발휘되는 생생한 산믿음으로 거함-교통-사랑-순종-누림) 이루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으로써 그분의 부탁하신 사명을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시도록 내주하시는 그분께 자신을 비워 내어드리는자로서 살아갈 때, 주님은 그분의 성령으로 기름 부으신바 바로 그분이 이 땅을 걸으시며 담당하신 선지자-제사장-왕적 직분에 합당한 섬김이로 살아감 친히 이루실 것...!!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모양을 따라 사람-우리를 창조하시고서, 우리가 생명나무가 표징하는 그분의 생명을 취하기 원하셨다. 그러기에 분명히 깨닫고 전심전력으로 추구할 바가 무엇인지를, 그 목표를 바라보아야 하리라...상대적 의미에서의 거룩함이나 영성, 즉 비교 우월-탁월-빼어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절대적 어떠하심 그분께 꼭 그대로 꼭 들어맞는 하나님-사람, 생명나무가 표상하는 그분의 절대적 참생명을 취한, JC이름의 부활생명 성령으로 거듭난 참 믿는이의 영 안에 오셔서 내주하시며 공급하시는 바 그분의 생명과 본성으로 영원완전히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으로 변화되어가며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이르도록 하고 계심임을 진정 깨닫고 자신을 열어드림이 합당하다..
[갈1:10.((절대적으로 Q의 유익과 만족을 위하여[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박해를 감수하며]그리스도를 사는, 친히 말씀하시는 그분의 인도따라 동행하는, 진정한 자랑과 기쁨인 그분의 종으로 살기!!))..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새번역).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현대인의성경)내가 지금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와서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우리말)내가 지금 사람들을 좋게 하려고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좋게 하려고 합니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려고 애씁니까? 만일 내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려고 애쓴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 내가 지금 (Q이 아니라) 사람들의 지지를<옳다 인정함>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오직 구주 JC 십자가 언약으로 주신 바 신약 말씀 준수 통해) 하느님의 지지를<절대적으로 옳다 인정하심>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율법을 글자 그대로 동시에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종용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대다수에게 좋아 보이는 게 좋은 것 아니냐, 그렇게까지 그대 의견을 고수할 필요 있는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For am I now seeking the favor of men, or of God? Or am I striving to please men?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men, I would not be a bond-servant of Christ....(AMP).10 Am I now [c]trying to win the favor and approval of men, or of God? Or am I seeking to please someone? If I were still trying to be popular with men, I would not be a bond-servant of Christ.(KJV) For do I now persuade men, or God? or do I seek to please men? for if I yet pleased men, I should not be the servant of Christ...(NIV)..Am I now trying to win the approval of men, or of God? Or am I trying to please men? If I were still trying to please men, I would not be a servant of Christ.]
@[[生命 생명...파자로 뜻 살피기]] :::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뿌리내린 곳에서 시작하여 땅 위로 새싹이 돋아 (하늘 향해 두팔 벌려 전적으로 모든 것 공급 받으며) 자라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상형문자로 볼 때는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생기다→태어나다→만들어지다-->만듦....그래서, .生生者不生 생생자불생 :: (호구지책만 추구하는 삶에 집착(執着)하는 자는 도리어 살지 못함)...生動生動 생동생동 ::: 기운(氣運)이 꺾이지 않고 본디의 기운(氣運)이 아직도 남아 생생한 모양(模樣)....이라는 어구가 나오게 되었으리라 ::::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생명 목숨 주사 자람에 필요한 모든 것 공급하며 손수 키워내신 분을 의지하며", 그분 자신을 끝까지 공급 받음으로써!! 이제 할 일 맡기심으로 보내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시며.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아니하실는 분께서 명하신 그대로> "보냄 받은 사명을 목숨다하기까지 반드시 완수하도록 하자"는 뜻이 그 "생명"이라는 글자 안에 포함되어 있음이다.
@상쾌-유쾌-통쾌 :: 爽快 상쾌(빛, 곧 제한 받지 않으시는 분, 힘과 능력이신 영생 하나님 임마누엘께서 창살 통해 뚫고 들어옴 인해 막혔던 것이 풀려나고 기대-고대-앙망하고 바라던 마음이 시원하고 거뜬함 ) 愉快 유쾌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생명수 넘쳐 흐르듯 즐겁고 상쾌함). 痛快 통쾌 [1.너무 넘치기에, 역설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바, 고통스러워 죽을 정도로 아주 유쾌(愉快)함. 2.불평(不平)이나 불만(不滿)스럽게 여기던 일이 뜻대로 잘 풀림 인해 마음이 극도로 매우 상쾌(爽快)함.]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 = '나의 즐거움,' '행복,' '희락' ‘유쾌함' ....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선함]의 뜻을 가진, ‘노암’이라는 히브리어에서 파생.. [요5:29..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마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벧전4:19...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요삼1:11...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선함>의 히브리어는 <노암עםַ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에서 온 말.... "아름다운, 은혜로운, 즐거운, 은총의, 매력적인, 기쁜" 을 의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은혜/은총으로서... 그 영혼의 내면에 여호와의 아름다움이 흘러 넘칠 것... 선한 성품과 은혜로운 말이 있을 것...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할 것... 그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은총이 머무는 사람일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Touch하는 영혼의 매력이 있을 것...이 모든 은혜가 <노암עםַנֹ<이니......성령의 9가지 열매가 <노암עםַנֹ<속에 있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노암עםַנֹ<의 본체이시니...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영혼을 살리는 선한 <노암עםַנֹ<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노암עםַנֹ<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 삶의 모든 영역에서 <노암עםַנֹ<이 주는 은총이 있을 것... 만일 삶이 메마르고 내면에 여유가 없다면 하나님의 아름다움 <노암עםַנֹ<의 은혜로 돌이켜야 하리라.. [주님의 집 = 떡집, 베들레헴]에로 돌이켜야 하리라... 찬양과 경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으며, 기도를 통해서 내면의 <노암עםַנֹ<의 축복을 누릴 수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의 매력보다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바, 그런 영혼에게 흘러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노암עםַנֹ<이 머물게 될 것.
@@@엘리멜렉(Q은 나의 왕, 풍부-충만)으로 시작하였으나!!..주 안에 하나됨 안에!! 있다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낳아 얻은 것이라고는 말론(= 병약/제한/장애)과 기룐(= 비통/고통/실패/허비)일 뿐이기에 지금 전후좌우, 사방에 우겨쌈 당하고 있는바 "마라"에 잠겨 앞이 한치도 보이지 않는 경험 "우울-낙망" 안에 있는가??...이제 지고지선의 진복, 그분 자신을 주시려 함이니..마땅한 공과를 배워야 함을 일깨워 주심이다!!..다만 주를 신뢰함으로써 주 안에 머무르며 그분 안에 거하라!! ...오히려 주님과 하나됨 견지함으로써 "우르(흔들어 진동하사 깨우심)-쿰(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심)-야차브(굳게 서서 믿음의 결과를 경험하게 하사 전적으로 외뢰하며 동행하는 산 믿음의 근육 가지며 능숙한 전사로 양육하고 계심) = 아마드((이제 주와 함께 호흡하며 그분과 함께 발맞추고 행하는 승리의 전진하는 군사 만들어 당신 영광을 주심)) 의 생명 행보로 동행함의 결과, 곧 극락의 소망-부활생명의 영광이 있음은 주께서 선하심이라.."룻"을 주심으로써 만나게 하실 바 보아스를 통해 다윗과 그리스도 오게 하심으로써 주님의 살아계셔서 친히 이루심의 산 역사를 간증하게 하시리라!!
@나오미<기쁨과 즐거움(희락), 어여쁘고 사랑스러운(예쁜이+곱단이) = 기쁨과 즐거움, 복됨>는 (엘리멜렉<내 Q은 왕>도 그러하지만) 이미 구원을 경험하여 알고 있는 중에, 베들레헴<떡집>에 임한 기근을[ (반드시 뒤따르는 다함 없는 긍휼[회복]이 예비된) 주권적 섭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이 [다루심과 연단을 그 내용으로 하는] 주권적 섭리 베푸심 안에는, 곁길로 나아간 잃은 양들이, 인생고난을 통해 Q 사랑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려는 뜻이 있음..전쟁-온역-기근-지진 등 [천지를 진동시키는] 모든 재앙 만날 때, 돌이켜야 할 때임을 깨닫고 오직 주께 나아가야 함]기근 인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언제든지 지고지선-최상의 주님 원하시는 곳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임을 인식하고> 주님의 뜻과 그분의 움직이심에 유의-앙망하면서, 인내로 참고 버티며 견디며 앙망하며 감수하기를 바라신다..)] 끝까지 베들레헴에서 버티지 못하고 (주님의 각자의 구주와 주인되심을 무시-망각하고 함부로 자행자제함, 즉 주께 묻지 않고) 간음의 세상, 모압으로 이주하고 있음....이는 어쩌면 (세상 따름의 곁길로 나아간) 영적 간음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 이를 [모압 땅에서 더더욱] 철저히 깨달은 나오미는 (자신의 당한 모든 처지와 환경 상황 변화에 대해 주님의 긍휼을 기다림 가운데, 기꺼이? 감수하고 있으며, 엘리멜렉-말룐<병약>과 기룐<낭비>을 잃게 되지만 남은 여생의 동반자 며느리 룻을 얻음 인해 모압에서 버틸 수 있었으리라..., 비록 불평하고는 있으나 나오미의 주님 향한 그 심지는 견고하였기에 탁월한 생명 낳는 전도자로 변화되고 있었다, 나오미의 주님 신뢰하기를 따라 참되게 배운 며느리 룻<우정-다정-친근-친구>의 나오미와의 동행 결심은 실지로는 룻이 올인하는, 주로 살려는 결심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요11의 마르다와 마리아와 비교해 볼 때, 조급함이냐 감수하며 끝까지 기다리며 앙망함에 있어서 특이한 차이점들이 드러났다))....룻은 모압 출신이로되, Q의 은혜 믿음으로 구원 받고, Q을[나오미가 붙좇는 그 Q] 붙좇음(=다바크...cling to, adhere to, attach to = 결합하여 (빈 틈 없이) 한 몸 됨...착 달라붙음..주님은 품에 안아버리신다. 그분은 온 몸과 머리를 가리는 완전한 방패요 상급이시다,)으로써, 다른 사람을 살맛 나게 만들어 주는, 일곱 아들보다 더 극진히 모시며 존귀케 한, 인애를 효도로 참되게 나타냄으로써 시모 나오미를 그 이름 그대로 살 수 있게 한 존귀한 며느리 [나의 하나님]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참 귀하다 어느 보석보다 귀하다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려 내가 왔노라 주의 사랑 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II: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II 찬양하리 만군의 주 영원히 함께 하시네 존귀하신 사랑의 왕 영원히 통치하시네 II: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II
@라합이 구원 받은 것은 Q과 Q의 백성에게로 돌이켰기 때문임...그 후에 여리고 정탐군으로 파견되었던 살몬과 결혼하였고 <보아스>를 낳음..... @@그대에게 <영적 의미에서> 살몬과 보아스가 있는가를 돌아보라, 그들이 없다면 현재 위치가 어떠하든지에 관계없이 장자권을 상실한 상태와 같다고 봄이 맞다...... ....보아스는 [고엘, 기업 무를자]의 권리로 그의 친척인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름((본래 주인에게로 되돌려 회복시킴))으로써 구속함으로써 나오미와 룻에게 돌려주었고((= 엘리멜렉의 모든 빚을 대신 갚아줌 = 결국, 말룐의 빚조차 갚은 셈이 되었음)), 엘리멜렉의 과부인<영적 측면에서 볼 때, 과부가 된다는 것은 (남편의 장자권은 아내와 함께 누리는 것이며, 과부 됨은) 장자권 누림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임을 알아두자> 나오미를, 보아스는,그 자부인 룻과 결혼함으로써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낳음으로써 나오미와 함께 룻에게도 장자권 누림의 회복을 제공하고 있었다.....구속하는 자는 다른 이들보다 특히 더 풍성하게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어야만 함을 명심하라.((이것이 장자권의 영적 의미인 바, 참되게 믿는이마다 그리스도를 칠 배나 더 얻도록 추구하라!!))....또한 주님의 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을 주고 계시는데, 이것은 룻의 근본이 비록 근친상간에 속했다 하더라도, 주님과 주의 백성을 갈망하고 추구하였기에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자권 안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음을 꼭 기억하라..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 우리를 통제하는 원칙들 *1)우리의 배경이 어떠하든 우리는 Q과 Q의 백성에게로 돌이켜야 한다 *2)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3)영적 의미에서 합당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주님을 신뢰함으로써 .결혼할 배우자 정하여 이끌어 오시도록 의뢰해드리라...[주님을 끝까지!! 극도로 신뢰하는 자인가??..그렇다면.. 더 큰 기쁨 주시려!!..때때로 주님은 호세아에게 말씀하심과 같이 "창녀 고멜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라"하실 수도 있을지 모른다..이는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로서..마침내 주님은..로루하마-로암미라 이름짓게 하시지만..결국 그들로 "그분의 선하심을 극도로 증거하는" 루하마, 암미가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오직 주님 신뢰함의 공과를 합당하도록 마쳐야 한다!! .....[창41:44, 45...*44.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이처럼 주님은 제한 받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참되게 알며 붙들고 있었던 요셉이었다....그랬기에, 바로가 명령한 그대로 애굽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낳았고, 야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주님은 요셉의 두 아들을 당신의 두 분깃 지파로 삼으시고 참생명 계보에 넣고 계셨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다바르[=가라사대 = 말씀하시되]...아마르(설명하여 이르심)과는 달리, Q의 말씀하심[=다바크<가라사대>는 (말씀하심 그대로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생생한 실제로 나타나도록> 바로 당장 그렇게 행하심 그 자체인데, 그 전제조건은 그분과 하나로 결합된 순수한 믿음의 순종임.. @다바크,,,,신앙 안에서 평생 간직해야 할 다바크(דבק(의 3대 원리 ===연합, 언약, 친근의 원리인 '다바크' 히브리어 ‘다바크(דבק‘(는 중요한 3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연합’, ‘언약’, ‘친밀’이다. 이렇게 중요한 단어인 히브리어 ‘다바크(דבק‘(의 단어적 의미는 cling to, adhere to, attach to, ‘붙다’, ‘착달라붙다’, ‘접착하’, ‘하나가 되다’, ‘결합하다’, ‘부착하다’, ‘따라붙다’ ‘연합하다’, ‘바짝 붙어있다’, ‘가까이 하다’, ‘열심히 좇다’, ‘친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포도나무와 가지의 하나 됨의 결합, 결혼을 생각하라!!)) 현대 이스라엘에서 접착제를 뜻하는 단어는 ‘데베크’로 ‘다바크’에서 파생되었다. 이제 그 ‘다바크’가 성경에서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살피며 깊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로 하자. 1. 다바크(דבק(의 연합의 원리 1) 하나님의 가정 창조의 역사에서 밝혀진 연합의 원리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다바크(דבק‘(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세기 2:22-24) 하나님께서 천국의 모형인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 부부의 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정의요 명령이요 선언이다. 가정을 이루는 기초 단계로 남자와 여자로 정하셨는데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에서 취하여 창조된 남자의 분신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향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하여 가정의 기초를 이루는 유일한 상대라는 것을 표현했다. 이런 하나님의 가정 창조의 시작과 결과 때문에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된다고 유일 원칙과 불가분리의 원칙을 선언하신 것이다. 여기서 ‘연합하여’를 ‘다바크(דבק‘(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였다는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2) 하나님의 가정 창조 역사를 반영하는 연합의 원리 “3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3-6)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던진 이혼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실 때처럼(‘기록되었으되’) 이미 하나님께서 성경 창세기에 주신 말씀에 따라 결혼의 진정한 의미와 원리로 돌아갈 것을 가르치셨다. 성경에서 결혼은 단순히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 이상의 깊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이 임하는 것이 혼인잔치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마 22:1~14). 이 중요한 결혼의 원리의 한 가운데 있는 핵심적인 단어가 바로 “합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콜라오(κολλάω)’이며 이것은 히브리어 ‘다바크(דבק‘(이다. 2. 다바크의 언약의 원리 창세기 2장에서 시작된 ‘다바크(דבק‘(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그것은 바로 깊은 믿음의 여인 룻의 이야기이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과 그 아내 나오미는 유다 땅에 기근이 들자 이방 지역인 모압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엘리멜렉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의 두 아들들은 이방인인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을 각각 아내로 맞아들였다. 무슨 연고인지 두 아들마저 다 일찍 죽게 되어 세 과부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로 정하고 불쌍한 두 며느리를 처가로 돌려보내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하려고 하였다. 두 며느리는 시어미를 따라 유다 땅으로 가겠다고 소리 높여 울며 따라나섰지만, 아무런 미래가 없는 자신을 따라 오려는 며느리들의 앞길을 위하여 나오미는 그들에게 자기를 떠날 것을 간곡히 권고하였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다바크)” (룻기1:14) 결국 오르바는 돌아서 시어미를 떠났지만, 룻은 시어미를 붙들고 떨어지지 않았고 붙좇아 갔다. 여기 ‘붙좇아 갔다’는 말이 ‘다바크(דבק‘(이다. 룻은 원래 유대인이 아니었다. 이방 족속인 모압의 여인이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사이에 생긴 자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훼방을 놓는 등 예언서에서 저주받은 백성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룻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의 유업에 관계된 자가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의 밖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남편도 죽고, 시어미가 혼인 서약에서 풀어줌으로 인하여 룻은 다시 완전히 이방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룻은 겉으로는 자신의 선택이요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에 들어간 것이었다.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 1:15-17) 룻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만들고, 나오미의 하나님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죽음이외에는 끊을 수 없는 언약을 맺은 것이다. 룻은 축복의 상속자가 아니었지만, 상속자로,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없는 자였지만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신분이 변화되었다. 완전히 남이었지만 하나님 눈에 하나가 되어 같이 되는 기적을 이룬 것이 바로 룻의 ‘다바크’였다. 그렇다면 ‘다바크’는남남인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사람처럼 되고 생사를 함께 하는 언약 관계(covenant)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룻이 돌아설 자유가 있었음에도 나오미와 그의 하나님을 택한 것은 믿음의 의지적인 결단이었으며, 이렇게 하여 맺은 관계는 절대로 배반할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결혼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돌아설 자유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의지적으로 하나의 언약관계 속에 들어가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맺은 언약은 절대로 배반할 수 없는 약속인 것이다. 만약 결혼 당사자들의 마음속에 배반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약속은 이미 언약이 아니며, ‘다바크’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룻이 자기 고향을 떠나 나오미에게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며,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 하며 연합한 것처럼, 두 사람이 서로의 생명을 걸고 ‘나는 당신을 절대로 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죽기까지 사랑할 것이다’하며 언약을 맺는 것이 바로 ‘다바크’인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라고 하신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다. 3. 다바크의 친근의 원리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다바크 דבק(‘.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신명기 4:4)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다바크 דבק(‘.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신명기 10:20)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다바크 דבק(‘.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신명기 30:19-20)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다바크 דבק(‘.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 (여호수아 22:5) 번역은 여러 가지로 되었지만, 성경은 한결 같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다바크’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온 마음과 몸으로 그를 섬기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한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다바크’하여야 한다는 말씀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치 부부가 서로 하나가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가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것처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며, 나도 하나님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그런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 또한, 룻이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따라 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으며, 따르기를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신다. 룻이 비록 이스라엘의 언약 밖에 있었던 이방인이었지만, 나오미를 목숨처럼 여기고 따라감으로써, 하나님의 큰 축복 속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한 때는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언약에 대한 외인이었지만, 룻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잡고 따라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12-13) 아담과 하와 또는 남편과 아내가 생명이 다하도록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관계를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우리는 룻기를 읽으면서 과거의 모든 인연과 정든 것들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나오미의 손을 꼭 붙들고 함께 떠나는 룻의 간절한 마음을 너무나 잘 상상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을 ‘다바크’ 하는 데는 길고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하나님은 높은 보좌 위에 앉아 저 밑에 있는 우리들 위에 군림하고 명령하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남편이나 아내처럼 언제나 친근하고 가깝고 조금도 떨어지기 싫은 그런 분이시다. 항상 곁에서 보살펴 주고 조언해 주며 잔잔한 미소 어린 시선으로 룻을 맞아주는 나오미 처럼 다정하고 가깝고 의지하고 싶은 분이시다. 그 분이 바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친밀하신(다바크) 우리들의 친구 분이시기 때문이다.(잠언 18:24)
===엘리멜렉과 그 가족의 모압 이주 보리 초실절(=유월절에서 8일 째,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 게네사렛 평야의 첫추수 보리의 첫단 드리는 날..신약의 부활절)무렵, 모압에서 돌아온후부터 밀의 초실절인 칠칠절(신약의 오순절 = 보리 추수 종료, 밀 추수 시작)무렵에 기업 무르기가 확정되었음..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유다)그 땅에 흉년이(단수 표현!!) 드니라(민간력 1월이자 양력10-11월, 성력 제7월인 티슈리 월에 이른 비가 오지 않고 있음을 의미)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사사기의 배경 연대는 사사 옷니엘의 등장(BC1367)로 부터 사울왕 등장(BC1025)의 342년간을 지칭하며, ::: 룻기의 시대 배경 ::: 룻기가 망라하고 있는 기간은 11년 정도, BC 1322년부터 1312년까지[2대 사사. 에훗의 등장 6년전--후5년 사이 즈음]이다...여리고성 함락(BC1406) 때 라합-살몬의 활약 -->살몬의 세 아들(엘리멜렉-무명씨-보아스) 중, 중년즈음의 보아스 활동시점..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 병약/제한/장애)과 기룐(= 비통/고통/실패/허비)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오르바 = 앞머리/머리털(복귀), 암사슴 **룻 = [끝까지 친한]친구/우정/일편단심, 붉은 꽃(장미)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오다 ......10년 흉년 기간 경과한 시점, 유다 땅에 주님의 회복 임함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일사각오, 죽으면 죽으리다, 내 모든 것 되신 주님 품에 안겨서)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주님 주시는 관대함과 분별의 지혜 역사 감동 가운데 발언)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 חסד _헤세드...선대 = kindness 친절, 인자, 자비, 자애(부드럽고 온화함으로 영접-대우-만족케 함) (2617, 헤세드) ...인애(Kindness, Mercy, Compassion)...어진 마음으로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한다.인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chesed)이다. 그러나 ‘헤세드’는 개역성경에서 ‘자비’(대상16:41), ‘인자’(창19:19) ,‘은혜’(창20:13) ‘긍휼’(마9:13) 등의 여러 단어로 번역되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또 인간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는데, 특별히 이 단어가 하나님에 관해 사용될 때는 그의 백성들에 대한 ‘언약에 기초한 불변적인 사랑, 곧 은총’(신7:12;미7:20 등)을 말한다.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바로 그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기다리시는 인애의 하나님이시다(호2:14-23).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며 그분은 인애가 크시기 때문에 죄 지은 인간들에 대하여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회개를 촉구하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신7:9;욜2:13;욘4:2;미7:18). 이 단어가 인간에게 사용될 때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친절과 자비,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순결과 헌신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호6:4; 12:6). 또한 인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사이에서 행해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며 의무이다(창47:29;룻3:10;잠31:26). .....시편 89편 1-2절에서 보듯이, 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가장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한글개역성경에서 주로 ‘인자’(창19:19), ‘은혜’(출 15:13), ‘선대’(룻 1:8), ‘자비’(대상 16:41), ‘긍휼’(스 1:5)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 ‘헤세드’ 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약 240회나 등장하며 창조주 여호와와 피조물된 인간과의 관계, 또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와 관련하여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1. 원어적 의미) ‘헤세드’는 ‘친절을 베풀다’, ‘자비를 베풀다’, ‘자비함을 나타내다’(시 18:25), 라는 의미를 가진 ‘하사드’에서 유래한 말로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에서는 주로 ‘측은히 여김’, ‘동정함’, ‘긍휼히 여김’ 등의 뜻을 지닌 ‘엘레오스’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영역 본에서는 다양한 번역어들이 등장하는데 KJV는 주로 ‘자비’(mercy) 로, RSV는 ‘불변의 사랑’(steadfast love) 으로 번역하기도 하며, 그 밖에 다른 영역본에서는 ‘은혜’(grace), '자애‘(kwing-kindness), '친절’(kindness), '호의‘(favor) 등으로도 번역했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를 종합해 보면 ‘헤세드’란 단어에는 세 가지 기본 개념, 즉 ‘친절’ (kindness), ‘견실함’( steadfast-ness), '사랑‘(love) 이 포함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하세드가 여호와와 인간, 또는 인간과 인간의 상호 관계에 있어서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2, 성경적 용례) 성경에 나타난 헤세드의 용례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창조주이신 여호와가 피조물인 인간에 대하여, 특히 택한 백성들에 대하여 베푸시는 자비와 은총을 가리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 특히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자가 아래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 친절 등을 가리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좀더 상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 인간에 대한 여호와의 은총] 헤세드가 창조주 여호와가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은총을 가리켜 사용 될 때 그것은 주로 죄로 인하여 전혀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에게 분에 넘치게 부어 주시는 사랑을 가리킨다. 특히 여호와가 언약 관계에 있는 선민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언약을 어겨 배반하고 불순종 하였기 때문에 실상 여호와 자신은 그들을 위하여 언약을 준수하셔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언약을 위반한 대가로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셔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그 언약을 이행하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언약적 사랑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의 사랑이 언약의 법에 얽매여 있다는 말은 아니다. 마치 부부관계가 법적으로 맺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 사랑은 초법적인 것처럼 여호와가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베푸신 사랑도 언약법에 얽매여 제한된 것이 아니라 초법적으로 무한히 베푸시는 사랑이다. 즉 절대자요 초월자이신 창조주 여호와가 본성적으로 당신의 피조물을 향하는 아버지 같은 끊임없는 사랑을 가리킨다. 이에 성경에서도 이러한 여호와의 헤세드, 곧 인자하심의 특징이 선하시고 (시 60:16), ‘기이하고’(시 17:7), ‘풍부하고’(느 9:17) ‘보배로운’ 것 (시 36:7), 나아가 성경보다 귀한 것(시 63:7) 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 인간 상호 관계에서 나타나는 친절] 헤세드는 또한 인간들이 사회 생활을 영위하면서 몇 개 되는 다양한 모든 관계와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이것은 가족 관계에 있어서 남편에 대한 부인의 사랑(창 21:23),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창 47:29),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순종(룻 1:8) 등을 가리킨다. 나아가 사회의 대인 관계에 있어서 타인과 밎은 약속의 신실한 이행(삿 1:24), 친구 사이의 우정(삼상 20:8), 왕에 대한 충성(대하 24:22), 피복종자에 대한 자비(왕상 20:31)등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다바크...연합<결합>-언약-친근의, 생명의 하나됨 이룸 삶)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쓰디씀, 고통, 슬픔[징벌, 연단])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나오미(노암 = 기쁨/즐거움[희락], 행복/유쾌함, 복됨[선함]...사랑-희락-화평: Q의 어떠함) ==>있으라 하신 그 자리 주께 묻지 않고,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떠나가면 "마라"가 됨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회개-자백-돌이킴)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성력 제1월, 아빕월, 양력3-4월, 민간력 7월..보리 초실절 무렵)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 룻기 배경 시점 ...보리 초실절(게네사렛 평야의 첫 보리 추수 첫단 드림의 날, 유월절 후 첫째 안식일 다음날 = 신약의 부활절)~칠칠절(오순절 :: 보리 추수 종료, 밀추수 시작일 = 영원 언약 확정과 효력 발생 적용/회복 안에 있음) --- Ruth 1..Amplified Bible ===Naomi Widowed 1 In the days when the judges governed [Israel],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of Canaan]. And a certain man of Bethlehem in Judah went to live temporarily in the [a]country of Moab with his wife and his two sons. 2 The man’s name was Elimelech and his wife’s name was Naomi and his two sons were named Mahlon and Chilion. They were Ephrathites from Bethlehem in Judah. They went to the country of Moab and stayed there. 3 Then Elimelech, Naomi’s husband, died, and she was left [a widow] with her two sons. 4 They took wives from the Moabite women; the name of the one was Orpah, and the name of the other was Ruth. They lived there about ten years; 5 and then both Mahlon and Chilion also died, so the woman [Naomi] was left without her two sons and her husband. 6 Then she set out with her daughters-in-law to return from the country of Moab, for she had heard in Moab how the Lord had taken care of His people [of Judah] in giving them food. 7 So she left the place where she was living, her two daughters-in-law with her, and they started on the way back to the land of Judah. 8 But Naomi said to her two daughters-in-law, “Go back, each of you return to your mother’s house. May the Lord show kindness to you as you have shown kindness to the dead and to me. 9 May the Lord grant that you find rest, each one in the home of her husband.” Then she kissed them [goodbye], and they wept aloud. 10 And they said to her, “No, we will go with you to your people [in Judah].” 11 But Naomi said, “Go back, my daughters, why should you go with me? Do I still have sons in my womb that may become your husbands? 12 Go back, my daughters, go, for I am too old to have a husband. If I said I have hope, and if I actually had a husband tonight and even gave birth to sons, 13 would you wait until they were grown? Would you go without marrying? No, my daughters; for it is much more [b]difficult for me than for you, because the Lord’s hand has gone against me.” ===Ruth’s Loyalty 14 Then they wept aloud again; and Orpah kissed her mother-in-law [goodbye], but Ruth clung to her. 15 Then Naomi said, “Look, your sister-in-law has gone back to her people and to her gods; turn back and follow your sister-in-law.” 16 But Ruth said, “Do not urge me to leave you or to turn back from following you; for where you go, I will go, and where you lodge, I will lodge. Your people wi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 17 Where you die, I will die, and there I will be buried. May the Lord do the same to me [as He has done to you], and more also, if anything but death separates me from you.” 18 When Naomi saw that Ruth was determined to go with her, she said nothing more. 19 So the two of them went on until they came to Bethlehem. And when they arrived in Bethlehem, the whole city was [c]stirred because of them, and the women asked, “Is this Naomi?” 20 She said to them, “Do not call me Naomi (sweetness); call me Mara (bitter), for the Almighty has caused me great grief and bitterness. 21 I left full [with a husband and two sons], but the Lord has brought me back empty. Why call me Naomi, since the Lord has testified against me and the Almighty has afflicted me?” 22 So Naomi returned from the country of Moab, and with her Ruth the Moabitess, her daughter-in-law. And they arrived in Bethlehem at the beginning of the barley harvest. ===Footnotes Ruth 1:1 Moab was located on a high plateau on the eastern shore of the Salt (Dead) Sea. The Moabites were related to the Israelites through their common ancestor, Terah. Their primary god was Chemosh, but the Moabites also worshiped many other pagan gods and sometimes engaged in human sacrifice. Ruth 1:13 Lit bitter. Ruth 1:19 Bethlehem was a small city where everyone probably knew everyone else, and Naomi’s husband may have been a prominent man in the city.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룻기 1:1-5===스데반 황.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우리는 룻기를 읽을 때 다윗 왕의 등장을 배경으로 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 말은 다윗의 씨로 오실 메시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배경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16-22) 그리고 룻기 1장 1절은 룻기가 사사 시대에서 다윗 왕조로 이어지게 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다리를 놓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룻기를 읽을 때 다윗 왕의 씨로 오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죄사함 및 구원,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성령의 역사까지도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인류 역사 전체와 우주의 모든 구원과 관련해서 룻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룻기를 읽을 때 도덕적인 차원에서 읽지 않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복 주시고 저렇게 하면 하나님이 때리신다고 읽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성경 전체가 알려주는 그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누차 말씀 드리지만, 모든 성경은 요한복음 20장 31절의 계시처럼,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는 성경 자체의 목적과 맞게 읽혀야 합니다. 즉, 우리는 성경 룻기를 읽으면서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또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누리는 결과를 얻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성경 전체에 대해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계시하였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5-17) 그러므로 우리는 룻기를 읽을 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함께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의 의도대로 룻기를 읽는 것입니다. 룻기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몇 가지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야곱의 자손들로 주로 국한되어 있었고, 그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았습니다. 이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던 주의 백성을 광야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7-38) 그렇다면 가나안 땅 전체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 지역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신약 시대로 말하면 실제 우리처럼 이렇게 모인 교회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구약 시대의 백성에게는 왕이 있기 전까지 모세가 세워 놓은 정치 체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각 지파 별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조장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세운 재판관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구약은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이 구약 공동체를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구원 문제는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른 것이지만, 그들의 삶과 관련해서는 모세의 언약 효력이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과 관련한 언약으로써 그들이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하면 매를 맞는 결과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요단 강 동편 모압 땅에서 자세히 정리하여 알려준 것이 있습니다. [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31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32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신 11:26-29, 31-32) 여기서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는 말씀은 가나안 땅을 반드시 차지하고 반드시 그 땅에 거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지금 시대로 말하면 복음적인 교회를 떠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구약에서는 가나안 땅이 지파별로 분배되었기 때문에 각 지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기에서 정해진 땅의 기업에서 떠나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민 36:7, 9).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조상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받을 것이니라”(민 33:54). 물론 구약의 모세 언약과 규례는 신약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구언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에 따른 규례와 약속을 철저하게 숙지하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구언약과 새언약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신 언약이라는 사실에서 핵심 정신과 교훈은 매우 유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모세 언약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룻기는 구약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는 모세의 언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룻기 1장 1절을 보니,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영적으로 암흑시대였습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을 짓는 용어가 사사기에 잘 나타나는데 그것은 “자기 소견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재미난 것은 성경에서 룻기 1장 1절은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인 21장 25절과 함께 읽으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룻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삿 21:25; 룻 1:1) 구약의 모세 언약에 따르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구약 교회의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부라고 알려줍니다. 즉,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이에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28: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15 (그러나)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신 6:4-5, 12-13; 28:9-1, 12, 14, 15, 23-24) [레 26:3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4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5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14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15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19 너희의 하늘을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20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레 26:3-5, 12, 14-15, 19-20), 물론 이 내용은 하나님과의 진실한 사랑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려준 것이지, 하나님을 잘 섬기면 각 개인이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사랑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풍성케 하여 주심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1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 신들을 섬기고 부패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은 공동체에 임하는 상황으로써 각 개인의 죄악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주의 백성이라도 대다수의 그릇된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흉년의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오미라는 여인과 결혼하였고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만일 이때에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임한 흉년은 하나님의 심판인줄 알고 더욱 근신하며 그들 가족만이라도 정신차리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 올바른 삶을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주의 말씀으로 그 시대의 상황을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했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읽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깊은 신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신약을 포함한 성경 전체를 다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엘리멜렉과 그 가정이 어떻게 했어야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흉년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흉년이 임한 것은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회개케 하고 오직 주를 믿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뜻대로 회개하고 주를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셔서 기적으로라도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은 롯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안전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의 말씀을 어긴 것이 되어 주께 기쁨이 되지 못했고,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모압 땅으로 이주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선포하신 내용에 대해 무지하였던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거스른 것입니다. 모압 족속은 롯이 소돔에서 구출된 후 그의 딸들이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한 후 그와 동침함으로 얻은 두 아들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암몬 족속입니다. 그 두 족속은 유난히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원수로 행하였습니다. 또한 모압과 암몬 족속은 노골적으로 그모스 및 몰록(몰렉) 신을 섬겼습니다. 이는 황소의 모습을 한 여신으로써 모압 족속은 그 우상 신에게 어린 자녀들을 불에 태워 인신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들은 그모스 신에게 살아 있는 아이들을 바치기 위해 그들로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가증하고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 쾌락에 빠졌을 때 그는 그모스와 몰록 신을 섬기게 되었는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왕상 11:6-9) 또한 모세는 이러한 모압 족속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대로 그들과 교제하지 않도록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당부하였습니다.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6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신 23:3-6) 그런데 엘리멜렉이 그러한 우상숭배로 가득한 모압 땅으로 이주하였으니, 이는 믿음을 저버리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하거나 무시한 채, 모압 땅으로 간 것은 주의 언약에 따라 비참과 난관과 좌절과 불운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이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엘리멜렉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이방 사람들의 경우는 그들이 모압으로 가든, 암몬으로 가든 어디서든 세상적으로 형통하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주의 약속과 품을 떠나서는 잘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과 교통해야만 무한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는 너희의 하나님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참조, 레 26:12-13).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눅 14:34-35). 한편, 1절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아이러니한 것은 유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은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즉, 무한한 떡이 넘쳐 흐르는 곳에서 한없는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 수 밖에 없는 곳이 유다 베들레헴인데, 그곳에 흉년이 들었다고 하니, 이는 하나님께서 단단히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여 연단하시겠다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은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시기 위해 우리 주 예수님으로 탄생하신 곳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그분은 주의 백성에게 아무리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떡이며 생명의 떡입니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2-35) 사람은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늘의 떡을 먹을 때 그 영혼이 한없이 만족하며 배부릅니다.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 6:48-51)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눅 4:3-4) 구약에서도 주께서 충성스런 자기 백성에게 떡을 주시는 것은 떡에 그 마음을 사로잡히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고 살라고 떡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그럼에도 엘리멜렉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기보다 먹을 것에 대한 염려가 너무나 큰 나머지 온 가족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제 2절을 보면, 엘리멜렉의 가족 소개가 나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뜻이 “나의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고 하니, 아마도 그의 아버지가 믿음이 좋은 것이 분명합니다. 저도 가끔 어떤 청년들을 만나서 이름을 알게 되면 그의 부모가 신앙이 돈독한 신자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멋진 이름을 가진 그 청년이 반드시 믿음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 청년이 귀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이름을 지어준 것은 확실합니다. 가령, 아들 이름을 ‘에녹’이라고 지었다면 그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준 것일까요? 그렇지요. ‘너는 이 더럽고 악한 세대에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믿음의 아들이 되거라’하며 그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저 역시 세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믿음 안에서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대로 되라 하며 이름을 지었는데, 신형, 진형, 은형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향기가 되고, 진리의 향기가 되고, 은혜의 향기가 되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엘리멜렉의 아버지는 믿음이 좋은 분이 확실합니다. 또한 나오미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베들레헴의 온 화제가 된 것을 고려해보면 엘리멜렉 가문은 베들레헴 성내에서 유력한 가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아무튼 엘리멜렉의 부모는 엘리멜렉이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믿음 좋은 아가씨를 허락했을 것입니다. 엘리멜렉이 먼저 맘에 드는 아가씨가 있다고 해서 부모가 그 처녀의 성품과 믿음을 알고 결혼을 허락했을 수도 있고, 또는 부모님들이 눈 여겨서 보아왔던 어떤 아가씨를 아들 엘리멜렉과 연결시켜 성사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아가씨는 ‘나오미’라는 처녀였습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감미로운 자’, ‘은혜로운 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나오미는 대단히 귀엽고 맑고 아름다운 여자였음이 분명합니다. 이는 나오미라는 이름을 갖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비록 믿음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같은 믿음을 가진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고향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이고, 그들은 그곳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난 아이들로서 같은 믿음을 갖고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서로의 부모들의 승락 하에 결혼한 것이라고 보면 정확한 그림일 것입니다. 우리 유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는 다른 곳에서 결혼 대상을 찾지 말고 마음을 활짝 열고 교회 내에서 찾아보기 바랍니다. 온 사방에 흩어져 있던 주의 백성이 이렇게 한 교회로 모이는 것만 해도 얼마나 엄청난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는 것입니까? 이 사실을 안다면 아마 엘리멜렉과 나오미처럼 가까운 곳에서 만나 결혼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녀가 있는 부모님들은 자세히 눈여겨보면서 누가 내 사위감인지, 며느리 감인지 미리 미리 눈도장을 찍어 두기 바랍니다. 그래야 엘리멜렉과 나오미와 같은 아름다운 부부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둘이 베들레헴 에브랏에서 데이트할 때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것도 떡집에서 만나 실컷 떡을 먹을 때는 얼마나 즐거웠겠습니까? 둘은 서로 사랑했을 것이고 양가에서 마련해 준 지참금으로 든든한 가정을 세워갔을 것입니다. 그 둘은 “주 안에서” 결혼한 소위 ‘기독교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결혼할 때 얼마나 많은 성도들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였겠습니까? 따라서 이 가정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영원할 수밖에 없는 복된 가정이었습니다. 이곳에 앉아 계신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은 결단코 이방 불신자들과 결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결혼은 천국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이 땅에서도 결코 영적으로 하나되는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보람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와 같은 이 땅에 속한 썩어질 것 때문에 이방 불신자들과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노골적인 불순종으로써 결코 하나님 나라의 참된 행복과 만족과 복락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절대로 주께서 그러한 결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의도적인 불순종일 경우는 그 결정을 내린 사람이 쓰라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불신자들과 결혼하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결혼하는 그 사람이 가짜 신자인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참 신자인데 불신자와 결혼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그가 참 신자이기 때문에 그의 불순종에 따른 쓰디쓴 비참과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배우자를 거듭나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주의 말씀에 불순종한 대가를 반드시 치려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결혼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 슬하에 두 아들을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들과 딸을 골고루 주지 않으셨을까요? 그 당시는 피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시는 대로 낳을 텐데, 왜 세 자녀나 네 자녀가 아니라 두 아들만 주셨을까요? 우리는 그 답변을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자녀를 주시는 문제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멜렉과 나오미에게 두 아들을 주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나는 아들을 기다리는데 딸을 임신하였다고 해서 낙태시킨다면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대항하는 무서운 불순종의 죄가 되고, 나아가 살인죄를 짓는 것입니다. 심지어 전혀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가장 어린 태아를 죽이는 것으로서 그 만행은 극에 달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내 맘대로 낙태하지 않기 바랍니다. 부부 간에 낙태를 공모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것은 무서운 죄이며 부부 모두 무서운 공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다른 믿음의 부부들처럼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부지런히 믿음 생활을 하였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선물로 아들을 주시자 그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첫아들을 낳아보니 건강하지가 않고 매우 연약하였습니다. 첫 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너무 안타깝고 슬펐지만 첫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아이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은 사실 그대로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말론’이라고 하였습니다. ‘말론’이라는 이름의 뜻은 아픈 아이, 병든 아이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성경에 분명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신체에 장애가 있는 아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온 힘을 다해 그 아들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둘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는 날, 또 아들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지만 그 아이 역시 신체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이름을 ‘기룐’이라고 했는데 그 이름의 뜻은 ‘실패’, ‘비통’,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즉, 둘째를 낳고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비통과 슬픔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매우 병약하고 어쩌면 신체 불구자인 두 아들을 키우며 살게 됩니다. 이때 두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겠습니까? 얼마나 측은했겠습니까? 혹시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이나 받을까 하여 얼마나 초조해하며 근심했겠습니까?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다른 부모들과는 달리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가지고 두 아들을 돌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두 아들은 장성하여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흉년이 찾아온 것입니다. 아마 엘리멜렉 가족은 두 아들이 불구이고 병약한지라 흉년이라는 상황이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 때의 언약을 망각하고 또한 모세의 율법과 언약을 망각한 가운데 하나님 앞에 수많은 죄악을 범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1절에서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가 함축하는 의미입니다.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15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삿 2:10-15) 아무튼 비록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직접적인 죄 때문은 아닐 수 있겠지만, 베들레헴 땅을 비롯한 가나안 땅 전체에 흉년이 듦으로써 참으로 큰 비참과 궁핍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들레헴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 흉년은 엘리멜렉 가족에게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병약한 두 아들로 인하여 흉년이 더욱 버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재산이 아직 꽤 있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아브라함이 기근을 당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간 것처럼, 모압 땅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리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물론 이 결정은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믿음과 지식이 온전하지 못함으로 인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하겠습니까? 흉년이 발생하던 그 해에 그들의 믿음과 지식의 분량은 그 수준 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의 택한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단지 흉년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하여 그들은 모압 땅으로 가게 됩니다....이에 대해 우리는 엘리멜렉을 탓할 수 없습니다. 엘리멜렉을 탓한다면 아브라함을 탓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엘리멜렉을 볼 때 단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모압 땅으로 이사 가기 전 여러 날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기도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중고등부 학생 정도가 되는 말론과 기룐에게도 이사에 대한 계획을 알리며 그들의 의견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흉년이 하도 심하니 베들레헴에 흉년이 사라질 때까지는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지고 곡식이 있는 모압으로 가자고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저 먼 애굽으로 가지 않고 적어도 가까운 모압으로 가면 아무 때라도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남는 것과 모압에 건너가 사는 것을 비교해 보면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치밀하게 점검해 본 후 결국 그 가정에 맞는 최고의 결정은 모압으로 이사가는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자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사하는 이유가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한 것임을 아십니까? 직장이 없이 인천에 살던 사람이 부산에 분명한 일터와 삶이 보장되면 당장 이사를 갑니다. 이 사실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확실합니다. 하물며 아브라함이겠습니까? 하물며 엘리멜렉이라고 예외겠습니까? 인생은 참으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떡’에 의해 움직입니다. 사실 떡이 삶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한 떡이시며 영생의 떡이요 영원한 떡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이 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육신의 떡을 위해 살지 않고 영원한 떡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아무튼 엘리멜렉과 나오미와 큰 아들 말론과 작은 아들 기룐과 함께 짐을 싸서 이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압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 아는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 숨겨 놓은 보석이나 또는 돈으로 사놓은 전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남은 재산을 들고 그들은 무작정 모압 땅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땅이었습니다. 모압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단히 싫어하고 혐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다 속담에 “모압으로 가느니 유다 땅에서 굶어죽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모압에 도착한 엘리멜렉 가족이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그곳에서 작은 전토라도 샀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밭을 갈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압 사람들로부터 오는 배척과 조롱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은 여전히 흉년인지라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볼 때는 굶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따라서 온갖 수욕과 비참과 궁핍 가운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모압 땅에서 버팁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미국에 초기에 이민 왔던 분들의 경험담을 종종 듣곤 했습니다. 얼마나 고생들을 많이 했는지, 눈물 없이는 그 경험담을 나눌 수 없었습니다. 남미, 특히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로 이민 갔던 분들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정말 그 고생이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제가 중국에 갔을 때도 발해 및 연변 사람들의 체험담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 역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이 마친 후 전 세계의 여러 이민자들의 삶은 참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비참했습니다. 하물며 흉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압으로 들어간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병약한 말론과 기룐의 삶은 어떠했겠습니까? 말이 통하지도 않는 곳에 가서, 어떻게 산다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잘 압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은 주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서는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지식과 신앙이 부족해서 모압으로 내려가는 그릇된 결정을 내렸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네 가족이 똘똘 뭉쳐 서로 기도해 주며 계속 말씀을 기억하며, 언젠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 때문에 그나마 그 어려운 상황에서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머나먼 외딴 외로운 땅에서 수많은 모압 족속들이라는 원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온전한 지식을 갖추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들이 아는 범주 내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갖고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어쩌다 함께 있게 되면 서로 하나님을 말하며 위로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반드시 조만간 베들레헴에 흉년을 멈추시고 복을 베푸실게다. 그때 우리 식구 전부 건강한 모습으로 베들레헴에 돌아가서 우리 고향 사람들과 함께 다시 살자. 그때 우리는 주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자, 하나님을 믿고 힘차게 살자. 자, 다 같이 기도하자.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곳 외로운 모압 땅에 왔지만, 지금까지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악한 무리들 가운데 그나마 착한 사람들이 있어서 죽임 당하지 않고, 또한 굶어 죽지 않고 오늘 하루도 잘 지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잘 견디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날까지 믿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들 네 가족은 이러한 기도를 드리며 가정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울고 웃으며 철저하게 하나된 가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아 – 그러나 이 왠 일입니까?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어느날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엘리멜렉이 죽던 그 날은 이 가정에 영원한 잊을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이 죽는다는 것은 경제 활동이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나마 두 아들이 많이 커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오미의 가슴에는 엘리멜렉의 죽음으로 인해 큰 구멍이 생겨났습니다. 그 구멍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으로서 아마도 하나님을 붙들지 못했더라면 나오미는 정신 병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멜렉이 죽던 날, 나오미는 마음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병약한 두 아들에게 자신의 연약함을 보이면 그들 역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나오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섭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지만, 그나마 붙들어야 하는 분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기도하며 일어섭니다. 그리고 두 아들에게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얘들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선을 행하실 것이다. 내게는 자랑스런 너희 두 아들이 있지 않니. 이 엄마는 아직 끄떡없다. 너희들만 있으면 나는 이 곳에서 견딜 수 있단다.” 엄마의 이를 악문 인내 때문에 두 아들 역시 힘을 얻고 다시 달려갑니다. 이제는 한 사람이 빠진 세 식구가 그 힘든 거친 땅 모압에서 살아갑니다. 얼마나 두 아들 몰래 나오미는 눈물을 훔쳤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며 기도했겠습니까? 병약한 두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련함은 그 어미 심정에 얼마나 무한하게 컸겠습니까? 그러나 나오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살할 수도 없고, 두 아들에게 약한 엄마의 모습도 보일 수 없어서 또 다시 하나님만 붙듭니다. “오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 가련한 두 아들을 보살펴 주시고 복을 베푸시고 이 두 가련한 두 아들 때문에 제가 쓰러지지 않게 하소서.” 그렇게 해서 일어난 세 식구! 다시 힘을 모아 서로 위로하며 함께 살아갑니다. 이처럼 믿음은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다시 힘을 내게 합니다. 계속 달려가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들이 힘찬 발걸음으로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참조, 룻4:10).. “엄마!” “왜? 나의 자랑스런 큰 아들아!” “엄마, 나 일하는 곳에서 어떤 처녀를 보았는데 나를 계속 쳐다보며 나를 너무나 잘 해주고 잘 도와줘.” “그래, 그 처녀 이름을 아니” “응, 이름이 룻이라고 해” “룻? 이름 참 이쁘구나.” “그런데 어머니, 그 여자가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말해 줄 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들어. 그래서 더 맘에 들게 되었어.” 하지만 아마도 나오미가 모세의 율법을 철저하게 아는 신앙 깊은 신자였다면 “자랑스런 큰 아들, 말론아! 좋은 처녀를 만났구나. 그래 이해는 간다. 하지만 너는 나중에 아빠와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