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21장 [484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286.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487.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삼손 생애 BC1095-1055 사무엘 출생BC1105-1010 엘리 BC1120-1080
....[주 안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로 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신실하고 강하고 필사적이며 절대적으로 주님을 위하는) 제사장직을 온전히 수행하며, 사사로서는 말씀하시는 참되고 신실하신 분 주님의 친절-사랑의 마음을 따라 바르게 준엄하게 생명 공급 위해 판결하고, 하나님을 위해 말씀이신 주님이 입에 넣어주심따라 신언하는 선지자로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을 가져오는 영적 사무엘들이라 하심 견지할 때, 주님의 왕권을 산출하게 되며, 또한 우리가 누린 바 그리스도가 교회요 왕국이 되는 그런 정도까지 그리스도를 누리는 영적 다윗들로 서야 함.. 마16:18-19에 의하면 교회와 왕국은 동일하며 오늘날 왕국은 눈에 보이는 교회이며 교회 안에 내재적 본질-그리스도의 몸-이 있다...눈으로 볼 수 있는 주님의 교회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왕국과 통치가 있다. 이 보이는 교회 안에 또한 교회의 내용과 실제인 내재적 본질이 있음이 넘쳐나게 된다. 사람의 몸은 눈에 보이지만 그 몸 안의 생명은 보이지 않는 원칙은 교회와 몸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결국 그리스도의 몸은 가시적 교회의 내재적 생명인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증거하는 이미 도래한, 그러나 아직도 아니"로서의 천국...믿는 이마다 이미 누리는 바 천국 제공하시는 왕-구주 그리스도" 개념 = 모든 차원-영역-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짜 맞추어 조성하시고 친히 작동 근원 에너지를 불어 넣으시고 영원하신 뜻따라 통치하시는 왕-구주 예수 그리스도, 내주하여 오사 함께 하나되어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주님이 유일무이한 왕-머리이신 천국 = 하나님 나라 = 하늘 왕국 ....[[...왕이신 나의 하나님...다음세대로 하나님 경외함을 참되게 깨달아 알고 그로 인해 살도록 신앙의 전수가 그토록 중요하다!!...여호와가 영원 무궁히 유일무이한 참 왕이시나...<전심전력 다해 그분 알고 하나됨의 교통 안에 살아감으로 부종하며 따름으로써> 영존하시는 영원한 왕, 생생하게 살아계시며 친히 사랑으로 함께 하시며 이끌어 돌보며 먹이시며 교통하시는 임마누엘, 경외하올 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대주재 유일무이한 영원하신 참 왕으로 높여 인정하지 않음 인해]]....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갈망...오직 주님이 얻기를 원하시는 참 사람....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처인 유일무이한 그리스도 교회, 그분 영광의 반사-반영이자 영광을 살아내며 공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분의 단체적 아내-신부, 신격이나 위격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본성에서 거듭남으로써 진정한 하나님-사람 = 그리스도-사람 = 곧, 그리스도의 사람....이를 위하여 <주께 나아가 여쭘-판단-결정 구함 없이 제멋대로, 제소견에 옳아보이는대로 주께서 먼저 행하심따라 그분 지시그대로 함께 행하지 않던 = 주님 발자취따라 함께 걸으며 살아감 모르는!!> 옛사람은 날마다 무시로 죽고 오직 거듭난 그의 영 안에 내주하여 오셔서 사시는 부활 생명 능력 말씀의 영이신바 날마다 매순간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 성령으로 사는, 그리스도로만 충만케 됨의 신진대사적 변화 이루며, 신격이나 위격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본성에서 머리요 남편이신 그리스도로 살며 그분을 따라 살아내며 말씀하시는 그분으로 말하며 그분과 하나로서 오직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그대로 사는 바로 그 사람 얻음에 있음을 명심할지니!!.....(사탄은 항상 위조-모조품으로 미혹-현혹할 바).....유한한 세상과 타락한 사람이 보기에 상대적인 승패, 선악, 그분을 위함으로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림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결코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삶을 통해, 그분 안에 하나 됨(발휘되는 생생한 산믿음으로 거함-교통-사랑-순종-누림) 이루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으로써 그분의 부탁하신 사명을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시도록 내주하시는 그분께 자신을 비워 내어드리는자로서 살아갈 때, 주님은 그분의 성령으로 기름 부으신바 바로 그분이 이 땅을 걸으시며 담당하신 선지자-제사장-왕적 직분에 합당한 섬김이로 살아감 친히 이루실 것...!!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모양을 따라 사람-우리를 창조하시고서, 우리가 생명나무가 표징하는 그분의 생명을 취하기 원하셨다. 그러기에 분명히 깨닫고 전심전력으로 추구할 바가 무엇인지를, 그 목표를 바라보아야 하리라...상대적 의미에서의 거룩함이나 영성, 즉 비교 우월-탁월-빼어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절대적 어떠하심 그분께 꼭 그대로 꼭 들어맞는 하나님-사람, 생명나무가 표상하는 그분의 절대적 참생명을 취한, JC이름의 부활생명 성령으로 거듭난 참 믿는이의 영 안에 오셔서 내주하시며 공급하시는 바 그분의 생명과 본성으로 영원완전히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으로 변화되어가며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이르도록 하고 계심임을 진정 깨닫고 자신을 열어드림이 합당하다..
===베냐민 자손의 아내 ....황금율<유일무이한 참 생명 차원에서부터 창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절대 생명 진리>을 말씀하시는 주님 마음의 말씀으로 비춰보며 따르라!! ....[마7: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최상, 지고지선의 주님이 친히 대우하심처럼 그렇게 하나하나의 뭇 영혼마다 대우하는 것이 합당한 것 아닐까...그렇게 존귀히 여기며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 마지막날이니 주께서 나를 더할 나위없는 희생적 사랑으로 몸바쳐 대접하심처럼 대접하도록 하자!!] ....주님의 마음을 따라 생명 가치를 헤아려보도록 하라...자기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대접받게 되리니...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지고 하는 (제딴에는 나름대로 심각하게 정말 진지하게 사죄드림으로 결심한바 말씀드림이었지만, 아버지는...바) 나름대로는 심각한 말씀드림이었으나 뜻없는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시며)대꾸도 하지 않고 계셨음을 기억하라...<제대로 알지 못하고 미숙하여 섣부르게 뱉어냄 인한> (헛) 맹세 지킨다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아니면 참생명 주님 얻음으로 말미암는, 한 영혼 생명 구원이<목숨..살아있어야 구원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가치인가, 곰곰이 주 앞에서 생각해 보라 ....내전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는 멸절에 가까운 살육을 당하고, 여기에 더하여,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에 대한) 제2의 학살, 거기에 더하여 납치 강간을 조장하고 있었다!! .....베냐민이 비류들을 순순히 내어주지 않음 인해 결국 야기된 내전, 그 결과 가장 비참하고도 심각한 피해를 감당하게 되는 자는 무력한 여성들과 자녀들이었음...이것을 참되게!!, 주 안에서!! 자각하고 깨닫는 믿는이마다 "경도된 페미니즘"조차도 극복하게 되리니!!
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오직 주 앞에서!!, 마땅히 할 말 외에는 침묵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며 결코 [함부로, 섣부르게] 맹세하지 말라!!..더 나아가, ."돌이켜 볼 때, 이미 한 그 맹세가 주님 마음에 부합하지 않고 아주 주님 마음과 어긋난 것임이 분명하다 싶으면, 주 임재 앞에서 돌이켜 철저히 회개하고 그대 자신은 더 이상 나아가지 말고 그 자리서 돌이켜 멈추고 생명 근원이신 분께로 돌아와 그 안에 하나됨을 행하라,..나머지 일들은 온전히 주께 맡기라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이것이 과연, 하나님 탓인가??..실은, 주님 떠났고 마귀의 꾐따라 오도되고 기만-속임당함으로써 하나님을 적대-오해하며 돌아선 바 그대 마음의 죄악 탓 아닌가!!)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Q 탓으로 돌리다가 문득 깨닫게 된 바 그들 자신의 과실임을 인정하기에 진정 이르렀던 것인가??.하나님께가 아니라 면피용/사람에게 그럴듯 하게 보이려고...우상숭배적 행위에 다름 없는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에 지나지 않는다) 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진정한 회개 없이는....그 어떤 것도 그 열매란... 인본주의적이기보다 오히려 마귀적이요 주님을 만홀히 여김이다 5.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까닭은...<옛사람을 그 모든 것과 함께 뒤에 버려두고 =쓰레기처럼 여기고!! 완전히 돌이켜 주님 바라기-주와 하나됨의 교통에로 나아감 아니라> 여전히!! 잔머리 굴리며!! 자행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는 진정한 의미에서는 참 생명이신 주님 아니라, 거짓 그자체인 사탄 추종-경배함에 다름없다....애초에 처음 단추를 잘못끼우게 되면.. 어긋나버린 결과를 돌이킬 방법이 전혀 없게 된다...하나님 이름으로 또!! 비참한, 왜곡된 참상을 초래하고 있다.. )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7.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정답은 참 회개 통해 나아가 주께 (그 맹세를 어찌 보시는지에 대해 여쭘!..맹세마다 주님 곧, 참생명과 본성의 어떠하심에 비추어 다시 점검해 보고 (세인의 눈 + 사탄의 조롱과 비아냥-비웃음을 감수하게 되더라도 무릅쓰고, 다윗처럼!!) 마음 찢고 가슴 치며 참 회개함으로써 주께 아뢰고, 그분의 선하심과 주권적 결정에 맡겨드림으로써, 더 깊은 죄에 빠지게 하는 얕은 꾀-미봉책의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해야 하리라!!> ------- 8.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야베스 길르앗"은 내 자녀요 네 형제 살붙이가 아니더냐?!..한탄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짖음이 들리는가!!)...가나안의 참된 영적 의미에 부합한가??.."가나안의 진정한 영적 의미가" 하나님 그분의 눈과 마음이 영원이전부터 영세이후까지 머무르는, 그분으로 살며 그분과 하나인 백성들로 이루는 그분의 거처가 서 있는 땅일진대... 그 어떤 성취보다도 그분의 의도하고 갈망하신 백성됨의 거룩한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합당하지 않은 자는 토하여 내쳐버리시리라!! -------- 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잘못된 맹세를 발했음을!!)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믿음-소망-사랑이라고는 전혀없이 사탄체계인 세상 바라보며 자조섞인 한탄하는> 네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라"고..확정하시기전에...그대를 어찌 보시며 대우하시는지 참되게 깨닫고 주께 말씀드려 회개하고 돌이키라).....곰곰이 생각해보라, 정신 바짝 차리라..제정신으로 돌아가라!! 진정 하나님이 그렇게 의도하셨던 일인가??..스스로 왕 되기를 선택하여 자행자지함으로 인한 것 아닌가? 이는 !!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죽어마땅한 중차대한 범죄이다!! 16. ○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 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KJV]제21장
1. Now the men of Israel had sworn in Mizpeh, saying, There shall not any of us give his daughter unto Benjamin to wife. 2. And the people came to the house of God, and abode there till even before God, and lifted up their voices, and wept sore; 3. And said, O LORD God of Israel, why is this come to pass in Israel, that there should be to day one tribe lacking in Israel? 4. And it came to pass on the morrow, that the people rose early, and built there an altar,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5. And the children of Israel said, Who is there among all the tribes of Israel that came not up with the congregation unto the LORD? For they had made a great oath concerning him that came not up to the LORD to Mizpeh, saying, He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6. And the children of Israel repented them for Benjamin their brother, and said, There is one tribe cut off from Israel this day. 7. How shall we do for wives for them that remain, seeing we have sworn by the LORD that we will not give them of our daughters to wives? 8. And they said, What one is there of the tribes of Israel that came not up to Mizpeh to the LORD? And, behold, there came none to the camp from Jabeshgilead to the assembly. 9. For the people were numbered, and, behold, there were none of the inhabitants of Jabeshgilead there. 10. And the congregation sent thither twelve thousand men of the valiantest, and commanded them, saying, Go and smite the inhabitants of Jabeshgilead with the edge of the sword, with the women and the children. 11. And this is the thing that ye shall do, Ye shall utterly destroy every male, and every woman that hath lain by man. 12. And they found among the inhabitants of Jabeshgilead four hundred young virgins, that had known no man by lying with any male: and they brought them unto the camp to Shiloh, which is in the land of Canaan. 13. And the whole congregation sent some to speak to the children of Benjamin that were in the rock Rimmon, and to call peaceably unto them. 14. And Benjamin came again at that time; and they gave them wives which they had saved alive of the women of Jabeshgilead: and yet so they sufficed them not. 15. And the people repented them for Benjamin, because that the LORD had made a breach in the tribes of Israel. 16. Then the elders of the congregation said, How shall we do for wives for them that remain, seeing the women are destroyed out of Benjamin? 17. And they said, There must be an inheritance for them that be escaped of Benjamin, that a tribe be not destroyed out of Israel. 18. Howbeit we may not give them wives of our daughters: for the children of Israel have sworn, saying, Cursed be he that giveth a wife to Benjamin. 19. Then they said, Behold, there is a feast of the LORD in Shiloh yearly in a place which is on the north side of Bethel, on the east side of the highway that goeth up from Bethel to Shechem, and on the south of Lebonah. 20. Therefore they commanded the children of Benjamin, saying, Go and lie in wait in the vineyards; 21. And see, and, behold, if the daughters of Shiloh come out to dance in dances, then come ye out of the vineyards, and catch you every man his wife of the daughters of Shiloh, and go to the land of Benjamin. 22. And it shall be, when their fathers or their brethren come unto us to complain, that we will say unto them, Be favorable unto them for our sakes: because we reserved not to each man his wife in the war: for ye did not give unto them at this time, that ye should be guilty. 23. And the children of Benjamin did so, and took them wives, according to their number, of them that danced, whom they caught: and they went and returned unto their inheritance, and repaired the cities, and dwelt in them. 24. And the children of Israel departed thence at that time, every man to his tribe and to his family, and they went out from thence every man to his inheritance. 25. In those days there was no king in Israel: every man did that which was right in his own eyes. ===== 사사기 21장 (개요) 앞 장에서는 베냐민 지파의 멸망에 대해 읽었다. 이제 그 전쟁 이후에 일어난 일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의 멸망을 슬퍼했다(1-4, 6, 15). 2. 살아남은 베냐민 지파 6백 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내를 맞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들의 아내가 된 여자들은 (1) 총회에 대표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파멸당한 길르앗 야베스의 처녀들이었다(5, 7-14). (2) 실로의 딸들이었다(16-25). 이로써 우울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 베냐민 지파를 위한 애통(삿 21:1-15)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고찰해 볼 수 있다. Ⅰ.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 사람들의 사악함에 대해 지극한 분노를 표했으며, 베냐민 지파가 자기들의 죄악을 옹호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 일을 기해, 두 가지 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열의를 나타냈다. 1. 모든 지파의 대표들이 총회에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케룸(Cherum)이라고 하는 저주의 말로 맹세했다. 즉 그들은 이 일을 기해 총회에 대표를 보내지 않는 모든 성읍을 파괴하고, 미스바에 오기를 거절하는 자를 처형하기로(5절) 맹세했다. 그들은 거기에 모이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저질러진 악에 대해 아무 분노도 갖고 있지 않는 자이며, 의로운 처사로 그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하는 데 아무 관심도 없을 뿐더러 회합을 소집한 공동 의회의 권위를 무시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먼저 주께 회개함으로써 나아가, 주님께 이 사건에 대해 여쭙고 이를 어찌 보시는지, 어찌 처리하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음을 반드시 유감스럽게 여겨야 하리라..그렇지 않다면, 삿21장은 오늘날에조차 아무런 의미도 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믿는 그대의 모든 언행심사가 주와 하나됨 안에서 주 앙망함 안에서 보혈로 씻겨지고 말씀 진리 생명과 성령의 불 방어벽으로 지켜지게 할 필요가 있는바, 결코 제멋대로 함부로 저주하거나 맹세하지 말라고 주 예수께서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하리라.. 2. 그들이 모여 기브아 사람의 악행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 베냐민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한 “딸을 아내로 주지” 않기로 엄숙히 맹세했다(1절). = 실은!!, 이 맹세는 어찌 보면!! [대적 사탄의] 함정에 빠져든 것이다 이것은 그 싸움에서 결정된 조항으로 베냐민 지파를 근절시키려는 의도에서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악을 저지르고 그 악을 옹호해 준 자들을 저주받은 가나안의 백성과 다름없이 아니 저주 받아 마땅한!! 가나안족속으로 취급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성읍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자손들이 그들과 결혼하는 것을 금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절반의 진실만을 말함으로써 이스라엘 11지파 백성들을 선동하고 호도했던 바, 그 간악한 <마귀적> 선동에 휘말려 듦으로써!!)) 그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이 이렇게 야비하고 악한 자들과 결합하는 것처럼 욕된 일은 없으며 그것은 모든 영예와 덕을 잃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아무리 첩실 아내가... 창기 짓 함으로써 <겉 다르고 속다른> 그의 명예를 실추시켰고..그의 마음에 역겨움과 미움이 깊이 배어들었다 해도!!...아내의 그 문제는 그 자신의 책임이 동시에 있는 것이기에, (게다가 마땅히 보호해 주었어야 할 남편 된 자기 자신이 극단적 두려움과 이기심따라 강제로 그녀를 제압하여 비류들에게 넘겨주지 않았던가...자기의 사랑 없음과 어떠함을 주 앞에 나아가 통회자복하고 그녀의 시체를 잘 수습하고 고이 묻어주었어야 했는데...그의 냉담-잔혹-무정함과 격정적 분노를 그대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전염시켰고...지파간의 내전 상황에 이르도록 하는 [사탄의 역사하는 틈을 내주었다!!] 복수심으로 그대로 표출되고 있었던바) 레위인이 그의 아내의 시체를 조각내어 여러 지파에 보낸 것이 그들의 마음을 자극해 분노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말로 그 사실을 아무리 잘 논증하더라도 그들이 실지로 그 비참한 광경을 보는 것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Ⅱ. 싸움이 끝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의 멸망에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전에는 베냐민 사람들의 죄악이 그들의 강한 분노를 일으켰지만, 이제는 베냐민의 멸망에 대한 슬픔이 그들의 마음속에 짙게 드리워졌다. “그들은 그 형제를 위하여 뉘우쳤다”(6, 15절). 그들은 죄에 대해 그들이 분노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요, 거룩한 슬픔의 열매로서 “후회할 것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였기 때문이다(고후 7:10, 11). 그러므로 그들이 후회한 것은 정당하고 필요했던 일을 행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분수에 지나치도록!!] 행함으로써 야기되는 슬픈 결과 때문이었다. 그들이 죽여야 할 자들은 무기를 지닌 사람들이었을 뿐 농부나 양치기, 부녀와 아이들 같은 자들은 사실 죽일 필요가 없었다. 다음을 명심하자. (1) 잘한 일 가운데에도 지나친 것이 있을는지 모른다. 비상하게(초자연적인) 행한 방법이, 이율배반적인(비자연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열심이 지나치지 않도록 잘 통제해야 한다. 인간 말살은 결코 훌륭한 신앙이 아니다. (2) 의를 위해 남을 심판하는 경우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동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도 <회개한>죄인을 기쁜 마음으로 벌하지 않으셨거늘, 인간이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3) 강렬한 격정은 후회를 초래한다. 우리가 흥분한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한 것을 냉정한 마음으로 다시 곰곰이 살펴보았을 때, 거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같은 민족 내에서 내란이 일어났을 경우는 승리를 거두었다 해서 결코 기뻐할 일이 못 된다. 여기서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기는” 것같이, 한 편이 승리하게 되면 반드시 다른 편은 패배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남을 짓밟는 것이 어찌 유익한 일이겠는가? 2. 그들은 자기들의 관심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1)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파괴되었음을 슬퍼했다. 그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집으로 와 그들의 모든 걱정, 슬픔을 아뢰었고 모르는 것들을 상의했다. 그래서 기쁨과 찬미의 소리뿐만 아니라 탄식과 슬픔의 소리도 들려 드렸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대성통곡하였다”(2절). 그것은 그들이 4만 명이라는 사람들을 잃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열한 지파에서 희생된 숫자로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한 지파가 완전히 전멸될 위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지파가 이즈러지게 되었도다”(3절). 하나님은 열두 지파를 모두 돌보셨다. 모든 지파마다 정해 준 기업을 갖고 있었으며, 거룩한 제사장의 흉패에도 열두 지파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모든 지파마다 야곱과 모세의 축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런 싸움으로 어느 한 지파가 멸하게 되었을 뻔 했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였다. 특히 베냐민은 야곱의 가장 어린 아들로서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며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그를 잘 보살펴주었다. 그러나 그런 베냐민을 조상으로 갖고 있는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하면, 이제 야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른손의 아들인 베냐민이 이제 슬픔의 아들인 베노니가 되었으나, 이런 곤경 속에서도 그들은 제단을 쌓았다. 이것은 누구와 경쟁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제단에 제물을 바쳐 그들의 승리를 감사하고 그 일을 행한 그들의 잘못을 속죄하며 이제 그들이 당한 곤경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슬픔을 당할 때에도 언제나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2) 그들은 림몬 바위 밑에 숨어 있는 자들에게 싸움은 끝나고 평화가 널리 공포되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으며, 그들을 적으로 대하지 않고 형제로 대할 것을 알려 주었다(13절). 친구와 다투었던 자들은 이처럼 우정을 복귀시켜야 한다. 죄지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회개했을 때는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후 2:7). (3) 그들은 그 지파가 파괴된 것을 복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고자 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 자신만 생각했다면 베냐민 사람들이 많이 죽어 그들의 땅을 “상속할 자가 없어서” 그들이 그 땅을 쉽게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멸망 위에 그들의 부귀를 세우려는 자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베냐민 지파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베냐민 지파의 모든 여자들과 아이들은 살해되었다. 그리고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은 결코 자기들의 딸들을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로 주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정말로 아쉬운 점은...주님 마음을 진정 고려하였다면..말씀대로 순종하려 했다면..주님 마음에 맞지 않는 맹세는 주 앞에서 그 잘못됨을 분명히 자인하고 취소했어야만 했었다!!)) 또한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결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다른 신들을 가서 섬기라”(신 13:13) 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판국에 그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아내를 구해 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했겠는가? = 주께 여쭈고 그분의 일하심을 기대했어야 옳았다!! 베냐민 사람들이 자신들을 멸하게 한 자들을 두려워해 바위 밑에 숨어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을 위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즉 ① 요단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던 갓 지파의 길르앗 야베스 성읍에 필연적 정의의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스바에서 총회를 소집했으며(20:2) 이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스라엘 성읍은 모두 공공의 권위와 이익을 무시한 것이므로 그 곳 사람들을 유죄로 인정해 쳐 죽일 것을 [섣부르게!!] 결의하고 말았다(8, 9절)....[[그러나, 이것도 사정을(베냐민 지파에 대한!!) 아룀으로써 주께 먼저 여쭘 통해 주님이 어찌 처리하실른지 응답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주님 마음에서 빗나간, 지나친 열심이 빚어낸 악한 결정임에 분명했다]] 이런 결의가 있은 후 길르앗 야베스에서 그 아무도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점호명부에서 밝혀졌다. 그래서 그들은 그 처벌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감행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 곳에서 [주님 명령을 따라!!]가나안 사람들을 용서해 주고 평화를 선포해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길르앗 사람들처럼 그들 스스로 저주를 자초하는 자들을 결코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께 아뢰고 그분의 결정을 기다렸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권세보다는 자기의 권위를 지지하기에 더욱 열심이다. 그래서 1만 2천 명으로 구성된 한 편대를 보내 길르앗 야베스를 쳐부수게 했다. 하나님이 기브아 사람들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을 때 그리 많은 용사들이 필요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적은 수의 용사를 보냈다(10절). “아주 바쳐진 사람은” 그 일을 행할 권능을 가진 자에 의해 “반드시 죽이라”는(레 27:29) 율법대로 그들은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칼로 쳐 죽였다(11절). ②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구해 줄 수가 있게 되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미디안에 보낸 용사들의 숫자도 이번과 같이 1만 2천 명이었다. 모세도 그들에게 역시 남자와 그의 아내는 죽이고 미혼 처녀는 살려 둘 것을 명했던바(민 31:17, 18). 이 명령은 결혼한 여자와 처녀의 구별을 더욱 명확히 해 놓았다(11, 12절). 길르앗 야베스에서 발견된 4백 명의 처녀들은 곧 살아남은 베냐민 사람들과 결혼하도록 했다(14절). 그 처녀들의 아버지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베냐민 사람의 아내로 주지 말 것을 맹세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이 맹세를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더욱이 그들은 싸움에서 얻은 포로였으므로 정복한 자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삼상 11:4). ----------- 아내를 구한 베냐민 사람들(삿 21:16-25) 여기서는 베냐민 지파 사람 2백 명에게 아내를 구해 주는 방법에 관한 기록이 있다. 베냐민 지파가 적은 수효로 줄어들었지만, 그들은 한 남자가 한 여자만을 취했다. 자기들의 번식을 가속화한다는 구실로 많은 아내를 취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베냐민 지파에게 자기들의 딸을 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습작전을 펴서 아내를 구해 주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후에”(ex post facto) 부모의 승낙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그 어디서도 주께 여쭈었다는 언급이 없다!!)) 흔히 경솔한 맹세는 나중에 가서 그것을 지키려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Ⅰ. 실로의 들에서 열리는 공공 무도회를 틈타서 그것을 실천했다. 거기에는 실로의 모든 처녀들과 그 인근에 사는 처녀들이 나와서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아마 초막절이었으리라(19절)─춤을 추었다. 그것이 초막절이라는 것은 (패트릭 주교의 말에 의하면) 유대 처녀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허용된 유일한 절기가 초막절이며, 더욱이 그것은 자기들의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건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춤이었다는 주장에서 알 수 있다. 마치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을 추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공적이고 우울한 행사에 춤을 추었던 것은 시기적으로 부당했을 것이다(사 22:12, 13 참조). 그 춤은 매우 정숙하고 우아한 춤이었다. 그것은 난잡한 혼무가 아니었다. 남자들은 이 실로의 딸들과 어울려 춤을 추지 않았으며, 정혼한 여인도 자중함을 지켜 그들과 어울려 춤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공공연히 춤을 추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홀 주교는, “악령이 잠복해 많은 사람들을 춤에서 무서운 황폐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주시했다. Ⅱ.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가서 포도원에 숨어 보라”고 명령했다. <이 포도원은 무도회가 열리는 푸른 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서 춤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랬다가 그들을 기습해 각자 아내를 취해 곧장 자기들의 본고장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20, 21절). 이스라엘 장로들은 자기들 지파의 딸들은 거기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처녀들의 부모들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으므로 자기 딸들을 그들에게 주라는 명령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행한 맹세를 파기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이 이렇게나마 있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처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할”(전 5:6) 경우가 있으므로, 맹세를 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혼사는 전후가 대단히 바뀐 처사다. 당사자 간의 상호 애정이나 부모들의 동의는 차후에 따라오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결코 이것이 하나의 관례가 될 수는 없다(주께 합당치 않다!!),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성급한 결혼은 때로는 두고두고 오는 후회를 낳는다. 또한 강제나 강탈로 된 결혼에서 어떤 위안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길르앗 야베스 처녀들은 피와 살육의 마당에서 구출되었다. 그러나 이 실로의 처녀들은 열락과 환희의 춤마당에서 끌려나왔다. Ⅲ.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 젊은 여인들의 아버지들과 설득-화해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들의 부권을 침해했지만, 이제 그들의 딸들은 그 결과 큰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인의 어머니들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쉽게 용서해 주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편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는 주지 않기로 했던 그 맹세가 이스라엘 장로들 중 어떤 어진 자들의 마음에는 결코!!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자기들을 변명했을 것이다. 1. 그와 같은 결혼 성사의 필요성이 긴급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각 사람에게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노라”(22절). 이것은 베냐민 지파의 모든 여자들을 죽여 버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요, 이스라엘 장로들이 그들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한 가혹성을 속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봐서─저들은 대단히 심각했다─그들이 가진 당신네들의 딸을 그대로 가지도록 허락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2. 허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맹세를 파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딸들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주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이 강제로 다른 아내를 취하면 자기들이 그 여자들을 돌려보내겠다고까지는 맹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거기에 무슨 잘못이라도 생기면, 그것은 그 부모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장로들이 책임질 문제였다. 이 일은 민수기 30장 4절의 율법에 따른, 묵인사항으로서만 인정될 수 있는 일이다. 끝으로, 본서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자. 첫째, 베냐민 지파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 남은 소수의 무리가 자기들의 본향으로 돌아갔다(23절). 그후 그들에게서는 당대의 유명했던 이스라엘의 두 번째 사사 에훗이 등장했다(3:15). 둘째, 이스라엘 군대는 각각 돌아갔다(24절). 그들은 상비군이 아니었으며, 자기들의 지파를 대신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소명받은 일이 다 끝나자, 그들은 조용히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고 각 가정으로 돌아갔다. 공무가 우리들의 개인적인 일이나 가정에 대한 의무를 버리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셋째, 혼란의 원인이 재차 설명되어 있다(25절).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에게 왕이 없는 것처럼 각자 자기의 왕 노릇을 하려 했다. =====호크마======= =====21:1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 본절은 5절과 더불어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 총회에서 맹세하여 가결하였던 사항들(20:1-11) 중에서 미처 밝히지 않았던 사항을 회상하여 기록함으로써 본장에 기록된 사건의 배경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곧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 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혈기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맹세하였던 두 가지 사항이다. 첫째는 자기 딸을 베냐민 자손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는 것과, 둘째는 온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미스바 총회에 참석치 아니한 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5절) 등이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이 두 맹세를 이행치 않을 수 없었는데 이로써 또 다른 살상(8-12절)과 무모한 납치극(13-25절)이 벌어진다(Pulpit Commentary).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기시하여 왔었다(창 28:6-9). 그리고 그것은 가나안 원주민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사항이기도 하다(신 20:16, 17). 따라서 이스라엘자손이 미스바 총회에서 본절과 같은 맹세를 하였다는 것은 곧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가나안 이방인들과 동등히 취급함으로써(신 7:3) 이스라엘 사회에서 축출하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Matthew Henry). =====21:2 벧엘에 이르러...대성 통곡하여 -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벧엘에 이르렀다'는것은 그들이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마친 후(20:48) 다시금 하나님의 언약궤와 대제사장 비느하스가 있는 벧엘(20:26-28)로 되돌아온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전쟁의 열기가 가시면서 미스바에서 한 그들의 처음 맹세에 따르면 그들은 위대한 성전(聖戰)을 훌륭히 수행한 셈이다(20:8-11).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열 두 지파 중에 한 지파가 거의 멸종 위기에 닥치게 되므로서 언약 백성으로서의 구성 요건이 상실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이 문제를 긴급히 해결하여야 했는데 이미 저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맹세로 인해 해결책이 없자 대성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서 장탄식을 늘어놓고 만다(3절). =====21:3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 이스라엘 백성들이 12지파로 존속할 수 없게된 것이 마치 하나님의 탓인 양 하나님께 원망하는 장면이다(Goslinga). 아무튼 이스라엘 12지파의 존속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입장에서 필수적인 전제였다(출24:4;신 27:11-13). 즉 언약 공동체 중 한 지파가 빠진다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성립 요건을 결여한 것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의 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지파의 몰락이 아니라 그 공동체 전체의 사활(死活)에 관계된 심각한 문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에 대하여 이렇게 거국적으로 노심 초사(勞心焦思)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21:4 거기 한 단을 쌓고 - 당시 벧엘에는 이미 제단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20:26) 본절에서 그들이 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통상적인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르면 이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진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함부로 아무 곳에서나 제단을 쌓지는 않으며 반드시 신의 현현이 있는 곳에서만 단을 쌓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민족적인 위기를 직면했거나 축제 등을 치룰 때에도 단을 쌓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 전쟁 전(前)이나 후(後)에 단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삼상 7:9;13:9;14:35). 따라서 본절에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쟁을 마친 후 재기된 민족적 과제를 놓고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새롭게 단을 쌓았을 것이다(Keil & Delitzsch). 번제와 화목제 - 20:26 주석 참조. =====21:5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 - 본절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할 방도를 모색하던 중 일전에 그들이 미스바 총회에서 맹세하였던 중 일전에 그들이 미스바 총회에서 맹세하였던 사항을 기억하게 된 듯하다.그것은 곧 기브아 거민을 응징하기 위해 모인 미스바 총회(20:1, 2)에 참석치 아니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1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여 불참자들의 성읍을 친 후 그곳 처녀들을 사로잡아 베냐민 자손에게 줄 계획(12절)을 수립하였을 것이다. 크게 맹세하기를...하였음이라 - 여기서 '크게 맹세하였다'는 것은 불이행의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뜻한다(Keil & Delitzsch).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맹세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 긍정적인 면 :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온전케 하는 일에 발뺌한 자들을 응징하는 것은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발뺌자들은 소극적이나마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19:22-26)을 묵인한 셈이니 어떤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범행에 동조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2) 부정적인 면 :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응징하지 않고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하는 타개책으로 그들을 응징하였다는 점이다. =====21:6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 여기서 '뉘우쳐'에 해당하는 '나함'(* )은'한숨 쉬다', 호의적으로 '동정심을 갖다', 소극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다'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는 적극적인 의미의 회개와는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백성들은 베냐민 지파가 멸절하게 된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만 안타까와하였을 뿐 그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연대 의식(solidarty)을 느끼고 회개하는 자리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던 것이다. =====21:7 그 남은 자들 -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패퇴(敗退)하여 림몬 바위로 도망, 간신히목숨을 보존한 베냐민 자손 600명을 가리킨다(20:47).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하였도다 - 본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1) 남아있는 6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딸들을 주어 한 지파의 사멸을 방지하는 것이다. (2)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한 맹세(1절)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맹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딸을 베냐민인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둘러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일전의 미스바 총회에도, 그 같은 맹세에도 참여치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의도는 감추고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기로 결의한다(8-11절). 5절 주석 참조. =====21:8 야베스 길르앗 - 요단 강 동쪽 길르앗 땅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다. 이 성읍은 요단강의 지류 중 갈릴리 바다 남쪽 32km 지점의 동쪽으로부터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와디 엘 야비스(Wadi el-Yabis) 근처에 위치하였다. 이 성읍을 진멸하기 위해 1만 2천 명의 군사만을 보낸 것(10절)으로 볼 때에 그리 큰 성읍은 아니었던 것 같다.이러한 견해는 그 성읍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4백 명 밖에 되지 않았던 사실로도 뒷받침 되어진다(12절). 이러한 야베스 길르앗은 훗날 사울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성읍이다(삼상 11장). 야베스 거민이 아모리 사람 나하스에게 포위당했을 때 사울이 성읍을 도와 구출해 주었다.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은 훗날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벧산 성벽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야베스에묻어 주었다(삼상 31:11-13). 때문에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용감하고 경건한 이들 야베스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특별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삼하2:5). =====21:9 백성을 계수할 때에...없음을 보았음이라 - 앞서 이스라엘이 미스바 총회로 모여 베냐민과의 싸움을 결의했을 때(20:1-11) 그들은 분명 군사들의 수를 점호(點呼)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총회에 참석치 않은 것을 알았을 것이다. 본절은 바로 그 같은 사실을 일컫는 듯하다. 20:17 주석 참조. =====21:10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 이는 곧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 대하여 철저한 심판을 가하라는 뜻이다. 한편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비록 그곳의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의 책임이 아닐 터인데도 이처럼 그들까지 모두 함께 진멸시키도록 한 이유는 공동체적 책임 때문이다. 즉 당시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 하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한 성읍의 일개인이 범죄하였을경우에도 그 성읍에 대하여 전체 책임을 묻곤 하였다(신 21:1-9). 그것은 곧 이웃이 범죄할 경우 그를 개도(開導)할 책임이 각자에게 있음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본절에서 야베스 길르앗 성읍을 철저히 진멸토록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인데 그러나 당시 남자를 알지 못하던 처녀 400명만은 멸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2절). =====21:11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 - 여기서 '남자와 잔 여자'란 곧 '기혼녀'(married women, Living Bible)를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는 대개 전쟁이나 변란(變亂)이 일어났을 때 기혼녀를 죽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민31:17). 아마 이는 그들을 살려둘 경우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 획책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여기서 '진멸하다'에 해당하는 '하람'(* )은 '구분하다', '봉헌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자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듯 야베스 길르앗 거민들을 멸절시킨 것을 의미한다. =====21:12 젊은 처녀 사백인을 얻었으니 - 남은 베냐민 자손들(20:47)에게 주어 그들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야베스 길르앗을 치게 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들은 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처럼 행했지만 실상은 교묘히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즉 이로써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이 서원한 것(1절)을 어김이 없이도 베냐민 자손들에게 아내를 구해줄 수 있게 된것이다. 7절 주석 참조. 그들이 실로 진으로 끌어 오니라 - 2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 번제를 드린 곳은 분명히 벧엘이었다. 그런데 본절에서 야베스 길르앗 처녀 400명을 이끌고 간 곳은 벧엘이 아니라 실로였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의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 혹자는 이제 베냐민의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벧엘로 옮겼던 언약궤를 다시 실로로 복귀시켰다고 한다(Hervey). 그리하여 백성들은 다시금 벧엘이 아닌 성소 실로로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19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가 가까웠기 때문에 언약궤를 실로로 옮겼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Goslinga). 그리하여 백성들은 다시금 성소로 모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처럼 실로는 엘리 제사장 당시까지(삼상 4:3, 4) 희막이 있던 성소로 여호수아 시대에도 이곳에서 자주 총회가 열렸었다(수18:1;21:2;22:9). 이는 가나안 땅이더라 - 야베스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성읍인 반면 실로는 요단 서편, 즉 가나안의 성읍이다. 따라서 이러한 실로를 야베스 길르앗과 대비시키기 위하여'가나안 땅'이란 말을 사용한 듯하다(Hervey, Keil). =====21:13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 베냐민 사람 600명은 이때까지 약 넉달 동안(20:47)림몬 바위에 숨어 지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평화를 공포하고 나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14, 23절). 아무튼 이스라엘 회중이 이처럼 남은 베냐민자손들에게 평화를 공포한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성도는 비록 이웃과 다투었다 할지라도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이 옳다(마 5:21-26). 뿐만 아니라 원수와 죄인조차도 회개할 때에는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후 2:7).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사랑의 정신이다(요 13:34, 35). =====21:14 오히려 부족하므로 -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서 데려온 처녀들은 400명이고(12절) 베냐민 사람들은 600명이었기 때문에(20:47) 약 200명의 처녀가 부족한 셈이다. 이를 위해 부득불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계책을 짜내었는데 곧 실로 여인 납치극이다(19-23절). =====21:15 여호와께서...궐이 나게 하셨음이더라 - 본절에서 본서 기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궐이 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이 단지 지파간의 갈등으로 빚어진 내전이었던 것만은 아니며 거기에는 죄악중에 있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이 개입되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궐'에 해당하는 '페레츠'(* )는 '분열, '갈라진 틈' 등의 뜻으로서 3절의 '이지러지다', '빠지다'라는 뜻의 '파케드'(* )와 동의어이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한 틈이 나게 하셨다'는 말이 된다(KJV, RSV, 공동번역). =====21:16 회중 장로들이 가로되...얻게 할꼬 - 모자라는 200명의 처녀 때문에 다시 장로들의 회의가 열렸다. 한편 여기서의 문제 제기(16-18절)는 6, 7절에서의 문제 제기와 거의 유사하지만 다음과 같은 새로운 내용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1) 6, 7절에서와는달리 베냐민 지파의 실상(14절)을 분명히 목격한 뒤였다. (2) 여호와께서 한 지파를궐이 나게 하셨기 때문에(15절) 그들이 길르앗 야베스를 쳐서 처녀를 데려온 것으로(12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 남은 자들에게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꼬'라고 한 장로들의 탄식 및 의견 제시는 6,7절에서 제기했던 것보다 더욱 강한 어조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1:17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 여기서 '기업'에 해당하는 '예레솨'(* )의 일반적 의미는 '산업', 또는 '소유'를 뜻한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 600명은 이미 자신들의 영토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이다(14절).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아내를 얻어 이룬 '가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내가 없으면 베냐민 지파의 후사(後嗣)를 얻을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베냐민 지파의 이즈러짐은 여전히 방지할 수 없다. 추측컨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모자라는 처녀 때문에 베냐민 지파간에 일어날 불화를 염려하고 있었던 것 같다. =====21:18 맹세하여 이르기를...저주를 받으리라 -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선 하나님과의 맹세이든, 사람과의 맹세이든 모두를 막론하고 '맹세'는 반드시 시행되어야만 하는 불변의 약속이었다. 따라서 대개 히브리인들은 무엇을 맹세할 때, 그것을 이행치 못할 경우 죽음이나 어떠한 저주라도 감수하겠다는 약속을 곧잘 첨언(添言)한다(수 6:26;삼상14:28;왕상 2:42). 본절 역시 바로 그러한 한 예인데 '맹세의 엄정성'을 잘 드러내 준다. 민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참조. ((그 맹세가 주께 합당한가 아닌가가 더 중요하다..주님은 맹세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함부로 맹세하지말고, 잘못되었다면...얼른 모든 가산을 들여서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취소하고 빚 갚기를 원하신다!! 나 죽었소하고, 그 맹세를 취소하고 용서를 구하라...죽기를 각오하라..주와 함께 평생 나그네로 살라.. 허튼 사람으로 여기든 말든 그대는 주 임재 앞에서 참되게 살기를 선택하라....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고, 이것은 생명 진리이신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살아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1:19 벧엘 북편...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편 실로 -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실로'는12절에 나오는 '실로'와 다른 곳이 아니다. 성경에 언급된 '실로'(Shiloh)란 지명은 언제나 한 곳을 가리키는데 본절의 설명에 의하면 그 위치는 예루살렘 북쪽 약 32km지점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호수아 때(수18:1)부터 엘리 제사장 때(삼상 4:3, 4)까지그곳에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이 있었는바 종교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성읍이었다.현재 실로는 '길벳 세일룬'(Khirbet Seilun)으로 알려지고 있다. 르보나 - 실로와 세겜 사이에 있는 큰 길가의 마을이다. 이 마을은 실로에서 서북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루반'(Lubban)인 것으로 추정된다. 세겜 -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9.6km 정도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 8:31 주석 참조.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도다 - 실로에서 매년 절기가 있었다는 언급은 삼상 1:3,7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무슨 절기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여기서 '절기'에해당되는 '하그'(* )는 주로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등 3대 절기에만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어떤 주석가들은 유월절이었다고 생각한다(Keil & Delitzsch,Hengstenberg, Lange). 왜냐하면 그들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었다는 것은(21절)과거 이스라엘의 홍해 도하(渡河)후 미리암의 지도하에 이스라엘의 딸들이 춤을 춘 것(출15:20)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Lange). 그러나 다른 주석가들은 그것은 실로 고유의 축제로서 신 12:10-12에 언급된 축제와 관련된다고 생각한다(Hervey,Rosenmuller). 하지만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이 세 절기 가운데 올리브(olive)와 포도등의 수확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장막절이다(신 16:13). 레위기 서론, '히브리절기와 축제' 참조. 따라서 본절의 축제도 포도원과 깊이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20, 21절) 장막절임이 분명한 것 같다(Patrick, Cundall). 장막절의 주요 행사는 주로 밤에 거행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베냐민 자손들이 춤추는 여자들을 쉽게 납치할 수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대낮에 여인을 납치했다면 실로에서 베냐민 땅까지 데려가기도 전에 발각되었을 것이며, 발각되었다면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출 21:16;신 24:7). =====21:20,21 본절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처럼 철저한 계획 속에서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아내를 취하여 갈 수 있도록 ((조종!!))했다. 그런데 장로들이 이와 같은 납치극을 꾸민 이유는 22절에서도 잘 나타난다.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려 나오거든 - 패트릭(Patrick) 주교에 따르면 장막절에는 이스라엘 처녀들이 춤을 추도록 허용되었는데 이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허용된 절기는 오직 장막절 뿐이라고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251). 붙들어 가지고...돌아가라 - 여기서 '붙들다'에 해당하는 '하타프'(* )는 마치 죄수를 체포하듯 '꽉 붙들어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냐민인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말이다. =====21:22 만일...쟁론하면 - 앞서 미스바 총회에서 자신들이 베냐민 자손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맹세한 이스라엘 자손들(1절)은 아무도 그 같은 서원을 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먼저!! 죽임 당하시는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진리 위한 십자가를 지려는가!?...십자가를 질 수 있나!!)) 그러므로 베냐민 자손들이 자기들의 딸을 납치해 가려는 일이 탄로나면 싸움이 일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본절은 바로 그 같은 사태를 가리키는데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이스라엘 장로들은 자신들이 친히 베냐민인들을 위해 변호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너희에게 죄가 없을 없을 것임이니라 - 이처럼 [육적인 그야말로 지극히 육적이고 마귀적인!!...깨어 있지 못하면 나도 그럴 수 있음이다!!...주여, 긍휼을!!] 이스라엘 장로들이 자신들의 딸을 납치당한 실로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의 무죄성을 납득시키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논거(論據)가 있었을 것이다((그렇지만!!.이 견해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생명 구원의 사명 저버리고 오히려 생명 경시의 간악함을 극도로 대변하고 있는 이 장로들이 하나님이거나, 하나님의 대리인이란 말인가??)) (1) 길르앗 야베스와의 전쟁에서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를 다 마련해 주지 못한 데 대한 이스라엘의 공동 책임이 있기 때문에(10-14절)실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딸을 납치당한 것은 실로인들의 책임만일 수 는 없다는 점이다. (2) 실로인들이 고의로 자신들의 딸을 내준 것이 아니라 베냐민 사람들이 강제로 납치해 간 것이기 때문에 실로인들은 그들이 한 맹세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쟁 때에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이방인들에게도 딸을 빼앗길 수 있는 일이었다.그러므로 장로들의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그러나, 주님은 근본동기를 꿰뚫어 보고 계신다!!)) =====21:23 베냐민 사람들은 장로들의 계획대로 실로에서 춤을 추던 여인 200명을 데리고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갔다. 성읍들을 중건하고 - 이처럼 베냐민 사람들이 아내를 얻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간후 가장 시급했던 일은 거의 잿더미로 변한 성읍들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베냐민들에게 속한 성읍은 앞서 이스라엘 연맹군과의 싸움에서 대부분 완파(完破)되었기 때문이다(20:48). =====21:24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 본절은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모든 이스라엘 지파는 베냐민 지파의 문제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다가 이제서야 각자 자기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곳을 떠나 - 여기서 '그곳'이란 일차적으로 실로라고 생각할 수 있다(12절). 그러나 혹자는 16-23절의 상황에 의거해 대부분의 백성들은 미스바에서 베냐민 지파의 문제가 종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Goslinga).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 마지막으로 본서 기자는 사사기의 역사를 마감하면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그러한 불법적인 일들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7-21장에 걸쳐 기록된 불법적인 일들에 대한 본서 기자의 이러한 결말은 사사기 시대의 예비적인 성격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6 주석을 참조하라. ------------ 앞장에서의 동족 상잔(同族相殘)의 비극으로 인하여 이즈러진 베냐민 지파를 회복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고 있는 장면이다. 즉 림몬 바위에 숨어 살아난 600명의 베냐민 사람들(20:47)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어 기업을 보존케 하려고 이스라엘은 먼저 야베스 길르앗을 쳐 처녀 400인을 얻는다(1-12절). 그리고 나머지 모자라는 처녀 200인에 대해서는 베냐민인들로 하여금 직접 실로에 가서 구하도록 방편을 베풀어 준다(13-24절). 그런데 본서 기자는 이러한 본장을 결론 지음에 있어서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란 말로 맺음으로써 당시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시사해 준다. 물론 본장을 살펴보면 바알 숭배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백성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 민족적인 유대감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지파간의 긴밀도도 매우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문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지도자(2:7)가 없으므로 이스리엘 백성들은 어떤 당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장에서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결의하는 과정에서 그러했고(20:10, 11) 본장에서 길르앗 야베스를 치는 과정과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실로에서 무도하는 처녀들을 납치하도록 충고한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상 가운데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 조상들이 지켜 오던 종교적 관습은 명맥을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서 회개한다거나(2절) 하나님 앞에 맹세한 바는 변개치 못하는 것인 줄로 알고 있는 점 등이 그것이다(1, 5절). 하지만 이러한 인본주의적 요소와 명맥만울 유지하는 산본주의적 요소의 병존(倂存)은 결국 상호 충돌과 모순만을 일으킬 뿐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자신들의 소견대로 행하고서는 결과적으로 혼란에 빠지자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곧 참 신앙이 없는 외형적, 가시적 신앙 행위는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말했고 이사야 선지자도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상과 같은 본문을 통해 우리는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즉 하나님을 떠난 자의 삶은 꼬리를 무는 죄의 악순환과 혼돈뿐이란 점을 ! 그리고 그러한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피상적, 형식적 신앙과 해결책만으로는 안 되고 진정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기고 인도하심에 따르는 길뿐이란 점을 ! 1. 이스라엘 총회의 당면 문제(21:1-7)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서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한 베냐민 지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 총회가 당면한 어려움에 대하여 가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스라엘 총회는 림몬 바위에 숨어 겨우 목숨을 보존하였던 베냐민인들이(20:47) 다시금 한 지파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 600명에게 아내를 주어 기업을 잇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들이 미스바에서 기브아의 죄악을 듣고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베냐민 사람에게는 절대로 딸을 주지 않겠다고 저주하여 맹세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아내를 구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1절). 만일 이방 여인을 보내어 그들과 결혼시키며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가 아닌 이방 민족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런 방법은 아예 제기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 딸들 중에서 아내를 구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맹세한 서원을 준수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우리에게 크나큰 교훈을 던져 주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범죄 또는 실책은 연속되는 범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즉 베냐민 지파는 스스로의 자존심과 완악함 때문에 비참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20:12-16) 이스라엘 자손들은 혈기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은 채 한 지파를 멸절케 하는 무서운 맹세를 하였던 것이다(1절).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악순환 내지 모순은 하나님을 배반한 그들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다. (2) 함부로 맹세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는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아내로 주지 않겠다는 맹세 외에도 미스바 총회에 참석치 아니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는 이스라엘의 맹세가 나온다(5절). 결국 이스라엘은 이 같은 맹세도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하였는바 야베스 길르앗 거민은 이스라엘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하고 만다. 물론 그 결과, 베냐민인들의 아내를 구하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21:8-12) 이처럼 경솔한 맹세로 인하여 무고한 인명이 살상당한 것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큰 문제이다. 숫자 '12'의 의미 - 성경에 나오는 여러 숫자들은 제각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중 '12'는 '완전 수'라고 하는데 흔히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성취를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숫자 12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적인 집착은 이스라엘 역사 상에 자주 나타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파의 수가 늘고 주는 것에 상관없이 12지파를 보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예를 들면 레위 지파의 자리를 채워서라도 12 지파를 유지하기 위하여 요셉 지파를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로 계수한 것이라든지(수 14:3, 4), 본장에서도 베냐민 지파의 멸절을 막기 위해 야베스 길르앗이라는 한 성읍의 멸절을 불사한 것 등을 들 수 있다(1-15절). 또 신약 시대에는 12명이란 예수 수제자의 고유 수를 유지하기 위해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제자로 산출하기까지 했다(행 1:15-26). 그밖에도 성경에는 숫자 12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곧 하늘의 열 두 문, 성벽의 열 두 기초, 열 두 과일을 맺는 생명나무 등이다(계 21, 22장). 그런데 숫자 12에 대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여한 종교적 의미는 대부분 제사장 나라로서의 특별한 선민 의식(출 19:5, 6)이나 그들의 궁극적인 구원을 이루는 내세관과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한 증거로 제사장과 레위적을 24 반열로 나눈 것과(대상 24:4 ; 25:31) 하늘 보좌를 둘러싼 24명의 장로들(계 4:4 ; 5:8 ; 11:16 ; 19:4)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2. 문제 해결을 위한 두 가지 계책(21:8-25) 이스라엘 자손들이 베냐민 사람 600명에게 아내를 구해 주기 위해 취했던 두 가지 방도에 대한 언급이다. 먼저 그중 하나는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을 치고 그들 중에서 처녀를 취하여 베냐민 사람의 아내로 주는 것이었다(8-12절).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딸을 베냐민인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한 자신들의 맹세(1절)를 준수할 수 있게 되고 베냐민 사란=바들도 아내를 얻어 한 지파의 사멸을 방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야베스 길르앗은 그리 크지 않은 성읍이라 그곳에서 초녀 600명을 다 구할 수가 없었으니 또 다른 방도를 강구치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색한 두번째 방도는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살로에서 춤추러 나온 처녀들을 납치케 하는 것이었다(13-25절). 그렇게 할 때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의(自意)로 자기 딸을 준 것이 아니므로 맹세를 파기할 때 오는 형벌(레 19:12)을 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단지 인간적인 꾀만 좇아 추진한 이 두 가지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불의가 내포되어 있다. (1) 만일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총회에 참석치 않은 것이 그렇게 큰 죄였다면 그들이 그와 같이 총회에 참석치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거나 그들로 하여금 총회에 나와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했다는 점아다(마 18:15 ; 요일 5:16, 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러한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자신들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며 한 성읍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린 것이다. (2)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실로의 처녀들을 납치하도록 한 것은 자신들의 죄책을 합리화시키는 또 다른 죄악을 범한 것이란 점이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당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는 그들의 잘못된 맹세를 지키기에만 급급하여 타인의 인격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또 다른 죄악을 범한 것이다. (3) 모든 일반 백성들은 이에 대하여 침묵하므로 같은 죄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일반 백성들 중에는 아무도 이러한 불의한 방법에 의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었다. 더욱이 그 당시 대제사장으로 있던 비느하스(20:28) 조차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같이 고의적으로 죄를 묵과하는 행위는 오히려 적극적인 범죄보다 더 죄악된 것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그들의 피상적인 해결책으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여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뿐이다(롬 5:9). 합리적 사고 방식의 맹점(盲點) - 합리적 사고 방식이란 일체의 비합리적이고 우연적인 것을 배척허고 이성(理性)과 논리(論理)에 근거하여 어떤 사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인식하는 사고 방식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 방식은 종종 지나치게 과학적인 경험을 중시한 나머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한 양심이 증거해 주는 것조차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이성(理性)과 과학을 신격화하는 무신론(無神論)에 빠져 버리는 경우조차 있다, 이는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이성이 죄악에 물듦으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부패하였다는 칼빈주의적 사고 방식과 배치되는 위험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들은 종종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은폐하기 위하여 합리성을 주장하며 과학을 내세우게 되는데 이것은 더더욱이 인간이 전적 타락의 한 증거가 된다. 또한 이러한 사고주의자들은 합리적 이성의 작용에 의하여 성취되는 세계관을 지향하고 기존한 모든 비합리적인 것들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곧잘 한 다. 그 예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일어난 자유 신학에서의 비산화화 작업이나 슐라이어막허의 종교관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신앙 자체를 비합리적으로 규정하는 무신화(無神化) 작업임이 분명하다. 한편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이제 이스라엘 장로들이 실로의 춤추는 처녀들을 베냐민 사람들의 아내로 취하게 한 사건을 살펴보자(16-22절). 왜냐하면 이 사건은 바로 이러한 합리적 사고 방식이 갖는 잘못을 모두 범한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딸들을 자의(自意)로 베냐민 사람의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한 맹세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22절) 그들의 맹세가 오직 하나님의 심판과 권위 아래 있음을 무시한 처사였다. 또한 맹세의 성취 여부는 만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건실함과 성실함에 달려 있다는 사실(출 22:7, 10, 11)을 망각한 것이다. 이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받은 성도들은 세상의 부패와 죄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 아니라 날마다 썬어져 가는 구습들을 벗어버리는 노력에 게을리해서는 안 됨을 교훈받을 수 있다(엡 4:22; 딤후 1:10).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도 온 인류의 죄악을 합리적인 방법으로가 아닌 십자가의 희생으로 친히 해결하셨지 않는가(롬 3:25; 엡 1:22, 23)! 21:1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본 절은 5절과 더불어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 총회에서 맹세하여 가결하였던 사항들(20:1-11) 중에서 미처 밝히지 않았던 사항을 회상하여 기록함으로써 본 장에 기록된 사건의 배경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곧 베냐민 지파와의 싸움에 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혈기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맹세하였던 두 가지 사항이다. 첫째는 자기 딸을 베냐민 자손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는 것과, 둘째는 온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미스바 총회에 참석치 아니한 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5절) 등이다. 결국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이 두 맹세를 이행치 않을 수 없었는데 이로써 또 다른 살상(8-12절)과 무모한 납치극(13-25절)이 벌어진다(Pulpit Commentary).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기시하여 왔었다(창 28:6-9). 그리고 그것은 가나안 원주민과 관련해서 특별히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사항이기도 하다(신 20:16-17).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 총회에서 본 절과 같은 맹세를 하였다는 것은 곧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가나안 이방인들과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신 7:3) 이스라엘 사회에서 축출하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Matthew Henry). 21:2 벧엘에 이르러 … 큰 소리로 울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벧엘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들이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마친 후(20:48) 다시 하나님의 언약궤와 대제사장 비느하스가 있는 벧엘(20:26-28)로 되돌아온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열 두 지파 중에 한 지파가 거의 멸종 위기에 닥치게 되므로서 언약 백성으로서의 구성 요건이 상실되게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이 문제를 긴급히 해결하여야 했는데 이미 저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맹세로 인해 해결책이 없자 대성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서 탄식을 늘어 놓고 있다(3절). 21:3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12지파로 존속할 수 없게 된 것이 마치 하나님의 탓인 양 하나님께 원망하는 장면이다(Goslinga). 아무튼 이스라엘 12지파의 존속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입장에서 필수적인 전제였다(출 24:4, 신 27:11-13). 즉 언약 공동체 중 한 지파가 빠진다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성립 요건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의 멸절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지파의 몰락이 아니라 그 공동체 전체의 사활에 관계된 심각한 문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에 대하여 이렇게 거국적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21:4 거기 한 제단을 쌓고. 당시 벧엘에는 이미 제단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20:26) 본 절에서 그들이 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통상적인 이스라엘의 관습을 참고하면 이해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함부로 아무 곳에서나 제단을 쌓지는 않았으며 반드시 신의 현현이 있는 곳에서만 제단을 쌓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민족적인 위기를 직면했거나 축제 등을 치룰 때에도 제단을 쌓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 전쟁 전이나 후에 제단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삼상 7:9, 13:9, 14:35). 따라서 본 절에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쟁을 마친 후 재기된 민족적 과제를 놓고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새롭게 제단을 쌓았을 것이다(Keil & Delitzsch). 번제와 화목제. 20:26 주석 참조. 21:5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본 절로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할 방도를 모색하던 중 일전에 그들이 미스바 총회에서 맹세하였던 사항을 기억하게 된 듯하다. 그것은 곧 기브아 거민을 응징하기 위해 모인 미스바 총회(20:1-2)에 참석치 아니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1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을 새롭게 확인하여 불참자들의 성읍을 친 후 그 곳 처녀들을 사로잡아 베냐민 자손에게 줄 계획(12절)을 수립하였을 것이다. 크게 맹세하기를 … 하였음이라. 여기서 ‘크게 맹세하였다’는 것은 불이행의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뜻한다(Keil & Delitzsch).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맹세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 긍정적인 면 :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온전케 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응징하는 것은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들은 소극적이나마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19:22-26)을 묵인한 셈이니 어떤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범행에 동조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2) 부정적인 면 :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응징하지 않고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를 타개하는 타개책으로 그들을 응징하였다는 점이다. 21:6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여기서 ‘뉘우쳐’에 해당하는 원어 ‘나함’은 ‘한숨 쉬다’, 호의적으로 ‘동정심을 갖다’, 소극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이는 적극적인 의미의 회개와는 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가 멸절하게 된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만 안타까워했을 뿐 그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연대 의식을 느끼고 회개하는 자리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21:7 그 남은 자들.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패퇴하여 림몬 바위로 도망, 간신히 목숨을 보존한 베냐민 자손 600명을 가리킨다(20:47).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 하였도다. 본 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1) 남아 있는 6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딸들을 주어 한 지파의 사멸을 방지하는 것이다. (2)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한 맹세(1절)를 범하지 말아야 하였다. 따라서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맹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딸을 베냐민인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둘러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일전의 미스바 총회에도, 그 같은 맹세에도 참여치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의도는 감추고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기로 결의한다(8-11절). 5절 주석 참조. 21:8 야베스 길르앗. 요단 강 동쪽 길르앗 땅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다. 이 성읍은 요단 강의 지류 중 갈릴리 바다 남쪽 32 km 지점의 동쪽으로부터 요단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와디 엘 야비스(Wadi el-Yabis) 근처에 위치한다. 이 성읍을 진멸하기 위해 1만 2천 명의 군사만을 보낸 것(10절)으로 볼 때에 그리 큰 성읍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견해는 그 성읍에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4백 명 밖에 되지 않았던 사실로도 뒷받침 된다(12절). 이러한 야베스 길르앗은 훗날 사울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성읍이다(삼상 11장). 야베스 거민이 아모리 사람 나하스에게 포위당했을 때 사울이 성읍을 도와 구출해 주었다. 그리고 야베스 사람들은 훗날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벧산 성벽에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야베스에 묻어 주었다(삼상 31:11-13). 때문에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용감하고 경건한 야베스 사람들의 행위에 대하여 특별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삼하 2:5). 21:9 백성을 계수할 때에 … 없음을 보았음이라. 앞서 이스라엘이 미디안 총회로 모여 베냐민과의 싸움을 결의했을 때(20:1-11) 그들은 분명 군사들의 수를 점호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총회에 참석치 않은 것을 알았을 것이다. 본 절은 바로 그 같은 사실을 일컫는 듯하다. 20:17 주석 참조. 21:10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이는 곧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 대하여 철저한 심판을 가하라는 뜻이다. 한편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미스바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비록 그 곳의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의 책임이 아닐 터인데도 이처럼 그들까지 모두 함께 진멸시키도록 한 이유는 공동체적 책임 때문이다. 즉 당시 공동체 의식을 중요시 하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한 성읍의 개인이 범죄하였을 경우에도 그 성읍에 대하여 전체 책임을 묻곤 하였다(신 21:1-9). 그것은 곧 이웃이 범죄할 경우 그를 지도할 책임이 각자에게 있음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본 절에서 야베스 길르앗 성읍을 철저히 진멸토록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인데 그러나 당시 남자를 알지 못하던 처녀 400명만은 멸절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2절). 21:11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질 것이니라. 여기서 ‘남자와 잔 여자’란 곧 ‘기혼녀’(married women, Living Bible)를 가리킨다. 고대 사회에서는 대개 전쟁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