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창20. 수치스런중재99.상호거함의 시험_소망이룸지연_피로/현기증 인한 휴가(위치 이탈)_숨겨진연약함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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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0장....단10:15-19 다니엘을 강건케 하시는 주님  마9:23 주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

[시23]===다윗의 시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요1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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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11:8, 9......*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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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13:12..낙심-무기력-기진/탈력감)..*12..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Hope deferred makes the heart sick, But when desire is fulfilled, it is a tree of life..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며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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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람인가. 상호 거함=그분의 임재 잃음은 모든 것 잃음이다!!.

....그리스도인임을 먼저 드러내도록 하실 그 때, 망설이지 말고 드러내라..,그 어떤 불이익 있더라도 감수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댓가 지불하기를 배우라.. 대신에 예배 시간 얻게 되리니...

**그 어떤 일, 장소 선택시 우선순위는 <주 임재의 인도하심 따름으로 행하여>  <주 섬김에>합당한 위치,장소인지 점검하라..혹시 (소망이 더디 이루어짐 인해)자기연민의 속임에 빠져, [낙담/기진탈력감/권태/싫증/번아웃 느껴] 편안한 휴가가 필요하다 느껴서, 그 느낌따라 <여쭘 없이> 세상 가치/천연적 영리함을 따라 이중적 가치-행태 보이며 사는 세상 왕이 사는 왕도 그랄] 향해 가고 있는 것 아닌지, 이동 여행의 근본동기를 살펴보라...

**[주께 절대적이라 스스로 믿고 있는 그대여..돌아보아 점검해 보라..주님 따르기 시작한 그 때부터 <확신하는, 살아 생동하는 믿음의 효력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보이는 그 때를 대비해서, 바로 그 때에 사용하기 위해, 처리하지 않고 숨겨둔 마지막 준비 hidden card, 곧 육적 수단이나 계획>이 여전히 남아있는지...이것은 마치 양파껍질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믿는 우리의 연약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천천히 손수 처리해 나가실 바> 주님을 신뢰하자....그 때마다, 한번에 하나씩 드러내 처리해 주시리라.....]

**(혹자가 시사하는 바, (곤경에 처할 때마다, 온전히 주 바라기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사라를 "나의 누이"라 칭하기를(곧 스스로 보호/보장하려는 <깊이 숨겨 놓은..일종의 우상!!> 육적 수단=사이비 수단 사용하기를) 그만둘 때까지에 이르러서야 주님은 이삭을 허용하려 하신 것 아닐까..)

**아직도, 주님 외에 <마음속에 (스스로) 기댈 바 의지 삼는 그 어떤 것...깊이 감추어 놓은, 드러내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의지로 삼는 그 어떤 우상<수단>이 여전히 있는지 자주 돌아보고, 주님께서 손수 처리하시도록 주께 올려드림으로써 주 되심 인정해 드리기를 지체하지 말라. 이를 통해서 자유로우신 주님이 주권적 계획하심 그대로 일하실 수 있게 해 드림이 또한 중요하다....이것이 <이삭이 주어지기전에> 반드시 처리되어야 할 중요과제로 보셨기에 여기에서 다루셨다!! 

***제1교훈...사라는 (비록 속상한 대우를 받게 되더라도)  아브라함을 (그녀의 머리로서!!) 극진히 위하며 돕기를 배워서 실행하고 있다>...아브라함은 믿음을, 사라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임하는, 우리에게 도달한 하나님 자신이신 은혜를 표상..., 이 은혜 곧, 반드시 사라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간증(임재)이자 씨, 이삭이 오게 됨.....믿음이 (임재 - 중재 체험에 기고만장해져서 현기증과 피로감 느낀 나머지 ((휴가를 갖고자)) 주께 묻지 않고  자의적으로, 영적 신분과 위치에 합당치 않게) 합당한 교통의 위치를 떠나 약화되면 그 결과 은혜가 손상 입게 되며 그 결과 간증이 사라지게 될 수 있다!!..(넘어지지 않으려면) 주님의 말씀과 임재---합당한 장소/위치에 머물기가 중요하다!!. 

***제2교훈>..하지만.. 주님의 기름부음의 은혜가 그 위에 머무르는 자, 아브라함은 <비록 실패에 대한 자괴감-자책감 때문에 중재 자격 상실감이 들 수 있으나 (주께서 마음에 일깨우심이라는 느낌 주심 인해!!) 기도 요청이 올 때 중재 기도를 통해서> 그를 새롭게 하시며 회복케 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이것이 20장에서 중요한 교훈이다).

....[[중재 기도의 교훈]]주님의 중재자는 오직<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돌아보며 스스로 제한해서는 결코 안된다...곧, 실패-성공, 긍정-부정적 여하에 무관하게, 주님의 필요를  따라, 형제자매의 필요를 따라 행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이들을 위해 중재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상황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우리외에는 지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중재해야 한다...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해서 담대하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위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그때에 처해서조차도 응답 없는 우리의 기도를 잊고 다른이들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으며, 그 후 우리의 기도도 응답됨을 알게 되리라...

---바로 아브라함의 경험이 그랬다...[우리 모두는 우리의 승패의 느낌을 따라 기도함이 아니라, 오직 주 안에서 인침 받은 자의, 영적 신분과 주 안에서 위치를 따라 기도하기를 배워야 한다]...오직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의 어떠함을 따라 생각하시기에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는 주와 연합한 한 영의 새 사람, 그분의 마음과 생각, 심정에서 나온 그 기도로 기도하는 새 사람이다!!>기도를 부탁하시는 바, 바로 기도를 부탁하시는 주님과 한 영 됨으로 중재기도하기를 잊지말라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위치를 <믿음으로, 영 안에서>고수함으로써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제3교훈>.아브라함이 (벧엘로 복귀한 후, 목자들 사이의 갈등이 불거졌을 그 때, 혹시 자기도 모르게 안색을 굳게 하거나 꾸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질책의 태도를 보였을 수 있는 바.) 롯과 분열하여 떠나간 후, 다시는 롯이 아브라함을 쳐다보지도, 찾아오거나 상의하거나 상호간에 그 어떤 생명 교통이 전혀 없이 끊어져 버렸었음을 알고 계신다.

.....여기에서, 갈등상황 발생시에 처리하시는 (일절 오래참으시며, 다함없는 친절과 자비로 충만한) 지고지선의 주님의 지혜를 배우자...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 꾸짖음 통해 회개하도록 다루지 않으시고<아비멜렉을 통해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꾸짖도록 하심과 동시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아 기름부음이 그 위에 머물러 있는 선지자임을 인정해 줌으로써> 아브라함이 중재기도를 해 줌 통해서만 아비멜렉의 문제가 풀어지도록 안배하심으로써 동시에 아브라함의 숨겨진 연약함 따른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심과 동시에 아브라함을 높여주고 계시며, 아브라함은 이제 정말 그런 연약함 문제를 끊어버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그런 자유함 안에서 이삭의 태어남을 기뻐하게 하신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술(애굽 관문)---그랄(네게브...블레셋)---가데스(가데스바네아 = 라해로이..술광야와 바란광야 교차 지점..애굽시내 옆)

#하윌라 :: 에돔 남방과 에시온게벨 사이 지역(호르산 인근)

@@애굽시내와 블레셋 사이는 본래 아말렉(창14:7에 이미 네게브 지역에 사는 아말렉인들에 대한 기록이 있기에,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아들 아말렉이 개척한 것이 아니고, 아말렉 지명은 에서의 후손이 점령한 후 붙여졌으리라 여겨짐)지역에 속하는 술광야에 속하며 이스마엘 자손들은 <술에서 하윌라에 이르는> 아말렉 지역에 더불어 함께 혼재되어 살았으며, 당시 하윌라는 애굽에서 아랍반도를, 더 나아가서는  아랍반도 북서쪽 지역인 미디안(그두라 후손) 땅의 에시온게벨에서 요단 동편길을 거쳐 다메섹 거쳐 앗수르에 이르는 왕의 대로로 일컬어지는 대상무역로에 속하였음.... 이 대상로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아말렉은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후미를 급습하였음..(출17:8-16)

@@아말렉 족속 멸절 위해 사울왕은 술에서 하윌라까지 원정하여  아말렉족속의 왕<아각이라 칭함>을 사로잡았고(삼상15:1-9) 살려 보내려는 사울왕에 반대하여 사무엘 선지자는 아각을 토막내어 죽이게 하였음..다윗을 거쳐 히스기야 때에 아말렉은 완전히 멸절됨


1.  [250구주의십자가보혈로]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혹시 영적 체험에 대한 싫증/현기증- 약속이룸 기다림에 대한 번아웃을 느꼈던 것일까..먼저 주께 여쭈라..<실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자의적) 휴가[=신성한 직무 벗기]란 일종의 [주 임재에서 끊겨지는]죽음 경험이 될 수도 있음에 주의하라...헤브론에서 떠나, 남쪽으로 휴가차(?) 여행하여 네게브로 이동..남쪽은 <따뜻한, 편안함>, 북쪽은<추운, 주님 임재가 있는 고난 상황>을 의미..휴가를 원했던 Abr은 <비록 본인은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해도> 휴가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중재기도 직무를 통해서 아비멜렉과 Abr 자신 양측에 대해 동시 치유 결과를 가져 왔다...17:21-18:14(이삭의 출생 고지) ==>영광스런 중재==>네게브로 하향==>21장..이삭의 출생...그 사이는 채 1년이 안된 기간임을 주목하라....주 임재가 없다면 아무리 저명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그는 단지 (생명 산출 불가능한) 개-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보라, 상황/환경을 두려워 했기에 솟구쳐 나온 이 거짓말을!!..<합당한 위치를 떠나게 되었다 해도>...은혜와 간증을 돌보시는 주권적 주님을, Abr은 모든 상황과 환경의 주재자이신 주님을 믿고 신뢰했었어야 했다 ]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그의 하렘, 곧 침소로] 데려갔더니...***데려갔다함은 본인의 동의 여부를 묻지 않고 강제로 빼앗았다 함이니.

**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이들은, 그 어떤 영적 축복 경험시 더 이상 육신 안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이는 사탄이 넣어 준 생각-자기기만!!......보라, 합당한 위치를 떠나서 창12장(75세, 애굽)에서 경험했던 <육신 따라 행했던 바로 그 일을> 다시 (거의 25년이 다 되어가는) 99세가 된 후 아비멜렉 앞에서 다시 반복함으로써 육신적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3.  그 밤에[주님은 정말로 급하셨다!!]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이 아니다!!..(이제, 곧 이삭의 출생을 앞두고 있는데...어쩌면 속상하고 답답하셨을 주님), Abr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너그러우심, 지혜와 긍휼을 보라]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아브라함의 겪고 있는 이 체험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비정상적 체험이기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신다.

4.  아비멜렉이 [아직]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사정과 내막을 모르고!!]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  [273나주를 멀리떠났다]○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하나님과 사람에게]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  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이것은 출애굽 당시, <당당하게!>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인들에게서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한 씨(예표)라 할 수 있을 것<수고 제공에 대한 대가로 여기게 하신다>......합당한 위치를 떠났던  Abr이 거짓말 했을 바로 그때 은혜는 손상 입게 되었고 따라서 주님 임재-간증이 사라지게 되었으나, Q은 <사라를 구하고 임재-간증==>믿음을 회복시킴> 곧 은혜와 간증을 돌보시고 회복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계신다.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이미 이 사건 발발전, <사라를 보고 취하려는 그랄 왕의 마음안에  촉발된 음욕으로 인해 <출산 임박한 아내와 여종들의> 생명 산출이 멈춘 채 심하게 고통 받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음을 시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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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aham’s Deception.20.

1 Now Abraham journeyed from there toward the Negev (the South country), and settled between Kadesh and Shur; then he lived temporarily in Gerar. 

2 Abraham [a]said [again] of Sarah his wife, “She is my sister.” So [b]Abimelech king of Gerar sent and took [c]Sarah [into his harem]. 

3 But God came to Abimelech in a dream during the night, and said, “Behold, you are a dead man because of the woman whom you have taken [as your wife], for she is another man’s wife.” 

4 Now Abimelech had not yet come near her; so he said, “Lord, will you kill a people who are righteous and innocent and blameless [regarding Sarah]? 

5 Did Abraham not tell me, ‘She is my sister?’ And she herself said, ‘He is my brother.’ In the integrity of my heart and innocence of my hands I have done this.” 

6 Then God said to him in the dream, “Yes, I know you did this in the integrity of your heart, for it was I who kept you back and spared you from sinning against Me; therefore I did not give you an opportunity to touch her. 

7 So now return the man’s wife, for he is a prophet, and he will pray for you and you will live. But if you do not return her [to him], know that you shall die, you and all who are yours (your household).”

8 So Abimelech got up early in the morning and called all his servants and told them all these things; and the men were terrified. 

9 Then Abimelech called Abraham and said to him, “What have you done to us? And how have I offended you that you have brought on me and my kingdom a great sin? You have done to me what ought not to be done [to anyone].” 

10 And Abimelech said to Abraham, “What have you encountered or seen [in us or our customs], that you have done this [unjust] thing?” 

11 Abraham said, “Because I thought, ‘Surely there is no fear or reverence of God in this place, and they will kill me because of my wife.’ 

12 Besides, she actually is my [half] sister; she is the daughter of my father [Terah], but not of my mother; and she became my wife. 

13 When God caused me to wander from my father’s house, I said to her, ‘This kindness and loyalty you can show me: at every place we stop, say of me, “He is my brother.”’” 

14 Then Abimelech took sheep and oxen and male and female slaves, and gave them to Abraham, and returned Sarah his wife to him [as God commanded]. 

15 So Abimelech said, “Behold, my land is before you; settle wherever you please.” 

16 Then to Sarah he said, “Look, I have given this brother of yours a [d]thousand pieces of silver; it is to compensate you [for all that has happened] and to vindicate your honor before all who are with you; before all men you are cleared and compensated.” 

17 So Abraham prayed to God, and God healed Abimelech and his wife and his maids, and they again gave birth to children, 

18 for the Lord had securely closed the wombs of all [the women] in Abimelech’s household because of Sarah, Abraham’s wife.

===Footnotes

Genesis 20:2 See 12:11-13.

Genesis 20:2 The word “Abimelech” may be a royal title instead of a proper name. In either case this man is probably the father or grandfather of Abimelech king of the Philistines encountered later by Isaac (26:1).

Genesis 20:2 Sarah was about ninety years old at this time. 

Genesis 20:16 Perhaps about three years’ or a thousand days’ w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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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장 (개요)

여기서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이야기는 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옥에도 티가 있고 태양에 흑점이 있듯이 태양 아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흠 없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의 결점이라도 성경은 그것을 기록함에 공평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자기 아내를 부인한 아브라함의 죄와, 그 때문에 그녀를 취한 아비멜렉의 죄(1, 2).

2. 이 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그와 대화하시고, 그 말씀 가운데서 그의 과실을 보여 주시며(3), 그의 간청을 받아들이시고(4-6), 돌려주라고 지시하신다(7).

3.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대화. ....여기서 아비멜렉은 자기를 속인 아브라함을 꾸짖으며(8-10), 아브라함은 최선을 다해 변명한다(11-13).

4. 이 이야기의 좋은 결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그 아내를 돌려주고(14-16), 아브라함은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내린 심판을 거두어가게 하신다(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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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부인함 (1)(창 20:1-2)

Ⅰ. 아브라함이 근 20년간이나 살던 마므레를 떠나 블레셋 땅으로 이사했다. 

“아브라함이 그랄에 우거하며”(1절). 어떤 이유로 이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소돔의 멸망으로 인해 두려워했든지, 또는 그 멸망으로 그 주위의 땅들이 당분간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든지, 혹은 어떤 유대인 저작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롯이 그의 딸들과 근친상간을 범한 일과 그의 친척들로 인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신앙을 가나안 사람들이 비난함으로써 비통에 빠져 있었기 때문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다. 

물론 아브라함의 이동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나그네와 순례자로서 거하는 이 세상에서는 언제나 동일한 곳에 있기를 기대할 수가 없음을 상기하자.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 우리 자신을 나그네로만 생각해야 한다.

Ⅱ. 전과 같이(12:13) 자기 아내를 부인했다. 

그것은 사실을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모호한 말이었을 것이며, 또한 법적으로는 용인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교제의 파멸이요 모든 허위의 입구가 될 뿐 아니라, 자기 아내의 정절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외에도 그것은 이중적인 고충이었다.

1. 전에도 이와 똑같은 죄를 범해 질책을 받은 바 있었고, 또한 그런 죄악에 빠지게 된 어리석음을 뉘우친 바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죄를 다시 범했다. 선한 사람이라도 기습적인 유혹의 힘, 그리고 육체의 나약성 때문에 죄에 빠질 뿐 아니라, 같은 죄를 다시 범할 가능성까지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배역(背逆)한 자들은 회개하도록 할 것이며, 절망치 않도록 해야 한다(렘 3:22).

2.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약속의 씨인 아들을 임신하고 있었음이 틀림없거나, 그렇게 될 기대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사사기 13장 4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녀를 특별히 돌보아 주어야 했다.

Ⅲ. 그리하여 사라는 위험에 빠졌다. 

곧 “그랄 왕이 보내어 사라를” 그의 궁으로 “취하였다.” 이는 그녀를 자기 침실에 들이기 위함이었다. 

한 사람의 죄가 흔히 또 다른 사람을 죄짓게 만든다. 하나님의 계명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자는 죄의 시초가 마치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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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부인함 (2)(창 20:3-7)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인 예언자들뿐만 아니라, 교회와 계약의 울타리 밖에 있던 자들에게까지도 꿈(이는 하늘의 것이요 초자연적인 것임이 자명하다)으로 친히 계시하셨다. 

그러나 흔히 보면, 요셉을 위한 바로의 꿈, 다니엘을 위한 느부갓네살의 꿈, 또 여기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위한 아비멜렉의 꿈의 경우와 같이 그 꿈속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내포되어 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위해 그 왕을 책망하셨기 때문이다(시 105:14, 15).

Ⅰ. 하나님은 그 여자가 남의 아내이기 때문에, 만일 아비멜렉이 그 여자를 취하면 그 남편에게 부정한 일을 하는 것이 됨을 그에게 일러줌으로써 그 위험을 통고하셨다(3절). 

곧 죄의 위험이니, 그 죄 때문에 죽음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네가 죽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나 그대로 이루어진다. 

고의로 죄를 범하는 모든 죄인들은 저주받은 악인과 죽을 병에 걸린 환자의 경우와 같이, 이미 죽은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악한 자라면 당신은 죽은 자다.

Ⅱ. 아비멜렉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합의하여 자기를 속였고, 남매 이상의 관계였음을 자기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음을 모르고 있었노라고 하나님께 말했다(6절). 

사람이 그 마음에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을 때, 얼마나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는가를 배우자(요일 3:21). 

우리의 양심이 자신의 흠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면, 아무리 함정에 빠져 알지 못하고 모르는 결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재앙의 그 날에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이 전에 그랬듯이(18:23) 하나님께 그 이유를 항변하고 있다.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4절) 

당연히 멸망해야 했던 소돔과 같은 백성이 아니라, 여기서는 죄없는 사람이 문제되고 있다.

Ⅲ.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말에 매우 흡족히 응답하셨다.

1.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청원을 들어주시고, 그가 행한 바는 온전한 마음으로 행한 것임을 인정해 주셨다.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아노라”(6절). 

정직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정직함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이―사람들이 비록 그들에게 반감을 가지며 믿어 주지 않는다 해도―위안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2.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이는 오직 인자한 하나님의 손길로 그를 죄 가운데 행하지 않게 지켜 주셨다는 것을 알리신 것이다. 

이 때문에 아비멜렉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었고, 아브라함은 부정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며, 사라는 그 둘을 동시에 면할 수 있었다. 유의할 것이 있다.

(1) 궁리하여 계획은 세웠으나 결코 실행되지 않는 죄악이 매우 많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악하다고는 하지만 마귀와 사악한 자들의 일처럼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2) 인간이 행하려는 악한 일을 막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죄의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지만, 더 이상의 죄가 없다는 것은 그로 인함이니, 이는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영향력을 끼치사 죄에 대한 저들의 성향을 저지하시거나, 섭리를 통해 범죄할 기회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3) 범죄하지 못하도록 방해받는 것은 큰 자비이며, 누가 그 방해의 도구로 쓰였든 그 일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삼상 25:32, 33).

3. 하나님은 사라를 돌려주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제” 네가 들어서 잘 알 터이니,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7절). 

무지는 결코 악행이 계속될 구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유의하자. 

우리가 만일 무지의 소이로 그릇된 길에 들어섰더라도, 그것이 고의적으로 그 일을 계속하는 구실은 될 수 없다(레 5:3-5). 그가 아브라함에게 의롭고 친절하게 대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하고 귀히 여김을 받는 “예언자”이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언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면 분개하시며, 하나님 자신이 당한 것처럼 여기신다.

(2) 예언자이니 그를 “위하여 기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언자가 줄 수 있는 보답이니, 실로 훌륭한 보답이다. 예언자의 기도는 큰 효험이 있다. 

또한 선한 사람들은 곤경에 빠진 자들을 기도로써 기꺼이 도와주어야 하며, 최소한 자기들에게 베푼 자비에 대해서는 기도로써 보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문젯거리가 되었으므로,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당연했다.

(3) “네가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했으니, 여자를 돌려주지 않으면 그에게 위해가 되겠기 때문이다. 

왕이든 농군이든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자기가 행한 불의의 보응을 받는다는 사실을 유의하자(골 3:25). 어떤 불의도 하나님 앞에서 묵과될 수 없다. 

가이사의 형상을 그 위에 새겼어도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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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 대한 아비멜렉의 처신 (1)(창 20:8-13)

이렇게 꿈속에서 경고를 받은 아비멜렉은 그 경고를 받아들이고, 죄와 그 결과를 진실로 두려워하게 되어, 자기에게 내린 지시에 순종하기 위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다.

Ⅰ. 자기 신복들에게 주의를 주었다(8절). 

아브라함도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자기 권속들에게 어떤 명령을 해 두는 것 이상으로 더 신중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죄와 그 위험성을 깨우쳐 주신 자는 마땅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바를 알려 주어, 그들도 깨우치고 마찬가지로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함을 명심하자.

Ⅱ. 그는 아비멜렉을 책망했다.

1.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심히 책망했다(9, 10절). 

그 일에 대해 아브라함에게 추궁한 논조는 매우 강하면서도 지극히 온유했다. 그 이상 좋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를 비난한 것도 아니요, 모욕 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너의 신앙의 태도냐? 네가 저주할 말은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이제 내가 알았노라. 이런 자들이 예언자라면, 나는 그들을 보지 않기를 원하노라”는 따위의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공정하게 아브라함이 그에게 준 피해를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원망을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1) 그는 자기가 큰 죄의 위험에 빠져 있음을 비로소 알았노라고 말했다. 

양심에 비춰 보더라도 간음죄는 매우 큰 죄다. 소위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자들이 아직 간음을 경시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알자.

(2) 비록 무지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그가 만일 간음죄를 범했더라면, 자기 자신과 그 나라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왕의 범죄가 때로는 그 국가의 재앙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통치자들은 그 백성을 위해서도 죄를 두려워해야 함을 알자.

(3) 그는 아브라함이 자기들의 결혼 관계를 부인했기 때문에 온당치 못한 일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그것을 공정하고 온유하게 말했다. 아브라함에게 거짓말쟁이나 협잡꾼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합당치 않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애매한 언사와 시치미 떼는 일은 변명할 수 없는 나쁜 짓이며, 어떤 경우에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명심하자.

(4) 아브라함이 자기들을 죄에 빠지게 함으로써, 자신과 그 가정에 매우 큰 피해가 된다고 아비멜렉은 생각했다. 

곧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느냐? 내가 만일 너의 최악의 적이었다 해도 이보다 더 악한 보복은 할 수 없었을 것이며,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도를 취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비록 그들이 우정을 가장하고 오더라도 타락한 인간 본성에 즐겁게 여겨지는 것을 가져오는 자들은, 사실상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불친절을 가져다 주는 자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5) 아비멜렉은 정직한 사람이 어찌하여 자기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험한 존재로 의심했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10절) 

그 여자가 너의 아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아는 것이 어찌하여 네게 위험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우리의 선함을 의심하는 것은 우리의 위대성을 멸시하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2. 아브라함의 초라한 변명.

(1) 그는 그 지방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고 있던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11절). 

(비록 그렇게 생각하는 적절한 이유는 밝히지 못하지만) 그는 속으로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나를 죽일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곳에서는 선이란 거의 기대할 수 없다(시 36:1 참조).

②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지방과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마 그들은 우리가 붙여 놓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미루어 판단해 버리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좋지 못한 일이며, 우리를 쉽사리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마 7:1).

③ 무자비하고 남의 흠을 비난하기 좋아하는 일은 다른 많은 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죄다. 

일단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그들에게 가장 부당하고 그리스도교 정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악한 생각이 먼저 들지 않는다면 악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어느 면에서는 아브라함의 말대로 그녀는 그의 누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새빨간 거짓말은 면하려고 변명했다(12절). 

어떤 이는 그녀가 롯의 친누이며, 롯은 자기 “조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형제 롯”이라 불리고 있으며(14:16, KJV에는 “his brother Lot”이라고 되어 있음─역주) 사라도 그의 “누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라는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상대방은 그녀가 누이니까 아내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알았다. 따라서 그 말은 속일 의도가 있는 모호한 언사였다.

(3) 아브라함은 자기들이 처음으로 거류자가 되었을 때부터 아내와 합의하여 전부터 말해 오던 습관임을 강력히 내세움으로써, 아비멜렉을 계획적으로 모욕했다는 혐의를 면하려 했다(13절).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우리는 그렇게 (말하기로) 정했노라”.

① 우리가 어디를 방황하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함을 유의하자.

② 해외여행을 하여 외국 사람들과 많이 교제하는 자들은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듯이 그 지혜는 비둘기의 결백함으로 조절되어야 함이 필수 요건임을 기억하자. 

(내가 알기로는 하나님께서는 서로간의 관계를 부인한 그 죄로 물든 결약 때문에 그들을 벌하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자식 축복을 거부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들이 결혼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시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바는, 아비멜렉이 그들에게 이런 책망을 한 후 다시는 그런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며, 그리하여 “사라가 잉태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다(2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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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 대한 아비멜렉의 처신 (2)(창 20:14-18)

Ⅰ. 왕으로서의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보여 준 친절. 아브라함의 질투심이 그 얼마나 부당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는 그들이 사라가 자기의 아내임을 알면 자기를 죽이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그것을 알게 되자 그를 죽이기는커녕 친절을 베풀었다.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책망으로 인해 두려워서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심을 보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자기들에게 머물 것을 요청하면서, 그 땅 어디든 아브라함이 좋아하는 곳에 거하라는 왕의 칙허를 주었다(15절).

2. 왕으로서의 선물, 곧 “양과 소와”(14절) “은 천 개”(16절)를 그에게 주었다. 이것들과 동시에 사라를 돌려주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 자기의 부정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그렇게 했다. 

사람들이 법궤를 억류하자 재앙을 당하게 되니, 그것을 돌려줄 때 선물을 함께 보냈다. 반환 때에는 그것에 뭔가를 덧붙여 반환해야 한다고 율법이 규정하고 있다(레 6:5).

(2) 아브라함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기도를 팔고 사는 것인 양 하지 말고 우리에게 신령한 것을 거두게 하는 자들에게 친절을 베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전 9:11). 

하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자와 관련을 맺고 또 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자를 친구로 삼는 것은 우리의 지혜에 속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3) 그는 사라에게 좋은 교훈을 주었다. 

곧 그의 남편(아비멜렉은 그의 “오라비”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그렇게 부름으로써 그녀를 책망하기 위해서다)이 그녀에게는 눈가리개가 되어야 하니, 다시 말해서 그녀는 다른 사람을 주목해서도 안 되며 남들이 자기를 주목해 주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고 했다. 

배우자란 서로에게 눈가리가 되어야 함을 명심하자. 결혼의 언약은 욥의 언약과 같이 눈과 맺는 언약이다(욥 31:1).

Ⅱ.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베푼 예언자로서의 친절. 그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17, 18절). 

이 영광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했으니, 아비멜렉이 사라를 돌려주기는 했어도 역시 그가 당한 심판은 아브라함의 기도에 의해서만 제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리암은 모세를 몹시 비방했지만, 모세가 그녀를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녀의 병을 고쳐 주셨고(민 12:13), 욥을 슬픔에 잠기게 하던 욥의 친구들은 욥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해하셨던 것이다(욥 42:8-10).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들과 화해하시는 것을 아브라함의 손에 맡기셨다. 

그러므로 선한 자의 기도는 위대한 인물에게 자비가 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유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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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그랄에서 아내를 빼앗김

[1-2절]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아브라함은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수풀[테레빈스 나무들] 근처에 거하다가(창 13:18; 18:1) 남방으로 옮겨 가데스와 술 사이에 살다가 그랄에 우거하였다. 원문의 뜻은 그러하고 대부분의 영어성경들도 그렇게 번역하였다. 

남방(‘네게브’라고 부름)은 헤브론에서 애굽 시내와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창세기 15:18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의 경계를 증거했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땅은 남쪽으로는 애굽 강 혹은 애굽 시내에서부터 북쪽으로는 큰 강 유브라데까지이었다. 그랄은 남방(네게브)의 북쪽에, 후에 블레셋 땅이라 불린 곳에 있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그랄에 거하면서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말하였다. 사라는 89세가 된 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자기의 아내를 빠앗을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말 때문에 그는 아내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겼다. 그가 이전에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애굽에 내려가 우거할 때도 그 아내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창 12:15), 이번이 두 번째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으나 거짓말함으로써 자기의 목숨은 보호했는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자기의 아내를 잃었다. 그는 자기 목숨과 아내를 맞바꾼 셈이 되었다. 거짓말은 죄악이다. 사람이 범죄하면 어려운 일을 당한다.

[3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하여 낭패를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우셨다. 그는 그 날 밤 아비멜렉에게 꿈에 나타나 네가 남의 아내를 취하였으므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꿈에 말씀하시는 것은 옛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한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죽음으로 위협하셨다. 그것은 남의 아내를 취한 것이 죽을 만한 큰 죄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레 20:10). 더욱이 사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들을 출산할 자이었다. 죽음의 위협은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들 중의 하나이다. 아브라함이 비록 연약하여 거짓말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비상하게 개입하심으로 위기에서 그와 그의 아내 사라를 건지셨고 보호하셨다.

[4-7절]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여인을 만지지]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6절에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라는 원어는 ‘여인을 만지지 못하게 함’이라는 뜻이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자신이 아직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하였고 자신이 그를 아내로 삼은 것이 의로운 일이고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했다고 변호했다. 아비멜렉은 상당히 도덕적 인물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도 도덕적 인물이 인정을 받고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도 그가 비교적 양심적인 자임을 인정하셨다. 그래서 그를 막아 그로 ‘그에게 범죄치 않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죄는 무슨 죄나 다 하나님께 대한 죄이다.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아내와의 불륜이 큰 악이며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창 39:9). 다윗은 밧세바를 범한 죄를 회개하면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였다(시 51:4). 본문은 간음이 큰 죄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소개하셨다. 또 그는 그가 그의 아내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와 그에게 속한 자들이 다 정녕 죽을 것이라고 위협하시며 아브라함을 특별하게 위하셨다.

[8-9절]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아비멜렉의 모든 신하들은 심히 두려워하였다. 아비멜렉은 남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큰 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왕으로서 그런 죄를 지으면 온 나라가 죄에 빠진다고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양심에서 나온 판단이며 세속사회에 주신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였다.

[10-13절]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異腹)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자비]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은 그랄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서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세속사회에서 사람들의 도덕적 행위를 기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잠 16:6). 그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하는 죄를 지었다.

사라가 그의 이복누이이기는 했다. ‘나의 이복누이’라는 구절은 원문에 ‘나의 아버지의 딸이지만 나의 어머니의 딸은 아닌 나의 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사라는 그의 아내가 되었으므로 ‘나의 누이’라는 말은 사실상 거짓말이었다.

[14-16절]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너를 위해 눈을 가리우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아비멜렉은 양들과 소들과 노비들과 함께 은 천 개를 아브라함에게 주었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냈다. 아브라함은 연약 때문에 당했던 그 위기에서 구원을 얻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상한 개입으로, 그의 크신 긍휼과 돌보심으로 된 일이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다.

[17-18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닫으셨음]이더라.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사라 때문에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에게 내리셨던 징벌을 거두어주셨다.

창세기 2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하지 말자. 아브라함은 그랄에 우거하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거짓말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사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거짓말하게 될 것이다. 또 우리가 거짓말하는 죄를 지으면 아내를 빼앗기는 것 같은 어려운 일도 당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말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내세를 확신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31).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비상한 도움을 항상 믿자. 

아브라함은 비록 자신의 부족과 연약 때문에 아내를 빼앗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아셨고 비상하게 그를 도우셨다. 그는 그 일에 개입하셨다. 그는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에 나타나셨다. 그는 죽음의 위협으로 그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도로 돌려주게 하셨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여 때때로 실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신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과 도우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된 우리 모두의 큰 복이며 특권이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로 오직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아는 자이었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생활을 했다. 오늘날 말로 하면, 그는 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또 가정예배의 단을 쌓는 일을 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가장 복된 일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복을 늘 감사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되는 길은 모든 죄를 버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막 1:15).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고 증거했다(요 1:12).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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