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장....
[[임마누엘 하나님의 노아홍수 사건 전개 스토리]
.....[이 아들이 안식을 가져오리라..하심따라 이름 지음 받은] 노아는 500세때에 이르러서야 셈-함-야벳을 낳았으며, 그 무렵에 노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시작하심 : 그 내용은, (홍수 통한) 멸절심판 예고였으며, 주님의 은총 입은 노아가 이를 벗어나 피하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고페르 나무 방주...아마도 바닷가가 아니라, 산중 숲속에서!!>를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규격과 구조 그대로>만들라 명하심.
.....노아는 <하나님 말씀따라, 무려 백년 간(삶으로 순종의 본을 보임, 곧 말씀하신 그대로 준행함의 합당한 순종의 본을 보임으로써 (주위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음!!) 계속 방주를 준비한 후에> 육백세 때 <더 상세한 구체적 지시를 다시 주셨음>...주님이 마음에 감동을 불어넣어주심 인해 노아에게 나아오게 하심따라 노아에게 나아오는 들짐승-가축-새들-땅에기는 것들의 쌍쌍을 방주내로 인도, 합당한 위치-자리 배정 + 먹을 식량 준비를 (주께서 미리 지시하셨음)마친 후 방주 내로 <권속들과 함께>들어가라 하심따라 들어간(2월10일) 7일 후 하나님이 친히 방주 문을 닫으심[600세 때, 2월17일에 홍수 시작됨] ...하나님이 친히 사공 되사 행하셨음)...즉,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내로 들어간지 7일후부터 시작하여 40일간 가장 높은 산 봉우리 위로 1층 높이(약6.7미터)까지 물이 차올라 창일케 됨-->그후 불게 하신 바람 인해 물이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무려 150일 지나서야 그때부터 땅에서 물이 감소하기 시작하였고 7월17일에 <그냥 저절로 떠 오르도록 고안하셨었음>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고, 10월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나타남..601년 1웗1일 땅에서 물이 걷힘..601년.2월22일에 땅이 말랐음...총 1년5일(370일)만에 땅이 말랐음..하나님 지시따라 방주를 나오고, 하나님께 번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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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하늘에 계신> 하나님(엘라흐 샤마인..단2장) ::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감추인> 은밀한 모든 것을 드러내/나타내어 열어 보여주사 깨닫게 하시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심의 순종 통해] 해결/돌파케 하시는 <지혜와 계시의>하나님...
***노아시대 홍수로도 죄악 관영한 세상<땅의 혈육 있는자들>의 패괴함과 그 타락한 속성을 다 해결 불가..(내적 생명 거듭남/갱신 요청됨)...그러나, 지혜의 하나님의 성육신-대속 사역 인해, 하나님 독생자 구주 십자가 보혈은 <믿음으로 거듭난> 참되게 믿는 자로 하여금 진정한 구원과 주님의 의<=거듭난 자로서 주님을 날마다 더 추구하며 그 안에 살아감 통해, 주님<복음 말씀> 믿고, 살고 누림> 통해 하나님 나라(성령 내주하사 이끄심 안에서 누리는 바, 의와 평강과 희락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그 자체의 삶 누림을 열어주심!! .. wonderful savior!!
[잠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0-27..*20.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잠23: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1.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9.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10.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11.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12.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13.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15.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9.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20.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2.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27.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28.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29.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34.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사람의 죄악
1. [272.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하나님 경외함의 길-진리-생명 버린, 참 생명 아니라 세상가치 추종하는, 타락한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사람"이란 단어 어원은 (한국의 경우) 15세기부터 발견됨...살자의 "살"에 "옴"(ㅗ ::아래 아)가 결합된 형태...살다의 파생명사가 바로 사람, 삶(생명..생명 그대로 온전히 사는 삶이 "생명의 삶", 한자어로 생활인 것이니, 근본인 생명이 중요)...생명이란 합목적적 존재로서 존재 되게 하는, 그것을 주셔서 얻고 받은 바 그 목적따라 그것으로 사는 (에너지 생성-가동 체계 및 작동) 근본이니, 바로 그렇게 그 근원을 알고 존재 목적에 부합하게 사는 자가 참 사람인 것..
2. 하나님의 아들들[=주 임재 앞에서 <주 경외함의 참되고 진정한 예의따라> 사는 자, 아들은 <고귀>의 의미]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주 임재 의식으로 주 앞에서 [회개하며]올곧게 살아감의 일편단심의 의지가 약하고 분산되는 마음이 그 한 특성 이룸...딸은<비천>을 의미...삶의 참 의미 따름 떠나 <세상 일락/매춘부적 가치 추구>..자기 만족이 없는, 두리번거리며 비교하기 좋아하며 성형 추구따라 충동적 결정, 욕정 유발 위한 노출증+ 매춘부적 화려한 겉치장이 그 한 특징을 이룰 수 있음]을 보고(= 라아..바라보다,,조사하다..곰곰이 뜯어보며 감상하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이는 또한, 반복되는,<육신의/뱀의 유혹따라> 선악과 취함의 한 행태...한 사람이 자기 눈에 들어 오는/좋아보이는 모든 여자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이....제멋대로/육체의 소욕따라 아내 삼아 소유하고 있음]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사람의 패괴/부패-제멋대로 행악함이 도를 넘어섰기에, 위협/경고의 말을 발하심]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타락한 몸[=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해 악순환 겪음으로써, 사탄의 죄의 몸에 넣어준 (죄성/육) 을 주입 받은 그대로]주 임재 떠나 육적 충동따라 자행자지함으로 Q의 영을 슬픔-근심 유발]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당장의, 심판 통한 멸절 처리를 유보하고 회개하여 주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심((특히, 백여년간 계속되고 있었던 노아의 방주 짓는 망치 소리는 경고였다 ==>해결책은 오직 인생의 허망함 깨닫고 복음 제시받아 회개함으로써, 주 보좌 앞에 나아가 자기 죽음 경험함의 경배-예배 통한 날마다 죽고 영생 안으로 돌아오는 것]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gigant..거인족, 강탈/습격자/악당/불한당들..Q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낳은,..가나안 지역의 아낙자손도 이들의 일종...오늘날의 영웅/용사/짐승남/골리앗-스타]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악명...예>홍수 후에는 니므롯이 대표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공동번역 창6:1-4).1. 땅 위에 사람이 불어나면서부터 그들의 딸들이 태어났다. 2. 하느님의 아들들이 그 사람의 딸들을 보고 마음에 드는 대로 아리따운 여자를 골라 아내로 삼았다. 3.그래서 야훼께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입김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하리라." 하셨다. 4 그 때 그리고 그 뒤에도 세상에는 느빌림이라는 거인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옛날부터 이름난 장사들이었다. ----노아 당시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네피림(불한당/영웅-스타)이 되려 하거나 아이돌 됨 추구는 육체의 소욕 유발하는 아낙 자손과 매춘부 됨 추구하는 것에 다름 없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마음이 청결한자-Q을 볼 것((Q께, 그분의 말씀에 마음 중심의 포커스를 맞춤 인해 [참된 생명의 결과물을 산출하는] 생각과 계획이 수립됨...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구주의 대속 소망 + 약속 말씀따라 <일심의>믿음으로 주 임재 안에 살며 참 사랑+겸손으로 순종/동행..상호 교통]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족보...<대명사의 변화..땅의 만물의 대표자, 사람 -->혈육 있는 자..사람의 부패/타락/포악함이 온 땅에 악한 영향력 끼쳣기에, 함께 처리하려 하심>
9. [366. 어두운내눈밝히사] [368. 주예수여은혜를내려주사] [369. 죄짐맡은우리구주] [456.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494. 만세반석 열리니]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타밈..온전/순전..점흠티주름없음..<주 없이 살 수 없음(갈망/목마름)-주님만이 내 삶의 의미/전부 되심-주님이면 충분함 인정/추구..(주님의 다함없는 충만한 사랑으로 비추임+기름부음 받은) 주 앞에 선 단독자로서, 나 만이라도 주님을 합당하게(올바른 위치ㅡ 올바른 각도로) 사랑하며 섬기리라> 결심따라, 주 말씀 계명으로 비췸 받고 돌아보아 신중하게, 즉각 회개하며 처리함-->오직 정결케 씻으시는 구주 보혈 믿고 주님 앙망함 + 나는 죽고 JC의 부활생명으로 <거리낌 없는, 담대한 친밀함 안에서 알며-사랑하며-심정 알아드리며-섬기며>사는 거듭남의 구속신앙 안에 상호 거함 누림을 의미..자비-긍휼-은혜의 Q이 친히 <노아의 거할 장막이 되사, 또한 바로 그렇게 여겨주시며 이루어 주심<의롭다 하시며, 완전함을 날마다 이루어 주심>)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오늘 믿는자 그대의 실존적 위치-각도는 어떠한가..누구나 범죄의 가능성은 있으나, 주께서 제시한 바, 깨닫는 죄에 대해 즉각적으로 인정-통회-자복-회개-구주 앙망하며 주 이름 부름으로 보혈에 씻김/정결함 구함 통해 새롭게 열어 가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과의 교통 안에 사는 삶>을 누림은 누구나 그 언제나 가능...그러나, 함은 가인처럼 고집스레 거절...오히려 완고하게 고집부리며 남탓하며, 원망-분냄-비방/비아냥의 잘못된 선택을 견지하였던 바, 셈의 영적 성숙을 위한 대적자/훈련관/고문관 역할을 자초했던 것 같다...야벳은 셈의 장막에 거함 통해 번성하지만, 나중에 적그리스도를 산출 기반이 됨.((그러므로, 나는 누구에게 속한 자이며 속할 것인지 아침마다 말씀 안에서 분별/선택하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내적..주님 말씀 버림<치우침/후패함> +회개 없음<생명에서 끊어짐/방향성 상실>]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외적..강포 :: Q경외함/부모 공경함 없음 + 살간도거탐]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잣나무, 전나무, 또는 삼나무...그 조성과 재질이 좀체로 변함 없는, 견고한>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하늘 새 예루살렘의 모형, 그리스도의 몸..그 안에 방들이 있다!!
.....역청pitch은 [오늘날은 석유나 석탄으로부터 추출하여 만들어지는데]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송진(resin)을 채취하면서 시작된다. 비스듬히 홈을 파 송진이 흘러내리게 한 후 나무밑에 용기를 두어 채취한다. 송진채취가 끝난 후 나무를 잘게 잘라 흙으로 덮은 후 천천히 태워 숯(charcoal)을 만든다. 역청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는 송진을 끓이면서 숯가루를 배합하는 것이다. 숯가루의 배합율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지는 역청들이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청은 목조선박의 방수를 위해 칠해졌다.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그대는 지금 어디 몇층에 머무르는가..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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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ruption of Mankind.6.
1 ow it happened, when men began to multiply on the face of the land, and daughters were born to them,
2 that the [a]sons of God saw that the daughters of men were beautiful and desirable; and they took wives for themselves, whomever they chose and desired.
3 Then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strive and remain with man forever, because he is indeed flesh [sinful, corrupt—given over to sensual appetites]; nevertheless his days shall yet be [b]a hundred and twenty years.”
4 There were Nephilim (men of stature, notorious men) on the earth in those days—and also afterward—when the sons of God lived with the daughters of men, and they gave birth to their children. These were the mighty men who were of old, men of renown (great reputation, fame).
5 The Lord saw that the wickedness (depravity) of man was great on the earth, and that every imagination or intent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ere only evil continually.
6 The Lord [c]regretted that He had made mankind on the earth, and He was [deeply] grieved in His heart.
7 So the Lord said, “I will destroy (annihilate) mankind whom I have created from the surface of the earth—not only man, but the animals and the crawling things and the birds of the air—because it [deeply] grieves Me [to see mankind’s sin] and I regret that I have made them.”
8 But Noah found favor a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9 These are the records of the generations (family history) of Noah. Noah was a righteous man [one who was just and had right standing with God], blameless in his [evil] generation; Noah walked (lived) [in habitual fellowship] with God.
10 Now Noah became the father of three sons: Shem, Ham, and Japheth.
11 The [population of the] earth was corrupt [absolutely depraved—spiritually and morally putrid] in God’s sight, and the land was filled with violence [desecration, infringement, outrage, assault, and lust for power].
12 God looked on the earth and saw how debased and degenerate it was, for all humanity had corrupted their way on the earth and lost their true direction.
13 God said to Noah, “I intend to make an end of all that lives, for through men the land is filled with violence; and behold, I am about to [d]destroy them together with the land.
14 Make yourself an [e]ark of [f]gopher wood; make in it rooms (stalls, pens, coops, nests, cages, compartments..믿는 자마다 주님 거처로서 방이요 지체 되었음!!) and [g]coat it inside and out with pitch (bitumen).
15 This is the way you are to make it: the length of the ark shall be three hundred cubits, its width fifty cubits, and its height thirty cubits (450’ x 75’ x 45’).
16 You shall make a [h]window [for light and ventilation] for the ark, and finish it to at least a cubit (eighteen inches) from the top—and set the [entry] door of the ark in its side; and you shall make it with lower, second and third decks.
17 For behold, I, even I, will bring a flood of waters on the earth, to destroy all life under the heavens in which there is the breath and spirit of life; everything that is on the land shall die.
18 But I will establish My covenant (solemn promise, formal agreement) with you; and you shall come into the ark—you and your [three] sons and your wife, and your sons’ wives with you.
19 And of every living thing [found on land], you shall bring two of every kind into the ark, to keep them alive with you; they shall be male and female.
20 Of fowls and birds according to their kind, of animals according to their kind, of every crawling thing of the ground according to its kind—two of every kind shall come to you to keep them alive.
21 Also take with you every kind of food that is edible, and you shall collect and store it; and it shall be food for you and for them.”
22 So Noah did this; according to all that God commanded him, that is what he did.
===Footnotes
Genesis 6:2 This phrase has been interpreted as a reference to: (a) royalty or rulers possessed by fallen angels, (b) the descendants of Seth who called upon the Lord (see 4:26), or (c) fallen angels (cf Job 1:6).
Genesis 6:3 This may refer to the time given man to repent before the flood, or to the normative human life span after the flood.
Genesis 6:6 The expressions of regret and grief seen here do not mean that God acknowledged the creation of man as a mistake on His part. God is omniscient, knowing all things (Ps 139:16) and He knew that mankind would come into sin and wickedness. God grieved over the sin of man because it was appropriate for Him to do so.
Genesis 6:13 Enoch (the descendant of Seth, not Cain) had warned these people (Jude 14, 15); Noah had preached righteousness to them (2 Pet 2:5); and God’s Spirit had been struggling with them (Gen 6:3). Yet they had rejected God.
Genesis 6:14 The word “ark” comes from a Latin word (arca) for a box or chest. The design of the ark matched its purpose, which was not to travel through the water efficiently, but to be stable and have the greatest possible capacity for cargo. Also, such a vessel could be constructed relatively quickly, because there would be no need to form the wood used for the hull into efficient curves to maximize speed.
Genesis 6:14 The type of wood is unknown. The name of the wood is a transliteration—not a translation—of the Hebrew, with no connection to the English word “gopher.”
Genesis 6:14 This prevented water from seeping into the ark through the seams between the wooden planks, and may also have served to protect the wood from becoming saturated with water. Coating the ark with pitch on the outside as well as the inside was very practical. One of the worst jobs on the old wooden ships was to re-coat the inside bottom of the hull when water had seeped in, because the crewman had to quickly pave hot pitch on the hull under the water, which cooled the pitch as he worked and made the job all the more difficult—thus the nautical saying, “the devil (referring to the seam in the hull planking) to pay (i.e. pave with pitch).” The problem was eliminated or minimized on the ark, but Noah, due to his complete inexperience with sea-going vessels, would not even have known about the potential problem himself. It was imperative for him to have absolute faith in God, and to follow God’s directions word for word.
Genesis 6:16 Or 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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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개요)
옛 세계에 관한 기사 가운데서 가장 특기할 만한 사실은 세계적 대홍수로 그 세계가 멸망했다는 것이다.
그 기사는 본 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1. 그 사악한 세상의 많은 죄악(1, 5, 11, 12).
2. 그 많은 죄악에 대한 의로우신 하나님의 정당한 분개와, 그것을 벌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결심(6, 7).
3. 하나님의 종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
(1) 그의 인물됨(8-10).
(2) 하나님의 뜻을 그에게 알려줌(13, 17).
(3) 노아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방주를 짓게 하신 하나님의 지시에 대해(14-16).
(4) 다른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기 위해 그를 쓰신 일에 대해(18-21).
(5) 노아가 자기에게 내리신 지시에 순종함(22).
옛 세계에 관한 이 기사는 우리를 훈계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며, 거기에서 결국 새 세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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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창 6:1-2)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그리고 악한 세상에 대한 경고가 되기 위해 옛 세계가 멸망한 이야기에 접하기 전에 그 세상의 타락성과 하나님에 대한 배신과 반항에 관한 기사를 우리가 충분히 보게 된다. 그 멸망은 절대 주권에 속한 행동이 아니라 필연적 정의에 속한 행동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의 영예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옛 세계에 악을 가져오게 한 원인이 된 두 가지 사실을 보게 된다.
Ⅰ. 인류의 증가.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축복의 결과였으나(1:28), 인간의 타락은 이런 축복을 남용하고 왜곡시켜 그 축복은 저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죄는 하나님의 자비를 더욱 큰 죄악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악인이 많아지면 죄도 많아진다”(잠 29:16). 죄인이 많아지면 그만큼 죄악도 더 많아지는 것이며, 범법자들이 번성할수록 사람을 대담하게 만드는 법이다.
전염병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가장 세력을 떨치며, 죄악은 파급력이 있는 문둥병이다.
따라서 신약의 교회에서는 제자들의 수가 많아졌을 때에 원망하는 말도 야기되었던 것이다(행 6:1).
민족의 수효가 증가된다고 하여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을 더하게 하는 것은 아님을 볼 수 있다(사 9:3).
수가 많은 가정은 악한 가정이 되지 않도록 잘 다스려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Ⅱ. 잡혼(2절).
“하나님의 아들들(즉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신앙 고백자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지라”.
사람의 딸들은 속되고 하나님에 대해 이방인들이며, 경건치 못한 자들이었다.
셈의 자손들은 마땅히 그들 자신의 순결을 보존하며 배신을 증오해야 했지만, 자신들을 지켜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으니, 파문당한 가인의 종족과 혼합된 것이다.
그러면 이런 결혼의 잘못은 무엇인가?
1. 그들은 단지 외모만으로 상대를 택했다.
2. 저들은 저들 자신의 타락한 욕정이 시키는 대로 택했다.
그들은 누구의 충고를 듣거나 의논할 것도 없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를 아내로 삼았다.
3. 그러나 그 결과는 악하게 드러났으니,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고 이방인 아내를 취했다”(고후 6:14)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인에게는 금지된 사항이었다(신 7:3, 4).
그것은 솔로몬의 변절의 불행한 계기가 되었고(왕상 11:1-4),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사악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스 9:1, 2).
신자들은 그들 자신이나 그 자녀들의 결혼에 있어서, 신앙 고백의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함을 알자.
선한 자가 악한 자를 개심케 하는 것보다는 악한 자가 선한 자를 더 속히 타락시킨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동의 없이 결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하나님의 원수들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면 그의 자녀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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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패 (1)(창 6:3)
이것은 이방의 여인들과 결혼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의 표징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이 그들에게서 물러나리라고 위협하신다.
신앙에 위배된 결혼으로 그들은 비탄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은 심판으로 벌받게 된다.
옛 세계의 큰 악의 또 다른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여호와의 영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의 신앙이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그들에게 경고하셔서 성령을 진노하지 않게 하고 기도로써 늘 성령과 함께하도록 했었다.
이 구절 가운데서 다음 사실을 살피자.
Ⅰ.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영으로 사람과 함께 할 것만을 결심하지는 않는다.
당시에 하나님의 성령은 노아의 전도를 통해(벧전 3:19, 20), 또한 양심의 가책을 통해 인간들과 함께하셨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헛되게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영이 영원히 함께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주목해야겠다.
1. 성령은 양심의 가책과 권면으로써 죄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신다.
2. 비록 성령은 오랫동안 함께 한다 해도, 훼방하고 억제하고 거부하면 영원히 함께 하지는 않으신다(호 4:17).
3. 은혜의 성령이 떠난 자들은 파멸을 재촉하게 된다.
Ⅱ. 이와 같은 하나님의 결단의 이유.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이는 그들이 어찌할 수 없이 타락하고 육욕적이며 음탕해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흑인이 자기의 피부를 바꿀 수 있겠는가? “그도 역시”, 즉 그 모두가 한결같이 육체의 오욕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것이 있다.
1. 성령이 깃들이기를 거부하고 그것을 헛되게 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요 육체를 따르려는 영혼의 경향 때문이다.
2. 죄인이 오랫동안 그런 <세상적, 육적, 마귀적, 반역적!!>관심에 집착해 성령에 반대하고 육체의 편을 들게 될 때, 성령은 마땅히 그 역사를 그만두고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다. **조심하라, 성령과의 동행을 박탈당한 자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내주(內住)를 잃어서는 안 된다.
Ⅲ.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된 집행 유예.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그토록 오래도록 그들이 받아 마땅한 심판을 연기하노라. 돌이켜 회개하면 심판을 면할 여유를 주노라.”
정의는 “그들을 잘라 버리시오”라고 하고, 자비는 “일 년만 더 기다려 주시오”라고 한다.
면할 수 있는 자비가 정의보다 우세를 지키는 한 120년 동안 집행 유예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인내하고 관용하는 시간은 상당히 길지만 항상 한계가 있다.
집행 유예가 용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비록 하나님께서는 대단히 오랫동안 참기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참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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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패 (2)(창 6:4-5)
여기에서 옛 세계의 타락상에 관한 기사를 계속 보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짝을 짓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즉시 그들을 없애버리지 않으시고, 이와 같은 결혼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며 그 자녀들은 어느 쪽을 닮을 것인가를 보기 위해 기다리셨다.
그리고 (흔히 그렇듯이) 그들은 가장 악한 쪽을 닮게 되었음이 드러났다.
Ⅰ. 그들은 남을 압박하고 폭력을 가하려는 유혹에 빠졌다.
그들은 장부였고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자기들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에 비해 너무 강했으므로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무엇이든 행할 수 있었다.
무엇으로 그와 같이 했는가?
1. 그들에게는 아낙의 아들들같이(민 13:33) 큰 체격이 있었다.
2. 앗수르 왕들같이(사 37:11) 위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그들은 “생존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을 휘두르게 되었다(겔 32:27).
또 무장하여 모든 이웃의 권리를 대담하게 짓밟고, 의롭고 거룩한 모든 자들을 유린했다.
남들을 압제할 수 있을 만한 대단한 힘을 가진 자들이라도, 자신을 억누를 만한 힘은 좀처럼 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큰 힘은 사람들에게 그만큼 큰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이같이 타락한 민족은 그들의 조상이 선행과 믿음으로 획득한 영광을 경시했으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멸망케 하는 것으로 위대한 이름을 삼았다.
Ⅱ. 그들을 반증해 주는 고소(5절).
여기에 제시된 증거는 더 이상 논의할 여지가 없이 명백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셨으니, 그것은 천 명의 증인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녀들에게 있는 모든 죄악을 보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곧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감찰하신 바는 무엇일까?
1.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을 보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활 속에 흐르고 있는 죄악의 흐름을 감찰하시고, 그 흐름의 폭과 깊이를 감찰하셨다. 이것을 앞 절과 연결지어 살펴보자.
압제자들은 “용사요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관영한” 것을 보셨다.
가장 악명 높은 죄인들이 유명한 사람이 된 때에 사람의 죄악도 실로 대단한 것임을 알아야겠다.
악한 자가 그 사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사악함 때문에 추앙을 받을 때는 만사가 악한 것이다.
위대한 자가 악해질 때 죄악은 커진다. 그들의 죄악이 커졌다는 것은 온갖 민족과 모든 지역에 죄가 범람했다는 것이다.
그런 죄악은 본질적으로 가장 무성하고 극악스러우며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는 것이다.
죄악은 뻔뻔스럽게도 하늘을 무시하고 범해졌을 뿐 아니라, 그 죄악을 제지하거나 벌을 가할 능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자들마저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셨다. 죄인들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온갖 죄악을 다 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이 세상을 가장 잘 아는 자라도, 또 세상의 많은 죄악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이 세상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며, 아무리 큰 죄라 하더라도 올바르게 심판하실 것이다. 그의 심판은 결코 거짓될 수 없다.
2. 그는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근원을 감찰하셨다.
누구든지 “인간의 죄악이 관영”한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죄가 소돔과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그 이상의 것을 보셨다. “그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이것은 쓴 뿌리, 즉 더러워진 샘이었다.
세상의 온갖 횡포와 압제, 온갖 향락과 방종이 그 본성의 부패에서 흘러나왔다. 욕심이 그것들을 잉태했다(약 1:15; 마 15:19 참조).
(1) 마음이 거짓되고 절망적일 만큼 사악해졌다. 도의는 부패했고, 습성과 성질도 악해졌다.
(2) 마음의 생각도 헛되었다. 생각이란 가끔 고정관념으로 착각된다. 고정관념이란 오도된 것을 의미한다.
환상의 작용이란 언제나 헛되거나 천박한 것이며, 거짓말투성이요 전설 같은 이야기다.
(3) 그 마음이 꿈꾸는 착상도 헛된 것이었다. 그들의 계획과 책략 역시 사악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행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그저 모험으로 행하는 자처럼 단순히 부주의로 악을 행했던 것이 아니다.
어떤 해독을 끼칠 것인가 하는 방안을 모색하면서 고의적이고도 계획적으로 악을 행했다. 그것은 참으로 악했던 것이다.
오직 악만을 꿈꾸었으니, 항상 사악한 것을 생각했고 그 모든 착상이 악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는 선이란 것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니, 죄의 흐름은 가득 차고 강하며 끊임이 없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다(시 14: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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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위협에 처한 인류(창 6:6-7)
Ⅰ.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전혀 무관심한 방관자처럼 보신 것이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마음에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한 자처럼 보셨다. 반항적으로 불순종하는 자식들의 어리석음과 고집을 보는 친절한 아버지처럼 하나님이 보신 것이다.
이는 그를 진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슬프게 하여, 차라리 자식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나타난 표현은 매우 특이하다. “여호와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그토록 고상한 능력과 재능을 지닌 피조물을 만드시고 그를 위해 안락하고 편안한 거처가 되도록 지으시고 꾸미신 땅 위에 그를 두셨는데, 그렇게 한 것을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인간적 표현법을 따라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불변하는 영광과 축복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1. 이 말은 하나님에게 어떤 감정이나 근심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세상의 그 무엇도 영원하신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다).
죄와 죄인들에 대해, 곧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죄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반역하는 죄인들에 대해 하나님의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노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죄로 압박을 받으며(암 2:13), 괴로움을 당하고(사 43:24) 근심케 되며 상하며(겔 6:9), 본문에서처럼 한탄하신다.
이것은 인간이 친절을 베풀었던 자들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고 모욕을 당할 때에 그 베푼 친절을 후회하고, 다시는 면전에서 야유하고 마음을 쏘는 능구렁이를 품속에 품은 자들을 돌아보지 않겠노라고 말하게 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죄를 미워하시는데 우리가 죄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 죄가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죄로 인해 마음에 근심하고 찔림을 받지 않을 것인가?
이 같은 생각을 할 때 우리는 겸손해지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그토록 근심케 하고 슬프게 했던 바로 그 분을 바라보게 된다(슥 12:10).
2. 이 말은 하나님의 심경의 어떤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욥 23:13) 그는 “변함도 없으시다”(약 1:17).
그러나 이 말은 그의 길의 변화를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올바르게 지으시고 나서 “쉬어 평안하였으니”(출 31:17),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 자신의 솜씨를 기뻐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이 배신하고 말았으니, 진노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변한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그러나 그가 인간을 구원하신 일을 한탄하신 것은 결코 아니다(비록 이것이 보다 더 큰 희생을 치른 역사이기는 했지만). 이는 구속의 위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별하고 효험 있는 은혜를 지금도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롬 11:29).
Ⅱ. 죄악으로 인해 인간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7절).
1.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셨다.
진정한 회개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이같이 죄를 극복하고 멸하여 다시는 잘못을 행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죄를 유감스럽게 여기고 마음속으로 뉘우친다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죄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의 길(행실)의 변화를 입증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의 변화는 헛된 것이다.
2. 하나님은 사람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
이 말씀의 원어는 지극히 의미심장한 것이다.
(어떤 이는) “내가 땅에서 사람을 쓸어 버리겠노라”고 한다. 이는 마땅히 깨끗해야 할 곳에 있는 쓰레기나 오물을 쓸어 그 합당한 곳인 오물 처리장에 던져 버린다는 것과도 같다(왕하 21:13 참조). 자기가 사는 곳에 흠이 되는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으로 쓸려 없어지게 된다.
(또 어떤 이는) “내가 땅에서 사람을 지워 버리겠다”고 했다. 이는 저자에게 불쾌한 글귀를 그 책에서 지워 버리겠다는 것과 같다. 혹은 사람이 죽거나 또는 그 공민권을 박탈당할 때 그 이름이 자유인의 명부에서 지워지는 것과 같은 뜻이다.
3. “나의 창조한 사람”이라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멸하실 것을 작정하시면서까지도 당신께서 친히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그를 창조하였지만, 이 사실 때문에 그를 용서할 수는 없느니라”(사 27:11). “그를 지으신 이가 그를” 구원하지 않으리라 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이는 우리의 통치자가 아닐 경우에는 우리를 멸망시키는 자가 되리라는 것이다.
또는 “내가 그를 창조했는데도 그 창조주에 대해서 불효막심하고 배은망덕하니, 내가 그를 멸하겠노라” 하는 말씀이다.
자기들의 생존의 목적에 합당치 아니한 자는 그 생명을 잃게 된다.
4. 짐승들까지도 이 멸망 속에 포함되어 있다.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고 하셨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위해 지음 받았으므로 사람과 함께 멸망당해야만 했다.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는 말씀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또 이들을 창조한 목적이 역시 좌절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들로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지음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들로 자기의 육욕을 충족시키는 데 썼고 부질없는 것으로 삼았으니 멸망된 것이다.
5. 하나님의 영이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리신 것이 헛되이 되자 이와 같은 결심을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정의 때문에 멸망당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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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행적(창 6:8-10)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독특한 영광의 징표를 지니고 있는 노아를 엿볼 수 있다.
Ⅰ.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노여워하셨을 때에 노아에게는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8절).
이것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속에 정의가 있으며, 또한 세상이 모두 타락했노라고 선언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세상에 있던 모든 사람의 성품을 각각 엄격하게 시험해 보셨음을 보여 준다. 한 선한 사람이 있으매 그를 찾아내시고 그에게 미소를 던지셨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 때에 그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가 되었다는 것은 역시 노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한다.
그 은총은 특별히 강력한 은혜로서 오는 것이다. 아마도 노아는 그의 생활과 가르침을 통해서 “세상을 정죄했기”(히 11:7)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호감을 사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고 핍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 이것은 족한 영예요 위안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보다도 노아를 훨씬 더 중히 여기셨고, 이 때문에 그는 당시에 유명했던 용사들보다도 훨씬 더 위대하고 참으로 영광스럽게 되었다.
은혜를 입는 것을 우리의 야망의 정점으로 삼자.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님께서 용납하시는 자들이 되도록 힘쓰자(고후 5:9).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는 자는 크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Ⅱ. 세상 모든 자들이 악해졌을 때(이것이 노아에 관해 알아야 할 기사다) 노아만은 홀로 자신의 고결함을 지켰다. “노아는 의인이요”(9절)라고 했다.
1.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내려준 이유.
그의 신앙심은 하나님의 자비심을 독차지하기에 합당했다. 여호와의 은혜를 입고자 하는 자들은 노아와 같은 인간이어야 하며, 그가 행한 것과 같이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신다.
((믿는이로서 그대는 진실로 <긍정적 의미에서!!>하나님 사랑을 독차지할 만큼 절대적 사랑으로 절대적으로 그대를 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거룩한 열정의 소유자인가??))
2. 아니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 안에서 선한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그는 매우 선한 사람이었으나 그의 그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고전 15:10).
이제 그의 성품을 살펴보자.
(1) 노아는 “의인이었다.”
즉 그는 믿음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입은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의의 후사가 된” 사람이었다(히 11:7).
올바른 도의와 성품이 그 안에 뿌리박고 있었다. ((주의 공급 통로됨의 참가치 인식 안에서 자기를 내려 놓고 비워 내어드림으로써 살아감!))
또한 그는 교제에 있어서도 의로웠다. 모든 자들을 공정하게 다루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사람의 것은 사람에게로 돌려주는 양심의 소유자였다.
참으로 정직한 자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제는 “육체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좌우되어야 한다(고후 1:12).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지만 결코 부정한 것들을 택하지는 않으셨다.
(2) 그는 “완전한 자”였다. 이는 죄 없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성실성에 있어 완전했다는 뜻이다.
은총의 계약, 즉 그리스도의 의로 인해 우리의 성실성이 우리의 복음적 완전함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3) 그보다 앞서 에녹이 그랬듯이,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감찰 아래 있는 자답게 하나님과 더불어 행동했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를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려고 애썼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성실히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자들을 은혜로운 눈으로 내려다보신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4) 그러나 보다 더 그의 성격을 영예롭게 하는 사실은, 운명으로 타고난 그 타락하고 퇴폐한 자기의 세대에서 그 같은 성품을 가졌고 그같이 행동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신앙이 유행하고 있을 때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을 위해 자기를 드러내지 아니하려 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조류를 거슬러 상류를 향해 나아가는 강한 믿음과 결의의 증거다. 노아가 이같이 행동했으니, 영원히 기록되어 불후의 영예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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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패 (3)(창 6:11-12)
그 세대의 사악함이 언급되어 있다. 온 땅이 타락하고 부패했을 때 노아는 의롭고 완전했으니, 이것은 그의 신앙심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아니면 그의 종 노아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바 이 세상을 멸망시키겠노라는 하나님의 결의를 보다 더 정당화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Ⅰ. 온갖 종류의 죄가 그들에게 있었다.
1. “하나님 앞에 패괴했기” 때문이다. 즉 [주께 합당한 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타락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든지, 또는 하나의 우상을 세워 그를 예배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의를 품어 하나님을 멸시함으로써 타락하고 사악해진 것이다.
2. 또한 인간에 대한 불의와 “강포가 땅에 충만했다.” 거기에는 질서도 없었으며 정상적인 정부도 없었다.
가장 명백한 소유권을 지니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조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가장 죄 없는 자라도 안심할 수 없었다.
따라서 거기에는 살인과 간통과 약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죄악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수치임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의 파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양심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사람이란 서로간에 짐승과 악마로 변해 버려, 강자가 약자를 삼켜 버리는 바다의 물고기같이 되고 만다.
죄가 이 세상을 충만케 하여 세상을 황무지와 투기장으로 변화시켜버린다.
Ⅱ. 그 타락상에 대한 증거는 부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땅을 보셨고” 그 타락에 대한 목격자가 되셨기 때문이다.
의로우신 재판장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지(全知)한 절대 확실성에 기초하여 모든 재판을 수행하신다(시 33:13).
Ⅲ.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 때문이다.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은 그 전염병이 도처에 만연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특정인이나 도시가 아니라 인류가 사는 온 세상이 그렇게 악해졌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누구 하나 선을 행하는 자가 없었으니, 진정 노아 이외에는 어느 누구 한 사람 없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죄악이 보편화되면 세계의 멸망이 그리 멀지 아니하다.
한 민족 가운데 죄악의 분량이 넘칠 때, 그것을 없애고자 [중보]기도하는 남은 자들이 있는 한 상당히 오랫동안 심판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죄로써 그 방벽을 헐어 버리는 일을 자행하고 있고, 그로 인해 생겨난 틈을 보수하고자 하는 자가 없다고 하면, 홍수와 같이 넘쳐흐르는 진노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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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의 예언(창 6:13-21)
여기서는 참으로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은 8-10절에 있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명백히 암시되었다. 단 한 번의 언급으로 그 뜻이 분명해지기에 족한데도 성령께서는 마치 그에 대한 기억을 영존시키기를 즐거워하시는 듯이, 다섯 줄에 걸쳐 노아의 이름을 다섯 번이나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구절 가운데 보다 분명히 나타나 있는 것은 노아에게 주신 정보와 지시다.
Ⅰ. 하나님께서 노아를 그의 모사로 삼으셔서, 이같이 사악한 세상을 물로써 멸망하시겠다는 당신의 뜻을 그에게 전하셨다.
후에 하나님께서 소돔에 관한 당신의 결의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같이(18:17, “내가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여기에서도 “노아가 강대한 나라가 될 것을 알고도 내가 나의 하려는 것을 그에게 숨기겠느냐?”라고 하신다.
“여호와의 친밀함이(“비밀이”─역주)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시 25:14)을 유의하자. 그 분의 비밀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함께 있는 것이다(암 3:7).
그는 계시의 영으로서 그들에게는 특별히 자기의 뜻을 알리신다.
여호와는 지혜와 믿음의 영으로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이 함께 있어 말씀의 총괄적인 뜻과 거기에 기록된 경고를 이해하고 응용케 해 주신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멸망시키겠노라는 것을 노아에게 말씀하셨다(13절).
“모든 혈육 있는 자의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그것이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그리고 속히 오리라는 뜻이다.
아마도 노아는 그의 이웃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그들의 사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리라고 경고했을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진노에 대한 특별한 통고를 통해 그 경고가 실효를 거둘 것인지를 알아보게 하셨다.
다음 사실을 배우자.
(1) 하나님께서는 “그 사자의 말을 응하게 하신다”(사 44:26).
(2) “가진 자는” 그 가진 것을 타인의 유익을 위해 씀으로써 “더욱 가지게 되며” 더 많은 가르침을 받게 된다.
2. 하나님께서는 홍수로써 세상을 멸하시리라는 것을 노아에게 상세히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키리라”(17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애굽인의 장자와 앗수르의 진을 멸하신 것같이 천사의 검, 즉 빙빙 도는 화염검으로 모든 인류를 멸하실 수가 있었다.
따라서 노아와 그 가족들을 보존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표적을 세우시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홍수로써” 멸하기로 하셨으니, 세상은 이 홍수로 물에 잠기게 되었다.
비록 우리로서는 알 바 없지만, 그 원인은 현명하고 의로우셨을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께서는 화살통에 많은 화살을 갖고 계시면서 어느 것이든 그가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신다.
이는 회초리를 택하여 그것으로 자녀를 바로잡고, 검을 택하여 그것으로 적들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표현 방식을 살펴보자. “내가 홍수를 일으키리라. 나는 권능이 한량없으므로 무한한 정의로 그 일을 할 수 있으니, 내가 그렇게 하리라.”
(1) 이것은 심판의 확실성을 말해 준다. 즉 “나 곧 내가” 그렇게 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니 유효하게 이루어지리라(욥 11:10 참조).
(2) 이는 하나님의 영광과 정의를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땅 위에서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높일 것이며, 온 세상은 “원수 갚는 것이 그에게 있는”(롬 12:19) 하나님임을 알아야 된다.
여기에 쓰인 표현은 이사야 1장 24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다소 비슷한 것 같다.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노라.”
Ⅱ. 하나님은 노아를 그의 언약의 사람으로 삼으셨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18절). “언약의 사람”은 친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의 완곡어법이다.
1. 섭리의 언약, 즉 자연의 진행은 홍수로 인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끝까지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이 약속은 즉시 노아와 그 자손들에게 하셨다(9:8 이하). 그들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권리를 위탁받은 자들과 같았다.
그리하여 그 약속은 그의 후손에게 유효하게 주어졌다.
2. 은총의 언약, 즉 하나님은 그에 대해서 하나님이 되시며, 그의 후손으로 자기의 백성을 삼으신다는 언약이다.
다음 사실을 알아 두어야겠다.
(1)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실 때에는 하나님 자신이 친히 정하시고 확실하게 하시며, 그것을 유효하게 하신다. 따라서 그의 언약은 영원하다.
(2) 그 은총의 언약 속에는 홀로 훌륭했던 봉사에 대한 보답이 있으며, 특별한 모든 은총의 근원과 기초가 있다.
우리는 그와 언약을 맺을 것만 바랄지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손해 본 바를 보상하려 한다든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Ⅲ.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관대한 자비의 기념탑으로 삼으셨다.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13절).
여기에서 하나님은 세상의 다른 모든 자들과 더불어 노아가 멸망당하지 않도록, 다가오는 대홍수에서 노아가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나 너는 방주를 지으라. 네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내가 돌보아 주리라.”
남다른 경건은 특별한 구원으로서 보답받는 것이니, 이는 특별한 방식의 은혜를 입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이 은혜가 영광을 받을 성도들의 영예와 행복에 더해질 것이니, 대부분의 사람이 멸망당할 때 그들은 구원함을 얻게 되리라.
1.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셨다(14-16절).
이 방주는 항해하기에는 적합치 아니한 낡은 배와 같은 것이었다(항해하여 다다를 육지가 없으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물 위에 떠 있으면서 물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그 스스로 염려하고 수고하고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고도 천사를 시켜 그를 구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자신을 보존하는 방편이 될 방주를 짓게 하는 길을 택하셨다.
이는 그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의 구원을 애써 이루는 자가 아니고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없이는 우리가 구원을 행할 수가 없으며, 우리의 순종이 없이는(우리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림에 따른, 순종의 동행) 그가 하려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은혜는 순종과 근면의 수고를 인정하고 영예롭게 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 방주를 건립하는 데 관해 지극히 세밀하게 지시하셨다.
창조주의 무한한 지혜가 바로 그 설계자가 되셨으니, 그 목적에 놀랍게 합당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1) 그것은 “잣나무”로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지금도 삼(杉)나무인지 실편백나무인지 또는 어떤 다른 종류의 나무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노아는 분명히 그것이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를 알고 있었다.
(2) 그 내부는 3층으로 지어야 했다.
(3) 그것을 칸막이로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 여러 가지 종류의 피조물에 합당한 자리를 마련하고 조금이라도 비는 곳이 없게 해야 했다.
(4) 정확한 치수를 말씀하셨다.
그 방주를 균형잡히게 하고 그 목적에 맞도록 방을 마련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방법을 받아서 그것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나아가 우리의 거주지를 정하시는 이께서 그 범위와 한계를 정하시는 것이 온당하다는 사실도 알아야겠다.
(5) “역청으로 안팎을 칠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역청은 주님의 보혈을 예표한다))
그것은 밖에서는 빗방울을 흘려 버려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고, 안에서는 문이 닫혔을 때 짐승들의 나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도료를 칠하라고 하지 않고 역청으로 칠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에 주목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안전하고도 따뜻하며 위생에 좋은 거처를 마련해 주신다면, 그것이 비록 훌륭하고 좋은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감사해야 한다.
(6) 그는 위쪽에 창문을 내서 햇빛이 들어오도록 해야 했는데, (어떤 이가 생각하기로는) 그가 그 창문을 통해 세상이 폐허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 그는 출입할 수 있는 문을 방주 옆에 내야 했다.
2. 하나님은 노아와 그에 속한 모든 자가 생명을 보존케 되리라는 것을 노아에게 약속하셨다.
“너희가 그 방주로 들어가라”(18절). 하나님께 순종하여 행한 일은 우리 자신에게 안위함과 은혜를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다”(잠 9:12). 노아만이 방주에서 구원함을 받았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보자.
(1) 선한 부모의 염려.
부모들은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을 위해서, 특히 그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 염려한다.
(2) 경건한 부모를 가진 자녀들의 행복.
보는 바와 같이 부모들의 신앙심은 때때로 그 자녀들에게 현세적 구원을 얻게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부모들의 은혜를 더 입게 되면 영원한 구원에도 이르게 한다.
Ⅳ.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노아로 하여금 이 세상에 대한 큰 축복이 되게 하셨다.
이로써 그를 부모들이 기대했던 대로(5:29) 메시아는 아니라 해도 메시아와 같은 훌륭한 모범 인물로 삼으셨다.
1.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그 세대 사람들의 전도자로 삼으셨다.
파수꾼처럼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써 그는 옛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였으니”, 이것은 베드로가 기록하기를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한 그 사람들에게 한 것이다(벧전 3:18-20).
여기에서는 그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그는 모든 혈육에 속한 자들, 이제 각기 타락해 버린 그 땅과 세대 속에서 닥쳐오는 진노의 홍수에 관해 회개와 경고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깨우치며 돌아다녔다.
2.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하등 피조물에 대한 구원자로 삼으시고, 이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홍수 속에서 목숨을 잃거나 멸망되지 않도록 지키라고 하셨다(19, 20절).
이것은 그에게 큰 영예가 되었다. 곧 그를 통해 인류의 종족이 유지되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세계와 교회와 세상의 영혼과 그 교회의 머리 되시는 메시아가 유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등 피조물을 보존하는 도구가 되었고, 그리하여 인류는 그를 통해 새로운 권리를 가지고 동물들을 이용하게 되었다.
(1) 그는 그들이 빠져 죽지 않도록 피난처를 마련해 주어야 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들을 이끌어 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에게 나아오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20절). 소가 그 주인과 구유를 알도록 하시는 이가 이제 그의 보존자와 방주도 알게 하셨다.
(2) 그는 그들이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을 것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21절).
그는 이제 자기 책임 아래 있는 대가족의 수효에 맞추어, 방주 안에 있기로 정해진 기간에 따라 먹을 것을 그 배에 실어야만 했다. 여기에서도 역시 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이 세상의 존립은 그 덕분이었고, 그로 인해 만물이 존재하며, 또한 죄로 인해 인류가 완전히 멸망되지 않도록 보존한다. 그를 통해 거룩한 씨가 살아남게 되고, 만물이 헛된 신음에서 구원함을 얻은 것이다. 노아는 자기가 다스려야 할 자들을 구원했으며,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다(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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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로 들어가라 (1)(창 6:22)
....주님이 방주 안에 계셔서...방주 안으로 들어오라 하심따라 , 노아 가족들과 동물들은 들어갔다..
....동물들은 암수 짝을 이루어 들어갔는데..정결한 것은 7쌍씩, 부정한 동물은 2쌍씩 선정하셨다..
....당시 인류는 홍수에 대해서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음을 유의하라..(오로지 증기만 땅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고 근면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의 신앙의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머지않아 이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리라고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그것을 믿고 그같이 무서운 홍수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 가운데서 방주를 마련했다.
우리는 신앙을 인간의 불신앙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비롯된 계시와 관련시켜야 한다. 위협적인 말씀은 헛된 경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노아에게 주신 이 같은 경고를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을 지으신 지혜로운 하나님께서 다시금 그것을 그렇게 속히 파괴하시고, 물을 빼 버려 물이 드러나게 하신 하나님(1:9, 10)께서 또다시 그것을 물로 덮어 버리신다니, 그것을 누가 믿겠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어떻게 일치될 것이며, 그 긍휼이 그의 모든 역사(役事)하신 것에 임재해 있는데, 어찌하여 사람의 죄로 인해 죄 없는 피조물까지도 죽어야 한다는 것인가? 어찌하여 물이 능히 이 세상을 범람케 할 만큼 충분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반드시 그같이 되어야 한다면, 왜 노아에게만 그런 사실을 알려야 하겠는가?” 그러나 노아의 신앙은 이런 타락된 모든 추론을 극복했다.
Ⅱ.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 순종의 행위다.
만일 그가 혈육과 의논했다면 거기에 대한 수많은 반대가 제기됐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본 일도 없는 방대하고도 정확한 치수를 가진 그런 건조물을 세운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대단한 염려와 수고와 비용을 들게 했을 것이다.
또 시간을 요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환상은 오랜 후에 이루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웃들은 그가 쉽사리 믿는 것을 조롱했을 것이고, 그는 술꾼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방주를 짓는 것은 “노아의 우매함”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악한 자가 악한 자에게 오면 그들은 서로 이웃처럼 잘 지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노아는 이런 수천 가지의 반대를 믿음으로 이겨냈다. 그의 순종은 이미 각오된 단호한 것이었다.
즉 “노아가 그와 같이 했다”고 했으니, 그는 불평하거나 논박하지 않고 쾌히 준행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행하라” 하셨으니 그는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시간을 지켜야 되고 참을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지시에 따라 모든 것을 정확하게 행했으며, 그것을 짓기 시작하자 끝마칠 때까지 결코 그만두는 일이 없었다.
우리도 노아와 같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Ⅲ. 자기 자신을 위한 지혜의 본보기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대비했다. 그는 홍수를 두려워하여 방주를 마련했다.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 그 말씀을 따라 대비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의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출 9:20, 21; 겔 3:18 참조).
우리는 이 땅에서 그의 심판 속에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하고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니 그리로 도망가야 하겠으며(잠 18:10), 우리의 밀실에 들어가야 한다(사 26:20, 21). 특히 우리는 이 땅에서의 죽을 때와 심판날에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하며,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지어야 하고(마 7:24), 방주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야 하겠다.
Ⅳ. 태평한 세상에 경고의 뜻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또한 그것은 닥쳐올 홍수에 대한 올바른 경고이기도 했다.
그가 휘두른 모든 도끼와 망치 소리는 모두 회개를 촉구하는 부름이었고, 그들도 역시 방주를 준비하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세상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리 행함, 그것으로써 그는 세상을 정죄했다(히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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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노아가 방주를 만듦
[1-2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를 가리킬 수 없다. 왜냐하면 천사는 육체가 아니므로 본질상 사람과 결혼할 수 없으며(눅 20:35-36) 또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 천사들에게 징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징벌하셨기 때문이다.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자손들을 가리켰고, ‘사람의 딸들’은 불경건한 가인의 자손들을 가리켰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라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경건한, 거룩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사람의’라는 말은 ‘사람에게 속한, 사람의 본성 그대로의’라는 뜻을 가질 것이다.
본문은 가인의 자손에게서는 이미 일부다처(一夫多妻)의 악이 나타났으나(창 4:19), 이제 셋의 자손들 가운데서도 그런 일이 많아졌음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일부일처(一夫一妻)는 하나님의 뜻이다. 일부다처의 풍조는 일부일처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람의 육체적 감정과 욕구대로 행하는 악한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
[3-4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항상] 사람과 함께 하지[다투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는 본문(LXX, Syr, Vg, Targ)을 영어성경들은 히브리어 본문대로 “나의 영이 항상(혹은 영원히)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하였다(KJV, NASB,NIV). <18) 본문을, 고대역본들은 야돈( )이라는 원문을 야두르( )라고 읽었다.>
사람의 죄악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통제되며 이로 인해 사람이 극도로 죄악된 상태에 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그가 심히 부도덕한 상태에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이는 것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 120년의 기간을 남겨두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성급하지 않으셨다. 그는 오래 참으셨고 사람들에게 회개할 시간을 충분히 주셨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 ) 즉 ‘거인들’이 있었고 또 셋의 자손들도 가인의 자손들을 취하여 고대에 유명한 용사들을 낳았던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더욱 부패해져갔다.
[5-7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후회]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후회]함이니라 하시니라.
노아 시대에 사람들의 죄악은 점점 커 갔고 그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하였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셨다. ((‘후회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슬픔을 인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타락과 부패를 원치 않으셨으나 사람들은 스스로 그 길을 택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과 동물과 새를 다 멸하기로 결심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이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할 수 없으셨다.
[8-10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事蹟)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아담의 자손들은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나며 노아도 예외는 아니며 만일 그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았다면 죄 중에 살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멸망을 받았을 것이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노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의로운 삶으로 증거되었다.
노아는 의롭고 완전한 자이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의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이기적이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절 있는 삶으로 나타난다. 또 완전하다는 말은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물론 이런 말들은 절대적인 의미는 아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이 세상에 의인이나 완전한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사람들과 여실하게 다른 선한 인격자이었다. 또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경건한 삶을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힘썼음에 틀림없다.
그의 중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뜻과 계명을 따르고자 힘썼다. 그것이 그의 의롭고 온전한 삶으로 나타났다.
[11-12절]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패괴하였다. 본문에는 ‘패괴함’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 ‘패괴하다’는 원어(솨카스 )는 ‘부패되다, 더러워지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패괴함의 한 특징은 ‘강포함’이었다. 노아 시대에는 강포함이 온 땅에 충만했다.
당시의 세상은 양심과 도덕과 법과 질서가 없고, 힘과 폭력만 있는 공포 사회이었다.
이런 시대적 풍조에 역행하여 노아는 혼자라도 바르게 살았던 것이다. 그는 좁은 길, 외로운 길을 걸었다.
여기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교훈이 있다. 노아는 우리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된다.
우리는 이 시대가 심히 악할지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바르게 살겠다는 신념으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13-16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칸]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300규빗, 광이 50규빗, 고가 30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사람들의 부패함과 강포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날, 곧 세상의 끝날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120년이나 참고 기다리시며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셨으나, 세상의 도덕적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그 끝날이 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는 중에서도 구원의 계획을 가지셨다. 그는 멸망할 세상으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하기를 뜻하셨고 이 일을 위해 그로 하여금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
방주는 나무로 만든 네모난 큰 배이었다. ‘잣나무’라고 번역된 원어(고페르 )는 소나무나 전나무의 일종이라고 한다. 방주의 크기는, 한 규빗을 약 50cm로 보면, 길이가 약 150m, 너비가 약 25m, 높이가 약 15m이었다. 방주는 3층으로 되었고 그 안에는 많은 칸들이 있었다. 위에서부터 50cm 아래로 창문 한 개가 있었고 문은 옆으로 있었다. 방주의 안팎은 역청으로 칠했다. 역청은 아스팔트나 콜타르 같은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좋은 방수제이었다.
어떤 구약 학자에 의하면, 방주의 부피는 오늘날 소 20마리나 양100마리를 실은 짐승운반차 2,000대 분량이라고 하며, 오늘날 양보다큰 짐승은 290종, 양부터 토끼까지의 크기는 757종, 토끼보다 작은 것은 1,358종이 있다고 하는데, 방주는 이런 동물들 한 쌍씩과 그것들을 위한 충분한 사료를 싣기에 넉넉한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19) Gleason L. Archer, A Survey of Old Testament Introduction, p.210.>
[17-21절] 내가 홍수(맙불 )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氣息)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食物)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食物)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통해 땅을 멸하실 것을 선언하셨다. 원문에서는 ‘내가’라는 말(아니 힌니 )[보라, 내가]이 강조되어 있다. 홍수를 일으켜 모든 생명체를 죽이실 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가 바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신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약속을 받은 것이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방주를 예비하였고 그것을 통해 홍수 심판을 피하였다. 노아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모든 생물들이 암수 한 쌍씩 노아에게 나아올 것이며 노아는 그것들을 방주 속으로 들여 그 생명들을 보존해야 했다. 또 그는 그것들이 방주 안에 있는 동안 먹을 식물도 준비하고 저장해야 했다. 이 일들이 노아에게 주어진 임무이었다.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의 명하신 그 일들을 다 준행하였다. 특히 방주 짓는 일은 심히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큰 방주를 짓는 데 아마 수십 년 혹은 100년은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위해 자기와 자기 아들들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다 쏟았음에 틀림없다.
방주 짓는 일은 그에게 부업이 아니고 본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친척들이나 이웃 사람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받았을 것이며, 아마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방주를 지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렸고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였다.
창세기 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한다.
노아 시대에는 사람들이 일부일처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일부다처의 길로 갔다. 그 시대는 쾌락의 시대이었다. 또 그 시대는 도덕적으로 매우 부패했고 사람들은 심히 강포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이었다. 오늘날도 불경건과 세속주의와 쾌락과 음란과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 우리는 쾌락과 강포를 멀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다. 그는 도덕적인 하나님이시며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신다. 그 심판은 참으로 두렵다. 그의 마지막 심판은 지옥의 불못이다.
주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회개해야 할 이유이다.
셋째로, 우리는 방주 안에 거해야 한다.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예표한다. 노아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온전히 순종함으로 멸망할 세상으로부터 여덟 식구를 구원했듯이, 주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택자들의 구속(救贖)을 이루셨고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구주가 되셨다.
((노아 방주에 발려진 역청, 또한 모세를 담은 갈대 상자에 칠해진 역청은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한다))
참된 교회는 장차 임할 불 심판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방주이다.
사람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교회 밖에 있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안에 거해야 한다. 그것이 방주 안에 거하는 것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그는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경건하고 의롭고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노아처럼 악한 세상에서 혼자라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온전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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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건축에 쓰인 역청은 고페르<나무 진으로서의 역청>을, 갈대상자의 역청은 헤마르<석유 성분으로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는 아스팔트...본래 시날 땅에서 바벨탑 건축 위해 벽돌을 쌓을 때 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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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 노아 방주의 미스터리 -실제 크기와 모습, 참된 의미는?]]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창 6: 15-16)
***규빗은 성경의 언어가 아니었다.
창세기 6장 말씀은 창세기 기자(모세)가 하나님 계시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말 ‘규빗’이라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한다.
그런데 실은 성경 창세기 6장 15절 본문에 ‘규빗’이라는 말은 없다. 즉 규빗은 성경 원문 히브리어가 아니다.
그럼 우리 성경의 규빗은 도대체 어디서 온 단위일까? 이 말의 히브리 원어는 ‘암마’(ammah)이다. ‘암마’는 아마 아카드어 아마투(ammatu)에서 왔을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길이를 측정하는 단위로 인간의 지체(肢體)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규빗은 바로 ‘팔꿈치’를 나타내는 라틴어 ‘큐비툼’(cubitum)에서 온 말이다.
성경이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히브리어 ‘암마’는 라틴어 ‘규빗’으로 바뀌게 되었다.
***규빗의 단위
보통 라틴어의 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가 기본적인 길이의 단위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규빗을 얼마로 계산하였을까?
실로암 비문에 히스기야의 도수터널(tunnel)의 길이가 1,200규빗이었다는 기록을 참고하고, 실측에 의해 그 길이는 533.1m였으므로,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면 1규빗은 약 44.425cm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같은 수치는 이스라엘의 규빗이 바벨론의 것과 같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략 45cm 내외를 한 규빗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성막 및 성전 건축에 쓴 규빗이 바로 이 길이였다(출 25-27장, 왕상 6-7장, 대하 3-4장).
이를 바탕으로 1규빗을 약 18인치(약 45 센티미터 내외)로 보면 방주는 길이 약 133-137미터, 폭 23미터, 높이 약 13-14미터 가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기록된 방주의 치수를 확정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몇 가지 난제가 있다.
***방주의 규빗 단위를 규정하는 난제
라가슈의 제사왕 구데아(Gudea, 전 2000년경) 의상에 새겨진 척도표에 따르면, 1규빗은 지금 단위로 약 49.5cm이다. 이것은 보통의 규빗인데, 왕실에서 사용하는 규빗은 그보다 큰 55cm였다.
바벨론 사람들은 약 50.3cm에 해당하는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규빗’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집트의 척도표에서도 한 규빗은 45cm, 왕실 규빗은 55cm였다.
또 다른 기록에 보면 애굽 사람들은 약 67.5cm와 44.7cm에 해당하는 긴 규빗과 작은 규빗을 가지고 있었다.
애굽에서 일반 규빗과 왕실 규빗을 다르게 적용했던 것처럼 에스겔 선지자도 장대 규빗(long cubits)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장대 규빗은 보통의 규빗에 한 손바닥을 더한 것이다. 즉 에스겔은 일곱 손바닥의 규빗을 쓰고 있다(겔 40:5).
이스라엘에서도 바벨론, 애굽과 마찬가지로 장·단의 규빗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반 규빗은 45cm이고 장 규빗은 52cm로, 애굽의 그것에 근접해 있었다.
또 한 가지 난제는 홍수 당시 규빗을 지금의 규빗 단위에 과연 적용할 수 있느냐다. 홍수 이전에는 인류가 오늘날보다 훨씬 더 장수하였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 수명이 기록된 홍수 이전의 실명 인물 가운데 에녹을 제외할 경우 계산해 보면 평균 912세가 된다.
노아는 5백세 되던 해 아들 셈을 낳았다. 오늘날 인간의 성장은 대개 20살을 전후하여 멈춘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생리적 출산 가능 연령은 60세 전후하여 멈추게 된다.
이것은 남녀가 거의 일치한다. 물론 이것은 생리적 가능성일 뿐 현실적인 사회문화적 조건 아래서 실제 자녀 출산 가능 연령은 그보다 훨씬 더 젊은 나이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성경의 노아는 5백세가 지난 후 셈과 함과 야벳을 낳은 것으로 보아 홍수 이전 인간의 성장 연한은 20세를 훨씬 넘어 10배 이상 즉, 수백 년(최소 250년 이상)간 지속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체형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규빗(팔꿈치) 단위로 제시된 방주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아주 달랐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900세가 넘게 살던 인류의 팔꿈치 크기를 지금의 우리식 판단대로 45cm 내외라고 판단하여 방주 길이는 137m이고 배수량은 32,800톤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소박한 발상일 뿐이다.
1세기 때 유명한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1규빗이 20인치라고 했다.
고대 화폐 단위와 도량형을 연구하기 위해 고대 여러 지방을 여행한 바 있는 그레이브스는 1규빗의 길이가 거의 22인치에 달한다고 보았다.
네빈 목사가 저술한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히브리 사람들은 규빗을 모든 도량의 모체라고 부른다. 즉 팔꿈치로부터 가운데 손가락 끝부분까지의 길이는 균형 잡힌 남자 신장의 4분지 1이라고 한다. 보통 한 규빗은 18인치다.
카펠러스 등은 히브리인에게는 두 종류의 규빗이 있었다고 했다. 즉 하나는 종교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것이다. 종교적인 것은 36인치이며 일반적인 것은 16인치가 된다. 아마도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규빗의 길이가 조금씩 다르게 표시되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남녀노소 사람마다 인종마다 팔꿈치 길이는 천차만별이다.
이 같은 규빗 단위의 변천을 통해 볼 때 성경 원문에 나타난 방주의 칫수 “암마”(규빗)의 단위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가능할 뿐, 당시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우리들은 잠정적인 상상의 치수만을 말할 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마 정확한 방주의 규모 파악은 방주의 실물이 발굴되는 그 날이 와야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 속에서 그런 날을 허락하실까?
***방주가 알려주는 참된 의미는(방주의 크기와 모습에 았지않다)
방주(方舟)는 히브리어로 ‘테바’라고 한다. 그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배를 나타내는 애굽어 텝트(Tept)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학자(Keil, Kalisch)들은 추정할 뿐이다.
이 단어는 아기 모세를 나일강으로 태워보냈던 갈대 상자(출 2:3, 5)에 사용되었던 바로 그 단어였다.
아기 모세가 탄 갈대 상자나 노아의 방주가 동력이나 키를 가진 배가 아니라, 안정하게 물 위에 부유하는 오늘날의 바지선과 같은 부류의 선박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방주의 참된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창세기 6장의 방주가 알려주는 진정한 의미는 규빗단위나 배수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 과학적 결과에 집착할 필요도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방주의 참된 의미는 방주의 치수나 배수량이 아니라 오늘날 구원의 방주로서의 교회를 예표한다는 것이다(마 24: 37-39; 눅 17: 26-27).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교회의 몸이기 때문이다. 방주가 생명선인 것처럼 저주와 죽음의 길 앞에 인류는 영원한 생명선인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방주가 크든 작든, 나일강의 흔들리는 초라한 갈대상자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음으로 방주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예배당 건물이 크든 작든, 화려하든 초라하든 전혀 상관없다. 믿음으로 교회의 일원이 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신약 시대에도 방주 사건이 중요함을 분명 알려주셨다. 다만 과학적 언급이 아닌 방주 사건의 구원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예수님의 마태복음(24장)과 누가복음(17장) 설교는 인류에게 과학적으로 전혀 규정할 수도 없는 방주의 규빗에 대한 규명과 집착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 설교였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믿음 안에서 방주가 지니는 구원의 예표를 깨달으라는, 방주가 구원의 전형적 모형임을 명확히 말씀하신 것이다.
<미국에서 제작한, 노아방주 모형의 제원>길이 510feet(155m), 폭 85feet(26m), 높이 51feet(16m)..그 길이는 축구장1.5개 정도-- 그 너비는 축구장 1/2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