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딤후1장 [542.구주예수의지함이] [425.주님의뜻을 이루소서] @@@[[얀네, 얌브레와 성경의 권위]]@@@ ---[딤후3:8...*8.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딤후3:14-17...*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또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의 핵심: 성경의 권위는 종말적이다 - 디모데후서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절이 딤후3:16이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3:16)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증언하는 성경영감설의 기초가 되는 구절로 종종 사용된다. 자연히, 사람들은 성경이 오류와 잘못이 없다는 성경무오설로 곧장 연결시킨다. 한마디로 영감설과 무오설을 바탕으로 성경의 권위를 내세우는 구절이다. ... 그런데 바로 이 구절 앞마당 3장8절에 성경의 권위를 의심케 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 얀네와 얌브레가 등장한다. 바울은 이들이 ‘모세를 대적한’ 자들이라고 했지만, 모세의 활동 무대인 출애굽기에 이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비록 바울이 언급했지만, 얀네와 얌브레의 출처를 구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모순(?) 때문에 성경을 신뢰할 수 없다는 근거로 삼는이들도 있다. ... 그렇다면 이 문제를 풀어보자. ==디모데후서가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우연이지만 각 장의 후반부에 보면 꼭 한두 명의 바울을 괴롭게 한 자들의 이름이 나온다. 1장15절에 바울을 버린 부겔로와 허모게네, 2장17절에 악성 종양 같았던 후메네오와 빌레도, 4장14절에 바울에게 해를 입혔던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였다. 그렌데, 3장에는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반면, 모세를 대적했다는 얀네와 얌브레로 비유되는 인물이 진리 (혹은 바울의 복음 사역)를 방해했다. 사도 바울은 이 얀네와 얌브레가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로 비유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다름 아니라 거짓 교사들인 것이다. 그들로부터 그 여자는 거짓 진리의 가르침을 자기 욕심에 끌려 배우게 되니 제대로 배울 수 있겠는가?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 구체적으로 바울은 밝힌다. ‘그 여인이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렸기’ 때문이다. 어떤 죄인지는 2-5절에 조목조목 나열된 죄들이 이 여자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거짓 교사들은 당시에 돈 있는 여자들에게 다가가서 거짓 진리를 전한 대가로 여자들로부터 사례를 받았다고 한다. ==얀네와 얌브레는 누구? ...유대인들의 구약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단 타굼(targum)에1) 의하면,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를 대적한 애굽의 술사들(magicians)이다. 야훼 하나님께서 10 재앙 (10 plagues)을 애굽에 내리실 때 모세에게 이적을 베풀게 해주셨다. 먼저 아론의 지팡이로 뱀이 되는 이적이다. 그런데 애굽의 술사들도 따라 했다. ....모세가 애굽의 하수 나일강을 피로 물들게 하자, 애굽의 술사들도 따라 한다. ....모세가 개구리를 불러 온 애굽 땅에 덮도록 하자, 애굽의 술사들도 개구리 부르는 마술을 부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세가 티끌로 이(각다귀)가 되게 하자, 애굽의 술사들이 따라 하지 못한다. 이어지는 모세의 이적에 애굽 술사들이 흉내를 못내는 것은 당연하다. (출애굽기 7:11, 22, 8:7, 18 참조). ...무엇인가?...애굽의 술사들인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 흉내를 어느 정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흉내일 뿐이고 진정한 야훼의 파워에 미치지 못한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흉내 내는 가르침을 구약의 메아리에 실어(echoing)2) 디모데에게 편지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며 ‘그들의 어리석음[전능자의 무한한 진리의 생명샘이 그들의 근원이 아니라, 거짓되고 썩어질바, 세상 왕 사탄의 유한 능력 바탕한 망녕된 미혹에 넘어가서 눈먼 장님인바 그저 한낱 흉내쟁이일뿐임]이 마침내 드러날 것’, 즉, 얀네와 얌브레 처럼 저들의 밑천이 드러나게 되는데, 모세가 티끌로 이가 되게 하는 이적을 따라 할 수 없게 되는, ‘근본적 어리석음’이 노출되는 것이다. ---이 편지는 바울에서부터 디모데에게로 사역 바통이 이어지는 시점임을 유의하면 쉽게 풀린다.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 날이 가까이 옴을 예측하고 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4:6). 그렇다고 복음 사역의 리더십이 인간 바울이 사라진다고 끊겨서야 되는가?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복음 사역의 바통을 넘길 것을 바라고 있다. 이 때 복음사역의 anchor가 바로 성경 (여기서는 구약성경)임을 바울은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그러나, 명심하고 기억하라!! 분명히 밝히건데!!, 당시는 구약 성경이, "구약 성경 말씀 그 자체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는 바울의 주장에 힘을 싣기가 정말!! 어려운 때였고 지금도 어쩌면 그럴수도 있다. 지금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해도 그리스도니 예수니 하는 이름이 구약에는 없지 않은가! 메시아를 고대하고 기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메시아가 나사렛 예수라고 딱히 지정하는 구약에 어디에도 없는 때였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핵심은 이것이다. ... 바울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15절에 천명한 것이니... 바울은 구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그리스도 예수로 완성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다시 살아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부활의 실체 예수를 본 까닭에 예수로 통해 구약이 완성됨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목숨 걸고 증거하고 있는 사람이 바울인 것이다. 정리하면,...딤후3:16을 즐겨 사용하며 성경의 권위를 변증하는 자들 (복음주의 계열의 대부분 학자들, 목사들)의 논리나, 출처가 불분명한 얀네와 얌브레 이름이 등장하는 딤후3:8을 들이밀며 성경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자들 (과학적 이성적 역사적 비평에 충실한 소위 자유주의자들)의 논리가 허술하기는 매한가지임을 날카롭게 인식할 필요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우리가 살고 있다. 두 진영의 논리가 허술한 이유는 간단하다. [진실로!!, 참되게!!, 목숨걸고!! 직접!!-딴지부리지말고!!- 말씀해 주실/만나주실 주께 여쭈었어야 했고 , 나와 그대도 그리해야만한다!!] 복음주의 계열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바울의 주장이 왜 여기에 기록되었는지 질문하지 않았고, 자유주의자들은 "얀네와 얌브레 비유"가 왜 이곳에 있는지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두 가지 질문은 동일한 선상에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는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바울의 편지를 문단 문단마다 짜깁기한 것으로 읽으면 결코 안 된다. ... 결론적으로, ... 바울은 말세, eschaton에 관한 이야기를 [전존재 중심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딤후3:1을 유심히 읽어보라.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여기"말세"가 ‘무엇’인가 그대 자신에게 물어 보았는가...(‘언제’냐라 묻지말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환난, 고통, 핍박을 받는 그 때”라 말하는것만으로는 부족하다..아니, 좀 더 면밀하게, 더 세밀하게, 더 분명하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 정답은!! “지금 이 시간을 포함하여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라 할 수 있다. ... 이제 비로소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정작, 말세가 언제냐 라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말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말세에 얀네와 얌브레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디모데후서를 관통하는 핵심을 찾기 위해서는 얀네와 얌브레를 출발점으로 삼으면 크게 도움을 받는다. 거짓 교사들이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말세의 특징이니... 그들의 가르침은 애굽의 술사처럼 오래 가지 못한다. ((딤후3:16절은 성경의 권위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일에 반드시 단순무식하게 당연 적용해야만 한다는 근거 텍스트만이 결코 아닌 점에 유의하라!! --- 모든 성경,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 교혼-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함을 안다면...이는 곧 성경 안에서 살아 숨쉬는 바, 영생 하나님 말씀이신 그리스도, 그분의 영을 호흡함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생생한 살아계심의 달콤한 임재와 참생명 되심, 다함없는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 열정으로 사랑하심 안으로 신뢰하며 믿어 들어가서 안김으로...그분의 전지전능하심과 그 모든 지식-지혜-총명-모략-재능/권능으로 그리스도를 살아내며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말씀에서 튀쳐나오시도록까지, 친히 가르치시도록 그대를 내여놓고 그대 전존재를 열어 비워 내어드려야 함으로써 그분과 하나됨 살며 바로 참생명 그리스도, 그분을 그렇게 공급하기가 그토록 중요하다!!)). ....말세에 거짓 교사와 그의 가르침을 분별하라고 성경의 권위를 세우신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 사역의 바통을 넘길 때가 되어서 더더욱 절실한 지침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는 종말적이다.
===인사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 2 Timothy 1 Amplified Bible ==Timothy Charged to Guard His Trust 1 Paul, an apostle (special messenger, personally chosen representative) of Christ Jesus (the Messiah, the Anointed) by the will of God, according to the promise of life that is in Christ Jesus, 2 to Timothy, my beloved son: Grace, mercy, and peace [inner calm and spiritual well-being]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 3 I thank God, whom I worship and serve with a clear conscience the way my forefathers did, as I constantly remember you in my prayers night and day, 4 and as I recall your tears,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be filled with joy. 5 I remember your sincere(진실된) and unqualified(무조건적인) faith [the surrendering of your entire self to God in Christ with confident trust in His power, wisdom and goodness, a faith] which first lived in [the heart of] your grandmother Lois and your mother Eunice, and I am confident that it is in you as well. 6 That is why I remind you to [a]fan into flame(부채질하다) the gracious gift of God, [that inner fire—the special endowment<자질>] which is in you through the laying on of my hands [with those of the elders at your ordination<안수>]. 7 For God did not give us a spirit of timidity<소심함> or cowardice<비겁함> or fear<두려움>, but [He has given us a spirit] of power<능력> and of love<사랑> and of sound<건전한> judgment and personal discipline<개인훈련::절제> [abilities that result in a calm, well-balanced mind and self-control]. 8 So do not be ashamed to testify about our Lord or about me His prisoner, but with me take your share of suffering for the gospel [continue to preach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in accordance with the power of God [for His power is invincible], 9 for He delivered us and saved us and called us with a holy calling [a calling that leads to a consecrated life—a life set apart—a life of purpose], not because of our works [or because of any personal merit—we could do nothing to earn this], but because of His own purpose and grace [His amazing, undeserved favor] which was granted to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world began [eternal ages ago], 10 but now [that extraordinary purpose and grace] has been fully disclosed and realized by us through the appearing of our Savior Christ Jesus who [through His incarnation and earthly ministry] abolished death [making it null and void] and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11 for which I was appointed a preacher and an apostle and a teacher [of this good news regarding salvation]. 12 This is why I suffer as I do. Still, I am not ashamed; for I know Him [and I am personally acquainted with Him] whom I have believed [with absolute trust and confidence in Him and in the truth of His deity], and I am persuaded [beyond any doubt] that He is able to guard that which I have entrusted to Him until [b]that day [when I stand before Him]. 13 Keep and follow the pattern of sound teaching (doctrine) which you have heard from me, in the faith and love which are in Christ Jesus. 14 Guard [with greatest care] and keep unchanged, the treasure [that precious truth] which has been entrusted to you [that is, the good news about salvation through personal faith in Christ Jesus], through [the help of] the Holy Spirit who dwells in us. 15 You are aware of the fact that all who are in [the province of] Asia turned away and deserted me, Phygelus and Hermogenes among them. 16 The Lord grant mercy to the family of Onesiphorus, because he often refreshed me and showed me kindness [comforting and reviving me like fresh air] and he was not ashamed of my chains [for Christ’s sake]; 17 but [instead] when he reached Rome, he eagerly searched for me and found me— 18 the Lord grant to him that he may find mercy from the Lord on [c]that [great] day. You know very well how many things he did for me and what a help he was at Ephesus [you know better than I can tell you]. ==Footnotes 2 Timothy 1:6 In ancient times embers were kept slowly burning so that they could be fanned into flames when a fire was needed. 2 Timothy 1:12 Also called the Day of Christ when Christians will be called to account for their actions (2 Cor 5:10). 2 Timothy 1:18 See note v 12. ======= 디모데후서(서론) 디모데후서는 로마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이것을 보냈을 때 바울은 감옥에 있었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다음의 구절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4:6). 바울의 생각에는 이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특히 그를 박해한 사람들의 광포함과 잔인한 점을 생각할 때 그러했었다. 게다가 그는 네로 황제 앞에 끌려와 있었다. 그는 당시 네로 앞에 있었던 때를 “내가 처음 변명할 때”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때 “그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자기를 버렸다”고 하였다(4:16). 주석가들은 이 서신이 바울의 가장 나중의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이 편지를 받던 당시 디모데가 어디에 머물러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본 서신의 범위는 디모데전서와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이 서신은 복음 전도자로서의 그의 직책에 관하여는 별로 언급하고 있지 않고 다만 디모데의 개인적인 생활과 행위에 대하여 주로 언급하였다. ======= 1. 표제 초기의 헬라어 사본들은 이 책의 이름을 단순히 “디모데에게 Ⅱ”라고 한다. 흠정역에서 볼 수 있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두번째 서한”과 같은 긴 표제는 후대에 수식어들을 첨가한 결과이다. 2. 저자 디모데후서의 서두에 지적되어 있듯이 이 편지서는 당시에 두번째로 로마의 감옥에 감금되어 있던 사도 바울의 손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다. 3. 역사적 배경 이 편지서는 바울이 멀지않아 죽임을 당할 것을 예측하면서(딤후 4:6) 옥중에서 기록한 그의 마지막 편지이다. 다른 목회 서신들의 내용과 함께 이 편지서의 내용을 사도행전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그는 제1차 로마 투옥에 이어서 한동안 선교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그 후 재차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음을 알 수 있다. A.D. 64년에 로마의 대화재가 있은 후에 네로는 자신이 로마시에 불을 질렀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의 의심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지독하게 박해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바울이 다시 체포된 것은 제1차 투옥 이후 약 2년이 지난 뒤에 시작된 이와같은 박해의 결과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 아니다. 베드로도 역시 이 무렵에 구금되어, 어쩌면 바울의 투옥 기간의 적어도 얼마동안은 같은 로마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때는 이미 재판을 받은 뒤였으나(딤후 4:17), 아직은 그가 짐작했던 바인 사형 언도를 받지 않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를 제외하고는 이제 아무도 그와 함께 있지 않았다(골 4:14; 딤후 4:11).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겨울 전에”(딤후 4:21) 올 것을 지시하고, 또한 그의 겉옷과 책들을 가져 오라고 부탁하였다(딤후 4:13). 바울의 간절한 요구에 응하여 디모데가 사도의 죽음전에 로마 여행을 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디모데 자신에 관해서 말한다면 바울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떠나서 그의 생애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없다. 히브리서 13:23에 의하면, 디모데가 투옥되었다가 “놓인” 것을 알 수 있으나, 이 투옥이 언제 어디서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디모데는 도미티아누스(A.D. 81-96)나 트라야누스(A.D. 98-117) 황제 치하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4. 주제 이 편지서는 그 위대한 사도가 이방인들에게 준 마지막 유언과 증언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바울은 이 편지를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교회에게 써 보냈다. 자신의 마지막이 임박한 것을 안 그는 자기 자신의 모본을 통하여 젊은 동역자의 믿음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는 디모데에게, 그리고 그와 함께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그의 시대 이후에 교회에 들어 오게 될 이단들에 대하여 경고를 발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영감된 말씀을 굳게 붙잡고 주님의 재림 때까지 그분께 충성을 다하도록 하게 하였다. 5. 개요 Ⅰ. 서론 1:1-5 1. 인사 1:1, 2 2. 디모데의 우정에 대한 바울의 감사 1:3-5 Ⅱ. 디모데가 바울의 충실한 후계자가 되라는 권면을 받음 1:6-18 1. 목회자직 자질을 충분히 발휘하라 1:6, 7 2.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굳게 서라 1:8-18 (1) 복음의 부르심에 충실하라 1:8-14 (2) 바울을 버린 자들을 경계하라 1:15 (3) 다른 사람들의 담대함을 보고 용기를 내라 1:16-18 Ⅲ. 바울의 이상적인 목회자상(像) 2:1-6 1. 충실한 교사로서의 목사 2:1, 2 2. 좋은 군사로서의 목사 2:3, 4 3. 승리하는 경기자로서의 목사 2:5 4. 부지런한 농부로서의 목사 2:6 Ⅳ. 진리를 전파함의 내용과 방법 2:7-26 1. 기별 2:7-13 2. 추상적인 변론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2:14-18 3. 오직 하나님의 지지와 인정을 구하라 2:19 4. 그리스도교 원칙의 숭고함과 순결성을 나타내라 2:20-22 5. 사랑과 온유로써 진리를 가르치라 2:23-26 Ⅴ. 위난(危難)의 때가 올 것을 경고함 3:1-17 1. 거듭나지 못한 자들의 특성 3:1-5 2. 그릇된 교사들의 위험 3:6-9 3.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모본 3:10-12 4. 교리의 표준으로서의 성경 3:13-17 Ⅵ. 바울의 고별사 4:1-22 1. 하나님의 전령(傳令)으로서의 목사 4:1-6 2. 충실한 전령의 상급 4:7, 8 3. 바울의 마지막 요청과 인사 4:9-22 =========== 디모데후서 1장 (개요) 서론(1,2)을 기록한 후 바울은 다음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Ⅰ.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진실한 사랑(3-5). Ⅱ. 디모데에 대한 여러 가지 권고(6-14). Ⅲ. 부겔로와 허모게네와 기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말을 하고 오네시보로에 대한 설명으로 본장의 끝을 맺는다. ======== 인사말(딤후 1:1-5) 이상의 본문을 읽어보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Ⅰ. 본 서신의 서문에서 바울은 스스로를 일컬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이라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또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격은 없지만]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또는 복음을 따라서 사도가 되었다고 하였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난 생명의 약속인데, 생명은 목표이며 그리스도는 거기에 이르는 길이 되신다(요 14:6). 생명은 그 약속된 것으로 이 생명과 약속은 신실한 증인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장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가 되며 아멘이 되기 때문이다"(고후 1:20).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토록 따뜻한 사랑을 느꼈던 것은 디모데의 회심을 바울이 도왔으며 또한 디모데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할 때 부자와 같은 친근함을 가지고 일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사람이었다. 즉 바울은 인간의 복음을 받은 것도 아니며 또한 인간의 가르침도 받지 아니했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하여 복음을 위탁 받았다(갈 1:12). 그러므로 그가 사도로 위임받은 것은 인간의 뜻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다.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되었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도로 부르셨다. 2. 우리는 생명의 약속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디도서에서 바울은 자기가 사도 된 것은 "영생의 소망을 인함인데" 이 영생은 거짓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딛 1:2)라고 하였다. 그 약속은 영생의 자유로움과 그 확실성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3. 이 약속은 다른 약속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서 안에서 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성립되는 것이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안에 계신 하나님의 자비로부터 나오며 그것은 확실하여 우리가 안심하고 의존 할 수 있는 것이다. 4. 바울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도 필요하였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에게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도 이 축복들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분에게 복을 기원해야 한다. 5. 이러한 축복들은 가장 축복된 것들이며 또 우리가 진정한 친구를 위해 간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다. 즉 우리가 친구를 위해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은혜, 실수하였을 때 용서하시는 긍휼을 지니게 되기를 간구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과 그들이 평강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은 가장 복된 기원인 것이다. Ⅱ.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과 거룩함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바울이 기도하는 가운데 디모데를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우리가 무슨 선을 행하든지 또 친구를 위해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받으셔야만 하며 우리는 반드시 주님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로 그렇게 기도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기도를 많이 하였고 밤낮으로 기도하였다. 그의 모든 기도 가운데서 바울은 그의 친구들을 잊지 않고 기도해 주었고 특별히 선한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디모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라고 그는 말할 수 있었다. 바울은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기도는 바울의 끊임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듯 바울은 기도하는 중에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은 적이 결코 없었다. 바울은 조상때부터 순전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봉사하였다. 바울이 하나님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은 그에게 대단히 위안이 되었다. 또한 그가 순전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온 것도 그에게는 위로가 되었다. 바울은 거리낌이 없는 양심을 보존하였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였다(행 24:16). 바울은 "디모데 보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는 디모데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인하여 그와 대화를 나누기를 바랐고 또 그들이 서로 헤어질 때 디모데가 흘린 눈물을 그는 늘 기억하였다. 디모데는 바울과 헤어지는 것을 섭섭히 생각하여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다시 보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눈물로 디모데의 바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진실된 것이었는가를 그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또한 디모데가 그의 선조의 신앙을 지킨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5절). 디모데의 어머니 편의 선조로부터 디모데에게 믿음의 유산이 전해졌었다. 디모데는 좋은 어머니와 좋은 외조모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디모데의 아버지는 믿지 아니하였으나(행 16:1) 어머니와 할머니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경건한 부모의 본을 따라 믿음과 거룩함을 모방하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요삼 1:4).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5절). 바울은 그의 동역자에 대하여 대단히 우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잘될 것을 소망하였다. 물론 바울이 디모데를 대단히 신뢰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디모데처럼 심정을 터놓고 말할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빌 2:20).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바울을 본받아 우리도 거짓없는 양심으로 하니님께 봉사하여야 한다. 디모데의 선조와 우리의 경건한 선조가 그렇게 행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이르기를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고 하였다. 2. 기도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친구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데 특히 그리스도의 신실한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바울은 밤낮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그의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를 기억하였다. 3. 진실한 신앙인의 마음 속에 있는 믿음은 거짓없는 것이다. 참된 믿음에는 위선이 없다. 그 믿음은 시련을 견디는 믿음이며 또 이 믿음을 산 원리로써 그들 속에 거한다. 디모데가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믿음을 물려받은 것이 바울의 감사의 제목이 되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항상 그와 같은 일을 볼 때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때마다 기뻐해야 한다. 바나바가 그러하였다(행 11:23, 24).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이르기를 "너희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이 1:4)라고 한 것이다. ------------ 디모데의 믿음과 거룩함(딤후 1:6-14) 본문에는 디모데의 의무에 대한 권고와 격려가 나타나 있다(6절). 본문은 "내가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는 말로 시작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라도 기억을 일깨워 주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아는 것이라도 항상 일깨워야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벧후 3:1)라고 말하였다. Ⅰ. 바울은 디모데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권고하였다. 이것은 재 속에 숨어있는 불을 다시 살려내듯이 그의 마음을 일깨우는 것을 말한다. 본문의 하나님의 은사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모든 은혜와 은사를 뜻하는 것이다. 즉 디모데로 하여금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하여 바울이 안수로서 부여한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말하는 것이다. 디모데는 이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해야 했다. 그는 이 받은 은사들을 사용하여야 했고 그것들을 증가시켜야 했다. 이같이 은사는 사용할수록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된다(마 25:29)고 하였다. 디모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가 받은 은사를 사용했고 또 불일 듯하게 해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은사를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디모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가 평범한 것이든 특별한 것인든 간에(내 생각에는 후자인 것 같다) 디모데는 그것을 일깨워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시들어 버리고 말 염려가 있었다. 더욱이 디모데 안에 있는 은사는 사도 바울의 안수에 의해 주어진 것이었다[나는 이 안수를 직분 안수식과 다른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직분 안수식은 장로회에서 안수되었었기 때문이다(딤전 4:14)]. 디모데는 그에게 특별한 은혜와 은사들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받았는데 이 성령은 바울의 안수에 의하여 주어진 것으로(내 생각에는 사도들 외에는 아무도 성령을 주는 능력을 가지지 못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이같이 복음 사역을 위한 충분한 자질이 갖추어진 장로회에서 그에게 안수하여 직책을 수여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우리가 받은 은사를 증진시키는데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비열한(=소심하고 비겁한, 실패할까봐 미리 염려하여 포기해버리는) 두려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고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7절)라고 하였던 것이다. 악한 종이 달란트를 묻어두고 장사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두려움 때문이었다(마 25: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주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하심으로 두려움의 영을 대적하도록 우리를 무장시켜 주셨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말며 너의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만나게 될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사41:10-16]*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15.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17.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18.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20.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하니님께서는 우리를 두려워하는 영으로부터 구원하셨으며, 또한 우리에게 "능력의 영과 사랑의 영과 근신의 영을 주셨다." 능력의 영이란 어려움과 위험을 만났을 때 그것과 감연히 맞설 수 있게 하는 용기의 영, 또는 결단의 영을 말하는 것이며, 사랑의 영이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영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만자는 여러 가지 반대를 무릅쓰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영으로 마치 야곱이 라헬을 위해 온갖 어려운 수고를 감당하였을 때의 야곱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영은 인간들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해로움이나 인간들에게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 준다. 또한 근신의 영이란 곧 평온한 심정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로 내적인 평안을 즐기게 해 주는 영을 말한다. 왜냐하면 자주 우리는 환상이나 상상의 산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가는 길과 일에서 실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고 견실하고 사고력 있는 마음은 이러한 상상과 환상을 방지해 주고 또 쉽게 대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에게 주신 영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며 담대한 영이다. 그 영은 능력의 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늘과 땅에서 모든 능력을 가진 그 이름으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사역자들에게 주신 영은 사람의 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함이 목회자들의 사역에서 타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주신 영은 근신의 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리와 명철이 들어있는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Ⅱ.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고난을 생각하고 그것을 대비하여 준비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8절). 너에게 맡겨진 복음과 증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아무런 면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받는 자들을 부끄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디모데는 나이 많은 바울이 비록 옥에 갇혔지만 그의 갇힘을 부끄러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기를 인하여 고난받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었다. (1) 복음은 우리 주에 관한 증언이다. 이 복음 안에서 그리고 이 복음에 의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증거 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복음 따를 것을 고백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증거하게 되며 또 그를 위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2) 바울은 주님으로 인해 갇힌 바된 죄수였다(엡 4:1). 그는 그리스도 때문에 사슬로 매여 있는 것이다. (3) 우리가 우리 주님에 대한 증거나 혹은 증거를 위해 갇힌자 된 사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부끄러워한다면 후에 주께서 우리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다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 즉 복음의 목적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것을 예견하고 그것들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하며 그것을 계산하고 이 세상에서 고난받는 성도들과 함께 기꺼이 운명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을 동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또 그들처럼 고통을 받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복음이 고난을 당할 때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구원을 얻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만족히 여겨야 할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① 우리가 그것들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받을 때 우리는 고난을 잘 견디게 된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던 것이다. ②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은 복음의 일을 위해 고난받고 것을 예상해야 하다. ③ 고난과 능력은 상관 관계가 있다. 그러나!! 기대하라!! 고난이 증가할수록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비례적으로 증가할 것이다(고전 10:13). 2. 하나님과 복음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에 의해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셨던가를 하나님께서 복음에 의해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환기시켜 준다(9,10절). 그러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담대히 고난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보라고 촉구한다. (1) 그가 고난받도록 부르심 받은 그 복음의 본질과 그 복음의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계획과 목적. 바울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하여 언급할 때는 언제나 복음이 주제를 넓게 확대시켜 광범위하게 전개하는 것이 그의 관례였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복음이 우리의 구원이 된다는 확신과 또한 그 복음이 우리 모두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복음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라고 본문에 말씀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케 해 줄 그 복음 때문에 고난 당하는 것을 괴로운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구원의 사업을 시작하셨고 때가 오면 완성하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 있지 않은 것을(즉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을) 이미 있는 것처럼 말씀하신다(롬 4:17).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 하셨다"고 본문에서 말한 것이다. ② 복음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계획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8절)즉 "우리를 거룩에로 부르신 것은"이라고 하였다. 기독교는 부름, 곧 거룩한 부름이다. 기독교는 그것에로 우리가 부름을 받은 부름 자체이며 그것을 위하여 수고하도록 우리를 부르는 부름인 것이다. 후에 구원받을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거룩하여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복음의 부르심이 참된 효과를 나타냈는가를 알려 주며 부름 받은 사람이 거룩하여졌나를 보면 된다. 왜냐하면 복음은 거룩케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③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와 영원하신 목적에서 출발된 것이다. 우리가 만일 복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은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요 값없는 은혜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며 그것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이 지나친 고통이라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이 구원의 은혜는 "세상이 지어지기 전에"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주어진 것이라는 말씀이다. 또한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된 인간에서 주어지는 모든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를 통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④ 복음은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가 뚜렷하게 표현된 형태이다. 그런데 이 복음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10절) 나타났다. 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의 품안에 계셨으며 그리고 아버지의 모든 은혜로운 목적을 완전하게 알고 계셨었다. 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은혜로운 목적이 우리에게 명백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위하여 고통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복음을 위하여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지 않겠는가? 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하여 죽음이[그 권세가!!]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저는 사망을 폐하셨다"고 하였다(10절). 이 말은 주께서는 사망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폐지하셨으며 또 우리에게 역사하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려 주셨다는 말이다. 그는 죄를 옮겨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이 사망을 옮기셨다(왜냐하면 사망의 요인은 죄이기 때문이다. 고전 15:56). 곧 그는 죽음의 지배 영역을 빼앗으시고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것이다. 이제 사람에게 [극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했던]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그 대적이었던 죽음이 그들에게 [안식을 가져다 주는] 친구가 되었다. 이제 죽음은 어려움과 고난과 죄가 가득찬 세상을 떠나서 완전한 평화를 순결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그러므로 죽음의 권세가 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죽음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이기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죽음을 이기므로 죽음의 권세는 이제 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라고 하였다. ⑥ 주님께서는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10절). 주께서는 우리에게 전에 주어졌던 계시에 의해 보여진 것 이상으로 저 세상을 우리에게 명백히 보여 주셨고 우리의 믿음에 의한 복음에 대한 보상으로써의 저 세상에서의 복됨을 밝혀보여 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바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께서는 복음에 의하여 저 세상을 확실하게 보여 주셨다. 즉 그것을 우리 앞에 보이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제공해 주시기도 하셨다. 우리는 그 어느 것 보다 복음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에 의하여 생명과 불멸이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은 전에 나타났던 어떤 계시보다 뛰어난 탁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생명의 복음이요 불멸을 약속해 주는 복음인 것이다. 또한 복음은 우리에게 영광에 영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일에 전념케 하는 강한 힘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저 세상으로 가는 준비된 길을 지시해 주는 안내자인 것이다. (2) 바울 자신이 보여 준 본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11,12절). 바울은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받았는데 특별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바울은 복음이야말로 그것을 위해 고통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디모데 또한 바울과 같이 생각해야 옳은 것이었다. 아무도 복음을 인하여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이로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킬 줄 확신함이니라"고 했다(12절). 다음을 생각해 보자. ① 선한 사람들을 때때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추구하려 하기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본문에 "이를 인하여 내가 고난을 받되"라고 했는데 이 뜻은 "나의 복음 전함과 복음을 따라 사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는 뜻이다. ② 복음 사역자들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동기가 떳떳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③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하는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거룩한 승리와 기쁨을 가지고 말하기를 "나는 확고한 기초 위에 서있다. 나는 가장 신뢰할 만한 이의 손에 가장 큰 신뢰를 하고 있음을 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나는 확신하노라"고 하였다. 우리가 무엇을 그리스도에게 위탁하여야 하겠는가?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과 또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 영혼을 지켜 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이같이 우리가 주께 맡긴 바를 주께서는 지켜 주실 것이다. 우리의 영원이 다음과 같이 질문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즉 "남자와 여자들이여! 너희에게 주어진 영혼으로 너희는 무엇을 하였는가? 너희가 너희의 영혼을 누구에게 의탁하였는가? 하나님인가? 사탄에게인가? 그래 그 영혼은 죄에 대한 봉사를 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봉사했는가?"한 날이 이를 것인데 이 날은 매우 엄숙하고 두려운 날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청지기 사명을 어떻게 했는지 보고해야 할 것이며(눅 16:2). 우리 영혼에 대해 보고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발적으로 복종하려는 믿음을 가지고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탁했다면 그가 우리 영혼을 보호해 놓으셨으리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의탁의 결과로 그 날에 우리의 위로가 넘칠 것이다. Ⅲ.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13절)고 하였다. 1. "들은 바 바른 말"이란 것은 다음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우선 그것은 교리 문답식과 같은 짧은 형태로, 믿음의 첫째 원리를 성경에 의거하여 압축한 것으로 즉 자기가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기독교 믿음을 성경으로부터 요약해낸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또는 그것은 "내가 성경을 이해하는 그 기준"이라는 말로 볼 수도 있겠다. 2. 또 "본받아 지키라"했는데 이 말은 그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전하고 그것에 집착하라. 기독교 신앙을 방해하는 모든 이단 교리와 거짓 교훈에 반대하여 복음에 집착하라. 네가 내게 들은 바를 그대로 지켜라는 뜻의 말이다. 바울은 신적 영감을 받았다. 또한 우리가 성경 안에 나타난 바른 말을 지킨다는 것을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경은 신적 영감에 의한 것임을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이다(딛 2:8).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믿음과 사랑으로"지켜야 할 것이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한 말로써 수락하고 그 말씀을 "받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환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선한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언약궤이다. 우리는 그 속에 율법과 복음의 두 돌판을 가장 안전하고 알맞게 배열해야만 한다(시 119:11). 또한 믿음과 사랑은 함께 동반하여야 한다. 온전한 말씀을 믿고 동의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그 말씀을 [침되게]사랑해야 한다. 말씀의 참됨을 믿고 더 나아가 말씀의 선하심을 사랑하고 또 그 바른 말씀을 사랑을 통해 살아내면서 [늘 삶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파해야 한다. 즉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한다(엡 4:15). 또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13절)라고 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를 붙드는 신앙과 사랑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예수님 안에서 또 예수님에 의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또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서 또 그에 의해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다. 복음 사역자로서 디모데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켜야 했다." 본문의 바른 말은 "지금의 힘을 지닌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영혼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 "주께서는 그의 말씀을 보내시고 그 말씀으로 인간을 고치셨다." 같은 의미의 말씀이 14절에 있다. 즉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14절)는 말씀이 그러하다. 아름다운 것은 바로 바른 말씀 즉 기독교의 교훈, 교리와 훈계, 그 적용이다. 그것은 디모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를 받고 교육받았을 때와 목회자로서 안수를 받을 때 그에게 위탁되어진 것이었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기독교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맡겨진 위탁물이다. 그것은 광범위하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로는 목회자들과 성도 한사람 한사람마다에게 맡겨진 것이다. 복음 안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귀중함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을 줄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헤아릴 수 없는 좋은 보물이다. 왜냐하면 그 복음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기 때문이다(엡 3:8).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보존하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뒤에 오는 후손에게 온전히 전해 주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위탁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지켜야 하며 그 순결함을 더럽히고 능력을 약화시키고 그 완전성을 감소시키는 어떤 것을 그것에 더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또한 본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복음을 지키라"고 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복음을 참되게 배울 수 없고, 또 아무리 잘 배운 사람일지라도 그의 도우심이 없이는 자기가 배운 것을 지킬 수 없다!!!. 우리가 복음을 자신의 힘으로 지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성령으로만 복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2) 성령은 모든 선한 목회자들과 성도를 안에 거하신다. 즉 그들은 성령의 전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순전하고 썩지 않게 지키도록 힘을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령께서 그토록 애쓰시는 것을 감사하며 성령께 순복함으로써]이 좋은 복음을 지키도록 힘써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 인간의 노력을 배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고 성령과 인간의 노력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 바울에 대한 오네시보로의 충성(딤후 1:15-18) 13절과 14절에서 디모데에게 복음을 지킬 것을 권고한 후에 바울은 다음의 것을 언급하였다. Ⅰ. 바울은 그리스도의 교훈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배교를 언급하고 있다. 교회의 역사상 가장 순수하였고 훌륭했던 초대 교회에서조차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중에 신앙에서 돌아선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교훈을 저버렸다고 말하지는 않았고(실상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버렸던 것으로 보이지만) 다만 바울을 저버렸으며 바울에게 등을 돌렸다고 말하였다. 또한 바울은 그들이 그가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바울을 배반하고 그를 저버렸다고만 하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바울보다 더 훌륭한 분(곧 주 예수 그리스도)배반하는 판국에 바울을 배반하였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필요 없는 것이다(요 6:66). Ⅱ. 바울은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은 한 사람 곧 오네시보로의 충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저가 나를 자주 유쾌하게 하고 나의 사슬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였다"(16절).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오네시보로가 바울에게 베푼 친절. 오네시보로는 편지로 또 만나서 위로로, 바울을 자주 기쁘게 하여 주고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지금 당하고 있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그를 결코 부끄워하지 않았다. 그는 바울에게 한 두 번 친절을 베푼 것이 아니고 자주 그렇게 하였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었을 때 뿐 아니라 그가 로마에 왔을 때도 그렇게 하였다. 보라!!, 오네시보로는 로마에 와서 "[감옥에 갇혀 있는]바울을 찾느라고 상당히 애를 쓴 끝에 그를 만났다"(17절). 선한 사람은 선을 행할 기회를 찾아다니며 또 주어진 기회를 한 번이라도 소홀히 흘려 버리는 일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에베소에서도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친절하게 잘 섬겼었다. 디모데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2. 오네시보로의 친절에 대한 바울의 보답(16-18절).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급을 받으리라"고 했다. 이제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친절에 대하여 기도로 보답한다. 그리하여 그는 "원컨데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소서"(18절)라고 하였다. 당시에 오네시보로는 집을 떠나서 [감옥안에서.투옥된]바울과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보로가 떠난 후에 그의 집을 위해 또한 기도를 드린다. ((로마 카톨릭 교도들을 오네시보로가 이미 이때에는 죽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위한 본문의 바울의 기도는 오네시보로에게 자비를 내려 달라는 죽은 자를 위한 중보의 기도였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오네시보로가 죽었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그와 같이 중대한 교리나 관습을 단순한 가정이나 매우 불확실한 근거 위에 세우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것인 것이다.)) Ⅲ.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가정에 대한 기도를 한 것처럼 오네시보로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였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즉 죽음의 날과 심판의 날에 긍휼을 얻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때 그리스도는 그의 성도들이 가련한 처지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베푼 선을 모두 당신의 받으신 것으로써 간주하실 것이다.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죽음의 날과 심판의 날은 두려운 날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본문에는 "그 날에"라는 말로 강조되고 있다. 2. 그날에 주님께 은총을 입은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랄 최상의 소망이어야 한다. 그때에는 남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는 자비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3.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그 날에 긍휼 얻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1)고 했다. 4. 만약 그 날에 긍휼을 얻고자 한다면 오늘 주님에게 긍휼을 구하여야 한다. 5. 우리가 받아야 할 긍휼은 주님의 긍휼이요 주님으로부터 오는 긍휼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지 않는 한 인간이나 천사의 동정은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6. 우리는 긍휼의 제공자가 되시고 수여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긍휼을 찾고 또 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해 하셨으므로 그 자비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긍휼을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필요할 때 도와주시는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 7. 우리가 자신을 위해서나 친구를 위해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그날에 자신과 친구들이 주의 긍휼을 얻도록 주께서 승낙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시간을 벗어나 영원으로 들어갈 때 또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갈 때, 그리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긍휼을 내려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날에 우리가 주의 자비를 얻을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실 것이다. === === 디모데후서 제 1장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델레마토스 데우'(*)는 '사도 된'을 직접 수식한다(고전 1:1;고후 1:1;엡1:1;골 1:1). 이것은 바울 자신의 '사도권'이 자신의 노력이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와 작정과 부르심에 근거한 것임을 시사한다(갈 1:1). 바울은 이것을 통해서 (1) 바울의 '사도권'에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반박하며, (2) 디모데가 계승할 '사도직'에 대해 확증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 본절은 그리스도 예수와 바울 사이에 '생명의 약속'을 통한 결속(結束)이 존재함을 나타낸다. '생명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의 부활을 통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이 생명의 약속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바울을 사도로 선택하시고 부르셨다.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다음 두 가지를 시사한다. (1) 바울의 설교를 듣고 디모데가 개종하였음을 시사한다. (2)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 아들로서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 )는 '선물' 혹은 '기쁨'을 의미하는 것으로 값없이 베푸시는 용서와 구원의 선물, 계속 주어지는 일반적인 은혜를 가리킨다. '긍휼'의 헬라어 '엘레오스'(* )는 '자비','측은히 여김'의 뜻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낸다. '평강'(* , 에이레네)은 구약의 '샬롬'(*)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시사한다(고후 5:18). 이 세 가지 중 '은혜와 평강'은 바울의 전(全)서신에 등장하는 인사 양식이다. 그러나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만은 '은혜'와 '평강' 사이에 '긍휼'이 첨가되었다(1:2;딤전 1:2). 이것은 바울이 영적 아버지로서 아들 디모데를 깊이 사랑함을 시사한다. =====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 본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생각한다'는 의미보다는(whthout ceasing I have remembrance of thee, KJV) '생각날 때마다 항상'이라는(as night and day I constantly remember you, NIV) 의미라고 봄이 타당하다(Lock, Guthrie). 바울은 기도 가운데 디모데가 생각날 때마다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를 생각하는 것은 곧 감사 드리는 것이었다(Lock).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 본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생각할 때마다 드리는 감사의 내용이다. 바울은 현재 유대교와 심한 갈등을 빚는 처지에 있지만, 자신은 항상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심오한 관점과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롬 9:3-5;빌 3:4-6). 바울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밝힘으로 자신의 신앙이 조상의 신앙과 구약에 근거를 둔 신앙임을 천명하며 동시에 같은 유대교 집안에서 성장한 디모데도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Scott). =====1:4 @너 보기를 원함은 - 바울이 디모데를 보고자 한 이유는 다음 두가지이다. (1) 네 눈물을 생각하여 - 이것은 밀레도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과 헤어질 때 에베소 교인들이 눈물을 흘렸던 사건을 가리킨다(행 20:37, Scott, Guthrie). 바울은 그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더 간절히 디모데를 보기 원했다. (2)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 바울은 당시 2차 투옥되어 죽음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누구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4:9-11).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서 사랑의 교제를 나눔으로 위로받으며 기쁨으로 가득 채우기를 원하고 있다.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 본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근거이다. '거짓이 없는'의 헬라어 '아뉘포크리투'(*)는 문자적으로 '위선이 아닌'을 의미한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외식적이거나 겉치레가 없는 믿음으로 율법적으로 매여있는 믿음이 아니라 복음으로 충만한 믿음을 시사한다. 한편 '생각함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폼네신 라본'(*)은 문자적으로 '생각나게 하는 것을 가졌다'는 의미로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상기(想起)되었음'을 시사한다(Lock). 그래서 혹자는 '디모데의 서신이나 다른것에 의해서 디모데의 거짓없는 믿음을 상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Bengel, Earle, Guthrie).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 디모데의 믿음이 유대교적인가 아니면 기독교적인가에 대해서 혹자는 '로이스'와 '유니게'가 유대인이므로 유대교적 신앙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Lock, Calvin). 그러나 '로이스'가 '유니게'를 헬라인과 결혼시킨 것으로 보아(행 16:1) 이미 '로이스'와 '유니게'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교 신자들은 절대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니게'에 대해 '믿는 유대 여자'라고 누가가 소개하고 있다(행 16:1). '믿는'이라는 표현은 기독교로 개종한 자에게 적용되고 있다(행 16:14,15). 따라서 디모데의 믿음은 유대교적 신앙이라기 보다 그리스도를 통한 기독교적 신앙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Hendriksen, Guthrie). 이처럼 디모데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로이스'와 '유니게'에 의해서 신앙 교육을 받음으로 '로이스'와 '유니게'의 신앙을 전수받았다. 한편 '확신하노라'의 헬라어 '페페이스마이'(* )는 '페이도'(* ,'확신 시키다', '설득하다')의 완료 수동 직설법으로, '나는 확신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바울이 완전히 확신하였을 때 사용하던 관용구로(Simpson) 디모데의 신앙에 대해 바울이 완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1:7 본절은 디모데가 안수받을 때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활용해서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마음이니 - '마음'으로 번역된 '프뉴마'(*)를 혹자는 서술 소유격으로 보아 인간의 '영'이라고 주장한다(Guthrie, Lenski) 그러나 '프뉴마'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6절의 '네속에 있는'과 연결된다. 6절의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는 곧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므로 '프뉴마'를 '성령'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Scott, Hendriksen).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 '두려워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일리아스'(*)는 '의기소침해 있거나 비겁한 상태'를 의미한다. 디모데는 나이가 어린 목회자여서 거짓 교사들을 대적할 때 두려위 하였으며(딤전 1:3-7;4:6,7,12), 육체적으로 병약해서 늘 의기소침해 있었고(딤전 5:23), 바울이 투옥된 후 복음 전파하는 것을 두려워했다(7,8절).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님을 권면한다. @능력 -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난을 견디며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시사한다(Scott, Guthrie). @사랑 - 이것은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열매로서(갈 5:22-24)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타인을 돕는 것을 가리킨다(Scott). @근신 - 이것은 자신을 절제(節制)하는 것과 타인이 온전해지도록 영향을 끼치고 지시하는 것을 시사한다(Scott, Lenski). 이런 세가지 은사는 사역자가 꼭 갖추어야 할 것으로 바울은 디모데가 과거에 받은 이 은사들을 잘 활용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자신의 직분을 수행할 것을 간절히 기대하며 권면한다. =====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 '우리 주의 증거'를 혹자는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주께서 행하신 증언'이라고 주장하나(White) 그것은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주에 대한 증거' 즉 '복음'을 시사한다(Bernard, Lock, Guthrie).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처럼(롬 1:16) 디모데도 복음에 대하여 부끄러워 말 것을 당부한다. 더 나아가 디모데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인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주를 위하여 갇힌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데스미온 아우투'(* )는 문자적으로 '그의 갇힌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어떤 목적 때문에 바울 자신을 죄수로 만드셨음을 시사한다(Scott).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 '함께 고난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슁카코파데손'(* )은 '쉰'(* ,'함께')을 합성하여 만든 바울의 조어이다. 이것은 바울의 언어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절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라기보다 차라리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의미이다(Lock). 왜냐하면 '복음과 함께'는 '복음을 위하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Earle). 따라서 이것은 바울이 당한 고난을 디모데도 반복함을 시사한다(Scott). 한편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는 디모데 자신이나 바울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에 의해 고난에 동참하여 견딜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할 때만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롬 8:17).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 '거룩하신 부르심'(*, 클레세이 하기아)의 '거룩하신'(* , 하기아)이 여격으로 수단이나 방편보다는 목적을 나타내므로 '부르심'(* , 칼레산토스)의 이유와 목적이 바로 '거룩함'임을 나타낸다(살전 4:7, Guthrie).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다'는 의미로 하나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소속되어서 세상과 구별된 자임을 시사한다.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 하나님의 구원과 거룩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나 공로나 노력 따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롬1:17;3:20-24;10:5-13;11:6;갈2:16;3:6-14; 6:14,15;엡 2:9;딛 3:5). 그것은 두가지 선행 조건에 의해서 성취된다. (1)자기 뜻 - 구원과 거룩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지혜롭고 확실한 계획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롬 8:28;엡 1:11). (2)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 - '은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신 것으로(엡 2:8,9), 인간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은혜를 얻을 수 있다(Lock). 그 '은혜'는 인간의 반응에 따라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 이전에 이미 '영원한 때 전부터' 즉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신 것이다(딛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