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상15장 [545..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204.주의말씀듣고서]
****[북이스라엘]*여로보암.22년 통치(아들 아비야 병사).[여로보암.제18년에 (남)아비얌 등극.3년 통치 + (남)아사 섭정1년은 여로보암 제 20년]..-->나답.2년 통치[블레셋 깁브돈 원정 중, 바아사의 반역으로 살해됨] ...시므리는 본래 이스라엘 병거 절반을 통솔하는 군장, 바아사의 뒤를 이어 등극한 북이스라엘왕 엘라 치하의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에, 디르사에 남아 있다가 모반을 일으켜 엘라 왕을 죽인 후 스스로 등극한,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시므리가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싸우고 있는 백성에게 전해졌을 그 때, 백성은 시므리를 인정하지 않고 군대장관 오므리로 왕을 삼았으니.... 오므리는 군사를 이끌고 디르사에 돌아와 성을 함락시켰고, 시므리는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의 위소로 돌아가서 궁에 불을 놓고 그 속에서 스스로 자살하여 죽었다.(7일천하)..곧 이어 디브니를 추종하는 세략과의 4냔간 쟁투후 디브니가 죽고 오므리 왕조를 연다.. ****[남유다]*르호보암.17년 통치-->아비얌.3년 통치-->아사.41년 통치 (아사.제3년에 (북)바아사 등극.23년 통치--아사.제26년에 (북)엘라가 바아사 뒤를 이어 등극,2년 통치 -->아사.제27년, (북)시므리 반란==>7일만에 오므리에게 포위되어 자살..아사.제31년에 (북)오므리 등극, 12년 통치-->아사.제38년에 (북)아합 등극.22년간 통치 :: 아합 제4년에 (남)여호사밧 등극.25년간 통치(35세)-->여호사밧제17년에 (북)아하시야 등극, 2년간 통치..
===유다 왕 아비얌
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열여덟째 해에 아비얌(= 뜻, 바다신의 자녀)이 유다 왕이 되고 (*아비얌을 아비야!로도 표기하기도함--, 여로보암 아들 아비야와 혼동말라) 2. 예루살렘에서 삼 년 동안 다스리니라 [**눈먼아빠+돼지엄마의 사랑!!**처-첩 18-60명 취한 르호보암은 그중에서 특별히 아비얌의 모친 그술사람 마아가(압살롬의 손녀로서, 그술과 헬몬산 사이에 거주하였던듯.. --마치 압살롬이 사람 마음 훔치는 선수였듯이!! 사람 마음 끄는, 여리여리한!! 특별한 매력/미모+재능/기술 보유자!!)를 더 애지중지 해서, 르호보암은 일찌감치 그의 아들 아비얌에게 왕위를 계승시켰던바!! -- 아들들끼리 서로 싸우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골고루 지방마다 흩어 놓는 인간적 지혜를 발휘함 :: (Q경외함 관점에서가 아니었으니!! 구속사적 고려는 전혀 없었다]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요 아비살롬(-압살롬)의 딸(--실은 손녀)이더라 ......대하11:11-23(16,17)의 아비얌의 왕위계승 배경 참조 :::*16.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17.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대하13장...스마라임 산 대첩 -- 북이스라엘 군사 50만 전사)) ..유다 아비얌(아비야) -40만 군사// 북이스라엘 여로보암-80만군사 : 여로보암의 복병 작전에 말려들었으나 YHWH께 부르짖은바, YHWH의 도우심으로 역전 승리 거둠 :: 이때 입은 부상으로 여로보암 사망.. 3. [다윗에게는 온전히 주님 바라기의, 견고한 심지로 "늘 주께 돌이킴"의 상한마음이 시종일관 있었지만!!, 다른 후손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했다!!---온전한 믿음 없는이마다 왕위에 오래있지 못했음]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르호보암]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우상숭배, 남색 허용]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여호와의 소금언약-여호와신앙 정통성이 유다에 있음 선포 +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숭배/레위지파 제사장-레위인 축출/벧엘에 자의적 제사장 세움의 부당성 설파 :: 부친 르호보암 시절, 스마야선지자의 설득으로 싸우지 않고 유다군 철수 기억케 함 ==>유다군의 앞뒤 복병 인지, 제사장들은 나팔 불며 왕과 더불어 여호와께 부르짖음 인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치심..[:대하13장 특기사항--유다 아비야(아비얌) 40만과 여로보암 80만대군과의, 에브라임산 중 , 스마라임산 전쟁--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의 죄상 지적+ 여호와를 의지한)) 아비야가 승전, 여로보암은 그 당시 패전과 <병사50만 사망 기록이 나오고 있음> = 여호와와 우상 간의 싸움에서 승리 의미] 이에 더하여 여호와의 치심으로 병에 걸려 죽고 .....유다는 벧엘 북쪽의 여사나까지 영토 확장, 상대적으로 여로보암은 이를 계기로 북이스라엘은 하락추세로 돌아섬..전쟁 승리 이후 아비얌은 곧 교만해지고 우상숭배 허용으로 전환, 3년만에 사망(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라임 산 전쟁 승리는 아사왕 시대 10년 평화의 토대 마련한셈).. 4.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 니르.. 후손]을 주시되[=언약 지키시는 Q]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분수령적 회개 통해 (가슴에 주홍글씨 같은 죄패 달고 = 죄인됨 자각하여) 죄에서 떠나(늘 애통함 안에서 행함)]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아비얌은...이기기 위해 살고 있었다...선친때 남북분열 의미를 밝혀 남북 전쟁 막은 선지자 스마야의 권고, 그 의미를 [남과 북 모두!!] 잊고 있었다, 결국 아비얌은 3년만에 죽는다(겨우 구원받음)]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역대하 11장1~4절 ...1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와 베냐민 족속을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 이스라엘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2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에 속한 모든 이스라엘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 8. 아비얌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유다 왕 아사 [=의사/치료자] .....***아사왕 등극 이후 10년간 평온 -->(아사왕, 제10년) 구스100만대군이 아사왕의 유다(58만) 침공 : 대하14:11... 아사왕의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뢰하는] 기도로 승전 --> 승전후,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한바 여호와의 말씀대로 1차 개혁 단행...뒤이어 2차 개혁 단행(제15년)....그후 15-35년 사이의 20년간 평온....아사왕36년에, 바아사의 라마 건축 시도에 대해 <주께 묻지않고!!> 임의대로 아람 벤하닷에게 뇌물로 Q의 전에 있던 은-금을 건네주어서 뒤를 치게 하고, 그가 물러나자, 국방 위해 북방 요새들[라마-게비-미스바 라인을 강화함....: 늘그막에 발에 병들었을 때 주께 묻지 않고 의사들을 의지하여 죽게 됨.. ...: [312..너 하나님께 이끌리어]...[31. 내 임금 예수 내 주여]..[대하15:1-19]..하나님의 영이 아사랴에게 임하시자 아사랴는 아사왕과 유다 백성을 향해 "너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와 함께 하실 것. 그분을 찾고 구하면, 그분도 너희와 함께 하시고 만나 주실 것,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계속해서 힘써 일하라"고 대언하고 있다. ... 아사가 선지자 오뎃의 아들 선지자 아사랴의 예언을 듣고 가증한 물건을 온 땅에서 없애고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는 등의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백성과 함께 여호와께서 제사를 드리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실행하고 있었다. 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예루살렘"= YHWH께 참된 예배드림, 바로 그 구조 가운데 살아있는 예배드림 가운데 있기에 개혁 가능함을 그토록 강조하고 계심]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르호보암의 아내/아비얌의 모친이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조모, 태후]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동성애 + 남창)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아사의 1차 개혁 :: 남색자 축출+우상 제거....**그모스(모압)밀곰/몰렉(암몬) 제의 --[나머지 자녀들의 현세 행복 추구로서] 자녀들 중(주로 장자) 하나를 불 가운데로 걸어가게 하거나, 산채로 제단 불에 태워 제사지냈음**] 13. 또 [아사의 2차개혁 :: 마아가 폐위-제거]그의 어머니 마아가[=어리석음...다른곳에서는 미가야로 기술(여호와와 같은자 누구인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대하15:1-19..아사의 2차 개혁(아사의 태후(모친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그의 손에 의해 자라난바 조모이자 태후인 마아가를 제거) *1.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2.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3.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 *4.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 *5.그 때에 온 땅의 모든 주민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하지 못하며 *6.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셨음이라 *7.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8.[1차 개혁]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없애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없애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9.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에서 나와서 저희 중에 머물러 사는 자들을 모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 *10.아사 왕 제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11.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12.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13.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14.무리가 큰 소리로 외치며 피리와 나팔을 불어 여호와께 맹세하매 *15.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2차 개혁]*16.아사 왕의 어머니(태후) 마아가가 아세라((마아가는 르호보암의 아내, 아비얌의 모친, 아사의 조모로서, 3대에 걸친, [여리여리한 미색과] 그녀의 조부 압살롬의 복수 열정으로 코칭하며 지위 누렸음.....아세라를 요약하자면!! 영적 의미는 "예수 없는 현세복락-행복/쾌락/풍요 추구-누림" -- 하늘과 땅 가리키는 (풍수/폭풍) 바알 목상과는 달리, 여성신체또는 음란한 남근 형상 + 유방 강조)) 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행복만 찾는 아세라상 섬기는 태후를 영으로 분별하여 (의뢰하는자를) 마아가가 아니라 미가야의 여호와로 바꾸고 있음(( ***여리여리한 마아가=압박/어리석은자(스카이캐슬 강조) ==(태후를 폐위/제거-극복)==>미가야 = 여호와와 같은자 누구인가***)) *17.산당은[-산당은, (점술/사술)기복신앙 중심지 :: 비나이다-비나이다]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18.그가 또 그의 아버지가 구별한 물건과 자기가 구별한 물건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더니 *19.이 때부터 아사 왕 제삼십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16.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17.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21.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아사초기10년(1차 개혁 진행)==>100만대군 동원한 구스 침략전쟁 승리후10년간, 제2차 개혁 진행(제25-35년) ::: 이 때까지 평안...그후 북이스라엘 바아사의 라마 건축 위해 남유다를 도발 -->(주께 묻지 않음으로써!!, 벤하닷에게 왕궁과 성전내의 은금을 보내어 계략으로 떠나게 함 (바아사가 라마 건축하려 가져간 물품으로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전쟁이 잦았음을 의미...[대하16:7-10...전쟁이 여호와의 징계로 야기됨...*7.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0.아사가 노하여 선견자(하나니)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11.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2.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13.아사가 왕위에 있은 지 사십일 년 후에 죽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14.다윗 성에 자기를 위하여 파 두었던 묘실에 무리가 장사하되 그의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 재료를 가득히 채운 상에 두고 또 그것을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아쉽게도 마지막6년간은 교만해져서 자행자지하였던바, 아람의 벤하닷에게 북이스라엘 바아사 공격을 의뢰함=(그것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하나니를 투옥함)=옛성품 완전 제거 위해, 다윗의 15광야가 필요함!! 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24.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대하16:7-14...(선견자 하나니) 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아사가 죽다)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 ===이스라엘 왕 나답 [313.내임금 내주 예수여]
[블레셋 깁브돈]-- *1)여로보암의 아들 이스라엘 2대왕 나답을 납달리 바아사가 반역하여 죽인곳 *2)바아사 왕조의 2대왕 엘라가 점령 위해 군대를 깁브돈으로 보내어 블레셋과 대치하는 중에 디르사에 남아있던 바아사의 아들 엘라에 대해 병거장관 시므리가 반역 일으켜서 살해, 7일간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깁브돈 판견군은 다른 군대장관이었던 오므리를 왕으로 삼았고 그는 회군하여 디르사 궁을 포위- 평정하고 시므리는 궁 안에서 스스로 자살, 그후 디브니-오므리 쟁투에서 승리한 오므리가 오므리 왕조를 연다.
25. ○유다의 아사 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26.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Q두려워함 없음] 27.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28.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30.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죄로 말미암음이며 또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 때문이었더라 31. 나답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2. 아사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이스라엘 왕 바아사 33. ○유다의 아사 왕 셋째 해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디르사에서 모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십사 년 동안 다스리니라 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 @@[((주님 보시는 눈, 관점이 중요하다))...[말씀 임한바]어떤 선지자의 전언/외침에 대해 그 전언을 들을바 그가 반응하여 행한 행위 그 자체로 그 사람의 됨됨이 전체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아[천국 입성 여부] 판단해서는 안됨을.... 주의하라].......남유다 아사--(주께 여쭘없이 제멋대로 아람 벤하닷에게 예울을 주어 북이스라엘 바아사를 공격하도록 하였으므로 이에 대해 "*9.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여호와의 말씀 그대로 전한 선지자 하나니를 투옥하였음...//한편, 북이스라엘 바아사--하나니의 아들 선지자 예후에게 임한바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바아사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그에게 속한 자가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꾸짖어 말한 예후는 그냥 두고 있었다. ------ 남유다왕들의 경우, 선지자들의 전언에 때때로 분기탱천하여 박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회개하여 (끝에가서라도) 주께 돌이키고 있는 반면에!! 북이스라엘왕들은 그토록 선지자들을 보내어 전언하는 말씀을 전혀 듣지않고 제 고집따라[여로보암의 길 + 우상 승배의 길 + 정욕/탐욕따라 반역할 기회 추구함을 버리지 않음] 스스로 멸망을 자취하고 있었다 ---------- Q이 은혜베풀어 세우시는바, (사울이나 여로보암이 그리했다... 비천한 신분에서 들어 주권자로 세움 받은 자들이었다) 세움받은 이들을 꾸짖거나 교정해 줄 선지자나 어른이 없음은 슬픈일이요, 선지자/어른의 외침이나 꾸지람에 결코 귀기울이지 않는것이야말로 진정 그 자신을 망치는 일이 되고 말텐데도[지옥행!!] 아랑곳하지 않고 제 길 고집하기에((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블레셋 깁브돈에서 모반하여 왕이 된 잇사갈지파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러했다...자기가 Q자리에 앉았으니!!..듣지 않는다...김일성 동상 세운바 북한 김일성가계가 지금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와 그 백성 위해 계속 외치거나 꾸짖음 통해 교정하시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고 계신다!! -------- @@@깁브돈(Gibbethon) .... :: 단 지파에게 할당되었던 성읍......비옥한 블레셋 해안평야로 연결되는, 블레셋과 에브라임의 경계에 위치하였다... 남북 분열 이후 계속해서 블레셋과 전쟁을 벌이는 경계선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수 19:44...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수 21:33...게르손 사람이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나답왕이 깁브돈에서 블레셋과 전투를 벌일 때에 부하장수였던 바아사가 반란을 일으켜 나답의 왕족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된다....[왕상 15:27...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그를 모반하여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그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이후,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른 뒤, 깁브돈 점령 위해 부하 장수였던 시므리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에도 이 깁브돈에서 전쟁을 수행해던 오므리가 다시 반란을 일으켜 시므리를 죽이고 왕이 된다.....[왕상 16:15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칠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그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왕상 16:16...진 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지휘관 오므리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매] [왕상 16:17..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 쌌더라] ======엘라왕 다음에 북이스라엘의 왕권을 놓고 싸웠던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 ====== **1>시므리 --엘라왕(북이스라엘 네번째 왕)때,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깁돈에서 대치 중이었고 그 때 파견된 군대장관이 오므리였다. 그런데, 디르사 궁에 엘라와 함께 남아 있던 (병거 1/2 장악 중인 병거 장관) 시므리가 엘라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쿠데타로 시므리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오므리는 시므리가 왕이 된 것에 불만을 가지고 군대를 철수해서 디르사(북이스라엘 수도)로 돌아와서 시므리를 포위하였고, 그 때, 시므리는 스스로 궁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게 되니, 시므리 정권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지 7일만에 그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그런 시므리에 대한 성경의 평가를 보면,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왕상 16:19)...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시간의 길이보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졌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시므리의 통치기간이 7일이 아닌 10년이었다고 해도 그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게한 평가를 받았을 거란 의미. **2>디브니, 오므리 그렇게 시므리가 죽고, 오므리가 왕이 되려고 하자, 다른 한 쪽에서는 엘라의 또 다른 신하 디브니를 중심으로한 세력이 결집되었는데... 아마도 시므리, 오므리, 디브니는 엘라 왕 때 실세였던 것 같다. 결국 시므리는 정권을 잡은지 7일만에 죽고 북이스라엘은 4년간 디브니 세력과 오므리 세력으로 나뉘게 되었고, 디브니가 죽고 난 다음에야 오므리는 북이스라엘 왕이 된다 ======오므리의 행적=========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오므리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쿠데타로 정권이 자주 바뀌면서, 세워진 왕조들마다 2대를 버티는 것이 어려웠다. 북이스라엘 말기에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왕이 당대에 또 다시 쿠데타를 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잠시 분열된 북이스라엘을 다시 통합하는 왕이 된 오므리는 부강한 북이스라엘의 기초를 다지면서 4대에 걸쳐 왕조가 유지되고 있는데... 성경에서 엘리야와 함께 나오는 그 유명한 아합왕이 바로 오므리 왕조로서, 오므리 왕조 아합 때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번영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역사적 자료에 보면, 모압의 비문에 오므리가 모압을 정벌한 기록이 나오며, 또 앗수르의 자료에는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오므리의 집'이라고 하였으니.. 오므리는 북이스라엘의 번영의 기초를 닦고,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하였던 왕이었지만, 그것은 세상 역사의 기록과 평가이고, 성경은.."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왕상 16:25-26)..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는 과정을 보면, 오므리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서 성을 건축하고 그 성의 이름을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하였다. 오므리는 왕의 지위를 이용해서 [수도로 삼을 만큼의 넓은 땅을 겨우 은 두달란트로 살만큼!!] 세멜의 땅을 강제로 빼앗은 것(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고, (또, 이스라엘의 토지는 거래가 금지되어 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 은 두 달란트로 땅을 빼앗고, 그 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함으로 토지를 매매한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것이기에. 그래서, 성경은 오므리를 가리켜서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을 행한자이며, 여로보암의 모든 길을 행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런 오므리 다음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이 아합이었다. ------- [NASB]제15장
1. Now in the eighteenth year of King Jeroboam, the son of Nebat, Abijam became king over Judah. 2. He reigned three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Maacah the daughter of Abishalom. 3. And he walked in all the sins of his father which he had committed before him; and his heart was not wholly devoted to the LORD his God, like the heart of his father David. 4. But for David's sake the LORD his God gave him a lamp in Jerusalem, to raise up his son after him and to establish Jerusalem; 5. because David did what was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had not turned aside from anything that He commanded him all the days of his life, except in the case of Uriah the Hittite. 6. And there was war between Rehoboam and Jeroboam all the days of his life. 7. Now the rest of the acts of Abijam and all that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And there was war between Abijam and Jeroboam. 8. And Abijam slept with his fathers and they buried him in the city of David; and Asa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9. So in the twentieth year of Jeroboam the king of Israel, Asa began to reign as king of Judah. 10. And he reigned forty-one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Maacah the daughter of Abishalom. 11. And Asa did what was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like David his father. 12. He also put away the male cult prostitutes from the land, and removed all the idols which his fathers had made. 13. And he also removed Maacah his mother from [being] queen mother, because she had made a horrid image as an Asherah; and Asa cut down her horrid image and burned [it] at the brook Kidron. 14. But the high places were not taken away; nevertheless the heart of Asa was wholly devoted to the LORD all his days. 15. And he brought into the house of the LORD the dedicated things of his father and his own dedicated things: silver and gold and utensils. 16. Now there was war between Asa and Baasha king of Israel all their days. 17. And Baasha king of Israel went up against Judah and fortified Ramah in order to prevent [anyone] from going out or coming in to Asa king of Judah. 18. Then Asa took all the silver and the gold which were left in the treasuries of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treasuries of the king's house, and delivered them into the hand of his servants. And King Asa sent them to Ben-hadad the son of Tabrimmon, the son of Hezion, king of Aram, who lived in Damascus, saying, 19. "[Let there be] a treaty between you and me, [as] between my father and your father. Behold, I have sent you a present of silver and gold; go, break your treaty with Baasha king of Israel so that he will withdraw from me." 20. So Ben-hadad listened to King Asa and sent the commanders of his armies against the cities of Israel, and conquered Ijon, Dan, Abel-beth-maacah and all Chinneroth, besides all the land of Naphtali. 21. And it came about when Baasha heard [of it] that he ceased fortifying Ramah, and remained in Tirzah. 22. Then King Asa made a proclamation to all Judah-- none was exempt-- and they carried away the stones of Ramah and its timber with which Baasha had built. And King Asa built with them Geba of Benjamin and Mizpah. 23. Now the rest of all the acts of Asa and all his might and all that he did and the cities which he built,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But in the time of his old age he was diseased in his feet. 24. And Asa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with his fathers in the city of David his father; and Jehoshaphat his son reigned in his place. 25. Now Nadab the son of Jeroboam became king over Israel in the second year of Asa king of Judah, and he reigned over Israel two years. 26.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walked in the way of his father and in his sin which he made Israel sin. 27. Then Baasha the son of Ahijah of the house of Issachar conspired against him, and Baasha struck him down at Gibbethon, which belonged to the Philistines, while Nadab and all Israel were laying siege to Gibbethon. 28. So Baasha killed him in the third year of Asa king of Judah, and reigned in his place. 29. And it came about, as soon as he was king, he struck down all the household of Jeroboam. He did not leave to Jeroboam any persons alive, until he had destroyed them,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oke by His servant Ahijah the Shilonite, 30. [and] because of the sins of Jeroboam which he sinned, and which he made Israel sin, because of his provocation with which he provoked the LORD God of Israel to anger. 31. Now the rest of the acts of Nadab and all that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32. And there was war between Asa and Baasha king of Israel all their days. 33. In the third year of Asa king of Judah, Baasha the son of Ahijah became king over all Israel at Tirzah, [and reigned] twenty-four years. 34. And he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walked in the way of Jeroboam and in his sin which he made Israel sin. ======= 열왕기상 15장 (개요) 본 장에서 우리는 남북 양 왕국의 왕 중 각 두 명씩의 역사를 요약한 내용과 접하게 된다. 1. 유다 왕 2인의 역사. 그들은 곧 아비얌과 아사로서 아비얌의 통치는 악하였고 그 기간도 짧았으나(1-8) 아사는 선정을 베풀었고 그 통치는 장기간에 걸쳤다(9-24). 2. 이스라엘 왕 2인의 역사. 그들은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과 여로보암가의 멸망자 바아사였다(25-34). -------- 아비얌의 통치(왕상 15:1-8) 우리는 여기에서 유다 왕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의 단기 집권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역대기에서는 그의 모습이 한결 자세하게 나오는데(대하 13장), 거기에는 그가 여로보암과 벌인 전쟁 기사가 나오며, 적군 앞에서 행한 연설 및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가 획득한 놀라운 승리도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역대기에서는 그를 아비야(Abijah)라고 칭하는데, 그 말은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시다”라는 의미다. 또 거기서는 그에게 어떤 악한 것도 추궁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 열왕기에서는 그의 여러 결점이 나오며, 하나님의 이름인 야(Jah)가 그의 이름에서 빠져 있으며, 그는 아비얌(Abijam)으로 불리는데, 이는 그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렘 22:24 참조). Ⅰ. 아비얌에 관한 세부적 사실은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1. 그의 통치는 여로보암 18년 초에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르호보암이 17년밖에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14:21). 여로보암은 르호보암보다 장수했지만, 르호보암의 아비얌은 자기 아버지를 계승하여 여로보암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여로보암의 아비야(14:1)는 자기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2. 그의 통치는 삼 년도 채 되지 못했다. 그는 여로보암 20년 말에 죽은 것이다(9절). 아비얌이 여로보암에게 대승리를 거두고 나서 교만하고 안심했으므로(대하 13:21), 하나님께서는 그를 단절시키셔서 그 아들 아사를 위한 길을 열어 주셨다. 아사는 보다 선한 자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3. “그의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로 아비살롬의 딸이었다.” 아비살롬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말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르호보암의 다른 두 아내는 그의 근친이었기 때문이다(대하 11:18)―하나는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이었고, 또 하나는 다윗의 형제 엘리압의 딸이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 아닌 백성과 결혼하는 것은 자기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근친 결혼을 했던 것이다. 4. 그는 자기 아버지가 여로보암과 벌인 전쟁을 계속 수행했다.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간에는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정규전이 아니었고(정규전은 금지되어 있었다. 12:24), 가끔 있는 우발전이었다. 특히 국경 지대에서는 소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쪽이 습격하면 다른 한 편은 보복전을 치르는 판이었다. 아비얌과 여로보암 간에도 그와 같은 전쟁이 있었다(7절). 그래서 여로보암은 대군을 휘몰아 침공했고 이에 자기 방어의 작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아비야도 기병을 하여 여로보암군을 패주시켰던 것이다. 이 전쟁의 결과 여로보암은 세력이 약화되어 나머지 재위 기간 동안 조용히 지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대하 13:20). Ⅱ. 그러나 전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다윗과 같지 않았다. 그는 여로보암을 치려는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성전과 제사장의 소유를 자기의 자랑하는 것으로 내세웠다고는(대하 13:10-12) 하지만, 하나님의 율례에 대해 충심으로 애호하는 마음은 없었다. 경건의 능력에는 낯설면서 경건의 고백은 자랑하는 자들이 허다하며, 신앙에 대해 진실하지 않으면서 종교의 진리성만을 역설하는 자가 많다. “그의 마음은 자기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했다.” 그는 열심을 품은 듯이 보였으나 성실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시작은 썩 잘 했으나 중도에 타락하여 그 부친이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결과의 악함을 목도하고서도 그 아비의 나쁜 전례를 따랐다. 그는 평생토록 전쟁에서 손을 떼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그는 마땅히 하나님과 화친을 유지하고 그를 원수로 삼지 않을 만큼 현명해야 했다. 특히 그는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좋은 친구이심을 체험했던 것이다(대하 13:18).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한다”(사 26:10). 2. 그가 등극하여 왕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다윗 덕분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신 것은 다윗을 위해서였다(4, 5절).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가 전철을 밟은 자기 아비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본받으려고 하지 아니한 “다윗을 위해서”였다. 조상의 경건 때문에 호강하고 그 덕에 축복을 받으면서 그 행위를 본받지 않으려는 것은 타락한 자손의 죄를 더욱 가중시킨다. 그들은 바로 그 터전 위에 서 있으면서 그것을 멸시하고 짓밟으며, 그 혜택을 입고 있으면서 이치에 어긋나게도 그것을 조롱하고 반대한다. 유다 왕국이 지탱되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1) 하나님이 자기의 기름 부은 자를 위해 등을 예비했다는 말씀(시 132:17)에 준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등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 예루살렘이 든든히 서도록 하기 위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이 존귀의 대명사였는데, 그런 존귀를 예루살렘이 보존할 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예루살렘의 영화를 작정하여 예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다윗에 대해 내리는 정평은 여간 큰 게 아니다―“다윗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그러나 예외 조항도 매우 주목할 만하다―“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이 말씀에는 우리아를 모살한 것과 그의 아내를 더럽힌 일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악한 일이었다. 그 일로 인해 그의 이름에는 오점이 따라다니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치욕이 되었다. 그의 죄는 씻김을 받았으나 그 죄로 인한 불명예는 씻기지 않았다. 다윗에게는 다른 허물도 있었으나 이 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죄를 회개했고, 그로 인해 언약으로부터 축출당하지 않았으며, 그의 후손에게 부과한 약속 또한 단절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이 일은 타인에게 경종을 울려 주기 위해 언급되고 있을 따름이다. ------ 아사의 통치(왕상 15:9-24) 여기에는 아사의 치적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우리는 보다 풍부한 역사를 역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대하 14-16장). Ⅰ. 통치 기간(10절). “그는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을 치리했다.” 유다 왕들에 대한 기록에서 우리는 선한 왕과 악한 왕이 거의 동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한 왕들의 통치는 대체로 길고 악한 왕들의 통치는 짧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당하고 있는 처지도 그 기간 안에서 얼핏 보기에 나쁜 것 같지만 그다지 나쁠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날의 길이는 지혜자의 우편 손에 있다. “네 아비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리요! Ⅱ. 그 통치의 일반적인 선한 특징(11절). “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하나님의 눈에 정직한 것으로 비친 자들은 참으로 정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자들은 그 정직성이 증명되고 인정받는 자들이다. 아사는 그 조상 “다윗같이 행했다.” 그는 하나님과 정해진 예배를 떠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진심과 열성으로 예배했다. 그는 다윗처럼 선지자도 시편 저자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다윗과 같다는 명예로운 평판을 얻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보다 앞서 간 자들의 은혜에 맞춰서 나아간다면, 비록 그들의 재능에는 못 따라간다고 해도, 하나님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아사는 다윗과 같은 정복자도 저술가도 아니었지만, 다윗과 같다고 한 것은, “그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했던” 까닭이다(14절). 그는 진심에서 우러난 신앙을 가졌고, 그 신앙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은 진지했고 꾸준했으며 한결같았다. 그는 선한 원리에서 이 일을 행했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일념으로 했다. Ⅲ. 아사의 경건에 대한 세부적 사례. 그의 시대는 개혁의 시대였다. 1. 그는 악한 것을 제거했다. 개혁의 출발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의 손이 해치워야 할 개혁 사업은 엄청나게 많았다. 그가 등극한 것은 솔로몬의 사후 20년밖에 되지 않아서였지만, 그 나라에는 큰 부패가 너무나 만연했고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맨 먼저 공격한 것은 부도덕이었다. “그는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매음굴을 탄압했다. 전염병 환자가 득시글거리는 격리 병원보다 더 위험한 곳, 즉 음란하고 불결한 새들의 우리가 그냥 남아 있는 동안, 어떻게 군주나 국민이 번영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나서 그는 우상 숭배의 금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는 “모든 우상”, 심지어 “자기 아비가 만든 우상조차 없애 버렸다.” 자기 아비가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그는 우상의 제거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으니, 이는 저주의 상속을 끊고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자가 불의로 벌받는 일이 없도록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자기 왕궁에서 우상 숭배를 발견하자 그것을 근절시키기까지 했는데, 이것은 그의 명예에 큰 보탬이 되었고,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온전했음을 나타내 주는 실례다(13절). 마아가는 그의 모친이라기보다 조모였지만, 그는 유아기에 할머니의 교육을 받았으므로 그의 모친이라고 칭해지고 있다. 그의 모친, 즉 그의 조모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세워 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어머니, 곧 조모는 특히 아세라 우상을 애호했던 것 같다. 그 여인은 늙어서 우상 숭배를 장려할 만큼 오래 살 수 없었고, 또 그녀 개인용으로만 우상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아사는 절대로 그것을 묵과하려고 하지 않았다. 개혁은 가정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악행이 궁중에서 유지되고 있는 한, 나라 안에서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아사는 그 외의 일이라면 무엇에서든지 자기 어머니를 존귀하게 하고 공경할 터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보다 더 사랑하기에(레위인처럼. 신 33:9), 자기 의무와 상충하게 되는 경우에는 모자 관계도 기꺼이 눈감아 버렸다. 어머니라고 해도 우상 숭배자라면 그는 다음 두 가지 일을 단행할 것이었다. (1) 그 여인의 우상은 파괴된다. 그는 어머니의 우상을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게 하며, 파손시키고,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재로 만들었다. 아마 그는 그 재를 그 물에 띄웠을 것이다. 이것은 모세의 본을 받은 것이었으며(출 32:20), 우상 숭배에 대한 혐오감의 표시였고, 어디서든지 우상이 그의 눈에 띄기만 하면 야기될 그의 분노에 대한 표본이었다. 궁중 우상의 잔재가 눈에 띄지 않을 때까지, 그는 이 작업을 계속하고자 했던 것이다. (2) 그 여인은 폐위된다. 아사는 그 여인을 태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거나 아니면 자기 아내에게서 물러나게 했을 것이다. 즉 자기 아내와 담소하지 못하게 밀어냈을 것이다(왕비와 태후라는 단어는 똑같다―역주). 그는 자기 어머니를 궁중에서 축출시키고 눈에 띄지 않는 한거(閑居)에 유폐시켰을 것이다. 권세가 있더라도 이처럼 선용할 마음이 있는 자들은 복이 있다. 2. 그는 선한 것을 재확립시켰다(15절). 그는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다.” 그는 에티오피아인들(구스인)을 정복했었는데, 그 전리품을 봉헌하기로 서원했던 것이다. 그의 부친도 서원했으나, 자기의 맹세를 따라 살아서 헌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악행을 그쳐야 할 뿐만 아니라 선행을 배워야 하며, 불의의 우상을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기도 해야 한다. 유아시에 세례로써 하나님께 받들어 드린 바 된 자들이 하나님과 결합하고 하나님의 봉사에 활기 있게 종사하는 것을 자신의 행위로 삼을 때라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구별한 것을 받들어 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꼭 해야 할 도리로서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그에게 드리는 셈이 된다. Ⅳ. 그의 정책. 아사는 인구 증가를 장려하고 거주지의 편리함을 내세워 타국인을 유치시키려고 직접 도시를 건축했다(23절). 그는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열성을 냈다. 그 이유는 라마 건축의 의도가 유다 인민과 예루살렘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하나님께 대한 복종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오는 자들을 훼방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적국이 전초 기지를 강화하도록 방임해서는 절대로 안 되었던 것이다. Ⅴ. 그의 실정. 그는 우상 타파와 성물 헌납으로 칭찬을 받았으나 그 두 가지 일 가운데서도 부족한 점이 노출되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인물에게도 이런 저런 흠이 없을 수가 없으며, 옥에도 티가 있는 법이다. 1. 그는 우상을 제거했던가?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였다”(14절). 그의 개혁은 이 점에서 모자랐던 것이다. 그는 참되신 하나님과 경쟁하려 하거나 그를 거짓되게 나타내는 모든 형상을 제거했으나, 산당에 설치된 제단은 방임해 두었다. 성전 제단에 봉헌되어야만 할 제물이 산당 제단에 헌납되어도 그는 산당을 그냥 세워 두었다. 산당은 성전이 건립되기 전에 신실한 자들에게 애용되던 것이었기에 별반 큰 해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또 백성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은 산당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관습과 편의에 의해 산당과 밀접히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사의 통치하에 있던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예루살렘과 그 제단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더 멀리 떨어져 자리잡은 지파들보다 산당을 둘 구실이 더 없었다. 그들은 “한 곳에서” 예배드리도록 규정한 율법을 어기고 있었다(신 12:11). 백성이 지나치도록 산당에 혹해 있는 한, 산당은 성전과 그 제단에 대한 존중심을 감소시키며, 우상 숭배에 빠져 들게 하는 공공연한 기회가 되었다. 아사가 권병을 수중에 장악하고 있으면서 이들 산당을 제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사의 “마음은 여호와 앞에 온전했다.” 선을 행할 수도 있고, 또 마땅히 행해야 할 자들이 몇몇 사례에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더라도, 하나님께는 정직하고 의로운 자로 취급되어 열납된다는 것은 우리가 즐겁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새 언약에서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되는 온전함은 죄가 없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성실성이란 의미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무죄한 것이 온전함을 뜻한다면 우리 중 망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2. 그는 구별한 것을 받들어 드렸는가? 그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헌납했던 물건을 나중에 남에게 양도했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금과 은을 꺼내서 벤하닷에게 뇌물로 보냈다. 그로써 벤하닷을 매수하여 바아사와의 동맹 관계를 파기시키고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함으로써, 바아사로 하여금 라마 건축 의욕을 돌리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18, 19절). 여기서 아사가 범한 죄는 다음과 같다. (1) 벤하닷으로 하여금 동맹 관계를 파기하게 하여 국제적 신의를 저버리도록 유혹했다. 아사의 그런 행동이 분명히 그릇된 것이었다면, 그렇게 행하도록 설득한 것도 그릇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2)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행해 주셨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간접적 자구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런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리라고 의뢰하지 않았다. (3) 그는 성전 곳간에서 금을 끄집어냈다. 성전 곳간 안에 든 것은 오직 비상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계획이 적중하여, 벤하닷은 이스라엘 땅에 내습했고, 바아사는 자기의 전 병력을 라마에서 철수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20, 21절). 이로써 아사는 바아사의 라마 축성 공사를 와해시킬 수 있는 호기를 얻게 되었으며, 재목과 석재는 아사가 유다의 다른 여러 성읍을 건축하는 데 이용되었던 것이다(22절). 비록 그 계획이 순조롭게 풀려 나갔다고는 하나 우리는 그 일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사는 그 계책을 자랑으로 여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자기의 평화가 효과적으로 확보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아사는 선지자에게서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것과 그에게 전쟁이 있으리라는 말을 듣는다(대하 16:7-9). Ⅵ. 그의 정치적 난관. 그는 대부분의 통치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애로가 있었다. 1. 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그에게 매우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바아사는 24년간 통치하면서 일생 동안 아사와 크고 작은 전쟁을 했다(16절). 그들이 끊임없이 서로 도발하여 상대방을 약화시키게 된 것은 왕국이 분열된 결과였다. 이로 인해 양국은 공동의 대적에게 손쉬운 먹이가 되고 말았다. 2. 아사는 노년에 통풍(痛風)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는 발에 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일하기가 더 거북해지고 주위 사람에게 역정을 내게 되었다. Ⅶ. 그의 통치의 종결. 그의 치적은 이 성경보다 일반 역사서에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참고 서적은 23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장기 집권을 했으나 드디어 영예롭게 통치의 종막을 고하고 어느 모로 보나 자기보다 뒤떨어지지 않는 후계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 나답과 바아사의 통치(왕상 15:25-34) 유다 왕국이 아사의 선정 아래서 행복을 누리는 동안, 이스라엘은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는데(14:15), 이제 여기에서 그것은 현실로 나타난다. 본 장과 다음 장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 유다 왕국이 아사의 단일 지배하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왕국의 통치는 예닐곱 사람의 수중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아사 집권 초기의 이스라엘 왕은 여로보암이었고 그 끝에는 아합 왕이 있었는데, 이 사이에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디브니 그리고 오므리가 서로 전복과 주살을 일삼으면서 집권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과 다윗의 집을 유기함으로써 권세를 잡게 되었는데, 우리가 여기서 대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아히야를 통해 하신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로보암 가문은 주륙을 당하고 멸절되었다. 여로보암을 계승한 것은 그의 아들 나답이었다. 나답이 만일 자기 형제 아비야가 죽었을 때 마땅히 감화를 받아 경건해지고, 그의 죽음에 대해 세인이 표한 경의를 보고 그의 선한 모본을 따랐더라면, 그의 통치는 길고 영화롭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그 아비의 길로 행하여”(26절) 송아지 숭배를 계속하며, 자기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예배하는 것을 금지시킴으로써, 자신도 범죄하며 “이스라엘로 범죄케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파멸을 속히 내리셨으니, 그것은 그가 통치한 지 2년만이었다. 그는 블레셋인들이 단 사람들에게서 탈취하여 소유하고 있던 성읍 깁브돈을 포위하여 그 탈환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있던 자기 군대의 내부에서 바아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반을 일으켜 그를 시해했던 것이다(27절). 그는 자기 백성에게 아주 인기가 없어서 그의 군대가 그를 위해 복수하기는커녕 외려 그를 시해한 자를 그의 후계자로 택하기까지 했다. 바아사가 찬탈하게 된 것이 나답에 대한 개인적 원한에서였는지, 아니면 여로보암가로부터 받은 어떤 수모에 대한 복수심에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는 폭군의 학정으로부터 조국을 해방시키겠다는 구호 아래 한 일인지 아니면 단순히 왕위에 올라가 보겠다는 야망의 원리에서 저지른 일인지 확실히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그는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28절). 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은 여로보암의 온 집을 멸절시킨 일이었다. 이는 바아사 자신과 자신이 찬탈한 정권을 보다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들을 투옥하거나 추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전멸시켰다. 남자들뿐만 아니라―14장 10절에 예고된 대로―생명 있는 자라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멸했던 것이다. 이 일에서 바아사는 야만적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셨다. 여로보암의 죄는 벌을 받았다(30절).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자들은 자신의 “수욕을 자취하려고”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렘 7:19 참조). 아히야의 예언이 성취된 것은 하나님의 어떤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위협적 경고는 도깨비 장난이 아니다. Ⅱ. 바아사의 출세. 그는 여로보암이 그랬던 것처럼 잠시 동안 시련을 받게 된다. 그는 24년간 통치했다(33절). 그가 여로보암 일족을 전멸시킨 것은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혐오감에서가 아니라 악의와 야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죄인들을 뿌리째 뽑고 난 뒤 그 자신도 죄악에 집착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길의 결국을 목격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죄의 기만성으로 완악하게 될 만큼 너무나 이상했던 것이다.
===호크마=== 열왕기상 15장 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제 십팔년에 아비얌이 유다 왕이 되고 ㅇ여로보암 왕 제 십 팔 년에 - 여로보암의 즉위 연대는 B.C. 930년경이다. 그러므로 이 해는 B.C. 930년경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유다나 이스라엘 왕의 즉위 연대를 이렇게 이스라엘이나 유다 왕의 연대에 비교해서 밝히는 상관 방법은 열왕기의 특징이다(9,25,28,33 절). 당시에는 이외에 달리 객관적 연대 표시 방식이 없었기 때문이다(S-zikszai). ㅇ아비얌 - 아비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유다의 제 2대 왕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14:31주석 참조. 그런데 대하 11:21,22에 의하면 아비얌은 원래 장자(長子)가 아닌, 단지 르호보암이 장자로 '삼은'(후계자 지명을 의미) 아들로 나타난다. 이는 아비얌의 모친 마아가(Maachah,2절)가 르호보암이 총애하는 왕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르호보암의 행위는 조부 다윗의 행위와 흡사하다. 왜냐하면 과거 다윗도 장자를 제껴 놓고 총애하는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으로 후계자를 삼았기 때문이다(1:5-40). 그러나 다윗의 경우와 달리 르호보암은 일찌감치 아비얌을 왕위 계승자로 선포함으로써 사전에 왕비를 둘러싼 경쟁 가능성을 봉쇄하였다는 차이가 있다. 2 예루살렘에서 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ㅇ삼 년을 치리하니라 - 여기서 3년은 여로보암 재위 제 18년에서 20년 사이(B.C.913-911년경), 즉 햇수로 3년을 가리킨다(9절). 그러므로 아비얌의 실제 재위 기간은 무척 짧았던 셈이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본문이 침묵하므로 적절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ㅇ마아가 - 이처럼 왕의 즉위시 모친의 이름이 밝혀지는 것은 열왕기가 유다 왕들을 취급하는 기록상의 특징이다. 14:21 주석 참조. 한편 마아가는 아비살롬(Abishalom), 즉 압살롬(Absalom)의 딸이다. 그러나 역대기에 의하면 아비얌의 모친은 '우리엘'(Ur-iel)의 딸(대하 13:2)로 나타나 있는데 이 같은 문제는 마아가를 압살롬의 딸 다말(삼하 14:27)이 우리엘에게 출가하여 낳은 딸, 즉 압살롬의 손녀로 봄으로써 해소된다(K-eil&Delitzsch Commentary,Vol.III,p.217). 그러므로 르호보암은 자기 사촌 혹은 조카와 결혼한 셈이다. 물론 이러한 근친 결혼은 고대 사회에서 흔한 것이지만(창20:12;24:48;29:15-30) 왕가 내의 근친 결혼에는 특히 정치적 목적이 왕가 내의 근친결혼에는 특히 정치적 목적이 강했을 것이다. 즉 왕권 강화를 위해 각 지파의 유력자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다윗(삼하 3:2-5;5:13-16)의 경우 가족내의 분란을 많이 치뤄야 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그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혼인 관계로 왕가를 다시 얽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여하튼 미남자 압살롬의 딸(정확히 말하자면 손녀)마아가는 르호보암의 총애를 받았다. 1절 주석 참조. 한편 대하 13:2의 '미가야'는 '마아가'의 오기(誤記)일 것으로 추측된다(Dahlberg). 3 아비얌이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 마음이 그 조상 다윗의 마음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나 ㅇ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 - 즉 르호보암이 유다 통치 기간 중 전국에 우상숭배를 만연시킨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14:21-24). 그런데 아비얌의 통치 역시 이 점에 관한한 르호보암과 달라진 바가 없었다. 그래서 열왕기는 르호보암에게 그러했듯 아비얌에게도 냉정한 힐난(詰難)의 논조를 견지한다. 한편 이와 달리 역대기는 아비얌의 신앙적 색채 짙은 연설과 여로보암에게 거둔 전쟁의 승리를 서술하고 있다(대하13:2-18). 그러나 그런 점들조차 우상 숭배를 허용한 아비얌에 대해 열왕기기자의 냉정한 평가가 달라지도록 하지는 못한 것이다. ㅇ그 마음이...온전치 못하였으나 - 역대기기록에 나타나는 아비얌의 경건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그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까닭은 오로지 그의 우상 숭배행위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다윗의 마음'이란 '하나님을 향해 전심 전력함'이라는 특성으로 요약된다(8:25;9:4). 그런데 이와 달리 우상 숭배란 부정한 배우자(配偶者)의 소행처럼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일이다(14:22). 그러므로 다른 그 무엇으로도 으뜸가는 이 범죄를 메꿀 수는 없는 것이다(출 20:1-6;신 4:15-24). 4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저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 ㅇ원문 초두에는 '그러나'(키)가 있다. 그리고 본절은 '다윗 계약'(삼하 7:8-16)에 충실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말한다. 따라서 3절에 지적된 바와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비얌의 남왕국이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다윗으로 인한 하나님의 은총때문이라는 것이다. ㅇ등불 - 뒤이어 나오는 '후사'(後嗣)와 동의어로 곧 '자손'을 상징하는 말이다(삼하21:17;욥 18:5,6;시 132:17).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36 주석을 참조하라. ㅇ그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 여기서 '세워'(* ,쿰)는 약속이 확립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는 곧 우상 숭배를 허용한 아비얌(3절)이 자기 아들에게 대를 물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확립하셨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북왕국의 우상 숭배자들이 자주 대(代)가 끊기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입은 것에 비해 남왕국 왕들은 비교적 무사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14:10;16:2;왕하 10:11). 한편 북왕국은 약 250년동안의 존속 기간 동안 무려 아홉왕조의 교체를 겪었으나 반면 남왕국은 약 400년 동안 다윗왕조의 통치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Hammond). 본서 서론, '12.열왕기서의 참조 도표'참조. 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ㅇ국가에서는 어떤 권력자도 법의 제한에서 제외될수 없듯, 신정 국가(神政國家) 이스라엘의 왕 역시 하나님의 법에 의해 제한당하고 비판당하여야 했다. 그러나 실제 열왕의 역사는 그러한 이상이 자주 무시당했음을 보여준다. 즉 왕들은 자신의 권력이 무엇으로든 제한되거나 비판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는 대개 무시당했고 도리어 예언자 자신이 위협을 받곤 하였다(22:13-28). 이러한 열왕들의 횡포와 부당성이 이스라엘 역사를 그릇되게 족쇄채웠음을 아는 열왕기 사가(史家)는 바로 그 점에서 다윗의 탁월함을 또 하나 발견한다. 즉 다윗은 우리아의 일로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비난했을 때 그를 벌하기는 커녕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시인하고 통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삼하 12:1-23). ㅇ어기지 - 이에 해당하는 '수르'는 '빗나가다','돌이키다'는 뜻이다. 즉 이는 마치 임무를 띤 군인이 그 임무에서 임의로 이탈하듯 자신의 본분에서 이탈하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이다. 6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있었더니 ㅇ이미 14:30에서 언급된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는 구절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14:30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ㅇ사는 날 동안 - 14:30의 '항상'(콜 하야밈)은 문자적으로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사는 날 동안'(칼 예메 하야요)은 '생명의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즉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도 본절에서는 좀더 강조된 부사가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조 효과는 다음 7절과 연계될 때 보다 적절히 발휘된다. 즉 이는 '선대에도 줄곧 전쟁이 있더니 후대에도 그러했다'는 지적인 것이다. 7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아비얌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ㅇ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으니라 - 본절과 달리 대하 13장은 이 두 왕이 벌인 큰 전투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아비얌이 이끄는 남왕국 유다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승리한다. 즉 이때 유다군은 북왕국 군대의 협공을 받아 위태로운 지경에 빠졌으나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투를 계기로 그때까지의 균형은 허물어지고 남왕국의 경계는 벧엘 훨씬 북쪽의 여사나(Jeshanah)지역까지 북상하게 된다(대하 13:19). 한편 결과적으로 이 승리는 아비얌의 다음 왕인 아사 시대의 10년 평화에 영향을 주었음이 틀림없다(대하 14:1). 왜냐하면 북왕국이 이 전투에서 꺾인 세력을 회복하는 데 그만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R.D.Patterson). ㅇ유다 왕 역대 지략 - 14:19,29 주석 참조. 8 아비얌이 그 열조와 함께 자니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아사 - 혹자는 '아사'란 이름의 뜻이 '치료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ese-nius). 그러나 분명치는 않다. 한편 유다의 제 3대 왕인 아사(Asa)는 종교 개혁을 단행한 업적(11-15절;대하 14:1-5) 때문에 열왕기가 높이 평가하는 왕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부친 아비얌이 불과 3년 밖에 재위 하지 못한 사실을 그보다 훌륭한 아들 아사의 길을 빨리 열어 놓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이도 있다(Mattew Henry). 9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ㅇ여로보암 제 이십 년에 아사가 유다왕이 되어 - 그러므로 북왕국의 초대왕 여로보암은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 남왕국 3대 왕(르호보암,아비얌,아사)을 상대한 셈이다. 그런데 대하 13:20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아비얌과의 전투 이후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결국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사가 즉위할 무렵 여로보암은 패전의 후유증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여로보암은 아사의 통치에 별 위험이 되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아사가 비교적 안정된 정세속에 눈을 내부로 돌려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11-15절). 10 예루살렘에서 사십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ㅇ예루살렘에서 - 북왕국 왕들의 즉위기사가 단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25절)에서' 통치하였음을 각별히 밝힌다(2절;14:21). 여기에는 열왕기 사가(史家)의 특수한 사관이 반영되어 있다. 즉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고 난 뒤에 다시금 국가 재건을 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 회복하여야 할 '국체(國體)의 요체가 무엇인가'하는 문제이다. 바로 이 문제에서 '예루살렘'은 신앙적.정치적 구심체로서 국체의 요체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하에서 본서 기자가 과거 사실을 수집,정리할 때 '예루살렘'은 각별한 주목을 받게 된다. 즉 국체의 연속성, 정통성의 요체로서 예루살렘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 및 대상 11:4-9 강해, '예루살렘'을 보다 참조하라. ㅇ사십 일 년을 치리하니라 - 아사는 유다의 역대 왕들 중 세번째로 장기간동안 통치한 인물이다. 유다 왕들의 통치 연대를 살펴보면, 선한 왕들의 통치는 대체로 길고 악한 왕들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따라서 오래도록 왕위가 존속되었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였던 것같다(출 20:12). 한편 아사 통치 기간(B.C.910-869) 중 북이스라엘의 왕위는 무려 여섯 차례(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나 바뀌었다. ㅇ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 마아가(Maachah)는 아사의 선왕인 아비얌의 모친이다(1,2절). 그런데 본절에선 마아가가 아사의 모친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제각기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다. (1)여기서 '모친'(엠)이란 말은 결코 '조모'의 뜻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사는 아비얌의 아들이 아니라 형제였을 것이다(Mac Lean). (2) 아비얌은 자신의 모친을 아내로 삼은 것이다(Hammond,Lange,Ewald). 이상의 제 견해 중 두번째 주장은 상식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대신 본절에서 '모친'이란 말은 태후로서 섭정을 한다든지 하는 지위와 기능의 명칭으로 이해한다면, 세번째 주장이 비교적 타당할 것이다(Keil등). 왜냐하면 마아가는 태후로서 아들인 아비얌이 죽고 난 뒤에 어린 손자 아사를 대신해 섭정을 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13절). 11 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ㅇ그 조상 다윗같이...정직하게 행하여 - 유다의 3대 왕 아사는 모처럼 긍정적 평가를 받은 왕이다. 그런데 그가 '다윗'이라는 열왕(列王)의 표준에 부합되는 까닭은 두말할 나위없이 종교 개혁 때문이다(12-15절). 사실 우상숭배를 공격하는 것은 곧 여호와 신앙에 전심전력하는 표현과 증거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열왕기는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면 흥하고 거역하면 망한다는 신명기적 역사관(2:3,4;3:14;11:38)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도 하나님께 대한 거역의 구체적 표현이 언제나 우상 숭배에 대한 태도는 곧 율법 순종 여부의 시금석이었다고 할 수 있다.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ㅇ남색하는 자 - 단순한 동성 연애자(homesexual)가 아닌 음란한 이교 의식(異敎儀式)에 동원되는 남창(男娼)을 가리킨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4:24 주석을 참조하라. ㅇ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하고 - 이스라엘인들이 틈틈이 숭배해 오던 우상들에는 아세라(14:23), 아스다롯,밀곰,그모스(11:5-7),바알(18:18) 등이 있다. 레 26:1-13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참조. 그런데 아사가 이처럼 우상 숭배를 공격한 것은 모든 종교혼합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여호와 유일 신앙이라는 전통 노선으로 회귀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Dentan). 그리고 역대기에 의하면 그러한 종교 개혁은 오뎃의 아들 아사랴 같은 선지자의 격려를 힘입었다고 한다(대하 15:1-9). 그러므로 왕국 내에는 언제나 옛 국시(國是), 즉 소박 강건한 신정 국가의 이상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는 왔었음을 알 수 있다. 13 또 그 모친[-태후]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ㅇ그 모친 마아가가...태후의 위를 폐하고 - 이 사실은 아사의 단호한 개혁 의지를 보여 준다. 즉 철두 철미한 우상 숭배 공격에 있어 태후라고 해서 그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얽매이기 쉬운 사사로운 혈통상의 정분(情分)을 극복하고 오직 진리 수호만을 위한 가치를 높이 든 아사 왕의 태도는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모본이 아닐수 없다(마 10:37,38). 한편 본절은 마아가가 태후로서 국가의 정책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짐작케 해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아들 아비얌(1,2절) 때로부터 종교 혼합주의세력의 주동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비얌이 일찍 죽고 손자 아사가 아직 어린 동안 실권자로서 섭정을 실시하였을 것이다. 10절 주석참조. 그러므로 아사가 마아가를 폐위한 것은 (1)신앙 개혁,(2)종교 혼합주의 노선의 거부, (3) 왕권의 회복이라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ㅇ기드론 시냇가 - 기드론(Kidron)은 예루살렘 성과 감람 산 사이에 있는 길이 약5Km의 골짜기 이름이다. 그런데 우기(雨期)에는 이곳에 물이 넘쳐 흐르니 곧 기드론 시내가 되는 것이다. 2:37주석 참조. 한편 기드론 시냇가의 인접 지역에는 솔로몬 말기 왕실의 우상 숭배신당이 몰려 있던 멸망 산이 있다(11:7;왕하 23:13). 그래서 이곳은 여호와 신앙과 이교신앙의 빈번한 투쟁 장소가 되었다(Barrois). 추측컨대 태후 마아가의 아세라 우상도 이 멸망 산의 어디엔가 세워졌을 것이다. 14 오직 산당은 없이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ㅇ오직 산당은 없이하지 아니하니라 - 아사의 철저한 개혁 의지를 감안할 때 그가 이처럼 산당을 남긴 일은 석연치 않아 보인다. 그러므로 아사의 눈에 이 산당은 심각한 우상숭배의 처소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추리할 수 밖에 없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II,p.658).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전까지는 이스라엘인들이 산당에서 여호와께 예배드린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12:31 주석참조.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사는 산당을 남기므로서 우상 숭배 부활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왜냐하면 본래 산당은 가나안인들이 자신들의 우상 신을 숭배하던 곳이었는바 언제든지 이교(異敎)의 영향이 투영될수 있었던 까닭이다. 따라서 그러한 역사의 진행을 아는 열왕기 사가(史家)로서는 아사가 산당을 남겨 놓은 사실이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한편 이러한 산당에 대한 대대적 파괴 작업이 비로소 실시된 때는 훗날 요시야(Josiah,B.C. 640-609)왕에 이르러서이다(왕하 23:4-20). 15 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기명들이더라 ㅇ구별한 것 - 여기서 '구별한 것'(카드쉐이)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성물'이란 뜻이다. 즉 이는 보통의 물품 중에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따로 떼어 둠으로써 거록하게 된 물품을 의미한다. 역대기 기록에 따르면 된 물품을 의미한다. 역대기 기록에 따르면 아사 왕은 그의 부친 아비얌이 여로보암과 싸워서 취한 전리품(대하13:8)과 자신이 구스인들과 싸워서 얻은 전리품(대하 14:15) 중에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모두 하나님께 바쳤음을 알 수 있다. 16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전쟁이 있으니라 ㅇ아사와...일생 전쟁이 있으니라 - '일생'(칼 예메헴)은 문자적으로는 '그들의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이는 앞서 14:30의 '항상'과 15:6의 '사는 날 동안'이나 마찬가지의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 왕국 초기부터 남북간에 전쟁이 있더니 각각 3대 왕에 이르도록 전쟁이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역대기는 아사 즉위 후 십년 동안 평화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대하 14:1). 즉 여로보암의 말기 2년, 나답의 2년, 바아사의 6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은 전쟁이 없었던 것이다. 본서 서론, '12. 열왕기서의 참조 도표'참조. 그 이유는 스마라임 전투에서 아비얌에게 패전한 이후(대하 13:1-22) 미처 세력을 회복하기도 전에 정권이 교체되는 등 불안정한 북왕국내부의 정정(政情) 때문이다. 그러나 바아사는 어느 정도 정국이 수습되자 다시 남왕국고의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처럼 분열 왕국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끝없는 전쟁의 악순환이다. 그러므로 비극의 시대의 한 표징으로서 열왕기는 이 점을 자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14:30;15:6). 17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예루살렘 북방6KM지점]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ㅇ바아사가 유다를 치러...한지라 - 본절에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 침공 원인이 밝혀져 있다. 라마는 원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수 18:25) 예루살렘 북방 약6Km 지점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바아사는 이곳을 점령함으로써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같다. (1)벡성들의 남하(南下) 제지: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유다 왕국이 평화를 누린다고 하는 소문은 북 이스라엘 곳곳에까지 전해졌고, 그 소문을 들은 자들 중 대거 월남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대하 15:9). 그러자 포악한 바아사왕은 여로보암과 동일한 염려(12:27)에 사로잡힌 나머니 라마를 기반으로 하여 남하 무리들을 강제 저지시키고자 하였다. (2) 유다 정복을 위한 전초 기지 확보:라마는 유다의 정치,종교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였으므로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 따라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유다의 아사왕은 황급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비책을 마련하였던 것이다(18-22절). 한편, 바아사의 침공 연대를 역대기는 아사 왕 36년이라고 말한다(대하 16:1). 그런데 열왕기는 바아사가 죽고 아들 엘라가 즉위한 때가 아사왕 26년이라고 한다(16:8). 따라서 이러한 연대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비교적 유력한 견해는 '아사 왕 36년'이란 '왕국분열 이후 36년'으로 보는 견해이다(Liley,Pulpit Commentary). ㅇ라마 - '라마'는 '높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엘람'(er-Ram)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서 남북 왕국 국경의 주요 분쟁 지역에 속한다. 그런데 바아사는 이곳에 요새를 건축하여 남왕국을 압박하였다. 이로 보아 바아사는 이전에 에브라임 북방 여사나까지 밀렸던 영토를 거의 회복한 듯하다. 7절 주석 참조. 18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몰수히 취하여 그 신복의 손에 붙여 다메섹에 거한 아람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가로되 ㅇ남은 은금을...벤하닷에게 보내며 가로되 - 당시 성전과 왕궁의 곳간에는 르호보암 당시 애굽의 시삭(Shishak)에게 약탈당하고 남은 것들 이외도(14:26) 아비얌이 여로보암과의 싸움에서 탈취한 보물들과(대하 13:18) 아사가 구스를 물리치고 탈취한 물건등 (대하 14:15)이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 지속되었던 평화 시기 동안 유다 왕궁에는 많은 은금 보화들이 축적되었을 걸로 짐작된다. 따라서 아사가 이많은 보물들을 '몰수히' 벤하닷에게 바치고 구원병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은, 바아사의 침공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는가를 잘 대변해 준다. 하지만 그가 일찍이 체험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더라면 그렇듯 심각한 공포와 낭패감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시 50:15). ㅇ손에 붙여 - 이는 곧 어떤 사람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ㅇ다메섹 - '동방의 진주'라고 별명을 가진 다메섹(Damascus)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팔레스틴 북방 두로 동편에 위치한 아람족의 국가이다. 한편 과거 다윗은 이 다메섹을 포함하여 많은 아람 부족 국가들을 이스라엘에 합병시켰었다(삼하 8:5,6). 그러나 르손의 독립 운동(11:24,25)과 이스라엘의 왕국 분열(12장)등이 아람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력을 무산시켰다. 그러므로 아람은 다메섹을 중심으로 점차 세력을 키워 오히려 이스라엘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바아사의 유다 공격 당시 북왕국과 다메섹은 서로 동맹을 체결한 상태이다(19절). 그래서 바아사는 배후를 염려하지 않고 마음놓고 유다를 공격할 수 있었다. ㅇ헤시온의 손자...벤하닷 - 헤시온(Hezion),B.C.940-915)은 솔로몬의 통치에서 벗어나 다메섹에서 아람왕이 된 르손(Rezon)과 동일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분명치는 않다. 한편 본절에서 가리키는 벤하닷(Benhadad)은 벤하닷1세(B.C.900-860)를 말한다. 그는 그의 아들인 벤하닷 2세(B.C.860-841)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그런데 벤하닷 1세에서 벤하닷 2세에 이르기까지 약 반세기 동안 이들의 정책은 서진(西進)정책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1) 남동쪽의 무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도 (2)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도 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펼쳤다(Bow-ling).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내었으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ㅇ나와...당신의 부친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 이로 보아 벤하닷 1세는 정책상 이스라엘 남북 왕국 모두와 동맹을 체결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 동맹은 매우 가변적이어서 그때그때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파기와 재동맹이 거듭되었음이 분명하다(20:1-24;22:34-36). ㅇ깨뜨려서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파라르'는 '깨다','취소하다','무효로 하다'란 뜻으로 인간 사이에 맺어진 약조의 배반, 즉 동맹의 일방적 파기를 의미한다. ㅇ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 바아사의 북왕국 군대는 잘 준비된 강병(强兵)이었다. 이들의 공격에 수세로 몰린 아사는 벤하닷을 매수하여 위기를 모면하려 한것이다. 즉 전선(戰線)이 남쪽 라마로 치우친 동안(17절) 아사는 무방비로 노출된 후방을 공격하여 이스라엘군을 당황케 하려 한 것이다. 물론 이 작전은 주효했다. 그러나 아사는 이로 말미암아 선격자 하나니(Hanani)의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아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벤하닷)을 의지했기 때문이다(대하 16:7-10). 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 군대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ㅇ벤하닷이...듣고 - 벤하닷으로서는 아사의 제안에 솔깃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제안은 (1) 막대한 금품 수수가 따르는 것이기도 하려니와(18절) (2) 그 내용 자체가 무방비 상태의 북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영토 확장 및 무역로 확보를 꾀할 수 있는 호기(好機)를 의미했기 때문이다(19절). ㅇ이욘과...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 본절에 열거된 지명들은 이스라엘의 북부 지역에 해당한다. 벤하닷에게 이 지역은 다메섹에서 갈릴리를 경유하여 지중해에 이를 수 있는 대상로(caravan route)를 의미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의 확보는 다메섹으로서는 두로와의 교역 뿐 아니라 지중해 무역이 보장되는 의미를 띤 것이다(Bowman). ㅇ이욘 - 아벧 벧마아가에서 북쪽으로 약 14Km 지점, 훌레(Huleh) 골짜기에 위치한 납달리 지파의 성읍이다. 오늘날의 '텔 디빈'(Tell Dibbin)으로 알려져 있는데 벤하닷에게 침략당한 후 또다시 앗수르에게 점령당하였다(왕하 15:29). ㅇ단 - 본래 지명은 라이스(Laish)였던 이스라엘 최북단의 단지파의 성읍이다. 삿18:29 주석 참조. ㅇ아벧벧마아가 - 북부 갈릴리 위쪽의 훌레 계곡에 위치했던 납달리 지파의 성읍이다. 이욘(Ijon)에서 남쪽으로 약 14Km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본래 아벨(Abel)과 벧마아가(Beth-Maachah)는 서로 인접한 두 마을이다. 그런데 두 지명을 하나로 합쳐 '아벨벧마아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삼하 20:14 주석 참조. ㅇ긴네렛 온 땅 - 성경에서 긴네렛(Chinnereh)은 대개 다음 3가지 용례로 쓰이는데 곧 (1)갈릴리 바다의 옛 지명(민 34:11), (2)납달리 자손의 한 성읍(수 19:35), (3)갈릴리 호수 일대의 게네사렛 땅(마 14:34)등이다. 여기서는 3번째 경우를 가리킨다. 21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그치고 디르사에 거하니라 ㅇ바아사가 듣고...디르사에 거하니라 - 당시 바아사의 전투 병력은 거개가 라마 부근으로 집중 투입되어 있었다(17절). 그런데 벤하닷 군대는 오히려 후방을 공략,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이 납달리 지명을 허물어 뜨리고(20절) 그 기세를 몰아 디르사(T-irah)를 향해 계속 직진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바아사는 수도(首都)방위를 위해 급히 라마에서부터의 퇴군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ㅇ디르사 - 디르사는 북방 전략에 치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여로보암이 세겜에서부터 천도한 도시이다(14:17). 요단 강 동편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곳은 특히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데 오므리가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기기 전까지는(16:23,24) 계속 북왕국의 수도였다. 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영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ㅇ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 이는 아사가 전국에 부역 총동원령을 내렸음을 말한다. 특히 '모면하지'에 해당하는 '나키'는 '깨끗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자유롭다'는 뜻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아사가 내린 동원령은 자유스럽지 못한, 속박된 강제동원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역대기는 아사의 통치 일면에 포학스러움이 없지 않았음을 암시한다(대하 16:10). ㅇ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 - 바아사는 다메섹 침공의 급보에 접하자 뒷수습도 제대로 못한 채 황급히 철군하였다(21절). 그래서 라마에 건축 자재들을 아사가 탈취해 오히려 자신의 국경 성읍들을 요새화한 것이다. ㅇ게바 - '게바'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라마의 동쪽 그리고 예루살렘 북동쪽 9.6Km 지점에 위치한 베냐민 지파의 성읍로서의 유다 왕국의 전통적인 북쪽 경계로 간주된다(왕하 23:8;슥 14:10;느 11:31). 또한 이곳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을 띤 곳이기도 한다(삼상 13:3,16;14:5;삼하 5:25;따항 14:16). 한편 간혹 게바(Geba)는 기브아(Gibea)와 혼동되곤 한다. 그러나 기브아는 게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성읍(수 18:24)이다(Mortn). ㅇ미스바 - '미스바'(미치파)는 '바라보다','정탐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름이 암시하듯 이곳은 예루살렘 북쪽 8Km지점에 위치한 고지대이다. 그런데 이곳은 게바와 마찬가지로 북왕국과의 경계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며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또한 이러한 군사적 요충지이며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 또한 이러한 군사적 중요성 외에도 미스바는 예로부터 종교적 처소이기도 한다(Muilenburg,삿20:1;21:1,8;삼상 7:5-11;10:17-27). 한편 라마에 남겨 놓은 건축 자재로 도리어 국경을 강화한 아사는 이로써 바아사의 남진(南進)을 좌절시켰다. 즉 예루살렘 북쪽 6Km지점인 라마까지 깊숙이 남하하여 유다를 압박하려던 바아사의 의도(17절)는 무산될것이다. 그러나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동족을 치게 한 아사의 전략은 선지자하나니의 비난거리였다. 즉 아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국 군대를 의지한 탓에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것이다(대하 16:7,8). 23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무릇 그 행한 일과 성읍을 건축한 것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저가 늙을 때에 발에 병이 있었더라 ㅇ아사의...모든 권세 - '권세'(게부라)는 특별히 왕권을 가리키는 말로써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권세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신 3:24;대상 29:11;욥 12:13 등).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의 강력한 왕권 행사를 가리키고 있다. 즉 이는 아사가 강력한 왕권을 지녔었음을 지시하는 말이다. 이후에도 우리는 오므리, 여호사밧 등에게 이 단어가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16:5,27;22:45;왕하 10:34 등). ㅇ발에 병이 있었더라 - 아사는 대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은 왕이긴 하지만(11-15절) 그렇다고 전혀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벤하닷을 끌어들여 북왕국을 공격하게 한 일외에도(18-21절) 그가 이처럼 발에 병이 생겼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고 역대기는 서술한다(대하 16:12). 이는 곧 아사가 처음과 달리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여호와에게서 멀어져 갔음을 의미하는 한 증거이다(H.J.Austel,Keil&Delitzsch). 한편 본절의 '병'에 해당하는 단어(* ,하라)는 '문질러 없애다'란 뜻에서 온 말이다. 이로 보아 아사의 발에 난 병은 가려움증이 아주 심한 피부병이었던 듯하다. 24 아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열조와 함께 그 조상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ㅇ그 열조와 함께...장사되고 - 아사의 장례(葬禮)장면을 언급하는 본절은 좀 특이하다. 즉 본절에는 '열조와 함께'라는 문구가 거듭되고 있다. 그리고 장사지(葬事地)도 그저 다윗 성이 아닌 '그 조상 다윗의 성'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1) 잦은 정변으로 왕조 교체가 빈번했던 북왕국에 비해 다윗 왕조가 일관되게 통치했던 남왕국의 연속성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본서 서론, '12.열왕기서의 참조 도표'참조. 그런데 이 점은 곧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즉 이는 다윗의 후손이 계속해서 왕위를 잇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삼하 7:11-16)이 실제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2) '조상 다윗'이란 표현은 특히 정통성의 소재 문제에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다윗은 신정 국가의 이상적 군왕으로 제시된 인물이다(11:34). 그러므로 다윗과 연결되는 것은 단순한 혈연적 계속이 아니라 가치 판단에서의 계승성 문제이다. 이 점은 북왕국의 왕들에게도 다윗이라는 표준과 척도가 적용되는 데서도 알 수 있다(14:8). 그러므로 아사가 '조상 다윗'의 성에 장사되었다는 각별한 표현은 신앙적 가치 판단으로서의 정통성이 그에게 있었음을 의미한다. 11절 주석 참조. 25 유다 왕 아사 제 이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ㅇ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이 년을...다스린라 - 이처럼 여로보암 왕조의 북왕국통치는 여로보암 통치 22년(14:20) 그리고 그 아들 나답 통치 2년 도합 2대로 약 23년간에 그쳤다(B.C. 930-909). 그런데 남왕국 유다가 다윗 왕조 통치하에 내적 안정을 이루었던 데 비해, 여로보암 왕조의 이 같은 단명(短命)은 분명코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라는 것이 열왕기의 시각이다14:6-16). 26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한지라 ㅇ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 즉 여로보암이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조차 타락케 만든 우상 숭배죄(12:28-33)를 가리킨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4:16주석을 참조하라. 27 이에 잇사갈 족속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가 저를 모반하여 블레셋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에서 저를 죽였으니 이는 나답과 온 이스라엘이 깁브돈을 에워싸고 있었음이더라 ㅇ바아사가...저를 죽였으니 - '바아사'란 이름은 '바알이 듣는다'는 말의 단축형이다(MacLean). 그런데 그가 여로보암 가문을 멸하고 정권을 잡지만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 바아사 또한 우상 숭배에 몰두한 여로보암의 아류(亞流)일 따름이다. 그러기에 그 역시 훗날 여로보암과 똑같은 징벌을 받아 아들대 제 2년에 가서 멸족을 당하게 된다(16:8,9). 한편 잇사갈 출신 바아사가 이처럼 에브라임 출신 여로보암 왕조를 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 의미를 지닌다. (1) 이로써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점(14:10,11), (2) 당시 북왕국 내의 지파간 결속이 확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ㅇ깁브돈 - '깁브돈'은 '산마루'란 뜻이다. 본래 블레셋의 한 성읍으로 가나안 정복 당시 단 지파에게 배분되었으나 단 지파는 이곳의 점령에 실패한 듯하다(수19:14). 아무튼 이곳은 애굽과 수리아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므로 이스라엘은 이를 줄 곧 차지하려 들었다. 그런데 아이로니칼(ironical)하게도 바아사가 나답을 모반했던 시기도 깁브돈 공략시이고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시므리에게 모반당한 시기도 2차 깁브돈 공략시이다(16:9,15,16). 28 유다 왕 아사 제 삼년에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고 ㅇ아사 제 삼 년에 - 이는 곧 나답의 통치 제 이 년째 되는 해이다(B.C.909). 이로 미루어 나답은 만 이년을 채 통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25절). ㅇ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 깁브돈(Gibbethon)포위 공략 중 바아사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인물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이로 보아 아마도 그는 나답의 군대장관이었던 같다(Hammond). 그런데 이처럼 무력에 의한 유혈 쿠데타는 북왕국 왕권의 존엄성과 정통성을 실추시키는 사건이 아닐수 없다. 이후 이와 같은 반란은 북왕국 역사에 꼬리를 물고 발발하여 하나의 악순환을 이룬다(16:19,20;왕하 9:11-10:36;15:10-31). 29 왕이 될 때에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 종 실로 사람 아히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ㅇ온 집을 쳐서 - 여기서 '쳐서'(나카)는 '살해하다', '쳐죽이다'는 뜻으로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사이다(출 21:12;신19:4;수10:26;삼하2:23 등). 이 동사가 특히 신학적 중요성을 띠는 경우는 하나님이 심판(또는 징계)의 주체가 되실 때이다(신28:22,27,28,35). 본절 역시 여로보암 일족을 멸절시키는 바아사의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임이 명시되어 잇따. 즉 이는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성취된 사건인 것일(14:6,11). ㅇ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이 역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이 일에 있어서의 바아사 자신의 동기는 전혀 다른 데 있었다. 즉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보복당할 가능성을 말살하려 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여로보암 가문 중 한 명이라도 남게 된다면 그는 바아사에게 피의 복수를 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민35:16-21). 이는 바아사로서는 큰 후환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바아사는 여로보암 일족을 철저히 진멸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복수 가능성을 봉쇄해 놓고도 그의 운명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바아사 왕조로 하여금 여로보암 왕조의 말로와 같게 하신 것이다(16:11-13). 30 이는 여로보암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시킨 일을 인함이었더라 ㅇ여호와의 노를 격동시킨 - '노를 격동시킨'에 해당하는 '카아스'는 '화나게 하다', '분노를 불러 일으키다'는 뜻이다. 이는 특히 마음의 내적 상태가 점차로 격심한 분노와 흥분 상태에 이르게 됨을 가리킨다. 그런데 신인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으로 표현해서 하나님께서도 언약의 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