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상14.회개할때!! 오직 지금!! ..(아비야 외에) 그 아내에게 여로보암가문 몰락 예언하는 아히야_(대언의 영으로 베푸신) 말씀과같이 되었더라..듣는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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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4장 [274.나행한것죄뿐이니][280.천부여의지없어서]

.....각자마다, 분수령적 회개!!, 나라의 새로와짐 위한 거국적/전세계적 전환기적 회개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그럼에도불구하고 거기에 더하여, 매일/날마다 십자가 보혈 의지하여 주예수 이름 부르며 회개함 통해 "주와 하나"로 걸어야 한다

......[중생성도 한 사람마다, 그대가 바로 (그분이 갈망하는, 그토록 얻기 원하신) 그 교회이다!!--깨어나라, 그런즉 깨어 기도하라!! --십자가 위에서 주께서 (심장 파열되어) 숨 거두심의 그때에!!, (그대 부르면서) 외친 그 외마디 고함과 하나되어 죽고 그분의 부활로 부활하여 그분을 살라!!]오늘 새로이!! (언제 어디서나) 기억하여 마음에 새기라, 날마다 새로이, 살아생동하는-발휘되는 생생한 산 믿음으로(절대믿음-절대기쁨-절대신뢰-절대긍정-절대감사) 주목-응시-앙망하며 바라보며 그대와 하나로 계신/살아가시는 주께 고백하며 교통하며 여쭈며 경청하며 동행동거동주하라.. Q 나라-새예루살렘-곧 지금 이 땅의 비가시적교회!!! 그 핵심과 본질, 생명은 다름 아니라 중생성도, 그대 심령에 오사 내주하시는 (제한받지 않으시는, 초월적 전능자-창조주-말씀 Q) 그리스도 예수시요, 거듭난 믿는이(중생성도) 각자마다 교회이며!!, 이미 CJ와 함한 한 영(고후3:17)이며 CJ의 반쪽으로서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이루어 가고 계신바 반드시 완전-온전-순전케 하고 계심 이루실지니....십자가에서 심장 터져 운명하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외마디 고함 지르심으로 부르고 계신이가 바로 그대!!임을 깨달으라....그때에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지진이 발생했다!! ....중생성도인 그대의 주님, 그리스도는 "비록 두려움에-염려에-근심에" 사로잡혀 뿔뿔이 주님만 두고 체포되시는 현장을 떠나간 바로 그 제자들이-바로 그대!!가- 그토록 보고싶으셨음을...그분은 그분의 신부를 영원히 포기하실 수 없으시다!!(떠나지도-버리지도 않으신다...더러워짐?!이라도 전지전능하신 신랑께서 손수 목욕시켜주시면 환경-형편-처지-상황?? 그야말로 끝이다!!...도대체 내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랑하시어 올인하십니까!, 저도 오늘 바로 그렇게 합당하게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아버지 뜻대로] 살게 하소서


===여로보암의 아들의 죽음

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Q 경외하는, 경건한]아비야가 병든지라

---그대여!! "불치병"이라고 세상에서 말할지라도!!, 주께 친히 나아가!! 전심으로 주님 얼굴 구하여 뵌바, 임박한 죽음에서 벗어난 "히스기야"가 엄연히!! 기록되어 있으니...((물론, 그후 교만하여짐 인해 이방나라 침입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기도 했었고,  므낫세를 얻은바(그 아들은  우상숭배로 주님 마음 아프게 아였지만))--결코 스스로 포기말라, 믿음 발휘하여 "12해 혈루증 앓던 여인처럼 엘레겐의 믿음으로 나아가 주님 그분을 만나라!!.. 주께 전존재 기울여 (가장 큰소리는 그대 중심기울임이니!!) 부르짖으며 친히 들으라!!..오직 이 땅에 보내신 주님 뜻 이루시기만을 구하라!!..

---***분명히 [개인-가정-사업/기업-사회-나라]경영에 있어서 어떤 예기치못한/순탄치 못한 일이나 재앙/재난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런 결과가 나타나게 하신 바 그 근원은 YHWH께서 의도하사 허락하신바이기에!! 먼저 마땅히 YHWH께 나아가 여쭙는 것이 택자의 마땅한 의무요...게다가 목적을 제정하신 분이기에 그 목적을 참되고 선하게 이루실 수단까지도 제정해두셨다는 사실을 참작- 붙들라!! 참 믿음 발휘하여 나아가 구하여야 함을 명심-추구함으로써 깨닫고 주께 돌이켜야 함이 옳다!!......(!왕하1:2이하....아합이 죽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등극하고 그가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었는데 YHWH께 여쭙지 않고 오히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낫겠는지 묻고 오라고 사자를 보냄 인하여 YHWH께서는 엘리야에게 그의 사자를 도중에 만나서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전언케 하고 계셨다))  ((왕하8:8이하....아람 벤하닷이 중하게 병들매, 사자로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어 병에서 낫겠는지 묻게 하였을 때, 하사엘에게 "반드시 낫겠다" 전하라 하면서 동시에 "벤하닷 이 반드시 죽게 될 것"을 YHWH께서 보이신바, 하사엘 자신이 아람왕이 되어 북이스라엘을 괴롭힐 일에 대해 애통함으로 울면서 전언하도록 해 주고 계셨다)) ***

2.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이름 뜻=여호와의 형제...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으로 갔지만 (예루살렘은 여로보암을 격동시켜서 반역케하여 분열시켰다 하여 따돌리고, 여로보암은 그 나름대로 아히야를 경원시하였기에!! (그러나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주 YHWH편일뿐이었다) 그는 홀로 에브라임 산지 실로에 그냥 남아있었다]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3.  그대의 손에 떡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서민의 예물]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그가 그대에게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알게 하리라

......[-오직 면피용(=상황 타개) 묘책만 구하고!!, 전존재 던지는 회개는 거부함의 어리석음!!]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6.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다 잘될거라고만 말하는, (흉한일에 대한 주께서 예비해 두신 심판의 엄중 경고 통해 회개촉구하기는 꺼리고!!) 제맘대로 지어내어 예언하는[기복 위해 점치는 기만행위이자 무당의 푸닥거리에 지나지않음 = 우상 숭배 = Q 대적자와 한편] 거짓선지자를 분별하여 삼가라] :: 이 장면은 사울이 신접한 여인에게 물으러 갔을 때 장면과 오버랩 되고 있다.

7.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거름덩이 가운데 있던(가불!!--사울도, 다윗조차도 그렇게 비천한 출신이지만 오직, 은혜로 "나기드" 삼으신바 되었다)]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나기드 :: 대리왕]가 되게 하고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9.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그러나!! --반대로-- 보는 관점까지도 품기를--지금 말씀 듣는바 바로 지금이라도 주께로 돌이켜야 한다 하심이니!!!)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YHWH 만홀히 여김의 엄중한 귀결!!--] 그러나 동시에!!.....(("재앙 닥침에서 구원하시려" 일찍 거두어 가심으로 어려서 죽는자의 복!!))

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아비야 : "YHWH는 내 아버지"--여로보암 집의 유일한 "남은자"::: 이단 중에도 그래도 소수지만 남은자 있을수 있음!!]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북이스라엘 왕과 나라 위해 애통함으로 주께 중보함 + 예루살렘으로 절기 지키러 가는 길 막으라고 명령받고 보냄 받았으나 부친 여로보암의 명령 어기고, 오히려 길을 열어주었음))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그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언제냐 하니 곧 이제라(22년 통치한 여로보암 사후, 나답 통치 2년에!!)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의 조상들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그들을 강 너머로 흩으시리니[BC.722앗수르에 의해] 그들이 아세라 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음이니라

16.  여호와께서 [여기에 더하여 제멋대로 금송아지 우상 세움/산당 세움-벧엘에 평민 제사장 임명으로 YHWH신앙의 도-생명 영생 빛-를 버림]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돌이켜 영적 상태 점검해 봐야할] 그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다면 먼저 주께 나아가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한후, 그 의미를 여쭈라, 주님 없이는 Nothjing-Nobody임을 말씀드리고ㅡ 바로 그렇게 행보하라!!..[왕상21장,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질책하시는바, 엘리야를 통한 YHWH의 호된 꾸짖음이 주어졌을 때!! 아합은 크게 회개하여 상심하였던바, 그의 겸비를 보시고, 예정하셨던 재앙을 아들에게로 미루어주시는 분이 바로 YHWH셨다!!

17.  ○여로보암의 아내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그 아이가 죽은지라

18.  온 이스라엘이 그를 장사하고 그를 위하여 슬퍼하니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여로보암의 아내가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비야가 죽었음과, 그것은 아히야의 예언 그대로 였음의 비보를 전해 듣고도 근본적 회개 통해 주께로 돌이킴의 길을 거절((여로보암이나, 그의 아내나 슬퍼하기만 했지, 회개했다는 기록은 없음!!)).,,.그 이후에도, 북이스라엘 나라멸망의 심판을 보류하사 회개하고 전심으로 돌아오기를!! (722.BC.까지 무려) 300년이나 더 참아 기다려주고 계셨다!!

===여로보암의 죽음

19.  ○여로보암의 그 남은 행적 곧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와 어떻게 다스렸는지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20.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유다 왕 르호보암 [515. 눈을 들어 하늘보라] [516. 옳은 길 따르라 의의길을] [527. 어서 돌아오오]

....[회개 통해] 각사람의 죄를 다루시는 , 심판받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기시는 하나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택자는 임종 임박시점에서라도!!, 죽음이 가까이 왔더라도!!, 마지막이라도 그 언제라도!! 회개하여 자기 근원이신 주께 돌아오는 법 -->자기 죄를 말씀 빛에 비춰보아(하나하나 돌아보고) 이땅에서 해결하도록 다루시는 시스템(죄된 삶 누구나 자각하고 있기에) -->영원 멸망 심판에서 건지고 계심....그 기회는 누구에게라도 주어지는 것이기에!!, 이것은 결코 불공평한 것이 아님....디트리히 슈바니츠 [남자] --"역할에 순종하라"고 가정의 머리삼으셨음...남자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대하11장에 따르면) 르호보암은 여로보암의 북이스라엘을 쳐서 나라의 남북 분열을 회복하려 18만군사를 일으켰으나 선지자 스마야에게 임한 말씀따라 순종-중단하고, 예루살렘에 거하여 남유다 변경 방비 위한 성읍을 구축하여 국방과 내실을 다지며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는 초기 3년간,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남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게 되었는데, 이는 여로보암이 그들을 해임하고 제사장 직분 중지시킴이었음(제멋대로 금송아지 우상--자의적으로 성소 정함--제멋대로 제사장 임명)

2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뜻: 유쾌-미소녀 :: 자녀 우상인 밀곰 숭배하는( = 부모, 특히 모친 한풀이 위한 스카이캐슬 추구 타입!!)]암몬 사람이더라

.......암몬 우상은 밀곰으로, 자녀(세상가치따라 잘됨만 추구하여 비는 --자녀를 불 가운데로 걸어들어가게 하거나 제물로 태워 제사함--)우상인 몰렉과 비슷 ::: 일명 오늘의 강남 엄마/돼지엄마...조부 재력-부친 무관심 바탕 + 엄마의 팀구성 능력-자녀 성적-정보력-언변-인맥-카리스마....아이는 국영수만/스스로 사탐-과탐 받고 중요한 것만 알게 함.... :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로부터는 완전히 돌아서게 함 인해!! 결국 낭떠러지 끝까지 (멸망하는 구조로) 등 떠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최선 다해 주 앞에서 스스로 주로 인해 (사명 알고, 사명따라) 사는 법의 길 따름!! 그 극락-열납하심/사랑 받는자의 기쁨의 어떠함을 알고 살라.

22.  [지도자 한사람이 중요함을 강조해도 지나치지않음은!! 그의 죄악 인해 나라 전체에 관영케 되어 행하게 영향력 끼치는바]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우상 숭배의 악을 더함으로써]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그리스도의 신부된 택자가 외도함 그 자체였다!!]

23.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24.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죄악 하나하나마다!! (십자가에 달려 가시관 쓰셨으며-수족이 대못에 박히고--심장 파열되어 (신부요 제자, 그대 이름 부르며) 외마디 고함 지르며 숨 거두신분, 바로 그 주님을 대못에 다시 못박음이니, 외로우신 주님의, 그 눈물과 애통 절절히 느껴 회개하며 [분수령적으로, 그리고 매일 마지막 날 살듯 회개하며] 다시 돌이켜야 한다---동성애는 망국적 죄악!!, 상호간에 주로부터 멸절당하는 (생육-번성-충만-정복-다스림 축복 명령 주신) 주님 모독하는 대표적 죄+악임 --그러나!! 주님은, 회개하고  커밍아웃하는 동성애자까지도 예외없이 반드시!! 만나주심!!--절대복음, 절대순종]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가나안 7 족속]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25.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불신결혼으로, 솔로몬이 바로의 그 딸을 정비 삼은 그 애굽 왕조 아닌, 그 왕조를 멸하고 그 뒤에 새로 세워진 왕조 ::: 애굽은 영적으로 볼때 "사탄마귀체계인 세상"을 대표한다]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26.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27.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 대장의 손에 맡기매

28.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시삭 침입 이후, 전에 스마야 선지자의 말씀 순종하였을 때를 기억하고!!,  방패이신 여호와= 엘 마시아=메시아/구주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여호와 신앙으로 돌이켰음을 의미 --참된 예배 드림+검증/양육의 구조가 있는, 주님 택하신 성소가 있는,  예루살렘에 거함이 복됨] 시위하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갔다가 시위소로 도로 가져갔더라

...... 일단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대 자신이 "거듭났다" 주께 고백함은, [저마다 (빼앗길까봐) 무의식적으로 눌려왔던바] 두려운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신다 해도, 그대가 일순간 멈칫 멈칫하다가, 죄악 범하여 넘어지는 그 때!!,  왕성하게 일어나는 대적에게!! 순식간에!! 침략당해 (레바논 수풀궁의 금방패는 보호막이 될 수 없음...주 보시기에 필요없는 우상 숭배처럼) 탈취당하게 하신다 하더라도, 그리되도록 허락하심으로써[금방패가 아니라!!...튿튼한 놋방패를 만들어 호위하는 바, 여호와의 성전 경배를 국가적 공식행사 삼음으로써] 분수령적으로+날마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게 하심 통해 그분의 전지전능하심 안에서 참 신부로 삶이 무엇인지 체득케 하실것 기대하라!!

29.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31.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니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르호보암은 압살롬의 손녀/그술에 살고 있던 그술 사람 마아가(헬몬산과 그술사이의 바산 동편 소왕국 :: 뜻:압박하여 짜내다-우둔하다)를 총애하여 낳은바]그의 아들 아비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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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4장


1.  At that time Abijah the son of Jeroboam became sick.

2.  And Jeroboam said to his wife, "Arise now, and disguise yourself so that they may not know that you are the wife of Jeroboam, and go to Shiloh; behold, Ahijah the prophet is there, who spoke concerning me [that I would be] king over this people.

3.  "And take ten loaves with you, [some] cakes and a jar of honey, and go to him. He will tell you what will happen to the boy."

4.  And Jeroboam's wife did so, and arose and went to Shiloh, and came to the house of Ahijah. Now Ahijah could not see, for his eyes were dim because of his age.

5.  Now the LORD had said to Ahijah, "Behold, the wife of Jeroboam is coming to inquire of you concerning her son, for he is sick. You shall say thus and thus to her, for it will be when she arrives that she will pretend to be another woman."

6.  And it came about when Ahijah heard the sound of her feet coming in the doorway, that he said, "Come in, wife of Jeroboam, why do you pretend to be another woman? For I am sent to you [with] a harsh [message.]

7.  "Go, say to Jeroboam, 'Thus says the LORD God of Israel," Because I exalted you from among the people and made you leader over My people Israel,

8.  and tore the kingdom away from the house of David and gave it to you-- yet you have not been like My servant David, who kept My commandments and who followed Me with all his heart, to do only that which was right in My sight;

9.  you also have done more evil than all who were before you, and have gone and made for yourself other gods and molten images to provoke Me to anger, and have cast Me behind your back--

10.  therefore behold, I am bringing calamity on the house of Jeroboam, and will cut off from Jeroboam every male person, both bond and free in Israel, and I will make a clean sweep of the house of Jeroboam, as one sweeps away dung until it is all gone.

11.  "Anyone belonging to Jeroboam who dies in the city the dogs will eat. And he who dies in the field the birds of the heavens will eat; for the LORD has spoken [it.]" '

12.  "Now you arise, go to your house. When your feet enter the city the child will die.

13.  "And all Israel shall mourn for him and bury him, for he alone of Jeroboam's [family] shall come to the grave, because in him something good was found toward the LORD God of Israel in the house of Jeroboam.

14.  "Moreover, the LORD will raise up for Himself a king over Israel who shall cut off the house of Jeroboam this day and from now on.

15.  "For the LORD will strike Israel, as a reed is shaken in the water; and He will uproot Israel from this good land which He gave to their fathers, and will scatter them beyond the [Euphrates] River, because they have made their Asherim, provoking the LORD to anger.

16.  "And He will give up Israel on account of the sins of Jeroboam, which he committed and with which he made Israel to sin."

17.  Then Jeroboam's wife arose and departed and came to Tirzah. As she was entering the threshold of the house, the child died.

18.  And all Israel buried him and mourned for him,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oke through His servant Ahijah the prophet.

19.  Now the rest of the acts of Jeroboam, how he made war and how he reigned, behold, they are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20.  And the time that Jeroboam reigned [was] twenty-two years; and he slept with his fathers, and Nadab his son reigned in his place.

21.  Now Rehoboam the son of Solomon reigned in Judah. Rehoboam was forty-on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seventeen years in Jerusalem, the city which the LORD had chosen from all the tribes of Israel to put His name there. And his mother's name was Naamah the Ammonitess.

22.  And Judah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they provoked Him to jealousy more than all that their fathers had done, with the sins which they committed.

23.  For they also built for themselves high places and [sacred] pillars and Asherim on every high hill and beneath every luxuriant tree.

24.  And there were also male cult prostitutes in the land. They did according to all the abominations of the nations which the LORD dispossessed before the sons of Israel.

25.  Now it came about in the fifth year of King Rehoboam, that Shishak the king of Egypt came up against Jerusalem.

26.  And he took away the treasures of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treasures of the king's house, and he took everything, even taking all the shields of gold which Solomon had made.

27.  So King Rehoboam made shields of bronze in their place, and committed them to the care of the commanders of the guard who guarded the doorway of the king's house.

28.  Then it happened as often as the king entered the house of the LORD, that the guards would carry them and would bring them back into the guards' room.

29.  Now the rest of the acts of Rehoboam and all that he did, are they not written in 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Judah?

30.  And there was war between Rehoboam and Jeroboam continually. 

31.  And Rehoboam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with his fathers in the city of David; and his mother's name was Naamah the Ammonitess. And Abijam his son became king in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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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4장 (개요)
왕국이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금후부터는 열왕기 속에서 역사와 왕위 계승과 국사가 별개로 설명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본 장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여로보암가의 멸망에 대한 예언(7-16). 그의 아들의 병은 그 멸망의 계기였고(1-6), 그 아들의 죽음은 그 통치의 종결(19, 20)과 함께 이 예언의 전조였다(17, 18).
2. 르호보암가와 유다 왕국의 쇠미와 위축에 대한 역사(21-28), 그리고 그 통치의 종결(29-31).
우리는 이 양자에게서 다 죄의 해로운 결과와 죄로 인한 재난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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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아들의 병(왕상 14:1-6)
여로보암이 하나님과 경건한 신앙에 대한 자기의 멸시를 얼마나 고집했는지는 우리가 앞 장 말미에서 읽었다. 
그런데 본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집요하게 계속해서 여로보암과 다투시는지를 읽게 된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그는 이기실 것이며, 죄인들은 그 앞에서 굽거나 부서질 것이기 때문이다.
Ⅰ. 그의 아들이 병에 걸렸다(1절). 
이 아들은 여로보암의 장자요 왕위 계승권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왜냐하면 이 아들이 죽자 온 나라가 그를 위해 슬퍼했기 때문이다(18절). 
왕자로서의 높은 신분과 젊은 왕자로서의 나이와 경건한 왕자로서 천국에 대한 그의 관심으로도, 그는 질병 즉 위중한 질병을 면할 길이 없었다. 
누구라도 자기의 건강이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동안에는 선한 목적을 위해 자기 건강을 선용해야 하는 것이다. 
“주여! 보시옵소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요 11:3). 주의 총애를 받던 자 곧 이스라엘이 사랑하고 애지중지하던 자가 병이 들었나이다.” 
여로보암이 제사장직을 악용하고 모독했던(13:33) 그 때에 그의 아들은 병이 들었다. 
질병이 우리 가정에 들어올 때, 우리는 우리 집안에 모종의 특정 범죄가 있지 아니한가를 조사해 보아야 한다. 
고난을 보내시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시기 위해서다.
Ⅱ. 여로보암은 그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탐지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냈다(2, 3절). 
그 아들의 병은 그의 아픈 데를 찔렀다. 자기 가문의 이 가지가 시든다는 것은 아마 자기 몸의 지체가 마르는 것(13:4)에 못지않게 쓰라린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혈육의 정이란 이렇게 강렬하다. 우리 자녀는 일촌(一村)이란 것 말고는 우리 자신이나 다름없는 분신이다.
1. 이런 고난을 맞아 여로보암이 품은 큰 소원이란, 그 아이의 어떻게 될 것, 즉 그 아들이 살지 죽을지를 알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1) 여로보암이 만약 아이의 회복에 필요한 수단이 무엇이며, 그에게 어떤 것을 주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싶어했다면 훨씬 더 지혜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하시야(왕하 1:2) 및 벤하닷의 사례(왕하 8:8)와 더불어 본 장의 예는, 그들이 재난에 대해 너무나 어리석어서, 가용한 모든 방법의 최선책의 사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같이 보여진다. 그들이 환자가 살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병을 낫게 할 방법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가 죽을 것이라면 그런 방법이 소용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는 의무는 우리에게 속했고 결과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과, 목적을 제정하신 분이 수단도 제정했다는 사실을 참작하지 못한 소치다. 
잠시 후면 나타날 일을 왜 선지자가 설명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을까?
(2) 여로보암이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자기와 다투시는지를 알고 싶어하고 선지자의 기도를 요청하며 우상을 포기했더라면 보다 경건하게 될 터였다. 
그랬더라면 그의 마른 손이 성하게 됐듯이 그의 아이도 회복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잘못이나 의무에 대한 것보다 행운에 대한 것을 듣고 싶어한다.
2. 여로보암은 자식의 운명을 알아보려고 선지자 아히야에게 사람을 보냈다. 
아히야는 이 때 실로에서 눈에 띄지 않게 은거하면서 소홀히 취급되고 있었다. 비록 그는 노령으로 인해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전능자의 환상을 볼 수 있는 축복은 여전했다. 환상을 보는 데는 육안이 필요 없고, 오히려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으면 은혜가 된다. 마음의 눈이 아주 열중하여 바라보고 조금도 곁눈질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은, 송아지 우상의 건립이나 제사장의 임명에 대한 자문을 얻으려고 아히야에게 사람을 파견한 것이 아니라, 환난을 당하자 그에게 의지했다. 즉 그가 섬기던 신들은 환난 때에 그를 구출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호와여, 전에는 주를 무시하던 자들이 환난 중에는 주를 앙모하나이다”(사 26:16). 
목사나 기도해 주는 친구들을 까마득히 잊었다가 질병을 통해 생각하게 되는 자들도 있다. 
여로보암이 아히야에게 사람을 보낸 것은 그가 왕이 될 것을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2절). 
“그는 이전에 좋은 소식을 전했는데 이번에도 틀림없이 아름다운 기별을 전해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로보암의 생각이었다. 
범죄로 인해 위로받을 자격이 없으면서도 목사가 선량하다는 이유로 자기들에게 평강과 위로의 말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목사도 크게 그릇되게 만드는 자다.
3. 그는 자기 아내를 보내 선지자에게 아이의 운명을 묻게 했다. 
그가 자기 아내를 보낸 것은, 그 여인이 이름도 대지 않고 다른 어떤 설명도 없이 “선지자님, 내게는 병든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회복될 것입니까? 회복하지 못할 것입니까?” 하는 질문을 거침없이 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가슴은 아내에 대한 신뢰감으로 넘쳤다. 아내는 그 말을 전하거나 답을 얻어오는 일에 충실할 것이라고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토록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대신들을 다 꼽아봐야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병난 아들이 한사코 놓지 않으려는 어머니를 왜 보냈겠는가? 
어머니는 가장 훌륭한 간호사이기 때문에, 여로보암의 아내로서는 아들이 어떻게 될지 알아보려고 실로에 가느니보다 차라리 집에서 아들을 돌보는 것이 더 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여인은 간다면 “변장하고서”(incognito) 가야 했다. 복장을 바꾸고 얼굴을 가리며 변성명해 가지고 가야 했다. 
그 여인은 궁중과 자기가 통과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그런 심부름을 가는 것이 자기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라도 한 듯).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처럼 이 여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무리 큰 자라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아보는 일은 하등 흠될 것이 없다.
이 여인이 변장을 해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선지자에게서 자신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선지자로 하여금 자기 아들에 관한 질문에만 대답하고 자기 남편의 변절이란 재미없는 화제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 신분을 감추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 신분을 감추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들은 목사에게 지시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목사를 순조로운 일에만 제한시키려 들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들에게 다 전해 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행 20:27). 이는 그것이 자기들에게 대한 선한 예언이 아닌 악한 예언으로 나타날까 봐 두려워해서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해 매우 이상한 견해를 품고 있었다. 
그는 선지자가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을 확실히 말해 줄 수 있고, 또 쾌히 말해 주리라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아히야 선지자가 그 아이의 어머니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선지자가 미래의 두터운 암흑은 꿰뚫어보면서 이 변장의 얇은 천은 꿰뚫어볼 수 없다는 말인가?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가 좋아하던 송아지와 똑같은 줄로 생각했는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갈 6:7).
Ⅲ. 하나님께서는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처가 가까이 오고 있으며 그 여인이 변장하고 온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동시에 그 여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도 상세히 가르쳐 주셨다(5절). 
이 때문에 그는 그 여인이 문으로 들어올 때 이름을 불러 깜짝 놀라게 할 수가 있었고,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자에게 그 여인이 누군지도 밝힐 수가 있었다(6절).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뇨?”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것을 주목하지 않았다.
1. 그 여인의 신분. 그녀는 왕후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는 그 여인에게 전할 말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자녀가 동일한 수준에 서 있다.
2. 그 여인의 선물. 선지자에게 물으러 오는 자들은 존경의 표시로 선물을 지참하는 것이 통례였다. 
선지자들은 그 예물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삯꾼이 아니었고, 그 예물은 복채가 아니었다. 그 여인은 아히야에게 농촌에서는 상당하다고 할 선물을 가지고 왔다(3절). 그럼에도 선지자는 선물 때문에 그 여인에게 아름다운 말을 해야겠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고 꼭 전해야 할 말만 했다.
3. 그 여인의 애써 자기를 숨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자에게는 알은 체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예의라고 할 수 있으나, 아히야 선지자는 아첨꾼이 아니었고 조정의 신하도 아니었다. 그는 아첨하는 칭호를 주워섬기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대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여로보암의 처는 첫마디로 자기가 믿어야 할 말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고하리라.” 변장으로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발각되는 날, 크게 낭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 날에는 그들이 자신의 의도가 전혀 빗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현재는 죄인들도 성도의 옷을 입고 나타나며, 또 성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너울이 벗겨지고 본색이 탄로나서 그들 자신의 이름으로 부름을 받을 때면, 그 낯을 얼마나 붉힐 것이며 얼마나 떨게 될 것인가! “너! 패역하고 성실치 못한 외식자여! 내가 결코 너를 알지 못하니 썩 나가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외식하는 자가 차지할 소식은 무거운 소식(한글 개역에는 “흉한 일”이라고 되어 있음)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그 외모대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인간 됨됨이를 따라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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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최후(왕상 14:7-20)
우상을 세워 놓고 계속 숭배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물으러 올 때에는, 그들이 알기를 요구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결심을 천명하신다(겔 14:4). 본문에서 여로보암에게 내리신 대답도 그와 같다.
Ⅰ. 선지자는 아이에 관한 문의를 예견하고, 여로보암의 집이 그 악함으로 인해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 
다른 어떤 사람은 감히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이었다면 그것을 은폐했겠지만, 여로보암 자신의 아내는 그에 대해 악의를 품을 수 없었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음행에도 불구하고 이혼장을 써 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최대의 위해를 가하고 그들을 타락시키며 하나님께로부터 그들을 떼내어 간 여로보암에게 복수하실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여로보암에게 베푸셨던 큰 은총을 들어서 그를 꾸짖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을 백성 중에서 곧 하층민으로부터 들어올려 왕으로 삼으셨다. 
그를 높여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셨고,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그에게 주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장(記帳)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께서는 계산하시며, 우리가 만약 은혜를 모르는 경우에는 그것들을 우리 앞에 열거하심으로써 우리를 크게 당황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안다면 하나님께서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신다.
3.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불경건과 타락, 그리고 특히 우상 숭배를 힐책하셨다. “너는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였다.” 
사울은 하나님께 배척 당했지만 우상을 섬기지는 않았다.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했다고는 하나 노년기에 가서 이따금씩 그랬을 뿐이며,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지는 않았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명분으로 송아지를 세웠고, 그것을 애굽에서 자기들을 이끌어 낸 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른 신, 곧 이방 신들로 칭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이 이상한 신들을 숭배하듯 여로보암도 송아지를 통해 하나님을 섬겼으며, 이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롬 1:25) 하나님을 실제의 하나님과 전혀 다른 분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다수의 무지한 숭배자들은 형상을 섬기는 데서 그 신앙을 종결시켜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따위는 도무지 중시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금송아지였다. 
그러나 금속의 고가성으로 말미암아 그것들이 하나님께 열납되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게 되었고, 그를 기쁘게 해 드린다는 구실로 그에게 짐짓 모욕을 가했다.
(1) 여로보암은 다윗을 자기 앞에 두지 않았다(8절). “너는 내 종 다윗과 같지 아니하도다.” 
다윗은 과오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중 몇몇 과실은 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고 태만하거나 냉담해지지도 않았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충실히 고수함으로써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았다는 명예로운 평판을 획득하게 되었고, 이 점에서 그는 모든 후대 사람들의 사표로 간주되었다. 다윗처럼 행하지 않는 자는 선히 행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2) 그는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았다(9절). “너는 나를 네 등 뒤에 버렸고 내 법과 나에게 대한 경외심도 버렸다. 너는 나에게 소홀히 했고 나를 잊었으며 내 교훈보다 네 책략을 우선시했다.”
4.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가의 완전한 파멸을 예고하셨다(10, 11절).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로써 자기의 통치를 확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 때문에 도리어 정권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가문의 파멸을 초래했다. 
그것은 매인 자나 놓인 자나 기혼자나 미혼자나 할 것 없이 모든 남자에게 미치는 보편적 멸망이었다.
(1) 그것은 수치스러운 멸망이다. 
분뇨는 보기 싫고 사람들이 치워 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거름처럼 일소될 것이다. 여로보암은 거름더미 잡신들을 섬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족을 큰 쓰레기더미를 치우듯 쓸어 버리셨다. 고귀한 제왕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악하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나을 것도 없다.
(2) 비상한 멸망이다. 
그들의 시체는 거리의 개나 들의 새가 먹을 것이다(11절). 이와 같이 재앙은 죄인을 추격한다. 이 예언의 성취는 15장 29절에 나온다.
5. 하나님께서는 병든 아이가 곧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셨다(12, 13절).
(1) 그의 죽음은 아이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였다. 
만약 그 아이가 산다면 죄악에 감염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 아비 집의 파멸에 휩쓸려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죽음을 내리셨던 것이다. 그 아이의 품성에 대한 칭찬을 관찰해 보자.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그는 하나님께 대한 참예배를 애호했고 송아지 숭배를 싫어했다. 다음 사실에 주의하자.
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고 선한 취향, 선한 목적, 선한 소원을 품는 자는 선한 자이다.
② 이런 종류의 선한 뜻이 있기만 하면 그것은 발견될 것이다. 그런 선한 뜻을 찾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눈여겨보시고 기뻐하신다.
③ 조그만 은혜라도 큰 자에게는 크게 효과가 있다. 권세자들이 신앙에 돈독한 것을 보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주권자들이 독실한 신앙을 갖는 경우에는 이중의 영예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④ 어린 자들이 경건한 뜻을 품는 경우에는 특히 귀엽고 마음에 든다. 축소판 하나님의 형상은 그 안에 독특한 아름다움과 광채를 가진다.
⑤ 악한 시대와 악한 장소에 살면서 선한 자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매우 빛나는 존재들이다.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 선한 아이가 우뚝 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낳은 기적이다. 
그 집에 있으면서 물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글거리는 용광로 속에서 다치지도 않고 그을리지도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아이에 대한 배려를 살펴보자.
여로보암 집의 모든 사람 중에서 유독 그만이 존귀하게 죽을 것이며, 산 자들이 바라는 대로 매장되고 애도를 받게 될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별된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도 구별될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소망에 가득 찬 이 아이는 그의 가족 중 맨 먼저 죽는다. 하나님께서는 왕왕 당신께서 극히 사랑하시는 자를 극히 빨리 데려가시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천국이 가장 적합한 곳이다. 이 땅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2) 그의 죽음은 그의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였다.
① 자기 가족을 개조시킬 수 있던 자가 취해 감을 입었다는 것은 그 집안이 파멸되리라는 징조였다. 
의인은 이 세상에서 올 악한 것으로부터 보다 나은 세상에서 올 선한 것으로 옮겨진다. 가족 중 가장 훌륭한 자가 장사될 때, 그것은 가족에게 대한 흉조다. 귀중한 것을 가려내는 것은 나머지를 아궁이에 갖다 넣기 위함이다.
② 가문과 나라를 다 향상시켜야 할 자가 죽었다는 것은 동시에 집안과 나라에 대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죽기 전에 귀가하지 못하리라고 하는 것은 그 불쌍한 어미의 불행을 더 가중시켰다.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으리라.” 
이것은 나머지 경고가 반드시 성취될 것에 대한 표징이었다(삼상 2:34).
6. 하나님께서는 다른 가계를 세워 이스라엘을 통치시키겠다고 예고하셨다(14절). 
이 예언은 잇사갈의 바아사에게서 이루어졌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 재위 2년에 역모를 하여 나답과 그 일족을 살해했던 것이다. “어느 때냐? 곧 이제라. 왜 내가 그 일이 멀리 있다고 말하지 않는 줄 아느냐? 그 일은 문 앞에 닥쳐 와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은 바로 지금 시행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죄인들에 대한 일을 빨리 마무리지으신다. 여로보암의 집에 대해서 바로 그렇게 하셨다. 그가 처음 등극한 지 24년도 채 되지 못해 그 일족은 멸절되었던 것이다.
7.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이 확립한 우상 숭배를 준봉(遵奉)한 데 대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소경 된 자가 소경을 인도하면 인도하는 소경이나 따르는 소경이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예고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15절).
(1) 그들은 결코 편안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 땅에서도 올바로 안주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리라는 것.
그들이 다윗가를 떠난 뒤 정권은 결코 한 가문에서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하나가 득세하면 다른 집이 반역하여 그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와 같은 빈번한 정변은 필연적으로 백성 가운데 큰 불안과 혼란을 조성시켰다.
(2) 그들은 머지 않아 자기 땅에서 통째 추방당하며, 그 복지에서 쫓겨나 파멸에 삼키우리라는 것(16절).
이 예언은 열 지파가 앗수르 왕에 의해 포로가 됨으로써 이루어졌다. 가정과 나라는 죄로 인해 파멸되며, 그 우두머리의 악함 때문에 멸망하게 된다. 
여로보암은 자신이 범죄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로 범죄케 했다. 권세자들이 악하게 행하는 경우, 그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을 범죄와 올무에 연루시키게 된다. 
많은 무리가 저희의 악한 길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객차를 많이 달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열차와 같다. 그런 자들이 받을 정죄가 더 참을 수 없는 것이 될 것은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타인들을 죄 가운데로 끌어넣고 자기의 영향력에 의해 죄 속에 머물게 한 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Ⅱ. 여로보암의 처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디르사에 있는 자기 집에 돌아갔다. 디르사는 그 지명이 의미하듯 아늑하고 즐거운 곳으로 그 아름다움이 유명했다(아 6:4). 그러나 죽음이 그 아름다움을 더럽히며 그 모든 즐거움을 쓰라림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니, 그 때는 죽음을 몰아낼 수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될 것이다.
여로보암의 처는 디르사로 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자기 가문의 숙명을 기다려야 했다.
1. 아이는 죽었고(17절), 온 이스라엘은 마땅히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토록 유망한 왕자를 잃어버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선한 왕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타락자였다. 그들이 슬퍼한 것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수문이 뚫려서 심판의 물결이 범람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2. 여로보암 자신도 그 뒤에 곧 죽었다(20절). 
역대기에는 여호와께서 모종의 고질병으로 그를 치셨다고 되어 있다(대하 13:20). 그는 재위 22년 만에 비참하게 죽었고, 왕위는 그의 아들에게 계승되었으나, 그 아들은 2년 후 왕좌와 생명까지 내놓게 되었고 그 일족도 모조리 주살되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그의 서기들이 그의 치적에 관해 기록한 연대기나 런던 탑의 사고(史庫) 안에 든 실록처럼,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이라고 하는 공적인 기록을 참조하라고 하고 있다. 당시에는 이런 기록을 신뢰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신적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이런 책들은 오래전에 유실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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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의 수치와 사망(왕상 14:21-31)
본서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관한 기사가 혼합되어 있다. 여로보암은 르호보암보다 4~5년 더 오래 살았는데, 르호보암에 관한 역사가 먼저 마무리되는 것은 그의 치적에 관한 기록을 함께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것은 슬픈 기록이기도 하다.
Ⅰ. 여기에는 르호보암 왕에 대해 좋은 말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본문에서 그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전 묘사는 다음과 같다.
1. 르호보암이 왕위에 등극한 것은 그의 나이 41세 때였다. 이로써 계산해 보면 그의 출생 시기는 다윗 말년에 해당되며, 그의 교육과 사상의 형성 시기는 바로 솔로몬의 전성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이점을 살려 생활하지 못했다. 솔로몬은 지혜와 믿음으로 자기 아들에게 선한 원리들을 가르쳐 주었다기보다 말년의 태만으로 그를 타락시킨 면이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2. 그는 예루살렘에서 17년간 통치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성”이어서 르호보암이 할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면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배울 기회가 얼마든지 있는 곳이었다.
3. 그의 어머니는 암몬 사람 나아마였는데 이 사실은 두 번 언급되어 있다(21, 31절). 다윗이 자기 아들 솔로몬을 암몬 여인과 결혼시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솔로몬의 결혼은 다윗 생존시에 있었으므로). 그러나 솔로몬이 나아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나아마, 즉 미인(“나아마”는 “미인”을 의미함)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비 다윗은 솔로몬의 비위를 건드리기 싫어했으나, 그것은 후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 여인은 아마 암몬 사람 소비의 딸이었을 것이다. 소비는 다윗에게 친절했고(삼하 17:27), 다윗은 자기 아들을 그쪽 가문에 결혼시킴으로써 보답하고자 했을 것이다. 한결같지 않은 불신자와 인연을 맺는 일의 결과가 얼마나 지속적이며 치명적인가는 아무도 상상할 수가 없다.
4. 그는 여로보암과 끊임없이 전쟁했고(30절), 이것은 그에게 끊임없는 불안이 되었다.
5. 그는 고작 재위 17년 만에 죽었고 자기 아들에게 왕좌를 물리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나 손자는 모두들 선정을 베풀어서 재위 기간도 길었다. 그들은 각각 40년간 통치했다. 흔히 죄는 인간의 수명과 위안을 단축시킨다.
Ⅱ. 여기에는 유다 신민(臣民)의 특성과 형편에 대해 많은 악한 일이 지적되어 있다.
1. 그들이 얼마나 사악하고 속되었는지 살펴보자.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극히 슬픈 기사가 나온다(22-24절). 유다는 하나님께서 소유하시는 이 세상 백성 중 유일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민족이었다. 그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멸시하고 그의 특별하신 임재의 표징을 무시했다. 그들은 간음하는 아내가 혼약을 깨뜨림으로써 그 남편을 격분하게 하듯, “여호와의 노를 격발했다.” 그들의 조상들은 그 악함이 이만저만 아니었으며 특히 사사 시대에는 악이 성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열조의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가증한 일들을 행했다. 성전의 장엄함과 제사장의 화려함, 그리고 그들의 신앙생활에 부수되는 갖가지 세상적 혜택도 그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 “위에서부터 부어주시는 성신”만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충성되게 할 것이다(사 32:15 참조). 유대인의 악함에 대한 본문의 설명은 이방 세계의 악함에 대한 사도의 묘사(롬 1:21, 24)와 일치한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는 것이다(롬 3:9).
(1)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 생각이 허망하여져서”(롬 1:21),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꾸었다”(롬 1:23). 그들은 “산당과 우상과 목상”을 세웠고(23절), 그런 형상에다 하나님의 이름을 결부시킴으로써 그의 이름을 모독했으며, 우상을 섬기는 데 하나님의 규례를 사용함으로써 그 규례를 더럽혔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였다고 생각하며, 푸른 나무의 즐거운 그늘 아래서 그를 섬기고는 그를 즐거우시도록 했다는 망상에 젖어 있었다.
(2) 그들은 야비한 애욕에 혹하도록 내버려 둠을 당했다(로마서에 나오는 우상 숭배자들처럼. 롬 1:26, 27). “그 땅에는 남색하는 자들이” 있었으며(24절),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했던” 것이다. 이것은 혐오감과 분노심이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물며 입에 올리는 일이랴! 그들은 하나의 범죄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죄로써 그들을 수치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다. 그들은 거룩한 민족의 특권을 모독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들 자신의 마음의 정욕에 내버려 두사 저주받은 가나안인들의 가증한 짓을 모방하도록 두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에 있어서도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셨다. 그들이 “쫓겨난 자들과 마찬가지로” 행했으니, 그들처럼 쫓겨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랴!
2. 그들이 얼마나 약하고 불쌍한 민족인지 살펴보자. 그들은 선주민의 전철을 밟았다. 죄는 어떤 민족이고 할 것 없이 위험에 노출시키며, 가난하게 만들며, 약화시킨다.
애굽 왕 시삭이 그들을 치러 올라왔다. 그리고 무력에 의해서든 항복을 통해서든, 그는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성전과 국고의 모든 보물을 약탈해 갔다. 그것은 여호와의 전과 왕의 집에 있는 보물로서 다윗과 솔로몬이 축적해 놓은 것이었다(25, 26절). 아마 이들 보물이 시삭의 내습을 꾀어들였을 것이고, 르호보암도 아합처럼 나머지 것이나마 보존하기 위해 순순히 내어 주었을 것이다(20:4). 또 시삭은 겨우 솔로몬 때에 만들어진 금 방패를 가져가 버렸다(26절). 애굽 왕은 이들을 전리품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르호보암은 그 대신 놋 방패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그가 위용을 갖추고 성전에 들어갈 때 호위병들이 휴대하던 것이다(27, 28절). 이 일은 그의 영광이 감소된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죄는 금도 빛을 잃게 만들며, 극히 아름다운 정금을 변화시켜 놋이 되게 한다.
우리는 여호와의 전에 들어간 데 대해 르호보암을 칭찬할지언정, 그가 화려한 위의를 갖추고 들어갔다 하여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는 아마 책망을 듣기 위해 자주 성전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권세 있는 자들은 자기들의 존귀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들 자신도 그 일로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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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열왕기상 14장
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ㅇ그 때에 - '그 때에'는 13장 말미의 '여로보암의 범죄 행위'(13:33,34)와 본장의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든 것'을 서로 연관시키는 말이다(Hammaond). 특히 '때'(에트)라는 단어는 퍽 광범위한 용법을 지니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어떤 특유한 시점을 각별히 지적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때에'는 여로보암이 범죄 행위를 계속하던 당시를 애써 지적하는 말이다. 즉 이 말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 보면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이 난 것은 여로보암의 소행 탓이라는 해석이 은연 중 역력하다.
ㅇ아비야 -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라' 이다. 일명 아비얌(Abijam)이라고도 하는 유다왕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Abijah, 31절; 대하 11:22)와 혼돈되기 쉬우나 실상은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성경에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였다는 사실 외에(13절) 달리 알려진 행적이 없다.
ㅇ병든지라 - '병든지라'에 해당하는 '할라'는 '약해지다', '슬픔에 젖다'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병이 들면 육체적으로 약해질 뿐 아니라 심정적으로도 슬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동사의 외연(外延)에는 병든 심신의 모든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본절에서 이 동사는 병자 아비야 자신 뿐 아니라 여로보암 가문 전체의 근심과 쓸픔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해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 P. 650).
2 여로보암이 그 아내에게 이르되 청컨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으로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저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고한 사람이니라
ㅇ그 아내에게 이르되... - 이로 보아 아들의 병이 여로보암에게 큰 근심거리였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의 해결을 위해 여로보암과 아내가 직접 나서야 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에게 아들의 운명을 묻는 일을 정작 자신이 수행하지 않고 대신 아내에게 떠맡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읽을 수 있다. (1) 일단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아히야가 자신의 왕 될 것을 예견했던 바(11:29-40) 있기 때문이다(J.B Payne, Matthew Henry, Lange). (2)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신이 직접 아히야와 대면하기를 꺼렸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이 아히야가 권고한 순종의 길(11:37,38)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R.D. Patterson ,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3) 따라서 그러한 거리낌이 자신의 아내에게도 여로보암의 아내라는 사실을 감추도록 요구하게 했다. (4) 때문에 결국 여로보암의 아내는 평범한 아낙네로 변장하여 아히야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4,5절).
ㅇ실로 - '실로'는 벧엘 북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이다. 이곳은 여호수아 시대에서 사무엘 시대 동안 법궤와 성막이 머무른 바 있는 종교 중심지이다(삼상 4:3,4). 그런데 이곳은 목초와 물은 많아도 적을 방어하기에는 좋지 않은 지형이라고 한다(Reed). 여로보암이 실로를 제쳐 두고 벧엘을 종교 중심지로 삼은 것은 이러한 군사적 측면도 계산 되었으리라고 본다(12:29 주석 참조). 한편 17절은 당시 여로보암의 집이 '디르사'(Tirzah)에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그런데 디르사에서 실로까지는 48km 이상의 거리이다. 따라서 여로보암의 아내는 제법 먼 거리를 여행해야 했던 셈이다.
3 그대의 손에 떡 열과 과자와 꿀 한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저가 그대에게 이 아이의 어떻게 될 것을 알게 하리라
ㅇ떡 열과 과자와 꿀 한 병 -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적 일을 하는 사람에게 예물을 주는 것이 상례(常例)였다(13:7; 창 18:4; 19:2; 43:24; 삼상 9:7,8). 그런데 본절에서 여로보암이 지시한 예물의 양은 속임수를 쓰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Lange, Hammond, Keil). 왜냐하면 떡 열과 과자와 꿀 한 병은 평민이 보통 선사할수 있는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이다. 즉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내의 신분을 왕비가 아닌 보통 사람으로 나타내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2절과 본절은 여로보암의 용의 주도한 면모를 보여 준다. 그러나 그의 치밀한 머리가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즉 그는 자신의 책략에만 눈이 어두워 하늘에서 세상 모든 거민을 하감(下瞰)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동자(시 33:13,14)를 미처 인식치 못했던 것이다(5,6절).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ㅇ눈이 어두워 - 여러 학자들은 이를 노령으로 인해 안구(眼球)가 고정되면서 생기는 시력 장애로 풀이한다(Bahr, Keil 등). 왜냐하면 '눈이 어두워'(카무 에이나요)의 문자적인 뜻은 '눈이 멈추다'이기 때문이다.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 아들이 병듦을 인하여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리이리 대답하라 저가 들어올때에 다른 사람인체 함이니라
ㅇ너는 이리이리 대답하라 - 여로보암의 계략(2,3절)은 눈먼 아히야를 충분히 속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啓示)는 여로보암의 기만책은 물론 여로보암 집안의 장래(6-16절), 그리고 대답의 방식까지도 일러주는 상세한 것이었다. 사실 건강하고 용의 주도한 인물인 여로보암과 늙고 눈까지 먼 인물인 아히야가 벌인 게임의 승부는 뻔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약자의 편에 하나님께서 가세하시므로 얘기는 달라진다. 즉 여로보암이 아히야의 어두워진 눈은 속일 수 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곧 우수한 인간적 재능이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만이 내세워질 때는 오히려 큰 올무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면에 비록 여러 면에서 인간적 결점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겸허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려는 자는,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으 부끄럽게 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귀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다(고전 1:27).
6 저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뇨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로 네게 고하리니
ㅇ어찌히여 - '어찌하여'(라마 제)는 물론 몰라서 묻는 의문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가'할 때 '왜 이렇게'에 해당하는 냉소적 어감을 지닌 말이다(사 1:11; 암 5:18). 그러므로 이 말은 마치 세상의 군왕들이 떠들썩하게 나서서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정작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냉소와 비웃음을 흘리시는 광경을 연상케 해준다(시 2:1-4).
ㅇ다른 사람이 체 하느뇨 -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내를 변장시켜 아히야가 못알아 보도록 의도하였다(2절). 그러면서도 여로보암은 앞일을 내다보는 아히야의 능력만은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는 곧 일종의 점술가를 대하는 태도에 해당한다. 즉 여로보암은 자신을 감춤으로써 아히야와 인격적 관계 맺기를 거부하면서도 기복(祇福)의 도구로 하나님의 사람인 아히야를 이용하려 든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210). 그런데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파악하지 않고 하나의 도구적 사물로 인식하는 왜곡된 형태이다. 그러기에 신약에 이르러는 심지어 돈으로 물건을 사듯 하나님의 능력만을 구입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인물도 등장한다(행 8:9-24). 한편 이처럼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를 만나게 한 여로보암의 모습은 과거 스스로 변장한 채 신접한 여인을 만난 사울과 비교된다(삼상 28:8-19). 더군다나 이들 모두 심판의 예언을 선고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ㅇ흉한 일 - '흉한'에 해당하는 '카쉐'는 '엄격하다', '가혹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본문에서 이는 여로보암 가문의 멸절을 선언하는 심판의 가혹함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10,11절).
ㅇ고(告)하리니 - 여기서 '고하다'(솰루흐)라는 말은 본래 '보내다'(send)는 뜻이다. 이는 곧 선지자들의 메시지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임을 일깨워 준다(사 9:8; 슥 7:12). 한편 이제 아히야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은 메시지를 다시금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전한다. 그러기에 이 메시지, 즉 심판의 예언은 훗날 반드시 성취되고 말 것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代言者)로서 기능하는 아히야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선지자의 고유한 권한과 훈도의 향기를 볼 수 있다.
7 가서 여로보암에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ㅇ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 이러한 표현이 강조하고 있는 바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사이의 관계가 불가분리의 각별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본절의 행간에 감추어진 아히야의 심정은 여로보암이 '그러한 각별한 관계를 파기한'데 대한 상처와 분노이다. 한편 본문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조되는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9절의 '다른 신'이다.
ㅇ주권자가 되게 하고 - '되게 하고'는 원래 '위임하다'는 뜻의 '나탄'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Q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된다는 것은 이방나라처럼 전횡자(專橫者)=절대군주/독재자/폭군으로서가 아니라 "나기드= 영원유일무이하신 전능 왕 Q이 지명하신바, 그분의 (백성 섬김 위한)  대리왕"을 의미하는 것이다. 대신 백성의 주권자는 어디까지나 우주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위임받은 백성을 겸손히 다스려야 하는 제한된 봉사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여로보암은 [이방나라의 절대군주처럼!!] 저들을 우상 숭배 죄악으로 몰고 간 것이다(12:25-33).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ㅇ찢어 내어 - 여기서 이 말은 한 왕조에서 왕조의 일부를 분리해 냄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다(11:30; 삼상 15:28). 한편 성경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인 '옷을 찢는다'함은 비통함과 회개의 표시이기도 하다(창 37:29; 민 14:6; 수 7:6; 호 13:8). 따라서 나라가 찢어졌다는 것은 비통한 현실이기도 하거니와 나라 전체에 회개를 촉구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ㅇ다윗...같지 아니하고 - 본문은 마치 여로보암의 소행을 놓고 판결을 내리는 법정의 장면과도 같다. 그런데 여로보암의 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경쟁 왕조의 다윗인 점이 흥미롭다. 즉 아히야는 이전의 예언에서 여로보암에게 다윗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이미 충고한 바 있거니와(11:38), 여기서는 다윗에 견주어 그를 책망하고있다. 하지만 여로보암에게 있어서 다윗은 적대(敵對) 가문의 전왕(前王)으로서 증오의 대상이었을지언정 따라야 할 모본(模本)은 아니었다. 한편 본서에서 다윗은 여로보암 뿐만 아니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들의 모본이 될만한 신앙인물로 제시되고 있는(15:3,11) 반면,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의 대표적 인물로서 언급되고 있다(15:34; 16:26,30).
9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ㅇ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 여기서 '이전 사람들'이란 말이 지시하는 범위 및 이해 방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가능하다. (1) 이전의 왕들, 즉 사울, 다윗, 솔로몬과 같은 선왕(先王)들을 지칭하는 걸로 볼 수있다(Living Bible). 그러나 이 경우 비교 대상의 범위가 작으므로 여로보암의 악을 강조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다. (2) 이전의 사사(士師)들까지 포함해서 지칭하는 걸로 볼 수 있다(Hammond).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3) 다만 여로보암의 극악 무도함을 표현하는 수사적 관용 어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의 세 견해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는 우상 숭배에 빠진 바 있는 선대(先代)의 인물이 결코 여로보암보다는 악하지 않았다는 의미를 시사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실 과거 솔로몬 같은 성군(聖君)도 한때 혼미하여 우상 숭배에 빠진 적이 있었지만 여로보암처럼 체계적이고 정책적으로 우상 숭배를 전국에 확산시키지는 않았었다(11:1-8).
ㅇ너를 위하여 - 비록 여로보암이 자신의 종교 정책을 전통적 신앙으로의 복귀로 홍보했을지라도 본심은 참된 신앙적 동기에 있지 않았다(12:25-33). 즉 여로보암은 단지 유다와의 체제 경쟁의 맥락에서 자신의 정권 안보를 위해 종교 정책을 펼쳤을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문에서 그러한 여로보암의 불순함을 간단한 한 마디, '너를 위하여'로 통렬히 지적해 내신다. 사실 겉치레와 간판이 무엇이든 '하나님을 위하여'의 참된 마음의 근본 동기가 결여된 제사는 불법이다. 그리고 그런 제사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즉 우상을 향한 제사이기 십상이다.
ㅇ네 등 뒤에 버렸도다 - 이 표현(겔 23:35)은 하나님을 최대한으로 경멸하고 무시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Bahr, Keil, Pulpit Commentary).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성실히 섬기는 태도를 가리켜 종종 '(마음)눈을 하나님을 향하여 두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시 25:15; 119:37; 123:2; 141:8). 그런데 여로보암의 행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돌렸을 뿐 아니라, 아예 등을 돌려 버린 것으로 묘사되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등 뒤에'(아하레 가예카)라는 표현이 갖는 모욕과 경멸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여기에 '버리다'(솰라크)라는 말이 추가됨으로서 모욕의 정도는 최대한 중폭된다. 왜냐하면 이 '버리다'는 말은 어떤 것을 무가치한 것처럼 유기(遺棄)해버리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즉 이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쓰레기만큼도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 버림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ㅇ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 - 원문의 문자적 표현은 '여로보암에게 속한, 벽에다 오줌 누는 자들'이다. 이는 곧 여로보암 가문의 모든 남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ㅇ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 '매인 자나 놓인 자'( ,웨아주브 아추르)는 관용법적 표현으로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21:21; 신 32:36; 왕하 9:8). 따라서 이 말은 앞서 '여로보암에 속한 사내'와 동격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매인 자와 놓인 자의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견해가 서로 다르다. 즉 이는 곧 (1) 기혼자와 미혼자(Keil), (2) 종과 자유인(Thenius, Gesenius), (3) 연소자와 연장자(Lange)를 가리킨다는 등 각각의 설명이 구구하다. 그런데 원문이 주는 뜻에 일차적으로 근접한 풀이는 역시 '종과 자유인'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원문의 '아주브'는 '종에서 풀려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 번역도 본절을 '자유인이든 종이든'으로 옮기고 있다.
ㅇ거름을 쓸어 버림같이 - 여기서 '거름'(갈랄)은 길에 굴러다니는 똥을 말한다. 원어에 비해 한글의 '거름'은 좀 점잖은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거름'은 더럽긴 해도 쓸모있는 무엇이란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갈랄'은 원래 '구르다'는 뜻의 동사이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길에 굴러다니는 것', 즉 '똥'(겔)이 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본절은 여로보암 일족의 멸망이 마치 길에 굴러 다니는 똥을 치우듯 혐오를 갖고, 조금치의 미련도 없이 수행될 것임을 시사해 준다(15:28-30).
ㅇ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 본래 원문에는 '말갛게'에 해당하는 부사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쓸어 버리다'는 뜻의 동사 '바아르'가 '없애되 완진히 없애는'강렬함을 지닌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강렬함을 전하기 위해 '말갛게'가 첨가되어 번역된 것이다. 하기는 누구든 똥을 치우면서 조금이라도 남길 리 만무하다(Matthew Henry).
11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셨나니
ㅇ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새가 먹으리니 - 여로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강렬한 노여움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적 표현이다. 시체가 무덤에 안장(安葬)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은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큰 수치였다(13:30 주석 참조). 더구나 시신이 야수(野獸)의 밥으로 먹히우는 것은 사자(死者)에 대한 최대의 오욕과 불명예라 할 수 있었다(삼상 17:46; 시 79:2; 렘 7:33; 16:4; 34:20; 겔 29:5). 한편 본절에서 야수 대신 개가 언급된 것은 당시 거리에는 주인도 없이 돌아다니며 짐승들의 시체를 뜯는 들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시 59:6,14).
ㅇ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 이처럼 '여호와께서 말씀하심'은 마치 어떤 공문서로 하여금 비로소 권위와 효력을 갖게 하는 서명 날인과 같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라서 식언(食言)함이 없기 때문이다(삼상 15:29).
12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ㅇ너는 일어나...가라 - 본문에서 여로보암의 아내의 역할은 일종의 사자(使者, messenger)이다. 즉 그녀는 처음에 올 때에는 여로보암의 사자였으나(1-4절) 이제 갈때에는 아히야의 사자가 된 셈이다. 이러한 전환에서 의미 변화(意味變化)가 발생한다. 즉 여로보암의 아내는 처음에 아이의 생사 여부를 물으러 왔다. 그러나 이제 돌아갈 때 그녀는 여로보암 가문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6-11절)과 그 증거로서 자신의 아이가 죽게 될 것(12,13절)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여로보암에게 알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즉 말씀의 전언(傳言)과 징조의 해석이 그녀에게 임무로 부과된 셈이다. 결국 여로보암이 아내를 이용하며 아히야를 속이려던 것이 이제는 거꾸로 아히야가 그녀를 통하여 여로보암을 꾸짖게 된 셈이다.
ㅇ네 발이...죽을지라 -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1절)은 결국 죽을 운명임이 드러났다. 여로보암이 애초에 아히야에게 묻고자 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3절). 그러나 이제 그 아이의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표적으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우연과 구별되는 근거로는 '발이 성에 들어갈때'라는 특정한 시점과 아이의 죽음의 순간이 일치한다는 데 있다. 17절을 보면, '발이 성에 들어갈 때'는 '집 문지방에 이를 때'로 보다 상세하게 언급된다. 이러한 요소가 아이의 죽음과 아히야의 예언이 갖는 일치를 오비 이락(烏飛梨落), 즉 우연의 일치로 돌릴 수 없게 한다(Keil & Delitzsch).
13 온 이스라엘이 저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 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ㅇ본절은 아이의 죽음을 역설적으로 차라리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물론, 이후 여로보암 가문에 밀어 닥칠 심판(10,11,14-16절)을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본절의 구조는 전반부가 아이의 죽음이 갖는 상대적 행복의 요소를, 후반부가 이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먼저 전반부에서 아이의 죽음은 (1) 온 백성의 애도를 받을 수 있음과 (2) 묘실에 매장될 수 있음이 지적된다. 따라서 아무데나 버려져 짐승의 먹이가 될 다른 가족의 주검에 비하면(11절) 이는 거의 축복에 가까은 죽음이다. 다음으로 본절 후반부는 아이의 이 같은 죽음의 이유를 '저가 하나님을 향해 선한 뜻을 품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아무튼 본장에서 우리는 아이의 병, 혹은 죽음을 놓고 서로 엇갈린 시각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아이의 병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여로보암에게는 불행과 슬픔으로 비쳤다(1,2 주석 참조). 그러나 선지자 아히야가 보기에는 그것은 차라리 행복이었던 것이다(잠20:24; 사 55:8,9; 롬 11:33).
ㅇ저가...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 11절 예언의 예외로서 오직 아비야만이 온 백성의 애도를 받으며 묘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이유를 설명한 구절이다. 즉 여기서 '선한'(토브)은 어떤 사람의 욕망이나 의지의 방향을 나타내준다. 다시 말해 여로보암의 아들이 가진 의지는 '하나님을 향해' 선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유대교 랍비 전승에 의하면, 이 아들은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가는 백성들을 저지하라는 부친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길에 세은 장애물을 치워 주었다고 한다(Bahr, Pulpit Commentary). 아무튼 여로보암의 모든 권속들에게 닥쳤던 참화(15:29)를 겪지 않고 평안히 죽음을 맞이한 아비야의 경우는 '의인은 화액(禍厄)전에 취하여 감을 입는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사 57:1).
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위에 한 왕을 일으키신즉 저가 그 날에 여로보암의 집을 끊어 버리리라 어느때냐 곧 이제라
ㅇ그 날에 - '그 날에'(제하욤)는 문자적으로는 '이 날'(this day)이다. 그런데 이 말은 평면선상의 어느 시간으로서 이 날 혹은 저 날을 일컫는게 아니다. 오히려 이는 희랍어의 '카이로스'처럼 '결정적인 순간' (decisive moment)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자연 발생적이 아닌, 돌발적 박진감으로 들이닥치는 결정적인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는 '마침내 때가 이르면 바로 날에'와 같은 어감을 지닌 말이다.
ㅇ어느 때냐 곧 이제라 - 본절에서 이 부분이 주는 당혹감은 다음과 같은 데서 연유한다. 문맥상 '그 날에'가 하나님께서 한 왕을 일으키시는 날과 일치함은 분명하다.  임박하는 날은 좌우간 미래의 어느 때 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심판의 때가 '바로 지금'(even now!)이라고 말하고 있다. 얼핏 이것은 모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말은 거의 종말론적 언어이다. 즉 너무나 확실한 결정이여서 이미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되고있는 중 혹은 되어질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에 해당하는 '앗타'는 '막', '방금'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이제부터'(Modern Language, from now on; RSV, henceforth)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시 113:2; 사48:6). 그러므로 본절은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Hammond).
1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이 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그 열조에게 주신 이 좋은 땅에서 뽑아 저희를 하수밖으로 흩으시리니 저희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음이니라
ㅇ이스라엘을 쳐서 - 이제 여로보암 가문의 파멸 예언(14절)은 슬그머니 그 대상을 북왕국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전이(轉移)의 예는 9:5-9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왕과 백성이 함께 심판 받음은 저들의 공동 운명적 유대 관계를 암시한다. 즉 백성들도 여로보암의 정책을 묵묵히 따르므로서(12:30) 결국 그에게 동조한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백성들이 동조한 우상 숭배는 여로보암 사후에도 계속되어 북왕국 역사 전체을 질곡(桎梏)에 빠뜨리게 된다. 그러고 보면 북왕국의 우상 숭배는 왕과 백성의 상호작용에 힘입어 만연하게 된 셈이다.
ㅇ물에서 흔들리는 갈대 - '갈대'에 해당하는 '카네흐'는 '가지', '줄기'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이는 이차적으로 파생되어 나온 뜻이다(창 41:5; 출 25:34;겔 42:16). 본래 '갈대'의 일차적인 뜻은 기본적으로 '연약함'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애굽은 이스라엘이 의지할 수 없는 '상한 갈대'로 비유되기도 한다(왕하 18:21; 사 42:3; 겔 29:6,7 등). 이상을 참고할 때, '물에 흔들리는 갈대'는 강대국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처지릍 빗대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ㅇ뽑아 - 이에 해당하는 '나타쉬'는 뿌리채 뽑는 것, 즉 근절(根絶)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 5:14 에 의하면 '뽑혀야할 것'은 아세라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작 아세라상을 뿌리 뽑지 않았다. 그래서 거꾸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뿌리 뽑히게 된 것이다(신 11:16,17).
ㅇ하수 밖으로 흩으시리니 - 하수는 큰 강 유프라테스를 말하는 바(창 31:21; 삼하10:16), 본절의 예언은 이스라엘 멸망 후 앗시리아로 끌려갈 사건을 말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은 왕하 17:16; 18:11에 기록 되었듯이 B.C. 722년에 성취되고 말았다.
ㅇ흩으시리니 - 이에 해당하는 '자라'는 본래 '키질하다', '까부르다'는 뜻이다. 즉 이는 곡식을 키실하여 찌꺼기를 바람에 날림으로써 깨끗케 하는 동작을 가리킨다. 따라서 비유적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응징, 정화(淨化)의 의미로 쓰인다(레26:34; 렘 15:7; 49:32; 슥 1:19). 즉 이 말은 파궈적 응징로만 그치지 않고 정화라는 긍정적 측면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동사이다.
ㅇ아세라 - 아세라(Asherah)는 페니키아와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이다. 그런데 이 여신에 관한 난제는 아스다롯 및 바알과의 관계 문제이다. 비교적 초기에는 많은 학자들이 아세라와 아스다롯(Ashtaroth)을 동일시해 왔다. 그러나 후대의 연구 결과 및 발굴과 함께 아세라는 아스다롯과 구별되는 또 다른 여신임이 드러났다(Reed). 어쨌든 아세라는 분열 왕국 시대에 여호와 신앙의 주요적으로 등장한다. 엘리야가 활동할 무렵, 이세벨의 식탁에서 먹는 아세라의 선지자는 무려 400명이 었다(18:19). 또 아세라 숭배는 남왕국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아세라 숭배를 근절시키는 게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왕하 23:4-14).
16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
ㅇ여로보암의 죄로...범죄케 하였음이니라 - 본절의 구조를 분석해 보면, 전반부에는 일견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이 등장한다. 즉 여로보암 일개인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버림받은 것처럼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이스라엘은 공시적(共時的)-통시적(通時的) 개념이다. 즉 이는 여로보암 당대의 북왕국만을 지칭하는게 아니라 이후의 북왕국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그런데 후반부는 전반부의 불합리한,혹은 비약적인 전후 관계에 비교적 합리적인 설명을 보태고 있다. 즉 여로보암은 자신이 타락하면서 결국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오염시킨 인자(因子)가 되었다는 것이다(13:33). 이는 곧 여로보암을 기점으로 해서 왕국의 전체를 통시적으로 꿰뚫는 본서 기자의 거시적(巨視的) 안목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17 여로보암의 처가 일어나 디르사로 돌아가서 집 문지방에 이를 때에 아이가 죽은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