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8장
[홍수 전개/마른 땅 회복 확인 과정...창7-8장]
==노아나이 600세, 7월10일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문 닫으심(600세 때, 7월10일)....7일 지난 7월17일부터 지하 용천수 용출 + 동시에 하늘에서는 폭우 강습......40일간(제1-40일까지) 지속....<600세 7월17일(홍수 제1일), 떠오른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무름>.....[불어난 홍수의 최고수위는 산들 중 최고봉 높이보다 6.7미터 위까지 잠길정도.]
==>그후 (용천수 분출 및 폭우 강습을 멈추심 + 바람으로 수면 위에 불게 하심 인해) <홍수 수위 증가속도 미세 둔화 시작>) 제150일 지난 시점부터는, 물이 (급속히,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확인가능......<이미, 그전> 600세 10월1일(제73일),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었음..
==>601세 1월1일(홍수 제5개월14일째), 물이 걷혔음을 방주 뚜껑 열고 확인함 <땅은 아직 축축.....탐사 시작 결정...(아마, 산들의 봉우리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40일 경과후, 600년11월10일, 제113일째>, 날려보낸 까마귀는 <사체 먹으려고 안돌아옴>, 뒤이어 내어보낸 첫비둘기는 <아마도 601년2월13일경일듯..앉을 곳 없어서 그냥 돌아 옴>......7일후(2월20일<제6개월3일째>, 감람나무 잎사귀 물고 2차 비둘기 돌아옴)> ......601세 2월27일<제6개월10일째>, 땅이 마름 확신..<3차 비둘기가 머물곳을 찾았기에 돌아오지 않았음>.
=== 정리해 보면
......[제1-40일.. 홍수수위 순증기간] 지하 용천수 분출 + 하늘로부터 폭우 지속...그 후에는 완전히 멈추고 바람 불어 마르기 시작.
......[땅의 물 덮임 기간은 총 5개월 13일], 마른 땅에서 마른 땅으로의 완전 회복(총6개월10일만)......<주께서 나오라 하심따라>방주에서 밖으로 나옴
===홍수가 그치다....[257.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땅에 거의 다 물러남]줄어들고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물 수위의 급속 상승으로 떠오른]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방주의 열린창] --초하르<체데-헤이트-레이시>..창6:16..방주[영혼/마음]의 외부를 내다볼 수 있게하는, 빛 들어오는 열린 창 = 외부에서 빛 공급 받고 외부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 열린 창 = 빛의 통로 = 중보/교통하는 마음 .....새벽/정오-여명/빛이신 Q.(.시119:103-105.) :: 곧 체레브<체데-레이시-베이트...십자가 통과로 나타난바 그 발아된 새생명> 십자가 죽음 거쳐 모든 불의를 친히 담당하여 제거심으로 참생명 낳아 산출하시는 참목자<라아,,레이시-아인>, 그리스도의 참 공급 통로.. *인격이란 오직 십자가 참생명으로 대함 인한, 오직 사랑!!의 돌봄-양육-보호-지킴/방어, 동심합치-일편단심-항구여일의, [오직 생명 선순환의 넘치는 은혜, 그 은혜와 말씀충만의 참지혜로만 행할바 모든 장애/장벽을 넘어서며 극복 가능함...거친것 전혀 없는 부드럽고-달콤하고-너그러운, 공감/동감/감동/품음/감싸임의 진지/시인/접촉/감격/동거동주동행---매료되며 매혹시키며-생명의 매력 넘침의 환대...그리스도 신부=참제자=엘로힘 판박이=한 몸의 지체됨이란, 바로 그 새 예루살렘<.요드-레이시-바브(중)-쉰(우)-라멛-멤>.. 날마다 새롭게 하시기에, 새예루살렘...그 실제(참된 근본적 정체성)는 = 베레시트이다!!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그 당시에는돌아오지않았음?]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땅은 아직 축축하나]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 무려 5개월13일 지나서야 <마른 땅> 회복 !!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번제를 드리다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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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od Abates.8.
1 And God remembered and thought kindly of Noah and every living thing and all the animals that were with him in the ark; and God made a wind blow over the land, and the waters receded.
2 Also the fountains of the deep [subterranean waters] and the windows of the heavens were closed, the [pouring] rain from the sky was restrained,
3 and the waters receded steadily from the earth. At the end of a hundred and fifty days the waters had diminished.
4 On the seventeenth day of the seventh month [five months after the rain began], the ark came to rest on the mountains of Ararat [in [a]Turkey].
5 The waters continued to decrease until the tenth month; on the first day of the tenth month the tops of the mountains were seen.
6 At the end of [another] forty days Noah opened the window of the ark which he had made;
7 and he sent out a raven, which flew here and there until the waters were dried up from the earth.
8 Then Noah sent out a dove to see if the water level had fallen below the surface of the land.
9 But the dove found no place on which to rest the sole of her foot, and she returned to him to the ark, for the waters were [still] on the face of the entire earth. So he reached out his hand and took the dove, and brought her into the ark.
10 He waited another seven days and again sent the dove out from the ark.
11 The dove came back to him in the evening, and there, in her beak, was a fresh olive leaf. So Noah knew that the water level had subsided from the earth.
12 Then he waited another seven days and sent out the dove, but she did not return to him again.
13 Now in the six hundred and first year [of Noah’s life], on the first day of the first month, the waters were drying up from the earth. Then Noah removed the covering of the ark and looked, and the surface of the ground was drying.
14 On the twenty-seventh day of the second month the land was [entirely] dry.
15 And God spoke to Noah, saying,
16 “Go out of the ark, you and your wife and your sons and their wives with you.
17 Bring out with you every living thing from all flesh—birds and animals and every crawling thing that crawls on the earth—that they may breed abundantly on the earth, and be fruitful and multiply on the earth.”
18 So Noah went out, and his wife and his sons and their wives with him [after being in the ark one year and ten days].
19 Every animal, every crawling thing, every bird—and whatever moves on the land—went out by families (types, groupings) from the ark.
20 And Noah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took of every [ceremonially] clean animal and of every clean bi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on the altar.
21 The Lord smelled the pleasing aroma [a soothing, satisfying scent] and the Lord said to Himself, “I will never again curse the ground because of man, for the intent (strong inclination, desire) of man’s heart is wicked from his youth; and I will never again destroy every living thing, as I have done.
22 “While the earth remains, Seedtime and harvest, Cold and heat, Winter and summer, And day and night Shall not cease.”
===Footnotes
Genesis 8:4 Formerly in Armenia, now in Turkey—near the present-day Turkish-Armenian b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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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8장 (개요)
전 장에서는, 세상은 멸망하고 교회는 협소하게 된 것을 보았다. 그러나 본 장에서는 세상이 회복되고 교회가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장면이 바뀌는 것이다. 사물의 다른 측면이 우리에게 전개된다.
한때는 그렇게도 검고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던 구름이 이제는 보다 밝은 면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싸우지만 영원히 싸우지는 않으시며, 언제까지나 진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서서히 물이 감소해 마른 땅이 드러나고 제2의 시대가 온다.
(1) 물의 증가는 멈춰진다(1, 2).
(2) 물이 현저하게 감소되기 시작한다(3).
(3) 16일 동안 물이 빠진 후에 방주가 머문다(4).
(4) 60일간 물이 빠지자 산봉우리가 물 위에 드러난다(5).
(5) 물이 빠지기 시작한 40일 후, 노아는 정보를 얻으려고 까마귀와 비둘기를 정탐꾼으로 내보낸다(6-12).
(6) 산봉우리가 드러난 2개월 후에 물은 걷히고 지면이 말랐으나(13), 두 달 후에 사람에게 적당할 만큼 땅이 마른다(14).
2. 인간이 땅 위에서 살게 된다.
(1) 노아가 방주를 떠난다(15-19).
(2) 해방되자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린다(20).
(3)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시고, 다시는 세상을 물에 빠뜨리지 않기로 약속하신다(21, 22). 그리하여 마침내 심판이 물러가고 자비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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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마르기 시작함(창 8:1-3)
Ⅰ.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 “하나님이 노아와 그 모든 생물을 기억하셨다.”
이것은 인간적인 표현 방식이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라도(눅 12:6), 더욱이 그 백성 중의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께는 잊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사 49:15, 16).
1. 그러나 노아와 그 가족들을 제외한 모든 종족의 인간들은 이제 멸절되고, 망각의 땅으로 추방되어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심은 인류에 대한 그의 긍휼이 다시 시작되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를 완전히 멸종시키려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에스겔 5장 13절의 말씀, “그들을 향한 내 분이 다한즉 내 마음이 시원하리라”고 한 것은 이상한 표현법이다.
하나님의 정의의 요청은 저들 죄인들의 멸망으로 응답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대적에게 보응하여 그 마음을 편안케 하셨고(사 1:24), 이제 그 심령이 평온케 되었다(슥 6:8).
그리하여 “하나님이 노아와 모든 생물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고(합 3:2), 옛날을 추억하시며(사 63:11), 거룩한 씨를 기억하시고, 노아를 기억하셨다.
2. 노아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자이기는 하나, 방주 안에서는 잊혀진 자같이 보였다. 아마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오랫동안 유폐된 생활을 해야 하며, 언제 놓임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선한 사람들도 때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것이라고 제멋대로 결론짓기 쉽다. 특히 그들의 괴로움이 심히 크고 오래 지속될 때에 더욱 그러하다. 노아는 위대한 신앙인이었지만, 그 할 일을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된 후까지도 홍수가 그처럼 오래 계속되었을 때는, 아마도 자기를 방주 안으로 닫아 넣으신 이가 자기까지도 벌로 잡아두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유혹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 나를 잊으시나이까?”(시 13:1) 하고 하나님께 여쭈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이것이 그를 기억하신다는 말로 표현되었다. 다음 사실을 유의해 두자. 그들의 형편이 아무리 황량하고 근심에 잠겨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는 분명히 하나님의 기억하심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한을 정하실 것이며,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다(욥 14:13).
3.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더불어 그 모든 생물을 기억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특히 인간의 자손들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의 모든 작품(피조물)을 기뻐하시며, 자신이 지으신 것은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백성들 개개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유물에 대해서도 특별한 배려를 해 주신다.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보신다는 말이다. 그 분은 니느웨에 있는 육축까지도 생각하고 계셨다(욘 4:11).
Ⅱ. 바람과 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행위.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께서 바람에게 명하여 “가라” 하시니 바람이 갔다. 이는 홍수를 거두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셨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배우자.
(1)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 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노아를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자들은 사실상 영원히 기억된다. 그가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은 구원하시기 위함이고,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섬기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2) 바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지배력은 무엇인가? 그는 바람을 그 장중에 모으고 계시며(잠 30:4) 바람을 그의 곳간에서 끌어내신다(시 135:7). 그가 원하는 때와 방향과 목적을 따라 바람을 보내신다. 광풍까지도 그의 말씀을 좇는다(시 148:8). 물이 불어나는 동안에는 바람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바람은 방주를 더 심하게 동요하도록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위험이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셨다. 아마도 그것은 북풍이었을 것이다. 북풍이라야 비를 몰아 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홍해를 가르시기 위해 보내신 것과 같이 땅을 마르게 하는 바람이었다.
2. 하나님께서 물에게 다시 명하시어, “오라” 하시니 물이 다시 갔다.
(1) 그는 원인을 제거하셨다. 그는 “깊음의 샘이요 하늘의 창인” 그 물의 원천을 봉해 버리셨다. 다음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다.
① 하나님께는 여는 열쇠가 있듯이, 다시금 닫아 버리시는 열쇠도 있으며, 그 모든 원인을 중단시킴으로써 심판의 진행을 멈추게 하실 수도 있다. 그리고 황폐케 하신 바로 그 손으로 구원을 베푸심을 알아야 한다. 상처를 주시는 그만이 고쳐 주실 수가 있다(욥 12:14, 15 참조).
② 죽이는 일이건 구제하는 일이건 간에 재앙이란 그 본래의 소임을 마치면 제거되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사 55:10, 11).
(2) 그 다음 그 세력은, 일순간에는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종식되었다. “물이 감하였고(1절),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3절). 이는 물의 점차적인 퇴행을 뜻하는 말이다. 태양은 그 열기를 심하게 내뿜고, 지하의 암굴들은 물을 더 많이 빨아들였을 것이다. 이 세상이 단 하루 사이에 물에 잠긴 것이 아니었듯이, 단 하루에 마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창조 때에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물에서 땅을 구별해 내어 마른 땅으로 만드는 일은 단 하루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나절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1:9, 10). 이제는 창조의 대역사가 끝나고 이 섭리의 역사가 공동 협력하는 제2의 동인(動因)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그 백성들을 점차적으로 해방시키시므로 평범한 날이라고 멸시하지 말아야 하며, 큰일을 당하는 날이라고 해서 절망해서도 안 된다(슥 4: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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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가 드러남(창 8:4-5)
Ⅰ. 방주가 머물렀다. 이 같은 사실은 노아에게, 자기가 들어가 있는 집이 견고한 땅 위에 서게 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다소간의 만족을 주었다. 그 방주는 노아의 지각(知覺)으로서가 아니라(그가 방주를 조종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로우신 섭리에 의해 지시받은 산 위에 머물게 되었다. 그래서 아마도 좀더 신속히 머물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에 동요가 있은 후에 그들을 위해 쉴 때와 장소를 마련해 주신다는 사실에 유의해야겠다. 교회라는 방주는 때때로 광풍으로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하나(사 54:11) 평안을 되찾게 된다(행 9:31).
Ⅱ. 산봉우리도 조그마한 섬들과 같이 물 위에 드러나 보이게 되었다. 이런 산들은 노아와 그 아들들만 보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들 이외에는 아무도 그 산들을 볼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루한 항해 끝에 육지가 보이지나 않을까 하여 땅을 동경하여 찾는 선원들처럼, 또는 예언자 엘리야의 사환과 같이(왕상 18:43, 44), 아마 그들은 방주의 창문을 통해 날마다 밖을 내다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땅을 찾아내게 되었고, 그들의 여행에서 발견의 날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육지를 찾기 시작한 지 40일 이상이나 지나 비로소 땅을 발견했다. 라이트푸트 박사의 계산에 의하면, 물이 비례적으로 줄었다면 방주의 밑부분 11규빗은 물에 잠겨 있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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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마름(창 8:6-12)
여기에서는 노아가 바깥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 정탐꾼들, 곧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낸 기사를 볼 수가 있다.
1. 하나님은 노아에게 홍수가 이르게 될 때는 날짜까지도 자세히 알려주셨다(7:4). 그러나 끝날 때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거두어 가게 될는지에 대해 특별한 계시를 주지 않으셨다.
1. 전자에 관한 지식은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마련하고 그 안에 자리잡게 하는 데 꼭 필요했기 때문이지만, 후자에 관한 지식은 호기심만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그것을 그에게 비밀로 하는 것이 그의 믿음과 인내에 필요한 훈련이 되기 때문이었다.
2. 그리고 계시가 없었다면 그가 결코 홍수를 예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평범한 방법으로도 그 홍수의 감소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런 방법을 이용하도록 기꺼이 내버려 두셨던 것이다.
Ⅱ. 비록 노아가 그 믿음으로 자신의 해방을 기대했고 인내로써 그것을 기다렸지만 그는 그 기간이 그처럼 유폐되어 있기에는 긴 기간이라고 생각하여 해방의 날을 알고 싶어했다. 고난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다리는 갈망, 그에 대한 간절한 기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모습을 숙고하는 일은 믿음과 인내에서 오는 성실성과 매우 잘 일치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믿는 자는” 하나님 앞으로 뛰어가려고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나” 그를 만나뵈려고 서둘러서 나아간다(사 28:16).
1. 노아가 방주의 창문으로 까마귀를 내보내자 까마귀는 날아갔다. 히브리어로는 “나갔다가 되돌아왔다.” 이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물 위에 떠다니는 짐승들의 시체를 뜯어먹다가 휴식을 위해서만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방주 안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돌아왔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노아에게 별로 만족을 주지 못했다.
2. 그리하여 그는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것은 처음에는 아무런 좋은 소식도 못 가지고 돌아왔다. 아마도 비둘기의 털이 흠뻑 젖고 불결하게 되어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에는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다. 이것은 홍수 후에 새로 돋아난 나뭇잎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온갖 수목과 과목들이 물 위에 드러났다고 하는 분명한 표현이기도 했다. 여기서 다음 사실에 유의하자.
(1) 노아는 처음 비둘기를 내보낸 후 7일이 지나 두 번째로 비둘기를 내보냈고, 그 후 7일이 지나 세 번째로 내보냈다. 아마도 비둘기를 최초로 밖으로 내보낸 것은 까마귀를 내보낸 지 7일 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안식일에 그 일을 행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는 방주 안에서도 경건하게 안식일을 엄수한 것으로 보인다. 노아는 자기의 작은 교회(방주)에서 엄숙한 집회를 열어 안식일을 지키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특별한 축복을 기대하고 간구하고 있었다. 그는 기도하고 난 후에 바라보았다(시 5:3).
(2) 비둘기는 은혜의 영혼을 상징한다. 발을 붙여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하고, 범람하여 더럽혀진 이 세상에서 확고한 화평과 만족을 찾을 수가 없어 그의 방주요 노아인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육욕에 찬 마음은 까마귀와 같이 이 세상을 벗삼고 그 곳에서 찾아낸 썩은 고기를 먹고 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즉 노아에게로 “돌아갈지어다”(시 116:7)라고 성경은 말한다.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그에게로 날아가리라(시 55:6). 노아가 그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방주 속으로, 곧 자기에게로 끌어들였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로 날아드는 자들을 은혜롭게 보호하고 도와주며 환영해 주실 것이다.
(3) 감람나무 잎사귀는 평화의 상징이다. 마구 먹는 까마귀나 음탕하고 교만한 공작이 아니라 온순하고 참을성 있고 겸손한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가지고 왔다. 영혼 속에 평안과 기쁨의 증거를 가져다 주는 것은 비둘기와 같은 성품이다.
(4) 어떤 이들은 이런 것들을 한 비유로 삼고 있다. 즉 당초에 율법을 까마귀처럼 내보냈는데, 율법은 인류 세계를 범람케 한 하나님의 진노의 물이 줄어들었다는 소식은 전혀 가져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의 모양이었던 비둘기처럼 그의 복음을 내보내셨다. 이 복음은 우리에게 감람 잎사귀를 가져다 주어 보다 좋은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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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완전히 마른 시기(창 8:13-14)
Ⅰ. 땅이 말랐다(13절). 즉 물이 모두 걷혔다. 정월 초하루(한 해의 첫날) 에 노아가 직접 그것을 목격했다. 노아는 “방주 뚜껑을 젖혔다.” 뚜껑을 완전히 젖힌 것이 아니라, 방주 주위의 전망을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열었다. 그리하여 매우 큰 위로가 되는 전망을 보았다. 그는 보고 또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지면에 물이 걷혔다.” 다음 사실을 기억해 두자.
1. 우리 주위에서 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긍휼이다. 거기에 대해 노아는 우리보다 훨씬 더 민감했다. 끊겼다가 다시 회복된 자비는 계속되어 온 자비보다도 훨씬 더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2. 이 세상의 면모를 새롭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괴로움과 고통당한 영혼과 어려움과 핍박당한 교회의 면모를 새롭게 하실 수 있다. 버림받고 잊혀진 것같이 보이는 곳까지도 하나님은 마른 땅을 드러나게 하실 수 있다(시 86:16).
Ⅱ. 땅이 말라서(14절), 노아가 거주하기에 알맞게 되었다. 비록 노아가 1월 1일에 땅이 마른 것을 보기는 했어도, 하나님께서는 2월 27일까지는 노아가 방주 밖으로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처음에 노아는 갇혀 있는 것이 다소 갑갑하여, 방주를 떠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 그만큼 더 오래 대기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보다는 우리의 유익을 더 고려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알고 계시며, 우리의 유폐 생활이 얼마나 오래되어야 적당하며, 갈망하는 자비가 얼마나 지연되어야 마땅한가 하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땅이 마르기도 전에 우리는 방주 밖으로 나가고 싶어할 것이다. 만일 문이 닫혀 있다면 뚜껑을 열고 다른 길로 기어 내려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보이시는 그 때가 분명히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을 알고 만족해야 한다. 그 때에야 그 자비가 우리에게 결실을 맺게 해 주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 다 준비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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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에서 나온 노아(창 8:15-19)
Ⅰ. 노아는 방주에서 해방된다(15-17절).
1. 하나님께서 명하시기까지는 노아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을 받았을 때에(7:1) 들어갔다. 그리하여 유폐 생활이 매우 지루했지만 다시 밖으로 나오라는 명령이 있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모든 동작 앞에 그 분을 내세워야만 하겠다. 하나님의 지도와 통치에 복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규율로 삼고 착실하게 지키며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그 말씀을 생활원리로 인도받는 자, 또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지도를 특정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암시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얻는 자들은,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행진해 나가는 그들을 일일이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만나게 되리라.
2.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그를 억류해 두셨지만, 마침내 그에게 해방을 주셨다. 왜냐하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합 2:3) 진실되니, 결코 거짓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들어가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제는 “나가라”고 하시지 않고 “나오라”고 하시니, 이는 그와 함께 들어가신 하나님께서 노아를 안전하게 내보내실 때까지 언제나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히 13:5).
4. 어떤 이는 그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을 때에 남녀를 구별하라는 명령도 들었다고 한다(6:18). 즉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통의 때에 사람들이 그 아내들과 따로 있다고 그들은 추단한다(슥 12:12).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신혼부부들처럼 노아와 그 아내를 함께, 그리고 그의 아들들과 그 며느리들을 함께 내보내시어 그들을 생육하고 번성케 하셨다.
5. 노아는 자기와 함께한 모든 짐승들을 함께 이끌어 내라는 명을 받았다. 이것은 그처럼 오랫동안 그들을 돌보아 먹이고 그들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짐승들을 떼를 지어 이끌고 나아가는 영광과 함께, 그들로부터 존경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Ⅱ. 해방을 얻자 방주를 나왔다. 허락 없이는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허락이 났을 때에는 두려워하거나 기분 나빠함으로써 그 속에 머물러 있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점에서 하늘의 계시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그가 이제 만 1년 10일을 방주 속에서 죄수 같은 생활을 해 왔지만, 새로운 생명뿐만 아니라 새 세상을 위해서 그 안에서 자신이 보호받았음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는 오랫동안의 유폐 생활에 대해서 조금도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1. 노아와 그 가족들이 살아 나왔다. 그 중의 한 사람 “함”은 사악했으므로, 홍수를 모면할 수는 있었다 해도 하나님의 공의가 다른 타격을 가해 그를 데려가실 수도 있지만, 그들 모두가 생존했다. 가족들이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도 그들 사이에 불화가 일지 아니하면, 그것은 특별하신 은총이요, 주님의 자비로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노아는 자기와 함께 들어갔던 모든 짐승들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까마귀와 비둘기는 예외였다. 그들은 아마도 그 벗들이 나올 때 이미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노아는 자신의 책임에 관해 지극히 훌륭한 보고를 드릴 수가 있었다. 이는 자기에게 부여된 모든 책임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중요한 시기에 자기를 집안의 수석 청지기로 지명해 주신 분께 신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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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제사(창 8:20-22)
Ⅰ. 해방이라는 긍휼을 온전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여 노아는 감사를 드렸다(20절).
1. 그는 “단을 쌓았다.” 지금까지 그는 하나님의 특별 지시나 명령 없이는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았다. 그는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도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고, 그 곳에서 나올 때도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제단과 제사라고 하는 것은 이미 신앙의 예배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기 때문에, 별다른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그는 감사함을 표현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은 자진해서 감사함을 돌려야 한다. 그것도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해야만 한다(벧전 5:2). 하나님께서는 자유 의지에 따른 제사를 기쁘게 여기시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를 칭찬하신다. 노아는 이제 냉랭하고도 황폐한 세상으로 내보냄을 받았다. 그런 곳에서의 첫 번째 관심사는 먼저 자신을 위해서 집을 세우는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노아를 보라.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제단을 쌓는 것을 먼저 시작했다. 하나님이 첫째이니, 무엇보다도 먼저 그를 섬겨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는 자가 시작을 잘하는 자다.
2. 그는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7장 2, 3절에서 볼 수 있는 일곱 쌍 중 하나씩을 취하여 제물을 삼았다.
(1) 그는 정결한 것만을 드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물을 드린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아니하며, 제사법에 따라 부정하지 않은 것, 곧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을 제물로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2) 그가 가지고 있는 육축의 수가 지극히 적고, 그나마도 그처럼 엄청난 노력과 수고를 치르고 멸망에서 구해 낸 것이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는 데는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나는 일곱 마리의 양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가야 하는데, 그 일곱 마리 중의 하나를 잡아서 번제로 드려야 한다는 말인가? 더 많아질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랑과 감사에 대한 성실성을 보이기 위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정하는 표로 하나님께 7분의 1을 기꺼이 드렸다. 우리가 적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그것을 더 풍성하게 하는 길이다. 따라서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낭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3) 여기에서 신앙의 태고성을 보게 된다. 즉 새 세상에서 처음으로 인간이 행한 일은 예배 행위였다(렘 6:16). 이제 우리는 번제가 아니라 찬양의 제사와 의의 제사로, 경건한 교제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해야 하겠다.
Ⅱ. 노아의 감사 제사를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받으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7; KJV에는 “be accepted”로 되어 있음─역주) 하는 것이 족장 시대의 정해진 규례였다. 노아가 바로 그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실을 매우 기뻐하셨다(21절). 여호와께서는 “그 향기를”, 또는 히브리어의 표현대로 거기에서 “안식의 향기를 흠향하셨다.” 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을 취하고 원기를 회복하셨던 것과 같이, 이제는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나 7분의 1을 드리는 희생의 제물 가운데서 안식을 취하신 것이다. 인간이 향기롭고 기분 좋은 냄새를 즐거워하듯이, 하나님은 노아의 경건한 열심을 매우 기뻐하셨다. 비록 그가 드린 것이 지극히 작은 것이기는 했으나, 그것은 그의 능력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셨다. 그의 노여움을 죄인들의 세계에 두셨던 이가, 이제는 이렇게 적은 수의 남은 신앙인들에게 그의 사랑을 두셨다.
2. 여기에서 하나님은 두 번 다시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보다는 자신을 드린 그리스도의 제사를 염두에 두신 것이었다. 노아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제사의 모형이요 상징이다. 그리스도의 제사는 참으로 “향기로운 제물”이었다(엡 5:2). 여기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완전한 보증이 주어진 것이다.
(1) 이 같은 심판이 결코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사실. 노아는 “어떤 목적으로 세상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결국은 세상의 죄악으로 또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조속히 멸망받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결코 그렇게 아니하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6:6). 이제 여기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멸망시켰음을 한탄하시 듯이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을 달리하신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자기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셨다”(신 32:36). 이 결심은 두 가지로 표현되었다.
① “내가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어로는 “내가 이 이상 땅에 저주를 더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최초로 세상에 들어왔을 때 땅을 저주하셨고(3:17), 또한 땅을 물에 잠기게 하셨을 때에는 저주를 더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상 저주를 더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것이다.
② “내가 모든 생물을 더 이상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곧 하나님께서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가정 또는 국가에 대해서는 파멸시키더라도, 역사가 끝나는 그 날이 이르기까지는 다시는 세상 전체를 멸망시키지 않기로 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심의 이유는 매우 놀라운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멸망케 한 이유와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6장 5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차이점이 있다. 6장 5절에는 “사람의 마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하셨으니, 이는 곧 “인간의 범죄가 계속하여 하나님을 거슬러 외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어려서부터”라고 했다. 죄악은 타고난 성품이 되었다. 인간이 세상에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온다. 인간이 죄악 속에서 형체를 이루게 되며 그 속에서 잉태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저같이 죄악적인 족속들은 모두 멸절하여, 내가 완전히 끝을 맺으리라”는 말이 뒤따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므로 내가 더 이상 이같이 가혹한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리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저들은 오히려 불쌍히 여겨져야 한다. 인간 안에 거하는 것은 모두 죄의 세력뿐이기 때문이다. 그같이 타락한 족속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이란,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사 48:8)라는 칭함을 받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처럼 지극히 반역적으로 패역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타락하고 죄가 많아 “저희는 육체뿐임을 기억하신다”(시 78:39).
둘째로, “인간은 철저히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저들을 당연한 보응에 따라 다루면, 저들 모두가 멸망당할 때까지 또 다른 홍수가 계속 잇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알아두자.
첫째, 외형적인 심판이 비록 인간을 놀라게 하고 조심하게 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그들을 성화시키고 새롭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심판과 함께 역사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홍수 이후에도 그전과 마찬가지로 죄악적이었다.
둘째,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의 죄악성 위에도 베풀어져서, 인간의 죄악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자비의 원인은 인간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에게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
(2) 자연의 진행 과정이 멈추는 일은 결코 없다(22절). “땅이 있고 그 위에 인간이 있는 동안에는, 여름과 겨울과(지난 1년이 그랬듯이 내내 겨울만이 아니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아마 비가 내리는 동안에도 내내 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① 여기에서 분명히 암시된 바는, 이 땅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땅과 그 안에 있는 온갖 피조물은 머지않아 타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자.
② 그러나 땅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규칙적인 시간과 계절의 연속을 소중하게 지켜 줄 것이며, 그 모든 것이 각기 제자리를 알게 해주실 것이다. 이 세상이 존재하고 자연의 수레바퀴가 그 궤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이 섭리에 은혜입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이란 것이 매우 변동되기 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불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첫째로, 자연 과정은 항상 변하고 있다. 시간이 그러하듯이 사건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러하며, 그 모든 것들이 변화무쌍한 것이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서로 교차되고 있다. 하늘나라와 지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이것과 저것을 “병행하게 하셨다”(전 7:14).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 과정은 결코 변하지 아니한다. 그것은 가변성 속에 있는 계절의 변화가 멈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한편, 태양은 시간의 한결같은 측량자 역할을 계속할 것이며, 달은 “궁창의 확실한 증인”(시 89:37)을 계속하리라. 그 언약의 안전성이 은총의 언약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하기 위해 언급되어 있다(렘 33:20, 21). 그러므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모든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도 그러하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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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노아가 방주에서 나옴
[1-5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생각]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감하고 7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10월 곧 그 달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과 새들을 권념하셔서 바람으로 땅 위에 불어 물을 감하게 하셨다.
‘권념(眷念)하다’는 원어(자카르 )는 ‘기억하다, 생각하다’는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녀들을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고(신 32:10)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의 손바닥에 새기시고(사49:16)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시 121:8)고 표현하였다.
땅의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다.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을 여신 이는 하나님이시요 닫으신 이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만물과 그 현상들을 홀로 주관하신 다. 비가 오는 것도 가뭄이 드는 것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으로 자연법칙을 사용하시고 특별한 경우에만 기적을 일으키신다. 노아 시대의 홍수도 자연적 방법으로 이루어졌고 그 홍수의 제거도 자연적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는 150일 동안 세상에 가득했던 물이 서서히 줄어들게 하셨다. 건전한 믿음은 기적주의가 아니고 자연법칙이나 이성적 사고를 존중한다.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2월 17일에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약 5개월이 지난 때이었다. 아라랏산은 오늘날 터어키의 동쪽 국경 부근, 아르메니아와 이란과 접한 곳에 있는 높이 5,165m 되는 산이다. 그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주위에 아라랏산보다 높은 산도 있고 또 멀리 동쪽 네팔 부근에는 히말라야 산맥의 높은 산들이 있었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아라랏산을 택하셨다. 그 지역은 홍수 후의 세계를 위해 선택된 곳이었다. 노아의 자손들은 거기에서부터 퍼져나갈 것이다. 물은 점점 줄어,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문 지 70여일이 지난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6-12절] 40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接足)할[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7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보라]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또 7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그 후 또 40일이 지난 11월 10일경, 노아는 방주의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았고 까마귀는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다. 노아는 또 비둘기를 내어놓았는데, 비둘기는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왔다. 7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내어놓았을 때 그 비둘기는 감람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왔다. 노아는 그것을 보고 땅에 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 7일 후 비둘기를 다시 내어놓았는데 비둘기는 다시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땅이 말랐고 비둘기가 거할 곳을 찾았다는 증거이었다.
[13-19절] 601년 정월 곧 그 달 1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2월 27일에 땅이 말랐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편만하고] (웨솨레추 )(KJV, NASB, NIV)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의 나이 601년 1월 1일, 땅 위에 물이 걷혔다.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제거하고 내려다보았고 땅에 물이 걷혔음을 확인했으나 땅이 완전히 마르지는 않았다. 또 두 달이 흘러 2월 27일에야 땅이 완전히 말랐다. 홍수가 시작된 지 1년 10일이 지난 때이었다. 그 기간은 온 세상에 대변혁이 일어난 시간이었다. 그 기간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갑갑하고 지루한 시간이었으나 두려움 중에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와 찬송을 올린 시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그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와 함께한 모든 생물들도 다 이끌어내라고 하셨다. 이제 홍수가 끝나고 땅에 물이 말랐으니, 그들은 지루했던 1년 10일 간의 방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방주에서 나와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있기 전에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고 이제는 그에게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들어가는 것도 나오는 것도 노아가 마음대로 정하고 행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해야 할 일이었다. 노아와 그 가족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방주에서 나왔고 땅 위의 모든 생물들도 다 방주에서 나왔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야 한다. 그러한 생활 원리를 잘 보여준 것이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가야 했던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다.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하루만 머물 때에도 그들은 순종해야 했고, 한 달이나 일년을 머물 때에도 순종해야 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명령과 신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을 치기도 하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진행하기도 하였다(민 9:15-23). 이와 같이 주의 자녀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라 가기도 하고 그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라 서기도 해야 한다.
[20-22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 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레아크 한니코아크 )[그 속죄의 향기](BDB, KB, NASB)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방주에서 나온 후, 노아는 첫째로 하나님께 단을 쌓았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들을 취하여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 이것은 그의 자발적인 행위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렸던 의인 아벨의 발자취를 좇는 일이었다.
번제는 제물을 죽여 온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번제는 죽어야 마땅한 죄인들을 대속(代贖)하실 중보자의 죽음을 상징하는 뜻이 있다. 노아와 그 식구들은 홍수로 멸망한 자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짐승 제물로 예표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구원을 받았다. 죄인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는다.
번제는 또한 하나님께 대한 노아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 구원을 받은 노아는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각오를 표현했다. 홍수가 있기 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롭게 살았던 노아이지만,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이후 그의 심정은 하나님을 향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이것이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번제의 단을 쌓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의지하고 감사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했고(롬 12:1), 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교훈하였다(고전 6:19-20). 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하였다(고후 5:15).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드린 제물들의 향기를 받으셨다. ‘그 향기’라는 원어(레아크 한니코아크 )는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속죄(더 정확히 말하면, 유화[宥和])의 향기)’(BDB, KB,NASB)라는 뜻이다(레 1:9 등).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그가 땅을 저주하였지만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고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성경은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불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그 경고대로 마지막 심판의 날과 그 심판이 올 것이지만, 다시 홍수로 세상이 멸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세상과 자연만물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비가 오게 하시는 이도, 홍수가 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비를 그치게 하시는 이도, 바람이 불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자연 은택 속에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해야 하고, 또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낙심치 말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그의 뜻에 합당하게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실 수 있고 또 풍성하게 주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자.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에 들어가기도 하였고 1년 10일간 방주 속에 머물기도 하였고 또 방주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심, 즉 성경에 교훈된 대로 행해야 한다. 거기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기도 하고 서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에게 우리의 삶을 의탁하며 그의 교훈과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행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본문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바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바이다. 원죄의 부패성은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사람의 심령이다(렘 17:9). 사람은 심히 악한 존재이다. 우리는 죄악 중에 출생했고 우리의 모친이 죄 중에 우리를 잉태했다(시51:5). 그러므로 사람은 거듭나야 하며 어릴 때부터 성경의 바른 교훈 속에서 양육되어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한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홍수로부터 구원받은 사실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우리는 우리의 죄와 지옥 형벌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옥 갈 죄인들인 우리를 그의 긍휼과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하셨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의 영광을 위하고 그의 뜻과 명령과 교훈을 따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리자(롬 12:1-2).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에 보답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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