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요삼. 빅뱅_창조론_진화론.영혼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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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영-혼-몸>의 관계를 상상해 본다면, 3층의 동심원 구조, 즉 영은 존재의 가장 심층부로서 혼과 몸으로 둘러싸인 형태로<물질적인 몸은 혼을 담고 있으며 혼은 Q을 영접하고 담는 그릇인 영을 그 안에 담고 있다> 이해함이 합당하리라....((하나님의 영은 그 크기나 차원에 제한 받지 않으신다))


요삼1장....[452.내모든소원기도의제목]...주님을 섬기기로나약속했으니...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주님의 뜻 따르렵니다.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자


[[창조론, 진화론의 연결]] ...위키 백과 대폭발 빅뱅이론 참조...창조주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 언젠가는 분명히 합당한 표현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에 적합한> 본래적 의미에 정확히 들어 맞는 단어가 발견되겠지만....단어의 선택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1. 아훼 하나님(YHWH : I AM THAT I AM, I WILL BE THAT I WILL BE)....[천지에 충만하시며..-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3)], 시공간을 창조하셨고 주관하시기에(해와 달이 종일토록 아얄론골짜기에 머무름..수10:12-13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왕하20:11),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우주-천지-만물-만유의 창조주, 모든 시공간-차원의 창조주, 모든(가시적/비가시적, 의식/무의식) 세계의 창조주, 모든 형상과 질료의 근원적 창조주, 모든 에너지-파동의 근원이신 분...또한, 믿는 이의 거듭난 영 안에 오셔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예비-공급-인도-보호-산출하시는 생명 주는 영이신 하나님..

.....http://egloos.zum.com/yshoono/v/5133751  아얄론 골짜기의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 이사야 때 아하스 일영표에서 해가 십도 물러난 사건

공간의 주요 특성 중 하나는,  고유한 시공간의 팽창도라 할 수 있음...시공간의 팽창도가 무한대라면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 됨<내부 관찰자에게는 평상과 똑 같이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느껴지나, 외부 관찰자에게는 시간이 정지된 공간으로 인식됨...양자중력공간 이론에 의하면 이러한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 성립하는데, 이 공간은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공간으로, 시간 주기가 무한대로 팽창되어 있는 공간이며, 아울러 공간 거리도 무한대로 팽창되어 있는 공간이다.((이 경우, 순간이동이 가능...<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특징을 보임 = 영계의 통로일 가능성..??))

**2. 진화의 개념은 [유한한 시간과 공간의 꼬인 4 차원 안에서] 그 범위와 대상이 우주이거나 생물계이거나 무관하게 <하나님이 뜻하신 바, 합목적적 방향성과 유익함에로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 

**3.따라서, 창조 개념 안에 포함되는 개념으로서만 진화론 개념은 참된 의미에서 제 가치와 위치를 가질 수 있을 것... 시간과 공간의 탄생은 우주물리학적 관점에서 논해 본다면 <빅뱅>때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시간흐름의 빠르기, 공간 확장의 변동성 여부 등 개념들은 아직도 모든 것이 다 확정된 것은 아님....창조론과 진화론 개념 상호관계를 구태여 표현해 보자면 서로 상반되는 대척 개념이 아니라 큰 창조론 안에 작은 진화론이 포함된다고 보는 게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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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얄론 골짜기의 태양과 달이 멈춘 성경의 역사,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여호수아 10장 12-13절
"...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수아 10장에는 위와 같이 태양과 달이 종일 멈춘 사건이 나온다.  ((창조주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는 바, 모든 시공간의 주관자이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보면, 지구의 자전이 갑자기 멈추면 관성력에 의해 지구 표면에 있는 모든 물체는 우주밖으로 튕겨나가게 될 것 아닌가..??.
그러면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하여 일어날 수 있는가? 이는 양자중력공간 이론에 의하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공간은 그 주요 특성으로 고유의 시공간 팽창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 있다고 가정해 보면, 이 공간은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 된다.
이는 이 공간의 시간 주기가 무한대로 팽창된 상태로 정지되어 있기 때문이다.(이는 마치 빛의 빠르기로 빛을 따라 잡을 수 있다면 시간흐름은 제로가 됨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내부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평상시처럼 느껴지며 생활한다. 반면에,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그 공간은 시간이 정지된 공간으로 인식한다. 
즉,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내부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0초가 흘러간 것에 해당한다.
양자중력공간 이론에 의하면 이러한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 성립한다. 이 공간은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공간이며, 시간 주기가 무한대로 팽창되어 있는 공간이며, 아울러 공간 거리도 무한대로 팽창되어 있는 공간이다.....(그림17)의 예가 시간이 정지된 공간의 모형이다. 내부 물체가 a에서 b의 위치까지 이동하더라도 걸리는 시간은 0이다. 이는 시간이 멈추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부 물체의 입장에서는 a에서 b까지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은 0이므로 결국 a에서 뿅하고 사라져 b에서 뿅하고 나타나게 된다. 즉, 순간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정지된 공간으로 통로가 형성되어 있을 경우, 그 통로를 지나가는 물체는 순간 이동을 하게 된다.
이것이 시간이 정지된 공간, 곧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공간의 매우 큰 특징이다. 이러한 공간의 구체적인 적용 분야는 블랙홀이다. 
블랙홀의 특이점은 바로 시간이 정지한 공간,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블랙홀의 특이점은 웜홀 형성 이론으로 연결되게 된다. 블랙홀의 특이점을 통하면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 즉, 블랙홀의 특이점은 일종의 영계의 통로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한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공간으로 지구를 제외한 모든 우주를 입히게 될 경우, 성경에 기록된 아얄론 골짜기의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다만, 지구는 이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공간으로 입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위의 시간은 평상시 처럼 그냥 간다.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을 전멸할 때까지 시간은 평상시처럼 흘러간다.
허나 지구 외의 태양과 달을 포함하는 모든 우주 공간은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공간으로 입혀지게 되므로, 그 시간은 정지해 있다. 즉, 태양과 달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음으로 정지해 있는 것이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으므로 태양과 달이 정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관성력은 여기에 작용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정지된 공간 내부에 존재하게 되는 태양과 달의 입장에서는 평상시 처럼 상대적을 움직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과 달의 입장에서는 평상시와 다른 느낌을 전혀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관성력에 의한 영향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구 위의 인류는 지구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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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베푸실 때 공간을 이용하신다. 이는 다음의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다.
시편 150장 1절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여 권능의 궁창이라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권능을 베푸실 때 궁창 즉, 공간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얄론 골짜기의 태양과 달을 멈추실 때도 시공간 팽창도가 무한대인, 시간이 정지된 공간을 사용하셔서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별들 -우주를 시간이 정지된 공간으로 입히셨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공간으로 입히시면 지구의 인류가 관성력으로 튕겨나가지 않고 태양과 달이 멈출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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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시간이 정지된 공간으로 입혀질 경우, 외부 관찰자의 어떤 작용과 사건이 주어지고 시간이 흘렀다 하여도 지구 위의 인류는 시간이 0초 흘러간 것으로 여기게 된다.
따라서 만약 지구가 시간이 정지된 공간으로 입혀진 상태에서 지구를 태양을 공전하고 있다가 반대로 10도 정도 잠시 역회전하게 만든다하여도 비록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것이 되나 지구 위의 관찰자의 경우는 시간이 0초 지난 것 밖에 되지 않으므로 결국, 순간에 지구가 뒤로 물러간 것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가 순간에 십도를 뒤로 물러가게 된다.
허나 지구 위의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평상시 처럼 시간이 흘러가며 아무런 일도 없듯이 여기게 되므로, 이 경우도 관성력에 의해 지구 위의 인류가 지구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원리로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를 순간에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할 수 있다. 이 경우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공간을 이용하여 역사하신 것이 된다.
하여 위와 같은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이던지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간 사건등은 양자중력공간 이론으로 아무런 모순없이 성경의 모든 역사들을 매우 잘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양자중력공간 이론은 성경의 말씀을 매우 잘 지지함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모든 성경의 말씀은 물리학적으로도 참임을 알 수 있다. Dr.Yeo


===[영-혼-몸. 전존재의 잘되고 강건함]===

혼은 몸과 영 사이를 중개하며, 몸안에 포함되어  사람의 개성을 가지게 하며, 영을 담는 그릇임... 영이신 하나님<신성한 생명 하나님, 말씀, 진리>은 믿는 이의 거듭난 영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며(롬8:9, 16), 믿는 이가 주의 이름 부름으로써 주를 앙망함 통해 자신을 열어드릴 때, 영으로부터 퍼져 확산되어 혼을 적시는데, 그 목적은 그의 혼조차 그리스도의 어떠함에 이르는 변화를 입음에 있는 바, 그분을 실지로 추구하여 체득함<진리 말씀은 그리스도의 신격의 실제로서, 계시와 지혜의 영이신 그분을 따라 믿고-살고-누리며 행하고 행동함을 뜻하며, 그로 인해 주관적으로 <깨닫고 체험된 고고스와 레마로서> 진리 말씀 누리며 체득함>과 누림-먹고 마심, 음미, 감상- 통해 충만케 되신 분을 일상적 삶의 실행 통해 충만히 표현하는 것에 있는 바(롬12:2, 고후3:18) 이것이 믿는 이들의 혼의 잘됨에 대한 정의이다. 

즉, 우리의 혼이 우리의 영을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점유되고 통제를 받음 통해서 또한 몸조차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통제하며 사용할 때, 그것이 바로 전존재가 잘 되는 것이요, 그 때 육신의 강건함과 물질적 부요는 극도로 그 참된 가치가 드러난다..  

-----[진리안에서 행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함은 <아버지는 근원,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표현> 창조주 하나님 TUQ께서 JC안에서 사람이 되어(성육신) 이 땅에 사셨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이로 인해 육신의 제약에서 벗어나셨으며, 부활의 몸은 더 이상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부활안에서 생명 주는 영으로 변형되시어 믿는 이의 영에 오셔서 내주하여 사시는 바, 믿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삶을 살며 참되게 누림의 영이 되셨음을 믿는다 함이다. 이제 이 살리는 영, 생명 주는 영은 TUQ의 완성인데, 아버지의 모든 것, 그리고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분, 곧 아들의 모든 것의 완성이시다. 아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요, 십자가죽음으로 구속을 성취하셨고 부활하사 <친히 사람의 영에 들어와 사시기 위해 변형되셔서> 생명을 주고 생명을 분배하는 영이시며 믿는 이의 영에 친히 내주하여 사신다. 이 믿음은 믿는 우리의 생활 방식을 형성하고 결정하고 빚어낸다. 이것이 진리안에서 행함의 의미이다. 

---------롬8장.....기록된 말씀<로고스>에 나 자신의 전 존재를 열어드림으로써 말씀이 내 존재를 관통-통찰하심따라, 깨닫게 하시는 바 불실함의 모든 죄들마다 참되게 자복하고 회개함, 이제 존재의 모든 의미-가치-보람-목적-이 되시는 주를 의지하고 앙망함으로써, 주안에서 주의 주되심따라 말씀 순종하며 살기로, 그분의 임재의식 안에, 그분의 어떠하심을 살도록 <매 순간마다, 살아 생동하는 레마의 말씀을>일깨우시며 이끌어 주시기를 요청함..

===생명의 성령의 법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의 삯[죄과, 죄의 결과]은 사망... 곧 죄인의 몸은 멸해지고 죄인의 영혼은 생명 하나님과 단절됨의 영멸, 곧  전 존재의 죽음!!...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그것이 바로 내가 치러야 할 죄과였다))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이제, 믿음으로 CJ와 하나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더불어 함께 부활하여 변형된 CJ의 내주하시는 영으로 사는자가 된바!!))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고대하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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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 참 사랑 자체, 사랑의 근원자이신 창조주 TUQ의 사랑하심을 입은, 바로 그 사랑으로 사랑하도록 계명 받은 자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spirit-soul)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body)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영접함과 내쫓음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 디오스(제우스)+트레포(양육하다)..교만한 영지주의자.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끝 인사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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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John  Amplified Bible

===You Walk in the Truth

1 The elder [of the church addresses this letter] to the beloved and esteemed Gaius, whom I love in truth.

2 Beloved, I pray that in every way you may succeed and prosper and be in good health [physically], just as [I know] your soul prospers [spiritually]. 

3 For I was greatly pleased when [some of the] brothers came [from time to time] and testified to your [faithfulness to the] truth [of the gospel message], that is, how you are walking in truth. 

4 I have no greater joy than this, to hear that my [spiritual] children are living [their lives] in the truth.

5 Beloved, you are acting faithfully in what you are providing for the brothers, and especially when they are strangers; 

6 and they have testified before the church of your love and friendship. You will do well to [assist them and] send them on their way in a manner worthy of God. 

7 For these [traveling missionaries] went out for the sake of the Name [of Christ], accepting nothing [in the way of assistance] from the Gentiles. 

8 So we ought to support such people [welcoming them as guests and providing for them], so that we may be fellow workers for the truth [that is, for the gospel message of salvation].

9 I wrote something to the church; but Diotrephes, who loves to put himself first, does not accept what we say and refuses to recognize my authority. 

10 For this reason, if I come, I will call attention to what he is doing, unjustly accusing us with wicked words and unjustified charges. And not satisfied with this, he refuses to receive the [missionary] brothers himself, and also forbids those who want to [welcome them] and puts them out of the church.

11 Beloved, do not imitate what is evil, but [imitate] what is good. The one who practices good [exhibiting godly character, moral courage and personal integrity] is of God; the one who practices [or permits or tolerates] evil has not seen God [he has no personal experience with Him and does not know Him at all]. 

12 Demetrius has received a good testimony and commendation from everyone—and from the truth [the standard of God’s word] itself; and we add our testimony and speak well of him, and you know that our testimony is true.

13 I had many things [to say when I began] to write to you, but I prefer not to put it down with pen (reed) and [a]black (ink); 

14 but I hope to see you soon, and we will speak [b]face to face.

15 Peace be to you. The friends [here] greet you. Greet the friends [personally] by name.

===Footnotes

3 John 1:13 A mixture of water, charcoal, and gum resin used for writing. 

3 John 1:14 Lit mouth to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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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서론)

본서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교제가 중요시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속해 있음을 그들의 실제적인 증거로 나타내야 한다. 

슬기롭고 개방적인 사람들의 활기와 친절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것을 목적으로 해서 사도는 그의 동료 가이오에게 이 격려의 서신을 보내고 있다.

 본 서신에서 또한 그는 어떤 사역자들의 그릇된 정신과 행실에 대한 불만과 한편 누구나 본받을 만한 것에 관한 좋은 소문을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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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1장 (개요)

본 서신에서 사도는 가이오를 축복하고 있다.

그의 영혼이 잘 되기를 위한 축복(1, 2).

그가 선량한 성도들 간에서 얻는 명성에 대한 축복(3, 4).

그가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베푼 사랑과 친절에 대한 축복(5, 6).

욕심 많은 디오드레베에 의한 푸대접에 대한 불평(12).

가이오를 속히 보기 원함(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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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오에 대한 문안과 축복(요삼 1:1-2)

Ⅰ. 본서를 기록해 보낸 경건한 저자는 그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일반적인 신분으로 본서를 보내고 있다. 즉 연조와 사명에 의해 주어진 "장로"의 신분만을 밝혀 주고 있다.

그에 대한 존경과 경의는 그의 연조와 사명에 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장로가 사도 요한이라는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문체와 사상이 본서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가이오는 이 편지가 누구에게서 왔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사도는 보다 화려한 수많은 명칭을 나열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자의 직임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사도는 자신을 장로라 소개함으로써 교회의 보다 평범한 사역자의 위치에 자신을 가져다 놓았다.

아마도 훌륭한 사역자들과 사도들의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 경건한 생존자는 보다 평범한 신분, "장로"라는 신분으로 전도 사업을 계속 후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전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벧전 5:1)라고 한 말씀 중에서 알 수 있다.

Ⅱ, 우리는 또한 서신을 통해 문안과 함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을 본다.

요한이서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에게 또한 본서는 선택함을 입은 한 신자에게 편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1. 그의 이름은 가이오라고 나타나 있다.

이 이름은 다른 곳에도 나타나 있는데 특별히 바울이 고린도에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또한 그는 바울을 친절히 대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롬 16:23).

만일 이 사람이 그가 아니라면 그의 이름이나 신분 또는 성품으로 보아 그의 형이었을 것이다.

2. 가이오는 그에 대한 사도의 친절한 표현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1절).

사랑스런 표현은 사랑의 촛불을 켜게 된다. 여기에서 사도의 사랑의 진실성과 사랑의 믿음을 찾아보게 된다.

사랑의 진실성은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란 말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랑의 믿음은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 안에 거하고 행함과 같이 진리로 말미암아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란 말에서 나타나고 있다.

진리로 말미암아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요 신앙적이며 복음적인 사랑이다.

Ⅲ.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자"란 애정어린 호칭으로써 기원을 포함한 인사와 문안을 볼 수 있다.

사랑을 받은 사역자는 필히 그 사랑을 또한 자신이 보여 주어야 한다.

1. 여기에 동료의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도의 경건한 기원이 있다.

영혼의 잘됨은 하늘나라에서 비롯되는 가장 큰 축복이다. 이것은 중생과 영적인 삶에 대한 내적인 자원이 된다.

이런 축복의 증가와 영적인 보화가 더해감에 따라 영혼은 영광의 하늘나라로 이르게 된다.

2. 동료에 대한 경건한 기원은 그의 영혼이 잘되며 아울러 몸의 강건함을 바라는 것이다.

은혜와 강건함은 함께 풍성하게 하는 것들이다. 은혜는 강건함을 증진하며 강건함은 은혜를 동반한다.

부요한 영혼이 때로 연약한 육체 안에 깃들이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곧 은혜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함으로써 주어진다.

그러나 건전한 영혼을 소유한 자들이 또한 건강한 육체도 지닐 수 있도록 기원하고 또한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은혜는 넓은 활동의 영역 속에서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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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오의 인품(요삼 1:3-8)

Ⅰ. 사도가 그의 동료에 대해들은 바 좋은 평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3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6절).

1. 가이오에 대한 증거 즉 그 안에 있었던 진리, 믿음의 진실성, 신앙 생활의 성실함,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그를 말해 준다.

그리고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가난한 자에 대한 친절, 나그네에게 베푼 호의와 복음적인 봉사로써 그들을 돌보아 줄 준비를 포함한 그의 사랑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믿음은 사랑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사랑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그 빛을 발하게 되며 다른 사람들을 온전한 믿음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2. 가이오로부터 온 형제들이 전해 준 증거, 좋은 평판은 좋은 것을 받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훌륭한 명성은 값진 봉사에 대해 적은 상급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귀한 향유"보다 낫고 지혜보고 신앙적인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3. 평판과 증거는 회중석 혹은 재판석, 다시 말해서 "교회 앞에서" 이루어졌다.

이 교회는 사도가 당시 거하고 있었던 곳으로 보이나, 어떠한 교회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또한 어느 형편에서 그들이 가이오의 믿음과 사랑을 증거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도 마음이 감동되는 대로 말한 듯 싶다.

그들이 단순히 보고 느낀 바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도록 이러한 후원자의 일상 생활과 유익을 위해 교회에서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 같다.

Ⅱ. 사도는 재차 사랑스러운 칭호로써 가이오를 칭찬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진실한 일이니"(5절).

1. 그는 언제나 형제들과 나그네들에게 이르기까지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었으므로 가이오의 집에 그들을 천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가이오는 같은 교회 형제들에게만 아니라 먼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도 호의적이었다.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그에게서 환영을 받았다.

2. 가이오는 도량이 넓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진실한 성도들 간에 나타나는 사소한 불화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고 그의 일을 행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3. 그는 모든 일에 양심적이었다.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진실한 일이니"(5절), 즉 "너는 마치 진실한 종과 같이 그것을 행했고, 주 그리스도로부터 크나큰 위안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러한 진실한 사람은 쉽게 칭찬을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 어떠한 놀라운 칭찬이 주어진대도 그것은 우리의 교만을 북돋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계속 격려하며 고무시키기 위한 것이다.

Ⅲ. 좋은 소문으로 인한 사도의 기쁨과 소문의 근거.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3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와 기독교 신앙의 법도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진리를 소유한 가장 명확한 증거는 "진리 안에 행함이다. "

선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이 잘됨을 보고 크게 즐거워할 것이다.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명성을 기뻐한다. 자녀들의 진실한 신앙과 열매를 보는 것이 선량한 부모에게 기쁨이 되듯이 또한 선한 목자에게 기쁨이 된다.

Ⅳ. 사도는 함께 있는 형제들을 보다 좋은 대접을 하도록 그의 친구에게 지시하였다.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 그 당시에는 여행 중인 전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의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하나의 통례이었던 것 같다(고전 16:6).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은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요, 적당한 동행자를 만나는 것은 여행자들에게 기쁨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또한 가치있게 행해진 일이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할 일이 무엇임을 생각해야 한다. "도량이 큰마음은 위대한 것을 창안해 낸다. "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평범한 생활규칙으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선의적인 규범에 이르기까지 성실히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Ⅴ. 이러한 것을 권고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7절).

이들은 전도자로서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를 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아마도 그들은 사도요한에 의하여 파송을 받은 자들일 것이다.

즉 그들은 이방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나아갔다. 이것은 놀라운 사명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또한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아간 것이다.

이것은 전도자의 최상의 목적이며, 그의 이름을 위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세우는 일에도 이것이 기본적인 조건과 공기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어디에 가든지 값없이 나누어 줄 복음을 들고 나아간다. 즉 그들은"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 " 이들은 많은 영광을 받을 만한 자들이다.

한편 복음 전파를 위해 공헌하고 있을지라도 직접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은 자들이 있다.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어지는 자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져야 한다. 복음을 아는 자들은 그 복음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와 열심있는 성도들은 이방 나라에 거룩한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적극 협조해야만 한다.

성도들은 각기 자기의 역량에 따라 이 일을 조력해야 한다. 보수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경제력이 있는 자들에 의해 마땅히 도움을 입어야 한다.

2.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또한 참된 신앙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8절).

그리스도인의 성직 수임이 참된 종교를 이룩한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증거되었다.

참된 종교 안에서 진실되고 또한 참된 종교에 대해 진실한 자들은 세계에 그 참된 종교의 전파를 위해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힘 쓸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진리는 도움받고 협조를 얻게 된다. 복음을 친히 전하지 못하는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영접하며 지지하고 도우며 후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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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드레베의 성품(요삼 1:9-11)

Ⅰ. 평신도를 보다 관대하지도 못하고 포용력도 없으며 친절하지도 못한 별개의 표본과 개성으로 나타난 전도자가 교회 안에 있다.

전도자들은 때로 아름답게 빛나고 또한 훌륭하게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전도자는 아래와 같은 면모로 드러나 있다.

1. 그의 이름. 이방인의 이름, 즉 디오드레베인데 불신자들의 정신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2. 그의 성품과 정신. 교만과 욕심으로 차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항상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로 인한 격동은 자주 일어나 추태를 부린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며 지배와 상석을 즐기는 것은 전도자의 좋지 않은 성품이다.

3. 그는 사도의 권위와 서신과 친구들을 경멸하였다.

(1) 사도의 권위를 경멸하였다.

즉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함으로" 사도의 사명에 배역한 행위를 말함이다. 경멸함이 그토록 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욕심은 그 욕심을 미워하는 자들에 대한 적의를 조장할 따름이다.

마음 안에 있는 적의와 악의는 스스로 입술을 통해 그 돌출구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입은 서로를 감시해야 하리라.

(2) 사도의 서신을 경멸하였다.

형제들을 권면하기 위하여 "내가 두어자를 교회에 썼으나" 디오드레베는 우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우리들의 서신이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아마도 이 교회는 가이오가 있었던 교회인 것 같다. 복음적인 교회는 편지를 주고받는 교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복음적인 교회들은 그들에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낯선 사람들을 접대하고 신임했을 것이다.

사도는 이러한 형제들에게 서신을 보냈으나 사도적 권위와 서신이 욕망에 차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3) 사도가 천거한 친구들을 경멸하였다.

"형제들을 접대하지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 (첫째절).

유대인과 이방 그리스도인간에 어떤 상이점이나 혹은 상이한 관습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는 그 중 어떤 점을 용납할 것인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목회자는 절대로 자기 중심적이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오만해서도 안 된다.

선을 스스로 행치 않는 일은 나쁜 일이나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을 방해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

교회의 권력과 책망은 종종 남용된다. 만족과 기쁨으로 영접되어야 할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사귀사 하늘나라 백성으로 삼게 될 형제들을 교회에서 내어쫓는 자들에게 무서운 형벌이 있으리라!

4. 이 교만한 권세 남용자에 대한 사도의 책망.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고(10절) 그들을 책하리라." 이것은 사도적 권위를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도는 디오드레베를 호출하여 감독 주관하의 재판에 임하려는 의도는 아닌 듯 싶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관계된 이 사건을 받아 심리하려고 하였다.

교회의 지배와 횡포의 행위는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하며 교회의 능력의 원천이 되시는 자에게 순응하는 것만이 더욱 바람직한 일이다.

Ⅱ. 여기에 각별한 충고와 절대로 어떠한 죄악도 표방하지 말라는 권고가 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11절).

불신자의 이러한 극심한 죄악을 모방하지 말라. 오직 선과 지혜, 순결, 화평과 사랑을 추구하라.

주의와 권면은 이미 선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주어지는 주의와 권면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 이 주의와 권고에 각기 하나의 이유가 첨부되고 있다.

1. 권면의 이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이는 기쁨으로 자연스럽고도 진실하게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이기 때문이다. 선행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의 증거가 된다.

2. 주의의 이유.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 (

마음의 경향의 악을 추구하므로)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뜻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대해 헛되이 난 체하며 교만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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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친과 본서의 결론(요삼 1:12-15)

Ⅰ. 여기에는 다른 곳에서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데메드리오란 사람의 인품에 대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는 그의 이름이 돋보이고 있다. 복음서나 교회들 안에 나타나 있는 이름과 좋은 평판은 다른 후손들의 이름이나 평판보다 더욱 훌륭한 것이다.

데메드리오의 성품은 사도 요한의 칭찬을 받을 만하였다. 사도 요한의 칭찬은 아래와 같다.

1. 일반적인 면에서. 데메드리오는 뭇사람들로부터 좋은 증거를 얻었다. 모

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러나 절대적인 성실과 선의는 절대적인 찬사를 얻게 되는 지름길이 된다.

2. 칭찬을 받을 만한 데메드리오. "그는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12절).

어떤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증거를 받을 수도 있으나, 진리의 증거를 받기란 어렵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마음과 행실에 있어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복된 사람이다.

3. 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찬은 사도와 그의 친구들의 증거로 말미암아 확실해졌다.

즉 "우리도 증거하노니"라는 말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더구나 이는 가이오 자신이 알고 있는 바다. "너는(너와 너희 친구들은)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12절).

아마도 이 데메드리오는 사도와 가이오가 거하고 있던 교회에 잘 알려진 사람인 것 같다. 선한 일로 훌륭한 평판을 얻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위해 찬사를 아끼지 아니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이는 훌륭한 덕성과 선행에 대한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이다.

칭찬하는 자들이 그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을 때, 칭찬은 칭찬을 받는 사람에게 참으로 좋은 결과를 이루게 될 것이다.

Ⅱ. 본서의 결론 부분에서 다음 몇 가지를 찾아 볼 수 있다.

1. 개인적인 면담에 대한 몇 가지 언급.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13,14절), 편지보다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간단한 개인적 면담은 많은 글을 쓰는데 필요한 시간과 수고와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리고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만나기를 기뻐한다.

2. 축복.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저희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착하고 복된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3. 가이오에게 보내는 공적인 문안.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15절).

복음 전파를 위해 수고하는 자는 모든 이들의 문안을 받을 만하다. 이 귀한 사람들은 가이오에게 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정을 나타낸다.

4. 가이오의 교회의 성도와 이웃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도의 특별 문안.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개인적으로 문안을 받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사랑과 또한 겸손을 배워야 하겠다.

그리스도인의 몸된 교회에서는 가장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문안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 함께 거하기를 바라는 땅 위의 성도들은 피차간 문안과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품안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친구들은 그의 마음속에 잊지 아니하고 늘 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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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제 1장
=====1: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편지하노라. - 사도 요한의 세번째 편지는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Barker) 수신자 가이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이 글 전반에서 발견된다(Barker, Smalley). 
이 편지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과 성격상 유사하다(Wilder, Smalley). 요한은 본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장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장로'는 사제나 감독처럼, 일정지역에서 영향있는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직임을 나타내는 듯하다(Stott, Smalley). 한편 수신자인 '가이오'는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으며(Barker, Stott, Smalley, Wilder, Lenski) 그 뜻은 '기쁨', '환희'이다. 가이오라는 이름은 세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1)바울이 세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롬16:23; 고전1:14). (2)바울의 동역자로 데살로니가와 아리스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난을 같이 한 마게도냐의 가이오(행19:29). (3)바울의 마지막 선교 여행에서 그리스로부터 마게도냐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의 가이오(행20:4). 4세기 경의 사도적 관행(Apostolical Constitutions)에 보면(vii. 46. 9). 이 세번째 가이오가 나중에 요한 사도에 의해서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되어진 것으로 보아 이 가이오가 본서의 수신자인 듯하다(Barker, Stott, Smalley).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 '나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는 1인칭 대명사로 흔히 생략되기 쉬우나 본절에서는 강조되어 표현되고 있다.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사랑이 돈독함을 시사한다(Barker, Smalley). '참으로'의 헬라어 '엔 알레데이아'(* )는 문자적으로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로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사랑이 '진리 안에서' 혹은 '진리로' 행하는 사랑임을 시사한다(Stott, Lenski, Smalley).
=====1:2
@사랑하는 자여...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요한은 관습적인 기원의 양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이오를 향한 그의 개인적이고도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Smalley, Stott, Barker). 
'잘 되고'로 번역된 헬라어 '유오두스다이'(*)는 '유'(* , '잘')와 '호도스'(* , '길')가 합성된 '유오도오'(* , '여행을 잘 하게 하다', '번영하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를 가지나 은유적으로는 '번영하다', '성공하다'의 뜻을 가진다. 
요한은 가이오의 만사가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Stott, Lenski, Smalley). 
한편 '강건하기를'의 헬라어 '휘기아이네인'(* )은 누가의 경우 튼튼하고 정상적인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고(눅5:31; 7:10; 15:27) 바울의 경우에는 건전한 가르침에 사용했다(딤전1:10; 6:3, Stott, Lenski, Smalley).
@네 영혼이 잘 됨같이. - '영혼'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 프쉬케'(* )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가리킨다(요10:11; 요일3:16, Wengst, Smalley). 요한이 가이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적인 상태를 비교하여 육신의 형통함과 강건함을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가이오의 영적 상태는 염려할 상태가 아니었던 듯하다(Barker).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상태와 육신의 형통함이나 강건함은 한편으로 치우칠 문제가 아니라 균형(均衡)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Barker, Lenski).
=====1: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 본문은 초대 교회들 사이에 2세기까지 활발히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왕래에 대해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 환경의 변화나 여러 모양의 압력과 핍박으로 인한 불가피한 왕래 뿐만 아니라 서로의 격려를 통해 신앙을 굳게 세우게 하기 위한 능동적인 왕래를 내포한다(Barker,Smalley). 
'형제들'의 헬라어 '아델폰'(* )은 그리스도인 목회자를 지칭하기도 하며(요일3:14, Smalley)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했다(살전1:4; 2:1,14,17). 본절의 '아델폰'은 선교 사역을 위해 여행하면서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특별히 방문하기도 하던 사역자인 듯하다(Barker, Smalley).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 형제들이 요한에게 가이오에 대하여 전하여 준 것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었다. 가이오가 진리안에서 행하는 것을 요한이 크게 기뻐한 것은 당시 가이오가 진정한 복음인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이다(Barker, Westcott). 가이오가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을 고수하며 그 안에서 행한 행위는 '사랑'으로 표현되었다(6절, Smalley). 이러한 진리에 대한 고백과 고수 그리고 사랑의 표현은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성품이다(요이1:1,3,4, Stott). 
한편 '행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파테이스'(* )는 현재 시상으로, 가이오가 항상 진리 안에서, 진리와 더불어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 Wilder).
=====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 '자녀들'은 요한이 목회의 대상으로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키지는 않는다(Barker). 오히려 요한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으로 영육 간에 돌보아 왔던 대상들을 가리키는 듯 하다(고전4:14-16; 갈4:19; 빌2:22; 살전2:11; 요일2:1, Stott, Smalley). 왜냐하면 '자녀들'앞에 사용된 소유 대명사 '에마'(* , '나의')가 저자 요한과 자녀들의 상당히 오래되고 깊은 친분 관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Stott, Barker, Lenski,Wilder, Westcott). 
한편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표현은 요한 이,삼서 외에는 신약성경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요한 이서와 삼서에서 '진리'가 특히 강조되는 것은 요한의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 즉 진리인 복음을 곡해하고 거짓된 교리를 전파하던 거짓교사들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함이다(Stott). 요한은 '진리'를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행함'과 철저히 연관시키고 있다(요일1:6,7; 2:11; 요이1:4,6). 이는 진리를 알 뿐아니라 그 진리대로 행해야 함을 시사한다(Smalley, Stott).
@더 즐거움이 없도다. - 개역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의 서두에 기록되 있어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요한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음을 강조한다.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이조테란'(*)은 이중 비교급으로 요한이 가이오의 소식 즉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다른 어떤 소식보다 훨씬 더 기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Smalley,Lenski). 
한편 '즐거움'의 헬라어 '카란'(* )이 일부 사본에서 '카린'(*, '은사', '은총')으로 기록되어 있어서(Codex Vaticanus), 혹자는 이를 인정하나(Vulgate, Westcott, Hort) 이는 필경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Stott).
=====1: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 '가이오'는 형제들(3절) 곧 나그네와 같은 자들을 최선을 다해 환대하고 대접하며 도왔다.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행위에 대해 최상급인 '에르가세'(*, '행하는')를 사용하여 타인에 대한 가이오의 환대 행위가 최선을 다한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형제와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는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롬12:13; 딤전3:2; 5:10; 딛1:8; 벧전4:9) 초대 교회에서의 나그네 영접은 특히 중요한 사역이요 덕목이었다(마10:10,40-42; 25:35-40; 히13:2, Smalley, Barker) 그러나 외부인에 대한 요한의 경고로 인해서(요이1:10) 가이오의 신실한 환대 행위는 교회의 일부 사람들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겪은 듯하다(Barker, Westcott, Smalley).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이러한 가이오의 소식을 통해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나그네들에 대한 사랑'이 충만한 그를 확인하며, 칭찬하고 있다(Smalley, Lenski, Stott).
한편 '신실한 일이니'의 헬라어 '피스톤 포이에이스'(* )는 개역성경에서 본절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나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 서두에 등장하여 요한이 가이오의 신실한 행위를 강하게 칭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1:6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 여행하는 형제들은(3절) 교회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가이오의 진심어린 사랑의 행위를 증거하여 요한과 온 교회가 그를 기뻐하도록 했다(Barker, Lenski, Stott). 형제들의 이러한 증언은 잘못된 오해로 인해 냉소를 당한 가이오의 상황을 반전시켜줄 뿐만 아니라 가이오 안에 있는 진리와 그의 사랑의 행위의 신실함을 입증시켜 주었다(Stott, Lenski).
=====1: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 본절은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여행하는 형제들 곧 나그네들은 평범하게 여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선교 사역을 행하는 선교사들이다(Barker, Stott). 당시 여러 곳을 여행하며 설교나 전도를 하던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수 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행15:40,41; 롬1:5, Westcott, Stott). 한편 '이방인'은 '이교도'를 의미한다(마 5:47, Smalley, Stott). 여행하며 선교하는 형제들이 '이방인들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방인들로부터의 일련의 지원을 받는 것을 금지한다는 단순한 상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Marshall)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에 충실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마10:8; 막6:8-10, Barker, Smalley). 선교사들이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음이 합당함에도 불구하고(고전9:12, 14; 빌4:10-18) 교회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였기에(고전9:14-18; 고후12:16-18; 살전2:6-9) 가이오와 같이 나그네를 환대(歡待)하는 것은 당시에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덕목이었다.
=====1:8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 본문에서 '이같은 자들을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숙식을 제공하고 격려하는 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음 목적지까지 어려움 없이 갈수 있도록 물질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Lenski, Smaller).
요한은 선교사들이 마땅히 교회의 환대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 즉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한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 외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교회의 일원들이 선교들을 환대함으로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Stott,Smalley, Moffatt, Wilder, Lenski). 여기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자'는 '진리의 동역자', '진리의 협력자'라는 의미로(Moffatt, Wider), 순회 선교자들은 돕는 일이 그 형제들의 동역자가 되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진리 그 자체와도 협력자가 되는 것임을 시사한다(Smalley). 또한 '함께 수고하는'은 바울이 일반적인 협력의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표현이며(롬 16:3; 고후 6:1;빌 2:25; 골4:11, Smalley) 요한의 공동체에서의 '사귐'과 부합되며(요일1:3),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마10;8; 요13:34, 35).
=====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 '두어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 )는 가이오게게 보내고 있는 본서 이전에 다른 편지 하나가 보내졌음을 보여준다(Lenski,Barker, Stott, Smalley). 이 편지에 대해 혹자는 요한이서라고 주장하지만(Lenski), 요한이서가 영지주의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해 강하게 대항하고 있는데 반해 본서에는 이단의 주장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타당치 않다(Smalley). '썼으나' 의 헬라어 '에그라프사'(* )는 과거에 이미 완료된 것을 의미하므로 이 편지는 본서 이전에 보내진 것으로 일련의 형제들에 의해 전해졌고 그들이 돌아와서 장로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가이오가 언급된 듯하다(3절, Smalley). 
요한이 먼저 보낸 '두어 자'의 내용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9,10절로 추측할 수 있다. 즉 그것은 보내는 선교사들을 접대해 줄 것과 그들의 여행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었던 듯하다.이러한 내용의 편지는 오만한 디오드레베에 의해서 무시되었다(Barker, Stott, Smalley). 혹자는 가이오가 디오드레베와 같은 지역 내의 다른 교회 회원으로 그 모임의 지도자였다고 주장한다(Dodd). 그러나 가이오가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의 일원일 가능성이 더 크다. 왜냐하면 가이오를 디오디레베가 지도자로 있는 회중 중의 한 일원으로 볼 때, 9,10절의 내용이 보다 더 분명히 이해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가이오가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음을 설명되기 때문이다(Smalley, Marshall, Barker).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 아마도 디오드레베와 그의 행위는 요한이 이 서신을 쓰게 된 중요 동기인 듯하다(Barker).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다음 네 가지 견해 중 전반의 두 가지 견해는 정치적인 이유이며 후반의 두 가지 견해는 교리적인 이유이다. (1)혹자는 디오드레베가 속사도 시대에 나타나는 직임으로 사도들의 후계자요 지역 교회의 최고의 권위를 가지는 장로, 감독의 위치에 대해 야심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디오드레베는 그 지역의 합법적인 초대 감독이었던 듯하며 요한의 정치적 간섭에 민감했던 것으로 추측된다(Dodd, Harnack). (2)혹자는 디오드레베가 교회 내에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부각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조직화된 교회적 권위를 이어받은 요한에게 반발하여, 그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형제들을 지원하는 일을 거부했던 것 같다(Brown). (3)혹자는 디오드레베가 요한일서에서도 공격되는(요이1:7-11) 적그리스도의 하나로 해석한다. 즉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의 공동체에서 선교사로 파송되었으나 후에 그의 이단적인 견해가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다(Bour). (4)혹자는 장로가 초기 영지주의의 이단적 성향을 가져서 디오드레베는 감독으로 교회에서 그와 같은 장로를 쫓아냈고, 동일한 이유로 회중으로부터 일련의 형제들을 쫓아낸 것으로 생각한다(Bultmann, Kasemann). 네 가지 견해 중 처음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는 듯하다. 디오드레베가 '으뜸이 되기를 좋아한다'는 진술은 요한이 계속적으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디오드레베가 불만을 품고 거부하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Barker, Smalley). '으뜸되기를 좋아하는'의 헬라어 '필로프로튜온'(*)은 디오드레베의 독립 성향이 그 직임에 있어 우려 이상으로 현실화되어 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Brown, Smalley) 그의 행위의 동기가 진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명성과 자기 야심에 있었음을 시사한다(Smalley, Findley). 이러한 디오드레베의 성향은 도덕적인 문제 이상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 정치적인 다툼을 야기시키고 분열과 붕괴를 초래하기도 한다(Stott, Smalley, Williams, Houlden). 
그 결과 여행하는 형제들 즉 선교사들을 접대하고 교회에서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던 요한의 권면과 요구를 거절하게 되었다. '접대하지 아니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크 에피데케타이'(*)는 신약성경에서 본문과 10절에서만 발견되는 단어로'...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라는 의미이다(Smalley). 이는 사도적 권위로 제안한 요한의 권면을 무시하고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사자들을 영접하기를 거절했음을 뜻한다(마카비1서10:1,46, LXX, Smalley). 이러한 디오드레베에게서 나타나는 개인적인 야망과 세력 다툼은 초대 교회의 사역에 실패를 초래하는 위험 요소들이었다(Westcott, Smalley).
=====1:10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 요한은 그 자신이 회중을 직접 방문할 것을 약속한다. 그의 여행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인 내용이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Westcott) '내가 가면'이란 표현을 통해 자신이 방문할 것을 알리고 있으며 방문했을 때 디오드레베가 행한 일에 대해 엄하게 꾸짖을 것을 약속한다(Smalley). '내가...잊지 아니하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폼네소'(* )는 문자적으로는 '내가 생각나게 할 것이다'를 의미한다.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비롯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잘못한 행위에 대해 세 가지로 제시한다. (1)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 '망령되이 폄론하고도'의 헬라어 '플뤼아론'(* )은 문자적으로 '허튼 소리'나 '남을 모함하는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디오드레베가 요한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중상 모략을 하였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디오드레베가 장로에 대항하여 진술하는 요구들이 이치에 맞지 않고 거짓된 것임을 시사한다(Stott, Smalley).  (2)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 디오드레베는 요한을 중상 모략하여 그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요한이 '두어 자'를 적어 보낸 편지의 내용 즉 선교사들을 환대하고 지원해 줄 것을 부탁하는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여 선교사들을 접대하지 않았다. 개역성경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아우토스'(* , '그가') 라는 인칭 대명사가 헬라어 본문에 사용되어 디오드레베가 속한 교회 전체가 선교사들을 대접하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디오드레베가 거부한 것임을 나타낸다. (3)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 - '금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콜뤼에이'(* )는 현재 시제로 계속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선교사들을 대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요한의 제안을 받아들여 접대하고자 하는 자들을 방해하고 접대하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더 나아가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쫓아냈다. '내어 쫓는도다'의 헬라어'에크발레이'(* )는 문자적으로 '내던지다'라는 의미로 디오드레베가 단지 자신을 따르지 않는 무리를 회중 밖으로 쫓기를 원하지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추방의 행위를 자행했음을 시사한다(마18:17; 눅6:22; 요9:34,35; 고전5:2,Smalley). 아마도 이러한 디오드레베의 방해와 거부로 인해 선교사들을 즐거이 접대한 가이오는 교회에서 냉소를 당하였던 듯하다(6절). 또한 디오드레베는 그의 믿음과 행위가 초래한 교회 내의 대립과 붕괴 위험으로 인해 장로와 그의 공동체로부터 지지 받을 수 없었던 듯하다.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 본문은 두 가지 명령, 즉 부정적인 명령과 긍정적인 명령을 담고 있다. 부정적인 명령인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는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염두에 둔 것이고, 긍정적 명령인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데메드리오의 참됨을 염두에 둔 듯하다(12절, Smalley). 요한은 앞서 언급된 디오드레베의 행위 즉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하여 선교사를 영접하고 접대하며 지원해 주기를 원했던 요한의 제안을 무시한 것을 가이오에게 본받지 말 것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것은 비록 디오드레베의 영향력으로 인해 가이오가 냉소를 당한다 할지라도 이전에 해왔던 선교사의 접대 행위를 계속적으로 행하라는 요청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력 있는 진리(1-3절), 실제적인 사랑(6절), 그리고 옳은 행실(11절)로,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닮아가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들이다(Barker, Smalley).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 '하나님께 속한 자'는 '선을 행하고', 모든 '사랑의 명령'(요일2:7-11)에 순종하며, 형제들을 영접하는 모습(5,6절)에서 구별된다. 이러한 선한 행위는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의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내포하는 것이어야 한다(요일4:6-8,14, Hass) 한편 '뵈옵지'의 헬라어 '헤오라켄'(* )은 완료 시제로 현재까지 효과가 계속되는 과거의 사건을 나타낸다. 이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 지속적으로 악을 행함으로 나타난 궁극적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고 대면할 수 없으며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Smalley).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 데메드리오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두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1)에베소의 은장색이었던 데메드리오이다(행19:23). (2)사도적 관행(Apostolic Constitutions)에 따르면 후에 요한이 빌라델비아의 감독으로 임명했다는 데메드리오의 준말로 나타나는 데마이다(골4:14; 딤후4:10; 몬1:24). 두 사람중 어느 누구라고 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없다. 다만 혹자가 추측한 대로 본서를 가지고 간 사람이며 이방 출신의 사람인 듯하다(Smalley, Findley). 유대인의 관습과 같이 두 세 사람의 증언을 통해(신19:15; 요일5:7,8) 데메드리오의 참됨이 입증되었다. 요한이 데메드리오에 대해 제시한 증거들 중 첫째는 뭇 사람이며, 둘째는 진리이고, 셋째는 요한 자신이다. 데메드리오가 행한 행위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의 선한 행위는 뭇 사람들이 인정하였으며 진리 곧 복음에 합당하였고 요한 자신도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Barker, Smalley, Lenski, Wilder). 요한은 이렇듯 모든 사람과 진리 그리고 자신이 인정할만한 선한 행위를 하는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천거하여 가이오로 하여금 디오드레베의 방해와 교회의 냉소(冷笑) 속에서도 선교사를 대접하는 행위를 비롯한 모든 선한 행위를 그치지 않고 계속 행할 것을 암시적으로 권면한다.
=====1: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 본절에서 15절까지는 본서의 결말 부분이다. 앞절에서 1인칭 복수인 '우리'를 사용한 반면에 본문에서는 1인칭 단수인 '내가'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칭 변화에 대해 혹자는 요한이 틀에 박힌 서신 양식을 탈피하려 했다고 주장하나(Brown) 그보다는 요한이 가이오에게 사무적으로 길게 말하지 않고,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는 자신의 희망 때문에 단수로 사용한 듯하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Smalley). 한편 '먹과 붓'은 '종이와 먹'이라고 표현한 요한이서의 의미와 같은 것으로 서신을 시사한다(요이1:12,Wilder, Smalley, Stott). 요한은 본문에서 쓸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종이와 먹으로 쓴 서신으로 하지 않고 직접 방문하여 얼굴을 대면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암시하고 있다(14절).
=====1: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면대하여 말하리라. - 본절은 앞절에 이어지는 표현으로 '속히'가 첨가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 요이1:12의 내용과 유사하다(Smalley). 그런데 이러한 표현은 요한의 문학적 특색이면서(Barker) 동시에 디오드레베의 행위와 그로 인한 위기 상황을 대처하려는 요한의 심중(心中)을 시사한다(Smalley). 
한편 '면대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는 문자적으로 '입과 입으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마음을 나누는 인격적인 만남을(Brown) 속히 갖기 원하는 장로의 간절한 바람을 나타낸다(Barker).
=====1:15
요한은 본절에서 별개의 세 가지 인사로 마감한다.
@평강이 네게 있을 지어다. - 이는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개인적인 축복으로 바울의 서신에서는 서두에서 발견된다(롬1:7). 이것은 아마도 본서의 시작 인사가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Marshall, Smalley).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 요한은 지역 교회에 속한 자신의 친구들이 가이오에게 문안 인사를 보낸다고 전한다. 이는 요한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요한의 주장이 정당하며 이로 인해 가이오의 행위가 올바름을 입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Marshall, Smalley).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 본문의 '친구'는 가이오가 속한 교회에서 요한의 생각에 공감하고 가이오를 지원하는 회원들이다. 즉 본문은 가이오가 본서를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돌려보기를 요한이 원하고 있음을 암시한다(Barker,Sm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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