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상17장 ---모세와 연결되는 Q의 사람...갈멜산 대결(BC.860??) 후 엘리야로 하여금 11년간 더 사역하게 하고 계심...아합.BC.853사망...엘리야.BC849승천 .......[왕상17:16..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17:22..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이 부활생명 능력을 (타인에게) 주위에 확산-공급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 아직 "주님의 말씀 명령이 없어서였음"!!, [왕상16:29-34...*29.유다의 아사 왕 제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34.((Q 말씀에 대해 무지/무식-무시/거역/무대뽀))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수6:16-26...*16.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20.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22.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24.무리가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25.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26.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주님 말씀에 명심하고 피함으로써!! 귀기울이라!!))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 ------- 여리고 전망대 중심으로..바로 전면은 동편의 요단강 방향<요단-->느보산>, 북편(좌측)은 구약의 여리고-길갈, 바로 성아래인 동쪽(전면 우측)은 엘리사의 샘/동남(우측 후방)방향엔 신약의 여리고)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여호수아, 예수::: 여호수아의 요단 도하는 하늘에 속한 백성됨의 지평을 열었고, JC는 요단에서 세례받으심으로써 참된 가나안인 "하는나라"의 문을 여셨다. @@지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여리고 ---여리고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여리고는 해저 260m에 위치해 여름이면 너무 더워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서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일꾼들이 무더위에 땀 흘려 일한 후 모두 똑같은 임금을 받자 주인을 원망한 사건은 이해가 될 만하다. 느보 산에서 요단 강을 건너면 여리고에 도착하게 된다. 여리고 성 옆 전망대를 오르면 왼쪽에는 여호수아가 점령했던 여리고 성, 앞에는 요단 강 편이 보인다. 남동쪽에는 신약 시대의 여리고 성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고, 뒤로는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셨던 시험 산이 보인다. 그 옆에는 벧엘 방향으로 차들이 올라가고 있다. ---구약과 신약, 두 시대의 여리고 사방을 둘러보면 여리고는 동서남북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임을 알 수 있다. 주변이 모두 광야인데 여리고 주변만 푸르름이 가득하다. 전망대 바로 앞 지점엔 년중 마르지 않는 용천샘이 있는데, 일명 ‘엘리사의 샘’에서 나오는 물이 이 대지를 적시고, 종려나무 성읍을 만들었다. ...예수님도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오가실 때 여리고를 반드시 들르셨다. 또 다른 길인 사마리아 길은 명절 정도에나 한 번 이용할까 말까 한 위험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실 때는 두 개의 여리고가 존재했다. 구약 시대 여리고 성이 있던 곳에는 유대인들이 살았지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산지 아래에는 헤롯이 만든 궁전과 함께, 신약 시대 여리고가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떠나가실 때 맹인을 만났다고 기록했지만(마 20:29; 막 10:46), 누가복음에서는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맹인을 만났다고 말씀한다(눅 18:35). 이것은 어느 여리고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와 마가는 유대인이 사는 구약 시대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바라봤고, 누가는 삭개오가 살았던 신약 시대 여리고에서 바라본 것이다. ---탐욕을 버려야 따를 수 있는 길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그곳의 금은보화에 대한 욕심이 아간의 마음을 정복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도 부자 청년은 그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초청에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 여리고가 그만큼 풍요로운 땅임을 알려 준다.) 그러나 삭개오는 이런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린 인물이었다. 그는 자원해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선언했고, 만약 타인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율법대로 4배나 갚겠다고 했다(참조 출 22:1).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오르기 전에 지나셨던 신약 시대 여리고 둔덕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악하고 음란한 탐욕의 땅에서 삭개오처럼 내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 [암8:11-14.("다바르"가 주 말씀으로 들리지 않는시대에 대한 주님의 한탄--주 임재 안에서 JC 십자가 보혈 의지함으로써!, 기록된 말씀을!! 주께 가지고 나아가 열어주시도록 여쭈는자마다!!!, 그 말씀 열려 그 자신이 주 안에서 친히 깨닫게 되고! 하나이신 성령따라 그 길 행함 안으로 들어감 얻으리니!! )...*11.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14.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엘리야와 가뭄 :: 이동 발자취/행보-- [모세 승천] 요단동편 그릿 시내/요단 서편 시돈 사르밧-->사마리아/갈멜산, 아합-->브엘세바/호렙산-->엘리사, 아벨므홀라(잇사갈지파) -->사마리아, 아하시야-->길갈/벧엘/여리고/요단가-->요단 동편 .....비록 (대언자의) 말씀 설명은 장황하고 두서가 없다 하더라도!! ...친히!! 생명말씀으로 오셔서 그대에게 오늘 지금 [세미하게-친밀하게-참되게 깨닫도록] 말씀하실 분, 제한 받지 아니하시는 Q을 사모하며 간절히 전심으로 취하고 기도로 나아가 반드시 확인하라, 부어주신 사랑 안에서, 말씀하며 이끄시는 주님 참되게 신뢰하고 의지하라, 참생명 주님(말씀) 듣고 순종하기는 명쾌/명료하게 하라...계시록의 모든 장면은 주님께서 이미 이루셨고 열어 보여주시는 바!!, 그대는 이미 하늘 성전의 계4-5장의 삼층천 예배 가운데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고 명심-기억하고, 이 땅에서부터 바로 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을 이루라
● 엘리야(Elijah): :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디셉사람, 신약에서 자주 등장한다. ①이스라엘 7대 아합왕(BC.874~852. 재위22년)~8대 아하시야(BC.853~852. 재위2년)~9대 여호람((BC.852~841,재위 12년)까지 25년간 사역했다. [아합보다 1년 먼저 사역 시작한]엘리야의 25년간 사역(BC.875[오므리 사망 1년전]~850[여호람 등극 2년후]) 중 22년이 아합왕의 재위시기와 맞물려 있다. 즉 6대 오므리 왕조(6대 오므리+7대 아합+8대 아하시야+9대 여호람) 48년 속에서 25년간 사역했다. .....아마도, 갈멜산 대결은 아합 중반기 (BC860)기간에 있었던듯 하고, ...이후에도 여전히 극심한 타락과 호화스런 생활 속에서 북이스라엘 민중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갔다. 끝내는 엘리사 때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10대 예후(BC.841~814, 재위28년)가 기름부음 받음으로 9대 여호람(BC.852~841,재위 12년) 때에 이르러 엘리야의 사역은 끝났다. ②이스라엘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을 예언(수도 사마리아에 바알 제단을 숭배한 죄의 결과(왕상 17:1) ③초자연적인 보호를 엘리야는 까마귀들이 조석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했다. ④사르밧(사렙다('부어넣음')과부의 집안을 먹이고 과부의 아들도 살렸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눅4:25~26). ⑤ 기근이 극심할 때인 제3년에 아합왕을 만날 것이라 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신11:16~17). ⑥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기도의 대결로 승리한 후 모두 처형시킴, ⑦가뭄이 그치고 여호와의 사명을 받아 아람왕 하사엘, 예후, 엘리사에게 기름부어 심판의 도구로 사용함. 1)왕국의 수도 다메섹에 가서 당시 벤하닷2세를 섬기는 신하인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음, 후일 엘리사를 통해 병든 아람왕 벤하닷이 자신의 치료 여부를 알고자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자 '왕이 나을 것이나 또한 반드시 죽는다'고 하면서 하사엘이 차기 아람왕이 될것이라 함. 아람으로 돌아온 하사엘은 물에 젖은 이불을 벤하닷의 얼굴에 덮어 질식사시킨다(왕하8:7~15). 모반으로 왕에 오른 하사엘은 이후 이스라엘의 요새를 불사르고 장정과 어린아이들과 임신한 여자들까지 잔인하게 죽이며 이스라엘의 압제자가 된다(왕하 10:32~33,13:3~4,22).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하사엘을 사용함. 2) 아합의 군대장관 예후가 훗날 오므리 왕조를 넘어뜨리고 예후 왕조 100년이상을 열었다. 하사엘과 마찬가지로 예후 역시 아합왕가를 징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3)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선지자로 기름부어 이를 통해 인생의 생사화복과 세계정세와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깨우치게 했다. 아론이 123세에 광야에서 죽자 그의 옷을 벗겨 엘르아셀에게 입히고 그의 직무를 잇게 했다(민20:28). ⑧엘리야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하므로 예수님의 부활 승천을 예표함. ..찬송가 199장 2절("주의 선지 엘리야 바람 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⑧나봇의 포도원 탈취: 아합의 사마리아 궁전, 최대 곡창지대인 이스르엘에 별궁이 있는데 지역토박이 나봇이 포도원을 짓고 살았다. 나봇을 음해하고 그의 포도원을 갈취했다. ⑨혼인동맹: 유다 4대 여호사밧(아들들은 여호람,아사랴,여히엘,스가랴, 아사랴, 미가엘, 스바댜)은 당시 강한 국력을 이루고 있던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동맹을 맺는다. 남유다는 다윗왕가를 이은 4대 여호사밧의 아들 5대 여호람과 북이스라엘 아합(이세벨)의 딸 7대 아달랴가 결혼한다. 이로 인해 훗날 재앙의 불씨가 된다. **4대 여호사밧은 그가 죽기 전에 여호람의 아우들에게 은금과 보물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물려 주었다. 여호사밧의 이같은 행위는 형제들간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아들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 **여호사밧을 이어 유다의 왕이 된 여호람은 실질적인 왕의 권력을 잡은 후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는 정적들을 없앤다는 명목하에 자신의 친동생들과 방백들을 살해하기도 했고 (대하 21:2) 금지된 이방의 종교와 문물을 수입하여 남왕국 유다를 부패케 하였다. 여호람이 치세하던 후반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자신의 죄악에 대한 결과는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의 수하에 있던 에돔이 그를 배반하여 반역을 꾀한 일이나 엘리야가 여호람 왕이 비참한 죽음을 당할 것으로 예언한 일, 또한 아라비아인과 블레셋인들의 침략을 받아 고통당한 일 등에서 찾아볼 수있다(대하 21:16-17). 그는 선한 길을 고집한 여호사밧의 행위를 보고 자랐으면서도 훌륭한 여호사밧의 신앙을 본받지 않았다. 여호람은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우고 예루살렘 거민으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하였다. 여호람의 이같은 행위는 그의 잘못된 결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두로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여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고 말았던 것같이 아합과 이세벨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아달랴 역시도 유다 왕 여호람의 아내가 되어 유다를 우상 숭배의 죄로 물들게 만들었다. 유다의 여호람의 아들 6대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달랴로서 아합의 딸이다. 아달랴가 앞서 여호람의 아내로서 영향력을 미친 것도 크지만 그의 아들 아하시야에게 미친 영향력은 더욱더 컸다.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왕하 8:26). “그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에게 부상을 입힌지라”(왕하 8:28). 6대 아하시야(여호사밧의 손자, 아합의 외손자, 북이스라엘 요람왕의 조카/ 아합의 아들 8대 아하시야 왕과는 동명이인)는 또한 자신의 삼촌인 북이스라엘의 9대 요람과 함께 아람의 하사엘에 맞서 싸운 전쟁 때문에 결국 그는 목숨을 잃는다. 아하시야는 그의 인생에서 자신의 이름보다 아합의 딸 아달랴와 아합의 아들 요람에 의해 인생이 크게 바뀐다. 아하시야의 삶은 하나님께 악으로 규정되어진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왕하8:27). 결국 그는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외손자였다. 믿음이 없는 이와는 멍애를 함께 메지 않는것이 좋다. 악한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아하시야는 그의 통치 기간이 아주 짧은 2년임에도 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⑩아합은 두번의 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제3차 전쟁인 길르앗 라못(Ramoth-Gilead)에서 전사했다.
1.[323.부름받아나선이몸][324.예수나를오라하네] [170.내주님은살아계셔] 길르앗(북왕국 이스라엘의 요단 동편지역으로 므낫세지파 영토 ..아마도 에브라임지파에게 -기생의 아들 출신이라고 천히 여김 받았던 입다의 고향- 므낫세 지파?-삿12:4-...한편, 길르앗은 라반과 야곱 사이에 Q이름으로 맺은 바 상호불가침조약 증거하는 맹세의 돌무더기라는 뜻)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얍복강과 야르묵강 사이 인근, 므낫세 지파 지역) 사람 [부모 언급 없음..성질도 급하고 거칠다--이름 뜻 :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 엘리야가 (사마리아의..바알 숭배를 나라 근간으로 삼아버린, 송두리째 바알에게 넘겨버린 --여로보암의 끝판왕인--)아합에게 [보내심 받아 나아가, Q 말씀으로 선포하여]말하되 내가 섬기는[=내가 오직 살아계신 Q 그분 앞에 서 있다=는 뜻]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 다바르 =Q 말씀]이 없으면[= 내 입[영-마음-입은 Q의 말씀 대언 통로]에 두시는 바 Q의 그 말씀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풍요와 물질의 바알이 끊어짐(육의 무너짐)이 있어야-망해봐야-주께 돌이킴 바라시는 주님 심정을 알게 됨으로써 두손 들고 돌아오게 된다!!] .....((Q으로 말미암는, 목숨거는 담대함)).[시3:4,5...*4.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5.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행4:17-21...*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사람의 생명은 잉태되는 그순간부터 주님 것이다!!," ((최근 2019년 제아무리 세상의 헌법재판소라 할지라도 "22주이내의 태아 낙태금지법"이 [여성인권 제한?!!] 7:2로 위헌이라는 결정은 [수십년간 그래도 나라 지속성을 받쳐온 바] "헌법의 바탕 이루는 나라 지속성, 가정-사회-나라-국민의 지속성을 망각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애써 무시하는, 우매무지-무지몽매의, 씻지 못할 망국적 결정인 것!!)), 금송아지 우상 숭배와 바알-아세라, 우상숭배가 주종 이루는, 아합 통치하의 북이스라엘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나는 살아계신 주 앞에 기도로 하나되어 섬기며 서 있노라"고 엘리야는 고백하고 있었다!!.. 2. [이미 솔로몬시대부터 시작된 바, 참 생명능력이신 Q 말씀을 버리고 세상 일락-풍요-향락 위해 바알[폭풍우-다산/풍요의 우상 :: 음란/쾌락 조장 제의]에게 몸을 팔아버린 창기, 타락의 극한을 달리는, 이스라엘의 현재 영적 상태를 고발하시는]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와디..만나-메추라기로 살며 + 하늘 비가 내려야만 물 흐름 생김.."그릿 = [일시적] 분리/단절 의미")에 숨고 ....살아계신 Q 말씀 가진(생명 Q의 유일한 통로-정결한 입술 소유자) 엘리야를([백성 중에는, 더 이상 생명 말씀 능력 고갈되어 없음]오로지 하늘 비의 직접 공급으로만 의지하도록....바알선지자와의 대결 위해 = 영적 전쟁 치를/이겨냄의 능력 배양은 오로지 다바크!!, 전적으로 CJ 삶 체질화이다!! =) 그릿시냇가에 숨기고 계심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시체와 썩은 것 먹고 사는 가증한-부정한 동물..레11:13-15)..그런데!! 까마귀 통해 먹이고 계심[(돌들로도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자손 되게 하실 수 있는 분, 주님은 천지의 주재-주권자이심) :: 백성의 입은 하나같이 다 까마귀 같이 부정해져 있음] ......너 Q의 사람 엘리야야, 누가 알아주지않더라도 생색내지말라!! --- [막10:29..*29.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아비는 제외!!)]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순전한 순복)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가서"가 원문에 또 나옴)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Q 말씀 무시-거역함 인해 이방에로 향하는 주님 경륜의 전환을 암시))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주시는 떡과 고기로 먹고살았다. 이 이적 사건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이 사건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짐승을 시켜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어 그가 굶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 그 지체에 있는것이 아니다. 아무리 신령하다 할지라도, 먹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먹이고 살리신 점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친히 참생명 원천으로서 영 생명과 함께!! 목숨 생명을 유지케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왜 그렇게 먹이시는가’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수년 동안 우로가 ‘내 말이 없으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기에 그 말씀을 성취하기까지 엘리야를 보호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의 권위를 보호하고 입증하려고 이 같은 이적을 일으키고 계신 것이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 마15:21-20:34..히11:6...((시돈땅, 귀신들린 딸의 모친 만남으로 시작))...JC의 갈릴리사역==>은거/쉼+이방인 사역(시돈~여리고)==>예루살렘] ......불신결혼이란!! 추호도 생각지 않으며, 낙태를(그 어떤 경우라도!!) 거절하고, 이혼을 막으며.. 주 임재 앞에서 날마다 주 의지하고 살아감으로써.[인생의 목적이 행복 아닌 거룩함의 회복에 있음을 알고 하루하루 진실되이 말씀 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의 생명 보존/보호/치유/회복하며!! 주께 드림 되게 하는 사람)) --영적 자녀 낳는, 너 Q의 사람. 엘리야여!!...."난/내 자녀는, 왜 이렇게 길이 안열리나!!..하며 한탄하고 있지는 않느냐??...지나간 날의 네 삶 돌이켜 곰곰히 생각해 보라!!, 깨닫게 되는 바 있으리니..주께서 허락하신바, 겸손케 하는 환경에 매여/묶여있음이야말로!! 최상의 보호와 준비/예비하심임을 알게 되리라...이는, 사르밧 과부의 이들 죽음과 소생 통해 육적 자녀의 아픔 함께 경험하고 [생명 살리시려는] 주님 마음에 동참함으로써 [영적 자녀 낳는바] 갈멜산의 대회전/전투를 예비케 하심이 아니겠느냐...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사탄마귀 소굴 심장부로!!-지피지기-백전불태(패)) 가서 거기 머물라[= 경륜적 선교 행보 이루고 계심 ::: JC십자가 복음에 대해 본 백성이 거역함으로써 결국 이방으로!! 보내시는 Q의 선교적 개념이 이미 그 보내심에 담겨져 있음]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주님이 알고 계시는 그 과부!!, 이미 예비-고지-마련해 두셨다!!!)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순전히 염려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에 순종하는 엘리야에게!! Q은 [상식을 뛰어넘는 방법으로!!--미련한자-약한자, 천한것-멸시받는것-없는것, 이들을 통해] (부정한) 까마귀, (Q의 구원에서 소외된) 시돈의 사르밧 과부을 들어 [음식 공궤에] 쓰고 계신다!!///그러므로, 그 어떤경우라도 영육간에 사람 차별 말지니!!--- [고전1:18-29(27-29)...*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바로 이것!!--YHWH의 명령 임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엘리야는 주 이름 불러 깨어 앙망함으로써,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통로 되어 그분의 듣고보고깨닫게 하심따라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나 자신이 죽기직전이다!!)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네가 이미 나를 네게 보내신 바 살아계신 Q을!! 아직은 참되게 경험적으로 알지못하고 있기에 사람-상황-사건을 두려워함임을 나는 참되게 안다) 오케이, 그대의 사정 충분히 공감-이해한다..그런데, 원컨대 여호와의 사람인바 나를 시험해보라]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네가 보기에는 남에게 공궤할것이라고는 전혀 없어보이지만!! 바로 너 자신 먹을것, 바로 그것으로 내게 줄 음식 만들라)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그대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이미 그대에게 일러주신분이 말씀하신바따라, 말씀하심 그대로 순종한다면!! 그대와 말하는 그이가 누구인지-어떤분인지 경험하여 알게 되리니..)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보라, Q은! 믿는 그대의 구원이시라!!)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자 어떡할래??, 결단내리거라---Q 백성됨이란 결국 YHWH 이름 불러 그분만이 유일무이, 영존/영생/구속하시는, 참생명의 창조주-공급자임을 믿어 실지로 그분 자신과 그분의 모든것을 공급받아 살아감으로써!! 세상적 근심-염려-두려움 그 자체, 곧 바알을 끊는것이다!!]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 가정...(믿고 붙드는바 살아계신 주님 앙망하며 바라고 의지하며, 한 상에 둘러 먹고 마시며 확장-증대되는 유기적 생명 공동체로서, 일가-가족 구성원, 친척/친지-친구까지 아우름 = 집)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바알-아세라 숭배란!! 결국 "CJ없이 홀로는 전혀 소망 없는, 전적으로 타락-부패-유한한 피조물임/온통 혼돈/공허/흑암에 매인바, 죄악과 음란, 속임-거짓-기만 가득한 존재일뿐임을 부정하고, 자신만을 신뢰하며, 자아를 우상 삼는 [극단적 이기주의-Q은 없다/아니 내가 Q일지도 모른다-하는바], 자기도취적자아숭배교 그자체임을 깨닫는가??....타락한 사람인 자신에게 있는 그것을 주께 전부 내어드렸을 때[I'm Nothing-NoBody in myself, But I'm Everything in Christ], 교통/교제/사귐으로 하나됨 이루는 CJ 십자가를 경험한바, 그는 YHWH께 속한 사람이 되었다!!((육적 구원 경험 단계)) 17. ○이 일 후에 [영적 구원 위한 시험!!]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숨은 부끄러움/죄를 보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계심]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내려놓지못하는 그 모친에게서 반드시 넘겨받아야 함!!]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날마다 죽고 부활생명을 사는 바!!, Q의 사람 엘리야!! [Q 참생명 숨]받아 거듭난 자신과 참생명의 하나됨 이루시기를 구함/생명 분배 실행함]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Q 참생명 숨]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이처럼 [반드시 주께서 살리셔야 할 사람으로 생각되면, 그때마다!! ]택자는 마땅히!! 죄를 깨닫도록 분명히/단호히 지적하되!!, 친히 넘겨받아!! 감사함의 산 믿음으로!! 껴안아 그 위에 엎드려 Q 생명숨 넣어주는 수고를 하여야 함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진리(에메트)임을] 아노라[=영적 구원 단계!!] 하니라 ......."네가 말씀으로 사는, 진정 말씀 듣는자"라면, (제3자, 곧 타인의 판단하는 눈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아야 할바!!) 너와 참된 생명관계에 있는 바로 그 사람, 비천한 이방인 사르밧 과부에게서 "진실한 자"임을 증명 받아야 한다..... 라 말씀하고 계심!! ......(진실함 = 완전한 하나 됨, 그분 말씀 안에 거함 :: 바로!! 이 [날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심]의 참된 순종이 매일 매일 참되게 실행함이라야 "진실하다"고 판단하신다) ========= AMP.왕상17장. ===Elijah Proclaims a Drought 1 And Elijah the Tishbite, of the inhabitants of Gilead, said to Ahab, “As the Lord God of Israel lives, before whom I stand, there shall not be dew nor rain these years, except at my word.” 2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3 “Get away from here and turn eastward, and hide by the Brook Cherith, which flows into the Jordan. 4 And it will be that you shall drink from the brook, and I have commanded the ravens to feed you there.” 5 So he went and did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for he went and stayed by the Brook Cherith, which flows into the Jordan. 6 The ravens brought him bread and meat in the morning, and bread and meat in the evening; and he drank from the brook. 7 And it happened after a while that the brook dried up, because there had been no rain in the land. ===Elijah and the Widow 8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9 “Arise, go to Zarephath, which belongs to Sidon, and dwell there. See, I have commanded a widow there to provide for you.” 10 So he arose and went to Zarephath. And when he came to the gate of the city, indeed a widow was there gathering sticks. And he called to her and said, “Please bring me a little water in a cup, that I may drink.” 11 And as she was going to get it, he called to her and said, “Please bring me a morsel of bread in your hand.” 12 So she said, “As the Lord your God lives, I do not have bread, only a handful of flour in a bin, and a little oil in a [a]jar; and see, I am gathering a couple of sticks that I may go in and prepare it for myself and my son, that we may eat it, and die.” 13 And Elijah said to her, “Do not fear; go and do as you have said, but make me a small cake from it first, and bring it to me; and afterward make some for yourself and your son. 14 For thus says the Lord God of Israel: ‘The bin of flour shall not be used up, nor shall the jar of oil run dry, until the day the Lord sends rain on the earth.’ ” 15 So she went away and did according to the word of Elijah; and she and he and her household ate for many days. 16 The bin of flour was not used up, nor did the jar of oil run dry,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oke by Elijah. ===Elijah Revives the Widow’s Son 17 Now it happened after these things that the son of the woman who owned the house became sick. And his sickness was so [b]serious that [c]there was no breath left in him. 18 So she said to Elijah, “What have I to do with you, O man of God? Have you come to me to bring my sin to remembrance, and to kill my son?” 19 And he said to her, “Give me your son.” So he took him out of her arms and carried him to the upper room where he was staying, and laid him on his own bed. 20 Then he cried out to the Lord and said, “O Lord my God, have You also brought tragedy on the widow with whom I lodge, by killing her son?” 21 And he stretched himself out on the child three times, and cried out to the Lord and said, “O Lord my God, I pray, let this child’s soul come back to him.” 22 Then the Lord heard the voice of Elijah; and the soul of the child came back to him, and he revived. 23 And Elijah took the child and brought him down from the upper room into the house, and gave him to his mother. And Elijah said, “See, your son lives!” 24 Then the woman said to Elijah, “Now by this I know that you are a man of God, and that the word of the Lord in your mouth is the truth.” ===Footnotes 1 Kings 17:12 Lit. pitcher or water jar 1 Kings 17:17 severe 1 Kings 17:17 He died. ============= 열왕기상 17장 (개요) 앞 장에 묘사되었듯이 이스라엘의 군왕과 백성의 특성은 애절하리 만치 형편없어서, 하나님을 그토록 저버린 백성은 하나님께서도 일축하실 것으로 누구나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그 증거는 엘리야라는 선지자의 출현이다. 악한 임금으로 말미암아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선한 선지자의 출현만큼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합만치 대담하게 죄짓는 왕도 없었다. 엘리야만치 담대하게 책망하고 경고하는 선지자도 결코 없었다. 본 장에서 시작되는 엘리야의 기사는 경이로운 일로 가득 차 있다. 구약 역사 중 어떤 부분에서도 엘리야의 영과 권능에 대한 이 기사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선지자 중에서 그만이 유독 첫 선지 에녹의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존귀를 얻어 승천하였고, 최대의 선지자였던 모세의 영광을 얻어 변모하신 우리의 구주를 시중하였던 것이다. 다른 선지자들은 예언도 하고 기록도 하였으나 엘리야는 예언을 하고 행동을 하면서 아무 기록도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선지자들의 저작이 자기 이름을 빛내는 것보다 그의 행위는 자기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는 행동의 선지였던 것이다.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한발로 인한 이스라엘의 기근에 대한 예언(1). 2. 그 기근 중에 엘리야에게 공급되는 양식. (1)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에 의해 공양을 받음(2-7). (2) 그릿 새냇가 공급으로도 부족하게 되자 사르밧의 과부를 통해 공궤를 받음. 사르밧 과부는 그를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하였고, 또 선지자의 보상을 받았다. ① 엘리야는 그 과부의 양식과 기름을 많이 불려 주었다(8-16). ② 그는 과부의 죽은 아들을 소생시켜 주었다(17-24). 이와 같이 그의 이야기는 심판과 기적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이는 그토록 속속들이 부패하고 우둔한 세대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 엘리야의 처음 예언(왕상 17:1-7) 엘리야의 기사는 다소 돌연히 시작되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 예언서가 시작되면 대개는 그 선지자의 혈통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나오며, 그가 누구의 아들이며 어느 지파 출신이라는 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말하자면 구름에서 떨어진 것 같은 존재다. 멜기세덱처럼 아비도 어미도 자식도 없는 듯이 갑자기 엘리야만 등장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가 하늘로부터 파송된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도는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passion)이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고 있다(약 5:17). 이 말씀은 아마 엘리야가 인간의 공통된 약점을 띠기 쉬웠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격정(strong passion)의 사람이어서 여느 사람보다 열혈적이고 열성적이며, 따라서 동시대의 겁 없는 죄인들을 다루기에 더 적합했다는 것까지 시사하는 말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적재를 적소에 맞추시는 솜씨는 이토록 놀라우시며, 그렇게 하여 자신의 의도를 성취하시는 것이다. 거친 성미의 소유자는 거친 일에 부르심을 받는다. 종교개혁은 얼음을 깨뜨리는 마르틴 루터와 같은 인물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 그의 이름은 엘리아후(Elijahu)였다. 즉 “그는 내 하나님 여호와시다” 하는 의미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는 나를 보내시는 분이고, 나를 인정하고 지지해 주실 분이다. 그 분은 내가 이스라엘을 인도해 돌아갈 분이며, 오직 그 분만이 이 위대한 사업을 성취하실 수가 있다.” --- 그의 출신지. 그는 요단 저편에 있는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 하나였다. 따라서 갓 지파나 므낫세 반 지파에 소속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길르앗은 이들 지파에게 분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원래부터 이들 지파의 출신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의 부모가 모호하다고 하여 나중 그의 명성이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사람이 어디 출신인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 다만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봐야 할 뿐이다. 선한 것이라면 나사렛에서 나온 것인들 무슨 문제가 되는가!(요 1:46) 이스라엘이 심한 부상을 입고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길르앗으로부터 이 유향과 의사를 보내 주셨던 것이다(렘 8:22 참조). 그는 길르앗 지방의 한 마을인 디셉을 따라 디셉 사람이라고 호칭되었다. 엘리야 기사의 서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설명을 읽게 된다. Ⅰ. 그는 기근을 어떻게 예언했는가? 가뭄은 오래 계속되고 쓰라릴 터였다. 이스라엘은 그 죄악에 대해 기근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토록 비옥하던 땅이 가뭄 때문에 불모지로 화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땅에 사는 거민의 불의로 인함이라는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이 사실을 고했다. 통치자에게서 민심을 잃게 하기 위해 백성에게 가만히 퍼뜨린 것이 아니라, 그 땅을 개혁할 권세가 있는 왕에게 정정당당히 이 일을 선포하여 심판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이 일을 예언하면서 그가 아합에게 우상 숭배와 다른 악에 대해 책망하고, 회개와 개혁이 없다면 그 땅에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말했음직하다.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즉 “왕이 내게서 다시 말을 듣게 될 때까지는 아무것도 기대치 마시오” 하는 뜻이다. 사도는 우리에게 이것을 예언으로서뿐만 아니라 기도로서도 이해하라고 가르쳐 준다(약 5:17, 18). 그 기도의 말씀은 구름의 문을 여닫는 열쇠였던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탈선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그 심판이 무시당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거룩한 열심에서)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즉 하늘은 그가 비 오기를 기도할 때까지 그의 기도대로 놋과 같이 되었다. 이 기사를 암시하여 계시록에서는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였다”(계 11:6)고 하나님의 증인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리고 있다. 1. “주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며, 아합은 그런 분을 버렸다는 것. 2. 그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과 아합이 섬기는 벙어리 잡신이나 죽은 우상과 같지 않으시다는 것. 3. 엘리야 자신은 공직을 맡은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사자라는 것. 그의 말은 이렇다. “그 분은 내가 그 앞에 서서 섬기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 분을 대표한다. 나는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에게 도전하여 그 분 대신 서 있으며, 그 분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다.” 4. 이스라엘 왕국이 현재는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 숭배를 노여워하시고 가뭄으로 그들을 징계하시리라는 것. 하나님께서 비를 억제하셨을 때는 그들이 섬기던 신들로서도 비를 내리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는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렘 14:22). 가뭄은 그들의 무력성을 효과적으로 입증할 터였다. 동시에 그것은 선도 악도 행할 능력이 없는 것들에게 호소한답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버린 자들의 우매성을 증명할 것이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하는 엄숙한 맹세로써 이 예언을 확증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생명이 그 예언의 성취에 개입되어 있으므로 아합으로 하여금 그 위협적 경고에 대해 더욱 경외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5. 엘리야는 자기가 하늘에 얼마만큼의 권세를 갖고 있는지 아합에게 알려 준다. 그것은 “내 말대로” 될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는 얼마나 위엄을 가지고 말하는가! 그는 선지자의 임무 부여, 곧 “내가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웠노라”(렘 1:10) 하는 위탁을 충분히 이해한 자였다. 기도의 위력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유의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사자들의 계획을 수행하신다. Ⅱ. 그 기근 가운데서 엘리야는 어떤 보살핌을 받았던가? 1. 그는 어떻게 숨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서 숨으라”고 명하셨다(3절). 아합은 즉각 그를 죽이려고 찾은 듯이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이 명령의 의도는 그의 생명을 보전하려는 데 있었다기보다는 백성에게 대한 심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엘리야가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면, 그는 훈계와 중보에 의하여 백성에게 축복이 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재난의 기간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 계속되도록 결정하셨다. 따라서 그동안은 잠적해 있도록 엘리야에게 명하신 것이다. 예언의 실시는 엘리야의 “말을 따라” 좌우될 것이었으므로, 엘리야가 은둔해 있어야만 형 집행의 철회를 탄원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나라에 대해 뽑으며 파괴한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에는, 자기 노를 돌이키게 하려고 그 틈바구니에서 중재하려는 자들을 제외시킬 이런 저런 방도가 마련되어 있다. 착한 사람들과 선한 목사들이 숨으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백성에게 흉조가 된다. 하나님께서 지면에 비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셨을 때는 엘리야에게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고 명하셨다(왕상 18:1). 그러나 본 장에서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인적이 드물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가서 그야말로 혼자 거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는 거기서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냇가의 갈대 속에 은신했을 것이다. 섭리가 우리에게 고적한 곳으로 은퇴할 것을 요구하실 때에는 묵묵히 거기에 따르는 것이 온당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쓸모가 없을 때 참고 있지 않으면 안 되며,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없을 때는 은인자중하고 있어야만 한다. 2. 그는 어떻게 기갈을 면했는가? 그는 거기서 기도와 묵상 외에 달리 할 것이 없었으므로(그것이 후일 그의 유용성의 준비에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의무의 길에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먹게 해 주신다. “참으로 그는 기근의 날에도 배를 채우며 충족하게 될 것이다”(시 37:19). 여자 곧 교회가 “광야로 도망할” 때, 거기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3년 6개월간 양육되도록 보살핌을 받게 된다(계 12:6, 14). 이 기간은 엘리야가 은신한 기간과 똑같다. 엘리야는 시냇물로 목을 축여야만 했다.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당번으로는 까마귀가 지정되었고(4절), 또 그 까마귀는 그 일을 실천했다(6절). (1) 양식은 풍족하고 훌륭하며 끊이지 않았다. 떡과 고기가 하루에 두 번씩 공급되었으며 일용할 양식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엘리야가 “이세벨의 상에서 먹은”(왕상 18:19)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보다는 호화판으로 지내지는 못했으나 오바댜에게 떡과 물로 부양되던 여호와의 나머지 선지자들(18:4)보다야 나았으리라고 상상할 수 있다. 음식에 대해 까다롭고 진미를 찾으며 맛난 것과 별미를 좋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 특히 선지자 된 하나님의 종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체력만 유지된다고 할 것 같으면 미각을 즐겁게 해 주지 못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는 호의호식하는 자들을 부러워하기보다 거친 음식일망정 맛나게 먹고, 우리가 먹다 남긴 찌꺼기라도 감지덕지할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우리가 그런 자보다 더 낫다는 것을 명심해야 마땅하다. 엘리야에게는 한 번에 꼭 한 끼만 조석으로 배달되었는데, 이는 그에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사는 자들은 섭리가 베풀어 주시는 대로 먹고 살아갈 줄 알아야 하며, “그 날의 양식은 그 날에” 맡기도록 배워야 한다. 오늘의 양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내일의 양식은 내일에 맡기란 말이다. (2) 음식 조달자는 정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까마귀가 그에게 음식을 가져왔던 것이다. 오바댜나 그 외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이스라엘인들은 기꺼이 엘리야를 접대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비상한 방법으로 공궤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던 세례 요한의 예표였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처럼(왕상 19:5), 또 우리 구세주께 그랬던 것처럼(마 4:11), 천사를 보내어 엘리야에게 시중들게 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본성이 다른 날개 달린 사자를 보내고자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에는 지극히 천한 미물에 의해서도 극히 강한 용사를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당신의 의도를 충족시킬 수 있으시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이다. 까마귀가 이 양식을 어디서 가져왔으며, 그 음식은 어디서 어떻게 요리되었으며, 정직하게 가져온 것인지에 대해 질문이 제기된다면, 우리는 야곱처럼(창 27:20)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땅도 그의 것이며 거기에 충만한 것도, 세계와 그 안에 거하는 것도 다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까마귀인가? ① 까마귀는 맹금류다. 먹을 것을 보면 게걸스레 잡아먹고, 그에게서 고기를 외려 빼앗아 먹거나 그의 눈을 쪼아 먹을 것 같은(잠 30:17) 새다. 그러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온다”(삿 14:14)는 삼손의 수수께끼는 다시 해석할 수도 있다. ② 까마귀는 부정한 동물이어서 모든 까마귀 종류는 율법에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레 11:15). 그런데도 엘리야는 까마귀가 가져온 음식이라 하여 더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양심을 위해 묻지 않고 먹고는 감사했다(고전 10:27 참조). 노아에게는 비둘기가 까마귀보다 더 신실한 사자였으나, 엘리야에게는 까마귀가 신실하고 변치 않는 사자였다. ③ 까마귀는 곤충과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새다. 그런데도 까마귀들은 엘리야 선지에게 고기와 건전한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남에게는 생명의 양식을 갖다 주는 자들이 자신은 양식 아닌 것을 취한다는 것은 유감된 일이다(사 55:2). ④ 까마귀는 소량의 음식밖에 가져올 수 없었고, 그나마도 그것은 얼치기 음식이었는데, 엘리야는 자기가 갖고 있던 것이나 진배없이 만족해했고 성찬을 대접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요기하게 됨을 감사했다. ⑤ 까마귀는 새끼를 제대로 잘 돌보지 않으며 먹이지 않는 동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는 까마귀가 선지자를 먹여 살리게 된다. 젊은 사자와 까마귀는 궁핍하여 주릴지언정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그렇지 않다(시 34:10). ⑥ 까마귀는 특별하신 섭리로 양육되는데(욥 38:41; 시 147:9), 여기에서는 선지자를 봉양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속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자를 체험했는가?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그에게 속한 자들한테 친절히 하는 일을 의무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권세를 인식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위해서든 자비를 위해서든 모든 피조물을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능히 사용하실 수가 있다. 둘째, 최대의 곤경 중에도 하나님 가운데서 담대하며 하나님을 불신하지 말 것.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도 식탁을 차릴 수 있으셨고, 까마귀를 자기 선지자의 음식 배달꾼이자, 요리사이자 시중꾼으로 만들 수 있으셨다. 그런 분이 영광의 부요함을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능력이 없겠는가! 엘리야는 한참 동안 이와 같이 홀로 식물을 먹고(욥 31:17) 물을 공급받았다. 자연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시내로부터 여느 방법으로 얻을 수 있던 물도 그가 기적으로 얻게 되기 전에는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자연의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이 무한하시다. 엘리야의 시냇물은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말라 버렸다(7절). 하늘이 저버리게 되면 땅도 물론 저버리게 된다.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전부 그렇다. 여름철의 시내처럼 우리에게 극히 필요할 때에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지 못한다(욥 6:15). 그러나 “결코 마르지 아니하는 한 시내”가 있어서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며(시 46:4)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다”(요 4:14)는 것은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주여! 우리에게 그 생수를 주시옵소서! ------------- 사르밧 과부(왕상 17:8-16) 여기서 우리는 엘리야에 대한 보호 조치가 계속되고, 은둔해 있는 그에게 양식이 계속 공급된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친구로 모시고 있는 자들은 멸망과 기근을 비웃을 것이니(욥 5:22), 그가 보호해 주시고 부양해 주시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릿 시내는 말라 버렸으나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친절은 이완되지 않고, 결핍되지 않았으며, 전과 똑같으며, 주를 아는 자에게는 그 인자하심이 여전히 계속되고 연장된다(시 36:10). 그릿 시냇물이 고갈되었을 때 요단 강은 마르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째서 엘리야를 요단으로 보내지 않으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먹여 살리시는 데에 다양한 방법을 갖고 계셔서 어떤 한 가지 방법에 얽매여 계시지는 않다.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기회를 제공하신다. 그 기회는 아는 사람이 생길 곳에서 쓸모 있는 자가 되게 하는 기회였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처럼 엘리야를 산 채로 파묻혀 있게 하지는 않으신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그가 보냄을 받은 곳은 “사르밧” 또는 “사렙다”였다. 사르밧은 시돈에 속한 한 성으로서 이스라엘 지경 밖에 있었다(9절).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이 불쌍한 이방인을 위해 오래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은총이 때가 차매 나타난 것이라고 주목하신다(눅 4:25, 26).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과부가 있었다.” 그 중에는 엘리야를 자기 집에 영접할 사람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이방 도시인 시돈의 한 성으로 보내심을 입고 거기에 몸을 나타냄으로써 그 땅을 존귀케 하며 복되게 했다. 그래서 엘리야는―라이트푸트 박사가 말하는 대로―“이방의 첫 선지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우상 숭배로써 스스로 부패했고, 심지어 열방보다 더욱더 악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세상의 부요한 것으로부터 쫓아내어” 마땅하다. 엘리야는 자기 동포에게 미움을 받아 추방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후일 사도들이 그런 명령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행 18:6) 이방인에게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하필이면 시돈의 성읍인가? 아마 이것은 당시에 이스라엘의 사무치는 죄였던 바알 숭배가 시돈 사람이었던 이세벨(왕상 16:31)과 함께 거기서 갓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그는 시돈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래야 그 우상 숭배의 파괴자를 바로 시돈에서 데려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선지자, 나의 개혁자를 바로 시돈에서 불렀노라.” 엘리야의 최대의 원수는 이세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세벨의 악의가 무력함을 증명하시기 위해, 바로 이세벨의 나라에서 은신할 곳을 찾아 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시돈 지방에” 한 번 가신 것 외에는 이방인 중에 가지 않으셨다(마 15:21). Ⅱ. 엘리야를 접대하도록 지정된 사람은 시돈에서 부유한 상인 중 한 사람이거나 오바댜와 같이 권세 있는 자가 아니었다. 오바댜는 아합 집의 장관으로서 선지자들을 공궤한 자다. 한 불쌍한 과부, 즉 궁핍하고 고독한 과부가 엘리야 선지의 공궤를 하명 받은 것이다(즉 능력과 의향의 양면에서 그렇게 되었다). “세상의 약하고 미련한 것들”을 사용하시고, 그런 것들에게 존귀를 입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며 또한 그의 영광이다(고전 1:27).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의미에서 과부의 하나님이시며 과부들을 먹여 주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갚아야 할지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Ⅲ. 사르밧에서 그에게 제공된 양식. 섭리는 과부로 하여금 성문에서 꼭 안성맞춤으로 엘리야를 만나게 하셨다. 엘리야와 과부 간에 있은 일에 대한 언급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알 수 있다. 1. 과부의 형편과 품성. (1) 그 여인은 매우 가난하고 핍절했던 것같이 보인다. 먹고살 거라곤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약간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형편이 좋을 때에도 궁핍했거든, 하물며 모두가 굶주리는 기근에는 그 형편이 최후의 극한점에 이르지 않았겠는가! 그 여인은 자기가 가진 소량을 먹고 나면, 모르긴 하나 그와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줄로 알았다(12절). 그 여인은 땔감도 없었다. 종이 없으므로 손수 길거리에서 나뭇가지를 줍지 않을 수 없었다(10절). 그러므로 이 과부는 대접하기보다 적선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엘리야는 바로 이런 여인에게 보냄을 받은 것이다. 까마귀가 그를 먹여 주던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 섭리에 의지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그 여인에게 보내신 것은 자기 계집종의 비천함을 긍휼히 여기셨음이니, 곧 그 여인에게서 구걸하려 함이 아니라 그 집에 하숙시키고자 함이었으며, 선지자의 밥상에 대해 후히 지불하시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2) 그 여인은 매우 겸손하고 부지런했던 것 같다. 엘리야는 그 여인이 나뭇가지를 주워서 그 여인 자신의 빵 구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10, 12절). 그 여인은 자기 처지를 돌이켜 생각했으나 자신의 곤경을 불평하지 않았으며, 비를 내리지 않으시는 섭리와 다투지도 않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섭리에 잘 순응했다. 환난 날에 이와 같은 기질을 지닌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존귀와 구원을 얻을 준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3) 그 여인은 매우 자비롭고 관대했다. 이 낯선 자가 가서 마실 물을 좀 갖다 주기를 희망했을 때, 그 여인은 첫마디에 즉시 갔다(10, 11절). 그 여인은 물이 귀하다는 것을 들어 거절하지도 않았고, 물 한 그릇 따라 오는 데 대해 무엇을 내놓을지 묻지도 않았다(그 때는 물이 곧 돈만큼 가치가 있었다). 그 여인은 그가 나그네 곧 이스라엘인이란 것을 넌지시 말하지도 않았다. 시돈인들은 아마 사마리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과 상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요 4:9). 그 여인은 기아로 말미암아 허약해진 것이나 자신의 급한 일을 들어 변명하지 않았다. 그의 심부름을 가기보다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줍고 있던 나뭇가지를 놔 둔 채 그를 위해 물을 가지러 갔던 것이다. 아마 그 여인은 엘리야의 근엄한 풍모에 감동되어 물 떠오는 일을 더 기쁘게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일망정 기꺼이 친절한 일을 해 주어야만 한다. 우리는 설령 고통 받는 자에게 줄 것이 없는 경우, 그 때문에라도 더욱더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잔의 냉수는 떠 가지고 오는 수고밖에 들 것이 없지만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4) 그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신뢰했다. 과부는 자기에게 남아 있는 밀가루와 기름이 얼마나 소량인지, 자기 모자가 겨우 먹을 정도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를 위해 떡 하나를 만들되” 먼저 그의 것을 만들고 난 뒤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명했다. 이것은 그 여인의 믿음과 순종에 대한 큰 시험이었다. 잘 살펴보면 그토록 작은 일로 최대의 시험이 성립되는 것 같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으리라. “아이들을 먼저 먹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선은 가정에서부터 비롯하는 법입니다. 저는 가진 것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언제 그것이 떨어질지, 또 어디서 생길지도 모르는 판국에 주다니요? 아무도 제가 주리라고 기대할 자가 없습니다.” 나발보다 오히려 이 여인이 “내가 내 가루와 기름을 취하여 어디로서인지 알지 못하는 자에게 주겠느냐?”(삼상 25:11)고 물을 만했다. 엘리야는 사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언급했는데(14절), 그것이 시돈 여인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또 설사 이 여인이 여호와란 이름에 대해 경외심을 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참하나님으로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이 나그네가 여호와의 선지자이며 그의 이름으로 말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굶주린 방랑자가 그 여인을 속이기란 식은 죽 먹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인은 이 모든 반대 이유들을 극복하고 약속에 의지하여 명령에 순종했다.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라”(15절).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8). 이와 같은 믿음은 “이스라엘에서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마 8:10). 모든 점을 참작할 때 이 일은 두 렙돈밖에 없으면서 그것을 전부 연보궤에 넣은 과부의 행위(막 12:42)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여인은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즉 이 일로 여인이 손해보지 않을 것이며 이자까지 쳐서 보상받게 되리라는 말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빈털터리가 되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즉 적은 것 중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바치며, 그의 몫을 먼저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하나님과 거래하는 자들은 신용으로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면 다른 모든 것이 더해질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첫 소산은 하나님께 속했고, 십일조는 맨 먼저 떼어야 했으며, 처음 가루 떡으로 거제를 드려야 했다(민 15:20, 21). 이 여인의 믿음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존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확실히 증가했다. 이러한 믿음의 증가는, 그 여인의 기름이 많아진 것이 섭리의 나라에서 큰 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은혜의 나라에서 큰 기적이었다. 이와 같이 소망에 대해 믿고 소망 가운데서 순종할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다. 2.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손님에 대해 베푸시는 배려.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16절). 퍼낼 때마다 그 통과 병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다 많은 양이 보태어졌다. 곡식이나 감람나무가 자라면서 불어 간다고 해도 이들이 사용되는 가운데 증가하는 것만은 못했다―홀 주교는 그렇게 말했다. 보통의 섭리 속에서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는” 것은(고후 9:10) 흔하기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 하나님의 권능과 자비에 대한 실례다. 가루와 기름은 저축하는 가운데 많아진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가운데 증가되었던 것이다. “흩어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잠 11:24). 비록 적은 것이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하시는 때에는, 그것이 기대 이상의 굉장한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풍성한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불어 버리실 때에는 거의 유야무야한 상태로 되어 버린다(학 1:9; 2:16). (1) 이것은 선지자를 부양했다. 그가 매일 먹는 떡은 계속적인 기적의 산물이었다. 엘리야는 그 때까지 떡과 고기로 배를 채웠는데, 이제는 떡과 기름으로 요기하게 되었다. 그 때 사람들은 우리가 버터를 사용하듯 기름을 사용했다. 만나는 이 두 가지를 다 의미했으니, 이는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과 같았기 때문이다(민 11:8). 엘리야는 하루에 두 번씩 고기를 먹어 오다 이제는 전혀 입에 대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이를 감사히 여겼다. 육류를 상식해 왔기 때문에 고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람, 즉 최소 하루 한 번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자는 만족스럽게 엘리야한테 하숙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적의 떡일망정 떡만으로는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2) 그것은 가난한 과부와 그의 아들을 부양했으며, 선지자를 접대한 데 대한 보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과 사역자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손해될 것은 하나도 없다. 선지자를 영접한 그 여인은 선지자의 상도 받게 되었다. 그 여인은 그에게 방을 제공했는데 그는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되갚아 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문을 열어 주는 자들에게 들어오셔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자기와 더불어 먹게” 되리라고 약속하셨던 것이다(계 3:20). 본문의 엘리야처럼 그는 자기를 영접하는 자를 그 자신의 향응뿐만 아니라 그들의 향응에도 초대하신다. 상은 얼마나 봉사에 부합한지 살펴보자. 여인은 관대하게도 선지자에게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위한 많은 떡으로 보상받았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독자를 하나님께 바쳤다가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다. 경건한 일이나 자선에 투자한 것은 가장 높은 고리로, 가장 안전하게 금리를 놓는 셈이다. 이 가난한 과부는 선지자에게 보잘것없는 한 덩어리의 떡을 주었을 뿐인데, 그 보답으로 과부와 그 아들은 여러 날 동안 먹게 되었고(15절), 모두가 굶주리는 기근의 시기에 2년 이상이나 연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음식을 얻게 되고 엘리야와 같은 훌륭한 분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니 그 음식은 갑절 이상 맛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환난 때에 부끄럽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게 되리라”(시 37:19). ---------- 과부 아들의 소생(왕상 17:17-24) 우리는 여기에서 과부가 선지자에게 베푼 친절에 대해 계속 보상받게 되는 장면을 목도한다. 마치 살리는 일이 사소한 일이기라도 하듯, 여인의 아들이 죽자 그는 그를 소생시켜서 여인에게 돌려주었다. 다음 사실을 눈여겨보자. Ⅰ. 아이의 병과 죽음. 그 아이는 여인의 독자였던 것 같다. 그 아이는 과부살이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아이는 기적에 의해 양식을 공급받았다. 그러나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안전히 보호받지는 못했다. “너희 조상은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으나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떡이 있으니 이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준 것이니라”(요 6:49-51). 과부에게 있어서 이 고통은 육체의 가시 같았으니, 이는 그 여인에게 베푼 은총과 존귀로 인해 여인이 너무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 과부는 선지자를 돌보는 사람이었다. 선지자를 부양하는 데 종사하고 있었으므로, 그 여인은 여호와께서 선히 행해 주실 것으로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자기의 아들을 여의고 있다. 우리가 의무의 길에 서 있고 하나님께 두드러진 봉사를 하고 있는데 몹시 쓰라린 고난이 닥쳐오는 경우, 우리는 이를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데 유의하자. 2. 과부는 그 자신이 기적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그 여인은 하늘로서 내려오는 현저한 축복으로, 비용을 들이거나 걱정하는 일이 없이, 가계를 훌륭히 꾸려 나가고 있었다. 여인은 한창 이 모든 만족을 누리는 중에 이 같은 고난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호의가 극히 분명하게 나타난 때에도 우리는 섭리의 책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의 산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떨리는 것을 항상 기뻐해야 한다. Ⅱ. 여인은 이 고난을 당하게 되자 선지자에게 호소했다. 아이는 갑자기 죽은 것같이 보여진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인은 아이가 아플 동안에 낫게 해 달라고 엘리야에게 사정했을 것이다. 여인은 아이가 자기 가슴에 안겨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구출될 수 있다는 희망을 걸기보다 자기 슬픔을 발산하기 위해 선지자에게 간언했다(18절). 1. 여인은 정열적으로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여인이 양식이 떨어져 죽음을 각오했을 때는 자신과 그 자식은 죽음에 대해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12절). “우리가 먹고 죽으리라.” 그러나 이제 아들이 죽자―굶어 죽는 것만큼 비참한 죽음도 아닌데도―여인은 극히 혼란을 일으켰다. 우리는 멀리 있는 고난은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 있으나 일단 당하면 놀라게 된다(욥 4:5). 그 때에는 이 여인이 침착하게 말했으나, 이제는 경황중에 부르짖었다. 그 자식의 죽음이 여인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우리가 한창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재난이 갑자기 엄습하면 마음을 침착히 가지기가 어렵다. 여인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면서도 마치 그가 자기 아들을 죽게 한 장본인이듯 힐난하며, 이전의 자비와 기적을 잊어버리고,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원망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내가 당신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그렇게 해독하는 자도 있다) 내가 어떤 일로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으며 내 의무에 결여된 것이 무엇입니까?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소서(욥 10:2).” 2. 그러나 여인은 스스로 참회하는 말을 했다. “당신은 이 고난의 원인으로서 내 죄를 생각하고, 고난의 결과로서 내 죄를 생각나게 하려고 오셨나이까?” 이 여인은 아마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쳐서 기원한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죄를 의식하고―아마 이전에 시돈인의 신이었던 바알을 숭배한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을 것이다―엘리야가 자기를 치도록 기원한 것이나 아닌지 염려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께서 우리의 위안물을 제거하실 때는 그가 우리 죄를 기억하시는 때다. 우리 죄는 우리를 치는 것이며, 그것은 아마 경과한 지 오래더라도 우리가 젊은 때 저지른 범죄일 것이다(욥 13:26). 우리의 죄는 우리 자녀를 죽인다는 것을 잊지 말자. (2)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우리를 치는 우리 죄를 기억하실 때는, 그로써 우리가 우리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시는 때다. Ⅲ. 이 경우를 당하여 선지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말씀. 그는 여인의 간언에 대답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께 가져갔다. 스스로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여 그 사건을 하나님 앞에 송치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는 죽은 아이를 어미의 품에서 받아가지고 자기 침상에 갖다 놓았다(19절). 아마 그는 죽은 아이에게 각별히 두터운 정을 느껴 왔으므로, 동정심에서가 아니라 이 일을 자신의 불행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자기 방으로 물러갔다. 1. 그는 아이의 죽음에 대하여 겸손하게 하나님을 설득했다. 그는 죽음이 아이를 친 것은 하나님의 명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주께서 이 재앙을 내리셨나이다.” 성중의 가정에는 이런 유의 재앙이 없으니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지 않았겠는가? 그는 불쌍한 어머니에게 임한 재난이 너무 과중하다는 것을 들어 말한다. “이것은 과부에게 내린 재앙입니다. 주께서는 과부의 하나님이셔서 과부에게는 좀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고난당한 자에게 고난을 더하신 셈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해 관계를 역설했다. “이 여인은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입니다. 나의 하나님 되신 주께서 내게 가장 잘해 준 자에게 재앙을 내리시렵니까? 나는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가는 집에 죽음을 동반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대접하기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2. 그는 하나님께 아이를 소생시켜 주실 것을 간곡히 빌었다(21절). 우리는 죽은 자가 소생한 기사를 이 앞에서 읽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신적 충동에 의해 이 아이의 부활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도 이 같은 기도를 하도록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금식하며 기도했던 다윗도 자기 아이를 소생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삼하 12:23). 그러나 엘리야는 다윗이 소유하지 못했던, 기적을 행하는 권능이 있었다. “그는 아이 위에 몸을 펴서 엎드렸다.” 이는 그 자신이 직접 이 일에 연루되기 위해서였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았고, 그의 소생을 얼마나 염원하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호흡과 온기로써 그에게 생명을 넣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님이 권능으로 행하실 일과 은혜로써 죽은 영혼을 일으키사 영적 생명을 얻게 하는 일에 대한 표적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성령께서는 죽은 영혼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덮으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넣어 주시는 것이다. 엘리야의 기도는 각별하다.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영혼이 육에서 분리된 상태에 있다는 것과 결과적으로 영혼의 불멸성을 명백히 가정하고 있다. 그로티우스(Grotius)는 하나님께서 이 기적으로 영혼불멸설에 대한 암시와 증거를 제공하시고, 자기의 고난받는 백성을 격려하시려는 의도를 가지셨다고 생각했다. Ⅳ. 아이의 부활과 이로써 그 어머니가 얻은 큰 만족. 아이는 다시 살아났다(22절). 기도의 위력과 기도를 들으시는 분의 권능을 유의하라. 그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이다. 엘리야는 그 아이를 과부에게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그 어머니가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그 아기가 그녀의 소생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이 아이가 네 소생이며 남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아라.” 그 선한 여인은 이에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아노라”고 부르짖었다. 여인은 양식이 느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자기 아들의 죽음을 너무 악의로 해석하다 보니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선한 사람이라면 결코 자기에게 그와 같이 갚지는 않으리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의 권능과 자비를 다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고, 극히 흡족히 여기게 되었다. 여인은 다시는 그런 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어서, 그가 지시하는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숭배하는 일에 헌신할 터였다. 이와 같이 아이의 죽음은(나사로의 죽음처럼. 요 11:4)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선지자의 명예를 위한 것이었다. === === ===호크마=== 열왕기상 17장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ㅇ길르앗 - '길르앗'은 '증거의 돌무더기'라는 뜻으로 여겨진다(Guthrie Jr.). 그렇다면 신앙의 암흑기인 아합 시대에 여호와 신앙의 증거자 엘리야가 이 지방에서 배출된 점은 의미가 있다 하겠다. 한편 길르앗(Gilead)이라는 지명은 넓게는 남쪽 아르논 강에서 북쪽 야르묵 강에 이르는 요단 동편 일대를 가리킨다(Cohen). 이곳은 곡창 지대와 목축지로 유명하였는바 일찍이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이곳을 자신들의 기업(基業)으로 요구할 정도였다(민 32:1-5). ㅇ디셉 - 디셉(Tisheb)은 엘리야의 고향으로 여섯번이나 언급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길이 없다(21:17, 28; 왕하 1:3, 8; 9:36). 다만 길르앗 북방 산악 지대에 위치한 현재의 리스팁(Listib)일 가능성이 있다(Cohen). 한편 외경 토빗서 1:2에는 납달리에 있는 게데스(Kedesh)의 남쪽 한 지역이 '디셉'으로 언급되고 있다. 만일 '디셉 사람'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면 엘리야는 디셉에서 출생하여 길르앗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N. Glueck, 'Explorations in Eastern Palestine IV). ㅇ엘리야 - '엘리야'(또는 , 엘리야후)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실제로 엘리야의 생애는 그 같은 이름의 뜻을 구현하는 데 바쳐진다. 한편 성경에는 엘리야(Elijah)의 가계(家系)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B.C. 9세기의 유명한 선지자로서 아합 왕(B.C. 874-853) 때부터 아하시야 왕(B.C.853-852) 때까지 북왕국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예언 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모세에 버금가는 인물로서 유대인들의 추앙을 받았는데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요한의 정체를 확인하면서 그가 엘리야인지 물어 볼 정도였다(요 1:21). ㅇ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 이 짧은 어구에 함축된 의미는 대단히 크다. 즉 본절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이말은 새삼스러운 것 같지만 실상은 바알 숭배가 만연한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강한 거부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즉 이는 이스라엘의 참 신은 여호와이지 바알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말이다. (2) 그리고 그 여호와가 바로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바알을 섬기는 무리가 다수인 당시의 형편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는 그 속에서 자신의 현주소와 입장을 밝히는 신앙 고백인 동시에 자신이 여호와께로부터 보냄 받은 대사(大使)의 자격임을 밝히는 말이라 하겠다. ㅇ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이러한 표현은 구약 시대 당시 일반적인 맹세의 형식이긴 하다(18:10; 렘 5:2; 16:14; 호 4:15). 그러나 단지 상투적 어구만이 아니고 당시 상황하에서의 진솔한 신앙고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의미는 절실해진다. 즉 바알 및 우상 숭배 세력이 지배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있는 참 신은 여호와'라는 이 어구의 한자는 담대한 도전의 성격을 띤 것이라 볼 수 있다. ㅇ내 말이 없으면...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 때를 따라 적절히 내리는 단비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결과로 언급되고 있다(신 11:11, 14; 욥 5:10;28:26; 36:27; 시 147:8). 그리고 그 반면에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지면 하늘은 더 이상 비를 내리지 않아 생명을 쇠약하게 하며 땅을 메마르게 하리라는 경고도 아울러 언급되어 있다(신 11:17; 28:24). 그런데 수년간 비가 없으리라는 본절의 가뭄 예언 역시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다(16:26-33). .... 더욱이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한 가뭄이 가시지 않으리라는 엘리야의 선언은 바알 숭배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왜냐하면 당시 바알(Baal)은 땅에 비를 내리는 등 생산력을 주관하는 신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레 26:1-13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참조.) ...그러므로 그 같은 능력조차도 여호와의 장중에 있다는 이 예언은 곧 바알이 생명없는 거짓 신임을 폭로하는 것이다(Lange).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ㅇ여호와의 말씀이...임(臨)하여 - '임하여'에 해당하는 '하야'는 원래 '되다', '존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정적(靜的)인 상태를 의미하기 보다는 대단히 역동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기에 본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 그저 '있다'라고 하지 않고 '오다', '임하다' 등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편 한 시대의 다수를 홀로 상대해야 할 신앙의 용사 엘리야에게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수시로 말씀을 통해 일거수일투족을 지시하셨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소명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까지도 은혜 가운데 주셨음을 의미한다.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ㅇ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 앞서 엘리야는 아합을 찾아가 경고했을 것이다(1절). 그러므로 '여기서'는 아합의 왕궁이 있는 사마리아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성경에서 '동으로'는 일반적으로 요단 강 동편을 말한다. ㅇ요단앞 - '앞'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 페네'는 창 16:12에서 '동방'으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서도 '동쪽'으로 번역함이 더 타당할 듯 하다(Keil & Delitzsch, Pulit Commentary). RSV 등 대다수 영역본과 한글 공동 번역도 이를 '동쪽'(east)로 번역하고 있다. ㅇ그릿 시냇가 - '그릿'(게리트)은 '분리', '잔절'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 시내는 어떠한 지역을 구분하는 경게선 구실을 했던 것 같다(Hammond). 한편 이 시내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입증되지 않고 있으나 엘리야가 길르앗 사람인 점(1절)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요단 동편 길르앗의 동굴 지대에 있는 시내 중 하나일것이다(Cohen). ㅇ숨고 - '숨고'는 문자 그대로 '피하다', '감추다'는 뜻의 '사타르'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 동사에서 엘리야의 심판 예언(1절)이 있은 후 아합과 이세벨의 즉각적인 위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아합의 입장에서 엘리야의 선포는 민심을 교란하는 유언 비어요 반 정부적인 도전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위협만이 피신의 원인은 아니다. 아직은 여호와 신봉자와 이방신 숭배자간의 정면 대결(18장)의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당분간 엘리야에게 몸을 숨기도록 명하신 것이다(Lange, Matthew Henry, R.D. Patterson).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ㅇ까마귀들을 명하여 - 혹자는 까마귀가 부정한 조류(레 11:5)라 하여 '까마귀' (오르빔)를 '아랍인들'(아르빔)이나 '상인들'(오리빔) 또는 '오렙 사람들'(오레빔)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Hammond, Kimchi). 그러나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오히려 본문은 까마귀로 읽어야 할 강조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온통 바알 숭배로 돌아선 시점에 여호와 신앙의 용사 엘리야를 지탱해 준 것은 까마귀, 이방인 과부(9-16절) 등 이라는 역설의 강조점을 본문은 갖고있기 때문이다(Lange, H. Austel,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 237). 즉, 이스라엘이 부정한 것들로 여긴 요소들이 도fl어 이스라엘의 구원과 정화에 한몫 기여한 것이다. 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ㅇ여호와의 맡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 엘리야가 예언 선포 이후(1절) 이처럼 잠적해버린 사실을 놓고 그 당시 비웃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피신을 수치로 꺼리지 않고 즉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즉 엘리야는 사람의 취향과 기질에 영합하여 영웅이 되기보다 자신을 잊은듯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갈 1:10).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ㅇ까마귀들이...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 까마귀는 본래 매우 게걸스런 날짐승으로 시체와 썩을 것들을 즐겨 먹어치운다. 그런데 그런 까마귀가 엘리야에게 음식을 고스란히 날라주었다는 데에서 기적적인 성격이 한층 더 강조된다. 한편 이처럼 까마귀도 순종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엘리야에게 깊은 감명과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즉 여호와신앙의 열의가 대단한 엘리야의 눈에는 당시 우상 숭배에 열중하는 백성의 모습이 마치 부패한 시체를 탐하는 까마귀떼처럼 가망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까마귀조차도 순종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의 강권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엘리야의 심령에 선지자적 소명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을 것이다.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ㅇ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 18:1과 야고보서 5:17에 의하면 당시 이 같은 가뭄은 3년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음을 알 수있다. 1절 주석 참조.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ㅇ엘리야의 식수(食水)였던 그릿 시냇물(3절)이 말라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엘리야를 위하여 새로운 공궤지(供饋地)를 일러주신다. 그곳은 곧 사르밧(Zarephath)으로(9절) 엘리야는 가뭄이 끌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한편 엘리야가 그릿 시내에서 물을 찾아 사르밧 으로 이동한 길을 지도상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갈다.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ㅇ사르밧 - '사르밧'(차르파트)은 '염색하다'는 뜻에서 온 명칭이다. 따라서 사르밧은 두로와 시돈 등과 마찬가지로 베니게(Phoenicia)의 명물인 염료 생산지였음을 알 수있다. 이 성읍은 헬라어로는 '사렙다'로 불리우는데(눅 4:26) 오늘날의 수라펜드(Surafend)로서 두로와 시돈 가운데쯤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도시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 237). 그런데 이곳은 이세벧의 부친 시돈 왕 엣바알이 다스리는 지역이다(16:31). 결국 이세벧이 여호와 신앙인들을 탄압하고 있을 때 정작 엘리야는 이세벨의 고향 깊숙이 숨어버린 셈이다. 이 점은 마치 바로(Pharaoh)의 궁전에서 온전히 양육받은 모세를 방불케 하는 것으로서 대적자의 심장부가 도리어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피난처와 은신처가 된 기막힌 역설이다(출 2:10). ㅇ그곳 과부에게 명하여...하였느니라 -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은신처가 이방인, 그것도 무력한 과부에게서 찾아졌다는 것은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크나큰 수치이다. 이는 곧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만큼 배교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증거해준다. 한편 고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과부'(알마나)는 남편이 없으므로 인해 사회, 경제적 지위가 형편없는 존졔였다(신 24:17). 그러나 하나님은 그처럼 약한 자를 들어 존귀하게 사용하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한 특징인바(고전 1:26-31)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할것이다(Matthew Henry). ㅇ공궤하게 - '공궤'(供饋)란 문자 그대로 '음식을 제공함'(providing with food)을 말한다. 그런데 본절에서 '공궤하게'에 해당하는 원어 '카르케레카'는 '간직하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즉 이는 단순한 음식 제공을 넘어서 '정성을 다해 보살핌'에 더 의미가 담긴 말이다. 10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무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ㅇ나무가지를 줍는지라 - 이는 거리에 흩어져 있는 모든 나뭇가지를 주워 땔감을 삼을수 밖에 없는 과부의 극빈을 나타낸다. 만일 과부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종을 부려 땔감을 해오게 하였거나 아니면 시장에서 땔감을 구입하였을 것이다(Matthew Henry). ㅇ물을...나로 마시게 하라 - 아합 당시의 가뭄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팔레스틴 여러 지역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이 귀한 상황에서 낮선 나그네의 물 요구는 여간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근동에서는 식수 대접이 거의 신성한 의무처럼 여겨졌다 하더라도 말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는 사르밧 과부가 넘어야 할 첫번째 시험(test)이었다. 한편 엘리야가 물을 달라는 요구를 통해 자신을 대접할 과부를 식별하는 장면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부감을 찾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창24:17; 요 4:7). 11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ㅇ청컨대...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 앞서의 부탁을 거절치 않자 엘리야는 과부에게 이제 좀더 당돌한 부탁을 한다. 즉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더욱 식량남으로 열악한 형편인 과부에게 떡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엘리야의 다소 무리한 부탁은 자신을 공궤할 과부가 누구인지 알아보자는 데 목적이 있었으니(9절) 사르밧 과부는 이 두번째 시험마저도 통과하여야 했다(Bahr). 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ㅇ당신의 하나님 - 어떤 주석가들은 과부의 이 같은 말에서 그녀가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Keil & Delitzsch, :ange). 그러나 도리어 이말은 정반대의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즉 우리는 그녀가 '나의 하나님'이 아닌 '당신의 하나님'이라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Pulpit Commentary). 다시 말해 이스라엘과 전통적으로 교류가 많던 베니게의 한 여인으로서 이 과부는 엘리야가 이스라엘 사람인 것을 알고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 신을 호칭한 것 뿐이다. 사실 이 과부가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시점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엘리야의 말을 청종한 그 순간이다(14, 15절). 아무튼 정작 선민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치 않은 반면 이방인 과부는 선뜻 그 말씀을 받아들인 점이 주목된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봉사자가 누군지 분명히 확인하였을 것이다. ㅇ나는...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 엘리야의 요청에 과부가 당황한 까닭은 그나마 남은 밀가루는 최후의 만찬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떡 하나를 요구한 엘리야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