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장..주예수 사랑기쁨 내마음속에
@@@민34장 :: 약속의 땅 경계((바다-산과 강-하수로 둘러싸여 있음)) ::: 서) 대해...(블레셋까지 포함한 대해 해안 전 지경).....동)요단강....동북 경계) 호르산, 레바논 산맥 경계(하맛)이하의 레바논 전역---헬몬산--갈릴리 동부해안 선.... 남) 애굽시내<하수>--가데스바네아--소알(사해 남단) 선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다.
....가나안의 기근은 아브라함 75세때, 지금 이삭이 경험하는 기근은 2차 기근, 향후 요셉 37세(총리된 지 7년 경과시점) 야곱128세 때 당하는 기근은 애굽과 가나안 전체에(아마도 종동지역 전체에 이르는) 기근이었던 것으로 보임
....야곱의 나이40세, 이삭은100세,... 그랄로 이동하기 직전인 야곱나이 38-40세에 브엘라해로이에 살 때, 이미 장자권-팥죽 사건이 있었고, 40세에 에서는 그는 헷족속의 두 여자를 아내로 맞아 결혼했다.
##임마누엘 = God is whith us. 내주하시는 하나님 ...이 약속의 실제는 대속의 구주 십자가에 대한 참된 체험(곧, 영적 할례 체험.....옛사람의 죽음+부활생명의 새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감의 체험...바로 이 <내주하시는 구주 임마누엘의> 체험 위해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 도전하신다!!)있을 그 때에 누림이 온다!!.....창17 :4에서는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my covenant is with thee> 하시면서, 할례를 통해서 횃불언약에서 보인 그 의미를 참되게 실행하게 하시며, 더 나아가서 모리아산의 희생제사 드림 통해 <옛사람은 죽고><부활생명의 새 사람으로> 거듭남의 체험 + Q의 영원 목적의 이상 보이심으로 이끌어 가셨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 [430주와같이길가는것300내맘이낙심되며]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브엘 라해로이에서는 그랄을 거쳐서 해변길로 애굽으로 들어가는 것이 2-3일 밖에 걸리지 않는 길임.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인도해 가시는 그 거주할 목적지는 차후에 다시 친히 나타나 확증시켜 주실 바, 지금은 나그네로서 머무름, stay...나그네 정신으로!!]...Abr이 그리했던 것처럼
3. [주께서 인도해 가셔서 지정해 주실, 바로 그 땅을 목적지로 삼되, 지금은 그랄에 있는바] 이 땅에 거류하면(Abr이 전적으로 주를 신뢰하고 순복한 것처럼, 일시적 생활 거처인 거류지로 여겨 나그네로서 삶) 내가 너와 함께 있어[임마누엘의 은혜...이는 할례/십자가 대속 구원 얻은 자에게 주시는 은총!!]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블레셋 전역도 포함되는 바 약속한 땅 전체로서]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작금의 상황-환경-처지가 어떠하든지 오직 영생 구원-지존-자존-불변의 여호와 임마누엘 Q과 그분의 말씀 절대적으로 믿고 붙들고 신뢰함 안에서 요동없이 주를 따를 때 저절로 이루어지게 하실 바, 놀라운 언약 계승!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 [273나주를멀리떠났다 370주안에었는나에게 381나캄캄한밤죄의길에 382너근심걱정말아라]○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그러나)주 임재 없다면 (정착할 곳 아님)떠나야 함.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암양새끼)일곱의 우물, 맹세의 우물...여호와 엘올람의 경험 새로이...하나님 이름들은 야곱도 반드시 경험해야 함]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3절 말씀의 확인, 즉 3절에서 미리 말씀하여 주셨던 곳에 마침내 이르렀음을,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가려했을 때 나타나셔서 미리 말씀하신 그대로) 거쳐온 그 모든 장소마다 임마누엘 주님이 환경-상황을 예비-주관하시며 인도하심으로써 도달했음을 깨닫게 하고 계심...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에서의 이방인 아내들...장자권 팥죽 사건은 에서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임...즉 당시 야곱 나이 38-40세 경, 장자의 축복 가로채기 사건으로 인한 하란 도피는 77세경.--야곱이 하란으로 떠난 후 이스마엘의 딸 마할렛을 다시 아내로 얻고 있음<리브가와 이삭의 근심의 근본동기를 살피지 못했음>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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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ac Settles in Gerar.26.
1 Now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of Canaan], besides the previous famine that had occurred in the days of Abraham. So Isaac went to Gerar, to [a]Abimelech king of the Philistines.
2 The Lord appeared to him and said, “Do not go down to Egypt; stay in the land of which I will tell you.
3 Live temporarily [as a resident] in this land and I will be with you and will bless and favor you, for I will give all these lands to you and to your descendants, and I will establish and carry out the oath which I swore to Abraham your father.
4 I will make your descendants multiply as the stars of the heavens, and will give to your descendants all these lands; and by your descendants shall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be blessed,
5 because Abraham listened to and obeyed My voice and [consistently] kept My charge, My commandments, My statutes, and My laws.”
6 So Isaac stayed in Gerar.
7 The men of the place asked him about his wife, and he said, “She is my [b]sister,” for he was afraid to say, “my wife”—thinking, “the men of the place might kill me on account of Rebekah, since she is very beautiful.”
8 It happened when he had been there a long time, that Abimelech king of the Philistines looked out of a window and saw Isaac [c]caressing Rebekah his wife.
9 Then Abimelech called Isaac and said, “See here, Rebekah is in fact your wife! How did you [dare to] say to me, ‘She is my sister’?” And Isaac said to him, “Because I thought I might be killed because of her [desirability].”
10 Abimelech said, “What is this that you have done to us? One of the men [among our people] might easily have been intimate with your wife, and you would have brought guilt on us [before God].”
11 Then Abimelech commanded all his people, “Whoever touches this man [Isaac] or his wife [Rebekah] shall without exception be put to death.”
12 Then Isaac planted [seed] in that land [as a farmer] and reaped in the same year a hundred times [as much as he had planted], and the Lord blessed and favored him.
13 And the man [Isaac] became great and gained more and more until he became very wealthy and extremely distinguished;
14 he owned flocks and herds and a great household [with a number of servants], and the Philistines envied him.
15 Now all the wells which his father’s servants had dug in the days of Abraham his father, the Philistines stopped up by filling them with dirt.
16 Then Abimelech said to Isaac, “Go away from here, because you are far too powerful for us.”
17 So Isaac left that region and camped in the Valley of Gerar, and settled there.
===Quarrel over the Wells
18 Now Isaac again dug [and reopened] the wells of water which had been dug in the days of Abraham his father, because the Philistines had filled them up [with dirt] after the death of Abraham; and he gave the wells the same names that his father had given them.
19 But when Isaac’s servants dug in the valley and found there a well of flowing [spring] water,
20 the herdsmen of Gerar quarreled with Isaac’s herdsmen, saying, “The water is ours!” So Isaac named the well Esek (quarreling), because they quarreled with him.
21 Then his servants dug another well, and they quarreled over that also, so Isaac named it Sitnah (enmity).
22 He moved away from there and dug another well, and they did not quarrel over that one; so he named it Rehoboth (broad places), saying, “For now the Lord has made [d]room for us, and we shall be [e]prosperous in the land.”
23 Then he went up from there to Beersheba.
24 The Lord appeared to him the same night and said, “I am the God of Abraham your father; 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I will bless and favor you, and multiply your descendants, For the sake of My servant Abraham.”
25 So Isaac built an altar there and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in prayer]. He pitched his tent there; and there Isaac’s servants dug a well.
===Covenant with Abimelech
26 Then Abimelech came to him from Gerar with Ahuzzath, his [close friend and confidential] adviser, and Phicol, the commander of his army.
27 Isaac said to them, “Why have you [people] come to me, since you hate me and have sent me away from you?”
28 They said, “We see clearly that the Lord has been with you; so we said, ‘There should now be an oath between us [with a curse for the one who breaks it], that is, between you and us, and let us make a covenant (binding agreement, solemn promise) with you,
29 that you will not harm us, just as we have not touched you and have done nothing but good to you and have sent you away in peace. You are now the blessed and favored of the Lord!’”
30 Then Isaac held a [formal] banquet (covenant feast) for them, and they ate and drank.
31 They got up early in the morning and swore oaths [pledging to do nothing but good to each other]; and Isaac sent them on their way and they left him in peace.
32 Now on the same day, Isaac’s servants came and told him about the well they had dug, saying, “We have found water.”
33 So he named the well [f]Shibah; therefore the name of the city is Beersheba to this day.
34 When Esau was forty years old he married Judith the daughter of Beeri the Hittite, and Basemath the daughter of Elon the Hittite as his wives;
35 and they were a [g]source of grief to [Esau’s parents] Isaac and Rebekah.
===Footnotes
Genesis 26:1 This is not the Abimelech of ch 20. Abimelech may actually be a dynastic title, like Caesar or Pharaoh, instead of a proper name. The events recounted in chapters 20 and 26 are separated by almost a hundred years.
Genesis 26:7 When Abraham used this ploy, it was a half-truth; when Isaac said this it was a complete lie. At this time Isaac was at least seventy-five years old; Rebekah’s age at this time is not known.
Genesis 26:8 The name “Isaac” is based on the Hebrew verb translated “caressing,” whose primary meaning is “to laugh” (cf 17:19).
Genesis 26:22 I.e. broad places.
Genesis 26:22 Lit fruitful.
Genesis 26:33 This could mean “oath” or “overflow, abundance.” Likewise, the name Beersheba could mean “well of abundance,” or “well of the oath,” or “seven wells.”
Genesis 26:35 Lit bitterness of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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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장 (개요)
본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1.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역경에 빠진 이삭.
(1) 이삭은 살던 지역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1).
(2) 그러나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방향을 제시하시고 위로하신다(2-5).
(3) 그는 곤란을 당하자 어리석게도 자기 아내를 부인하는데, 그것 때문에 아비멜렉에게 질책을 듣는다(6-11).
2.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으로 번영하는 이삭(12-14).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한다(14-17).
(2) 그는 자기 일을 근면하게 계속한다(18-23).
(3)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격려하신다. 그리고 이삭은 경건하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24, 25).
(4) 마침내 블레셋 사람들이 그와 더불어 계약을 맺었다(26-33).
(5) 자기의 아들 에서가 받아들이기 힘든 결혼을 하는데, 그것은 재물의 번성으로 얻은 위안에 오점이 되고 만다(3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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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이삭(창 26:1-5)
Ⅰ.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섭리 가운데 이삭을 시험하셨다. 이삭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로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의지하며 지냈다. 그런데 이제 “그 땅에 또 흉년이 들었다”(1절).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식량을 얻지 못할 때 이삭은 그 약속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도대체 그런 조건에서, 그리고 그처럼 오랜 시간 후에, 과연 그 땅은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모든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그 언약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다. 그 가나안 땅 자체가 하찮게 보이면 보일수록 이삭은 그 땅을 더 귀중하게 평가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1. 그 땅을 자기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원한 자비의 표시로 평가할 줄 알게 될 것이다.
2. 하늘나라의 영원한 축복의 한 모형으로 평가하기를 배울 것이다. 어떤 엇갈린 섭리가 있더라도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니고 있는 내적인 가치는 결코 축소시켜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Ⅱ. 하나님께서는 시련 가운데 있는 이삭을 말씀으로 지도하셨다. 이삭은 양식이 부족해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식을 얻으러 어디로든 가야 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런 곤경에 빠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이삭도 애굽으로 가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삭은 그랄로 갔다. 어느 곳이 최선인지 이삭은 틀림없이 심사숙고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하나님께서 은혜롭게도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그런 결정을 하게 하신 것이다. 이삭에게는 참으로 넘치는 만족이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가 있는 곳에 머물라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유하라”고 명령하셨다(2, 3절). 야곱 시절에도 기근이 있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명령하셨다(46:3, 4). 그런데 이삭의 때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때에는 흉년이 들자, 아무 길도 지시하지 않으시고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각기 다른 것은 (애굽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시련과 훈련의 장소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들 세 족장들의 서로 다른 성격 때문일 것이다. 아브라함은 대단히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밀접하게 교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모든 땅, 모든 조건이 동일했다. 이삭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견디는 일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삭을 애굽으로 보내지 않으신 것이다. 야곱은 어떤 고통도 견뎌 낼 수 있는 강하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의 “믿음의 시련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벧전 1:7).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시되 그들의 힘에 맞게 시험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다(3절). 하나님의 복이 우리와 함께하면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복이 우리에게 임하기만 하면 우리는 어디에서나 만족하게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언약을 새롭게 하셨다. 그것은 누누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이다. 즉 가나안 땅과 수많은 자손과 메시아의 약속을 반복하여 인준하신 것이다(3, 4절).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특히 역경에 빠지거나 자기 부정을 하게 되는 경우에, 지금까지 삶을 지탱해 준 약속을 되새겨 보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4.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행한 순종의 훌륭한 모범을 일러주셨다. 그 순종으로 그의 집안에 그 언약이 상속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했다(5절). 너도 그렇게 하라. 그러면 그 약속은 또한 틀림없이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여기에서 크게 칭찬을 받고 있다. 그 순종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훌륭한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아브라함이 복종한 하나님의 뜻을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고 있다(내 말, 내 명령, 내 계명, 내 율례, 내 법도). 이 표현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보편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은 자연의 본래적 법을 지켰고, 하나님의 예배에 관해 계시된 율법에 순종했으며, 특별히 할례의 법에 복종했다. 또한 고향을 떠나야 한다든가, 이삭 자신도 충분히 기억하는 자기 자식을 제사하라든가 하는(어떤 사람은 이 명령은 다른 것보다 더욱 특별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명령에 모두 순종했다. 오직 부모의 순종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만 그 경건한 부모와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의 은총과 복을 받게 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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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부인한 이삭(창 26:6-11)
이삭은 이제 애굽으로 갈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대로 순종하여 자기가 태어난 땅인 그랄에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정착했다(6절). 그러나 그 곳에서 그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그의 훌륭한 아버지도 받았던 유혹, 즉 얼떨결에 자기 아내를 자기 아내라 하지 않고 누이라고 한 유혹과 꼭 같은 것이었다.
Ⅰ. 이삭이 어떻게 범죄했는가(7절). 이삭은 자기 아내가 아리따웠으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를 죽이고 그중 한 사람이 자기 아내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를 그의 누이라고 속였다. 이 훌륭하고 착한 사람들이 어째서 자신은 물론 아내의 덕망도 크게 훼손할 이런 이상한 기만의 죄를 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안다.
1. 대단히 훌륭하고 착한 사람들이 큰 실수와 어리석은 짓을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넘어지지 않게 하자. 또 이미 넘어진 사람들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생각으로 절망하지 않게 하자.
2. 우리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약점과 결점까지도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그들의 탈선한 발자취까지 따라가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잘 지켜야 한다.
Ⅱ. 이삭이 속이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 어떻게 왕에게 발각되었는가? 아비멜렉(아브라함 시대에 있었던 왕과 동일 인물이 아니다. 이 때는 그로부터 거의 100년 후다. 로마 황제들을 시저라고 불렀듯이, 아비멜렉은 블레셋 왕의 공통적인 호칭이었다)은 이삭과 리브가가 남매간보다 더 친밀하고 즐거운 관계임을 보았다(8절). 왕은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서 “껴안고”라는 말은 이삭이라는 그의 이름과 어원이 같은 말이다. 그는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이다(잠 5:18). 그런 관계는 함께 있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즐겁게 하는 관계다. 인간이 가장 허심탄회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자기 아내와 자기 자녀들이다.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순수하게 즐길 수는 없다. 아비멜렉은 이삭의 속임을 비난하고(9절), 그의 변명이 얼마나 천박하며, 그 결과가 얼마나 크게 잘못될 수도 있었는지를 밝힌다(10절). 그러고 나서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이삭의 질투와 편견이 매우 부당하고 근거가 없다는 것을 그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그의 가족을 왕의 특별 보호 아래 두고 이삭이나 리브가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리라고 선언한다(11절).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거짓은 순간적일 뿐이다. 진실은 시간의 딸이다. 즉 시간이 가면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다.
2. 한 죄는 많은 죄의 입구가 된다. 그러므로 죄의 시작을 피해야 한다.
3.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의 죄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4. 하나님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 해도 당신 백성에게 분노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면 생명이 위험할 것임을 알게 하신다(시 105:14, 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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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우물을 판 이삭(창 26:12-25)
Ⅰ.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호의의 징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시고” 번영케 하셨다.
1. 이상할 정도로 이삭의 곡식 수확이 늘었다(12절). 이삭은 자기 땅이 없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의 땅을 취해 파종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대단한 수확의 증가로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이것은 다른 사람의 땅을 얻어서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가난한 소작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삭은 “백 배”나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이 서술은 특별히 그 시기를 강조하는 것 같다. 즉 이삭이 그렇게 많이 수확을 한 때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던 “그 해”였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거둬들이지 못했는데 이삭은 그처럼 많이 거두어들인 것이다.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사 65:13). “저희는 기근의 날에도 풍족하려니와”(시 37:19).
2. 그의 가축도 많이 늘어났다(14절).
3. 그가 고용하고 부린 “노복이 심히 많았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한다”는 것을 기억하자(전 5:11).
Ⅱ. 이삭에 대한 블레셋 사람들의 악의의 징표. 그들은 “그를 시기했다”(14절).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예증한다.
1. 사람이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질투를 받고 비난과 손상을 입게 된다는 사실은 이 세상의 헛됨을 보여 준다.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 27:4; 전 4:4 참조).
2. 인간성의 타락한 상태를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가슴 아파하는 것, 즉 내 이웃이 잘되기 때문에 나는 안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악한 본성이다.
(1)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아버지가 판 우물을 메움으로써 그 집안에 대한 악의를 이미 드러냈다(15절). 이것은 심술궂은 일이다. 자기들에게는 이 우물들의 물을 먹일 가축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우물들을 사용하게 내버려 두기가 싫었던 것이다. 얼마나 부조리한 악의인지 모른다. 이것은 또한 그들이 아브라함과 맺은 친교의 약속과 어긋나며, 신의를 저버린 불신의 짓이었다(21:31, 32). 어떤 동맹도 못된 본성을 억누를 수는 없는 법이다.
(2)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자기 나라에서 쫓아냈다(16, 17절). 왕도 이삭을 질시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삭의 집은 궁궐과 같았고, 이삭의 재산과 종들은 아비멜렉의 재산이나 종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더 멀리 가야 했다. 그들은 이삭의 이웃으로 있는 것에 싫증이 났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복 주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저들도 이삭 덕분에 복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이삭에게 더 머물러 있으라고 간청했어야 했다. 이삭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을 들어서 그들과 맺은 약정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지금 자기가 그 땅을 점유하고 있으며 그 토지를 개량해 많은 수확을 얻게 했다는 사실을 들어 고집하지도 않았다. 이삭은 대단히 위대한 사람이 되었는데도 힘으로 그들과 겨루려 하지도 않았다. 지극히 평화롭게 그 왕도를 떠나 아마 나라 안에서 그보다 못한 곳으로 갔을 것이다. 권익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차라리 권리나 편의를 양보하는 게 좋다는 것을 기억하자. 현명하고 선한 사람은 질시와 악의의 표적이 되어 높이 앉아 있으려 하기보다는 골짜기로 돌아간 이삭과 같이 물러나려 할 것이다.
Ⅲ. 이삭은 자기 일을 조금이라도 바꾸거나 중단하지 않고 항구적이고 지속적으로 했다.
1. 이삭은 집안일을 돌보면서 끊임없이 부지런히 우물을 찾아서 쓸 수 있도록 다시 팠다(18절 이하). 대단한 부자가 되었지만 언제나 이전과 같이 가축의 상태를 돌보았고 여전히 그 가축 무리를 잘 보살폈다. 우리는 위대하게 된 후에 우리는 너무 위대하므로 예전에 하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삭은 이전에 누리던 모든 편의에서 제외되었고, 또 집안 살림을 전처럼 편리하고 유리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자기가 온 이 지방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모든 지각 있는 사람의 태도다.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1)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판 우물들에서 다시 물이 솟아나게 하고(18절)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대로 그 우물들을 불렀다. 진리를 탐구하려면, 즉 생명수가 솟는 우물을 찾으려면 후세의 타락된 여러 현실들 때문에 흐려졌다 해도 이전 세대가 발견한 것을 이용하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을 명심하자. 옛길, 곧 우리 선조들이 파 놓았으나 지금은 진리의 적들이 묻어 버린 그 우물을 찾자.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2) 이삭의 종들은 새 우물을 팠다(19절). 이전 세대의 빛을 이용하기는 해야 하지만, 이것은 그 빛에 안주하고 한 발자국도 더 전진하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우리는 선조가 세운 기초 위에 계속 건축을 해 나가야 한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3) 우물을 파면서 이삭은 많은 방해에 부딪혔다(20, 21절). 진리의 우물을 판 사람들은 반대에 직면하리라는 예상을 해야 한다. 처음에 판 두 우물을 에섹, 그리고 싯나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다툼, 그리고 대적함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① 세상적인 일의 본성이다. 모두가 노하게 하는 것, 싸움의 기회가 바로 세상적인 일의 본성이다.
② 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평화적인 사람도 때로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것이다. 싸움을 피하려고 하지만 싸움에 개입될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시 120:7).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다툼의 사람이었고(렘 15:10), 평화의 왕이셨던 그리스도 자신도 그러하셨다.
③ 얻으려는 싸움을 하지 않고도 물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이에게 주시는 은혜일수록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더욱 감사해야 한다.
④ 평화롭게 살겠다고 하는 원칙을 지켜서 마침내 이삭은, 평화를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기가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싸움을 피해 조용한 정착지로 이사했다(시 120:6). 승리보다는 평온을 택했던 것이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다”(22절).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지금 평화롭지 못하더라도 조만간 평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평화로움을 원하는 사람들은 평화롭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옳든 그르든 온 세상에 대해서 자기 주장만 하던 이스마엘과 비교해 볼 때 이삭은 얼마나 다른 사람이었는가!(16:12) 우리는 누구를 본받아야 할 것인가. 이 우물은 르호봇 곧 넓음이라고 불렸다. 장소가 넉넉하다는 뜻이다. 이전의 두 우물을 통해서는 이 세상에 다툼과 대적함밖에 없음을 보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인간은 번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우물은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 준다. 하늘나라는 넓음과 평화다. 공간이 충분하다. 그 곳에는 거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2. 이삭은 자기의 신앙을 끊임없이 지키고 하나님과 친교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1) 자비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나타나셨다(24절).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내쫓아, 여기저기로 옮겨 다닐 수밖에 없도록 하고 끊임없이 이삭을 괴롭히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시어 그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새롭게 해 주신 것이다. 인간은 거짓되고 불친절하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고 은혜가 충만하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에게 지니고 있던 기대가 모두 무너지고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신다.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갔다(23절). 아마 이삭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처지가 괴로웠는지도 모른다. 이삭은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숱한 생각에 시달리면서 지치고 힘겨운 마음으로 브엘세바에 올라온 바로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영혼을 즐겁게 해 주시려고 위로와 복을 내리신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그 곳에서 평안히 쉬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 하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위로를 받으며 이동할 수 있다.
(2) 이삭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25절). 다음을 명심하자.
①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신앙을 함께 지니고 가야 한다. 아마 이삭이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일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어서, 이삭을 더 괴롭히도록 자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의무를 이행함으로 어떤 악의를 당한다 해도 의무를 다했다.
②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지속될 수 있는 봉헌을 하도록 자신을 자극하고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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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창 26:26-33)
여기에서 우리는 행복한 평화와 화해의 결과를 얻은 이삭과 블레셋 사람의 논의를 볼 수 있다.
Ⅰ. 아비멜렉은 존경하는 표시로 이삭을 친선 방문했다(26절).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모든 왕의 마음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그 왕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을 백성들이 사랑하게 하실 수가 있다.
Ⅱ. 이삭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이런 방문을 한 아비멜렉의 진실성을 타진했다(27절). 서로 우의를 맺고 상통하려면 비둘기의 순결뿐만 아니라 뱀의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가 받은 권리 침해에 대한 인식을 강하게 하는 것과 우리에게 부당한 짓을 한 자들과 교제를 조심스럽게 하는 것은 온유와 사랑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 분명히 아니다.
Ⅲ. 아비멜렉은 이번 방문 인사에서 자신의 성실함을 고백하고, 이삭의 우정을 진지하게 요구했다(28, 29절). 이는 이삭이 점점 부자가 되자 언젠가는 자기가 받은 손상을 복수할지도 모르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더불어 동맹을 맺자고 강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순수하게 사랑의 원리에 입각해서 이삭에게 화해하고 지내자고 호소한 것이다.
1. 아비멜렉은 이삭에 대한 최선의 태도를 취했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하여 떠나가게 한” 것을 불평했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가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그들은 이삭이 자기들 가운데 차지하고 있던 땅에서 이삭을 쫓아냈다. 그러나 이삭이 재산과 모든 가재 도구는 가지고 떠나게 했다.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손상을 줄일 필요가 있다. 손상이 커질수록 불화가 더하고 커질 뿐이다. 우리에게 악하게 대한 이들은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질 것이다.
2.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사랑하시는 표징을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이삭과 맹약하기를 바랐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고,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그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네게 입힌 모든 해를 간과해 달라. 하나님께서 네가 받은 해를 풍족하게 채워 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사랑을 받은 사람은 자기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최악의 적이라 해도 참으로 그에게 손상을 입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는 이런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과 우정을 맺기를 바란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으며 교제를 하는 사람과 계약을 맺고 교제를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임을 알자(요일 1:3; 슥 8:23).
3. 아비멜렉은 지금 자기가 하는 말이 충분히 생각한 결과임을 확신시켰다.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심술궂고 질투심 많은 신하들이 아무리 달리 행동하더라도 아비멜렉과 그와 함께 온 군대장관은 간곡한 우정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해를 입히지 말라고 하나님이 자기 조상들에게 하신 경고를(20:7) 전승을 통해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이삭을 경외하게 되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큰 은총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Ⅳ. 이삭은 아비멜렉과 그 일행을 환대하고 아비멜렉과 우호동맹을 맺었다(30, 31절). 여기에서 그 선한 이삭이 얼마나 관대한지 살펴보자.
1. 이삭은 인색하지 않고 너그러웠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환대했다.
2. 이삭은 너그럽게 용서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에게 행한 불친절을 기억해 내서 그것을 역설하지 않았다. 아무 부담 없이 홀가분하게 그들과 우호동맹을 맺고, 스스로 그들에게 아무 손상도 주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것이다.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이웃과 친절하게 살 것을, 즉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롬 12:18) 가르친다는 것을 기억하자.
Ⅴ. 하나님의 섭리는 이삭이 한 행위에 대해 미소를 지으셨다. 이삭이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은 바로 그 날 이삭의 종들은 새로 찾은 우물에 대한 기쁜 소식을 가져왔다(32, 33절). 그는 우정의 약속이 깨지지 않도록, 블레셋 사람들이 부당하게 빼앗은 우물을 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으며, 손해를 보면서도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대한 보상으로 즉각 새 우물을 얻어 부유하게 된 것이다. 이삭은 새 우물을 브엘세바, 즉 맹세의 우물이라 불렀다. 그 날 일어난 일에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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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가 된 결혼(창 26:34-35)
Ⅰ. 에서는 어리석은 결혼을 했다. 에서가 아내를 두 명 취했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에서는 “음행하는 자”(히 12:16)라고 불렸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브라함의 복의 대상이 아닌 이방인이며, 노아의 저주를 받은 가나안 사람과 결혼했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망령된 자”라고 불렸는지도 모른다. 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바라지도 않았으며, 하나님의 저주를 두려워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Ⅱ. 이와 같은 에서의 결혼은 착하고 온유한 부모의 마음에 슬픔과 괴로움을 주었다.
1. 에서가 부모와 전혀 상의하지 않고, 적어도 부모의 충고나 동의 없이 결혼을 한 것이 부모를 슬프게 했다. 자기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부모를 경멸하거나 거스르는 자녀들은 누구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인지 깨달으라.
2. 에서가 신앙이 없는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한 것이 부모를 슬프게 했다. 이삭은 결코 가나안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신 자기 아버지의 염려를 기억했기 때문이다.
3. 에서와 결혼한 아내들이 이삭과 리브가에게 불경스럽게 행동한 것 같다. 인자한 부모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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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이삭이 그랄에 우거함
[1-2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었는데, 이삭 때에 또 흉년이 들었다. 땅의 흉년은 주로 하나님의 징벌로 온다. 그것은 사람들의 도덕성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 짓기를 두려워하고 양심의 각성을 가진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땅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사 45:7).
하나님께서는 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듯이(창 12:7; 15:1; 17:1; 18:1) 이삭에게도 나타나셨다. 그는 아마 꿈이나 환상 중에 나타나셨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이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기록이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이삭이 가나안 땅에 머무는 것이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이다. 창세기 12:7,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3:14-15; 17:8).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그 땅에 머물러야 하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아야 했다.
[3-5절]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이 땅에 유하라.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 이는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며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며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임이니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이 땅에 유하라”고 다시 반복해 말씀하신 후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항상 복되다. 후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었다(창 39:2-3, 23).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하는 복이 무엇인지 다시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그 부친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번성케 되어 이 모든 가나안 땅을 그와 그 자손들이 얻으며 그 자손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메시아 약속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복을 약속하셨던 것은 그가 그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었다. 불순종 곧 죄는 징벌과 재앙의 원인이지만,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얻는 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는 평안과 형통을 얻는다.
[6-8절]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삭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에 거하였다. 그랄은 가나안 땅의 남서쪽의 해안 지역이다. 이삭은 믿음이 있는 자요 순종하는 자이었다.
이삭은 그곳에 거할 때에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해 묻자 그가 나의 누이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그의 아내 리브가가 보기에 아름다우므로 그곳 사람들이 리브가로 인해 그를 죽일까봐 그의 아내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처럼 인간적으로 연약하였다.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공통적 감정인 것 같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이 이런 연약함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삭이 그랄 땅에 오래 거하였는데, 어느 날 그가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보았다. ‘껴안다’는 원어(메차케크 )는 ‘놀다, 장난치다, 껴안다’는 뜻을 가진다. 이삭은 그 아내 리브가를 간격 없이 친하게 대하며 사랑하였다. 그의 친근한 사랑은 바깥에서도 드러날 정도이었다. 부부는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부부는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한다.
[9-11절]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아비멜렉이 가로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 뻔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아비멜렉은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 뻔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고 말했다. 이방 세계에도 부모 공경이나 살인과 간음과 도적질의 금지 등 약간의 도덕성이 있다. 그것은 양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사회 질서를 유지시킨다. 불완전하지만, 세속 정부의 역할은 바로 그런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삭을 지켜주셨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되게 해주셨다.
[12-15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종들]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물질적 복도 하나님의 복이다. 물론 하나님의 복은 물질적 복 이상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구원의 복, 즉 죄사함과 영생과 천국의 복이지만, 물질적 복도 그의 복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양과 소가 떼를 이루었고 종들도 심히 많았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시기했다. 그들은 그의 부친 아브라함 때에 그 종들이 판 모든 우물들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 옛 시대에 우물은 생활의 기본적 요소인데 그것을 방해하였던 것이다.
사람 속에는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부패된 인간 본성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때때로 신자들 속에도 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어떤 이들이 투기와 분쟁의 마음으로 전도한다고 증거하였다(빌 1:15). 또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빌 2:2-3).
[16-22절]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 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옛 시대에 우물 하나를 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이웃 사람들이 다툼을 걸어올 때 그것을 피하였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파는 일을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삭의 온유함과 인내심을 본다. 참된 경건은 선하고 온유한 성품을 동반한다. 성도는 할 수 있는 대로 남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
[23-25절]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하나님께서는 브엘세바에서 밤에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전과 같이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은 거기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런 행위는 이삭의 경건함을 증거한다. 그는 그의 부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단을 쌓는 자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며 기도하는 자이었다.
[26-29절]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로 계약을 맺자”고 제안하였고 또 그에게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이방인 아비멜렉이 이삭에 대해 증거한 놀라운 증거이었다. 하나님의 사람 이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에게도 선한 증거를 받은 자이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본이 된다.
[30-33절]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창 35:20; 47:26) 브엘세바더라.
이삭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고 그들은 먹고 마시며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평안히 돌아갔다. 그날에 이삭의 종들은 이삭에게 와서 자기들이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다고 말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34-35절]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모라스 루아크 )[영(심령)의 고통]이 되었더라.
에서의 아내들은 이삭과 리브가의 심령에 근심이 되었다. 그 자부들에게는 경건과 도덕성이 없었을 것이다.
창세기 26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흉년 때에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참 교회에 속해야 한다. 이 세상은 죄로 인해 멸망할 세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성도에게도 때때로 어려운 일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다면,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다고 세상으로 돌아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교회 안에, 성경적 믿음과 바른 삶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회복을 기도하며 참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복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위험한 환경에서도 그의 아내를 지켜주셨고 물질적 복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천국과 영생의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내세의 복뿐 아니라, 현세의 복도 포함한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마 6:33, 전통본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은 믿음과 계명 순종으로 사는 것을 말하며, ‘이 모든 것’이란 의식주의 필요를 말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 사는 데 필요한 것들도 주신다. 사도 바울은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했다(딤전 4:8).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우고 기도하기를 힘쓰면 내세의 구원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건강과 물질적 여유와 평안의 복도 얻는다.
셋째로,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온유해야 한다.
이삭은 그랄 사람들이 자기의 우물들을 메우며 빼앗을 때 온유함으로 양보하며 참았다. 온유와 양보는 성도들의 중요한 덕이다. 로마서 12:17-18,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빌립보서 4:5, “너희 관용[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야고보서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넷째로,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
이삭은 이방인인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도다,” “너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니라”는 선한 증거의 말을 들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서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의 장로가 될 자격자는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했다(딤전 3:7). 사도 베드로는 교훈하기를,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고 했다(벧전 3:1-2). 믿지 않는 남편을 둔 믿는 아내는 그 남편에게 선한 행위를 보임으로써 그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교우들과 이웃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는 선한 증거를 듣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장자권이란 절대적으로 이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단체적 표현을 위하여 꼭 있어야 할 바, [*1)제사장 직분] Q의 형상과 표현으로서의 제사장, [*2)왕적 직분]Q을 대표하며 다스리고 통치하는 <의와 평강의> 왕, [*3)Q의 아들, Q의 왕자<영적 이스라엘>의 명분]후사, 곧 Q의 기업을 받고 누리는 후사 곧 상속자로서의 권한이다...*1)과*2)는 천년왕국에서의 꽃 피울 직분이며<물론 맏물이신 HS처럼,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땅에서도 맛볼 수 있다>, *3)은 당장 이 땅에서부터 누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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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믿는이가 추구할 바는 종교인이 되고자 함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감동, 그 임재를 따라 자유로이 주님이 베푸시는 다함 없는 은혜를 누리며 <나는 날마다 죽노라...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이라>..그 말씀 안의 자유로운 생명의 성령과 함께 동행함으로써 주님의 영원목적을 지향하는 성숙한 생명으로 살며,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임에 주의하라..
...하나님의 은혜 누림은 우리의 종교적인 그 어떠함에 달려 있지 않음을 반드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종교적 관념에 따르면((종교적 관념이란, 구태여 정의해 보자면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지 않은 그 어떤 진리 비슷해 보이는 것을 슬쩍 진리 사이에다 끼워 넣는 것을 의미한다.....한 번 대적이 이런 쓰레기를 우리 지식 속에 주입하게 되면 그것을 축출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게 된다)) ..천연적 결함이 있는 자는 은혜에서 끊어짐이 마땅하다고 보지만(천연적 결함이 없는 분은 오직JC뿐이셨다), 결과적으로 이 견해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크기에 대한 편견-오해-무지로부터 온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천연적 결함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는 그렇게 또렷하게 지각할 수 없으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도드라져 보이고 그렇게 그의 결점으로서 느껴지는 법이다.....그러나, 보라, 베드로-바울-요한 모두 천연적인 결점들을 제각각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은혜를 누렸고 맡은 사역도 잘 감당해 나갔으며, 그들의 결점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러므로 <그대에 대해서나 형제자매들에 대해서나 종교적 관념을 따라서 [판단하고 비난/정죄함으로써] 은혜의 누림을 막지 말고> 다만, 우리의 천연적 결점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은혜 누리기에 더 담대할 필요가 있다!!
....이삭은 맨처음 브엘세바에 살았었다...그러다가 모친 사라의 장례를 치른 후 어느 시점에 아래 남쪽 애굽에 가까운 브엘라해로이까지 내려갔었다가 다시 브엘세바로 올라와서 리브가를 맞이했고, 아브라함의 그두라와의 재혼을 계기로 브엘라해로이로 내려갔으며, 아브라함의 사후에는 완전히 그곳에 정착해버리고 있다.....하나님의 목적은 그분의 택한 백성들이 좋은 땅(=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곱급과 간증 나눔 통한 번성의 교회생활을 의미하는 브엘세바 혹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지속함의 의미를 가진 헤브론, 혹은 모리아 산)에 머무는 것인데 주의 백성이 약할때 위쪽인 북쪽으로 상향 이동하는 예를 단 한 번도 찾을 수 없고, 가장 나쁜 것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처음엔 애굽, 그 다음은 블레셋 땅 그랄까지만 갔고, 이삭은 애굽으로 가려다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명하셨는데, 실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그곳은 바로 브엘세바였음이 뒤에 드러나고 있다. 비록 이삭은 정확히 바른 장소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가는 곳마다 주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평안을 가졌다...이삭은 바른 장소에 머무르지는 않았고, 아브라함이 했던 대로 그의 아네를 희생시키는 거짓말을 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주권적 돌보심은 그의 아내를 보호했고 그에게 돌려보내도록 역사했다..
....이삭은 천연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천연적 생명으로 여전히 살았다(천연적 생명이란 천연적인 끌림따라 행함, 곧 천연적인 기호에 따른 편애가 그것의 방증이다...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다....이것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한 것과 똑 같다)...물론 결혼 후 20여년이 지난 시점에 이삭이 기도하여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을 얻게 되었지만....이는 일부러 죄 짓는 생활은 아니지만 천연적인 생활을 낳는다...이삭과 리브가 둘 다 천연적으로 살았기에 비록 은혜는 누렸지만 그의 삶에는 고통이 있었으며 실지로 고통 받았다. 그래서 에서의 아내들이 그들에게는 [영의 괴로움....마음에 근심]이 되었다.....또한, 리브가는 이삭에게 <그녀의 근심하는 바, 곧 에서로부터 위해 당할 가능성때문에>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서 멀리 보내자는 것이라 솔직히 털어놓고 상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에서의 아내들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가 당하는 것과 같은 영의 괴로움을 야곱의 아내로부터는 받지 않도록 합당한 아내를 얻기 위해서라도 멀리 보낼 필요가 있다고 <그럴듯 하게 포장하여> 거짓말 하고 있음을 보라..
....[입술로 하는 말과 심중에 품은 뜻, 곧 말하는 목적에 있어서 <숨겨진 목적이 있어서> 일치가, 곧 언행일치와 함께 언행심사의 일치를 정직함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 즉, 일면 사실이지만 일면 위장, 곧 거짓말인 것은 주님 보시기에는 교묘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즉, 흔히 회자되는 말 중에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은 주 보시기에 거짓된 자들의 언행심사, 곧 표리부동<겉 다르고 속 다름>이다!!...동전의 양면은 각각의 면마다 새겨지도록 정한 진실 그대로를 새겨야 하고 그대로 드러내어야 진짜 동전인 것이지 한 면만 그러하고 다른 면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인가가 어긋나고 부족하기에 쓰임새에 적합하지 못한 것, 위조--모조-불량품으로 구분되어 통용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며 다시 제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야곱이 첫째가 되도록 하나님이 그리 정하셨기에 리브가는 야곱에 대해 스스로 도울 필요가 없었다>...야곱이 축복 받기를 원했던 리브가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도록) 빼앗는 기술을 야곱에게 가르쳤고 야곱은 라반에게 리브가에게 배운바 그 속임수 기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런데...그 결과 리브가는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돌아오기전에 죽었으리라고 추정하는 바] 그 속임수 때문에 아들 야곱을 잃는다....실은, 속이는 모든 가정은 스스로 속임이 되어 결국 그 가정의 모든 이들이 속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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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생애 중 다루심이라 할만한 사건들..*1.에서의 <자의적>결혼 *2.야곱의 하란 도피 *3.리브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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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4:6하-7]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NASB]*6.Then the LORD passed by in front of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compassionate and gracious,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ingkindness and truth; *7.who keeps lovingkindness for thousands, who forgives iniquity, transgression and sin; yet He will by no means((결코~하지 않는)) leave [the guilty] unpunished, visiting the iniquity of fathers on the children and on the grandchildren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s. ".....[AMP] *6. Then the Lord passed by in front of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compassionate and gracious, slow to anger, and abounding in lovingkindness and truth (faithfulness); *7. keeping mercy and lovingkindness for thousand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and sin; but He will by no means leave the guilty unpunished, visiting (avenging) the iniquity (sin, guilt) of the fathers upon the children and the grandchildren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s [that is, calling the children to account for the sins of their fa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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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라훔> : merciful-compassionate, 너그러우시고 진복 누림 없는 자를 애틋하게 불쌍히 여겨 아끼는, 도와 일으켜 주시는 <사랑>
긍휼<라함, 헬.엘레오스, 스플랑크논> : mercy, kindness..명사 엘레오스(Homer 이래)는 '자비, 불쌍히 여김, 동정'을 의미한다. *같은 자궁의 태에서 나온 자들간의 상호 사랑과 이해-연민-도움 *젖먹이에 대한 어머니의 애끓는 사랑, *친밀한 부자간의 애틋한 사랑...의-인-신 중에서 <인>에 속하는 자비 가득한 사랑.긍휼의 실행은 구제와 자선으로 나타남....헬라어에서 엘레오스는 하나의 파도스(pavqo", 3806), 곧 다른 사람들이 부당하게 당하는 고통에 의해 생겨나고 자비 뿐만 아니라 두려움의 요소를 포함하는 감정이다.
은혜<한눈> : gracious. 조건없이 친절하게, 주님의 가진 것(기업의 풍성-부요-충만) 모두 아낌없이 내어주어 <영육간에> 주님의 그 풍성을 누리게 하심
인자<헤세드> : lovingkindness, steadfast love.친절-자비-자애....다함 없는, 언약적 사랑
진실<에메트> : truth, 신실-성실-확실함, 진리
용서<나사> : forgives iniquity, transgression and sin (자복하는 자의) 죄짐을 제거하다 ....면죄하다 : <참회하는 죄인의 죄를>사면하다.
보응하다<파카드> : visit A upon B..<죄를 간과함 없이> 계수하고 세며 방문하여 갚다/조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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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헨> : favor, grace...호의, 은총, 은혜, 매력, 아름다움...<주께 합당한 믿음을 발휘함으로써> 하나님 마음을 알아드리는 자녀마다 이 [그렇게 특별히 여겨 아껴주시며 돌보시며 베풀어 주시는]주권적 은혜의 특별한 혜택 누리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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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3:23 ...율법의 더 중한 바 의(크리시스...정의와 공의)와 인(엘레오스..자비와 긍휼,인자)과 신(피스티스....신앙)은 버렸도다 =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미6: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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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말씀 곧 영과 생명 삶 안의 [하나님을 참되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롭다 하심<의로 여겨주심..= 주님의 짝으로 합당하다<의롭다> 인쳐주심 = 의인> 통해 주님과의 <마음 알아드리고 편케 해 드림의> (헤브론의)교통 안으로 들어감
-->[아브라함의 믿음 안에서 그의 의인을 새로이 물려받은 이삭은 이제 주께서 아낌없이 열어주신 바 Q의 기업의 풍성 , 곧 영과 생명 말씀 안의, 말씀 약속 의지하고 붙들고 신뢰함으로써 한량 없는 은혜 누림 가운데 머무름
-->그러나, 진정한 참 생명의 영적 장자권(=이것의 완성이 바로 Q의 완전한 영원목적 증거함의, 증거궤의 반쪽/그리스도 신부됨/어린양의 아내됨에 합당한 준비됨)은, 3가지 방면에서 모두 참되게 드러나야 하는 바, Q의 기업(Q나라의 풍성부요충만)에의 [Q자녀로서의 직분]참여와 누림<이삭의 은혜 누림> 방면에 더하여 Q의 형상<어떠하심의 영광에로의 =그리스도 빼어닮음=변화>을 표현함의 제사장 직분<생명의 표현 + 중재/축복> 방면 + 영원무궁하신 Q의 실제적 (지고지선으로 사랑으로 섬기는 선한)통치와 다스리심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왕의 직분<의와 평강의 하나님의 다스림 공급>의 방면이 더해져야 [영광의 소망이 완성되는데], 이 <왕적 직분에 합당함>를 위해 주님의 주권에 절대 의지하고 순복하며 사랑으로 앙망함의 수동적 관상 통해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상호거함 실행 통해 인도하시는 바, 여기에 더하여 언제 어디서나 함께 계심(임마누엘) 인해 왕이신 그분의 성품에로의 변화를 위한 연단<다루심...기꺼이!! 영광의 소망을 바라고 즐거워 함으로써 이끄시는 그대로 순종하여 들어가는 훈련학교...천연적인 타고난 영리함-모든 육적 행위들, 곧 섣부르게 짐짓 추정/자행자지함의 행위-위장/사기/속임/거짓말의 옛습관 처리하고 오직 정의와 공의, 곧 솔직 정직함으로 살기를 배움>의 과정이 필요한 것... 생명 삶 안의 이 두 방면은 야곱의 축복 + (야곱 안에 포함된) 요셉의 선한 다스림으로 완성됨을 보여준다.
***[ 의와 평강 공급하며 섬기는] 왕의 직분...참되게 구주 믿는이라면 누구나 왕에로의 변화 과정 안에 있게 됨.
<이를 위해서는 개인주의/이기주의적 모든 천연적 영리함과 육적 기호/선호/편견/섣부름/자행자지함이 처리되어야 하며 오로지 선하신 YHWH의 성품과 패러다임, 그 새로운 영광의 반사/반영, 공급 통로에 합당한 날마다 더욱 더 새로움의 <성령의 9열매>의 사람이라야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