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3장.
@축복을 받았으되 자아와 천연적인 힘을 여전히 의지하는 경향 인해 받은 축복이 내적 은혜로,변화되지는 못하고 있음 = <주님이면 충분합니다>의 충족감은 아직 없고 여전히 무엇인가 결여된 허전한 느낌, 이로 인해 그두라와 재혼하는 것 아닐까, 이삭은 모친 사라를 여읜 큰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이제 아내 리브가를 얻고 예비하신 은혜 누림의 삶 안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갈망하시는 하나님 형상 표현 하니님을 대표함 영적 후사와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기업 받음과 [참생명의 성장성숙위해 필요한 다루심과 연단 거쳐 낳은 바 된 거듭난 생명으로 변화된 관리-성김의 청지기로 살아감 통해 새예루살렘 오게 함이 남아있음은 아직 모르고 있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_6)
.. 브엘세바에서 태어나서 Abr과 함께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 심고 제단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엘올람 그 이름 부르며 살던 중, (이미 엘로힘 여호와 엘로이 엘 엘룐 횃불언약 할례언약 엘 샤다이 를 잘 배워 그 깊은 의미를 잘 알고 부르고 있었던 이삭, 만20~25세에 모리아 산의 희생제사 통해 이삭을 가져가신 주님 임마누엘 여호와 이레 이심을 알게 하셨고, 약12년이 경과한 지금 이제는 <그토록 의지하던!> 사라를 Abr과 이삭으로부터 데려가심... 이 때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음...
.. 오직 부모형제자매 남편아내에게 먼저 최우선적으로 권할 바, 순전한 믿음이란 오직 그리스도만 절대적으로 위하며 그분만 남도록 모든 것 내어드리고 그분 외에는,(자기가 위하여 살아온 모든 것을 포함하여 자기에게 모든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던 것조차) 모든 것을 상대화 하여 언제든지 떠나보낼 마음 준비를 햐고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음(이것이 바로 죽을 것 같은 모든 고통과 상실감 가운데서도 <나는 날마다.죽노라....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의 감사로 피어나고 ...그 때에야 비로소 매일 매일 그 날이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랑할 수 있음.
**창23장에서 살펴봐야 하는 초점들
===1) 첫째 초점은 사라의 매장지 = 브엘세바<지역교회를 표상>에서 모리아 산<새 예루살렘을 표상>으로 가는 도중의 지점, [하나님과의 교통 +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의 뜻을 의미하는] 헤브론의 막벨라 굴[= "이중의, 두 배의...곧 한 쌍씩"이라는 뜻...영원한 기초가 있는 새 예루살렘성으로 인도하는 그 성문으로 여겼음....생명의 장소로서 단지 일시적으로 쉬는 곳]에 있음<합당한 그 값을 확실히 치르고 아브라함의 소유 삼은 곳임>..차후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야곱, 레아도 묻힌 곳!!......아브라함-이삭-야곱의 이름은 부활생명의 하나님의 신성한 칭호를 구성한다!!(마22 : 32)....또한 에브론의 소유인 <흘러다니는 나무(유목)들이 심겨진>밭, 그 밭의 머리에(..실은 끝에...the end of the field) 있었다...밭은 생명의 성장, 곧 부활을 의미한다.
**둘째 초점은 새 예루살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 역할.... 이삭 출생(창21) 후 37년간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나 단지 네가지, 이삭 출생, 브엘세바의 (교회)생활, 이삭 드림, 사라의 죽음과 장사 만을 기록하고 있다...
**세째 초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그토록 사랑하는 <이삭보다 더 사랑했음> 사라, 가정 행복의 중심 요인인, 아브라함의 그토록 아끼는 사라를, 마지막 남은 육적인 그 어떤 것을 가져가심을( = 희생으로 요구하심 ) 통해서 암시하는 바가 무엇일까.
... 믿는이는 마땅히 이 땅에서 [진정한 주 앞에 선 단독자로서 <영원한 거처를 찾는> 나그네 생활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브라함은 그의 거처에 관심 두지 않았고 오직 그 언제나 이동 가능한 장막을 지었고, 동시에 제단을 쌓았다!!] ...주님이 은연중 드러내시는 그 의중은 어쩌면 그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추구할 바 하나님 누림의 절대적 복락, 그기쁨을 모른다면 인생의 그어떤 상대적인 행복 누림의 실제도 퇴색된다 하심 아닐까.
....보라, 이제 아브라함은 사라가 127세에 죽고 난 후 38년간 사라의 도움 없이 살게 된다... 38이란 숫자는 (허송세월의 방황/방랑으로 인한)고통-시련-시험의 숫자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다. [물론, 40이라는 숫자도 시련-유혹-시험을 의미한다....2년<유의미..출애굽에서 가나안 정탐 보고 시점까지> + 38년<무의미..광야의 방랑 기간> =40]... 또한 [막대한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사들였다!!!.....이것은 부활 소망의 믿음으로 올인했음을 의미한다] 은 사백 세겔을 주고 막벨라 굴은 매입한다... 40의 열 배... 곧 [노경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사라를 먼저 장사하는 것은 그 자체가 극한 고통과 깊은 상처였던 바, 그것은 시험-시련-고통이었음을 시사한다.
**네째 초점, 이 시점의 아브라함을 헷족속은 주Lord, 방백mighty Prince라 칭하고 있다.
.... 방백이란 단어에서 쓰인 바 might<강력한>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에서는 오직 하나님께만 쓰였음을 기억하라...이 시점에 이르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왕자로서 하나님을 표현했고, 방백으로서 존경 받았다. 아브라함 자신이 보기에는 그저 한 명의 보잘 것 없는 나그네였고 (또한 스스로 결코 자신을 높인 적 없이) 평범하면서도 정상적인 생활인으로서 다른 이들을 합당하게 존중하고 존경하면서, 주께서 열어주신 바 매우 명료한 안목으로 현명한 사귐과 <손해를 기꺼이 감수할 지언정>일절 정직함으로 대함의, 참된 온유와 겸손함 안에 살고 있었으나 사람들의 눈에 그는 방백이었고 하나님의 왕자였던 바, 그는 정말 <무게가 있는, 마음 중심이 주께 고정된 바> 장중한 사람이었다.....이것은 <아브라함이 경험하여 가진 바, 거기에 계시며 말씀하시는 분, 여호와의 이름 엘 올람을 부르면 부를수록 그만큼 더 더욱 그분 성분의 어떠하심으로 주입되어 변화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사라의 죽음을 계기로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주..(이삭은 주로 브엘라해로이에 거주했었던듯 함)... 사라 사후 3년째인 40세에 브엘라헤로이에서 리브가와 겷혼, (아브라함은 사라 장례 직후인 137세에 그두라와 재혼, 헤브론에 거주), 그 이후 이삭은 주로 헤브론과 브엘라헤로이를 왕래하며 거주한 것 같고(이때 결혼 20년만인 60세에 브엘라해로이에서 에서-야곱 형제를 낳음), 175세인 아브라함의 사후 이삭은 브엘라헤로이로 내려가서 완전히 정착(이삭 75세)....가나안 땅의 2차 기근으로 인해 그랄로 이동...그후 그랄골짜기를 거쳐서 7번씩이나 이동하며 샘을 팠고(1,2번째는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 3째 에섹, 4째 싯나 5째 르호봇, 6째와 7째는 브엘세바에서 팠음).. 결국 브엘세바(이삭에게도 아브라함에게서도 믿는자의 거할 바 가장 합당한 곳으로 여기심 인해 동일하게 주님이 나타나심)로 이동, 정착하게 됨..그후 헤브론으로 이주하여 생을 마감함.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다
1. [314내구주예수를더욱사랑 496새벽부터우리사랑]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3년 뒤인 40세에 이삭 결혼...브엘세바 혹은 헤브론의 모친의 장막에서..))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2.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 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4.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 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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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and Burial of Sarah.23.
1 Sarah lived a hundred and twenty-seven years; this was the length of the life of Sarah.
2 Sarah died in Kiriath-arba [a](that is, Hebron) in the land of Canaan, and Abraham went to mourn for Sarah and to weep for her.
3 Then Abraham stood up before his dead [wife’s body], and spoke to the [b]sons of Heth (Hittites), saying,
4 “I am a stranger and a sojourner (resident alien) among you; give (sell) me property for a burial place among you so that I may bury my dead [in the proper manner].”
5 The Hittites replied to Abraham,
6 “Listen to us, my lord; you are a prince of God [a mighty prince] among us; bury your dead in the choicest of our graves; none of us will refuse you his grave or hinder you from burying your dead [wife].”
7 So Abraham stood up and bowed to the people of the land, the Hittites.
8 And Abraham said to them, “If you are willing to grant my dead a [proper] burial, listen to me, and plead with Ephron the son of Zohar for me,
9 so that he may give (sell) me the cave of Machpelah which he owns—it is at the end of his field; let him give it to me here in your presence for the full price as a burial site [which I may keep forever among you].”
10 Now Ephron was present there among the sons of Heth; so within the hearing of all the sons of Heth and all who were entering the gate of his city, Ephron the Hittite answered Abraham, saying,
11 “No, my lord, hear me; I [c]give you the [entire] field, and I also give you the cave that is in it. In the presence of the men of my people I give (sell) it to you; bury your dead [there].”
12 Then Abraham bowed down before the people of the land.
13 He said to Ephron in the presence of the people of the land, “If you will only please listen to me and accept my offer. I will give you the price of the field; accept it from me and I will bury my dead there.”
14 Ephron replied to Abraham,
15 “My lord, listen to me. The land [you seek] is worth four hundred shekels of silver; what is that between you and me? So bury your dead.”
16 So Abraham listened to Ephron [and agreed to his terms]; and he weighed out for Ephron the [amount of] silver which he had named in the hearing of the Hittites: four hundred shekels of silver, according to the weights current among the merchants.
17 So the field of Ephron in Machpelah, which was to the east of Mamre (Hebron)—the field and the cave which was in it, and all the trees that were in the field and in all its borders around it—were deeded over [legally]
18 to Abraham as his possession in the presence of the Hittites, before all who were entering at the gate of his city.
19 After this, Abraham buried Sarah his wife in the cave of the field of [d]Machpelah to the east of Mamre (that is, Hebron) in the land of Canaan.
20 The field and the cave in it were deeded over to Abraham by the Hittites as a [permanent] possession and burial place.
===Footnotes
Genesis 23:2 This comment indicates that the text was written at a very early date, before Israel entered the promised land, because afterward Hebron was well known. Not only was it conspicuous in Joshua’s and Caleb’s day, but it became a “city of refuge.” Besides all this, David was king in Hebron for seven years.
Genesis 23:3 The Hittites, along with the Egyptians and the Assyrians, were among the great powers in the ancient Middle East. They were famous for their fine horses, many of which were acquired by Solomon through trade. They also discovered and held secret the process of smelting iron when iron was treasured almost as much as gold. These Hittites were of Indo-European origin. The relationship, if any, between these Anatolian Hittites and the descendants of Canaan’s son, Heth, is unclear.
Genesis 23:11 This was not an offer to give the land to Abraham as a gift, but part of the negotiating process of the time.
Genesis 23:19 Here were buried Abraham and Sarah, Isaac and Rebekah, and Jacob and Leah (Gen 49:31; 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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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3장 (개요)
본 장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곡한다(1, 2).
2. 아브라함이 사라의 장지를 사들인다.
(1) 아브라함이 장지를 팔 것을 겸손하게 청한다(3, 4).
(2) 깊은 상호 겸양과 존중으로, 아름다운 거래를 하고 합의를 본다
(5-16).
(3) 장지의 값을 치른다(16).
(4) 토지를 양도받고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인한다(17, 18, 20).
(5) 사라의 장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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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죽음(창 23:1-2)
Ⅰ. 사라의 나이(1절). 거의 40년 전에 사라는 자기가 노쇠했다고 말한 바 있다(18:12). 자신이 늙었음을 의식할 때, 노인들은 더 빨리 죽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아름답게 죽을 수가 있다.
Ⅱ. 사라의 죽음(2절). 아무리 오래 산 사람이라도 결국은 죽는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오랫동안 평안하게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떼어놓을 수 없던 그들 사이를 죽음이 떼어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친구들이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라 해도 결코 죽음의 습격을 피할 수는 없다. 사라는 60년 이상이나 머물러 살았던 가나안 땅에서 죽었다.
Ⅲ. 그녀의 죽음에 대한 아브라함의 비통한 슬픔. 아브라함은 진정으로 슬퍼했다. 그는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애곡하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애도하는 의식만 행한 것이 아니라, 일생을 함께한 착한 아내의 죽음에 참으로 비통해했고, 자기가 아내에게 지니고 있던 애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끝까지 보여 주었다. 두 단어가 사용되었다.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또 “애통했다.” 그의 슬픔은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장막에 와서, 아내의 주검 곁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아브라함의 깊은 마음을 다 적시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아내를 추모하며 더욱 깊은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으리라. 친척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법도에 맞는 일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것은 그런 애통과 슬픔을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순응이요, 당연히 존경을 받아야 하는 고인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태도다. 눈물은 세상을 떠난 우리 친구들에게 합당한 조사(助詞)다. 몸이라는 씨가 뿌려진 후에는(사람이 죽으면), 거기에 물(눈물)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사람처럼 절망 가운데 통곡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은혜로 우리에게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나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 대한 선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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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장지(창 23:3-15)
1. 아브라함이 이웃인 헷 족속에게서 장지를 사려고 겸손하게 간청했다(3, 4절). 이제 와서야 장지를 사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기서(가나안에서) 발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셨다”는 사도행전 7장 5절 말씀처럼 아브라함에게 선견지명이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죽은 후에 자기를 묻을 땅을 조심스레 마련하듯이, 자기 영혼의 안식처를 마련하고 돌본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아브라함은 장지 매입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시 당면한 슬픔에서 마음을 전환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났다.” 죽은 가족 때문에 지나친 슬픔에 빠질 위험이 있다거나 또 그런 유혹에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면 죽은 사람에 대해서만 생각한 나머지 혼자 있다가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눈물을 그쳐야 하는 때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이 피조물의 생명 속에 갇혀 있지 않은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자.
본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슬픔이 나를 사로잡아 어쩔 수 없게 될 때에, 장례를 돌보고 보살피는 일은 죽은 사람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한결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애통이 씨를 뿌리는 일(장례를 지내는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2.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이런 주장을 한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그러므로 아무런 준비도 없기에 장례를 지낼 땅을 내게 팔기를 간청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순례자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실례다. 아브라함은 전혀 부끄러움 없이 자기가 그렇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히 11:13).
우리는 우리 친척들의 죽음을 통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영원한 안식의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됨을 명심하자. 친척들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도 곧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라.
3. 장지 매입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까지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보고 싶던 사람들조차도, 죽음으로 보기 흉하게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자. 밝고 산뜻하여 생기가 돌던 얼굴이, 창백하고 파랗게 질려 버려 어둠의 땅으로 옮겨 가기에 알맞은 얼굴이 되고 만다. 사라의 주검이 아브라함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슬픔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새로워지는 것이다.
Ⅱ.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관대히 허락했다(5, 6절). 그들은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경의를 표했다.
1. 아브라함에게 존칭을 붙였다. “당신은 우리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이 말은 아브라함이 위대한 사람일 뿐 아니라 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은 나그네요 우거한 자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을 위대한 방백(a great prince)이라고 불렀다. 무릇 겸손한 사람은 높임을 받는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위대해지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이었다.
2. 헷 족속은 자기 땅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장지로 택하도록 제의했다. 양심의 빛조차도 나그네거나 우거한 자에게도 겸양과 존중의 태도로 대하라고 교훈해 주고 있음을 명심하자. 이 가나안 사람들의 드높고 귀한 관용은 자칭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의 폐쇄성과 이기적이고 불쾌한 성격을 부끄럽게 하며 정죄한다. 이들 가나안 사람들은 자기들의 티끌이 아브라함의 티끌과 섞이게 되며, 자기의 종말이 아브라함의 종말과 같기를 바란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Ⅲ.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7-9절). 아브라함은 가능한 한 가장 겸손하게, 진정 존경하는 태도로 헷 족속의 친절에 감사를 표현했다. 위대한 사람이고, 연령이 높고, 지금은 슬픔을 당한 사람이지만 아브라함은 일어나 그들에게 겸손하게 몸을 굽혀 절을 한 것이다(7절). 신앙은 훌륭히 예의를 지키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예의를 무시하고 무례히 행하는 자들은 신앙을 악용하는 자들이다.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자기가 가장 편리한 곳이라고 생각되는 막벨라 굴을 택했다. 그 굴은 아브라함이 사는 곳에 가까이 있고, 한 번도 장지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동굴은 에브론의 소유였다. 아브라함은 이 동굴과 동굴이 있는 밭을 사서 이득을 보겠다는 탐심을 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땅을 매입함으로써 헷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기를 바랐다. 우리에게 편리한 것을 공정하고 정직하게 획득하려는 적당한 욕망은,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제10계명에서 금지하는 그런 탐심이 결코 아님을 기억하자.
Ⅳ. 에브론이 자기의 밭을 아브라함에게 선물로 주었다.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오니”(10, 11절). 아브라함은 그 땅을 팔라고 간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브론은 아브라함이 그 일에 대해 말하자마자, 아브라함은 간청하지도 않았는데 그 땅을 거저 준 것이다. 세상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너그러운 사람들도 있다. 의심할 바 없이 분명 아브라함은 어떤 경우에나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어떤 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받은 친절을 갚고 있는 것이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이 만인에 대한 훌륭한 겸손과 봉사정신을 그 신앙으로 단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일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위로와 이익이 되돌아오는 일임을 알게 되리라.
Ⅴ.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친절한 제의를 겸손하고 진지하게 거절했다(12, 13절).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제의에 한없이 감사하면서(12절) 그 땅의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에게 몸을 굽혔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에브론에게 존경을 표하자, 그것을 본 그 사람들이 에브론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을 것이다(삼상 15:30).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그 밭값을, 곧 그 밭값 전액을 지불하기로 결심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선물을 거절한 것은 아브라함이 교만했거나 에브론에게 은혜 입는 것을 경멸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1.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아브라함은 은과 금이 많은 부자였다(13:2). 밭값을 치를 능력이 충분했다. 그렇기 때문에 에브론의 친절함에서 자기 이익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명예는 물론이요 정직도 우리에게 이웃 사람을 뜯어먹거나 그들의 아낌없는 태도를 이용해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가난하게 되었을 때 욥은 자기가 과거에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산물을 먹지 않았음”을 회상하면서 그 사실을 위로로 삼았다(욥 31:39).
2. 신중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지금은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 제안을 하지만, 그런 기분이 사라지면 그 때 가서 “내가 아브라함을 부자가 되게 했다”(14:23)고 비난할 수도 있으며, 아브라함의 상속자의 세대에 가서 아브라함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이 토지 기증은 전혀 깊은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값을 지불하고자 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다윗도 후에 아라우나의 제의를 거절했다(삼하 24:24). 지금 우리에게 가장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에게 나중에 어떤 모욕을 당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Ⅵ. 땅값은 에브론이 결정한 것이지 아브라함이 우긴 것이 아니다.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14, 15절) 에브론은 주머니에 많은 돈을 지니기보다는 친구를 만족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에브론에게서 이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세상의 부에 대한 뚜렷한 경멸이다. “나와 당신이 어떤 사이입니까? 그것은 그저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말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은 큰돈이다. 자식의 몫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일이다.” 그러나 에브론은 “그게 무엇입니까?”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을 낮고 천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귀한 일임을 명심하자. 재물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재물의 풍성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눅 12:15).
2. 자기의 이웃과 친구에 대한 지극한 예의와 친절이다. 에브론은 아브라함이 자기 나라에 와서 거주하는 이방인이라 해서 질시하지도 않았고, 아브라함이 점점 부자가 되고 번영하는 것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지닌 특이성에 대해 악의를 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우리 형제들을 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대했다.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어떤 사소한 일로도 진실한 친구 사이를 이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모욕을 당하고 분개해서 화가 날 때라든지, 권리를 주장하다가 흥분하게 되었을 때든지, 또 친절을 거절하기가 지극히 난처한 때에는 이렇게 질문함으로써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다. “나와 내 친구는 어떤 사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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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장례(창 23:16-20)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에브론 사이에 있던 장지에 대한 상담(商談)의 결과를 볼 수 있다. 그 계약은 모든 이웃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헷 족속이 듣는 데서, 헷 족속 앞에서”라고 했다(16, 17절). 정의와 마찬가지로 분별심도, 거래를 할 때에는 공정하고 개방적이고 공명정대하게 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부정한 계약은 빛을 싫어한다. 그리고 남모르게 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계약하려는 사람들은 누가 증인이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의 법률도 공적인 시장에서 등록된 합법적인 행위로 행한 매매만 보장하고 보호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하자.
Ⅰ. 아브라함은 즉시 대금을 지불했다(16절). 사기나 비밀한 음모를 해서 해를 끼치거나, 약속 기일을 연장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 대금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선뜻 지불했다. 그것도 조금도 깎지 않고, 전액을 지불했다. 그리고 그 당시 통화였던 은을 조금도 속임 없이 무게를 달아 내주었다. 돈이 얼마나 아득한 옛날부터 상거래를 위해 사용되었는지 보라. 가나안의 모든 땅이 약속으로는 아브라함의 것이 되어 있지만, 아직은 아브라함이 소유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땅을 사고 그 값을 지불했음을 기억하자. 소유권은 은혜에 근거하지 않음을 기억하자. 영원한 상속자에게 부여되는 성도라는 칭호가 성도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소유권을 얻게 하지 않으며, 그들의 행악을 정당화해 주는 것도 아니다.
Ⅱ. 에브론은 정직하고 공평하게 그 땅의 소유권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다(17, 18, 20절). 그 밭이 그 밭의 모든 부속물과 아울러, 공개적인 법정에서 문서로써가 아니라(그 당시 문서가 사용되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그 사항을 결재하기에 충분한 수의 증인들 앞에서, 공적이고 엄숙한 선언을 통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양도된 것이다. 산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그 값을 지불해야 하고, 판 것은 정직하게 양도하고 확실하게 보증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Ⅲ.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그 땅을 차지하고 그가 산 밭에 있는 동굴 혹은 둥근 지하실(자연히 생긴 굴인지 사람이 판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에 사라를 장사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온 이후로 가족 중에 있던 종 몇 사람이 죽어서 묻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묘지(왕하 23:6)는 충분했다. 그런데 이제 사라가 죽었다. 그러므로 사라를 위한 특별한 장소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소유한 최초의 땅이 매장지였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들어왔다면, 그 세상에서 떠날 것에 대해 미리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비록 장차 가나안이 모두 아브라함이 소유할 땅이기는 했으나, 아브라함이 일생을 통해 자기 것을 소유한 유일한 한 조각의 땅은 바로 그 장지였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 소유한 땅이 아무리 적은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자기가 묻힐 자리는 있다. 아브라함은 가인이나 니므롯처럼 큰 도시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장지만 마련했다.
(1) 자신과 자기 후손에게 끊임없이 죽음을 기억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와 그의 후손들이 매일매일 죽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이 매장지는 “밭머리에” 있다고 했다(9절). 우리의 소유가 무엇이든, 그 소유의 끝에는 장지가 있는 것이다.
(2) 자신에게는 부활에 대한 신앙과 기대가 있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다. 만약 사람의 몸이 영원히 버려지고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이라면, 그처럼 육신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것을 통해 아브라함은, 자기는 더욱 좋은 나라, 즉 하늘나라를 추구한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생전에 자기가 덧없이 흘러감에도 만족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자기의 몸을 희망 속에서 안식케 할 한 곳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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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사라의 죽음
[1-4절]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에서](KJV,NASB, NIV)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본장은 사라의 향년 곧 생애의 연수를 127세라고 기록한다.
성경의 내용은 매우 선택적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기록할 때 단지 몇 가지의 내용만 기록했다. 지난 장에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사건을 기록한 후 이제 사라의 죽음을 기록했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때가 이삭이 15살쯤이라고 본다면, 그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115세이며 사라의 나이는 105세이었으니, 그로부터 22년의 세월이 흐른 때이었다.
이처럼 성경의 내용은 매우 선택적이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모든 내용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사라, 아브라함과 결혼하여 아마 90년 이상을 같이 살았을 그는 이제 늙어 기럇 아르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기럇 아르바는 헤브론의 옛 이름이었다(수 14:15; 삿 1:10).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도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 있고 아무도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들어가 아내의 시체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였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이다. 아브라함은 슬픔 중에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the Hittites)에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葬事)하게 하시오”라고 말하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나그네와 우거한 자로 살고 있었다. 사실, 세상은 사람의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다. 다윗은 말하기를,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했다(대상 29:15). 우리의 참 고향은 더 이상 죽음과 이별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이다.
옛날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죽은 자의 시체를 매장(埋葬)하였다. 불교의 풍습인 화장(火葬)도 허용된다. 사무엘상 31:12-13에 보면, 사울 왕과 그 아들들의 시체는 화장하여 그 뼈를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 장사하였다. 오늘날 말로 수목장을 한 셈이다. 화장이 허용되기는 하지만, 매장은 성도의 부활 소망에 적합하다. 사람의 죽음은 몸과 영혼의 분리 현상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몸을 떠나 천국 혹은 지옥에 들어가고 몸은 무덤에 묻힌다.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죽은 성도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영생할 것이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는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했고(고전 15:51-52), 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고 말하였다(살전 4:16-17).
우리는 또한 영생을 믿는다.
사도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요일 5:13). 또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말했다(딤전 6:12).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또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 자답게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5-6절]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존귀한 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葬事)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내 주여’라는 표현(6, 11, 15절)은 일반적인 존칭어이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방백’이라는 원어(네시 엘로힘 )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라는 뜻으로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와 위엄을 느끼고 있었음을 보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 사람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이었다(딤전 3:7).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葬事)하소서”라고 말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7-11절]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葬事)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밭의 끝]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準價)[값]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은 헷 족속의 호의적인 말에 대해 일어나 그들을 향해 몸을 굽혀 답례하며 에브론의 밭의 끝에 있는 막벨라 굴을 값을 받고 주기를 요청했다. 그때에 에브론이 거기 앉았다가 모든 자들의 듣는 데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굴을 주겠다고 말하였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의 호의적인 말에 대해 감사하는 표시로 그들을 향해 몸을 굽힌 것은 그의 겸손함을 보인다. 우리는 전에 그가 집에 온 손님들을 접대하는 모습에서도 그의 겸손함을 보았었다. 그는 집 앞에 온 손님들을 보고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몸을 땅에 굽히며 그들을 영접하였었다(창 18:2). 경건한 아브라함은 겸손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을 교훈하신다.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주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고 말씀하셨다(마 11:29). 겸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빌 2:5). 또 주께서는 교훈하시기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다(마 23:11-12).
[12-15절]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400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較計)[거래]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20절]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商賈)의 통용하는 은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아브라함은 다시 그 땅 백성을 향해 몸을 굽히고 그 밭값을 정당히 지불하고 매입하기를 원하였다. 땅 주인 에브론이 그 땅을 그냥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브라함은 정당하게 당시 장사들이 사용하는 세겔로 은 400세겔(약 4.6kg; 약 912데나리온 무게)을 달아 주고 그 땅을 샀다. 그 땅은 모든 증인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지가 되었다. 그런 후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의 시신을 그 밭의 굴에 안장(安葬)하였다.
아브라함은 그 밭을 정당한 값을 주고 샀다. 그는 물질 생활에서 남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정당하게 살려 하였다. 그것이 의와 사랑이다. 사람의 인격성은 그의 정확한 돈 계산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정당하게 돈을 벌고 정당하게 물건을 소유해야 한다. 도적질은 악한 일이며,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은 더 악한 일이다. 그것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악들 중에 포함된다(고전 6:9-10).
창세기 23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죽음을 잘 준비하자.
사람의 죽음은 영혼이 몸을 떠나가는 것이다. 즉 몸과 영혼의 분리이다(전 3:20-21). 그것은 죄 때문에 왔다(창 2:17; 3:19; 5:5, 8, 11 등; 롬6:23). 죽음은 생의 마감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죽음으로 마감된 생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전 12:14; 히 9:27).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얻었고(요 3:16; 5:24) 장차 죽어도 부활할 것을 소망한다(요 5:28-29; 11:25-26; 살전 4:13-18). 인생은 나그넷길이며 누구나 어느 날 죽는다. 우리는 참된 믿음과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의와 선과 사랑을 힘써 실천함으로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겸손한 자가 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헷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게 처신하였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자신이 보잘것 없는 자임을 알고 자신을 낮춘다. 주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0:26-27).
셋째로, 정당하게 살자.
천국 소망을 가진 자는 세상에서 정당하게 산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는 강 같은 평안을 누린다(사 48:18).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해야 한다(마 6:33).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잠 16:8).
@@막벨라 Machpelab hl;Pek]m'(4375, 막펠라)
막펠라(지명)는 카팔(lp'K; , 3717: 겹치다, 포개다)에서 유래했으며, '막벨라'라고 음역하며, 아마도 '이층 동굴'이란 의미일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6회 나온다.
막벨라는 사라의 장례를 위해 아브라함에 의해 매입된 동굴 이름으로, 후에 아브라함 자신, 이삭, 리브가, 레아, 야곱이 장사되었다(창 25:9 이하, 창 49:30 이하, 창 50:13 이하).
막벨라는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소유지인 이곳은 헤브론의 북동쪽 들판에 있었으며(창 23장), 그 위치는 마므레에 면하여 있었다(창 23:19).
이 밭은 은 400세겔에 매입되었다. 이러한 계약에 대하여 많이 거론되어 왔다.
그것은 외국인이<자기 민족이 아닌 자> 상당한 값을 지불하여 매입한 것으로서 아브라함과 전형적인 동양적 매매 계약을 맺은 것으로 취급된다.
레만(M. Lehmann)은 여기에서 헷 족속의 법률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의 동굴을 요구했다. 그러나 에브론은 아브라함이 (굴이 있는 밭까지도, 곧) 재산 전체를 취하기를 고집했다.
아브라함과 에브론의 예의 바른(?) 거래 행위는 그 시대에 전형적인 거래 방식이다.
에브론은 <겉보기에> 친절하게도 아브라함에게 그의 굴과 함께 땅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아브라함은 그 땅값을 지불하겠다고 강력히 말했다.
에브론은 정중하게 그 값을 말했으나 사실상 그것이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흥정을 계속했고 흥정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브라함은 은 400세겔을 지불했다.
만일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제안대로 그 땅(밭과 굴)을 값없는 선물로 받았다면 그는 에브론을 모욕하는 것이 되고 에브론은 그의 제안을 취소했을 것이다.
중동의 많은 상인들은 아직도 이 관례를 따라 그들의 고객들을 상대한다. 만일 고객이 상인의 요청을 따라 먼저 값을 부르면 그는 거기에 스스로 잡히게 되는 것이다(LAB).
아브라함은 은 400세겔, 매우 비싼 가격으로 땅을 매입했다.
그 땅에 거한 헷 족속은 외국인들이 많은 땅을 사는 것에 대해 가슴 설레지 않는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흥정이 쉬웠다. 에브론은 <분명히!!> 터무니 없는 값을 요구했다.
그 땅의 관례는 땅의 정당한 싯가의 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구매자가 정한 가격의 절반은 충분히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렇게 요구한다.
아브라함이 땅값으로 지불한 은 400세겔이 오늘날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기로 약속하시었을지라도 아브라함은 에브론으로부터 그것을 공으로 취하거나 빼앗지 아니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호의에 너무 기대할 바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그 도움 이상 우리의 것을 가지고 간다.
오늘날 방문객들에게 공개되는 막벨라의 무덤은 헤롯 시대에 건립되었으며 석공술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위에는 교회가 세워졌는데, 지금은 회교 사원으로 되었다. 따라서 그 장소는 유대인의 분산 이전부터 입증되어 왔다. 이 장소가 진짜 그 곳일 것이다. (참조: TWOT;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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