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창7..노아..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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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7장


....하나님의 건축의 기본수는 3과 5...((방주와 증거궤를 묵상하며 연결시켜 보라..방주(교회)는 전심으로 주께 온전히 맡겨드리며 성령께 순복함 통해서만 구원하심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이 되며, 바로 그렇게 전적으로 구주 말씀 인도따라 순복하며 그리스도를 살아감이 주 보시기에 의롭다 여김 받은 이의 마땅한 삶이요 그것이 JC를 증거함이 되며, 바로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의미하는 것 같다))....방주<장광고=300-50-30규빗...온전의 수>와 증거궤<장광고=2.5-1.5-1.5규빗...절반의 수 : 즉, 하나님의 증거와 믿는이의 <체험적, 구주 살아냄의 > 증거가 합해질 때 <또는, 신성-참된 인성의 어떠함의 완전을 보이신 하나님의 증거와, JC에게서 <친히>배워 닮아가는 바, 참된 인성에 신성을 더한 사람의 증거가 더해짐으로서만> 온전한 증거가 비로소 이루어짐 의미...이를 위해 영이신 하나님은 믿는이 안에 자신을 <믿는이의 영에 오셔서 내주하시는 그 영(주 영)으로 변형-분배하셔야 했고, 그 과정을 위해 삼일성을 (필연적으로)취하셨다고 봄이 합당할 것..> ....방주(ark)와 증거궤(ark of testimony) 모두 영어로서는 동일단어 ark를 쓰고 있으며, 갈대상자와 방주를 히브리어로는 동일한 단어인<테바>를 사용함...이 영적 의미는 <적극적 수동성의 완전한 신뢰, 그 능력의 결과!! :: 전적으로 주 바라기의 신뢰로 모든 것 주님께 맡겨드림 통해서만 경험 가능한 완전한 구원>),.즉 새 예루살렘성은 [지성소는 지성소의 심장인 증거궤의 확장,  정방형의 새 예루살렘성(장광고 각각12000스타디온) 은 정방형인 <지성소 :장광고 각각10규빗>의 확장... 이제 확장된 성전은(지성소와 성소가 하나된> 확장된 하나님 나라의 중심 이룸]그 안에는 <지성소 증거궤로 표상된>TUQ이 완전히 하나로 연합하여 (자기를 온전히 열어드림 통해 주님의 주되심에 순복하며 기뻐하는> 각 지체 안에 녹아들어 계심으로써 교통의 완전함 안에서<이런 표현도 가능할 지 모르나, 감히 조심스레 사용해 본다면> TUQ 하나님 바로 그 분을 사는 각 지체들의 유기적 생명 연합체, 영원한 우주적 교회를 의미할 것..


((아버지-아드님-성령은 초월적 하나이신 하나님이심))

아버지 하나님는 의도하시고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의 체현<말씀>이시며, 성령 하나님은 그 말씀의 표현, 곧 능력으로 그 효과 나타내심. ...... 아버지 안에 아들과 성령이, 아들안에 아버지와 성령이, 성령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나되어 계시기에, 아버지 부를 때 아들과 성령께서, 아드님 부를 때 아버지와 성령께서, 성령님 부를 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나로 대답하심..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가두어진 의미에서, 3차원적인, 따로 떨어진 세 분>3 person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님에 주의할 것..[무엇보다도 가두어진 3차원<시간을 포함하면 꼬인4차원>의 세계에 사는 이가 (자신이 참되게 경험한 바로 그분!) 차원을 초월한, 차원의 창조자-주권적 섭리자-지혜자를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으나, 그래도 주님 사랑에 감동되어 사는 나날의 감사 고백 안에서 꾸준히 <간증-교통-생명 나눔 위해 표현하려> 노력하는 것은 <너그러우신 분, 사랑의 주님 보시기에>가납하실만한, 합당한, 흐믓한 것이리라...각 개인마다 주님에 대한 생생한 체험으로 보상하실 것이기에...유한자가 무한하신 분에 대한 체험을 말하고자 하는 영적(초월적) 정의란 그토록 어려운 것이지만 결코 멈추지 말자......주님은 나를 본 자 아버지를 보았다 하셨음..(즉, 인격이 셋이라고 오해할 위험이 있기에, (1/3정도 들어간 두 오목부를 가진 담쟁이덩굴 잎 형상을 가끔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설명하기도 하지만) 3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3-1 하나님<삼일성을 가지신 하나님, 3-1하나님,TUQ), 곧 원하는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이시되 세 방면으로서의 움직임과 표현을 가지시는 한분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좀더 합당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에스겔1장의 하나님 보좌 아래 있는 네 생물은 언제나 보좌에 앉으심 주님의 뜻따라 통일된 일방향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이해를 돕기 위해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정육면체는 6면의  표현을 가진 하나의 입방체이다!!....그리피스 토마스의 언급을 빌려온다면<그의 로마서 강해는 가장 탁월하다고 정평이 나 있음>...(신비로운 하나님, 한분 하나님의 삼일성을 통한 비밀스러운 초월적 역사를 설명하기에는 이해-언어-표현력-단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며, 이 삼일성은 하나님의 본질적 비밀에 속한 것)이라고까지 고백한다...요14:9를 보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빌립이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주 예수님께 요구헸을 때 주님은[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곧 나(예수님)는 바로 아버지다].하셨었다..비근한 성경구절들을 더  들어본다면...**고후3: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주 예수님은 바로 그 영(성령)이심을 바울은 명시하고 있음)]....**사9:6[이는 한 아기[구주 JC]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주가일하시네]

1.날이저물어갈때.빈들에서걸을때.그때가하나님의때.

내힘으로안될때.빈손으로걸을때.내가고백해여호와이레.

2.우리모인이곳에.주님힘께계시네.누리네아버지은혜.

적은떡과물고기.내모든것드릴때.모두고백해여호와이레.

<후렴>주가일하시네.주가일하시네.주께아끼지않는자에게. 

주가일하시네. 주가일하시네.신뢰하며걷는자에게.


===홍수..[432.큰물결이설레는어둔바다] [433.귀하신주여날붙드사] [435.나의영원하신기업] [436.나이제주님의새생명얻은몸][370.주안에있는나에게]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come into]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선두주자 에녹의 그러함처럼!!]..주님의 의 = 주 앞에 의로움 = 주님이 의롭다 인정하심 = 주님 말씀 하신 바 그대로 믿고 살고 누림, 곧 성육신하여 땅에 실지로 오셔서 십자가 대속의 죽음-부활-승천-성령으로 변형되어 오셔서 영원히 내주하시며 살아계심 (절대적으로 주의 주되심을 참되게!!) 믿고-[내주하시는 그리스도, 곧 성령님과] 교통/동행하며-[주님을]살고-[주님을]누림 통해 참된 인성+주님의 신성을 함께 깆게 하심 통해 새 예루살렘 건축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궁극적 뜻 이루어 감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방주 짓는 목적과 구상을 영원한 지혜로 미리 예비하시고 말씀해 주신 주님이, 또한  그 목적따라 인도해 오시는 바로 그대로, 방주 안으로 인도하여 마땅한 자리에 배정하라]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주님 분배과정의 첫단계인 바, 이 과정 지나면, 주님의 성육신 통해 반드시 주님 뜻 온전히 이루실 것 소망함 안에서 행하라!!]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그 나머지]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  [이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신 주님이 이제 시간과 그 때를 알게 하시고, 예비된 동물들을 모두 질서있게  배정하신 그대로 있게 한 그 다음에, 노아가족들이 방주 내로 들어가라 하심따라]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3. [370.주안에있는나에게][446.주음성외에는참기쁨없도다]○곧 그 날에[히브리력으로 2월17일]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최종적으로]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노아와 그 모든 가족들을]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1층 높이..6.75미터]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자행자지하는 <옛나를> 완전히 죽음에 <매일>넘기라...<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매일 매일 이룸 통해, JC증거하시는 HS께 완전 순복+JC의 거룩하심의 완전한 분량 충만 이루기를 사모하며 힘쓰라..절대 긍정-절대 믿음-절대 신뢰로 주로 주 되시게 하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옛 나, 사탄 그 자체>는 그만큼 끈질기다!!..단단히 각오하라.. 매일 주 바라기로 <저절로 이기는 자 됨> 이루기까지 결코 포기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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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od.7.

1 Then the Lord said to Noah, “Come into the ark, you with all your household, for you [alone] I have seen as righteous (doing what is right) before Me in this generation. 

2 Of every [a]clean animal you shall take with you seven pair, the male and his female, and of animals that are not clean, two each the male and his female; 

3 also of the birds of the air, seven pair, the male and the female, to keep the offspring alive on the surface of the earth. 

4 For in seven days I am going to cause it to rain on the earth for forty days and forty nights; and I will destroy (blot out, wipe away) every living thing that I have made from the surface of the earth.” 

5 So Noah did all that the Lord commanded him.

6 Noah was six hundred years old when the flood (deluge) of water came on the earth [covering all of the land]. 

7 Then Noah and his sons and his wife and his sons’ wives with him entered the ark to escape the flood waters. 

8 Of [b]clean animals and animals that are not clean and birds and fowls and everything that crawls on the ground

9 they came [motivated by God] into the ark with Noah two by two, the male and the female, just as God had commanded Noah. 

10 And after the seven days [God released the rain and] the floodwaters came on the earth. 

11 In the six hundredth year of Noah’s life, on the seventeenth day of the second month, on that same day 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subterranean waters] burst open, and the windows and floodgates of the heavens were opened. 

12 It rained on the earth for forty days and forty nights.

13 On the very same day Noah and Shem and Ham and Japheth, the sons of Noah, and Noah’s wife and the three wives of his sons with them, entered the ark, 

14 they and every animal according to its kind, all the livestock according to their kinds, every moving thing that crawls on the earth according to its kind, and every bird according to its kind, every winged thing of every sort. 

15 So they went into the ark with Noah, two by two of all living beings in which there was the breath and spirit of life. 

16 Those which entered, male and female of all flesh (creatures), entered as God had commanded Noah; and the Lord closed the door behind him.

17 The flood [the great downpour of rain] was forty days and nights on the earth; and the waters increased and lifted up the ark, and it floated [high] above the land. 

18 The waters became mighty and increased greatly on the earth, and the ark floated on the surface of the waters. 

19 The waters prevailed so greatly and were so mighty and overwhelming on the earth, so that all the high mountains everywhere under the heavens were covered. 

20 [In fact] the waters became [c]fifteen cubits higher [than the highest ground], and the mountains were covered. 

21 All living beings that moved on the earth perished—birds and cattle (domestic animals), [wild] animals, all things that swarm and crawl on the earth, and all mankind. 

22 Everything on the dry land, all in whose nostrils was the breath and spirit of life, died. 

23 God destroyed (blotted out, wiped away) every living thing that was on the surface of the earth; man and animals and the crawling things and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destroyed from the land. Only Noah and those who were with him in the ark remained alive. 

24 The waters covered [all of] the earth for a hundred and fifty days (five months).

===Footnotes

Genesis 7:2 This anticipates the numerous distinctions between animals for food purposes, which would later be revealed in the Mosaic Law.

Genesis 7:8 The five extra pair of clean animals were for food and for sacrifice later. 

Genesis 7:20 About twenty-three f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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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7장 (개요)

본 장에서는 옛 세상의 멸망과 노아의 구원에 관해 예언한 앞 장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노아가 홀로 방주를 짓느라고 분주하고 그것을 기한 내에 끝내려고 고심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한편에서는 노아의 이웃들이 그의 수고를 비웃고 있었다. 

이제 본 장에서 양편의 결과, 곧 노아의 수고와 그 이웃들의 무사안일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옛 세상의 이 이름난 시기는 물로 멸망되었듯이 장차 이 세상이 불로 멸망당할 때에 만물의 상태가 어떨지를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준다(벧후 3:6-7 참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곧 닥쳐올 대홍수를(4) 고려하여 노아를 방주로 들어가게 하심(6, 7), 

그와 함께 살아남을 짐승들을 이끌어 들이라는(2, 3)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1).

2. 이 하늘의 환상에 대한 노아의 순종(5). 

그는 600세 되었을 때 그 가족과 함께 방주로 들어갔고(6, 7), 짐승들도 함께 끌어들였으며(8, 9), 그 기사가 반복되어 있다(13-16). 

이에 그를 끌어들이고 문을 닫아 버리신 하나님의 친절하신 관심을 더 엿볼 수 있다.

3. 무서운 대홍수가 일어남(10). 

홍수의 원인과 진행과정(11, 12), 그리고 홍수가 온 땅을 뒤덮음.

4. 이로 인해 방주 안에 있던 자 이외에는 세상의 모든 생물이 죽게 된 무시무시한 황폐(21-23).

5. 물이 빠짐 전, 150일이나 계속해서 물이 덮인 상태였음<창일함>(24)...실은 5개월13일.(7월17일~다음해1월1일 :: 전40일간은 수위 순증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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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로 들어가라 (2)(창 7:1-4)

Ⅰ. 이제 곧 대홍수가 이르게 되므로, 안전한 지대로 노아와 그 가족을 은혜로이 부르셨다(1절).

1. 그 부르심은 매우 친절한 것이었다. 마치 다정한 아버지가 밤이나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 자녀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이는 그런 친절이었다. 

“너와 네 온 집, 네가 거느리고 있는 작은 가족들은 방주로 들어가라.” 

다음 사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1)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까지 노아는 방주 안에 <자의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비록 그는 그 방주가 자신의 피난처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로운 명령이 내려지기를 기다렸으며, 또한 그 명령을 받았다. 

우리를 섭리하시는 자를 <참되게!>알고 하나님의 부름에 따르며,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모든 발걸음에 한 발 앞서서 가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극히 큰 안위가 된다.

(2)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라 “들어오라”고 하셨으니(KJV에는 “come”으로 되어 있음─역주) 이는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시고 그를 방주 속으로 인도하시며, 거기에서 그와 동행하며, 때가 이르면 안전하게 밖으로 이끌어 내시겠다는 것을 암시하신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곳에 있든지 지극히 바람직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이다. 이것이 온갖 형편과 처지에서도 가장 큰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자. 

노아의 방주는 <어찌 보면, 정말> 감옥과 같은 곳이었지만, 그의 피난처였을 뿐만 아니라 궁궐이 되게 한 것이 바로 <임마누엘!!>그 사실이었다.

(3) 노아는 방주를 짓는 데 대단한 수고를 했으나 이제 그 안에서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한 그 모든 일은 머지않아 우리의 즐거움이 될 것임을 확실히 알자.

(4) 노아뿐만 아니라 그의 온 집안, 즉 아내와 자녀들까지도 그와 함께 방주로 부르심을 받았다. 

경건한 사람의 권속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유익하며, 또 그런 사람의 그늘에서 거하는 일은 안전하고도 즐거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자. 

노아의 아들 중에 함이 있었고, 그는 후에 악한 자임이 드러났지만 그래도 방주 안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것이다.

① 사악한 자녀들도 때로는 경건한 그들의 부모 때문에 보다 더 잘살게 되는 수가 있다.

② 이 땅에서는 가장 선한 사회 속에도 선과 악이 섞여 있다. 이것을 우리는 기이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노아의 가정에는 함 같은 존재가 있었고, 그리스도의 권속 중에는 유다가 있었다. 즉 인간 세계는 완전한 순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5) 노아에 대한 이 부르심은 가련한 죄인들을 부르는 복음의 부름의 한 모형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마련된 방주가 되시니 우리는 그 안에서만 죽음과 심판이 닥칠 때에 안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노래의 후렴은 “오라, 오라”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이 “오라” 하신다. 

목사가 이르기를 “오라”고 한다. 성령께서 이르시기를 “오라, 방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2. 이 초청의 이유는 노아의 완전함에 대한 영예로운 증언이다.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속기 쉬운 사람들 앞에 <주님 보시기에 참된 의가 무엇인지 > 바로 그 의를 보임으로써 경건의 본이 되게 하셨다. 

보라,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인간의 성품에 기만되지 않는 하나님에게 의를 인정받음으로써 경건의 권능이 되는 자들은 참으로 의로운 자다.

(2) “내가 너를 보았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들을 그가 아시며 기뻐하신다. 

사악한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 의로운 노아를 알아보셨다. 

그 많은 왕겨같이 쓸데없는 것 가운데서 단 하나의 낟알이라도 결코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아신다.

(3) 목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곧 자기 백성의 성실함에 대한 증인이 되신다.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천사들과 사람 앞에서 그것을 선포하시리니, 의롭게 될 수 있는 자비를 얻은 자들은 의롭다고 하는 증거도 얻게 될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악한 때와 장소에서도 선할 수 있는 자들을 특별히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노아는 현저하게 의로웠으니, 이는 그같이 사악하고 타락한 세대 속에서도 의로웠기 때문이다.

(5) 모든 사람이 악한 시기에도 스스로 자신의 순결함을 지키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재난을 당할 때 또한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다. 

남들과 함께 죄악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그들의 큰 재앙에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남보다 선한 자는 비록 이생에서라도 남들보다 안전할 것이니, 이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복이 된다.

Ⅱ. 노아와 함께 방주에서 생존해야 될 금수에 관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을 명령하셨다(2-3절). 

이들 금수는 인간처럼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경고나 지시를 받을 능력이 없었다. 

인간은 “땅의 짐승”보다도 훨씬 더 교화되었고 “지혜를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셨다”(욥 35:10). 즉 사람은 통찰력이라는 재능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들 금수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 그 모든 것은 인간의 지배하에 보호를 받아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하나를 모두 지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모든 종류를 세심하게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짐승의 족속, 곧 가장 하찮은 족속이라도 완전히 멸종되게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피자.

1. 인간을 위하고, 그들의 안위와 유익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배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노아 자신이 염려한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행복을 고려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옛 세상이 지극히 역겨운 것임을 아셨고 또한 새로운 세상도 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아셨지만, 인간의 소용을 위해 짐승들을 보존케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고전 9:9) 이 같은 염려는 오히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2. 가장 무가치하고 별 유익이 없는 짐승까지도 방주에서 생존케 하셨다.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자비심은 가장 고귀하고 유용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가 지으신 모든 것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나 부정한 것보다는 정결한 것을 더 많이 보존하신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1) 대체로 정결한 것이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면 더 많이 보존되었고 지금까지도 번식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사자 떼가 소 떼같이 많지 않으며, 호랑이 떼가 양의 무리들처럼 많게 하지 않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할지어다.

(2) 정결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정결한 것을 더 많이, 그 종류의 번식만을 위해서는 두 쌍씩, 제물을 위해서는 일곱 쌍씩을 보존케 하셨다(8:20). 

하나님은 이 땅에 속한 것을 한 주일의 비례와 같이 6대 1로 우리에게 주신다. 영적인 것은 모두가 다 그분을 위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고 그 분을 섬기는 일에 쓰이는 것은 특별히 축복받고 번성하게 된다.

Ⅲ. 임박한 대홍수에 대해 예고하셨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비를 내려”(4절).

1. “내가 그렇게 하는 데는 아직 7일 남았다.” 

120년이 지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7일의 여유를 더 허락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천천히 노하시며, 심판의 역사는 하나님이 별로 원치 않는 일임을 보이시기 위함이다. 또한 회개의 여유를 더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헛되었고, 이 7일이라는 날도 다른 모든 날처럼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 그들은 홍수가 닥쳐올 때까지 계속해서 태평하게 육욕에 젖어 있었다.

2. “7일밖에 남지 않았다.” 

노아는 심판이 가까웠다고 그들에게 알렸지만 그들은 회개를 미루어 두려는 유혹에 빠졌다. 이는 그 같은 일이 닥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아 그 때가 지금 문 앞에 이르렀다고 알렸다. 이제 단 일주일밖에는 여유가 없으며, 단 일주일 후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깨달아 이제 곧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될 그들 자신의 화평에 속하는 것들을 살피라고 했다. 

그러나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서 건강이 있는 동안에 자신의 영혼에 무관심하고 소홀했던 자들은 죄악에 미혹되어 마음이 굳어졌기 때문에, 이제 그들의 죽음이 임박해 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그 병든 날 7일 동안에도 흔히 방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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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창 7:5-10)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대한 노아의 즉각적인 순종이 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Ⅰ. 아직 홍수가 닥칠 가시적인 징조도 없었지만, 그는 7일 후에는 홍수가 닥칠 것이라는 통고를 듣고 방주로 들어갔다

그는 자연의 원인이 아직 작용하기 시작한 것을 보지 못했으나 곧 홍수가 닥쳐오리라는 경고를 듣고 역시 믿음으로 방주로 들어갔다. 

그가 취한 모든 행동은 믿음에 의한 것이며, 결코 감각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이 7일 동안에 그는 그의 온 짐승들을 몇 개의 방에 각기 나누어 들여놓으면서, 그 자신과 식구들도 그 방주 안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무관심한 이웃들에게 오랫동안 전해진 가시적 설교의 결론이다. 어떤 이는 이것이 그들에게 깨우침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그들은 자신의 피를 그 머리 위에 쏟고 말았다.

Ⅱ. 그는 온 가족을 자기 아내와 함께 데려감으로써, 그의 동료와 위로로 삼았다(이후에는 그녀로부터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음이 분명하지만). 

또한 그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데리고 갔으니, 그들로써 그의 가정뿐만 아니라 인류 세계가 이룩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살펴보건대 사람이 그처럼 적은 숫자로 감소되었으며, 이 세상에는 급속히 사람들이 다시금 많아지게 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으나, 노아의 아들들은 제각기 아내를 하나씩만 취했다. 이것은 여러 아내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반증(反證)을 굳게 한다. 왜냐하면 이 새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그러했듯이 이제 그가 인생들을 지키시니, 한 남자에 한 여자만을 취하게 하셨다(마 19:4, 8 참조).

Ⅲ. 들짐승들도 그와 함께 곧 방주 속으로 들어갔다

태초에 들짐승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와서 그로 하여금 그 이름을 짓게 하신 분이, 이제는 그들을 노아에게로 이끌어 와서 그로 하여금 보존하게 하셨다. 

소는 이제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가장 사나운 피조물까지 그 곳에 한데 모이건만, 인간은 들짐승보다도 훨씬 더 야수 같은 성질로 변하여 그 주인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다(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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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의 발생 시기(창 7:11-12)

Ⅰ. 여기에는 이 대사건의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확실성을 더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 기록하고 있다.

1. 노아가 600세 되던 해라고 했다. 

이는 계산상 창세로부터 1,656년이 되는 해다. 

옛 세상은 장부(丈夫)들의 통치 기간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족장들의 수명으로 헤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제왕들보다 성도들을 더욱 귀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시 112:6). 

당시 사람들의 수명처럼 이제 노아도 지긋하게 나이가 들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이 세상에 오래 살면 살수록, 그만큼 이 세상의 불행과 재앙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러므로 나이 들기 전에 죽는 자의 특권은 그들의 “재앙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왕하 22:20).

(2)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친근한 종들에게 순종하는 인내를 비상한 시련으로 시험하신다. 

그리스도의 군병 중 가장 맹장인 자도 죽음이 그들을 놓아 주기까지는 시련의 싸움에서 놓임 받기를 기대해서는 결코 안 된다. 

계속해서 그들은 갑옷을 몸에 걸쳐야 하며, 갑옷을 벗어 놓고 뽐내서는 안 된다. 대홍수가 난 해가 기록되어 있듯이 날짜도 볼 수 있다.

2. “2월 곧 그 달 17일”이라 했다. 

이는 태양력 11월 초순으로 계산되므로, 노아는 대홍수 바로 전에 추수를 하여 자기 방주에 음식을 실을 수 있었다.

Ⅱ. 이 대홍수와 동시에 일어난 자연의 원인들이 기록되어 있다.

1. 노아가 방주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한 바로 그날에 대홍수가 시작되었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만물을 황량하게 하는 심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안전을 마련하기까지는 결코 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창세기 19장 22절에 “네가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고 하셨다. 

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받기까지는 바람을 붙잡아 두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계 7:3).

(2) 선한 사람들이 죽으면 심판이 멀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의인은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기” 때문이다(사 57:1). 

그들을 밀실로 불러들여 무덤 속에 숨게 하고, 곧 하늘나라에 숨게 하신 후에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벌하실 것이다”(사 26:20, 21).

2. 그 날, 사악한 세상에 대한 숙명의 그 날에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자.

(1)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 

아마 바다를 새로 창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섭리의 공통 과정 속에서 이 땅의 축복으로 만들어졌던 그 물이, 바야흐로 하나님의 비상한 권능의 행동으로써 이 땅을 파멸시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깊은 물을 곳간에 마련해 두셨다가 이제 그 저장물을 터뜨리셨다(시 33:7). 

우리 인간들의 체내에는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치명적인 온갖 질병의 근원과 원인이 될 수 있는 체액(體液)이 있듯이, 이 대지의 내부에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샘솟아 범람케 되는 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에 바닷물에 대해 “문과 빗장”을 정하셔서,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다”(시 104:9; 욥 38:9-11).

이제 그는 그 같은 태고의 육지 경계표와 둑, 그리고 울타리를 단지 제거하시기만 하면 바닷물은 다시 애당초와 같이(1:9) 땅을 덮게 된다. 

하나님이 인내하는 날 동안에 눌려 있던 속박을 하나님께서 제거하시기만 한다면, 모든 피조물은 죄인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게 되고 죄인을 파멸케 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2) “하늘의 창들이 열려”, “궁창 위에 있던 물이” 이 세상 위에 쏟아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환난의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저축하여” 두셨던 그런 보물이다(욥 38:22, 23). 

통상적으로 방울져 내리는 비가, 줄기로, 곧 분수가 되어 내려왔다. 그 비는 종종 인도인들이 표현하는 대로 구름이 터져서 내린 비였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체험했던 가장 큰 소나기보다도 훨씬 더 극심한 급류처럼 쏟아져 내렸다. 

욥기 26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물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속박이 풀려, 구름이 찢어지고 비가 계속적으로 내렸다. 보통 때는 구름이 곧 사라지고 비가 그치지만, 그 짙은 구름은 지칠 줄 모르고 물을 뿌렸다(욥 37:11). 그러나 비가 내린 후에는 구름이 되돌아갔으며, 하나님의 능력이 다시금 새로운 순환을 가져왔다. 비가 중단되거나 감퇴됨도 없이 “40주야를” 세차게 내렸다. 그것도 흔히 한 곳에는 내리고 다른 곳에는 내리지 않는 그런 비가 아니라, 일시에 온 세상에 내렸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6일 동안에 지으셨으나 그것을 멸하시는 데는 40일이 걸렸다. 

왜냐하면 그는 노하시는 데는 더디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멸망이 서서히 점차적으로 임하는 것이기는 해도 철저히 이루어졌다.

3. 그러면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배우자.

(1) 하나님은 창조자, 지고지선의 초월적 지혜자, 주권자, 섭리자이심.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처분에 달려 있고, 엘리후가 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혹 징벌을 위해서든, 그렇지 않으면 토지를 위해서든, 또는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든”(욥 37:12, 13)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피조물을 당신께서 원하는 바대로 이용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평안이 덫이 되게 하신다”(시 69:22). 

즉 통상적으로 우리에게 안위와 유익이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재앙도 되고 저주가 되기도 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샘이든 하늘에서 내리는 소나기든 물보다 더 긴요하고 유용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여기서는 그것보다 더 해독을 끼치고, 더 파괴적인 것이 다시 없었다. 만물은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바에 따라 우리에게 관계된다.

(3)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명령과 더불어 범죄한 죄인에게 이를 때에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 어디서나 죄인들을 치려고 무장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욥 22:27 참조).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사자를 보내시어 인간들을 둘러막음으로써, 그들이 위를 쳐다보면 두려움과 놀라움뿐이며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의 고통만을 보게” 하실 수가 있다(사 8:21, 22). 

하나님께서 노하실 때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4) 옛 세상을 물로써 멸망케 하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불로 최후의 심판을 받으리라는 전조를 보이셨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이 두 가지를 서로 대조한 것을 볼 수가 있다(벧후 3:6, 7). 

땅속에는 물이 있듯이, 애트나(Aetna), 베수비오(Vesuvius) 및 다른 화산들은 땅 밑에는 불도 있다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때로는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대지를 폐허로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예정하신 때가 되면, 이 두 가지 불 사이에 있는 땅과 그 위의 모든 업적이 불타 버리리라. 

그것은 큰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을 통해 옛 세상에 대홍수가 임했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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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에 들어간 짐승들(창 7:13-16)

여기서도 노아의 가족들과 보존하기로 인치심을 받은 모든 피조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앞에서의 기사가 반복된다.

Ⅰ. 노아의 영예가 반복하여 기록되었다. 

그의 믿음과 순종이 지극히 빛났고, 이로써 그는 좋은 평을 받게 되고, 그는 지극히 큰 하늘의 은총을 입었고, 땅에 대해서도 지극히 큰 축복이 되게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Ⅱ. 창조의 역사를 말할 때 사용된 어구를 따라(1:21-25) “그 종류대로” 방주로 들어가는 짐승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애당초 창조될 당시만큼의 종류만 구원받는 것이지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 이와 같은 보존은 새로운 창조와 같은 것임을 암시한다. 

특별한 보호를 받은 생명이란 말하자면 새로운 생명인 것이다.

Ⅲ. 비록 모든 피조물 사이의 불화와 적의가 당분간 중지되고, 굶주린 아귀 같은 짐승들까지도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함”과 같이(사 11:6, 7) 지극히 온순하고 다루기 쉬울 뿐만 아니라,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정도로 이상하게 변하기는 했어도, 이런 사건이 끝나면 그 굴레는 벗겨져 그전과 똑같은 바탕으로 돌아간다. 

방주가 그들의 본성을 개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있는 위선자들도, 외모로는 방주의 율법을 따르고 있지만 변치 않을 것이며, 머지않아 그 본성이 드러나고 만다.

Ⅳ. 그 주위 사정은 우리가 유의할 만하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16절). 

노아가 끊임없이 하나님께 순종했으니, 하나님께서도 계속해서 노아를 돌보아 주셨다. 그리고 여기에는 매우 뚜렷한 하나님의 배려가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이 문을 닫으심은 노아와 바깥의 모든 세상 사이에 칸막이 벽을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신 이유는 이렇다.

1. 노아를 방주 속에서 안전히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 문은 매우 굳게 닫혀 물이 스며들어 방주를 가라앉히지 못하게 했을 것이며, 또한 매우 빨리 닫혀서 외부의 어느 누구도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특별한 소유를 삼음”같이(말 3:17) 노아를 돌보아 주셨다.

2. 다른 모든 것을 못 들어오게 하여 영원히 밖에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 때까지는 방주의 문이 계속 개방되어 있어서, 어느 누구든지 최후의 7일 동안에라도 회개하고 믿었더라면 기꺼이 방주 안으로 맞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문은 닫히고, 그 속으로 들어갈 모든 소망이 단절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닫으면 열 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사 22:22).

Ⅴ. 방주 속에서 구원된 노아를 통해 우리는 복음의 의무와 특권을 상세히 알 수가 있다.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우리의 세례의 모형으로 삼았으니, 곧 그리스도교 신앙이다(벧전 3:20, 21). 

다음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보잘것없이 가련한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복음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산 믿음으로서 우리의 중대한 의무다.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자신의 집과 땅도 버렸다. 우리도 우리의 독선과 세상의 재물이 그리스도와 대등한 위치에 있으면 언제나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노아는 잠시 동안이나마 새 세상을 위해서 살아남으려고 방주에서의 유폐된 생활과 불편을 달게 받아야 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자 그에게로 들어오는 자들은 고난이나 섬기는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마땅하다.

2. 자기 스스로 방주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자는, 선한 가르침과 설득, 선한 본을 보임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자기와 함께 이끌어 들여야 한다. 

노아가 그 아내를 구원했듯이,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고전 7:16) 

그리스도 안에는 그를 찾아오는 모든 자가 유할 곳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3. 믿음으로써 방주 되신 그리스도에게로 들어오는 자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닫아 넣으실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새에 있는 자처럼 보호하심을 입을 것이다(벧전 1:5).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낙원에 두셨지만 그를 닫아 넣지 않으셨기 때문에,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방주 안에 두실 때에 그를 닫아 넣으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한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 때에는 그 구원을 보장해 주신다. 

그 구원은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의 손을 통해서 지켜지는 것이다.

4. 자비의 문은, 지금 그 자비를 가벼이 여기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머지않아 폐쇄되고 말 것이다

지금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그러나 그 문이 열리지 않을 때가 이를 것이다(눅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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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계속된 기간(창 7:17-20)

Ⅰ. 홍수가 계속된 기간은 “40일”(17절)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지 않았던 세상 사람들은 실제로 눈앞에 그 일이 닥쳤을 때는, 아마도 속으로 이제 곧 비가 멈추어 결코 극한 상황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계속 많아져서 땅에 창일하게 되었다. 

이제 유의해 둘 것이 있다.

1.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모든 것을 압도하신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맺으신다. 하나님의 길은 심판에나 긍휼에나 다같이 완전하시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서서히 다가오지만, 그것 때문에 때때로 제멋대로 억측하는 나머지 그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Ⅱ. 홍수는 어느 정도 계속되었는가? 

온 땅에 창일하여 평지만이 범람했던 것이 아니라, 일을 확실하게 하고 아무도 도피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천하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까지 넘쳐 덮였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부터 물 덮인 두께가 무려, 1층 더 높은>15규빗”이라 했으니 이는 640cm다. 그러므로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에서 바라는 것은 허사이다”(렘 3:23).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무리 높이 솟아도 그의 능력이 그 위를 덮지 못할 만큼 높은 것은 없다. 그리하여 교만하게 거동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보다 위에 계심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높은 산꼭대기도 물의 힘으로 휩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 물의 힘은 물이 산을 능가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물을 내신즉” 범람했을 뿐만 아니라, 땅을 뒤집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욥 12:15). 

그리하여 거짓 피난처는 없어지고 “물이 죄인들의 숨는 곳에 넘쳐흘렀으며”(사 28:17), 저들이 안전을 위해서 산과 바위 있는 곳으로 쫓아가나 헛되고 헛되도다(계 6:16). 

이제 산들은 떠났고 작은 산들도 옮겨졌으니, 인간은 “화평케 하는 언약” 외에는 설 곳이 없게 되었다(사 54:10).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미치지 못할 만큼 높이 사람을 놓아둘 곳은 없다(렘 49:16; 욥 3:4). 하나님의 손이 “그 모든 원수를 발견하리로다”(시 21:8). 

노아의 추(錘)로써가 아니라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는” 이의 지식으로써(욥 28:25), 그 얼마나 정확하게 물의 깊이를 쟀는가(“15규빗”)를 살펴보라.

Ⅲ. 물이 그같이 불어났을 때 노아의 방주는 어떻게 되었는가? 

방주는<모세를 담은 갈대상자도 그러했다> “땅에서 떠올랐고(17절), 물 위에 떠다녔다”(18절). ...둘 다 완전히 죽은 자, 주께 모든 것 온통 맡겨드림의 표상이다!!  다른 모든 건축물들은 모두 남김없이 물로 인해서 무너지고 물 밑에 매몰되었을 때, 방주만이 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자.

1. 방주만이 만물을 파괴해 버린 물을 견디어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죽음의 냄새인 것이 신실한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인 것이다.

2. 물이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방주는 점점 더 높이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따라서 거룩한 재난은 영적 촉진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괴로움이 많으면 위로함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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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들의 멸망(창 7:21-24)

Ⅰ. 대홍수로 인한 모든 생물의 전반적인 멸망.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시 46:8). 

또 무더기 위에 무더기를 어떻게 더하셨는가를 보라. 사망이 애당초 이 세상에 들어올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결코 이 때처럼 큰 승리를 거둔 적은 없었다. 

청황색 말 위에 탄 사망을 와 보라. 그의 뒤를 따르는 지옥을 보라(계 6:7, 8).

1. 방주 안에 있던 몇몇을 제하고는 모든 가축들과 새들과 땅에 기는 모든 생물들이 다 죽었다.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21절)는 말씀이 얼마나 반복되어 있는가 살펴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22절). 

모든 생물이 어찌하여 그런 일을 당했을까? 오직 인간만이 사악한 일을 저질렀으니, 하나님께서 이들만 대적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양들, 그들은 어떤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나는 이같이 대답하리라.

(1)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잘못하신 것이 없음이 분명하다. 

그는 모든 생명을 주관하는 여호와시다. 왜냐하면 그 분이 그 모든 것의 유일한 근원이며 조물주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당신의 원대로 만드신 이가, 또 원하기만 하면 파괴하실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누가 그 분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지으신 것을 하나님 자신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

(2) 창조는 물론이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대로 이제 그들을 멸망시킴으로써, 당신 스스로의 영광을 위한 목적대로 놀랍게 이루셨다. 

이 가운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정의가 크게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미워하시며 죄인들을 크게 불쾌히 여기시므로, 하나님이 죄인을 벌하는 때에는 하등 피조물까지도 인간과 함께 멸망을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보다 더 뚜렷하고 무서운 것이 되며,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분노와 그 벌이 더욱 명백해진다. 

피조물의 멸망은 타락의 굴레에서 그들이 해방되는 일이었으니, 지금도 모든 피조물이 바로 그런 해방을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다(롬 8:21, 22).

마찬가지로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지혜의 실례였다. 인간이 지음을 받을 때에 다른 피조물은 인간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인간이 번성할 때에는 그들도 번식하게 하셨다. 따라서 그 인류의 수가 역시 그처럼 감소되었다. 그 같은 비율에 따라 금수들도 감소되어야 마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금수들이 지배권을 갖고 온 땅에 충만하게 되어,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들에게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하등한 피조물이 인간의 종이요 한 소유물이며, 죄악된 일에 악용되었기 때문임을 나타낸다. 

출애굽기 23장 29절(“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염려하여”)에서도 하나님이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음을 볼 수 있다.

2.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방주 안에 있던 자들은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죽었다. 

“모든 사람”(21절과 23절)이라 했으니 아마 더 많지는 않았겠지만, 오늘날 이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1) 그들 자신이 물에 에워싸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얼마나 공포와 경악에 사로잡혔을까 하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홍수가 난 바로 그 날까지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눅 17:26, 27). 

그들은 홍수에 빠지기 전에,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에 눈멀고 귀먹어 스스로 “평화” 하고 외치면서 이미 방심과 욕정에 빠져 있었다. 

그러는 중에 (사무엘상 30:16, 17에 있는 말씀과 같이) 죽음이 불시에 그들을 기습해 버렸다. 그 때 그들은 그 얼마나 놀랐을 것인가! 

그들이 전에는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보고 느끼게 되니 이미 때늦은 뒤에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눈물로써 근심스러이 회개할 곳을 찾으나, 이제는 그런 곳을 찾지 못한다.

(2) 가능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살아 보려고 애를 썼으나 그 모두 헛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자들은 나무 위나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그 곳에서 잠시 동안 공포를 달랬으리라. 그러나 급기야는 홍수가 그들에게 이르러서 보다 더 슬프게도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어떤 이는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들이 조롱해 오던 그 방주에 매달려, 이제는 그것이 자기들의 안전이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아마도 방주 지붕에 올라가서 그 곳에서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식량 부족으로 그 곳에서 말라 죽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배가 매우 급격히 움직이든가 심한 비가 내려 그들을 지붕에서 쓸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자들은 방주 안에 들여보내 달라고 노아에게 옛정을 호소했을지 모른다.  “우리가 당신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눅 13:26). 그러나 노아는 이렇게 대답했으리라. “그렇지, 헛되게도 여러 번 내가 그랬었지.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였다(잠 1:24, 25). 이제 너희를 돕는 일은 내 권한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그 문을 닫으셨으니 내가 그것을 열 수가 없노라.”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모든 것이 이러하리라. 외식적인 고백을 높이 내세우거나 선한 사람과의 인연을 주장하는 그것으로서는 하늘나라에 이르지 못하리라(마 7:22; 25:8, 9). 그리스도, 곧 방주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자들은 구원할 수 없다(사 10:3 참조).

(3) 홍수에서 죽은 자 중의 어떤 사람들은, 방주를 만드는 일로 노아를 도왔든지, 혹은 그에게 고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여 방주 안에 들어감으로써 구원의 자리를 마련할 만큼은 현명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사악한 성직자들은 이처럼 비록 남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되나, 자신은 지옥으로 떠밀려 내려가고 말 것이다.

이제 잠시 이 무시무시한 심판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이 공포를, 이 멸망의 공포를 마음속으로 깊이 묵상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닫고 다 함께 말하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주께서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하나님을 버림이 악이요 고통이라”(히 12:31; 시 76:7; 렘 2:19). 

죄인들의 피는 회개함이 없이는 머지않아 그 자신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참되시다면 필경 그러하리라.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잠 11:21) 악한 자의 형벌은 간과되는 일이 없으리라. 의로우신 하나님은 세상에 홍수를 내리시는 그 방법을 알고 계신다(벧후 2:5). 

엘리바스는 이 이야기를 무관심한 세상에 대한 뚜렷한 경고로 호소한다. “네가 악인의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어 버리워” 영원 속으로 가 버렸으며, “그 터는 하수로 인하여 함몰되었느니라”(욥 22:15, 16).

Ⅱ. 노아와 그 가족들의 특별하신 보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23절).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노아는 살아났다. 

노아 주위에 있던 모든 자들은 정의의 기념비가 되어 수천 수만이 좌우에서 멸망을 당했을 때, 그는 자비의 기념비가 되었다. 

노아만이 홀로 직접 “악인의 보응을 목도”했으리라(시 91:7, 8).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 32:6).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노아는 악한 세상에 전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돌이키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단지 자기 자신만을 건지는 것으로 응답되었을 뿐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노아, 다니엘, 욥은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겔 14:14). 이 영예의 징표가 중재 기도자에게 주어지리라.

2. 노아는 간신히 살아났다. 

노아만 (실지로는) 정말 간신히(!!) <오직 은혜로> 살아남았다 . (더불어 살아난 나머지 사람들-그의 권속들은 <은혜의>선물이었다...(한자로 배<선>글자는 [배+여덟 팔 +입구]로 짜여져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는 사실상 생매장 되었다.(마치 땅에 떨어져 묻혀 죽어야 다시 사는, 한 알의 밀알처럼!!...어쩌면 바로 정말 그렇게 느꼈을 수지도 모른다..다만 주를 신뢰함으로 참아냄이 중요했다) 그는 좁은 곳에 유폐되어 있었다. 게다가, 쏟아지는 비의 공포와 불어나고 있는 큰 물, 그리고 죽어 가고 있는 그의 이웃들의 비명과 절규에 놀랐고, 그의 마음은 황폐로 인해 심히 우울한 생각 속에 빠져 있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본분을 다했으며 <하나님 은혜로>구원의 길에 들어서 있다는 <바로 그 한가지!!> 사실 때문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모든 것을 황량하게 만드는 심판이 널리 모든 사람에게 미칠 때 우리는 <섣부른 자행자지함, 곧> 스스로를 위한 대사(大事)나 쾌락을 촉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생명 구원함 받게 되면,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은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렘 45: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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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홍수 심판

[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가족]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너와 네 온 가족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 의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구원은 가정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구원해주셨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행 16:31).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아버지가 구원받으면 대체로 가족들도 구원받을 것이다.

[2-3절]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짐승들과 새들을 방주에 들여놓게 하심으로 그것들을 땅에 보존시키셨다. 홍수 심판은 대변혁이었지만,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는 변혁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들과 새들을 다시 창조하지 않으시고 그것들을 방주에 보존하기를 원하셨다.

노아 시대에 벌써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이 있었다. 그 구별은 후에 모세의 율법에서 성문화되었다(레 11장, 신 14장). 암수 ‘일곱씩’이라는 원어(쉬브아 쉬브아 )는 ‘일곱 일곱’이라는 뜻으로 암수 ‘일곱 쌍’을 가리킨다. 암수 ‘둘씩’이라는 말은 한 쌍을 가리킨다. 정결한 짐승들과 새들을 암수 일곱 쌍씩 보존케 하신 것은 그것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사용하며 또한 홍수 후에 번식하여 사람들의 식물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창 8:20; 9:3).

[4-6절]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40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600세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7일 후면 40일 동안 밤낮 비가 내릴 것이다. 땅에는 큰 홍수가 있을 것이며 그 홍수로 땅 위의 모든 생물은 멸망할 것이다. 그때 노아의 나이는 600세이었는데, 그것은 성경의 문자적 연대 계산에 의하면 아담이 창조된 후 1,656년경이며, 대략 주전 2,456년경이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했다. 그는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도, 모든 생물을 방주 안으로 들여놓으라는 명령도, 모든 식물을 저장하라는 명령도, 또 그와 그의 온 가족이 방주로 들어가라는 명령도 다 행하였다. 의인 노아의 삶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었다.

[7-10절]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7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와 그 가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에 들어갔다. 그들은 필요한 생활 도구들과 식량을 방주로 옮겼을 것이다. 방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에 있었다. 아직 비가 오지 않는 때이었다. 이웃 사람들은 “무슨 홍수가 나서 세상이 망한다는 말인가” 하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를 미쳤다고 놀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든 생물들은 암수 둘씩 질서 있게 노아에게 나아왔다. 그것들은 다가올 홍수 심판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방주로 나아왔다. 그 많은 생물들이 순순히 방주 속으로 들어온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었지만, 이런 일이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들은 다 방주에 들어갔다. 아무리 방주가 준비되어 있었을지라도 그 배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홍수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배 안으로 다 들어갔고 땅에는 홍수가 있었다.

[11-12절]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곧 그 달 17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그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었다. 연월일 단위는 인류의 초기부터 있었던 것 같다. 노아 시대 홍수의 정확한 날짜는, 입에서 입으로나, 토판(土版) 같은 기록물을 통해 전해 내려왔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의해, 모세에게까지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만큼 성경은 정확하게 역사적 성격을 띤다. 성경은 역사적 책이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밤낮 40일 땅에 쏟아졌다. 땅의 물 근원들은 터졌고 하늘의 수증기들은 창들이 열리듯이 땅에 부어져 내렸다.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났다. 땅 위의 이상 기후 현상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난다.

[13-16절]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홍수가 시작된 그 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다 방주로 들어갔다. 또 암수 한 쌍씩 그들에게 나아온 모든 생물들도 다 들어왔다. 방주 밖에는 심상치 않은 소낙비로 인해 혹시나 하는 두려움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노아의 식구들과 그 모든 생물들은 다 방주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명령대로이었다. 그러므로 16절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고 기록하였다.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도 하나님이셨고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 이도 하나님이셨다. 그 방주는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셨고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는 큰 배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한 자들을 방주 안에 닫아 넣으셨다. 방주 안의 사람들과 방주 밖의 사람들은 구별되었고, 방주 안의 생물들과 방주 밖의 생물들도 구별되었다.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었고, 방주 밖에 있는 자들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정한 시간이 지났고 문은 닫혔다. 그 문은 사람이 닫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닫으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닫으셨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 문을 열 수 없었다.

[17-20절] 홍수가 땅에 40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15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40일 동안의 비로 온 땅은 물바다가 되었다.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지자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다. 물이 더 많아져 천하의 높은 산들이 다 덮였다. 본문은 물이 15규빗, 약 7m 더 불어오르자 온 산들이 덮였다고 말한다. 노아는 아마 그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았을 것이다.

이 홍수는 한 지역에 국한된 홍수가 아니고, 온 세계에 미친 홍수이었다. 어떤 이들은 홍수가 유브라데강 유역에 국한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1) 히말라야 상봉을 덮으려면 현재 지구상의 물의 8배가 있어야 하며 (2) 그 물이 없어지는 것도 큰 문제이며 (3) 모든 식물이 1년간 소금물에 잠겼다면 살 가능성이 아주 적으며 (4) 어떤 지역은 침수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 등을 들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이 홍수가 지역적 홍수가 아니고 세계적 홍수임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본문은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고 땅 위의 모든 사람과 모든 생물이 다 죽었다고 분명히 증거한다(19, 21-23절). 이 말씀을 부정하지 않고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 곳곳에는 땅이 깊이 갈라진 곳이 있고 그 속에 동물들의 골격이 남아 있다고 하며, 또 세계의 여러 민족들에는 홍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인도의 마누는 다른 일곱 명과 함께 세계적인 홍수에서 배 타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며, 중국의 파헤는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세 딸만 함께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와이의 누우, 멕시코 인디안들의 테즈피, 북아메리카의 한 원주민인 알곤킨인들의 마나 보조 등도 인류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받았고 오직 한 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배를 타고 구원받았다고 전한다.

[21-24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물이 150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홍수는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죄악되었던가. 일부일처의 가정 윤리는 깨어지고 남자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들을 마음대로 취하였다. 남녀의 순결성과 정절이 무의미하게 여겨졌고 부부 관계의 사랑과 육신적 욕구의 절제가 무가치하게 여겨졌다.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부패되었다. 또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다.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무서운 사회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본문은 홍수로 땅 위의 모든 사람과 생물이 죽었음을 반복하여 증거한다. 

‘다,’ ‘모든’이라는 말이 우리 성경에는 다섯 번, 영어 성경에는 여섯 번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 철저한지를 잘 증거한다. 아, 하나님의 심판은 두렵고 엄위하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심판하시면, 그는 악인들의 부르짖음을 무시하시고 그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신다. 그래서 땅 위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동물들과 새들까지도 죽었다.

홍수 심판으로 땅 위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새들과 모든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이 죽었고,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었던 가족들과 생물들만 남았다. 방주가 아니었다면 그들도 다 죽었을 것이다. 방주는 그들에게 홍수로부터의 구원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새 세상을 위해 오직 그들만 남겨두셨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섭리자이시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그가 또한 온 세상을 섭리하신다. 섭리하신다는 말은 보존하고 통치하신다는 뜻이다. 그는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는 역사상 전무했던 큰 홍수를 일으키셨다. 그는 큰 깊음의 샘들은 터지게 하셨고 하늘의 창들을 열어 밤낮 40일 동안 비가 땅에 쏟아지게 하셨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새들과 땅의 생물들을 다 암수 둘씩 방주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다. 그가 이 모든 일을 하셨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다. 앞장에서 읽은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일부다처의 풍조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였다.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고 강포가 땅에 충만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홍수로 멸하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시다. 그는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다(벧후 3:6-7). 성경은 악인들을 위한 지옥 불못을 밝히 증거한다(계 21:8).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방주에 있는 모든 가족들과 생물들을 구원하셨다. 노아가 구원을 받은 까닭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기 때문이다(창 6:9; 7:1).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것은 몸의 죽음뿐 아니라 지옥 형벌을 포함한다.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죄인이 구원을 받는 길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다. 죄인이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은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뿐이다. 방주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상징하였다. 우리는 모든 죄를 버리고 구주 예수를 믿어야 하고 오직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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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궈궤<언약궤>, 그 안의 내용물들인 만나(출16:33..생명 양식)를 담은 항아리, 언약의 두 돌판(출25:16), 아론의 싹 난 지팡이(민17...주권적 선택과 섭리)의 영적 의미 

=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계시, 바로 믿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 신실-진실하심의 증거

= 곧 [모든 차원-우주-만물-만유의 창조주 하나님이 택정하신 바, 주권적 선택의 은총 입어 제사장 나라로 선택받은 자들인 너희는 한 사람사람마다 각자, 그리고 동시에 <자기 희생 감수하는, 겸손의> 유기적 생명 공동체로서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건은 날마다 말씀을 절대적-초월적 가치의 보물이자 그로 인해 살게 되는 마땅한, 존귀한 참 생명 양식 삼아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영광-성품-풍성부요충만-능력] 절대 신뢰함으로써 열어주시는 그리스도를 생명삼아 살아감이다..... 곧 말씀 안에 하나님 당신의 모든 영광의 성분과 요소 그대로를 담아 호흡해 내셨기에, 바로 그 귀결인 그리스도<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에 절대 순복 통해서 언약하신 축복들 그 내용 그대로 완전히 이루심을 볼 수 있게 된다 증거하시는 것.....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적 섭리와 초월적 지혜를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서, 그 결과는 약속받은 내용을 그대로 누리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인 거룩한 하나님나라 백성과 자녀됨으로 나타나게 될 것임을 친히 증거하고 계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기적적인 보호와 인도로 큰 은혜를 받으면 그 기념물을 대대로 간직하였다. 만나(출16:33), 두 돌판(출25:16), 아론의 싹난 지팡이(민17장)는 각기 일어난 시기가 다르다..... 그럴 때마다 각기 따로 간직하고 있다가 성막과 언약궤를 제작한 후에(출40장) 그 셋을 궤안에 함께 넣었음. (그러나,  솔로몬 왕 때에 성전을 완공하고 궤를 안치했는데 왕상8:9에서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기술됨..... <아마도> 학자들은 엘리 제사장 때에...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노획당하면서(삼상4,5장) 유실된 것으로 보고 있음)-->그러나, 히브리서 9장은 세 기념물이 다 궤 안에 <분명히> 있었다는 뜻으로 말한다. 이 세 기물의 상징하고자 하는 궁극적 초점은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주 하나님이심..., 바로 그분이 곧 창조주 하나님,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초월적 지혜의 하나님, 구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각 심령의 어떠함을 달아보고 판단하시는>, 그래서 심판과 구원을 주관하시는 엄위하신 분이라는 점을 밝히 드러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결국,  히브리서 기자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약속해 오신 말씀 내용 그대로 그 심판과 구원을 성육신하여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주관 완성하셨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구약의 언약궤에 대한 진술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


##분향단(향단, 금향로, 금단)...<구원받은 이가 주님의 누림 위해 드릴 바> 아침-저녁 드리는 <분향단의 기도>를 잊지말자..
 ---분향단은 직역하면 '향(케토레트, קטרת)을 태우는 곳인 단(미즈 베아호, מזבּח)'이다. 
(이처럼 신에게 향을 태워 제사하는 것은 비단 히브리인 뿐만 아니라 애굽과 바벨론, 그리이스, 로마 등에서도 시행되던 일반적 종교 행위였었다.)
....한편 분향단은 향을 사르기 때문에 일명 '향단'으로(10절:대상6:49),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금단'으로 불리우기도 했다(39:38;민4:11). 히브리서에서는 '금향로'라고 소개한다.
• 분향단의 크기와 모양 - 크기는 가로, 세로 각 45.6cm에 높이 912cm정도였으며 위치는 성소의 중앙, 지성소 맞은 편에 놓여졌다. 
* 뿔 넷 - 번제단 뿔(27:2)이 실제적인 용도와 더불어(시118:27) 상징적으로 사용 (29:12;레8:15; 9:9; 16:18; 왕상1:50; 2:28; 시18:112:9)된 것처럼, 분향단 뿔 역시 번제단과 동일한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설치된 것 같다.
* 정금으로 싸고 - 분향단은 땅바닥에 닿는 아래 바닥을 제외하고는 전부 금으로 싸야 했다. 이처럼 분향단뿐 아니라 성막의 주요 기구를 모두 정금으로 도금한 이유는 금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 것 같다(25:11,24,31,38;26:29), 즉 금은 그 아름다움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며, 그 변하지 않는 속성에 있어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나타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Kalisch).
* 금고리 둘 - 법궤와 번제단의 고리는 4개인데(25:12;27:4) 비해 분향단의 고리는 2개였다. 이것은 분향단의 크기가 작았으므로 2개의 고리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있기 때문인것 같다(플핏 주석). ...한편 이러한 고리에는 채(pole)가 꿰여졌는데, 그것은 이동을 하기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는 수시로 성물들이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향단 이외에도 법괘나 진설병 상 및 번제단에도 이러한 고리들이 있었다.
* 채- 이는 법궤를 운반할 때 쓰이는 채(pole)를 만드는 방법과 동일하다(25:13). 채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쌓다.
• 분향단의 위치"속죄소 맞은 편...장 밖에 두라"-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26:33) 바로 앞쪽 성소 부분에 분향단을 두었다(40:29-33). 
....따라서 분향단은 성소의 여러 기구 중 속죄소에 가장 가까이 놓여지게 된다. 여기서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이고(25:22), 분향단 위에서 타오르는 향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와 기도를 상징한다(계5:8). 그러므로 분향단이 속죄소에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가장 가까이에 계셔 항상 그 기도를 들어 주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거룩하니라(출 30:10)"라는 표현으로 이를 증명해 주셨다. - '거룩함'을 뜻하는 '코데쉬'를 반복 사용해서 거룩하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7절). 한편 '지극히 거룩하다'는 말은 본래 지성소에만 해당되는 말인데 이 말이 분향단에도 적용된 것은 분향단이 지성소의 한 기구로 취급됨을 암시한다. 즉 분향단이 성소 내에 있으나 지성소와 가장 가까이 있으며 그 의미에 있어서도 지성소적 성격에 가까움을 시사한다(6절). .
....한편, 영적으로 이것은 분향단 위에서 피어 오르는 향, 즉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매우 값지게 간주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플핏 주석). .
....한편, 히브리서 기자도 이것을 주장하고 있다. "예비한 첫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히 9:2-4). <여기의 표현에 주의해 보라> 히브리서 기자는 금향로가 지성소에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성소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오해한 표현이 결코 아니다. 분향단은 성소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지성소에 있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는 분향단이 상징하는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어떻게 여겨지는지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 분향하는 때(시간) 
...."아침마다" - '아침'을 뜻하는 '보케르(בּקר)'가 반복되어서 '아침마다'라는 말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동어반복에 의한 강조에 대해서는 21;12,15,16을 참조하라)즉 이는 분향의 때가 아침이어야 함을 특별히 강조해 주는데 이 시간은 등불을 끄는 시간과 일치한다. .
....따라서 해가 돋을 때 제사장은 등불을 끄는 일(27:20,21)과 향을 피우는 일, 이 두 가지 일을 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등불을 정리할 때" - 어기서 '정리하다'로 번역된 '야타브'는'좋게 만들다', '잘되게 하다', '단장하다'는 뜻이 있으며 '기쁘게 하다'는 의미도 갖는다. 성소의 등불은 아침에 끄도록 되어 있는데(27:21; 레24:3; 삼상3:3) 등불을 끄는 행위를 이처럼 '단장하는' 행위로 표현한 것은 그것이 심지를 다듬고 기름을 보충하는 간검(看檢) 행위이기 때문이다(27:21). 
...."또 저녁 때...사를지니" - 해가 지면 제사장은 다시 등불을 켜기 위하여 성소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때 분향도 함께 드리라는 말이다. 
이와 같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번씩 드리는 이 분향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됨을 시사해 준다(Calvin). 
...."대대로...끊지 못할지며"- 문자적으로는 '끊임없이너의 대대로'라는 말이나 여기서 '타미드'는 '쉬지말고', '끊이지 말고'의 뜻으로서가 아니라 '규칙적으로'란 의미이다. 즉 향을 계속적으로 태우되 매일 아침과 저녁. 규칙적으로 피우라는 말이다(27:20). 따라서 NIV는 이를 '규칙적으로'(regularly)로,NEB는 '규칙적인'(regularly)으로 번역하고 있다.....그리고 성막뜰 번제단에서 사용된 불로만 성소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분향단, 금등대). 이는 번제단에서 속죄, 구원 받은 후에야 그 후 더 발전도 사역인 말씀과 중보기도 사역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 향의 용도
.... 먼저, 향은 출애굽기 30장 36-38절에 의하면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냄새를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라고 하였다.
....“너희를 위하여는”, “냄새를 맡으려고”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적을 하나님께만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가 나답과 아비후의 예배, 홉니와 비느하스의 예배, 가인의 예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예배여야 하고, 그 (말씀)의 지시대로 준비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임의로 바꾸면 안된다. 
.... "향기로운 향을...사르되" - 성막에서는 늘 희생 제사가 이어졌기 때문에 고기 태우는 냄새와 피 냄새 등으로 가득찼을 것이다(레1-6장). 따라서 이런 냄새를 제거하거나 중화시키기 위해서도 향기로운 향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제단 주변에는 피를 뿌리기 때문에(29:12,16,20) 더욱 이러한 향이 필요했을 것이다. 
• 분향단의 주의 할 점
1) "다른 향"을 사용하지 말아라. ....다른에 해당하는 '자라(זוּר)'는 원래는 '곁길로 들다'는 뜻이다. 따라서 여기에서'이상한', '이방인의'라는 의미가 파생했다. 그러므로 KJV는 이를 이상한'(strange), NIV는 다른 어떤'(any other). 그리고 NEB는 '인정되지 않는'(unauthorized)으로 각기 번역하고있다. 
아뭏든 여기서 '다른'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추측컨대 '향을 만드는 법대로'(34-38절) 만들지 아니한 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 .
....한편 고대 근동에서는 특별한 목적에만 향을 피웠기 때문에 향의 남용이나 오용을 규제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였다. 
....한편 이와 유사한 경우가 레10:1-3에도 있는데, 곧 아론의 아들들이 하나님께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은 예이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자 자기들의 향로에 불을 담아 그 위에 향을 피웠다. 그러나 그 불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이었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삼켜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죽고 말았다.  그때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들 중에 나의 거룩함을 보이고 모든 백성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 그러나 아론은 아무 말이 없었다."(레위기 10:1‭-‬3)
2) 번제나 소제...전제의 술을 붓지 말아라.  
....분향단은 오직 분향에만 사용되어야 했다. 분향단은 그 생김새가 번제단과 유사하여(1-3절;27:1,2) 제사용으로 잘못 사용할 소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분향단은 단 자체가 향기롭고 깨끗한 것이기 때문에, 그 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거나 술을 붓게 되면 깨끗함을 상실하고 본래의 의미(7절)가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성막의 기구들은 모두가 고유한 용도만을 갖고 있었으며 중복해서 사용될 수 없었다. 만약 '겹치기'로 사용되면 깨끗하게 유지되기가 어려울 것이고 성물로서의 독특한 고유의 의미도 감소될 것이다. 
....한편, 여기서 '전제의 술'이란 포도주(29:40)나 독주(민28:7)를 말한다.
3) 일 년 일차씩 정결케 하라. 
....7월 10일 속죄일을 말한다(레16:29). 이 날에는 지성소와 성막 본체 및 성막 내의 모든 기구들을 피로써 정결케 하는 의식이 집행된다(레16:16-19 ). 비록 분향단이 매일 하나님께 향을 바치는데 쓰는 성구(聖具)이긴 하나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성구(거룩한 기물)도 근본적으로 죄인인 제사장의 손에 접촉되는 동안 의식적인 부정을 입게 되었을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 계속 거룩한 기구로 사용되기 위하여서는 매년 한번씩 반드시 피로써 정결케 해야 했던 것이다. 곧 성소에서 쓰이는 모든 도구들은 먼저 피로서 정결케 되어야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쓰이기에 합당한 거룩한 도구, 즉 성물(聖物)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속죄제의 피 - 죄사함을 받기 위해 드려지는 속죄 제물인 수송아지나 수염소, 수양등의 피를 가리킨다(레16:5,6,15,27) 
•분향단의 교훈.  
....향을 올려 드림은 무슨 의미일까? (출 30:36-38, 계 5:8, 8:3-4)이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 기도, 예배를 의미한다. 
....계시록 5장 8절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 
....계시록 8장 3-4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번제단에서 올라가는 제물을 태운 연기는 우리의 구원, 용서, 축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향단에서 올려지는 (향연)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이다. 때때로, 찬양이나 기도, 예배가 사람을 의식하여 드려지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참되게 지향할 바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간증이, 우리의 존재가 곧 하나님을 향하여 올려드리는 향이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를 끄집어 올리기 위함이다(고전 1:9). "여러분을 불러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고린도전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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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단(焚香壇) Incense Altar@@@
==출애굽기 30장 1절 - 10절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장이 일 규빗, 광이 일 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이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고 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를지며 금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편에 만들지니 이는 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아론이 일 년 일 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 일 차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출애굽기 30장 34절 -3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취하고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동일한 중수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네가 만들 향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룩한 것이니 그 방법대로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무릇 맡으려고 이같은 것을 만드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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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향단의 위치
성막 바깥뜰의 출구는 해뜨는 쪽인 동쪽에 있습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은 바깥뜰 안에 있고, [안뜰에 속한] 길이 삼십 규빗, 너비 십 규빗, 높이 십 규빗의 건조물인 성막은 이십 규빗 곱하기 십 규빗인 성소와 길이 너비 높이가 모두 십 규빗인 입방체의 지성소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떡상은 성소의 북쪽에 있었고 등대는 남쪽에 있습니다.
성막 전체의 촛점인 법궤는 지성소 안에 있습니다.
분향단은 성소에 있었는데, 지성소와 성소를 분리하는 휘장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분향단의 위치에 관하여, 구약과 신약은 언뜻 보기에 모순되는 말을 하지만, 출애굽기 30장 6절은 분향단을 「장 앞에 (before veil)」,즉 장 밖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분향단이 휘장 안쪽의 지성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휘장 바깥의 성소 안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9장 4절은 지성소에 금향단이 있었다고 말합니다.....그러므로 많은 그리스도인 교사들과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실수나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표면상 애매모호한 것은 많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분향단의 위치에 관한 구약의 기록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만나는 곳인 속죄소 위, 즉 증거궤와 아주 가까운 곳에 분향단이 있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출 30:6).   심지어 기록은 둘 사이를 분리하는 휘장을 언급하지도 않고 분향단을 「증거궤 앞에」 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출 40:5).
둘째로, 미국 표준 역 성경(American Standard Version)에 따르면, 열왕기상 6장 22절은 분향단이 내소(oracle)에 속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내소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곳인 속죄소를 가진 증거궤가 안에 있는 지성소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이 먼저 분향단이 지성소에 속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분향단은 성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은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를 위한 것입니다.
속죄일에 분향단과 증거궤의 속죄소 모두에 속죄를 위한 동일한 피가 뿌려졌습니다  (출 30:10, 레 16:15-16).
출애굽기 26장 35절은 성소 안에 있는 것으로 상과 등대만을 언급합니다. 거기에서는 분향단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분향단은 기도와 관계됩니다. (눅 1:10-11).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기도하는 것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히 10:19)이고, 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 위의 속죄소로 상징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것임을 봅니다.우리의 기도는 지성소로 상징된 우리의 영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이 모든 점들로 인해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분향단을 지성소에 속하는 것으로 단정합니다.
히브리서 9장 4절은, 2절에서 상과 등대가 성소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분향단이 지성소 안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분향단이 지성소에 속하기 때문에, 지성소에 금향단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막의 모든 기구들은 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짝이 있는 것처럼 성막의 기구도 짝이 있습니다.
성말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짝이요, 성소안의 금촛대와 떡상이 마주 보고 있는 짝이요, 향단과 지성소의 법궤가 마주하고 있는 짝임으로 비록 휘장 밖에 있지만 법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짝이기 때문에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분향단은 내소-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장소-곧 지성소에 속합니다.
분향단은 향기로운 향이신 부활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기 위해 그리스도로 기도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뻐하시게 됩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 안에 일 년에 한번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지만, 우리는 분향단에서 기도 할 때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향기로운 향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기도 안에서 하나님께 말하며, 하나님은 이 향의 향기로운 향기 안에서 기도를 들으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향기로운 향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향기로운 교통 안에서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본 대로 사실상 전혀 모순이 없는 것이요, 구약에 따르면 분향단은 비록 성소안에 있지만 하나님의 법궤와 가장 가까이에 있고, 우리가 지성소에는 자주 들어 갈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항상 우리를 들으시고, 계심으로 지성소에 속하고 있습니다.  향단이 성소에 있을지라도 성소에 속한 것이 아니라 지성소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지성소가 분향단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분향단이 지성소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기도 안에서 분향단을 체험할 때 우리는 종종 우리의 생각으로 시작해서 영 안으로 인도됩니다.
이제 우리가 영 안으로 인도되는 것은 쉬운데, 이는 휘장이 이미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2. 분향단의 모양
1. 재료: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만들었습니다.
2. 모양: 위에 4개의 뿔을 만들고, 상단 4면에 금테를 둘렀다. 금고리를 양편에 두 개씩 모두 4개를 만들고,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금채를 만들어 꿰었고.
3. 1년에 한번 향단의 뿔을 위한 속죄제를 드렸으며, 7월 10일 대속죄일 하루만은 향로가 옮겨져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레 16:11-19. 히 9:4).
대제사장은 향기가 자욱한 가운데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일곱번 뿌리며 온 이스라엘 백성들 의 죄를 속죄했습니다(레 16:11-19).
향단은 길이기 45 cm, 폭이 45 cm, 높이 90 cm 입니다.  성막 기구 가운데 제일 키가 높습니다.
3. 네모반듯한 이유와 뿔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
가. 모두 기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섭리
성소에 놓인 분향단(焚香壇)이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분향단이 어떤 짜임으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네모반듯하게 만들라
하나님께서는 분향단을 다음과 같이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찌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장이 일 규빗, 광이 일 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이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고 단 상면과 전후좌우면과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를찌며” (출30:1~3).
분향단은 높이가 2규빗이니 약 1 미터, 가로와 세로가 각각 1규빗이니 약 50 센티미터인 정방형(正方形) 제단(祭壇) 입니다.
분향단 재료는 성막 건축 재료와 똑같이 조각목을 정금으로 싸서 쓰라고 하셨습니다.
또 분향단 전면과 후면에 고리를 달아 막대기 채를 끼워 옮길 수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출30:4~5).
왜 분향단을 장과 광, 즉 가로 세로가 반듯한 정방형으로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분향단은 오늘날로 말하면 기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반듯하게 갈무리한 다음에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내용도 정욕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응답받을 만한 반듯한 것을 구해야 하고, 기도하는 사람의 삶의 태도도 반듯해야 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대신(對神), 대인(對人), 대물(對物) 관계를 모두 반듯이 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 능력을 상징하는 분향단 뿔
분향단 사면에 뿔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 뿔은 양각(羊角, 양의 뿔) 모양이며, 금으로 싸라고 했습니다.
뿔은 적(敵)이 침범할 때 들이받아서 자기 영역에서 몰아냄으로써 자기를 지키는 무기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원수가 오더라도 자기를 지킬 능력이 있어야 하고 남도 지켜줄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와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을 보면,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께 데리고 온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 우리 아들을 고쳐주세요. 우리 아들이 귀신 들려서 이 귀신이 물속에도 집어넣고 불 속에도 집어넣고 거꾸러져 거품을 물게도 합니다” 하고 말할 때 예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9:29).
즉 능력은 기도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의 능력이라는 뿔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 없는 사람, 능력 없는 교회는 한마디로 뿔 빠진 사람, 뿔 빠진 교회입니다.
다. 구원의 뿔이신 예수로 보호받으라.
성경은 예수를 구원의 뿔이라고 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눅1:68~71).
예수는 죄인을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 멸망에서 건져내는 능력을 지닌 분이요,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지닌 분입니다.
불가능이 없는 전지전능한 능력자이시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누구든지 분향단에 와서 회개하고 기도하면 구원의 뿔이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으로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오늘날 성도가 기도하는 것도 구원의 뿔이요, 능력의 뿔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보호받기 위함입니다.
예수를 구원의 뿔이라고 한 것은, 그분이 구원하려는 자는 아무도 손댈 수 없고 반드시 그가 구원하고야 만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피 공로에 의지하여 죄를 회개하는 회개 기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라. 향단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요한 계시록 5장 8절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성도가 성소에 들어가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향이 되어 천사의 금대접에 담기어 전달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성전에서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결코 헛된 기도가 아닙니다.
시편 141편 2절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기도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4. 향의 재료
가. 향의 재료와 의미들
• 1. 소햡향(Stacte)
1. 소합향의 재료
“물방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나타프(nataf)에서 온 것이고.(욥 36:27) 그것은 수액(樹液)이 천천히 삼출(滲出)되므로 형성된 모양 때문에 “물방울”이라고 불려졌습니다. Balsamodron myrrha 나무의 껍질을 절개함으로 생긴 몰약을 닮은 storaz 수액의 일종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향료를 만드는데 쓰는 벤자민 수액이었을 것이라고 시사합니다.
건조하게 되면 그것은 향내가 나는 재료로 사용됩니다. 소합향은 태워지면 매우 쓰고 매운 냄새를 냅니다.
• 소합향의 의미
소합향은 [스티렉스]라 하는 주로 시리아에서 자생하는 향나무에서 액을 체취 해 나오는 것으로 이 소합향은 치료제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드려지는 기도의 능력은 바로 상처를 치료한다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마음을 치료합니다. 기도는 몸을 치료합니다. 기도는 영적 질병을 치료합니다. 기도는 가정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강하고 자극적인 향료였고 맛이 씁니다. 기도의 요소 가운데 쓴 부분이 무엇인가? 그것은 고백이요 회개입니다. 
우리의 죄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시작하고 죄책감이 우리의 양심을 찌릅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우리는 마음의 번민과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고백하라”고 하십니다.(단 9:7, 스 10:1)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쓰라린 경험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소합향 수약은 나무에서 저절로 생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송진같이 상처 받은 곳에서 생성되는 수액같이 참된 기도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 2. 나감향(Onycha)
1. 나감향의 재료
못 혹은 발톱의 뜻이 있으며 연체동물의 껍질에서 얻어집니다. 홍해에서 [쉴휘쉬]라는 조개껍질을 빻아서 만든 가루입니다.  
아주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루를 만들어서 만드는 향입니다.
여러 종류의 바다 생물에게 있는 껍질의 열린 구멍을 봉하는 이 각질의 아가미 덮개가 태워질 때, 그것은 강한 냄새를 방출 시키는데, 그 냄새는 그다지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함께 섞은 향료의 냄새를 강렬하게 해 주고 오래 가게 해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감향은 향료 속에 있는 여러 가지 냄새를 공기를 통하여 전해준 휘발성의 전달매체로 사용되고, 흔히 향기의 기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2. 나감향의 의미
기도는 우리를 치료할 뿐 아니라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정욕과 혈기 그리고 교만을 깨뜨려 겸손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사단의 역사로부터나 어떤 부정한 것도 틈타지 못하는 것입니다.
향수를 만들 때 좋은 향기가 잘 풍겨나도록 그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나감향입니다. 
껍질을 가진 어류의 이 추출물은 함께 혼합된 향기를 강렬하게 해주고, 오래오래 지속시켜 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제에 해 주신 일과, 우리의 내일에 모든 일을 주시고자 준비하고 계신 것은 우리의 입술에 찬송의 노래를 부르게 하며 그분의 선하심을 찬양하도록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
조개류의 껍질을 빻아서 만든 향입니다. 자기의 자아와 고집이 부서지는 희생적인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마 26:39).
• 3. 풍자향(Galbanum)
1. 풍자향의 재료
풍자향은 고무나무가지에서 나오는 진액으로 만든 향입니다. 이 진액은 소독제로 쓰이기도 합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예방하고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맵고 쓴맛이 나는 누른 수지(樹脂)였고, 시리아, 아라비아, 이디오피아 등에서 자라는 관목 아위(ferule)의 껍질을 절개함으로 얻어진 것으로 봅니다.  페르시아 고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건조되고, 빻아지고 탈 때 그것은 맵고 얼얼한 냄새를 내었습니다. 그것이 섞여지면 다른 향기에다 자극적이며 흥분적인 질을 더해 줍니다.
2. 풍자향의 의미
풍자향은 예리하고 자극적인 향기를 가진 재료입니다.  그 자체만 태우면 이 향료의 냄새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향료의 나무진들과 함께 태워지면 그것은 냄새가 좋아지고, 다른 냄새들을 보존해 줍니다.
열의 있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계속해서 탄원하는 과부처럼 우리도 그리스도께 자주 기도하고 열렬하게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해야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향으로 소독제로 쓰이는 향으로 우리 영에 묻어 있는 독소를 제거 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마 6:12).
• 4. 유향
1. 유향의 재료
히브리어로 순백을 의미하는 유향(framlomcemse)은 식물 boswellia serrata(감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에서 삼출되어 얻어진 수지입니다.
그것은 기분 나쁜 냄새에 침투하여 덮어 버리는 효력을 가진 강하고 기분 좋은 향기를 내었습니다.
2. 유향의 의미
여리고에서 나오는 해독제로 독이나 악취를 제거하는데 탁월한 향입니다. 그래서 시체에 바르는 최고의 향이 됩니다. 
기도는 내 영혼을 틈타고 있는 저주, 문제, 악취, 온갖 문제를 제거해 줍니다. 또한 죄의 냄새를 없애 줍니다.
우리에게 닥칠 불행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유향은 모든 매운 특성들을 덮어 가리우기 위하여 그 향기를 나누었습니다. 
순결과 순백은 우리의 부활하신 구주의 메시야적 기별을 첨가합니다. 
유향은 예수님의 사랑스럽고 널리 퍼져 있는 이름의 산 능력을 말합니다. (엡 5:20, 요 14:13)
유향은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시체에 바르는 향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온갖 불행을 제거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갈급한 심령으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 5. 소금
위의 네 가지 재료들은 처음에 분리되어 주의 깊이 무게가 달리어지고, 그리스도에게 있는 이 특성을 표상하기 위하여 완전한 비율로 “성결하게”(출 30:35) 섞여졌습니다.  그리고 소금이 다량으로 첨가됨으로서 향을 위한 재료는 향 제조인의 회반죽에 있어서 완전해졌고, 마지막으로 향 제조자는 맛을 내고 보존하기 위하여 소금을 첨가합니다.  소금은 언약의 상징으로,(레 2:13 참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사심 없는 모세의 기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출 32:7-14
• 6. 향을 만드는 과정
향을 준비하는 데는 단 하나의 방법만이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출 30:36) 향의 다섯 가지 재료를 절구공이는 수없이 찧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문과 십자가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분향단에서 기도할 때에는 향을 피우며 기도했습니다.(출 30:34-38).
분향단의 향은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에 유향을 섞고 소금을 쳐서 만들었습니다.
(소합향 + 나감향 + 풍자향) * 유향 * 소금
소합향 -그리스도의 생애
나감향 -그리스도의 고난
풍자향 -그리스도의 피(영혼의 빨레)
유 향 - 그리스도의 죽음
소 금 - 그리스도의 재림(약속/언약)
분향단은 속죄소(법궤) 바로 앞에 있습니다.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향할 향 제조 : 소합향+나감향+풍자향+유향(섞음)+소금(침). 출 30:34-35
1) 소합향 : 향나무에서 저절로 나오는 향으로, 기도는 감사와 찬양이 저절로 흘러나와야 함을 의미합니다  (계 5:12). 아름다운 꽃은 저절로 향기를 발합니다.
2) 나감향 : 조개류의 껍질을 빻아서 나는 향으로, 겟세마네의 기도(마 26:39)처럼, 내 자아를 깨뜨리고 희생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3) 풍자향 :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향으로 소독제에 쓰입니다.  우슬초로 정결하게 하는 기도로 독소를 제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4) 유향 :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시체에 바르는 향으로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지고 간 것으로, 우리에게 닥친 불행을 제거하도록 드리는 기도. 야곱의 기도,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를 들수 있습니다..
5) 소금 : 분향단에 태우는 향에 소금을 반드시 넣습니다. 소금은 언약을 상징하고, 언약을 맺을 때 소금을 언약의  표시로 뿌림니다. 주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하여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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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빗 = 45cm(중지끝~팔꿈치)....짧은 규빗은 17.6인치(17.6*2,54cm=44cm) 긴 규빗은 20.65인치(20.65*2.54=53.45cm)  :: 이 길이의 중간정도면 45cm...*한 장대 길이 = 천사의 척량,,,한 장대 길이(대략 3미터)..아파트1층높이는 대략6.7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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