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상13.기적일으키는바신실하신YHWH말씀..사명자의마땅한바시종일관끝까지순전한순종함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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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3장   [449. 예수 따라가며].[255.주홍빛 같은 네죄]..세상흔들리고..

===벧엘 제단 규탄

1.  보라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이끌려)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예루살렘에서 17-20km거리] 마침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2.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왕하23:15-20) 하셨느니라 하고

......힘든시기에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말씀하시기도 함(예>고레스왕때 회복--이사야).....내년이맘때 이삭을 네게주리니

3.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예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극혐의, 이단적-우상 숭배 + 기복 예배!!] 하매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런데, 보라!! 그 말씀 하고 계시는 YHWH께서!! 그의 육체를 즉시 치고 계시는바]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5.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자기 죄악 선선히/애통하며 시인 + 회개로 반응함(다윗 패턴) 아니라, 오히려 한낱 체면만 차리려 이르기를 = 고집스레 폐기 심판 처분 자초하는바(사울 패턴!!)]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사랑하는자, Q 사람의 기도간구 들으시는바) 왕의 손이 다시 [기도 마치자마자]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우상숭배자와의 교제 극히 혐오하심!!]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자취 남기지 말것]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아니하니라

.......[분수령적 회개로 더 새로워질바, 이미 주께 돌이켜 거듭난 참 믿는이 그대여] 나는 과연 오늘 누구인가..Q의 사람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인간승리-배은망덕-자행자지함의, 주께 돌이키길 거부하고 있는) 오늘의 사울이자 여로보암인가, 주여, 오늘 새로이 마음을 주께 열어드립니다!!, 살아생동하는-생생하게 발휘하여-한걸음 믿음으로 내딛기 실행하는 참 믿음으로!! YHWH 경외함 안에 거하여 참 회개함으로써 [성결과 의]의 신부로 살게 하신바, 십자가에서부터 하나되신 CJ 이름 붙들어 성령께 의지하며, 말씀하심따라-여쭈며 들으며 순종함의 사랑으로써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살며 [맡기신 이들마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게 하소서. ......((주없이 살수없는!! 그리스도를 주로 받은자요)) 생명 산출/확장-새예루살렘, 곧 Q나라 위해 할일 있어서!! 이세상에 보냄받은 사명자로서의 근본 일부러 잊어버리려 하고 고집부려 자가당착-자기모순에 빠져 헤메고 있으되 그 죄됨과 혼돈-공허-흑암-허망함을 부인하며!!, 자의적 우상 숭배 제단에서 스스로 분향함으로써 자기 기만에 도취되어 자기 위안-만족 삼으며 폼 잡고 있는, 

===벧엘의 늙은 선지자...[452. 내모든소원기도의제목]  [342.너시험을 당해]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다..동시에 성도가 범사에 걸음마다-호흡마다 주 이름 불러 앙망하며!! 여쭙기 원하신다.....나는?, 오늘?..발생하는, 일어나는 모든사건마다 우연은 없으니!!, 주님은 의미있게 =그대와 모든이들에게 교훈 삼을바 되도록 하시겠지만!!, ....먼저 주님께 여쭈라, 결코 그분의 말씀 경홀히 여기지 말라, 그분이 최상으로 그대에게 자신을 온통 주실 수 있게 전심으로 의지하라/미혹되지말라...[Q의 사람에 대한 최상/최선의 계획하심이 어쩌면!!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만]...((세상 시선은, 상관하지말지니!!)) 주님의 주권적 판단따라!!, 주님은 당신께로!! "땅에서 네 걸음은 이제 족하도다, 그냥 내게 오라"하고 계셨다..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2.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4.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예언 말씀마다 반드시 다시 확인함의] 원칙따라 행하라!![--혹자가 있어서 그대가 받은 말씀 행함에 반대 되도록 이끌거나/의심 품도록 한다면....[(육을 가진 사람은, 결코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그에게 확실히 물어보라!! 그말이 진실로 그러한지, 언제 그 말씀 주셨는지 (도리어 그에게) 상세히 물어보라, 더나아가 (홀로 떨어진 곳에서) 반드시 그대자신은 주께 여쭈어 봄으로써 확인한 후, (가장 최우선은 그대에게 말씀하심 따라 행하되 그 길 벗어나서는 곤란하고!!) --> 좁은 그 길 걸으며!! 그리스도 평강의 이끄심을 따르라!!...결코 방심말라, 선줄로 아는자 넘어질까 조심하라]

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거짓선지자도 "양의 탈 쓰고 나아와서!!, 주님 말씀을 변조-왜곡시키려한다"..주의하라!!, 주께 묻고 여쭈면!!, 반드시, 알게하신다!!..왕상13장 읽으라...[주 보시기엔] ...(깨어있지않아서/못해서, 속인자를 행악자 만들었음....타락한 마음따라 속임당하지않도록 반드시!!  깨어있어야함) 속은자나, 속인자나(행악자됨 인해) 모두 악하다!! 여기시기에...마땅히 회개해야함!!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말한지라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기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  이에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안장을 지우매

28.  그가 가서 본즉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Q이 친히 하신 일임을 증명함 -- Q의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단명케 하고 계셨다!! -- 그대는 이것을 어찌 생각하는가,  참된 축복임을 느끼며 믿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나님의 사람"이라 주님이 보증하심을 깊이!!..생각해보라, 과연!! 믿는, 거듭난 택자, 그대의 인생 목적은 천국에 들어감, 오직 그것인가??...아니면 아직 여전히 전적으로 완전-온전-순전으로 순종하기가 멈칫 멈칫 망설여지기만 하고 있는가...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짓 순종임을 알라!!...경건을 이익의 재료 삼지말라!!...

---[스스로 선택함이 아니었다]노예해방남북전쟁승전6일만에 링컨암살당함을 허락하고계심

---순종하여 Q말씀 그대로 전했지만, 유혹 받고 [스스로 말씀 어김을 선택한바]사자에게 찢겨 죽임당한 Q의 사람 선지자.....이와는 다르다해도, 이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주께 여쭈고 실행했다해도 남북전쟁으로 60만장병이전사했기에, 그 책임 물으심으로 인한것일까?)) 암살당함..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여로보암의 죄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아무나 제사장 삼는 Q 모독-- 자행자지하는 여로보암의 결론 = 경건한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죽음!!]..*1)Q의 사람까지도!!. 단 한번의 미혹-실수임에도 가차없이(은혜였다!!) 심판하사 사자에게 찢겨죽여 데려가신 주님의 엄위하심을 보라....주님께서 결코 인정하실 수 없는바!!, 산당제사를 맘대로 허용함(+공공연하게 우상 숭배 처소 건립) + 자원하는 일반백성을 제사장 삼음 통해 산당 제사 유지함(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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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주신동산에##....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 흘리며 씨를 뿌리며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비바람 앞을 가리고 내 육체는 쇠잔해져도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모하는 내 주님께 

** 땅 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땅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주께 드릴 노래 가득 안고 

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주님 오실길 예비하라 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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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13장


1.  Now behold, there came a man of God from Judah to Bethel by the word of the LORD, while Jeroboam was standing by the altar to burn incense.

2.  And he cried against the altar by the word of the LORD, and said, " O altar, altar, thus says the LORD, 'Behold, a son shall be born to the house of David, Josiah by name; and on you he shall sacrifice the priests of the high places who burn incense on you, and human bones shall be burned on you.' "

3.  Then he gave a sign the same day, saying, "This is the sign which the LORD has spoken, 'Behold, the altar shall be split apart and the ashes which are on it shall be poured out.'"

4.  Now it came about when the king heard the saying of the man of God, which he cried against the altar in Bethel, that Jeroboam stretched out his hand from the altar, saying, "Seize him." But his hand which he stretched out against him dried up, so that he could not draw it back to himself.

5.  The altar also was split apart and the ashes were poured out from the altar, according to the sign which the man of God had given by the word of the LORD.

6.  And the king answered and said to the man of God, "Please entreat the LORD your God, and pray for me, that my hand may be restored to me." So the man of God entreated the LORD, and the king's hand was restored to him, and it became as it was before.

7.  Then the king said to the man of God, "Come home with me and refresh yourself, and I will give you a reward."

8.  But the man of God said to the king, "If you were to give me half your house I would not go with you, nor would I eat bread or drink water in this place.

9.  "For so it was commanded me by the word of the LORD, saying, 'You shall eat no bread, nor drink water, nor return by the way which you came.'"

10.  So he went another way, and did not return by the way which he came to Bethel.

11.  Now an old prophet was living in Bethel; and his sons came and told him all the deeds which the man of God had done that day in Bethel; the words which he had spoken to the king, these also they related to their father.

12.  And their father said to them, "Which way did he go?" Now his sons had seen the way which the man of God who came from Judah had gone.

13.  Then he said to his sons, "Saddle the donkey for me." So they saddled the donkey for him and he rode away on it.

14.  So he went after the man of God and found him sitting under an oak; and he said to him, "Are you the man of God who came from Judah?" And he said, "I am."

15.  Then he said to him, "Come home with me and eat bread."

16.  And he said, "I cannot return with you, nor go with you, nor will I eat bread or drink water with you in this place.

17.  "For a command [came] to me by the word of the LORD, 'You shall eat no bread, nor drink water there; do not return by going the way which you came.'"

18.  And he said to him, "I also am a prophet like you, and an angel spoke to me by the word of the LORD, saying, 'Bring him back with you to your house, that he may eat bread and drink water.'" [But] he lied to him.

19.  So he went back with him, and ate bread in his house and drank water.

20.  Now it came about, as they were sitting down at the table, that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the prophet who had brought him back;

21.  and he cried to the man of God who came from Judah, saying, "Thus says the LORD, 'Because you have disobeyed the command of the LORD, and have not observed the commandment which the LORD your God commanded you,

22.  but have returned and eaten bread and drunk water in the place of which He said to you, "Eat no bread and drink no water"; your body shall not come to the grave of your fathers. '"

23.  And it came about after he had eaten bread and after he had drunk, that he saddled the donkey for him, for the prophet whom he had brought back.

24.  Now when he had gone, a lion met him on the way and killed him, and his body was thrown on the road, with the donkey standing beside it; the lion also was standing beside the body.

25.  And behold, men passed by and saw the body thrown on the road, and the lion standing beside the body; so they came and told [it] in the city where the old prophet lived.

26.  Now when the prophet who brought him back from the way heard [it,] he said, "It is the man of God, who disobeyed the command of the LORD; therefore the LORD has given him to the lion, which has torn him and killed him,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spoke to him."

27.  Then he spoke to his sons, saying, "Saddle the donkey for me." And they saddled [it.]

28.  And he went and found his body thrown on the road with the donkey and the lion standing beside the body; the lion had not eaten the body nor torn the donkey.

29.  So the prophet took up the body of the man of God and laid it on the donkey, and brought it back and he came to the city of the old prophet to mourn and to bury him.

30.  And he laid his body in his own grave, and they mourned over him, [ saying,] "Alas, my brother!"

31.  And it came about after he had buried him, that he spoke to his sons, saying, "When I die, bury me in the grave in which the man of God is buried; lay my bones beside his bones.

32.  "For the thing shall surely come to pass which he cried by the word of the LORD against the altar in Bethel and against all the houses of the high places which are in the cities of Samaria."

33.  After this event Jeroboam did not return from his evil way, but again he made priests of the high places from among all the people; any who would, he ordained, to be priests of the high places.

 

34.  And this event became sin to the house of Jeroboam, even to blot [ it] out and destroy [it] from off the face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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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3장 (개요)

전 장 말미에서 우리는 여로보암이 벧엘이 있는 자기 제단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목도했는데, 그것이 바로 본 장 기사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본 장 서두에 등장하는 여로보암은 하나님께로부터 자기의 우상 숭배와 배교에 대한 항의의 증언을 듣게 된다. 이 증언은 유대에 살던 선지자, 곧 하나님의 사람이란 자에 의해 그에게 전달되었는데, 그는 본 장 기사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우리가 본 장에서 대하게 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사람과 새로운 왕 사이에 일어난 일.

   (1)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단을 향해 위협적인 말을 내뱉고(1, 2), 그에게 한 가지 표징을 제시했는데(3), 그것은 즉시 성취되었다(5).

   (2) 왕은 선지자를 위협했으나 그 자신의 손이 마름으로써 자신이 하나의 표적이 되었다(4). 그러나 여로보암 자신도 순종하고 선지자도 간원함으로써 그 손은 회복되었다(6).

   (3) 선지자는 그 일로 자기에게 제의된 호의를 거절했다(7-10).

2. 하나님의 사람과 늙은 선지자 간에 있었던 일.

   (1) 늙은 선지자는 거짓말로 그를 데리고 와서 대접했다(11-19).

   (2)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향응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는다(20-22).

   (3) 그 경고는 그대로 실시되어 하나님의 사람은 사자에게 살해되고(23, 24), 벧엘에 매장되었다(25-32).

   (4)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를 더욱 완악하게 행하였다(33, 34). “여호와여,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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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를 받은 여로보암(왕상 13:1-10)

Ⅰ.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을 알리기 위해 여로보암에게 한 사자가 파견되었다(1절). 여로보암의 파멸을 꾀하던 유다군은 소환되었고 그를 치기 위해 한 자루의 칼을 뽑아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왕상 12:24). 그런 대신에 유다의 한 선지자가 여로보암을 악한 길로부터 돌이키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그 시기는 적절하여서 여로보암이 단지 자기 제단에 분향하고 있을 때였고, 그의 마음이 아직 자기의 거짓된 죄로 강퍅해지기 전이었다. 이런 시기를 택하셔서 그를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죄인의 죽음을 즐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인이 돌이켜서 살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감히 자존망대한 왕을 공박하고 그가 자랑으로 삼고 있던 의식을 훼방한 이 사자는 얼마나 대담한가! 하나님의 심부름을 가는 자들은 사람의 낯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누가 자기들을 지원하고 계신지를 안다.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하기 위해 사자를 보내신 하나님은 매우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여로보암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 하늘로 좇아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고였다(롬 1:18 참조).

Ⅱ.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달된 말씀은 기어드는 듯한 속삭임이 아닌 큰 소리로 외쳐서 선언되었는데, 이는 선지자의 용기와 그의 열성을 의미한다. 그는 이 예언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 그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경청하기를 원했다. 이 엄숙한 제의에 참석하고 있던 자는 소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예언은 여로보암이나 백성을 향해 외쳐진 것이 아니라 제단을 향해 포고되었다. 우상에 미쳐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가 먹은 자들보다 제단의 돌들이 먼저 듣고 복종할 터였다. 단을 향해 경고하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세운 자나 경배자를 다 위협하셨다. 그들에게는 단이 자기들의 영혼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생명 없고 죄 없는 단에 달라붙으면 우리가 어떻게 피하겠는가?” 하고 결론을 내릴 것이었다. 제단에 대해 예언된 것은, 때가 이르면 요시야라는 이름의 한 통치자가 다윗가에서 나와 우상 숭배를 하는 제사장들을 이 제단 위에 바치고, 또 죽은 자의 뼈를 그 위에서 불사름으로써 이 제단을 더럽힐 것이라는 내용이었다(2절). 여로보암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그는 이 제단을 신성시했으나 그 신성성은 오욕을 입게 될 것이다. 우상 숭배는 존속하지 못할 것이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토록 지속할 것이다.

2. 그는 산당 제사장을 세웠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제물이 되고, 이 제단 위에서 드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희생 제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사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유의 제사로 되는 경우, 결과적으로 그 제사를 드리는 자 역시 하나님의 진노 아래 들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노는 그들 위에 머물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노가 발해지지 않는다.

3. 이 일은 다윗 집의 한 자손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 여로보암과 그의 나라는 다윗 가문을 업신여기고 배반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든든하게 서 있으리라고 믿었던 바로 그 제단을 훼파할 만큼 다윗가는 많은 세력을 회복하리라는 것이다. 현재는 하나님과 왕에 대한 경외심을 다 버리고 있는 자들이 승리를 만끽하고 있지만, 결국 정의와 진리는 세상사와 거룩한 일에 있어서 우세하게 될 것이었다.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은 약 356년 뒤에 가서였으나, 이 예언이 곧바로 있을 확실한 일로 선포되는 것은 하나님께는 천 년도 하루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 이름을 명명하는 것보다 불확실하고 임의적인 것은 없는 터에, 요시야 탄생 300여 년 전에 그 이름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께는 미래의 어떤 일도 숨겨져 있지 않다. 하나님의 예지의 책에는 이름들이 있으며(빌 4:3), 천국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Ⅲ. 이 예고의 진정성을 확신시키기 위해, 제단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진동으로 산산조각이 나며 그 희생의 재가 흩날리게 되리라는 예조가 나오는데(3절), 이 일은 즉시 일어났다(5절).

1. 이것은 그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하나님은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신다(막 16:20).

2.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에 대한 제사를 노여워하신다는 증좌였다. 성별되어야 할 제단이 가증한 것이 될 때, 그 제물이 어찌 열납될 수 있겠는가?

3. 마음이 돌보다 더 굳어서 여호와의 말씀으로도 쪼개지지 않는 백성에게 이것은 하나의 수치가 되었다.

4. 이것은 요시야에 의해 예언이 성취될 때 어떻게 되리라는 것에 대한 표본이었다. 지금은 단이 갈라졌으나, 그 때는 파괴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Ⅳ.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을 잡거나 치려고 손을 내밀자 그 손은 말라 버렸다(4절). 그는 당연히 그 전언에 놀라 벌벌 떨어야 했는데도 자기가 경고받은 진노를 무시하고 그 경고를 전해 준 은혜를 경멸하여 그 사자를 공격했다. 죄인을 책망해 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미워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네게 해를 입히려 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런 것을 무릅쓰고라도 위탁받은 것을 고수해야 한다. 그들을 부리시는 분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며 인간의 분노를 막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손을 마르게 함으로써 여로보암의 분노를 제거시키셨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선지자를 해칠 수도 없었고, 마음대로 거두어들일 수도 없었다. 그가 송아지에게 분향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을 때는 그 손이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선지자를 치려고 손을 뻗치자 그는 스스로 낮추기까지 그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선지자들에 대해 “그들을 손대지 말라, 그들을 해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악인의 모든 악 중에 선지자를 치려는 흉계보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없다. 이것은 여로보암에게는 그 죄에 보응하는 형벌이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에게는 구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교회의 원수들이 악한 목적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여러 가지 방법을 구사하신다. 여로보암은 자기 손을 거두어들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보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 공의로 죄인의 마음을 강퍅케 하사 그들로 죄악에 손을 내밀게 하신다면, 그들은 회개로써도 그 손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의 영적 심판이며, 본문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훨씬 더 두려운 심판이 된다.

Ⅴ. 급작스레 말라 버렸던 손도 그가 순복하자 돌연히 나아 버렸다(6절).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양심을 건드렸을 텐데도 그는 겸손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교만하던 마음도 “그의 뼈와 살을 건드리는” 것에 꺾이고 만다. 그는 도움을 요청했다.

1. 자기의 송아지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만 도움을 구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으로부터 도움을 구했다. 상처를 입히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손 이외의 그 어떤 손도 성하게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그 자신의 제사나 분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방금 협박하고 죽이려 했던 선지자의 기도와 도고에 의한 도움을 구했다.

설교를 증오하는 자들이 신실한 목사의 기도를 기뻐하게 될 때가 올 수도 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여로보암은 말했다. “너는 그에게 발언권을 가지고 있으니 나를 위해 그 점을 이용해 다오” 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관찰할 것은, 그가 자기 죄의 사유와 자기 심령의 변화를 위해 선지자의 기도를 희구한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해 주기”만 바랐다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로도 모세가 하나님께 구하여 이 죄가 아니라 이 죽음만을 자기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했던 것이다(출 10:17).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답게 악을 선으로 갚는다. 그는 여로보암의 무능한 악의를 비난하거나 그의 굴복을 뻐기지 아니하고, 즉각 그를 위해 하나님께 호소했다. 그리스도께서는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셨다(마 5:10, 44). 그러나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자들만이 이 축복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 선지자가 이와 같이 용서하는 심령을 스스로 내보임으로써 하나님을 영예롭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심판을 철회하심으로써 선지자를 보다 영예롭게 하셨으며,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의해 회개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해 다른 기적으로써 그의 마른손을 치유하셨던 것이다. 이는 그가 심판으로는 꺾이지 않더라도 자비에는 녹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당장에는 그가 심판과 자비에 감동이 되는 듯이 보였으나 그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Ⅵ. 여기에는 여로보암의 친절한 초대에 대한 선지자의 거절이 나오는데, 우리는 다음 사실을 살펴야 한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저주받을 우상 숭배와 하나님께로부터의 이탈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해서, 또 흑암의 일에 관계하지 말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자기의 사자에게 벧엘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금지시키셨다(9절). 우리가 악인에게서 전염되거나 죄인의 어두운 행사를 격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자리에 앉는 일을 금하신다.

선지자는 왔던 길로 도로 가서는 안 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지나가는 길에”(in transitu) 그 말을 전달해야 했다. 그는 일부러 보낸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그들은 그런 은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다). 그는, 아덴에서 바울이 지나다가 그들의 위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분을 느낀 것처럼, 도중에 분을 느껴 들린 자같이 보여야 했다(행 17:16, 23 참조). 하나님께서는 이 명령으로 자기의 선지자를 시험하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한지 않은지를 시험하려고 하셨다(겔 2:8).

2. 여로보암은 자기 손의 회복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했다거나 그 일에 대한 감사로 예루살렘의 제단에 제물을 보냈다는 기사는 읽을 수 없으나, 그가 선지자에게 기꺼이 사의를 표명하고 그의 기도에 대한 보답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읽을 수 있다(7절). 은혜가 없는 사람도 자기 신체에 대해 베풀어 준 혜택을 인해서는 선한 목사에게 감사할 줄 안다.

3. 선지자는 굶주리고 피곤했으며 아마 돈도 떨어졌을 테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자기에게 제의된 향응과 보수를 거절했다. 선지자는 자기가 그 제의를 수락하면 왕이 깨달음을 얻은 차제에 그와 더 많은 담화를 나누게 되어 그를 효과적으로 회개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신실하고 주의 깊은 심부름꾼답게 자기 일을 마치자 곧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금지된 한 가지 음식조차 참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 부인의 가르침을 거의 배우지 못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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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선지자(왕상 13:11-22)

하나님의 사람은 왕이 자기에게 상을 내릴 뜻을 비췄지만 왕의 초대를 단호히 뿌리쳤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받은 명령과 역행하는, 늙은 선지자의 설득에 넘어가서 그와 함께 돌아가 벧엘에서 식사를 함께하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 식사가 그에게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요구했는지 알 수 있다. 경이감을 갖고서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늙은 선지자의 악함. 나는 이 늙은 선지자를 거짓 선지자요 악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진실된 선지자와 선량한 사람이 이 늙은 선지자처럼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미룬다고 믿기보다 악한 성품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사람이 한 말씀을 억지로 확인했다(32절에 나오듯이)고 믿기가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좋은 나무라면 결코 이와 같이 나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마 17:7). 그는 아마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사무엘의 한 학교에서 선지자들의 아들들과 교육을 받았으며 거기서 선지자의 칭호를 얻었으나 점차 세속화되어서 예언의 영이 그를 떠나간 듯하다. 그가 만일 선한 선지자였다면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를 꾸짖었을 것이며, 자기 아들들로 하여금 그의 제단을 받들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1. 그가 하나님의 사람을 데리고 온 데에는 어떤 선한 의도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원기 회복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그에 대한 동정심에서 이렇게 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그의 사명에 대해 자기 자식에게서 들은 소문보다 더 상세히 알고 싶은 생각과 그와의 친분을 보다 두터이 하려는 바람에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저간에 일어난 일을 죄다 그에게 알려 주었고, 특히 벧엘에서는 먹고 마시는 게 금지되었다는 것까지도 말했으므로―그는 이를 여로보암 앞에서 공공연히 말했으므로―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을 함정에 몰아넣고 그럼으로써 그를 위태한 지경에 빠뜨리려는 나쁜 의도에서 행한 것으로 생각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항상 참선지자의 최악의 적이 되어 왔고, 흔히는 참된 선지자를 멸하려고 노력했으며, 본문에서와 같이 때로는 그들을 타락시키고 의무를 행치 못하도록 유혹하려는 의도를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나실인의 타락을 자랑하기 위해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먹였다(암 2:12).

2. 그가 하나님의 사람을 도로 데려오기 위해 매우 악한 방법을 취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나는 그대와 함께 떡을 먹으러 돌아갈 수도, 가지도 않겠노라”(그의 결심은 하나님의 명령과 일치하고 있다. 16, 17절)고 말했을 때, 그는 사악하게도 자기가 그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하늘로부터 받았노라고 빙자했던 것이다. 그는 선지자로서의 이전 신분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을 기만했다.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그는 이 심부름을 보낸 천사의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가 거짓말이었다. 그것은 예언에 대한 희롱이었고, 극히 참람한 짓이었다. 열왕기하에서는 이 늙은 선지자를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라고 칭하고 있으나(왕하 23:18), 상당히 뒤에까지 사마리아 같은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왕상 16:24). 그러므로 나는 그가 벧엘 출신의 선지자인데도 그렇게 불린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한 사마리아 선지자들이 나중에 나오는데(렘 23:13), 이 늙은 선지자도 그들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Ⅱ. 이런 기만에 넘어가고 만 선한 선지자의 약함.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갔더라”(19절). 상을 주마고 한 왕의 권유도 일언지하에 물리칠 만큼 결단력이 풍부하던 그도 선지자로 자처하는 자의 교묘한 수작은 거역할 수가 없었다. 외형적인 유혹보다 신성과 성결을 빙자한 구실로 인해 의무에서 이탈할 우려가 더 많은 게 바로 선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며(마 7:15) 영을 다 믿지 않을 필요가 있다(요일 4:1).

Ⅲ. 이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조치. 거짓말을 하여 화를 입힌 거짓 선지자는 벌받지 않고 무사한 데 반해, 그 거짓 선지자 때문에 범죄하게 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은 돌연히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에 경악한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나님의 판단은 측량할 수가 없다.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했고(욥 12:16), 그는 자신의 일을 조금도 설명해 주지 않으신다. 확실히 심판은 오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때에는 이런 일들이 다시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이다. 극히 많은 죄를 짓고도 이 세상에서는 거의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때에는 자기 행위대로 받게 될 것이다.

1. 하나님의 사람에게 전달된 말씀은 이상했다. 그의 죄가 낭송되었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 명백한 긴급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것이다(21, 22절). 그것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즉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말이다. “너는 결코 네 집에 이르지 못할 것이며 곧 시체가 될 것이다. 네 시체는 매장을 위해 네 열조의 묘실이 있는 곳으로 운반되지도 못할 것이다.”

2. 더욱 이상한 것은 그 늙은 선지자가 바로 이 말씀의 전달자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발람에게는 그의 나귀를 통해 말씀하셨고, 사울에게는 사무엘의 형상으로 나타난 악신에 의해 자기 운명을 해독하게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의도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 거짓말하는 선지자를 놀라게 하며 그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그는 직접 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데, 이 전언으로 인해 더욱 감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심령은 너무나 강력한 느낌을 받아, 그는 마치 고뇌하는 자처럼 외쳤던 것이다(21절). 하나님의 사람은 얼떨결에 죄를 지었다. 그가 하찮은 일에 대한 불순종으로 죽어야만 한다면, 늙은 선지자 자신은 어떠했던가! 치밀한 날조극에 의해 천사를 빙자한 거짓말을 하나님의 사자에게 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던 것이다. 그런 자기는 굉장히 더 쓰라린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만했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아마 이것은 그 늙은 선지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남에게 선포하면서도 스스로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참으로 강심장을 가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속은 선지자에게 보다 큰 굴욕을 주고 저 큰 사기꾼, 즉 마귀에게 청종하는 자들이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시험하는 자인 마귀에게 복종하는 자는 고문하는 자인 마귀에 의해 경악하게 될 것이다. 현재는 그가 알랑거리지만 나중에는 그가 덮칠 것이며, 지금은 그가 죄 가운데로 끌어들이지만 후에는 자포자기하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하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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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계속된 타락(왕상 13:23-34)

Ⅰ. 기만당하여 본의 아니게 불순종하게 된 선지자의 죽음. 그를 미혹했던 늙은 선지자는 그에게 저지른 잘못을 보상하거나 그에게 경고된 불행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라도 주려는 듯이 집에까지 타고 갈 나귀를 그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도중에서 사자가 습격하여 그를 죽여 버렸다(23, 24절). 그는 배가 고플 때 원기를 돋우려고 돌아갔을 뿐인데도 그로 인해 죽지 않으면 안 되었다(삼상 14:43). 그러나 우리는 다음 사실을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그의 죄는 중죄였다. 거짓말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됐다고 하여 그가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는 결코 없다. 그는 자신이 직접 받은 명령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에 반해 다른 자가 가지고 온 철회 명령은 그다지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또 그 명령의 원인이 계속 발효하고 있는 한 명령이 철회되리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도 없었다. 그것은 그 악한 장소에 대한 그의 혐오감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 늙은 선지자의 정직성을 크게 의심할 만했다. 그 늙은 선지자 자신은 증언을 하지 않았다. 그는 벧엘에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의 우상 숭배에 대한 증인으로 그를 사용하시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여하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지시를 구할 시간을 가졌어야 했고, 그렇게 빨리 응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벧엘의 어느 곳에서도 먹지 말라고 금지하셨는데, 다른 어느 집보다 이 늙은 선지자의 집에서라면 먹어도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단 말인가? 그것은 명령을 개량하겠다는 수작이었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현명하게 여기는 행위였다. 그는 배가 고프다는 것을 들어 변명하려고 생각했던가? 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단 말인가?

2.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 이로써 다음 사실이 나타난다.

(1)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은 어느 무엇보다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 우리의 첫 조상에 대한 하나님의 조처도 실은 작은 일 때문이었다. 금지된 열매를 먹었다는 것은 변명하기가 보다 용이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노여워하신다. 불순종하는 가운데 보호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의 직업이 신성하고 그 직위가 높으며 비록 하나님께 가깝고 또 하나님께 아무리 훌륭한 봉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불순종하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마 이 의로운 심판의 방법으로 여로보암의 마음을 강퍅케 하려고 하셨을 것이다. 여로보암은 자기 손이 말랐음에도 잘못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십중팔구 이 일을 악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 선지자가 자기 제단에 참견한 대가를 톡톡히 받았다거나 차라리 집에나 처박혀 있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여로보암은 말했을 것이다. 아니, 그는 섭리가 그 선지자의 무례함에 대해 처벌을 내렸으며, 자기의 마른 손이 할 수 없는 것을 사자가 해치웠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일로써 경고하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고용되는 모든 자는 자기 목숨을 걸고 명령을 준행하라는 것이다.

Ⅱ.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는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다. 이것은 진노하심 가운데서도 기억해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표상한다. 사자는 그를 조용히 질식사시켰거나 찢어 죽였을 터인데, 그의 시체를 먹지도 않았고 나귀조차 찢지도 않았다(24, 25, 28절). 더군다나, 사자는 지나가면서 보는 행인들에게 덤비지도 않았고, 늙은 선지자가 그 시체를 거두러 왔을 때 그 노인─그는 충분히 사자를 무서워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에게도 덤벼들지 않았다. 그 사자가 받은 임무는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다. 사자는 여기까지 행해야 하지만 더 이상 넘어가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하나님의 사람에게 노하셨지만 이렇게 자기의 노를 돌이키시고 그 형벌이 죽음 이상 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셨다.

Ⅲ. 늙은 선지자는 그의 매장을 돌보았다. 늙은 선지자는 이 이례적 사건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는 여호와 곧 자기 주인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그 잘못은 누구에게 있었던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붙이셨다(26절)고 결론지었다. 늙은 선지자로서는 사자를 왜 자기와 자기 집에 보내시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속인 선량한 자에게 보내셨는지를 물어보는 게 어울릴 것이었다. 그는 “시체를 떠들었다”(29절). 만약 항간에 떠도는 말에 진실성이 다소라도 있다면, 늙은 선지자가 시체에 손을 댔을 때 그 시체에서는 틀림없이 새로 피가 흘러나왔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실상 살인자였고, 시체를 매장한다 해도 그것은 자기가 입힌 피해에 대한 보상 치고 너무나 초라한 것이었던 까닭이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을 속여서 파멸로 몰아넣었을 때, 아마 그는 하나님의 사람을 조소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양심이 녹아져서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울 정도로 되었고, 아브넬의 장례식에 참석한 요압처럼, 자기가 죽인 자의 조상객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호라! 나의 형제여”(30절). 거짓말쟁이 늙은 선지자가 편안히 살며, 우상 숭배하는 왕은 사치와 권세를 누리며 살고 있는 반면에, 그토록 선하고 충실하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토록 담대하던 선지자가 한 가지 범죄로 흉악범처럼 죽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매우 비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길은 바다에 있고 주의 첩경은 큰 물에 있나이다”(시 77:19). 우리는 사람을 그 고난으로 판단할 수가 없고, 사람이 현재 당하고 있는 형벌로써 그 사람의 죄를 논할 수 없다. 어떤 자는 그 영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 육이 멸망을 받는 데 반해,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영혼이 음부에 합당하도록 되기까지 그 육이 제멋대로 행하게 버려두시기 때문이다.

Ⅳ. 늙은 선지자는 자신의 매장에 대한 당부를 자식들에게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꼭 자기를 하나님의 사람과 같은 묘실에 매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31절).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내 티끌이 그의 티끌과 섞이도록,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뼈 가까이에 두라.” 그는 비록 거짓말을 한 선지자였지만 참된 선지자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했다(민 23:10). “내 영혼을 벧엘의 죄인들과 함께 모아두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모아두라.”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해 사람의 뼈가 그 위에서 살라지리라고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이기 때문이었다(32절).

1. 그는 선지자의 예언을 인준하고 있다. 이는 두 증인의 입으로 말을 증참케 하여(마 18:16) 가능하다면 여로보암을 깨우치고 교화시키기 위함이었다(그리고 그 두 증인 중 하나는, 사도 바울이 딛 1:12에서 인용하는 대로,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 같은 자다).

2. 그는 죽은 선지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몸은 비록 땅에 엎드러졌으나 그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 자로서 존경하고 있다. 목사들은 죽는다. 오히려 남보다 일찍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존속하며(벧전 1:25) 그들과 함께 죽지 아니한다.

3. 그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사람들의 뼈는 여로보암의 단 위에서 살라지리라고 예언되었다. 그래서 그는 “내 뼈를 그의 뼈 가까이에 두라. 그리하면 내 뼈가 흐트러지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그것은 우리가 읽는 대로 안전하게 되었다(왕하 23:18). 선한 자들과 교제하면, 자고 행하고 살고 죽는 것이 안전하다. 선지자의 묘비명에 대해서는 여기에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열왕기하 23장 17절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거기서 요시야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고 묻고 “왕께서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라는 대답을 듣는다. 따라서 선지자의 묘비는 그의 예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벧엘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항구적 증거였다. 만일 그가 죽어서 다른 곳에 묻혔더라면, 그것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당시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여기서 이스라엘 성읍들이 사마리아 성읍들로 불리고 있는 것은 늙은 선지자가 어떻게 말했든지 간에 영감 받은 기자는 자기 당대의 언어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Ⅴ. 여로보암의 집요한 우상 숭배(33절). “여로보암은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갈라놓으신 단의 수리를 감행하려는 자를 찾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그 단 위에 제물을 바쳤으며, 전보다 한층 대담하게 제사를 지냈다. 이는 전에 자기의 제사를 훼방하던 선지자가 무덤 속에 있었고(계 11:10), 예언이 성취되려면 한참 뒤라야 하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을 개심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었으나, 위협도, 예조도, 심판도, 자비도 그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그는 자기 송아지한테 그토록 이상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개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직도 선용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그는 자기의 수족으로 만들어 무식하든, 부도덕하든, 어떤 지파 출신이든 상관하지 않고 제사장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었다. 즉 처음에는 올무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파멸이 되어 그 집을 지면에서 끊어지게 했다(34절). 가족의 감소와 동요와 풍비박산은 죄의 결과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여로보암은 송아지가 왕권을 자기 자손에게 확보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왕관을 상실하게 하고 자기 가족을 몰살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죄악으로 자신을 부지하겠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스스로 실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호크마===

열왕기상 13장

1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ㅇ하나님의 사람 - '하나님의 사람'(이쉬 하엘로힘)이란 '선지자'(나비)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나비'와 '이쉬 하엘로힘'간에는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으니 곧 전자가 '선지자의 소명'을 강조하는 단어라면 후자는 선지자가 수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역'을 강조하는 단어라 하겠다(H.Austel, R.D.Patterson) . 아무튼 이 '하나님의 사람'이란 용어는 대개 두 가지경우에 사용되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익명(匿名)의 대상을 지칭하는 경우(삼상 2:27; 대하 25:7). (2)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는 경우(신 33:1; 왕상 17:18; 대하 8:14 등).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는 열왕기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특징을 지닌다(12:22; 20:28; 황하 1:9; 4:7; 5:8;6:6; 8:2 등). 한편 이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하여선 유다 출신의 선지자란 사실 이외에는 달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그런데도 학자에 따라선 선지자 잇도(대하9:29)나 (Josephus, Antip, VIII) 스마야(대하 12:15)일 것으로 추정한다(Tertullian). 그러나 잇도나 스마야가 비교적 오랫동안 활약한 선지자들임에 반해 이 '하나님의 사람'은 본장에 등장, 잠시 활동하다 죽고 말았으니(20-24절) 온당치 못한 주장들이다 (Lange, Pulpit Commentary).

ㅇ여호의의 말씀으로 인하여 - 공동 번역은 이를 '야훼의 말씀을 전할 임무를 띠고'로 번역하고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인하여'에 해당하는 원어 '비'는 '안에'(in)란 뜻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선지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곧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가 었을 때 그 말씀을 받아 대언(代言)하며 선포하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ㅇ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 이처럼 남왕국 유다의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키 위해 벧엘에까지 여행하였다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당시 북왕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참선지자들이 없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벧엘에 살던 늙은 선지자마저 진리를 증거하는 대신 거짓을 일삼았던 점(11-19절)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ㅇ여로보암이 ... 분향하는지라 -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절기인 8월 15일을 맞이하여 벧엘에서 친히 제의(祭儀)를 집전한 것을 가리킨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2:32 주석을 참조하라.

2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3 그 날에 저가 예조를 들어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예조라 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

ㅇ예조(豫兆) - '예조'(모페트)는 '이적' (출 4:21; 대상 16:12; 시105:5,6)으로도 번역되긴 하나 여기서는 전조(前兆), 즉 앞일을 미리 나타내 보이는 조짐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때 이 조짐은 다만 그 앞일을 지시하는 기능으로 한정된다. 즉 본문에서 '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지는' 현상(5절)은 훗날 요시야의 숙정(肅正)을 미리 알리는 조짐으로서 기능하고있다(왕하 23:15-20). 그러므로 이는 예언자의 선포 내용에 권위를 더해 주는 부수 현상(附隧現像)일 따름이다. 즉 '예조'란 어디까나 그 이적 자체의 경이성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의 사자를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고(2절) 그 말씀을 입증하기 위해 이처럼 즉각적으로 이적을 보이신 것은, 당시 백성들의 신앙 상태가 매우 퇴락되었음을 시사하는 단적인 예이다(출 4:21; 대상 16:12,13; 시 105:5,6). 특히 여로보암은 자신의 신체에 발생한 경고의 이적을 직접 체험하고서도 잠깐 놀랐을 뿐(4절) 곧 완패(頑悖)한 심령으로 되돌아 갔으며, 결국에는 그의 온 집이 멸절당하는 화를 당하고 말았다(33,34절; 15:27-30).

ㅇ이는 여호와의 말씀히신 예조라 -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예조(3,5절)와 예언(2절)의 관계에 있어 그 강조점이 역전(逆轉)된 듯한 느낌이 있다. 즉 예조 자체가 여호와의 말씀 내용이요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공동 번역은 본절을 '그 말이 야훼(여호와)께 받은 것임을 보여 주는 한 표적'으로 풀이하여 그 의미 관계를 잘 보여준다(Living Bible, this proof that his message was from the Lord).

4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단에서 손을 펴며 저를 잡으라 하더라 저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ㅇ여로보암 왕이 ... 들을 때에 - 본문이 전하는 이야기의 극적 구조는 다음과 같은 요소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즉 여로보암이 자신의 정책적 성공을 도모하기 위한 종교 행사를 거행하는 중간에(1절; 12:25-33) 홀연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이 임했다는 점이다. 이는 곧 훗날 벧사살 왕의 잔치 자리에 손가락이 나타나 심판의 글자를 쓴 내용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있다(단 5:1-9, 17-28). 즉 축제, 잔치 등의 요소가 심판, 파멸과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어떤 절정의 순간에 돌연 그에 대한 심판이 들려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돌발성(突發性)은 심판 선고가 주는 충격을 훨씬 강하게 만들고 있다. 즉 여로보암은 막 분향하던 참에 들려온 심판 선포에 소스라쳐 놀람과 분노의 당혹한 숨결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ㅇ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 여로보암은 자신의 종교 정책이 순탄하게 진행되어 마침내 거국적인 종교 행사를 가지게 된 마당에 갑작스런 선지자의 출현과 모욕적 발언이 있자 극도로 분노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손을 들어 신복들에게 체포명령을 내렸으나 그순간 손이 말라버렸다. 이는 아마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말미암은 마비 현상이었던 것 같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능의 근원이 당신께 있음을 입중하였으며, 그 권능으로 말미암은 심판을 미리 경고하셨다(욥 12:13; 37:23).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수행하는 자를 늘 보호하고 계신다(시 17:8). 따라서 대적들의 어떠한 핍박도 주의 종들을 상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단 6:22; 행 16:26).

ㅇ말라 - '말라'에 해당하는 '야베쉬'는 '시들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이는 식물이 수분이 없어 메마르는 모양을 가리킨다(욥 18:16; 시 102:11; 사 19:7; 렘12:4; 겔 17:9). 그러나 이 '야베쉬'는 또한 '심판'을 의미한다. 땅이 마르고 가뭄이 드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심판이다(사 15:6; 19:5-7; 렘 12:4; 50:38).

5 하나님의 사람의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예조대로 단이 갈라지며 재가 단에서 쏟아진지라

ㅇ재가 단에서 쏟아진지라 - 여기서 '재'는 희생(犧牲) 제물인 짐승을 태우고 난 뒤 남은 재를 가리킨다. 그런데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 규례에 따르면 이러한 재는 제사장이 긁어모아 제단 동편 진밖 재버리는 곳으로 가지고 가그곳에다 버리도록 되어있다(레 1:16; 6:10,11). 그런데 본절에서 재가 제단에 쏟아졌다는것은 곧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희생 제사를 열납치 않으셨음과 그 제사와 제단이 부정(不淨)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Lahge,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I,P.204).

6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컨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으로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ㅇ네 하나님 여호와 -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내 하나님'(my God)으로 부르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your God)으로 말한 사실이 주목을 끈다. 이에 대하여선 학자들이 대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불법한 여로보암이 감히 자기 하나님으로 부를 엄두를 못냈다는 주장(Matthew Henry, Wordsworth). (2) 이는 다만 '너를 보내신 그분께'라는 정도의 의미라는 주장 (Bahr, Hammond). 그런데 여로보암의 이후 행적과 그 심령의 완악함을 볼 때 첫번째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33,34절). 따라서 위의 견해 중 후자의 설명이 보다 적절하다고 하겠다(Pulpit Commentary).

ㅇ은혜를 구하여 - '은혜를 구하여'(힐라 에트페네)는 문자대로는 '얼굴을 어루만지다'는 뜻이다. 즉 이는 악을 행하는 자를 심판하시려고 '얼굴'(프네)을 드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그분의 진노를 누그러뜨려 달라는 간청이다.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가서 몸을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ㅇ나와 함께 집에 가서 몸을 쉬라 -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러한 제의를 하게 된 이유는 회유(懷柔)에 초점을 두고 설명되어야 한다. 즉 자신의 왕권을 수호키 위해 여호와 신앙의 규례마저 무시한 여로보암(12:27-33)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한 하나님의 능력은 가슴 섬뜩한 일이었다(3-6절). 즉 이는 그의 왕권에 대한 백성들의 의심을 살만한 것으로서, 자칫 국내적 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의 소리가 신적 권능이 없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며, 그러기 위해서 그를 뇌물로 회유시키려 했던 것이다(Bahr).

8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으로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ㅇ왕과 ...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 고대 근동 지방에 있어서 집으로의 초대와 식사는 우호 및 친교의 표시이다(창 13:1-8; 19:1-3). 따라서 본절은 우상 숭배자들과의 여하한 교제도 나누지 않겠다는 뜻으로서,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과 백성들에 대한 경고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우상 숭배자 혹은 불경건한 자들과는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으며(요 4:9),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교제를 금할 대상으로서 탐람하는 자, 우상 숭배자, 후욕하거나 술취하거나 토색(討索)하는 자, 분쟁을 조성하는 자 등을 꼽은 바 있다(롬 16:17; 고전 5:11; 살후 3:6,14; 딤후 3:5; 약 4:4; 요이 10절).

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ㅇ왔던 길로 도로 가지도 말라 -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러한 명령이 내려진 까닭은 귀로의 도중에 여하한 이유로든 벧엘 사람들과 더블어 지체됨을 방지하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들어간 것은 오직 경고를 발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하한 사귐이나 지연이라도 이 경고의 심각성에 있어서는 감소되기 마련이다(Matthew Henry). 그런데 이 모든 주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실수한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즉 그는 벧엘 선지자의 거짓말에 속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식사 초대에 응하고 만 것이다(18,19절). 향편 본문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다음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1) 벧엘에 들어올 때 취한 길을 나갈 때는 취하지 않는다는 뜻(10절). (2) 일단 진행한 통로를 여하한 이유로든 돌이키지 않는다는 뜻(16,17절).

10 이에 다른 길로 가고 자기가 벧엘에 오던 길로 좇아 돌아가지 아니하니라

ㅇ이에 다른 길로 가고 -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이 성공적으로 자기 소임을 다하였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한편 벧엘은 예루살렘 북쪽 20km 지점으로 남왕국 유다와의 번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12:29 주석 참조. 이로 보아 하나님의 사람이 유다 어느 지방에서 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벧엘까지 온 것이 그리 먼 여행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의 사명은 홀연히 벧엘에 나타나 경고를 던지고는 지체없이 사라지는 데 있었다.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저에게 고하고 또 그가 왕에게 고한 말씀도 저희가 그 아비에게 고한지라

ㅇ늙은 선지자 - 이 선지자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대개 부정적이다. (1) 자신의 아들들로 하여금 여로보암이 세운 절기 행사(12:32,33)에 참여하도록 허용했다는 점. (2) 여로보암 치하에서 '마음을 오로지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대하 11:16)이 대거 남왕국의 예루살렘으로 남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선지자는 벧엘에 남아 있었다는 점. (3) 받지도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거짓말한 점(18절). 이로 보아 아마 이 늙은 선지자는 이념적으로 여로보암의 종교 정책에 동의하고 있던 인물일 것이다.

ㅇ이날에 ... 고한 말씀도 ... 아비에게 고한지라 - 이처럼 늙은 선지자의 아들들은 아비에게 그날의 사건을 낱낱이 고하였다. 즉 하나님의 사람의 저주의 내용과 예조(2-5절) 및 하나님의 사람이 취해야할 행동 지침(8,9절)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늙은 선지자가 들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취한 다음 행동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즉 그는 아들들의 얘기를 듣고서는 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보고자 하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을 것이다(13,14절).

12 그 아비가 저희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ㅇ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 이러한 물음은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이 속박되는 금기 사항(9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미 그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사람을 꾀일 요량(料量)이 서 있었던 것이다(15-19절).

13 저가 그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저가 타고

ㅇ나귀에 안장(鞍裝)을 지우라 - 도보로 귀로에 오른 하나님의 사람(10절)을 신속히 쫓아가 만나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이다. 늙은 선지자의 이러한 신속함과 단호함은 본문의 앞 부분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의 태도는 본문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어딘가 느슨하고 풀어진 인상을 준다(14,19절). 한편 늙은 선지자가 이렇듯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보겠다는 열의를 보인 이유에 대하여선 다음 서너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1) 자신의 우유부단한 태도로 말미암은 자책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선책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보기 위해서. (2) 자신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호소하고,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3)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이적을 행한 선지자를 만나보고자 하는 순수한 열의에서. 한편 '나귀'는 고대 근둥 지방에 있어서 보편적인 승용(乘用) 동물이었다(삿 1:14; 10:4; 12:4; 삼상 25:20; 삼하 17:23; 왕하 4:24).

14 하나님의 사람의 뒤를 좇아 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뇨 대답하되 그러하다

ㅇ상수리나무 - 원문에는 '하엘라', 즉 ' 그 상수리나무'로 되어있다. 따라서 이 상수리나무는 어느 특정 장소의 잘알려진 나무였거나 아니면 다른 것에 비해 훨씬 커서 현저하게 눈에 띄는 것이었을 걸로 추측된다(Hammond). 한편 상수리나무(oak)는 크고 단단한 재질을 가진, 높이 20-25m가량의 나무이다. 성경에서 이 나무는 종종 '힘', '위엄', '장수' 따위를 상징하였다.

ㅇ앉은 것을 보고 - 커다란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다리를 쉰다는 것은 여행자에게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잘 알려진 장소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그가 가진 사명의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어딘가 석연찮다. 저주와 혐오의 장소인 벧엘에서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 것 역시 그의 사명에 포함된 것이다(8,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서의 성공에 방심한 탓일까 유혹의 가능성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것은 경고의 냉혹성을 보여 주어야 할 그의 사명에 아무래도 걸맞지 않는 것이다.

ㅇ대답하되 그러하다 -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그 솔직함과 순진함에서 늙은 예언자의 노회(老獪)함(8절)과 비교된다. 즉 그는 타인이 묻는다고 곧이곧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5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ㅇ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 이것은 가히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즉 벧엘의 노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지켜야 할 금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항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피곤한 중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이 앞서 보인 직절(直節)을 쉽게 포기할 리는 없다(16,17절). 따라서 늙은 선지자는 다음 단계의 회유를 준비해야 했다.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ㅇ이곳에서 - 이로 미루어 하나님의 사람은 아직 벧엘 경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누구와든 교제를 나누지 못하게 한 이유는, 협오스런 금송아지 숭배가 행해지는 장소(12:32,33)에 대한 경고를 나타내기 위함이다(1-5절). 그런데 아직까지 그가 벧엘 경내를 벗어나지 않고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14절)은 어딘가 부주의와 방심의 인상을 준다. 그래서 여러 주석가들은 이 장면에서 이미 잘못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Bahr 등).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라

ㅇ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끝까지 준행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첫 믿음을 지키는 문제, 거기에 따라 신앙을 흐트러뜨리는 나태함의 유혹만큼 끈질긴 것은 없다. 본절의 선지자가 받았던 유혹,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자들이 당면한 밥(물질)의 문제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유휵을 물리친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마 4:3,4) 이겨낼 수 있다.

18 저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ㅇ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 앞서의 정면 도전(15절)이 저항을 받자 늙은 선지자가 취한 다음 단계는 하나님의 사람의 경계심을 늦추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같은 선지자의 부류에 속함을 밝힌다. 사실 누구든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 의식을 낮추고 동료 의식을 갖기 쉽다. 그런데 늙은 선지자의 자기 신분 표명은 무엇보다도 다음에 이어지는 자신의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즉 '선지자'(나비)란 말에 담긴 뜻 그대로 그는 자신이 '대변인',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할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선 그것만이 하나님의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이었다.

ㅇ천사가...내게 이르기를 - 여기서 '천사'( , 말라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언(傳言)하는 사자(使者)를 가리킨다(창 22:11,15; 31:11; 민 22:32; 삿 13:3,16등). 그런데 혹자는 천사가 통보해 주는 말씀의 권위가 개개인의 마음에 확신시켜 주는 하나님의 주관적 말씀보다 더 높은 것일 거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그렇지않고는 하나님의 사람이 선뜻 벧엘 선지자의 말에 수긍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앞서 받은 계시와 벧엘 선지자의 말 간에 상충되는 내용이 있음을 깨닫고서는 심사 숙고하여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야 했으나 그러하지 아니하였으니 잘못이 아닐 수 없다.

ㅇ속임이라 - '속임이라'에 해당하는 '키헤쉬'는 '가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한다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대표적 형태이다. 한편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때에도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시험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신 바 있다(마 4:1-11).

19 이에 그 사람이 저와 함께 돌아가서 그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ㅇ이에 - 즉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하는 바람에'라는 뜻이다. 비록 하나님의 사람이 얼른 벧엘 경내를 벗어나지 않고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휴식한 것은 실수라 하더라도, 실상 그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된 주된 원인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본문은 순진 무구한 유다의 선지자와 거짓말하는 벧엘의 선지자를 뚜렷이 대비시켜 준다.

20 저희가 상 앞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ㅇ저희가 상(床) 앞에 앉았을 때에 - 본장이 전해 주는 이야기의 특징은 언제나 어떤 사건의 진행 중에 이에 대한 부정(No!)의 말씀이 들려 온다는 점이다. 4절 주석 참조. 본절 역시 이러한 특징을 보여 준다. 즉 벧엘의 선지자와 하나님의 사람이 식사를 채 끝마치기도전(곧 금지된 교제 행위를 완료하기 전)에 이에 대한 심판의 선고가 들려 오고 있는 것이다.

ㅇ여호와의 말씀이...선지지에게 임하니 - 본장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극적 요소는 반전(反轉)에 있다. 즉 앞서 여로보암에게 징계를 선포했던 자(2절)가 지금은 도리어 징계를 선포받게 된다(21,22절). 그것도 자기를 대접하겠다고 초대한 거짓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21 저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한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ㅇ외쳐 가로되 - '외쳐'에 해당하는 '카라'는 그 자체로 이미 어떠한 메시지의 선포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메시지를 받는 자의 어떤 응답을 '불러내는'(call out)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카라'는 앞서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에 대해 했던 행위이다(2절).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카라'를 받는다.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다음 사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하나님의 일꾼들은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히 3:14; 계 2:10). 솔로몬의 경우를 예로 들면, 그는 전무 후무한 지혜를 소유하였으나 훗날 영적 방만 상태에 빠져 귀중한 은사를 간수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호된 진노를 받았다(11:3-13). 반면에 사도 바울은 구원에의 확신 가운데서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좇아가노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빌 3:13,14). (2)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게끔 하는 것은 자신의 능(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이다(고전 15:10). 따라서 주의 일꾼된 자들은 스스로 교만해질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순종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향다. (3) 하나님의 공의는 지극히 엄정하다. 즉 하나님한 때의 업적을 핑계삼아 방만 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결코 허용치 않으시는 것이다.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한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ㅇ네 시체가 네 열조의 묘실(墓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열조의 묘실, 즉 가족의 무덤에 묻히지 못함은 곧 객사(客死)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우리말로 하면 '고향의 선산(先山)에 묻히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에게도 고향과 친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객사한다는 것은 큰 비극이었다. 어쨌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금기 사항(8,9절)을 어긴 결과 노선지자의 예언대로 객사하여 타관 사람의 묘실에 장사되고 만다(30절).

ㅇ묘실 - '묘실'(케베르)은 '매장하다'에서 파생된 말이다. 우리말에서 '무덤'이 '묻다'에서 온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의 묘지는 대개 천연 동굴이나 인공 동굴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시체에 닿으면 부정하다는 믿음 때문에 묘지는 보통 성읍이나 마을 바깥에 위치하였다(레 21:1; 민 6:6; 19:13). 그런데 동굴을 묘지로 사용하는 관습은 이스라엘인들의 가나안 정착 이후 가나안인들에게서 배운 것이라 한다(Reed).

23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ㅇ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 한글 개역 성경의 이러한 번역은 좀 애매한 표현이다. 만일 이 말대로 이해한다면 본절은 '자기(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데리고 온 선지자(하나님의 사람)'를 가리키는 셈이 된다. 그러나 본장은 일관되게 '선지자'라는 용어를 오직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만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절만이 예외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여러학자들의 문법적 분석과 그 결론도 본절이 20,26절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Bahr 등). 그렇다면 이 말은 개역 성경과는 달리 '그(하나님의 사람)를 데려온 선지자(벧엘의 늙은 선지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ㅇ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지금까지 줄곧 도보로 다녔었다(1,10절). 그런 그에게 이제 나귀 한 마리가 주어졌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이유야 여하튼, 앞서 왕의 선물을 거절한 그가 벧엘에서 결국 선물 하나를 받은 셈이다(7절). (2)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귀를 내준 것은 친절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자기로 인해 지체된 데 대한 보상 행위일 수도 있다. 즉 이러한 행위에는 시간의 지연으로 인해 생긴 저주(22절)를 시간의 단축으로 해독(解毒)해 보려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추측컨대 이러한 인위적인 제재(除災) 경향은 이 노(老) 종교가의 특징인 것 같다.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저를 만나 죽이매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ㅇ사자 - 사자는 성경 시대의 팔레스틴에 흔한 맹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벧엘의 산간 지대와 요단 계곡의 숲은 사자의 서식처였다(왕하 2:24; 렘 49:19; 슥 11:3). 하지만 이처럼 번성했던 사자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13세기경 므깃도(Megiddo) 부근의 레드자(Ledja)에서 죽임당한 후 팔레스틴에서는 멸종하고 말았다.

ㅇ만나 - '만나'에 해당하는 '마차'는 '발견하다'는 뜻이다. 이는 '우연히 맞닥뜨리다'보다는 좀더 능동적으로 '구하다가 마침내 따라잡다' 또는 '찾다가 끝내 발견하다'는 의미를 지닌다(신 4:29; 잠 1:28; 사 55:6; 렘 29:13 등). 14,28절에서의 늙은 선지자의 행동이 바로 이 '찾아가 발견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본절의 사자 역시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가' 덮친 것이다.

ㅇ나귀는 그 곁에 섰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섰더라 - 이 사건에 담긴 초자연성은 본 장면이 지닌 예외성(例外性)에서 드러난다. 보통, 사자라는 맹수는 주리지 않는 한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드문 동물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한 사자는 그를 죽여만 놓고 그 시체를 먹거나 어디로 물어가지 않았다. 더구나 희한한 것은 나귀조차 달아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사자 역시 그 자리에 붙박여 있다는 점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이러한 요소들이 이 사건에 담긴 초자연적 목적에 생각이 미치게끔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I, p. 205).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와서 말한지라

ㅇ지나가는 사람들이...보고 - 이스라엘의 행인들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유다 선지자의 시체와 그 특이한 죽음 현장을 목격하고서, 늙은 선지자의 성읍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그것을 화제 거리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된 원인을 알고 그들은 큰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벧엘인과 더불어 음식을 저버리고 가증한 우상 숭배를 일삼는 자신들에게 임할 징벌은 실로 엄청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붙이시매 사자가 그를찢어 죽였도다 하고

ㅇ선지자가 듣고 - 행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벤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21,22절)이 실현된 데 대한 경의감과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한 동정심과 죄책감 등으로 말미암아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부랴부랴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는 그 일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한 자기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듯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선포된 말씀 또한 그대로 성취되리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32절).

ㅇ어긴 - '어긴'(마라)은 '쓰게 하다', '반역하다'는 뜻이다. 즉 이는 곧 불순종과 배반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정을 쓰리게 함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동사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귀환 도중에 겪은 불행(24절)을 확연히 조명해 주는 의미 해석이 들어 있다. 즉 그는 스스로의 불순종으로 인해 그 같은 불행을 만난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0,21절 주석을 참조하라.

ㅇ붙이시매 - '붙이시매'(나탄)는 '위임하다', '허락하다'는 뜻이다.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적 목적을 위해서 어떤 대리물의 행동을 허용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동사 사용에서 사자 습격 사건(24,25절)을 바라보는 늙은 선지자의 관점을 볼 수 있다. 즉 그것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시각이다.

27 이에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저희가 안장을 지우매

ㅇ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 이는 13절과 동일한 표현이며 동일한 신속함이다. 그러나 이제 늙은 선지자의 내심은 그때와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즉 앞서와는 달리 이제 그는 전체사건에 일정하게 작용하는 한 의지(意志)를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노련한 종교가로서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술수로서는 도저히 가리울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이 거기에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벧엘제단의 어용 신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벧엘 제단에 대하여 절대적인 부정(absolutey No!)의 선고(1-5절)를 내리셨다는 것이다. 한편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발람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Montgomery, 민 22:1-24:25).

28 저가 가서 본즉 그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섰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ㅇ시체(屍體) - '시체'(네벧라)는 '시들다'(나벧)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이 동사에는 시들은 잎사귀나 말라버린 초목의 이미지가 실려 있다. 이처럼 생명의 시듦이나 말라버림은 하나님의 심판을 비유하는데 사용되거니와 그 자체로도 하나님의 심판이다. 4절 주석 참조.

ㅇ길에 버린 바 되었고 - 여타 민족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도 시체가 제대로 매장되지 않고 방치되는 것은 큰 수치의 표시이다(삼하 2:10이하; 삼상31:11-13 등). 그리고 이는 종종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신 28:62;렘 7:23; 26:23; 사 5:25).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의 시신이 길에 널브러져 있음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 그 뿐 아니라 그렇게 심판받은 시체가 벧엘에 버려져 있었다는 것은 그 성읍에 수치와 부정(不淨)을 안겨 주는 것이기도 하다(신 21: 1-9). 한편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해진 이러한 징벌은 일견 너무 가혹한 처사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일은 개별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벧엘 제단에 대한 하나님의 극한 분노와 혐오라는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1-5절). 그리고 그렇게 커다란 혐오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저지른 실수는 결코 경미(輕微)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비록 동정의 여지는 있지만, 그가 벧엘로 되돌아와 식사를 함께 한 것(15-19절)은 그 성읍에 내린 경고의 엄중함을 격감시키는 행위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시체가 벧엘에 버리우는 죽임을 당하게 하셔서라도 경고의 준엄함을 손상받지 않게 하신 것이다.

ㅇ나귀와 사자는...찢지도 아니하였더라 - 나귀와 사자가 이때까지 기인한 연출을 계속하고 있었던 까닭이 분명해진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의 주검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이를 보전(保全)해 줄 인물의 도착을 기다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벧엘의 노선지자가 도착하자 이것으로 그 동물들의 소임은 끝난 것이다. 24절 주석 참조.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떠들어 나귀에 실어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ㅇ떠들어 - '떠들어'(나사)는 '들다', '메다'는 뜻이다. 즉 늙은 선지자는 시신을 들쳐 메어 나귀에 실은 것이다.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연로한 선지자가 손수 치루었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깊은 사죄와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음을 반영한다. 26절 주석 참조.

ㅇ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 늙은 선지자가 왜 하나님의 사람의 시신을 벧엘로 들였는지 까닭이 분명치 않다. 가장 가능성있는 추측은 하나님의 사람의 묘를 벧엘에 둠으로써 그 성읍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와 교훈의 표시로 남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벧엘의 노(老) 종교가는 회오(悔悟)를 통해 전체 사건의 의미를 깊이 자각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이르러선 하나님편에 선 적극적인 봉사를 한 셈이다.

30 곧 그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그를 위하여 슬피 울며 가로되 오호라 나의 형제여 하니라

ㅇ그 시체를...나의 형제여 하니라 - 본절에는 세 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즉 (1)하나님의 사람의 시신을 늙은 선지자 자신의 묘에 장사한 것, (2) 애곡, (3) '오호라 나의 형제여'라는 호칭 등이 그것이다. 이상은 일단 히브리인들의 장례식에 관습적으로 따르는 요소로서 볼 수 있다(렘 22:18). 그러나 관습적이라 해서 이 일을 무덤덤히 여기거나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혹자는 시신을 남의 땅, 남의 무덤에 묻은 것은 잔인한 처사라고 주장한다(Hall). 그러나 실상 하나님의 사람의 주검을 자기 무덤에 안장한 늙은 선지자의 행동은 거꾸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깊은 존경의 표시이다(Hammond, 창 23:6; 룻 1:17). 그러기에 신약에서 아리 마대 사람 요셉도 예수님을 자신의 묘에 장사했다(마 27:57-60).

ㅇ오호라 나의 형제여 - 히브리인들의 장례 절차에 있어서도 애곡(哀哭)은 필수요소이다. 그런데 이때 애곡할 의무가 있는자는 가까운 친척들이었으며(창 23:2; 삼하11:26), 여기에 구경꾼들이 가담하여 같이 울거나(삼상 25:1; 삼하 1:11) 직업적으로 만가를 부르며 울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대하 35:25; 렘 9:16-19; 암 5:16). 한편 벧엘 선지자는 사자(死者)에 대한 깊은 조의(弔意)의 표시로서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을 포함하여 모을 수 있는 인원을 총동원하여 애곡하였던 것 같다. 따라서 KJV, RSV, 그리고 NIV는 본절의 '슬피울며'를 '그들이 애곡하여'(they mourned)로 번역하였던 것이다.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저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ㅇ내가 죽거든...장사하되 - 앞절과 관련, 혹자는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친척'으로 예우하여 장례지낸 것이라 한다(Bahr). 그러나 본절은 친척 이상의 무엇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늙은 선지자의 유언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과 한 묘실에 '합장'(合葬)해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부부 사이에나 볼 수 있는 일이다(창조 25:7-10).

ㅇ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 이 역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 표시'에 다름 아니다(Bahr 등). 그리고 이는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참선지자임을 벧엘 선지자가 시인하고 또 이념적 동의를 표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이 유언 덕분에 결과적으로 훗날 벧엘 선지자 자신의 주검도 안전하게 보존 되었다. 즉 약 300년 후 요시야 왕이 우상 숭배자들의 뼈들을 거두어 불사를 때 하나님의 사람이 묻힌 묘실은 손대지 않았던 것이다(왕하 23:16-18). 이와 관련 혹자는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이러한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유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Matthew Henry). 벧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이 필히 이루어질 것을 믿었음을 볼 때 이는 전혀 타당성 없는 주장만은 아니다(32절).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ㅇ성읍 - '사마리아'란 지명은 여로보암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그때로부터 약 50년 뒤에 새로 생긴 지명이다. 즉 오므리가 사마리아 산을 사 성읍을 건축한 후 그곳을 북왕국의 수도로 결정하면서 새로 정한 명칭인 것이다(16:24). 따라서 이는 벧엘의 늙은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정확한 말로 보기 어려우며, 후대 기록자가 자기당대의 용어를 구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Keil, H.J. Austel, R.D. Patterson). 즉 본절에서 열왕기 기자는 벧엘 선지자의 말을 그대로 언급하지 않고, 다만 그 말의 의도를 충분히 살려 기록 당시의 언어로 표현하였다 하겠다. 다시말해 사마리아는 오므리 왕 이후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으므로 사마리아에 대한 경고는 곧 북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경고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ㅇ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 - 2절과 비교할 때,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은 본절에서 그 대상 범위가 좀더 넓게 잡혀있다. 이러한 증폭은 후대의 상황이 반영, 첨가된 것이다. 즉 2절은 막연하게 어떠한 산당을 말하고 있으나 본절은 '사마리아 성읍들의 모든 산당'으로 명료하게 그리고 더 광범위하게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자의적(自意的) 첨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후대의 상황이 적용된 기록임은 분명하다.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ㅇ이 일 후에도...돌이키지 아니하고 - 본장에서 '하나님의 사람 이야기'는 결국 본장 전체의 구도상 여로보암의 완악함을 가일층 강조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즉 그렇게 엄중한 경고를 받고도 여로보암은 타락과 배교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편 분열 왕국 시대의 첫부분에 해당하는 본장이 이처럼 여로보암의 완악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즉 분열 왕국 시대의 남왕국 유다에는 그래도 비교적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들이 나타나곤 했다. 본서 서론 도표, '남왕국 유다의 열왕들' 참조. 그리고 이러한 왕들이 등장할 때마다 여호와 신앙은 주기적으로 부흥했다(Schultz). 그러기에 열강의 틈새에서도 남왕국의 존속 연한은 북왕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길었다(북왕국멸망은 B.C. 722년, 남왕국 멸망은 B.C. 568년).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결국 남북 왕국 각각의 신앙 상태와 결부된다. 즉 비록 전체적으로 쇠락해가는 진행 방향이긴 했어도 남왕국의 역사는 간간(間間)이 부흥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원동력의 배후에는 다윗이라는 이상적 군왕이 서 있었던 것이다(11:9-13; 삼하 7:8-16). 하지만 이에 반해 북왕국의 왕들은 예외없이 우상 숭배에 몰두함으로서 악한 왕이라는 평가를 모면치 못한다. 그런데 여로보암이야말로 북왕국에 이러한 우상 숭배의 풍조를 뿌리내린 장본인이다. 말하자면 후대의 왕들은 그가 조성한 토양에서 그의 선례를 본받아 우상숭배에 열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후대 사가(史家)들의 신앙적 관점에서 북왕국 우상 숭배의 원인균(原因菌)인 여로보암의 완악함이 주목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본절의 '이 일 후에도...' 부분은 바로 그러한 초점이 모아진 곳이다.

ㅇ보통 백성 - 비단 레위 지파 출신 뿐 아니라 일반 모든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2:3 주석을 참조하라.

ㅇ삼았으므로 - '삼았으므로'에 해당하는 '밀레에트 야도'는 문자대로는 '손을 채우다'이다. 이 말은 제사장직 수여를 의미하는 전문 용어이다(Keil). 한편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규례(출 28:1-4)를 무시한 여로보암의 이러한 정책은 북왕국 내에 진정한 여호와 종교가 발붙일 여유를 없애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신앙의 자유와 참예배를 갈구하는 자들은 부득이 유다를 이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하 11:13-17). 12:31 주석 참조.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

ㅇ이 일이...죄가 되어 - '이 일'이란 앞에서 언급된 여로보암의 모든 죄악된 행위를 총칭하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즉 이는 (1) 금송아지 숭배(12:28,29) (2)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음(12:31; 13:33) (3)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정함(12:32,33)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이 그러한 소행을 계속했다는 것이 본절에서 지적하는 요점이다.

ㅇ멸망케 되니라 - '멸망케 되니라'(솨마드)는 '끝내다', '완전히 잡아 꺾다'는 뜻이다. 이 말은 완전히 멸망되어 자취도 남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실제로 훗날 여로보암 왕조는 2대로 그치고 멸절되고 만다. 즉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즉위 2년만에 살해당하면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던 것이다(15: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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