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왕상9 성공중독??..2차 계시주심..약속의 땅_가불 땅_믿음으로 받기...토브회복_갈망하는마음7_Q아들들형상_새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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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9장  1-14.[252 '참 아름다워라] 15-28.[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휘오데시아의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참된, 영적 측면에서 올바른 의미 ::: "(한국적 상식 기준에서의 = 세상적 기준따르는) 양자(입양자)"의 자격 시작이라는 단순한 세상적 의미가 아니라 당장 모든 차원-영역-온 우주만물-모든 인류, 가시적 비가시적-미시적 거시적 셰계를 창조하신 창조주-유일무이하신 지존자/주재, Q의 모든 것 받고 누림, "친아들(아들들 = 참생명 받아 태어난 친자, 참아들 -- 그래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맏아들, 교회, 곧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는 많은 아들들임)"의 자격임, 이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그 영, the Spirit = the Spirit of adoption, 과정 거치신 부활생명 능력의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 반드시!! 주님 앞에서 (거듭난 참 믿는이 한사람 한사람마다!!) 여쭈어 보라!!--그리고 깨닫게 하신바를 확고히 붙들라!!-- 영적 의미는 세상적 의미와 그 실제가 크게 다르다!!, "세상적 adoption, 곧 Q의 양자 자격(입양받고 적용받는바, 아들로서의 권리 부여 시작)"이 아니라 "Q 아들(그 즉시 Q의 풍성부요충만 그 자제 모든 것 다 받은 Q 아들들)"의 자격임 = (그 완성은 진행중이지만, 마침내 이루실 것!! - 그러므로 이미 이긴 CJ의 믿음으로 닥치는 고난마다!! 그 고난을 "주JC이름으로" 이기는 자 됨 믿으라...물론, 이것은 여전히 "already, but not yet"라는, 시간적 과정 을 지나고 있으니, 주님은 이미 신분과 자격, 누리게 하신바 Q의 모든 것 허락하심 방면에서 살펴본다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마땅히, 마침내 이르게 하실바 = 아버지 뜻 구현하며 살아냄, 곧 택자의 생명-본성-상품의 성화/거룩함에 있어 성장성숙에 이르게 하시려는 아버지 뜻 따라 구함-찾음-두드림의 기도로 교통케 하고 계신다...무엇보다도 가장먼저, 가장 최우선적으로 추구할 바는 Q 알기--친밀하 하나됨의 교통 가운데 살며 사랑하여 섬기며 그분 닮아감!! )


------에베소서 1:5의 ‘휘오데시아’의 바른 의미------진정으로 참되게 거듭난 것이 맞다면!! 거듭난이마다 지금 이미 Q자녀인것...이 관점에서라야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JC께서 담대히 분명하게!! 명령하며 권고하고 계시는 그대로!! (이미 아버지의 자녀되었기에!!...아버지의 것 다 받아 누릴 자격 가진!! - 친아들이자 맏아들 JC처럼-다 받아 누릴 수 있음을 ) 제자들에게 그런 의미로 참되게 말씀하셨음을 이해할 수 있다...이미 거듭난 이마다 Q 아들들로서 아버지 Q께 요청하여 (지고지선을 아시는 아버지의 뜻하심 안에서!!) 다 받아 누릴 수 있다 하심인것!!....근원적 지혜의 아버지께서 영원하신 뜻 이루심 안에서 때를따라!!/때에 가장 합당하도록!!, 구하는 바, 사랑하는 자녀에게 최선/최상으로 공급하시리라.

[엡1"3-10(4,5)...*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3 [c]Blessed and worthy of praise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the heavenly realms in Christ, 4 just as [in His love] He chose us in Christ [actually selected us for Himself as His own]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so that we would be holy [that is, consecrated, set apart for Him, purpose-driven] and blameless in His sight. In love 5 He predestined and lovingly planned for us to be adopted to Himself as [His own] children through Jesus Christ, in accordance with the kind intention and good pleasure of His will— 6 to the praise of His glorious grace and favor, which He so freely bestowed on us in the Beloved [His Son, Jesus Christ]. 7 In Him we have redemption [that is, our deliverance and salvation] through His blood, [which paid the penalty for our sin and resulted in] the forgiveness and complete pardon of our sin, in accordance with the riches of His grace 8 which He lavished on us. In all wisdom and understanding [with practical insight] 9 He made known to us the mystery of His will according to His good pleasure, which He purposed in Christ, 10 with regard to the fulfillment of the times [that is, the end of history, the climax of the ages]—to bring all things together in Christ, [both] things in the heavens and things on the earth.]


.....에베소서 1:4-5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세우신 그분의 뜻을 계시합니다. 그런데 그 뜻은 본문에서 이중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즉 4절에 의하면 그것은 사람인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이고, 동시에!! 5절에 의하면 우리가 “휘오데시아(υΐοθεσίαν, 5206)”가 되는 것입니다(개역성경은 이 휘오데시아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자신의 자녀로 입양함’이라고 번역함). 따라서 하나님의 뜻은 이 둘을 함께 묶어 사람인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 로 만드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원의 관점에서의 구속, 새 생명으로 거듭남, 영적 생명의 성숙인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음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엡1:5의 ‘휘오데시아’가 다수의 영어 역본들에서 ‘adoption’(입양)으로 번역된 것을 근거로,  비록 입양 후 “아들로 받아들여진 자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로 만드시는 아버지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을지라도 5절은 “그 궁극적인 목적의 시작인 입양 ”만을 말함으로 “시작의 의미를 목표의 의미로 읽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엡1:5 본문이 말하는 예정의 내용인 “휘오데시아”가 입양 즉 “아들의 시작의 의미” (영적인 거듭남?)인지 아니면 그러한 거듭남의 단계에서 더 전진하여 나아갈 바 그 목표 <영적 생명이 성숙한 단계>까지를 말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할 필요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들을 근거로 엡1:5에 언급된 하나님의 예정하심의 내용인 ‘휘오데시아’는 사람의 거듭남은 물론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인 생명의 성숙까지를 포함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말하고자 합니다.

1. 시대적 배경 속에서의 ‘휘오데시아’ 용례

사도 바울이 엡1:5에서 사용한 ‘휘오데시아’는 이 서신이 쓰여질 당시인 로마 시대의 전문 법률 용어로서, “어떤 사람에게 전에는 갖지 않았던 아들(sonship)로서의 모든 권리와 특권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반론자께서 가정했던 것처럼 이 단어 자체가 “궁극적 목적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 단어의 그 당시 용례는 아들로서의 모든!! 법적 권리와 특권을 즉각적으로!! 부여받는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저명한 헬라어 언어학자들인 빈센트는 그의 Word Studies(Vol 3)에서 입양된 사람이 갖는 권리들 중 하나로 (로마)시민권을 예로 제시했고(91쪽), 웨스트도 그의 Word Studies(Vol 1) 에베소서 36쪽에서 휘오데시아를 “places him in a legal position as an adult son (huios)” (장성한 아들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휘오데시아 자체가  “아들의 시작만”을 의미한다는 반론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실제로 로마서 8:23은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이라고 말함으로 양자가 사람의 영의 거듭남만이 아닌 (혼의 변화와) 우리 몸의 구속까지를 포함함을 암시합니다.

2. 구속의 목적으로서의 휘오데시아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휘오데시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엡1:5에서 쓰인 ‘휘오데시아’ 라는 같은 단어가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하는 갈4:5 본문 속에도 발견됩니다. 즉 위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속받은 사람들이 <아들의 명분>(한킹,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아들의 명분’(아들의 신분)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칼빈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 중 한분인 안토니 후크마(Anthony A. Hoekema)는 “구속의 목표는 사람이 타락 전에 있던 상태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올려지는 것이다….구속의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식에서 뿐 아니라 그외 여러가지 차원에서 흠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소유자들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개혁주의인간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50-51쪽). 

그는 이어서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네 구절들(롬8:29, 고후3:18, 골3:9-10, 엡4:22-24)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얻게 될 구속의 목표는 우리가 좀 더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 달리 말한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이신 그리스도처럼[그분의 짝/반쪽(부디 이 표현을  참되고 바르게 이해하시길!)으로서 그분의 어떠하심-분량-수준에 합당하도록] 되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위 책, 53쪽).

만일 이런 관점이 맞다면, 갈 4:5에서 구속의 목적으로 언급된 ‘휘오데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시작 단계인 거듭남은 물론 그 이상의 전진된 단계를 포함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예정의 내용으로서의 휘오데시아

신약에서 <예정하다>(프로오리존, 4309)라는 말은 행4:28, 고전2:7, 엡1:11, 1:5, 롬8:29-30 등에서 쓰였으나 우리가 현재 살펴 보고 있는 엡1:5에 상응하는 문맥은 로마서 8:29입니다. 두 단락을 이곳에 인용 소개해 보겠습니다.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으니”(having predestinated us unto the adoption of children, KJV)(엡1:5).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did predestinate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KJV)(롬 8:29).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따라 예정하신 궁극적인 내용이 각기 다른 둘 일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가장 단순하게 보더라도 엡1:5에서 예정된 내용은 롬 8:29에서 예정된 그것과 같아야 합니다. 즉 “자신의 자녀로서 입양” 된 것은 곧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은 단지 거듭남 만이 아닌,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듭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비로소 얻어지는 결과입니다(갈4:19).

우리는 엡1:5에서 쓰인 ‘unto ‘ (είς, 1519)가 많은 때 지향하는 어떤 것의 최종 결과(result) 또는 목적(purpose)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도 ‘휘오데시아’ 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흠이 없고 거룩케 하신’ 최종 결과를 가리키는 말임을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후크마의 말을 빌려 보겠습니다. 그는 요한일서 3장 2절의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을 주석하는 문맥에서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아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온전히 닮는 것이 우리의 성화의 궁극적인 목표이다.”(위 책, 59쪽)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롬8:29에서 우리에게 예정된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과도 상통하는 개념입니다.

4. 결론 

엡1:4-5가 말하는 창세 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뜻의 성취로서의 ‘휘오데시아’는 그 당시 로마 시대 언어습관, 같은 단어가 쓰인 갈4:4-5 문맥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의 내용을 말하는 또 다른 곳인 롬8:29의 본문에 비춰 볼 때, 다만 구속이나 거듭남의 개념만이 아닙니다. 대신에 거기서 더 전진하여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갖는 단계까지를 포함한 의미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엡1:5의 휘오데시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에 따른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설정과도 맞물린 매우 엄중한 문제입니다.


...##양자의 영##

로마서 8장 15절에 나오는 ‘양자의 영’이란 로마서 8장 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과 같은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본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 사실을 증명해 주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양자의 영'이란 말은 헬라어 "퓨누마 휘오데시스" (πνεῦµα υἱοθεσίας)입니다. "휘오데시스는 "휘오스" (아들, 자손) + "데시아"(위치하다, 배치하다)의 합성어로서 '양자   삼기', '아들이 되게함', '채용' 등의 뜻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위치에 있게 된다는 뜻에서 '양자  삼기' 혹은 '아들이  되게 함' 이라고 번역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주로’the Spirit of adoption’ 또는 ‘the Spirit of sonship’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갈라디아서 4장 5절을 보면, 같은 단어인 ‘휘오데시안’ (υἱοθεσίαν) 을 ‘아들의 명분’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양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아들의 명분=양자).   

그런데 양자(adoption)라는 단어도 자신의 경험이나 혹은 문학적 이해 혹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굉장히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여 질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성경 시대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양자" 개념은 우리나라 문화에서 생 각하는 그런 "양자"의 개념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양자" 그러면 무언가 "친자"보다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 혹은 열등한 자녀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로마사회에서는 양자가 되는 것은 특별히 선택되었다는 자부심을 느끼던 사회였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귀족들은 자기 친자식들에게 부족한 점이 많아서 특출한 인물을 양자로 입양하였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양자가 자기가 낳은 친자녀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양자라도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양자가 되었다’는 헬라어 본문의 말씀은 ‘친자가 되었다’는 말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개념일뿐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특권'을 보여주는 언어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8장15절을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라고 말한후에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또 에베소서 5장 6절을 8절을 보면 예수믿기 전에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이요 어둠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마귀의 자식이란 말이지요 (요한복음 8:44 참조). 그러나 성령의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양자 개념은 친자 개념보다 못하지 않으며 그보다 더한 ‘선택받은 은혜’를 기억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일((8복소유자, 이미 거듭난 믿는이, CJ제자 우리 위해 모든 구속 이루신/자유케 하신 JC께서 친히 우리와 하나되어 계시기에!!, 그 사실 붙들고!! 살아생동하는 발휘하는 산 믿음으로 JC이름 부르며!! JC이름으로 오사 모든 영역차원 초월하시는, 임하여적셔주시고점유충만성화영화이룸위해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성장성숙 기대하시며 함께 살아가시는 성령따름)) 가운데서만 진정, 주님이 재창조하신=거듭나게 하신 사람답게 살 수 있음###.

[고후5:17-19...*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나사렛 뜻 --[네쩨르]순-싹, 줄기/가지/지팡이, 파수/수호/구원하다, 지켜보다, 솟아나다/싹트다 [나지르] 구별/헌신하다

----갈릴리---스불론-납달리 지역, 즉 갈릴리 호수 좌측의 원통형 산지지역(위도상으로는 대체로 메롬호수에서 하롯 강 사이에 해당)

히브리어로 ‘가릴’ 또는 ‘갈리라’다. 헬라어로는 ‘갈릴라이아’다. 

고대 이스라엘의 최북단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이방의 지역으로 축약되어 부르다가 다시 이방의 갈릴리로 불렀고 지금은 단순히 갈릴리로 불리게 되었다. 

이 갈릴리에 대해서 지리적 역사적 고찰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갈릴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을 드러내어 영혼의 양식을 삼고자 함에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사역하신 대부분의 기록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갈릴리가 아니면 사역을 하지 아니하셨을 정도다. 첫 번째 이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베푸셨고,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먼저 부르셨고 산상수훈을 교훈하신 곳도 갈릴리였다. 또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곳도 갈릴리였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곳도 갈릴리 지역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였다.

이 갈릴리 지역을 그냥 현상적인 지역으로 보면 안 된다. 갈릴리에는 영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갈릴리의 어원은 ‘가랄’이다. 

[명사형의 의미는 원-원통-원기둥(실린더), 또는 갈릴리호수가 수금(킨노르)을 닮았다 해서 긴네렛 호수(바다)라고도 하였고, 동사형 의미로는 "구르다, 굴러가다, 옮기다, 흘러 내려오다"는 뜻이다. 

이 말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말씀의 짐을 지고 익혀가면서 돌이 굴러가듯 굴러가면서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그 높으신 사상이 인간 내면에 흘러가는 것이다. 첫째 시기에서 둘째 시기로, 둘째 시기에서 셋째 시기로, 셋째 시기에서 넷째 시기로, 넷째 시기에서 다섯째 시기로, 다섯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인간 내면에 본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무지(흑암)인 무저갱의 속성이 깨뜨려져서 소멸되어 내려간다. 이 내려가는 과정을 통과한다, 건너간다, 굴러간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굴러서 육의 속성이 깨뜨려지고 소멸되어져 죽어야 무저갱의 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이 내려가는 것을 요단강을 건너간다고 말한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다. 

그렇다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이 갈릴리라는 뜻이 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펼쳐 나가신 것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굴러가게 하신 것에 근본 의도를 두신 것이다. 그래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그리스도 예수의 본체가 되신다. 성경 66권은 구구절절 그리스도 예수를 드러내 말씀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표현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나타나고 있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의미를 바르게 열어서 보지 못한다면 하늘의 신령한 계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창세기 1장 내용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다. 이 창세기 1장 내용이 성경 66권의 잣대가 된다. 이 잣대가 없으면 성경은 열리지 않는다.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가 성경의 잣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없으면 성경은 허상이 되어 버린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본체가 창세기 1장 내용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요, 이 내용을 사역하는 것이 갈릴리 사역이면서 육에 속한 불합리한 무저갱의 옥에서 빠져나와 구원을 이루는 것이요 육의 허물을 벗는 것이다.

갈릴리는 바다다. 바다는 ‘얌’인데 사역을 의미한다. 갈릴리의 사역을 하는 것이 갈릴리 바다다. 갈릴리 바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야 한다. 그 깊은 곳이 인간 내면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무지)을 담고 있는 깊음의 무저갱으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내려가면서 무저갱을 깨뜨려야 한다. 이 깨뜨려서 소멸시키는 고난을 통과하는 갈릴리 바다의 사역이 없으면 구원은 없다. 육의 속성을 소멸시켜 나가 익히고 적용하는 훈련이 되어질 수 없다. 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굴러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고 적용해서 완성해야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고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갈릴리 바다의 사역이 십자가를 지고 굴러가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다. 십자가로 가는 여섯 걸음이 갈릴리다.

기독교는 바로 십자가다. 그리스도 예수는 십자가 본체시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십자가로 가는 고난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사역이 갈릴리의 사역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역하시는 본체시다. 적나라하게 육신의 생각들이 발가벗고 드러나게 되는 것이 갈릴리다. 새롭게 거듭난 마음 땅, 거듭난 심령의 밭이 갈릴리다

-----------하나님의 경륜----------

‘경륜’이란 말은 통상적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한자로는 ‘날 경(經,) 낚시줄 륜(綸)’으로, ‘일을 조직하여 경영함’이라는 뜻.... ‘경륜’이란 말의 헬라어는 ‘오이코노미아’.... 이 단어가 에베소서에 세 번 쓰였다(엡 1:9, 3:2,9). 그 뜻은 ‘청지기(눅 16:2-4, 갈 4:2), 직분(고전 9:17), 경륜(골 1:25), 심오한 뜻(엡 1:9)’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의미를 종합해 볼 때, ‘경륜’은 청지기가 집을 관리하고 다스리듯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지상의 교회와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를 다스리는 경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우주 만물의 운행과 질서, 시간을 가장 적절히 조절하며, 분배하고, 배열하며, 계획하고, 지배하며 관리하시는 일체의 과정을 뜻함이다(골 1:25). 그것은 오직 죄악된 인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데 초첨이 있는 것이며, 그 경륜을 실현시키는 일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와 관련되어 있다(엡 1:20-23). 

하나님의 경륜과 구속사의 관계를 정리하자면,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작정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전 우주와 세상의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관리와 경영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작정대로 이 땅에서 성취되고 펼쳐진 그 역사가 '구속사'이다. 구속사의 핵심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에 있다.


@@가불(Cabul )....악고 평원, 이스르엘 평원 의 동쪽, 긴네렛 호수 서편 그 사이의 원통형 산지 지대(위도상으로는 메롬호수-하롯강 사이)

1. 스불론-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다(수 19:27-39..아셀지파영역은 아님 : 아셀 지파 지역은 평지로 기름진 땅). 현재의 ‘카불’(Kabul)로 추측된다.  2. 솔로몬이 성전 건축에 협조한 대가로 히람에게 준 갈릴리 20성읍을 말한다(왕상 9:10-14). 히람은 갈릴리 20성읍을 보고 만족스럽지 않아 이곳의 이름을 ‘굳고 메마른, 쓸모없는 땅’이란 뜻을 지닌 ‘가불’이라고 불렀다. 후람은 솔로몬에게 이 땅을 돌려 주었고 솔로몬은 이곳을 다시 재건하였다(대하 8:2). 

​##갈릴리...--나사렛(저주-멸시-천대 받음의 땅, 그러나 "구별/헌신된-헤렘으로 여겨 자신을 드린 = 나실, 나지르" 나실인 JC의 땅)......솔로몬이 두로왕 히람의 도움으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년간 짖고 건축을 마친다. 그때 두로왕 히람은 두로에서 나는 백향목과 잦나무를 바다로 운반하여 땟목으로 엮어 성전과 왕궁을 지을때 쓸 재료로 솔로몬에게 보냈다. 그리고 히람왕은 솔로몬에게 나의 궁정을 위하여 음식물을 달라하여 밀과 기름을 받었었다.그리고 두 사람은 약조를 맺어 성전과 왕궁공사를 하는데 서로 협조적으로 국가간의 무역거래를 통해서 이 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공사가 다 끝난후 솔로몬은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다. 그러나 히람은 솔로몬이 준 갈릴리 땅에 대해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히람왕이 솔로몬에게 받은 갈릴리 땅에 대해 " 가불 " 땅이라고 하여 별볼일 없는 땅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왜 솔로몬은 히람에게 공사에 필요한 백향목과 잦나무를 쓰고서 마지막 정산을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으로 정산을 하였을까? 금 이나 은이나 값이 나가는 것으로 히람에게 주면 거래가 끝날것이데 왜 하필 갈릴리땅으로 댓가 지불을 하였는가 생각해 보게 한다....솔로몬이나 히람이나 둘다 자기들 눈에 보기에 갈릴리 땅은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을 한것 같다.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땅이라 솔로몬은 히람에게 서슴없이 준것이고 히람은 그 땅을 받고서 히람이 보니 눈에 들지를 않은것 이다. ---왜 갈릴리 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을까? 갈릴리땅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여 땅 분배를 할 당시에 아셀지파와 스룹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를 한 땅이다. 아셀지파의 땅은 두로와 시돈과 경계를 하고 있는 북서쪽의 지중해와 닿은 땅이고 납달리 지파의 땅은 갈릴리 호수를 맞대고 있는 요단서편 땅이고 그 지파 사이에 끼어있는 남쪽땅이 스룹론 지파의 땅으로 여호수아가 땅 분배를 하였던 이스라엘의 북쪽지역의 땅이었다. 그런 갈릴리땅은 이스라엘 사람들 조차도 외면하고 버려진 곳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변방의 땅이었고 관심의 대상이 되질 못한 사람들이 외면한 지역이었다. 항상 외적들이 먼저 침공을 하여 외세의 공격에 제일 먼저 노출되어 있는 곳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꺼려한 지역이었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자들 가운데 나다니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 고 할 정도로 갈릴리 지역은 사람들의 관심이 대상이 될수 없는 버려진 땅 이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렇게 평가를 받을 정도이니 솔로몬 당시에는 더 별볼일 없었던 지역이라고 짐작이 간다. 그래서 솔로몬은 히람에게 성전공사의 잔금지불을 금 이나 은으로 하질 않고 더 이상의 음식물로 하지를 않고서 갈릴리 땅으로 한 것 같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 땅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 "엣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라고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요단강에서 받으시고 40일 금식하신후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신후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에 갈릴리로 이동을 하셔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이사 가셔서 사역의 본거지로 삼으신후 공생애를 시작하실때 마태는 이사야의 이 구절을 인용을 하면서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라고 말씀을 하신다.  ---솔로몬 이나 히람 이나 갈릴리 땅이 이런 땅이 될것이라고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갈릴리 땅을 주고 받으면서 자기들의 눈에 별볼일 없어 보였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본체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 하시면서 그 땅으로 들어 가실때 성경저자들은 한결같이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추었다" 고 하시는 말씀을 하신다. 어둡고 버려지고 황량한 땅에 한 줄기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 때문에 그 땅이 소망의 땅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하신다.  ...이것이 구속사!!

##[갈멜산 인근 평야들]

......갈멜산/기손강에서 길보아 산 거쳐 하롯강-요단에 이르는 이스르엘 골짜기에 이르는 횡선,  바로 그 위의 나사렛-가나(=길벳 가나, Kihbet Qana =갈릴리 가나 : Qana는 "갈대"를 의미) 연장선 서쪽 지역은 악고 평원(해안평야), 기손강/갈멜산 남부는 지중해 해안선 따라 샤론 평야-->블레셋 평야로 이어짐...  기손강/갈멜산 인근에서 길보아 산 인근까지 펼쳐진 이스르엘 평야, 그리고 그 너머는 요단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스르엘 평야--남북으로는 갈릴리 산지와 사마리아 산지를 구분.. 동서로는 지중해 인근의 해안 평야와 요르단과 인접한 요단 계곡을 연결.. 보기 드문 곡창지대. ‘이스르엘’은 말 ‘하나님이 씨를 뿌리신다’라는 뜻 곡물과 면, 해바라기, 그리고 옥수수를 생산하는 비옥한 땅. 또한 대량의 양과 소가 방목지. 이스르엘 평야 북쪽에는 나사렛 산지, 서쪽에는 갈멜산이, 또한 남쪽으로는 사마리아 산지가, 동쪽으로는 다볼산, 모레산, 길보아산이 위치.. 길보아 산 밑에서 시작되는 두 개의 강 --서쪽 방향으로는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기손강, 동쪽 방향으로는 벧산을 지나 요단 계곡으로 유입되는 하롯강. 한 마디로 비옥한 평야와 강이 어울러진 이스라엘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 바로 이스르엘 평야.


===여호와께서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시다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1.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영화로움의 최고봉에 달한 그때!!..44-45세경]

........솔로몬왕궁[레바논숲궁]을 짓는 13년 동안에는 계시가 없었음을 의미

2.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꿈에]나타나사

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성별하심의 주체는 바로 오직!! Q한분뿐이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8.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대하7:12-18...*12.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13.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기근-재앙-온역은 그분 백성과 자녀들의 생명-본성-성품의 거룩함, 곧 성장성숙함이 JC의 장성한 분량충만에 이르도록 다루심 과정임을 참되게 알고, 환경상황형평처지가 어떠하든지간에 전존재 기울여 전심으로 주 이름 불러 회개-돌이키기를 일깨우고 계심)   *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5.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16.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17.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18.내가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하리라]


===솔로몬과 히람의 거래 

....히람은 불신자요 이방인이지만 상호 신뢰+호혜평등 원칙 아래서 분명하고도 돈독한 우정으로 대하겠노라 다짐한 것 같으나, 정작 Q 경외하노라 하는 솔로몬은 다소 불투명한 자세로 자기가 원하는 것만 얻기를 바라고 거기에 합당한 대가 치르겠다고만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님은 이스라엘 영토는 주님 소유이기에 이방에게 팔거나 넘기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갈릴리 땅을 넘겨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만다.

---레25장:2절에서 이미 여호와께서 특별히 예비해두시고 분정하여 준 땅은, (비록 자기가 분정하여 받은 그 땅이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주님의 특별한 소유요!!) 레25:23절에서는,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이방에게 팔거나 넘겨주어서도 안됨] 토지는 다 주님 자신의 특별한 소유요, 이스라엘 백성은 거류민이자 동거하는 자로서 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셨기에 [당시 아무리 황량-척벅하고 산지가 대부분이었던 갈릴리 지역 20개 성조차도 히람에게 결코 넘겨주어서는 안되었는데.....그 행위는 그분의 정하신 규례를 어김 그 자체였다.((다행히, 히람은 되돌려주었다...아니, 넘겨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히려 솔로몬의 약점을 살펴서 ((미녀와 황금 제공))타락케 하는 교묘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었다.

....::: (자신의? 성공신화에 맛들였던바, Q가르침 그 자체로 살기에서 곁길로 나아간,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과도 같음..막4:18-19)..먼저 그의나라-그의 의를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Q 말씀이 진정 그러한가를....테스트 해 보라고 도전하고 계심!!(마6:30)

[렘2:13..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10. [366.. 어두운 내 눈 밝히사][542. 구주 예수 의지함이] ○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11.  [솔로몬도, 히람도 정녕 하나님의 소유의 참 가치를 몰랐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속한, 그 땅 가치를 전혀 모르는 두로왕 히람, 그가 그토록 바라고 있었던 농경지가 아닌, 산악지대--스불론과 납달리 땅]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12.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히람 자신이 원하던 바-당장에 곡물생산가능한 옥토가 아니었기에-호의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하대하는 태도로 돌아섰다고 의혹 가지게 됨] 

13.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쓸모없다)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돌려보내었음..(주님이 선택해두신 땅인데!!)그 가치를 히람도, 솔로몬도 전혀 알지 못하였음] 그 이름이 오늘까지[바벨론 포로 시점] 있느니라

......그러나!!, 정말 아쉽다!!..이웃과의 관계 주 앞에서 참된 회복 없이는 Q 제단에 예물드릴 수 없음 :::정말, 주님은 슬퍼하고 계셨으리라..[마5:23-26...*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1)합당하게!!, "말씀따라" 주께 여쭈고!! 불신세상에 교역 대가를 , 정당한 값을 넉넉히 지불하라..*2)힘들다고 그대의 아내-남편-자녀-친족을 포기해버려서는 안됨!! ..나사렛 예수!!...가장 먼저 빛 비췸 임했다..

14.  [솔로몬이 (신명기 말씀 중 17:17..중 "왕의 규례"를 어기게 됨) 금 축적에 올인하고 있음을 눈치챈]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 이로써 솔로몬의 진리길 행보를 빗나가게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후에는  히람과 함께 무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에시온게벨에서 오빌로 함께 해상무역하여 금 사백이십탈란트를 가져오고 있다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니, 교제하는 주변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평가를 듣고 점검하라, 오직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그대의 가불들을 [주님 마음의 시선으로!!] 올바로 봐야 하며 매일  돌이켜야 한다

===솔로몬의 나머지 업적

.... 모세 성막은  자원하는 자들의 헌신과 자원예물로 이루어젰는데, 솔로몬은 (게셀을 혼수로 가지고 온, 바로의 딸 거처 마련 위해 + 게셀을 요새화 하여 군대 주둔시킬 목적으로) 역군을 일으켜 강제 동원 하고 있었고 (가나안 족속에 대한 헤렘 명령을 어기고[---오늘날은 사탄체계로서의 세상 가치 패러다임 전반에 대한 그 본질적 정체성을 규명/분별 통해 싸워 이김으로써 고사시킴이 합당한 태도] 남아 있었던 가나안인들을 노예 역군을 삼았다.(= 역군으로 부리기 위해!!, 결국 뿌리를 근절시키지 못했고 근절시키려고 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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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마음이 여호와를 떠나다 (왕상11:1-13까지 참고) 

---"날 봐라!! Q 믿었더니, (온세상이 거절하거나, 들고 일어나 죽일듯 압박하고 몰아부쳐, 마치 버림 받아 음부까지 내려감 같은 깊은 고독, 땅끝 절벽까지 몰리는, 사방으로 우겨싸임당함의 극에 달하는) 고난도 전혀 없고!! 이렇게 세상적으로도 잘되더라!!"의, 전형적 기복의 참담한 결과 --> 그 후에, 주님의 진노로 철저히 다루심 받고 회개하여 정말 겨우겨우 턱걸이 구원 받고 있는 솔로몬을 보고 교훈 받으라.

.....날마다 주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임..죄의 크고 작고의 문제가 결코 아님에 주의하라!!

....."이방여인"에 대한 잠언을 참고하라..3천가지 잠언 지었던 그였지만, Q께서 주신바 "잠언2,5,7장 말씀"을 스스로 어기고 있었으니-- 극심한 언행불일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기 죄를 보지못하고 고난 모르는 모태신자, 불신결혼의 귀결 드러내 보임 =  음란 중독/자녀 우상 + 만사형통의 교만 + Q 백성을 역군 삼아 고통스럽게 함 

.....모름지기 택자의 독특한 특징이란, 넘어져도 (회개하고 주 이름 부름 안으로 자원함으로 이끌려, 일으키시는 주님 손길 붙잡고 따라)오뚜기 같이 일어나서 좁디좁은 생명길로 되돌아옴

[신17:14-20...*14.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8.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아헤브]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해당되는 원어 성경 --다바크 아헤브 = (음란[성적쾌락]중독) 집착하여 달라붙다//침궁 잠자리 시중 드는 여인을 날마다 갈아치워야 했을바 그들 없이는 잠을 이루지못할정도로 성교극치감 중독/탐닉상태가 되고 말았다]

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한번 침궁에 들인후 홀로 기거케 했을바, 그 여인의 외로움 달래기 위해 저마다 [다산을 빌고자]우상을 들여와야 했을것)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꾀어서 ]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시돈의  엣바알(바알-아세라 ::: 숭배 제의는 집단난교 통한 다산 기원) ...그모스는 가나안 토착신으로 어린아이를 불가운데로 지나게 하거나 태워죽임의 제의를, 밀곰/몰렘/몰록은 암몬의 토착신으로, 그 제의는 청동 신상을 달구어 그 두 팔에 어린아이를 올려놓아 태워죽였다.

6.  [안타까운것은 주변에 경고할, 충언해줄 선지자나 제사장이 한사람도!! 없었다!!--왜??..스스로 최고지혜자가 되었다고 여겼기에..겸손히 듣고 따라 순종하려는 참되게 YHWH경외함의 자원하는 마음에서 떠났기에 자연히 Q말씀 전하는 선지자/제사장 경홀히 여김으로 이어졌으리라..다윗 같이 겸손하지는 않았으니, 고난/고통 몰랐기때문이라.."진정한 의미의 "참 여디디아 됨"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 정말 아쉬운 점이다]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밀곰. 몰렉]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9.  ○[그토록 스스로 똑똑하여 교만한 고집쟁이가 되어버린바, 그 누구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는, 경청의 마음이 아예 없었기에 결국 Q께서 직접 꿈에 나타나 말씀하셔야 했었다]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이미 그의 마음은 아예 Q 자리에 가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진노하심으로 임한 고통이야말로 택함 받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며, 돌이키게 하시는바, Q의 마지막 보호막임을 참되게 깨달아 알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래도!! 주님은 미안해 하고 계신다..그가 미처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를 덤으로 주마" 하셨던분은 주님이시기에)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고통 가운데서만 주님 말씀 찾게 되고, 그렇게 목숨 다해야만 그리스도 산출이 가능하기에...]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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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제 백성은 사무엘의 경고하였던 그대로!!(...호13:11, 삼상8:4-22 참고), 종 신세로 전락하고 있었다]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호13:11....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삼상8:4-22...*4.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그에게 이르되 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0.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19.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떼쓰며!!]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16.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솔로몬은 애굽에서 말과 병거를 사들여서 병거성을 짓고 주둔시켰으며((애굽바라기 + (결혼하고서 개종했다고는 하지만, 혼수로 "국방요충지요, 난공불락이었던 게셀"을 서슴없이 애굽 바로왕은 내어준바) 바로의 딸을 [마치 Q처럼!!] 극진히 위하고 있어서, 자기가 거하는 레바논 수풀 왕궁에 이어진/그러나 (왕비인 그녀의 의도대로!!--정략결혼이었다고 봐야한다-제 꾀에 넘어갔다!!) 따로 독립된(!!..이것이 문제다!!) 별도 공간의 궁을 지어주고 거기에 살도록 하고 있으니...그 무엇보다도!! 고독감 인해 야기된바, 그의 중독에까지 이르른 여성탐닉을[잠자리 시중드는 여인을 날마다 바꾸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수 없을정도로] 주체할 길 없었고, 그 잠자리시중든 여인마다 가지고 온 우상 섬기기를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봄이 맞다..

17.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게셀--아얄론골짜기 입구에 위치..위/아래 벧호론, 기브아로 이어져서 예루살렘 북부를 방어함....., 아얄론골짜기는 지중해 해안에서 베냐민 산지와 예루살렘을 잇는 골짜기 길이다(수 10:10-15, 삼상 14:31).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때에 “태양이 기브온 위에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라”고 말하며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아얄론 골짜기의 입구에 있는 게셀을 차지하지 못해서 군사적으로 위험에 처했다. 솔로몬은 바로의 딸과 결혼을 하고 이집트로부터 게셀 지역을 혼수선물로 받았던바,. 그후 게셀은 예루살렘을 방어하는 군사 요새가 되었다. 솔로몬은 계속되는 결혼 동맹을 통해 국력을 키웠다. 그러나, 그 대가로 나라의 고유한 여호와 신앙 정신은 무너졌다. 애굽의 바로 시삭은 주전 974년(르호보암의 통치기간)에 아얄론 계곡을 통해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위/아래 벧호론, 기브아로 이어져서 예루살렘 북부를 방어함..

18.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19.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지금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다 무너져 없어졌다!!)

20.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21.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노예-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22.  ((:::전형적 인종차별!! + 출신지파 차별 :: 내부분열의 동기 제공, 식민지 시대의 기독교 신봉 열강들의 태도와 동일했다--이 세상에 "살라"는 명령 받고 보낸바된 한사람사람마다!! 믿든 안믿든  모두 하나님 눈에는 끝까지 여전히 포기못할 한가족-한형제자매들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23.  ○솔로몬에게 일을 감독하는 우두머리[=감역관] 오백오십 명이 있어 일하는 백성[=일반백성-역군]을 다스렸더라

24.  ○바로의 딸이(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개종시켰다곤 하나, 오히려 스스로 올무를 자기목에 건 셈이 되고 말았다 -- 애굽 왕 바로처럼 되기를 추앙했던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맞을 때 제시반은 조건이란!!, 아마도 존귀한 여신처럼 대우할 것을 서약했던것 같고, 그의 반쪽인 사랑하는, 하나됨 마땅한 아내요 정비로서가 아니라 마치 유일무이한 여신처럼 여기고 숭배하게 했고, 그 자신에게도 그리했던 것?? ::: 당연히 지독한 고독감+외로움은, 결국 밤마다 잠자리 시중드는 여인을 바꿀만큼 여성탐닉-음란중독 + 여인들이 가져온 우상숭배 허용으로 귀결지어지고 있었으리라) 다윗 성에서부터 올라와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건축한 궁에 이를 때에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였더라

.......밀로 재건 그 시점에!!, (그 지역은 본래 유다지파가 담당해야했지만!!..에브라임 지파에게 담당시켰다)...((왕상11:27.  그가 손을 들어 왕을 대적하는 까닭은 이러하니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성읍이 무너진 것을 수축하였는데[-그곳은 본래 유다지파가 담당해야할 구역이었는데!! --타지파 차별 대우를 계속하고 있었다!! -- 여로보암은 그 모든 비리를 알고, 하나하나 의도적으로 다 모으고 있다]))

25.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유월절-칠칠절-초막절]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성전 짓는 일을 마치니라 

......성전 짓는 일은 (다윗처럼!!) 각자마다 평생 계속해 나가야 되는 [그의 생명-본성-성품의 거룩함의 성장성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도달케 되도록 ] 일이어야함...다윗은 (남에게 보이는바) 절기 지켰다거나 산당제사 드렸다는 언급 없지만 매일 통회/회개의 삶 통해 영원한 새 예루살렘 바라보는 생생한 산 믿음 안에서 살았음에 주의하라

26.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27.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28.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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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험한시험물속에서]----

1험한 시험 물 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노한 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 주소서

2권세 능력 무한하사 모든 시험 이기고 풍랑까지 다스리는 주님 앞에 비오니

3죄악 길에 빠진 이 몸 캄캄한데 헤매며 부르짖는 나의 애원 들으소서 내 주여

[후렴] 주여 나를 돌보시사 고이 품어주시고 험한 풍파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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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절까지는,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과 거래하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15-29절까지는 솔로몬이 세운 여러 가지 업적을 기록하면서, 이를 위해 솔로몬이 어떻게 일을 진행시켰는지 과정을 덧붙였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자재가 필요하죠. 그중 하나가 백향목입니다. 이 나무가 많은 나라가 두로라는 지역이고, 히람은 두로의 왕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상 5장에서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가까이 지낸 히람 왕에게 백향목과 잣나무 등을 공급해 달라고 제안합니다. 대신 솔로몬은 여러 가지 농산물과 특산물을 히람 왕에게 주고 조약을 맺었습니다.  ... 히람 왕은 솔로몬 왕과 맺은 조약대로 여러 자재를 성실하게 제공했습니다. 히람의 협조를 통해, 솔로몬은 성전과 자기 왕궁을 차질 없이 20년에 걸쳐 완성합니다. 또 본문 14절을 보면, 히람 왕이 솔로몬에게 금 120 달란트를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적했던 건축이 완성된 후 솔로몬은 히람 왕에게 사례하는데, 갈릴리 지역에 있는 성읍 스무 곳을 제공했습니다. ... 하지만 땅을 본 후 히람 왕은, 13절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라는 기록처럼, 크게 실망했습니다. ‘가불’이라는 말은 ‘굳고 메마른 땅’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이 히람 왕에게 준 땅은 말 그대로 굳고 메마른 땅,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오가는 선물은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또 선물을 받았을 때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직접 표현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례에 비춰 보면, 솔로몬이 히람 왕에게 준 땅은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 했습니다. 감히 선물과 답례로 줄 수 없을 만큼 메마르고, 거친 땅이었습니다.))

14절에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는 기록까지 남겼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기록했고, 후손들이 읽고 배우는 내용입니다. 철저히 이스라엘 관점과 기준에 따라 기록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14절의 내용을 추가했으니, 이를 기록하는 입장에서 봐도, 여러 자재를 대고, 금까지 엄청나게 보낸 히람에게 답례로 준 땅으로서는 턱없이 모자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5절부터 기록된 내용에서도, 솔로몬의 이런 성격과 기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5절에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역군’이란 ‘강제 노역꾼’을 뜻합니다. 강제로 일을 시켰다는 뜻입니다. 일꾼은 필요하고, 비용은 많이 드니, 솔로몬은 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노예들을 불러 강제로 일을 시켰습니다.

이 과정과 방법이 본문 20-22절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다만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에서 나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지역을 점령할 때, 그곳에 먼저 있던 민족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하나씩 무찌르고 땅을 점령해 나아갔지만, 끝까지 살아난 민족이 있었는데, 이들이 20절에 나오는 민족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빼앗기고, 소수 민족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죠. 세력을 만드는 무리가 있고, 세력에서 벗어난 약자가 있습니다.  20절에 나오는 민족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땅과 재산과 권리를 모두 빼앗겼습니다. 매일 노예로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철저히 소외된 약자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리는 없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바로 이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모두 시켰습니다. 이들에게는 별도의 보상이나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이들은 솔로몬의 계획과 목표를 위해 이용되었고, 더 이상 쓸모없을 때는 버려도 되는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수이자, 강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로 삼지 않고, 감독관, 신하, 군인, 지휘관, 기병대 등 권리와 보상이 주어지는 자리에 앉혔습니다. 

---- 이를 통해, 계산적이고, 편파적인 솔로몬의 성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자기 사람들을 아낄 줄 알았습니다. 계산도 철저해서, 다른 나라에게는 아주 나쁜 땅만을 골라 주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기준과 태도가 어떻습니까? 좋습니까? 나쁩니까? 성경에 이 모습을 기록한 이유가, 우리 역시 솔로몬처럼 자기중심, 우리 중심으로 행동하라는 뜻일까요? 반대로 솔로몬의 기준과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여기고, 다른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일까요?

==이는 오늘 본문 앞 4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이라는 말씀을 기준 삼으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율례의 핵심은 마태복음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소수와 사회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예레미야 7장 5-7절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는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나의 이익을 더 채우기 위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나님은 지극히 싫어하십니다. 내가 더 갖고, 더 누리기 위해, 쓸모없는 땅을 주는 모습을 하나님의 율법과 뜻에서 벗어난 잘못이라 말씀합니다.

내 사람과 우리 사람만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나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짐을 지우는 행위를 하나님은 지극히 싫어하십니다.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아픔과 슬픔을 이용해 세워놓은 업적 속에서 하나님은 헌신과 수고를 칭찬하시지 않고, 오히려 약자 속의 눈물과 아픔을 먼저 보십니다.

자기 이익, 자기 민족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 행한 솔로몬의 비겁한 계산과, 약자의 희생 위에 세운 솔로몬의 업적과 부흥을 통해,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을 돌아봐야 합니다.

신앙인들 중에도, 솔로몬의 기준과 행동을 닮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교회의 성공과 부흥을 이룰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 여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흥과 성공만을 향합니다. ‘나만’ ‘우리만’ 잘되면, 다른 이의 희생과 아픔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행한 두 가지 모두를 율법과 계명과 명령에서 벗어났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와 평안을 누릴 수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복과 은혜와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와 ‘타인’을 나누지 않아야 하고, ‘우리’와 ‘너희’를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중심의 기준을 넘어서, 모두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과 계명과 명령을 지킬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와 자기 민족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편을 가르고, 탐욕을 행한 솔로몬의 잘못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고, 더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도 같은 사랑과 자비를 베풂으로써,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자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복과 은혜를 모두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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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9장


1.  Now it came about when Solomon had finished building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king's house, and all that Solomon desired to do,

2.  that the LORD appeared to Solomon a second time, as He had appeared to him at Gibeon.

3.  And the LORD said to him, "I have heard your prayer and your supplication, which you have made before Me; I have consecrated this house which you have built by putting My name there forever, and My eyes and My heart will be there perpetually.

4.  "And as for you, if you will walk before Me as your father David walked, in integrity of heart and uprightness, doing according to all that I have commanded you [and] will keep My statutes and My ordinances,

5.  then I will establish the throne of your kingdom over Israel forever, just as I promised to your father David, saying, 'You shall not lack a man on the throne of Israel.'

6.  "But if you or your sons shall indeed turn away from following Me, and shall not keep My commandments and My statutes which I have set before you and shall go and serve other gods and worship them,

7.  then I will cut off Israel from the land which I have given them, and the house which I have consecrated for My name, I will cast out of My sight. So Israel will become a proverb and a byword among all peoples.

8.  "And this house will become a heap of ruins; everyone who passes by will be astonished and hiss and say, 'Why has the LORD done thus to this land and to this house?'

9.  "And they will say, 'Because they forsook the LORD their God, who brought their fathers out of the land of Egypt, and adopted other gods and worshiped them and served them, therefore the LORD has brought all this adversity on them.'"

10.  And it came about at the end of twenty years in which Solomon had built the two houses, the house of the LORD and the king's house

11.  (Hiram king of Tyre had supplied Solomon with cedar and cypress timber and gold according to all his desire), then King Solomon gave Hiram twenty cities in the land of Galilee.

12.  So Hiram came out from Tyre to see the cities which Solomon had given him, and they did not please him.

13.  And he said, "What are these cities which you have given me, my brother?" So they were called the land of Cabul to this day.

14.  And Hiram sent to the king 120 talents of gold.

15.  Now this is the account of the forced labor which King Solomon levied to build the house of the LORD, his own house, the Millo, the wall of Jerusalem, Hazor, Megiddo, and Gezer.

16.  [For] Pharaoh king of Egypt had gone up and captured Gezer, and burned it with fire, and killed the Canaanites who lived in the city, and had given it [as] a dowry to his daughter, Solomon's wife.

17.  So Solomon rebuilt Gezer and the lower Beth-horon

18.  and Baalath and Tamar in the wilderness, in the land [of Judah,]

19.  and all the storage cities which Solomon had, even the cities for his chariots and the cities for his horsemen, and all that it pleased Solomon to build in Jerusalem, in Lebanon, and in all the land under his rule.

20.  [As for] all the people who were left of the Amorites, the Hittites, the Perizzites,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who were not of the sons of Israel,

21.  their descendants who were left after them in the land whom the sons of Israel were unable to destroy utterly, from them Solomon levied forced laborers, even to this day.

22.  But Solomon did not make slaves of the sons of Israel; for they were men of war, his servants, his princes, his captains, his chariot commanders, and his horsemen.

23.  These [were] the chief officers who were over Solomon's work, five hundred and fifty, who ruled over the people doing the work.

24.  As soon as Pharaoh's daughter came up from the city of David to her house which [Solomon] had built for her, then he built the Millo.

25.  Now three times in a year Solomon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on the altar which he built to the LORD, burning incense with them [on the altar] which [was] before the LORD. So he finished the house.

26.  King Solomon also built a fleet of ships in Ezion-geber, which is near Eloth on the shore of the Red Sea, in the land of Edom.

27.  And Hiram sent his servants with the fleet, sailors who knew the sea, along with the servants of Solomon.

 

28.  And they went to Ophir, and took four hundred and twenty talents of gold from there, and brought [it] to King Sol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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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9장 (개요)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솔로몬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응답을 내리시고 솔로몬에게 조건을 내세우심(1-9).

2. 솔로몬과 히람 사이에 우의가 오고 감(10-14).

3. 솔로몬의 역군과 건축(15-24).

4. 그의 헌신(25).

5. 그의 무역선단(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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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왕상 9:1-9)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에 실제로 응답하셨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물을 불사르게 하심으로써(대하 7:1) 자기가 그의 기도를 열납하신다는 것을 표시하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가 보다 명백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게 된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도록 하자.

Ⅰ. 하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그에게 응답하셨는가? 솔로몬이 처음 기브온에서 통치를 시작할 때, 하나님은 꿈 또는 환상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그 때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나타나신 것이다(2절). 이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현몽은 솔로몬이 절기의 축제 의식을 끝낸 바로 그날 밤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도 그랬기 때문이다(대하 1:6, 7). 그런데 1절에는 솔로몬이 모든 건축을 완성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전이 준공된 지 여러 해 뒤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1절은 “솔로몬이 건축하기를 마쳤다”고 읽히며(대하 7:11에 나타난 대로), 2절은 “그러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다”라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

Ⅱ. 이 응답의 취지.

1.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에 답하여 그가 건축한 성전에 당신께서 특별히 임재하시겠다는 것을 확약하셨다(3절). “내가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노라.” 솔로몬은 그 전을 봉헌했다. 그러나 그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즉 성별하거나 성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권리였다. 인간은 어떤 장소를 거룩하게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성심으로 하나님께 봉헌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은혜로이 자기의 소유를 받아들이시리라고 바랄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눈과 그의 마음은 항상 거기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산 성전인 개인에게 적용해 보자.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시거나 성화시키신 자들, 즉 자신을 위해 따로 떼신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눈과 그의 마음과 사랑과 보살핌이 있으며 그것은 영속적으로 거기에 존재한다.

2. 하나님은 솔로몬과 그 백성의 장래는 그들의 선한 행실에 좌우된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하셨다. 그들은 여호와의 전이 자기들 중에 있다고 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같이 안심해서는 안 되었다(렘 7:4). 이 전은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경우에 한해 그들을 보호하도록 계획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반역하거나 불순종하는 경우에는 성전도 그들의 보호를 책임지지 않게끔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숨김없는 거래를 하셔서 우리 앞에 선과 악, 축복과 저주를 두시고, 우리가 무엇에 의탁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솔로몬에게 다음 사실을 말씀해 주셨다.

(1) 나라의 확립은 그의 복종심이 항구여일한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4, 5절). “다윗은 네게 훌륭한 본을 남겼고 동시에 그 본을 따르도록 하기에 충분한 격려도 남겼다. 네가 만일 유리한 혜택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면―바로 이것이 요체다. 성실이 없으면 신앙도 있을 수 없다―내가 네 왕위를 견고하게 하려니와, 네가 그러지 않으면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약속은 바로 그 조건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시 132:12). 우리가 언약 중 우리 쪽 몫을 이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몫을 결코 태만히 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선용한다면, 그는 우리의 믿음을 끝까지 견고히 해 주실 것이다. 경건한 부모의 자녀들은, 자기들보다 앞서 천국으로 간 분들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고 선조의 미덕과 경건을 유지하지 않는 한, 축복을 상속받으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2) 나라가 멸망하게 되면 그것은 솔로몬이나 그의 자손이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임이 틀림없으리라는 것(6절). “너는 다음 사실을 알고 네 가족과 국민에게도 알려서 훈계를 얻도록 하여라. 즉 만일 너희가 나를 좇는 일에서 아주 돌이키며(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내게 대한 예배를 포기하며 내 제단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을 섬기며(이것은 바로 언약 위반의 죄였다) 너희나 너희 자손이 나와 절교하면, 이 전이 너희를 구원치 못하리라는 것을 알라.”

①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기는 하나 끊어지게 될 것이다(7절). “그들은 한 심판을 당하면 또 다른 심판이 임하여 속담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기까지 멸절당하며, 지금은 극히 존귀한 민족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백성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특별히 지칭하고 있지는 않으나, 왕가의 몰락을 상정(想定)하고 있다. 물론 나라가 망하면 왕도 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②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하신 집이지만 버림을 당하고 황폐케 될 것이다(8, 9절). “이 전은 높다.” 그들은 성전 구조의 장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미치지 못할 만큼 성전이 높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들이 만일 성전을 산당이나 우상의 신전과 바꿈으로써 성전을 헐뜯는다든지, 그들이 아무리 타락하더라도 성전이 하나님의 은총을 확보해 줄 것으로 믿는다면, 성전은 결코 높지 않을 터였다. “이 전은 높다.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는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놀란다. 보는 이마다 건축비용과 시설과 건축술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성전은 거대한 건물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만약 저희가 하나님을 저버린다면 그토록 높은 성전도 무너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한층 더 큰 놀라움이 될 것이다. 그 곁을 통과하는 자들은 성전이 폐허화한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양심 있고 자기 반성을 하며 자책하는 이스라엘이라면 자기들이 성전 멸망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라는 질문을 받으면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신 29:24, 25 참조). 그들의 죄는 그들의 벌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성전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전을 버리셨다. 그들은 죄악으로써 성전을 모독하고 졸렬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심판으로써 성전을 모독하시고 황폐케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신축하여 봉헌하자 이 점에 대해 따끔한 경고를 하셨다. 이는 솔로몬과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고 경외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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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건축(왕상 9:10-14)

건축 공사가 시작될 때 솔로몬과 히람 사이에 어떤 협약이 맺어졌는지는 앞에 나왔다(5장). 여기에서는 공사가 완료되자 그들이 아름답고 우정어린 작별을 한 데 대한 설명이 나오고 있다.

Ⅰ. 히람은 협약 조건을 끝까지 이행했다. 히람은 솔로몬에게 그의 온갖 소원대로 건축 재료와 금을 공급했다(15절). 히람은 솔로몬의 세력이 신장되고 명성이 높아짐을 시기하고 질투하기는커녕, 도리어 그의 증대를 도왔다. 어떤 이웃도 솔로몬의 지혜와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귀케 하신다. 그러므로 히람도 그를 존귀케 할 것이다.

Ⅱ. 솔로몬도 협약 조항을 틀림없이 이행하여 약정된 대로 히람에게 그 궁정을 위해 식물을 주었다(5:9). 솔로몬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갈릴리 땅의 성읍 이십을 그에게 주었다(19절에 나오는 성읍처럼 작은 성읍이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성읍들은 솔로몬에게 정복되어 히람에게 선사되기까지는 어느 이스라엘 지파에게도 할당되지 않고―아셀 지파의 지경이 가불에 미쳤다(수 19:27)는 것은 가불이 그들의 지경에 들어가지 않았음을 암시하므로―원주민의 수중에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다. 크고 선한 자에게는 관대한 것이 어울린다.

히람은 이 성읍들을 와서 보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12절). “그 성읍들은 그의 눈에 들지 않았다.” 그는 그 지방을 가불 땅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베니게 말로서(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렇게 말했다) 마음에 차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히람은 솔로몬에게 그 땅을 반환했고(대하 8:2) 솔로몬은 그 성읍들을 수축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 곳에 거하게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전에는 그 땅에 거주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솔로몬은 자기가 주었던 것을 되돌려 받고는 틀림없이 그에 상당하는 다른 어떤 것을 히람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솔로몬이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을 히람에게 줌으로써 야비한 행동을 했을까? 아니면 히람이 변덕스럽고 기분을 맞추기 어려운 자였을까?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 지방은 참으로 귀중한 곳이었고, 그 안에 있는 성읍들도 귀중했다. 그러나 그 땅은 히람의 성벽에 맞지 않았다. 두로인들은 상인이었고 무역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훌륭한 가옥에 살았고 선박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곡물과 목초 재배에 적합한 땅이 얼마나 귀중한지 평가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그들의 전문 분야와는 거리가 먼 사업이기에). 그러므로 히람은 솔로몬이 그 성읍들을 다시 받아 주기를 원했다. 그는 이 땅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랐다. 솔로몬이 히람 자신을 흡족하게 해 주고 싶어했던 그것은 히람의 활동 영역이어야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무역업에 동업자가 된다든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27절). 두로의 깨끗한 길거리만 보아 오던 히람으로서는 가불 땅의 더러운 골목길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흔히 극히 나쁜 도로가 있다는 것을 히람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갖가지 취향에 대한 수용력과 땅의 갖가지 수용력에 대한 인간 취향의 적응에 얼마나 안성맞춤인지를 살피자. 섭리는 모든 것을 인류 전체에 유익하도록 조절하는 데 얼마나 적절한지 모른다. 어떤 자는 농사짓는 일을 즐거워하면서 도대체 뱃사람들이 험난한 바다에서 무슨 낙을 얻을까 하고 신기하게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항해에서 마찬가지의 기쁨을 누리면서 도대체 농부들이 가불 땅처럼 더러운 농촌에서 무슨 즐거움을 얻는지 궁금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예는 그 외에도 많이 있다. 이런 일에서 우리는 모든 영혼과 모든 땅을 소유하고 계신 분의 지혜를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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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대함(왕상 9:15-28)

여기에서도 우리는 솔로몬의 위대함에 대한 설명의 연장을 대하게 된다.

Ⅰ. 그의 건축물들. 그는 많은 돈과 인력을 동원했다. 그는 아주 많은 역사를 계획했는데, 여기에는 매우 많은 인원이 필요했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다(15절). 그런데 솔로몬은 지혜 있는 건축자였으므로, 먼저 앉아서 비용을 셈해 보고 완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기까지는 건축을 시작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세금이 과중하다는 불평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역사가는 그가 착수한 일의 위대성을 들어 이를 변명해 준다. 그는 무리한 세금을 징수하고 인력과 물자를 동원시켰지만, 그것은 (다른 군주들처럼)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전쟁에는 자기 백성의 피가 소요될 것이었다. 그는 건축을 위해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공사에는 그들의 노동력과 주머닛돈만 들어가면 되었던 것이다. 다윗이 솔로몬을 위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라고 시작되는 노래를 지었을 때는 아마 건축에 대한 그의 천부적 재능을 간파하고 솔로몬의 머리와 손이 건축으로 가득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그의 모든 행사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의 모든 계획에서 기도와 섭리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참으로 자기 역사를 올바르게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먼저 건축하고 자신의 궁궐을 짓기 전에 성전 공사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해 주셨고, 그는 다른 모든 건축을 순조롭게 완공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진행하실 것이다. 첫 소산을 그에게 바치라. 그러면 더욱 많고 위안이 되는 나중 소산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마 6:33). 솔로몬은 교회를 먼저 건축했다. 그러고 난 뒤에야 그는 궁전과 성읍과 성벽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들이 계획하는 일을 경건한 목적을 위해 끝까지 연기하는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자들이다.

솔로몬이 계속 건축한 것의 순서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경건한 종교를 위해 하나님의 집을 맨 먼저 건축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편의를 위해 궁궐을 지었으며, 그런 뒤 자기 아내를 위한 집을 지었다. 그 아내는 자기를 위한 집이 마련되자 곧 그리로 이사했다(24절). 그 뒤 시청 또는 집회 장소라고 할 수 있는 밀로를 건축했고, 그 뒤 왕성 예루살렘의 성벽을 축조했고, 그런 후에야 지방의 요충지들을 손댔다. 하솔이나 므깃도 따위가 바로 그런 성으로서 퇴락하여 요새화되어 있지 못한 성읍이었다. 솔로몬이 이들 성읍을 자비로 재건하자, 그 주민은 자기 백성이 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작인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의 수입을 늘려 주었고, 그의 후계자들은 그 혜택을 입었다. 그 중에서도 솔로몬은 게셀을 건축했다. 이것은 바로가 가나안인들의 수중에서 빼앗아 가지고 솔로몬의 아내이던 자기 딸에게 선물로 준 성이었다(16절). 하나님께서 어떻게 땅으로 하여금 여인을 돕게 하시는지 살펴보라. 솔로몬 자신은 호전적 군주가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을 좋아한 애굽 왕이 그가 건축할 수 있도록 성읍들을 탈취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솔로몬은 편익과 비축과 병거와 마병을 위한 성들을 건축했다(19절).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쾌락을 위해 레바논에 건축했는데 이것은 아마 수렵이나 다른 오락을 위한 건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경건으로 시작하고, 이익으로 진행하며, 즐거움은 맨 나중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Ⅱ. 그의 역군과 노예들. 그런 큰 공사를 하자니 솔로몬은 풍부한 인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인들의 명예는 아랫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일은 수하자들이 하고 그 신망은 상급자들이 얻기 마련이다.

1. 솔로몬은 피정복민 중 남은 무리를 모든 노예의 일에 종사시켰다(20, 21절). 우리는 그들이 우상 숭배를 끊고 솔로몬의 통치에 복종했으므로 솔로몬이 도의상 그들을 완전히 몰살시킬 수가 없었으며, 또 그들이 너무나 가난했으므로 도저히 돈을 부담시킬 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그들의 노동력만 제공받았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고(“너의 종은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레 25:44) “가나안은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고 한 노아의 저주도 성취되었다.

2. 그는 보다 명예로운 일에는 이스라엘인들을 사용했다(22, 23절).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자유민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들을 군사와 신복으로 삼았으며, 자격 있다고 보여지면 자기 병거와 마병을 관장하는 직분을 주었다. 어떤 자는 하급 노무자의 노역을 관리하는 자로 임명했다.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이스라엘 민족의 존엄과 자유를 보존했고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관계를 명예롭게 했다.

Ⅲ. 그의 경건한 신앙 행위(25절). 그는 정기적이든 특별한 경우든, 다른 때에 드리는 것말고도, 하나님의 규례를 영화로우시게 하기 위해 해마다 세 번씩 비상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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