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pitiation, appeasement, placation = making favorable, 贖罪 속죄 (피로써 대가 지불하여 죄 덮음 -->..심판 보류<구>), 宥和 유화 = 화해 ==> 목표 :: atonement 보상(통한) 일치, 하나됨의 관계 회복
@@@代贖 대속, 대가 지불 + 구속 통한 구원 = JC의 (십자가 죽음의) 대가 지불 통한 유일무이한 구속<되 사옴 buying back + 자유 주심 giving freedom = 구원(사망에서 생명으로) eternal salvation> redemption through ransom payment by Jesus Christ' blood at his Cross (예수(Jesus)가 십자가(十字架)의 보혈(寶血)흘림으로 만민(萬民)의 죄(罪)를 대신(代身) 씻어 구원(救援)한 일.) ....대가 지불하고 구속함(ransom and Redeem) : 여기서 ransom<대가>란 노예나 죄인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대신 지불한 값을 말함(민 18:15).
@@@redemption, buying back 救贖 구속 [대속(代贖)하여 구원(救援)함. 죄악(罪惡)과 악마(惡魔)의 손에서 인류(人類)를 건져냄.]........하늘의 속죄소에서 JC는 그분의 피로 <단 일회적으로> 대가를 치루심으로써 전 인류의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죄를 마귀-사탄에게되돌리셨음(아사셀 양).....이에 더하여, JC 믿는이마다 [구원 받은 후에도 일상 생활 중에 범하는 죄들마다 친히 주께 나아가 회개-아뢰고 고백함으로써 얻는 죄 사함의 속죄 위해] 언제든지 지성소 시은좌(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음 ::: (([속죄 개념이 달라졌음] 구약시대에서는 희생제물의 흘린 피로 속죄소를 덮어 죄인의 죄를 (일시적으로) 가림으로써 진노하심을 진정(심판 보류)/화해-은총 재개의 의미를 가졌지만<죄 흔적 남음>, 신약에서는 *1) 하늘 지성소의 속죄소에 뿌려진 구주 JC 보혈로 인한 완전한 대속을 통한 구원 이룸<모든 죄 하나하나마다 흔적조차 제거해 버리심> + *2) 믿는이는 <죄와 죄들을 자각할 때마다> 언제든지 시은좌에 나아가 구주 보혈을 의지함으로써(구주를 속죄제-속건제로 취함으로써 죄 사함 받을 수 있고, 또한 번제와 소제되신 구주를 그 자신의 번제와 소제로 취함으로써 ) 항상 하나님과 화목 + 연합한 한 영됨을 누리게 하셨음
**[[중장 보병의 하루 평균 보행 거리는 대략15km(30리)로 보고 있음]]... 그러므로 라암셋에서 시내산까지 240K이므로, ((중장 보병 속도로)), 대략15-16일 길로 보면 될 것, 시내산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264km이므로, ((중장 보병 속도로)), 대략18일길.....신1:2에서, 모세는 시내산에서 가데스까지 11일길이라고 말하고 있다.((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보행 속도로 걸을 수 있는 이동 거리는 중장 보병 보행속도와 달리 하루 24km정도였음을 의미)). 가데스에서 세렛골짜기까지는 130km, ((대략 최소 5-최대 8일길))
출1장 redeemed, transformed, bondservant ***외적 구속(출애굽)과 함께 내적 구속(성령따라 행함..내면의 혼돈, 곧 우상 숭배 벗어남 ) 온전히 이룸으로써 JC의 증인됨 이루는 삶
((주와 동행함이 무엇인지를 보이는, 출애굽기에서 주목하여 탐구하고 명심하여 기도하며 목숨 다하기까지 붙들어야 될것))
*1..[주 하나님 여호와의 주권-긍휼 + 피조물 인간의 자유의지].....일정기간 동안 나타난, 12번의 충돌과 <세상에 속한, 겉보기에 평안해 보이는 인간 생활 상태를 뒤흔듦 통해 진정한 본질과 상태는 사망일 뿐임을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주의 길로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긍휼어린, 권능의] 손 나타내심인>10 가지 재앙을 통해서 분명하게 묘사되는 바,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주권<절대적 권위+권위+능력>과 긍휼, 피조물인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확실한 이해
*2..[진정한 실체를 폭로함]....사탄-사탄적 체계로서의 <애굽왕(머리) 바로-애굽(세상)>의, ((주 하나님 말씀을 상대화 함으로써....이것은 진실로 옛자아, 곧 천연적 사람과 그의 지-정-의의 실상이 어떠함에 대한 폭로이기도 함)) 거절과 흥정 통해 협상하려 드는 교만하고 간교한 반역적 행동과 그 결과의 경과적 + 최종적 어떠함에 대한 확실한 이해
***출애굽의 목적 :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그 첫 단계는 <사탄과 사탄적 체계인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인> 분별(=구별, 분리, 성별),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2.절기 누림<주 임재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거리낌 하나 없이 진리 안에서 자유하며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 달콤한 분께 적셔져 사랑드리며 교통하며 황홀하여 춤추는 것 같이 기뻐함 경험 되돌아보기....이러한 절기 누림 경험이 없었다면 다시 한번 주 앞에서 (그대의 구원 경험에 대해) 돌아보라!!> +
#3.희생 드림<곧 가장 사랑스럽고 고귀한 분 대속의 구주 그리스도를 인해 감사하며 아버지께 구주 JC 주심 인해 감사드림 = 희생 드림....이때 아버지는 극도로 기쁘고 즐거워 하며 만족스러워 하신다!!>
===> 이 때 비로소, 주님의 형상 표현과 주님을 대표하여 <섬기며 다스림> 이룸 위한 주님 백성에게 합당한 율례 주심과 성전 건축이 오게 된다...
<출애굽기, 여기에서>바로는 사탄을 상징한다는 자명하다...하지만, 한편으로 영적 실제에 있어서는 <사탄과 세상에 물들어 하나님을 대항해 거역하거나 그분과 간교하게 흥정하는 바, 천연적 생각-감정-의지인> 그대의 자아, 곧 천연적 사람이기도 하며, 심지어 그러한 경향성을 보이며 강요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조차 오늘날 바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애굽 탈출 영적 원칙 : 점검하라...지금 있는, 언제 어디서나, 주 이름 불러 그분 임재 안으로 들어가, 주님의 열정으로 그분이 공급하시는 믿음-소망-사랑 안에 거하라!!. 코람 데오-쿰 데오, 솔라 피데-솔라 그라치아-솔라 크리스투스-솔라 스크립투라-솔리 데오 글로리아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그분 자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구출해 내기를 갈망하시며 하나님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구원하기 원하심을 계시하고 있음.<진정한 의미에서 볼 때!!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곳[광야]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임을 참되게 알고 믿어야 한다>...애굽 탈출 후에 그분께 이끌려 도달한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았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 자신을 알고 그분에 부합되는 삶을 알기에 이르렀으며, 그 때 그들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로 건축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중차대한 의의].....창조주 하나님의 <태어난 모든 인생마다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다함없는 만복 은혜인 야타브, (창세전에 이미)그리스도의 구속 전제 아래에서 그 선대하심 베푸심(시여)....그것의 <궁극적 효과>는 일차적으로 생계 공급-생존 유지-손상에서 보호와 돌보심 즉 일반 은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이미 그리스도의 피의 효능 적용과 능력 베푸심이 전제된 야타브, 이것이 있었기에 비록 피조물의 머리인 아담이 범죄함 통해 피조세계가 다 멸절되었어야 마땅하지만...보라, 이제 믿음으로 구주 십자가 대속을 바라며 나아가는 사람마다 특별 은총의<구약시대에도 그러셨지만...신약시대에는 더할 나위 없는 친히 하나되어 내주하심의 특별 은총 적용 통해 참되고 완전한 야타브의 완성 이루어 주고 계신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만물 회복조차도 오게 하시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성육신 통해 죽으심-장사지냄-부활 승천 거쳐 하나님 여호와 구원자께서 몸소 부활성령으로 내주하시는 임마누엘로써 상호거처 됨 이루시며 구원 완성을 이미 이루셨다.... 오직 하나님의 믿음-소망-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그분으로부터 직접 공급받고 그분의 열정따라 하나됨 실행하는 참 믿음, 곧 절대 긍정-절대 기쁨-절대 신뢰-절대 감사로 나아가 다함 없는 풍성-부요-충만-능력의 주님 누림, 이것 통해 날마다 새로이 더욱더 새로와지고 더 가까이 <그리스도 빼어닮음 이르게 하시며> 로고스와 레마로 교통하시는 주와 함께 살도록 하라
창1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모든 창조의 머리로 세우셨다. 그때, 하나님은 온 창조를 그리스도의 구속 아래서 보기로 결정하셨다
원칙적으로 머리가 반역을 했을 때 모든 창조가 저주 아래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따라 즉시 심판을 받아야 마땅헸었다.
온 창조가 붕괴되어야 함이 마땅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영광을 범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 가운데서 그분의 영원한 거처를 얻고자 하는 [그토록 갈망하시는바]그분의 창조의 영원 목적에 관한 그 분의 마음을 결코 바꾸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온 창조를 그리스도의 구속 아래서 보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진실로 오직 유일하게 시간에 제한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다..>그분 보시기에 그리스도의 구속은 창세 전에 성취되었다(벧전1:19-20, 계13:8)
하나님은 옛 장조를 그리스도의 구속 아래서 보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우주를 보전하거나 심판하고 멸할 [주권적] 자유가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우주를 보존하든 멸하든 하나님은 온전히 공정하고 의로우신 것이다.
***출애굽 하기 전,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JC안에서 이미 거룩하게 된 당신 소유로 보고 계심] 하나님의 백성들의 애굽 생활 실존은 사탄이 강탈 아래 있는 세상적 하락의 생활 그 자체였음....**계16장에서 하나님이 <대 환난 끝 무렵> 땅 위로 보내실 종국적인 7 재앙들은[하나님의 진노의 7대접]들이 될 것인데, 이 7 재앙들은 많은 방면에서 출애굽기의 10 재앙과 흡사하다......보라, 아브라함-이삭-야곱 등 이기는 자에게는 탈출의 필요성이 없었던 것처럼, 당대 끝에도. 이기는 자들에게는 탈출의 필요성이 없게 될 터인데, 그들은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거처로부터 탈출할 필요가 있게 될 것이며 이 마지막 7 대접 재앙들에 의해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세상에서 <피할 곳으로> 이끌어내실 것이다.
....하나님의 이스리엘 출애굽 사건의 궁극 목적과 의도, 그 전망과 이상...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전부터 예비하신 만복 은혜, 성육신하여 세상에 임하신 구주JC 십자가 대속으로 인해 재개된> 그 은혜, 곧 야타브(영혼몸의 참된 형통, 선대하심의 만복 은혜 = 부활 생명 충만으로 말미암는 장수-형통의 참되고 진정한 실제적 누림...이는 오직 구주의 십자가 보혈 의지하는 자마다 누리게 하셨음...요삼1:2에서 정의한다..임마누엘 주님 동행 아래 걷는 요셉의 범사 형통은 그 예이다.)의 회복, 이로 인한 베라카(아낌없이 주 영광-이름-성품을 담으신 생명-진리-빛-길 자체인 말씀 통해 그분의 모든 것<풍성부요충만능력 누림> 주심 감사 + 예배-경배-감축)-에셰르(친밀한 참된 앎)-헬레크(온전히 빼어닮은 짝으로서의 동거-동행-동주) 누림을 위함이니 ...친히 동행하시며 인도하심으로써 다루심과 연단 통한 생명 성숙, 곧 성화를 거친 자녀 백성들로 만드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를 이 땅에 마련하여 함께 하나되어 거하심 이루는 영원한 하나님나라 도래케 하는 데 있음
[하나님의 중요한 세 가지 창조...하늘들과 땅, 사람의 영].
....하늘들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사람을 위해 있고, 사람은 <하나님을 접촉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을 살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창조 목적[=창세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모든 은혜 = 야타브(부활 생명 충만 + 형통....에셰르<거리낌 하나 없는 친밀한 앎>--베라카<풍성부요충만능력 공급 : 감축-예배-경배>--헬레크<빼어 닮은 참된 짝으로서 동거-동주-동행> 누림...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통한 마카리오스를 인해서]을 성취하고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도록,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음....인생의 제일 가는 목적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위 하는 것...알파와 오메가 영생 자존하시는, 영원불변 새로우신. 유일무이 신실하신여호와 하나님께, 날마다 새로이 더 새롭게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리스도를 살고, 하나님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간증을 얻음 통해서!!
[슥12:1...*1.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The burden of the word of the LORD for Israel, saith the LORD, which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 of the earth, and formeth the spirit of man within him.]
[요삼: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 Beloved, I pray that in every way you may succeed and prosper and be in good health [physically], just as [I know] your soul prospers [spiritually].
..."오직 만군의 여호와[=아도나이 체바오트...아도나이 여호와 체바오트]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사5:16)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삼상17:45) ...'만군' 이란 모든 군대를 의미
만군의 여호와 (아도나이 쩨바옷트) יהוה צבאות ....아도나이 (여호와) יהוה 쩨바옷트 (만군) צבאות 군대 צבא ..צבאות 은 צבא 의 복수형
1. 모든 군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다" (창2:1) 의 히브리어 성경.."ויכלו השמים והארץ וכל צבאם".."그 하늘과 그 땅과 그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 되었다" 라는 뜻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군대라는 것...해 달 별 우박 지진 물 불 돌... 보이는 만물과 하늘의 천군 천사 모두 '모든 군대'에 포함됨.
1) 보이는 만물 그 자체가 군대
"그리고 네 눈을 하늘로 들어 해와 달과 별들 곧 하늘의 모든 군대를 네가 보고 네가 미혹되어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말아야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하늘 아래 모든 민족들에게 그것들을 나누어 주신 것이다"(신4:19)
2) 하늘의 천군 천사들은 하늘의 모든 군대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저는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아계시고 하늘의 모든 군대가 그의 오른 쪽과 왼쪽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상22:19)
"너는 내가 아버지께서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26:53)
2. 하나님의 군대로 싸우는 일의 예시.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수10:11)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왕하19:35)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10재앙, 마지막 때의 인 나팔 대접 심판을 보면 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싸우는 것..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 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계16:21)
3. 이스라엘 백성 그 자체가 여호와의 군대
"사백 삼십년이 되는 바로 그 날에 여호와의 모든 군대 가 애굽땅에서 나왔은즉"(출12:41)
"바로가 너희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출7:4)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군대가 된다는 뜻...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편에 서서 싸우시는 내용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느니라" (수5:14~15)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대가 여호와의 군대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통솔하시는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 편에 있을 때에 함께 하시며, 하나님 안에 살 때는 여호와의 군대는 우리와 함께 싸우시나 죄를 지으면 여호와의 군대는 함께하지 않으심.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시44:9)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마22:7)
마지막 때 이스라엘은 다시 군대로 일어날 것.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겔39:10~11)
4.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
"너는 그리스도 예슈아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후2:3)
아가서에서.. "내 사랑아 너의 어여쁨이 디르사같고 너의 고움이 예루살렘같고 엄위한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구나" (아6:4)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예슈아의 신부가 되는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도록 훈련하시고 계시는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만군의 여호와 예슈아를 따르는 좁은 길의 훈련으로서, 마지막 때 예슈아가 오실 때 강한 군사로 만드셔서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과 천군 천사의 여호와의 군대와 함께 악한 마귀들의 군대을 이기도록 하고 계심.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이며, (엡6:10~19) 우리의 싸움은 중보기도인 것.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구하기를 항상 애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엡6:18)
예슈아께서 오셔서 완벽한 승리를 이루실 것.. 할렐루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틀을 밟겠고" (계19:14~15)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시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계4:8)
...예수(예슈아), 여호와 구원자...임마누엘, 삼마...엘로힘- 엘 엘룐 - 엘 로이 - 엘 마겐- 엘 샤다이 - 엘 올람 , 아멘<에메트>
...영생 자존하시는 분, 영원히 <계시는>분, <언약 말씀 그대로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 여호와>이심을 인해 찬양합니다!!
***Q 보시기에 온전한 구원 개념은 Q 임재외에 아무 것도 없이, 호렙산에 계신 Q에 도달하여, 오직 Q을 모든 것으로 삼아 그분의 거처로 사는 것..
***Q께서 요구하시는 데까지 [전심으로]순복할 때, Q은 나머지를 완전하게 책임 져 달성해 주신다.
***[주 동행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꼭 붙들고 주 앙망해야 하는 중요한 것 = Q의 생각과 예정, 곧 주 뜻 안에서 말씀하신 바에 대해서는<비록 믿는이가 아직 거기 가운데 바로 그러한 상태로 되었다 함은 아직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주님 언약하신 그대로 반드시 이루심을 신뢰함으로써 동행하기.
...곧 하나님의 전능한 믿음과 하나되어 <이인삼각>의 행함으로 그분의 움직이심을 따름.....출애굽 전의 노예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이 그러 하였으나<정말 지리멸렬한 오합지졸로서 별 볼일 없다고 사탄적 세상과 바로는 참소-경멸하며 코웃음치더라도!!> ,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언약 말씀을 주신] 주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구속해 낸 백성으로서 당신의 소유로서 <다함 없는 사랑과 기쁨의 대상인 자녀들이요> 영적 생명 성숙한 <새 예루살렘>으로 보고 계시며 거기에 도달하도록 합당하게 이끌어 가시며 이루신다!!
**환경-상황-형편-처지에 대해 <일희일비하며> 무조건 신뢰하거나 낙심하기를 버려야 한다.. 그것은 일시적이며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편 가끔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믿는 이에 대해>고발하여 점검케 함 통해 어떤 결핍을 드러내어 주께 구하여 장비되게 이끄는 적극적 특성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세상, 사망의 3방면]
^1>바벨 = 우상 숭배(반역) :: 그 기저에 있는 존재는 주께 대해 분노/시기/적대하며 지으신 사람을 시기/저주/미혹케 하여 <지음 받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타락/멸절케 하려는 사탄-->[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 정욕과 탐심 =개미지옥]
^2>소돔(눈) = 혼미-오도/유혹하여 정욕에 빠져들게 함.-->
^3>애굽 = 쾌락/풍요 = 운동/여흥/오락/취미 등 육적 관심만 추구 (사탄의 기만/오도 = 마취-->마비/중독.. 노예 상태) = 지음 받은 본래 목적 상실케 하려 함.
주님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는 주님 편에 있지 않고 우리 편에 있는 바, 자원함의 아가페 사랑의 주님을 참되게 알고 친밀함 안에서 주님께 자기를 온전히 열어 드려 <전심으로 전존재 드려> 헌신한 두 증인들, 곧 단체적 모세와 단체적 엘리야가 준비되어야 한다...
내가 아니라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범사에 그 무엇을 하든지 독자적으로 하는 그 어떤 것이든지 전부 사망에 속한 것일 뿐이기에, 오직 나는 주님 의지함으로써 행하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주님은 당신의 담는 그릇이자 통로인 내 안에 내주하여 계셔서 스스로 제공하시는 연료가 되심으로써 타 오르는 불로 친히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보기를 갈망하시는, 온전케 된 유일한 생명은 Q을 전적으로(절대 긍정-절대 신뢰-절대 기쁨으로) 의지<의존>하고 그대로 따르는,<여자의 생명>임을 명심하라.
[출3:2-4, 불 붙은 가시떨기(출3ㅣ2-4), 뱀이 된 지팡이(출4:1), 품 안에서 문둥병 발생한 손(4:6). 피로 변한 나일 강물(4:9).... 4대표적들]
----가시떨기는 <세상에서 보기에 그 자체로는 형편 없고-주목할 만한 것 없고-보잘 것 없고- 산 희망 없는, 혼적인> 천연적인 사람을 의미... 가시떨기가 나 있는 건조한 땅 호렙산, 거기에 거룩하신 Q이 친히 임하여 일하심 인해 거룩케 되었고 그분의 불이 붙었음에도 가시떨기가 타서 소멸되지 않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쓰실 때에 ((천연적 사람은 그대로 쓰실 의도가 없으며)) 오히려 가시떨기를 있는 그 자체로서 친히 거룩하게 하심으로써 주님 뜻따라 ((주 안에 있는 존재의 참 의미와 가치 알게 하시며 겸비케 하심으로))쓰신다는 것을 의미.. <주 안에 있다는 것은 JC께서 친히 집이 되심-짝된 신랑-간증인 증거로 삼으심-양육/인도/보호/충만/산출/번성/동행하심 의미>
----지팡이는 세상 걷는 우리가 <스스로> 생계나 생존을 위해 의지하는 모든 수단-방법-소유-관계 등 , 하나님 외의 천연적인 모든 것을 대표함...<주님 말씀따라 지팡이를 던졌을 때 뱀이 되었다 함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의지하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뱀, 즉 마귀 임을 의미하는 것>..... 주님이 던지라 하실 그 때에는 던지고, 그 정체를 알고 난 뒤 그분이 <집으라> 명령하실 때에는 그 꼬리를 붙잡도록 해야 함..
----모세의 손이 문둥병으로 화한 것은 [주님 임재/인도함 없이는] 우리의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결코 없음]을 가리키는 바, 우리의 육신은 [영적 관점에서는, 그 자체로 더러운] 문둥병의 체현이기에, 우리가 자신을 <자의적으로= 자행자지하여 행함으로써> 건드린다면 문둥병에 걸린다는 것을 의미함.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한 것은 세상 향락/만족은 사망일 뿐임을 의미.
**여자의 생명 --<소극적..문화적 향락/소비 추구>쾌락을 위하는 생명/<적극적>Q뜻에 합치된, 순종-앙망하는, 보전-보호-산출-양육하는 생명 대표,
**남자의 생명 --<적극적>Q의 목적 위하는 생명/<소극적..사탄/바로의 가치관 추구>육체 부양과 억압적 다스림-자기자랑을 위하여 일하는 생명 대표
.....<궁극적으로 사탄의 도구된>바로의 의도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는 남자의 생명을 멸절하려 함이었으나, 그 위기의 국면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생명을 사용하심으로써 그것을 돌파하셨음
**출애굽기.. <구속하시는> Q의 의도는 이 땅에서 Q의 거처(이동 장막-->Q의 간증인 성전) 건축하는 자들을 얻고, 이 땅에서 Q의 관심 그대로 이루시기 위해 대적자들과 싸워 굴복시킬 군대 얻기 위함.....이것을 위해서는, 천연적 관념<상식>에 의하면 Q께 유용한 생명은 <싸움 잘하는, 독립적인>남자의 생명이리라 생각될 수 있으나,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의 생명이 필요하심....이것은, 그분의 백성을 보전함에 있어서도, 구원자를 예비함에 있어서도 모두 오직 여자의 생명을 통해서 성취하고 계심....
**실상,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유일한 참 남편은 오직 Q이신 그리스도뿐이시기에[사54:5..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결혼한 모든 형제들은 그 자신은 단지 그림자 남편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한다. 구약에서 Q은 그분의 백성들을 그분의 배우자로 여기셨다.(호2:19,20....*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관계없이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 Q의 단체적 아내였다!!
**성경에서 [참된 의미에서]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남편>이란 용어는 <머리됨>+<독립-자존하는>+<제사장>인,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의지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독립적 생명임을 암시한다.......그런데, 때때로, 적극적 의미의 남성을 말할 때, 사람의 천연적 생각에는 머리-제사장-독립적 생명을 가진 남편이 떠오를 수도 있을 터이나, 자매인 그대와 <결혼한 형제인>남편은 철저히 <그리스도 주님에 대하여 여성이며> <참 남편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대와 결혼한 형제로서의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머리되심 하에서만(주 안에서만) 결혼한 자매인 그대의 머리됨을 알고 있어야 하며, 결혼한 형제는 결코 <그리스도 주님의 머리되심을 강탈하거나 독립적 생명을 가지려 해서는 안됨>을 알고 있어야 함과 동시에, 결혼한 자매로서의 그대는 비록 자기와 결혼한 형제가 <참 남편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결혼한 자매의 머리됨의 지위를 강탈 당하거나 혹은 결혼과 무관한 독립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방임해서는 안됨에 주의하라......그러므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심을 반드시 잘 알고 명심해야 한다.(고전11:3...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모든 제자들의 머리이셨던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의 머리되심 아래에 있었음, 곧 결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지 않았다. [요5:30..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요5:19..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주님은 베드로가 마치 자신이 머리인 양 행세하며 독립적인 생명을 살 때마다 베드로를 매우 엄격하게 다루셨는데, 곧 그리스도께서 그의 머리되심을 깨닫게 하심으로 베드로를 바로잡아 주셨다....마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머리되심 아래에 있었던 것처럼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아래 있어야 했다...이처럼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아래에 있는 남자가 여자의 머리이다.
***Q의 머리되심 아래에 있는 것에 관하여 그리스도는 Q께 의지하는 생명을 가지셨다. 그러나, 사람, 곧 각 남자의 머리되심에 관하여는 [그리스도는 Q이시기에] 그리스도는 독립적인<주관하는> 생명을 가지시는 바, 그리스도가 Q은 의지하셨으나,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독립적인 생명이심을 의미한다.....이처럼 결혼한 형제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의지하는 생명을 갖고 있으나, 아내들에 대하여는 독립적인<주관하는> 생명을 갖고 있다....즉 남자는 의존하는 생명과 독립적인 생명을 갖고 있으나, 여자는 의존하는 생명만을 갖게 하셨는데, 독립적인 생명을 갖도록 여자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Q이시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남자는 독립적인 생명을 상징하지만, .사람을 예표하는 여자는 의지(의존)하는 생명을 상징하며, 사람은 마땅히 Q을 의지하는 생명을 사는 참된<여자>가 되어야만 Q께 유용하다....사람은 독립적인 생명을 사는 <남자>가 아니라 철저히-절대적으로 Q을 의지하는 생명을 사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곧 오직 참된<여자>의 생명만이 Q께 유용하기때문이다.....사람이 Q께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은 반역이며, 독립적인<스스로 결정하고 제 소견에 옳은대로 하려 하는, 주관적인> 생명을 사는 여자는 사실상<남자>가 됨<별거-이혼의 주된 이유는 독립적인 생명을 살려 함임....창2장의 생명나무는 의존을, 지식나무는 독립-교만을 상징함>...보라, 요15 :5에서의 포도나무의 모든 가지들은 포도나무를 의지(의존)한다. 포도나무 안에 거하는 것은 포도나무에 의존하는 것이요, 거함에 관해서는 결코 독립이 있을 수 없는데, 근원이신 그분을 떠나 독립하려 함의 결과는 말라 비틀어져 죽어 버려짐 뿐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하라....주여, <스스로 독립적인, 주관적인, 천연적 생명으로 행함> 곧 당신을 떠나 산다 함은 실지로는 죽음과 멸절, 삶 아닌 오직 절대 사망의 비극인 것을 깨닫고 주께 돌이켜 회개하며 주님 앙망합니다. 당신을 떠나서는 전적인 무,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당신 안에 거해야 하며, 당신을 생명으로, 생명나무로 취하여 먹어야만 하는 바, 나는 <참된 여자의 생명> 즉 당신을 항상 의지하고 순종하며 누리는 생명을 살기 원합니다.]
***모세의 경우...주께 여쭈고, 아뢰어 말씀하신 바로 그대로 행하였음을 기억하라...<아무리 환경-상황-형편-처지가 그대를 괴롭힐지라도, 다만 주께만 아뢸 뿐, 타인에게 광고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미리 염려하거나 짐짓 추정하여 행하지 말라...<소원을 아뢸 수 있으나, 응답하실 때까지 신뢰함으로 기다리라..종으로서의 수동성이 중요하다>
....40세 때의 모세는 [남자]의 생명을 살았다. 곧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행동에서 그는 그의 천연적인 능력을 사용하여 애굽인을 쳐 죽인, 실로 [독립적인] 남자였다.. 이랬기에 40년 동안 모세는 유용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제쳐졌으며, Q은 그에게 그의 남자의 생명을 사용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가르치셨다...남자의 생명을 훈련시켜서 여자의 생명을 살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의 두번 째 40년 동안 모세는 여자가 되기를 배웠다.
....그의 세번 째 40년 동안, 즉 80세부터 120세까지 모세는 여자의 생명을 살았으나, 오직 한 번, 그가 [충동적으로, 분노에 사로잡혀..."<이럴 거였다면 차라리 광야에서 징계받아 이미 죽은 이들처럼 그때 죽었다면 지금의 고생은 없었을 것을..하며 물없는 광야에서 목말라 죽이려 한다, 그들과 가축을 몹쓸 땅으로 인도해내어 죽이려 한다는 그들의 불영에 대해 주님께 고하였던 바, 그 문제 해결에 관한 주님의 지시를 받은 그대로 순순히 행하지 않고((단지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물을 마시울찌니라" 하셨음)) 주관적인 분노에 사로잡혀서<패역한(=반역한..마라) 너희여...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면서 반석을 두 번 쳤을 때, 바로 그 순간!! 그는 Q으로부터 확실히 분리+독립했었다(민20:7-13), 그 경우 모세는 남자로서 행동했기 때문에 주님 마음을 상하게 했으며, 그 결과 좋은 땅으로 들어 가는 특권을 인정받지 못했다..
....모세는 출애굽 40여년 동안 스스로에 대해 이스라엘 자손의 인도자란 관념이 없었으며 결코 인도자로서의 지위를 취하지도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여자의 생명, 곧 Q을 의지하는 생명을 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만 행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거스려 반역했을 그 때조차도 그는 그것을 Q을 대항하는 반역이라고 생각했지 자신을 대항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여자의 생명으로> 주님께 나아가서 그 문제들을 주님께 아뢰었을 뿐으로서, 머리이신 주님을 유일한 남자로서 존귀케 해 드렸다.
....모세가 <여자의 생명>으로 살도록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철저히 훈련 받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대가 독립적인 남자의 생명을 산다면 영적 전쟁에 관한 한 전혀 쓸모없으며>, Q의 왕국을 위해 싸우는 영적 전쟁의 모든 전사들은 <전적으로 Q을 의지하고 의존하는> 여자의 생명을 살 때에만 유용함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참되게 믿는이 , 곧 개인 각자마다, 모든 부부마다<남편이든 아내이든> 소극적 의미에서 Q앞에서 Q에 대해, 또한 서로에 대해 [남성들]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따라서, 마땅히 참되게 알고 추구해야 할 바는...각 사람마다 모두 모든 언행심사에 있어서 Q앞에서 <내주-충만하시며 동시에 권능의 영을 부어주시는> 그분을 전적으로 의존하며, 그분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여자의 생명>으로 행하기를 배워 참되게 실행할 때에야 <다윗><바울>처럼, <마르틴 루터>처럼 주께 유용할 수 있을을 알아야 한다.
**중점적 문제는 얼마나 더 많이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주님을 의지하느냐의 문제임 [요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고전2 : 3,4,5,..*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슥2:8..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영생의 자존자 + <결코 실패함 없이>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 ...**현재 예수님의[여호와 구원자 ...영원이전부터 영원이후까지 지금도 살아계시는 영생의 자존자이신 분+ 구약과 신약에서 하신 모든 약속의 성취 가운데 계시는 분>이기도 하신 바, 신약의 한가지 약속은<마16:18..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바로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성취도고 있는 바 우리가 주님을 엘 샤다이만이 아닌 여호와로 체험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그러므로 주님은 그 모든 언약-약속 말씀마다 현재 성취하고 계신 여호와이심을 참되게 체험함이 중요한데, 이는 그대의 <주께 대한 일편단심의 헌신 약속을 상기하고 올인함>으로써만, 주께서 실지로 그대에게 주신 언약 말씀 이루심을 주관적으로도 실지로!! 체험 가능함을 의미한다.
YHWH....[I AM THAT I AM]...영원 이전에도, 지금도, 영원 이후에도 계시는 <영생 자존 하시는,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상황에 대해 그 참된 실상을 밝히 아시고 드러내주심으로써 알게 하시고, 극복하게 하시는 분>...피상적 느낌을 왜곡시켜서 속이려 드는 사탄의 궤계에 대해 주님 신뢰함으로써 이김을 체험케 하시는 분..
[요8:24, 25, 58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24 That is why I told you that you will die [unforgiven and condemned] in your sins; for if you do not believe that I am the One [I claim to be], you will die in your sins.” *25.그들이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 25 So they said to Him, “Who are You [anyway]?” Jesus replied, “What have I been saying to you from the beginning?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8 Jesus replied, “I assure you and most solemnly say to you, before Abraham was born, [h]I Am.” ]
***약속과 언약 : 창12장에서 Q은 Abr과 약속하신다...창15에서 그 약속은 이제<그분이 손을 들고 (맹세하여..이것은 Q 홀로 제물 사이를 지나심의 행위로 표현하셨었다) 세우신 바, 횃불 언약>이 되며...창17장에서는 그 언약의 표로 할례가 행해진다...이리하여 Q이 Abr에게 주신 것은 결국 하나의 약속일 뿐 아니라 표가 있는 언약이 되었다....Q의 약속은 그분의 말씀임(롬9:9) --->여기에 맹세가 더해질 때 그 약속은 <언약>이 되는데 곧 계약과 같다.....구약에서는 언약할 때 손을 들었으나, 신약에서는 주 예수님의 온 인격이 들렸다.[요8:28..*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YHWH..=나는---이다>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주 예수님을 드심으로써((이중적 맹세...십자가 위에 매달으심 + 부활승천 좌정하심으로써...맹세는 한 쪽이 죽어야 해지되는 바 주님은 다시 죽으실 수 없으시다!!)) Q은 그분의 약속이 새 언약이 되게 하는 위대한 맹세를 하셨고 이로 인해 이 약속들은 <보증의 표를 가진!!>,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반드시 이루실 수 밖에 없는 새 언약이 되었다!!...이제 지금 시점에 대한 참된 영적 실지적 분별 통한 결단, 그로 인한 주관적 체험에로 나아갈 때이다...영원이전부터 영원이후까지<영원과거부터 영원미래까지> 그리고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계셔서 일하시며 재림의 날을 기다리고 계시는 영생 자존하시며 말씀 그대로 이루시는 분,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요, 창조주 엘샤다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참 생명 빛이신 분, 성육신 하여 오사 십자가 대속의 죽음 부활 승천 거쳐서 하늘 위로 들리시고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구원자 JC, 주님은 <마6:33...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엘 샤다이 전능 하나님이 이루실 바 생계와 생존에 관한 모든 필요 채우고 공급하심>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라 말씀하신 그대로 구약과 신약의 모든 말씀-- 약속-- 언약-- 맹세 마다 그 자체를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성취해 나가고 계심을 참되게 경험할 수 있는 때이다. 객관적 측면에서 볼 때 제한할 수도 없고 제한 받지 않는 분이시지만, 단지 믿는 이의 참되게 믿고 발휘함 따라서만!! 주관적 측면에서는 제한 받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분이심을 명심하고 오직 절대 긍정 절대 신뢰 절대 기쁨으로 그분 안에서 그 친밀한 동행에로 나아가라.
###모세는 (아직 주님의 마음과 행하심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거듭 거듭 이렇게 여쭈며 불평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주님, 당신은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고나서 왜 나를 그에게 보내십니까?>...주님의 의도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분을 [언약을 이루시며 성취하시는, 영생-자존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참되게> 알기를, 또한 그분의 언약의 영광된 무게를 알고 붙듦 통해 실지로 이스라엘 백성 각자마다 주관적으로 생생하게 체험케 하심으로써 모두가 견고한 믿음의 증거를 가진, <여호와 임마누엘 주 JC와 함께 완전히 연합한 하나됨 이루고>, 그 어떠한 소극적 상황-환경-형편-처지에 처하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이미 이기신 그리스도의 <전능한> 믿음을 소유하고 발휘함으로 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넉넉한!!] 증인들이 되게 하고자 하셨던 것 같다.
===이스라엘 자손이 학대를 받다...요셉의 입관으로 끝나는 창50:26...이는 Q의 선택 백성들이 출애굽 전까지는 죽은 상태임을 시사. 비록 죽어 있으나, 매우 활발하고 활동적이었다(출1:7). 애굽에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애굽의 쾌락을 누리고 있었으나, 바로(사탄)에게 사로잡히고 노예가 되어 고역에 시달렸다(출1:10-14, 2:23, 5:6-18)..하기에 Q께서 그들을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목적을 이룰 수 없었음..애굽에서 바로의 학정 아래 있던 이스라엘 자손의 상태는 세상에서 사탄의 손 아래 사로잡히고 노예가 되어 그의 악한 어둠의 세력 아래 있는 타락한 인류의 상태를 보여주는 온전한 그림인 것.
1. [93.예수는나의힘이요 337.내모든시험무거운짐을]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창35:23-26] *23.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르시레유/잇스 =레아소생들....요/베=라헬 소생들....단/납=빌하 소생들...갓/아=실바 소생들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창1:26-28]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내적존재, Q 속성(성품)의 내적 본질의 표현, 가장 두드러진 속성은 사랑(요일4:8)-거룩함(계4:8)-의(렘23:6)...사람의 영 안에 창조하신 내적 미덕은 Q속성의 복사판이요, 사람은 Q 속성의 복사판으로서 Q의 속성을 표현>을 따라 우리의 모양<모습(생김새.빌2:6), Q의 외적 본질과 본성의 표현..사람의 외적 모습은 사람의 몸으로 창조되었는데, 이것은 Q의 모습의 복사판..이처럼Q께서 사람을 자신의 복사판으로 창조하심은 사람이 Q을 담고 Q을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하시기 위함..사람은 하나님 종류대로 창조되었는데,(행17:28-29상) 하나님과 사람이 동일 종류이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고 또 유기적 연결 안에서 Q과 함께 살 수 있다.)>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애굽 신 왕조 1대 왕 아흐모세1세.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영적 <잠재적>관점에서는 항상 사실임..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미리 염려함<(중 왕조 말에 애굽 침공) 셈족 계열의 힉소스 민족이 나일강 하류 침입 통치한 [중 왕조 중간기]에 히브리민족이 수효상 크게 번성했음>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자랑과 과시 목적> 국고성 비돔[=애굽어로는 정의의 도시, 히브리어로는 "고결한 입"]과 라암셋[=애굽어로는<"태양신 라'가 창조하다..히브리어로는 "수준을 알리는 천둥"이란 의미]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오늘날도 여전히 사용하는 채찍과 당근 정책 ..바탕엔 주 백성 <잠재력> 멸절하기 책략이 깔려 있다!!.
15. [347.허락하신새땅에. 270.변찮는주님의사랑과....보혈을지나 나를지으신주님내안에계셔..고개들어주를맞이해.. 370.주안에있는나에게...259.예수십자가의흘린피로서..250구주의십자가보혈로 267.주의확실한약속의말씀듣고]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두 단계로 전개된, <애굽 신 왕조 제2대 왕> 투트모세1세의 남아 살해 명령...*1)산파(애굽인이로되 히브리여인의 출산 돕는 조산사)들에게 내린 명령 *2) 모든 애굽인들에게 내린 명령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Q 목적 위하는 생명>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타락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사람의 쾌락을 위한 생명을 나타냄>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야타브...형통케 하심] 그 백성[=이스라엘]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산파들의 형통 통해 이스라엘을 번성-강건케 하심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야레]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아사]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사탄은 구약 성경 시작 부분에서(창3:1-6) 여자를 방문하여 남자 생명을 죽이는데 그 여자를 썼지만, 신약 성경의 시작 부분에서 Q은 처녀 마리아를 방문하여 그분의 구원을 가져오는데 그 여자를 쓰셨다(눅1:26-38, 2:30).... 동일한 원칙으로 출1장에서는 바로는 <십브라, 부아> 산파들을 써서 남자의 생명을 죽이려 하였지만, Q은 오히려 그 여자들을 쓰시어 그분의 목적을 위한 생명을 살리심으로써 그분의 백성을 보존하셨고 출2장에서는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모세를 예비하심에 있어서 모세의 어머니<요게벳>-누나<미리암>-바로의 딸<하트셉수트>을 쓰시어 모세가 태어나고, 젖을 먹고, 구출 받고, 양육 받고, Q목적을 위하여 훈련 받게 하셨다(출2:2-10, 행7:20-22).....결정적인 시기에 Q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이 바로 Q과 함께 서며 Q을 의지하는 생명을 상징하는 여자의 생명임을 계시한다..
-------
===AMP]
===Israel Multiplies in Egypt.1.
1 Now these are the names of the sons of Israel who came to Egypt with Jacob; each came with his household:
2 Reuben, Simeon, Levi, and Judah;
3 Issachar, Zebulun, and Benjamin;
4 Dan and Naphtali, Gad, and Asher.
5 All the descendants of Jacob were seventy people; Joseph was [already] in Egypt.
6 Then Joseph died, and all his brothers and all that generation,
7 but the [a]Israelites were prolific and increased greatly; [b]they multiplied and became extremely strong, so that the land was filled with them.
8 [c]Now a new [d]king arose over Egypt, who did not know Joseph [nor the history of his accomplishments].
9 He said to his people, “Behold, the [e]people of the sons of Israel are too many and too mighty for us [they greatly outnumber us].
10 Come, let us deal shrewdly with them, so that they will not multiply and in the event of war, join our enemies, and fight against us and escape from the land.”
11 So they set taskmasters over them to oppress them with hard labor. And the sons of Israel built Pithom and Raamses as storage cities for Pharaoh.
12 But the more the Egyptians oppressed them, the more they multiplied and expanded, so that the Egyptians dreaded and were exasperated by the Israelites.
13 And the Egyptians made the Israelites serve rigorously [forcing them into severe slavery].
14 They made their lives bitter with hard labor in mortar, brick, and all kinds of field work. All their labor was harsh and severe.
15 Then the king of Egypt said to the Hebrew midwives, one of whom was named Shiphrah (beauty) and the other named Puah (splendor),
16 “When you act as midwives to the Hebrew women and see them on the birthstool, if it is a son, you shall kill him; but if it is a daughter, she shall live.”
17 But the midwives feared God [with profound reverence] and did not do as the king of Egypt commanded, but they let the boy babies live.
18 So the king of Egypt called for the midwives and said to them, “Why have you done this thing, and allowed the boy babies to live?”
19 The midwives answered Pharaoh, “Because the Hebrew women are not like the Egyptian women; they are vigorous and give birth quickly and their babies are born before the midwife can get to them.”
20 So God was good to the midwives, and the people [of Israel] multiplied and became very strong.
21 And because the midwives feared God [with profound reverence], [f]He established families and households for them.
22 Then [g]Pharaoh commanded all his people, saying, “Every son who is born [to the Hebrews] must be thrown into the Nile, but every daughter you shall keep alive.”
===Footnotes
Exodus 1:7 In general, sons (children, descendants) of Israel or Israel or Israelites refers to all the people (males and females) of the various tribes descended from the twelve sons (Gen 35:23-26) of Jacob (later renamed Israel by God). In verses concerning things such as warfare or circumcision sons of Israel or Israel or Israelites usually refers only to the males. Tribes of ancient people were identified by the name of their founding ancestor. Therefore, this same general rule applies when referring to individual tribal groups, e.g. sons of Reuben, Reuben, Reubenites and so throughout.
Exodus 1:7 Over two hundred years have passed since the death of Joseph.
Exodus 1:8 The political attitude toward the Israelites living in Egypt changed from friendly and welcoming to suspicious and hostile, and Israel’s struggle for existence led to one of the most dramatic and memorable interventions that God would make in human history.
Exodus 1:8 The identity of this pharaoh is uncertain. Some scholars think he was Ahmose I (1570-1546 b.c.), founder of the 18th dynasty of Egypt’s New Kingdom or Ahmose’s successor, Amenhotep I (1546-1525 b.c.). Others believe that this Pharaoh was one of the first of the Hyksos rulers; the Hyksos were foreign invaders.
Exodus 1:9 This is the first record of the descendants of Israel (Jacob) being regarded as a separate nation (also see Gen 34:7 and note).
Exodus 1:21 Lit made them houses.
Exodus 1:22 If the early date of the exodus (1446 b.c.) is acknowledged, as most conservative scholars hold, then this pharaoh is likely Thutmose I (1525-1512 b.c.).
===KJV]
1. Now these are the names of the children of Israel, which came into Egypt; every man and his household came with Jacob.
2. Reuben, Simeon, Levi, and Judah,
3. Issachar, Zebulun, and Benjamin,
4. Dan, and Naphtali, Gad, and Asher.
5. And all the souls that came out of the loins of Jacob were seventy souls: for Joseph was in Egypt already.
6. And Joseph died, and all his brethren, and all that generation.
7. And the children of Israel were fruitful, and increased abundantly, and multiplied, and waxed exceeding mighty; and the land was filled with them.
8. Now there arose up a new king over Egypt, which knew not Joseph.
9. And he said unto his people, Behold, the people of the children of Israel are more and mightier than we:
10. Come on, let us deal wisely with them; lest they multiply, and it come to pass, that, when there falleth out any war, they join also unto our enemies, and fight against us, and so get them up out of the land.
11. Therefore they did set over them taskmasters to afflict them with their burdens. And they built for Pharaoh treasure cities, Pithom and Raamses.
12. But the more they afflicted them, the more they multiplied and grew. And they were grieved because of the children of Israel.
13. And the Egyptians made the children of Israel to serve with rigor:
14. And they made their lives bitter with hard bondage, in mortar, and in brick, and in all manner of service in the field: all their service, wherein they made them serve, was with rigor.
15. And the king of Egypt spake to the Hebrew midwives, of which the name of the one was Shiphrah, and the name of the other Puah:
16. And he said, When ye do the office of a midwife to the Hebrew women, and see them upon the stools; if it be a son, then ye shall kill him: but if it be a daughter, then she shall live.
17. But the midwives feared God, and did not as the king of Egypt commanded them, but saved the men children alive.
18. And the king of Egypt called for the midwives, and said unto them, Why have ye done this thing, and have saved the men children alive?
19. And the midwives said unto Pharaoh, Because the Hebrew women are not as the Egyptian women; for they are lively, and are delivered ere the midwives come in unto them.
20. Therefore God dealt well with the midwives: and the people multiplied, and waxed very mighty.
21. And it came to pass, because the midwives feared God, that he made them houses.
22. And Pharaoh charged all his people, saying, Every son that is born ye shall cast into the river, and every daughter ye shall save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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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서론)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그를 위해 행동하는 종일 뿐만 아니라 손에 하나님의 붓을 들고 그를 위해 기록하는) “여호와의 종” 모세의 기록이다.
모세는 그의 첫 번째 역사책에서 개인의 가정 속에 존재했던 교회에 관한 기록을 보전해 준 바 있다.
이제 두 번째 책에서는 하나의 큰 국가로 성장하는 교회 성장의 기록을 보여 준다.
첫 번째 책에서 최선의 경세(經世)를 볼 수 있다면 두 번째 책에서는 최선의 정치를 엿볼 수 있다.
창세기의 첫 부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조성하셨는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본서의 첫 부분은 하나님께서 친히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조성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아울러 세계와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은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사 43:21)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창세기에서는 세계의 창조를 역사적으로 읽을 수 있으며 본서에서는 세계의 구속을 상징적으로 읽을 수 있다.
헬라어 성경 번역자들은 본서를 엑소더스(Exodus:“떠남”이나 “탈출”을 의미한다)라고 불렀다.
이것은 본서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애굽 탈출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본서와 창세기의 책명에서 은유적인 뜻을 찾는다. 즉 “시작”이나 “기원”을 의미하는 창세기란 책에 이어 “떠남”을 의미하는 출애굽기가 나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출생의 시간 뒤에는 사망의 시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세상을 떠날 출구에 관해 생각하려고 한다. 삶을 시작함과 동시에 죽음도 생각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민족을 형성했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였다.
태초에는 물속에 있던 땅이 빠져 나온 후에 아름답게 되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 차게 되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빠져나온 후에는 하나님의 율법과 장막으로 부요해졌던 것이다. 본서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이 성취됨(1-19장).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제의식이 제정됨(20-40장).
본서에서 모세는 자신의 해설서를 제왕처럼 기술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나타나 있는 제왕보다 훨씬 위대하고 존귀한 인물이다.
필기자 모세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et quorum pars magna fuit), 그리고 그가 똑똑히 알고 있는 역사를 우리에게 일러 준다.
구약성경의 다른 어느 책보다 본서에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모세가 그에 관해 기록했기 때문이다(요 5:46).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방법과 중보자에 의해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그와 교제하게 되는 방법이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우리가 신약성경을 설명하는 데에 가장 큰 유익을 주는 책이며 또한 구약성경을 이해하는 데에도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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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장 (개요)
본 장에서는 다음 사실을 살피게 된다.
1.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번성케 하신 하나님의 가호가 나타나 있다
(1-7).
2. 이스라엘이 번성하자 애굽인들이 악행을 저지른다.
(1) 이스라엘 자손을 억압하고 노예로 삼는다(8-14).
(2) 애굽 왕이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들을 살해하라고 명령한다(15-22).
그리하여 하늘이 축복한 시민들은 더욱 축복을 받게 되고 애굽은 저주를 받게 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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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출 1:1-7)
Ⅰ. 사도행전 7장 8절에 열거된 열두 족장들의 이름.
이들의 이름은 성경에서 자주 반복되어 나온다. 이것은 열두 족장의 이름을 반복하여 우리에게 익숙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다.
Ⅱ.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식구들의 수효. 창세기 46장 27절에 의하면 전체 수효는 “70인”이었다.
이것은 창세기 10장에 나와 있는 민족의 선조의 수와 똑같다.
모세가 신명기 32장 8절에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라고 했다.
애굽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의 수를 유의해 보면 더욱 놀랄 만하다.
후일에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도, 가끔은 당초 자신들의 시작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작았는지 상기해 보는 것도 유익하다는 것을 명심하자(욥 8:7).
Ⅲ. 요셉이 죽고,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은” 점차 죽어 갔다(6절).
아마 야곱의 아들들은 대략 비슷한 시기에 죽었을 것이다. 베냐민을 제외하고 형제들 중 가장 어린 사람과 가장 나이 많은 형의 연령 차이가 7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어느 가정에 임하면 때로는 온 식구가 삽시간에 죽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가정을 이끌었던 요셉이 죽자, 나머지 사람들도 곧 죽음을 맞게 되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이나 형제들, 그리고 우리와 친분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도 불원간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앞의 세상이 그랬듯이 이 세대도 이렇게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Ⅳ.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자손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7절).
즉 생육이 “중다하고”(fruitful), 물고기나 벌레같이 “크게 번식하고”(increased abundantly), “창성하고”(multiplied),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강하여 그 힘이 “강대해”(exceedingly mighty)졌다는 이 네 가지 표현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거의 애굽 사람의 수를 앞지르게 되었으니, 온 땅에 적어도 그들이 살고 있는 고센 지방에서는 더욱 번성했을 것이다.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전에도 상당히 수가 증가했겠지만 요셉이 죽은 후에 수효가 더욱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요셉의 보호와 은전을 잃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번성시켜 그들 자신이 방패가 되게 하셨으니, 자신의 힘으로 변통해 살던 때보다 그들의 능력이 더 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친구들과 친척들이 긴요하게 쓰일 때는 곁에 남겨 두시며, 또 없는 편이 더 나을 때는 그들을 떠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라고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요셉인 그리스도께서 죽은 후에 그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현저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는 바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과 같다(요 12:24).
2. 이런 놀라운 창성은 이미 오래 전에 그 조상들에게 하셨던 약속의 성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로부터 그의 자손을 번성케 하고 애굽에서 구원해 내실 때까지 430년이 걸렸다.
전기에 해당하는 처음 215년 동안에는 불과 70명의 증가에 그쳤으나, 그 후에 70명이 60만 장정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다음을 명심해 두자.
(1) 때때로 하나님의 섭리가 오랫동안 그의 약속을 저버리고 위해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2) 하나님의 약속 이행이 때로는 더디다 해도 그 약속은 언제나 확실하다.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합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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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받는 이스라엘(출 1:8-14)
애굽 땅이 그 때까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복한 안식처요 정착지였으나 결국에는 속박의 집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만족을 주던 처소가 급기야는 재난의 처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위로를 주리라”고 말하던 것들이 우리에게 가장 큰 십자가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들은 진실한 친구 사이였으나 자녀들은 불공대천의 원수가 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던 사람이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서나 천국 이편에 있는 이 세상의 어떤 처소에서도 이것이 나의 영원한 안식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Ⅰ. 애굽인들은 요셉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혜택을 베풀어야 할 책임을 잊어버렸다.
요셉 이후 몇몇 왕들이 거쳐간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났다(8절). 당시 모든 사람은 요셉을 사랑했고 그 때문에 그 친척들에게도 친절히 대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곧 잊혀지게 되고, 그의 선한 업적도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요셉의 업적은 지금 그들의 행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여러 사람을 위해 행하는 가장 선하고 유익하며 칭찬받을 만한 업적이란, 그가 죽은 후에 후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길이 기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전 9:5, 15).
그러므로 우리의 하나님께 봉사하고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최대의 관심을 두어야 한다.
사람들이야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불의치 아니하사 우리의 사랑의 행위와 수고를 잊어버리시지 않는다(히 6:10).
우리가 만일 사람을 위해서만 일을 행한다면 우리의 업적은 고작해야 우리가 죽을 때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우리의 업적은 우리를 영원히 뒤따를 것이다(계 14:13).
여기에 기록된 애굽의 왕은 요셉을 알지 못했으며, 그 뒤를 이어 뻔뻔스럽게도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라고 말하는 왕이 일어났다(5:2).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은인에게 무심한 자들은 우리의 높으신 은인 하나님의 은혜마저도 망각하고 만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요일 4:20).
Ⅱ.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국가적인 이유(9, 10절).
1. 그들이 애굽인들보다 훨씬 많고 강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사실상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애굽 왕이 그들을 억압하기로 결심했을 때에 그들을 만만치 않은 존재로 간주했을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을 억제하기 위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들은 애굽 정부에 커다란 위협을 줄 것이며, 전시에는 적군의 편이 되어 애굽의 시민이 되기를 거부하고 애굽의 왕권을 찬탈할 것이라는 추론을 내렸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위험한 민족이며 “방백들과 영토에 해로운” 민족이며, 신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관대히 처분하기에도 합당치 않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야만적인 태도로 핍박할 구실을 찾는 핍박자들의 정책이었다는 점을 주목하자(스 4:12 이하; 에 3:8).
그들은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리라고 조상에게 주었던 약속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그들이 “그 땅에서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사실을 주시하라.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의 술책은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폐기시키려 하나 이것은 모두 허사다.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결국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기 위해 계책을 세웠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해 지혜롭게 하여 번식치 못하게 하자”.
(1) 이스라엘의 번성이 애굽인들에게는 큰 근심거리와 충격이었으며, 이것을 막기 위해 가장 악랄한 힘과 책략을 동원했다.
(2) 사람들은 사악하게 처신하면서도 흔히 자신들은 지혜롭게 처신한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죄의 우매함이란 결국 만인 앞에 공개되는 법이다.
Ⅲ.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그들의 번성을 저지하기 위해 택한 방법(11, 13, 14절).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평화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애굽에 대항해 전쟁을 하거나 그것 때문에 애굽인들이 위약해질 기회는 없었다.
1. 애굽인들은 이스라엘을 가난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혹자는 이 세금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고역”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2.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인들보다 훨씬 더 근면한 백성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바로는 그들에게 노동시킬 일거리를 찾게 되었으니, 그것이 건축 사업(그들은 바로에게 “국고성들”을 지어 주었다)과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그들에게 가장 무섭고 가혹하게 강요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백성의 형편에 대한 여러 가지 감동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나 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감시하는 “감독관”을 두어 그들을 괴롭히는 방법을 강구하게 하였다.
감독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한 고역으로 혹사시켜 바로를 풍족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역사를 엄하게 하여”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했다. 그 의도는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정신력을 파괴하고 타고난 많은 자질을 빼앗고자 했다.
(2) 이스라엘 백성의 건강을 해치게 하고 수명을 단축시켜 인구를 줄이려고 했다.
(3) 이스라엘 자손들을 나면서부터 노예로 만들어 혼인의 의지를 저하시키려 했다.
(4) 히브리 민족의 민족성을 말살시켜 애굽인에게로 병합시키려 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조차 기억에서 도말하고자 했다.
이스라엘이 당한 이런 압제가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두려운 일이다.
또한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애굽인의 우상 숭배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수 24:14).
비록 그 사실이 위의 이야기 속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이 애굽 땅에 있는 동안 우상 숭배로 인해 그들을 진멸하시려고 경고했던 사실을 읽을 수 있다(겔 20: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분명한 관습을 지켰고 애굽인들과 섞이지 않았으며, 그들과는 다른 규례를 지켜 그들과는 구별된 생활을 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기이한” 일이었다(시 118:23).
Ⅳ. 애굽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랍게 증가했다(12절).
그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했다”는 점이 애굽인들에게는 괴롭고 심히 근심스러운 일이 되었다. 다음을 명심하자.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받았던 시기가 이따금 교회가 박해받았던 시기의 상징이 되었다.
억압을 받으면 성장한다(Sub pondere crescit). 기독교는 박해받는 시대에 가장 힘있게 성장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2. 여호와를 반역하고 그의 이스라엘을 거역하는 자들은 오직 허사를 경영할 뿐이며(시 2:1), 그들에게 더욱 큰 번민을 가져올 뿐이다.
하나님이 번창케 하는 자들은 아무도 감쇠시킬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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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학살(출 1:15-22)
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과한 수많은 고역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번성하자 애굽인들은 분개했다.
그들은 마침내 이스라엘을 억압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어린아이들을 살해하려는 가장 야만적이고 몰인정한 방법을 쓴다.
자신들에게 대적할 수도 있는 이스라엘 성인들은 문제삼지 않고 오히려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피 흘리게 했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큰 죄악이다. 다음을 명심해 두자.
1. 인간의 타락한 마음속에는 의외로 잔인한 면이 많다(롬 3:15, 16).
여인의 후손에 대항하는 뱀의 후손들 속에 있는 적개심은 인성 자체를 말살하고, 인간들이 모든 긍휼을 완전히 잊어버리도록 꾀한다.
이 백성을 박해했던 자들만큼 포악하고 피에 굶주린 자들은 없을 것이다(계 17:6).
2. 자타가 공인할 만한 순결함마저도 숙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의 피처럼 순결한 피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 그 피가 하수같이 낭자하게 흘러, 우유나 꿀같이 즐겁게 빨아 먹히게 된 것이다.
바로와 헤롯 왕은 사내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내아이를 삼키려고 서 있는 나쁜 붉은 용의 대리자임을 스스로 충분히 입증했다(계 12:3, 4).
빌라도는 그리스도에게서 아무런 흠을 찾을 수 없다고 공언한 후에도 그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주었다.
인간이 몸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이 죽일 수 있는 것이 몸뿐이라는 사실이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히브리인들이 낳는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기 위한 두 가지 잔학한 법령이 계획되었다.
Ⅱ. 산파들에게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렸다.
1. 바로는 “산파들”을 사형 집행인으로 임명했다(15, 16절).
이것은 이미 계획된 살인에 잔학성을 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의 피를 흘려야 할 뿐만 아니라, 정작 그들이 구하고 도와야 할 아이들을 죽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산파를 믿고 찾은 신뢰에 대한 배신을 강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바로는 어떻게 그런 비열한 행위를 생각해 냈을까? 산파들이 진정 그와 같은 잔인한 일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단 말인가?
포악한 자들은 남도 포악할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자. 바로는 산파들을 은밀히 기용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낳은 사내아이들을 질식시켜 죽이고, 또한 출산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출산 때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불행을 야기하도록 명했다(욥 3:11).
바로가 강권했던 두 산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기 약 80년 전이었던 그 당시에는 이 산파 두 사람이 능히 모든 히브리 여인들을 보살필 수 있었을 것이다.
출애굽기 2장 5, 6절에 명시된 바와 같이 그 궁전 부근에서 적어도 꽤 많은 히브리 여인들이 아이를 낳았으며, 그들 중에 대부분은 바로가 가장 염려하고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히브리 산파들”이라고 불렸는데, 아마 그들이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왜냐하면 바로도 실제로 산파들이 자기 동족에게 그렇게 잔혹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히브리 사람들이 주로 그 산파들을 이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산파들은 그들이 애굽인이었기에 바로가 설득하려고 했을 것이다.
2. 산파들은 불신앙적 명령에 대해 불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였다(17절).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중히 여겼다. 또 바로보다도 하나님의 진노를 더 무서워하였으므로 남자 아이들을 살려 주었던 것이다.
만약 인간의 명령이 어느 쪽으로든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된다면, 우리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행 4:19; 5:29).
지상의 어떤 권세도 우리를 우리 주 하나님께 범죄하도록 강요하거나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는 그 두려움이 인간을 두려워하는 부질없는 공포의 함정에서 우리를 보호해 준다.
3. 산파들이 불순종하여 왕 앞에서 질책을 당하게 되자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했다(18절).
그들은 자신들이 가기 전에 이미 아이들이 태어나 왕명을 이행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변명했다(19절).
이것을 보면 히브리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특별한 축복을 받았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히브리 여인들의 건강 상태는 꽤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해산의 고통은 비교적 빨리 끝나며, 산파의 도움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산파들은 하나님의 손길이 자신들과 같이하심을 알았다.
하늘의 은총을 받았기에 왕에게 불복종할 용기가 생겼으며, 또 바로 앞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몇몇 고대 유대인들은 “산파가 오기 전에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또 하나님은 이를 응답하셔서 무사히 출산케 하셨다”고 설명한다.
다른 어떤 조력자보다도 하나님은 비참한 가운데 있는 그의 백성에게 더 신속한 도움을 주시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산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푼 친절에 대해 보답하셨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20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베푼 친절을 자신에게 베푼 친절로 여겨 즉시 보답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또한 특별히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고 했다(21절). 그들의 자녀들을 축복하셔서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번성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푼 봉사는 같은 방법으로 보상을 받는다. 산파들이 이스라엘의 가계를 잇게 해 준 보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 것이다.
보상은 그들이 행한 근본 자세와 관련이 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다.”
신앙심과 경건은 외적 번성에 대한 좋은 벗이 됨을 기억하자. 즉 가정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있을 때 그 집은 그 때문에 세워지고 왕성하게 되는 것이다.
라이트푸트(Lightfoot) 박사는 산파들은 그들의 경건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과 결혼하게 된 것이며 히브리인들은 그들에 의해 가계가 번성하게 되었다고 해석했다.
Ⅲ. 이 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히브리인의 모든 남자 아이를 하수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다(22절).
이스라엘 남자 아이의 출생을 알면서도 하수에 던지라는 명령을 받은 자들에게 그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사람은 큰 벌을 받았을 것이다.
교회의 적들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하기 위해 쉴 틈도 없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단 7:25). 그러나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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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사막을 걷다
...[[하나님과 함께 사막을 걷다]]
자애로우신 아버지여
--고요한 이 저녁 시간, [주님의 사랑하심 입은 자들이] 주님의 이끄심따라,
보혈 의지하며, 회개하며, 아픔-떨림-기쁨으로 앙망하며 나아옵니다
[주안에 있는 자 상황을 초월한, 형언 못할, 성령의 기쁨 겨워..살전5:16]
삶의 십자가, 껴안고 감사하며 온맘다해 주님 이름 부릅니다,
열어주옵소서..주님의 임재와 충만한 부어주심의 잔치, 일심으로 앙망하오니,
안아주옵소서, 더 깊이 알며, 더 사랑하도록,
마음 눈 밝혀주옵소서.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가나안 땅에 임한 기근 같은 [코로나 재앙의 시기의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
박탈당하고 소외되어, 오도되고 상함 받고 지쳐, 삶의 고난 그 의미를 여쭙는 자녀들을 보옵소서.
주님 말씀은 생명-빛-진리요, 주님은 말씀마다 주님자신의 모든 요소와 영광, 성품, 뜻-목적--의지-감정, 전능의 능력을 불어 넣으심 통해 실지로 역사하시며 이루시는 분이시니,
이제 말씀으로 친히 오셔서 주님 자신을 열어 부어 주소서
생생한 주님 임재로 우리 모두를 위로하시며 부활 생명 안으로 일으켜 주소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네 마음 문 열어다오, 네가 숨은 곳,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데서 일어나 나와서 나와 함께 가자꾸나], 초청하시는 그 말씀 따르오리니,
성령이여 우리를 사로잡으사 완전히 복종하게 하여 주소서.
이제 약속하신 그대로 앙망하는 우리에게 펼치실 바
놀라운 영적 대각성, 대 부흥을 이끄시며 열어주시기를 기대하오니.
이로써 계시록의 사내아이, 이기는 자, 두 증인의 시대를 오게 하소서.
--지금, 말로는 다 표현 못할, 고난중에 있는 성도들을, 주님 영광안에 친히 붙드소서
기도와 간구, 도고로 주님 앙망할 때마다, 성령님, 주님 뜻 알게 하옵소서,
또한 주 안에서, 이미 이긴 이김과 회복, 평강 충만히 누리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말씀대로>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하신대로 삶의 모든 필요를 채우소서..
--연인의 사랑앓이보다 더한 열정으로, 그토록 우릴 원하고 사랑하사, 내주하시는 하나님,
호흡보다 의식보다 더 가까우신(빌4:5) 주여.
날마다 생생한 알아감, 생각과 심정을 알아드리는 친밀함,
샘솟는 사랑-자원하는 헌신..,오, 돌파하시는 주님이여
오직 사랑의 감동따라 행할 때.. 주님 얻고 그안에서 발견되는 기쁨 열어 주옵소서,
일편단심 주바라기, 신뢰함, 그 인내로 아드님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성숙함 이루소서
우리에게 주께서 이르시는 말씀은 영과 생명이요, 주님의 계명은 주의 행하심 그대로이기에,
진실로 이 광야사막길 인생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분] Q과 함께 끝까지 걷기를 소망하오니.
여기 모인 우리들에게 경청하여 깨달아 알아듣는 귀를 열어주소서
사랑 안에 함께 행함 통해, 주께서 진실로 말씀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심을 증거케 하옵소서.
강단에 세우신 말씀 대언자, 목사님에게 성령을 한없이 부으시고,
성령 충만 감동, 기름부으신 그 입술 통해서, 주님의 심정과 뜻과 그 영광 친히 나타내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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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장] ==모세가 태어나다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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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장]===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시다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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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4장]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17.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18.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
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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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6장] ==만나와 메추라기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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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19장]===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산에 이르다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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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40]성막 봉헌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3. 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고
4. 또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 등잔대를 들여놓아 불을 켜고
5. 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6.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7.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8. 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달고
9. 또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10.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11.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12.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13.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14.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15. 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16.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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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8] ===아삽의 마스길
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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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10.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11.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
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그들의 조상들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13.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을 지나가게 하셨으며
14.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으며
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16.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20.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셨으며 야곱에게 불 같이 노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에게 진노가 불타 올랐으니
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
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25.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26. 그가 동풍을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의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27.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비 같이 내리시고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 같이 내리셨도다
28. 그가 그것들을 그들의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들의 거처에 두르셨으므로
29. 그들이 먹고 심히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그들의 원대로 그들에게 주셨도다
30.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여 그들의 먹을 것이 아직 그들의 입에 있을 때에
31.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염을 나타내사 그들 중 강한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32.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33.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
34.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36.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40.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42.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의 표적들을, 소안 들에서 그의 징조들을 나타내사
44. 그들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그들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45. 쇠파리 떼를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46. 그들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셨고 그들이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47. 그들의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그들의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48. 그들의 가축을 우박에, 그들의 양 떼를 번갯불에 넘기셨으며
49. 그의 맹렬한 노여움과 진노와 분노와 고난 곧 재앙의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셨으며
50. 그는 진노로 길을 닦으사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전염병에 붙이셨으며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52.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53.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54. 그들을 그의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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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57.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58.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61.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 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63.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64.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65.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66.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
67.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69.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70.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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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서론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성경 명칭은 본서의 맨 처음의 두 단어인 웨엘레 쉐모스 (“그리고 이것들이 ~의 이름들이다”)이다. 출애굽기(Exodus)라는 명칭은 헬라어 70인역에서 왔다.
출애굽기의 저자는 모세이다.
본서가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은 이 책보다 먼저 기록된 책인 창세기와 한 묶음인 것을 암시한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은 한 묶음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모세가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쓴 책들이라고 본다. 그것은 구약성경 자체가 증거 혹은 암시하는 바이며(수 1:7; 8:31; 왕상 2:3; 대하 34:14; 스6:18; 느 8:1; 단 9:11; 말 4:4 등) 정통 유대교가 믿고 증거하는 바이며 신약성경이 확증하는 바이다(막 12:26; 마 19:8; 롬 10:5 등).
주께서는 출애굽기 3:6을 인용하시면서 모세의 글이라고 증거하셨다. 마가복음12:26,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출애굽기의 저작 시기와 장소는 출애굽기 16:35에 보면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40년 생활을 마칠 즈음에 모압 평지에서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본서의 저자인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본서가 광야 40년 생활을 끝마칠 즈음에 모세가 죽기 전에 쓰여졌음을 보이며 그러면 그 장소는 모압 평지 부근일 것이다.
출애굽기의 주요 내용은 애굽에 거주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일과,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건립한 일에 관한 것이다. 1-19장은 출애굽 사건을, 20-24장은 율법 받은 것을, 25-40장은 성막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와 그 지시대로 건립한 일을 기록한다.
출애굽기의 특징적 진리는 하나님의 지식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 그가 온 천하에 유일한 참 신(神)이심과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한 그의 구속(救贖)의 사랑과 능력을 증거하셨고, 또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신실하게 행하셨음을 증거하셨다. 또 그는 시내산에서 주신 십계명과 여러 법 들을 통해 사람들을 향하신 자신의 도덕적 의지를 알리셨고 또 그 도덕법을 통해 사람의 죄악됨을 깨우치기를 원하셨다. 또 그는 성막 제도를 통해 장차 오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증거하셨고 또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와 교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교훈하셨고 또 그가 친히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함께 계심을 증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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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이스라엘의 번성과 고난
[1-7절]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허리에서 나온 자들](원어)이 모두 70인이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은 고센 지방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들은 애굽에 정착한 이후 모세가 출생할 즈음까지 약 350년 동안 번성하였다. 그것은, 그들로 번성케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었다.
[8-11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애굽의 신왕국 시대(주전 1546-1085년경)의 왕을 가리켰다고 본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때는 중왕국 시대 제12왕조 중 센우스레트 3세(주전 1888년-1852년경) 때이며(주전 1876년경), 모세가 출생한 때는 신왕국 시대 제18왕조 중 투트모세 1세(주전 1539년-1514년경) 때라고 생각된다(주전 1525년경). 그 왕은 이스라엘 백성의 빠른 번성을 매우 염려했고 그들을 탄압할 한 정책을 세워 국고성들을 건축하게 하였다.
이스라엘에게는 번성케 하신 복도 있었으나 압제의 고난도 있었다. 창세기 15:13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라고 증거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 430년 동안(출12:40)이 이방 나라에서 생활한 고난의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요셉이 살아 있었을 때나 요셉을 알고 그의 공적을 존중한 왕들이 통치했을 때는 어느 정도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의 신왕국 시대에는 그 핍박의 정도가 매우 심해졌던 것 같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극심한 고난을 당한 세월은 아마 약 90여년간이었던 것 같다.
[12-14절]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役事)[일]를 엄하게 하여 고역[고된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들판에서 하는 여러 일들](원어, KJV,NASB, NIV)이라. 그 시키는 역사(役事)[일]가 다 엄하였더라.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해 근심하여 더 엄하게 일을 시켰고 고된 노동으로 그들을 괴롭게 했다. ‘들판에서 하는 여러 일들’은 농사뿐 아니라, 그 외의 여러 일들을 포함했을 것이다.
[15-21절]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자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 이같이 하여 남자를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성경이 히브리 산파의 말의 진위(眞僞)를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일 수 있고 사실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은혜를 베풀다’는 원어는 ‘선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고 복 주신 것을 보면, 그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였다. 이 말은 7절과 12절에 이어 본장에서 벌써 세번째이다. 또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정들을 복 주셨다.
[22절]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河水)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무서운 법령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번성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본장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번성케 되었음을 증거한다. 7절,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衆多)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12절,“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20절,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이스라엘의 수적 번성은 하나님의 약속(창 12:2; 13:16; 17:1, 6; 18:18; 22:17; 26:4; 28:14; 46:3)의 성취이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옛 약속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신약교회에 세계 복음화라는 명령과 약속을 주셨다. 주께서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그때 세상 종말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4:14). 또 그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9).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었다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증거했다(롬 11:25-26).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선 광경을 보고 증거하였다(계 7:9).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약속이 거의 성취된 것을 본다. 지구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된 뜻인 세계복음화를 믿고 기대를 가지고 낙심치 말고 전도하며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둘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고난도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번성했지만, 고난도 함께 받았다. 그들은 애굽 사람들의 엄한 감독들 아래서 심한 노역을 했다. 그들은 심지어 죽음의 위협을 당했고 마침내 남자아이가 출산되면 나일강에 버리라는 왕의 명령까지 내려졌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극심한 고통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압제와 핍박을 당했듯이, 신약 시대에 주의 백성된 우리도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 신약 성경의 교훈이다. 주 예수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5:11-12).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행 14:22),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다(딤후 3:12). 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다(빌 1:29).
주께서는 그의 재림 직전에 전쟁과 기근, 질병과 지진, 배교와 핍박 등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마 24장). 또 사도 요한도 대환난 시대에 대해 예언했고(계 6-19장), 또 큰 환난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계 7:14).
성도의 고난은, 인격의 남은 죄성을 정화(淨化)시키는 과정, 곧 성화(聖化)의 과정이며, 또 이 세상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더욱 하나님과 천국과 영광의 내세만을 향하게 만드는 유익한 과정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거의 성취된 것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과 고난을 각오하고 더욱 더 바르게 살고 열심히 전도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다 구원하기를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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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7족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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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헷 족속 2) 아모리 족속 3) 여부스 족속 4) 브리스 족속 5) 기르가스 족속 6) 히위 족속 7) 가나안 족속
우리가 흔히 가나안 족속(7족속)이라 부르는 족속은 소위 가나안의 후기 7족속으로, 이들 족속은 개인의 영웅적인 힘에 의존했던 가나안의 초기 원주민(르바, 엡, 호리, 수스, 아낙, 겐 그니스, 갓몬 족속)과는 전혀 다른 조직적이고도 막강한 힘을 가진 족속들이다. 즉 이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정복한 후 그곳에 정착한 강력한 족속들이었던 것이다(소 3:10).
본래 가나안 족속이라 하면 아브라함 당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여섯 족속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기르가스 족속'을 덧붙여 소위 가나안 후기 일곱 족속이라 한다.
===가나안 7족속, 영적 의미와 교훈들===
:::: Q알며-사랑하며-섬김!! 오직 참된 말씀 사랑+ 절대적 믿음-소망이 선결요건이다!!...극복하고 사랑-희락-화평의 동행 누리라!!...시작이 반이다!!..진리의 주님과 함께 걷는 행보는 결코 늦는 법이 없다!!...용기와 담대함은 너의 상급이다!! <헷(두려움), 기(어둠)>
--->살아계신 하나님, 그 말씀 안에서만 제대로 조명/분별/선택/순복 가능한 바, 이차적/상대적 세상가치를 불식하라!!<아(이성주의/인본주의의 지적 교만)-가(자아정체성 상실에서 비롯된, 열등감에서 유래한, 파멸케 하며 사리추구하는, 간교/간악함)>
--->방임/느슨함에서 벗어나라 <브(나태/중독 : 쾌락/향락-문화...깨어 일어나라, 부지런히 생명의 주님에 대해 열심 품고 섬기라)-히(타협/적당주의...그 정체와 근본동기를 주께 여쭈고 신중함으로, 절대 믿음으로 따라 행하여 멸절하라!!)>
--->죽기까지 순복하라, 성령께 주권을 내어드리라 <여(자기를 보며 으스대는 자만/기만의 함정...죽기까지, 완전-온전-순전한,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이 함정을 극복하라)..(비아냥거림/비꼬는 대적의 참소를 야기한다!!>
===1) 헷족속(Hittites)
가나안 7족속 중의 하나로(신 1:7), 족장 시대 때부터 가나안 땅에 거주해 왔던 큰 족속이었다(창 23:3, 4;26:34;27:46). 이들 족속은 본래 가나안의 둘째 아들 헷의 후손들로서(창 10:15) B.C. 2000년 경에 이미 소아시아 전역에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발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철기 문화를 사용하여 강력한 제국을 세우고 발전하다가 B.C. 1200년경에 멸망한 힛타이트족(Hittites)이다. 그후 이들 족속은 가나안 땅으로까지 들어와 가나안 정복 당시 상당히 넓은 판도에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성경은 '헷 족속'이라 부른다. 헷 족속은 B.C. 1600-1700년 사이 족장 시대부터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가지 그곳에 거주한 종족 중에서도 매우 큰 민족이었다. 광야와 레바논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온 땅이 헷 족속의 영토로 불리웠을 정도다. 또 헷족속은 히타이트족속들을 말하는데 BC10세기에 일어난 강력한 철기문명을 가지고 지역의 두려움이 대상이 된 족속이다.
한편 성경 역사상 이들은 선민(選民)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데(삿 3:5,6;삼상 26:6;왕상 11:1;스 9:1,2;겔 16:3), 특히 헤브론 근처에 거주하였던 헷 족속은 홋날 완전히 셈족에 동화되었다.....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자 헷족속에게서 막벨라 굴을 사서 장사지낸다.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고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하였다.
한편, 이삭의 아들 에서는 아브라함 이래로 간직해 온 언약 가계로서의 순수한 영적 순결성을 저버리고 우상에 오염된 가나안 땅 헷 족속 여인을(23:3)아내로 맞아들였다. 이 일로 이삭과 리브가는 심히 근심하였다. 이 근심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에서의 일부다처 행위와 가나안 헷족속인 며느리들이 보여 준 이방 생활 방식에 기인한 것이었다(28:8).
---• 헷 족속의 영적 의미[[하나님을 친밀히 앎 통해 발휘되는, 산 믿음, 주와 하나됨으로 인한 영적 담대함 상실 = 정죄감/두려움<거절/외면-결핍-고독/수치-불안>]]
.......근거가 없는, 하나님 말씀하심이 아닌, [육에 속한 착각/오해로 인한, 실체가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자신을 방치함<영적 수치/모멸감/버려진 느낌...거부고수두...에 사로잡힘>을 뜻한다. 거짓/기만/속임--악몽--우울/공황/마비/불안감 등으로 영적 두려움/수치/모멸감 가운데 고통 속에서 살도록 위협하는 것이다.
===2) 기르가스 족속(Girgashites)
기르가스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 중 가장 소수의 족속이다. 수 3:10; 24:11; 대상1:14등에 언급되었고, 요단 서편에 살다가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난 족속인데, 그 후 주변 여러 족속들에게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 기르가스 족속의 영적 의미[[성령의 친밀한 교통, 말씀 안에서 비추심/비전-가치/목표 상실...혼돈]]
[말씀의 빛을 잃어버린] 진흙탕을 의미하며 혼돈/공허/흑암-망령됨/자행자지-무질서로 해석할 수 있다. 기르가스 족속은 우리의 삶에 진흙탕에 빠져든 것 같고, 앞 길을 전망하여 볼 수 없도록 혼돈-공허함-허망감을 유발하고 그 결과 해결 난망<사방으로 우겨싸임>-막막함의 느낌에 얽히게 함으로써 육에 치우치게 함으로써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 중에 우선순위를 놓치게 만든다. 성경은 에서를 가르켜 ‘망령된 자’라고 지칭했다. 에서는 장자권의 진가를 모르고 야곱에게 팔았다. 이러한 기르가스의 영을 물리치고 지혜와 분별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 아모리 족속(Amorites)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중 가장 강력하고 넓은 판도를 형성하고 있는 족속으로서, 성경에서 흔히 '가나안 족속'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된다(창 15:16).
흔히 가나안 족속들을 말할 때, "아모리 사람... 해변의 가나안 사람"(수 5:1)이라고 말을 한다. 여기 '아모리 사람'(the Amorites)과 '가나안 사람'(the Canaanites)은 요단 강 서편의 모든 가나안 거민(30:10;신 7:1)을 대표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모리 사람은 산지에 살고 있던 족속이며, 가나안 사람은 평지(해변)에 살고 있던 족속이기 때문이다.
'아모리 사람'(the Amorites)은 족장 시대 이전부터(약 B.C. 2000년전부터)가나안 땅에 거주했다(창 15:16). 그들은 헤스본을 중심하여 주변에 촌락과 성읍을 건축한 남 왕국(25, 26절; 신 2:26)과 바산을 중심해 그 위세를 떨쳤던 북 왕국으로 나뉘어져 발전했다.
본문에 언급된 것은 그 중 남 왕국으로서 그들은 북동쪽으로는 얍복 강을 경계로 모압 족속과 마주하고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길르앗을 경계로 바산과 맞대어 있었고, 남쪽으로는 아르논을 경계로 모압 족속과 마주하였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사해와, 동쪽으로는 광야 지역을 경계로 하였다(삿 11:22). 요단 동편에도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시혼이라는 왕을 중심으로 강력한 도시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단 동편의 에돔과 모압 족속과는 달리 아모리 족속은 여호와의 심판의 대상이었다(출 23:23; 34:11; 신 7:1).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사신(使臣)을 통하여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는 율법에 명시된 전쟁의 법을 따르고자 함인(신 2:26) 동시에, 이스라엘이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지로 삼은 곳이 가나안 땅이지 요단 동편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시혼에게 "왕의 대로로만 통행하겠다"고 요청했지만, 시혼이 용납하지 아니하였다. 삿 11:20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아모리왕 시혼(Sihon)은 '이스라엘을 믿지 못하였다'고 한다. 즉 그는 200만 이상의 대군이 자기영토에 진입한다는 것은 곧 자기 성읍들이 훼파되거나 최소한 각종 재산상의 피해를 당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 시혼이 모압족의 땅을 탈취하여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였으므로, 이러한 오해는 충분히 가질 수 있었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육적 결정으로>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왔다. 야하스(Jahaz)는 아르논 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시혼 왕은 이스라엘에 참패 당하였다(신 2:32-34; 삿 11:20, 21). 신2:24에 의하면 시혼(Sihon)의 이러한 선제공격은 그들을 멸하시려 했던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한다. 즉 죄악이 관영했던 아모리인들을(창 15:16) 더 이상 용납치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그들을 섬멸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전쟁 충동 욕구를 주입시키셨던 것이다. 이를 통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정복 후 이곳을 르우벤 지파와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분할해 주었다(수 13:28;21;36; 대상 6:67). 모세는 아르논 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였다. 이는 아모리 남왕국 전체를 점령했다는 의미이다. ... 얍복(Jabbok) 강은 사해 북방 약40km 지점의 길르앗 동편 고원에서 발원하여 아모리 및 암몬과 국경선을 이루며 요단 강에 흘러 들어가는 약 96km 가량의 긴 강이다. 후일 이 강은 갓 지파의 경계가 되었다(신 3:16; 수 12:2).
아모리인들이 추종하던 신 '아세라'(Ashera)는 본래 두로(Tyre)의 신이었으나 후에 고대 근동의 여러 족속들, 특히 아모리족과 가나안족이 숭배하게 된 여신(女神)이다. 가나안 최고의 신 '엘'(El)의 아내이자 풍요와 다산(多産)의 신 '바알'(Baal)의 모신(母神)이기도 한 아세라는 성교(性交)와 전쟁의 신으로서, 아낫(Anath). 아스다롯(Ashtaroth)과 더불어 가나안의 3대 여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아세라는 주로 나무에 그 상(像)을 새겼으므로 단순히 '목상'으로만 불리우기도 하였다(레 26:1; 왕하 10:26)
---• 아모리 족속(Amorites)의 영적 의미[[참 목자 주님과 동행하는 양, 종됨 자각 상실....자행자지의 지적 교만]]
......Amorite라는 단어는 ‘자랑하다’, ‘불룩 내밀다’, ‘산을 오르는 자’, ‘교만하게 행동하다’, ‘마음에 교만을 품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모든 정의들은 다 함께 [지적 교만을 숭상하며 내세우는] 인본주의적인 자세를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아모리 족속은 이성주의/인본주의 교육의 산을 말한다고 보기도 한다. 인본주의는 우주적인 인간의 가치와 지식을 최우선시 하는 윤리 철학으로서 이것은 이성주의에 의해서 강화된다. 아모리 사람(산중 사람)은 교만 또는 교육(지식, 학문)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진리에서 돌이키게 할 세상의 신이 주도하는 인본주의 교육 시스템이다고 할 수 있다.
===4)가나안 족속
가나안 족속(Canaanites)은 낮은 땅이라는 뜻.....가나안 족속은 가나안 땅에 거하는 일곱 족속 전체를 통칭하는 말인 동시에 가나안의 7족속 중 한 족속인 가나안 족속을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그들은 주로 무역에 종사했기에 고대 세계에서 가나안이라고 하면 곧 ‘상인’을 의미하는 말과도 같았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 이후 그들에게 점차적으로 흡수되었다.
가나안 족속은 <사탄적 간교함이 그 특성으로서, 스스로 생계를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탐색, 자기 무기 삼고 상대방의 파멸 통해 사리 추구함 인해 (대적자/원수됨을) 자초하는 바> ‘저주’라는 뜻(창9:25)도 있다.
(창 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 가나안 족속의 영적 의미 [[창조자-주권적 섭리자-임마누엘의 아버지, 풍성부요충만능력이신 주님 누리는 자녀됨의 자각 상실...상대적 열등감에서 유발되는 사기꾼의 간교함/(탐심과 정욕)우상 승배]]........<고개 들 수 없는>낮은 자존감, 경제적 저주(가난과 실패)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5) 브리스 족속(Perizzites)
팔레스틴 외곽 지대나 산간 지역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시까지 종족으로서의 명백을 유지했다(스 9:1).
----• 브리스 족속의 영적 의미 [[주님 영광 닮아가는, 참 생명 말씀 공급하는 종됨 인생의 참 가치/의미/묵적/보람 상실...,,(세상 패러다임/가치 판단따라) 자신을 제한하며 무력함/방탕의 틀 안에 그렇게 방치, 자포자기-나태함-과민반응(비열함/과잉반응 안에 스스로 방치)]]
.....시골사람이라는 뜻으로 신경질, 미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난 무식하다고 하면서 비신앙적인 사람이 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 부르심을 받은 무리가 되지 못하게 하고 게으르게 하고 멀리 볼 수 없게 해서 자립심과 존재감이 약한 특성을 갖고 있다. 또 브리스는 ‘광할한 평야, 전쟁터’라는 의미도 있는데 혈기와 짜증, 신경질이 미움을 일으킨다....(창4: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6) 히위 족속(Hivites)
히위(חוּי, Hivites)은 함의 아들 가나안의 6대 자손이다. 히위 족속은 헬몬산 근처, 세겜과 기브온, 헬몬 산 아래에 거주하였다(수 9:7;11:13).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 사는>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당한 일이 있었는데(34장) 훗날 여호수아가 이 땅을 정복,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다(수 9:3-21).
<기브온에 사는> 히위 족속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시 여호수아를 속여 화친을 맺고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살면서, 나무 패고 물긷는 자들이 되었으며(수9:3-21), 주로 팔레스틴 북부 산간 지대와 기브온에 거주하였다. 기브온 거민들이 히위 족속(Hivites) 거민들인데, 히위 족속은 가나안 땅 도처에 집단적으로 흩어져 살던 가나안 일곱 족속중 하나이다. 여호수아 당시에는 이들이 기브온을 중심으로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 등지에 주로 거주하고 있었던 듯하다(9:17). 특히 '기브온'(Gibeon)은 주변에 여러 소성(小城)들을 거느린 왕도(王都)로서 (10:2),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722m 가량의 가나안 중부 주요 성읍이다. 후일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고(18:25), 이어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다(21:17).
가나안 여러 족속들(1절) 가운데 히위 족속인 기브온 주민들은 연합군을 조직해 이스라엘을 격퇴시키자는 제의를 물리치고 단독으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기 위해 치밀한 꾀를 쓰고 있다. 아마 기브온 거민들은 비록 동맹을 맺어서 이스라엘과 대적한다고 하더라도,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의 멸망을 통해 볼 때 결코 승산이 없으리라는 냉철한 현실 판단을 내린 것 같다. 더욱이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을 남김없이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24절), 그들로써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스라엘과 화친(和親)을 맺는 것이었고, 또한 화친을 맺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살지 않고 먼 나라에서 온 사절(使節)인 것처럼 속임수를 쓰는 것 뿐이었다....주께 <철저히!!> 묻지 않음 인해 기만당한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를 기억해야 한다!!
기브온 거민들이 신 20:10-15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구절들에 따르면 가나안 족속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족속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족속에게는 <이스라엘이>화친을 맺어도 좋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가증한 죄악으로 인해 이미 진멸의 대상이 된 가나안 족속들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타협이 있을 수는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모조리 멸절시켜야만 했다(신 20:16-18). 이 사건은 세상의 교활함과 가식에 대하여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함을 가르쳐 주는 하나의 경고이다.
----•히위 족속의 영적 의미[[영적 거듭남의 철저한 실행에서 벗어나서 차지도 덥지도 않음, 세상 가치따름의 우상숭배...양다리걸침 편안함-적당-타협//쾌락-향락추구/중독 경향]]
.....히위 족속은 세속적인 마음에 속한 축제(예술, 음악, 스포츠, 패션, 오락)등으로 신념과 이념으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면서 기만하고 땅의 것을 즐기게 하는 향략과 쾌락주의로 빠지게 하는 정신이다. 구체적으로 예술, 음악, 스포츠, 오락 등 사람들이 세상에서 즐기며 깊게 빠지게 되는 모든 것을 뜻하고 있다.
=== 7) 여부스 족속(Jebusites)
여부스 족속은 가나안의 아들 여부스의 후손(창 10:16)이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산지에 살았다. ..여부스는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 이곳에 여부스 족속(the Jebusite)이 원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불리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족속은 다른 가나안 족속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진멸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었다(3:10;12:8;24:11;삿 3:5).
또한 이 '여부스 족속'은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진멸시키고 난 다음, 어찌하든지 이스라엘을 패퇴시키고자 골몰-올인한 족속 중 하나였으며(9:1), 가나안 땅 하솔 왕 야빈이 여호수아를 물리치기 위하여 원조를 요청했던 족속들 가운데 하나였다(11:3).
가나안 정복 후 이 성읍은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지만 <전심전략으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았기에!!> 결코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으나,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 결국 정복당하고 말았다.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the Jebusites)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가나안 족속과는 언약도 맺지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모두 진멸시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신 7:2)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였다.
이와같이 유다 지파가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자 최선을 다하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나태한 마음가짐에서 연유한 것으로(Calvin, Matthew Henry), 가나안 정복 전쟁 때의 그들의 신앙적이며 순종적인 모습과는 뚜렷이 대조되는 현상이었다.
과거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다른 네 왕들과 합세하여 이스라엘에게 대적하였으나 결국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었다(10:22-27). 하지만 그때조차도 예루살렘이 정복당했다는 언급은 없으며, 그 이후에도 유다 지파는 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다만 삿 1:8에서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성읍을 불태웠다고 하였는데, 이는 예루살렘을 부분적으로 점령한 것을 뜻할 뿐 완전히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은 B.C. 1000년 경 다윗의 치세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점령당하게 되는데(삼하 5:1-6), 그때까지 이들은 유다 자손들 곁에서 계속 거주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것과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삿 1:21에서는 이들을 베냐민 지파가 쫓아내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예루살렘 성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모두 이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아무런 모순이 없는 것이다.)
다윗은 여부스(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 이 성읍을 그의 정치, 종교적 중심지가 되게 했다. 그리하여 솔로몬 왕에서부터 시드기야 왕까지 역대 왕들은 이 성읍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한편, 예루살렘은 지중해(Mediterranean Sea)에서 동쪽으로 약 53km, 사해(Dead Sea)에서 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서 팔레스틴의 주요한 도로 교차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구약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 오래 전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에는 '살렘'이라고 불리웠으며(창 14:18), 사사 시대에는 '여부스'라고 불리웠다가(삿 19:10, 11), 다윗 시대에 이르러 '다윗 성'으로 명명 되면서(삼하 5:6-10)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이 성읍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점령당했다가(B.C. 586년) 다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 여부스 족속의 영적 의미. [자기부인/자기 십자가 짊으로 사는, 참된 종에게 주시는 주님 영광 능력, 친밀한 임마누엘의 기쁨으로 만족함의 영적 실제에 틈 발생/ 상실.. 거듭난 새 존재의 삶의 절대적 온전성 추구 부족...(.이 정도면....하는 영적 느슨함)....인정 중독/자만 = 이로 인해 징계의 심판이 초래되고, 원수에 속한 원망/불평/증오/분한의 그 모든 잔재는 남김없이 처리되어야 함]]
.....여부스는 짓밟다는 뜻으로 억압(증오, 원망, 불평) 그리고 비아냥/조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밟히다 혹은 타작마당 등의 뜻을 가진 여부스는 다윗 왕 때 엄청난 전염병 재앙이 임했던 곳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자리가 바로 여부스 족속의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다.
죄사함을 받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은혜와 긍휼을 느꼈지만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부정하고 온전히 주님께 순종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장성함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올바른 마음의 성전을 건축할 수 없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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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적 생명의 정의 = 하나님이 [친히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심 인해] 창조하신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생명으로서의 무죄한 [그의 영 안에 하나님의 거소인 영을 가지고 있는, 영적 자아]
===>[죄된 본성/육신 가진 육적 자아=옛자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그 이후에 태어나는 사람의 자아는 <타고날 때 부터 죄된 본성을 가진, 육적 자아이자 옛 자아(옛 사람의 자아 = 거짓 자아) = 겉 사람......하나님을 거역하며 사탄에게 속아 사로잡혀 사는 자아.....영을 사용하지 않기에 마치 영이 죽어버린 것처럼 쪼그라든, 기능 상실의 상태..
===>[거듭난 참 생명의 영적 자아]
JC믿고 거듭난, 참되게 믿는이에게는 그의 영 안에 부활하신 JC의 성령께서 내주하심 인해 <말씀-성령따라 살도록 하심 인해> 그리스도의 성분으로 조성해 나가시면서, 영 안에서부터 혼을 거쳐 몸에 이르기까지 신진대사적인 변화(=transformation)로 겉 사람에 속한 부분을 제하고 계심...이로 인해 마침내 영혼몸의 전 존재가 그분의 참 생명<=내적 생명 = 하나님의 관계적 인격과 상품의 어떠함> 충만 성숙에 이르게 하시며 그분의 넘침 흐름의 통로 되게 하실 것 .. 이것이 그분의 형상 표현이자 그분을 대표하여 다스림인 영의 통치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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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거짓자아, 옛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 육신 Flesh : 하나님을 거역하는(Q 의지함 없이 스스로를 위하는, 자기중심적인, 타고난 성품(=천연적 생명) -- h를 빼고 거꾸로 쓰면 self, 육신은 자신의 생각대로<실은 타락한 사탄의 생각일 수 있음.. 사탄에게 길들여진 채 속아 사는, 사탄의 생각따라> , 자행자제하는 타락한<자아>임 = 옛성품인 죄된 본성, 마귀의 성품임
**그외의 표현들로서 피부(살갗), 몸을 지칭..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그의 사역을 저지하는 요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겉사람과 속사람의 불일치 곧 속사람은 한 방향을 향하고 겉사람은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 자신의 겉사람이 영의 통제에 불순종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대로 행할 수 없음을 언젠가는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 언제인가 그의 사역에서 가장 큰 문제거리가 영을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그의 겉사람임을 발견해야 한다.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다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며, 영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사람의 상태를 만지며, 또한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영으로써 만지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겉사람의 방해 때문에 영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일도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의 겉사람이 아직 기본적으로 다름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본적인 다름이 결여될 때 결국 기본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흥분이든 어떤 열성이든 어떤 고초이든 모두 헛수고가 된다. 오직 이 기본적인 다룸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유용한 사람으로 만든다.
속사람과 겉사람
로마서에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는 말씀이 있다(7:22). 우리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또한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하는 것을 보여준다(3:16). 또 다른 곳에서 바울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말한다(고후 4:16).
성경은 사람을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나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사람의 영은 속사람이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사람 밖은 겉사람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 사람의 영이 바로 속사람이고 보통사람들이 감지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겉사람이다. 우리 속사람은 옷 한 벌을 입은 것같이 겉 사람을 입고 있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과 그분의 영과 그분의 생명을 두신 곳은 바로 우리의 속사람인 것이다. 이 속사람 밖에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곧 혼]가 있으며 가장 밖에는 우리 전체의 육체인 우리의 몸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속사람이 흘러나오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속사람이 겉사람을 뚫고 나올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문제이다. 속사람은 겉사람이 뚫릴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일의 첫째 되는 문제가 상대편에게 있지 않고 우리 편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속사람은 옥에 갇힌 것처럼 감금된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영은 덮개로 덮여진 것 같아서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영이 겉사람을 뚫고 밖으로 홀러나오는 훈련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사역하지 못한다. 겉사람보다 우리를 더 제재하는 것은 없다. 우리의 사역이 효과적인가는 우리 겉사람이 주님에 의해 파쇄되어서 속사람이 파쇄된 겉사람을 통해 나올 수 있는가에 있다. 이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주님은 속사람이 출구를 얻도록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신다. 속사람이 나올 때 많은 죄인들은 축복을 얻게 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입게 될 것이다.
죽음과 열매 맺음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주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생명은 밀알 안에 있고 밀알 밖에는 상당히 두꺼운 한 겹의 껍질이 있다. 이 껍질이 갈라지지 않는 한, 밀알은 자라나지 못한다.『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에서 이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땅 속의 온도와 수분 등이 작용하여 껍질을 갈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껍질이 갈라져야만 밀알이 자란다. 그러므로 문제는 당신 속에 생명이 있는가만이 아니라 밖의 껍질이 갈라졌는가이다.
이 구절에 이어서,< 자기 혼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혼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주님은 밖의 껍질이 바로 우리 자신의 생명이고, 안의 생명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하는 생명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속에 있는 생명이 나오게 하려면 밖의 생명은 반드시 해를 입어야 한다. 밖의 것이 파쇄되지 않는 한, 속의 것은 나올 수 없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한 무리가 있다. 주님의 생명이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두 가지의 다른 상태가 있다. 하나는 생명이 제한받고 감금되고 포위되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그의 몸에서 길을 뚫어서 그에게서 생명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형이다. 오늘 문제는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에 있지 않고 생명이 어떻게 우리 몸에서 나가느냐에 있다. 우리가 주님에 의해 파쇄되어야 한다는 말은 한낱 지나가는 말이나 교리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인 우리가 정말 파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님의 생명이 온 땅을 충만케 할 수 없는 데 있지 않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봉쇄되어 있는 데 있다! 주님께서 교회를 축복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봉쇄되고 우리 안에 감금되어서 나갈 출구를 얻지 못하시는 것이다.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 우리는 결코 교회의 축복이 될 수 없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를 바랄 수도 없다!
옥합을 깨뜨려야 함
성경은 우리게게 순전한 나드 향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특별히 「순전한」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그러므로 이 향유는 순전한 나드 기름이고 진실로 신령한 것이다. 그러나 옥합이 깨지지 않으면 결코 순전한 나드 기름이 흘러나올 수 없다. 기묘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향유보다 옥합을 더 감상하고 향유보다 옥합을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느끼며 속사람보다 겉사람을 더 보배롭게 생각한다. 이것이 교회 안의 어려움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총명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남보다 구변도 있고 남보다 일도 빨리 처리하며 일에 있어서 남보다 더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골동품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옥합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향기 냄새를 맡는 사람들이다. 겉의 것이 파쇄되지 않고 속의 것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자신에게 갈 길이 없을뿐더러 교회에도 또한 갈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서 성령의 역사가 멈춘 적이 없었다. 한 가지 환경 뒤에 따라오는 다른 환경, 한 가지 일 뒤에 발생하는 다른 일들은 성령의 통제로서 그 목적은 오직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여 우리 속사람으로 뚫고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약간의 괴로움을 당할 때 불평하고 약간의 좌절이 있을 때 원망하는 데 있다.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길을 예비하시는데 우리들은 주님의 손이 우리를 한번 만지기만 해도 그것을 싫어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의견을 달리하며 소극적이 되어 버린다.
구원받은 때부터 오늘날까지 주님은 수차 여러 모로 우리 몸에서 역사하셨다. 그 목적은 우리 자신들을 파쇄하시려는 데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주님의 목적은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는 것이다. 보배는 질그룻 안에 있다. 누가 당신의 질그릇을 원하겠는가? 교회 안에 필요한 것은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이다. 그러나 질그릇이 파쇄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속의 보배를 볼 수 있겠는가?
주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역사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 목적은 바로 질그룻을 깨뜨리고 옥합을 깨뜨리며 밖의 껍질을 깨뜨리는 것이다. 주님은 그분께 속한 사람에게서 그분의 축복이 세상으로 통하는 하나의 길을 얻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겉사람의 파쇄가 얼마나 중요한지! 파쇄되지 않고서는 결코 사역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반드시 파쇄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겉사람이 완전히 파쇄되고 주님의 사역으로 길을 얻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풀어놓지 말고 우리 자신을 보류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몸에 대해 의도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 내야 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역사를 하시며 그들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갖고 계시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주님이 갖고 계신 의도를 찾아낼 수 있기를! 주님이 우리 눈을 열어 주실 때 비로소 우리가 일생 동안 거친 모든 일들이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어떤 일도 헛되이 하시지 않으신다. 주님의 목적이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환경이 다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다 주님의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 자신을 파쇄하기 위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손을 대기도 전에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체험들과 혼란과 환경들이 다 우리의 최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들이 가장 좋은 것들이므로 우리는 주님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도록 요구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서, 『주여! 가장 좋은 것 한 가지를 택하도록 허락해 주소서! 』라고 간구한다면,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네게 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매일 네가 만난 환경이 네게 가장 큰 유익이 된다. 』 주님이 우리를 위해 안배하신 모든 것들은 우리 겉사람을 헐어 버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고 영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영을 사용할 수 있다.
파쇄와 시간
주님은 우리의 겉사람을 파쇄하기 위하여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다. 하나는 점차적인 것이고 하나는 돌연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님이 먼저 그를 돌연적으로 파쇄하시고 그런 다음 다시 점차적으로 파쇄하신다. 이것은 돌연적인 것이 먼저이고 점차적인 것이 나중인 경우이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은 날마다 환경과 시련을 주시다가 어느 날 돌연히 대대적인 파쇄를 행하신다. 이것은 점차적인 것이 먼저이고 돌연적인 것이 나중인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받은 파쇄는 돌연적인 것이 먼저이고 점차적인 것이 나중이거나, 점차 적인 것이 먼저이고 돌연적인 것이 나중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주님은 올바르게 이 길을 가는 사람들 위에 파쇄 작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보통 수년의 기간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이 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 단축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은 몇 년의 시간으로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십 년, 이십 년을 사용하셔도 이 일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이것은 매우 엄숙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기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가련한 일은 없다. 많은 때 교회가 축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 안에서 전도에 능하고 우리의 감정은 사람들을 전도하라고 격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통하여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만지실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시간을 길게 끌게 되고 아주 큰 손실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과거에 한 번의 철저한 헌신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면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교회의 앞날을 위하여, 복음의 장래를 위하여, 그리고 당신의 길을 위하여, 나 개인의 생명을 위하여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보류 없이 내 자신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주여! 내 자신을 기꺼이 당신 손에 맡깁니다! 당신이 내 몸에서 나아갈 길을 얻으시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의미
우리는 십자가에 대하여 계속 들어왔을 것이다. 십자가가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할 정도로 들었는데, 대체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자가는 겉사람의 파쇄를 의미한다. 십자가는 겉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껍질을 갈라지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당신의 겉사람 일체를 다 헐어버린다. 당신의 의견과 당신의 방법 그리고 당신의 총명과 자애(自愛)를 헐어버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헐어버린다. 당신의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속사람이 나오고 당신의 영이 나올 수 있다. 이 길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될 때 우리의 영은 쉽게 나온다. 어떤 형제가 있는데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예리한 생각과 강인한 의지와 냉철하고 깊은 감정의 소유자라는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강인한 의지와 총명한 생각과 냉철하고 깊은 감정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을 만진다. 사람들은 그와 교제를 나눌 때마다 그에게서 깨끗한 영을 만진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는 그 사람이 파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한 자매가 있는데 그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아주 빠르고 생각과 말이 빠르고 죄의 자백도 빠르고 편지도 빨리 쓰고 빨리 찢어버린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녀의 빠른 것을 만지는 게 아니라 그녀의 영을 만진다. 이는 그녀가 파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겉사람이 파쇄되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주님의 오 년, 십 년의 다루심을 받으면서도 계속 우리의 결점을 보유하고 전과 같은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님으로 하여금 우리 몸에서 출구를 얻으시도록 그분께 양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기본적인 요구이다.
파쇄되지 않은 두 가지 원인
왜 어떤 사람은 수년간의 다룸을 받고서도 그 다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가? 주님께서 어떤 사람의 강한 의지를, 어떤 사람의 강한 감정을, 어떤 사람의 강한 생각을 헐어버리실 수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수년간 다룸을 받고서도 아직 파쇄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것에 두 가지 큰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첫째는, 그들이 흑암에 거하고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헐고 계시는데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모른다. 그들에게 빛이 결여되어 있고 그들이 빛 안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사람뿐이고, 항상 누구누구가 자기와 대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환경만 보고 환경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환경을 탓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를 주사 이것이 하나님의 손임을 보고 그분께 무릎 꿇고, 『주여, 이것은 당신이시요, 당신이심으로 나는 다만 영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바란다.
최소한 우리들은 우리를 다루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최소한 우리를 다루는 손이 세상 사람이나 가족이나 교회 형제 자매들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를 다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귀용 여사처럼 무릎을 꿇고 그러한 손에 입 맞추고 그 손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에게 이런 빛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이라면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그것을 받고 믿어야 함을 보기 바란다.
둘째의 원인은 그들이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파쇄되는 데 하나의 큰 장애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도록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제해질 때 우리는 그분을 경배하며, 『주여, 이것이 당신의 손이라면 내 마음 속에서 이것을 받게 하게 하소서』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오해와 모든 불평과 불만의 유일한 이유는 은밀하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임을 기억하라. 우리가 은밀하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구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것은 극히 큰 문제이다. 많은 경우 일이 터지는 것은 우리가 또 다시 자기를 구출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다.
십자가에 올라가서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만이 주님을 아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억지로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의 감정의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려고 한다. 무릇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으리요』라고 말하는 자만이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 포도주를 마실 뿐 두 가지를 마시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말씀하시어 우리가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기 바란다. 『나의 하나님! 이 모든 것이 당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보았습니다. 지난 오 년, 십 년 또는 이십 년 동안 제가 걸어온 모든 길은 당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행하심은 당신의 생명이 내 몸에서 살아 나타나는 당신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리석어서 이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을 구출하기 위하여 많은 방법을 사용하여 당신의 시간을 지연시켰습니다. 오늘 당신의 손을 보고서 내 자신을 당신께 드리기 원합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손에 내 자신을 맡겨 드립니다』.
상처 보기를 바람
파쇄된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강팍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파쇄될 때 그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구약의 야곱을 보면 그는 모태에서부터 형과 다투었다. 그는 말썽장이에다 간사와 궤술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고통으로 가득했는데, 젊었을 때에는 밖에서 도망다녔고 이십 년 동안 라반의 꾀임에 넘어갔으며 마음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길 도중에 죽었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팔려갔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베냐민은 애굽에 구류되었다. 그는 연이어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았고 순조롭지 않은 많은 일들을 당했다. 그는 한 번 두 번 하나님에게 매를 맞았다. 야곱의 역사는 하나님께 매맞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여러 번의 다룸을 받은 후 야곱은 변화되었다. 그의 말년은 정말 빛이 청청하였다. 야곱이 바로의 말에 답할 때 그는 얼마나 장엄했는지! 임종시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께 경배했던 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들들과 자손들을 위한 그의 축복은 얼마나 분명한지! 그의 마지막 역사를 읽어볼 때 우리는 고개 숙여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여기에 성숙하고 하나님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 야곱은 수십 년의 다룸을 통하여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었다.
우리는 그의 노년을 통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야곱의 성품을 갖고 있다. 어쩌면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주님이 우리 몸에서 길을 열으심으로써 우리 속사람이 흘러나와 보일 정도로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는 것이다. 이것은 귀한 일이자 주님을 섬기는 사람의 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을 섬길 수 있고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그들을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 아닌 교리와 신학들은 다 쓸모 없다. 성경 지식만 가지고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그에게서 흘러나올 수 있는 사람이 유용한 사람이다.
우리 겉사람이 매맞고 처리를 받으며 여러 환경들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길 때, 우리 속에 있는 영은 비로소 우리 몸에서 흘러나갈 수 있다. 우리는 처리받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그의 온 존재가 완벽한 그대로 남아 있는 형제나 자매를 만나기를 두려워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흘히 여기사 우리 앞에 이 길을 분명히 두심으로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없고 오직 이것이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시기를!
또한 지난 십 년, 이십 년 동안의 우리 몸에서의 주님의 모든 다루심이 이 목적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시기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서 이루신 주님의 역사를 경멸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겉사람의 파쇄가 무엇인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보여주시기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사람의 모든 것은 머리 속에 있고 지식 안에 있는 것이므로 이것들은 다 무익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철저한 다룸을 주시기를!
워치만 니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제1장, 파쇄의 필요성", 한국복음서원]
http://blog.naver.com/6103sun?Redirect=Log&logNo=90092286136새예루살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점 없고 흠 없으신 주예수께서 아버지 뜻에 따름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혼생명을 버리사 세상에 의해 무고히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사 머리-손, 발,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려 혼생명 죽음 통해 영을 자유케 하고 부활에 이르시고 그 부활생명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많은 자녀 얻으신, 죽음으로써 영원히 다시 사는 본을 보이셨듯이) (날마다 이기적 혼생명인) 자기를 부인하고(주 앞에 자신을 내려 놓고, 벌거벗고 비워 내어드림으로써 주님의 뜻, 생각과 심정이 하나되어 동행함으로써 주 되심 인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세상고난을 통해 주께서 자행자제하는 자아, 곧 옥합을 깨뜨림의 자아 파쇄를 하실 수 있도록, 하여 그 안의 영을 자유케 하시도록 허용해 드림으로써 )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막 8:34하
<가나안7족속>영적 의미 (=수3:10 ) : 우상(세상과 자아)과 귀신들이 그 실체 === 사탄마귀-악령들-귀신들 <하늘의 악한 영-어둠세상의 주관자, 정사(통치권)-권세(행정권)-능력(가정-개인)-귀신> 두배교탐전향정
-- 자기애가 그 근본동기 : 타락한 자기마음 신뢰 + 세상가치 추구/세상의 말에 동의-->자기사랑/유익추구-->자기 의/주장 내세움-->우상숭배/세상일락에 빠짐-->두려움/짓밟힘(분노)
***가톨릭의 대죄 7가지(그레고리1세의 7죄종) = 교만-탐욕-정욕(색욕)-탐식(폭식)-시기(질투)-분노-나태,
1. 헷 족속 (넘어뜨림, 무너뜨림, 두려움/위협을 뜻함 )
---갑자기 엄습하여 멸절시켜버릴 듯한 위협의 기세. Q 사랑의 충만을 알고 경험하며 열정적으로 반응함과 Q을 피난처-도움-방패-산성으로 취하여 경험함 통한 믿음의 신뢰 가운데 아버지와 자녀의 친밀함의 감사-찬양으로 살도록 하는 대신, Q신앙을 공공연히 반대하여 믿는 이들을 위협하거나 벌 주기 좋아하는 진노의 Q으로 오해하도록 두려움(공포)로 하나님을 대하게 하는 마귀의 영 ===두려움-악몽, 우울증, 거짓, 속임으로 <죄사함의 확신 흔드는> 영적 두려움의 고통 야기..
2. 기르가스 족속(진흙탕, 크게 됨-우수/자랑/초과-과장하여 말함, 돌아서게 함을 뜻함=배역/기만/자랑..시기-헐뜯음-비방)
---Q과 세상 동시에 추구/양다리 걸치기.. -- 빛 비춤 아래 <순결>과 <온전함>의 일편단심을 떠나, <스스로 무엇 이루었다> 착각하는, 영적 우월감 또는 세상적 성취를 자랑...<성령 체험>없어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반신반의, 세상 인정/가치추구,
===때로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고 더 신뢰함>의 <역사적, 물질적, 논리적>실증주의를 고집. 세상의 것에 뜻을 두게 하며 영에 속한 일을 믿지 않음으로 인해 말씀의 영적 이해와 삶에의 적용을 거부.
3. 아모리 족속(산에 오르는자, 산중 사람을 뜻함=교만-오만-무례히 행함/자고함-합당치 못한 모든 폭언)
--- <견고한 진-산성>안에 거하며 자칭 고결하여 속세를 떠난 자, 속세 떠난 높은 자기 의로움/명예--자기자랑-고결함 주장-육적교만, ...산은 <하나님과 함께 머문 호렙산의 모세처럼>하나님의 이상과 비전을 보는 곳이어야함...아직도 이루었다 함 아니함의 <겸손/온유함> 가운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전심으로 생존하시는 하나님의 이상과 비전 구하지도 않고 참된 JC경험도 없이 말로만 신앙생활 하는자. ===명예욕을 추구, 또한 거만-흉폭하여 자신의 권세로 다른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림.
4. 가나안 족속 (낮은 땅/평야지대, 악덕상인을 뜻함=존중받지 못하는, 종된 자기를 비하/한탄-자기연민-자포자기.. 스스로 일어나 빗겨가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함. 자기유익추구/모든 만족함 없는 탐욕/성냄(성급)/악함/불의 행함-이기심)
---원래 그리스도인은 낮은 데로 오사 부어주신 은혜를 받아 감사/자족함의 믿음-이웃사랑의 의로움으로 자원하여 섬기는 자녀들.. 은혜안에 잠겨 머물 때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 누림으로써 풍성한 알곡 열매 (산출하는생명)-우양(구속하는 생명)의 불어남을 얻고, 금은동철을(변화되고 건축하는 생명) 얻어 JC의 몸을 건축케 됨...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에서부터 영접하여 <주><아버지>라 부르지 않으며, 다만 육적자신만 바라보고 자행자제함으로써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익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리낌없이 행함.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상인>...진리 대적-왜곡/의심--거역-오류-불신...더럽고 비천함 ===제일 지저분한 마귀의 영으로 끝없이 의심과 과장, 모든 종류의 중독에 빠지게 함, 의심에 사로잡혀 진실과 진리를 왜곡, 임마누엘 주님 임재를 떠나 눈앞의 세상-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람을 의식하며 인정받고 이용하고자 함.
5. 브리스 족속(성곽없는 촌락, 타락한 마음에 속한 자를 뜻함 = 무방비, 안정되지 못함, 준비 없는 충동적 싸움 좋아함/태만, 방심, 방종)
---타락한 자기 마음 신뢰..<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좋은 게 좋은 것=남에게 피해 안끼치고 나만 착하게 살면 되지=될대로 되라지>생각 가운데 처함--<남은자-법대로 경기하며 경기장안에서 끝까지 전력투구함과 견뎌냄으로 승리하는 자>의 사상을 버리고, 영안에 깨어 있어 기도함, 주님 신뢰하는 믿음, 성령충만, 성령의 검으로 완전무장 갖추고 함께 서서 싸워 이김의 <영적전쟁>을 부러 잊으려 함, 따라서 하나님을 피난처/도움/구원자로 누림의 경험 없음. <참진리>인지 아닌지에 대한, 영적 대적에 대한 경계심/분별 없고 우유부단...하나님 생명의 성장성숙열매맺음 제한 --- 스스로 미개한 상태로 방치 함. ===멀리 보지 못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으므로, 결국 말씀의 빛을 깨닫지 못하기에 참 교회 되지 못하며 약한 자립심과 낮은 존재감으로 인해 신앙의 올곧음 없는 정함없는 상태로 머무르게 됨. 따라서 마귀의 삼킨 바 될 것임.
6. 히위 족속(마을/시골/촌사람의 뜻 --- 기브온족속이 이에 해당.= 어울려 놀며 탕진하는 도시문화의 화려함<쾌락-향락>을 흠모하며 세상 의견과 가치에 부화뇌동/휩쓸림)
---자기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진취적 추구를 포기해버림으로써 자기 발전을 제한, 게으름으로 인해 <말씀을 믿고 추구하며 따름의 신앙의 참 깊이>에 다다르지 못하고, 봉사로<몸으로>만 신앙생활 하고자 함. 영혼따로 몸따로 시키는 일만 하고 깊이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추구하여 알기를 게을리 함....영적으로 장성하지 못함..세상 즐거움 추구-->혼미/우상숭배--> 하나님을 그 대용물로 대치(거짓자아-이기심이 그 뿌리)
===또한 세상의 가짜<모조품>에 미혹되고 <참된 것의 실상>을 오해함으로 <참된 것> 추구하는 열정이 식어짐.. "마을 사람(교회) 또는 생명을 주는 곳"이라 속이는 가짜... 즉, <참된 것>흉내를 내어 모독하거나 <참된 것>의 진리를 헐뜯어 혼잡케 하는<사이비> 마귀의 영
===예술, 음악, 스포츠, 오락등... 땅의 것을 탐닉케 하는 향락과 쾌락제일주의(자기사랑이 그 뿌리인 우상숭배)로 빠지게 하며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즐김-취미-오락 등 추구케 함으로써 주님이 맡기신 모든 것 <신자의 시간-재물-영혼몸의 건강등>을 탈취하여 낭비케 하는 영들.
7. 여부스 족속(-무언가 얻기 위해-밟음, 짓밟힘, 밀까부르는 타작마당의 뜻 = 정죄/죄책/잔인/잔멸---분노)
--- 고난가운데 오래참음과 견딤을 통해 이루시는 궁극적 자아파쇄/자기십자가 짐으로 얻어지는 <주와 한 영됨 이룸>의 샬롬< 평강>의 땅인 예루살렘 추구하는 대신, 물질주의<기복신앙>와 세상 힘과 권력 추구케 함으로 왜곡 ===> 연약한 자를 체를 치듯 죽일 듯이 선악간에 권위 또는 지식으로 생명 억압/기죽임/참소/조소/멸시/수치감/모욕감-비판, 정죄/증오/분노/원망/블평 쏟아냄) --- 눈에 드러나는 물질적 풍요를 얻을 때만 [평강 있다]고 외치는 <현세천국>의 물질주의의 속성을 따름. === 권위로 억압하는 영, 잘못된 율법주의 또는 행위구원론을 통해 참된 진리 안에 있는 이들을 정죄하고 판단.. 자기(유익)를 위해 주위사람들을 자신에게 복속시키려 함.
@@@ 7가지 족속 그외의 영들(삿 10 : 11-12)
: 애굽---세상, 아말렉(=에돔)---육신<자행자제>, 암몬(/모압)---정욕, 블레셋---요동/방황/불안정/변덕, 마온---속박/종됨, 시돈---게으름/나태(태만)
http://ritsapu-kr.com/main/index.html리츠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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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7족속 멸절 사건이 주는 영적인 교훈
==마음속에 있는 적들을 정복하라
1991년 5월 구약학자 브루스 워키(Bruce Waltke) 교수님이 학교를 떠나게 되셨고, 워키 교수님이 그해 졸업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가 졸업생들에게 남긴 마지막 설교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에 들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설교 핵심 메시지는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7족속을 진멸할 것을 명령하셨는데, 이것의 영적 의미를 선명하게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허리가 휜 노인들과 아무것도 분간을 못 하는 젖 먹는 유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 ]
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현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설명해 주셨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명령을 하셨을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나안 7족속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렇게 철저히 죽이라고 명령하셨는가?
여호수아서를 읽을 때마다 필자의 머릿속에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아마 많은 성도가 동일한 의문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신약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이 아닌가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한번은 나이 많은 권사님 한 분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시고,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죠?"
그 권사님 질문은 구약성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솔직한 질문이었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이 그 권사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권사님과 동일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시대에도 있었다.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영지주의 이단들이었다.
이들은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신약성경의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으로 여기고 구약성경 자체를 배격하게 되었다.
구약성경을 배격했을 뿐만 아니라 신약 저자들이 인용한 구약성경까지 지워 버리기도 했다. 이들은 이들 자신만의 특별한 지식을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육신을 천하게 여겨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까지 부정하여 초대교회 당시 대표적인 이단이 되었다(요이 1:7).
이들은 또한 구원 얻은 자들은 구약 율법에 메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도덕률 폐기론"(antinomianism)의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 이들은 오늘날 구원파 이단과 매우 흡사한 이단적 교리를 갖고 있었다.
왜 이 말을 하는가? 구약성경에 계시된 메시지를 잘못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면 초대교회 시대에 나타난 영지주의 이단이나 현시대에 활동하는 구원파 이단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의미와 예표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진 구약 본문들
구약성경에 나타난 사건이나 제도나 인물 등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신약시대에 완성될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예를 들면, 구약시대 제사 제도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의(祭儀)이다.
하지만 제사드릴 때 드리는 제물의 피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인들을 용서하실 것을 미리 보여 주시는 예표(豫表)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염소의 피를 뿌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했던 대제사장의 사역은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었던 제도이다. 동시에 대제사장 사역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들고 하늘나라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사역도 예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나안 7족속을 멸절하도록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죄도 분간하지 못하는 젖 먹는 유아들까지 멸절하라는 명령에 대한 정당성은 무엇인가?
만약 오늘날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지하드의 테러 행위에 못지않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구약학계에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는 구약 해석의 난제 중에 하나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1)
==가나안 7족속 멸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해석학적 원리
이제 졸업식에서 워키 교수가 설교했던 가나안 7족속 멸절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지금까지 서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가나안 7족속의 멸절은 역사적 사건 자체를 뛰어넘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님의 경륜은 바로 이 점을 새 언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의도하셨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 방식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살게 하셨는가? 왜 이들을 인도해 내셨는가? 왜 이들로 하여금 홍해를 건너게 하셨는가? 왜 이들로 하여금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는가? 왜 이들로 하여금 가데스바네아의 반역을 경험하게 하셨는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많은 시험을 경험했는가? 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이들에게 약속하셨는가? 왜 '예수'라는 이름과 같은 '여호수아'를 세워서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는가? 등의 의문은 구약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무엇보다 가나안 7족속 멸절 명령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깨닫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시고 40년간 광야 생활을 통하여 훈련하신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새 언약 시대를 사는 우리를 위한 하나의 삶의 모형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과거 애굽 땅과 시나이반도와 요르단 지역과 팔레스타인 땅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 자체를 뛰어넘는 귀중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이들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셨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의 귀중한 예표(모형)로 보여 주신 것이다.
특히 유월절이라는 특별한 절기를 주신 것은 출애굽 사건의 중요한 구속사적인 의미를 밝히 드러낸다.
유월절 밤에 애굽의 장자들은 죽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흠 없는 어린양이나 염소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해 살아남게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에 대한 귀중한 모형론적 사건이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유월절 어린양이시다.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님의 진노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널 넘어서 가리라(265장 1절).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를 바름으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의 피가 나의 죄를 씻는다고 믿는 자에게 영적으로 살아나는 은혜가 임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수 믿는다'는 말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피가 나의 죄를 씻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요 1:29).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넌 사건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임과 동시에 중요한 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홍해를 건넌 사건은 세례의 예표라고 한다(고전 10:2).
갈라진 물속을 들어갔다가 나오는 이미지는 세례의 이미지와 통하는 면이 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시험들은 우리의 시험을 또한 예표한다.
원망, 불평, 탐욕, 우상숭배, 간음, 지도자에 대한 도전, 불신앙 등은 우리가 날마다 겪고 있는 시험들이다(고전 10:6-10).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 구원의 증표로 세례를 받고, 그 이후 성도들은 신앙생활의 여정으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시험을 받으면서 영적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똑같은 시험의 과정을 거쳐 한 단계씩 성장해 간다. 그들의 삶의 모습은 마치 우리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시험을 열거한 후에 우리에게 이런 경고로 결론을 맺는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1)
이스라엘 역사는 현시대를 사는 우리를 위한 본보기이다.
40년 광야 생활 후에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정착한 것은 성도가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천국에 입성하는 것을 예표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하는 예표적인 장소로서 의미가 크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이스라엘 땅이 정말 젖과 꿀이 흐를 정도로 비옥한 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시나이반도에 비하면 좋은 땅이지만 대한민국 땅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열악한 땅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나안 땅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을까? 그 답은 가나안 땅이 천국을 상징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듯이 새로운 여호수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다.
히브리식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헬라식 이름이 예수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음을 보이는 예표적인 인물이다.
위대한 영도자 모세는 단 한 번의 실수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세는 율법을 예표하는 인물로서 율법의 준수를 통하여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예표적으로 보인 것이다.
모세라는 인물 자신을 생각할 때, 그렇게 40년간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겼는데 어떻게 단 한 번의 실수로 가나안 땅을 놓치게 되었을까? 많은 의문이 든다. 그의 인물이 가진 예표적 의미 때문이다.
만약 문자적으로 이를 받게 된다면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용서의 기회를 주시지 않는 잔인한 하나님으로 묘사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구약의 사건, 제도, 인물 등은 모형론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해야 구약성경의 의미를 우리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가나안 7족속 멸절이 갖는 모형론적 의미는?
이제 가나안 7족속 멸절 명령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지닐까?
가나안 땅은 천국을 상징한다고 앞에서 말했다. 천국, 즉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다.
불신 영혼에게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미치게 될 때, 그 영혼에 천국이 임한 것이다.
전도는 천국이 임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이 들어갈 때 그 영혼에 천국이 임했다고 말씀하셨다(마 12:28).
또 질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통치하심이 미칠 때, 천국은 더욱 깊은 차원으로 임하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임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완전하신 통치하심은 믿는 순간에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서서히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더욱 온전하신 통치하심이 임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임한 우리의 마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아직 수많은 정복되지 않은 옛 사람의 성품들이 남아 있다.
미움, 시기, 질투, 욕심, 정욕, 교만, 이기심, 등등 수많은 적들이 우리 속에 남아 있다.
가나안 7족속들이 바로 우리 속에 정복되지 않은 육신적인 옛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워키 교수가 졸업식 설교에서 한 말의 핵심이다.
우리 마음속에 진정한 안식은 언제 찾아오느냐?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적들이 정복될 때,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나라가 임했지만,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힘써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적들을 정복해야 했다.
그래야 하나님나라의 진정한 평화가 우리 마음속에 찾아온다. 워키 교수는 졸업식에서 바로 이 점을 강조했다.
==왜 우리 마음에 평안이 없는가?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 마음속에 왜 평안이 없고 각가지 불신자들이 겪는 동일한 괴로움을 경험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에 그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적들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쓴 뿌리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자주 괴로움을 당하는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탐욕 때문에 얼마나 자주 넘어지고 쓰러지는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교만 때문에 사람들의 멸시거리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미움 때문에 얼마나 자주 주위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가?
마음속에 남아 있는 헛된 명예욕 때문에 얼마나 자주 허황되고 방황하는 삶을 경험하는가? 모두 정복되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이 아직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고 눈에 연기처럼 되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왜 수많은 한국교회의 영적인 거장들이 치욕과 멸시와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가?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정복되지 않은 적들 때문이다.
자리에 대한 탐심 때문에 교회 세습으로 사회의 지탄 대상이 된 적이 얼마나 많은가?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헌금을 유용하고 치욕을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육신의 정욕을 통제하지 못해서 유례없는 영적인 업적을 쌓고도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
***사망당시 나이<장소>
: 아브라함175세<헤브론>=100세에 이삭 출생---이삭180세<헤브론>=60세에 야곱 출생--야곱147세<애굽>=90세에 요셉 출생--요셉110세<애굽>
===[[출애굽 전후 애굽의 왕들]]
===>당시 역사적 배경 ::: 이집트 중 왕조 중간기(가나안의 셈족 일파인 힉소스가 이집트를 침입<1700 BC> 점령 통치했던 기간...이에 앞서서 요셉은 중 왕조, 제12대 세소스트리스때 총리로 등극하여 7년 풍년 후 7년 흉년 상황 극복 + 야곱의 아들들 70인의 애굽 이주 정착...이후 중왕조 말<1800 BC>까지 통치 후 임종 맞았음)에서 신 왕조(18왕조라고도 함 ::: 아모세1세-->투트모세1세-->투트모세2세/하트셉수트-->투트모세3세-->아멘호텝2세)로 교체되는 시기, :::: 따라서 힉소스를 몰아내고 아모세(아흐모세)1세에 의해 신 왕조가 열린 시점에서 이스라엘이 같은 셈족 계열로서 (외부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투트모세1세는 염려했음....<투트모세1세의 딸, 하트셉수트 공주가 나일 강가에서 갈대 상자 안의 모세를 발견하게 됨>
===>처음엔 *1) 고센의 이스라엘 자손들 위에 감독자와 간역자들을 세워서 무거운 짐을 지우고 괴롭게 함으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함<아흐모세1세>.....이는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게 되는>역으로 강건케 하는 효과 유발 --->더 괴롭히는 엄한 추가적 노동, 곧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가지 일을 부과함 *2) 남아살해 명령<투트모세1세> ::: (1)히브리 산파들의 손으로 남아는 죽이고 여야만 살리도록 명령 강제함 --- 하나님 앞에서 <목숨 걸고>경외하기를 선택 --- 이스라엘은 더 번성하고 매우 강해짐...히브리 산파들의 집안을 흥왕케 하심. (2)애굽 백성들의 손으로 직접 남아는 죽이고 여아만 살려두도록 명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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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_이집트지도) 지금 보시는 그림은 이집트의 지도입니다.
우선 이집트 왕조를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나눌 수 있는데 상 이집트의 수도는 테베(지금의 룩소르)였고, 하 이집트는 현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 부근에 있는 멤피스였습니다.
이집트의 역사에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가 통일되었던 시기는 왕국이 안정적이던 시기였고, 분열되었던 시기는 중간기라고 불리는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서는 이런 중간기가 세 번 등장합니다.
(자료2_연대산출) 우선 출애굽이 언제쯤 이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분명한 솔로몬 재위연도가 B.C.970년입니다.
***성전 건축...솔로몬 재위 BC970. ..출애굽 BC1446....야곱의 애굽행 BC1876
[왕상 6:1-왕상 6:1]..(1)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지 사년째 되는 해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은 주의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따르면 솔로몬이 B.C.966년에 성전을 짓기 시작했고, 480년 전인 B.C.1446년에 출애굽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당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430년을 살았기 때문에 야곱이 이집트에 들어온 것이 B.C.1876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3_이집트 왕조)
앞서 말씀드린 출애굽 연도가 B.C.1446년이라면 당시는 이집트 18왕조입니다.
그렇다면 이집트 18왕조는 어떤 왕조인가를 말씀드리기 전에 이집트의 제2중간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제2중간기는 13왕조부터 17왕조까지를 말하는데 특별히 15-16왕조는 이집트인들에게 매우 치욕스러운 기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5-16왕조는 이집트왕권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처럼 힉소스라는 민족<가나안에서 들어 온 셈족 계열에 속함>에서 이집트가 오랜 시간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왕조
1>왕조 이전시대 2>고 왕조(약3100 BC~2200 BC 1-6왕조) : 기자 피라미드, 수도 멤피스 3>제1중간기...(7~11 왕조 전반기, 분열) 4>중 왕조(2050 BC~1800 BC 11왕조 후반--12왕조)..수도 테베(현재의 룩소르) 5>제2중간기...(13-17왕조, 분열) : 1700 BC부터 힉소스 침입(15-16왕조), 요셉 시기 6>신 왕조(1550 BC~1100 BC, 18-20 왕조) : 출애굽 시기
(자료4_크눔호텝 벽화)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야곱, 요셉이 이집트를 자유롭게 오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인 것이 1824년 영국의 고고학자 윌킨슨(G.Wilkinson)은 이집트 중부 지방의 한 유적지인 베니 하산에 있는 절벽의 중턱에 만들어진 바위굴 무덤들을 조사하다가 크눔호텝이라 불리는 한 귀족의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안에는 지금 보시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 그림에는 이집트인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턱수염과 화려한 무늬로 짜여진 통치마를 걸친 37명의 힉소스인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서 이집트에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힉소스인들 중에 산양의 머리를 붙들고 있는 인물이 두목인데 이름이 ‘아비샤’라고 벽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벽화가 약 기원전 1900년 경인데 성경의 족장시대와 겹치는 시대입니다. 다시말해 족장들이 이집트를 왕래했다는 것이 이 벽화를 통해 충분히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점령한 것입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의 왕이 12왕조의 세소스트리스2세(B.C.1897-1878년)였습니다.
***애굽의 중 왕조인 12 왕조의 4대 왕 세소스트리스2세(1895 BC~1878 BC) 치리 중반부 때(7년 풍년 시작시점..1885 BC) 총리로 등극하여 5대 왕 세소스트리스3세(1878 BC~1842 BC) 치리 시기까지 총리직 수행<7년 흉년 기간은 1878 BC~1871 BC 에 해당> 야곱 가족의 이주는 1876 BC였음
이때 야곱의 가족 70명이 이집트로 내려와서 약430년을 보내게 되는데 나중에는 노예로 전락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이집트에서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번성하던 시기가 바로 힉소스 통치기간입니다. 같은 셈족이었기 때문에 차별을 받지 않고, 정부와 협력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료5_야곱의 도장)
그래서 힉소스 왕들의 이름은 이스라엘인들의 이름과 비슷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 보이는 힉소스 왕조의 제2대왕의 도장인데 여기에는 야곱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의 평화는 출애굽기 1장 8절에 등장하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왕”이 등장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과연 이 왕은 누구였을까?
(자료6_성구)
[[출 1:8-출 1:11](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9)그 왕이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수도 많고, 힘도 강하다. (10)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신중히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수가 더욱 불어날 것이고, 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들이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이다." (11)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부리는 공사 감독관을 두어서 강제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바로가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끌려 나갔다.
(자료7_아모세 1세의 벽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은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한 이집트 18왕조의 창시자인 아모세(아흐모세) 1세를 가리킵니다.
이 역사를 알면 아모세 1세때부터 이들이 왜 이스라엘 사람들을 경계하고 박해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료8_아모세 1세의 미라...델엘바흐리 은닉장소에서 발견)...
(10)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신중히 대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수가 더욱 불어날 것이고, 또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그들이 우리의 원수들과 합세하여 우리를 치고, 이 땅에서 떠나갈 것이다."
(자료9_레크미레 벽화)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모세1세가 즉위하는 B.C.1570년부터 박해를 받게 됩니다.
***제18왕조 역대왕 : 아흐모세 1세[고센지역 히브리인 박해 시작] -->투트모세1세(25년간 통치)[모세가 태어남...하트셉수트 공주에게 발견됨]-->투트모세 2세(14년간 부인 하트셉수트<이복누이>이 주로 다스림...둘 사이에 후계자 없음)-->투트모세3세<투트모세2세와 궁녀 사이에서 태어남...하트셉수트의 사위..23년간은 하트셉수트의 섭정 받음...섭정 끝나는 시점과 모세가 미디안으로 이주하는 시기와 일치?>
(자료10_제18왕조 역대왕)
그리고 아흐모세1세를 이어 아멘호텝1세, 투트모세1세 때에 이르러 모세가 태어납니다.
모세의 이름이 왜 모세일까? 역대 왕들이 이름이 모두 모세입니다. 그러기에 모세의 이름은 사실 이집트식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이집트식 이름을 히브리말로 하면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출2:10)
이집트의 왕이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에 버려진 모세를 데려다가 자신의 아들로 삼은 이집트의 공주가 성경에는 등장합니다.
사실은 이것은 동화같아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에서 감히 왕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18왕조 투트모세 1세의 딸이었던 하트셉수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수 있는 여자입니다.
저는 모세의 어머니라고 소개된 이집트의 공주가 하트셉수트라고 생각합니다. 하트셉수트는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강력한 여성군주입니다.
(자료11_15 하트셉수트)
투트모세1가 죽고 하트셉수트는 어머니가 다른(이복 남동생) 어린 동생뻘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병약했던 투트모세 2세를 대신해서 이집트를 통치합니다.
그런데 투트모세 2세가 재위 14년만에 죽게됩니다. 그래서 하트셉수트는 자신의 딸인 네페르라를 결혼시켜서 그 사위를 왕으로 세우는데, 그가 당시 6살이었던 투트모세 3세입니다(자료16, 투트모세3세 = 하트셉수트의 23년간의 섭정기간 끝난 후 40년간 통치후 사망....그의 첩실의 아들 아멘호테프2세가 등극,,,이때에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 옴..)
훗날 투트모세 3세는 이집트의 나폴레옹 이라고 불리는 이집트의 절대군주입니다.
하지만 투트모세 3세는 29살이 될 때까지 23년간 하트셉수트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을 뿐이고, 그 만큼 하트셉수트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이 되자 마자 하트셉수트와 관련된 초상. 이름 등을 다 없애버립니다.
아마 모세가 이집트에서 쫓겨난 시기가 하트셉수트가 실각하는 시기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이 때 모세의 나이가 40세였습니다. (투트모세3세는 30세정도)
(자료17)
[행 7:23-행 7:23]....(23)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자료18)
[출 2:23-출 2:23]...(23)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모세가 하트셉수트가 실각<사망>하면서 이집트에서 쫓겨날 때가 40세이고, 그가 다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것이 80세입니다. 그러니까 약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것인데 출애굽기 2장 23절에 따르면 “애굽 왕”[=아마도 투트모세3세]이 죽은 후에야 비로서 모세가 이집트로 돌아옵니다.
이 말은 투트모세 3세가 권력을 잡은 이후에 4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실제로 놀라운 것은 이집트 수천년의 역사동안 이집트를 40년 이상 단독으로 통치했던 왕은 18왕조의 6대왕 투트모세 3세와 19왕조의 람세스2세 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성경과 역사의 일치입니까?
(자료 19_아멘호테프 2세)
그렇다면 출애굽 당시의 애굽 왕이 누구였을까? 투트모세 3세의 뒤를 이은 아멘호테프 2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투트모세 3세때까지 강력했던 이집트가 아멘호테프 2세때에 와서는 급격히 쇠퇴하면서 각지에서 반란이 잦았습니다. 출애굽과 관련해서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야타브, 만복 은혜==
잘 되고, 장수하는 복 (엡 06:1-3)
영국 런던에서 '가정이 무엇이냐'라는 제목으로 그 대 답을 현상모집한 결과 바른 대답이라고 인정을 받은 몇 가지 내용들이 있습니다.
① 가정은 투쟁이 없는 세 계요, 사랑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② 가정은 작은 자가 큰 자가 되고, 큰 자는 작은 자가 되는 장소이다(가정의 평등).
③ 가정은 아버지의 왕국이요, 어머니의 세계요, 아이들의 낙원이다.
④ 가정은 불평이 가장 많으나, 거기에 따라 대우를 잘 하는 곳이다.
⑤ 가정은 우리 애정의 중심인데 거기는 우리 마음에 있는 최선의 소원이 붙어 있는 곳이다.
⑥ 가정은 우리의 위(胃)가 하루 밥을 얻어먹고, 우리의 마음은 천 번이나 머무는 곳이다.
⑦ 가정은 땅위에 있어서 온갖 인간의 허물 과 실패를 달콤한 사랑 속에 서 숨겨 주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오늘 우리가 여기에 덧붙여 말한다고 한다면, 가정이야말로 사람이 세상을 살 동안 '참으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요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하나 님께서 인간에게 명하신 거룩 한 축복이 실현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 그 것은,
Ⅰ.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가 에베소서 6장 3절에 말한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1. 잘 되는 복이라고 하였 습니다.
여기 '잘 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타브라고 하는 데 복이 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 뜻은 ① 형통하다, 그침이 없다(to do well, to be well), 막힘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물이 순하게 흐르듯이 만사가 형통함을 뜻합니다. 순리대로의 행진을 뜻합니다. ② 기쁘게 한다(to make merry)는 뜻으로 쾌감, 만족감, 행복감, 유쾌감으로 이어져가는 것을 뜻합 니다. 그렇다면 잘 되는 복은 마음의 생각과 계획에서부터 행동하는 삶 전반의 모든 경우들에서 만사가 형통함을 의 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 나님 자신의 약속이라고 하였 습니다.
2. 장수하는 복이라고 하였 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5 장 16절에는 같은 원리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 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① 효도하는 개인의 육신적 생명의 장수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키면 약속된 가나안 땅 에서 단명하지 않고 장수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② 또한 계대적(繼代的) 축 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은 자자손손 대대토록 후손들로 이어져감을 뜻합니다. '오래 산다', '생명이 길다', '연장하다'라는 히브리말 아라크입니다. '계속해서 길어진다', '오래 머문다'는 뜻입니다. '한없이 오래 산다'(신4:40)는 말도 됩니다. 이 말은 영어로 '성공하다'(to succeed)라는 말로 역시 계속 이어져나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레갑의 자손들이 이 복을 받았습니 다. 그러나 패역무도한 압살롬은 단명하였습니다. 그것도 노새를 타고 가던 중 상수리 나뭇가지에 그 머리털이 묶여버려 나무에 달린 채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삼하 18:9. 15).
③ 사회적, 국민적 축복을 가리킵니다.
'장수'라고 하는 말 가운데는 국운(國運)이 계속해서 흥왕해나감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효도하는 자손들의 흥왕은 곧 그 사회와 나라 국민 전체에 관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적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믿을 만한 약속이 아닌가! 이 축복은 개인의 장수와 계대적 축복과 사회와 국민적 축복까 지를 말함인데, 그것은 비물 질적인 축복(영적 축복)과 물질적 축복까지를 총망라하는 것을 말합니다.
Ⅱ. 이것은 부모 공경이라고 하는 조건 붙은 계명입니다.
다시 우리 본문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은 '부모 공경'에 따라오는 약속 있는 축복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최우선적으로 약속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하지 않 았던가!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1. 부모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 들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2 장 15절에 「여호와의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1남 1녀(一 男一女)를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한 영은 한꺼번에 많은 남자와 많은 여자를 직접 창조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1남 1녀를 통하여 경건한 많은 자손을 이어가고자 계획하셨다고 하였습니다(창 2:18-23, 마 19:4). 그리고 남여가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고(창 2:24), 경건한 종족 번성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경건한 종족보존과 계승을 위해서 하나님 자신의 창조 계획에 작정되어 있었던 존재입니다. 말하자면 신적 창조의 영광이요, 신적 축복 질서의 거룩한 수단입니다. 여기에 따르는 하나님의 요구는 부모 공경의 계명을 자녀들에게 명했습니다.
2.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 는 축복의 존재입니다.
말라기 2장 10절에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라고 하였습니 다. 하나님 자신을 온 인류의 아버지이시라고 하였습니 다. 그 아버지 하나님은 축복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영부(靈父)인 하나님의 축복을 부모라고 하는 사람을 통하여 자녀에게 대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에 '아버지', '어머니' 의 이름의 존재적 가치와 의의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축복과 사랑을 대행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자녀들 앞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① 이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주어진 이름입니다. 결코 어떤 학문적 노력의 과정이나 연구나 실험의 결과나 다른 어떤 인간 자신의 산물이 아닙니다.
② 이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은 자녀를 가진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직함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갖지 않은 자들에게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이름이 붙거나 따르지 아니합니다.
③ 따라서 이 이름은 가정에서의 전용적 이름이고 오직 자녀를 위하여만 전용되어지는 복스러운 이름입니다. 그 러므로 이 이름은 가정 외에 어떤 사회적 경영에서나 학교에서나 정치적 광장이나 기타 다른 여러 영역에서는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류의 영역에는 또 다른 직함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자녀에게는 오직 아버지, 어머니 외에는 다른 직함으로는 통하지 아니합니다.
④ 가정의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아버지, 어머 니의 직함은 몇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기능 은 제사장(가장)으로서 자녀 를 위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주관하고, 기도하고, 그 자녀 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것 은 결정적인 부모들의 특권이 요, 영예요, 자랑입니다. 자기 자녀를 위하여 쏟는 그 부모 의 자애만큼 간절하고, 확실 하고, 뜨거운 것이 세상에는 아주 없습니다.
그 두 번째는 선지자적 기능으로,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주의 훈계로 양육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성경교육의 감화를 힘입어 큰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세 번째는 왕적 기능으로, 그 자녀를 주의 이름으 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어릴 때부터 부모의 축복 기도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성공의 자리를 잡고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부모라고 하는 직함을 받은 자에게 이 세 가지 축복의 기능을 대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축복 속에서 자란 자녀들은 부모 공경이라고 하 는 축복의 열쇠를 아예 가지고 자랍니다. 바로 경건한 축복의 사람입니다. 저들은 땅 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열쇠를 가지고 자랍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란 이름은 축복의 대명사요, 형통의 대명사요, 행복의 대명사입니다. 순종과 복종과 감사와 공경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잘 되고 장수하는 성공의 결정적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의 법칙을 어기면 망하고 맙니다. 잠언 30장 17절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불순종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천벌을 받았습니다(삼 상 4:11).
반대로 이 축복의 법칙을 준행하면 그는 땅에서도 잘 되고 장수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던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였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에 순종으로 효의 걸음을 걸었던 요셉은, 그 길이 바로 애굽의 총리가 되러 가는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이새의 명을 받아 형들에게 심부름을 떠났던 그 다윗의 효행이, 바로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어머니 한나와 함께 실로 성전으로 가던 어린 사무엘의 걸음이, 마침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되러 가던 걸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리학적인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자녀 교육은 듣는 데서 10%, 보는 데서 50%, 실제로 말해 보는 데서 70% 그리고 실제 행동으로 옮겨 보는 데서 90%의 효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은 가정이라고 하는 장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과, 아들과 딸이라고 하는 자녀의 이름이 주 안에서 어우러 지는 실제적 삶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자녀 사랑과 축복,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은 가정이라고 하는 특수한 환경에서 아무런 형식이나 절차없이 실제적으로 꽃을 피우게 됩니 다. 그 자체가 벌써 잘 되고 장수하는 바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학 이전의 문제요, 심리학 이전의 문제입니다. 자녀 사랑, 축복 그리고 부모 공경! 이것은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요, 영적인 것이요, 신적인 축복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철학적 문제 가 아니고 도덕적 문제입니다. 정신적, 영적 문제입니다.
바로 4세기 정통 신앙의 기수를 만들어 낸 나찌안젠 (Nazianzen)의 어머니 논나 (Nonna)가 그러했습니다. 유명한 교부요 콘스탄티노플의 대설교가 크리소스톰(Chrysostom)을 만든 그의 어머니 안두사(Anathema)가 그러했습니다. 유명한 성자 어거스틴(Augustine)을 만들어 낸 그의 어머니 모니카 (Monica)가 그러했습니다. 유명한 교부 오리겐 (Origen)을 만들어 낸 그의 어머니 레오니데스(Leonides)가 그러했습니다. 세기적인 목사 챨스 웨슬레 (Charles Wesley)를 만들어 낸 열아홉 자녀의 어머니였던 수산나(Susana)가 그러했습니다. 흑암의 대륙 아프리 카에 구원의 빛을 던진 리빙스톤(Livingstone)의 부모 네일(Neil)과 아그네스(Agnes)가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예외없이 부모 공경 의 명령을 준행하여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또 저들에게는 예외가 없이 신앙의 아버지나 신앙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는 늙어도 자녀 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결코 시들거나 병들거나 늙을 줄 모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지금 체험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병들어 앓을지라도 자녀를 향한 아버지, 어머니 그 자체는 결코 병들어 앓을 줄 모릅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 곧 축복하고 싶은 마음,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한 불사조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향한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는 그 이름이 바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의 축복과 사랑을 대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자녀들이여!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래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 다. 그러나 결코 복은 사람 자신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리고 축복의 시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법을 정하여 놓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부모 공경이라고 하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그 부모는 가정에 있어서는 육친 (肉親)이고, 국가에 있어서는 통치자들이고, 교회에 있어서는 목자들이고, 직업에 있어서는 그 주인(社長)이 됩니다. 연륜적으로는 사회의 선배들이 됩니다.
부모 공경의 계명!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그것은 바 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 ( 야타브 은혜 )
[출1:20]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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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에 은혜란 말이 여러 부분에서 나오는데 , 원어로 통합적 의미로 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과 긍휼을 말합니다 . 이 은혜는 구약시대에 언약을 통해서 나타나고 신약에 이르러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전히 성취되어졌습니다 . ( 요1:12-14절 )
오늘 본문의 은혜 ( 야티브 )는 " 선대하다 , 잘되게 하다 , 좋게 만들어 주다 " 는 뜻이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 이스라엘의 번성은 그들의 노력이나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역사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시므로 은혜 가운데 성취된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산파들에게 야타브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 처럼 우리가 이 은혜를 받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첫째로 , 야타브 하나님의 은혜는 사탄의 장애물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
요셉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가족 칠십명이 애굽으로 이민을 간지 430년 만에 번성하자 바로 왕은 두려워한 나머지 세 가지 정책으로 이스라엘의 인구 증가를 억제하려 했습니다 .
①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고 , ( 출1:11절 ) ② 산파들에게 아들을 낳으면 다 죽이라고 명령하였으며 ( 출1:15-16절 ),③ 아들을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 ( 출1:22절 )
이것은 단숨히 정치적인 이유에서만 내려진 것이 아니라 영적전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사탄은 인류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탄생을 방해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말살하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이러한 장애물은 하나님 은혜의 진행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바로 왕의 악한 정책 하에서도 백성들은 크게 번성했습니다 . ( 창3:15 , 출1:20절 )
번성이란 은혜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 창1:28, 6:7-8 , 9:1, 렘 33:22절 )
때로는 사탄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괴롭히지만 결국 하나님이 은혜로 친히 도와주시고 강하게 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 벧전5:10절 )
둘째로 , 야타브의 하나님이 은혜는 무능력의 장애물을 극복하여 강하게 하십니다 .
이삭의 때에 아비멜렉 왕이 시기하여 우물을 빼앗고 괴롭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새 우물을 파는 곳마다 물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한 해 농사에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하셔서 아비멜렉 보다 더 크고 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 창26:16 , 29절 )
이처럼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주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고 강하게 되어 결국 바로 왕이 항복하여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 ( 출1:7, 12:40-41절 )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은혜로 우상 장사의 아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주셨고 ,기생 출신 라합 , 겁쟁이 기드온 , 바람둥이 삼손 , 장애인 에훗 , 주부 드보라 , 농사꾼 아모스 , 소를 몰던 엘리사 , 실패한 베드로를 불러 쓰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게 됩니다 . ( 고전 1:27-28절 )
셋째로 , 야타브의 하나님의 은혜는 허물의 장애물을 덮어 주십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은혜가 임하자 그 집안이 흥왕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 ( 21절 )
여기서 흥왕이란 " 만들다 , 성취하다 , 생산하다 " 는 뜻으로 ( 창1:17절 ) 하나님을 경외하여 흔혜를 받으면 하나님은 자격이 없는 사람도 복을 받게 만들어 주십니다 .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로 왕에게 부득이하게 거짓말을 했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덮어 주셨습니다 . ( 출1:18-19절 )
하나님은 살인자요 도망자인 모세 , 창녀였던 라합 , 시아버지를 범한 다말 , 이방 여인 룻 , 다윗과 간음했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허물을 덮어 주시고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하셨고 , 거짓말했던 아브라함 , 자기 욕심을 챙긴 야곱 , 배신자 베드로 , 중도 포기했던 마가의 허물을 덮어 주시고 귀하게 쓰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 히11:31절 )
우리도 부족함과 허물이 많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 은혜를 받고 허물을 덮어주셔서 주의 일에 끄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롬 5:20, 요일1:9, 마9:1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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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베풀다]선하다, 좋다, 즐겁다, 잘하다 bf'y:(3190, 야타브)
야타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선하다, 좋다, 유쾌하다, 즐겁다, 잘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a) 칼형에서
① 이 단어는 '잘되다, 성공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창 12:13, 창 40:14, 신 4:40, 신 516, 신 5:29, 신 6:3, 신 6:18, 신 12:25, 신 12:28, 신 22:7, 왕하 25:24, 룻 3:1, 렘 7:23, 렘 38:20, 렘 40:9, 렘 42:6).
② 이 단어는 '잘(적절히) 놓여 있다(위치하여 있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나 3:8, "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성벽이 되었으며".
③ 이 단어는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 좋아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느 2:5, 느 2:6에서는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는 것'을 묘사한다. 시 69:31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에 5:14에서는 하만이 기뻐하는 것을 묘사한다.
야타브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태도 및 관계를 의미하는 용법을 제외하고는, 이 동사는 인격의 성실함이나 의와 관련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일반적으로 '은혜' beneficence를 의미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 단어는 세겜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속인 것과 관련하여(창 34:18), 야곱이 애굽에 온 것을 보고 바로가 기뻐하는 것(창 45:16), 단 지파에게 들어갈 때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이 기뻐하는 것(삿 18:20),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요압의 말에 다윗이 승낙한 것(삼하 18:4)에 대해 사용되었다.
(b) 히필형에서
① 이 단어는 '기쁘게 하다, 즐겁게 하다'를 의미한다(삿 19:22, 잠 15:13, 전 11:9).
② 이 단어는 '~에게 선을 행하다, 잘 대하다, 선대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다윗이 시 51:18에서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라고 기도할 때, 그는 언약의 주님이 인류에게 선하고 기쁜 모든 것의 근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선을 행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족장들에게 계시된 언약 관계에 기초한 것이다(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비와 선택에 기초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야곱이 에서와 마주대할 각오를 할 때, 그는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직역하면 네게 선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헤세드. 언약적 사랑)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니"(창 32:9, H10)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산파들(출 1:20)을 선대했다.
렘 4:22에서 퇴폐적인 유대인들에 대해 한탄하였다: "내 백성은...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그리고 이사야(사 1:17)는 회개에로 철저히 결단하도록 그들을 부른다: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등. 창 4:7, 렘 13:23 그리고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한 선지자들의 여러 가지 부름(예: 렘 7:3, 렘 26:13)을 참조하라.
③ 이 단어는 '어떤 일을 잘하다'나 '부지런히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신 5:25, 신 18:17, 잠 15:2, 렘 1:12 등). (참조: P. R. GILCHRIST;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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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하다]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경외하다....arey:(3372, 야레)
야레(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 경외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3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야레의 성경적 용법은 다섯 가지 의미의 영역을 가진다.
(1) 두려움의 감정,
(2) 감정적인 반응에 강조점을 두지 않는, 악에 대한 지적인 예상,
(3) 존경이나 경외,
(4) 의로운 행동이나 경건,
(5) 형식적인 종교적 예배.
(a) 칼형에서 감정적인 반응으로서의 두려움에 관한 전형적인 예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시내산의 불을 보고 유대인들이 두려워 한 것(신 5:5), 유대인들이 블레셋인들의 동원 소식을 듣고서 미스바에서 두려워한 것이다(삼상 7:7).
다른 예들은 반드시 감정적 반응을 지적할 필요가 없는 악에 대한 예상을 더 강조한다. 다윗이 아기스 궁전에서, 그의 명성이 그에게 위험이 되었다고 생각한 그 인식은(삼상 21:13, "그들의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 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자기 가족이 자기 자신에게서 빼앗겨질지도 모른다는 야곱의 예상과 부합하는 하나의 실례이다: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말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창 31:31).
이 두 용법은 위로의 어구나 인사말로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부정 명령을 사용할 때 고려된다(예: 창 50:19, 창 50:20). 이런 경우에 야레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동의어들과 병행하여 자주 사용된다(예: 하타트: 타락하다, 아라츠: 놀라다). 이와 비슷한 주제는 안전을 두려움이 없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다(예: 시 56:4).
앞에 기록되어 있는 세 번째 용법의 예들은 많이 있다. 이런 존경은 어떤 사람의 부모(레 19:3), 거룩한 곳(레 26:2), 하나님(시 112:1),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시 86:11)에 기인한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하박국의 "두려움"(합 3:2)과 욥의 고난을 바라보는 그의 친구들의 두려움은(욥 6:21) 이런 종류의 두려움으로 간주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몇몇 구절들에서, "두려움"과 그에 상응하는 삶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실제의 동의어 개념들이다(레 19:14, 레 25:17, 왕하 17:34, 신 17:19). "두려워하다"를 의로운 삶을 뜻하는 실제적인 동의어로 보는 이 용법이 - 앞에 나오는 어떤 의미로든지 간에 - 의로운 삶을 산출해 내는 동기로서의 "두려움"을 고찰하는 데에 생겼다는 사실은 그럴듯하다. 이런 실제적이고 능동적인 두려움은 애굽 산파들이 그들의 두려워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다(출 1:17, 출 1:21).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율법을 읽음으로써 가장 적절하게 알게 되었다(신 31:11-12). 되풀이하여, 강조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관련된 인간의 의로운 행동은 나그네나 체류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예: 신 10:18-20, 참조: 신 25:18).
형식적인 종교적 예배로서의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가장 분명한 예는, 제사 예배에 대해서는 여호와를 "두려워" 하지만(참조: 왕하 17:32-34), 그의 율법에 의로운 순종을 하였는가의 측면에서는 여호와를 "두려워" 하지 않은 북 왕국의 종교 혼합주의자들을 묘사하는 데에 나온다. 신 14:22, 신 14:23에 언급된 형식적 제사 요소들은, 이것이 배워지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임을 이 문맥에서 시사해 준다. 앞의 논의와 수 22장의 문맥에 비춰볼 때, RSV가 이 구절에서 '두려움' fear을 '예배' worship로 번역한 것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신 22:25).
'두려워하는 것'이 '열성가나 추종자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 구절들이 있다. 이 용법은 앞의 네 번째 용법이나 다섯번째 용법을 반영해주는 것 같다. 추정되는 동사의 예들은 욥 1:9과 대하 6:33에서 발견된다.
여러 종류의 두려움이 여러가지 인간의 행위(삼상 7:7, 삼상 15:24)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출 14:31, 수 4:23, 수 4:24, 삼상 4:7, 삼상 4:9), 심판(사 59:18, 사 59:19),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신 4:10)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
(b) 니팔형에서 이 단어는 수동적으로 '두려워하게 되다, 경외하게 되다'를 의미한다(시 130:4).
니팔 분사형은 '무서운' terrible, '두려운, 경외하는 awesome, 혹은 '무서워하게 하는' terrifying과 같은 것들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이것은 '두렵게 되다'의 니팔분사형의 동명사적 특성의 좋은 예이다(GKC, 116e). 이것은 장소(창 28:17), 하나님(출 15:11), 하나님의 이름(신 28:58), 하나님의 행위(출 34:10), 백성(사 18:2), 그리고 주의 날(욜 2:31, H3:4)을 묘사한다.
(c) 피엘형에서 이 단어는 '두려워하게 하다, 무섭게 하다'를 의미한다(삼하 14:15, 느 6:9, 느 6:14, 느 6:19, 대하 32:18).(참조: A. BOWLING;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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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왕케 하다]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 ...hc;[;(6213, 아사)
아사(동사)는 기본 어근이며, '일하다, 행하다, 만들다, 형성하다, 이루다'를 뜻하며, 그 기본 의미는 '행하다, 만들다'이다. 이 단어는 많은 표현에서 항상 동일한 기본 개념을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630회 나오며, 칼형, 니팔형, 푸알형으로 사용되었다.
(a) 아사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 매우 자주 나타나며, 이는 중요하고도 매우 흥미롭다.
바라(ar:B: , 1254)는 칼형에서 (1) 관련된 대상의 개시, (2)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 (3) 창조된 대상의 완전한 새로움, (4) 무에서 창조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사는 의미의 영역이 훨씬 넓으며, 어떤 특수한 어감을 거의 지니지 않은 채 대상의 형성을 주로 나타낸다. 아사는 자주 바라와 상호 교대로 사용되어 단순히 창조 과정에서 관련된 대상들을 조성하거나 만드는 행동을 나타내는 반면에 바라는 그 물체에 대한 창시를 강조한다(참조: 창 1:1).
창 1:7에서 하나님께서 '창공(궁창)이 있으라'고 명령하셨으면 창공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공을 만드셨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창공이 있으라는 명령이 창공이 실존하기에 불충분함으로 보충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 이후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계속적으로 발휘되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성령의 역사를 감지할 수 있다.
아사는 하나님께 사용되면 흔히 역사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활동을 강조한다. 이러한 문맥들은 구약성경 신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 즉 하나님은 초월적이실 뿐만 아니라 역사 안에 내재하셔서 그의 주권적인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세는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크신 행사들을 회상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백성들에게 상기시킬 수 있었다(신 29:1).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들에게 행사신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심을 증거해 준다(수 23:3). 솔로몬은 봉헌 기도에서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을 간청한다(왕상 8:39). 아사는 종종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대해 사용되어(수 24:17, 시 98:1, 사 25:1)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내재하심에 관하여 크게 강조함을 다시 증명한다.
아사는 구약성경의 그 밖의 곳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여러 측면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시 86:9, 시 95:5, 시 96:5).
(b) 아사는 윤리적인 의무의 개념으로 종종 사용된다.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행하라'는 명령을 자주 받는다(출 23:22, 레 19:37, 신 6:18, 등). 이 개념이 나타나는 무수한 문장은 하나님께 윤리적으로 응답하는 것의 중요성을 입증해 준다. 여기에서 응답은 단순한 정신적인 추상적 개념을 넘어선 것이며, 논증할 수 있는 행동에서 분명이 증거되는 순종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아사는 선악간에 행하는 것(창 3:14, 창 20:10, 왕하 12:3, 왕하 14:13, 왕하 8:18, 왕하 8:27, 신 16:12, 신 30:8, 민 15:39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사는 죄, 잘못에 대해 사용될 때 '저지르다, 범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호 6:9), '~에 대하여 행동하다'(슥 1:6), 그리고 충고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따르다'(삼하 17:23)를 뜻한다.
(c) 아사는 어떤 것을 만들다(출 20:4, 신 9:12, 창 3:21), 전쟁하다(창 14:2, 수 11:8, 신 20:12, 신 20:20), 친절하게 대하다(삿 1:24), 신실함을 보여주다(창 32:10), 제물을 드리다(출 10:25), 어리석게 행동하다(신 22:21), 희생제물을 드리다(출 10:25), 유월절을 지키다(출 12:48), 복수하다(삿 11:3), 식물이 열매를 맺다(창 1:11), 음식을 준비하다(창 18:7 이하), 직무를 행하다(왕하 17:32), 화해하다(사 27:5), 제사장들을 세우다(왕상 12:31, 왕상 13:33), 사용하다(삼상 8:16), 보내다(전 6:12) 등을 의미하거나 그런 의미를 구성한다. (참조: T. E. Mccomiskey; BDB;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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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아니라고 여겨도 하나님은 옳습니다
내 맘속에 새겨진 변함없는 그 진리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옳습니다
그리하지 않아도 그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신다면 그 길만을 따르리라
내 맘속에 새겨진 변함없는 그 진리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옳습니다
그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보라 너희는 두려워말고]]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보라 너희를 인도한 나를
보라 너희는 지치지 말고 보라 너히를 구원한 나를
너희를 치던 적은 어디 있느냐 너희를 억누르던 적은 어디 있느냐
보라 하나님 구원을 보라 하나님 능력을 너희를 위해서 싸우시는 주의 손을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