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하18장 [342..너 시험을 당해] [370.주안에있는나에게] [336.환난과핍박중에도] [488.이 몸에 소망 무언가] 욤<요드-바브(상)-멤>-라일라<라멛-요드-라멛>!!.. **주님의 고난/역경 부여하사, 친히 <아프지만-체휼로> 행하심은!! 메오르트!!...원천 광명체의 빛 비췸 인해..[동심합치로 앙망-응시-주목-동행하며 의뢰함으로 사는 이마다에게!!] ..이루시는바.....일상의 십자가/자아처리 = [호흡 기도 통해!!] 어둠/육/부정적/소극적 측면들은!! 소알(미천)-요단(낮아짐)-카탄(작아짐). ==>소멸되고, "메오르트"의 "하욤"으로 살기 원하심..
===유다 왕 히스기야 1.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히스기야 등극 6년만에 사마리아 함락]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4.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 9.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12.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앗수르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위협하다 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37세경...1차 침공 BC701(이집트 원정 도중에 "맛뵈기" 선제공격--37세), 2차 침공 BC.699(이집트/구스와 동맹 결성, 공동대응 전선 형성 빌미) ...YNWH께서 이사야 통해 예고하신바 임종 예고는 2차 침공 직후에 있었고, 탄원기도를 통해 15년 수명이 더 연장되었다 ==> 54세에 임종 맞음//므낫세12세였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예루살렘 남서쪽40km, 헤브론 서쪽]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 17. ○[2차 침공..BC699..구스와 공동대응 결성 빌미]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히스기야가 신축-확장한 예루살렘 새 성읍의, 성문 곁)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3.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 [NASB]제18장
1. Now it came about in the third year of Hoshea, the son of Elah king of Israel, that Hezekiah the son of Ahaz king of Judah became king. 2. He was twenty-fiv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twenty-nine years in Jerusalem; and his mother's name was Abi the daughter of Zechariah. 3. And he did right in the sight of the LORD, according to all that his father David had done. 4. He removed the high places and broke down the [sacred] pillars and cut down the Asherah. He also broke in pieces the bronze serpent that Moses had made, for until those days the sons of Israel burned incense to it; and it was called Nehushtan. 5. He trusted in the LORD, the God of Israel; so that after him there was none like him among all the kings of Judah, nor [among those] who were before him. 6. For he clung to the LORD; he did not depart from following Him, but kept His commandments, which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7. And the LORD was with him; wherever he went he prospered. And he rebelled against the king of Assyria and did not serve him. 8. He defeated the Philistines as far as Gaza and its territory, from watchtower to fortified city. 9. Now it came about in the fourth year of King Hezekiah, which was the seventh year of Hoshea son of Elah king of Israel, that Shalmaneser king of Assyria came up against Samaria and besieged it. 10. And at the end of three years they captured it; in the sixth year of Hezekiah, which was the ninth year of Hoshea king of Israel, Samaria was captured. 11. Then the king of Assyria carried Israel away into exile to Assyria, and put them in Halah and on the Habor, the river of Gozan, and in the cities of the Medes, 12. because they did not obey the voice of the LORD their God, but transgressed His covenant, even all that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commanded; they would neither listen, nor do [it.] 13. Now in the fourteenth year of King Hezekiah, Sennacherib king of Assyria came up against all the fortified cities of Judah and seized them. 14. Then Hezekiah king of Judah sent to the king of Assyria at Lachish, saying, "I have done wrong. Withdraw from me; whatever you impose on me I will bear." So the king of Assyria required of Hezekiah king of Judah three hundred talents of silver and thirty talents of gold. 15. And Hezekiah gave [him] all the silver which was found in the house of the LORD, and in the treasuries of the king's house. 16. At that time Hezekiah cut off [the gold from] the doors of the temple of the LORD, and [from] the doorposts which Hezekiah king of Judah had overlaid, and gave it to the king of Assyria. 17. Then the king of Assyria sent Tartan and Rab-saris and Rabshakeh from Lachish to King Hezekiah with a large army to Jerusalem. So they went up and came to Jerusalem. And when they went up, they came and stood by the conduit of the upper pool, which is on the highway of the fuller's field. 18. When they called to the king, Eliakim the son of Hilkiah, who was over the household, and Shebnah the scribe and Joah the son of Asaph the recorder, came out to them. 19. Then Rabshakeh said to them, "Say now to Hezekiah, 'Thus says the great king, the king of Assyria," What is this confidence that you have? 20. "You say (but [they are] only empty words), '[I have] counsel and strength for the war.' Now on whom do you rely, that you have rebelled against me? 21. "Now behold, you rely on the staff of this crushed reed, [even] on Egypt; on which if a man leans, it will go into his hand and pierce it. So is Pharaoh king of Egypt to all who rely on him. 22. "But if you say to me, 'We trust in the LORD our God,' is it not He whose high places and whose altars Hezekiah has taken away, and has said to Judah and to Jerusalem, 'You shall worship before this altar in Jerusalem'? 23. "Now therefore, come, make a bargain with my master the king of Assyria, and I will give you two thousand horses, if you are able on your part to set riders on them. 24. "How then can you repulse one official of the least of my master's servants, and rely on Egypt for chariots and for horsemen? 25. "Have I now come up without the Lord's approval against this place to destroy it? The LORD said to me, 'Go up against this land and destroy it.'" '" 26. Then Eliakim the son of Hilkiah, and Shebnah and Joah, said to Rabshakeh, "Speak now to your servants in Aramaic, for we understand [it;] and do not speak with us in Judean, in the hearing of the people who are on the wall." 27. But Rabshakeh said to them, "Has my master sent me only to your master and to you to speak these words, [and] not to the men who sit on the wall, [doomed] to eat their own dung and drink their own urine with you?" 28. Then Rabshakeh stood and cried with a loud voice in Judean, saying, "Hear the word of the great king, the king of Assyria. 29. "Thus says the king, 'Do not let Hezekiah deceive you, for he will not be able to deliver you from my hand; 30. nor let Hezekiah make you trust in the LORD, saying, "The LORD will surely deliver us, and this city shall not be given into the hand of the king of Assyria." 31. 'Do not listen to Hezekiah, for thus says the king of Assyria, "Make your peace with me and come out to me, and eat each of his vine and each of his fig tree and drink each of the waters of his own cistern, 32. until I come and take you away to a land like your own land, a land of grain and new wine, a land of bread and vineyards, a land of olive trees and honey, that you may live and not die. "But do not listen to Hezekiah, when he misleads you, saying," The LORD will deliver us. " 33. 'Has any one of the gods of the nations delivered his land from the hand of the king of Assyria? 34. 'Where are the gods of Hamath and Arpad? Where are the gods of Sepharvaim, Hena and Ivvah? Have they delivered Samaria from my hand? 35. 'Who among all the gods of the lands have delivered their land from my hand, that the LORD should deliver Jerusalem from my hand?' " 36. But the people were silent and answered him not a word, for the king's commandment was, "Do not answer him." 37. Then Eliakim the son of Hilkiah, who was over the household, and Shebna the scribe and Joah the son of Asaph, the recorder, came to Hezekiah with their clothes torn and told him the words of Rabshakeh. ==== ..열왕기하 18장 (개요) 호세아 선지자가 에브라임의 거짓말과 궤휼을 견책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기를, 유다는 “아직 하나님과 더불어 다스리며, 지극히 거룩하신 자에게 신실하다”고 했었다(호 11:12). 앞장은 이스라엘의 황량함에 대해 매우 우울한 모습을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나 본장은 그의 처참한 모습과 동시에 유다의 아름다운 정황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롬 11:1). 이때 히스기야가 왕좌에 오른다. 그래서, 1. 그의 왕국을 개혁한다(1-6). 2. 그의 모든 사업이 번창한다(7-8). 그리고 이와 동시에 열 지파(이스라엘)는 포로로 끌려간다(9-12). 3. 그러나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침입을 받는다(13). (1) 그의 나라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야 되는 상태에 놓여진다(14-16). (2) 예루살렘이 포위된다(17). (3) 하나님이 모독과 수욕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백성은 악의에 찬 랍사게의 말로 인해 반란을 일으키도록 충동받는다(18-37). 그러나 그 일들이 얼마나 잘 끝나게 되며, 또 저 위대한 개혁자의 위안과 명예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다음 장에 가서 보게 될 것이다. -----
히스기야의 선정(善政)(왕하 18:1-8) 우리는 여기에서 히스기야의 통치에 대한 일반적인 기록을 보게 된다. 그의 아버지의 나이와 그의 나이를 비교해 보면, 그의 아버지가 11살 내지 12살에 그를 낳았던 것 같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가 나이가 차게 되어 직무를 감당하기에 적합하게 된 때에는, 이미 그의 아버지의 죄악이 한도에 다다랐다. Ⅰ. 그의 위대한 경건심.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열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의 하나였고, 매우 악하고 타락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가장 선한 임금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 사실을 말해 준다. 즉 사람에게 있는 선한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은총, 절대 은총, 최상의 은총에 속한 것이요, 그 은총은 천성과는 달리 천성적으로 악한 감람나무를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는 일을 한다는 것(롬 11:24), 그리고 또 그 은총은 아무리 큰 곤란이나 약점도 극복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자식에게 나쁜 모범은 물론 나쁜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그의 제사장 우리야가 아마 그를 교육시켰을 것이다. 생각건대, 그의 시종자들과 친구들은 우상숭배를 고수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뛰어나게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역사하면, 그 무엇이 방해할 수 있으랴! 1. 그는 참으로 다윗의 아들이었다. 다윗에게는 타락한 자식들이 매우 많이 있었다(3절).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하나님은 바로 다윗과 언약을 맺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에게는 그 언약의 은혜를 입을 권리가 있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행하기는 했지만, “다윗과 같지는 않았던” 자들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14:3). 그들은, 다윗이 행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것들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제2의 다윗으로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다. 세월과 사람이 악할수록 덕은 더욱 필요하지만 오히려 계속하여 더욱 덕이 없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자. 히스기야는 많은 악한 왕들을 따르지 않았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왕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2. 그는 열렬한 왕국 개혁자였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대하 29:3) 알맞은 시기에 그 개혁을 시작했다. 즉 그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착수했다. 조금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나라가 매우 부패해 있고 그 백성이 만사에 지나치게 미신적임을 알아냈다. 그들은 언제나 그러했었다. 그러나 지난 왕대(王代)에 있어서는 이전보다 더욱 심했다. 히스기야의 악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우상숭배가 그땅을 대홍수와 같이 뒤덮었다. 그의 마음은 이 우상숭배로 인해 분기되었다. 그것은 아덴에서의 바울의 분개와 같았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실권을 잡게 되자마자 그는 곧 우상을 훼파하는 일을 시작했다(4절). 물론 그 백성이 우상숭배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일에 반대가 있으리라는 것은 각오했을 것이다. (1) 주상들과 아세라 목상들은 완전히 우상숭배적이고 이교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는 그것을 부수고 파괴했다. 비록 그의 아버지는 그것들을 세우고 그것들에 대해 애착을 표시했지만, 그는 그 우상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육친의 부모들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2) 산당들은 특별한 절기 때에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사용되어 왔고, 선한 왕들도 묵인해 왔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성전에 대한 모욕이며, 다만 성전에서만 예배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감독하에 있으므로 산당들은 우상숭배적인 예배법을 끌어들이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배들의 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법으로 삼은 히스기야는 산당을 제거했다. 산당을 제거하는 법을 제정하고, 거기에 세워진 예배당과 장막과 제단들을 파괴하는 법을 만들었고, 그러한 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 법은 엄격히 지켜졌다. 그리고 아마도 이스라엘 왕국이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에 받아야 했던 그 무서운 심판들을 보고, 히스기야는 더욱 열렬한 개혁자가 되었고, 그 백성들도 더욱 자진해서 그와 합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 이웃의 해를 보고 경고를 삼는 일은 좋은 일이다. (2) 놋뱀은 원래 하나님의 명령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숭배로 악용됨으로 인해, 그는 놋뱀을 부수어 버렸다. 그 놋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어디에다가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광야에서의 그들 조상에게 베풀어졌던 하나님의 선하심의 기념과 그 이야기의 사실을 전통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물로서 조심스럽게 보존되었었다(민 21:9). 이것은 환자에게는 하나님께 그 치유를 의뢰하게 해 주고,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들은 창조주보다도 피조물을 더 숭배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 이웃의 어떤 민족들이 행했던 바와 같은 이교도의 주상 숭배를 싫어하던 자들은 놋뱀에게 분향하도록 하는 사단의 유혹을 받았다. 놋뱀은 하나님의 직접 명령에 따라 만들어졌고, 그들에게는 자비의 도구가 되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경건한 열심을 지닌 히스기야는, 그 백성들에게 그것을 예배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악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놋뱀이 “느후스단” 곧 “한 조각의 놋”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므로 그것에 분향하는 것은 어리석고 악한 일이라는 것을 그 백성들에게 알리려 한 것이다. 패트릭(Patrick) 주교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때 그는 놋뱀을 파괴하여 가루로 갈아서 공중에 흩어버렸고, 조각조차도 남지 않게 했다. 이리하여 놋뱀의 정당한 영예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 영예가 다시금 훌륭하게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즉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우리의 구주께서는 놋뱀을 자신의 모형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도 그것이 우상화될 때에는 보존되기보다는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3.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누구라도 비길 수 없는 사람이다.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했다(5절). 그의 개혁에 있어서 뛰어난 점은 두 가지다. (1) 용기와 하나님을 믿은 신앙이다. 그가 우상을 제거하는 것은, 신하들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그들로 반역하도록 자극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다.” 즉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며 자기를 해 받지 않게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상 주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확고하게 믿는 일은, 우리의 의무를 행할 때에 히스기야와 같이, 우리를 담대하게, 신실하게, 활기 넘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왕국의 원수들에 둘러싸인 것을 발견했지만, 그는 그의 아버지가 했던 바와 같이 외국에 지원을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심을 믿었다. (2) 의무 수행에 있어서의 참을성과 견실성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 즉 그는 확고한 결의로써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의지했다. 그리고 “그를 좇는 데서 결코 떠나지 않았다”(6절). 처음에는 잘 시작했던 그의 선조들 중의 어떤 이는, 중도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는 갈렙과 같이 여호와를 전적으로 따랐다. 그는 모든 우상숭배적인 관례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또한 모든 일에서 자기의 의무를 의식했다. Ⅱ. 그의 개혁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7-8절). 그는 하나님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그와 함께 했을 때, “그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하였고”(7절), 그의 모든 사업에서 즉 전쟁, 건축, 그리고 특히 개혁에 있어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왜냐하면, 그 선한 사업은 그가 예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쉽게 수행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힘을 믿고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은, 그것에서 성공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진리는 위대하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는 자기의 성공을 보고 나서, 1. 아버지가 굴종했던 앗수르 왕의 멍에를 벗어버렸다. 이 사건은 “그를 반역한”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앗수르 왕이 그 사건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히스기야가 자기의 왕위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었으나, 아하스의 힘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이 대담한 투쟁을 즉각적으로 시작한 것이 신중하지 못한 일일지도 모르나―어떤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부정하지는 않다. 그가 열방의 우상숭배를 떨쳐 버리고 났다면, 곧 그들의 억압의 멍에도 벗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자유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2. 그는 블레셋 사람들을 맹렬히 공격했고, 그들은 가사에 이르기까지 그 촌락들과 성곽이 둘린 성읍들을 쳤다. 그러므로 그가 친 것은 “망대와 견고한 성”이었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 시대에 그들이 쳐들어와 스스로 주인이 되어버렸던 곳들이나(대하 28:18), 그는 그것을 탈환했다. 그의 아버지 시대에 아버지가 끌어들여 왔던 부패를 그가 일소하고 났을 때 그 아버지가 잃었던 소유물들을 그가 회복했다는 것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블레셋에 대한 히스기야의 승리에 대해서는 이사야가 예언했었다(사 14:28 이하). --------- 산헤립의 유다 침입(왕하 18:9-16) 우리는 앗수르의 마지막 왕대의 일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현재로서는 앗수르 왕국는 이제 상당히 성장했다. 민족과 가정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한 변화들이 있다. 즉 열등했었던 자들은 방대하게 되고, 반대로 소란을 떨고 두각을 나타냈던 자들은 영락(零落)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 다음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된다. Ⅰ.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 침입에 성공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하고(9절), 탈취하고(10절), 그 백성을 포로로 데려가는 기사이다(11절). 또 하나님이 그들에게 왜 이러한 심판을 가져왔는지 그 이유가 나타나 있다. 즉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12절). 이것은 앞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언급되었지만, 여기서 반복된다. 1. 그것은 그것을 보고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들이 각성하여 큰 열심으로 우상숭배를 일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다 백성들은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왕국에 가져온 멸망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의 이웃집에 불이 나서 자기들의 집도 위태한 가운데 있을 때는, 저주받은 일을 떨쳐 버릴 때이다. 2. 히스기야는 크게 탄식했지만, 방어할 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의 왕대에도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열 지파가 비록 다윗의 집을 반역하고, 자주 자기들을 괴롭혔지만,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국의 재난을 기뻐할 수 없었다. 3. 그 사건은 히스기야와 그의 왕국을 앗수르 왕에게 개방시켰고, 앗수르 왕이 그땅을 침입하는 것을 더욱 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듣지” 않고 “행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열 지파에 관한 것으로 말하여진다(12절).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한다(겔 28:31).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Ⅱ. 앗수르의 대를 이은 왕, 산헤립의 유다 침입의 시도에 대한 기사가 있다. 산헤립은 그의 선조들이 이스라엘 침입에 성공한 전례에서 힘을 얻어 이 일을 벌였다. 그는 그들의 영예와 다투어 이기기를 원했고, 그들의 승리를 능가하고자 했다. 그가 유다에게 가한 습격은 유다 왕국에는 큰 재난이었다. 그것으로써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신앙을 시험하셨고, “위선의 민족”(사 10:6)이라고 불리는 그 백성을 징벌하고자 하셨다. 왜냐하면 비록 산당은 제거되었지만, 그들은 히스기야의 개혁에 응하지 않았고 우상을 기꺼이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마음속에, 혹은 집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개혁을 반대하는 자들이 있어서, 개혁의 시기는 곤경의 시기가 되었고, 또 개혁자들이 재난을 받기까지 했다. 이 재난은 히스기야에게 매우 중대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1. 그는 나라의 상당한 지역을 잃었다(13절). 앗수르 왕은 요새화되어 있는 거의 모든 성읍, 곧 변경 지역과 주둔지를 점령했다. 그러자 나머지 모든 성읍들도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 침입으로 인해 그 나라가 당한 혼란 상태는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서 묘사되어 있다(사 10:28-32). 2. 그는 평화를 위해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그는 사마리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자체가 원수의 손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자, 예루살렘의 안전을 얻고자 대가를 치르기에 서슴지 않았다. (1) 비열한 굴복을 했다. 즉 “평소의 조공을 거부했으므로,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이제 나는 요구되는 바를 기꺼이 배상하겠나이다”(14절)라고 했다. 히스기야의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던 그의 신앙은 어디로 갔는가? 그는 이 굴욕적인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왜 이사야와 의논하지 않았는가? (2) 막대한 액수의 금액을 치렀다. 이것은 은 300달란트와 금 30달란트(20만 파운드 이상이다)였다. 그것도 연차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배상금이었다. 이 금액을 조달하기 위해, 그는 할 수 없이 국고를 비웠을 뿐만 아니라(15절), 성전 문과 그 기둥에서 금 조각을 벗기지 않을 수 없었다(16절). 그가 바친 “금은 성전이 성별시켰”지만, 필요성이 절박해지자 자기도 다윗처럼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다윗의 본을 땄는데, 바로 그의 조상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체의 보존을 위해서 부분을 내어주는 것은 불경하지도 않고 경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성전을 경멸하여 성전의 물품을 약탈했다(대하 28:24). 그러나 그는 그의 아버지가 취했던 물품의 이자까지 반환했었다. 그리고 이제 아주 당당하게, 그는 긴급한 일을 당했고 또 보다 큰 이익을 위하여 성전의 물품을 다시 빌려만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능력이 생기면 곧 그것을 완전히 갚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 랍사게의 모독적인 발언(왕하 18:17-37)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Ⅰ.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17절). 그는 예루살렘을 치려고 그의 세 장군에게 대군(大軍)을 주어 보냈다. 이것이 앗수르의 대왕인가? 아니다. 결코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는 천하고, 거짓되고, 불충한 자였고, 모든 세대에 악명을 떨쳐야 할 자였다. 이와 같이 불명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그를 명예롭게 명명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히스기야의 돈을 취했는데, 그것은 그의 군대를 철수할 조건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협약대로 유다 나라를 포기하는 대신에 수도로 쳐들어갔고, 돈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앗수르 군대야말로 정말로 악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전과 같이 위대하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부를 것이다. 그들은 약속을 지킬 줄 모르며, 오직 자기들의 이익을 알 뿐이다. 이제 히스기야는 산헤립과의 조약을 후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조약은 히스기야를 더욱 가난한 자로 만들었지 결코 더욱 안전한 자로 만들지는 않았다. Ⅱ. 히스기야와 그의 왕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랍사게의 조롱을 받았다. 랍사게는 세 장군들 중의 수석 대변자이며 빈정대는 재질을 가장 많이 가진 자이었다. 그는 히스기야와 새로운 다툼을 일으키라는 산헤립의 지시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돈을 받고 자기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서도 즉시 예루살렘에 강한 공격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산헤립은 랍사게를 보내서 히스기야더러 예루살렘을 포기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만일 거절한다면, 그 거절은(매우 빈약한 이유이지만) 그에게 예루살렘을 포위할 핑계를 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예루살렘을 끝까지 고집하면, 그때는 그것을 강습하여 빼앗을 구실이 되는 것이다. 랍사게는 너무나 뻔뻔하여 성벽도 없는 윗 연못의 도랑에서 왕을 직접 접견하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신중했으므로 그 개인적인 조약을 거절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사절들(국가의 수뇌들)을 보내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어리석음에 따라”(36절) 어리석은 대답을 하지 말라고 명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랍사게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그를 화나게 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이 자기는 “귀먹은 자가 듣지 않음같이”(시 38:13-15) 듣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들으신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랍사게의 말을 도중에 방해했는데, 그것은 단지 그가 아람 방언으로 말해 주기를 바랐던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말한 것을 생각해 보고 왕에게 보고하고자 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랍사게에게 만족한 대답을 주지 않았을 때에는, 다시 “유대 방언으로” 백성들에게 직접 호소하라고 간청했다(26절). 이것은 타당한 요구이다. 또 어떤 일이 공개되기 전에 전권 대사들이 그들 사이에서 사건들을 결정해야만 하는 협정의 관례에 일치하는 것이었다. 힐기야는 자기가 아주 부조리한 사람과 대담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요구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요청은 다만 랍사게를 격분케 했고, 그를 더욱 거칠고 난폭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27절). 모든 예의범절과 정중한 태도로 그 사절들과 협약하는 대신에, 그는 그 군인들을 위협하여 탈주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라고 권하였다. 즉 만일 그들이 끝까지 저항하면, 극단의 기아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그는 계속 자기의 주장을 폈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히스기야와 그의 왕족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투항을 종용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살펴보자. 1. 그는 자기의 주인인 앗수르 왕을 과대평가한다. 몇 번이고 그는 그를 “그 위대한 왕 앗수르의 왕”(19, 28절)이라고 부른다. 그는 피조물인 군왕을 정말 하나의 우상으로 삼았다! 하나님은 위대한 왕이시지만 산헤립의 눈에는 하나의 작은 신에 불과했다. 그리고 랍사게는 산헤립에 대하여 그들도 자기와 같은 존경을 표하게 하고 싶었고, 그들을 협박하여 자기 왕에게 굴복하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왕 중의 왕이신 분의 권세와 영광을 보는 자들에게는 앗수르의 왕도 천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아무리 위대한 자라도 그들이 하나님과 비교될 때, 혹은 하나님이 그들과 경쟁하게 된다면, 도대체 그들의 꼴이 어떻게 될 것인가?(시 82:6-7) 2. 그는 항복하는 것이 유다의 이익에 좋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고 애쓴다. 만일 그들이 끝까지 버틴다면 그들은 자신의 대변을 먹는 것 이외는 다른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식량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이 식량 공급을 완전히 단절시킬 것이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조건부 항복을 하고, 선물을 바치면서 앗수르 왕의 호의를 구하고, 그의 처분에 자신을 맡긴다면, 그는 그들을 매우 선대할 것이라고 했다(31절). 히스기야가 그 커다란 선물을 주고 맺은 협약(14절)도 그의 왕은 최근에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는데, 랍사게는 무슨 얼굴로 다시 선물을 가지고 협약을 맺으라고 운운하는지 의아스럽다. 그렇게도 철저히 배반을 잘하는 자들에게서 무슨 신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직 “쇠사슬을 금으로 도금하라. 그러면 민중은 너희들에게 자기들의 결박을 허락할 것이다”(Ad populum phaleras). 랍사게는 만일 그들이 신중히 생각하여 투항하면―비록 그들이 죄수들과 포로들이 된다고 예상해야 되겠지만― 그들에게 실제로 행복되리라는 것을 약속함으로써 모든 것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야비한 제안이 성사되리라고 이전에 한 번이라도 그가 생각해 보았는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마귀는 이렇게 죄인들에게 매일 매일 그러한 제안을 하라고 유혹한다. 랍사게는 다음과 같이 설득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1) 즉 그들이 감금되더라도 오히려 유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자 자기 소유의 포도를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31절). 즉 피정복자의 재산은 정복자에게 귀속되겠지만, 여전히 유다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재산을 자유로이 누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후에 그가 원하는 바는 그들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복자가 얼마 동안이든 자기 마음대로 포로 된 자들을 처분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 그들이 포로가 되면 그들의 보다 큰 이익이 된다고, “내가 너희 본토와 꼭 같은 지방으로 너희를 옮기겠다”고 했다(32절). 그렇다면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데, 그땅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3) 그가 특히 목적하는 것은, 그들이 끝까지 버티는 것은 아주 헛되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즉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그래서 그는 히스기야를 모욕한다(19절). 그 백성들에게 그는 말한다(29절).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아 너희를 멸망케 하지 말라. 그는 너희를 건져내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굴복하거나 멸망해야 한다.” 죄인들이 이 주장의 힘에 굴복하는 것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이라면 다행스런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대결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굴복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다. 그에게 대항하여 끝까지 버티는 자들이 의뢰하는 것은 무슨 확신인가? “우리가 그(하나님)보다 더 강한가?” 혹은 우리는 삼키는 불 앞에 찔레와 가시넝쿨을 둠으로써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러나 랍사게가 말하고 있는 대로 히스기야가 그렇게 절망적이고 무방비 상태로 있지는 않았다. 그는 히스기야가 의뢰하는 바를 세 가지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것들이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1) 히스기야가 거느리고 있는 군사적 준비 태세. “네가 싸울 만한 계교(計巧)와 용력(勇力)이 있다고 말하도다”(20절). 그리고 우리는 그가 실제로 그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대하 22:3). 그러나 랍사게는 이 사실을 일소에 붙인다. 즉 “그 말들은 다만 공허할 뿐이로다. 너희는 우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20절). 말할 수 없이 큰 거만과 멸시의 태도를 가지고서, 그는 말을 다룰 줄 아는 2,000명의 장정이 있으면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만일 히스기야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자기는 2,000마리의 말을 주겠다고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히스기야에게는 전혀 장정들이 없으며, 있더라도 군사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23절). 그래서 그는 확신과 도전으로 히스기야를 넘어뜨리려고 생각하며, 자기 왕의 가장 작은 부하 장수도 히스기야와 그의 온 군사를 좌절시킬 수 있다는 어떤 내기를 걸려는 것이다. (2) 히스기야가 애굽과의 맺은 동맹의 헛됨을 말했다. 그는 히스기야가 애굽의 병거와 마명을 의뢰한다고 생각했다(24절). 왜냐하면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그렇게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확신에 대해 말하기를 “그것은 부러진 갈대다(21절). 그것은 자기를 의지하고 그 무게를 지탱하리라고 기대하는 자를 실패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의 손을 찔러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찢을 것이로다”라고 했다. 이는 선지자가 이 비유를 애굽에 적용하여 더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은 말이다(겔 29:6-7). 그가 말한 대로 애굽 왕은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앗수르 왕을 의뢰했던 아하스 왕에게 대해서 앗수르 왕도 그러했었다. 나아가 그는 “그를 괴롭혔고, 그를 강하게 하지 못했다”(대하 28:20). 육신의 팔(인생)을 의뢰하는 자들은 그것이 부러진 갈대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3) 하나님과의 관계도 헛되다고 했다. 이것이 정말로 히스기야가 의뢰했던 확신이었다(22절).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의지함으로써 스스로 버티었다. 즉 이 약속으로 그는 스스로 용기를 내었고, 그의 백성을 격려했다(30절). “여호와가 우리를 건지시리라”는 약속이다(32절). 랍사게는 이것이 그들의 커다란 지주였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것을 동요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강구했다. 마치 다윗의 원수들이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신뢰를 좌절시키려고 모든 술책을 다 썼던 것(시 3:2, 11:1)과, 또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았다(마 27:43). 랍사게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를 낙담케 하려고 제시한 세 가지 사실들은 모두가 거짓되었다. ① 히스기야가 “산당들과 제단들을 파괴했으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했다(22절). 여기에서 그는 수많은 제단과 성전을 기뻐하던 이방의 우상 신들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평가한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하나의 제단에만 예배하게 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일찍이 히스기야 생의 최선의 행위들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며 또 알기를 원치 않는 자에 의해서 불경스럽고 속된 것으로 오해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훌륭한 일이, 무지하고 악의에 찬 자들에 의해서 악한 짓이요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짓이라고 표현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것이 그런 오해가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히스기야는 그렇게 되는 것을 감수했을 것이다. ② 그래서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파괴를 명령하셨다는 것이다(25절).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서야 내가 올라왔겠느냐?” 이것은 모두 희롱이요 도전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다(그가 누구의 위임을 받았겠는가?)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성 위에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두렵게 하기 위해 이런 구실을 붙인 것이다. 만일 그의 말한 것에 조그마한 구실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선지자들의 글에서 열 지파의 파멸은 하나님의 파멸에 의한 것임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점령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체해 왔다. ③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앗수르 왕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일을 맡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모독적 언사로 자기 말을 끝맺었다(33-35). 즉 그는 자기가 정복했던 민족들의 신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비교하고, 그를 그들과 같은 수준에 놓았다. 그리고 그 이방 신들이 자기들의 예배자들을 보호하고 구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하나님도 자기의 예배자들을 보호하고 구원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첫째로, 이것은 그의 교만이다. 그가 한 성읍을 정복하면, 그 성읍의 신들을 정복했다고 생각했고, 자기가 그 신들보다 강하다고 자부했다. 우상들에 대한 그의 높은 평가는 그로 하여금 우상들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높은 자가 바로 자기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둘째로, 그의 불경성이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지역에 국한되는 신이 아니다. 그는 온 땅의 하나님, 유일하시고 살아 계신 참 하나님, 상제(上帝)이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모든 신들 위에 있음을 스스로 증거하셨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아르밧과 하맛의 가상적인 신들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부당하게도(당시에는 어떤 제사장들도 이렇게 말했다) 모든 종교의 신들은 동일하고, 그들 모두 위에 자기 자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랍사게는 배교한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대 언어로 그렇게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그의 무지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으며, 그의 적의는 더 이상 이상할게 없다. 왜냐하면 배교자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잔악하고 적의에 찬 원수들이기 때문이다. 랍사게의 이 말 속에는 많은 가책과 술책도 있으나, 거기에는 많은 자존심과 악의, 거짓, 신성 모독도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실한 한 알곡은 이 모든 기지와 웅변에 상당하는 값어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히스기야 편의 사절이 말한 것을 들어보자. 1.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위해서 말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쉽사리 랍사게의 왕의 반역과 불신을 들어 그를 비난하고 그에게 다음과 같이 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너희로 하여금 그러한 행위가 성공하리라고 기대하게 하는 종교는 무엇이냐고. 적어도 그들은, 벤하닷의 거만한 요구에 대해서 아합 왕이 답변했던 저 불운한 운명을 그에게도 암시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같이 자랑치 못할 것이다”라고(왕상 20:11).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그들에게 명령하기를, 그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지시를 따랐다. 말할 때가 있는 것과 같이 침묵을 지켜야 할 때도 있다. 신앙적이거나 혹은 이성적(理性的)인 어떤 것을 제공하는 일이,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격이 되고 마는 사람들도 있다. 미친 자에게 무슨 말이 들리겠는가? 그들의 침묵이 랍사게로 하여금 더욱 거만하고 방심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더욱 높아지고 결국 그의 파멸에 이르게까지 완악해져 갔다. 2. 그들은 그의 불경스런 언사를 증오하면서, 그리고 멸시받고 상처받은 예루살렘의 가엾은 상태에 비통한 나머지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 그러한 치욕은 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3. 그들은 신실하게 그 사실을 왕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랍사게의 말들을 그에게 전한다.” 그래서 왕은 무슨 일이 행해졌으며, 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들은 랍사게의 요청에 대해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호크마== ..열왕기하 18장 1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ㅇ호세 삼 년에...히스기야가 왕이되니 - 호세아 3년 B.C.730년.. 그러나 이때는 히스기야가 아하스와 공동 통치를 하던 때이고 정작 그가 단독통치 시작시점은 B.C.728년경... 그런데 문제는 본장에서 산헤립이 유다를 침입한 때 (B.C. 701년)를 히스기야 14년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13절).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B.C.715년 경에 즉위한 셈이 된다. 이러한 연대상의 난문제는 이미 앞에서도 살펴본 바인데 이에 대해 흑자는 B.C.728년과 715년 사이에 약 13년간의 연대기가 빠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Thiele). 이와 관련해서는 15:22-38 강해, '열왕기하 15장의 연대기에 대한 추가 설명' 및 왕상 서론, '열왕기서의 연대기 문제', '열왕기서의 참조 도표등을 각기 참조하라.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ㅇ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이러한 특별한 찬사는 유다 왕들 가운데 오직 아사(왕상15:11)와 요시야(22:2)에게만 주어졌다. 이러한 평가는 북왕국의 열왕들에 대한 평가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 아비 아하스와 선지자 이사야의 접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사7:3-16)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이사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향이 스가리야로부터 받은 영향과 함께 히스기야를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ㅇ여호와께 연합혀여 떠나지 아니하고 -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신4:4의 말씀에 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향한 정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세속의 삶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가기란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요15:4-6).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9 히스기야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ㅇ사마리아...에워쌌더라 - 히스기야의 영도 아래 유다는 다시금 부흥의 기치(旗幟)를 올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호세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에 그 같은 차란이 임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12절). 따라서 히스기야와 유다는 이러한 사실에서 더욱더 교훈을 받아 각성하였을 것이다. 10 삼년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ㅇ삼 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 여기서 3년이란 기간은 히스기야 4년에서 6년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만 3년이 아닌 2년 몇 개월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록은 17:5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한편 본문에서 사마리아성을 에워싼 자는 분명히 살만에셀로 나타나 있다(9절). 그러나 정작 그 성을 함락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것을 B.C.722년 사르곤 2세의 원년의 일로 본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그 성을 함락시킨 공적은 살만에셀에게로 돌려지곤 하는데 그 만큼 살만에셀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17:3 주석 참조. 11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ㅇ할라와...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 - 이스라엘인들이 앗수르에 포로되어 잡혀간 곳인 이들 성읍에 대해서는 17:6 주석에 상술(詳述)해 놓았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12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ㅇ본 절은 17:7-23에 기록된 사마리아 성의 함락 원인을 몇 마디 말로 지적해 놓은것이다. 여기서 요약해 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목은 (1)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2)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림, (3)모세의 율법에 대한 거역, 이 세 가지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장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Pulpit Commentary). 13 히스기야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취하매 ㅇ히스기야 왕 십 사 년에 - 산헤립(Sannacherib)의 선임 왕인 사르곤 2세(Sargon,II)는 B.C.722년에서 705년까지 약 17년 내지 18년간을 통치했다. 그리고 산헤립은 그 뒤를 이어 B.C. 705년에 즉위했다. 그런데 앗수르의 기록에 의하면 산헤립은 그의 통치 제 4년에 히스기야에 대한 원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Pawlinson). 따라서 이때(즉 히스기야 14년)는 B.C. 701년 경이 되며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즉위 연대는 B.C. 715년 경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기적 혼란에 대해서는 이미 1절에서 살펴본 바이니 그곳을 참조하라. ㅇ앗수르 왕 산헤립이 을라와서...취하매 - 산헤립의 1차 원정 목적은 에굽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었다(Josehpus, Keil, Bahr). 그런데 유다의 히스기야가 아하스 때와는 다르게 조공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가사 지방을 공격함으로써, 블레셋과 동맹하여 애굽을 치려던 계획에 많은 차질을 주었다(7,8절). 때문에 산헤립은 먼저 유다를 공략, 장애물을 제거하려한 것이다. 한편 산헤립의 비문(碑文) 기륵에 따르면 이때 산헤립이 히스기야로부터 탈취한 성은 모두 46개로 욥바, 에그론, 딥나, 라기스 등 중요한 요새를 전부 탈취하였다고 한다(Grid). 사실 미1:10-16에도 이러한 성들이 히스기야 시대에 탈취되었음이 언급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또한 대하 32:1과 사10:28-32 등도 각기 참조하라. 14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ㅇ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 라기스(Lachish)는 예루살렘과 가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유다 지파에 할당된 성읍중 하나로(수15:39)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되었다 (대하11:9). 14:19 주석 참조. ㅇ내가 범죄하였나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티'는 정치적인 '과오'를 뜻하는 단어로서 '배반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솨'와 동일한 용법으로 사용된다(1:1;3:5).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이때의 상황을 히스기야의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표현하고 있다(사:9-15;10:24-26;14:24,25). 즉 초기에는 단호한 반 앗수르 정책을 폈던 히스기야도(7절) 그만 마음이 약해져 앗수르의 막강함에 굴복하였고 백성들은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사22:13)며 모두 절망하였던 것이다. ㅇ앗수르 왕이...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한 앗수르의 기록을 보면 이때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참호를 둘렀으며 누구든지 문 밖으로 나오는 자는 처벌했다'.그리고 이에 덧붙여 산헤립이 탈취한 성읍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는 분절의 금 은 외에도 보석, 상아 의자와 상아 침상, 귀한 목재, 그의 딸들, 궁녀들, 남녀 음악사 등을 대가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었다. 이와같이 히스기야의 연약함 때문에 그와 그의 백성들이 당한 고충은 실로 엄청나다. 그런데 이처럼 성도들도 불신앙적 처사로 인해 영육간에 많은 꾀를 당할 경우가 있다. 따라서 항상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수1:9).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ㅇ열왕기에서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성전(聖殿)과 왕궁이 함께 수탈되는 것은 하나의 공식적인 패턴(pattern)처럼 나타난다(왕상14:25-28).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할 경우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실과 함께 하지 않으며 임재(臨在)의 처소인 성전에도 함께 하시지 않음의 한 증거이다. 16 또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ㅇ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 - 솔로몬의 경우에서처럼(왕상6:20-22,2830,32) 히스기야는 성전을 깨끗케 하면서 성전의 문과 기둥에 금을 입혀 장식한 것 같다(대하29:17-19). 그러나 이제 그가 그러한 금까지도 벗겨서 산헤립에게 조공으로 바쳐야 했던 것은 아하스 때에(16:8) 이미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조공으로 다 바쳤기 때문에 앗수르 왕에게 바칠 삼십 달란트의 금(14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Rawlinson). 한편 달란트(Talent)를 무게 단위로 계산할 경우 1달란트는 약 34.27kg에 해당하는 중량이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왕을 치게 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저희가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 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ㅇ본절을 앗수르의 2차 침입으로 보느냐 아니면 1차 침입(13-16절)의 연장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견해가 다르다. (1)먼저 이것을 1차 침입의 연장으로 보는 학자가 있다(Keil, Bahr). 이 견해의 대표자가 카일(Keil)인데 카일은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로부터 조공을 받은 뒤에(16절) 히스기야가 저자세로 나오는 것을 악용하며 자기 나라로 돌아 가지 않고 도리어 예루살롑을 침공했다는 것이다. 카일은 이 같은 근거로 평행구절인 사36:1,2를든다. 사실 사36장의 1절과 2절은 매우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1차 침입의 연장인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2)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것을 2차 침입으로 보고 있다(Rawlinson,Hobbs). 그 이유는 첫째, 앗수르의 2차 침입시에는 구스 왕 디르하가와 교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19:9) 이 디르하가(Tirhakah)는 히스기야의 동맹 요청에 응하여 히스기야를 도우러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다와 구스(에디오피아)간에 동맹을 체결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앗수르의 침입은 2차침입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1차 침입시에 유다는 이미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어서 완전히 쇠진한 상태에 있었으니 계속해서 앗수르와 맞서 교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앗수르는 B.C.701년에 1차 침입을 한 후 2년후인 B.C.699년에 2차 침입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위에서 언급한 사36장에서 1절과 2절 사이에는 약 2년간의 간격이 있었다고 보아야한다(Hobbs). 한편 구스 왕 디르하가에 대해서는 19:9 주석을 참조하라. ㅇ다르단 - 다르단(Tartan)뿐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랍사리스(Rabsris), 랍사게(Rabshakeh)는 모두 고유한 인명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이것들은 모두 앗수르의 관직명이다. 이 중 다르단은 앗수르 군대의 직위와 관련된 공식적인 직명인것으로 추측된다(Lucknbill,Ancient Records). 이와 관련 혹자는 '다르단'이 총사령관직이었다고도 한다(Rawlinson). ㅇ랍사리스 -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내시장'(內侍長)이다. 그러나 '내시장'이라는 직함이 군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ㅇ랍스게 - 이와 관계가 있는 히브리어는 '술 맡은 자'라는 뜻에 해당되는 '마쉬케'(창 40:5)가 있다. 따라서 랍사게는 왕의 비서와 같은 직함을 나타내는것으로 추측된다(Hobbs). ㅇ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 - 대하32:30에는 '윗못 수도'가 '기혼의 윗 샘물'로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성 밑으로 수도를 건설하여 성 밖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기혼(Gihon) 시냇물을 끌어들여 이곳 샘에 저장하였는데(20:30) 이것은 식수나 새탁용, 또는 전시(戰時)의 비상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예루살렘에서는 적군에 포위당헹을 때 생활 용수(用水) 공급 문제가 언제나 큰 골치거리였으니 히스기야는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지하수로를 건설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 윗못 수도는 이미 아하스 때에도 있었는데(사7:3). 이때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성의 서편을 따라 힌놈 골짜기(Valley of Hinnom) 아래로 물이 흘렀다. 그러나 히스기야 때에 이것을 성내로 끌어들인 것이다(Keil &Delitzsch), 따라서 본절에서 앗수르 군대가 윗못 수도곁 큰 길에서 유다와 맞섰던 장소는 예루살렘 성밖 서쪽 기혼으로 들어오는 물의 근원지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1차 칩입후 2차 예루살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하여 앗수르 군대가 사용할만한 모든 물 근원올 막았었다(대하32:3,4) 18 저희가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저에게 나가니 ㅇ궁내 대신 엘리아김 - 사22:19,20에 따르면 엘리아김은 셉나 대신 궁내대신에 욜랐음옳 알 수있다. 그런데 당시에 '엘리야김'(또는 옐리아김)은 대단히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 예를들면 여호야김(Jehoiakim)이 왕이 되기 이전의 이름도 엘리아김이었다(23:34). 한편 궁내 대신은 나라의 주요 행정적 책임자로서 때로는 왕의 자문(諮問)을 담당하기도 한다(Hobbs). ㅇ서기관 셉나 - 서기관은 조서 또는 공문서들을 기록하는 관리이다. 사22:15-22에 의하면 셉나는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결과 궁내 대신의 자리에서 밀려났음을 알 수 있다. ㅇ사관 요아 - '사관'에 해당하는 '자카르'의 문자적인 뜻은 '기억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요아(Joah)는 앗수르와 유다간의 담판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실록(實錄)에 기록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19 랍사게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ㅇ대왕 앗수르 왕 - '대왕'(the great King)이라는 호칭은 비단 앗수르 왕 뿐만 아니라 바빌론, 바사의 왕들도 사용했던 호칭이다(겔26:7;단2:37). 즉 그들은 대제국의 통치자로서 그에 걸맞는 칭호를 스스로 누렸던 것이다(Keil &Delitzsch). ㅇ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 여기서 '너'는 히스기야 왕을 가리킨다. 앗수르 왕의 대변인인 랍사게는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에 대한 어떠한 존칭도 사용치 않고 직접 '히스기야'라고만 부르거나(22,29,30,31,32절) '너'라는 경멸스러운 호칭을 하고 있다. 즉 여기서 랍사게는 산헤립에게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도 히스기야에게는 '너' 또는 '히스기야'라고 부름으로써 모욕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반앗수르적인 태도를 비꼬면서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이냐'(공동 번역)라고 조소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비록 앗수르의 랍사게가 사용하긴 했지만 '의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 단어 '바타흐'는 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은 용어로서 왕하 후반부에 자주 등장한다. 이 단어와 관련 우리는1:3에서 옐리야 선지자가 아하시야 왕의 사자들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븝에게 물으러 가느냐"라고 한 말을 상기할 수있다. 즉 본서 기자는 왕하 전체에서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20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ㅇ이는 입에 붙은 맡 뿐이라 - '입에 붙은 말'이란 마음속으로는 확신이 없으면서도 입술로만 하는 맡을 가리킨다. 사싶 히스기야가 끝까지 전쟁의 모사(謀士)요 능한 자 되시는 여호와(시24:8)를 확신하고 신뢰했다면 앗수르인들의 이런 조롱을 당치 않았을 것이다. 과거 모세는 홍해 바다에 막혀 애굽 군대를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여호와에 대한 신뢰가 굳건했기 때문에 승리를 맛볼 수 있었지 않았던가(출14:13,14)! 21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ㅇ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 여기서 이미 히스기야가 애굽과의 동맹을 교섭 중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처럼 애굽과 동맹맺는것을 누구보다도 비난한 사람은 이사야 선지자였다(사31:3). 사실 당시에 애굽이 어느 정도 이전 세력을 되찾고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앗수르와 맞설 만한 상대는 되지 못하였다(Hobbs). 한편 여기서 랍사게가 애굽을 갈대에 비유한 것은 애굽을 상징하는 나일 강변에 갈대가 많기 때문이다(Keil).그러기에 셀29:6과 사42:3에도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갈대 지팡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상한 갈대지팡이'와 '여호와에 대한 의뢰'는 완전히 대조적인 것이다. 갈대, 그것도 상한 갈대를 의지하는자는 그 갈대가 부러찔 때 껍질에 찔려 오히려 피를 흘리게 되지만(사36:6)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영원 무궁 형통하게 될 것이다(시1:1-3), 한편 성경에서 '상한 갈대'라 는 표현을 '꺼져 가는 등불'과 함께 인생의 연약함을 비유할 때도 사용된 적이 있다(사423;마12:20). 22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ㅇ본절에 기록된 랍사게의 날카로온 비평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 (1)히스기야가 종교 개혁의 일환(一環)으로 산당과 제단을 파괴한 것(4절)은 지금에 와서는 전혀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2)히스기야의 그런 종교적 혁신이 지금에 와서는 그가 하나님을 의뢰함에서 나온 행위였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대한 이러한 랍사게의 비평은 당시 히스기야의 순수한 열정과 신앙에만 비추어 본다면 맞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이 변한 지금에 와서 랍사게의 이러한 말은 분명 히스기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예리한 질책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랍사게는 이와 같은말을 함으로써 히스기야의 기세를 꺽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에서 더 나아가 랍사게는 자기 자신을 히스기야의 그러한 신앙상태를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자로까지 표현하고 있다(25절). 이는 분명 오만무뢰한 태도로서 곧 하나님을 망령되게 한 헹위가 아닐 수 없다(Matthew Henry). 23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그 말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필을 주리라 ㅇ만일...말 이천 필을 주리라 - 22절과 본절의 내용을 볼 때 산헤립 왕은 유다의 정치적, 종교적 상태 뿐만 아니라 군대 현황에 대해서도 거의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J.B Pritchard, Ancient Near Eastern Texts). 그래서 그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앙심을 동요시켰을 뿐만 아니라(22절) 유다의 군사력의 약점을 공격함으로써 계속 히스기야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대하32:1-8을 보면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입에 대비하여 병력을 보강하고 말들을 정돈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절에 기록된 랍사게의 말처럼 그 기병의 수가 말들을 탈수 있을 만큼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복 중 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듯 하냐 ㅇ지극히 작은 장관 하나 - 여기서 '장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하트'는 한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장관이라는 것은 가장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가리킨다.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ㅇ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여기서 이방인인 랍사게가 '여호와의 뜻'을 운은 한다고 할지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에 패한 것을 그 나라 신의 진노로 해석하는 경우는 흔히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모압 왕 메사는 모압이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억압을 받는것(3:4)을 모압 신 그모스의 진노 때문이라고생각했다. 그리고 고레스 역시 자신이 바벧론을 차지한 것은 말둑(Marduk) 신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J.B. Pritchard). 따라서 랍사게가 '여호와의 뜻'을 운운한 것은 22-24절에서 전개된 논리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즉 다시말하면 (1)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사실과(24절) (2)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한 사실(22절)등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보내 유다를 심판케 하셨다는 것이다. 더욱이 랍사게는 당시에 유대의 예언자들이 앗수르의 침입을 여호와의 심판이라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사8:7)을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Keil,Rawlinson)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컨대 아람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의 듣는데 유다 방언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ㅇ본절을 통해서 볼 때 랍사게는 히브리 방언에 아주 능통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유다 말로 19-25절까지의 내용을 말한 것은 유다의 사기를 꺽기 위한 것이었음에 분명하다(27절). 그래서 본절에서 유다의 세 사자(使者)는 유다 말로 말하지 말고 아람 말로 말하라고 한 것이다. 한편 아람어는 당시에 주요 외교 언어였으며 바사(Persis)시대에는 공식적인 바사 제국의 언어가 되었다(Hobbs). ㅇ유다방언 - 유다 방언은 서부 셈계 방언에 속한다. 그리고 앗수르어 및 아람어와 동족어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구약 서론, '구약의 언어'를 참조하라. 27 랍사게가 저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로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ㅇ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 이는 곧 계속적인 악순환만 있을 뿐이며 헤쳐나갈 길이없다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즉 앗수르의 군대가 장기간 예루살렘을 포위할 경우에는 성벽위에 앉아서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일반 백성도 왕의 신하들과 함께 먹을 것이 없어서 대변과 소변을 먹어야 할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니 지금 항복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말이다. 랍사게의 이런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현혹하며 위협하는 것이다. 즉, 백성들이 이와 같은 말을 듣고 하루속히 항복하기를 원하도록 하려는 위협적인 술책이다.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ㅇ저가 너희를...건져 내지 못하리라 - 본절과 같은 랍사게의 말은 당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는 정반대된다. 왜냐하면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유다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충고(19:6,7;대하32:6-8)와 함께 앗수르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사31:4-6). 그런데도 랍사게는 지금까지 히스기야의 사자들에게 말하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들과 병사들을 향하여 '히스기야에게 속지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ㅇ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 사실 대하 32:6-8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처음에는 굳센 신앙 가운데서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라는 말로써 군대 장군들과 백성들을 위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히스기야의 그러한 행위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랍사게는 이제 히스기야가 다시금 돌이켜 여호와를 의지하라고 소리쳐도 그에 귀기울이지 말라고 선동함으로써 민심(民心)을 동요시키고 있는 것이다(대하32:18,19).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ㅇ본절에서 랍사게는 이제 마지막으로 유다 백성들을 회유하고 있다. ㅇ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내게로 나와서 나와 함께 복을 만들자' 이다. 즉 여기 한글 개역 성경에서 '항복하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쎄라카'는 '선물', '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영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우리가 화평하자'로 번역하고 있다(Niv,Rsv). ㅇ너희는 각각 먹고 마시라 - 이러한 회유(懷柔)의 말은 27절에 나오는 위협의 말과 대조가 된다. 한편 여기서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는다는 표현은 신8:8과 33:28에 나오는 풍요의 땅 가나안에 대한 묘사와 일맥 상통한다. 그리고 우물의 물을 마신다는 표현 또한 뭍질적인 풍요를 비유하는말이다. 즉 랍사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복하고 앗수르에로 나아올 경우 그곳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되리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곤 오직 눈물과 한숨, 고통의 빵밖에 없을 것이다.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면려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ㅇ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꿀이 있는 지방이라 - 본절에서 랍사게는 앗수르의 이주 정책을 애써 미화시켜 유다 백성들을 설득하고 있다. 즉 본절에는 앗수르의 군대 장관이 예루살렘 성민들에게 일종의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듯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산헤립의 전왕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타지역으로(17:6), 그리고 타지역의 사람들은 사마리아로(17:24) 이주시켰는데, 당시의 앗수르 왕들은 정책상 흔히 피정복민들을 집단 이주시키곤 하였다. 따라서 랍사게의 감언 이설 또한 이러한 정책의 일환에 불과할 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자기가 하는 일이 인간들의 복지를 위한것처럼 꾸미려하나 실상은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다(마7:15) ㅇ듣지 말라 - 랍사게는 여호와에 대한 유다 백성의 신앙을 빼앗아 앗수르에게로 그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1)25절에서 그는 여호와를 유다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2)그리고 29,30절에서는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3)또한 31,32절에서는 여호와가 유다 백성에게 주신 축복을 앗수르 왕도 줄 수 있다고 한다.(4)마지막으로 33-35절에서는 다른 이방 신들과 마찬가지로 너희 신 여호와도 너희 유다 백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랍사게의 감언 이설과 회유는 하나님의 손에서 그의 백성들을 빼앗아 가려는 사단의 희유와 같다. 즉 사단은 항상 여호와에 대한 부정적인 신앙을 강요하고 온갖 감언 이설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굳게 서 아무도 우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해 할 것이다(요일3:7) 33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ㅇ열국의 신들 중에 있느냐 - 이처럼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열국의 이방 신들과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이것은 열국의 신들에 비해 여호와의 독특함을 강조하고 있는 신4:34의 말씀과 명백한 대조가 된다. 때문에 신명기적 역사관을 지닌 열왕기 기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문제는 신학적인 핵심적 관건이 된다. 왕상 서론, '저자' 참조. 그가 본서 첫장에서 여호와와 이방신들 간의 대조적인 면을 문제삼았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러한 면을 강하게 인식하도록 설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ㅇ하맛과...아와의 신들 - 여기에 나열된 이방의 신들에 관해서는 이미 17:30,31절 주석에 설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그곳을 참조하라. 그러나 아르밧(Arpad)과 헤나(Hena20)에 대해서는 처음 언급되고있다. 이 중 아르밧은 아람의 한 도시인 알렙포(Arpad)의 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오늘날의 '텔아르피드'(Tell Arfid)에 해당된다. 그러나 헤나는 유프라테스 강가의 아나(Ana)로 추측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ㅇ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 본절은 주어 '그들'이라는 말 때문에 문제가 되곤 한다. 따라서 70인역(LXX)과 벌게이트 역(Vulgate)에서는 이 문장 앞에 '사마리아 땅의 신들은 어디갔느냐?'라는 구절을 삽입하였다. 그러나 본절과 같은 성경 원문의 문맥이 어색하기만 한것은 아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함락(B.C722년) 이전에도 이방 신들을 많이 섬겼으며(17:24). 특히 함락 이후 그곳 잔류민들은 새 이주민들의(17:7-23) 종교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구해 주지 못했으니, 이제는 새 종교들에 희망을 걸어 보자고 생각하며, 그 종교들을 더욱 열심히 승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신들이 그들을 구해줄 리는 만무한 것이었다. 한편 17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사마리아의 멸망은 유다에 대해 상당한 위협이되었을 것이다. 본장 서두(9-12절)예서 먼저 사마리아의 멸망을 회고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35 열국의 모든 신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ㅇ그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 랍사게의 입장에서 볼 때 본절과 같은 앗수르왕의 주장은 타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실제로 사마리아는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멸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븐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마리아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였지 단순히 앗수르의 침략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를 구원하고자만 하셨다면 단번에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 내셨을 것이다(17:7-18). 신4:34에서도 다른 신들은 결코 하지 못한 일을 여호와만이 행하셨음을 분명히 언급하고있지 않은가! 36 그러나 백성이 잠잠하고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니 이는 왕이 명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ㅇ대답하지 말라! - 히스기야 왕이 랍사게와 앗수르의 오만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명령을 미리 한 것인지는 분명히 알 수없다. 그러나 이는 랍사게가 더 이상 아무 말을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아주 효과적인 조치였다. 즉 설전(舌戰)은 오고 가는 말 속에서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질 때 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있다. 그러나 유다 성읍민을 자극시켜 그들의 불평을 유도, 내란 사태에 빠뜨리려는 랍사게의 계획은 들은 척도 아니한 백성들의 자세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들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유혹은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물리칠 수 있다는 영적 교훈을 제시해 준다(약4:7;요일5:4;갈5:16) 37 이에 힐기야의 아들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ㅇ그 옷을 찢고 - 성경에는 여러 형태의 옷을 찢는 행위가 언급되어 있다. 즉, 문둥병자의 경우에나(레13:45), 상징적 행동으로(왕상11:30), 혹은 회개할 때(22:8-20) 옷올 찢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옷 찢는 행위는 슬픔이나 고통, 분노 등을 나타낼 때였다(창37:34;수7:6;삿11:35;삼하3:31;13:19;행14:14). 본절에서 히스기야의 신복들이 슬픔과 분노를 표시한 이뿐만 아니라 왕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무시하여 조롱했기 때문이었다. ㅇ랍사게의 말을 고하니라 - 이 상황은 1장에서 아하시야의 사자들이 아하시야에게 엘리야의 말을 전하는 장면과 비교된다(1:13-18). 즉, 19절의 '대왕'의 말과1:16의 여호와의 말씀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본서 기자가 이와같이 본장의 막바지에서 상당히 극적인 묘사를 하고있는 것은 다음 장에서의 히스기야의 태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즉, 히스기야는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한 결과 앗수르 대왕로부터 참람(僭濫)한 말을 들었다. 이에 그는 19장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여호와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행동의 전환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