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8장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가 준비되기를> 그토록 오래 기다리시는 바, 주님께서 보기를 갈망하시는, 온전케 된 유일한 생명은 Q을 전적으로(절대 긍정-절대 신뢰-절대 기쁨으로) 의지<의존>하고 그대로 따르는,<그분의 그릇된 바 여자의 생명..적극적 여성 생명>임을 명심하라.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다
1. [410.내맘에한노래있어] [412.내영혼의그윽히 깊은데서] [314.내구주예수를더욱사랑] [446.주 음성외에는..열린 영, 영적 감동-감사 안에서 주 앙망함으로 주님 말씀 공급함]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20-21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임종을 앞두고서는 더욱 주님 경외함과 감사-감동으로 하나된 그가 더더욱 분명하게 열어 주심으로 보고 있는 바 주의 마음과 하나되어 주님 말씀따라 그대로 이르고 있다))
..@@섬기다, 가다, 오다, 걷다 = 동행하다 = (목자가 되어 섬겨주시다)...&l'h;(1980, 할라크) ...할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가다, 오다, 걷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오며, 다양한 문맥에서 그 문맥에 따라 '가다, 오다, 걷다, 떠나다, 나아가다, 계속하다, 지나가다, 행하다, 생활하다, 여행하다, (물이) 흐르다, 추방하다, 파괴시키다, 돌아다니다, 함께 가다, 교제하다' 등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할라크는 특히 다음과 같은 용법들, 즉 명령적인 외침의 용법(창 37:13, 창 37:20, 창 19:32, 창 31:44), 다른 동사의 역할을 확대시키는 부정사로서의 용법(창 8:3, 창 8:5), 다른 동사의 역할을 구체화시키는 한정사로서의 용법(창 27:14, 창 50:18, 왕하 3:7, 사 2:3)에 주목해야 한다.
(b) 여러 종류의 '가는 행위'에 대한 구체적 적용은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뱀의 '기어 다님' creeping(창 3:14), 여우의 '노님' prowling(애 5:18), 배의 '항해' sailing(창 7:18), 물의 '흐름' flowing(창 2:14), 나팔 소리의 '커져 감' laying(출 19:19), 사람의 '걸어감' walking(출 14:29) 등이다. 다른 특별한 용법에서, 이 동사는 어떤 것의 끝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비(아 2:11), 이슬(호 6:4), 바람(시 78:39), 슬픔(욥 16:6), 인간의 생명(창 15:2, 수 23:14) 등의 '끝'을 의미한다.
(c) 이 단어는 가상적인 신(시 115:7)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되기도 한다. 비록 신현현에 대한 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사들이 사용되지만 신현현의 문맥에서 분명하게 할라크가 사용된 경우가 적어도 한번은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창 18:33). 아마도 창 3:8도 역시 신현현의 문맥일 수 있지만 그 분사는 '여호와 하나님' 보다는 콜(음성)에 연결되는 것 같으며, 이때 그 번역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날 바람결에 동산 전역에 퍼져 가던(going)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 신인동형론적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은 구름 위를 걸으시거나(시 104:3) 하늘에서 걸으신다(욥 22:14). 보다 더 흔하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서, 할라크는 심판이나 축복(삼하 7:23, 시 80:2), 특히 광야 방황 동안에(예. 출 33:14, 출 13:21) 그의 백성에게 오시는 여호와께 사용된다. 후자의 문맥과 관련하여 새로운 출애굽(사 45:2)을 기억하라. 광야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궤를 뒤따랐듯이 그들은 의식에서 그 뒤를 따른다(드물게 할라크로 표현됨; 참조: 수 3:6, 민 10:32-36).
(d) 배교는 그들이 다른 신이나 거짓 신을 '좇는다'(출 32:1, 렘 5:23)거나, 자기 자신의 악한 꾀(렘 7:24, 시 1:1)나 악한 마음(렘 11:8)을 추구하거나 어둠 속에 행하는 것으로(사 9:2 [H1]) 표현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레 26:24). 진실로 경건한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즉,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왕상 3:14, 시 119:1 이하). 이 개념은 할라크 만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체다코트, 사 33:15 등과 같이 단어 아하레와 함께 쓸 필요가 없다).
히트파엘형은 이와 관련하여 동작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산 사람들의 좋은 예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이 있다(창 5:22, 창 6:9, 창 17:1). (참조: L. J. Coppe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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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르다= 풀을 뜯기다= 먹이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됨으로써)사귀다=교제하다, 친구가 되다....h[;r;(7462, 라아)
라아(동사)는 기본어근이며, (a) '풀을 뜯기다, 방목하다, 풀을 뜯다', (b) '교제하다, 사귀다, 친구가 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70회 이상 나온다.
1. 칼형에서.
(a) '먹이다, 방목하다, ~을 돌보다', 창 37:13, 창 30:13, 민 14:33, 삼상 16:11, 삼상 17:34.
분사로 '목자', 창 13:7, 창 26:20, 창 29:9. ...비유적으로 ① '다스리다, 통치하다', 군주에 대해, 삼하 5:2, 삼하 7:7, 렘 23:2, 시 78:1, 하나님에 대해, 시 23:1, 시 28:9, 시 80:1, 교사에 대해, 잠 10:21. ② '양육하다, 부양하다', 호 9:2.
(b) '먹다', 사 5:17, 사 11:7, 사 56:25, 렘 50:19, 겔 34:14, 겔 34:18, 겔 34:19, 미 7:14.....비유적으로, '뜯어 먹거나 먹는다'는 의미에서 '황폐케하다, 삼키다', 미 5:6, 렘 22:22, 렘 2:16, 욥 24:21.
(c)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① 사람, 잠 13:20, 잠 28:7, 잠 29:3. ② 사물, 잠 15:14, 시 37:3, 호 12:2, 사 44:20.
2. 피엘형에서....'친구가 되다, 자신을 다른 사람에 결합시키다', 삿 14:20.
3. 히트파엘형에서....'사귀다, 교제하다', 잠 13:20, 잠 22:24, 사 11:7.(참조: Gesenius,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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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 "분리, 이탈, 편향, 기울다, 길을 잘못 들다(방황) = 고생, 환난 = 험악한 나그네 길"이라는 뜻
.....하나님이 루스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막막하고 고달프고 기진맥진하였고 쉴 것 없이 외로이 지친 그가 돌을 베게 삼아 베고 자고 있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서있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이것은 인자가 하늘과 이 땅을 연결하는 것을 의미..베냐민 지파의 영역에 대한 정의에서 루스(Luz)가 언급되고 있는데 벧엘과 동일시되고 있다
[요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이 이 땅에 강림하신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했다 구약의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창 28: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루스는 야곱에 의해 벧엘이라고 고쳐진 가나안의 옛 도시 이름으로, 야곱은 후에 요셉에게 루스에서 엘 샤다이 즉 전능의 하나님이 나타났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루스는 "길을 잘못들다 기울다 이탈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야곱이 하나님과 만남으로 루스에서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있다. 길을 잘못 들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집에 오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도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주심으로써 벧엘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집으로 인도해 주셨다))
.....이삭이 리브가를 통해 쌍둥이를 낳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창25:23)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은 성격이 아주 달랐는데 장남 에서는 들에서 사냥을 즐겼고 야곱은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스스로 큰 자가 되려 하는!!> 야망이 있었고, 그래서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으며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기도 했으며, 그 결과 가정은 파탄으로 치닫고 형제간의 사랑은 사라지고 죽음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황급히 야곱은 삼촌댁으로 도망을 쳐야 했고, 결국 처량한 신세가 되어 루스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루스는 그 의미와 같이 올바른 삶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거하게 되는 곳을 의미하고 있다. .... 속임으로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인간마다 결국 루스와 같은 황막하고 절망적인 곳으로 치닫게 된다 함이다..
루스에 이르기 전 야곱의 삶은 속임으로 일관된 악인의 삶이었다 그 결과 에서에게 쫓기어 처량하게 거리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과 땅을 왔다 갔다 하는 꿈을 보여주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오해한 나머지, [주님 바라봄이 아니라 사탄의 부추김인 바] 스스로의 야망을 따라 사는 야곱을 매몰차게 몰아갈 수도 있으셨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삭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주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수완으로 그것을 이루어 왔으며 그 결과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자비를 구하기도 전에 먼저 야곱을 찾아오셨다... 마치 로마를 등에 업고 무거운 세금을 매겼던 세리장 삭개오에게 예수께서 먼저 찾아오신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호와라, 여호와라...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무궁한 하나님이라...>하심처럼.. 먼저 노하기를 더디하심(=오래참아주심)으로 세밀하고도 무한한 긍휼-자비-은혜로 죄인 된 인간을 용서하시면서, 그분의 때에 친히 찾아오사 만나주시고 위무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죄 된 삶과 연약한 삶으로 절망하기 전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리라...
루스는 인간의 욕망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도달하게 되는 이탈된 삶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루스는 벧엘로 바뀌게 되었으니... 이는 이탈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집으로 초대하심으로써 지친 영혼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다시금 힘을 얻고 살아가는 곳 삼게 하고 계셨다.
[시84:2...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는 시인의 고백이 바로 지친 영혼의 고백이 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디서나 우리를 만나주시지만 오늘날 여호와의 궁정, 하나님의 집 곧 교회에서, 특별히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힘을 덧입는다.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장자의 두 몫을 요셉이 받는 바, ((마치 야곱은 양자 삼음 처럼))두 지파로 선언]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애굽(세상)에속한 영웅적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니라 주께 속한 자에 합당한, 고생과 환난, 시련을 통한 영적 훈련 감내함 통해 <야곱처럼,...그리고 아직 완전히 다 성숙하지는 않은 요셉처럼> 양육 받고 참생명 그리스도의 몸을 낳는 자들로 삼으심을 선언!!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에브라임과 므낫세 후 얻을 수 있는 아들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5, 6절은 르우벤으로부터 장자권(두 몫) 이동을 의미하고 있음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주님의 섭리가 있음이니..따로 (막벨라 굴로) 이장하려 말고>그대로 그냥 거기 두라..."라헬에 관한 것인데 내게 대하여는"이라 말함으로써 라헬의 에브랏 길 죽음과 장례는 곧 야곱 자신에 대한 것, <라헬은 그녀의 주어진 인생을 진정 최선 다해 잘 살았고, 그녀의 죽음과 장례가 12지파 성립에 지장 초래됨이 전혀 없었음>을 감사하며 주님의 의 섭리를 암시하고 있음
8. [484.내맘의주여소망되소서] [487.어두움후에빛이오며] [488.이몸의소망무언가][494.만세반석열리니]○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면..이들은 누구라고 해야 하느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할라크...완전한 하나됨의 왕래/동행= 기업됨/분깃됨 = 임마누엘 목자로 동행하사 친히 하나됨으로 섬겨주심 인해 섬김이 무엇인지 본을 보이심 인해, 그들이 섬김을 배움 인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가알]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오직 하나님의 원하심, 그 기쁘신 뜻 이루소서....그중의 하나가 영적 참 아들, 영적 장자에 대한 주님 마음의 뜻도 들어있음을 보아야 함))
......@@건지다, 되 사다,(값을 치르고!!) 속량/구속하다, 근친의 역할<=고엘...>을 행하다...la'G:(1350, 가알)
가알(동사)은 기본어근이며, '되사다, 도로 찾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redeem, 근친 역할(권리, 의무)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어근은 '자기 친족을 어려움이나 위험에서 구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어근과 매우 유사한 어근 파다([d"P; , 6308): 구속하다 redeem)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일반적으로 가알(la'G: , 1350)의 강조점이 근친((그리스도는 생명/피를 나눔으로써 가장 가까운 근친되셨음을 명심하라!!))의 특권이나 의무인 속량에 있다는 데에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회 이상 나오며, 칼형과 니팔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가알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 자기의 친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포함하는 4개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a) 첫째로, 가알은 오경의 법령에서 궁핍한 때에 판 밭을 되사는 것이나 가난할 때 자신을 판 이스라엘인 노예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런 매입과 무르는 일은 근친의 의무였다(레 25:25-54).
레 25:25에서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하였다. 만약에 자신이 부유하게 되면 그 사람 자신이 그것을 '무를' 것이다(레 25:26). 가난한 자는 자기 자신을 동족 이스라엘인에게나(레 25:39)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타국인(레 25:47)에게 팔기도 하였다.
속량할 책임은 가장 가까운 친척 - 형제, 삼촌, 사촌들, 가족의 혈족 - 에게 있었다(레 25:25, 레 25:48, 레 25:49).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친척을 속량한 redeemed 자(혈연자)는 '근족 - 구속자'로 알려져 있었다.(참조: EDBW).
가난한 자의 구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실례는 수혼법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가 가장 광범위하게 미치는 룻기에 있는 것 같다.
신 25:5-10에 의하면, 남편의 형제는 후사 없는 과부를 취하여서 씨를 영속시키고, 남자 후손과 결부되어 있는 땅의 계승을 보증해야 했다.
여기에서 근친은 야밤이라고 불리어진다. 어근 가알은 사용되지 않는다.....룻의 상황에서는 두 가지 것들, 즉 밭과 수혼이 언급된다. 근친은 밭을 사는 것을 기꺼워했지만, 룻과 결혼하는 것은 기꺼워하지 않았다. 문제의 요지는 나오미가 가난하여 밭을 팔 수 밖에 없었을 때, 근친은 그녀를 위해 그 밭을 되사야 했다는 데 있다. 그는 후사 없는 형제의 과부를 위해서 이 일을 기꺼이 했다. 그가 룻과 결혼하여 그들의 기업을 지속시킬 자손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는 거부하였으며 보아스가 개입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 즉 친족과 수혼은 구별되어야 한다.
고엘(구속자)이란 단어는 후자의 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레게트(Leggett)는 룻기에 구속적이고 메시야적인 유형론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고엘(goel)로서의 보아스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보아스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예시되어 있음을 보았다.
보아스가 구속의 권리를 소유하였으면서도 분명히 룻을 위하여 개입할 의무는 없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다.
보아스가 이 가난한 과부들의 곤경을 보았을 때 그의 생애가 여호와와 여호와의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러 왔던 것과 같이 메시야의 경우도 그의 생애가 하나님의 법에 의해 지배되고 또한 그가 가난한 자들과 억압 받는 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실 것이라는 사실이 예언되었다(시 72:2, 시 72:4, 시 72:12, 시 72:13, 사 11:4).
(b) 둘째로, 가알은 재산이나 여호와께 바쳐진 희생제물 아닌 짐승들을 무르는 것, 혹은 부정한 짐승들의 첫 소산을 무르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레 27:11-33).
이 사상은 인간이 교환물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여호와께 바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속전은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약간의 추가 몫이 제공되었다. 이런 경우에 무르는 자는 친족이 아니라 재산의 주인이었다.
(c) 셋째로, 가알은 살해당한 사람을 대신하여 "피의 보수자"(RSV '보복자' revenger)가 되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칼 분사 고엘로 나타난다.
고엘은 구속자이며, 이 구속자는 '피의 보수자'로 불리우는데, 그의 임무는 자신의 친척을 살해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다(신 19:6).
이 사상은 가까운 친족이 생명에는 생명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임에 틀림없다. 돈을 지불함으로서 집을 재매입하거나 노예를 속량할 수 있는 것처럼, 친족의 잃어버린 생명은 마땅히 살인자의 그에 상응하는 생명으로 지불되어야 한다. 친족은 피의 보수자이다.
이런 사형 제도는 피비린내 나는 숙원과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엘은 죄없는 사형 집행인이었으며 따라서 살해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보수자'라는 의미로 12회 나온다(민 35:12, 민 35:19, 민 35:21, 민 35:24, 민 35:25, 민 35:27, 신 19:6, 신 19:12, 수 20:3, 수 20:5, 수 20:9).(참조: R. L. Harris).
(d) 넷째로, 가알은 하나님께서 '구속자'로서 '구속하시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
출 6:6에서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라고 약속하신다(출 6:6, 참조: 시 77:15).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출 15:13).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시 78:35).
이사야서에는 '구속자'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지칭하여 13회 나오는데 모두 사 41- 63장에서 사용되었다.
가알은 하나님에 대해 9회 사용되었으며, 사 43:1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가알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사 51:10, 사 63:9)과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의 구원(사 48:20, 사 52:3, 사 52:9, 사 62:12)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사 41:14)이며 '너희의 왕 이스라엘의 창조주'(사 43:14, 사 43:15)이며 '만군의 여호와'(사 44:6)이며 '야곱의 전능자'(사 49:26)이다. 그의 구원에 참예하는 자는 '구속 받은 자'이다(사 35:9).
시편에는 종종 영적인 구원이 육적인 구원과 병행되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시 69:18.,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하소서". 시 103:2, 시 103: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윤택을 잊지 말찌어다...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이 그러하다(참조: EDBW).
유명한 구절, 욥 19:25에서 고엘이란 단어는 흠정역성경에서 '구속자' redeemer로 번역되며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속죄의 사역을 하러 오실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히브리어 파다에 의해 더욱 특징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제 욥 19:25에 나오는 이 단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욥을 죽음의 먼지에서 구속할 친구이자 친족으로서의 하나님의 사역과 더욱 정확하게 관련된다. 욥 19:26의 난해한 어구, "이 가죽...후에"는 다른 모음들과 함께 "내가 깨어난 후에"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NIV 각주와 욥 14:12-14을 참조하라. 욥 14:12-14에서 부활에 관한 욥의 질문은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그를 돌아보시며 욥은 나무처럼 제 2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그의 소망에 의해 절정에 달하게 된다 - 욥 14:14의 할리파는 욥 14:7의 할랍에 대한 응답이다). 어쨌든 욥은 마침내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고엘이신 하나님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참조: R. L. Harris).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세겜 땅은 두 몫의 땅 분배(수16, 17장의 제비뽑기)에서 제외되어 <에브라임 지파 몫으로 유증함으로써> 그대로 준행하여 이루어짐
--AMP]---
===Israel’s Last Days.48.
1 Now some time after these things happened, Joseph was told, “Your father is sick.” So he took his two sons Manasseh and Ephraim with him [to go to Goshen].
2 And when Jacob (Israel) was told, “Look now, your son Joseph has come to you,” Israel strengthened himself and sat up on the bed.
3 Then Jacob said to Joseph, “[a]God Almighty appeared to me at Luz (Bethel) in the land of Canaan and blessed me,
4 and said to me, ‘Behold, I will make you fruitful and numerous, and I will make you a great company of people, and will give this land to your descendants after you as an everlasting possession.’
5 Now your two sons [Ephraim and Manasseh], who were born to you in the land of Egypt before I came to you in Egypt, are mine; [b]Ephraim and Manasseh shall be mine [that is, adopted as my heirs and sons as surely], as Reuben and Simeon are my sons. ((주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리라!!))
6 But other sons who were born to you after them shall be your own; they shall be called by the names of their [two] brothers in their inheritance.
7 Now as for me, when I came from Paddan [in Mesopotamia], Rachel died beside me in the land of Canaan on the journey, when there was still some distance to go to Ephrath; and I buried her there on the way to Ephrath (that is, Bethlehem).”
8 When Israel [who was almost blind] saw Joseph’s sons, he said, “Who are these?”
9 Joseph said to his father, “They are my sons, whom God has given me here [in Egypt].” So he said, “Please bring them to me, so that I may bless them.”
10 Now Israel’s eyes were so dim from age that he could not see [clearly]. Then Joseph brought them close to him, and he kissed and embraced them.
11 Israel said to Joseph, “I never expected to see your face, but see, God has shown me your children as well.”
12 Then Joseph took the boys [from his father’s embrace], and he bowed [before him] with his face to the ground.
13 Then Joseph took them both, Ephraim with his right hand toward Israel’s left, and Manasseh with his left hand toward Israel’s right, and brought them close to him.
14 But Israel reached out his right hand and laid it on the head of Ephraim, who was the younger, and his left hand on Manasseh’s head, [c]crossing his hands [intentionally], even though Manasseh was the firstborn.
15 Then Jacob (Israel) blessed Joseph, and said, “The God before whom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walked [in faithful obedience], The God who has been my Shepherd [leading and caring for me] all my life to this day,
16 The [d]Angel [that is, the Lord Himself] who has redeemed me [continually] from all evil, Bless the boys; And may my name live on in them [may they be worthy of having their names linked with mine], And the names of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And may they grow into a [great] multitude in the midst of the earth.”
17 When Joseph saw that his father laid his right hand on Ephraim’s head, it displeased him [because he was not the firstborn]; and he grasped his father’s hand to move it from Ephraim’s head to Manasseh’s head.
18 Joseph said to his father, “Not so, my father, for this is the firstborn; place your right hand on Manasseh’s head.”
19 But his father refused and said, “I know, my son, I know; Manasseh also will become a people and he will be great; but his younger brother shall be [e]greater than he, and his descendants shall become a multitude of nations.”
20 Then Jacob blessed them that day, saying, “By you Israel will pronounce a blessing, saying, ‘May God make you like Ephraim and Manasseh.’” And he put Ephraim before Manasseh.
21 Then Israel said to Joseph, “Behold, I am about to die, but God will be with you, and bring you back to [Canaan] the land of your fathers.
22 Moreover, I have given you [the [f]birthright,] one portion [Shechem, one mountain ridge] more than any of your brothers, which I took [reclaiming it] from the hand of the Amorites with my sword and with my bow.”
===Footnotes
Genesis 48:3 Heb El Shaddai.
Genesis 48:5 This act of adoption effectively gave Joseph the birthright and a double allotment of the territory of the promised land when it was apportioned by Joshua (Josh 16; 17). The second son, Ephraim, was named before his older brother because Jacob planned to give him the primary blessing.
Genesis 48:14 God acts independently of priority based on birth order when He chooses men. He too “crossed His hands” in the case of Seth whom He chose over Cain; of Shem over Japheth; of Isaac over Ishmael; of Jacob over Esau; of Judah and Joseph over Reuben; of Moses over Aaron; and of David over all his brothers.
Genesis 48:16 See note 16:7.
Genesis 48:19 This prophecy begins to be fulfilled during the time of the judges, as the tribe of Ephraim increased in prominence and became the head of the northern ten tribes. Joshua, whom Israel regarded as their ruler, was an Ephraimite. The ark of the covenant was placed in Shiloh in the territory of Ephraim, which also increased the tribe’s prestige. By its fulfillment, Jacob’s prophecy proved to be divinely inspired.
Genesis 48:22 See note 49:3.
KJV]----
1. And it came to pass after these things, that one told Joseph, Behold, thy father is sick: and he took with him his two sons, Manasseh and Ephraim.
2. And one told Jacob, and said, Behold, thy son Joseph cometh unto thee: and Israel strengthened himself, and sat upon the bed.
3. And Jacob said unto Joseph, God Almighty appeared unto me at Luz in the land of Canaan, and blessed me,
4. And said unto me, Behold, I will make thee fruitful, and multiply thee, and I will make of thee a multitude of people; and will give this land to thy seed after thee for an everlasting possession.
5. And now thy two sons, Ephraim and Manasseh, which were born unto thee in the land of Egypt before I came unto thee into Egypt, are mine; as Reuben and Simeon, they shall be mine.
6. And thy issue, which thou begettest after them, shall be thine, and shall be called after the name of their brethren in their inheritance.
7. And as for me, when I came from Padan, Rachel died by me in the land of Canaan in the way, when yet there was but a little way to come unto Ephrath: and I buried her there in the way of Ephrath; the same is Bethlehem.
8. And Israel beheld Joseph's sons, and said, Who are these?
9. And Joseph said unto his father, They are my sons, whom God hath given me in this place. And he said, Bring them, I pray thee, unto me, and I will bless them.
10. Now the eyes of Israel were dim for age, so that he could not see. And he brought them near unto him; and he kissed them, and embraced them.
11. And Israel said unto Joseph, I had not thought to see thy face: and, lo, God hath showed me also thy seed.
12. And Joseph brought them out from between his knees, and he bowed himself with his face to the earth.
13. And Joseph took them both, Ephraim in his right hand toward Israel's left hand, and Manasseh in his left hand toward Israel's right hand, and brought them near unto him.
14. And Israel stretched out his right hand, and laid it upon Ephraim's head, who was the younger, and his left hand upon Manasseh's head, guiding his hands wittingly; for Manasseh was the firstborn.
15. And he blessed Joseph, and said, God, before whom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did walk, the God which fed me all my life long unto this day,
16. The Angel which redeemed me from all evil, bless the lads; and let my name be named on them, and the name of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and let them grow into a multitude in the midst of the earth.
17. And when Joseph saw that his father laid his right hand upon the head of Ephraim, it displeased him: and he held up his father's hand, to remove it from Ephraim's head unto Manasseh's head.
18. And Joseph said unto his father, Not so, my father: for this is the firstborn; put thy right hand upon his head.
19. And his father refused, and said, I know it, my son, I know it: he also shall become a people, and he also shall be great: but truly his younger brother shall be greater than he, and his seed shall become a multitude of nations.
20. And he blessed them that day, saying, In thee shall Israel bless, saying, God make thee as Ephraim and as Manasseh: and he set Ephraim before Manasseh.
21. And Israel said unto Joseph, Behold, I die: but God shall be with you, and bring you again unto the land of your fathers.
22. Moreover I have given to thee one portion above thy brethren, which I took out of the hand of the Amorite with my sword and with my bow.
NASB]---
1. Now it came about after these things that Joseph was told, "Behold, your father is sick." So he took his two sons Manasseh and Ephraim with him.
2. When it was told to Jacob, "Behold, your son Joseph has come to you," Israel collected his strength and sat up in the bed.
3. Then Jacob said to Joseph, "God Almighty appeared to me at Luz in the land of Canaan and blessed me,
4. and He said to me, 'Behold, I will make you fruitful and numerous, and I will make you a company of peoples, and will give this land to your descendants after you for an everlasting possession.'
5. "And now your two sons, who were born to you in the land of Egypt before I came to you in Egypt, are mine; Ephraim and Manasseh shall be mine, as Reuben and Simeon are.
6. "But your offspring that have been born after them shall be yours; they shall be called by the names of their brothers in their inheritance.
7. "Now as for me, when I came from Paddan, Rachel died, to my sorrow, in the land of Canaan on the journey, when there was still some distance to go to Ephrath; and I buried her there on the way to Ephrath (that is, Bethlehem)."
8. When Israel saw Joseph's sons, he said, "Who are these?"
9. And Joseph said to his father, "They are my sons, whom God has given me here." So he said, "Bring them to me, please, that I may bless them."
10. Now the eyes of Israel were [so] dim from age [that] he could not see. Then Joseph brought them close to him, and he kissed them and embraced them.
11. And Israel said to Joseph, "I never expected to see your face, and behold, God has let me see your children as well."
12. Then Joseph took them from his knees, and bowed with his face to the ground.
13. And Joseph took them both, Ephraim with his right hand toward Israel's left, and Manasseh with his left hand toward Israel's right, and brought them close to him.
14. But Israel stretched out his right hand and laid it on the head of Ephraim, who was the younger, and his left hand on Manasseh's head, crossing his hands, although Manasseh was the first-born.
15. And he blessed Joseph, and said, "The God before whom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walked, The God who has been my shepherd all my life to this day,
16. The angel who has redeemed me from all evil, Bless the lads; And may my name live on in them, And the names of my fathers Abraham and Isaac; And may they grow into a multitude in the midst of the earth. "
17. When Joseph saw that his father laid his right hand on Ephraim's head, it displeased him; and he grasped his father's hand to remove it from Ephraim's head to Manasseh's head.
18. And Joseph said to his father, "Not so, my father, for this one is the first-born. Place your right hand on his head."
19. But his father refused and said, "I know, my son, I know; he also shall become a people and he also shall be great. However, his younger brother shall be greater than he, and his descendants shall become a multitude of nations."
20. And he blessed them that day, saying, "By you Israel shall pronounce blessing, saying, 'May God make you like Ephraim and Manasseh!'" Thus he put Ephraim before Manasseh.
21. Then Israel said to Joseph, "Behold, I am about to die, but God will be with you, and bring you back to the land of your fathers.
22. "And I give you one portion more than your brothers, which I took from the hand of the Amorite with my sword and my 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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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장 (개요)
이스라엘이 죽어야 할 때가 가까워 오고 전장에서 그의 매장에 대해 명령을 내렸는데, 본 장에서는 요셉이 낳은 손자들, 그리고 모든 아들과 이별을 고한다.
야곱의 유언은 이처럼 기록되어 있으니, 그가 그 때 예언의 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예언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다른 이보다 더 빛나는 성도들의 임종이 있다. 성령은 바람처럼 임의로 분다.
1.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병환 소식을 듣고 그를 방문하러 가는데, 두 아들을 데리고 간다(1, 2).
2. 야곱이 엄숙히 요셉의 두 아들을 받아들여 자기 아들처럼 여긴다(3-7).
3.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다(8-16).
4. 야곱은 그들을 축복할 때 손을 어긋맞겨 얹은 이유를 설명하고, 정당화한다(17-20). 그는 요셉에게 특별한 유산을 남긴다(2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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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당한 최후의 병(창 48:1-7)
Ⅰ.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병을 알고 그를 보러 갔다. 지위가 있고 업무가 있는 사람이지만 요셉은 늙은 아버지께 존경의 의무를 바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1절).
우리는 우리가 의무를 가지고 있거나 그들에게 육체든 영혼이든 선을 베풀 기회를 가질지도 모르는 환자들을 병문안을 가야 한다.
환자의 침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충고를 주고 우리 자신들은 교훈을 얻는 좋은 장소다.
요셉은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곧 돌아가실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고 그들이 그에게서 보고 들은 것이 그들에게 영속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세상으로 나오는 젊은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하나님의 노종들을 알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들이 죽으면서 간증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의 길의 즐거움은, 자라는 세대에게 큰 격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감히 말하거니와)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이 때 있었던 일을 결코 잊지 못했을 것이다.
2. 경건한 부모들은 자기 자신들뿐 아니라, 자식들을 위해 축복받기를 원한다. “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소서!”
요셉은 다른 모든 형제보다도 아버지께 친절했고, 그러므로 그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기대할 만 했다.
Ⅱ. 야곱은 그의 아들의 방문을 알고, 가능한 한 잘 그를 맞을 준비를 했다(2절).
야곱은 자기의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껏 축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육체의 힘을 최대한으로 내서 “침상에 앉았다.”
병들고 늙은 사람들이 가능한 한 생기 있고 명랑해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역경의 날에 쓰러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 야곱처럼 “힘을 내면” 하나님이 당신을 건강케 하실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자신을 도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며 마음을 강하게 해 주실 것이다. 정신력이 강해지게 하라.
야곱은 요셉이 자기에게 베푼 모든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의 양자로 받아들였다. 이 양자의 헌장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그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것에 대한 특별한 발표가 있다.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셨다(3절). 그러므로 그 복을 이들에게 물려주리라.”
하나님이 그에게 두 가지 일을 약속하셨으니, 수많은 자손과 가나안의 상속이었다(4절).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요셉의 아들들은 각각 하나의 지파로 커지고, 야곱의 친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가나안에서 확실한 분깃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했던 것 안에서 그들을 어떻게 믿음으로 축복했는지 보라(히 11:21).
우리의 모든 기도에 있어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식들을 위해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2. 요셉의 아들들을 그의 가족으로 급히 받아들임.
“네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5절). 내 손자들일 뿐 아니라 내 아들들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아버지가 그 형제들과 떨어져 있어서 그들은 여호와의 기업에서 잘려 나간 것처럼 보였지만, 야곱은 그들을 받아들이고 가시적 교회의 일원으로 삼는다. 그는 이것을 16절에서 설명한다.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것은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애굽에서의 권력과 영예를 누리는 그들의 아버지를 계승하지 말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상속받은 나를 계승하게 하라.”
이 약속을 야곱은 훨씬 더 가치 있고 존중할 만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찬양하고 탐내도록 하고자 했다.
이와 같이 그 늙어 죽어 가는 족장은 이들 두 젊은이에게, 이제 나이가 됐으니(약 스물한 살쯤 됐다) 애굽을 그들의 고향으로 생각하지 말고 애굽 사람들과 섞이지 말며, 모세가 후에 그랬듯이 그들의 운명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도록 가르친다(히 11:24-26).
그리고 애굽에서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는 그들이 멸시받는 히브리인들과 연합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들에게는 자기 부정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야곱은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각각 한 족속의 족장으로 세운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부(富)와 출세의 유혹을 깨쳐 버리고 치욕과 곤경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이들은 두 배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교회 안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교회 밖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것보다 나으며, 가난한 야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부유한 요셉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믿게 하려 한다.((주의 전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좋고, 악인의 잠악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집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3. 요셉이 후에 가지게 될지 모르는 아이들에 대해 삽입된 대책.
그들은 에브라임이나 므낫세처럼 부족의 장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지만, 형들의 명의로 산업을 같이 해야 한다(6절).
요셉이 더 많은 자식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경쟁과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야곱의 배려였다.
뜻을 작정하기 전에 조언을 받아들이며, 예견할 수 없는 일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주의해서 잘 분별해야 한다.
4. 요셉의 어머니이며 야곱의 가장 사랑받는 아내(7절) 라헬의 죽음과 매장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하여 언급(35:19).
(1)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올 때 우리는 먼저 죽은 우리의 가까운 친척들의 죽음을 상기해서 죽음과 무덤이 우리에게 더욱 친밀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민 27:13 참조).
우리에게 있어서 영혼만큼이나 귀하던 그 사람들은 죽어 묻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길을 따라가는 것을 힘들다고 생각할 것인가?
(2) 가까운 친척들이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은 오랫동안 기억이 남는 고통이다. 강한 애착을 가지고 기뻐하던 것을 잃으면 오랜 고통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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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손자들(창 48:8-22)
Ⅰ.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기원한 축복.
이것은 바울 사도가 그것에 대해 특별히 언급했기 때문에(히 11:21) 더 눈에 띄는 반면, 야곱이 그의 나머지 아들들에게 말한 축복에 대해서는, 그것도 역시 믿음으로 행해졌지만, 바울은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야곱은 나이가 많아 눈이 멀었다(10절).
그것은 노령에 흔히 있는 질환 중 하나다.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전 12:3). 우리의 눈으로 보는 대로 걷는 것과 그 보이는 대로 마음이 좇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죽음으로 곧 눈들이 감길 것은 알면서 우리와 죽음 사이에 어떤 돌발 사건이 일어나 눈이 어두워지리라는 것은 모른다.
야곱은 앞서 자기 아버지가 그랬듯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졌다.
(1) 노령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은 그 존경에 따르는 부담도 받아들여야 한다.
(2) 육신의 눈이 아주 어두워질 때도 믿음의 눈은 선명해질 수 있다.
2.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무척 좋아했다.
야곱은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았다”(10절).
노인들이 손자들에게 특별한 애착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며, 그 애착은 자기 자식이 어렸을 때 느끼던 것보다도 더 크다.
여기에 대해 솔로몬은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다”라고 말한다(잠 17:6). 지금 야곱은 얼마나 만족해서 말하는지 모른다.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않았더니(여러 해 동안 그를 잃은 것으로 포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11절).
(1) 이들 두 선한 사람이 평안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고백했는지 보자.
요셉은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하고 말하는데(9절), 이 말에 보면 그는 그 은혜를 찬양하기 위해 “여기서, 즉 내가 고통과 노예 됨과 감금을 겪은 바로 여기서”라는 말을 덧붙였다.
야곱은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하고 말한다. 우리의 안락이 하나님의 손에서 온 것임을 깨달으면 배(倍)로 달게 느껴진다.
(2) 하나님은 그의 긍휼이 풍성하신 섭리에 있어서 얼마나 자주 우리의 기대를 초월하시며 이와 같이 그의 은혜를 크게 하시는지 보자.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막으실 뿐 아니라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주신다. 이것을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에게 주신 약속에 적용시켜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죄 있고 타락해 있는지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보라, 하나님은 우리의 자손도 그 분과 언약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3. 야곱은 축복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경험을 회상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났던 사실에 관해 말했다(3절). 하나님의 은혜 넘치는 특별한 찾아오심과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특별한 교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야곱은 거룩한 섭리의 하나님이 평생 동안 자신에게 베푸신 끊임없는 관심을 언급한다(15, 16절).
(1)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15절).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자연적인 생명이 유지되도록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끊임없이 경험했다.
우리의 육신은 일용할 양식을 구했고, 그 양식은 조금도 우리를 먹이기에 부족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충분한 음식을 원한 적은 없다.
일생 동안 우리를 먹이신 그 분은 결국 우리를 놓치지 않으실 것이다.
(2) 하나님은 사자를 통해 야곱을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다”(16절).
야곱은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그를 악한 갈등에서 보호하셨다.
이제 죽으면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음”을 보고 죄와 슬픔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언약의 사자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분이다(딤후 4:18).
① 늙어 죽게 될 때 하나님이 은혜로운 분임을 알았다고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②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함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공경하도록 격려하며, 우리에게는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4. 야곱은 축복과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을 그들에게 줄 때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범과 예를 그들에게 권했다(15절).
그는 하나님을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이라고, 즉 그들이 믿고 주의해 복종했으며 언약의 조건에 따라서 그 관계가 유지됐던 그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17:1).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신실한 조상들의 복을 상속받으려 하며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이들은 그 조상들의 경건한 발자취를 좇아야 한다.
(2) 하나님은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며 그들이 그 앞에서 걷기를 만족했던 하나님이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경건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권한다.
5. 야곱은 그들을 축복하면서 손을 “어긋맞겨 얹었다.”
요셉은 야곱의 오른손이 형인 므낫세의 머리에 닿도록 아들들을 앉혔다(12, 13절).
그러나 야곱은 다시 그 손을 동생인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놓았다(14절).
이것은 요셉의 맘에 들지 않았으니, 그는 그의 장자의 명예를 보존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의 아버지의 손들을 옮겨 놓았다(17, 18절).
그러나 야곱은 그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것을 실수로 한 것도 아니며 기분으로 한 것도 아니고 어느 한 명을 편애해서 하는 것도 아니며, 선지자의 영으로 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시켰다.
므낫세는 크다. 그러나 실로 에브라임은 더 커야 한다.
지파들이 광야에 집결했을 때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많았고, 그 단체의 기준이 되었으며(민 1:32, 33, 35; 2:18, 20) 먼저 호명됐다(시 80:2).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였고, 여로보암도 에브라임 지파였다.
므낫세 지파는 둘로 나뉘어 반은 요단 한쪽에, 그리고 반은 그 건너편에 있었으니 더욱 힘이 없고 보잘것없게 됐다.
이것을 예견하면서 야곱은 “팔을 어긋맞겨 얹었다.”
(1) 하나님은 복을 자기 백성 위에 내려 주실 때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주시니, 재질과 은혜와 평안과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주신다.
(2) 그는 종종 가장 적게 받을 것 같은 사람에게 가장 많이 주신다.
그는 세상에서 약한 것을 택하신다. 먼지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은혜는 자연의 질서를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에 꼭 맞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자기 맘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신다.
하나님이 그 분의 언약의 호의를 분류함에 있어서 얼마나 자주 더 어린 사람을 더 나이 많은 사람보다 앞서게 하시는지 볼 수 있다.
가인보다 아벨을, 야벳보다 셈을, 나홀과 하란보다 아브라함을 앞서게 하셨다.
유다와 요셉이 르우벤보다 먼저 선택됐고, 모세가 아론보다, 다윗과 솔로몬이 그들의 형들보다 먼저 선택됐다(삼상 16:7 참조).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상속권을 지키도록 제안했지만(신 21:17), 하나님 자신은 거기에 묶어 두지 않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유대인보다 이방인이 하나님께 택함 받게 된 상징이었다고 한다.
이교 개종자들이 유대교인보다 훨씬 많았다(갈 4:27). 이와 같이 자유로운 은혜는 더욱 빛나고 있다.
Ⅱ. 요셉에 대한 야곱의 호의와 특별한 증거.
1. 야곱은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돌아가는 것을 신성한 책임으로서 맡겼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돌아가게 하시려니와”(21절).
그래서 요셉은 죽을 때 그것을 그 형제들에게 맡겼다(50:24).
이 확신은 그들에게 주어졌고 그들 가운데 신중히 보존되었으니 애굽이 그들에게 맘에 들 때도 애굽을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았고 애굽이 그들을 억압해도 애굽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야곱의 말들은 우리에게 우리 친구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편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
그들은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며 그 분의 은혜로운 임재는 그 손실을 넉넉히 채운다.
그들은 우리를 떠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놓치지 않으실 것이다.
나아가서 그 분은 우리를 우리의 본향, 우리의 신실한 조상들이 먼저 간 하늘의 가나안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곧 우리를 받아들이셔서 먼저 더 좋은 세계로 가버린 자들과 함께 있게 하실 것이라면 우리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 된다.
2. 야곱은 그에게 형들보다 한 몫을 더 주었다(22절).
요셉에게 유증(遺贈)한 땅들을 야곱은 “내가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야곱이 그 땅을 샀는데(수 24:30), 후에 아모리 족속에게 그것을 빼앗겼던 것 같고, 나중에 칼로 다시 빼앗았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힘을 힘으로 격퇴하고 무력으로 자기 권리를 회복했다. 이 땅을 요셉에게 주었다.
이 일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요 4:5...사마리아 수가성 근처의 세겜 땅).
그에 따라서 땅의 이 부분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어졌고, 그 땅은 제비뽑기에 넣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 요셉 뼈가 묻혔으며 아마도 야곱은 어떤 일보다도 이 일에 많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어떤 자녀에게 다른 자녀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 때로는 정당하고 분별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유일한 것은 무덤뿐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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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장: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함
[1-4절]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혹이 야곱에게 고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복을 주셨고]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야곱은 이스라엘이라 불리었다. 그것은 그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받은 복된 새 이름이었다. 야곱은 병에 걸려 죽을 때가 가까웠을 때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복에 관해 말했다. 하나님에 관한 말씀은 경건한 성도가 자녀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에게 가장 큰 복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루스에서 야곱에게 나타나 복을 주시며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리라”는 것이며, 둘째는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조부 아브라함과 그의 부친 이삭에게 주셨던 복과 동일하였다(창 12:2, 7; 17:8; 22:17; 26:3-4; 28:13). 물론, 하나님의 복은 이 두 가지에 더하여 “네 자손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내용, 즉 메시아 약속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창 12:3; 22:18; 28:14).
[5-6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이 네 것이 될 것이며 그 산업은 그 형[형들=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명의 하에서[이름 아래에서] 함께 하리라.
성경은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외에 다른 아들들을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만일 그가 다른 아들들을 낳았다면, 그의 아들들 중 므낫세와 에브라임, 둘만 야곱의 아들로 간주되고 나머지는 요셉의 아들로 간주되며, 그들은 그들의 형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지파에 나뉘어 소속되었을 것이다.
[7절]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路中)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약간 떨어진]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에브랏은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 베들레헴이라고 불리었다.
[8-11절]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요셉이 그 아비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비가 가로되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고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요셉은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께서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시편 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보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요셉뿐 아니라, 그의 아들들까지 보게 하심을 감사하면서 그들에게 축복하기를 원하였다.
[12-14절]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이스라엘은 오른손을 펴서 둘째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첫째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다. 므낫세가 장자이었지만, 팔을 어긋맞겨 얹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된 뜻을 나타냈다. 둘째 아들이 더 번창할 것이다. 야곱에게는 선지자적 감동이 있었다.
[15-16절]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힛할레쿠 레파나우 )[그 앞에서 걸었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로에 )[먹이신, 인도하신, 목자 되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은 젊어서부터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였다. 그의 축복의 말에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이 드러나 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을 그의 조부와 부친이 그 앞에서 걸었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경건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을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목자가 되셔서 그를 먹이셨고 인도하셨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을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셨다. 야곱은 그 하나님께서 요셉과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세상에서 번성케 하시기를 축복하였다.
[17-20절]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야곱에게는 예언적 영감이 있었다. 그는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할 때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첫째 아들 므낫세보다 앞세웠다.
[21-22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셔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을 확신했고 또 그들이 가나안 땅 거민들을 정복하고 그 땅을 분배할 때 요셉에게 두 사람 몫을 줄 것을 확신하였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야곱은 병 들어 죽을 때가 가까웠을 때 요셉과 그의 두 아들들의 방문을 받고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하나님에 관해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말할 기력이 있고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할 말은, 육신의 건강이나 부자 되는 것이나 출세하는 것에 대한 말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의 구원에 관한 말씀이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남겨줄 말들 중에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관해 말해야 한다.
둘째로, 야곱은 요셉과 그의 두 아들들에게 축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다. 하나님께서만 인생에게 복을 주실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구원과 영생의 복을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얻었고 또 평안과 건강의 복과 물질적 여유도 얻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복 받기를 사모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의 땅으로 약속하셨고 야곱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였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 자손들과 함께 계셔서 장차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을 확신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은 천국이다.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를 위해 예비하셨고 우리는 장차 그곳에 들어가 영생의 복을 누릴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성경에 밝히 증거하신 그 천국을 확신하고 항상 소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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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원칙>..축복이란 다름아니라 그리스도를[하나님 바로 그분을] 공급함의 행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 엄밀히 축복을 정의해 본다면, <변화 중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소유 분량이 작기에, 변화 중인 사람보다는 오히려> 생명 안에서 성숙한(곧, 전존재가 하나님으로 적셔져 있을 뿐아니라 하나님으로 충만케 된) 사람, 진실로 바로 생명이 그렇게 성숙-충만한 사람을 통한, 넘쳐흐르는 하나님을 공급함이라 말할 수 있다....생명 안에서의 성숙은 하나님, 바로 그분으로 충만되는 문제이다!! 그대가 하나님으로 충만할 때에 그대에게는 하나님의 넘쳐흐름이 있고 그대는 그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그 통로된 사람 없이는 그분 자신을 다른 사람 안으로 넣으실 수 없으시기에, 하나님의 흐름은 통로인 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이 통로로 사용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인성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그분으로 철저히 전 존재에 완전히 스며든 인성으로서 하나님의 충만케 하심따라 축복할 바로 그 때 넘쳐흐르는 하나님을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되지 않으셨다면 그 통로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오심으로써보혈로 정결케 하신 우리에게 통로됨의 그 자격과 권능을 열어 부어 주신 바, 믿는이마다 그와 하나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문제는 내 안에 소유한 그리스도의 분량과 적셔진 정도가 어떠하냐인 것이다......이 때문에 야곱은 성숙되기까지는 그 누구도-라반이나 에서를- 축복하지 않았다......그러나, 하나님으로 충만케 된 시점에 이르러, 곧 애굽에 내려 갔을 때에야 야곱은 땅 위에서 가장 높은 통치자인 바로를 축복하였고, 야곱의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바로에게로 넘쳐흘렀다(창47:7, 10)
......[그리스도를 누리는 왕의] 축복으로 인해 먼저 당신 자신을 한량없이 부어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도 또한 사람으로부터 축복 받으셔야 함이 마땅한데, 이것이 바로 제사장을 통해 사람들을 주께 드림이 있게 된다......보라, 장자권은 그 땅의 분깃(=그리스도)를 두배나 받음 + 왕권 + 제사장 직분으로 구성되었다...바로 그런 의미에서 야곱이 장자권을 갈망했던 것이었다.
[히7:7..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And without all contradiction the less is blessed of the better.]...진정한 의미에서 높고 낮음은 다름아니라 신분이 어떠냐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그가 지금 소유한 바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분량의 문제이다..
[마11: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Verily I say unto you, Among them that are born of women there hath not risen a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notwithstanding he that is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그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주 예수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직접 만나보고 믿었던 바) 요한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었으나....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담고 살지는 못했기에.....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들(그들은 그리스도를 그 안에 소유한 자들이기에)이 요한보다 더 크가 하고 계심....심지어 바울은 빌1:21에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우리는 우리가 참예하고 누리는 바로 그 그리스도의 분량에 따라 다른이들을 축복함으로써 그리스도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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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멜기세덱(창14:18-20)의 축복
...<사람들을 Q께 인도하는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예표로서..히5:6>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Abr에게 나아온 멜기세덱...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려면 하나님과 가까이 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야 함....대제사장의 양 어깨에는 12지파 이름이 새겨진 호마노가 있었고 그의 흉패에도 12지파 이름이 새겨진 열두 보석들이 물려 있었는데(출28:9-12, 15-21), 이것은 그가 축복하며 중재하는 바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좁혀 제거하고 그가 누리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인도되어 그분을 누림에 참여케 한다....이것을 멜기세덱에게서 볼 수 있는데, 멜기세덱이 Abr을 축복하였ㅇㄹ 때 그를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인도하였으며, 심지어<...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단순하게 말했다(14:19)....멜기세덱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Abr을 축복하고 있지 않았고, 다만 하나님께로 아주 가까이 인도하였다.
*2)제사장들의 축복
[민6:24-27]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24.The LORD bless thee, and keep thee: *25.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thee, and be gracious unto thee: *26.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thee, and give thee peace. *27.And they shall put my name upon the children of Israel, and I will bless them.]....이는 삼중 축복이다
....첫째 방면은 아버지 하나님의 축복과 지키시는 능력에,
....둘째 방면은 아들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과 그분의 은혜에 연관되고 있다.
>은혜 베푸심에 관하여는 히브리어에 그 원어적 의미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낮은 사람에게 친절함으로 가득차 몸을 구부리심으로 눈 높이를 같이 하심으로써 성육신하셨음을 드러낸다.....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고후4:6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JC의 얼굴에서 빛난다고 말하는 바 예수님은 참 빛이시요 그 빛은 하나님 자신이시다(요8:12, 요일1:5)...빛이신 하나님 자신은 JC얼굴 안에서 우리 위에 비추신다..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우리 각자마다 안에 거하신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고 계시는데, ㄴ이것은 바로 이 축복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확증하는 말씀이다..),
.....셋째 방면은 그 영 하나님의 용모와 그분의 평강에 관계되어 있다.
>주님의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심과 평강 주는 것은 그 영의 은혜 베푸심의 역사이다...오늘 그 영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는 것이요 우리에게 평강을 주는 것 그 자체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환경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마음과 영과 생각- 안에서 평안을 주신다.
>[모든 차원 영역을 초월하신, 제한받지 아니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 영] 그 영 안에서 그 영을 통하여 그 영과 더불어 우리는 평안을 누린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과 생각과 영과 환경 안에서 괴로움을 당할지 모르나 우리는 괴로움을 당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이든 하나님의 그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분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여 드시므로 우리에게는 초월적인 평강이 있다!!
*3)사도들의 축복
[고후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여기에서는 TUQ의 은혜 베푸심의 방문을 볼 수 있다.
....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함을 보았다. 그러나 사도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로 인도한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사람들에게 나아간다.....사도바울의 축복을 통하여 TUQ이 그들의 누림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나아가신다. 이 누림은 성령의 교통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은혜이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과 은혜와 교통은 서로 분리된 세가지가 결코 아니라 한 가지의 세 방면들, 혹은 세 단계들인데, 그것들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하나님의 세 단계이다. 사랑은 안에 있고 은혜는 표현된 사랑이며, 교통은 은혜의 우리 안으로의 이동이다. 이 사랑이 표현될 때 그것이 은혜이며, 은혜는 교통을 통해 이동된다.....내가 어떤 형제를 사랑할 수 잇지만 이 사랑은 내 안에 있다. 그것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나는 그에게 성경을 선물함으로써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성경은 내가 이 형제를 향하여 내 안에 품고 잇는 사랑의 표현인 은혜를 나타낸다. 그에게 이 은혜를 전하기 위해 나는 실지로 그 성경을 그에게 건네주어야 한다. 이것이 교통이다.
===축복에 대한 기본 사상의 변천===
......구약 안의 축복에 대한 기본사상 ::사람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어 인도함, 반면에 신약 안에서는 사도(하나님과 함께 오는)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 뿐 아니라 하나님을 <그들이 믿음으로 받아 누리도록!!> 그들 안으로 이끈다.((즉 양방향의 이끌림이다!!)) 따라서. 신약의 축복은 더 높고 더 깊다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는 것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와 교통으로> 그들 안으로 이끌어 그분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축복인 신약의 축복 개념을 붙들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하는 찬송 가사의 입장에서 볼 때엔 좋은 아내, 자녀, 교육, 승진, 집, 자동차 등등이 떠 오를 테지만 그것들은 지엽적인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고!! 순수한 말씀에 따른 축복 개념, 아버지-아들- 그 영 하나님 누림 개념을 간직하고 바로 그렇게 그분 누림을 붙들라
......[그 자신 안에 충만한 주님 생명의 넘쳐 흐름따라, 자신을 그분의 공급통로로 내어드림으로써] 축복하는 이, 그에게 손을 들어 대상자를 축복케 하시는 분은 바로 사랑-은혜-교통의 주님이심..<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축복 기도에 대해 <아멘>으로 <주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바로 그 사람 안에 주님 자신을 공급하여 넣어주심으로써 <주님이 친히> 축복 받는 이의 속 사람의 보좌에 거하여 친히 살며 그 자신을 생명 근원으로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주님 또한 바로 그 사람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심
===주님의 축복은 사람의 천연적인 생각이나 책략에 어긋남===
....주님의 축복은 사람의 <천연적>생각이나 책략과 어긋난다(창48:13-20)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에게로 인도하였을 때 요셉은 <천연적 관념을 따라...부모는 그들의 천연적 취향과 선택과 관념을 따라 항상 상황을 조절하려 한다..복음전파에서도, 교회 봉사에서조차도 그리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선입견이나 책략은 끝나야 한다..오직 성령의 일깨우심 따라야 한다..그러므로 모든 일상에서 주님의 주권을 따르도록 하라....베드로를 베드로되게 하시고 바울을 바울되게 하시는 분의 주권을 따르라>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이 우수 앞에, 에브라임을 좌수 앞에 두었으나 야곱은 그의 양손을 어긋맞겨 안수하고 있다. 비록 그의 두 눈은 흐릿했지만 그의 영 안에 깨어 있었던 바 영의 이끌림 따라, 인도함 받아서 그리하였다
[창48:12-20...*12.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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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다] 무릎을 꿇다, 복을 주다, 찬양하다 &r'B;(1288, 바라크)
바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복을 주다), 찬양하다'를 뜻하며, 다른 의미로는 주로 하나님에 대하여 '저주하다, 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왕상 21:10, 왕상 21:13, 욥 1:11, 욥 2:5).
기본적으로 바라크는 '유익한 능력을 부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축복한다'는 것은 '성공, 번영, 생산, 장수 등을 위한 능력을 부여한다'를 의미한다. 이 의미는 부여하는 과정과 부여 받는 상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바라크의 의미를 보면 무릎을 꿇는 것과 축복이나 복을 받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1) 무릎을 꿇는 것, 곧 기도하는 것은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대하 6:13(참조: 왕상 8:14, 왕상 8:54)을 보면 솔로몬은 성전 봉헌에서 놋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복은 백성들이 예배가 끝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에게 내려졌다. 이렇게 하여 이 복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 실현된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이삭의 신부를 구해오라는 주인의 부탁을 받고 메소포타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러 낙타를 그 성밖 우물 곁에 무릎을 꿇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종의 기도로 주인과 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의 좋은 신부감을 얻는 복을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열심히 기도하자.
(2) 무릎을 꿇는, 곧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이다.
시 95:6이하에서 시인은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하노라"(빌 2:10, 빌 2:11)라고 말했다.
시인은 시 115:2이하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무론 대소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라고 노래했다.
(3) 신앙 공동체는 자기가 받은 복에 대하여 여호와를 찬양함으로서, 곧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라는 외침으로 응답했다.
시 28:6, 시 28:7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노래했다.
여러분 바라크라는 말을 기억하라.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바라크 -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것이다.
바라크 -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다.
바라크 - 받는 복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참조: H. -G. LINK; 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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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다.] 칭찬하다, 찬양하다, eujlogevw(2127, 율로게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율로게오는 유(eu\, 2095: 좋게, 잘)와 로고스(lovgo", 3056: 말, 진술)에서 유래했으며,
(a) '~에 대해 좋게 말하다', 즉 '훌륭하게 말하다'나 어떤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Plat.).
(b) '칭찬하다, 찬양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들이 사람을 칭찬하는 것에도 사용되지만(Eur. Suppl.) 사람이 신들을 찬양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Isis).
단 한번 신들이 율로게인의 주어로 나온다. 신들은 사람들을 그들의 선한 행위로 고찰한다. 이것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재능을 부여하는 신들의 역할을 반영한다. 이 역할은 헬라 종교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참조: Aesch., Eumenides, 997 이하). 그러나 우리는 축복이라고 하는 특별한 활동이 헬라 신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율로게오는 70인역본에서 처음으로 '축복하다' bless라는 의미로 나온다.
2. 70인역본의 용법.
동사 율로게오는 70인역본에서 40회 나오며, 몇 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라크(1288: 무릎을 꿇다, 찬양하다, 복주다, 축복하다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a) 아버지는 축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상속자들에게 축복을 전달할 수 있다(창 27:4 이하; 창 48:15; 창 49:25-창 49:26).
(b) 야곱이 그의 아들 요셉에게 축복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형식으로 하였다(창 49:25).
창조물은 하나님의 축복에 의존한다. 하나님은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창 1:22).
남자와 여자는 태초부터 축복 받는다(창 1:28).
하나님은 복된 소나기를 보내심으로써 그의 피조물을 유지시키신다(겔 34:26). 그는 농작물과 가축 뿐만 아니라(신 28:1 이하), 안식일도(창 2:3) 축복하신다.
특별한 축복들은 구원사와 관련되어 있다(참조: 창 17:7-8; 창 26:3). 선민의 역사는 축복이나 저주 하에 있다(신 11:26 이하; 30:1 이하). 계명을 지키지 않을 경우 축복은 저주가 된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행하는 의로운 사람들은 축복을 받을 것이지만 죄인들은 저주를 당한다(렘 17:5, 7; 시 24:4-5).
(c) 하나님의 약속한 복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은 제의적인 형태를 취한다.
참으로 제의(예배)는 이스라엘의 복 개념의 근원인 것이다.
제의에서 이스라엘은 생명을 구하며(암 5:4 이하), 이 생명은 신탁을 통하여, 제사장의 말을 통하여 그에게 허락된다(삼상 1:17).
축복을 선언한 자들로 멜기세덱(창 14:19), 모세(신 33:1 이하), 여호수아(수 14:13), 엘리(삼상 2:20), 다윗(삼하 6:18), 그리고 솔로몬(왕상 8:14) 등이다.
축복하는 것은 점차 제사장의 특권이 된다(레 9:22-23; 민 6:22 이하; 신 10:8). 시 3:8의 기도는 끊임없이 성전 예배식에서 반향된다.
(d) 이 어군의 중요한 용법은 또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고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에서 신자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다(창 24:48; 신 8:10; 삿 5:2, 9; 시 16:7; 시 34:1; 시 67:26 등).
(e) 히브리 동사는 인사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축복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기도 한다(삼상 13:10).
(f) 이 용어는 또한 저주가 의도되는 곳에서 완곡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욥 1:11; 욥 2:5; 욥 1:21; 왕상 21:10, 13).
3. 신약성경의 용법.
신약성경에서 동사 율로게오는 41회, 명사 율로기아([N]으로 표시됨)는 16회 나온다. 여기서 이 두 단어를 함께 설명한다.
(a)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복의 개념을 많이 이어 받는다.
히 7:1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고 하며(창 14:19 이하), 이로부터 그의 높은 지위나 우월성을 추론하는데, 더 큰 자가 더 작은 자를 축복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히 7:6 이하). 히 11:20 이하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였고(창 27:28 이하),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였으며(창 48:15 이하), 그들이 믿음으로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조상으로부터 후손으로의 축복의 전수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위대한 약속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신을 가지고 축복하는 자는 그가 축복한 자를 하나님의 보호 안으로 밀어 넣는다.
히브리서가 이 예들을 말하는 목적은 히 6:12에 언급되어 있다. 곧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때때로 이런 구절 들에는 "축복을 기업으로 받다"(히 12:17[N]; 벧전 3:9[N])와 "약속을 기업으로 받다"(참조: 히 6:12; 히 6:15)와 같은 공식 문구가 실리기도 한다.
축복과 약속이 병행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서 볼 때 이곳에서 축복은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복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참조: 마 25:34과 사 65:23).
에서는 악하게도 장자권을 경시했기 때문에 비록 축복을 구하긴 했지만 거부 당한다(히 11:21).
(b) 신약성경은 또한 하나님을 찬미할(bless) 인간의 의무를 인식한다.
눅 1:64에서 사가랴는 그가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즉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깨닫고 찬양을 돌린 참된 이스라엘인이다.
눅 2:28에서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팔에 안았을 때 구주를 보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흘러 나오는 복된 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그 늙은 시몬은 아기 예수의 양친을 축복할 수 있었다(눅 2:34).
(c) 마리아는 이미 이런 축복의 범위 내에 속해 있었다.
마리아는 이미 이 범위 내에 속해 있었다. 만약에 이스라엘의 모든 아내가 그의 아기에 대한 축복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다면 메시야의 어머니는 특별히 "여자들 중에 복된" 자인 것이다.
① 눅 1:28; 눅 1:42,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② 눅 1:42, "여인 중에서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문구에 대해서는 유딧 13:18; 유딧 15:12; 신 28:3 이하; 삿 5:24을 참조하라.
③ 그러나 가장 복된 자는 메시야 자신이다. 백성들은 메시야의 시온 입성을 환성을 지르며 환영하였다(막 11:9 이하; 마 21:9; 눅 19:38; 요 12:13).
요한복음에서는 율로게오만 나온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오시는 그 분과 그의 나라는 그들이 속하는 하나님에 의해 축복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들에게 복종하는 백성들에게 환영받는다.
환영(영접)의 형식은 시 118:26에서 유래하며, 메시야의 구속과 연관되어 있다(Midr. Ps 118). 예수님은 마 23:39; 눅 13:35에서 이 동일한 시편을 그의 재림의 날에 적용 시키신다.
(d) ① 메시야가 지상적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는 그의 백성 중에 경건한 사람으로 행하신다. 그는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며, 특별히 종교적 관습에서 그리하신다.
그가 식탁에 앉으실 때나 4,000명, 혹 5,000명을 먹이실 때 그는 보통의 유대인 손님, 혹은 집 주인으로 행동하신다. 그는 인정된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신다.
그는 손에 떡을 취하시고 축사하신 후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신다(막 6:41과 병행구; 막 8:7과 병행구).
단 하나 새로운 모습은 기도하실 때 예수께서 예전처럼 아래로 내려다 보지 않고 하늘을 향해 우러러 보셨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의 요점은 그것이 일상의 평범한 식사가 아니라 기적적인 것이요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계신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또한 그의 선교 의식과 이것이 주는 내적 자유에 힘입어 예수님은 이 딱딱한 형식적인 교제에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와 같이 그렇게 생명력 있는 것으로 만드는 신적인 그 무엇을 불어넣고 계신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아마도 그는 또 이 감사 기도를, 예컨대 주기도문과 같은 한결 더 자유로운 형태로 표현하셨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 관한 어떤 것을, 떡을 축사하고 떼어 주는 그 단순한 매일의 과정에 융합하셨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다면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가 이 행동으로 주님을 알아보았을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카리스테인이 때때로 율로게인 대신 사용된다면(그리고 막 8:6; 막 8:7에서 둘이 함께 나옴) 이것은 어떤 의미의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유카리스테오 역시 히브리어 베레크에 대해 사용된다. 다른 한편 그것은 아람어 원어에 대한 헬라어의 오해로, 많은 MSS가 막 8:7에서 대격 목적어(아우타 혹은 타우타)를 추가한다.
만약 이것이 예수님께서 떡에 축사하시고 그 기적적인 면을 더하셨을 것이라는 사상을 암시한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잊어버린지 오래된 개념으로 거슬러 되돌아 가는 것이다.
눅 9:16에서 유사하게 몇몇 MSS만이 독립형을 가지고 다수는 아우투스를, 그 중 몇몇은 에프 아우투스를 추가한다.
② 주의 만찬에서도 역시 예수님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취하시고 축복을 선언하신 후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시며(막 14:22; 마 26:26), 또 축복의 잔을 가지고 그렇게 하신다.
여기서 그는 해석의 말씀을 덧붙이신다. 축복의 잔은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서 여전히 행해졌으며, 이에 대해 고전 10:16로부터 알 수 있다.
바울은 여기서 일반적인 유대적 표현인 토 포테리온 테스 율로기아스("축복의 잔")를 사용한다.
한 가지 새로운 요소는 '호 율로구멘' "우리가 축복하는 바"의 추가다.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잔을 다른 모든 잔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그 잔을 통하여 회중이 축복받기 때문에 그것에 감사 기도가 적용된다. 그것에 의해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한다."
(e) 예수님은 또 사람들을 직접 축복하셨다.
① 막 10:16에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신다(참조: 막 10:13-막 10:16). 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유대 가장이나 랍비가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셨다(참조: SB).
주목할 요점은 마가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활동이 성인들에게만 제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활동은 어린이들까지도 포함하였으니 곧 생의 모든 단계에서 사람을 포용한다.
이 부분이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참조: 막 10:15)는 "예수님의 활동과 적극적으로 통합되는 인간의 몸이며 피조적인 실존"이다(C. Westermann).
② 눅 24:50 이하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시 제자들에게 축복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축복 이면에는 제사장적인 축복도(Schenk) 족장 기사에 나오는 기업의 축복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축복은 떠날 때 주는 축복의 관습이다. 떠나시는 주님이 자기 교회와 더불어 자기의 축복의 능력을 나누시므로 그는 교회와 결속되게 된다.
축복의 내용은 마태가 자신의 기사에 나오는 이에 상응하는 점에서 분명하게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참조: 마 28:20; 창 26:3)고 말한 것처럼, 높이심을 받은 주님이 교회와 더불어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응답하였다. 따라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사역 전체를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사 복주셨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었다.
③ 롬 15:29[N]에서 어구는 축복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의 그리스도의 전도의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이, 곧 이 공동체의 성장을 촉진할 것임을 바울이 확신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복에 충만하여 로마로 여행할 수 있었다.
④ 마 25:34에서 이 복은 오래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 안에서의 위대한 분리는 주님께서 아버지의 복된 자들을 저주 받은 자들로부터 분리하실 마지막 날에 성취될 것이다.
저주 받은 자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반면, 축복 받은 자들은 생명을 누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⑤ 갈 3:8에서 바울은 창 12:3 하반절을 인용한다. "모든 이방(즉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바울은 이 인용문에 자신의 기독론적 사고 계열과 일치하는 새로운 해석을 부여한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의 성취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적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축복의 은사는 이제 더 이상 큰 민족의 은사나 땅의 풍성함의 은사가 아니라 약속된 그리스도의 영(Spirit)이다(갈 4:14[N]).
야훼 기자의 인용문과 이에 대한 바울의 해석 사이의 공통의 근거는 약속된 축복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축복의 성취 모두가 땅의 모든 민족들에게 이르러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갈 4:8; 갈 4:14). 갈 3:8-갈 3:14에서도 바울은 축복과 저주의 관계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스스로 대신하여 단번에 받으심으로써(갈 3:13) 열방의 신자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속 활동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예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의 완전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갈 3:8 이하; 갈 3:14[N]; 히 6:14), "신령한 복"으로서는 지금 완전하게 이해하였다(엡 1:3; 행 3:25 이하).
(f) 복받은 자들에게는 새로운 율법이 적용된다(참조: 히 6:7 이하[N]).
땅을 기업으로 받으라고 요청받으며(벧전 3:9),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축복("찬송") 보다 저주하기가 더 쉽다(약 3:9 이하).
구약성경의 의인은 헬라인들처럼 저주에 대한 자연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또 저주를 당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이것은 욥 31:30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저주를 완전히 이기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것은 오히려 또다른 문제이다: "너희를 저주하는 그들을 축복하라"(눅 6:28; 마 5:44).
이 명령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롬 12:14; 고전 4:12).
여기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원수들의 저주, 핍박, 욕설 또는 비난을 그와 반대되는 축복으로 대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이곳에서 축복은 단순히 원수들에 대한 친절한 태도를 의미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보복법(이우스 탈리오니스[ius talionis])을 대신한다(이것은 특히 벧전 3:9에 명확하게 나타남). 축복을 방해하는 것과 저주는 폐지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저주를 받으셨으므로(갈 3:13), 기독교인들은 무조건적으로 축복하라는 권고만을 받을 뿐이다(롬 12:14).
"그리스도의 교회와 각 기독교인들은 더 이상 아무도 저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역사는 또한 그의 대적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Watermann; H.-G. Link).
(g) 율로기아는 그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솟아나는 것이므로 구약성경에서처럼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으로서 선물에 대해 사용된다: "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5; 고후 9:6[N]).
여기서 축복과 은사의 관계(참조: 창 33:11)가 나타난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 공동체를 위해 모으고 있었던 연보를 율로기아(한글개역 난외 주: "복")라고 부른다.
이 문맥은 율로기아가 인색하지 않은 헌금("억지"와 반대됨)을 의미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고린도 교회는 "많이"(엡 율로기아스, 한글개역 난외 주: "복으로"; 반대어는 페이도메노스, "적게") 헌금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 헌금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예루살렘 교회에 확실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h) 고전 14:16에서 율로게오는 하나님에 대한 무아지경적인 찬양을 표현하는 제의적 행위의 의미에서 사용된다.
저주의 말인 아나데마 예수스와 확연히 구별되는, 고백의 말인 퀴리오스 예수스는 성령에 의해 영감받는 것으로서 참 기독교인의 율로기아이다(참조: 고전 12:3).
(i) 거짓 교사들이 로마 교인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크레스톨로기아와 율로기아("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는 일반 헬라어 용법에 비추어 해석하려고 시도되고 있다(롬 16:18[N]).
한편 아마도 팔레스틴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확신을 주기 위해 약속에 대해 실제보다 부풀리는 듯한 인상을 나타낸다.
(j)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마지막 때의 영원한 말씀이 보좌에 앉으신 그분과 어린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계 5:12; 계 5:13; 계 7:12[N]).(참조: H. W. Beyer; H. -G.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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