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창37.Q의 형상 표현, Q의 다스리심의 통치권자___주만 앙망하고 바라며 올인하여 헌신하기를 배워 실행하는, 야곱 안의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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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7장. 


**주님께서 보기를 갈망하시는, 온전케 된 유일한 생명은 Q을 전적으로(절대 긍정-절대 신뢰-절대 기쁨으로) 의지<의존>하고 그대로 따르는,<여자의 생명>임을 명심하라..


[다루심과 연단]...사람들의 <그가 품은 꿈-이상-비전에 대해>시험/학대/배척/버림-조롱/비아냥/폄하-경멸/경시/배반-감금 등 직간접적 방해/훼방 + 환경-상황-형편-처지 등으로 인한 역경에 처함  :: 이때, 느낄 수 있는 부정적 감정들에는 거절감-부족감-고립감-수치와 모욕감-드려음/불안-분노/원망.....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직 주 앙망하며 주 바라기의 살아 생동하는 믿음<절대 긍정-절대 신뢰-절대 기쁨>, (주님이 친히 부어주시는 믿음-소망-사랑에 잠겨 살아감 통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발휘함으로 극복 가능함!!

[요셉과 베냐민은 부활 생명으로 거듭난 자의 완전함에 이르는 그 과정, 곧 <다루심과 연단의>십자가 죽으심-장사지냄-부활승천의 영광 회복-<제한 받지 않으시는>성령으로 오셔서 거듭난 믿는 이의 영에 내주하심의, 과정을 거치신 그리스도를 표상하고 있음] .....신약의 믿는이는 거듭난 바로 그날부터, 오셔서 내주하시는 그분의 성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조성을 우리의 영 안에 확장-증강하시면서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주님의<인도-보호-양육-돌봄>을 받게 됨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영적 생명의 장성-성숙함에 도달하지는 못했기에, 믿는 우리의 지고지선의 유익을 위해 <주권적 다루심과 연단을 통해서> 육적-천연적 생명으로 살아왔던 옛사람의 삶의 방식을 십자가에 넘기고 처리하시는 것이 필요함....따라서, 오직 범사에 모든 환경-상황-형편-처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연합한 하나이신 은혜의 주님, 바로 그분의 주권적 섭리를 신뢰하며 말씀-성령따라 살아감의 실행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옛사람으로서의 자기는 사라지고 거듭난 새 사람의, 그리스도의 참 생명 충만의 성숙을 표현하는 영적 참자아로 살아감을 이루게 하시며, 더 나아가 공동체 섬김과 다스림으로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를 이루는 자로 세워 가고 계심..


...창세기는 [성경의 모든 내용의 씨가 뿌려져 있는,]창조-타락-구속-회복과 건축의 책인 바, 그 주제는 Q의 갈망, 곧 [Q 형상<빼어닮음>의 표현 + Q의 다스리심<통치권>의 표현]이다!!......(모든 차원의 창조주이신 Q의 삼위일체성, 삼일성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구태여 비유해 보자면, 담쟁이덩굴 잎은 보도록 하라...하나의 잎이로되 잎 모양 끝이 세 갈래로 나타나 인식되고 있다!!....세 갈래를 역사하심 모양의 세 방면으로 보면 좋을 듯.. )


....*1>영원 이전부터 영존하시는 Q, 말씀-생명-참 빛이시요,  알파와 오메가이신 TUQ, 그분이 예비하신 뜻을 따라, 모든 차원과 모든 영역<가시적-비가시적, 의식과 무의식, 미시적-거시적 영역등>에 걸쳐 온 우주 만물, 만유의 창조주-주권적 섭리자-경영자이신 주 Q이 뜻하신 바가 이것이니.....구주 믿고 거듭난 믿는 이의 생명과 본성-성분과 요소에 있어서 <고난 중 다루심과 연단 통해서>변화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분량까지> 이루어 가도록 하신 바, 바로 그렇게 Q 생명의 성숙함의 날마다 새로움 안에서 매일 매순간 새로우신 그리스도의 성령따라 Q을 표현하고 <섬기며 다스림으로써>공급하게 하시려고...언약과 계명의 [성경], 로고스와 레마의 내적 깨달음의 말씀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HS을 주심으로써 그분의 모든 영광-성품-이름, 곧 당신의 그리스도와 함께 Q의 모든 것 아낌없이 이미 은혜로 누리도록 허락해 주셨는데, 이는 Q의 형상을 표현하며 그분을 대리하여 주님따라 그분의 다스리심 그대로 구현해 냄에 있음

....*2>Q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그대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아담이 타락한 이후라 하더라도, 주께서 열어주신 회복의 길로 믿음의 행보를 내딛는, 구주보혈을 참되게 믿음으로써 구원받은 바, (타락에서 벗어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바)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한, 나날이 구주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 안에서 새로와져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Q의 형상을 표현하도록 하심과 더불어 

....*3>주 Q을 대표하여 <내주하시는Q을 따라> 다스리는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하려 하심에 있다.


[창1:26-30]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 영이신 TUQ 그 참된 원형의 형상, 어떠함]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곧 형상의 체현<담아내어 공급하는 그릇-통로됨의 역할>, 형상의 내용을 판박이로서 체현해냄 통해 참되게 원형의 형상을 체험-인식케 하는 그릇이자 통로, 수단, 곧 영적 인격과 도덕적 관계 경험 그 자체를 통해 Q의 어떠함의 성품 = 원형의 형상 나타내게 하심...내주하시는 Q의 영, JC의 영,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주 영이신 HS은 JC를 증거하며 그대로 표현해 내시는 Q의 능력의 효능이심... JC는 Q의 어떠하심의 체현, HS은 JC의 표현, 곧 효능과 능력 발현이심....이처럼, <구주 보혈 믿고> 거듭난 회복의 사람은 HS 내주하심 인해  그 안에 담겨진 바 Q의 어떠하심의 체현과 표현으로 삼으셨음!!...이 때 내주하시며 품어주심으로 동행하시는 임마누엘Q의 다스리심 그대로 그분의 뜻 그대로 그분을 대리하여 다스리는 역할 감당할 수 있음...이를 위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성장, 생명성숙을 이루어 가고 계심...이것은 교회 안에서 가능케 하셨고, 천연적-육적 생명 관련된 모든 것은 <오직 성령 안에서, 성령을 따라, 영의 생각을 말씀으로 채움 인해 전존재에 확산하고 새롭게 하시는 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과 영광의 소망 발휘함으로 오는, 신진대사적 변화를 통해 처리하도록 이끌어 가심]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6. Then God said, “Let Us (Father, Son, Holy Spirit) make man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not physical, but a spiritual personality and moral likeness =성품의 어떠함]; and let them have complete authority over the fish of the sea, the birds of the air, the cattle, and over the entire earth, and over everything that creeps and crawls on the earth.”    *27.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28. And God blessed them [granting them certain authority and said to them, “Be fruitful,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jugate it [putting it under your power]; and rule over (dominate) the fish of the sea, the birds of the air, and every living thing that moves upon the earth.”    *29. So God said, “Behold, I have given you every plant yielding seed that is on the surface of the entire earth, and every tree which has fruit yielding seed; it shall be food for you;    *30. and to all the animals on the earth and to every bird of the air and to everything that moves on the ground—to everything in which there is the breath of life—I have given every green plant for food”; and it was so [because He commanded it].


[354.주를앙모하는자 455.주님의마음을본받는자  490.주여지난밤내꿈에 491.저높은곳을향하여......나의모습나의소유...나의마음을정금과같이...예수님의보혈로]


...요셉에게서는 브엘세바(임마누엘-엘올람의 생명샘) 체류의 생활 기록은 없음<이는 이미 요셉의 성숙은 야곱의 변화 체험 안에서 (동시성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라헬의 3년 간구 기도로 얻은 요셉!!, 그는  애굽에 팔려가기까지 이미 17세에 이르는 동안, 아버지 야곱의 Q 앙망하며 경외하기를 잘 배워 실행하고  있었고 절대적으로 아버지를 위하고 있었기에, 비록 요셉-야곱-이삭이 함께 헤브론<교통>에 거주했던 기간은 고작 2-3년이었으나 !!, 요셉은 이미 절대적인 여호와 언약 신앙에 합당한 기대되는 계승자이자 <이스라엘의 Q 형상 표현(=생명 성숙)과 함께 연결되는, 다스리시는 Q의 통치권(생명 성숙 충만 넘침으로 다스림) 대리자>로, 주와 하나됨의 연합 일치를  추구함 통해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껴 안는 [= <사람의 정치적 지혜 따름이 아니라> 오직 주 앞에서 참되고 투명함의 개방성으로 순수-솔직-정직-신실하게, 사랑 안에서 꾸밈(정치적) 없이 말함의] 삶 살기 안에서 변화 성숙 과정 안에 있었다. 게다가 주님으로부터 비전<이상>을 받고 합당하게 자신 드리기를 준비함 안에서 살고 있었음..<비록 창조주 Q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관계이기는 하지만, 당신의 모든 것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실 주님, 바로 그분이 그가 없이는 결코, 또한 오직 받은 바 주님의 모든 공급하심으로만 참된 의미의 삶을 살 수 있는 그가 주님 없이는 결코, 곧 상호 사랑-거함-소유됨-누림 없이는 결코 신성한 참생명 존재 관계로 살아가는 의미가 없음의, 주관적 체험과 고백으로 사는,  영원 이전에 JC안에서 이미 이루신 바, 택정 받고 불러내어 ㅡ그리스도의 조성으로 채워 가시며> 함께 하심, 다루심과 연단 통해 < 신성한 참 생명 성숙으로 Q 대표(대리)하여 다스림의> 영광의 소망 이루심, 곧 보내심 받은 자의 특별한 자각 안에서 자신을 예비하셨음을  깨닫고 주께 드리기를 준비하고 있었!!..

***[[하나님의 형상]] 표현...다루심과 연단 거쳐 반드시 신진대사적 바뀜의 내적 변화 통해 신성한 참생명으로 안팎이 적셔지고 지속적으로 날마다 새로와짐.

....참되게 믿는 내게 계시해 주신 (그분의 이름-성품-영광 그대로 믿어, 사랑으로 역사하는 참 믿음 발휘하기를 배움 통해) Q과 하나됨의 온전함 이루게 하심으로써 [주관적 경험 통해 바로 그러함을 확인한 바, 참되신] Q을 표현하며(= 이 때 말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분이 직접, 통로된 나를 쓰셔서 Q자신이 말씀하심...주로 Q을 위하여 말하고, 다른 이들에게 Q을 말해내는 것이 그분을 증거함이요 그분의 표현 이룸이다!!....이 때, 그분의 표현이 된 자는 그분의 형상 닮았음을 듣는 이마다 알게 된다)  ...<요14: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4:24..*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통치권]] 다스림..성숙한 생명 넘쳐흐름으로 자연스레, 공동체의 필요따라 <정치적>이 아니라 정직-신실-온유-친절한 주님의 섬기며 다스리심을 공급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라헬을 묻고 헤브론의 은퇴자처럼 살고 있었지만, 바로 그 야곱의 편애의 대상이었던 요셉을 주님은 주권적 섭리로 그분의 지고지선-지복직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발견/누림 인한 열락의 기쁨 온전히 이루시려 그로부터 요셉을 떼어내어 애굽으로 이동시키시는 바, 결코 멈춤이 없으시다!!....당시 요셉처럼, 범사에 그의 언행심사가 주 앞에서 정직하고 투명하기를, 그리고 세상에 대해 바로 그렇게 살며 그렇게 말하기를 선택하며 원하여 그리 하는 순간마다 <스스로 자기 십자가에 못박힘을 선택하고 있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리라....야곱은 이 마지막 지하 협로를 <요셉을 잃은 큰 슬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감의 고통에 잠겨, 완전히 천연적-육적 마음이 죽은 자가 되기까지> 걸어야만 했으나, 주 보시기에 한편으로는 요셉은 왕적 통치권<왕권>을 위해 예비된 양육과정 안으로 옮겨진 것이었기에 <야곱아, 너는 진실로 나 주 Q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오히려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다루심과 연단..[환난/곤고(질고/간고)-박해-적신/기근-위험-칼 등... 모든 실존적 고통/어려움/몰이해/거절/반대(고난)-시험(주님의 비전 추구를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모든 압박)-배반(경멸/모욕과 팔아 넘김/버려짐)-감금(십자가죽음-장사지냄) 거쳐 즉위의 영광에 이르렀음을 주목하라...주님 품에 안기기까지는 아직 몸의 참된 구속은 없기에, 우리는 주 안에서 자유하나, 여전히 애굽에 <일종의 감금 상태...이미 그러나 아직>에 있음을 자각하고 <확신과 산 믿음 발휘함의 적극적 담대함으로> 하나이신 주님 살기-신성한 참생명 그리스도 공급하기를 지속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세상을 섬기라. ]다루심과 연단이란 내적 생명과 본성의 <신진대사적인...빛이 오면 반대로 어둠은 물러나 사라져버린다.....주님 생명과 성품에로의>변화를 위한 주님의 빚어가심의 수단이요, 성숙은 생명의 충만함<그리스도의 장성함의 분량의 충만에 도달함 = 영광의 소망, 곧 영광의 주님의 어떠하심으로 살며, 공급하며 주 영광 담아내기에 합당한 생명 충만의, 날마다 새로운 그릇됨>을 의미한다....변화(transformation)는 생명(Q의 참생명 Zoe에로)의 신진대사적 바뀜이요, 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성숙[spiritual maturity], 곧 생명의 충만함에 이르는 것인데, 그분의 생명으로 지속적으로 날마다 늘 새로워짐과 그분을 충만히 채움 받고 공급해냄이라 할 수 있음..

[롬12:1, 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갈2:20..나는 죽고<옛 나는 처리되고(불식하고...영적 원칙 :: 선택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사라진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심.. 거듭난 새로운 존재로서 주와 연합한 하나됨 안에서 그리스도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리스도 인해 살아감]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Therefore I urge you,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and holy sacrifice,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service of worship.   *2.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so that you may prove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1 Therefore I urge you, [b]brothers and sist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dedicating all of yourselves, set apart]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well-pleasing to God, which is your rational (logical, intelligent) act of worship.    *2 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any longer with its superficial values and customs], but be [c]transformed and progressively changed [as you mature spiritually]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focusing on godly values and ethical attitudes], so that you may prove [for yourselves]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in His plan and purpose for you].]

[고후3:17, 18  *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그러므로 제한받지 아니하시는 Q, 그분을 제한하지 말라..이를 위해 그분의 사랑-믿음-소망을 공급받아 바로 그것으로, 그분 안에서 진정 거듭난 자유인으로 살라]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응시하는, 주목하는] 것 같이 [공급 주입해 주시는 바]주의 영광을 [중단 없이]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점차]변화하여 영광에서 [더 나은]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NADB]*17.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18.But we all, with unveiled face, beholding as in a mirror the glory of the Lord, are being transformed into the same image from glory to glory, just as from the Lord, the Spirit......[AMP]*17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emancipation from bondage, true freedom].    *18 And we all, with unveiled face, continually seeing as in a mirror the glory of the Lord, are progressively being transformed into His image from [one degree of] glory to [even more] glory, which comes from the Lord, [who is] the Spirit.]

[롬8:35-37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NASB]*35.Who will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Will tribulation, or distress,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peril, or sword?   *36.For I am convinc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nor powers,   *37.nor height, nor depth, nor any other created thing, wi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AMP]*35 Who shall ever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d]Christ? Will tribulation, or distress, or persecution, or famine, or nakedness, or danger, or sword?   *36. Just as it is written and forever remains written, “For Your sake we are put to death all day long; We are regarded as sheep for the slaughter.”   *37 Yet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and gain an overwhelming victory through Him who loved us [so much that He died for us].]

[고후2:14-17...*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삭 사망 당시 나이180세, 헤브론에 거주, 야곱120세-요셉29세....요셉의 애굽행은 12년 전인 17세 때...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됨, 37세때(야곱128세) 가나안과 애굽에 대 기근이 닥침...풍년으로 접어든 지 만2년 후 야곱130세, 요셉39세 때에 야곱 애굽으로 이주...17년 후인 야곱147세 때 사망...요셉은110세에 사망.


**<족장시대, 조손이 함께 살았던 기간>.....야곱은(대체로 이 시기에 이삭은 브엘라해로이에 거주) 15세 까지 Abr (175세에 사망)만날 수 있었음....(야곱따라 헤브론에 정착한) 요셉은 조부 이삭과 함께 헤브론에 살았던 기간은 채 일년이 안된 기간이었을 정도였음...이삭은 180세에 (야곱120세) 헤브론에서 임종 

**밧단아람의 라반을 떠남(라반에게 온 지 20년만에 떠났음) ::: 요셉 6세...야곱97세  ===>헤브론 도착, 168세의 이삭과 조우<야곱108세...요셉 17세....베냐민은 채 1세가 안되었음, 즉 요셉-베냐민 나이 차이는 16년으로 보고 있음>


===요셉과 형제들  ..믿는 우리라도 여전히 죄인<사함 받은 죄인>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며 그리스도의 조성(곧 생명)을 확대증강시켜가고 계시기에, 그리하여 마침내 주 뜻대로 완성시키실 것이기에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 존귀하다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주로 헤브론[교통!!] 골짜기에 살았던 듯..14절 참고.

2.  야곱의 족보는<약전은> 이러하니라[=요셉은 야곱의 완성이자 그의 일부임을 의미하고 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관찰한 바]그들의 잘못을 [주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교정해 주시라고]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은 부친에게<정욕과 분노로 가득한 바, 형들의 형편 없음>을 고했을지 모르지만, 주님 눈에 보기에는 형들과 요셉은 서로간에 별반 차이 없어 보이는 생명 알곡 가득한 생명 풍성한 밀 단들이자 하늘의 빛나는 해-달-별들이요, 요셉과 형들의 유일한 차이는 주께서 요셉을 통치자로 선택한 것 뿐이지 그들보다 더 낫다는 의미가 아님을 보이시려 두 가지 꿈을 주신 것일 수도 있다.....그러므로 <항상!!> 하늘에 속한 주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보기를 선택하라!!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그 가운데 악을 드러내도록 이방왕에게 고용된 선지자 발람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를 경청해 보라...[민23:21...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또, 엘리야가 주님 앞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불평-비난할 그 때에도 주님은 엘리야의 고발하는 기도를 기뻐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라...[왕상 19:10, *10.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8.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말라. 대신 [주님, 당신이 허물을 보지 않으시니 저도 어떤 것도 보려고 선택하지 않습니다, 모든 <들쥐들> <전갈들>은 단들이며 저는 그들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형들은<특히, 유다는 바로 뒤 38장에서 천연적 끌림과 정욕대로 행하는 자로 나오고 있는 바> 실지로 여전히 죄인들이지만 하늘의 관점에서는 악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그들을 통해 오고 계신다. 그러므로 성도들에 대해,  믿는이들이 좋건 나쁘건 간에 그들에 대해 함부로 쑥덕 대거나 <주께> 왈가왈부하며 흔들어 고발하거나 불평하기를 멈추라. ... 모든 믿는이들마다 생명 안에서 성숙해 감과 비례하여 성도들이나 교회에 대한 부정적-소극적인 말은 줄어들게 되어 있는 바, 하늘에 속한 영원한 이 관점을 떠나서는 반드시 <사망을 경험하게 됨을 잊지말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이는 비록 상호 교감적 사랑이기는 하나 다른 형제들 눈에는 분명히 천연적 끌림- 육적 느낌과 선입견이 게재된 편애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었다!!]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야곱은 이 시점에 마치 은퇴자처럼 과거를 회상하며 유유자적하였던 것처럼 여겨진자.. 그러기에 채색옷을 지어 입힐 수 있었다..<요셉을 애지중지하면서>...그러나 Q은 다시 더 완전 성숙함 안으로 이끌어 가려 하신다.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편애가 있는 곳에는 질투와 시기, 분노라는 대화와 소통의 장벽을 만든다>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솔직히 숨김없이]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요셉의 꿈들은 그의 일생을 통제하고 인도하였던 바, 요셉은 이 통제하는 이상의 인도 아래 성숙한 통치 방면으로서 탁월한 방식으로 처신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생명의 단들이다. 단은 생명과 생명 공급이 충만한 밀 묶음이다. 단들은 생명 공급에 좋은 생명 알곡들을 포함한다. 

[요12: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 더 나아가.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과 같다, 

[단12:3...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요셉은 그의 꿈 속에서 본 <하나님께서 그를 어디에 두시고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보여주셨다고 여길 수 밖에 없었던 하늘에 속한 이상....(흘러다니는 죽은 나무 가지가 아니라) 생명 충만하여 일어서 있는, 열 한개의 다른 단들로부터 경배 받는  단이요 (전갈이나 낮고 어두운 어떤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찬란히 빛나는, 해와 달과 다른 열 한 별들에게 경배 받는 별의 이상>으로 인해 <영향 받고 감동되었고, 그 이상에 합당한 자로 살기로 마음 먹었고> 관리받았기에 탁월하고 훌륭하게 행동하였다.

....아마도 추측컨데, 야곱은 아들들 중에서 오직 요셉과 베냐민만 선하다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께서 보기에는 나머지 10 아들들까지도 모두 다 잡초가 아니라 <다만 아직까지는 성장 성숙 중이기에 볼 품 없어 보이는> Q 농장의 농작물일 뿐이며, 수확할 즈음에는 훌륭하게 자라날 것으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열두 개의 곡식 단>과 <하늘의 해와 달 열한 별>이 절하는 꿈으로 보이고 계셨다는 것에 감동 받을 필요가 있다.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이제 이 시점에 이르러 [라헬을 잃은 슬픔이 컸던 바, <라헬에 대한 애착 인해 편애하게 된> 요셉과 베냐민만 바라보고 위안을 삼으며 거의 은퇴한 것처럼 살고 있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다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디나-시므온/레위 사건으로 인해 보복 당할 지도 모르니, 사정을 살펴보는 것이 리적이라고 생각했다>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이것은 요셉으로 하여금 <목자의 입장에서>형들을 목양<살피고 돌보며 생명 공급함으로써 다스림/생명 성숙함 따른 통치>하라는 말이다...구약에서는 오직 요셉만이 <그리스도로 조성 분량의 완전함(=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이 때, 양떼를 먹임처럼 목양[=통치]은 전혀 힘든 일이 아니라 어디서나 내주-동행하시는 그 영을 따르기에 저절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에 이르러 있는 바, 흠 없이 완전한 그리스도의 예표였고<다윗에게는 흠이 많았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전기인 신약의 복음서를 볼 때 오직 주 예수님 그분만이 흠 없이 완전한 사람임을 계시한다.... 그런 점에서 요셉의 일생에서 발견되는 것은  한 성숙된 성도, <생명> 성숙한 이스라엘<=야곱...생명 성숙한 야곱의 통치는 요셉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의 통치 방면을 상징한다.  (비록 거듭난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그 영 따라 영 안에서 통치하는 바>통치 방면에 있어서 우리는  (과정 중에 있다 하더라도) 완전하다.

---**성숙한 생명의 통치 방면은 <그리스도의 조성이 점점 더 확장-증대됨과 비례하여 생명으로 성숙-충만되어 갈수록 "이는 내 사랑하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일깨우시고 인도하시는 그대로 형제들을 섬기도록 보냄 받아 (죽음을 각오하심으로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리스도처럼) 자원-헌신-희생함으로 먹이고 돌보며 양육함의> 목양 방면이다.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도단은 세겜 북북서쪽 직선거리 24km(30_38km) 위치....다메섹-->길르앗 산지-->요단강 도하-->이스르엘 평야의 므깃도(도단-세겜-헤브론과 족장 길로 연결됨)-->아벡-->욥바-->가사--> 애굽에 이르는 통행로인 해안 길, 곧 블레셋사람의 길 지나며 당시 인근에서 가장 넓고 질 좋은  목초지가 있었다.

.....요셉은 특별한 꿈을 두 차례 연달아 꾼 후, 형들의 미움을 받아 결국, <도단>의 물없는 구덩이에 빠졌다. 요셉이 도단에 온 시기는 가뭄이 심한 늦여름이었다. 따라서 구덩이는 말라 있었고, 이 계절은 헤브론 양치기가 풀을 따라 도단까지 올라 오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다가 가을 우기(雨期)가 시작되면 목동들은 양떼를 몰고 서서히 남하(南下)하기 시작하였다.....(.예레미야도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예언하다가 물없는 구덩이에 빠졌다(렘 38:6). 특히 예레미야가 빠진 구덩이는 왕궁 감옥일 수도 있으나, 바닥에 진흙이 있었으므로 빗물을 모아 여름에 사용하는 물 저장고(cistern)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 저장고는 보통 석회암을 지름 90cm, 깊이 1m 파낸 후, 거기서부터 다시 어른 키 2배 정도를 종(鍾)모양으로 파낸 구덩이이다. 석회암에서는 빗물이 썩지 않으므로 성지에서는 훌륭한 물 저장고가 된다.)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가치에 합당하게 존귀히 여겨 높임 아니라 하찮게 여김의 모든 경멸(경시와 멸시)-천대-무시-학대는 배반임...유다는 JC를 배반했고 은 30에 팔아넘겼다.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굶어 죽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계획하고 발언한 자는 시므온이었을 것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아마도 시므온이 실행했으리라]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이스마엘 인들의 거처는 가나안 맞은 편, <에돔~북서부 아랍 근처>하윌라에서 애굽 동쪽 땅 술 지역까지(아말렉 족속지역에 혼재하였고 길르앗-앗수르에 중개무역 주도)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그두라의 후손...그두라의 후손은 Abr생시에 동방으로 이동, 아랍반도 북동-북서에 주로 산재하였고 대상무역에 주로 종사하였음]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미디안 지역 출신인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세상...요셉(JC)이 육신따르는 형들(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애굽(세상, 로마권력자)에 팔림> 으로 갔더라...(그두라의 후손) 미디안인들과 (애굽, 또는 애굽 변경의)이스마엘인들을 세밀히 구분하지 않고 번갈아 기술하고 있음....<이스라엘인(영으로 사는 자)과 비이스라엘인(육신으로 사는 자...JC를 빌라도에게 넘긴 유대인 지도자들처럼)으로만 구별>하는 관점으로 쓰고 있거나<이스마엘인과 미디안인이 섞인 상인 무리> 또는 미디안 지역 태생인 이스마엘 사람들로 이해함이 옳을 것.....이스마엘과 미디안은 육을 대표하고 있는데, 참되고 순수하며 솔직-정직-투명하게 Q을 신뢰하며 붙드는  믿는 이를 <악한 의도로>세상에 팔아 넘겨 <그 소용돌이 가운데서> 멸절 당하게 하려 하지만 오히려 주님은 생명 성숙한, Q을 표현함 안에서 Q을 대표/대리하여 통치하는 사람을 산출하심으로써 롬8:28의 선을 이루심<영적 수준으로 볼 때, 고등학교 수준에서 대학-석박사 과정으로 더 전진 돌파 이루며 나아감>...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라헬이 죽었을 때는 그래도 베냐민을 얻었기에 결코 울지 않았다....그런데, 요셉을 잃은 후에는 그 슬픔이 너무 커서 종일 오랫동안 울기만 했다... 극한 슬픔 가운데 어쩔 줄 모르다가<아마도 생존해 있던 이삭이 위로하며 도왔으리라> 이제는 그 어느시점부터는 오로지 온통 주님만 찾고 바라며 앙망함 안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것이다!!...가장 끔찍히 아끼며 사랑하고 위하던 그야말로 보물보다 더 귀한 아들 상실로 인한 극한 고통....그리스도 잃은 하늘 아버지의 아픔이었을까!!...그러나, 이 시점에 와서는 [변화 과정의 최종 시점, 곧 스스로 무엇을 하려 함을 내려 놓고, 모든 세상 관심사 주께 맡겨드리고 요동없이 잠잠히  <주님께만 집중함으로써, 주님을 주입 받아> 주님 마음과 심정을 알아드리는 생명의 성숙함에 마침내 도달하는 기간이 되었던 것 같다>...이제 요셉은 30세 되어서야 애굽 총리가 되고 7년 풍년시기를 지나고 흉년 시작 만1년이 지난, 흉년 2년째에야...즉 침묵기간이 만21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야 요셉이 살아있으며 애굽 총리로 있다는 소식을<창47> 듣게 된다.

....참되게 믿고 거듭난 이 안에 있는 생명의 본성에 일어나는 변화는 [자기의 타고 난 바, 천연적-육적 강함이나 수단들을 주께서 제거하심에 오직 순복하며] 오직 <성령께 의지하여 따름으로써> 점점 더 주입-분배해 주시는 바 JC의 생명으로 더 채워져 충만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됨의 신진대사적 내적 변화인데, 이 때 천연적-육적 생명은 마침내 남김없이 처리되어야 하나님의 채우시는 충만한 생명을 얻고 연합한 하나됨 이룰 수 있음을 알고 기대해야 한다. 

.....야곱의 경우, 이를 위해 오직 필요한 것은 헤브론에서의 20년 동안 모든 속박과 사로잡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함 없이 다만!!] 주님을 제한함 없이 기대하며 올인하여 열어 비워 내어드림이었다!!....보라, 그 누구도 야곱에게서 결코 빼앗을 수 없었던 유일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와 교통이었다!!...요셉을 잃고 난 후 야곱은 그 자체가 하늘의 하나님께 대해 절대적으로 열려진 항아리가 되어 있었다...비록, <제시된 옷이 의미하는 바>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먹혔으리라고 추정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죽음이 확증된 것은 아니었기에 [내적으로는 결코!!] 요셉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도 않고 있었고 이것은 그 자신을 하나님께 점점 더, 그리고 더욱 더 믿고 의지하며 바라며 올인하는 자로서 하나님 향해 있게 하였고 이로 인해 부어주시는 바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고 있었으며, 매일 새롭게 하나님의 생명 공급하심과 새롭게 하심 그 안에 있도록 다함 없는 은혜에 머무름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

.....야곱이 제어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서, [가나안 땅에 임한 기근]은 갑자기 그를 흔들어 놓으시는 주님의 손의 일하심이자 큰 시험으로서 <그동안 이십여년간 고요-평안 가운데 결핍을 전혀 모르던] 그에게 <양식이 다 떨어져 굶어 죽게 될 위험에 노출되는> 눌림과 괴로움을 가져왔지만(창42:5), 주님은 야곱을 다루시는 한편, 애굽의 요셉을 <그의 말한 그대로 풍년 7년, 이어서 흉년이 시작-진행됨으로 인해...진실하고도 참된 자로서 Q의 능력과 권세, 영광  드러남>의 통치, 곧 그에게 관을 씌우심 통해 요셉의 통치가 바로 천년왕국, 곧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하늘에 속한 통치의 예표임을 드러내고 계셨다.....이제 그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에 도달하케 하시는> 최종적 시험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베냐민을 포함하여 11형제들 모두가 그의 곁을 떠나 2차로 애굽에 곡식을 구하러 여행해야 하는 결정 통해서 전적으로 홀로 <헤브론에>남게 된 일이었는데, 은혜의Q께서 도우심으로써 이 과정을 잘 마친다.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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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 (개요)

본 장은 요셉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창세기의 마지막 한 장을 제외하고는 이후로 계속 요셉 이야기가 나오며 요셉은 가장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셉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로는 장자다. 많은 위인들과 같이, 요셉도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하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요셉 이야기는 굴욕당하는 것과 존경받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나누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저절로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요셉의 상징에 맞게끔, 처음에는 낮아지고 그 다음에 존귀하게 되셨다. 

또 그 사실은 많은 시련을 통하여 왕국에 들어가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형제들이 요셉을 향하여 품고 있는 원한과 그들이 요셉을 미워한 이유.

   (1) 요셉이 형들의 부정함을 아버지에게 고했기 때문이다(1, 2).

   (2)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하여 끔직히 사랑했기 때문이다(3, 4).

   (3) 요셉이 형들을 다스릴 것이라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5-11).

2. 형제들이 요셉을 해롭게 함.

   (1) 요셉이 형들을 찾아감으로 기회를 주었다(12-17).

   (2) 요셉을 죽이기로 했다가 굶겨 죽이기로 함(18-24).

   (3) 목적을 바꾸어 노예로 팔았다(25-28).

   (4) 형제들은 아버지가 요셉이 맹수에게 잡혀서 죽은 것으로 믿게 했다(29-35).

   (5)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에게 팔렸다(36).

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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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요셉(창 37:1-4)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 역사와 관계되지 않는 한 모세는 더는 그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반면 이제는 야곱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에 접근한다. 

즉 “야곱의 약전(略傳)은 이러하니라”고 말한다. 그의 약전은 에서의 약전(36:1)처럼 공허한 것이 아니라, 기억될 만한 유용한 역사다.

Ⅰ.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함께 우거했다(1절).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는 결코 평안할 수 없다.

Ⅱ. 목자인 요셉은 “형제와 함께 양을 쳤다”(2절). 

아버지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게으르거나 약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자녀들로 부지런하고 근면하며 고생을 알도록 계획하지 않는 부모는 자녀를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를 귀여워하는 것이 흔히 자녀를 망치는 이유라고 말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교육 받은 사람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기 쉽다.

Ⅲ.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3절). 

부분적으로는 세상 떠난 요셉의 사랑하는 어머니 때문이요, 또 한편으로는 노년에 가장 큰 위로가 되기 때문에 요셉을 사랑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시중들었을 것이고 다른 아들보다 아버지에게 더 순종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은 상당히 “노년에 기다리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릴 때 어른처럼 정중하고 침착했다. 어린아이였지만 유치하지 않았다. 야곱은 다른 아들보다 요셉에게 더 좋은 옷을 입히는 것으로 이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는 “채색 옷을 지어 입혔다.” 이 사실은 아마도 요셉에게는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부모들의 사랑을 각별히 받는 자녀들은 행복하겠지만 자녀들이 성실하거나 또는 불성실하다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 자녀들을 차별하여 사랑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아버지는 자녀를 공평하고 끊임없이 부지런하게 보살펴야 한다.

Ⅳ. 요셉은 그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1.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차별을 두었을 때 자녀들은 곧 그것을 알아차리며,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서로 반목하고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2. 요셉이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했기” 때문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감시를 벗어나 있을 때, 집에 있을 때는 감히 하지 못할 일을 했다. 

요셉은 일탈하는 형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자기는 위치상 그럴 수 없었기에> 나무라고 막으시도록 아버지에게 형제들의 나쁜 일들을 말했다. 

요셉은 그러나, 불화를 낳으려는 악의에 찬 이야기꾼이 결코 아니었다. 

요셉 자신이 감히 형들에게 충고할 수 없었기에, 그들에게 충고할 만한 권위를 갖고 있는 아버지에게 그들의 결함을 전해 주는 성실한 형제였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우정에 넘친 충고자가 원수로 보이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자기를 나아지도록 충언해 주는 사람을 싫어한다(잠 9:8).

(2)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다. 

하늘이 축복하는 자들을 지옥은 저주한다.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시는 사람들에게 악한 자들은 평화롭게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요셉에 대해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그들이 요셉을 그들의 하인으로, 자기네들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사람으로 삼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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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요셉(창 37:5-11)

Ⅰ. 요셉은 자기가 꿈꾼 예언적인 꿈에 대해 말했다(6, 7, 9, 10절). 

어렸지만(17살 정도) 경건하고 성실하고 성품이 좋았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했다. 

요셉 앞에는 엄청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러하기에 하나님은 요셉이 겪을 길고도 쓰라린 고난 가운데서도 격려하고 위로하시려고 미리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적절하게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히 12:2)을 기대하셨으며,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예견하지 못하는 시련에 대비해서 백성들의 갈 길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베푸는 위로의 눈으로 백성이 당하는 시험을 보신다.

1. 요셉이 꾼 꿈은 형제들의 곡식 단이 모두 자기 곡식 단에 절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요셉에게서 곡식을 구하러 가서 형제들이 요셉을 경배하게 되는 것을 암시했다. 형제들의 빈 곡식 단은 요셉의 풍성한 곡식 단에 절을 해야 했다.

2. 요셉이 꾼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이었다(9절). 

요셉은 정치가라기보다 예언자였다. 그래서 형제들이 이미 자기를 미워하고 있었으며 이 꿈이 더 한층 형제들을 노하게 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혼자 알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요셉이 이 이야기를 아무 의미 없이 말했다면, 형제들이 고통당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보라, 요셉은 출세할 꿈은 꾸었으나 투옥될 꿈은 꾸지 않았다. 

이같이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에 발을 디딜 때 번영과 기쁨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결코 고통이나 괴로운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Ⅱ. 형제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점점 요셉에 대해 격분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8절). 우리는 여기서 다음 사실들을 볼 수 있다.

1. 형제들은 그 꿈을 요셉이 자기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제대로 풀이했다는 것이다. 

기드온 이야기와 같이(삿 7:13, 14), 꿈이 성취되는 데 적이 된 자들은 해몽자 자신이었다. 그들은 요셉이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마 21:45). 

그 사건은 42장 6절 이하의 설명으로 정확하게 응했다.

2. 형제들은 그 꿈에 대해 꾸짖고 불쾌하게 여겼다. “네가 참으로, 아직 혼자인 네가 여러 형제인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가장 어린 네가 형들인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우리 요셉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영토는 육적인 불신의 세계에 의해 과거에 무시당했으며 현재도 무시당하고 있고, 또 과거에 그런 세계와 싸웠고 현재도 싸우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 불신의 세계에서는 이런 사람이 그들을 다스리리라고 생각지도 못한다. 극도의 경멸을 받았던 의인들이 부활의 아침에 주권을 행사할 것이다.

Ⅲ. 요셉의 아버지는 그 꿈에 대해 그를 점잖게 꾸짖었다. 

어떻게 꾸짖었는지 살펴보자(10, 11절). 아마도 형제들이 꿈으로 인해 실행할지도 모르는 공격을 막기 위해 아버지가 요셉을 꾸짖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셉은 그 꿈에 대해 생각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넌지시 그 꿈이 헛된 공상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요셉의 어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해와 달과 열한 별”은 앞으로 요셉을 의지하게 될 온 가족을 의미할 뿐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그 약속을 잘못 이해하고, 성취할 수 없는 듯한 일들에 대한 암시 때문에 그 백성의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계속해 이루신다. 또 앞으로도 이루실 것이다. 

우리가 그를 바로 이해하든 못하든 간에 말이다. 마리아같이(눅 2:51) 야곱은 마음속에 이 일을 간직하고 오랜 후에까지 이 일들을 의심할 바 없이 기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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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하는 형들(창 37:12-22)

Ⅰ. 요셉은 아버지의 분부에 순종해 멀리 세겜에서 양떼를 치고 있는 형들을 애써 찾아갔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자기들을 찾도록 보냄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고의적으로 그 먼 곳까지 갔다고 말하며 그렇게 하여 요셉을 해칠 기회를 얻었다는 의견을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요셉과 아버지는 뱀과 같이 지혜롭게 대하기보다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대했다. 따라서 미워하는 형제들과 결코 같은 태도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끄신다. 그 예로 요셉을 보자.

1. 아버지에 대한 순종. 

요셉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으나 아버지의 종이 되어 수종드는 일을 하려고 했다. 

그는 미리 아버지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13절). 부모에게 가장 사랑받는 자녀들은 부모에게 가장 잘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렇게 하면 그들의 사랑이 잘 전해지고 잘 돌아간다.

2. 형제에 대한 친절. 

형제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분부하시자 그 여정이 멀든 위험하든 아무 반대도 하지 않고 요셉은 이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형들을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터득하기 어렵고 좀처럼 실천하기 어려우나 좋은 교훈임을 기억하자.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라”는 좋은 교훈임을 기억하자. 

친척들은 우리에게 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은 감사할 만한 일이다. 

아버지는 요셉을 세겜에 보내어 형들이 거기에 잘 있는지, 세겜 족속을 처참하게 살육한 몇 년 전 일에 대한 복수로 멸망되지 않았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형들을 찾지 못하고 도단으로 갔다. 이런 여행을 자기의 책임으로 생각하여 아버지에게 순종할 뿐 아니라 (아버지가 말했던 대로 세겜에서 형들을 만나지 못했을 때 돌아설 수 있었을 텐데) 형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단까지 갔다. 

요셉은 형들을 찾을 때까지 열심히 계속하여 결국은 찾았다. 이런 형제 사랑을 우리도 계속하자. 그리하여 그런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자.

Ⅱ. 악을 선으로 갚는 요셉에 대해, 형들은 유혈적이고 사악한 음모로 적의를 품었다.

1. 형들은 요셉에게 해를 끼치려고 숙의했다.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18절). 

흥분했거나 갑자기 노해 요셉을 죽이기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가해할 계획으로 또 냉혈적인 태도로 자연히 작정한 것이다.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런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살인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3:15). 

원한은 대단히 해로운 것이어서 적의를 감추고 있다가 피를 흘리게 되는 위험이 있다. 

죄에 빠진 계획과 계략은 훌륭하면 할수록 더 악한 결과를 가져온다. 악을 행함도 나쁘지만, 악을 음모하는 것은 더 나쁘다.

2. 형들의 계획은 잔인했다. 피 흘림 이외에는 그들을 만족시킬 것이 없었다. “자,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지자”(20절). 

오랜 적대심은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간다는 것을 주목하자. “온전한 자를 미워하는 자들”은 바로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다(잠 29:10). 

그리고 음녀가 마시는 것은 성도들의 피다.

3. 형들이 요셉의 꿈으로 인해 신랄하게 책망했다. 그들은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하며(19절)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10절) 했다. 

이 장면은 그 꿈이 얼마나 형들을 초조하게 하고 성나게 했는지 보여 준다. 그들은 요셉을 해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셉을 살해함으로써 그 꿈을 막을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에 조바심을 가지고 노하는 자는 고의적으로 그 계획을 파괴하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자. 

그러나 그들은 헛된 일을 생각할 뿐이다(시 2:1-3).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4. 형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어 뜻을 같이 하여 거짓말을 하여 살인을 감추려 했다.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이렇게 짐승이 요셉을 잡아먹은 것처럼 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매우 악한 짐승보다 더 악한 자들임을 스스로 보여 준다. 

왜냐하면 악한 짐승은 자기와 같은 짐승은 먹이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형제의 몸을 찢고 있는 것이다.

Ⅲ. 르우벤은 요셉을 놓아주려고 계획했다(21, 22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친구들을 세우시되 원수 사이에서도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하자.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르우벤은 모든 형제들 중에 요셉을 제일 시기할 이유를 갖고 있었다. 르우벤은 장자이기에, 야곱이 요셉에게 베푼 특별한 총애를 받아야 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르우벤이 야곱과 가장 가까운 사이임을 보여 준다. 르우벤의 성품은 부드럽고 여성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성품은 그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었다. 

그 다음 두 형제, 즉 시므온과 레위는 성격이 과격했지만, 르우벤은 죽이는 짓은 하지 말자고 했던 것이다. 르우벤으로서는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죄였다. 

우리의 본성은 범하기 쉬운 죄에 대해 방어적이어야 하며, 끔찍한 죄에 반대하며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여기에 나오는 르우벤과 같이).

르우벤은 요셉을 없애려는 의도에 가장 효과적인 해답이 되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들 손에서 요셉을 구출해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면 이미 잃은 아버지의 총애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더 많은 사람을 구출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당신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일을 다스리고 계셨다. 여기에서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아들(하나님의 아들)이고 악한 세상에게 미움을 받았으나, 아버지는 그를 크신 겸손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보내셨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하려고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다. 아직도 악한 음모가 그 분을 대적한다. 그 분은 그 분 백성에게 오셨다. 

그러나 그 백성은 아직도 그 분을 영접하지 않고 대적한다. “이는 상속자이니 자, 죽이자.”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힘도 달게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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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가는 요셉(창 37:23-30)

여기에서 요셉에 대한 형들의 음모가 성취됨을 보게 된다.

Ⅰ. 형들은 자기들이 탐내던 요셉의 채색 옷을 벗겼다(23절). 

그들은 날 때부터 요셉을 깎아 내렸을 것이다. 요셉을 괴롭히고 아버지를 모욕하며, 그것을 자신들의 낙으로 삼았다는 징표를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놀려 댔을 것이다. “자 요셉아, 아름다운 옷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님도 호지 않은 옷을 그렇게 벗김을 당하셨다. 또한 그 분의 고난당하는 성도들은 처음에는 특권과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러고 나서 가장 귀찮은 쓰레기 취급을 당했던 것이다.

Ⅱ. 형들은 요셉을 마른 구덩이에 던져 굶기려고 했다. 

그 곳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죽게 하려 했다. 이렇게 잔인한 행동이 바로 저들이 베푼 자비였다(24절). 

시기가 있는 곳에는 동정이 없어지고 인간성이 저절로 사라진다(잠 27:4). 너무나 치명적인 독이 가득해 그 악의는 점점 더 야만스럽게 된다. 

요셉은 옷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하고 생명만은 살려 달라고 하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탄원했다. 요셉은 자기의 결백과 형제 관계, 그리고 애정과 순종으로 호소했다. 울면서 간청했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르우벤만 요셉을 가엾게 생각하고 중재를 했다(42:22). 

그러나 그는 무서운 구덩이에서 요셉을 구할 수 없었다. 형들은 차차 요셉이 구덩이에서 죽을 것이고, 산 채로 묻히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장차 형들이 충성을 맹세하게 될 요셉 아닌가? 

하나님의 섭리가 그 목적을 이루도록 도우며, 떨어져서 그 목적이 달성되도록 역사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목적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Ⅲ. 요셉이 고통 중에 있을 때도 형들은 그를 무시하고 요셉이 당하는 고통을 동정하지 않았다. 

요셉이 구덩이에 갇혀 불행을 슬퍼하면서 점점 가늘어지는 목소리로 형들에게 동정을 구할 때 형들은 “앉아 음식을 먹었다”(25절).

1. 형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만일 가책을 느꼈다면 식욕을 잃었을 것이고, 음식 맛을 몰랐을 것이다. 양심에 큰 힘이 가해지면 일반적으로 감정과 언어 감각이 당분간 사라진다. 

대담한 죄인들은 걱정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의 양심이 지금은 비록 잠들었다 해도 오랜 후에 다시 살아났다(42:21).

2. 형들은 동생이 자기들을 지배하리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서 기뻐했다. 

오히려 자기들이 동생을 짓밟아버렸다고 생각했다. 자기를 괴롭히던 두 증인을 박해하는 자같이(계 11:10), 형들은 요셉을 괴롭히며 조롱했다. 

하나님의 권고를 거부하는 자들은 자기의 주장이 관철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는 승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속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자.

Ⅳ. 형들은 요셉을 팔았다. 

대상들이 마침 때를 맞추어(하나님의 섭리의 인도에 따라서) 그 곳을 지나게 되어, 그들에게 요셉을 팔아 멀리 애굽으로 보내면, 거기에서는 아마 소식이 끊겨 결코 아무 소문이 들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유다는 제안했다.

1. 유다는 요셉을 동정하여 이렇게 제의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무엇이 유익할까? 그를 파는 것이 오히려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26절) 

우리가 범죄하려 할 때 그 범죄에는 아무 유익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 형들은 잠자코 그 계획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만일 요셉을 노예로 팔면, 결코 주인이 될 수 없으며 더군다나 애굽으로 팔려가면 자기들의 주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실 것이다”(시 76:10). 요셉의 형제들은 놀랍게도 그를 죽이지 않게 되었다. 

요셉을 팔게 됨으로써 놀랍게도 하나님께 찬양을 돌렸다. 요셉이 유다의 계략으로 은 이십 개에 팔린 것같이 우리 주 예수는 은 삼십에 팔렸다. 

판 사람의 이름은 둘 다 유다다. 르우벤은 요셉이 팔릴 즈음에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있다가 다른 길로 돌아서 구덩이에 가서 요셉을 구출해 아버지에게 무사히 돌려보내려 한 것 같다. 이런 일들은 친절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일들이 성공했다면 요셉이 애굽에서 출세하게 된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의 마음속에는 많은 계획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는 원수들의 계획,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려는 친구들이 계획, 그러나 아마 이 사실과 같이 둘 다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영원히 살 것이다.

르우벤은 소년을 팔았기 때문에 스스로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로 갈꼬?”(30절) 

르우벤은 맏형이기에 아버지가 자기에게서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셉을 팔지 않았더라면 죽여 모든 일을 끝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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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창 37:31-36)

Ⅰ. 요셉이 없어진 것이 곧 알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큰 의심을 받을 것이므로 형들은 계획을 세웠다. 형들은 요셉이 맹수에게 물려 찢겨 죽었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1. 잘못한 일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이 결백함을 나타내려 했다. 우리는 아담에게서 죄 숨기는 것을 배웠다(욥 31:33). 마귀는 범죄하는 것을 가르치면서 그 범죄를 감추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며, 거짓과 위증으로 도덕과 살인까지 가르친다. 그러나 자기 죄를 숨기는 자는 오래 번성하지 못한다. 요셉의 형제들은 얼마 후에 자기들이 서로 의논한 대로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악한 행위는 결국은 밝히 드러났다. 그들의 범죄는 세상에 알려지고 영원히 전해진다.

2. 아버지를 슬프게 했다. 요셉을 편파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보복으로 이런 일을 계획한 것 같다. 요셉에 대한 극도의 분함으로 세운 계략이었다. 형제들은 요셉의 화려한 옷을 아버지에게 보였다. 본디 있던 화려한 여러 색 외에 한 가지 색이 더 묻은, 핏빛이 얼룩진 옷이었다(32절). 그들은 그 옷을 들에서 찾았다고 꾸며댔다. 또한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고 아버지를 조소하면서 질문했을 것이다. 야곱은 체념하고 자기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즉 피 묻은 옷을 보고서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성급하게 생각했다. 사랑은 항상 그 사랑하는 자에게 닥칠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사랑은 공포를 물리치고 나야 완전한 사랑이 된다. 부모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가련한 야곱의 고민을 생각해 보고 야곱의 영혼을 생각해 보자. 야곱이 요셉의 불행한 일에 대해 비참한 생각을 얼마나 강렬하게 나타내고 있는지 모른다. 자나깨나 요셉을 덮치던 맹수를 상상하며, 그 맹수가 요셉에게 포효하며 덤벼들 때, 요셉이 가련하게 지르던 비명을 듣는 것을 생각했다. 짐승이 요셉의 피를 핥고, 그를 갈기갈기 찢으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단지 채색 옷만 남겨 이런 소식만 전하게 된 것을 상상하며 떨며 으스스함을 느꼈다. 그리하여 틀림없이 요셉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 위험한 심부름을 하필 홀로 보낸 것을 후회했을 것이며, 그렇게 후회한들 그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사실은 야곱의 마음을 찢는 듯했고 자신이 아들 요셉을 죽이는 데 공모한 자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게 된다.

(1) 아들들은 비열하게 위로하는 체했다(35절). 그러나 그들 모두 파렴치하고 위선적인 위로자였다. 만일 그들이 진심으로 아버지를 위로하기 원했다면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요셉은 살아 있습니다. 사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리로 가서 돈을 주면 쉽게 해결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즉석에서 그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웠을”(시 30:11) 것이다. 그들의 진술을 통해 자기들의 범죄를 누설하지 않는 것이 놀랍다. 요셉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요셉의 죽음에 대해 야곱에게 조의를 표함으로써 위장하는 그들의 표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마음이 죄의 기만성 때문에 더 굳어져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자.

(2) 그러나 그런 노력은 모두 허사였다. 야곱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했다”(35절). 야곱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리하여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가리라고 결심했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급작스러운 격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 하고 울던 다윗같이 말이다. 그러나 욥과 같이, 야곱은 슬픔으로 인해 마음이 단단해졌다.

① 어떤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게서 사라지거나 우리를 슬프게 할 때는 훨씬 더 큰 고통이 온다. 보통 터무니없는 사랑이 지나친 비탄으로 끝맺는다.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계추처럼 그것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② 그들은 어떤 경우든 그 슬픔 중에서 영혼의 위로나 종교적 신앙을 찾지도 아니했다. 우리는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가리라”고 결코 말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를 지키시는 그 날이 얼마나 기쁜 날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맞게 사는 것이 우리의 지혜며 우리의 의무다.

③ 우리는 상상적인 두려움으로 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때가 많다. 우리는 실제보다 일들을 더 나쁘게 상상한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고통당한다. 때로는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 주는 것이 위로 중 가장 큰 위로다. 최선의 것을 소망하는 것이 좋은 일이다.

Ⅱ. 이스마엘 사람들과 미디안 사람들이 요셉을 일종의 상품으로 여기고 돈을 벌려고 사서 틀림없이 충분히 이익을 내서 다시 보디발에게 그를 팔았을 것이다(36절).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슬퍼했다. 혹 모든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아들이 자유를 상실한 것을 한탄했을 것이다. 야곱의 자유인인 아들이 그 가정의 제일 좋은 옷을 애굽 사람인 주인의 옷과 예속된 표시로 바꿀 것인가? 그렇게 빨리 애굽 땅이 야곱의 씨에게 노예의 집으로 될 줄이야! 자기의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해서 키우지 않는 것이 부모의 지혜라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부모들이 죽기 전에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자녀들이 어떤 고역과 고행을 당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요셉이 이처럼 종으로 사고팔렸을 것이라는 사실을 야곱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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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장: 요셉이 팔림

[1-2절]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略傳)[자손들]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17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요셉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 즉 단과 납달리, 갓과 아셀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하였다. 그들은 때때로 잘못을 행했고 그것을 감추었던 것 같다. 그것은 실상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었다. 요셉이 그런 일들을 아버지께 고한 것은 그의 정직함과 도덕성을 보인다.

[3-4절]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야곱은 요셉을 여러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였다. 그것은 그가 하란에서 14년을 지난 91세 때 그를 얻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그의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이었고 그 어머니 라헬은 그가 여섯 살 때 그 동생 베냐민을 출산한 후 죽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야곱은 그를 더욱 사랑했고 그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 형들은 야곱의 이런 편애 때문에 요셉을 더욱 미워했고 그에게 하는 말이 친절하지 못했다(NASB, NIV).

[5-11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父兄)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母)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요셉은 어느 날 그가 꾼 곡식단의 꿈을 말했다. 형들은 그 꿈과 그의 말을 인해 그를 더욱 미워했다. 그가 다시 꾼 해와 달과 열한 별의 꿈은 더욱 그러했다. 요셉이 꾼 꿈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두 번이나 비슷한 뜻을 보이는 꿈을 꾸었다. 이 일로 인해 요셉은 ‘꿈꾸는 자’라고 불리었다(19절).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특별계시의 집합체임!!]을 통해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지만, 옛날에는 꿈이 하나님의 계시[특별계시]의 한 방법이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었고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신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그 꿈을 꾼 17살 때부터 애굽의 총리가 된 30살 때까지 13년간의 긴 고난의 과정을 견디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12-17절]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 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요셉은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여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직선거리로 약 75킬로미터 이상인 거리를 갔고 거기서 형들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어떤 사람에게 물어 도단까지 약 20킬로미터를 더 갔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을 완수하기 위해 충실하였다.

[18-20절]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누가 주동자인지는 몰라도 형제들이 대부분 동참했다. 그에 대한 그들의 미움은 그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려는 계획에 동참케 하였다.

[21-22절]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맏형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구원하여 아버지께로 돌리려 했다. 후에 그들이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가서 애굽 총독 앞에서 옛날 자신들의 악행을 기억하며 후회했을 때, 르우벤은 동생들에게 “내가 너희더러 그 아이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하였다(창 42:22).

[23-25절]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먼 곳까지 찾아온 동생을 형들이 죽이려 했으니 사람은 참으로 악한 존재이다. 그들은 동생을 구덩이에 던진 채 앉아서 음식을 먹었다. 

미움은 참으로 무서운 악이다. 미움은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 넣어 잔인하게 굶겨 죽이려 하였다.

[26-28절]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20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굶겨 죽이는 것보다는 덜한지 몰라도 동생을 팔아 넘기자는 유다의 제안도 악한 것이었다. 

후에 율법은 사람을 납치하고 파는 것을 사형에 해당하는 큰 악으로 규정했다(출 21:16).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려 은 20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 미디안 상인들은 이스마엘 상인들 속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은 20개는 은 20세겔을 가리킬 것이다. 레위기 27:5에 보면, 5세부터 20세까지의 남자의 값이 은 20세겔이었다. 요셉은 은 20세겔에 종으로 팔렸다.

[29-32절]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채색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형제들 중 르우벤 외에는 누구 하나 요셉을 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요셉을 팔 때 르우벤은 거기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이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가야 했다. 그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취하고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 옷을 그 아버지에게 가져와 이것이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의 악한 행동을 이렇게 숨겼다. 그들은 악한 데 영리했다.

[33-35절]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여러 날을]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陰府)[무덤]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이 얼마나 두려움과 고통 가운데 죽었을까 생각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또 자기가 괜히 아들을 심부름 보냈다고 자책했을 것이다. 야곱의 생애는 고생이 많았다. 20년 하란 생활은 수고로웠고 외삼촌 라반에게 큰 압박을 받았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에서 때문에 매우 긴장했었다. 세겜에서 그는 딸 디나가 강간당하는 괴로운 일도 경험했다. 벧엘을 지나오면서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었고 아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한 충격적 사건도 경험했다. 거기에 더해, 그는 이제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생각하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렇게 철저히 고난으로 훈련시키셨다. 야곱에게 고난은 세상의 애착을 다 끊어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은혜의 방편이었다.

[36절]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은 이렇게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는 요셉을 미워했고 자기들이 그에게 절하는 꿈 이야기를 듣고 더욱 미워했고 마침내 그를 죽이려 하다가 그를 팔아넘겼다.

사람은 심히 죄악되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곧 살인하는 것이다(요일3:15).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롬 12:10).

둘째로,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요셉의 꿈은 좌절되었고 고난의 어두움이 그를 삼킨 것 같았으나 꿈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요셉을 향하신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은 신기하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말씀 안에서 삶의 목표를 정하고, 믿음과 순종으로 살고, 고난 중에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셋째로,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어버렸고 또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잃어버렸다. 그는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을 다 잃어버렸다. 야곱은 고난을 통해 신앙 훈련을 받았다. 신앙생활은 결국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과 영원한 영광의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한다(마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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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권의 이동>>   
****성경 전체에서 장자권 = 그 땅의 두 배의 분깃 + 왕권(Q을 사람에게로 인도함 = Q을 공급) + 제사장 직분(사람을 Q께로 인도함 = 사람을 Q께 공급) 
....천연적 출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 주권적 예정에 달린 것임에 감사하라.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장자권에 대한> 태도와 행위에 달려있다!!
....장자권에는 제사장 직분-왕권과 더불어 그 땅의 두배의 분깃이 포함되는데, 믿는 우리의 분깃은 그리스도이기에, 장자권을 가짐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위치를 가짐이요 동시에 제사장과 왕이 되는 권리를 가짐는 것이며, 장자권 잃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누림을 잃게 됨이다.
===창세기에서 장자권이동의 실례들>> 
^1)에서에서 야곱에게로(25:22-26), :: 장자권을 얻기 위해 결코 책략이나 속임수 쓰거나 투쟁하려 해서는 안된다, 동시에 <우리가 가진 장자권이 귀중함을 참되게 알고 끝까지 잘 지켜야 한다> 우리의 장자권을 팔 정도로(에서처럼!!) 흐트러져서는 결코 안된다.
^2)세라로부터 베레스에게로(38:27-30), ::: 장자권 받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나 책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결코 아님..
^3)르우벤으로부터 요셉에게로(49:3-4, 대상5:1), :::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의 간통으로 인한 더럽힘에 빠짐은 장자권의 상실을 초래하였고, 더럽힘에서 도망하여 (주님 사람인) 자기를 지킨 요셉에게 주셨다. 그리하실 정도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이 바로 음란인 것이다!!
...(비록 장자권이 르우벤으로부터 요셉에게로 옮겨졌지만 요셉은 단지 그 땅의 두 배의 분깃만 받았고, 제사장 직분은 레위가, 왕권은 유다가 받았다).
....하나님이 극히 미워하시는 것이 바로 음란이기에, 더럽힘은 장자권을 잃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제멋대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부터 시작하거나 간통/간음-동성애-수간-수음 등 그 어떤 종류의 음란에라도 자신을 방임하는 소돔적 정욕-방종의 문화 경향에 빠져 드는 자마다 스스로 고통과 엄중한 심판을 자초하게 되며, 게다가 동시에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충만한 누림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하나님의 제사장과 왕이 되는 천년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며(고전6:9-10, 갈5:9-21, 엡5:5) 오직 이기는 자들만 이 누림에 참여하 럭시요 제사장들이 되고 그리스도의 공동 왕들(co-kingd)이 될 것이다. 
^4)므낫세로부터 에브라임에게로(48:12-20)  ::: .<나이 든, 생명 성숙한>야곱의 손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영, 성령께 인도함 받아 오른 손을 에브라임에게 향해 내어 뻗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야곱은 <에브라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장자권을 받고 있는데....장자권을 위해서 나는 그 때 그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었구나...내가 스스로 장자권 탈취나 장자의 축복을 탈취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해서 스스로 고통을 야기했던 것이었구나>라 속으로 깊이 아픔을 느끼며 뼈저리게 깊이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있었으리라
===신약에서는 장자권 이동이 이스라엘[=육적 이스라엘]로부터 교회[=영적 이스라엘]에게로 일어났다 .
^1)눅15장의 탕자의 비유 : 첫째 아들로부터 둘째 아들에게로 옯기심....세리들과 죄인들이 둘째 아들과 같으며 스스로 의롭다 하는 바리새인들이 첫째 아들과 같음을 가리키셨음(눅15:1-2, 11, 25-28) 
^2)마21:28-32 : <그분의 사역 끝에 하신 말씀>유대인들로부터 세리와 창기에게로 옮기심...여기에서는 세리와 창기들이 처음에 아버지의 말에 불복했으나 나중에 회개하여 그 말에 복종한 첫째 아들과 같고, 바리새인들은 그 아버지의 말을 이행하겠다 하였으나 실지로는 그 말에 복종하지 않은 둘째 아들에 비유하셨음. 
---교회는 구속되고 거듭난 죄인들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들은 장자권을 받은 자들이기에 히12:23은 장자들의 교회를 말하고 있다.
===##창41. 성숙됨 - 성숙된 이스라엘의 통치 방면을 대표하는 요셉(=그리스도의 탁월한 예표)
....요셉의 생애 기록의 두 노선 :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노선 + 성숙된 생명의 통치 방면  
영적인 체험 면에서 아브라함-이삭-야곱은 따로 분리된 세 개인이 아니고 한 성도의 체험의 세 방면으로  볼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요셉은 야곱의 전기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어야 함>... 하나님은 그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아버지 Q), 이삭의 하나님(=아들 Q), 야곱의 하나님(=그 영 Q)으로 계시하셨으니 따로 분리된 세 하나님이 아니요 한 분 TUQ이심<마22:32>  ... 하나님의 셋-하나이심의  측면을 잠시  복습해 보자....존재론적 측면에서 삼위일체(실은 삼-일)하나님을 구태여 말하자면 아버지 안에 아들과 성령이, 아들 안에 아버지와 성령이, 성령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계셨고,  표현 방면에서 말하자면 아버지는 근원이시며 아들은 아버지의 체현이시며, 성령은 아버지와 하나이신 아들의 표현이시며, 과정을 적용하여 말한다면 아버지는 <성육신하여 오신> 아들 안에 계셨으며 아들은 <부활 승천 하신 후>. 그 영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 영은 우리 하나님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부를 때 아들과 그 영이 함께, 아들을 부를 때 아버지와 그 영이, 그 영을 부를 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응답하신다....이것이 셋이 하나인 삼일성이다!!
.....자식이 많은 야곱은 산출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열매 무성한 나무이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는 요15장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산출하는 나무이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열매가 무성하다 . 여기 창49장에서 우리는 이 나무의 아들을 본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 뻗어나옴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구약에서 그리스도는 가지라 불리운다(렘23:5, 슥6:12), 한편으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나무라고 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분은 나무인가?, 가지인가? 둘 다이다. 하나님의 체현인 그분은 나무이시지만, 하나님의 뻗어나옴이신 그분은 가지이시다. 그리스도의 예표인 요셉 또한 열매 무성한 나무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뻗어나옴이었다. 나무의 가지는 나무의 부분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열매 무성한 아버지 야곱의 부분이었다.  상징적으로 말해서, 요셉은 열매 무성한 하나님의 뻗어나옴이셨던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셨다.
***역사적으로는 아브라함은 조부요, 야곱은 손자이지만 영적 체험 따른 순서로 볼 때, 야곱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벌써 택함을 받았기에 아브라함보다 야곱이 먼저라고 볼 수 있다.(롬9:11-13) 이것은 온전한 성도가 야곱처럼 출생 전에 선택되었음을 의미한다에베소서는 이 선택이 창세 전에 일어났음을 계시한다(엡 1 : 4).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은 야곱처럼 선택 받았으나, 야곱처럼 타락했고 그러고나서 선택 받고 타락한 이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을 받았다. 보라,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일생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는 이삭처럼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기업으로 받아 누렸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또한 야곱처럼 투쟁하였고 그의 투쟁으로 고통 당하였던 바 다루심을 받아 성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야곱의 체험이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체험들, 즉 선택 - 타락 - 부르심 - 믿음으로 인한 칭의-믿음으로 삶 -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의 기업과 그 누림 - 자기 투쟁, 고통과 다루심 - 성숙 -을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세 사람이 함께 필요하다.
===요셉의 주님 향한 밀편단심에 대하여.
[창49:22......*22.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
....젊은 시절부터 이미 요셉은 오로지 적극적인 것들(그의 아버지의 뜻과 그의 아버지의 생각과 그의 아버지의 유익과 그의 아버지의 위임에 온통 사로잡혀, 주로 열매 맺는데 올인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논쟁하거나 다투는데 보낼 시간이 전혀 없었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 열 한 형제와 그들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내려왔을 때, 그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요셉의 열매 무성함이 뻗어나가는 훌륭한 통로가 되었다. 
그 때 요셉은 애굽에서 단지 개인적으로 뻗어나가고 있지 않았다  그는 70명과 함께 하나님의 행정을 뻗어내고 있었다.  
요셉은 열매가 매우 무성하였고, 온 세상은 요셉의 뻗어나감 아래 있었다. 요셉은 그림이요 예표였던 바, 그 열매 맺음의 성취가 교회와 더불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교회 사람들은 마땅히 가장 열매가 무성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보라, 행2장은 베드로와 열 한 사도가 얼마나 열매 무성하였는가를 계시한다.
....<가지>라는 말은 히브리어 의미는 아들이자 큰 가지(bough)를 뜻하는데, 이는 요셉이 열매 무성한 나무의 가지였음을 의미한다.. 
온 우주 가운데 오직 한 그루의 열매 무성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가지로서 그리스도는 열매 무성한 나무이시다. 
슥6:12에 [보라, 순<가지>이라 이름하는 자가..]라고 말하는 바, 이 가지는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가지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결국 한 그루의 나무가 되심으로 하나님을 인류에게로 뻗어내셨다. 요15장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라 밀씀하셨다.  
이어 5절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말씀하셨다.  
교회 역사에 어두운 면과 영광스러운 면의 두 방면이 있듯이 그대에게도 또한 그렇다...그대의 약함과 실패들이나 그대의 주변 상황의 어둡고 소극적인 면의 상황을 바라보며 <접시물에 코박지 말고> 오직 믿음의 눈을 들어서 절대 긍정으로 영광스러운 면만을 바라볼 그 때 하나님은 승리를 거두시며 교회인 우리는 풍부한 열매 맺음을 본다. 
오직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볼 때 교회가 열매 무성하다는 것과 교회의 역사가 열매 맺음의 역사임을 볼 것이다. 가지는 아직도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신약에서 볼 수 있는 열매 맺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한 요셉들인 바> 베드로와 바울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역대로 많은 가지들을 내어 왔다.  
잊지말라..  사람은 누구나 그릇인 것을..<공허하고 혼돈, 깊은 흑암 상태였었으나..창1:2> 구주 믿고 보혈로 깨끗게 함 받은 많은 성도들이 함께 그리스도를 추구하여 변화-성숙을, 또한 적극적-긍정적인 것들로 채움 향해 가지 뻗음과 열매 맺음에 온통 사로잡힘을 지향함으로써 마음의 하나됨으로 충만함의 상호 윈윈에 이르러야 한다... 하나되지 못할 그 때에는 <천연적 한담이나 잡담, 세상 살이나 취미, 소일거리>얘기나 하며 결국 마12:43-45절의 일곱 귀신 들린사람처럼 그 공허함 안에 (들쥐들, 개들 같은) 모든 소극적-부정적인 것들이 들어 와서 이전보다 더 형편이 악화되고 극악해짐을 초래케 된다고 주님은 경고하고 계신다.
...<담>이란 가지의 무한한 가지 뻗음과 무성한 열매 맺음을 반대하고 막고 한정시켜 고사하게 만들고자 하는<그 속사정은 무지한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이요 그리스도의 복음 없이는  세상 그 자체는 이전투구의 공멸로 나아갈 뿐이라는 것을 일부러 애써 외면하고 그들 자신의 이익만을 지키고자 하는 세상적-사탄적 방해들로서>, 교회의 열매 맺음< 곧 참된 간증 통한 그리스도의 몸의 확장>을 제한하려는 <원수와 반대자들이 세우는> 소극적, 부정적인 헐뜯고 방해-훼방 놓기, 온갖 악평, 거짓 소문, 근거 없는 중상모략 등 복음 전파 중 닥치는 온갖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환난<환난, 곤고, 기근, 박해, 벌거벗음, 위협, 칼> 들이라 할 것인데,  교회 역사상 항상 있어 왔던 바 그 저항과 제한이 강할 수록 가지의 뻗어나감과 열매 맺음의 돌파와 전진은 비례적으로 더 크게 되었고 더욱 건강해지고 항상 열매는 더욱 가치 있고 풍성하였음을 잊지말고 결코 요동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그것들에 대해 구차스럽게 <자의적으로>변명하려 하지 말고 오직 주께 맡겨드리고 주님 앙망하며 그분의 인도만 따라 한걸음씩 뚜벅뚜벅 걸으라. 그것은 일종의 해산의 고통이자 다가 올 기쁨의 전조이니, 주님의 격려하시는 말씀을 기억하라....[요16 : 21, 33...*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33.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누가 감히 막아서리요!!   행5장에서의 가말리엘은 좋은 말을 했다.[이 사람들을 상관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8-39)] ....그 맺는 바 열매로 그 나무를 <참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할 때마다.. 그러므로 바울을 보라, 사도행전을 다시 읽으라,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반대하는 유대인들이<그 자체가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 따라 다니며 소동을 야기시켰었다]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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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9:23, 24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군박]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견강]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활 쏘는 자의 공격을 넉넉히 이김> ..그 어떤 고난도 우리를 누를 수 없고, 오히려 모든 고난 통해서 우리가 보다 더 많이 정복한다는 것..[롬8:36-37..*36.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전능자를 힘입어 강하게 됨>..핍박-학대-공격에도 <임마누엘 주님의 도우심 인해>여전히 더 강하고 더 민첩하게 된 바, 고통받고 공격당할 수록 더 강해지게 되었다.
[창49:27..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이리같이 물어뜯음>....부정적인 어떤 것, 주께 합당하지 않은 것, 곧 사탄과 그의 교만을 발견하여 헐어내고 제하려 함에 있어서는 신사적-겸손/온유/친절이 아니라 전적으로 긍휼 없는 이리같아야 함을 말한다. 고후10:5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말하고 있다.
[신33:17..17.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리로다]
...<밀어붙이는 수소>......요셉은 <절대적이고 순수한 말씀만을 붙듬 인한> 그 강한 힘과 능력으로 공격하며 두 뿔로 들이 받아 밀어붙이는 <타협할 줄 모르는> 수소여서, 곡과 마곡처럼 주님의 나라 도래와 경륜의 진행, 지경 확장에 반대하고 맞서며  대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적당히 타협하도록 꾀는 교묘한 사탄과 짝한 부정적-소극적 열방-민족-세력들은 그 어떤 것이라도  <이미 주님이 획득한 땅마다 좋은 땅이다!!> 좋은 땅에서 밀어내사 땅끝까지 이르게 하심의 승리를 볼 것이다.
[창49:25...*25.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요셉과 베냐민이 궁극적인 완성이 됨>...그들은 야곱의 전능자를 의지했다, 이스라엘의 목자를 의지했고, 이스라엘의 반석 위에 섰다. .. 전능자를 의지함의 능력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신약의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이다. ...이스라엘의 목자에 해당되는 동등어는 벧전5:4절의[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반석에 대한 신약의 동등어는 교회의 반석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볼 수 있는데, 고전10:4절은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말한다....그러므로  오늘날의 요셉과 베냐민인 그대가 행하는 모든 것은 능하신 분, 이스라엘의 목자, 교회의 반석, 전능자를 의지함이라야 한다....기도하지 않으면 평강이 전혀 없게 될 것이기에, 평안과 확신을 얻기까지 기도하면서 그래야 한다....메시지 전하기 전에 충분히 영감 받고 능력 받을 때까지 그것에 대해 기도하라... 이것이 요셉의 열매 무성함과 승리의 비결이다.
....<축복 받음>...10가지 축복. 
[신33:13-16...*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14.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15.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16.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하늘의 복, 하늘의 보물들로. *2)....이슬로....여기에는 <건강하게 자라남에 필요한 교훈들인> 비와 눈, <헐몬으로부터 북풍을 타고 시온산에 한번에 조금씩 내리는, 부드럽고 조용하며 세미한 긍휼인>아침이슬, 게다가 우리를 둘러 진치며 섬기는 천사들이다.(히113-14, 시34:7, 행12:15, 마18:10) ...구약에서의 물질적인 것들은 신약에서의 영적 실제의 그림자들이다. 
....신약에서의 축복들은  영적인 축복들이다. 엡1:3을 보라..[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 <하늘에 속한>이란 단어가 명백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명백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이것은 하늘에 속한 본성-위치-상태-상황-분위기와 함께 하늘에 속한 능력을 포함한다.  곧 영적 축복들, 영적 축복의 모든 방면들은 하늘에 속한 본성에 속하며 하늘에 속한 분위기와 상황 안에 있으며, 하늘에 속한 상태 아래 있음,  환언하면 이 영적 축복들의 모든 방면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 엡1장은 하늘에 속한 이러한 영적 축복들 중 하나가 하나님의 선택이요 또 예정<표시하심>이요 또 채택<곧 부르셔서 구속하시고 사하심의 누림>인 바 이 모든 영적 축복들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오는 것들이다.
*3)...땅 아래 있는 깊은 바다[=지하의 물 저장고]와 샘들로... 신약에 의하면 참된 샘은 땅 아래 있지 않고 우리 안에서 솟아나는, 신성한 생명의 샘이다..요4:14를 보라..[요4: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태양이 결실케 하는 귀한 열매들로..우리의 태양 그리스도, 다함 없는 풍성이신 분께서 친히 축복하심으로써 그분을 진복으로 경험하고 누림 산출원인이 되심 인해, 유일무이한 길과 진리이자 <과정 거치신>신성한 참생명이신<요14:6> 그분이 실지로 그러하심을 체험적으로 알고 누림, 더 나아가 그분의 생명 주심 인해, 모든 풍성의 항목들인 보배로운 열매들을 <객관적 진리마다 우리의 주관적 체험 과정을 거쳐서 재생산하심 통해...곧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 바로 그것 그대로> 하나하나 실지로 체험적 과정 거쳐서 열매 맺게 하고 계신다.
*5)...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로....태양은 열매를 결실케 하지만 태음은 보물을 자라게 한다.  이 보물은 바로 교회이다!! ...교회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열매들 중 하나가 용서요, 칭의이며, 다른 열매들은 화해와 구속과 영생이다. .. 우리는 용서-칭의-화해-구속-영생을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지 않았지만 교회를 통하여 <상호 교통 통해> 간접적으로 받았다.
*6)...옛 산의 상품물과 *7)...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로...
[창49:26...*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옛]  [영원한]이라는 말은 시간을, [산] [작은 산], [한없음]은 공간을 의미하기에 시공간을 총망라한 곧 우주적인  축복 아래 있음을 말한다.  ..이는 새하늘과 새 땅 안으로 들어갈 때 매 시간 도처마다에 축복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을 말한다. 그 때에는 더 이상 바다가 없고, 저주가 전혀 없을 것이요 우주 전체가 축복일 것이다.
*8).. 땅[=평지]의 보물과 거기[=시간과 공간, 그 안에 있는 사건들을 포함한] 충만한 [모든]것으로 ...이에 대해 참되게 알려면 고전3:21-23절을 보라..[ *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이 구절들에 의하면 만물에 <사망>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모든 소극적인 것까지 포함하는 사망까지도 축복인 것을 [열린 믿음의 영안으로]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는 요셉이다. 그러므로 구태여 <지금 당장 자기 마음에,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그 어떤 것을 원하고 선택하여 주께 함이 아니라 그냥, 온전히 주님 신뢰함으로써 주님 자신을 감사하며 지금 형편을 감사로 누림이 옳다.... 진실로, 그대가 (지금 인식하는 바 , 찰나적이요 변화무쌍한) 선악-호불호-생사화복 불문하고 요셉인 우리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다 주님 안에서는 축복이요 축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다 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면 어떤 것도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좋거나 나쁘거나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모든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비록 우리가 어떤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그 손실은 축복이다. 바울은 바울이나 베드로나 아볼로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만물이 우리의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요셉들인 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만사가 축복이다. 만일 당신이 나를 미워한다해도, 사랑한다 해도, 강탈한다 해도, 무엇을 준대도, 나를 어떻게 대하든 사랑으로 대하든 미움으로 대하든 당신이 내게 하는 그 모든 것이 축복이요, 당신이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축복이다. 그대와 나는 온통 축복 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요셉들인 것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라.  그러므로 요셉들인 우리는 다만, [주님,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우리는 지금 제대로 모릅니다. 주님, 다만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하게 되리라.
...만사가 축복인가 아닌가는 일어나는 그 일에 달려있지 않고 다만 우리가 누군가에 달린 것이니, 우리가 <축복 안에 머무르는> 요셉이라면 모든 것이 축복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과 땅 아래 있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손실일 수 없고 궁극적으로는 손실을 끼칠 수 없다.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요셉인 한, 만물이 협력(합력)하여 당신에게 선을 이룰 것이다(롬8:28)   가장 무의미한 것까지도 협력하여 당신에게 선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당신이  축복 받은 까닭에 이웃과 인척과 친구들이 모두 협력하여 당신에게 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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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9:22-27...*22.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7.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신33:12-17...*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14.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15.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16.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자손은 만만이요 므낫세의 자손은 천천이리로다]
[창49:25, 26...*25.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축복과 거처는 신약의 놓쳐서는 안되는 중심이다...에베소서를 보라...예전의 우리는 창3장의 죄인이자 르우벤이었지만, 참되게 믿고 거듭남 안에서 교회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는 오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며, 나의 양 어깨 사이에 거하시기에> 요셉이자 베냐민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9)...<젖 먹이는[생명 양육] 복과 태의 [생명 산출]복으로>... 하나님은 창조5일째에 바다의 생물과 공중의 새들을 6일째에 사람을 축복하셨는데, 오직 생물들과 사람만을 축복하셨음, 곧 하나님이 생명을 위하심을 감사하라.  ....이 축복은 교회로 생명 낳고 양육 산출하는 유기체적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의 번성-번영-창대케 됨을 가져온다.
....하나님의 뜻은 산출하는 생명을 갖는 것이다. 요셉이 태의 복과 젖 먹이는 복으로 축복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생명을 낳고 양육하는 것으로 축복 받았음을 시사한다.  마음을 열고 주를 바라보라, 이 비유는 동물이나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바로 영원한 생명에 적용되는 것임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은 가장 높은 생명이요 가정 생산적인 생명이다. <신약에서 확실히 드러나는 바, 산출하는 생명이 동물의 생명도 사람의 생명도 아니고 영원한 생명임을 본다> 우리는 오늘 날 교회 안에서 산출하는 생명인 영생을 체험하고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축복의 많은 항목들이 젖과 태, 곧 산출하고 양육하는 생명들을 포함한다.  ..계21장과 22장에 제시된 묘사를 보라,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보라.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수의 강이 있다. 이 생명강에 생명나무가 자란다. 새 예루살렘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전체의 중심 항목은 흐르는 생명이다.  의심할 것 없이, 하늘의 복과 이슬의 복과 땅의 복과 땅 아래의 복들과 같은, 우주적인 축복의 방면들은 모두 현존한다.   그러나 계21장과 22장은 다른 항목들은 더 이상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다만, 오직 영양분을 주은 어떤 것, 생명 나무와 더불어 생명의 흐름만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창49장을 읽을 때. 참된 영적 의미를 찾아 들어가서 산 믿음 발휘함으로 주관적 체험 통한 그대의 생명화 할 필요가 있다)
*10)...<가시 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우주적인 축복의 마지막 항옥은 하나님의 거하심이다. 장막이 세워지기 전 주님은 가시나무 떨기 사이에 거하셨고(출3:4) 그분을 위한 장막을 세우고 나서 성전을 짓도록 하려는 뜻으로 애굽에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출하셨다. <오늘 우리도 그러한 은혜를 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죄인인 아론이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머물면서 그분을 누리는, 최고이자 최종적 축복-그분의 거처를 <상호간에>누리는 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셨다. 또한 더 나아가 상호 거처됨의 축복 안으로 이끌어 인도하셨음을 감사하라.. [시84:10...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좋사오니..]의 축복은 상호거함-누림-거처-기업됨의 최종적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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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의 축복... " 상호 거함"
....여호와께 사랑 입고 그 곁에 살며, 그분의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신 자로서, <원수 대적자 사탄 마귀와 그에 속한 세속자들을> 물어 뜯는 이리로서 아침에는 탈취물을 먹고 저녁에는 잡은 것을 나누어 일부는 먹고 일남긴 일부는 저장하는 이기는 자이다.
[창49: 27...*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신33:12....*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1)...<베냐민의 어깨 사이에 계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처, 예루살렘 성전은 지도를 보면 그 위치가 <유다에 인접한> 베냐민 영역 안에 있다. 왕은 유다에게서 나왔지만, 하나님의 거처가 있는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경 안에 있었다. (( 베냐민 지경 형태는 돌고래와 비슷하여, 동쪽은 꼬리부분이 요단에 닿고 근처에 여리고와 벧 호글라, 서쪽 아랫입술 부분은 그비라, 아래턱 부분은 기럇여아림, 튀어나온 상복부 부분은 예루살렘<볼록 튀어나온 배 부분에 위치했기에 유다와의 경계선은 양 어깨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에 예루살렘이 있음>, 등의 돌출 부분은 벧엘,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벧엘 사이에  기브아, 라마, 미스바가 위치하며 라마 서쪽에 기브온이 위치)) 
....우리 몸의 양 어깨 사이에 있는 것은 머리이기에 양 어깨 사이에 거하는 사람이 곧 머리이시며, 성전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머리이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처 안에 머리 됨과 주권이 있음을 의미한다...<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보좌가 있다>
.....여호와께서 베냐민을 날이 맞도록 보호하실 것임을 말한다. 어떻게 보호하셨는가? 계7:1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하고 말하는 바, 장막은 덮개였다. 하나님의 집은 장막이며 장막은 <우리를> 덮는 보호하는 거처인데, 이 장막은 그리스도와 교회 둘 다이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으며 교회의 보호 아래 거하고 있다.
*2)....베냐민이 여호와의 곁에서 안전히 거함..  
....베냐민이 주님 곁에< 주님의 이웃으로서> 사는 까닭에 안전히 거하듯, 우리가 주님 곁에 거하는 한 우리는 안전하다.
....시편을 읽을 때 바로 이 하나님의 거처에 관한 관념을 취하여 그 빛 가운데서 읽는다면 시편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거처와 관계됨을  깨닫게 될 것인데 그것은 정말 새로운 감동 그 자체일 것이다.   [시90:1....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모세가 말했다. 주님을 우리의 거처로 삼고자 한다면 우리가 먼저 그분의 거처가 되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땅 위에 건축하신 거처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그 분을 우리의 거처로 소유할 수 없었을 것이지만, 그분이 땅 위에 거처를 가지셨기에 그분은 우리의 거처가 되고 우리는 그분의 거처가 되는 바, 이것을 "상호 거처"라 부르며 요14장, 15장에 특히[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의 말씀에 계시되어 있다.  이것이 상호 거처됨이다. 
요14:23에서 주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주적 축복의 10가지 항목 중 마지막이 거처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결국 모든 축복들은 거처에서 완성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항목의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의 거처이기 때문일 것이다. 
왜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셨는가? 그분의 거처를 위해서였다. 왜 그분은 당신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베푸시는가? 그분의 거처를 위해서이다. 왜 하나님은 오늘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시는가? 그것은 모두 그 분의 거처를 위해서이다. 모든 축복들은 하나님의 거처를 빚어낸다. 읷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거처이다.
.....사66:1에서,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요 땅이 그분의 발등상이지만 하나님이 아직 안식처를 얻지 못하심을 본다. 그분의 안식처는 하늘도 땅도 아니고 오직 사람임을 사66:2에서 계시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대하고 계신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영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마5:3의[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와 일치한다.  하나님의 안식이 잇는 사람은 영 안에서 가난하고 통회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이런 종류의 사람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가난하고 통회하며 그분을 위하여 비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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