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14장...14장 84세, 가나안 이주 후 10년째, 헤브론 거주 9년째 들어가는 중. 가나안 남(5)북(4) 왕들의 전쟁 발발(소돔에 거주하던 롯과 처자들까지 모두 포로됨) 318명의 <가솔> 동원하여 참전 승리 + 롯 구출..<순수전리품 중>살렘왕 멜기세덱 통해 지존하신 여호와께 십일조 봉헌..아브람이 되찾아온 바 소돔왕에 속한 자들의 소유였던 물품에 대해 전리품으로의 분배 참여권 거절. **멜기세덱의 경험 안에서 상천하지의 주재-지존자- 만복근원 전지전능 초월자-주권적 섭리자-모든 차원과 만물 만유 근원과 모든 존재의 창조자 Q 배움. **하나님께는 오직 당신 백성만 보인다. 친 백성들의 합당한 성숙 위해 [주권적 안배로!!] 가나안 남부5왕_북부4왕 간에 전쟁을 허용하심으로써 롯을 <깨우치도록>다루시며 아브람의 <성숙>을 고양시키신다. 이는 그토록 아브람이 중보하고 염려해 오던 롯을 구원하고 주를 향한 열심을 자극하여 <위치 태도 각도에 있어서> 롯으로 하여금 주께로 바르게 돌이킬 수 있는 회개 기회를 주시려 함이요 하나님 자신의 어떠하심(천지의 주재, 지존자, 영복 근원, <죽은자 살리시며 없는 것조차 불러내어 친히 공급하실 수 있는>주권적 섭리자이심)을 <롯과 아브라함 위해 그침 없이 중보해 오던 중보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멜기세덱 통해 나타내신 바 <믿음으로 열어드림으로써> 소개-나눔-주입받음 통해 누리도록 하려 하심이다. ****믿음으로 살 때 아브람이 직면한 공통의 첫시험 = 가나안 땅의 기근(생계문제).. ....이 문제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과 그의 의를 구함으로써..마6:31-33>끝까지 영존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일용할 양식] 공급하심 신뢰 + 주 앙망함으로 이겨 낼 수 있느냐 :: 처음엔 실패(즉, 기근 그 자체를 (절대적으로) 두려워 함의 시험에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자행자지하여 애굽으로 내려 감)...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죽은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눈에 안 보이지만, 마치 눈에 보이듯] 친히 불러내어 만들고 공급하실 수 있는 분, 천지의 주재이신 지존자-주권적 섭리자-만복 근원-전지전능자이심) 얻은 교훈따라 (부르신 분이 친히 공급하며 책임지신다)는 원칙 신뢰함의 공과를 배웠고, 벧엘로 복귀 후엔, <자기 유익>앞세움 아니라 <남의 유익>을 먼저 배려-양보하고 상대를 먼저 위함의 아가페 실행 통해 이겨냄을 보여준다....창 14장의 가나안 북4-남5왕의 전쟁 발발 요인들 중 또한 인생의 근원적 문제중 첫번째 <생계문제>에 달려 있음을 여전히 보여줌....주님이 주권적 안배따라 롯의 포로된 소식 듣게 하셨고 기도 가운데 주시는 말씀-감동에 따라 롯 구출 위해 일견 보기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새발의 피 같아 보이는) 소수병력<미리 준비된 가신들 318명>이지만 임마누엘 주님 붙들고 친히 이끌고 앞장서서 담대히 나아갔고(멜기세덱은 그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었다), 승리했고, (미리 염려하지 않고) 이미 롯 구출 위해 나아가기전에 주께 기도하며 맹세한 바로 그대로 <주님께서 친히 공급해 주시는 것만 바랄 것....> 확증 받았으며 멜기세덱을 통해 하나님께 순수 전리품의 1/10을 [주님 응답하심에 감사함으로] 드렸으며, 소돔왕의 [세상적인 상식따른] 제의를 [주 임재 앞에서] 거절한다...롯은? 개선일행 맞이 그 자리에 없었다!! 안타깝다. ..결국 아브람이 의지 삼아 하란을 떠나 올 때 부터 동행했던 롯, 다메섹 통과하면서 얻은 충직한 엘리에셀도, 애굽 체류 기간에 얻은 하갈의 이스마엘도 주께서 예비하신 씨가 아니었음이 밝혀지게 된다.
===아브람이 롯을 구하다 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5.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진을 쳤더니 9.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3. ○도망한 자가 와서[주권적 안배!!]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하다 17.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 [아브람 위한 중보자...친 백성 위해 친히 중보하시는 JC 표상]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엘룐]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전적 동의+감사]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게 속한]사람은 내게 보내고 [포로되었던 내 사람들의 소유였던]물품은 네가 가지라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이미 아뢴 그대로)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 War of the Kings.14. 1 In the days of the [Eastern] kings Amraphel of Shinar, Arioch of Ellasar, Chedorlaomer of Elam, and Tidal of Goiim, 2 they [invaded the Jordan Valley near the Dead Sea, and] made war with Bera king of Sodom, Birsha king of Gomorrah, Shinab king of Admah, Shemeber king of Zeboiim, and the king of Bela [a](that is, Zoar). 3 All of these [kings] joined together [as allies] in the Valley of Siddim (that is, the Sea of Salt). 4 Twelve years they had served Chedorlaomer [the most powerful king in the invading confederacy], but in the thirteenth year they rebelled. 5 In the fourteenth year Chedorlaomer and the [three] kings who were with him attacked and subdued the Rephaim in Ashteroth-karnaim, the Zuzim in Ham, and the Emim in Shaveh-kiriathaim, 6 and the Horites in their mountainous country of Seir, as far as El-paran, which is on the border of the wilderness. 7 Then they turned back and came to En-mishpat (that is, Kadesh), and subdued all the country of the Amalekites, and also the Amorites who lived in Hazazon-tamar. 8 Then the kings of Sodom, Gomorrah, Admah, Zeboiim, and Bela (that is, Zoar) came out; and they joined together for battle with the invading kings in the Valley of Siddim, 9 against Chedorlaomer king of Elam and Tidal king of Goiim and Amraphel king of Shinar and Arioch king of Ellasar—four kings against five. 10 Now the Valley of Siddim was full of tar (bitumen) pits; and as the kings of Sodom and Gomorrah fled, they fell into them. But the remainder [of the kings] who survived fled to the hill country. 11 Then the victors took all the possessions of Sodom and Gomorrah and all their food supply and provisions and left. 12 And they also took [captive] Lot, Abram’s nephew, and his possessions and left, for he was living in Sodom. 13 Then a survivor who had escaped [from the invading forces on the other side of the Jordan] came and told Abram the [b]Hebrew. Now he was living by the terebinths (oaks) of Mamre the Amorite, brother of Eshcol and brother of Aner—they were allies of Abram. 14 When Abram heard that his nephew [Lot] had been captured, he armed and led out his trained men, born in his own house, [numbering] three hundred and eighteen, and went in pursuit as far [north] as Dan. 15 He divided his forces against them by night, he and his servants, and attacked and defeated them, and pursued them as far as Hobah, which is north of Damascus. 16 And he brought back all the goods, and also brought back his nephew Lot and his possessions, and also the women, and the people. ===Abram and Melchizedek 17 Then after Abram’s return from the defeat (slaughter) of Chedorlaomer and the kings who were with him, the king of Sodom went out to meet him at the Valley of Shaveh (that is, the King’s Valley). 18 [c]Melchizedek king of Salem (ancient Jerusalem) brought out bread and wine [for them]; he was the priest of [d]God Most High. 19 And Melchizedek blessed Abram and said, “Blessed (joyful, favored) be Abram by God Most High, Creator and Possessor of heaven and earth; 20 And blessed, praised, and glorified be God Most High, Who has given your enemies into your hand.” And Abram gave him a tenth of all [the treasure he had taken in battle]. 21 The king of Sodom said to Abram, “Give me the people and keep the goods (spoils of battle) for yourself.” 22 But Abram said to the king of Sodom, “I have raised my hand and sworn an oath to the Lord God Most High, the Creator and Possessor of heaven and earth, [아브라함은 항상 롯을 위해 관심하여 중보기도 하여왔고, 롯의 포로됨 소식 듣고서 (고소해 하거나, 네 탓이니 나는 오불관!! 하는 자세로) 방관하거나 그냥 있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구해내기 위해 출정 전에도 전심으로!! 주께 기도하고 맹세했다..오직 전적으로 <롯 구출 위해, 주님의 수족되어 나서되> 지존하신 주님의 친히 위하심의 생생한 경험만 바라며 앙망했다!!..목적한 바 롯의 구출과 대적들로부터의 노획물, 그것이면 충분하다 여겼고!! 부차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관심 밖이었다!!...이것은 <(여호수아와 장로들을 속여서 진멸을 피하고 이스라엘의 종이 된 기브온 주민들을 위해 싸울 것을 결정하고 실행함, 즉 기브온 격멸 위해 공격해 온 가나안 하솔왕 야빈과 기꺼이 맞서 싸우기로 한 바> 여호수아도 그러했었다!!...(주님 이름으로)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 23 that I would not take anything that is yours, from a thread to a sandal strap, so you could not say, ‘I [the King of Sodom] have made Abram rich.’ 24 I will take nothing except what my young men have eaten, and the share of the spoils belonging to the men [my allies] who went with me—Aner, Eshcol, and Mamre; let them take their share of the spoils.” ===Footnotes Genesis 14:2 One of the many facts supporting the antiquity of Genesis is that many of the original names of places mentioned were so old that Moses had to add an explanation in order to identify these ancient names, so that the Israelites returning from Egypt could recognize them. Chapter 14 alone contains six such explanatory notes (Gen 14:2, 3, 7, 8, 15, 17). Genesis 14:13 This ethnic designation means “descended from Eber” or, more probably, “one who crosses (a border).” Genesis 14:18 Heb king of righteousness. Genesis 14:18 Heb El Elyon and so throughout the chapter. The supreme Ruler of all the universe; His dominion is all encompassing and everlasting. ===== 창세기 14장 (개요) 본 장에서는 네 가지 사실을 엿볼 수 있다. 1. 소돔 왕과 그 동맹자들을 상대로 한 전쟁(1-11). 2. 그 전쟁에서 롯이 사로잡힘(12). 3. 아브람은 정복자에 대항해 승전함으로써 롯을 구출함(13-16). 4. 아브람이 원정에서 돌아옴(17). (1) 그와 살렘 왕이 나눈 이야기(18-20). (2) 그와 소돔 왕이 나눈 이야기(21-24). 그리하여 여기서는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심을 볼 수 있다. ======= 포로가 된 롯(창 14:1-12)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전쟁 기사가 기록되었다. (비록 국가간의 전쟁이 역사상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 내지만) 아브람과 롯이 여기에 연관되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알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 전쟁에 대해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이 싸움에 가담한 당사자들. 침략자들은 네 왕이었는데, 그중 둘은 시날 왕과 엘람 왕(곧 갈대아와 파사)이었다. 그들은 아마 직접 큰 왕국을 통치하는 군왕이 아니라, 그들의 휘하에 있었거나 그 큰 나라에서 파생된 어떤 지방의 수령이나 영주였을 것이다. 그들은 소돔 근방에 정주하고 있었고 그들의 발상지인 땅의 이름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침략을 받은 자들은 요단 평지 근처에 모여 있던 다섯 도시, 곧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그리고 소알의 왕들이다. 그들 중 네 왕의 이름은 나와 있으나, 다섯째인 소알 곧 벨라 왕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다. 그가 다른 자들보다 대단치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았든가, 사악하고 수치스러워 잊어버릴 만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Ⅱ. 전쟁의 이유. 그돌라오멜의 통치에 대한 다섯 왕들의 반역때문이다. 그들은 12년간이나 그를 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외국에 조공을 바치고 있어 자기들의 비옥한 땅에서 거두어들이는 바가 별로 없었으며, 그 땅마저도 자기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성장하는 강대국에게 부유한 이웃 나라는 탐스런 먹이요, 일없이 호화로운 나라는 삼키기 쉬운 먹이였다. 소돔 사람들은 노아가 일찍이 셈의 종이 되리라고 예언했던 그 가나안의 후예들이다. 엘람도 그들의 계통을 이은 자다. 그 예언이 이처럼 속히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13년에는 예속 상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해 조공을 거부하고 멍에를 벗어버리려 했고, 자기들의 옛 자유를 되찾으려 했다. 제14년에는 얼마간의 휴전과 준비 기간을 가진 후, 그돌라오멜은 그의 동맹자들과 연합해 직접 그 반란을 징벌하고 진압하기로 했다. 무력으로 그들의 조공을 받아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만, 탐욕, 그리고 야심이 전쟁과 싸움을 일으키는 원인임을 명심하라. 이들 탐욕에 찬 우상들에게 수천의 피가 희생 제물이 되는 것이다. Ⅲ. 그 전쟁의 과정과 결과. 이들 네 왕들은 소돔 왕이 자기들에게 항복하고 평화를 바라는 것이 지혜롭다고 경고했다. 또 그 인접국은 이미 황폐화시키고 노략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강해졌다(5-7절). 이같이 승리에 넘치는 자들과 소돔 왕이 감히 어떻게 접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소돔 왕은 굴종하기보다는 오히려 최후 수단을 써서 만난을 무릅쓰고 한번 해보려고 결심했다. 결국 전쟁이 벌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가 멸망시키고자 하는 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신다. 1. 소돔과 그 동맹군은 패주했다. 칼을 피하려던 많은 자들이 역청 구덩이에서 죽었음이 분명하다(10절). 도처에서 갖가지 종류의 죽음에 둘러싸이는 것이 우리 인생이니, 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2. 그 도성들은 약탈되었다(11절). 소돔의 모든 재물, 특히 저장해 두었던 양식들을 정복자들이 약탈해 갔다. 관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포식하고 지나치게 남용하는 인간에 대해, 심판이나 그 밖의 다른 방법을 통해서 그 남용한 것을 빼앗아 가시는(호 2:8, 9) 하나님은 정당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3. 롯이 사로잡혔다(12절). 그들은 다른 자들과 함께 롯과 그의 재물까지 노략해 갔다. 롯에 관해 살펴보자. (1) 롯은 이 공통적 재난을 이웃과 함께 겪었다. 비록 그는 (분명히 나타나 있는 대로) 의로운 사람이요 또 아브람의 조카였지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재난에 빠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모든 것이 일반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전 9:2). 가장 선한 자라도 이생에서 최대의 고난을 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널리 미칠 때 우리 자신의 신심(信心)이나 하늘의 은총을 입은 자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안전이 될 수는 없다. 나아가 많은 정직한 자들이 악한 이웃들로 인해서 재난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스스로 그들을 떠나든지, 적어도 그들과 구별되어 사는 것이 우리의 지혜다(고후 6:17). 그리하여 자신을 구해 내야 하겠다(계 18:4). (2) 롯은 소돔에 정주하기로 작정한 그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벌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아 갔더라”고 했다. 이것은 분명 다음과 같은 일을 암시한다. 즉 롯이 그처럼 가까운 아브람의 혈족이라면, 아브람의 동반자가 되어 그의 장막에 머물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돔을 택했다면, 소돔의 재앙을 함께 받는 일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우리의 본분과 하나님의 보호를 벗어나 육욕으로 택한 것이 우리에게 위안을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음을 명심하자. 또 아브람과의 다툼의 원인이 되고 그를 떠나게 했던 롯의 “재물”을 빼앗아 간 일이 특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할 줄 아는 기쁨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그런 기쁨은 하나님께서 당연히 빼앗아 버린다는 사실이다. ----------- 포로에서 구출된 롯(창 14:13-16) 아브람이 직접 참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군사적 행동의 기사가 나타나 있다.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그 자신의 허욕이나 야심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의 원리에 의해서였다. 즉 그것은 자신의 부유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벗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지금껏 아브람의 군사적 원정보다도 더 명예롭게 기획되고 실행된 군사적 토벌은 결코 없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그에게 전해진 혈족의 어려움에 관한 소식.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그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즉각적인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 있었다. 1. 그는 여기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이는 곧 에벨의 자손으로서 그 뒤를 잇는 자라는 뜻이다. 그의 가정을 통해서 그토록 타락한 세대 속에서도 참된 신앙 고백이 유지되어 왔다. 아브람은 히브리인답게, 즉 경건한 신앙 고백자로서의 이름과 성품을 더럽히지 않게 처신했다. 2. 간신히 목숨을 구해 도망한 자가 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마 그는 소돔 사람이었을 것이며, 다른 소돔 사람들처럼 그도 지극히 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브람과 롯의 관계를 알고 있고 또 롯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급히 롯을 도와주기를 청했던 것이다. 가장 악한 자라도 괴로움에 처하면 현명하고 선한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하며, 또 그처럼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지옥에 있는 부자가 아브람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어리석은 처녀들이 자기들의 기름을 위해 지혜로운 자에게 아첨했었다. Ⅱ. 아브람은 이런 원정을 위해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그 동기는 분명히 선했고, 원정에 가담하라는 그의 소명은 확실했다. 따라서 급히 서둘러 “집에서 길리고 연습된 자”, 그 숫자 “318인을 거느리니,” 집안으로서는 대가족이지만 군대로서는 지극히 소규모이며, 미디안 사람들에게 나아갔던 기드온의 군사만큼밖에 안 되는 수효였다(삿 7:7). 그는 “훈련된” 종, 혹은 “교리를 배운” 종들을 뽑았으니, 이는 그 후 한층 더 악한 세대가 개량한 기술에 비하면 매우 미흡한 것이었으나, 당대에는 완전한 전쟁 기술과 아울러 신앙의 원리를 배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집안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길을 지키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1. 아브람은 자기가 의지하고 또 채용한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한 위인이었다. 그 종들은 그에게 힘과 영예가 될 뿐 아니라, 그의 신앙에 큰 기회도 주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귀중한 장소와 귀중한 상황에서는 진실로 가치 있고 바람직한 것들이었다. 2. 그는 선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까지도 하나님 섬기는 일을 가르쳤다. 대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자는 많은 육신 이외에 돌보아 주고 식량을 공급해 주어야 할 많은 영혼도 거느리고 있음을 명심하자. 아브람의 뒤를 잇고자 하는 자들은 자기 종들이 교리를 배운 종들이 되도록 해야 한다. 3.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록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언제 당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여 그의 종들을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거룩한 신앙이 화평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전쟁에 대비하는 일을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Ⅲ. 이 원정에 참여한 아브람의 동맹자들과 연합군들. 아브람은 그의 이웃들, 곧 그와 함께하기 위한 “아넬과 에스골, 그리고 마므레”(그는 이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들을 설득하여 자기와 동행하게 했다. 그리하여 원군으로 자기의 군사력을 강화한 것은 아브람의 분별 있는 처신이었다. 아마 그들도 그 다음에 자기들이 당하지 않기 위해 이 만만치 않은 세력과 대항해야 할 이해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자기들도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친절과 공손으로 대하여 저들도 우리에게 쾌히 친절을 베풀게 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요 임무라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는 자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 섭리를 따라 인간의 조력을 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Ⅳ. 괄목할 만한 그의 용기와 행동. 1. 그의 불리한 조건을 고려한다면, 그 계획 자체가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농부와 목동으로 구성된 가족들이 이제 막 유혈 승리를 거둔 네 왕들에 대항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아브람이 토벌할 자들은 정복당한 군대가 아니라 승리한 군대들이었다. 또 어쩔 수 없는 필요성 때문에 이 대담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관대한 마음씨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내가 알기로는 알렉산더나 시저가 받는 칭송만큼 위대한 용기의 본보기였다고 생각된다. 신앙은 인간을 비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용기 있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자. 의로운 자는 사자와 같이 담대하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영웅이다. 2. 원정 과정에 있어서 대단한 수완을 보였다. 아브람은 전술에 생소한 사람은 아니었다. 기드온이 자기의 적은 군사들을 3개 대로 나누었듯이(삿 7:16), 그도 가신을 “나누어” 여러 지역에서 불시에 적을 기습함으로써 적은 군사들을 많은 무리로 보이게 했으며, 밤을 타서 공격을 가하는 기습작전을 썼던 것이다. 정직한 책략은 우리의 안전과 유익에 좋은 친구가 됨을 명심하자. 뱀의 머리라도(그것이 옛 뱀과 전혀 같은 것이 아니라면), 특히 그 속에 비둘기의 순결한 눈이 있다면, 물론 선한 그리스도인의 몸이 될 수 있을 것이다(마 10:16). Ⅴ. 매우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다(15, 16절). 아브람은 적을 무찌르고 친구들을 구조했는데, 그가 어떤 손실을 입었다는 기사는 없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동기로 대담하게 나아가는 자는 인자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으며, 당연히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하자. 다시 말하거니와 그 모든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니,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고” 여호와와 함께하는 데 있을 뿐이다(삼상 14:6). 1. 그는 자기 혈족을 구출했다. 여기서는 두 번이나 “조카 롯”이라고 불린다. 본성적으로나 은혜로나 그들 상호간은 친족 관계임을 기억함으로써 아브람은 전에 있었던 그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을 잊었다. 그 다툼을 하는 동안 롯은 아브람에게 결코 좋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기와 다투고 떠나간 롯을 아브람은 당연히 견책하거나, 이미 자기는 잘해 주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또 과연 롯이 유복하게 지낸 것은 어느 때였던가를 알려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굳은 아브람의 관대한 마음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있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오히려 자기의 성실한 화해의 산 증거를 삼았다. (1) 우리에게 능력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곤경에 처한 자들을 기꺼이 구제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그리해야 함을 기억하자.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 곤경 속의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다. (2) 비록 남들이 우리에게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우리의 임무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친구보다는 적들을 더욱 쉽사리 용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화목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신다”(미 7:18)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적이나 친구를 모두 용서해 주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2. 아브람은 롯 때문에 낯설고 구해 줄 의무가 없는 다른 포로들도 구해 주었다. 그들은 소돔 사람들이었고 여호와 앞에서 큰 죄인들이었으므로 몸값을 주고 롯만 데려올 수 있었지만, 그는 모든 부녀자들과 주민들과 그 재물까지 되찾아왔다(16절).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하며, 가능한 한 우리의 선은 널리 미쳐야 된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모든 곳에서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에게 한결같이 선을 베풀어 주시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마 5:45). 아브람이 왕들과 싸워 얻은 승리를 예언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41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겠느뇨?” 그리고 어떤 이는 그가 전에 은혜로써 이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졌듯이, 이제는 정복을 통해 소유권을 갖는다고 한다. ---------- 아브람과 멜기세덱의 면담(창 14:17-20) 이 구절은 아브람이 왕들을 섬멸하고 돌아왔을 때 소돔 왕이 그에게 보인 존경의 언사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특별한 기사를 기록하기 전에 멜기세덱에 대한 이야기가 간략하게 이어지고 있다. Ⅰ. 그는 누구인가? 그는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다른 영광스러운 일들이 그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히 7:1 이하). 1. 랍비들과 대부분의 랍비적 저술가들은, 족장의 모범에 따르면 멜기세덱이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들의 왕이요 제사장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왜 그 이름이 바뀌어야 했겠는가? 어떻게 그가 가나안에 정주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2. 많은 기독교 저작자들이 생각하는 바로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 곧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그런 이름으로 아브람에게 알려졌으며, 그후에는 의로운 명분을 간직하고 평화를 주는 왕으로 아브람에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떤 평범한 인간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히 7:3)고 일컬어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멜기세덱은 항상 살아 있고 또 제사장으로 있다(히 7:3, 8)고 증거되어 있다. 게다가 바울 사도는, 이런 일은 유다에게서 연유되신 우리 주님에게 해당되는 일로 삼고 있다(히 7:13, 14). 이와 마찬가지로 이 당시에 어느 평범한 인간이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아브람보다 더 위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평범한 인간의 질서를 따르는 제사장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멜기세덱의 경우에서 분명히 언급된 바와 같이, 어떤 인간적 제사장직이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훨씬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3.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멜기세덱이 가나안 왕이며 살렘을 통치했고, 거기서 참된 신앙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왜 그의 이름이 아브람의 이 이야기에만 나타나며, 왜 아브람이 자기보다 위대한 이웃 멜기세덱의 제단에 참례하지 않고 따로 제단을 쌓아야 했을까 하는 문제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옥스퍼드의 그레고리는 주로 〈Arabic Catena〉지(誌)의 권위에 의존하여, 멜기세덱은 에벨의 아들 벨렉의 아들 헤라글림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살라디엘이었고, 그녀는 노아의 아들 야벳의 아들 고멜의 딸이었다고 한다. Ⅱ. 그의 행동. 1. 그는 아브람과 그 군사들의 원기를 회복시키고, 그들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아왔다.” 왕으로서의 그의 행동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따라 선을 행하고 교제하며 대접을 받으리라고 교훈하고 있다. 또한 이 일은, 영적인 투쟁에 지쳐 있을 때 우리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은혜의 언약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과 위로의 영적 양식을 상징한다. 2.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람을 축복했다. 생각건대 이 축복이 그의 떡과 포도주보다는 훨씬 더 훌륭한 원기 회복제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를 세우시고, 보내셔서 권능자로서 우리를 축복해 주신다. 따라서 그가 축복하시는 자는 참으로 축복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가셨다(눅 24:51).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살아 계셔서 제자들을 축복하신다. Ⅲ. 그가 한 말. 그는 두 가지를 언급했다. 1.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이 아브람에게 임하기를 축사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19절). 그가 하나님께 돌린 칭호를 주목해 보라. 그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 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 완전함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만왕의 왕이시다. 우리가 기도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보고 또 그렇게 부르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경외심에 크게 도움이 된다. (2) “천지의 주재시요”라고 했으니, 모든 피조물의 마땅한 주인이시요, 그것을 다스리시는 여호와라는 뜻이다. 그가 모든 것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가 위대한 하나님이며 크게 찬송을 받아야 함을 뜻한다(시 24:1).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은 복되다. 2. 그는 아브람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20절). (1) 모든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할렐루야를 모든 호산나 찬양과 함께 올려야 한다. 이것이 매일, 또 특별한 때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물이다. (2)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시고 우리의 모든 승리의 영광을 받아 마땅하다(출 17:15; 삼상 7:10, 12; 삿 5:1, 2; 대하 20:21). 그 모든 승리를 통해 하나님은 스스로 우리의 적들보다 높다는 것(출 18:11)과 우리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그 분 없이는 우리는 아무 일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우리는 타인의 자비에 대해서도 우리의 일처럼 감사함을 드리고 승리자와 더불어 기뻐해야 한다. (4)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도와 찬양의 중보자시니, 그는 우리의 기도와 찬양을 대신 드릴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이 기도와 찬양을 드리신다(눅 10:21 참조). Ⅳ. 그가 받은 것.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이는 곧 노획물 중의 십분의 일이었다(히 7:4).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그것은 멜기세덱이 베푼 존경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 주어진 사례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자비를 받은 자는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명심하자. 감사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의 하나다. 2. 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게 맹세하여 헌납하는 예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예물을 그 분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넘겨주었던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께로부터 뚜렷한 긍휼을 입었을 때는 경건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어떤 특별한 행동으로 우리의 감사를 표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 가운데서도 응당 받아야 할 몫을 받으시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어떤 특별한 섭리로 우리의 재물을 보존해 주셨거나 증가시켜 주셨을 때 더욱 그렇다. (2) 불어난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영광과 성전 섬기는 일을 위해 구별해 놓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몫이다. (3) 우리의 위대한 멜기세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는 경의를 표해야 하며, 우리 각자는 그 분을 우리의 왕과 제사장으로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바쳐야 함을 유의하자. ---------- 아브람의 공평무사함(창 14:21-24) 아브람과 소돔 왕이 나눈 대화가 나타나 있다. 소돔 왕은 전쟁에서 패한 자였으며(10절), 아브람이 그에게 베풀어 준 선한 호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Ⅰ. 아브람에 대해 소돔 왕이 감사에 넘치는 제의를 했다(21절). “영혼은 내게 보내고 물질은 당신이 취하소서”(히브리어로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은 원하고 있으나 물질은 아낌없이 아브람에게 주려 했다. 1. 권리의 소재가 모호한 곳에서는 논쟁보다는 상호적인 양보로 타협하는 것이 현명하다. 소돔 왕은 그 사람들과 물품에 대한 권리를 처음부터 소유하고 있었고 아브람은 그들을 구출함으로써 권리를 획득했으므로, 아브람의 권리가 그의 권리를 대신해야 할지 어떨지 하는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싸움을 막기 위해 소돔 왕이 공정한 제안을 했던 것이다. 2. 그의 감사의 정신은, 우리를 도와 유익을 주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어려움을 참고 위험을 무릅쓴 자에게는 능력껏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고전 9:7) 군인은 어느 다른 근로자들보다 훨씬 귀한 값을 받고 있으며, 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숨을 내놓고 싸우기 때문이다. Ⅱ. 이 제의에 대한 아브람의 관대한 거절. 아브람은 자기가 적의 손에서 구출해 냈기 때문에 자기를 섬겨야 했던 그들을 소돔 왕에게 넘겨주었을 뿐 아니라, 모든 재물까지도 되돌려 주었다. 그에게 속한 것이라면 지극히 적은 것조차도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그는 취하려 하지 않았다. 산 믿음은 이 세상의 부귀를 천하게 여길 수 있게 한다(요일 5:4). 이제껏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바라보던 그에게 감성적인 모든 장식품과 기쁨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온유한 양심은 사소한 일로 죄를 범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 아브람은 자기의 결심을 엄숙한 맹세로 확인하고 있다. “내가 여호와께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내가 아무것도 취하지 아니하리라”(22절). 여기서 다음 사실을 유의하자. (1) 그가 하나님께 드린 칭호.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 했다. 멜기세덱이 조금 전에 사용한 것과 동일한 칭호다(19절). 다른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 관해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일을 훌륭하게 말하는 자들을 모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믿음이 굳고 선한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런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모방하여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 이 맹세에서 사용된 예식. “내가 손을 들었다”고 했다. 신앙적 서약으로 우리는 우리의 진실과 성실을 하나님이 받아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거짓을 맹세한다면, 그것은 그의 진노를 비는 것이 된다. “손을 든다”고 하는 것은 진실과 성실 두 가지 경우를 다 표현하는 매우 의의 깊은 일이다. (3) 그가 소돔 왕에게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겠다고 한 맹세는 법적인 행동이기는 하지만, 선례를 따라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① 전투에 임하기 앞서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맹세하기를, 하나님께서 전쟁에 이기게 해 주신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신앙고백을 위해서도 어떤 노획물도 취하지 않을 것이며, 그 노획물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기까지 하겠노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자비를 구하면서 세운 맹세는,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의 유익에 상반된다고 하더라도 성실히 지켜야 됨을 유의하자. 시온의 신민이 된 자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맹세한 것이 있으면,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한다”(시 15:4). ② 또한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난 아브람은 그와 동시에 그렇게 맹세함으로써, 그가 더 이상 간청하지 못하게 하려는 자기의 거부의사를 확고히 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때로 사도 바울과 같이(고전 8:13; 9:12) 당연한 권리에 속하는 것도 삼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하자. 둘째로, 확고한 결심은 유혹의 세력을 피하는 데 유익하다는 것을 유의하자. 2. 아브람이 거절한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노라.”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치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소돔의 노획물 없이는 아브람이 부유케 될 수 없었다는 듯이 하나님의 약속과 계약에 치욕을 돌린다. (2) 그가 그 위험한 토벌을 벌이며 노린 것이 마치 자신을 부유케 하려던 것인 양, 아브람의 신심과 사랑에 치욕을 초래하는 것이다. ①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하는 기회를 남에게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②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인색하여 돈만 바라는 것으로 보이거나 탐욕과 독선적 기미를 보이는 일을 행할까 조심해야 한다. 소돔 왕은 교만하고 무례한 인간이며, 이런 일을 한 후에는 매우 부당하게도 후일 아브람에게 불명예를 돌릴 만한 자임을 아브람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자들과 함께 행동할 때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3. 아브람은 권리 포기에 두 가지 단서를 붙였다(24절). 맹세를 할 때는 필요한 예외 사항을 첨부해 후일 천사들 앞에서 “그것은 실수였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전 5:6). 아브람은 다음 사항을 예외로 했다. (1) 자기 군사들의 식량. 곡식을 타작하는 동안 타작꾼은 마땅히 식사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소돔 왕이 자기가 아브람을 치부케 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으리라. (2) 자기 동맹자들과 협력자들의 몫.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고 했다. 자신의 자유를 엄격히 자제하고 있는 자들이라도, 그런 속박을 남의 자유를 구속하는 데 악용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자유를 심판하는 데 악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자기를 표준 삼아 남을 측정해서는 안 된다. 선한 자는 바리새인들의 관례(마 23:4)와는 반대로, 남의 자유를 부정하지 않는 자유에 공헌할 것이다. 아브람에게는 그 권리를 포기할 만한 이유가 있었으나 아넬, 에스골, 마므레는 자기들의 권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브람과 똑같은 신앙 고백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맹세의 의무 아래 놓여 있지도 않았다. 아브람처럼 저 세상의 분깃을 바라는 소망이 그들에게는 없었으므로, 어떻든 그들은 이 세상의 “분깃을 취할 것”을 허락하자. === === ======== 14장: 롯을 구출함 ===1-16절, 롯을 구출함 [1-2절]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북방의 네 나라의 왕들은 남방의 소돔 성 주위의 다섯 나라 왕들과 전쟁을 했다. 시날은 바벨론의 수도 바벨과 아브람의 원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 지역을 가리키며 오늘날 이라크 동부 지역이다. 엘람은 페르샤만부터 카스피해까지 페르샤 지역을 가리키며 오늘날 이란 서부 지역이다. 엘라살과 고임은 그 주위에 있었을 것이나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남방의 다섯 나라들은 염해 남부 지역에 있었던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단지 “벨라 곧 소알”이라는 표현은 벨라가 옛날 이름이고, 소알이 모세가 창세기를 쓸 당시 사용되었던 이름임을 보인다. [3-4절]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13년에 배반한지라. 북방의 연합군들이 남방의 왕들과 전쟁한 곳은 싯딤 골짜기이었다. ‘싯딤’이라는 원어(싯딤 )는 ‘들판’이라는 뜻이며 그곳이 본래 들판이었음을 보인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라는 표현은 들판이었던 싯딤 골짜기가 후에 염해로 변했음을 보인다. ‘염해’(鹽海)는 ‘소금 바다’라는 뜻인데, 그곳의 물은 보통 바닷물보다 10배나 더 짠 30-33%의 소금물이라고 한다. <26) 염해는 크기가 남북이 78km, 동서 18km로 제주도의 절반 넓이 정도 이며 지중해 해면보다 400m 낮은 곳으로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계곡이라고 한다. 이찬영, 성경지리총람 (서울: 소망사, 1993), 198쪽.> 그 전쟁의 동기는 남쪽 나라들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12년간 섬기다가 제13년에 배반했기 때문이었다. [5-7절] 제14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르바(거인), 수스, 엠, 호리는, 신명기 2장이 증거하는 대로, 옛날에 요단강 건너 동북쪽부터 요단강 남단 염해 동쪽과 남쪽, 즉 모압과 암몬과 에돔 지역에 살았던 족속들이다. 아스드롯 가르나임은 요단 강 동북쪽 바산 땅에 있었고, 함은 갈릴리 호수 동쪽 게술 땅이며, 사웨 기랴다임은 요단강 동남쪽 르우벤 지파 땅에 있었고, 세일산은 에돔 지역이다. 엘바란은 에돔의 남단, 즉 홍해 북단 항구이며, 엔미스밧은 가데스 바네아일 것이다. 하사손다말은, 역대하 20:2에 의하면, 염해 중서부의 엔게디이다. 다시 말하면, 북방 연합군은 요단강 동북쪽 땅으로부터 요단강 남쪽 염해 동부와 남부와 서부를 쳤던 것이다. 본장은 그 내용의 역사적 성격을 잘 나타낸다. 옛날의 나라들이나 성들의 이름과 왕들과 족속들의 이름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R. D. 윌슨은 본장의 왕들의 이름이 고고학적 발굴 내용과 일치함을 증거하였다. <27) 27) R. D. Wilson, Is the Higher Criticism Scholarly?, p. 20.> 또 본장에는 창세기를 쓴 모세의 보충적 설명이 여러 번 나온다. 2절에는 “벨라 곧 소알,” 3절에는 “싯딤 골짜기 곧 염해,” 7절에는 “엔미스밧 곧 가데스,” 8절에는 “벨라 곧 소알,” 17절에는 “사웨 골짜기 곧 왕곡(왕의 골짜기)” 등이 그것이다. [8-12절]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곧 그 다섯 왕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북방의 네 왕들의 연합군이 남방의 소돔 성과 그 주위의 성들의 다섯 왕들의 연합군과 접전한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았다. ‘역청’(케마르 )은 석탄이나 석유에서 나오는 ‘아스팔트, 콜타르, 피치 등’을 가리킨다. 그 전쟁에서 소돔 왕과 그 동맹국들은 패전하였고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겼다. 소돔에 거했던 롯도 포로로 잡혀갔고 그의 재물들도 다 빼앗겼다. 롯은 큰 낭패를 당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악된 도시 소돔에 내리신 경고의 징벌이며 또 인간적 생각과 욕심을 따라 요단 들을 선택했고 심히 죄악된 소돔 성에까지 내려가 거주하며 그들과 교제했던 롯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징벌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사람은 물질적 유여함을 가진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셔야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침략자를 보내시면 하루아침에 모든 좋은 것들도 빼앗길 것이다.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은 오직 섭리자 하나님께 달려 있다. [13절]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도망쳐 온 한 사람이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성경에서 여기에 처음으로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이브리 )이 나온다. 이 말은 ‘에벨의 자손’이라는 뜻과 더불어 ‘강 건너편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 명칭은 아마 가나안 땅에 나그네처럼 거주했던 아브람에게 주위 사람들이 붙여준 것일 것이다. 그때 아브람은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다.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의 형제이며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들이었다. [14-16절]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북편에 있는]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더라. 아브람은 평소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켰던 가신(家臣)들 318명과 함께 롯을 구출하기 위해 북방 나라의 왕들을 뒤쫓아갔다. 그와 동맹했던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도 거기에 참여하였다(24절). 아브람은 평소에 자기 방어를 위해 가신들을 훈련시켰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운동도 하고 체력도 단련시키는 것이 좋고, 세상에서는 군대도 필요하고 경찰력도 필요하다. 아브람은 단까지 쫓아갔다. 여기의 ‘단’은 사사 시대에 세워진(삿 18:28-29) 도시를 가리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단은 사사 시대에 세워졌을 뿐 아니라, 북방 왕들은 요단 동쪽의 바산 길(다메섹--랍바)과 왕의 대로(랍바--보스라--엘랏)로 내려오고 올라갔을 것이며 그 길은 그 성을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단은 길르앗에 속한 한 성읍을 가리킬 것이다 <.28) <카일과 델리취는 여기의 단이 신명기 34:1에 나오는 길르앗의 단이거나 사무엘하 24:6의 다냐안(야안의 단)을 가리킬 것이라고 본다. C. F. Keil and F.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 Pentateuch (1864), I, 206.> 아브람은 가신들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했고 다메섹 북편에 있는(원문의 뜻)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긴 재물과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부녀들과 사람들을 찾아왔다. 이것은 그의 조카 롯을 위해 자기 목숨의 위험을 무릅썼던 아브람의 사랑과 용기를 잘 나타내준다. 아브람의 믿음은 헌신적 사랑과 용기로 잘 표현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소극적 태도로가 아니고 적극적 참여와 순종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시지만(사 37:36),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자연적 수단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에나 충실해야 하고 자연적 수단도 감사함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행 27:30-31).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내용을 다 믿자. 창세기는 역사적 성격을 가진다. 예를 들어, 창세기 2장은 에덴 동산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10-14절), 7-8장은 홍수가 시작된 연월일과 물이 땅 위에서 마른 연월일에 대해 언급한다(7:11; 8:13-14). 10장은 노아의 자손들의 이름들과 그들로 인해 퍼져 나간 열국들의 이름들에 대해 자세히 증거한다. 11장은 바벨탑 사건에 대해, 12장 이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기록한다. 창세기는 첫장부터 끝장까지 역사적 성격을 가진다. 사실 성경 전체가 그러하다. 성경은 절반 이상이 역사이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다 믿자. 둘째로, 롯은 고난의 징벌과 기적적 구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되었던 소돔 성과 거기 살며 그들과 교제했던 롯에게 고난의 징벌을 내리셨다. 그러나 죄와 부족에 대한 징벌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롯을 긍휼히 여기셨고 기이한 구원을 주셨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한다(시 119:71).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세상의 헛된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은 오직 섭리자 하나님께 달렸다. 셋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사랑과 용기를 가지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사용하셔서 롯을 구출하셨다. 아브람은 평소에 집에서 훈련시켰던 318명의 가신들과 함께 가서 롯을 구출하였다. 그것은 그의 사랑과 용기를 보인다. 우리는 어려움 당한 형제들과 이웃들을 사랑하고 도울 힘이 있을 때 그들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사는 동안 믿음 안에서 자신을 훈련시키고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선한 일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경건의 훈련과 더불어 체력 단련도 하는 것이 좋고, 또 우리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든지 다 준비하고 대비하여 처리하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17-24절, 아브람이 이기고 돌아옴 [17절]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파하다’는 원어는 ‘치다, 패배시키다, 죽이다’는 뜻을 가진다. 옛날 영어성경은 ‘죽이다’는 말로 번역했다. 소돔 왕의 입장에서 아브람은 그들의 성읍 곧 그 나라 사람들과 그 빼앗긴 재물들을 찾아준 은인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돌아올 때 소돔 왕은 사웨 골짜기 곧 왕곡(王谷, 왕의 골짜기)에 나와 아브람을 영접하였다. [18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살렘 왕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이다. ‘살렘 왕’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이고, ‘멜기세덱’은 ‘의(義)의 왕’이라는 뜻이다. 또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증거되었다. 그가 떡과 포도주를 가져온 것은 아브람과 그의 동료들의 원기 회복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본문은 그가 실제로 역사적 인물이라고 증거하는 것 같다. <많은 유대인들과 성경 연구자들은 멜기세덱을 셈이라고 생각한다. 아브람이 롯을 구한 사건은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10년이 되기 전의 일이었다(창 16:3). 그러면 그때는 아담 후 2033년 이전이었다. 셈은 아담 후 1558년경에 출생하여 2158년경까지 살았으므로 또 그는 경건했을 것이므로, 멜기세덱과 비슷한 인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셈이 가나안 땅에 있었을까 하는 점, 그가 셈이라면 셈이라고 부르지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것 같지 않다는 점, 또 히브리서 7:3에 멜기세덱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묘사된 점 등은 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멜기세덱이 실제 인물이라면 가나안 족속의 한 왕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히브리서 7:3의 말씀은 그에 대해 족보도, 출생일도, 사망일도 언급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경건한 인물을 가나안 땅에 숨겨두셨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흠모할 만한 은혜가 무명의 사람 속에서 더 분명히 빛난다. 왜냐하면 부패된 세상 속에서 멜기세덱은 그 땅에서 종교의 바르고 신실한 소유자요 수호자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매튜 풀은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최악의 장소들과 나라들 가운데서도 그의 남은 자들을 여기 저기 흩어두셨다”고 말했다(성경주석, I, 35). [19절]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복을 기원하고 그의 대적들을 그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멜기세덱의 말에서, 우리는 그의 경건을 엿본다. 첫째로,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로 알았다. ‘주재’라는 원어(코네 )는 ‘창조자, 소유자’라는 뜻이다(BDB, KB).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 천지만물의 소유자이시다. 둘째로,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알았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혹은 ‘지존자’라는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그것은 시편에 적어도 21번 나오고 다니엘서에 14번이나 나온다. <<29) 시 7:17; 9:2; 18:13; 21:7; 46:4; 47:2; 50:14; 57:2; 73:11; 77:10; 78:17, 35, 56; 82:6; 83:18; 87:5; 91:1, 9; 92:1; 97:9; 107:11; 단 3:26; 4:2, 17, 24, 25, 32, 34; 5:18, 21; 7:18, 22, 25, 25, 27.> 하나님께서는 저 높고 광대한 하늘보다 더 높으신 자이시다. 그는 초월자이시다. 그의 지혜와 능력은 지극히 탁월하시다. 셋째로,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았다. 복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다. 왜냐면 그는 만복의 근원이시며 전능하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신명기 32: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한나도 말하기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고 했다(삼상 2:6-7). 시편 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시편 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하여야 했다(민 6:24-26). 또 시편 1편은 악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사는 자가 복되다고 증거했고, 또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성도들에게 항상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였다(롬 1:7). [20절]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모든] 것에서 10분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넷째로, 멜기세덱은 아브람의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붙이신 자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힘이시며 방패시고 구원이시며 대적들을 그 발 아래 굴복케 하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다섯째로,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으로 알았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자이시다. 사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었다. 이사야 43:7, 21,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 사람의 첫 번째 존재 목적이 있다.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에서 10분 1을 주었다. ‘그 얻은 것에서’라는 말은 원문에 ‘모든 것의’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 성경에서 최초로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십일조는 10분의 1이라는 뜻이다. 아브람이 드린 최초의 십일조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표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 주심을 인정한 표, 즉 전쟁에서 이긴 것과 빼앗겼던 물건들을 다시 찾은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한 표이었다. 십일조는 하나님과 그의 복 주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소득이 그의 복이며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이다.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이었다. 그는 족보도 없고, 출생이나 사망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는 아브람을 축복하였고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았으므로 그의 자손인 레위보다 높은 자이었다. 히브리서 7:1-3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이름이 그러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義)의 왕이시며 평화의 왕이시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상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다. [21절]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소돔 왕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죽었거나 종이 되었다 할지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가족들, 친지들, 이웃들을 찾게 되었다. 그는 감히 물품들까지 되돌려 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고 말했다. [22-23절]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코네 )[소유자, 창조자]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致富)케[부자가 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아브람의 믿음은 멜기세덱의 믿음과 같았다. 그는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다.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진실을 말하는 행위이다. 맹세는 자신의 말이 장난삼아 하는 것이거나 경솔히, 가볍게, 혹은 거짓되이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지하게, 진심으로, 진실하게 하는 것임을 증거한다. 아브람은 그가 전쟁에서 도로 찾은 물건들 중 실 한 개나 신발끈 하나도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에게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었음을 증거한다. 재물 욕심을 버린 자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을 보화로 삼은 자는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모르고 돈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자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겠지만, 하나님과 천국을 아는 자, 내세를 믿는 자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 가치관의 차이는 생활방식의 차이를 만든다. 주의 말씀대로,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기며 살 수 없다(마 6:24). 우리가 참으로 주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천국을 믿는다면, 네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는 주의 말씀(마 6:19-20)에 동의할 것이다. 주께서는 재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6:21). 또 그는 의식주의 문제 때문에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6:25 이하).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교훈하였다(딤전 6:17-18). 아브람이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까닭은, 자신이 하나님 때문에가 아니고 소돔 왕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었다. 그는 그런 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기를 원치 않았다. 경건한 아브람은 세상 재물을 작게 여겼고,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크게 여겼다. 사람에게 물질적 부요를 주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의 이름은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그 영광이 사람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은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해 욕을 당하지 않고(롬 2:24)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24절]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단지, 아브람은 그와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소년들이 먹은 것과 그와 동행했던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수고의 댓가는 제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공정한 요구이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참 하나님을 바르게 알자. 멜기세덱과 아브람은 천지의 창조자와 소유자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복을 주시는 하나님, 승전(勝戰)케 하신 하나님,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을 믿었다. 그것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이다. 우리도 그런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우리의 목자로 삼고 사랑하며 그의 복을 사모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물질적 소득의 십일조 이상을 드리자. 아브람은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다가 그를 맞아 축복한 신기한 인물인 멜기세덱에게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 그것은 그의 승리와 소득 곧 전쟁노획물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한 것이다. 다윗은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헌금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고백했다(대상 29:11-17). 주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다(마 6:20). 십일조 헌금은 그런 믿음의 표시이다. 셋째로, 우리는 세상적, 물질적 이익보다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더 중히 여기자. 아브람은 물질적 욕심을 품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더 중히 여겼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처신하며 살아야 한다. === === <축복의 원칙>..축복이란 다름아니라 그리스도를[하나님 바로 그분을] 공급함의 행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 엄밀히 축복을 정의해 본다면, <변화 중인 사람은 그리스도의 소유 분량이 작기에, 변화 중인 사람보다는 오히려> 생명 안에서 성숙한(곧, 전존재가 하나님으로 적셔져 있을 뿐아니라 하나님으로 충만케 된) 사람, 진실로 바로 생명이 그렇게 성숙-충만한 사람을 통한, 넘쳐흐르는 하나님을 공급함이라 말할 수 있다....생명 안에서의 성숙은 하나님, 바로 그분으로 충만되는 문제이다!! 그대가 하나님으로 충만할 때에 그대에게는 하나님의 넘쳐흐름이 있고 그대는 그대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그 통로된 사람 없이는 그분 자신을 다른 사람 안으로 넣으실 수 없으시기에, 하나님의 흐름은 통로인 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이 통로로 사용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인성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 그분으로 철저히 전 존재에 완전히 스며든 인성으로서 하나님의 충만케 하심따라 축복할 바로 그 때 넘쳐흐르는 하나님을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되지 않으셨다면 그 통로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오심으로써보혈로 정결케 하신 우리에게 통로됨의 그 자격과 권능을 열어 부어 주신 바, 믿는이마다 그와 하나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문제는 내 안에 소유한 그리스도의 분량과 적셔진 정도가 어떠하냐인 것이다......이 때문에 야곱은 성숙되기까지는 그 누구도-라반이나 에서를- 축복하지 않았다......그러나, 하나님으로 충만케 된 시점에 이르러, 곧 애굽에 내려 갔을 때에야 야곱은 땅 위에서 가장 높은 통치자인 바로를 축복하였고, 야곱의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바로에게로 넘쳐흘렀다(창47:7, 10) ......[그리스도를 누리는 왕의] 축복으로 인해 먼저 당신 자신을 한량없이 부어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도 또한 사람으로부터 축복 받으셔야 함이 마땅한데, 이것이 바로 제사장을 통해 사람들을 주께 드림이 있게 된다......보라, 장자권은 그 땅의 분깃(=그리스도)를 두배나 받음 + 왕권 + 제사장 직분으로 구성되었다...바로 그런 의미에서 야곱이 장자권을 갈망했던 것이었다. [히7:7..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And without all contradiction the less is blessed of the better.]...진정한 의미에서 높고 낮음은 다름아니라 신분이 어떠냐의 문제가 아니라, 다만 그가 지금 소유한 바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분량의 문제이다.. [마11: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Verily I say unto you, Among them that are born of women there hath not risen a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notwithstanding he that is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than he.]....그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주 예수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직접 만나보고 믿었던 바) 요한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었으나....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담고 살지는 못했기에.....천국에서 극히 작은 자들(그들은 그리스도를 그 안에 소유한 자들이기에)이 요한보다 더 크가 하고 계심....심지어 바울은 빌1:21에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우리는 우리가 참예하고 누리는 바로 그 그리스도의 분량에 따라 다른이들을 축복함으로써 그리스도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 *1) 멜기세덱(창14:18-20)의 축복 ...<사람들을 Q께 인도하는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예표로서..히5:6>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Abr에게 나아온 멜기세덱...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려면 하나님과 가까이 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야 함....대제사장의 양 어깨에는 12지파 이름이 새겨진 호마노가 있었고 그의 흉패에도 12지파 이름이 새겨진 열두 보석들이 물려 있었는데(출28:9-12, 15-21), 이것은 그가 축복하며 중재하는 바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좁혀 제거하고 그가 누리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인도되어 그분을 누림에 참여케 한다....이것을 멜기세덱에게서 볼 수 있는데, 멜기세덱이 Abr을 축복하였ㅇㄹ 때 그를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인도하였으며, 심지어<...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단순하게 말했다(14:19)....멜기세덱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Abr을 축복하고 있지 않았고, 다만 하나님께로 아주 가까이 인도하였다. *2)제사장들의 축복 [민6:24-27]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24.The LORD bless thee, and keep thee: *25.The LORD make his face shine upon thee, and be gracious unto thee: *26.The LORD lift up his countenance upon thee, and give thee peace. *27.And they shall put my name upon the children of Israel, and I will bless them.]....이는 삼중 축복이다 ....첫째 방면은 아버지 하나님의 축복과 지키시는 능력에, ....둘째 방면은 아들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과 그분의 은혜에 연관되고 있다. >은혜 베푸심에 관하여는 히브리어에 그 원어적 의미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낮은 사람에게 친절함으로 가득차 몸을 구부리심으로 눈 높이를 같이 하심으로써 성육신하셨음을 드러낸다.....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고후4:6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JC의 얼굴에서 빛난다고 말하는 바 예수님은 참 빛이시요 그 빛은 하나님 자신이시다(요8:12, 요일1:5)...빛이신 하나님 자신은 JC얼굴 안에서 우리 위에 비추신다..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매<우리 각자마다 안에 거하신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고 계시는데, ㄴ이것은 바로 이 축복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확증하는 말씀이다..), .....셋째 방면은 그 영 하나님의 용모와 그분의 평강에 관계되어 있다. >주님의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심과 평강 주는 것은 그 영의 은혜 베푸심의 역사이다...오늘 그 영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를 향하여 드는 것이요 우리에게 평강을 주는 것 그 자체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환경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마음과 영과 생각- 안에서 평안을 주신다. >[모든 차원 영역을 초월하신, 제한받지 아니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 영] 그 영 안에서 그 영을 통하여 그 영과 더불어 우리는 평안을 누린다. 다른 사람들은 마음과 생각과 영과 환경 안에서 괴로움을 당할지 모르나 우리는 괴로움을 당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이든 하나님의 그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분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여 드시므로 우리에게는 초월적인 평강이 있다!! *3)사도들의 축복 [고후13: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여기에서는 TUQ의 은혜 베푸심의 방문을 볼 수 있다. ....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함을 보았다. 그러나 사도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로 인도한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사람들에게 나아간다.....사도바울의 축복을 통하여 TUQ이 그들의 누림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나아가신다. 이 누림은 성령의 교통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은혜이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과 은혜와 교통은 서로 분리된 세가지가 결코 아니라 한 가지의 세 방면들, 혹은 세 단계들인데, 그것들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하나님의 세 단계이다. 사랑은 안에 있고 은혜는 표현된 사랑이며, 교통은 은혜의 우리 안으로의 이동이다. 이 사랑이 표현될 때 그것이 은혜이며, 은혜는 교통을 통해 이동된다.....내가 어떤 형제를 사랑할 수 잇지만 이 사랑은 내 안에 있다. 그것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나는 그에게 성경을 선물함으로써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성경은 내가 이 형제를 향하여 내 안에 품고 잇는 사랑의 표현인 은혜를 나타낸다. 그에게 이 은혜를 전하기 위해 나는 실지로 그 성경을 그에게 건네주어야 한다. 이것이 교통이다. ===축복에 대한 기본 사상의 변천=== ......구약 안의 축복에 대한 기본사상 ::사람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어 인도함, 반면에 신약 안에서는 사도(하나님과 함께 오는)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 뿐 아니라 하나님을 <그들이 믿음으로 받아 누리도록!!> 그들 안으로 이끈다.((즉 양방향의 이끌림이다!!)) 따라서. 신약의 축복은 더 높고 더 깊다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들을 하나님 안으로 이끄는 것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와 교통으로> 그들 안으로 이끌어 그분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축복인 신약의 축복 개념을 붙들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하는 찬송 가사의 입장에서 볼 때엔 좋은 아내, 자녀, 교육, 승진, 집, 자동차 등등이 떠 오를 테지만 그것들은 지엽적인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집착하지 말고!! 순수한 말씀에 따른 축복 개념, 아버지-아들- 그 영 하나님 누림 개념을 간직하고 바로 그렇게 그분 누림을 붙들라 ===주님의 축복은 사람의 천연적인 생각이나 책략에 어긋남=== ....주님의 축복은 사람의 <천연적>생각이나 책략과 어긋난다(창48:13-20)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야곱에게로 인도하였을 때 요셉은 <천연적 관념을 따라...부모는 그들의 천연적 취향과 선택과 관념을 따라 항상 상황을 조절하려 한다..복음전파에서도, 교회 봉사에서조차도 그리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선입견이나 책략은 끝나야 한다..오직 성령의 일깨우심 따라야 한다..그러므로 모든 일상에서 주님의 주권을 따르도록 하라....베드로를 베드로되게 하시고 바울을 바울되게 하시는 분의 주권을 따르라>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이 우수 앞에, 에브라임을 좌수 앞에 두었으나 야곱은 그의 양손을 어긋맞겨 안수하고 있다. 비록 그의 두 눈은 흐릿했지만 그의 영 안에 깨어 있었던 바 영의 이끌림 따라, 인도함 받아서 그리하였다 [창48:12-20...*12.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 믿는이, 곧 왕적 제사장인 우리의 축복은 다름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됨 안에서 하나님의 표현이자 하나님의 말씀하심, 곧 하나님의 예언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곧 말하는 내가 누구이며 하나님은 나를 어찌 쓰고 계신지 자각함 안에서 말하기를 연습하라. (그대가 말하는 것을 결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또한 함부로 무의미하게 무심코 또는 섣부르게 말하지 않도록 하라. 범사에 CORAM DEO라야 한다).....보라, 신약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표현하셨다.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0. "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that I say to you I do not speak on My own initiative, but the Father abiding in Me does His works.....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4. "He who does not love Me does not keep My words; and the word which you hear is not Mine, but the Father's who sent Me.]....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말해 내는 것이다!!...하나님의 다스림은 생명의 성장성숙 그 안에서만 그분의 친히 일하심으로 저절로 자연스레 나타나는 법이다. === === **[성숙해 감에 따른] 야곱의 말 내용의 변화 :: ....(1)창25:31...[형의 장자 명분을 내게 팔라]...장자권에 대해 책략 통한 자의적 탈취 시도 ---> ....(2)창27:19-20, 23 : [나는 아버지의 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였음이니이다] [그러하니이다(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라는 질문에)]...거짓말 투성이 ---> ....(3)창29-32장까지 야곱이 말한 것은 이기주의적 야심과 자기 유익 추구로 가득한 말, 곧 거듭남 없는 자의 말로 충만.. ---> ....(4)창33장:13-14...<겸손을 떠는> 탁월한 연기자의 모습 보임..<깊은 중심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음에도> 여러 번 에서를 [내 주]라 부르고 있음 ---> ....(5)창35장의 시점에 이르러서는 야곱의 말 그 자체가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의 말을 닮기 시작>일변하고 있음....요셉을 잃는 것이 뒤따랐고 야곱은 거의 말이 없었다. 이것은 그의 생명 안에서의 진보, 곧 성장과 성숙에로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함 = 우리가 생명 안에서 자라기 시작하는 그 때에 이르게 되면 사실상 우리의 말이(말의 특징과 횟수와 양이) 먼저 변화할 것임을 의미함......<전 존재 걸고 중심으로 말하기 등> 말하는 내용과 어조, 횟수와 총량 등 질적 변화가 생명의 성장성숙 정도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6)창45:26....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 듣고서도 거의 아무런 말이 없고 흥분하는 모양도 없었다... ....(7)창47장.. 애굽으로 내려간 후에도 거의 말하지 않았으며 바로 앞으로 인도되었을 때에도 결코 장황히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거의 아무말도 하지 않고 다만 바로를 강하게 축복하고 있었다(47:7-10).... ....(8)창49장의 예언적 축복을 보라...온전히 성숙한 바, 오직 생명이 충만하고 성숙한 방식으로 맣라고 있는 바, 그의 말은 모두 예언이 되었다.
===축복으로 예언함, 곧 하나님의 말씀 통로로 쓰임받음의 네 가지 필충조건(창49:1-28)=== ....야곱의 말함은, <겉보기에는> 그의 의견 피력함이었을지 모르나 하나님이 말씀하심 그 자체였음.......고전7장(10,12, 25, 40)은 은사로서의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바로서의 예언과 하나님으로 충만케 함 받은 하나님의 증인이 말함을 기록하고 있다..... 즉, 야곱의 말함과 유사한 것으로는 고전7장에서의 바울의 <개인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권고하는 말씀들을 볼 수 있는데, 가히 <그리스도인 체험의 최고봉>을 계시한다.......(바울 스스로는...이는 주의 명령<계명>이 아니라....주의 자비<긍휼>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믿노라, 확신하노라..가 아니라 당시에는 불분명하였기에>)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지만.... 신약에 기록되어 100여년 이상 그대로 남아있는 바, 성령 안에서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명심하라.....아쉽게도 <생명 성숙한 사람을 통해 살고 계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 곧 그가 살아 낸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말하기> 바로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결여되어 있는 부분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야곱의 아들들아<아지 생명 성숙함에 이르지 못한>.. 이스라엘<생명 성숙에 이르른>의 말을 들으라!! *1>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과, 하나님의 목적을 앎 *2>사람들을 참되게 앎 :: 각자에 대해 <영적 투시 통해>철저히 <투명하게, 마치 수술장에서 엑스선을 이용하여 속부분을 투과영상화 하여 확인 수술하듯> 꿰뚫어 파악해 보고 상황-상태-숨겨진 문제들을 <영으로 참되게> 이해함 통해 그들이 처한 실지 상황을 앎 *3>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적셔져 침투되고 주입-점유-충만케 되고 변화받은 <그분의 충만으로 영(직관-양심-통교)-혼(지성/생각-감성-의지)-몸, 곧 그의 전존재가 재조성된, 그분과 완전히 하나됨으로 살고 있는> 그릇, 그 안에 한량없는 주님의 공급따라 넘쳐흐르는, 부족함 결코 없는 생명의 성장 성숙함, 곧 늘 새로이 그리스도로 충만함 받아 영적 생명의 풍성함을 가짐 *4>[드러난 제 문제에 대해 진단-처방에 있어서]강하고 적극적인 영을 가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각자의 합당한 위치 통찰, 자신의 보냄 받은 목적 완수를 위함) ---[고전7]-------- ===결혼에 대하여 이르다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처녀와 과부에게 주는 권면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 === [[주님께서 믿는 이를 이 땅에 보내심]]. ....<특별한 예비하심과 아무런 계획없이, 타고난 천연적 생명과 그 신분으로 살라고 방임하심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직 주님 선택하고 앙망하며 자원함으로 주께 나아가 주님이 예비하신 바로 그 Original design과 Destiny를 가르쳐 주시도록 요청하고 참되게 이해한 바, 바로 그것을 친히 이루시도록 말씀드리며 주와 끝까지 동행함으로써 주님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 + 여기에 더하여 주님의 의도는 주님이 예비하신 바로 그대로 그대 자신이 새 예루살렘의 건축에 꼭 필요한 재료, 신령한 산 돌이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참되게 알고 주께 절재 신뢰-절대 긍정-절대 기쁨으로 반응함으로써 변화-성숙 이루어, 지고지선의 복락인 바 거기에 참여함 이루기를 원하고 계심이니. ....타고난 천연적 성분(선악과는 무관한, 일상생활 위해 주님이 베푸신 일반은총에 속한 성분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각사람마다 하나님 그분을 누림 위해서는 주님 보시기에 영적 참생명인 생명나무를 영접하고 변화-성숙됨이 필요하다 여기고 계신다 )과 주님이 계획하시고 그렇게 정하신 바 천연적 신분<장자-차자 여자-남자 등 조건들.....영적 측면에서 JC만 절대유일무이한 남성-신랑. 아들, 맏형/맏오빠이시다...즉, 그리스도외에는 모든 사람에게 대해 차별이 없으시다>은 생명 안에서 바뀔 수 있음 ...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적 다루심과 연단에 전적으로 순복하고 주님의 때와 방법따라 친히 이루실 것을 신뢰함으로 기다리는 것이 중요함....천연적 생명이란 <선악 이전에>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필요하기에 주신 존재적 생명이지만 유약하다...따라서, 태어난 다음에는 선악지식 나무냐 생명나무냐에 대한 선택이 있게 된다. 주님의 권하시는 선택은 철저히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인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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