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4장 [586.어느민족누구게나][585.내주는 강한성이요]...주님 말씀하시면..
@@ 한 사람 사람마다에 대한 다함 없는 사랑의 열심따라, [십자가 사랑에서 완전하게 표현된 것처럼] 그분 자신을 올인하여 오신 TUQ의 참 사랑을 믿음으로 받고, 하나 됨의 붙좇는 사랑으로 반응함 통해 TUQ을 참되게 사랑함으로 체득하여 깨달아 알고,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여 자기를 내어드리며 그분의 갈망 이룸에 헌신함으로써, 곧 당신의 유일한 짝으로 삼아 주신 그분을 사랑함에 겨워 그분의 갈망을 이뤄드리려는 사람이 그 누군가...
@@ 진실로, [Q의 참 안식과 기쁨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른 (거듭난) 그대와 형제들을, 그분의 신부이자 거처로 얻으심에 있음을 아는 바, 그 Q 뜻 이룸 위해 그대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고] 창조주 Q을 사랑하고 존중하여 순종하며 위함이 (그대 자신의) 지고지선의 진복 추구함인 것을 참되게 알고 깨닫는 그대여!!, 사랑 겨워 동행하며 따르는 믿음을 실행하라.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하라....비록 Q께서 좋은 땅 안으로 인도하심 것이 겉보기에는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임이 분명했으나, 영적 참 실상은 좋은 땅, 곧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그들로 얻게 함으로써 그분의 진정한 거처이자 무궁한 사랑의 짝을 얻으심에 집중된 Q의 영원 계획을 수행-성취시키기 위함이었다. Q의 궁극적 갈망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그분의 바로 그 참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 자신인 그 좋은 땅을 취하게 하는 것이었다.
....Q은 지금도 여전히 원수인 사단을 가지고 있는데, 겉보기에 땅을 점령하여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실지로 차지하고 있는 자는 사람이 아닌 타락한 사람의 몸에 둥지를 튼 사단이기에, 주님은 마6:10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직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
....백성들이 그 땅을 정탐했을 때 네피림이라 부르는 [타락한 천사들이 ((육체가 되기까지 타락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기 위해 땅에 내려와(창6:1-2, 4) 혼합 결혼한 결과로 산출된 거인족....Q은 이런 혼합을 참으실 수가 없으셨기에, 이로 인해 노아의 홍수로 지면을 쓸어버렸지만, 그후에 산출된 이들은 바벨론에서 바벨탑을 쌓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후손이 가나안 땅에도 여전히 거주하고 있었다] 아낙자손들이 그곳에 여전히 남아 살고 있었기에 가나안 땅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죽임으로써 인간 종족이 정결케 되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이었다.(신7:1-2). 그러나, 이스라엘 자녀들은 이것을 참되게 알지 못했으며, 그들의 헤아림은 Q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그들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안전-평강-생존)만을 위한 것이었다
========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 음식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요구 사항과 필요들을 대신하여 대명사로서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켰을 뿐만 아니라 광야 여정과 가나안 정복 및 정착 과정에서도 필요한 모든 것을 적시에 공급해 주셨으니... 마치 새끼 새들이 어미새가 날라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부르짖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크게 벌려 자신들의 필요를 간절히 구할 때 그들의 필요을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셨다. 바로 지금 오늘날도 참되게 맏는 우리가 [만유를 포함하는 좋은 땅 그리스도, 곧 그 영]을 구함으로써(먼저 Q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 안에서] 우리의 필요를 위해 우리가 입을 크게 열면 열수록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우리로 풍성하게 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향해 입을 크게 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공급자 되심을 인정하는 우리의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 그대는 어떠한가.. 오늘도 어떤 믿는이들은 그들 자신에만 매우 많이 관심하며 물질적인 축복과 보호를 관심하지만 Q의 목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러한 이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그리스도를 믿을 뿐 땅 위에서나 우주 안에서 Q의 이익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안전]은 가장 큰 우상이 되어버렸다. 다만 오직 이기적으로,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부지런히 공부하며 열심히 일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들 자신의 안전을 위해 Q을 두려워 하며 그리스도를 믿기도 한다. 왜 민13, 14장에서 보는 것처럼 이스라엘 자녀들이 Q의 혐오하시는 바가 되었는가? 그것은 그들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관심(염려)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다. 모든 것에서 모든 길에서 그들은 자신들만을 위했을 뿐 Q의 이익을 위하지 않았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 좋으신 분,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을 너무 너무 사랑합니다. 하여, 우리들의 안전-장래-보호, 우리 존재와 모든 것을 당신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 합니다. .우리의 유익을 기꺼이 잊어버리려 합니다. 오직 당신의 목적 이루실 것만 관심하렵니다. 당신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로 가서 그 땅을 소유하게 하소서]...이렇게 기도할 수는 없었던가..
....Q과 그분의 이익을 관심하는 데서 참되고 올바른 , 살아 생동하는, 발휘되는 [Q의 믿음, Q이 주시는] 믿음이 생겨난다...그 누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가. 믿음은 Q께 속한 것이며, 믿음은 Q안에 있는 것이며, 믿음은 Q께로부터 온다.
===백성의 원망
.....***이들,. 공동체로 원망 촉발 근원/불신 반역을 부추기는 자들의 공통 특징은, 유창한 언변-사실을 왜곡/과장-폭력적 언동을 서슴지 않고 함부로 말하고 저주하며, 영리/교활함-외고집/완고-선동-폭력-공격-반역적임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하실 주님, 그분의 마음 참되게 헤아림 위해, 겸손히)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물고기)의 아들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호세아 = 주여, 구하소서)와 여분네(=주께 돌이키다)의 아들 갈렙(=[소리 낸 그대로 행하는 충성스런 개/수탉 - 종/노예])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주님의 감동 따라 그분의 심정 알아드림으로 행하며, 그분의 확실한 언약 말씀 붙듬 안에서, 참 실제를 증거하는 바)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이미 기뻐하시며 선대하심으로써 여기까지 친히 인도해 오신 임마누엘 Q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여호와를 거역함이란 다름 아니라 주님 앙망하고 바라고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 붙들기를 거절함]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모세가 백성을 두고 기도하다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어쩌면 모세는 중보를 멈추고 있었는지 모르겠다...이 말씀은 "나 Q이 사랑하심만큼 너 모세도 (몇 사람 남지 않더라도) 그들을 포기 않고 사랑하며 그들과 끝까지 함께 하나 되어 가려하느냐" 물으심인 바, 일종의 시험이라 할 수 있었다)...모세는 Q 영광의 전지전능하심과 성품을 전심으로 위하면서 동시에 Q말씀 그대로 Q 뜻 이루시도록 주님과 백성들과 함께 하겠으니 그들의 죄를 사해 달라 구하고 있다.
1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향후에라도]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헤브론!!]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모든 사람은 다 q의 자녀이기에, 비록 은혜의 구원 입은 자들, 거듭난 인생이라 해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은총과 형벌(다루심과 연단의 징계), 또는 멸절심판이냐의] 판단은 분명히 적용하고자 하고 계심을 명심하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가데스바네아에서 홍해길<에시온게벨 향하는>로 회정하여 광야로 들어가라..38년 동안 방랑 개시 명령 : 티슈리 월)...후에, 에돔과 모압 경계인 세렛 시내 건너면서 38년간의 광야 생활 종료하심 : 티슈리 월.
===여호와께서 원망하는 백성을 벌하시다
@@@원망/불평하다.투숙하다, 묵다, 밤을 지내다, ...룬 @Wl(3885
룬(동사)은 기본어근이며, (a) '투숙하다, 묵다, 밤을 지내다', (b) '중얼거리다, 투덜거리다, 불평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4회 나온다.
(a) 룬은 '((밤을 맞아)) 투숙하다, 묵다, 밤을 지내다'를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룬은 어떤 장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숙박하는 사람에 대해 사용된다.
따라서 롯은 정중하게 두 천사를 초대하여 그와 함께 유숙하도록 하였다(창 19:2 이하).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에게 유숙할 곳을 묻고 그의 집에 유숙했다(창 24:23-25, 창 24:54).
야곱은 벧엘에서 밤을 지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창 28:11).
이 단어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시 30:5, H6에서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한다.
이 단어의 신학적 용법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생명 주시는 능력에 반대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격노의 짧음을 강조한다.
의는 신실한 도성에 거하며(사 1:2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편안히 거한다(시 25:13). 생명의 징계를 듣는 자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거한다(잠 15:31).
잠 19:23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라고 말한다. 시 49:12, H13에서는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며 멸망하는 짐승같도다"고 한다.
모든 성구들 중에 가장 좋은 실례는 시 91:1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b) 룬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합당한 믿음으로 행함 없이, 자기연민으로))투덜거리다, 불평하다'를 의미한다.
수 9:18에서 기브온 사람의 거짓을 다루는 여호수아의 처리에 대하여, 그리고 족장들에 대하여 불평했다.
룬에 관한 언급은 이 한 구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출애굽기, 민수기에만 나타난다.
각 실례에서 불평의 주체는 이스라엘 회중의 전체였다.
그러나 민 16:11은 오직 고라만을 언급한다(참조: 민 16:19). 이스라엘 민족의 불평의 공격 대상은 대체로 모세와 아론이었다(출 16:2, 민 14:2).
때때로 모세만이 불평의 대상이 되거나(출 15:24, 출 17:3, 민 14:36) 혹은 아론이 그 대상이 되었다(민 16:11).
어떤 경우에는 여호와께서 친히 그 백성들의 불평의 대상이 되었다(출 16:7-8, 민 14:27, 민 14:29). 결국 그들의 불평은 백성의 지도자들을 임명하신 하나님께로 항상 향했다.
물론, 그 불평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즉 광야에서 굶주리거나 갈증으로 혹은 분명하게 얻을 수 없는 목표 때문에 불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정의, 선하심, 그리고 능력을 비방하였기 때문에 죄를 지었던 것이다.
이 동사는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지도자들과 권위에 반대하여 중얼거리는 음성으로 적대적인 불만을 터뜨리는 분개, 불만, 분노, 그리고 불평을 표현하는데 쓰인다.
이러한 불평의 진정한 성격은 그것이 주님에 반역하는 공공연한 행위(참조: 민 14:9),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적인 사역을 믿는 것에 대한 완강한 거부(참조: 민 14:11, 민 14:22, 민 14:23)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실질적인 어려움, ((=거듭난 믿는이에게는, 다루심과 연단 곧 징계일 뿐이니)) 그 어려움에 대한 올바른 자세는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주 말씀을 붙좇음 안에서 무조건적인 수락과 순종이다. 하나님 자신은 그러한 자를 결코 심판하지 않으신다. (참조: W. C. KAISER; BDB).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선동자들만 처리하셨다!!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첫번째 점령 시도
39.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아다림 길 =가데스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빠른 길 : 바란 광야/신 광야 가데스(릿마)-->호르산-->호르마--->아랏-->헤브론(여기서부터 산지)--->베들레헴에 도달함 (^^네게브는 헤브론 아래의 애굽시내까지 이르는 사막 지역을 가리키며 애굽에 이르는 수르 길이 브엘 세바를 거쳐서 헤브론에서 아다림 길과 합류되고 있다. )
41.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 아말렉인(네게브에 거주)과 가나안인(헤브론에 거주)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애굽에서부터 이곳까지의 여행은 법궤를 따랐던 바 (TUQ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인) 법궤의 여행이었는데, 여기서부터 그들은 법궤를 버리고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있었다.
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헤브론 산지 능선)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
1. Then all the congregation lifted up their voices and cried, and the people wept that night.
2. And all the sons of Israel grumbled against Moses and Aaron; and the whole congregation said to them, "Would that we had died in the land of Egypt! Or would that we had died in this wilderness!
3. "And why is the LORD bringing us into this land, to fall by the sword? Our wives and our little ones will become plunder; would it not be better for us to return to Egypt?"
4. So they said to one another, "Let us appoint a leader and return to Egypt."
5. Then Moses and Aaron fell on their faces in the presence of all the assembly of the congregation of the sons of Israel.
6. And Joshua the son of Nun and Caleb the son of Jephunneh, of those who had spied out the land, tore their clothes;
7. and they spoke to all the congregation of the sons of Israel, saying, "The land which we passed through to spy out is an exceedingly good land.
8. "If the LORD is pleased with us, then He will bring us into this land, and give it to us-- a land which flows with milk and honey.
9. "Only do not rebel against the LORD; and do not fear the people of the land, for they shall be our prey. Their protection has been removed from them, and the LORD is with us; do not fear them."
10. But all the congregation said to stone them with stones. Then the glory of the LORD appeared in the tent of meeting to all the sons of Israel.
11. And the LORD said to Moses, "How long will this people spurn Me? And how long will they not believe in Me, despite all the signs which I have performed in their midst?
12. "I will smite them with pestilence and dispossess them, and I will make you into a nation greater and mightier than they."
13. But Moses said to the LORD, "Then the Egyptians will hear of it, for by Thy strength Thou didst bring up this people from their midst,
14. and they will tell [it] to the inhabitants of this land. They have heard that Thou, O LORD, art in the midst of this people, for Thou, O LORD, art seen eye to eye, while Thy cloud stands over them; and Thou dost go before them in a pillar of cloud by day and in a pillar of fire by night.
15. "Now if Thou dost slay this people as one man, then the nations who have heard of Thy fame will say,
16. 'Because the LORD could not bring this people into the land which He promised them by oath, therefore He slaughtered them in the wilderness.'
17. "But now, I pray, let the power of the Lord be great, just as Thou hast declared,
18. 'The LORD is slow to anger and abundant in lovingkindness, forgiving iniquity and transgression; but He will by no means clear [the guilty,] visiting the iniquity of the fathers on the children to the third and the fourth [generations.]'
19. "Pardon, I pray, the iniquity of this people according to the greatness of Thy lovingkindness, just as Thou also hast forgiven this people, from Egypt even until now."
20. So the LORD said, "I have pardoned [them] according to your word;
21. but indeed, as I live, all the earth will be filled with the glory of the LORD.
22. "Surely all the men who have seen My glory and My signs, which I performed in Egypt and in the wilderness, yet have put Me to the test these ten times and have not listened to My voice,
23. shall by no means see the land which I swore to their fathers, nor shall any of those who spurned Me see it.
24. "But My servant Caleb, because he has had a different spirit and has followed Me fully, I will bring into the land which he entered, and his descendants shall take possession of it.
25. "Now the Amalekites and the Canaanites live in the valleys; turn tomorrow and set out to the wilderness by the way of the Red Sea."
26. And the LORD spoke to Moses and Aaron, saying,
27. "How long [shall I bear] with this evil congregation who are grumbling against Me? I have heard the complaints of the sons of Israel, which they are making against Me.
28. "Say to them, 'As I live,' says the LORD, 'just as you have spoken in My hearing, so I will surely do to you;
29. your corpses shall fall in this wilderness, even all your numbered men, according to your complete number from twenty years old and upward, who have grumbled against Me.
30. 'Surely you shall not come into the land in which I swore to settle you, except Caleb the son of Jephunneh and Joshua the son of Nun.
31. 'Your children, however, whom you said would become a prey-- I will bring them in, and they shall know the land which you have rejected.
32. 'But as for you, your corpses shall fall in this wilderness.
33. 'And your sons shall be shepherds for forty years in the wilderness, and they shall suffer [for] your unfaithfulness, until your corpses lie in the wilderness.
34. 'According to the number of days which you spied out the land, forty days, for every day you shall bear your guilt a year, [even] forty years, and you shall know My opposition.
35. 'I, the LORD, have spoken, surely this I will do to all this evil congregation who are gathered together against Me. In this wilderness they shall be destroyed, and there they shall die.' "
36. As for the men whom Moses sent to spy out the land and who returned and made all the congregation grumble against him by bringing out a bad report concerning the land,
37. even those men who brought out the very bad report of the land died by a plague before the LORD.
38. But Joshua the son of Nun and Caleb the son of Jephunneh remained alive out of those men who went to spy out the land.
39. And when Moses spoke these words to all the sons of Israel, the people mourned greatly.
40. In the morning, however, they rose up early and went up to the ridge of the hill country, saying, "Here we are; we have indeed sinned, but we will go up to the place which the LORD has promised."
41. But Moses said, "Why then are you transgressing the commandment of the LORD, when it will not succeed?
42. "Do not go up, lest you be struck down before your enemies, for the LORD is not among you.
43. "For the Amalekites and the Canaanites will be there in front of you, and you will fall by the sword, inasmuch as you have turned back from following the LORD. And the LORD will not be with you."
44. But they went up heedlessly to the ridge of the hill country; neither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nor Moses left the camp.
45. Then the Amalekites and the Canaanites who lived in that hill country came down, and struck them and beat them down as far as Hormah.
=========
민수기 14장 (개요)
본 장에서는 원망과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생겨난 치명적인 싸움에 관한 기록을 대하게 된다.
분노한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당신의 안식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셨다.
1. 악한 정탐꾼들의 보고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소동과 반역을 일으킨다(1-4).
2. 모세와 아론, 갈렙과 여호수아가 이 소동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헛수고였다(5-10).
3. 노기 띤 하나님은 그들의 완전 파멸을 경고하셨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11, 12).
4. 모세는 그들을 위해 간곡한 중재에 나선다(13-19).
5.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심판이 연기된다. 그들은 일시에 모두가 죽지는 않으리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맹세로 된 포고는 점차 실현되어 계속하여 백성들에게 임할 것이요, 이 온 회중은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요,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리라는 것이다(20-35).
6. 악한 정탐꾼들은 즉석에서 죽었다(36-39).
7. 무례하게 전진하려고 하던 자들에게 책망이 내려진다(40-45). 그리고 이것이 기록된 것은 우리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경고다(히 4:11).
-------------
원망에 사로잡힌 이스라엘(민 14:1-4)
여기에서는 악한 정탐꾼들이 자기들의 부당한 보고 때문에 어떤 불행을 당했는가를 보게 된다.
가나안 정탐꾼으로 뽑힌 그 열두 명의 사람들은 그들이 돌아와 회중에게 보고하기 전에 먼저 자기들끼리 거기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최선을 다해 다른 정탐꾼들의 마음을 돌이켜 자기들처럼 생각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그들이 만일 의견의 일치만 보았더라면, 위치상 갈렙은 먼저 그들을 대신하여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러면 만사는 잘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한 정탐꾼들은 순전히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폭동을 야기시켰음이 틀림없다.
아마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기들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망설이고 있는 민중을 유혹하여 애굽으로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 대장들이 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본문 속에서 우리는 폭동을 조정한 자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본 장이 끝나기도 전에 멸망하고 만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Ⅰ. 백성들은 초조했다.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1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그 정탐꾼들의 보고를 더 신임했고, 자기들의 처지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온갖 감정의 굴레가 벗겨졌으므로 아무도 그들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어리석고 심술궂은 어린애들처럼, 그들은 엉엉 울었다. 그러나 왜 우는지도 몰랐다.
적들이 자기들의 본부를 공격하고, 그들이 자기들의 진영 문에 들어온 아낙의 자손을 보고 나서 울어도, 울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는 자들에게는 울지 않으면 안 될 고통거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만사가 이미 끝났다는 듯이, 그들은 주저앉아서 “밤새도록 곡하였다.”
불신앙이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가 형벌이 되는 죄임을 기억하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항상 자신들을 들볶게 된다.
세상 때문에 슬퍼하는 자들이 하나님 때문에 슬퍼하는 자들보다 더 많으며,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다”(고후 7:10).
Ⅱ. 그들은 자기들을 다스리는 치리자들에게 대들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여호와를 비난했다(2, 3절). 장로들의 회중이 불만을 토하기 시작했다(1절).
그러나 그 병은 순식간에 온 진영에 전염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원망”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질투와 불만은 요원의 불길처럼 삽시간에 그 무사려한 무리들에게 번졌다. 그 무리들은 쉽사리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유 8) 것을 배우게 된다.
1. 그들은 이유 없는 불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처음 났던 그곳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또는 근래에 욕정으로 인하여 재앙을 받아 광야에서 죽은 자들과 함께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굴레 벗은 감정의 방탕한 광란을 보라. 이러한 감정은 저들의 본능 자체가 지극히 아끼는 그 생명 자체까지도 탕진하게 만든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이래로 그 당시처럼 그렇게 여러 달을 즐겁게 보낸 시절은 없었다. 지금 그들은 영예로 옷 입었고, 호의로 동정받고, 계속 놀라운 여러 가지로 대접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들은 자기들이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으리라고 한다.
이들은 이렇게 경솔한 생각을 가졌다. 즉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의 이웃 형제들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을 업신여겨, 그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감행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과 같이 재앙을 받았더라면 하고 말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정복자로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정의의 희생물이 되어 범죄자로 죽기를 원했다.
어떤 자들은 본문을 이렇게도 해석한다. “오, 우리가 애굽에서 또는 광야에서 이미 죽었더라면!” 그들은 죽는 것이 무서워서 죽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가엾은 문둥병자들은 죽기보다는 차라리 적진으로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하여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왕하 7:4)고 했는데, 이들은 그런 생각도 없었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영혼들은 얼마나 천박해지는가. (최악의 사태가 오면) 명예로운 침상에서 자기의 칼로 자살하려는 군인이기보다는 못된 양들처럼 광야에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의 소행을 당연지사로 여기고(3절), 끝없는 절망 속에서, 저들이 진군한다면 칼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공포에 구실을 잡았다. 그들은 자기의 처자식들도 가나안인들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 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해서도 가장 사악한 모독이 던져졌다. 마치 하나님은 그들을 이렇게 칼에 쓰러지게 하려고 그 곳까지 끌고 왔으며, 마침내는 저들의 처자식들, 불쌍한 것들까지도 필경 희생물이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므로 사실상 그들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가장 악한 악이라고 비난했고, 그 분이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 그들을 위해 베푼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실로 그들에게 유혹의 함정이 되었고 그들을 몽땅 파멸시키려는 은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이 얼마나 뻔뻔한 짓인가!
그러나 하늘을 향하여 욕설을 퍼붓는 이 혀들은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을 것인가? 마귀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께 대해 악한 생각을 갖도록 온갖 수단을 다 쓴다.
즉 하나님은 죄인들의 죽음을 바라며, 당신의 종들의 고생과 고난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을 아시나니(우리는 어떻게 알든 간에),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다(렘 29:11).
Ⅲ.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대신 이 절망적인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이러한 의안은 처음에는 그저 질문 형식으로 주어졌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3절)
그러나 그러한 동요는 커지고, 백성들의 영은 이미 비뚤어진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던 고로, 아무런 토의도 거치지 않고 그러한 제안이 그냥 결단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4절).
그리고 오랜 후에 그들이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고 슬퍼했다(느 9:17).
1. 그들이 애굽에 있었던 시절을 사모하며, 그 곳에 있었으면 지금보다 더 좋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이 감히 가나안으로 진군하기를 싫어한다면, 애굽으로 돌아가느니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았으리라.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불평하는 것인가?
식량이 풍부하고, 평화와 휴식이 있고, 좋은 통치자들이 있고, 훌륭한 벗들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가 있고, 광야에서도 불편한 것이 없었는데, 어떤 만족을 원한단 말인가?
어디 가야 이보다 더 편한 곳이 있을까? 애굽으로! 그 곳에서의 그 괴로운 속박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그들은 중노동을 시키던 공사 감독과 벽돌을 굽던 고된 일을 다시 원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그들 때문에 애굽이 당했던 그 모든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다시 돌아가면 전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1년 반도 안 되는) 이 짧은 세월 동안에 그들 밑에서 내쉬던 한숨과 해방의 노랫소리를 몽땅 잊었단 말인가!
야수처럼 그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여, 이성의 모든 힘과 더불어 모두 기억을 감정에게 송두리째 희생하고 만 것이다(시 106:7 참조).
이것이 저들의 비극을 재촉한 것이라는 경고를 볼 수 있다(신 28:68). 즉 그들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는 그것 말이다.
죄인들은 스스로 자기들에게 원수 노릇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는 자들은 자기 자신의 불행과 파멸을 스스로 추구하게 된다.
2. 광야를 지나서 이제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겠다는 것은 정말로 지각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구름이 그들을 다시 인도해 줄 것인가, 아니면 만나가 계속 내려 줄 것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필경 광야에서 길을 잃고 죽게 되고 말 것이다.
가나안 정복에서 오는 고난이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듣도록 하자.
(1) 외적 조건이 가져다 준 십자가 밑에서 불만하거나 안달을 부리는 어리석음.
우리는 현재의 위치와 운명에 대해서 불평을 하면서, 그것을 바꿔 보려고 불안해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그렇게 불평하고 있는 한,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에게 조금도 불편을 끼치지 않을 곳이 있겠는가? 우리의 형편을 더 좋게 하는 길은 우리의 정신 자세를 더 훌륭하게 만드는 일이다.
“애굽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라고 묻는 대신에, “현실 속에서 만족을 찾으며,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물어야 한다.
(2) 하나님의 길을 떠난 자의 어리석음.
하늘나라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가나안,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하늘나라에 대한 악한 소식을 들어 온 자들은 그 땅은 실로 복된 땅이니 도달하기 어려운 곳일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엄격하고 진지한 경건을 갖는다는 것은 실천 가능성이 없는 일로 여겨지며, 이 때문에 출발을 잘한 자도 계속 행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가 많아진다.
신앙생활에 대한 가상의 고생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들은 죄악된 생활이 주는 확실한 치명적 결과에 스스로를 던져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어리석음을 본받아서 가나안의 문턱에 들어서서도 한 대장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
진정되지 않는 폭동(민 14:5-10)
이스라엘의 친구들은 여기서 가능한 한 그들을 멸망의 길에서 구해 보려고 폭동에 개입했지만 헛수고였다.
의사가 그들을 치료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고침 받기를 원치 않았다. 파수꾼이 그들에게 경보를 울렸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고, 마침내 그들의 피가 그들의 머리에 쏟아졌다.
Ⅰ. 소동을 진정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적어도 자기들에게 평화를 줄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했다면, 모든 불평은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1. 모세와 아론이 참여했다(5절).
민중이 원망하는 대상이 바로 이들이었지만(2절), 그들은 그 모욕과 수치를 용감히 묵살해 버리고, 자기들에게 무례히 구는 그들에게 신실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백성들의 아우성이 너무 컸으므로, 모세와 아론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밑에 있는 사람들을 시켜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지만, 군중들의 분노는 더욱 소란해졌던 것 같다.
그러므로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청중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1) 그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이 바다의 소동, 그 파도의 요란함, 그리고 그 백성의 요동을 진정시키려 한 것이다.
(2) 그것은 저들의 영이 가장 큰 고민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그들은 놀란 사람들처럼 땅에 엎드러졌다.
백성들이 자기들의 자비를 묵살해 버리는 것을 보고 놀라서,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 같았다. 그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이렇게 못된 성질을 가졌다는 것을 보라.
(3) 그들의 원망을 중지시키는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 백성들에 대해 커다란 열의를 보인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겸손한 자세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더 이상 배반을 고집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마치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통해 그 백성들에게 간청이나 하는 듯이,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간청했다.
모세는 그들이 백성들에게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기록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신 1:29, 30).
아끼는 사람들에 대해 열심 있는 친구 노릇을 하는 자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무엇이나 하려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모세와 아론은 자기들이 명예로운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 간절히 머리를 숙였다.
2. 갈렙과 여호수아도 참여했다.
그들은 백성들의 죄를 보고 거룩한 분개로 자기들의 옷을 찢었다. 그들은 이미 그들에게 하나님의 분노가 임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선량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사건이 더 큰 괴로움을 주었다. 그 소동은 저들이 같이 갔었던 그 정탐꾼들에 의해서 야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기들의 동료들이 일으킨 그 폭동을 진정시키기 위한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려 했다.
저들의 말은 매우 논리 정연하여, 그것보다 더 사리에 밝고 감격적인 말은 없었다. 그들은 권위 있게 말했다.
(1) 그들은 자기들이 탐색한 그 땅은 분명히 복된 땅이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그 땅은 정말로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나쁜 정탐꾼들이 말하듯이 그렇게 “거민을 삼키는 땅”이 아니라고 했다.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다(7절). 문자적으로는 매우 좋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낙토를 멸시할”(시 106:24)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신앙의 유익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철저히 확신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신앙의 봉사에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자.
(2) 그들은 자기들이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 놓여 있는 듯이 보이는 그 곤란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9절). 너희들이 아무리 그들을 무섭게 생각하더라도, 그림 속의 사자 같아서 사납지 않다. 그들은 우리 밥이라.” 즉 “그들은 우리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먹이가 되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주 편안히, 아주 즐겁게, 그리고 매우 많은 유익을 얻으면서 그들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바로를 그들에게 고기로 주었다는 말씀이 있다(시 74:14). 또한 가나안인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게 유익이 될 것임을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① 가나안인들이 성벽이 있는 도성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열국의 권한을 보유해 주고 있던 일반 섭리가 그들을 버렸다.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아무런 은신처나 보호책이 없게 되리라. 다른 정탐꾼들은 그들의 강대함을 주목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저들의 사악함과, 그 결과로 하나님이 저들을 버렸고, 따라서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다”는 것을 주목했다.
하나님을 분노케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는 그 누구든 안전을 기대할 수 없다.
② 이스라엘은 천막 속에 거주하지만, 강성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의 이름은 강한 망대로다.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와 함께하는 한은, 아무리 강한 대적이라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그들은 저들이 지금 처한 모든 위험은 저들의 불만에서 왔으며,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는 한 가나안인들을 쳐서 이기리라는 것을 명백히 보았다.
바로 이 때에만 저들의 사정이 바뀔 것이다(8절). 즉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분명히 그 분은 그럴 것이다―우리가 그 분을 노엽게 하지 않는 한, 그 분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얼굴의 빛(시 44:3)으로 인하여 필경 그 땅을 차지하리라. 우리가 그 분의 은혜를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은혜를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가능하다.”
결론은 이렇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9절). 죄인들을 파멸시키는 것은 그들 자신의 배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두시며,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에게서 밀어낸다. 그래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들 스스로가 축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의 가나안에서 축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진상이 이보다 더 밝히 드러날 수 있겠는가? 이보다 더 그들에게 강한 요청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던고!
Ⅱ.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들은 정정당당한 추론에도 귀를 닫았다.
그보다는 이것 때문에 화가 났다. 더 무례해졌다.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했다”(10절).
회중의 지도자와 요인들(패트릭 주교의 말대로)이 시민들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시켰다. 그들은 머리가 돈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지도자들이 백성을 “미혹하여”(호 4:12) 악을 행하도록 한 것은 슬픈 일이다.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한”(전 8:11) 심령을 가진 자들이 자기들에게 좋은 충언을 해 주는 자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임을 기억하자.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바로잡으려는 자들을 미워하며, 진리를 말해 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원수처럼 여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일찍부터 선지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그들의 죄악의 분량은 다 차고 말았다(마 23:37).
“그들을 돌로 치라!” 왜? 그들이 무슨 악을 행했다는 것인가! 그들이 책망받을 범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두 증인이” 계속 불충성을 자행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계 11:10) 것은 사실이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의로운 말만 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9절).
이스라엘은 저들의 격려의 말로 자기들의 두려움을 물리치려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돌로 치라고 말하는 그 성난 군중들에 대처할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경우를 당한 다윗의 처신도 그러했다(삼상 30:6).
자기들의 조언과 위로로 남을 교화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도 최소한 자기 자신들은 고상한 인품을 지니려고 노력해야 한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자기들이 하나님과 그 분의 영광을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나서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즉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하나님의 종들을 돌로 치려는 자들을 공포와 당혹에 사로잡히게 했던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비난을 가했을 때도(3절)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의 신성 모독을 침묵시키려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갈렙과 여호수아를 위협하고, 하나님의 눈동자에 손을 대려 하자, 하나님의 영광은 즉시 나타났다.
하나님께 신실히 봉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음을 확신하며,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인간의 분노에서 보호해 주실 것임을 명심하자.
-------------
모세의 간절한 중재(민 14:11-19)
Ⅰ.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의의 심판을 내리셨다.
나중에는 그 형벌이 완화되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죄의 대가가 무엇이며, 침해된 공의의 요구가 무엇이며, 모세의 개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나타났을” 때, 모세는 그것이 자기를 가까이 부르는 신호로 알았을 것이다.
아직 회막이 건립되기 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당했을 때(출 32:30), 그가 산으로 올라갔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모세를 헐뜯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공적으로 영예를 주셨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자문으로서의 영예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살펴보자.
1.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가 지극히 악하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11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모든 관계는 모세의 손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 불만을 품고 있을 때는, 그들이 모세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2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분노하셨을 때에도, 역시 모세에게 그것을 이야기하셨다. 그 분은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신다”(암 3: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들려준 불평은 두 가지였다.
(1) 그들의 죄다. 그들이 “나를 멸시하였다.” 혹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로는) 그들이 나를 “거역하고, 비난하고, 경멸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않음”이다.
이것이 바로 엉겅퀴만 내는 그 쓴 뿌리다. 그들이 이 날 광야에서 하나님을 분노케 한 것은 그들의 불신앙이었다(히 3:8).
하나님과 그 분의 권능과 약속에 대한 불신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죄이며, 다른 많은 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알자. 불신앙은 큰 죄다(요일 5:10). 그리고 죄의 뿌리다(히 3:12).
(2) 또 그들은 그 죄를 계속했다. “어느 때까지…하겠느냐?”
하늘의 하나님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악을 얼마나 오래 고집하고 있는지를 알고 계신다. 그들이 더 오래 고집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분노는 그만큼 커진다.
그들의 죄를 가중시킨 것은,
①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였다. “이 백성”, 곧 특정한 백성이요, 신앙을 고백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름과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과 보다 가까이 있는 자들이 죄를 범하면, 특히 불신앙을 범하면, 하나님은 더욱더 분노하신다.
② 그들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자비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능히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고 따르게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이 베풀어 주시면 주실수록, 우리의 불신에 대한 그 분의 분노는 그만큼 더 커진다.
2. 그것 때문에 임한 공의의 심판을 모세에게 알려 주었다(12절).
“이제 내가 그들을 완전히 멸하거늘 무엇이 남겠는가? 곧 시행하리라.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으리라. 모든 사람의 이름과 혈통을 완전히 사멸시킬 것이며, 그들을 뽑아 버리고, 다시는 그들 때문에 골치를 썩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리라(사 1:24). 그들은 죽기를 원하도다. 그러므로 죽여 주리라. 뿌리나 가지도 몽땅 뽑아 버리리라. 이 패역한 자식들과는 내가 의절하리라.”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은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나는 모세의 가문은 남겨 두리라. 너로 그들보다 큰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 이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시험하려 하셨다.
그가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해 애정을 품고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그는 전에 자기 가문의 출세보다는 그들의 이익을 더욱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아직도 공적인 정신을 지닌 사람이며, 이스라엘이 파멸되고 자기의 이름이 떨쳐지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이 판명되었다.
(2) 하나님은 죄인들의 파멸이 당신께 손해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려 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죽어 없어졌더라도, 하나님은 또 다른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어 그들에게 대한 당신의 자비를 찬양케 하셨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파멸되더라도, 여기에서의 모세가 받은 하나님의 자비는 찬연히 빛날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Ⅱ. 모세는 그들을 위해 간절한 중보 기도를 드렸다.
그들의 죄는 그들의 보호 장벽에 치명적 손상을 입혔다. 그러므로 만일 모세가 적시에 거기에서 임하여 사태를 호전시키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들에게 파멸이 따랐을 것이다.
여기서의 모세는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다. 그는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함으로써(마 5:44), 우리에게 한 모범을 보인 것이다.
1. 그의 기도는 한 마디로 말하면, “구하옵나니,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소서”(19절)이다.
즉 “그들에게 그들이 받을 멸망을 주지 마옵소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기도이다.
한 민족의 죄의 용서 그 자체는 그 민족의 징벌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모세가 여기서 간절히 구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2. 그 탄원은 여러 가지요, 강력한 것이었다.
(1) 그는 대부분 하나님의 영광에 의거하여 탄원했다(13-16절).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다소 불쑥 말하기를, 그러면 “애굽인들이 들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명예가 모세 자신의 이해보다 더욱 그의 심중에 가까이 있었다. 그가 하나님께 어떻게 이 사정을 아뢰었는지 보자.
① 그는 애굽과 가나안의 눈들이 자기들을 지켜보고 있으며, 큰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다고 탄원했다.
오직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다”(14절).
이 사실을 그 주위의 여러 나라들도 알았으니, 이 백성은 실로 얼마나 하나님의 특별 보호를 받고 있었으며, 해 아래 다른 어떤 민족도 그들과 같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② 그들이 모두 죽게 되면, 그 사실은 크게 알려질 것이라고 했다.
“애굽인들이 듣고 이 땅 거민에게 고하리이다(13, 14절). 이는 그들의 정탐꾼들이 우리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광야를 통과하는 길은 아니지만,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많은 왕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란을 피웠던 이 백성이 전멸된다면, 강대하던 그들의 권리가 무로 돌아가고 그들의 빛이 꺼져 버린다면, 그것을 들은 갓 족속이 즐거워할 것이며 또 아스글론 지역에 소문이 자자하리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이 폐허 위에 무엇을 건축하겠나이까? 그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행동이었음을 이해시키는 것, 또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옵니다. 우준한 자는 이를 알지 못하나이다(시 92:6).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권능의 실패로 뒤집어씌우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모욕이 돌아가리이다(16절). 그들은, 하나님이 광야에서 그들을 죽인 것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능력이 없고, 그 분의 팔이 짧으며, 따라서 기적의 창고가 바닥이 나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오니 여호와여, 당신의 한 가지 속성을 희생시킴으로써 다른 속성이 영광을 얻게 하지 마옵소서. 차라리 권능자의 힘이 조소거리가 되기보다는 긍휼이 심판을 이기게(약 2:23) 하소서.”
기도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탄원은 하나님의 명예에 의거한 것임을 기억하자.
이것은 주기도문의 첫 조항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렘 14:21).
하나님도 친히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신 32:27)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범사에 주님의 원수들이 주님께 모욕을 돌리는 기회를 주지 않도록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딤전 6:1).
(2) 그는 호렙 산에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라고 했다(17, 18절).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여기서는 권능이 용서하는 자비를 뜻한다. 그것은 그 분의 진노를 누르는 힘을 말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신다면, 하나님의 권능은 의문시될 것이다.
그들 앞에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원수의 힘으로부터, 그리고 또한 그들의 죄악에서부터 그들을 구원하기를 계속하시고 완성하신다면, 하나님의 권능은 지극히 빛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약한 백성으로 정복자가 되게 하실 수 있고, 그렇게 무가치한 백성을 총애할 수 있는 분이라면 무엇인들 못하랴?
하나님의 권능이 손상될 위험이 더 많으면 많을수록, 그 권능이 더욱 영광스럽게 빛나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탄원을 강화하기 위해,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되풀이한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가 많으시나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자랑하신 적이 있다(출 34:6, 7). 그러므로 이 때 모세는 이 기회에 그 영광을 드러내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기도의 용기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시 119:49).
“여호와여, 이미 말씀하신 대로 하옵소서. 주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대로 실행하셔야 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은 세 가지를 엄숙히 선언하셨다. 그래서 여기서 모세가 그것을 포착한 것이요, 자기의 탄원의 지원 무기로 쓰고 있는 것이다.
①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본성은 자비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자비가 크시다. 성을 급히 내지 않으시며, 죄인들을 향해 온유와 긍휼을 베푸신다.
② 특별히 죄의 용서 태세를 항상 갖추고 계신다.
“죄악과 과실을 사하신다.” 곧 온갖 종류의 죄를 용서하신다.
③ 벌을 주실 때에라도, 극한 상황까지 가기를 원치 않으신다.
이런 의미로 다음 말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음에 있어, 결코 아주 황폐케 하지 않으리라.”
하나님은 제2계명 속에서는 그렇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한 가족, 교회, 민족을 일시에 끝장내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그것이 적절한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죄를 전혀 벌하지 말아 달라고는 간청할 수 없었다(하나님께서 반역자들에게 아무런 진노의 채찍도 내리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반역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같이 죽이시지” 말기를 간청할 수는 있었다(15절).
모세는 그들이 징계받지 않게 되고, 조금도 멸망되지 않기를 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렇게 선포한 것은 모세의 의도에 더욱 잘 들어맞았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금송아지를 만든 죄를 용서해 준 때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저지른 죄는 충분히 악한 것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는 아니었다.
(3) 모세는 과거의 경험으로 탄원했다.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19절).
이것은 모세에게 불리하게도 보인다. 그렇게 자주 하나님께서 관대한 처분과 인내로써 용서해 주셨으나 역시 배반하고 만 그런 자들을 왜 더 이상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인가?
이런 판국에 그러한 사정을 아뢰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탄원을 올리는 자에게 피해를 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시는 일에 있어서 그러하듯이, 다른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방식은 우리의 생각과 방식보다 훨씬 위에 있다(사 55:9).
모세는 이것을 훌륭한 탄원거리로 보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 전에 용서해 주셨던 것과 같이 지금 또 용서해 주신다고 하여 그것이 “주님의 공의를 모독하거나 자비에 대한 찬양을 조금도 실추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
하나님의 응답(민 14:20-35)
여기서는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보게 된다.
그 응답은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을 다같이 노래해 주는 응답이다. 그것은 모세에게만 은밀히 주어졌다(20-25절).
그 다음 그 백성에게 공적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26-35절). 그 내용은 변명될 수 없는 단호한 하나님의 결의를 계속 말해 주고 있다. 그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Ⅰ. 선고의 극한 상황만은 피하게 되었다(20절). “내가 사하노라. 그래서 그들이 일시에 멸절되거나 없어지지 않게 하였느니라.”
기도의 권능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귀히 여기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자.
하나님이 용서의 뜻을 세우셨다. 그러나 모세는 기도로써 용서를 얻었다는 찬양을 받게 된 셈이다. 그것은 “네 말대로” 이루어지리라.
그리하여 한 군왕으로 모세는 하나님과 겨룰 권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가 이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남을 위한 중보 기도를 얼마나 기뻐하시고 격려해 주시는가를 깨닫자.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함에 있어서도 공적인 정신 자세를 견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인 한 사람의 간곡한 기도로 민족 전체가 멸망의 위기에서 구출되었다. 하나님은 얼마나 죄 용서를 기뻐하시며 얼마나 탄원에 잘 호응해 주시는가를 주목하자.
모세는 “사하옵소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사하노라”고 말씀하셨다(20절).
다윗도 그와 같이 속히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시 32:5).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시 103:10).
Ⅱ. 일반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함이 뚜렷하다(21절).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맹세하셨다. 기도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처벌을 통해 나는 그것(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크게 하고 밝히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경우라도 죄를 몹시 싫어하신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자비와 은혜는 넘치는 분노에 더디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구주께서도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자, 즉시 이런 응답을 받았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 12:28). 하나님의 영광을 성실하게 구하는 자들은 그 구한 것을 분명히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을 찬양하는 이 기도를 약속으로 바꾸어 주실 때에는, 우리도 기도를 찬양으로 바꾸어 천사와 화답해야 한다.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Ⅲ. 하나님을 분노케 하여 저들에게 불리한 일을 하게 한 이 백성들의 죄는 가중된다(22, 27절).
그것은 실제보다 더 악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죄가 지독하게 악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들은 악한 회중이요, 각자가 모두 나쁜 사람이며, 전체로 보면 더욱 나쁜 회중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했다.
즉 그 분의 권능, 곧 그 분이 자기들의 곤고를 도와줄 수 있는지를, 또 그 분의 자비, 곧 그 분이 과연 자비로우실는지, 그리고 그 분의 신실성, 곧 그 분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인가 등을 시험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 곧 저들의 죄에 대해서 분개하시고 벌 주실는지 그것을 시험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상을 향해 하시듯이, 하나님이 과연 “복”을 베푸실지 “화”를 베푸실지 도전한 것이다(사 41:23).
2.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것은 강력히 주장되었다(27절). 그들이 하나님께 과연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 물은 것은, 계속 트집만 잡으면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께 항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율법이나 하나님이 주신 규례(그들은 그것을 무거운 멍에로 생각했지만)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신과 섭리에 대한 원망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아나가기보다는,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에 임하기가 능사라는 것을 명심하자.
3. 그들은 애굽과 광야에서 하나님의 많은 기적을 체험한 다음에도 이런 불만을 토했다(2절).
저들은 자기들의 눈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께서 진실로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는 증인이었다.
4. 그들은 열 번이나, 즉 매우 빈번히 하나님을 멸시했다.
유대 학자들은 이스라엘 회중이 하나님을 분노케 한 것은 정확히 열 번이라고 간주한다.
처음에는 홍해에서(출 14:11), 또 마라(출 15:23, 24), 신 광야(출 16:2), 만나 때문에 두 번(출 16:20, 27), 르비딤(출 17:1, 2), 금송아지 사건(출 32장), 그 다음에는 다베라, 그리고 기브롯 핫다아와(11장)에서의 원망이라 한다. 그래서 열 번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죄악을 반복하는지를 계산하고 계시며, 조만간에 그것을 우리 앞에 발표하실 것임을 잊지 말자.
5. 하나님은 수차 그들의 죄를 경고해 주었지만, 그들은 그 분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Ⅳ. 그들의 죄에 대한 형이 선고되었다.
1. 그들은 약속된 땅을 볼 수 없게 된다(23절). 물론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30절).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시 95:11). 약속에 대해 불신하면 그 약속의 혜택을 상실하고 만다.
그 복된 땅을 멸시하는 자들은 거기서 쫓겨난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후손에게서 이루어지게 되리라 했다.
2. 그들은 즉시 “돌이켜 광야로 들어가야” 한다(25절).
저들은 이제 후퇴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곧 진군해야 할 가나안의 국경 지대 앞에 와 있었으나, 다시금 홍해 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너희는 내일 돌이켜라.” 즉 “이제 곧 너희는 너희들이 그렇게 싫증나 있는 그 광막한 광야로 되돌아가게 되리라. 너희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니라. 아말렉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만일 너희가 전진하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들을 칠 것이다” 하는 것이다. 그들은 불신에 가득 차서 아말렉인들을 두려워했다(13:29).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저들에게 겁을 주신 것은 정당하다.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잠 10:24).
3. 어른이 된 자들은 점차로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된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기를 바라던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한 소원에 “아멘”이라고 답하셨다.
그들의 죄가 그들의 파멸을 초래했고 그들의 “입의 말로” 그들이 “얽혔으며”(잠 6:2),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하였다”(시 64:8).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되었고, 그들의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다”(28, 29절). 이 말은 반복되어 있다(32, 35절).
그들이 어떤 책망을 들었는가 보라. 그들은 자기들의 죄 때문에 스스로 비겁해진 것이라고 했다. 주의 영이 떠나니, 용맹하던 장수들도 시체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시체 같았다. 그들의 선조들은 가나안에다 자기들의 뼈를 묻겠다고 소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복된 땅을 멸시하고 그 약속을 불신한 이들은 거기에 묻히는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다. 모두 광야에서 매장되고 말았다.
4. 이 선고가 실행되면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하며, 마치 길 잃은 여행자들같이 40년을 지내게 되리라 했다.
즉 그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40년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33, 34절). 그리하여 저들은 오랫동안 방랑하게 된다.
(1) 그것은 정탐꾼들이 그 땅을 탐지한 날 수와 맞먹는다.
그들은 사람의 증언을 들으려고 40일을 기다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실행을 기다리면서 40년을 보낸다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2) 그것으로 인해 저들은 회개하게 되고, 저 세상에 가서라도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 저들은 자숙하며 자기들의 행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광야 생활의 고달픔이 저들을 겸손케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저희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주려 하심이었다(신 8:2). 이토록 오래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질” 것이다. 그동안 자기들의 처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의 중함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로 인한 짐으로 시달렸다. 그 짐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시 38:4).
(3)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그 언약을 범하면 얼마나 위험한가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그것은 너희의 죄로 인함이니라”(하나님은 먼저 사람들이 그 분을 버리기까지는 버리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너희의 파멸이 오리라. 너희가 언약을 저버렸으니 온전히 멸망되리라.”
(4) 그리하여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새 세대가 일어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녀들은 그 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표징 밑에서 자라서 그들(조상들)의 “패역한 죄”(곧 그 부모들의 죄에 대한 처벌, 특히 금송아지로 인한 우상 숭배로 하나님은 그들을 불쾌히 여기시고 있는 것이다)를 지게 된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자기 부모의 불순종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경고를 받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광야 유랑이 그렇게 긴 것은, 그래야 나중에 가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고를 받자 모세는 시편 90편을 기록한 것 같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당시 현황과는 엄청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시편을 통해 그들은 그 선고가 개정될 수 없는 것이므로, 거기에 순응하고 “지혜의 마음을 얻기를” 배웠을 것이다(시 90:12).
Ⅴ. 이 가혹한 선고 속에도 자비가 섞여 있었다.
1. 갈렙과 여호수아도 광야에서 유랑해야 하지만, 그들은 당시 20세 이상인 자들 중에서는 살아 남아 가나안에 들어가는 유일한 자들이라고 했다.
24절에서는 갈렙만이 언급되어 있어 특별한 영예를 받고 있다.
(1) 그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다.
그는 “마음이” 다른 정탐꾼들과는 “달랐다.” 그는 다시 생각해 보는 마음이 있어서, 위험이 따라왔지만 다시 한 번 숙고해 보고 자기의 의무에 성실하여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
(2) 그 보상으로 약속이 주어졌다.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① 우리는 모두 여호와를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 최대한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그 분의 명예를 위한 사업에 복종하려는 자세로써 그 분을 좇되, 만장일치로 분열 없이, 가식 없는 정직한 마음으로―불평 없이 유쾌히―그리고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끊임없이 좇아야 한다. 이것이 그 분을 온전히 좇는 것이다.
②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려는 자들은 남과 다른 정신, 이 세상과 다른 정신, 전과 다른 정신을 가져야 한다.
③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시대에 홀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른 자들은, 모든 사람이 재앙을 만나는 시대에 홀로 하나님의 특별 보호와 인정을 받는 영예를 지니게 된다.
여호와를 온전히 따른 자의 영원한 유업은 하늘의 가나안이다. 갈렙이 다시금 언급되는 때에(30절) 여호수아도 그와 함께 언급된다.
또 같은 은혜와 영예를 받게 되었으니, 그가 같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2. 이 반역의 자식들에게도 자비는 베풀어졌다.
그들은 씨를 보존해야만 하며, 가나안은 그 씨들에게 보장되었다. 지금 20세 미만인 자들, 곧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라”(31절).
그들은 자기의 자식들을 죽이려 한다고 하나님께 불평스런 비난을 가한 적이 있다(3절).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과 무죄한 자들을 구별하실 수 있고, 그 죄인들이 자녀들을 물들게 하지 않도록 그들을 처벌해 버릴 능력이 있음을 그들에게 알리시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잠시 실패하는 듯했지만 영원히 좌절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드셨지만,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진멸되지 아니함이다”(애 3:22).
---------
너무 늦은 회개(민 14:36-45)
Ⅰ. 열 명의 악한 정탐꾼들은 급사했다.
선고가 그 백성들에게 포고되어 아직 실행되지는 않고 있던 중에,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36, 37절).
1. 이로써 하나님은 자기들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왕상 14:16) 자들에게 특별한 분노를 표명하셨다.
(1) 그들은 약속의 땅을 비방함으로써 스스로 죄를 저질렀다.
신앙을 그릇되이 말하고 비난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앙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고 기회를 찾는 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노케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비천하고 하찮은 것이며, 우울하고 기분 나쁜 일이고, 어렵고 비실제적인 일이요, 필요 없고 유익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그 복된 땅을 “악평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자들이다.
(2) 그들은 “이스라엘로 범죄케 했다.”
그들은 고의로 “온 회중으로” 하나님께 “원망케” 했다. 죄를 선동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들 때문에 흘린 사람들의 피를 엄중히 계산하기 때문이다.
2. 그리하여 하나님은 당신이 온 회중에게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가를 보여주셨다.
즉 그들에게 지금 선고된 그 형의 집행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보여 주신 것이다.
이렇게 어떤 지파 중의 일인을 죽이신 그 분은 그 온 지파를 갑자기 죽이실 수 있으며, 그 일을 점진적으로 행하실 것이다.
악명 높은 죄인들의 이 괄목할 만한 죽음은 불신앙인들의 최후 파멸을 증거해 주는 것이다(벧후 2:5, 6). 하나님의 진노는 그렇게 나타났다. 죄인들은 이것을 보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Ⅱ. 갈렙과 여호수아에 대한 특별 보호.
그들은 “생존하였다”(38절). 아마 열두 명의 정탐꾼들이 한 군데 모여 서 있었던 것 같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잘 보이는 표적과 같았고, 전 회중에게 감화를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즉 열 명의 악한 정탐꾼들이 악질에 걸려 쓰러졌으나, 두 사람은 살아 남아 건강한 채로 있음을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의 증언을 확인해 준 것이요, 그들을 돌로 치라고 말했던 자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들의 좌우에서 수천 명이 넘어지지만(시 91:7), 그들은 계속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셨다.
죽음은 결코 과녁을 빗나가지 않는다. 또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한가운데 살아야 할 자들이 섞여 있었지만, 죽음은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Ⅲ. 온 백성에 대한 선고의 집행(36절).
하나님은 당신이 그들에 대해 포고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한다. 가나안은 다음 세대를 위해 유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 온 백성에게는 물론이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그토록 바라던 모세에게도 매우 큰 실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모세는 침묵했고, 백성들만이 크게 통곡했다. 모세는 이 선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만족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들의 죄책감 때문에 울고 괴로워한 것이다. 그들은 이유 없이 울었다(1절).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울 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리하여 불평쟁이들이 애곡자가 된 것은 당연지사다. 만일 그들이 그들에게 죄가 있다고 단단히 책망받았을 때(9절) 자기들의 죄로 인해 울었더라면, 이러한 선고는 예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심판의 가혹성 때문에 울고 있으니, 그것은 너무나 늦은 울음이요,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히 12:17). 지옥에는 이러한 통곡이 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지옥 불을 끄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혀를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할 것이다.
Ⅳ. 이러한 선고에도 불구하고,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1. 이제서야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애원했다(40절).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군대를 총동원시켜 놓고, 모세에게 자기들을 지휘하여 적을 물리치자고 애원했다.
더 이상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했다.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그들은 회개를 공언했다.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올라가리이다.”
이제야 그들은 자기들이 멸시하던 땅을 소망하고, 불신하던 그 땅을 신임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면, 모든 죄인은 자기들의 불경건한 행동과 완악한 말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이 이기신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말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저들의 이러한 뉘우침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는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었으니, 그것은 너무나 때가 늦었기 때문이다.
선고는 포고되었고, 그들의 멸망은 결정되었다. 그들은 찾을 만한 때에 여호와를 찾지 않고, 찾을 수 없는 때에 가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은혜의 날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이 오직 하늘에 대한 소망을 굳게 잡고 있는다면, 그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는 그들이 하늘에 있게 될 것이다.
2. 모세는 그들의 망동을 전적으로 불허했다.
그들이 서두르고 있는 원정을 금지했다. “올라가지 말라”(41-43절).
(1) 모세는 그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돌이켜 홍해 쪽으로 가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바 있기 때문이다. 의무란 적시에 이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명령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율법에 복종하지 않은 자는 그 형벌에라도 복종해야 한다.
여호와는 율법 수여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2) 모세는 위험을 경고해 주었다.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결코 기대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도,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명심하자.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그들이 너희를 공격하리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니, 너희를 돕거나 위해서 싸워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의무를 저버린 자들은 하나님의 보호에서 떠나게 되고, 저들의 생명에 위험을 주게 된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곳을 간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보다도, 모세는 그들의 실패를 명백히 예언해 주었다.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곧 아말렉인과 가나안인들의 칼에 넘어지리라는 것이다(원래는 이들이 이스라엘의 칼에 넘어질 자들이었다).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기” 때문이니라. 곧 그들은 그 분의 보호와 약속의 인내를 추종하기를 거부했고,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는 자들을 분명히 버리시리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자들은 온갖 비극에 빠지게 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험을 했다.
이 때처럼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어그러진 길로 가려고 절망적으로 발버둥친 적은 없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안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금하자, 그들은 또 가려고 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롬 8:7).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다”(44절).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에 역행하려고 애썼다. 그 판결을 무시하려고 했다.
(2)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표징을 경시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이 모세를 떠났고 그들을 떠났을 때에도, 올라가려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힘을 불신했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힘 없이도 능히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듯이 뽐냈다.
4. 그리하여 그들의 출정이 속행되었다(45절).
적군들은 그 언덕 꼭대기에 진을 치고 있었다. 침략자들을 쳐부수기 좋은 길을 이용코자 함이었다. 그들에게는 척후병이 있어서 이미 이스라엘군의 침입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제 척후병들을 내보내 이들을 섬멸했다. 아마 많은 이스라엘인이 죽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저들에게 내려진 선고는 집행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29절).
시작을 죄로 하는 일은 좋은 결말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 두자. 친구와 화해하는 길, 원수에 대해 승리를 거두는 길, 그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친구로 삼고 그 분의 사랑 안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저들의 조상들처럼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의를 배척하고 나서는,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애썼고, 여기서처럼 그런 기획은 급속히 진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