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18장
@@@그 어느 누구라도 여호와 구원자 JC를 개인적인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함 없dl는 주님 경륜에 참여할 수 없음을 명심할 것!!
....보라, 레아의 경우....<이외에도 잇사갈과 스불론 두 아들이 더 있었지만>르우벤-시므온-레위-유다-디나 사건으로 인해 주님 이름 부를 수 밖에 없었고...그 결과 (추측컨데) 주님을 참되게 개인적인 주 하나님으로 영접함<다루심과 연단 통해> 주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고서 막벨라 굴에 묻혔음((다윗과 JC는 레아의 아들 유다의 계보에서 나오고 있음)) ....한편, 라헬은, 요셉을 낳기 위해 주께 특별히 부르짖었고, 그 후 베냐민 얻기 갈구함 통해서 합당한 성숙함에 도달케 되었다고 볼 수 있음...
...이삭 주심 약속에 대한 재확인(직접 만나 주로부터 들었지만 더디 믿는 아브라함--><전해 들은바>더디 믿는 사라...이제, 직접 주님이 만나주심) + (롯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거민들, 곧 도시를 위한 중재기도의 원형 보임...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나태-방종/방탕-인색(=탐욕-모든 것 풍성한 환경 주셨음에도 나눔 소홀/인색,...맡은 것 나눔에 소홀한, 강도가 되어버린 청지기...나그네 대접함 아니라 오히려 약탈, 빈자에 대한 모멸-무시-방관-무관심)-교만-간음-폭력-사신우상숭배 등 인해 극에 달한, 주님 찾고 호소하는 울부짖음에 대해 공의의 심판 예비하셨으나 <다시 회개 기회를 주시도록 요청할> 중재자 아브라함이 필요하신 주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걷고 계심[실은 하나님은 구태여 걸으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지만..외로우시다!!]...주님 의도<한없는 긍휼로 아브라함 택하신 목적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심 통해 (주님 떠나기를 망설이듯 지체하시며 걸어가심따라 함께 걷는 아브라함이 듣고 깨닫도록) 일러주시면서 은연중 아브라함이 중재자로 나서주기를 원하시는 사랑에 눈먼 주님>)이제 그분 뜻따라 ...하나님 마음-심정-생각-뜻 알아차린 아브러함은 주 앞에 막아서서 중재하게 되고, 아브라함의 중재를 들으시고 소돔 고모라 멸절에 대해 조건적 재고를 고지하고 떠나시는 하나님...
**구속자의 중보와 중재=mediation 기도자의 중보=intercession(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중보<중재) ....사람의 보증(중보)나 중재는 항상 불완전한 특성을 보이지만 구주의 중보와 중재는 최상의 완전한 끝냄 되신다.
**보증(중보)하다=<능동적으로> 빚을 대신 <갚겠다고> 떠안다 undertake for, pledge, promise by oath, endorse, certify, assure, insure 아라브..아르베니=보증자(중보자)...(비록 모세가 <이스라엘의 죄 사함과 주의 백성 삼음 회복 위해 그의 영원생명을 대가로 지불>할 의사를 나타내었으나 [영적보증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누군가 반드시 갚아야 끝나는 무한 영원 보증이기에] 유한한 사람으로서는 [영적 의미의 영원한] 중보자로서의 자격에 있어서 결함이 있다고 여겨지기에 창세전부터 예비된 하나님 어린양JC만이 진정한 중보자로서 합당한 자격자이심
**중재하다, 간구/간청/도고하다 화해시키다 intercede, intervene 파가...아프가이아=중재자...신자는 도고/중재/간구의 기도자임
@@절대적으로 Faithful and True이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오심으로써 십자가에서 영원 단번에 죄의 대가 지불하시고 죄, 곧 공중권세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음으로 인해 JC 믿는 자마다 영생 얻게 하셠음>------<구속자가>중보/중재하다 mediate... 메시테스=유일무이하신 중보/중재자 하나님 mediator 구주 예수님, 그는 믿는 모든이의 아르베니 + 아프가이아 + 동시에 메스테스 이심
@@<성벽 위에 서서 주님 이름과 심정으로 부르짖고 중재하며 복음 전하는 영적 피수꾼, 도시를 위한>중재자요 중보자 된 작은 그리스도들, 참 기독자들
.....[중재]란 중보와는 다른 개념.... 중재는 <출34:6,7을 보라..[중재란] 지은 죄를 대가 지불 없이 사해 달라(용서해 달라, 곧 forgive를) 구함이 아닌 것을 기억하라....주님은 사랑의 Q인 동시에 공의의 Q이시므로 결코 죄벌을 <처벌하지 않고 그냥> 간과하실 수 없으시며 잠시 보류하실 수는 있으나 마지막 결산의 심판(멸절 또는 부활 영생)은 반드시 았음...다만 그 전에 전존재를 걸고 주 예수께로 돌이켜 회개해야만, 대속의 어린 양의 공로로 사함 받고 영생-부활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코 앞에 임박한 [죄벌로서의] 멸절 심판 집행을 잠시 보류해 주시고 한번 더 회개하여 주께로 돌이킬 기회 주시기를 <주님 긍휼에 의지하여 > 요청함이 곧 [중재]요
.....[중보] 는 죄인이 저지른 <죄벌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저지른 죄의 댓가 지불((죄의 삯은 사망...곧 영원 멸절임)) 위해 주하나님의 조건에 부합하는 그 어떤이가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죄 사함=정결케 됨이라 정의할 수 있다....주께서 받아들이실 수 있는 이 중보<대속자=구속자>의 조건은 오직 육신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그 삶이 전적으로 무죄해야만 조건을 충족하며, 이에 해당되는 분은 오직 주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완전무결하고 흠 없으신 JC 뿐이심...그래서 <본질적-실질적 의미에서는>주 예수님 만이 오직 유일무이한 중보와 중보자가 되심..... 구약과 신약에 걸친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두 창세전에 이미 <초월적이자 실제적인> 대속적 죽음을 하나님 안에서 죽으신 JC, 그 JC를 믿는 믿음 발휘하여 생각나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할례를(주 오심 후에는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허물과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고 거듭난 부활 생명의 아들(곧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통해 낳은> 친아들)로 인정받게 되었고 그 사이에 가로막고 분리하던 죄 장벽은 걷히고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음.... 바로 이것이 <모든 사람 하나하나마다에게 일어날 것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아드림으로써> 모든 참 기독자는 그 누구나 성벽에 서서 <도시를 위해 중재하는, 또한 한편으로는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주 예수 이름으로 중보하는 작은 그리스도들인>주께 부르짖는 영적 파수꾼(곧 중재자요 중보자들임....그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포기하지 못하시도록 그분의 신실하심 그대로 이루시도록 그분의 전능한 오른 손을 들어 드림 통해 구원 받을 자<오래참아주심 인해 구원 기회를 얻은 자에 대해 쉼 없이 일하시도록 일깨우는 자)로서 자신을 주께 드리며 동시에 <복음 듣고 구원에 이르도록 주님의 성령과 함께 나아가 전하는> 전도자로서 그 역할 다해야 할 필요가 있음....
---파수꾼 = 중재(중보)기도자 + 복음 전파자-= Q 뜻 이룸 위해 주의 능하신 오른 손 들어드리며 중재하는 기도자 + 그분의 말씀 그대로 대언하며 전도하는 대사 ---
[막9:23..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62:6.7..*6.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겔3:17-21...*17.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대표하는 대사가 되어] 그들을 깨우치라 *18.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아브라함의 체험적 변화))...영광의 하나님==>지존자, 천지의 주재 ==> 엘 샤다이(모든 것을 충족케 하시는 풍성-전능의 하나님)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사람의 모양 그 안에 계신 [아브라함의 발씻김 받으시는] 하나님<주 여호와, 예수...사람과 친밀함으로 관계하시는 하나님>
===11장 : 갈대아 우르(귀신적인 땅)에, 영광<셰키나>의 하나님이 나타나 부르심, 거기에 반응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남...
===12-14장 : 하나님 믿는 믿음으로 사는 훈련 받음(갈대아 우르 떠나 5년간 머물렀던 하란을 떠나 [그야말로 빈털털이로] 가나안 땅 입성..생계(음식)-생존(보호) 위해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이 주입하여 주신 믿음-소망-사랑((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사용하도록 훈련 받음...
===15-17장 : 하나님의 영원 목적을 성취함에 반드시 필요한 은혜<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알게 됨.... 이로 인해 모든 일에 [스스로의 결정-힘/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영원 목적에 합당하지 않기에..] 오직 엘샤다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하나님 자신을 공급받고((바로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달하시는 하나님, 곧 은혜임)),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임재로,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배움....이로 인해 주 앞에서 행함-완전함의 사람, 곧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뀐 자, 본성과 그 조성이 주님 충만의 어떠하심으로 충만하게 변화된 자>가 생겨났다..
===18-24장 : 하나님과의 <달콤하고도 친근한> 지속적 교통 안에서의 삶으로 인도됨((이로 인해, 형제자매들 안에 그 어떠한 제약 없이 일상 중에서라도, 다정한 친구의 인간적인 친밀한 교통으로도 경험되시는 하나님))....요1:18에서, 주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라는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던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처음에는 주 여호와가 그들 중에 계심을 알지 못한 채 아브라함은 세 사람 손님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정성껏> 대접하는 가운데, 주 여호와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물으심 통해 은연 중 자신을 드러내시며, 또한 이어 <생명의 때에, 내년 이맘때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0절> 말씀하심 통해 재확인해 주신다!!(이 때에야 비로소 ,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엘 샤다이 그분임을 아브라함은 알아챘으리라.)...
.*9...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10...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사라가 장막문 뒤에서 듣고....)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모든 것, 심지어 사람의 마음 속까지 살펴 아시는 분, 전지하신 하나님, 언제 어디서라도 친히 찾아와 함께 <친근함과 친밀함으로>교통하며 사시는 분 체험!!.))
.....이는 육적 할례가 영적 할례로 이어진, 하여 천연적 사람은 베어져 수장되어 처리되었고, 이제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생명의 사람으로 살기를 실행하고 있는, 하나님만, 말씀하시는 하나님만 앙망하며, 전적으로 신뢰함 안에 살기를 배워, 바로 그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일어난 일임을 명심하라..)) ..
[개념 정리]...중보는 법적 용어로서 빚진자로서는 갚을 길이 전혀 없는 빚에 대해 채무자 대신 채무자의 그 빚 반드시 감당하겠노라 법정에서 보증하는 보증자의 행위를 지칭, 반면에 중재란 불화 상태에 있는 쌍방에 대해 채권자의 임박한 심판 집행 의지를 , 쌍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중재자가 채권자의 분노를 유예시키고 누그러뜨려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쌍방의 유익과 화해를 도모하는 기능적 행위를 지칭... 이 과정에서 중재자는 그의 능력에 따라 중보-보증자로서 기능을 가질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최우선시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 따라> 헤브론(교통, 친구, 우정)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할 때 <장막 문 앞에서, 주님 생각하며 앉아 있을 그 때>일어났음을 주목하라.. 하나님과의 교통, 주의 백성간의 영적 교통 없다면 그것은 실상 교회생활이 아니며 단지 <성전뜰만 밟는 것>임
....**주님이 누구신지 알려주실 바 전심으로 기대하며, 전 존재 열어드리며 참되게 말씀 받는 그대로 이루시기를 소망하고 [듣는 모든 것마다] 마음에 깊이 품어 간직하라, 교통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임을 믿고 신뢰함으로 [개인적으로] 나아가 여쭈며 열어주심 인해 참되게 알아듣고 깨닫게 되기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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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그리스도인의 [곤경/궁지/험지에서 주권적으로 벗어나게 하심으로서의] 삶 가운데 베푸시는 구원은 (기본적으로) (구주의 십자가 보혈의 대속 믿는 믿음의 의가 ,의인의> 기준이요, <기도자들의 기도를 통해, 그리고 동시에> 구주 JC-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도우심> 중재를 통해서 성취되고 있음을 주의하라...((아브라함은 주님의 의를 따라, 모세는 대가 지불의 희생 정신으로 중재하고 있다....이 두 가지를 다 염두에 두라))
.....우리가 마음에 떠 오르게 하신 그 누구의 영적 상태를 걱정-염려함 안에서 (자의적 느낌과 내적 요청따라 기도에 임함으로써) 주께 나아가 그를 위해 말씀드리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볼 때 중보가 아니라 중재에 해당되지만, 역시 주께서 선용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 <그 백성과 연관되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연관된 중재자가 없이는 하나님은 그 백성의 구원하는 일을 하실 수 없으시다는 것을 알라...
....다만 주님 임재 안에 있게 하신 분 앞에서, 말없이 주님 마음 움직임에 유의함으로써 주님과 마음 나누면서 친밀히 시간을 함께 보내는 중에, 주님 마음에 하나님 마음을 반향시킬 수 있는가를 보신 후, 주님의 갈망을 따라 중재하는 부담감을 주셔서 사정을 알게 해 주심따라 하나님의 의인을 향한 특별한 관심과 구원하심에 동참하게 하시는 특권을 감사하라...결코 잊지말라, 주님의 사랑스런 <친밀한> 친구 되기를 추구하라....합당한 참된 중재는 오직 주님의 방문하심으로 인해 이루어지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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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그 어떤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절대적인 필요가 생겨서> <그것을 함께 나누며 소통할 수 있다 여겨지는 절친에게> 무엇을 부탁하려는 경우에라도, 그대는 먼저 그에게 친히 찾아가서 함께 시간 나누며 그의 마음을 <천천히> 살피고, <돌아갈 무렵까지도 말하기를 꺼려하다가, 그 필요를 눈치 챈 친구가 <털어놓기를 요청함따라> 정말 어렵사리 털어놓고 부탁하게 된 그것을, 그 친구가 흔쾌히 <최선 다해, 최우선적으로>처리해 주겠노라 승낙할 때 느꼈던 그 때의 기쁨을 기억하는가.... 주님은 바로 그 그 친밀한 교통 안에서, 주님 마음을 알아줄, 친밀한 중재자를 찾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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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그때까지도 롯에 대해 중재의 기도 드리기를 지속했으리라..그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중재자로 준비시켜나가신다....<소돔과 고모라의 의인들, 그러나 실은 그 안에 있는 롯을 생각하고(더불어 함께 있을지 모르는 의인들을 고려하여 그들을 포함시키는 바) 롯을 위한 중재를 하는 <아브라함>, 그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혹시 주님 보시기에는 롯의 의인됨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롯을 <멸함 중에서>내어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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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한 중재를 배우고 연습하라........이를 위해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임재 안에 머물기를 배워야 한다....합당한 중재의 원칙이 있다,
*1)항상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주님 방문에 의해 중재가 시작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깊은 느낌이 있을 때마다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서 우리가 수행할 중재를 시작할 때임을 알게 하실 것이다.
*2)그분이 가시려는 느낌이 든다면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며 <주여 나는 주님 임재를 잃기 싫습니다...나는 당신과 함께 여기 머물기 원합니다>라고 말씀드리라...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 때 그분의 마음이 열리고 그분의 갈망이 나타날 것이다.... 주님의 임재를 알고서, 아브라함은 결코 급하게 주님과 작별 인사를 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여실 그 때까지 어느 정도 더 그분과 동행하여 걸었다....내가 그분을 떠나지 않으면 그분도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그만큼 인간적이시다.....
*3)그분의 의를 따라 말씀드리며 강청하라(주님은 그분이 시작하신 선한 일을 이루시겠다 하셨으니 <그 일을 다 마치시기까지>....오직 주님 갈망 알아드림으로써, 주님의 의를 따라 강청하라...결코 쉬지 않으시게 하라)......
*4)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따라 표현하라......
*5)말씀을 다 마치시고 (그분은 지체하지 않으신다) 즉시 떠나시기까지, 그분이 먼저 떠나시기까지 그 위치를 지키며 머무르라..((섣부르게 ,먼저 <아멘>하며 끝내지 말고 더 기다리라..주님 먼저 떠나시고서야 <아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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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9:15-21]...*15..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6.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18.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22:30, 31]..*30.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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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아보면)주께서 밤중에 가끔 제게 잠시 깨어나서 나와 함께 있을 수 있겠니....하셨을 그 때마다, 제가 너무 무례했고 성급하였음을 느낍니다.. 주님 존중하며 기다려드리기는 하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제 기준이었고, 주님이 나로 잠 못들게, 깨어나 있게 하신 그 이유를 주께서 털어 놓으시기까지 시간을 드려야 했었는데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나의 불찰입니다..
..... 주님 임재 안에서의 머무름, 그 때 이루어 가시는 ,<친근한 친구로서의> 합당한 중재는 기록된 말씀 따라서가 아니라, 자비 그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 긍휼 베푸심 갈망하시는 마음에서 나오는 계시를 따라 행하는 것이기에(주님이 넣어주시는 절절한 심정의 그 말씀 반향함이기에), 주님의 내적 의도를, 열어주시는 그 마음과 심정, 그 갈망을 알아, 반향해 드리도록 이끄소서.
..... 오직 나로 기억하게 하소서..나의 중재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의에 있음을...주님의 사랑이나 은혜를 따라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의를 따라[주님은 출34:7에서 주님의 이름과 그분의 어떠하심을 선포하셨으며...또한, 대속의 구주 보혈 믿고 주 이름 부르는 이, JC 믿는 자마다 의인이라 하시며, 주가 예비하신 그 시점까지 생존/생계를 책임지실 뿐 아니라 영원 목적을 이루시기까지 인도하시며 그가 보전되기를 원하신다 하셨음..] 중재-간구해야 함을...또한, 섣부르게 자리를 뜨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 합당한 중재의 완결은 항상 주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바, 주님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먼저 자리를 뜨실 그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종된 친구에게 합당한 것임을(중요함!!) 기억하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약속받다[267주의확실한약속의말씀듣고].....평소에도 나그네 대접하기를 너그러이 힘써 하며, 뙤약볕 정오라 해도 오히려 하가의 은혜 누림 안에 있기를 힘쓰는 특심한 추구, 그 열심따라 <특이한 나그네>로 나타나신 주님, 그 생명 근원 은혜의 주님과 공명하는, 주님의 특별한 임재 느낌따라 아브라함의 감동하며 뛰노는 영혼, 주 앞에 저절로 엎드린다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나그네 대접하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20리터정도로 상당한 양!!]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Q께 드리는 자가 Q을 누림 = 교통의 원칙과 혜택]....세 스아(=한 에바)의 밀가루로 만든 떡((=식물 생명...또한 부활한 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 기름진 송아지, 버터, 우유((=동물 생명과 그 산물들....만찬 집회에서 누리며 드리는 바 그리스도의 풍성)) :::: Q과 사람에게 만족이 되는, 만유를 포함한그리스도의 풍성... 이것을 Q께 드리며 누림을 의미...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창3:7>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이는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셔서 묻고 계신 것이 아님...그 진의는 [네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위치-각도-태도-방향따라, <여호와에 대해 그저 들어본 적 있어서 피상적으로 앎이 아니라> 참되게 여호와를 경험적으로 체득하여 알고 동행하는 바로 그 자리... 산 믿음-교통-참생명의 자리에 있는가]를 묻고 계심...<하갈에게서 이스마엘 낳도록 아브람에게 주선한 이후 지금까지도, 사라로 개명해 주신 이 후에도 주님을 나의 주-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여 앎은 아직 없었기에<이삭 산출을 위해서 꼭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임...이 개인적인 주와 하나님으로 아는 체험이기에...이 점은 동정녀 마리아에게도 동일했다!!>, 개인적으로 만나주시려 묻고 계심..이 때 사라와 아브라함은 묻고 있는 나그네가 바로 주님이심을 직감했으리라!!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재확인 하시는 이삭 언약]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에덴(아단)...화사/사치/화려(보기좋음)...진미 맛봄(먹음직함)...기쁨과 즐거움, 생명 샘이신 Q 예배함 안에서 누리는 기쁨의 강/복락의 강수...또한, 더 나아가 부부의 성적 즐거움 누림까지 포함>이 있으리요.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주님 약속을 알렸다 하더라도, 그 때는 믿을 수 없었음을 의미 ...모든 가능성 끊어진 절망적 상태임을 씁쓸해 하며 자조하고 있음 인해 주님 말씀 들었을 때 <말도 안돼...=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거야>라며 속으로 그 발언의 주체이신 Q을 비웃게 됨..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속웃음<조소/비웃음>]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하여 빌다..[405주의친절한팔에].
**FacetoFace,Lord,LetMeKnowYou **나무엇과도주님을바꾸지않으리 **은혜아니면살아갈수가없네**아무도예배하지않는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너, 곧 나의]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주님의 (아브람 불러내심-아브라함이라 새 이름 주시고 할례<이는 창세전부터 만인의 대속 위해 희생의 어린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유일무이한 무죄하신) JC의 단 한번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통해 영원한 하나님 생명 공급자 되심 마으에 믿고 의지함으로 거듭닌 새 사람으로 날마다 새로이 새롭게 그리스도의 성분과 요소로 조성되어 감 통해 하나님 담는 합당한 그릇 곧 하나님생명과 말씀 누림 통해 하나니을 합당히 섬기며 공급하는 자 만들려 하심이요 오늘날 JC 이름의 세례임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창12장에서 보이셨듯이, 주께서 창세전에 택정해 두신 아브라함을, 주님이 정하신 그 때에 친히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부르신 목적과 그 약속 그대로 이루시는 주님이 정하신 구체적인 방법..미6:8]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여기 19절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을 창세전에 택정하시고 부르신 목적방법그 뜻 이루실 방법을 뚜렷이 밝혀 명시하고 계심...<천사들과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자신이 지금 그러하고 있듯이 공의와 정의를 행함으로써 여호와의 길(도) 지켜 행하도록 자식과 권속에게 가르치고 명령함 통해서 모두 함께 대대로 주님이 약속하신 바를, 강대한 (주님 소유인) 나라 이룸, 천하만민의 받을 바 복(주님 자신)의 통로 됨 이루기 위함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아브라함에게>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좀체로 떠나시지 않고 발걸음 옮기기를 머뭇거리시는 주님,<아브라함을 위해 롯을 보전-구원해 내고 싶으심> 그 마음을 아브라함이 느낌.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아마도 <아브라함 생각에>롯의 가솔 열명은 의롭게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던듯..
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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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 (개요)
본 장에서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나눈 또 다른 한 면담의 기사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할례법에 기꺼이 순종한 일에 대한 상급이었을 것이며, 지난번 면담이 있은 직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은혜로운 아브라함 방문과 그 방문에 대한 그의 친절한 환대(1-8).
2. 그들 사이에 이야기된 문제들.
(1) 사라에 관한 하나님의 사랑의 뜻(9-15).
(2) 소돔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뜻.
①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리심(16-22).
②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재(23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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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아브라함의 면담 (1)(창 18:1-8)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같이 나타나신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보다도 더 소탈하고 절친하며 별로 굉장한 위엄을 갖춘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의 한 인간과 같이 나타나신 때에, 곧 때가 차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찾아오셨던 저 놀라운 방문과도 매우 흡사하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배우자.
Ⅰ.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어떻게 기다렸으며, 그의 기대는 얼마나 풍족히 응답되었던가!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1절).
이는 휴식을 취하며 놀고 있었다기보다는, 그 곳에는 아마 나그네나 길손들을 숙박시킬 숙소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대접함으로써 선행의 기회를 찾기 위해 앉았을 것이다.
1. 우리는 지극히 자유스럽고 자발적인 선행으로 인해 가장 큰 위로를 얻게 되는 수가 있다.
2. 하나님께서는 기다림을 먼저 나타낸 그 사람을 은혜롭게 찾아 주시며, 그를 기다리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그 세 사람이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 세 사람은 하늘나라의 존재들이었는데 이제 인간의 육체를 빌려 나타난 것은,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게 하고 그와 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이는 그들 모두가 피조된 천사들이었다고 생각하며, 또 어떤 이는 그 중의 한 사람은 언약의 천사 곧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여호와라고 불러 그를 다른 천사들과 구별했다고 한다(3절). 바울 사도는 손님 대접을 장려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인용하고 있다(히 13:2).
자발적으로 나그네들을 대접하는 자는 천사들을 대접하게 되며, 말할 수 없는 영광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신중하고 공정히 판단해 보아 아무런 나쁜 의심을 품을 이유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에게서 좋은 것을 희망하고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 사랑의 교훈이다.
꿀벌(부지런한 자) 하나를 굶어 죽게 하지 않음이. 수펄(게으름뱅이)이나 장수말벌(성 잘 내는 자) 다섯을 돌보아 주는 것이 더 낫다.
Ⅱ.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어떻게 접대했으며, 그의 접대가 얼마나 친절히 받아들여졌는가를 보자.
성령께서는 아브라함이 그 나그네들에게 아낌없고 인정 넘치는 환대를 베풀었음을 특별히 유의하신 것이다.
1. 아브라함은 그들을 매우 공손하고 정중하게 대했다.
자기의 나이나 체면도 돌보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달려나가 영접했다”.
그들은 단지 품위 있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었으나, 아브라함은 갖추어야 할 모든 예절을 갖추어 “몸을 땅에 굽혔다.”
신앙은 아름다운 예절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증진시키며, 모든 사람들을 예우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정중한 예절은 경건을 표하는 훌륭한 장신구다.
2. 그는 지극히 정성스럽게, 그리고 성가실 정도로, 그들이 자기 집에 유하기를 간청했다. 그것을 큰 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3, 4절).
(1)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한 자들은 그들의 능력에 따라 손님 접대하는 일에 있어서도 도량이 크고 솔직하여 (인사말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친구를 환영한다.
우리는 즐겨 남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이나 사람은 모두 기꺼이 주는 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누가 먹으려 하겠는가?(잠 23:6, 7).
(2) 하나님과 사귀려 하는 자는 열심으로 교제를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간절히 바랄 만한 손님이다.
3. 그의 접대는 참으로 아낌없는 것이었지만 검소하고 소박했다.
거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진수성찬이나 진귀한 음식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의 식당은 나무 그늘이었고, 멋있는 식탁보도 없었으며, 식기나 찬장도 따로 없었다.
음식도 송아지고기 몇 접시와 화로에 구운 과자 몇 조각이었다. 그것도 급히 서둘러 요리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부유했고 그의 손님들도 정중한 분들이었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진미도 없었고 요리 종류도 그렇게 많지 않았으며, 양념된 고기나 특히 맛좋은 과자는 없었다.
그러나 맛있고 소박하며 위생적인 음식들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별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유의하자. 비록 음식이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좋은 음식으로 감사해야 하며, 꼭 진수성찬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런 음식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에만 마음을 쏟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4.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는 자기들에게 있는 최선의 것으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세심한 신경을 썼고, 또 분주했다.
사라는 손수 요리를 하고 아브라함은 달려가서 송아지를 끌어 오고 우유와 버터를 가져왔다. 그는 식탁 일 따위는 자기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1) 참으로 덕 있는 자는 위엄을 나타낼 필요가 없으며, 그 신중한 겸양의 태도로 그들을 경멸하지는 못한다.
(2) 진정한 우의는 죄 이외에는 어느 것에나 몸을 굽힌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겸손한 사랑으로 서로의 발을 씻겨 주라고 우리에게 교훈하신 바 있다. 자기 자신을 이렇게 낮추는 자가 높임을 받는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자체가 선행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1, 26).
믿음의 조상은 그 사랑과 관대함, 그리고 그 훌륭한 가정 관리로 유명했으니, 우리는 그에게서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배워야겠다(히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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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아브라함의 면담 (2)(창 18:9-15)
이 하늘의 손님들은 아브라함의 친절에 보답을 한다.
아브라함은 천사들을 맞이했고, 천사들에게서 그 보답으로 하늘나라의 은혜로운 소식을 듣는다(마 10:41).
Ⅰ. 사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했으니, 그 약속이 그녀에게서 이루어진 것이 틀림없다(히 11:11).
여자들이 남자들과 함께, 그것도 낯선 자들과 더불어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지 않고 자기 방에 들어앉아 있었던 것은 당시의 아름다운 관습이었다.
그러므로 사라가 그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말을 들을 수는 있는 곳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천사들은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다(9절).
그녀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들이 비록 나그네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충분히 암시했다.
그녀의 안부를 물어봄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에게 공손히 대해 준 자의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우정어린 친절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공중예절의 하나이며,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원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룩히 여겨야 한다.
또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그녀는 이것을 엿듣고 있었다) 그들이 앞으로 할 이야기를 그녀가 듣도록 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고 천사들이 말했고 “장막에 있나이다”라고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그 곳이 아니면 어디에 있겠습니까? 늘 있는 곳에 있으며, 지금 부르면 들릴 만한 곳에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1. 사라의 딸들은 그녀에게서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딛 2:5).
2. 자신의 위치와 의무를 지키는 자가 흔히 하나님과 그의 약속으로 위안을 받게 된다(눅 2:8).
Ⅱ.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이 반복되고 확인된다(10절).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지금 약속을 가지고 너를 찾았듯이 다음에는 약속의 실현을 가지고 너를 찾아오리라.”
하나님을 환영하고 하나님의 방문을 환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보답을 하신다.
곧 “내가 너의 친절에 보답하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여기에 반복되어 있다(14절).
이처럼 메시아의 약속이 구약성경에 반복되어 있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경건케 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마음은 믿는 데 더디므로 같은 뜻을 반복할 필요가 있다. 위의 말씀이 바로 바울 사도가 인용하여(롬 9:9), 이삭이 출생하리라는 것으로 이해했던 그 약속의 말씀이다.
다음을 기억하자.
1. 남들은 일반 섭리로 얻게 되는 바로 그 축복도 믿는 사람들은 약속으로 얻으며, 이 약속이 그들을 기쁘고 확신에 차게 만들어 준다.
2.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들은 저들의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그 약속에 의해 받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탄생된다(벧전 1:23).
Ⅲ. 사라는 이것이 너무나 기쁜 소식이어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그 때까지도 마음속으로는 믿을 수 없었다.
“사라가 속으로 웃었다”(12절). 이것은 아브라함의 웃음과 같이(17:17) 믿음으로 기뻐하는 웃음이 아니라 의심과 불신앙의 웃음이었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매우 다른 뜻으로 행해지는 수가 있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사라가 묵과할 수 없는 큰 방해물은 그녀의 나이였다. “내가 노쇠하였고, 생리적으로 보아도 해산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고, 특히 지금까지 임신하지 못하고 지내왔으며, (어려움을 과장하여) 내 주인도 늙었나이다.” 다음 사실을 배우자.
1. 사라는 아브라함을 그의 “주인”(lord)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말 중에 이 말만이 선한 말이며, 성령께서는 그녀의 정절을 이 말 속에서 발견하셨다. 그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아내들이 본받을 것으로 권면하고 계신다.
베드로전서 3장 6절에 이르기를,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였으니”, 그것은 존경과 복종의 증거라고 했다. 이처럼 아내는 그 남편을 경외해야 한다(엡 5:33).
말이란 물론 나쁜 말과 섞여 사용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말을 하는 자의 명예를 위해 고상하고 좋은 말을 늘 찾아내는 습관을 가져야겠으며, 나쁜 말은 사랑의 옷으로 덮어 줄 줄 알아야겠다.
2. 인간이 생각하는 불가능이 흔히 하나님의 약속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수가 있다.
감각세계의 난점 때문에, 참된 신앙인이라도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에 대한 신뢰가] 쉽사리 방해가 되고 방황하게 하기 일쑤다.
제2의 원인(현실세계)이 못마땅하게 보일 때 제1원인(조물주)에게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 참신앙이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불신앙과의 괴로운 갈등이 생기게 된다.
사라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히 11:11)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말해야만 했다.
Ⅳ. 천사는 그녀의 불신앙적인 무례한 언사를 책망했다(13, 14절).
1. 사라는 조금 전에 매우 친절하고 관대하게 천사들을 대접했으나, 그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마르다의 집에서 마르다를 책망했듯이(눅 10:40, 41) 책망을 받았다. 친구들이 우리에게 친절히 대해 주는데도 그들에게 매우 불친절하게 대함으로써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2. 하나님은 이 책망을 사라의 남편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전달하셨다. “사라가 왜 웃느냐?”
얼마 전에 아브라함에게 이런 약속을 준 것을 그가 그녀에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만일 아브라함이 약속의 재확인과 동시에 그 약속을 그녀에게 알려 주었더라면, 지금처럼 그녀가 놀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이유가 있다면, 서로를 [적절하게!!] 책망하는 것이 부부간의 의무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3. “사라가 왜 웃었느냐?”고 했다.
책망 그 자체는 꾸밈이 없었고, 배후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 되지 않도록(전 7:6) 우리의 웃음의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왜 웃었던가?”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의 불신임과 불신앙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대한 크나큰 죄다.
누가복음 1장 18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과 모순되는 감각적인 난점을 제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연히 악하게 보신다.
4. 인간의 모든 트집에 응수할 수 있는 한 질문이 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히브리어로는 “너무나 엄청나 할 수 없는”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곧 다음과 같은 뜻이다.
(1) 여호와께서 모르실 만큼 은밀한 일이 있겠느냐? 천만에, “속으로” 웃었지만 사라의 웃음도 그렇게 은밀한 것이 못 된다.
(2) 또 그의 능력이 못 미칠 만한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천만에, 늙은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 하는 일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Ⅴ. 사라는 어리석게도 자기의 허물을 숨기려고 애썼다(15절).
즉 어느 누구도 자기를 반박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사라가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이 같은 거짓말을 한 것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눈을 속이려 한 것은 헛된 일이었다. 수치스럽게도 “네가 웃었느니라”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1. 사라는 마음속의 불신임을 취소하는 것같이 보인다.
이제 그녀는 전후 사정을 통해 그 약속이 자기와 관련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약속임을 깨닫고, 그것을 의심하고 불신했던 온갖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말았다.
2. 그리고 그 위에 거짓말로 죄를 은폐시키려는 악한 시도가 또 있었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수치다. 그러나 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그것을 부인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책망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이런 함정 속으로 빠뜨린다. 이사야서 57장 11절에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거짓을 말하느냐?”고 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속이려 든다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밝힐 진리를 제시하실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수치가 되리라.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한다”(잠 28:13). 그것을 드러낼 그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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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아브라함의 면담 (3)(창 18:16-22)
하늘에서 온 사자들은 자기들의 용무를 이제 급히 서두르고 있다.
그들의 용무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은혜를 전해 주는 심부름이었다. 그것은 이미 전달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 앞에 또 다른 한 사명이 있다. 소돔을 멸망시키는 것, 그것이 그들의 할 일이었다(19:13).
긍휼하심이 여호와께 있듯이, 복수함도 그에게 속해 있는 그런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자. 그들이 위임받은 사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 “그 사람들이 소돔으로 향하였다”(16절).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를 보셨다(14:24)고 하심같이, 그들은 소돔을 대해 진노의 얼굴을 돌렸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오랫동안 묵인하시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저들을 모르거나 무관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이르게 되면 그들에게 얼굴을 향하리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 “그 사람들이 소돔으로 향하여 갔다”(22절).
그러므로 그들 중의 둘은 소돔에 가는 것을 알 수 있다(19:1). 셋째 번 천사는 아브라함이 그 앞에 섰었고 가까이 나아갔던(23절) 여호와였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처럼 천사들이 소돔으로 가기 전에 먼저 그들을 떠났고 또 아브라함이 그 앞에 나아갔던 여호와의 후광(shechinah), 곧 그가 전에 보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이었는지, 그것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다음 사실은 알 수 있다.
Ⅰ. 아브라함이 그의 손님들에게 베푼 예우.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갔다”.
이것은 그처럼 훌륭한 일행들과 헤어지기 싫었고, 그들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싶은 자의 행동이었다.
이것이 우리 친구들에게 보일 합당한 예의의 단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지시하는 것처럼, 전송이란 “하나님께 합당하게”(요삼 1:6) 행해야 한다.
Ⅱ. 천사들이 그에게 보인 예우.
하나님을 예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예우해 주신다.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시리라는 뜻을 그에게 전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문제에 관해 그와 거리낌없이 의논하셨다.
하나님은 전보다 더욱 친밀하게 그를 하나님과의 언약 속으로 이끄셔서(17장), 이제 전보다 더욱 친밀한 교제를 그에게 허락하신다. 그리하여 그를 의논 상대자로 삼으셨다.
1. 아브라함에 관한 하나님의 친절한 생각(17-19절).
소돔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그 이유와 더불어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시기로 한 하나님의 결의가 여기에 나타나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는 그런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는 자는 지혜를 얻게 된다(잠 13:20).
하나님께서 기쁘게 스스로에게 의논하심을 보라.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 숨기겠느냐?”(또는 어떤 이가 보듯이, “……것을 내가 아브라함에게 숨기고 있는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지 아니하고도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방식을 따라서 그 뜻을 친히 나타내신다.
그러나 왜 아브라함이 (하늘나라의) 국무회의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유대인들이 생각하기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허락하신 바 있으므로 그가 알고 동의하지 않고는 허락된 땅의 일부분인 그 도성들을 멸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두 가지 이유를 여기에 제시하셨다.
(1) 아브라함은 알아야 했으니, 그가 하나님의 친구요 총애받는 자이며, 또 그를 위해 특별한 자비와 큰 일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이 될 것이고, 더욱이 그에게서 나올 메시아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비밀이(KJV에는 “secret”로 되어 있음─역주)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시 25:14; 잠 3:32)는 것을 알아야겠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교하는 삶을 사는 자는, 비록 예언자적인 지식에 의해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분별 있는 실제적 지식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들은 현재의 문제도 남보다 더 훌륭하게 통찰하며(호 14:9; 시 107:43), 또 다가오는 일은 최소한 그들을 인도하고, 그 위안이 될 만큼은 깊이 예견한다.
(2) 아브라함은 알아야 했으니, 그가 그 권속들에게 알려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매우 잘 아노라.” “그가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할 것이니라”(19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일로 생각할 수 있다.
① 아브라함이 가진 성격의 매우 모범적이고 밝은 측면으로, 그는 자기 가족과 함께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학식 있는 사람이어서 그들을 가르쳤으며, 또 능력의 사람이어서 그들을 명령했고, 가정에서는 제사장이었을 뿐 아니라 예언자요 왕이었다. 여기서 다음을 살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그와 그 자손에게 약속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 약속에 준하여 그 권속들도 할례를 받았고, 그는 그들을 가르치고 잘 다스리는 일에 지극히 유의했다는 것이다.
가정의 축복을 기대하는 자는 가정의 의무를 깨닫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것이라면, 하나님을 위해서 소중히 양육되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이라면, 그의 역사(役事) 가운데서 그들을 훈육해야 한다.
둘째, 아브라함은 그 자녀들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권속들까지 돌보았다.
그의 종들도 교리 교육을 받은 종들이었다. 가장들은 자기 지붕 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실을 가르치고 보살펴야 한다.
가장 비천한 종들이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돌보아 주어야 할 귀중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셋째, 아브라함은 가정의 실제적 신앙을 향상시키는 일을 자기 관심사요 임무로 삼았다.
그는 기묘한 사색이나 회의적인 논쟁으로 그들의 머리를 채워 준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라”고 가르쳤다.
이는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성실하고, 헌신하며, 모든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정직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넷째, 그 중에서도 특히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들을 유의하고 있었다.
더욱이 자기와 같이 살고 있는 권속들뿐 아니라, 후대에 올 권속들이 자기가 죽은 후에도 여호와의 도를 지켜서 신앙이 그 가정에서 융성할 것을 염두에 두었다.
다섯째, 그가 이런 일을 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약속 조건의 이행이었다.
자기 의무를 깨닫고 있는 자만이 약속된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 소돔에 관한 뜻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는 이유는 아브라함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기 좋아했고, 자기 휘하에 있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 지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마 13:12; 25:29), 자기 지식을 선용하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2.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친절한 대화. 여기에서 하나님은 소돔에 관한 당신의 뜻을 그에게 알려 주시며, 그 문제에 관해서 하나님께 청원할 자유를 허락하셨음을 볼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소돔을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셨다.
“소돔의 부르짖음이 크다”(20절). 죄인들의 죄악은 큰 소리로 하늘에 부르짖어 복수를 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임을 명심하자.
소돔의 죄악은 부르짖는 죄악이었으니, 이것은 그 죄악이 매우 극성을 부리고 있어서 하나님을 향해 벌해 달라고까지 재촉한다는 것이다.
(2) 이 증거를 조사해 보셨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보고 알려 하노라”(21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심되는 일이 있거나 암중모색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식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신 것이다.
① 모든 재판 과정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공정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은 흔히 하나님의 방식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의 심판이란 영원한 뜻의 결과며, 결코 경솔하거나 갑자기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들도 알게 해야겠다. 하나님은 결코 소문이나 일반적인 평판, 또는 남들에게서 얻은 정보로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확실한 판단에 의해 벌하신다.
② 소송 사건의 시비를 심문하는 일에 최대의 관심과 정성을 보여 줌으로써 행정관들이나 당국자들이 사건을 판결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③ 어쩌면 이 판결은 아직 결정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따라서 그들을 위해 중재할 수 있는 여지와 용기를 아브라함에게 주시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중재할 자가 있지 않을까 하고 살피신다(사 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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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재(창 18:23-33)
하나님과의 친교는 말씀과 기도로 유지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에게 말한다. 하나님은 이미 소돔에 관해 작정하신 뜻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한 바 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소돔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릴 기회를 포착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시며, 또 기도할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임을 유의하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때는, 우리도 그 말씀에 대해 무엇을 말씀드려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Ⅰ.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엄숙한 태도로 말씀을 드리는 모습.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갔다”(23절). 이런 표현은 다음과 같은 암시를 준다.
1. 성스러운 관심. “그는 담대히 하나님께로 나아갔다”(렘 30:21). “소돔이 멸망받아야 한다면, 내가 그 도성을 위해 한 마디 좋은 말씀을 드릴 수 없겠습니까?” 하는 것이다.
2. 거룩한 신념. 그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갔으며, “왕족처럼” 가까이 나아갔다(욥 31:37). 우리의 본분인 기도를 드리려고 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며,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넘쳐야 한다(레 10:3).
Ⅱ. 이 기도의 총괄적인 범위. 이것은 우리가 성경의 기록 중에서 볼 수 있는 최초의 엄숙한 기도로, 소돔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아브라함은 소돔 사람들의 악을 몹시 증오했다. 그들이 그 땅의 가장 좋은 곳을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했더라도, 롯처럼 그들과 함께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을 위해 진지한 기도를 드렸다. 죄는 미워해야 마땅한 일이나, 죄인들은 불쌍히 여기고 위하여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자. 하나님은 저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니, 우리도 그것을 바라서는 안 되며, 그들이 재앙의 날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해야 한다.
1. 그는 소돔 중에 살고 있는 의인들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다. 특히 의로운 롯에 유의하면서 의인들이 공통적 재앙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를 했음이 분명하다. 아브라함에게 성실하지 못했던 롯의 태도는 이미 오래 전에 용서했고 잊었으며, 저번에는 칼로 구해 냄으로써 친절한 열의를 보여 주었던 그가, 이제는 그 기도로써 그를 구해 내려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2. 아브라함은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의인을 보아서라도 모든 사람을 구해 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친히 이 같은 요청에 호의를 보이셨고, 사실상 그의 첫마디 말에 응답해 주셨다(26절).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몸의 지체요, 적어도 온 인류는 한 몸을 이룬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가 한 형제들이다.
Ⅲ. 이 기도 중에 나타난 특별한 은혜.
1. 여기에 위대한 신앙이 있다. 효력 있는 기도란 신앙의 기도다. 그의 신앙은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정당한 사유를 아뢰며, 그의 입을 의논으로 가득 채운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의에 기초하여 신앙을 실행하되, 다음과 같은 일에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1)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 않는다(23절). 아니, “하나님께서 이같이 함은 불가하다”(25절)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의의 영예를 훼손하는 어떤 생각도 품으면 안 된다(롬 3:5, 6 참조).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① 이 세상에는 의인이 악인과 섞여 살고 있다. 가장 선한 자가 있는 곳에 흔히 악인들도 다소 사는 법이며, 가장 악한 자들 가운데도 선인들이 다소 있는 법이다. 소돔과 같은 곳에도 의인 한 사람 롯이 있었다.
② 의인이 악인들 사이에 있다고 하더라도,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악인과 함께 의인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그들이 동일한 재앙에 빠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최후의 날에는 구별이 되리라.
(2) 의인을 “악인과 균등히” 하시지 않으리라는 신념(25절). 비록 그들이 악인들과 함께 괴로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들과 같지는 않다. 공통적 재앙이라도 악인들에게 내린 것과 의인들에게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사 27:7).
(3)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시리라.” 의심의 여지도 없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이니, 그는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울 사도의 논증이기도 하다(롬 3:5, 6). 여기에서 다음을 명심하자.
① 하나님은 온 세상의 심판자다. 모든 것을 견책하시고 알고 계시며, 모든 것에 대해서 언도하신다.
②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의를 억제한다든가, 또는 부당한 것을 요구함으로써 어떤 사람에게도 악을 행치 않으셨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명심하자(욥 34:10, 11).
2. 또한 위대한 겸손이 있다.
(1)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깊은 의식.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27절). 31절에서 그것이 반복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주님”으로, 자신의 미천함을 “티끌”로 생각하면서, 자기의 대담성과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허락해 주신 자기의 자유에 놀란 사람처럼 말하고 있다. 다음 사실을 유념하자.
① 인간 중에 가장 위대하고 이름 있으며 공로가 있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에 지나지 않으며, 초라하고 미천한 존재이며, 비열하고 연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②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언제나 광대한 거리가 있음을 공손하게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은 영광의 주님이요, 우리는 땅 위의 벌레다.
③ 우리가 은혜의 보좌에 접근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허락받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삼하 7:18).
(2) 하나님의 노여움에 대한 무서운 공포.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30절). 32절에도 되풀이되어 있다. 다음을 명심하자.
①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끈덕지게 요구하는 행위는, 그들이 만일 자기들과 같은 인간들에게 그렇게 한다면 혹시 그들이 자기들에게 노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통해야 할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설사 우리가 어떻게 보이더라도 정직한 자의 “기도에 대하여는 노하지” 않는 분이시다(시 80:4). 그런 자들은 “그가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잠 15:8). 그는 씨름을 걸어 오는 자를 기뻐하신다.
②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 표징을 받을 때에라도 그 노여움을 사지 않도록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거룩한 것들을 범하는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신앙으로 무장하여 중보자를 우리와 함께 있도록 해야 한다.
3. 여기에 위대한 사랑이 있다.
(1) 소돔의 평판에 대한 자비로운 의견. 소돔이 심히 악하기는 했지만, 그 중에는 선한 사람들이 다소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악의 곳에서도 최선의 것을 희망할 수 있다.
(2) 소돔의 복리에 대한 자애로운 소망. 그는 자기의 모든 관심을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위해 은혜의 보좌에 쏟았다. 아브라함이 여기서 소돔을 위해 기도한 것과 같이 그렇게 진지하게 자신과 자기 가정을 위해 하나님께 변호한 일은 결코 찾아볼 수 없다.
4. 큰 용기와 깊은 신념이 있다.
(1) 그는 무례를 무릅쓰고 소돔에 있을 것이라고 자기가 생각한 의인의 숫자를 결정했다. 그는 50명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24절).
(2)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양보를 재촉했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많은 양보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많은 양보를 빌었다.
(3) 그는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조건을 제시했다(5개 도성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자비를 내려 달라고). 이 정도면 그들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지극히 적은 숫자였다.
Ⅳ. 기도의 성공. 그토록 씨름하던 그는 훌륭하게 이겼다. 일개 방백에 불과한 그가 하나님과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단지 간구하여 얻은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1. 거기에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자비가 나타나 있다. 의인의 낯을 인하여 악인들을 살려 두려 하셨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심에 있어서 그 얼마나 신속하신가 보라. 그는 이에 대한 이유를 밝히기까지 하신다. 선한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나 합심하여 선한 자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들이 축복받는 일이 있는가 살펴보라. 결코 없다.
2. 거기에는 아브라함에 대한 특별 은총이 나타나 있다. 곧 아브라함이 간청을 그만둘 때까지 하나님은 양보를 계속하셨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다. 그렇다면 소돔 성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성 전체가 살아남게 될 만큼 아브라함이 우세하게 되었을 때, 왜 그는 간청하기를 중지했는가? 다음 중 어느 한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 1년을 더 시험해 보았다가 열매 맺지 않으면, 그 열매 맺지 않은 나무는 찍어 없애자고 동의했던 “과원지기”와 같았으리라(눅 13:9).
즉 그만한 수의 의인이 없다면 마땅히 멸망받아야 한다고 인정했을 것이다.
(2) 아니면,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간구하지 못하도록 아브라함의 영을 억제시켰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단 어느 곳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나면,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렘 7:16; 11:14; 14:11).
Ⅴ. 상호협의의 중단(33절).
1. “여호와께서 가시니라.” 하나님의 환상이란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 앞에 하나님을 두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뢸 말씀을 마칠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는 일에 결코 싫증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사 59:1).
2.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베풀어 준 영예를 뽐낸 것이 아니요, 이런 일상외적(日常外的)인 대화 때문에 일상적인 임무과정을 버렸던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의 위치로 돌아와서 그 사건이 어떻게 될 것인가 지켜보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나타나 있지만, 소돔은 10명의 의인이 없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했다. 우리는 인간에게 너무 작은 기대를 걸어서도 안 되지만, 하나님께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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