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07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창15 횃불언약84-85세...씨<네 몸에서 날 자>가 예비된 땅을 소유하고 하나님 갈망하시는 영원목적 그 창대함 영원히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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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5장...84-85새 무렵


[심중에 품으신 것을] 그 입에서 발하여 내신 바 하나님  말씀은 항상 이미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나님 말씀을, 살아 생동하는 발휘하는 산 믿음 통해 붙들고 친히 이루어 내시는 성령따라 행하는 이마다에게] 주님은 친히 그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다..<그리스도의 어떠함의 충만, 그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이것이 바로 지성소 언약궤로 나타내신 바 그리스도의 짝 삼으신 단체적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몸, 유기적 공동체인 교회가 도달할 바인데, 믿는이에게 친히!! 이루시리니..오직 겸손히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앙망함으로 주와 동행하는자마다 바로 거기에 도달하게 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 영광의 반사/반영인 그 자신을 발견케 되리라>..시공 초월하시는 분, 곧 모든 차원과 우주만물 만유의 창조자 주권적 섭리자 초월적 지혜의 하나님, 마음에 두신 바 말해내자마자 모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바, 그분의 다리에는<신실하심 그리고 참이심> 이라 그 이름이 씌여 있다.


[결코 주님을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기억하라..하나님을 믿는다 함은 구주예수 십자가를 포함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여 이루셨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며 이루고 계심을 즉, 과거-현재-미래 모두에 걸쳐 말씀하신 바를 다 믿는 것임을....또한 참되게 믿는 이 그대의 마땅한 바는  이미 창세전부터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신 JC 그분의 이루어 놓으신 화목제<주와 하나됨의 교제 동행 가능케 하셨음> 속죄제<고백하는 죄마다 모두 사하심> 번제<구주의 어떠하심 바로 거기에 이르도록 완전히 자신을 온통 내어주심처럼 자신의 전존재와 주도권 내어드림>의 대속하심을 신뢰함으로 JC 를 살아냄인 것 이는 오직 제 소견에 옳게 보이거나 세상이 상식적으로 여기는 견해 따르거나 내가 그냥 하고싶어 하는대로 살아감이 아니라 모든 일에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친히 살고 계심 바로 그대로 주님으로 주 되시게 함 곧 주님 마음과 심정 따라 여쭙고 들은 그대로, 성령 이끄심따라 일절 오래참음으로 행할 때에만 가능함.

....그대가 비록 주께 나아갈 면목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때에라도 여기 횃불언약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 화목제-속죄제-번제 순서처럼  그 때라도 대속하신 구주 이름 부르며 나아와서 변론-굩옹하자 초청하시는 분아심을 믿고 나아오는 자마다  하나님의 끝없이 오래참고 기다리고 계신 바 그분의 사하심의 긍휼을 경험케 될 것이요 회복케 해 주시는 바 그대를 향한 주님의 지고지선의 부르심, 곧 영원하신 하나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됨 온전히 이루실 것...경험적 측면의 십자가 적용..먼저 당신께 나아오라 불러주심(사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곧 화목제)--속죄재--번제(오로지 그리스도로 살기 결단 갈2:20)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다[32만유의주재]...엘 깁보르(힘과 능력, 용사) 엘 아비르(전능자) 엘 트수르(반석과 요새) 추르(산성)....메시아(방패에 기름을 바름=마시아)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성문을 막는, 온몸 가리우는 보호.투명 다이아몬드 방패..: 엘 가난-->엘 마겐, 투리오스,shield..쏘헤라는 손방패>요 <네게 줄 바, 은혜 곧>너의 지극히 큰 상급[=사카르.보수. 임금, 보상]이니라...대적을, 그들의 발호를<미리 염려하며> 두려워 하고 있구나..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씨를 주심 통해 주께서 그의 상속자 산출하실 것 그로 인해  아브람 자손이 밤하늘 별들 만큼이나 많게 하실 것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한걸음 더 나아가 아브람 곧 그의 자손이 소유하게 될 땅 주심에 대해]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459누가주를따라]○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사백년 기간에 대한 영적 느낌) -- 이것은 현재 아브람의 몸 상태가 그 자체로는 절벽 곧 그 아무것에 대해서도  소망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바  영을 떠나 몸이 분리됨 곧 몸의 가사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하나님 경외함의 신앙생활이란 영으로 늘 새로운 영원한 부활 생명의 성령 안에서 순종함이어야 하고 그외의 것 곧 자행자지함은 살았다 하나 죽은 것이기에 생명 느낌이나 충족 줄 수 없고 오직 허망함뿐이니 오직 영을 사용하여 성령과 하나 되어 영으로 판단하며 믿음으로 동행할 때 삶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날 것.

.... 이 400여년 기간 동안에도 Q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지고지선의] 사랑겨운 약속을 따라서 그들을 대하셨음 :::: 오늘날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됨(보라!!, 거듭난, 참되게 믿는 이들의 영 안에 충만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확대되심으로써 영혼의 전 영역이 성령으로 적셔지고 성령의 운행과 움직이심에 전적으로 자기를 의탁하며 동행함 인해 그리스도 마음의 패러다임으로 그의 미덕이 충만 변화되고, (부활의 몸으로 변형시킴으로써 구속 이루실 바, 다시는 사망과 음부의 영향 아래 두지 않으실 것을 오늘 미리 믿음으로 확신하는 성도들에게는) 몸조차 이 땅에서부터 참된 건강 누림이(병듦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질병 중이라도 주께서 허락하신 정도 안에서만!! 그의 영적 유익을 위해 허용되고, 대적의 권세가 감히 그 몸을 완전히 주장할 수 없음) 가능하게 됨을 보이신다!!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영적 믿음 발휘함 안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따라 붙들고 이해하며 심령에 간직하며 명심함 통해]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실제로는430년임.(예언적 의미로 볼 것)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당시 평균적 수명100세..400년을 의미]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이미 550여년 후 일어날 출애굽사건을 예고해 주고 계심.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영생하시는 당신의 모든 영광 걸고 맹세하심 통해 편무언약 체결하심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겐 족속, 가인 족속 ...ynIyqe(7017, 케니) 

케니는 카인(@yIq' , 7014)에서 유래했으며 '겐 족속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15회 나온다.

이 종족이 아담의 아들 가인으로부터 형성된 것은 아니다(가인의 후손들은 홍수로 멸망하였다). 아마 그들의 직업이 금속 세공업이었으므로 그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들의 기원은 불확실하다(KD, Pentateuch, I, p.218).

이 민족은 가나안 족속들 중의 주민들로서(창 15:19) 그리고 후에는 미디안 족속 중의 주민들로 등장한다(민 10:29). 그러나 혈통에 있어서는 그 두 족속 중 어느 족속의 후손도 아닌 것 같다(KD, loc. cit.). 

가나안에 산 겐 족속은 발람이 저주한 이스라엘의 대적들 중에 들어 있다(민 24:21-22, 한글개역 "가인족"). 

모세와 십보라가 결혼하고 그 후 호밥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따라 나서게 되었을 때(민 10:29) 미디안의 겐 족속은 이스라엘과 연합하게 되었다(구약성경 중의 선택은 선택적이었으며 배타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또한 갈렙이 속한 유다족속(2:55)중에서 통혼하였고 가나안의 겐족은 그들의 남방 형제들과 동맹하였던 듯하다(참조: 삿 4장, 삼상 15:6, 기타 등등).

모세의 종교와 문헌의 소위 겐족 기원설과 관련하여 많은 사항들이 조작되어 왔다(참조: R. K. Harrison, IOT; R. G. North, 'The Cain Music). 

겐족은 특히 레갑과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레갑은 하나님을 향한 열성을 지닌 사람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예후는 그를 동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표본인 그와 일체가 되어(물론 그를 존경하고 있었고, 그를 이용하여 북이스라엘 왕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 땅에서 바알숭배자들을 일소하는 결과를 이루고 있었다(왕하 10:15-24).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유목 생활과 종교 생활의 질서를 수립하였다. 이 질서는 예레미야의 시대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레갑의 열심을 지속시켰으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바에 대한 하나의 살아 있는 실례로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렘 35장). 물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열심에 관한 것이었으며 유목 생활 방식에 대한 그들의 집착을 실례로 든 것은 아니었다.(L. J. Coppes) 

....예레미아 선지자는 레갑 족속의 (300여년전 조상인 여호나답의 유훈[=나실인의 서약]울 계속 신실하게 지켜 내려오고 있음을 [주의 말씀을 따ㅣ라서] 시험해 보고 칭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때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왕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였으므로 바벨론의 침략을 불러 일으킬 무렵에 일어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반역적인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후에도 계속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죄에서 돌아설 것을 종용하셨다. 그러면 그도 그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거두실 생각이시었다. 이 목적 때문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레갑 족속을 예로 든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별하여 다른 이스라엘 족속들과 같이 생활하지 아니하였다.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에서 자기들을 구별하기보다 엄격히 하였다. 그들은 본래 겐 족속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다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 (대상 2:55)고 하였다. 겐 족속들 중에 적어도 이스라엘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던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예였다(삿 1:6). 우리는 겐 족속들이 아말렉 족속들을 떠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삼상 15:6)(삿 4:17). 이들 겐 족속 중 한 집안의 명칭이 레갑이었는데 이는 그들 조상 중의 레갑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었다. 그의 아들이며 장남으로 요나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에 지혜와 강건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 사건이 있기 300년 전인 이스라엘의 예후 왕 시대에 활동하였다. 새로 등극한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동하였을 때 그가 요나답(한글 개역에는 여호나답으로 되어있다.:역주)을 이용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왕하 10:15, 16). 이렇게 한 것은 요나답과 같이 명망있는 인물을 병거에 자기와 함께 동승시킴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회유하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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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ram Promised a Son.15.

1 After these things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bram in a vision, saying,  “Do not be afraid, Abram, I am your shield; Your reward [for obedience] shall be very great.”

2 Abram said, “Lord [a]God, what reward will You give me, since I am [leaving this world] childless, and he who will be the owner and heir of my house is this [servant] Eliezer from Damascus?” 

3 And Abram continued, “Since You have given no child to me, one (a servant) born in my house is my heir.” 

4 Then behold,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him, saying, “This man [Eliezer] will not be your heir but he who shall come from your own body shall be your heir.” 

5 And the Lord brought Abram outside [his tent into the night] and said, “Look now toward the heavens and count the stars—if you are able to count them.” Then He said to him, “So [numerous] shall your descendants be.” 

6 Then Abram believed in (affirmed, trusted in, relied on, remained steadfast to) the Lord; and He counted (credited) it to him [b]as righteousness (doing right in regard to God and man). 

7 And He said to him, “I am the [same] Lord who brought you out of Ur of the Chaldeans, to give you this land as an inheritance.” 

8 But Abram said, “Lord [c]God, by what [proof] will I know that I will inherit it?” 

9 So God said to him, “Bring Me a three-year-old heifer, a three-year-old female goat, a three-year-old ram, a turtledove, and a young pigeon.” 

10 So Abram brought all these to Him and [d]cut them down the middle, and laid each half opposite the other; but he did not cut the birds. 

11 The birds of prey swooped down on the carcasses, but Abram drove them away.

12 When the sun was setting, a deep sleep overcame Abram; and a horror (terror, shuddering fear, nightmare) of great darkness overcame him. 

13 God said to Abram, “Know for sure that your descendants will be strangers [living temporarily] in a land (Egypt) that is not theirs, where they will be enslaved and oppressed for four hundred years. 

14 But on that nation whom your descendants will serve I will bring judgment, and afterward they will come out [of that land] with great possessions. 

15 As for you, you shall [die and] go to your fathers in peace; you shall be buried at a good old age. 

16 Then in the [e]fourth generation your descendants shall return here [to Canaan, the land of promise], for the wickedness and guilt of the [f]Amorites is not yet complete (finished).”

17 When the sun had gone down and a [deep] darkness had come, there appeared a smoking [g]brazier and a flaming torch which passed between the [divided] pieces [of the animals]. 

18 On the same day the Lord made a covenant (promise, pledge) with Abram, saying,  “To your descendants I have given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to the great river Euphrates—

19 [the land of] the Kenites and the Kenizzites and the Kadmonites 

20 and the Hittites and the Perizzites and the Rephaim, 

21 the Amorites and the Canaanites and the Girgashites and the Jebusites.”

===Footnotes

Genesis 15:2 Heb YHWH, usually rendered Lord.

Genesis 15:6 This was crucial to God’s plan of salvation, as can be seen in Rom 4. There was simply no way that anyone except Christ could ever be sufficiently righteous to meet God’s standards and avoid condemnation. Having faith in God and placing one’s trust in Him was not in itself something that could be a substitute for perfect righteousness, but God graciously determined to accept faith as an equivalent for that righteousness nonetheless. So in a sense, Abraham—and all believers since him, who are his spiritual descendants—received righteousness on credit, and the bill for that righteousness was paid by the death of Christ on the cross.

Genesis 15:8 Heb YHWH, usually rendered Lord.

Genesis 15:10 This was preparation for an ancient ceremony that formally bound two parties to an agreement or covenant (v 18). Reference is made to the ceremony in Jer 34:18, but details are not given elsewhere in Scripture.

Genesis 15:16 This prophecy was fulfilled when Moses led the Israelites back to Canaan after their four hundred years in Egypt. He was “in the fourth generation” from Jacob—Levi, Kohath, Amram, Moses.

Genesis 15:16 The most important and powerful group of that region. The name “Amorite” later became virtually synonymous with that of the inhabitants of Canaan. They were known for their many superstitious practices (according to the Talmud). 

Genesis 15:17 I.e. a large bowl or pan holding burning co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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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5장 (개요)

본 장에서는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세워질 언약에 관한 엄숙한 조약을 볼 수 있다. 전 장에서는 군왕들과 더불어 전장(戰場)에 나갔던 아브람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산 위에 있는 아브람을 보게 된다. 그가 앞에서도 위대하게 보였지만, 내 생각으로는 여기에서 더 한층 위대하게 보이는 것 같다. 전자의 영광을 이 세상의 위인들이 누린다면 “후자의 영광은 모든 성도들이 누린다.” 하나님과 아브람 사이에 정해질 언약은 약속의 언약이었다.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아브람에게 앞으로 나타낼 하나님의 자비와 후의에 관한 전체적인 보증(1).

2.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사랑을 베풀겠노라고 하는 특별선언 두 가지.

   (1) 수많은 후사를 주리라(2-6).

   (2)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리라(7-21).

상속할 자가 없는 소유물이거나 소유물이 없는 상속자란 아브람에게는 별로 위안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보장하신다. 그리고 이런 두 가지, 곧 약속된 씨와 약속된 위안이 이 위대한 신앙인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그 두 가지가 매우 귀중한 축복, 즉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의 전형이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아브람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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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 (1)(창 15:1)

Ⅰ.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이 조약을 맺은 시기. 그것은 “이후에”, 즉 다음 일들이 있은 후였다.

1. 친구와 이웃들을 고통에서 구출함으로써 관대한 사랑을 베푼 아브람의 훌륭한 행동이 있은 후였다. 그것도 “값이나 갚음 없이”(사 45:13) 행동을 한 후였다. 이 일 후에,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 그에게 임하셨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2. 네 왕과 싸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였다. 아브람이 그 승리로 인해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고 뽐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위해 보다 좋은 것을 마련해 두셨다고 말씀하셨다. 영적인 축복과의 신앙적인 대화는 지나치게 현세적 기쁨에 탐닉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는 훌륭한 방법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일반 섭리의 은사는 계약에 의한 사랑의 은사와는 비교가 안 된다.

Ⅱ. 하나님이 아브람과 함께 이야기하신 방법.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이는 곧 하나님께서 친히 그 뜻을 아브람에게 나타내셨다는 뜻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아브람이 깨어 있었다는 뜻이며, 속죄소에 눈에 보이는 여호와의 어떤 모습이 나타났거나 또는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감각적인 현현으로 임재했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계시 방법은 감각 세계에 거하는 우리의 상황에 맞추어 주신다는 점을 기억하자.

Ⅲ.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의 은혜로운 보증.

1. 하나님은 “아브람아!”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다. 이는 곧 아브람의 큰 영광이었으며, 그 이름을 위대하게 한 것이요, 그 신앙에도 큰 용기와 도움을 주었다.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들리고 우리의 심중에 울려올 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임을 명심하자. 말씀이 “오라, 모든 사람이여!”(사 55:1)라 하시고, 성령은 “아무여, 오라”(룻 4:1)고 하신다.

2. 불안해하거나 당황하지 말라고 아브람에게 경고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아브람은 자기가 궤멸시킨 네 왕들이 재규합하여 자기를 습격하고, 망하게 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두려워 말라. 그들의 보복이나 이웃들의 시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돌보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목할 것이 있다.

(1) 깊은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후 7:5).

(2) 하나님은 지금껏 은밀히 계셨다 하더라도, 자기 백성의 공포심을 감찰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아신다”(시 31:7).

(3)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두려움이든 그 두려움으로 인해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시온에 있는 죄인들은 두려워할 것이나 아브람은 두려워 말라.

3.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안전과 행복을 보증하셨으니,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는 안전이다. “나는 너의 방패라.” 또는 보다 강조하여 “나는 네게 방패이니라”고 말씀하시니, 그와 함께하시고 돌보시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신 분이다(대상 17:24 참조). 이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에게 대항하는 온갖 파괴적인 죄악에서 그들을 안보하는 방패요, 그들에게 준비가 되는 방패이며,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는 방패시니, 장래에도 그리할 것이며, 또 하나님의 백성들을 당혹케 하고 괴롭히는 모든 공포를 잠잠케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2)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시는 행복이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상급을 주시는 자일 뿐 아니라 상급(자체)이라는 것이다. 아브람은 소돔 왕이 제의한 보상을 기꺼이 거절했으나,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때문에 그의 상급이 상실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의미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① 신앙의 순종과 극기에 대한 상급은 지극히 큰 것이다(고전 2:9).

② 하나님 자신이 거룩한 영혼들의 선택되고 약속된 행복이 되니, 이 세상에서 택하여 내고 보다 나은 곳을 약속해 주는 행복이 되신다. 그가 곧 “그들의 상속과 잔의 분깃”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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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 (2)(창 15:2-6)

여기에는 아브람에게서 수많은 자손이 계승될 것을 허락하신다는 확증이 있다.

Ⅰ. 거듭되는 아브람의 불평(2, 3절). 이것이 그 약속에 대한 한 계기가 된다. 아브람을 몹시 괴롭히는 고통은 그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원통함을 여호와 앞에 토하며 자기의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한다”(시 142:2). 하나님께 불평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슬픔을 자세히 아뢸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신의가 두텁고 인정 깊은 친구에게 불평의 사유를 털어놓는 것은 무거운 짐진 영혼에게 다소간 평안을 준다. 그와 같은 친구가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의 귀는 항상 열려 있다. 아브람의 불평은 네 가지였다.

1.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아들뿐 아니라 “아무런 씨도” 주시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일 그에게 딸이라도 있었다면 그 딸로부터 약속된 메시아가 오셨을 것이며, 메시아는 그 여인의 씨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도 딸도 전혀 없었다. 그는 “내게”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이웃에는 자녀들이 많고, 자기 종들도 자기의 집에서 낳은 자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주께서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아브람을 총애한다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자녀가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다고 생각해야 함을 기억하자. 또한 하나님께서는, 흔히 하나님께 낯선 다른 사람들에게는 풍성히 주시는 현세적 즐거움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허락지 않으시기도 한다.

2. 자기에게는 앞으로도 자식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불평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암시되어 있다. “내가 자식 없이 가오니, 점점 늙어가고 언덕을 급히 내려가는도다. 오히려 그보다는, 나는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으니 세상 사람의 모든 길을 가고 있도다. 나는 자식 없이 죽는구나.” 70인역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는 세상을 떠나지만 내 뒤에는 자식을 남기지 않는도다.”

3. 지금으로서는 자기에게 있는 종들이 아들을 대신해야 할 형편이라는 불평이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었다.” 아브람은 그에게 자기 가정 일과 재산을 위임했고, 그 종은 신실했을 것이나 그의 충성은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의 충성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집에서 길리운 자”가 그의 후사가 될 것이며, 지금까지 그를 위해 수고했던 모든 것을 그가 다스리게 될 처지였다(전 2:18, 19, 21).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람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리라는 것(12:2)과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13: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이란 그가 낳은 씨인지 양자 삼은 씨인지, 즉 자기가 난 아들에 의해서일지, 단지 그의 집안 중의 한 아들에 의해서일지를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아브람은 “이제 여호와여, 만일 그가 양자에 불과하다면 내 종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 틀림없으니, 그로부터 계승됨은 약속된 씨에 대한 불명예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약속된 자비가 지연되는 동안, 우리의 불신앙과 초조가 그 약속을 부정하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쉽다는 점을 명심하자.

4. 아들이 없는 것이 굉장히 큰 고통이라는 불평이다. 즉 그것이 그가 향유했던 온갖 즐거움을 앗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내게 아들이 없다면 모든 것이 내게는 무의미합니다.”

(1) 만일 아브람이 현세의 즐거움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불평은 비난받을 만하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좋은 것을 주셨다. 그러나 약속을 통해 더욱 좋은 것을 그에게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신 직후에 신앙의 조상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無子)하나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지극히 큰 잘못이라 하겠다.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에 있다는 것의 이점과 하나님께 관심을 두는 일의 이점이 모든 세상적 위안의 결여를 능히 보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그 언약 관계와 관심의 이점을 올바로 평가하지 못한 자들이다.

(2) 그러나 아브람이 여기서 약속된 씨에 유의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의 욕망의 간절함은 매우 본받을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위대한 축복에 대한 보증과 자기와 메시아와의 관련에 대한 확증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했을 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기대를 품으라고 이미 아브람에게 격려해 주신 바 있었다. 그는 부귀와 승리와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요한 문제가 회의로 남아 있는 한, 모든 것이 그에게는 무의미했다. 그리스도와의 새 언약에 관한 우리의 관심에 어떤 충분한 증거를 얻기까지는, 다른 어떤 것으로 만족해서도 안 된다. “이것도 저것도 내게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이 나아간다면, 그 모든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 그러나 이런 불평은 비난을 받을 수 있으니, 그것은 그 불평의 저변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다소간의 불신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권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가 서로 일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는 종종 신앙인마저도 그것을 조화시키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는 점을 주목하자.

Ⅱ. 이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응답. 그 불평의 첫 부분에 대해서는(2절),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응답을 주시지 않았다. 그 불평 속에는 조급함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람이 다소 침착하게 자기 말을 고쳤을 때에는(3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로이 응답했다. 끊임없이 기도에 힘쓰되,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간구가 헛된 일로 끝남을 기억해 두자.

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들의 약속을 분명히 해 주셨다(4절). 네가 가장 염려하듯이, 너의 집에서 길리운 자가 “너의 후사가 될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난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1) 하나님께서는 후사를 만드신다. “이것은 아니 되리라, 이것은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자기의 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어떤 궁리와 계획을 하든,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2)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인자하시며, 오래도록 우리가 단념해 버렸던 긍휼을 다시 베풀어 주신다.

2. 이 같은 약속에 대한 보다 큰 확증을 주기 위해,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 내 하늘의 별을 보여 주셨으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5절)고 말씀해 주셨다. 즉 다음과 같이 되리라는 말씀이다.

(1) 그렇게 엄청나게 많게. 별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무수히 많이 보인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전혀 자식이 없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서 나는 자손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지리라고 보증해 주셨다.

(2) 그렇게 빛나게. 곧 찬란히 빛나는 별과 같이 되리라는 것이다. “저희에게는 영광이 주어지기”(롬 9:4) 때문이다. 아브람의 육신을 좇아 난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과도 같았으나(13:16), 그의 영적인 자손은 하늘의 별과 같이 엄청난 수효가 될 뿐 아니라 영광스럽고 매우 귀중하게 된 것이다.

Ⅲ. 하나님께서 지금 세우신 그 약속을 아브람은 확고히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열납하셨다(6절).

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라고 했다. 즉 언약을 주신 이의 저항할 수 없는 능력과 범할 수 없는 신성을 의지하여 지금 자기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의 진실성을 믿었다는 것이다. “어찌 그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 약속으로 위안을 받고자 하는 자는 그 약속을 신앙과 잘 조화시켜야 함을 명심하자.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은 아브람의 믿음을 찬미했으며 표본으로 삼았다(롬 4:19, 20). 그의 믿음은 약하지 않았다. 그는 약속을 의심치 않았다. 그는 믿음에 강했다. 그는 전적으로 확신에 찼다. 여호와께서 그와 같은 믿음이 우리 각자 속에 역사하도록 하신다.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여호와에 대한 그의 신앙은 약속을 주시는 여호와뿐만 아니라,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곧 약속된 주님에 대한 신앙이라고도 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곧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깨달아, 비록 매우 요원한 일이었지만, “여호와의 때 볼 것을 즐거워했다”(요 8:56).

2.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곧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고, 다른 족장들처럼 “믿음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히 11:4).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는 율법의 공로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롬 4:3; 갈 3:6). 아브람은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도 그처럼 의로웠기 때문이다. 선행을 그렇게 많이 한 아브람이 그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워졌다면, 그런 선행을 많이 하지 못한 우리야 더욱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아브람에게 의를 가져다 준 이런 믿음도 전에는 불신앙과 애써 싸웠으나(2절), 이제는 승리자가 되어 면류관과 명예를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바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확고히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일은, 새 언약의 대의에 따르면, 그 약속 안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축복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아브람처럼 모든 믿는 자들은 의로워진다. “그를 의롭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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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 (3)(창 15:7-11)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람에게 유업으로 보증해 주신다.

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관한 자신의 의도를 선언하셨다(7절). 아브람이 자식이 없음을 불평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않았다. 약속의 씨에 분명한 관심을 두고 있는 자는 약속된 땅에 대한 자격을 의심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라면, 하늘나라도 우리의 것이다. 또한 앞서 하신 약속을 믿었을 때(6절),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설명하고 확인해 주셨다. 가진 자가 (그것을 늘려) 더 많이 갖게 된다. 이 좋은 땅에 관해 아브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하나님은 그에게 세 가지 일을 상기시켰다.

1. 하나님 그 분은 누구냐? “나는 여호와로라.”

(1) 그러므로 “그것을 내가 네게 주나니, 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여호와이므로, 그리하여 모든 땅을 처리할 권리 또한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어떤 반대가 있더라도, 설사 아낙 자손의 반대가 있더라도, 나는 그것을 네게 줄 수 있느니라.” 흔히 있는 인간의 경우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떤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3) “내가 나의 약속을 네게 이루게 하리라.” 여호와는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민 23:19).

2.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위해 행하셨던 일. 하나님께서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 어떤 이는 “그를 갈대아 불에서” 이끌어 냈다고 한다. 이것은 저들의 우상 숭배(갈대아 사람들은 불을 섬기고 있었다)에서 끌어내셨던 것이든지, 또는 저들의 핍박에서 이끌어 내셨다는 뜻이다. 아브람은 우상 숭배를 거절했기 때문에 불길이 타오르는 화로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는 전설이 유대 저작자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그 곳은 아마 그런 이름에 합당한 곳이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효력 있는 소명을 주어 그를 거기서 이끌어 내셨고, 은혜로운 강권으로 이끌어 내셨으니, 타다 남은 그루터기같이 불 속에서 낚아채 주신 것이다.

(1) 이것은 특별한 자비였다. 즉 “내가 너를 이끌어 내고 수천의 다른 자들은 그 곳에서 멸망하도록 남겨 두었느니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부르셨다”(사 51:2).

(2) 그것은 영적인 자비로서, 그의 영혼에 대한 자비요, 죄와 죄의 치명적인 결과로부터의 구원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다.

(3) 이것은 새로운 자비다. 최근에 주신 자비다. 그러므로 더욱 감동적인 자비였다. 십계명의 서두에, 최근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라는 말씀이 있음과 같다.

(4) 기초가 되는 자비요, 자비의 시작이요, 아브람에게 특정한 자비다. 따라서 이것은 앞으로 있을 자비에 대한 공약이요 보증이다(사 66:9).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가를 보라. “나는 너를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이것은 권능의 행동인 동시에 은혜의 행동이라고 하나님께서 자랑하신 것이다. 오랜 후에 자랑한 것과 비교해 보라(사 29:22 참조). “그러므로” 아브람을 “구속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고”, 그를 죄악에서 구원하셨다.

3. 장차 그를 위해 행하실 바, “이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여기까지 이끌어 내었으니, 이것은 가장 친절하고 확실한 권리 부여다.”

(1) 선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 속에는 은밀하나 은혜로운 계획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모든 자비와 영광 속에서 그 사건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다.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다루는 온갖 일 속에서 계획하고 계시는 위대한 일, 그것은 바로 그들을 안전하게 하늘로 이끌어 주시는 것이다. 저들은 “구원을 얻도록 선택되었고”(살후 2:13), “하늘나라에 이르도록 부름 받았고”(살전 2:12), “기업을 잇게 하셨고”(벧전 1:3, 4), 모든 것으로 그것에 “합당하게 되었느니라”(골 1:12, 13; 고후 4:17).

Ⅱ. 아브람은 어떤 표적을 바랐다.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 무엇으로 알리이까?”(8절). 이는 사가랴의 불신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대한 불신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가 표적을 바란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1.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고 굳세게 하기 위해 그는 믿고 있었다(6절). 그러나 그가 간절히 빌고 바랐던 것은 “여호와여, 나의 불신앙을 도우소서”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가 믿었으나, 자기의 믿음이 앞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당하여 충격과 시험을 받을지도 모르므로, 그 유혹의 때를 대비하여 간직해 둘 어떤 표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을 바랄 필요가 있으며, 또 그래야겠다. 그 같은 목적을 위해 세워진 표적인 바 성례전을 행해야 하겠다(삿 6:36-40; 왕하 20:8-10; 사 7:11, 12 참조).

2. 자기 후손에 대한 약속에 승인을 얻기 위해. 그래서 그들도 그것을 믿게 되기를 원했다. 자신은 스스로 만족하더라도 남들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진리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보냈던 것은 자기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마 11:2, 3).

가나안은 하늘나라의 모형이다. 우리가 하늘의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일, 즉 그 행복의 진리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한다는 것, 그래서 하늘의 가나안을 계승할 우리의 권리의 증거를 점점 더 명백히 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Ⅲ.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희생 제물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셨다. “나를 위하여 암소를 취하라”. 그것으로써 그에게 표적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그것을 준비했다(9-11절). 아브람은 아마 하늘에서 오는 어떤 특별한 표적을 기대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희생 제물 위에다 표적을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확증을 얻고자 하는 자들, 또 자기 믿음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자들은 지정된 의식을 따르고 그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 만날 것을 기대해야 한다.

1. 하나님은 이 의식에 쓰일 각 짐승은 3년 된 것이어야 한다고 정하셨다. 그때가 되어야 짐승들이 충분히 성장하고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역시 우리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짐승과 새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지시하지 않으셨다. 이는 아브람이 제사법과 관습에 조예가 있어서 다른 특별지시가 필요치 않았든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고, 그는 그대로 주의깊게 지켰을 것이다. 최소한 여기에 암시되어 있는 바는, 아브람은 언약 승인을 위한 의식 때문에라도 제물을 준비해야 했고, 그것을 준비하는 법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3. 아브람은 비록 그것이 어떻게 표적이 될는지는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랐다. 이것이 그의 절대적인 순종의 첫 실례는 아니다. 언약 확증의 의식을 따라 아브람은 짐승의 중간을 쪼개었다(렘 34:18, 19). 그 성경 구절에는 그들이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4. 아브람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제물을 준비하고 난 다음, 파수대 위에 섰던 예언자와 같이(합 2:1), 이런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표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제사를 받으러 나타나지 않았어도, 아브람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지체된 것은 아브람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솔개가 그 시체 위에 내려와서” 쪼아 먹으려 할 때, 흔히는 이런 일을 소홀히 여기게 되지만, “아브람은 그들을 쫓아버렸다”(11절). 그 묵시의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합 2:3). 매우 조심성 있는 눈은 우리의 영적 제물을 경계하여, 어느 누구도 그것을 쪼아 먹도록 버려두거나 하나님 받으시기에 합당치 않은 것이 되지 않게 해야 함을 기억하자. 이런 솔개들처럼 헛된 생각이 우리의 제물 위에 내려올 때, 우리는 그런 것들을 쫓아버려 우리 안에 깃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방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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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 (4)(창 15:12-16)

아브람의 자손에 관한 하나님의 완전하고 상세한 목적이 기록되었다.

Ⅰ. 이런 발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그 때. “해질 때” 또는 “기울 때”였다. 이것은 “저녁 소제 드릴” 무렵을 뜻한다(왕상 18:36; 단 9:21). 해 뜨기 전 이른 아침, 아직 별이 보일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제사에 대한 명령을 내리셨다(5절). 생각건대, 그 제사를 준비하여 차려 놓는 것은 적어도 아침에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저녁때가 될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리면서 규례를 굳게 지켰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기가 베풀 위로를 그 백성들이 오래 기다리도록 하신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을 돈독히 하기 위함이다. 기도의 응답이나 약속의 실현이 늦어지는 수가 있지만, 필경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슥 14:7).

Ⅱ. 이 발표를 위한 예비적 일들.

1. “아브람이 깊이 잠들었다.” 이것은 피곤이나 부주의로 인한 보통 수면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것”(2:21)과 같이 하나님께서 준 무아경이며, 감각적인 사물의 시계(視界)가 완전히 차단되고, 온전히 영적 사물만 묵상하도록 한 것이다. 육체의 문을 폐쇄하고, 영혼을 은밀하고 한적케 하여 영혼만이 홀로 보다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신 것이다.

2. 이 잠으로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였다.” 이 얼마나 돌발적인 변화인가! 조금 전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주는 위안과 그와의 교제로 인해 자위하고 있었는데, 이제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의 자녀라고 하여 항상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구름과 어두움이 그들 주위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공포를 몰고 온 이 큰 어두움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도가 있었다.

(1) 아브람의 영에 경외하는 심정과 거룩한 숭앙을 지니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허락하신 허물없는 친교가 치욕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거룩한 두려움은 영혼에 거룩한 기쁨을 준다. 또한 종의 영(the spirit of bondage)은 양자의 영(the spirit of adoption)에 이르는 길을 예비한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상처를 주고 나서 고쳐 주시며, 낮추신 후에야 높이 올리신다(사 6:5, 6 이하).

(2)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들을 상대하시는 그 방법의 표본을 삼고자 함이었다. 아브람의 자손들은 먼저 애굽인의 노예라는 공포와 어두움에 처한 후에야 기쁨으로 복된 땅에 들어갔다. 따라서 아브람은 자손들의 행복을 예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고난을 미리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3) 이제 곧 아브람과 세울 특별언약의 성실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 언약에 기초한 것이 구약성경의 율법이니, 그 율법은 이렇다.

① 어두움과 불분명한 율법이며(고후 3:13, 14).

② 두려움과 공포의 율법이다(히 12:18 이하).

Ⅲ. 그 자체가 예언이었다. 여러 가지 일이 거기에 예고되어 있다.

1. 장기간에 걸칠 아브람의 자손의 고난상(13절). 아브람은 자기 식구들의 영예와 번창만을 자랑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된 자손들이 핍박의 씨가 되리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것을 먼저 보내 주신다는 것을 주목하자. 우리는 고난을 당한 후에야 지배권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악의 것에 도달하기 전에 그것을 미리 알게 하여, 그 일이 닥칠 때 당황하지 않게 해 주신다(요 16:4). 여기서 다음을 알 수 있다.

(1) 그들이 받을 고난의 구체적 내용.

① 그들은 나그네가 되리라. 처음에는 가나안에서 그랬고(시 105:12) 나중에는 애굽 땅에서 그랬다. 자기들의 땅에서 주인이 되기 전에, 그들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야 했다. 불안정의 불편은 즐거운 정착을 보다 큰 기쁨으로 맞도록 해 준다. 이와 같이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은 먼저 그들의 땅이 아닌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들이 되는 것이다.

② 그들은 종이 되리라. 애굽인들의 종이 되었다(출 1:13). 가나안인들의 운명이 아브람 자손들의 고통을 어떻게 드러냈는가를 살펴보라. 그들도 남을 섬기는 신세가 되었으나 가나안인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즉 가나안인들은 저주로 인하여 남을 섬기나, 히브리인들은 축복을 받아 남을 섬긴다는 점이다. “정직한 자가 아침에 다스리리라”(시 49:14).

③ 고난 받는 자가 되리라. 그들이 섬기는 자들이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 했다(출 1:11 참조).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사랑받는 자들이 흔히 악한 자들에게서 심한 괴로움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예견하고 인정하신다.

(2) 그들의 고난은 “400년간” 계속되리라. 이런 핍박은 애굽 여인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이삭을 핍박했을 때의 조롱으로 시작되어(창 21:9; 갈 4:29), 히브리인과 애굽인 서로간의 혐오감으로 계속되었다. 히브리인과 함께 식사하는 일이 애굽인들에게는 부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43:32). 그리하여 마침내는 히브리인의 새로 태어난 자녀를 죽이는 잔인한 살인에까지 이른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닐지 모르나, 400년간 핍박이 계속되었다. 그것은 오랜 기간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기간이었다.

2. 아브람의 자손들의 원수들이 받을 심판. “그 섬기는 나라 곧 애굽인들까지도 내가 징치할지라”(14절). 이것은 애굽의 재앙을 의미한다. 이 재앙으로 인해 애굽인들은 할 수 없이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던 온갖 고통에 대한 벌이 되었던 것이다. 다음을 알아두자.

(1) 하나님은 비록 핍박자와 압제자들이 지극히 오랫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린하도록 허락하시지만, 필경 그들을 헤아리신다. “그 날의 이름” 때문이다(시 37:12, 13).

(2) 핍박자들을 벌하시는 일은 곧 심판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재난으로 보응하시니,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행동이요 정의의 구체적 행동이다. 교회의 원수들을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다. “내가 징치할지라”. 하나님은 원수들을 심판하실 수 있으니, 그것은 그가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 또 그의 백성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것이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하신다(롬 12:19).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름의 방법과 때를 따라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3. 아브람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구해 내리라는 사실. 그 위대한 일이 여기에 예고되어 있다.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다음의 것이 약속되어 있다.

(1) 그들이 해방되리라는 것. “그 후에 네 자손이 나오리라”. 이것은 곧 400년간 그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예속이 끝난 후든지, 애굽인들이 심판을 받고 재앙을 받은 그 후에 그들에게 해방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압제자의 멸망은 피압제자들의 구원이다. 그들의 강압을 받기까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게 하지 않는다.

(2) 부유하게 되리라는 것.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출 12:35, 36).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복된 땅으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많은 재물을 함께 가지고 나오도록 돌보아 주셨다.

4. 가나안 땅에서의 복된 정착(16절).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뿐 아니라 “그들이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했다. 가나안 땅으로, 곧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그 땅으로 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들이 그 땅을 잠시 동안 차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권리 폐기는 아니다. 우리에게서 잠시 동안 위안이 중단된다고 하여 영원히 위안을 상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제4대에 이르기까지는 그 약속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 때문이다. 아모리 족속이 가나안 땅을 내놓기까지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었다. 그들의 멸망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의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을 그토록 오랫동안 죄악 가운데 버려두어 그 죄악의 한계에 이르게 하신다. 그것은 그들의 죄악과 멸망 사이에 어느 정도 공평한 균형이 드러날 때까지는 패망시키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때가 이르기까지는 아브람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1) 죄악의 분량은 점차적으로 가득 찬다는 점을 유의하자. 회개하지 않고 악의 길을 계속 걷는 자는 진노를 저축하고 있는 셈이 된다.

(2) 또 어떤 사람들의 죄의 분량은 서서히 가득 찬다는 점을 유의하자.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이었던 소돔 사람들은 즉시 그들의 분량을 채웠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의 분량을 즉시 채웠다. 그러나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의 분량이 다 차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3) 이것이 사악한 자들이 번창할 수 있는 이유다. 그들의 죄악의 분량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음을 명심하자. 하나님이 “그들의 죄악을 그 자손에게 갚기 위하여 쌓아 두시는” 동안, 악인들이 “살고 수(壽)를 누리고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욥 21:7, 19; 마 23:32; 신 32:34 참조).

5. 이런 일이 이르기 전에 아브람은 평안하고 조용히 죽고 장사되리라는 것(15절). 그는 생전에 그 복된 땅이 자기 가족의 소유지가 되는 것을 목격하지 못한 채 죽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했던 일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그의 생전에는 자손의 고난을 보지 않게 했고, 또 그 고난을 함께 당하지도 않게 했다. 이런 일은 요시야에게도 약속되었던 바다(왕하 22:20). 의인이 때로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당하는 것은 큰 은총이라는 것을 유의하자(사 57:1). 아브람은 다음과 같은 일로 만족했다.

(1) 그는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① 하나님의 친구요 그의 은총을 입은 자들까지도 죽음은 피할 수 없음을 기억하자.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람보다 우리가 더 위대한가?(요 8:53).

② 선한 사람은 기꺼이 죽음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끌려가는 것도 아니요, 강요당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그들이 가는 것뿐이다. 그들의 영혼은 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처럼 하나님이 도로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눅 12:20) 그들 자신이 기꺼이 맡긴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살기만 원하지는 않는다.

③ 죽으면 우리는 조상들에게로 간다. 즉, 우리보다 앞서 죽음의 상태로 가신 모든 우리 조상들에게로 간다(욥 21:32-33). 또 우리보다 앞서 축복의 상태로 가신 우리의 경건한 조상들에게로 가는 것이다(히 12:23). 전자는 죽음의 공포를 제거해 주고, 후자는 죽음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

④ 경건한 자는 언제나 평안히 죽는다는 것을 알아두자. 그의 길이 경건하다면, 그의 종말도 평안일 것이다(시 37:37). 결국 분명한 평화가 아브람에게 약속되었으니, 이후에 오는 것은 무엇이든 그의 생전에는 평화와 진리가 깃들일 것이다(왕하 20:19). 하나님과의 화해와 영원한 평화가 모든 그의 자손들에게 있을 것이 확실하다.

(2) 그는 “장수하다가 장사되리라.” 이것은 아마 그가 그곳에 묻힐 것이라는 말이리라. 즉, 가나안 땅은 그에게 약속된 곳이다. 왜냐하면 그가 장사된 곳은, 그가 가나안에서 처음에 소유했던 그 땅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는 평안히 죽게 될 뿐 아니라, 명예롭고 고상하게 죽을 것이며 정중하게 장사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안히 죽을 뿐 아니라 알맞은 때에 죽으리라는 것이다(욥 5:26). 다음을 주목하라.

① 장수는 축복이다. 그것은 제5계명에 약속되어 있고 인간의 본성에도 즐거운 것이며, 또한 유용한 일을 위한 좋은 기회를 주기도 한다.

② 행복하게 장수한다는 것은 특히 그렇다. 아브람은 행복하게 장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 그는 생에 염증을 주는 심신의 질병 따위가 없이 나이 들었고, 건강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연로하나 거룩했고, 하나님을 오랫동안 따라다닌 제자(행 21:16)였으며, 그의 백발은 “의로운 길에서 얻은” 것이며(잠 16:31), 나이 들었으나 쓸모 있었고, 경건의 유서 깊은 모범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장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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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아브람의 언약 (5)(창 15:17-21)

Ⅰ. 그 언약은 승인되었다(17절). 드디어 해가 지고 어두워졌을 때 아브람이 바라던 표적이 주어졌다. 구약의 율법은 어두운 율법이었기 때문이다.

1. “연기 나는 풀무”는 애굽에서 그의 자손들이 당할 고생을 의미한다. 곧 그들은 불 가운데서 고생하면서, “쇠풀무 가운데”(신 4:20), “고난의 풀무에”(사 48:10) 거했었다. 그들은 연기 속에 있었고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자기들의 고생이 언제 끝날는지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실 바를 깨달을 수 없어 당황했다. 구름과 어두움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2. “타는 횃불”은 이런 고난 속에서 주어진 위안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연기 나는 풀무”를 보여 주시는 것과 동시에 이 “타는 횃불”도 보여 주신 것이다.

(1) 빛은 풀무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들의 구원은 “횃불”과 같았다(사 62:1).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려고 내려오셨을 때, 하나님은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 떨기나무 속에 나타나셨다(출 3:2).

(2) 횃불은 연기 속에서의 지시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횃불이요, 아브람에게 주신 이 말씀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어두움 속에서 빛나는 빛이었다. 아마 이 불타는 횃불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예시해 주신 것이리라. 이것은 그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기둥이다.

(3) 타는 횃불은 그들을 오래도록 풀무 가운데 던져 놓았던 그 원수들이 멸망함을 뜻한다(슥 12:6 참조). 이스라엘 사람을 빛나게 한 바로 그 구름이 애굽 사람들을 번민 속에 불타게 했다.

3.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와 맺은 언약을 확증하는 것이요, 약속하신 바는 분명히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아브람이 확실히 믿게 하여 그에게 확고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아마 쪼개진 두 조각 사이로 지나간 그 풀무와 횃불은 그 제물을 불태워 소멸시킴으로써 그 제사를 완전케 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셨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리라. 그것은 기드온의 제사(삿 6:21), 마노아의 제사(삿 13:19, 20), 그리고 솔로몬의 제사(대하 7:1)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다음을 의미한다.

(1)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은 제사로, 곧 위대한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지는 것이며, 속죄함 없이는 어떤 계약도 있을 수 없다.

(2) 우리의 영적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은, 앞으로 계속 우리에게 내려질 선하고 신실한 은총의 표적이다(삿 13:23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사를 통해 우리 영혼 속에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거룩한 불길을 붙이셨다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제사를 열납하셨음을 알 수 있다.

Ⅱ. 그 언약은 반복해서 설명된다. “그 날에”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운” 그 날은 결코 잊지 못할 날이었다. 그 날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18절) 아브람에게 약속을 주신 날이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타나 있다.

1. 허락한다는 이야기. 하나님께서 이미 전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 13:15)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그것을 (이미)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뜻이다.

(1)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한 약속을 주었고, 그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서 나누어 가졌으니 취소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또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 땅의 소유권은 마치 실제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나 다름없어서, 때가 오면 그것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분명하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고 했다(요 3:36). 믿는 자는 이미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이 분명히 거기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2. 허락하는 세부 사항의 진술. 이런 일은 땅을 양도할 때는 흔히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려는 땅의 경계를 일일이 이름을 들어 나열했다(18절). 땅의 양도 때 흔히 그렇게 하듯이, 보다 명백히 하기 위해 그 땅의 현재 소유자와 점유인을 또한 언급하신다. “아브람의 자손”에게 내주기 위하여 쫓겨나야 할 수십 민족이나 족속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19-2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을 당시는 이 모든 땅이 그들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 때의 경계는 훨씬 더 협소하게 정해져 있었다(민 34:2, 3 이하).

(1)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서는, 그들의 관할 경계가 최대로 확장되었다(대하 9:26).

(2) 또한 그들이 그 모든 지역을 보다 속히, 보다 오래도록 소유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 자신의 과오 때문이었다. 그들은 죄악과 태만으로 자기들의 권리를 빼앗겼고, 비겁하여 그 권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여기서 허락된 그 땅은 충분한 여유가 있는 하늘나라 상속을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허락의 경계가 최대한의 범위로 기술되어 있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현재 소유자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수효와 권세와 오랫동안의 취득시효는 알맞은 때에 이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한 민족에게 많은 민족들의 소유지를 내주심으로써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토록 귀중했고, 그토록 영예로웠던 것이다(사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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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믿음의 의

[1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異像)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너의 상은 매우 크도다]. 

<30)히브리어 원어성경의 마소라 액센트가 그러하다. NASB 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온 후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다. 

이상(異像)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별하게 계시하시던 옛날의 방식들 중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꿈이나 이상(異像) 등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민 12:6).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이상 중에 하나님을 뵈옵게 되니 두려웠을 뿐만 아니라, 아마 북방 연합군이 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는 너의 방패니라”고 말씀하셨다. 

방패는 전쟁에서 적군의 칼과 창을 막는 무기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침략자들의 공격을 막아 주시고 그를 지켜 주신다는 뜻이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시 18:2).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람에게 “너의 상은 매우 크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아브람이 조카 롯를 위해 행한 헌신적 수고와 전쟁노획물에 욕심을 부리지 않은 선한 행위에 대해 큰 상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사람의 선행은 보잘것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상을 주신다.

[2-5절]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無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난]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때까지 그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브람은 자기 집에서 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그의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3절에 ‘내 집에서 길리운 자’라는 원어(벤 베시 )는 ‘내 집의 아들’이라는 말이며 영어 성경들은 ‘내 집에서 난 자’라고 번역하였다(KJV, NASB). 

그는 아브람의 집에서 종으로 나서 길리운 자이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 엘리에셀이 그의 상속자가 아니며, 그의 몸에서 날 자가 그의 상속자가 될 것이며, 그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같이 셀 수 없이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의 말씀과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을 그의 의(義)로 간주하셨다. 

그는 아브람의 선하고 의로운 행위를 의로 간주하지 않으셨고 그의 믿음을 의로 간주하셨다. 

사람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 간주될 만큼 완전치 못하며 부족투성이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선행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아브람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의 본이 되었다(롬 4:1-3). 아브람의 믿음은 컸다. 

그는 그와 그의 아내가 늙었고 자녀 출산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다. 

로마서 4:19-21,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그의 약속과 그의 능력과 그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이다.

[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그는 가나안 땅을 그에게 기업으로 주기 위해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12:1에 기록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명령은 단지 하란에서가 아니고,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이나 그의 부친 데라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다(창 11:31). 

이 사실은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레위인들의 기도에서도 고백되었다. 느헤미야 9:7,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8-11절]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와 3년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死體)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확증의 표를 요청했다. ‘무엇으로’(밤마 )라는 말은 그의 불신앙을 나타내기보다 믿음을 위한 확증의 표를 구한 것이다. 훗날에 기드온이나 히스기야도 비슷한 요청을 하였다(삿 6:37; 왕하 20:8).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3년된 암소, 3년된 암염소, 3년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제물로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람은 그것들을 준비하고 그 중간을 쪼개었다. 제물의 중간을 쪼갠 것은 언약을 맺는 당사자 어느 한 쪽이 그 언약을 어기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이었던 것 같다(렘 34:18-20). 솔개가 제물의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그것을 쫓았다.

[12-14절]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懲治)[심판,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 이방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400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며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하심으로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다 이루어졌다. 당시에 그들은 애굽에서 심한 학대와 고통을 당하였고(출 2:23-24), 그들은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 만에 그 고통과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왔고(출 12:40), 나올 때 큰 재물을 가지고 나왔다(출 12:35-36).

[15절]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또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너는 장수하다가 장사되리라](원문, KJV).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표현은 사람의 영혼이 몸의 죽음 후에도 계속 존재하며 어떤 장소에 모임을 암시한다. 이것은 영혼불멸에 대한 한 증거이다. 

사람은 몸을 가진 자일 뿐 아니라, 불멸적인 영혼을 가진 자이다. 

영혼은 몸이 죽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곳에 집결된다. 성경은 그 장소가 천국과 지옥이며, 의인의 영혼은 천국에 올라가 몸의 부활 때까지 쉬지만,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워 마지막 심판 때까지 고통을 당한다고 증거한다(눅 16:19-31).

[16절] 네 자손은 4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4대 만에’라는 말씀도 그대로 성취되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때로부터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에 이르는 4대째에 그들은 애굽에서 나왔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땅의 여러 족속들을 대표하였다(창 48:22; 왕상 21:26; 암 2:9-10). 

아브람은 당시에 아모리 족속 곁에 살고 있었다. 창세기 14:13은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고 말한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는 말씀은 오랜 후에 있을 가나안 땅의 정복이 그곳 거주민들의 죄악의 많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일 것을 암시한다. 과연, 레위기 18:24-25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 모든 일[심히 음란한 일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오랜 세월이 흘러야 이루어질 것이었지만 그대로 성취되었다. 

신약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 즉 주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국의 약속도 꼭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7-21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쪼갠 제물들 사이로 지나는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은 하나님을 상징한 것 같다(출 3:2). 그것은 아브람이 하나님께 요청한 하나님의 표증이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다시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 그 땅의 경계와 당시에 거기 살고 있었던 열 족속들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후에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의 그 경계까지 거의 영토를 확장했었다(삼하 8:6, 14; 왕상 4:21, 24).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패이시며 우리의 상급이시다. 

그는 자신이 아브람의 방패이며 아브람의 상이 매우 크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환난과 시험이 많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대적들도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방패가 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상은 크다. 예수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계 22:12). 우리는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약속하신 상을 기대하며 열심히 믿음으로 살고 의와 선을 행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의롭다 하심의 복을 주셨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그의 의로 간주하셨다. 우리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는 이치도 비슷하다. 우리의 행위는 늘 부족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된 우리에게 복된 기업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경계가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라고 말씀하셨고 그 땅에 거하는 열 족속들을 언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지금 하늘에 간직된 기업(벧전 1:4)을 약속하셨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21장에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천국의 예표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사모하며 바르고 충성되게 살자.

===[[횃불언약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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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14까지에 나오는 것은 <만복 근원 주 하나님이 친히 어떻게 아브라함의 생존을 위하시며 이를 위해 그 어떤 복을 주시는지에 대한 기술이었음.
......그러나 이제, 15장-22장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성취에 있어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쓰고자 하시는지 볼 수 있음...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은혜가 [절대적으로]필요함을 보여주고 계심..
....즉, 환경적/외적 측면에서는 외적인 축복(하나님 자신이 바로 아브라함의 모든 공급자이시며 방패되심)과 아울러 속사람, 곧 내적 방면에서는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심(great reward....실상, 이것은 오직 은혜, 곧 자신을 주입해 넣어주심 통해 하나님의 영원목적 성취를 위한 실체를 가질 수 있도록 그분 자신을 아브라함 안에 역사해 넣어주시려 하심... 이 방면이 바로 은혜로 오신 그리스도임.......이른 바 GRACE는 Great Reward At Christ' Excess이다).
.....곧 바로 이 말씀을 아브라함은 씨=후손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몸이 노쇠하였으나 주께서 <원하시면>얼마든지 <노쇠한 그의 몸으로도 얼마든지>생명 산출케 하실 수 있음을 믿었고, 하나님은 이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신다...((즉, 마치<내 너의 믿음을 보건대, 이제 내 짝 될만하다>고 인치시는 것 같다)).
..그러나,아브람은 곧 믿음이 아직은 부족함을 드러낸다..*7....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8..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네 후손이라 하실 때 후손이 바로 씨이다)씨앗을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후손들이 살아갈 생활터전이 바로 땅이다)땅을 말씀하심은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의 영원 목적 이룸에서 필충조건이기 때문..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아브라함에게 주시는 복으로서 씨(후손)와 땅(생활터전)을 주시려 함에 대해 12장부터 벌써 3차례 언급이 있었음..., 그런데, 주의할 점 하나는 씨와 땅 모두 그리스도를 말한다는 것...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직 후사도 보지 못했는데..하며) 움추러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씨앗임은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다(그리스도=말씀=생명=씨앗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땅[생활 터전, 곧 생활이 이루어지는, 씨앗이 자라고 열매 맺고 단체적 그리스도로 성장성숙케 되는, 그의 몸으로 실지로 기능하는 교회를 가진, 머리이신 그리스도]임을 이해하고 믿을 때 하나님의 영원목적 이룸 위한 실체가 나타난다....또한, 땅은 예표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의 안식처(터전)이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모든 대적을 멸하시는 <요새-군사 기지>요, 동시에 그분을 대표하고 표현하기 위한, 그분의 처소이자 왕국을 세우는 기반이자 장소이다. 
===[나는 죽고<내가 하고 싶은대로, 곧 제 소견에 옳은대로, 자행자지함의, 나의 옛자아로 사는 삶 포기..고전15:31> 그리스도로 사는 <주 그리스도따라 그분의 뜻하신 바 그대로 따르는 종의, 연합하여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사는> 삶..갈2:20 ]...이것은 참 생명 삶의 교회 생활 통해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거처인 새 예루살렘을 도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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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5장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씨는 오늘날 단체적인 그리스도(믿는이들의 유기적 공동체)이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땅은 부활하시고 높여지신, 놀라운 그리스도이시다....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며, 우리의 대적을 그 이름으로 멸하며, 또한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왕국을 세우시며 그분이 표현되고 대표될 수 있는 거처를 건축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씨를 가지게 될 것을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즉시 믿었다.(15:6)..아브라함이 씨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한 그의 믿음을 하나님은 그의 의로 여기셨다. 그 당시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그에게 씨를 주시리라는 것을 <진실로>믿었고, 바로 그 믿음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후 곧 이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약간 실족하여 이렇게 말했다..[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업으로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그는 씨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믿을 수 있었지만 땅에 관한 그분의 약속은 (아직!!) 믿을 수 없었다.
.....원칙은 오늘날도 동일하다. 그리스도가 ㄱ 씨임을 믿기는 쉽지만, 그리스도가 땅이심을 믿기는 어렵다...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교회생활(우리의 안식처---대적을 멸하는 기지/요새/좋은 땅---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고/가져오고 그분의 거처 건축을 위한 근거 기반과 토대)이심을 믿는 것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심을 믿기가 더 쉽다.
....이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과 언약하심으로써 그분의 약속을 확증하심(15:9-21....이른 바 횃불언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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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5다섯 마리...하나님께 합당함..책임의수5=TUQ.부활의수3+증인됨의수2]] 예물의 구성에 주목하라....제물은 모두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3년된 암소(화목제물), 3년된 암염소(속죄제물), 3년된 수양(번제). : 이들은 쪼개어짐...화목제물<노기 가라앉힘>--속죄제<죄문제 헤결>---번제<완전한 헌신> :: 숫자 3은 부활을 의미하는 수..이미 구주의 영원한 부활 생명 안에서 위 제물들이 인정되고 받아들여짐을 의미..
.....산 비둘기(고난 의미) 한 마리 + 집 비둘기(믿음 의미)한 마리, 곧 부활 안의  두 증인을 의미
.....제물들이 준비되었을 바로 그 때, 공중의 새가 내려와서 먹으려 함 = 공중의 새인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능력 없애려고 왔음을 상징..(갈5:2,4...골2:8, 고후11:13-15)
---아브라함과 언약 세우심은 그리스도의 예표인 제물들을 통해서였음
....제물들을 다 배열해 놓은 후, <해질 때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 했다(12)>....바로 이때, 하나님이 오셨다.....주님 친히 임하심은 연기 나는 풀무(제련 위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빛을 밝히고 비춤) 나타나서 쪼개 놓은 고기 사이를 통과하여 지났다.... 바로 <믿는 자 그 누구라도 처할 수 있는...약속 이룸 더딘 듯 느껴지고 온존재는 피곤-노쇠 가운데 졸리고 깊은 잠이 엄습해 오고 어둠 속에 있게 됨 임해 존재 멸절감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귀가 이긴 것 같은,  존재 멸절 예감, 곧 육이 죽어야 영이 살아남의, 오직 주님 보심처럼 나는 단지 정말 죽기에 합당한 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의 구원하시는 자비 통한 하나님 생명 갈망함의 어둔밤 경험시기> 그 때<어둔 밤>에 일하시는 하나님이 손수 나타니셔서 성도를 연단하시며 동시에 빛을 비추신다....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고 실행하실 것을 보이시며 확증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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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입은 모든 자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와 동일시 됨 +그리고 실지로 <성령따라 살아갈 때> 마침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까지 변화시켜가심 ....:천연적인 것이 발 붙일 수 없음....천연적 사람 그 자체로는 그 누구라도 교회 생활하기란 불가능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에 의해 진정 하나인 것이다..그분 안에서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분의 부활생명 안에서 싹 터 나와 살고 있는 우리는 진정 하나이다.. 하기에, 구주 십자가로 끝난 옛사람이 무덤에서 나올때마다 꾸짖고 대적하여 물리침이 마땅하다..곧 갈2 : 20의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가 선포되는 것이다.
==택한 후사의 고난받음==400 =40*10...이 때는 밤인 것..
출애굽사건은 야곱의 애굽 입성부터는430년, 요셉 모르는 왕의 박해부터는 400년 후에 발생했고..가나안 점령까지 도합40+10=50년이 더 걸렸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원목적,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이라 스스로 칭하심을 통해 의미하는 바를 잘 배우도록 하자
....(하나님의 다루심과 통제를 제자됨생명 안에서 주님의 참 제자됨의 훈련 받고 있었음을 기억하라..그는 가나안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에서의 소식을 들었고 두렵고 답답한 마음으로 홀로 주님과 직면하게되는데,  얍복나루에서 주님의 사자와 중도포기 없는  씨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복 빎, 축복은 다름 아니라 참 소망 하나님만이 지고지선의 진복과 생명이심을 인정하고 주님 친히 통치하여 주시기를, 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용기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강한 용기와 새로운 의지를 주시도록 구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왕자란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게 됨을 본다.  이로써 야곱에게서는 하나님의 형상 표현을, 요셉에게서는 하나님을 대표함의, 하나님의 통치를 보게 되는 바, 야곱과 야곱 안의 요셉은 하나로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대표함에 이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 이식 야곱의, 곧  부활생명 하나님, 지고지선의 뜻 반드시 이루시려는 주권적 섭리와 자녀에게 꼭 필요한 주권적 섭리 안에서 육신, <곧 타락사건 이후 타고나는, 주님을 떠나 스스로 살아보려 하는, 주님 통제에 반역하게 하는 사탄적 제반가치들>으로 사는 것을 십자가로 처리하고 <육에 대해 죽고 성령과 말씀, 곧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자로 거듭나고 성장성숙함에 반드시 필요한 합당한 다루심을 예비하사 그 성품 훈련학교를  거치도록 하심, ...그러므로, 때때로 기록된 말씀만 가지고는 다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으나  성경은 말씀 하나 하나가 모두  <가시적-비가시적 모든 차원, 미시적 거시적 모든 우주 만물 만유를 창조하시고 유지 운영 보존하고 계시며 결코 땅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영생 자존하시는 관계적 인격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 이름 성품 곧 당신의 모든 요소와 성분을 남김없이 다 쏟아 넣으셨기에(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믿고 열어주시기를 요청하며 끝까지 신뢰하며 <하가-시하의> 묵상과 기도 찬양 예배로 나아가 붙들 때마다 진실로 그러함을 감동 감사 감격 환호 전율 공명 공진됨으로 그 가운데 발견케 될 것 ...징계, 곧 다루심 없이는 타락의 심도가 너무 깊어서 타락이후 천연적인 그 모든 어떠함, 타락한 사탄적 체계요 그 표현인 세상의 가치와 문화 조류 사고방식 그 자체가 창조주 여호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워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길-진리-빛-생명인 영생 구원 말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 안에 두신 그분의 나라에 대한 그 누구도 제거할 수 없는 영원 목적 추구- 발견-누림에 대한 뿌리깊은 갈망으로부터 인류를 미혹하여 공멸케 하려는 사탄의 미혹과 유혹 체계를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러 증거궤의 반쪽,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 새 예루살렘에 합당한 작은 그리스도들의 유기체적 생명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반드시 거치게 하심 ....이것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은 창30장 후반부에서 31장까지로 볼 수 있다....야곱의 생명 성숙을 위해 환경을 사용하시는데...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 속이고 속임의 리브가의 거짓말, 에서의 혈기방장함, 이로 인해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벧엘에서 자는 동안 꿈에꿈땅에 서 있는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천사들, 더불어 들려주시는 바 하나님의 친히 함께 하셔서 끝까지 돌보심과 무사히 돌아오게 하실 것에 대한 주권적  약속 베푸심을 경험하게 되며...라반의 탐욕과 압제 고혈 짜냄의 환경을  만드신 주님은 동생으로 태어난 야곱에게 장자권 주실 것을 주권적으로 결정하시고 예비하신 그대로 주님 뜻 이룰, 주께 합당한 성품과 생명 성숙을 위해 무려 20년을 라반의 밑에서 훈련과 연단 과정을 지나도록 하고 계신다.
... 만14년이 끝날 즈음에 이르러서 라반을 떠날 마음을 라반에게 말하는 그 자리에서 라반이 제시하는 현금으로서의  품삯이 아니리 주님이 친히 꿈속에 나타나셔서 벧엘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시면서 야곱에게 보여주시며 말씀하신 바 주권적 약속 대로 점 있고 아롱진 것마다 야곱의 것으로 삼게 해 달라 제시해서 응락받았고...(버드나무,살구나무, 신풍나무 등의 껍질 벗긴 가지를 보게 하는 나름의 속임수 방법을 동원하고는 있지만... 그것 없이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주권적으로 이루실 분이시다!!)...마침내 그의 소유가 만6년만에 큰 떼를 이루었고 이제 라반을 떠나려 하고 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  생명씨앗을 산출하는 영적 아비-어미 됨, 생명으로 변화 받고 생명 공급 통로 됨,  목자 그리스도따라 위임받은 분별력 발휘하고 그 필요를 따라 합당하게 인도-조정-보살핌-공급, 섬김 돌봄 중재 위로 격려 지지 지킴 통해 오직 주 바라고 앙망하는, 임마누엘  생명 삶의 사람으로 세워 나감을 위함이다.
.... 하나님의 통치 ::: 시146:5-10, 창49:25, 신33:29, 벧전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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