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8장...[431.주안에기쁨있네][430.주와같이길가는것]..주앞에엎드려..우리주는위대하며(비준비하시니.시147)..주님큰영광받으소서(..모든영광과존귀찬양과능력)..나주님의기쁨..나의힘이되신여호와여..
===아이 성을 점령하다....오직 전군 동원하고!!, 전적으로 주님 전쟁 지휘따라 전심으로 순종함의 능력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계심..이것이 지금 당면한 한국교회<그리고 교회인 나...오 주님 내가 바로 교회입니다!!..저를 쓰시옵소서!!>의 순종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신다!!
.....아이성의 성읍문은 동쪽, 여호수아 본진은 그보다 상대적으로 북쪽에 위치하였다고 보면 성읍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아이 성읍 서쪽 지역 지형은 1차 매복으로서 3만 매복군이 숨기에 알맞은 지형으로, 아이 성 뒤편으로 볼 수 있음(아마도 벧엘에서 나올 수 있는 지원군에 대한 대비책도 되었을 듯, 벧엘은 그 당시 아이성과 동맹하여 이미 증원군을 이끌고 아이성에 함께 입성해 있었기에 곧이어 머지 않은 시점에 멸절 되었다고 여겨지는데 아이성의 북서 방향 2.5km정도에 위치, 그래서 직접 아이성 공격 참여 위한 별동대의 2차 매복을 벧엘과 이이 사이, 아이 성근처에 따로 두고 있다?, 5천 별동대는 숨을 수 있는 곳에<노출되지 않도록 숨어 있다가 성문 열리고 기습공격 가능한 시점에 기습하는 것이 별동대에게는 특히 중요하고, 1차 매복 3만명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을 것, 2차 매복은 <즉각 기동태세 갖춘 채로> 5천명의 별동대로 편성하여 아이 성읍 뒤편 가까이(즉, 벧엘과 아이 사이)에 두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아이성 군대를 성밖으로 유인해 내기 위한 (성문 앞에 나아가서 패주하는 모양새 보인) 본진(북쪽에 주둔하였다가 밤에 성문 건너편 골짜기로 이동한)의 거짓 패주 방향은 성읍에서 동남쪽 방향의 광야로서(여리고 남방의, :: 아골골짜기와 이어지는, 사해북쪽의 요단 기슭은 벧아라바, 벧호글라가 위치한 광야지대임)..이스라엘 본진은 먼저 그 성의 북쪽 평지에 진을 쳤음...(( 아이는 서편과 남편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북편도 그다지 가파르지 않으나 동쪽은 꽤 가파른 절벽지대였음... 더욱이 그 상층부인 아이 성 주변으로는 골짜기로 둘러싸인 천연요새를 이루고 있었음...<오늘날 그 골짜기는 ‘와디 무티야(Wady Mutyah)’라고 불리고 있다>))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오직 그리스도의 평강이 [오직 그리스도로 사는 바!!] 너를 주장하시게 하라!...듣고 본 그대로 행하라, 한 걸음씩 한걸음씩 주안에서 나아가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사람들, 즉 타락한 옛사람-죄성은 "헤렘"하여야 하되, 탈취물은 소유로 삼아 감사하고 일상생활 유지에 사용하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 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60만대군)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
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
8. 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주께서 가지라 허락하신 탈취물과 가축은 제외하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헤렘"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무장한 채)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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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주앞에엎드려경배합니다오직주께)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11. (곧이어)그와 함께 한 군사가 다 올라가서 그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쪽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오늘날 와디 무티야)가 있더라
12. 그가 약 오천 명을 (따로) 택하여 (8절의 명령으로 재차 당부하면서 이에 더하여, 매복지와 그 목표를 분명히 특정하여 주되...벧엘 성읍에 대한 동태를 그들의 신호로 여호수아가 금방 알아챌 수 있도록 파수경계신호병을 동행케 하여)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니
13. 이와 같이 성읍 북쪽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쪽에는 (두 군데에)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친히 유인 군대를 이끌고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스스로 자원하여 희생하는 유인군 선두가 되었고 그 뒤를 따라 전군대가 즉각 대응 이동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14. 아이 왕이 이를[골짜기를 따라 이동하는 여호수아와 그 유인군과 전군을, 먹이감으로]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일격에 격멸하기 위해 전력을 동원-이동하여)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나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15.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조우하고)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16. 그 성읍에 있는 모든 백성이 그들을 추격하려고 모여 여호수아를 추격하며 유인함을 받아 아이 성읍을 멀리 떠나니
17. 아이와 벧엘에(아이-벧엘간 서로 연락을 통해 함께 웁직였을 것... 벧엘 왕은 증원군을 데리고 아이왕과 함께 아이 성내에 주둔해 있었던걸까?)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추격하였더라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19.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20.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추격하던 자에게로 돌아섰더라
21.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들을 쳐죽이고
22.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어떤 사람들은 이쪽에서 어떤 사람들은 저쪽에서 쳐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23.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 왔더라
24.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광야로 추격하던 모든 아이 주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
26.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7.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 질 때에 명령하여 그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에발 산에서 율법을 낭독하다
....."그대, 주님의 세계를 살라...하늘에 속한자, 영에 속한자로서 세상을 걸으라...이는 전적으로 패러다임 문제이니!!.. 주님 조명하심 아래에서 주님 마음따라 분별하며 선택할지어다!!..사탄체계인 옛사람을, 세상가치체계(=사탄이다!!)-(옛습관대로 무심코!! 분별않고 행하는) 옛자아-죄성/육신을!! 버리라, JC이름으로 대적하고 끊어 멸절하라, 그렇게 선포하고, 이제 보혈로 감싸 보호하시도록 밀씀드리라, 일편단심인 주님 사랑에 중심을 열어드리라!!...온전히 그대를 주장하사 그분의 생각-심정-마음-패러다임대로 살도록 만들어주심 바라라, 그분께 자신을 주관하시게 말씀드리라, 오직 그분으로 온전히 채우시도록 비워 내어드리고 그분의 친밀한 인도와 이끄심따라 한걸음씩 걸으라"
.....[주님은 결코 자녀 삼은 그대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지만, 그대는 어찌할 것인가...허락하신 좋은 땅 그리스도 누림, 그 영생복락, 지고지산, 지복직관의 진복!! 그 구원을 온전-완전-순전히 주관적 체득함으로 인해 주님의 원하심인 선하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 이룸 위해 산 제사로 자신을 드림 위해!! 새 날 아침마다 새로이 언약의 십자가 보혈 안에 머물러 씻김 받음 필요하다!!..오직 사랑의 주로 충만함 받고 그 은혜 공급흐름의 통로됨으로 <영생의 생명 빛이요 소금이신> 구주를 살라...그렇게 할 때, 일깨우사 충만케하신 은혜 넘쳐남 인해 채우시며 인도하시는 그대로 저절로 이웃사랑, 곧 그분의 은혜 공급통로됨에로 이끄시리니 ...[407구주와함께나죽었으니]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함..
[마22:36-40...*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갈5: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롬13:8-10..*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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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5...*1.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무릇 내게 붙어 있어((=비록 겉보기에는 다바크... 하였으나 참 영적 의미의 다바크로 살아감인 바, 성령의 공급하심과 교통 안에 하나됨의 삶 이룸으로써 그리스도 생명 삶의 결과인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고난과 시련을 통해!!, 구주의 순전-온전-완전-성결-의로움 그대로> 구주를 믿고 아는 일에 있어서 한 새 사람의 참됨, 곧 구주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인, Q의 아들의 참 명분 얻음에 이르도록))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너희는 ((아버지의 깨끗케하심 = 전정하심으로써, 즉))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생명 교통의 하나됨-열린 영안으로 앙망/주목/응시-즉각 순종함의 생생한 산 믿음으로))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열매맺지 아니하는 가지이기에, 아버지의 제거하여버리심 받은))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1 “[a]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vinedresser. 2 Every branch in Me that does not bear fruit, He takes away; and every branch that continues to bear fruit, He [repeatedly] prunes, so that it will bear more fruit [even richer and finer fruit]. 3 You are already clean because of the word which I have given you [the teachings which I have discussed with you]. 4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 Just as no branch can bear fruit by itself without remaining in the vine, neither can you [bear fruit, producing evidence of your faith] unless you remain in Me. 5 [b]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The one who remains in Me and I in him bears much fruit, for [otherwise] apart from Me [that is, cut off from vital union with Me] you can do nothing. 6 If anyone does not remain in Me, he is thrown out like a [broken off] branch, and withers and dies; and they gather such branches and throw them into the fire, and they are burned. 7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that is, if we are vitally united and My message lives in your heart],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done for you. 8 My Father is glorified and honored by this, when you bear much fruit, and prove yourselves to be My [true] disciples. 9 I have loved you just as the Father has loved Me; remain in My love [and do not doubt My love for you]. 10 If you keep My commandments and obey My teaching, you will remain in My love, just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remain in His love. 11 I have told you these things so that My joy and delight may be in you, and that your joy may be made full and complete and overflowing.
==Disciples’ Relation to Each Other
12 “This is My commandment, that you [c]love and unselfishly seek the best for one another, just as I have loved you. 13 No one has greater love [nor stronger commitment] than to lay down his own life for his friends. 14 You are my friends if you keep on doing what I command you. 15 I do not call you servants any longer, for the servant does not know what his master is doing; but I have called you [My] friends, because I have revealed to you everything that I have heard from My Father. 16 You have not chosen Me, but I have chosen you and I have appointed and placed and purposefully planted you, so that you would go and bear fruit and keep on bearing, and that your fruit will remain and be lasting, so that whatever you ask of the Father in My name [as My representative] He may give to you. 17 This [is what] I command you: that you love and unselfishly seek the best for one another.
==Disciples’ Relation to the World
18 “If the world hates you [and it does], know that it has hated Me before it hated you. 19 If you belonged to the world, the world would love [you as] its own and would treat you with affection. But you are not of the world [you no longer belong to it], but I have chosen you out of the world. And because of this the world hates you. 20 Remember [and continue to remember] that I told you, ‘A servant is not greater than his master.’ If they persecuted Me, they will also persecute you. If they kept My word, they will keep yours also. 21 But they will do all these [hurtful] things to you for My name’s sake [because you bear My name and are identified with Me], for they do not know the One who sent Me. 22 If I had not come and spoken to them, they would not have [the guilt of their] sin; but now they have no excuse for their sin. 23 The one who hates Me also hates My Father. 24 If I had not done among them the works (attesting miracles) which no one else [ever] did, they would not have [the guilt of their] sin; but now [the fact is that] they have both seen [these works] and have hated Me [and continue to hate Me] and My Father as well. 25 But [this is so] that the word which has been written in their Law would be fulfilled, ‘They hated Me without a cause.’
26 “But when the [d]Helper (Comforter, Advocate, Intercessor—Counselor, Strengthener, Standby) comes,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that is the Spirit of Truth who comes from the Father, He will testify and bear witness about Me. 27 But you will testify also and be My witnesses, because you have been with Me from the beginning.]
--------시내산언약(출애굽기19 장~24 장)------
출애굽기 19 장에서 24 장까지는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총 6 장으로 구성된 시내산 언약 문단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 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언약을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로 20 장은 십계명입니다.
세 번째로 21-23 장은 십계명에 이어지는 후속 계명입니다.
마지막으로 24 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을 체결하고 인준하는 장면입니다.
시내산 언약의 인준식 장면에는 몇 가지 의미있는 재료들이 눈에 뜨입니다.
.....그 첫번 째는 ‘돌’ 입니다. (돌기둥, 돌판, 사파이어 같은 청명한 돌) 이는 언약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신약시대가 돼서 우리는 예수님을 “반석”이라고 부릅니다. (고전 10:4b)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의 반석이 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린 양의 ‘피’ 입니다. 모세는 청년들을 보내서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고, 그 피를 받아서 반은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 반은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피의 언약을 맺는다는 의미는 누구든지 그 언약을 위배할 경우에는 죽음을 감수하겠다는 언약의 “준엄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어집니다. (요일 2:2, 히 10:19) 바로 예수님이 시내산 언약의 화목제물과 언약의 피가 되셨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을 서로 약속하였나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을 약속하였습니다. (출 24:7)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은 출 23:20-31 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 해 주시고, 그들을 대신하여 싸워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을 치료 해 주시고,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해 주시고, 이 땅에서 장수하게 해 주시고, 가나안 땅, 즉 이 땅에서의 기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약속을 지키면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게 됩니다.
==시내산 언약에 나타난 첫 번째 정신은, ‘우리의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우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신은 십계명의 기본 정신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정확하고 완전하게 드러난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계속해서 읽고, 듣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내 삶을 살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째는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QT 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내가 받기 싫은 대우나 행동을 내 이웃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훈련’을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시내산 언약의 두 번째 정신은, “약자를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21 장에서는 종을, 22 장에서는 여인과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자를, 23 장에서는 이방 사람을 보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당시 사회적 최약층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내산 언약의 정신은, “결과뿐 아니라 동기와 의도도 중요하게 본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이를 강조하셨습니다. 출 21:13 에 보면, 의도하지 않은 살인은 목숨은 부지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시내산에서 최초로 주어질 때부터 그 의도와 마음을 굉장히 중시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는 어떤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반드시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나서 판단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출 23:1-2, 롬 1:29) 이러한 시내산 언약의 정신을 잘 묵상하여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
----적용을 위한 묵상
1.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반석되신 예수님의 보혈에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이 내게 어떻게 와 닿나요? 2.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요즘 내가 순종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3. 시내산 언약의 세 가지 정신 중에서 내가 꼭 적용하기로 결단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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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전개 상으로본다면 아이성 그 다음에 곧이어 2.5km북서쪽 벧엘 접수 기사가 나올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새 마음으로 무장되기 위해] 급히 길갈 본진에서 48km 북쪽의 세겜으로 이동하고 있다(에발산과 그리심산이 있는)...거기 에발 산에 자연석을 모아 새 제단을 쌓고, 에발산의 큰돌들에 석회를 바르고 모든 율법을 거기에 새기고, [번제와 화목제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단에 예물드림으로써] 언약백성으로서 새 시대를 주와 함께 순종함으로 열어가는, 모세를 통해 내리신 주님 명령을 따라 [주님께 헌신 다짐하는] 율법 낭독식을 준행하였고 이어서 [주님 명령하신 그대로, 주 앞에서] 에발산과 그리심산에 백성들을 세우고 축복과 저주의 맹세를 거행하고 있다!!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출24장에서 [시내산 언약]에서 나온 그대로 동일하게 다시 언약을 새로이 다짐함의 "언약 갱신"의 피를 제단에 뿌림이었다!!...새로운 시간-공간을 [주로 인해, 주와 함께] 삶 위해, 날마다 "날마다 나는 죽고, 과정 거치고 부활 승천 안에서 그 영으로 오셔서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서 거듭난 내 영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심, 곧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삶"의 이 언약을 마음에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음이다!!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주변의 돌로 쌓은 제단이 있는 에발산, 바로 그곳의 큰 돌들에 석회를 바르고)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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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7:1-26)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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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여호수아 8:33).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기 전에 길갈에서 요단 강 도강을 기념하고 기념석을 세우며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아이 성을 점령한 후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의 작전 전개를 중단하고(!!) 온 백성을 그리심 산과 에발 산으로 집결시켰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율법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순위는!!] 이스라엘은 아간의 범죄로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7:11, 15) 하나님과의 언약의 의무를 온 백성 앞에서 다시 확인시키기 위해서 모세가 명령한 장소로 모였습니다. 물론, 언약은 구약에서 여러 번 갱신되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내용 자체가 변경된다는 의미의 갱신이 아니고 언약 백성의 의무를 상기시키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겠다는 결의를 거듭다짐한다는 의미에서의 갱신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낭독되면 “모든 백성은 아멘” (신 27:15-26)으로 응답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패배를 설욕한 후 충천한 사기를 몰아 나머지 땅들을 점령하고픈 유혹을 물리치고 ((오히려!!))모세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였습니다.
여기서!!, 되새겨 볼 것이 있습니가!!. 요즘은 사라져가는 전통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교회마다 헌신예배가 절기마다 들어간 때가 있었습니다.
새 언약 백성의 믿음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헌신을 때때로 거듭 다짐하는 것은 영적 갱신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신자들이 영적으로 실패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말씀의 우선권을 제쳐놓기 때문입니다.
전투 후에 전열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먼저 경배하고 말씀의 양식을 먹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아이 성의 북쪽에서 약 20 마일을 행군하여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는 세겜 땅으로 가서 특별 예배를 올렸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주는 의미]
왜 이 장소를 택하였을까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가나안에 들어갈 세대에게 사전 지시를 하셨기 때문입니다(신27:1-8).
세겜 땅은 이스라엘의 족장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겜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야곱은 세겜 성읍 앞에 장막을 친 밭을 매입하였고 아브라함처럼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창 33:18-20). 그는 이곳에서 자기 권속들이 소유한 이방 신상과 장식품들을 땅에 파묻고 그들을 하나님께 재헌신시켰습니다(창 35:4).
나중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을 집결시키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엄숙한 의식을 가진 곳도 세겜이었습니다(수24:1).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곳도 세겜의 수가라는 동네에 있던 야곱의 우물가였습니다(요 4:5-6).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세겜 지역에 있는 가나안의 지리적 중심입니다. 두 산의 산정에서 가나안 땅 대부분을 조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족장들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에서 그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실제로 밟고서 언약의 말씀을 읽고 돌에 기록하는 의식은 매우 뜻 깊고 감격스런 일이었습니다. 이 두 산 사이에는 계곡이 있고 분지가 형성되어 음향 효과가 탁월하고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편 산 위에서 내는 소리를 다른 편 산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처음 받았을 때처럼 번제와 화목제를 올리고 큰 돌들에 석회를 발라 율법을 새겼습니다(신 27:2, 8).
그리심 산 위에서는 율법에 기록된 축복을 낭독하고 에발 산 위에서는 저주를 낭독하였는데 백성이 모세의 지시대로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신 11:29; 27:12-26).
이것은 언약 백성으로서 율법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강령이며 가나안의 새 삶을 이끄는 신정법임을 천명하고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무 수풀이 무성한)그리심 산은 순종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대변하고 (벌거숭이 민둥산인) 에발 산은 불순종으로 오는 하나님의 저주를 대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두 산 중에서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축복과 저주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그리심 산의 축복과 에발 산의 저주를 시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랐을 때 여리고 성에서 승리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 아이 성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에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읽은 것은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기본 원칙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 제도에 대한 자세한 지시도 나옵니다. 제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용서와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대속의 제사가 필요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속죄제를 드릴 아론도 함께 주셨습니다.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내다본 구약 시대의 예표적인 의식이었습니다. 제사 제도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십자가 대속의 그림자며 화살표였습니다(갈 3:13).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가 서로 번갈아 가며 울렸습니다. 양 편이 서로 자기들이 속한 산의 축복과 저주를 외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심 산의 백성은 에발 산의 백성에게 자기들 쪽으로 오면 축복을 받는다고 외치고, 에발 산에 있는 자들은 그리심 산의 백성에게 자기들 쪽으로 오면 저주를 받는다고 외친 셈이었습니다. 그 날의 이벤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잊을 수 없는 의식으로 각자의 뇌리에 깊숙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율법을 일일이 다 낭독하였습니다(수 8:34; 비교. 행 20:27). 이제 이스라엘은 유업으로 쟁취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빠짐없이 모두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Q의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다는 것을 국시(國是)로 삼고 이에 모두 아멘으로 응답함으로써 신정 국가로서의 틀을 공적으로 선포한 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우리들의 과거의 삶은 에발 산의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실패와 저주의 어둠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정죄가 없습니다. 에발 산에서 그리심 산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롬 8:1-2).
예수님이 오셔서 에발 산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받으시고 우리를 데리고 그리심 산으로 가셨습니다(골 1:13-14).
아직도 에발 산의 저주가 들리는 곳에 서 있는 자들에게 그리심 산의 축복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과거의 삶은 황충과 메뚜기가 다 갉아먹은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에발 산을 떠나 축복의 그리심 산으로 가면 두려워하거나 한탄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와 불의로 잃어버린 땅은 나로 하여금 에발 산의 어두운 그늘 아래 머물게 하지만 주 예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자들은 그리심 산의 축복으로 옮겨져서 소망의 삶을 회복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여호수아는 에발 산 위에 제단을 쌓았고 에발 산에서 율법을 회칠한 큰돌들에 복사하여 새겼으며 레위인들로 하여금 율법의 저주가 에발 산에서 선포되게 하였습니다(수 8:30-35; 신 11:29). 그럼 왜 에발 산에서 제단을 쌓고 저주를 낭송해야 했을까요? ((에발산은 골고다 언덕의 예표입니다!!))
에발 산은 저주를 대변하는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율법의 모든 저주가 에발 산의 제단 위에서 사라지도록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올렸습니다.
번제는 죄의 속죄를 위한 것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화평한 관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단은 불순종으로 저주를 받은 자들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기에 에발 산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에발 산의 제단에 바쳐질 희생 제사의 원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한 몸에 다 받으시고 우리들을 구속하셨습니다(갈 3:13).
비유컨대 갈보리 십자가는 저주의 에발 산 위에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이 제단은 곧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우리들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겨지도록 예수님이 제단이 되시고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위해 준비하신 은혜의 제단입니다.
‘여호수아’는 ‘주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으로서 ‘예수’와 동일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히브리식이고 ‘예수’는 헬라식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예표는 실체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림자로서 윤곽을 드러내고 실체를 가리킵니다.
♣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제단을 세웠습니다(30-31절).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제단에 자신을 바쳤습니다.
♣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을 돌에 새겼습니다(32절).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으로 모세법을 대치하고 성취시켰습니다(마 5:17-48). 또한 그의 성령으로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 주셨습니다.
♣ 여호수아는 율법을 백성에게 들려 주었습니다(34-35절).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이 성경에 기록되게 하시고 성령의 조명으로 우리들에게 들려 주십니다.
♣ 여호수아는 단창을 들어 아이 성을 가리킬 때처럼, 여기서도 모세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아들로서 새 언약 백성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한편, 에발 산에 쌓았던 제단은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수 8:31)이었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자연석 제단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방 종교처럼 사람의 손으로 다듬고 인간의 아이디어로 제물을 바치는 제사가 아님을 시사합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사상에서 나온 것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제단은 하나님의 제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구속의 제단 위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희생 제물이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신 십자가의 희생 제물만이 죄인들을 정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리심 산의 축복은 생명을 의미하고, 에발 산의 저주는 죽음을 의미합니다(신 30:19). 죽음 대신 생명을 택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믿으십시오. 우리들이 저주에서 축복으로 옮겨지도록 예수님이 용서의 제단이 되시고 에발 산의 저주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 생명을 그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모든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모든 인간은 죄와 죽음의 세상에 태어나서 죄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사망합니다(롬 3:9, 23).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류는 사망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어야 합니다.
자신이 사망의 저주 아래 있는 속절없는 인생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나 대신 저주를 받으신 주님의 제단인 십자가로 나가십시오.
그리고 주 예수를 자신의 구속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십시오. 이것이 죄와 사망의 정죄로부터 구출되는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강조되기 보다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적인 세속 복음이 십자가 복음을 대치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의 손으로 장식된 제단들이 교회당을 채우고 있습니다.
인간의 공로나 행위가 아닌 은혜 구원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세속주의가 강대상과 신자들의 심령에 에발 산의 저주로 울리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그리심 산으로 옮겨가서 [바로 거기서 뿌리내려] 살지 않으면 에발 산의 저주가 항상 따라다닙니다.
여호수아서는 바알 종교로 타락해버린 사사기 시대로 이어집니다.
그들은 여호수아 시대에 온 백성이 모여서 가졌던 언약 갱신의 예배를 내버리고 바알 경배의 축제로 몰려갔습니다.
기독교 사상과 신앙으로 세워진 서구 사회는 급속히 퇴락하고 있습니다. 한때 교회 성장의 세계적 모델로 자랑삼던 한국 교회들도 엄청난 부패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처럼 영적 갱신이 필요한 때는 없었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여호수아 시대에 이루어놓은 것을 뒤집는 영적 아간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에발 산의 저주는 아간의 망령들을 처단할 때까지는 우리들의 사회와 교회를 죽음으로 계속 인도하며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절박한 시대에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의 영적 갱신을 위해 각자가 받은 소명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주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무덤에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을 죽음의 땅에 뿌리는 부활생명의 전사(戰士)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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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8장
1. And the LORD said unto Joshua, Fear not, neither be thou dismayed: take all the people of war with thee, and arise, go up to Ai: see, I have given into thy hand the king of Ai, and his people, and his city, and his land:
2. And thou shalt do to Ai and her king as thou didst unto Jericho and her king: only the spoil thereof, and the cattle thereof, shall ye take for a prey unto yourselves: lay thee an ambush for the city behind it.
3. So Joshua arose, and all the people of war, to go up against Ai: and Joshua chose out thirty thousand mighty men of valor, and sent them away by night.
4. And he commanded them, saying, Behold, ye shall lie in wait against the city, even behind the city: go not very far from the city, but be ye all ready:
5. And I, and all the people that are with me, will approach unto the city: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ey come out against us, as at the first, that we will flee before them,
6. (For they will come out after us) till we have drawn them from the city; for they will say, They flee before us, as at the first: therefore we will flee before them.
7. Then ye shall rise up from the ambush, and seize upon the city: for the LORD your God will deliver it into your hand.
8. And it shall be, when ye have taken the city, that ye shall set the city on fire: according to the commandment of the LORD shall ye do. See, I have commanded you.
9. Joshua therefore sent them forth: and they went to lie in ambush, and abode between Bethel and Ai, on the west side of Ai: but Joshua lodged that night among the people.
10. And Joshua rose up early in the morning, and numbered the people, and went up, he and the elders of Israel, before the people to Ai.
11. And all the people, even the people of war that were with him, went up, and drew nigh, and came before the city, and pitched on the north side of Ai: now there was a valley between them and Ai.
12. And he took about five thousand men, and set them to lie in ambush between Bethel and Ai, on the west side of the city.
13. And when they had set the people, even all the host that was on the north of the city, and their liers in wait on the west of the city, Joshua went that night into the midst of the valley.
14. And it came to pass, when the king of Ai saw it, that they hasted and rose up early, and the men of the city went out against Israel to battle, he and all his people, at a time appointed, before the plain; but he wist not that there were liers in ambush against him behind the city.
15. And Joshua and all Israel made as if they were beaten before them, and fled by the way of the wilderness.
16. And all the people that were in Ai were called together to pursue after them: and they pursued after Joshua, and were drawn away from the city.
17. And there was not a man left in Ai or Bethel, that went not out after Israel: and they left the city open, and pursued after Israel.
18. And the LORD said unto Joshua, Stretch out the spear that is in thy hand toward Ai; for I will give it into thine hand. And Joshua stretched out the spear that he had in his hand toward the city.
19. And the ambush arose quickly out of their place, and they ran as soon as he had stretched out his hand: and they entered into the city, and took it, and hasted and set the city on fire.
20. And when the men of Ai looked behind them, they saw, and, behold, the smoke of the city ascended up to heaven, and they had no power to flee this way or that way: and the people that fled to the wilderness turned back upon the pursuers.
21. And when Joshua and all Israel saw that the ambush had taken the city, and that the smoke of the city ascended, then they turned again, and slew the men of Ai.
22. And the other issued out of the city against them; so they were in the midst of Israel, some on this side, and some on that side: and they smote them, so that they let none of them remain or escape.
23. And the king of Ai they took alive, and brought him to Joshua.
24. And it came to pass, when Israel had made an end of slaying all the inhabitants of Ai in the field, in the wilderness wherein they chased them, and when they were all fallen on the edge of the sword, until they were consumed, that all the Israelites returned unto Ai, and smote it with the edge of the sword.
25. And so it was, that all that fell that day, both of men and women, were twelve thousand, even all the men of Ai.
26. For Joshua drew not his hand back, wherewith he stretched out the spear, until he had utterly destroyed all the inhabitants of Ai.
27. Only the cattle and the spoil of that city Israel took for a prey unto themselves, according un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commanded Joshua.
28. And Joshua burnt Ai, and made it an heap for ever, even a desolation unto this day.
29. And the king of Ai he hanged on a tree until eventide: and as soon as the sun was down, Joshua commanded that they should take his carcass down from the tree, and cast it at the entering of the gate of the city, and raise thereon a great heap of stones, that remaineth unto this day.
30. Then Joshua built an altar unto the LORD God of Israel in mount Ebal,
31. As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commanded the children of Israel, as i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an altar of whole stones, over which no man hath lift up any iron: and they offered thereon burnt offerings unto the LORD, and sacrificed peace offerings.
32. And he wrote there upon the stones a copy of the law of Moses, which he wrote in the presence of the children of Israel.
33. And all Israel, and their elders, and officers, and their judges, stood on this side the ark and on that side before the priests the Levites, which bare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as well the stranger, as he that was born among them; half of them over against mount Gerizim, and half of them over against mount Ebal; as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had commanded before, that they should bless the people of Israel.
34. And afterward he read all the words of the law, the blessings and cursings, according to all tha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35. There was not a word of all that Moses commanded, which Joshua read not before all the congregation of Israel, with the women, and the little ones, and the strangers that were conversant among them.
----------Joshua 8 Amplified Bible
=== Conquest of Ai
1 Now the Lord said to Joshua, “Do not fear or be dismayed (intimidated). Take all the men of war with you and set out, go up to Ai; see, I have given the king of Ai, his people, his city, and his land into your hand. 2 You shall do [the same] to Ai and its king as you did to Jericho and its king; [except that] you shall take only its spoil and its cattle as plunder for yourselves. Set up an ambush for the city behind it [on the west side].”
3 So Joshua set out with all the people of war to go up against Ai; then Joshua chose thirty thousand valiant men, and sent them out at night. 4 He commanded them, saying, “Listen closely, you are going to lie in wait and ambush the city from behind it. Do not go very far away from the city, but all of you be ready. 5 Then I and all the people who are with me will approach the city. And when they come out to meet us [for battle] as [they did] the first time, we will run away from them. 6 They will come out after us until we have lured them away from the city, because they will say, ‘They are running from us as [they did] before.’ So we will run from them. 7 Then you will emerge from the ambush and take possession of the city, for the Lord your God will hand it over to you. 8 When you have taken the city, you shall set it on fire; you shall do [exactly] as the Lord commanded. See, I have commanded you.” 9 So Joshua sent them off, and they went to the place for the ambush and stayed [hidden] between Bethel and Ai, on the west side of Ai; but Joshua spent that night among the people [in Gilgal].
10 Now Joshua got up early in the morning and assembled the people, and went up with the elders of Israel before the people to Ai. 11 Then all the fighting men who were with him went up and advanced and arrived in front of the city, and camped on the north side of Ai. Now there was a ravine between them and Ai. 12 And Joshua took about five thousand men and set them in ambush between Bethel and Ai, on the west side of the city. 13 So they stationed the people, all the army—the main encampment that was north of the city, and their rear guard on the west side of the city—and Joshua spent that night in the valley. 14 Now when the king [and the people] of Ai saw it, the men of the city hurried and got up early and went out to meet Israel in battle, the king and all his people at the appointed [time and] place before the desert plain (the Arabah). But he did not know that there was an ambush against him [waiting] behind the city [on the west side]. 15 So Joshua and all Israel pretended to be defeated by them, and ran toward the wilderness. 16 Then all the people who were in the city were called together to pursue them, and they pursued Joshua and were lured away from the city. 17 Not a man was left in Ai or Bethel who had not gone out after Israel; so they left the city open and unguarded and they pursued Israel.
18 Then the Lord said to Joshua, “Reach out with the spear that is in your hand [and point it] toward Ai, for I will give it into your hand.” So Joshua reached out with the spear in his hand [and pointed it] toward the city. 19 The [men in] ambush emerged quickly from their [hiding] place, and when Joshua stretched out his hand they ran and entered the city and captured it, and quickly set the city on fire. 20 When the men of Ai turned back and looked, behold, the smoke of the city was ascending toward the sky, [a]and they had no opportunity to run this way or that way. Then the people who had been running to the wilderness turned back toward the pursuers. 21 When Joshua and all Israel saw that the [men in] ambush had taken the city and that the smoke of the city was ascending, they turned back and struck down the men of Ai. 22 Then the others came out of the city to confront the men of Ai [as they returned], so that they were trapped in the midst of Israel, some on this side and some on that side; then Israel struck them until none of them survived or escaped. 23 But they took the king of Ai alive and brought him to Joshua.
24 When Israel had finished killing all the inhabitants of Ai in the field in the wilderness where they pursued them, and they had all fallen by the edge of the sword until they were destroyed, then all Israel returned to Ai and struck it with the edge of the sword. 25 And all who fell that day, both men and women, were twelve thousand, all the people of Ai. 26 For Joshua did not withdraw his hand with which he stretched out the spear until he had utterly destroyed all the inhabitants of Ai. 27 Israel took only the livestock and the spoil of that city as plunder for themselves,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had commanded Joshua. 28 So Joshua burned Ai and made it a [b]rubbish heap forever, a desolation until this day. 29 He [c]hanged [the body of] the king of Ai on a tree [leaving it there] until evening; at sunset Joshua gave a command and they took the body down from the tree and dumped it at the entrance of the city gate, and piled a great heap of stones over it that stands to this day.
30 Then Joshua built an altar to the Lord, the God of Israel, on Mount Ebal, 31 just as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had commanded the sons of Israel, as i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an altar of uncut stones on which no one has wielded an iron tool; and they offered on it burnt offerings to the Lord, and sacrificed peace offerings. 32 And there, in the presence of the sons of Israel, Joshua wrote on the stones a copy of the Law of Moses which Moses had written. 33 All Israel, the stranger as well as the native born [among them], with their elders and officers and their judges, stood on either side of the ark before the Levitical priests who carried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Half of them stood in front of Mount Gerizim and half of them in front of Mount Ebal, just as Moses the servant of the Lord had commanded at first to bless the people of Israel. 34 Then afterward Joshua read all the words of the law, the blessing and curse, according to all tha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35 There was not a word of all that Moses had commanded which Joshua did not read before the entire assembly of Israel, including the women and the children and the foreigners who were living among them.
===Footnotes
Joshua 8:20 Lit it was not in their hands.
Joshua 8:28 Heb tel.
Joshua 8:29 This was not an execution by hanging; the king was killed beforehand, probably with a sword, then his body was hung up (or impaled) to further shame him in the minds of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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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8장 (개요)
아간의 죄악이 이스라엘의 진로에 야기시켰던 혼란이 끝났다. 그리고 다시 전쟁과 종교의 사건들이 아주 좋은 상태로 되돌아간다. 본장에서는,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 성을 점령하는 영광스러운 군대의 행진을 보게 되는데,
(1)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을 치라고 격려하시며 그 방법을 지시하신다(1, 2).
(2) 따라서 여호수아는 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린다(3-8).
(3) 전략은 계획된 대로 수행되고 바랐던 만큼의 성공을 거둔다(9-22).
(4)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점령해 왕을 매어달고, 노략물들은 군인들이 나누어 가지게 한다(23-29).
2.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온 총회 앞에서 쓰고 읽는 큰 제전이 벌어진다(30-35). 이처럼 그들은 자기들 앞에 놓인 일들을 담대히 해 나갔으며 세속적인 일과 종교적인 일들을 보조를 맞추어 진행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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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성 공격령(수 8:1-2)
여호수아 같은 지휘관을 둔 이스라엘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지휘관으로 모신 여호수아는 더욱 행복했다.
여하한 난관이 생긴다고 해도 그는 자기의 물음에 응답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을 미리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가까이함을”(신 4:7) 얻고 있었기 때문에 전략 회의를 소집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기로에 서 있었다.
아간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충격의 소용돌이에서 여호수아는 아직 완전히 평정도 되찾지 못한 상태였고, 이런 와중에 과연 아무런 두려움도 떨림도 없이 전진해 나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이스라엘 진 가운데 또 다른 아간과 같은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랴!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전처럼(5장) 칼을 뽑아든 전사의 모습으로 보여 준 환상이든 혹은 판결 흉패로든 간에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저주받은 것, 즉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내는”(사 59:2) 죄를 참으로 진실하게 제거할 때 그 때에 우리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
또한 기독교인이 그의 사역과 전장에서 어떻게 계속해 나갈 것인지를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지시해 주셔야 그 분이 우리와 화해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진군하도록 격려하심.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1절).
이 말로 미루어보아 아간의 죄와 그 결과가 여호수아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 주었고 그의 마음이 어떤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교회 내의 부패는 외부의 적대자들보다도 교회의 인도자와 조력자들의 손길을 훨씬 더 약화시키고 사기를 꺾어놓는다.
반역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악질적인 가나안 족속보다도 더 많이 두려워해야 할 바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낙담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들의 원수의 파멸적 행위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바로 그 능력이 범죄함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에서도 또한 지켜 주실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
1. 하나님은 아이 성에 대한 승리를 확신시켜 주시며, 그 성은 전적으로 그의 것이며 오직 여호수아는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것을 네 손에 주었도다.” 그것은 여호수아에게 그 성에 대한 권리와 소유를 모두 주셨다는 말이며 오직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뿐이었다(시 44:3).
2.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탈취물을 소유하도록 허락하셨다.
아이 성의 노략물은 여리고 성의 것들처럼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 성에서는 여리고 성을 탈취할 때와 같은 범죄가 일어날 위험이 없었다.
금지된 탈취물을 훔쳤던 아간은 그의 생명과 전부를 잃었지만 바쳐진 물건에 대해 양심적으로 행동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순종에 대해 얼마나 빨리 아이 성의 노략물로 보상을 받게 되는지 살펴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를 받는 길은 그 분이 우리에게 금하시는 바를 삼가는 것이다.
자기를 부정함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먼저 하나님께 응분을 돌리고 나면 인간들의 모든 것이 분명하고 확실해질 것이다(왕상 17:13).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 “아름다운 성읍”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으로(신 6:10, 11) 이끌어 들이신 것은 그림의 떡처럼 모양만 보고 애태우라고 시험하기 위함이 아니다. 여리고 성의 것은 첫 열매로 받으시고 아이 성과 그 후에 그들의 손에 들어오는 모든 성읍들의 노략물들은 그들의 탈취물로 가지도록 허락하셨던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의 공격법을 지시하심.
이 일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처럼 시간을 들여서는 안 되었다. 이런 방법은 전쟁을 너무 오래 끌고 가게 할 뿐이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7일간을 끈기 있게 기다린 자들에게 아이 성은 하루 만에 주어졌다.
또한 아이 성은 여리고 성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행위로 기적에 의해서 점령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들의 행위와 용기가 행사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역사하심을 만들었으면 이제 그들도 스스로 분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1. 그들 모두가 탈취물을 취하는 일에 참여하고 행동하는 참여자가 되도록 온 백성을 동원하라고 지시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전에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소부대를 파견한 일에 대해 말없는 꾸중을 하셨다(7:4).
2. 성 뒤에 복병을 배치할 것을 지시하셨다.
이 방법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지 않으셨다면 여호수아가 당시로는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은 그런 방법이었을 것이다.
비록 현재의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환상이나 음성이나 혹은 신탁에 의한 어떤 지시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해도, 공의회를 맡은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려 있는 제도를 시행해 나간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하신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농부에게 지혜를 가르치시는 그 분은 분명 정치가나 장군도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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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성의 함락(수 8:3-22)
우리는 본 장에서 전략적으로 아이 성을 치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여기에 사용된 전략은 정당하고 좋은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신 것이므로 우리는 다른 전쟁에서도 이와 같은 전략을 정당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협정이 위반된 것이나 약속이나 맹세가 파기된 것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일이 저질러지지 않았다.
협상 구실이나 평화조약 따위의 구실을 만들어 이런 유리한 전세를 얻어 낸 것은 아니었다.
진실이란 일단 약속되면 적에게라 할지라도 지켜야 할 부채가 된다. 그런데 이 전략에서는 비진실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곤 없었다.
자기들의 계획 이외에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이 계획은 적이 감히 공유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속이지도 않았고 후퇴 이외에 아무것도 위조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후퇴라는 것도 공격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내린 당연한 혹은 필연적인 지령도 아니었다.
적들은 분명 감시병들을 두고서 성을 방어하도록 했어야만 한다.
그들이 상식적인 사려만 있었더라도 적을 추격하느라고 성을 무방비 상태로 버려두는 그런 모험을 감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백성들이 속기를 원한다면 속게 하라”―Si poplus vut decipi, decipiatur) 가나안 사람들이 그토록 쉽사리 속아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추격하느라고 전쟁의 모든 규칙과 합리적인 경영도 파기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들의 분노와 경솔을 이용해서 우세한 입장을 견지한다고 해도 조금도 나무랄 일이 못 된다.
또한 이 일은 하나님께서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사 63:8)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그 특성과도 절대로 모순되지 않는다.
본문의 이야기에 따라 아래의 문제들을 살펴보자.
Ⅰ. 이 일을 효과적으로 성취하기 위해서 선발된 숫자에 약간의 난점이 있다.
본문에 따르면(3절)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라고 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성이 비워지는 순간 성을 놀라게 할 임무가 주어졌다(4, 7, 8절).
그런데 그 후에 보면(12절), 여호수아가 “오천 명 가량을 택하여” 성 뒤에 “매복시켰다”라고 되어 있으며, 이들은 성으로 들어가 성에 “불을 놓으려” 준비하고 있었다(19절).
1. 어떤 사람들은 복병으로 파견된 것이 2개 부대라고 한다.
즉 처음에는 3만 명을 보내고, 후에 또 길목들을 지키고 서서 목숨이나 건지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을 가로막기 위해서 혹은 처음 파견된 자들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5천 명을 더 보냈으며, 그러고 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사 전체를 데리고 노골적으로 공격한 것이라고 한다.
석학 패트릭 주교도 “군사를 다 거느리고”(1절)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이렇게 주장했다.
2.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 앞에 진을 쳤을 뿐이며, 그들 중 여호수아가 3만 명을 선발해서 행동 부대로 만들고 그 중에서 5천 명을 복병으로 매복하도록 파견했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숫자라야 “발각되지 않고”(incognito) 행군할 수 있었을 것이다(더 많은 숫자는 발각될 가능성이 많으며 그렇게 되면 계획은 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2만 5천 명을 데리고 여호수아는 공개적으로 공격을 했다고 생각한다(Masius).
그러나 칼빈은 공격의 목적으로 3만 명을 데리고 있었고 이 3만 명 외에 5천 명을 복병 부대로 파견했다고 보았다.
이들이 생각하는 바에 따르면 이 5천 명이 비록 구체적인 숫자는 12절에 가서야 명기되지만 성 뒤에 매복해서 기다리도록 “밤에 보낸”(3절) 바로 그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이야기의 순서에서 이와 같은 외관상의 혼란을 인정한다면 복병은 5천 명으로 구성된 한 부대뿐이었을 것이며 이 정도면 이런 목적으로는 충분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Ⅱ. 그러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아주 분명하다.
즉 파견된 부대는 성 뒤쪽으로 몰래 진격해 갔고 성 바른편 쪽에는(이런 상황은 매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한 부대가 성을 마주하고 있었다.
아이 성의 주둔 부대는 이스라엘을 향해 사기충천하게 공격을 감행했고, 따라서 이들은 물러서고 또 물러서며 마침내는 교란된 모습을 드러내고 광야 길로 무질서하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아이 성 사람들로 하여금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여세를 몰아 온 군대를 총동원해서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계획은 적중되고, 매복해 있던 부대는 적기에 성을 장악한 후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한 부대에게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이와 더불어 여호수아의 부대는 되돌아서서 추격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이 성 사람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고 그들의 퇴로는 차단되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살육당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사사기 20장 30절 이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아래의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다.
1. 여호수아가 얼마나 용감한 지휘관인가 하는 것이다.
(1) 그의 행동과 사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성 뒤에 복병을 매복시키도록 힌트를 주셨다(2절). 그러나 자세한 명령을 내리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일임하셨다.
그 일을 그는 아주 잘 해내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지혜가 지혜자로 열 유사보다 능력 있게 하는” 것이다(전 7:19).
(2) 그의 관심과 근면(10절).
그는 시간을 잃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이 일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영적 전투를 계속해 나가려는 사람들이 안일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3) 그의 용기와 결단.
앞서 이스라엘 족속의 한 부대가 아이 사람들 앞에서 패한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두 번째 몸소 부대를 통솔하고 싸우러 나갈 결심을 했다(5절).
그는 또한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그와 함께 이 공격에 가담하게 했다(10절).
이런 여호수아의 모습은 적으로서의 가나안인들과 싸우러 나간다기보다는 그들을 범죄자들로 심판하러 가는 모습과도 같다.
(4) 그의 용의주도함(13절).
여호수아는 공격에 필요한 군대의 배치를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이 질서대로 움직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갔다.”
석학 패트릭 주교는 여호수아가 이 일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하기 위해서 혼자 골짜기로 들어갔다고 추측했다.
(5) 그의 견인.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향해서 그의 창을 내밀었으며(18절, 이 창은 마치 모세의 지팡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원수들에게는 무섭고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결코 그 손을 내리지 않았다. 전투에서의 그의 손은 마치 중보 기도를 드리던 모세의 손처럼 해가 질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영적 원수들을 대적해 손을 내민 사람들도 절대 그 손을 돌이켜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가 전략으로 실행한 것은 그가 모형이 된 우리 예수님에게도 그대로 일치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마치 자기가 정복된 자처럼 해서, 즉 패배를 통해서 이겼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께서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을 때 마치 죽음이 그 분에게 승리하고 그 분과 그 분의 모든 관심사가 파괴되고 실패되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서 다시 소생하사 어둠의 권세들을 철저하게 소탕하시고, 발뒤꿈치에 상처를 받으심으로 뱀의 머리를 때려 부수셨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전략인가!
2.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순종을 잘했는가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호수아가 명하는” 바를(8절) 그들은 불평이나 원망 없이 그대로 행했다.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잠복하도록 파견된 무리들은(이 두 도시는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동맹하고 있었다) 위험한 지역에 처해 있었으며, 만일 발각되는 날에는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들은 그런 모험을 견뎠다.
이스라엘 군대도 퇴각하고 도망치는 마당에서 그것은 창피스럽고 위험한 짓이었지만 여호수아에게 순종하며 그대로 따랐다.
3. 아이 성의 왕이 얼마나 얼간이였느냐 하는 것이다.
(1) 그는 척후병들을 통해서 성 뒤에 매복해 있는 복병들을 찾아보지 않았다(14절).
하나님께서 아이 성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자기들의 영화에 도움이 되는 것들도 분별하지 못하도록 눈멀게 하심으로써 그로 하여금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게” 하신 일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낸 한 실례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어떤 형편에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가장 위험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자, 성을 지키거나 혹은 퇴로를 확보하기 위한 군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온 군대를 동원해서 이들을 추격하게 했다(17절).
이와 같이 교회의 원수들도 때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들 스스로의 분노와 난폭 때문에 자멸하는 수가 있다.
바로도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데 정신이 팔려 홍해에 자기 자신을 던졌다.
(3) 지난번 공격 때 이스라엘 군사 3천 명 중에서 36명을 죽인 것에 자만해 지금 그가 싸워야 하는 이스라엘의 이 막강한 군대를 모두 죽여 없애버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6절). 어리석은 자의 번영이 얼마나 스스로를 파멸시키며 스스로 파멸하도록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라.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의 사람들을 바쳐진 물건에 손을 대는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채찍으로 사용하셨다.
이 일이 이들로 하여금 자만심에 부풀게 해서 이 무서운 침입자들로부터 자기들의 나라를 구원하는 영광을 차지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기들의 실수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하나님과 화해했을 때 이들을 대항할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스라엘을 꾸짖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 아이 성을 이용하셨을 뿐이며,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히자 그 막대기는 불에 던져질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오직 그 마음에 허다한 나라를 파괴하며 멸절하려 하도다”(사 10:5-7).
4.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으로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치고 얼마나 완전한 승리를 얻었는가 하는 것이다.
각각 자기들이 맡은 일을 잘 해냈다. 양쪽으로 나뉘어 있던 이스라엘 군대는 약정된 신호에 의해 서로서로 연락이 되었고 모든 일은 계획한 대로 성공했다.
따라서 승리를 자신했던 아이 성 사람들은 자기들이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대항할 힘도, 달아날 곳도 없게 되었다.
오직 자기들의 목숨을 침입자들에게 내어 맡기는 불가피한 운명 아래 놓이게 될 뿐이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함성과 아이 성 사람들의 비명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지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토록 의기양양했던 그들이 이토록 어두운 절망으로 별안간 떨어지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 넘쳐흘렀을 공포와 혼란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악인의 승리는 잠깐이다(욥 20:5). 그들이 “높아져도 잠시간”뿐이며 더 무서운 파멸과 몰락에 빠지게 될 것이다(욥 24:24).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모시지 않은 자들에게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쉽게 파멸이 오는지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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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성의 완전 몰락(수 8:23-29)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 성을 점령하고 승리를 거둔 내용에 관해 계속해서 읽게 된다.
Ⅰ. 그들은 모든 것을 칼로 진멸했다.
들판에서뿐만 아니라 성중에서도 그렇게 했으며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도 그렇게 했다. 살아남은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24절).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이 악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와 같이 선고를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심부름꾼일 뿐이며 하나님의 파멸의 선언에 대한 집행자들이었을 뿐이다.
이 이야기에서만 단 한 번 벧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이 사람들과 동맹을 맺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17절).
이들은 자기들의 왕을 모시고 있었으며(여호수아가 죽인 31명의 왕들 가운데 벧엘 왕이 계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 왕에게 속해 있지는 않았다고 해도(12:16) 아이 성이 더 강한 성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의 손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전쟁에 가담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우리가 생각건대) 이들도 모두 진멸당했다. 이처럼 자기들의 파멸을 막으려고 한 짓이 도리어 파멸을 더 빨리 촉진시켰을 따름이었다.
살육당한 사람 전체가 1만 2천 명으로 나와 있는데, 이 숫자는 이스라엘 수만의 군대를 대항하기에는 상대가 안 되는 집단이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신다.
여기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26절) “여호수아는” 살육이 끝날 때까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다”(18절).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가 내밀고 있던 그 창은 적을 진멸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를 격려하고 힘을 내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어떤 종류의 깃발이나 혹은 휘장이 그 창 끝에 매여 있던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의 이런 행동을 자기 부정의 실례로 생각한다. 그의 가슴에 끓어오르는 용기의 불길은 그로 하여금 손에 칼을 잡고 앞으로 달려나아가 열전을 감행하도록 자극했지만, 그는 하나님께 순종해서 깃발을 들고 선 보잘것없는 자리를 그대로 지켰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창을 내밀어서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도움을 기대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지도했다.
Ⅱ. 이스라엘 군대는 성을 약탈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노략물을 마음대로 가졌다(27절).
이처럼 죄인의 재물은 의로운 자를 위해서 쌓이는 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이웃에서 얻은 노략물들은 그들을 광야에서 보살펴 준 회막을 짓는 데 그 대부분이 바쳐졌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여기서 이자까지 붙여 도로 받게 된 것이다. 아마도 여기서 탈취한 노략물들도 모두 함께 모아져서 미디안족을 쳤을 때처럼 여호수아가 적절한 비율로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민 31:26 이하). 무질서하게 그리고 무법적으로 마구 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혼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와 공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Ⅲ. 이스라엘 군대는 아이 성을 잿더미로 만들고 그대로 남아 있게 했다(28절).
이스라엘은 아직 장막에 거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리고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도 불태워 버려야 했다.
비록 이 성을 재건하는 자에게 따르는 저주는 없었다고 해도─우리가 오랜 후에 읽게 되는 아이 성이 바로 이 도시가 아니라면─재건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느 11:31).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이 이 성에서 한 번 패했기 때문에 도시의 폐허 속에 그 기억을 묻어 버리기 위해 절대로 이 성을 재건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Ⅳ. 아이 성의 왕은 포로로 잡혀와서 죽임을 당했는데, 전사로서 전쟁의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의의 칼에 의해서 악인으로 죽임을 당했다.
여호수아는 그를 목매어 달도록 하고 그의 죽은 시체를 아이 성문에 던져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도록 명령했다(23, 29절).
이토록 가혹하게 아이 성의 왕을 다룬 데는 틀림없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짐작컨대 그는 소문난 악인이었고 아마도 이스라엘 군대의 첫 공격 시에 그들을 물리친 일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그의 시체가 던져진 바로 그 성문에서 그는 재판 자리에 앉아 그가 그토록 자랑했던 그 위엄으로 수많은 불경스러운 짓들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불의의 판결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가 집행하시는 심판을 통해서도 자기를 나타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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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 산에서 드린 제사(수 8:30-35)
우리가 여기서 읽게 되는 이 장엄한 제례는 가나안 전쟁 역사 가운데서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던져 준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한 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다음 소식도 역시 마을을 점령하고 이 도시 저 도시들을 쳐들어가 승리를 얻고 그 나라의 심장부를 향해 전쟁을 수행해 들어가며 그들 스스로가 이 변방 성읍들의 주인이 되어가는 그런 이야기들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여기서 전혀 다른 성질의 한 장면이 전개된다.
이스라엘 진영은 평원으로 집결한다. 그것은 적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희생을 드리고 율법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 “아멘”을 하기 위해서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은 적어도 10장과 11장에 나오는 승리를 획득한 다음에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지도상으로 볼 때 세겜이 아이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는 하나(이들 두 산,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세겜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 성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이 두 산이 있는 곳까지 깊숙이 정복해 나갈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이야기를 전위시키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 이야기가 이 곳에 있기 때문에 놀라운 실례가 되는 것이다.
--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화롭게 하는 일에 대한 이스라엘의 열심을 보여 주는 실례가 된다.
전쟁만큼 존귀한 것도, 유쾌한 것도, 혹은 보다 유익된 것도 없었으며, 또한 전쟁은 정착지를 마련해 주는 데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이들은 칼로써 이길 때까지는 자기들의 집도 소유지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전쟁에 관한 모든 일은 정지시켜 두고 지정된 장소를 향해 긴 행군을 하고 거기서 그 예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요단 강을 건넜을 때 이 일을 하도록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들은 비록 이 일을 연기할 여러 가지의 구실을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할 수 있는 한 빨리 이 일을 해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착할 때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연기시키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세상의 어떤 일도 우리로 하여금 꼭 필요한 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데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형통하는 길은 하나님과 같이 시작하는 것이다(마 6:33).
-- 이 일은 자기의 충성스러운 종들인 예배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살핌의 실례가 된다.
비록 이들이 아직 정복되지 않은 원수의 나라 안에 있기는 하지만, 야곱이 자기의 서약을 지키기 위해서 벧엘로 갈 때 바로 그들 성읍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던”(창 35:5)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할 때 그들은 안전했다.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해야 될 일을 할 때 하나님은 그 분의 특별하신 보호로 우리들을 지켜 주신다.
모세는 두 번이나 이 의식에 대해 분명히 명령을 내렸다. 한 번은 신명기 11장 29, 30절인데, 거기서는 의식이 거행될 바로 그 장소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신명기 27장 이하다. 이것은 쌍무 계약이었다. 그 계약이 지금 약속의 땅을 점령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새롭게 되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이 땅을 점령하는 일에 용기를 얻어내게 되었고, 어떤 조건으로 이 땅을 소유하게 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으며, 순종의 의무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다(30, 31절).
이것은, 이 제사를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 되는 한 중보자를 통해서 그리고 그 중보자 안에서, 하나님의 존귀를 위해 자신들을 산 제물로 바친다는 표시였다.
이 제단은 에발 산에 세워졌는데 거기에는 저주가 내려졌다(신 11:29).
이 일은 율법으로는 우리가 마땅히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키시며, 그 분의 중재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당하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들을 구속하셨다(갈 3:13).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는 저주가 반포되던 곳에서 제단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어지게 된다(호 1:10).
에발 산에서 선포된 저주들은, 만일 희생을 통한 속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즉각적으로 실행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 제단에 바쳐진 희생을 통해서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획득한 승리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출 17:15).
지금 이들은 아이 성의 노략물을 통해서 만족을 얻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의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또한 이들은 장래의 성공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은총을 탄원했다. 감사와 마찬가지로 간구들도 화해의 제물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 형통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행하시는 것이며 우리의 모든 길을 기도와 찬양과 의지함으로 그 분께 알리는 것이다.
이들이 세운 제단은 율법에 따라 거칠고 다듬지 않은 돌이었다(출 20:25).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평범하고 자연적이며 꾸밈이 없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술이 하나님의 작품에 아름다움을 더하지 못한다.
Ⅱ.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율법을 청취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를 원하고 자기들의 제사가 수락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가증스러운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 이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이들은 그 계약에 동의한다는 표시로 그 율법에 복종했다. 이제 여기서는,
1. 전체 계명에 대한 축소로서 십계명의 율법이 이스라엘 면전에서 돌 위에 기록되었다(32절).
이것은 법궤 속에 보관된 것처럼 돌에 새겨지지는 않았다. 그런 일은 오직 하나님의 손가락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했다. 마음속에 그 율법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이다. 이 돌들에는 회칠이 되었고, 율법은 그 회칠 위에 기록되었다(신 27:4, 8).
이 율법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동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이와 같은 율법을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후손에게 영원히 남길 증거가 되고 만일 그들이 이 율법을 기억한다면 그들에게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으로 가지는 백성은 크나큰 축복을 받은 백성이다. 기록된 율법은 만인이 보고 읽을 수 있도록 공포되어야 한다.
2. 율법에 대한 인준으로서의 축복과 저주들이 공중 앞에서 읽혀지고 백성들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 “아멘”이라고 대답했다(33, 34절).
(1) 청중은 굉장히 많았다.
① 방백의 우두머리도 제외되지 않았다.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관들도 율법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그 율법에 순종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 축복이나 저주 아래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계약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백성들 앞에 서서 참여해야 한다.
② 아무리 불쌍한 이방인이라도 제외되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일반적인 귀화인들이 있었고 이 귀화인들 가운데 태어난 이방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언약 속에 들게 되었다.
이것은 개종자들에게는 격려가 되는 일이었고, 훗날에 불쌍한 이방인들을 위한 복된 관용의 특전을 보여 주는 징표가 되는 것이었다.
(2) 각 지파들은, 모세가 지시한 바와 같이 여섯 지파는 그리심 산을 향하고 여섯 지파는 에발 산을 향하도록 자리를 잡았다.
언약궤는 이들 가운데 있는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약의 궤”였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빽빽하게 쓴 율법의 두루마리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율법들은 돌들 위에 다시 복사되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했다. 언약은 명령되었고 명령은 언약이 되었다. 법궤를 메는 제사장들이나 혹은 제사장을 시중드는 몇몇 레위인들이 백성들이 자리를 잡고 조용하도록 한 뒤에, 모세가 저들에게 전해 준 축복과 저주를 분명하게 선포했고 그것에 대해 백성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한 것만 이야기되고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의도하신 것은 축복을 위함이었다.
그것이 일차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만일 그들 앞에 저주가 내렸다면 그것은 그들의 잘못 때문이었다.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가”(신 30:15) 그들 앞에 명백하게 놓여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실제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축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다”(시 147:20).
3. 명령과 금지들을 포함한 율법도 낭독되었다(35절).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서 낭독자가 되는 사람은 자기보다도 아랫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여호수아는 생각한 것 같다.
이 본보기에 따라 7년에 한 번씩 지정된 엄숙한 율법의 낭독은(신 31:10, 11) 왕이나 혹은 최고 통치자에 의해서 행해졌다.
율법의 총회적 공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여기서 알 수 있다.
(1) 모든 말이 낭독되었다.
아무리 작은 계율이라도 빠뜨리지 않았고 어떤 복사본에도 축소되는 법이 없었다. 율법의 점 하나 획 하나도 간과되는 법이 없었다.
따라서 낭독할 때 시간이 모자란다든가 어떤 부분이 별로 필요 없다든가 혹은 낭독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건너뛰는 법이 절대 없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신명기의 전 책을 설교한 이후 오랜 주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것을 전체적으로 다시 읽어야만 했다.
하나님이 한 번 말씀하신 것을 두 번 듣고(시 62:11), 우리에게 전해진 것을 살펴보며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반복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2) 모든 이스라엘인이 참여했다.
“여인과 아이”도 모두 그들의 의무를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참여했다. 가정의 주인 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배우자나 아이들을 종교적인 예배를 위한 엄숙한 모임에 모두 참여하도록 데리고 나와야 한다. 배울 수 있는 자는 누구나 “율법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나와야 한다. 이방인들도 또한 참여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비록 이방인으로 있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과 그 분의 거룩하신 뜻을 알릴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선용해야 한다.
===호크마===
=====8:1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 모세 사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의 대업(大業)을 맡기시면서 같은 말을 하셨는데(1:6, 7, 9), 지금 아이 성 공략을 앞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한번 이 말을 반복해 주시고 있다. 실로 아이 성 공략의 예상밖의 실패로 낙심하고 있을 여호수아에게 그 성을 다시 공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Calvin, Keil, Goslinga).
군사를 다 거느리고 - 1차 아이 성 공략 때 정탐꾼들의 자신만만한 보고(7:3)만을 믿고 3천명 정도의 병사들만을 파견함으로써 뼈저린 실패를 경험했던(7:4)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제 충분한 숫자의 병력을 투입하도록 명하신다(Sizoo). 그러나 이 말이 이스라엘의 군대 병력 60만명 모두를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고루 선발된 군사들로서, 아이 성 거민을 정복하는데 충분한 수효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아이로 올라가라 -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 )는 성읍의 높고 낮은 위치에 관계없이, 통칭 적군이 성읍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개시할 때 사용되는 관용적인 표현이다(Campbell). 따라서 NTV는 이 말을 '아이를 공격하라'(attack Ai)로 번역하였다.
아이 - 7:2 주석 참조.
네 손에 주었노니 - 이 말을 보다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그것을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와 네 자손에게 주어서 영영히 너희들의 기업이 되게 하겠다'(1:3; 14:9; 신 1:36; 11:24)란 뜻이다. 한편 여기서 '주었다'에 사용된 완료 시제는 장차 되어질 일을 이미 성취된 것인 양 표현하는 소위 예언적 완료형(prophetic perfects)으로, 이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관계될 때 종종 사용되는 시제이다(Soggin, Hertzberg).
아이 성 전투 - 야음(夜陰)을 틈 타 여호수아는 일단의 부대를 파견하여 아이(Ai) 성 서편에 매복 시켰다.
다음 날 아침 여호수아는 주력 부대를 이끌고 아이 성 동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지난 번 전투(7:4, 5)로 득의만만해진 아이 성의 왕은 성문을 활짝 열고 나와 맹렬한 기세로 여호수아 군대를 반격했다.
그러자 여호수아 군대는 패하는 체하고 거짓 후퇴 작전을 펼쳤다. 아이 성의 모든 군사가 더욱 의기 양양하여 여호수아 군대를 뒤쫓아 추격하자 그 때를 노리고 있던 이스라엘의 매복 군대가 무방비 상태의 아이 성에 들어가 그 성을 불질렀고, 매복 군대와 함께 협공 작전을 펼쳤다.
물론 승리는 여호수아 군대에게로 돌아갔고 그날 아이 성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완전히 진멸당하였다.
=====8:2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행하되 오직...스스로 취하라 - 이 구절에서는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했듯이 아이 성 또한 철저히 정복할 것이로되 단지 하나의 차이점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즉 그것은, 여리고 성을 정복하였을 때는 거민은 물론 그 성읍의 모든 노략물과 가축까지 불태워 하나님께 바치도록 했지만(6:21, 24), 아이 성 정복에서는 노략물과 가축은 그들의 소유로 삼도록 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리고 성은 가나안 땅의 첫번째 정복지였기 때문에 첫 열매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것이 마땅하였지만(출 23:19; 잠 3:9), 그러나 이제 계속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노략물의 재활용이 반드시 필요하였기 때문에 아이 성 정복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 '여리고'에 대해서는 7:2 주석을 참조하라.
성뒤에 - 이스라엘의 진영 '길갈'(4:19)이 아이 성 동쪽 편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아이 성의 뒷편은 아마도 서쪽 편이었을 것이다(Lias).
복병 할지니라 -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 전쟁에서는 성(城) 주위를 돌므로써 승리하게 하셨지만, 아이 성 전쟁에서는 매복, 유인 작전(6절)을 통해 승리하게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 정복 방법과 아이 성 정복 방법을 다르게 지시하셨는지 명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 그때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가장 최적의 방법들을 지시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본문 외에도 구약 성경에서는 삿 20:29-41; 삼상 15:4-9; 삼하 5:23-25; 대하 13:14; 렘 51:12 등에 매복(埋伏) 전술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8:3
용사 삼만 명 - 본절에 언급된 30,000명과 12절에 나타나는 5,000명과의 관계를 두고 학자들 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대체로 다음 네가지 견해로 대별될 수 있다. 즉 (1)여호수아는 아이 성 주위의 두 지점에 2개 부대를 매복조로 파견했다는 견해이다(Patrick, Havernick). 즉 처음에는 30,000명을 서북쪽에, 다음으로 5,000명을 서남쪽에 각각 파견하였다는 견해이다. 그리고 주력 부대는 동남쪽에서 공격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1절의 '군사를 다거느리고'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아이 성 주변에 30,000명을 매복시킬 장소가 마땅치 않을 뿐더러, 그러한 많은 수효가 전해 들키지 않고 매복한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많다. (2)여호수아가 아이성 전투에 투입시킨 총 병력은 모두 30,000명으로서, 이 중 5,000명을 뽑아 아이 성 뒷편에 매복시켰다는 견해이다(Masius, Hengstenberg). (3)3절의 30,000명은 주력 부대를 의미하는 말이고, 12절의 5,000명이 바로 매복에 파견된 수효라는 견해이다(Calvin). 즉 매복 전략을 펼치기에는 그 정도의 수효가 적당할 뿐더러, 그래야만 적의 눈에 발각됨 없이 효과적으로 매복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4)12절은 3절에 대한 보충 설명적으로, 12절의 내용이 정확하다는 견해이다. 따라서 3절에 언급된 30,000명은 5,000명을 잘못 기록한 필사자(筆寫煮)의 오기(誤記)라는 것이다(Keil, Goslinga). 즉 이러한 숫자상의 오기(誤記)는 사본학상 역사서 부분에서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어느 견해가 옳고, 어느 견해가 틀린지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본 주석도 다음 두 가지 추측을 할 뿐이다. (1)만약 당시 정황으로 보아 아이 성이 인근 벧엘 성과 연합한 상태였다면(17절; 12:16), 두 속에 도합 35,000명의 매복 군사를 매복시켰다는 첫번째 견해에도 일리가 있다. (2)그러나 아이 성만을 목표로 삼았다면, 5,000명의 매복 수효로도 충분히 기습 효과를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5,000명의 매복 군사는 1차 공격(7:4) 때보다 훨씬 많은 수효이기 때문이다.
=====8:4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 아이성 정복에 대한 명령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Dake). (1)성읍 뒤로 가서 성읍 가까이 매복하고 예비하라(4절). (2)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7절). (3)성읍을 취하면 불사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8절).
매복하되(* , 아라브) - '숨어서 기다리다'라는 뜻으로, 구약 성경에 도합 40회 나타나는 말이다. 그중에서 사사기(14회)와 여호수아서(7회)에 가장 많이 나오는데, 이 21회의 용례들 대부분은 전쟁의 한 방법으로서 곧 '잠복'의 뜻으로 사용되었다(Campbell). 한편 본문에 나타난 매복 전략 등과 같은 일종의 위장 전략을 이용하는 것이 과연 여호와의 군대에게 합당한 것이냐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 대해 칼빈(Calvin)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할 만하다. "모든 전쟁은 반드시 공격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사력 보다는 지략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장군이야말로 진정 최고의 지휘관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 전쟁이 조약이나 휴전 및 동맹의 파기등과 같은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아니라면, 전쟁시 전략.전술을 십분 활용하는 행위는 결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Keil & Delitzsch, Vol. II. p. 85).
=====8:5
처음과 같이...쳐 올라 올 것이라 - 여기서 '처음과 같이'는 아이 성 군대가 3천명의 이스라엘 군사를 맞아 그들 중 36명을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추격한 1차 전투 때의 사건(7:3-5)을 가리킨다.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 여기서의 '도망'은 아이 성 군사의 반격을 받아 싸움을 포기한 1차 전투시의 도망(7:4)과는 달리 작전상 계획적인 후퇴이다. 이 사실도 모르고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6절)고 쾌재를 부르며 이스라엘을 뒤쫓아 올 아이(Ai) 성 군대는 지난번 승리에 대한 자만심에 빠져 스스로 속을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매복(埋伏) 작전과 아울러 유인(誘引) 작전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6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 고대 전투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성읍 거민이 만일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 작전만을 철저히 펼친 다면, 아무리 상대방의 병력이 우세하다고 할지라도 그 성읍을 정복하기란 매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정복한다고 할지라도 많은 시간과 희생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성의 왕은 승승장구 돌격해 오던 이스라엘 군대를 자신이 손쉽게 꺾었다는 교만과 자만심에 빠져 방어 작전을 펴는 대신 오히려 총반격 작전을 펼침으로써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의 1차 패배(7:4)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내부의 부패를 완전 척결하여 성결한 공동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최소의 희생으로 아이 성을 간단히 정복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룬다'(롬 8:28).
=====8: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 매복(埋伏)한 곳에서 일어나 성읍을 점령하는 시기에 관해서는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18절은 이 때가 후퇴하던 여호수아가 뒤돌아서 단창(短槍)을 들고 아이 성을 가리키는 때임을 알게 해준다. 한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하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데, 만일 복병이 너무 늦게 점령하면 도망가는 이스라엘 군대가 잡힐 우려가 있고, 반대로 너무 빨리 공격하면 추격하던 아이 군대가 재빨리 되돌아 와서 성을 지킬 우려가 있어, 자칫 실수하면 오히려 자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가 빠질 판이었다. 그런데 18-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 최적의 시간을 일러주셨고, 여호수아는 그 지시에 충실히 따름으로, 결국 가장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나안 인들의 눈으로 보기에 여호와는 최고, 최상의 전쟁의 신(神)이었던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 '내가 아이성을 네 손에 주었노라'(1절)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는 말로, 여호수아는 여기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의 확신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3-7절에서 아이 성 정복 전략을 지시한 다음에 이 말을 한 것은 이 전략대로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왜냐 하면 이번 아이 성 전투는 인간의 전술.전략을 초월하여 이미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해 주신(1절)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8:8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 즉 2절에 지시된 바 있는 명령을 뜻한다. 요약하면 (1)여리고 성 정복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거민과 성읍은 죽이고 불사를 것, (2)그러나 가축이나 물건 등은 전리품으로 취할 것 등이다.
=====8:9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 아이(Ai)는 벧엘(Bethel)에서 북서쪽으로 약 3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12:9; 창 12:8). 또한 이 두 지역 사이에 높은 돌산이 있었기 때문에 매복하기에는 적절한 곳이었다(Velde, Knobel). 한편 벧엘은 구약 성경에 65번이나 기록된 중요한 곳으로, 아브라함이 처음 이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한 이래(창 12:8),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로 계속 나타난다. 7:2 주석 참조.
=====8:10
백성을 점고하고 - '점고(鮎考)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 )는 '세다', '계산하다', '방문하다'등의 뜻을 지닌다. 그런데 전쟁과 관련하여 이 말은 진영(陣營)에서 몰래 빠져 나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살펴볼 때 사용되었다(삼상 14:17; 왕상 20:26, 왕하 3:6). 여기서도 전투 당일 여호수아가 특별히 백성을 점고한 이유는 혹시 백성 가운데 이스라엘을 배반하여 아이 성 뒤편에 복병한 사실을 저에게 알리러 간 자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지휘관으로서 여호수아의 주도 면밀함을 엿볼 수 있다.
장로 들로 더불어...아이로 올라가매 - 아이 성 군사들을 유인할 이스라엘 군사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많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장로들과 함께 아이 성의 군사를 유인할 병력만을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아이 성으로 올라간 것같다. 한편 여기서 '장로'는 혹자(Masius)의 생각처럼 '군사 고문관'(military tribune)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서 여호수아를 도와 보필했던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Keil).
=====8:11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었더라 - 아이 성 주변은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이 골짜기를 건너서 직접 아이 성을 공격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7:4, 5). 그러므로 아이 왕의 자만심을 이용하여 유인 작전을 구사한 여호수아의 전략은 참으로 적절한 전술이었다. 한편 이 골짜기는 오늘날 '와디 무티야'(Wady Mutyah)라고 불리운다(F.R. Fay, Robinson).
=====8:12
오천 명 가량을...또 매복시키니 - 5천 명을 매복시켰다는 본절의 내용은 3만 명을 매복시켰다는 3절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한데, 크게 3가지가 있다. 즉 (1)3만 명(* , 로쉼 엘레프 이쉬)이란 숫자는 필사자가 사본을 베껴 쓸때 5천명(* , 하메쉐트 알리핌 이쉬)이란 숫자를 잘못 기록한 것이라는 추론(Keil, Bright, Goslinga). (2)밤에 3만 명이 매복했고(9절), 아침에 아이 성 가까이 이르러 5천 명을 더 매복시켰다는(12절) 견해(Velde, Lincoln), (3)모두 3만 5천 명이 동원되어 3만 명이 적을 유인하고 5천 명이 매복한 것이라는 견해(Calvin), 등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3절 주석을 참조하라.
=====8:13
여호수아가...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 패트릭(Patrick) 감독은 여기서 여호수아가 아이 성 전투를 앞두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이처럼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여호수아는 자신의 행동이 적군에게 간파당할 것을십분 고려하여 의도적으로 지형상 낮고 불리한 골짜기로 군대를 이끌고 들어감으로써, 아이 성 군대가 안심하고 반격해 오도록 유인한 듯하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유인 전략은 14절에서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8:14
아이 왕이 보고...급히 나가 - 아이 왕은 지난 번의 전쟁 승리(7:5)로 이스라엘 군사를 오합지졸로 간주하고 있응을 뿐 아니라, 득의양양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어떤 계략을 가지고 있는 줄도 면밀히 고려하지 않고 그저 성급하게 군사 행동을 취하고 있다. 즉 '성문을 열어 놓고'(17절) 이스라엘 군대를 쫓아가는 엄청난 과오를 범한 것을 볼 때, 아이 왕이 얼마나 성급했는지를 잘 알수 있다(Sizoo). 그리고 여기서 '일찌기 일어나서'란 말은 여호수아의 경우처럼(10절) 성실함과 신중함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자만심과 성급함을 보여주는 말이며, '급히'란 말은 '서두르다'를 뜻하는 '마하르'(* )에서 유래한 말로서, 생각할 여유도 갖지 않고 섣불리 대응한 아이 성 왕의 미련함을 비꼬는 표현이다.
아라바 - 종종 사해 남부 지방을 가리키기도 하였고(신 2:8), 요단 동편(신 4:49), 혹은 갈릴리 호수 아래 쪽의 요단 강 골짜기 전체 등을 가리키기도 하였다(삼하 4:7). 여기서는 요단 계곡 주변의 낮은 초원 지대 내지는 광야를 가리킨다.
정한 때에 - 번역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말이다. 즉 Modern Language Bible, NIV는 '정한 장소', KJV와 개역 성경은 '정한 때', 그리고 RSV와 공동 번역은 '비탈'(the descent)로 번역하였다. 이는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에드'(* )가 '지정한 때와 장소'를 뜻하기 때문에 이와같은 번역들이 가능하며, 또 이전(1차 전투)에 정한 장소(7:5)라는 점에서 비탈로 의역될 수도 있다.
=====8:15,16
거짓 패하여...도망하매 - 여호수아는 적군의 자만심을 십분 활용하여 유인 혹은 후퇴 작전을 썼다(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사용한 매복, 유인 등 일종의 위장 전략의 타당성 여부에 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주경학자 메튜 핸리(Matthew Henry)는 여호수아가 구사한 후퇴 작전을 다음과 같이 구속사적 의미로 영해(靈解)하였다. 즉 "일시적 패배를 통하여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여호수아의 이 전략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패배하는 듯 보였으나, 부활로 인하여 마침내 영원한 승리를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업을 상징하고 예표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
성을 멀리 떠나니 - 적의 자만심을 간파하고 유인(誘引) 작전을 펼친 여호수아의 전략이 그대로 적중하는 순간이다. 6절 주석 참조.
=====8:17
아이와 벧엘...이스라엘을 따랐더라 - '아이'(Ai) 전쟁과 관련하여 갑작스럽게 '벧엘'(Bethel)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70인역(LXX)은 '벧엘'을 생략해 버렸고, 노쓰(Noth)같은 학자도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고 이를 생략해 버렸다. 그리고 조긴(Soggin)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였다. 실제 가나안 정복 전쟁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때 '벧엘'의 정복에 관한 충분한 설명이 없어 해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러나 12:16을 보면 '벧엘'이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여러 성들 가운데 하나로 분명히 언급된 점으로 보아, 위의 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벧엘' 역시 이스라엘 군의 추적에 '아이'와 더불어 연합 전선을 폈던 것으로 추정된다(L. Wood). 즉 '아이'에서 도보로 불과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였던 '벧엘'은 승승장구하는 이스라엘에 간담이 녹을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이 기회에 이스라라엘을 완전히 섬멸하고자 '아이' 전쟁에 적극 동참하였을 것이다(Woudstra). 또는 자력으로는 자기 성읍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소도시 '벧엘'이 '아이'의 속국으로서 군사를 모두 제공했는지도 모른다(Calvin).
성문을 열어 놓고 - 고대 전쟁에서 한 성읍의 성문(城門)은 그 성읍의 존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즉 성문을 지키느냐 아니면 성문이 뚫리느냐에 따라 성읍의 운명이 좌우됐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성읍이라도 성문의 빗장을 굳게 잠그고 철저히 방어 작전을 펼친 다면, 상대방 군대는 그 성문을 뚫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 성은 스스로 성문을 열고 뛰쳐 나왔으니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이 그처럼 무모한 행동을 한 이유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즉 애굽의 손아귀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요단 동평의 아모리 족속을 정복하고,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까지 간단히 무너뜨린 이스라엘 군대를 자기들이 손쉽게 꺾었다는 자만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 성 2차 전투는 "교만은 아니라"(잠 16:18)는 교훈을 남긴 채 아이의 철저한 패망으로 그 막을 내렸다.
=====8:18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 여기서 '단창'(* , 키돈)은 '긴 창'(Kimchi, Jahn)이나 또는 '방패'(Grotius, Masius)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적에게 세게 던질 수 있는 비교적 짧고 조그만 창(욥 41:30)을 가리키는 말이다(F.R. Fay). 그러므로 단창 자체는 멀리 있는 복병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창을 들어 햇빛에 평평한 부분을 반시시킴으로써 복병들로 하여금 아이 성을 점령케하는 공격 신호가 되게 하였을 것이다(Fay). 그러므로 단창 자체는 멀리 있는 복병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창을 들어 햇빛에 평평한 부분을 반사시킴으로써 복병들로 하여금 아이 성을 점령케하는 공격 신호가 되게 하였을 것이다(Fay). 그리고 복병들은 사전에 약속된 그 싸인(sign)을 보다 확실히 간파하기 위하여 첨병들을 보다 앞, 또는 높은 곳에 배치하였을 것이다(Keil). 한편 여호수아 이 단창을 든 또 하나의 목적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는 데 있었다. 이미 첫번째 공격에서 실패를 경험하여 불안감을 갖고 있을 이스라엘 군대에게 그들의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직접 단창을 드는 것은 그들의 불안을 제거할 뿐 아니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히 효과 있었을 것이다(Calvin). 이 사실은 전쟁이 끝나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는 기록(26절)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8:19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 이 불은 도망가던 이스라엘 군대에게는 작전대로 맞아떨어졌으므로 즉시 반격하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동시에, 추격하던 아이 군대에게는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계략에 빠진 것을 알게 하여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한편 여기서의 불은 28절에 기록된 성읍을 불태운 불이 아닌,이스라엘이 성을 장악했다는 신호용 불이었다(Woudstra, Calvin)=====8:20,21,22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이 성을 격파한 기본 전술 전략은 매복 -> 유인 -> 협공 등 3단계 전략이었다. 그 중 본문은 마지막 협공(挾攻) 작전을 펼치는 부분이다. 즉 한번의 승리(7:4, 5)로 인해 자만심에 들뜬 적군의 심리를 역이용하여 일단 성에서 유인해 낸 뒤, 복병으로 하여금 성을 점령케 하고, 이후 앞뒤 양쪽에서 협공함으로써 방심한 적의 허(虛)를 찌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이다. 특히 여기에는 애초의 전략이 마치 자로 잰 듯 꼭 맞아 떨어지는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결국 전쟁은 복병들의 신호용 불을 기점으로, 성을 장악한 복병들의 신호용 불을 기점으로, 성을 장악한 복병들의 후방 공격과 도망하던 이스라엘 주력 부대의 세찬 반격으로 인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어 마치 독 안에 갇힌 쥐 모양 어쩔줄 모르고 당황하는 아이와 벧엘의 연합 군대를 철저히 격파한 여호수아 군대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이처럼 실로 전쟁의 신(삼상 17:47) 여호와가 군대 총사령관이 되시고, 게다가 주도면밀한 지도자의 전략이 함께 한 전쟁에서 그 결과는 필경 대승리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8:23
아이 왕을 사로잡아...끌어 왔더라 - 필경 한번의 승리(7:4, 5)로 인해 자만심에 들떠 이스라엘을 능멸하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신(神) 여호와까지 모독했을 아이 왕은 결국 사로잡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29절).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욥 20:5). 한편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호수아가 쳐서 멸한 가나안 왕들의 목록 중에 벧엘 왕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12:16), 이 당시 아이 왕과 더불어 벧엘 왕도 죽임을 당한 것 같다(Leon Wood).
=====8:24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 '엎드러지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팔'(* )은 '떨어지다', '죽이다'를 뜻하는 동사로 본절과 렘 19:7; 겔 6:4, 7 등에서는 '죽이다'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여기서 칼로 죽인 것은 우상을 섬기는 모든 자들에 대해서는 칼날로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13:15)에 따른 것이다. 여리고 성 거민 역시 이 명령대로 칼날로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13:15)에 따른 것이다. 여리고 성 거민 역시 이 명령대로 칼날로 죽임을 당했다(6:21). 아이로 돌아와서...죽이매 - 즉 이는 먼저 광야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뒤쫓던 모든 군사들을 진멸한 후, 성읍으로 다시 돌아가 그 성읍의 모든 거민들을 죽였다는 의미이다. 이는 일찍이 일반 다른 족속들과는 달리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 내린 "호흡있는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라"(신 20:16)는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그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그분의 사랑과 긍휼의 속성에 맞지 않는 잔인한 명령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명령은 분명 공의의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하는 민족에 대해 친히 내리신 심판 행위로서, 죄악과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해 가지는 구분의 불타는 듯한 공의의 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뿐마나 아니라 역설적으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보존코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8:25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 "호흡 있는 모든 자는 하나도 살리지 말라"(신 20:16)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군대는 전투 당일 아이 성 거민 모두를 진멸했다. 그 수호는 도합 12,000명이었는데, 혹자는 그들 가운데는 벧엘 성읍의 거민들도 일부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Calvin).
=====8:26
단창을...거두지 아니하였고 - 이는 출애굽 직후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지팡이 잡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졌던 사실을 연상시킨다(출 17:8-16; Bright). 당시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군대 지휘관으로 위임 받아 아말렉을 진멸하는데 앞장섰으며(출 17:1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전투의 승리 사건을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다(출 17:14). 따라서 지금 아이 성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완전한 승리의 순간까지 단창을 계속 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미 아말렉 전투에서 모세의 승리 방법을 보았던 그로서는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때와 마찬 가지로 지금도 하나님의 변치 않는 도우심을 바라며 그처럼 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혹자들(Matthew Henry, Calvin)은 여기 아이 성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계속 단창을 들고 서있었다는 사실에서 여호수아의 '자아 부정'(自我否定, self-denial)의 모습을 찾는다. 즉 일찍이 아말렉 전투에서 거둔 승리(출 17:9-13)라든가, 가나안에 파견될 정탐꾼에 뽑힌 사실(민 13:8) 등으로 미루어 보건데, 여호수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전투(戰鬪)에의 의지가 충만한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최근에 당한 패배(7:4, 5)로 인해 이번 아이 성 전투에 직접 칼을 들고 출전하여 싸우고픈 심정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모든 인간적인 충동을 억누르고 자신의 칼을 빼어 묵묵히 하늘을 향해 들고 서 있음으로써 모든 승리에의 영광과 찬양을 위에 계시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다. 즉 모든 백성에게 전쟁의 승리가 오직 위로부터 도우시는여호와께로서 말미암았음을 분명히 현시하고, 아울러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병기 든자'(삼상 31:4-6)에 불과함을 보임으로써, 위풍당당하게 호령하는 지휘관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은 감추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진정 여호와의 군대를 이끌고 성전(聖戰)으로 취득하였다. 이는 2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내린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여리고'(Jericho)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거둔 첫열매된 성읍으로서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야 했지만, 그 이외의 성읍에서는 거민은 죽이되 전리품은 취득하여 계속되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재활용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8:28
아이를 불살라 - 성서 고고학자 가스탕(Garstang)과 올브라이트(Albright)는 이 지역에서 발굴된 토기 조각들과 1928년에 실시된 발굴 조사를 토대로 하여 아이 성이 여리고 성의 멸망과 동시대인 B.C. 1400년경에 멸망되었으리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영원한 무더기 - '무더기'(heap)란 말이 공동 번역에는 '페허'로 나와 있다. 고고학 자료와 성경의 전후 문맥을 통해서 볼 때, 아이(Ai)는 여호수아에 의해 함락된 이후 오랫동안 황폐한 채로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8:29
본절에는 생포된(23절) 아이(Ai) 왕의 처리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처참한 처형인데, 이토록 가혹하게 다룬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즉 그 이유는 단순히 백성들의 불타는 적개심을 만족시켜 주고자함 때문이 결코 아니라, 우상 숭배의 소굴인 가나안 땅의 수괴(首魁)에 대한 공의로운 여호와의 심판 때문이었다(Calvin).
저녁 때가지 나무에 달았다가 - 죽은 자의 시체를 다시금 나무에 매다는 행위는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후에까지라도 모욕과 수치를 당하도록 하게 함이었다(민 25:4; 신 21:22; 삼하 21:8, 9; 에 7:10). 아울러 그것을 보는 자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여 같은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해질 때에...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 신명기 율법(신 21:23)에 따르면, 시체를 나무에 매단 채 밤새도록 두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 이유는 성결법상 시체는 그 자체가 부정한 것으로서(민 6:11), 모든 시체는 거룩하고 정결한 땅 가나안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린 채 계속 방치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악인의 시체는 바로 당일에 땅 속에 묻어 그 부정함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깨끗히 제거 하여야 했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 혹자들은 추측하기를, 틀림없이 아이 왕은 성문 어귀 곧 심판과 통치의 왕좌에 앉아 온갖 이방의 불경스러운 행위를 일삼았으리라 생각한다(Matthew Henry, Calvin). 따라서 평소 거만하고도 위풍 당당하게 자신의 권세를 자랑했을 바로 그 자리에서 신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결국 시체로 던지움 당했다고 보는 것이다(욥 24:24).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 아이(Ai) 성 전투의 두 악인, 아간과 아이 왕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같은 신세가 되어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게 치욕과 경고거리가 되고 말았다(7:26).
=====8:30
때에 - 여러 학자들(Knobel, De Wette, Meyer, Rosenmuller 등)은 그리심 산과 에발산에서 본 축복과 저주의 의식이 시행된 때를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사회가 안정된 때라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본문(30-35절)을 시간적 순서를 뛰어 넘은 삽입 구문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견지에서 70인역(LXX, Septuagint)도 여기서 이 부분을 생략하고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들이 이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갑작스럽게 등장한 본문 (30-35절)이 전후 상황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로부터 20마일 이상 떨어진 세겜 땅 에발 산에서 당시 이러한 의식을 순조롭게 진행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란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假定)은 '성전'(聖戰)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여리고 전투에서 뿐 아니라, 특히 아이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무엇보다 백성의 성결 및 하나님의 규례 준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정복한 후 그곳으로부터 이틀 거리 정도에 있는 에발 산까지 곧장 진격하여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준수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리란 추측을 하는 것은 별로 무리가 되지 않는다(Matthew Henry, Keil).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남아 있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보다 수월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여호수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 여기서는 여호와를 특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지칭한 점이 주목된다. 아마도 이는 이후부터 안약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외에는 다른 어떠한 이방의 우상들도 섬기지 않겠다는 것을 의지적으로 시사하는 말일 것이다(Keil).
에발 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 이와같이 한 것 역시 에발 산(Mt. Ebal)에 율법을 새긴 돌을 세우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라느 신 27:1-8의 규례에 따른 것이다.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중에 에발 산은 저주를 위해, 그리심 산은 축복을 위해 이미 선택되었다(신 11:29). 그런데 희생의 제단이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중시할 필요가 있는데, 곧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은 완전해질 수 없으며, 따라서 저주를 면케 해 주는 희생의 제단이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Schaeffer). 신 27:4 주석 참조. 한편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대해서는 신 11:29 주석을 참조하라.
=====8:31
모세가...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 즉 철연장의 도움 없이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은 것은 신 27:5-7에 나타난 모세의 지시와 출 20:24, 25에 기록된 모세의 율법에 따른 것이었다. 이와같이 제단에 사용되는 돌을 '정'으로 다듬지 않고 채석장에서 나온 자연 그대로의 돌로 사용한 것은, 기교적이로 외형적인 미(美)를 중시하기 보다는 천연적이고 내면적인 진실된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Matthew Henry).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 신 27::5, 6; 출 20:25 주석 참조.
번제와 화목제를...드렸으며 -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 헌신을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이며(레 1:13-17), '화목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평화와 친교를 목적으로 드려지는 제사(레 3:1-16)로서, 이와같이 제사가 드려진 것은 신 27:6, 7의 규례에 따른 것이다. 한편 이 번제와 화목제는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처음으로 주어질 때 시내 산에서 드려진 제사로서(출 20:24), 지금 에발 산에서 다시 드려진 것은 시내 산에서 받은 율법을 다시 기역하는 데 그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Woudstra).
=====8:32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그 돌에 기록하매 - 여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은 신 27:3에 따르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가리키지만, 그러나 율법 전체가 그 돌에 모두 기록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율법의 요약을 가리키는 말로(Matthew Henry), 곧 율법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규정 명령들로 간주할 수 있다(Calvin). 그리고 이 구절에서 '그 돌'은 히브리어 원문상 이미 사용한 적이 있는 어떤 물체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는 정관사를 포함하고 있는데, 따라서 여기서 '그 돌'은 징으로 쪼지 아니한 거칠거칠한 제단의 돌이 아니라, 신 27:2, 4의 규례를 따라 석회로 매끄럽게 칠한 돌을 말한다(Lias, Fay). 한편, 이와같이 돌 위에 석회칠을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위에 새겨진 율법을 분명히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Woudstra). 신 27:2 주석 참조.
=====8:33
온 이스라엘과...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대표자나 또는 백성의 남자로서의 회중 뿐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 및 그들 가운데 있었던 이방인'을 포함한(35절) 모든 이스라엘 회중을 뜻한다(Keil).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 사회에 거주하는 '이방인'(* , 게르)들까지 이스라엘 본토인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축복과 저주의 선언에 첨여했다는 사실은 당시 이방인들이 율법의 공의(公義) 하에서 이스라엘 본토인들과 동등한 취급을 받았음을 보여 주며, 또한 훗날에 이방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리란 사실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Matthew Henry).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 - 이스라엘 사회의 정치(종교), 행정, 사법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지칭한다. 이들 역시 율법 하에서는 모든 백성들과 동일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 이들은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3:3)를 멘 채 양편으로 나뉘어진 백성들의 중앙에 서서 큰 소리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언해야 했다(신 27:9, 14). 이러한 의식은 두 가지를 상징한다. (1)여호와의 언약궤, 즉 말씀이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2)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하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임한다.
절반은 그리심 산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 신 27:12, 13의 규례에 따른 것으로,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 들어간 후 여섯 지파(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는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서고, 또 다른 여섯 지파(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는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서도록 명령하였었다. 또한 이때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가운데 선 후 율법을 선포하면 백성들은 '아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오른 사람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고, 저주의 산인 에발산에 이른 사람은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축복과 저주는 오직 율법의 순종 여부(8:34; 신 28:1-68)에 달린 것이다(Schaeffer).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 27:11-15 주석 부분을 참조하라.
=====8:34
여호수아가...낭독하였으니 - 아마도 이 말은 여호수아가 먼저 낭독하면, 그것을 받아 제사장들이 다시 큰 소리로 낭독한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신 27:14).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 - 여기서 낭독한 율법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마다 여러 의견들을 제시한다. 즉 (1)모든 율법은 그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하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는 견해, (2)율법의 주목적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질책하는 것이란 점에서 저주만을 가리킨다는 견해로 즉 신 27:15-26에 나오는 12조항의 저주의 율법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3)신 27:15-26과 28:15-68에 언급된 저주와, 신 28:1-14에 언급된 축복의 말씀으로 보는 견해 등이다. 아무튼 여기서 어느 견해를 채택한다 할지라도 그 근본 정신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
=====8:35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객들 앞에 - 이스라엘 성년 남자는 물론이려니와 평소 인구 조사시 계수함 받지 못하는 여인과 아이를 포함하여, 심지어 그들 중에 우거하는타국인 들까지도 본 축복과 저주의 의식(儀式)에 참여 했음을 보여 준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복 받고 길이 장수하는 데에는 남녀 노소 및 혈통의 차별이 전혀 있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도 역시 그 누구도 저주의 심판을 면할 길 없음을 또한 시사한다. 따라서 결국 본절은 후일 사도 바울이 명쾌히 설파한 바, 복음으로 말미 암아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베푸시는 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갈 3:28)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된다는 진리를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골 3:11; 롬 3:29; 10:12; 고전 1: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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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앞서 아이 성 전투에서 맛번 치욕스런 패배를 깨끗이 설욕(雪辱)하는 장면이다. 즉, 7장에서 이스라엘은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아이 성 공격에서 참패당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그후 이 패배의 주범이었던 아간을 처형함으로 이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본장에서 이스라엘은 아이 성을 다시 공격하개 되는데 1-9절은 아이 성 재공격에 대한 지시 사항이다.
그리고 10-29절은 백성들이 그와 같은 지시대로 순응함으로써 아이 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장면이다.
한편 이와 같이 극적인 승리를 거둔 이스라은 만사를 제쳐 두고 우선 에발 산으로 가서 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단에 율법을 새기고, 또한 축복과 저주에 관한 모든 율법을 낭독하였다.(30-35절).
이처럼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정복 사업에도 불구하고 먼저 이러한 제례를 집행했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즉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정립되어 있을 때는 승리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여지없이 패배당할 수 밖에 없으므로 뼈저리게 느끼고 영적인 무장을 위해서 이 종교 의식을 시행했던 것이다.
1. 아이 성 전투에 대한 지시(8:1-9)
아간을 처형함으로써 이스라엘 중에서 죄악이 제거된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다시금 아이 성 정복 전쟁을 재개토록 명하시는 부분이다. 즉 비록 아간의 범죄로 인해 잠시 지연되기는 하였지만 아이 성 역시 여리고 성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넘어가야 할 가나안의 여러 성읍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제 이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면하면서 복병 전술(伏兵戰術)로 아이 성을 공략할 것을 지시하신다(1, 2절).
그러자 여호수아는 다시금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부 지침을 하달한다.
(1) 군사 3만 명을 뽑아 아이 성 뒷편에 매복(埋伏)시킬 것(3, 4절). (2)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은 아이 성 사람들을 유인하여 성밖으로 이끌어낼 것(5, 6절). (3) 일정한 지점까지 아이 성 사람들이 유인받아 나오면 매복한 군사들은 성읍을 취하고 불사를 것(7, 8절). 그리고서 이러한 명령을 한 후 여호수아는 군사들을 아이 서편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고 자신은 백성 가운데서 잔다(9절).
이제 이렇게 하여 성 재공격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러주시고 이에 의거한, 여호수아가 세부 전략을 짠 이 매복 전술은 아이 성 전투에 참으로 적절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아이 성은 여리고와는 달리 해발 800m 산지에 위치하였으니 정면 대결을 벌일 경우 비록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손실을 입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이 미처 생각지도 못할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다. 결국 이는 당신 백성을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시 17:8).
...아이 성 전투 방법 - 본문에는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함께 아이 성 정복 전략을 수립하는 장면이 나온다(3-9절).
그런데 그 계획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
(1) 아이 성 전투 방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것이란 점이다(1절).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 뒷에 군사들을 매복시킬 것을 지시하셨는데 이러한 복병 전술은 하나님의 지시가 없었다면 여호수아 단독으로 생각해 내기 힘든 전략이었다.
1차 아이 성 공격은 하나님의 지시도 받지 않은 채 정탐꾼들의 보고만 믿고 3천 명의 군사를 파견했다가 참패를 당하고 말았는데, 이제 하나께서는 그한 정탐 작전이 아닌 복병 전술로써 아이 성을 공격하도록 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지 인간의 생각과 힘에 달려 있지 않다. 시편 127:1에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했고 전도서 9:11에선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고 지휘관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지시없이는 패배할 수 밖에 없고, 반대로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동한다면 승리할 수 밖에 없었다.
(2) 아이 성 전투 방법은 여리고 성 전투 방법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2절).
즉 여리고 성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 주위를 돌다가 나팔을 불도록 하셨는데, 아이 성 전투에서는 복병 전술로 싸울 것을 지시하셨다.
우리의 지혜로서는 왜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의 작전을 달리 주셨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 하나님의 최고, 최선의 방법들이었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은 다양한 것이며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또는 사회적 계급이나 연령에 따라 다르다.
왜냐하면 어느 한 조건에 적합한 방법이 다른 조건의 경우에는 부적합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처지와 형편에 맞게 우리를 인도하시어(시 23:1, 2) 당신의 사역을 성취시키시니 우리는 하나님게서 어떻게 역사하시든지 그저 기쁨으로 순종해야 할 것이다.
....죄로 인해 패배한 아이 성 전투로 말미암아 얼마나 큰 낙담에 빠지게 되었으며, 으로 닥칠 일에 대하여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7:6-9). 그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늘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초기 단계인 아이 성 전투에서 비참하게 패배하자 의기 소침하고 낙담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하나님 격려의 말씀을 듣고 아이 성을 재공격한 결과 마침내 승리를 얻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사실은 인생의 여정에는 반드시 승리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실패도 있다는 것과 또한 설사 한번 실패했다 하더라도 좌절하고 포기해 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실패를 거울로 삼아 재차 도전함으로 반드시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대인의 격언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곧 담보물도 없이 돈을 빌려주는 사람, 공처가, 그리고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실패는 분명히 좋지 않은 것이지만 그 실패를 승리를 위한 교훈으로 삶을 때, 실패 자체도 도움이 된다.
그 실패의 원인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이라면 두 번 다시 그러한 실패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공격 실패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철저히 배울 수 있었고 보다 겸손하고 신중해질 수 있었다.
즉 요단강 도하 사건, 그리고 여리고 성 정복 사건등으로 그는 마치 이러한 일들이 자기가 잘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자만심에 빠질 수도 있었으며 또 실제로 그러했다 .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지시을 받지 않고 정탐꾼들의 말만 듣고 소수의 병력만 보냈다가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실패 때문에 더이상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전투를 수행하여 남아있는 가나안의 여러 성읍들을 진멸할 수 있었다.
그가 아이 성 전투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계속 교만할 수도 있었으며 그래서 그만큼 더 많은 실패를 겪엇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실패를 적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을 교훈 삼아 최선을 다해 보고 그 실패를 통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 추구하는 사람이다. 여호수아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2. 아이 성 전투에서의 승리(8:10-29)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실행한 결과 전날의 패배를 설욕(雪辱)하고 아이 성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즉 아이 성과 마주보고 있던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가 거짓으로 도망하자 아이 성 군대는 그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성문을 열어 둔 채 뒤쫓아 나왔다(10-17절). 그 틈을 이용하여 성 뒤에 매복해 있던 복병들이 아이 성에 들어가 불을 지르자 아이 성 군대는 뒤를 돌아보았다(18-20절). 그러나 그들은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가지 못하는 진퇴 양난(進退兩難)의 처지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21-19).
이러한 본문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가지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자.
(1)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하나님의 지시에 잘 순종했다는 점이다.
즉 아이 성 군사들을 유인하는 이스라엘 군사들은 자칫하면 뒤따라오는 아이 성 군사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할 수 있는 모험을 감행했었다.
또한 아이 성 뒤에 매복해 있는 군사들 역시 발각될 시 퇴로를 차단 당해 전멸할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령대로 성실히 임무를 완수하였다.
이와 같이 유인 병, 복병할 것 없이 이스라엘 군사들은 모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실행하겠다는 '죽기까지의' 순종을 보여 주었다.
즉 여리고 성 공격도 하나님의 지시에 대한 철저한 순종으로 승리했는데, 이 두번째의 아이 성 공격도 하나님의 지시에 대한 철저한 순종으로 승리한 것이다.
(2) 아이 성 군사들이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전략상 마땅히 이스라엘 복병 전술 등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걸고 일단 성 주위를 조사해야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도망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할 때 성을 활짝 열어둔 채 추격하는 방심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스라엘 복병들에게 성을 쉽게 점령당하고 말았다(17절).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스스로의 우둔함 때문에 결국 진멸당하고 만다. 과거에 바로도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도망하는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데 온 힘을 쏟다가 그의 군사 모두를 홍해 바다에 빠져 죽게 한 적이 있다(출 14:21-31). 또한 앞으로 나타날 가나안 남부와 북부 전투에서도 그들 지역의 왕들은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모두 진멸당하게 된다.
3. 제단 축조(築造)와 율법 낭독(8:30-35)
....아이 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사업 가운데서 귀중한 의미를 전해 주는 장엄한 제례를 집행하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그가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 성읍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계속 진격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의 이러한 예견과는 달리 그는 에발 산에 한 단을 쌓고(30절)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31절) 율법의 모든 말씀을 돌에 새기고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였던 것이다(32-35절).
물론 이는 여호수아의 즉흥적 생각에 의거한 행위는 결코 아니었다.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1) 에발 산에 철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것과 (2) 또 하나의 돌에 석회를 발라 그 위에 율법을 새기고 축복과 저주의 율법을 낭독할 것을 명령했었다(신 27:4-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강을 건너자마자 바로 에발 산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가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정복한 후 이제 바로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에발 산으로 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제 의식이 갖는 중요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의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에발 산 종교 의식의 의의(意義) - 본문에서 이스라가마 백성들이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기 위하여 그곳을 찾아갔다는 기록이 나온다(33절).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백성들이 에발 산에서 단을 쌓고 여러 의식을 집행하였다는 대목(30-32절)은 특히 흥미를 끈다. 이제 이에 대하여 다 같이 생각해 보자.
(1) 먼저 그들이 에발 산에 단을 쌓은 의미부터 살펴보자.
이 에발 산은 저주를 선포받은 산이다(신 11:29). 그런데 이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제단이 세워졌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주심으로 죄악과 저주로 가득찬 이 세상이 구속될 것을 상징한다. 즉 이미 선포된 저주를 제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사가 에발 산에서 드려졌듯이, 이 죄악의 세상을 속량하기 위해 어린양 그리스도의 희생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가 없었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율법의 저주에서'(갈 3:13) 속량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2) 더 나아가 에발 산에 세워진 제단에서 번제 및 화목제를 드렸다는 점도 유의해 보자.
제단에 드려진 번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것을 상징한다<레 1:3-9 강해, 번제에 대하여>.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향내나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또한 화목제는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해를 가져다 줌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화(不和)는 제거되고 평화와 친교만이 남게 된 것을 상징한다<레 3:1-5 강해, 화목제에 대하여>. 요컨데 이 화목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한 화목 제사를 드리사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롬 5:1)
게 된 것을 뜻한다. 실로 그리스도의 화목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으며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다(신 27:7).
(3) 이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30, 31절) 모세의 율법을 돌에 새기는 것(32절)에 관하여 살펴보자.
물론 이 돌은 제단을 쌓기 위해 사용된 돌과는 다르다. 제단을 쌓기 위해 사용된 돌은 철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인데 반해, 이 돌은 하나님의 율법을 분명하게 똑똑히 새길 수 있도록 석회질을 하여 표면이 매끄럽게 된 돌이다(신 27:4).
한편 본서에는 지금까지를 포함하여 4번의 돌을 세운 사건이 나온다.
첫째, 요단 강을 기적적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4:90.
둘째, 아간과 그에 속한 모든 것을 돌로 친 후 돌 무더기를 쌓았는데, 이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나타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7:26).
세째, 아이 성의 함락 후에 세운 돌 무더기인데, 이는 하나님의 저주 대상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는 것이다(8:33).
하지만 이상의 것과 달리 마지막으로 여기 에발 산에 세워진 율법이 새겨져 있는 돌 무더기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 준다.
즉 이 돌 무더기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앞으로 그분의 벡성답게 발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다짐하고 각오하게끔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여호수아의 제례 집행 - 본문에는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그곳으로부터 수십 km 떨어져 있는 지점인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을 향해 행진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직 완전히 정복하지도 않은 가나안 땅에서 그러한 행진을 했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리고 성, 아이 성 패배 소식을 들은 남부와 북부의 성읍들이 위험을 느끼고 언제 이스라엘을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종교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무리한 행군을 했다는 것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사 모세의 율법에 그렇게 하라는 규정이 있더라도 웬만한 사람 같으면 전쟁이 끝나고 나서 그러한 일을 하려고 연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율법에 나타나 있는 대로 할례 의식과 유월절 의식을 집행함으로 여정을 지체했듯이, 이번에도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수아는 그것이 결코 가나안 정복에 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준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즉 요새 대신 제단을 쌓고, 승전비 대신 율법을 새긴 돌비를 세운다는 것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힘을 내게 해주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사기(士氣)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은 요새보다도, 병기보다도 더 중요하다.
여호수아는 종교 의식을 통해 사기를 북돋아 줌으로 성벽을 쌓거나 병기를 동원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 무엇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였다.
아간의 죄로 말미암아 실패를 경험한 여호수아로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체험했었다. 때문에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하자 제일 먼저 그는 이 종교 의식부터 서둘렀던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에게 있어선 하나님만이 유일한 요새이시며 따라서 하나님을 모실 때만이 그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여호수아 ! 그는 영적으로 지극히 지혜로운 자였으며 전쟁에서의 참된 승리의 비법을 잘 알고 있는 용장이었다 하겠다.
===여호수아 제8장 강해: 아이 성을 정복하다.===
여리고성을 점령했지만 아간의 범죄로 인하여 작은 아이 성에게 패배를 당한 이스라엘은 아간의 처형과 백성의 회개 이후 재공격하여 마침에 점령에 성공했다는 것은 어쩌면 평범한 스토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범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가져오고, 회개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범죄할지라도 속히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회개하면 그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리고 그 죄인이 과거에 범했던 죄에 대한 책임은 구약에서는 속죄제사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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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 하나님의 아이 성 재공격 명령과 공격 전술에 관한 지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그들 가운데 있던 죄악을 척결하자 여호수아를 위로하시면서 다시 아이 성 전투를 재개하도록 명령하시고 친히 그 전략까지 지시해 주셨습니다.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작은 아이 성에게 패한 이스라엘은 절망과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수 7:7) 그러나 아간의 죄를 척결하자 이스라엘은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회복되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여호수아에게 확신시켜주셨습니다. 1절은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정탐꾼을 보낼 때에 했던 말이며(신 1:21), 또한 40년 후 모세가 나이 어린 여호수아에게 통치권을 넘겨줄 때 했던 말과 같습니다.(신 31:8) 여호수아는 이와 동일한 말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1:9). 아이 성격을 앞 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다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실의에 빠진 그를 격려하며 용기를 주시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하는 방법은 모든 군사를 다 거느리고 아이 성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아이 성의 모든 것을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전쟁의 승리에 관한 모든 일이 이미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결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서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
아이 성과 여리고 성의 전투의 차이점은, 여리고는 정복의 첫 열매를 상징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친 물건이 되어 모든 물품을 불태우거나 여호와의 곳간에 저장해야 했지만(수 6:18, 19, 24), 아이에서는 물건과 가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 사용하도록 허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스라엘이 앞으로 계속될 전투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전쟁 물자를 확보하게 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성의 전투를 통해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지만 아간처럼 개인의 욕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는 도리어 그 은총과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 성을 공격할 때에 성 뒤에 ‘복병’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매복 작전입니다. 먼저 도시의 뒤편에 군인을 매복시킨 후 선발 부대가 기습을 시도하고, 다음에 작전상 선발 부대가 후퇴하여 적을 밖으로 유인합니다. 그런 후 최종적 매복 부대가 유인된 적을 받아침과 동시에 아울러 성을 완전히 섬멸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술을 사용하게 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기적만을 바라는 나태함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또한 남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맛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데에도 꼭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그 때 상황과 처지에 따라 가장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매복 임무를 맡은 군사의 수는 3만명입니다. 12절에는 매복에 투입된 5천 명의 군사가 또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총수가 3만5천명이었는지 아니면 12절의 5천 명은 3만 명 가운데서 차출된 자인지 애매모호합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패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전투에 참여한 모든 군사가 3만5천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계속되는 전후 문맥으로 볼 때에 12절의 5천 명은 3만에 이어 추가 배치된 병력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4: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여호수아는 매복 부대를 보내면서 치밀하게 작전을 계획하였습니다. 즉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적으로 작전에 돌입할 수 있도록 성의 배후에서 매복하되, 성읍 주변에 바짝 붙어서 기다리고 하였습니다. ‘다 스스로 예비하라.’는 말은 매복 작전은 그 성격상 적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것이므로 각 전투원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특히 공격 명령이 하달되었는데도 제 때에 공격이 감행되지 못하면 그 작전은 실패하게 됩니다. 따라서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자세를 확립하라고 한 것입니다.
5,6: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 올 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따르며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하거든
1차 전투에서 아이 성 거민들은 이스라엘을 성공적으로 물리쳤기 때문에 사기가 매우 충천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이 이스라엘이 공격해 오면 그들은 틀림없이 성문을 열고 추격해 올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는 아이 성 거민들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짐짓 패하여 도망하는 척하면 도저히 이길 힘이 없어서 도망하는 줄로 착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성 뒤에 매복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성을 비어둔 채 여호수아의 군대를 쫓아갈 것이었습니다.
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복병들에게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의 믿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8: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 하고
2절하고 반대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여리고 성에서 행했던 것처럼 왕과 거민과 성읍을 전멸시키되 취할 물건과 가축까지도 불사르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27절).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전쟁에 있어서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시키기 위해 적당한 은폐 및 엄폐물을 찾는 일은 전투원의 사기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이와 벧엘 사이는 약 4km로 도보로 1시간 정도의 거리이고(창 12:8; 수 12:9), 이 두 지역 사이에는 높은 돌산이 있었기 때문에 매복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즉 거리상 이스라엘이 이동하거나 공격하기에 안성맞춤이었으며, 돌산은 훌륭한 은폐의 효과를 주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 가운데 유숙한 것은, 물같이 녹아버린 백성의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그들의 용기를 다시 북돋우기 위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승리의 약속을 그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도 그 밤을 그들과 함께 지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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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절: 매복술과 유인 전술에 의한 여호수아의 아이 성 공격과 이스라엘의 승리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은 아 이 성 전투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지시에 따라 매복, 유인, 협공 작전으로 아이 성 군대를 완전히 진멸하고 많은 전리품을 탈취하였습니다. 아이 성은 불살라져 황폐화되었고 아이 성 왕은 처형한 뒤 해질 때까지 나무에 매달아 하나님의 대적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경고하였습니다.
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점고(파카드:פקד)는 ‘방문하다, 검사하다, 세다’ 등의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군사들의 전투 준비 상태와 사기 등을 살핀 듯합니다. ‘이스라엘 장로’ 이들은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에 각 족속을 대표해서 여호수아에게 자문했던 백성의 수장들입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백성들의 선두에 섰습니다. 지도자는 백성을 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들은 백성을 이끌고 아이 성 앞에 당도하여 그 성의 북쪽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
11: 그를 좇은 군사가 다 올라가서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편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었더라.
아이는 서편과 남편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북편도 그다지 가파르지 않으나 동쪽은 꽤 가파른 절벽입니다. 더욱이 그 상층부인 아이 성 주변으로는 골짜기가 둘러싸여 있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그 골짜기는 ‘와디 무티야(Wady Mutyah)’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성읍 주변에 매복병을 유인해 낸 다음 성을 공략하는 작전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12: 그가 오천 명 가량을 택하여 성읍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또 매복시키니
9절에 의하면 삼만 명의 군사들이 아이의 서편에 위치한 벧엘 지역과 아이 성 사이에 매복되었고, 11절에는 여호수아 자신은 주력 부대를 이끌고 아이 북편에 진을 쳤습니다. 여기에서는 또 오천 명을 뽑아 삼만 명이 주둔한 지역에 추가 배치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아이를 돕기 위해 파견할지도 모를 벧엘의 자원병을 차단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17절). 물론 당시의 지리적 조건을 고려할 때 삼만 오천 명을 한 장소에 매복시킨다는 것은 아이 성의 관측에 의해 쉽게 노출될 소지를 안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벧엘과 아이의 동맹 관계를 차단하기 위해서 상당히 필요한 조치였다고 보입니다.
13: 이와 같이 성읍 북편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편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산지 전투에 있어서 군사를 골짜기로 이끌고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양쪽 능선을 따라 적들이 포위 공격을 해 올 경우 빠져 나갈 퇴로가 차단되어 몰사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은 아이 왕을 유인하려는 기만술이었습니다.
14: 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서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고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의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무모하게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에 들어선 것을 보자 아이 왕은 다음날 아침 일직이 군대를 이끌고 싸우러 나왔습니다. 아이 왕이 얼마나 급히 서둘렀는지를 본 절은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이 왕은 날이 새기도 전에 군대를 출동시켰습니다. ‘급히(마헤르:מהר)’는 ‘쉽게 흐르다, 서두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아이 왕이 1차 전투의 승리에 도취되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싸우러나간 어리석음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정한 때에’(모에드:מועד)는 고정된 장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삼상 20:35). 그렇다면 아이 왕은 1차 전투 때 이스라엘과 싸운 장소에서 다시 싸우기 위해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5,16: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그 성 모든 백성이 그를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여호수아가 구사한 이 거짓 패배 작전은 적과의 싸움에서 최대한 아군의 피해를 줄이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지혜로운 전략, 전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하여 메튜 헨리 주석에서는 ‘마치 패배하는 것 같았으나 궁극적 승리를 거둔 여호수아의 업적은 십자가 상에서 죽음으로 인해 사단에게 패배한 듯하였으나 부활하심으로 완전하고도 영원한 승리를 거둔 그리스도의 위업을 예표해 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7: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옆어 놓고 이스라엘을 따랐더라.
본 절을 살펴보면 벧엘 성 역시 이스라엘과 전투를 치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시 주변 정세를 살펴 볼 때에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가나안 부족 국가들은 하나의 부족연맹체로서 경제, 군사, 상업적으로 아주 밀접하게 서로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벧엘 역시 아이 성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4km), 이스라엘의 아이 성 공격에 대비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양국 사이에 약 삼만 오천 명 가량의 군사를 매복시키자 벧엘 성의 일부 군사가 자연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와 벧엘의 군사들은 이스라엘이 후퇴하자 이번에야말로 그들을 섬멸할 기회라고 생각하여 아예 성문을 열고 추격을 하였던 것입니다.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단창’은 적에게 던질 수 있는 작은 창(욥 41:30)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복병들이 그것을 잘 볼 수 있도록 첨병을 두었거나, 혹은 햇빛에 의해 그 단창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고 복병들이 신호로 삼게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단창을 단순한 신호가 아닌, 곧 승리의 상징으로 전투가 끝날 때까지 들고 있었습니다(26절).
19: 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충실하게 준행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혹시 전투에 실패함으로 인하여 가나안 족속이 하나님의 능력을 우습게 여기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공격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매복해 있던 부대들은 성이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여호수아가 이끈 부대에게 알리기 위해 즉시 불을 살라 연기를 피웠습니다. 이 불은 여호수아가 이끈 군인에게는 사기를 북돋아 주는 촉매 역할을 하였으나, 반면에 아이 성 군인들에게는 절망과 혼돈의 불빛이었습니다.
20: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 본 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더라.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이는 방도가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이 군사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정면에서는 패주한 척 했던 여호수아의 주력 부대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고, 후방에서는 성을 불사른 매복 부대와 접전해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성에서 연기가 치솟는 것을 보자 아이 군사들은 싸우고 싶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여 살 길을 차기 위해 도망하기에 바밨습니다.
21,22: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을 죽이고,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혹은 이편에서 혹은 저편에서 쳐 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본 절로 미루어 볼 때에 이스라엘 군대의 협공을 받은 아이의 군대 뿐 아니라 아이를 지원한 벧엘의 군대도 몰살당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23: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 왔더라 .
12:7을 보면 여호수아의 군대에 의해 죽은 왕들 가운데 벧엘 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수 12:16). 그런데 본 절 이하에서 우리는 벧엘과 이스라엘이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벧엘 왕이 언제 전투에 참여했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추론은 17절의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벧엘이 직접 전투에 참여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벧엘은 이스라엘이 벧엘과 아이 사이에 병사를 매복시켰을 때 장동적으로 전쟁에 휘말려 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24: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이스라엘은 먼저 아이와 벧엘의 연합군을 성 외부에서 몰살시킨 다음에 다시 성 안에 들어가 여자, 노인, 어린이를 모두 진멸시켰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가나안 족속 이외의 이방 족속들의 포로에 대해서는 여자와 아이들은 살려 종이나 아내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민 31:17,18; 신 21:10-14). 그러나 가나안 족속만큼은 본 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이도록 명해졌습니다(신 20:16,17). 성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던 사람들도 이처럼 철저히 살륙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속성에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일삼던 가나안 거민의 죄악을 철저하게 미워하신다는 점과 아울러 우상숭배의 결과는 곧 사망이라는 점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25: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본 절은 아이 성 재 전투에서 죽은 아이 성 주민들의 총수를 일만 이천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칼빈은 이 수효를 벧엘 군사 중의 전사자를 포함한 숫자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26,27: 아이가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고대의 전쟁 관습에 의하면 장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군기를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호수아의 행동은 이 관습을 잘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의 행동은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손을 들고 있던 행위를 연상케 합니다.(출 17:8-16) 이때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을 받아 아말렉을 쳐부수는 데 앞장섰습니다.(출 17:13). 따라서 여호수아는 모세가 전쟁에서 승리한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도우심을 기대하며 모세와 같이 단창을 든 손을 높이 들고 서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황폐하였으며
1928년에 실시된 고고학 발굴 조사에 의하면 아이 성은 여리고가 멸망한 시대와 거의 동시대인 B. C. 1400년경에 파괴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무더기’는 폐허라는 뜻입니다.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아이 왕은 죽임을 당한 후에 그 몸이 저녁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즉 죽은 시체를 나무에 매단 것은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후에까지라도 모욕과 수치를 당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민 25:4), 그것을 보는 자들로 하여금 죽은 자가 행한 죄악을 다시는 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해질 때에~ 내려’ 나무에 매단 시체를 해질 무렵에 내리는 것은 율법의 규정(신 21:23)에 따른 것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부정한 시체로 인하여 약속의 가나안이 부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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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5절: 아이 성 정복 후 가나안 중부 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하였으며, 축복과 저주의 선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0: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에발 산’은 세겜 땅 벧엘 근처에 있는 산으로서 아이 성 북쪽 30km에 위치합니다. 아이를 함락시킨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대로(신 27;1-26) 이곳에 와서 단을 쌓고 돌에 율법을 기록한 뒤에 그것을 낭독하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이를 함락시킨 후에 계속하여 세겜까지 진격하여 점령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에발 산에서 단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희생의 제단은 저주의 산으로 지명된 ‘에발 산’에 쌓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율법으로는 우리가 마땅히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키며, 그리고 그의 중보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저주를 당하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갈 3:13).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 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이에 드렸으며
출 20:22, 25와 신 27:5에 기록된 대로, 에발 산에서 행한 종교 의식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는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이 이제 자신들에게 주어졌음을 지념하여(창 12:7) 이제 이 땅에서는 진정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백성들의 굳은 결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레위기의 ‘구약 제사의 종류와 그 상징적인 의미’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그들이 두 번째로 행한 의식은 율법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모든 율법을 한 돌에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돌에 기록된 율법은 십계명과 신명기 28장의 내용 등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돌’은 제물을 드리기 위해 쌓은 돌이 아니라, 석회를 바른 돌입니다(신 27:2,4). 돌이 석회를 바른 것은 글자를 새기기 쉽게 할 뿐 아니라, 그 새긴 글자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33~35: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세 번째의 의식은 율법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하는 것입니다. 신 27장의 명령을 여호수아가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방인’은 팔레스틴 본토에서 출생한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속해 있던 거류민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의 거민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고(25절), 이후로도 가나안 족속들은 모두 진멸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민 31:17, 18). 따라서 이방인이란 출애굽 시에(출 12:38) 이스라엘과 함께 나온 자들이거나 이스라엘이 동쪽 팔레스틴을 정복하였을 때(민 21:22-35) 이스라엘에 귀의한 자들일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거룩한 의식에 참여케 된 것은 장차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 온 이류에게 미칠 것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절반은~’ 에발 산의 기슭과 그리심 산의 기슭 사이에 놓여있는 골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경청하기에 알맞은 장소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축복과 저주가 선포될 때마다 각각 ‘아멘’으로 대답해야만 했습니다(신 27:12-16). 그 행위는 과거에 약속되었던 땅이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시점에서 계속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복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믿음을 저버림으로 이미 선포된 저주를 당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세월이 흘러 새 세대가 생겨나고 이에 백성들은 실제로 약속되었던 땅에 들어왔으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기억하고 백성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세겔에서의 이 의식이 행해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