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4장 [508.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여기에서 (단순히 역사서로만 외견상 보이는) 민수기의 참 가치가 드러나는데, 바로 민20-24에 걸쳐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그림을 에베소서에서 보다도 더 깊게 묘사해주고 있다.
***민21에서, 장대에 달린 놋뱀은 (겉 보기에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계셨으나, 죄 있는 본성은 없으신(=무죄하신...무흠무결하신 참 인성 가지신) 그리스도를 표상함
.....이제, 그리스도는 그분을 믿고 영접하여 ((포도나무 비유에서 본체에 접합된 산 가지처럼))그분과 하나가 된 우리로부터, 우리의 외적인 죄들과 (사단이 타락한 육체에 심어 놓은, 그 자신 보다 더 악하고 지독한 죄성, 곧 육-육체) 내적인 죄 있는 본성의 문제까지도 [전가 받으시고] 그분의 십자가 대속으로 해결-처리해 버리심으로써 부활 안에서 이분은 과정을 거치신 TUQ의 최종 완성된 영으로서 (보이지 않는 존재의 깊은 곳 그 어디라도) 심지어 의식-무의식-잠재의식까지 두루 깨끗게 하시며 친히 주관-보호하시는, 생수를 흘려 보내는 샘이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셨음(민21:17)
....이로 인해 [교회의 구성성분과 각 부분이자 내용이 되시며] 거룩하게 성별하신, 거듭난 우리를 날마다 새로운 창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생명-경건-사랑 등 그분의 모든 것과 그분이 손수 이루신 모든 성취를 그대로 공급해 주시며, 그분의 이름과 권세 주심 인해) 성장 성숙해 가면서, 동시에 그분을 앎과 믿음에 있어서 완전함에 이르도록 인도해 가고 계시며, Q의 참 아들들이자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지체로서 몸의 생활을 통해 TUQ의 거처됨(=상호 거처됨) 온전히 이루도록 주관하고 계심
1.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징조나 전조를 얻고자)점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의 낯을 광야로 향하여
2.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천막 친 것을 보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3.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Q에 대해)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4. <은혜로 임하신>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깨닫게 하심 따라>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5.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토브..=본래 의미는 fair..놀랄만치 흡족하고 균형-조화로움 갖추어 찬란하고 정정당당함...그 입지가 거룩하고 그 유형이 완전하고 그 외형은 아름답다...이것은 전적으로 Q이 구속-구원-분별하심으로 인한 결과이다 ::: 이것은 장래 천년왕국에 속한 이스라엘의 실질적 상황이다!!)
...@@선하다, 좋다, 기쁘다, 바르게(잘) 행하다 ..b/f(2895, 토브)
토브(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선하다, 좋다, 유익하다, 기쁘다, 즐거워 하다', 히필형에서 '바르게 (잘) 행하다, 선을 행하다'를 의미한다. 이 어근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선' good이나 '선량(미덕)' goodness을 가리킨다.
---다섯 가지의 일반적인 의미의 영역은 (1) 실제적인, 경제적인 혹은 물질적인 좋은 것, (2) 바람직함, 유쾌함 그리고 아름다움 같은 추상적인 미점, (3) 양질, 값비쌈 (4) 도덕적인 선, 그리고 (5) 전문적인 철학적 선으로 볼 수 있다.
---(1) 동사 토브, (2) 실사와 함께 사용되는 형용사 토브, (3) 명사 투브 등 토브 어군을 일일이 구별하기 어렵다. 특히 형용사에는 이 동사가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7회 나오며, 칼형과 히필형으로만 사용되었다.
(a) 칼형에서 이 동사는 자주 비인칭 주어와 함께 나온다: "이것은 선하다..." It is good... 이 관용구는 히브리인들이 생각한 애굽에서의 환상적인 행복(민 11:18), 착한 주인을 만난 노예의 행복(신 15:16), 그리고 다윗의 음악으로 인한 사울의 조용한 만족(삼상 16:16)을 묘사하는 데에서처럼, 행복의 상태나 복지를 묘사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혹은 그들의 눈에 '선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욕망이나 의지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눈(즉 하나님의 뜻)에 선한 것이었다: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 낯을 광야로 향하여"(민 24:1).
.....욥은 압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가에 대해 하나님께 묻는다(욥 10:3).
.....발람은 이스라엘의 장막들을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의미에서의 선한 것으로 보았다: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민 24:5).
.....여자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낫다" better고 말할 때, 이것은 매력적이거나 호감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아 4:10).
포도주가 "좋다" good는 것은 마심으로써 생겨나는 기쁨을 나타낸다: "제 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에 1:10).
(b) 히필형은, 칼의 정적인 의미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선한 일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호밥에게 약속한 것처럼(민 10:29, 민 10:32) '어떤 사람에게 실제적인 선을 행하다'나 '바르게(잘) 행하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후(왕하 10:30)와 다윗(왕상 8:18)은 모두 이런 식으로 찬양을 받는다.(참조: A. BOWLING; BDB).
6.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치료 효능 가진 알로에..주님 시신을 싸맨 천에 알로에가 발라졌었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7. 그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 가에 있으리로다 그의 왕이 아각(=아말렉의 왕)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
....교회의 다함 없는 풍성 = 벌어진 골짜기, 강가의 동산, 물이 흘러 넘치는 통으로 묘사됨...교회가 치료 효능 가진 나무들-건축 재료로 쓰이는 창창한 거목들, 생명 열매 가득한 과실수들이 심겨진 물댄 동산 같고, 수목과 풍성한 산물을 내는 골짜기이며, 교회 안에는 생명의 물로 항상 영원히 넘쳐나는 풍부함이 그토록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놀랍고도 아름답고 황홀함 그 자체로 계시하고 있다.
8. [그분의 승리하는 교회(당할 나라가 결코 없는 힘센 들소, 원수-대적을 삼켜버리는 암사자 -수사자로 비유)에 대한 예언이다]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의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9.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발람의 마지막 예언
10.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11.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신들에게 내가 말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13. 가령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에 내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이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한 별(=교회로부터 나오시는 이 별은 장차 우주 안의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는 홀이 되신다)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이 말씀은 다윗 왕 때 이루어졌다...삼하8장))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셋의 자식이란 (노아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온 인류를 가리키는 것이니, 이는 대속의 보혈 흘려 모든 것 이기신 JC를 말하고 있다.<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 = (씻어 정결케 하고 부활 생명의 성령 충만 넘치도록 채우시는) 보혈의 능력!!>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다윗 왕의 에돔 정복, 이 때 피하여 남은 자들은 재림 메시야 왕국 도래시 결국 보좌 심판대에서 멸절될 것(롬1:3...육신/죄성<혈기와 탐욕>을 두려워 말라!!)
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에서의 2대 손인 아말렉의 후예들..<가장 패역하였고>이스라엘의 연약한 자들을 기습했다는 측면에서는)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히스기야 때 <시므온 자손에 의해> 전멸되었고, 그리고 에스더 왕후 때<하만의 죽음> 최종 성취되었음)
.....아말렉으로 시작된 족속 전체를 통칭한다. 시나이(시내) 반도와 네게브 사막 북동쪽의 황폐한 땅에 살았던 이들(창14:7)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장 먼저 공격한 민족으로(출17:8), 이들은 여러번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로 묘사되었다(삿3:13; 6:3;삼상15:20; 27:8).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불순종함으로 인해 아말렉에게 패하고 말았다(민14:43-45). 또한 사사기에서는 아말렉이 미디안과 연합하여 모압왕 에글론을 도와 북이스라엘을 공격했음을 기록하고 있다(삿3:13; 6:3, 33).
사울왕은“이제 너는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삼상15:3)는 명령을 받고서 아말렉을 공격하였으나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삼상15:18-19). 사울의 진멸을 피해(삼상15:9) 남아 있던 아말렉인들은 술과 애굽땅으로 지나가는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다윗에 의해 다시 공격당하고 말았다(삼상27:8-9). 아말렉인을 멸절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히스기야때 시므온 자손에 의해서(대상4:43), 또 에스더 때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과 그 일족을 처형함으로써 성취되었다(에7:9-10). 이는“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민24:20)라고 했던 발람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성경속의 또 다른 아말렉 :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의 아들이다(창36:12).
21. 또 겐 족속(모세의 장인이 속한..미디안 족속의 일파..금속세공업 종사...북 이스라엘에 거주.)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네 거처가 견고하고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22. 그러나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23. 또 예언하여 이르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24. 깃딤 해변에서 <로마>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겐 족속, 가인 족속...ynIyqe(7017, 케니)
케니는 카인(@yIq' , 7014)에서 유래했으며 '겐 족속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15회 나온다.
이 종족이 아담의 아들 가인으로부터 형성된 것은 아니다(가인의 후손들은 홍수로 멸망하였다). 아마 그들의 직업이 금속 세공업이었으므로 그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들의 기원은 불확실하다(KD, Pentateuch, I, p.218).
이 민족은 가나안 족속들 중의 주민들로서(창 15:19) 그리고 후에는 미디안 족속 중의 주민들로 등장한다(민 10:29).
그러나 혈통에 있어서는 그 두 족속 중 어느 족속의 후손도 아닌 것 같다(KD, loc. cit.).
가나안에 산 겐 족속은 발람이 저주한 이스라엘의 대적들 중에 들어 있다(민 24:21-22, 한글개역 "가인족").
모세와 십보라가 결혼하고 그 후 호밥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따라 나서게 되었을 때(민 10:29) 미디안의 겐 족속은 이스라엘과 연합하게 되었다(구약성경 중의 선택은 선택적이었으며 배타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또한 갈렙 족속 중에서 통혼하였다(대상 2:55). 가나안의 겐족은 그들의 남방 형제들과 동맹하였던 듯하다(참조: 삿 4장, 삼상 15:6, 기타 등등).
모세의 종교와 문헌의 소위 겐족 기원설과 관련하여 많은 사항들이 조작되어 왔다(참조: R. K. Harrison, IOT; R. G. North, 'The Cain Music).
겐족은 특히 레갑과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레갑은 하나님을 향한 열성을 지닌 사람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예후는 그를 동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표본인 그와 일체가 되었다(왕하 10:15-24).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유목 생활과 종교 생활의 질서를 수립하였다. 이 질서는 예레미야의 시대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레갑의 열심을 지속시켰으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바에 대한 하나의 살아 있는 실례로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렘 35장). 물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열심에 관한 것이었으며 유목 생활 방식에 대한 그들의 집착을 실례로 든 것은 아니었다.(L. J. Cop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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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en Balaam saw that it pleased the LORD to bless Israel, he did not go as at other times to seek omens but he set his face toward the wilderness.
2. And Balaam lifted up his eyes and saw Israel camping tribe by tribe; and the Spirit of God came upon him.
3. And he took up his discourse and said, "The oracle of Balaam the son of Beor, And the oracle of the man whose eye is opened;
4. The oracle of him who hears the words of God, Who sees the vision of the Almighty, Falling down, yet having his eyes uncovered,
5. How fair are your tents, O Jacob, Your dwellings, O Israel!
6. "Like valleys that stretch out, Like gardens beside the river, Like aloes planted by the LORD, Like cedars beside the waters.
7. "Water shall flow from his buckets, And his seed [shall be] by many waters, And his king shall be higher than Agag, And his kingdom shall be exalted.
8. "God brings him out of Egypt, He is for him like the horns of the wild ox. He shall devour the nations [who are] his adversaries, And shall crush their bones in pieces, And shatter [them] with his arrows.
9. "He couches, he lies down as a lion, And as a lion, who dares rouse him? Blessed is everyone who blesses you, And cursed is everyone who curses you."
10. Then Balak's anger burned against Balaam, and he struck his hands together; and Balak said to Balaam, "I called you to curse my enemies, but behold, you have persisted in blessing them these three times!
11. "Therefore, flee to your place now. I said I would honor you greatly, but behold, the LORD has held you back from honor."
12. And Balaam said to Balak, "Did I not tell your messengers whom you had sent to me, saying,
13. 'Though Balak were to give me his house full of silver and gold, I could not do anything contrary to the command of the LORD, either good or bad, of my own accord. What the LORD speaks, that I will speak'?
14. "And now behold, I am going to my people; come, [and] I will advise you what this people will do to your people in the days to come."
15. And he took up his discourse and said, "The oracle of Balaam the son of Beor, And the oracle of the man whose eye is opened,
16. The oracle of him who hears the words of God, And knows the knowledge of the Most High, Who sees the vision of the Almighty, Falling down, yet having his eyes uncovered.
17. "I see him, but not now; I behold him, but not near; A star shall come forth from Jacob, And a scepter shall rise from Israel, And shall crush through the forehead of Moab, And tear down all the sons of Sheth.
18. "And Edom shall be a possession, Seir, its enemies, also shall be a possession, While Israel performs valiantly.
19. "One from Jacob shall have dominion, And shall destroy the remnant from the city."
20. And he looked at Amalek and took up his discourse and said, " Amalek was the first of the nations, But his end [shall be] destruction."
21. And he looked at the Kenite, and took up his discourse and said, "Your dwelling place is enduring, And your nest is set in the cliff.
22. "Nevertheless Kain shall be consumed; How long shall Asshur keep you captive?"
23. And he took up his discourse and said, "Alas, who can live except God has ordained it?
24. "But ships [shall come] from the coast of Kittim, And they shall afflict Asshur and shall afflict Eber; So they also [shall come] to destruction."
25. Then Balaam arose and departed and returned to his place, and Balak also went hi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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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4장 (개요)
본 장에는 이스라엘을 해하고자 했던 발락과 발람의 모략이 좌절된 이야기가 계속되고, 나아가서 그 결말을 전해 준다.
그 좌절은 힘과 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보여 주신 능력과 그의 자녀들에게 보여 주신 호의의 위대한 실증이며, 여호와의 전쟁기에 나타난 위대한 승리의 기록이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세 번째로 마련되었는지는 앞 장에서 볼 수 있었다. 본 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 그들이 기대했던 저주가 축복으로 변했다(1-9).
2. 발락이 발람을 떠나게 했다(10-14).
3. 발람이 이스라엘에 관한 것과 또 기타 여러 이웃 나라에 대한 예언을 전하고 떠나갔다(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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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세 번째 신탁(민 24:1-9)
발람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축복은 앞 장에서 우리가 읽어 본 두 개의 축복의 말씀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그 서론 부분은 매우 다르다.
Ⅰ. 이 축복의 말씀을 도입하는 방법이 다음의 몇 가지 면에서 매우 다르다.
1. 발람은 지금까지 의지해 오던 마법을 버리고, 그것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주문이나 부적 또는 요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들을 저주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하신 것을 분명히 알게 되자(1절), 저주를 위해 악마와 관련을 맺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못된 것을 좇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어리석은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신다.
무엇 때문에 그는 마법을 사용하고자 했을까? 그는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그는 전처럼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물러가지 않고, 곧장 그의 얼굴을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는 들판을 향해 돌렸다.
그리고 다른 방법은 없고, 오직 그들을 축복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3.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셨다.”
다시 말하면 사울이 다윗을 붙잡지 못하도록 사울 위에 임했던 것과 같은(삼상 19:23) 예언의 신이 그의 위에 임하신 것이다.
그는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그의 위에 임하신 성령의 말씀을 전했다.
4. 발람은 전에 말했던 것과는 다른 서두를 말했다(3, 4절).
그것은 다윗의 마지막 말의 서두와 매우 흡사하다(삼하 23:1-3).
그러나 (어떤 사람의 생각과 같이) 그것은 자랑과 헛된 영광을 많이 풍기는 것이며, 이 모든 예언의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며, 자기 자신을 하늘나라의 각료의 한 사람인 양 스스로 찬양하는 것이다. 그는 다음의 두 가지를 자랑했다.
(1)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을 자랑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능자의 이상을 보았다”고 했다. 하나님은 그를 직접 만나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23:16). 그리고 이것 때문에 발람은 크게 우쭐했다.
바울은 그가 본 바 환상과 계시에 대해 겸손하게 말했다(고후 12:1). 그러나 발람은 이를 자랑하며 말했다.
(2) 그러한 계시를 받아들인 자신의 능력을 자랑했다.
그는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때 황홀경에 빠진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눈은 뜨고 있었다. 이 사실을 그는 두 번이나 말했다. (그 원문에 있는 말씀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감았던 자”라고 읽는다(3절, 한글 개역도 “감았던 자”라고 되어 있는데, KJV에서는 “눈을 뜬 자”라고 되어 있다―역주). 그러던 그가 이제 눈을 뜬 것이다(4절).
그는 자기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던 것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고 시인했다. 이제 그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탐욕과 야망과 어리석음과 욕망 때문에 여전히 눈이 멀어 있었다.
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거역하는 자들은 조만간 그들이 잘못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② 육신의 눈은 뜨되 마음의 눈은 뜨지 못한 사람들은 교화되기는 하되 성화 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자랑으로 이끄는 지식은 지옥으로 가는 길을 밝혀 줄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뜬 채 지옥으로 간다.
Ⅱ. 그러나 그 축복은 본질적으로는 전번 것들과 같은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면에서 발람은 이스라엘에 대해 경탄을 발했다.
1. 그들의 아름다움에 경탄했다(5절). “야곱이여, 네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들이 비록 궁정에 살지 못하며, 거칠고 초라한 장막에 살고, 기후마저도 사나운 곳에 살지만, 발람은 그들이 그 지파대로 질서정연하게 거처를 정한 것을 보고(2절) 그 장막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것이다. 통일되고 조화를 이루는 신앙 고백을 가지고 있는 것 이상 아름답게 보이는 신앙이 또 없다(시 133:1).
이 백성의 사랑스러움과 이웃 민족들에게서 받는 좋은 평판이 풍성한 골짜기, 아름다운 동산, 무성한 나무들, 그리고 향기로운 나무들의 아름다움과 비교되었다(6절).
눈이 열린 사람들은 땅에 사는 성도들의 훌륭함을 보며 그들과 함께 기쁨을 누린다.
틀림없이 “의인은 그 이웃보다 뛰어나다”(잠 12:26, KJV). 그들은 “여호와의 심으신 나무들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훌륭함이다. 의로운 자의 가지는 여호와께서 심으신 식물이다(호 14:5-7 참조).
2. 그들의 풍성한 열매와 번성함에 경탄했다.
이것은 아마 골짜기와 동산과 나무들과의 유사성(6절), 그리고 또한 그 표현(7절)에서 기인된 것인지 모른다.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비를 내려 주시듯이 축복의 소나기를 부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라고 했다.
이 말씀을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하신 말씀(호 2:23)과 비교해 보라. 성경에 보면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을 나타낸다(계 17:15).
이 예언은 그 백성이 흩어져 사는 동안에도 놀랍도록 번성하고 많은 무리를 이룬 것으로 완전히 성취되었다.
3. 그들의 자랑과 진보에 대해 경탄했다.
많은 무리의 백성이 왕의 자랑인 것처럼, 왕의 장대함은 백성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발람은 그들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라고 예언했다.
아각은 아마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였던 것 같다. 발람은 그보다 더 유명한 사람을 몰랐을 것이다. 그처럼 아각은 다른 이웃 나라의 왕들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발람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를 뒤이은 여호수아가 아각보다 훨씬 자랑스러워지리라고 예언했으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 사울은 아각과 싸워 이겼다(삼상 15:8).
4. 그들의 능력과 승리에 대해 경탄했다(8절).
(1) 발람은 이스라엘이 어떤 일을 과거에 행했는지, 아니 오히려 어떤 일이 그들을 위해 베풀어졌는지 회고했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이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언급한 바가 있다(23:22).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신 일에 따라 오는 놀라움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영예를 높여 주었으며, 그들의 원수들에게는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수 2:10).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신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공덕이 완전”하시기 때문이다(신 32:4).
(2) 발람은 그들의 현재의 강한 힘을 내려다보았다.
이스라엘은 “그 힘이 들소와 같았다.” 이 짐승에 대해서는 이런 말이 있다(욥 39:9, 10).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발람은 말했다. “그럴 수 없다. 이스라엘은 너무나 힘이 세기 때문에 내 저주로도, 그리고 당신의 군대로도 막을 수 없다.”
(3) 발람은 그들의 장래의 정복을 내다보았다.
그들은 “그 적국을 삼킬”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의미다. “그들은 단지 사자가 그 먹이를 잡아먹듯 쉽사리 그리고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적국들을 멸망시키며, 그들을 집어삼킬 뿐만 아니라 그 먹이를 먹음으로 스스로 힘이 강해지고, 비대해지고 부해질 것이다.”
5. 발람은 그들의 용기와 안전에 대해 경탄했다.
“꿇어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9절). 이제 그들은 모압 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모압 평원에 그렇게 누워 있으며, 곧 가나안 땅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이 먹이를 삼켰을 때는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히”(잠 1:33) 휴식을 취할 것이며, 모든 이웃 나라를 무시할 것이다.
누가 감히 잠든 사자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박식한 주교 패트릭이 말한 바와 같이) 사자들은 잠을 자기 위해 어떤 구석진 곳으로 가지 않고 어디서나 잠을 잔다. 그것은 누구도 감히 자기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특히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안전했다. 이처럼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다”(잠 28:1).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편히 쉬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기 때문이다(시 4:8).
6. 발람은 이웃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영향력에 대해 감탄했다.
그들의 친구와 그들과 동맹한 자들은 행복했다.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들은 그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원수들과 그들에게 대적하는 자들은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된다.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그들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 자들은 그 때문에 자기들이 고통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그들에게 행한 그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발람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창 12:3)을 확인하고, “그러므로” 이제 자기도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이스라엘의 친구가 되어 그 축복에 참여하고,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받는 저주를 받지 않고자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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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락의 항의(민 24:10-14)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했던 헛된 시도의 결말과 그 시도를 완전히 포기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Ⅰ. 발락은 더욱 잘못된 길로 빠져 들어갔다.
그는 발람에 대해서 대단히 진노했다(10절). 그는 실망 때문에 몹시 괴로워한다는 것을 그의 말로, 그리고 동작으로 표시했다.
그는 자기의 모든 방법이 실패하고 그 계획이 좌절된 것을 알고 분을 못 참아 손뼉을 쳤다.
발락은 발람을 매우 모욕하는 언사를 가지고 그를 비난했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는 그들의 편이 되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그들을 틀림없이 저주하리라고 믿게 하기 위해 단을 쌓으라고 하고, 또 제물을 바치라고 하였다.”
발락은 발람을 향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하고 국외로 내쫓으면서, 그가 발람에게 주려고 했던 높은 지위를 들먹이며 그를 비난했다(11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 보라, 네가 나를 기쁘게 하지 않고 여호와를 기쁘게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네가 높은 자리를 얻지 못한 것밖에 더 있는가!” 이처럼 그들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지위를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바보라는 비난을 듣는다.
그런데 여기서 발람이 자진해서 그리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랐다면, 발락이 그에게 주려고 했던 온갖 영예를 잃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온갖 손실을 회복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더 풍성한 것을 내려 주셨을 것이다.
Ⅱ. 발람은 처신을 잘했다.
1. 그는 그 실패를 변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가장 그럴 듯한 변명을 했다. 즉 하나님께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시고, 말하고자 하지 않았던 것을 억지로 말하게 하신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리고 이는 자기도 어쩔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또 발락에게 이미 말한 사실이 있으므로 그렇게 노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말했다(12-13절).
발람은 자기가 이미 자기의 심정을 말했기 때문에 발락을 속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2. 발람은 그 빚을 갚기 위해 애썼다(14절). 발람은 비록 발락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했지만 발락을 위해 다음의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1) 발람은 발락에게 주변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예언을 들려 줌으로 발락을 만족시키고자 했다.
예언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이 예언을 가지고 발람은 노한 왕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다.
(2) 발람은 이 어쩔 수 없는 백성이 발락의 백성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가해 온다고 해도, 그것은 후일에 가서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신시켜 줌으로 발락을 만족시키려고 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어떤 해를 끼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며(겔 12:27),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가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3) 발람은 발락에게 마술이나 주문 같은 것을 통하지 않고도 이스라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뜻은 “내가 당신에게 고하리이다”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그 말은 곧 “내가 당신에게 충고하며 꾀를 가르쳐 주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때 발람이 어떤 충고를 발락에게 주었는지는 여기에 기록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둘이서만 비밀로 말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는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31:16). 발람은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유혹하는 꾀를 일러 주었다(계 2: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그를 놓아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발람은 발락에게 그들을 유혹하기 위해 악마의 힘을 빌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런 말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자. “하늘을 움직일 수 없으면 지옥을 충동하리라”(Flectere si nequeo superos, Acheronta mov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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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예언(민 24:15-25)
선지자가 하는 일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과 예언을 말하는 것 두 가지다.
선지자인 발람은 지금까지는 억지로 이스라엘을 축복했는데, 여기서는 장래의 일을 예언했다.
Ⅰ. 그의 서론은 앞에서 말한 축복의 말씀의 서론과 같다(3, 4절).
그는 놀랍도록 참된 선지자인 체를 잘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에게 이를 허락해 주셨다.
왜냐하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그 예언 자체는 참된 예언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먼저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1. 그는 자기가 “눈을 떴다”(24:3의 역주를 참조하라)고 자랑했다(15절).
선지자들은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다”(삼상 9:9).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본 바를 말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그들의 눈을 뜰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2.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자랑했다.
많은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다만 그것에 유의하지 않을 따름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실 따름이다.
3.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안다”고 자랑했다.
이것은 여기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인간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못하며, 진리의 빛을 받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4. 그는 “전능자의 이상을 본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기”(고후 3:18)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자”, 그리고 “전능자”라고 일컬었다.
아무도 발람처럼 하나님을 높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해 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진실로 두려워하거나, 사랑하거나,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늘을 향해 길을 많이 갔다고 하나 얼마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Ⅱ. 여기에는 그 분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영광의 관을 씌울 사람에 대한 예언이 있다.
1.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다윗이다.
그는 이 때가 아닌 때에, 가깝지 않은 장래에, 언젠가 때가 이르면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세일 산도 취하며, 그의 지도로 이스라엘 군대가 용감히 행동할 것이다.
이 예언은 다윗에게서 이루어졌다. 다윗은 과연 모압을 쳐서 “줄로 잰” 일이 있었고, 그리하여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었다”(삼하 8:2).
동시에 에돔 사람들 역시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다(삼하 8:14).
2. 그러나 우리의 주님 예수는 약속된 메시아로서 여기에 예표가 아닌 원형으로 제시되었다.
이는 주로 예수께 대한 생생한 예언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오심을 오래 전에, 단지 유대인들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알고 있기를 원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 국경을 초월해서 널리 번져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예언은 다음과 같다.
(1) 그 분의 오심은 아직 아니며, 오랜 후의 일이라고 예언했다.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라고 했다.
내가 그 분의 환상을 보는데 먼 거리를 두고 보며, 적어도 1,500년의 간격을 두고 본다는 것이다.
또는 이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악한 사람인 발람은 그리스도를 보되, 그를 가까이 보지는 못하며, 욥이 보았듯이 그를 자기의 구속자로 보지도 못하며, 자기 자신을 위한 분이신 것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욥 19:25, 27).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때 “각인의 눈이 그를 볼”(계 1:7)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음부에 떨어진 부자가 아브라함을 보듯이) 멀리서 그 분을 볼 것이다.
(2) 그 분은 야곱과 이스라엘에게서 한 별로, 그리고 한 홀로 나오리라고 예언했다.
별이란 “광명한 새벽별”(계 22:17)과 같이 그 분의 영광과 광채를 나타내며, 홀은 그 분의 능력과 권세를 의미한다. 그 분은 “주권자”시다.
아마 (동방의 자손인) 발람의 별에 관한 예언, 즉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라”는 예언이 그 나라에서 하나의 전설로 간직되어 오다가, 동방 박사들이 유대 땅의 이상한 별을 보게 될 때, 그것이 곧 “유대의 임금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하고 묻게 했을 것이다(마 2:2).
(3) 그 분의 나라가 우주적인 것이 될 것이며 모든 반대자들을 정복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모압과 에돔에 대한 다윗의 승리로 예표되었다. 그러나 메시아는 “모든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할 것이다”(17절, KJV).
다시 말하면 셋의 자식이란 온 인류를 말하는 것인데, 아담 자손 가운데서 셋의 자손 외의 모든 자손은 모두 홍수로 인해 멸망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야곱과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셋의 자식들은 그의 황금 홀의 다스리심을 받든가 아니면 그의 철장에 진멸된다.
그는 하나의 우주적인 원칙과 그 자신의 권세와 능력들을 세우시고 이에 반대되는 모든 원칙을 멸하실 것이다(고전 15:25).
어떤 사람은 그가 “셋의 자식들의 벽을 헐리라”고 읽는다. 그 분은 그들의 모든 방비와 육체적인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분의 통치를 받든가 아니면 그 분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4) 그 분의 이스라엘이 용감히 행동하리라는 것을 예언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어둠의 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을 싸우며, 단순한 정복자 이상의 신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단 11:32).
Ⅲ. 여기에는 아말렉과 가인 족속에 관한 예언이 있다. 그것은 노래로 된 비유다. 그들에 대해 발람은 이렇게 보았다.
1. 아말렉은 지금 “열국 중 으뜸”이다(20절).
그러므로 그들의 왕 아각은 탁월한 왕으로 지칭되었고(7절), 그들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나온 이후 맨 먼저 싸움을 한 백성이다.
그러나 지금은 위대해 보이는 그 나라도 완전히 멸망하고 뿌리 뽑힐 날이 올 것이다. 즉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여기서 발람은 모세가 선포한 아말렉의 운명을 재확인했다(출 17:14, 16).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 더불어 싸우는 자는 분명히 멸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견딜 자가 없기 때문이다.
2. 가인 족속은 지금 열국 중에 가장 안전하다.
그들은 자연적인 조건이 그들을 방비해 주는 그런 곳에 있었다. “(독수리와 같이)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21절).
너희는 너희가 안전하리라고 생각하지만, “가인이 쇠미하리니”(22절), 점차 쇠퇴하여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그런데 이 예언은 그들의 열 지파가 포로 됨으로 실현되었다.
육적인 술책은 자연적인 육체와 마찬가지로, 비록 강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점차 쇠퇴하여 마지막에는 멸망한다.
비록 바위 위에 있는 보금자리라 할지라도 영원히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
Ⅳ. 여기에는 또 “깃딤 해변”과 관련된 예언이 있는데, 그것은 훨씬 오랜 후에 나타날 헬라와 로마에 대한 예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24절).
1. 이 비유의 도입 부분에 있어서 그 예언의 표현 기술은 매우 주목을 끌 만한 것이다(23절).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여기서 발람은 여호와께서 모든 나라와 왕국에 대해 행하시는 변혁을 깨닫고 있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신다.”
실제적인 도구는 누구이든지 간에 그것을 움직이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는 비통한 어조로 그들에 관해 말했으며, 그 사건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살 자가 누구이랴”고 말했다.
(1) 이 사건들이 아주 멀리, 그리고 아주 오랜 후에 일어날 것인 만큼, 그들이 올 때까지 누구나 살 수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거기에 놀라운 변화가 있으므로 누구든지 살아남아서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2) 그러나 또 다른 의미로서, 그들은 철저하게 황폐해져서 아무도 거기서 도망치거나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망이 말을 타고 나올 때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계 6:8) 그 때에 살아남는 자는 불에서 꺼낸 타다 남은 나무토막 같을 것이며, 그들의 생명은 다시 찾아온 약탈품처럼 주어진 생명이 될 것이다. 하나님만이 이런 악한 시대에 우리를 살아남게 해 주신다.
2. 예언 자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헬라와 이탈리아는 대부분이 바다를 향해 있는 나라다. 그러므로 그들의 군대는 대개 배를 타고 다녔다. 이제 발람은 그들에게서 이런 점을 보고 예언했다.
(1) 헬라의 군사가 와서 파사와 동맹을 맺은 앗수르를 짓밟아 뭉개리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알렉산더에 의해 동방이 정복될 때에 실현되었다.
(2) 헬라와 로마의 군대가 에벨 자손이라고 일컬어지는 히브리인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 예언은 헬라의 황제가 유대 민족을 핍박했을 때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주로 실현되기는 로마의 황제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한동안 다스렸을 때다.
(3) 그러나 드디어 헬라를 정복한 로마 제국인 깃딤도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것은 사람이 손을 대지 않고도 산에서부터 뜨인 돌이 이 모든 왕국을 소멸시키며, 특히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릴” 때다(단 2:34).
이처럼 (라이트푸트 박사는 말하기를) 발람은 교회를 저주하는 대신, 교회외 적인 아말렉을 맨 먼저, 그리고 로마를 마지막으로 저주했다.
오, 여호와여! 이처럼 모든 원수를 멸망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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