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1장 [545.이눈에아무증거] [546.주님약속하신 말씀위에서]
....민20장에서는, [가데스바네아에 도달한 출애굽 제2세대 백성들이....가데스는 원래 중동 지역에서 샘이 많기로 소문난 곳인데..마실 물이 없음을 알게 된 것] 물을 달라고 모세와 다투는데 (근본 동기가) 백성들의 목마름 해갈을 위한 생존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정당하다고 보셔서 징벌하지 않으셨지만, 민21장에서의 다툼은 (근본 동기가) 행군 길의 거칠고 매우 험함 때문에 일어난 불평과 조급함-인내 고갈-싫증 냄에서 온 것이기에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셨고 불뱀을 보내 징벌하고 계셨다
....이 때, 출애굽의 전 여정에 걸쳐서 (여호와와 모세를 원망한) 백성들의 죄를 스스로 자백한 첫 행위가 기록되고 있으며,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달아 그것을 쳐다 보는바마다 살리라 하심으로써 십자가 대속의, 그 보혈의 효능을 표상하고 계셨다.(요밀1:9)
***가나안 땅이 예표하는 것 두 가지
...1): 부정적 의미로는 *하늘?? 그 보다는, 오히려 공중, 곧 사단 왕국의 하늘에 속한 부분(마12:26)..
....사탄은 [그의 왕국과 흑암의 권세를 가지며] 이 세상의 통치자요, 공중 권세 잡은 자임(엡2:2) :::::그의 부하들은 그와 함께 (반역한) 그의 천사들이자 부하들인, 정사-권세-능력-하늘의 악한 영들-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들이요, 여기에 더하여 가나안 거인들로 표상된 자들은 악한 천사들을 의미,
....(시편에서 여러차례 등장하는, Q이 계신 시온산을 시기하는) 바산은 시온산에 대항하는 상징이자 공중 사단 권세의 대표였음.
***[신약에서 영적 전쟁의 대상으로서] 사단의 왕국은 악한 천사들 + (물속의) 귀신들 + 타락한 인류로 구성됨
...2)긍정적 의미로는 좋은 땅, 부요의 땅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라 할 수 있다.
@@@[[사단의 왕국, 흑암의 왕국의 실제 구성 요소는 악한 천사들(본부: 공중)---귀신들(본부 : 물속, 무저갱)---타락한 인류로 구성됨]],
...지금까지도, 오늘도 악한 자 사단의 추종자인 공중의 타락한 천사들과 물속의 귀신들은 타락한 인류를 사단의 왕국에 복종시키기 위해 역사하고 있다.
---온 세상을 다스리는, 어둠 세상의 주관자/하늘의 악한 영들 = 공중의 타락한 천사들의 체계 : 정사(통치자,,..사탄) --권세(그 아래 권위..., 장군)--능력(그 아래 하위..., 행동대) ---악한 천사를 도와 인류를 강탈하는 귀신들(거처는 물속, 무저갱) ---타락한 인류(사탄의 정수인 육신, 곧 죄된 본성, 옛사람)
***[(엡6:10-20)]영적 전쟁에 임함에 있어서
,,...죄-세상-육신(에돔)-정욕(모압-암몬)에 대한 싸움은 보다 낮은 [개인적] 차원에 속하지만,((성육신하신 JC께서 그리하셧던 것처럼, <주님의 때가 차기까지> 지금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우회하라, 다만 십자가 승리를 믿음으로 취하라!!...먼저 Q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보다 높은 [Q 나라, 아버지의 뜻] 차원에 속하는 것은 바로, 하늘의 악한 영들/이 어두움의 세상 주권자, 곧 정사(전권 보유, 통치자)-권세(군권 보유, 군장)-능력(소규모 행동대....그리고 이들이 부리는 귀신들)에 대한 이김인 것을 기억하라(최종적으로 영적 순결을 더럽혀 손상시키려 하는 사단의 계책, 육신의 정욕<모압>에 연결된 우상 숭배와 그 더러움<미디안 족속>을 [Q께서 명하실 그때에는 !!] 반드시 멸절해야 함) 피흘리기까지 싸우라...
##예표로 볼 때 가나안은 공중, 즉 사단의 흑암의 왕국 중 하늘(sky)의 부분을 가리킴
....가나안이 적극적 의미에서의 하늘을 상징하지 않고 그 반대로 사단의 왕국의 주요한 부분, 곧 주도적인 부분인 공중의 부분과 그 권세 잡은 자들과 주관자들을 예표한다... 또, 예표에 있어서 가나안 땅의 거인들은 (Q의 의도를 거스르고 오히려 <경건한 자손 얻으시려는, 곧 그리스도를 오게 하시려는, 결혼에 대한> 그분의 뜻을 곡해하려 함의 일환으로서, 타락한 천사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결혼의 산출이었음) 악한 천사들, 곧 사단을 따르는 반역한 천사들을 상징한다(계12:4, 7)
....사단은 이 세상의 통치자(요12:31), 공중 권세의 주관자(엡2:21)로서 그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행 26:18) 그의 추종자인 타락한 천사들(마25:41) 곧 그의 부하들인 정사-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을(엡6:12)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왕국과 흑암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골1:13) 사단과 그의 왕국은 Q과 그분의 왕국과의 전쟁, 즉 적대 관계에 있다. 전에 우리는 사단의 왕국 안에 있었지만, Q의 구원은 우리를 흑암의 왕국에서 Q의 사랑의 아들의 왕국 안으로 이끄셨다(골1:13).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단의 욍국 안에 있지 않고 Q의 왕국 안에 있다.
[[그렇다면, 거듭난 그대에게 있어서, 그대의 참되고 새로운 자존감의 근원, 곧 날마다 새로운 존재로 살아감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모든 차원-영역, 시공간의 창조주-주권자-영생하시는 Q, 내 안에 오셔서 내주하시며(동시에 삼층천 보좌에 계심) 나와 하나되어 함께 살아가시며 주님의 지고지선의 뜻 이루시는 [제한 받지 아니하시는] 전지전능, 사랑의 임마누엘 목자를 발견하여 그분의 모든 것으로 살아감...이것이 바로 자족[=그 무엇도 범치/해치 못할 절대적으로 강한 만족/충족.= 제정된/정해진 몫...히>호크...헬>아우타르케스]의 근거이다,
.....실지로, 진실로 Q 말씀, 말씀하시는 Q 자신이 바로 거듭난 그대의 모든 만족<그 누구도 범치 못할 바, 결코 흔들림 없는 자족>이신 바, 이것은 상호 간에 유일무이한 아가페와 필레오, 스테르고 안에서, 더할 나위 없는 완전한 야다-에셰르-에무나의 꽂힘, 상호 최종 궁극적 의미로 삼고 날마다 바로 그렇게 성령 안에서 상호 교통+교환+대치+ 생생한 누림이신 것을 새삼스럽게 새롭게 깨달으며 체득하며 베라카(바라크)-헬레크(할라크)-기쁨과 감사함의, 사랑 겨운 순종으로 동행함의 신부이자 그분의 몸의 지체됨, 바로 그것이 맞는가!!
@@자족, 만족.....aujtavrkh"(842, 아우타르케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형용사 아우타르케스(Aeschyl., Hdt. 이래)는 아우토스(aujtov", 846: 자신)와 아르케오(ajrkevw, 714: 충분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자족하는, 만족하는'을 뜻하며, 이 때문에 '강한'이란 의미로도 사용되었다(Hdt.).
2. 70인역본의 용법.
형용사 아우타르케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히브리어 호크(2706: 제정된 것, 정해진 몫)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양식의 '몫'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형용사 아우타르케스는 신약성경에서 빌 4:11에 한번 나온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에게 있어서 자족의 태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겠다는 완전한 수용의 태세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필수분과 잉여분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범사에 감사하였다.
그는 부요함과 가난함 모두를 자기 삶의 일부로써 받아들였으며,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죄사함 및 소생시키시는 능력과 더불어 부요함과 가난함을 선물로 받은 것을 감사하였다.
그가 육체의 가시로서 견뎌내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병에 대해서도 그는 자족의 덕을 실천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즐겨 주시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말아야 했다.
이 병은 그가 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가 능력주시는 주님께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풀이하여 생각나게 해주는 구실을 하였다(고후 12:7 이하). (참조: B. Siede;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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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jtavrkh" (842, 아우타르케스) - 자족, 만족
846과 714에서 유래 ; ‘자기 만족의’, 즉 ‘만족한’, 만족하여<빌 4:11> 형. self-complacent ;
>>>846, 아우토스 ...불변사 au <아무>【아마 일정한 ‘방향없는’ 바람의 개념으로 109의 어간과 유사】(‘뒤편’)에서 유래 ; (재귀대명사) ‘자신’, 3인칭 (홀로 혹은 1438과 합성어로)으로 사용, 역시 기타 인칭 (본래적 의미로는 인칭대명사와 함께)으로 사용, 848과 비교 <마 3:11 ; 눅 3:23 ; 행 10:26> 대. self, him, it, her, the same ; a) 강조적 용법 ; 자신(self) b) 인칭대명사의 3인칭 ; 그, 그녀, 그것 c) 한정적인 용법 ; 동일한, 바로 그 (the same)
>>>714, 알케오 ...기본어인 듯함【말뚝을 ‘들어 올리다’라는 개념에서 142와 유사한】; 본래적 의미로는 ‘격퇴하다’, 즉 (함축적으로) ‘유용하다’, (상징적으로) ‘만족스럽다’, 충분하다, 넉넉하다, 만족하다 <마 25:9> 동. to be suffici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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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 (自慢) [명사]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냄.<(어느 정도 표면상 근거는 있으나, 상대적인 도토리 키재기로서, 자기 자랑/과시. 현능>***자긍 (自矜) [명사]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짐. 또는 그 긍지. <(근거없는) 자신감, 스스로 신뢰함>
.... <왕의 대로> <가나안과 그 주변사람들.6> 참조.
===호르마를 점령하다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고 엘르아살이 뒤이어 승계한 직후 시점..
1. 네겝<가나안 최남단 고원지대, 아랏족속의 작은 왕국이 당시 있었음>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본 뜻은 "살그머니 걷다"로서 정탐꾼 길이란 의미....제1세대 때에도 이 길을 이용하여 가나안을 정탐하였다.> 길로 온다 함을 (감시자들로부터)듣고 이스라엘을 <기습하여>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가데스에서 (주님의 가나안 진군 허락을 기다리면서) 정탐꾼들을 미리 보냈을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지시 따라> 호르 산으로 이동하였고, 거기서 아론의 죽음 인해 1달간 애곡하며 머문 시간을 <가나안 침공 준비 위한>이스라엘의 정비기간으로 판단한 척후병 보고 따라 선제적으로 공격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성 있음..
.....##아다림 길 = 가데스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빠른 길 : 바란 광야/신 광야 가데스(릿마)-->호르산-->호르마--->아랏-->헤브론--->베들레헴에 도달함 (^^네게브는 헤브론 아래의 애굽 시내까지 이르는 사막 지역을 가리키며 애굽에 이르는 수르 길이 브엘 세바를 거쳐서 헤브론에서 아다림 길과 합류되고 있다. )
2.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헤렘 : 멸절하여 완전히 바침...먼저 자신이 주께 전젖인 의뢰와 완전한 복종 통해 "헤렘"으로 드려져야 "헤렘" 이룰 수 있음...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서서 합심기도와 결단의 경배드림이었음을 의미)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진멸하다>라 하였더라
....그러나, 주님의 가나안 진군 허락은 없었다.((Q의 뜻/경륜 이룸 위한 안배하심!!...사람의 생각과 다르다!!...주님 신뢰의 문제이다!!))
===놋뱀으로 백성을 구하다
....Q이 [아랏 왕에 대한] 호르마 전투 승리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대로 가나안 진입을 허락하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요단 동편으로 들어가라 하셨던 것 같다. (가장 빠른 코스는 서에서 동으로 나 있는 왕의 대로로...당시에는 빠르고 편한 길이었다.) <주님은> 가나안 진군이나, 왕의 대로로 진행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홍해 길을 택하여 에시온게벨을 향해 남향했다가 (에돔을 우회하여) 북상하게 하심((<지도자들의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부르짖는 기도로 솟아나는>브엘에서의 생명수 공급 경험이 시급하다고 보셨던 것 아닐까!!))....에돔과 모압, 암몬에 대해 전혀 건들지 말고 존중하라 하셨음...한편, 당시 요단 동편 땅은 아모리 족속의 두 왕(북왕국 바산 왕 옥, 남 왕국 헤스본 왕 시혼)이 다스리고 있었다...비유컨데, 아랏 왕, 헤스본 왕, 바산 왕은 좋은 땅으로 입성하려는 백성을 막아서는 악한 사단의 문지기들이었음.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예표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은 우리의 영을, 에돔은 우리의 육신을 상징할 수 있다..이스라엘이 에돔에게서 도움 얻으려 함은 때때로 육신에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영이 도움 얻으려 하는 것을 상징하는데, 우리 육신은 우리 영에 결코 도움을 줄 수 없고 오히려 [주 보시기에 합당한] 영적 진행을 오히려 가로막으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영 안에 있어 행함으로써 결코 육신으로부터 도움 얻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18...*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16 But I say, walk habitually in the [Holy] Spirit [seek Him and be responsive to His guidance], and then you will certainly not carry out the desire of the [g]sinful nature [which responds impulsively without regard for God and His precepts]. *17 For the sinful nature has its desire which is opposed to the Spirit, and the [desire of the] Spirit opposes the [h]sinful nature; for these [two, the sinful nature and the Spirit] are in direct opposition to each other [continually in conflict], so that you [as believers] do not [always] do whatever [good things] you want to do. *18 But if you are guided and led by the Spirit, you are not subject to the Law. ]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만나)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화를 내사...여기서 모세는 20장에서처럼 화를 내지는 않는다]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Q은 광야를 통과하는 길이 순탄하고 쉬운 길이라고 결코!! 약속하신 바가 없으셨다, 그렇기에 당연히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이지만 진정한 평강은 굳세고 견고한 심지로 인도-보호-돌봄-양육자이신 임마누엘의 목자 그분을 붙좇는 믿음으로 옴을 깨닫고, 그분과 함께 날마다 걷기 통해, 말씀하시는 Q과 하나 됨을 배워 그분의 짝으로서 합당한 다룸과 연단을 통해 성장 성숙케 하시려는 참 뜻을 헤아려 잘 알아듣고 동행하시는 TUQ을 신뢰함으로 모든 필요마다 여쭘이 옳았었기에, Q 보시기에 마음에 속상하셨고 징벌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셨다.
7. 백성이 (그 범죄 사실을 깨닫고 자백하며 인정하고)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놋으로)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형태는 불뱀이로되, 그 본성은 독(죄성) 없는(심판 받은...놋) 인성]을 만들어 장대[=십자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응시하다,regarded 또는 강하게/뚫어지게 바라보다,look intensely at...*나바트 ::전심으로 새로이, 마음 다해 (주님 자신을) 얻기를 갈망하고 간구하며, 주의 집중하여 올인하고, 감찰하듯 세밀히 살펴 감상-음미하여 맛보며 앙망-응시하며 숙고하다, 뚫어지게 바라보다) 모두 살더라
.....대놓고 Q과 모세를 원망하는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을 때, Q의 눈에는 그들 자신이 독뱀들이 된 바, 그 날아다니는 불뱀들이 되었고 불뱀의 독성을 가졌다...주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너는 스스로 신사라 여기지 말고 네가 뱀인 것을 참되게 깨달아야 한다. 동산에서 아담이 뱀에게 물렸을 때 너는 이미 그 안에서 뱀이 되었다.. 뱀과 같은 본성을 네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너를 ((거듭남 통해!!)) 대체하기 위해 왔다. Q이 보시기에 너는 뱀이다. 너를 대신하여 나는 십자가에 들어 올려질 것이다...장대 위의 놋뱀의 그림은 나 예수가 너 니고데모를 위해 존재함을 상징한다. 그 뱀이 너희 조상들이 죽음에서 구원 받아 생명을 얻도록 그들의 대치물이 된 것처럼..나는 너를 위해 네가 영생 얻을 수 있도록 같은 일을 할 것인데, 너의 대치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되게 구주를 믿어 거듭난 우리는 어떠한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체험작으로 볼 때 요3장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께 와서 마시는 것을 말하는 요7장에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요7:37-39...*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우리가 생수를((날마다 넘쳐나도록))마신다면, 더 이상 뱀들이 아니로되, 우리에게 생수가 여전히 부족하다면, 우리는 ((여전히))다투는 뱀들이다!!
***앞서 민20에서는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으로 흐르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표를 가지지만, 민21에[서는 (요3:14, 롬8:3에서 증거하는 것처럼) [타락한 죄성 가진]우리의 대신이요 대치이신 [죄성, 곧 독 없는...그러나,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의] 놋뱀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가진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더 이상 놋뱀이 아니다.그분은 생명 주는 영이시다. 십자가에서 뱀의 형태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우리 위해 죽으신 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셔서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하) 이것은 그분이 그분의 형태를 바꾸셨음을 의미한다. 요3장에서 가리키듯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뱀의 형태로 계셨지만, 요20장에서 계시된 대로 그분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다시 오셨을 때 그분은 생명 주는 영이셨다. 그분은 오늘날 (교회 생활과 일상 생활에서) 당신에게 어떤 유형의 그리스도이신가? 그분은 놋뱀인가 생명 주는 영인가? 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대는 여전히 다투는 뱀인가? 그 대답은 그대가 생명 주는 영을 결핍하고 있는가 아니면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신) 그 영을 마시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생명 주는 영이 없다면, 우리는 다투는 뱀일 뿐이다.
.....그들의 여정에 있어서 많은 실패를 거듭 한 이스라엘 사람들, 미리암(20:1), 아론(20:22-29) 심지어 모세에게(27:12-14) 있어서 조차도 (미리암, 아론, 모세 모두 백성들 가운데 인도자들이었으며 미리암은 여선지자, 아론은 대제사장, 모세는 유일한 인도자였으나 그들의 실패의 그 결과는 예외없이 사망을 초래했음을 기억하고 반드시 주의해야 하리라..
.....@@보다, 바라보다, 쳐다보다, 응시하다, 앙망하여 바라보다, fb'n:(5027, 나바트)
나바트(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보다, 바라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0회 나오며, 피엘형과 히필형으로만 사용되었다.
(a) 피엘형에서 이 동사는 '바라보다'를 의미하며, 사람이 눈으로 행하는 것, 즉 보는 행동을 묘사한다: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워져서 어두우리라"(사 5:30).
(b) 히필형에서 이 단어는 '보다, 바라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출 3:6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본질을 뵈옵는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참된 선지자들과는 달리 모세는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하여 볼 것이라고, 즉 독특한 방식으로 그와 교통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민 12:8).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의 본질을 본 자는 아무도 없다.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이 무수할 것임을 체험하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고 별들을 세어야 했다(창 15:5).
롯과 그 가족이 도망칠 때 뒤돌아 보아서는 안되었다(창 19:17, 창 19:26).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한가지 전형적인 모습은 백성들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시내 광야 시대와 성막이 완성되어 봉헌되기까지의 기간동안 회막이 사용되었을 때 행해졌다(출 33:8).
모세는 놋뱀을 만들고 그것을 장대 끝에 매달았다. 누구든지 뱀에게 물렸을 때 이 놋뱀을 쳐다보면 살았다(민 21:9).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 안에서 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보고 살으라'는 이 단순한 요청이 믿음의 시금서이다.
욥 39:29에서 이 동사는 독수리의 능력과 습성을 묘사하면서 그 눈이 멀리 있는 먹이도 본다/간파한다고 한다: "거기서 움킬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리고 이 단어는 여호와의 형상을 보는 것(민 12:8), 언뜻 둘러보는 것(삼상 17:42),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사 38:11)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
시 94:9에서 이 동사는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라고 하는 질문에서 사용되어 창조주자 그의 피조물보다 더 위대하심에 틀림없다는 것, 즉 사람의 마음에 접근할 문을 만드신 이가 들어갈 능력과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c) 히필형에서 또한 이 단어는 '주시하다, 눈여겨보다, 관찰하다, 고려하다, 관심을 보이다, 주의를 기울이거나 유의하다, 숙고하다'라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시 119:6, 시 119:15에서 이 동사는 여호와의 명령과 길에 주의 집중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무엘은 왕으로 기름부음의 이유로서, 이새의 장남인 엘리압의 외모나 키를 고려하거나 관심을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다(삼상 16:7).
이 동사는 여호와께서 고려하시는/관심을 보이는 매우 순화된 태도, 예컨대 마음의 겸허와 심령의 통회와 관련된다(사 66:2).
이스라엘의 작금의 종교적 행사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는 하나님께서 친교의 예물을 돌아보지 않으시는 것으로 표현된다(암 5:22).
하박국 선지자는 왜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께서 보지 아니하시는지, 즉 벌하지 아니하시는지, 또 악한 갈대아인들이 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지 불평스럽게 질문하였다. 본래 악을 결코 참고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왜 그리하시는지 물었다(합 1:3, 합 1: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실뿐만 아니라 감찰하시고 그것들을 떠 맡으실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고통들은 하나님의 행동의 기회가 될 것이다(시 10:14).
② 사람들은 그들의 눈을 고정시키고 그들의 유일한 도움이신 여호와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사 51:1, 사 22:11, 사 34:5).
하나님의 방법, 예를들면 언약의 틀(사 51:2, 시 74:20), 그리고 메시야(슥 12:10)를 바라보고 유의하여야 한다.
불경견한 자들은 하나님의 역사(사 5:12)에 주의하거나 유의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주목하지 않는다(시 22:17).
③ 여호와는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고 모든 인류를 세밀히 살피신다(시 33:13).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욥 28:24, 시 33:13, 시 102:19[20], 시 104:32).
쬐이는 햇빛 같고 땅 위의 안개같이 여호와께서 조용히 위로부터 내려다 보신다(사 18:4). 시 13:3[4], 시 84:9[10], 애 1:11, 애 2:20, 애 5:1에서는 하나님께 절망적인 역경을 돌아보시기를 호소한다. 참된 메시지를 선포하지 못하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문둥병자로 취급당하며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을 고려치/인정치 아니하신다(애 4:16). (참조: BDB; L. J. Coppes; J. A. Naude).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으로 떠나다
.....(우회로를 택한 백성들에게서 나타난 긍정적 변화.......조급함과 조바심은 실패의 첩경일 뿐이다....생 콩을 넣고 급한 마음에 맷돌을 너무 빨리 돌려버리면 콩이 잘 갈려지지 않고 오히려 생 콩 그대로 남게 됨을 명심하라....주님은 항상 적합하게 만들고 계심을 신뢰하라!!) 고된 길임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원망 불평이 사라졌고, 주님 말씀 대로 그들 스스로 (지도자와 백성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하여 우물을 파고 물을 얻고 있음
10.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11. 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12. 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세렛시내 도하까지는 (제2년6월말-7월초에 광야 방황 개시부터, 제40년 6월말 7월초에 세렛시내 도하까지) 만38년 걸렸음..., 제40년 1월 미리암 사망(가데스) -->5월에 호르산에서 아론 사망 -->호르마 전투 승리 거쳐 ((에돔과 모압을 손대지 말라는 Q 명령을 따라)....에돔 왕에게 왕의 대로 통과 요청 했으나 더 호전적 태도를 보이면서 싸워서 지켜내려는 태도로 거절 당함) 홍해 길로 다시 진입, 에시온게벨 거쳐서 에돔의 세일산지 동편의 사막 길로 북상, 세렛 시내에 2개월 만에 도달(아마도 제40년 6월말-7월초), :::: 한편, 모압 변경에서, 아모리 족속 헤스본 왕 시혼((= 모압을 쳐서 모압 평지를 점령하고 있었던...아모리의 남왕국/헤스본 왕))에게 [왕의 길] 통과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게 됨 :::즉, (발락이 다스리고 있던) 모압을 우회하여 동편의 그데못 광야 길로 진행하여 모압과 암몬 경계의 아르논 강 길로 들어서지만, 이스라엘에 대해 대적하여 (아바림/느보/비스가 산 동북방의 수도 헤스본을 떠나) 야하스에까지 내려와 싸우려는 아모리 족속인 헤스본 왕 시혼의 공격을 받게 되지만, 격파하여 승리 거두게 하심따라 헤스본-비스가 산-모압 평지까지 점령하고 얍복강 나루에 도달. 이어서 에드레이까지 맞아 싸우러 나아 온 바산 왕 옥을 격파하고 에드레이, 길르앗, 바산(얍복 강에서 헬몬산 일대 =현재의 갈릴리 동부와 <팔레스타인 최대 상수원>갈릴리호수 동북쪽 골란 고원 일대)까지 점령함.. 야하스 전투 승리-->헤스본 점령-->싯딤 점령-->(왕의 대로를 따라) 야셀 점령-->에드레이 전투 승리[갈릴리호수의 야르묵 강 기슭, 에드레이](제40년 11월 초 모압 평지에서 1일간 신명기를 강설함...율법이 시내산에서 처음 주어졌다면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모압 평야에서 받은 하나님의 두 번 째 율법과 같다는 의미에서 이 표현이 나온 것이다.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들을 모은 설교집이라고 할 수 있다),,,,헤스본 왕의 영토는 르우벤, 길르앗 지역은 갓 자손, 바산은 므낫세 반 지파가 차지.(나중에 골란고원은 단 지파가 이동 거주함....1967년 6일 전쟁 승리후 시리아 영토에서 이스라엘 영토가 되었음).싯딤(아벨싯딤)은 모압 평지로서 여리고-길갈을 마주보고 있음
13. 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14. 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15. 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16. 거기서 브엘[=브엘 엘림..일명,지도자의 우물]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영적 의미에서의 확대 적용!!> Q의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 지속 분출을 제한하며 긍휼히 여김으로 생명공급함에 지장 주는 거리낌이 아직 남아 있는, [그래서 자기 연민-우울에 빠져 만족하지 못하게, 다른이들에 대해 지나친 과민함과 충동적인 예민함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내적 존재의 깊은 곳들을 (주님이 잘 알고 계시기에 <무한한 성령 공급 위해 이제 이것까지 파 내도록 하자>하실 그 때에는 전심으로 열어드리며 합당하게 순종하며 반응함으로써!! 낱낱이 파내고 드러내어 [무한히 넘쳐 흐르는 생명수 흐름의 자유함을 만끽함으로 주께] 올려드려야 함)....여기 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마다 진정한 영적 의미의, 왕홀과 권능의 지팡이를 가진 귀인(귀족, 어른) 지휘관(리더), 곧 왕적 제사장이 될 것......그 곳은 다름 아니라 우리의 아직까지도 가리워져서 방치되어 있는,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의..[어둠에 그냥 방치해 두고 있는 회개가 필요한 부분들과, 무의식, 잠재의식의 영역들일 것!!].... 타고난 <중립적이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달성해야 할 부담으로 느끼는> 천연적 생명에 속하는 생존-보호//애정-존중//명예-달성 등 본능적 욕구들과, 그 욕구들 추구함<이것은 자기를 긍정적으로 느낌, 곧 자존감에 속한 것으로서, ((온전히 이룬 자로 보시기에)) 거듭난 이에게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되거나 (자기 노력을 그만두게 됨)으로 인해 새로와지게 하심>에 대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다 여겨졌기에 강제력 발동으로 막아버림 인해 왜곡된 사회적 부정적 반응의 경험들...버려짐-학대-좌절-손상 등 (사회적 표출이 용인되지 않는다 여겨졌기에 무의식-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믇혀진 상태에서 계속 원수에게 틈을 내어주는 ,참소-조롱 거리로 취급 되고 있는 열등감-우울-자괴감-무가치감 등 내적 상처 등 부정적 기억들의 묻혀져 있는 장소라 할 수 있을 것..)
.....여기서, 다정하신 주님은 사랑과 기쁨으로 모세에게 이르신다!!...브엘의 우물은 그리스도를 표상하며, 지휘관과 귀인들((족장들)), 곧 영적 리더들이 그리스도를 공급하기 위해, 그들의 홀과 지팡이로 [공공의 필요를 세밀히 살펴보시고 해결책 베푸시는, 주님의 지시에 따라 그들에게 맡겨진 공권력을 합당하게 사용하여 반응함으로써] 판 것인데, 거기서 우물물이 터져 솟아나왔다....이렇듯 생명의 그 영이신 그리스도를 공급하기 위해 주님 말씀 따라 추구/궁구하며 주와 하나 됨 이루어 주의 이름으로 중보-중재-전이-공급하는 자들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영적 리더들이다!! :::: 이로써, 주님은 드디어 메마른 땅, 광야 생활이 끝났음을 선포하고 계셨다!!
17.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찬양하라)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18.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19. 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20.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민33장에서 42정거장을, ((실은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42세대를 예표함이다..마1:17...즉 이 여정을 허락하신 Q의 근본 의도는 그분의 모든 백성을 궁극 목표인 좋은 땅까지 데려가기 위함임을 가리킨다
....오늘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좋은 땅, 우리의 영원한 안식의 땅이시다) 백성의 모든 여정을 최종적으로 종합하여 기록하고 계신 Q은 오직 ((비록 백성들에게는 선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백성들의 모든 여정을)) 적극적-긍정적으로 선하심의 각도로만 바라보며 대하고 계심을 결코 잊지말자
....그러므로 그대가 보기에 교회가 가련한가 놀라운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대가 (지금)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오직 주께서 바라보심처럼 하늘에 속한 방식으로 모든 지상교회들을 바라 볼 필요가 있으며, 모든 교회가 장차 올 새 예루살렘의 부분들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구약에는 목표 [그리스도]가 끝에 있지만 신약에는 목표[그리스도]가 시작에 있다....이는 그리스도 안의 믿는 이들은 목표부터 시작함을 의미한다.(즉, 믿는 우리는 참 안식일, 시작이자 동시에 결과 안에 있다고 말하여야 한다.) 그분 안으로 침례 받음으로써 모든 것은 완성되었기에 그분을 누리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이 예비되었고, 우리는 단지 와서 식사하며 그리스도의 누림 안으로 들어 갈 필요가 있다.
.....민33장의 42개의 정거장들에 대한 기록만을 볼 때에는,(여기서는 백성들의 실패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여정의 목표인 안식의 땅에 도달할 때까지 모든 정거장마다 통과하면서 전적으로 공격적-적극적-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민1-33장까지 찬찬히 읽어가노라면,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선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구나" 하는 의견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33장은 Q의 눈에 따른 기록으로서 그들에 대한 기록은 적극적인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Q의 관점에서 Q은 항상 그분의 백성들을 적극적으로 여기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Q은 그분의 백성들을 악의 각도가 아니라 선의 각도로 보고 계신다....어떤 특정한 지역 교회를 비평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마다 이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놀라운가 가련한가 하는 것은 사실상 교회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대 자신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으며, 그대가 소극적인 태도로 소극적 각도에서 교회를 조망한다면 교회 안에서 선한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지만, 적극적 태도로 적극적 관점에서 교회를 조망한다면 교회가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말하게 되리라.....그러므로, 지역교회 생활에 대하여 결코 패배하거나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하늘에 속한 방식으로 조망해 보도록하고, 모든 지역교회들마다 장차 올 새 예루살렘의 부분들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요단 동쪽을 점령하다
21.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22.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23.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24.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25.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빼앗고 그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주하였으니
26.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시혼이 그 전 모압 왕을 치고 그의 모든 땅을 아르논까지 그의 손에서 빼앗았더라
27.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이르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28.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29.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의 아들들을 도망하게 하였고 그의 딸들을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30.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하게 하였도다 하였더라
31.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주하였더니
32. 모세가 또 사람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하게 하고 그 촌락들을 빼앗고 그 곳에 있던 아모리인을 몰아 내었더라
33. ○그들이 돌이켜 바산 길[=왕의 대로의 연장이다]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35. 이에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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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 동편 :::: 가나안 입성에 있어서 행군 목표지는 (요단강 동편의) 모압 평지임......
**아모리 족속의 두 왕국
---북왕국[아모리 족속 바산 왕 옥(수도-아스다롯) :::: 얍복강에서부터 갈릴리호수 하단 야르묵 강, 동쪽으로는 바산과 아르곱 온 지역(암몬 땅의 대부분 지역)....
---남 왕국[아모리 족속 헤스본 왕 시혼(수도-헤스본) :::: (모압-암몬 경계인)아르논 강 유역과 헤스본, 모압 평지<비스가(느보)산 정상>, 얍복강 까지 일대를 점유.....모압을 쳐서 아르를 함락 시키고 아르논 강까지 확장시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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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동편 ::: 모압 (십볼의 아들 모압 왕 발락) ---(<에돔(오히려 적대적 태도로 강경하게 맞서려 했음)과 모압과 암몬은 건드리지 말라..."옛 사람에 속한 것으로서 십자가로 이미 처리되었다" 암시하심..>는 Q 명령을 따라 우회했음) ..모압 땅과 에돔 땅 경계는 세렛 시내 ---> 에돔 땅을 가데스로부터 홍해 길을 따라 에시온게벨에 도달하고, 북상하여 세일 산지 오른 쪽으로 난 (사막 길)로 행하여 세렛 시내에 도달, 그 다음에 모압 땅을 오른 쪽으로 (광야 길) 우회하여 마침내 (모압 땅과 암몬 땅의 경계인) 아르논 강에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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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2, 9.18,19..("에돔, 모압, 암몬 족속과 다투지도 손대지도 말라" 하신 명령...Q의 뜻 이룸의 우선 순위에 따른 명령임).*2...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9.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18.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19.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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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2:24, 25...*24.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25.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신3:2, 3...*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모든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3.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모든 백성을 우리 손에 넘기시매 우리가 그들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가나안 땅 입성의 방해자, 공중 권세의 세 문지기들을 JC이름으로 멸절함...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믿음으로 담대히 행동함--
....[네게브에 사는 가나안 사람 아랏 왕](마귀 권세의 실지적 행동대--능력)] 습격으로 이스라엘 백성 몇을 사로잡음 = 교회 안의 성도들 몇을 포로로 사로잡았음을 의미 ....Q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담대히 임마누엘 Q 영광을 위하여 싸우되 그의 성읍 멸절을 서원하여 그대로 행하고 그 영토를 취함.
....[아모리 족속 헤스본 왕] 시혼은 하늘의 악한 영들의 대표..., 우리에게는 악한 영들에게 그들의 영토를 통과할 길[욍의 대로]을 내달라고 요구할 임마누엘 그리스도의 왕적 권세가 있음을 의미 --->그들이 거절하여 전투가 발발될 경우 -->영적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 거둔 후, 그와 그 군대를 살해-멸절하고 공중에 있는 사단의 영토 일부를 우리의 것, 소유된 점령지로 삼게 됨을 의미..
....[아모리 족속 바산 왕] 옥은 공중의 사단 권세의 예표 (Q이 거하시는 시온산과는 반대편에 서 있음) ....이미 이긴 싸움이기에 그 아들들과 그 모든 백성을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말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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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hen the Canaanite, the king of Arad, who lived in the Negev, heard that Israel was coming by the way of Atharim, then he fought against Israel, and took some of them captive.
2. So Israel made a vow to the LORD, and said, "If Thou wilt indeed deliver this people into my hand, then I will utterly destroy their cities."
3. And the LORD heard the voice of Israel, and delivered up the Canaanites; then they utterly destroyed them and their cities. Thus the name of the place was called Hormah.
4. Then they set out from Mount Hor by the way of the Red Sea, to go around the land of Edom; and the people became impatient because of the journey.
5. And the people spoke against God and Moses, "Why have you brought us up out of Egypt to die in the wilderness? For there is no food and no water, and we loathe this miserable food."
6. And the LORD sent fiery serpents among the people and they bit the people, so that many people of Israel died.
7. So the people came to Moses and said, "We have sinned, because we have spoken against the LORD and you; intercede with the LORD, that He may remove the serpents from us." And Moses interceded for the people.
8. Then the LORD said to Moses, "Make a fiery [serpent,] and set it on a standard; and it shall come about, that everyone who is bitten, when he looks at it, he shall live."
9. And Moses made a bronze serpent and set it on the standard; and it came about, that if a serpent bit any man, when he looked to the bronze serpent, he lived.
10. Now the sons of Israel moved out and camped in Oboth.
11. And they journeyed from Oboth, and camped at Iyeabarim, in the wilderness which is opposite Moab, to the east.
12. From there they set out and camped in Wadi Zered.
13. From there they journeyed and camped on the other side of the Arnon, which is in the wilderness that comes out of the border of the Amorites, for the Arnon is the border of Moab, between Moab and the Amorites.
14. Therefore it is said in the Book of the Wars of the LORD, " Waheb in Suphah, And the wadis of the Arnon,
15. And the slope of the wadis That extends to the site of Ar, And leans to the border of Moab. "
16. And from there [they continued] to Beer, that is the well where the LORD said to Moses, "Assemble the people, that I may give them water."
17. Then Israel sang this song: "Spring up, O well! Sing to it!
18. "The well, which the leaders sank, Which the nobles of the people dug, With the scepter [and] with their staffs." And from the wilderness [they continued] to Mattanah,
19. and from Mattanah to Nahaliel, and from Nahaliel to Bamoth,
20. and from Bamoth to the valley that is in the land of Moab, at the top of Pisgah which overlooks the wasteland.
21. Then Israel sent messengers to Sihon, king of the Amorites, saying,
22. "Let me pass through your land. We will not turn off into field or vineyard; we will not drink water from wells. We will go by the king's highway until we have passed through your border."
23. But Sihon would not permit Israel to pass through his border. So Sihon gathered all his people and went out against Israel in the wilderness, and came to Jahaz and fought against Israel.
24. Then Israel struck him with the edge of the sword, and took possession of his land from the Arnon to the Jabbok, as far as the sons of Ammon; for the border of the sons of Ammon [was] Jazer.
25. And Israel took all these cities and Israel lived in all the cities of the Amorites, in Heshbon, and in all her villages.
26. For Heshbon was the city of Sihon, king of the Amorites, who had fought against the former king of Moab and had taken all his land out of his hand, as far as the Arnon.
27. Therefore those who use proverbs say, "Come to Heshbon! Let it be built! So let the city of Sihon be established.
28. "For a fire went forth from Heshbon, A flame from the town of Sihon; It devoured Ar of Moab, The dominant heights of the Arnon.
29. "Woe to you, O Moab! You are ruined, O people of Chemosh! He has given his sons as fugitives, And his daughters into captivity, To an Amorite king, Sihon.
30. "But we have cast them down, Heshbon is ruined as far as Dibon, Then we have laid waste even to Nophah, Which [reaches] to Medeba."
31. Thus Israel lived in the land of the Amorites.
32. And Moses sent to spy out Jazer, and they captured its villages and dispossessed the Amorites who [were] there.
33. Then they turned and went up by the way of Bashan, and Og the king of Bashan went out with all his people, for battle at Edrei.
34. But the LORD said to Moses, "Do not fear him, for I have given him into your hand, and all his people and his land; and you shall do to him as you did to Sihon, king of the Amorites, who lived at Heshbon."
35. So they killed him and his sons and all his people, until there was no remnant left him; and they possessed his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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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1장 (개요)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이제 광야를 벗어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약속의 땅의 가장자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본장은 특히 그 후반부에서 하나의 영광스러운 승전을 보여 주고 있다.
1.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을 격파함(1-3).
2. 불평 때문에 백성들이 받은 불뱀의 징벌과 놋뱀을 쳐다보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받은 구원(4-9).
3. 얼마간의 전진과 그 여정 중에 있었던 사건들(10-20).
4. 아모리 왕 시혼(21-32)과, 바산 왕 옥을 정복하고(33-35) 그들의 땅을 점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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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랏 왕 격파(민 21:1-3)
Ⅰ. 가나안 왕 아랏은, 이스라엘이 “정탐 길로 온다”(KJV)는 말을 듣고 그들의 진영을 공격했다.
그 때로부터 38년 전 모세가 보냈던 정탐꾼들이, 그들도 모르게 다녀온 길이지만, 그 날에 가나안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경각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행동을 눈여겨보며,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랏 왕은 그들을 먼 거리에서 미리 막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한 것뿐이었다.
그가 가만히 있었다면 그의 백성들은 가나안 모든 족속 가운데서 제일 마지막에 멸망했을 것인데, 이 일로 말미암아 그들은 제일 먼저 멸망받게 되었다.
이처럼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전 7:17).
Ⅱ. 아랏 왕의 시도가 처음에는 성공했다.
아랏 왕의 전진 초소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흩어져서 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중 몇 사람을 사로잡았다(1절).
그렇게 되자 그는 우쭐했고, 이스라엘의 그 거대한 무리를 무찌를 수 있으며, 자기 나라를 멸망의 위협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시련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불신과 불평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Ⅲ. 이 일을 당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겸손히 하나님께 호소했다(2절).
이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의 시험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불평을 말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절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우신 섭리 속에서 그들로 하여금 그 시련을 잘 이길 수 있게 해 주셨으며, 강력한 공격자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여 주시리라는 것을 믿게 해 주셨다.
그들은 장로들을 통해서 그들의 성공적인 구원을 기원하며 “서원하였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이를 받기를 원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며, 특별히 우리가 구하는 바 그 자비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약속 아래 우리의 영혼을 묶어 놓아야 한다.
이처럼 여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뜻으로 이 가나안의 성읍들을 진멸하며, 결코 그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자기들을 위해서 사용치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허락해 주시면, 모든 찬양은 하나님께만 돌리고, 결코 그들이 거기서 어떤 이익을 취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우리도 이대로 하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을 수 있다.
Ⅳ.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3절).
여호수아는 강력한 부대가 나가 싸우도록 명령했으리라...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광야의 끝에 자리잡은 그들의 성읍들까지 그들을 쫓아갔으며, 그 성읍들을 완전히 진멸하고 돌아왔다.
“싸움에는 졌지만, 최후의 승리는 우리가 거두었다”(Vincimur in praelie, sed non in bello).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전부에 대해 참된 말씀이다.
군대가 일시적으로 그들을 정복할 수는 있지만, 마지막에는 그들이 정복한다.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고 명명했다.
그 뜻은 완전한 멸망을 기념하는 것이며, 가나안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들의 후손들에게 이 성읍들을 재건하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성읍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서 진멸되었고,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희생물이 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리고 성의 경우에서 보아도, 하나님의 법은 그러한 성읍들은 결코 재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신약성경의 바벨론 멸망에 관한 예언의 말씀 가운데도 이 이름에 관련된 은유가 들어 있다고 보인다.
거기에 보면 그들의 모든 군대는, “군대의 멸망”이란 뜻을 가진 “아마겟돈”이란 곳으로 모이라는 명령을 받는다(계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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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뱀(민 21:4-9)
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통과해 가까운 길로 가지 못하고, 그 땅을 둘러 먼 길로 전진했기 때문에 심히 피로해졌다.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다”(4절).
아마 그 길이 거칠고 평탄치 못했거나, 아니면 더럽고 메마른 길이었는지 모른다.
또는 그들이 에돔 사람들의 땅을 그대로 밀고 들어가서, 그 땅을 통과하지 못하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을 속상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Ⅱ. 이런 경우를 당하자 그들의 불신앙은 불평부터 토로했다(5절).
금방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고 계속해서 정복하고 들어가고 있는 그들이건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바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으며, 앞으로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바에 대해서는 이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며 그 불신을 토로했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이끌려 나온 것과 또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의 손으로 지은 식물과 물을 먹고 마시지 못하고, 오로지 기적에 의해 생겨난 식물과 물을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원망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돌았다”(눅 15:17, 표준새번역). 그런데도 그들은 “떡이 없다”고 불평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천사들의 음식을 먹어도 그것에 대해 싫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만나에 대해 싫증을 느꼈으며, 그것을 “박한 식물”이라 했고, 아이들이나 먹을 것이지 어른들이나 군사들이 먹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했다.
만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어떤 것이면 만족할 수 있었을까? 싸움을 하고 싶은 자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곳에서도 잘못을 찾아낸다.
이처럼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하늘의 만나까지라도 싫증내기가 쉽고, 이를 박한 식물이라고 부르기가 쉽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경멸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하자.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떡이며, 참 식물이며, 믿음으로 그것을 먹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떡이다. 그 누가 감히 그런 떡을 “박한 식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Ⅲ. 그들의 불평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의로운 심판을 내리셨다(6절).
하나님은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고, 그 중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셨다.
신명기 8장 15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지금까지 지나온 광야는 불뱀들이 들끓었던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의 백성들을 불뱀의 해로부터 지켜 주셨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불평을 말하게 되자,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을 피하던 짐승으로 하여금 그 곳에 몰려들게 하고, 이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혼내 주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 것은 마땅한 일이다.
이 뱀을 불뱀이라고 일컬었다. 그 까닭은 그것들의 색깔, 그것들의 발광적인 모습이나 그것에 물릴 때 오는 영향, 즉 몸이 뜨겁게 타오르고 즉시 열이 오르며 몹시 갈증을 느끼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들은 부당하게도 물이 없다고 불평했다(5절).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물로도 해소시킬 수 없는 갈증으로 그들을 혼내 주셨다.
아무 까닭 없이 울부짖는 자는, 반드시 울부짖어야 할 까닭이 주어진다.
그들은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라고 불신앙적으로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받아서, 그들의 불신앙이 곧 그대로 실행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하나님의 면전에서 날뛰었으며,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었다”(시 140:3).
그런데 이제 이 불뱀들이(이 뱀들은 나는 불뱀으로 보인다. 사 14:29) 그들의 면전에서 날뛰며, 그들에게 독기를 뿌렸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오만했는데, 하나님은 이 천한 짐승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천벌을 주게 하여,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셨다.
전에는 애굽 사람들을 막았던 그들의 무기가 이제는 그들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메추라기들을 가져오는 자는 그 새들을 물을 뱀도 함께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온 피조물이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해 무장을 갖춘 자들과 싸우고 있다.
Ⅳ. 백성들은 이러한 심판을 받자 회개하고 하나님께 간청했다(7절).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백성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했다. 그들은 특별히 이런 말로 고백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였나이다.”
아마 그 형벌이 가혹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시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채찍 앞에 거꾸러졌다.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시 78:34).
그들은 자기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것을 알며, 또 모세의 기도는 하늘에 크게 상달되는 것을 확신하고 모세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그들의 어조가 어쩌면 그렇게 재빨리 변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원수로 치부하고 싸우던 사람에게 그들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아양을 떨며,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께 말해 줄 대변자로 삼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관한 한 때로 고난은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줌으로, 전에는 그들이 비난했던 기도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준다.
모세는 그들을 충심으로 용서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자기를 저주한 사람들을 위해서 축복했으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했다(마 5:44).
우리는 모세에게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에게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여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일깨워 주시는 바를 찾아볼 수 있다.
Ⅴ.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기 위해 놀라운 방법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심판을 선언하게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좋은 감정을 살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해 그로 하여금 구원의 방편이 되게 하셨다(8, 9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불뱀의 모양을 만들어 높은 장대 위에 매달아, 진영 어디서든지 볼 수 있게 하여, 뱀에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모세는 놋으로 불뱀 모양을 만들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7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효과적인 구원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처럼 사람들은 그들의 불평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만, 그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게 하셨으며, 그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회개하고, 겸손하게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것은 모세의 손을 거쳐 하나님의 치유를 받게 함으로, 다시는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원망을 토하지 못하도록 가르쳐 주시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보인다.
이 치료법 역시 하나의 기적적인 방법이었다. 불뱀에 물린 자가 광택이 빛나는 놋을 보면 그 상처가 더 심해진다는 어느 박물학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유대인 자신들도 말하기를, 그들을 고친 것은 그 빛나는 놋뱀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그들을 치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보면 이러한 방법을 택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나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
이제 우리는 그 때 그 경우와 우리의 경우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1. 그들의 질병과 우리의 질병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마귀는 옛 뱀이요 불뱀이다. 그러므로 “한 큰 붉은 용”으로 나타난다(계 12:3). 죄란 불뱀에 물리는 것이다. 그것은 예리한 양심에게는 고통을 주고, 마비된 양심에게는 독기를 뿜어준다. 사탄의 유혹을 “화전”(火箭)이라고 했다(엡 6:16). 욕망과 정욕이 우리의 몸에 작용할 때 우리의 영혼을 불태운다. 전능자에 대한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죄는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다”(잠 23:32). 죄에 한 번 물리면, 독사에 물린 상처처럼 부풀어 오른다.
2. 그들의 치료와 우리의 치료와의 유사점을 알아보자.
(1) 하나님 자신이 불뱀에 물린 데 대한 해독 방법을 고안하시고 설명해 주셨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도 무한하신 지혜자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구속의 원리를 발견하셨다.
(2) 그것은 치료법으로는 조금도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의한 우리의 구원도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고전 1:23). “광야에서 뱀을 든”(요 3:14) 사람은 모세였으며,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 모세도 그리스도께 대해 기록한 바가 있다(요 5:46). 그리스도는 모세의 후계자들인 유대 통치자들에 의해 들려졌다.
(3) 그 치료법은 상처를 준 그 방법과 같은 모양을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그 자신은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시지만,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냄을 받았다(롬 8:3). 이와 같이 그 분은 “죄인”이라는 말을 들었다(요 9:24).
(4) 놋뱀이 들려졌으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도 들려졌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 들려졌다(요 12:33, 34). 그것은 온 세상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복음의 전파에 의해 들려졌다. 여기서 “장대”라는 말은 “기치” 또는 “기호”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라고 했다(사 11:10). 어떤 사람은 뱀을 든 것이 곧 옛 뱀인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승리하실 때(골 2:15), 그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던 것이다.
3. 그들이 받은 치료의 효과와 우리가 받는 치료의 효과의 유사점을 알아보자.
그들은 그것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리고 우리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의 주를 바라본다(히 12:2).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 45:22).
우리는 우리의 상처와 또 그 상처에서 보는 위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관해 전해 주신 기록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지시에 따라서 우리의 몸을 맡기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약속을 믿어야 한다.
놋뱀을 아무리 달아 놓아도 그것을 쳐다보지 않으면 고침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자신의 상처를 돌보았어도,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자들은 필연 죽고 말았다.
이 치료의 방법을 우습게 여기고 약물을 의지한 자들은 멸망받았다.
이와 같이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경멸하거나, 은혜에 대해 실망하면 그 상처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치료의 표적을 바라본 자들은 비록 그 진영의 제일 외곽 지대에서, 눈물에 젖어 약해진 눈으로 바라본 것이라도 이 때문에 그들은 확실히 고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믿음이 약해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연약한 형제들을 “위하여 죽으셨다”(고전 8:11).
아마 놋뱀의 장대가 설치된 후에도 얼마 동안 이스라엘 진영은 불뱀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들이 남은 여행길에도 항상 이 놋뱀을 앞세우고 행진했으며, 그들이 진을 치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설치했으며,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는 그 놋뱀을 그 땅의 한 모퉁이에 세워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열왕기하 18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때까지 놋뱀을 향해 분향을 했는데, 그 놋뱀에 분향하기 위해 그처럼 멀리 광야로 나갔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죄의 삯인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받은 자라도,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은 그 때문에 오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줄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놋뱀을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예수의 죽으심을 항상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모든 경우에 그것을 쳐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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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는 이스라엘 진영(민 21:10-20)
여기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평지에 진영을 차릴 때까지 거듭한 몇 번의 진영 이동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 모압 평지에서 나와서, 여호수아서의 첫 머리에서 읽을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중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연적인 운동은 더 빠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약속의 땅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진행하였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다(10절).
우리도 이처럼 천국을 향해 가는 우리의 여행길에서, 그 여행의 마지막 때에 이르러, 천국에 거의 가까이 갈 무렵에 더욱 활동적으로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이동에 관한 간단한 기사 가운데서 우리는 두 가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다.
Ⅰ. 아르논 냇가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사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하셨다(13-15절).
이제 그들은 에돔 땅을 우회했으며(왜냐하면 그 땅은 그들이 정복할 수도, 더욱이 침범할 수도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신 2:4, 5), 드디어 모압의 경계에 이르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들은 그들의 길을 방해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약속된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행진해 가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명령, 즉 모압 자손을 괴롭게 하지 말라(신 2:9)는 명령을 엄격히 준수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왜냐하면 그 땅은 롯의 정당한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르논 건너편에 진을 쳤다(13절).
그 곳이 전에는 여기 26-27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모압 사람들에게 속했지만, 지금은 경건한 백성인 아모리 사람들의 소유였다.
모압 사람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는 주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입다에 의해 다시금 주장된 바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암몬 사람들에게 항의하면서, 그들에게 약속을 요구하면서 한 입다의 말이었다(삿 11:15 이하).
그들이 얻은 바는 지금 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아르논 강의 언덕이었다.
이 사실이 상세하게 명기된 바는 없지만, 아마 아말렉과의 싸움(출 17:14)의 역사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책에 나타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그 날에 이스라엘이 싸운 모든 전쟁이 순서적으로 첨가되고, 거기에 아르논 골짜기에서의 활동도 첨부된 것이라고 본다. 곧 (우리 개역 성경과 같이) 아르논 골짜기의 “수바의 와헙”이라는 지역과 그 밖의 지역에서의 활동 기록이었을 것이다. 또는 (KJV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홍해에서 행해진 여호와의 전쟁”과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기 직전에 “아르논 시냇가에서” 행한 전쟁을 다시 “이야기해 주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념할 때는, 그가 은혜 베푸신 바를 모두 열거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홍해로부터 아르논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따라왔는가를 기억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인생의 모든 과정, 아니 거의 모든 발걸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바를 찾아볼 수 있다.
그 때,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바를 명확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Ⅱ. 브엘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축복하사 놀라운 일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다(16절).
브엘은 샘 또는 우물을 의미한다. 병을 의미하는 오봇에다 그들이 진을 쳤다고 한다(10절). 그 지명은 아마 그들이 거기서 그들의 물주머니에 물을 채워 넣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 본다. 얼마 안 가서 물주머니의 물은 떨어지게 마련인데, 바로 이 때 하갈의 경우와 같이 그들의 “가죽부대의 물이 다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창 21:15).
그런데 그들이 불평하거나 원망했다는 말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이 불평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요구를 아시고 그것을 채워 주시는 분임을 믿고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 위해 그들을 샘물이 있는 곳으로 이끄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봇에 진을 치는 것과 같다. 거기서는 우리의 위로가 단지 작고 빈약한 물주머니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가게 되면 우리는 브엘로 옮겨 가는 것과 같다. 그곳은 생명의 샘이며, 생수가 흘러나오는 샘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물을 공급받은 경우는 모두 부당한 불평으로 물을 요구하고, 하나님은 정당한 분개 속에서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1. 하나님은 사랑으로 물을 주셨다(16절).
하나님은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고 하셨다. 그들로 하여금 놀라운 사건의 증인이 되며,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불러 모으도록 하셨다.
그들이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셨으며, 앞질러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다.
2. 그들은 기쁨과 감사 가운데서 그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하여 그 고마움이 갑절이나 더했다(17절).
그 때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서로 격려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우물물아 솟아나라!” 이처럼 그들은 우물물이 솟아오르도록 기도했다.
왜냐하면 약속된 자비는 기도를 통해서 이끌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솟아오르자 그들은 개가를 올렸으며, 환호를 질렀다.
우리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어야” 한다(사 12:3).
놋뱀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들려진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면, 이 우물은 성령의 상징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분이며, 그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요 7:38).
우리의 영혼에서도 이러한 샘이 솟아나오고 있는가? 우리는 이를 노래해야 하며, 그 위로를 받아야 하며, 그리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이 은사를 받으라. 노래를 부르라.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는 동산의 샘이요(아 4:15), 내 영혼을 축여다오.”
이 이야기와 관련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마른 땅으로 샘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실현을 간구하라(사 41:17, 18).
3. 전에는 이러한 기적이 영원히 기념되도록 그 땅의 지명을 붙일 때, 백성들의 다툼과 불평을 나타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백성들의 찬양의 노래가 영구히 간직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찬양 속에는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졌는지, 그 방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18절).
“이 우물은 족장들이 팠다.” 그리고 아마 70명의 장로들이 “율법을 주신 자(즉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모세)의 지시에 따라서 그들의 지팡이로 팠다”(KJV의 본문은 한글 개역 성경의 본문과 다르다.
홀이란 말이 “율법을 주신 자의 지시에 따라서”라는 말로 대체되어 있다―역주).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지팡이를 가지고 부드러운 모래땅에 구멍을 팠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이 판 구멍에서 기적적으로 물이 솟아나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랜 후에도 메마른 땅인 “눈물(바카)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에 샘을 파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서 그 웅덩이에 물이 가득 고이게 해 주셨다(시 84:6).
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 물을 받기 위해서는 땅을 열며, 구멍을 내야만 했다.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기대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 능력의 위대함은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다.
② 이스라엘의 귀인들은 앞장서서 이 일을 위해 그들의 손으로 일을 했으며, 그들의 지팡이를 사용했다.
아마 그 지팡이는 그들의 명예와 권세의 표였을 터인데, 그들은 공적인 봉사를 위해 이를 사용했으며, 그리하여 그들의 명예가 기록에 남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의 하는 일이 이런 놀라운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 자신들에게는 그들의 직책을 더욱 공고히 해 주는 것이었으며,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그 날 얼마 안 가서 죽은 모세의 정신이 어느 정도 이스라엘의 귀인들에게 전달되었다고 보인다. 모세는 전에 바위를 치던 때와 같이 스스로가 땅을 내려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시했다. 이것은 그들의 지팡이가 모세의 홀이 가지고 있던 영광에 참여하게 하고, 나아가 자기는 비록 그들을 떠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떠나지 않고 그들을 계속해서 축복하신다는 것을 안심하고 기대할 수 있게 해 주며, 그들이 율법을 주신 자의 지시에 따르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제나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다. 위로는 오직 책임을 다하는 길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기쁨에 동참하려면 하나님의 지시를 조심스럽게 준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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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혼 왕과 옥 왕 정복(민 21:21-35)
여기에는 시혼 왕과 옥 왕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참으로 숙고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 기사가 여기에 명백하게 이야기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랜 후에도 그 싸움의 승전을 후손들이 길이 기념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자비의 표시로서 거듭 칭송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아모리인의 왕 시혼 왕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9, 20).
Ⅰ.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에게 평화 사절단을 보냈다(21절).
그러나 그 대답은 똑같은 종류의 사신에 대한 에돔 왕의 대답(20:18, 20)보다 훨씬 거칠고 전투적인 것이었다.
에돔 왕은 다만 그들의 땅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이를 거절했으며 자기들의 땅에서 수비했던 데 반해, 시혼은 그의 군사를 이끌고 그들 땅의 경계를 벗어나서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왔던 것이다(23절). 그러나 이는 스스로의 멸망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입다도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게” 정책을 폄으로 스스로의 멸망을 가져왔다고 시사한 바 있다(삿 11:20).
그 정책은 자신을 속이는 결과가 되었다. 모세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를 네(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려고 그 성품을 완강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음이라”고 했다(신 2:30). 하나님의 교회의 대적들은 때로 그들이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취한 충고 때문에 오히려 정신을 잃을 때가 많다.
시혼의 군사들만 패주한 것이 아니다. 그의 땅 전부가 드디어는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다(24, 25절). 이스라엘의 점령은 정당한 것이었다.
1. 아모리 사람들에 대해서 이는 정당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침략자요, 이스라엘에 대해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그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만국의 왕이시며, 온 세상의 주 여호와이신 하나님 자신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 하사하셨던 것이다.
이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은 아모리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게 될 때에 이루어진다고 하셨다(창 15:16).
입다도 이러한 하나님의 허락을 전면에 내세우고 소유권을 주장했다(삿 11:23, 24).
하나님께서 주신 아모리 사람에 대한 승리는 그그 땅을 소유하게 해 주었고, 그들의 조상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2. 이 땅의 전 소유자였던 모압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당한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하나님께서 모압 사람들의 “땅을 내가 네게(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신 2:9)라고 규정하셨다는 것을 항변의 이유로 내세운다면, 모세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정당한 답변을 여기에 마련해 주었을 것이며, 200년 후에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유권에 말썽이 났을 때, 입다는 아모리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그것을 이용했을 것이다.
(1) 비록 이 땅이 모압 사람들의 땅이었던 것이 사실이라 해도, 아모리 사람들이 얼마 전에 이 땅을 그들에게서 빼앗아 완전히 자기들의 소유로 삼았다는 데(26절) 그 정당성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을 모압 사람들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모리 사람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그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득불 이제는 그 땅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땅을 아모리 사람에게서 빼앗았을 때 그들은 그 땅을 모압 사람들에게 돌려 줄 의무가 없었다.
모압이란 이름이 사라지고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 세상 소유물의 불안함을 보라. 우리가 비록 아무리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그 소유주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가 보라! 또 우리의 것도 얼마나 쉽사리 빼앗기는가! 그것들은 “날개를 내어 날아가리라”(잠 23:5).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곳에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다.
또 하나님의 섭리의 지혜로우심과 그 완전한 예견을 보라. 모든 하나님의 섭리가 완전히 이루어지기 위해 그 준비가 오래 전에, 제때에 마련되고 있었다.
이 땅은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 땅을 이스라엘이 준비가 다 될 때까지만 간직하고 있다가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된다는 것을 도저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무궁하심을 다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은 일찍이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다”(신 32:8).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계획하신 땅을 어느 한 민족에게 잠시 맡겨 두셨던 것이다.
(2)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대기 위해 이스라엘은 그 땅에 관한 믿을 만한 기록을 인용했는데, 여기서 한 시인의 노래를 볼 수 있다(27-30절).
이 노래는 주장하는 바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 증거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① 여기에 열거된 이러저러한 땅들은 원래 모압 사람들의 소유였으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 정복했다.
헤스본은 그의 도성이 되었으며, 그를 위해 견고히 성을 쌓게 되었다(27절). 그리고 디본과 노바 땅까지 정복했고, 이들은 아모리 왕국에 병합되었다(30절).
② 모압 사람들은 그 소유권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모압의 아르는 시혼의 공격을 받지 않으므로 여전히 모압의 수도로 남아 있기는 해도, 너무나 황폐하여 다시금 머리가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28절).
모압 사람들은 파멸되었고, 그들의 신 그모스도 시혼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그들을 포기했다(29절).
이 모든 것을 보아서, 이 땅에 대한 모압 사람들의 주장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아모리인의 시를 인용 삽입한 것은 그 이상의 이유가 있는데, 즉 악인의 승리는 잠시 잠깐이란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모압 사람들을 정복하고 그들을 모욕했던 그들이 이제는 그들 자신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당하고 모욕당하게 되었다.
아마 이 땅을 모압 사람들에게서 빼앗았던 바로 그 왕 시혼이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땅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모압의 전왕(前王)에게서 빼앗은 것이라는 말이 있기는 해도(26절), 아모리 사람의 전왕이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공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악행으로 얻은 것은 쉽사리 잃게 된다는 것을 자주 보여 준다. 그들은 그것들을 얻음으로 자고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높아져도 잠시간에 없어진다”(욥 24:24).
Ⅱ. 바산 왕 옥은 이웃 나라의 운명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평을 누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과 싸우기로 작정했는데, 이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길이었다.
옥 역시 아모리 사람이었다. 따라서 아마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의 이웃 나라보다 더 이스라엘과 잘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능력과 체구를 크게 믿었던 것이다. 모세도 그에 대해서 상당한 경각심을 일깨움 받았던 일이 있다(신 3:11).
신명기 3장에는 그에 관해 보다 상세한 기사가 나와 있다.
1. 아모리 사람들이 싸움을 시작했다(33절). “바산 왕 옥이 그들을 맞아 싸우려 하는지라”(33절).
그의 나라는 부유한 땅이었다. 바산은 훌륭한 목재로 유명했다(바산의 참나무가 이를 증명해 준다). 또 훌륭한 목축업으로 유명했다. 바산의 소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리고 그 나라의 숫양과 염소는 매우 유명했다(신 32:14).
악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자기들의 안전과 자기들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기한이 이르면 그것들은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협적인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완전한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내가 그와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나니(34절), 그 일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땅은 모두 너희의 것이다. 가서 취하라.”
아무리 거인이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한갓 벌레에 불과하다.
3. 이스라엘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원수의 군대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원수의 땅까지도 차지했다.
그 땅은 나중에 요단강 이편에 먼저 자리잡은 두 지파 반의 유업의 일부가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아직 그들과 함께 살아 있는 동안에 이를 성공하게 해 주셨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모세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왜냐하면 모세는 영광스러운 일의 끝장을 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시작만이라도 보여 주신 것이다).
또 하나는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에 임할 백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일은 그 당시로서 볼 때는 매우 작은 일같이 보였지만, 실상은 매우 커다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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