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0장 [413.내평생에가는길] [360.행군나팔소리에] [384.나의갈길 다 가도록] [491.저높은곳을향하여] [430.주와같이길가는것]
@@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머리이신 임마누엘 TUQ과, 그분과 연합한 한 몸 이스라엘과 광야 행군 진행 그림을 깊이 생각하고 찬양할지라@@
@@모세는 먼저 구름을 분명히 살펴 보아 Q 뜻하신 바를 알고[=지혜의 말씀이신 Q YHWH], 제사장에게 어떤 나팔을 불어야 할 지를 가르쳐서, 백성들로 나아갈 바를 제시해야 했음..@@
::: [[최선두... 언약궤, 제사장이 매도록 했음..(양떼의 목자, 구원의 대장, 앞장서시는 인도자 CJ, 그분 안에 계신 TUQ]]
==>[제1진영] 유다[찬송/굳센, 발휘하는 산 믿음, 사자]--잇사갈[섬김의 보상/인내와 끈기, 나귀]--스불론[동거함, 그 후에야 진취적 나아감이 가능(항구 획득, 해외 선교)]
==>[[거처]] 므라리(성막 구조물의 기초/골조..북편)와 게르손(성막의 덮개, 장막과 성소 휘장들/형태 유지..서편)
==>[제2 진영]르우벤(아들, 돌아보심)--시므온(응답/들으심)--갓(복됨-복의 유통자, 솔선수범 실행자)
==>[[성막 내부의 성물들 /그리스도의 성취를 기념-기억-운반함]] 고핫
==>[제3 진영]에브라임(축복 인한 번성 + 창대)--므낫세(옛것을 잊고 내어버림)--베냐민(친밀함 안에 거함, 오른손의 능력, 이리)
==>[제4 진영..후미] 단(분별/심판/치리, 뱀)--아셀(형제의 기쁨/풍성/기름짐=갈멜산과 레바논 지역...왕의 수라상 공급)--납달리(끝까지 싸워 이긴, 자유 구가하며 높은 곳을 뛰어다니는, 노래하는 암사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중 행군 순서와 정착시 장막 배치 순서.
이 둘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형제 지파들이 함께 모여 있다는 특징을 보여 준다.
이것은 행군할 때나 머물 때나 즉 전생활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 안에서 형제와 함께 거해야 한다는 영원한 교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민 2:1-34)
1. 정지시 장막 배치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행군하는 동안 그들은 부득불 광야에서 야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때에 그들은 무질서하게 야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성막(tabernacle)을 중심으로 진을 쳤다. 즉 성막을 바라보며 성막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유다, 르우벤, 에브라임, 단 등의 진영이 배치되었다.
2. 이동시 행군 순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4대(隊)로 나뉘어 행군했다.
(1)즉 맨앞에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서고, 그 뒤로 제1대로서 유다의 진 기(旗)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했다.
(2)그 다음에는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성막의 기구를 메고 뒤따랐으며, 그 뒤에는 제2대로서 르우벤의 진 기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했다.
(3)그 다음에는 고핫 자손이 성소의 기구들을 메고 뒤따랐으며, 제3대로서는 에브라임의 진 기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했다.
(4)끝으로 제 4대로서 갓 진기에 속한 지파들이 행군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군할 때에 성막 기구 및 성물을 멘 레위 지파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지파의 사이 사이에 끼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개의 은 나팔 소리 신호의 의미를 잘 알고 분별함으로써, 함께 행군함]]
[민10:1-10..*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3.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7.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8.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당시 제사장은 엘르아살과 이다말 뿐이었음)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10.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 민수기 1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0장 11,12절을 보면, “11.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12.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합니다. 이 19일 동안 하나님께서는 출발 준비를 하셨습니다. 시내광야에서 인구조사를 하셨고(3,4장), 부정한 것으로부터 성결하도록 하셨고(5-6장), 열두지파가 예물을 바쳤고(7장)...하는 일들이 나와 있습니다.
.... 이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본격적인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나안으로의 여정을 시작하기 직전에...시내광야를 출발하기 직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은 나팔 둘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 은 나팔의 용도는 3가지입니다.
1) 나팔은 신호할 때 불게 하십니다. ...은은하게(천천히..부드러이..바암바바~바암바바..묵념때 처럼) 부는 것은 [친밀한 사랑의 교통 위한] 회집을 위함((온 회중은 나팔 두개로, 지휘관 소집은 은 나팔 한개로)), 크게 올려 부는것은 행군 개시[=이것 자체가 순종하는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것임을 의미]
“나팔 두 개를 (동시에 은은하게)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3절) ...온 회중을 여호와 앞으로 부릅니다.
“하나만 (은은하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4절)...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나팔로 부릅니다.
“*5.너희가 그것을 크게 (하나만 올려...짧고 드높이..기상 나팔 소리처럼.. 빠빠빠빠, 빠빠빠빠..)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시간을 두고서)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올려) 불 것이며”(5-6절)... 진영이 출발할 때는 나팔을 크게 붑니다.
2) 나팔은 전쟁을 할 때에 불게 하십니다.
(9절)“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두개의 은 나팔을 동시에) 나팔을 크게 (올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대적과 전쟁을 하러 나갈 때 나팔을 크게 붑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입니다.
3) 나팔은 예배를 드릴 때 불게 하십니다.
(10절)“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은은하게, 두 개를 동시에)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희락의 날과 절기에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붑니다. 이것은 찬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호할 때, 기도할 때, 찬송할 때에 부는 은 나팔 2개를 하나님의 지시로 만들었습니다.
== 두 개의 은 나팔의 첫 번째 용도인 신호용 용도에 대해서.
은 나팔 2개는 신호용 나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신호용으로 은 나팔 2개를 만들라 하십니다. 왜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에는 나팔이 많습니다. 주로 양각나팔-양뿔로 만든 나팔로, 가정들마다 다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 때마다 그 양각나팔을 붑니다. 우리가 설에는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고 연을 날리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 때마다 나팔을 붑니다. 길거리에 다니면서 사람마다 나팔을 불어제낍니다. 온 나라가 나팔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구분을 위해 은 나팔을 새로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은 나팔(전쟁 신호용)은 제사장들만 불수 있습니다. 반면에 양각나팔((=뿔나팔, 쇼파르, 절기 축하 예배용))은 모두가 다 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나라는 7월 1일이 새해로, 한 해의 시작인데...이 새해가 다른 말로는 ‘나팔절’입니다. 그들은 절기를 철저히 지킵니다. 유대인들도 자기 월력으로 7월 1일, 새해가 되면 거주하는 곳 여기저기 다니면서 양각 나팔을 막 분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은 나팔은 아론의 제사장들만 불 수 있는 구별된 나팔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8절) ....은 나팔은 아무나 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제사장만이 나팔을 붑니다. “대대에 영원한 율례” 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 은 나팔은 신호용이기에 그 부는 방법도 정해져 있습니다. * “나팔 두 개를 (은은하게)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3절) * “하나만 (은은하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4절) *“*5.너희가 그것을 크게 (하나만, 올려)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두 번째로 크게 (하나만, 올려)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하나만, 올려)불 것이며”(5-6절)
---나팔을 크게 (하나만, 올려) 부는 것은 진영이 출발할 때입니다.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먼저 앞서고, 뒤이어 동쪽 유다 진영 [-->곧바로 (황소가 이끄는 수레에 해당 물품들을 싣고) 므라리외 게르손이 뒤를 이음] -->르우벤 진영 [-->곧바로 고핫이 (어깨에 성소의 성물을 어깨에 메고) 뒤를 이음] -->그 뒤를 에브라임 진영이, 그 다음에는 단 진영이 출발하도록 하셨으나, 세번째-네번째 올려 부는 나팔은 기록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아마도 은 나팔은 두 개만 만들었기에 그랬을 수 있습니다만, 만약에 서쪽 진영과 북쪽 진영의 출발 때에도 불도록 하셨다면 먼저 분 사람들은 자기가 분 은 나팔을 각각 다른 진영에 배분한 제사장들 두 사람에게 넘겨주고 앞서서 출발하도록 했을 수는 있습니다.).,
처음 크게 불면 동쪽 진영들이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잇사갈지파, 스불론지파가 행진을 시작합니다. (곧 이어 므라리-게르손이 뒤따르고) 2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르우벤지파를 중심으로 시므온 갓지파 순서로 행진을 합니다.(곧 이어 고핫이 뒤따릅니다. 그 다음은 서쪽 진영의 에브라임지파를 중심으로 므낫세지파, 베냐민지파입니다. 그 다음은 북쪽 진영인데, 단지파를 중심으로 아셀지파, 납달리지파입니다.
==모세는(인도자는) 곧, 인도자와 함께 하는 리더로서의 왕적 제사장들은 늘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이 구름은 영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 그런데 이스라엘이 행진하는 법칙은 민9장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행군을 할 때는 구름(구름 기둥)이 떠 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떠날 준비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때, 행군 준비가 완료된 것을 확인한 다음, 최선두에는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먼저 선발대로 언약궤의 지시따라 나아갔을 것입니다], 진영들의 준비가 다 된 후에 그것을 확인한 제사장은 곧 은 나팔을 올려 불어서 행군을 시작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민9;17,23)“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23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구름 기둥 움직임은 바로 "이제 움직여 나아가자"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그런데 오늘 본문 10장에서는 제사장의 나팔을 따라 행진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사장이 구름이 떠 오르는 것을 보고 확인한 후, 진영들의 준비를 마친 후라야 행군 개시의 나팔을 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구름을 따라 하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구름의 움직임(떠 오름-머무름)을 분명히 본 후, 준비가 완료된 것을 확인 한 다음 나팔을 부는 것이 제사장의 일입니다.
제사장은 항상 구름을 쳐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항상 구름을 쳐다보는 것이 제사장의 일입니다.
---주님은 자상하시고 지혜로우셔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나타나 함께 계심으로써) 백성들을 보호하고 배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상에서 벗어난) 만약의 경우를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단지 사람의 생각이지요) 밤에!! 구름기둥이 움직이는 경우죠.. 밤에라도 구름기둥이 움직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밤이라서 제사장이 다 잠이 들었는데, 백성 중 누군가가 그것을 보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앗 구름기둥이 움직였다.’ 먼저 본 사람이 ‘야 움직이자’ 하면서 움직이게 된다면... 엉망이 됩니다. 인원이 200만 명인 이 많은 사람들이 통일성 있게 움직이도록 신호를 만들어 내는 것은 나팔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행군 개시는 맨 앞에 법궤가 선두에 앞서고.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진영의 행군이 뒤따라야 합니다.. 동쪽의 유다지파부터입니다. 그러면 유다지파는 어떻게 움직이나요.. 발 빠른 사람이 먼저 갑니까? 짐 정리 먼저 한 사람이 앞서갑니까? 만약 짐을 뒷 지파가 먼저 정리를 마쳤다면 남쪽의 르우벤 지파가 유다지파를 제치고 먼저 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발 빠르고, 성질 급하고, 짐 정리 다 한사람이 먼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다 살펴보고 제사장이 나팔을 ‘빠앙’하고 한번을 (올려) 불면, 동쪽 진영이 앞서서 가고... 다 빠져나갔다 싶으면 또 제사장이 ‘빠앙’하고 2번째로 (올려) 불면 서쪽 진영이 나가고.. 이런 모든 질서를 잡는 일에 나팔을 사용하였다는 말입니다. 구름 기둥을 보았다고 먼저 본 사람이 먼저 뛰어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은혜를 받았고, 계시를 받았다고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인 계시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지만 그 인도하심을 질서 속에서 이루어가는 일은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구름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고 움직인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제사장의 나팔소리로 움직입니다. 제사장의 나팔소리가 곧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8절) 나팔을 부는 것은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나팔은 하나님의 싸인을 받아서 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어디를 늘 보고 살아야 할까요? 제사장은 항상 어디에 집중을 하고 있어야 할까요? 제사장은 항상 구름을 쳐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누워 잘지라도 아론의 아들 제사장은 구름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봐야 합니다. 제사장은 언제나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늘 하늘에 집중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땅을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일 뿐 만 아니라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움직임을 보면서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이 움직이도록 해내는 사람이라야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늘 하늘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지금 온 회중을 모으라고 하시는지, 천부장을 부르시는지, 진영이 출발하라고 하시는지, 매일 하나님의 싸인을 받고 합당하게 준비시키고 행군을 개시하게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싸인을 나팔로 전달하는 제사장이 매일 잠이나 잔다면...하늘은 안 보고 땅의 일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이 구름의 움직임을 보고 제사장에게 와서 ‘왜 나팔을 안 부나요?’ 하면 이것이 수치요 부끄러움이요, 비극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의 제사장입니다. (벧전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지금은 만인이 제사장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말씀은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항상 구름을 보는 것을 제사장이 해야 합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교회를, 지금 이 땅을 어떻게 움직여 가시는지 늘 하늘을 보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싸인을 확인하고, 행군 준비시키고 나팔을 불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 백성들 전체가 그 나팔 신호에 맞추어서 질서 있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공동체의 움직임의 기준은 나팔 소리인데... 주의 종 된 사역자는 더욱 깨어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살면서는 하나님의 싸인 못 받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리지 아니하면 싸인 못 받습니다. 그러기에, 부름 받은 주의 종이 하나님의 싸인을 제때 제때 잘 받고, 그때마다 나팔을 잘 불어서 하나님의 싸인을 교회에 잘 알릴 수 있도록 함께 깨어 중보해 주셔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 있습니다..
---이 땅이 심판을 받는다면 그 이유는 세상이 타락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타락을 해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입니다. 즉 이 땅이 심판을 받는 것은 세상에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교회가 그리고 부름 받은 주의 종의 타락때문입니다.
** 분별이 명확하도록, 나팔은 (한 개 혹은 두 개 동시 - 높낮이 - 횟수가) 분명하고 명확하게 불어야 합니다.
(고전14;8)“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합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항상 뛰어난 영적 컨디션을 유지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듣고 정확하게 불어야 합니다. 나팔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의 대신으로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할 때 분명하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져야합니다. 나팔을 한 번 크게 올려 불었습니다. 동쪽 진영이 출발을 합니다. 이제 두 번째로 나팔을 크게 올려 불면 남쪽 진영이 출발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갑자기 나팔 하나를 작게 불어버린다면...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천부장 이상의 지휘관들이 무슨 일인가 하면서 회막 앞으로 모이겠지요? 나팔은 결코 이상한 음을 내면 안 됩니다.) 예컨데, 대언의 말씀 선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건 내 소리도 아니고 너의 소리도 아니고 도대체 누구의 소리냐, 명확하게 해라 명확하게.’ 하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소리도 있고 내 소리도 있고, 그럴 수 있거든요? 즉, 뭔가 표시 안 나게 섞어 하나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제 3의 소리입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요. 유창하게 말하는 헛소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백성들은 나팔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나팔의 소리에 감각적으로 익숙해져야 합니다. 나팔소리를 분명하게 듣는 귀가 백성들마다에게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부르는 나팔소리를 듣고 . 듣는 순간에 그 의미를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은 나팔 2개를 동시에 (은은하게) 불고 있습니다. 온 회중을 여호와 앞으로 부르는 신호 아닙니까?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3절) 은 나팔 하나를 (은은하게) 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부르는 신호입니다.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4절)
누구나, 이 신호를 자다가도, 한참 일을 하는 중이라도, 분명히 분별하여 알아들어야 합니다. 나팔소리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내 상황과 상관없이 나팔소리를 분별하여 알아듣고 합당하게 준비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 지도자만 따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은 나팔 하나를 (은은하게) 붑니다.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을 부르는 신호입니다. 천부장이상의 지휘관들이 신속히 모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은 나팔 2개를 (응은하게) 붑니다. 온 회중을 여호와 앞으로 부르는 신호 아닙니까? 그때 천부장이상의 지휘관들은 어떻게 할까요? 나 부르는 것 아니요 하면서 자기 장막에 그냥 있어야 합니까? 아니면 참석을 해야 합니까? 당연히 참석을 해야 합니다. 온 회중이 모이는데 어떻게 천부장 이상 되는 지휘관들이 빠질 수가 있습니까? ...천부장이상의 리더들만 따로 부르는 신호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리더이기 때문에 따로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 회중과는 다르게 리더들만 따로 부르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리더들은, 직분자들은 한 번 더 모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한 번 더 모이지 않는 사람, 좀 더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리더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직분자가 아닙니다. 리더는 하나님 앞에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게 나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게 시간을 내는 사람이 리더라는 말씀입니다.
** 리더를 부를 때는 한 번만 불었습니다.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리더를 부를 때는 한번만 불었고, 그리고 크게 불지 않았습니다. 크게 부를 때는 행진할 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리더는 한 번 말해도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야 알아들으면 리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한 번만 불면 된다. 두 번 세 번 불 필요가 없다’ 는 말입니다. 그만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 나팔을 부는 것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항상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야...
* 제사장은 나팔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불어야 합니다.
* 백성들은 그 누구나 나팔의 소리를 분별해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 내 상황과 상관없이 나팔소리에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 지도자만 따로 부를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이 은혜가 되고,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나팔소리에 순종하시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일상 생활속에서 체험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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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의 구름 신호 주심 따라 (기상-회집-진군을 의미함인) 은 나팔을 분다는 것은, [이 땅에 보내심 받은 사명자로서] 아직 여전히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갈 길, 곧 주와 함께 하나 되어 걸어야 할 날마다의 새로운 정복 여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임..
....아침마다, 양각 나팔 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십자가 죽음-부활-승천-성령 내주하심 통해] Q이 이미 성취하여 이루어 놓으시고 우리로 누리게 하신 일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감사하고 이미 주신 모든 말씀 신뢰하여 붙들고 기뻐하며 누림이자 순종을 새로이 다짐함이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조차도 주께서 이미 이루신 바대로 주님과 함께 [결코 변함 없는, 전지전능하신 구원의 대장]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동반자로 살리라 함이다...
....그러므로, 이제 구체적인 주님의 분명한 움직이심, 곧 증거궤이자 언약궤이신 말씀하시는 Q의 움직임을 따라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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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등장하는 ‘나팔’]]....오늘!!, 말씀 앞에 선, 그대의 마땅한 나팔은?
학자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무려 200만명으로 추산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대이동을 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 옛날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까?
민수기를 보면 비밀이 풀린다. 바로 ‘나팔’이다.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팔 소리’는 최고의 신호 체계였다.
오늘은 나팔의 종류와 쓰임새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자.
==두 종류의 ‘나팔’
구약성경에는 두 종류의 나팔이 등장한다.
하나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길이가 대략 45~50cm 되는 은 나팔 ‘하초체(츠)라’이고, 다른 하나는 21~90cm의 다양한 크기의 양 뿔로 만든 양각 나팔 ‘쇼파르’이다.
‘은 나팔’(하초체라)은 주로 이동에 따른 신호를 주거나 전쟁에 나갈 때 불었다. 양각 나팔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소리의 빠른 전달이 가능했을 것이다.
‘양각 나팔’(쇼파르) 역시 신호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다양한 크기의 뿔 나팔은 크기나 모양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로 제사를 드리거나 절기 때 연주용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두 나팔의 용도를 엄격하게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 반영하듯 신약의 헬라어는 이 두 종류의 나팔을 한 단어, ‘살핀크스’로 번역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 재질과 소리를 고려했을 때, 은 나팔은 주로 전쟁과 절기 때에 소집과 해산 및 이동을 알리는 신호용으로 사용됐고, 양각 나팔은 제사와 연주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팔 소리’,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 주위를 일주일 동안 돌아 성을 차지하게 됐다는 ‘여리고 전투 이야기’를 자주 들어본 사람들은 이스라엘 벽성이 6일 동안은 아무 소리를 내지 않다가 7일째에 신호(나팔 소리)에 맞춰 큰 소리를 내며 성을 무너뜨린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 보면 두 가지 독특한 점들이 발견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팔 소리는 마지막 날뿐 아니라 매일 이스라엘 백성 중에 울리고 있었으며, (수 6:13~14). 또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전쟁에 사용된 나팔이 ‘은 나팔’이 아니라 ‘양각 나팔’(수 6:4)이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라면 전쟁 신호용인 ‘은 나팔’이 사용돼야 하는데, 가나안 첫 전투에는 ‘양각 나팔’이 사용된 것이다. 이는 어떤 이유에서 그리 하도록 하셨을까?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행진을 ‘전쟁’이 아니라 ‘예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리고 성을 목전에 두고 할례를 행하고, 온 백성이 [이미 이긴 자의 믿음으로!!] 유월절을 누리고 있었다!!))
가나안 땅은 전쟁이 아니라 약속으로 얻는 땅임을 알고, [임마누엘 Q과 함께 서 있기에!! 이미 얻은 것으로 여기고!! 말씀 붙들고(다바크!!)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얻을 수 있다. ]
일촉즉발의 전쟁터에서 드리는!! ((살아계신 Q, YHWH 사바오의 생생한 승리 증언을 가진 자들의, 이미 이겼음을 선포하는)) 예배의 행렬, 멋지지 않은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내 삶에 울려 퍼지다
혹자는 인생을 전쟁에 비유한다. 이는 삶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세속의 물결에 맞서야 하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불어야 하는 나팔은 무엇일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은 나팔’일까? 아니면 그 치열한 현장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예배하는 ‘양각 나팔’일까?
이것은 [성령 내주하심 = 여호와 사바오트의 임마누엘]의 생생한 경험 유무 따라 결정된다.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전쟁의 정체와 그 승패가 무엇에 달렸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치열한 상황일지라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며 예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닐까?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내 삶이 예배의 연주가 되는 ‘양각 나팔’을 불어 보자.
주님 보시기에는 [임마누엘 주님의 친히 움직임-행하심을 대변하는 곳이기에] 은 나팔이든지 양각 나팔이든지 나팔 불기에 적합한 자는 제사장이라고 보고 계심을 기억하라.....물론 사사들의 활동하던 시대에도 [대적과의 전쟁을 위해 나갈 때 Q의 친히 싸우심을 구하거나 공격 신호로서, 또한 승전의 기쁨 보고하는 예배에 있어서] 양각 나팔이 쓰였지만...
[요일5:4-8...*4.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5:14, 15, 18-21...*14.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18.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롬12:1, 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AMP] 1.Therefore I urge you, [b]brothers and sist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dedicating all of yourselves, set apart]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well-pleasing to God, which is your rational (logical, intelligent) act of worship. 2. 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any longer with its superficial values and customs], but be [c]transformed and progressively changed [as you mature spiritually]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focusing on godly values and ethical attitudes], so that you may prove [for yourselves]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in His plan and purpose for you].[Message]1-2 So here’s what I want you to do, God helping you: Take your everyday, ordinary life—your sleeping, eating, going-to-work, and walking-around life—and place it before God as an offering. Embracing what God does for you is the best thing you can do for him. Don’t become so well-adjusted to your culture that you fit into it without even thinking. Instead, fix your attention on God. You’ll be changed from the inside out. Readily recognize what he wants from you, and quickly respond to it. Unlike the culture around you, always dragging you down to its level of immaturity, God brings the best out of you, develops well-formed maturity i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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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각 나팔...쇼파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하던 때에 하나님은 숫양을 예비하셔서 이삭 대신에 번제하도록 하셨다. 우리성경의 ‘양각나팔’을 영어성경에서는 ‘트럼펫’(trumpet)으로 번역하였다.
양각나팔은 그 숫양의 뿔로서 히브리어로는 ‘쇼파르’(שׁפר)라고 하며 영어로는 ‘shofar’라고 한다. 희년을 의미하는 영어의 ‘jubilee’도 히브리어인 ‘요벨’(יבל)이라는 히브리어에서 나온 말인데 그 뜻은 ‘나팔’또는 ‘나팔소리’를 의미한다. 우리 성경에서는 그냥 ‘나팔’이라고 언급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양각나팔’ 또는 ‘은(銀)나팔’(민10:2)과 같이 분명하게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쇼파르’라는 히브리어는 구약성경에서 72번 언급되었고 신약에서는 헬라어 ‘살핑크스’(σάπιγξ)가 11번 나온다.
시편 150편 3절의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는 내용의 나팔이 히브리어로 ‘쇼파르’이다.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는 예배를 의미한다.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삼 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 도착하였다. 백성들은 그 곳에 장막을 쳤고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애굽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한 것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서 내게로 인도하였는지를 보지 않았는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으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될 것이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니 이 내용을 자손들에게 전하라.”(출19:4-6)고 분부하셨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놓고 이 사실을 알렸다.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모세에게 임재 하셨던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삼일 간의 성별된 생활을 명령하셨다. 여인을 멀리하고 옷을 빨고 산에 가까이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이 기간에 산에 가까이 접근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서 언급한 나팔이 양각나팔이다.)) 드디어 셋째 날이 되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19:16)고 하였다. 드디어 모세가 하나님을 맞이하려고 백성들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와서 산기슭에 섰다. 그 때에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셨다. 마치도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다. 신비한 광경이었다. 그 때에 나팔 소리가 점점 커졌고 모세와 하나님이 대화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성경에 ‘쇼파르’ 즉 양각나팔 소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하늘에서 들린 나팔소리 즉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 하늘에서 양각나팔 소리가 있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칠년씩 칠년이 지난 제 오십년 즉 희년(禧年)을 알리는 일곱째 달 열흘날을 속죄일로 정하고 뿔 나팔을 크게 불라고 하였다.
여기서 언급된 뿔 나팔이 바로 양각나팔이다. 민족적인 기쁨의 해 즉 희년을 선포하기 위하여 크게 불던 뿔 나팔 소리가 바로 양각나팔소리인 것이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 때 일곱 제사장들이 불었던 나팔이 양각나팔이었다. 굳게 닫힌 여리고 성문 밖에서 엿새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한 바퀴씩 성의 둘레를 돌았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해 주신 말씀이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 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고 자세하게 명령하셨다. 이때에도 양각 나팔을 부는 것은 제사장의 몫이었다. 큰 소리의 양각나팔소리와 함께 연합한 큰 함성 소리 가운데 여리고 성이 봄눈 녹듯이 무너져 내렸다. 엿새 동안 그렇게 하였고 일곱째 날에 일곱 바퀴를 돌며 일곱 제사장들은 일제히 나팔을 불었고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저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은금동철과 기생 라합과 그의 가족들 이외에는 사람과 짐승을 포함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다 진멸하였다. 세월은 지났고 가나안을 점령하고 지파를 따라 분배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갔다.
....사사시대 때의 일이다. 사사기 3장 27절에 보면, 사사 에훗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양각 나팔을 불며 백성들을 불러 모았고 모압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왼손잡이 에훗은 오른 쪽 허벅지에 한 규빗 되는 양날 선 칼을 차고 모압 왕 에글론을 만났다. 왕의 앞에서 나오던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을 다시 만날 기회를 얻었고 그 자리에서 모압 왕은 에훗의 칼에 최후를 맞고 말았다. 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도 양각 나팔을 불어서 백성들을 불러 모아 미디안의 군대와 싸웠다. 32,000명 중에서 겁쟁이를 되돌려 보내고 남은 자 300명은 기드온을 뒤 따라 한 손에는 양각 나팔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에는 횃불이 담긴 항아리를 들고 세 편대로 나누어 전쟁을 벌였다. 하나님을 통한 기드온의 전쟁 명령은 단순하였다.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만 하라.”(삿7:17) 기드온이 나팔을 불 때에 저들은 다 같이 나팔을 불었고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삿7:18)하고 소리쳤다. 전쟁의 결과는 큰 승리였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 하나님의 전쟁이었다.
....사무엘하 6장 15절에 보면 사울 임금 때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왕이 되 찾아 왔다. 그 날에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6:15)고 하였다.
....마태복음 24장 31절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큰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이하에 보면 부활 영생할 영혼들은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고 하였다. 순식간에... 홀연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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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집의 부르심과 행군 신호....은 나팔]]
좀 다른 내용이지만 민수기 10장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은(銀) 나팔 두 개를 만들도록 지시하셨다. 그 은(銀) 나팔을 사용해서 백성들을 소집하고 천부장들을 불러 모을 때에 사용하도록 명령하신 적이 있다. 두 은 나팔을 동시에 다 부는 것은 모든 백성들을 부르시는 소리이고 한 개의 은 나팔을 부는 경우는 천부장들을 부르시는 소리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 은 나팔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인 제사장들만이 불수 있도록 성별된 규정을 선포하셨다. 민수기 10장 9절에 보면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는 말씀으로 나팔소리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소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전쟁에 나갈 때에 은 나팔을 부는 것은 온 백성들이 긴급하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연상시킨다.
또한 민수기 10장 10절에 보면 희락의 날과 정한 절기와 월삭과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리는 때에 ((회집을 위해))은 나팔을 불라고 정해 놓으셨다.
희락(喜樂)의 날이란 부림절(에9:17-19)과 수전절(요10:22)과 성전 봉헌과 재건(대하5:12, 스3:10)과 전쟁에서 이긴 승전일 등을 말한다.
월삭이란 매월 첫 날을 말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래도록 저들의 달력으로 칠월 일일 만을 월삭으로 지켜 왔다.
당시에는 [[십자가에 달리실 구주를 대망하고 바라보면서]] 번제와 화목 제물을 드리며 은 나팔을 불었으나, [[이미 십자가 대속으로 승리하신 구주시기에!!]] 오늘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우리의 영원한 번제요 화목 제물이시요, 참되게 믿는 우리는 왕적 제사장이니, 주 임재가 있는, 살아 생동하는 믿음으로 주 이름 부르며 나아 오는 예배의 시간마다 양각 나팔을 부는 것이 성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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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나팔 trumpet....(2689, 하초츠라) ..((상호교통과 반응, 깨닫고 순종하는, 동행을 원하시는 하나님!!))..[명령 받은 그대로 순종함] Q과 함께 나아가도록 Q이 깨우시는 바, 또한, 성도는 [친히 함께 일하시기 원하시는] Q을 깨워 일하실 수 있게 해 드려야 함...
하초츠라(명여)는 '나팔 trumpet'을 의미한다. '좁다' be narrow라는 의미를 지닌 한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지며, 그 모양을 묘사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9회 나오며, 호 5:8을 제외하면 언제나 복수로 사용되었다.
나팔은 두드려서 편 은으로 만들었다(민 10:2).
요세푸스(Antiquities 3. 12. 6 [291])에 의하면, "길이가 1규빗에서 약간 모자라는 이것은 피리보다 약간 두꺼운 좁은 관이다..."이다.
헤롯 성전의 나팔들은 티투스(Titus)의 아치와 바르 코크바(Bar Cochba)가 주조한 은화 데나리온에 새겨져 있다.
초기 애굽의 모형들은 투탄크하몬(Tutankhamon)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쇼파르, 즉 휘어있는 수양의 뿔 나팔과 구별되어야 한다.
모세는 한 쌍의 나팔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민 10:2). ----하초츠라 은 나팔의 수는 7개(대상 15:24) 그리고 120개(대하 5:12)로 증가하였다.
요아스에 대관식 때, 나팔이 사용된 경우(왕하 11:14, 대하 23:13)를 제외하면 나팔은 제사장들에 의해 사용되었다(민 10:8, 대상 15:24, 대상 16:6, 대하 23:13, 참조: Sir. 50:16).
나팔은 여러가지 목적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나팔은 지파나 그들의 지도자들을 소집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진을 진행케 하는 신호로도 사용되었다(민 10:2-4).
히스기야의 의식 때, 번제물이 바쳐지는 동안, 나팔을 불었다(대하 29:27-28).
대개의 경우, 군사적인 목적에는 수양의 뿔(쇼파르)이 사용되기도 했었지만, 때로 제사장들은 전시에 여호와의 응답을 받아내기 위해 은 나팔을 사용하였다(민 10:9, 민 31:6, 대하 13:12, 대하 13:14).
호 5:8에서 선지자는 적이 가까이 왔음을 나타내주는 신호로써, 뿔과 나팔을 불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성전 봉헌식 때(대상 15:28), 재건 성전의 지대를 놓을 때(스 3:10, 스 3:11), 성벽 봉헌 때(느 12:35, 느 12:41) 불었으며, 예배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사용되었다(대상 16:6, 대상 16:42, 대하 29:26-28, 시 98:6).
희년, 절기, 월삭에는 번제물과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었다(민 10:10).
여호사밧의 개선 때 나팔을 불었다: "무리가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대하 20:28). (참조: E. YAMAUCHI; BDB).
===나팔 신호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3.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 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8.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10.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하기를 시작하다
@@시내산 도착 시점과 행군 시작 시점 :: 출애굽(유월절)에서 50일(오순절) 지난 시점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다(성령강림일)는 것을 감안할 때, 출애굽 당일인 1월15일에서 45일 째 되는 3월1일에 시내산 도착, 이어서 모세는 Q을 두 번 뵙고 난 후, 2일 동안 백성들의 몸을 성결하게 한 다음 3일 째에 Q을 뵙기 위해 모였고(49일), 모세만 Q께 보고하러 올라갔다가 내려온 다음, 바로 다음 날(50일 째...즉 오순절)에 다시 올라가서 십계명과 율법의 말씀을 받고 있다....둘째 해 오순절날, 가나안 향해 광야로 진군 출발하고 있음...시내산 출발 후 (바란 광야- 신광야- 애굽 시내- 팔레스타인 남방 경계인) 가데스바네아까지는 130일 걸렸음((출애굽후 가데스바네아까지는 18개월 소요되었음))
11.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12.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1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따라 행진하기를 시작하였는데
14. 선두로 유다 자손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들이 그들의 진영별로 행진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이끌었고
15. 잇사갈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이끌었고
16. 스불론 자손 지파의 군대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이끌었더라
17. ○이에 성막을 걷으매 [이다말의 감독하에 둔...아마도 첫 번째 은 나팔 담당자는 이다말이었을 듯]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출발하였으며
18. 다음으로 르우벤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들이 그들의 진영별로 출발하였으니 르우벤의 군대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이끌었고
19. 시므온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이끌었고
20. 갓 자손 지파의 군대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이끌었더라
21. ○[엘르아살의 감독하에 둔...엘르아살은 두 번째 은 나팔 당당자였을 듯]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행진하였고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으며
22. 다음으로 에브라임 자손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들이 그들의 진영별로 행진하였으니 에브라임 군대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이끌었고
23. 므낫세 자손 지파의 군대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이끌었고
24. 베냐민 자손 지파의 군대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이끌었더라
25. ○다음으로 단 자손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들이 그들의 진영별로 행진하였으니 이 군대는 모든 진영의 마지막 진영이었더라 단 군대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이끌었고
26. 아셀 자손 지파의 군대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이끌었고
27. 납달리 자손 지파의 군대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이끌었더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할 때에 이와 같이 그들의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
>>출18의 모세의 장인 이드로[=르우엘임] , 그의 아들, 곧 모세의 처남 이름은 호밥이었다(장인이란 단어는 원어가 "호틴, 또는 코탄"인데, 이 단어는 당시 처갓집 남자들, 즉 장인이나 처남에게 대해서도 구분없이 두루 쓰였음..))......출애굽 45일 만에.시내산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한 이드로는 (미디안에서 함께 살고 있던)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게르솜[타지의 객]과 엘리에셀[도움과 구원의 하나님]), (그리고 아마도) 처남 호밥을 데리고 시내산으로 찾아와 방문하였고(출18:2-3, 5), 모세의 경과 설명을 들은 후, 하나님께 자원하여 감사의 제사를 드렸으며, 모세의 [백성들의 판결] 일상 업무에 대해 살펴 본 후, (하나님 주신 지혜따라) [십부장-오십부장-백부장-천부장을 세워...출18:22]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조언해 주었고, 장인 이드로는 그의 아들 호밥을(민10:29-32, 삿4:11, 모세 곁에 (모세의 처자들과) 함께 머물러 두고, 홀로 먼저 자기 고향 미디안으로 돌아갔음(출18:27).....이제 그후로부터 1년이 지난 시점의, 2년 2월 20일 광야 행군 개시할 무렵 호밥은 (그동안 거의 1년여를 함께 머물렀음) "나와 함께 이 광야를 진행하자"는 요청에 호밥이"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하고 있는 것인데, 민10:31, 32에 나온대로 모세의 거듭 되는 간곡한 요청에[민 10:31, 32 ..*31.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32.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함께 동행하기로 마음먹었음을 시사하고 있다...이것을 여기 기록한 이유는 곧바로 행군 노정 3일 동안 내내 "언약궤가 앞서서 인도하여 군대의 쉴 곳을 친히 찾았다" 기록함에서 드러나듯 오직 주님만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겐 족속, 가인 족속 ...ynIyqe(7017, 케니)
케니는 카인(@yIq' , 7014)에서 유래했으며 '겐 족속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15회 나온다.
이 종족이 아담의 아들 가인으로부터 형성된 것은 아니다(가인의 후손들은 홍수로 멸망하였다). 아마 그들의 직업이 금속 세공업이었으므로 그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들의 기원은 불확실하다(KD, Pentateuch, I, p.218).
이 민족은 가나안 족속들 중의 주민들로서(창 15:19) 그리고 후에는 미디안 족속 중의 주민들로 등장한다(민 10:29). 그러나 혈통에 있어서는 그 두 족속 중 어느 족속의 후손도 아닌 것 같다(KD, loc. cit.).
가나안에 산 겐 족속은 발람이 저주한 이스라엘의 대적들 중에 들어 있다(민 24:21-22, 한글개역 "가인족").
모세와 십보라가 결혼하고 그 후 호밥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따라 나서게 되었을 때(민 10:29) 미디안의 겐 족속은 이스라엘과 연합하게 되었다(구약성경 중의 선택은 선택적이었으며 배타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또한 갈렙이 속한 유다족속(2:55)중에서 통혼하였고 가나안의 겐족은 그들의 남방 형제들과 동맹하였던 듯하다(참조: 삿 4장, 삼상 15:6, 기타 등등).
....**삿5:24..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남편 헤벨은 시스라와 교분이 있었다..((당시에는, 본래 여인의 장막 안에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외간남자는 함부로 그 누구도 들어 갈 수 없었고, 만약 발견될 경우에는 외간 남자가 들어가도록 허용한 여인까지도 죽이도록 헸다)) 그런데.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에서 패해 도주한 시스라가 갑자기 야엘의 장막 안으로 [피신해] 들어 온 사건이 발생한 것....이에, 야엘은 시스라를 잠들게 한 뒤, 침착하게 장막 말뚝과 망치를 써서 관자놀이를 꿰뚫어 죽였다.
겐족은 특히 레갑과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레갑은 하나님을 향한 열성을 지닌 사람으로 매우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예후는 그를 동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의 표본인 그와 일체가 되어(물론 그를 존경하고 있었고, 그를 이용하여 북이스라엘 왕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 땅에서 북왕국 이스라엘 아합(이세벨) 때에 최고조에 달했던 바알숭배를 일소하는 결과를 함께 도출해 내고 있었다(왕하 10:15-24).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그후 유목 생활과 종교 생활의 질서를 수립하였다. 이 질서는 그후 300여년이 지난 예레미야의 시대까지도 하나님을 향한 레갑의 열심을 지속시켰으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바에 대한 하나의 살아 있는 실례로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렘 35장). 물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열심에 관한 것이었으며 유목 생활 방식에 대한 그들의 집착을 실례로 든 것은 아니었다.(L. J. Coppes)
....예레미아 선지자는 레갑 족속의 (300여년전 조상인 여호나답의 유훈[=나실인의 서약]울 계속 신실하게 지켜 내려오고 있음을 [주의 말씀을 따라서] 시험해 보고 칭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때는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김 왕이 [선왕 요시아와는 달리]느부갓네살을 배반하여 바벨론의 침략을 불러 일으킬 무렵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동안 유다에 압박을 가해 속국화 했던 앗수르로부터의 실질적 독립을 꾀하기 위해 요시아 왕은 당시 앗수르를 크게 무찌르고 일패도지케 한 신흥 강국 바벨론에 대항하여 애굽의 느고왕이 아수르를 도울, 원조 목적으로 보낸 원정군을 므깃도에서 막아섬으로써 그곳에서 전사했다. (므깃도에서 요시아 왕이 전사한 지 4년 후인 여호야김 4년에, 앗수르는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에 대패하여 멸망케 되었다)---
.....하나님은 이 반역적인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후에도 계속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죄에서 돌아설 것을 종용하셨다. 그러면 그도 그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거두실 생각이시었다. 이 목적 때문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레갑 족속을 예로 든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별하여 다른 이스라엘 족속들과 같이 생활하지 아니하였다.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에서 자기들을 구별하기보다 엄격히 하였다.
그들은 본래 겐 족속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다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 (대상 2:55)고 하였다.
겐 족속들 중에 적어도 이스라엘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던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예였다(삿 1:6).
(삿 4:17...드보라와 바락의 때에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서 야엘은 시스라를 죽였었음).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Jael)]]...사사 드보라(베냐민 지파)가 활동하던 시대에 살았던 겐 사람 헤벨의 아내이다(삿 5:24).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와이스라엘이 전쟁할 때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베냐민 지파 1만명이 함께 모인) 이스라엘 군대의 대장 바락에게 쫓긴 시스라는 야엘의 천막으로 피신했다(삿4:15,17).이것은 야빈왕이 헤벨의 가족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삿4:17). 이때 지혜로운 야엘은 시스라를 잠들게 한 뒤 망치와 말뚝으로 그의 관자놀이를 쳐서 죽였다(삿4:17-22). ‘드보라의노래’(삿5:2-31)에는 그녀가 행한 일이 칭송되어 있다(삿5:6; 24-27).
***야엘의 장막: 베두인족과 같이 천막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나그네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다. 그래서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어떤 나그네도 천막 안 여인들의 거처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만일 들어갔다가 들키는 날에는 죽임을 당했고, 그를 들어오게 했던 여인도 함께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시스라가 바락을 피해 숨은 곳은 야엘의 장막이었다(삿4:17). 그녀는 시스라가 여인의 장막에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때 그녀가 나가라고 하면 위급한 시스라가 그녀를 죽일 것이고, 시스라를 장막에 두면 그녀에게는 큰 모욕이고 죽음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진퇴양난 속에서 야엘은 자구책으로 시스라를 잠재워 말뚝과 방망이로 죽였다(삿4:21). 그 당시 장막을 세우고 거두는 일은 여인들이 하는 일이어서 야엘은 장막 말뚝 사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겐 족속들이 아말렉 족속들을 떠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삼상 15:6...사무엘의 명령을 받고 사울 왕이 아말렉을 멸절할 때에 겐 사람들로 하여금 아말렉을 떠나도록 배려함)
***이들 겐 족속 중 한 집안의 명칭이 레갑이었는데 이는 그들 조상 중의 레갑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었다. 레갑의 아들이며 장남으로 요나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에 지혜와 강건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요나답(여호나답), 그는 [Q명령에 따라 예레미아 선지자가 레갑 족속을 불러다가 포도주를 권했을 때 그들이 거절함 통해, Q의 축복을 받았던 사건] 이 사건이 있기 300년 전인 이스라엘의 예후 왕 시대에 활동하였었다. 아합 왕 일가를 무너뜨리고 북 이스라엘 왕으로 새로 등극한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동하여 바알 숭배를 일소하려 하였을 때 그가 요나답(한글 개역에는 여호나답으로 되어있다.:역주)을 이용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왕하 10:15, 16). 이렇게 한 것은 요나답과 같이 명망있는 인물을 병거에 자기와 함께 동승시킴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회유하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갑(Rechab)족속--겐족속--미디안 족속]
"레갑"은 겐 족속에 속함..(대상 2:55), 겐 족속(Kenites)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그의 아들 호밥으로부터 이스라엘과의 동거가 시작됨)가 속했던 이방 족속(민 10:29). 겐 족속 혹은 미디안 족속이라고도 하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쉽게 동화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겼던 족속임(창 15:19;삿1:16;4:11;렘 35:2).
"그리고 야베스에 사는 서기관의 일족은 디랏 사람, 시므앗 사람, 수갓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모두 레갑 가문의 조상인 함맛에게서 나온 겐 씨족이었다"(역대상 2:55)
"유다 지파가 아랏 남쪽에 있는 네겝 광야의 새 땅으로 옮겨갈 때 겐 사람이었던 모세 장인의 후손들도 그들과 함께 종려나무 성인 여리고를 떠나 그 곳에 가서 살았다."(사사기 1:16)
레갑족속은 사치와 방종을 피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 엄격한 경건(敬虔)을 유지하려고 유목 생활을 택하였으며(삿 1:16, 4:11 참조). 그들은 유다 지파와 함께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거하였다(삿 1:16).
이같이 이스라엘의 순수 혈통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도 계보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에서(17, 18절), 우리는 이방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엿볼 수 있다.(사 9:1;42:1, 6).
한편 구약 성경에서 이방인으로서 언약 백성의 계열에든 대표적 인물들로서는 다말(창 38장:마 1:3), 라합(수 6:22, 23;히 11:31), 룻(룻4:13; 마 1:5) 등이 있다.
---레갑족속, 순종의 모델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을 경건의 모본으로 들어 타락한 유대인들을 경고하기도 했다(렘 35장 참조).
레갑 족속은 레갑(Rechab)의 아들 요나답이 세운 가훈을 철저하게 지킨 족속으로 유명하다.
즉, 그들은 선조 요나답의 교훈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집도 짓지 않으며 파종도 하지 않으며 포도도 재배하지 않고 평생 동안 장막에 거한 족속이었다(렘 35:6-19).
그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Q말씀과 조상의 유훈 전심으로 따름이라는 관점에서, 예레미야서에서 레갑 족속에 관한 이야기를 등장시키는 것은 당시 유다 백성의 영적 상태와 비교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레갑 족속 사람들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는 열심과 일편단심, 또 그들의 조상인 요나답이 명령한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준수했다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으며, 또 레갑인들의 삶을 상징적 의미로 거론한 목적은 순종과 배도를 분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함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전통적인 신조에 변함없이 충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다 사람들에게 본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율법과 계명을 그들이 불순종하고, 또 종잡을 수 없이 왔다 갔다하는 이들의 태도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잘못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레갑인들의 생활 지침이 그들을 정죄하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레갑인들은 인간, 선조에게서 명령받은 신조를 종교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준수하여 왔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도 지키지 않았다.
예레미야는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도 수없이 순종과 회개를 외쳤었다(7:23-28; 11:1-17; 25:3-8; 26:2-6; 29:17-29 등).
레갑족속을 통해 이스라엘의 배도와 반역이 더욱 더 돋보이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 임할 형벌과 재앙이 선포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선지자들의 거듭되는 호소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듣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고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처벌이 주어질 것이다.
레갑인들을 불러 행위 예언의 일부로 나타내고 있는 이 사건은 B.C. 602년경에 일어났던 것인데, 이미 이때부터 이스라엘에서는 회개의 기운이나 증표가 전무한 상태였었다.
---레갑족속이 받은 축복
*렘 35:19/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앞에 설 사람"- 이는 흔히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맡아서 여호와를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사용되던 표현이다(7:10; 15:19; 신 4:10; 10:8). 레갑 족속 사람들에게 어떠한 직분이 맡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후대의 전승에 의하면 그들이 [나무 공급자, 물 긷는자로서] 성전 봉사 직분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즉, 유대인들의 성격 주석의 일종에 해당하는 미쉬나에는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들'이 매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성전 제단에 사용되는 나무를 가져왔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물과 관련된 분야에서 요나답의 후손들이 봉사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는 B.C. 586년의 예루살렘 멸망 이후 레갑 족속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느헤미야 당시로 넘어가면, 다시 언급되고 있는데, 즉 레갑의 아들 말기야란 사람이 분문을 수리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느 3:14).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는 똥문을 건축하여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설치하였다."(느헤미야 3:14)
그는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가 더 이상 이전의 레갑 족속 사람들의 유랑민 생활 방식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통적인 생활을 버렸다고 해서 여호와의 율법을 존중하고 거기에 철저한 순종을 해야 한다는 고귀한 원칙을 포기한 것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스라엘에 대한 재앙 선포와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레갑 족속들의 후손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이 주어진다.
...@@##갈렙은 성경 속 그나스 사람이다.
갈렙[칼레브(히브리어)] 은 ‘개’, ‘공격자’, ‘종’, ‘노예’, ‘수탉의 울음 소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한 갈렙의 이름의 다른 뜻은 (합성어로) 칼 (Col) (כל, 카프 + 라메드) 는"전부"(all) 이란 뜻이있고, 렙 (Lev) (לב, 라메드 + 베트)는 "마음" (heart)이라는 뜻이있다. 합하면 "전부 마음을 드리다", "충성된 자" 라고 번역할 수 있다. ....전심전력-충성스런 노예/종-(충직한)사냥개/수탉 ...에돔 족속의 그나스 사람, (출애굽 있기 적어도 수십여년 전에 애굽에서 함께 살아 오던) 유다지파에 합류되었다고 봄..
그가 모세와 여호수아 옆에서 충성되게 섬겼기 때문이다. 유다 지파에서 선출되었으며, 민 32:12과 수 14:6에서는 그나스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그나스 족속 중 일부 사람들이 유다지파에 합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갈렙은 순수 히브리 혈통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갈렙은 ((리더 자격이 있다고 유다 지파사람들의 인정-추천을 받았음))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 갔던 12정탐꾼 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가나안 정복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민 14:24, 신 1:36)
훗날 유다지파를 이끌고 가나안 땅 정복에 큰 공을 세웠으며 헤브론 땅을 차지했다.(수 14장, 15장) 그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나이는 85세였다.(수 14:7,10)
갈렙의 아버지는 ‘여분네’인데 이는 ‘향하다’란 뜻이 있는 ‘파나(히브리어)’에서 유래하여 ‘향하여 난 길’이란 의미를 지닌다. (민 13:6)
29.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30.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31.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32.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주님은 (주님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한) 모세의 말을 (선의로) 끝까지 존중하고 계셨다!!..
>>[특별한 인도자 Q 여호와의 언약궤] - '법궤'(레 16:2), '증거궤'(출 30:6), '여호와의 궤'(수 4:11), '하나님의 궤'(삼상 3:3),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언약궤는 출 25:10-22에 그 규모는 장광고가 2.5-1.5-1.5규빗이었고 위의 금테 가장자리 네군데에 금고리를 달아서 채를 꿰게 하였음. 이 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다(히 9:4; 왕상 8:9). 한편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규정상으로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4:4-15),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운반하기도 했다(신 31:9; 왕상 8:3, 6).
....여기서 Q은 구름과 나팔을 통한 일반적 방식(민9:15-10:10)과 언약궤를 통한 특별 방식을(민10:33-36) 사용하여 백성을 인도하신다...언약궤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사 지금은 부활 안에 계신, 동시에 거듭난 믿는 이의 영에 오사 내주하시는 임마누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진실로 지금 오늘날까지도, Q 백성의 인도자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오직 [과정을 거치시고 부활-승천하신, 그래서 제한 받지 않는 성령으로 오사 거듭난 믿는 이의 영에 내주하시는]그리스도(마23:10)이시다. 언약궤의 인도는 그리스도의 인도가 신실하며, 그 인도는 언약에 따른 것임을 증거한다. Q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좋은 땅 안으로 이끄시겠다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창16:1-68, 출23). 결국 Q의 언약은 궤 안에 넣어졌고, 그 결과 그 궤는 언약궤라고 불렸다. 그러므로 우리를 인도하는 그리스도는, [Q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언약의 그리스도이시다.(고후1:19-20).....한편 35절의"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과 36절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를 각각 그리스도의 부활-승천에(엡4:8-10, 시68:1), 그리고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두 번째 오심까지 Q의 경륜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고 있다.
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34.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떠 올랐고, 그들의 보호 위해 떠 오른 채)그 (행군자들) 위에 덮였었더라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33절).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흘길을 여행했음을 본다. 길은 포장되지 않았고, 소들은 느렸으므로 수레로 하는 여행은 힘들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궤(그리스도)는 그들을 앞서서 가며 쉴 곳을 찾았다. 언약궤는 성막의 모든 다른 내용물들과 함께 제단, 떡상, 등대, 분향단을 포함하여 고핫인의 책임이었고, 그들의 어깨에 메어야 했다. 고핫인들은 르우벤 진 다음에 출발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언약궤는 앞으로 나와 앞장을 섰다.
....안내와 인도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안내(guidance)란 말은 구름과 나팔을 부는 것에 관련하여 사용되며, 언약궤에 대해서는 인도(leading)란 말을 사용하였다. 안내는 일반적이며 인도는 특별하다. 구름과 나팔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언약궤는 백성들에게 일반적인 안내가 아닌 특별한 인도를 했다. 따라서 법궤가 인도자가 되었으며 앞장서서 쉴 곳을 찾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여행했던 사십 년 동안 이백 만명이 쉴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울퉁불퉁하고 포장되지 않는 길 위에서의 긴 여정이다. 우리가 이 울퉁불퉁한 길에서 여행하고 있을 때 휴식하기란 쉽지 않다. 선주자이신 주 예수께서는 길을 여셨지만(히 6:20), 길을 포장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울퉁불퉁한 길을 통과하셨으며 이제 우리는 이 길 위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우리는 쉴 곳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는 아무도 심지어 연장자나 경험많은 사람들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 이것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신뢰를 사람에게 두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언약궤이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인도자이시므로 우리를 쉴 수 있는 합당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일반적으로 안내하실 뿐만 아니라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민수기 10장에서 참된 인도자는 모세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모세조차도 적절하지 못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인도하였는데 이는 마치 작은 보우트가 큰 배를 좁은 해협을 통해 항구로 인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언약궤가 살아 있는 언약궤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따라다녔던 그 반석 역시 살아 있는 것이었다(출 17:6, 고전 10:4).
광야에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반석으로서 그들을 따르셨다.
언약궤이신 그분은 그들의 인도자였으며, 앞장서서 그들을 위해 쉴 곳을 찾으셨으며, 그들을 인도하여 그들의 여정 중 어려운 부분을 통과하게 하였다.
이스라엘 자녀들은 사람(모세의 장인)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궤(그리스도)에 의해 인도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도 직분이 유일하게 참된 신뢰이심을 가리킨다.
이러한 인도 직분은 감정이나 애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언약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그들을 좋은 땅으로 인도하시리라는 언약을 하셨다(창 12장). 결국 하나님의 언약은 법궤에 두어졌으며, 따라서 그 법궤는 언약궤라 불리웠다(민 10:33).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언약의 그리스도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의 그리스도이시므로 우리를 쉴 곳으로 인도하셔야만 한다.
....한편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규정상으로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4:4-15),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어깨에 매어 운반하기도 했다(신 31:9; 수3:3, 왕상 8: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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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LORD spoke further to Moses, saying,
2. "Make yourself two trumpets of silver, of hammered work you shall make them; and you shall use them for summoning the congregation and for having the camps set out.
3. "And when both are blown, all the congregation shall gather themselves to you at the doorway of the tent of meeting.
4. "Yet if [only] one is blown, then the leaders, the heads of the divisions of Israel, shall assemble before you.
5. "But when you blow an alarm, the camps that are pitched on the east side shall set out.
6. "And when you blow an alarm the second time, the camps that are pitched on the south side shall set out; an alarm is to be blown for them to set out.
7. "When convening the assembly, however, you shall blow without sounding an alarm.
8. "The priestly sons of Aaron, moreover, shall blow the trumpets; and this shall be for you a perpetual statute throughout your generations.
9. "And when you go to war in your land against the adversary who attacks you, then you shall sound an alarm with the trumpets, that you may be remembered before the LORD your God, and be saved from your enemies.
10. "Also in the day of your gladness and in your appointed feasts, and on the first [days] of your months, you shall blow the trumpets over your burnt offerings, and over the sacrifices of your peace offerings; and they shall be as a reminder of you before your God. I am the LORD your God."
11. Now it came about in the second year, in the second month, on the twentieth of the month, that the cloud was lifted from over 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
12. and the sons of Israel set out on their journeys from the wilderness of Sinai. Then the cloud settled down in the wilderness of Paran.
13. So they moved out for the first time according to the commandment of the LORD through Moses.
14. And the standard of the camp of the sons of Judah, according to their armies, set out first, with Nahshon the son of Amminadab, over its army,
15. and Nethanel the son of Zuar,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Issachar;
16. and Eliab the son of Helon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Zebulun.
17. Then the tabernacle was taken down; and the sons of Gershon and the sons of Merari, who were carrying the tabernacle, set out.
18. Next the standard of the camp of Reuben, according to their armies, set out with Elizur the son of Shedeur, over its army,
19. and Shelumiel the son of Zurishaddai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Simeon,
20. and Eliasaph the son of Deuel was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Gad.
21. Then the Kohathites set out, carrying the holy [objects;] and the tabernacle was set up before their arrival.
22. Next the standard of the camp of the sons of Ephraim, according to their armies, was set out, with Elishama the son of Ammihud over its army,
23. and Gamaliel the son of Pedahzur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Manasseh;
24. and Abidan the son of Gideoni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Benjamin.
25. Then the standard of the camp of the sons of Dan, according to their armies, [which formed] the rear guard for all the camps, set out, with Ahiezer the son of Ammishaddai over its army,
26. and Pagiel the son of Ochran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Asher;
27. and Ahira the son of Enan over the tribal army of the sons of Naphtali.
28. This was the order of march of the sons of Israel by their armies as they set out.
29. Then Moses said to Hobab the son of Reuel the Midianite, Moses' father-in-law, "We are setting out to the place of which the LORD said, 'I will give it to you'; come with us and we will do you good, for the LORD has promised good concerning Israel."
30. But he said to him, "I will not come, but rather will go to my [own] land and relatives."
31. Then he said, "Please do not leave us, inasmuch as you know where we should camp in the wilderness, and you will be as eyes for us.
32. "So it will be, if you go with us, it will come about that whatever good the LORD does for us, we will do for you."
33. Thus they set out from the mount of the LORD three days' journey, with the ark of the covenant of the LORD journeying in front of them for the three days, to seek out a resting place for them.
34. And the cloud of the LORD was over them by day, when they set out from the camp.
35. Then it came about when the ark set out that Moses said, " Rise up, O LORD!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ose who hate Thee flee before Thee."
36. And when it came to rest, he said, "Return Thou, O LORD, [To] the myriad thousands of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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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0장 (개요)
본 장은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요약해 볼 수 있다.
1. 은 나팔을 만들어 사용하라는 명령. 아마 이것은 시내 산에서 준 계명 중의 마지막인 것 같다. 또 가장 작은 계명인 것 같다. 그러나 결코 의미 없는 명령은 아니다(1-10).
2. 시내 산을 떠나 이스라엘 진이 이동하는 이야기와 바란 광야까지의 질서 있는 행군 이야기(11-28).
3. 모세가 처남 호밥에 대해 보인 처신(29-32).
4. 법궤가 움직이고 설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33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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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의 용도(민 10:1-10)
필요할 때마다 나팔 소리로서 공지 사항을 알리라는 지시가 나와 있다.
이런 일은 모세가 꼭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해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모세 혼자서 생각해도 나팔이 필요한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든 구성은 신령한 것으로 되어야 했다. 따라서 하찮게 보이는 이런 일도 마찬가지였다. 모세는 이런 지시를 받았다.
Ⅰ. 나팔을 만들라. 그 나팔은 은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주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쳐서 만들었다. 그래야 그 모양이나 소리가 소기의 목적에 적합해질 것이다.
두 개만 만들라고 했다. 그 때에는 그 나팔을 사용할 제사장들이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몬 시절에는 120명의 “나팔 부는 제사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대하 5:12).
이 나팔을 만든 목적은 오늘날과 거의 흡사하다.
Ⅱ. 나팔을 사용할 자. 어떤 비천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제사장들 자신이다. 곧 “아론의 자손”이라고 했다(8절).
비록 그들이 위대한 자라 해도, 하나님의 집에서 나팔수가 된다는 것이 자기들의 지위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의 사역자들은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백성들의 죄를 일깨워야 하며(사 58:1),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한다는 사실(사 27:13)을 시사해 준다.
Ⅲ. 어떤 때에 부는가?
1. “회중을 소집”할 때다(2절).
이와 마찬가지로 시온에서 금식을 위해 엄숙한 성회로 모일 때에 나팔을 불라는 명령이 있다(욜 2:15). 집회의 시기와 시간을 누구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제 의식의 혜택은 누구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자는 오라”(계 22:17). 지혜가 광장 큰 거리에서 소리를 친다. 그러나 그 나팔은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전 14:8).
각 지파의 두령이나 장로들만 소집할 경우에는 나팔 하나만 분다고 했다. 온 회중을 한꺼번에 모을 경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령이나 장로들이 모든 선행에 있어서 모범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그 백성 전체를 함께 소집할 때에는, 나팔을 둘 다 불어서 더 먼 거리에 있는 자들도 듣게 했다.
이런 사실에 연유하여, 그들은 “즐거운 소리를 아는” 복을 받았다는 말을 듣는다(시 89:15). 즉 그들은 공적 규례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도록 초청과 부름을 받는 것이다(시 122:1).
그리고 그 큰 날(심판 날)에 모일 총회는 “큰 나팔 소리”에 의해서 소집될 것이다(마 24:31).
2. “진을 진행케” 하기 위해서 분다.
나팔 소리에 따라서 각 편대가 움직여야 한다. 사람의 음성으로는 명령을 능히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잘 훈련받은 오늘날의 군대는 북소리를 듣고 행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행진을 위해 나팔을 불 때에는 “울려 불어야” 한다(5절). 즉 급히, 떨리는 소리로 간격을 두고 분다.
이것은 그들의 행군에 용기를 돋우어서 능히 대적을 맞게 하기에 적합하다.
반면에 계속해서 같은 높이의 소리가 나면 총회 소집의 신호가 된다(7절).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취소해 달라는 애원을 위해서 총회가 소집되었을 때도 울려 분 적이 있다(욜 2:1).
처음 울려 불면 유다 편대가, 두 번째에는 르우벤 편대가, 세 번째는 에브라임, 네 번째는 단의 편대가 행동하게 된다(5, 6절).
혹자는 여기에 저들의 행군을 거룩히 구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한다. 즉 그들의 행진이 제사장들의 신호에 따라 진행되었고, 제사장들은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그들을 가게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모든 동작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했던 것이다. 귀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저희와 함께 계심”을 들을지어다.
아비야 왕은 자기 자신과 자기 군대에게 이 사실을 매우 중대시하게 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경고의 나팔을 부느니라”(대하 13:12).
3. 전시에는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불었다(9절).
“너희가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불지니라. 이것은 대적에 대한 너희들의 결의를 하늘에 호소하는 것이요, 승리의 기원이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이것이 당신 자신의 제도임을 인정하실 것이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리라.”
하나님은 나팔 소리를 하감하시고 그들의 전쟁에 개입하실 것이다. 또한 온 백성이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 데 용감해지리라.
다윗도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삼하 5:24).
그러나 풍랑 만난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깨울 필요가 없었듯이(마 8:25), 저들도 나팔 소리로 하나님을 깨울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당신의 자비를 보이려 하신 것이다.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선한 군병들이 죄와 세상과 사탄을 대적하여 잘 싸울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주”이시며(히 2:10), “사탄을 그들의 발 아래 굴복시키실” 것임을 확신시켜야 한다(롬 16:20).
4. 저들의 거룩한 절기를 알릴 때 불었다(10절).
그들에게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라는 절기도 있었다(레 23:23 이하). 또 이렇게 함으로써 저들의 모든 절기의 제전(시 81:3)과 제물들을(대하 29:27) 아름답게 꾸몄던 것 같다.
이것은 저들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준행한다는 것을 뜻하며,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거룩한 승리의 예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더욱 분발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식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의식을 지킬 때 하나님은 그 의식을 즐거워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한 일은 거룩한 기쁨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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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이동(민 10:11-28)
Ⅰ. 이스라엘 진이 시내 산을 출발했다.
근 1년간 그 산기슭에 있었고, 그러는 동안 많은 기념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이 이동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전에 다소간 알려 주셨던 것 같다(신 1:6, 7). “너희가 이 산에 거한 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라.”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시내 산은 종을 낳았다”고 말했다(갈 4:24). 이것은 거기서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율법은 실로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끌어 가는 몽학선생이니,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기쁨과 자유에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행복은 율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서 오기 때문이다.
1. 신호가 왔다(11절). “구름이 떠올랐다.”
아마 그들이 행진 준비를 하는 동안은 잠시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천막을 접고 소유물을 정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각 가정은 자기들 것만 정리하면 되었고, 모든 사람이 동시에 그리고 재빨리 했을 것이다.
2. 행군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을 좇아 진행했다.”
곧 구름이 인도하는 대로 갔다(13절). 혹자는 그들의 모든 여정을 인도하고 지키셨음을 보여 주는 이 말이 위의 본문에나 앞 장에서나 매우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을 주시한다.
즉 이것은 먼 후일 그들이 광야에서 길을 잃고 갈 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기간을 광야에 있었다는 중상과 비방을 일축해 버리는 것이다.
사실상 문제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매 단계, 매 발자국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도를 받았다. 그들 자신은 몰랐어도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길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 자기를 맡긴 자들은 아무리 난처한 지경에서라도 여전히 갈 길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과 그의 안내가 결코 자기들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길을 잃을까 하는 염려는 필요 없다.
3. 3일간 행진한 후에 그들은 다시 정지했다. 그들은 “시내 광야에서” 떠나 “바란 광야에서” 쉬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모든 이동은 광야에서 또 다른 광야로의 이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더 나은 변화를 기대하지만 막상 그 결과는 그렇지 않은 수가 많다.
언제 어디로 가든, 우리가 각오할 것은 인간의 약한 본성에서 오는 공통적인 비극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 가서 모두가 편히 쉬기까지는, 도무지 평안과 쉼이 없을 것이다.
Ⅱ. 저희가 최근에 주어진 모형에 따라 행군했다.
1. 유다 편대<유다-잇사갈-스불론>가 먼저 행진했다(14-16절).
유다 지파와 함께 유숙하던 선발대의 깃발이 이제는 지휘권의 표시가 되었다.
다윗 시대에도 지휘의 권한은 유다 지파에게 맡겨졌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주께 위임되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고 예언된 그대로다(창 49:10).
2. 그러고는 레위 지파의 두 집안<게르손-므라리>이 따랐다.
<게르손>그들은 회막 운반을 맡았다. 구름이 떠오르자마자, 회막을 걷어서 이동할 채비를 갖추었던 것이다(17절).
여기에 회막을 나누어 실은 수레 여섯 개가 따랐다.<므라리>
이 모든 행진 중에 회막은 종종 이동했다. 이것은 구약 율법 중 의식법의 유동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종종 바뀌던 의식법은 마침내 사라졌다(히 8:13).
3. 다음으로는 르우벤의 편대<르우벤-시므온-갓>가 행진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을 좇아” 된 일이다(18-20절).
4. 그 후에는 회막의 기구를 맡은 고핫 집안이 뒤따랐다.
그들은 가장 안정하고 또 영예로운 위치인 “진의 중앙”에서 행진했다(21절). 그리고 그들(즉 난외에 있는 바대로 게르손과 므라리 집안)은 “그들(고핫 족)이 이르기 전에 회막을 세웠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레위 집안들뿐만 아니라 제1편대에 있던 이스라엘인들도 회막을 세우는 일에 협조했을 것이므로 이렇게 일반적인 말로 표현된 것 같다.
아마 자기들의 천막을 치기 전에 먼저 성막을 쳤을 것이다.
5. 에브라임 편대<에브라임-므낫세-베냐민>는 법궤를 뒤따라 갔다(22-24절).
시편 기자의 기도는 이것을 두고 한 말이라고도 본다.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이 세 지파가 한 편대를 이루었다―“주의 용력을 내사”(법궤를 용기라고 칭했다. 시 78:61)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시 80:2).
6. 단 편대<단-아셀-납달리>가 제일 뒤에 갔다(25, 27절).
이들은 “모든 진의 후진”이라 했다. 뒤에 남은 자들은 모두 여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나 어린아이들(아마 이들은 각 집안의 우두머리가 돌보았을 것이다)이 아니라 모든 부정한 자, 섞여 사는 무리들, 그리고 연약한 모든 자들은 <단 편대의> 뒤에서 행진해 갔다.
요셉을 양떼처럼 인도하시는 분은 제일 뒤에 있는 자들까지도 살피신다(겔 34:16).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출 수 없는 자들도 보살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신 자들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을” 것이다(요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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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밥에 대한 모세의 요청(민 10:29-36)
Ⅰ. 모세와 호밥 사이에 오고 간 대화.
이스라엘의 진은 가나안을 향하여 여기까지 온 것이다.
혹자는 호밥이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 자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출애굽기 18장의 이야기는 여기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밥은 이드로 또는 르우엘이나 라구엘(출 2:18)이라고도 하는 이의 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
나이가 많은 그의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갈 때(출 18:27), 그 아들 호밥을 모세에게 남겨 두었다. 바실래가 김함을 다윗에게 남겨 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장인이란 단어는 처남이란 단어와 원어로는 같다. 그래서 이 호밥은 이스라엘이 그의 고향 부근 시내 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계속 같이 유숙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이동하고 있으므로, 호밥은 자기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1. 모세는 자기들과 같이 가나안에 가자고 친절하게 초대했다(29절).
모세는 그에게 약속하기를, 자기들이 필경 그를 선대할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을 주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오라, 우리 중에 함께 거하자. 우리가 잘 지내게 되듯 너도 잘 지내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잘 지내게 해 주시마고 약속하셨느니라”는 것이다.
하늘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자들은 자기의 모든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해야 한다. 남이 함께 간다고 하여 결코 우리의 보물이나 기쁨이 감소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는 이 말보다 더 힘있게 하나님의 백성을 우리 백성으로 삼게 하는 주장이 있겠는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와 교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요일 1:3). 또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와 같이 가는 것이 좋다(슥 8:23).
2. 호밥의 현재의 생각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었다(30절).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잘 볼 수 있는 자들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표적을 아는 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많은 사람에게 동행을 청해야 한다.
그러나 호밥이 거부하는 것은 자기의 본토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의 축복의 진가를 믿게 되면, 그것은 생각보다는 크게 작용하지 않게 된다.
그는 사실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미디안 사람은 그두라의 후손이므로 아브라함의 혈통에 관계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신앙을 상속받지는 못한 자들이다(히 11:8). 그렇지 않고서는 호밥이 모세에게 이런 답변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보이는 세계의 사물들은 보이지 않는 저 세계의 일을 추구하는 것을 크게 방해한다. 이 세상의 거대한 장점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하늘나라의 매력을 능가한다.
3. 모세는 지극히 간절히 청하여 그의 의사를 바꾸었다(31, 32절). 모세의 주장은 이렇다.
(1) 호밥이 자기들에게 쓸모 있는 자라는 것.
“우리가 광야에서 진 쳐야 하리니”(그 땅은 호밥이 잘 알고 있는 곳이다), “당신은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가 진 칠 곳을 안내하거나 행진할 곳을 말하라는 뜻은 아니옵니다”(이것은 구름이 했다).
“단지 우리가 지나가거나 진 칠 곳의 편익과 불편을 미리 말해 주소서. 우리가 편리한 점은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불편한 점을 위해서는 최대한의 방비를 하리이다.”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뢰와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하자.
기적으로 인도함 받는 자들이라도 일상적인 지도 방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혹자는 모세가 이것을 제의한 것은 그의 정보에서 많은 유익을 얻으려 해서가 아니라 그가 다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여 기뻐할 수 있도록 하며 고무해 준 것이라고 본다.
칼빈은 이와는 매우 다른 견해를 피력했는데, 그것이 원의에 (보다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나로서는 별로 중대한 뜻을 찾지 않겠다.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함께 가서 약속의 땅에 참여하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또 우리는 고생에 동참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가나안에 가지 않더라도 많은 좋은 일을 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분명히 이것 때문에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기 시작하였으니, 계속 함께 하소서.”
시작을 잘한 사람들은 끝까지 일관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한 고생의 보람을 잃지 않는 법이다.
(2) 자기들이 그에게 친절을 베풀겠다고 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32절).
다음 사실들을 명심해 두자.
① 우리는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것만 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힘 주신 것 이상으로 자선을 베풀 수는 없다.
우리가 감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게 하여 선행을 베풀었다는 것이 그 전부다.
② 고생과 수고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동참한 자들은 그들의 위로와 영예에도 동참하게 된다.
광야에서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려 한 자는 가나안에서 그들과 같이 운명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딤후 2:12; 눅 22:28, 29).
호밥이 어떤 대답을 모세에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침묵이 동의를 뜻하고, 결국 그들을 떠나지 않았기를 희망한다.
그는 자기가 유용한 일을 하리라는 것을 깨닫고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만족케 하기보다는 모세의 뜻을 따랐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우리에게 좋은 모범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가족이 그것 때문에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삿 1:16; 삼상 15:6).
Ⅱ. 이 행진을 하는 동안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나눈 교제.
그들은 “여호와의 산”을 떠났다(33절). 곧 그들이 그 분의 영광을 보았고, 그 분의 음성을 들었고, 그 분과 언약을 맺었던 바로 그 시내 산이다(그들은 그 곳에서 축복으로 받아 왔던 그러한 현상을 줄곧 받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그 자랑스러운 산을 떠났다.
성경에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고는, 다시는 그 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 시내 산을 작별했다.
하나님께서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고 말씀하신(시 132:14) 산은 시온 산이다. 우리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산”을 떠날 때에 “여호와의 언약의 궤”를 가지고 갔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계속 친교를 나누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길을 지도하셨다”(잠 3:6).
언약의 궤가 그들 앞서서 갔다. 어떤 자들은 이동의 장소를, 또 어떤 자는 단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궤는 이스라엘 진의 한가운데서 움직이고 있었으나, 여전히 그 위를 덮고 있던 구름이 그들의 모든 동작을 지시했던 것이다.
궤(곧 궤의 하나님)는 그들을 위해서 “쉴 곳을 찾았다”고 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나 지식은 탐색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현명한 자가 그들 앞서 가면서 갈 곳과 진 칠 곳을 찾듯이, 그들이 인도된 모든 곳은 그들에게 그렇게 안락한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찾아 두었던” 땅이라고 일컬어졌다(겔 20:6).
2. 그것을 통해 그들은 “범사에 그를 인정”했다(잠 3:6).
법궤를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으로 삼았다. 궤가 움직이거나 쉬거나, 그들은 줄곧 하나님을 앙모하고 있었다.
회중의 입을 대신한 모세는 법궤가 움직이거나 서거나 간에 기도를 드렸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들어오나 나가나 기도로써 스스로를 성별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일이다.
(1) 법궤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드린 기도가 여기에 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을 흩으소서”(35절).
당시 그들은 황량한 곳에 있었으나, 적국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길 안내와 광야에서 식량 조달뿐만 아니라 전쟁의 성패를 하나님께 맡기고 있었다.
다윗도 오랜 후에 이 기도문을 이용했다(시 68:1). 그도 역시 여호와의 전쟁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① 세상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원수들도 있다.
공공연한 적도 있고 은폐된 적도 있다. 그의 진리와 법과 규례와 백성을 해치는 원수들이다.
② 하나님의 적을 흩뜨리고 무찌르는 것은 주의 모든 백성이 간절히 바라고 믿고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었다. 하나님을 계속 대적하는 자들은 자기의 멸망을 재촉할 뿐이다.
③ 하나님의 적을 흩뜨리고 무찌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일어서지 않고는 안 된다.
“하나님이 판단하러 일어나시면” 순식간에 그 일은 끝난다(시 76:8, 9). “주여, 태양이 일어나 밤의 그림자들을 흩어 버리듯이 일어나소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일어나사 그의 적을 흩으셨다(시 68:18).
(2) 법궤가 쉴 때도 기도했다(36절).
① 하나님의 백성을 쉬게 해 주시기를 구했다. 어떤 이들은 본문을 이렇게 읽는다.
“오,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천만 인을 돌이키소서. 이 곤경이 지난 뒤에는 그들을 돌이키사 다시 안식하게 하소서.”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여호와의 신이 그들로 편히 쉬게 하셨도다”(사 63:14).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와 성공을 더하시사, 평화의 아침에 느끼는 평온을 누리게 해 달라고 했다.
②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안식하시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읽는다. “이스라엘 천만 인에게로 돌아오소서.”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하자.
첫째, 하나님의 교회는 큰 집합체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는 수천만 인이 속해 있다.
둘째, 우리는 기도 중에서 이 집합체와 우리를 관련시켜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복리와 행복은 하나님께서 계속 함께 계셔 주는 데에만 있다.
그들의 안전은 그들의 수효가 수천만이라 해도 그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또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 그들과 함께 계시는 그의 임재에서 기인된다.
이 천만 인이란 하나의 암호며, 그 분이 표상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할 수 있다(신 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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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은나팔
[1-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제2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소리를 울려 불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는 은나팔을 두 개 만들게 하셨다. ‘나팔’이라는 원어(카초체라 )는 ‘클라리언’(clarion, 나팔)을 가리킨다.
클라이언은 길고 곧고 가느다랗고 끝이 나팔꽃 모양인 금속관 나팔을 가리킨다. 그것은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쇼파르 )과 구별된다.
왜 금나팔이 아니고 은나팔을 만들라고 하셨을까? 금은 하나님의 영광과 왕권을 상징하는 색깔이고, 은은 [고난-연단 거쳐 완성되는 순종의 거룩함] 거룩과 순결을 상징하는 것 같다. 시편 12:6은,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라고 말한다. 은나팔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명령과 그것을 전하는 자의 순결한 의무를 보이는 것 같다.
은나팔의 용도는 첫째로 회중을 소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나팔을 불면 온 회중을 소집하는 것이요, 한 나팔을 불면 족장들만 소집하는 것이다.
둘째로, 진을 진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로, 전쟁 시에 나아갈 때 불렀고, 넷째로, 절기 시에 불렀다. 셋째와 넷째의 경우는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도우시며 구원하시고 은혜 주시기를 구하는 뜻이 있었다.
은나팔을 부는 일은 제사장들에게 맡겨진 직무이었다(8절). 물론 나팔을 불게 지시하는 자는 모세이었을 것이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지만, 그것을 보고 지도자 모세는 제사장들에게 나팔을 불도록 지시하였고 회중들 혹은 족장들은 그 지시대로 모이기도 하고 진행하기도 했을 것이다.
[11-28절] 제2년 2월 20일에 구름이 증거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행하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진행하기를 시작하였는데 수두로 유다 자손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유다 군대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영솔하였고 잇사갈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영솔하였고 스불론 자손 지파의 군대는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영솔하였더라. 이에 성막을 걷으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메고 발행하였으며 다음으로 르우벤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발행하였으니 르우벤의 군대는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영솔하였고 시므온 자손 지파의 군대는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영솔하였고 갓 자손 지파의 군대는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영솔하였더라. 고핫인은 성물을 메고 진행하였고 그들이 이르기 전에 성막을 세웠으며 다음으로 에브라임 자손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에브라임 군대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영솔하였고 므낫세 자손 지파의 군대는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 영솔하였고 베냐민 자손 지파의 군대는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 영솔하였더라. 다음으로 단 자손 진기(陣旗)에 속한 자들이 그 군대대로 진행하였으니 이 군대는 모든 진의 후진이었더라. 단 군대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영솔하였고 아셀 자손 지파의 군대는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 영솔하였고 납달리 자손 지파의 군대는 에난의 아들 아히라가 영솔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진행할 때에 이와 같이 그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
제2년 2월 20일에 구름이 떠올랐다. 성막을 짓고 유월절을 지키고 인구조사를 마친 후에 처음 떠오른 때이었다. 그것은 2월 14일 추가적 유월절을 지킨 지 몇 일 후의 일이었다.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규례대로 질서 있게 행진하였다.
[29-32절]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모세는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말했다. 후에 그 후손이 유다 땅에 거한 것을 보면(삿 1:16), 호밥은 모세의 청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모세가 그에게 함께 가기를 요청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항상 기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인다.
미디안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은 시내 광야와 바란 광야의 지리나 광야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성적 판단과 경험적 지식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큰 틀에서 인도하시지만, 구체적인 일들에 있어서 그는 사람들의 지혜와 경험과 성실함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용하신다.
그것은 사도행전 27:31, 34에서도 증거된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이송되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났다.
바울과 함께 배에 탔던 276명의 사람들은 14일 동안 큰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을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사공들이 작은 배를 타고 도망치려 할 때 바울은 그를 지키던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특별한 경우에 주신 일이었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일반적 섭리 아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플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또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지만, 병원에도 가고 약도 감사히 사용한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처럼 이성과 경험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고 의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분별력과 판단력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33-36절]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3일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3일 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행진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산, 곧 호렙 산(시내 산)에서 떠나 3일 길을 행할 때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3일 길에 앞서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보호하셨고 임재하셨다. 그는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다.
민수기 10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은나팔은 인도자의 의무를 보인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있었지만, 모세는 항상 그것을 주시하고 제사장들을 통해 나팔을 불게 함으로써 온 이스라엘 회중에게 알리는 의무가 있었다. 인도자의 알리는 의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회중이나 족장들을 소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진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시기와 경우에 맞게 은나팔을 다르게 불게 해야 했다.
나팔소리는 신약교회의 교훈과 행정의 일에 적용될 것이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창고에서 성실하게 양식을 내어오는 자로 비유하셨다. 마태복음 13:52,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그것은 신약교회의 목사들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교훈해야 할 것을 보인다. 또 마태복음24:45에 보면, 주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도 신약교회의 설교자들의 직무를 보인다.
성경을 읽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강단을 통해 그 뜻을 밝히 선포하고 증거하시기를 원하신다. 특히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란 때에는 더욱 그렇다. 고린도전서 14:8은,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고 말한다. 죄와 세상의 악의 풍조와 마귀의 시험과의 전쟁에서 성경적 설교는 분명한 나팔소리이다. 그러나 성경적이지 않은 설교는 분명치 못한 나팔소리다. 또 교회의 바른 행정도 바른 교훈의 적용과 실천이다.
둘째로, 은나팔은 회중의 의무도 보인다.
회중은 그 나팔소리를 듣고 따라야 했다. 그들은 모이라는 나팔소리를 들으면 모여야 했다.
성경은 주의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라고 교훈한다(히 10:25).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행 2:46).
우리는 교회로 모이기를 더욱 힘쓰자. 또 회중은 행진하라는 나팔소리를 들으면 행진해야 했다. 교인들의 의무는 성경적 설교와 지도에 순종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3:17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성경적 설교와 교훈을 열심히 듣고 배우며 마음에 새기고 그 교훈과 지도에 순종하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되 기적주의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이성적, 경험적 분별력과 판단력을 감사히 사용할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지만, 미디안 사람 호밥에게 함께 가기를 요청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섭리를 믿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환경적 인도하심을 살피면서 이성적, 경험적 분별력과 판단력을 감사히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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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절(The Feast of Trumpet)]]
[레 23:23-32...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25.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여호와의 절기
유대인들이 지키는 농경력으로는 티쉬리(Tishri)월이 새해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시기에 유월절을 지키게 하시면서 유월절이 있는 아빕(Abib)월(니산월, 태양력으로 3-4월 경)을 1월로 지키라고 명령하셨다(출 12:2, 13:4, 신 16:1).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달의 명칭을 바벨론식(니산)으로 불렀고, 정월도 과거에 지키던 민간력인 티쉬리(Tishri)월(새 달력으로 7월, 태양력으로 9-10월 경)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signs)와 사시(seasons)와 일자(days)와 연한(years)이 이루라"(창 1:14)
하나님께서 하늘에 크고 작은 광명체(해, 달, 별)를 만드신 이유가 일자와 연한 뿐만이 아니라 징조(signs)와 계절 등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창세기 1장14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
---여기에서 '징조'(signs)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오쓰'(אוּת)는 '징조, 표징, 표적'(signs, 창 1:14, 출 4:8-9), '표'(mark, 창 4:15), '증표'(token, 창 9:12, 17:11), '깃발'(ensign, 민 2:2), '이적, 기적'(miracle, 민 14:22, 신 11:3) 등의 뜻을 나타내는 여성명사(스트롱 #226)이다. 이 단어는 '동의하다'(consent, agree)라는 히브리어 동사 오쓰'(אוּת)(스트롱 #225)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동사는 성경에서 4회 사용되었다(창 34:15, 22, 23, 왕하 12:8)
......히브리어 '오쓰(uwth)'(אוּת)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그래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표를 주시며 노아에게는 무지개를 증표로 보여주시며 이스라엘에게 여러 기적들을 보여주시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시편 19편의 다윗의 고백처럼 하늘의 광명체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하시는 일들 즉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깨달아야 하며 더 나아가 전능하신 그분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데에 동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아멘"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시 19:1-6)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
---또 '사시(seasons)'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모아딤(מ֣וֹעֲדִ֔ים)'으로 '절기들(feasts)'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좋다. '사시'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에드(מועד)'는 우리가 알고있는 4계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기' 또는 '축제', '지정된 장소·시간·만남·표시', '엄숙함', '회중' 등을 의미한다.
'모아딤(מ֣וֹעֲדִ֔ים)'은 '모에드(מועד)'의 복수형으로 '지정하다'(to appoint, designate), '(만남을) 예약하다'(to meet by appointment) 또는 '고정하다'(to fix)라는 히브리어 '야아드(יָעַד)'에서 유래된 말로 '해와 달과 별을 통해 반복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고정되고 예약된 시기'를 말한다. 즉 이는 4계절을 포함하여 해마다 반복되는 '여호와의 절기들'을 나타내는 말이다(렘 8:7(시기 times), 시 104:19(절기 seasons), 슥 8:19(절기 feasts)).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지정하신 시간에 그분께서 지정하신 장소에 그분께서 지정하신 사람이 그분께서 지정하신 방식대로 그분의 피조물들이 순종하도록 하셨는데 이는 그분의 주권에 의하여 섭리하시는 그분의 '작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그분의 지시를 범하며 인간의 기쁨을 추구하기 위하여 인간이 원하는 장소에서 인간이 원하는 시간에 인간이 원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며 그분께 나아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그분과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살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 '여호와의 절기'이며 이 절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으며, 이 모든 절기는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셨다.
유월절은 대속양이신 어린양으로, 무교절은 무덤에 들어가시므로, 초실절은 부활하여 첫 열매가 되시므로, 오순절은 그분께서 가시고 성령을 보내시므로 완성되었다. 마지막 유대력 7월에 남은 세 절기인 나팔절과 대속죄일과 장막절이 있는데, 사실상 이 절기들도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깨어 기도하라"라고 나팔을 부셨고, 유월절 어린양 겸 대제사장으로서(요 17장) 지성소에 나아가 피를 뿌림(십자가)으로 대속죄일을 완성하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σκῆνος: tabernacle(of the human body): 장막(인간의 몸): 고후 5:1, 4)라는 요한복음 1장14절 말씀대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우리를 성전으로 만드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장막절이 완성되었고 장막절인 안식일 즉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그 순간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그분 안에서 안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해(ראש השנה, Rosh haShanah, The Jewish New Year)
2019년은 9월 29일이 유대인의 새해인 나팔절이다. 유대인들은 9월 29일 해질녘부터 9월 30일 해지기 전까지 그리고 그 다음날 10월 1일 해지기 전까지 이틀간 나팔절을 지킨다.
새해를 유대인들은 '로쉬 하샤나(ראש השנה, Rosh haShanah)' 라고 부른다. '로쉬(ראש)'는 '머리, 처음, 우두머리' 등의 뜻이 있고, '하샤나'의 '하(ה)'는 영어의 정관사 'the'에 해당하며 '샤나(שנה)'는 '해, 년(year)'이라는 뜻으로 '첫 해' 즉 '새해'를 뜻한다.
새해에 유대인들는 "샤나 토바(שנה טובה: 복된 새해를 맞이하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좀더 친한 사이에서는 "레샤나 토바 트카데부 베타흐테무(לשנה טובה תכתבו ותחתמו: 새해에는 당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새해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날이다. 민간력으로 티쉬리(Tishri)월 첫째 날인데, 티쉬리 월 직전이 엘룰(Elul)월이다.
엘룰 월은 29일까지 있는데, 유대인들은 엘룰 월 25일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시작하셨고, 6일째인 티쉬리 월 1일에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엘룰 월 25일부터 티쉬리 월 1일까지를 '창조의 6일'이라고도 부른다.
유대인들이 새해 인사에 '생명책'을 운운하는 이유는, 유대 랍비 문헌인 미쉬나에 의하면 새해가 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언행에 따라 세 권의 책에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시는데, 이 세 권의 책은 선한 자와 악한 자와 중간에 속한 자를 기록하는 책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그 책이 봉해지며 그 새해가 생명의 날들이 될 것이지만, 악한 자는 생명책에 의인과 함께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여 사망의 해가 된다(시 69:28).
그리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간에 속한 이들에게는 나팔이 울려퍼지는 나팔절부터 대속죄일까지 10일 동안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심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팔절부터의 열흘간이 이들에게는 '두려운 날들'(the Days of Awe)이 되는 것이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 3:16-18)
유대인들은 새해를 맞는 저녁에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은 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동안 아내는 집안에서 새해 첫 날에 온 가족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며 촛불도 어머니가 켠다.
아버지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샤나 토바"라며 문을 열어주는 어머니의 새해 인사를 들으며 집에 들어와 새해를 축하한다.
새해에는 사과와 둥글게 만든 할라 빵을 꿀에 찍어 먹는다. 그 이유는 달콤한 새해를 맞기를 원해서이다.
이날 음식은 석류와 당근과 대추야자를 먹으며 생선이나 양의 머리 고기를 먹는다.
이때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복 중의 하나로 "머리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상대방은 "꼬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화답한다(신 28:13).
석류를 먹을 때는 "석류의 씨처럼 많은 열매를 맺기를 기원한다.", 생선을 먹을 때는 "이 물고기처럼 생육하고 번성하길 바란다" 등의 축복의 말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에 유월절을 지키며 출애굽하는 그때를 새해로 지키라고 하셨다. 여호와의 절기 중에서 나팔절과 속죄일과 장막절은 가장 마지막에 오는 절기이다.]]
그런데 이들 유대인들은 그 말씀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마지막에 있는 절기를 첫 달로 지킨다.
즉 죄성을 가진 인간은 때와 기간을 바꾸며 분명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고 성경에까지 기록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순종하지 못함을 나팔절을 새해로 지키는 이스라엘을 통해 우리에게 증거한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나팔절을 정월로 지키는 것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데, 그 이유는 절기의 때와 기간을 바꾸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과 예약해놓은 정한 시간과 정한 때에 만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사탄의 방해 전략에 넘어간 것이라고 본다.))
▶회개와 기도와 구제에 힘쓰는 엘룰 월
하나님께서 주신 달력으로 7월 티쉬리 월 바로 앞인 6월이 엘룰 월이다. 새해를 맞는 유대인들은 새해 첫 날 주님 앞에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새해 첫 날에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유대의 랍비들은 새해를 심판의 날로 가르친다. 새해가 되면, 하나님께서 3가지 책을 펼치고 심판대 앞에 앉으신다고 믿는다.
특히 새해를 맞기 전 30일 동안 이들은 회개와 구제와 기도에 힘쓴다.
그 이유는 모세가 처음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죄를 범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돌판을 만들어 다시 시내산에 올라갔다가 대속죄일 마지막 날인 티쉬리 10일에 내려왔다고 전한다. 따라서 티쉬리 월 1일이 나팔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것처럼 나팔절 전에 있는 엘룰 월 한 달 간을 회개의 기간으로 정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잘못했던 것을 회개하기 위하여 가족과 친지와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구체적으로 "잘못했다"라며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회개만 해서도 안 되며 구제와 기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는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며 구제를 많이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회개하지 않으면 대속죄일에 주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채 책이 봉해진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 14:31)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
"그(고넬료)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 10:2, 4)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한 몸이 된 교회를 설명하는 아가서 6장3절 말씀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אֲנִי לְדֹודִי וְדֹודִי לִי)의 각 단어의 첫 글자를 합성하면 '엘룰'(אלול)이 된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렇게 아가서 6장3절 앞부분 말씀의 첫 글자 넷(알레프, 라메드, 바브, 라메드)을 모아놓은 것이 '엘룰'(אלול)이라고 한다.
엘룰 월 한 달동안 유대인들은 시편 27편을 읽고 묵상한다.
나팔절은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신랑이신 어린양과의 결혼식이 있을 것을 알리는 것이므로 그분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흠도 없고 티도 없는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시편 말씀을 묵상하며 회개하며 대속죄일까지 40일간을 준비하는 것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 19:7-8)
▶초승달이 뜨는 나팔절
예수께서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3)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들을 통해 낮인지 밤인지 달의 첫 날인지 보름인지를 분별한다.
초승달이 뜨면 한 달이 시작된 것을 알고, 보름달이 뜨면 달의 중간, 그리고 그믐달이 뜨면 한 달이 끝났다는 것을 안다.
초승달과 그믐달은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볼 때 반대 모양으로 보인다. 북반구에서 볼 때, '달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라틴 격언대로 음악에서 디크리센도(Decrescendo, Decrescent. 점점 여리게)의 첫 글자인 D 모양으로 점점 커지는 달이 초승달(Crescent)이며, 반대로 크레센도(Crescendo, Crescent. 점점 크게)의 첫 글자인 C 모양으로 점점 작아져 가는 달이 그믐달이다.
여호와의 절기는 7가지로 모두 세개의 월 안에 들어있다. 유월절·무교절·초실절은 아빕 월에, 오순절은 시반 월에 그리고 나팔절·대속죄일·장막절은 티쉬리 월에 있다. 오순절을 앞뒤로 세 절기씩 한 달에 들어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자들에게 일년에 세 번을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을 갖고 와서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출 23:14-76)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3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신 16:16-17)
보통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떠 있지만, 초승달은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 떠 있다 금방 사라지며, 그믐달은 새벽에 동쪽 하늘에 잠깐 보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나팔절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늘날은 전화가 있어서 금방 알릴 수 있으나 예전에는 쉽지가 않아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어느 날이 나팔절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에 하루종일 걸릴 수도 있으므로 초승달이 뜨는 날부터 이틀간을 지켰다.
나팔절은 그믐달이 잠깐 비취고 사라지므로 달의 첫날이 언제인지 확실히 알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 때가 되면 두 사람에게 달을 관측하게 하여 두 사람 모두 '달 모양이 그믐달에서 초승달로 바뀌었다'라고 하면, 나팔을 불어 알렸다.
이렇게 정확한 그 날을 알 수 없기에 나팔절을 "때와 시를 알 수 없는 절기' 즉 '숨겨진 날'(욤 하케세)이라고 하며, 예수께서는 나팔절이 그 날과 시간을 누구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는 날이므로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이다(마 24:36, 25:1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 27:5)
▶나팔을 부는 날(The Day of Shofar Blowing)
'나팔절'의 히브리어는 '욤 테루아(י֥וֹם תְּרוּעָ֖ה)'이다.
'욤(י֥וֹם)'은 '날(day)'을 뜻하며 '테루아(תְּרוּעָ֖ה)'는 '나팔을 불다(of blowing the trumpets)'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팔절'은 '나팔을 부는 날'이라는 뜻이다.
'테루아(תְּרוּעָ֖ה)'는 '전쟁의 준비' 또는 '함성을 지르다(blow an alarm)'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기뻐하고(rejoice)', '외치라(shout of joy)'는 것이며 '(전쟁을) 경고하다, 알리다'(alarm of war)라는 의미이다.
고린도전서 14:8-9을 보면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라고 말씀하듯이 나팔 소리가 회중이 모이라는 소린지, 전쟁을 준비하라는 소린지 구별을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나팔을 불 때에는 무엇을 알리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우리는 나팔절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 뒤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느 장막절에 임하실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나팔 소리를 들어도 전혀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지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 나팔 소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깨어 기도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천국에 가고싶은 사람은 자거나 졸지 말고 깨어서 나팔 소리를 듣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국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회개할 수 없는 이들은 아무리 파숫군이 나팔을 크게 불어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고 파숫군의 나팔소리를 잘못 오해하여 욕으로 여기고 시끄럽다며 파숫군의 입을 막기 위하여 잡아 죽이려고 한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33장2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렘 6:10, 16, 17)
예레미야 6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파숫군의 나팔소리를 들으라고 하시지만,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라며 아주 뻔뻔스럽게 말을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운 종들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에게 18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듣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들으라", "알라", "들으라"라며 그들이 아무리 듣지 않겠다며 귀를 막아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사야 58장1절에서는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깨어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0-41)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6)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 26:19)
▶네 종류의 나팔 소리
달이 그믐달에서 초생달로 바뀌는 순간, 나팔절을 알리는 나팔을 100번 부는데, 이때 나팔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4가지 소리(테키야, 쉐바림, 테루아, 테키야 그돌라)로 분다.
(1) 테키야(תקיעה, Tekiah):
1회 3초간 분다. 저음의 긴 소리. 왕의 대관식을 알리는 소리. ....만왕의 왕이신 주님만이 왕이심을 고백..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므로 해마다 나팔을 불어 그분이 만왕의 왕으로 즉위하심을 알려야 한다.
즉 나팔절이 될 때마다 우리는 나팔을 불어 즉 우리의 입을 열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심을 선포하며 그분 앞에서 즐거이 찬송하며 기쁨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찌어다"(시 98:6)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요 12:13)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 가시도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찌어다.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시 47:5-8)
(2) 쉐바림(שברים, Shevarim):
1초씩 3회 분다. 짧게 내는 소리. 회개하라고 알리는 소리
랍비 예키엘 엑스틴에 의하면, 유대교의 현자들은 나팔절을 "당신을 위해 슬피 우는 날"이라고 가르치며 사사기 5장28절 말씀을 언급한다고 한다.
사사기 5장은 드보라 선지자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어머니가 야엘의 장막에서 아들 시스라가 죽을 때 창밖을 내다보며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오는가?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지체하는가?"라며 울부짖는 반면, 시스라를 물리친 여사사 드보라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시스라가 전쟁에서 늘 승리했던 모습만 보았기에 그녀의 아들에게는 어떠한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승리는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도 남들과 똑같이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보장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울부짖는다.
나팔 소리 중 '쉐바림'(שברים)은 '깨어지다', '부서지다'라는 뜻을 갖고있는 '샤바르'(שבר)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 나팔 소리는 깨어지고 부서진 마음으로 흐느껴 우는 듯한 나팔 소리로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이다.
유대인들은 시스라의 어머니가 아들 시스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부짖듯이 나팔을 100번 부는 것을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을 때에 산산히 깨어진 마음을 토해내는 소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마음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 58:1)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호 8:1)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엘 2:15)
(3) 테루아(תרועה, Teruah):
3초 동안 짧게 끊어서 9회 분다. 고음의 매우 짧은 소리. 3회씩 끊어서 3회 반복 즉 끊어서 9회 소리를 내며, 쉐바림(3회)과 같은 길이 동안 아홉번 짧게 스타카토로 끊어서 부는 소리. 영적인 각성을 알리는 소리. 경고 또는 기쁨의 외침
짧은 스타카토식으로 9회 부는 '테루아'는 알람소리와 비슷하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잠을 자지 않도록 깨워주는 소리이다.
우리가 아침에 조금 더 자고 싶은데 알람 소리 때문에 자지 못하고 일어나서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같이 '테루아'는 우리더 조금더 자고 싶고 깨고싶지 않지만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라고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까지 우리를 시끄럽고 귀찮게 하는 소리이다.
영적 잠에서 깨기 싫지만, 일단 깬 순간 우리는 주님과 동행하므로 기쁨의 찬송을 부르게 된다. 그래서 '테루아'는 알람 소리인 동시에 기쁨의 함성인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에단)는 시편 89편15절 이하에서 "즐거운 소리(תְּרוּעָה, 테루아)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오니 주는 저희 힘의 영광이심이라"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테루아 나팔 소리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대로(빌 2:12)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는 그분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경건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분 앞에서(코람데오) 경건의 훈련을 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즐겁고 행복한 소리를 알게 되어 "회개하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듣기 싫고 기분 나쁜 소리가 아니라, 우리를 영적 잠에서 깨어 영원한 생명의 길인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소리라는 것을 아는 복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우리를 깨워주시는 것이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תרועה)를 들음이로다"(렘 4:19)
"너희가 그것을 울려(תרועה)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민 10: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תרועה) 부를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수 6:5)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shout, תרועה)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 가시도다"(시 47:5)
(4) 테키야 그돌라(Tekiah Gedolah):
1회 10초간 분다. '큰 테키야'라는 뜻. 테키야를 크고 길게 부는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6, 19)
나팔을 부는 방식은 테키야(1)-쉐바림(3)-테루아(9)-테키야(1) (3회x4소리), 테키야(1)-쉐바림(3)-테키야(1) (3회x3소리), 테키야(1)-테루아(9)-테키야(1) (3회x3소리) 이렇게 각각 3회씩 불면 모두 30회가 된다. 이것을 2회 반복할 때 사탄을 혼동 속에 빠지게 한다고 한다. 이것을 3회 반복하면 90회가 되며 여기에 테키야(1)-테루아(9)를 불고 제일 마지막에 테키야 그돌라를 불어서 100회의 나팔을 분다.
이때 마지막 테키야 그돌라를 부는 100회의 나팔 소리와 함께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메시야가 온다고 유대인들은 믿으며, 크리스천들은 재림 예수께서 오신다고 믿는다. 나팔절은 사탄에게도 감추어진 날이라서 사탄이 나팔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혼미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팔절에 울려퍼지는 나팔 소리는 사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줄 알고 혼란 속에 빠지게 하며 이때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최후 승리를 이루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7-8)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리라"(고전 15:51)
이 나팔 소리는 열흘 동안 지속적으로 불고 열흘 뒤 유대력 7월10일인 대속죄일에 마친다. 이 열흘 동안 유대인들은 매일 아침 회당에 모여 출애굽기 34장6-7절에 근거한 ‘슬리호트(סליחות) 기도’를 한다. 슬리호트 (סליחות)란 ‘슬리카(용서)’의 복수형으로 슬리호트 기도는 하나님의 13가지 은혜와 자비 하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시므로 이미 나팔 소리는 시작되었다. 예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하시며 나팔을 부셨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대로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으며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곳곳에 난리와 소문들이 있으며 민족과 나라가 서로 대적하여 일어나며 가라지들이 알곡 성도들을 환난에 넘겨주고 죽이기도 하며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자칭 그리스도라 하는 이들이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서 분별하지 못한다면 마귀의 밥이 되어 평생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야만 하므로 주앞에서 철저한 회개와 기도와 구제를 통하여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속죄받는 대속죄일에 주 앞에서 용서함 받고 마지막 추수때인 장막절에 신랑되신 주님께서 베푸신 잔치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회개와 기도와 구제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기회는 항상 오는 것이 아니어서 기회가 왔을 때 붙잡아야 한다. 주께서 우리를 언제까지 기다려주지 않으시며 우리를 향해 열어놓은 문이 닫힐 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0-13)
유대인들의 신년 예배시 쇼파르를 불고 시편 47편을 일곱 번 낭송한 뒤에 큰 소리로 아래의 기도문을 암송하며 회개한다.
.....우리는 이 날을 위대하고 거룩한 날로 선포합니다. 주님의 나라는 높임을 받으시오며, 주님의 보좌는 자비 중에 계시며 주님은 진리로 심판하십니다. 주님은 진실로 심판자이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꾸짖습니다. 주님은 증거를 갖고 계시며 기록하며 인봉(印封) 하십니다. 주님은 잃어버릴듯한 것까지도 기억하십니다. 목자의 막대기 아래를 양이 통과하듯, 세상에 들어온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주님 앞을 통과해야 합니다. 주님은 모든 영혼을 세시며, 방문하십니다. 그들의 한계를 정하시며 그들에 대한 심판을 기록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야 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야 하며 누가 살아야 하며 누가 죽어야 되는지. 누가 주어진 날짜를 다 채우고 가는지. 누가 그 날들을 못 채우는지. 누가 물에 빠져 죽으며 누가 불에 타 죽을지. 누가 칼에 죽으며 누가 굶주려 죽을지. 누가 지진으로 죽으며 누가 전염병에 죽을지. 누가 평안한 인생을 살며 누가 어려운 인생을 살지. 누가 편안하며 누가 괴로움을 당할지. 누가 번성하며 누가 고통당할지. 누가 가난하며 누가 부자가 될지. 누가 버림받으며 누가 영광받을지 (주께서 정하십니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8-20)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초막절과 은나팔]====민수기 29장 12절 - 40절
[요7:37-39..*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초막절(FeastofTabernacles)
___올리브,포도 등을 추수하여 저장한 후 티쉬리월(7월, 태양력으로9-10월) 15일부터 지키는 감사절기(레23:34-41). 곡식을 거두고 저장한 후 지키는 절기라 하여 수장절이라고도 하고(출23:16) 장막절이라고도(요7:2-표준새번역) 불렀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제와 비슷한 절기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기념하는 절기인 동시에 신년제의 성격이 들어 있었다.....이 절기 때는 노동이 금지되었으며 첫날과 8일에 안식하며 성회로 모였고 7일동안 화제를 드렸다(레23:34-44).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동안 즐거워하며 조상들의 광야 40년 생활을 기념하며 초막에 거했다(레23:42-43).
**초막절 의식
.....기혼샘(Gihon Spring)... “기혼”이라는 뜻은 “힘차게 터져 나오는 용천수의 곳”이란 뜻. ((실제로 석회석의 침식작용으로 형성이 된 기혼샘은 1년내내 마르지 않고 힘차게 터져서 예루살렘 성의 거주민들의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했었다.))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701년에 남왕국 유다를 침공하게 되는데, 북왕국의 피난민을 수용한 남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은 결사 항전을 각오하고서, ((예루살렘 성의 가장 중요한 물 근원인 기혼 샘은 결정적으로 성밖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에 히스기야 왕의 방백들과 용사들이 기혼샘과 예루살렘 성의 가장 낮은 쪽에서 서로 파 들어가 연결된 터널을 완성시킨다 (대하 32:2-4). 즉 기혼샘(해발636m)에서 시작하여 땅속으로 길이 533미터의 터널을 파 예루살렘성의 가장 낮은 곳인 실로암으로 물길을 내었고 예루살렘 성내에서는 그 물의 분출지가 실로암 연못이다.
___초막절 기간에는 매일 아침 제사장이 금으로 만든 물단지를 가지고 가서 실로암 연못에서[=실로암은 보냄받았다는 뜻....성밖의 기혼샘으로부터 수로를 만들어 예루살렘 성내로 공급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 샘물의 분출은 실로암 연못이 되었음] 물을 길어와 제단에 부어 바쳤다. 여기엔 광야생활 중에 물이 없을때 반석에서 생수를 내주신 것을 기념하는 의미와 이른비를 기원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장막절이지나면 밀,보리를 파종해야 했기때문에 비가 오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또한 이방의 압제로부터 싸워 이겨 구원해 냄으로써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메시아가 오실 때 부어질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사장이 물을 길어와 제단에 도착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하며 그를 맞았고 제사장들은 은나팔을[=이 때의 은 나팔 불림은 메시야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부르짖는 기도를 뜻함!!] 불었으며 다른 제사장들은 이사야 말씀으로 찬송을 했다(사12:3). 제단에 물을 부을 때 레위인들은 시편118편 내용을 찬양했으며 제사장들이 "오 여호와여, 간구합니다.우리를구원하소서 = 호산나"를(시118:25) 외치면 모든 회중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시편113-118편으로 만든 할렐 송을불렀다.
[사12장 ...*1.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명절 끝날, 큰날
____유대인들은 초막절 마지막날을 "큰 구원의 날"로 지킨다. 이날은 지난 해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마지막 사죄의 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초막절 마지막날 제단에 물을 부으면서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고 성령에 사로잡히기를 구하며 춤을 춘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목마른 사람은 오라고 외치시며(요7:38). 모든 유대인들은 구약의 전통에따라 메시아는 초막절에 오신다고 믿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