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 7장.. [250.구주의십자가보혈로]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290.주없이 살수없네][447.이세상끝날까지주섬겨살리니] [492.저높은곳을향하여][549.내주여뜻대로] [431.주안에기쁨있네][288.예수를나의구주삼고] [191. 내가매일기쁘게].[433.귀하신주여날붙드사] [413.내평생에가는길].[508.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오직 주의사랑에매여.. 완전하신나의주..주는우리의도움...주께가까이...세상의유혹시험이..주님을섬기기로나약속했으니.
.아7:1-5까지는 <제3자로서 술람미와 하나이시면서 동시에 구주와 하나이신 그 영의 말씀하심으로 보면 적절하다!!> :: 주님의 일에 동참해야 할, 구주의 연인은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데에 합당한, 마땅히 갖추어야 <신성한 생명의 속성들로 구비되어야> 하는 그 자격, 곧 구주의 어떠하심의 표현인,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생명 안에서 성숙함에 이르른, 미덕들을 <발에서부터 머리까지> 살펴보시며 칭송하고 계심..아7:6-9상까지는 구주의 <덧붙이시는>칭송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9하부터는 술람미의 고백이다 . 1. 귀한 자의 딸아 [복음 전파 행보에 합당한..롬10:15]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그 길에 일편단심으로 중도 포기함 결코 없이 굳건/견고하게 주와 동행/전진하는] 네 넓적다리는 [그 발휘되는 능력 있는 행보로 인해 숙련되고 더욱 강건케 된 바]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섬세하게 다듬어 찬란한 빛을 발하는 보석들로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2. [연인의 속 부분들인 배꼽과 배는, 그녀가 믿음<백합화>으로 구주 보혈<포도주>을 마시고 그분의 살<밀>을 먹음으로써 받아들인 신성한 생명으로 채워져 있는 바..요6:53-54]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3. [살아 있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을 먹이며 양육/공급하는, 연인의 활동적 생명 능력의 풍성과 아름다움을 의미하는..요21:15, 17, 아4:5]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4. [연인의 기꺼이 복종하는 의지의 아름다움의 표상인]목은 [고난 통과함으로 깎여지고 잘 다듬어진]상아 망대 같구나 [빛을 향해 열려 있는, 늘 맑고 천천히 흐르기에 고요한, 정결함과 안식 가득한, 자비와 긍휼, 온유-겸손-관용 가득한 마음이 담긴...아1:15, :1, 5:12]눈은 헤스본 바드랍빔[=원어의 의미는 바트+라브, 즉 <많은 무리의 딸>]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높고 예리한 분별력의, 영적 지각을 갖춘..빌1:9-10, 히5:14]코는 다메섹을 향한 [외적 침입을 감시하는]레바논 망대 같구나 5. 머리는 [Q을 위하는 굳세고 강한 생각과 의지로 가득한, 우뚝 솟아오른 바,..왕상18:19-39] 갈멜 산 같고 [헌신의 상징인]드리운 머리털은 [Q의 왕적 영광을 의미하는]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그녀의 복종과 순종의 아름다움은 왕을 완전히 사로잡음]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구주께서 다른이들을 기쁘게 하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움을 칭송하심. 7. 네 키는[=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도달한...엡4:13] 종려나무[=구주의 표현] 같고 [다른이들을 먹이기 위해 풍성하게 생명 공급하는]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주 이름으로 인치시며, 자신의 모든 것 열어 개방-공급-주입-충만하도록 부어주심으로써 사로잡고 누리심..TUQ과 .구주 몸의 지체들과 함께 그녀의 모든 아름다움를 감상-음미-맛봄-나눔으로 누리리라] 하였나니 [참 생명 구주 말씀이 넘침따라 다른 이들을 먹여 자라나게 하는]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생명 안에서 다른 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생명으로 호흡하며 분별/감지하며 늘 새롭도록 상큼한 활력 공급하는]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9. 네 입은 [구주와의 달콤하고도 친밀한, 극락의 하나됨 안에서 성령이 채워 넣어주시는 바, 내세의 능력과 구주에 속한 모든 것들을 말해냄 통해 참 생명 그분을 공급해 내는 입천장은....아7:9상, 요2:10,마28:29]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술람미는, 이제 그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부드럽게 누리시기를 바라며,Q의 사랑하는 자들이 자의식을 잃어버리고(잠자는 이들의 입..고후5:14-15), 주께서 누리시는 그것을 함께 누리기를 바라고 있음 :: 즉 그녀가 다른이들과 함께 일하는 그것은 그들의 영적 참된 누림이 되어야 함을 의미함. 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구주의 사모함에 이르도록 그분을 빼어닮음이 중요하다!!....주님이 <나를> 사모하심, 그 분량을 참되게 알고 깨닫게 하소서, 그렇게 살게 하소서.......나도 주님의 사모하심의 분량에 도달하게 하시며, 바로 그렇게 사모하시는 주님의 그 모든 어떠하심의 통로로서 형제자매를 사모하게 하소서 11. 내 사랑하는 자야 [공개적으로, 지체들 사이에 그 어떤 거리낌/편협한 치우침도 없이 서로 너그러이 받아주며 하나됨 안에서 (오직 구주와 함께!!!..고전3:9상,고후6:1상) 순회하면서 온 세상들을 위한 일들 수행 위해, 한 몸 된]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바로 이것이 사랑에 겨워 주와 동행했던, 바울의 행보였다!! 12.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죽음을 불사하는, 사랑 안에 자기 모든 것 내어드리는 완전한 헌신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각 지방을 순회하며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들을 구주의 충만한 진리(실재-실제-실체)안으로 이끎으로써 수행한 바임...이로써 구주 얻고 그 가운데서 발견되기를 원했음] 13. [충만한 생명 공급과 누림 위하며 동시에 하나되어 함께 일하기 위한, 상호 사랑/결혼 통한 사랑의..창30:14-16]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결혼한 부부로서 그들이 함께 일하는 곳에는 향기 가득한 좋은 열매들(갈5:22-23, 엡5:9)이 새것, 옛것도 있는데 이것은 사랑 안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분을 위해 간직해 둔 것들임. ====== 아가 7장 [현대인의성경] 1. 남자: 귀한 집안의 딸이여, 신발을 신은 그대의 발이 어쩌면 그처럼 아름다운가요! 그대의 다리는 예술가의 작품처럼 우아하고 2. 그대의 배꼽은 혼합 포도주를 가득 부은 둥근 술잔 같으며 그대의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짚단 같구려. 3. 그대의 젖가슴은 쌍태 노루 새끼 같고 4. 목은 상아탑 같으며 눈은 바드-랍빔 성문 곁의 헤스본 연못 같고 코는 다마스커스를 굽어보는 레바논의 망대 같소이다. 5. 그대의 머리는 갈멜산 같고 머리털은 비단처럼 고와 왕이 그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소. 6. 어쩌면 그대는 그처럼 예쁘고 아름다운가요! 내 사랑이여, 그대의 매력이 대단하구려. 7. 그대는 종려나무처럼 키가 크고 늘씬하며 그대의 젖가슴은 그 열매 송이 같소이다. 8. 내가 그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열매를 잡으오리다. 그대의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그대의 숨에서는 사과 냄새가 나며 9. 그대의 입술은 제일 좋은 포도주처럼 달콤하구려. 여자: 이 포도주가 내 사랑하는 님의 입술로 부드럽게 흘러들어가기를 원하노라! 10. 나는 내 사랑하는 님의 것이므로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11. 내 사랑하는 님이시여, 우리 함께 시골로 가서 마을에서 밤을 보냅시다. 12. 우리 일찍 일어나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순이 돋았는지, 꽃 봉오리가 맺혔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알아봅시다. 내가 거기서 당신에게 내 사랑을 바치겠어요. 13. 만다라화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 문 앞에는 온갖 과일이 가득하니 내가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쌓아 둔 것이랍니다 === (The Bridegroom) “Why should you gaze at the Shulammite, As at the dance of the two armies? Admiration by the Bridegroom 1 “How beautiful are your feet in sandals, O prince’s daughter! The curves of your hips are like jewels, The work of the hands of an artist. 2 “Your navel is a round goblet Which never lacks mixed wine. Your belly is like a heap of wheat Surrounded with lilies. 3 “Your two breasts are like two fawns, The twins of a gazelle. 4 “Your neck is like a tower of ivory, Your eyes the [sparkling] pools of Heshbon By the gate of Bath-rabbim. Your nose is like the tower of Lebanon Which looks toward Damascus. 5 “Your head crowns you like Mount Carmel, And the flowing hair of your head like purple threads; I, the king, am held captive by your [a]tresses. 6 “How beautiful and how delightful you are, My love, with all your delights! 7 “Your stature is like that of a palm tree And your breasts like its clusters [of dates]. 8 “I said, ‘I will climb the palm tree; I will grasp its branches. Let your breasts be like clusters of the grapevine, And the fragrance of your breath like apples, 9 ‘And your kisses like the best wine!’” (The Shulammite Bride) “It goes down smoothly and sweetly for my beloved, Gliding gently over his lips while he sleeps. The Union of Love 10 “I am my beloved’s, And his desire is for me. 11 “Come, my beloved, let us go out into the country, Let us spend the night in the villages. 12 “Let us go out early to the vineyards; Let us see whether the vine has budded And its blossoms have opened, And whether the pomegranates have flowered. There I will give you my love. 13 “The mandrakes give forth fragrance, And over our doors are all [kinds of] choice fruits, Both new and old, Which I have saved up for you, my beloved. ===Footnotes Song of Solomon 7:5 I.e. the long, unbound hair of a woman. ===== 아가 7장 (개요)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왕되신 신랑 그리스도는 많은 사례를 들어 자기 신부된 교회의 여러 가지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를 계속하며, 이 여인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과 이 여인과 사귀는 가운데 얻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1-9). 2. 신부된 교회는 그에게서 얻는 큰 기쁨을 나타내고 그와의 교제와 우정에 대한 자기의 소원을 표현하고 있다(10-13). 그리스도와 신자들 간에는 그와 같은 상호 존중과 애정이 존재한다. 천국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영혼들 간에 사랑의 상호교환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 교회의 아름다움(아 7:1-9)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부여하시는 칭호는 새롭다. "귀한 자의 딸아!" 이것은 시편 45편 13절과 일맥상통하는데 거기에는 "왕의 딸"이라고 지칭되어 있다. 이러한 칭호는 그녀가 새로 태어났다는 데 기인한다. 즉 위로부터 태어나고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의 작업으로 출생하였고, 왕 중 왕이신 그의 형상을 띄고 있으며 그의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여인은 결혼에 의해서도 귀한 자의 딸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녀를 처음 보셨을 때 그녀는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었지만 그는 친히 그녀와 혼약을 맺으셔서 "귀한 자의 딸"로 만드신 것이다. 이 여인은 귀인다운 기질과 참으로 고귀하고 관대한 점을 가지고 있다. 이 여인은 땅의 왕들의 귀한 자에게 딸이 되고 상속인이 된다. 자녀라면 상속자가 되는 법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타나 있다. Ⅰ.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한 풍부한 묘사가 나온다. 어떤 이들은 이 묘사를 한 사람들이 그녀의 동무인 처녀들과 이 여인에게 돌아오라고 부른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것으로 전처럼(4:1 이하; 6:5, 6)이 여인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과 이 여인에게서 얻는 자기의 기쁨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 같이 보여진다. 여기 나오는 비유는 앞서 나온 것과 다른데 이는 거룩한 아름다움이란 자연 속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란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말로 거룩함의 미를 설명하더라도 그것은 부족할 것이다. 4장에 나오는 이 여인에게 대한 찬미는 이 여인의 혼인(3:11)에 직접 관계된 것이지만 여기에 나오는 찬사는 곁길에서 돌아온(6:13)이 여인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찬사가 전자의 찬미를 능가함은 자기 백성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항구적 사랑을 나타내 준다. 그가 저들을 "그가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도록" 해 놓으신 까닭에 "그는 저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이 여인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의 아름다움을 열가지 세부 조목으로 나누어 묘사하였었다(5:11 이하). 그런데 그는 그에 못지않는 사례로 이 여인을 묘사하고 있으니 이는 그가 존경과 애정에 있어서 이 여인보다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존귀롭게 하는 자들을 틀림 없이 영예롭게 하실 것이며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부패를 묘사함에 있어서 선지자는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평가를 하고 있다(사 1:6).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는 교회의 아름다움이 발에서 머리까지 열거되는데 이는 사도가 본문처럼 교회를 인체에 비유하면서 말씀하듯이 "우리가 몸 가운데에서 덜 귀히 여기는, 존귀가 부족한" 지체를 "더욱 귀한 것"으로 입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고전 12:23, 24). 1. 본문에서 이 여인의 "발"이 칭찬되고 있다. 그리스도를 받드는 사역자들의 발은 교회의 눈에 아름답게 보인다(사 52:7). 그런데 여기에서 이 여인의 발이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한다.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신자들이 죄의 포로상태로부터 놓여 나와(행 12:8) "그들이 해방을 얻은 그 자유 안에 굳게 서서" 저희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징표를 보존하며 "화평 복음이 마련한 것을 저희 발에 신고" 복음의 법칙을 따라 꾸준히 걸어간다면, 그 때에는 "신을 신은" 저희 "발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도중에 부닥치는 환란들에 대비하여 잘 무장하고, 굳세게 밟으며 나아간다. 우리가 비록 선한 애정 속에서 안식을 얻고 있지 못하더라도 진지한 노력과 결의가 뒤따르고 있다면 우리 발은 "신발"로 미화되는 것이다(겔 16:10 참조). 2. "넓적다리"는 여기서 "구슬꿰미 같다"고 말해지며 그것도 "공교한 장색"이 진귀하게 만든 것처럼 생겼다고 표현된다. 이 말씀은 예배소서 4장 1, 6절과 골로새서 2장 19절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둔부나 무릎(이들은 "넓적다리의 연결부위"이다)이 인체로 하여 큰 힘을 쓰게 하고 운동하게 하듯이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은 "마디와 힘줄"로써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교회의 관절들이 거룩한 사랑과 단결과 성도들의 교재로 굳게 결합되어 있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그 교회는 아름답다. 신자들이 선량한 원칙에서 경건하게 행동하며, 그들의 전반적 교제가 꾸준하고 규칙적이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의무라 생각될 때는 쉽사리 뛰어 든다면, 그 "넓적다리는 구슬꿰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3. "배꼽"은 여기에서 둥근 컵이나 "잔"에 비유되고 있다. 이것은 철철 넘치던 다윗의 잔처럼(시 23:5)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얻기를 원하는 술 곧 기분좋은 "포도주"가 가득히 부어져 있고, 좋은 모양의 잔과 같아서 아직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한 아기의 무참한 모습 같지는 아니하다(겔 16: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배꼽의 건강"(우리 성경에는 "네 몸에 양약")이 된다고 한다(잠 3:8). 영혼에 그 경외심이 부족하지 않을 때에는 "배꼽에도 좋은 포도주가 가득 부어져 있어 부족하지 않다." 4. "허리"(이 책에서는 "배")는 창고 안의 "밀단 같구나." 아마 밀단은 과시하기 위해 쌓아 놓고 꽃으로 장식해 놓는 때도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밀"은 유용하고 "백합화"는 아름답다. 우리 몸에도 유용한 지체가 있는가 하면 장식용 지체가 있듯 교회에도 유용한 것과 장식적인 것이 모두 다 있다. 온 몸은 "배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그것은 신자의 영적 번영과 영혼의 건강한 체격, 이 모든 것이 양호한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5. "두 유방(가슴)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같다"(3절). 교회의 배에서 태어난 자들은(사 46:3) 교회의 위로의 젖가슴을 빨고 양육되며 태중에서는 배꼽으로 영양분을 섭취하였다. 이 비유는 4장 5절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6. "목"은 앞서 "다윗의 망대"에 비유되었는데(4:4) 여기에서는 매우 희고 귀한 "상아탑"에 비유되고 있다. 성도들의 신앙은 목과 같아서 그들은 이 신앙에 의하여 그들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연결된다. 믿음으로써 활용하는 여호와의 성호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강성한 난공불락의 망대와 같은 것이다. 7. "눈"은 "헤스본에 있는 못"이나 예루살렘 또는 헤스본의 "문 곁"의 양어장 같다. 헤스본은 많은 여인들이란 뜻의 "바드랍빔"(Bathrabbim)이라 불리웠는데 이는 통행인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신자의 오성과 의도는 이들 연못처럼 깨끗하고 맑다. 죄를 보고 슬퍼하는 눈은 샘과 같으며(렘 9:1) 그리스도께 아름답게 보인다. 8. "코"는 "레바논 망대" 같고 아마 얼굴은 "부싯돌 같이"(사 50:7) 굳세어서 그 망대가 금성 철벽 같듯 두려움을 모른다. 그래서 이것은 교회의 큰 아량과 거룩한 용기를 의미하거나(딴 사람들의 견해처럼) 동물들이 신기하게도 냄새로 물건을 구별하듯이 다른 일들을 식별할 수 있는 영적 총명을 의미한다. 이 "망대는 다메섹을 향하고 있다."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이니 이 말씀은 교회가 자기 원수들을 당면하고 있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담대함을 뜻한다. 9. "머리"는 바다 가까이 있는 아주 높은 "갈멜산 같다"(5절). 신자의 머리는 "자기 원수들 위에 들리어져 있다"(시 27:6). 갈멜산 꼭대기가 하늘을 향해 찌를 듯이 서 있는 것처럼 낮은 지역의 폭풍우를 초월하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초월하면 할수록 우리는 천국으로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욱 안전하게 되고 더욱 청정하게 되며 주 예수께서 보시기에도 더욱 사랑스러워지게 된다. 10. "머리털은 자주빛 같다"고 말해진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눈에 비치는 신자의 보편적 사랑스러움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눈에는 "머리털"까지도 혹은(어떤 자들의 해석대로) "머리털"에 꽂힌 머리핀까지도 귀엽게 보인다. 혹자는 "머리와 머리털"을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로 이해한다. 그들이 만약 그들의 의무 수행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그들은 교회의 아름다움에 많은 보탬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는 주홍색 같고(이렇게 해독하는 자도 있다) 머리털은 자주빛이 있다." 이 두가지 색은 위인들에게 사용되는 빛깔인 것이다. Ⅱ.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를 받아들이실 때 얻는 만족감이 이와 같이 미화되고 장식되어 있다. 그가 보시기에 이 여인이 만약 그렇게 아름답다면 이 여인(교회)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여자이다. 그가 이 여인에게 아름다움을 입히셨듯 이 아름다움을 진실로 가치있게 만드는 것도 그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예외를 인정치 않는 재판관이시기 때문이다. 1. 그는 자기땅의 거주지역에서 즐거워하시면서 자기 교회를 바라보기를 기뻐하셨고 자기 교회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셨다. "왕은 그 방에 갇혀서"(우리 성경에는, "그 머리털에 매여서")떠날 수가 없구나. 이 말씀은 시편 132장 13, 14절과 147장 11절로 설명된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한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과 교제하는 방들을 그토록 기뻐하신다면 그들은 그 방들을 더욱 더 기뻐할 만하며 "천년보다 그 곳에서의 하루를 더 낫게" 여길 만하다. 2. 그는 자기 교회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치못하였다(6절).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우며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이 말은 이런 뜻이다.) "너는 그토록 아름답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입혀 준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아름답게 되었다." 거룩함은 표현할 길이 없는 아름다움이며 주 예수께서는 놀라우리만치 그 아름다움을 기뻐하신다. 그것의 외적인 모양은 어여쁘며 그 내적인 기질은 즐겁고 아주 유쾌한 것이어서 그가 이에서 얻는 만족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나의 극히 사랑하는 자야!" 너는 "쾌락하게 하는구나." 3. 그는 자기 교회와의 교제를 지속하기로 작정하였다. (1) "종려나무 가지"를 잡듯 이 여인을 "잡겠다"는 것. 그는 이 여인의 "키"를 "종려 나무"에다 비하고 있다(7절). 완전히 균형을 잡힌 이 여인을 보면 종려나무처럼 그렇게 쭉 뻗고 굳센 것처럼 보인다. "종려나무"를 관찰해 보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을 때 가장 무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교회도 그렇다. 교회도 고난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증가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지는 승리의 상징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그 그늘을 즐기기 위하여 종려나무에 올라 가리라(8절). 그리고 그 가지를 잡고 그 아름다움을 관찰하리라." 자기 백성을 총애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신 말씀을 실행하실 것이다. 우리는 그가 그 일을 꼭 행하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인자하신 의도가 결코 땅에 떨어지도록 버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의 "가지들을 붙잡으시며" 그들이 어리고 연할 때 일찌감치 그 가지들을 잡으신다면, 그는 계속하여 그들을 잡고 놓지 않으실 것이다. (2) 그 열매로 자기의 심신을 상쾌하게 하시겠다는 것. 그는 이 여인이 "유방"(자기를 향한 그녀의 경건한 애정)을 극히 맛난 열매인 "포도송이"(우리 성경에는 "열매송이")에 비유하고(7절), 또 그것을 반복하고 있다(8절). 그것들은 (즉 그들은 내게 있어서) "심령을 기쁘게 하는 포도송이 같을 것이다." "내가 종려나무에 올라온 이상 네 은혜는 작동될 것이며 고조될 것이다." 자기 백성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은 저들의 영혼 속에 거룩한 하늘의 불을 점화시키며 그렇게 되면 "유방(가슴)은 포도송이 같이 될 것이다." 그것은 저들 자신들에게는 보약이 되며 그리스도께는 기뻐 받으시는 열매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으며" 아직도 새로운 생명의 숨길을 불어 넣어 주고 계신다. 그 이후로 인간의 "콧김"은 "사과"나 귤 "냄새" 같아서 즐겁게 하는 것이요, 소생하게 하는 것이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노아의 제물로부터 "그 달콤한 향기를 흠향하셨다"(창 8:21). 그리고 "끝으로 내 입(혹은 "입천장")은 가장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9절). 이 여인의 영적 미각과 기호(嗜好)는 교회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하는 말씀으로서 바깥쪽의 치아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입 천장"으로부터 나오며 이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어울리도록 피차 "말할" 때에는 "여호와께서 경청하시며" 기꺼이 "들으신다"(말 3:16). 이 포도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매우 맛이 좋고 그 맛은 기분을 좋게 한다. 이 포도주는 "미끄럽게 흘러 내린다." 그것은 "곧장 내려간다"(난의 주석은 그렇게 해독한다). 또한 그것은 올바르게(우리 성경에는 "순하게") 내려간다"(잠 23:31). 감각의 즐거움은 육체의 구미에 좋은 것 같고 미끄럽게 내려가지만 때로는 탈이 나기도 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에 비해 본다면 거칠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즐거움인 것이다. 은혜로운 영혼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의 포도주보다 더 "미끄럽게 흘러 내리는 것"은 없다. 2) 그것은 또한 효과가 탁월한 활력제이다.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는 자기 백성들을 소생시키며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신다. 즉 "자는 자(탈수증으로 거의 기절하려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하는 강한 포도주와 같은 것이다. 회개치 않은 죄인은 자는 자이다. 성도들도 때로는 졸며 맥이 풀리고 반쯤 자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은 영혼 속에 생명과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실 것이며, 마음이 이와 같이 충만하게 되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사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업을 방언으로" 말하였다(행 2:10, 12). "과음으로 술취하기를" 반대하고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은 자들은 "시와 찬송가로 화답"한다(엡 5:18, 19). 그리스도께서 자기 연인의 출현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 사랑의 감미로움을 이처럼 칭찬하고 있을 때 이 여인은 "나의 사랑 하는 자를 위하여"란 말씀을 괄호치듯 삽입해 넣은 것 같다. "내게 즐겁고 고귀한 점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이 내 사랑하는 자에게서 유래되었듯 그것은 또 그를 위해서 존재할 뿐 입니다." 우리의 선한 애정과 봉사가 모두 그를 위하고 그의 영광을 위해 바쳐질 때에만이 그는 그것을 기뻐하신다. ------ VI. 분별력 있는 신자들에게 변호받는 신부 (아 7:1-5)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아 7:1-5) A. 이 본문은 “그 술람미 여인에게 뭐 특별한 게 있는가?”라고 비꼬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먼저, 진실한 신자들이 신부를 변호해 주게 된다(아 7:1-5).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직접 신부를 변호하시고, 신부에게 갑절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부어주실 거라는 약속을 주신다(아 7:6-9). 성령님은, 항상 진실한 자들을 세우사, 주님을 헌신적으로 좇는 주의 신부들을 변호하게 하신다. B. 진실한 자들은, 예수님이 신부에게 주신 많은 확증들을 잘 분별하는 자들이다(아 4:1-5). 신부가 예수님의 10 가지 미덕(성품)을 찬양했던 것처럼(아 5:10-16), 이들은 신부 안에 있는 10 가지 미덕(성품)을 칭찬하게 된다. C. 아 7:1-5 에서는 신부의 10 가지 미덕을 확증해 주는데, 이것을 아 4:1-5에 나오는 8 가지 신부의 미덕과 비교해도 좋다. 비교해 보면, 명확하게 차이나는 부분이 약 4 군데가 나온다. 아 4:1-5 에서, 예수님은 신부의 머리부분(8 가지 중, 6 가지의 미덕이 머리를 포함한 얼굴부분임)에서 시작하여 몸을 묘사해 나가셨다. 그와는 반대로 이 본문에서는, 예루살렘 여자들이 신부의 발부터 시작, 머리부분(4 가지 미덕)으로 올라가며 설명한다. 여기에 나오는 미덕들은 ‘신부의 사역’에 관계된 미덕들로, ‘신부의 성품’에 초점을 맞춘 아 4 장의 미덕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D. 열 가지 성품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이 어떤 것을 기뻐하시고, 또 우리를 성숙케 하기 위해 어떤 것을 바라시는 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본문은 ‘거룩함과 열매를 위한 실제적 정의’들을 보여준다. E. 아 7:1-5 은 예루살렘 여자들의 고백이며, 아 7:6 은 예수님의 고백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를 “귀한 자(왕)의 딸”이라 부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가서 전체에 걸쳐 신부를 “내 사랑,” “나의 신부”라 부르신다. 아 7:5 에서, 예수님은 (1인칭이 아닌 3인칭) “왕”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아 7:8 에서 예수님은 1-5 절과는 다르게 주격의 변화를 주어 “내가”라는 1인칭을 사용하신다. F.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를 “아름답다”라고 선포하면서, 신부의 고귀한 품성, 또는 왕족에 걸맞는 성품을 지적하는 ‘귀한자의 딸’이라고 부르며 신부를 변호한다. 거듭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왕족의 혈통’을 갖게 된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아 7:1) G. 신발을 신은 신부의 다리는 ‘전도’를 말한다. 전도의 성공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표징중의 하나다. 우리의 발은 복음을 예비하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엡 6:15). ‘좋은 소식(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사 52:7). .....우리의 발이 밟는 곳은 우리의 ‘기업’이 된다(여1:3). 신발은 ‘부와 명예’를 말한다(눅 15:22). 고대에 가난한 자들은 신발이 없었다. 맨발은 수치와 가난, 굴욕을 상징했다. H. 신부의 ‘넙적다리,’ 또는, 다리는,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신부의 삶을 받쳐주는 ‘힘’을 말한다. 예수님의 다리는 ‘화반석 기둥’같다고 했다(아 5:15). 넙적다리가 ‘둥글다’는 것은 신부에게 힘을 전달해 주는 ‘강인한 근육’을 말한다. .....운동선수와 같은 강인한 근육은 수많은 단련을 통해 발달된다. 그렇기에, 신부의 강건한 신앙의 발걸음은, ‘공교한 장색(장인)이 만든 구슬꿰미(보석들)’처럼 귀한 것으로 존경받는다.....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아 7:1) I. ‘배꼽’은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서 자양분을 공급받는 생명줄이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내면의 삶’이 자라나는 시간, 즉, 주님 안에 우리의 모습을 형성해 나가는 세월을 가리킨다..... ‘둥근 잔같은 배꼽’은 건강한 배꼽으로, ‘영양실조’와는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다.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은 풍족한 영양상태를 말한다. 신부는 균형잡힌 ‘영적’ 식단을 통해 건강한 삶을 위한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좋은 영적 기반’을 말한다.....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아 7:2) J. 예루살렘 여자들은 신부를 ‘다가오는 추수에 예비된 자’로 본다. ‘밀단’은 추수시기에만 생기는 ‘풍성한 밀’이다. 신부는 ‘풍성한 수확’을 ‘임신한(커다란 허리)’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신부는 백합화로 두른 추수의 밀단을 ‘임신’했다. 신부에게 나올 추수(아기)는 ‘정결함과 거룩함’으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2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아 7:2) K. 유방은 ‘다른 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유아는 엄마의 젖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신부는 자신이 낳은 ‘추수’를 양육할 준비가 되어있다. .....늙어서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젖과는 대조되는, 신부의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한 살도 안된 어린 사슴) 같다고 묘사되었다. 사슴이 ‘쌍태’라는 것은, 신부에게 타인들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이 ‘갑절’이나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다른 이들을 양육할 능력이 아직 없는 ‘어린 누이(미숙한 자)’ (아 8:8)와도 대조된다.....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아 7:3) L. 목은 성경적으로 승복하거나, 또는 반대로, 버티려는 ‘의지’를 말한다. 버티며 저항(대적)하는 목은 ‘교만’을 의미한다(사 3:16). .....신부는 ‘귀하고 비싼 상아 망대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신부의 결단은 상아 망대와 같이 귀하며, 자신을 영적으로 보호하는 결단이다.....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아 7:4) M. 눈은 ‘주님의 계시를 받는 능력’을 말한다(엡 1:18). 신부는 날카로운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아 1:15; 4:2, 9; 6:5). 아 4:1 에서, 예수님은 신부의 눈을 ‘비둘기의 눈’으로 비유하시면서 신부의 ‘순결함과 충성심’을 말하셨다. 여기서, 신부의 눈은 ‘헤스본의 연못’과 같다. 이 연못은 진흑탕이 아닌, 맑고 투명한 연못이었다. ....[늘 맑고 고요한 성령의 생명수 흐름 안에서] 주님의 계시를 뚜렷하게 보고 깨닫는 것이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영적 성장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빌 3:8-10).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우리는 다른 해석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한 때 귀족의 성이었던 헤스본에서, 바드랍빔 문은 맑은 물을 가진 휴양지였다(민21:25-26).....4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아 7:4) N. 코는 ‘분별력’을 말한다. 망대는 방위/안보를 제공한다. 신부의 코는 시리아(이스라엘의 최대 강적)의 수도인 다메섹을 향한 방위용 망대와 같다. 레바논은 유다왕국 북쪽에 위치해 시리아를 접하고 있었다. 신부는 자신의 최대의 적이 누구인지를 잘 분별한다.....4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아 7:4) O. 신부의 머리는 ‘생각의 삶’으로, 아름다운 갈멜산과 같이 강력하다. 신부의 머리는 ‘고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갈멜산과 같이 아름답다(사 35:2). 우리의 생각은 영적 전투와, 특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5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아 7:5) P. 머리털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들의 머리털은 그들의 헌신을 보여주는 외적 표징이었다(민 6 장). 그래서, 나실인들은 머리털을 자르지 않았다. 자주 빛같은 신부의 머리털은 ‘왕족(귀한 자)’을 말한다. 신부의 헌신은 ‘왕의 결단’과 같다(NAS 역은 “그 왕(되신 예수님)”라고 번역함). Q. 신부의 헌신은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주님의 사랑은 너무도 강력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연약한 백성들에게 자신을 매이게 만든다. 그러나, 백성들을 향한 사랑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주님께는 (연약함이 아니라) 영광이다. 주님의 놀라운 능력은, 주님보다 훨씬 미천한 자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매어”있다. 모든 권세를 다 소유한 분이시지만, 그분의 신부에게는 아낌없이 자신의 마음을 다 내어 주시는 분이다. R. 주님의 사랑이 하나님을 그분의 백성들에게 매이게 만든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대표적인 중보기도자 다섯 명을 보라: 다니엘, 노아, 욥, 모세, 그리고 사무엘 (겔 14:14; 렘 15:1; 출 32:7-14). VII. 신부를 변호하시는 예수님 (아 7:6-9)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 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 (아 7:6-9) A. 예수님이 신부를 직접 변호하신다 (주격이 아 7:6 에서 바뀌었다). ‘행순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었다, “술람미 여인이 도대체 누구길래 모두다 그 여인한테만 관심을 쏟는가?” B. 예수님의 마음은 신부에게 빼앗겨 있으시다(아 7:5).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면 잘 알 수 있다(6절). 예수님은 그 분의 백성들을 ‘아름답고 기쁨을 주는 존재’로 바라보신다. 주님의 열매는 신부에게 달고도 즐겁다(아 1:16; 2:3). 그와 같이, 신부의 열매도 주님께 즐겁다(아 4:16-5:1). C. "사랑아"는 신부를 향한 하나님의 열정을 표현한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요 15:9; 17:23).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사랑이다(엡 3:18).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사랑은 주님께 ‘포도주’보다 더 위대하다(아 4:10). 다시말해, 주님을 향한 백성들의 사랑, 이보다 예수님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우리가 연약할 때에도, 죄와 씨름 할 때에도, 우리의 음성은 주님께 달콤하며, 우리의 얼굴은 주님께 사랑스럽다(아 2:14). D. 아 7:1-5 에서 예루살렘 여자들이 선포한 것 처럼, 예수님도 여기서 신부의 영적 성숙을 확증해 주신다. ‘종려나무’는 ‘승리와 정복’의 표징이요(계 7:4), ‘성숙함’을 보여주는 그림이다(렘 10:5). 종려나무는 가뭄속에서도 번창하는 데, 그 이유는 뿌리가 수분을 찾기 위해 지면아래 매우 깊숙한 곳까지 뚫고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려나무는 예외적으로 곧고 높이 자란다. 매우 강력한 강풍이 불어도 종려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 신부의 유방, 즉, 양육하는 능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종려나무 열매 송이’ 같다.....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아 7:7) E. 예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사로 잡으리라,” 즉, 백성들을 통해 주님의 임재를 크게 나타내시리라 약속하신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풀어내는’ ‘가지’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예수님은, 주의 종들을 사로잡기 위해 종려나무 위로 “올라 간”다고 약속하신다.....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아 7:8)...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요 15:5) G. 주님은 백성들을 “사로 잡으실” 때, 신부에게 세가지 중요한 위임을 부여하신다. 8 네 유방은 포도 송이 같고 네 콧김(호흡)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최고의)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아 7:8-9) F. 첫번째 위임: ‘성령님의 권능 충만한 그 말씀’으로 다른 이들을 양육하라. ...신부(유방)는, 더 충만하게, 더 깊이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양육해야 한다. G. 두번째 위임: 신부의 향기로운 콧김(호흡)으로, ‘사과’같이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어 주거라.. 신부의 호흡은 ‘내면의 삶’을 말한다. 사과는 활력을 불어 넣어 주는 (새롭게 해주는) 것을 뜻한다(아 2:3). 이것은, 성령으로 다른 이들을 ‘새롭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22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 20:22) H. 세번째 위임: 하나님과의 친밀함, 그 포도주의 어떠함과 달콤함을, 삶의 증거와 신부인 네 고백적 증거로 나타내어 <주 앙망하는 모든 이들마다에게 나눔 통해>공급하라.. 신부의 입, 즉,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하나님께 ‘최고의 포도주’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가서에 걸쳐서 입은 ‘입맞춤’을 말한다(아 1:2, 4:3, 5:16). 예수님과의 친밀감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위해 일하시는 성령님의 ‘최고의 역사’다. I. 주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최고의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깊은 교제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J. 예수님은 신부의 입(천장)이 성령님의 ‘최고의 포도주’라고 말씀하셨다. 입천장은 입 구개, 또는, 입맛을 가리킨다. 히브리어로 천장, 또는 구개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이것은 신부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을 뜻한다. 이것은 최고의 포도주, 즉, 예수님께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아 4:10). ...10 …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아 4:10) K. 포도주는 성령님의 ‘영향력’을 말한다(엡 5:18). 하나님께, 최고의 포도주는 우리와의 ‘친밀감’의 포도주다. 삼위일체의 교제 다음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L. 하나님 나라의 모든 역사가운데, 최고의 포도주, 즉, 성령의 최대 역사, 또는 예수님이 가장 즐기시는 포도주는 ‘성숙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교회다(요 17:26)....이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 (요 17:26)....3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7) ---------- [아4:1-5]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영적 순결/순복]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구나[=말씀 그대로 소망하며 믿음 견지함 통해 이루는 일편단심의 완전한 순복] *2. 네 이는[말씀을 먹고 영으로 해석-적용함으로써 그 영양분 으로 조성됨]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마르지 않는 풍성한 말씀의 젖으로 스스로 딱딱한 말씀 먹을 수 없는 어린 자녀들을 먹임] 같구나 *3. 네 입술은 홍색 실 같고[=구속의 말씀으로 언행이 가득함] 네 입은 어여쁘고[=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늘 넘치는 생명의 순전함] *4.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견고한 의지와 절개] *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 IV.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아름다운 우리의 모습 A. 훈육의 계절(아 3:1-2)이 끝나자 마자, 주님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선포하신다. 반복을 통해 ‘아름다운 신부’에 대한 계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앞에 ‘거룩한 나팔’을 불면서 말씀하신다, “보라! 나의 어여쁜 자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우리는 주님께 사랑받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계시로 변화된다. 1 내 사랑 너는 어여쁘(아름답)고도 어여쁘다 ⋯(아 4:1) B. ‘연약하지만, 하나님께 아름답다’라는 계시는 순수하고 진실한 자가 하나님 은혜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기본진리다. ‘어여쁘다’라는 단어는 대부분 성경에서 ‘아름답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도 아가서의 핵심 주제에 속한다 (아 1:8, 15, 16; 2:10, 13, 14; 4:1, 7, 10; 6: 4, 10; 7:1). C. 아가서에서, 우리가 소유한 아름다움에 관한 주제 전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D. 우리를 사랑하사 기쁨이 충만하신 왕(아 3:11)이시며, 우리를 아름다운 존재로 보시는 예수님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해 모든 희생을 다 감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아무리 힘든 ‘장애물의 산’을 직면해도 능히 이겨 낼 수 있는 권능을 갖게 될 것이다. E. 이제, 예수님은 신부의 삶에 “피어나는 미덕” 8 가지를 확신시켜 주신다(아 4:1-5). 각 성품은 아주 ‘작은 씨앗’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확증을 통한 권면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순종의 씨앗을 확증시켜 주심으로, 사단의 고소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F. 예수님은 신부의 삶을 8 가지 면에서 축복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사, 그 이름대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신다. 여기 본문에 나와있는 구절 하나 하나 모두가 우리의 심령을 겨냥한 하나님의 ‘시적인 거룩한 로맨스’다. 8 가지의 미덕은 우리에게 나눠주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아 3:11)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예수님도 기뻐하시지만, 우리 자신도 기쁘게 된다 . G. 술람미 여인은 본래 염소를 치고, 포도원을 지키는 양치기 소녀이다. 그래서, 왕은 신부에게 친숙한 ‘농경 용어’를 사용한다. 본문에 나오는 상징들은 성경을 통해 해석한다. H. 왕은 여인에게 ‘산’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인은 산이 아닌, 성(도시)으로 가겠다고 대답한다(아 3:2). 그러나, 아가서 4 장 끝부분 까지, 신부는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대답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점차 성숙하게 될 신부의 모습을 잘 아시기에, 신부의 대답을 높이 평가하신다. I. 100 % 온전한 순종을 위해, 우리의 삶에 세가지가 협력한다(아 4:6). 거룩한 훈육(아 3:1-2)과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아 3:6-11), 그리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계시이다(아 4:1-5). V. 눈: 영적이해와 계시 (아 4:1) 1 ⋯ 네 눈이 비둘기 같고 ⋯ (아 4:1) A. 눈은 ‘영적 통찰력’을 말한다. 바울은 ‘마음의 눈’을 언급했다(엡 1:18). 눈으로 보는 것은 바울의 삶에 최우선 순위였다. ‘보는 것(깨달음)’은 영적 성장의 출입구가 되기 때문이다(빌 3:8-10; 고후 3:18). 순종은 깨달음을 통해 시작된다. 대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도 변하게 된다. B. 비둘기의 눈은 ‘순결’과 ‘충성’을 말한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성경에서 그려진다. 비둘기는 짝이 죽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비둘기는 충실함으로 알려져 있다. 비둘기는 두 사물을 동시에 볼 수 없으며, ‘주변 시야’도 없다. 이것은 ‘일편단심’을 말한다. 잠간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안정을 누리다가, 타협과 죄책감으로 괴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한 일편단심,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신부는 정욕과 실패, 또는 성공을 바라보지 않으며, 오직 주님만을 바라본다. C. 신부는 겸손한 자세로 이 계시를 받아들인다. 신부는 베일뒤에 “숨는다.” 즉, 신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 있다. 베일 뒤에 가려진 삶은, 하나님 안에서의 ‘은밀한 삶’으로, 개인적인 삶의 부분을 말한다. 풍부한 계시를 가지고 있던 바울도 교만의 유혹을 받았다(고후 12:7-9). 그는 지식이 종종 교만을 낳는다고 가르쳤다(고전 8:1). VI. 머리털: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아 4:1) A. 신부의 ‘머리털’은 하나님를 향한 신부의 ‘헌신’을 말한다. 나실인의 머리털은 그들의 거룩함, 또는 헌신을 나타내는 외적 표징이었다(민 6 장). 나실인의 맹세를 취한 자들은 머리털을 자를 수 없었다. 그러나, 삼손은 머리털을 잘라 맹세를 어겼으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잃게 되었다. 머리털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한다. 여인의 머리털은 영광을 나타낸다고 바울은 말하면서,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복과 헌신을 비유로 말했다 (고전 11:5, 6, 15). 1⋯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아 4:1) B. 무리 염소와 같이 술람미 여인은 ‘위엄스럽게’, ‘위풍당당’하게 걷는다. 29 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1 사냥개와 수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 C. 우리는 당당하게, 존엄을 지닌 거룩한 지혜로 주님을 향한 헌신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헌신이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 시키려는 육적 열심으로 더렵혀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D. ‘위엄이 찬’ 신부의 머리털, 즉, 신부의 헌신은 성경말씀의 ‘양식’으로 잘 채워진 결과로 나타난다. 길르앗 산에 있던 염소들은 풍성한 먹이를 먹고 살았다. 그곳은 땅이 풍성하고, 비옥해서 염소들에게 풍성한 먹이를 제공하던 유명한 곳이었다. 신부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배부르게’ 된다. VII. 이: 말씀에 뿌리를 둔 삶 (아 4:2) 2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깎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 같구나(아 4:2) A. ‘이’는 고기를 씹어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유아는 이가 없어 고기를 씹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유아들’은 고기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다(고전 3:1-2; 히 5:12-14). 여기서는, 고기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신부의 능력을 말한다. 농경 용어의 표현을 통해 신부의 이를 서술하고 있다. 신부의 이는 강하고, 풍성하며, 효과적이다. B. 털깎지 않은 양의 양모는 골고루 자라질 않는다(불균형). 길이가 다른 양모는 ‘육적 열심’을 말한다. 구약시대 사독의 제사장들은 가는 베옷을 입어야했다. 양모는 땀을 내기때문에 입는 것이 금지 되었다(겔 44:15-18). 육적 열심은 반드시 성령의 주권으로 다스려져야 한다. C. ‘목욕장에서 올라온다’는 것은 더러움에서 깨끗케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의 이는 마치 목욕장에서 올라온 양과 같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씻기신다(엡 5:26). D. 말씀에 온전히 거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풍성한 영향력을 끼칠수 있게 된다. 신부의 이는 마치 털 깍인 암양, 곧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이 각각 쌍태를 낳은 양과 같다. 신부의 사역은 영적 불모가 아닌,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쌍태를 낳는다는 것은 ‘풍성한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는 목욕장에서 바로 나온 양과 같이 ‘정결하고 순결한 삶’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깨끗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신부의 ‘헌신’을 말한다 딤전 4:6-16). 아가서 4:1-2 은 신부의 눈과 머리털, 이, 그리고 두 뺨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표현들은 아가서 6:5-6 에도 나오게 된다. VIII. 입술: 거룩과 기름부음의 언어사용(아 4:3) 3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아 4:3) A. ‘입술’은 ‘언어사용’을 말하며, ‘홍색’과 같은 말은 사람들에게 ‘구속(redemption)’을 주는 말을 의미한다. ‘홍색실’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상징한다. 정탐꾼들이 여리고에 도착했을 때, 라합은 구속함을 얻기위해 창문에 홍색줄을 달아 놓았다(여 2:21). 모세는 홍색 양모에 송아지의 피를 묻혀 사람들에게 뿌렸다(히 9:19). B. 덕을 세우는 말과 함께 이 ‘홍색실’은 우리 입술에 있어야 한다(골 4:6). 건전하면서도 덕을 세우는 언어사용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함께한다는 증거다(엡 4:29; 야 2:3). IX. 입: 하나님과의 친밀감 (아 4:3) 3⋯ 네 입은 어여쁘고 ⋯ (아 4:3) A. 아 1:2 에서, 입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말하는 입맞춤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우리가 갖는 예수님과의 교제는 주님 보시기에 사랑스럽다. 아가서에서, 입술은 우리의 언어사용을, 입은 친밀감을 말한다. 신부에게 확증을 주는 왕은 고루하게 반복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B. 예수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릴 때, 그것은 마치 ‘연약한’ 사랑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사랑이 사랑스럽다고 공포하시면서, 우리와의 친교를 기뻐 하신다. X. 두 뺨: 감정의 메이크업(아 4:3) 3⋯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쪽 같구나(아 4:3) A. 두 뺨(뺨 또는 얼굴)은 사람의 ‘감정’을 드러낸다. 히브리어로 이 단어는 뺨 또는 얼굴, 용모로 번역될 수 있다. 대부분 번역본들은 ‘뺨’으로 해석한다. 사람의 감정은 표정, 또는 뺨을 통해 표현된다. 분노, 기쁨, 즐거움, 또는 슬픔의 감정은 표정을 통해, 두 뺨을 통해 나타난다. 그래서, 뺨은 사람의 감정을 비추는 창문이다. B. 신부의 거룩한 감정들은 하나님께 마치 달콤한 ‘석류 한쪽’과 같다. 석류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아주 달콤한 과일에 속했다. 이 거룩한 감정의 표현은 대제사장의 제의(의복), 또는 에봇에 잘 나타나 있었다. C. 석류를 반으로 쪼개 안을 보면 색깔이 붉은 홍색이다. ‘붉은 색’은 수치로운 행동 앞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줄 아는 신부의 성향과 겸손을 말한다. D. 매춘부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다. 홍색을 띈 얼굴(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부끄러움에 예민하다는 것을 말한다. ‘베일 뒤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은밀한 삶’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쇼’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안에 겸손하고 온유하게 지내는 신부의 은밀한 삶을 말한다. XI. 목: 결단의 의지(아 4:4) 4 네 목은 군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일천 방패 용사의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같고 (아 4:4) A. 성경에서, 목은 보통 뻣뻣한(저항하는), 또는 복종을 의미하는 ‘의지’를 말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원수의 목을 발로 누르는 것은 원수의 굴복을 상징했다. B. 신부의 의지는 하나님앞에 확고부동한 마음을 지녔던 다윗과 같다(시 57:6). 신부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C. 다윗의 망대들은 예루살렘 성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높은 곳에 위치해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신부의 선택과 의지는 다윗의 망대처럼 강력하다. D. 병기고는 전쟁을 대비해 무기들을 저장하는 곳이다(느 3:19,25). 하나님께 순종 하고자 하는 ‘결단의 의지(뜻)’는 사단의 왕국을 대적하기 위해 준비해 놓는 병기고와 같다. ‘둥근 방패’는 작고 둥글며 팔에 부착하는 방패였다. 1000 개의 방패는 막강한 방어선을 구축해 원수로 부터 ‘안보’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신부의 ‘의지’는 전투에 뛰어난 1000 명의 전사들이 지닌 방패와도 같다. 원수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제공한다. 이것은 우리를 보호하는 ‘믿음의 방패’다(엡 6:16). E. 예수님께 순종하려는 불굴의 결단은 영적 승리를 위해 우리가 꼭 지녀야 하는 필수요소다. 우리는 ‘순종의 의지’를 계속 연습해야 한다.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순종을 강요하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XII. 두 유방: 타인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아 4:5) 5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아 4:5) A. 두 유방은, 엄마가 아기를 양육하듯, 타인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노루 새끼는 어린 동물이다. 신부의 두 유방은 ‘쌍태 노루 새끼’ 같다. 이것은 우유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먹이며 양육할 수 있는 ‘갑절의 기업과 능력’을 말한다. 노루 새끼와 같은 두 유방은 마르지 않는 엄마의 모유를 말한다. 나이가 들어 모유의 능력이 없어진 여인과 다르다는 뜻이다. B. 술람미 여인의 사역은 ‘순결’의 백합화 가운데 꼴을 먹는 노루새끼와도 같다. 주님은 신부에게 ‘은 장식’을, 즉, 사역을 위해 신부를 양육해 주시리라 약속하셨다(아 1:10). --------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교회의 화답(아 7:10-13) 이 말씀은 신부된 교회, 그리고 믿는 영혼이 앞에서 친절하게 표현된 그리스도의 사랑에 화답하여 드리는 말씀이다. Ⅰ. 이 여인은 여기서 그리스도께 대한 자기의 관계와 그 안에서 얻는 자기의 권익을 기뻐하며 그의 이름을 종일토록이라도 할 것이다. 기쁨과 거룩한 환희에 얼마나 젖어들었으면 이 여인이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10절). 나는 내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에게 모든 것이 바쳐진 존재며 그의 소유가 되는 것이로구나" 라고 고백할까! 만약 그리스도를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분"이라고 진심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의 것이며 그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다(시 119:94).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은혜로운 발견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우리를 붙잡으심을 크게 기뻐하게 하며 우리에게 대한 그의 주권과 그의 소유를 감지덕지하게 여기도록 한다. 이것은 의무의 속박인 동시에 은혜의 샘이 된다.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교제는 그에게 대한 우리의 이익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여인은 자기가 그의 소유이며 그를 섬기기 위한 존재임을 자랑스러이 여기고 바로 그 점이 자기의 명예라고 간주하면서 "그가 나를 사모한다." 즉 그는 자신의 남편이다라는 사실로 위안을 얻고 있다. 이 말씀은 창세기 3장 16절에 나타난 부부 관계에 대한 완곡된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택하신 자존자들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 오셨을 때 그는 택하신 남은 무리들에게 대해 강한 사모의 정을 품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 사업을 추구하시려고 그는 어려움과 고통을 감수하셨다. 그들을 위해서 그가 받아야할 세례는 피의 세례였으며 그것을 이루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가! (눅 12:50) 그는 "시온을 거소로" 사모하셨다. 누구에게 멸시를 당하건 간에 그리스도의 사모를 받는다는 것은 신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그의 사모는 그들을 자기에게로 영접해 들이시기 위해 다시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실 만큼이나 강렬하다. 이는 그가 저희 모두를 자기와 함께 데리고 계시기를 열망하시기 때문이다(요 17:24; 14:3). Ⅱ. 이 여인은 그와의 교제를 겸손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소원하고 있다(11, 12). "나의 사랑하는 자야! 함께 산책을 가자. 그래서 내가 그대로부터 충고와 교훈과 위로를 얻을 수 있게 하며, 나의 부족한 것과 억울한 것을 자유롭게 간섭 받지 않고 당신께 알릴 수 있게 해 다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엠마오"라고 하는 마을로 내려 가고 있던 두 제자와 함께 걸으시면서 얘기를 나누셨고 마침내 그들의 "마음이 속에서 뜨거워지게"하시기까지 동행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그 사랑의 생생한 표정을 받아 그에게서 얻을 자기의 이익을 확신하게 되자 이 여인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와의 보다 깊은 교제를 갈구하게 된다. 이것은 복된 사도 바울과 흡사하니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인" 줄을 자각하고 그 지식을 더 많이 얻으려고 자꾸자꾸 원하였던 것이다(빌 3:8).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모하시는지 나타내 보이셨는데도 우리가 그를 사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만저만 배은망덕한 것이 아니다. 성별하심을 입은 모든 자들이 열심히 원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교제이다. 그가 자기 사랑을 그들에게 더욱 분명히 나타내면 낼수록 그들은 더욱 더 열심히 그것을 사모하게 된다. 감각적인 쾌락은 육체적인 욕심을 싫증나게 만들며 얼마 못가서 물리게 하지만, 영적인 즐거움은 욕구를 더욱 자극시키며 그 욕망은 "하나님보다 더 많은 것은 아무 것도 없으나 그에게 요구할 것은 많고 많아 끝이 없구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종려나무에 올라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해 이 여인은 "가자! 우리가 함께 가자"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와의 교제에 대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은 폐기되지 않는 것이며, 그 교제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촉진시키며 격려해 주는 것이다. 2. 이 여인은 이런 교제를 누리기 위해 들과 동네로 나가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와 사귀기를 원하는 자들은 세상과 세상의 열락으로부터 헤어나야 하며, 마음이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사로잡혀야 마땅한 때에 그 마음을 산만하게 하거나 그 일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분요함이 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을지"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전 7:35). 그러므로 이 여인은 여기에서 도시의 소요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우리는 영문 밖에 계신 그에게로 나아가자"(히 13:13). 고적과 은거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이삭은 명상"하고 기도하기 위해 "들로 나갔다." "네 골방에 들어가 그 문을 닫아라." 신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때는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3. 밖으로 나가 지면을 돌볼 용무가 있었기에 이 여인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와 동행하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우리는 자신의 잘못만 아니라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는 항상 우리의 우편에 계시며 그의 눈은 언제나 우리를 향하고 그의 말씀과 귀는 언제든지 우리 가까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세상 일에 종사하고 경건한 생각으로 일상적 행동을 하며 우리의 눈을 항상 주께 향하도록 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고 다닐 수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그리스도께 같이 가자고 요청할 수 없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는 아니 된다. 4. 이 여인은 때 맞추어 일어나 자기의 사랑하는 자와 같이 가기를 바란다.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자." 이것은 자기의 사랑하는 자와 사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는 이 여인의 관심을 암시한다. 우리는 정해진 때가 왔을 때 그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매우 일찍이 간" 여인(막 16:2)처럼 그곳이 "무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거기서 그를 만날 수 있는 희망만 있다면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밖으로 나가려는 자들은 늦기 전에, 아침 일찍이 그와 함께 출발해야 한다. 또 그들은 매일을 그와 함께 시작해야 하며, 그를 일찍이,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5. 이 여인은 동네에서 유숙하는 것을 만족해 할 것이다. 시골 사람들이 들일을 할 때 쉬기 위하여 지어 놓은 헛간이나 오두막집이라도 만족히 여길 것이다. 자기의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이 여인은 비록 보잘 것 없는 추운 거처일 망정 기꺼이 유숙하려 한다. 그가 임재하신다면 그런 누추한 거처도 훌륭하고 즐거운 곳이 되며 궁전과 같은 것으로 바뀔 것이다. 은혜로운 영혼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곳이라면 가장 누추한 시설에도 만족할 수 있는 법이다. 6. 자기의 사랑하는 자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가장 즐겁고 기쁜 들녘도, 특히 시골의 가장 즐거운 시기인 봄철의 들녘도 이 여인에게 아무런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이다. 신자가 만일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을 향유하지 못한다면 지구상의 어떤 즐거움도 그를 편안히 만들어 줄 수 없다. Ⅲ. 이 여인은 자기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영혼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좀 더 잘 알고 싶어 한다(12절). "우리는 포도움이 돋았는지 살펴보자." 우리 자신의 영혼은 우리의 포도원이다. 이 포도원에는 포도나무와 석류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들은 잘 가려서 택해 놓은 유용한 나무들이며 또 그래야만 된다. 우리는 이 포도원의 관리인들이다. 그러므로 자주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보아야 하며 우리 자신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포도에 움이 돋았는지." 우리의 은혜가 활동하며 역사하는지, 우리가 의로운 열매를 맺는지, 우리의 열매가 풍요로운지 어떤 지를 찾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 우리는 "연한 포도가 나타나며"(우리 성서, "꽃술이 퍼졌는지," 역자주), "석류 꽃이 피었는지" 조사해 보자. 아직까지는 어리고 연하지만 우리 안에 어떤 선한 동기와 경향이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특별한 보살핌 아래 이들이 보호되고 소중히 간직되도록 하자. 이들이 완전에 이르는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봉오리가 절단되거나 광풍에 떨어지거나 도둑을 맞지 않게 하면서 잘 재배하도록 하자.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이렇게 탐문하는 데에는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고 다니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의 임재는 봄볕이 돌아오면 동산이 소생하듯 "포도에 움이 돋고 꽃술이 퍼지게 하는" 때문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에게 입증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포도에 움이 돋고 꽃술이 퍼지는" 것을 보신다면 ─즉 만약 우리가 "주께서는 만사를 아시나이다. 주께서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라고 그에게 하소연할 수 있다면─, 만약 그의 성령께서 우리 영혼이 형통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심령에 증거해 주신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족하다. 따라서 우리가 만약 우리 자신을 잘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우리를 탐색해 보시며 시험해 보시도록 청해야 하고 그 탐색하는 일로 우리를 도와 주시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깨닫게 해 주시도록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Ⅳ. 이 여인은 자기의 시골 집에서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응대를 해드리겠노라고 자기의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더불어 잡수실 것이기 때문이다(계 3:20). 1. 이 여인은 그에게 자신의 최선의 애정을 약속하고 있다. 그녀가 그를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더라도 만약 그 마음이 전적으로 그에게 바쳐지지 않는다면 그 대접은 완전히 멸시당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나는 그 사랑의 고백을 다시 되풀이할 것이며 그 사랑의 표시로써 당신을 영예롭게 하겠나이다. 애모와 사모로 인하여 당신을 향한 내 영혼의 지향이 촉진되고 확대될 것이오며 내 마음은 거룩한 불로 당신께 바쳐질 것입니다." 2. 이 여인은 그에게 자기의 가장 훌륭한 양식을 약속하고 있다(13절). "거기서 우리는 즐거운 향기를 보게 될 것이니 이는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는 때문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의 꽃들," "사랑스러운 꽃들" 혹은 "사랑의 열매"이다. 이 합환채라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매우 즐거운 것이었으며 라헬과 레아가 그것 때문에 다툴 정도로 매우 귀한 것이었다(창 30:14). "우리는 또한 보기에 즐거울 뿐더러 먹음직도 한 것, 시골에서 나는 모든 진기한 것들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구비되었구나." (1) 열매와 은혜의 역사는 주 예수님께 즐거운 것이다. (2) 이들은 그를 위해 조심스럽게 쌓아두지 않으면 안 되며 그에게 대한 봉사와 그를 존귀하게 하는 일에 바쳐져야 하고, 우리 문 앞에 쌓아둔 물건같이 필요한 때면 언제나 우리에게 즉시 입수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요 15:18). (3) 이들 귀한 실과는 아주 다양하며 우리 영혼은 이들을 잘 저정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과일을 소유해야 하며 "새 것, 묵은 것" 할 것 없이 모든 경우에 대한 은혜를 소유해야 한다. 훌륭한 집 주인은 금년 소산물뿐만 아니라, 작년에 남은 것까지도 자기 창고에 넣어 두고 있는 것이다(마 13:52). 우리는 듣고 배우고 경험해 온 것을 그리스도께 봉사하기 위해 즉각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얻는 것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노년의 날에 대비하여 저축해 온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쌓아 놓은 것에다 새 것을 자꾸 보태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우리의 창고가 불어나도록 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철저한 준비를 갖추기" 위함이다. (4)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모든 소유나 극히 "귀한 실과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비장해 두었던 것들도 그에게 드리기에는 너무나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기꺼이 환영하신다. 그것이 더 많고 좋은 것일수록 그것은 그를 섬기는 데에 쓰여져야 한다. 그 모든 것은 다 그에게서 온 것이므로 모두 그를 위해 드려야 마땅한 것이다. ============ 1-6절, 신부의 아름다움 [1절]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넓적다리의 곡선은]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7장 전반부는 계속 신랑의 말로서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그는 신부를 ‘귀한 자의 딸’이라고 부른다.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은 참으로 귀한 자의 딸, 곧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신랑은 첫째로 신을 신은 신부의 발을 심히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옛 시대에 신은 자유인의 신분을 나타낸다. 종은 맨발로 생활하였고 자유인만 신을 신었다(눅 15:22). 성도는 신을 신은 자와 같다. 그는 종이 아니고 자유인이다. 발은 사람의 행위를 상징한다.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자유인으로서 의와 선을 행하는 성도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심히 아름답다. 특히 성도가 하나님의 복음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전도의 발걸음은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다(롬 10:15). 신랑은 또 신부의 넓적다리의 곡선을 공교한 장인의 만든 보석들 같다고 표현한다. 사람의 넓적다리는 걸음을 걷는 데 아주 중요하다. 넓적다리의 관절(고관절)이 어긋나면 다리를 절뚝거리게 된다. 사람은 선하고 바르게 걷는 걸음이 튼튼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단정하고 선하고 바르게 행할 수 있어야 한다(히 12:13). [2-3절]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혹은 배]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신랑은 신부의 배꼽을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과 같다고 표현한다. 사람의 배꼽은 어머니에게 연결되었던 탯줄의 흔적이 다. 탯줄은 생명줄이었다. 그 줄을 통해 태아(胎兒)는 어머니를 통해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는다. 성도들의 배꼽, 즉 탯줄의 흔적은 회개와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요 3:3, 5), 성도에게 있어서, 성령의 중생케 하신 은혜의 증거는 참된 회개와 믿음이다. 성도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적이 없다면 그는 중생의 표가 없는 자, 즉 배꼽 없는 자와 같다. 그러나 그가 죄를 버리고 주를 믿었다면 그는 중생의 표를 가진 참 신자이다. 신랑은 또 신부의 허리 혹은 배가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다고 말한다. 밀단은 둥글고 통통할 것이다. 그것은 아기를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리키는 것 같다. 여성의 가장 고귀한 기능은 아기를 출산하는 데 있다. 신부의 허리 혹은 배를 ‘백합화로 두른 밀단’이라고 묘사한 것은 신약교회가 많은 생명들을 잉태하고 출산할 것이며 그 일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사역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 같다. 또 신부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다고 묘사된다. 유방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교회는 어린 신자를 양육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목사들의 일차적 임무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권면하고 경계하고 위로함으로써 그들의 신앙 인격을 온전케 하는 일이다. 모든 성도는 어느 정도 비슷한 의무를 가진다. [4절]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또 신부의 목은 상아 망대 같다고 묘사된다. 4:4에서는 신부의 목이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다윗의 망대 같다’고 묘사되었었다. 목은 머리와 몸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부분으로서 성도의 믿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성도의 믿음은 생명과 같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되지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다. 또 성도의 믿음은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방편이요(롬 3:28) 세상을 이기는 힘이요(요일 5:4-5) 모든 시험과 환난을 이기는 방패와 피난처가 된다(엡 6:16). 그러므로 성도의 견고한 믿음은 상아 망대 같다. 신랑은 또한 신부의 눈이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다고 묘사한다. 4:1에서는 신부의 눈을 비둘기 같다고 묘사했었다. 그것은 그의 순결함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본문은 그것이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 같다고 말한다. 헤스본은 요단 동편에 있는 도시로 옛날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나라의 수도이었다.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의 못은 아마 맑고 잔잔하고 물이 풍부한 못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순결함과 통찰력을 상징할 것이다. 신랑은 또한 신부의 코가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다고 묘사한다. 다메섹은 북방 아람 나라의 수도이었다.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는 이스라엘 북쪽 국경지역에 세워진 망대로 이방나라의 움직임을 살피는 망대이었을 것이다. 신부의 코를 그것에 비유한 것은, 코가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를 분별하듯이, 참된 교회가 선과 악을 분별하고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5절]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신랑은 또한 신부의 머리가 갈멜산 같다고 말한다. 머리는 생각과 정신을 가리키고 갈멜산 같다는 말은 뛰어나게 드러나며 비옥하고 초목이 무성함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은 교회 혹은 성도들의 생각과 정신이 뛰어나게 드러나며 성경의 바른 지식과 기타 성령의 은사들로 가득하며 아름답게 단장됨을 상징하는 것 같다. 또 신랑은 신부의 머리털이 자주빛이 있다고 말한다. 4:1에서 신랑은 신부의 머리털이 “길르앗 산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다”고 말했었다. 이 표현은 신부의 가지런하고 단정한 머리털을 묘사한 것으로 교회의 거룩함과 순종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본문은 그 머리털이 자주빛이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신부의 머리털의 존귀한 모습을 묘사한 것일 것이다. 자주빛은 옛부터 왕들과 부자들이 사용했던 색깔이었다. 또 왕은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다고 말한다. 즉 신랑은 신부의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에 마음이 사로잡히었다. [6절]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쾌락하게 하는구나. 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그것이 그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고 말한다. 주께서는 교회를 아름답게 여기신다. 물론 교회의 아름다움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아 법적으로 거룩하고 의롭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고 또 실제적으로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점점 더 거룩해지고 흠이 없는 아름다운 교회로 단장되어 간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주 예수께서는 참된 교회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 스바냐 3:17은,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말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을 신고 바르고 단정하게 의와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참으로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중생의 표인 배꼽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잃은 영혼을 구원하는 배와 어린 신자를 양육하는 일을 잘 수행하는 유방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견고한 믿음의 목을 가져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확신하며 의심치 않았던 아브라함처럼(롬 4:17-21)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되고 또 순결하고 통찰력 있는 눈과,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는 날카로운 코를 가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 우리는 우리의 머리의 생각과 정신이 성경의 모든 진리로 바르고 뛰어나고 풍성케 되고 또 우리 모두가 주 앞에서 겸손히 순종하는 무리가 됨으로써 존귀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이루어야 한다. ##7-13절, 선한 열매, 소속, 교제 [7절]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신랑은 신부의 키가 종려나무 같다고 말한다. 종려나무는 줄기가 곧고 잎사귀가 항상 푸르고 무성한 나무이며 그 가지는 기쁨과 승리의 상징물로 사용된다(계 7:9). 성도들은 항상 곧게 하나님만 바라야 하며 교회는 많은 고난과 핍박 중에도 쇠잔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항상 성장하며 확장된다. 교회는 승리자들의 모임이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고백하였고(롬 8:35, 37), 또 그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하였다(고후 2:14). 또 신랑은 신부의 유방이 열매 송이, 즉 종려 열매나 다음절에 말한 포도송이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교회가 성숙하여 영적으로 어린 신자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기능을 잘 수행함을 가리키는 것 같다. [8절]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신랑은 종려나무에 올라가 그 가지를 잡으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열매를 따기 위함일 것이다. 그것은 주께서 교회와 밀접히 교제하시고 성도들의 열매를 기뻐하시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또 신랑은 신부의 유방이 포도송이 같고 그 콧김이 사과 냄새 같다고 말한다. 주께서는 교회가 어린 신자들을 양육하는 기능을 기뻐하신다. 또 그는 교회와의 교제 속에서 성도들이 가진 새 생명의 신선한 숨결을 느끼시며 그것을 사과 냄새같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 [9절]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같도다].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메솨림 )[부드럽게](NASB) 흘러내려서 자는 자[자는 자들]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 ‘움직이게 한다’는 원어(다밥 )는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뜻으로 설명한 사전도 있고(BDB) ‘말하게 한다’는 뜻으로 설명한 것도 있으나(KJV, Langenscheidt), 입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말하게 하는 것이므로 본문에서는 뜻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고대의 여러 역본들은 “입술과 이 위로 부드럽게 흐르는도다”라고 번역하였다.3) 본문은 신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좋은 포도주 같고 신랑을 위해 부드럽게 흘러내릴 뿐 아니라, 잠자는 자들의 입으로 움직여 말하게 한다고 묘사한다. 이것은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좋은 말들을 묘사하는 것 같다. 성도의 좋은 말은 바른 신앙고백의 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말, 주께 헌신을 다짐하는 말, 거룩하고 선한 말이다. 에베소서 4장은 우리가 더러운 말을 입밖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만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라고 가르치며(엡4:29), 에베소서 5장은 우리가 상스러운 농담도 버리고 감사하는 말을 하고 항상 하나님을 찬미하라고 가르친다(엡 5:4, 19-20). 히브리서13장은 우리의 찬미의 제사가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말한다(히 13:15).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우리가 피차 권면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살전 5:11, 14). [10절]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신부의 이 고백은 자신의 소속에 대한 고백이다. 그는 이제 자신을 오직 신랑에게 소속시킨다. 그 자신은 없고 오직 신랑만 있다. 아가서는 세 번 이런 고백을 기록한다. 2:16은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라고 말하며 아직 ‘내’가 강조되고 있고, 6:3은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3) LXX, Aquila, Vg, Syr. 오늘날 NIV 영어성경은 이 번역을 택했다. 내게 속하였다”고 말하는데 거기에서는 ‘나’보다 ‘그’가 강조되어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본문은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라고만 말함으로 자신을 전적으로 그에게 소속시킨다고 보인다. ‘성도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말은 그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과 따라서 자신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목표이시며 기준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은 우리는 이제 우리 중심으로 살 자들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대로 살아야 할 자들이다. 또 분문은 주께서 우리를 사모하신다고 말한다. 그 사랑은 십자가위에서 나타났다. 그는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제 우리는 그의 사랑에 합당하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다투는 대신에 화목하며, 조급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이기적이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며, 죄 짓지 않고 의를 행하며,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며, 악하지 않고 선하며,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며, 원수를 갚지 않고 용서하며, 세상을 사랑치 않고 경건하게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주께서는 우리를 더 사랑하실 것이다. [11절] 나의 사랑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