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22장 . [582. 어둔밤 마음에 잠겨] [366.어두운 내눈 밝히사][363.내가 깊은곳에서]
*<마귀의 분신이자 그보다 더 악독-간교한 육신(죄성), 그 육신을 따라....비교하며> 짐짓 추정/미리 염려와 두려움에 내어 줌,...탐심 이루기 위해 육체의 정욕을 수단 삼아 실족케 하는자, 정욕과 탐심으로 행하는 자...끝까지 Q 거절함/자기 유익 위하여 이용함==>[자행자제 자멸의 길로 행하는 것,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분명히 하셨으니....그 길을 고집하는 자마다 진실로, 회개하고 주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멸절 당해 끊어지고 영원히 평안과 형통이 없을 것..신23:6.]
*모압왕 발락은 [육신의 정욕 ...성적 방종]을 암시 ....(<그의 내적 양심의 느낌으로는>주님이 동의하지 않으실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고집대로 하기 위해, 기도를 통해서 명목상의 인도하심을 구하고자 하는, 자기 기만에 사로잡혀 있는 발람..) ....이럴 때 오도된다!!...[자기 정욕에 따라 해석하고서는 마치 Q이 허락하셨다는 착각 속에 행함이다!....결국그의 나아갈 길을 주의 사자가 막아섬으로써 간섭하고 계시는 바, [참된 상황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귀보다 더 고집스러웠기에.. 여호와의 사자는 지도하는 그대로만 따라서 발락에게 말하라고 분명히 당부하신다!] ) .....발람을 오게 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함...이는 종교적 방식을 취함인데, <주님은 이것에 결코 좌우되지 않으시는 분이로되, 유한한 사람은 자칫 위축될 수 있다!!> 모압(롯의 후손)과 미디안(육신을 대표하는 이스마엘의 자손) 서로 간에 모두 연결되며 이들 넷은(발락- 모압-미디안-발람) 모두 하나임
***발락은 실로 마귀적이어서 다시 전보다 더 격이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어 발람을 유혹하고 있었다 .....((탐심 가득한, 영달을 바라며 탐욕 충만한)) 발람은 주께서 이미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결과적으로 상대화 하면서 경시하고 있었으니... ((발람 그 자신의 불신실함이 여기서 드러나고 만다...그가 신실했더라면 발락이 보낸 사자의 격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분의 말씀은 [지고지선이시면서 그 자신에게 최상의 행동 지침인 바] 여전히 유효하시다는 것을 붙들었을 것이요 [그 누가 사자로 오더라도] 여전히 갈 수도 저주할 수도 없노라고 했어야 했으리라))...그런데, 이제 와서는 "무슨 말씀을 더 하실런지 알아 보리라"고, 새로운 인도하심을 구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는 철저히 자기기만의 문제였다 .....(즉, 그 자신의 내면에서는 발락이 보낸 귀족들과 함께 가기를 갈망했었기 때문에) Q께서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가라고 말씀하셨다(그리고 다른 방책을 세워 놓으신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할 수 있음을 꼭 명심함으로써 그분을 절대적으로 경외하기를 절대적으로 준행해야 하리라. .....Q께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을 절대적으로 붙들어 그대로 준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른 방책 주시기를 고집하면서 심지어 그것을 하려고 끝내 고집부린다면, 주님은 그것을 하도록(어쩔 수 없이) 허락하실 것이지만, 그것은 자기 기만임을 분명히 나타내시리라.(결국 자기 고집대로 한, 그 결말이 파국적일 수 있음을 명심하라!!....주님은 경홀히 여김 받으실 수 있는 분이 결코 아니다!!) .....이제, Q은 [여호와의 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칼을 들고 막아서신 것을 보고 전진하기를 회피하는]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심의 참된 기적을 통해서 발람을 일깨우시며 경고하고 계셨으며 (마땅히 그가 할 말 외에는 해서는 안됨을 경고하신다!!)...오호라, 분명히 참된 상황과 실상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즐거이!! 허락하셨다고 스스로 착각하면서) 발람은 발락에게로 가는 길을 접지 않고 고집스레 나아가고 있었다 .....발락에게 나아갔을 때, 발락은 그가 원하던 것을 얻지는 못했고, Q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얻으셨으니...비록 발람이 탐욕스런 선지자였다 해도 그는 여전히 Q의 통제 아래 있었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배워야 할 공과가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가 어떤 것들을 하고자 하는 특별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Q의 뜻 구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스스로 속임인] 자기기만이 될 수 있음이다.,,,그러기에 ((주님으로 주 되시게 해 드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아무런 다른 갈망이나 전제조건 없이 [단순하게 기도하기, 진정한 둘로스 됨의 자리에 있음, 곧 자기 의견을 내려 놓고!!] 주님 뜻 구하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대의 유일한 갈망은 그분의 뜻을 알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행함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굽 ((= 어두움의 세상)), 곧 영적 이스라엘을 압제/멸절 획책함과 동시에 (거듭난 신분을 망각하도록)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 생의 자랑 추구에 올인하도록 위조된 가치를 강요--마취/중독시키는 문화/사치 풍조로 미혹하고 Q 나라 가치대로 사는 삶을 상대화하여 결국 떠나게 하는 사탄 체계... ==>[출애굽에로 이끌어 내셔서] 말씀하시는 Q, 영생 Q의 말씀, 곧 그리스도로 살기를 배우고 그 안에서 하나 되어 그분의 자녀로 자라나며 그들을 반대하는(실은 Q을 거역하는) 아말렉과 가나안 족속, 아모리 족속((Q을 대적하고 반역하는 악한 세력)) 멸절하기를 배우게 되었음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준비가 되었으나, 모압 왕 발락은 스스로 판단해 볼 때 이스라엘을 군사적-정치적으로 도무지 패배시킬 수 없으며 [장차 이스라엘과 전쟁하게 되는 경우 그냥 그대로 멸망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을 해하기로 마음 먹고] 방식을 바꾸어 (모압 장로들이, 그 영으로 태어난 이삭과 달리 육신을 대표하는 이스마엘과 어울려 누가 누군지 모르게 어울려 살아왔던 것처럼, 미디안 사람들, 그 미디안 장로들과 결탁하여) 육신을 자극하고 충동질함으로써 자중지란으로 약화-자멸을 유도케 함의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제어하려 하고 있었다.. 곧 정욕적 종교와 문화를 이용해 넘어지게 하려 하고 있었다.
***[싸움 방식과 형태를 바꾼 대적 사단].....(([출애굽 제1세대]..홍해 건너기 직전 애굽군대 뒤 따름-->광야의 아말렉 습격-->[제2세대]..가데스바네아에서 아랏 왕의 공격 -->아모리의 두 왕들과의 접전(헤스본 왕 시혼-바산 왕 옥)의 전쟁에서 승리, 점령)).... 그러나, 이제 모압 왕 발락의 근심을 이용하여 종교적 방식으로 바꾸고 있었다.((미디안 출신 선지자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유도 ==> 싯딤에서 (모압 여자들로 하여금 바알 브올 숭배 제사에 이스라엘을 초청/참여-모압 여인들과의 음행 유도케 함의, 육신의 정욕 충동질 하는 방법....발람의 제시한 아이디어였음을 밝히고 있음))
*발람의 제물 드림은 누구에게였는지!!, 여호와께 드림인가, 바알에게 드림인가,,(다양한 우상과 형상들을 경배하는 가톨릭의 미사가 오늘날 그렇다))
===모압의 왕이 발람을 불러오다 ....당시 모압의 수도는 길하레셋...모압의 수도는, 성경에서 길(사15:1), 기르(사15:1 개역개정판), 길모압(Kir Moab), 길하레스(렘48:31, 36), 헤레스(삿1:35, 2:9, 8:13, 대상9:15)는 모압의 수도 케락(Kerak)를 뜻한다. 세렛 시내와 아르논 강 사이 중간 지점. ((암만 남쪽 129km 지점, 아르논 골짜기에서 남쪽으로 28km 사해에서 동쪽으로 17km에 위치)).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발람(Balaam)--‘탐닉자’,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란 뜻을 가진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복술가.....브올의 아들로 유브라데 강가 브돌에 살았다(민22:5.."브돌"은 모압(수도 길하레셋)으로부터는 600km나 떨어져 있었음...대략 신의주-대구 간 직선 거리(594).). 그는 모압 왕 발락의 명을 받아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찾아 온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민22:2-6). 그러나 발람은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는 Q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청을 거절하였다(민22:12-13). 두번째 발락의 제안을 받았을 때는 Q이 하시는 말씀만 전하라는 Q의 말씀을 듣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떠났다(민22:15-21). 이 과정에서 발람이 타고 가던 나귀는 (Q말씀 그대로 행하지 않은 발람에게 노하심으로) 칼을 들고 있는 Q의 사자를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갔으며 계속해서 Q의 사자를 피했다(민22:23,25). 그렇지만 Q의 사자를 보지 못한 발람은 나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나귀를 지팡이로 때렸고 결국 Q이 나귀의 입을 여셨을 때에야 자신의 죄를 알게 되 었다(민22:28-35). 그리고 Q이 이르시는 말씀만 전하라는 명을 다시 받은 발람은 모압 귀족들과 함께발락에게 갔다(민22:35). 발락을 만난 발람은 바알 산당에 일곱 단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준비하라고 하였다(민23:1). 그러나 발람은 발락의 청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보다는 Q이 주시는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였다(민23:1-24:25). .....[브돌]오늘날 시리아와 터키 국경 바로 아래에 위치한 알레포 옆의 유프라테스 강 유역으로...강 서쪽 96km지점...발람의 고향. 브돌은 “‘강’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강’은 “아람-나하라임”(마소라 본문) 즉 “메소포타미아”(LXX)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이었음. (민 22:5; 23:7; 신 23:4, 각주)...강 건너 북동쪽에 하란이 위치함 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8.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 9.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10.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11.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13.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저주하지도 말라 하신 것과, 그들은 복 받은 자들이라 하신 부분은 빼 놓고)일부분만 말하고 있다!! 14.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이들 또한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이로 인해 발락은 오도되고 있었다. 15.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16.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발람과 그 나귀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 (발람이 떠나는 그 때에.."득의양양해진" 그의 속 생각은, 어떻게 하면 거짓 예언과 저주로 발락을 만족시켜서 맘껏 그의 탐욕을 채울까 궁리하며 상상하고 있었다고 봐야 함...<이렇게 행간을 읽을 때라야> 앞뒤가 자연스레 연결되며, 여호와의 사자의 나타나심 재차 경고하심"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할지니라" 하신 말씀과, 34절에서 발람이 바로 "내가 범죄하였나이다"고 고백한 것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이해된다...자기 생각에 한참 빠져 있는 그 때에, 주님은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그를 일깨우고 계셨다)그가 감으로[그가 갈 때 품은 바, Q의 진노를 야기케 하는,악하고 불순한 의도와 생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민수기 22장 20절-22절에 대한 해석상 난점] 민 22:20-23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개정 개역) 민수기 통독을 하다가 위 부분의 구절들에 대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 고민하게 되었다. 여러 주석들을 살펴보니 다양한 해석들이 있었다. 주로 그 해석들은 22절을 “발람이 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으로 전제를 하고 왜 하나님이 발람이 간 사실에 대해 진노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20절이다. 2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발락의 종들이 부르러 왔으면 그들을 따라 가라고 허락하신다. 이에 칼뱅을 비롯한 수많은 주석 내용은 하나님의 ‘풍자적’ 허락으로서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는 발람을 심판하기 위해 방임하는 것이지 실제로 발락의 종들을 따라가라고 뜻하지는 아니한 것이라는 견해를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원어로 22절을 대하면서 22절 해석을 ‘발람이 떠나는 때’라고 해석하면 모든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발람이 떠났기 때문이 아니라 발람이 떠나는 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는 20절에서의 하나님의 허락에 대해 무리한 해석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즉, "발람이 떠날 때"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를 발람이 떠난 사실에서 찾아볼 것이 아니라 22장 전체 맥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2절을 “발람이 떠나는 그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고 해석한 후 (원어 해석에 있어서 문법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다) 하나님의 진노 원인을 22장 문맥에서 찾아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 원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발람의 마음 속에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고자 하였던 의도가 분명했기에 주께서 진노하신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34-35절이다.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즉, 35절 역시 똑같은 주의 말씀을 반복하는데, 가는 것은 허용하지만 전하는 말은 반드시 주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발람 역시 어쩔 수 없이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할 수 밖에 없다고 발락에게 알려준다. .....즉, 이는 주의 천사를 만나 당나귀가 막는 사건만 없었다면 얼마든지 발락의 요구대로 실컷 거짓 예언을 하며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이에 발람은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거짓 선지자의 역할을 하려는 속셈으로 떠나다가 들통남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속셈을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발람이 떠날 그 때에 진노하고 계신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민수기 22장 전체에서 발람에게 경고하며 분명하게 순종할 것을 요구한 내용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만 전하라는 것이지 발락의 종들을 따라가는 것을 (비록 처음엔 처음에는 금하셨지만) 그가 <자기 고집 내세워 이찌하든지 관철시키려 하는 것을 보시고는>, 다음 단계의 계획으로 선을 이루시기 위해 발락에게 가는 것을 허락하고 계셨다.. 처음엔 금하셨지만, 이번에는 가는 것 그자체를 금하신 것은 아니었다. 긍휼의 주께서는 발람에게 선지자의 올바른 역할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성경에서 발람을 거짓 선지자로 못을 박는 이유는 그의 의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발락이 제시한 돈과 명예와 권력을 위해 자기 속에 있는 거짓 메시지를 전하려는 점에서 보고 있기에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는 삯을 위해 거짓 예언을 하려다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에 의해 주의 백성을 저주하지 못하게 되자 발락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망하게 할 수 있는 기막힌 제안(모압 여인과의 음행을 조장함)을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만든다. 이것은 그가 끝까지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악한 거짓 선지자인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악한 동기를 주께서 속으실리 만무하셨던 것이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 2:15-16)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유 1:11)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다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32.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33.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34.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35.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 ===발락이 발람을 대접하다 36. ○발락은 발람이 온다 함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하고 37. 발락은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 38.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39. 발람이 발락과 동행하여 기럇후솟에 이르러서는 40. 발락이 소와 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 한 고관들을 대접하였더라 ===발람의 첫번째 예언 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당시 제일 높은 곳에 바알 산당이 위치했다)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 보니라 -------- 1. Then the sons of Israel journeyed, and camped in the plains of Moab beyond the Jordan [opposite] Jericho. 2. Now Balak the son of Zippor saw all that Israel had done to the Amorites. 3. So Moab was in great fear because of the people, for they were numerous; and Moab was in dread of the sons of Israel. 4. And Moab said to the elders of Midian, "Now this horde will lick up all that is around us, as the ox licks up the grass of the field." And Balak the son of Zippor was king of Moab at that time. 5. So he sent messengers to Balaam the son of Beor, at Pethor, which is near the River, [in] the land of the sons of his people, to call him, saying, "Behold, a people came out of Egypt; behold, they cover the surface of the land, and they are living opposite me. 6. "Now, therefore, please come, curse this people for me since they are too mighty for me; perhaps I may be able to defeat them and drive them out of the land. For I know that he whom you bless is blessed, and he whom you curse is cursed." 7. So the elders of Moab and the elders of Midian departed with the [ fees for] divination in their hand; and they came to Balaam and repeated Balak's words to him. 8. And he said to them, "Spend the night here, and I will bring word back to you as the LORD may speak to me." And the leaders of Moab stayed with Balaam. 9. Then God came to Balaam and said, "Who are these men with you?" 10. And Balaam said to God, "Balak the son of Zippor, king of Moab, has sent [word] to me, 11. 'Behold, there is a people who came out of Egypt and they cover the surface of the land; now come, curse them for me; perhaps I may be able to fight against them, and drive them out.' " 12. And God said to Balaam, "Do not go with them; you shall not curse the people; for they are blessed." 13. So Balaam arose in the morning and said to Balak's leaders, "Go back to your land, for the LORD has refused to let me go with you." 14. And the leaders of Moab arose and went to Balak, and said, "Balaam refused to come with us." 15. Then Balak again sent leaders, more numerous and more distinguished than the former. 16. And they came to Balaam and said to him, "Thus says Balak the son of Zippor, 'Let nothing, I beg you, hinder you from coming to me; 17. for I will indeed honor you richly, and I will do whatever you say to me. Please come then, curse this people for me. '" 18. And Balaam answered and said to the servants of Balak, "Though Balak were to give me his house full of silver and gold, I could not do anything, either small or great, contrary to the command of the LORD my God. 19. "And now please, you also stay here tonight, and I will find out what else the LORD will speak to me." 20. And God came to Balaam at night and said to him, "If the men have come to call you, rise up [and] go with them; but only the word which I speak to you shall you do." 21. So Balaam arose in the morning, and saddled his donkey, and went with the leaders of Moab. 22. But God was angry because he was going, and the angel of the LORD took his stand in the way as an adversary against him. Now he was riding on his donkey and his two servants were with him. 23.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tanding in the way with his drawn sword in his hand, the donkey turned off from the way and went into the field; but Balaam struck the donkey to turn her back into the way. 24. Then the angel of the LORD stood in a narrow path of the vineyards, [with] a wall on this side and a wall on that side. 25.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he pressed herself to the wall and pressed Balaam's foot against the wall, so he struck her again. 26. And the angel of the LORD went further, and stood in a narrow place where there was no way to turn to the right hand or the left. 27. When the donkey saw the angel of the LORD, she lay down under Balaam; so Balaam was angry and struck the donkey with his stick. 28. And the LORD opened the mouth of the donkey, and she said to Balaam, "What have I done to you, that you have struck me these three times?" 29. Then Balaam said to the donkey, "Because you have made a mockery of me! If there had been a sword in my hand, I would have killed you by now." 30. And the donkey said to Balaam, "Am I not your donkey on which you have ridden all your life to this day? Have I ever been accustomed to do so to you?" And he said, "No." 31. Then the LORD opened the eyes of Balaam, and he saw the angel of the LORD standing in the way with his drawn sword in his hand; and he bowed all the way to the ground. 32. And the angel of the LORD said to him, "Why have you struck your donkey these three times? Behold, I have come out as an adversary, because your way was contrary to me. 33. "But the donkey saw me and turned aside from me these three times. If she had not turned aside from me, I would surely have killed you just now, and let her live." 34. And Balaam said to the angel of the LORD, "I have sinned, for I did not know that you were standing in the way against me. Now then, if it is displeasing to you, I will turn back." 35. But the angel of the LORD said to Balaam, "Go with the men, but you shall speak only the word which I shall tell you." So Balaam went along with the leaders of Balak. 36. When Balak heard that Balaam was coming, he went out to meet him at the city of Moab, which is on the Arnon border, at the extreme end of the border. 37. Then Balak said to Balaam, "Did I not urgently send to you to call you? Why did you not come to me? Am I really unable to honor you?" 38. So Balaam said to Balak, "Behold, I have come now to you! Am I able to speak anything at all? The word that God puts in my mouth, that I shall speak." 39. And Balaam went with Balak, and they came to Kiriath-huzoth. 40. And Balak sacrificed oxen and sheep, and sent [some] to Balaam and the leaders who were with him. 41. Then it came about in the morning that Balak took Balaam, and brought him up to the high places of Baal; and he saw from there a portion of the people. ========= 민수기 22장 (개요) 본 장에서부터 그 유명한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 즉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했던 그들의 계획과 그 계획이 좌절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의롭게 행하신 것을 알 수 있도록,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라는 말씀을 들었다(미 6:5). 본 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1. 이스라엘에 대한 발락의 공포와 그들을 저주받게 하고자 시도했던 발락의 꾀(1-4). 2. 그러한 일을 위해 마술사 발람을 부르려고 사절들을 보냈는데, 첫 번째 사절을 통해서는 실패했다(5-14). 3. 두 번째 사절과 함께 발람이 왔다(15-21). 4. 발람이 길을 가다가 방해자를 만났다(22-35). 5. 발락과 발람이 드디어 만났다(36 이하). ----------- 발락이 발람을 부름(민 22:1-14)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광야의 방랑 생활을 끝내고 그 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21:18). 그리고 이제는 요단 강 근처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 그들은 모세의 사후에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Ⅰ. 이스라엘이 가까이 오자 모압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2-4절).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압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그들에게 적대심을 품지도 말라고 하신 명령을 그들이 알았다면(아마 모세가 그들에게 이것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로부터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하리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러한 말을 들었다면, 아마 그들은 그들을 쉽사리 정복하려는 속임수로만 알고 마음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 아브라함과 롯이 친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압 사람들은 가능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멸망시키고자 결심했으며, 의당 이스라엘도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결심했을 것이라고 아무 의심 없이 믿었던 것이다. 잘못을 꾸미고자 하는 자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잘못을 저지르려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한없는 불안은 결국 그들의 까닭 없는 적의에서 온 것이다. 그들은 아모리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의 소식을 듣고(2절), 그들의 이웃이 불길에 싸였으니만큼 그들 자신의 집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많은 숫자를 보았다(3절). 그들은 수가 “많았다.” 그리하여 만일 이스라엘의 승승장구하는 군사들의 행진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조속히 강구하지 않으면, 그들의 온 땅이 쉽사리 정복될 것이라고 추단했다. 또한 이 거대한 대적에 감히 대항할 만한 힘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4절). 그리하여 그들은 심히 두려워했으며, 근심했다. 이처럼 악인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한다”(시 53:5). 이 두려움을 그들은 이웃인 미디안의 장로들에게 호소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공동의 안전을 강구해 보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모압 왕국이 무너지면 미디안 공화국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압 사람들이 원하기만 하면 이스라엘의 전진과, 아모리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승리를 잘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땅의 일부를 벌써 차지하고, 나머지 땅도 정복하려고 했던 아모리 왕 시혼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시는 Q과 이스라엘에 대해 감사를 돌리며, 이를 기뻐할 만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우정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협조자가 될 만했다. 그러나 그들의 조상 롯의 신앙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했으며, 정신이 혼란에 빠져 스스로 괴로워했다. Ⅱ.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게 하려고 꾸민 모압 왕의 계략은, 말하자면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서 싸워 주신 하나님을 그들과 맞서는 분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무력보다는 자기의 재능을 더 의지했다. 그리고 강력한 마술을 부릴 줄 아는 선지자나 또는 어떤 사람을 청해다가, 이스라엘에게는 저주를 빌고 자기를 위해서는 축복을 빌게 하면, 자기가 감히 그들과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것에서 나왔을 것이다. 1. 그것은 어떤 신앙의 잔재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아들들의 문제를 다스리며 그들의 운명을 다스리는 어떤 눈에 보이는 지배력을 의지하게 하며, 이러한 힘에 자신들을 맡기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참다운 신앙이 무너지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경건한 조상, 아브라함과 롯의 신앙과 예배를 간직하여 비참하게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들 스스로가 지키지 못한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유일하게 지키고 있는 백성들을 저주하는 그런 악행은 감히 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Ⅲ. 그들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기 위해 브올의 아들인 유명한 마술사 발람을 부르고자 했다. 이 발람은 아브라함이 떠나왔으며 라반이 살고 있던, 그 먼 고장에 살고 있었다. 아마 가까운 곳에도 스스로 훌륭한 점복가임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발람만큼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발락은 발람이 아무리 먼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알고 있는 가장 능한 사람을 부르기 위해 그 먼 곳까지 사람을 보냈다. 그만큼 발락은 이 계획을 위해 열심을 기울였다. 발람을 데려오기 위해 발락은 이렇게 했다. 1. 발락은 이스라엘의 거대한 숫자와 그리고 그 진영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사정을 마치 친한 친구에게 호소하듯 그에게 불평을 토함으로 발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다”고 했다(5절). 2. 발락은 발람의 말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함으로, 사실상 발람을 자기의 신으로 추켜 올렸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6절). 학식이 풍부한 패트릭 주교도, 많은 유대교 저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발람에 대해, 선악간에 그의 예언이 많이 적중했고 그의 기도가 응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잘 통하는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교만과 탐욕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림으로 마술사로 전락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선지자”라고 일컬어졌다(벧후 2:16). 아마 그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능력”이란 말을 들을(행 8:10) 마술사 시몬과 같이 마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명성을 사던 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발설한 저주는 노아나(창 9:25) 엘리사의(왕하 2:24) 경우와 같이 놀라운 효력을 발한다. 그러나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한다”(잠 26:2). 더욱이 골리앗이 다윗에게 한 것과 같이 “그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한(삼상 17:43)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기를 바라고, 우리에게 적대하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를 축복하실 수도 있으며, 또 저주하실 수도 있으신 그 분의 은총을 받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도 발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발락은 발람의 마음을 끌기 위해 “복술의 예물”을 가져가게 했다(7절). 그것은 발람이 “사랑한 불의의 삯”이었다(벧후 2:15). Ⅳ. 하나님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제재하셨다. 아마 발람은 매우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진실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들어서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즉시로 그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자기는 하나님께서 축복한 백성을 저주할 수 없노라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자들을 유숙하게 하고 밤새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며,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8절). 우리가 우리를 유혹하는 자와 의논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쉽사리 유혹에 떨어지기 쉽다. 밤에, 아마 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물으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그러나 발람을 통해서 그 말을 듣기를 원하셨다. 발람은 사자들이 온 용건을 하나님께 아뢰었다(9-11절). 하나님은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지 말도록 꾸짖으셨으며, 축복받은 백성을 저주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12절). 이처럼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아비멜렉이나(창 20:3), 라반에게(창 31:24) 직접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악인에게도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불의한 일꾼이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발람은 발락에게 가지 말라는 말씀만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조만간 저주하려고 했던 일을 그만두라는 책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드신 것을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복을 받은 자”라고 하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중요한 부분이었다(창 12:3).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고 하나님은 축복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저주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위험을 초래한다. 이스라엘은 가끔 광야에서 하나님을 노하시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시 103:10). 그 죄가 가림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롬 4:6, 7). Ⅴ. 사자들은 발람을 데리고 오지 못했다. 1. 발람은 사자들에게 하나님의 대답을 충실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13절). 그는 단지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했다. 그는 사자들에게 그가 반드시 전해야 했던 말, 즉 이스라엘은 축복받은 백성이므로 그들을 저주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할 때 그 계획이 무너지고, 다시는 그런 요청이 또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발람은 실제로는 그가 발락을 겸손하게 섬기고 싶다는 뜻과 그의 계획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는 것, 또 그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가지 못한다는 뜻을 전함으로 한편으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임을 나타내 보이고자 시도한 바도 있다. 하나님의 금령에 어긋 행하는 일을 단지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행하는 것인 양 말하며, 또 하나님의 법을 거슬러 행하는 것을 그 분의 허락 없이 행하는 것인 듯 깎아서 말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사탄의 표적이 된다. 2. 사자들 역시 발람의 대답을 발락에게 충실하게 전하지 못했다. 그들이 전한 말은 단지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가 더 정중한 대우와 더 많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그들은 발락에게 그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이처럼 큰 인물들은 주위 사람들의 아첨하는 말 때문에 잘못에 빠지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눈으로 자기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찾아내야 한다. ---------- 발락이 다시 발람을 부름(민 22:15-21) 여기에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기 위해 또다시 발람을 데려오려고 사자들을 두 번째로 보낸 기사가 있다. 발락이 그의 잘못된 일을 끈질기게 한 것만큼만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실망하지 않고 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좋겠다. 교회의 대적들은 교회를 대항하고 악행을 하기 위해서 쉼 없이, 지침도 없이 달려든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분은 저들을 비웃으신다. Ⅰ. 발락은 발람을 더욱더 유혹했다. 그는 발람을 효과 있게 설복하기 위해 어떤 계략을 꾸몄다. 아마 그는 사자들의 손에 갑절의 돈을 주어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 명예 면에서 그를 유혹하기 위해 그의 탐욕에 대해 미끼를 던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만심과 야심에 대해서도 유혹했다. 우리가 옛 사람의 이 두 앞잡이를 억제하기 위해 날마다 얼마나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지! 세상 재물과 지위를 멸시할 수 있는 사람은 선한 양심을 지키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발람을 유혹하기 위해 발락이 어떤 재간을 부렸는지 보자. 1. 그는 먼저보다 훨씬 “더 높은 귀족들”을 보냈다(15절). 발람이 지난번에는 너무 숫자도 적고 보잘것없는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보낸 것 때문에 멸시를 받은 것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마치 제왕을 대하듯이 그의 재능에 대해 존경심을 표시하며 사람들을 보냈다. 2. 그 간청은 매우 다급한 것이었다. 이 권세 있는 왕이 그에 대해서는 애원하는 자가 되었다. “청컨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16절). 하나님께도, 양심에게도, 또 죄나 수치에 대한 두려움도 거리낌이 되지 말기를 바라노라.” 3. 그는 고귀한 것을 제시했다. 모압 왕들 가운데서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라고 말했다. 아니, 그는 발람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빈칸이 들어 있는 위임장을 보냈다. “그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드리며, 당신의 명령이면 무슨 말씀이든지 지키겠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내게 대하여 법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17절). 이처럼 죄인들은 자기들의 사치심 또는 적개심에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얼마나 괴로움을 당해도, 얼마나 많은 것을 허비하여도, 그리고 얼마나 그들이 비굴해지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덕법에 대해서 전혀 뻣뻣한 자세만을 취할 것인가? 하나님은 이를 허락지 않으신다. Ⅱ. 발람은, 겉으로는 거절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유혹에 굴복했다. 우리는 여기서 발람의 갈등, 즉 죄를 뉘우치는 마음과 죄에 물드는 마음 사이의 갈등을 분별해 볼 수 있다. 1. 그의 뉘우치는 마음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바른 말을 했다. 아무도 그가 한 말보다 더 좋은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높여서 이야기했나 보라. 그는 하나님을 일컬어 “여호와 내 하나님”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아닌 까닭은 하나님이 그의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다(습 1:5).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해서 말하고 있는가를 보라. 그는 마치 그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자, 그 말씀을 조금도 가감하지 않는 자와 같이 말하고 있다. 또 그가 얼마나 이 세상의 재물을 경시하고 있는가를 보라. 그는 금과 은을 하나님의 은혜와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는 듯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불의의 삯을 탐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을 살피는 자는 알고 계신다. 악인도 좋은 말을 하며, 입으로는 경건을 표시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그의 말로 그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신다. 2. 동시에 그의 죄에 물드는 마음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게 했다. 그는 그 유혹을 거절하는 것같이 보였다(18절). 그러나 그 때에도 그는, 그리스도께서 천하 만국을 주겠노라고 하는 사탄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과 같이, 또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에게 돈을 주며 성령을 사려고 했을 때 베드로가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라고 말한 것과 같이, 단호히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19절).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사 그로 하여금 그들을 따라가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그에게 말씀하시는지 알아보겠노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있다는 듯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지독한 경멸이다. 그는 하나님이 축복한 것을 끝내 저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하나님께서 이미 악하다고 선언하신 것을 돌이켜 행하도록 허락을 얻을 수 있는 듯이 생각했다. 진실로 그는 하나님을 그 자신과 똑같은 자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임을 밝히 말한 바가 있다. 그는 다만 묵묵히 그 뜻을 따라야만 했다. 그리고 이미 확실히 결정된 사항에 대해 다시금 그 까닭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짓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크게 멸시하는 것이며, 그 마음이 타락으로 빠지는 확실한 증거다. Ⅲ.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가라고 허락하셨다(20절). 하나님께서는, 아마 천사를 통해 그에게 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그가 원하면 발락의 사자들과 함께 가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를 “마음의 정욕대로 내어버려 두셨다”(롬 1:24).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네가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가려거든 가라. 그러나 너는 알라.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삿 4:9), 네가 가기는 가지만 너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들을 저주할 수는 없다. 너는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나님은 악인들을 사슬에 묶어 놓으신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그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욥 38:11). 그러나 허락받은 그 이상은 안 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분노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지만 동시에 그 이상은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신 것은 노여움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다. 발람 자신도 그것을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가지 못하게 막았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아니냐고 발람이 반박하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기도를 때로는 사랑으로 거절하듯이, 때로는 악인들의 기도를 진노 속에서 들어주시는 일이 있으시다. Ⅳ. 발람이 길을 나섰다(21절).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갈 테면 가라고 내버려 두셨다. 그런데 발람은 그 길을 떠나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그 사자들이 다시금 가자고 말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서” 모든 것을 속히 챙겨 가지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원했던 바를 이루고 가느니만큼 크게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한 사도는 이러한 발람의 죄에 대해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라고 했다(유 11).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딤전 6:10). ---------- 발람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민 22:22-35)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이 모압으로 가는 길을 막은 기사가 있다. 아마 모압 귀족들은 앞서 갔든지 아니면 어느 지점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다른 길로 갔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그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발람이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처럼 두 사람의 종자와 함께 서 있었다. 그는 발락의 도움으로 새삼 높은 지위를 얻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임을 보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Ⅰ. 발람이 그 길을 떠난 것을 하나님은 노여워하셨다.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셨다”(22절). 1.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죄를 짓게 내버려 두셨다 하여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우심이 조금이라도 경감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어떤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섭리 가운데서 그가 죄를 짓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고 해서, 그 때문에 그가 죄를 짓는 것을 승인하셨다거나, 그를 미워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게도 하시지만 그 죄를 미워도 하신다. 2.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 대해 악을 꾸미는 것을 가장 미워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 Ⅱ.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발람에게 당신의 노여움을 알게 하셨다. 즉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섰다.” 이제 하나님은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될지라”는 약속(출 23:22)을 충실히 이행해 주셨다. 거룩한 천사들은 죄의 반대 세력이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는 데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일을 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을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천사장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단 10:21; 12:1).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인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해 악한 시도를 꾸미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의 거룩한 천사들을 보내사, 그들의 시도를 쳐부수며 소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신다. 이 얼마나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위해 다행한 일인가! 또 얼마나 위로가 넘치는 일인가! 한 선지자가 유다를 헤친 네 뿔을 보았을 때, 그와 동시에 그 네 뿔을 떨어뜨릴 네 사람의 공장(장인)을 보았다(슥 1:18 이하). “원수가 강물처럼 몰려오겠으나, 주의 영이 그들을 물리치실 것이다”(사 59:19, 표준새번역). 이 천사는 발람이 그를 적대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적대자가 되었다. 그렇지 않는 한 천사들은 우리의 편이다. 우리는 천사들을 통해서 죄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타락의 길을 막을 수 있다. 천사는 그룹들의 손에 들린 “두루 도는 화염검”(창 3:24)과 같은 칼을 빼어들고 서 있었다(23절). 천사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사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자들과 싸운다. 1. 하나님은 발람에게 나귀를 통해 자기의 노여움을 알게 해 주셨다. 그래도 발람은 이를 깨닫지 못했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다”(23절). 그의 나귀가 그가 보는 것 이상의 것을 보는데, 그의 눈은 탐욕과 야망으로 맹목이 되고, 마술의 복채에 현혹된 것을 보면, 그가 스스로를 일컬어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라 하고, “눈을 뜬 자”라고 한 것은 얼마나 헛된 자랑이었던 것인가를 알 수 있다(24:4).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맞서고 있으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 나귀는 그 주인을 알고 그의 위험을 깨달았건만, 발람은 이를 알지 못했으며, 깨닫지도 못했다(사 1:3).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사 26:11). 나귀까지라도 천사를 보는데, 환상이나 계시를 본다고 자랑할 것이 없다. 오히려 멸망받을 짐승보다도 더 못한 바보스러움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귀를 탄 자는 자기에게 떨어지는 진로의 칼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가려고 했건마는 나귀는 자기를 구할 줄을 알고, 자기 자신을 구하고 자기 등에 탄 지각이 없는 주인까지도 구해 주었다. (1) 나귀는 “길에서 떠났다”(23절). 발람은 여기서 어떤 암시를 깨달아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바른길에서 떠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발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였다.” 이처럼 고의적인 죄로 말미암아 파멸의 길로 무모하게 줄달음치는 자들은 그들의 멸망의 길을 막는 이들에 대해 화를 낸다. (2)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다시금 보고 그를 피할 수 있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앞에 나갈 수가 없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했다”(24, 25절).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기 위해 가서는 안 될 길을 갈 때 얼마나 많은 잘못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통해 “모든 길에 우리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심이다(시 91:11, 12). 그러므로 어떤 경우든지 우리가 재난을 당하면, 우선 우리의 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길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발람의 발을 돌담에 비비어 상하게 한 것은 그의 생명을 구해 주는 일이었건만, 발람은 성이 나서 나귀를 또다시 채찍질했다. 이처럼 우리도 참으로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 대해, 당장의 괴로움 때문에 화를 내기가 쉽다. (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또다시 보게 되자, 이번에는 발람의 밑에 엎드렸다(26, 27절). 발람은 여기에 어떤 특별한 무엇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의 나귀는 여태까지 한 번도 그렇게 반항해 본 일이 없었으며, 또 그를 그런 식으로 섬겨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히 그들의 마음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해진”(전 8:11) 사람들은 그들의 가는 길을 검토해 보게 하고 중단시키고자 하여 그들의 가는 길에다가 하나님께서 섭리로서 놓아둔 여러 방패들을 막 밀고 부수고 나간다. 발람의 나귀는 천사의 칼에서 구해 주었으며, 그로 하여금 자기와 같이 엎드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정말 그에게 최고의 봉사를 했건만, 발람은 세 번째로 그 나귀를 매질했다. (4)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발람을 깨닫게 하지 못하자,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 그에게 말을 여러 번 하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28절). 그래도 발람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었다. 자연의 능력을 초월한, 그리고 인간에게 입을 만들어 주시고 그리고 말하도록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온 기적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이나 그의 후손은 모두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왜냐하면 우리의 말은 순전히 모방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머거리로 태어난 자는 벙어리가 된다). 인간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신 하나님은 원하시면 나귀도 “사람의 소리로 말하게” 하실 수 있다(벧후 2:16). 이에 대해서 에인즈워드는 이런 점을 관찰했다. 즉 마귀가 우리의 첫 조상을 죄짓도록 유혹할 때는 교활한 뱀을 이용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을 깨우쳐 주실 때, 속담에도 둔하고 바보스러운 짐승으로 나타나는 짐승인, 어리석은 나귀를 이용하셨다. 왜냐하면 사탄은 “간사한 유혹”으로 인간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고전 1:27) 하시기 때문이다. 한 마리의 벙어리 나귀를 가지고 하나님은 선지자의 광란을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그 분은 꾸짖는 자는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고자 하시면 하나님은 돌들도 소리 질러 그 분을 증거하게 하신다(눅 19:40; 합 2:11) ① 나귀는 발람의 가혹한 처사를 불평했다(28절). 나귀는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라고 물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가련하고 연약한 자들을 함부로 다루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소리 지르게 하거나 아니면 다른 이들이 그들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외치게 해 주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한갓 미물 짐승도 함부로 다루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면, 더욱 인간을, 하나님 당신의 자녀인 기독교인들을 함부로 다루게 하시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여기서 행하신 것과 같이 “벙어리의 입을 열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벙어리를 위하여 입을 열어야” 하며, 또 열 수 있다(잠 31:8; 욥 31:13).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는 나귀의 불평은 정당한 불평이었다. 우리가 손이나 혹은 말로 어느 누군가를 내려치고자 하는 생각이 나면, 우리는 먼저 그가 내게 행한 바가 무엇이며, 어떤 일로 나를 화나게 했는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듣지 못할는지 몰라도, 모든 피조물은 무거운 짐을 인하여 탄식한다(롬 8:22). 발람은 그의 나귀가 말하는 것을 듣고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가 마술사이기 때문에) 나귀가 이야기하는 것이 그다지 신기한 것이 못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그의 저돌적인 열정은 그처럼 이상스러운 현상을 보고도 미처 그 이상함을 깨닫지 못하도록 맹목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라고 본다. 재갈을 물리지 않은 분노 이상 인간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것이 또 없다. 화가 난 발람은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고 말했다(29절). 그의 무력함을 보라. 그가 자기의 저주로 이스라엘에게 화가 미치리라고 생각했다면, 자기의 힘을 가지고 그 나귀 한 마리를 죽일 수 없었단 말인가? 그는 할 수 없었다. 만일 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쾌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얻은 바는 무엇이었을까? 자기의 일시적인 감정과 복수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더 불쌍한 자로 만드는 것밖에 더 있었을까? 이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의 광증이다. 이에 대해서 홀 주교는 이렇게 보았다. 즉 미물인 짐승에게 자비를 베풀 줄 모르는 자의 손에 들어간다는 것은 비극이다. 선인은 그가 기르는 짐승들의 생명까지도 아낀다. ② 나귀는 그에게 몇 가지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30절). 하나님은 말 못 하는 짐승에게 단지 말만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나귀는 세 가지로 따지고 들어갔다. 첫째, 자기에 대한 그의 소유권에 대해서 말했다. “나는 네 나귀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 의미를 살펴보자. a.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게 하셨다. 모든 피조물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그의 손에 맡겨 주셨고”, 또 그것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발 아래 두셨다”(시 8:6). b. 하나님은 비록 악인들에게도 만물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c.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만물에 대한 지배권은 좋은 일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만물의 영주다. 그러므로 폭군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발람에 대한 그의 봉사에 대해 말했다. “나는 네가 일생 타는 나귀가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는 가끔 미물 짐승이라도 우리에게 매우 소용이 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셋째, 나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의 보통 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에게 말했다. 전에는 그의 발을 비비지도, 또 그의 발 아래 엎드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보통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 의미를 살펴보자. a. 흔히 볼 수 없었던 무례를 보면 우리는 그 무례자에게 불쾌감을 표시하기 전에 먼저 그 까닭을 알아보아야 한다. b. 짐승들이 보통 우리에게 보이던 순종을 보여 주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어떤 원인이 있지 않은가 살펴보아야 하며, 겸손히 자기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2. 발람은 드디어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노하심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밝혀 주시자 그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다”(31절).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사자에 눌리고, 그의 손에 들려진 칼을 보고 두려워서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만한 마음을 찢어 놓으시며 겸손하게 만드신다. (1) 천사는 그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었다(32, 33절). 천사는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깨닫든지 못하든지 하나님은 분명히 그 분의 피조물들을 우리가 함부로 다루면 우리에게 잘못을 따지신다. 아니, 천사는 그에게 나귀를 때리는 것보다 그 자신의 가슴을 치고,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얼마나 더 합당한 일인가를 보여 주었다(“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니, 네가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는 또 나귀가 얼마나 그 자신보다도 영리했으며, 나귀가 비켜섰기 때문에 얼마나 그 자신이 큰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를 말해 주었다. 나귀가 비켜난 것은 나귀 자신보다는 그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으며, 나귀가 비켜나지 않았다면 그는 죽임을 당했고, 나귀는 살았으리라는 것도 알려 주었다. 우리의 눈이 밝아지면 우리는 죄악의 길에서 얼마나 무서운 위험에 처해 있는가를 알게 될 것이며, 우리가 그 곳을 지나올 때 얼마나 큰 도움을 받았는가를, 그리고 어리석게도 우리가 그 곳을 지나올 때 우리의 생명을 구해 준 이와 싸우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그러자 발람은 마음이 녹아지는 것 같아 보였다(34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이 길을 떠나온 것이 잘못이었고, 그렇게 난폭하게 행한 것이 잘못이었나이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이 그가 천사의 선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이제 천사가 선 것을 보자 돌아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노엽게 해 드린 것은 단지 그가 간다는 사실보다는 이스라엘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 그리고 이스라엘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하에 가도록 허락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발락을 기쁘게 하고, 자기 일에서 출세하려는 생각을 품고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그의 마음의 완악함을 그가 깨달았는지, 또는 그런 사실을 자백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앞으로 더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달리 방법이 없으므로), 그는 되돌아가고자 했다. 그 때 그의 마음이 돌아섰다고 하는 어떤 표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손이 묶여 있었다면 그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단지 그들의 죄가 그들을 떠났다고 하여 그 죄를 그대로 두는 수가 있다. 거기에 생의 외적인 변화는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의 정화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3) 그러나 천사는 다시금 가기를 허락했다.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35절). 가라, 네가 바보가 되고 발락과 모압의 모든 귀족 앞에서 부끄러움을 보려고 하거든 가라는 것이었다. “가라.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네게 일러 주는 말만 말하고자 하면 가라.” 이 말은 어떤 금지를 말하지 않고, 그 사건에 대한 하나의 예언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단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축복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가 단지 돌아가기만 하면 자기 자신의 혼란을 가져오지만, 가서 이 말을 전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에게 멋진 경고를 주셨다. 그러나 그는 그 경고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발락의 귀족들과 함께 갔다.” 하나님은 발람의 불의한 탐심에 대해 진노하사 그를 쳤건만, “그는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였다”(사 57:17). ------------ 발락이 발람을 만남(민 22:36-41)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해 동맹하여 대적하는 발락과 발람이 만난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그들은 각각 그 성공에 대해서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다. Ⅰ. 발락은 그가 원했던 발람을 데리고 왔으므로 조금도 의심 없이 그 일이 성공하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발락은 발람을 맞이하려고 자기 나라의 최단 변경까지 나갔다(36절). 그것은 한편 그렇게 기다렸던 사람을 속히 보기 원하는 자기의 초조감을 만족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발람의 명예를 높여 줌으로 그의 굉장한 힘을 모조리 이용하고자 하는 이유도 또한 있었다. 이방의 왕이, 다만 선지자의 이름만 가지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고 가장한 자에게 얼마나 많은 존경을 나타내 보였는가 보라. 그리고 그 입에 저주만을 가득 담고 온 자가 얼마나 환영을 받았는가 보라.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절들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멸시를 받으며, 평화와 축복의 소식을 가지고 온 이들이 냉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발락은 이제 발람이 늦게 온 것 말고는 불평할 구실이 없었다(37절). 발락은 발람이 자기의 끈질김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는 “내가 특별히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발락 자신의 뜻하는 바를 발람이 알아주기를 또한 바랐다.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케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했다. 발락은 왕으로서, 얼마든지 그의 명예를 올려 줄 수 있는 왕국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발람은 발락이 주는 높은 자리를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발람이 더디 온 것은 발락이 그를 위해 마련해 놓았던 명예를 받아들이지 않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되어 마치 모욕을 받은 것으로 느껴졌다고 혼자 생각한 것 같다. 높은 명예는 많은 사람을 넘어뜨릴 수 있는 유혹의 미끼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놓아두신 명예에 이끌리어 우리가 하나님을 봉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빨리 가지 못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존귀케 하지 못하겠는가?” Ⅱ. 발람은 자기의 일에 대해서 의혹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하여 발락에게 너무 자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38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입니까? 나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마치 산헤립이 당했던 것과 같이, 코에 갈고리를 꿰고, 턱에 재갈을 먹인 것과 같은 모습으로 괴로움을 가지고 말하는 것 같다(사 37:29). Ⅲ.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그들의 일에 착수했다. 발람은 밤새 고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 귀한 손님이 무사히 온 것을 환영하여, 모압의 신들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발람은 이 제사의 잔치 자리에 초대를 받아 환대받았다(40절).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 다음날 아침, 발락은 발람을 그의 병거에 태우고 그 나라의 산당으로 갔다. 그것은 그들 자신을 거룩히 하고자 하는 이유와 또 발람의 복술이 크게 작용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높은 곳에 있는 산당에서는 이스라엘 진영을 잘 내려다볼 수 있는 이점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스라엘의 진영은 이제 그가 독기를 머금은 화살을 쏘아대어야 하는 곳이다. 이제 발람은 지난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던 것 이상으로 발락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보자. 우리는 날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 === ◑모압과 암몬 모압 :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롯의 맏아들(창19:37). 암몬 :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롯의 둘째 아들(창19:38). (창 19:36, 킹흠정) 이와 같이 롯의 두 딸이 자기들의 아버지로 말미암아 아이를 배니라. (창 19:37, 킹흠정) 맏딸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는데 바로 그는 이 날까지 모압 족속의 조상이며 (창 19:38, 킹흠정)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는데 바로 그는 이 날까지 암몬 자손의 조상이니라. ◑모압 족속 롯의 아들인 모압의 후손들(창19:30-38). 모압 땅은 사해의 동쪽과 남동쪽에, 주로 아르논 강의 남부에 위치하였다. 모압 지도 참조(27). 그러나 한때 그곳의 경계는 북쪽의 얍복까지 확장되기도 하였고 오랫동안 요르단 강 너머 여리고 앞부분은 모압 평야라고 불렸다(민22:1; 신1:5; 29:1; 수13:32). 넓은 의미에서 이곳은 아모리 족속이 차지한 전체 땅을 포함했다.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리고 맞은편의 모압 평야에서 마지막으로 진을 쳤다(민22:1; 26:63; 수13:32). 그 당시 이곳은 아모리 족속의 소유였다(민21:22). 모세는 모압 평야에서 느보 산에 이르러 모압 땅에서 죽었다(신34:5-6). 처음에 모압 사람들은 엠 족속이라고 불리는 거인들을 몰아내었으나(신2:11) 아모리 족속들은 아르논 북쪽의 땅에서 그들을 몰아내었다(민21:13, 26; 삿11:13-18). 그 뒤 이 북부 지역은 모세에 의해 정복되어 르우벤 지파에게 배정되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올라올 때 모압 사람들은 그들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았다(민22:1-41; 23:1-30; 24:1-25; 신2:8-9). 모압 왕 발락은 대언자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다 실패했지만(민22-24) 결국 그들을 음행의 자리로 이끌어 큰 죄에 빠지게 하였다(민25:1-5).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려 주시고 이스라엘이 그들을 정복하지 못하게 하셨지만 그들과 그들의 씨는 10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였다(신23:3-6). 그들은 엄청나게 우상을 숭배하였고 음란하고 역겨운 방법으로 그모스와 바알브올에게 경배하였다(민25:1-18; 왕하3:27). 몰렉 참조. 후에 왕정 시대에 이방 여인들을 사랑한 솔로몬은 모압 여인들을 첩으로 삼고 모압 사람들의 가증한 신 그모스를 섬겼으며 그것을 위해 예루살렘 앞의 산에 산당을 건축하였다(왕상11:1, 7). 재판관들의 시대에 엘리멜렉이라 하는 베들레헴 사람은 기근을 피해 모압으로 이주했다. 그의 두 아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인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유대로 돌아와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친족 구속자인 보아스를 만나 결국 다윗 왕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 룻의 시대와 같이 그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가 있던 때도 있었으나 에글론과 사울과 다윗과 요람과 여로보암의 시대처럼 서로 적개심을 품은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삿3:12-30; 삼상14:47; 삼하8:2, 12; 왕하3; 13:20; 14:25). 그들은 느부갓네살을 도와 유대인들을 대적하였고(왕하24:2; 겔25:6-11) 그 후에 포로로 잡혀가기 시작했으며 그 뒤에는 아르논 강의 북쪽 지역을 되찾은 듯하다(사15:1-9; 16:1-14). 대언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게 유전적으로 적개심을 품은 그들을 향하여 경고의 말씀을 기록하였다(민24:17; 시60:12; 83:6; 렘 25:9-21; 48:1-47; 암2:1-3). ◑암몬 족속 롯의 아들 벤암미 즉 암몬의 후손. 그들은 유다의 동부 지역에 거하던 거인들인 삼숨 족속을 멸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였다(신2:19-21). 그들의 영토는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또 요르단에서부터 아라비아까지 이어졌으며 그들의 수도는 얍복에 위치한 랍바 혹은 랍바스 암몬이었다. 암몬 지도 참조(27). 모세 시대에 그들은 아모리 족속에 의해 동쪽으로 밀려났으며(민21:21-35; 32:33) 가나안으로 가면서 모세는 주님으로부터 그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신2:19). 그들은 극심한 우상숭배자들이었으며 특히 몰렉 신을 섬겼는데 이것은 농경 신 새턴이다(왕상11:5-7; 왕하23:13). 재판관들의 시대에 암몬 사람들은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을 도왔고(삿3:13) 그 후에 길르앗을 정복하려 하였으나 길르앗 사람 재판관 입다가 이들을 크게 살육하여 격퇴시켰다(삿11:4-36; 12:1-3). 그 이후에도 암몬 족속은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괴롭혔으며 이로 인해 대언자들은 그들에게 주님의 준엄한 심판을 경고했다(렘49:1-6; 겔25:2-10). 이방 여인들을 사랑한 솔로몬은 암몬 여인 나아마를 첩으로 삼고 암몬 사람들의 가증한 신 밀곰을 섬겼으며 그녀로 말미암아 르호보암을 얻었다(왕상11:1, 5; 14:21,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