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신30.내마음 그리스도의 집, 주님=주인=머리=목자=왕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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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0장 [435.나의 영원하신 기업].[286 주예수님내맘에으사]..주님 원하시는 <날마다 새로이, 기적으로 사는 생명 삶이란, 참 순종!!  결코 스스로 무엇을 함이 아니라, 오히려 <옛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게 사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곧, 날마다 죽음으로만 가능함..


===복 받는 길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10.  (9절과 동일)

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순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부종하라..hold fast to.."다바크"](개역한글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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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o it shall be when all of these things have come upon you, the blessing and the curse which I have set before you, and you call [them] to mind in all nations where the LORD your God has banished you,

2.  and you return to the LORD your God and obey Him with all your heart and soul according to all that I command you today, you and your sons,

3.  then the LORD your God will restore you from captivity, and have compassion on you, and will gather you again from all the peoples where the LORD your God has scattered you.

4.  "If your outcasts are at the ends of the earth, from there the LORD your God will gather you, and from there He will bring you back.

5.  "And the LORD your God will bring you into the land which your fathers possessed, and you shall possess it; and He will prosper you and multiply you more than your fathers.

6.  "Moreover the LORD your God will circumcise your heart and the heart of your descendants, to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in order that you may live.

7.  "And the LORD your God will inflict all these curses on your enemies and on those who hate you, who persecuted you.

8.  "And you shall again obey the LORD, and observe all His commandments which I command you today.

9.  "Then the LORD your God will prosper you abundantly in all the work of your hand, in the offspring of your body and in the offspring of your cattle and in the produce of your ground, for the LORD will again rejoice over you for good, just as He rejoiced over your fathers;

10.  if you obey the LORD your God to keep His commandments and His statutes which are written in this book of the law, if you turn to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soul.

11.  "For this commandment which I command you today is not too difficult for you, nor is it out of reach.

12.  "It is not in heaven,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go up to heaven for us to get it for us and make us hear it, that we may observe it?'

13.  "Nor is it beyond the sea, that you should say, 'Who will cross the sea for us to get it for us and make us hear it, that we may observe it?'

14.  "But the word is very near you,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that you may observe it.

15.  "See, I have set before you today life and prosperity, and death and adversity;

16.  in that I command you today to love the LORD your God, to walk in His ways and to keep His commandments and His statutes and His judgments, that you may live and multiply, and that the LORD your God may bless you in the land where you are entering to possess it.

17.  "But if your heart turns away and you will not obey, but are drawn away and worship other gods and serve them,

18.  I declare to you today that you shall surely perish. You shall not prolong [your] days in the land where you are crossing the Jordan to enter and possess it.

19.  "I call heaven and earth to witness against you today, that I have set before you life and death, the blessing and the curse. So choose life in order that you may live, you and your descendants, 

20.  by loving the LORD your God, by obeying His voice, and by holding fast to Him; for this is your life and the length of your days, that you may live in the land which the LORD swore to your fathers, to Abraham, Isaac, and Jacob, to give th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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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생명=진리 =그리스도...진리를 살아냄이 그대 삶의 결론이 되게 하라

.....진실로!! 마음 속에 구주 영접했더라도, <그리스도의 집, 곧 충만-완전한 사랑의 전능자 주님이 진정 그대 마음의 주인으로서 살고 지시하며 일하심이 마땅한데, 그저 한쪽에 서 계시거나 따로 앉아 계신> 손님으로만 계심은 아닌가??...((오, 주로 주 되시게 하라, 정녕 그분으로 유일무이한 주인-남편-머리-목자 되시게 해 드려야만 그대 삶이 완전한 생명 균형의 기적으로 사는 것이 되리라)) .그리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장면은 요한복음 2장의 <포도주가 다 떨어져서 흥이 께어져버릴 위기에 봉착한> 가나 혼인잔치와 다름 없을 것...그 때, 모친 마리아는 제자들과 함께 초청 받은 구주께 <교통하는 산 믿음으로> 나아가서<친척 집, 곧  혼인잔치가 벌어졌으나 딱한 사정이 생긴, 그 집의 문제, 즉 손님 상에 공급할 포도주가 다 떨어졌음을 고하였고> 주님은 친절-상냥하게<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지금은 내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엔 모친이 투정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마리아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영적으로 분명히 깨닫고 있었던 바  [즉, 주 그리스도께서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분명히 주인으로서 계셔서 그분의 뜻대로 지시하고 지시하는 그대로 순종해야만 그 결핍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참되게 깨닫고, 오히려 하인들에게 나아가서 <주께서 무엇이라 하든지 그분이 시키는 바로 그대로 하라>고 신신당부하였고... 주님은 하인들을 불러서 거기 있던 정결례에 쓰이는 큰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명하셨고, 하인들이 그분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여 물을 채운 후에, 그 후에야 곧 이어 <그것을 가져다가 연회장에게 주어라>하심으로써 합당한 누림과 기쁨의 조건을 공급하고 계셨다....그 기적의 진행을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물 떠왔고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갖다 준 하인들은  진상을 확실히 알았다!!...."주님의 때"는 주님이 주인되심 = 머리되심 = 곧 주님의 주권자 되심을 인정하며 말씀 드리고 <그분만이 하실 수 있음을 믿고>그 발아래 엎드려 지시하시는 그대로 순종하는 때...이 때에라야 주님은 기적을 보게 하고 계신다. [요2:1-11...*1.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2.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3.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였다.  *4.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였다.  *6.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7.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8.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9.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10.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11.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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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안에서 평생 간직해야 할 다바크(דבק(의 3대 원리 = 연합, 언약, 친근의 원리인 '다바크'

히브리어 ‘다바크(דבק‘(는 중요한 3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연합’, ‘언약’, ‘친밀’이다. 

이렇게 중요한 단어인 히브리어 ‘다바크(דבק‘(의 단어적 의미는 ‘붙다’, ‘착달라붙다’, ‘접착하’, ‘하나가 되다’, ‘결합하다’, ‘부착하다’, ‘따라붙다’ ‘연합하다’, ‘바짝 붙어있다’, ‘가까이 하다’, ‘열심히 좇다’, ‘친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현대 이스라엘에서 접착제를 뜻하는 단어는 ‘데베크’로 ‘다바크’에서 파생되었다. 

이제 그 ‘다바크’가 성경에서 어떻게 쓰여졌는가를 살피며 깊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기로 하자.

1. 다바크(דבק(의 연합의 원리

1) 하나님의 가정 창조의 역사에서 밝혀진 연합의 원리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다바크(דבק‘(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세기 2:22-24) 

하나님께서 천국의 모형인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 부부의 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정의요 명령이요 선언이다. 가정을 이루는 기초 단계로 남자와 여자로 정하셨는데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에서 취하여 창조된 남자의 분신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향하여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하여 가정의 기초를 이루는 유일한 상대라는 것을 표현했다. 이런 하나님의 가정 창조의 시작과 결과 때문에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된다고 유일 원칙과 불가분리의 원칙을 선언하신 것이다. 여기서 ‘연합하여’를 ‘다바크(דבק‘(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였다는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2) 하나님의 가정 창조 역사를 반영하는 연합의 원리

“3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3-6)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던진 이혼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마귀에 [김순정목사 설교] 여호수아의 하나님게 시험을 당하실 때처럼(‘기록되었으되’) 이미 하나님께서 성경 창세기에 주신 말씀에 따라 결혼의 진정한 의미와 원리로 돌아갈 것을 가르치셨다. 성경에서 결혼은 단순히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 이상의 깊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이 임하는 것이 혼인잔치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마 22:1~14). 이 중요한 결혼의 원리의 한 가운데 있는 핵심적인 단어가 바로 “합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콜라오(κολλάω)’이며 이것은 히브리어 ‘다바크(דבק‘(이다. 

2. 다바크의 언약의 원리

창세기 2장에서 시작된 ‘다바크(דבק‘(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그것은 바로 깊은 믿음의 여인 룻의 이야기이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과 그 아내 나오미는 유다 땅에 기근이 들자 이방 지역인 모압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엘리멜렉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의 두 아들들은 이방인인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을 각각 아내로 맞아들였다. 무슨 연고인지 두 아들마저 다 일찍 죽게 되어 세 과부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로 정하고 불쌍한 두 며느리를 처가로 돌려보내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하려고 하였다. 두 며느리는 시어미를 따라 유다 땅으로 가겠다고 소리 높여 울며 따라나섰지만, 아무런 미래가 없는 자신을 따라 오려는 며느리들의 앞길을 위하여 나오미는 그들에게 자기를 떠날 것을 간곡히 권고하였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다바크)” (룻기1:14)

결국 오르바는 돌아서 시어미를 떠났지만, 룻은 시어미를 붙들고 떨어지지 않았고 붙좇아 갔다. 여기 ‘붙좇아 갔다’는 말이 ‘다바크(דבק‘(이다. 룻은 원래 유대인이 아니었다. 이방 족속인 모압의 여인이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사이에 생긴 자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훼방을 놓는 등 예언서에서 저주받은 백성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룻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의 유업에 관계된 자가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의 밖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남편도 죽고, 시어미가 혼인 서약에서 풀어줌으로 인하여 룻은 다시 완전히 이방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룻은 겉으로는 자신의 선택이요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택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에 들어간 것이었다.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1:15-17)

룻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만들고, 나오미의 하나님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죽음이외에는 끊을 수 없는 언약을 맺은 것이다. 룻은 축복의 상속자가 아니었지만, 상속자로,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없는 자였지만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신분이 변화되었다. 완전히 남이었지만 하나님 눈에 하나가 되어 같이 되는 기적을 이룬 것이 바로 룻의 ‘다바크’였다.그렇다면 ‘다바크’는남남인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사람처럼 되고 생사를 함께 하는 언약관계(covenant)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룻이 돌아설 자유가 있었음에도 나오미와 그의 하나님을 택한 것은 믿음의 의지적인 결단이었으며, 이렇게 하여 맺은 관계는 절대로 배반할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결혼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돌아설 자유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의지적으로 하나의 언약관계 속에 들어가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맺은 언약은 절대로 배반할 수 없는 약속인 것이다. 

만약 결혼 당사자들의 마음속에 배반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약속은 이미 언약이 아니며, ‘다바크’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룻이 자기 고향을 떠나 나오미에게 ‘당신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며, 당신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 하며 연합한 것처럼, 두 사람이 서로의 생명을 걸고 ‘나는 당신을 절대로 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죽기까지 사랑할 것이다’하며 언약을 맺는 것이 바로 ‘다바크’인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라고 하신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다.

3. 다바크의 친근의 원리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다바크 דבק(‘.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신명기 4:4)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다바크 דבק(‘.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신명기 10:20)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다바크 דבק(‘.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신명기 30:19-20)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다바크 דבק(‘.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찌니라 하고" (여호수아 22:5)

번역은 여러 가지로 되었지만, 성경은 한결 같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다바크’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온 마음과 몸으로 그를 섬기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한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다바크’하여야 한다는 말씀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하나님은 마치 부부가 서로 하나가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가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것처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며, 나도 하나님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그런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

또한, 룻이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따라 간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으며, 따르기를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신다. 

룻이 비록 이스라엘의 언약 밖에 있었던 이방인이었지만, 나오미를 목숨처럼 여기고 따라감으로써, 하나님의 큰 축복 속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한 때는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언약에 대한 외인이었지만, 룻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잡고 따라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12-13)

아담과 하와 또는 남편과 아내가 생명이 다하도록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는 관계를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우리는 룻기를 읽으면서 과거의 모든 인연과 정든 것들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나오미의 손을 꼭 붙들고 함께 떠나는 룻의 간절한 마음을 너무나 잘 상상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을 ‘다바크’ 하는 데는 길고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하나님은 높은 보좌 위에 앉아 저 밑에 있는 우리들 위에 군림하고 명령하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남편이나 아내처럼 언제나 친근하고 가깝고 조금도 떨어지기 싫은 그런 분이시다. 항상 곁에서 보살펴 주고 조언해 주며 잔잔한 미소 어린 시선으로 룻을 맞아주는 나오미 처럼 다정하고 가깝고 의지하고 싶은 분이시다. 그 분이 바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친밀하신(다바크) 우리들의 친구 분이시기 때문이다.(잠언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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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음...카탈람바노...다바크))

신명기 4장 4절은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고 말한다. 신명기 4장 4절의 배경은 민수기 25장 1절에서 18절까지이다. 

민수기 33장에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라암셋에서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마지막 진을 쳤던 모압 평지까지 42개의 진을 친 지명이 나온다. 민수기 22장 1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후 광야 생활을 포함하여 40년 동안의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인 모압 평지에 도착하여 진을 쳤다. 민수기 33장 49절은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의 진영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이르렀더라」고 말한다. 민수기 33장 49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이르기 까지 진을 쳤다. 그들이 진을 친 지역 안에 여리고 바로 맞은편 지명이 싯딤이다(민22:1). 이 싯딤은 모세의 후계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에 보내어 기생 라합의 도움으로 살아 돌아온 후(수2: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삼일 동안 유숙한 후(수3:1-2),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곳이다. 

민수기 25장은 바로 이 싯딤에서 이스라엘이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져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고(민25:1), 그들의 신 바알브올을 숭배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백성의 수령들을 목매달아 죽이고(민25:4), 염병을 보내 이만 사천 명이 죽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1세대가 실패로 대부분이 죽고, 이제 다음 세대가 좋은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려고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1세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연로한 아버지가 자녀에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들려주듯, 신명기 시작 부분에서 출애굽으로부터 그 때까지의 여정을 회고한다. 신명기 4장 4절은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사건으로 많은 그들의 선조들이 죽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에서 【붙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붙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 ק ב ד (다베크)]는 동사 [ ק ב ד (다바크)]의 형용사로서 붙은, 달라 붙은, 붙드는, 닿은, 친밀한, 밀착하는, 매달리는, 집착하는, 가까이 붙어서 좇는, 지키는, 부종하는, 결합하는, 연합하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신명기 4장 4절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순종하지 않고 음행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죽음을 당한 1세대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고, 음행과 우상숭배로부터 돌이켜, 신중의 신이신 유일한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다.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는>이라고 말할 때 여기에는 선택의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 여호와께 붙어 있느냐 아니면 여호와를 저버리고 떠나느냐의 문제이다.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여호와를 붙들면 살고, 여호와를 떠나면 죽음이다.

룻기는 선택으로 운명이 갈린 두 여인이 나온다. 두 여인은 엘리멜렉의 아내 나오미의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다. 그들은 모압 여인들이었다. 모압은 롯이 근친상간을 통하여 낳은 후손의 나라였다(창19:30-38). 그들 조상의 근친상간뿐 아니라 그들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잘못 대우(민22장-24장)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는 것이 영원히 허락되지 않은 백성의 나라였다(신23:3-4). 유다 베들레헴 출신이었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이 죽자, 나오미 자신은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나섰고, 두 며느리에게는 그들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새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축원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입맞추고 떠나갔으나,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다】. 그러자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다(룻1:15-19).

룻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인 나오미를 선택했을 뿐 아니라, 그를 【붙좇았다】. 그 선택으로 인하여 여호와로부터 영원한 저주를 받은 모압 여인 룻은 유다 지파의 보아스를 남편으로 얻었고,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다.

룻이 나오미를 【붙좇았다】고 할 때 【붙좇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 ק ב ד (다바크)] 로서 붙좇다, 쫓아가다, 따라가다, 바싹 따르다, 촉급히 따르다, 추격하다, 속하다, 붙들다, 붙다, 달라붙다, 단단히 붙다, 밀착하다, 친근히 하다, 매달리다, 의지하다, 집착하다, 합하다, 결합하다, 연합하다, 혼인하다, 지키다, 부종(附從)하다, 가까이에 붙어서 좇다, 매이어 복종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룻기는 족보의 기록으로 끝난다. 이것은 룻의 탁월한 선택과 하나님의 선민을 【붙좇은】 결과 여호와의 영원한 저주를 받은 모압 족속의 가난한 과부였던 룻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 계시로서 족보의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다. 탁월한 선택과 하나님의 선민을 【붙좇은】 결과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도 탁월한 선택과 【붙좇음】의 추구로 신약 성경 27권 중 절반의 기자(記者)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롬1:1, 빌1:1)로 부름 받은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여)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였다(빌3:5-6).

빌립보서 3장 7절부터 9절까지에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간증한다. 이것은 그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길리기아 다소 출생(행22:3_)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졌고(행22:5, 6, 7, 9), 가말리엘 문하생(행22:3)으로서 최고의 학문을 익혔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당시 공용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도 장비된 최고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는 목표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선택홤으로써, 이 전에 그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겼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고(빌3:10-11), 그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거나,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조금도 자만하지 않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 곧 오직 그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렸다】(빌3:12-14).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하여 붙잡힌 바 된(빌3:12) 그것을 붙잡으려고(빌3:13), 달리고(빌3:12) 달렸다(빌3:14).

빌립보서 3장 12절과 13절에서 【잡으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2638 καταλαμβανω(카탈람바노)는 잡다, 붙잡다, 체포하다, 얻다, 얻다, 획득하다, 빼앗다, 소유하다, 취하다, 가지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빌립보서 3장 12절과 14절에서 【달렸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διωκω (디오코)] 좇다, 좇아가다, 따르다, 뒤따르다, 추구하다, 추격하다(pursue), 박해하다(persecute), 핍박하다, 구박하다, 갈망하다, 힘쓰다 / 빌3:12 추구하다, 빌3:14 좇아가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 예수님은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1-5).

요한복음 15장 2절과 4절 중에, 개역개정, 개역한글,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에서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또는 【거하다】 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동일한 단어로서 μενω(메노)라는 단어인데, 거하다(abide), 머물다(stay), 남아있다, 잔존하다(remain), 계속하다, 붙다, 붙어 있다, 견디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 몇 구절들에서 【붙다】라는 단어들의 공통점은 일시적이고 느슨하고 적당하게 붙잡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이고 필사적으로, 상대방이 싫어해도 상대방을 박해하고 핍박하는 정도까지 집착하여, 바짝 붙어서 쫓아가 굳게 붙들고 놓아주지 않고 절대로 떨어지거나 분리되지 않고, 달라붙어 하나가 될 때까지 연합하는 것이다. 

문득 「붙잡고 놓지 않으리. 예수! 예수! 예수! 예수! 나는 그를 붙잡았네. 다시는 놓지 않으리!」라는 어느 찬송 가사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 만주의 주(계17:14), 만왕의 왕(계17:14, 19:16), 생명의 주(골3:4), 영광의 소망(골1:27)이시며, 신랑이신 주님을 향해, 아가서에서 솔로몬으로 예표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연인으로서 달려가고, 추구하고, 붙잡고, 놓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하나로 연합될 때까지 붙어 떨어지지 않을 때 운명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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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바크(דבק( (1692, 다바크) ...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밀착), 충실히 대하다, 접근하다

다바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달라붙다, 집착하다 cling, 굳게 결합하다, 충실히 대하다 cleave, 접근하다 keep clos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4회 나오며, 칼, 푸알,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다바크는 '달라붙다, 집착하다, 굳게 결합하다, 충실히 대하다(충성)'를 의미한다. 다바크는 서로 달라붙어 있는 물체, 특히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욥은 자신의 피부와 살이 뼈에 붙어 있으며(욥 19:20), 원래부터 귀인들의 혀는 그가 나타나면 입 천정에 붙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욥 29:10). 

침묵할 때에 혀가 입 천정에 붙어 있다는 그러한 비유는 시 137:6, 욥은 현대 세계에서 잘 알려진 비유로 욥 31:7에서 자기 손에 더러운 어떤 것도 붙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악어에 대한 하나님의 묘사에서 하나님은 "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라고 언급하시는데(욥 41:23), 그것은 악어의 살에 붙은 비늘 혹은 뱀의 비늘(?)을 언급하는 것이다.

다바크는 좋지 못한 상황에 관하여 쓰이고 있다: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시 102:5). "젖먹이가 목 말라서 혀가 천장에 붙음이여"(애 4:4).

몸의 지체는 여러 가지 대상물에 달라붙어 있다고 언급되고 있다. 시 44:25은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언급하며 시 119:25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고 언급한다. 다윗의 용사 중의 한 사람은 그가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살해하였다고 한다(삼하 23:10).

다바크는 애정과 충성으로 어떤 사람에게 굳게 결합되거나 밀착되어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남자는 자기 아내에게 굳게 결합하여야 한다. 곧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와 친밀히 지내고 애정과 성실로 그녀에게 밀착되어 있어야 한다(창 2:24). 

룻은 나오미에게 밀착하여 충실히 대하였다(룻 1:14). 유다 사람들은 세바의 반란 때에 자신들의 왕인 다윗과 합하였다(삼하 20:2).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연연했고(창 34:3), 솔로몬은 사랑으로 자기의 아내들에게 집착했다(왕상 11:2).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에게 임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애정과 충실히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신 10:20, 신 11:22, 신 13:4, 신 30:20, 수 22:5, 수 23:8).

렘 13:11에서는 사람의 띠가 허리에 밀착하여 있는(칼형)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자기에게 굳게 결합하게 하였다(히필형) 한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주님에 대한 적절한 자세를 묘사하고 있다.

(b)  다바크는 '~함께 머무르다, 접근하여 있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보아스는 룻에게 "나의 소녀들과 함께", 또는 가까이 있을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룻 2:8, 룻 2:21), 그래서 룻 또한 그렇게 했다(룻 2:23).

2. 푸알형에서 다바크는 '굳게 결합되다'를 의미한다. 악어의 비늘은 서로 굳게 결합되어(달라붙어) 있으며(욥 41:17), 흙덩이 또한 그렇다(욥 38:38).

3. 히필형에서

(a)  다바크는 '달라 붙게 하거나 굳게 결합시키다'를 의미한다. 고기로 비늘에 붙게 하는 것(겔 3:26, 겔 29:4), 비유적으로 백성으로 하나님께 굳게 결합시키는 것(렘 13:11), 질병이 몸에 달라붙는 것(신 28:21)을 묘사한다.

(b)  다바크는 '접근하여 (바싹) 추적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사람들을 바싹 추적하였으며(삿 20:45), 나중에는 블레셋을 추적하였다(삼상 14:22).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바싹 추적하였다(삼상 31:2, 대상 10:2).

(c)  다바크는 '따라 잡다, 따라 붙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라반은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따라 잡았으며(창 31:23), 미가는 단의 자손들을 따라 잡았다(삿 18:22).

4. 호팔형에서 다바크는 '달라붙게 되어졌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시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갈증으로 인한 메시야의 고통을 묘사한다.(참조: BDB; E. S. Kal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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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0장 (개요)

어떤 사람들은 앞 장 마지막의 경고가 이스라엘 백성의 완전한 종말을 가져오게 되며 저들의 사정은 영원한 절망 속에 내던져 버림을 당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본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훗날에 저들에게 베풀려고 간직해 두신 자비가 명백히 암시되고 있으니, 마침내는 자비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하게 될 것이며, 자비가 최종적인 말씀을 하리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보게 된다.

1. 저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는 비상하게 크고 귀한 약속이 저들에게 주어질 것이다(1-10).

2. 믿음의 의(義)가 이제 저들에게 주어진 명백하고 쉬운 계명 속에 제시되어 있다(11-14).

3. 전반적인 문제는 저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공명 정대한 조언(15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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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는 자들에게(신 30:1-10)

이 구절들은 조건적 약속이거나 절대적 예언으로 간주될 수 있다.

Ⅰ. 이것은 첫째로는 조건적 약속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외에도 모든 개인이나 모든 백성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이 말씀들의 의도는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하더라도 만약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저들의 죄가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될 것임을 우리에게 확실히 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은혜의 언약의 취지인 것이니, 곧 범죄하는 경우에 회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며, 회개하면 용서하심을 받는다는 약속을 주는 것이다. 

결백의 언약(구약의 언약)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 약속들을 받을 조건이 되는 회개란 어떤 것인가?

(1) 그것은 진지한 심사숙고에서 비롯된다(1절). “너는 네가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중요치 않은 것으로 생각했던 일을 상기하라.” 

심사숙고가 마음을 돌이키는 일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너희 패역한 자들아, 다시 생각하라”(사 46:8). 신약성경의 탕자도 먼저 제정신이 든 후에야 자기 아버지께 돌아갔던 것이다. 저들이 상기해야 하는 것은 축복과 저주다.

 죄인들이 만약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행복과 스스로 빠져들었던 불행을 진실하게 생각해 보고, 회개에 의해 저들이 그 비참한 궁지를 면할 수 있으며 그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낼 수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탕자가 “복과 저주를 마음에서 기억해 낸” 것은 바로 그의 당장의 궁핍과 자기 아버지 집의 풍족한 양식을 생각해 내었을 때였던 것이다(눅 15:17).

(2) 그것은 진지한 회심으로 이루어진다. 

심사숙고의 결과는 경건한 슬픔과 경건한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다(겔 6:9; 7:16). 회개의 골수가 되고 생명이 되는 것은, 또 이것 없이는 가장 열정적 표현도 우스개 소리에 불과하게 되고 말 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다(2절).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10절). 

우리가 돌아오되 우리 주이시며 은인이신 그 분께 의지해야 하고, 우리의 최고 목적이신 그 분께 헌신해야 하며, 우리와 언약을 맺은 하나님이신 그 분과 교제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거역하거나 그 분과 다투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 그 분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로의 이 돌이킴에서, 우리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돌이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곧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서 해야만 한다.

(3)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대한 끊임없는 순종에 의해 확증된다. 

만약 “너와 네 자손이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이라고 했다(2절).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의무만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못하고, 우리의 자녀들도 그 일을 행하도록 훈육하고 약속해야 함을 이르시는 것이다. 혹은 저들의 자녀들이 자기들의 의무를 굳게 지킨다면 복을 내리시겠다는 조건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① 이 순종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어야 한다.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일지니라(10절).

② 그것은 진실하며 즐겁고 온전한 순종이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순종해야 한다(2절).

③ 그것은 사랑의 원리로부터 비롯하는 순종이어야 하며, 게다가 그 사랑은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하는 것이어야 한다(6절). 

하나님께서 하감하시며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과 성품(영혼)인 것이다. 하나님은 전체를 온전히 받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받지 않으시든지 하는 분이다.

④ 이 순종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2절),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8절)고 했다. 

이것은 한 가지 계명을 범하도록 허용하는 자는 모든 계명을 다 멸시하는 죄에 빠지는 까닭에서다(약 2:10). 곧은 마음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하는” 것이다(시 119:6).

2. 이런 회개 위에 약속되는 은총은 무엇인가? 

저들이 비록 쫓겨 감을 당한 열국 중에서(1절) 고통과 피폐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오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자비롭게 용납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불행을 내리셔서 우리로 회개시키려 하시기 때문이다. 

비록 저들의 “쫓겨 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거기서 회개하는 저들의 기도 소리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귀에 다다라 마침내 그 분의 은총이 저들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4절). 

“어디에서나 하늘에 이르는 길은 동일하다”(Undique ad c los tantundem est vi). 

느헤미야도 그의 기도 속에서 이 약속을 들어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탄원하고 있다(느 1:9). 여기에서 약속된 은총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긍휼을 받을 적당한 대상으로서 그들을 동정하실 것이라고 했다(3절). 

죄악 중에 행하는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분노를 발하시나(신 29:20), 회개하고 자기를 탄식하는 자는 불쌍히 여기신다(렘 3:18, 20). 

진실되어 참회하는 자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신 자비로부터 크나큰 용기를 얻을 것이니, 그 긍휼과 자비는 결코 다함이 없으며 차고 넘치리라.

(2) 하나님은 저들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여 주실” 것이며, 아무리 원방의 “여러 민족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3절, 표준새번역) 저들을 “거기서부터 이끄실 것”이다(4절). 

시리아역의 어떤 의역본은 이것을 메시아에게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여호와의 말씀이 큰 제사장 엘리야에 의해 너희를 모으실 것이요, 왕 메시아의 손에 의해 너희를 인도하실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가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메시아와 맺은 언약이었기 때문이다(사 49:6). 

그리고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 그 분의 죽으심의 목적이었다(요 11:51, 52). “그에게 모든 백성이 모이리라”(창 49:10, KJV).

(3) 그가 저들을 저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5절). 

참회하는 죄인들은 그들의 불행에서 구출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참행복으로 복귀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저들이 그 분의 인도를 받아 소유하게 될 땅은 비록 예전과는 같지 않을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조상 아담이 소유하다가 쫓겨난 곳보다는 나은 것이다.

(4)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선을 행하사”(5절), “저들을 기뻐하실” 것이다(9절).

 왜냐하면 하늘에서는 죄인들의 회개와 돌이킴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그를 기뻐하였다.”

(5) 하나님께서 저들의 수를 증가시키신다는 것이다(5절). 

게다가 저들의 수가 많아질지라도, 모두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풍족하게(많게)” 하실 것이다(9절).

민족적 회개와 혁신은 민족적 풍요와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네 가축과 네 토지의 소산으로 영구히 “많게 하실” 것도 약속되어 있다. 

많은 자들이 많은 고통을 받는데, 우매한 자들의 번영이 저들을 파멸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때에, 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6)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당하고 있던 저주를 저들의 원수들에게로 옮길 것이다(7절). 

하나님께서 저들을 다시 세우려고 불러모으실 때면, 저들은 수많은 반대 조건들을 능히 대적할 것이다. 또한 저들에게 임했던 바로 그 저주들이 오히려 저들의 방패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저주들은 그들의 대적들에게 옮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공포의 잔이 저들의 손에서 취하여져 저들을 괴롭히던 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사 51:22, 23).

(7)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은혜를 주사 저희 마음을 편케 하시고 그 은혜가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시리라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할례를 베푸사 너로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시리라”(6절). 다음 사실을 명심해 두자.

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시리아역이 해설하는 대로, 육체의 더러움과 심령의 우매함이 제해져야 한다(골 2:11, 12; 롬 2:29 참조).

할례는 언약의 날인이었다. 마음이 이 의무에 강력히 결속되는 그 때에야 “마음에 할례를” 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② 마음에 할례를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널리 뿌려 주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이며, 이 은혜는 회개하며 정성 들여 구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계율이라기보다는 약속처럼 보인다.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8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은혜를 약속하고 계신다. 만약 그 은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우리가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 잘못이다. 여기서는 은혜의 언약도 엿볼 수 있으니, 이 언약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의 약속이기도 한 것이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리라”(잠 1:23).

3. 이 열 구절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열두 번이나 칭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 사실을 가리킨다.

(1) 통회하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저들의 하나님께 대한 관계로부터 인도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렘 3:22).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께로만 나아와야 하며, 그 외에 어디로 우리가 가오리까? 그런즉 우리는 당신께로부터 은총 얻기를 원하나이다.”

(2) 하나님을 떠나 반역했던 자들이라도 만약 저들이 그 분께 돌아와 저들의 처음의 일들을 행한다면, 저들의 이전 상태 즉 명예와 행복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첫 번째의 의복을 이리로 가져오라.” 이 앞 장의 경고 가운데에서는 하나님이 권세의 하나님이시요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신 여호와로 곳곳에 불리고 있으나, 본 장의 약속 가운데서는 은혜의 하나님, 너와 언약을 맺으신 “네 하나님 여호와”로 불리고 있다.

Ⅱ. 이것은 또한 유대인들의 회개와 회복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일들이 네게 임할 때에는”(1절) 축복이 먼저, 그 다음은 저주가, 그러고 나서는 예비된 자비가 임할 것이다. 

저들의 마음이 비참할 정도로 강퍅케 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저들을 부드럽게 하며 변화시킬 것이었고, 저들의 사정이 통탄할 지경으로 비참했다 해도 하나님의 섭리가 저들의 모든 괴로움을 보상해 주시리라는 것이다.

1. 이 예언은 저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성취되었음이 확실하다. 

우상과 결합했던 에브라임이 저들과 절교하면서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호 14:8)라고 말했던 것은 저들의 회개와 개혁에 대한 놀라운 본보기였다. 

그 포로 생활은 저들의 우상 숭배 악습을 제거해 주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들의 본래의 땅에 심으시고 선대하셨던 것이다.

2. 그러나 어떤 자들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돌이켜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저희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며 그리스도의 교회로 가까이 나아올 때라야 이것이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민 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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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계시의 장점(신 30:11-14)

모세는 그들이 이 명령의 분명함과 행하기 쉬움을 생각해 보고 순종하라고 강조한다.

Ⅰ. 이것이 모세 율법의 참된 면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알 수도 없으며 실행할 수도 없고, 인식 불가능하거나 실행 불가능한 명령을 내리셨으므로 자기들이 불순종했다고 결코 변명할 수 없었다.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11절).

1. 즉 “그것은 네게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알아 보고자 사자들을 하늘로 보낼 필요도 없는 것이요, 학문의 탐구를 위해서 먼 지역까지 두루 여행하는 철학자들처럼 네가 바다 밖에 갈 필요도 없는 것이라. 네가 그런 수고를 하도록 함도 아니요, 그런 비용을 들게 함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명령은 거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자나 정교한 천재적 능력을 가진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네게 심히 가까이 있는 것이다(14절). 그 말씀은 돌판 위에 명백히 만들어진 네 책에 기록되었으니, 달려가면서라도 그것을 읽을 수 있으며, 네 제사장들의 입술이 이 지식을 간직하고 있은즉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너는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말 2:7). 또 그 말씀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전달되는 것도 아니며, 네 입에 있는 말로 된 것이니, 즉 네가 보통 사용하는 네 나라 말로 되며, 그것을 읽는 것을 네가 들을 수 있고, 네 자녀들 사이에서 친밀히 얘기하는 자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를 당혹케 하거나 놀라게 할 애매한 문구나 숫자로 싸여 있다든지 상형문자로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네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네 능력에 맞게, 가장 하찮은 자의 능력에도 알맞은 모양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2. 70인역 성경에는 “그것은 네게 너무 어렵거나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되어 있다(11절).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하늘로 기어오르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새벽 날개를 타고 바다 저 끝까지 달아나는 것과 같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일은 그렇지 않으며, 사악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표현하듯, 그토록 참을 수 없는 멍에가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우신 멍에와 비교할 때 이것은 참으로 무거운 멍에라고 하겠으나, 저들의 인근 열국들의 우상 숭배에 비할 때는 그다지 무거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저들을 “예물로 인하여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괴롭게 아니하였다”는 것을 저들에게 호소하신 것이다(사 43:23; 미 6:3). 

그러나 모세는 도덕법과 그 교훈들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고 있다. “그것은 네게 아주 가까이 있으며, 단지 주의해 보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과 모든 자의 입에서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자연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네 안에는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다(롬 7:16). 그러므로 네가 그것을 준행하는 데에 어떤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불평할 만한 하등의 이유도 없다.”

Ⅱ.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도 맞는 말이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복음에 적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뜻하는 것으로 삼았다(롬 10:6-8). 

그리고 이것이 모세가 가장 중요시한 의도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많이 있으니, 이는 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다(요 5:46). 

우리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요일 3:23), 이것은 복음 아래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명이다. 

만약 우리가 소경이 그랬듯이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그가 어디에 있나이까? 우리가 그를 믿고자 하나이다”라고 묻는다면(요 9:36), 이 성경이 해답을 주는 것이니, 곧 우리가 그 분을 이리 데려오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음은 그 분이 성육신하셔서 이리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며, 그 분을 데려오기 위해서 음부로 내려갈 필요도 없음은 그 분이 부활하셔서 거기에서 올라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은 우리에게서 가까우며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메시아의 성육신에 대한 약속이나 부활에 대한 약속이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으며, 따라서 그 분을 영접하고 우리 입으로 그 분께 고백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할 것이요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는 가까이, 아주 가까이 계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 율법은 분명하고 쉬운 것이었지만, 복음은 더욱더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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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하라(신 30:15-20)

모세는 가급적이면 자기가 지금껏 가르쳐 온 것들이 이 무사려한 백성의 이해와 관심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주 환한 등불처럼 교화력 있는 말로, 또 아주 강렬한 불꽃처럼 정열적인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생동적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보다 더 깊고 오랜 인상을 지울 수 있으랴! 

그가 그들을 대하는 방법은 너무나 순리적이고, 너무 신중하고도 인정스러워서, 어느 모로 보아도 핵심을 찌르기 때문에,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충분히 나타내 주며, 저들이 불순종할 때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도록 해 놓고 있다.

Ⅰ. 그는 이 일을 매우 공정하게 진술하고 있다. 

모세는 자기가 그들에게 바라는 만큼 최대한 명료하게 이 문제를 저들 앞에 제시해 놓았는지에 대해 직접 생각해 보라고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1. 누구나 생명과 선의 획득을 바라며, 사망과 악의 회피를 원하고, 행복을 갈망하며 불행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모세는 말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원할 수 있는 모든 행복을 얻게 하는 길과 불행을 모면하게 하는 길을 너희에게 보여 주었다. 순종하라! 그리하면 만사가 형통하여 추호라도 잘못되는 일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은 선악의 지식을 얻고자 하여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 그러나 저들이 얻은 것은 불행한 지식이었으니, 선을 상실함으로 말미암아 선에 관한 지식을, 악을 인식함으로써 악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동정심은 너무나 크셔서 인간을 인간 자신의 사망에 팽개쳐 두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 분의 말씀으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리하여 만약 인간 자신의 잘못이 없는 한, 인간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그런 지식을 주셨던 것이다.

2. 인간은 누구나 그의 행동 속에서 알게 모르게 희망과 공포, 곧 신에 대한 희망과 악에 대한 공포의 영향과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이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자, 나는 양편 길을 다 알아 보았다. 만약 너희가 이들에 대한 확실한 전망 때문에 자진해서 순종으로 이끌리든 혹은 불순종할 경우에는 파멸에 대한 전망이 역시 확실함으로 인해 하는 수 없이 순종하게 되든, 만약 너희가 순종하기만 하면, 너희는 하나님과 너희 의무에 가까이 나아가게 되거니와, 만약 너희가 순종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너희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전반적 사정에 대한 결론을 들어보기로 하자.

(1) 만약 저들과 저들의 자손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면, 저들은 생존하여 복될 것이다(16절). 

저들이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의 명령들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한다면, 즉 저들이 만약 그 분의 계명 지킴을 양심의 문제로 간주하고 사랑의 원리에서 우러나와 그렇게 행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선히 행하시며 그 분의 사랑과 축복이 닿는 데까지 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2) 저들이나 그 자손이 만약 어떤 때에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돌이켜서 그 분을 섬기는 일과 담을 쌓고 다른 잡신들을 숭배하면, 이 일은 정녕코 저들의 파멸을 부르리라는 것이다(17, 18절). 

파멸의 경고가 발해지고 있는 것은 저들 의무의 세부 조항에 대한 모든 낱낱의 불이행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배반이나 우상 숭배에만 그러하다. 

비록 계명의 위반은 한결같이 저주를 받아 마땅한 바이지만, 그 민족의 멸망은 결혼 언약의 위반 시에만 초래되는 것이었다. 

신약성경의 요지는 이와 매우 흡사하다. 이와 비슷하게, 신약성경은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 선과 악을 제시하고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한다(막 16:16). 그리고 이 신앙은 사랑과 순종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계속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분쟁을 좋아하여 진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물의를 좇는 자”에게는 (그래서 실제로는 잡신들을 경배하며 그들을 섬기는) 죽지 아니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노와 분으로 갚으실 것이니, 그 결과는 멸하지 않는 영혼의 환난과 고통임이 틀림없는 것이다(롬 2:7-9).

Ⅱ. 그는 이같이 말한 후에, 이것을 저들의 선택권에 붙이면서, 저들에게 잘 선택하라는 지시를 한다. 

그는 그들을 향한 자기의 공명정대하고 신실한 행동에 대해 하늘과 땅에 호소하고 있다(19절). 저들은 무엇이 논의의 초점이었든지 간에 모세가 자기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저들이 자신들의 정성을 다 기울여 생명을 선택하기를 명하는데, 이는 곧 저들의 의무를 선택하는 것이다. 또 저들의 의무는 저들의 생명이 될 것이었다.

1. 의무와 순종의 길을 선택하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택하며 저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와 교제하기를 택하고, 저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바대로, 그 선택을 이행하는 자는 그들이 선택하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2. 생명과 행복을 얻지 못하는 자들은 자업자득임이 틀림없으니, 저들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맡겨졌을 때 저들이 그것을 택했더라면 그것을 소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는 자들은 죽고자 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니, 즉 그들이 제안된 조건 위에서 약속된 삶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이다.

Ⅲ. 마지막 구절에서,

1. 모세는 그들의 의무가 무엇인지 저들에게 요약하여 나타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곧 가장 친근한 분이신 여호와로서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며, 저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인 저희들의 “하나님”으로서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그 사랑의 증거로 모든 일 중에서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며, 이 사랑과 순종의 항구성에 의해 “그에게 부종”하는 것이며, 관심에 있어서나 실행에 있어서 결코 그 분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2. 그는 이 의무에 대한 이유를 저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려했다.

(1)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의존.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그 분은 생명을 주시며, 생명을 보존하시며, 생명을 회복시키신다. 덧없는 인생이라도 그 분의 능력으로 인해 그 생명이 길어지고, 상실된 삶이라 할지라도 그 분의 인내하심으로써 연장시키시는 것이다. 그 분은 그 분의 위로로써 우리의 생을 행복하게 하시나니, 그 분은 생명의 주권자 여호와시다. “그의 손에 우리 호흡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 그 분의 사랑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그 분을 우리의 친구로 모시는 것은 선한 일이요, 하나님을 우리의 원수로 삼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2) 저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고 맹세로 인준하신 가나안 땅의 약속에 대한 저들의 의무.

(3) 그리고 그 약속의 실현에 대해 하나님께 거는 저들의 기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 이는 그가 주시리라고 네가 확신해도 좋을, 약속된 그 땅에서 네가 거하기 위함이니,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라고 주장할 수 있는 분이로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순종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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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30: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 - 모세가 이미 28, 29장에서 언급한 축복과 저주, 곧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임할 복과 불순종할 때 임할 저주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복'이라는 말을 생략하는 것이 오히려 본문 이해에 자연스럽다. 
기억나거든(* , 슈브) - 본 뜻은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다'(3:20), '원상태로 회복되다'(삭 15:19)이다. 그러나 이 말이 마음에 적용될 경우에는 '뉘우치다'(렘 8:6)란 의미를 지닌다. 2절의 '돌아와'의 원어가 바로 이 '슈브'이다. 그리고 이 '슈브'는 왕상 8:47에서 '스스로 깨닫고' 및 '돌이켜'란 말로도 번역되었다.
===30:2
여호와께로 돌아와...순종하면 - 참된 회개가 어떠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는 구절이다. 즉 회개란 단순히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란 (1) 먼저 자기의 잘못을 겸손히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다. (2) 다음으로 과감히 그 죄악의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골 3:1-10).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6:9 주석 참조.
===30:3
마음을 돌이키시고 -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섭리나 뜻의 변개(變改)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주를 거두시고 인간을 향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의인화하여 묘사한 말일 뿐이다.
흩으신...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 여기서 '흩어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편에서 볼때 선민(選民)의 자격이 상실되는 것을 뜻한다. 반면 다시 '모아진다'는 것은 선민의 자격이 회복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 이를 설명하자면 '흩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귀한 보배, 26:18)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반면'모은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knobel).
===30:4
하늘가에 있을지라도...이끄실 것이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아주 먼 곳에 끌려가 살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자신의 소유로 회복시키겠다는 뜻이다(Lange). 회개한 자에게 임할 이 회복의 메시지는 훗날 선지자들이 포로 생활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희망을 일깨워 주는데 자주 사용하였다(렘 32:37-44;겔 34:13;36:24). 그리고 후일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에 크게 기여했던 느헤미야 역시 본 메시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긍휼을 간구한 바 있다(느 1:8, 9).
===30:5
열조가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 이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상 3차에 걸쳐 실제로 성취되었다. 즉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한 후 그곳으로 끌려갔던 백성들은 바벨론이 바사에 의해 망하자 바사 왕 고레스(Cyrus)의 칙령에 의하여 3차에 걸쳐 고토(故土) 팔레스틴으로 귀환하였다. 그중 1차 귀환은 B.C.537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솔하에 이루어졌다(스 2:1-70). 그리고 2차 귀환은 B.C.458년, 에스라의 인솔하에(스 7:1-10), 그리고 마지막 3차 귀환은 B.C.444년, 느헤미야의 인솔하에(느 2:9-11) 각기 이루어졌다.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케 하실 것이며 - 물론 본 절의 1차적 의미는 '육적 이스라엘의 번창'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모두 가나안 땅으로 귀환할 경우, 가나안 땅이 그들 모두를 넉넉히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Keil), 본절은 반드시 문자적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가 엄청나게 급증하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Delitzsch, Keil, Lange, PulpitCommentary). 이것은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 서신 11장에서 논한 바, 꺾이운 바된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먼저 이방의 돌감람나무가 접붙임 바 된 일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유대인의 진정한 회복이 있게 되리라는 사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30:6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 '할례'(割禮)는 본래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징표였다(창 17:11). 즉 이것은 이스라엘이 모든 죄악된 것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할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식이었다. 따라서 옛 언약하에서 이루어졌던 이러한 '육신의 할례'는 어디까지나 새 언약하에서 이루어질 '마음의 할례'를 예표했던 그림자였다(렘 4:4;롬 2:28, 29). 그렇다면 결국 본절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영을 부어 주고 새 마음을 심어 주사(겔 36:26, 27). 그들을 다시금 새 언약하의 새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은총의 선포인 셈이다. 그런데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최종 완성된다(히 8:6-13).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 6:5 주석 참조.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하이'(* )는 '생명'을 뜻하는 일반적 용어인 '네페쉬'(* , 12:23;13:6)와는 달리 '신선한 생명', '힘있는 생명'이라는 뉘앙스(nuance)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15, 19, 20절;28:66;32:47). 따라서 본절에서 말하는 '생명'을 단순한 육적인 목숨만을 의미하는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구약 시대 당시 경건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참 생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었다(시 27:1). 그리고 신약 성경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요 3:16).
===30:7
네 대적...에게 이 모든 저주로 임하게 하시리니 -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핍박했던 모든 대적들은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인 도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이스라엘보다 의로왔기 때문에 선택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자신의 죄값에 대하여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본절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시 62:12;렘 17:10).
===30:8
너는 돌아와...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맞은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계속적인 저주를 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 지침이다. 즉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후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2절 주석을 참조하라.
===30:9,10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 - 이것들은 결단코 인간을 얽어매는 속박과 사슬의 법조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은혜 언약의 일환으로 율법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셨을 뿐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속성을 깨닫게 하고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하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생명의 등불'인 것이다(시 119:105;잠 6:23).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들이 그것을 잘 지켜 행할 때, 복에 복을 더하시기 위하여 주신 '축복의 방편'인 것이다(28:1-14;출 19:5, 6).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복을 주시리라 - 비록 교만과 허영으로 집을 떠났던 탕자라 할지라도, 다시금 돌아오면 각양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구절이다(눅 15:22-24). 한편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풍성한 축복들에 대하여서는 이미 28:1-6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니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30:11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 '어려운'에 해당하는 원어 '팔라'(* )는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삼하13:2) '기이하거나', '놀라운 일'(잠30:18)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율법의 평이성(平易性)', 즉 '율법은 너무 어려워서 인간이 그 도(道)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Keil, Schultz, Knobel).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밝히 계시(啓示)되어 있는 것이다(29:29). 그러므로 누구라도 쉽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다(요일 5:3). 물론 이는 상대적이긴 하다. 왜냐하면 심령이 완악한 자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13:13).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와 같은 가난한 심령이 필요하다.
먼 것도 아니라 - '먼'에 해당하는 '라호크'(* )는 거리적으로 먼 것(13:7)과 시간적으로 오랜 것(왕하 19:25), 그리고 친밀한 정도에 있어서 먼 것(시22:1)을 다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그 모든 면에서 '율법의 인접성(隣接性)'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30:12,13
하늘에 있는 것...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 율법은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사 45:19),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우리의 현실 삶에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딤후 3:16, 17).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과 함께 거하며, 인간의 실제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요 1:14).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저기 저곳'(over there)에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곳'(here)에 있다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워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든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접할 수 없어서 그것을 지킬 수 없다"라는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자신 곁에 있기 때문이다.
===30:14
네 입에 있으며 -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가 읽을 수 있으며 강론(講論)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뜻이다(Lange).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입에 담아 두었더니 그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았다'(시 19:10)라고 고백까지 하였었다.
네 마음에 있은즉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늘 묵상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 둘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6:6)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빈부 귀천이나 남녀 노소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라고 하였다.
===30:15
보라(* , 라) - '볼지어다'(be hold)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감탄사 '헨'(* )과는 달리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 '주목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 이 두 가지 중에서 그들이 양자를 똑똑히 주목하여 살펴 관찰한 후,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하셨다.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예비해 놓으신 길은 '생명 및 복(福)의 길'과 '사망 및 화(禍)의 길'이라고 하는 단 두 갈래 길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서는 후일 예수께서도 '좁은 문'과 '넓은 문'의 비유로써 우리들에게 명확히 교훈하셨다(마 7:13, 14). 그러므로 하나님과세상을 동시에 벗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자는 더 늦기 전에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약 4:8).
===30:16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보다 이같은 권고가 먼저나 옴에 유의해야 한다. 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본분이다(마22:36-38).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연스런 외적(外的) 표현이다(요일 5:3). :: 즉, Q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을 참되게 믿고 붙듦으로 하나되는 믿음이야말로 Q이 기뻐하시며, 그분의 기쁨을 함께 나누시며 그 교통안에서 누림으로 삼는 바 사랑겨운 순종이 참 순종인 것!!
그 모든 길로 행하며 -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 곧 그와 동행하는 삶을 살으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러한 동행의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나를 쳐서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의합(意合)치 아니하고서는 둘이서 동행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암 3:3).
명령과 규례와 법도 - 사실상 모두 동의어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다. 4:1;5:31 주석 참조.
복 - 28:2 주석 참조.
===30:17
유혹을 받아서 -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를 '어쩔 수 없이...하다'(be impelledto) 또는 '이끌림을 받다'(be drawn away)로 번역하고 있다(KJV, NIV, Living Bible,RSV).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주위의 유혹에 대하여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잘 나타내 준다. (일단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 자기를 그것에게 포로로 내어줌이니= 그것의 포로가 되고만다는 것!!)실제로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으며(시 1:4), 또한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모든 일에 정함이 없다(약 1:6, 8).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 이러한 우상 숭배 행위는 사망과 저주에 이르는 치명적 단계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다(6:15;출 20:5). 그러므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다른 헛된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것을 결단코 용납하지 아니하신다(4:19;13:2-16;17:2-7;18:20-22).
===30:18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 '선언하다'에 해당하는 '나가드'(* )는본래 '정면에 두다'란 뜻이다.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의미가 파생되었는데, 주로 상대방의 입장 혹은 다수의 주장에 대해 반대 견해를 담대히 피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분명히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시 따르게 되는 사망과 저주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요단을 건너가서...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 요단 건너편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들어가 살 거룩한 언약의 땅이다. 따라서 그 땅에는 온갖 더러운 죄악이나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일 그 땅에서 그러한 자들이 생겨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제거할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언약의 땅 가나안(창 12:7)에서 오래도록 행복을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뿐임을 보여 준다. 한편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 같은 가나안 땅은 하늘 가나안, 즉 천국을 예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자 역시 하나님의 새 언약대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主)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 뿐이다(히 5:9).
===30:19
천지를 불러서...증거를 삼노라 -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축복과 저주의 언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모세가 천지(天地)를 증인으로 삼았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1) 지금 맺고 있는 언약이 마치 언제나 요지부동한 천지처럼 확실하고 불변하며 영구하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2) 또한 이 언약 체결이 전우주적인 관심사가 될 만큼 중차대한 사건이란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26). 아뭏든 이처럼 하늘과 땅을 의인화한 표현은 구약 성경에 종종 나타난다(창 4:11;시 19:1;사 1:2).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과 저주를 반길리 없다. 모두가 다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참 생명과 참 행복을 향유(享有)하는 자는 매우 드물다. 그것은 곧 참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27:1), 그리고 참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시 16:2)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는 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 생명의 도(道)를 따라 걷는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30:20
그에게 부종하라 - '부종(附從)하다'에 해당하는 '다바크'(* )는 '굳게 연합하다', '착 달라붙다', '밀접히 결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각별한 애정이나 우정을 나누는 사이를 의미한다. 이는 곧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자들이 형식적으로 또는 엄격한 규정에 얽매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보다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연합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10:20).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께 가까이하여 그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것- 바로 이것이 모세 설교의 핵심으로서 곧 축복과 생명을 길이 누리는 참된 비결임을 보여 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한신 땅 - 실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란 민족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들의 3대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거듭거듭 맹세로 약속하셨다(창 12:7;13:14, 15:7,18;17:8;26:3;28:13). 따라서 이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길이 장수하며 복받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요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처럼 길이 복받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만가지로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호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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