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5장 [300.내맘이낙심되며] [301.지금까지지내온것] [3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484.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오귀한주이름
.....참되게 그리스도를 믿는(지난 날의 죄인됨을 회개하고 깨닫게 하신바 복음 그 말씀 그대로 비추신바 전존재의 실체적/실제적 진실 그대로 인정-고백하며,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은바) 그분, 이제 부활승천하사 그분의 이름 부름과 믿음-영접함으로써 영생 얻게 얻고 누리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참되게 영접하고 주 안에(in-Him reality) 머무름으로써 상호 거함/생명 교통-상호 소유/기업/누림)... 거듭난 자마다 그의 영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내주하사 주님-주인-머리-남편-왕으로 계심 인해 참 제사장-참 선지자-참 사사의 삼중 기름부음이 이미 주어져 작동케 하셨음을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주 이끄심따라 땅끝까지 복음 전파를 위한 오중 직분, 그 직분으로 그렇게 살라..
[왕하10:15...*15...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
::::: 임마누엘 나의 주여, 주님께서 절대적 진실-신실-거룩하심 같이..보혈-말씀-성령으로 오소서!!... 새롭게 하신 오늘 하루, 매순간마다.. 주께 대해, 그리고 모든 이 하나하나에 대해 그러하도록!! 오직 주님이면 족하오니...열린 하늘로부터 새로이 주님 영광 부어 적셔 점유-충만 감동하심으로 운행하사 저를 일깨우소서...주님의 기쁘신 뜻 온전히 이루소서...하나되신 주 임재 움직임 더 새로이 생생히 알리시며 주님 생각과 마음-심정 일러주시며 보이시며 깨닫게 하소서,,, 친히 주장하사 이끄시며 일하시며 행하소서...나의 그리스도 주님께서 친히 거듭난 내 안에 사심 이루사, 그리스도 주님을 살며 주님의 입의 말씀으로 내 입에 채우시는 바 감동따라 하게 하시는 말씀만 담대히 하도록 이끄소서 ::::
....무엇보다 먼저 오늘 지금 당장부터 마땅히 추구할 바 Q나라와 Q의 의[=성령을 따라 구하라(모든 필요의 근원적 공급자이신 주님께서 움직이며 일하시고 친히 공급해 주시는 바됨 깨닫고 감사하며 누리게 하심을)]...이것 아니고서는 이것 없이는 전적으로 허망함에 귀결됨이니....우선 순위와 근본 동기가 빗나가게 되면, 구하고 찾고 두드릴바 세상 복락(세상의 왕, 반역/미혹/속임/기만/탈취자 사탄에게 자기를 내어줌 그 자체인 어둠/사망에 마취/중독/포로 상태로서, 그가 제시하는바...사탄 숭배 통해 추구케 하는, 비교/경쟁/탈취/잔멸--교만/허망/물거품/바람뿐인..세상낙<=만사형통/건강장수/부귀공명...본래 근원적 창조주이신 주님이 (필요를 완전히 아시며, 때를 따라!! 적절하게) 주시는 것인데, 사탄은 자기것으로, 자기가 주는 것으로 속임>추구자마다 ==> 재림 주 앞에서 회계할 그 때 ("주 안에 [하나] 있음" 아니라), 밖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밖의 어둠에 내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니..
.....세상에 그대 전존재의 눈과 귀를 빼앗겼는가? ...주님 임재, 임마누엘 안에서 과연 행하고 있는가?.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께서 사심, "내가 아니라 (친히 움직이시는) 그분으로 살기"가 자연스러운가?..그게 아니라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Q의 영광, 언약궤를 "부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이요, 세상 블레셋에게 (세상 블레셋은 그 영적 정체성, 그 정체는 사탄 그 자체이다!!, 그 사탄이 수건으로 가리운 바) 그분 영광의 빛을 빼앗겼음에도!! (마취되고 중독되어!!) 아무런 감각이 없음, 곧 "그 귀중함 전혀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되찾아오려는 마음의 열심 없음이요, 아직 그분을 참되게 알지 못함이자 더구나 그분의 갈망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모르고 있음이다!! ...오호라!! 주님은 그대의 지고지선의 진복 그 자체시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지복직관의 기쁨-사랑-평강 그 자체이심인데....그대는 그리스도를 가진 바, 그리스도-참사람인가?!!..."이스라엘의 영광"의 의미를 주 앞에서 주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회개하라!! 주님의 오래참고 기다리심을 깨닫는가??..합당히 성령을따라!! "코람데오-솔라피데-솔라 스크립투라-솔라크리스토스-솔리데오글로리아"로 행하라!!
(484)1.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주 없이 모든 일 헛되어라
밤이나 낮이나 주님 생각 잘 때나 깰 때 함께하소서
2.지혜의 주여 말씀으로서 언제나 내 안에 계십소서
주는 내 아버지 나는 아들 주안에 내가 늘 살고지고
3.세상의 영광 눈앞에 없네 언제나 주님은 나의 기업
주님만 내 맘에 계시오니 영원한 주님 참 귀하여라
4.영원한 주님 내 승리의주 하늘의 기쁨을 주옵소서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만유의 주여 소망 되소서
[[여기서 분명히 다시 강조하며 드러내시는 바는, Q은 목숨 가진 모든 존재에게 있어서 결코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심!! ...언약궤는 생존 세계에 있어서 그들의 현실적 세상 가치 따른 이익/만사형통-건강 장수 부귀- 생계 보장이나-보호/안전-치료를 위한 마술적 미신적 기복적 부적이 아니라!! 참 성도 안에 내주하여 사시며 움직이시는, 근원적인 영원한 참생명 그리스도의 표상, 곧 이로써 참 성도로 하여금 영생하시는 참 Q을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참 하나 = 야하드) 이룸의 상호 소유-기업됨 통해 그리스도-사람의(신격이나 위격에서가 아니라 오직 피조물로서!! 그 구성 지체 하나하나마다 생명과 본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신성-참 인성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의 몸 이룸이라는, 그래서 이 땅에서 Q의 거처 얻으시려는, 사랑하는 분 TUQ의 영원 경륜 갈망을 알아드림으로써, 날마다 매순간을 그렇게 그분께 동참하여 동행하며 영원한 참생명의 순간을 살아감으로써 그 성취를 오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Q 임재의 거룩함 그 자체, 곧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삼상5:1-7:2
---의, 정의, 공의---주님은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사람마다 거듭난 생명 가진자로 보고계셨음을 유의하라!!..이 관점을 놓치면 생명 Q 말씀 그 자체를 놓침이 된다!!
[마6:33, 34...*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본질과 모든 것은 바로 구주 JC]와 그의 의[Q의 의 = 구주 JC를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 참되게 구주JC 믿고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하나 되어 삶]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7:7-11...*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CJ의 영, 성령) 주시지 않겠느냐]
== 의 ::: 선하심.인자하심.성실/진실하심[[Equity = Righteousness.체데크/체다카..Q 어떠하심 바로 그 자체(하나님 영광의 체현...사람이 실지로 누릴 수 있는, 생생한 실체/실제로 나타나심) 곧 JC, ::: 의로움 = 의롭다 여기심 =>(신격이나 위격에서가 아니라 생명과 본성에서 그리스도와 하나인바) 빼어닮음=판박이= conformity..하나님의 의 =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체현)이신 참 하나님 JC, 이분이 바로 참되게 믿고 구주와 하나 된, 거듭난 우리의 의 = 참 사람이신 JC...결국 믿는이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그분 믿음 통해 얻는바, "참 생명 근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 영광 그대로 누림-삶-교통-사랑-빼어닮음"의 자격/명분 되심]]
---Q 참되게 믿고 하나 됨으로, 참되게 사랑하고 경외함으로써 그분을 친밀하게 알고 하나됨의 교통 안에서 Q 말씀-이름-영광 그대로(Equity) 나타냄인 바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심[다스리다, 샤파트..Judge 사사/판관..Justice.미슈파트..적용, 율례 말씀 Q 뜻 그대로 판결 ::: (차별없이 적용) 공정 = 정의]]...사랑하는 그분, 믿음 인해 그분을 누리며 섬길 바 생명 그리스도는 결코 사람 차별 없으심
--- 자복/회개하고 돌이키는자에게 베푸시는 자비-긍휼-은혜(사유 = 죄벌 근원 제거/원인무효 + 부흥/회복...대속주JC의십가가보혈 믿음에 근거한 부활생명으로 거듭남-임마누엘HS의 동행 통해 거룩함 이루시며 작은중보자 삼으심)...전도자는 주께서 입에 주시는 말씀-성령안의 기도-찬양으로 예배함이 마땅..사람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말씀을 전해야 함!!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 하나님의 의 *구주JC를 믿고 JC의 십자가대속과 부활을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하는 믿음(아버지께 나아가 연합하는 길과 진리, 생명 제공) ==>부활생명의 HS안에서 (참생명Q의)교제 communion/누림complacency/순종obedience 통해 아버지와 JC의 어떠하심 (참되게 알고 연합함으로써 예배하며: 야다-에셰르-바라크) 빼어닮아가며conformity 주 뜻 그대로 행함으로써 아버지/JC의 영광 나타냄(빛과 소금!!) 가능
[의...정의...공의 : 하나님의 의를 모르면 정의/공의는 겉치레일 수 밖에...의인신에 도달 불가/헛됨!!]
@의 : 체다카...righteousness. equity
....YHWH Q의 어떠하심(자비-긍휼-은혜-오래참음-인자-진실-정의/공의로 행하심 ==선하심/토브-인자하심/헤세드-진실하심/에무나)....
@공의= 보혈-말씀-성령과 하나됨 안에서 시행되는 모든 판단(길 :: 법도/규례....미슈파트)따른 의의 실현 = judge, judgement[법도 통한 체다카 구현 :: 상급(Q자신)이나 죄벌 주어짐] --(사람따라 적용 기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법/공도 따른-공평/공정한 적용의 사회적 실행 기준
@정의 = justice[공의의 판단 그대로 실행/적용함, 곧 체다카의 실행 결과 나타나는 Q영광의 광채=.의의 사회적/관계적 언약따른 실행( :: Q을 사랑하고 자기의 모든 것으로 삼고 그와 연합하는 자의) 반응과 태도, 마땅한 행보/길/도리(데레크) : Q영광의 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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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2:8, 17-25...*8.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17.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18.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19.맹인이 누구냐 내 종[야곱]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야곱] 같이 맹인이겠느냐 *20.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그러므로 겸비함으로써 회개하고!! 전존재 기울여 참 생명이신 주께 여쭈고 경청하여 깨닫고 주 이름 부르며 동행하기를 연습하라!!) *21.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 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22.이 백성이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되돌려 주라 말할 자가 없도다 *23.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 *24.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2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8 I am the Lord; that is My name! And My glory I will not give to another, nor My praise to graven images.....17 They shall be turned back, they shall be utterly put to shame, who trust in graven images, who say to molten images, You are our gods. 18 Hear, you deaf! And look, you blind, that you may see! 19 Who is blind but My servant [Israel]? Or deaf like My messenger whom I send? Who is blind like the one who is at peace with Me [who has been admitted to covenant relationship with Me]? Yes, who is blind like the Lord’s servant? 20 You have seen many things, but you do not observe or apprehend their true meaning. His ears are open, but he hears not! 21 It was the Lord’s pleasure for His righteousness’ sake [in accordance with a steadfast and consistent purpose :: JC] to magnify instruction and revelation and glorify them. 22 But this is a people robbed and plundered; they are all of them snared in holes and hidden in houses of bondage. They have become a prey, with no one to deliver them, a spoil, with no one to say, Restore them! [This shows the condition that will ensue as Israel’s punishment for not recognizing the Servant of the Lord and the day of His visit among them.] [Luke19:41-44.] 23 Who is there among you who will give ear to this? Who will listen and hear in the time to come? 24 Who gave up Jacob [the kingdom of Judah] for spoil, and [the kingdom of] Israel to the robbers? Was it not the Lord, He against Whom we [of Judah] have sinned and in Whose ways they [of Israel] would not walk, neither were they obedient to His law or His teaching? 25 Therefore He poured out upon [Israel] the fierceness of His anger and the strength of battle. And it set him on fire round about, yet he knew not [the lesson of repentance which the Assyrian conquest was intended to teach]; it burned him, but he did not lay it to heart..]
[사42:1-16.....((*8.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I am the Lord, that is My Name; My glory I will not give to another, Nor My praise to carved idols..))......*1.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Behold, My [a]Servant, whom I [b]uphold; My Chosen One in whom My soul delights. I have put My Spirit upon Him; He will bring forth justice to the nations. *2.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He will not call out or shout aloud, Nor make His voice heard in the street. *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A broken reed He will not break [off] And a dimly burning wick He will not extinguish [He will not harm those who are weak and suffering]; He will faithfully bring forth justice. *4.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He will not be disheartened or crushed [in spirit]; [He will persevere] until He has established justice on the earth; And the coastlands will wait expectantly for His law.” *5.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This is what God the Lord says, He who created the heavens and stretched them out, Who spread out the earth and its produce, Who gives breath to the people on it And spirit to those who walk on it,*6.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I am the Lord, I have called You (the Messiah) in righteousness [for a righteous purpose], I will also take You by the hand and keep watch over You, And I will appoint You as a covenant to the people [Israel], As a light to the nations (Gentiles), *7.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To open the eyes of the blind, To bring out prisoners from the dungeon And those who sit in darkness from the prison. *8.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I am the Lord, that is My Name; My glory I will not give to another, Nor My praise to carved idols. *9.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Indeed, the former things have come to pass, Now I declare new things; Before they spring forth I proclaim them to you.” *10.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Sing to the Lord a new song, Sing His praise from the end of the earth! You who go down to the sea, and all that is in it, You islands and coastlands, and those who inhabit them [sing His praise]! *11.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Let the wilderness and its cities lift up their voices, The villages where Kedar lives. Let the inhabitants of [c]Sela shout for joy, Let them shout joyfully from the tops of the mountains.*12.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Let them give glory to the Lord And declare His praise in the islands and coastlands. *13.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The Lord will go forth like a warrior, He will stir up His zeal like a man of war; He will shout out, yes, He will raise a war cry. He will prevail [mightily] against His enemies. . *14.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I [the Lord] have been silent for a long time, I have been still and restrained Myself. Now I will moan like a woman in labor, I will both gasp and pant. *15.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그 모든 초목들을 마르게 하며 강들이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I will lay waste the mountains and hills And wither all their vegetation; I will turn the rivers into coastlands And dry up the ponds. *16.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I will lead the blind by a way they do not know; I will guide them in paths that they do not know. I will make darkness into light before them And rugged places into plains. These things I will do [for them], And I will not leave them abandoned or un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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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5:7-17...*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시25:14..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심따라 성육신하여 오신 참 Q, 구주 JC, 그분을 믿어 하나됨 안으로 들어가 바로 그렇게 내주하시는 기름부음이신 CJ의 성령 따라 순종함으로써 로고스요 레마이신 그리스도를 사는 이마다 거듭난자요 참되게 믿는자이니...참되게 하나님 알고 사랑하여 섬기는 참제사장-참 선지자의 기름부음으로 주 앞에서 주와 함께 행하는자라야!! ....주께서 인정하고 기름부어주실 바, 사사 / 판관으로서(위임해주신 왕권, 곧 여호와의 성령따라, 영원한 말씀이신 여호와의 어떠하심과 그 이름으로 왕이신 여호와를 대리/대표하여) 참생명 이신 Q 차원의 올바른 재판/판결/구별/분별/다스림/통치가 가능하게 됨
----((오직 하나님 독생자 성육신하여 오신 JC의 [영원유일무이한 대속의, 완전한 아버지의 갈망따라 사랑으로 자원하신바] 바로 그 희생제사만 허용하고 계심!!))외, 제멋대로 세상가치따라, 건강장수-부귀공명-두려움/불안 제거 목적으로 자녀를 내어주는 것은 극악한 친자살인, 존속살인에 지나지않음을 주의하라!!----
[창18:17-19...*1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오 놀라워라....이 벅찬 기쁨과 감동이란!!..하나님은 성육신 하여 세상에 임하여 오셔서 아버지 갈망 이루시려 십자가 상의 대속적 죽음으로 자신을 드리실 JC의 비밀을 정말!! 마음 알아주는 벗-친구!! 아브라함에게만은 알리고 싶으셨다!!)) *18.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21:33. *33.아브라함은 브엘세바 ((=구속 언약의 생명샘))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33 Abraham planted a tamarisk tree at Beersheba, and there he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in prayer], [e]the Eternal God. 34 And Abraham lived [as a resident alien] in the land of the Philistines for [f]many days.]
[창22:1,2...*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9.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샤파트]--판관/사사, 판결하다=다스리다=통치하다---------
샤파트(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재판하다, 판결하다 judge, 다스리다, 통치하다 govern'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0회 나오며, 칼, 니팔, 포엘형으로 사용되었다.
샤파트의 기본적인 의미는 통치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정부와 달리 고대의 정부는 입법, 행정, 사법적 기능(그리고 부서들)이 반드시 분립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재판하다'라는 일반적인 번역은 우리를 잘못 인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샤파트의 역어로 사용되는 '재판하다' judge라는 말은 정부의 사법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시민적, 종교적, 혹은 그밖에 다른-와 관련하여 '통치하다' to govern 혹은 '다스리다' to rule로 일정하게 번역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현대 세계에서 그러한 넓은 의미를 지닌 어떤 단어를 번역하기 위해 보다 더 특수화된 단어를 찾아야만 한다. NIV는 이 단어의 분사형을 '지도자' leader로 번역한다.
샤파트의 의미는, 비록 고대인들이 법률-시민 생활에 관한 법, 종교적인 법, 가정법 등등-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하더라도 그들은 현대인들과 달리 법에 의하여 다스림 받는다기보다는 사람에 의해서 다스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층 더 복잡해진다. 인간에게는 법, 주권, 통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초기 모든 동방의 국가에서 재판의 집행권은 오늘날 사막의 아랍인들처럼 존경할만한 연장자들에게 있었다... 그러한 연장자들은 필요한 여가를 가졌을 것이며 그들이 내린 결정은 존중되었을 것이고, 상급 지위로 인한 폭넓은 교제를 통하여 보다 충분한 경험과 원숙한 숙고로 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통치의 수행을 나타내는 이 기본적인 단어의 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a) 지도자로 행동하는 것,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중(민 18:22-28), 개개의 사사들(신 1:16, 삿 16:31, 삼상 7:16, 삼상 7:17), 왕(삿 8:20), 메시야(시 72:4), 심지어 하나님 자신(시 96:13)에 의해서 행하실 수 있다. 하나님만이 참으로 궁극적인 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다. 그는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이시기 때문이다(창 18:25). 그러나 모세가 소송 사건들(형사 사건, 가정 사건, 종교적 사건 등등)을 판결할 때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권위로 행동하는 것이며(출 18:13, 출 18:15), 이는 구약의 신권 정치(theocracy)에서 다른 통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사실이다(신 1:17).
(b) 두드러진 것으로 샤파트는 민사, 가정사, 종교적 송사를 재판하는 것과 같이 논쟁을 일으키는 소송 사건을 판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에 재판관의 임무는 특별히 미쉬파트(분별, 공의)와 체데크/체다카(의)로 재판하는 것이며(시 72:2-4), 고발한 사건에서 의인들을 의롭다 하고 악인을 정죄하는 것(신 25:1)이다.
(c) 단순히 법보다는 오히려 사람에 의하여 통치가 이루어지는 환경으로 인하여, 관원(쇼페트[재판하는 자])은 사법권은 물론 행정권도 가졌다. 관원은 또한 사법적인 판결을 집행하거나 집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다윗은 사울과 논쟁할 때 하나님께서 재판관으로 서실 것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판단하시기를 원하나이다"(삼상 24:15). 따라서 여러 역본에서 건지다, 신원하다, 정죄하다, 벌하다와 같은 단어들과 사법적, 행정적 의미를 지닌 관련 단어들이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d) 모든 참된 권위는 하나님의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대심판에서 세상의 재판장이 되실 것이므로 그는 탁월한 쇼페트이시며(시 96:13, 시 50:6, 시 75:8), 한편으로 섭리를 통하여 그는 언제나 우주의 최고 쇼페트가 되신다(시 94:2, 참조: 시 103:19). 이상의 모든 용례는 칼형이다.
니팔형은 때때로 이 어간의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의미에서 통치 과정이라는 의미가 확대되어 소송 사건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를 보여준다. 그러한 경우 에트(...와 함께)가 이 동사의 목적어 앞에 온다. 예컨대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내가 너와 함께 심판에 들어가리라, 렘 2:35, 참조: 겔 17:20, 겔 20:35, 겔 20:36, 겔 38:22, 매 경우에 하나님이 행위자이시며 화자이시다). 변론하다, 항변하다라는 법적인 의미에서 '변호하다' plead가 종종 나온다. 즉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삼상 12:7), "변론하다"(삼상 43:26, BDB, 'have a controversy'), '심판을 베푸시다'(사 66:16, RSV 'execut judgment').
포엘 분사는 "정죄하는 자"(시 109:31, 한글개역, "판단하려 하는 자"), "고소자"(욥 9:15, 한글개역, "심판하실 그"), "너에게 불리한 재판"(습 3:15, 한글개역, "너의 형벌")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위협적인 재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샤파트는 그 파생 명사 미쉬파트와 더불어 어떠한 영역과 어떠한 형태이든지 통치(정부)의 기능을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이다. 이 단어는 보다 희귀한 딘과 분명히 다르다. 즉 딘은 보다 시적인 용어인 반면에 샤파트는 주로 보다 형식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로 쓰인다. (참조: R. D. Culver; BDB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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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슈파트] 정의=공픠= 공정한 판단, 심판, 재판, 공의, 법령 등
미쉬파트(명남)는 샤퍄트(fp;v; , 8199: 재판하다, 다스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심판, 재판 judgment, 공정, 공의 justice, 법령 ordinance, 관습 custom, 방식 manner'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400회 이상 나온다.
미쉬파트는 분명히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나 하나님이 전체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사상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준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용된 미쉬파트가 거의 400여회 '심판' judgment으로 번역되고 또한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손 치더라도 이 번역은 입법, 사법, 행정적 기능과 정부에서 기능들이 뚜렷이 분리된 오늘날의 새로운 통치 방식을 고려해 볼 때 현대의 우리에겐 종종 불완전한 번역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다스리다, 통치하다'를 의미하며 정부의 모든 기능들을 가리키는 일반동사 샤파트(이 단어에서 미쉬파트가 파생됨)가 사법적 기능만을 잘못 국한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반면에 동사와 명사 모두는 이 모든 기능들을 포함한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모든 용례를 분석하면 적어도 13가지 관련 용법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비슷한 의미의 영역을 지닌 단 하나의 영어 단어로 번역한다면 명확한 핵심 사상은 반드시 justice라는 단어로 표현될 것이다. 심지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매우 강력하게 규칙적으로 번역하는 RSV도 미쉬파트를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새롭게 번역했다("주의 판단"[시 72:1]과 "공의로"[시 72:2]를 대조하라). 명사 미쉬파트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혹은 종교적 통치의 거의 모든 측면을 지칭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a) 일반적인 재판장 앞에 가져온 소송 사건을 판결하는 행위. BDB는 출 21:31에서부터 출발하여 204개의 실례를 제공한다 - RSV와 NASB는 출 21:31을 이에 대한 실례로 간주하지 않고, 달리 번역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 용례들은 매우 분명한 것들이다(신 25:1, 수 20:6 등).
(b) 소송 사건을 판결하는 장소. 보다 희귀한 이 용법의 분명한 예는 왕상 7:7이다(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c) 소송의 과정은 미쉬파트라고 불리운다. 의미1과 의미2 사이에 구분하기가 어려운 의심스러운 실례가 많이 있다. 한가지 예는 사 3:14이다. '소송' litigation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용례를 번역하기에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가장 명백한 용례는 뒤따르는 명사와 함께 임(im)을 사용한다. "그러그러한 심판"(욥 22:4, 시 143:2).
(d) 소송 사건(즉 관원에게 가져온 특수한 소송 사건). 예를 들면 솔로몬은 그가 "미쉬파트를 들을"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했다 - 여기서 미쉬파트는 그 앞에 가져온 송사를 뜻한다(왕상 3:11, ASV marg). 이 실례는 인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RSV) 욥기에 나오는 아라크티 미쉬파트("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욥 13:18)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왕상 8:59도 보라. 이러한 용법은 명사 리브의 용법과 비슷하다.
(e) 법정 재판관의 선고 혹은 판결. 이 의미는 매우 일반적인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판결' judgment이라는 단어가 미쉬파트의 역어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매우 옳다(왕상 20:40). 렘 26:11, 렘 26:16에서 "죽음이 합당하니"라는 표현은 미쉬파트 마우웨트를 번역한 것이며, 분명히 사형 선고를 의미한다.
(f) 심판의 때. 분명한 예는 시 1:5, 전 12:14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미쉬파트로 가져 올 것이다"(한글개역,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심판하시리라")에서 미쉬파트는 위에 제시한 것과 매우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BDB는 일반적인 '심판의 집행'이 앞의 실례를 포함하여 일단의 구절들에서 미쉬파트가 지니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예는 공의의 개념 혹은 성질과 관련하여 분류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아 보인다.
이상의 모든 실례는 미쉬파트가 통치의 사법적인 면을 나타내는 주된 예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권위라고 생각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의미로 이 단어가 사용되는 용법은 다음과 같다.
(g) 주권(sovereignty), 궁극적인 권위 혹은 권리라는 의미에서의 통치의 법적 근거.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을 조직과 인간의 본질("자연권")에서 찾곤 한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①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미쉬파트라고 지칭되는 것이 바로 이 권위이다. '미쉬파트(재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신 1:17).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전체 미쉬파트는(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하나님의 창조물인 각 개인은 양도할 수 없는 미쉬파팀(권리 rights)을 가지고 있다(참조: R. D. Culver, Toward a Biblical View of Civil Government, 1974).
② 재판장의 미쉬파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 사실은 왕되신 메시야의 엄연한 권위에 대하여 언급하는 시 72:1-2에서 가장 잘 예증된다. 물론 섭리의 교리가 이 개념의 기초가 된다(시 103:19, 참조: 롬 13:1 이하). 하나님의 이러한 우주적 통치와 지배는 렘 8:7의 미쉬파트가 전달하는 개념인 것 같다: "내 백성은 여호와의 율법(한글개역 "규례")을 알지 못하도다".
또한 통치의 입법적인 면과 관련되는 용법이 있다.
(h) 정의의 성격은 모든 옳은 인격적인 행정에 강조되어 있다.
① 이 공의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이다. 모든 참된 미쉬파트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며, 따라서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요구를 수반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미쉬파트에 대하여 말할 때, 자주 그러하듯이, 이 단어는 특별한 뉘앙스를 지닌다. 즉 이 때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당연한 법령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당연한 요구(just claims)를 뜻한다. 주되신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실 수 있으며, 그는 요구하신다"(Koehler, OT Theology, pp. 205-206).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권리(정의, 권위, 등)가 그에게 있다(사 30:18, 참조: 창 18:25). 하나님은 이러한 의미에서 미쉬파트를 사랑하신다(시 37:28). 시 36:6)은 '주의 미쉬파트(단수형)는 큰 심연이다'라고 기록한다(한글개역,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② 공의로서의 미쉬파트, 즉 하나님의 속성에 뿌리 박혀 있는 의는 일반적인 인간의 속성이 되어야 하며 인간 중에서 사법적 과정의 특성이 되어야 한다(시 106:37). 지혜로운 자는 공의를 말하며(시 37:30) 공의를 생각한다(잠 12:5).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의를 요구하신다(미 6:8). 의인은 공의를 즐거워하며(잠 21:15) 의로운 재판장은 재판할 때 공의를 사용한다(미 3:1, 참조: 잠 29:4).
(i) 미쉬파트는 또한 율법의 규정을 나타낸다 - 이 단어는 종종 호크(법령, 출 15:25)와 토라(율법, 사 42:4)와 대등하게 사용된다. 오경의 법령들은 미쉬파트이며(레 5:10, 레 9:16 등), 사실상 모세 율법의 각 규정들이 미쉬파트이다(신 33:10, 신 33:21, 시 119편에서 16회 사용됨).
(j) 방법, 설계도(출 26:30, 한글개역 "식양").
(k) 풍습(왕하 17:33, 한글개역 "풍속").
(l) 취해진 알맞은 크기(왕상 5:8). 이 세 가지 의미들(왕상 5:10, 왕상 5:11, 왕상 5:12)은 거의 표준적인 것들이 아니고 확대된 의미들이긴 하지만 역시 이 단어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m) 율법, 인간, 하나님 아래 어떤 사람의 권리는 미쉬파트라고 불리운다(신 18:3, 렘 32:7).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관한 구약성경의 묘사에서 체테크 및 체다카와 자주 연관되는 이 개념은 성경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핵심을 이룬다.
주(註):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인 흉패는 "판결 흉패"(출 28:15, 출 28:29-30)라고 불리우는데, 이렇게 불리운 이유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보석을 통하여 주어지는 소위 어떠한 계시 때문이 아니라 그 흉패가 아론의 가슴을 덮었으며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흉패가 그 가슴 위에 있게 되고, 따라서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판결(미쉬파트)을 항상 그 가슴 위에 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론이 하나님 앞에서 관여된 바는 이스라엘의 칭의, 즉 범죄에 대한 사법적인 선고(위를 보라)였다. 예컨대 '실제 동양의 생활에서처럼 예언적인 환상에서 칭의의 선언은 종종 입고 있는 옷의 성질에 의해 표현되었다. 사 61:10은 이에 대한 좋은 실례다'. 또한 사 62:3, 계 3:5, 계 7:9, 계 19:14, 에 6:8-9, 에 6:12을 보라(A. C. Hervey, Smith's Dictionary of the Bible, Hackett ed., Ⅱ, pp. 1066-67). (참조: R. D. CU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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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어 마슈파트 <미슈파트פטָּשְׁמִ<
[시9:8.....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 [렘11:20...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를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 [시140:12...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 [사49:4...정녕히 나의 신원(=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함께 하나님께서> ִמְׁשָּפט미슈파트<신원>은 공정하게 하다 심판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미슈파트פטָּשְׁמִ< ...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정의롭게 하시는 것을 뜻한다 ... 공의 공정을 뜻한다 ... 공정하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한다 ...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로우심으로 다스리신다 ...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완성이 되었다 ... 이 땅에 하나님의 온전한 공의가 선포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 ...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모든 판단을 의지 할 수 있다 ...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끌고 가실 것이요 ...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 있기에 믿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미슈파트פטָּשְׁמִ<이다 ...비록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더라도 기억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신다 ... 가만히 계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때를 찾고 계신다 ... 언제 어떻게 일하셔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판단하고 계시며, .. 지금은 거듭난 믿는이 참 <나>를 연단하고 훈련하는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억울함을 보시고 풀어 주시는 시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 사랑하는 영혼의 억눌림과 원통함을 그대로 보고만 계시지 않으실 것이다 ...이분이 바로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시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 억울함의 신원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 하나님의 방법이 함께 하실 것이다...
===돌파 기도!!===(아버지께서 들으시는, 유일한 중보 = JC.....오늘 내 안에서 중보하시는 CJ와 함께 하나인가??...그렇다면 입을 열어 채우심따라..그분의 기도로 중보함!!)
.@@기도하다 = 팔랄.ללָפָּ.. 여기서 "~를 위하여 기도하리니"는 주님의 지고지선의 뜻이 (아직 영적 어린이에 불과한) 대상자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요청(중보)하는 기도를 인간 중보기도자가[마치 바로의 머리에 늙은 야곱이 손 얹고 축복하였듯이, 주님의 권위로], "주님이 친히 명하심따라...주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사 그분의 심중의 기도로 채워주심따라, 그분의 갈망하심 이루기 위해 오늘 준비되게 하심따라, 이스라엘로, 이스라엘 되게 하려 하심따라!!" 기도하겠다는 뜻이 됨.. = 이는 결국 주님 자신의 영광을 공급해 주시도록, 주님과 영원히 하나됨 안에 머무름으로써 주님의 갈망대로 그분의 영원한 짝이자 백성, 자녀/권속, 아내, 신부 되게 하는 최상의 축복 기도가 된다!!
[골4: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삼상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바를 허락하신지라]
<기도하다>의 히브리어는 <팔랄 ללָפָּ<....명사형 <기도>는 <테필라 להָּפִתְּ<..
==((무릎 기도!!))..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 되시도록, 합당한 존숭함!!==
임마누엘 성령님 앙망하며 십자가로 참 하나 이루신 주 임재 앞에 나를 열어드림으로써 오로지 주께 집중하며 주님 마음을 기다림-->자신의 가장 깊은 존재 중심을 자르고 갈라 드러내야 함(=자아죽임) --주 이름 불러 그분의 임재 앞에 nothing, nobody인정하며 엎드림 =순복, 순종 ---유일무이한 참 생명샘물/강수이신 Q 음성 듣기를 전존재를 집중하여 갈망하고 절대적으로 간구함 ---Q자신이 절대적 최우선 순위이신 바 오직!! 주님이면 충분함 --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올려드리는바, 주님께서 마음의 근본동기를 살펴 성령의 조명하심 아래 말씀을 열어 보게 하사 깨닫게 하시며, 깨우쳐 주시고 일깨워 참된 생명, 영생의 길로 이끌어 지도해 주시도록 ::: 이로써 Q을 참되게 알고 존숭하며, Q마음의 영원한 경륜 이룸의 갈망따라 함께 동행-동참하는 삶에로 나아감
**<팔랄 ללָפָּ<의 뜻에는 자르다의 의미가 들어있다... 절대자 Q 앞에서 <내>자아를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모습을 깊이 돌이키는 데서 <기도 팔랄>는 시작되는 것이다
**<팔랄 ללָפָּ<은 엎드려 절하다의 뜻이 담겨 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소원을 간구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데서 시작됨이니, 곧 순종과 순복으로 시작됨이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고백하는 데서 <기도, 팔랄>는 시작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팔랄 ללָפָּ<은 분별하다 구별하다의 뜻이 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에 절대적 긴요-생명의 갈급함으로써 귀기울이는 것을 의미함이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처럼((사슴이 목마름을 강하게 느끼는 그 때는 물을 충분히 마시지 못하면 조만간 죽고말 것이라는 긴박-초조감에 휩싸이는바, 조만간 헛것을 보게됨 인해 정처없이 헤메다가 지쳐 쓰러져 죽음에 이르게 되며, 게다가 대적에게 쉽게 노출되어 잡아먹힐 수도 있음이니) 마치 목 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기에 갈급함의 그 때의 자세란, 바로 가장 하나님의 말씀에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그 태도/자세를 의미한다..
**<팔랄 ללָפָּ<은 깨뜨리다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먼저 깨뜨려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 보다 소중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는 데서 <기도-팔랄>는 시작됨을 의미한다..
**<팔랄 ללָפָּ<은 재판을 청구하다의 뜻이 있다. 절대자 하나님 앞에 주님 자신이 중재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기도-팔랄>의 시작이다 ... 하나님 앞에 인생의 모든 주권을 드리는 데서 무릎 기도는 시작됨을 의미한다 ....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 앞에 모든 주권을 올려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이니... 하늘의 강력한 능력을 보게 하실 것이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말씀따라)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일깨우사 마음에 깨닫는 죄마다 고백하고 토설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공동체의 하나됨 위해 분별/판단대로 실행함으로 얻는 화평한 하나됨 위해)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שָׁפַט (샤파트). 사사judge로 세우신 분, 바로 그 Q의 왕 되심 인해, 하나이신 Q 안에서 그분과 함께 경청하고, 그분의 권위를 위임받은 바, Q을 대표하여 임마누엘 주님 앞에서 CORAM DEO, 그분의 지식-지혜와 총명-모략따라 수행할 바 "의와 공평으로" righteousness and justice 분별-판단-치리함으로써 공동체 내의 갈등 조정하여 Q의 소유이자 기업으로서 거룩한 하나의 공동체 되게 함)
.......[이스라엘 장로들은 미신적 신앙따라 강탈하는 방법으로 궤를 옮김 인해 궤가 사로잡힘]...주님의 안타까운 마음 느낄 수 있는가??
..... 사로잡힌 후, 궤는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서 7개월간을 연달아 세 곳으로 옮겨가고 있었다(아스돗-->가드-->에글론),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궤를 보호하시기 위해 그들을 엄중하게 다루셨다(5:1-12).. = 하나님이 그분의 궤를 보호하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그분 영광의 거룩함을 보호하고 계셨음을 의미!!
==> 아스돗 다곤 신전, 다곤 옆에 두어진 바, 다곤(물고기 신)을 훼손시키심 ...다곤 곁에 놓아두었음((마치 머리털 밀리고 힘이 빠진 삼손에게 행한 그대로!!, 사로잡힌 삼손에게 조롱-비아냥-침 뱉음과 저주-모욕을 주었듯이, 다곤에게 나아오는 자마다 그렇게 행하도록 허용함으로써!! 한껏 기세를 드높이고 주님 영광을 하락시키려는 그런 속셈이었을 것 = 이것은 사탄 마귀가 원하는 바 그대로였다!!...결코 내 영광을 남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그러나!! (첫날 아침) 궤 앞에서 다곤은 얻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게 하심-->(둘째 날 아침) 다곤 머리와 두 손목이 끊겨 문 지방에 따로 있고 얼굴은 땅에 닿았고 몸뚱이만 남음-->더불어 독종 재앙으로 치심 :: 통제된 진노-노하기를 더디하심/오래 참으심,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보이고 계심!!
==> 가드로 옮기지만, 더 큰 재앙으로 가드 주민 전체를 치심
==> 에그론으로 옮기려 하여, 에그론에 당도할 무렵, ....그들의 성읍내로 들어옴을 강력히 반발/저항하는 주민들로 인해!! 오도가도못하고,,, 이스라엘로 되돌려야 하는지를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제사장들과 복술가에게 묻고 있음, [[그 결과, 미신적 방법을 쓰기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속건제물인 금쥐 다섯-금독종 다섯을 함께, 젖 나는 암소 두 마리가 이끄는 새 수레 위에 싣고 벧세메스 향해 떠나 보냄
==> (벧세메스로 들어감)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그 궤의 들어 옴을 보고 기뻐하여 맞이하고, 레위인들은 궤를- 그리고 함께 있는 상자들을 내린 후,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의 느슨함따라 궤를 다룸으로써] 궤를 들여다보았기에 70명을 죽이심)....[[분명히 다시 강조하며 드러내시는 바는, 궤는 그들의 이익-보장이나-보호/안전-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Q의 경륜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Q 임재의 거룩함 그 자체, 곧 그리스도의 표상이다!!]]...그러므로 이것에는 전혀 관심 없고 오로지 그들의 번영-보호-안전-치료 등 자신의 이익과 보호 수단으로서만 관심 가졌던, 사무엘 시대에 살았던 이스라엘 장로들은 모든 것이 그들의 것이라고 여겼으며 심지어 Q까지도 탈취했고 그 결과 궤는 사로잡혔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Q은 그분의 거룩하심을 보호하심으로써 블레셋 사람들이나 벳세메스 사람들이 궤에 대하여 그들 멋대로 행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궤를 모셔가도록 요청,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어져서, 20년 동안(이스라엘 온 집이 여호와를 사모할 때까지 = 사무엘이 성막 안에서 자라는 동안) 그곳에<아비나답의 집> 머물러 있게 됨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긴 언약궤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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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5장
1. And the Philistines took the ark of God, and brought it from Ebenezer unto Ashdod.
2. When the Philistines took the ark of God, they brought it into the house of Dagon, and set it by Dagon.
3. And when they of Ashdod arose early on the morrow, behold, Dagon was fallen upon his face to the earth before the ark of the LORD. And they took Dagon, and set him in his place again.
4. And when they arose early on the morrow morning, behold, Dagon was fallen upon his face to the ground before the ark of the LORD; and the head of Dagon and both the palms of his hands were cut off upon the threshold; only the stump of Dagon was left to him.
5. Therefore neither the priests of Dagon, nor any that come into Dagon's house, tread on the threshold of Dagon in Ashdod unto this day.
6. But the hand of the LORD was heavy upon them of Ashdod, and he destroyed them, and smote them with emerods, even Ashdod and the coasts thereof.
7. And when the men of Ashdod saw that it was so, they said,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shall not abide with us: for his hand is sore upon us, and upon Dagon our god.
8. They sent therefore and gathered all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unto them, and said, What shall we do with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And they answered, Let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be carried about unto Gath. And they carried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about thither.
9. And it was so, that, after they had carried it about, the hand of the LORD was against the city with a very great destruction: and he smote the men of the city, both small and great, and they had emerods in their secret parts.
10. Therefore they sent the ark of God to Ekron. And it came to pass, as the ark of God came to Ekron, that the Ekronites cried out, saying, They have brought about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to us, to slay us and our people.
11. So they sent and gathered together all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and said, Send away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and let it go again to his own place, that it slay us not, and our people: for there was a deadly destruction throughout all the city; the hand of God was very heavy there.
12. And the men that died not were smitten with the emerods: and the cry of the city went up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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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muel 5 Amplified Bible
===Capture of the Ark Provokes God
1 Then the Philistines took the ark of God, and they brought it from Ebenezer to [a]Ashdod.
2 They took the ark of God and brought it into the house of Dagon and set it beside [the image of] Dagon [their chief idol].
3 When the people of Ashdod got up early the next day, behold, Dagon had fallen on his face on the ground before the ark of the Lord. So they took Dagon and returned him to his place.
4 But when they got up early the next morning, behold, Dagon had [again] fallen on his face on the ground before the ark of the Lord, and his head and both palms of his hands were [lying] cut off on the threshold; only the trunk [portion] of [the idol of] Dagon was left on him.
5 This is the reason neither the priests of Dagon nor any who enter Dagon’s house step on the threshold of Dagon in Ashdod to this day.
6 Then the hand of the Lord was heavy on the people of Ashdod, and He caused them to be dumbfounded and struck them with [b]tumors, both Ashdod and its territory.
7 When the men of Ashdod saw what had happened, they said,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must not remain with us, for His hand is heavy on us and on Dagon our god.”
8 So they sent word and gathered all the lords (governors) of the Philistines to them and said, “What shall we do with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They answered, “Let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be brought around to [c]Gath.” So they took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there.
9 But it happened that after they had taken it to Gath, the hand of the Lord was against the city, causing an extremely great panic [because of the deaths from the plague], for He struck the people of the city, both young and old, and tumors broke out on them.
10 So they sent the ark of God to [d]Ekron. And as the ark of God came to Ekron, the Ekronites cried out, “They have brought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from Gath] to [e]us, to kill us and [f]our people.”
11 So they sent word and gathered all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and said, “Send away the ark of the God of Israel; let it be returned to its own place, so that it will not kill us and our people.” For there was a deadly panic throughout the city; the hand of God was very heavy (severe) there.
12 The men who had not died were stricken with tumors and the cry of the city [for help] went up to heaven.
===Footnotes
1 Samuel 5:1 One of the five major Philistine cities.
1 Samuel 5:6 It is possible that this was a type of bubonic plague or infection spread by rats (or fleas hosted by rats), as intimated in 6:4f.
1 Samuel 5:8 Gath was another major Philistine city and the home of their giant warrior, Goliath. Faced with the humiliation of surrendering the ark to Israel, the Philistine governors decided instead to treat it like a dangerous “hot potato” and simply get rid of it by sending it to another city.
1 Samuel 5:10 A major Philistine city north of Ashdod and near the territory of Israel.
1 Samuel 5:10 Lit me.
1 Samuel 5:10 Lit 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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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5장 (개요)
지금은 하나님의 궤가 어떻게 되었는가고 알아보아야 할 만한 때이다.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귀한 성물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듣고 싶은 것이다.
나는 우리가 들을 다음 소식은,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빼앗긴 하나님의 궤를 도로 찾아올 것인가,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소식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위해 다만 몇 사람이라도 목숨을 바쳤다는 소식이 될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언급이 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열심이 저들에게 있었다는 말을 찾아보려고 해도 전혀 찾아볼 길이 없다.
아니 나가서 우리는 그것을 찾아오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교섭을 했다거나 또는 그 대신 다른 어떤 것을 제공하겠노라고 제안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빼앗겼으면 그만이다. 빼앗길테면 빼앗겨라”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태도였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가 빼앗긴 것을 슬퍼하고 애통할 줄을 안다. 그러나 감히 용감하게 나서서 그것을 도로 찾아올 줄은 모른다.
여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궤 스스로에게 힘이 있으면 해 보라. 우리는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태도였다.
한마디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영광을 누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질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들이 나서지 않기에 스스로의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서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볼 수 있다.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굴복시켰다(1, 2).
2.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1) 그들의 신인 다곤을 굴복시켰다(3-5).
(2) 블레셋 사람 자신들을 차례로 굴복시켰다.
그들은 심한 독종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궤에 대해 손을 들게 되었다. 아스돗 사람들이 처음에 그 재앙을 당하게 되었고(6, 7), 그 다음은 가드 사람들이요(8, 9), 마지막으로 에그론 사람들이 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내 하나님의 궤를 이스라엘의 땅으로 보내야만 해결이 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당할 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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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곤이 부서짐(삼상 5:1-5)
Ⅰ.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굴복시켰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굉장히 두려워했었기 때문에 지금 그 궤를 소유하게 될 때 더욱 기뻤고,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되었을 것이다(4:7).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약탈해 갔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모독하거나 이를 박살내지 못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신상을 빼앗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박살내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궤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을 나타냈고, 이를 안전한 장소로 모시고 갔다.
그들이 호기심을 가지고서라도 하나님의 궤를 열어보고 하나님의 손 가락이 두 돌판 위에 무엇이라고 쓰셨는가를 보고 싶었을 터인데, 그들이 그렇게 했다는 기록을 우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성서의 안에 기록된 굉장한 사실보다도 그 포장에 대해 크게 감동을 받는 어린애들 모양으로, 그 궤의 외부를 둘러싼 황금과 또 그룹들만을 본 것과 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으로 가지고 갔다. 아스돗은 블레셋의 5대 성읍 중의 하나이며, 다곤의 신전이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의 곁에 두었다”(2절).
1.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다곤 곁에 둔 것은 아마 다곤과 함께 하나님의 궤에 대해서 일종의 종교적인 숭배를 돌리려고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의 신들은 결코 다른 신을 배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국들은 결코 그들의 신들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다른 신들을 더하기도 하고 뒤섞어 놓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다곤의 신상 옆에 둠으로 다곤을 영화롭게 하리라고 기대한 것은 잘못이었다.
왜냐하면 홀로 예배 받지 않으시면 전혀 예배 받기를 원치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
2. 그들은 또 아마 하나님의 궤를 하나의 승리의 노획물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다곤의 신전에 두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다른 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궤를 일종의 희생의 제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삼손을 붙잡았을 때도 그런 식으로 했던 것을 볼 수 있다(삿 16:23, 24).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의 한 용사에게 행했던 것과 같은 대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해서도 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모독하는 행동인가! 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멸시하는 노릇인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인 하나님의 궤가 쓰레기 같은 신인 다곤의 포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1) 하나님은 언약 자체를 무시하고 이를 파기할 때, 그 언약의 궤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어떤 물질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님을 보이고자 하셨다.
(2) 하나님은 자기를 모독하는 자에게서부터 영광을 받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기회를 삼고자 하여 이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손에 넘겨줌으로, 이를 우습게 여긴 이스라엘 사람들을 징계했으며, 다음에는 이를 노획한 사람들을 징벌하고자 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진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고자 할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지키신다(시 76:10). 하나님은 (남을)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게 하신다.
Ⅱ. 하나님의 궤가 다곤을 굴복시켰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다곤이 하나님의 궤 앞에 쓰러졌다.
블레셋 사람들이 만일 하나님의 궤를 경배하고자 기도한 것이었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경배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과 또 그 경배를 받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신과 “함께” 예배 받기를 원치 않으시매, 모든 신들 “위에서 홀로” 경배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홀 주교가 표현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자기와 벨리알을 같이 놓으려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모독하고자 했다. 그리고 얼마 동안은 다곤이 하나님의 궤 위에 군림하고 있기는 했어도, 그 다음날 아침, 다곤을 예배하고자 하는 자가 다곤을 예배하기 위해 다곤의 신당에 와 보았을 때, 그들의 승리는 잠깐이었다(욥 20:5)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다곤의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아 있었다” (3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궤를 잊어버리고 계신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드디어 나타나신 것에 대해 시편 기자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보자.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이 포로가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이 파괴된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을 때,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셨다”(시 78:59-65). 그리고 하나님은 유대인의 교회가 완전히 황폐해지는 것을 막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대적이 격동할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신 32:26, 27).
이방인의 우상들은 흔들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단단히 세웠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것을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사 41:7). 또 46장 7절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그러나 다곤이 아무리 튼튼히 세워졌다고 하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의 궤는 다곤의 신당에서 다곤을 박살내었다. 다곤은 마치 정복자에 대해 복종과 충성을 맹세하는 듯한 자세로 하나님의 궤를 향해 엎드려 있었다.
사탄 왕국은 그리스도의 왕국 앞에 분명히 넘어질 것이요, 허위는 진리 앞에, 불경은 경건 앞에 그리고 타락은 충실히 믿는 자의 마음에서 은혜 앞에 넘어질 것이다.
참다운 신앙이 쓰러지고 파멸된 것 같아도, 조만간 그 승리의 날이 돌아올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진리는 위대하며, 진리는 이긴다.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충성을 표시하며 취했던 그러한 태도이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신 신”이며 그럴 수밖에 없었다(출 18:11 참조).
2. 다곤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우상이 마루에 쓰러진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 도로 제자리에 놓으려고 서둘렀다.
신이 쓰러진 것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매우 불쌍하고 가련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우상에게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바보짓이다.
다곤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자기의 자리도 지키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들의 승리가 다곤의 능력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다곤을 그들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곤을 제자리에 도로 가져다 놓았다.
여기서부터 홀(Hall) 주교는 이런 사실을 보았다. 즉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또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무와 돌을 예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은 그것과 흡사한 사람이다.”
오늘날도 사탄의 왕국을 지지하는 자들은 다곤을 들어 올리기 위해 애쓰며, 그것을 제자리에 도로 놓으며, 괴물이 입은 치명적인 상처를 싸매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인만큼 그것은 다시 무너질 것이며, 그 자리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앞에서 확실히 멸망받을 것이다.
3. 다음날 밤 다곤은 또다시 쓰러졌다(4절).
그들은 일찍 일어났다. 아마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신에게 문안을 드리고자 그랬는지 모른다. 또는 다른 날보다 더 일찍이, 그 밤에는 다곤이 그대로 서 있는지 궁금해서 이를 확인하고자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전날보다 형편이 더 악화된 상태를 그들은 발견하게 되었다. 우상을 만든 물질이 끊어지고, 부서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 머리통과 손목들이 끊어져 “문지방 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몸뚱이만이 남아 있었다. 또는 다곤의 물고기 토막만 남아 있었다고도 읽을 수 있는데, (많은 학자들이 추측하는 바와 같이) 다곤의 윗부분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그 아랫부분은 인어와 같이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그처럼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들의 상상력조차 빈약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피조물도 아닌 허구의 것을 예배했던 것이다.
(1) 하여간 이 보기 흉한 괴물은 그 쓰러짐으로 해서 그 우스운 모양과 형편없는 본색을 드러내게 된 셈이다.
이 무너짐으로 해서 다곤 신상의 인체의 부분과 불고기 부분이 기적적으로 결합되었다고 믿었던 우매한 숭배자들은 이제 그것이 교묘한 수단으로 인공적으로 결합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또 그것이 매우 무기력하고 또 믿고 기도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게 되었다.
다곤이 머리를 잃고 손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그 자신이 지혜도 없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주었으며, 자기를 숭배하는 자들을 위해 어떤 좋은 충고도 줄 수 없고, 어떤 활동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도 보여 주었다. 다곤이 쓰러졌을 때 그들의 손으로 다곤을 다시 제자리에 앉혀 놓았다는 것은 이 사실을 더욱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그들은 다곤이 쓰러져도 스스로 제자리에 가도록 했어야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은 그들의 일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울지라도 하나님이 헐으실 것이기 때문이다(말 1:4).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비방하고 멸시했을 때, 하나님은 다곤의 신상을 그 앞에 쓰러뜨림으로 하나님의 궤의 권위를 높여 주셨고 또 그것을 귀한 것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들의 마지막 운명이 어떤 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필경 패망하리라”(사 8:9).
4. 그 후 다곤 신당의 문지방은 신성시 되어 아무도 그것을 밟지 않았다(5절).
어떤 사람은 다곤 숭배자들 사이에 스바냐 1장 9절에 있는 것과 같은 미신이 전승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은 그들을 본받아, 문턱을 뛰어 넘는 자를 벌하겠다고 하셨다.
다곤에 대한 하나님의 궤의 절대적인 승리는 블레셋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헛된 것을 예배한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었을 것이며, 그리고 그 후로는 오직 그 정복자만을 경배하게 만들어 주셨을 것 같은데, 그것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우상을 더 섬겼으며,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과 같이 더욱 악하여졌다(딤후 13:13).
문지방 때문에 다곤의 목이 잘린 것을 보고는 다곤을 멸시할 터인데, 그렇지 않고 도리어 다곤의 목을 자른 단두대라고 하며 그 문지방을 예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하여 “언약의 피를 밟으며” 거룩한 것을 짓밟은 자를 부끄럽게 여기고, 다곤의 목이 잘린 문지방 위에 그들의 발을 올려놓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미신적인 행위는 다곤의 망신을 길이 기억되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곤 신전의 문지방을 밟지 않는 이유가 후손들에게 전승되었을 것이며, 그들의 자녀들이 그 이유를 물으면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넘어졌던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들의 미신적인 행위를 통해서도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그들이 그들의 토막난 우상을 다시 고쳐 놓았다는 말은 듣지 못한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먼저 멀리 보내고 나서 그 우상을 다시 땜질하여 붙이고, 제자리에 도로 놓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라고 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사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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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들의 근심거리(삼상 5:6-12)
다곤이 쓰러진 것을 보고(만일 블레셋 사람들이 이를 선용하여, 그들의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의 얼굴을 찾았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궤에 대해 그들이 보여 주었던 수모 때문에 그들에게 베푼 복수를 피할 수가 있었을 것이며, 명백한 잘못인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했던 그 우상 숭배를 떨쳐버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그들이 보지 아니하나이다마는 그들은 볼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사 26:11).
그리고 만일 그들이 그 영광을 보지 않고자 한다면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들리워진 무거운 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손은 그들에게 엄중하셨다”(6절). 하나님은 그들의 어리석음만을 깨우쳐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오만을 징벌하기도 하셨다.
Ⅰ. 하나님이 그들을 “망하게” 하셨다.
말하자면 그들을 갑작스럽게 죽게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궤를 노획한 것을 크게 기뻐했던 자들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친 재앙과는 달랐다. 가드에서는 단지 “큰 환난”이라 했고(9절), 에그론에서는 “사망의 환난”이라고만 했다(11절). 그리고 분명히 이렇게 기록된 것도 있다(12절). 즉 다른 재앙으로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았다.” 다른 재앙이란 아마 페스트와 같은 악질이었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칼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크게 살육한 것을 자랑했다(4:10).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칼을 빼서 그들은 대항하게 하지 않았어도(왜냐하면 그들은 쓸 만한 자들이 못 되었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칼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끔 하셨다. 하나님은 이 칼을 가지고 그들보다 훨씬 더 큰 살육을 감행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칼을 갈며, 그의 손에 심판을 잡으면 그는 그의 대적에게 복수하실 것이다(신 32:41, 42).
하나님과 그의 궤와 그의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자들은 어김없이 마지막에는 멸망한다. 그들이 돌이키지 않으면 멸망을 당한다.
Ⅱ. 죽지 않은 자들을 하나님이 “그들의 음부에”(9절), “독종의 재앙으로 치셨다”(6절).
그리하여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12절). 말하자면 그들의 부르짖음이 멀리까지 들렸다. 그리고 그들은 또 그 고통이 극심해지자 다곤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시편 기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려진 이 가혹한 심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그 대적의 가리운 곳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셨다”(시 78:66).
(독종은 오늘날 우리가 치질이라고도 하는 병인데, 그러나 오늘날의 치질보다는 훨씬 더 악독한 병이다.) 하나님은 저주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독종을 창궐하게 하신다(신 28:27). 그것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또 부끄러운 질병이기도 하다. 악독한 자에게는 악독한 질병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하나님은 독종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의 교만을 꺾어 놓으셨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궤에 대해 보여 주었던 멸시를 그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다. 그것은 일종의 전염병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병이었을 것이다. 이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이 치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위엄을 멸시하는 자들 가운데는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잠자는 자가 많다”(고전 11:30).
Ⅲ. 아스돗 사람들은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7절).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배를 깨달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곤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뼈와 살과 그리고 더 깊은 곳까지 건드렸는데도 하나님을 저주하고자 했으며, 하나님께 화해하거나 하나님의 궤가 그곳에 머물도록 좋은 말로 간청하지 않고, 거라사 사람들이 그들의 돼지를 잃어버렸을 때 그리스도께 대하여 그들의 지경을 떠나달라고 요청했던 것처럼(막 5:16, 17), 하나님의 궤를 치워 버리려고 기도했다. 육신에 속한 심령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이고 그와 화목하려고 하지 않고 가능하면 하나님을 그들에게서 멀리 쫓아 버리려고 한다. 이처럼 아스돗 사람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가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리라”고 마음먹었다.
Ⅳ.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붙잡아 둘 장소를 변경시켜 보리라고 생각했다.
큰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리고 모든 방백들에게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를 어찌할꼬”라고 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가드로 옮기기로 합의를 보았다(8절). 그들은 그 잘못의 원인이 그 장소에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다곤의 신당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면 하나님의 궤가 이를 만족히 여기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마땅히 그 본래의 장소로 돌려 보냈어야 했건마는 이를 다른 장소로 옮기기로 했다.
가드는 아마 거인의 족속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커다란 몸집과 센 힘도 페스트와 독종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가 모두 재앙을 받았다고 했다(9절). 말하자면 난쟁이나 거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아무리 큰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보다 클 수가 없고, 아무리 작은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의 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Ⅴ. 하나님의 궤는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보내졌다.
총회의 명령이기 때문에 에그론 사람들은 이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치명적인 선물을 보내 준 고관들을 원망하며, “그들이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고 그것을 보냈다”고 말했다(10절).
하나님의 궤 속에는 율법을 새긴 돌판이 들어 있다.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환영할 만한 것이다(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향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적대하고 있는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궤가 무서운 것이며, 환영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궤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향기”이다.
하나님의 궤를 “본처로 돌려 보내는 일”을 협의하기 위해 총회가 즉각 소집되었다(11절). 그들이 모여서 이 문제를 협의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손이 처벌을 진행시켰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그들의 계략은 더 큰 심판을 불러 왔을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독종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하나님의 궤를 노획한 그들의 승리가 금시 그들의 비탄으로 변했으며, 그것을 움켜잡으려고 애썼던 그들이 이제는 그것을 떨쳐 버리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자들에게 그 도성이 무거운 돌이 되게 하실 수 있다(슥 12:3).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자는 조만간에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만과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재물은, 더욱이 그것이 하나님의 성물을 모독하고 도둑질하여 얻은 것이면, 그것이 비록 탐욕으로 삼킨 것이나 혀 밑에 감춘 것이거나 할 것 없이 모조리 토해낼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죄인들의 뱃속이 편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욥 20:15-20).
======호크마
=====5:1
블레셋...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 '하나님의 궤'(the Ark of God)는 블레셋 족속에게는 자신들의 역사 이래 최대의 전리품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블레셋 족속이 아벡 전투에서 하나님의 궤를 탈취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담대하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들의 처음 염려(4:6-8)와는 달리 그 궤가 어떤 능력을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그 궤로 인한 공포에서 벗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아스돗에 이르니라 - '아스돗'(Ashdod)은 원래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긴 하였으나(수 15:47) 그 지파에 의해 정복되지는 못했다. 이 도시는 강대국 애굽과의 교역을 위한 근거지였고, 또한 애굽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블레셋의 도시 중 중요하게 여겨졌다. 수 11 :22;13:3 주석 참조.
한편 블레셋 사람들이 이때 여호와의 궤를 이곳으로 가져온 가장 큰 이유는, 이곳 신전(神殿)에 모셔진 자신들의 다곤(Dagon) 신에게 그 궤를 일종의 예물로서 바치기 위함이었다.
***법궤의 이동 경로 - 여호수아시대 이래 계속 실로(Shiloh)에 있었던 법궤는 마침내 엘리 제사장 시대에 이르러 옮겨졌다. 즉 엘리의 두 아들의 주관하에 법궤는 실로로부터 에벤에셀(Ebenezer)과 아벡(Aphek)사이의 전쟁터로 이동되었다(4:4, 5). 그러나 이 싸움에서 패배한 이스라엘은 블레셋 족속에게 범궤를 빼앗겼다(4:11).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족속은 처음 그것을 아스돗(Ashdod)으로 가져갔다가, 곧 가드(Gath), 에그론(Ekron)으로 옮기었다(5:1-10). 그 이유는 법궤가 가는 성읍마다 독종 재앙이 발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블레셋 방백들은 법궤를 이스라엘로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숙의(熟議) 결과 암소 두 마리가 모는 수레에 법궤를 싣고 이스라엘 땅의 벧세메스(Bethshemesh)로 돌려보내게 되었다(5:11-6:15). 이후 법궤는 곧 기럇여아림(Kiriath-jearin)땅의 엘리아 살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법궤는 이곳에서 근 20년 동안 안치되었다(7:1, 2).
=====5:2
다곤( , Dagon) - 고대로부터 이 우상은 메소보다미아, 앗수르, 베니게 지역 등지에서 널리 숭배되어 온 우상인데(The New Bible Dictionary), 블레셋 족속은 이 우상을 베니게 족속들에게서 수입하여 자신들의 민족 수호신(民族守護神)으로 삼은 듯하다(H. Schmokel). 그것은 이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아스돗' 뿐만 아니라 '가사'(삿 16:23) 등 블레셋의 주요 성읍 여러 곳에 세워진 사실로 미루어 보아 분명해진다(R. Payne Smith).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 블레셋 족속이 아벡 전투에서 탈취한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다곤의 신당' 에 가지고 들어가 그 곁에 놓은 것은 (1) 자신들에게 숭리를 가져다 준 다곤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Keil), (2)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다곤 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상징적 행위 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Smith).
=====5:3
다곤이...엎드러져...땅에 닿았는지라 - 여기서 '엎드러지다'( , 나팔)는 주인 앞에서 종이, 군왕 앞에서 봉신이, 신 앞에서 사람들이 경배할 때의 자세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20:41;25, 24;수 7:6;삿 13:20;에 7:8) 더구나 이 단어는 '항복하다'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왕하 7:4). 따라서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졌다는 것은, 곧 다곤 신이 여호와 앞에 항복했음을 상징한다. 이로써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살아계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확증하신 것이다(갈 6:7;출 20:7).
다곤을...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 이것은 블레셋 족속이 본절 초반부의 사건, 곧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진 사건을 우연으로 보았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사실상 본절의 사건은 블레셋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징계였으며, 또한 블레셋의 우상 다곤에 대해 당신의 우월성을 확증하시기 위한 신적인 행위였다.
=====5:4
그 이튿날...다곤이...끊어져 - 전날에 일어난 사건(3절)보다 블레셋 족속들에게는 더 심각한 양상으로 비쳐진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것은 (1) 블레셋 족속이 첫번째 싸움 때(4:2)보다 두번째 싸움 때(4:10) 더 많은 이스라엘 군인을 살륙한 것에 대향 묵시적 징계이며, (2)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우월성이 현시된 첫번째 사건의 의미(3절)를 깨닫지 못한 데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다.
머리 - '상상', '생각', '지혜'를 상징한다(계 13:16).
손목 - 이 단어( , 카포트, 문자적으로는 손바닥)는 '활동', '능력'을 의미한다(계 13: 16). 한편 우가릿 문헌(Ugaritic Texts)에는 여신 아낫이 자신의 허리에 달린 머리와 손바닥으로 적과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머리'와 '손목'이 뜻하는 바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Pritchard). 따라서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란 말의 의미는 전투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17:51;31:9).
문지방에 있고 - 이 말은 고대 중근동 지역의 미신적(迷信的) 풍습을 살펴봄으로써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고대 중근동 사람들은 문지방(threshold) 밑에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진정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 집안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여러 종류의 귀신들이 살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곤의 목과 손을 부러뜨린 채 문지방에 걸쳐 놓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공격에 대해 잡귀 따위의 도움이나 받아야 하는 다곤 신의 비겁한 모습을, 다곤 신의 우월성을 믿는 블레셋 족속들에게 분명히 보이시려는 의도 때문이었다(삿 19:25-27). 아울러 다곤 신을 경배하기 위해 다곤 신전의 문지방을 넘나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곤 신의 무능력함을 똑똑히 보여 줌으로써 경멸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5:5
그러므로...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 하더라 - 다곤의 숭배자들이 이처럼 다곤 신당의 문지방을 밟지 않고 피해 넘어간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숭배하는 다곤 신상의 머리와 손이 일시 놓여져 있었던 곳이므로 그곳을 신성시했기 때문이요, (2) 다곤 신도 보호를 요청하는 만큼, 그 문지방 밑의 귀신들을 성나지 않도록 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이같은 풍습은 그 후에도 이방인들에게서 계속되었다(습 1:9).
오늘까지 - 이 말은 사무엘서가 기록된 때까지를 가리키며, 따라서 본절의 사건이 있은 지 어느 정도의 세월이 지난 후 본서가 기록되었음을 암시한다. 결국 이는 본 사건과 관습의 역사적 사실성을 확증하는 표현이다.
=====5:6
여호와의 손 - 이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상징하는 신인 동성적(神人同性的) 표현이다(수 4 :24; 스 7: 9; 시 89:13).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능력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다곤 신에게 나타났었으나(3, 4절), 이제 그 능력이 블레셋 사람들에게까지 내려졌다. 한편 여기서 '더하사'( , 솨멤)는 '황폐케 하다'란 뜻이다.
독종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오팔림'( )은 일반적으로 보기 흉한 외부 질환을 통틀어 가리킨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1) 페스트의 일종으로서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의 피부염의 일종으로서 황부가 보기 흉하게 헐어서 환자 스스로 수치감을 갖게 되는 질환(Hertzberg) 등의 두 가지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6: 4에서 블레셋 족속들이 속건제를 위한 제물로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을 취했다는 점에서 여기의 '독종'(毒種)은 쥐에 의해서 전염되는 페스트(pest)로 봄이 더 타당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70인역(LXX)은 본절에 쥐 재앙을 덧붙이고 있다.
쳐서 망하게 하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 '야크'( )는 '쳐부수다', '깔아 뭉개다' 등의 뜻으로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깃을 가리킨다(삿 15:16;삼하 11:21 ;왕상 16 : 11 ; 왕하 3 : 19).
=====5:7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 이전의 사건들(3,4절)을 모두 우연한 것으로 간주했던 블레셋 족속이 이제 그 사건들이 이스라엘의 신인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 일어났을 최초로 시인하는 장면이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 다곤(Dagon)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셨음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애굽 위에 내린 각종 재앙으로 인해 바로의 술객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한 것과 같다(출 8 : 19).
=====5:8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 - 블레셋의 다섯 지방 곧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글론을 각각 분할 통치하던 수령들을 가리킨다(수 13:3). 여기서 우리는 당시 블레셋이 부족 연합 성격의 국가였으며, 또한 그들이 집단 지도 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 Payne Smith).
한편 '방백'( ,세라님)은 성경 안에서 여기처럼 항상 복수로 나타나는(수 13:3) 비셈어 계통의 단어로서, B.C. 11세기 에서 7세기까지의 블레셋 통치자들에게 적용되었다(Greenfield). 그리고 이 단어는 헬라로 넘어가 '군주'(君主)라는 의미의 ( , 튀란노스)가 되었다.
모으고 - 이같은 블레셋 방백의 회동은 하나님의 진노가 다곤 신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당이 없는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는 결정을 하기 위함이었다(F.R. Fay).
가드로 옮겨 가리 - 이 곳은 구(舊) 가나안의 도시였으나,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되었다(수 10:36-39;11:21, 22). 그때 그 도시의 주민들은 아낙 자손(the Anakims)이라고 불리던 자들로서, 신체가 장대했던 자들이었다(민 13:33). 그러나 여호수아 정복 후에도 그들의 일부는 여전히 살아남았는데, 성경에서는 '가드 사람'(the Gittite) 불리워 졌다(삼하 6:10, 11;15:18, 19, 22). 한편 이 도시는 아스돗(Ashdod) 동쪽 약 20km지점에 위치하였고, 성벽이 잘 갖춰져 있던 특별히 중요시되던 지역이었던 것 같다. 수 11 :22;13:3 주석 참조.
=====5:9
심히 큰 환난 - 여기서 '환난'에 해당하는 '메후마'( )는 '큰 소요를 일으키다', '파괴하다'란 뜻의 '훔'( )에서 파생된 말로 '혼란'(confusion), '소동'(uproar), '파괴'(destruction), '난리'(tunult) 등을 뜻한다. 그러므로 '심히 큰 환난'(a very great destruction)이란 표현은 3중 강조된 말로서, 곧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얼마나 엄중했으며, 또한 그로 인한 성읍 사람들의 소동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작은 자와 큰 자 -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을 가리키는 관용어이다.
다쳐서 - 이 단어( , 솨타르)는 '입술이나 눈꺼풀이 깨어지다'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온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극심한 피부 질환으로 피부가 완전히 해지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아스돗 보다도 가드에 더 큰 재앙을 내리셨음을 뜻한다. 결국 이것은 방백들의 모사(8절)가 어리석은 것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5:10
본절에서는 방백 회의가 언급되지 않고 있으나 재앙을 수반하는 법궤의 이동 문제는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었으므로, 8절에서처럼 여기서도 방백 회의는 열렸으나 다만 생략된 듯하다.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 아스돗(Ashdod) 북동쪽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주요 다섯 성읍 중의 하나이다(8절). 이 성읍은 여호수아에 의해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으나, 그의 생전에는 점령되지 못했었다(수 13:3;15:11, 45, 46). 그 후 이 성읍이 유다 지파에 의혜 정복되긴 하였지만(삿 1:18), 얼마 안가서 블레셋의 지배 아래 떨어진 이후 유대 민족이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같은 상황은 계속된 듯하다(렘 25:20). 특히 이 도시에서는 '바알세붑'(Baalzebub)이라는 신이 모셔지고 있었다(왕하 1 :2, 3, 6, 16). 수 13: 3 주석 참조.
이처럼 이 도시에서 '다곤'(Dagon) 신이 모셔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 도시로 보내려고 한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
우리에게로 가져다가...죽이려 한다 - 에그론(Ekron) 거민들이 이처럼 여호와의 궤를 자신들의 성읍 내로 들여놓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저항한 이유는, 이미 그들도 그 궤 때문에 아스돗과 가드에 임한 큰 환난 소식을 익히 듣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5:11
블레셋 모든 방백 - 8절 주석 참조.
궤를 보내어...죽음을 면케 하자 - '궤를 보내는 일'은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취한 방책이었다. 만일 블레셋 족속들이 언약궤를 자신들의 또 다른 도시로 보낸다 해도, 옮겨진 그 도시 역시 앞의 다른 도시들처럼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받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약궤가 원래 보관되었던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블레셋 족속은 많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여호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본처( , 마콤) - 성경의 여러 곳에서 '거룩한 한 장소'의 뜻으로 사용된 단어이다(출 10:23;대상 15:1;대하 5:7). 따라서 '본처'는 넓은 의미로는 언약궤가 원래 안치되었던 이스라엘을,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이스라엘의 성막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사망의 환난( , 메후마트 마웨트) - 직역하면 '죽음의 파멸'(a deadly destruction, KJV), 또는 '죽음의 공포'(a deadly panic)란 뜻이다(시 55:4). 곧 갑자기 몰아닥친 사망의 징벌로 인해 도시가 폐허화되고, 성읍 거민이 공포로 떨고 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 이것은 여타 도시들 보다도 더욱 에그론(Ekron)에 하나님의 큰 진노가 내려졌음을 보여 준다. 즉 블레셋 족속이 하나님의 크신 손길을 인간적인 지혜로 대처하고자 할 적마다 더욱 가중하여 진노가 임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진노는 에그론(Ekron) 성읍에 언약궤가 들어온 직후부터 에그론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 후, 언약궤가 그 성읍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계속 내려진 듯하다.
=====5:12
성읍의 부르짖음이 - 여기서 '성읍'( , 하이르, 문자적으로는 '그 도시')은 단수로 언급되었는데, 당시는 진노당하는 성읍이 현재 언약궤가 있는 에그론(Ekron) 한 도시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부르짖음'( , 사와)은 극한의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간절히 호소하는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부르짖음'은 애굽인들로부터 극심한 학대를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도 있었다(출 2 :23;시 30:2;욘 2:2). 한편 이같은 블레셋 족속의 하늘을 향한 간절한 호소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완전한 패배를 인정하는 행위였다(욘 3 :8).
사무쳤더라 - '사무치다'( , 알라)란 말은 '자라다', '꼭대기까지 오르다'의뜻으로서, 블레셋 족속들의 부르짖음이 얼마나 크고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부르짖는 행위를 회개 기도의 형태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블레셋 족속은 극심한 독종 재앙과 사방의 재앙으로 인해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도움을 호소했을 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진정한 회개는 없었던 것이다. 곧 진정한 회개는 여화와께 대하여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와 같은 고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