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룻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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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3장 [435.나의영원하신기업] [309. 목마른 내 영혼].


===룻이 보아스와 가까워지다

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 [주발 앞에 무릎 꿇고]

주 발 앞에 무릎 꿇고  그 사랑에 나 안기네 어떤 말도 그 어떤 소리도 그 발 앞에서 잠잠해지네

주 나의 사랑 그 발 앞에 앉아 내 모든 기도는 사랑의 노래가 되네

주의 옷자락 만지며 주의 두 발을 씻기며 주님 그 발에 입 맞추며 나의 왕관을 놓으리

....[나의 하나님]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참 귀하다 어느 보석보다 귀하다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너와 함께 하려 내가 왔노라

주의 사랑 이 사랑은 결코 변치 않아 모든 계절 돌보시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신실해 실수가 없으신 주만 바라라

II: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II

찬양하리 만군의 주 영원히 함께 하시네 존귀하신 사랑의 왕 영원히 통치하시네

II:주님의 나라와 뜻이 나의 삶 속에 임하시며 주님 알기를 주만 보기를 소망해 

거룩히 살아갈 힘과 두렴 없는 믿음 주실 나의 하나님 완전한 사랑 찬양해:II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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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3장

1.  Then Naomi her mother in law said unto her, My daughter, shall I not seek rest for thee, that it may be well with thee?

2.  And now is not Boaz of our kindred, with whose maidens thou wast? Behold, he winnoweth barley to night in the threshingfloor.

3.  Wash thyself therefore, and anoint thee, and put thy raiment upon thee, and get thee down to the floor: but make not thyself known unto the man, until he shall have done eating and drinking.

4.  And it shall be, when he lieth down, that thou shalt mark the place where he shall lie, and thou shalt go in, and uncover his feet, and lay thee down; and he will tell thee what thou shalt do.

5.  And she said unto her, All that thou sayest unto me I will do.

6.  And she went down unto the floor, and did according to all that her mother in law bade her.

7.  And when Boaz had eaten and drunk, and his heart was merry, he went to lie down at the end of the heap of corn: and she came softly, and uncovered his feet, and laid her down.

8.  And it came to pass at midnight, that the man was afraid, and turned himself: and, behold, a woman lay at his feet.

9.  And he said, Who art thou? And she answered, I am Ruth thine handmaid: spread therefore thy skirt over thine handmaid; for thou art a near kinsman.

10.  And he said, Blessed be thou of the LORD, my daughter: for thou hast showed more kindness in the latter end than at the beginning, inasmuch as thou followedst not young men, whether poor or rich.

11.  And now, my daughter, fear not; I will do to thee all that thou requirest: for all the city of my people doth know that thou art a virtuous woman.

12.  And now it is true that I am thy near kinsman: howbeit there is a kinsman nearer than I.

13.  Tarry this night, and it shall be in the morning, that if he will perform unto thee the part of a kinsman, well; let him do the kinsman's part: but if he will not do the part of a kinsman to thee, then will I do the part of a kinsman to thee, as the LORD liveth: lie down until the morning.

14.  And she lay at his feet until the morning: and she rose up before one could know another. And he said, Let it not be known that a woman came into the floor.

15.  Also he said, Bring the vail that thou hast upon thee, and hold it. And when she held it, he measured six measures of barley, and laid it on her: and she went into the city.

16.  And when she came to her mother in law, she said, Who art thou, my daughter? And she told her all that the man had done to her.

17.  And she said, These six measures of barley gave he me; for he said to me, Go not empty unto thy mother in law.

18.  Then said she, Sit still, my daughter, until thou know how the matter will fall: for the man will not be in rest, until he have finished the thing thi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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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th 3..Amplified Bible..Boaz Will Redeem Ruth

1 Then Naomi her mother-in-law said to Ruth, “My daughter, shall I not look for [a]security and a home for you, so that it may be well with you? 

2 Now Boaz, with whose maids you were [working], is he not our relative? See now, he is winnowing barley at the threshing floor tonight. 

3 So wash and anoint yourself [with olive oil], then put on your [[b]best] clothes, and go down to the threshing floor; [c]but stay out of the man’s sight until he has finished eating and drinking. 

4 When he lies down, notice the place where he is lying, and [d]go and uncover his feet and lie down. Then he will tell you what to do.” 

5 Ruth answered her, “I will do everything that you say.”

6 So she went down to the threshing floor and did just as her mother-in-law had told her. 

7 When Boaz had eaten and drunk and his heart was happy, he went to lie down at the end of the stack of grain. Then Ruth came secretly, and uncovered his feet and lay down. 

8 In the middle of the night the man was startled and he turned over, and found a woman lying at his feet. 

9 So he said, “Who are you?” And she answered, “I am Ruth your maid. Spread the hem of your garment over me, for you are a close relative and redeemer.” 

10 Then he said, “May you be blessed by the Lord, my daughter. You have made your last kindness better than the first; for you have not gone after young men, whether poor or rich. 

11 Now, my daughter, do not be afraid. I will do for you whatever you ask, since all my people in the city know that you are a woman of excellence. 

12 It is true that I am your close relative and redeemer; however, there is a relative closer [to you] than I. 

13 Spend the night [here], and in the morning if he will redeem you, fine; let him do it. But if he does not wish to redeem you, then, as the Lord lives, I will redeem you. Lie down until the morning.”

14 So she lay at his feet until the morning, but got up before anyone could recognize another; Boaz said, “[e]Do not let it be known that the woman came to the threshing floor [last night].” 

15 He also said, “Give me the shawl you are wearing and hold it out.” So Ruth held it and he measured out six measures of barley [into it] and placed it on her. And she went into the city. 

16 When she came home, her mother-in-law said, “How did it go, my daughter?” And Ruth told her everything that the man had done for her. 

17 She said, “He gave me these six measures of barley, and he said to me, ‘Do not go back to your mother-in-law empty-handed.’” 

18 Then Naomi said, “Sit and wait, my daughter, until you learn how this matter turns out; for the man will not rest until he has settled it today.”

===Footnotes

Ruth 3:1 Lit rest.

Ruth 3:3 One rabbi said that these were special garments for the Sabbath.

Ruth 3:3 Lit do not reveal yourself to the man.

Ruth 3:4 By her action Ruth was expressing her desire and willingness to marry Boaz. 

Ruth 3:14 The wording suggests that this was a command Boaz gave to others who were near him on the threshing floor.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룻은 보리 추수 때부터 시작하여 대략 50일 정도 풍성한 보리와 밀 이삭을 거두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룻은 일꾼들이 일부러 떨어뜨리는 이삭을 주울 수 있었기 때문에 매일 곡식 자루에 가득 보리를 가져왔습니다. 

룻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아스의 풍성한 선대에 감사하며 칭찬했습니다. 어느새 두 과부의 음식 창고는 차고 넘쳤습니다. 나오미는 시장에서 곡식을 내다팔고 다른 필요한 물건들도 많이 구입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밀을 추수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룻기 2장의 마지막 절은 룻이 이삭을 주운 기간을 알려줍니다.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룻 2:23).

나오미는 인생의 풍랑을 거치며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오미는 큰 며느리 룻이 진심으로 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거듭난 신자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은 잠깐의 우울증세를 보였지만, 착하고 선한 경건한 며느리가 더욱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새 과거처럼 밝은 나오미가 되었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간 날이(보리 초실절 무렵) 어제 같더니 이제 밀 추수를 마치는 칠칠절이 다가왔습니다. 

칠칠절은 보리와 밀 등, 모든 곡식 추수가 마치는 날입니다. 이 날에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은 대추수를 마치며 큰 잔치를 하고 흥겨워하며 포도주를 마시고 춤을 추며 기뻐할 것입니다. 잔치가 마치면 각각 자기의 장막으로 들어가서 잘 것입니다. 

이렇게 밀 추수가 마무리 되려는 무렵, 곧 룻과 보아스가 대략 50일 정도 함께 한 즈음에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던 나오미가 룻에게 말을 건넵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룻 3:1).

여기서 나오미가 사용한 ‘안식할 곳’은 히브리어로 ‘마노아흐’인데 의역을 하면 “남편을 둔 가정”, 또는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그 당시의 사회에서는 남자가 있어야 생활이 가능했고 안전했습니다. 

나오미가 말한 것은 이제 과부인 룻이 다시 재혼해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새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재혼을 의미하고 말한 것입니다.

이때 룻을 향한 나오미의 어투를 보면, 룻에 대한 대단한 사랑과 아끼는 마음이 담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에게 감사하면서 며느리 룻이 주 앞에서 행복하여지기를 바란 것입니다.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나오미는 지난 50일 정도의 기간 동안 사건의 전개 및 보아스와 룻의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보아스와 룻이 서로 말을 못할 뿐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나오미는 보아스의 중심이 어떠한지 경건한 여성의 본능으로 나름대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사건의 전개에 따른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읽게 되면서 그 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오미는 밀 추수가 끝나기 전에 뭔가 어떤 조치를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밀 추수의 마지막 날 아침에 룻에게 과감하게 제안합니다.

“네가 함께 일하고 있는 하녀들의 주인인 보아스는 우리의 가까운 친척이란다.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릴 것이다. 너는 가서 목욕을 하고 몸에 향수를 발라라. 그리고 최고 좋은 옷을 입고 타작마당으로 내려가거라.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끝낼 때까지 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하거라. 그가 잠자리에 들면 그가 누운 자리를 눈 여겨 보아 두었다가 늦은 밤에 그리로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그곳에 누워라. 그러면 그가 네가 할 일을 일러 줄 것이다”(룻 3:2-4, 쉬운 성경 참조).

그 당시 팔레스틴의 타작은 먼저 보리단을 타작 마당에 펴 놓은 후 도리깨로 골고루 두들겨 보리와 밀의 낟알들이 땅에 떨어지게 합니다. 

그 후 땅에 떨어진 낟알들을 공중에 던지면 지푸라기와 보리 수염은 저 멀리 날려가고 곡식 낟알들만 타작 마당에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 낟알을 자루에 퍼 담으면 됩니다.

따라서 타작을 하려면 바람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밀 타작을 하는 6월 즈음에는 바람이 늦은 저녁에 지중해 쪽에서 불어오기 때문에 저녁에 타작을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타작하는 일꾼들은 저녁 내내 늦은 시간까지 수고하다가 타작 마당의 곡식 더미 곁에서 그대로 잠을 잤습니다. 

그 이유는 성문이 밤에 꼭 닫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잘 때는 가벼운 여름 이불을 덮고 잤습니다.

지금 이러한 밀 추수의 배경 속에서 나오미가 룻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그 제안 내용은 노골적으로 보아스에게 “고엘 제도”를 통해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는 의도를 전달하라(프로포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가장 아름답게 치장한 후에 그의 발 아래 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들으면, 나오미의 제안은 매우 비윤리적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대단히 위험한 제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모세의 법에 담긴 “고엘 제도”가 룻에게 이루어지도록 과감하게 도전한 것입니다. 

룻은 보아스의 제안에 순종하는데, 보아스가 발치 아래 있는 룻에게 한 말을 보면 성적인 부분보다는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경건함이 강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11절).

물론 둘 사이에는 감사와 사랑이 이미 흘러 넘치고 있었고, 특히 모세의 법에 따른 기업 무를 일에 대해 둘 다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 밤의 장면은 정욕에 타오르는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오직 고엘 제도에 따라 주의 뜻을 이루고자 큰 결단과 용기를 낸 내용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하나님의 언약과 무관한 죄성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러한 본성적인 부패한 죄성에는 언약 개념이 전혀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결혼 언약과 무관한 음란이나 음행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속합니다. 

육신의 정욕 및 안목의 정욕은 그저 정욕을 채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는 사랑이 아니며 상대가 누구이든 내 정욕을 채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남 및 창녀와 합하는 자는 결혼 언약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음행일 뿐입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언약이 동반되고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언약의 사랑 대상은 오직 단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창 2:24)을 주의 뜻으로 삼았고 이는 한 남자가 언약 속에서 한 여자를 아내로 취하여 그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을 뜻하였습니다(엡 5:31).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결혼 언약 안에서의 연합이며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모를 떠나 결혼 언약과 사랑 속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때의 사랑은 정욕이 아니며 가장 아름다운 연합의 사랑으로서 거룩한 사랑입니다. 

즉, 룻이 보아스에게 다가가 고엘 제도에 따라 자기를 아내로 취하여 달라고 청혼한 것은 Q의 뜻에 따른 거룩한 사랑을 추구함이지, 결코 육체의 정욕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결단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의 노예가 되어 음란과 음행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죄악을 범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직 참 사랑과 감사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 안에서 거룩한 사랑으로, 그러나 이성적인 사랑으로 사랑함으로 결혼에 이르러야 복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 및 결혼은 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욕에 이끌리는 자들은 창남이나 음녀가 될 것이고, 짐승처럼 더러운 정욕에 이끌리는 천박하고 상스럽고 수치스런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가장 비참한 지옥에서의 멸망이 될 것입니다.

한편, 나오미는 룻이 한 에바의 보리를 가져온 첫날부터 우울증에서 벗어나더니 모든 관심이 보아스와 룻의 관계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평소 추수 기간 동안 보아스와 룻의 관계를 주의 깊게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생사고락을 다 지난 여인으로써 보아스의 마음과 룻의 마음을 각각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즉,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갖고 있고 대단히 서로 맘에 들어 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나오미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룻이 그녀의 인생을 보아스에게 던진다면 이는 모세의 율법에도 어긋나지 않을 뿐더러 룻의 인생이 보아스의 자비에 달리게 되면서 그 결과는 결코 룻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오미는 이 제안을 하면서 분명하게 룻에게 확신을 줍니다.

“(보아스)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보아스의 성품과 긍휼과 덕을 확신한 나오미는 룻이 그에게 청혼하더라도 보아스는 결코 룻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행여 잘 되면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오미에게 있어서도 보아스의 손에 룻의 삶을 던지게 한 것은 주 하나님께 룻과 자신의 삶을 던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자 룻이 대답합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5절).

이는 시어머니의 제안대로 자신의 인생을 보아스의 손에, 보아스의 자비에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보아스를 잘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제안과 순종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제 룻의 삶은 보아스의 손에 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아스가 못된 사람이라면, 룻의 인생은 파산될 것입니다. 행여 악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이상한 행동을 하는 룻을 도덕적으로 부정한 여인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룻은 당장 베들레헴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즉, 룻의 인생은 청혼을 하면서 보아스에게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건의 전개를 보면 룻이 그녀의 삶을 보아스에게 던지자 놀랍게도 당장 보아스가 룻을 받아주고 책임집니다. 그리고 친히 룻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왜요? 보아스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덕이 넘치는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룻을 대단히 귀히 여기며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나오미는 룻도 믿었고 보아스도 믿었고 무엇보다 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 두 사람의 결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오미의 제안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선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이 제안에 대해 룻이 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룻이 자기 땅을 떠나 나오미를 끝까지 따르기로 맹세한 것은 주 여호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룻이 맹세할 때 그녀는 주의 율법에 따라 자신도 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분명하게 내비쳤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따라서 나오미의 제안은 룻에게 있어서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하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남편 말론 및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룻의 시대에서 약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그 씨가 올 것인데 그 씨가 바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6-18).

이 언약에 대해 바울은 정확하게 해석해 줍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그러므로 고엘 제도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약속의 땅에 유지하기 위해 대단히 중요했고 더욱이 유다 지파의 경우는 메시아의 오심이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제도는 반드시 지켜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룻이 결혼한 말론은 유다 지파에 속하여 있었고, 그가 죽자 보아스가 고엘할 수 있었는데 보아스 역시 유다 지파였습니다. 

결국 룻과 보아스가 결혼하게 되면서 룻은 아브라함의 그 씨의 가장 중요한 조상이 되는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6절 이하를 보니, 드디어 룻이 시어머니가 시킨 대로 행합니다. 그래서 룻은 얼마나 큰 복을 받게 되는지요.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부모들의 신앙적인 조언을 신중히 받아들인다면 잘못된 불량배를 만나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대추수를 마치고 일꾼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마친 보아스는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곡식 더미들의 마지막 더미로 가더니 그곳에 누워 이불을 덮었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던 룻은 그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에게 다가가 이불을 들고 그의 발치에 누웠습니다.

한밤중에 보아스가 자다가 돌아누우며 잠깐 깼는데 자기 발치에 뭔가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허리를 접고 일어나 앉아보니 발치에 어떤 여자가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보아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누구시오?”

신기한 것은 밤에 한번도 깨지 않고 잘 수도 있는 것인데 보아스가 밤에 잠깐 깼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한밤중의 냉기로 인해 깰 수도 있고 배불리 먹고 마시고 잠 들었으니 용변 때문에 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 말고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밤에 보아스를 깨우셨다는 사실입니다.

보아스가 “누구시오”라고 하자 룻이 조용히 속삭이며 대답합니다.

“저에요.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어주세요. 주인님은 저에게 기업을 무를 수 있는 친족이십니다.”

즉, 룻은 보아스가 룻과 나오미를 포함한 엘리멜렉 가정의 ‘기업 무를 자’이기 대문에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물론 고엘 제도는 기업 무를 구속자에게 강제성을 띠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수혼제도는 더더욱 강제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룻은 보아스에게 모세의 법에 따라 나의 구속자가 되기 위해 나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때 룻의 부탁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정욕에서 나온 부탁이 아닙니다. 

그녀의 부탁은 시어머니의 제안에 대한 순종일 뿐만 아니라 모세의 법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부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한 보아스를 믿고 자신의 삶을 던진 순간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자신들의 삶을 보아스의 사랑과 자비에 걸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보아스에게 달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보아스가 덕과 사랑이 많다면 나오미와 룻은 자신의 삶을 그에게 던짐으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삶을 못된 남자들에게 맡김으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갑니다. 수많은 인생들이 그들의 삶을 거짓 우상 신에게 던짐으로 멸망으로 향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 자신을 맡김으로 죄악과 거짓 속임수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참 믿음을 소유한 남성에게 인생을 던진 자매들마다 가장 복되고 영원한 보람을 누리는 가정을 꾸려 살게 됩니다. 

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인생을 그리스도께 던진 자들마다 영원한 보람과 안전함과 풍성함이 보장된 삶을 살아갑니다.

나오미와 룻은 그들의 삶을 보아스에게 던진 직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보아스의 지시를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이제 보아스는 그 제안을 거절하든지 또는 받아들일 것인데, 받아들여지면  둘은 결혼하게 될 것이요, 거절 당하면 룻은 다시는 보아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음욕 때문에 몰래 다가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왔고 또한 정식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자신에게 다가온 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난 50일 동안 서로 맘에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에 보아스는 룻의 믿음이 갸륵하다는 생각을 하며 더 깊은 사랑을 느끼면서 그녀를 칭찬하며 복을 빕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0절).

즉, 룻이 젊은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안목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따라 행하였다고 칭찬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룻이 젊은 과부로서 정욕을 따르지 않고 본토 친척을 떠나 하나님 품으로 들어와 늙은 과부인 나오미를 모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에 대한 ‘인애’요 나중 인애는 여전히 계속 인간적인 생각이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법과 약속을 믿음으로 주의 백성에게 속하기 위해 보아스에게 청혼한 그 인애를 뜻합니다. 

여기서 보아스가 사용한 인애는 히브리어로 ‘헷세드’인데 이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단어가 나오미에 의해 보아스에게 사용되더니, 지금은 보아스가 그 단어를 룻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룻을 통해 나타난 거룩한 순종과 사랑이 그리스도의 영에 의한 것임을 보아스가 느끼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보아스가 계속 말합니다.

“이제 내 딸아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11절).

이렇게 하여 룻이 자신의 삶을 보아스에게 던진 모험은 일단 보아스의 승락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즉, 보아스가 룻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보아스와는 비교될 수 없는 온 우주 가운데 가장 유력한 자이시며 사랑과 자비에 있어서도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나오미와 룻이 그들 인생을 보아스에게 던진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님께 던진다면 여러분의 남은 삶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먹이시고 갈증을 채워주시는 살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우리의 영원한 보아스이신 그리스도께 던지기 바랍니다. 

특히 위기의 때에는 더욱 분명하게 여러분의 삶을 그리스도께 던지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내 삶을 결정하도록 그분의 인도를 받기 바랍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인 아말렉 사람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절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는 바사 왕의 황후가 된 사촌 여동생 에스더에게 당장 왕에게 나아가 유다 민족이 멸절되는 것을 막으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바사의 법에 따르면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누구든지 왕 앞에 나아갈 경우 만일 왕이 그의 규를 내어주지 않으면 사형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0 에스더가 (내시)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12 내시 하닥이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0-16)]

바로 이 부분이 위기 가운데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던지는 에스더의 믿음의 절정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결단과 순종으로 말미암아 에스더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영웅의 별이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에스더가 그의 삶을 주께 맡기자 그녀를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영화롭게 하시고 더 나아가 주의 백성의 영원한 원수인 하만을 완전하게 제거하는데 사용하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 가운데 여러 차례 하나님 앞에 범죄합니다. 자신의 충신이었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요압 장군에게 충신 우리아를 죽게 하도록 만든 죄는 참으로 가증하고 간교할 뿐만 아니라 여러 부패하고 더러운 죄악들이 혼합된 크고 무서운 죄였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밧세바가 불륜 상태에서 밴 아기를 죽이시겠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비록 무서운 죄를 저지른 상태이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기 삶과 또한 죄없는 어린 생명에 대해 주께 철저하게 던집니다. 

이 부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는 순식간에 용서와 사랑으로 바뀝니다. 

물론 죄 없는 그 아기는 다윗의 죄로 인해 죽게 되는데, 이는 죄 없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심을 예표합니다.

[15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17 … 먹지도 아니하더라...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19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삼하 12:15-25)

또한 통일 이스라엘이 승승장구할 때 다윗에게 교만이 싹터서 군사를 수를 센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다윗의 큰 죄로 인해 이스라엘을 치십니다. 이에 다윗이 당장 회개하자 하나님은 세 가지의 징벌 중에 선택하게 합니다. 

하나는 삼 년의 기근이고, 다른 하나는 석 달 동안 적군에게 패하는 것이고, 세 번째 것은 여호와의 칼에 의해 사흘 동안 이스라엘 온 땅에 전염병이 퍼지는 것입니다(참조, 대상 21:1-19). 이때 다윗의 대답은 심판 가운데서도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자신과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대상 21:13).

이에 하나님은 전염병의 심판 가운데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심판을 멈추시고 다윗의 희생 제사를 받으십니다. 

즉,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기보다 그분의 자비와 선함을 알고 하나님께 자신을 던지자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다윗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대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악에 대해 징벌을 대신 받으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믿음의 모습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주께 자신의 모든 삶을 던졌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매를 맞더라도 울면서 부모의 품으로 달려들면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랑의 부모는 더 이상 매질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자녀를 품에 안고 때린 매에 대해 같이 아파합니다.

아무튼 보아스는 그가 기특하게 여기며 사랑하던 룻이 그녀의 삶을 그에게 던지자 그 여인의 모든 빚과 문제를 친히 해결하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보다 더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있다는 사실을 룻에게 알려줍니다.

“내 딸아!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다. 당장 아침이 되면 나보다 앞선 기업 무를 자에게 확인해 보겠다. 만일 그가 기업을 무를 것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너의 기업을 무를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가 너의 기업을 무르지 않겠다고 하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내가 너의 기업을 무르겠다. 자 이 밤에 여기서 조용히 있다가 아침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아무도 모르게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는 보아스 역시 룻과 결혼하기를 바라면서 룻에게 말할 기회를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룻이 먼저 청혼했으니 보아스는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겠습니까?

한편, 보아스 역시 룻처럼 경건한 사람인지라 그 밤에 당장 육신의 정욕을 따라 룻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엘리멜렉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아스는 그 사실을 룻에게 알려주고 그 둘은 계속 거룩함과 순결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는 보아스가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함을 뜻합니다. 14절은 그 둘이 순결을 유지하였음을 입증합니다.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더라”(14절).

그리고 룻이 그 밤에 보아스의 발치에서 머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성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아스가 룻을 그 밤에 내보낸다면 룻은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룻의 형편을 잘 알고 있는 보아스는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세심하게 룻을 배려하는 가운데 사랑과 거룩함, 그리고 안전함을 다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 둘은 새벽 동이 트기 전까지 조용히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에 보아스가 말합니다.

“네 겉옷을 펴거라.”

룻이 겉옷을 펴자 보아스는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었습니다. 룻은 풍성한 보리를 받아 자기 집이 있는 성읍으로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사건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아무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보아스는 아침이 되면 당장 룻의 청혼 문제를 해결하고 룻과 결혼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오미의 현명하고 용기있는 제안을 사용하셔서 주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보아스와 룻은 주 안에서 결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둘에 의해 엘리멜렉의 대를 잇는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 태어날 것입니다.

“보아스는 오벳을 나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 4:22).

보아스는 결국 다윗의 증조 할아버지가 되었고 룻은 증조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의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다윗의 그 씨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 땅에 성취되었습니다. 

앞으로 장차 주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 눈에 보이는 주의 나라가 영원히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룻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인 영원한 나라가 이 땅에 서도록 하는 일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 삶을 던질 대상은 궁극적으로 두 대상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의 삶을 옭아매는 마귀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나라와 영생을 제시하며 우리의 삶에 참된 자유와 복락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욱 구체적으로 현실 가운데 복을 베푸시기 위해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도록 그분의 아들인 영원한 보아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보내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은 긍휼과 자비가 무한하시고 변함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그분은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 13:12).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참 사람이 되신 임마누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여러분의 삶을 던지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오늘 룻이 보아스에게 던진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룻은 하나님을 믿고 모압을 버리고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이제 그녀는 베들레헴에서 주의 백성이 되고자 합니다. 

어떻게 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은 오직 기업 무를 자와 결혼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아스가 룻을 영접한 것입니다. 

이에 룻은 떳떳하게 주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사도 요한이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땅에 오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1-13).

그리고 이처럼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모든 신자들은 그들의 남은 삶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늘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풍성한 결혼 생활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3-5)

이 시간 영원한 보아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보아스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와 결혼함으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영원한 보아스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쓰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생과 영원한 기업과 영원한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복된 삶을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업무를자에게 나아가기===

룻기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 오벳을 낳게 된 것, 다윗의 조상이 된 것, 이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 일들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 주권적인 개입하심이 있습니다. 룻기는 주권자 하나님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보아스는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넷째 아들인 유다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이 유다의 후손으로 태어나셔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조상인 보아스는 유다의 후손이자 다윗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메시아를 가리켜 유다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뿔이라고 했습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이자 다윗의 뿔이 된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신데, 보아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조건에 합당한 인물입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세상 인구 중 절반이 남자인데, 그 가운데 룻이 성경에 예언된 인물을 만나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은 수천 번, 수만 번을 생각해 봐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길을 오다가다 만나 연애를 해도 우연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하물며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서 이루어진 일이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기 3장은 룻이 기업 무를 자인 고엘에게 먼저 나아가야 했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하신 일이지만 룻 역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과 결혼은 룻이 먼저 보아스에게 적극적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룻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하나도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을 이루실지라도 인간에게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은 인간의 책임 영역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Ⅰ. 룻이 기업 무를 자에게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절에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할 곳은 룻이 재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오미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보리타작이 진행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룻으로 하여금 타작마당으로 내려가라고 말했습니다. 타작마당은 일반적으로 타작할 때 겨를 날려 버려야 하기 때문에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있었고, 알곡을 모아둘만한 넓은 장소여야 했습니다. 

주인은 타작마당에 모아 놓은 알곡을 지키기 위해 알곡 옆에 자리를 깔고 누워 밤을 보냈습니다. 도적이 와서 훔쳐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타작마당에서 밤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런 관습을 잘 알고 있던 나오미는 룻에게 오늘 밤 타작마당으로 가라고 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가지 말고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새 옷을 입고 보아스가 누울 때 발치의 이불을 들고 들어가서 그 안에 누우라고 말했습니다. 

행실이 정숙한 룻으로서는 이러한 시어머니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 밤중에 외간남자가 자고 있는데 그 발아래 눕는 일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가 명하시는 대로 다 지켜 행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6절에 “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룻은 시모가 시키는 대로 기업 무를 자에게 가까이 나아갔던 것입니다. 

보아스는 자고 있는데 난데없이 발치 이불을 들고 들어오는 여인을 보고 놀라 물었습니다. 9절에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룻은 북한의 기쁨조들이 미인계를 이용하듯 불법한 태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지금 기업 무를 자에게 합법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남편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으며, 당신은 기업 무를 자니 나와 결혼해서 내 남편의 이름을 이어주고 잃은 땅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합법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식으로 결혼을 요청하는 프로포즈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인 룻이 한 밤중에 외간남자인 보아스에게 나아가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5장 39~40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가장 슬픈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오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죽으면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께 나아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일에 있어서 주저하고 나아가기 싫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는데, 먼저 예수님을 믿어 불효를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술 담배와 같은 것을 끊지 못해서 예수님께 나아오기를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또 기독교인들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 경우 예수님께 나아가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불효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고,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해서 천국을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더라도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술 마시고 담배 핀다고 지옥에 보내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사기를 당했을지라도 고작 그런 일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기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가 결혼해 주시도록 요청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구속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방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고 이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 용서를 받을 수 있고, 영생도 받고 부활도 하고 영원히 천국에 살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Ⅱ. 룻이 기업 무를 자에게 나아가는 것은 능동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룻이 계대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수동적으로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짝사랑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냥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아스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여자에게 청혼하는 일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30세 된 과부에게 청혼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60대를 ‘틀딱층’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틀니를 닦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여자에게 청혼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보아스의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네가 시어머니를 잘 봉양한 것도 인애로운 일인데, 나이 많은 내게 기업 무를 자라고 청혼한 것을 보니 그 인애가 처음보다 더 하다는 표현입니다. 젊은 남자를 좇지 않고 나이 많은 내게 시집을 오겠다고 하니 자비로운 여인이라고 칭찬을 합니다. 더구나 보아스는 기업 무를 책임 1순위의 사람이 아니고 2순위에 해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아스가 먼저 청혼을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룻이 복을 받으려면 능동적으로 기업 무를 자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룻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많은 문제들을 갖고 살아갑니다. 물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도와주시고, 저것도 도와주시도록 간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자기에게 다가오셔서 도움 주시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절대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수동성을 강조하지 않고 적극적인 능동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0~31절에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하면 지옥을 벗어나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빌립보 간수의 질문에 사도 바울은 ‘능동적으로 믿으라!’고 대답합니다. 

또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이 피곤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사람은 다 구속자 되신 예수님께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능동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속자에게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2절 후반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게 왜 돈이 없을까? 하나님께 돈을 주시도록 기도해 봤습니까? 생각보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구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잊지 마시고 늘 간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 모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동사들입니다. 구원과 복은 하나님께 능동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복 받는 사람들은 능동적인 행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에서 유학하며 목회를 했습니다. 당시 목회하던 교회에서 사례비로 1,000달러를 주셨는데, 그 중 400달러가 집세로 지불되면 사실상 한 달을 600달러로 생활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유치원 갈 때가 되어 등록금을 알아 봤더니 한 달에 500달러가 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애당초 유치원 보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저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내는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을 굳게 믿고 유치원 원장을 계속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상종도 않더니 몇 차례 찾아가서 만난 결과 공짜로 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회자 형편이 어떤 지 충분히 알기에 사정을 봐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 말도 못 꺼내고 있었는데, 아내는 지속적으로 찾아가 아들을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저는 그 때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성경 배부하는 기드온이라는 기관에서 회장으로 섬기고 계십니다. 한 번은 유럽에 가셨다가 호텔에서 가지고 갔던 성경을 나눠주셨는데, 아내 된 권사님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면박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배부의 사명을 갖고 있던 이 집사님은 그렇게 갖고 있던 성경을 다 나눠주셨고 일정을 마쳐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려는데 승무원이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집사님 부부를 퍼스트 클래스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경 배부하는 큰 일을 하는 분이시라고 집사님 권사님을 1등석으로 안내해 좋은 대접을 받으며 귀국하게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방법은 구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려면 주시고, 안 주셔도 그것으로 족합니다라고 하지 마시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서 복을 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인인 룻이 보아스에게 한 밤중에 나아가는 일은 신변의 위험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과부가 화장을 하고 새 옷을 입고 나가면 동네 총각이 보따리에 싸서 납치해 갈 위험도 있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한국에도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니 안정상의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리적인 위험도 있습니다. 만약 보아스가 룻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숙한 여자인줄 알았더니 한 밤중에 와서 늙은 남자인 내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박대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룻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습니까? 아마 젊은 여인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깊은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구속자 되신 예수님께 접근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감수해야 할 위험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일들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절당할 이유도 없고 상처 입을 위험도 없습니다. 주저할 필요도 없고 수동적으로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침노하는 자가 빼앗게 되는 것입니다. 

1월 첫 주 양수리 수양관 산상집회 때, 독일인 에릭 홀저펄이라는 목사님이 강사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신유의 은사를 가진 분으로 전 세계에서 유명한 분이십니다. 목사님은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씨의 딸 이민아 목사님을 고쳐준 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동섭 협동 목사님이 통역을 맡아 수고해 주실 텐데, 우리 모두에게도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려면 거리끼는 모든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능동적으로 믿고 행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큰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Ⅲ. 보아스에게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한 세 가지 중요한 이유 

첫째, 보아스는 룻의 필요를 능히 채워줄 능력이 있었습니다. 룻은 죽은 남편의 이름과 땅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들을 낳아서 말론의 이름이 계속 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보아스는 땅을 다시 찾아올만한 돈을 가지고 있었고, 비록 나이 들었지만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구속자 되신 예수님은 성도의 현세적이고 영적인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능동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능한 자에게는 나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나아가 봐야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둘째, 보아스는 룻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호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고, 극도로 칭찬했습니다. 그러니 나오미는 룻이 청혼해도 보아스가 결코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약속했습니다. 13절에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리 여섯 되를 시모인 나오미에게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것은 보리죽을 끓여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청혼 승낙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보리를 받고 보아스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18절에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이제는 아무 할 일이 없으니 일이 성취될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자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과 사랑을 보장해 주십니다. 보리 여섯 되가 문제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고, 로마서 8장 32절에도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도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무엇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들도 내어주신 분께 무엇을 주지 않으실까봐 주저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능력도 있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약속도 하셨으며, 채워주실 충분한 호의도 갖고 계십니다. 

셋째, 보아스는 룻의 필요를 채워줘야 할 법적인 의무도 있었습니다. 물론 기업 무를 순위에서 1순위는 아니었지만 1순위자가 포기할 경우 2순위자로서 기업을 무를 책임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순위자에게 기업 무를 기회를 준 이후 스스로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줄 책임이 있으실까요?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자격이 없지만 은혜로 베풀어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돌보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약속대로 이행하셔야 할 의무를 갖고 계신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먼저 능동적으로 나아갔듯이 우리를 도와주실 구속자,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구속자에게로 먼저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업 무를 자의 책임 다할 것을 요구했던 것처럼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도록 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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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3장 (개요)

지금까지 룻의 훌륭한 행실을 칭찬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본 장에서는 룻의 정숙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변호를 하기 위해 땀을 빼게 된다. 

그러나 결코 그런 행실을 오해해서 악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당시의 풍습과 관례를 자세히 살피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가 룻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요구할 방도를 알려 주었다(1-5).

2. 룻은 이 지시를 따라 그대로 행했다(6, 7).

3. 보아스는 룻에게 친절과 영예를 베풀었다(8-15).

4. 룻은 나오미에게 돌아와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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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의 전략(룻 3:1-5)

Ⅰ. 나오미는 룻을 안락하게 해 주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고, 모범된 일이기 때문에 기록되어 있다. 

나오미 자신은 다시 결혼할 의사가 조금도 없었다(1:12). 이미 늙은 나오미는 계속 과부로 남을 결심이었지만, 젊은 룻을 계속 그녀의 며느리로 구속할 생각은 결코 없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기들로 청년의 표준을 삼아서는 안 된다. 이와는 달리 나오미는 어떻게 하면 룻을 잘 결혼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룻은 그녀를 위해 나오미가 애쓰는 것을 겸손한 마음으로 만류하고 있지만 나오미는 룻을 위해 지혜로운 계획을 만들었다(1절).

1. 죽은 자들의 씨앗을 키우고 그 혈통이 끊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나오미는 죽은 자들에게 의로운 일을 행했다.

2. 나오미는 룻에게 매우 친절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했으며, 룻은 존경심을 품고 나오미를 충실하게 모셨다. 

“내 딸아(나오미는 말하면서 룻에게 경의의 시선을 던졌다)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즉 결혼해 안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의 말을 했다.

“내가 네게 좋은 남편을 구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네가 복되게 되리라.” 

다시 말하면 지금처럼 이렇게 보잘것없고 우울한 상태에서 생활할 게 아니라, “너는 이제 풍족하고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는 결혼해서 가정을 갖는 것이 안식이며 또 그래야 한다. 

그 때에야 사랑의 방황은 끝나고 마음이 안정된다. 즉 남편의 집에서 편안함을 얻어야 한다(1:9). 경솔한 자는 안정된 결혼을 얻을 수 없다.

(2) 결혼하기를 원해 이를 실행하려는 자는 잘 선택해 그것을 복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은 안식은커녕 아주 불안스러운 것이 될 수도 있다. 결혼할 자식을 둔 부모는 잘 살펴서 “그들이 복되게 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영혼에 가장 훌륭한 것이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3) 자식들에게 이런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이것을 위해 알맞은 일을 적당한 때에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다. 

책임감 있고 정중한 부모일수록 이런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더 열심히 즐겨 행한다.

Ⅱ. 나오미가 룻이 보아스에게 발탁되도록 한 과정은 상례적인 일이 아니며, 좋지 못한 일같이 보인다. 

만일 여기에 잘못된 점이 있다고 한다면 룻보다 이스라엘의 풍습을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나오미가 룻을 그렇게 행하도록 했으므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1. 사망한 자들의 근족이며 나오미의 가장 가까운 사람 중의 하나인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맏아들로 자식 없이 죽어 버린 말론(2절)의 아내였던 룻과 율법적으로 결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러니 우리의 일을 잘 보살펴야 하지 않겠느냐? 왜 우리가 그의 의무를 생각해 내지 못했던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준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근족이시다.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셨으니, 그는 “우리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다”(창 2:23).

2. 보리 초실절(=유월절에서 8일 째,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 게네사렛 평야의 첫추수 보리의 첫단 드리는 날..신약의 부활절)무렵, 모압에서 돌아온후부터 밀의 초실절인 칠칠절(신약의 오순절 = 밀 추수 시작)까지 (보리를 거두는) 보리 추수기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 내내 보아스는 그의 곡식 베는 사람과 함께 있는 룻을 잘 알게 되었다.

이제 보아스도 룻도 상호 존중과 상호 신뢰 상호 사랑이 이미 돈독해졌을을 눈치챘으나 서로 망설이고 있는바 보아스에게 이것을 알려 주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보아스는 사소한 일에서도 룻을 돌보아 주었으므로, 그가 그들의 근족임을 알게 되더라도 그들에게 불친절해진다거나 불공평한 처사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오미를 격려해 주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 때(2절)를 기회로 삼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칠칠절, 보리 추수가 종료되고 밀추수가 시작되는 날, 그 때는 추수의 기쁨으로 충만되는 때이며, 그의 일꾼들은 친절한 주인에게서 대우를 받는 때다. 

“그가 오늘 밤에 보리를 까불리라.” 

즉 오늘 밤 연회를 베풀리라. 나발과 압살롬이 양의 털을 깎은 후 연회를 베풀었듯이, 보아스도 보리를 까불은 후 그랬다.

3. 나오미는 룻 자신이 그 일을 가장 잘 해내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에는 여자가 간청하는 것이 이 지방의 관습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율법에 잘 암시되어 있다(신 25:7-9). 

그래서 나오미는 룻에게 몸을 깨끗이 하고 의복을 단정히 입으라고 말했다. 화려하게 꾸미라고 말하지 않았다(3절).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되, 이세벨처럼 화장을 하지는 말라. 의복을 입되 창기들처럼 유별한 복장을 하지 말며, 연회가 끝난 후 그가 누울 때에 그의 발치에 누우라.” 

아마 그녀는 거기에서 베풀어지는 저녁식사에 초대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돌아가고, 보아스가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룻은 자기의 정체, 즉 자기의 용무를 알려서는 안 되었다(실상 룻이란 인물 자체는 보아스의 일꾼들 사이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또 이 때에는 보아스가 그의 집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쉽고 은밀히 룻이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곳은 집과 충분히 떨어져 있었다.

4. 그러나 보아스가 잠자리에 들 때 룻이 가만히 나타나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눕는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는지 모르겠다. 

.....많은 해설자들이 이것을 부조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중 풀(Poole)이 특히 그렇다. 

.....우리는 결과가 선할 수 있다 하여 악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불티와 기름을 같이 놓는 것은 위험하다. 자그마한 불티가 얼마나 많은 것을 불태우는가? 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 모든 학자들이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법률이나 사조는 당시와 다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이 사건을 선용하리라. 

.....그들의 생각대로 보아스가 근족이라면, 룻은 그의 아내로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으며, 이들의 혼인을 이루게 하기 위해 예식도 별로 필요 없었다.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에게 접근하도록 한 것은 룻으로 하여금 그의 아내가 되도록 하기 위한 의도밖에는 없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나이 든 남자일 뿐 아니라(나오미는 룻이 혼자 보아스에게 접근하는 모험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중하고 엄숙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덕 있고 믿음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나오미는 룻이 정숙한 여자로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는”(딛 2:5) 것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한 때가 있었는데(민 25:1), 여기 나오는 모압 여자 룻은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나오미는 올바르고 영예로운 일 이외에 다른 불미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뜻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는”(고전 13:7) 그녀의 사랑은 보아스와 룻이 올바르고 영예로운 일 이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만일 나오미가 룻에게 충고한 것이 현재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나라의 관습에서도 음란하고 불미스러운 일이었다면 나오미는 분명 덕 있는 여자가 아니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나오미가 덕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해 볼 여지가 없다). 

만일 그랬다면 나오미는 지혜롭지 못한 시어머니로서 룻을 희생시키고 더욱 나아가 이들의 결합을 방해하고 보아스와 룻의 사이를 이간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현재의 우리 관습에 비추어 보고서 그릇된 일이라고 판단해 버려서는 안 된다.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보내면서 여러 가지 지시를 했다. 

룻이 보아스에게 간청했을 때 율법을 잘 알고 있는 보아스는 “그녀의 할 일을 고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구주 앞에 엎드려 우리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주여 뉘시오니이까”(행 9:6).

5. 만일 나오미의 지시가 옳지 못한 것이었다면, 정숙하고 현명한 룻으로서도 분명 나오미의 말대로 행할 것을 약속하지 않았을 것이다(5절).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이와 같이 어른들의 권고가 엄숙하고 신중한 것으로서 올바른 일을 위한 것이라면, “젊은 자들은 장로들에게 순복해야 한다”(벧전 5:5). 

그런 때에 거기에 반항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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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와 룻(룻 3:6-13)

Ⅰ. 보아스는 자기의 일상적인 일을 잘 처리했다. 일반적인 관습대로,

1. 그의 종들이 보리를 까불 때 보아스는 그들과 함께 있어 지켜보았다. 

그것은 물론 그의 종들이 곡식을 훔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그는 이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보리를 까불 때 종들이 부주의해 곡식을 흘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종들은 그들이 정직하다 할지라도 부주의 때문에 많은 낭비를 하게 되기 때문에, 주인들은 부지런히 “자기 양떼의 형편을” 살펴야 한다(잠 27:23).

2. 보아스는 특별히 할 일이 있을 때는 “그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후히 대접해 격려해 주었다. 

부유하고 훌륭한 사람은 그의 일꾼이나 아랫사람들과 친하고 관대히 대해야 한다.

3. 보아스는 그의 일꾼들과 함께 먹고 잠시 유쾌히 지낸 후 “적시에 잠자러” 갔다. 

그는 매우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고로 자정이 되자 이미 한잠을 잤다(8절). 이렇게 그는 다음 날 아침의 일을 위해 알맞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곤 했다. 

모든 훌륭한 남편들은 시간을 잘 이용해,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이 때맞지 않는 환락에 빠져 들지 않도록 한다. 

시리아역 해설자는 7절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쉽게 풀이하고 있다. “보아스는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히브리 본문은 이와 같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였다. 하나님은 전에도 그의 기도를 들으시어 이스라엘 땅에서 기근을 몰아내어 주셨다.” 

보아스는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 상태는 온전했고 폭음과 폭주로 그 자신을 잃지도 않았다. 

더욱이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기도했다. 보아스는 이제 음식을 배불리 잘 먹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찬미했다. 

또한 이제 쉼을 얻으려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보호에 자신을 맡겼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비록 그는 모르고 있었을지라도 그의 앞에는 이상한 유혹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4. 그는 “노적가리 곁에” 잠자리를 마련했는데 그것은 노적가리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 그것을 도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너무 늦어 성읍에 있는 집까지 가지 않고 내일 아침 다시 일하기에 편리하도록 거기서 자기로 했을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그의 집에서 까다롭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지위나 안락을 찾기보다는, 그의 조상 야곱처럼 소박한 사람으로서, 때로는 곳간에 잠자리를 마련하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짚단에서라도 만족스럽게 잘 수 있는 사람이었다.

Ⅱ. 룻은 자기의 일이 잘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룻은 어머니의 말에 순응해 보아스에게로 가서 옆이 아니라 옷을 입은 채 발치 이불을 들고 누웠다. 

거기서 자기의 용무를 보아스에게 말하기 위해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보아스가 밤중에 깨어 누군가가 그의 발치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물었을 때, 룻은 자기의 이름을 말하고, 하나님의 율법이 보아스가 자기의 보호자라는 것을 알려 주었으므로 그의 보호를 받기 위해 왔다는 용건을 말했다(9절). 

“당신은 쇠퇴해 가는 한 가족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이 멸망을 당신의 수하에 두소서(사 3:6). 그러하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시어 나를 기꺼이 아내로 맞아 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해 줄 근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분이 우리를 모으셨으므로(마 23:37), 그 분의 날개 밑에 와서 그 분께 “그의 옷자락으로 우리를 덮으시기를” 간청해야 한다. 

“주 예수여, 당신의 언약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돌봐 주시옵소서.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사 38:14).”

Ⅲ. 룻은 보아스에게 잘 영접되었다. 

룻이 행한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며, 나오미가 자기의 친족에게 가졌던 생각은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 

보아스는 룻의 간청이 타당하고 영예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그녀의 말대로 행했으며, 자기의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하지 않았다”(창 34:31).

보아스가 이처럼 룻을 돌아본 것이 비난받아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다.

1. 비록 보아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보아스는 룻을 강제로 범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리아역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보아스는 “그의 욕정을 누르고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고 의인 요셉이 애굽의 자기 여주인 곁에 가려 하지 않은 것처럼 했다. 

또 사울이 경건한 사람 발디에게 다윗의 아내인 미갈을 주었을 때(삼상 25:44) 그녀와 자기 사이에 칼을 놓아 그녀를 범하지 않도록 한 것처럼 행하였다.” 

보아스는 룻을 자기에게로 오게 하는 것이 조금도 사악한 욕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 자신과 그녀의 영예 둘 다 용감히 지켰다.

2. 그는 룻의 행실을 악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경솔한 여자라고 책망하지도 않았고, 영예로운 남자의 아내가 되기에는 부적당하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룻이 그의 밭에서 일할 때 그녀의 정숙하고 고귀한 행실을 잘 알았으므로 보아스는 그녀의 성품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이 고통 중에 있는 과부에게 친족 남자로서의 도리를 못 하고 그녀를 그 고통에서 구하지 못했음을 책망했으며, 유다가 그의 며느리에게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말했듯이(창 38:24), 그의 심정 또한 그랬다.

(1) 그러므로 보아스는 그녀를 칭찬하고 친절하게 그녀를 그의 “딸”이라고 불렀으며, 뛰어난 덕을 지닌 여자로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시어머니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전보다도 더 많은 친절을 베풀었다. 

룻이 그녀의 나라를 버리고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땅에 와 거하면서 생계를 계속 도왔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었다. 

이것 때문에 보아스는 룻을 칭찬했다(2:12). 그러나 이제 그는 룻에게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0절) 하면서 칭찬을 했다. 

룻은 그녀 마음대로 결혼하지 않고 남편의 가족과 의논했다. 

룻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의 구혼을 받아들이지 않고(룻은 젊은 남자들을 구하지 않았다) 기꺼이 신성한 율법의 지시대로 그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 했는데, 그것은 그렇게 행하는 것이 그녀에게 온전한 친절을 베푼 보아스의 가문에 영예롭고 유익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어떤 일을 행할 때 그들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하나님과 그들의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2) 보아스는 룻과 결혼할 것을 약속했다(11절). 

“내가 너를 버릴까 두려워 말라. 그렇게 하는 것이 근족된 나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므로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그리고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노니(11절), 나는 이 일을 거절할 이유가 없노라.”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① 훌륭한 미덕은 거기에 합당한 칭찬을 받아야 하며(빌 4:8), 그런 미덕은 우리를 가장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룻은 가난했으며, 때로 그녀의 궁핍이 그녀의 미덕의 광채를 가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천한 상태에서도 그녀의 덕행은 가려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띄게 되었다. 더욱이 그녀의 덕행으로 해서 빈곤한 사람들이 받는 멸시도 받지 않았다. 룻은 놀라우리 만큼 겸손해, 결국 이 같은 영예를 얻게 된 것이다. 그녀가 자기의 선행을 감출수록 주위의 사람들도 더욱 그녀의 선행을 높이 평가했다.

②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의 덕성은 특별히 고려해야 한다. 

신앙으로 하여금 배우자를 선택하게 하라. 그러면 분명 그 선택은 영예와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지혜가 금보다 나으니라”(잠 16:16). 그러므로 지혜가 “유업같이 아름답다”(전 7:11)는 말은 지혜 없이 재산만 소유하는 일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3) 보아스는 조건부의 약속을 했다. 달리 더 좋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룻과 나오미를 위해 재산을 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자로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던 것 같다(12절). 

보아스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오랫동안 타국에 가 있어서 남편의 가계를 잘 모르는) 나오미는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로 보내 그런 간청을 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친족의 남자에게 가라며 학대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주었다.

① 다른 친족 남자에게 가서 그의 생각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히브리 원어로는 과부란 말이 벙어리 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 “벙어리를 위하여 자기의 입을 열 것이며”(잠 31:8), 자기의 뜻을 말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말할 것이다.

② 보아스는 만일 그 다른 친족 남자가 그의 권리를 거절하면 그가 그 일을 수행해 룻과 결혼하고 토지를 찾아 주어서 그들의 가족을 돌보아 주겠다고 했다. 보아스는 엄숙하게 맹세를 했다. 그것은 결혼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라”(13절). 

이런 약속을 하고서 그는 룻에게 아침까지 있으라고 명했다. 

홀 주교는 오랜 연구 후에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놓았다. “보아스는 바람둥이처럼 그녀를 범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처럼 그녀를 축복해 주었고, 친구로서의 격려를, 친족 남자로서의 약속을, 그리고 보호자로서의 보상을 했다. 또한 그녀가 이런 희망 속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푸짐한 곡식을 선물로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순결을 더럽히지 않았고 이 곳에 올 때보다 더욱 행복할 수 있었다. 윗사람으로서 그의 입과 마음속에는 간사함이 없으니, 그의 성품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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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사람 보아스(룻 3:14-18)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Ⅰ. 보아스가 룻을 어떻게 보냈는가? 

룻이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룻을 (그의 몸이 아니고) “그의 발치에 아침까지 눕도록 했다.” 

그러나 룻은 동이 트자마자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나”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만일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들킨다 하더라도 이 일이 불미스러운 일로 전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밭에서 이삭 줍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그녀의 궁핍을 수치스럽게 생각지도 않았지만 밤길의 여인으로 알려지기는 원치 않았다. 

그녀의 현숙함은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영예였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아스는 룻을 보낼 때,

1. 비밀을 지킬 것을 부탁했다(14절).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또한 보아스와 밤새도록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려서도 안 된다.

그들 둘 다 결백한 한, 다른 사람이 무어라고 말하든 그들에게는 상관없겠지만, 불 가까이 있을 때 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 일을 모방하는 사람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선한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개가를 올리게 되므로 “이 일을 알리지 말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주의해 양심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록 악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오해하기 쉬운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혹 부득이하게 오해받을 일을 했을 때는 “그것을 알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죄악뿐만 아니라 추문도 피해야 한다. 여기서는 이 일을 감추는 데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일의 소문이 나게 되면, 다른 친족 남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범하게 되고, 룻과 보아스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룻을 거절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2. 그는 룻이 집에 갈 때 곡식을 선물로 주어 보냈다. 

그것은 집에 있는 가난한 나오미를 매우 기쁘게 했을 것이다. 이것은 보아스가 룻을 싫지 않은 감정을 갖고 집으로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일 룻을 빈손으로 돌려보냈다면 나오미는 의혹에 잠겼을 것이다. 보아스는 룻에게 풍성한 곡식을 그녀의 베일이나 앞치마나 겉옷에 담아 주었을 것이다. 현명한 곡식 주인답게, 그는 자기가 나누어 준 곡식을 잘 계산해 두고 있었다. 그는 “여섯 번” 되어 주었다. 

아마 6오멜이었을 것이며(10오멜이 1에바다) 분량이 얼마든, 보아스는 룻이 잘 갖고 갈 수 있는 많은 양의 곡식을 주었다(15절). 

시리아역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녀로 하여금 그것을 나를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예언의 영은 그녀에게서 그 시대의 가장 의로운 사람 여섯 명” 곧 “다윗,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들, 그리고 메시아 왕이 나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Ⅱ. 그녀의 시어머니는 룻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그녀를 맞이해 주었는가? 

나오미는 룻에게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신부가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내가 네게 기쁨을 주어도 될까?”라고 물었다. 

그러므로 룻이 나오미에게 그 일을 다 고했을 때(17절) 나오미는,

1. 룻이 자기의 행한 일을 기쁘게 생각하도록 권고했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18절). 

시리아역은 “하늘에서 어떻게 선포되는가를 기다리자”라고 해석했다. 결혼은 하늘에서 성사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룻은 이제 그녀가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결과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며 초조해해서는 안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소망을 지니고서,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그대로 순응해 좇겠다는 마음가짐을 배우도록 하자. 때로는 우리가 한 일이 미약한 것일지라도 그 결과가 아주 훌륭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리하면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게 되느니라. 그 일이 어떻게 되든 나는 그것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노라.”

2. 나오미는 룻에게 이 일을 맡은 보아스는 진실되고 섬세한 친구로서의 임무를 행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을 들려주었다. 

“그 사람이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으리라.” 

비록 보아스는 밭과 타작 마당에 할 일이 많이 쌓여 있었지만 친구의 일을 맡은 그는 그 일을 위해 열심히 쫓아다녔을 것이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룻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므로 룻이 자기의 사람이 되는지 아닌지를 알게 될 때까지는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오미가 룻에게 조용히 앉아 있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 일을 맡은 보아스가 그것을 잘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선한 그리스도인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그들의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한 법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아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데 우리가 왜 근심하겠는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러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시리라(시 37:4, 5; 138:8). “잠잠하여 힘을 얻으라”(사 30:15).

===호크마

=====3:1

안식할 곳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노아흐'(* )는 '안식', '안식처'로 번역되는데, 일반적으로는 '평화스럽고 안정된 생활 여건'을 의미한다(Keil).

그런 의미에서 영역본 RSV에서는 이 말을 '한 가정'(a home)으로, 그리고 LivingBible에서는 '남편'으로 각각 번역하였다. 이에 따라 공동 번역에서도 '보금자리'로 의역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본절에서 사용된 '마노아흐'는 과부가 가정을 가지는 것 즉 남편을 얻음으로써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Rosenmuller). 

사실 고대 사회에서 가장 소외당했던 계층 중 하나인 과부들은 남편을 얻음으로써 남편의 보호 하에서 평안함과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1:9).

=====3:2

오늘 밤에...보리를 까불리라 - 당시 팔레스틴의 타작법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보리단을 편편한 평지(타작 마당)에 펴 놓은 후 도리깨로 골고루 조심스럽게 두들겨 보리나 밀의 낟알들이 떨어지게 한다. 그리고는 낟알에 섞인 지푸라기나 보리 수염 등을 없애기 위해 그것을 바람에 까불리는 작업을 한다. 즉 타작 마당에 떨어진 곡식 낟알들을 대충 주워 모아 공중에 던져서 까불리면 바람에 의해 지푸라기나 보리 수염 등은 날아가고 곡식 낟알들만 마당에 떨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 곡식 낟알들만을 모아 자루에 퍼 담으면 일단 타작 행위는 끝난다. 따라서 당시 타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람이 불어 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보리 타작할 즈음인 팔레스틴 지방의 여름은그 기후상 낮에는 바람이 별로 없고 주로 오후 5시 이후의 밤에 내륙에서 지중해 쪽으로 바람이 불었다. 따라서 타작은 바로 이때 행해졌다. 타작 일꾼들은 저녁 내내 일을 하고 나서는 그 타작 마당의 곡식 더미 곁에서 그대로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상 여름에는 겉옷만 덮고도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었기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나오미의 말은 당시의 이러한 타작법의 배경 하에서 나온 말이다.

=====3:3

타작 마당 - 추수한 곡식단을 떠는 장소로 사용되는 '타작 마당' (threshing-floors)은 단단하게 다져진 평지를 가리킨다. 

로빈슨(Robinson)의 말에 따르면, 주로 노천에서 발견되는 타작 마당은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대략 그 반경이 15m 가량이라고 한다. 그리고 타작 마당은 대체로 여러 개가 서로 인접해 있다고 한다(Keil & Delitzsch, op.cit. p.484).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 -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먹고 마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다. (1)타작이 끝날 때까지 주인인 보아스가 곡식을 지키기 위해 타작 마당에서 밤마다 잠을 잤을 것이다(Hervey, Robinson). (2)보아스는 보리 까불릴때에만 나와서 곡식을 지키기 위해 그 마당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Atkinson). (3)모든 추수가 필하였을(2:23) 뿐만 아니라 보리를 전부 까불려 놓았으므로, 그동안 수고한일꾼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이러한 주장 중에서 우리는어떤 것이 더 정확한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을것이다. 

즉 보아스는 베들레헴 성읍에서 유력자이므로(2:1), 긴 추수 기간 동안 밤마다 밖에서 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보아스에게는 시종들이 많이 있었으므로(2:8), 굳이 그가 그 타작 마당을 지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나와 먹고 마신 것은 압살롬이 양털을 깎은 후(삼하 13:23) 연회를 베풀었듯이, 추수를 마감하는 보리 까부르기를 필하는 밤에 일꾼들과 연회를 베풀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4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 룻에 대한 나오미의 이러한 지시는 일견 부도덕해 보인다. 

그러나 '고엘 제도'(2:20)라는 당시의 히브리 율법에 근거할 때 나오미의 이러한 지시는 지혜롭고 당연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에 근거된 바 당시 고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신 25:7). 

한편, 이런 점에서 본절에 언급된 나오미의 지시가 반드시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와 동침하도록 권유한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다만 나오미가 자신과 룻의 의사를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보아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으리라 추측된다. 

한편 나오미가 대담하게 이 방법을 룻에게 추천한 것은 (1)평소 추수 기간 동안 보아스와 룻의 관계를 주의깊게 살펴본 결과 어떤 확신이 나오미에게 섰기 때문일 것이다, (2)보아스가 룻에게 상당한 호의와 찬사를 보냈을 뿐 아니라, (3)또한 보아스는 유력자이며 동시에 덕망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 모든 계획을 준비한 것은 나오미이다. 그러므로 룻은 믿는 마음으로 시모의 계획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계획의 결과는 보아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오미는 룻으로 하여금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해 달라고 조르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보아스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길 각오였다. 즉 나오미의 의도는 누구 보다도 '고엘 제도'에 관한 모세 율법(레 25:24,25;신 25:5-10)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덕망있는 보아스의 결정에 모든 일을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오미가 룻을 믿듯이, 보아스 또한 믿었다는 뜻이 된다. 결국 나오미의 이러한 믿음의 확신이 조만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3:5

다 행하리이다 -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는 율법으로서 '계대 결혼'(1:11)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었지만, 그러한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의 가난한 과부가 베들레헴 성읍에서 소문난 부자인 동시에 덕망있는 보아스에게 밤에 잠자리로 찾아가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심지어 룻이 아무리 보아스를 마음속으로 연모했을지라도 여자로서 남자에게 먼저 접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시모의 말에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말씀대로 다 순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면면(面面)이 곧 평소 시모를 공경하는 룻의 효성의 발로라 볼 수 있다.

=====3:6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 이 말은 룻이 시모 나오미의 명을 좇아 보아스에게 행한 모든 일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결론을 내려 놓고 이야기를 서술하는 표현이다.

=====3:7

여기서 보아스가 노적가리(the heap of grain, RSV) 곁에 누운 때와 룻이 그의 발치에 들어가 누운 때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즉 보아스가 잠자리에 누워 깊이 잠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룻이 가만히 발치에 들어와 누웠을지라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8절을 주목해 볼 때 보아스가 발치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던 때는 한밤중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므로 수리아역(the Peshitta)은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마당에서 상쾌한 잠을 잘 때'라는 말을 첨가시켰던 것이다.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 혹자는 보아스의 이러한 행동이 단지 너무 시간이 늦어 다음날 아침 다시 일하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Matthew Henry). 그러나 이 해석은 약간 문제가 있다. 즉 다음날 아침부터 타작 마당이나 들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꾼들이지 보아스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일꾼들의 일이 한참일 즈음에 때때로 들에 나왔었던 것이다(2:4). 따라서 보아스가 곡식 단들을 쌓아둔 노적가리 곁에 누운 것은 노적가리를 지키고자 하는 특별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타작이 끝나고 보아스가 그곳에서 잠 잘것을 나오미가 미리 알고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주인이 타작 마당에서 잠을 자는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Robinson, Thomson).

=====3:8

밤중에...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 우리는 본절의 장면을 눈에 선연히 그릴 수 있다. 즉 타작 후 베푼 잔치에서 배불리 먹고 마신 결과, 약간의 취기와 더불어 포만감에 젖어 깊이 잠들었던 보아스가 한밤중의 냉기로 인해 약간 몸을 뒤척거렸을 것이고,그때 그는 발치에서 이상한 감촉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보아스는 놀라는 기색으로 당연히 그 물체를 확인해 보았을 터이고, 그 결과 발치에 누워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을것이다.

=====3:9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표현을 룻이 보아스의 보호를 받기 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Matthew Henry, Hervey, Atkinson).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심 같이(2:12 주석 참조), 룻은 보아스의 날개 아래서 보호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으로 룻이 보아스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길은 결혼을 통해서였다. 

후일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 관계를 맺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다(겔 16:8). 

그런데 결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 관계를 의미한다. 이런 견지에서 여기 룻은 구혼(求婚)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으로 이처럼 말했던 것이다.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 이것을 히브리 원문대로 직역하면 '당신은 기업 무를 자이므로'가 된다. 

즉 룻은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기업을 무를자'(a kinsman-redeemer, NIV)이기 때문에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 율법에서도(신 25:5-10), 이스라엘 사회의 관습에서도 이 법은 강제성을 띠지는 않았다. 

특히 '기업을 무르는 자'(* , 고엘)는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수혼(嫂婚) 제도'(계대 결혼 제도, 1:11 주석 참조)에 의해 얽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이 보아스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순히 고엘의 의무 외에 그녀 자신이 보아스와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라는 말로 칭찬했던 것이다(10절). 한편 '기업 무를 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20 주석을 참조하라.

=====3:10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 이 말은 룻이 매우 젊은 여인이었던 만큼, 자신의 육신의 안목대로 젊은 남자를 좇을 수도 있었으나, 그리하지 아니하고 시모의 뜻을좇아,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아 희생적인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보아스가 칭찬하는 말이다. 

사실 보아스는 룻의 시부(媤父) 엘리멜렉의 동년배 나이로서, 당시 룻에게는 보아스가 아버지 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 룻이 처음 베풀었던 인애는 자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시모를 모시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던 것이며, 나중에 베풀었던 인애는 시모를 잘 공경할 뿐 아니라 젊은 과부로서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것이다(G.Gerleman). 

비슷한 의미로서, '처음 인애'는 죽은 남편에게 베풀었을 룻의 사랑이며, '나중 인애'는 근족과 결혼함으로써 그 남편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남기고자 하는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Keil, Michaelis). 

한편, 특별히 본절에서 보아스가 '인애'라는 말로 그녀의 현숙함을 표현했는데, 이 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인애'(仁愛)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 )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의미하며, 때로는 인간 관계에서 끊을 수 없는 우정이나 사랑을 나타낼 때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보아스는 룻의 행위가 진실된 사랑에 근거했음을 칭찬했던 것이다.

=====3:11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 고엘이 되어줄 것을 겸손히 청하는 룻의 요구에 보아스는 일체의 변명이나 망설임 없이 이스라엘 관례에 따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룻의 인격에서 인간적 조건과 이해 타산을 초월한 인애(* , 헤세드)를 발견하고 자신도 이러한 인애로써 응답하였던 것이다.

현숙한 여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쉐트 하일'(* )은 본래'힘있는 여자', '능력있는 여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감화력 있고 덕력(德力) 있는 여자를 가리킨다. 

한편 후일 잠언 기자는 현숙한 여인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즉 (1)산업이 핍절치아니하게 하며(잠 31:11-19), (2)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하고(잠 31:20), (3)남편을 존귀케 만들며(잠 31:23), (4)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고(잠 31:26), (5)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아니하고(잠 31:27), (6)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잠 31:30,31)라 했다. 

이처럼 룻도 이 모든 조건을 구비하여 성읍에서현숙한 여자로 소문이 나있었다(2:11).

나의 성읍 백성 - 이 말은 문자적으로 '내 백성의 온 문(門)'(all the gate of mypeople)을 의미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로 성문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창19:1;23:10;34:20;삼하 15:2;느 8:1;시 69:12). 특히 성문에서는 그 성읍의 장로들이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재판하던 장소이기도 했다(신 21:19). 그래서 어떤 사람의 행위든지 성문에서 판결되어 사방으로 소문이 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잠 31:31).

=====3:12

여기서 보아스는 자신의 소욕대로 행동하지 아니하고,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는 사실을 룻에게 일러줌으로써, 그에게 먼저 '고엘'의 의무를 물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 따라서 보아스의 이러한 조치는 율법의 정도(正道)를 따르는 신중하고 분별있는 행동이었다.

기업 무를 자 - 2:20 주석 참조.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 기업 무를 자의 우선 순위는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왜 나오미는 더 가까운 친족을 두고 보아스로 하여금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수행하라고 요구했는가 ? 이에 대하여 혹자는 나오미가 오래 동안 타국에 가 있었던 관계로 남편의 가계(家系)를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MatthewHenry). 그러나 4장에 나타난 바 보아스와 룻의 가까운 친족과의 대화를 살펴볼 때,그 가까운 친족은 기업을 무를 만큼 덕망이나 재산을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4:1-6). 이것을 미리 알았던 나오미는 그 사람 보다는 보아스 쪽이 더 확실히 '고엘'의 의무를 다하리라 확신했고, 따라서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다.

=====3: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 때는 시간상으로 한밤중이었으므로 이미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룻이 지금 보아스를 떠나가면 그곳은 들판이기에, 그녀가 마땅히 들어가 쉴만한 곳이 없었다. 이러한 룻의 형편을 잘 알고 있는 보아스는 룻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보아스의 사려깊은 언사는 이미 이삭 줍기의 과정에서도 잘 나타난 바 있었다(2:15,16).

기업 무를 자의 책임 - 2:20 주석 참조.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 이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행해지던 일반적인 맹세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맹세하는 것은 맹세한 자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 인격을 걸고 그 맹세한 내용을 반드시 실행할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또한 이 맹세 속에는 이를 어긴 자의 증인되신 여호와께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라는 엄숙한 암시도 포함되어 있다<6-13절 강해, 맹세에 대한 바른 이해>.

=====3:14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 룻은 보아스의 말에 따라 새벽 곧 성문이 열리며,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는 시간까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있었다. 이처럼 룻이 보아스의 발치에서 잠을 잔 것으로 보아 이 두 사람은 순결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보아스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전통을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즉 모리스(Morris)는 탈무드의 주석인 미쉬나(Mishna)를 인용하여 어떤 사람이 이방여인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의심을 받게 되면 그는 그 여인과 수혼(계대 결혼)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보아스는 기업 무르는 모든 절차가 끝날 때까지 매사에 신중을 기하여, 자신과 룻 사이에 부도덕한 일이 발생했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 모세율법에 기록된 바(신 25:5,6) 계대 결혼의 권리를 이행코자 취한 룻의 행위는 결코 부도덕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룻이 보아스의 말을 좇아 타인의 눈길을 피해 새벽 미명 어둑어둑할 때에 보아스 곁을 떠난 것은 단지 그녀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자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룻과 보아스가 함께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1)변명할 겨를도 없이 이방 여인 룻은 물론이요, 보아스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충분이 있었기 때문이며, (2)무엇보다도 세도있는 보아스의 가까운 친족되는 사람들이 쓰러진 가문의 이방 여인 룻과 보아스의 결합을 극구 방해하게 될 빌미를 주기 때문이었다(Rowley).

=====3:15

겉옷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테파하트'(* )는 성경에서 사 3:22에 한 번 더 나오는데, 이는 '겉옷'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는 3절에서 언급된 '옷'(* , 시믈라)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이것이 영역본 KJV에서는 '수건'(veil)으로, NIV 와 Living Bible에서는 '어깨 걸치개'(shawl)로 각각 번역되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이 '겉옷'을 '커다란 어깨 걸치개'로 해석한다(Keil). 아무튼 본문에서 이 겉옷으로 보리를 싼 것으로 보아 단순한 겉옷이라기 보다는 외투에 걸쳐 덮는 '커다란 수건'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아마 이것으로써 룻이 어깨를 덮으면서 동시에 얼굴을 가리고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리를 여섯 번 되어 - 몇몇 주석가들은 여기 여섯 번 된 것을 '오멜'로 생각한다(Goslinga, Matthew Henry). '오멜'(Omer)은 에바의 1/10로서, 1 오멜은 약 2.3l에 해당한다. 따라서 6오멜은 약 14리터(약 7되) 정도가 된다. 또 이와 달리 랍비들이나 탈굼역에 따르면, 여섯 번 된것을 6 '세아'(Seah)로 생각한다. '세아'는 '에바'(Ephah)의 1/3로서, 1 세아는 약 7.6l에 해당한다. 따라서 6세아는 약 46l(약 24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리한 추론이다. 왜냐하면 (1)이것은 룻이 혼자서 들고갈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량이며, (2)또한 그 만큼의 분량은 그녀의 겉옷으로 쌀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 모든 추론과 상관 없이 보아스가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주었다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Cassel). 즉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를 줌으로써 자신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니라, 참말임을 확증시켜 주고 그녀를 안심 시키려 했던 것이다. 아울러 '안식년 규례'(출 23:10,11;레 25:2-7,20-22;신 15:1-15)에 따르면, 6년은 봉사와 수고의 기간이며 7년째는 안식과 해방의 순간이다. 

따라서 보아스는 룻에게 6번 보리를 되어 줌으로써, 수고와 노역의 긴 기간이 이제 다 되었음을 암시한 듯하다.

비록 당시 룻은 히브리인들의 관습과 규례에 익숙치 못했으므로 그 의미를 잘 몰랐다고 해도, 룻으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나오미는 즉각 그 상징적 의미를 알았던 것같다(18절).

=====3:16

어떻게 되었느냐 - 본 구절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너는 누구인고 ?'(미 아트,* )가 된다. 따라서 혹자는 나오미가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어두워서 식별하기 어려웠으므로 이렇게 말했다고도 주장한다(Drusius). 그러나 룻이 들어왔을때 나오미가 '내 딸아'라고 불렀으므로 이 구절은 자기 집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물음이 아님에 틀림없다. 한편 영역본 KJV는 이 말을 문자적으로 '너는 누구인고 ?'(Who art thou ?)라고 직역했으며 NIV, Living Bible, RSV는 '어떻게 되었느냐 ?'(How did it go ?)로 의역하였다. 그런데 이 말 다음에 바로 이어서 룻이 시모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한 것으로 보아 '어떻게 되었는냐'로 의역하는 편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3:17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 보아스도 분명 룻의 행동 배후에는 그녀의 시모 나오미의 세심한 배려와 조언이 있었음을 충분히 감지했을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도 나오미의 그러한 계획에 순순히 응할 용의가 있음을 암시해 주려한 것 같다.

=====3:18

룻으로부터 간밤에 일어난 일의 시종을 들은 나오미는 룻에 대한 보아스의 호의와 애정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보아스의 신실한 인격으로 보아 조만간 약속을 이행하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이상 다른 계획을 세우거나 안달할 때가 아님을 알았고, 오직 보아스의 조처를 기다리는 것이 최대로 현명한 방법임을 알았다. 따라서 나오미는 확신있는 목소리로 룻에게 가만히 기다리라고 일렀던 것이다. 이는 일의 결국이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는 히브리적 신앙의 표현이다(잠 16:1,33). 이처럼 인간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최선의 노력으로 다한 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쓸모없는 염려와 불안에서 해방되는 것이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라 할 수 있다(빌 4:6,7;벧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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