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상9...참 회복-델레마/불레 ::: (기쁨/애통 주님 마음 알아 하나 됨) 나하-(오직 주 안에서)하메드/하마드--차메--하페츠*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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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9장  [375. '나는 갈 길 모르니'] [549.내주여뜻대로] [366.어두운 내 눈 밝히사]


[왕하10:15...*15...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 

 

::::: 임마누엘 나의 주여, 주님께서 절대적 진실-신실-거룩하심 같이..보혈-말씀-성령으로 오소서!!... 새롭게 하신 오늘 하루, 매순간마다.. 주께 대해, 그리고 모든 이 하나하나에 대해 그러하도록!! 오직 주님이면 족하오니...열린 하늘로부터 새로이 주님 영광 부어 적셔 점유-충만 감동하심으로 운행하사 저를 일깨우소서...주님의 기쁘신 뜻 온전히 이루소서...하나되신 주 임재 움직임 더 새로이 생생히 알리시며 주님 생각과 마음-심정 일러주시며 보이시며 깨닫게 하소서,,, 친히 주장하사 이끄시며 일하시며 행하소서...나의 그리스도 주님께서 친히 거듭난 내 안에 사심 이루사, 그리스도 주님을 살며 주님의 입의 말씀으로 내 입에 채우시는 바 감동따라 하게 하시는 말씀만 담대히 하도록 이끄소서 ::::


===사울(30세)이 사무엘(80세)을 만나다

1.  베냐민 지파에(기브아 땅...라마에서 남남서3km지점..10:26--기브아 자기 집)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원함/바람/요구함)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3.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바알-살리사...유대산지도 석회암지대이지만, 에브라임 지파가 점령했던 석회암 지질의 이스라엘 중앙 산악지대를 에브라임 산지(,후에 사마리아 산지로 불림...베냐민 산지 또는 베냐민 고원지대가 유대산지와 에브라임산지 사이에 끼어있다) 가장 높은 곳은 바알 하솔산(벧엘 북동쪽 8km지점..1032m높이).... 살리사[바알-살리사] 땅은 세겜 서쪽 20 km지점으로 보기도 하지만, 바알하솔산 동쪽의 엔 사미야로 보는 것이 더 유력하다..바알하솔 산 바로 북쪽에 실로가 위치한다 :: 에브라임산지 동쪽 :: 이스라엘 증앙 산지지역의 동북단.. : ...벧엘과 세겜사이는 50km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사알빔, 사알랍빈...단지파의 땅으로 (수19:42). 게셀(아얄론골짜기 입 경계 요새 성읍) 동쪽 8km 지점, 엠마오 북쪽 3km 지점의 성읍..사알랍빈(Shaalabbin)으로도 불림..벧세메스(6:9)와 아얄론(수 10:12)중간에 위치 )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기브아 남쪽 베냐민 산지)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5.  ○그들이 숩 땅(=라마다임소빔..곧 라마 나욧...베냐민 지파 기브아 땅에서 북쪽 3km지점)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라마다임소빔' (Rama-thaim-Zophim)은 '숩 족속의 두 고지(언덕)' 또는 '숩 땅에 있는 고지들' 이라는 의미로서, 사무엘 가문의 조상이었던 '숩'(혹은 '소배', 대상 6:26)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정착함으로써 붙어진 지명이다(Kdil, Fay, Smith, Driver). .......아마도 두 개의 고지(언덕)위에 세워진 듯한 이 '라마다임소빔'은 에브라임 산지 중 베냐민 지파 거주 지역 바로 위쪽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단순히 '고지'(高地)라는 이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라마'와 동일한 지역이다<19절>...... 한편 '라마'(* , Ramah)는 사무엘이 태어난 고향이요, 그가 활동한 사역의 중심지이며, 또한 후일 사무엘이 죽어 장사된 곳으로, 사무엘 시대에 주요한위치를 점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특별히 '라마다임소빔' 이란 원지명을 사용한 이유는 팔레스틴 지역에는 많은 '라마'(언덕 마을, hill town)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과 사무엘의 고향 '라마'와 서로 구별하기 위함이다(Keli, Smith).(2:11 ; 7 ; 8:4 ; 15:34 ; 16:13 ; 19:18 ; 25:1 ; 28:3). 한편 이 지역은 후일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아리마대 요셉의 고향 '아리마대'로 불리워졌다(요 19:38)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7.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11.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1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아직 주님께서 마음에 두신 영원한 처소로서의 중앙성소가 확정되어 나타나지 않았던 시점, 비록 산당에서 드려질지라도!! 주님 이름으로 기름부음 가진 제사장- 선지자-사사로서 사무엘이 친히 가서 그 제단에서 번제와 화목제의 희생제사 드림을 [기쁘게 열납하여] 받으셨음을 의미!!

13.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산당에)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바라크..찬양/감사/축복의 기도)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제사장과 함께 나누는 화목제 드린 후의 식사자리를 의미)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신명기 사가들의 언급 "여호와 앞에서" : 길갈-실로-벧엘 등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고자 하심따라!!... 언약궤가 머무는 곳이 바로 성전이자 거처 = 중앙 성소이며.바로 그곳에서만 번제를 드리도록 하셨다].)) ::: 한편 제단만 있었던 지방성소[=산당]들로는.**벧엘 외에도..**미스바-예루살렘 기준 북북서쪽 12km(사무엘)  **기브온-북서쪽9km(솔로몬) **기브아-정북쪽5km, (기브아에서 북으로 3km 떨어진 그의 고향 라마다임소빔에 사무엘이 제단 쌓고 선지자 양성 기숙학교[=라마나욧]를 열었음)....사무엘을 보라..[삼상7:16, 17..*16..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16. He used to go annually on circuit to Bethel and Gilgal and Mizpah, and he judged Israel in all these places.   *17.Then his return was to Ramah, for his house was there, and there he judged Israel; and he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주님의 경륜을 이루심에 있어서는... 주님의 말씀하심 따라 생각을 면밀히 가다듬고 읽노라면... 분명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 듯하다..[대하 7:16.....*16.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그러나 신약시대로 접어들면, 언약궤와 성막의 실체이자 실재요, 표상의 본질이신 분,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신 Q의 독생자 주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 야곱의 우물에서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셨다. [요4:20-24...*20.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이는 주님 승천으로 인해 성령 강림-내주하심으로 참되게 (거듭난) 믿는이마다!! (그의 영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으로 하나 이루어)과 진리(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과 하나 안에서 그분따라)로 예배하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움직이는 참 성전이요(사도 바울도 고전3:16-17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가 언제 어디에 있든지 주님 이름 부르는 그가 있는 바로 그곳마다 (그 거듭난 영혼이 주 예수님과 하나이기에) 더 나아가 성전된 그들이 모여 한 마음으로 주를 경배하는 곳은 어디나 [차원-영역-환경-상황-시공 초월한 주님 계시기에!!] 참 예배처소로  인정하고 계심을 명심해야 하리니...주님은 또한 더욱 더 힘써 이 땅 위에서 한 새 사람, 곧  그리스도의 몸의 생활을 통해 하나됨 살기를 [하나님 아들들의 참 명분 얻음, 곧 [생명과 본성/성품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성에 참예함 + 그리스도의 참 인성으로 대치됨에 이르는] JC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연습-실행-주신 사명따라 복음전파하여 주 오실 그때까지 확장-증대되는 주님의 교회, 그 완성으로서 하늘 시온성 =새 예루살렘 = 그리스도의 신부요 어린양의 아내 됨 이루기를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15.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 = 나기드 ::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여호와 Q의 백성을 위하기에!! 주님 마음과 합한 "하나 됨"안에서 섬기는, 군부+행정 수반 [보호 + 지킴 + 통제])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라아 = 로이..잘 살펴 그 필요를 진정한 행복 위해 적절히 공급하심으로 목양하다..look upon  # "바알"이란, 오직 "보호-공급-지킴-안전"이라는 생존-안전에 필요한 육적 필요/결핍 충족을 채우되, 오로지 자기만 극단적으로 위하는 유아독존의 이기적 적자생존 원칙 절대적으로 강조하며, (그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경쟁적 비교우위 선점 쟁취 통해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개인주의-인본주의적 세상 관점-세상가치 근원 제공자, 교만한 사탄임) 하셨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아차르. 통할하다, 억제하여 못하게 하다 = 불허하다..(아직 때가 아니기에 주권적인 불임에 대해 불평하는 사라의 언급)...[제멋대로 함 인해 예기치 않은 재난 당함 방지] 일정범위 안에 있도록 통제하다) 하시니라

18.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19.  (감동주심따라 Q과 하나로 행하는바)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사모하는 = 헤므다...기뻐하는/바람직한/순수한/대망하는...(동)헤메드.(명)하마드.. 바라고 갈망하며 탐내며 기뻐하다..

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22.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23.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주님의 고귀한, 특별 손님 대접 위해 따로)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24.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기름 섞인 부드러운 부분)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다

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6.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27.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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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9장

1.  Now there was a man of Benjamin, whose name was Kish, the son of Abiel, the son of Zeror, the son of Bechorath, the son of Aphiah, a Benjamite, a mighty man of power.

2.  And he had a son, whose name was Saul, a choice young man, and a goodly: and there was not among the children of Israel a goodlier person than he: from his shoulders and upward he was higher than any of the people.

3.  And the asses of Kish Saul's father were lost. And Kish said to Saul his son, Take now one of the servants with thee, and arise, go seek the asses.

4.  And he passed through mount Ephraim, and passed through the land of Shalisha, but they found them not: then they passed through the land of Shalim, and there they were not: and he passed through the land of the Benjamites, but they found them not.

5.  And when they were come to the land of Zuph, Saul said to his servant that was with him, Come, and let us return; lest my father leave caring for the asses, and take thought for us.

6.  And he said unto him, Behold now, there is in this city a man of God, and he is an honorable man; all that he saith cometh surely to pass: now let us go thither; peradventure he can show us our way that we should go.

7.  Then said Saul to his servant, But, behold, if we go, what shall we bring the man? for the bread is spent in our vessels, and there is not a present to bring to the man of God: what have we?

8.  And the servant answered Saul again, and said, Behold, I have here at hand the fourth part of a shekel of silver: that will I give to the man of God, to tell us our way.

9.  (Beforetime in Israel, when a man went to inquire of God, thus he spake, Come, and let us go to the seer: for he that is now called a Prophet was beforetime called a Seer.)

10.  Then said Saul to his servant, Well said; come, let us go. So they went unto the city where the man of God was.

11.  And as they went up the hill to the city, they found young maidens going out to draw water, and said unto them, Is the seer here?

12.  And they answered them, and said, He is; behold, he is before you: make haste now, for he came to day to the city; for there is a sacrifice of the people to day in the high place:

13.  As soon as ye be come into the city, ye shall straightway find him, before he go up to the high place to eat: for the people will not eat until he come, because he doth bless the sacrifice; and afterwards they eat that be bidden. Now therefore get you up; for about this time ye shall find him.

14.  And they went up into the city: and when they were come into the city, behold, Samuel came out against them, for to go up to the high place.

15.  Now the LORD had told Samuel in his ear a day before Saul came, saying,

16.  To morrow about this time I will send thee a man out of the land of Benjamin, and thou shalt anoint him to be captain over my people Israel, that he may save my people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for I have looked upon my people, because their cry is come unto me.

17.  And when Samuel saw Saul, the LORD said unto him, Behold the man whom I spake to thee of! this same shall reign over my people.

18.  Then Saul drew near to Samuel in the gate, and said, Tell me, I pray thee, where the seer's house is.

19.  And Samuel answered Saul, and said, I am the seer: go up before me unto the high place; for ye shall eat with me to day, and to morrow I will let thee go, and will tell thee all that is in thine heart.

20.  And as for thine asses that were lost three days ago, set not thy mind on them; for they are found. And on whom is all the desire of Israel? Is it not on thee, and on all thy father's house?

21.  And Saul answered and said, Am not I a Benjamite, of the smallest of the tribes of Israel? and my family the least of all the families of the tribe of Benjamin? wherefore then speakest thou so to me?

22.  And Samuel took Saul and his servant, and brought them into the parlor, and made them sit in the chiefest place among them that were bidden, which were about thirty persons.

23.  And Samuel said unto the cook, Bring the portion which I gave thee, of which I said unto thee, Set it by thee.

24.  And the cook took up the shoulder, and that which was upon it, and set it before Saul. And Samuel said, Behold that which is left! set it before thee, and eat: for unto this time hath it been kept for thee since I said, I have invited the people. So Saul did eat with Samuel that day.

25.  And when they were come down from the high place into the city, Samuel communed with Saul upon the top of the house.

26.  And they arose early: and it came to pass about the spring of the day, that Samuel called Saul to the top of the house, saying, Up, that I may send thee away. And Saul arose, and they went out both of them, he and Samuel, abroad.

27.  And as they were going down to the end of the city, Samuel said to Saul, Bid the servant pass on before us, (and he passed on), but stand thou still a while, that I may show thee the word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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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muel 9 Amplified Bible

===Saul’s Search

1 There was a man of [the tribe of] Benjamin whose name was Kish the son of Abiel, the son of Zeror, the son of Becorath, the son of Aphiah, a Benjamite, a mighty man of influence and wealth. 

2 Kish had a son named Saul, a choice and handsome man; among the sons of Israel there was not a man more handsome than he. From his shoulders and up he was [a head] taller than any of the people.

3 Now the donkeys of Kish, Saul’s father, had wandered off and were lost. Kish said to his son Saul, “Please take one of the servants with you and arise, go look for the donkeys.” 

4 And they passed through the hill country of Ephraim and the land of Shalishah, but did not find them. Then they passed through the land of Shaalim, but they were not there and the land of the Benjamites, but they [still] did not find them.

5 When they came to the land of Zuph, Saul said to his servant who was with him, “Come, let us return, otherwise my father will stop worrying about the donkeys and become anxious about us.” 

6 The servant said to him, “Look here, in this city there is a man of God, and the man is held in honor; everything that he says comes true. Now let us go there; perhaps he can advise us about our journey [and tell us where we should go].” 

7 Then Saul said to his servant, “But look, if we go [to see him], what shall we bring to the man? For the bread from our sacks is gone and there is no gift to bring to the man of God. What do we have [to offer]?” 

8 The servant replied again to Saul, “Here in my hand I have a quarter of a shekel of silver; I will give that to the man of God, and he will advise us as to [where we should go on] our journey [to find the donkeys].” 

9 (Formerly in Israel, when a man went to inquire of God, he would say, “Come, let us go to the seer”; for he who is called a prophet today was formerly called a seer.) 

10 Saul said to his servant, “Well said; come, let us go.” So they went to the city where the man of God was living.

11 As they went up the hill to the city, they met some young women going out to draw water, and said to them, “Is the seer (prophet) here?” 

12 They answered them, “He is; look, he is ahead of you. Hurry now, for he has come into the city today because the people have a sacrifice on the high place today. 

13 As you enter the city you will find him before he goes up to the high place to eat, for the people will not eat until he comes, because he must ask the blessing on the sacrifice; afterward, those who are invited will eat. So go up now, for about now you will find him.” 

14 So they went up to the city. And as they came into the city, there was Samuel coming out toward them to go up to the high place.

==God’s Choice for King

15 Now a day before Saul came, the Lord had [a]informed Samuel [of this], saying, 

16 “About this time tomorrow I will send you a man from the land of Benjamin, and you shall anoint him as leader over My people Israel; and he will save My people from the hand of the Philistines. For I have looked upon [the distress of] My people, because their cry [for help] has come to Me.” 

17 When Samuel saw Saul, the Lord said to him, “There is the man of whom I spoke to you. This one shall rule over My people [as their king].” 

18 Then Saul approached Samuel in the [city] gate and said, “Please tell me where the seer’s house is.” 

19 Samuel answered Saul, “I am the seer. Go on ahead of me to the high place, for you shall eat with me today; and in the morning I will let you go, and will tell you all that is on your mind. 

20 As for your donkeys which were lost three days ago, do not be concerned about them, for they have been found. And for whom are all things that are desirable in Israel? Are they not for you and for all your father’s household (family)?” 

21 Saul replied, “Am I not a Benjamite, of [b]the smallest of the tribes of Israel? And is not my family the smallest of all the families of the tribe of Benjamin? Why then have you spoken this way to me [as if I were very important]?”

22 Then Samuel took Saul and his servant and brought them into the hall [at the high place] and gave them a place [to sit] at the head of the persons—about thirty men—who were invited [while the rest ate outside]. 

23 Samuel said to the cook, “Bring the [priests’] portion that I gave you, regarding which I told you, ‘Set it aside.’” 

24 Then the cook lifted up the leg (thigh) with the meat that was on it [indicating that it was the priest’s honored portion] and placed it before Saul. Samuel said, “Here is what has been reserved [for you]. Set it before you and eat, because it has been kept for you until the appointed time, ever since I invited the people.” So Saul ate with Samuel that day.

25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high place into the city, Samuel spoke with Saul on the [c]roof [of his house]. 

26 They got up early [the next day]; and at dawn Samuel called Saul [who was sleeping] on the roof, saying, “Get up, so that I may send you on your way.” Saul got up, and both he and Samuel went outside. 

27 As they were going down to the outskirts of the city, Samuel said to Saul, “Tell the servant to go on ahead of us so that he may pass by but you stand still now so that I may proclaim the word of God to you.”

===Footnotes

1 Samuel 9:15 Lit opened Samuel’s ear.

1 Samuel 9:21 The tribe of Benjamin had fallen into disrepute and had been nearly annihilated during the time of the judges (Judg 20:46-48). 

1 Samuel 9:25 This was an ancient custom, and the roofs were flat and designed in part for this purpose. Verse 26 also indicates that Saul was given the roof as a place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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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9장 (개요)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세워 주리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에 이어지는 기사는 지원자들이 백성들에게 흥미를 끌 수 있는 정권을 세우고자 하는 시도도, 또는 사무엘에게 나서서 하나님께로부터 왕으로 지명을 받으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이때 왜 유다 지파의 족장―누구였든지―이 홀이 유다 지파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한 야곱의 유언을 기억하며 자기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주신다면, 내가 왕이 되고자 하나이다”라고 배짱 좋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까?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죄책감에서 온 것인지 또는 훌륭한 겸손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여간 이것은 다른 왕국의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왕관이 주어지려는데 그 왕관을 위한 경쟁에 나서는 자가 없었다.

대개의 정권은 왕자들의 정치적인 지배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은 백성들이 지배받고자 하는 욕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왕을 요구했던 장로들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후에 자기가 왕이 되고자 원했다면, 그러한 동기의 밑바닥에 인간적인 정권욕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전혀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이 점은 그들이 매우 훌륭했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율법을 통해 이미 그들에게 왕을 택하여 주시기로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이시기에(신 17:35),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만히 앉아서 하늘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본장에는 그런 기다림 가운데서 최초의 왕으로 선택받게 되는 사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상하게 전개되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게 되고, 비밀리에 기름부음을 받는다. 

이리하여 다음 장에서 전개될 선거와 공식적인 추천을 위한 준비를 마련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1. 사울의 가문과 인품에 대한 짧은 기사(1, 2).

2. 사울이 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사무엘을 만나게 되는 길고도 상세한 기사.

   (1)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을 기다리라고 계시하셨다(15, 16).

   (2) 하나님이 그의 섭리로써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셨다.

     ① 잃어버린 아버지의 암나귀를 사울이 찾아 나섰다(3-5).

     ② 사환의 조언에 따라 사울은 사무엘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하셨다(6-10).

     ③ 소녀의 안내를 받아 사울은 사무엘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11-14).

     ④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사울에 대해 지시를 받고(17), 성문으로 나가 그를 영접했으며(18-21), 처음에는 객실에서(22-24), 그리고 나중에는 비밀히 그가 왕이 될 것이라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줄 준비를 마쳤다.

만일 백성들의 죄로부터 이런 위대한 일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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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가문과 인품(삼상 9:1-2)

1. 사울은 매우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다(1절). 

그는 베냐민 지파의 일원이었다. 바울이라고 일컬어진 신약성서의 사울도 역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롬 11:1; 빌 3:5). 

기브아의 싸움에서 베냐민 지파는 매우 작은 지파로 되었으며, 그때 남은 6백 명의 남자들을 위해 아내를 마련해 주는 소동이 있었다. 

때문에 여기서 베냐민 지파를 일컬어 “가장 작은 지파”라고 한 것은(21절)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울은 마른 땅에서 솟아난 뿌리이다. 베냐민 지파는 비록 숫자적으로 작은 지파이지만 “하나님은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여 주시듯이”(고전 12:24) 가장 존귀함을 입은 지파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인 기스는 “유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력하다”는 말은 재산이 많으며,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땅을 6백 명에게 분할했기 때문에 그들이 차지한 상속 재산은 다른 지파들에 비해 대단히 많았으며, 능히 그들의 숫적인 열세를 조화시켜 줄 만한 것이었다고 보인다.

2. 사울은 체격이 매우 준수한 젊은이였다(2절). 

그의 지혜나 덕성, 그의 학업이나 경건성 또는 그의 정신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다만 그는 잘생긴 얼굴과 훌륭한 몸매 그리고 용모 단정한, 키가 크고 훌륭한 미남자라고만 기록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다.” 

천성적으로 탁월한 인물로 타고난 것과 같이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키가 어깨 위는 더 큰 체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블레셋의 영웅인 가드 출신의 거인들과 견줄 만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합당한 왕을 선택할 때는 그 풍채의 준수함이나 용모의 미련함을 보지 않으시고, 그의 순진함과 상냥함을 보셨다(16:7, 12). 

그러나 하나님은 장중함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서 왕을 선택했을 때는, 다른 좋은 자질이 없어도 다만 위대한 인물로 보이게끔 키가 매우 큰 사람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사울은 키가 컸던 것만큼 힘이 셌던 것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다. 

삼손은 키도 크고 힘도 그만큼 셌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를 경시했으며, 그를 묶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팔아 넘겼다. 

바로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남달리 키가 크지만 힘이 약한 사람을 경원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열국들과 마찬가지로 왕을 원하고 있었으며, 그런 열국들은 보통 풍채가 당당한 사람을 그들의 왕으로 선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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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암나귀를 찾는 사울(삼상 9:3-10)

Ⅰ. 위대한 인물도 그 출발은 미미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기까지는 전혀 높은 지위나 또 명예로운 자리에 앉아 보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 윗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수가 많다. 그러나 사울은 이웃 사람들과 똑같은 지위에서 갑자기, 단숨에 왕위에 올랐다. 

한나가 노래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셨으며,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셨다”(삼상 2:8). 

사울은 그때 이미 결혼했고 커다란 자녀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의 집에 살며 아버지의 수중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발탁되는 것은 우연이 되거나 또는 인간의 가능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Ⅱ. 커다란 사건도 작은 계기에서 비롯 된다. 

역사는 얼마나 미미한 가운데서 시작되는가! 사울이 왕관을 쓰기까지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 우리는 다른 모든 높은 자리에 앉게 된 사람들 모두 미미한 일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 사울의 아버지는 그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해 사울에게 사환 하나를 데리고 가서 찾아오도록 했다. 

아마 그때 그들은 베냐민 사람 기스의 땅에서 여러 마리의 암나귀가 도망쳤다든가, 도둑맞았다고 하는 사실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소나 나귀를 잃었을 때 반드시 찾아와야 하며, 만일 그대로 잃어버린 채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는 좋은 법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은 누구나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 사람이 자기의 짐승들을 돌보는 것이 결코 자신을 천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녀들도 부모의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 등을 볼 수 있다.

사울은 “아버지의 암나귀들을 찾으려고” 기꺼이 나섰다(3, 4절). 

사울이 암나귀를 찾아 나선 것은 그가 특별히 겸손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은 거의가 그처럼 평범하고 단순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 것은 특히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의 일을 기쁨으로 하며, 윗사람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굴욕적인 것이며, 괴로운 일일까? 

사울은 어른의 말을 잘 순종했다. 사울은 아들로서, 그리고 기스의 사환은 사환으로서 충실했다. 

그리하여 사환은 사울과 함께 보냄을 받았다. 사울과 사환은 암나귀들을 찾아 나섰다(아마 그들은 걸어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헛수고했다. 

그들은 암나귀들을 찾지 못했다. 그는 자기가 찾던 것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실패를 불평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왕국을 찾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사울이 암나귀들을 찾지 못하게 되자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고 생각했다(5절). 

그것은 아버지가 걱정하실까봐 그랬던 것이며, 그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헤매고 있으면, 야곱이 요셉에 대해 걱정했던 것처럼, 그가 혹 들짐승의 습격을 받지나 않았을는지, 혹은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나 않았을는지, 늙은 아버지가 근심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늙은 아버지가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해 걱정하실까 두렵다”는 생각이 사울의 마음속에 일어났다.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에 근심을 끼치거나 놀라게 하여서는 안 되며, 언제나 그들의 근심을 덜어 드려야 한다.

3. 사울의 사환은 그때 그들이 라마에 와 있으니만큼 사무엘을 찾아보고, 사무엘에게서 그들이 목적하여 왔던 일에 대해서 지시를 받아 보자고 제안했다(아마 사환의 신앙이 주인의 신앙보다 더 두 터웠던 것 같다).

(1) 그들은 사무엘이 살고 있는 성읍 가까이 와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무엘의 지시를 받기 위하여 그를 찾아갔다(6절).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나이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지혜 있는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지혜를 찾아 나서는 길에서는 몇 발자국 걸어가지 않아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2) 그 사환은 사무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아는 바가 없고 다만 일반적인 명성만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존중하는 태도로 말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고 그 사환은 사무엘에 대해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도 그들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은 존귀함을 가져다 주며, 그로 하여금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사무엘에 대한 존경의 내용이었다. 

사무엘은 젊은 선지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은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3:19)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후 계속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다.

(3) 사울과 사환은 “그들의 갈 길에 대해 사무엘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합의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내용은 고작,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암나귀들을 찾을 수 있는 가망이 아직 있겠는가, 있다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라고 묻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논을 선지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사실은 가장 형편없는 물음이다! 

그들은 마땅히 이렇게 말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암나귀 찾는 일을 포기하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계신 곳에 가까이 와 있다. 가서 그에게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훌륭한 지식을 배우자. 그로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바른 말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율법의 말씀을 들어 보자.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다시 없을 것이다. 그의 말씀을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이번 여행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모든 건전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생각을 가져야만 했었는데, 이스라엘의 영광이어야 할 예언이 그처럼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 버렸던 것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언을 통해, 그들의 의무가 아니라 운수에 대해,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듣고자 한다.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을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런 일보다는 그들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물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4)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 드리며, 그의 충고를 들은 대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했다(7절). “우리가 그에게 무엇을 드리겠는가?”라고 사울은 사환에게 물었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아내가 아히야에게 드렸던 것과 같은 떡과 과자의 예물을(왕상 14:3) 사무엘에게 드릴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식물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 사환은 자기 주머니 속에 돈 사분의 일 세겔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이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면 어떤 지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8절). 

사울도 “네 말이 옳다 가자”고 말했다(10절).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사울이 사무엘에게 줄 대가에 대해 말할 때 그는 그 자신이나 그의 후손들의 입장에서 사무엘을 헤아렸으며, “돈을 위하여 점치는”(미 3:11) 거짓 선지자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한다.

사울은 사무엘을 한 사람의 선지자가 점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찾아갔다. 그러므로 사분의 일 세겔을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추세로 보아서 이해가 갈 수 있는 행동이었다. 

신령한 것을 심은 자는 그를 고용한 사람으로부터 영원한 것만 아니라 일시적인 것도 아울러 보상받은 것을 볼 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무엘은 그들의 돈이 필요 없었으며, 만일 그들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어도 그들에게 어떤 지시를 서슴없이 내려 주었을 것이다(아마 사무엘이 그 돈을 받았다면,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무엘을 존경하며, 그의 하는 일의 귀함을 알고 있다는 표시로서 그 예물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 금액이 비록 적은 것이기는 해도 과부의 가산에 해당되는 것이며, 그래도 그들이 낼 만한 것이기에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사울은 그의 사환이 말하기까지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고자 하는 생각을 전혀 가지지 않았던 것을 보아서, 그가 예물이 없다고 말한 것은, 실은 선지자에게 가기를 반대해서 한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울은 자기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생각하고자 하지 않았다. 사환이 아량을 베풀며 말하자 그때서야 “네 말이 옳다. 그러면 가자.”라고 말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싸구려 신앙을 원하며, 신앙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5) 여기서 이 책을 기록한 역사가는 그 당시 사용되던 선지자의 명칭에 대해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는 말하기를 옛날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선견자”라고 흔히 일컬었다고 말했다(9절). 

선지자는 우선 선견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관한 것을 말하는 자는 그것들에 대한 직관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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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을 찾게 된 사울(삼상 9:11-17)

Ⅰ. 사울은 보통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사무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 되었다(11-14절). 

사울의 집이 있던 기브아는 사무엘이 살고 있던 라마로부터 20마일밖에 안 되며, 사무엘이 자주 이스라엘을 위한 재판석을 마련했던 미스바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도 사울이 너무 파묻혀 살았으며, 공적인 일에 관심을 쏟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까지 한 번도 사무엘을 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사울과 사무엘이 처음 만났을 때(18절), 사울이 사무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볼 때, 이 문제에 관해서 그들 사이에 어떤 비밀 약속이라든가 결탁이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여지가 없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께 대해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요 1:31). 그렇다고 해서 사울이 사무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1. 물 길러 나오다가 사울을 만난 라마의 소녀들은 사무엘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식을 사울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매우 상세하게 사무엘을 만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줄 수 있었다(12, 13절).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를 찾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 소녀들은 아래와 같은 사실도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1) 그날 산당에서는 제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일반적인 절기이든 혹은 특별한 기도와 감사의 날이든 거기에 제사가 언제나 함께 따랐다. 그때 성막에는 여호와의 궤가 없었으며, 성막의 제단이 전처럼 소문이 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금 자기의 이름을 두실 곳을 택하시기까지, 성막의 제단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한정하지 않으시고, 다른 곳에서도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내리셨다. 사무엘은 라마에 제단을 하나 쌓았으며(7:17), 그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다.

(2) 소녀들은 사무엘이 그날 그 성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그것이 순회 재판에서 돌아온 것인지 자기의 집에서 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사무엘은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질 만큼 소문이 난 공인(公人)이었다.

(3) 그들은 그때가 바로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린 후에 가지게 되는 잔치의 시간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 가면 산당을 향해 가는 그를 만날 수 있겠나이다”라고 소녀들은 말했다. 그들은 엄숙한 잔치의 시간을 알고 있었다.

(4) 사람들은 사무엘이 가기 전에는 먹기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사무엘을 기다리는 것은 단지 사무엘이 가장 귀한 손님이며, 사람들이 점잖은 태도를 보여야 하며, 어떤 사람이 생각하듯이 이 잔치를 베푸는 사람이며 또 그의 주관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며, 사무엘은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사무엘이 이 잔치 위에 축복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①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식사 때에도 그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축복의 기원을 간청 드려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축복의 기원이 없는 음식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도 없이 먹는 음식을 통해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식사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게 우리의 의무를 다하리라는 것을 나타내 보여 드려야 한다.

② 이것을 종교적인 집회의 경우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때 역시 사무엘은 축복을 했다. 

즉 사무엘이 기도했으며, 그 제물과 함께 영적인 제물을 아울러 드렸다. 이것 역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거룩한 의무를 다 베푼 뒤에야 앉아서 먹었다. 

우리의 영혼이 먼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제사에 따른 잔치도 역시 거룩한 의식이다. 그것 역시 기독교의 성만찬처럼 독특한 형식의 축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희생 제물의 덕분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화해를 회복했다는 표시이며, 그들이 은혜를 받는다는 표시이다. 

사무엘은 그 잔치 자리를 축복했다. 다시 말해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의 특별하신 임재를 통해 이 의식에 은혜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했다.

홀 주교(Bishop Hall)는 그 소녀들이 그 거룩한 잔치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다음과 같은 것을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즉 “매우 훌륭한 경건이 실천될 때 그 영향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도 미친다. 종교적인 고장에서 살 때 우리는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곁에서 선행이 실천되는 것을 보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2. 사울과 그의 사환은 가리켜 주는 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다행히 그 성읍의 회당이라고 할 수 있는 산당으로 올라가는 사무엘을 만났다(14절). 이것은 매우 우연한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위대한 사건의 전주로서 이렇게 일이 되어지도록 배려해 놓으셨던 것이다. 

현명하신 하나님은 작고도 보잘것없는 사건들을 가지고도 원대하고도 확실한 목적을 실행해 나가신다. 참새 한 마리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Ⅱ. 사무엘은 특별한 계시의 방법으로 사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엘은 선견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에게 있는 특수한 방법으로 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1. 하나님은 하루 전날 사무엘에게 다음날 이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처럼” 가지기를 원하던 그 왕이 될 사람을 보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15, 16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셨는데” 그것은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 그의 마음에 대고 은근히, 부드럽게, 말씀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마 그것은 사무엘이 그 문제와 및 이스라엘 백성에 관한 다른 모든 문제들에 관해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 그에게 은밀히 기도 드릴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사무엘이 한 번 “하나님의 귀에 대고 고한” 일이 있다(8:21).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귀에 알게 하셨다.” 그것은 다정하고 친밀한 관계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는 말씀하시기” 때문이다(암 3:7). 하나님은 사무엘이 놀라지 않도록 미리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사무엘로 하여금 그처럼 위대하고 중요한 일을 당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그와 같은 잔치와 제사를 마련시키신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모든 구체적인 계획은 마음속에 간직하시고서도 다만 그에게는 귀에다 대고 속삭여 주셨을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그 말을 “여호와께서 사무엘의 귀를 열어 주셨다”라고 읽을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하나의 방법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귀를 열어 주시기도” 하신다. 

우리는 원래 덮여진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욥 33:14).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시면, 귀를 열어 주시며, “에바다” 즉 “열리라”라고 말씀하시고(막 7:34), “심령의 수건을 벗겨 주신다”(고후 3:16).

하나님은 비록 불쾌해 하시면서도 왕을 구하는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드럽게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진노 가운데서도 자비를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은 그들을 거듭거듭 “내 백성”이라고 부르신다. 

아무리 심술궂고 성가신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내 백성”이라고 하신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다스릴 사람을 보내 주신다. 

그것은 그들이 머리 없는 몸이 되지 않도록 하며, “그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한”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후자의 이유 때문에 왕을 가지기를 원했을 것이다.

(3) 하나님은 자비하신 심정으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왕을 주셨다. 

“내가 내 백성의 곤욕을 보았으며, 그들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노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비록 심술궂은 아이라 할지라도 너무 울다가 가슴이 터질까 두려워서 자기 아이를 달래듯이, 하나님도 그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다(패트릭 주교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다시금 그들이 왕으로 인하여 받는 곤욕 때문에 부르짖어도 응답지 않으실 것이지만(8:18), 아직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가운데 그들의 이웃들의 강폭한 손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한 도구로 쓰기 위해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셨는데, 사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왕을 원했던 것이다.

2. 길거리에서 사울이 사무엘 곁으로 가까이 왔을 때 하나님은 다시금 사무엘의 귀에 속삭여 주셨다(17절).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다.” 

사울은 남달리 키가 큰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무엘은 가까이에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보내주실 만한 때가 되었으니 만큼 그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을 것이며,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행동은 조금도 부자연스런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통할할 사람이라”라고 말씀하셨으므로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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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환대를 받은 사울(삼상 9:18-27)

하나님의 섭리는 드디어 사무엘과 사울이 한자리에 모이게 하셨다. 여기에는 성문과 객실에서 은밀하게 그 둘 사이에 주고받은 말이 기록되어 있다.

Ⅰ. 사울은 성문을 지나가면서, 그 성문 아래서 사무엘을 보았다(18절).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가 사무엘 본인인데도 그에게 사무엘의 집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가르쳐 달라”고 말했는데 거기 가면 사무엘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엘은 그처럼 위대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외모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던가를 생각해 보라. 그는 위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수행원을 거느리거나, 어떤 표시를 하고 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보통 사람과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것을 도저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그에게 어디로 가면 사무엘을 만날 수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사무엘은 선지자로 보이기 보다는 문지기로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선견자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이처럼 흔히 귀중한 것이 천한 외모 속에 숨겨져 있을 때가 많다.

사무엘은 사울이 찾고 있는 것은 그 집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내가 바로 네가 찾고 있는 선견자다”라고 대답했다(19절). 

사울이 사무엘을 알기 전에 사무엘은 사울을 알아봤다. 이처럼 영광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된다(갈 4:9).

1. 사무엘은 다음날까지 자기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사울에게 호의를 보여 주었다. 

그날의 중요한 행사는 제사이며, 그 나머지 시간은 거룩한 잔치를 위해 보내야만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일은 가게 하겠다. 지금은 나보다 먼저 산당으로 가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이야기하자.” 사울은 암나귀들을 찾을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가 그런 걱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를 원했다. 먼저 경건의 연습을 쌓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자기보다 먼저 “산당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2. 사무엘은 사울로 하여금 암나귀에 대해 안심하게 만들어 주었다(20절).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거기에 마음을 쓰지 말라.” 

사울은 사무엘이 그가 찾고 있는 것에 대해 해답을 주었으며, 그의 생각을 알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선지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 자신은 얼마나 더 우리의 생각을 아실 것인가”라고 믿게 되었다.

3. 사무엘은 사울의 앞길에 놓여 있는 출세의 길을 보여 줌으로 그를 놀라게 했다.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그들이 원하는 것은 왕이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의 뜻에 알맞는 사람이 너밖에 또 있겠느냐?” 

아직까지는 이스라엘 온 나라가 그에게 정권을 맡기리라고 눈여겨 본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선임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울은 그들의 원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출세는 아브넬이나 그밖의 사람들과 같은 그의 집안이나 친족들의 영달을 가져다 줄 것이다.

4. 이런 놀라운 소식에 대해 사울은 겸손하게 대답했다(21절). 

사울은 생각하기를, 자기는 비록 키가 크나, 왕이 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무엘이 자기를 놀리는 줄 알았다. 

역사가는 말하기를(1절), 그의 부친은 “유력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사울 자신은 자기의 지파 및 자기 집안에 대해서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곱의 막내아들인 베냐민은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소년이라고 일컬어졌으며(창 44:20),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의 싸움에서 많은 수가 멸절되어 적은 수만 남았나이다. 나는 그런 베냐민 사람이며, 그 중에서도 내 집은 제일 미약한 집안입니다.” 

기드온도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한 바가 있다(삿 6:15). 겸손한 태도는 출세와 영달을 위해 가장 좋은 조건이다.

Ⅱ. 사무엘은 공적인 잔치 자리에까지 사울과 그의 사환을 데리고 갔다. 

사울의 출세는 사무엘의 입장을 약화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선지자인 사무엘은 사울에 대해 시기하거나, 악의를 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앞장 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에게 영예를 씌워 주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매 그가 자기의 다정한 친구이거나 신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무엘은 그를 자기의 식탁에 초대하는 것을 마음 중심에서부터 우러나와서 환영했던 것이다.

사울에게 음식을 접대한 것은 사울이 한 말을 보아서(7절) 매우 알맞는 초대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울은 그때 가지고 있던 돈이나 음식을 다 허비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사무엘은 사울을 보통 사람처럼 대하지 않았다. 그를 매우 훌륭한 사람으로 대해 주었는데 이는 사울이나 백성들에게 다음에 일어날 일을 준비시켜 주고자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 사무엘은 사울에게 두 가지의 명예를 높이 올려 주었다.

1. 사무엘은 사울을 청한 자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자리인 수석에 앉게 했으며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라”(눅 14:9)라고 말했다. 

가령 그 성읍의 읍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여 상좌에 앉겠다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그 잔치의 주인은 사울과 그의 사환으로 하여금 “수석에 앉게” 했을 것이다(왜냐하면 사환은 사울이 왕이라고 볼 때 국무총리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존경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2. 사무엘은 사울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 

그것은 그 전날 사울이 오리라는 소식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고(16절), 그를 위해 준비해 놓으라고 요리사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왕의 선출을 위해 주의 깊게 마련해 놓은 이 음식은 어떤 것이었던가? 어떤 사람은 그것이 매우 호화스러운 것이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단순한 하나의 양 어깻죽지 부분의 고기였다(23, 24절). 화목 제물의 오른쪽 어깻죽지 부분은 제사장의 몫이며(레 7:32), 그 다음 높은 자리에 있는 이에게는 왼편 어깻죽지를 주도록 되어 있다. 보통 그것은 잔치 자리의 상좌에 앉는 이에게 주는 것이며, 늘 사무엘의 몫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한 접시를 사무엘이 사울에게 준 것은 사울의 입장을 은연중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보인다.

어떤 사람은 이 음식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어깨는 힘을 나타내며, 어떤 사람들 생각대로 거기에 붙어 있는 가슴 부분은 사랑을 나타낸다고 한다. 

왕은 “정사를 어깨에 메고”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해야 하며, 백성들을 가슴속으로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Ⅲ. 두 사람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과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를 나누었다(25, 26절). 

사무엘은 이때 사울에게 왕을 원하는 백성들의 요청, 백성들의 요청의 근거,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 등 이 문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조용히 살던 사울에게 있어서 이것은 매우 놀랄 만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이 곧 하나님께서 정권을 맡기기로 택한 사람임을 말해 주며, 따라서 사무엘은 사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계승하게 될 것 등을 말해 줌으로 그를 안심시켰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무엘이 사울을 집으로 보내는데, 한동안 길을 따라 나서서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사울의 사환을 먼저 보내도록 시켰는데 그것은 그 두 사람만이 남기를 원했기 때문이다(27절). 

그리고 다음 장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그 거룩한 의식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위대한 선지자 그리스도는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며”(요일 2:27),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

=====호크마

=====9:1

베냐민 지파 - 이스라엘 민족을 구성하던 12지파 중의 하나로서(민 1:37), 이 지파의 선조인 베냐민은 야곱의 막내 아들이었다(창 35:16-18). 한편 이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사이의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다(수 18:11). 그러나 이 지파는 불명예스럽게도 사사 시대 말기에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삿 19:22-30),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의 징계를 받아 그 지파의 상당수 남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삿 20:29-44). 그때 베냐민 지파의 살아 남은 장정의 수는 불과 600명 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다(삿 20:47). 그러므로 이후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숫적으로 가장 미약한 지파가 되었는데, 바로 이 지파 중에서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나왔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즉 이스라엘 초대 왕이 수행하여야 할 선결 과제는 무엇보다도 각 지파 간의 결속과 단결을 공고히 하는 일이었는데, 바로 그 일을 이스라엘의 막내 지파가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오히려 나머지 각 지파간의 불필요한 상호 견제, 시기, 경쟁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Leon Wood). 특히 베냐민 지파를 사이에 둡고 있는 강력한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갈등과 주도권 싸움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스라 이름 하는 유력한 사람 - 여기서 '기스'(Kish)는 베냐민 지파가 레위인의 첩을 윤간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른 지파들로부터 징벌을 당할 때, 그 징벌을 피하여 '림몬 바위'로 도망하였던 600 명의 베냐민 사람 중의 한 사람이거나, 혹은 그의 후손이었을 것이다(삿 20:47). 한편 '유력한 사람'( , 깁보르 하일)은 '부유한 사람'(a man of wealth, RSV)을 의미하거나 (룻 2:1; 왕하 15: 20), 혹은 '강력한 용사'(a mighty man of power, KJV)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삿 6:12;11:1). 그런데 우리는 여기 '유력한 사람'을 위의 두 가지 의미 모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1) 기스는, 약 25,0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분배되었던(삿 20:46) 땅을 레위인의 첩 윤간 사건(삿 19:16-20:48) 이후 나뉘어 차지하게 되었을 600명 (삿 20:47)중의 한사람 혹은 그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부유했을 것이며, (2)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의 후손들 중에는 실제로 용사들이 많았다.(삿 20:16), '아비엘'(Abiel)은 실제적으로는 기스의 할아버지로 봄이 타당한 듯하다(Pulpit Commentary).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 어법상 '아들'( ,벤)이란 개념이 반드시 1대 자손만을 뜻하지 않고, 여러 대(代) 후의 자손을 가리킬 때도 '아들'이란 말을 통칭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리한 추측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절에 나타난 '손자', '증손', '현손'이란 말도 모두 직역하면 '아들'( , 벤)이란 말이다. 아무튼 본절 묘사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부각될 사울(Saul)의 역사적 실재성을 밝히고, 나아가 이스라엘 중 그의 위치를 명확히 드러내고자 함에 있다.

=====9:2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 '사울'(Saul)이라는 이름은 '구하여 얻은 자'라는 의미를갖고 있는데, 이는 의미심장하다(Klein, 1:27, 28). 즉 '사울'( )은 이미 그 이름이 갖는 의미를 통하여 자선이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세워질 이스라엘의 왕임을 은연중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8: 10). 

준수한 소년이라 - 이에 해당하는 원문(M.T.)의 '바후르 와토브'( )를 직역하면 '젊고 잘 생겼더라'(young and handsome)인데, 이는 그 의미상 사울의 미적(美的)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울의 풍채가 뛰어남을 말해주는 단어이다(창 3: 6; 6: 2; 왕상 1 : 6). 그리고 여기 '소년'은 한글 개역 성졍이 의미상 번역한 단어인데, 이 번역은 적절치 못하다. 왜냐하면 원문의 의미는 아직 미성숙한 남자 아이가 아닌, 오히려 전투의 능력이 있고,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으며, 또한 결혼할 정도로 성숙한 젊은 청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24Richer, 왕하 8: 12; 대하 36:17; 시 148:12; 전 11:9; 사 31:8;40:30) 이것은 (1) 사울이 이스라엘을 외적의 손에서 구원할 자로 지목되었고(16, 17절), (2) 사울이 이 일이 있은 직후 암몬 족속을 맞아 싸움을 했다는 사실(11: 6-11) 등에서 분명해진다(Goslinga). 때문에 칠십인역(LXX)과 갈대아역(The Chaldee)에서는 '(성인) 남자'(' ,아네르)로 번역했다.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 '키'는 사람의 외모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사울의 장대한 신체는 강력한 통치력을 갖고 자신들을 다스려 줄 왕을 요구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8:20).

=====9:3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찾으라 하매 - 고대 사회에서 '나귀'( , 아톤)는 귀족들이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즐겨타던 동물이었다(삿 5 :10; 10:4; 12:14; 슥 9:9). 특히 그중에서도 '암나귀'는 그것의 온순성 때문에 숫나귀보다 더 귀하게 평가되었다. 그런데 '유력한 사람'인 기스(Kish)가 '암나귀' 몇 마리에 그렇게 집착한 이유는 (1) 암나귀 자체가 그것을 소유한 주인에게는 부와 존귀의 상징물 이었고, (2)따라서 그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부와 존귀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Stoebe). 

한 사환을 데리고...가서 - 기스가 이처럼 아들 사울에게 사환과 함께 암나귀를 찾 으라 명령한 것은 '기스'가 그 나귀들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겼는지롤 잘 보여준다. 아무튼 사울은 사환과 함께 집을 떠남으로써 집으로부터 더 먼 곳까지, 그리고 더 샅샅이 찾아 헤맬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이처럼 사울이 부친의 명을 좇아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으러 나선 이 사건은 조만간 이스라엘 왕정(王政) 출발의 중요한 배경을 이루는 역사적 사건이 된다. 왜냐 하면 이 사건은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으로 이어지고,또한 그로 인해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 때문이다. 이로 볼 때 우리는 주변의 사소한 모든 일까지도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9:4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산지(the hill country of Ephraim)는 가나안 땅 중부의 구릉 지대로서 토양이 가나안 땅의 다른 지역보다 비옥했으며, 특히 서부 능선 지대는 농산물의 수확이 많았다.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지역이었다(1:1 주석 참조). 그리고 그중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는 에브라임 산지의 남쪽을 차지하였다. 한편 사울의 집은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영토의 남부에 위치한 '기브아'였다(10:26). 

살리사 땅 -이 곳은 '제3의 땅'이라는 의미로서 세겜 남서쪽 약 32km지점에 위치하였고, '바알 살리사' (왕하 4:42)와는 동일한 지역이다. 한편 이 지역에 대한 또다른 명칭인 '바알 살리사' (Baal-Shalisha)는 그 지역에 바알을 섬기는 신당(神堂)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사알림 땅 - 이곳은 '자칼(여우의 일종)의 땅'이란 의미이며, 벧세메스(6:9)와 아얄론(수 10:12)중간에 위치하였다. 이름의 뜻이 암시하듯 이곳은 불모의 야생 들판인 듯한데, 혹자는 이곳을 오브라 (13: 17) 근처의 '수알 땅'과 동일한 지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Albright). 

두루 다니되 - 사울과 그의 사환이 나귀를 찾기 위하여 매우 많은 거리를 분주하게 돌아다녔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즉 사울은 사환과 함께 고향 기브아를 출발하여 에브라임 산지 일대인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땅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는 동안 어느덧 40km 이상의 긴 여행을 한 것이다. 그 결과 마침내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 근처의 숩 땅에까지 이른 것이다. 분명 이 사실은 초기 사울의 남다른 효성과 성실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9:5

숩 땅에 이른 때에 - '숩'(Zuph)은 에브라임 산지의 남쪽, 곧 베냐민 지파의 땅 라마<1: 1, 19 주석 참조>와 가까운 지역이다. 따라서 '숩 땅에 이르렀다'라는 말은 사울과 그의 사환이 그때 이미 에브라임 산지를 거의 한 바퀴 일주한 뒤, 다시 자신들의 성읍 기브아(Gibeah)에서 가까운 곳에 도달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숩 땅'이라는 지명은 사무엘의 먼 조상 '숩'이라는 레위인(1 : 1)이 그곳에 정착함으로써 붙여지게 된 지명이다.

돌아가자 내 부친이...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 20절에 따르면 사울과 그의 사환이 부친의 명을 좇아 집을 떠난지 벌써 3일이 되었다. 따라서 사울의 이러한 걱정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한편 이것은 당시 사울이 부모를 공경하던 효성스러운 인물이었음을 시사해 주는 말임이 분명하다(Matthew Henry).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인간적인 좋은 면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신앙 인격에 뿌리를 두지 못하면, 영속성을 지니지 못할 뿐 아니라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막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것은 후일의 사울의 생애가 입증하는 바이다.

=====9:6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 여기서 '이 성'은 라마다임소빔(1 : 1), 곧 라마(1 :19)를 가리킨다(Smith, Fay).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사무엘이 그의 사사직과 제사장직을 수행 하던 근거지였다(7 :17). 한편 '하나님의 사람' 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직무를 담당하던 '선지자'에 대한 일반적 명칭이다(2 : 27; 삿 13:6; 왕상 12: 22;13:1, 14; 왕하 1:9, 13; 5:8).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 이 말은 사울의 사환이 한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무엘이 그 당시 일반 백성들에 의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분명혀 보여 준다. 즉 이것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3:20) 라는 말씀이 실제적인 사실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반영해 주는 말이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 이것은 참선지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객관적 증거였다(신 13:1-3; 18:21, 22). 또한 이것은 3 : 8에서 본서 저자가 "여호와께서...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말한 바가 실제로 백성들에게 사실로서 인정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가...가르칠까 하나이다 - 사환의 이같은 말은 그가 사무엘의 선지자됨을 온전히 믿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사환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사사 로운 점(占)이나 치는 사람으로 잘못 이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상 생활에 관한 제반 문제들까지도 사무엘에게 문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F.R. Fay). 

우리의 갈 길을 - 이것은 사울과 사환이 길을 잃어버렸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암나귀를 찾을 수 있는 방법과 장소를 알고 싶어한 것이다(Keil). 한편,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고찰할 사실은 사무엘에 관한 이야기를 사환이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당시 사울이 사무엘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런것 같지는 않다. 일개 사환이 알고 있었던 지식을 유력 한 집안의 아들인 사울이 전혀 몰랐을 리 없다. 다만 나귀를 정신없이 찾는 중 라마 성 근처에 이르자, 사울의 사환이 먼저 그 사실을 깨닫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어지는 7절에서 사울이 선지자에게 드릴 예물의 풍습까지 알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확실하다.

=====9:7

우리가...무엇을 드리겠느냐 - 일반적으로 중근동 지방에서는 존경하는 어른을 방문할 때 그의 신분에 걸맞는 예물을 지참해 가는 풍습이 있었다(Pulpit Commentary). 특히 이러한 관습은 성경에서 선지자에게 무엇을 물으러 가는 경우와 관런하여 많이 나타난다(왕상 14:3; 왕하 4 :42; 암 7:12; 미 3 :5).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 하였으니 - 이 말은 선지자에게 드릴 예물로서 음식이 절대적이거나 또는 제일 좋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울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집에서 갖고 나온 것이 단지 음식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음식 조차도 바닥 난 상황에서 사울이 위와 같은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예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테수라'( )는 희귀한 단어로서, 곧 선지자(선견자)에게 무엇을 문의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사례'를 뜻한다(R. Payne Smith). 이런 점에서 공동 번역은 이 말을 '복채'(卜債)로 번역하고 있다.

=====9:8

은 한 세겔의 사분 일 - 이것은 주조(鑄造)된 은화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헬레니즘 시대까지는 은화 및 동전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Klein). 한편 은(銀) '한 세겔'은 약 11.5g에 해당되며, 따라서 사분 일(1/4) 세겔은 약2.9g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하겠나이다 - 이것은 선지자에게 반드시 예물을 바쳐야만 그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사환은 다만 그 당시의 풍습에 합당한 기본적 예의를 갖춘 후 선지자에게 물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9:9

옛적 이스라엘에 - 본서의 저자는 사무엘이 활동하던 당시를 이처럼 오래 전의 일로 봄으로써, 사무엘서가 사무엘이 활동했던 얼마 후에 성경으로 기록되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6:18). 한편 혹자는 9절 전체를 후대의 어떤 필사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1, 18, 19절) 주해(註解)하여 삽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R. Payne Smith). 

하나님께...물으려 하면 - 이것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던 계시 수납의 방식이(출 28:30) 더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Westermann). 물론 이후 시대에도 우림과 둠밈이 간혹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그 당시에는 여러 형편에 따라 우림과 둠밈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이것은 그당시 제사장의 권위가 현저히 떨어졌고, 그 역할도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선견자 - '선견자'( , 로에)는 '보다'(see)라는 동사 '라아'( )에서 파생된 말로, 곧 '보는 자'(seer)라는 의미이다. 이 명칭은 '선지자'( , 나비)라는 명칭이 아직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시기에 사용된 명칭으로서(Klein),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측면에 강조점을 둔 고대적 명칭이다. 아욜러 성경에는 '로에'(Roeh)와 더불어 '선견자'(先見者)로 번역되는 단어가 또 있는데, 곧 '호제'( )이다(삼하 24:11; 왕하 17:13; 대상 25:5; 대하 9:29; 사 29 :10;암 7:12; 미 3:7). 이 '호제'(Chozeh)는 정신적(영적)인 것을 '인지하다'(perceive)라는 뜻의 동사 '하자'( )에서 파생된 말로, 역시 '보는 자'(beholder)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명칭은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신령한 환상'을 보는 측면에 강조점을 둔 시적(詩的) 명칭이다(R. Payne Smith, F.R. Fay). 한편 '선지자'( , 나비)라는 명칭은 '말하다' (speak), '선포하다'(declare)라는 뜻의 동사 '나바'( )에서 파생된 말로, 이 명칭은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측면을 강조한 율법적 명칭이다. 그러므로 선견자('로에' 또는 '호제')와 선지자('나비')는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으로서(삼하 24:11;사 30:9, 10), 공히 '영감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가리키며, 따라서 선견자와 선지자는 일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실을 꿈, 환상, 계시 등을 통해 '보고'(seeing), '파악하며'(perceiving), 나아가 그 보여진 것이나 파악된 것을 일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speaking forth) 자들을 칭한다.

=====9:10

네 말이 옳다 - 초기의 사울은 사환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만큼 진지하고 겸손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의 자세는 왕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9:21 ;10:22). 그러나 이러한 초기 사울의 겸손의 모습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주관적으로 행동한 망령된 제사 사건(13:8-14) 이후 점차 퇴색되고, 오히려 교만한 자로 바뀌어 갔다.

=====9:11

성을 향한 비탈길 - '라마'(Ramah)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고지대로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근거는 라마의 다룬 지명인 '라마다임소빔'(1: 1)이란 명칭이 '숩 땅에 있는 고지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R. Payne Smith). 아무튼 사무엘의 집은 그 고지 위에 자리잡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 중근동 지역에서 물을 긷는 시간은 보통 저녁 때였다. 이것은 그 지방의 낮 기온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그 더위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물 긷는 일은 여자들이 할 일이었다(창 8 :15-20; 29:2-12; 출 2:15-19). 따라서 사울과 사환이 사무엘의 집에 도달한 시각은 저녁 무렵이었다. 특히 이와 같은 사실은 사울이 사무엘의 집에 도착한 얼마 후 잠을 잤다는 사실로도 확인될 수 있다(25, 26 절).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 '여기'는 라마 성(城) 전체를 가리킨다. 사울의 사환은 사무엘이 다른 지역으로 출장갔을 가능성 때문에 이같은 질문을 한 듯하다<12절>.

=====9:12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 이 말은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보다 먼저 라마 성에 들어와 있었음을 뜻한다.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 '산당'( , 바마)은 가나안어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원뜻은 '높은 곳' 혹은 '산등성이'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우상 숭배와 관련된 장소로 주로 사용되었다(레 26:30; 민 22:41; 왕상 3: 2;12: 31; 15: 8; 왕하 15:4). 그것은 이방의 우상 제단이 흔히 산 중턱이나 고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이 자선들의 우상 숭배 장소를 높은 곳에 세우는 이유는 (1) 우상 숭배자들로 하여금 그곳을 속세와 구별된 거룩한 장소로 여기게 하며 (2) 또한 그들로 하여금, 예배 대상이 거한다고 믿어졌던 하늘과 가까이 있다고 생각토록 하려는 등의 심리적 효과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방의 우상 제단이 세워졌던 이런 산당에서는 비단 우상 숭배 행위 뿐 아니라 종교적 매춘 행위 따위의 성적 음란 행위가 수반되었기 떼문에, 성경은 산당에서의 제사 의식을 엄격히 금했던 것이다 (민 33:52; 왕하 23:8). 그러나 사무엘 시대의 '산당'(山堂)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나오는 산당의 개념과는 전혀 달랐다. 즉 사무엘 시대에는 실로에서의 성막 제사가 불가능 하였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신 산당에서 종교 행위가 행해졌던 것이다(왕상 3:3, 4). 성경에서 이렇듯 성막이 아닌 곳에서의 제사 행위가 불가피했을 뿐 아니라 묵허된 시기는 (1) 성막이 설립되기 전(출 40:17), 곧 모세 이전의 족장 시대와 (2) 성막이 파괴되어 제사가 중단된 이후로부터(4:10, 11) 예루살렘 중앙 성소가 건축되기까지(왕상 6:37, 38)의 기간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 사무엘은 고향 라마에 제단을 쌓은 것이다(7:17). 따라서 여기의 산당은 우상 숭배 의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여호와의 제단이다. 

그가 오늘 성에 들어오셨나이다 - 이같은 행위는 사무엘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사사직(士師職)을 수행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7:15-17). 따라서 본 구절은 여기의 이 성읍이 사무엘의 고향 '라마'(Ramah)가 아니라는 증거가 결코 되지 못한다.

=====9:13

당신들이 성으로 들어가면 - 이 말은 당시 여인들이 물 긷던 장소, 곧 마을의 공동 우물이 성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창 9 :11 ; 요 4: 6-8). 

그가 먹으러 - 이것은 그때 산당에서 드려진 제사가 화목제(和睦祭)였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즉 화목제만이 제사 의식이 끝난 후 예배 참석자가 공동으로 그 제물을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 3 : 1-5 강해, 화목제에 대하여>. 그리고 사실 제물을 함께 나눠 먹는 일은 화목제 제사 의식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었다(레 7:11-18). 왜냐하면 화목제는 하나님과 백성 및 백성과 백성 간의 화목과 친교 도모를제일의 목표로 하였으며, 그같은 화목과 친교는 여호와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레 7: 11, 19-21).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 여기서 '축사'( , 예바레크)는 감사 기도와같은 성격으로 보아야 한다(Keil). 즉 '바라크'( , '예바레크'의 원형)라는 동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찬송하다' (대하 31: 8; 느 8:6; 시 34:1;63:4), 인간에 대해서는 '복을 빌다'(창 27:34; 대하 6:3) 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처럼 어떤 물건을 대상으로 할 경우 '바라크'라는 단어는 '기도하다'란 뜻도 있으므로 곧 '감사 기도하다' 란 뜻으로 봄이 적절할 것이다(요 6:11).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라 - 여기서 '청함을 받은 자'는 단순히 제사 의식에 참여했던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들은 사무엘의 선견 지명에 따라 특별히 초청되었던 그 성읍의 지도자들인 듯하다(22-24절). 즉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우대하고, 또 기름 붓는 자리에 참여할 증인들이었을 것이다<22절>. 

그러므로 - 사무엘은 제사 제물에 반드시 축사해야 하며, 그래서 '그는 반드시 산당에 올라가야 하므로'란 뜻이다. 즉 이것은 사울이 산당에 올라갈 경우 사무엘을 반드시 만나게 될 필연성을 강조하는 접속사이다.

=====9: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 이것은 사울이 성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비탈길을 더 올라갔음을 보여 준다<11절>. 이러한 지리적 위치에 대하여 스미드(R. Payne Smith) 박사는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즉 '라마'는 두개의 고지대로 형성된 마을인데, '바마'(산당)는 그 중 하나의 고지대 위에 위치했음이 분명하고, 그리고 성읍은 아마도 두 고지 중간 쯤에 위치했을 것으로 본다(Pulpit Commentary). 

마침...마주 나오더라 - 사무엘과 사울의 이 만남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 하에 이루어진 것임이 이어 나오는 15, 16절에서 밝히 설명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나귀 사건'(3절)이란 미미한 사건을 통하여, 장차 메시야 왕국을 예시케 하는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 설립이란 당신의 원대한 구속사적 목적을 이루어 나가셨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확고한 진리는, 특히 성도에게 있어서 삶의 우연 이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성도는 영적 귀를 기울여 매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메시지를 청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마 10:29-31).

=====9:15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 여기서 '알게 하여'( - , 갈라 에트 오젠)란 말을 직역하면 '귀를 열다' 또는 '귓속에 속삭이다'란 의미이다(룻 4: 4; 삼하 7: 27;욥 33:16; 36:10, 15).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특별한 내용을 은밀하게 말씀하셨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Smith, Keil).

=====9:16

내가...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 이것은 결국 사울의 아비가 암나귀를 잃어버린 일(3절)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강력히 시사 한다<3절>. 즉 하나님께서는 때를 맞춰 사울의 아비가 그에게는 귀중한 암나귀를 잃게 하였고, 그에 따라 그 아들 사울로 하여금 암나귀를 찾아 나서도록 하게 하심으로써, 결국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도록 배후에서 주권적으로 섭리하신 것이다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 기름부음의 의식(儀式)은 왕이나 제사장 혹은 선지자 등을 거룩히 구별하여 임직할 때 행하는 상징적 의식이다(출 29:7; 왕상 1:39;19:16). 고대 중근동의 풍습에 따르면, 기름 부음의 행위는 무엇을 거룩히 구별할 때 베푸는 상징적 행위 였다(창 28:18;31:13;35:14;출 29:36;40:10; 레 8:10; 민 7:1, 10). 즉 이같은 의식을 통하여 고대 중근동 사람들은 사람이나 물건을 세속적인 용도로부터 구별하려고 했었다. 한편, 고대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 은 B.C. 14세기에 수리아나 가나안 지역 등지 에서 왕이 기름 부음을 받았던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기름 부음 의식이 그 주변 국가들의 그것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음을 보여 준다(10 :1). 그러나 이스라엘에서의 기름 부음 의식은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성이 반영되고, 하나님의 영이 개입되는 독톡성을 지닌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 여기서 '지도자'( , 나기드)는 보통 '족장', '두령' "영도자'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대상 12:27; 대하 11:22; 시 76:12). 따라서 여기의 '지도자'는 왕과는 다르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왕'( , 멜렉)이라는 단어는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사용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울에 대하여 굳이 '지도자'(Captin, KJV;leader, NIV;prince, RSV)라는 단어를 적용하신 것은 열방과 같은 [Q없는] 왕을 기뻐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본심이 반영된 것이다(8: 7, 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방백 정도로 세우셨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나중에 사울은 백성들의 인본주의적 요구에 부응하여 왕이 되었던 것이다(Abrecht Alt). 한편 '삼으라'는 말은 히브리 원문에 별도로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개역 성경이 그같이 번역한 이유는 앞의 '기름을 부어'라는 말 자체 속에 '삼다'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신 직접적 목적이다. 사실 그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침략으로 괴롭힘 당했고,(20:12-16), 둘째 그 지파의 지리적 위치상 블레셋과의 충돌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Smith, Fay).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 '부르짖음'( , 차아카)은 위급한 상황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극렬히 간구하는 호소를 뜻한다(창 18:21;19: 13;출 3:7;느 5:1). 그리고 '상달하였으므로'( , 바아)는 '오다', '들어오다'의 의미 이다. 따라서 이것은 결국 백성들의 호소가 지극히 간절하여 그 부르짖는 절규가 하늘에 사무쳤음을 보여 주는 단어이다(5 : 12; 출 3:9)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 '돌아보다'( , 라아)는 '자세히 응시하다'(gaze), '주의깊게 살피다'(heed)란 뜻이다(창 6:12; 22:13; 출 5:21; 왕하 7:13). 한편 성경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고통을 돌아보신 후에는 반드시 그들을 구원키 위한 구체적 행동이 뒤따랐음을 보여 준다(출 3 : 7, 9 ;4 : 31; 신 26:7; 왕하 14:26-27).

=====9:17

여호와께서...이르시되 - 여기서 '이르다'( , 아나)란 말을 직역하면 '대답하다' (answer) 또는 ''응답하다'(respond)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사무엘의 내적 기도와 물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신령한 계시로써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Fay, Goslinga, Keil).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 '통할하다'( ,아차르)는 '닫다', '제한하다', '소집하다'란 뜻으로서(시 107:29), 장차 사울의 통치 방식을 부정적으로 예시해 주는 단어이다.

=====9:18

사울이 성문 가운데 사무엘에게 나아가 - 본절은 그 내용 전개상 14절과 이어진다. 즉,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의 안내대로 사울이 성읍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막 들어서자, 때마침 제물 축사를 위해 성읍에서 산당으로 가고자 성물을 나오는 사무엘을 만났던 것이다. 

가로되...가르치소서 - 이 말은 사울과 사환이 사무엘을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시사 한다. 이처럼 사울이 사무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사무엘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어떤 치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선견자 - 9절 주석 참조.

=====9:19

내 앞서...올라가라 - 이것은 사무엘이 사울을 중요한 인물로 평가하고 존중히 여기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Keil, Smith, Fay). 

너희가...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온 사환까지도 한 식탁에 앉게 한 것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사무엘이 그 사환의 주인되는 사울을 가볍게 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 여기서 '네 마음에 있는 것'은 단순히 암나귀를 찾아야 하는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은 선지자로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보다 중요한 일을 알려주겠다는 뜻으로, 구체적으로는 블레셋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 하는 일, 또는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에 관한 일 등을 선지자의 자격으로서 사울과 대화를 하겠다는 뜻이다(Bunsen). 그러므로 이것은 사울로 하여금 그 자신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에 의해 지명되었음을 깨닫게 해줄 말한 내용에 관한 것임이 분명하다.

=====9:20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 본절 초반부에서 사무엘은 사울이 묻기도 전에 먼저 암나귀에 관한 언급을 한 뒤 그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자신이 신뢰할 만한 하나님의 선견자임을 강력히 시사한다(단 2:26-46). 이같은 언급은, 사울이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졌음을(16절) 알려야 했던 사무엘 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 이것은 히브리 원문의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1) '누구를 위하여 이스라엘의 사모함이 있겠느냐', 혹은 (2) '누구에게 이스라엘 안의 사모할 만한 것들이 속하겠느냐' 등의 두 가지 중 하나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Klein). 그 중 첫째 번역은 장차 왕으로서의 사울의 높은 신분을, 둘째 번역은 장차 왕으로서의 사울에게 홀러들어가게 될 재물을 강조한다. 아무튼 이 두 가지 번역 모두 사울에게 돌아갈 왕권(王權)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사모'( , 헤므다트 이스라엘)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게 될 이스라엘의 왕권과, 또한 그 왕권으로 인해 소유하게 될 모든 값지고 귀중한 것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Keil, Smith, Fay).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 이것은 위의 첫번째 번역을 취하면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을 위함이 아니냐'로, 그리고 나중 번역을 취하면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에게가 아니겠느냐'로 각각 번역된다.

=====9:21

나는...가장 작은...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 이는 사울의 왕권(王權)을 암시하는 선지자 사무엘의 말(20절)에 사울이 겸손히 대답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련의 행동(4, 5, 10절;10: 22)으로 보아 분명 초기 사울은 겸손, 성실, 효성의 덕(德)을 지닌 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인간 적인 덕도 여호와를 향한 선실한 신앙에 뿌리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왕위에 오르고 백성들의 인기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서히 사라져 결국 교만한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실로 사울의 경우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 벧전 5:5)는 진리를 입증한 경우가 되고 말았다.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 한편 사울의 겸손한 발언 저의에는 실제로 이스라엘 12지파 간의 세력 분포에 관한 현실적 이해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베냐민 지파는 역사적으로 숫적 열세를 면치 못했으며(민 1:20-46;26:511 주석 도표 참조), 더욱이 사울의 이같은 말 속에는 사사기 20장에서 발생했던 내전의 상혼이 아직까지 베냐민 지파에게 남아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베냐민 지파 - 1절 주석 참조. 특히 '지파'가 복수 형태로 된 맛소라 사본의 '쉬브테'( )는 단수 '쉐베트'( )로 고쳐 읽어야 한다(Keil, Fay, Smith).

=====9:22

객실로 들어가서 - '객실'은 산당에 부속되어 있던 별실로서, 이곳은 화목제를 드린 후 그 제물을 먹던 방이었을 것이다(1:4, 8, 18). 한편 이때에 일반 백성들은 산당의마당에서 화목 제물을 먹었음이 분명하다(Smith, Keil). 

청한 자...삼십 명 - 여기 30명은 성읍의 유력 인사들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처럼 왕을 세을 때에 손님을 초청하는 일은 고대의 보편적 관습이었뎐 것같다. 그 증거로서 성경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모반을 하면서 손님 200명을 초대했던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삼하 15:10-12). 그러므로 틀림없이 이들은 (1) 특정인이 왕으로 세워졌음을 확증하며(13절 주석), (2) 또한 그 특정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왕으로 채택되었음을 일깨우게 하는 증인들이었을 것이다. 

수석에 앉게 하였는데 - 이것은 높은 사람을 예우하는 고대의 일반적 관습이었다(Keil). 그리고 여기서 사무엘이 사울의 사환까지 함께 대우한 것은 그를 왕의 신하로서 예우한 셈이다(Smith).

=====9:23,24

요리인( , 타바흐) - '동물이나 사람을 죽이다'라는 동사( , 타바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친위대', '사형 집행인', '요리사' 등의 다양한 뜻이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남성형이므로 여자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아마도 여기의 요리인은 희생 제물을 처리 하던 레위인을 가리키는 듯하다.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 - 이것은 사무엘이 그의 예언자적 선견지명으로 이미 요리인에게 간직해 두라고 지시했던 희생 제물로서, 곧 사울과의 화목 잔치용 음식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넓적다리'( , 쇼크)가 제사장 몫인 우측 넓적다리인지 (레 7:32-34), 아니면 일반 경배자 몫인 좌측 넓적다리인지는 확실치 않다. 초기 주석가들은, 사무엘이 공식 위임된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일반 평민 몫인 좌측 넓적다리라고 보았으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즉 당시 산당의 실질적인 제사장 역할은 사무엘이 감당했으므로, 당연히 그에게 제사장 몫인 우편 넓적 다리가 돌아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붙은 것'( , 헤알레하) 은 넓적다리 위에 부어진 양념 국물이라든지 (Dathe & Maurer), 또는 콩팥(kidney) 같은 것(Thenius)이 아니다. 그것은 제단에서 화제로 드려지지 않은, 제사장 몫의 넓적다리 고기에 붙은 기름(fat)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93). 

네 앞에 놓고 먹으라 - 아무튼 대선지자 사무엘이 사울을 수석(首席) 자리에 앉히고, 또한 가장 귀한 음식을 미리 준비케 하였다가, 그에게 준 것은 분명 그를 왕적 지위로 예우했음을 뜻한다.

=====9:25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담화하고 - 이 때의 담화 내용은 전반적으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는 문제와 관련된 것임이 분명하다(19절 주석). 그러나 구체적으로 이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한 것은, 아마도 그당시 이스라엘의 특별한 정치 .종교적 상황에 관한 것과, 그리고 사울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되었음을 스스로 인식케 하는 정도의 예비적인 수준의 내용이었을 것이다(Otto Von Gerlach). 그 이유는 사울에게 대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 다음 날에야 사무엘이 들려주었기 때문이다(Keil). 

지붕에서 - 여기서 '지붕'( , 가그)은 아래서 외부의 계단을 통하여 올라갈 수 있는 평평한 지붕을 뜻한다. 이러한 지붕은 양벽을 가로지른 대들보 및 석가래 위에 잘 다져진 진흙판을 덮음으로써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사면에는 난간이 있었다(신 22:8).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지붕 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삼하 11:2) 담화를 하고 잠도 청했으며, 혹은 그곳을 창고로 쓰기도 했으며(수 2:6), 심지어는 우상 숭배의 장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렘 19: 13).

=====9:26

일찌기 일어날새...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 이는 사울이 지붕 위에서 잠을 잤음을 시사한다. 즉 사울은 연일 계속된 긴 여행과다 전날의 긴 담화등으로 인해 그대로 지붕 위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Smith). 한편 칠십인역(LXX)은 이 사실을 뒷받침이나 하려는듯 조절의 뒤에 '그들이 지붕 위에 사울을 위해서 자리를 깔아 주므로 그가 누웠다'라는 말을 삽입시키고 있다.

=====9:27

사환으로 우리를 앞서게 하라 - 이것은 사무엘이 사적(私的)으로 비밀리에 사울에게 기름을 붓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리리라 - 이것은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본격적인 헹동을 취하겠다는 뜻으로서, 곧 기름 붓는 일을 가리킨다(10:1). 그러므로 여기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을 말로써가 아닌 행동으로써 사울에게 전한 것이다. 물론 이때 사무엘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그이유는 당시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사실이 널리 알려질 경우, 그 절차상의 문제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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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났기에 오늘도 그 은혜를 갈망<차메-מאֵצָ<함..

[시63:1...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42 :2...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났기에 오늘도 그 은혜를 갈망<차메-מאֵצָ<할 것이다.

.......<갈망하다>의 히브리어는 <차메מאֵצָ<... 간절히 원하다 사모하다...더 깊은 뜻은 그리워 하다... 이전의 아름다운 만남과 추억을 잊지 못해서 오늘도 여전히 간절히 그리워 하며 다시 한번 더 만나기를 원하는 마음이 <차메מאֵצָ<이다 ...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이 이미 있었음을 의미한다 ... 하나님과의 첫 사랑이 깊었음을 뜻한다 ...그 은혜가 너무 크고 아름다워서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이미 만났기에 가능하며, 그 은혜를 체험했기에 다시 원할 수 있다 

.....<차메מאֵצָ<는 과거의 은혜의 기억 속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진행형적으로 사모하는 것이다 ... 과거의 영적인 추억이 아니다 ... Again 그리고 또 다시 사모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그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할 때 구원을 얻음인데, 과거의 시간에 얻었던 구원이요... 그리고 그 구원은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가는 것이다 ... 영적인 깊은 교제를 통해서 구원의 감격을 누릴 수 있다 ...그 감격을 갈망<차메 מאֵצָ<하는 영혼에게 더 크게 부어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강렬한 만남이 오늘도 계속 되기를 사모한다 ....이 땅에서 생명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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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73:25-26..[하늘위에 주님 밖에 내가 사모할 자 이세상에 없네]

...((하늘 위에 주님밖에 내가 사모할 자 이 세상에 없네

내 맘과 힘은 믿을 수 없네 오직 한가지 그 진리를 믿네

주는 나의 힘이요 주는 나의 힘이요 주는 나의 힘이요 영원히 주를 의지하리

주는 나의 힘이요 주는 나의 힘이요 주는 나의 힘이요 영원히 주를 의지하리 영원히))


[시73:23-26...*23.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하페츠...영원한 경륜 성취를 위해 주님이 몸소 몰입하시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심 바로 그대로!! 바로 그렇게 주님의 뜻 이루심에 나를 써 주시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몰입하며 갈망하고 있나이다란 의미)) 이 없나이다   *26.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페츠 =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 ....하나님의 뜻 = 아버지의 뜻 = 그분의 기쁘신/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깊이 갈망하시는. 이루고 얻으시기 = 성취하기 원하여 쉼 없이 몰입하시는 영원 경륜으로서의) 뜻..이 때 Q의 페리코레시스를 알게 됨.

1. 하페츠(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를 의미한다.

기본적인 의미는 '어떤 것에 대해 큰 호의를 느끼다'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유사한 어근들, 즉 하마드, 하샤크, 그리고 라차와 구별되며, 그 이유는 이 어근들이 감정적인 것을 별로 함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마드와 하샤크는 일반적으로 '바라다' desire로 번역되며(원함/바램-탐냄/시샘함/부러워함 등 일반적 용도로 쓰임) ... 라차는 필요나 승인의 판단에 의거한 [의지적으로] 호의 베풀기를 '수락하다, 가납하다, 열납하다' accept를 의미한다. 

하페츠는 그 객체가 그 자체의 본질적인 속성으로써 호의를 갖도록 유혹하며, 주체는 그것이 탐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그것에 매혹당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어느 정도 이와 비슷한 네 번째 어근 '길'은 훨씬 더 큰 감정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여기에서 주체는 즐거워 하는 태도와 행동으로 자기의 기쁨을 표현한다.

구약성경에서 하페츠는 75회 나오며, 칼형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감정적인 기쁨을 경험하다'를 의미한다.

이런 기쁨은 인간도 느낄 수 있고 하나님도 느낄 수 있다.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서 이것을 경험한다고 한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를 보고 "기뻐"했다: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지체치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 아비 집에 가장 존귀함일러라"(창 34:19).

아하수에로 왕의 미인선발 대회에 참가한 경쟁자들은 왕이 한번 보고 난 후 그들을 기뻐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게 다시 가지 못했다: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비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아스가스의 수하에 속하고 왕이 저를 기뻐하여 그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에 2:14).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것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사울왕이 자기 딸 미갈을 다윗과 결혼시키려고, 종에게 지시하기를, 다윗에게 가서 왕이 그를 "기뻐"한다고 전하라고 하였다: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삼상 18:22).

-----이 기쁨은 사건과 일에 대해서 경험될 수 있다. 

요압이 다윗에게, 왜 인구조사를 하려고 하는가, 왜 군사들을 모으려고 하는가(파카드를 보라), 즉 왜 그것을 기뻐하는가를 물을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삼하 24:3). 이 단어는 또한 어떤 활동에 대해 기뻐하는 백성들에게도 사용되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에 6:6).

----이 단어의 또 다른 용법은 독립적인 의미로 나온다. 예를 들면, 아가서에 되풀이하여 나오는 표현,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 깨우지 말찌니라"에서 그렇게 나온다(아 2:7, 아 3:5, 아 8:4).

----이 단어는 어떤 백성들을 기뻐하는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구원의 노래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자기를 구출해 주셨다고 말한다(삼하 22:20). ... 스바 여왕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기뻐하셨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송축하였다(왕상 10:9).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준수하는 것(사 56:4)과 "자비"와 "하나님을 아는 것"(호 6:6), 그리고 "진리"(시 51:8)를 기뻐하신다.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신다(시 115:3, 시 135:6).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여호와의 천사가 자기 자신과 아내에게 나타났으므로, 그들이 죽을까봐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기를 "기뻐"하셨더라면 그들의 재물을 받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대답했다(삿 13:23).

2. 하페츠(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어떤 목적하는 바 성취 위해] '몸을 구부리다 bend down'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욥 40:17에서 1회 나온다: "그 꼬리 치는 것은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그 넓적다리 힘줄은 서로 연락되었으며". ...포프(Pope)는 욥 40:17(AB)에서 "활 모양으로 구부려져 있는 것"이 꼬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작은 꼬리를 가진 하마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꼬리"라는 단어가 부속 기관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경우에 그 부속 기관은 백향목처럼 뻗쳐있는 몸통일 것이다(Lisowsky). (참조: L. J. WOOD; B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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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촌 = 호의, 은총, 기꺼이 받아들임, 뜻, 의향
라촌(명남)은 라차(hx;r; , 7521)에서 유래했으며, '호의, 은총, 기꺼이 받아들임, 뜻, 의향'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6회 나온다.
라촌은 세 가지의 주요한 의미를 나타낸다.
(a)  첫번째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은총' 혹은 '호의'(신 33:16, 사 60:10, 시 5:12, 시 30:6, 시 30:8 등). 또한 왕들(잠언에만 나옴, 잠 14:35, 잠 16:13, 잠 16:15) 및 모든 사람들(잠 10:32, 잠 11:27 등)의 호의나 은총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b)  둘째로 이 단어는 '기뻐함' 혹은 '받아들임'(출 28:38)이며, 항상 종교적 혹은 제의적 의미로 사용된다.
라촌은 선물이나 희생 제물의 '허용할 수 있음' 혹은 '받아들임(열납)'을 묘사한다(레 1:3, 레 22:20, 사 56:7 등).
(c)  세번째 이 단어는 하나님 '뜻'과 같이 '뜻'이라는 특수한 의미에서의 '소원' desire, '기쁨' pleasure이다(스 10:11, 시 40:9 등). 더 많은 본문들이 사람의 '소원' desire 혹은 '뜻' will을 묘사한다(대하 15:15, 단 8:4 등).
야곱이 임종시에 한 축복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창 49:6에서 한가지 모호하고 난해한 용법이 나온다. 
역본들은 독특한 독법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을 하였다. KJV는 "자기네들 뜻대로 그들은 성벽을 파내려 갔다" in their selfwill they digged down a wall, AV는 "그들은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they hocked an ox, RSV는 "그들은 제멋대로 소들의 오금을 잘라 절름발이를 만든다" in their wantonness they hamstring oxen, JPS는 '그들은 그들의 뜻대로 소들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in their self will they houghed oxen이라고 번역한다(한글개역,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KJV가 히브리 논문을 가장 정확히 따르는 것 같다.(W.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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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 아버지의 뜩 ---델레마
 [시40:5-10, 16.....*5.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6.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하페츠))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라촌)) 행하기를 즐기오니((하페츠))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9.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바사르))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10.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
■ [시40: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요4: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롬1:10....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뜻>을 사모합니다"라고 말할 때,  <뜻>을 헬라어로 <델레마θέλημα>라고 한다 ... 원하다 - 바라다 - 이루기를 원하다 - 결심하다 - 즐거워 하다의 의미가 있다.. 이 의미를 가진 단어 히브리어 <헤페쯔חפצ<에서 왔는데 ....헤페쯔=하페츠는 "즐거워 하다 만족하다"의 뜻이다..((그러므로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 됨 안에서 그분을 누리며 "주님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함은 최상의 반응이다!!))
. ... 보라!!..죄로 타락한 영혼은 자신의 욕심과 정욕대로 자신만을 즐거워하게 하려고 한다 ... [하나님이 누구신지-어떠하신 분인지 모르기에!!]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먼저 하나님을 믿고 알고 사랑-기쁨에 빠져 하나됨의 교통-섬김 통해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다 
..... 하나님으로 만족<헤페쯔חפצ<하는 것 = ((하나님이 먼저 [거듭나게 하신바 참 믿는이들마다에게] 바로 그리하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영원 유일무이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선하심과 사랑 안에서 상호 하나되어 누림-순종-동행이 [지고지선의 진복-지복직관의 앎, 그분의 갈망 알아드림으로써 하나로 행함]이 하나님의 뜻<델레마θέλημα>인 것이 ... 하나님으로 즐거워<헤페쯔חפצ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델레마θέλημα 이다 ...진정한 영적 의미 그 자체로!! 바로  그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그것이 보이게 될 것이니...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가운데 발견됨((그분의 교회, 곧 신부요 아내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됨의 영광))의 기쁨이야말로 하나님이 그토록 바라시는 뜻이다 ... 하나님의 기쁨 즐거움 뜻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은 죄로 인해 넘어진 모든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데 있다 ....그 이름의 은혜로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예수 믿는 모든 영혼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드시는데 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에 먼저 있다 ...한 영혼을 깊이 만나주시는 그 은혜에 하나님의 즐거움이 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 지는 것을 인생의 모든 영역에 분명히 보여 주실 것이다...이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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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레마 = 하페츠(즐거워하다, 기뻐하다 = 따라서 그 목적 달성/성취 위해 열심 다하여 몰입/몰두하며 전존재 쏟아붓다) + 라촌 (= 뜻 will, 의도, 의향 intention . + 목적/갈망/소원/바램..동>라차 ---. 주기도문에서처럼> Q의 이름, 통치와 관련되어 사용되는바 하나님의 의지, 곧 선하고 주권적이고, 창조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의지) === 히브리어 하페츠(하나님의 기뻐하심 = 즐거워 함과 기뻐함..즐거워하다, 기뻐하다..몸을 굽히다-열심으로 행하다 + 받아들여 하나 됨)와 라촌(기쁨, 호의, 뜻, 소원)을 [Q이 JC의 십자가 데ㅐ속의 죽으심-부활-승천-성령 강림 통해 얻으신 거듭난 참 성도, 곧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사람과 함께 이루려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쁘신 뜻을 thelemma라 할 수 있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델레마(Antipho soph 이래로)는 델로(qevlw, 2309: 바라다, 원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소원, 목적'을 의미하며, 그 다음 '욕망'(성적 욕망도)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인간의 '욕망', 왕의 '의지, 자아 의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2. 70인역본의 용법 
(a)  델레마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하페츠(하나님의 기뻐하심 = 즐거워 함과 기뻐함..즐거워하다, 기뻐하다..몸을 굽히다-열심으로 행하다 + 영접하고 받아들여 하나 됨)와 라촌(기쁨, 호의, 뜻, 소원)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델레마는 주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예:시 40[39]:8; 렘 9:23; 말 1:10)을 나타내나, 하나님의 뜻으로도 나타나며(시103[102]:7; 사 44:28), 
특히 하나님의 뜻을 행함(예: 시 103[102]:21; 시 143[142]:10); 델레마가 사람에 관하여 사용될 때는 '소원'(예: 시 107[106]:30), '뜻, 의지'(예: 왕의 뜻, 단 11:3, 70인역본)를, 또한 부정적으로는 '악의'(ill-will), '독단적인 행동'(렘 23:26; 집회서 32:17)을 나타내기도 한다.
(b)  헤르메스 문헌에서는 델레마는 상당수가 신의 선하고 주권적이고, 창조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의지를 가리켜 사용했다. 랍비들의 글에서 델레마는, 하나님의 의지는 종종(주기도문에서처럼) 그의 이름, 통치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델레마는 신약성경에서 62회 사용되며, 그 중에 60회는 단수, 2회는 복수(행 13:22; 엡 2:3)로 나타난다.
(a)  사복음서에서 델레마. 사복음서에서 마태와 요한은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보다 자주 말한다. 그러나 마가는 막 3:35에서만, 누가는 눅 22:42에서만 말한다.
① 마태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다. -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따라서
마 7:21-마 7:23은 유대교에서와 같이 마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이 토라와 일치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은 불법을 행한다. 그렇지만 이제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의 근본적인 목적을 나타낸다(참조: 마 22:34-마 22:40; 마 24:12).따라서 마 18:4에 의하면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 26:42에서 하나님의 델레마(뜻)에 대한 예수님의 복종은 오직 겟세마네의 기사에서만 언급되어 있다: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병행구, 눅 22:42).
②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자의 뜻을 자기의 전생애의 기초와 내용으로 직접적으로 언급하신다. 요 4:34에서 예수님은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책임지고 있는 분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5:30에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판단하신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6:39에서 하나님의 뜻은 구세주(소테르, 참조: 요 3:17)인 예수님이 생명을 약속 받은 자들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요 6:40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생명을 얻는 자들은 예수 안에서 구원을 깨닫고 그 구원을 간직한 자들, 즉 그를 믿는 자들이다("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외에도 요한은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요 9:31; 요일2:17) 인간의 뜻이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요일 5:14이하).
요 7:17에서 계시자의 정당성을 실현하는 유일한 기준은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그러나 요한에게서 윤리가 신앙보다 우월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다시금 지식이 신앙에 순종하게 됨을 의미한다.
(b)  바울 서신에서 델레마는 가장 자주 하나님의 뜻에 대해 사용되었다.
① 롬 2:18에서 하나님의 뜻을 토라와 동일시한다: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오직 여기서만 유대인들에게 말한다. 율법 학자는 그가 율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으므로 소경의 인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과 그 자신의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바로 그 모순은 하나님의 뜻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새 세대의 여명이시기 때문에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즉 성령을 받아 생각이 변화되는 것이 필요하다(롬 12:2).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일부이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안에서 믿는 자들은 합당한 행동을 해야한다(롬 12:2).
② 살전 4:3에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성화(기록)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③ 살전 5:18에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감사하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④ 골 1:9; 골 4:12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은 성경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에 관계되어 있다. 즉 그것은 교리의 지식, 토라에 대한 성장과 관계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성장과 관련되어 있다.
⑤ 하나님의 뜻은 생명의 형상을 만든다: 따라서 예수님의 그의 생애의 희생(sacrifice )는 하나님의 뜻에 기초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 1:4).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고후 1:1; 골 1:1; 엡 1:1; 딤후1:1), 그의 사도직의 수행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되었다(롬 1:10; 롬 15:32).
그렇지만 고후 8:5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뜻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⑥ 에베소 교회에서 축복의 주체는 전 인류와 우주 역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지이다. 이 행위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넓으신 구원의 뜻에 맞추어 아들들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엡 1:5) 이를 위하여 우리에게 그의 구원의 뜻의 신비를 드러내셨다(엡1:9). 왜냐하면 모든 만물이 그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게 하신 것이 그의 뜻이기 때문이다(참조: 엡 1:10).
이러한 구원의 뜻에 기초하여 그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창조의 지혜에 대하여 그들의 눈을 떴는데 이는 지금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형성된 공동체 안에서 나타난다. 이스라엘을 그의 자유로우신 예정 안에서 그의 기업이 되게 결정하시고 그의 모든 역사하심을 계승하도록 결성하신 것도 또한 그의 뜻과 일치한다(엡 1:11). 델레마 투 데우(하나님의 뜻)가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미리 정하신 구원의 뜻을 나타낸다.
(c)  후기 사도들의 기록에서 델레마는 의심없이 하나님의 뜻의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능력을 표현한다. 
특별히 신 의지의 능력은 히 10:7, 히 10:9이하의 예수님의 수난에서 보여졌다. 
그리고 벧전 3:17; 벧전 4:19에서 보여졌다. 그것은 항상 "미쁘신 조물주"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벧전 4:19).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인류를 향해 선을 도모하고(요일 5:14; 히10:10), 각 사람에게 그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갖추어 주는,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앞에 즐거워하는 것을 이루는 자의 뜻이다(히 13:21). (참조: Walter Bauer; M.Limbeck; D.Muller; G.Schre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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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레(Boule)와 델레마(Thelema)...]]
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불레」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 = 절대 경륜 = 하나님의 작정하심' 입니다...((이 "불레"를 역사 안에서 집행하시는 행하심이 곧 "절대 주권적 섭리"입니다.)) ...이 뜻은 피조믈인 우리가 저항할 수 없고 거스릴 수 없는, 사탄조차도 저항 불가능의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십자가 사건이 바로 그런 의미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롯 유다도 막을 수 없고, 가야바나 안나스도 막을 수 없었으며, 더더욱 빌라도는 그것을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사탄조차도 예수님께 십자가를 피하도록 여러번 유혹했지만 이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이며 절대적인 뜻은 저지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불변의 뜻."불레"입니다.
둘째,「델레마」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손수 창조하신 사람의 순종을 필요로 하는!!, ' 창조된 그 사람의 선택의지 발휘 적용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갈망하시는/소원적인 [선하신]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디모데전서 2장 4절을 보면, ((그분의 기쁨과 즐거움 안에서 부르신 그분과 하나 됨을 선택하는 이마다 그대로 누리도록 허용하며 실지로 지금도 이루고 계신바))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원함을 저들이 거역하는 것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 먹을 수 있는 자유의지 따라 분별 선택이 가능한 완전한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따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델레마'는 저항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마음을 늘 새롭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장선한 분량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치됨]선택함따라 선하시고 온전한, 기쁘신 뜻을 분별함으로써!!...롬12:2)) 책임있는, 주님 뜻에 합당한 응답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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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0:5....*5.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아사..행하다/일하다/만들다/이루다) 기적(=팔라....비상/비범/탁월-기이하하고 놀라운 일)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마하샤바..생각/사상, 고안/발명, 계획/의도, 판단/평가..동>하샤브)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나가드...선포하다/알리다/고백하다/인정하다/세밀히 알도록 상술하다) 말하고자(=다바르)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나가드....
---(c)  나가드는 신학적으로 Q의 계시와 인간의 계시 양자 모두에 대해 사용된다. 
......하나님은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꿈을 통하여(창 41:25, 참조: 신 13:1, 신 18:16, 행 2:17), 예언들을 통하여(창 49:1), 선지자들(특히 모세)을 통하여(신 4:13) 인간에게 알려주셨다(즉 계시하셨다). 이와 같은 선언들은 그 기원이 신적이므로(하나님이므로) 신적인(하나님의) 권위를 지녔다(신 5:5). 
>>신적인 계시와 관련된 나가드의 용법은 특히 선지자들과 연관되어 있는데(사 21:2),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야만 하는 것이었다(사 42:9, 참조: 5절, 사 45:19, 참조: 18절]). :::  이 동사 "나가드"는, 애굽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밝히는데 실패한 애굽의 선지자들을 조롱하는 사 19:12과,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신 것을 드러내는 참된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없음에 대해 절망하는 렘 9:12 [11]에서 나온다. ::: 여호와는 다른 신들 가운데 비교할 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가운데(사 41:21-24, 사 41:26-29), 오직 참된 신만이 행할 수 있는 것, 즉 미래의 사건을 계시하는 일을 다른 신들은 결코 행할 수 없다고 상대적으로 폄하-조롱한다(사 41:22). ....나가드의 선지자적 용법의 특징적인 예가 미 3:8에 나타나 있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 선지자는 실로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렘 9:12) 하나님의 뜻(사 19:12)과 심판(사 21:2)을 선언했다. 
>>이 외에도 또한, 어떤 대변자들은 언약 계시(신 4:13)에서 기인하는 권위를 지녔다. ::: 즉 제사장과 장로(신 17:10-11), 조상들(아비들, 출 13:8, 신 32:7), 다른 지도자들(참조: 사 40:21)이 그러하다. ......
>>하나님의 탁월하심(뛰어난 행사)을 구약의 회중(시 30:9)과 세상(시 22:31) 앞에 두드러지게(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모든 인간의 책무(시 42:2, 시 71:17, 시 145:4)이자 특권(시 9:11, 시 51:15)이다. 그렇게 하는 행위로서 찬양(시 30:9)과 감사(시 92:2)가 있었으며 노래로 불리워질수도 있었다(시 9:11). ::: 하나님의 가장 위대하신 사역, 즉 자기 백성을 주권적으로 구속하시고 오직 믿음만으로 칭의를 선포하신 그의 역사(예: 시 40:6)는 모든 열방에게 반포되어야 한다(시 22:31, 사 48:20, 사 66:19, 참조: 마 28:18 이하).
(d)  나가드의 비유적 용법 가운데 시 19:1에서는 하늘의 영역을 의인화 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50:6에서는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라"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공의는 눈에 보이는 피조물에 의해서 알려지고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참조: 롬 1:18 이하).
비슷하게 욥 12:7에서는 짐승들까지도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입증할 수 있다고 욥이 주장한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나가드는 일반적으로 구두로 말하는 것과 관련된 행위를 나타내긴 하지만, 비유적으로 비구두상의 보이거나 증명하는 행위를 나타낼 수도 있다. 시 111:6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열방을 기업으로 주사 그 행사의 능을 저희에게 보이셨다"고 한다. 유사하게 스 2:59은 글로 쓰여진 문서로 이스라엘 족속의 혈통인지를 보이거나 증명한다는 의미로 나가드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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