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삿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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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0장  [272.고통의멍에벗으려고]...벌레같은 내게...어찌하여야 그 크신은혜갚으리..

왜.. 벌레같은 내게 축복(기쁨, 평강)주시는지<구원-친절-긍휼 베푸심을..사랑-용서하여주심> 다 알수 없습니다..(갚을 길도 전혀 없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무슨일 하나도... 자격 있습니까..(오직 은혜 위에 은혜일뿐)

오 주님 예수 나를 붙드옵소서 예수 오 나의 사랑이여,,내 믿음 소망 전부, 나의 생명 도움 예수 오 나의 주님...

[[Why Me, Lord..Kris Kristofferson]]

((Why me Lord,))  

what have I ever done To deserve even one Of the pleasures I've known

((Tell me Lord,))

what did I ever do That was worth loving You Or the kindness You've shown

Lord help me Jesus, I've wasted it So help me Jesus, I know what I am

Now that I know that I've needed you So Help me Jesus, my soul's in Your hand

(Tell me Lord,)) 

if you think there's a way I can try to repay All I've taken from You

((Maybe Lord,)) 

I can show someone else What I've been through myself On my way bac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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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 help me Jesus, I've wasted it So Help me Jesus, I know what I am

Now that I know that I've needed you So help me Jesus, my soul's in Your hand

Lord, help me Jesus, I've wasted it So Help me Jesus, I know what I am

Now that I know that I've needed you So help me Jesus, my soul's in Your hand 

Jesus, my soul's in Your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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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니엘 ::오트니(사자,lion) + 엘(하나님) =하나님의 사자

......옷니엘은 첫번째 사사였다.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인 동시에 사위였다(삿 1:13). 옷니엘은 자신이 속한 유다 지파가 빼앗으려고 했던 견고한 적의 성읍 "드빌<기럇세벨>을 성공적으로 쳐부숨으로써 아내를 얻었다(삿 1:12). 옷니엘은 이미 그의 용맹성을 증명한 바가 있었다(참조: 수 15:15-20). 그는 여호와의 신이 임한(성령 충만한) 많은 사사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삿 3:10). 그는 8년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삿 3:8)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쳐서 파했다(삿 3:10). 그리하여 그 땅에 40년간 평화가 깃들었다. 

@@에훗 Ehud...'나는 감사(찬양)하리라' 의미.(삿3:12-4:1...암몬-아말렉과 함께 18년간 요단 동쪽과 종려나무 성읍에까지 진출한 모압왕 에글론의 18년 통치를 종식시킴)...또 다른  에훗(대상 7:10. )

@@삼갈..칼, 검...아낫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사사이며(삿 3:31),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여 이스라엘을 구하였다(삿 3:31)...삼갈은 그가 사사가 되던 해에 죽었다. 그의 치적은 삼손(삿 15:15), 삼마(삼하 23:11)의 그것과 비슷하다

@@드보라..꿀벌... 랍비돗의 아내이며 여선지자와 사사, 약 40년간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그녀는 이스라엘 자손의 재판을 담당하였으며(삿 4:4, 삿 4:5), 바락을 세워 시스라를 패배시킴으로써 가나안 왕 야빈의 통치를 종식시켰다(삿 4:6-7, 삿 4:14-16). 이 때의 승리를 기념하여 "드보라의 노래"라는 유명한 승전가를 지었다(삿 5장). 

@@바락 ...바락 Barak....번쩍이다, 번쩍 빛나다)에서 유래했으며, '번갯불(같은 섬광)'을 의미..그는 이스라엘의 지휘관이었다.

(a)  바락은 납달리 지파로 게데스 성읍에 사는 아비노암의 아들이며, 납달리의 도피성인 게데스에 거주하였다(삿 4:6). ...(b)  여선지자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서 이스라엘 지파들을 집합시켜 야빈왕의 총 사령관 시스라와 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 주었다(삿 4:6). 바락은 드보라가 자신과 동행한다는 조건으로 동의를 했다(삿 4:8)... 드보라는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라'고 예언했다(삿 4:9)....(c)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를 진멸하였으나 시스라를 죽이는 영광을 그가 얻지 못하고 겐 족속 헤벨의 아내 야일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삿 4:12-24)....(d)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승전의 노래를 부른다(삿 5:1-31)....(e)  바락은 신약성경에서 히 11:32에 한번 나오며, 바울이 믿음의 사람으로 지칭한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기드온 = (가다..'자르는, 베어넘기는'을 의미)... 나무를 베는 자(나뭇꾼 = 벌목꾼), 즉 강한 용사'...여룹바알('바알로 직접 싸우게 하라)...(a)  기드온의 역사...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에 속한 아비에셀<=도우시는 아버지> 사람 요아스<여호와의 불, 붙들어 보호하며 불을 주시는 여호와..=아하스=여호아하스>의 아들이다(삿 6:11). 기드온은 바알 신당을 훼파한 후 여룹바알(바알과 다툰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삿 6:32). 그는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사사 중 다섯 번째의 사사이다...당시 이스라엘은 미디안과 아말렉의 압제 하에서 7년간(B.C. 1176-1169년)이나 노략과 수탈을 당하고 있었다. 이 때 이스라엘의 부르짖는 기도를 듣고(삿 6:6)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침략자들의 손에서 구원할 큰 용사 기드온을 선택하셨다...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구원하라는 소명을 주셨으며(삿 6:12, 14), 기드온이 겸손히 변명했지만(삿 6:15), 여호와의 약속과 표적을 보고(삿 6:16, 21-24) 그 자리에 단을 쌓고 그 곳을 여호와의 샬롬이라 불렀으며(삿 6:21-24), 그날밤 그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그 아비의 집에 있던 바알의 단을 부수고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삿 6:25-27) 그 옆에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서 그 나무로 번제를 드렸다. 아침에 성읍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기드온을 끌어 내어 죽일 것을 그의 아버지 요아스에게 구하였다. 요아스는 그들에게 "너희가 바알을 구하려 하느냐 그가 과연 신일진대 스스로 쟁론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삿 6:25-31). 이로 인해 기드온에게는 여룹바알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삿 6:32). 미디안의 침략(삿 6:33)에 대항하여 승리의 확증을 구하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삿 6:36-40) 선택된 300명의 정병으로, 미디안 사람의 꿈과 해몽을 듣고 용기를 얻어(삿 7:9-15), 싸워 승리했다(삿 7:15-23)....기드온은 전쟁에 부름을 받지 못해 화가난 에브라임 사람들을 달랬다(삿 8:1-3). 기드온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모나를 추격하여 생포하고(삿 8:10-12), 도움을 거절한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보복했다(삿 8:10-12; 15-17)....기드온은 왕이 되어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고(삿 8:22-23) 40년간 사사로 있었으며 그동안 이스라엘이 태평했다(삿 8:28)....그러나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다. 기드온의 고향은 '오브라'이며, 말년에 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으며, 첩의 자식 아비멜렉을 제외하고도 70명의 아들이 있었다(삿 8:30-32)....기드온의 흠은 이스라엘의 올무가 된 에봇을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하였으며, 그러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의 올무가 되었다(삿 8:27)....(b)  기드온의 인격...기드온의 인격으로는 그의 겸손(삿 6:15), 주밀성(삿 6:17), 영성(삿 6:24), 복종(삿 6:27), 거룩한 영감(삿 6:34), 하나님과 친교(삿 6:36; 삿 7:4, 7-9), 계략(삿 7:16-18), 재치(삿 8:1-3), 여호와에 대한 충성(삿 8:23), 허물(삿 8:24-31) 등이다....(c)  기드온은 신약성경에서 히 11:32에 한번 나오며, 믿음의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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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 돌라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사랑하는자, 도드"에서 유래)의 손자 부아(입, 발언)의 아들 돌라(=벌레...스스로 벌레라고 겸손히 말하면서.."먼저 자기 갱신!!+떠남")(Q의 말씀도 없었고, 그 대상에 대한 언급도 없이, 스스로 분발하여)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아마도 아비멜렉 사후 민족적 사회적 혼란-상처-갈등 수습과 지도력 공백을 바로잡고 화평케 하기 위해 자원하여 일어났다고 여겨짐)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날카로운 금강석...그의 고향을 과감히 떠나서 타향인으로서 끝까지 살았음을)에 장사되었더라

===사사 야일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오르..깨우치신다"에서 유래)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특별히 어떻게 살았다는 기록은 없음=무위도식? = [봉사를 위한 권력을 사사로이 사용하여!!] 결국 아내들을 많이 두고 아들 30명 얻어서 ((부의 편중!!)) 집성촌 만들어 살며 위세 부리는데 그쳤음(내리막으로 향하고 있음)을 시사....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세상 따라갔을 가능성 있음....공직자!! 사사의 책무와 결과가 이러한 것이었나??

4.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순회 교사 의미)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야일의 천막촌 마을)이라 부르더라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쿰=서다"에서 유래)에 장사되었더라.......주님이 주신 고난의 기간보다 주님이 주신 은혜의 기간이 더 길다!!

===사사 입다....그 등장배경은 우상 전람회 상태!!

6.  ○<기드온 사후 48년 경>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보란듯이!!  공개적으로)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8.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극심한 타락에 대한 주의 진노하심의 표현임에 주의하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본토중앙지역까지 침입해 들어와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첫번째로 기록된 공식적 회개!!> 하니

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녀마다에게 결코 자비와 긍휼을 거두시지 않으심)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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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10장

1.  And after Abimelech there arose to defend Israel Tola the son of Puah, the son of Dodo, a man of Issachar; and he dwelt in Shamir in mount Ephraim.

2.  And he judged Israel twenty and three years, and died, and was buried in Shamir.

3.  And after him arose Jair, a Gileadite, and judged Israel twenty and two years.

4.  And he had thirty sons that rode on thirty ass colts, and they had thirty cities, which are called Havothjair unto this day, which are in the land of Gilead.

5.  And Jair died, and was buried in Camon.

6.  And the children of Israel did evil again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served Baalim, and Ashtaroth, and the gods of Syria, and the gods of Zidon, and the gods of Moab, and the gods of the children of Ammon, and the gods of the Philistines, and forsook the LORD, and served not him.

7.  And the anger of the LORD was hot against Israel, and he sold them into the hands of the Philistines, and into the hands of the children of Ammon.

8.  And that year they vexed and oppressed the children of Israel: eighteen years, all the children of Israel that were on the other side Jordan in the land of the Amorites, which is in Gilead.

9.  Moreover the children of Ammon passed over Jordan to fight also against Judah, and against Benjamin, and against the house of Ephraim; so that Israel was sore distressed.

10.  And the children of Israel cried unto the LORD, saying, We have sinned against thee, both because we have forsaken our God, and also served Baalim.

11.  And the LORD said unto the children of Israel, Did not I deliver you from the Egyptians, and from the Amorites, from the children of Ammon, and from the Philistines?

12.  The Zidonians also, and the Amalekites, and the Maonites, did oppress you; and ye cried to me, and I delivered you out of their hand.

13.  Yet ye have forsaken me, and served other gods: wherefore I will deliver you no more.

14.  Go and cry unto the gods which ye have chosen; let them deliver you in the time of your tribulation.

15.  And the children of Israel said unto the LORD, We have sinned: do thou unto us whatsoever seemeth good unto thee; deliver us only, we pray thee, this day.

16.  And they put away the strange gods from among them, and served the LORD: and his soul was grieved for the misery of Israel.

17.  Then the children of Ammon were gathered together, and encamped in Gilead. And the children of Israel assembled themselves together, and encamped in Mizpeh.

18.  And the people and princes of Gilead said one to another, What man is he that will begin to fight against the children of Ammon? he shall be head over all the inhabitants of Gil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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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0장 (개요)
본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은 돌라와 야일, 두 사사가 다스리는 동안 평온했다(1-5).
2. 이스라엘은 다시 고통에 처하게 되었다.
   (1) 이스라엘의 죄악이 그들에게 이런 고통을 겪게 했다(6).
   (2) 그들은 비참하게 학대당했다(7-9).
3. 이스라엘은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와 잘못을 고치고 기도를 올렸으며, 이에 대해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10-16).
4.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벗어날 준비가 갖추어졌다(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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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평화(삿 10:1-5)
평화롭고 조용한 시대가 가장 살기 좋은 때이긴 하나, 이 때는 별로 큰 일이 없어 역사가들은 그다지 쓸 것이 없기 때문에 독자들을 즐겁게 해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두 사사, 돌라와 야일이 다스리던 때에도 별 큰 사건이 없었으므로, 역사의 기록에 있어서 극히 작은 부분밖에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사의 직분을 다해 그 나라를 위해 일함으로써, “하나님을 영광되게 했으며” 아비멜렉과 같이 왕의 권세를 자랑한다든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그들이 차지한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Ⅰ. 돌라는 아비멜렉 후에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했다(1절). 
아비멜렉이 끊임없는 야망으로 백성들을 교란시키고 재앙을 초래해 이스라엘을 타락시켰으나, 그후 하나님은 이 어진 사람을 들어 쓰셔서 우상 숭배를 파괴하게 하고 폭동을 진압시키며, 아비멜렉의 횡포로 받은 상처를 낫게 함으로써 그 백성들의 잘못을 고치게 하셨다. 이렇게 돌라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했고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는 잇사갈 지파의 자손이었으며, 그 지파 사람들은 “어깨를 내려 짐을 메는” 자들로서(창 49:14, 15) 섬기는 일을 즐겨 했다. 
그러나 이제 이 지파의 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임을 받기 때문이다. 
잇사갈의 첫아들의 이름은 돌라였는데(창 46:13; 민 26:23), 이 사사도 바로 그 조상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 이 이름은 벌레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은 선조의 이름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잇사갈 출신이었으나, 그가 다스리는 직권을 맡게 되었을 때는 에브라임 산지로 와서 거했으며, 그 곳은 그 나라의 중심부에 있어 다스리기 편리했다. 그는 23년간 이스라엘을 평온히 다루었으나(2절) 별로 특기할 만한 업적은 남기지 않았다.
Ⅱ. 야일은 길르앗 사람이었으며 그 후의 계승자인 입다도 역시 그랬다. 이들은 모두 요단 건너편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은 형제들과 서로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하나님은 통치권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겨 가는 동안, 또 그 통치권이 유다에 정착하기 전까지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 지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어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셨다”(고전 12:24). 
야일은 모세 시대에 그 나라를 평정시키는 데 매우 열심이었던 바로 그 므낫세 반 지파의 유명한 사람(민 32:41; 수 13:30)과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야일의 중요한 업적은 그가 많은 자손을 갖고 있어 가문을 영예롭게 해놓았다는 점이다.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었다”(4절).
1. 그리고 그들은 높은 직위에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역으로 각곳을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을 살피는 순회 사사들이었다. 
우리는 이후에 사무엘이 자기의 아들들을 사사로 만들었지만 그들은 훌륭한 사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삼상 8:1-3).
2. 그들은 각자 한 성읍을 맡고 있었으며, 그 곳을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선조에게서 이름을 따서 하봇야일 즉 야일의 동네라 불렀으나, 그것들은 후에 도성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받은 마을을 도시로 확장시켰거나 아니면 그들이 작은 몫에도 극히 만족해 서로 밀집해 있는 그 곳을 성읍처럼 울타리로 쳐서 문을 해 달았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에라도 만족하는 자에겐 큰 도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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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역경(삿 10:6-9)
Ⅰ. 이스라엘은 다시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으며, 이 죄는 그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것이었다(6절). 
그들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마치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백성들처럼” 말할 수 없이 타락해 갔다.
1. 그들은 많은 신들을 섬겼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오래된 악령인 바알과 아스다롯뿐만 아니라, 마치 그들의 어리석음을 모든 이웃에 알리는 듯이 수리아, 시돈, 모압, 암몬 그리고 블레셋의 신들을 모두 섬겼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중요한 국가 사업이 각국으로부터 신들을 수입해 오는 것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세상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이 더욱 경건치 못하고 우둔한 짓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들은 타국의 신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 자신을 천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영예롭게 되려는 지각을 지닌 백성이라면 결코 그들의 신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많은 재산이 여러 나라의 우상들을 사들이는 데 낭비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은 독립적인 신당을 지었을 것이며, 따라서 이 우상을 섬기는 신봉자들과 제사장들도 그들의 신을 따라 분명 이스라엘 땅에 들어왔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살 수 없었다면 이스라엘에 와 뿌리를 박았을 것이며, 이렇게 해서 타국 사람들이 그들의 힘을 좀먹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 이웃 나라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 그 일을 행한 것이라면 물론 실망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악한 기교로써 이 나라들을 친구로 만들려 했지만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으로써 이들은 이스라엘의 적이 되고 억압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죄를 범한 바로 그 점으로 해서 인간은 처벌받을 것이다”(In quo quis peccat, in eo punitur).
2.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을 자기들이 섬기는 잡신들의 하나만큼도 여기지 않고 아주 저버렸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려” 그 분을 전혀 “섬기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섬기려는 자는 얼마 안 가 하나님을 버리고 재물만을 섬기게 된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얼마 안 가서 완전히 하나님을 저버리게 된다.
Ⅱ.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벌하시기 위해 대적의 억압에 처하게 했다. 
그들이 즉시 “여호와의 손에 빠졌다면”, 그들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다”는 것을(삼하 24:14)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람의 손에 빠지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학대는 매우 심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남서쪽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 파시었고” 동시에 북동쪽에 있는 암몬 사람들에게 파셨다. 
그래서 그들은 두 틈바구니 사이에서 비참하게 “짓밟혔으며”, 문자적인 의미대로 “학대를 당하였다”(8절).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한 성읍이 우상 숭배를 행하면 나머지 다른 성읍들이 그들을 쳐 죽이도록 명하셨다(신 13:12 이하). 
그들은 이 일에 매우 열심이었고 특히 두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제단을 쌓자 여호수아는 그들을 크게 꾸짖었다(수 22장). 
그러나 이제 그들이 몹시 악해져 한 성읍이 우상을 좇자 다른 성읍들도 그 성읍을 벌하는 대신 같이 그것을 따르고 그들보다 더욱 심하게 우상을 섬겼다
이렇게 “악을 행한 자들에 대해 분노를 품고 징벌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죄를 범하거나 “공연히 칼을 가졌기”(롬 13:4) 때문에, 하나님은 이웃 나라들로 하여금 당신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을 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 사람을 억압하는 롯의 후손 암몬 사람들의 통치는,
1.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것은 18년간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 햇수를 야일이 다스리던 시기에 집어넣고 있으며, 야일은 이스라엘을 개심시켜 구원할 능력이 없었으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 일은 야일이 죽은 후에 바로 시작된 것으로 보는데, 이것이 더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겠다. 
암몬 사람들에 의해 가장 피해를 입은 자들은 야일 자신의 고향인 길르앗 사람들이었으므로, 야일이 살아 있는 한 적어도 그들을 시정하고 보호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그 통치는 매우 비통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압해 분노하게 만들었다. 
암몬 자손들처럼 비천한 백성들에게 정복당한다는 것은 매우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암몬 사람들은 요단 건너편 곧 “아모리 사람의 땅”에(8절) 거하는, 가까운 지파부터 정복하기 시작했다. 
그 땅이 “아모리 사람의 땅”이라고!!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참할 정도로 타락해 이교도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고, 그들이 완전히 아모리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거나(겔 16:3), 아니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그 곳 지명에서 이스라엘의 이름이 없어지고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간주된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점차적으로 침입해 들어와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지파인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지파를 정복했다(9절).
이처럼 하나님을 저버린 백성들은 굴욕을 당했고 그들은 이 침입자에 대항할 힘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이런 위협 속에서 “대적에게 패하게” 되었으며, “대적을 당할 힘이 없었다”(레 26:17, 37). 
그들을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다”(렘 4:18). 그들의 처절한 타락이 그만큼 쓰라린 고통을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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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회개(삿 10:10-18)
Ⅰ.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통 중에 그들의 잘못을 하나님께 겸손하게 자백했다(10절). 
이제 그들은 고문당하는 악인처럼 그들의 잘못을 인정했으며, 매맞은 아이들처럼 그들의 잘못을 고칠 것을 약속했다. 
그들은 그 고통을 불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로 인해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그리고 그들은 불평할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행하지 않은 일을 고백했는데, 실상 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저버렸나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죄과를 고백했다. “우리는 바알을 섬겨 어리석고 사악한 일을 행함으로써 당신을 배반하였사옵니다.”
Ⅱ. 이에 대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지극히 자비로운 소식을 보내셨다. 
그것이 천사에 의해 전해졌는지(2:1) 또는 선지자에 의해(6:8) 전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을 해 주셨다는 것은 퍽 감사한 일이다. 
또한 그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을 때 이와 같은 말씀을 보내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더욱 회개하게 하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려는 것은 매우 큰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을 그들의 적에게서 구해 주신 일을 상기시키시며 책망하셨다. 
즉 하나님은 그들을 먼저 애굽 사람에게서 구원해 주셨으며, 그들의 땅에 쳐들어온 아모리 사람들에게서 구원해 주셨고, 모압 사람들과 합해 이스라엘을 억압한 암몬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고, 삼갈 사사 시대에 그들을 괴롭힌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구원해 주셨다. 
그 후에도 그들이 적으로부터 고통당해 간구할 때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큰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11, 12절). 
다른 곳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시돈과 마온 사람들의 압제에서도 구해 주신 것을 여기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의롭게 그들을 징벌하셨으며, 은혜롭게 그들을 구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사랑함으로 그 분을 따르고 섬겨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은 그들의 가슴을 찔렀을 것이다(13절). 
“그러나 너희를 고통 속에서 구원했을 때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이제 너희들은 다시 고통 속에 빠지게 되었도다.” 
이처럼 그들은 “그들 자신의 미혹당함을 선택함으로 그들에게 내려진 은혜를 저버렸다.”
2.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므로”, 하나님도 당연히 그들을 버려 구원치 않으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을 회개하게 하시고 바로 서게 일깨워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1) 바알 신들을 섬긴 어리석음을 알게 했다. 그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 신들의 은혜를 입으려 했으나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신들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14절), 그들이 너희를 위해 무슨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알아보라. 너희는 그들을 신으로서 섬겼으니 이제 그들이 너희에게 거룩한 권능과 선함을 행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 너희는 그들이 너희의 왕이나 방백이 되는 것처럼 충성을 다했으니, 그들이 이제 너희를 보호해 줄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 너희는 그들이 너희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준 것처럼 생각하고 악인들처럼 제물을 그들의 제단에 드려 그들을 찬미했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친구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참된 참회는, 어떤 도움이 있기를 바라서 우상으로 섬겼던 것들과 하나님과 대적하는 보좌를 우리의 마음속에 제공해 준 모든 것들의 전적인 무익함을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가 탐닉하는 감각적 쾌락이 우리의 만족이 될 수 없으며 우리가 열망하는 이 세상의 부귀도 우리의 기업이 될 수 없다. 
하나님 밖에서는 행복이나 평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 하나님을 버렸기에 그들에게는 비참함과 위험이 따름을 알게 했다. 
“너희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라. 나는 이제 너희에게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는 말밖에는 줄 수가 없거늘(13절), 너희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는지도 모른다”는 것뿐 아니라 만일 그들이 우상을 버린 후 앞으로는 올바른 일을 행하겠다고 그들의 잘못을 자백하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겠다”는 뜻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이다.
Ⅲ.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정의에 겸손히 복종하면서, 그 분의 은혜를 간구했다(15절).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회막 문에서 엄숙하게 거행된 총회 석상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기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었으며, 그것이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매달리며 죽더라도 그 곳에서 죽으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하는 자백을 반복했을 뿐만 아니라,
1. 그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완전히 굴복했다.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옵소서.” 
여기서 그들은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떤 벌을 가하시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태도와,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징벌하시든 그것은 그들에게 결코 해롭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나타내고 있다. 즉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 복종하고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려” 했다. 
모세는 인간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레 26:41).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그들이 행한 일이 매우 사악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징벌은 결코 가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올바른 인간으로 만들어 주신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했다.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이 원수들로부터 “건져 내옵소서.” 
그들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대로 벌주시지 않기를 간구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 분의 정의에 굴복해야 한다.
Ⅳ. 이래서 그들은 이제 회개하고 마음을 정했다.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했다. 
그들은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렸다.” 이스라엘 나라와 언약의 말씀에 낯선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겼다.” 
환난이 그들을 하나님께 돌아가게 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섬기던 신들이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전에 업신여기던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것은 죄에 대한 회개뿐만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실된 참회였다.
Ⅴ. 하나님은 다시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은총을 보이셨다. 
우리는 그것을 다음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16절). 
하나님 안에 어떤 슬픔도 있을 수 없으며(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기쁨과 행복이 있으며, 이 세상 어떤 죄악이나 환난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다), 그 사랑은 항상 변함이 없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욥 23:13) 그러나 그 분의 선하심이 곧 그 분의 영광이시다. 
하나님은 자비하심을 통해 이름을 드러내시며, 모든 이름 가운데 높이 그 위엄을 떨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에서 그 자신이 그 분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즐겨 밝히셨듯이,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처럼 자비로움을 그들에게 기꺼이 보여 주신다. 
그 분은 빛들의 아버지이신 것처럼 또한 자비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자식들의 불순종과 비극은 인자한 아버지에게는 근심이 되며 그 분의 자연스러운 사랑에 깊은 충격을 주듯이,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이 탄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매우 슬퍼하셨으며(시 95:10), “그들의 가증한 일로 근심하셨다”(겔 6:9). 이처럼 그들의 고통이 하나님께는 슬픈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 분의 백성을 구원해 주시길 호소할 때, 잘못한 자식에게 너그러움을 베푸는 어지신 부모같이 하나님은 그 분의 벌을 기꺼이 거두어 주신다. 
우리의 하나님은 이렇게 자비하시며, 인간들이 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는 것을 결코 즐겁게 여기지 않으신다.
Ⅵ. 이제 사태는 그들을 암몬 사람들의 억압에서 구원하기 위해 진행되었다(17, 18절). 
하나님은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전의 그들이 아니라 새로운 다른 사람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구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협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좀더 겸손해져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제 그들이 이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려 했다.
1. 암몬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그들을 멸하려 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일격에 물리칠 수 있도록(계 16:16) 한마음으로 뭉쳤다.
2. 이스라엘 자손들도 그들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한데 뭉쳤다(17절). 
18년간 남의 나라의 통치를 받은 것은 예전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서로 합심하지 않아 적에게 정복당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가족이나 성읍 혹은 지파들이 뭉치지 않고 각자 행하고 그들을 묶어 줄 공동 관심사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적의 먹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뭉칠 때 그들은 적을 잘 막아 낼 수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그랬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이제 길르앗의 백성들과 방백들은 암몬 사람을 치려 할 때 그들을 지휘할 대장에 대해 가장 먼저 상의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들은 에훗, 바락, 기드온과 같이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다음번 주인공은 보다 평범한 방식으로 소명받게 되었다. 
즉 이 일을 하기에 훌륭한 자가 누구인지를 회합을 열어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후에 이 선택된 자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어 그를 인정해 주셨다(11:29). 
이 사건은 후세에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입은 자가 없을 때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행하시듯이 백성의 신뢰와 권한으로 치우침 없이 뽑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이 선택된 자를 너그럽게 인정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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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10:1

부아의 아들 돌라 - '부아'는 '입', '말'이란 뜻이다. 그리고 '돌라'는 '곤충','벌레'란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사사(小士師)인 '돌라'(tola)와 그의 아비 '부아'(Puah)의 행적에 대하여서는 성경에 달리 언급된 것이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사항은 '부아'와 '돌라'라는 이름은 '잇사갈'이 낳은 두 아들의 이름과 같다는 점이다(창46:13).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이미족보에 실려 있는 선조의 이름을 따라 지어 주던 풍습에서 기인된 것이다(묵 1:61).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25:19-26 강해, '이름 짓기'를 참조하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 돌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어떤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 본절에는 아무 언급이 없다. 아마 아비멜렉으로 인한 종족끼리의 분쟁이든지(Hervey) 아니면 사소한 국지전(局地戰)이었을 것이다(Goslinga).

에브라임 산지 사밀 - 돌라는 잇사갈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살았다. 돌라가 왜 자기의 기업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미디안인들의 압제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지만(Goslinga) 확실치 않은 주장이다. 

한편 '사밀'이 '사마레이아'(* )로 변역되어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후대의 '사마리아'(Samaria)와 동일 지역이 아닌가 추정된다.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에브라임 산지'란 말을 덧붙인 것은 '유다 산지 사밀'(수 15:48)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돌라가 자기 기업의 땅을 떠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우거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10:2

사사가 된 지...죽으매 - 이처럼 돌라의 업적이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된 후 곧바로 그의 죽음이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본서 기자가 구속사(救速史)의 흐름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사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10:3

그 후에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라이우'(* )는 '그 사람 다음에'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돌라를 이어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단어만으로 돌라가 죽자 곧바로 야일이 사사가 되었는지의 여부를 파악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이 시간적인 연속을 나타내기 보다는 계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르앗 사람 야일 - '길르앗'(Gilead)은 요단 동편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 32:33-42). 5:17 주석 참조. 그러나 성경에서 '길르앗 가족'(민 26:29)의 후손을 가리킨다. 따라서 돌라를 이은 사사'야일'은 길르앗 원주민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한편 야일(Jair) 역시 돌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소사사'로 그의 행적에 대한 별다른 성경적 기록이 없다.다만 그의 이름의 뜻은 '비추는 자', 깨우치는 자'이다.

=====10:4

어린 나귀 삼십 -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5:10; 12:14). 따라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각기 자기 소유의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당시 야일이 사사로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부와 명예를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성읍 삼십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더욱 입증된다.

하봇야일 - '야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과거 모세 당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길르앗의 촌락들을 점령한 뒤 그곳 성읍들에 붙인 새로운 이름이다(민32:41; 신 3:14). 따라서 사사 야일은 자기 선조 '야일'이 취하여 '하봇야일'이라 부른 그 성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결코 '하봇야일'이라는 이름이 사사 야일 당시에붙여진 새로운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0:5

가몬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phus)의 주장에 따르먼 '가몬'(Camon)은 길르앗의 한 성읍일 것이다(Hervey). 뿐만 아니라 이 성읍은 야일이 소유하고 있는 30성읍(4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Lange, Keil & Delitzsch). 그러나 이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갈릴리 호수 동남쪽의 '캄'(Qamm)이나 동북쪽의 '쿠메임'(Qumeim)이 바로 이 '가몬'일 것으로도 추정한다.

=====1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 '다시'에 해당하는 '야사프'(* )는 '증가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패역해져 갔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본절은 사사 시대의 시대적 정황(情況)이 어떠하였는지를 여실히 증거해 준다. 

그리고 사사 야일이 죽은 후 그의 뒤를잇는 사사가 나오지 않으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종교적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도 보여 준다(2:18,19).

바알들과 아스다롯 -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인 신들이다. 즉 '바알'들은 가나안 당의 남성 신을 가르키며, '아스다롯'은 여성 신을 대표적으로 가리킨다. 혹자는 '아스다롯'을 '아세라'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분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3과 3:7 주석을 참조하라.

아람의 신들 - '아람'(Aram)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결쳐 살고있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좁은 의미로 시리아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가리키는 바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시리아'(Syria)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이 아람 사람들은 대체로 가나안의 헷족속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었다. 그 대표적인 신들로는 폭풍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태양여신 '아린나' 등이 있다.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 참조.

시돈의 신들 - '시돈'(Zidon)dms enfh(Tyre) 북쪽 3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아스다롯'과 '에쉬문'(Eshmun)을 섬겼었다.그런데 이중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Melqart)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이었다.

모압의 신들 -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하다(민 21:29; 왕상11:7; 렘 48:7).

암몬 자손의 신들 -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Moloch)으로, 일명 '말감'(Malcam)또는 '밀곰'(Milcom)으로도 불리웠다(왕상 11:5,7,33; 습 1:5; 렘 49:1).

블레셋 사람의 신들 - 블레셋의 국가신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은 '다곤'(Dagon)이다(16:23; 삼상 5:2-7). 이상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참조.

=====10:7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 여기에서 '손에 팔다'는 말은 '손에 붙이다'는 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통한 '심판의 형벌'을 나타내는말이다. 2:14 주석 참조. 

한편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신 열국은 주로 팔레스틴 북방 지역의 민족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 중 북쪽 지역 사람들이, 곧 납달리, 아셀,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 지파가 고통을 당했었다(3:8; 4:2; 6:33). 

그러나 이제는 블레셋과 암몬 같은 팔레스틴 남방지역의 민족들을 들어 쓰고 계시는데, 이로 인해 이제는 주로 남쪽 지역에 사는 지파 곧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자파가 압제를 당하게 되었다(9절). 특히 암몬 사람들은 이전에 모압 왕 에글론 및 아말렉 사람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압제한 적이 있었다(3:13). 그리고 블레셋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로 등장한다(13:1).

=====10:8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 - 이는 요단 강 동편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반 지파가 그 곳 거민을 쫓아내고 기업으로 취한 땅을 가리킨다. 3절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족속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창 15:16).

학대를 당하였고 -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흩어 압제했다' 라는 의미이다. 즉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으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혹독한 압제를 가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것을 가리킨다.

=====10:9

암몬 자손이 또...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 이처럼 암몬족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졈령한 후 다시금 요단 강을 건너와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한 것은 당시 저들의 세력이 한참 흥왕하던 때였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본래 이들 암몬족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로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서로 화평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나라는 역사상 계속적으로 심한 반목(反目)과 적대 관계를 이루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서편에서는 블레셋에 의해, 동편에서는 암몬 자손에 의해 공격받아 압제를 당했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곤고가 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야차르'(* )는 '짓누르다', '쥐어 짜다'라는 의미로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학대받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과거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압제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10:1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 여기서 '바알들'은 단순히 가나안의 남성 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미 언급된 여러 나라의 신들을 모두 의미한다(6절). 한편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단순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는 표현만이 사용되었으나(3:9; 4:3; 6:6), 본절에서는 이와관련 그들의 죄목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부르짖음이 다른 때보다 더 간절했음을 시사해 준다.

=====10:11

애굽 사람 - 여기서 '애굽 사람'이 언급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사건(출 1-14장)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Matthew Henry).

아모리 사람 -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노정 가운데 정복한 족속 중 하나이다(민 21:21-26).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노정(路程)을 방해하였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에 의해 격멸당했었다.

암몬 자손 - 모압 왕 에글론과 동맹을 하여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사람들이다(3:13).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에홋을 보내사 그들의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3:15-30).

블레셋 사람 - 이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마 에훗의 뒤이은 사사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던 사건과 관런된 듯하다(3:31).

=====10:12

시돈 사람 - 이들은 사사 시대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적도, 이스라엘에 의해 공격당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이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리적으로 아셀과 납달리 북쪽에 거주했던 이들은 아마 하솔 왕 야빈이 이스라엘을 압제할 때(4:1-3) 그를 도왔던 것 같다(Keil, goslinga, Hervey). 장차 이스라엘을압제할 열국 가운데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3:3).

아말렉 사람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그들을 대적했던 족속으로(출17:8-13) 사사 시대에도 미디안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을 압제한 적이 었다(6:3).

마온 사람 - 70인역(LXX)에는 '마디암'(* ), 즉 '미디안'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2,p.376). 그런데 수 15:55에서 '마온'은 유다 지파의 기업에 속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삼상 23:24에서도그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대하 26:7에서는 이곳이 사해 남쪽과 페트라 동쪽지역으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의 '마온' 역시 유다 지경에 속한 '마온'이 아니라 요단 동편 사해 남쪽에 있는 '마온' 곧 미디안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마온'과 '미디안'을 동일시한다(Keil,Goslinga, Hervey, Cundall). 물론 혹자는 이 '마온'을 미디안이 아니라 아말렉 족속과 같은 유목민 중 한 부족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Cassel) 그 근거는 회박하다.

=====10:13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벡성들이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자 다시금 사사 입다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때문이다(11장). 따라서 본절의 말씀은 우상 숭배에 젖을 대로 젖은 당신의 백성들에대한 강한 경고(히 6:4-6)로 이해될 수 있는데, 궁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간섭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10:14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우상 숭배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즉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환란 가운데서 구원할 수 없는 헛된 것들임을 강조한다(Wycliffe). 모세도 우상들은 헛되며, 인생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것들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신 32:37,38).

=====10:15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 이러한 고백은 (1)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있음과 (2) 자기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싶을 깊이 인지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이제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려 한 자세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진정한 회개의 마음을 갖게 되었음을 증거해 준다.

오늘날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 - 지금 막 하나님의 어떠한 처벌이든지 달게 받겠다고 고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적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조금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본절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신 이는 자신들을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영광받게 해달라는 간구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10:16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의 죄를 고백했다(10절). 그것도 죄를 고백하되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2) 그들은 하나님의뜻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15절). (3) 그리고 죄의 고백과 더불어 한 걸음 더나아가 자신들이 고백한 그 죄로부터 떠났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들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임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6-18절 강해,'참된 회개의 본'을 참조하라.

여호와께서...마음에 근심하시니라 -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서 그들을 구원하시려 마음 먹으신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근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차르'(* )는 '견디지 못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10:17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쳤으므로 - 이처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와서 전쟁 준비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8년 동안 암몬 사람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을 섬기다가(8,9절) 이제 반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피정복민들이 정복 군주에게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면 그 군주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피정복민들을 재차 공격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왕하 17:3-6; 24:1-3).

미스바 - 성경에는 지명은 동일하나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는 '미스바'가 대여섯군데나 있다(수 11:3,8; 15:38; 18:26; 삼상 22:3).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미스바'는 사사 입다가 거주하던 곳이다(11:34).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얍복 강북쪽에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과거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과의 언약을 기념하여 '증거비'를 세웠던 곳인 '미스바'와 동일지일 가능성이 크다(창 31:49).

=====10:18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 암몬 사람과 대치 상태에 들어갔으나 길르앗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막상 선두에 나서서 그들과 싸울 만한 인물이 없었다. 

고대 전쟁에서는 선두에서 백성들에게 싸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군이 반드시 요청되었다. 그리고 그 장군이 전쟁 중 죽게 되면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도망하게 된다(삼상 17:50-52). 이러한 이유로 길르앗 백성들은 암몬 사람과 제일 먼저 나가서 싸움을 시작할 만한 인물을 찾았던 것이다.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아가 암몬 사람과 싸워 이기는 사람을 길르앗 땅의 우두머리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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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우리는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된 이후  3년만에  자기를 지지한 자들이 일으킨 반역을 진압하던 중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을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당시 이스라엘 내의 분위기는 어수선했을 것이며, 주위의 적들로 인해 빈번히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한 때 두 사사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니 곧 돌라(1, 2절)와  야일(3-5절)이다.  

그러나 돌라와 야일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주위 모든 나라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여 급기야 하나님께선 그들을 암몬과 블레셋 족속들의 휘하에서 18년동안 압제를 당하도록 만드셨다(6-9절).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전과  같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다시 회개하였는데, 조금 특이한 점은 전체 사사 시대  중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진지하게 하나님께 회개하였다는 것이다(10-16절). 

그들의 회개는 압제로 인한 고통에서 비롯되어졌다는 측면에서는 여느 때와 별 차이를 보이지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우상을 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을 섬겼다는 점에서(10절) 그들의 회개가 매우 진지하고 진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의 진실한 회개는 사사가 다시 나타날 영적인 배경이 되었는데(17, 18절)  실제로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자 입다가 등장한다.

한편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도 우리는 이전과 다름없이 사사 시대에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를 보게 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의  악한  본성(롬 1:28)을 더욱 확실히 입증시켜 준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우리는 본서에  나타나는 악순환의 역사를 접할 때마다 인간의 악한 성향 뿐 아니라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변치 않으시는 사랑도 또한 발견된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된  생활을 반복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할 때에는  한번도 그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끊임없이 용서해 주셨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  18:22)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날마다 죄 가운데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다.  

이것이 곧 기독교의 복음이자 정수(精髓)이니 우리는 오늘날 죄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만민들에게 이 진리를 힘써 증거해야 할 것이다(딤후 4:2).

1. 사사 돌라와 야일(10:1-5)

기드온에 뒤이어 새로이 등장한 이스라엘의 두 사사 돌라(1, 2절)와 야일(3-5절)에 대한 기사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돌라와 야일 이 두 사사의 행적에 대해서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들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짧은 본문으로도 그들에게서 공통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1) 그들은 사사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다스린 45년 동안(2, 3절)에는 이스라엘이 주위의 열국으로부터 압제를 당하지 않고 평안했던 데서 잘 암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돌라는 아비멜렉 이후  어수선했던  이스라엘의 형편을 틈타 이스라엘을 괴롭힌 어떤 대적을 물리침으로써(1절) 이스라엘의 구원자 역할도 했다.

 (2) 그들이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그속사에 있어서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본서의 저자는 그들의 행적이 구속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므로 그들에 대하여 비교적 간략하게 기술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 두  사람은 사사로서 활약은 했으나 그속사적으로 뚜렷한 업적이 없으므로 소위 이들을  '소사사(小士師)라고도 부른다.

2. 반복된 악순환(10:6-18)

사사 돌라와 야일이 죽자 또다시 이스라엘의 범죄 - 하나님의 징벌 - 백성들의  회개라는 사사 시대의 전형적인 악순환의 역사가 반복되는 장면이다.  

즉  야일의  죽음이후 사사들의 공백기가 생기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국의 신들을 섬겨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켰다(6, 7절).  

저자가 본문에서 열국의 각종 신들의 이름을  열거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는 매우 심각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러한 우상 숭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증거이다.  사실  여호와의 종교와 이방 우상 종교와의 혼합주의는 참된 여호와 종교가 설 땅이 없도록 만든다.  이러한 우상 숭배가 사사들이 통치하는 기간 중에는 어느 정도 꼬리를 감춘 듯 했으나 영적 지도자이며 정치 지도자인 사사가 죽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우상 숭배에 빠져 영적인 침체기에 이른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공의는 어김없이  징계의 도구로 남겨 둔 족속들을 통하여  나타나(7-9절)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에로 이끌게 된다(10-16절).  

즉 대적들의 손에  빠진 이스라엘은 다시금 평화를 갈구하게 되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압제와  고통의  원인이 자신들의 범죄 때문임을 자각, 회개케 된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특기할 만한 사실은 본문에서의 이스라엘의 이러한 회개가 사사나 선지자를 통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회개 태도가 진실하고 매우  구체적이었던  점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저들을 대적의 손에서 건져 내려 계획하시는데(17, 18절) 곧 지도자들을 갈구하는 백성들에게 사사 입다를 구원자로 보내셨다(11짱).

한편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에  의해 서 발동된 것이긴 하나 결국에는 그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범죄한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는 목적도 단순히 그들을  괴롭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히 12:6).   

따라서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인간이 진정 참 생명과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장중에 사로잡힌 바 되는 것임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대 근동의 우상 숭배와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 - 고대 근동에서는 각 지방, 각 족속들마다제각기 섬기는 수많은 지역 신들이 있었다<6절 주석 ;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  그러므로 그러한 신들과 각종 우상들이 당시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백성의 종교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심지어 훨씬  이전의 이스라엘 족장들의 종교 생활에 있어서도 이러한 이방 종교의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그 한 예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창 21:33).  이것은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연관지어 생각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이방 종교, 그중에서도 나무를 숭배한 아세라 종교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풍습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부터는 끊임없이 이러한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여호와 종교는 이로 인하여 항상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한편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제사장 나라로서 모든 이방 국가들에게 여호와 종교를 전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과는 구별된 백성 곧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출 19:6).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삶은 이방인과 구별되기는  커녕  닮아가고  있었으며,  더욱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었다(2:10-13).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전역사 동안 우상 숭배가 항상 극성을  부린 것은 아니다. 

사사들이 나타날 때에는 여호와 종교가 우세했으며(2:18).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유능한 왕정 치하에서 여호와 종교는 유례없이 부흥했다. 

그러나  대체로 사사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난 종교적 부패는 왕정 시대에도 계속되었고 특히 북쪽 이스라엘에서 더욱 극심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참된 신앙은 주변의  거짓된 신앙에 포위되어 항상 위협을 당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교회와 신학계에서 거론되어 오고 있는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가 토착 종교에 의해 변질되어 이상한 형태의 혼합종교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끓임없이 정통 신앙에 맞서 도전해 오고 있는 각종 이단 사설(異端邪說)을 엄히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저들의 겉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로 꾸며져 있으나 실상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요 성도를 미혹하여 진리의 길에서 이탈시키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요일 4:1-6).  

따라서  과거 이스라엘이 주변의 이교 풍습(異敎風習)과 사신 숭배(邪神崇拜)문화 가운데서  끓임없이 경성하며 여호와 신앙을 수호해야 했듯 오늘날 우리도 난무하는 이단과 사이비  종교 가운데서 경성하여 진리와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요이 1:7-11).

참된 회개의 본 - 본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암몬 자손의 압제로 인해  하나님께 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들의 회개는 여느 때와 달리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실천이 동반된 것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깨닫고(10, 15절) 그들의 잘못을 하나님께 낱낱이 고한 후 그 잘못된 길에서 떠났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올무가 될 소지가 있는 모든 요소를 철저히 근절시겼다(16절).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이방인들로부터 당하고 있는 압제가 하나님의  진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자신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탕자 비유에서(눅 15:1-32) 탕자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탕자는 허랑  방탕하여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하며 고생을 하게 되자 그러한 어려움의 근원이  아버지의 품을 떠난 사실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모든 수치와 염치 없음을 무릎쓰고 아버지 품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1) 참된 회개에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깨닫는 것이 제일 먼저  요구된다. 그렇지 아니할진대 그 누구도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할 필요도  없게 된다.

 (2) 참된 회개는 회개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는 것이 요구된다. 즉 성도가 회개할 때 그 대상은 단순히 사람에게만이 아니다. 

비록 그가 사람에게  잘못했을지라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법죄한 것이다. 따라서 성도가 회개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가 포함된다(시 51:3, 4;눅 15:18).

 (3) 참된 회개에는 진실된 방향 전환이 뒤따라야 한다. 즉 누구든 회개할 때에는  말로써만 하나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갔듯이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모든 우상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듯이 구체적으로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엔 하나님께서도 역시  진정으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 18: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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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0:1-8 하나님의 근심

10장에서 아비멜렉 이후의 두 명의 소사사가 등장한다. 크게 분량을 차지하지 않는 소사사 돌라 이야기는 아비멜렉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패도에 따른 심판, 처참한 죽음으로 이스라엘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크고 작은 적들이 덤벼 내우외환의 분위기에서 세워진 사사가 돌라다. 중요하지는 않을지라도 돌라는 대사사 옷니엘 같은 용맹스러운 사사였다. 그는 이스라엘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기의 분량을 충분히 감당했다. 

돌라는 가문이 아주 좋았던 사람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돌라 이렇게 등장한다. 아비멜렉은 첩의 자식이라 가문이 안 좋다. 권력지향적인 사람으로 나쁜 일을 많이 하고 그를 통해 고통을 많이 겪은 이스라엘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이 좋은 집안에서 자란 돌라를 일으켜 사사로 세워 23년을 평화롭게 지내게 하신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라는 말은 있으나 어느 이방의 압제로부터인지 기록되지 않았다. 돌라는 아비멜렉의 압제와 내전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일 것으로 본다. 돌라의 사역을 상세히 기록하지 않으나 이스라엘에 은혜를 주시고 백성을 아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 이후에 야일이 등장한다. 야일의 아들들 30명은 어린 나귀 30을 탔고, 그가 가진 30성읍들이 길르앗 땅에 있다. 부와 명예를 함께 가진 사사였다. 이는 이중적인 의미를 제공한다. 야일의 부와 명예는 이스라엘의 평화와 풍요를 알려준다. 대적들과 전쟁에서 승리 기록은 없지만 이스라엘에 평안이 임했던 시기였다. 

야일은 사사인데 어디로부터 구원하였다는 말은 안 나오고 전쟁이 없던 평화롭던 시기의 사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귀 요즘말로 최고급 승용차다. 요즘 시대는 목회자가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집이 30채면 욕 듣는 시대다. 그러나 구약의 관점에서 한번 보라. 성령이 충만하게 성도 개개인에게 임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 가시적이고 물질적으로 표현될 때이다. 구약시대에 자식이 많다는 건 하나님의 축복의 제일 중요한 상징이었다. 어린 나귀 30, 성읍 30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과 부요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비멜렉을 통해서 온갖 질고를 겪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평화로운 시대를 주시고 풍요한 하나님의 복과 풍성을 누렸던 시대가 돌라와 야일의 시대다. 40년을 넘는 세월을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고 은혜를 주신 때다. 

기드온의 영광스러운 승리가 있은 후에 얼마나 금방 넘어졌는가. 보란 듯이 그들에게 아비멜렉 같은 나쁜 왕을 주셨는데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하나님이 마음아파 하시면서 그들에게 돌라와 야일을 통해 평화의 시대를 주시고, 온갖 하나님의 축복과 평화를 마음껏 누리는 은혜를 주셨다. 

이중적인 의미에서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에 닥친 부정적인 상황도 암시한다. 30명의 아들이 있다는 것을 기드온의 허물을 답습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야일이 계승한 것이다. 나귀 30, 성읍 30으로 대변되는 풍요는 부를 추구하는 이스라엘의 위험을 함께 보여준다. 

소사사 시대에 이 시대 합쳐 45년 간 평안이 주어진다. 이스라엘의 본성이 바뀌거나 죄됨이 바뀌는 시간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세속적인 가치관에 노출되었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평안의 시기가 육체적인 기회로 변질이 되고 나태함으로 흐르면서 이스라엘은 또다시 옛날 모습으로 회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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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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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실상이지만 그들의 죄가 우상숭배라는 것, 일곱 우상신들의 목록이 등장하고 있다. 7번의 사사들의 이야기 보면 이스라엘은 점점 더 악해지고 더 나빠졌다. 가나안 이방신들이 얼마나 깊이 침투되어 있는지 이전의 신은 바알과 아스다롯이었는데 전에 비해 신들의 이름이 구체적이고 많아졌다.

우상을 신상, 나무조각을 세워놓고 절하는 것만 생각마라. 세상적인 가치관과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바알과 아스다롯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잘 될 수만 있으면 시돈 사람의 것이든 모압이든 암몬이든 뭐든지 다 받아들이고 온갖 이방신의 가치와 사고방식을 다 받아들인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아무 구별이 없어졌다. 

더 악해진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이 진노하셨다. “진노”라는 표현은 사사시대 옷니엘 때 한번 나오고 이제까지 안 나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입다시대에 동일하게 표현하시면서 진노하셨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한 나라에 팔았는데 이번에는 블레셋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팔아 남서쪽과 북동쪽 양쪽에서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겪게 한다. 

이스라엘은 암몬과 블레셋 휘하에서 18년간 압제를 당하게 된다. 반복 패턴상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부르짖음이 오는데 10절의 부르짖음은 이전과는 좀 다른 부르짖음이다. 자신들이 바알을 섬겼던 죄를 범했고 이렇게 자신들의 죄를 인정할 만큼 구체적인 회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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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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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죄를 인정할 뿐 아니라 담담히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림과 동시에 이방신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만 섬겼다. 이런 구체적인 행위의 결단까지 보이고 있다. 이것 역시 이스라엘이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이 이스라엘의 회개에 대해서 하나님의 반응도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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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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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먼저 책망하신다. 여기서 일곱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했다 말씀하시는데, 과거에 이스라엘이 이방나라들의 공격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하나님이 곧바로 응답하시고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이다. 이런 함께하신 역사가 있는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신의를 버렸다. 하나님을 향한 이들의 의리, 신앙은 과거 그때뿐이었다. 

우리의 지나온 삶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 승리, 동행하심, 도우심, 채우심, 위로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신의가 과거 지점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만나와 기적과 같은 요소가 없이는 하나님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어린 신앙의 모습이 혹시나 우리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이런 어리고 변덕스러운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답지 않은 말씀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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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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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냉소적인 말투다. 자신들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서 부르짖었던 그 부르짖음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시는 것이다. 한낱 이 위기를 모면하고 벌을 면하기 위한 부르짖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우리 신앙도 외형적으로는 예배도 드리고 헌신도 충성도 하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회개도 하지만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마음중심에 있는 의도와 목적이다. 우리가 예배하고, 회개하고, 충성을 보이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벌을 면하기 위해 단순히 꺼림칙함을 없애기 위해 한다면, 예배 안 드리면 하나님이 내 마음의 소원을 안 들어주실까 봐 드린다면 하나님이 그 중심을 간파하시고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에 분노를 표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포기할 수 없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본심,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이 있다. 16절 끝부분이 바로 하나님의 본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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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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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수고를 보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 우리가 붙들고 구하고 찾는 분이 이런 분이시다. 

하나님이 화를 누그러뜨리고 근심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전과 다르게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행위로도 돌이키는 진심어린 회개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 마음 가운데 있는 본심, 이스라엘을 향한 풍성한 긍휼, 변하지 않는 신실하심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근심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본성이 안 바뀌어서 살 만하면 또 하나님을 버릴 것이고 하나님이 그걸 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본심 때문에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의 고통을 이렇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은 그들의 회개와 부르짖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들을 붙잡고 계시는 열심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열심이 있고 진정성이 있고 간절함이 있다 한들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지날 수는 없다. 그 풍성한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를 붙잡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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