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하11.성령 따라 주 임재 안에 거하며 주님과 하나됨으로 사는 삶의 길에서 곁길로 나아가-수렁에 빠짐..간음-살인 저지름
첨부파일 :

삼하11장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254 (내 주의 보혈은) ]...밧세바 사건 시초는 47-8세경(BC992), 나단의 경고는 49-50세경(BC990)으로도 말함..삼하15장 참조


***15세,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받음--20세, 골리앗죽임--30세(BC1010) 유다 왕-->37세(BC1002) 이스라엘 왕으로서, 예루살렘 점령-->67세때 인구조사(BC973)-->70세 임종(BC970....[임종 맞기 전에 솔로몬을 등극 시키고(BC971).. 유언 남김])....아람/1차 암몬 원정 전쟁(BC.993.47세경)--밧세바 취함(BC992. 48세경 --BC991.우리야 살해[/암몬 수도 랍바 점령]--BC990.나단 경고) ---(왕좌 원하는) 압살롬 반역 결심부터 반역 봉기까지의 기간은 총11년 : "누이 다말을 암몬이 범함(BC990.)"에 대한 왕의 징계를 압살롬이 기다림(2년)-암논 살해후 그술 도피(3년)-에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왕의 부름 기다림(2년)-부자간 재회후 반역 거사 위한 민심을 얻기 위해 여건 조성 기울임(4년)-->헤브론에서 반역 기치 세움(BC.979)까지 11년...그러므로 암논의 다말 범함은 다윗의 밧세바 범함--임신/우리야 죽인 후 나단이 경고한 바로 그 시점 전후였다고 볼 수 있음..***거듭난 믿는이가 제 위치 떠날 때!! 사단이 틈 타게 됨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음!!!


....거듭난 믿는이 그대는 오늘 주 앞에 엎드려 여쭈며 그분의 발에 입맞추었는가---

@@(다윗이 먼저 자기가 있어야 할 그 자리 "주의 발 앞에" 엎드림이 선제적으로 실행되었다면 좋았을 것...반드시 그랬어야 했음)) @@

......창조 이후 바로 사람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겼다.... 왕이 까닭없이 왕이 있어야 할 전장을 지키지 않았을 때, 맏아들 암논이 자기 모든 동생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 왕자 압살롬이 왕에게 충성하며 돕는 그 자리를 지키지 않았을 때 문제가 생겼다.,,,, 사실 사람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함은,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1-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까지 모든 것은 혼돈했으나 하나님이 말씀으로 빛부터 시작해 공허한 그 세상을 하나씩 채우기 시작하셨고 그렇게 모든 것의 자리를 찾아 주신 뒤 말씀하셨다. “좋다!”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태초에 세상에 질서를 세우셨지만....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자기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 자리를 욕망하면서 세상의 질서는 깨지고 죄가 스며들었다. 그렇게 무질서가 시작되었으니.... 이때 피조물은 무질서의 관성을 멈출 능력이 없었고 그렇게 시작된 무질서는 사사시대에 극에 달한 듯 했으나 다윗의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지금도 더 괴악해져만 가는 것 같아 보인다.

.....안타깝게도!!..대리왕"나기드" 다윗은, 어찌 보면 밧세바 사건에서부터 압살롬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겪었지만, 정작 그 사건들의 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 임재 앞에 나아가!!] 깊은 성찰따른 업그레이드 된 전존재의 회개와 결단은 아직 없었던듯 하다.

......."그 원인의 기저에는 [피조물로서의]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떠나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자 함, (=내 인생 내것인데, 누가 감히!!) 근저에 도사리고 있는 바 "반역의 마음 = 제 소견에 좋아 보이는(옳은) 대로, = "타락한 죄성/자기 자아를 신과 우상 삼음 = 중독!!"이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예루살렘 복귀에 이르는 과정과 그 이후의 성경 기록에서 보여주고 있듯이...주님께서 어찌하기 원하시는지를 여쭈지 않았고 보여지는 상황만을 염두에 두고 그에따라 유익 추구하려는 사람의 지혜따라 명령내리고 있었고.(환궁에 참여함으로써 지분/발언권 확보 하려는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보고서는, 오히려 (자기를 위해!!) 정략적으로 유다지파에게 우선권 두어 앞세우며-아마사를 총사령관 삼고.). , 예루살렘 환궁 직후에는!! 주께 먼저 감사제를 드리지도 않았으며 그 상태에서, 압살롬의 잔재로 여겨 후궁들을 "가혹하게" 자기를 위해 자의적으로 처리하고 있었으니....제 위치를 떠난 "하나님 자리에 앉은 반역자"로서 행함이었다.....여기서 연달아, 제 위치를 벗어난 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에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분이 계시니,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은 모든 상황과 변수에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며 무질서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세상을 붙들고 계셨다..... 그렇게 이 반역자들, 이 악한들, 이 못난 이들을 사용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고 계셨다. 

오늘 말씀을 통해 확인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자리에서 말이다.

세바처럼, 아마사처럼, 아비새처럼, 요압처럼, 백성들처럼 그리고 다윗처럼 자기 뜻을 좇아 깊고 어두운 사망의 음침한 굴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 자리로 뚜벅뚜벅, 담대하게, 용기 내어 가도록 하자...그런 걸음 걷는 그대를 통해 하나님은 분명 계획하신 역사를 이뤄가실 것, 하나님 일하심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영광을 누릴 것인데,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길이기 때문,,

그리스도 예수, 그분은 악마의 유혹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셨다. 종교지도자들의 거센 심문에도 자리를 지키셨다. 무엇보다 십자가라는 그 자리도 뚜벅뚜벅 걸어가 지키셨다. 그렇게 그분은 모든 무질서의 잉태자들이 가야 할 자리인 음부에까지 가셔서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셨다. 이 사실을 미처 다 몰라 죄로 물든 자기 비참함에 통곡했던 베드로 사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모든 일의 전말을 알았고, 이후 그가 가야 할 길과 그가 있어야 할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아마 그때 그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앞서 자기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했을 것이다. 

(요한복음 13:36, 새번역)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갈5:16-26...*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16 But I say, walk habitually in the [Holy] Spirit [seek Him and be responsive to His guidance], and then you will certainly not carry out the desire of the [g]sinful nature [which responds impulsively without regard for God and His precepts]. 17 For the sinful nature has its desire which is opposed to the Spirit, and the [desire of the] Spirit opposes the [h]sinful nature; for these [two, the sinful nature and the Spirit] are in direct opposition to each other [continually in conflict], so that you [as believers] do not [always] do whatever [good things] you want to do. 18 But if you are guided and led by the Spirit, you are not subject to the Law. 19 Now the practices of the [i]sinful nature are clearly evident: they are sexual immorality, impurity, sensuality (total irresponsibility, lack of self-control), 20 [j]idolatry, [k]sorcery, hostility, strife, jealousy, fits of anger, disputes, dissensions, factions [that promote heresies], 21 envy, drunkenness, riotous behavior, and other things like these. I warn you beforehand, just as I did previously, that those who practice such thing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22 But the fruit of the Spirit [the result of His presence within us] is love [unselfish concern for others], joy, [inner] peace, patience [not the ability to wait, but how we act while waiting],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23 gentle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24 And those who belong to Christ Jesus have crucified the [l]sinful nature together with its passions and appetites.  25 If we [claim to] live by the [Holy] Spirit, we must also walk by the Spirit [with personal integrity, godly character, and moral courage—our conduct empowered by the Holy Spirit]. 26 We must not become conceited, challenging or provoking one another, envying one another.]


===다윗과 밧세바

1.  그 해가 돌아와(BC990)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다윗은 아마도 47세 즈음..제2차 암몬 원정 전투...최종 마무리까지 3년 넘게 걸렸음]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그대로 있더라"상태에서는 음욕이 발생된다..아무 이유없이 왕으로서의 본연 자세에서 뒤로 물러나고, 37명의 군장들만 보내고 있음 = 태만-자만-방만하여 곁길로 나감...낮잠(씨에스타) 즐기고 있다!!...조심하라, 진정한 쉼이란 해야할 일 마침후에라야 온다.."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자세가 중요하다!! 몸이 고달파야 죄에서 멀어진다!!).....증거궤가 원정군대와 함께 움직여 나아가 랍바근처에 머물러 있는데 목자장으로서 직무유기, 동행하지 않고 있었다.

......그대는 그대가 선택한 바 그대의 반쪽으로 짝지워주신 사람, 즉 남편이나 아내를 구주께서 그분의 반려된 자 사랑하심만큼 참되게 사랑하기를 배워 실천궁행해야 하리라...(유일한 남편이신 구주께서 그 어떤 믿는이에 대해서도 그분의 독특-유일한 아내로서 일편단심 전심전력 다해 목숨까지 내어주심으로써 사랑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고 계심을 참되게 배워야 한다!!)

......[약1:14, 15...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자는 동안, 원수가 가라지 뿌렸다]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그때만, 주관적으로 그렇게 보였음을 의미--조명빨....사울이나, 아비가일의 아름다움은 타고난것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느낌조차 분명히 경계하라!!, 주 이름 부르라...."주 안에 거하라"

......보라 거듭난 믿는이 참 제자요 그리스도의 증인/대사, 하나님 자녀요 그리스도를 사는 그대 주변에, 그 얼마나 화려하게 치장하고 도발적 자태로 나긋나긋하고 향기롭고 농염한 자태로 육정적 매력 뿜어내어 말초적 본능 자극하는 오늘의 사탄마귀의 주구로서, 요부와 탕부, 밧세바들과 보디발의 아내가 들끓는지...그대의 이목구비에 십자가(보혈-성령-말씀) 처리를 함으로써 그리스도가 넘쳐나야 할 바!! 주께서 사용하시기에 합당하게 하라....(바로 그 다윗은!! 말년에 이르러서는!! 늙은  다윗의 침소 시녀로 섬기는 수넴여자 아비삭을 진실되이 존중히 여겨 합당히 소중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잘생긴 요셉에게[그러나, 요셉은 여호와께 올인했고 주님 임재 없이는 죽음뿐임을 명심했고, 그 자리를 적극적으로 피해 도망가고 있다!!] 추파를 던졌고, 강제로 적극적으로 옷을 벗기려던 보디발의 아내가 했던 유혹과 다윗에게 넌지시 보여주었던 밧세바의 그 유혹의 독과는 실상 똑 같은 독과였고 동일한 유혹 패턴이었다...그러나, 방심한 다윗은 자의적으로 넘어감을 선택했다!!) ......[easy-going하게 하고 계셨기에, 당당한, 자긍심 가득한 다윗에 대해] 더 매력적, 매혹적, 탐스럽게 보였고, 그렇게 이끌렸을 다윗으로서는!!, 밧세바가 아니라 그 어떤 여인이었다해도 무방비 상태였기에 넘어갔을것이나!!, 주님은 또 다른 다윗인 그대로 하여금!! 교훈 받게 하고 싶으셨다!!...어쩌면, 더 밧세바가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있는바!! 육을 따르는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세상의 자랑 등 세상 가치 추구 태도(숨은 동기-적극적 유혹)를 따르는 자마다 곧 뒤이어 (죄악 범함의 변명 거리 탐색) 더 깊고 넓은 함정에 빠지게 될지니, 그런 무가지한 헛된 시도를 멈추라....그럴 시간에 오히려!! 절대적으로 주님만 바라보라!! 오직 성령 안에서 말씀-보혈-성령따라 절대적으로 주 임재로 살기를(찬송-찬양, 묵상-암송, 회게-자복, 중보-중재-축복 기도) 추구하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뻔뻔스럽다...공공복리 위한 권력을 사욕 위해 오남용-악용하고 있)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하나님의 백성)의 딸이요(조부는 아히도벨) 헷 사람 우리아(=여호와, 나의 빛)의 아내 밧세바(밧수아..맹세의 딸)가 아니니이까(= 남의 아내를 어찌 관심 가지십니까!!) 하니....엘리암, 우리아 모두 37인 군장들임..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공개적으로 보란듯이 당당하게!! 죽을정도로 때려도 반드시 만족할만큼 피 빨고나서야만 떨어지는 거머리 같이 집요하고, 부끄럼 무릅쓰고 오히려 뻔뻔스럽기조차 한 것이 죄의 특질이다!!...우월적 지위 오남용-악용 = 가스라이팅..:: 죽게 되는 자리인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 같이 절대권력 중독 마비 상태)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반복적으로 가스라이팅하여 고분고분해지도록 기를 죽이고!!)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월경기간 끝난 첫날(임신가능성 없는 날)임을 확인하고)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남성3대죄악)정욕-탐심-나태//(여성3대죄악)교만-시기-질투.....다윗의 취향이 유부녀에게 끌리고, (이름도 안부르고) 해치우고 모르는척 하는 경향..

5.  (몇개월 후)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다윗 바로 당신의 아이입니다) 하니라

***[214.나주의도움받고자]

((타락한 옛자아+육신/죄성 연쇄 작동 악순환...간음-살인의 고의적 범죄후 2년여간 영적 교통/예배는 어땠을까??))***[마5:23, 24...“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오늘 있다가 내일 소멸될바, 중립적인 것들을 오남용-악용하여 타락의 심도를 더 깊게 만드는 세상불신영혼들처럼,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 추구의 멸망의 대로의 곁길로 빠지도록 미혹-현혹-유혹하는 영적 교만-방만-태만-자만-오만-자기기만에 자신의 심령을 방치하지 말지니...경계하고 피하여야 할바, 가장 끔찍하고도 불행한 것은 " 무한히 다정하고 친밀한 사랑의 하나 됨 안에서 친밀한 주님께서  그 빛난 얼굴을 돌리심 = 전존재의 죽음 경험"일 것이다...다름 아닌 사랑-기쁨-화평의 주님과 하나됨, 곧 성령의 감화-감동-교통-열정적 주님의 사랑-그 친밀한 넘쳐나는 주님 임재 느낌을 잃어버릴 수 있음이니!!]

......그러나, 기억하라...(주위 영향 받아) 격정에 들뜬 상태에서보다, 일상의 고요함 가운데서야말로 주님과의 하나됨 그 영성의 참됨여부와 그 차원의 어떠함은 드러나는 법이다!!

.......**성령께, 그대 마음의 주인으로서 사시도록 그대 마음 안방 보좌를 내어드렸는가?.. 그렇다면, [참된 주도 순서는 거듭난 영혼에 내주하시는 주님께서 그대의 몸조차 통치하심이 합당하리라!!..]...주님께 몸 컨디션 이상으로 인해서나 그 어떤 갈등의 파도 일어남 느낌에 그대의 거듭난 영혼이 [성령 충만 되지 못하도록??] 제한 받고 부정적으로 영향 받는 것은 참 생명 작동 순서가 아니니 영->혼->몸의 하나님나라 질서대로 주장해주십사 요청하라, .....하여!!, 그 어떤 섭섭함-속상함-어색함의 느낌 일어나는 순간마다, 주 이름 부르고 조용히 "I Love You, Lord" 찬양하라!!....즉각적으로 심령에 깨닫게 하시는 바를 그대로 가지고 (아파하시며 슬퍼하시며 눈물짓는) 주께 나아가 엎드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아래!! 부끄러움 무릅쓰고 솔직함과 정직함으로 [마음의 그 모든 부담을 숨김없이] 토설하여 아뢰라... 혹시라도!! 그대의 문제가 주님의 사유하심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피해 받은 상대방이 있다면, 그 피해끼친 상대방에게 갚아야 하는 빚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잊지말고!!...무엇보다도 먼저 주께서 지시하고 이끄심 그대로 따름으로써 그 어떤 요구라도 감수하여 지불하고(갚아내도록 주님이 주님 부요하심으로부터 차근차근 내어주시리라), 동시에 (주께서 이끄심따라 지체하지말고 솔직하게 대응할 바, 빚진 상대방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상대방으로부터 닥치게 될 바, 마땅한 비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상황을 더 악화시키도록(악순환의 고리 형성 방지!!) 그냥 방치하여 내버려두지는 말라...주님 신뢰하라!!)...결코 두려워 하지말라...더 이상 짐짓 추정-두려워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거짓말하거나 기만하려 하지 말라....자의적으로 조작하려는 함정에 갇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주께서 심판-징계하심의 사람 막대기=인생 회초리(고난-환난, 후욕/능욕/수치) 감수하라, 반드시 마침내 주님의 안위하심의 날 오게 되리니!!*****

6.  ○(오 비열하고도 비열한 꼬리물고 이어지는 죄의 특성이여!!)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  (다윗과는 정반대의, 올곧은 절대 경건 지향!!)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18.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19.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20.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22.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23.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24.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25.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26.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

---------

[NASB]제11장


1.  Then it happened in the spring, at the time when kings go out [to battle,] that David sent Joab and his servants with him and all Israel, and they destroyed the sons of Ammon and besieged Rabbah. But David stayed at Jerusalem.

2.  Now when evening came David arose from his bed and walked around on the roof of the king's house, and from the roof he saw a woman bathing; and the woman was very beautiful in appearance.

3.  So David sent and inquired about the woman. And one said, "Is this not Bathsheba, the daughter of Eliam, the wife of Uriah the Hittite?"

4.  And David sent messengers and took her, and when she came to him, he lay with her; and when she had purified herself from her uncleanness, she returned to her house.

5.  And the woman conceived; and she sent and told David, and said, "I am pregnant."

6.  Then David sent to Joab, [saying,] "Send me Uriah the Hittite." So Joab sent Uriah to David.

7.  When Uriah came to him, David asked concerning the welfare of Joab and the people and the state of the war.

8.  Then David said to Uriah, "Go down to your house, and wash your feet." And Uriah went out of the king's house, and a present from the king was sent out after him.

9.  But Uriah slept at the door of the king's house with all the servants of his lord, and did not go down to his house.

10.  Now when they told David, saying, "Uriah did not go down to his house," David said to Uriah, "Have you not come from a journey? Why did you not go down to your house?"

11.  And Uriah said to David, "The ark and Israel and Judah are staying in temporary shelters, and my lord Joab and the servants of my lord are camping in the open field. Shall I then go to my house to eat and to drink and to lie with my wife? By your life and the life of your soul, I will not do this thing."

12.  Then David said to Uriah, "Stay here today also, and tomorrow I will let you go." So Uriah remained in Jerusalem that day and the next.

13.  Now David called him, and he ate and drank before him, and he made him drunk; and in the evening he went out to lie on his bed with his lord's servants, but he did not go down to his house.

14.  Now it came about in the morning that David wrote a letter to Joab, and sent [it] by the hand of Uriah.

15.  And he had written in the letter, saying, "Place Uriah in the front line of the fiercest battle and withdraw from him, so that he may be struck down and die."

16.  So it was as Joab kept watch on the city, that he put Uriah at the place where he knew there [were] valiant men.

17.  And the men of the city went out and fought against Joab, and some of the people among David's servants fell; and Uriah the Hittite also died.

18.  Then Joab sent and reported to David all the events of the war.

19.  And he charged the messenger, saying, "When you have finished telling all the events of the war to the king,

20.  and if it happens that the king's wrath rises and he says to you, ' Why did you go so near to the city to fight? Did you not know that they would shoot from the wall?

21.  'Who struck down Abimelech the son of Jerubbesheth? Did not a woman throw an upper millstone on him from the wall so that he died at Thebez? Why did you go so near the wall?'-- then you shall say, 'Your servant Uriah the Hittite is dead also.' "

22.  So the messenger departed and came and reported to David all that Joab had sent him [to tell.]

23.  And the messenger said to David, "The men prevailed against us and came out against us in the field, but we pressed them as far as the entrance of the gate.

24.  "Moreover, the archers shot at your servants from the wall; so some of the king's servants are dead, and your servant Uriah the Hittite is also dead."

25.  Then David said to the messenger, "Thus you shall say to Joab, 'Do not let this thing displease you, for the sword devours one as well as another; make your battle against the city stronger and overthrow it'; and [ so] encourage him."

26.  Now when the wife of Uriah heard that Uriah her husband was dead, she mourned for her husband.

27.  When the [time of] mourning was over, David sent and brought her to his house and she became his wife; then she bore him a son. But the thing that David had done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

사무엘하 11장 (개요)

다윗은 사울이 전사했다는 비보에 접했을 때 “이 일을 가드에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도 전파하지 말지어다”라고 슬피 말했었다(삼하 1:20). 

그 슬픈 노래는 본 장에 나오는 슬픈 기사 곧 다윗이 범한 간음과 살인에 적용함이 더 적절할 것이다. 우리는 이 기사에 덮개를 씌워 감추고 싶은 심정이다. 그랬으면 여기 기록된 다윗의 악한 행위가 알려지지도 않고 소문나지도 않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숨길 수도 없으려니와 숨겨서도 안 된다. 성서는 성서 자체가 극구 찬양하는 자의 잘못까지도 기술하는 신실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서 기자의 성실성을 대변하는 본보기이며 성서가 어느 특정 무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성서에 이런 것까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우리를 교훈하기 위함이며 선 줄로 생각하는 자를 넘어지지 않게 조심시키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로써 타인의 해를 우리의 경고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기사로써 죄를 짓는데 대담해지고 더 완악해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자에게는 이 기사가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고후 2:16). 그러나 이 말씀으로 깨달음을 얻어 자기 자신에게 대해 거룩한 질투심을 느끼고 죄에 대해 항구적 경각심을 높이게 된 자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된다. 우리가 여기서 보듯이 다윗이 범한 죄는 매우 중한 죄이며 죄질이 아주 나쁜 죄이다.

1.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범한다(1-5).

2. 그는 자기가 뿌린 불의의 씨를 우리아의 소생으로 만들려는 밀계를 추진시킨다(6-13).

3.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암몬 족속의 손을 빌어 우리아의 살해를 도모하는데, 이 음모는 적중했다(14-25).

4. 그는 밧세바를 아내로 데려 왔다(26, 27). 이것이 다윗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게 산다는 사람인가? 그의 처신이 이렇게 변함은 어쩜인가? 그의 행동은 아히멜렉 제사장 앞에서 행한 것보다 더 악하지 않는가? 금이 어찌하여 이렇게 빛을 잃었는고? 이 글을 읽는 자는 아무리 선한 자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시면 어떻게 되는지 깨달을진저!

-----------

다윗의 범죄(삼하 11:1-5)

Ⅰ. 다윗의 영광이 나온다(1절). 다윗은 암몬 족속과의 전쟁을 속행함으로써 영광을 얻는다(2절). 

우리는 이제껏 다윗의 업적을 관찰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는데 여기에 나오는 큰 승리에서 기쁨을 느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큰 승리의 아름다움은 곧 죄로 더럽혀지고 추한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의 강타에서 지혜와 용맹을 주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전장에서 암몬인을 패주시켰었지만 해가 바뀌자 곧 더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그 나라를 황폐화시키며 전일 자기 사신의 수모에 대한 설욕을 하려고 한다. 

암몬족의 수도 랍바는 완강한 저항을 하면서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다. 다윗이 죄에 빠진 것은 바로 랍바성을 공략하고 있을 때였다.

Ⅱ. 다윗의 치욕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욕망의 포로가 되어 정복당했다. 그가 범한 죄는 간음죄로서 제 7계명을 어긴 것이었다. 

(족장시대의 재판으로는) 간통죄는 극형에 해당하는 죄였고 재판장에게 벌받을 죄였으며(욥 31:11),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고 상함과 능욕을 받고 다른 어느 죄보다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하는 죄(잠 6:32, 33)였다.

1. 이 간음죄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 보자.

(1) 그는 업무에 대해 태만했다. 

여호와의 전쟁을 하면서 자기 부하와 같이 전장에 나가 있어야 할 때 그는 고생과 걱정을 남에게 맡기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다(1절). 

아람인과의 전쟁에서는 친히 출정했던 그였다(10:17). 그가 전군의 총수로 자기의 사령탑에 나가 있었더라면 이런 유혹을 피할 수 있었을 터였다.

(2) 그는 안일을 탐하고 게으름을 마음껏 피웠다. “저녁 때에 다윗은 그 침상에서 일어났다”(2절). 

자기 향상을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무슨 일로 시간을 보내야 할 그가 침상에서 한 나절을 낮잠으로 소일했다는 것부터가 화근이었다. 

환란날에는 아침 저녁 뿐만 아니라 낮에도 기도하곤 하던 다윗이었다. 

그 날 낮에 기도를 궐한 것은 두려워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게으름은 유혹자에게 큰 기회를 만들어 준다. 시궁창 곁에 섰으면 오물이 묻기 마련이다. 

나태한 자의 침상은 왕왕 욕망의 침상으로 판명된다.

(3) 그의 발길과 시선은 배회했다.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아마 율법을 따라 모종의 의식적 오염을 세정시키기 위해 목욕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와의 경우에서와 같이 죄는 눈을 통해 왔다. 그는 기를 쓰고 그 여인을 보려고 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시 119:37)라는 기도대로 행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또 자기 아들의 경고대로 행하지도 않은 셈이다. “너는 포도주가 붉을 때 그것을 보지 말라”(잠 23:31). 

그는 욥과 같이 “자기 눈과 언약을 세우지 않았거나”(욥 31:1) 아니면 그것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2. 죄의 여러 단계. 그는 밧세바를 보자 즉시 정욕이 동했다.

(1) 그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탐문했다(3절). 이것은 아마 그 여인이 미혼이라면 아내로 데려오려는 의도에서 한 짓이었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 여러 아내를 취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유부녀라면 달리 흑심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2) 부패한 욕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욱 맹렬해졌다. 그는 그녀가 유부녀라는 것과 누구의 아내라는 것까지 보고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부르러 사자를 보냈던 것이다. 그랬다고 해도 그는 그 여인을 동반하여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자신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만 지녔을 것이다.

(3) 그러나 그 여인이 오자 그는 “더불어 동침했다.” 밧세바는 쉽사리 몸을 허락했다. 

이는 다윗이 위대한 인물이었고 인자심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 같은 인물이 하는 일은 죄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죄의 길이 얼마나 내리막길인지 명심하자. 사람이 일단 악을 행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멈출 수가 없다. “다툼의 시작”처럼 정욕의 시작도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과 같다”(잠 17:14). 

그러므로 귀찮게 간섭하기 전에 중단하는 것이 지혜롭다. 미련한 파리는 날개 짓에 열중하지만 촛불 주변에서 놀다가 결국 자기 생명을 날려버린다.

3. 이 죄를 가중시키는 여러 가지 사실.

(1) 그는 노년에 접어들었다. 적어도 쉰은 넘어섰을 것이다.(48세경!!) 혹자는 그 나이를 더 많이 보기도 한다. 

젊은이라면 몰라도 초로의 늙은이가 왕성한 정욕을 느낀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2) 그에게는 자신의 처첩이 많이 있었다. 12장 8절에서는 이 점이 강조되고 있다.

(3) 그는 우리아에게 몹쓸 짓을 했다. 우리아는 다윗에게 소중한 자 중 하나였고 명예와 덕을 겸비한 자였다. 

우리아는 다윗이 가 있어야 할 전장의 고지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군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군주와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4) 그가 타락시킨 밧세바는 평판 좋은 귀부인이었다. 

그녀가 다윗에게 이끌려 악행에 휩쓸려 들기 전에는 틀림 없이 자기의 순결을 보존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릴” 정도로 악행을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잠 2:17). 

아마 이 세상에서 다윗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그녀를 함락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간음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더럽힐 뿐만 아니라 남의 영혼에게도 최대의 피해를 준다는 것을 명심하자.

(5)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정의의 칼과 법의 시행을 위임받은 왕이었다. 

그는 다른 범법자 특히 간음자에게 법을 추상같이 시행해야 할 자였다. 간음자는 법에 의해 처단될 범법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시행자 자신이 그런 죄를 범한다는 것은 다른 행악자들에게 공포가 되기는커녕 행악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죄의식을 느끼는 터에 무슨 낯으로 남의 죄를 책망하고 범할 것인가?(롬 2:22 참조) 

이 죄를 가중시킨 것을 말하려고 하면 아직 얼마든지 더 있다. 다윗의 이 범죄에 대해 단 한 가지 변명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딱 한 번 그랬다는 것뿐이다. 

간음은 그의 관행이 아니었다. 시험이 엄습함으로 말미암아 말려 든 것뿐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이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다”(렘 5:8)고 불평했지만 다윗은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하셨듯이 꼭 한 번 그를 떠나사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셨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로 자기 심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게 하셨다(대하 32:31). 

만일 다윗이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하사엘처럼 “무엇이라고요? 주의 종이 개니이까?”하고 항변했을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날마다 시험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며 시험을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

자기 죄를 은폐시키기 위한 다윗의 간계(삼하 11:6-13)

우리는 우리아가 암몬족 토벌전을 수행하느라고 수 주간이나 아내 곁을 떠나 있었으며, 그 원정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밧세바의 임신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밝히 드러내게 될” 터였다(고전 4:5). 

우리아가 돌아와 임신한 아내를 보면 얼마나 모욕감을 느낄 것인가!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상을 할 수 있다.

1. 우리아는 자기 아내를 고소하여 율법대로 돌에 맞아죽게 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남편 특히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남편은 투기하여 분노하며 이렇게 피해를 입은 자는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는 때문이다(잠 6:34). 

밧세바는 이 점을 염려하여 다윗에게 자기의 잉태를 알렸고 다윗의 보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녀는 다윗이 만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면(이 얼마나 왕권의 남용인가!) 몸을 허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벌받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가망만 있으면 누구나 용기가 나서 죄지을 것이다.

2. 우리아가 법으로는 다윗을 고소할 수 없으므로 달리 복수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반란을 일으킬 것도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자기 신하의 아내를 범하여 그들의 격분을 사고 급기야 자기 왕관까지 잃는 예는 적지 않다. 

이런 이중적 화를 방지하기 위해 다윗은 태어날 아이를 우리아 자신의 소생으로 은폐시킬 궁리를 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아를 소환시키려고 사람을 보낸다. 이것은 일단 돌아오면 하루나 이틀쯤 자기 아내와 머물게 하려는 계산에서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Ⅰ. 음모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우리아는 전선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싸움의 어떠한 것 즉 랍바 공략의 경과를 다윗에게 보고하라는 것이었다(7절). 

이와 같이 다윗은 자기 마음 속에서는 추호도 생각이 없으면서 자기 군대에 대한 일반적 관심 이상의 것은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만일 그의 마음에 별다른 음모만 개재되어 있지 않았다면 전황 보고쯤이야 우리아보다 훨씬 미미한 존재가 급사로 파견되어도 괜찮을 터였다. 

다윗은 자기 흉계를 은폐하기에 필요할 정도로 우리아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은 뒤 그를 자기 집으로 보냈다. 

우리아가 자기 소시의 아내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윗은 뒤따라 음식까지 하사했다(8절). 

첫날 밤은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 먼 길을 달려온 우리아에게는 음식보다 잠이 더 필요했기에 왕궁 수비병 숙소에서 밤새껏 자버렸기 때문이다. 

다음날 밤 다윗은 우리아를 취하게 했다(13절). 

그가 우리아를 유쾌하게 만들어 정도 이상 과음하도록 유혹한 것은 우리아로 하여금 자기 맹세를 잊게 하여(11절) 집으로 돌아가 자기 아내와 동침케 하기 위해서였다. 

의식이 없어질 만큼 대취케 할 수만 있었다면 다윗은 그를 그의 집 침상으로 떠메고 가라고 명령했을 터였다. 어떤 의도에서든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는 것은 매우 악한 일이다. 

이웃을 취하게 하는 자는 화있을진저!(합 2:15, 16) 다른 사람의 손에 취함의 잔을 쥐어 주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떨림의 잔을 쥐어 주실 것이다. 

사람에게서 이성을 빼앗는다는 것은 돈을 강탈하는 것보다 더 악한 행위이며, 사람을 죄중에 끌어들인는 것은 다른 어떤 고통속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나쁘다. 

모든 선한 자들 특히 모든 행정관들은 과음하는 자들에게 권면하고 절제시키며 잔을 돌리지 않음으로써 이 죄를 방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술취함을 촉진시키는 것은 악마의 일을 행하는 것이며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하는 셈이다.

Ⅱ. 이 흉계는 자기 처와 자지 않겠다는 우리아의 굳은 결의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 

그의 아내는 다윗 못지 않게 그의 남편에게 돌아오도록 채근하고 강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아는 연 이틀 밤을 왕궁 위병들과 같이 잤다(9, 12절).

1. 혹자는 우리아가 자기 아내의 왕궁 출입 소문을 듣고 의심한 끝에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아가 그런 식으로 의심했다면 요압에게 갖다 주라고 부친 다윗의 편지를 틀림없이 뜯어보았을 것이다.

2. 우리아가 눈치를 챘든 못챘든 간에 그가 이런 의사를 굳히고 끝까지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일이었다. 

이것은 다윗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간음을 위장하려는 계교가 실패함으로써 다윗으로 하여금 양심의 소리를 듣고 깨달아 죄를 자백하고 참회케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렇게 행하신 것이다.

3. 이 보기 드문 극기와 금욕에 대해 우리아가 내세운 이유는 아주 고귀한 것이었다(11절). 

전우들이 전쟁터에서 야영하고 있는 터에 어찌 자기만 안일하게 자기 집 침상에서 자겠느냐는 것이다. 

법궤가 국내에 즉 다윗의 집 천막에 있는지 아니면 국외에 즉 요압의 병영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 

“요압과 이스라엘의 모든 용사들이 딱딱하고 불편한 잠자리에 누우며 비바람과 원수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데 어찌 나 혼자만 내 집에서 편안과 즐거움을 찾으리이까.” 

우리아는 결단코 그렇게 하지 못 하겠노라고 항변한다.

(1) 이 결심은 우리아의 폭넓은 마음을 증명했다. 

이로써 보건데 우리아는 단체적 섬김-충성-헌신 정신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담대하고 굳센 사람이었으며 관능의 즐거움에 극기하는 인물이었다. 

여러 사람이 곤란과 위험을 맞고 있을 때 자기만은 안온한 가운데서 편히 쉬거나 쾌락 속에서 딩군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수산성은 어지러운데 왕과 하만은 앉아서 술만 마셨으니(에 3:15) 이 또한 우리로서 취할 행동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가 부득이 어려움을 당할 때 자진해서 그 곤란을 감수해야 한다.

(2) 그의 이런 결심은 다윗의 양심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다윗은 우리아의 이런 결심에 가책을 받고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 가슴을 치며 통회해야 마땅했다.

① 다윗은 우리아 같은 용사를 야비하게 모욕하고 학대했던 것이다 

그는 왕과 왕의 나라를 위해 그토록 충정어린 사람이었으며 다윗 자기를 위해 그토록 엄격히 행동하는 자였던 것이다.

② 다윗 자신은 우리아와 달랐던 것이다. 

우리아는 국가의 어려움과 위험을 인식하고 합법적 즐거움을 멀리했음에 반해 국가적 위기와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윗은 불법적 쾌락조차 멀리하지 못했다. 

우리아의 지독한 극기는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 방종을 부끄러워하게 했다.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삼갈지니라” (신 23:9)는 것이 율법이었다면 우리아는 이 율법보다 더 엄한 것까지도 지켰음에 반해 다윗은 이 율법을 어겼던 것이다.

--------

우리아를 모살하는 다윗(삼하 11:14-27)

자신이 만든 아이를 우리아의 소생으로 돌리려던 다윗의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시일이 경과하면 우리아가 이 몹쓸 학대를 알게 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악마는 다윗의 귀에다 우리아의 복수를 방지하려면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속삭였고 다윗은 마음이 움직였다. 

다윗은 우리아만 없애버리면 자기나 밧세바가 안전할 것이고(고발자가 없는데 어찌 고발이 있을 수 있는가?) 게다가 거치장스런 우리아만 없다면 밧세바가 영원히 자기 소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음은 종종 살인을 부른다. 한 가지 악을 안전하게 은폐시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악이 필요한 때문이다. 

우리는 죄의 시초를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죄가 어디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윗의 마음 속에는 우리아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다윗이 그런 악한 생각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결백하고 용감하고 기개 있는 우리아는 자기 군주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군주의 손으로 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윗도, 밧세바도 범죄했다. 그런데 이 양인은 우리아에게 죄를 지었다. 이것은 그가 죽어야 할 이유였다. 다윗은 그가 꼭 죽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한다. 

이 사람이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다고 해서 가슴 아파한 자란 말인가?  그가 얼마나 변했는가! 

이 자가 자기의 모든 백성에게 공평과 정의를 행하던 인물이란 말인가? 그런 자가 어떻게 이토록 불의한 일을 할 수 있는가? 

육신의 욕망은 얼마나 치열하게 영혼과 다투며 그 전쟁에서 얼마나 가공할 파멸을 일으키는지 모른다. 

육욕은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강퍅케 하며 양심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에게서 모든 정의감과 염치심을 빼앗아버린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서(잠 6:32) 명철을 완전히 상실해버린다. 간음을 행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자이다. 

그러나 간음자의 눈처럼 살인자의 손도 숨기려고 노력한다(욥 24:14, 15). 어두운 일은 빛을 미워한다. 

다윗이 용감히 골리앗을 거꾸러뜨렸을 때 그 일은 공공연히 행해졌고 다윗 자신도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우리아를 야비하게 죽이는 일은 비밀리에 시행되어야 했으니 이는 그가 그 일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감히 자기가 한 일로 시인하려고 않는 일을 행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인가? 

독 있는 뱀답게 다윗의 마음에 우리아를 살해할 생각을 넣어 주었던 악마는 간교한 뱀답게 살해 방법까지도 다윗의 머리 속에 넣어 주었다. 

그것은 자기 종들에게 암논을 암살하라고 명령한 압살롬의 방법과도 달랐고 무고에 의해 나봇을 살해한 아합의 방법과도 달랐다. 

그것은 우리아를 적군 가까이에 최전방에 배치하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양심이나 세상 사람 보기에도 별반 치소꺼리가 되지 않을 터였다. 

왜냐하면 군인이 위험과 죽음을 대면하는 것은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아가 그 위험한 부서를 맡지 않는다면 다른 어느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싸워야 했다. 우리아로서는 소위 운수를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일 용감히 싸운다면 아마 전사하기 쉬울 것이고 그가 죽으면 그것은 명예로운 곳에서 죽는 죽음이 될 것이었다. 

군인이라면 명예로운 싸움터에서 죽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은 고의적 살인, 계획적 살해임이 분명하다.

Ⅰ. 다윗이 요압에게 보낸 명령은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선에 배치했다가 그를 적군의 손에 죽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14, 15절). 

이것이 바로 우리아를 제거하려는 다윗의 계교였고 그것은 그의 의도대로 성공했다. 이 살인의 나쁜 점은 여러 가지다.

1. 그것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는 시간을 두고 이 일을 심사숙고했다. 

또 그는 이 일에 대해 편지를 쓸 정도로 깊이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이 일이 시행되기 전에 취소 명령을 내릴 시간도 있었지만 그는 이 악한 계획을 고집했다.

2. 그는 우리아의 손으로 이 편지를 요압에게 전하게 했다. 이보다 비열하고 야만적인 일은 없었다. 

다윗은 우리아를 우리아 살해의 공범자로 삼았다. 우리아는 그 취지를 알아서는 안 될 편지를 가져가려고 할만큼 다윗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뢰를 받던 다윗이 이토록 악의를 품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3. 이 살인은 자기 왕과 국가를 위한 피살자, 자신의 충성심과 용맹을 이용하려 한다. 

우리아의 용기와 열성은 최대의 찬사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한데도 그 때문에 그는 보다 쉽사리 죽음을 당하게 된다. 

만약 그를 이렇게 위험한 전선에 배치하라는 명령만 없었던들 우리아는 요압이 위험한 데 보낼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최전선에 나갔다. 이 고귀한 정열의 불꽃이 그 자신을 불태워 버리도록 계획하고 이용한 것이 바로 이 살인의 가증하고 배은망덕한 점이었다.

4. 이 범죄에는 많은 사람이 연루되었다. 장수인 요압은 이 일을 행할 하수인이었다. 

그는 자기 부하 특히 훌륭한 용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수에게는 그 부하의 피가 얼마나 고귀한지 모른다. 그러나 요압은 이 일을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우리아를 사지에 버려두고 퇴각해야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양심상 그를 원조해야 마땅했다. 요압과 이 모든 자들은 우리아 살해의 공범자들이 되어야 한다.

5. 우리아 혼자만 죽는 것도 아니다. 그의 휘하에 있는 무리들도 그와 함께 멸절될 위험에 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판명되었다. 일부 군사들, 심지어 다윗의 심복들조차(그들의 생명을 그토록 아끼지 않은 다윗의 죄를 더욱 무겁게 하기 위해 다윗의 신복이라고 하고 있다) 우리아와 함께 엎드러졌다(17절). 

아니, 우리아를 원수에게 내어 줄려는 이 악행은 전군(全軍)에 치명적 결과를 줄 수도 있었고 랍바성의 포위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6. 이 일은 암몬인을 기쁘게 하고 의기양양하게 만들 것이다. 

암몬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로 맹세된 자들인데도 이 일로 크게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다윗은 사람의 손에 빠지거나 대적에게 쫓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삼하 24:13, 14). 그럼에도 그는 자기 신복 우리아를 암몬인에게 팔면서 자기 손의 불의에 대해서는 아무 뉘우침이 없다.

Ⅱ. 요압은 이 명령을 실시한다. 

그는 바로 그 다음 공격에서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부서에 배치시키고 농성군에게 격퇴될 경우에는 자기가 구원해 줄 것이라고 격려한다. 

이를 믿고 우리아는 불퇴전의 결의로 공격을 감행하지만 구원군은 이르지 않아 중과부적으로 그는 전사한다(16, 17절). 

요압이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편지만 믿고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1. 요압은 우리아가 모종의 중대 범죄를 저질러서 다윗이 이를 조사하기 위해 그를 소환했고 그를 공개적으로 처벌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그를 처형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2. 요압은 피 흘리는 죄를 범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즉 요압은 다윗도 자기처럼 무죄한 살인죄에 빠지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으며 아주 기꺼이 그를 도와줌으로써 계속해서 그의 총애를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악인이 타인의 악행을 보고 기뻐하며 그 악행을 방조하는 일은 보통 있는 일이며 그 타인이 종교계에서 저명한 사람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니면 다윗은 요압이 우리아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서 기어이 복수하려 한다고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야 정당한 명분이 있을 때는 왕의 명령이라도 논박하던 요압이 어찌 이런 일을 행했겠는가?(삼하 19:5; 24:3).

Ⅲ. 요압은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이 일의 하회를 보고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입은 수치와 손실을 보고하기 위해 특사를 즉시 급파했다(18절). 그러면서도 이 사건을 위장시키기 위해 사자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1. 그는 다윗이 그의 무모한 작전에 역정을 낼 것이며 왜 성벽에 그토록 가까이 접근했는지 힐문할 것이고 아비멜렉이 그런 식으로 공격하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느냐고 할 것이라고 가정한다(21절). 아비멜렉 기사는 사사기 9장 53절에 나오는데 아마 사사기는 사무엘 당시에 거룩한 역사의 일부로 출판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심지어 군인들조차 성경에 정통해 있었고, 성경 기사를 쉽사리 인용할 수 있었으며 치명적 전철을 밟지 말라는 훈계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태도에 우리는 찬사를 보내야 한다.

2. 그는 사자에게 우리아도 죽었다는 말로 다윗을 위안시키라고 넌지시 지시한다. 

이것은 사자는 물론이려니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다윗이 이 사실을 들으면 크게 기뻐하리라는 노골적 암시가 된다 

살인은 언젠가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그런 비열한 짓을 하는 사람은 자기 아랫 사람에게도 놀림감과 비난거리가 된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자는 명령대로 이 사실을 전달했다(22-24절). 사자는 농성군이 먼저 공격군에게 출격했다고 서두를 꺼내고 (“그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온고로”) 공격군이 용맹을 다해 반격했다고 묘사한 뒤(“우리가 저희를 급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우리가 저희를 황급히 퇴각하도록 밀어 부쳤더니) 성벽 위에서 쏜 화살에 큰 피해가 있었다는 가벼운 언급으로 보고를 끝낸다. “왕의 신복 중 몇 사람이 죽고 특히 유명한 장교 헷 사람 우리아도 전사자의 명단 서두에 있나이다.”

Ⅳ. 다윗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 보고를 받는다(25절). 

다윗이 노여워하지 않으니까 요압은 마음을 불편하게 가지지 않아도 된 셈이다. 

다윗은 요압의 지휘를 탓하지도 않고 성벽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우행을 범했다고 나무라지도 않는다. 다윗은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우리아가 제거되었으니 만사가 잘 된 셈이다. 그는 자기가 목적하던 바를 달성했으므로 그까짓 손실쯤이야 안중에도 없다. 

그는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는 변명으로 패전을 일축할 수 있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의 상사라는 말로 요압을 위로하면서 요다음 전투는 이기라고 당부한다. 그는 자기 죄로 전쟁 능력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하여 공격을 실패로 돌아가게 했으면서도 요압에게는 더욱 힘써 싸우라고 명령하고 있다.

Ⅴ. 그는 곧 우리아의 미망인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밧세바는 관습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되도록 단시일에 우리아를 위한 장례를 지냈다(26절). 그리고 나자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고 그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우리아의 복수는 그의 전사로 방지되었으나 결혼 뒤에 태어난 그 아이는 그들의 범죄를 세상에 널리 알린 셈이다. 

죄에는 수치가 따라 온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우리아의 일(왕상 15:5) 전체 곧 간음과 허위와 살인과 마지막의 결혼까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 

그는 이 일로 자신을 즐겁게 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죄를 보시며 미워하신다는 점을 유의하자. 

하나님께 가까운 자일수록 그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악한 죄가 된다. 딴 사람의 죄보다 그런 자의 죄는 더욱 더 배은망덕하고 패역하며 수치스럽게 간주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다윗의 본을 보고 힘을 얻어 죄짓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다윗처럼 죄짓는 자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떨며 범죄치 말고(시 4:4) 다윗의 흉내를 내어 범죄치 말자.

====

==호크마==

..=====11:1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 때가 되매 - 여기서 '해가 돌아서'란 말은 유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1월(아빕월). 곧 태양력으로 3, 4월이 다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Living Bible은 이를 '다음해 봄이 되어'(in the spring of the following year)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팔레스틴에서 겨울은 우기(雨期)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쟁의 시기가 아니나, 봄은 건기(乾期)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쟁에 적합한 시기이다(성경 총론, '팔레스틴의 기후' 참조). 따라서 지난번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승기(勝機)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계절 문제로 회군하였으나, 이제 다시 건기인 봄이 돌아와 제 2차 출정이 가능해진 것이다(10:14 주석 참조). 이렇게 볼 때, 여기서 '왕들의 출전할 때'란 말은 곧 팔레스틴의 봄, 다시 말해서 전쟁하기에 적절한 시기를 재차 의미하는 말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Keil, Lange, Josephus, 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신복 - 이에 해당하는 '에베드'(* )는 본래 '노예', '종'을 가리키는 말이다.9:2주석 참조. 그러나 여기서는 자신의 군주(君主)를 위해 마치 종과 같이 헌신하는 왕의 측근들, 또는 군사적인 관료들(2:12,13;10:1;출5:21;7:10;삼상 8:14, 15;18:5, 22. 23)을 의미한다(Lang, Keil & Delitzch, Pulpit Commentary). 즉 다윗은 암몬의 랍바 성이 험란한 요새지임을 알고 요압과 더불어 모략에 뛰어난 군사관료들을 파견한 것이다(Keil).

온 이스라엘 군대 - 원문에는 군대라는 말이 없고 단지 '온 이스라엘'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금껏 살펴보았듯이 이 말은 국가의 거사(擧事)를 위해 온 지파에서 소집한 이스라엘의 총병력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5:1;8:15).

암몬 자손을 멸하고 ...에워쌌고 - 10:6-14의 랍바 전투에 이어 랍바 제 2전투가 재개된 것을 가리킨다. 이 전세(戰勢)는 이스라엘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여, 이제 적의 수도인 랍바 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12:27-31).

랍바 - '큰 성'이란 뜻으로 암몬 족속의 수도이다(10:3 주석 참조). 얍복 강, 곧 현재의 와디 암만(Wady Amman)의 상류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데, 요단 강에서부터 동쪽으로 약 37Km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한편 이 도시는 두 견고한 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째는 물들의 성이다(12:27). 즉, 이 성은 이 도시에 물을 공급해 주는 큰 수원지(水源池)를 지키던 성이다. 다음으로 둘째는 왕성(王城)이다(12:26). 이는 와디 암만의 북쪽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고원 지대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매우 가파른 곳으로서 그야말로 난공 불락의 요새를 이루었다. 한편 이같은 랍바(Rabbah)는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가 되어 있는데, 곧 현재의 암만(Amman)이다(Wycliffe).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 온 이스라엘 군대가 랍바 성을 에워싸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장면으로, 다윗이 범죄하게 된 배경을 제공해 준다. 즉 전시(戰時) 상황이라는 비상 사태에도 불구하고 편안히 예루살렘 궁에 거하던 다윗은 영적 긴장이 플려 결국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모살(謀殺)하는 엄청난 죄악에 빠지고 마는 곳이다(2-27절).

=====11:2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 다윗이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실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물론 이러한 낮잠은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풍습이긴 하였다(Lange, Pulpit Commentary). 그러나 국가적으로 초긴장 상태에 있던 당시의 상황으로는 용납하기 힘든 자세이다. 즉 다윗은 낮잠을 잘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마땅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다윗은 영적으로 나태한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Matthew Henry). 이처럼 나태하고 게으른 자의 낮잠은 비극을 부르기 마련이다(4:5,6). 한편, 여기서 '저녁때'는 늦은 오후를 의미한다(삼상30:17). 랑게(Lange)는 대략 이때를 오후 3시경부터 해가 완전히 어두워진 때까지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 잠에서 깬 다윗이 저녁녘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 지붕 위를 산책한 것을 가리킨다. 아마도 이는 다윗의 일상적인 습관이었을 것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그 곳에서 보니 - 당시 다윗 궁은 높은 시온 산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그 인근 주민의 집 안마당을 잘 내려다 볼 수 있었다. 5:7 주석 참조.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 혹자는 밧세바의 이러한 목욕 행위가 다윗 왕을 유혹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의 주거 형태를 살펴볼 때 지나친 억측이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집 안마당의 우물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그럴 경우 지붕 위에서 이웃집을 내려다 보는 행위는 금기 사항이었기 때문이다(Keil, Patrick Philippson). 대하 33:1-11 강해. '히브리인의 주거 형태'참조. 따라서 다윗 왕의 간음 사건(3, 4절)은 밧세바의 유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다윗 자신의 범죄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11:3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 다윗이 점점 더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음을 역력히 증거해 주는 구절이다. 즉 처음에 시각적으로 미혹받은 다윗(2절)은 자제력을 상실한 채 밧세바의 신분을 알아보았으며, 마침내는 정욕에 굴복하여 간음을 자행하고 만 것이다(4절). 이는 곧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리라"(약 1:15)는 말씀에 가장 부합되는 경우인 바 '악의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함'(살전 5:22)을 절감(切感)케 해준다.

엘리암의 딸이요 - 같은 내용의 기록인 대상 3:5에서는 '암미엘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엘리암(Eliam)과 암미엘(Ammiel)은 모두 '하나님'이란 뜻의 '엘'(* )과 '백성'이란 뜻의 '암'(* )이 합성된 칭호로서,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즉 이는 모두 '하나님은 동족이심'이란 뜻으로 결국 같은 이름인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Wycliffe). 한편, 23:34절에서 엘리암은 아히도벧(Ahithophel)의 아들로 소개되었는데, 아히도벧은 한때 다윗의 모사로 중용(重用)되었다가 압살롬의 난 때에 다윗을 배반한 자의 이름과 똑같다(15:12;16:20-23). 따라서 혹자는 이둘을 동일 인물로 보고 밧세바의 조부(祖父)인 아히도벧이 본장에 기록된 다윗 와의 파렴치한 행동 때문에 훗날 압살롬의 난에서 다윗을 배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Lange). 만일 밧세바의 조부인 아히도벧과 다윗의 모사(謀士)인 아히도벧이 동일 인무임이 분명하다면 이 같은 주장은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헷 사람 우리아 - 그는 다윗의 삼십 칠 인 용사들 중 하나였다(23:39). 그의 이름 우리아(Uriah)는 '여호와는 빛이시다'라는 뜻으로, 우리는 그의 이름 가운데서 그가 비록 이방인인 헷족속이긴 하나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한 신앙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헷 족속(Hittites)은 원래 가나안의 둘째 아들인 헷의 후손으로(창10:15)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팔레스틴에 거주하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이다 수 9:1, 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참조.

=====11:4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데려오게 하고 -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한 가정과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는 행동으로서, 극형인 사형(死刑)에 해당하는 범죄였다(출 20:17;레 20:10). 따라서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크게 어기는 죄였임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의 속에서 일어나는 정욕을 다스리지 못하므로 결국 이렇게 엄청난 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다(약1:15;렘5:8). 한편, 혹자들은 다윗 왕이 이러한 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었던 하나의 원인으로 밧세바의 방조(幇助)를 지적한다(Keil, Pulpit Commentary, Lange). 즉, 본절에는 다윗의 범죄 행위에 대하여 밧세바가 반항했다고 하는 아무런 언급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은 다윗에게 있다하더라도 한 남편의 아내(3절)로서 그녀의 태도만은 결코 면책(免責)받을 수없는 것이다(Wycliffe, Keil).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 히브리 성격의 원문에 따르면 밧세바(Bath-sheba)가 자신의 부정함을 깨끗케 한 일은 다윗과 동침한 후에 행한 것으로 나와있다. 따라서 본절의 정확한 번역은 '저가 그녀와 동침한 후 그녀는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다'이다(RSV. NIV, NASB, Jerusalem Bible). 한편 여기서 밧세바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다'는 말은 남녀가 서로 동침한 후에는 그 몸을 씻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의 율례를 그대로 지킨 것을 의미한다(레 15:18). 이로 보아 밧세바는 다윗과 간음하고서도 그에 대한 참된 회개는 결여한 채 의식적(儀式的)정결에만 신경을 썼던 것 겉다(Pulpit Commentary).

=====11:5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여인이 잉태하매 - 마침내 다윗이 뿌린 죄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처럼 인간이 범한 죄는 자생력(自生力)과 번식력이 강하여 반드시 그 열매를 맺고 만다. 따라서 범죄한 인간마다 그 결과로 인하여 육체적 , 정신적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윗에게 고하여 -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하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야만 했다(레 20:10). 따라서 우리아는 이 율법의 규정에 따라 자기 아내를 돌로 쳐서 죽일 것이 틀림 없다. 그러므로 이에 겁이 난 밧세바는 왕의 해결책을 기대하며 그에게 자신이 잉태한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11:6

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 밧세바가 잉태한 자신의 아이를 마치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다윗의 간계(奸計)의 첫 단계이다. 즉 다윗은 우리아와 밧세바를 동침케 함으로서 밧세바의 잉태가 우리아로 말미암은 것처럼 위장하려고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아를 급히 소환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한 다윗의 모습은 그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떠났음을 시사해 준다.

=====11:7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다윗이 어떠한 것을 묻고 - 자신의 속사정을 위장하기 위한 다윗의 거짓된 물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점점 더 죄악을 쌓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처음에 탐욕죄(출 20:17)로부터 시작하여 간음죄(출 20:14)를 범한 그는, 이제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거짓죄(출 20:16)를 또하나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11:8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발을 씻으라 - 이는 히브리인의 관용적 표현으로 '휴식을 취하라'는 말이다. 즉, 사막 지역인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하루의 일이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무엇보다 먼저 발을 씻고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창 18:4;눅 7:44). 그렇지만 여기서 다윗 와의 이러한 배려는 우리아로 하여금 밧세바와 동침케 하려는 간교한 음모에 다름 아니다. 한편, 혹자는 여기에서의 발(feet)은 남성의 성기(性器)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Hertzberg). 그러나 그것은 우리아와 밧세바와의 동침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다윗이 자신의 속셈이 뻔히 드러나는 그같은 말을 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므로 이 해석은 신빙성이 없다.

왕의 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 여기서 '식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사트'(* )는 '선사하다', '바치다'는 의미의 '나사'(* )에서 파생된 말로서 선물(膳物)을 의미한다(창 43:34;에 2:18). 따라서 다윗이 우리아에게 특별휴가는 물론 이와 같이 선물까지 수여한 것은 전쟁 영웅에게 베푸는 예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처럼 다윗이 우리아에게 영웅 대접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에서 우리아를 갑자기 소환한 것인 양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하다.

=====11:9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왕궁 문에서 잔지라 - 여기서 '왕궁문'이란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왕궁 문을 지키던 시위병들이 거처하던 숙소(왕상 14:27,28)를 의미한다(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즉 우리아는 다윗 왕의 호의를 사양하고 왕궁의 시위병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아가 이와 같이 행한 이유는 아마 그의 충성심에서였을 것이다. 즉 그는 자기 혼자서만 집에서 편안히 쉬는 것을 사양할 정도로 자기 직무에 대한 충성심으로 불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다윗과의 대화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11절). 한편 혹자는 이리하여 왕궁 시위병들과 함께 잠을 잔 우리아는, 그들로부터 밧세바가 다윗의 총애를 받고 궁전에 출입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는 우리아가 결국 밧세바의 부정(不貞)을 알게 되었다는 주장이다(Matthew Henry). 그러나 다윗에 대한 우라이의 계속된 이러한 주장은 단지 있음직한 추측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1:10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아니하였나이다 - 다윗이 사람을 시켜 우리아를 미행케 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Lange). 아니면 다윗의 선물을 우리아의 집에 배달해 주었던 자(8절)가 우리아의 부재(不在)사실을 확인하고 다윗에게 일러주었을런지도 모른다.

=====11:11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언약궤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가 어찌 자리이까 -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전쟁이 곧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종종 언약궤를 동반하여 전쟁터에 나아갔다(민10:35, 36;14:44;수 3:6). 수 5:13-15 강해, '성전(聖戰) 참조.따라서 우리아의 이와 같은 진술은 '하나님께서도 현재 싸우고 계시거늘 어찌 나같은 존재가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라는 뜻의 말이다. 아마도 우리아의 이러한 충성된 대답은 평소에는 다윗 왕을 충분히 감동시키고도 남을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범죄한 다윗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주 요압과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신앙심은 물론 , 한걸음 더 나아가 상관에 대한 우리아의 충성심과 동료에 대한 사랑, 따스한 인간애가 담겨있는 진솔(眞率)한 말이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말을 듣는 중에도 양심에 가책을 받고 회개할 수 있어야 했다. 즉 자신이 우리아와 같은 충직한 신하의 아내를 탐한 것이 얼마나 괴악한 죄악인지를 깨닫고 이제라도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회개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죄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다윗은 그러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우리아와 밧세바를 동침시키려는 계락이 수포로 돌아가자 급기야 그토록 충성스런 우리아를 살해까지 하고 만다(12-25절). 이는 기어이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 오고야 마는 죄의 특성(약 1:15)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 여기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은 사실 다윗의 전인격과 존재를 가리키는 동일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아가 이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여 맹세한 것은 자신의 굳은 결심을 다윗 왕에게 확고하게 보이고자 함이었음이 분명하다(Lange, Baker Commentary). 한편, 여기서우리아가 '여호와의 사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왕의 사심'으로 맹세한 것은 그당시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즉 히브리인들은 대개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사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 했으나(4:9;12:5;삿 8:19;룻 3:13;삼상 14:39;왕하 2:2, 6), 자신과 동등한 계층이나 자신보다 높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던 것이다(삼상2:26;17:55;20:3;왕하2:2,4,6;4:30).

=====11:12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오늘도 여기 있으라 이튿날 - 본절로부터 14절을 읽어 보면, 다윗이 '내일은내가 너를 보내리라'한 본절의 약속을 어기고 우리아를 하루 더 묵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하반부에 언급된 '이튿날'에 다윗이 우리아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저녁까지 술레 취하게 하는 장면(13절)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우리아를 되돌려 보낸것처럼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14절). 그러나 실상 13절의기록은 본절의 '그 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그리고 14절은 본절의 '이튿날'에 있은 일에 대한 설명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한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중복적(重複的)인 표현을 곧잘 사용한다. 즉, 그들은 처음 구절에서는 한사건에 대해 간결히 진술한 다음 구절에서 그 사건을 보다 상세히 기술하는 점진적,중복적 표현법을 즐겨 사용하였다(4:7 주석 참조).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13, 14절은 본절의 간결한 기술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 구절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사실을 좀더 명확히 이해하려면 본절의 '이튿날'이란 말 다음에 '우리아가 예루살렘을떠나 전쟁터로 되돌아가니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1:13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취하게 하니 - 다윗이 사람의 정신을 혼란케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술의 힘을 빌어 우리아의 성적(性的) 충동을 유발시키려 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자신의 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윗의 비열한 행동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껏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다윗(1:14-16;4:5-12;6:21;삼상24:4-7;26:6-12) 조차도 순간적으로 가장 비열하게 만드는 죄의 놀라운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다.

=====11:14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다윗이 편지를 우리아의 손에 부쳐 - 우리아는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편지(15절)를 자신이 배달하리라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역이용, 우리아를 죽이는 도구를 이용하였다. 이는 사전에 치밀히 계산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교묘함이었다. 따라서 바로 여기에 다윗의 배가(倍加)된 가증스러움과 사악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 p. 498).

=====11:15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너희가 우리아를 죽게 하라 - 우리아는 다윗의 37인 용사 중 한 사람이었다(23:39). 따라서 그가 일단 싸움에 임하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다윗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하여 우리아를 전쟁의 선봉장(先鋒將)이 되게 하여 전사(戰死)당하도록 꾀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일단 우리아를 제거하기만 하면 자신의 부정 행위(4절)가 영원히 감추어지고, 또한 밧세바까지도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을 것(27절)이라는 생각 하에 이같은 죄악을 저질렀을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 p.497).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반드시 적발해 내시므로(합 1:13) 다윗의 죄악 역시 결국 낱낱이 드러나고 말지 않았는가(12:1-23)!

=====11:16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요압이 그 성을 살펴 - 여기서 '살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르'(* )는 본래 '방어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성을 포위하여 경계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 말이 이러한 뜻으로 사용된 용례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 용어는 대개 '관찰하다', '유의하여 감시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삼상1:12;시 59:10;사42:20;창 2;15).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분부를 받은 요압(15절)이 우리아를 적군의 손에 주도록 하기 위해 사전에 그 적절한 장소를 물색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Lange).

용사들의 있는 줄을 아는 그곳에 - 여기서 '용사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네쉐-하일'(* - )은 '힘센 남자들'이란 의미이다. 이는 지금 랍바 성 내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는 거민들과은 구별되는 전쟁에 능한 용사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랍바 성 안에서 이스라엘을 방어하고 있는 자들이 모두 다 암몬의 특별한 용사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마도 추측컨대 군사 전략상 성의 견고한 곳에는 일반 거민들이, 성의 취약한 곳에는 암몬의 용사들이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아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 )는 사변적(思辨的)인 지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말이다(출 14:4;삿15:11;삼상29:9).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그동안 적의 동태를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요압이 가장 위험한 지역에 우리아를 배치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1:17

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다윗의 신복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 여기서 '다윗의 신복'이란 다윗의 군사 고문들을 의미한다(1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들의 죽음은 이스라엘 군의 막대한 손실이었다. 즉 우리아 한 사람을 죽이려던 다윗은 자신의 불의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결국 유능한 많은 신하들을 잃고 만 것이다.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 요압의 맹목적인 순종으로 말미암은 비극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요압의 비정함을 볼 수 있다. 즉, 우리아는 다윗의 서른 일곱 용사 중 한 명이며 요압의 직속 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우리아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권력에 아부하는 자세로 다윗의 명령만을 준행했던 것이다. 사실, 만일에 요압에게 진정한 충성심과 또한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본 후 최소한 아무런 죄없는 우리아를 위해 다윗에게 탄원 정도는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였으며(10:12),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현실 타협적 행동을 한 것이다(Wycliffe, Matthew Henry).

=====11:18,19

18.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19.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요압이 그 사자에게 명하여 가로되 - 요압은 다윗에게 전재의 결과를 보고할 사자(使者)을 불러 전에 없던 특별한 명령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번 전쟁에서 예상 외로 많은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17절). 즉 이로 인해 왕의 문책을 두려워한 요압(20절)은 이번의 패배를 무마시키는 방편으로 우리아의 죽음을 보고하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21절).

=====11:20,21

20.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여룹베셋 - 이는 기드온(Gideon)의 별명이다. 본래 기드온의 별명은 여룹바알(Jerubbaal)이었으나(삿 8:35), 후대에 '바알'이란 명칭이 이방신의 이름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그것이 베셋(besheth)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2:8 주석 참조.

아비멜렉 - 기드온이 세겜의 첩을 통해 낳은 이들이다(삿8:31). 그는 부친의 사후(死後)자기 형제 70인을 모두 죽이고 므낫세 족속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반발한 세겜 사람들은 '가알'(Gaal)을 지도자로 하여 아비멜렉(Abimelech)을 대항하였으나, 아비멜렉은 오히려 그들을 물리치고 성을 헐며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 천 명을 불살라 죽였다(삿 9:46-49). 그리고 이러한 여파를 몰아 아비멜렉은 데메스마저 치려 하였는데, 그때 도리어 한 여인이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맞아 죽었다(삿 9:50-57). 그러므로 아비멜렉의 이와같은 역사는 전쟁에 능한 다윗 왕과 요압 이외에도 많은 군지휘관들에게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한 가지 전술을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수세(守勢)에 몰린 적의 성에 가까이 가는 것은 우발적인 죽음을 초래하기 쉬운 위험스런 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 내에서도 이러한 역사는 다윗 뿐만 아니라 많은 지휘관들에게도 널리 읽혀지고 알려졌을 것이다(Lange).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익숙해 있던 요압이 암몬의 랍바 성 근처에서 이스라엘의 귀중한 인재들을 많이 잃었다고 하는 사실은 다윗 왕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왕의 진노가 있을 것을 예상한 요압은 전령(傳令)에게 보고(報告) 내용을 특별히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비멜렉의 역사를 요압이 언급한 사실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서로 다른 역사들을 피력하고 있다. 즉 (1) 구전(口傳)으로 내려온 사사기의 역사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라는 견해(Lange)와 (2) 아마도 사사기가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이미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사사기에 '여부스족(Jebusites)이 아직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삿1:21), 사사기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여부스족을 몰아내기(5:6-9)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확실하다. 다라서 아비멜렉의 역사는 그 당시 이미 성문화(成文化)된 사사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 이는 성 가까이에서 많은 인재를 잃은 요압(17절)이 자기의 실수를 무마시키기 위한 자구책(自救策)이었다. 즉, 이 말은 이번의 실수가 다윗 와의 명령(15절)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필연적인 불상사(不祥事)였다는 요압의 그럴듯한 해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으로는 요압은 병볍에 능한 자였으나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성 밑 가까이에 군대를 투입하였던 것이다(16절).

=====11:22,23

22.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23.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승하여 - 이는 수세(守勢)에 몰리고 있던 암몬 사람들 중 힘센 용사들(* , 아네쉐 하일)이 랍바성을 포위하고 잇던 이스라엘군 중 가장 취약한 지역을 골라 집중적으로 공격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곳은 요압이 의도적으로 우리아를 배치한 선진(先陣)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우리아의 군사들은 성에서 후퇴하여 들로 나올 수 밖에 없었으며, 다른 진의 군사들의 지원을 받아 반격하여 다시금 성문 어귀까지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11:24

24.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 여기서 우리아를 가리켜 '왕의 종'이라 함은 그가 다윗에게 마치 노예와 같이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한 신하였음(11절)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다윗은 우리아의 전사(戰死)보고를 받고선 속으로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쾌재(快哉)를 불렀을 것이다. 즉 다윗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불의한 죄악을 감추려 한 계략(15절)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자, 우리아가 자신의 충직한 신하였다는 사실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이는 우리아의 충성과 대비되는 다윗의 폭정(暴政), 배은(背恩) 행위가 아닐 수 없다.

=====11:25

25.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 신하들의 전사(戰死)소식에 대하여 다윗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반응은 평상시에 보여 주던 그의 자애로운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1:12;3:31, 32;18:33). 이는 그가 우리아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도 쾌재를 감추기 위해 태연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것이다(Lange).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다윗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웠던 신하들의 아까운 죽음(17, 24절) 보다도 자신의 은밀한 죄를 감추기 위해 오직 한 사람 우리아의 죽음 여부에만 온 관심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의 한 번 실수(4절)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고력과 판단력을 잃음은 물론 그 심령 또한 완전히 메말라 있는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11:26

26.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우리아의 처 - 이처럼 밧세바가 우리아의 아내였음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밧세바가 우리아의 아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부정한 관계를 나누었음(4절)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여인의 이름을 들먹이지 아니하던 히브리인들의 관습때문이다 (30 억울한 죽임을 당한 우리아에 대하여 조의(弔意)를 표하기 위함이다.

호곡하니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파드'(* )는 '죽은 자를 위해 가슴을 치며 우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14:13;창23:2;렘4:8;슥12:10). 한편 히브리인들은 대개 죽은 자를 위해 7일간 호곡하였는데(창 50:10;대상 10:12; 삿 16:24), 특별한 인물이 죽었을 때는 30일간 호곡하기도 하였다(민 20:12;신 34:8). 따라서 밧세바는 자기 남편 우리아를 위해 보통의 경우처럼 7일간 호곡하였을 것이다.

=====11:27

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그 장사를 마치매 데려오니 - 다윗왕은 우리아의 장례식을 마치자 곧바로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다. 다윗의 이러한 처사는 밧세바의 임신을 백성들로부터 은폐시키기 위한 재빠른 행동이었음에 분명하다. 즉 다윗은 밧세바가 아이(5절)를 낳기 전에 얼른 궁으로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한 것이다(Wycliffe, Keil & Delitzsch).

저가 아들을 낳으니라 - 이처럼 밧세바가 낳은 아들은 다윗과의 부정한 관계에서 출생한 죄악의 씨앗이다(4, 5절). 따라서 12장에 의거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악을 징치(懲治)하시는 차원에서 그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을 볼 수 있다. 한편 이 아이외에도 밧세바는 이후 다윗에게서 네명의 아들을 더 낳았는데 곧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이다(대상 3:5). 5:13-15 주석 도표 참조. 

다윗의 소위가 악하였더라 - 여기서 '악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는 다음과 같이 서너 가지 뜻을 지닌다. 즉 (1)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되는 불의한 행동(룻 1:21;왕상 17:20), (2)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부도덕한 행동(사31:2;습1:12), (3) 그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고 행하는 습관적인 행동(창19:9;렘4:22;13:23;잠4:16;17:4)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상의 사실에 의거할 때 이 말은 반드시 보응이 뒤따르는 극악한 죄악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다윗의 소위(所爲), 즉 본장 전체에 걸쳐 다윗이 계획하고 실행했던 모든 행동이 악하다고 결론지어진 것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정욕에 사로잡혔을 때 결국 여호와 앞에서 악인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음을 교훈해 준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은 이를 경고삼아 지극히 하찮은 안목의 정욕(요일 2:16)에 미혹되어 다윗과 같은 엄청난 죄악에 빠져들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할 것이다(욥 31:1;시119:9).

이전글 : 삼하10.JC족보, 다윗-솔로몬 시대 연혁..메아리 황금률..암몬의 도발-암몬 원정 전쟁(1차:아람 동맹 용병 동원, 2차: 동맹 총수 소바아람 하닷에셀의 지휘 아래 총력전)
다음글 : 삼하12.주님 보내신 나단 방문-다윗 회개ㅡ주권적 지존자 Q의 친밀한 내적 말씀 교통, 목숨 걸고 따르기..반쪽 롬8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