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삿3장 [393. 오 신실하신 주][278. 여러해동안주떠나]
.....***그 무엇보다도 주 보시기에 합당한, 진정한 의미의 다스림은, 첫째, 오직 날마다의 평범한 삶을 (범사에) 전심전력 다해 Q 경외함으로 교통-순종 안에 살며, 둘째, 지금 주 앞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에 ((탁월함과)) 충성스러운 자로, 불신세상조차도 인정하는 자로 살아감에서 비롯됨이 중요하다....
===그 땅에 남겨 두신 사람들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사사 옷니엘(=사자,lion) .....옷니엘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미 명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결성이 타락해 그 결과로 평화가 깨어지기 이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직후에 일어난 일로 보인다. .....신성한 연대기를 연구하는 데 고심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단 지파의 우상 숭배와 레위 지파가 첩을 학대한 일 때문에 베냐민 지파와 싸움은―이것은 이 책 후미(삿17-21장)에 언급되어 있긴 하지만―옷니엘의 통치 시대나 혹은 그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글자그대로 메소보다미아를 떠올리면 이동거리상 이해하기가 곤란하고, ..역사학자들은 고래로 메소보다미아지역을 터키 변경부터 이스라엘 영토로 정하신 하맛 어귀까지를 포함하여 구분짓고 있는 바, 그 지역 일대를 그 당시 다스리던 왕으로 보아야 할 것)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 구산 리사다임 = '죄에 죄를 더한 구산' 또는 '가장 사악한' 이라는 의미...."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55;6-7)"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이는 성령 간동의 은사를 말함이지 [그리스도를 살아냄으로 맺히는]성령 열매는 아님을 명심하라...물론, 은사도 열매도 다 하나의 동전의 양면으로서 중요하다)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이미 드빌 점령 통해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하여 가정 꾸리고 자기 기업에서 안정된 생활 가운데 있었을지라도...주님 마음 알아드렸던!! 갈렙을 본받아 전심전력으로 주 앞에서 겸손히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아파하며 중보/중재하고 있었던 옷니엘이었다!!....그도 나이가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터이나, 성령의 임하심따라, 일깨ㅔ우시는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주님 말씀으로 회개-갱신시키고,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주님따라 동행함으로써 나아갔고, 주님은 그의 손에 대적을 넘겨주사 이기게 하셨다.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사사 에훗 ....레위지파의 타락상을 기술하고 있으며, 게다가 베냐민 지파의 타락상과 그에 따른 징벌 결과, 거의 멸절 위기에 놓였던 베냐민지파의 형편에 대해 기록한 삿19-21장을 먼저 읽으라..(연대기 연구자들은 이 사건이 있은 후에...극도로 쇠약해진 베냐민 지파!! 주님은 이제 사사 에훗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 베냐민지파의 명예를 회복시키신다) .....((에훗은 Q께 기름부음 받은, 주님의 신실하심따라 신실함으로 Q을 경외하는 자,, 날마다 늘 교통 안에 머물러 청종하는, 주 영광 살아내는 자, 하나님께서 지혜의 말씀 열어주셨고 평소 생활 중에도 가까이 하며 그를 알아본 이들에 의해 그들의 조공드리는 사절단 대표로 삼을 정도...그의 평판은 에글론조차 ((비록 피정복인이지만)) 때때로 주님 주신 충언으로 여겨 받아들이는 바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정도였었다...그러기에 그 에훗이 같이 온 이들은 돌려보내고, 주께서 소명 일깨우시는 그곳에서 순종하여 되돌아 와서, 비밀히 전할 바 주님의 말씀이라 할 그 때에 에글론은 자기도 모르게 그 전언의 말씀 듣기 위해 일어서고 있었다...에글론조차 주님 말씀을 그토록 존중하고 있었는데...그대는 주님 말씀을 그토록 귀히 여기는가..주님 마음을 알아드리는 자가 누구인가!!..결국, 소탐대실로 끝날 바, .자기연민에 빠져 있어 잠든 자는 [모든 것 잃어버릴지라도 주님 명령따라 그 길을 걸을 수 없음을 명심하라] )) 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여리고 바로 근처...베냐민과 에브라임의 경계 지역이었음)을 점령한지라....이미 요단 동편지파는 에글론에게 떨어졌고, 서편 땅 지파들에게 조공 받기 위한 전진기지로 여리고 인근에 기지를 세웠음을 의미. 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즉, 여리고 인근 기지에 에글론이 직접 머무르고 있었음을 의미 16.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17.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송아지같은)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18.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9.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20.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21.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23.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그니라 24.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들어와서 다락문들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들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가지고 열어 본즉 그들의 군주가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 26.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27.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8.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29.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30.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사사 삼갈 31.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 KJV]제3장 1. Now these are the nations which the LORD left, to prove Israel by them, even as many of Israel as had not known all the wars of Canaan; 2. Only that the generations of the children of Israel might know, to teach them war, at the least such as before knew nothing thereof; 3. Namely, five lords of the Philistines, and all the Canaanites, and the Sidonians, and the Hivites that dwelt in mount Lebanon, from mount Baalhermon unto the entering in of Hamath. 4. And they were to prove Israel by them, to know whether they would hearken unto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which he commanded their fathers by the hand of Moses. 5. And the children of Israel dwelt among the Canaanites, Hittites, and Amorites, and Perizzites, and Hivites, and Jebusites: 6. And they took their daughters to be their wives, and gave their daughters to their sons, and served their gods. 7. And the children of Israel did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forgat the LORD their God, and served Baalim and the groves. 8. Therefore the anger of the LORD was hot against Israel, and he sold them into the hand of Chushanrishathaim king of Mesopotamia: and the children of Israel served Chushanrishathaim eight years. 9. And when the children of Israel cried unto the LORD, the LORD raised up a deliverer to the children of Israel, who delivered them, even Othniel the son of Kenaz, Caleb's younger brother. 10. And the Spirit of the LORD came upon him, and he judged Israel, and went out to war: and the LORD delivered Chushanrishathaim king of Mesopotamia into his hand; and his hand prevailed against Chushanrishathaim. 11. And the land had rest forty years. And Othniel the son of Kenaz died. 12. And the children of Israel did evil again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the LORD strengthened Eglon the king of Moab against Israel, because they had done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13. And he gathered unto him the children of Ammon and Amalek, and went and smote Israel, and possessed the city of palm trees. 14. So the children of Israel served Eglon the king of Moab eighteen years. 15. But when the children of Israel cried unto the LORD, the LORD raised them up a deliverer, Ehud the son of Gera, a Benjamite, a man lefthanded: and by him the children of Israel sent a present unto Eglon the king of Moab. 16. But Ehud made him a dagger which had two edges, of a cubit length; and he did gird it under his raiment upon his right thigh. 17. And he brought the present unto Eglon king of Moab: and Eglon was a very fat man. 18. And when he had made an end to offer the present, he sent away the people that bare the present. 19. But he himself turned again from the quarries that were by Gilgal, and said, I have a secret errand unto thee, O king: who said, Keep silence. And all that stood by him went out from him. 20. And Ehud came unto him; and he was sitting in a summer parlor, which he had for himself alone. And Ehud said, I have a message from God unto thee. And he arose out of his seat. 21. And Ehud put forth his left hand, and took the dagger from his right thigh, and thrust it into his belly: 22. And the haft also went in after the blade; and the fat closed upon the blade, so that he could not draw the dagger out of his belly; and the dirt came out. 23. Then Ehud went forth through the porch, and shut the doors of the parlor upon him, and locked them. 24. When he was gone out, his servants came; and when they saw that, behold, the doors of the parlor were locked, they said, Surely he covereth his feet in his summer chamber. 25. And they tarried till they were ashamed: and, behold, he opened not the doors of the parlor; therefore they took a key, and opened them: and, behold, their lord was fallen down dead on the earth. 26. And Ehud escaped while they tarried, and passed beyond the quarries, and escaped unto Seirath. 27. And it came to pass, when he was come, that he blew a trumpet in the mountain of Ephraim, and the children of Israel went down with him from the mount, and he before them. 28. And he said unto them, Follow after me: for the LORD hath delivered your enemies the Moabites into your hand. And they went down after him, and took the fords of Jordan toward Moab, and suffered not a man to pass over. 29. And they slew of Moab at that time about ten thousand men, all lusty, and all men of valor; and there escaped not a man. 30. So Moab was subdued that day under the hand of Israel. And the land had rest fourscore years. 31. And after him was Shamgar the son of Anath, which slew of the Philistines six hundred men with an ox goad: and he also delivered Israel. ======= 사사기 3장 (개요) 본 장에서 살펴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적들과 그들이 끼친 위해(1-7). 2. 처음 세 사사에 의해 행해진 용감한 공적들. (1) 이스라엘의 싸움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옷니엘과 메소보다미아 왕의 탄압에 대한 이스라엘의 탄원(8-11). (2) 모압 왕을 죽이고 모압 족속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에훗(12-30). (3) 블레셋 족속들과의 싸움에서 명성을 드러낸 삼갈(31). --------- 하나님을 잊은 이스라엘(삿 3:1-7) 우리는 여기서 가나안의 옛 주민들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 원주민들 중에는 연합된 부족을 유지해 남아 있는 무리들이 있었다(3절). 이들이 바로 “블레셋 다섯 방백”이다. 즉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그리고 에그론이었다(삼상 6:17). 이 도성들 중 셋은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정복되었다(1:18). 그러나 블레셋인들이 그 땅들을 다시 자기들의 것으로 복귀시킨 듯이 보인다(아마 그후로는 서로 동맹을 맺어 강화된 다른 두 도성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도성들은 어떤 원주민들보다도 더 이스라엘을 당황케 했고, 사사 시대 후기에 와서는 더욱 그랬다. 이들은 다윗의 때까지 결코 완전히 탈환되지 못했다. --또한 특별히 가나안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영토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시돈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쪽에는 레바논 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히위 족속이 있었는데, 멀리 떨어져 외진 그 곳에서 그들은 아마 인근 몇 나라들 중 어떤 나라들에 의해 도움을 받아 유지된 족속 같다. 그러나 이런 부족들 외에, -- 그 땅 모든 지방 어느 곳이나 그 민족들 중에 산재해 있는 족속들(5절), 즉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 등이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묵인과 관용─그것은 지나치고 오만한 것이었다─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 사이에 거하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마치 권리가 아직 가나안인들에게 있어 이스라엘인들은 오히려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단지 소작농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되었다. 이제 원주민들 중 이들 나머지들에 관해 살펴보자. Ⅰ. 하나님이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은 얼마나 현명한 일이었던가? 이스라엘을 바르게 하시기 위해 그들을 남겨 두신 것에 대해, 앞 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행위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해석이 첨가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행위로 나타나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참된 이익을 위해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이다. 즉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알게 하려 함”이었다(1, 2절).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단련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의도였다. 1. 그들의 땅은 “심히 풍요하고 비옥하였고,” 모든 종류의 음식이 손쉽게 얻어졌기에 고생을 겪지 않으면 극도의 사치와 유약성에 빠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투사들까지도 무기를 오래 쓰지 않아 여인들과 같이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우유와 꿀뿐만 아니라 때로는 피의 고난도 맛보아야 했다. 그런 기질은 위대하고 선한 모든 일을 파괴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리한 성질이었다. 2. 또한 그들의 나라는 수많은 원수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침략을 당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산업이 “무늬 있는 매와 같았고 매들이 그를 에워쌌던” 것이다(렘 12:9). 그러므로 그들은 변방에 침략이 있을 때 잘 막아내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영토를 확장할 수 있게 훈련될 필요가 있었다. 전술은 체험을 통해 가장 잘 습득되는 법이다. 즉 이 체험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군사적인 훈련에 숙달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군사적인 기질로 그들의 정신을 고취하는 것이다. 항해사를 육성하는 것이 섬나라의 사업인 것과 같이,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사업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셨다. 그래서 더 큰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준비시켰던 것이다. “보행자와 함께 달림”으로써 “말과 경주”하게 하려고 하셨다”(렘 12:5). 이스라엘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전투하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그리스도의 군병들은 고난을 견뎌야 한다(딤후 2:3). 그래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조차도 심중에 타락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게 되고 전술을 익히며, 끊임없이 자신들을 방어하게 되는 것이다. 패트릭 주교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사”라는 본문 2절에 대해 다른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 즉 그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열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웠다. 하나님은 전쟁을 하도록 그들의 손들을 가르치셨고 싸울 수 있도록 그들의 손가락을 훈련시키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잃고 말았으므로 이제 하나님은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싸우는 방법을 배우게 하셨다는 것이다. --------- ......[시44:1-25(1-8)..*1.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조상들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그들이 우리에게 일러 주매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2.주께서 주의 손으로 뭇 백성을 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이 땅에 뿌리 박게 하시며 주께서 다른 민족들은 고달프게 하시고 우리 조상들은 번성하게 하셨나이다 *3.그들이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그들을 기뻐하신 까닭이니이다 *4.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5.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6.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7.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9.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0.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11.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12.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13.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14.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15.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16.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17.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18.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19.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20.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21.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22.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23.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24.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25.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26.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 Ⅱ. 이스라엘은 얼마나 사악하게 가나안 족속의 남은 자들과 혼합되었던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남겨 두신 자들에게서 의도하신 일은 “이스라엘을 시험”하는 것이었다(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성실한 자들이 우상 숭배로 이끄는 가나안 족속의 유혹을 이기는 영광을 차지하기 위함이며, 어리석고 불성실한 자들이 그런 유혹에 굴복해 수치를 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교회 안에도 반드시 이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전 11:19). 이 시험의 결과 이스라엘은 악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1.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혼인하면 그들의 영예나 재산에 이득을 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통혼했다(6절). 이런 혼인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혈통을 더 순수하게 하는 대신 더럽혔으며, 그들의 재산도 증가시키는 대신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2. 또한 그들은 우상 숭배도 하게 되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6절), “바알들과 아세라들”(7절)을 섬겼다. 가나안 사람들이 예배드린 형상들이란 일종의 자연 그대로 있는 신단인 통나무에 새긴 상들이었다. 이처럼 불균형적인 양립에서는, 썩은 사과와 신선한 사과가 같이 놓여 있을 때처럼 좋은 것이 나쁜 것을 개선하기를 희망하기보다는 나쁜 것이 선한 것을 부패시키기가 훨씬 쉽다는 생각이 타당할 것이다.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되었을 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다.” 이런 새로운 친척들에게 만족하게 되자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참되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게 되고 그 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그들이 그 분 아래서 어떤 의무를 이행해야 될지에 대해서도 모두 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관심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상의 모든 악이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한” 것은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 때문이다(렘 3:21). --------- 옷니엘의 통치(삿 3:8-11) 우리는 이제 사사들의 개별적인 통치에 대한 기록을 읽게 된다. 그중 처음이 옷니엘에 관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여호수아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옷니엘은 여호수아 시대에 이미 명성을 드러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결성이 타락해 그 결과로 평화가 깨어지기 이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직후에 일어난 일로 보인다. 신성한 연대기를 연구하는 데 고심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단 지파의 우상 숭배와 레위 지파가 첩을 학대한 일 때문에 베냐민 지파와 싸움은―이것은 이 책 후미에 언급되어 있긴 하지만―옷니엘의 통치 시대나 혹은 그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옷니엘은 사사이긴 했지만 백성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치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하는 그런 왕과는 같지 않았다. 옷니엘의 통치에 대한 이 짧은 서술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Ⅰ.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로 인해 당한 고통(8절).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특수성의 울타리를 철거해 버리고 스스로 다른 민족들과 동일하게 되어 버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정당한 분노를 보이셨다. 그래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던 방책을 철회하고 열국 앞에 노출시키며, 보기 싫은 물건처럼 그들을 팔아 버리셨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댄 자는 구산 리사다임이었다. 그는 티그리스와 유브라데스라는 2대 강 사이에 거해서 “강들 가운데 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메소보다미아라고 불리는 수리아 나라의 왕이었다. 이 왕은 전쟁을 좋아해서 자기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처음에 이웃에 있는 요단 건너편 두 지파를 침입한 것 같다. 후에 그는 점차로 그 나라의 심장부로 들어가 마침내 그들 모두에게 조공을 바치게 했고 엄하게 다스린 것 같다. 그리고 군대를 그 나라에 주둔시킨 것 같다. 고된 일로 야곱을 억압한 라반이 이 곳 출신이었다. 그러나 수리아는 이와 같이 거리가 먼 데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고난이 이런 먼 나라에서 다가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Ⅱ. 이런 어려움 중에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옴.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그들은 이전에 경홀히 여기던 “그에게 구했다”(시 78:34). “이스라엘 자손들” 곧 민족 전체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9절). 처음에는 그들의 고통이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왕의 멍에쯤은 쉽게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8년 동안 조공을 바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고 전에는 그들이 비웃던 나라에 눌려 부르짖게 되었다. 환락의 날에는 바알과 아세라에게 소리치던 그들이, 이제 고통 중에서는 그들이 반역했던 여호와께 소리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배신으로 인해 여호와의 공의로우심이 이런 고난 중에 그들을 끌어다 놓았던 것이며, 오직 여호와의 능력과 은총만이 여기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 고통이 그들로 하여금 전에는 거의 말 한 마디 없던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게 만들었다. Ⅲ.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다시 자비를 베푸신다. 곤궁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몰아세웠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은혜롭게도 구원자, 혹은 문자적 의미 그대로 구세주를 세우셨다.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구원자는 옷니엘이었다. 그는 갈렙의 딸과 결혼했다. 그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역사를 본 전통 있는 가문 중의 한 사람이었다., Q께 대한 충성심을 변치 않고 그 백성의 반역을 보고 은밀히 비통해 하던 사람!!, 잠잠히 그 민족의 슬픔을 구하기 위해 공공 앞에 나서라는 Q의 소명을 끈기있게 기다린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런 영예를 맡기셨을 때, 아마 그의 나이는 매우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명을 맡기셨을 때에는 노쇠함이 그의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없었다. 그의 사명은 사람에 속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음도 아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다”(10절). 즉 그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는 영이요, 그것을 실행하게 하는 힘과 능력의 영이었다. 그래서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충만한 만족을 주게 되는 것이 그 일에 임할 옷니엘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시리아역에는 “예언의 영이 그에게 머물렀다”고 되어 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어떤 것이었나? 그는 먼저 이스라엘을, 그 빗나간 죄악의 마음을 판단해 그들을 책망하고, 그들의 죄를 깨닫도록, 헤아려 보게 했으며, 그들을 통회 자복케 함으로써 개혁했다. 그 다음에는 싸우러 나갔다. 이것이 옳은 방법이다. 원수 중에 가장 나쁜 원수인 집안에 있는 죄를 먼저 정복하라. 그러고 나면 밖에 있는 적은 훨씬 더 쉽게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우리의 심판자와 율법을 세우시는 자가 되게 하라. 그러면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사 33:22). 2. 그는 억압의 멍에를 깨뜨리는 데 성공했고 억압자의 목을 꺾었음이 분명하다. “여호와께서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유다 지파 옷니엘은 “먹이를 움킨 젊은 사자 같았다”(창 49:9). 3. 옷니엘의 훌륭한 역사에 대한 좋은 결과. 땅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그 땅에는 평화가 왔고, 개혁의 결실이 풍성했고 그 연수가 4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의무에 충실했다면 그런 복된 삶이 영구적이었을 것이다. ---------- 에훗의 통치(삿 3:12-30) 사사들의 업적을 말해 주는 본서에 나오는 그 다음 사사는 에훗이다. 여기서 그의 활동을 살펴보자. Ⅰ. 이스라엘이 다시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새로운 압제자를 세우셨다(12-14절). 오랜 동안 이전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했고, 옷니엘이 그들을 치리했을 때 분명하게 약속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자비를 받은 후 다시 그들이 악을 범했다는 것은 그들의 행악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 또다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다니! 방부제와 진정제를 동원한 모든 치료 방법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붙어 살아 있는 병균이 있었던가? 이스라엘 백성에겐 그런 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들은 압제자에게서 극도의 위험에 처한 일은 없었고, 그 왕국의 권세가 약화되어 기울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옛 죄에 더욱 대담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징벌하는 채찍의 방법이 다양함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셨다.” 이 압제자는 이전 압제자보다 더 그들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더욱 불행스러웠을 것이다. 이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의 방향으로 부르시기 위해 점차 강하게 접근하신다. 이스라엘이 장막에 거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존속하고 있었을 때는 모압 왕 발락이 강성했지만 그들에게 패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주위에 있는 여러 민족의 신들(아마 그들 중에 모압의 신들도 있었을 것이다)을 섬기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모압의 다른 왕을 강성케 하셨고, 그는 악한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채찍이 되게 하기 위해 그의 손에 힘을 주셨다.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손에 잡고 있는 막대기는 하나님의 진노였다. “그(여기서는 모압 왕)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였던” 것이다(사 10:6, 7). 이스라엘 사람들은 악을 행했다. 아마 모압 사람들은 더 악한 행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당신 백성의 죄를 벌하시며 징계하지만...심지어!! 육체는 파멸될지라도 그의 영은 구원을 받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회개케 하고, 주께 대한 참신앙 인격의 성숙 위해 징계하시는 분명한 속뜻을 가지고 계시기에.."그의 백성된 참되게 믿는이들을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심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라] ...이스라엘을 약하게 하시고 모압은 강성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강자가 되었을 때에도, 모압 사람들이 비록 우상 숭배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압 사람들을 괴롭히라고 허용하시지 않았다(신 2:9). 그러나 지금은 모압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게 허락하셨고, 그들을 이스라엘 징계의 목적으로 강성케 하셨다.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시 36:6). 모압 왕은 그의 조력자로 암몬 족속과 아말렉 족속을 택했다(13절). 이것이 그를 강하게 했다. 여기서 그들이 어떻게 승리했나를 살펴보자. 1. 암몬 족속과 아말렉 족속이 들에서 이스라엘을 쳤다. “그들이 와서 이스라엘을 쳤다”고 했다(13절). 먼저 정착해 있던 요단 강 건너편의 지파들―이들은 그들과 국경을 같이했다―을 쳤다. 또한 요단 강 이쪽 편에 있는 지파들도 쳤다. 그들 스스로가 “종려나무 성읍”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성은 여리고가 있는 지역 가까이에 세워진 한 요새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불렸다(신 34:3). 모압 족속들은 이스라엘에게 굴레를 씌우고, 그들 본토와의 교통을 보존하기 위해 요단 강의 통로를 확보하려고 수비대를 여기에 파송했다. 이 종려나무 성읍이 적군의 손에 함락되기 전에, 겐 족속이 그 성읍을 떠난 것은 잘한 일이었다(1:16).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기적으로 획득한 것을 자기들의 죄악으로 인해 얼마나 빨리 잃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2. 그들은 이스라엘을 부렸다(14절). 그들은 이스라엘로부터 공물을 강요했으며, 그 땅에서 나는 각종 과일이나 그런 것들 대신 돈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봉사를 무시해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바알에게 드린 “포도주와 기름,” 은과 금을 그들에게 배상케 하신 것이다(호 2:8).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 마땅히 드려져야 할 것이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으면, 그것은 차압되어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서 지불된다. 먼젓번의 예속은 불과 8년이었지만(8절), 후자의 예속은 18년간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보다 작은 고통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더 큰 고통을 보내시기 때문이다. Ⅱ. 이스라엘이 다시 간구했을 때 하나님은 새 구원자를 세우셨는데(15절), 그 이름은 에훗이다. 1. 그는 베냐민 사람이었다. 종려나무 성읍은 베냐민의 몫으로 배당된 땅이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들은 가장 큰 수난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멍에를 벗으려는 마음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연대기 학자들에 의하면, 기브아의 악함을 돕기 위해 베냐민과 함께 출전했던 이스라엘의 싸움은 이 싸움보다 먼저 있었던 일이고 그 싸움 때문에 베냐민 지파의 장정은 6백 명으로 축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이 베냐민 지파가 모든 지파 중에서도 가장 약한 지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완전히 화해하신다는 표로서 베냐민 지파에서 구원자를 세우셨다. 이로써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가운데서 강함을 세움 받게 된다는 것을 보이시며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신다는 것”(고전 12:24)을 보이시기 위해서였다. 2. 그는 왼손잡이였다. 베냐민 지파의 많은 사람이 왼손잡이였던 것으로 보인다(20:16). 베냐민이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그들 중의 다수가 왼손잡이였다. 사람들의 본성이 항상 그들의 이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70인역은 그는 양손잡이, 즉 양손을 똑같이 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소명 받은 일에 이점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히브리 역본은 “그의 오른손은 불능”이었다고 한다. 이 말은 그의 오른손이 질병 혹은 사용치 않은 까닭으로 거의 못 쓰게 되었거나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을 암시한다. 그는 왼손만을 쓸 수 있었지만 전쟁을 하는 데는 적합치 못했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자기의 칼을 거북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왼손잡이를 택해 당신의 오른손잡이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그를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셨다”(시 80:17). 결코 잊지말지니!!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는 것은 그가 들어 쓰시는 도구들의 오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손이었다(시 44:3). 3. 우리는 여기서 에훗이 모압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행했는지를 볼 수 있다. 에훗은 압제자들의 죄악의 그릇이 가득해져 이스라엘에게 은혜 베풀 시간이 되었을 때에, 압제자들을 멸망시킴으로써 압제당하는 자들을 구했다. (1) 그는 모압 왕 에글론을 죽게 했다. (내가 <믿음으로써!!> 여기 말하거니와) 에훗은 그를 “죽게 했다.” 에훗이 살인을 하거나 암살을 범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심판자요 소명자로서 도저히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원수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한 사람이라고 이 이야기에는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① 에훗은 그 왕에게 접근할 좋은 기회를 가졌다. 그는 슬기로운 행동의 사람이요 왕들 앞에 서기에 합당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백성은 그를 뽑아 모압 왕에게 은총을 입게 하기 위해 온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공물을 바치게 되었다(15절). 이 공물은 본래 민카(mincha)라고 불리는 것인데, 율법서에서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기 위해 드리는 제물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들의 절기에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지 않았다. 이제 그들의 태만에 대한 벌로서 자기들을 미워하는 이교도 왕에게 예물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에훗은 그가 의도하는 바를 숨기고 의심을 감추기 위해 상례적인 예식과 의무적인 존경의 예를 표해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치러 갔다. ② 처음부터 그는 에글론을 죽이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이 그의 심중에 그 일을 심어주셨고, 그 일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며,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그에게 알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계획의 합법성과 성공에 대해서 충분한 확신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로서는 충분히 의혹을 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그 일을 하라고 명하신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그는 그 일을 해도 가하다는 것과 마땅히 그 일을 해야 함을 확신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양심을 거스르거나 세상 사람의 의견을 거슬러서도 능히 우리에게 일을 맡기거나 중지시키기 때문이다. 에훗의 결심은 반 야드 정도의 길이인 단검을 만든 그 준비 행위에서 나타난다. 이 칼은 옷 속에 용히 숨길 수 있었다(16절). 아마도 왕 앞에 나갈 때는 칼을 차고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칼을 왼손으로 빼기 쉽고 발각될 염려도 없게 하기 위해 오른쪽 허벅다리에 찼다. ③ 그는 에글론과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와 친밀해지도록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선물과 그에게 나타낸 경의로 환심도 샀다. 에훗이 음모를 실천한 방법을 관찰해 보자. 첫째로, 그는 함께한 동료들에게까지도 자기의 계획을 숨겼고, 그가 마치 모압 왕 궁정에 무엇을 두고 온 것처럼 하여, 그 왕에게로 돌아갈 때도 그 동료들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18절). 일을 실행하는 데는 다만 한 사람의 손만 필요했다. 더 많은 사람이 그 일에 참여했다면 비밀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용이하게 도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둘째로, 그는 길갈 근처 “형상을 새기는”(난외에는 이렇게 읽고 있다) 곳에서부터 돌아왔다(19절). 여기서 말하는 길갈은 아마 여호수아가 세운 12개의 돌과 모압인들이 세운 돌이 있는 그 곳일 것이다. 혹자는 이 우상들이 서 있는 광경을 보자 에훗에게는 에글론을 죽이고픈 분노가 일어났다고 본다. 만일 에훗이 그런 광경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 계획은 당분간 보류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혹은 아마도 그가 이런 새긴 형상들이 있는 데까지 왔다가 돌아가서 에글론에게 자기가 어디서 돌아왔는지 말했기 때문에, 모압 왕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았는지도 모른다고 쉽게 믿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셋째로, 그는 사사로이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청했다. 여기서 “서늘한 다락방”이라 불리는 밀실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청했다. 그는 왕에게 은밀한 일을 고할 것이 있다고 말했고, 왕은 함께한 모든 사람에게 물러가도록 명령했다(19절). 에글론은 신탁을 통해 어떤 사사로운 교훈을 받기를 기대했든지 혹은 마치 에훗이 이스라엘을 반역할 것같이 여겨져 현 이스라엘 국가에 관한 정보를 얻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외방 사람과 단 둘만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현명치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 파멸되기로 낙인된 자들은 얼이 빠지는 법이다. 그들의 마음의 눈은 총명을 잃게 된다. 하나님은 그들의 분별력을 파멸시키신다. ④ 에글론과 단 둘이 있게 되자 에훗은 신속히 그를 해치웠다. 그가 안일과 사치를 탐닉하던 서늘한 다락방이 그의 사형 집행장이 되었다. 첫째로, 에훗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다고 했다(20절). 그 명령이란 칼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입의 심판은 물론 그의 손의 심판도 내리신다. 둘째로, 에글론은 하나님의 명예에 경의를 표했다. 비록 이교도의 왕이고 부와 권력이 있고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폭정을 베풀고 있으며 쉽게 일어서거나 오래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거북스럽게 비대하며 어떤 감시하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명령 듣기를 기대했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자리가 낮고 안이한 것이었든지 높고 위풍당당한 것이었든지 간에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려고 했을 때는 일어섰다. 이것을 보아 그는 하나님이 자기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의 불손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될 때에도 부주의한 태도로 관망하고 얼마나 그것을 소홀하게 대하는가? “하나님의 명을” 행해야 할 소명을 받은 에훗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명이라고 공언했다. 하나님께서 에글론을 일으켜 세우고자 한 것은 그 사명을 확인하고 처형을 용이케 하기 위함이었다. 셋째로, 그 명령은 그의 귀에 전달된 것이 아니라 곧바로, 또 글자 그대로 심장에 전달되었다. 필살의 칼이 그의 심장에 꽂혀 버린 것이다(21, 22절). 그는 지나치게 비대해 항거하거나 도망칠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지나치게 사치한 생활의 결과였을 것이다. 비대한 것을 위세당당함을 과시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바로 그 상태를 통해 그 위풍 있는 체격이 다만 자신의 비극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그의 세속적인 안전과 어리석음의 한 상징이었다. 그의 심장은 온통 지방분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는 지방분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시 17:10; 119:70 참조). 에글론이란 송아지를 의미한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제물이 될 만한 살찐 송아지처럼 칼에 쓰러졌다. 그래서 오물 혹은 똥이 나왔다는 것이 특기되어 있다(한글 개역에는 없음). 이것은 이 교만한 폭군의 죽음을 더욱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게 해 준다. 자신의 몸에 관해 너무나 사치하고 정결하게 하려고 했으나, 이제 그는 피와 배설물에서 뒹구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제왕들을 멸시하실 수 있다. 에훗이 행한 이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명령을 받은 것이고 그를 처치한 것은 Q이 당신의 백성의 원수에게 복수하시는 합당한 방법이라고 인정하신 것이며, 그런 방법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를 세상에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일은 정당화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부활-성령 내주/강림으로 인해 주님의 시대 경륜이 그 때와는 분명히 달라졌음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지니!!) 그와 같은 사명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와 같은 일에 호소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있으며, 악한들 중에서 가장 악한 자들을 후원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보라!! 그리스도는 체포되시기 직전@!!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넣으라고 명령하셨을 뿐 그에게 그것을 다시 뽑으라고 명령하신 사실은 볼 수 없다. ⑤ 에훗이 에글론을 처형하고 났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의 섭리는 그가 도피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었다. 첫째로, 폭군은 말없이 쓰러졌다. 주위에 있는 그의 부하들에게 들릴 만한 어떤 비명이나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조용히 함정으로 들어와 숨을 거두었는가? 그것은 아마 그의 비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가 세상에서 큰소리를 쳤고, “생존 세계에서는 용사의 두려움이 있던 자”였지만(겔 32:27) 죽을 때는 자신의 비대함 때문에 죽음의 신음 소리와 더불어 숨이 끊어진 것이다. 둘째로, 이 복수의 영웅적인 집행인 에훗에게는 양심의 가책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자세로 그 다락을 나오면서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 전혀 어떤 낌새를 채지 못할 만큼 대담하고 아무 일 없었던 모습으로 그 수비구역을 통과했다. 셋째로, 에훗이 가고 대기실에 있던 신하들이 왔지만, 다락문이 잠긴 것을 보고 왕이 쉬는 줄 알았으며 왕이 어떤 메시지를 듣고 편히 누워 그 일로 생각에 잠긴 줄 알았다(24절). 그러므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왕의 잠에 방해를 주지 않으려는 신하들의 배려로 인해 왕의 죽음을 보복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인 위풍을 너무 내세워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게 될 때, 때때로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해가 될 때가 있음을 알자. 넷째로, 신하들은 드디어 문을 열고 왕이 “참으로 영원한 잠이 들고 말았다”는 것을 발견했다(25절). 이 비극적인 광경에 그들은 전율을 느꼈고 당황했으며, 그들 자신이 생각이 모자라 바로 문을 열어 보지 못한 것을 뉘우쳤다. 그리고 그 일을 자행한 자를 잡기 위해 추적자들을 보낼 생각이었으나 이미 그를 잡는다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에훗은 이 일을 한 후 울창한 숲이란 의미를 가진 스이라라는 곳으로 피했다(26절). 이 이야기에는 당시에 에글론이 살고 있던 곳이 어디쯤인지 말한 부분이 없다. 그러나 에훗이 요단 강을 지났다거나 다시 건넜다는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에글론은 요단 건너편(서편)에 있는 모압의 점령지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거기서 길갈 근처에 있는 채석장은 멀지 않았을 것이다. 에글론은 자신이 안주한 그 곳을 하나님의 백성 위에 군림할 요새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죽임을 당했다. 그는 더 큰 장소에서 양과 같이 도살되기 위해 양육되고 있었음이 입증되었다. (2) 에훗은 모압 왕을 죽이고 그들 가운데 있는 모압 사람들의 군대에 일대 혼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결국 그들의 압제의 멍에를 벗겼던 것이다. ① 그는 모압 사람들의 본영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즉시 군대를 소집했고 그 자신이 앞장섰다(27절). 그가 분 나팔은 실로 해방을 선포하는 희년의 나팔이었고, 억압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기쁨의 소리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원수들이 부는 나팔 소리 외에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② 그는 경건한 사람답게 이 모든 일을 신앙으로 행한 사람이었으므로 스스로 용기를 가졌고, 모든 병사에게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용기를 부어 주었다(28절).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즉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확신한다. 그러므로 담대히 나아가자. 승리는 확실하다.” ③ 지략 있는 장군답게, 그는 먼저 요단 강의 여울들을 확보했다. 그래서 모든 길목에 강력한 수비군을 배치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땅 안에 있는 모압 사람들(에훗은 이들만 생각하고 있었다)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그들 본국 사이의 연락을 두절시키기 위함이었다. 또 그들에게 어떤 정보가 들어가 도주하더라도, 그들이 본국으로 도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요, 그들이 싸우기로 작정했다면 본국에서 원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에훗은 모압 사람들이 궁전이나 낙원과 같이 즐기던 그 곳을 그들의 감옥과 같이 봉쇄했을 것이다. ④ 에훗은 모압을 습격해 그들 중 1만 명을 칼로 베었다. 이 숫자는 아마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유지하기 위해 파견된 병력의 인원수인 것 같다(29절). 그러나 “한 사람도 피하지 못했다.” 이들은 모압의 모든 군인 가운데서 가장 우수하고 뛰어난 자들이었고, 모두 원기왕성하고 큰 몸집에 건장한 자들이었으며, 신체상으로 모든 것이 구비되었을 뿐 아니라 높은 사기도 가졌으며 용맹스러운 자들이었다(29절). 그러나 그들의 강함과 용기도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실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다. ⑤ 이 승리의 결과로 이스라엘 경내에서 모압의 세력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들은 이제 이 땅에서 압제자들을 말끔히 씻게 되었다. 그래서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다”(30절). 우리는 그동안 선한 역할을 계속한 에훗의 영향력으로 인해 우상 숭배를 중단하고 이스라엘에게 어떤 개혁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80년 동안이란 그 땅의 평화는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가나안에서 얻을 성도들의 영원한 안식에 비교한다면 무엇이 긴 시간이겠는가? ----------- 삼갈의 공적(삿 3:31)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는 말은, 혹자에 의하면, 모압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던 요단 동편에 있는 땅을 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 장에서 보면 남서쪽에 있는 요단 이쪽도 당시에는 블레셋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삼갈이 바로 그들을 대항해 막아 냈던 것이다. Ⅰ. 이스라엘에는 구원이 필요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고 했기 때문이다. 후에 드보라가 그녀의 노래에서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5:6)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그들의 곤혹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블레셋 변방에 있는 지방에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도로로 여행할 수 없을 만큼 약탈이 극심했다. 그런 곳에는 위험이 컸고 약탈이 심해 방비되어 있지 못한 마을에서는 감히 살아갈 수도 없었고, 다만 요새화된 성읍들 안에서만 안전할 수 있었다. Ⅱ.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삼갈을 세우셨다. 이 때는 에훗이 생존해 있긴 했으나 완전히 노쇠했을 때로 생각된다. 적군의 수효는 너무나 적었으므로, 그들 중 6백 명을 죽임으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소를 몰 때 쓰는 막대기로 많은 적을 죽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막대기를 보습(a plough share)이라고 하기도 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땅을 약탈하려고 침략해 왔을 때, 아마 그는 보습으로 밭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그의 심중에 그들을 대항할 마음을 주시고 돌변적이고 강한 충동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칼이나 창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손 가까이에 있는 경작 도구들 중에서 어떤 것을 잡아 그것으로 수백 명이나 죽이고 일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보게 된다. 1. 혈통, 교육, 그리고 직업이 비천하고 내세울 것이 못 되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과 교회의 이익에 탁월하게 쓰이게 하실 수 있다. 성령을 넘치게 가지신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면 밭 가는 사람들도 사사와 장군으로 세우실 수 있고, 어부를 사도로 세우실 수도 있다. 2. 아무리 약한 무기라도, 하나님이 그 팔을 지휘하시고 힘 주시면 조금도 문제될 바가 없다. 소 모는 막대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골리앗의 칼보다도 더 강해지는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능력의 탁월함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나타내시기 위해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이런 비천한 도구를 통해서도 역사하시게 된다. ===호크마 =====3:1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 '가나안 전쟁'은 B.C. 1405년경부터 약 5년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창12:7;출3:8)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했던 정복 전쟁을 가리킨다. 이 엄청난 전쟁은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과거에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없는 큰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장로들이 죽은 뒤 그들을 이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큰 일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었다(2:10). 그래서 이 전후(戰後) 세대는 그 선조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몸소 향유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그들의 주와 왕이 되시니,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섬겨야 했다(출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본절은 이를 암암리에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하려 하시며 - 전쟁의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에게 전쟁을 친히 겪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PulpitCommentary). =====3:2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 '그것'이란 1절에 언급된 '전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신 본래 이유와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분명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깨달아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본절에서는 가나안족속을 남겨 놓은 이유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유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쟁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당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알리시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 당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수의 많고 적음이나 병기(兵器)의 우수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삼상 17:47)을 익히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사후 세대들에게도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오직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모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데 있음을 가르쳐 주려 한 것이다(A.C.Hervey,A.E.Cundall,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74). 남겨 두신 열국 - 곧 여호수아의 가나안정복 당시 미처 완전히 진멸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수아 사후에도 가나안에 존속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3,5절). 그런데 본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신데에도 깊은 경륜(經綸)이 담겨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 역시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는 일례이다(사 55:8,9). =====3:3 블레셋 - 그레데(Crete)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