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수23.여호수아의 고별 설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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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23장  [279.인애하신구세주여] [263. 이세상험하고] [267.주의확실한약속의말씀듣고]


[[증인...에드(עד) = 쉐마(순종) + 에하드(하나) =. ‘증거, 증인’....내 증인 = 부활 구주 JC의 증인]] 에드, 우드:::( 성령, 수증기,) 감싸다 운행하다 두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

ְׁשַמע ִיְׂשָרֵאל ְיהָוה ֱאֹלֵהינּו ְיהָוה ֶאָחד׃    ְוָאַהְבָּת ֵאת ְיהָוה ֱאֹלֶהיָך ְּבָכל־ְלָבְבָך ּוְבָכל־ַנְפְׁשָך ּוְבָכל־ְמֹאֶדָך׃

쉐마 이스라엘 여호와 엘로헤이누 여호와 에하드   베 아하브타 에트 여호와 엘로헤이카 뻬칼-레바르카 우베칼-나프세카 우 

== 샤마 이스라엘 예호와 엘로힘 예호와 에하드  ... 아헤브 에트 예호와 엘로힘 콜 레바브 콜 네페쉬 콜 메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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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죽기 직전 암송하는 말이 있다.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여호와) 엘로헤누 아도나이(=여호와) 에하드("에카드"로도 발음)” 유명한 쉐마의 첫구절이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마지막 신앙고백으로 쉐마를 암송한다는 것이다. 

쉐마 이스라엘(שמע ישראל)은 ‘들으라 이스라엘’ +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아도나이 에카드( יְהוָה אֱלֹהֵינוּ יְהוָה אֶחָד) <좌에서 우가 아니라, 우에서 좌로 읽는다>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원문을 직역하면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 하나”.. 여호와 하나님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직 그 유일하신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구절을 자세히 보면 [쉐마]에서 히브리어 알파벳 아인(ע)과 [에카드]에서 히브리어 알파벳 달렛(ד)이 다른 글자보다 크게 씌어져 있다. 두 자를 합하면 에드(עד)라는 단어다. ‘증거, 증인’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주님의 진정한 의도대로!!) 믿는 것이 = 유일한 머리-남편이신 하나님의 유일한 아내로서!! 신실-진실-정직과 그분의 의를 힘입어 그분을 살아냄의!! 참 순종함과 사랑함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자 다른 사람에게 증거해야 하는 사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벨론 탈무드에 의하면 유대인 남자아이가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바로 쉐마의 첫구절이라고 한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매일 하루 두번씩 이 말씀을 암송한다. 

유대인의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매일 그들의 전 인생을 지배하는 신념이 바로 ‘쉐마’인 것이다. 이 쉐마의 말씀이 유대인이 아닌 우리에게는 어떤 상관이 있을까? 

모세는 이제 가나안 진입을 앞 둔 광야 2세대에게 설교한다. 그의 120년 인생을 건 설교였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다” “쉐마 이스라엘 아도나이 엘로헤누 아도나이 에하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다음 세대들이 자신의 말을 명심하길 원했다. 여기서 ‘쉐마’는 ‘듣다’라는 뜻의 히브리 동사 ‘샤마아’의 2인칭 단수 명령형이다. ‘너는 잘 들으라’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라’고 하실 때가 있다. 이것은 단지 리스닝을 잘 하라는 말이 아니다. 엄마 아빠 말에 순종하라는 말이다. 

쉐마는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것이다.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라는 명령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우리 하나님이 유일한 여호와이심을 선포한다. 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들의 살 길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주(主)는 그들의 옛생활을 주관했던 애굽의 신들이 아니었다. 또한 가나안 원주민들이 복받기 위해 섬기는 가나안의 신들도 아니었다. 그들의 주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모든 나라는 각자 섬기는 신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신들은 인간의 욕망을 위해 만들어낸 신에 불과했다. )

모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오직 유일한 신인 것을 이스라엘 다음세대가 명심하길 원했다.

세상은 자신의 성공과 번영을 위해 계속해서 우상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세상속에서 하나님 한 분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신앙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대의 주인은 누구인가?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욕망을 따라 만들어내고 섬기는 우상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각자의 인생에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분명한 선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단지 축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되시는 삶을 살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듣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모세는 이어서 말한다.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 세가지로 나온다. 

==먼저 마음을 다하는 사랑이다.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לב)’다. 레브는 ‘심장’이란 뜻도 있다. 심장이 뛰는 사랑, 그것은 마음이 나뉘지 않는 사랑이다. 히브리어로 ‘하나’가 ‘에하드’인데, 바로 에하드의 사랑을 하라는 것이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여자도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서는 능력있는 남자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랑은 에하드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뉘지 않는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나뉘어지지 않는 하나의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다.

원래 사람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인생의 모든 상황을 자신의 이기적인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사의 좋고 나쁨에 대해 하나님 중심의 관점을 갖는다. 하나님이 인생의 진정한 주관자임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고난의 순간, 역경의 순간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을 놓치지 않는다. 

내가 힘들다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두번째 표현인 ‘뜻을 다한 사랑’은 뭘까? 

본문에서 ‘뜻’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네페쉬(נפש)’다. 네페쉬는 ‘숨, 호흡’이란 뜻이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을셨을 때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즉 호흡하는 존재, ‘네페쉬 하야(חיה נפש)’가 된 것이다. 

따라서 뜻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은 너의 전 존재, 즉 목숨을 걸고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쉐마의 말씀을 인용하시는데, 거기서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번역되어 있다.

네페쉬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랍비 아키바가 로마군인들에게 잡혀 살가죽을 벗기는 고문을 당할 때 그는 쉐마를 암송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제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한평생 쉐마를 암송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갈등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면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을까 늘 고민했는데, 오늘에야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는 쉐마를 암송하며 그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뜻을 다한 사랑은 결국 내 목숨, 네페쉬(נפש)를 드릴 수 있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세번째, 힘을 다한 사랑은 무엇일까? 힘으로 표현된 히브리어는 ‘메오드(מאד)’다. 

메오드가 붙으면 ‘매우’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메오드가 명사형으로 쓰이면 ‘힘, 능력, 부’를 뜻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 재력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은 너의 모든 소유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해석한다. 그들은 인생이 물질 소유를 통해 확장되고 풍부해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 삶의 부요함를 통해 하나님께 헌신하려 한다. 

따라서 힘을 다한 사랑은 나의 모든 능력과 소유를 다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세는 이어서 말한다.

신 6:6-7,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여기서 ‘부지런히 가르치다’는 히브리어로 ‘솨난(שנן)’이다. ‘솨난’의 원래 의미는 ‘갈아서 날카롭게 하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으로 적용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이스라엘의 교육방법은 구전을 통한 반복학습이다. 반복 교육을 통해 그 내용이 날카로운 칼처럼 자녀들의 삶을 뚫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강론하라’는 것은 강해 설교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토라 교육은 랍비가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하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부모를 통해 자녀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다.

신6:8-9,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차는 것이 테필린이다. 그리고 모든 문을 드나들 때 입맞추는 것이 메주자이다. 

테필린과 메주자 안에는 쉐마의 말씀이 넣어져 있다. 그들은 매일 기도할 때 쉐마로 무장하고, 집밖을 드나들 때마다 쉐마에 입맞추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차고 있는 테필린과 그들이 입맞추는 메주자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열심을 보게 된다. 

그러한 열심이 있었기에 많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토라의 말씀을 지켜내고 유대인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성공했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실패했다. 

왜 실패했을까?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여러가지 규례와 장치들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는 것을 놓쳐버렸다. 왜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듣는 것, 즉 쉐마에 열심을 내었던 그들로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은 말한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예수님을 보내어 그를 통해 우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었다. 

예수님은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다고 하셨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백성이었다면 그 말씀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전통 때문에 귀가 가리워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쉐마 신앙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적용하느라 정작 아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유대교의 종교적 전통은 중세시대에 유대교 교리로 한층 강화된다. 

13세기 유대 교육서인 ‘세펠 하히눅’은 신명기 6장 4절 쉐마의 내용을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계명으로 이해한다. 즉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선언으로 보는 것이다. 

12세기 유대교의 핵심 교리를 체계화한 람밤(마이모니데스)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다”라는 신명기 6장 4절 말씀을 ‘하나님이 형체를 가지지 않은 분이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 증거’로 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형태를 가지지 않으셨기에, 그가 나뉜다거나 다른 존재로 분리되는 형체적인 사건은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하나 외에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라든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성육신하셨다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유대교 경전 해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12세기 랍비 라쉬는 신명기 6장 4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제 우리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다른 나라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유일한 주가 될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으로 쉐마신앙은 중세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의 민족신앙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유대교 교리는 쉐마교육을 통해 어려서부터 주입된다. 하나님 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마치 유대교를 버리고 다른 이방종교로 개종하는 배신 행위로 여긴다. 

그래서 예수 믿는게 너무 힘들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쉐마신앙으로 인해 오늘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들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기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유대교에서 믿고 있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유대교의 전통과 교리에 갇힌 민족적인 하나님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계와 민족을 한없는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쉐마교육은 사실 하나님을 죽이는 것이다. 그들이 문자적으로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쉐마신앙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는 구원의 소망은 없는 것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쉐마’신앙이 죽어야 이스라엘이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는 한 서기관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다. 막 12:29-31,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처음에 신명기 쉐마 말씀을 인용하셨다. 그리고 거기에 레위기 말씀을 더하셨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눈에 보이는 사람부터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또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는 결코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 사랑과 함께 이웃 사랑을 강조하신 이유이다.

유창이 초등학교 때 교장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통 유대인들의 신앙적 열심이 대단할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은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분은 소위 세큘라 유대인이었다. 같은 유대인이 종교적 열심을 가진 정통 유대인들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그분은 오직 자신에게 전해지는 사랑을 통해 종교적인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지, 십일조를 많이 내는지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사랑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섬긴다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포로생활했다는 것은 너무도 큰 충격이고 상처였다. 

그래서 그들은 포로 이후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더욱더 종교적 열심에 매달렸다. 율법을 완벽히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규례와 유전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과 이웃을 더 뜨겁게 사랑한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종교로 변하고 말았다. 

우리는 종교적 열심으로 하나님만 사랑하려 해선 안된다. 메마르고 형식적인 종교인이 될 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사랑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도 함께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벤허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 벤허가 자기의 집 문에 달린 메주자를 만지는 장면이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자신이 성공한 유대인으로 살아갈 때였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습관적으로 메주자를 만지고 지나간다. 그 후 그는 누명을 쓰고 노예선에 끌려 간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집에 와보니 사랑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홧김에 메주자를 내려쳤고 메주자는 깨져버린다. 그 후 그는 예수님이 못박히실 때 그 분이 자기가 노예로 끌려갈 때 물을 준 분임을 깨닫는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자신의 죄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깨진 메주자 사이로 보이는 쉐마 양피지를 정성스럽게 만진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결국 하나님의 사랑, 쉐마의 본질을 만지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만져야 유일하신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을 만져야 하나님을 목숨 다해 사랑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출애굽 때 문설주에 발라진 것은 어린 양의 피였다. 그 피가 발라졌기에 죽음이 넘어가고 구원이 임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은 메주자를 만지며 그들을 대신하여 피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만져야 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쉐마의 말씀은 단순히 메주자를 만진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문 위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만져야 비로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쉐마의 본질은 외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몸에 테필린을 차고 메주자에 입 맞춘다고 그 본질의 의미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 10:27-3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이 말씀처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인정할 수 있고,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그것이 쉐마의 본질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예수님을 통해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소원한다.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세상의 다른 우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섬기는 자가 되길 바란다. 

그 유일하신 하나님을 내 마음을 다해, 내 목숨을 다해, 내 능력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그분을 향한 사랑을 우리 자녀들과 다음세대에도 증거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온 세대가 형식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다바크!!]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9.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2.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14.  ○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1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16.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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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제23장

1.  And it came to pass a long time after that the LORD had given rest unto Israel from all their enemies round about, that Joshua waxed old and stricken in age.

2.  And Joshua called for all Israel, and for their elders, and for their heads, and for their judges, and for their officers, and said unto them, I am old and stricken in age:

3.  And ye have seen all that the LORD your God hath done unto all these nations because of you; for the LORD your God is he that hath fought for you.

4.  Behold, I have divided unto you by lot these nations that remain, to be an inheritance for your tribes, from Jordan, with all the nations that I have cut off, even unto the great sea westward.

5.  And the LORD your God, he shall expel them from before you, and drive them from out of your sight; and ye shall possess their land, as the LORD your God hath promised unto you.

6.  Be ye therefore very courageous to keep and to do all tha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that ye turn not aside therefrom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7.  That ye come not among these nations, these that remain among you; neither make mention of the name of their gods, nor cause to swear by them, neither serve them, nor bow yourselves unto them:

8.  But cleave unto the LORD your God, as ye have done unto this day.

9.  For the LORD hath driven out from before you great nations and strong: but as for you, no man hath been able to stand before you unto this day.

10.  One man of you shall chase a thousand: for the LORD your God, he it is that fighteth for you, as he hath promised you.

11.  Take good heed therefore unto yourselves, that ye love the LORD your God.

12.  Else if ye do in any wise go back, and cleave unto the remnant of these nations, even these that remain among you, and shall make marriages with them, and go in unto them, and they to you:

13.  Know for a certainty that the LORD your God will no more drive out any of these nations from before you; but they shall be snares and traps unto you, and scourges in your sides, and thorns in your eyes, until ye perish from off this good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hath given you.

14.  And, behold, this day I am going the way of all the earth: and ye know in all your hearts and in all your souls, that not one thing hath failed of all the good things which the LORD your God spake concerning you; all are come to pass unto you, and not one thing hath failed thereof.

15.  Therefore it shall come to pass, that as all good things are come upon you, which the LORD your God promised you; so shall the LORD bring upon you all evil things, until he have destroyed you from off this good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hath given you.

16.  When ye have transgressed the covenant of the LORD your God, which he commanded you, and have gone and served other gods, and bowed yourselves to them; then shall the anger of the LORD be kindled against you, and ye shall perish quickly from off the good land which he hath given un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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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23  Amplified Bible

===Joshua’s Farewell Address

1 A long time after that, when the Lord had given Israel rest from all their enemies [a]on every side, and Joshua had grown old and [b]advanced in years, 2 that Joshua called all Israel, their elders and their heads and their judges and their officers, and said to them, “I am old and advanced in years. 3 And you have seen all that the Lord your God has done to all these nations for your sake; for the Lord your God is He who has been fighting for you. 4 See, I have allotted to you these nations that remain as an inheritance for your tribes, with all the nations which I have cut off, from the Jordan [on the east] to the Great [Mediterranean] Sea toward the setting sun. 5 The Lord your God will push them away from before you and drive them out of your sight and you will take possession of their land, just as the Lord your God [c]promised you. 6 Be steadfast and very determined to keep and to do everything that is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so that you do not turn aside from it to the right or the left, 7 so that you do not associate with these nations which remain among you, or mention the name of their gods, or make anyone swear [an oath by them], or serve them, or bow down to them. 8 But you are to cling to the Lord your God, just as you have done to this day. 9 For the Lord has driven out great and mighty nations from before you; and as for you, no man has been able to stand [in opposition] before you to this day. 10 One of your men puts to flight a thousand, for the Lord your God is He who is fighting for you, just as He [d]promised you. 11 So be very careful and watchful of yourselves to [e]love the Lord your God. 12 For if you ever turn back and cling to the rest of these nations, these that are left among you, and intermarry with them, so that you associate with them and they with you, 13 know and understand with certainty that the Lord your God will not continue to drive these nations out from before you; but they will be a snare and trap to you, and a whip on your sides and thorns in your eyes, until you perish from this good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has given you.

14 “Now behold, today I am going the way of all the earth, and you know in all your hearts and in all your souls that not one word of all the good words which the Lord your God has promised concerning you has failed; all have been fulfilled for you, not one of them has failed. 15 It shall come about that just as every good word which the Lord your God spoke and promised to you has [f]been fulfilled for you, so the Lord will bring upon you every bad thing [about which He warned you], until He has destroyed and eliminated you from this good land which the Lord your God has given you. 16 When you transgress (violate) the covenant of the Lord your God, which He commanded you [to follow], and you go and serve other gods and bow down to them, then the anger of the Lord will be kindled against you, and you shall perish quickly from the good land which He has given you.”

===Footnotes

Joshua 23:1 Lit from round about.

Joshua 23:1 Lit and he had entered days.

Joshua 23:5 All through the time of Joshua’s leadership he kept giving as his statement of faith the fact that the Lord had spoken, the Lord had promised.

Joshua 23:10 Lit spoke to.

Joshua 23:11 The word love is sometimes used to express the covenant relationship between Israel and God. Everything depended on whether or not Israel would continue to be faithful to the covenant established by God. Joshua knew the trap the pagan nations would be to Israel, so he proposed three guidelines: first, there must be obedience to God’s word (23:6); second, there must be a diligent separation from the Canaanite nations (23:7); finally, there must be a dependence on the Lord with heartfelt love (23:8-11).

Joshua 23:15 Lit come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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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3장 (개요)

본 장과 다음 장에서는 두 개의 작별 설교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여호수아가 죽기 얼마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설교한 것이다. 

그가 만일 후세대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려고 했더라면 오히려 이스라엘의 신 점령지의 정착 방법, 농업, 생산, 거래, 습관, 법정과 그들의 영아기 공화국의 헌법들을 기록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알려 주고 싶은 것들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 책에 기록해 두려 한 것은 후손들에게 종교 의식과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반 역사의 의례적인 주제가 되는 보편적인 일들은 간과하고, 하나님과의 약속에 충실하도록 이스라엘을 설득하는 데 사용했던 방법들을 전수해 주고 있다. 

또 이것은 당시 이런 주장을 들었던 세대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이런 주장을 읽게 되는 후세대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1. 국가적 총회가 소집됨(1, 2). 이것은 아마도 자기들의 땅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를 의논하고, 각자 사리에 따라 몇 년간 처리되던 일들 중 필요하다고 느낀 것들은 질서로 확립해 두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2. 회기의 벽두에 혹은 회기의 끝에 가서, 그들이 이렇게 모이게 된 원칙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여호수아의 연설.

   (1)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나게 해 주고(3, 4, 9, 14),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을 환기시켜 준다(5, 10).

   (2)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를 지속할 것을 권면한다(6, 8, 11).

3.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섬기는 이웃과 어떤 친분도 갖지 말라고 주의시킨다(7).

4. 그는 만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에게로 돌아갔을 때 생겨날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경고한다(12, 13, 15, 16). 

이 모든 것에서 그는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열심을 보여 주고 경건한 질투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해 질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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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고별 설교 (1)(수 23:1-10)

Ⅰ. 여호수아의 이 칙령이 언제 내려졌는지, 이 총회가 어디에서 모였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어떤 이들은 이 총회가 모인 곳이 여호수아가 살던 성읍인 딤낫세라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그가 늙어서 잘 기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가 이토록 권위를 누리고 있었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모임은 실로에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 같다. 

거기에는 모이는 회막이 있었고, 세 명절 중 한 번은 모든 남자가 여호와 앞에 예배하기 위해서 이 곳으로 올라와야만 했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기회를 이용했을 것이다.

Ⅱ. 이 일이 언제 이루어졌는지 그 때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언급밖에 없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안식을 주신 지 오랜 후”였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랜 후인지는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1절).

1.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안식과 소유에 편안을 느끼고, 이 좋은 땅에서 생겨나는 유익들을 즐기는 시간을 가진 지 오랜 후였다.

2. 그것은 또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이 남아 있는 가나안인들과 친교를 맺어 부패하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그런 일이 없도록 이스라엘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게 된 때였다.

Ⅲ. 여호수아가 이 연설을 한 대상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에게……”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읽혀질 수도 있다(2절). 그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장로, 즉 추밀원과(이들은 후에 산헤드린을 구성하게 되었다) 각 지파의 장들, 즉 각 가족에 따른 31인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율법에 따라서 범죄와 사건들을 다루고 판결하는 유식한 재판장들, 그리고 이 판결들을 맡아 집행하는 유사들을 불러 모았다. 

여호수아는 이들을 함께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친히 연설을 했는데,

1. 여호수아는 자기가 말하는 것을 혹은 적어도 자기가 말하는 것의 본질이나 의도만이라도 그들이 관리하는 각 가족에 속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이 부탁이 온 나라에 두루 퍼질 수 있도록 했다.

2.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그 분을 따르는 일에 열심을 낸다면 그들의 영향력이 온 백성에게 미쳐서 백성들로 하여금 충성되게 살아가도록 해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높은 사람이 선한 사람이면 많은 사람을 선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Ⅳ. 여호수아가 이 부탁을 할 때의 상황.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1절). 아마도 이 일은 그의 인생의 말년에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는 110세가 되도록 살았다(24:29). 

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이 연설의 서두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2절). 그가 늙게 되었을 때 몇 년 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늙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해 주셨다(13:1). 

그러나 지금 그는 노년의 쇠약함을 절감하게 되었고, 따라서 늙었다는 이야기를 또 들어야 할 필요가 없이 스스로 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그는 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1. 이 부탁을 하게 되는 이유를 삼는다. 

그는 늙었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지내며 권면하고 교훈하는 시간을 잠깐밖에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벧후 1:13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그는 급격한 노쇠의 현상으로 그가 곧 이 장막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또한 자기가 죽은 뒤에도 그들이 계속해서 지금과 같이 선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의무를 “생각하게 하려”고(벧후 1:12) 모든 기회를 이용한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향해서 급히 다가오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온 힘을 다해서 삶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2. 자기가 하는 말에 그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이유로 삼는다. 

그는 늙었고 경험이 많았다. 그러므로 보다 더 존경을 받으며 며칠간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봉사하며 늙어 왔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을 바쳤다. 

그러므로 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는 늙어 죽어가고 있다. 그는 오래 그들과 같이 지내며 설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가 지금 하는 말들을 잘 들어서 오는 세대를 위해서 남겨 놓으려고 했을 것이다.

Ⅴ. 강연의 내용, 즉 그 범위는 할 수 있으면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로 하여금 참된 신앙을 지키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전심하게 하는 것이다.

1. 그는 지금 자기 시대와 자기의 통치하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그들에게 환기시켰다. 

그는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다. 이 일들에 대한 증명으로서 그는 그들의 눈에 호소했다(3절). “너희들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다. 그것들은 내가 한 것이나 너희들이 한 것이 아니다(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도구들일 뿐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나와 너희들을 위하여 하신 것이다.”

(1) 여러 크고 강한 나라들이(이들의 이름들은 앞에 나왔다) 이스라엘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서 쫓겨났다. 

이들은 당시 지상에 있던 어떤 나라에도 못지않은 훌륭한 나라들이었다. “너희들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보았다. 이 나라들도 그의 만드신 바며 그의 작품이며 하나님은 이들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사 자기 일을 하게 하실 수가 있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가 너희를 위하여(3절), 비록 이들이 너희들과 비교해서 크고 강한 나라들이기는 하지만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이들을 파멸하시며 너희 앞에서 어떻게 그들을 쫓으셨는지(9절) 알고 있다.”

(2) 이들은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이렇게 되었더라면 이들은 조금 살기 어려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새로운 정착을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런 곳이 이스라엘이 그토록 오랫동안 방랑하던 광야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자리를 바꾸어 앉은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앞에서 여지없이 말살되었다. 

비록 이들이 이스라엘을 대항해서 최선을 다해 완강하게 버텼지만, 이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진압되었고 이들의 땅은 보다 영광스럽게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보다 더 잘 드러내는 실증들이 되었다(3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인도하시고 너희를 먹이셨을 뿐만 아니라 너희들을 지켜 주시고 용사로서 너희들을 위하여 싸워 주셨다.” 용사라는 칭호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을 때 이들 가운데 알려져 있던 칭호였다(출 15:13). 그러므로 이 긴 전쟁의 기간에 이 모든 승리는 너무나 분명하고 손쉬운 것들이었다.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9절). 즉 어떤 인간도 이스라엘을 거역해서 두렵게 할 수 없었고, 그들의 승리의 군대의 행진을 어렵게 하거나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떤 전쟁도 이스라엘은 당일로 수행했고 어떤 성도 포위하면 점령했다. 이들이 당한 아이 성의 손실은 특별한 경우였으며, 사소한 것이었고, 도리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서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가나안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대만큼 계속적인 승리의 면류관을 쓴 군대는 일찍이 없었다.

(3)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을 완전히 소유했다(4절). 

“내가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다. 너희들은 그들을 노략하고 탈취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 나라에서 한동안 편안하게 살고 있으며 또한 너희 지파의 영원한 기업으로 확신하고 있다.”

2.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때가 되시면 이 영광스러운 일들을 수행하시며 성취하실 것을 확신시켰다. 

가나안 족속들 중에 더러는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며, 어떤 곳에서는 강하고 두려운 존재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스라엘의 기대를 꺾어 놓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불어나 이 땅을 채울 수 있을 때, 이스라엘이 힘을 다해서 자기들의 목적을 추구하고 이들에게 대해서 전쟁을 수행한다면 하나님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 버리실 것이다(5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그렇게 되면 이 땅에서는 가나안인들을 한 사람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며, 아직 그들의 수중에 있는 땅들도 너희가 소유하게 될 것이다.” 만일 몇몇 지파의 군인들이 각기 성읍으로 흩어지고 그래서 군대가 해산된 후에 가나안 족속들의 잔존자들에 대해 전쟁을 새롭게 시작해야 될 경우가 있을 때 군대를 소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의가 제기되어야 한다면, 이것에 대한 답변으로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군대의 숫자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거의 없다고 이야기했다(10절). “너희 중 한 사람이”─요나단이 한 것처럼(삼상 14:13)─“천 명을 쫓으리라.” 즉 “각 지파는 자기 지파와 자기 지파의 기업의 회복을 위해서 숫자가 적다는 불리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모험을 하도록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사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시고 꺾어 놓기도 하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모든 피조물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시는 분인데,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너희들은 그를 얼마나 많은 숫자에다 비교하는가?”라는 뜻이다.

3. 여호수아는 그들이 자기 의무에 충실하며 그들이 잘 출발한 여호와의 선한 길들을 계속해서 지키도록 아주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 용기를 내라고 권면했다(6절).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들과 싸우신다. 그러므로 너희도 스스로 그를 위하여 용감하게 행동하라. 너희는 크게 힘써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지금 갇혀 있는 곳에만 있도록 억제하신다. “기록된 것을 주의하여 지키고 부지런히 살피며 온 마음을 다하여 주목하라.”

(2) 아주 주의하라고 권면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하라. 치우치면 잘못과 곤경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어떤 것도 불경하게 무시하지 말며 너희들이 고안한 어떤 것으로 미신적인 첨가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들은 특별히 우상 숭배에 대한 접근을 주의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부닥치는 죄악이며 가장 유혹적인 죄다(7절).

①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사귀어서도, 그들을 방문하러 가서도 안 되며, 어떤 축제나 향연에도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그들과 어떤 친밀한 접촉이나 어떤 종류의 대화라도 가지기만 한다면 반드시 오염의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② 그들은 어떤 우상에게도 존경을 보여서는 안 되며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아야 한다. 

영원한 망각 속으로 이것들에 대한 기억을 기꺼이 매장시키도록 하여 이것들에 대한 예배가 절대로 되살아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들의 이름조차도 잊어버리라. 우상들은 더럽고 가증한 것으로 간주하라. 최고의 추함과 혐오심이 없이는 이름도 부르지 말라.” 유대인들은 자기 후손들이 돼지고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이름 때문에라도 그 고기를 원하게 되지 않도록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돼지고기를 말하려면 “저 이상한 것”이라고 불러야 한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방 신들의 이름이 예사로 사용되고, 특별히 시나 연극에서 아주 친밀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그런 것들의 이름은 영원히 혐오의 대상이 되게 하고 사라져 버리게 해야 한다.

③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우상에게 경의를 나타내는 것을 보고 호의를 보여서도 안 된다. 

우상을 두고 맹세를 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을 두고 맹세하게 해서도 안 된다. 우상 숭배자들과 어떤 계약도 체결해서는 안 되며,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곧 우상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된다.

④ 그들은 우상 숭배의 모든 기회를 주의해야 하는데, 그래야만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가서 깊은 곳에까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만약 조금씩 빠져 들게 되면, 마침내 제2계명의 명령을 거역해서 거짓 신들을 섬기게 되고 그것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말 것이다.

(3) 언제나 성실할 것을 권면한다(8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라. 즉 그를 기뻐하며 그를 의지하고 너희 자신을 그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며 또 그 일을 가나안에 들어온 이래로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끝날까지 계속하라.” 기꺼이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브올의 죄악을 되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 가운데 잊혀진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다. 보다 기쁜 마음으로 이 권면을 끌어가기 위해서 그는 그들을 칭찬한다. “계속 형통하라. 너희가 그와 같이하는 한 여호와께서도 너희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명령하는 사람들은 칭찬도 해 주어야 한다. 백성들로 하여금 더 잘 하게 하는 방법은 그들로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오늘날까지 여호와를 친근히 해 왔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는 일을 계속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이 차지한 칭찬과 보상을 상실해 버릴 것이다. 너희가 의에서 돌아선다면 너희의 의의 수고는 너희와 상관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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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고별 설교 (2)(수 23:11-16)

Ⅰ. 여호수아는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이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지시했다(11절). 우리가 여호와께 친근히 하고 그 분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면,

1.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수많은 고귀한 영혼들이 부주의로 인해 파멸당한다. “그러므로 조심하라. 스스로를 조심하라(원문 그대로 따르면) 너희 영혼을 조심하라. 그래서 내적 인간이 죄의 부패에서 깨끗하게 보전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친밀하게 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탁과 더불어 우리에게 고귀한 영혼을 주셨다. “영혼을 조심하라. 모든 지킬 것들 중에서도 부지런히 영혼을 지키라.”

2.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사랑의 원칙에서 하는 것이어야지 하나님께 대한 노예적인 공포나 강제로 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선택과 기쁨의 것이어야 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그를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Ⅱ. 여호수아는 왜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증으로서 하나님의 신실성을 주장했다(14절).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 한다. 나는 늙어 죽어가고 있다.” 죽는다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먼 본향에로의 여행이다. 그것은 온 세상의 길이다. 그것은 조만간 온 인류가 가야 하는 길이다. 여호수아 자신도 그토록 위대하고 선한 사람이며 질병에서 제외될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해도, 이 공통의 운명에서는 면제될 수가 없었다. 그는 여기서 이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말들을 자기의 죽음의 말로 고려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또한 이 말은 이와 같이 해석될 수도 있다. “나는 죽음으로써 너희를 떠나간다. 너희들은 나와 언제나 같이 있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여호와께 친근히 하면 그는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실 것이다.” 혹은 이렇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종말이 가까이 되었으므로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 돌아보건대 나는 너무나도 명백한 이 증거에 대해 확신에 차 있는데 너희들도 이 일을 마음과 뜻에 아는 바이다.”─그 지식은 머리에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 속에 자리할 때에 우리에게 유익하며 우리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친다─“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고 있다”(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굉장히 많은 것들을 말씀하셨다. 21:45 참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승리와 안식과 풍요와 그들 가운데 거하는 회막 등을 약속하셨고, 그가 약속하신 모든 것은 “하나도 어김이” 없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토록 너희에게 대하여 진실하시니 너희들도 그에게 거짓되지 말라.”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다”(히 10:23)는 것이 인내를 요구하는 사도들의 확신점이다.

Ⅲ.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배교의 치명적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올바른 경고를 했다(12, 13, 15, 16절). “만일 너희가 퇴보하면 그것이 너희들의 파멸임을 분명히 알라.”

1. 여호수아는 배교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그것을 경고했다. 

배교의 단계는(12절) 우상 숭배자들과 친분이 두터워지게 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교묘하게 감언이설로 속인다.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되었으므로 자기들이 이들을 섬기겠다는 구실로 교묘하게 친분을 맺으려고 할 것이다. 다음 단계는 그들의 술책에 말려들어가 그들과 혼혈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부유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자녀를 기꺼이 바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른 신들(이것들은 고대 그 나라의 신들로 모셔졌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의 길은 내리받이다. 죄인들과 친분을 가지는 사람들은 죄와 친분을 가지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일을 여호수아는,

(1) 야비하고 수치스러운 이탈이라고 단언했다. “그것은 너희가 그토록 잘 시작한 데서 퇴보하는 것이다”(12절).

(2) 가장 불성실한 약속의 파기라고 단언했다(16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을, 너희 스스로가 너희 손으로 세운 그 언약을 범했다.” 다른 죄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신 율법에 대한 범죄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분이 그들에게 명하신 언약에 대한 범죄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의 총체적 파기이며 모든 언약의 은전을 몰수당하는 것이다.

2. 그는 파멸을 서술하면서 이것을 경고했다.

(1) 만일 이스라엘 족속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숨겨주고 마음대로 살게 해 주며, 또 그들과 인척 관계를 맺게 되면 그들에게 올무와 함정이 되어 그들을(우상숭배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덕과 지혜와 사려와 용기와 명예까지도 모두 파멸시킬 모든 부도덕을 저지르게 되는) 죄악에 빠지게 하고, 또한 어리석은 계약과 무익한 계획과 모든 부당한 생활 양식을 따르게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음험한 생활들로 그들을 유혹해서 불행한 상태에 빠지게 하고 그들에 대해서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게 되면 그 때는 이들이 보다 노골적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며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엣가시”가 될 것이다. 나아가서는 그들의 가축을 죽이고 몰아내며 그들의 곡식을 불태우고 훔치며 집을 약탈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해서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어떤 구실로 맺어진 우정이든 간에 가나안인은 신앙을 개종하고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면 어느 때건 이스라엘의 이름과 모습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형벌이 죄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며, 또한 어떻게 죄악 자체가 형벌이 되는 것인지 잘 살펴보라.

(2) 하나님의 진노가 타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과 동맹을 체결한다면, 그것은 단지 우상 숭배자들에게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 기회를 주는 것이 되며 가슴에 뱀을 품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원수가 되도록 격노하게 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의 불길을 붙이는 결과가 될 것이다.

(3) 이 모든 위협의 말들이 축복의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했다. 

영원히 진실하신 하나님은 어느 쪽이건 진실하시기 때문이다(15절). “하나님과 친밀히 하면, 약속에 따른 모든 선한 일이 너희에게 응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너희가 그를 버리면 이 경고에 따른 모든 악한 것들이 또한 너희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모세는 그들 앞에 “복과 화를 두었다”(신 30:15). 그리고 그들은 이제껏 축복만 경험해 왔다. 지금도 그것을 향유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불순종하면 틀림없이 화도 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헛된 낙원만은 아닌 것같이, 그의 경고도 협박만은 아니다.

(4) 이런 일은 모세가 예언한 것같이 그들의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파멸로 끝날 것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이 말이 세 번이나 언급된다. 너희 원수들이 너희를 괴롭혀 “너희가 필경은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13절). 다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사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다(15절). 하늘과 땅이 너희를 멸절시키는 데 합세해 그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망하리라(16절). 그들이 망하게 될 그 땅은 좋은 땅이며 하나님이 친히 그들에게 주신 땅이고, 만일 그들이 스스로의 죄악으로 자기를 그 땅에서 망하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실 그 땅이 그들의 멸망을 악화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무상의, 그리고 확실한 선물인 천국 가나안의 선함도 그들의 재앙을 더욱 악화시켜 영원히 그 땅에서 쫓겨나게 하며 멸망하게 할 것이다. 과거에 얼마나 행복할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만큼 현재의 불행을 깊이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와 같이 그들 앞에 배교의 무서운 결과를 갖다 놓음으로써, “여호와의 진노”를 깨달아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행 11:23)고 권유했다.


===호크마

=====23: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 여호수아서 23장, 24장은 본서의 최종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데, 여호수아서 저자는 이 부분을 이스라엘이 모든 가나안 족속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음을 강조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왜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해야 하는지 그 근거를 제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여기서 '사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사비브"(* )는 '주위를 돌다'는 뜻을 가진 '사바브'(* )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이스라엘에 의해 정븍당한 적들이 그들 주변에 있는 가나안 족속임을 보여 준다.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지 오랜 후에 - 이 말은 가나안 정복 전쟁 결과,이스라엘이 더이상 주변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위협당함이 없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21:44 ; 22:4).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 우리는 이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24:29를 통해 볼 때 여호수아의 죽음이 임박한 그의 나이 약 110정도의 때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여호수와는 자신이 더 이상 오래 살아갈 수 없을만큼 노쇠했음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고별사를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23:2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제사장들과 두령들과 유사들 -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표하는 자들, 곧 뒤이어 나오는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가리킨다. 당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자들로서, 백성을 대표하여 여호수와의 부름에 응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장로'(elder), '두령'(head), '재판장'(judge), '유사'(dfficer)등은 엄밀히 구분된 네 계급적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지도자적 신분을 가리키는 대략적 구분일 뿐이다. 그러나 구태여 구분하자면, '장로'(* , 쟈켄)는 각 지파 유지(有志)들로서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를 일컫는 일반적인 직함을 뜻하며(신 21:2 주석 참조), '두령'(* , 로쉬)은 각 지파나 족속및 가문의 우두머리 위치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고, '재판장'(* ,솨파트)과 '유사'(* , 쇼테르)는 여러 두령 중에서 그 일에 적합한 자로 뽑힌 자를 일컫는 직함인 것 같다(keil & Delitzsch, Vol, 2.p. 223). 

불러다가...이르되 - 혹자들은 당시 여호수아의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자신의 거주지인 에브라임 산지의 '딤낫세라'(19:50)로 백성의 대표자들을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아마도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실로'(18:1)로 불렀을 것이다(Keil, Matthew Henry). 왜냐하면 당시 '실로'(Shiloh)는 중대한 국가적 문제나 메시지가 있을 때, 이스라엘 대표자들이 모이던 중요 장소였기 때문이다.

=====23:3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 여호수아의 고별 연설은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임을 상기시킴으로써 시작하는데,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일선에서 친히 진두 지휘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신앙 고백이었다. 일찍이 모세는 생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가나안 족속들에 대항하여 싸우실 것을 말하였는 바(신 1:30 ; 3:20),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역동적으로 싸우셨던 것이다(2:9-11 ; 4;23, 24 ; 10:14). 즉 견고한 여리고 성읍이 함성으로 무너지고(6:20), 기브온 전투시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고(10:11), 태양이 중천에 머문 일(10:12,13)등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셨다는 생생한 반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 10:14 주석 참조.

=====23:4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편 대해까지 - 이 지역은 요단 강에서부터 해지는 편 대해(大海). 곧 '지중해'에 이르는 가나안 땅의 동서(東西) 전체를 통틀어 가리킨다.

남아 있는 나라들 - 즉 13:2-6에 언급된 지역과 족속들을 가리킨다. 한편, 비록 이들 정복되지 않은 지역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남아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경륜상 이들 족속을 조금씩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 23;29, 30 ; 삿 2:20-3:4).

제비 뽑아 - '제비 뽑기'(Lot)에 대해서는 14:2 ; 18:6 주석을 참조하라.

=====23:5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 여기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는 남아있는 땅까지 포함하여 기업을 분배할 것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13:6의 약속을 가리킨다. 따라서 지금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므로, 이 약속대로 아직도 정복되지 않고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들은 반드시 쫓아내실 것이라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확신시켜 주고있는 것이다. 사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오직 믿음으로' 그 땅, 그 족속을 쳐서 취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23:6

여호와를 사랑하라 

크게 힘써 - '힘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자크'(* )는 '꽉붙들고 매달리는상태'를 가리킨다. 거기에 또한 강조를 뜻하는 부사 '크게'(* , 메오드)가 붙어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해 준다. 이런 점에서 영역본(RSV) '매우 견실하게'(very steadfast), NJV는 '매우 강하게'(very strong), Living Bible은 '매우 확실하게'(very sure) 등으로 번역하였다. 아무튼 이 말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되 담대한 결단력을 가지고 확실하게 지킬 것을 강조한 말이다. 실로 여호수아는 자신의 사후,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해 명하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결심'과 '강한 결단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만일 이것이 없이는, 언제든지율법에서 떠나 이방의 우상 문화에 물들고 만다는 사실을 직감했던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이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말씀과 동일한말로(1:7), 이제 가나안 정복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지금 그는 모든 백성들에게 같은 말로써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여호수아 자신의 좌우명과 같은 말로서, 그는 이 원칙을 따라 행동했기에 가나안 정복 완수라는 필생의 대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그가 백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이 말 한마디로 요약할수 있을 것이다. 1:7 주석 참조.

=====23:7

가지 말라...부르지 말라...맹세 하지 말라...섬겨서...절하지 말라 - 원문에 보면, '섬기지 말라'가 첨가되어 5중 금지로 나타나있다. 따라서 본절은 여하한 이유, 여하한 목적, 여하한 방법으로도 결코 이방의 우상 문화와 교류하지 말고 단호히 끊으라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가지 말라'라고 한 것은 RSV, Living Bible 등이 번역하였듯이 '혼합하지 말라', 곧 이방 족속들과 섞여 살지 말 것을 뜻한다. 또한 NIV는 교제하지 말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출 20:5 ; 신 5:9 ; 8:19 주석 참조.

=====23:8

하나님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 '친근히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 )는 '바짝 밀착하다', '견고히 달라붙다'등을 뜻하는 말로,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이방의 우상 문화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이처럼 하나님께 달라불는 것 뿐이다(신 10:20).

오늘날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와 친근히 한 가장 최근의 예는 바로 '요단강가의 제단사건'(22:10-34)이다. 즉 그 사건은 두 지파 반의 경건한 열심과 아홉지파 반의 거룩한 분노가 동시에 표출된 사건으로서, 결국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뜨거운 신앙 열기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23:9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쫓아내셨으므로 -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껏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정복한 것을 뜻하는 말로, 신 4: 38 ; 7:1 ; 9:1 ; 22:23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여호수아가 여기서 특별히 이 말을 한것은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회고함으로써,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변함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이 사실은 10절에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오늘날까지...하나도 없었느니라 - 이스라엘이 강력한 가나안 원주민들을 초개같이 정복한 사실을 뜻하는 말로, 이 말 속에는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음을 강조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적들을 만났지만, 신 7:24 ; 11:25의 예언대로 결국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군대의 조직력이 탁월했기 때문도 아니요, 이스라엘 군대의 병기가 우수했기 때문도 아니며, 오직 한 가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친근히 한 결과,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주셨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신앙 간증과도 같은 고별사를 통해 바로 이 사실을 거듭거듭 주지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23:10

여호와를 사랑하라 

한사람이 천 명을쫓으니 - 여기서"쫓으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르다프'(* )는 '추적하다'(chase), '사냥하다'(hunt) 등의 뜻을 지닌 '라다프'(* )에서 파생했다. 그런데 (1) 70인역, 공동 번역은 과거 시제 (2) RSV, NIV는 현재시제 (3) KJV,개역 성경은 미래시제등으로 각각 그 시제(時制,tense)를 다르게 번역하였다. 그런데 칼빈(Calvin)은 맛소라 사본(M.T)을 따라 미래 시제를 택하여,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고, 앞으로의 모든 싸움에서도 능히 이기도록 해 주실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레 26:8 주석 참조.

=====23:11

스스로 조심하여...사랑하라 - '조심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르'(* )는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 '유의하다'란 말로,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울타리릍 치고 그 말씀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말은 신 4:15의 '깊이 삼가라'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하게 경각심을 일깨운 것은 앞으로의 축복과 저주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후일사도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라고 하였는데, 실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이 멸망과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호수아는 죽음의 고별사에서 땅의 개간이나 성의 요새화, 적군의 동향등을 일체 언급하지 않고, 오직 '삼가 조심하고 크게 힘써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것' 만을 누누이 강조한 것이다.

=====23:12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 여기서 '퇴보(退步)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슈브'(* )는 문자적으로 '돌이키다'(turn away)를 뜻하는 말로, 곧 여기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는 배교(背敎) 행위를 의미한다(렘 3:14, 22; 49:4). 친근히 하여- 기본 동사 '다바크'(* )는 '달라붙다', '매달리다' 등의 뜻인데' 매우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뜻한다. 이 말이 창 2:8에서는 남녀 간의 결혼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8절 주석 참조.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 여기서 '더불어 혼인하며'와 '회차 왕래하며'는 의미상 같은 말로서,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주변 가나안 족속들과 친근히 교류함으로써 자기 딸을 주거나 그들의 딸을 취하는 등의 잡혼(雜婚)을 뜻한다(신 7:3 ; 삼상 18:22).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通婚)을 강력하게 금한 것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케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과 교류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따르는 우상 숭배죄에 빠져드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신 7:4). 신 7:3 주석 참조.

=====23:13

정녕히 알라(* , 아 테데우) - 이 말은 둘 다 '알다', '명심하다'란 뜻의 기본 동사 '야다'(* )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알고 또 알라' 혹은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는 뜻인데, 이는 죽는 순간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을 가리킨다.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과 혼인하며 왕래함으로써 결국 그들의 우상 문화에 빠져들게 되면, 더이상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위협적인 경고의 말씀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포기하면, 결국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압제와 고통 속에 내버려 두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결국 이 말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안 쫓아내고는 오로지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 여부에 의해 결정됨을 보여준다.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되며 - '올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케쉬'(* )와 '덫'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흐'(* )는 동의어로서 흔히 새나 짐승을 잡을 때 사용되는 올가미나 함정을 뜻한다. 특히 '올무'라는 말은 시적(詩的)표현이나 비유적 표현로 많이 사용되었는데(욥 18:8 ; 시 69:22 ; 91:3 ; 124:7 ; 140:5 ; 잠 6:5 ; 7;23). 이는 그 올무로 인한 파멸까지도 뜻한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과 교류, 혼인하게 되면 결국 가나안 족속이 그들을 파멸시키는 올무가 될 것이라는 엄한 경고는 이미 출 23:33 ; 민 33:55 ; 신 7;16 등에서도 언급된 적이있다(Keil).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 '채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테트'(* )는 자극적이고 예리한 '막대기(goad)나 '채찍'(sourage, flog)을 뜻하며, '가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닌'(* )역시 '찌르다', '꿰뚫다'란 말에서 파생된 말로 곧 날카롭고 예리한 '가시'(thom)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옆구리'에는 보다 둔탁하고 충격이 심한 막대기로, '눈'에는 보다 낱카롭고 콕콕 찌르는 가시로 고통을 가하게 될 것이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결국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와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는 의미상 동의어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극심한 압제와 고통을 받게 될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후일의 이스라엘 역사는 여호수아의 암울한 이 예언대로 여호수아의 사후 이스라엘 벡성들이 곧바로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의 우상 문화에 빠져들게 됨으로써,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이 사실에 대하여 삿 2:3은 이 두 표현을 결합시켜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여하튼 여호수아는 자신의 유언과도 같은 고별사에서 가나안 족속을 '올무'(snare),'덫'(trap), '채찍'(KJV, RSV, sourge NIV,whip ; Living Bible, pain), '가시'(thorns) 등에 4중 비유하여 그 위험성을 생생하게 지적하고 있다.

필경은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 이러한 경고는 이미 모세가 순종에 따튼 축복과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논할 때 거듭 주지시킨바 있다(레 26:38, 39 ; 신 11:17 ; 30:17). 한편, 여기서 '아름다운 (땅)'에 해당하는 '토브'(* )는 원래 '좋다'는 뜻으로 KJV, RSV, NIV 등에서는 모두 '좋은 땅'(good land)으로 번역었다. 이와같이 가나안 땅을 아름다운 땅(좋은 땅)으로 묘사한 것은 민 14:7 ; 신 3;25 ; 4;22 ; 6 :19 ; 8:7 ; 9:6 등 여러 곳에 나온다. 그러므로 이와 유사한 의미로 '젖과 꿀이흐르는 땅'(신 11:9 주석 참조)이란 묘사도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출 3:8 ; 레 20:24 ; 민 13:27 ; 신 6:3 등). 또한 여기서 '멸절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아바드'(* )는 '쫓겨나 방황하다'(wander away), '-을 상실하다'(lose onself). '점차 소멸하다'(perish) 등의 뜻으로서, 곧 가나안 족속들과의 교류및 혼인 등으로 우상 숭배죄에 빠질 경우, 장차 이스라엘이 처하게 될 처참한 상태를 보여 주는말이다. 이로 볼 때 가나안 족속이든, 이스라엘 백성이든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나는 근본원인은 '스스로의 죄악' 때문임을 여실히 알 수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가나안 족속이 영원히 쫓겨나 버린 바 되었다면 이스라엘 족속은 쫓겨난 상태에서도 계속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이요 은혜인 것이다.

=====23:14

냐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 임종(臨終)이 가까왔음을 나타내는관용적인 표현으로 후일 다윗도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아들 솔로몬에게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왕상 2:1,2). 한편, 우리가 본절에서 유의할 것은 여호수아가 임종을 앞두고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모두 성취하시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무사히 정착하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신앙은 일찍이 임종시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창 48:21)라고 한 야곱의 신앙과 "나는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창 50:24)라고 한 요셉의 신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마음과 뜻에 아는 바라 - 여기서 '마음'(* ,레밥)은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하는 인간의 내적, 정신적 본질을 가리킨다. 그리고 '뜻'(* ,네페쉬)은 '생명', '영혼', '호흡'이란 의미인데, 곧 인간의 영육을 포괄한 전인격(全人格)을 의미한다. 결국 이 둘은 같은 의미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여 깨달은 확실한 인지(認知)를 뜻한다.

=====23:15

모든 불길한 일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 여호수아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죄에 빠질 경우,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12, 13절). 한편 여기서 '불길한 일'(* ,하다바르 하라)이란 '불길한 말씀'이란 뜻으로, 곧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초래될 하나님의 온갖 무서운 심판과 저주를 말한다(레 26:14-39 ; 신 28:15-68).

=====23:16

불순종에 따른 저주  

언약을 범하고...절하면...속히 망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두셨다(신 30:15). 즉 하나님의 언약에는 말씀 순종에 따른 축복과 말씀 거역에 따른 저주가 동시에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지켜 행할 경우 '모든 선한 일'(축복)이 언약대로 성취될 것이지만, 만일 말씀은 저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길 경우 '모든 불길한 일'(저주) 역시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임할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바로 이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가 특별히 언약의 저주 부분을 더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죄악된 심성(心性)을 충분히 고려하여 불순종으로 흐르기 쉬운 경향을 최대한 경고,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신들 - 일찍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이스라엘 열조들이 계시릍 통해 알았고 또한 언약을 맺었던 신(神)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신(神)도 역시 열조와 맺은 언약을 따라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셨을 뿐 아니라, 시내 산에 친히 강림하사 율법을 수여해 주셨고, 마침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들이신 '여호와 하나님' 뿐이었다. 따라서 '다른 신들'(other gods)란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모든 이방 우상들을 가리킨다. 특히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등 가나안 땅의 음란한 우상들을 가리킨다.(신 7:4 ; 11:27, 28 ; 13;6)

아름다운 땅 - 혹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 11:9 주석 참조)으로도 표현되는 언약의 땅, 가나안을 가리킨다. 이렇듯 진정 가나안 땅이 '아름다운'(좋은) 이유는 그곳이 여호와의 성전으로상징되는 바, 곧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다.

속히 망하리라 - 곧 '순식간에 멸절하리라'. 13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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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본서는 크게 가나안 정복에 관한 기록(1-12장)과 가나안  분할에  관한  기록(13-24 장)으로 두 구분된다.  그러나 1-12장은 가나안 정복에 관한 기록,  13-22장은 가나안 분할에 관한 기록, 23, 24장은 여호수아의 최후에 관한 기록으로 세  구분하는 학자도 있다.  어쨌든 본장과 다음 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 연설과 그의  죽음에 관해서 기록한 장으로서 본서의 결론 부분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본장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내용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1) 먼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눈으로 본 바와 같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시고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 시켰는가(3, 4, 9절) ?  어떻게  하여 이스라엘인 한 사람이 천명의 적을 무찌를 수 있었는가(10절) ?  또한 어떻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지키셨는가를 되새겨 주었다.

 (2) 또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 땅에서 그들의  나라가 완전히 세워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계속 싸워 주실 것임을  밝힌다(5절).  따라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명약 관화(明若觀火)하게 지적한다.  그것은 곧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바 전부를 힘을 다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6절).  모세의 율법이 명령하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 한 분만 경배하고  우상  숭배를 버리는 것(7, 8, 16절),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분께 순종하는 것(11절) 등이다.   또한 주변 족속과의 친교 및 잡혼을 금함으로써 그들의 영적, 도덕적  타락을  방지하는 것(12, 13절) 등이다.

 (3) 마지막으로 여호수아는 본문에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지적하고 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남은 족속들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는 큰 일을 행하실 것이다(5절).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그들의 기업인 가나안 땅을 완전히 얻게 될 것이다(4절).  그러나 이와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에게 심한 고통을 당할 것이며 그 땅에서 진멸되고 말 것이다(16절).

 결국 이상과 같은 본문은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둔 여호수아가 자신의 사후,  이스라엘의 배교(背敎)를 염려하여 유언에 가까운 권면과 당부를 준 것이라 하겠다.  이런점에서 여호수아의 행동은 과거 모세의 행동과 흡사하다(신 29-32장).  즉 모세와  여호수아 모두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시종 일관 백성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분만을 섬기도록 당부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에게 있어 요구되는 것은 오직 모세와 여호수아의 충정과 같은 충성뿐이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주만을 위해 살며 그분께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고전 4:2 ; 히 3:2, 5).

         1. 여호수아의 고별(I) (23:1-13)

   여호수아는 갈렙과 더불어 출애굽 제 1세대이다(민 14:30).  따라서  그간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백성들에게 분배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보낸 그는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백발 노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때 여호수아는 조용히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두령,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 마지막 유언에 가까운 고별사를 한다(1,  2절).

 그중 본문은 먼저 이스라엘을 대표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키는 장면이다.  그리고선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마땅히 취하여야 할 행동에 대하여 주지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즉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가나안 족속들을 정복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또한 장차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을 정복케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요 또한 장차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을 정복케 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3-5절).  그리고선 그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분의 율법을 충실히 지키며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6절). 이처럼 우리가 과거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은혜에 대하여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그분께 진정한 감사와 경배를 돌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준다.  성경이 우리에게 명하는  바  "항상  기뻐하라...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2. 여호수아의 고별사(II) (23:14-16)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에  교훈한 여호수아는 이제 본문에서 이스라엘에가 경고의 말을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율법을 지킬 때에는 축복을  받지만(15절) 그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며 이방 민족과  교제하면 저주를 받게 되리라는 것(16절)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약속이다(출 19:1-6 ; 신 28장).  이러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삶을 신앙적 삶으로  인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바 결국은 축복 주시기 위한 방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과거 이스라엘도 그러했지만 우리도 분명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축복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경외할 때 자연히 따라오는 결과이지, 축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그릇된 신앙이란 것을 !  이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과 교훈은 신명기 28장 주석과 강해를 참조하라.    

죽는 날까지 충성한 여호수아 - 본문은 임종을 앞두고서도 백성들을 모아 그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는 여호수아의 위대한 인품과 신앙을 보여 준다.  즉 그는 최후의순간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섬김의 자세를 잃지 않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토록 험난했던 광야 생활과 가나안 정복 전쟁, 그리고 기업  분배를 마친 지금 그래도 혹시나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버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였기에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백성들에게 훈계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죽음과 투쟁하는 연약한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자기 자신도 망각한 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에만 전념하였다.

 죽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구별시켜 주는 시금석과 같다.  돈을 사랑했던 사람은 의식이 몽롱해지는 마지막 죽음이 자리에서도 돈을 의식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보다도 자기 아내가 가족을 더 사랑했던 사람은 죽는 순간에도 먼저 그들에게  따뜻한 애정을 보낼 것이며, 정치가들은 국가에 대해서 이런저런 애기를 할 것이며,  학자들은 자기의 학문에 대하여 운운할 것인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생애 최후의  순간이 오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것게 대해서 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가장 사랑했던 대상이 이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게 될까.  나는 눈을 감기 전에 반드시 이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라고 !

 이상과 같이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는 자리에서 여호수아에게 단 하나 남아 있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성도라면 누구나 다 할 것 없이 모름지기 여호수아의 이러한 자세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여호수아처럼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름받은 자들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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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제23장 강해: 여호수아의 마지막 훈계===

  23장과 24장은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여호수아는 마지막 고별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미 이스라엘이 그토록 여망하던 가나안 정복과 기업 분배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온전히 다 성취 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만년에 이른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행하신 일을 상기시키면서, 이제 명실상부하게 약속의 땅의 주인으로 정착하여 새로운 선민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고 있습니다.

  1-2절: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자신의 임종이 가까움을 알고 고별설교를 하기 위해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기업 분배를 모두 마친 후 아마도 이스라엘의 행전 전반을 각 대표자들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자신의 성읍인 딤낫 세라에서 여생을 보낸 듯합니다(수 19:50). 그러다가 그의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자 그에게 부여된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각 대표를 불러 모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일에 열심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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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이때는 가나안을 정복한지 약 20년 정도 흐른 뒤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마쳤을 때의 나이가 약 90세 정도였고(수 13:1 참고), 그가 죽을 때의 나이가 110세였기 때문입니다(24:29). 아무튼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늙자 이제 그의 임종이 가까운 줄로 알고 백성들의 대표를 불러 놓고 마지막 유언을 하고자 했습니다.

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온 이스라엘’은 장로, 두령, 재판장, 유사들과 동격으로 곧 이스라엘 자손의 대표들을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그의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들을 부른 장소는 어디인지 모르지만, 아마 여호수아가 거처하던 ‘딤낫 세라’ 혹은 성막이 있던 실로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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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절: 여호수아가 지난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워주셨다는 사실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을 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덧붙여 그 하나님께서 앞으로 남은 가나안 족속을 마저 쫓아내고 그 땅을 백성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서 앞으로도 계속하여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겠습니다.

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너희를 위하여’ 이는 ‘너희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 보는 앞에서 싸우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그들 앞에서 싸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니 그 분께 감사드리고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4: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편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뽑아 너희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요단 강에서부터 서쪽 지중해까지를 가리키는 말로, 가나안 본토 전체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남아있는 나라들’ 이스라엘이 가나안 모든 족속을 다 쫓아낸 것이 아니었습니다(수 13: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완전히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마저도 점차 정복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출 23:30). ‘기업이 되게 하였으니라.’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강한 나라들을 쫓아내고 진멸시킨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대대로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이었습니다.(수 13-19장)

5: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수 13:6의 말씀이 바로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직 다 정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분배된 지역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을 하나님께서 친히 쫓아내실 것이라는 사실을 여호수아는 지금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확신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 중에 더러는 강하고 위협적인 존재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방패와 검이 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저들이 갖는 소망이 결코 없어질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속하여 명령에 따른다면 하나님은 가나안 족 최후의 일인까지도 몰아내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그 땅을 쳐서 취하기만 하는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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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6절: 앞으로 오직 하나님만 가까이 섬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이방인과의 교제에 대한 경고, 불순종과 배교에 따른 형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확신하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이스라엘이 앞날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별 설교에서 백성들에게 오직 모세의 율법을 힘써 지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들과의 혼인과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시켰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이방 풍습에 물들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힘써(하자크: חזק)’는 ‘강하게 하다’ ‘확실하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매우 강하게’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직 율법을 확실하게 지키라는 뜻입니다. 적들을 앞에 놓고 이길 수 있는 대원칙은 ‘너희들의 신앙을 힘써 지키는 것이다.’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 책’ 이것은 이미 이 당시에 모세가 한 말들이 한 권의 책 곧 모세 오경(Torah)으로 모아져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하나님께 들었던 교훈(수 1:6-9)과 동일합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그의 경험을 토대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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