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2장 [430.주와같이길가는것] [210. 시온성과 같은 교회] [379.내갈길멀고밤은깊은게] [399.어린양들아 두려워말아라]
....@## 에이도) (육안으로) 보다, 알다, 경험하다. (사물을, 환경상황형편처지의 어떠함을) 세심히/두루 살펴보아 알다-관찰/파악/분별/자각하다
동사 에이도는 호리아(oJravw, 3708)에 속한 단어이며, 동일한 의미를 가지며, 신약성경에서... (a) '본다, 지각한다'(마 2:2; 마 3:16; 요 21:21 등). (b) '느끼다, 감지하다, 인지하다'(마 27:54; 막 15:39; 눅 17:15). (c) '주목하다, 알아채다, 관찰하다, 발견하다'(마 27:49; 요일 3:1; 마 9:2; 눅 9:47; 롬 11:22 등). (d) '당하다, 경험하다, 체험하다'(눅 2:26; 요 11:40; 히 11:5; 벧전 3:10; 계 18:7 등). (e) '방문하다, 찾아보다'(눅 8:20; 행 16:40; 고전 16:7; 살전 2:17; 살전 3:10). (f) '생각하다'(요 3:1; 행 15:6). (g) '알다'(마 25:13; 막 10:19; 요 10:4; 롬 7:7; 고전 2:2; 계 2:2; 계 2:9 등), '알다'에서 '지식을 얻다, 이해하다, 인식하다'(마 12:25; 막 12:15; 눅 6:8; 눅 11:17; 막 4:13; 고전 13:2 등). (h) 히브리어투로 '~을 존중하다, 소중하다, 주의를 기울이다'(살전 5:12; 참조: 창 39:6).
■ 하나님의 눈으로/영안으로 보다<호라오-ὁράω>? 사람의 눈으로<에이도-εἶδω>? 어느 <눈>으로 보고 있는가?
[요1: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일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14: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보다>의 헬라어는 <호라오ὁράω>이다 깊이 경험하고 마음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숨겨진 깊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뜻함 ...그 진리를 삶 속에서 경험하면서 <나>의 것이 되는 것을 의미 ...단순한 진리가 아닌 삶을 움직이는 생명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호라오 ὁράω>, 하나님의 마음과 그 뜻이 깨달아 지는 것이 <호라오 ὁράω>이다
.... 반면 <에이도εἶδω>는 눈에 보이는 대로 --피상적으로 (그냥) 믿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 겉 모습만 보고 섣부르게 그냥 판단하는 것이니... <에이도εἶδω>에서 우상을 뜻하는 <에이돌론>이 나왔음을 아는가? ... 하나님께 묻지 않고 사람의 판단대로만 따라가며 자신의 생각이 마음 중심을 차지하도록 허용하는 것, 사람의 눈으로 본대로 분별하고 움직이려고 하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한다 ...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지 않으면 육적 눈에 보는 대로<에이도εἶδω> 판단하게 될 것, 지금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예비 하신 목적과 계획 보다는 <내> 생각대로 육을따라 움직이려고 할 것이다 .... 기도로 주님 이름 부르며 주 앙망할 그때!! 성령께서 깨닫는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하리니!! ... 은혜가 떨어 지면 <내>눈으로 보는 <에이도εἶδω>가 전부일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기도 가운데 주 이름 부르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보게 하시는<호라오ὁράω>의 은혜가 인생의 길을 이끌어 나가실 것이다
....@온유 ::: 진정한 프라우스는 ["나"의 주권 양도한 바] 영의 가난함:: 십자가를 길로 놓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조련사"이신 주와 함께 동행/동거/동주함: 스스로 주인되어 살고자 함 인해 생명근원에서 떨어져나가 야기된바, 내 죽음 인한 nothing/nobody 고백 --(스스로 주인되어 자행자지함 아니라, 자기 주권 내어드림으로써) 주인의 뜻에 자원함으로 전존재 맡겨드려 복종하며 하나 되어 붙어있어 주께 길들여진, 주인 명령애 영혼몸이 완전 순복하여 그분의 수족으로써 살아감을 의미@@"주위 사람들이 권하며 주장하는바를 (그냥 따라서는 안되며) 먼저 주께 여쭤보라..그분의 말씀, 그 말씀대로 따르라, 말씀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하라 하신,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
....주님의 십자가를 마땅한 길로 삼고, 주님 마음따라 오로지 주께 순복함으로써 주님의 뜻 관철하는 자라야 주 보시기에 진정 참된 형통한 자, 대장부라고 말씀하신다!!
.....참 형통의, 하나님이 정해주신!! 영적 질서와 역할에 순종하는 생명 삶
.....믿는이에게 주어진 "지고지선을 위한, 참자유의 제한"을 알고 있는가
---[거듭난 믿는이에게 주어진 자유란] 에덴 안에서,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하나님에로의 , 하나님 안에서 그분을 누림의 자유요, 그분을 자의적으로 벗어나 영적 질서 깨뜨리는 자유가 아님
[시128:1,2...*1.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수1:5-9....*5.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다윗성(City of David)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오래된 정착지이며 (다윗이 여부스 인들을 점령하여 몰아내고 취한 곳!!)성서의 예루살렘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전통에 따르면, 청동기 시대의 성벽으로, 다윗 왕이 왕궁을 짓고 수도 삼은 곳, 다윗성의 남서쪽에 있는 시온산에 다윗 장막을 세우고 언약궤를 두었다. 다윗성 위치를 보면 자연적으로는 서쪽의 티로펀 계곡(Tyropoeon Valley..티로포이온...중앙계곡)과 남쪽의 힌놈 계곡(Hinnom valley), 동쪽의 기드론 계곡(Kidron Valley)을 통해 천연적으로 방어된다. 그 북쪽에 모리아 산 지역(성전 산, 솔로몬 성전 건축 지역...성전 산 건너 서편에-둘째구역으로 불림- 갈보리산/골고다 언덕 위치), [모리아 산과 다윗 성 그 사이는 오벨(오펠) 지역] 다윗궁은 다윗성 북단 성내에 위치했음..기드론 골짜기 (다윗성의 북쪽 1/3 인근) 지점에 있는 기혼샘(기드론 골짜기), 기혼샘에서 흘러나와 기드론 골짜기로 흐르는 물줄기를 막고 이를 히스기야 터널로 연결시켜 만들어진 실로암 연못은 다윗성 남단, 성내에 위치.(한편, 최근에는 워렌 수로 외에도 히스기야 수로와 비슷한 경로로 흐르는 가나안 수로가 이미 여부스 점령시절에 만들어져 있었음이 최근에 발견되기도 하였음) 한편 모리아 산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그 중심으로, 다윗이 자행자제하여 시행한 9개월20일간의 인구조사 범죄로 인해 7만명 사망한 3일 온역을 멈추심에 대한 번제/화목제의 감사 제단 쌓은 그 위치에 솔로몬 성전이 건립되었고(모리아 산= 성전산이라 명명), 그 성전 남쪽에 솔로몬 궁이 세워졌음....다윗 아들들17명, 그중 솔로몬은 10번째...솔로몬은 1천명의 처첩 거느렸음....깊이 주님 마음따라 생각하며 말씀하시는 바, 그 심정과 교훈을 강동하심따라 깨닫고 감사-새기라!!
@@@[시온산] 시온성, 다윗성(=시온산성)@@@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삼하 5:7)
.....시온(Zion)은 '요새'란 뜻으로,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풀핏 주석). 그런데 여부스족속에 의해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 사 3:16; 슥 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사 24:23;옵 1:17). ....."그때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어 자기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다스리실 것이며 그와 같은 영광 때문에 해와 달이 무색할 것이다."(이사야 24:23)......"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2-24)
......본문에 나타난 세 가지 호칭(시온산,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동의어이며 하나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이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에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집이라고도 불렸으며 이스라엘 지파들이 만나던 장소였고, 영광스러운 하늘 도성의 기초로 불려지기도 하였다(LXX 사 28:16; 54:11-14). 이러한 시온 산이라 불린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은유로서(히 12: 28절; 겔 48:35; 계 3:12) 새 언약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완전히 소유할 나라임과 동시에(히 13:14) 이미 소유하고 있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나라이다(28절).
•시온산과 세일 산
가나안의 시온산이 언약의 땅을 상징한다면(시 87:1-5), 세일 산은 에돔을 대표하는 산으로서 이방인의 요새를 의미한다(겔 35:2,15). 이 산은 사해와 아카바 만(gulf) 사이의 아라바 동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에서는 아마도 산악지대인 이 땅을 전쟁을 통하여 점령하였거나 아니면 거주민 호리 족속과의 통혼을 통하여(2절) 점차 자신과 후손의 거주지로 차지해 나갔을 것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 붙일 만큼의 유업도 얻지 못하였으며(행 7:5),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헤브론 근처의 막벨라 밭을 사라의 매장지로 사기전까지는(창 23장)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그와 동일한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 약속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삭과 야곱도 그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들은 그 때에 '장막에 거하였다'. .....'장막에 기거했다' 는 표현은 조상들이 완전히 정착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나그네 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약속해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바를(창 12:2, 3) 성취하실 것을 굳게 믿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기 깨문이다"(히 11:10).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믿음의 인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나타낸다. '터'는 '기초'를 의미하는 것으로 '터가 있는 성'은 히 11: 9의 '장막'과 상반되는 표현이다. 장막은 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동하기 위한 임시 거처인 반면에 '터가 있는 성'은 한 곳에 고정된 영구한 집이다. 이 성은 지상에 있는 어떤 도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동치 못하며 장차 올(12:28;13:14) 영원한 하늘 도성으로 하나님에 의해 견고히 세워진 '시온 성'을 암시한다(시 48:8;87:1-3, 5;121:3;사 14:32;33:20, Lane).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 11:10)
'경영하시고'의 헬라어 '테크니테스(τεχνίτης)'는 '기술'을 뜻하는 '테크네(τέχνη)'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술자', '설계자' 혹은 '건축가'를 뜻한다. 이를 앞서 언급된 '성'과 결부시킬 때 본절에서는 '설계자'나 '건축가'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으실'의 헬라어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는 '사람의 무리'를 뜻하는 '데미오스(δῆμος)'와 '일'이란 뜻의 '에르곤'의 합성어로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자'의 뜻을 지닌다. 이 두 가지 표현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성을 건축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손수 지으신 하늘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믿음과 인내를 할 수 있었음을 시시한다.
• 다윗이 시온성을 정복한 과정
본래 시온산성(=다윗성, 기존의 예루살렘)은 여부스라는 족속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북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천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천예의 요새였다.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는 성경에 세세히 기록 되어 있다.
시온성은 해발 750미터의 고도에 위치한 곳이다. 천혜의 요새지만 한 가지 단점은 물을 외부에서 얻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이 남동쪽 기혼 샘이라는 풍부한 물을 가진 샘이 있었지만, 기혼샘은 성곽 외부에 있었기에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그것을 길어 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다윗은 시온성은 정복하기 위해(여호수아가 시작한 가나안 정복을 매듭짓는 의미) 용맹한 부하를 "수구로 올라가게 해서" 정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수구'는 '하수도','배수로','지하 통로'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한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 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 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과 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이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수직갱도)'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다.
•천혜의 요새
시온성이 천혜의 요새라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은 이 성에 살던 사람들이 다윗에게 한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윗 왕과 그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삼하 5:6)"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수구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절뚝발이와 소경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소경과 절뚝발이는 집에 들어 오지 못하리라 하더라"(삼하 5:8) ..... "절뚝발이와 소경",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이다. 즉 저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절뚝발이와 소경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여부스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 시온성을 더욱 견고히 함
"다윗이 그 산성에 거하여 다윗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9-10). .... '밀로(מלּוא)'- 채우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Millo)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 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다.
• 시온산과 새예루살렘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계 14:1) 시온 산에 서 있는 어린양의 모습은 계 12:17에 묘사된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는 용의 모습과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시온 산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약간씩 차이가 났다. 즉 포로 시대 이전에는 유다의 전영토와 이스라엘 전족속을 의미했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성전과 예루살렘성을 가리켰다. 또한 구약성경과 예언서에서 시온은 메시야가 오셔서 구속받은 자기 백성들을 모으는 장소를 상징했다(시 48:1;사 24:23;욜 2:32;미 4:1, 7).
이러한 배경을 지닌 '시온 산'이 본문에서 어디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실제적으로 지상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영적인 세계인 하늘에 속한 것으로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 거하는 곳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히 12:22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에서 '시온'을 '하늘의 예루살렘'과 관련시켜 이해한다. (3) 혹자는 지상에서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 또는 천년 왕국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히 12:22의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갈 4:26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무두 하나님이 계신 하늘 시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땅에 거하는 구속 받은 성도들에게 이 땅에 이루어질 메시야 왕국의 전형이나 모델로서 제시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니멀리스트 관점에서 보면 (기존 시온산성인) 다윗성은 남북으로는, 요새화 된 밀로(오벨 언덕) --다윗의 백향목 궁--실로암 못까지, 동쪽은 기드론 골짜지, 서쪽은 두로베온(티로포엔, 중앙)골짜기로 구분하고, 맥시멀리스트 관점에서는 다윗 궁이있는 다윗성 지역과 남남서쪽으로 이어지는 [현재의]시온산까지 포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바 남쪽의 힌놈골짜기, 서쪽의 기혼골짜기까지 포함하고 있다..----예수님 당시, 갈보리산은 진영밖/성밖에 위치했고, 시온산 위치는(현재와 동일한 위치로서) 다윗왕가 묘지가 북쪽 기슭에, 최후의 만찬 시행되었던 마가의 다락방이 동쪽 기슭에 위치한, 현재의 시온산(예루살렘 남서쪽) 힌놈골짜기 북쪽 인근이었다..
[[((지혜-총명-모략-재능/권능-지식-경외함이신 하나님, 구주이심!!...풍성/부요/충만이신 자신을 온통 내어주시는 분!!))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6:12-20(15-18)....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하셨으니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살아야 한다. 몸은 머리가 명령하는 대로 따라야 정상적인 지체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살아야 하며,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일지니......아가서에 따르면 , 거듭난 믿는 우리 각자마다 주님의 반쪽이요 언약궤 JC의 남은부분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너-나-우리 없이는 완전하신 주 하나님은 "나 하나님 되기 싫다, 바로 몸 없는 머리만 가지고서는 온전한 몸이 아니지!!"하시며 "네가 있어야만 나 주가 온전-완전해질 수 있단다, 너도 나, 네 하나님 구주 없인 진정한 생명삶 살 수 없단다...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반쪽!!, 상호 "도드"란다...고 고백하시는 것 같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런데 우리 몸이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살지 않고 다른 것과 하나 되어 살면 창기의 지체가 되어버린다.
우리 몸이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정절을 지키지 않고 이것에게 내어 주고 저것에게 내어 주고 이것에게 피동 되고 저것에게 피동 되면 창기와 같이 더러운 몸이 되고마는 것이다.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두 사람이 하나로 결혼을 하면 두 육체이나 한 뜻, 한 소원, 한 기쁨, 한 일이 됨이다. 이와 같이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셨다. ...이 말씀은 주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고, 주님의 소원과 우리의 소원이 한 소원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일과 우리의 일이 한 일이 됨을 말씀하심이다.
'창기와 합하는 자는 창기와 한 몸 인줄 알지 못하느냐' 하시고 이어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셨으니 이렇게 말씀하신 면의 구원도리는 다음과 같다.
창기는 더러운 것을 말할 때 표현하는 바,. 더러운 것은 정상이 아닌 변질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들이 죄를 지으면 '더럽다' 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 본래의 본질 본성에서 변질이 되었기 때문에 더럽다고 하는 것이다.
지난 날에 대한 전존재 죽음에 이르는 애통하는 회개 거쳐 JC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 가난해진 마음에 물과 성령으로 세례받고 거듭난 참되게 믿는 자된 우리, 날마다 아침마다 말씀이 내 전 존재 읽어 나가시도록 말씀-십자가 앞에 서며 보혈로 씻김 받고 말씀 안의 부활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마다!!...우리 몸과 영혼이 주와 합하여 하나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탄마귀체계인) 타락한 세상 조류/풍조 속에서 그냥 창기의 몸 되고 마는 것임을 기억-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살아가지 않는다면 바로 그것이 정로에서 벗어남이니, ...죄를 지은 것,. 더러워진 것이요, 더러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더러워짐을 방어하고 자연스레 이기고 늘 새롭게 됨은 오직 주와 합하는 것= 주 이름 불러 주님이 주인 되심에 따라,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감, 그것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이 해결책이다...그러면!! 이제 매일 잠자리에 들기전 주님 말씀따라 "이 땅을 걸었던 바, 발만 씻으면 되라라" ...주와 합한 것은 깨끗해진 것이요,. 본래의 본질 본성에서 변질이 없는 정상 상태인 것이다.
'영' 곧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영 곧 하나님의 속성대로 지음을 받았다.
'한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영이 창조 시의 본래 본질 본성 그대로 변질되지 않고 정상의 영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의 사람의 영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하나님은 사람의 영을 다스리고, 하나님께 다스림 받은 영은 마음을 다스리고, 영에게 다스림 받은 마음은 몸을 다스리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인성인 것이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는 사람이 타락하여서 영은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악하게 제 중심대로 움직였다.
그래서 그 마음도 몸도 하나님께 다스림 받지 않았으니,. 이것이 사람의 원죄와 본죄인 것이다.
그런데 고전6:17에 '주와 합하여 한 영이 되었다' 하셨다.
그러므로 주와 합하여야 만이 한 영이 된다 하심이니...창조 시 본래 그대로의 깨끗한 영이 된다 함이요,. 그러면 주와 합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가 제일 관건이 되겠다.
....주와 합하는 것은 [마땅히!!, 다바크!!] 포도나무와 가지의 [상호 거함의!!] 연결이 있어야 하고,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하고, 또 그의 계명을 지키고 성령의 감동대로 살아야 한다.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려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 이렇게 주와 연결이 되어 하나가 되면 그것이 곧 주와 합한 것이 되어서 주의 영과 우리의 영이 한 영이 되는 것이다. 곧 우리의 영이 주의 영(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성령)에게 다스림을 받아서 마음을 다스리고 그 마음은 몸을 다스림의 영적-혼적-몸에 이르는 참 생명의 질서가 확립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고 주님의 소원이 우리의 소원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일이 우리의 일이 되는 것이니, 이렇게 주님과 하나가 된다. 이제!!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 참 실제, 생생한 실제이다!!
....[열처녀 비유]
[마25:1-13...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동안 성경학자들은 ‘열 처녀’에 대한 성경의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다양하고 폭 넓은 의견을 제시하여 왔다. 특히 초대교회부터 이러한 ‘열 처녀의 비유’에 대해서 알레고리적인 주관적 해석이 특히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열 처녀는 표면적으로 칭하는 그리스도인 전체를 의미한다는 것이 정설이며, 구체적으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구원을 받는 그리스도인, 미련한 다섯 처녀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정설이다. ‘10’이라는 숫자는 완전 숫자이며, 유대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의 인원이었으며, 여러 종교 집회를 위해 필요한 정족의 인원이었다고 한다. 이 관점에서 Lenski는 본문의 ‘열 처녀’가 모든 시대의 신자를 가르킨다고 하였다.
또 신랑은 재림하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며, 혼인잔치의 문은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기름은 무엇을 말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기름에 대해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본문의 열 처녀에 대한 비유에서는 특히 기름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어지고 있디.
가장 보편적인 주장은 기름을 ‘성령’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며, 기름을 ‘선한 행위’라고 하는 학자들도 소수 있으며, 어떤 학자들은 ‘각각에게 있어서 반드시 구비되어 있어야 할 바, 최종적 구원을 얻는 (영원에 이르기까지 남아 있는, 금보다 귀한, 신랑되신 주를 참되게 알고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체득되어진 바, 주께 합당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사랑과 쌍벽 이루는) 영생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한 구원 문!! 그 안으로 들어감에 조건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책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특별히 기름에 대해서 랄프 얼이라는 학자는, 재림은 성령충만으로 예비되므로 ‘성령충만’이라 하였고, 핸드릭슨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랑을 환영하도록 변화를 가능케 하는 ‘성령’을 기름으로 보았다.
브루스는 기름을 성령으로 상징하기보다는 문자적으로 ‘불을 밝히는 기름’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어제 썼던 기름은 오늘 등불을 밝히기에는 부족할 것이므로 이런 비유적인 의미에서 과거의 신앙경험은 오늘의 필요에 충분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즉 매일의 은혜는 매일의 필요를 위해 준비하고 획득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기름을 성령이라고 하는 견해가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견해인데, 그러한 몇몇 해석들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견해 역시 많다는 것은 중요하다.
아이합(IHOP)의 마이크 비클은 이 기름을 ‘성령 충만한 기름부음’이라고 하였는데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들은 소위 성령운동을 동의-적극 지지하며 그로 인해 살아가는 기름부음을 날마다 새로이 구함 통해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기 위해!!) 넘치도록 채움받은 성도들이라고 해석하였다. (이 땅 살아가는 동안에는 위로부터 한량없이 공급받기 때문에!! 어느 때나 충분히 나누어 줄 수 있다..그러나, 주님 재림시 그분 앞에서 깨어난 이들은 이제는 사명의 길 다 달렸고, 어린 양 혼인잔치 참여의 상급 심판을 앞둔 바, 존재적 환경-상황이 달라져 있기 때문에[기름 공급처는.. 더 이상 없을 수도 있고, 공급처 찾아다녀봄 인해 혼인잔치 참여를 위한 구원 문 개방시간-타이밍은 지나가 버리고 말며, 문은 이윽고 닫혀버린다...공급처가 있어야 더 채움 받고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데!!....밖에서 이를 갈며 무려 천년을 더 기다려애 할지도 모른다] 나누어 줄 정도로 넉넉한 분량이 각 사람에게는!! 더 이상 없다 함이다) ..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세심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다섯 처녀도 (비록 부족하였지만) 기름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열처녀가 모두 잠이 든 것은((=육체적 죽음으로 상징될 수 있음)) 신랑이 예정보다 늦게 왔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등불은 기름을 담는 용기가 작았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은 그 등잔을 오래 사용하기 위하여 여분의 기름통에 기름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신랑이 더디 왔다는 이유에서 발생한다. 만일 신랑이 일찍 왔다면 열 처녀 모두 불을 밝히기에 충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주장으로서 기름을 성령이라고 해석하여도 곤란한 문제점이 나타나는데, 물론 기름을 은혜로 적용하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이나 은혜는 부족하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성경 본문이 말하는 기름의 개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나 성령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까지 인간 측에서 미리 준비하여야만 하는 어떤 책임적인 측면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이나 은혜로 보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미리 준비하여야 하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살아냄 인해 그분을 얻고 완전함(다 이루었다 함)에 도달하도록 발휘하는 생생하고도 활력있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분량’과 같은 개념이라야 적절한 비유가 되어질 것이다. 즉 신랑이 더디와도 끝까지 지키고 지속하여야만 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분량과 같은 인간의 책임적인 몫[=살아 생동하는 소망이 그 바탕 이룸의 인내 + 사랑으로 역사하는 생생한, 산 믿음]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다만 기름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단정할 수 없지만, 그 기름이 비록 신랑이 늦게 올지라도 혼인잔치까지 불을 밝히는 들러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보여진다. 더군다나 미련한 처녀들은 그 기름을 사기 위하여 가는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서 혼인잔치의 문이 닫히고 말았던 것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나 성령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입장에서 미리 준비하여야 하는 그 무엇, 즉 인간의 책임과 준비를 상징한다고 보여진다.
어쨓든 표면적으로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모두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본문을 잘못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열처녀는 모두 어느 정도의 기름이 담긴 등을 갖고 나갔다. 처음에는 미련한 처녀의 등도 불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이 꺼져간다”고 성경은 언급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이 채워진 등과 별도로 다른 그릇을 더 준비하여 등과 함께 가져간 것이다.
헬라어 ‘양게이온’은 원통형의 용기(Vessel, Jar = 기름을 담은 기름병)를 말한다. 즉 신랑이 온다고 하였을 때에 열 처녀는 모두 등을 준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늦게 옴으로서 여분의 기름이 부족하여 불을 더 밝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혼인식은 신랑이 오는 것이 지체되는 일이 빈번하였다고 한다. 신랑이 온다고 하였을 때에 등을 준비하는 사람은 들러리 처녀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신랑이 지체될 때를 미리 예비하여 별도의 그릇(용기)에 추가분의 기름을 준비하는 처녀들은 그야말로 슬기로운 들러리가 분명하다.
그들은 신랑이 늦게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열 처녀의 비유는 기름이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보여진다. 즉 이 단어 문제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중요한 문제는 신랑이 늦게 오므로서 기름이 부족하게 된 것이며, 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기름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지체되어지는 재림을 항상 준비하여야 된다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하여 열 처녀에 대한 성경의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는 것에 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즉 열 처녀의 교훈은 어느 단어가 어느 의미를 뜻하고 있는가 하는, 단순한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며, 어느 특정한 개인적인 의미로 적용될 것이 아니라, 재림과 교회에 대한 폭넓은 적용이 되어질 수 있을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기름이 뜻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더라도 우리가 평상시에도 미리 준비하고 갖고 있어야만 하는 은혜, 믿음, 성령, 봉사와 순종, 지식, 기도 등 폭넓게 해석되고 널리 적용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늦게 온 다섯 처녀가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뜻한다. 미리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문이 닫힘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결국 미련한 처녀 다섯은 표면적으로 그리스도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진실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며,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 명백하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아신다”(딤후2:9)는 성경구절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좀 더 지체하신 후에 오실 수도 있다. (2) 지혜로운 처녀처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평소에 그와 같은 지체에 대비하여야 한다. (3) 어리석은 처녀처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급작스러운 종말이 올 때에 무관심을 원상태로 돌리기에 너무 늦을 것이다. (4)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도 선택적으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고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잠을 자지 말라’는 교훈이 아니라, 미리 기름을 예비하라는 것이다. 열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를 막론하고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잠을 안자고 깨어있어도 기름이 모자란다면 등을 밝힐 수가 없다. ‘깨어있다’는 헬라어 단어 ‘그레고류오’는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경계하다, 준비하다’(keep watch)를 뜻한다.
열처녀에 대한 비유를 핸드릭슨은 포괄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되어지므로 소개한다.
(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많은 점에서 같다. 특별히 모든 사람은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도중에 있다. (2) 그러나 그 유사점은 표면적일 뿐이다. 거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할 자가 있다는 것이다. (3) 초림과 재림 사이에 긴 시간이 경과한다. (4) 주님의 재림은 급작스러우나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다. (5) 재림의 준비는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양도할 수 없다. (6) 죽기 전에 준비 못한 자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까지 지상에서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 2의 기회가 없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을 모르는 입장에서 언제나 깨어 있는 것이 요구된다.
...[달란트 비유]
......오직 주 바라며 참되게 회개하고,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주 이름 부름으로 그의 주와 하나님으로 영접한 자, 죄사함 받은 은혜(카리스)를 붙들고 주님을 참되게 믿어 들어가 그의 생명 삼고 결합한 하나 됨의 순종-동행하기를 날마다의 삶속에서 실행하는, 주님을 끔찍히 사랑하는 자에게, 주님은 큰 기쁨으로 특별한 은총(총애하는 사랑의 기름부음)을 또한 넘치도록 부어주실 수 밖에 없으시다....그 놀라운 은혜 넘침에 감사-감격하여 주께 무엇으로 갚아드려야 할까요...여쭐 때 주님은 주님의 소유(금 달란트)를 맡겨주신다.[이것을 사도 바울은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로 표현 하고 있다]...바로 그것이란 무엇일까...다름아니라, 그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이르도록 그분을 온전히 알며 체험 통해 얻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발견됨이자, 주께서 부탁하신 땅끝까지 복음 전파하심이리라... [빌3:7-16...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이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란[생-양-교-건]인데, 생명 산출(전도로) --생명 양육(그리스도를 공급, 지체 섬김-돌봄)--가르침(그리스도의 몸의 생활)---건축(그리스도의 몸을 확장/증대)이다....주님 재림시에 주님은
(보냄받은 이들마다에게 맡기신 바 직분_은사마다, 맡겨주신 달란트를 세밀히 잘 살펴 알고 [생명 열매의 배가를 원하시는 주님 뜻에 합하도록] 주께서 하시듯, 주께 하듯 충실하게 활용함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발휘]의 영적 사업 통해 이루시는 배가시킴의 섬김 통해 회계할 생명 열매가 반드시 있음)
.....주를 참되게 믿고 (알고, 친밀한 하나 됨으로) 사랑하는 그분의 신부-전사이자 (아버지께서 그의 안에 계셔서 친히 말씀하시거 행하신 바, 아버지에 대해 아드님이 그러하심처럼) 순종하는 종들(이자 청지기들)에게(= 직분자, 은사자들) 맡기신 것마다 하나하나가 모두 금 달란트이니, 모두 주님의 소유(금 한 달란트는 노동자 20년 품삯 가치 정도)이다 !! :: 섬기는 그분의 종들에게 부탁하신 교회와 성도. 복음 진리 등)..."각각 그 재능대로"란 그분의 종인 그가 (이것은 일차적으로 결합한 하나 됨의 산 믿음과 생동하는 사랑 안에 잠겨, 주님을 참되게 알고 사랑하기에 완전히 그분께 꽂혀 순종하며 동행함이 최우선적 전제 조건이요, 또한 이에 더불어서 주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진정 그분께 합당하도록 맡겨주신 그분의 소유들을 존중하며 보살피고 양육하고 섬기기 위해) 자원하여 (주께 여쭈어 지혜와 계시로 받은 바, 주님 인도와 도우심 따라 부지런히 ) 배우고 익혀 능숙하게 쓸 수 있는 도구들이라 할 수 있음....5이란 숫자는 완전한 책임(손의 엄지와 네 손가락처럼, 주와 상호 붙들려 하나됨을 의미), 2는 증거하는 증인을 나타냄(믿음과 사랑은 참되고 진실하지만, 주로 주 되시게 함의 측면에서 아직 완전하지는 않고 주님을 제한함)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권 완전히 이양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르다 [176.주어느때다시오실는지]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영적 후사 낳고-오게 하는, 육적 죽음조차 당당/담담하게 맞이하는, 언약적 참생명 안의 보증하신 바 그 부활신앙으로 넘어서고 통과/돌파함의, 구속사적 QT 통해 호흡보다 의식보다 가까우시며 차원/영역 초월하여 전존재에-의식/무의식/잠재의식, 세포조직장부 전체를 그분의 것으로 삼아 완전히 녹아 하나되어 계시며 전후좌우 상하를 두르시는 하나이신!!(주와 합하는 자는 하나임-주님 말씀 읽고 묵상하며 여쭈고 이해/해석-회개/적용/결단/동행함의 기도로써 진리말씀 살며 범사에 주와 한 마음으로 전시전력 다해 모든 눈물골짜기 통과함에 함께 동참하여 당신 자신을 온통 내어주시는 분께 산 믿음으로!! 합당히 반응하는 삶 사는, 참 순종의 진짜] 대장부[Q께서 창조하신 진정한 남성성으로 채움 받아 가진, 일편단심/일심으로 날마다 주따라 나아가는!! **소망의 인내+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발휘함+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안에서 걷는, 겸손과 온유의 리더쉽으로 Q경외함의 길 행함의 솔선수범 !!...그리스도를 억고 그리스도의 몸 그 가운데서 발견되는!!, 아버지와 한 마음 되어 순종-동행하는 아드님JC닮아 올곧게 행하는, 생명 낳는 아비로서의 대장부 + 사적 감정과 이기심, 섭섭한 마음 모두 악함이니 (주님 앙망하며 완전히 맡겨드림으로써!!) 철저히 배제하고 버리는 통 크고 너그러이 용서-용납하는 대장부...목숨 걸고 진언하는 (어찌 보면 귀찮기까지 느껴질 수 있는) 나단을 귀히 여겨 옆에 두고 늘 중용하는 바로 그런 사람!!]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여디디아의 길임) --.......[=진정한 형통은 수다한 눈물골짜기를 걷게 되더라도 끝까지 "임마누엘"의, 주님과 하나 되어 그분으로 살며/주목하며/교통하며 걷는 삶....다윗이야말로 극도로 그 형통 누린 자였음!!]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주변사람 정리..임마누엘 주님의 지혜 따라야 함..^^^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 네 지혜대로 행하여(=임마누엘의 주께서 하나 되어 계시기에!! 주님 바라기로 행하라 -- 지극히 적절한 격려!!)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각각 받은 은사가 다름을 기억하라..요압을 처리하는 것이!! 다윗은 그토록 힘들었지만, 솔로몬에게는 너무 쉬웠다..(팀 켈러) 장애우에게 가장 큰 폭력은 무엇이든지 대신 해 주는 것이요, 가장 큰 도움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하도록 격려하면서 끝까지 함께 살아주는 것 ...그대가 아직 이혼하지 않은 멀쩡한 부모라면, 끝까지 이혼하지 않고 그냥 옆에 끝까지 살아 있어 주는 부모가 최상의 부모가 됨을 기억하라!!
7.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 그러나 [너는, 돌이킴 전혀 없는 바]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치리-권징을 할 때, 분명히 공개하여!! 공동체 형제들의 죄 오염됨을 막고, 그에게 돌이킬 바 자숙시간-최대3년간 직분 및 교류 중지-을 두고, 그 사간 경과한 후 공개적으로 뉘우쳐 잘못 시인하고 돌아오면 형제로 맞아 주고 그렇지 않으면 형제가 아니라 외인처럼 대하라)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지혜의 근본은 주님 자신이시기에!!)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이 죽다
10.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니....장사된 위치를 "다윗성 안"으로...in the city od David로!! 광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 동안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더라
12.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13-46은 내치-사람 정리- 통해 나라 견고케 된 그 과정, 즉 "신뢰하며 하나된 그리스도께 묻고, 일깨워 말하게 하시는바, 주님의 지혜따라 처리한 과정" 설명임)
===아도니야가 죽임을 당하다
13. ○[겨우 생명을 건지기는 했지만 주제 모르고 교만 그자체로 행하고 있음!! 주님 경외함 하나도 모르기에!! 그 중심이 어두워져 있어서 아둔해지고 어리석어 무슨 말 하는지 스스로 자각 없지만, 그나마 느슨해진 사람 마음을 이용할 줄 아는, 세상적이면서 교활한 --물론, 차후에 왕위 계승자 자격 확보/주장 위해, 또는 차후 자기 입지 주장 바탕 마련하기 위한 제안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솔로몬을 돕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긴요했던 시점이었는데]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14. 또 이르되 내가 말씀드릴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5.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지금 말하고 있는 전제가 틀렸다!! 본래 자기 것이란 없는 법!!--주님이 주셔야만 자기 것 됨/주셔야 받아 가지게 됨 모르고 있다!! --자기 주제를 전혀 모르고 오해/착각하고 있음...하나님 경외함 없기에 그분 심중의 계획에 대해 무지함 인해 주님 모독+솔로몬 -다윗 모두 멸시하고 있음!!]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오로지 몇몇 사람만 자기 편이었음!! //"오늘 은혜 받았습니다"하는 사람에게는 이리 말하기를 배우라 "아뇨, 더 많은 사람에게는 은혜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실제가 그렇다 :: 주님 말씀은 교훈-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혼-영-관절-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숨은 의도를 빛 아래 드러내는 말씀이기 때문이다"고 말하기를 배우라!! 그리 말하는 사람은 극소수 긍정맨에 지나지 않음 명심하라!! -그대 주변에 지금 옹위하고 있는, 소수의 긍정맨만 보고 나아가지 말라..부정맨은 그 10배에 달하는 법이니...대다수의 심정과 판단에 더 주의하라..조만간, 긍정맨은 졸지에 사라져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부정맨만 가득하게 될지니!! ---속아넘어가지말라]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16.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7.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그 배경에 있는 숨겨진 두가지 의미 --아비삭 미모 탐냄 + 왕위 계승자 지위 확보 목적!!]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18.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오호라,, 결코 함부로 동의해서는 안되었다!!, 주님께, 주님 마음은 어떠신지 여쭈었어야 했다!! --- 그토록 민감한 시기에!! 경계하는 마음이 느슨해졌다!!))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21.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22. 솔로몬 왕이 [듣자마자 안색이 바뀌고 꾸짖는 태도/자세로 바뀜 --담대히 엄한 어조로 얼굴을 굳게하고]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깨어 있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분별하는 솔로몬이었다!!.."그대 마음에 깨닫게 하시는 바,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청탁에 대해서는 거절해야만 한다--주님 나라 위해서!---그대가 무너지면 주님 나라 망가진다는 것 기억/명심하라!!!" ...솔로몬은!! 아닌것은 분명히 "NO" 거절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의 전형이었다!!..가령!!..믿는 형제가 찾아와서 그대에게 또는 아내를 통해서 "사업 제의"할 그 때에는 더 경계할지니...먼저 절대 긍정 사인 주지 말라!!...오히려 거듭 거듭 주님 뜻 확증 주시기를 구하며, 더 깊게 숙고하고 기도하고 거절하기를 배우고 실행하라!! 대적 사탄마귀/세상/육적 자아의 유혹에 빠지지말라!! "과감하게 NO할 수 있어야 함"..강 건너는 도중에는 말을 절대!! 갈아타지 말라..주님과 한 영된 .그대의 심지 관리 잘 해야 함...결코!!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을 수 없고, 모든이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음을 알라!!
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지혜/분별/담대히 지켜나가야 할 말씀기준!!
===아비아달의 추방과 요압의 처형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언약궤 안치한 시온산 장막의 제단]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29.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31.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시므이가 처형되다
36.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 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39. ○삼 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어떤 사람이 시므이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40.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의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41.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한지라
42.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에게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게 하고 경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43.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44.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네 마음으로 아는 모든 악 곧 내 아버지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라
45.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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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장
1. As David's time to die drew near, he charged Solomon his son, saying,
2. "I am going the way of all the earth. Be strong, therefore, and show yourself a man.
3. "And keep the charge of the LORD your God, to walk in His ways, to keep His statutes, His commandments, His ordinances, and His testimonies, according to what is written in the law of Moses, that you may succeed in all that you do and wherever you turn,
4. so that the LORD may carry out His promise which He spoke concerning me, saying, 'If your sons are careful of their way, to walk before Me in truth with all their heart and with all their soul, you shall not lack a man on the throne of Israel.'
5. "Now you also know what Joab the son of Zeruiah did to me, what he did to the two commanders of the armies of Israel, to Abner the son of Ner, and to Amasa the son of Jether, whom he killed; he also shed the blood of war in peace. And he put the blood of war on his belt about his waist, and on his sandals on his feet.
6. "So act according to your wisdom, and do not let his gray hair go down to Sheol in peace.
7. "But show kindness to the sons of Barzillai the Gileadite, and let them be among those who eat at your table; for they assisted me when I fled from Absalom your brother.
8. "And behold, there is with you Shimei the son of Gera the Benjamite, of Bahurim; now it was he who cursed me with a violent curse on the day I went to Mahanaim. But when he came down to me at the Jordan, I swore to him by the LORD, saying, 'I will not put you to death with the sword.'
9. "Now therefore, do not let him go unpunished, for you are a wise man; and you will know what you ought to do to him, and you will bring his gray hair down to Sheol with blood."
10. Then David slept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in the city of David.
11. And the days that David reigned over Israel [were] forty years: seven years he reigned in Hebron, and thirty-three years he reigned in Jerusalem.
12. And Solomon sat on the throne of David his father, and his kingdom was firmly established.
13. Now Adonijah the son of Haggith came to Bathsheba the mother of Solomon. And she said, "Do you come peacefully?" And he said, "Peacefully."
14. Then he said, "I have something [to say] to you." And she said, "Speak."
15. So he said, "You know that the kingdom was mine and that all Israel expected me to be king; however, the kingdom has turned about and become my brother's, for it was his from the LORD.
16. "And now I am making one request of you; do not refuse me." And she said to him, "Speak."
17. Then he said, "Please speak to Solomon the king, for he will not refuse you, that he may give me Abishag the Shunammite as a wife."
18. And Bathsheba said, "Very well; I will speak to the king for you."
19. So Bathsheba went to King Solomon to speak to him for Adonijah. And the king arose to meet her, bowed before her, and sat on his throne; then he had a throne set for the king's mother, and she sat on his right.
20. Then she said, "I am making one small request of you; do not refuse me." And the king said to her, "Ask, my mother, for I will not refuse you."
21. So she said, "Let Abishag the Shunammite be given to Adonijah your brother as a wife."
22. And King Solomon answered and said to his mother, "And why are you asking Abishag the Shunammite for Adonijah? Ask for him also the kingdom-- for he is my older brother-- even for him, for Abiathar the priest, and for Joab the son of Zeruiah!"
23. Then King Solomon swore by the LORD, saying, "May God do so to me and more also, if Adonijah has not spoken this word against his own life.
24. "Now therefore, as the LORD lives, who has established me and set me on the throne of David my father, and who has made me a house as He promised, surely Adonijah will be put to death today."
25. So King Solomon sent Benaiah the son of Jehoiada; and he fell upon him so that he died.
26. Then to Abiathar the priest the king said, "Go to Anathoth to your own field, for you deserve to die; but I will not put you to death at this time, because you carried the ark of the Lord GOD before my father David, and because you were afflicted in everything with which my father was afflicted."
27. So Solomon dismissed Abiathar from being priest to the LORD, in order to fulfill the word of the LORD, which He had spoken concerning the house of Eli in Shiloh.
28. Now the news came to Joab, for Joab had followed Adonijah, although he had not followed Absalom. And Joab fled to the tent of the LORD and took hold of the horns of the altar.
29. And it was told King Solomon that Joab had fled to the tent of the LORD, and behold, he is beside the altar. Then Solomon sent Benaiah the son of Jehoiada, saying, "Go, fall upon him."
30. So Benaiah came to the tent of the LORD, and said to him, "Thus the king has said, 'Come out.'" But he said, "No, for I will die here." And Benaiah brought the king word again, saying, "Thus spoke Joab, and thus he answered me."
31. And the king said to him, "Do as he has spoken and fall upon him and bury him, that you may remove from me and from my father's house the blood which Joab shed without cause.
32. "And the LORD will return his blood on his own head, because he fell upon two men more righteous and better than he and killed them with the sword, while my father David did not know [it:] Abner the son of Ner, commander of the army of Israel, and Amasa the son of Jether, commander of the army of Judah.
33. "So shall their blood return on the head of Joab and on the head of his descendants forever; but to David and his descendants and his house and his throne, may there be peace from the LORD forever."
34. Then Benaiah the son of Jehoiada went up and fell upon him and put him to death, and he was buried at his own house in the wilderness.
35. And the king appointed Benaiah the son of Jehoiada over the army in his place, and the king appointed Zadok the priest in the place of Abiathar.
36. Now the king sent and called for Shimei and said to him, "Build for yourself a house in Jerusalem and live there, and do not go out from there to any place.
37. "For it will happen on the day you go out and cross over the brook Kidron, you will know for certain that you shall surely die; your blood shall be on your own head."
38. Shimei then said to the king, "The word is good. As my lord the king has said, so your servant will do." So Shimei lived in Jerusalem many days.
39. But it came about at the end of three years, that two of the servants of Shimei ran away to Achish son of Maacah, king of Gath. And they told Shimei, saying, "Behold, your servants are in Gath."
40. Then Shimei arose and saddled his donkey, and went to Gath to Achish to look for his servants. And Shimei went and brought his servants from Gath.
41. And it was told Solomon that Shimei had gone from Jerusalem to Gath, and had returned.
42. So the king sent and called for Shimei and said to him, "Did I not make you swear by the LORD and solemnly warn you, saying, 'You will know for certain that on the day you depart and go anywhere, you shall surely die'? And you said to me, 'The word which I have heard is good.'
43. "Why then have you not kept the oath of the LORD, and the command which I have laid on you?"
44. The king also said to Shimei, "You know all the evil which you acknowledge in your heart, which you did to my father David; therefore the LORD shall return your evil on your own head.
45. "But King Solomon shall be blessed, and the throne of David shall be established before the LORD forever."
46. So the king commanded Benaiah the son of Jehoiada, and he went out and fell upon him so that he died. Thus the kingdom was established in the hands of Solo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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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장 (개요)
본 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쇠하고 동시에 솔로몬이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 다윗의 정권은 그의 생애와 더불어 마감되었다.
(1) 다윗의 임종시에 솔로몬에게 한 부탁. 그것은 대체로 말해서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부탁이었다(1-4). 자세히 말하면 요압과 바실래와 시므이에 관한 명이다(5-9).
(2) 다윗의 죽음과 장사 및 집권 연수(10, 11).
2. 솔로몬 집권의 시작(12). 그는 평화의 왕이 되어야 했으나, 몇 가지 괄목할 만한 법의 시행으로 왕위는 시작된다.
(1) 아도니야의 야심 있는 요구로 인해 그를 처형시킨다(13-25).
(2)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와 공모했으므로 대제사장 직분을 파면시킨다 (26, 27).
(3) 요압이 근래에 모반죄를, 이전에 살인죄를 졌으므로 처형시킨다(28-35).
(4)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했으므로 예루살렘에 유폐시킨다(36-38). 그러나 그는 3년 후에 그 명령을 위반한 죄로 처형된다(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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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최후(왕상 2:1-11)
그렇게도 위대하고 훌륭한 다윗이 이제 죽음을 맞이했다(1절). 그래서 마침내는 죽은 사람이 되었다(10절). 이 생애가 다하면 다른 생애가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죽음은 현생의 모든 영광을 무너뜨리고 땅 속에 묻어 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Ⅰ. 다윗이 자기 아들이자 후계자로 선언한 솔로몬에게 임종하면서 준 명령과 지시 사항. 그는 자신이 기울어져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또 죽음에 관하여 듣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2절)고 했다. 원문에는 “내가 그 길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죽음은 하나의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즉 죽음은 이생의 종지부가 아니라, 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통로이다. 그것은 이 땅(흙)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가 “걸어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늘의 아들들이나 하늘의 후사들까지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야” 하므로, 그들도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 23:4)를 지나면서도, 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간다. 선지자들도, 심지어는 왕들까지도 이 길을 지나서 예언과 정권보다 더 찬란한 빛으로 나아가야 하는 법이다. 다윗이 이제 이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장차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
1. 그는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의무를 의식하라고 명령했다(2-4절).
(1) 행동을 할 때 따라야 할 선한 법칙인 하나님의 뜻, “그것으로 네 정신을 다스리라.” 다윗이 그에게 준 명령은 “여호와” 그의 “하나님의 명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죽어 가는 부친의 권위는 크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약속은 너무나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산을 해야 할 자들처럼 그것을 주의 깊게 지키자. 또 우리가 지켜야 할 우수한 법도가 있다. 기록된 말씀은 우리의 법칙이다. 솔로몬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해야 한다.
(2) 행동할 때 지킬 훌륭한 정신을 주었다. “너는 나이를 먹었으나 어린애에 불과하니, 힘써 대장부가 되라.” 여호와 하나님의 명을 지키려는 자들은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3) 이것을 해야 하는 까닭을 말했다. 이것을 지키면,
① 그의 왕국이 실질적으로 번영하게 된다.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 것이며”, 무슨 일을 하든지 영광과 기쁨을 받을 것이다.
② 그 나라를 영속하게 한다.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계속케 할 것이요”, “그가 내 일에 관하여 하신 약속을” 이루리라. 약속―그것은 거룩한 담보다―이라는 보화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 약속의 권리를 이어받으려고 열망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자기들의 뒤를 이어받게 될 자들이 끊어지지 않기를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각자는 자기 나이에 따라 하나님의 명령을 필히 지키자. 그러면 하나님은 분명코 당신의 말씀을 지킬 것이다. 우리가 그의 훈계를 파기하기 전까지는 약속이 파기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허리로부터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약속을 했는데, 이 약속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약속은 조건적인 것이었다. 즉 그의 후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에 한해서 이루어진다. 솔로몬이 자기 평생에 이 조건을 이행하면, 그는 약속을 영원토록 지속시키기 위한 본분을 다하는 셈이다. 이 조건이란 그가 하나님 앞에서 그의 규례대로 성실히, 열심히, 그리고 결단성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그는 “그의 길을 삼가야 한다.” 신앙에 일관하기 위해서는, 깊은 주의와 용의주도한 자세만큼 더 필요한 것은 없다.
2. 다윗은 일부 특정한 사람에 관하여 그들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지 그 방도를 솔로몬에게 일러 주었는데, 이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의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이 결핍함을 보강해 주기 위함이었다.
(1) 요압에 관해(5절). 다윗은 요압이 이스라엘의 훌륭한 두 군대장관, 아브넬과 아마사를 차례로 죽임으로써 율법을 거역했을 때, 그를 살려 둔 것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 요압은 두 사람을 무참하게 살해함으로써(“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렸다”) 다윗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네가 알 것이다”라고 했다. 신하를 살해하는 것은 왕에게 대한 잘못이요, 그것은 왕에게 큰 손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군주인 왕의 평화에 반역하는 일이다. 당시에는 그가 희생자들과 친선관계에 있었던 때이므로, 다윗의 명성에 모독이요, 특히 다윗에게는 불리한 것이었다. 죽은 그들은 다윗의 권세를 위해 크게 도움이 될 자들이었다. 위정자들은 자기들의 휘하에 있는 자들의 피를 복수해야 하는 복수자이다. 요압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법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왕의 공의를 무시하고 무고한 피로 더럽혀진 허리띠와 신을 신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죄를 더욱 가중시켰던 것이다. 다윗은 요압을 솔로몬의 정의감에 맡긴다는 암시를 하면서, 그를 솔로몬의 지혜에 맡겼다(6절). “그는 백발이니 머지않아 저절로 죽어 갈 것이므로, 그의 목을 자르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결코 안 된다.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비록 오랫동안 사형 집행이 유예되었으나 결국에는 헤아림을 받아야 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죄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특히 살인죄는 더욱 그러하다.
(2) 다윗은 바실래의 가족에게는, 바실래를 인하여 모든 친절을 다하라고 명령했다. 아마 바실래는 이 당시 이미 죽은 것으로 짐작된다(7절). 이 때 다윗은 그의 임종을 맞아 그가 전에 겪은 모든 피해를 회상하면서도, 자기가 받은 친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친절을 보답할 책임은 자기 아들에게 맡겼다. 우리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받은 친절은 그들의 무덤이나 우리의 무덤 속에 매몰시켜서는 안 되며, 우리의 자손들로 하여금 그 친절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갚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에 솔로몬은 아마도 이러한 법칙을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즉 “네 친구와 네 부모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잠 27:10). 바울은 자주 자기에게 원기를 회복시켜 주던 오네시보로의 집을 위해 기도했다(딤후 1:16 이하 참조).
(3) 시므이에 관해(8, 9절).
① 그의 죄가 기억되고 있다. 즉 “그가 나를 독한 말로 저주하였다”고 했다. 더욱 슬픈 일은 그가 다윗이 곤비할 때에 저주하고 그의 상처에 식초를 부었던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이를 더욱 독한 저주로 만든 한 가지 사실은, 사무엘하 16장에서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도, 시므이가 다윗을 모압 족속 룻의 계통이라고 비난한 일이라고 했다.
② 그의 용서를 잊지 않았다. 다윗은, 시므이가 때를 맞춰 다윗에게 굴복하고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Peccavi)하고 외쳤기 때문에 그를 죽음에는 붙이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실과 자기에게 행한 악행에 대한 보복으로 이 중대한 시기에 공의의 칼을 쓰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솔로몬에게 고백했다.
③ 지금 계류중인 그의 소송 사건은, 솔로몬이 기회를 포착하면 무엇이 적당하며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맡겨졌다. 다윗은 그를 용서해 준 일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고 자기가 생존하고 있는 동안만의 집행 유예에 지나지 않는다고 솔로몬에게 일러 주었다.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그가 너와 너의 정권에 친구가 되고 믿음직스러운 자가 되리라고 생각지 말라. 그가 비록 자기의 악의를, 더욱 그 죄를 숨기고 있지만, 전과 같은 악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이전에 지은 죄 때문에 아직도 공의에 대한 채무자다. 그리고 비록 내가 그를 죽이지는 않겠다고 약속은 하였으나, 나의 후계자가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다. 그의 불온한 마음은 너에게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음부에 내려가게 하는 기회를 부여할 것인데, 너는 그 기회를 틀림없이 붙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그의 개인적인 복수심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정권의 영광을 갈망하는 깊은 열의와 하나님이 그의 가족에게 하신 언약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언약을 모욕하면 결단코 무죄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백발이라도, 유죄하고 버림받은 머리라면, 공의로부터 어떤 사람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죄인은 백 살 난 사람이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사 65:20).
Ⅱ. 다윗의 죽음과 장례(10절). 그는 사울처럼 그의 아비가 묻힌 곳이 아니라 자기가 세운 자기의 도성,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그런데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다”(행 2:29; 13:36 참조). 그의 비문은 사무엘하 23장 1절에서 인용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이새의 아들,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 그리고 나의 육은 편히 쉬리라(시 16:9)고 말한 다윗이 누워 있다.” 요세푸스(Josephus)는 말하기를 그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을 통상적인 장엄한 의식을 갖추어서 장사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는 다윗의 무덤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넣었다고 했다. 그리고 1,300년 후(그의 추산) 안디옥 시대의 대제사장 힐카누스에 의해 무덤이 열렸는데, 거기서 3,000달란트에 달하는 돈이 나왔다고 한다.
그가 다스린 연수는 40년으로 계산되는데(11절), 헤브론에서 치리한 7년 이외의 나머지 6개월은 계산되지 않고, 연수에 해당하는 통계만 계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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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야의 종말(왕상 2:12-25)
Ⅰ. 이제 솔로몬은 왕좌에 올랐다(12절). 솔로몬은 다윗보다 훨씬 용이하게 그리고 평온하게 즉위했고, 그의 정권은 훨씬 신속히 확립되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선한 통치의 종지(終止)가 또 다른 선한 통치의 시작이 된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행복이다.
Ⅱ. 왕권 확립을 위한 적수 아도니야를 제거했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요 필요한 일이었다. 아도니야는 대담하게도 왕권을 넘보고 있었으나, 곧 그 허식은 여지없이 추락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자기를 솔로몬의 처분에 맡겨야 할 신세가 되었다. 솔로몬은 선행을 조건으로 하여 그를 놓아주었다. 그러므로 만약 그가 가만히만 있었더라면 목숨은 안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스스로 배반하여 솔로몬의 정의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를 방임해 두셔서 전에 그가 반역한 일 때문에 벌을 받게 하시고, 또한 솔로몬의 왕위가 확립되도록 하신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가 자기들이 잘 지내는 때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몰락하는 수가 많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참으심을 기화로 스스로에게 진노를 쌓아 둔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다윗의 첩 아비삭과 결혼하려는 아도니야의 음모가 있다. 이 음모는 그가 아비삭을 연모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녀를 통해 집요한 왕권 주장을 새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혹은 “선왕의 처”(삼하 12:8)를 취하는 것은 당시에는 또 하나의 국가가 탄생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압살롬은 자기 부친의 첩들과 동침하는 것이 자기의 자만심을 지탱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도니야는 특히 다윗의 첩 중에서 가장 훌륭한 여인과 다윗의 침실에 들 수만 있다면, 그것을 발판으로 다윗의 왕좌에도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속으로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은 고조되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왕국을 쟁취하기 위한 불장난을 시도하여, 무력으로는 얻을 수 없으나 한 여인을 통해서 이룩하기를 바랐다.
2. 이 음모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을 보자. 아도니야는 직접 아비삭에게 구혼하려 들지 않았다. 이스보셋이 이와 같은 경우에 그랬듯이(삼하 3:7), 그녀는 솔로몬의 의사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솔로몬의 동의를 먼저 얻지 않으면 솔로몬이 정당히 분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솔로몬이 자기를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처지라 자기 자신이 솔로몬에게 직접 청원해 보지도 않았다. 그는 밧세바를 이 사건에 중재자로 써 보았다. 그것은 밧세바가 이 사건을 애정 문제로 생각하고, 쉽사리 정책 문제로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밧세바는 아도니야가 그녀의 방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자기에게 해를 끼칠 마음을 먹고 오지나 않았나 하고 그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도니야의 최근의 음모를 분쇄하는 도구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니올시다. 나는 화평한 목적으로 와서(13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14절).” 이는 그녀가 그녀의 아들에게 가지고 있는 관심을 이용하여 아비삭에게 장가들기 위한 그의 동의를 얻으려 함이었다. 그래서 이 동의를 얻기만 하면 그것을 감사히 받았을 것이다.
(1) 자기가 왕국을 잃은 데 대한 보상으로서. 그는 “당신도 아시는 바와 같이, 왕위는 나의 부친의 생존시 그의 장자인 나의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였습니다”라고 넌지시 말했다(15절).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편에 선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는 왕위를 빼앗기고 한 여인으로 만족하려고 하는 동정의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비록 그의 부친의 왕위를 계승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기 부친이 소유하고 있던 것 중 값이 나가는 어떤 것을 가지려고 한 것인데, 이것이 곧 아비삭이었다.
(2) 나라를 잃는 손해를 감수한 대가로서. 그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권을 자인했다. “그것은 여호와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가 왕위를 쟁취하려고 경쟁한 것은 어리석었습니다. 이제 그것은 솔로몬에게 돌아갔으나 나는 만족합니다.” 이렇게 그는 솔로몬의 왕위 즉위를 기뻐하는 척했으나, 그 때 그는 솔로몬의 마음을 교란시킬 수 있는 모든 수작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버터보다 더 부드러웠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3. 아도니야를 위해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한 말이 있다. 밧세바는 솔로몬 왕 앞에서 아도니야를 대변하기로 약속했고(18절), 또 그렇게 했다(19절). 솔로몬은 비록 자기가 왕이기는 했으나 어머니에게 해야 할 최대의 경의를 표했다. 즉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 우편에 앉게” 했는데, 이것은 제5계명에 따른 것이다. 자녀들은 그들이 성장했을 때뿐만 아니라 위대하게 된 후라도, 자기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예의 바르게 그리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너의 어미가 늙었더라도 경시하지 말라.” 그가 자기 어머니의 지혜와 권위에 대해 표할 수 있는 공경의 일례를 더 든다면, 그녀가 자기 앞에 나와서 청원할 일이 있음을 알았을 때 그는 그 청원을 괄시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다음과 같은 제한을 받고 있었다. 곧 그것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녀의 말을 기각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드디어 심부름으로 왕에게 나왔음을 실토했다. “아비삭을 당신의 형 아도니야에게 주소서”(21절). 이상한 것은 그녀가 이 음모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며,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청원 속에 내포되어 있는 근친상간을 증오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비삭을 다윗의 아내로 여기지 않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결혼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아도니야가 솔로몬에게 순순히 복종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녀의 생각에는 아도니야를 만족케 해 주기 위해 그런 결혼을 허락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음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녀의 약점이자 어리석음이었다. 그녀가 섭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여기서 주목할 일은, 군왕이나 고관을 보필하는 자들에게 있어 군왕이나 고관의 이익을 너무 탕진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지혜이듯이, 죄를 조장하거나 사악한 궤휼을 방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또한 그들의 의무다. 왕들에게 그들이 수락해서는 안 되는 것을 청탁하지 말자. 사악한 간청을 더 기뻐하거나 사악한 궤계 앞에 나서는 것은 훌륭한 사람에게는 합당치 않다.
4. 솔로몬은 그 요구를 정당하고도 합법적으로 기각시켰다. 그의 모친 자신이 대변인이 되었고, 그것은 “한 가지 작은 일로 간청”하는 것이라고 칭해졌고, 또 아마도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 밧세바가 그에게 괴로움을 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를 거부한 것은 자기가 전에 한 총괄적인 약속을 파기한 것은 아니다(20절). 만약에 헤롯이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자를 마음이 없었더라면, 이 경우와 같이, 그는 자기가 헤로디아에게 한 총괄적인 약속에 의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아무리 좋은 우리의 친구라도 우리로 하여금 부당하고 어리석은 그러한 나쁜 일을 하게 할 정도로 우리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1) 솔로몬은 그의 모친에게 그 간청의 불법성을 확인시켰으며, 그녀가 전에 알고 있지 못했던 그 일의 귀추를 설명해 주었다. 그의 대답은 약간 신랄했다. 즉 “그를 위하여 왕위까지도 구하옵소서(22절). 왕의 침상을 계승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왕위 계승 요구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아도니야가 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솔로몬은 아도니야가 요압과 아비아달과 더불어 자기를 교란시킬 음모를 하고 있다는 정보와 그렇게 의심할 만한 이유를 포착하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도니야의 요구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계기를 주었을 것이다.
(2)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헛된 교만을 지적하고 맹세하면서 정죄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아도니야 자신의 말 때문에 정죄했다(23절). 그 자신의 말이 그에게 떨어지고 만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더 무거운 짐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었다. 밧세바는 속았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아도니야가 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즉 “그는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으리라. 그는 그 입술로부터 나온 자신의 말로 함정에 빠지고 있으므로, 그가 무슨 일을 당하게 될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느니라.” 그는 곧 아도니야의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24절).
하나님은 친히 다윗의 위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맹세로 선언하셨다(시 89:35). 그러므로 솔로몬은 그 왕위를 노리는 원수를 제거함으로써, 왕위를 견고케 하겠다고 그와 똑같은 확약을 했다. “왕위를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즉, 이를 교란시키려는 아도니야는 정녕 죽어야 하리라.” 그리스도 왕국을 대적하는 원수들의 패망이 분명한 것은 그의 왕국의 견고성이 분명한 것과 같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자녀와 모든 생명이 확고부동한 것과 같다. 아도니야의 사형 집행 승인은 곧 서명되었고, 그 사형 집행자로서는 다름 아닌 군대장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임명되었다(25절). 아도니야에게 자기 변호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는 이 사건을 더 이상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도니야가 왕위를 노린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야심이 많고 불온한 마음을 품은 자들은 죽음의 도구를 스스로 준비하기 마련이다. 왕권을 잡으려다가 목이 잘린 자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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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아달과 요압의 최후(왕상 2:26-34)
아비아달과 요압은 둘 다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를 방조하며 교사하고 있던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취하려는 이 새로운 계획에도 초석을 놓았을 것이며, 솔로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22절). 두 사람이 다 하나님과 왕권에 대해 용서할 수도 없는 무엄한 일을 저질렀는데, 더욱 나쁜 것은 그들의 지위가 높았다는 것과 그들의 소위(所爲)가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아도니야 다음으로 심판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었다. 그들은 반역죄라는 점에서는 동등하나, 그들이 받는 죄의 심판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Ⅰ. 아비아달은 그가 오랫동안 봉직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여, 겨우 감형을 받았다(26, 27절).
1. 솔로몬은 그의 위대한 지혜로 아비아달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즉 “너는 하나님이 누구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주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고도 아도니야와 공모했으므로 죽음에 합당하다.”
2. 솔로몬은 아비아달이 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에게 보인 존경, 그가 거룩한 일(“그가 다윗 앞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었다”)로 다윗을 섬겼던 사실, 그리고 그가 다윗이 환난을 당했을 때 후의로 동정했던 일과 또 다윗이 사울의 핍박과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받은 추방과 곤욕 속에서 다윗과 함께했던 이전 모든 일을 상기시켰다. 여기서 주목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은 어느 때고 그 친절이 기억된 바 되어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3. 이런 까닭에 그는 아비아달의 목숨은 살려 두었으나, 그의 직분은 파면시키고, 주거지를 시골 아나돗으로 제한시켰다. 그뿐 아니라 그로 하여금 근신하게하기 위해, 궁중과 성읍, 성막, 제단 등 공적 업무에서는 손을 떼도록 엄금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도 이를 위배했기 때문에 고위직에는 합당치 않다고 생각되어, 제사장 직분만을 박탈당했다.
사울은 죄를 지은 것으로 생각하고서, 아비아달의 아버지 등 85명의 제사장과 그의 가족과 성읍에 있는 자들에게 잔인한 살해를 가한 바 있다. 솔로몬은 실제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아달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이렇게 해서 사울의 정권은 무너지고 솔로몬의 왕권은 왕성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대한 그대로, 하나님이 다시 자기들을 대하시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4. 아비아달의 직위 박탈은 엘리의 집(삼상 2:30)에 내렸던 경고의 성취였다. 왜냐하면 그는 엘리의 집의 마지막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은 파멸의 경고를 받은 지 80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심판은 급속히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반드시 이루어진다.
Ⅱ. 요압은 그의 오랫동안의 죄악을 고려하여 사형에 처했다.
1. 그는 죄책감 때문에 제단 뿔로 갔다. 그는 아도니야가 처형되고 아비아달이 파면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다음은 자기 차례일 것이라고 무서워하며 제단으로 피난했다. 평안할 때에는 제단 섬기기를 생각지도 아니하다가 환난 때에는 제단에서 보호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요압이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계속 제단에 나와서 봉사할 생각이었다고 본다. 즉 이는 마치 일생을 고독하게 살던 사람들이, 만년에 세상을 등지고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고 살려고 사원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함으로써 자기들의 죄를 속량받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2. 솔로몬은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죄 때문에 요압을 사형에 처했다. 그를 사형하기에 합당하다고 생각된 죄는, 그가 아도니야에게 집요하게 붙어서 반역하려 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그들을 죽인 바로 그 범죄 때문이었다. 요압은 “비록 압살롬을 좇아가지는 않았으나”(28절), 솔로몬과 그의 왕위 지명을 무시하고 아도니야를 좇았으므로 실상은 그것만으로도 사형에 상당한다.
옛날의 충성이 결코 그 후의 배반 행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밖에, 요압은 다윗의 집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대단히 많은 봉사를 함으로써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점을 감안했더라면 솔로몬은 그에게 범한 죄를 용서해 주었을 것이다(관대성은 정부 초창기에 큰 명성과 흥왕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아비아달에게 한 것처럼 그를 해직시키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에 지은 살인죄 때문에 마땅히 죽어야만 했다. 그 죄는 다윗이 그에게 갚아 달라고 솔로몬에게 당부했던 바로 그 죄다. 다윗은 피 흘린 자의 피를 요구하여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함으로써, 흘려진 무고한 피에 대한 자기의 빚을 갚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꼭 갚을 수 있는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그 책임을 맡겼던 것이다. 이리하여 솔로몬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그의 죄를 가중시키는 것이 있었다. 즉 “그는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쳐 죽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은 요압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도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만약에 그들이 살았더라면 다윗을 더욱 잘 섬겼을 것이라는 점(흘려진 그 피는 전혀 무고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것이었고, 그들의 생명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귀중했다. 그러므로 그 죄는 더욱 가증스럽다), 그리고 다윗 자신은 알지도 못했고, 오히려 다윗이 그 사건에 은밀히 관계된 것처럼 혐의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사건이었다는 점 등이다. 그리하여 요압은 자기의 대적을 죽임으로써 자기의 임금 다윗의 명성을 위험하게 했으니, 그 사실은 더욱 가중한 죄가 되었다.
(1) 이러한 죄악들 때문에 그는 죽어 마땅하다. 죽되 공의의 칼에 죽어야 한다. “사람에 의해서 그의 피는 흘려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의 피는 그의 머리 위로 돌아가야 한다(32절). 그가 죽인 사람들의 피도 아울러 그에게 돌아가야 한다(33절). 화있을진저, 피 흘리게 한 죄인의 머리여!
살인 행위에 대한 복수는 요압에게 더디 왔다. 그러나 막상 오고 보니 너무나도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여기에 보면 그 복수는 “그의 자손의 머리 위에 영영 돌아가게” 되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손들은 그의 영웅적 행위로부터 명예를 얻었을 것이지만, 그 대신 그들은 그의 극악한 행위 때문에 죄책과 수치와 저주를 얻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서 더욱 더 구차한 생애를 영위하게 되었다. 그런 악행을 한 자들의 후손은 결코 새로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는 제단에서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해야 된다. 요압은 제단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려 했다(30절). 그는 제단에서 자기 안전을 도모하리라는 희망을 가졌든가, 또는 만약에 솔로몬이 자기를 제단에서 처형하면, 솔로몬이 성소 모독죄로 백성에게 증오를 받게 되리라는 희망에서였다.
브나야는 그를 거기서 죽일 것인가, 또는 거기서 끌어낼 것인가 깊이 생각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여호와의 제단은 간악한 살인자를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알고 있었다(출 21:14). “너희는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그래서 희생 제물로 삼아야 한다. 짐승의 피가 속죄 제물이 될 수 있는 경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만일 그를 거기서 끌어낼 수 없다면, 거기서 처형하라고 명했다. 그것은 솔로몬이 자기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는 백성들의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잘못을 교정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고, 또 정의의 실행(사법 행정)은 제사보다 더 나은 것이며, 어떤 장소의 거룩함이 어떤 인간의 사악성을 묵인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에 있다. 살아 있는 믿음으로 죽는 한이 있어도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확고하게 붙잡는 사람들은, 요압이 잡고 있던 제단 뿔에서 찾은 것보다 더욱 강력한 보호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브나야는 분명히 공개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여 엄숙히 그를 죽였을 것이다(34절). 이리하여 율법이 시행되자, 요압은 장엄한 장례를 치른 병사 같지 않고 일개의 형사범과 같이 “거친 땅에 있는 자기 집에 매장되었다.” 그의 시체에는 아무런 경멸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든지 간에, 시체 위에 죄악을 더하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3. 솔로몬은 공의가 행해진 데 만족했다. 즉 개인적인 복수를 기뻐한 것이 아니라, 자기 부친의 명령이 수행된 것이며, 자기 자신과 자기 왕권에 실제적인 자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1) 이로써 죄책이 제거되었다(31절). 그가 흘린 무고한 피를 그의 머리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솔로몬과 그의 부친의 집에서 죄책이 제거되었다. 이 사실은 살인자에게서 요구되지 않은 피는 치리자에게 피를 요구하게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자기 집이 안전하고 확고하게 세워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죄악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2) 이로써 평강이 다윗의 집에 보장되었다. 다음의 말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솔로몬은 자기 개인이 아니라, “그(다윗)의 후손과 그의 집과 그 왕위 위에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고 했다. 그것은 자기의 바람과 소망을 말한 것이다. “이제 공의는 실현되고 피의 호소는 성취되었으니, 왕위는 흥왕할 것이다.” 이리하여 “의와 평강이 서로 입맞추고 있다.”
요압과 같은 불온한 자가 제거되었으니, 평강이 있을지어다.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러면 그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잠 25:5). 솔로몬은 자기 집과 그의 왕위가 평강하기를 빌면서 평강을 만드신 이가 여호와이심을 경건하게 우러러 보았고, 영원의 완성자이신 하나님의 영원을 대망했다. “그것은 여호와로 말미암은 평강이요 또 영원한 평강일지라.” 평강의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평강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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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이의 최후(왕상 2:35-46)
Ⅰ. 솔로몬과 그의 왕권에 충성을 한 두 신복 브나야와 사독의 승진(35절). 요압이 처형되자 브나야가 그 대신 군대장관으로 승진하고, 아비아달이 파면되자 사독이 그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이 되었다. 이로써 하나님이 엘리의 집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루어졌다. 즉 “내가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켜서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라”(삼상 2:35)는 말씀이다.
비록 거룩한 직능의 위신은 추락되어도, 그 직능 자체는 위탁받은 사람의 악정 때문에 파멸되어서도 안 되며, 또한 이를 수행할 손길이 없는 채 하나님의 사업이 버려져 있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직접 하나님의 섭리로 왕이 된 사람이 합당한 사람을 찾아내 제사장으로 삼을 권한을 가진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공명정대하게 이 권한을 행사하였으니, 옛부터 내려오던 권리가 사독에게 주어졌다. 사독은 엘르아살의 집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엘리와 그의 집은 이다말에게 속해 있었다.
Ⅱ. 시므이를 제거하게 된 경과. 그는 바후림에 있는 자기 집에서 솔로몬 왕이 보낸 사자를 통해서 소환령을 받았다. 그 때 그는 자기의 운명도 아도니야의 운명과 별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윗의 집에 대해 품은 자기의 적대감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죄와 죄인을 구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윗은 자기 생전에는 시므이의 목숨을 살려 줄 것을 약속한 바 있다. 솔로몬은 그 약속에 구애받지는 않으나, 그 약속을 정면으로 위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1. 솔로몬은 시므이의 주거를 예루살렘에 한정시키고, 기드론 강 건너 그 성읍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36, 37절). 솔로몬은 시므이가 그의 이웃들 간에 불행한 일을 할까 봐 그를 계속 고향에 살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그 속에서만 살도록 했다. 따라서 시므이의 주거 제한은 자기 자신에게는 편안한 생활이 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그 위치가 아름다웠고, “온 땅의 기쁨이요”, 왕이 있는 성읍이요, 거룩한 성읍이었기 때문이다(그는 그와 같은 천국에 갇혀 있으므로 그것을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감금은 솔로몬에게 더욱 안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루살렘에서는 늘 자기가 볼 수 있는 곳에 두어 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할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은 분명하게 그에게 만일 그가 왕의 지배를 벗어나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복종을 위한 공정한 심판이며, 그가 불평할 이유가 없는 충순함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므이는 아주 경미한 조건으로 생명을 얻고 있는 것이었다. 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살기를 만족하게 여기기만 하면 그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
2. 시므이는 감금 생활에 복종하고 이러한 조건으로 그의 생을 감사하게 누렸던 것이다. 그는 사형에 해당하는 형벌하에서도 예루살렘을 교란시키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왕의 말이 옳다고 자책했다.
멸망하는 자들도 용서와 생명의 조건이 예상 밖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들의 머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시므이는 한계 구역 바깥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42절).
3. 시므이는 자기의 서약을 망각하고 말았다. 이것은 솔로몬 왕이 예상했던 바였다. 하나님은 의로우사 시므이가 그의 옛 죄값을 받게 하시기 위해 그로 하여금 그 서약을 망각하게 하셨다.
그의 종들 중 두 사람(그는 죄수였지만 그를 수종하는 자들과 함께 살았던 것 같다)이 그에게서 블레셋 땅으로 도망해 갔다(39절). 그는 거기까지 그들을 쫓아가서,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그는 몰래 나귀를 타고, 아마 밤에 떠났던 모양이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들키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홀(Hall)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의 종들을 찾았으나 자기 자신을 잃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종들이며, 또 종이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 테두리를 벗어나서 땅의 것을 추구하다가 드디어 자기들의 영혼이 무서운 심판을 자초하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보는가!”
4. 솔로몬은 그의 생명을 몰수했다. 시므이가 범법했다는 정보가 솔로몬에게 입수되었다(41절). 왕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서,
(1) 그의 현재의 범죄를 책망했다(42, 43절). 즉 그는 하나님과 왕의 권위와 진노를 크게 무시했다. 또 그는 “여호와의 맹세”를 파기하고 왕명에 불복종했다. 그리고 이로써 그의 정신상태가 입증되었다. 즉 그는 감사와 양심의 굴레를 모르는 자다. 만일 그가 솔로몬에게 출타해야 할 사정이 긴박함을 진언하고, 허가를 간구했더라면, 솔로몬은 아마도 허가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이 모르고 있는 것과 묵인하고 있는 것을 기화로 삼은 것은 그를 최대로 모욕하는 것이었다.
(2) 솔로몬은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고, 그가 다윗 성에서 환난을 당하고 있을 때 돌을 던진, 이전의 죄를 비난했다. 다시 말하면 그 죄란 “네 마음이 아는 모든 악이었다”(44절).
이제는 그 사실의 증거를 입증할 증인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 대신 양심이 그 자신의 수천 명의 증인이 되었다. “마음만이 홀로 알고 있는 악”은 그 사람을 혼란으로 충만하게 하기에 충분하며, 죄값이 “그 머리 위에” 돌아갈 것이 예상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마음보다 더 위대하시며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별도로 하고라도, 시므이 자신은 그가 다윗을 저주할 때 보여 준 증오심과 적개심의 악한 본질에 대해 알고 있었고, 자기가 복종했던 것은 허례나 억지로 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3) 그는 자기 자신과 왕권을 축복했다(45절). 분노와 낙담으로 시므이가 한 무력한 저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왕은 복을 받으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껏 소리를 냈다. 즉 “그들이 저주하려면 저주하게 하라.” 그러나 너는 “복을 빌라.” “다윗의 위는” 그를 전복하려는 자를 제거함으로써 “견고히 설지어다.” 교회의 원수들의 악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아무리 격노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상상하는 일은 헛된 일이다. 그리스도의 왕좌는 견고히 설 것이니, 원수는 이를 흔들 수가 없다.
(4) 솔로몬은 시므이를 즉시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46절). 모든 심판은 예수께 맡겨졌다. 따라서 주 예수님이 평화의 왕이긴 하지만, 그는 역시 정의의 왕이심이 알려지리라. 그리고 머지않아 예수의 통치를 기뻐하지 않던 모든 원수에게도 그러한 그의 명령이 내려지리라. “그들을 데리고 와서 내 앞에서 쳐 죽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모독한 자들의 죄값은 자기들의 머리 위에 떨어져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
====호크마===
열왕기상 2장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ㅇ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임명한 때로부터 그에게 최종 유언을 하는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가 어느 만큼의 기간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대기에서는 솔로몬 즉위 후 다윗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성전 예배의 새로운 규례 제정, 제물 봉헌, 그리고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공포하는 의식을 성대히 행하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대상 23장-29장).
ㅇ명하여 가로되 - 다윗이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남기는 명령은 대상 28-29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절 이하의 내용은 다윗이 왕위 계승자인 아들 솔로몬에게 사적(私的) 유언의 형태로 은밀히 당부하는 말이다. 한편 본서가 솔로몬 즉위 이후의 다윗의 활동을 생략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와 달리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ㅇ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 직역하면 "나는 모든 땅에 속한 자들의 길로 가고 있노니"(I am going in the way of all the earth)란 의미로서, 곧 임종(臨終)이 가까왔음을 나타내는 성경적 표현이다. 일찍이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서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수 23:14)라고 말한바 있다.
ㅇ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하자크타 웨하이타 레이쉬'를 직역하면 '너는 강하게 되어라! 그리고 남자가 되어라'란 의미이다. 이러한 다윗의 권면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권면해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수 1:6-4). 한편 혹자는 다윗의 이 말을 통해 당시 솔로몬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그리고 사실 즉위식 이후에도 다윗은 솔로몬을 '어리고 약한 아들'로 말하기도 한다(대상 29:1). 이런 맥락에서 유대 사가 요세푸스는 당시의 전통으로 미루어 즉위시 솔로몬의 나이를 14세 정도로 보았다. 혹자는 12세로 보기도 한다(Eupolemus). 아무튼 20세가 채 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Hammond). 그러나 여기서 대장부가 되라는 다윗의 말이 결코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다(삼상 4:9). 오히려 이 말은 여호와의 율법 준수의 임무를 행함에 있어 담대하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Keil, B hr). 왜냐하면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에게서도 '담대한 것'과 '율법 준수'는 상호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수 1:7).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이다. 따라서 데니우스(Thenius)의 견해처럼, 다윗의 이 말을 부친의 죽음을 남자답게 용감히 견디도록 위로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상 타당치 않다(Keil).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ㅇ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 여기서 '지키라'는 '파수꾼이 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파수꾼이 되라는 말이다. 이 같은 용어는 특별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직무 수행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레 8:35;18:30;민 1:53;3:7).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도 이들처럼 신적(神的) 직무를 위임받은 여호와의 통치 대리자로서,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의 율법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B hr).
ㅇ그 길로 행하여 - 여기서 '길'(데레크)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의 도(道)이다. 구체적인 일례로, 신 32:4에 의하면 하나님의 길은 공평(公平)의 길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통치할 때 '공평'을 기본 강령으로 삼아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도로 다스려야 했다.
ㅇ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 여기서 '법률'(훅카)과 '계명'(미츠와)과 '율례'(미쉬파트)와 '증거'(에두트)를 각각 개별적으로 다른 대상들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들을 구별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으나, 불가능하고 또한 불필요했다(Hammond).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모세 율법 그 전체를 강조하여 제시하려는 중언법(重言法)적인 표현인 것이다(Keil).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처럼 비슷한 어휘가 반복되어 나란히 등장하는 예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신 5:31;8:11;시 119편).
ㅇ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켜라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세운 법과 제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칫 소수의 집권층만을 위한 악법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므로(롬 7:12), 그 법대로 통치하는 자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공의와 평강의 나라인 것이다(계 11:15).
ㅇ형통할지라 - 사전적 의미에서의 형통(亨通)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형통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타스킬'은 '지혜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지혜롭게 되는 것이고 또한 지혜로운 그가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형통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B hr). 그러므로 '형통'(사칼)이란 말 속에서 뜻한 바대로 잘되는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지혜'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ㅇ일찍이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삼하 7:12-16)을 이제 죽음을 앞둔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해주고 있다.
ㅇ만일 네 자손이...행하면 - 이 조건절은 원래 나단의 메시지 (삼하 7:8-16) 속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8:25;9:5 등). 그런데 애초 이 내용은 신명기에 기록된 바(신 6: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 위탁한 교육적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도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되고 있지 않다(신 17:18-20).
ㅇ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신 6:5 주석 참조.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ㅇ스루야의 아들 요압 -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이며, 요압은 그녀의 맏아들이다(대상2:16).
ㅇ내게 행한 일 곧...네가 알거니와 -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는 삼하 2-3장과 19-20장을 각각 참조하라. 한편, 그런데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군대 장관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기심 때문이었다(삼하 3:6-39;20장). 여기서 특기할 것은 요압의 그러한 살해 행위를 다윗은 마치 자신에게 행한 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은 다윗의 권위에 대한 멸시와 도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B hr;삼하3:26;20:11). 적어도 요압은 다윗 왕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을 바친 훌륭한 전사였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방자하고(삼하 18:5,14) 거칠었던 것 같다(삼하 3:27;18:14). 그래서 끼친 공(功) 못지 않게 자주 다윗 왕가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 중에서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행위는 도저히 묵과될 수 없었던 요압의 치명적 실수로서, 다윗은 그 사실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ㅇ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 다윗은 아브넬과 협상하여 평화적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려 했었다(삼하 3:21). 또한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왕국의 재정비를 도모하려던 때였다(삼하 19:13;20장).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평화의 노력이 요압의 살해 행위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계략으로 살해한 행위는 다윗을 심히 분노케 했다(삼하 3:29).
ㅇ전쟁의 피로...띠와...신에 묻혔으니 - 여기서 '띠'와 '신'은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갖추어야 할 것들로서, 주로 전쟁에 임하는 전사(戰士)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 도구였다(Keil, B hr). 만일 요압이 전쟁 중에 정정 당당히 싸워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피를 띠와 신에 묻혔다면, 그것은 결코 책할만한 일이 못될 것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태평한 시대에, 곧 다윗이 탕평책을 쓰고 있는 즈음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 및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전쟁터에서나 묻혔어야 할 피를 명분없이 흘리게 했으니, 그것이 곧 요압의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다.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ㅇ네 지혜대로 행하여 - 요압은 그때까지도 군대 장관이었고(35절),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당대의 세도가였다. 그러한 인물을 명분없이 처단한다면 민심의 동요와 같은 어려움이 생길지도 몰랐다(Starke). 그러므로 이 말은 나쁜 술수로 요압을 처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납득이 갈 만한 처벌의 정당성과 적절한 시기를 가려 시행하도록 충고하는 말이다. 실제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불측한 시도가 재차 드러나자 그의 동조자였던 요압도 함께 처단한다(19-25절,28-34절).
ㅇ그 백발로 평안히...내력지 못하게 하라 - 그 무렵 요압도 고령기에 접어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백발의 평안한 죽음은 죄 없는 자의 죽음으로서, 요압 같은 자에게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B hr). 왜냐하면 요압은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31절).
히브리인들은 무고한 자가 흘린 피는 그 피값이 보상될 때까지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고(창 4:10), 또한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현세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했다(수 2:19;마 27:24,25). 한편, 이처럼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창 9:5,6)는 피의 보상 원리에 입각하여 다윗은 요압이 그 피 흘린 죄를 반드시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솔로몬에게 권고한 것이다. 그러면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는가? 카일(Keil)은 당시 다윗으로서는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즉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새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한다(Leon Wood). 아무튼 다윗은 요압의 불의한 살해 행위를 잊지 않고 있다가 결국 솔로몬을 거스려 아도니야의 반역 행위에 가담한 요압을 솔로몬이 처리하도록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오히려 솔로몬 왕국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실현 차원에서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요압의 처리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부터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 같다(R. Patterson, J. Hammond).
ㅇ음부( ,쉐올) - 죽은 자들의 사후 거처 또는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식 표현. 창 37:35;민 16:30;신 32:22;삼상 2:6;삼하 22:6 주석 참조.
7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ㅇ바실래 - 바실래 및 그가 다윗에게 베푼 선행에 대해서는 삼하 17:27-29;19:31-39 부분의 주석을 참고하라.
ㅇ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 다윗의 이 부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왕 자신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Keil), 왕궁에서 음식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B hr).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형태로 결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식탁을 보고 놀랐으며, 솔로몬 왕궁의 매일 음식 소비량이 굉장히 많았다는 기록이 있기 매문이다(4:22,23;10:5). 어쨌든 이 일은 원래 다윗이 한때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어려음에 처한 자신에게 음식물로 공궤한(삼하 17:27-29) 바실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해왔던 것인데, 이제 솔로몬에게도 그 선행 보답을 계속하도록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삼하 19:33, 37).
ㅇ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다윗이 정처없는 피난 길에 나서는 극도의 곤경에 빠졌을 때, 바실래는 여러 가지 식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선행을 베풀었었다(삼하 17:27-29). 따라서 후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다시금 환궁 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는 바실래에게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겠노라고 약속했다(삼하 19:31-39). 본절은 다윗이 바로 그러한 바실래의 선행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바실래와 맺은 약속을 솔로몬 역시 계속 지켜 나가도록 요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ㅇ바후림 -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Bahurim)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 가량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고을로, 베냐민 지역에 속한다(삼하 16:5).
ㅇ게라의 아들 - '게라'(Gera)는 베냐민의 손자이므로(창 46:21;대상 7:6) 시므이의 아버지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시므이보다 약 300년 전의 인물인 사사 에훗도 '게라의 아들'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아(삿 3:15) 이 말은 '게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J.H-ammond).
ㅇ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 여기서 '너와 함께 있나니'(임메카) 란 말은 곧 너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이는 솔로몬이 거주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가까운 곳에 시므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Keil, B hr). 그러므로 이 말은 혹자(Starke)의 견해처럼 시므이가 솔로몬의 권력하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편 '시므이'(Shimei)에 대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ㅇ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 직역하면, '그는 지독한 저주로써 나를 저주하였다'란 의미인데, 구체적인 저주의 내용은 삼하 16:7, 8에 나타나 있다. 한편 학자들은 여기서 '독한 말'(켈랄라 니므레체트)을 '강렬한 말'(Gesenius), '거친 말'(Keil), '악한 말'(Thenius) 등으로 번역한다. 여하튼 시므이의 그 저주 까닭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혹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정도로 시므이의 독한 말 (저주)은 다윗에게 깊이 원통함을 심어준 말이었다(삼하16:12).
ㅇ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시므이는 급히 환영단 일천명을 이끌고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 왕을 영접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삼하 19:16-2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ㅇ내가...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 당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막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기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므이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용서는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하 19:21,23 주석 참조.
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ㅇ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 압살롬의 반란 때 시므이는 피난가는 다윗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으나, 후에 다윗은 그를 용서한 바 있다(삼하 16:5-13;19:19-23). 그 까닭은 시므이가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유지였고,또 그 무렵은 압살롬 내란 이후 회합책으로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삼하 19:23). 그러나 아들 솔로몬에게는 그러한 맹세의 책임이 없는 것이다. 한편 원문은 '무죄'를 '벌하지 않은 상태'로 말하고 있다. 또한 '그러나'는 원문상 '그리고 지금'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제까지 벌하지 않은 상태로 보류해 온 시므이에 대한 처벌을 지금 집행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J. Hammond).
ㅇ그 백발의 피를 흘려...내려가게 하라 -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삼하 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民心)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지만 끝내는 처단해야할 존재로 작정했다. 사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의 견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癌的)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용서받은 후 시므이의 행동이 신실한 회개에 근거하고 있지않다는 판단하에 다윗이 이처럼 명령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Richard D.Patterson). 또 한편 일부 학자들(Stanley, Harwood)은 주장하기를, 시므이를 처형시키라는 다윗의 명령은 '뿌리 깊은 증오심' 내지는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복수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다윗의 명령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원한이나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 내지는 '하나님 왕국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자에 대해 개인적인 용서의 차원을 떠나 신적 심판은 반드시 집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만 한다(Keil, Hammond).
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
ㅇ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장사되니 - '열조와 함께 누워 자다'란 표현은 '열조에게 돌아가다'(창 25:8;35:29;49:33)란 표현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곧 '죽음'을 가리키는 성경적 표현이다. 이리하여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聖君)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2절) 가고 말았다. 다윗은 자신의 남은 마지막 재임 기간을 새 왕 솔로몬과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일로 보냈다(대상 22:6-19;28:1-21;29:1-22). 이처럼 다윗은 죽는 그 순간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하에서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대상 29:28) 죽어 예루살렘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실로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은 가장 위대한 왕이요 의로운 왕이었다. 이런 맥락하에서 다윗이 세운 도시 예루살렘은 '다윗 성'으로 간주되었다(3:1;8:1;느 3:15).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의(義)의 척도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가증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은 것은 바로 다윗을 생각해기 때문이었다(왕하 8:19). 무엇보다도 다윗은 장차 그의 가계를 통해 오실 메시야의 조상으로서 그 뚜렷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지칭했으며(마 1:1), 백성들 역시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다윗을 기렸던 것이다(마 21:9).
ㅇ다윗 성 -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은 성채로 시온 산성과 동일시 된다(8:1;삼하 5:7;대하 5:2). 그런데 시온 산(Mt, Zion)은 두로포이온 계곡과 기드론 계곡 사이의 산을 가리킨다. 이곳은 종종 예루살렘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Wycliffe). 유대사가 요세푸스도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 보다 확장된 것이다(IDB). 그리고 역대 유다 왕들의 무덤은 시온 산 곧 다윗 성에 있었다(11:43;14:31;15:8). 한편, 다윗의 묘는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느 3:15, 16) 후일 사도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행 2:29)...다윗성과 시온산의 범위도 변경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중앙계곡과 기드론 계곡사이만을 일컫다가-->다윗성 서남서방향의 힌놈골짜기 북쪽 산지까지 포함시키고 있었던듯한 암시를 던져주고 있다.(다윗의 무덤은 힌놈골짜기 북쪽 기슭에 있었다--"다윗성에 장사되니라" 함으로써 여기까지도 다윗성으로 기록하고 있는것임.)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십년이라 헤브론에서 칠년을 치리 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을 치리하였더라
ㅇ다윗이...치리하였더라 -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B.C. 1010년 경에 헤브론에서 왕위에 올라 그의 나이 70세 때인 B.C. 970년경까지 40년동안 이스라엘을 치리한 후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그의 통치를 마감하였다.
ㅇ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 다윗의 헤브론 7년 통치는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 서 통치한 기간이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국을 통합하여 명실 공히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서 33년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한편, 다윗의 헤브론 통치기간에 대해 역대기는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7년으로 나타내고 있지만(대상 29:27), 사무엘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7년 6개월로 나온다(삼하 5:5).
12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 하니라
ㅇ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 이는 1:46과 중첩되나 본절은 다윗이 죽고 이제 본격적인 솔로몬의 통치기가 시작됨을 나타낸다. 따라서 솔로몬의 즉위(1:46) 이후에도 다윗은 죽을 때까지 얼마동안 일종의 섭정 자격으로 통치를 계속했던 것 같다. 한편, 솔로몬의 즉위 연대는 대략 B.C. 970년 경으로 추정된다.
ㅇ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 대체로 이 부분은 앞으로 이어져 나올 내용의 요약으로 보고 었다(Keil, B hr, Hammond).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대상 29:23-25 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것은 일찍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삼하 7:12).
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ㅇ학깃의 아들 아도니야 - 1:5 주석 참조.
ㅇ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 70인역(LXX)에는 아도니야가 절을 하였다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한편 1:11의 밧세바는 왕비였으나 지금 그녀는 태후(太后)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위치는 대단히 유력한 위치였다(J. Hammond). 그러므로 실제 열왕기에는 왕들의 모친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14:31;15:10,13;왕하11:1;12:1;14:2;15:2 등). 그중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의 전횡(專橫)은 특기할 만하다(왕하 11:1-3). 분명 이런 맥락하에서 아도니야 역시 밧세바를 움직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밧세바에게 접근한 것이다.
ㅇ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 화평에 해당하는 '샬롬'은 보통 인사말로서 주로 사용된다(창 43:27;출 18:7). 그러나 궁금증이나 의혹을 담은 물음에서도 종종 사용된다(삼상 16:4;왕하 5:21;9:11,17). 의당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방문이 의아했을 것이다(Keil, Hammond). 왜냐하면 아도니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 솔로몬과 왕위를 놓고 다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도니야가 이제 다윗이 죽고 난 후 솔로몬이 본격 통치를 시작할 즈음에 갑자기 밧세바를 방문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밧세바는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경계심을 품은 질문을 한 것이다.
14 또 가로되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ㅇ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 원문은 "내가 말씀을 드려도 괜찮은지?"하는 은근함이 담긴 의문문의 형태이다. 이처럼 비교적 상세하게 그들의 대화 내용이 보도되는 것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전달함으로써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납득시키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도니야에게 호의를 가질 리 만무한 밧세바가 결국 그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18절).
15 저가 가로되 당신도 아시는바여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을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위가 돌이켜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니이다
ㅇ왕위는 내 것이었고 - 원문상 '내 것이다'(리)란 말이 앞서 나오기 때문에 문법상 '내 것'이란 말이 강조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Burney). 아무튼 아도니야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당시 다윗의 생존한 아들들 중 그가 최연장자였기 때문이다<1:6>.
ㅇ온 이스리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 이것은 분명히 상황 판단 착오로서, 사실 자체의 반대되는 곡해이다(1:20,40). 물론 아도니야의 유력한 추종 세력이 있었지만(1:7,9), 온 이스라엘의 지지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주장은 아도니야의 교만한 성품과 왕위에 대한 미련이 빚은 착각이다<1:5>. 여하튼 교활하게도 아도니야는 본래 왕위가 자신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한 사실을 과장하여 상기시킴으로써, 은근히 밧세바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ㅇ돌이켜 - 영역본 KJV는 'turned about'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본래의 원칙에서 벗어난 변칙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도니야가 이 말 다음에 그러한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말로 돌리고는 있지만(Keil), 역시 내심으로는 왕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떨치지 않고 있음과 아울러 솔로몬의 왕위를 인정치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J. Hammond, Patterson).
16 이제 내가 한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마옵소서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ㅇ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 원문은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Do not turn away your face)란 뜻이다. 즉 외면하여 거절하지 말아달라는 간청이다.
17 가로되 청컨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ㅇ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아도니야의 이 간청은 다만 아비삭의 미모를 탐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아도니야의 이러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왕위를 노리는 행동으로 해석한다(Keil, B hr,Smith 등). 왜냐하면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첩(후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Patterson). 그런데 파사 제국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늘 선왕(先王)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후왕(後王)이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다(Herodotus). 이런 맥락하에서 압살롬도 백성들의 목전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왕권 쟁취를 널리 선언한 바 있있다(삼하 16:20-23). 따라서 비록 밧세바는 이러한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하고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 중재자의 자격으로 나섰지만, 지혜로운 솔로몬은 밧세바의 말을 통해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아도니야를 처형시키고 만다(25절). 그 이유는 솔로몬이 아도니야에게 일찍이 주지시켰던 바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1:52)라는 말대로 아도니야의 아비삭 요구 속에는 다시금 왕위를 노리는 '악한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18 밧세바가 가로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ㅇ좋다 내가...왕께 말하리라 -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 까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대두된다. 즉 밧세바는 별 생각 없이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견해, 즉 사사로운 애정 문제가 정치적 연관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뜻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해석(Wycliffe, B hr), 왕위 경쟁에서 탈락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위로와 동정의 대가로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견해 (C. Dentan), 밧세바는 자신이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서 아도니야의 청을 수락했다는 견해(J. Hammond) 등이 논의된다. 그러나 아마도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ㅇ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 솔로몬이 모친 밧세바를 태후(太后)로 존중하여 최대의 예우와 존경으로 맞이하는 모습이다. 70인역에는 왕이 입맞추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지위는 매우 유력했던 것 같다(J.Hammond, Exell ). 그런데 성경 기록상 밧세바는 최초의 공식적인 태후인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즉위에 큰 공헌을 한 밧세바(1:15-21)에 대향 예우가 이후 왕실의 태후에 대한 예우 확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ㅇ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 우편(右便)의 자리는 특히 고대 근동 사회에서 존대와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였다(Keil). 그리고 그러한 관례는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시 110:1;ak 20:21;25:33;행 7:56;롬 8:34 등). 한편 본문이 이처럼 솔로몬의 극진한 예절을 소상히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솔로몬은 효성이 지극한 왕이었음을 알리고, 동시에 그러한 효성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모친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결코 괄시가 아니라 아도니야의 요청이 역모에 관련된 탓임을 나타내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시옵소서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괄시하지 아니하리이다
ㅇ한 가지 작은 일로 -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이 밧세바에게 이르러 "한 가지 작은 일"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었었음을 나타낸다. 분명 밧세바는 그러한 부탁을 단순한 '애정 문제'로 생각했던 것 같다(B hr, Hammond). 한편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있다. 즉 솔로몬이 아비삭을 좋아했기 때문에 밧세바가 일종이 질투심에서 아도니야의 청을 적극 수락했다는 견해이다(Grove). 이 견해는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을 수넴 여자 아비삭과 동일시 가설에 기초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그 가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전혀 없고, 설령 그렇더라도 밧세바가 질투하거나 반대할 까닭이 없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의 핵심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 여부에 주어지고 있으므로(22절), 그러한 견해는 지나친 비약이다.
21 가로되 청컨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ㅇ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분명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이 부탁을 단순한 남녀간의 애정 문제로 인식하고, 이처럼 솔로몬에게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밧세바의 생각으로는,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 않았으므로(1:4), 그녀는 한낱 수종드는 시종에 블과할 뿐이라고 간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여기에 덧붙여 밧세바는 왕위 경쟁에서 실패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도 작용하여 이 문제를 '한 가지 작은 일'로 보았던 것이다(20절). 그러나 당시 일반 백성들은 분명 아비삭을 다윗의 첩(후궁)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Patterson). 그리고 당시의 관례상 선왕(先王)의 후궁을 계승하여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왕좌를 계승한다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였다(삼하 3:7;12:8;16:20-22;Herodotus, -68). 그러므로 만일 아도니야의 뜻대로만 된다면, 그는 왕권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되고(Rawlinson), 또한 아도니야의 추종 세력들은 크게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삼하 16:21). 이러한 모든 배경하에서 밧세바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솔로몬은 이전에 아도니야의 반역죄를 용서해 주면서 한 말, 곧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고 경고했던 일이 떠올랐을 것이다(1:52).
22 솔로몬 왕이 그 모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 저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위하여 구하옵소서 하고
ㅇ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 처음의 다정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깨어지는 순간이다. 이때 솔로몬은 분명히 격노했을 것이다. 현명했던 그는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의 저변(底邊)에 깔려 있던 역모의 흉계를 곧 간파했다. 그리고 그 흉계를 모르고 중개 역할을 한 모친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ㅇ저를 위하여 왕위를 구하옵소서 - 결과적으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한 것이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왕위를 요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밧세바의 '한 가지 작은 일'이 사실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임을 단정하는 부분이다. 한편 본절 전체에서는 '위하여'에 해당하는 '로'가 세번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하찮게 보이던 작은 부탁이 결국은 왕위를 노리는 의도였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즉 선왕의 후궁과 다름없는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 <17절> 원래 장자권을 가졌던 아도니야가<15절> 애초 자신의 1차 거사 세력과 재차 역모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21절의 밧세바의 말과 본절의 솔로몬의 대답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사건을 보는 시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ㅇ아비아달과...요압도 위하여 - 여기서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의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1차 거사 실패 이후(1:7,49)에도 이들 핵심 세력 3인은 왕권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암중 모색해 왔던 것 같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과거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을 취하라고 권면한 자가 아히도벧이었던 것처럼 (삼하 16:21), 이번에 아도니야에게 아비삭을 요구하라고 권면한 자가 혹 아비아달 또는 요압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Theodoret).
23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 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ㅇ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별울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 이것은 맹세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반드시 맹세의 내용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즉 변경할 수 없는 결심을 나타내는 맹세의 관용적 용법이다(룻 1:!7;삼상 3:17;14:44 등).
24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ㅇ나를 세워...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다윗의 맹세(1:29)에서와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일반적인 맹세치 형식에다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을 결합시켜 결연히 맹세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 것은 곧 여호와의 살아계심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자신의 맹세 내용 역시 결코 변하시 않을 확고 부동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ㅇ허락하신 말씀대로...집을 세우신 -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때때로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50:22;수 2:18;렘 38:17). 따라서 혹자들은 '자손'을 주신 것으로 보고, 곧 솔로몬은 여기서 자신의 왕위를 이을 아들 르호보암을 낳은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Keil, Wordswoth). 그러나 솔로몬의 결혼은 이 일 뒤에 있었으므로(3:1). 그러한 견해는 따르기 곤란하다(B hr). 오히려 솔로몬의 이 말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견고한 왕위'를 허락해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12절;삼하 7:11-16).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대로(삼하 7:11-16;12:@4,25;대상22:6-10), 왕위가 다윗에 이어 솔로몬에게 주어짐으로써 그 왕위를 더욱 견고케 하셨다는 뜻이다.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저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ㅇ브나야를 보내매...쳐서 죽였더라 - 원문상 '브나야의 손으로 쳐서 죽였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왕의 친위 대장인 브나야 자신이 직접 행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1:38>의 우두머리인 브나야의 감독하에 사형을 집행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아무튼 당시 왕의 친위(경호) 대장은 사형 집행관의 역할도 겸하였기 때문에, 솔로몬 왕의 명을 받은 브나야의 책임하에 아도니야에 대한 처형이 공식 집행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혹자들은 이유야 어떻든 솔로몬이 자신의 이복 형인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것은 당대히 세속적인 왕권 쟁탈 싸움과 다를 바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비난한다. 사실 얼핏 보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구태여 처형시킨 일은 가혹한 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혈연 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대권을 위임받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공의를 구현하는 데 주력해야만 했다. 따라서 1차 경고(1:52)에도 불구하고 재차 반역을 시도함으로써, 신정(神政) 왕국 이스라엘의 근간 질서를 문란케 한 아도니야의 죄는 엄중히 다스려져야 마땅하였다(Keil, Hammond, Patterson). 즉 솔로몬의 아도니야 처형 사건은 단순히 '왕권 도전 세력의 제거'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신정 왕국의 확립 및 강화'라는 신적 공의 실현의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이 자기 형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정당했고,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었다.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로되 네가 내 부친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부친이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ㅇ아나돗 -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고을로 제사장의 성읍이다(수 21:18;대상 6:60).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5.6km 정도의 거리로서(Robinson), 선지자 예레미야의 부친 힐기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렘 1:1).
ㅇ죽을 자로되...죽이지 아니하노라 - 혹자는 이것을 제사장의 목숨은 왕이 결정하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나, 사울의 예로 미루어 합당치 못하다(삼상 22:!6-19). 따라서 솔로몬의 이러한 조치는 역시 본문이 알리는대로 부친 다윗을 도왔던 아비아달의 공로가 참작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비아달의 공로는 다음 두 가지이다. 다윗 앞에서 여호와의 궤(언약궤 또는 법궤)를 메어 올린 일-제사장 아비아달은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대상 15:11-15)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피난할 때(삼하 15:24-29) 법궤를 맡아 책임짐으로써 다윗을 도운 적이 있었다.
ㅇ다윗과 환난을 같이 받은 일-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삼상 22:20-23;23:6)와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도피할 때(삼하 15:24,35) 다윗의 입장에서 동고 동락했었다.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ㅇ아비아달을 쫓아내어...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 이러한 솔로몬의 조치는 제사장을 세우고 폐하는 일이 왕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비아달의 경우,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 대항하여 계속 반역을 모의함으로써 스스로 제사장직으로부터 이탈하였으므로, 솔로몬은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B hr). 한편, 추방 당한 이후의 아비아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추측컨대, 추방당할 때의 나이가 80세 가량의 노령이었으므로, 이후 오래 살지 못했으리라 짐작된다(Keil & Delitsch, op. cit. p.34).
ㅇ엘리의 집...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 일찍이 하나님께서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의 집에 선포한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상 2:27-36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죄악으로 말미암아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하여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런데 여기서 열왕기 저자는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파면 사건을 그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써 아비아달은 이다말과 엘리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제사장 중 마지막 제사장이된 셈이기 때문이다. 원래 아론의 네 아들들(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중 나답과 아비후는 잘못된 분향 사건으로 인해 일찍 죽었기 때문에(레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유력한 제사장 계열로 남는다(레 10장;민 3:4;대상 24:3). 그런데 아비아달은 엘리 집안소속으로서 이다말 계열에, 사독은 엘르아살 계열에 각각 속한다(IDB;삼상 14:3;22:9;eotkd 24:3). 그러므로 아비아달이 역모죄로 말미암아 솔로몬에 의해 파면된 것은 곧 대제사장직이 엘르아살 계통으로 완전히 일원화 되었음을 의미한다(Keil;35절;대상 6:1-8). 아울러 다윗 시대의 2명의 대제사장 문제<1:8>가 해결되었고, 결국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역사의 시종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섭리 주관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ㅇ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단 뿔을 잡으니 - 아도니야와 아비아달의 운명을 전해들은 요압은 다음은 자기 차례일 것을 직감했다(Keil, Patterson, C. Dentan). 그리고 아마 요압은 아도니야의 전례를 기억하고는 이렇게 단 뿔을 잡았을 것이다(1:50). 그런데 요압의 이러한 행동은 솔로몬에 대해 스스로 떳떳치 못함을 증명한다(Hammond,B hr). 그러나 그것이 곧 2차 거사의 음모가 있었음을 확증하진 않는다. 오히려 요압은 이전의 살인 행위와 관련되어 처벌되고 있다(31-33절). 따라서 요압이 제단 뿔을 잡은 행위는 별 효과가 없었다. 왜냐하면 출 21:13, 14의 규례에 의하면, 제단을 도피처로 삼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뜻을 정면 거스려 자기의 야욕과 복수심으로 이스라엘의 두 장수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던 것이다(삼하 3:23-27;20:4-10).
ㅇ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 요압이 급히 도망친 '여호와의 장막'은 이전에 아도니야 역시 도망친 곳으로서, 이곳은 기브온에 있던 성막이 아니라(대하 1:3), 시온산 위에 있던 장막이다(대하 1:4;Keil).
ㅇ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 갈대아역(the Chaldee)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LXX, Vulgate, the Arabic)은 여기서 '압살롬' 대신 '솔로몬'을 취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Thenius, Ewald)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여타 히브리어 사본들을 참조할 때, 그리고 문법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러한 본문 수정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Keil,B hr).
29 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ㅇ70인역은 본절의 솔로몬의 말 앞에 다음과 같은 말을 첨가하고 있다. 즉 "솔로몬아 사람을 보내어 왜 도망하였느냐고 묻자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피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70인 역자의 보충적인 설명일 뿐이지만, 이같은 내용은 요압의 도주가 스스로 제 발 저린 행동이란 사실을 파악케 하는 데 도움을 준다(J. Hammond, B hr).
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ㅇ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 브나야가 신성한 성소에서 피 흘리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면서 요압이 대답한 이 말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즉 요압은 솔로몬이 감히 신성한 성소에서 자기를 죽이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라는 견해(B hr, Barlow, Keil), 아니면 성소에서 죽음으로써 요압은 솔로몬에게 성소 모독의 오명을 끼치고 죽으려했다는 견해(M. Henry), 그 밖에 제단 곁에서 죽음으로써 사후에 어떤 공덕을 얻으려는 일종의 미신적 심리가 작용했다는 견해(J. Hamm-ond) 등이 있다. 그러나 요압이 이 중 어느 것을 심중에 두었더라도 결정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즉 그것은 비록 요압 자신은 과거지사로 잊고 있었을런지 몰라도, 분명 그는 사악한 계교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자로서, 곧 이웃을 모살한 자라는 점이다(출 21:14). 그리고 이런 살인자는 성소의 보호 규정에 해당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소의 그 어떠한 은총도 전혀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신 19:11-13).
31 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ㅇ저를 죽여 묻으라 - 솔로몬이 여기서 특별히 '묻으라'(매장하라)는 말을 강조한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신 21:23의 율법에 나타나는 바, 죽은 자를 그날로 매장하라는 규정에 따르려는 것(J. Hammond), 또는 이전에 세운 요압의 공로를 예우해 주려는 것(B hr, Keil)으로 이해된다. 여하튼 이것들은 모두 솔로몬이 율법을 준수할 뿐 아니라 공평무사한 왕임을 강조해 준다.
ㅇ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제하리라 - 민 35:31-34의 율법에는 고의로 살인한 자는 결코 용서치 말것과, 또한 그 죄값은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로써만 오직 갚을 수 있다는 율례가 나온다. 그러므로 이런 맥락에서 아브넬과 아마사의 죽음에 책임을 갖고 있는 다윗 왕가는 그들의 피를 흘리게한 요압의 피로써 그 죄값을 속량할 의무가 있었다(삼하 21:1-9;창 4:10;9:6). 따라서 다윗은 임종시 이 사실을 유언으로 남겼고 (5,6절),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받들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마침내 무고히 피흘리게 한 죄값을 속량받아, 결국 피흘린 죄를 자신의 집으로부터 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 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 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ㅇ저가 자기보다 외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 이 때문에 요압은 비록 성소에서일지라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므로, 솔로몬의 처사는 위법이 아닌 것이다<30절>.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요압보다 의롭고 선한 인물로 보고 있는 까닭은, 비록 아브넬과 아마사도 다윗을 적대하긴 하였으나(삼하 2:8-29;17:25) 그것은 전쟁시였고 후에는 오히려 화평을 도모했었기 때문이다(삼하 3:21;19:13;20:4). 반면 요압은 평화시에 개인적 복수심과 질투로 다윗 왕을 거스려 그들을 살해했던 것이다(5절).
ㅇ아브넬과...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개인적인 복수심과 질투로 인해 평화시에 무참히 살해한 내용은 각각 삼하 3:22-27과 20:4-12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 즉 요압은 다윗 왕 모르게 독단적으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살해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비록 요압의 행위가 독단적 행위였더라도 그 사건들은 다윗에게 좋지 못한 오해가 생기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성심껏 치러 준 바가 있었고(삼하 3:31-37), 솔로몬도 여기서 다윗왕은 전혀 무관한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새삼 변명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J. Hammond)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미 그 당시에 다윗 왕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삼하 3:37).
33 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ㅇ저희의 피는...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 솔로몬의 이 말은, 아브넬의 살해소식을 듣고 다윗이 요압에게 내린 저주와 비슷하다(삼하 3:28, 29). 히브리인들은 무고히 흘린 피살자(被殺者)의 피는 그 피값이 속량될 때까지 계속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으며(창 4:10), 반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한 살해자(殺害者)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당대 또는 자손들에게서라도 반드시 그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었다(출 20:5;34:7;레 20:5;26:39;수 2:!9;마 27:24, 25). 이런 점에서, 여기 솔로몬의 말은 오늘날 요압이 죽임당하는 것은 그 자신이 흘리게 한 피의 당연한 대가로서, 이제 그 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요압 역시 죽임당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이러한 피의 보응 원리(창 9:6)에 대한 성경적 일례로, 무고히 기브온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사울의 범죄로 후일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이 처형당함으로써 그 피값을 치른 사건(삼하 21:1-9)을 들 수 있다.
ㅇ다윗과 그 자손...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이제 솔로몬은 다윗 집안에 여호와의 평강이 영영히 깃들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하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그동안 다윗 집안에 드리워진 무고한 자의 피흘린 죄책을 말끔히 제거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31절). 이로 보아 우리는 다윗 혹은 솔로몬이 결코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원한으로 요압을 처형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경적 '죄의 보응 원리'(창 9:6;출 21:14;레 17:11)에 입각하여 공의롭게 요압을 처형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J. H-ammond), 즉 다윗 혹은 솔로몬은 무고한 피값을 갚을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다윗 왕가로 돌아와 저주가 되는 것으로 믿었다. 반면 그 피흘린 죄책을 제거하면, 다윗 왕가는 여호와의 평강의 상태에 들게 될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이다(Wycliffe). 그런데도 일찍이 다윗이 즉시 이를 행하지 못한 것은 당시에는 요압의 세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삼하 3:39). 그러나 이제 솔로몬이 마침내 그 의무를 행한 것이다.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 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ㅇ올라가서 - 요압이 피신한 곳은 언약궤가 있던 시온 산 위의 장막이었으므로(28절), 솔로몬의 왕궁보다 고지대에 위치했다(Keil). 따라서 이처럼 표기한 것이다.
ㅇ거친 땅 - '유다 광야'를 말한다(Keil, Hammond). 이곳은 베들레헴과 드고아에서 가까운, 돌이 많은 지역이다(수 15:6;삿 1:16). 그런데 여기에 요압 조상들의 무덤이 있었다(B hr).
ㅇ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 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에 딸린 정원에 무덤을 마련하기도 했다(Keil). 그런데 이처럼 넓은 정원 딸린 집은 귀족들의 거처였으므로, 집에 장사되는 사람은 주로 귀인(貴人)들에 국한되었다. 성경에는 사무엘이 이처럼 집을 장지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삼상 25:1). 따라서 비록 요압은 피의 보응 원리에 따라 처형은 당했지만, 생전에 그가 다윗을 위해 세운 많은 전공(戰功)이 참작되어 이처럼 용사의 죽음으로 예우받은 것 같다(J. Hammond).
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장관을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ㅇ왕국이 솔로몬의 인물들로 새롭게 체제 개편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 핵심 내용은 군대 장관에 '브나야', 대제사장에 '사독'이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브나야는 시위 대장에서 군대 장관으로 영전된 것이며, 사독은 명실 공히 단독 대제사장으로 지위 격상된 것이다.
ㅇ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 이것은 이제 대제사장직이, 다윗이 부득이 세웠던 이원 체제에서(삼하 8:17) 사독 가문이 주도하는 일원 체제로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때로부터 세워진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 정통성은 후일 선지자 에스겔에 의해 인정되기도 했는데(겔 44:15,16),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직은 B.C.171년, 안티오쿠스(Antiochus)에 의해 짓밟혀 메넬라우스(Menelaus) 가계로 넘겨질 때까지 계속 수행되었다. 따라서 쿰란(Qumran)동굴을 거처로 삼았던 엣센파(The Essenes)는 오직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만을 유일한 합법적 대제사장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회복을 기대했었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36 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ㅇ시므이 - 이 인물이 앞의 세 사람 (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 같이 솔로몬 왕권을 위협하는 장애로 여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므이는 사울의 근친으로서 강력한 반(反) 다윗 인사였고(삼하 16:5-8,13), 또한 소속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도급 인사였기 때문이다(B hr; 삼하 19:17 주석 참조).
ㅇ너는 예루살렘에서...나가지 말라 - 일종의 주거 제한 및 감시를 위한 조치이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여 반란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것이다(J. Hammoan). 한편 본래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8절>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9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요충지였다.
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ㅇ기드론 사내 - 유다 지파의 베냐민 지파의 영토를 구분짓는 예루살렘 동편의 경계천(境界川)이다. 우기(雨期)의 폭우 때를 제외하곤 거의 물이 흐르지않는 시내(brook) , 곧 '와디'(wady)이다(IDB). 이 시내 건너편에 시므이의 본 거주지인 '바후림'이 있었다(삼하 15:23).
ㅇ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 당시 사형 선고의 일반적 형식이다(B hr;레 20:9;수 2:19). 그 의미는 '너 자신의 잘못(죄) 때문에 네가 죽는 것이다'란 뜻으로서, 곧 죽음(피흘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이 바로 죽임당하는 자(범죄자)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형 집행자는 그 피흘림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이다.
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ㅇ이 말씀이 좋사오니 - 다윗의 맹세(삼하 19:23)와 관계없는 솔로몬<9절>은 부친의 유언(8, 9절)을 지키되, 그러나 곧장 시므이를 처벌하지 않고 일단 충성을 시험하는 명령(M. Henry)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를 아는 시므이는 자신의 과거 소행(삼하 16:5-8)을 생각할 때 솔로몬의 주거 제한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39 삼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혹이 시므이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ㅇ삼년 후 - 시므이에 대한 주거 제한 명령(36절)은 분명 솔로몬의 즉위(B.C. 970)초에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때는 솔로몬 즉위 3년째인 B.C.967년 경으로 추정된다.
ㅇ시므이의 두 종이...도망하여 간지라 - 혹자는 종들이 주인 시므이와 사전에 짜고, 주인을 예루살렘 밖으로 인도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추측하기도 하나 근거가 없는 무리한 추측이다. 아마도 두 종은 주인 시므이에게는 주거 제한 명령(혹은 금족령)이 떨어진 상태이므로, 자신들을 쫓아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도망친 것 갈다. 아무튼 두 종의 도망 사건 배후에는 다윗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고 본다(8, 9절;삼하 16:12).
ㅇ가드 -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삼상 21:10)로, 이스라엘과는 때로는 적대적이고 때로는 친교를 맺는 등 많은 정치적 연관을 갖고 있었딘 블레셋의 주요 성읍이다(삼상 5:6-10;17:4,52;삼하 15:18-22;대상 18:1). 여호수아 11:22 주석 참조.
ㅇ마아가의 아들 아기스 - '마아가'(Maachah)는 삼상 27:2의 '마옥'(Maoch)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기스'(Achish)는 일찍이 사울을 피해 망명한 다윗을 보호해 준 인물이다(Keil). 삼상 21:10;27:2 주석 참조.
40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ㅇ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 도망한 노예를 되찾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 자체로서는 합법적이다(C. Dentan).
ㅇ가드로 가서 - '가드'는 그 위치상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이므로(37절), 어쩌면 시므이는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므이가 자신의 맹세에 대해 철저한 사람이었다면, 예루살렘을 벗어나 가드까지 먼길을 여행하기 전에 먼저 왕의 허락을 요청했어야 옳았다(Patterson). 만일 그러한 절차를 밟았다면, 시므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망간 종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므이는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맹세를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 온전히 회개치 못한 심정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ㅇ아기스에게 나아가 - 시므이는 직접 아기스 왕과 교섭하여 종들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은 충분히 정치척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이었다. 즉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망령이나 동맹 반란의 시도로 비칠수 있었다(삼상 27:1,2;29:1,2). 여하튼 시므이는 예루살렘을 나가지 말라는 솔로몬 왕의 명령(36절)을 정면으로 위배하였다.
41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 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ㅇ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 시므이의 움직임은 감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시므이가 밤에 몰래 다녀온 것으로 보나(M. Henry), 문맥은 오히려 그가 태연히 행동했음 보여 준다. 아마 맹세 후 3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난 탓으로 부주의해졌던 것일 수도 있다(39절). 여하튼 시므이의 가드 행은 솔로몬에게 기다리던 합법적 기회를 주었다<9절>.
42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ㅇ왕이...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 시므이는 이전에 맺은 계약(36-38절)을 위반한 죄로 고발되고 있다. 그런데 그 계약은 당사자 간의 합의(솔로몬의 명령, 시므이의 동의)와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로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결국 그 계약은 하나님과 솔로몬 왕과 시므이 사이의 계약으로서, 곧 맹세로 확증된 계약이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그 계약을 깨뜨린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맹세한 대로 만일 시므이가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다면, 솔로몬 왕 역시 부친의 유인(9절)을 따르고 싶어도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시므이가 먼저 그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43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ㅇ맹세와...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 시므이는 다만 왕의 명령 뿐 아니라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어긴 것으로 추궁된다<42절>.
44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ㅇ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 - 여기서 시므이의 악은 현재의 죄와 이전의 죄가 결합된다. 현재의 죄는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파기한 죄요, 또한 왕의 엄명을 어긴 죄이다(43절). 그리고 이전의 죄는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죄이다(삼하 16:5-8). 그런데 그 죄의 성격에 있어 둘은 일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던 것은 왕의 능멸인 동시에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모욕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삼하 16:12;삼상 26:9). 그러므로 시므이의 처벌은 다만 지금의 죄 뿐 아니라 이전의 죄에 대한 보응도 되는 것이다.
ㅇ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을 향하여 시므이는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 8). 이때 시므이의 저주를 듣고 흥분한 아비새는 시므이를 단칼에 쳐죽이려 했다(삼하 16: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를 만류하며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삼하 16:11, 12).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왼통함을 돌아보시고 시므이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오늘날 공의롭게 보응하셨다(롬 1:18;살후 1:5-9).
45 그러나 솔로몬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ㅇ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견고히 서리라 - 히브리인들은, 저주는 말 자체의 신비로운 힘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믿었다(IDB). 따라서 일단 다윗을 향해 뱉어진 시므이의 저주(삼하 16:7, 8)를 솔로몬은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했다. 그런데 마침내 시므이가 하나님과 왕에게 맺은 서약을 스스로 어김으로써, 시므이의 저주는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42, 43절>. 그러므로 다윗 왕가는 시므이의 저주에서 벗어나 복과 번영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이었다. 한편 이것은 솔로몬이 시므이를 다른 사람들(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벌한 이유 중 하나이다. 아울러 시므이의 처형을 놓고 솔로몬이 한 이 말은, 시므이에 대한 처형 집행이 결코 사사로운 구원(舊怨)이나 보복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의 공의로운 법 집행이란 사실을 떳떳이 밝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J. Hammond).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ㅇ브나야에게 명하매...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 결국 시므이는 그 죄의 대가로 브나야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된 요소들이 일시적으로는 영원히 존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이르면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될 것이다(말 4:1;살전 5:3). 무죄한 자를 향한 악인의 정죄와 능욕은 필경 그 자신에게 돌아갈 뿐이다(욥 34:11;시 141:10;잠5:22).
ㅇ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 여기서 '이에'는 12절 이후의 일련의 사건을 지시한다. 한편 성경에서 '손'(야드)은 보통 권세, 힘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IDB;출 13:3;시 78:72;히 10:31). 그러므로 본절은 '모든 장애와 위협을 제거하고 나니 솔로몬의 권세가 막강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은 12절과 함께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 그의 왕권 확립에 대한 총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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