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5.11 작성자 : 양시영
제   목 : 삼하24.[가장큰범과]인구조사_찔림받고 선제적회개_3일간온역_7만사망_중보_.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_번제와화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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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24장

===인구 조사 [93. 예수는 나의 힘이요]...창22(모리아 땅=예루살렘)의 한 산(=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영원한 제단 십자가, 속죄제/속건제/화목제/번제 예물 드린 제단)으로부터 그대의 시선을, 그분의 택하신 바 분향단(상호교통-하나 됨의 기도)과 화목제물의 피뿌림 처소(언약궤 속죄소)가 있는 성소!! 아라우나 타작마당=(솔로몬)성전산를 보라!!

.......[[주님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날마다 고백하고 그 고백을 붙들고!! 주님과 함께 주님의 평강이 그대를 주장하시게 함이 옳다.......여기 삼하24장에 나타난 바 자의적 인구조사 사건, 주께서 허락하심의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은 주님의 교훈-책망-바르게함-의로 교육하시기 위함이었다!! ....주님이 직접 명하시지 않은 인구조사의 근본동기는 [자기 바라봄=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Q외에!! 세상적 안정감 희구함인, 숫자 비교를 위함이었다!!--->(우월감)자랑/교만과 함께 (열등감)두려움/염려/우울/자기연민이 자리잡고 있는 바, 이 모든 감정은 사탄마귀 체계인 세상적 패러다임이자 가스라이팅에 불과하다!! ]

......오늘 그대에게 (아무리 저명한 말씀사역자로부터 나온바, 그 어떤 메세지라도, 주께 여쭘 통해 확인 받고!! 행동 결정함이 옳다!!) 직접 주님이 말씀하심이 없다면 일단 평강 안에서 일상 생활 그대로 주 안에서 걷도록 하라...꿈-환상-계시-말씀으로 그대를 인도하실 수 있는 분께 그 모든 가능성 열어드리라!!....주님보다 앞서지 말라!!...정녕 깨달음 열어주셨다면 주께서 새로이 하게 하시는 바로 그대로 그대의 자리-위치에서 실행하라!!

1.  (민수기의 인구조사는 유월절의 출애굽 사건, 구원해 내심 감사함 안에서 구원 받은 백성을 카운트 하게 하심이니, 생명책에 기록된 천국 백성 계수의 의미가 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 죄를 결코 묵과하실 수 없으셨기에!!...무엇이었던가, 그 근원은, 왕가의 문제인가? 아니면 백성의 문제인가?--백성의 문제!!..이스보셋 따름-압살롬 반역과 세바의 반란시, 반란군에 가담하여 기름부음 받은자 적대했으나 회개하지 않았음!!]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격동시키사(대상21장!!--사탄의 청구를 주께서 허락하심이었다)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세상나라는 대개 조세-노역-군대 징발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한다))

......왜 이스라엘(백성)을 향해  진노하셨는가...[비록 주 앞에 죄악 범한 자로되]Q의 기름부어 세운 자를 끝까지 시종일관 일편단심 일심으로 붙좇아 따름 아니라!! 육적 판단따라(사탄의 육적 속임/기만에 부종하여) 다윗을 배반하였고((이는 Q 자신께 대한 반역이자 반란으로 보고 계셨음)) --이스보셋-->압살롬-->세바를 따라갔음-- 이 모든 과정마다에 대해!! 각 개인마다!! 주 앞에서 철저히 회개함 없었기에 백성들 전체에 대해 그들을 회개케 하시려 함이었음 ---회개 없이는 참 생명의 유기적 공동체 안으로의 회복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심..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심으로써 애굽 땅 백성을 심판하셨던 원리에 따름!!..***::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심!! ::: 악한 지도자  = 범죄하였으되 회개함 없는 교회를 징계하시는 수단일 수 있음을 명심하라..그대와 하나 되어 계신 .JC처럼 그대 자신을 십자가 대속의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분의 이름으로 중보/중재함으로써[생명책에서 그대 이름 지워버리시더라도 감당하겠노라고!!] 겸비함으로 재를 뒤집어쓰고 처분 기다리며!! 임재하시는 성령따라 금식하며 중보하며 주께 내어드리라!!

.....다윗에 대해서도 [더 완전한 구원/구속 경험 통해 영원하신 Q경륜 안에서 주와 하나 됨의 참 의미 확립-각인시키려 하심] --국내 사정이 안정되자 [상처마다 완전히 낫게 됨이란 모름지기 회개/사유하사 보혈로 지워버리신 주께 감사드림 통해 하나님 찬양이 될 때 "빛나는 하늘의 별"이 되고, 동시에 지난날에 빠져들었으나 주께서 수렁에서 건져내어 구원/구속해내심의 기억들마다 다른이들의 구원을 위한 치료재료로 쓰여야 할 바였으나!!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하여 국력-병력자원을 주변국가와 비교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음  ----결코 초심을 잃어서는 안된다..주 앞에서 겸손하라... 첫사랑의 감격과 감사를 날마다 새로이 기억하라!!

.....@@히브리어 [수트]..충동/격동/선동/유인/유혹하다/꾀다/권하다<-->(성령충만으로)감동되다...incite, allure, instigate...[깨어 있어서, 주께 여쭘으로써 얻는 분별력의 상실로 인해!!...모든 것 꿰뚫어 통찰하여 알고 계시는 주께서는 [자녀들의 궁극적 유익 위해!!] 사탄마귀가 성도를 시험코자 함에 대해 (일정한도 안에서만!!) 허락하실 수 있으시기에...믿는 우리는 "그 조짐을 깨닫는 그 즉시!!  JC이름으로!! 구하는 바 "사탄의 궤계를 막아 주소서-도우소서-긍휼히 여기소서" 주 이름 부르며 부르짖어 중보/중재하며 믿음으로 구할 수 있고, 내주하시는 성령, 곧 JC이름으로 각자가 마귀를 대적할 수 있기에, 그 이름의 권세로 대적하여야 한다!!] .

2.  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3.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요압은 이 때 가장, 주님 마음에 가장 합당한 조언을 하고 있었다...가벼이 여기지 말고, 어린아이들의 말에조차도 열린 마음의 듣는 귀 열어주시기를 구하라!1] 하되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고집스레!!] 재촉한지라 요압과 사령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

5.  (요단동안부터, 요단 건너 동안 남부-->북부-->요단서안 북부-->남부까지에 이르렀음)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오른쪽 곧 야셀 맞은쪽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

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쪽으로 나와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  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비록 한번은 참되게 모사로서!! 충성하였으되(이에 대해 깨어 있는 마음으로 취하며,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뿐..끝까지 순종함 없이 제맘대로 자행자지해 버리고 마는, 불성실한  요압이었다(결국 군대장관 리스트-생명책)에는 누락되고 있음 ---세상적/육적 관점이란, 파견된 자가 명령 그대로 행하지 않고 제맘대로!! 자행자지함이다))......[대상21:5,6......5.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6.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10.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계수 보고 받은)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나카=쳐 죽이다, 때리다.--이는!! 생명선 팽팽히  당겨주심!!--성령 충만 상태란 깨닫게 하심따라 금방 회개하여 주께로 돌이킴이다!!--밧세바 때는 나단으로부터 얘기 듣고난 후에 회개했으나!!, 이때는 갓이 말하기 전에 먼저 즉시 자책하여 회개하고 있었다)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다윗, 그토록 서로 사랑하고 친밀한 우리 사이에,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너 정말 이럴거니!!"..9개월20일간 애끓는 마음으로 기다려 오시다가 발하시는!!]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spiritual adviser ::: open vision환상으로 보이시며 말씀으로 본 이상의 배경-까닭-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심)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선견자(open vision, 주님 주시는 환상을 보는자)=호제.. 갓-헤만-잇도-하나니-아삽-여두둔-아모스(아모스는 예언하는 호제 = 탄나베였음))..."로에"단어도 선견자라 칭하지만[사무엘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바 환상open vision을 보는자로서 로에라 칭하고 있다), 호제는 "주로부터 직접 말씀 받고 전하는" 하나님의 대변자 나비와 동격으로 높이고 있으며 나비(선지자...가끔 환상으로도 직접 보여주고 계심)에 결합시키고 있음(사29:10)..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그러므로, 참되게 알지니!!, 기도하는 자에게 지고지선이 되도록!!, (처음엔 죽을 것 같은!!...그러나 임마누엘 하나님이 친히 시종일관 함께 하시는!!) 고진감래-전화위복의 재앙을 주실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고통 받으시며 친히 낳은 자녀에 대한!!...창자가 끊어지듯 똑같이 느끼심의 애끓는 사랑!!]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오직 주님의 시간 되기를 바라는 바 주만 앙망하며 의뢰하며 바라봄으로써 그 어떤 징벌조차 잘 감당하고 돌파케 하실바!! 사람의 손은 전혀 개입됨 없이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올 분]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진노 멈추는 예배***[254.내주의보혈은][338.내주를가까이하게함은]... 신실하게 진실하게

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애석케 여기사....마음의 진동, 떨림-아픔 가운데 있음]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17.  [진심, 전심의 대가 지불하는 중보, 중재 기도자, 모세도 동일한 기도 드리고 있었다...죄값-몸값-인질값 대신 치름..."화목-진정케 하는 속죄소가 있는 내적 성소 사역!!"이것을 진정 주님은 원하고 계셨다!!..."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골고다를" 보여주셨던 그 분은 이제 "다윗 중심의 성소"를 보고 계셨다...먼저 회개함이 있은 후 다가오는 (선택케 하시는 선택적!!) 징벌은 또 다른 축복 통로가 됨=붙.회.떨.감=을 깨닫게 하고 계심!!]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백성이 (주와 함께 하는) 나를 미워하고 배반해도 거기에 대해 오직 (감싸 안아주는 분, 주님의) 사랑으로 대해야 함,,,..심지어, 백성의 죄악을 인해 나를 격동케 하시며 그 결과, 백성과 함께 치실 때조차도 깨닫는 그 즉시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고...집중적 고난을 백성에게 부여하실 때에는 중재/중보함 통해 [나와 벡성을 동시에 거룩케 하시려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야 함..

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back to basic, 주님이 정하신 바로 그곳에 제단 쌓음)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예배드림=나를 죽임,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JC와 하나되어, 젓존재 드려 하나됨으로 경배함]하매

19.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

22.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아뢰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거듭난 각사람마다 "날마다!! 마땅한 (전존재 주권 주께 내어드림의)자기 죽임으로써" 대가 지불하여 그것으로 "부활구주JC의 성령을" 영적소유 삼아야 함]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 내 목숨 걸고!!! 긍휼히 여기심으로써 주뜻 이루시도록!!!, 내주하시는 JC를 보시사 그리하시도록,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서 있는,  재앙 막아서는 세상 보호하고 돌보며 나를 내려놓고 내어드리는, 중보적 존재 됨]

........[모리아산(성전산)과 오펠(오벨)].....하오펠 즉 오벨이라고 불린 특정한 언덕 혹은 고지.... 성경의 지적과 요세푸스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오벨의 위치는 모리아 산의 남동쪽 모퉁이에 해당한다. (대하 27:3; 33:14; 느 3:26, 27; 11:21) 기원 1세기에, 요세푸스가 오벨의 위치로 언급한 장소는 동쪽 성벽이 “성전의 동쪽 현관과 연결된” 지점. (「유대 전쟁사」 The Jewish War, V, 145 [iv, 2]) ....결국 오벨은 예루살렘의 성전 언덕 남동쪽 모퉁이에서 동쪽으로 뻗어 있는 융기 지역이었던 것 같다.  오벨은 성벽이 있었고 기드론 골짜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지점이었다....**솔로몬궁은 성전 남쪽의 오벨(오펠)가든에 지어졌다. **디윗궁(백향목궁)은 다윗성 북단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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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B]제24장


1.  Now again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Israel, and it incited David against them to say, "Go, number Israel and Judah."

2.  And the king said to Joab the commander of the army who was with him, "Go about now through all the tribes of Israel, from Dan to Beersheba, and register the people, that I may know the number of the people."

3.  But Joab said to the king, "Now may the LORD your God add to the people a hundred times as many as they are, while the eyes of my lord the king [still] see; but why does my lord the king delight in this thing?"

4.  Nevertheless, the king's word prevailed against Joab and against the commanders of the army. So Joab and the commanders of the army wen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king, to register the people of Israel.

5.  And they crossed the Jordan and camped in Aroer, on the right side of the city that is in the middle of the valley of Gad, and toward Jazer.

6.  Then they came to Gilead and to the land of Tahtim-hodshi, and they came to Dan-jaan and around to Sidon,

7.  and came to the fortress of Tyre and to all the cities of the Hivites and of the Canaanites, and they went out to the south of Judah, [to] Beersheba.

8.  So when they had gone about through the whole land, they came to Jerusalem at the end of nine months and twenty days.

9.  And Joab gave the number of the registration of the people to the king; and there were in Israel eight hundred thousand valiant men who drew the sword, and the men of Judah were five hundred thousand men.

10.  Now David's heart troubled him after he had numbered the people. So David said to the LORD, "I have sinned greatly in what I have done. But now, O LORD, please take away the iniquity of Thy servant, for I have acted very foolishly."

11.  When David arose in the morning,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the prophet Gad, David's seer, saying,

12.  "Go and speak to David, 'Thus the LORD says," I am offering you three things; choose for yourself one of them, which I may do to you. "'"

13.  So Gad came to David and told him, and said to him, "Shall seven years of famine come to you in your land? Or will you flee three months before your foes while they pursue you? Or shall there be three days' pestilence in your land? Now consider and see what answer I shall return to Him who sent me."

14.  Then David said to Gad, "I am in great distress. Let us now fall into the hand of the LORD for His mercies are great, but do not let me fall into the hand of man."

15.  So the LORD sent a pestilence upon Israel from the morning until the appointed time; and seventy thousand men of the people from Dan to Beersheba died.

16.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destroyed the people, "It is enough! Now relax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17.  Then David spoke to the LORD when he saw the angel who was striking down the people, and said, "Behold, it is I who have sinned, and it is I who have done wrong; but these sheep, what have they done? Please let Thy hand be against me and against my father's house."

18.  So Gad came to David that day and said to him, "Go up, erect an altar to the LORD on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19.  And David went up according to the word of Gad,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20.  And Araunah looked down and saw the king and his servants crossing over toward him; and Araunah went out and bowed his face to the ground before the king.

21.  Then Araunah said, "Why has my lord the king come to his servant?" And David said," To buy the threshing floor from you, in order to build an altar to the LORD, that the plague may be held back from the people. "

22.  And Araunah said to David, "Let my lord the king take and offer up what is good in his sight. Look, the oxen for the burnt offering, the threshing sledges and the yokes of the oxen for the wood.

23.  "Everything, O king, Araunah gives to the king." And Araunah said to the king, "May the LORD your God accept you."

24.  However, the king said to Araunah, "No, but I will surely buy [it] from you for a price, for I will not offer burnt offerings to the LORD my God which cost me nothing." So David bought the threshing floor and the oxen for fifty shekels of silver.

25.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Thus the LORD was moved by entreaty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held back from Is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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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24장 (개요)

우리는 앞 장에서 다윗의 마지막 말을 읽었는데 그 말들은 상당히 선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마지막 행위를 읽게 되는 데 그 행위는 결코 선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뉘우쳤고 자기의 처음 행위를 회복했으므로 그 끝도 잘 마무리하게 되었다.

1. 마음의 교만으로 자기 백성을 계수한 그의 죄(1-9).

2. 그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10).

3. 이로 인해 그에게 내린 심판(11-15).

4. 그 심판의 지속(16, 17).

5. 다윗과 그의 백성에게 대한 하나님의 화해의 표시로 세워진 단(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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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계수(삼하 24:1-9)

Ⅰ. 다윗은 요압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을 계수하라고 명령한다(1, 2절). 여기에는 두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1. 백성의 계수를 죄악시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 일에 무슨 해악이 있단 말인가? 모세도 두 번씩이나 백성을 계수했지만 범죄로 치죄받지 않았지 않는가? 정책적 인구 조사는 군주의 여타 정책 속에 들지 않는가? 목자가 자기 양떼의 수를 알아서는 안 되는가?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의 이름을 아시지 않은가? 그는 이 계수를 선용할 수 없는가? 그가 이 일을 한다면 어떤 악을 행하는 셈인가? 대답해 보라. 백성의 계수가 죄였고 그나마도 큰 죄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일의 죄악이 어디에 소재하는지는 그다지 확실치 않다.

(1) 혹자는 신장이나 체력 면에서 무기를 들 정도만 되면 이십세 이하라도 계수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이 계수가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법적 계수였던 때문이다(대상 27:23, 24 참조).

(2) 다른 이들은 다윗이 반 세겔을 요구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반 세겔은 백성의 계수 시마다 생명의 속전으로 성소 예배를 위해 바쳐야 할 돈이었던 것이다(출 30:12).

(3) 또 다른 이들은 다윗이 자신의 공세를 부과할 목적으로 계수했다고 생각한다. 즉 다윗은 자기 내탕고에 넣기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했고 따라서 그 액수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은 전혀 비치지 않으며 다윗은 세금을 징수하지도 않았다.

(4)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인구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그것은 다윗 자신이나 백성을 불필요하게 괴롭히는 일이었다.

(5)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옛 약속을 모독하는 행위였다고 혹자는 생각한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인구조사는 그 약속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거나 아니면 그 약속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계수할 수 없다고 하신 자들을 계수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박하려는 자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6) 이 일에 있어서 가장 그릇된 점은 다윗이 교만한 마음으로 이 일을 행했다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죄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는 교만심에서 자기의 보물 창고를 사신들에게 보였던 것이다.

① 그것은 헛된 교만이었다. 그것은 그토록 무수한 백성을 좌우할 수 있다는 교만심에서 나온 것이다. 순전히 하나님의 축복 탓으로 돌려야 할 인구증가를 마치 자기가 증가시킨 양 뽐낸다는 것은 교만이 아닐 수 없다.

② 그것은 자기 힘을 믿는 교만이었다. 그는 자기 나라의 인구 수효를 열방 중에 공포함으로써 더 두려운 나라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면 자기 군대 수로써 적을 압도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이로써 그는 그답지 않게 육체의 팔을 더 신뢰했다. 하나님만 신뢰하자고 많이 기록했던 그가 이렇게 행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하는 죄를 심판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는 무해한 것 또는 적어도 조그마한 허물처럼 보이는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큰 죄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살피시며 심령의 생각과 의도를 식별하신다. 그러나 그의 심판은 사실대로 행해진다.

2. 계수의 동기는 더욱 이상하게 표현되고 있다(1절).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다윗의 복된 통치를 감사하긴 커녕 이상하게도 먼저는 압살롬에게 빌붙고 나중에는 세바에게 혹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평화와 풍족이 그들을 방심하게 만들고 육욕적으로 되게 했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진노하셨다고 해서 다윗의 마음을 감동하사 백성을 계수하게 하셨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죄의 장본인이 아니시란 것은 확신한다. 그는 사람을 시험하거나 유혹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사탄이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계수하게 했다(대상 21:1)는 말씀을 읽는다. 사탄은 가롯 유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배신할 생각을 심었듯이 이스라엘의 대적으로써 이 일을 제안했던 것이다. 의로우신 재판장되시는 하나님은 다윗의 이 죄를 이용해서 이스라엘의 다른 죄를 징벌하시려는 목적으로 이를 허용하셨다. 그는 이 일이 아니라도 당연히 그들을 벌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전에 사울의 죄에 대해 그들에게 기근을 내리셨듯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에 대해 역병을 내리신다. 이는 군주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때는 그들의 죄가 원인인 줄로 깨닫게 하며 따라서 스스로 회개하고 개선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백성들도 권세자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알게 된다. 백성은 하나님이 권세자들을 죄에서 지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니 권세자가 범죄하면 나라가 아픔을 당하기 때문이다.

Ⅱ. 요압은 이 명령에 이의를 제기했다. 요압까지도 인구 조사를 하려는 다윗의 어리석음과 헛된 자만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다윗이 이유를 설명치도 않고 다만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고 하는 데 주목했다. 그러므로 그는 왕의 자만심을 돌이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압살롬이 죽었을 때도 다윗의 비탄스런 감정을 돌이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제 요압은 그때보다 더 공손한 태도로 왕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노력한다. 그때는 요압이 무례하고 퉁명스런 투로 말했지만(19:5-7), 이제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말을 한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백 배나 더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3절). 당시에는 백성에게 과세하거나 인명부에 등재시키거나 그들을 분재할 일도 없었다. 백성은 모두 평안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요압은 백성의 수효가 증가하고 늘었지만 왕도 살아 생전에 백성의 증가를 보고 만족을 누리기를 소원했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그렇게 하실 필요가 무엇이니이까? Pauperis est numerare pecus―즉 양떼를 세는 일은 가난뱅이에게나 맡겨라. 특히 하나님께 대한 즐거움과 신앙행위를 그토록 많이 지껄이던 다윗이 어찌하여 이런 유의 일을 기뻐해야 하는가? 누가 생각해도 노인이 다된 다윗은 치졸스런 행위를 벌였을 게 아닌가? 요압은 이렇게 점잖게 말하지만 실은 다윗의 교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터무니 없이 즐기다 보면 죄로 변하는 일이 많다는 데 주목하자. 요압은 이 일에서 다윗의 헛됨을 깨닫고 있었으나 다윗 자신은 깨닫지 못했다. 우리가 자만심에서 행동할 때 충실히 충고해 줄 친구가 있다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헛된 자부심에서 행동하지만 우리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Ⅲ.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은 실시된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원했고 요압은 이를 반박하지 못했다. 이는 그가 왕을 섬기는 일에 시간과 수고를 아끼는 것으로 오해받을까봐 두려워해서였다. 권세자들 주위의 인물들이 악한 일로 권세자를 섬기고 방조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요압은 다소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명령대로 이 불유쾌한 작업에 착수했고 군대 장관들의 도움을 얻었다. 그들은 가장 먼 지방부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인구 조사한 방향은 요단 저편 동쪽부터였다(5절). 그 다음 북쪽의 단으로 향하고(6절) 거기서 다시 동편의 두로로, 거기서 또 남쪽의 브엘세바로 행했다. 이 조사를 하는 데 9개월 이상이 걸렸고 이 인구조사로 나라 안에는 많은 곤란과 놀램이 야기되었다. 결국 인구 총계가 예루살렘에 있던 왕에게 보고되었다(9절). 그 숫자가 다윗의 기대에 부응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 그 조사가 그의 자만심을 충족시켰는지 욕되게 했는지도 알 수 없다. 백성의 수효는 무척 많긴 했으나 그가 생각하던 만큼 많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나안에서는 애굽에서의 인구 증가 추세에 미치지 못했고 사백년 전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입주하던 당시 인구의 두 배를 훨씬 상회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좁은 지역에서 이토록 중다한 무리가 연명했다는 것은 가나안이 매우 비옥한 땅이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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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조사에 대한 징벌(삼하 24:10-17)

다윗은 자기 죄를 회개하지만 그 죄로 벌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뉘우치시고 다윗은 그로 인해 더욱 참회하게 된다.

Ⅰ. 여기에는 백성을 계수한 다윗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구조사가 실시되고 있는 동안 다윗이 자기 죄를 깨달았다는 흔적은 없다. 그가 만일 각성했다면 자기 명령을 취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가 완료되어 그에게 보고된 바로 그날 밤 그의 양심이 눈을 뜨고 그가 즐거움을 기대하던 바로 그 순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자기 백성의 수효에 만족하여 잔치를 하려던 때 그의 만족감은 쓰디쓴 쓸개즙으로 변했다. 죄의식이 기쁨을 변질시킨 것이다(10절).

1. 그는 자기 죄를 확실히 깨달았다. 선지자가 그에게 이르기 전에 그는 그 마음에 자책했다. 그의 양심은 그가 한 일의 나쁜 점을 가리켜 주었다. 이전에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던 죄가 나타났고 그 눈에 비친 죄는 심히 악했다. 그는 그 죄를 회상하고 크게 뉘우쳤다. 그의 마음은 그 죄로 인해 그를 부끄럽게 했다. 사람이 범죄했을 때 그에게 자책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자책은 은혜의 원리가 마음 속에서 작용한다는 좋은 표시이며 회개와 개혁을 향한 좋은 디딤돌이다.

2. 그는 자기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고 그에 대한 용서를 간절히 구했다.

(1) 그는 자기가 범죄했다는 것을 시인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등 죄가 안 되는 것 같을지 모르나 그는 자기가 크게 범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은 그 양심이 부드럽고 박식하여 남이 보지 못하는 죄악을 발견한다.

(2) 그는 자기가 교만한 마음으로 이 일을 행했기 때문에 심히 미련하게 행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가 자기 백성의 수효를 자랑했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였고 비록 그들의 수가 많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곧 그들을 소수의 무리로 만들 수 있으신 때문이다.

(3)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바라서 외쳤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며 믿음으로 사유하심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이며 우리가 진정한 회개로 죄를 불식해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자비로 그 죄를 가져가 버리실 것이다(요일 1:9).

Ⅱ. 그가 이 죄 때문에 받은 징계는 지당하고도 필요한 것이었다. 다윗은 죄의식에서 밤새도록 전전긍긍했고 조금도 안식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들으리라고 각오했거나 아니면 자기의 선견자 갓과 더불어 이 일에 대해 얘기하기로 마음 먹었을 것이다. 갓을 그의 선견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항상 갓을 가까이 두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 그의 자문을 받으며 그를 자기 고해사와 상담자로 이용한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예방하여 선지자 갓에게 미리 다윗에게 할 말을 지시하셨다(11절).

1. 다음 세 가지가 여기서 당연한 일로 간주되고 있다.

(1) 다윗은 자기 과오에 대한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 다윗 자신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너무나 큰 죄악이며 하나님을 너무 욕되게 하는 것이기에 벌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 죄 중에서 첫째 가는 것은 교만이다(잠 6:17).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아직도 그 죄 때문에 가책을 받는다는 데 주목하자.

(2) 벌이 죄에 따라야 한다는 것. 다윗은 자기 백성의 수효를 자랑했다. 그러므로 이 죄 때문에 징계받아야 할 그의 심판은 백성의 수효를 줄이는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 교만의 재료로 삼는 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으시거나 우리에게 고통의 재료가 되게 하시거나 우리를 벌하시는 재료로 삼으셔도 지당하다.

(3) 그 벌은 백성이 대거 연루되는 징벌이 되어야 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신 때문이다(1절). 직접 수문을 연 것은 다윗의 죄였으나 홍수가 되게 한 것은 백성 전체의 죄였던 것이다.

2. 그들에게 벌이 과해지고 있다.

(1) 다윗은 어떤 회초리로 맞을 것인지 선택하라는 말을 듣는다(12, 13절). 그의 하늘 아버지는 그를 징계하셔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즐겨하지 않으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다윗에게 전쟁과 기근과 역병이란 세 가지의 쓰라린 심판 중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다. 이 세 가지는 전부가 한 민족을 크게 약화시키는 심판이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다윗으로 하여금 삼자 택일하게 하시는 의도는 다음과 같다.

① 그를 자기 죄에 대해 더욱 겸비케 하시기 위하여, 이 심판이 심히 두렵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는 자기 죄가 매우 컸다는 것을 알게 될 터였다.

② 또는 그의 교만심을 견책하시기 위해서.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자기의 통치권을 자만했었다. 그는 강대한 군주가 되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자! 그러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택하려느냐?”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한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 다윗의 자유처럼 칼과 열병과 기근에 속한 자유이다.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갈지니라”(렘 34:17; 15:2 참조).

③ 또는 징계 속에서도 그를 다소 격려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가 그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배척하시지 않으시며 그에게는 여전히 하나님과의 “교통하심”이 있고 그에게 고통을 주시는 가운데도 “그의 체질”을 참작하셔서 그가 가장 잘 견딜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을 알리심으로써(잠 3:32; 시 103:14 참조) 그를 격려하신다.

④ 그로 하여금 징계의 회초리를 보다 잘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선지자는 다윗에게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기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라고 말한다. 목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파송된 자들이다. 그래서 목사는 위임받은 사명의 실적을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우리들한테서 어떤 대답을 얻어갈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관한 보고를 기쁨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한다.

(2) 다윗은 칼의 심판 만큼은 반대하며 나머지 두 심판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소관사로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암암리에 온역을 더 바라는 듯이 말한다(14절). “내가 곤경에 있도다.” 그는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그 앞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렘 48:43, 44). 그는 한 가지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재난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죄는 인간을 큰 곤경에 빠뜨린다는 것을 명심하자.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곤경을 자초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① 그는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해 주기를 간청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로 석 달을 대적 앞에서 도망하지 않게 해주소서.” 석 달간의 도주는 다윗의 온갖 승리의 영광을 먹칠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대적들의 교만한 행동을 야기시킬 터였다(신 32:26, 27 참조). “그들의 긍휼은 잔인하며 석 달이면 그들이 여러 해 동안에도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이 민족에게 입힐 것입니다.”

② 그는 하나님께 투신한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노라.” 사람은 하나님의 손이다(그렇게 부른다. 시 17:14 , 즉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칼이다). 그러나 기근이나 역병 같은 심판은 하나님의 손에서 직접 나온다. 다윗은 이 두 천벌을 가리키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화해 받음을 보다 빨리 깨닫도록 하기 위해 가장 짧은 심판을 택하신다. 그러나 혹자는 다윗이 이 말로써 온역의 선택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그 땅은 삼 년 전 기브온인 때문에 입은 기근의 피해를 아직 복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근의 회초리로 징계받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 역시 우리 이웃 민족의 자랑거리가 될 것임이니라.”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근의 욕이란 표현을 읽을 수 있다(겔 36:30). “그러나 이스라엘이 어차피 감소되어야 한다면 온역으로 감소되게 하소서. 왜냐하면 그것이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 죽이는 재앙 때처럼 보통 자신이 직접 보낸 종이나 사자의 손으로 심판을 하신다. 그 심판은 다윗과 그 가족도 극히 비천한 자와 마찬가지로 당해야 하는 심판이지만 칼과 기근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 죄를 뼈저리게 깨닫고 후자를 택한다. 칼과 기근은 이 자나 저 자를 다 삼킬 것이지만 멸하는 천사는 하나님께 가장 죄인된 자들에게만 칼을 뽑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심판은 가장 단기간에 끝나는 심판이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노여워하시는 표징 아래 있다는 생각만 해도 두려움을 느낀다. 사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히 10:31)고 말한다. 회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비로운 모든 소망에서 차단된다는 것은 죄인에게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회개하는 다윗은 여호와의 긍휼이 크신 줄을 알기에 감히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내던진다. 선한 자들은 하나님의 노여움 아래 있을 때조차 하나님께 대한 선한 생각을 품는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라(욥 13:15 난외주).

(3) 하나님은 이에 따라 역병을 보내신다(15절). 그 범위로 말하자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였다. 즉 왕국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였으니 이것은 역병이 어떤 자연적 원인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임을 나타낸다. 다윗은 자기가 선택한 것을 받았다. 그는 보통 수단의 수난을 당하지 않고 불가사의한 일로 수난을 겪는다. 그 온역은 그날 아침(다윗이 선택한 바로 그 날 아침)부터 정한 시간까지 계속됐다. 즉 풀(poole) 선생이 생각하듯 사흘까지 계속됐거나 아니면 패트릭 감독 외 여러 사람이 생각하듯 첫 날 저녁 곧 저녁 제사 예정 시간까지만 계속됐을 것이다. 후자의 계산에 따르면 온역은 단지 아홉 시간 동안만 계속됐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대한 긍휼심에서 처음 언급하셨던 시간을 단축시켰다는 것이다. 온역의 위력은 매우 엄청났고 가혹했다. 백성의 죽은 자는 칠 만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건강하던 자들이 다 병들어 죽은 것이다. 장자가 살육되던 때의 애굽처럼 이스라엘 온 땅에 얼마나 큰 호곡이 일어났는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전자가 한 밤중에 있었다면 후자는 백주에 있은 일이었다(시 91:6 참조). 하나님이 임무를 부여하실 때 천사들의 구원하는 능력이나 멸망시키는 능력이 얼마나 굉장한지 주목하자. 요압은 봇으로 돌아 다니는 데도 구 개월이 걸렸지만 천사는 칼로 온 이스라엘 땅과 해안을 두루 행하는 데도 단 아홉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극히 교만한 죄인들을 얼마나 쉽사리 낮추실 수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의 덕을 얼마나 많이 입고 있는지 주목하자. 다윗의 간음은 그 당장 한 아이의 죽음으로만 처벌되었으나 그의 교만은 칠 만의 인명으로 처벌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교만을 증오하신다. 역병으로 죽은 자는 칠만 명으로 그들은 거의 스무 명에 한 명 꼴로 죽었다. 우리는 다윗의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그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시 119:120).

Ⅲ. 온역이 예루살렘에 창궐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이 심판을 완화시켰다(16절). 천사는 마치 딴 어느 곳보다 예루살렘에 더 큰 심판을 행하려고 하는 듯이 그곳을 향해 손을 들었고 심지어 멸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지방은 쓴 잔을 마셔야 했지만 예루살렘은 그 찌꺼기를 마셔야 했다 예루살렘은 마지막으로 계수된 듯하다. 그러므로 그곳은 마지막에 재앙을 입도록 예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예루살렘에는 다른 어느 곳보다 죄악이 많았을 것이며 특히 교만의 악이 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심판은 교만의 죄에 대한 징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자의 손은 예루살렘을 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여호와께서는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셨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마음을 바꾸시지 않고 그 방법을 변경하사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긍휼로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게 하라”(약 2:13 참조)고 하셨다. 예루살렘은 법궤를 인하여 목숨을 건지게 될 것이다. 그곳은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꺼이 용서하시며 벌하는 것을 얼마나 즐겨하지 않으시는지 살피자. 이로써 우리는 심판 도중에라도 용기를 얻어 회개하게 된다. 이 일은 모리아 산상에서 있었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아브라함이 하늘의 명령 취소로 자기 아들의 살해를 중지한 바로 그 장소에서 이 천사가 그때와 비슷한 제지로 인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중지했다고 관찰한다. 우리의 몰수된 생명이 멸하는 천사에게서 보존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저 큰 희생 때문이다.

Ⅳ. 이 때 다윗은 자기 죄에 대해 새로이 잘못을 뉘우친다(17절). 오는(하나님께서 그 눈을 여신 까닭에) 그 천사를 보았고 그 천사가 멸하려고 빼어든 칼을 보았다. 그는 명령 일하에 그 천사가 막 칼을 칼집에 꽂고 심판을 중지하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난 그는 천사에게 말하지 않고 여호와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하고 아뢰었다. 이는 크신 주인의 면전에서 종에게 말하거나 창조주께 돌려야 할 존귀를 피조물에게 돌리는 일이 도리가 아닌 줄 알았던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자는 하나님의 살려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자비를 많이 깨달으

면 깨달을수록 더욱 더 자기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용서한 후에는 그들이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겔 16:63).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그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고발하는가? 그는 자기 잘못을 아무리 악평해도 모자라는 듯이 자기를 고발하고 있다.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삽나이다. 죄는 내가 지었사오니 십자가도 내게 지워 주소서.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나는 죄인이오니 나로 고난자가 되게 하소서.” 이와 같이 다윗은 비록 자기가 백성 만 명에 해당하는 자였을지라도 자기 죄에 대한 벌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했다.

2. 그는 백성을 위해 어떻게 중보의 기도를 올리는가? 백성들의 비통한 애곡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의 귀를 울렸다.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그들은 많은 잘못을 범했다. 하나님을 격동시켜 다윗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인구조사를 하도록 내버려 두게 한 것은 바로 그들의 죄였다. 그럼에도 그는 참회자답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엄한 반면 그들의 죄는 경감시키려고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널리 시행될 때 대개의 사람들은 남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면서 비난하고 그 심판으로 누가 엎드러지든지 개의치 않는다. 그럼으로써 그 심판을 모면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다윗의 참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공중심이 있는 자였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상기시켜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으며 우리가 피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치도록 기꺼이 원하셨다. 양 무리가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목자 자신이 맞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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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가는 온역(삼하 24:18-25)

Ⅰ. 다윗은 천사를 본 바로 그 장소에 제단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는다(18절). 이 명령이 다윗에게 시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다윗이 재차 승복하고 뉘우치자 완전히 그와 화해를 하셨다는 사실을 이로써 암시하신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만일 그를 죽이기를 즐겨하셨다면 제사를 열납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그에게 단을 쌓으라고 명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적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하신다는 것은 그가 우리와 화해하셨다는 위로의 증거가 된다.

2. 그것은 희생 제물로 하나님과 죄인 간에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위대하신 화목 제물이시다. 율법의 모든 희생 제물은 그리스도의 예표였던 것이다. 멸하는 천사가 그 손을 멈추라고 명령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서이다.

3. 하나님의 심판이 은혜로이 중지될 때 우리는 감사함을 고백하고 그를 찬양해야 한다. 

이 제단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 세워졌던 것이다(사 12:1).

Ⅱ. 다윗은 제단을 쌓기 위해 토지를 매입한다. 

그 땅의 소유자는 아라우나라는 이름의 여부스 사람인 것 같다. 그는 틀림 없이 이방 태생이지만 유대교에 개종해서 이스라엘 사람 사이에 거주가 허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성 안에 자기 소유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레 25:29, 30). 그 땅은 타작마당으로 보잘 것 없는 곳이었지만, 수고의 장소였으므로 이처럼 존귀한 장소가 된 것이다.

1. 다윗은 땅 임자와 직접 거래하기 위해 그에게 갔다. 다윗이 공정성을 주목하자. 그는 이렇게 절박한 중에도 그곳을 사용하려 들지 않았다. 

비록 소유자는 이방인이었고 그 자신은 왕이었으며, 목하 그곳에 제단을 세우라는 지엄하신 하나님의 분부를 받았음에도 그는 그곳을 매입하여 값을 치르기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신다(사 61:8). 

다윗의 겸허를 살피자. 그는 조금도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비록 왕이었지만 이제 참회자가 된 그는 자기 비하의 표시로 아라우나를 부르러 사람을 보내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거래하지 않고 친히 아라우나에게 가서 이 일을 주선했다. 

이 일은 얼핏 보기에 다윗의 체통을 손상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 일로 명예를 잃지 않았다. 

아라우나는 다윗을 보자 왕 앞에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했다(20절). 권세자들은 자기 겸손 때문에 존경을 더 받으면 받았지 덜 받지는 않을 것이다.

2. 아라우나는 다윗의 내방 이유를 알게 되자 그에게 후한 제의를 했다(21절). 

그는 제단 쌓을 토지뿐만 아니라 번제할 소와 제사에 소용이 될 다른 물건들까지도 내놓겠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무상으로 내놓는 외에 좋은 것까지 곁들였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라우나가 이렇게 행한 것은 다음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1) 그는 대재산가로 관대한 마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왕처럼 왕께 드렸다”(흠정역, 23절). 그는 평범한 백성에 지나지 않았지만 제왕의 정신을 가진 자였다. 히브리 원문으로는 “그는 드렸으니 바로 왕이 왕께 드리는 것 같았다”는 뜻이다. 이로써 우리는 아라우나가 그곳 여부스족들의 왕이었거나 아니면 그때는 비록 다윗의 속민이더라도 여부스족의 왕손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아라우나는 다윗이 비록 정복자였지만 그의 많은 개인적 공로 때문에 그를 크게 존경하였고, 그에게 아무리 많은 은혜를 베풀어도 신세를 갚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애착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스라엘에 내리는 재앙이 그치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앙이 자기 집 타작마당에서 그치게 되면 그것은 영광이 될 터였으므로 그는 다윗에게 바치는 모든 것을 귀중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3. 다윗은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로 결심하고 또 그렇게 했다(24절). 

여기에는 두 관대한 심령의 만남이 나온다. 아라우나는 기꺼이 헌납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윗은 한사코 지불하려고 했다. 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그는 값없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그는 경건한 여부스인의 관대한 마음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은 틀림 없이 그의 친절한 제의에 대해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타작마당과 소에 대해 은 오십 세겔을 지불했고 나중에는 성전 건축을 위해 그 인접 구역에 대해 금 육백 세겔을 지불했던 것이다. 그 주된 관심이 값싸고 손쉬운 데 있는 자들, 가장 노력과 돈이 적게 되는 걸 기뻐하는 자들은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을 주의하자. 우리가 재물로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재물을 소유한단 말인가? 재물을 이보다 더 선용하는 것은 없다. 

Ⅲ. 다윗은 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을 드렸다(25절). 

그는 시행된 하나님의 공의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 번제를 드렸고 그 심판 도중 적절한 시기에 중단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 화목제를 드렸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나타내셨다(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워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재앙이 그친 것은 자비에서였고 하나님이 왕이나 백성과 다 화해하셨다는 표시였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요, 희생 제물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만이 하나님께 은총 입기를 기대할 수 있고 그 안에서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으며 생명나무 길을 지키는 그룹들의 화영검을 피할 수 있다. 아멘


==호크마==
..사무엘하 24장
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ㅇ다시(요세프) - 이는 다윗 치세 당시 이스라엘의 국가적 재앙이 지난번 3년 연속 기근(21:1)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임을 밝혀 주는 구절이다.
ㅇ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 본장에 나타나는 바(2-9절) 다윗의 인구 조사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적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우선적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자 다윗으로 하여금 그릇된 행위를 하도록 부추기셨던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다윗이 사단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방임하셨던 것이다-대상 21:1).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케한 이스라엘의 범죄는 무엇인가 ? (1) 혹자는 그것을 본서에 기록되지 아니한 '숨은 죄'라고 본다(Kimchi). (2) 또 다른 혹자는 다윗의 인구 조사에 동참한 죄라고 본다(Lange).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본 구절에서는 명확히 하나님의 진노가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킨 이스라엘의 범죄는 (3) 지난번 압살롬의 난(15:7-12)과 세바의 난(20:1, 2)에 보여 주었던 저들의 반역적인 행동이라고 보아야 한다(Keil). 즉 그때에 이스라엘의 다수는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 왕을 반역하고, 그를 대적하여 압살롬과 세바를 좇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반역죄였던 것이다.
ㅇ다윗을 감동시키사...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 본서 저자는 다윗의 범죄 행위(인구 조사)를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自由意志)를 말살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모든 인간 역사를 당신의 뜻대로 섭리하여 가신다. 따라서 다윗의 인구 조사는 다윗의 자유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다윗의 의식 속에 있던 악한 의도를 허용하셨을 뿐이다. 한편, 대상 21:1에서는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두 기록은 상호 모순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단을 이용하시기 때문이다(욥 1:12;삼상 26:19).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다윗의 인구 조사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허용 하에서 사단의 격동으로 일시 교만한 마음을 품은 다윗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본장의 인구 조사는 다윗 통치의 말기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Hengstenberg). 그 근거로서 우리는 인구 조사가 약 10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군대 장관 요압이 수도를 오랫동안 떠나있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당시의 태평 성대를 보여 준다. 따라서 이 때는 대내외적으로 모든 정벌과 반란이 완료되고 진압됨으로써 태평 성대를 구가하고 있던 다윗 통치의 말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ㅇ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단(Dan)은 이스라엘 북쪽 경계 성읍이며,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 남쪽 경계 성읍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이스라엘 온 땅을 통칭하는 표현이다(삿 20:1;삼상 3:20;대상 21:2;대하 30:5).
ㅇ인구를 조사하여...내게 알게 하라 - 다윗의 인구 조사는 이스라엘의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인구 조사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정하에 여러번 인구를 계수한 바 있기 때문이다(출 30:12;38:26;민1:44-46;26:51). 문제는 다윗의 인구 조사가 군사적인 목적, 또는 왕권의 강화를 위해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제사장들이 그 일을 감당하였다(민1:3;26:1, 2). 이에 반해 여기서 다윗은 요압을 인구 조사의 책임자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또한 합법적인 인구 조사는 조사받은 각 사람에게 생명의 속전(贖錢)을 내게 하였다(출 30:2). 그리고 이 생명의 속전은 성소에 봉헌됨으로써 여호와께 속하게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하나님께 속했음을 고백하는 의식이었다(출 30:13). 그러나 다윗은 본 인구 조사에서 이를 시행치 않았다. 이로 보아, 다윗은 단순한 인구 조사를 명령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인 목적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이었다(Lange, Smith, Keil, The Interpreter'sBible, Hengstenberg, Schmid). 그런데 이와 같은 다윗의 행위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으려 하지 않고, 강화된 군사력과 왕권에서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삼상 17:47). 그러므로 이는, 후일 바벨론 왕의 사신들의 방문을 받은 히스기야 왕이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보물 창고와 무기고를 보여 줌으로써 재력과 군사력을 자랑한 교만죄와 같은 성질의 죄인 것이다. 이처럼 다윗은 인구 조사를 통해 자기의 세력과 영광스러운 번영을 확인하고 자랑하려 했다. 특히 군사력에 대한 실세를 파악(9절)함으로써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굳히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는 (1) 번영의 근거가 바로 자신에게 있다고 믿으며, (2) 하나님 보다는 군사력을 더욱 신뢰하려 했던 다윗의 교만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듯 인간들은 흔히 자신에게 찾아온 행복과 번영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제목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힘을 괴시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러한 인간의 과시욕과 명예욕은 그러한 번영과 힘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일로서, 결국 그분의 진노를 자초하고야 만다(시 94:2;잠 21:4;눅 1:51).
3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ㅇ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 이는 요압이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을 반대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요압의 반대는 다윗의 범죄를 방지해보려 했던 충언이었다. 하나님은 신정(神政) 국가의 복된 미래를 약속하신 바 있다(신 33:9). 그러나 그 약속에는 어디까지나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하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있는 것이었다. 다윗이 이러한 전제에서 벗어나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힘을 의지하려 하자, 이에 요압이 다윗의 잘못됨을 인식하고 충언을 하였던 것이다(Smith,Fay). 한편, 정세(政勢)에 대단히 민감했던(19:5-7) 요압은 백성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다윗의 명령에 반대하였을 가능성도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즉, 주변 이방나라들의 경우 인구 조사는 주로 과세와 징병의 목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자칫 이번의 인구 조사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오해와 원성을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4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ㅇ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 이때에 요압과 더불어 요압 휘하의 각 부대 장관들도 함께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은 공식 석상에서 하달된 것으로 보인다(Pulpit Commentary). 한편 원문상으로 볼 때 이들이 요압의 견해에 동조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 각각에게 인구 조사 시행을 재촉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엘 요압 웨알 사레이 헤하일)은 직역하면, '요압에 대하여(against), 그리고 군대 장관들에 대하여(against)'이다. 그리고 '재촉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자크'는 '강퍅하다', '완악하다'란 의미의 말로서(출 8:19;9:35), 이는 다윗이 신하들의 만류를 끝까지 뿌리치고 자기의 고집을 극구 주장하였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5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ㅇ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 '아로엘'(Aroer)은 요단 동편에 있던 한 성읍으로서(신 2:36;수 12:2), 원래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으나 그곳에 성(城)을 쌓은 자들은 갓 자손이었다(민 32:34). 이곳은 사해(死海)에서 동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곳이며, 아르논 강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Biblical Commentary). 한편 이곳은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요압은 여기서부터 인구 조사를 착수했던 것이다.
ㅇ야셀 - 본래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성읍이었으나, 후에 갓 족속의 정착지가 되었다(민 32:35;수 13:25). 또한 이곳은 아모리 지경과의 경계지가 되었고, 갓 지파가 레위지파에게 준 네 성읍 중 하나였다(수 21:39).
ㅇ장막을 치고 - 인구 조사는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무리들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요압은 이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막을 아로엘과 야셀 사이의 초원 지대에 건설하고, 이 장막을 인구 조사의 본부로 이용했던 것이다(Keil, Lange).
6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ㅇ길르앗 - '길르앗'(Gilead)은 인구 조사 본부가 설치되었던 아로엘과 야셀이 속해있는 지방으로서(신 3:10), 얍복 강 양편의 산악 지방을 일걷는다(창 31:21-48). 이곳에는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가 살았다.
ㅇ닷딤홋시 - 이곳의 위치는 불분명하나 갈릴리 바다 동편인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곳에서 이스라엘 북단 '다냐안'으로 갔기 때문이다. 즉, 이곳은 길르앗에서 다냐안으로 가는 중간 지점인데, 이렇게 볼 때 닷딤홋시(TahtimHodshi) 땅은 갈릴리 바다 동편일 수 밖에 없다(Keil).
ㅇ다냐안 - 이는 정확히 말해서 '단야안'이며, 곧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단'을 가리킨다(수 19:47;삿 18:29). 이곳은 다메섹 남서쪽에 위치했으며 당시 다윗 왕조의 북쪽 경계지였다. 한편, '야안'은 베니게의 신(神)의 이름으로, 이교적인 풍습에 의해 이 우상의 이름이 지명에 붙여진 듯하다(Bunsen).
ㅇ시돈 - '시돈'(Sidon)은 사실상 다윗 왕국의 영토는 아니었으나, 다윗 왕국의 속국으로서 당시 군역(軍役)에 가담하고 있었다(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Bible). 한편 시돈성(城)은 베니게의 부요한 성읍이었으며, 단의 북서쪽 지중해 해안에 위치하였다(창 10:15;수 11:8;19:28).
7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ㅇ두로 견고한 성 - '두로'(Tyre) 역시 시돈과 마찬가지로 당시 다윗의 종속국이었다. 이곳은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40km 지점이다(수 19:29) 따라서 이스라엘 최북단까지 올라간 요압 일행은 시돈을 기점으로 하여 남쪽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ㅇ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 - '히위 사람'(the Hivite)이나 '가나안 사람'(the Canaanit)은 모두 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던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비록 히위사람들은 기브온 근처까지 내려와 살기도 하였지만(수 11:19), 이들 이방인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북방 지역, 즉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 지파의 땅에 공동 거주하였다. 따라서 이곳은 후에 '열방의 둘레'라는 뜻의 '갈릴리'로 불려지게 되었다(PulpitCommentary, Lange). 한편 이들 이방인들 역시도 군역(軍役)을 감당해야 했으므로, 인구 조사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ㅇ브엘세바 - '브엘세바'(Beersheba)는 유다 네게브 지방의 한 성읍이었고, 남쪽 유다의 행정 중심지였다(대하 19:4). 그리고 이곳은 이스라엘 영토의 최남단(最南端)에 위치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판도를 서술할 때 흔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기술하였다(삿 20:1;삼상 3:20;삼하 3:10).
8 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달 스무날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ㅇ아홈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 이 기간 동안에 펼친 요압의 인구 조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즉 병행 구절인 대상 21:6에 보면,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대상27:24에 의하면, 인구 조사를 채 끝내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 사실이 밝혀져 있다. 때문에 여기에 기록된 인구 조사 기간은 매우 긴 기간으로서, 요압은 다윗의 명령을 못 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소홀하게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Keil, Fay).
9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ㅇ이스라엘...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 이 기록은 병행 구절인 대상21:5의 기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역대기에서는 이스라엘의 병력이 110만이요 유다의 병력은 47만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 혹자는 역대기의 기록이 이방인의 숫자를 포함시킨 것이기 때문에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Schmid) (2) 그리고 또 혹자는 역대기의 수효에는 베냐민 지파와 레위 지파의 수효까지 합산되었기 때문에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D. Kimchi). (3) 그러나 우리는 '그 수효를 다윗 왕의 역대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대상 27:24)는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이 같은 차이는 그 수치가 구전(口傳)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Keil, Lange, Smith, The Interpreter's Bible). 따라서 어느 기록이 더 신빙성 있는 것인지 우리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략 이 두 기록의 중간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병력이 130만이든 아니면 157만이든, 이 숫자는 출애굽 당시의 군사력(603,550명;민 2:32)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숫자였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보고를 받고 자기의 국력을 확인하고는 크게 만족해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다윗은 어리석게도 이 모든 번영과 강성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또한 많은 대군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기 않는다면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ㅇ칼을 빼는 담대한 자 - 모세 율법에 따르면(민 1:3;26:2), 이스라엘 백성 중 싸움에 출전할 수 있는 자는 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였다. 그런데 요압의 인구 조사 결과 이처럼 이스라엘 중에 전투 능력이 있는 장정들은 도합 130만 명이었다(대상 21:5의 기록에는 157만명). 이런 수치에 근거하여 통례상 군복무 가능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가량이라고 본다면, 당시 다윗 통치하의 이스라엘 전체 인구는 500~600만 명 가량으로 추산될 수 있다(Keil, Fay).
10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ㅇ다윗이...그 마음에 자책하고 - 다윗의 만족은 얼마 가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곧 양심의 가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책하다'(나카)란 말은 '때리다', '치다'란 의미로서, 곧 신앙 양심이 무디어진 마음을 쿵쿵 치는 상태를 가리킨다.
ㅇ여호와께 아뢰되...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 자신의 행위를 깨닫고 여호와께 진심으로 회개하는 다윗의 겸손한 모습이다. 여기서 '큰 죄'라 함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군사력(힘)을 의지한 그의 자고하고 교만한 생각과 행동이었다.
ㅇ여호와여...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다윗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다윗의 솔직하고도 겸허한 '회개'에 있었다. 즉 다윗도 간음, 살인, 교만 등 온갖 죄악을 저질렀으나, 그는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지체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여기서도 다윗은 요압의 보고를 접한 직후에 무디어졌던 양심의 기능이 회복되어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죄를 발견하기까지는 약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8절). 그는 그 동안 이생의 자랑이라는 편협한 사고에 의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길이 참으시는 사랑을 보이셨던 것이다(눅 15:17-24). 한편 다윗의 회개는 자신의 실수에 따르는 책임(형벌)을 회피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손길에 자신을 전폭적으로 맡김으로써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태도였다.
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ㅇ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 이는 다윗이 습관적으로 평소와 같이 일찍 일어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특별히 다윗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밤새도록 침대 안에서 뜬 눈으로 뒤척이다가 일어났거나(Keil), 또는 밤새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한 사실(Lange)을 말해 준다. 따라서 여호와의 선지자 갓(Gad)의 방문은 다윗의 회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자애로운 응답이었다(Smith).
ㅇ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 - 여기서 '선견자'(先見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제'는 '이상을 보다'는 의미의 동사 '하자'에서 파생된 말로서, 이는 하나님의 이상 또는 계시를 받은 자를 의미한다(단 2:26, 41, 43, 45;4:20;7:2). 삼상9:9 주석 참조. 이러한 선지자 갓은 다윗의 망명 시절에 모압 땅을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갈 것을 다윗에게 권면하기도 하였다(삼상 22:5).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ㅇ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는 '내가 네 위에 세 가지를 두노니'이다. 즉 '보이노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탈 알'은 '~위에 짐을 지우다', '위에 올려 놓다'는 뜻으로(애 3:8), 이는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무거운 형벌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ㅇ칠년 기근 - 병행 구절인 대상 21:12에서는 7년이 3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3년이 보다 정확한 기록인 것 같다(Smith, Fay). 왜냐하면 본 구절에서 갓 선지자를 통해 제시된 재앙들이 모두 3이란 숫자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70인경(LXX)도 이를 3년 기근이라고 기록해 놓았다. 한편, 여기에 제시된 세가지 재앙은 하나님의 네 가지 중한 벌(罰)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 네 가지는 기근, 전쟁(칼), 온역, 그리고 사나운 짐승이다(겔 14:21). 이중 두 가지(칼과 기근)는 이미 다윗이 당한 바 있다.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ㅇ내가 곤경에 있도다 - 여기서 '곤경'에 해당하는 '차라르'는 사방에서 짓누르는 압박감을 뜻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제시한 3가지 징벌은 하나 같이 다윗이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명예와 힘을 꺽어놓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의 선택을 위임받았던 다윗은 결국 하나님의 품보다 더 나은 피난처가 없음을 깨닫고(시 46:1;90:1),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에 의해 시행되는 징벌인 '3일 동안의 온역'을 택하였다. 결국 그는 위임받은 선택권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렸던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는 (1)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며(시 131편), (2)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궁극적으로는 은혜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안 올바른 신지식(新知識)에 따른 결정이었으며(민 6:24-26), (3) 모든 문제의 원천적 해결자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마 11:28).
ㅇ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 '전쟁의 재앙'은 대적의 손에 죽는 것이며, '기근의 재앙'은 흉작을 유발하여 사회를 피폐시킨다. 반면, '온역'(데베르)은 '불치의 전염병'으로서 고대인들은 이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생각하였다(The Interpreter's Bible, Wycliffe Bible Commentary). 다윗은 이 중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벌로 생각된 온역의 재앙을 택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선택은 기왕이면 하나님께 직접 매맞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해진 것 같다. 즉, 다윗은 사악한 인간이나 피폐된 사회에 붙여지기 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형벌을 받는 것이 긍휼하신 여호와의 위로와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재앙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다윗의 신앙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인이라
ㅇ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 '그 아침'이란 갓 선지자가 다윗 왕을 방문한 그날 아침을 가리킨다. 그러나 '정하신 때'는 염병이 시작된 날로부터 3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6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재앙의 시간을 단축시키셨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히브리 원어상 이 말에는 관사가 붙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때는 하나님께서 본래 작정하셨던 바로 '그 때'(만 3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정하신 때'(에트 모에드)란 하나님께서 재앙을 맞이하는 다윗의 신앙적 태도를 보시고 그 재앙의 기간을 단축한 그 마지막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Lange).
ㅇ단부터 브엘세바까지 - 이스라엘 전역을 통칭하여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20;삿20:1;삼상 3:20).
ㅇ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자가 죽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운 실상을 생생히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범죄(1절)에 진노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무서운 온역(전염병) 재앙이 맹렬하고도 급속히 이스라엘 전역을 내리 덮은 것이다. 이로써 다윗과 이스라엘은 큰 병력의 손실을 보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자의 그 힘을 현저히 약화시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똑똑히 발견하게 된다.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ㅇ천사 - 이 천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실행하는 '멸하는 천사'(출 12:23)를 가리키는데, 온역 재앙시 이 천사는 다윗에게 가견적(可見的)으로 나타났다(17절). 대상21:16에서도 다윗이 천지(天地) 사이에 서 있는 천사를 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천사가 가견적 모습으로 나타나 백성을 쳤다는 사실은 이 온역(溫疫) 재앙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Keil,Smith).
ㅇ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 여기서 '뉘우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함'(* )은 '뜻을 돌이키다'는 뜻으로서(창 6:6;출 32:14;삿 2:18;시 106:45), 이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을 거두셨다는 의미의 말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돌이키심은 일차적으로는 다윗의 진실한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윗과 그 백성을 사랑하신 긍휼과 자비의 성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하나님의 가변적(可變的) 속성을 반영하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전지 전능하신 분으로서 불변성(不變性)을 지닌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로우시며 초월적인 품격을 지니신 분으로서, 당신의 목적을 수행하실 때 인간과 더불어 섭리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대응 여부에 따라 그 섭리의 방식을 다양하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의인화(擬人化)시켜 신인 동형 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 Anthropomorphism)적으로 묘사할 때,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가변성 품성인양 비쳐질 뿐이다.
ㅇ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 여부스인(the Jebusite)은 예루살렘 성의 원주민이다(5:6-8). 그리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은 모리아 산 곧 예루살렘 동북편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대하 3:1). 그런데 타작 마당은 추수한 곡물의 겨나 지푸라기 등을 바람에 날려 보내기 위해 일반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Smith). 결국 이곳은 얼마 후 솔로몬 성전의 터가 된다(대하 3:1). 한편 역대상에는 '아라우나'의 이름이 '오르난'으로 기록되어 있다(대상 21:15, 18, 20, 21, 22, 23). 여기서 '아라우나'는 여부스식 표기이며, '오르난'은 히브리식 표기이다(Keil, Ewald, Lange). 그런데 70인역(LXX)에는 일괄적으로 '오르나'로 표기되어 있다.
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ㅇ나는 범죄하였고...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 다윗의 진정한 회개의 기도이다. 히브리어에서 인칭은 동사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형태인데, 여기서 다윗은 인칭 대명사 '아노키'를 두번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범죄의 주범임을 거듭 강조하였다. 즉 다윗은 여기서 오직 자기만이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라고 고백하면서, 일체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전가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회개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참된 회개란 (1)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 그 범죄로 말미암은 결과에 대해서까지 달게 책임지려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며, (2) 타인의 허물과 죄악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통회하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 자세를 갖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병행 구절인 대상 21:16을 보면, 다윗은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였다. 이는 다윗이 일국의 왕이라는 처지에 결코 연연치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최대한의 겸손과 회개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이었다.
18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ㅇ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단을 쌓으소서 - 이와 같은 갓 선지자의 말은 다윗의 겸허한 회개 기도에 대한 여호와의 자애로운 응답이요 화해 선언이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를 인정하시고, 당신의 진노를 진정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전달하신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 화해의 장소로 아라오나의 타작 마당을 지시하신 것은 그곳에서 천사의 심판 활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나타난 곳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화해와 자비의 장소로 지정하시고, 이곳을 성별케 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후에 이곳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져 택한 백성들의 시은소(施恩所)가 되었다.
19 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ㅇ다윗이...올라가니라 - 다윗은 크신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지체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20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ㅇ아라우나가...나가서 - 병행 구절인 대상 21:20, 21에서는 아라우나가 밀을 타작하다가 다윗을 맞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ㅇ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 이마가 땅에 닿도록 무릎을 꿇고 몸을 숙이는 자세를 가리키는데, 이는 윗 사람에 대한 경외와 절대 복종의 자세이다(삼상25:23;에 8:3;왕하 4:37).
21 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
ㅇ어찌하여...종에게 임하시나이까 - 한때 사울은 그 왜곡된 종교적 열정으로 가나안 땅의 이방 족속을 멸절시키고자 시도하기도 했었다(21:2). 이런 배경하에서 가나안 땅의 잔존 원주민인 아라우나는 자신의 외진 타작 마당에 왕이 그 수행원들과 더불어 친히 당도했다는 사실에 두려움부터 앞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Smith). 따라서 아라우나는 분명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다윗 왕과 그 수행원들을 맞이했을 것이다(삼상16:4).
22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고하되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ㅇ소가 있고...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 '아라우나'(Araunah)는 다윗 왕에게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소'(하바카르)는 탈곡 썰매를 끌도록 하기 위해 멍에로 함께 매어 놓은 '한쌍의 소'를 가리킨다(Keil). 그리고 '마당질하는 제구'(threshing instrument)는 소가 끌고다니면서 곡식을 떠는 썰매의 일종이다(신 25:4). 그런데 이러한 제구(instruments,KJV;sledges, NIV)와 멍에(yoke)는 모두 나무로 제작되었다(렘 28:13). 또한 이러한 나무는 제물을 태우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23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ㅇ왕이여 아라우나가...왕께 드리나이다 - 혹자는 여기서 '왕이여'(하멜렉)란 말을 호격(呼格)으로 보지 않고, 주격(主格)으로 보아 아라우나를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A.V.) 그리고 이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아라우나가 이전에 여부스족의 왕이었다고 주장한다(Ewald). 그러나 이것은 근거없는 억측이다. 그리고 고대 역본들(LXX, the Vulgate, the Syriac, the Arabic, the Chaldee etc)은 아예 이 말을 생략해 버리고 단순히 간접 화법으로 처리하여, 곧 "아라우나가...왕께 주었다"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것은 24절에서 다윗 왕이 값주고 샀다는 묘사와 모순되기 때문에 취할 수 없다. 결국 본 어구는 히브리 원문(M.T.) 그대로 "왕이여 ! 아라우나가...왕께 드리나이다"(O. King, Araunah gives...to the King, RSV, NiV)로 해석함이 가장 좋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T. Vol. II-ii, pp. 510-511).
ㅇ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 성공적인 제사는 하나님께서 제물과 함께 그 제물 드리는 사람을 함께 받으시는 제사이다(창 4:4, 5). 그러므로 여기서 아라우나는 다윗 왕의 제사에서 제물과 더불어 제물 드리는 자가 모두 기쁘게 여호와께 열납됨으로써, 성공적인 제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던 것이다. 이로 보아 아라우나는 예루살렘 정복 이후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한 것이 분명하다.
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ㅇ값 없이는...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 다윗은 아라우나의 소유를 취해 그냥 드릴 경우, 그 제사는 완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진정 다윗은 자신의 재산을 바쳐 최대한의 정성을 드리고자 했던 것이다(Lange). 여기서 우리는 이방 출신 개종자 아라우나의 아낌없는 헌신과, 참된 눈물의 회개자 다윗 왕의 희생적인 순수함을 보게 된다. 이같이 아름다운 정경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 참된 헌신은 결코 이해 타산이나 인색함 없이 온전하고도 자발적으로 드려야 한다(고후 9:7). (2) 자기 희생 없는 값싼 제사는 여호와께 무의미한 것이다(신 16:16). (3)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온전한 헌신과 순수한 희생의 마음 자세이다(삼상 15:22;사 1:11-17;히 13:16).
ㅇ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 병행 구절인 대상 21:25에는 그 (성전 산) 전체 땅 값으로 금 600세겔을 지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혹자는 이같은 차이를 필사자의 착오에 의한 오기(誤記)로 보려 한다(Keil). 그러나 착오 치고는 너무나 큰 차이다. 또 혹자는(Bochart) 대략 금화가 은화의 12배의 가치에 해당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즉50X12=600), 여기서의 '은'(케셔)을 단지 '돈'이란 뜻을 지닌, 실상의 '금'으로 본다. 그리고 대상 21:25의 '금'(자합)을 '은 600세겔에 해당하는 금'으로 고쳐 해석한다. 그러나 이처럼 원문을 임의로 고쳐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각기 다른 두 품목에 대한 두 가격으로 보아야 한다(PulpitCommentary). 즉, 여기에서 지불된 은 50세겔(Shekel, 은 1세겔은 대략 노동자 4일의 품삯에 해당됨)은 소와 타작 마당에 해당하는 값이며, 대상 21:25에 나타난 금 600세겔은 성전 부지로 사들인 모리아 산 전체에 대한 값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5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ㅇ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 하나님은 다윗과의 화해를 표시로 아라우나마당에서의 제사를 요구하셨다(18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징벌하시는 방법과 더불어 그 형벌을 해결하시는 방법까지도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회개와 죄로부터의 회복은 인간 스스로의 자의식과 자발적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구원 섭리에서 비롯된다(시  51:10-13).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사의 처소로'아라우나 마당'을 특별히 요구하신 데는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즉 예루살렘 성 동쪽 모리아 산에 위치한 그 마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으로서(창22:1-14), 아브라함의 순종 및 신앙과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기억되는 장소였다. 이런 역사적인 명소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화해와 자비의 처소로 다시 한번 택하시고 성별케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보살피시는 은혜를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적이고 내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에 얼마 후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다(대하 3:1).
ㅇ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 '번제'는 다윗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제사이다(레 1:4). 그리고 다윗은 번제에 이어 화목제를 드렸다.
이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셨다는 근거하에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과 앞으로 베풀어 주실 은혜를 감사하여 드린 제사이다(레 서론, 7.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ㅇ이에...재앙이 그쳤더라 - 다윗의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내의 온역 재앙은 완전히 그쳤다. 이것은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재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직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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